<이씨세대록(李氏世代錄)>에서
발견하는 규범과 욕망의 균열
김민정(경상국립대학교 여성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이씨세대록(李氏世代錄)>은 <쌍천기봉>의 후편으로 26권 26책으로 이루어져 있는 고전 대하소설이다. 주인공은 이현이며, <쌍천기봉>과 <이씨세대록>은 이현의 가문인 이부(李府) 내에 발생한 여러 갈등과 해결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그 중 <이씨세대록>은 이현 가문의 3대와 4대 중 이몽현, 이흥문과 그 가족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이씨세대록>은 전편인 <쌍천기봉>에 비해 인물이나 사건 등이 훨씬 복잡해졌다. 2대 인물인 이몽현, 이몽창의 각각 10자녀 이상 인물들의 혼사담이 펼쳐지면서 다양한 만남과 결연담이 나타나고, 한왕과 이부 인물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 갈등과 군담 또한 전편에 비해 확대, 심화된다. 이에 따라 그 내용이 더욱 다채로워졌다는 특징이 있다.
<이씨세대록>은 한국 고전문학의 걸작 중 하나로, 특히 복잡한 인물 관계와 충돌을 통해 사회적, 문화적 쟁점을 탐구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주로 혼인과 가족 관계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이를 통해 당대의 관습과 윤리에 대한 논쟁적인 주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씨세대록>의 여러 특징을 짚어보도록 하겠다.

그림1: 이씨세대록(奎8597)
| 서사 구조의 복합성과 흥미 |
<이씨세대록>은 서사 구조의 복잡성과 다층적인 전개로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한다. 이 작품은 이현 가문의 세대별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문의 전통과 갈등, 인물들의 성장과 혼인의 이야기가 엮여 있다. 특히, 방대한 인물 군상과 얽히고설킨 사건들은 작품의 복합적인 서사 구조를 형성하며, 독자에게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이 작품의 중심축은 혼인담이다. 혼인담은 단순한 결혼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문 간의 결합, 이해관계, 정치적 갈등을 동반하며 사회적, 문화적 맥락을 드러낸다. 혼인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사건은 가문의 체면, 유교적 가치관, 그리고 당대의 혼례 관습과 맞물리며 복잡한 서사 구조를 만들어 낸다. 예를 들어, 이몽현의 후손들이 겪는 비례의 혼인들은 서사의 긴장감을 높이는 동시에, 혼인을 둘러싼 다양한 가치와 규범의 충돌을 보여준다.
또한, <이씨세대록>은 혼인 이야기 외에도 정치적 갈등과 군담을 중요한 서사 축으로 다룬다. 특히, 한왕과 이부 인물들 사이의 정치적 대립은 전편 <쌍천기봉>에 비해 더욱 확대되고 심화되며, 인물들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복합적인 서사 구조를 형성한다. 이러한 갈등은 단순히 권력 다툼의 차원을 넘어, 가족 내의 충돌과 개인의 윤리적 고민까지 확장되며 서사를 풍성하게 만든다.
<이씨세대록>의 서사 구조는 단일한 사건이나 인물에 의존하지 않고, 각 인물의 성장과 변화, 그리고 이들 사이의 관계망을 통해 다층적으로 전개된다. 특히, 작품 속 인물들은 개인적 욕망과 사회적 규범 사이에서 갈등하며, 그 과정에서 내적 성장과 외적 대립을 경험한다. 이러한 서사적 접근은 독자들에게 단순한 줄거리 이상의 흥미를 제공하며, 각 세대가 겪는 사건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서사 전개에 긴장감을 더한다.
결론적으로, <이씨세대록>의 서사 구조는 조선 후기 가문소설의 특징인 방대하고 정교한 전개 방식을 잘 보여준다. 인물과 사건의 복잡한 상호작용은 독자들에게 당대 사회의 다양한 층위와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가문소설로서의 독특한 매력을 배가시킨다.
| 비례(非禮)의 혼인: 혼사담의 독창성 |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씨세대록>에서 돋보이는 특징 중 하나는 ‘비례(非禮)의 혼인’이다. 비례의 혼인은 유교적 혼례 절차를 벗어나거나 일반적인 관습과 어긋난 혼인을 의미하며, 작품 내에서 독창적이고 자극적인 서사를 만들어내는 주요 요소이다. 이러한 혼인은 주로 갈등과 논란을 야기하며, 이야기의 중심적인 축을 이룬다.
