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중심에서 효(孝)를 외치다’
-정조의 『어제화산용주사봉불기복게』-
박성일(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학예연구사)
| 조선의 국왕이 직접 지은 불교 게송 |
우리는 살면서 기복(祈福)이라는 말을 들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말 그대로 ‘복을 빌다’라는 의미이다. 기복은 자칫 종교의 영역에서 출세와 성공을 비는 수준으로 격하되어 이해되기도 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나 자신의 세속적인 영달을 위해서가 아니라, 부모님 은혜를 갚기 위한 ‘보은(報恩)’의 의미에서 부모님의 복을 비는 것은 어떠한가.
여기에 부모님에 대해 애틋한 마음을 지닌 한 명의 왕이 있다. 사도세자로도 유명한 장헌세자(莊獻世子, 이하 ‘사도세자’로 통일해서 호칭)와 혜경궁 홍씨의 아들인 조선의 제22대 왕 정조(正祖, 1752-1800)이다. 정조는 탁월한 학문적 능력으로도 유명했지만, 한편으로는 사도세자의 무덤인 영우원(永祐園, 지금의 서울 동대문구 삼육서울병원 자리)을 1789년(정조 13) 수원 화산(花山)으로 옮기며 그 이름도 현륭원(顯隆園,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1790년(정조 14)에는 여기에 용주사를 창건하여 현륭원의 원찰(願刹)로 삼았다. 원찰이란 소원의 성취를 빌거나 명복을 기원하기 위해 왕실에서 건립한 사찰을 말한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명복을 위해서 용주사를 지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더 나아가 정조는 불교식 가사집인 게송(偈頌)을 쓰기까지 한다. 바로 ‘어제화산용주사봉불기복게(御製花山龍珠寺奉佛祈福偈, 이하 『기복게』)’이다. 제목의 뜻을 살펴보면, 정조가 직접 짓도록 한[어제], 수원 화산의 용주사에서[화산용주사] 부처님을 모시는 봉불식(奉佛式)에서[봉불] 복을 기원하는[기복] 게송[게]이라는 의미이다. 국왕이 지었다고 해서 역대 국왕의 시문집인 『열성어제(列聖御製)』에 모두 실리지는 않는데, 정조의 어제를 모은 ‘정종대왕어제(正宗大王御製)’에는 「화산용주사봉불기복게십수병해(花山龍珠寺奉佛祈福偈十首幷解)」가 수록되어 있다.

그림1: 『기복게』(규장각, 규9990)
| 『기복게』의 핵심 내용: 가족 윤리를 넘어 애민(愛民) 정신까지 |
『홍재전서(弘齋全書)』 제55권의 「잡저(雜著) 2」에도 실려 있는 『기복게』의 내용을 개략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선행연구에서는 주로 서문 앞의 내용인 게송의 첫 머리 부분이 중점적으로 분석되고 있어서, 『기복게』의 내용을 전반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유의미할 것이라 생각된다. 『기복게』의 핵심을 말하자면 부모님 특히 사도세자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담겨있음과 동시에 중생인 백성들을 이끌고 가고자 하는 애민 정신이 담겨 있다고 평가할 만하다.
『기복게』는 전형적으로 서분(序分), 정종분(正宗分), 유통분(流通分)이라고 하는 불경의 구조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즉, 서분은 경전의 전체 의미와 취지를, 정종분은 본론에 해당하는 경전의 중심부분을, 유통분은 경전의 공덕을 말하며 널리 유통시킬 것을 권장하는 내용을 일컫는다. 이러한 삼분(三分) 체계는 일찍이 중국 초기불교의 도안(道安, 312-385)의 해석법으로, 이후 법운(法雲, 465-527)이 『법화경』을 주석한 『법화경의기(法華經義記)』에 처음 적용된 분석 틀이다. 이후 불교 주석 문헌들에서는 대체로 이와 같이 경전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왔다다. 정조의 『기복게』는 마지막 유통분에 해당하는 부분을 ‘결게분(結偈分)’이라고 했지만, 그 내용상 ‘정토의 극락’ 및 ‘게를 지어 부처의 은덕을 칭송하니[作偈頌佛恩]’ 등의 내용이 있어 결게분은 실질적으로 유통분의 역할을 하고 있다.
