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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궤를 통해 본 왕실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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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궤의 역사

 

 

의궤는 불교에서 나온 용어로 고려시대에도 그 명칭이 나올 만큼 오랜 전통을 지녔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태조 때부터 의궤를 제작하였다. “태종 공정대왕과 원경왕후(元敬王后)의 상장 의궤(喪葬儀軌)를 충주 사고(史庫)에 간수하게 하였다.”는 실록 기사로 보아 조선초기부터 의궤를 제작하여 사고에 보관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의궤는 모두 17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 이전의 것은 왜란과 호란을 겪으면서 모두 소실된 것으로 보인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의궤는 1601(선조34)에 제작된 의인왕후빈전혼전도감의궤(懿仁王后殯殿魂殿都監儀軌)이다. 선조의 첫 번째 왕비인 의인왕후의 장례 과정을 담은 것이다.

 

 

그림1. 가장 오래된 의궤 의인왕후빈전혼전도감의궤14845

 

의궤는 17세기 이후 꾸준히 제작되었으며, 17세기 후반에는 정형화된 체계를 갖추게 된다. 18세기에는 국가의 문물과 제도를 재정비하려는 영·정조의 노력에 힘입어 의궤의 종류와 숫자가 크게 늘어났다. 특히 활자본 의궤가 새롭게 등장한 것이 주목할 만하다. 최초의 활자본 의궤는 1795(정조19) 제작된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이다.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을 참배하고 화성(華城) 행궁에 행차하여 어머니 회갑 잔치를 치룬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정조가 활자본 의궤를 제작한 것은 여러 부를 인쇄하여 유포함으로써 국왕과 왕실의 위엄을 널리 알리려는 정치적 의도에서였다. 이후 화성의 성곽 영건 과정을 담은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순조의 40세 및 등극 30주년을 기념하여 베푼 잔치 내용을 담은 기축년(1829, 순조29) 진찬의궤등이 금속 활자로 인쇄되었다.

 

 

그림2. 활자본 의궤의 출현 원행을묘정리의궤14532, 8-1

 

의궤는 19세기에도 계속 만들어졌다. 특히 정조의 정책을 계승하여 국가의 문물 제도를 정비하려고 했던 고종대에는 많은 의궤들이 제작되었는데 그 체제나 내용에서도 정조대의 방식을 택했다. 1910년 대한제국이 망한 뒤에도 의궤 편찬은 계속되었다. 고종, 순종의 장례와 관련된 의궤를 비롯하여 이왕직에서 실행하던 제사와 관련된 의궤들이 그것이다. 이때의 의궤는 의궤라는 이름은 계속 사용되었으나 왕조의 쇠망과 함께 형식과 내용면에서 초라해졌다.

 

그림3. 대한제국 고종 황제 즉위 반차도 고종대례의궤13486 반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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