대표적인 예로 이몽현의 장남 이흥문은 정혼자인 노몽화를 추녀로 오해하여 혼례를 회피하고 가출한다. 그는 가출 중 만난 미인 양소저와 혼인한 뒤 집으로 돌아오는데, 이 과정에서 ‘불고이취(不告而娶)’라는 논란이 발생한다. 정혼자를 두고 다른 여인과 결혼한 그의 행동은 단순히 개인적 선택으로 끝나지 않고, 가문 내 갈등과 ‘폐장(廢長)’ 논의로 이어지며 사회적 문제로 확대된다. 이러한 사건은 가문 내 권위와 질서, 그리고 유교적 가치관의 균열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 다른 사례로는 이몽현의 딸 이미주와 그녀의 재종간인 철수와의 혼인이 있다. 근친혼이라는 금기에 도전하는 이 혼인은 논란 끝에 성사되지만, 그 과정에서 근친혼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분분하게 나타난다. 이 혼인은 단순히 금기를 깨는 설정에 그치지 않고, 성사 이후에도 부부 사이의 갈등을 지속적으로 그리며 혼인의 윤리적, 사회적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내종형제 간의 이중 혼인도 이 작품에서 등장한다. 이몽현의 두 아들 이흥문과 이백문은 한 여성을 부인으로 맞아들이는 관계에 놓인다. 이 사건은 가문 내의 문제를 넘어 황제의 논죄까지 이어지며, 삼강오륜의 질서를 흔드는 극적인 서사로 확장된다. 이러한 이중 혼인은 단순히 이례적인 사건을 넘어, 당시 사회에서 혼인 제도를 둘러싼 가치관의 충돌과 혼란을 보여준다.
이러한 비례의 혼인은 단순히 파격적이고 자극적인 서사로만 기능하지 않는다. 혼인을 둘러싼 인물들의 다양한 이해관계와 갈등, 그리고 유교적 질서와의 충돌을 통해 당시 사회의 혼인 제도와 가치관의 이면을 깊이 탐구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이씨세대록>은 비례의 혼인 서사를 통해 지배 담론의 균열을 드러내며, 독자들에게 혼인의 의미와 본질에 대해 다시금 질문을 던진다.
| 여성 반동인물: 갈등의 중심 |
<이씨세대록>에서 여성 반동인물은 단순한 주변 인물이 아니라 갈등의 중심에서 사건을 촉발하고 서사를 이끄는 주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이 작품에는 여러 반동인물이 등장하며, 그중 여성 반동인물은 6명으로 이들의 비중은 남성 못지않다. 특히, 여성 반동인물들은 단순한 개인적 욕망이나 악행을 넘어, 가문과 사회 질서를 흔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씨세대록>의 대표적인 여성 반동인물로는 노몽화가 있다. 그녀는 단순히 가문의 충직한 일원으로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욕망과 계획을 적극적으로 실현하며, 서사의 긴장감을 극대화시킨다. 노몽화는 이부(李府)에서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음모를 꾸미고, 이러한 과정은 그녀를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캐릭터로 만든다. 그녀의 행위는 유교적 가치관을 기반으로 한 가문 내 질서를 흔들며, 작품 내 갈등을 심화시키는 핵심적 요소로 작용한다.
또 다른 중요한 여성 반동인물로는 홍연을 들 수 있다. 홍연은 노몽화의 시비(侍婢)로 등장하지만, 그녀의 역할은 단순한 시비의 틀을 넘어선다. 초기에는 노몽화의 조력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던 홍연은, 노몽화가 몰락한 이후 그녀를 대신하여 이부를 향한 복수를 계획한다. 홍연은 조귀비와의 관계를 통해 이부의 몰락을 도모하며, 작품 후반부에서 반동인물로서의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러한 그녀의 행보는 당시 하층 여성의 적극성과 주체성을 보여주며, 사회적 지위에 관계없이 개인적 욕망을 실현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성 반동인물들은 작품 속에서 가문의 질서를 위협하며, 사회적 갈등을 부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들은 단순히 주동 인물들과 대립하는 적대자가 아니라, 서사 전개에 필수적인 존재로 작용한다. 이들의 욕망과 행위는 단순한 개인적 행동으로 그치지 않고, 가문과 사회 질서의 충돌을 드러내며, 작품의 다층적 서사 구조를 형성하는 데 기여한다.
