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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 

 

조선시대 가족과 여성의 선택

 

 

김민정(경상국립대학교 여성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는 서포 김만중(1637~1692)17세기에 창작한 고전소설이다. 이 작품은 조선 후기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사씨남정기>는 흔히 알려진 바와 같이 작자인 김만중이 숙종의 잘못된 선택을 깨닫게 하기 위해 작성된 목적을 가진 소설임이 대다수의 연구자에 의해 주장되어 왔다. 이에 따라 숙종을 대변한 인물은 남성 주동인물인 유연수이며, 사씨 부인은 인현왕후, 반동인물인 교채란은 장희빈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씨남정기>가 숙종, 인현왕후, 장희빈의 세 인물을 비유하는 것으로 의미를 다 소진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 안에는 17세기 당시의 사회적인 상황과 그 관념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김춘택이 한문으로 번역한 <사씨남정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김춘택은(1670~1717) 자신의 종조부인 김만중의 국문 소설 <사씨남정기>를 제주 유배 중 한문으로 번역한다. 이러한 자료는 김만중이 <사씨남정기>국문으로 창작하였음을 증빙하는 분명한 사실이 된다. 또한 김춘택은 자신이 번역한 <사씨남정기>를 통해 김만중이 여항(閭巷)의 부녀자가 쉽게 읽고 감명받을 수 있도록 소설을 창작하였음을 밝힌 바 있다. 또한 <사씨남정기>가 기본적으로 가정 내의 부부와 처첩의 문제를 다룬 가정소설임을 분명히 밝혔다. <사씨남정기>는 부부와 처첩간의 일을 사씨의 절개, 유연수의 개과, 교씨의 악행이라는 세 가지 서사축으로 구현하여 독자들에게 감명과 경계를 작품임을 규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사씨남정기>의 서사와 주요 쟁점을 몇 가지 살펴보도록 하자.

 

 

사진 1 : 사씨남졍긔(一簑古813.53-G422s,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씨남정기>와 선악 갈등의 구조

 

 

<사씨남정기>는 총 세 명의 중심인물로 전개된 가정소설이다. 그 인물은 가부장인 유연수, 그의 정실 부인인 사정옥, 첩 교채란이다. 사씨 부인은 현명하고 도덕적인 인물이나 유연수와 결혼 후 10년간 자식을 얻지 못한다. 이에 사씨는 남편인 유연수에게 첩을 들일 것을 권유하고, 이에 아름다운 교씨가 첩으로 선택되게 된다. 그러나 교씨는 가문 내 지위를 확립하기 위해 사씨를 향한 모함과 음모를 꾸미게 되고, 결국 사씨를 집안에서 내쫓는 데 성공하게 된다. 하지만 사씨는 쫓겨난 후에도 유씨 가문의 일원으로 남고자 하는 인내와 덕성을 보여준다. 이후 교씨의 악행이 드러나고, 사씨는 집안으로 복귀하여 가문의 중심이 된다. 교씨는 잔인한 징벌을 받으며, 가정의 평화는 회복된다. 작품 후반부에서는 새로운 첩 임씨가 등장하여 교씨와 대조를 이루며 유씨 가문의 화합을 새롭게 이루어내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이 작품은 선악을 분명히 대립하는 두 축으로 그려낸다. 사씨는 도덕적 기준에 충실하며 가문을 위해 희생하지만, 교씨는 부도덕적 수단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려 한다. 이 갈등은 단순한 성격 차이를 넘어, 당시 조선 사회의 유교적 윤리관과 사회 질서를 반영한다. 사씨의 도덕성은 끊임없이 시험받는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으며, 이는 선한 행동의 이상적 본보기를 제공한다. 반면 교씨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수단으로 삼고, 심지어 자식을 죽이는 극단적 악행까지 저지른다. 이러한 선악의 대립은 작품이 전개되는 주요 서사 구조를 이루며, 갈등의 극대화를 통해 독자에게 도덕적 교훈을 전달한다.

