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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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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용 세계 지리지 『사민필지

 

오상학(제주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헐버트의 편찬 의도

『사민필지』는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H.B. Hulbert, 1863~1949)가 지은 세계지리서이다. 헐버트는 1886년(고종 23)에 우리 나라의 초청으로 육영공원(育英公院)의 교사로 취임하여, 1889년 세계의 지리지식과 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한글본으로 『사민필지』를 저술하였다. 서문에는 그가 『사민필지』를 편찬한 의도가 잘 드러나 있다.

 

텬하형셰가녜와지금이크게갓지아니하야전에는각국이각각본디방을직희고본국풍쇽만따라더니 지금은그러치아니하여텬하만국이언약을서로맷고사람과믈건과풍쇽이서로통하기를맛치한집안과가하니이는지금텬하형셰의곳치지못할일이라이곳치지못할일이잇슨즉각국이젼과갓치본국글사자와사적만공부함으로는텬하각국풍긔를엇지말며아지못하면서로교접하난사이에맛당치못함과인졍을통함에거리낌이잇슬거시오거리낌이잇스면졍의가서로도탑지못할지니그런즉불가불이젼에공부하던학업외에또각국일홈과디방과폭원과산쳔과소산과국졍과국셰와국재와군사와풍쇽과학업과도학의엇더함을알아야할거시니이런고로태셔각국은남녀를무론하고칠팔셰되면몬져텬하각국디도와풍쇽을가라친후에다른공부를시작하니텬하의산쳔슈륙과각국풍쇽졍치를모라난사름이별로업난지라죠션도불가불이와갓치한연후에야외국교졉에거리낌이업슬거시오.

 

이처럼 서문에서 『사민필지』의 저술 의도를 밝히고 있는데, 지금의 세계정세가 예전과 달라 국가간의 교류가 한 집안과 같이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각국이 이전과 같은 본국 글자와 사적만으로는 국제교류에서 마땅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가불 이전에 공부하던 국어와 역사 외에 세계지리의 공부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학생들에게 세계에 대한 지리지식과 더불어 종교, 경제, 군사 등에 대한 지식을 제공하고 학생들에게 세계를 보는 시각을 길러주기 위해 이 책을 집필한 것이다.

 

 

한글본 『사민필지』

『사민필지』의 초간본에는 간행연기가 없는데, 책의 내용을 토대로 볼 때 대략 1889년에 집필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여러 차례의 개정 간행이 이루어졌다. 1895년에는 학부에서 백남규(白南奎)와 이명상(李明翔)이 공동으로 번역하고 의정부편사국(議政府編史局) 주사(主事) 김택영(金澤榮)이 찬하고 서문을 쓴 한문본 『사민필지(士民必知)』가 간행되었다. 한글본 『사민필지』는 1906년 감리교 출판사(Methodist Publishing House)에서 출판되었는데, 영문 제목은 “GEOGRAPHICAL GAZETTEER OF THE WORLD”로 되어 있다. 제3판은 1909년 재판본 그대로 헐버트에 의해 간행되었다.

 

헐버트가 언어학, 역사학 등의 분야에서 전문적 식견을 지니고 있었지만 대학에서 지리학을 전공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단독으로 『사민필지』를 저술한 것은 아니고 주변의 한국인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헐버트의 회고록에서 『사민필지』는 미국 휘태커(Whittaker) 연감, 혹은 정치가(Statesman) 연감의 축소판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당시 어느 세계지리 교과서를 모범으로 삼아 세계 각국의 통계를 첨가하여 편찬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륙의 순서

초판본의 수록 내용은 서문에 이어 지구과학적 내용을 수록한 「따덩이」, 이어서 각 대륙별로 국가를 소개하고 있다. 수록 대륙의 순서는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순으로 되어 있다. 유럽이 아시아보다 먼저 기술된 것이 특징적이다. 이는 근대 서구문명의 발상지인 유럽을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사민필지』에는 지리지를 보완하는 8장의 지도가 실려 있다. 태양계를 중심으로 한 천체도, 지구동서반구도, 유로바디도, 아시아디도, 북아메리까디도, 남아메리까디도, 아프리가디도, 오스드렐랴태평양디도 등의 순서로 되어 있다. 

 

세계지도와 대륙별 지도

세계지도의 경우 경선과 위선이 등간격의 곡선으로 그려진 정거방위도법을 사용하였다. 대륙별 지도에는 지도의 제목이 표기되어 있고, 동서남북의 방위표시, 삼천리에 해당하는 축척 등이 그려져 있다. 지도의 내용은 대륙에 속해 있는 주요 국가와 수도, 주요 도시가 표시된 정도로 비교적 소략하다. 산맥은 산봉우리를 서로 연결하여 그린 전통적인 방식을 따르고 있다. 연안 해역은 가로선을 조밀하게 그려 표현하였다.

