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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루몽
: 조선 최고의 판타지

 

유광수(연세대학교 학부대학 부교수)

 


사진 : 옥루몽(3350-78-v.1-14)

 

 

 

19세기 경화사족의 소설 쓰기

 

 

 

옛 사람들에게 소설(小說)이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명칭부터 소소하고 작은 이야기란 의미를 담고 있는 것도 그렇다. 유교 경전 같은 대설(大說)이 아닌 보잘 것 없는 것들이란 의미의 소설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란 인식이 강했다. 한 마디로 소설은 쓸데없는 공연한 짓거리란 뜻이었다. 이러니 소설이란 것은 당대 교양인인 양반들이 드러내놓고 읽거나 즐길 거리는 아니었다. 체통이 없는 짓일 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심성수양이 덜 된 인간으로 매도될 수도 있었다.

읽는 것도 이러하니 소설을 지을 생각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에게 창작할 능력이 있느냐는 그만두고라도 웬만한 용기가 없이는 불가능했다. 혹시나 소설을 창작했다는 소리가 퍼져 나간다면 난감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조선시대 소설 대부분은 원작자가 누군지 알기 어렵다. 창작했지만 꺼려했고, 좋아서 지어냈지만 그런 맘을 옳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설 창작은 부끄러운 짓이었다.

소설을 창작할 정도라면 일정 수준의 지식이 있어야 했다. 또한 창작할 시간적 심정적 여유도 있어야 했다. 조선시대 그런 사람들은 양반들이었다. , 양반들은 겉으로는 소설을 보잘 것 없다고 폄하하면서도 속으로는 가치를 인정하고 즐기며 창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소설의 명맥이 조선시대 내내 이어져 내려왔다.

이것이 소설을 둘러싼 반전이다. 모두가 시답지 않게 생각했지만 줄기차게 창작되며 끊어지지 않고 읽혀 왔다는 점이다. 여기에 소설의 가능성이 있다. 보잘 것 없지만 가치 있는 그 무엇을 담고 있는 글쓰기란 자각이 바로 소설의 가치이다.

아무튼 조선시대 내내 폄하되던 소설에 대한 인식과 위상이 19세기로 접어들면서 조금 바뀌었다. 그토록 근엄하던 양반들 사이에서 소설을 창작하는 일이 이전보다 잦아졌고, 또 대놓고 자신들이 창작을 했노라고 스스럼없이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창작된 소설도 짧은 단편이 아닌 상당히 길고 심도 있는 내용을 본격적으로 담은 장편들이었다.

19세기에는 양반들이 단순한 일회적 유희가 아닌 상당한 의도를 지닌 본격적인 행동을 스스럼없이 했던 것이다. 게다가 양반들은 자신들의 소설을 서로 돌려보며 문학에 대해 진지한 평()을 하기 시작했다. 더욱 자신의 평을 해당 소설에 덧붙여 놓기도 했다. 이전까지는 시()를 비롯한 정통 한문 저작들에나 하던 일을 소설에게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우리 소설사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으로, 허무맹랑하고 보잘 것 없고 때론 배격 받아 마땅한 글쓰기인 소설의 가치를 의미 있게 인식한 것이다.

이때 창작된 장편소설들이 남영로(1810~1857)<옥련몽(玉蓮夢)><옥루몽(玉樓夢)>, 김소행(1765~1859)<삼한습유(三韓拾遺)>, 서유영(1801~1874)<육미당기(六美堂記)>, 심능숙(1782~1840)<옥수기(玉樹記)> 같은 작품들이다.

이들 작가들은 서울 중심으로 살았던 경화사족(京華士族) 양반들로 세련된 도시적, 문화적 취향과 예술적 감식안과 박식함을 두루 갖추고 있었고, 그런 예술성에서 비롯된 재미있는 글을 쓰고자 하는 열망에서 소설을 창작했다. 이들 작품은 서사의 다채로움과 글쓰기의 세련됨 뿐만 아니라 내용의 진지함과 대중성을 두루 갖춘 수준 높고 흥미로운 작품들이었다.

 

 

 

다채롭고 화려한 판타지 소설

 

 

 

이렇게 의도적으로 재미있는 글을 쓰고자 했던 시기에 뛰어난 예술적 감식안을 지닌 작가가 단단히 맘먹고 지은 소설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 바로 <옥루몽>이다. 등장인물들의 형상화와 서사의 다채로움, 장면의 화려함과 섬세함, 시와 언술의 세련됨 등등은 물론이고, 담고 있는 판타지적 내용의 환상성과 대중성은 현대 소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가히 조선 최고의 판타지라 할 만하다.

