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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수(法數), 1부터 84000까지 

 

아우른 불교 개념어 사전

 

- 원나라 가수가 지은 장승법수

 

(藏乘法數)를 중심으로 -

 

 

박성일(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학예연구사)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을 통틀어 팔만사천법문이라고 황벽(黃檗) 선사는 일찍이 표현한 적이 있다. 정말로 8.4만개가 있다는 뜻은 아니며, 그만큼 많은 번뇌에 알맞은 처방을 내려 고쳐 주기[對治] 위한 것이라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불교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뜻하는 갖가지 용어들이 떠오를 것이다. 예컨대 손오공을 손바닥 위에서 자유자재로 다루는 삼장법사의 삼장은 불교 경전의 분류법으로 곧 경장(經藏), 율장(律藏), 논장(論藏)을 합친 삼장(tripiṭaka)을 의미한다. 쉽게 풀면 경전과 계율 그리고 경전 및 교법에 대한 연구 등을 의미한다. 어디 이뿐인가. 유마경에서 부처의 설법이 동일하다는 의미로 일음(一音)’이 나오기도 하고, 불교의 근본 교리인 고집멸도(苦集滅道)’를 일컫는 사성제(四聖諦)’도 있다. 이렇게 각종 불교 교리 관련 개념들이 수없이 많은 상황에서, 동아시아의 불교 수행자들은 어떻게 불교 공부를 할 수 있었을까 

 

그 방법은 법수(法數)’에서 찾을 수 있다. 법수란 숫자가 포함되어 있는 불교의 개념어, 혹은 이 개념어를 모은 사전을 말한다. 책마다 다양하지만, 보통은 숫자 1부터 많게는 84000까지 관련된 법수를 한데 모아 일종의 사전 형식으로 법수책이 제작된다. 출가자와 재가자들은 이 법수책을 통해 불교 교리 개념어들을 간명하고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한국에서 여말선초에 유통된 장승법수(藏乘法數)를 소개하고자 한다.

 

 

 

장승법수: 동아시아에서 유통된 불교 개념어 사전

 

 

장승법수1389(공양왕 1)인 고려 말에 무학대사(無學大師)에 의해 중간(重刊)되었으며, 본디 원나라 경사(京師)에 세운 수경사(壽慶寺, 고려대성수경선사)에서 찍은 판(규장각 소장본 p. 055b의 하단)으로 생각된다. 현재 이책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 등이 대한민국의 보물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원래 장승법수는 원()나라의 가수가 불교의 대장경에 있는 법수들을 수집하여 만든 책인데, 현재 다양한 누리집을 통해서 장승법수의 전체면 모두를 디지털 이미지로 확인할 수 있다. 몇 가지만 아래에 소개하고자 한다(링크는 책의 제작 연대 순 나열). 장승법수가 중국에서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그리고 일본 에도시대에까지 계속 출간되어 왔음을 짐작해 볼 수 있겠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본(1389, 청구: 海士 귀한 402, 해군사관학교 기탁)

https://kyudb.snu.ac.kr/book/view.do?book_cd=GN00031_00

*동국대 ABC 아카이브 제공 동국대 소장본 2(1389, 청구: ‘210.3 57‘210.3 572’)

https://kabc.dongguk.edu/content/seoji?dataId=ABC_NC_02053_0001

*일본 와세다대학도서관 소장본(1410, 청구: 04 00067)

https://www.wul.waseda.ac.jp/kotenseki/html/ha04/ha04_00067/index.html

 

[연대 미확정]

*독일 바이에른 주립도서관 제공본(원나라 추정, Identifikator: BV040642727)

https://ostasien.digitale-sammlungen.de/view/bsb00079158?page=,1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소장본(에도시대 전기 추정, 청구: 2-21, 서지ID: 000009088789)

https://lab.ndl.go.jp/dl/book/2541079?page=1

 

 

 

장승법수의 구성과 내용

 

가수의 장승법수의 구성을 대략적으로 나누면 아래와 같다. 쪽표기는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본(海士 귀한 402)을 기준으로 하였다.

