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현씨양웅쌍린기>가 보여주는 부부 갈등의 현실성-
김민정(경상국립대학교 여성연구소 학술연구교수)
<고전소설에서 결혼은 대체로 이야기의 끝을 의미한다. 수많은 난관을 넘고 혼인에 이르면, 인물들은 제자리를 찾고 서사는 안정된다. 그러나 <현씨양웅쌍린기>는 이 공식을 거의 따르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 결혼은 문제가 해결된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문제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계기다. 혼인 이후의 생활, 즉 함께 살아보니 생기는 갈등이 서사의 중심으로 이동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지금 읽어도 꽤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이 작품의 부부 갈등은 큰 사건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배신이나 폭력 같은 극단적인 계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대신 갈등은 아주 사소한 어긋남에서 조금씩 쌓인다. 말하지 않는 태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방식, 관계를 대하는 기대의 차이가 반복되면서 부부 사이는 점점 불안정해진다. <현씨양웅쌍린기>는 “왜 이렇게까지 싸우는가”보다 “왜 이렇게 엇갈릴 수밖에 없는가”라는 질문에 더 가까운 작품이다. 현경문은 감정을 절제하는 태도를 미덕으로 여긴다. 그는 부부 사이에서도 지나친 감정 표현은 삼가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 태도는 주소저에게 전혀 다르게 읽힌다. 말하지 않는 태도는 신중함이 아니라 무관심처럼 느껴지고, 거리 두기는 배려가 아니라 회피로 받아들여진다. 주소저 역시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지만, 그녀의 침묵은 체념에 가깝고, 감정은 쌓인 끝에 행동으로 나타난다. 두 사람 모두 관계를 유지하려 애쓰지만, 그 방식은 끝내 맞물리지 않는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이유는 갈등의 원인을 단순히 ‘소통 부족’으로 설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경문에게 말하지 않음은 질서를 지키는 선택이지만, 주소저에게 말하지 않음은 관계를 위태롭게 만드는 신호다. 같은 행동이 서로에게 전혀 다른 의미로 작동하는 것이다. 여기서 부부 갈등은 성격이나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에 대해 기대하는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부부 갈등은 곧바로 가족의 문제로 확장된다. <현씨양웅쌍린기>에서 부부의 문제는 사적인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부모와 친족이 개입하면서 갈등은 공적인 사안이 되고, 이는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오해를 낳기도 한다. 작품은 이러한 개입을 일방적으로 비판하지 않으면서, 부부 관계가 사회적 관계망 속에 놓여 있음을 드러낸다.
결말 역시 통쾌한 화해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해는 어느 정도 풀리지만, 갈등의 원인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대신 부부는 관계를 유지하기로 선택한다. 이 선택은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는 선언이 아니라, “이렇게 살기로 한다”는 조정에 가깝다. 바로 이 지점에서 <현씨양웅쌍린기>는 유난히 현대적으로 읽힌다. 결혼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고, 관계는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계속 관리해야 하는 과정이라는 인식이 작품 전반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사진 1 : 현씨양웅쌍린기(고3350-86,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왜 이렇게까지 싸우는 걸까?”가 아니라 “왜 이렇게 엇갈리는 걸까?” |
<현씨양웅쌍린기>의 부부 갈등은 한눈에 보기에는 다소 심심해 보일 수 있다. 배신이나 폭력 같은 극적인 사건이 등장하지 않고, 누군가 명확하게 잘못을 저지르는 장면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바로 이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갈등은 언제나 아주 사소한 지점에서 시작되고, 그 사소함이 반복되면서 점점 커진다.
부부 사이에서 말이 줄어들고, 오해가 생겨도 바로 풀리지 않은 채 방치된다. 상대의 태도를 묻기보다 각자의 해석에 기대고, 그 해석은 다시 또 다른 오해를 낳는다. <현씨양웅쌍린기>는 부부가 크게 싸우는 장면보다, 어긋난 채로 시간을 보내는 장면을 더 많이 보여준다. 갈등은 폭발하기보다 서서히 누적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엇갈림의 중심에는 현경문과 주소저가 관계를 이해하는 방식의 차이가 있다. 현경문은 감정을 절제하는 인물이다. 그는 부부 사이에서도 감정을 앞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무던함과 침착함, 말수를 줄이는 태도가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믿는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상대를 배려하는 태도이며,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는 선택이다.
