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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

- <완월회맹연>이 보여주는 여성의 현실 -

 

김민정(경상국립대학교 여성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완월회맹연>은 분량부터가 만만치 않은 소설이다. 180180책이라는 숫자만 보면, 웬만한 독자는 시작하기도 전에 겁부터 날 법하다. 하지만 막상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 긴 소설이 왜 이렇게까지 길어질 수밖에 없었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완월회맹연>은 빠르게 결론으로 달려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들이 어떻게 하루하루를 버텨 가며 살아가는지를 차분히 쌓아 올린 소설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중심에는 가문이 있다. 혼인과 혈연, 질서와 규범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기본 틀을 이룬다. 겉으로 보면 안정적인 가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전혀 다르다. 가문은 단단한 성처럼 서 있는 공간이 아니라, 늘 조심스럽게 관리해야 하는 구조다. 작은 균열 하나가 관계 전체를 흔들 수 있고, 누군가의 감정이 어긋나는 순간 긴장이 생긴다. 그리고 이 불안정한 균형을 가장 많이 떠받치는 존재가 바로 여성이다. <완월회맹연>에서 여성은 주변에 머무는 인물이 아니다. 오히려 가문이 유지되거나 흔들리는 순간마다 여성의 선택과 감정, 관계 맺음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소설은 여성을 특별한 영웅으로 그리지 않지만, 가문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여성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집요하게 따라간다.

 

<완월회맹연>이 인상적인 이유는, 여성의 고통을 극적인 사건으로만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군가 크게 불행해지고, 한 번의 사건으로 모든 것이 드러나는 방식이 아니다. 대신 반복되는 인내, 쉽게 말할 수 없는 감정, 참고 넘어가야 하는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그래서 이 소설 속 여성들의 삶은 비극적이라기보다 익숙하게 느껴진다.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장면들이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누가 잘못했고, 무엇이 옳은지를 크게 외치지 않는다. 대신 가문이라는 틀 안에서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감정이 어떻게 눌리고, 관계가 어떻게 조정되며, 왜 침묵이 선택되는 순간이 반복되는지를 조용히 드러낸다. 그런 점에서 <완월회맹연>은 도덕적 판단을 앞세우기보다, 삶의 조건을 보여주는 소설에 가깝다.

 

이 글에서는 <완월회맹연>을 통해 가문 질서 안에서 여성들이 어떤 현실을 살아갔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인물의 모습과 이야기의 방식, 그리고 여성들 사이의 관계는 이 소설이 얼마나 집요하게 삶의 안쪽을 들여다보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완월회맹연>은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사람 사이의 관계와 그 안에서의 선택을 다룬다는 점에서 지금 읽어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사진 1 : 완월회맹연(3350-65, 규장각한국학연구원)

 

 

 

18세기 여성의 현실을 들여다보는 시선

 

 

 

<완월회맹연>을 읽다 보면, 이 소설이 여성의 삶을 특별한 사건으로만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누군가 한 번 크게 불행해지고, 그 불행이 이야기의 중심을 차지하는 방식이 아니다. 대신 여성들은 비슷한 상황을 반복해서 겪고, 그때마다 조금씩 다른 선택을 한다. 이 반복이 쌓이면서, 어느새 한 시대 여성의 삶이 윤곽을 드러낸다.

 

작품 속 여성들은 늘 인내와 절제를 요구받는다.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감정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삼키고, 억울한 상황에서도 바로 항의하지 않는다. <완월회맹연>은 이 침묵을 미덕처럼 강조하지도,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비판하지도 않는다. 그보다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차분히 보여준다. 그래서 독자는 여성의 선택을 판단하기보다, 그 선택이 만들어진 조건을 먼저 보게 된다. 이 소설이 보여주는 여성의 현실은 비극적이기보다는 일상적이다. 큰 사건이 없어도 삶은 충분히 팍팍하고, 특별한 악인이 없어도 관계는 쉽게 어긋난다. <완월회맹연>은 바로 이 점을 놓치지 않는다. 여성들이 처한 상황은 우연이나 개인의 성격 때문이 아니라, 가문과 관계, 규범이라는 구조 속에서 반복된 결과임을 계속해서 암시한다.