 

 

ᄉᆞ민필지』 < 奎 7695>의 「아시아디도」

 

 

대륙별 국가별 기술

『사민필지』의 내용을 보면, 총론에서는 태양계와 그 현상, 지구와 그 현상, 인력, 일․월식, 가상 현상, 지진, 조석, 유성, 화산 등 지구과학 전반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어 각 대륙별로 내용이 구성되어 있는데, 해당 대륙의 총론을 앞에 수록하고 뒤에 각국의 지지를 기술했다. 대륙별 총론에서는 폭원(위치와 크기), 디경(사방 경계), 디방(면적), 디형(지형), 일긔(기후), 사람의 수효(인구), 시족(인종) 등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가별로 서술된 항목에는 나라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폭원, 디경, 디방, 지형, 일긔, 소산(산물), 국톄(국체), 사람의 수효, 시족, 도셩(수도) 및 도회, 백성의 사업(생업), 사람의 품수(계급), 외국통상(무역), 장사사무(상업), 국재(재정), 군사(육군), 군함, 학업(학교), 종교, 나라 소무(국가의 역할), 도로 및 철도, 엇은따(식민지), 특이사항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을 기준으로 내용 기술

내용 기술의 특징으로는 당시 조선을 기준으로 각국을 비교하여 서술한 점을 들 수 있다. 프랑스의 기후를 설명하면서, “일긔는고르나대한보다좀더우며”라고 하고, 일본의 기후를 기술하는 부분에서도, “일긔를의론컨대죠션보다좀더웁고습긔가만흐며”라고 하여 우리나라와 비교하여 서술하고 있다. 각국의 기술은 각 항목별로 서술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어서, 전통적인 백과사전식 기술에서 탈피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항목에서는 자신의 독특한 시각이 반영되어 있기도 한데, 맨 마지막 항목인 ‘이나라헤이샹함’에서 독특한 풍습이나 민족성, 기이한 동물, 자연적 특색 등을 자신의 시각으로 기술하고 있다.

 

스페인

『사민필지』의 내용 가운데 이전의 지리서와 다른 내용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스페인에 대한 내용이다. 스페인은 유로바의 ‘이스바니아국’이란 명칭으로 소개되었는데, 다른 이름으로 ‘려송국이라’고 하고 있다. 려송국은 지금의 필리핀 루손 섬을 가리키는 곳으로 중국의 문헌에는 ‘여송(呂宋)’으로 표기되어 있다. 『명사』에서도 “중국의 남해 가운데 있어서 장주(漳州)와 매우 가깝다”라고 하여 위치상으로 지금의 루손 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불랑기(佛郞機)가 이곳을 점령해서 그 이름을 그대로 따랐기 때문에 실제는 불랑기라고 했다. 알레니의 『직방외기』에서도 “중국 광저우의 동남쪽에 여송이 있다”라고 기술했다. 지금의 필리핀의 루손 섬에 해당하는 지역을 여송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루손 섬을 여송으로 부르던 것이 스페인을 부르는 다른 명칭으로 사용된 것에 대해서는 『영환지략』에서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즉, 스페인이 마닐라가 있는 루손 섬을 식민지로 삼으면서 본국인 서반아(西班牙, 스페인)을 대여송(大呂宋)이라 하고 루손 섬을 소여송(小呂宋)이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주석에서는 “보통 객이 주인의 이름을 계승하는데[客襲主名] 도리어 주인이 객의 이름을 차용한[主借客名] 연유는 모르겠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처음에 식민지의 나라 이름으로 부르던 것을 점차 본국의 이름으로 불렀던 데서 기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위원의 『해국도지』에서는 항목을 아예 ‘대여송국’으로 제시하고 별칭으로 사편국(斯扁國), 서반아(西班亞), 시반아(是班亞), 이서파니아(以西把尼亞) 등을 나열했다. 이를 통해 볼 때 『사민필지』에는 당시 국명 표기에서도 호칭의 변화 양상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역사적 의의

세계 지리지로서 『사민필지』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는데, 첫째 당시의 시대적 요청에 부응한 개화 정신과 애국 계몽적 성격이 강조되어 있다. 둘째로 일부 내용의 기술에서 기독교적 관점이 반영되어 있다. 셋째로 유럽적인 시각, 특히 영미 중심의 시각으로 기술되어 있다. 당시 식민지 확보 경쟁을 하던 열강들의 시각이 책 속에 반영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이후에 발간되는 지리교과서의 체계와 내용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 역사적 의의가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표 . 『사민필지』에 수록된 대륙별 소속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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