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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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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적 이념의 지도화:

신증동국여지승람동람도

 

오상학(제주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조선은 세조대를 거치면서 통치기반이 확고해지고 유교 문화가 정착되어 갔기 때문에 지리지의 편찬 의도도 초기와는 달라져 갔다. 초기의 실용성을 강조한 세종실록지리지에 비해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예속(禮俗)과 관련된 내용이 많아졌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주지하다시피 국가적 사업으로 수십 년에 걸쳐 만들어진 16세기의 대표적인 인문지리서이다. 처음 성종의 뜻에 따라 양성지의 팔도지리지에 우리나라 문사(文士)들의 시문인 동국시문(東國詩文)을 첨가하여 1481(성종12)동국여지승람을 완성하였다. 이후 성종 대와 연산군 대에 수정 작업을 거치고 중종 대에 새로 증보(增補)하여 1530(중종 25) 55권의 신증동국여지승람으로 새롭게 탄생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총 9장의 지도가 수록되어 있다. 이들 지도는 판심에 동람도(東覽圖)’라 표기되어 있어서 통상 동람도라 불린다. 동람도에는 팔도총도라는 이름의 전국지도 1장과 팔도의 도별지도 8장이 수록되어 있다. 이전 시기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조선지도와는 형태나 내용면에서 커다란 차이를 지닌다.

 

 

사진1 : 동람도의 팔도총도』(奎貴1932)

 

 

먼저 팔도총도를 보면 전체적인 한반도의 형상이 일그러져 있다. 위 아래로 짓눌려 짜리몽땅한 모습이다. 실제의 국토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 심지어 북부지방 압록강의 유로가 두만강의 유로보다 더 북쪽에 그려져 있다. 지도에는 서울이 경도(京都)’라는 명칭으로 크게 표기되어 있고, 팔도의 이름이 해당 위치에 기재되어 있다. 수록된 내용은 주요 산과 강, 섬들로 매우 소략하다.

 

지도에 그려진 산을 보면,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이 맨 위에 그려져 있고 서울의 삼각산(북한산)백악산(지금의 북악)목멱산(지금의 남산), 남부지방의 명산인 계룡산, 지리산 등이 보인다. 그러나 명산으로 알려진 금강산, 설악산, 한라산 등의 산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에 우리에게 낯선 경상도의 우불산, 주흘산, 전라도의 금성산, 함경도의 비백산 등이 그려져 있다. 그렇다면 예로부터 명산으로 알려진 금강산, 한라산 등이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제작자의 단순한 실수에서 비롯된 것일까 

 

신증동국여지승람이 수십 년 간의 교정을 거쳐 간행된 점을 고려한다면 제작자의 실수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보다는 지도의 제작목적과 관련된다. 팔도총도는 자세한 국토정보를 제공할 실용적 목적으로 간행된 지도가 아니라 유교적 이념을 보여주는 지도이다. 지도에 수록된 내용은 유교적 의례에 따라 국가적 차원에서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한정되어 있다. 조선 초기에 확립된 산천사전제(山川祀典制, 산천에 대한 제사 규범)에 따르면, (, 바다)(, 산악)(, 하천)의 신은 중간 규모의 제사인 중사(中祀), 명산과 대천의 신에게는 작은 규모의 제사인 소사(小祀)를 드리게 되어 있다. 그러나 예로부터 명산으로 알려진 금강산이나 한라산 등은 사전(祀典)에 등재되지 못했기 때문에 지도에도 그려져 있지 않다.