 

또 하나 인상적인 점은, 이 작품이 여성의 삶을 단일한 모습으로 묶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여성이 같은 방식으로 참고, 같은 방식으로 견디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감정을 숨기고, 누군가는 말로 표현하려 하고, 또 누군가는 관계를 바꾸는 선택을 한다. <완월회맹연>은 이 다양한 대응을 한꺼번에 보여주면서, 여성의 삶이 얼마나 복잡한 선택의 연속이었는지를 드러낸다. 이러한 서술 방식 덕분에 <완월회맹연>18세기 여성의 현실을 설명하기보다 보여주는소설로 읽힌다. 작가는 여성의 고통을 강조하기 위해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다. 대신 일상적인 장면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면서, 그 시대를 살아간 여성들이 어떤 조건 속에 놓여 있었는지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그래서 <완월회맹연>을 읽고 나면, 여성의 삶이 왜 쉽게 바뀌지 않았는지, 왜 비슷한 문제가 계속 반복되었는지를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이 소설은 한 사람의 불행을 이야기하기보다, 많은 사람들의 비슷한 하루를 보여준다. 바로 그 점에서 <완월회맹연>18세기 여성의 현실을 가장 끈질기게 붙잡은 작품 가운데 하나로 남는다.

 

 

 

 

소교완이라는 인물, 쉽게 미워할 수 없는 이유

 

 

<완월회맹연>을 이야기할 때 소교완이라는 인물을 빼놓기는 어렵다. 이 인물은 작품 속에서 가장 많은 갈등을 만들어내고, 독자에게도 가장 복잡한 감정을 남긴다. 처음 읽을 때는 소교완의 행동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공격적이고, 때로는 폭력적이며, 주변 인물들과 끊임없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따라갈수록 이 인물을 단순히 문제적 인물로만 보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완월회맹연>이 소교완을 흥미롭게 만드는 이유는, 이 인물을 한 가지 얼굴로 고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품은 소교완의 행동을 숨기거나 미화하지 않는다. 갈등을 만들고 관계를 파괴하는 장면도 분명하게 제시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 행동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함께 보여준다. 소교완의 말과 행동은 언제나 어떤 관계 속에서, 어떤 위치에서 나온 것인지와 연결되어 있다. 이 소설에서 소교완은 가문 질서의 중심에도, 완전히 바깥에도 속하지 못한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자리를 안정적으로 부여받지 못한 채, 끊임없이 관계 속에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위치에 놓여 있다. 이 불안정한 상태는 소교완의 태도를 날카롭게 만들고, 작은 자극에도 쉽게 반응하게 만든다. <완월회맹연>은 이러한 불안을 개인의 성격 문제로 돌리지 않고, 인물이 놓인 환경과 관계망 속에서 설명한다.

 

서술 방식 역시 이 인물을 단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어떤 장면에서는 소교완을 비난하는 시선이 강조되고, 또 다른 장면에서는 연민에 가까운 시선이 함께 제시된다. 독자는 어느 한쪽의 판단에 쉽게 기대기 어렵다. 소교완의 행동은 분명 문제적이지만, 그 문제성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계속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서술 태도 덕분에 소교완은 악녀라는 말로 정리되지 않는다. 작품은 이 인물을 통해, 가문 질서 안에서 역할을 부여받지 못한 존재가 어떤 방식으로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소교완의 폭력은 정당화되지 않지만, 그 폭력이 반복될 수밖에 없었던 조건은 서사 속에 분명히 제시된다.

 

그래서 소교완은 읽을수록 불편하면서도 쉽게 잊히지 않는 인물이 된다. 그는 누군가를 괴롭히는 인물이면서 동시에, 구조 속에서 밀려난 존재이기도 하다. <완월회맹연>은 이 인물을 통해, 가문 질서가 모든 사람을 안정적으로 품어주지 못할 때 어떤 균열이 생기는지를 보여준다. 소교완은 그 균열이 인물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여성 공동체, 위로이자 또 하나의 긴장

 

<완월회맹연>에서 흥미로운 장면들은 종종 여성들이 함께 모여 말하는 순간에 등장한다. 이 소설 속 여성들은 늘 혼자만의 문제를 끌어안고 있지 않는다.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들과 경험을 나누고, 자신의 상황을 말로 풀어내며,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이런 장면들은 가문 안에서 여성이 완전히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러한 여성 공동체는 분명 위로의 공간이다.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과 상황을, 함께 말함으로써 견딜 수 있게 해준다. <완월회맹연>은 여성들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배치하면서, 말한다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의미 있는 선택임을 보여준다. 침묵만이 유일한 대응 방식은 아니라는 점을, 이 소설은 조심스럽게 드러낸다. 그러나 이 공동체는 언제나 편안한 공간으로만 남지는 않는다. 여성들이 함께 모여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동시에 서로의 선택이 비교되고 평가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떤 감정은 공감을 얻지만, 어떤 말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여성 공동체 안에서도 침묵이 요구되는 순간이 있고, 말해지지 못한 경험은 다시 개인의 몫으로 돌아간다.