『기복게』는 ‘게송의 첫 머리’, ‘서분(1수)’, ‘정종분(7수)’, ‘결게분(2수)’까지 총 10수에 해석(주해문)이 병기되어 있다. 우선 게송의 첫 머리에서는 분명하게 이 게송을 지은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아래의 인용문을 같이 살펴보면 특기할 만한 내용들이 등장한다.
이 절은 현륭원(顯隆園)의 재궁(齋宮)으로 세운 것이다. 소자(小子)가 대해(大海) 양(量)만큼의 먹[墨]과 수미산(須彌山) 무더기만큼의 붓[筆]을 몰래 가져다 이 8만 4천 보안법문(普眼法門)의 경의(經義)와 교의(敎義)를 베끼고, 삼가 게어(偈語 부처의 공덕을 찬양하는 노래)를 지어서 삼업공양(三業供養)을 바치고, - 첫째 업(業)은 몸[身]이니, 지성으로 예경하는 것이고, 둘째 업은 입[口]이니, 말을 내어 칭찬하고 찬미하는 것이며, 셋째 업은 뜻[意]이니, 바른 뜻으로 생각하고 기억하는 것이다. - 은혜에 보답하는 복전(福田)을 닦으려 한다. - 부모에게는 양육(養育)한 은혜가 있으니, 만약 잘 공양하고 공경(恭敬)하면 이를 은혜에 보답하는 복전이라 이름한다.
※ 작은 글씨는 주해(註解)문을 의미함.
즉 정조는 큰 바다와 산만큼의 먹과 붓을 동원해서 부처님 가르침이 담긴 불경을 베끼는 ‘사경(寫經)’의 공덕과 함께, 몸과 입 마음으로 부처님을 찬탄하는 삼업(三業)의 공양을 통해, ‘부모님’에 대한 은혜를 갚기 위해 복을 짓고자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서론 격인 ‘서분(제1수)’부터는 한문으로 된 불경의 게송처럼 다섯 글자씩 끊어서 게송을 지었다. 서분에서 정조는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이하 『법화경』)』「방편품」에 나오는 사리불(舍利弗)의 게송에도 나오는 ‘지혜의 태양이신 대성존께서[慧日大聖尊]’를 호명하고 있다. 정조는 이와 같은 석가모니 세존(대성존)의 위엄과 덕을 찬탄하면서도, 중생들을 깨우쳐서 십지(十地)라고 하는 보살(菩薩)의 높은 경지까지 오르게 하고자 한다고 말한다[牖衆登十地]. 참고로 ‘중생들을 깨우친다[牖衆]’는 표현은 불교 경전에서는 보기 드물다. 이는 『시경(詩經)』「빈풍(豳風)」의 ‘치효(鴟鴞)’편에서 새 둥지[牖戶]와 이 둥지 아래 사는 백성들[下民]이라는 문학적 표현을 근거로 했을 수 있겠다. 또한 『논어(論語)』의 공자와 그의 제자 백우의 일화를 떠올려서, 남쪽 창문[牖]을 통해 병든 제자를 손을 잡아 주는 전거도 떠올리게 한다. 그만큼 정조가 사바세계의 중생인 백성들을 보살의 높은 경지에까지 손잡아 이끌어주겠다는 생각이 아니었을까.