 

[pp. 001a~003b] 서문 1(구양현(歐陽玄), 지정(至正) 15(1355) 음력 316[旣望])

[pp. 004a~005b] 서문 2(굉연(宏演), 지정(至正) 15년 음력 춘216[旣望])

[pp. 006a~023b] 석가종파(釋迦宗派)를 비롯한 대승 불교 경전에 기반한 마음의 구조(일심 등), 불교 인식론, 수행의 지위, 세계관(불국토), 가르침의 종류를 분별한 교상판석’, 대승과 소승 계율의 차이, 깨달음의 정도, 부처님의 뛰어난 모습과 위력 등을 설명한 도설 등

[pp. 024a~051b] 숫자 1부터 84000에 관련된 불교 개념들의 순서별 제시

[pp. 052a~054b] 불교의 핵심 개념인 십이인연[무명(無明)부터 노사(老死)까지] 및 선종의 보리달마와 승찬(僧粲), 홍인(弘忍)에 이르기까지를 제시해 둔 서천동토삼십삼조(西天東土三十三祖)

[p. 055a] (, 천태 사문 섭공서경[天台 葉恭書竟], 제문 작성시기 미상)

[p. 056a] (, 우강서식(旴江胥式), 지정(至正) 15(1355) 225)

[pp. 056a~056b] (, 한산군 이색(韓山君 李穡), 창룡(蒼龍)* 기사(己巳) 9O)

*창룡은 목성(木星)의 다른 이름으로 시간’, ‘정도의 의미임. 이색의 생존연대(1328~1396)에서 기사년은 1329(천력 2) 1389(홍무 22) 총 두 번이지만, 저술은 만년의 문필가로서 했을 것이기에 의당 1389년으로 보아야 함.

 

1) 서문의 내용

 

장승법수의 서문을 우선 살펴보고자 한다. 전술했듯이 원나라 규재(圭齋) 구양현(歐陽玄, 1283~1357)이 쓴 서문이 맨 앞에 있다. 아래에 필자가 이를 번역해 보았는데, 이를 통해 법수책의 특징을 알 수 있다. , ‘글과 그림이 함께 제시된다는 점, ‘불교의 교리 중 숫자 개념에 의거하여 설명된다는 점’, 그리고 법수책은 사람들을 선한 쪽으로 인도하고, 악한 것을 경계하도록 만들기 위해 제작되었다는 책의 제작 방법론과 목적성이 잘 드러난다.

 

자정사(資正使, 황실과 관련된 불사 담당) 강공(姜公, 고려 출신 환관 강금강(姜金剛))이 서암 가수의 저작인 장승법수의 선본을 얻어 진상하였더니, 주상께서 불교의 핵심을 얻음을 기뻐하시어, (이 책의) 간행을 명하여 전하게 하셨다. 무설대사 굉연이 이미 서문을 달았다. 다시 내 말을 징험하건대, 내가 듣기로 옛날의 군자는 왼쪽에 (하도낙서(河圖洛書) 중 그림에 해당하는) ‘하도, 오른쪽에는 (하도낙서 중 글에 해당하는) ‘낙서를 썼다. 그림으로 전하는 것이 곧 글이 싣고 있는 내용이다. 다만 그림은 보기에 편하여 성찰에 도움이 되니, 한나라 사마천이 지은 연표는 개요[]를 세우고 자세한 항목[]을 나열하여 후세의 사씨(史氏)들이 이를 종지로 삼아 그림에 글을 붙였다. 당나라 구양순(歐陽詢, 557~641)예문유취(藝文類聚)를 지어 분야와 유형 별로 나누었으니, 후대의 유서는 이에 기반하여 글에다가 그림을 붙였다. 원나라의 가수는 이 두 가지 사례를 모두 겸해서 (책을) 엮은 것이다. (장승법수에서) 갈라져 나온 하위 개념들을 분명히 보는 것이 마치 족보와 가회(家繪), 보첩(譜牒)과 같았다. 이치에 대해 맥을 잡아 정통하기로는 마치 의사가 실습 마네킹[銅人]에서 경락을 짚어내듯 하였다.