 

 

 

가부장의 구조와 모순

 

 

17세기는 사회학적으로도 문학사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발생한 시기였다. 그 중 특히 유교 윤리가 더욱 절대화되었다. 부계 혈통 체제는 더욱 강화되었고 이에 따라 적서차별 및 여성의 정절을 강조하는 열녀관 역시 심화되었다. 족보 및 가훈서 간행이 이어진 것도 이 같은 세태를 반영한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부녀자 수신서의 원류인 내훈(內訓)역시도 이러한 변화에 힘입어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출현한 것이 <사씨남정기>이니 <사씨남정기> 내에도 유교적 가부장제를 공고히 하려는 의도가 매우 정교하게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씨남정기> 역시 당대의 배경을 고스란히 반영하여 가부장제라고 하는 전통적인 사회 질서를 배경으로 서사가 전개된다. 하지만 이러한 배경과는 달리 <사씨남정기>는 가부장의 무능한 모습으로 서사가 전개되며 다소 모순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가부장인 유연수는 가족과 가문을 지켜야 할 책임을 지닌 인물이지만, 무능하고 아둔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는 첩인 교채란의 음모에 쉽게 휘둘려 정실 부인인 사정옥을 내쫓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작품은 이러한 가부장의 무능을 통해 당시 가부장제의 모순을 드러낸다. 유연수는 가족의 중심으로서 가문을 수호해야 할 책임이 있었으나, 그의 무능함으로 인해 가정이 오히려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 가부장제 사회의 한계를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결과라 할 수 있다. 오히려 가부장이 아닌 여성들이 가정을 지키는 주체로서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잉여로서의 삶과 여성들의 선택

 

 

작품에서 사정옥과 교채란은 모두 잉여로 간주된다. 잉여적 삶이란 가족 내에서 불필요하거나 주변적인 존재로 전락한 삶을 의미한다. <사씨남정기>에서 유연수와 사씨는 모두 재덕(才德)을 겸비한 인물이지만, 단 하나 없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자식이다. 두 사람이 부부가 된 지 10년이 지나도록 자식을 갖지 못한 것이다. 이처럼 사씨는 자식을 낳지 못했기에 정실임에도 불구하고 잉여적 존재로 여겨지며, 교씨는 첩이라는 지위 때문에 잉여적 삶을 부여받는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잉여로서의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자신의 선택으로 삶을 영위해 나가는 특성을 보인다.

 

먼저 사씨는 정실부인이라는 자신의 위치와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인내와 덕성을 선택한다. 자식을 낳지 못한다는 자신의 처지를 감내하면서도 가문에 충성을 다하는 사씨는 유교적 가치를 실현하는 전형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이러한 선택은 그녀를 선()으로 규정하고, 결국 집안의 중심으로 복귀하게 한다. 반면 교씨는 자신에게 주어진 잉여적 삶을 수용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자신의 잉여적 삶을 거부하고, 가문의 중심이 되기 위해 적극적으로 음모를 꾸민다. 교씨는 가문 내 자신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 사씨를 모함하고, 아들을 낳아 가문의 중심이 되고자 한다. 결국 이러한 행위는 작품 내에서 ()’으로 규정되며, 교씨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작품 후반부에 등장하는 임씨 역시 이러한 구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임씨는 교씨와 같은 첩의 지위를 가졌지만, 자신의 잉여적 삶을 수용하며 화합을 선택한다. 임씨는 교씨와는 달리 가부장제 하에서의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의 모범을 제시한다. 임씨는 첩으로서 가문의 질서를 존중하며, 자신의 위치를 인정하고 충실히 역할을 수행한다. 그녀의 자식들은 서출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지위에 오르며, 그녀는 가문에 큰 공헌을 한다. 이러한 양상을 통해 작가는 체제 내 여성들의 인내와 역할을 더욱 강조하고자 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작가는 이러한 대비를 통해 잉여적 삶의 수용 여부가 선악의 기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당시 사회에서 여성의 덕목으로 요구되던 순응과 인내를 강조하는 동시에, 잉여적 삶을 거부하는 여성들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사씨남정기>는 가부장제를 강조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가부장인 유연수의 모습은 무능하게 그려냄으로 가부장제의 모순을 드러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가부장제와 여성의 역할

 

 

