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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제로의 첩경 - 가락재삼소문범(嘉樂齋三蘇文範)

 

이승연(서울대학교 중어중문과 박사과정)

 

 

 

사진 1 : 가락재삼소문범(嘉樂齋三蘇文範)(奎中 3698,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남송(南宋)에서 명()까지 - ‘삼소(三蘇)’ 문장 선집 편찬의 계보

 

 

건염(建炎) 연간 이래로, 소씨(蘇氏)의 글을 숭상하여, 배우는 자들이 일제히 추종하였으니, () 지역의 선비들이 더욱 많았다. 또 말하기를, “소식(蘇軾)의 문장에 숙달하면 양고기를 먹고, 소식의 문장에 서투르면 나물국밖에 먹지 못한다.

() 육유(陸游, 1125-1210), 노학암필기(老學庵筆記)8

 

  소순(蘇洵, 1009-1066)·소식(蘇軾, 1037-1101)·소철(蘇轍, 1039-1112) 부자(父子) 3, 삼소(三蘇)라 통칭되는 이들의 문장은 남송 시기 사인(士人)들의 삶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특히 소식의 문장을 얼마나 잘 익혔는지에 따라 출세의 운명이 갈린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음은 앞서 인용한 육유(陸游)의 기록에 여실히 드러나 있다.

 

  이러한 민간의 추숭에 조정의 예우가 더해지면서 삼소(三蘇) 문장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효종(孝宗, 1127-1194)의 삼소(三蘇)에 대한 각별한 애호는 건도(乾道) 연간 이래 삼소(三蘇) 문장 선집이 대거 간행되는 데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를 나대경(羅大經, 1196-1252?)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효종(孝宗, 1127-1194)대소(大蘇)’의 글을 가장 중시하여, 몸소 문집의 서문을 짓고 태사(太師)에 추증하였으며, 배우는 자들은 일제히 암송하였다. 이른바 사람마다 원우당(元祐黨)의 학문을 전하고, 집마다 미산(眉山)의 책을 두었다.’는 말은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 나대경(羅大經), 학림옥로(鶴林玉露)2

 

  황제의 높은 평가와 사인(士人)들의 추종이 맞물리면서 삼소(三蘇) 문장을 선별하거나 주소(註疏)를 더한 서적의 편찬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중광미산삼소선생문집(重廣眉山三蘇先生文集)80권을 필두로, 유효공(游孝恭)표제삼소문(標題三蘇文)62, 여조겸(呂祖謙)동래표주삼소문집(東莱標注三蘇文集)59, 낭엽(郞曄)경진삼소문집사략(經進三蘇文集事略)100, 삼소선생문수(三蘇先生文粹)70, 중광분문삼소선생문수(重廣分門三蘇先生文粹)100권 등이 모두 효종대(孝宗代)와 광종대(光宗代)에 잇달아 간행되었다.

 

  이 시기에 간행된 삼소(三蘇) 문장 선집은 원대(元代명대(明代)에도 거듭 번각(翻刻)되면서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삼소(三蘇) 문장 선집이 새롭게 만들어졌다. () 양신(楊愼, 1488-1559)이 편찬한 가락재삼소문범(嘉樂齋三蘇文範)도 그중 하나였다.

 

 

 

 

급제로 향하는 확실한 비법 - ‘소학(蘇學)’

 

 

   남송(南宋) 시기에 제과(制科)를 준비하던 사인(士人)을 대상으로 독법(讀法)과 작법(作法)을 분석한 서적들이 출현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시문(詩文)에 평어(評語)와 비점(批點)을 더한 서적이 등장하였다. 여조겸(呂祖謙, 1137-1181)고문관건(古文關鍵), 진덕수(眞德秀, 1178-1235)문장정종(文章正宗), 사방득(謝枋得, 1226-1289)문장궤범(文章軌範)은 당시 평점본(評點本) 간행의 포문을 연 문장 선집이다.

 

  작문 기법에 대한 해설과 평론을 더한 문장 선집은, 역대 명가의 문집과 급제자의 답안지인 묵권(墨卷), 그리고 모범 답안인 범본(範本) 등을 수록한 서적과 함께 거업서(擧業書), 즉 수험서의 주축을 이루었다. “근래 서방(書坊)은 거업서가 아니면 간행하지 않고, 시사(市肆)는 거업서가 아니면 팔지 않으며, 사인(士人)은 거업서가 아니면 보지 않는다는 기록이 남아 전해질 만큼, 거업서(擧業書)는 명대 출판 시장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였다.