본론에 해당하는 ‘정종분(제2수~제8수)’에서는 현륭원과 그 원찰인 용주사를 세운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다. 제2수에서는 제석천왕이 거처하는 도리천처럼 ‘동토에도 숙세에 심은 경사가 있어서[東土宿吉慶], 높은 산에는 새 절이 열렸도다[喬山開新寺]’라고 한다. 이 역시도 정조의 문필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표현이다. 동토는 동쪽에 있는 조선을 뜻하며, 불교의 인과(因果) 법칙에 입각할 때 과거(숙세)에 심은 경사가 있었기에 이 용주사를 세울 수 있었다고 밝힌다. ‘높은 산[喬山]’은 그냥 높은 산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역시 사실 ‘교산(喬山)’ 고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바로 옛날 중국의 황제(皇帝)의 무덤이 바로 이 교산에 있었는데, 산이 갑자기 무너져서 무덤 안을 보니 시신은 없어지고 화살과 검 그리고 가죽신만 있었기에 황제가 ‘신선’이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교산 고사는 『열선전(列仙傳)』 권상, 또한 『정조실록』 22권 1786년(정조 10) 8월 9일 기유 1번째 기사에도 나온다.) 즉 여기에서 교산이라 표현한 것은, 자신의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세자’가 아니라 ‘왕’이었음을, 그것도 중국의 전설 상의 황제만큼 위대한 인물이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비록 뒤주에서 사도세자는 사망했지만, 그가 죽어서 신선이 되었기를 바라는 아들의 애틋한 마음도 녹아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정종분인 제3수에서는 이어서 용주사의 장엄함과 화려함을 강조하고 있다. 불경에서 장엄(ornament)하는 대표적인 보석인 칠보로 공양했다고 하며[供養七寶], 또한 제4수에서는 정법으로 국가를 통치하는 이상적인 왕인 금륜성왕(金輪聖王; 轉輪聖王)이 나타날 때에만 피는 신령스럽고 상서로운 꽃, 바로 ‘우담바라 꽃’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면서 제5수에서는 온갖 게송을 써서 불국토를 장엄했다고 한다[莊嚴萬偈]. 이에 금륜성왕에 의해 길한 상서로움이 드러나서 향기로운 전단나무 바람이 불고 연꽃 비가 세 가지 수레를 기름지게 한다고도 말한다[蓮雨沃三車].
그런데 흥미로운 지점은 ‘세 가지 수레’에 있다. 이에 대한 정조의 주해문에도 잘 드러나 있지만 특히 이 수레들은 『법화경』「비유품」에서의 삼계화택(三界火宅, 삼계가 불난 집) 비유에 해당한다. 즉,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라는 ‘삼계(사바세계)’에서, 중생들이 탐욕과 분노 그리고 어리석음이라는 삼독(三毒) 때문에 윤회하며 고통을 받고 사는 것이, 마치 ‘불난 집[火宅]’에서 아이들이 나올 줄을 모른다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법화경』에서는 불난 집에서 무사히 탈출한 아이들에게 원래는 세 가지 수레를 주겠다고 부처가 약속한다. 이 세 가지 수레가 바로 양 수레[羊車]와 사슴 수레[鹿車], 소 수레[牛車]이며 각각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의 삼승(三乘)을 말한다. 정작 『법화경』에서 부처가 준 것은 일승(一乘)을 뜻하는 ‘흰 소 수레’인 백우거(白牛車)이다. 즉, 『법화경』 이전에 설해진 삼승에 대한 가르침은 다 방편적인 가르침일 뿐이며, 결국 모두 이 한 가지 『법화경』이라는 최고의 가르침으로 귀속된다는 것[會三歸一]이다. 그런데 정조의 『기복게』에서는 그저 부처님의 연꽃 비를 내려 세 가지 수레를 윤택하게 한다고 말할 뿐, ‘흰 소 수레’를 말하지는 않는다. 이는 정조가 『법화경』 중심의 천태의 일승 사상을 전적으로 인용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정조는 더 나아가 제6수에서 용주사를 세운 ‘복덕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福德無量]’고 하며, ‘십승의 국토에 (복이) 가득하도다[十乘刹土盈]’다고 찬양한다. 