또 숫자로서 (사람을) 바로잡는 경우가 있었으니, 여래께서 말씀하신 일음(一音), 이제(二諦), 삼관(三觀), 사지(四智), 오안(五眼), 육상(六相), 칠대성(七大性), 팔해탈(八解脫), 구차제정(九次第定), 십바라밀(十波羅蜜)의 부류이다. 더 확장해서[引伸] 삼십이상(三十二相), 육십이견(六十二見), 팔십종호(八十種好), 팔십팔사(八十八使), 궁극적으로는 팔만사천진로(八萬四千塵勞)에 이르기까지이다. 선한 것에 대한 법도[善則]는 비슷한 범주에서 확장해 나가면 양심을 촉발시켜 내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악한 것에 대한 법도[惡則]는 그 원인과 염착된 것을 경계하여 해이한 뜻을 꾸짖는 경우가 있다. 깊고도 미묘한[幼眇] 매우 큰 대장경도 어찌 이러한 (범주를) 벗어나겠는가 

(자정사) 강공은 군주의 마음과 성을 잘 다스리는 데에 이 책이 도움이 될 줄로 여겼으니, 오히려 바야흐로 충()이라 할 만하다. 여래께서는 또한 말씀하시기를 불법을 보시하는 것은 칠보로 보시하는 것보다 뛰어나다라고 하셨으니, 강공께서 선을 좋아하고 보시를 즐겨서 오묘하게 진정한 가르침[眞乘]에 계합함을 또한 여기에서 대략적으로 알 수 있도다. 이에 지정(至正) 15(1355) 음력 316[旣望]에 한림학사(翰林學士) 승지(承旨) 광록대부(光祿大夫) 지제고(知制誥) 겸 수국사(脩國史) 구양현이 서문과 함께 쓰다. (번역 및 문단 분기는 필자)

 

이 서문 다음에는 고려후기 나옹 혜근의 제자인 무설대사(無說大師) 굉연(宏演, ?-?)의 서문이 있다. 하도낙서(河圖洛書)부터 수()가 나왔음을 언급하며, 천자가 법수책의 간명하고도 요체를 담은 점을 가상히 여겨 출판하게 한 측면 등을 구양현과 동일하게 거론한다. 굉연의 서문은 지정(至正) 15년 음력 춘216[旣望]에 쓴 것이라 하니, 구양현의 서문이 작성되기 약 한 달 전의 글이 된다. 우강서식의 발문 작성일도 동년 225일이기에 굉연의 서문 작성이 더욱 이르다고 볼 수 있다. 이미 구양현이 밝혔듯이, ‘굉연이 이미 서문을 달았다고 해둔 부분을 함께 고려한다면, 고려 말 불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원나라와의 지식 교류의 단면을 엿볼 수 있겠다.

 

2) 서술상의 특징

 

앞에서 언급한 두 종류의 서문 다음 석가종파(釋迦宗派)라고 하여 석가모니, 그의 아버지 정반왕(淨飯王)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위로 중집치대전륜왕(衆集置大轉輪王)까지 소급해 놓은 일종의 계보를 소개하고 있다. 불교의 숫자 관련 주요 개념을 소개하는 법수에서도 석가의 계보는 그 무엇보다도 중시되고 있는 것이다.

 

장승법수는 이후 대승기신론에 의거한 일심(一心)’이문(二門)’을 비롯하여, 대승백법론명수지도(大乘百法論名數之圖), 팔식심왕제문료간(八識心王諸門料簡), 제불신토(諸佛身土), 제승개합통유육종(諸乘開合通有六種), 원각소초(圓覺疏鈔, 규봉 종밀의 圓覺經大疏釋義鈔로 추정)에 의거했다고 기재된 서역차방제사판교명수(西域此方諸師判敎名數), 대소승계법도(大小乘戒法圖), 삼십칠보리분법(三十七菩提分法), 대승견도위행상(大乘見道位行相), 수증지위오교개합부동(修證地位五敎開合不同)등이 차례로 도식화되어 있다. 부처님의 특징을 묘사한 삼십이상(三十二相)과 팔십종호(八十種好)와 부처님에게만 있다는 18가지 공덕[十八不共功德] 등도 나열된다. 이는 특히 대승불교의 주요 경전들에서 마음을 어떻게 바라볼 것이며, 인식주관과 인식대상을 바탕으로 사람의 인식 과정을 설명하고 있어서 주목할 만하다.