 

  거업서(擧業書)의 간행은 성화 연간(成化, 1465-1487)에 본격화되어 만력 연간(萬曆, 1573-1619)에 이르러 그 수요가 최고조에 달하였으며, 그 증가세는 명대 말기까지 이어졌다. 명대 과거 응시생 수가 최대 100만 명에 달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수험용 서적의 간행이 급증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거업서 가운데서도 15-16세기에는 특히 작법(作法)을 중점적으로 다룬 서적들이 큰 주목을 받았다. 당순지(唐順之모곤(茅坤귀유광(歸有光) 등 당송고문(唐宋古文)을 전범으로 삼은 문인들은 "당송팔가(唐宋八家)의 작법으로 공령문(功令文)을 짓자"고 주장하며, 고문(古文) 선집을 편찬하고 평점을 덧붙인 서적을 잇달아 간행하였다. 이들이 편찬한 서적은 당시 시문(時文)-시험 답안 문장-을 정련하는 사인(士人)들의 필독서로 자리매김하였다. 특히 귀유광(歸有光)이 다섯 가지 색으로 평점(評點)사기(史記)는 사인(士人)들 사이에서 시문(時文)의 비법서처럼 여겨졌으며, 모곤(茅坤, 1512-1601)이 편찬한 당송팔대가문초(唐宋八大家文抄)또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때에는 당송문(唐宋文)이 법도가 있어 본받을 만하니, 과장(科場)에서 취하여 쓰기에 매우 편리하다는 인식이 퍼져 있었는데, 이러한 인식 속에서 당송팔대가문초(唐宋八大家文抄)는 수험생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이를 기점으로 당() 한유(韓愈, 768-824)·유종원(柳宗元, 773-819)구양수(歐陽脩, 1007-1072)·소순(蘇洵, 1009-1066)·소식(蘇軾, 1037-1101)·소철(蘇轍, 1039-1112)·왕안석(王安石, 1021-1086)·증공(曾鞏, 1019-1083), 팔대가(八大家)’가 곧 당송문(唐宋文)의 전범으로 인식되었고, 삼소(三蘇) 역시 그 가운데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삼소(三蘇)의 문장, 특히 소식(蘇軾)의 문장은 과거 학습에 가장 적합한 전범으로 인식되었다. 오곤(敖鯤, 1530-1586)고문숭정(古文崇正)의 서문에서, 소식(蘇軾)의 문장이 전체 분량에서 거의 25%를 차지한다고 밝히며, 그 이유를 과거 시험에 유독 밀접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이에 내가 전후로 모아둔 고문사(古文詞)를 내어 외람되이 판각을 맡겨 여러 사인(士人)에게 주었으니, 모두 12권이다. 그 대략적인 취지는 올바름을 규범 삼아 거업(擧業)의 법도와 규범이 될 만한 것을 취한 것이다. 그 거업(擧業)에 도움이 있는 것이라면, 기존에 간행되지 않는 것도 널리 취하였고, 조금이라도 방해되거나 어긋난다면, 비록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이더라도 차라리 버려두고 감히 과다하게 함께 싣지 않았다. 책 가운데 소식(蘇軾)의 글이 25%를 차지한 것은 그의 글이 거업(擧業)에 유독 가장 거리가 가깝기 때문이다.……

오곤(敖鯤, 1530-1586), 각고문숭정인(刻古文崇正引)

 

  이처럼 소식의 문장은 단순한 고문(古文)의 표본을 넘어, 과거 시험에 직접 활용할 수 있는 문장으로 이해되었다. 삼소(三蘇)의 문장이 과거 학습과 맺어온 깊은 인연은 남송(南宋)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조겸(呂祖謙)이 편찬한 동래표주삼소문집(東莱標注三蘇文集)에 대해 양사기(楊士奇, 1365-1444)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삼소문선(三蘇文選)’ 12권은 여조겸(呂祖謙)이 선별하고 건안(建安)의 채경(蔡京)이 주석을 달았다. 모두 치체(治體)를 논하고 과거에 편리한 것을 취하였다. 비록 모두 순정(純正)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읽으면 가슴속을 열어 유익하게 하고 붓끝을 움직이게 하니, 도움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 양사기(楊士奇, 1365-1444), 서삼소문선후(書三蘇文選後)

 

  여조겸(呂祖謙)동래표주삼소문집(東莱標注三蘇文集)과거 시험에 편리한 것을 취하였다고 평한 이 기록은, 삼소(三蘇)의 문장이 단순한 문학적 감상의 대상에 그치지 않고 과거 시험을 대비하기 위한 실질적인 학습 자료로 적극 활용되고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인식은 명대에 이르러서도 면면히 이어졌다. 양기원(楊起元, 1547-1599)가락재삼소문범의 권수(卷首)에 수록된 삼소문찬(三蘇文贊)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삼소(三蘇)의 문장은 절로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뒤흔든다.……과거 응시자에게 책상 한편에 두게 한다면, 초장(初場이장(二場삼장(三場)이 모두 갖추어질 것이다.

