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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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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와 천하를 품은 지도 : 환영지의 지도

 

오상학(제주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환영지(寰瀛誌)는 호남의 대표적인 실학자인 위백규(魏伯珪, 1727~1798)1770년 천문, 지리뿐만 아니라 각종 문물, 제도를 그림의 형식으로 엮은 책이다. 천문도, 지도, 그리고 인사의 영역을 일목요연하게 도표로 표현했다. 수록된 내용으로 보면 일종의 유서(類書)에 해당하지만 그림으로 표현한 점이 독특하다. 환영지는 현재 여러 본이 전해지고 있는데 1822년 족손(族孫) 위영복(魏榮馥)이 증보하여 간행한 목판본 이외에 필사본도 몇 종 남아 있다. 목판본과 필사본은 내용상 다소의 차이가 있는데, 목판본이 필사본보다 수록된 내용이 풍부하다.

 

상권에는 구천팔지도(九天八之圖천경성화도(天經成化圖경성위도(經星位圖) 등의 우주도와 중국 13성도(省圖), 서양 여러 나라의 지도, 요동도(遼東圖북한도(北漢圖영고탑도(寧古塔圖), 조선 8도도, 일본국·유구국도(琉球國圖) 등이 수록되어 있다. 하권에는 일원소장도(一元消長圖삼십육궁도(三十六宮圖이십사절도(二十四節圖) 등을 비롯한 천문, 인사, 문물, 제도, 역사와 관련된 그림이 주를 이룬다.

 

 

사진1 :  환영지의 서양제국도(奎5477)

 

 

  책에 수록된 지도는 세계지도, 중국지도, 조선지도, 일본지도, 유구지도 등으로 다양하다. 세계지도의 경우 필사본에는 원형의 천하도가 수록되어 있지만 목판본에는 원형의 천하도가 없고 대신에 소략하게 그려진 서양제국도가 그려져 있다. 환영지의 필사본에서는 목차에 裨海九州外又九九齊儒之說有所是受利瑪竇天下圖라 하고 원형 천하도를 이마두천하도(利瑪竇天下圖)’라는 제하에 수록하였다. ‘이마두는 마테오 리치의 한자 이름이다. 원형 천하도를 마테오 리치가 그린 것으로 오인하여 이렇게 지도 이름을 붙인 것이다. 마테오 리치의 세계지도를 직접 열람하지 않고 오대주설과 같은 지리지식을 소문으로만 접한 상태에서 원형 천하도를 그의 작품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후 그는 알레니의 직방외기등의 서적을 접하였는데, 그 결과 원형 천하도가 마테오 리치가 그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수정하였다. 이때 터득한 지식을 바탕으로 지리적 세계를 모식적으로 그린 서양제국도(西洋諸國圖)와 세계 각국에 대해 간략하게 기술한 지지(地誌)적 내용을 덧붙이기도 했다.

 

환영지의 후기 목판본에서는 원형 천하도가 누락되어 있지만 이를 설명한 부분이 수록되어 있어서 눈길을 끈다. 영결리(永結利), 불랑기(佛浪機) 등의 서양 국명이 실려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원형의 천하도에 수록된 것들이다. 특히 산해경에 나오는 많은 지명이 간략한 설명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이어 바다에 대한 부분에서는 추연의 대구주설을 천하도의 구도와 유사하게 해석하였다. , 중국 사방을 둘러싸는 바다를 비해(裨海)라 하고 그 외부로는 대륙이 감싸고 있으며 대륙의 밖은 대영해(大瀛海)가 둘러싸고 있는데 이곳이 땅의 끝이라 하였다. 또한 서양인은 중국 서남해를 땅이 바다를 감싸고 있다 해서 지중해(地中海)라 하는데, 그 밖은 다시 환해(寰海)라는 바다가 땅을 감싼 구조여서 추연의 설과 유사하다고 했다. 이것은 9개의 대륙과 81개의 주로 구성되어 있다는 추연의 대구주설을 비해󰠏대영해(裨海󰠏大瀛海 : 地中海󰠏寰海)라는 동심원적 구조에 초점을 맞춰 해석한 것이다. 그리하여 원형 천하도를 추연의 대구주설과 바로 연결시켜 구구주도(九九州圖)’라 명명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세계지도 이외에도 중국의 전도와 각성()의 지도, 조선의 팔도총도와 도별지도, 이외에 한양도와 평양관부도, 탐라도 등이 수록되어 있다. 목판본에 수록된 팔도총도는 전체적인 형상이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팔도총도와 유사하지만 표현된 내용은 다르다. 지도의 상단에는 조선의 별자리에 해당하는 분야(分野)와 좌향(坐向)이 표시되어 있다. 팔도의 명칭과 주요 산천이 그려져 있는데, 과거 왕조의 명칭이 해당 지역에 표기된 것은 동람도에서 볼 수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동해의 섬이 독특하게 그려져 있다. 두만강 하구의 적도(赤島)와 울릉도, 지금의 독도에 해당하는 우산도가 보인다. 우산도는 동람도에서는 울릉도의 서쪽에 그려졌는데, 여기서는 울릉도의 동남쪽에 그려져 방향이 수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진2:  환영지의 팔도총도(奎5477)

 

 

제주도 지도도 수록되어 있는데, 필사본은 매우 소략하고 목판본이 보다 상세하다. 목판본의 탐라도는 대형의 단독 제주지도처럼 남쪽을 지도의 상단으로 배치하였다. 지도의 외곽에는 간지로 된 방위가 표시되어 있다. 제주도 주변에는 일본, 동남아, 중국 등의 외국 지명과 남해안의 여러 섬들이 그려져 있다. 바다에는 물결무늬를 그려 놓았다. 이러한 구도와 양식은 탐라지도병서와 유사한데, 그를 참조하여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지도의 내용은 탐라지도병서류에 비하면 매우 소략하다.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 등의 고을 표시와 산지와 하천, 북쪽 지역 배가 정박할 수 있는 포구가 표기된 정도이다. 1702년 이형상 목사에 의해 건립된 삼성묘가 제주 성안에 있는 것으로 보아 대략 18세기의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반해 한라산의 표현은 상대적으로 강렬한 느낌을 준다. 백록담과 주변의 지형, 서쪽과 동쪽으로 이어지는 곶자왈 지대의 우거진 숲은 탐라지도병서의 구도와 유사하다. 특히 백록담의 모습이 크게 그려졌으며, 동암과 서암의 모습도 부각되어 있다. 또한 영실의 기암절벽도 독특하게 표현되었는데, 지명은 영곡(靈谷)’이라 표기되어 있다. 백록담 북쪽 사면에 있는 구상나무밭은 향목(香木)’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하천은 쌍선으로 그려져 있는데, 성안을 통과하는 산지천이 백록담에서 발원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는 것이 이채롭다. 탐라지도병서처럼 중산간 지대에 설치된 목마장이 각 소장의 표시와 함께 그려져 있다. 한라산 주변에 광범하게 분포되어 있는 오름은 일부만이 그려져 있고 명칭은 아예 표기되지 않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아 한라산에 대한 인식이 실재를 많이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진3:  환영지의 탐라도(奎5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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