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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와 문학으로 본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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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승려 백곡 처능(白谷處能)의 문집

 

대각등계집(大覺登階集)

 

김선기(국립순천대학교 남도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사진 1 : 대각등계백곡집(12054)

 

지금부터 함께 살펴볼 대각등계집17세기 승려 백곡 처능(白谷處能, 1617~1680)의 문집이다. 조선시대 승려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고려한다면 이들이 편찬한 문집이 현재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는 사실을 생소하게 느낄 것이다. 하지만 실제 역사적으로 80여 명에 이르는 조선시대의 승려가 문집을 남겼다는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 조선시대 승려의 문집 편찬은 당대 전개되었던 하나의 문화적 경향이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제 대각등계집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승려 문집에 담긴 내용을 확인해 보도록 하자.

 

 

 

문집을 편찬한 또 다른 계층, 승려

 

 

문집이란 어떤 인물이 창작한 시()와 문() 등의 글을 수집하고 모아서 엮은 책을 의미한다. 따라서 당대 문집을 편찬할 수 있는 계층은 시나 문을 지을 수 있을 만큼 문자(文字)를 향유할 수 있는 지식인 계층으로 국한되었다. 이때 그러한 계층으로 조선시대 대표적인 지식인이었던 사족(士族)을 떠올리기 쉽다. 실제 조선시대 사족은 최소 3,000여 종이 넘는 문집을 간행하였다. 이러한 사실로 인해 일반적으로 조선시대의 문집 편찬은 사족의 전유물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조선시대 문집을 편찬한 또 다른 계층도 존재하였다. 바로 승려가 문집을 편찬한 것이었다. 승려가 문집을 편찬하였다는 것은 이들도 문자를 향유한 지식인 계층이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당대 조선의 불서(佛書) 또한 한문으로 쓰여졌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승려들이 문자를 향유하였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현재까지 알려진 승려의 문집은 약 80여 종에 이른다. 이러한 승려 문집은 전반적으로 저자 사후에 제자를 비롯한 법손(法孫)들에 의해 편찬 및 간행되었으며, 그 체제는 사족의 문집과 유사하였다.

 

조선시대 사족의 문집 편간이 선조(先祖) 또는 선사(先師)의 도학(道學), 문장, 충절, 계보적 정통성 등을 선양하여 후손과 문인의 사회적 지위를 제고·유지·강화하는 기능을 하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당대 승려의 문집 편간 또한 이러한 목적성을 내포한 것이었음을 추론해 볼 수 있다. 실제 서역중화해동불조원류(가람294.32-C346s)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조선시대 승려는 계파(系派)와 문파(門派)를 형성하여 계보적 정통성을 중시한 집단이었다. 따라서 승려 문집의 편찬 및 간행은 그의 문도가 선사의 도학, 문장, 충절, 정통성 등을 선양하기 위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이해된다.

 

 

 

백곡 처능의 생애와 대각등계집의 편찬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대각등계백곡집(大覺登階白谷集)(12054)에는 결락되어 있지만 전해오는 대각등계집의 다른 책에는 백곡집서(白谷集序)’라는 제목의 서문이 존재한다. 여기에는 본 문집의 저자인 백곡 처능의 생애와 문집 편찬 과정의 대략적인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따라서 백곡집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관련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백곡집서는 백곡 처능이 나이 17~18세 무렵 서울로 올라왔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그는 당시 서울로 올라와서 이름난 대신과 학식 있는 선비들을 방문하여 자신의 시문(詩文)을 보여주며 여러 지식인들과 교유하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 그의 글을 보았던 선비들은 서산대사(西山大師)로 널리 알려진 청허 휴정(淸虛休靜) 보다 뛰어나다고 여겼다고 한다. 이후 백곡 처능은 선조의 딸 정숙옹주(貞淑翁主)와 혼인한 동양위(東陽尉) 신익성(申翊聖)이 은거하던 곳으로 찾아가 그에게 논어·맹자등의 경서(經書)를 비롯하여 한유(韓愈소동파(蘇東坡)의 저서와 역사서까지 두루 수학하였다. 당시 정두경(鄭斗卿)은 백곡 처능의 문장에 감탄하며 기재(奇才)라고 칭찬하기도 하였다.

