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기 교과서의 조선의 모습:『대한지지』의 지도
오상학(제주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대한지지(大韓地誌)』는 1899년 학부편집국에서 간행한 국한문 혼용의 지리지로 현채(玄采)가 번역하여 편집하였다. 총 14편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머리에는 당시 편집국장이었던 이규환(李圭桓)의 서문이 있고, 책의 말미에는 현채의 발문이 수록되어 있다. 1906년에 강진희(姜璡熙)에 의해 재판 발행되었다. 초판은 학부 편집국장의 서문이 붙은 학부 추천도서였으나, 1909년 통감부의 교과용 도서 검정 규정에 따라 교과서로 금지처분을 받았다. 책은 소학교의 아동들을 교육시킬 목적으로 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국한문으로 기술되어 있다. 주로 일본인들이 저술한 서양지리 관련의 저술과 우리나라의 전통의 지리서들을 참고하여 작성된 것이다.
내용은 1편의 범례와 총설, 13편의 도별 지지로 구성되어 있다. 1896년 지방제도 개정에 따라 개편된 13도의 체제를 따르고 있다. 범례에서는 사막, 고원, 해협 등 지리 용어의 개념을 설명하고, 총론에서는 한국의 위치, 크기, 지세, 물산, 풍속 등을 개괄했다. 도별 지지에는 자연지리적인 내용으로 위치경계, 지세, 산맥, 하류, 해만(海灣), 도서 등의 항목을 기술하고 이어 인문지리적인 내용으로 도회(都會), 승지(勝地), 부군위치(府郡位置), 고호(古號), 방면(坊面), 결(結), 토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한지지』의 대한전도
『대한지지』에 수록된 지도는 총론 앞에 수록된 대한전도와 각도의 앞부분에 수록된 13매의 도별지도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 지도제작 기법과 서양의 근대적 지도제작 기법이 혼재된 과도기적 성격을 지닌 지도이다. 지도는 목판본이 아닌 석판본으로 제작되어 근대적 인쇄기법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한전도」에는 ‘광무3년 12월 15일 학부편집국간행’이라는 간기를 지도의 외곽에 수록하여 이전 시기 고지도와는 다른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경위선이 그려져 있는데 경선은 중국 북경을 기준으로 한 편동도수(偏東度數)를 기초로 하였다. 경위선이 그려진 최초의 조선시대 지도로 추정되고 있다. 아울러 우모식 기법을 사용하여 산지를 표현하는 것과 화살표 모양의 방위표시, 기호화된 범례 표시 등에서 지도의 근대적 성격을 볼 수 있다. 범례 중에는 당시 건설되었거나 건설 예정인 철도가 그려져 당시 육상 교통의 시대적인 변화를 파악해 볼 수 있다.
전도에서는 조선시대 전통적인 지도에서 보이지 않던 일본의 일부가 동남쪽 모서리에 그려져 있고, 대마도의 모습도 상도와 하도가 분리된 모습으로 이전과 달리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 시기에 중국을 비롯한 일본‧러시아 등 주변 국가에 대한 지리적 인식이 고조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울릉도와 독도는 이전 시기 정상기의 『동국지도』에서 보이는 것과 약간의 차이가 있다. 우산도가 울릉도의 부속도서로 동쪽에 그려지는 것은 동일하지만 울릉도의 남쪽에 4개 정도의 섬이 더 그려져 있는 것이다. 이는 울릉도의 수토 결과 그려지는 울릉도의 단독 지도 가운데 경위선표가 그어진 지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기 울릉도․독도 지역에 대한 탐사로 얻어진 새로운 정보가 반영되었다기보다는 이전 시기의 지도를 기초로 그려졌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도별지도는 전도와 달리 경위선이나 범례 등의 표시가 없다. 지도의 해안선 윤곽이나 내용은 일본에서 제작된 측량지도보다는 조선의 전통적인 지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지도상에 수록된 내용은 당시 행정구역인 부군(府郡) 등과 혁파된 감영(監營), 병수영(兵水營), 찰방(察訪), 진보(鎭堡) 등의 지명과 주요 산천, 도서 등으로 비교적 상세하다. 그리고 전도와 마찬가지로 우모식 방법으로 산지를 표현하였고, 방위 표시는 글자가 아닌 기호로 하였다. 특히 행정단위의 기호에서는 도형을 사용하여 위계를 나타내고 있다.
전라남도의 지도를 보면, 해안선의 윤곽은 이전 시기 정상기의 『동국지도』에 표현된 것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강진의 병영, 진도의 우수영, 여수의 좌수영 등과 더불어 해안 지역의 군사기지인 진보(鎭堡)도 전통적인 지도의 방식을 따라 표시되어 있다. 해안지역에는 크고 작은 많은 섬들이 매우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가장자리 해역에 위치한 흑산도, 가가도, 홍의도 등도 자세히 표현되어 있다. 제주도 인근의 섬들도 많이 그려져 있는데, 『대동여지도』와 같은 지도에서 보이는 섬들을 그대로 묘사하였기 때문에 섬의 위치나 면적에서 오류도 보이고 있다. 서귀포 앞바다에 있는 삼도(森島)나 의탈도(衣脫島, 지금의 제2문섬) 등이 동쪽의 성산읍 해안에 그려져 있다.
당시의 해로도 잘 나타나 있어서 해안지역이 중요하게 인식되었음을 엿볼 수 있다. 서구 열강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의 주변세력이 밀려오던 상황에서 우리의 국토 강역에 대한 인식을 고취시키려는 목적으로 제작된 교육용 지도로서, 전통적 지도제작이 서양의 지식을 수용하면서 변용되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지도이다.

『대한지지』의 충청남도 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