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궤의 분류와 제작 그리고 보관
| 의궤의 분류 |
의궤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될 수 있다. 의궤를 ‘국가 의례[儀]의 궤범[軌]’이라고 본다면, 국가전례의 전통적인 구분 방식인 오례에 따라 분류할 것이다. 의궤를 왕실문화라는 관점에서 보고, 의궤가 오례만이 아니라 왕실의 각종 행사, 사업 등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왕실문화’라는 다른 분류가 가능하다. ‘국가전례’ 분류, ‘왕실문화’ 분류의 세부 범주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국가전례>
길례(제사 의례): 사직, 종묘, 추숭추존, 제기악기, 책보(冊寶), 진전(眞殿), 영정(影幀), 능원묘(陵園墓), 선농(先農), 대보단(大報壇)
가례(경사스런 의례): 가례, 책례(冊禮), 등극(登極), 존숭(尊崇), 책보(冊寶), 하례(賀禮), 연례(宴禮), 행행(行幸), 태봉(胎峯), 어진, 녹훈
빈례(사신접대 의례): 영접(迎接)
군례(군사 의례): 대사례(大射禮)
흉례(상장례): 빈전혼전(殯殿魂殿), 국장, 산릉, 부묘(祔廟), 천릉, 빈궁혼궁(殯宮魂宮), 예장(禮葬), 원묘(園墓), 부궁묘(祔宮廟), 천원(遷園)
기타: 영건(營建), 찬수(撰修), 기기제작(器機製作), 악기제작(樂器製作), 기타
<왕실문화>
왕실의 일생: 출생, 혼례, 책봉, 즉위식, 존숭추숭, 상장례, 사당에 모심(종묘, 궁묘), 제사
왕실의 활동: 제사(사직, 기타), 잔치, 행행, 활쏘기, 농경의례, 사신접대, 공신 녹훈, 하례
왕실의 사업: 편찬간행(실록, 보첩), 보수영건(궁궐, 종묘, 진전, 궁묘, 능원묘, 태실), 조성(초상화, 제기악기, 책보), 기타
| 의궤 제작 |
의궤 제작은 의식 등을 치르기 위해 만든 기구인 도감의 부설기구 의궤청에서 담당하였다. 의궤청은 도감의 각 부서에서 행사 과정에 만든 등록 등 기초자료를 모은 다음 의궤 형식에 맞추어 편찬한다. 의궤의 내용 구성은 목차, 도설(圖說: 그림과 설명), 시일(時日: 일정), 좌목(座目: 담당자 명단), 계사(啓辭: 임금에게 올린 글), 이문(移文: 도감이 보낸 공문)·내관(來關:도감이 받은 공문)·감결(甘結: 도감의 지시 공문), 상전(賞典: 시상 내역), 의주(儀註: 의식의 상세한 절차), 재용(財用), 실입질(實入秩: 실제 들어간 물품들), 공장질(工匠秩: 공장 명단) 등으로 되어있다.
의궤에 수록된 그림은 당대의 유명 화원들이 담당하였다. 그러므로 의궤는 기록과 그림이 함께 어우러진 종합적인 행사 보고서라 할 수 있다. 반차도와 도설은 대개 천연색으로 그려져 문자 기록만으로는 미처 파악할 수 없었던 행사나 사업의 현장감을 전달한다.
의궤는 보통 5~9부를 제작하였는데, 열람자나 보관처에 따라 어람용(御覽用)과 분상용(分上用: 여러 곳에 나누어 보관하는 의궤)으로 구분되었다.
어람용 의궤는 책 오른편에 세로로 길게 놋쇠 조각을 대어 제본하는 철장(鐵裝)을 하였다. 철장은 실로 제본하면 분량이 많을 경우 중간에 실이 끊어질 염려가 있고, 또 격식을 갖추어 오래 보존할 가치가 있는 책의 경우 사용하는 제본 방식이다.
어람용 의궤의 표지는 녹색 비단으로 감싸고 제목은 흰색 비단에 써서 붙였다. 책의 오른쪽 끝에 세로로 길게 놋쇠 조각[邊鐵]을 앞뒤로 대고 5개의 작은 못을 박았는데, 못이 빠지지 않도록 앞뒤로 국화동을 대었다. 그중 가운데 것에 둥근 고리[圓環] 1개를 달았다. 안의 종이는 초주지를 사용하는데, 붉은 괘선을 치고 해서로 글씨를 썼다.
고종이 황제로 즉위한 이후에는 어람용 의궤의 형식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황제에게 바치는 어람건과 황태자에게 바치는 예람건 두 건이 구별되면서, 어람건은 황색 비단으로, 예람건은 홍색 비단으로 표지를 만들었다.

그림1. 임금에게 바친 어람용 의궤의 장정 『경모궁의궤』 규13632
분상용 의궤는 철장을 할 경우, 세로로 길게 무쇠 조각[邊鐵]을 대고 3개의 구멍을 뚫어 무쇠 못인 박을정(朴乙丁) 3개를 박고, 그중 가운데 것에 둥근 고리[圓環] 1개를 달았다. 실끈으로 제본하는 선장(線裝)의 경우는 다섯 개의 구멍을 뚫어 붉은 실로 꿰었다. 표지는 붉은 베나 종이를 사용하고, 제목은 제목 감 없이 표지에 바로 썼다. 본문 종이는 저주지를 사용하였으며, 검은 괘선을 긋고 글씨를 썼다.

그림2. 분상용 의궤의 장정 『사직서의궤』 규14229
| 의궤의 보관 |
어람용 의궤는 통상 1부가 제작되었으며, 정조 이후 어람용 의궤는 규장각이나 강화도의 외규장각에 보관하였다. 분상용 의궤(여러 곳에 나누어 보관하는 의궤)는 관련 기관과 사고(史庫)에 분산 보관하였다.
의궤는 규장각, 사고 등에 보관하였기 때문에 현재까지 많은 수량이 남아있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의궤는 654종으로 알려지고 있다. 소장기관은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국립중앙박물관(파리국립도서관 반환의궤), 국립고궁박물관(일본 궁내청 반환의궤) 등이다. 그 가운데서 규장각은 546종, 1,570건, 2,897책의 의궤를 소장하고 있어 ‘의궤의 보고’라고 할 만하다.

그림3. 어람용 의궤의 보관처 강화도 외규장각(복원, 국가문화유산포털)
파리 국립도서관이 소장하다가 반환한 191종 297책의 의궤는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해 약탈된 외규장각 도서의 일부이다. 이 책들은 인조대부터 제작된 비교적 초기 의궤들로서 대부분 어람건이다. 일본 궁내청에 소장되었던 71종의 의궤는 1922년 조선총독부가 규장각 소장 의궤의 일부를 일본 ‘기증’이라는 이름으로 일본 궁내청에 이관한 것이다. 현재는 모두 환수되어 각각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