 

백곡 처능은 신익성으로부터 유가(儒家) 경서 및 역사서 등을 섭렵한 후에 지리산 쌍계사(雙溪寺)에 거처하던 벽암 각성(碧巖覺性)을 찾아갔다. 자신의 본분을 밝히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그는 벽암 각성에게 가르침을 받고 참구하여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한다. 벽암 각성은 부휴 선수(浮休善修)의 정통을 이은 부휴계의 대표적인 승려로, 부휴계는 청허 휴정의 정통을 이은 청허계와 함께 조선후기 승려의 양대 계파였다. , 백곡 처능은 부휴계 정통을 이은 승려였다고 할 수 있다. 이어서 백곡 처능은 남한산성 총섭(摠攝)에 임명되어 그곳에 머물며 승군을 통솔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총섭을 사직한 그는 충청도의 아미산(峨嵋山)과 성주산(聖住山)을 왕래하며 지내다가, 1680(숙종 6) 병을 얻어 입적하였다.

 

대각등계집의 편찬은 백곡 처능이 입적한 이후 제자 회선(懷善)이 그가 지은 시문을 수집하여 이루어지게 되었다. 당시 회선은 백곡 처능의 시문을 모아서 김석주(金錫冑)를 찾아가 문집의 서문을 작성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그가 이를 수락하면서 문집의 체제를 완비할 수 있었다. 이때 김석주는 서문에서 직접 대사(大師)의 일생과 두 세대에 걸쳐 다진 우의를 책의 첫머리에 써서 나의 감회를 기록하여 서문으로 삼는다.”고 밝혔다. 이러한 내용은 김석주가 백곡 처능과 본인 그리고 본인의 외할아버지였던 신익성과의 관계를 생각하여 서문의 집필을 수락하였음을 보여주는 문구로, 이들의 인연이 깊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주목되는 것은 대각등계집의 서문을 작성한 인물이 김석주라는 것이다. 해당 시기 그는 척신(戚臣)의 핵심으로 대단한 권세를 지닌 인물이었다. 이러한 지점을 고려한다면 당대 문집을 편찬하였던 승려는 조선 정계의 핵심 인물과 교류할 만큼 그 위상이 결코 낮지 않았다는 점이 확인된다. 이처럼 백곡 처능은 17세기를 대표하는 승려 중에 한 명으로 주목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 2 : 대각등계백곡집(12054)

 

 

 

 

대각등계백곡집의 구성과 내용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대각등계백곡집(12054)은 위의 이미지에서 확인되듯이 본 책의 권수제(卷首題)대각등계백곡집(大覺登階白谷集)”을 서명(書名)으로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 전해오는 본 문집의 다른 책들은 대각등계집(大覺登階集) 권일(卷一)”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 일반적으로 대각등계집이라고 부른다. 또는 앞서 살펴본 서문의 제목에 의해 백곡집(白谷集)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대각등계백곡집, 대각등계집, 백곡집은 각각 다른 책이 아니라 백곡 처능의 동일한 문집을 연구자에 따라 다르게 이름 붙인 것이다.

 

대각등계집의 전체 구성은 김석주의 서문, 정두경의 서문, 대각등계집 권1, 대각등계집 권2, 대각등계백곡집으로 되어 있다. 1에는 170여 편의 시, 2에는 20여 편의 문을 모아 정리하였다. 대각등계백곡집은 간폐석교소(諫廢釋敎疏)라는 제목의 상소문을 수록하였다. 그런데 대각등계백곡집(12054)은 그 내용이 대각등계백곡집과 대각등계집 권2로만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대각등계백곡집(12054)은 전해오는 대각등계집의 다른 책의 구성을 비교해 볼 때 서문과 대각등계집 권1 내용이 누락되어 장정된 결락본(缺落本)이라고 파악된다.

 

대각등계백곡집(12054)의 구성을 살펴보면 대각등계백곡집에 수록된 상소 1, 대각등계집 권2에 수록된 문 22편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2편은 다시 서() 5, () 4, () 3, () 1, () 2, 행장(行狀) 2, 비명(碑銘) 3, 제문(祭文) 1, 권선문(勸善文) 1편으로 구분된다. 따라서 대각등계백곡집(12054)에는 백곡 처능이 지은 총 23편의 글을 확인할 수 있다. 승려 문집인 만큼 전반적으로 다른 승려들과 불교에 대해 논의한 글 또는 사찰의 중창이나 역사에 관련된 글이 수록되었다. 이외에도 관료들과 나눈 편지글이 확인된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늑상사(勒上士)에게 준 선교설(禪敎說) 서문[禪敎說贈勒上士序]에서는 부처의 가르침인 선()과 교()가 구별되어 따로 있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였고, 성명설(性命說)인의설(仁義說)에서는 유교·도교·불교의 성()과 명() 그리고 인()과 의()의 서로 같고 다른 부분을 개설하는 등 철학적인 주제의 글이 확인된다. 이와 함께 봉은사중수기(奉恩寺重修記)에서는 경림(敬林) 등의 승려가 병자호란으로 소실된 봉은사를 중창한 공로를 높이 평가하였고, 봉국사신창기(奉國寺新創記)에서는 현종의 두 딸인 명혜공주(明惠公主)와 명선공주(明善公主)의 원당으로 지정된 봉국사의 창건 내력을 기술하는 등 사찰 역사와 관련된 주제의 글도 파악된다. 그밖에 사보은천교원조국일도대선사행장(賜報恩闡敎圓照國一都大禪師行狀)을 지어 돌아가신 스승인 벽암 각성을 선양하는 글을 남겼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이렇듯 백곡 처능의 문집에는 그가 저술한 다양한 내용의 글이 수록되었다.

