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공선행록>: 한 남성의 좌절과
회복에 관한 이야기
김민정(경상국립대학교 여성연구소 학술연구교수)

그림1: 유효공선행록(가람古923.251-Y95)
| <유효공선행록>과 창작 시기의 추정 |
<유효공선행록>은 작자 미상의 한국의 고전소설이다. 고전소설 중에서도 고전 대하소설에 속하는 이 작품은 ‘대하(大河)’라는 표현이 암시하듯, 12권 12책으로 이루어진 장편 소설이다. 대하소설 <유효공선행록>은 <유씨삼대록>의 전편으로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는 작품인데, 다만 그 연대를 이영순(李永淳)의 아내 온양정씨(溫陽鄭氏)가 1786년(정조 10)부터 5년에 걸쳐 필사한 <옥원재합기연>을 통해 대략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 <옥원재합기연>의 표지 안쪽에는 당시 유행한 것으로 보이는 소설의 목록을 적어놓은 부분이 있다. 그곳에 <완월>, <현씨양웅>, <명주기봉>, <유효공>, <유씨삼대록> 등의 이름을 쓰여 있다. 이로 보아 <유효공선행록>의 향유 시기를 17세기에서 18세기로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에도 <유효공선행록>의 향유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車三面 以綠毡爲帳而卷之 東西垂緗簾 前面以貢緞爲遮日 車中置舖 葢有東諺劉氏三代錄數卷 非但諺書麁荒 卷本破敗”
‘수레의 삼면은 모직으로써 그것을 돌돌 말아 푸르게 장막을 만들고 동쪽과 서쪽에 담황색 주렴을 늘어뜨렸으며 앞면은 공단으로써 해를 가렸다. 수레 가운데에 덮개를 펴놓고 언문으로 된 <유씨삼대록(劉氏三代錄)> 몇 권이 있는데 비단 언문의 글이 거칠고 책의 모습이 쪼개지고 헐어졌다.’ 이처럼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유효공선행록>의 속편인 <유씨삼대록>이 등장한다. 묘사에 따르면 <유씨삼대록>은 당시 책권이 떨어져 나가고 해져 있었다고 전해지므로 꽤 오래된 책이었으리라 볼 수 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18세기의 기행문으로 <유씨삼대록>은 그 이전으로 창작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유씨삼대록>의 전편인 <유효공선행록>의 시기는 더 이전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유효공선행록>의 창작 시기는 18세기 이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 동복형제(同腹兄弟) 유연·유홍의 갈등과 아버지의 역할 |
<유효공선행록>은 유씨 성을 가진 효심이 지극한 공자가 착한 일을 행한 것을 기록한 책이다. 여기서 유씨 성을 가진 공자가 바로 주인공인 ‘유연’이다. 유연과 갈등을 겪는 인물은 다름 아닌 유연의 친아우인 유홍이다. 일반적인 고전소설에서 형제의 갈등 양상이 ‘이복형제(異腹兄弟)’를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고려해 본다면 동복형제(同腹兄弟)인 ‘유연·유홍’의 갈등은 다소 특이한 양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동복형제의 대립은 사실상 어리석은 아버지인 유정경에 의해 시작된다고 보아도 무관하다. 서술자는 처음부터 유정경의 인물됨을 냉정하며 신랄하게 평가하고 있다.

유시랑 유정경은 시험(猜險)한 인물로 차자(次子)인 홍을 군자요 효자라 사랑하고, 장자(長子) 연을 늘 못마땅해한다. 서술자는 유정경을 잔인한 일이라도 서슴없이 할 위인이라 평가한다. 여타 고전소설에서의 일반적인 가부장은 주동인물로 등장하는 주인공을 사랑하고 반동인물로 등장하는 다른 형제를 꾸짖고 사랑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반동인물의 반발심이 커지고 악행이 더욱 심해진다면 여기서는 가부장의 행동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묘사된다. <유효공선행록>의 갈등이 표면적으로는 유연과 유홍의 형제 갈등인 듯 보이나, 실질적으로 유홍의 모해는 아버지인 유정경에 의해 이루어지므로 유정경의 행위가 갈등의 큰 원인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아버지의 잘못된 행동이 형제 갈등을 심각하게 만드는 큰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이들의 성장 과정에서 중요하게 살펴볼 부분은 ‘유연-유홍’ 형제에게 어머니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정경의 부인 경씨는 유연과 유홍을 낳고 몇 년 후 기세(棄世)한다. 이후 유정경은 가사를 돌보기 위해 양인 주씨를 첩으로 들이지만 주씨는 유연과 유홍의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경부인 역시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유연과 유홍 형제에게 영향을 준 것으로 볼 만한 서사 또한 찾기 어렵다. 사실상 유연과 유홍 형제에게는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한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유연 형제에게 어머니의 대리인으로 등장하는 이는 아버지 유정경이다. 어머니의 부재로 인해 부모를 향한 사랑은 오롯이 아버지 유정경에게로 향한다.