하지만 이 태도는 주소저에게 전혀 다르게 읽힌다. 말하지 않는 태도는 신중함이 아니라 무관심처럼 느껴지고, 거리를 두는 태도는 배려가 아니라 회피로 보인다. 현경문이 관계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방식은, 주소저에게는 오히려 관계에서 밀려났다는 감각을 준다. 같은 행동이 정반대의 의미로 작동하는 순간이다. 주소저 역시 감정을 쉽게 드러내는 인물은 아니다. 다만 그녀의 침묵은 감정을 통제하려는 선택이라기보다, 말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는 체념에 가깝다. 그래서 감정은 말로 풀리기보다 안에 쌓이고, 결국 행동으로 나타난다. 다투기보다는 자리를 피하고, 관계를 잠시 멀리 두거나 다시 정리하려는 방식이다. 이는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선택이라기보다,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대응에 가깝다.
이처럼 두 사람은 모두 나름대로 관계를 유지하려 애쓴다. 문제는 그 방식이 끝내 맞물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현경문은 질서를 지키기 위해 감정을 눌러두고, 주소저는 관계를 지키기 위해 거리를 둔다. 서로를 위한다고 선택한 태도가, 상대에게는 관계를 위태롭게 만드는 신호로 작동한다. <현씨양웅쌍린기>는 바로 이 지점을 부부 갈등의 핵심으로 제시한다. 이 작품에서 갈등은 누군가의 성격 문제나 도덕적 결함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대신 관계에 대해 기대하는 방식, 감정을 다루는 윤리가 어긋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 소설의 부부 싸움은 “누가 잘못했는가”로 정리되지 않고, “왜 이렇게 엇갈릴 수밖에 없는가”라는 질문으로 남는다.
이러한 갈등 구조 덕분에 <현씨양웅쌍린기>는 고전임에도 불구하고 낯설지 않다. 큰 사건이 없어도 관계는 충분히 흔들릴 수 있고, 서로를 위하는 마음만으로는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 작품은 이미 오래전에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 같은 침묵, 다른 의미: 부부 사이에 쌓이는 보이지 않는 시간 |
<현씨양웅쌍린기>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장면은 다툼이 아니다. 소리를 높이는 말다툼도, 결단적인 파국도 드물다. 대신 이야기 곳곳에는 말하지 않는 시간, 설명되지 않은 태도, 어정쩡하게 흘러가는 순간들이 반복된다. 이 소설의 부부 갈등은 언제나 조용하게 시작된다. 현경문은 말이 적은 인물이다. 그는 감정을 앞세우는 순간 관계가 흔들린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는 말하지 않는다. 불필요한 설명을 덜어내고, 상황이 정리되기를 기다린다. 그의 침묵은 질서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고, 부부 사이에 불필요한 파문을 만들지 않으려는 태도다. 말하지 않음은 책임 회피가 아니라, 오히려 관계를 안정시키기 위한 방식이다.그러나 주소저가 받아들이는 침묵은 전혀 다르다. 말이 없다는 것은 상황이 정리되고 있다는 신호가 아니라, 관계에서 자신이 배제되고 있다는 느낌에 가깝다. 현경문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동안, 주소저의 감정은 정리되지 않고 오히려 안으로 쌓인다. 설명되지 않은 태도는 신뢰를 주기보다 불안을 키운다. 같은 침묵이 서로에게 전혀 다른 언어로 작동하는 순간이다. 주소저 역시 쉽게 말을 꺼내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의 침묵은 기다림이 아니라 유예에 가깝다.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자리를 피하고, 상황을 한 발 떨어져서 바라본다. 이는 관계를 끊기 위한 선택이라기보다,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한 대응이다. 말 대신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관계를 조정하려는 시도다.
이렇게 부부 사이에는 말해지지 않은 시간들이 계속해서 쌓인다. 문제는 이 시간이 길어질수록, 갈등의 원인이 점점 흐릿해진다는 점이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되었는지보다, ‘이미 이렇게 되어버렸다’는 감각이 관계를 지배하게 된다. <현씨양웅쌍린기>는 이 미묘한 어긋남의 시간을 집요하게 붙잡는다. 여기에 가족의 시선이 더해지면서 갈등은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부부 사이의 침묵은 곧 주변의 해석을 불러오고, 해석은 개입으로 이어진다. 말하지 않은 감정은 가족의 말로 대신 설명되고, 부부의 문제는 어느새 개인의 관계를 넘어 가문의 일로 확장된다. 이 과정에서 부부는 스스로 관계를 조정할 기회를 잃어간다.