 

<완월회맹연>은 이 점을 미화하지 않는다. 여성 공동체는 가부장적 질서에 완전히 맞서는 대안적 공간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가문이라는 큰 틀 안에서 형성된, 제한된 연대의 형태에 가깝다. 여성들은 서로를 이해하려 하지만, 동시에 가문 질서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래서 공동체는 위로의 역할을 하면서도, 또 다른 긴장을 만들어낸다.

 

특히 여성 가장의 존재는 이러한 공동체의 성격을 더욱 복합적으로 만든다. 여성 가장은 여성들의 말을 모으고, 경험을 가시화하는 중심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가문 질서를 대표하는 위치에 서 있다. 그의 판단은 공동체를 보호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여성들의 선택을 다시 규범 안으로 되돌려 놓는다. <완월회맹연>은 이 이중적인 위치를 숨기지 않고 보여준다. 이처럼 <완월회맹연>에 등장하는 여성 공동체는 단순한 연대의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위로와 조정, 공감과 침묵이 함께 존재하는 장소다. 여성들은 이 안에서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 또 어떤 경험은 끝내 말하지 않는다. 이 불완전함이야말로, 이 소설이 여성의 삶을 현실적으로 그려내는 방식이다.

 

그래서 <완월회맹연>의 여성 공동체는 이상적인 연대의 모델이라기보다, 가문 질서 속에서 가능했던 관계의 한 형태로 읽힌다. 이 소설은 여성들이 서로 기대고 말할 수 있었던 순간들을 보여주면서도, 그 연대가 언제나 충분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함께 남긴다. 바로 그 점에서 <완월회맹연>은 여성 공동체를 통해, 여성의 삶이 놓여 있던 조건을 한 번 더 분명하게 드러낸다.

 

 

 

가문 이야기의 끝에서 다시 보게 되는 여성의 삶

 

<완월회맹연>은 끝까지 읽고 나면,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소설처럼 느껴진다. 겉으로는 가문의 이야기처럼 보였지만, 이야기가 쌓일수록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가문 자체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여성들의 삶이다. 가문은 언제나 중요한 기준으로 작동하지만, 그 기준을 실제로 떠받치는 것은 여성들의 선택과 인내, 그리고 반복되는 조정이다.

  

이 소설 속 여성들은 특별히 영웅적이지 않다. 거창한 결단을 내리기보다, 주어진 조건 안에서 하루를 버티고 관계를 유지하는 데 더 많은 힘을 쓴다. 감정을 눌러야 할 때를 알고, 말을 삼켜야 할 순간을 견디며, 때로는 다른 여성들과 경험을 나누면서 스스로를 지탱한다. <완월회맹연>은 바로 이런 모습을 집요하게 따라간다. 소교완이라는 인물은 이 구조의 균열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사례다. 그는 문제적인 인물이지만, 동시에 가문 질서가 누군가를 제대로 품지 못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작품은 그를 쉽게 판단하지 않게 만든다. 잘못된 행동은 분명하지만, 그 행동이 나오게 된 조건 역시 끝까지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 공동체 역시 마찬가지다. 이 소설에서 여성들은 혼자가 아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 때로는 기대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 공동체는 언제나 충분하지도, 완전히 안전하지도 않다. 연대는 가능하지만 제한적이고,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의 경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완월회맹연>은 이 불완전한 연대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완월회맹연>은 여성의 고난을 강조하는 소설이라기보다, 여성의 삶이 놓여 있던 구조를 드러내는 소설로 읽힌다. 감정을 과장하거나 도덕적 판단을 앞세우지 않고, 사람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차분히 보여준다. 이 점이 이 작품을 오래 남게 만든다.

  

가문을 이야기하는 소설은 많다. 하지만 <완월회맹연>처럼 가문의 내부를 끝까지 들여다보며, 그 질서를 떠받친 여성들의 삶을 이렇게까지 세밀하게 기록한 작품은 드물다. 이 소설은 가문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그 역사 속에서 조용히 반복되었던 여성들의 하루하루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서, <완월회맹연>은 지금 읽어도 여전히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으로 남는다.

 

 

 

참고문헌

 

최어진, 「〈완월회맹연소교완의 인물형상과 서술의식 연구, 동서인문학68, 인문과학연구소, 2025

탁원정, 국문장편소설 <완월회맹연> 속 여성 공동체의 양상과 의미 -여성 공유/고유의 경험과 발화를 중심으로, 고전문학연구66, 한국고전문학회, 2024

한정미, <완월회맹연>을 통해 본 18세기 여성 현실의 일 단면 -교씨 부중 며느리 여부인 서사를 중심으로, 이화어문논집54, 이화어문학회,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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