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학』 주석서를 집대성하다 :
이이(李珥) 『소학제가집주(小學諸家集註)』
김경남(강원대학교 강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사진 1 : 『소학제가집주』 (奎貴3468)
| 조선인의 생활 지침서가 된 『소학』 |
○ 출필고반필면(出必告反必面)-나갈 때는 반드시 부모님께 어디로 가는지 말씀드리고, 돌아와서는 반드시 얼굴을 보여 드려라.
○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남녀는 7살이 되면 한자리에 앉지 마라.
이 내용은 모두 『예기(禮記)』 「곡례(曲禮)」와 「내칙(內則)」에 나오는 말인데, 한국인이면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사서(四書)도 어려운데, 삼경(三經)에 속한 『예기』의 내용이 일반인들의 입에 회자되게 된 것은 왜일까? 『소학』의 영향이 아닐까? 이 내용은 『소학』 본문의 내용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조선은 유학(儒學)을 건국이념으로 내세운 국가였다. 오랜 전통의 불교가 뿌리내려 있는 풍토위에서 유교국가를 만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려말에 이미 중국의 유학이 한반도로 유입되어 있기는 했지만, 불교문화가 일반서민에게까지 널리 퍼져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국가이념인 유교사상을 고취시키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조선은 건국과 함께 주자(朱子)의 『소학』을 유학의 입문서로 채택하여 국가 주도로 출판하여 전국에 향교(鄕校) 등에 배포하고 교육함으로써 전 국민이 익히도록 하였다. 또 태종(太宗)때에 이르러서는 태학에 입학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소학』지식에 대한 테스트를 통과한 후 생원시(生員試)에 응시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였고, 이후로 8세 이상의 아동들은 모두 『소학』을 배우도록 법으로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지속적인 정책의 결과로 『소학』은 조선인의 생활지침서로 자리잡게 된다.
| 너무 어려운 『소학』 |
『소학』은 내편(內篇)과 외편(外篇)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편은 「입교(立敎)」 · 「명륜(明倫)」 · 「경신(敬身)」 · 「계고(稽古)」, 외편에는 「가언(嘉言)」과 「선행(善行)」편이 있다. 「입교」에서는 옛 성인이 사람을 가르치던 법을, 「명륜」에서는 인륜(人倫)에 대해, 「경신」에서는 공경스런 몸가짐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계고」에서는 고대 성현들의 행적을 고찰하여 앞의 세 편의 말을 증명하였다. 「가언」에서는 한(漢)나라 이후 현자들의 좋은 말을 기술하여 「입교」,「명륜」,「경신」편의 내용을 확장하였으며, 「선행」은 한 대 이후 현자들의 선행을 통하여 「입교」,「명륜」,「경신」편의 내용을 실증하였다. 즉 경서의 내용을 기본틀로 두고 고대의 성현이나 한 대이후 현자들의 말과 행동을 근거로 들어 그 내용을 확장하고 실증하는 체계적인 교육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 『소학』은 겉으로 보기에는 기본예절을 배우는 어린 학습자들을 위한 수신서(修身書)지만, 그 내용의 글은, 『예기(禮記)』 · 『서경(書經)』 · 『주례(周禮)』 · 『의례(儀禮)』 · 『시경(詩經)』 · 『효경(孝經)』 · 『관자(管子)』 · 『사기(史記)』 · 『국어(國語)』 · 『좌전(左傳)』 · 『순자(荀子)』 · 『설원(說苑)』 · 『논어(論語)』 · 『맹자(孟子)』 · 『중용(中庸)』 · 『법언(法言)』 · 『회남자(淮南子)』 · 『전국책(戰國策)』 · 『고사전(高士傳)』 · 『가어(家語)』 등과 같은 경서나 역사서는 물론이고, 한(漢) · 당(唐) · 북송(北宋) 시대 인물들의 문집 등에서 발췌한 것이기 때문에 학문이 깊은 학자가 아니고는 그 내용을 이해하기는 매우 어려운 점이 있었다. 이 책은 8세가량의 어린아이만이 아니라 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도 어려운 책이었다.