<옥루몽>에는 놀라운 이야기가 가득 들어 있다. 문무를 겸비한 영웅이 등장하는 것은 물론이고, 검술과 무술이 빼어난 아름다운 여인들이 나타나 기기묘묘한 사랑과 애정 갈등을 일으킨다. 여인들은 피리와 거문고 같은 악기 소리와 음률로 사람을 매혹시키기도 하고 정사(政事)를 그르치는 황제의 마음을 돌이키기도 할 뿐만 아니라, 남장(男裝)을 하고 전쟁터에 나가 대원수가 되어 적들을 무찌르는 엄청난 활약을 벌이기도 한다.

온갖 기묘하고 괴상한 것들도 수없이 등장한다. 물고기처럼 물속을 헤집고 다니는 여인, 피를 뿜고 달려드는 무지막지한 괴물 같은 장군, 눈알이 빠져도 고함을 지르며 달려드는 적군, 매서운 창을 튕겨내는 호랑이, 화살을 맞아도 흠집 하나 나지 않는 날렵한 새, 거대한 사자 같은 무시무시한 개, 몸에 닿기만 해도 썩어문드러지는 강, 기암절벽 사이에 놓인 성 등등 정말 기기묘묘한 환상적인 것들이 가득하다. 여기에 도술로 대결을 펼치고, 환술로 상대의 눈을 속이기도 하고, 천만대군이 웅장하게 펼쳐내는 진법(陣法)을 통해 적을 물리치기도 한다. 치열하게 격돌하고 성을 부수는 장쾌한 스펙터클도 펼쳐진다.

배경도 중원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종횡무진 다니며 이야기의 확장과 더불어 공간의 확장과 발견이 이어진다. 그렇게 남쪽의 깊고 습한 밀림을 건너고 북쪽의 춥고 매서운 험산을 용감하게 지나기도 한다. 온 세상 이곳저곳을 다니는 끝없는 모험이 펼쳐진다.

이런 가운데 국가에 대한 충성과 여인에 대한 사랑, 악에 대한 징벌과 용서가 호방하고 화려하게 그려진다. 주인공들을 중심으로 주변의 여러 인물들까지 입체화된 섬세한 감정이 겹겹이 교차되며 아름답게 형상화되어 있다.

 

 

 

<구운몽>의 창조적 계승자, <옥루몽>

 

 

옥루몽(玉樓夢)’의 뜻은 천상 백옥루(白玉樓)에서의 꿈[]’이란 뜻이다. 1명의 선관과 5명의 선녀들이 모여 희희낙락 술을 마시며 즐기다가 함께 인간 세상에 태어나는 꿈을 꾸는 내용이다. 이들 여섯 명은 각기 인간 세상에 태어나 온갖 부귀공명을 다 이루며 신나게 사는데, 작품이 끝날 때까지 그 꿈에서 깨어나지 않는다. , <옥루몽>은 무궁무진한 인간 세상의 행복을 끝없이 누리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이런 <옥루몽>의 내용과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운몽>을 빼놓고서는 말하기 어렵다. 작가 남영로가 <구운몽>을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패러디를 통해 <옥루몽>을 창작했다. 패러디(Parody)라고 하면 비틀고 뒤집는 것만 생각하지만, 본래 패러디는 원작 텍스트를 꼼꼼히 읽어냄으로써 원작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새롭게 바라보며 이해하는 거리를 둔 재해석이 기본이다.

남영로는 주제적 측면에서는 <구운몽>의 숭고하고 엄숙한 것을 비틀어 인간 욕망을 극대화하고 긍정하는 가치로 전복시켰다. <구운몽>을 잘못 읽으면, 자칫 성진과 8명의 선녀가 벌인 인간세상의 삶이 꿈이라는 허무한 감정에 빠질 수 있다. 행복한 꿈을 꾸지만 결국 마지막에 깨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옥루몽>은 꿈을 꾸기는 하지만 꿈에서 깨어나지 않는다. 작가 남영로는 <구운몽>을 바탕으로 끝없는 영원한 쾌락과 행복이라는 인간이 바라 마지않는 극상의 판타지를 그려낸 것이다.