<현씨양웅쌍린기>는 이 구조를 과장하지 않는다. 대신 말이 사라진 자리에 다른 말들이 어떻게 들어오는지를 차분히 보여준다. 부부가 침묵하는 동안, 관계는 더 이상 둘만의 것이 아니게 된다. 침묵은 갈등을 가라앉히기보다, 오히려 더 많은 해석과 오해를 불러오는 계기가 된다. 이 소설이 흥미로운 이유는, 부부 갈등을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감정의 지연으로 그린다는 점이다. 싸움이 커져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말해지지 않은 감정이 오래 남아 관계를 서서히 바꾸어 놓는다. <현씨양웅쌍린기>에서 부부는 크게 다투지 않아도, 충분히 멀어질 수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의 부부 서사는 묘하게 현실적이다. 관계는 언제나 큰 사건보다, 말하지 않은 선택들로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이다. <현씨양웅쌍린기>는 바로 이 보이지 않는 시간과 침묵의 무게를 통해, 부부 관계의 가장 어려운 지점을 조용히 드러낸다.
| 함께 산다는 것의 어려움에 대하여 |
<현씨양웅쌍린기>를 끝까지 읽고 나면, 이 작품이 부부 갈등을 해결하려는 소설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오해는 어느 정도 풀리지만, 모든 문제가 말끔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대신 부부는 관계를 유지하기로 선택한다. 이 선택은 감정의 완전한 회복이라기보다, 서로의 차이를 인식한 상태에서의 조정에 가깝다. “다 괜찮아졌다”기보다는, “이렇게 살아가기로 한다”는 쪽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현씨양웅쌍린기>는 유난히 현대적으로 읽힌다. 결혼이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관계 관리의 시작이라는 인식이 작품 전반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부부가 왜 싸우는지를 설명하기보다, 왜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지를 보여준다. 말하지 않는 선택, 감정을 유예하는 태도, 관계를 질서로 유지하려는 노력은 모두 나름의 이유를 갖고 있지만, 그 이유가 공유되지 않을 때 갈등은 반복된다.
특히 이 작품은 부부 사이의 문제를 개인의 성격이나 감정의 과잉으로 돌리지 않는다. 갈등은 구조 안에서 발생하고, 관계에 대한 기대가 다를 때 자연스럽게 생긴다. 그래서 이 소설에는 완벽한 가해자도, 완전한 피해자도 없다. 대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함께 살아가야 하는 두 사람의 시간이 남는다. <현씨양웅쌍린기>가 지금 읽어도 흥미로운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 작품은 “사랑하면 괜찮아진다”거나 “대화를 하면 해결된다”는 단순한 결론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함께 산다는 것이 원래 어렵고, 관계는 언제나 조정과 오해 사이를 오간다는 사실을 조용히 보여준다. 큰 사건 없이도, 말하지 않은 감정만으로도 관계는 충분히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이 소설은 오래전에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현씨양웅쌍린기>는 고전이지만 낡지 않다. 혼인 이후의 삶을 이상화하지 않고, 부부라는 관계가 지닌 현실적인 무게를 끝까지 따라가기 때문이다. 결혼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이 소설의 인식은, 오늘날의 독자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남긴다. 함께 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감당하는 일인가.
| 참고문헌 |
김민정, 「부부 갈등 서사에 나타난 감정 구조와 관계 윤리 -<현씨양웅쌍린기>와 <눈물의 여왕> 비교를 중심으로-」, 『국제어문』 105, 국제어문학회, 2025
김서윤, 「<현씨양웅쌍린기>에 나타난 여성 인물의 신분 위상과 부부 갈등」, 『한국학』 38, 한국학중앙연구원, 2015
최기숙, 「<현씨양웅쌍린기>에 나타난 ‘부부 관계’와 ‘결혼 생활’의 상상적 조율과 문화적 재배치 -‘현경문-주소저’ 부부 관련 서사분석 중심으로-」,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20, 한국고전여성문학회, 2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