 

소승 경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적게 기록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p. 019a 하단에는 소승의 과는 다르지만 번거로워서 적지 않는다[小乘果別此不煩錄]’를 들 수 있다. 물론 대소승계법도에서는 소승의 율장 내용도 간략히 소개하고 있다. 이는 소승의 비구·비구니율과 대승 보살계를 겸해서 받는 겸수(兼修)를 고려한 서술일 수도 있겠다. (지금이야 소승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지만, 당시 가수의 표현을 그대로 사용한다.)

 

이렇듯 대승 불교 경전의 주요 내용을 간략히 소개한 다음, 가수는 책의 절반 분량만큼을 일반적인 법수 개념을 소개하는 데 할애한다(pp. 024a~051b). 숫자 ‘1’로 시작하는 불교 개념어부터 종합하고 있는 것이다. 가령 일도(一道)’의 경우 무량의에서 말하기를 일청정도이다[無量義云一淸淨道]’라고 하여, 표제어를 제시하고 출처를 명기했는지 바로 파악할 수 있다. 물론 현행본 대장경에서 무량의가 무엇인지는 미상이며, ‘일청정도를 말하는 경전은 무량수경계통이 아니라, 보리류지 역 심밀해탈경(深密解脫經)(T673, p. 671c7 )이기에 장승법수에서 제시하는 출처를 전적으로 신뢰하기는 어렵다. 이는 가수가 책을 제작할 때 동원되었던 그 당시의 문헌이 현재에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이거나, 혹은 가수가 책을 잘못 인용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림1: 장승법수(海士 귀한 402,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심화] 가수의 불교 교리 인용 방식

 

그런데 가수의 편집 능력은 다소 엄밀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이는 한국 학계에 아직 소개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기에, 지극히 전문적인 내용이지만 아래에 일부 관련 설명을 하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가수의 장승법수에는 화엄종의 제4대조인 징관(澄觀, 738~839)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大方廣佛華嚴經隨疏演義鈔, 이하 연의초)및 북송의 선사(禪師)로도 유명한 법안종 제3조 영명연수(永明延壽, 904~975)의 저서를 바탕으로 유식 교학을 이해한 측면이 드러난다. 또한 인용을 정확히 하지 않은 부분들도 있다. 아래의 이미지(해사 귀한 402p.011b)를 보면 왼쪽에 네 줄 정도 설명이 부기되고 있는데, 가수는 이 네 줄의 설명에 총 세 명의 주장을 인용하고 있다. 유식학으로 유명한 (1) 진나(陳那, Dignāga, 480~540?)(2) 호법(護法, Dharmapāla, 530~561), 그리고 (3) 영명연수이다. 가수가 소개하고 있는 이 문장들의 인용처를 면밀히 조사하여 아래에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진나의 경우 그의 집량론(集量論)을 직접 인용한 것이라기보다는, 영명연수의 심부주(心賦注)에서 재인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2: 장승법수 11b(海士 귀한 402,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유식학에서의 인식작용을 간단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

 

 

(장승법수와 일치하는 부분에만 필자가 밑줄 부기함. 표점은 현행본 그대로 유지한 채 인용함. 표점 표기는 이하 동일함.)

 

, 집량론의 게송은 사실 징관의 연의초에도 나오고 있는 것이지만, 징관은 게송 중간에 숫자 등을 넣어서 문장을 지었고, 또한 唯一識故同一識故라고 하는 등 표현도 약간 상이하다. 그러나 징관의 연의초를 참고했을 연수의 심부주의 구절은 가수의 장승법수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진나의 유식학적 지식은 어찌 보면 징관을 거쳐 연수에게로 갔고, 그것이 원나라의 장승법수에까지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겠다.