 

 

 

 

17세기 불교계의 상황과 승려의 상소, 간폐석교소

 

 

대각등계집에 수록된 다양한 글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대각등계백곡집에 있는 간폐석교소이다. ‘간폐석교소라는 제목은 불교[釋敎]를 폐하려고 하는 것에 대해 간언하며 올린 상소문이라고 해석된다. 이러한 제목을 통해 당시 백곡 처능이 조정에서 이루어진 불교 관련 논의를 듣고 그러한 논의가 부당하다는 의견을 상소문으로 작성하여 올렸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간폐석교소의 내용은 본 상소문이 작성되었던 시기의 불교계 상황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백곡 처능이 간폐석교소를 작성한 시기는 1660(현종 1) 12월 승려 환속에 관한 의견이 등장하고, 1661(현종 2) 1월 자수원(慈壽院)과 인수원(仁壽院)을 폐지하고 이곳에서 머물던 여승(女僧)인 비구니(比丘尼)를 환속시키려고 하는 조정의 논의가 이루어진 이후로 알려져 있다. 상소문의 도입부에는 삼가 조보(朝報)를 살펴보니 비구니는 환속시키고 비구(比丘) 역시 없애기로 논의하였다고 합니다.”라고 하여 이러한 조정의 승려 환속 논의가 그 작성 배경이 되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 백곡 처능은 당시 이루어졌던 승려 환속 논의를 불교를 폐하려고 하는 의도로 받아들인 것이었고, 이러한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간폐석교소를 작성한 것이었다.

 

그는 이를 위해 불교에 대한 사회적 비판을 6가지로 정리하고 그 비판을 반론하였다. 6가지 내용은 불교가 중화(中華)가 아닌 서역(西域)에서 발생하였다는 지적에 대하여 지역이 다르다고 성인의 존재가 다른 것은 아니라고 반박하였고, 불교가 중국 상고시대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하는 지적에 대하여 시대는 달라도 이치는 같다고 반박하였으며, 불교의 윤회설이 허망하다는 지적에 대하여 예기(禮記)장자(莊子)에 등장하는 내용을 인용하면서 윤회가 거짓이 아니라고 반박하였다. 이어서 불교가 일하지 않고 재물만을 소모한다는 지적에 대하여 농업에 종사하는 것만이 생업(生業)이 아니고 정치·학문 등에 종사하는 것도 생업이기 때문에 승인은 농업보다 수행이 중요한 생업이라고 반박하였고, 승려들이 죄를 저질러서 정치와 교화를 훼손시킨다는 지적에 대하여 죄를 저지르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그것을 불교를 비난하는 요소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반박하였으며, 승려들이 역을 피해 도망다닌다는 것을 문제 삼는 지적에 대하여 이미 군적에 등록된 승려가 많고 관아의 징발에 나아가는 승려가 많다며 반박하였다.

  

이러한 백곡 처능의 상소를 조정에서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구체적으로 파악되지 않는다. 다만 이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것은 17세기 후반 당시 불교계가 처한 시대적 상황과 이를 타개하기 위한 승려의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간폐석교소는 당시 불교 비판과 옹호의 논리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사료적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대각등계집17세기 승려 백곡 처능이 남긴 여러 글을 통해 당대 승려와 사찰의 다양한 철학적·역사적 내용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라고 정리할 수 있다. 여기에서 한가지 주목할만한 것은 이러한 승려 문집에 수록된 내용이 관찬 사료에서 드러나지 않는 당대 불교계의 다양한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점은 현전하는 80여 명의 승려 문집을 통해 우리가 몰랐던 다채로운 역사상을 그릴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조선시대 불교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승려의 문집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편, 2015, 대각등계집, 동국대학교출판부

김용조, 1979, 白谷處能諫廢釋敎疏硏究, 한국불교학4, 한국불교학회

손성필, 2014, 조선시대 불교사 자료의 종류와 성격, 불교학연구39, 불교학연구회

신승운, 2001, 유교사회의 출판문화 - 특히 조선시대의 문집 편찬과 간행을 중심으로, 대동문화연구39,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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