 

아울러 바다 명칭인 동해, 서해, 남해가 바다가 아닌 육지에 표기되어 있다. 이 역시도 산천제와 관련되는 것이다. 당시 바다의 신은 중사(中祀)로 중시되었는데, 강원도, 전라도, 황해도에 제단이 설치되어 있었다. 지도의 해당 위치에 동해, 서해, 남해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바다 명칭으로 동해, 서해, 남해가 표기된 것이 아니라 바다의 신에게 제사지내는 제단이 있는 곳에 동해, 서해, 남해라고 각각 써 넣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해안의 섬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그려져 있다. 제주도, 강화도, 거제도 등의 큰 섬뿐만 아니라 군산도, 흑산도, 울릉도, 우산도(지금의 독도) 등도 그려져 있다. 이것은 우리 강역의 대략적인 영역을 나타내려는 의도에서 그려진 것이다. 비록 절대적인 위치나 방향 등에서 오류가 있지만 육지뿐만 아니라 도서지방까지 강역으로 분명하게 인식했던 상황을 보여준다. 특히 대마도가 그려진 점은 대마도의 양속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대마도가 경제적, 문화적으로는 조선에 속하지만 정치적, 행정적으로는 일본에 속한 속성으로 인해 지도에 그려질 수 있었다.

 

동해에는 우리의 시선을 끄는 두 개의 섬이 있다. 동쪽 편에 울릉도, 그 서쪽에 울릉도보다 약간 작게 우산도가 그려져 있다. 울릉도 서쪽의 우산도는 지금의 독도에 해당한다. 실제 독도가 울릉도의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지도에는 어찌하여 서쪽에 그려져 있을까? 일본은 이를 빌미로 여기에 그려진 우산도는 독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울릉도, 우산도의 표현은 근대 지도학적 시각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전근대에 제작된 지도의 성격을 알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팔도총도는 경위도 측량에 따른 근대적 지도처럼 실제의 지리적 사실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에 중점을 둔 지도가 아니다. 지리적 실재를 정확하게 표현하려 했다면 제주도의 크기가 흑산도만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제주도의 위도가 진도와 비슷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조선 사람들은 제주도가 진도보다 더 남쪽에 위치하고 흑산도보다 훨씬 큰 섬이라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팔도총도는 당시 인지하고 있던 지리정보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보다는 조선 강역의 대략적인 범위를 보여주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동해상에서 울릉도와 우산도가 있는 곳이 조선의 강역임을 명시적으로 표현하려 했던 것이다. 독도인 우산도의 면적이나 방향 등을 지도에 정확하게 표현하려는 의도에서 그려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동해의 울릉도 이외에 또 다른 한 섬인 우산도(독도)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팔도총도에 그려진 조선의 모습은 행정이나 국방 등의 실용적 목적으로 제작되는 지도와 근본적으로 다른 면을 지니고 있다. 국토의 산천 파악이 국방과 같은 실용적 차원이 아니라 제사를 통한 왕권의 위엄과 유교적 지배 이념을 확립하려는 의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성격은 동람도의 도별지도에서도 볼 수 있다.

 

동람도의 도별지도도 실용성을 강조한 군사, 행정용 지도와는 거리가 멀다. 조선시대 지방의 고을인 군현이 배치되어 있고 각 고을을 진호하는 진산(鎭山)이 그려져 있다. 이와 더불어 지도의 외곽에 사방에서 인접하고 있는 지역을 표시한 것이 전부이다. 고을을 연결하는 도로망이나 산성과 같은 군사 시설은 전혀 볼 수 없다. 경기도 지도를 보면 경기도 소속의 군현이 배치되어 있고 고을의 진산이 옆에 그려져 있다. 대개 조선시대 지도들은 풍수지리적 산천인식에 따라 산을 연결하여 산줄기의 형식으로 표현하지만 이 지도에서는 진산을 독립된 형태로 표현하였다. 진산은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주산(主山)이나 조종산(祖宗山) 등과는 차원이 다른 것으로 전통적인 산악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다. 각 고을에서 내려오던 산악신앙을 국가적 차원에서 파악하여 관리하려던 의도가 담겨져 있다. 통진과 김포와 같은 일부 고을에서는 진산이 아예 그려져 있지 않아서 이러한 원칙이 엄격하게 적용되지는 않고 있다.

 

 

사진2 : 동람도의 경기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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