<사씨남정기>는 가부장제를 비판적으로 조명하면서도 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거나 변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가부장제를 유지하고 지키는 여성의 인내와 역할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당시 사회의 한계와 더불어, 여성에게 요구되던 덕목과 기대치를 반영하는 것이다. 현대적 시각에서 볼 때, 이러한 여성의 역할 강조는 한편으로는 체제 내에서 여성의 주체적 선택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의 역할을 제한적으로 바라보는 한계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잉여적 삶을 수용한 여성만이 보상받고, 거부한 여성은 징벌을 받는 서사는 당대 유교적 윤리관이 반영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사씨남정기>에서 은 단순히 도덕적 잘못으로만 정의되지 않는다. 교씨의 악행은 단순한 개인적 욕망의 발현이라기보다는 사회적, 구조적 맥락 속에서 발생한다. 철학적으로 은 관계적으로 발생하며, 선과 악의 대립 구도 속에서 드러난다. 특히 교씨의 악행은 유교적 질서와 권선징악(勸善懲惡)의 구조 속에서 필연적으로 징벌받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는 당시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과 선택에 대한 윤리적 메시지를 내포한다고 할 수 있다. 악은 단순히 비난받을 행동에서 그치지 않으며, 가문과 가족의 질서를 위협하는 요소로서 서술된다.

 

 

 

<사씨남정기><내훈(內訓)>과의 연관성

 

<내훈>은 조선 초기 인수대비가 여성의 부덕(婦德)을 강조하기 위해 작성한 훈육서로, 여성이 유교적 덕목을 실천하도록 강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선 중기 이후,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가 강화됨에 따라 여성들에게 순종, 공경, 인내와 같은 규범을 다룬 덕목이 강조되게 된다. <내훈>은 삼종지도(三從之道) , ‘父從’, ‘夫從’, ‘子從의 규범을 여성들에게 내재화하기 위해 편찬되었다. 혼인의 진정한 의미, 효도, 순종, 가족 간 화목, 검소한 생활 등을 강조하며, 유교적 부덕의 이상을 여성들에게 요구했다. 이와 같은 규범은 <사씨남정기>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인 사씨는<내훈>에서 강조하는 부덕(婦德)’의 이상을 실천하는 인물로, 그녀의 행동은 유교적 덕목의 전형으로 제시된다. 그에 반해 교씨는 부덕(不德)함과 방종의 상징으로 묘사된다. 소설의 후반부 교씨가 몰락하는 것은 부덕(不德)의 결과를 보여주는 교훈적 장치로 기능한다.

  

이러한 서사의 흐름을 통해 작자인 김만중이 <사씨남정기>를 창작한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김만중은 인륜을 돈독하게 하고 세교를 도울 수 있는 방편으로서 <사씨남정기>를 창작한다. 가문의 안정과 부덕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가부장제의 이상적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17세기 조선은 유교적 가부장제가 강화되고, 적서차별과 열녀관이 심화된 시기였다. 양반층은 문벌 중심의 결속을 통해 가문의 명예와 특권을 유지하려 했으며, 부녀자 교육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다. 이처럼 <사씨남정기>는 단순히 숙종을 둘러싼 정치적 목적만을 위한 소설이 아니었다. 어지러운 사회적 배경 속에서 탄생했으며 가문의 안정과 부덕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가부장제의 이상적 모습을 형상화하였기 때문이다. , 이 소설은 여성을 향한 교육적 효과를 중요한 하나의 목표로 삼았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사씨남정기>가 전하는 문학적 메시지

 

 

이처럼 <사씨남정기>는 도덕적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인간 행동과 사회적 맥락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동시에 탐구하는 중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단순히 과거의 가족사를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여전히 현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작품이 전달하는 화합과 도덕적 선택의 중요성, 그리고 전통적 가치와 변화 사이의 갈등은 오늘날 가족과 사회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현대 독자들은 <사씨남정기>를 통해 전통과 변화의 균형을 모색하며, 여성의 권리와 역할에 대한 질문을 새롭게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최용석, 「『사씨남정기에 구현된 유교적 가부장제 연구 - 내훈과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한국어문교육22, 고려대학교 한국어문교육연구소, 2017.

구연상, 「『사씨남정기의 악 개념에 대한 철학적 분석, 현대유럽철학연구29, 한국하이데거학회, 2012.

류준경, <사씨남정기>를 통해 본 소설사의 전변의 한 국면 - 사씨 형상의 형성배경과 의미, 국문학연구31, 국문학회, 2015.

정제호, <사씨남정기>에 나타난 가족구성의 방식과 작가 의식, 한성어문학38, 한성어문학회, 2018.

최천집, 인간 선악 문제에 대한 문학에서의 담론- 사씨남정기를 중심으로 -, 교정담론16, 아시아교정포럼,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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