 

둘째, 호법의 인용부분도 호법의 입론을 직접 인용한 것이 아니라 징관의 연의초에 인용된 것을 발췌하여 재인용한 것이다. , 호법이 말했다는 應有第四證自證分若無此者誰證第三證自體者必現量故第三四分既是現量故得相證이라는 문장은 사실상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징관이 연의초에서 인용한 호법의 말은 應有第四證自證分若無此者誰證第三證自體者必現量故까지이다. 그런데 이는 원래부터 연결된 호법의 말이 아니다. 다음과 같이 가수가 징관 연의초의 일부 어구만을 선별해 합쳐서 재조직해낸 문장이다. , ‘應有(T1736, p.252a15(252쪽의 a단의 15행을 뜻함, 이하 동일))’, ‘第四證自證分此若無者誰證第三(T1736, p.252a16)’, ‘證自體者必現量故(T1736, p.252a23-24)’이다[현행 대정장본의 此若無者장승법수(해사 귀한 402)p.011b에서 若無此者로 되어 있음.]. 여기에 징관의 입장을 담은 주석문 證自體者必現量故第三四分既是現量故得相證(T1736, p.252b1-2)’이 더해져서 장승법수의 해당 문장이 완성되는 것이다. 자세히 보면 겹치는 말이 있는데 바로 證自體者必現量故이다. 가수는 결국 호법의 마지막 어구 그리고 이 어구에 대한 징관의 입장을 부드럽게 연결하여 요약해낸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의도와는 달리 이렇게 인용해두면 후대의 학자들은 징관의 주석문까지도 호법의 말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게 된다.

 

셋째, 가수가 영명연수의 글이라고 인용을 밝혔지만, 사실상 징관의 말을 인용했을 가능성이 농후한 경우이다. ‘거울의 이미지는 상분[鏡像為相, p.252b8-10]’이라는 주제의 글인데, (1) 아래의 표를 보면 쉽게 알 수 있겠지만 징관 연의초의 설명 및 연수의 종경록이 일치한다. (2) 앞에서 인용된 진나와 호법은, 징관 연의초의 각각 ‘p.252a10-14’, ‘p.252a15-b2’까지의 말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 징관은 a14행까지 진나에 대해 설명한 다음, 바로 다음줄인 a15행부터 호법의 이론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호법에 대한 설명의 끝인 b2행에서 여섯 줄 지나 b8행부터 다시 나오는 내용이 바로 거울의 이미지는 상분[鏡像為相, p.252b8-10]’이다. 그렇다면 사실상 장승법수에 진나와 호법이 인용된 상태에서 그 다음 인용한 거울의 이미지는 상분이라는 설명은, 영명연수가 아니라 징관에게서 인용된 것이라 간주해야 한다. 그러나 가수는 징관 대신 종경록에 의거해서 영명연수가 말하기를[永明云]’이라고 밝히고 있다.

 

 

 

 

장승법수의 영향

 

익히 알려져 있듯이, 여말선초에 유통되었던 장승법수보다도 조선시대에 두루 읽혔던 법수책은 현수제승법수(賢首諸乘法數)이다. 장승법수는 조선 초기에는 간행되었으나 현재 전하는 문헌들을 비추어 보았을 때 한국의 조선시대 중후기에는 발간이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석가의 가계도인 석가종파의 경우에도 현수제승법수가 더욱 상세한 설명을 하고 있다. 더 나아가 대승기신론부터 다양한 경전과 논서의 주요 개념을 반 권 분량으로 소개하고, 나머지 반 권만큼을 1부터 84000까지 관련된 법수를 소개한 장승법수는 아무래도 숫자로 개념을 찾기에는 다소 불편한 지점이 있다. 이에 비해 현수제승법수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중국 화엄종 제3조인 현수 법장의 현수, 화엄경을 중심으로 개념을 소개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다른 경론의 내용을 압축하지 않고, 석가모니의 가계도를 실은 기교인연(起敎因緣)다음, 곧바로 1부터 법수를 나열하여 소개하고 있다. 더욱 사전으로서 검색이 용이한 측면이 있다.

  

그렇다 할지라도 복잡하고도 다대한 불교 법문의 핵심 단어를 선별하여 만들어낸 일종의 도식과 사전은 당시 불교를 신행(信行)하던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부처님의 가르침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맞닥뜨렸을 때, 바로 대답할 수 있는 불교 교리의 핵심 요약 해설집 역할을 장승법수가 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더 나아가 1부터 84000까지의 주요 개념을 순서대로 정리해둔 후반부 내용 역시도 수행과 신행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700년전 발간된 불교 개념 사전 장승법수의 디지털 원문 자료들을 통해,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상식과 맞는지 비교해보는 시간을 가지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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