<옥루몽><구운몽>을 패러디하면서 인물들도 조정했다. <구운몽>에서 남성 1명과 여성 8명이 결연하는 것을 <옥루몽>은 남성 1명과 여성 5명으로 바꾸었다. 여성 캐릭터가 5명으로 줄어들면서 비중이 높아지고, 비중이 증가하면서 각 인물을 훨씬 더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 그래서 이들 여성 캐릭터들 중에서 후일 강남홍벽성선만 따로 뽑아서 어떤 작자가 활자본 <강남홍전>, <벽성선전>을 만들기도 했다.

서사 내용도 <구운몽>과 다르게 우여곡절이 많아지게 되면서 훨씬 더 사건과 상황이 현실적으로 그려졌다. 그에 따라 인물들도 사실적이게 되면서 단순히 선악 구분을 넘어서 판단해야 하는 수준으로 형상화되었다. 예를 들어, 단순히 보면 권신(權臣)인 황 각로가 부정적 인물이고 새로운 신진 세력인 윤 상서가 긍정적 인물로 이해된다. 주인공 양창곡도 황 각로의 딸 황 부인보다는 윤 상서의 딸 윤 부인을 더 친애한다. 그러나, 내용을 조금만 더 자세히 살펴보면, 황 각로가 천하의 악인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딸을 위해 어쩔 줄 몰라 하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드러나고 윤 각로는 의인처럼 보이나 정치적 술수와 정략적 행동을 통해 권력 상승을 꾀하는 인물로 그려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선뜻 선악의 이분법적 판단을 유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인물의 입체적 개성적 형상화는 주인공인 양창곡, 강남홍, 벽성선 등에게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는데, 이는 이전 소설들이 인물들보다 훨씬 수준 높은 형상화이다.

담고 있는 주제와 사상 측면에서도 유교사상을 골격으로 하고 불교 및 도교사상을 수용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현실과 인생을 긍정적 시각에서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분량이 <구운몽>의 서너 배 정도일 뿐만 아니라, 그 담긴 내용의 다채로움을 통해 흥미성과 대중성을 고취하면서도 그 바탕에 진지한 인간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19세기 <옥루몽>17세기 <구운몽>을 창조적으로 계승하여, 앞선 시대 작품의 장점을 확장시키면서도 자신만의 특징을 드러내어 19세기 소설다운 면모를 확장시켰다. 이런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묘사와 형상화는 이후 근대전환기에 새롭게 출현하는 소설들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렇게 <옥루몽>은 우리 고전의 발전적 계승과 확장의 중심에 있었다.

 

 

 

규장각본 <옥루몽>의 가치



<옥루몽>64회의 회장체(回章體)로 된 긴 장편소설이지만 인기를 모은 소설 가운데 하나이다보니 이본이 상당히 많이 남아 있다. 내용이 길어 판각본은 없고, 붓으로 베껴 제작하는 필사(筆寫) 형태의 다수의 필사본과 근대전환기에 사용하던 구활자로 제작된 활판본 2종이 남아 있다.

활판본은 한글로 된 신문관본(1912)과 한문에 현토를 한 한문현토본(1915)인데, 한문현토본은 앞선 시대 있었던 한문본을 가져다가 현토한 것이 아니라, 한글본인 신문관본을 한문으로 번역하여 현토한 것으로 보인다. 정리하면, <옥루몽> 이본은 다수의 한글필사본한글활자본’ 1, ‘한문현토활자본’ 1종이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옥루몽> 이본 중에서 완질은 규장각본(한글필사, 19061909), 동양문고본(한글필사, 1908), 신문관본(한글활판, 1912), 한문현토본(한문활판, 1915)이다. 이 중 동양문고본은 <옥루몽> 서사의 대부분을 삭제 축약한 축약본 계열의 이본으로 원작의 모습과는 많이 멀고, 나머지 셋은 원작의 모습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세밀하게 규장각본과 신문관본, 한문현토본을 검토한 결과, 신문관본과 한문현토본은 거의 같은 계열로 한문현토본이 신문관본을 대본으로 번역했을 가능성이 높고, 규장각본은 이들과는 달리 원전 <옥루몽>에 더 가까운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연구 결과 <옥루몽>의 최선본(最善本)은 규장각본이 분명하다.

규장각본이 필사된 시기는 1906년인데, 11권이 망실 등의 이유로 사라졌는지 해당 권을 1909년에 다시 필사해서 채워 넣었다. 그러므로 규장각본 <옥루몽>의 제작연대는 1906년이라 하는 것이 옳다.

이렇게 현재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1414<옥루몽>의 가치는 매우 높고, <옥루몽>의 진정한 맛을 느끼기 위해서는 이 텍스트를 읽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유광수, 2013, 19세기 소설 옥루몽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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