정조는 이 대목에서 주석문을 통해 천태 지의(天台智顗, 538-597)의 열 가지 관법을 인용하고 있는데, 사실 이 ‘십승의 국토[十乘刹土]’라는 표현이 다소 어색한 측면이 있다. 보통은 시방찰토[十方刹土]라고 하여 상하(上下)와 팔방(八方)을 합친 열 가지 온 방향의 세상을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십승은 십승관법(十乘觀法)이라 하여, 『법화경』을 소의경전으로 삼는 천태종, 그리고 종조(宗祖)인 천태 지의가 공(空)·가(假)·중(中)이라는 삼제(三諦)의 이치를 깨달아 얻는 열 가지 관법을 말한다. 뛰어난 근기를 지닌 상근기(上根機)의 중생부터 배우기 어려운 하근기(下根機)의 중생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관법이다. 따라서 ‘십승의 국토(십승찰토)’란 똑똑한 사람부터 배울 것이 많은 사람까지 모두 아우른 중생들이 가득한 온 국토라는 의미 정도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제7수에서는 여러 부처님께서 지켜주시고 보우하시어[諸佛護佑] 비로자나불의 광명도 비추고[毗盧遮那光] 가릉빈가의 아름다운 소리까지 퍼진다[迦陵頻伽聲]고 한다. 이처럼 아름답고도 향기로운 불국토 속에서 중생들이 비는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여러 중생들이 윤회 세계에 더 이상 머물지 않고 피안으로 건네지고 평등하게 법성(法性)을 깨닫기를 부처님들께서 서원한다고 『기복게』에서는 말한다. 그리고 제8수에서는 여러 보살과 나한 역시도 제7수의 부처님들과 동일한 마음이라서 보살 역시 원력을 내고 있다고 한다. 즉, 불보살 모두 지켜주고 원력을 내어 중생 구제를 소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결게분(結偈分, 제9수~제10수)의 제9수에서는 정토세계의 극락[淨土極樂]과 같은 국토에, 9월에 세운 창건 시기를 의미하는 ‘가을 달빛[秋月]’도 공활한 가을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다고 한다. 또한 한 언덕에 있는 사찰[阿蘭若, araṇya], 즉 용주사가 왕성과의 거리가 80리[上由旬] 떨어져 있다고 하며 사도세자의 현륭원과 왕궁의 거리를 언급한다. 그만큼 아들로서 애틋한 감정을 결게분에서 드러내고 있다. (참고로 80리라는 것은 정조의 주해문에 의거해서 ‘상유순’을 해석한 것이나, 이는 일반적인 견해와는 차이가 난다. 승조(僧肇)의 『주유마힐경(注維摩詰經)』(T1775), 수나라 길장(吉藏)의 『유마경의소(維摩經義疏)』 (T1781)등에서 모두 ‘상유순은 60리이다[上由旬六十里]’라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수(首)인 제10수에서는 세 가지 보리(菩提, bodhi)인 성문, 연각, 제불(諸佛)의 보리심을 언급하며 청정한 봄의 경지에 오르게 한다[於焉現菩提 導之躋梵春]고 칭송하고 있다. 그래서 게송을 지어 부처의 은덕을 칭송하니[作偈頌佛恩], 이에 따른 결과인 보과(報果)가 많을 줄 점칠 수 있도다[報果占溱溱]라고 한다. 여기에서 ‘많다[溱溱]’는 표현은 『시경』「소아(小雅)」 ‘홍안지십(鴻雁之什)’‘무양(無羊)’ 마지막 싯구인 ‘현무기[旐]와 주작기[旟]는 자손이 번창할 징조[旐維旟矣, 室家溱溱.]’에서 인용한 것이다. 정조는 주석에서도 이 시를 명시적으로 인용해 해설하고 있다. 해당 시 ‘무양’은 ‘누가 양이 없다고 하는가’라는 의미로 주(周)나라 선왕(宣王)이 가축을 잘 기른 것을 칭송한 시이다.
그런데 사실 ‘무양’의 초반부는 ‘누가 양이 없다고 하나 삼백 마리의 무리인데. 누가 소가 없다고 하나 황소가 구십 마리인데[誰謂爾無羊, 三百維群. 誰謂爾無牛, 九十其犉.].’와 같은 내용으로 시작한다. 즉, 정조는 『기복게』 제10수의 세 가지 보리(성문, 연각, 제불)를 양과 소가 ‘많다[溱溱]’는 표현과 연결시킨 것이다. 이는 『법화경』 삼계화택의 비유를 토대로 한 『기복게』 제5수의 ‘세 가지 수레’ 중 양 수레[羊車]와 소 수레[牛車] 등과 상당히 조응한다.(물론 보살과 여러 부처[제불]의 지위가 다르기는 하다). 여기에서 정조가 일승(一乘)을 뜻하는 ‘흰 소 수레’인 백우거(白牛車)를 언급하지 않은 이유를 찾아볼 수 있겠다. 그는 자기 자신이 『시경』「소아(小雅)」‘홍안지십’의 목동처럼 백성들을 인도해 가는 것을 언급했기에 세 가지 수레만 언급하고, 정작 천태종에서 제일 중요한 ‘흰 소 수레’는 말하지 않은 것으로 추측된다.