결론적으로, <이씨세대록>에서 여성 반동인물은 단순히 갈등의 중심에 위치하는 것뿐만 아니라, 작품의 주요 서사적 동력을 제공하며, 당대 여성의 역할과 한계를 탐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의 행위는 가문소설의 전형적 구도를 깨고, 복잡하고 역동적인 서사를 가능케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 인물의 성장과 사회적 의미 |
<이씨세대록>의 인물들은 개인의 발전과 성취를 통해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가문과 사회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는 인물들이 단순히 주어진 역할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과업을 발견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드러난다. 이러한 예를 이몽현의 후손들과 시비 홍연을 통해 찾을 수 있다.
먼저 이몽현의 후손들은 개인적 성장을 넘어 가문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며, 이를 통해 스스로의 발전과 가문의 영광을 동시에 추구하는 인물들이다. 이러한 자기 발전의 예는 이흥문과 이백문 형제가 동일한 여성과의 혼인을 통해 발생한 갈등 속에서도 각자의 책임과 역할을 분명히 하며 가문 내의 질서를 회복하려는 과정에서 확인된다. 이들의 노력은 단순히 개인적 만족을 넘어서, 사회적 책임과 가문 내 조화를 이루기 위한 헌신으로 이어진다.
홍연 역시 자기 발전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녀는 노몽화의 몰락 이후 단순히 시비의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으로 복수를 도모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녀는 개인적 욕망을 넘어 가문과 사회의 구조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재정립하며, 여성으로서의 제약을 뛰어넘어 자신만의 서사를 만들어 나간다. 이는 인물들이 자기 발전을 통해 가족과 사회의 변화까지 이끄는 긍정적 영향을 드러내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이씨세대록>은 인물의 성장이 타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씨세대록>은 인물들이 가족과 사회 내에서 겪는 갈등과 이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공생의 중요성을 드러낸다. 특히, 여성 인물들은 전통적 가족 구조와 사회적 기대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재정립하며, 단순히 희생자로 머무르지 않고 능동적 행위자로 자리 잡는다. 이러한 공생의 과정은 개인의 성장뿐만 아니라, 작품 속 사회의 이상적인 조화를 이루는 데 기여한다. <이씨세대록>은 인물들의 성장을 통해 조선 후기 사회의 개인과 가문의 역할, 그리고 사회적 질서의 이상을 심도 있게 탐구한다. 각 인물들이 겪는 갈등과 성취는 독자들에게 자기 성찰과 사회적 책임의 중요성을 일깨우며, 고전소설의 중요한 서사적 가치를 보여준다. 특히, 성장 서사를 통해 당시 사회의 모순을 조명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이상적 인간상을 제시하는 점에서 이 작품의 의의는 크다고 할 수 있다.
| 전통 속에서 발견한 현대적 메시지 |
<이씨세대록>은 조선 후기 가문소설의 걸작으로, 방대한 서사와 복합적인 인물 군상, 그리고 유교적 가치관의 균열을 다각도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비례(非禮)의 혼인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혼사담은 단순한 갈등 유발 장치를 넘어, 당시의 혼인 제도와 가치관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담고 있다. 또한, 여성 반동인물들의 적극적인 행위와 주체성은 전통적인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의 여성 역할과 제약을 조명하며, 이를 통해 사회적 한계와 모순을 드러낸다.
인물들의 성장 서사는 개인적 성숙뿐 아니라 가족과 사회의 조화로운 관계를 탐구하며, 독자들에게 자기 성찰과 공생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작품 속 인물들은 다양한 역경을 극복하며 자기 발전을 이루고, 이러한 과정은 가문의 명예를 지키고 사회적 가치를 재정립하는 중요한 기반이 된다.
결국 <이씨세대록>은 가문의 역사와 사회적 갈등, 그리고 인간적 성장을 통해 독자들에게 당시 사회를 이해하는 창을 제공함과 동시에, 현대 독자들에게도 공감과 교훈을 선사하는 문학적 가치를 지닌다. 이 작품은 단순히 과거의 유물이 아닌, 시대를 초월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담고 있는 한국 문학의 중요한 유산으로 평가받을 가치가 있다.
| 참고문헌 |
김민정, 「〈이씨세대록〉 시비(侍婢)의 역할 변화와 그 의미 - 홍연을 중심으로-」, 『고소설연구』 49, 한국고소설학회, 2020.
이선형, 「<쌍천기봉>·<이씨세대록> 인물의 성장 의미」, 국민대 박사논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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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광, 「〈이씨세대록〉 여성반동인물의 행위양상과 그 의미」, 『동방학』 10,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2004.
탁원정, 「<이씨세대록>에 나타난 비례(非禮)의 혼인과 그 의미」, 『한국고전연구』 28, 한국고전연구학회, 2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