『소학』의 내용에 대해 어려움을 있는 것은 조선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따라서 이미 중국에서는 하사신(何士信)의 『표제주소소학집성』을 비롯하여 수십 여종의 『소학』 주석서가 저술되어 출판되고 있었다.
| 『소학』 주석서의 수입 |
이런 까닭으로, 건국 초기에 사역원제조였던 설장수(偰長壽)가 『소학』을 중국어로 해석한 『직해소학(直解小學)』을 저술하였고, 세종 때에는 이 책의 번역의 정확성을 확인하기 위해 중국과 요동에 관리를 파견하기도 하였으며, 이를 출판하여 각 지방 향교와 문신들에게 하사하기도 하였다.
이와 궤를 같이하여 중국으로부터 여러 종의 『소학』의 주석서가 유입되는데, 그 대략은 아래와 같다.
○ 하사신(何士信)의 『표제주소소학집성(標題註疏小學集成)』
이 책은 원나라 하사신이 주희가 편찬한 『소학』이후에 만들어진 주석서를 종합하여 집록한 책으로, 본주(本註)외에 고주(古註), 부주(附註), 보주(補註), 표제(標題), 찬소(簒疏), 부록(附錄), 고이(考異) 등 다양한 명목의 주석을 설정, 본문을 해설하였다. 이들 주석은 당시 중국에서 유통되던 주석서와 연관이 있는데, 본주는 주자가 『소학』을 편찬하던 당시에 붙인 주석이고, 고주는 공영달(孔穎達), 정현(鄭玄)등 한·당시대의 학자들이 작성한 주를 말한다. 부주, 고이, 보주, 표제, 찬소, 부록 등은 본주 이후의 여러 주석들이다. 이 책은 1425년 세종의 명에 따라 10질이 국가차원에서 수입되었고, 이후 조선에서 1428년을 시작으로 총 5차례에 걸쳐 간행하였으며, 한국과 일본 도서관에 소장본이 있다.

사진2 : 『표제주소소학집성』(규장각,古181.1-H11s)
○ 오눌(吳訥)의 『소학집해(小學集解)』
이 책은 본주(本註)와 웅화(熊禾)의 『소학구해(小學句解)』와 하사신의 『소학집성』을 바탕으로 오눌이 1425년경에 편찬한 책이다. 수입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수입된 이후 간행되어 현재 국내에 금속활자본 2종과 목판본 1종이 전해지고 있다.
○ 왕오(王鏊)가 서문을 쓴 『소학집주대전(小學集註大全)』
이 책의 저자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는 알 수 없다. 진선(陳選)이 저술했다는 설도 있다. 이 책이 국내에 유입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율곡의 『소학제가집주』에서 많은 부분 인용된 근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 유입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는 중국본은 물론이고 간행본도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일본에서 1650년에 간행된 일본판본이 게이오대학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사진3 : 『소학집주대전』(게이오대,175-217-1)
○ 진선(陳選)의 『소학집주(小學集註)』(『소학증주(小學增註)』,『소학구두(小學句讀)』라고도 함)
이 책은 진선이 1454년에 편찬한 책으로 중국에서 여러 차례 간행되었으며, 현재 국내소장본은 모두 중국본이거나 일본판본이다.
○ 정유(程愈)의 『소학집설』
이 책은 명나라 학자 정유가 1486년에 동료들과 함께 편찬한 책으로, 이전의 제가들의 설을 정리한 것이다. 1490년 김일손(金馹孫)이 진하사(進賀使) 서장관(書狀官)으로 북경에 갔다가 저자인 정유에게서 직접 받아와서 1491년에 직접 출판하여 나라 안에 보급하였다. 『소학집설』의 범례를 통해서 보면, 정유는 본주(本註)를 우선으로 하고, 미흡한 부분은 제가들의 설을 인용하였으며, 필요에 따라 자신의 견해를 밝혔고 확실하지 않은 부분은 생략하였다. 조선에서 간인된 판본은 모두 12종으로 금속활자본 4종과 목활자본 4종, 목판본4종이 있다.