양기원(楊起元, 1547-1599), 가락재삼소문범(嘉樂齋三蘇文範)권수 삼소문찬(三蘇文贊)

 

  삼소(三蘇)의 문장만으로 과거 시험의 전 과정을 대비할 수 있다는 이 표현만으로도, 소학(蘇學)이 명대 사인(士人)에게 급제로 향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편으로 인식되고 있었던 사회적 인식을 파악할 수 있다. 이처럼 삼소(三蘇)의 문장, 특히 소식(蘇軾)의 문장을 과거 시험 대비와 긴밀히 결부시키는 흐름이 점차 심화되는 가운데, 삼소(三蘇) 문장 선집의 집대성이라 할 만한 가락재삼소문범(嘉樂齋三蘇文範)이 출현하게 되었다.

 

 

 

 

과거 시험에 필요한 것만 엄선하다 - 가락재삼소문범(嘉樂齋三蘇文範)의 구성과 특징

 

가락재삼소문범(嘉樂齋三蘇文範)은 양신(楊愼, 1488-1559)이 편선(編選)하고 원굉도(袁宏道, 1568-1610)가 주석과 비점(批點)을 더하여 완성한 책이다. 18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소순(蘇洵) 41, 소식(蘇軾) 197, 소철(蘇轍) 23편으로 총 261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이 책이 과거 시험에 유용한 글만을 엄선한 거업서(擧業書)라는 것은 범례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이 책만으로 소문(蘇文)을 전부 망라할 수는 없다. 다만 양정화(楊廷和, 1459-1529)가 자제들에게 전수하여 그들이 잇달아 우등 합격[고제(高第)]을 하였고, 원굉도(袁宏道) 형제도 이 책을 얻어서 또한 잇달아 우등 합격[고제(高第)]을 하였다. 그러므로 그 문장들이 모두 과거 시험에 거리가 가까운 것만을 모았고, 과거 시험과 거리가 먼 것은 모두 모으지 않았다.

가락재삼소문범(嘉樂齋三蘇文範)범례(凡例) 4조목

 

삼소(三蘇)의 문장 전체를 망라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시험에 유용한 것만을 가려 뽑은 실용적인 문장 선집이라는 것을 명백히 밝힌 것이다. 이러한 편찬 원칙은 수록 작품의 문체 구성에서도 그대로 관철된다.

 

가락재삼소문범(嘉樂齋三蘇文範)목록 (奎中 3698)

 

범례 제6조목에는 본서의 작품 선별 원칙이 명시되어 있다. 소순(蘇洵)과 소철(蘇轍)은 논(()에 강점이 있어 이를 위주로 구성하였으며, 소식(蘇軾)은 모든 글이 주옥과도 같으므로 두루 가려 뽑아 수록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편찬 원칙은 수록 작품의 문체 구성에서도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소순(蘇洵)의 작품 41편은 총 8종의 문체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논() 13·권서(權書) 8·형론(衡論) 5·기책(幾策) 2편이 과반을 차지하고, 소철(蘇轍)의 작품 23편은 총 4종의 문체로 이루어져 있는데, () 12·() 8편이 전체의 87%에 달한다. 소식(蘇軾)의 작품 197편은 총 25종의 문체로 분류되는데, () 35·제과(制科) 30편을 필두로, () 26·() 18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작품을 등급으로 분류하는 면에서도 거업서(擧業書)로서의 성격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수록 작품 전체 261편은 상상선(上上選)’·‘상선(上選)’·‘차선(次選)’의 세 등급으로 나뉜다. 소순(蘇洵)의 작품 41편은 상상선 25, 상선 14, 차선 2편이고, 소식(蘇軾)의 작품 197편은 상상선 111, 상선 60, 차선 26편이며, 소철(蘇轍)의 작품 23편은 상상선 13, 상선 9, 차선 1편으로 각각 구분된다. 세 사람 모두 상상선(上上選)’의 비중이 56-61%로 높게 나타나며, 그중에서도 논((제과(制科)에 상당수 집중되어 있다. 특히 소식(蘇軾) 경우에 상상선(上上選)’ 111편 가운데 49편이 과거에 응시하고 봉상첨판(鳳翔簽判)으로 처음 벼슬길에 오른 시기의 작품에 집중되어 있다. 이 시기의 작품이 주로 수록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 문장 선집이 과거 시험에 직결되는 문장을 선별하였다는 것을 단적으로 나타낸다.