이에 따라 소설의 전반부, 유연이 아버지를 향한 애착을 표면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을 더러 찾을 수 있다. 아버지를 향한 사랑 혹은 애착은 ‘효(孝)’의 양상으로 나타난다. 유정경은 어머니를 일찍 여읜 유연, 유홍 형제를 안타깝게 여겨 둘을 함께 지내게 한다. 하지만 유정경의 배려는 형제의 성격이 서로 다른 탓에 오히려 형제의 불화를 가져온다. 자연히 둘은 외친내소(外親內疎)한다. 유연은 사건이 아직 전개되지 않은 소설의 초반부부터 ‘효우관인(孝友寬仁)’한 인물로 묘사되며, 아버지에게 효를 다하는 ‘절직효순(切直孝順)’한 인물로 등장한다. 하지만 유연의 행동과 이를 대하는 유정경의 행동은 상반된다. 효를 다하는 유연을 바르게 보지 못하고 오히려 핍박하기 때문이다. 권 1, 2에 해당하는 소설 초반부에서 유정경은 유연의 간언을 무시하거나 유홍의 참언(讒言)만을 믿으며 유연을 꾸짖는다. 또한 유연의 머리를 풀어 잡고 서안(書案)의 옥석으로 유연에게 폭력을 행하기도 한다. 아버지에게 얻어맞는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유연은 물러서지 않고 아버지의 몸을 염려하거나 평판을 걱정한다. 여전히 유연의 효, 곧 사랑은 좌절되지 않고 아버지에게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유연은 유정경의 바른 판단을 위하여 간언(諫言)을 올리거나, 유홍을 타이르기도 하며 아버지의 상심을 고려해 혼례 날 일부러 기쁜 체를 하기도 한다. 또한 서술자는 유연 부부가 아버지를 받드는 소임을 잃은 바가 없음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유연의 모든 행동을 변호한다.
이와 반대로 반동인물 유홍은 종통(宗統)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천방백계(千方百計)로 유연을 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유정경은 유홍의 말에 심혹하여 유연을 폐적(廢嫡)할 의사를 날로 더한다. 결심을 한 유정경은 결국 유씨 일가 종족을 모두 모으고 잔치를 연다. 그는 종족을 모두 모은 자리에서 유연이 음란하고 불효하며 자식 또한 낳지 못하니 유홍을 그 자리에 대신 세우겠다고 선언한다. 종제인 유정제가 옳지 않다고 그의 의견을 반대하자 유정경은 그를 꾸짖는다. 이에 더해 오촌 조카인 유견 역시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유정경의 말을 신뢰하지 못하며 유연을 만나길 요구한다. 유연은 잡혀 온 이후에 아버지에게 누덕(累德)이 될까 이를 염려하여 양광(佯狂) 행세를 하게 된다. 결국 유연의 미친 모습을 본 유씨 일가는 유정경의 뜻을 따르게 된다. 종족의 승낙이 떨어지자 유정경은 사당에 적자 바꿈을 고한다. 유연은 사당에 고두사죄하고 유홍에게 절을 한다. 또한 유연의 부인인 정씨에게 역시 홍라삼과 자릿상을 빼앗고 청의(靑衣)를 입게 한다. 유연은 이 사건으로 인해 종통의 자리를 박탈당하게 되며, 크게 좌절하게 된다.
이처럼 유정경의 잘못된 판단은 단순히 둘을 편애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차자인 유홍을 장자로 만들기 위해 유연을 폐장자시키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러한 극단적인 갈등은 다른 대하소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양상이다. <유효공선행록>에서 ‘종법제’가 중요한 서사적 장치로 언급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유정경은 차자인 유홍을 종통(宗統)으로 만들기 위해 유연을 종통에서 폐한다. 유정경은 유연을 종통에서 폐하지만 아버지에게 누를 끼칠까 두려워한 유연은 아버지의 뜻을 맞추기 위해 거짓으로 미친 체를 하고 아우인 유홍에게 절을 한다. 이는 종법제를 보이는 다른 소설과 비교하더라도 매우 특이한 요소라 할 수 있다. 보통은 친자가 없는 경우에 조카나 다른 이를 양자로 세우고 이후에 친자가 태어나서 대립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양상은 <성현공숙렬기>나 <완월회맹연>과 같은 대부분의 대하소설에서 보인다. 하지만 <유효공선행록>은 같은 어머니 밑에서 나온 동복형제임에도 불구하고 갈등이 일어나고 장자와 차자의 위치가 바뀐다는 점, 장자가 있음에도 굳이 차자가 종통의 위치에 오른다는 점에서 특이한 점을 지니고 있다. 물론 그 이후에 유홍의 악행이 밝혀지자 유연이 다시 종통의 자리에 오르긴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종통이 변화되는 과정이 계속하여 등장한다.