사진4 : 『소학집설』(국학진흥원, 10746)
이와 같은 다수의 주석서가 조선으로 유입된 것은 『소학』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주석서가 많은 데서 오는 문제가 있었다. 주석 내용이 동일하지 않으므로 인해, 『소학』 내용의 해석 또한 주석서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가 생긴 것이다.
| 주석서를 집대성한 율곡 이이의 『소학제가집주』 |
주자 이후로 주해한 학자가 서로 이어져 각각 완성된 책이 있었으나 읽는 자들은 모두 그것이 경전의 뜻에 다 합치되지 못함을 병으로 여겼다. 내 친구 덕수(德水) 이후(李侯) 숙헌(叔獻)이 일을 사양하고 물러나 해산(海山)의 남쪽에서 도(道)를 강론하였는데, …… 이 책을 들어 도(道)에 들어가는 문으로 삼았으며, 또 주해한 학설이 종류가 많아 바른 데로 귀착할 수 없음을 병으로 여겼다. 이에 여러 학자들의 학설을 취하여 번잡함을 삭제하고 요점을 모으며,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제거하되, 한결같이 경전의 뜻에 위반되지 않고 명백하면서도 평이하고 진실하게 하였으며, 혹 자세하고 혹 간략함이 또 서로 발명되게 하였으니, 여러 말의 두 끝을 잡아 절충을 잘한 것이라고 말할 만하다. 성혼(成渾)의 「소학제가집주 발문」 일부.
이 성혼의 발문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의 학자들이 『소학』의 뜻이 여러 주석들의 혼재로 합치되지 않는 점이 문제로 고심하고 있던 차에, 율곡은 왕오(王鏊)가 서문을 쓴 『소학집주대전(小學集註大全)』의 형태를 바탕으로 하여, 하사신(何士信)의 『표제주소소학집성(標題註疏小學集成)』 · 오눌(吳訥)의 『소학집해(小學集解)』 · 정유(程愈)의 『소학집설(小學集說)』의 내용을 종합하여 기존의 주석서들에서 장점을 취하고 경전의 뜻에 합당하면서도 간략하게 『소학제가집주』를 저술한 것이다. 또 율곡(1536∽1584)은 자신의 견해를 10여 군데에서 간략하게 언급하였을 뿐, 대부분을 기존의 주석에서 발췌하여 이 책을 저술하였는데, 이 해가 1579년이다.
『소학』 주석서를 하나로 집대성한 것은 조선에서 『소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통일된 주석을 제공했다는 면에서 그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전에는 정유의 『소학집설』이 주석서 겸 『소학』 텍스트로 사용되었지만, 이 책 『소학제가집주』가 나온 이후 조선에서는 국가 차원에서 수십 차례 간행하였고, 이 책을 바탕으로 언해(諺解)본도 편찬하였다. 이러한 까닭에 오늘날까지도 이 책은 『소학제가집주』라는 이름보다는 “『소학집주』”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어 독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사진5 : 『소학집주』(전통문화연구회, 번역본. 2010년 출판)

사진6 : 『소학집주』(명문당, 2002년 출판)
| 참고문헌 |
김경남, 「『소학집성』판본에 대한 고찰」, 『태동고전연구』 47
-----, 「율곡 이이의 『소학제가집주』의 저본 및 편찬방법에 대한 고찰」, 『태동고전연구』 49
-----, 「진선의 『소학』 주석서에 대한 고찰」, 『태동고전연구』 52
신정엽, 「조선시대 간행된 소학 언해본 연구」, 『서지학연구』 44집
정호훈, 『조선의 소학』, 소명출판, 2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