 

  나아가 이 문장 선집의 거업서(擧業書)적 성격을 한층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목록의 내용 분류이다. 수록 작품 가운데 일부에는 이학(理學시무(時務단제(斷制)라는 표기가 덧붙여져 있다. 이학(理學)은 경서(經書)의 의리(義理)를 해석하고 논술한 글을, 시무(時務)는 경의(經義)를 바탕으로 국가의 실제 정무를 논한 글을, 단제(斷制)는 유교 경전과 역사 속 인물·사건에 대해 판단하고 논술한 글을 가리킨다. 이 세 가지는 명대 과거 시험에서 핵심적으로 요구하는 능력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것들이다. 응시자가 어떤 작품이 어느 유형의 과거 문제에 대비하는 데 유용한 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한 이 분류 표기는, 가락재삼소문범이 단순한 문학 선집이 아니라 과거 시험을 위한 체계적인 학습 지침서로 기획되었음을 잘 보여준다.

  

이 서적의 또 다른 특징은 체계적인 평점(評點) 방식에 있다. 본서는 송대 이후 삼소(三蘇) 문장에 평어를 남긴 문인들의 명단인 비삼소고금대방성씨(批三蘇古今大方姓氏)와 삼소(三蘇) 문장 모아 간행한 역대 문장 선집 목록인 대방비평삼소문선서목(大方批評三蘇文選書目)’을 수록하여 평점(評點)의 출처를 명시하고 있다. 범례에 따르면, 글 위와 말미에 아무개 공이라고 표기된 것은 원굉도(袁宏道)가 양신(楊愼)의 원본에서 가져오거나 제가(諸家)의 비평을 모아 품제(品題)가 정확하고 철저한 것을 수록한 것이며, 별도의 표지가 없는 것은 모두 원굉도(袁宏道)의 비평이다. (, (, (, (, ) 등 다양한 부호를 활용하여 문장의 핵심을 표시하였으며, 전고(典故)가 나올 때마다 경전·사서·제자서 등의 출처를 상세히 밝혀 후학이 학습에 참고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처럼 가락재삼소문범은 과거 시험에 유용한 삼소(三蘇)의 문장을 엄선하고 체계적인 평점(評點)을 더하여 완성한 거업서였다. 이 서적은 종성(鐘惺, 1574-1625)동파문선(東坡文選)20, 담원춘(譚元春, 1586-1637)삼소문성(三蘇文盛)20권과 함께 당시 삼소(三蘇)의 문장을 과거 시험과 연결 짓는 흐름 속에서 유통되면서 남송 이래 면면히 이어져 온 삼소(三蘇) 문장 선집 편찬의 전통이 명대 과거 시험의 맥락 속에서 집대성된 결과물이었다.

 

 

 

문장의 전범, 급제의 상징 - “동파(東坡)”

 

“(고려시대에는) 매번 합격자 명단이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서른세 명의 동파(東坡)가 나왔구나라고 하였다.”

 

고려시대 문인들의 소식(蘇軾)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는 이 기록은 서거정(徐居正, 1420-1488)동인시화(東人詩話), 권응인(權應仁, 1517-?)송계만록(松溪漫錄)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과거 합격자를 동파(東坡)’라 일컬은 이 표현에서, ‘동파(東坡)’라는 이름이 문장의 이상과 급제의 열망을 동시에 품은 상징이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본원에는 가락재삼소문범이외에도 명() 양욱(楊煦, ?-?)이 편찬한 삼소문집(三蘇文集)(奎中 3696)과 청() 궁익청(弓翊淸, ?-?)이 편찬한 삼소전집(三蘇全集)(奎中 4023, 奎中 5148)과 같은 삼소(三蘇) 문장 선집이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高津 孝, 明代蘇學科擧, 九州中國學會報39, 九州中国學會, 2001.

張獻忠, 明中後期科擧考試用書的出版社會科學輯刊186, 2010.

陳鎧婧, 「《三蘇文範近舉業者輯- 以蘇軾選目爲例安康學院學報Vol.33 No.4, 2021.

벤저민 엘먼 지음, 김효민 옮김, 중국 명청시대 과거제도와 능력주의 사회, 소명출판,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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