| 종통(宗統)의 박탈과 좌절, 그리고 우울증의 시작 |
유연이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 것은 이 직후의 상황이다. 유연은 후당으로 물러난 지 오륙일이 지나도록 땅에 거적을 깔고 누워 있고 미친 체를 계속한다. 이후 전혀 움직이지 않아 부인이 죽지 말 것을 곡진히 간해 겨우 죽만을 먹으며 연명한다. 유연이 병에 걸림을 알고 유정경이 위로하여 이런 상황도 해결되는 듯 보이나 유연의 부인인 정씨 일가와 유정경의 갈등으로 인해 유연이 정씨를 매로 치는 상황에 이르기도 하고 유홍의 계교로 다시 상황은 악화되어 유정경에게 자살을 명받기도 한다. 결국 아버지의 명을 어기지 못해 황제의 처신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린 유연은 귀양마저 가게 된다. 유연은 아버지를 향한 사랑을 완전히 상실한 후 이처럼 난감한 문제에 당면하였을 때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이는 소설의 초반부 적극적으로 동생을 개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거나 아버지에게 간언을 올리는 모습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유연은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며 자립 의지를 보이지도 않는다. 우울증의 대표적인 증상인 무기력증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 우울의 회복과 ‘가부장적 권위’의 모순 |
이처럼 유연은 종통의 자리를 박탈당한 후, 극심한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유연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미친 척하거나 죽으려는 시도를 통해 극단적인 행동을 보인다. 이는 자신에 대한 자아비판과 자기 멸시로 이어지며, 우울증의 대표적인 증상인 무기력과 단식을 포함한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결국 유연은 아버지인 유정경이 가장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유홍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며 우울증에서 벗어난다. 이러한 과정에서 유연은 자신의 좌절과 그로 인한 우울을 회복하기 위해 ‘우애의 회복’을 최종적인 목표로 삼는다.
하지만 ‘우애의 회복’은 다소 파격적인 형태로 묘사된다. 자신의 위치를 재확립한 유연은 동생 유홍과의 우애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친자인 우성을 밀어내고, 동생 유홍의 아들 유백경을 종통으로 세우는 모순적 행동을 보이게 된다. 이는 유연이 자신의 성숙을 입증하려는 과정에서 오히려 아버지 유정경과 유사한 권위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양상은 유정경과 유연의 동일성을 보여줌과 동시에 가부장의 부조리함을 강조하는 서사라 할 수 있다. <유효공선행록>에서 서술자는 유정경의 행동을 비판적으로 묘사한다. 유정경은 ‘인물됨이 시험하고 일편된 성격’이라 묘사되며, ‘잔인한 일도 서슴지 않을 위인’으로도 묘사된다. 이를 통해 유정경의 잘못된 가부장적 행태가 가족 내의 조화를 해치고 결국 비극을 초래하는 핵심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지할 점은 우울의 회복 이후의 유연 역시 가부장의 권위를 십분 이용하며, 이른바 독단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유연은 ‘우애의 회복’이라는 허울 좋은 명목 아래 아버지나 문중의 말도 무시한 채, 아무런 이유 없이 자신의 친자를 내치고 조카를 종통으로 새우게 된다. 이러한 모순적 결정은 가부장적 권위의 구조적 한계와 모순을 드러내면서도, 유연 자신 역시 부조리한 가부장의 틀에 갇혀 있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 가부장제의 병폐를 드러낸 <유효공선행록> |
<유효공선행록>은 유연의 우울증을 통해 가부장적 권위가 가진 병폐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유정경의 부당한 행동은 가족 내 조화를 깨뜨리고, 자식들에게 심리적 고통과 좌절을 안긴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를 넘어, 가부장제가 지닌 구조적 문제를 비판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 이는 유연이 가부장의 자리를 물려받은 이후에도 이어진다.
서술자는 이러한 가부장의 행태를 극단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가부장제의 도덕적 기반이 무너졌을 때 초래될 수 있는 문제들을 강조한다. 유연의 극복 과정은 단순히 한 개인의 성장이 아니라, 전통적 권위 체계와 효의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을 비판적으로 재조명하는 서사적 장치로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유연의 우울증과 극복 과정은 가부장제가 가족 내의 갈등을 어떻게 심화시키는지, 그리고 그 제도의 한계와 모순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드러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유효공선행록>은 가부장적 권위와 효라는 충돌을 탐구하는 서사로 재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 참고문헌 |
김민정, 「〈유효공선행록〉에 나타난 제도·혈연·이념의 상관관계 연구」, 경상대학교 석사논문, 2012.
김민정, 「<유효공선행록>에 나타난 우울증 발현 과정과 그 의미」, 『동양문화연구』 28, 영산대학교 동양문화연구원, 2018.
박지원 저, 김윤경 외 옮김, 『국역 열하일기』, 민족문화추진회, 1968.
조동일, 『한국문학통사』 3, 지식산업사, 2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