이처럼 『기복게』의 첫머리에서 부모님의 은덕을 갚기 위해서 게송을 지었다는 정조의 생각은, 『기복게』의 제일 마지막의 ‘자손의 번창함’과 ‘백성의 인도’로 연결된다. 정조가 비록 불교의 게송 형태로 글을 지었지만, 효와 자손 번창을 중핵으로 하는 ‘가족’을 근간으로 하면서도, 백성들을 구제하고 깨달음으로 인도해주려는 이상적 군주상까지 담아낸 유가의 윤리관이 『기복게』에서 드러난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그림2: 화산(花山) 용주사(龍珠寺)와 현륭원(顯隆園)
『청구요람(靑邱要覽)』(규장각, 古4709-21A)
| 정조는 왜 『기복게』를 지었을까 |
조선시대의 일부 국왕들인 세종이나 세조 등은 불교의 호의적인 군주인 호불군주(好佛君主)들이었으며, 왕실에서 사찰을 지원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런데 정조처럼 직접 불교의 게송을 지은 경우는 없었다. 그럼 그는 왜 이러한 게송을 지었을까?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연구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사도세자를 현창해야지만 자신의 정통성이 확보되는 정치적인 고려까지도 있어서 현륭원을 수원으로 모시고 용주사를 창건하였다는 설명에 동의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더해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으니 그것은 정조가 어명으로 불경인 『불설대보부모은중경』의 언해(諺解)를 간행을 하여 조선에 배포했다는 사실이다. 부모의 열 가지 큰 은혜를 표현한 변상도 10장과 그에 대한 송과 경문을 싣고, 끝없는 부모의 은혜를 보답하려 해도 다 갚을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이 『불설대보부모은중경』을 한글로 번역하여 백성들에게까지 널리 읽혔던 것이다. 이처럼 정조는 불교를 좋아했지만 그가 강조했던 핵심은 ‘효(孝)’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효의 강조가 단지 정치적 목적 하나만으로 환원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은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가족사와 정치적 국면 모두를 아우르는 복합적인, 그러나 정조가 지향했던 명징한 가치 중 하나는 분명 ‘효’였음에 틀림없다.
현재 『기복게』는 목판과 필사본 두 가지 형태로 전해지는데, 어제이기 때문에 이를 목판으로 새겨서 남기고자 하였고, 또한 이를 필사하고 비단으로 장황해서 용주사에 하사해 봉안(奉安)하도록 한 것이다. 필사본은 현재 용주사와 규장각한국학연구원(규6724), 국립중앙박물관(본관 8967)에 소장되어 있고, 목판에 새긴 『기복게』를 인경(引經)하여 만든 책 역시도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5종(규9987, 규9988, 규9993, 규9990, 규10080) 및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 장서각에 6종이 확인된다. 특히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된 『기복게』 중 규9988은 정족산성, 규9993은 태백산산성, 규9990은 오대산사고로 소장처가 기록되어, 이 책들이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실록 사고에 보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정조가 직접 지은 불교 게송, 그렇지만 조선의 임금이자 사도세자의 아들로서, 부모의 명복을 빌고 자손의 번창과 백성들의 안녕을 서원한 『기복게』는 규장각 원문검색서비스 누리집(kyudb.snu.ac.kr) 등에서 언제든지 열람 가능하다.
| 참고문헌 |
김남기, 「『열성어제(列聖御製)』의 편찬과 국왕 시문의 특징」, 『규장각 소장 왕실자료 해제·해설집4』,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05.
김준혁, 「정조시대 용주사 창건과 정치적 활용」, 『지방사와 지방문화』 23(2), 2020.
유경희·이용진, 「용주사 소장 정조대 왕실 내사품」, 『미술자료』 88, 2015.
조은수, 「불교의 경전 주해 전통과 그 방법론적 특징」, 『철학사상』 26, 2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