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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室의 學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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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室의 學問

 

목차
1. 개 관
2. 왕실도서목록
3. 경 서
4. 유교사상
5. 불교사상
6. 자료적 가치와 의미

 

1. 개 관

 

왕실의 학문은 일반적으로 국왕 및 왕실 가족이 주체적으로 어떤 대상에 대해 배우거나 실천을 통하여 알게된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 체계를 포괄하여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학문의 주체를 왕실의 인물로만 한정하는 것은 왕실 학문의 실상과 부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전통시대 왕실의 성격상 국왕의 명을 직접 받드는 경우 이외에도 여러 문인학자들이 직․간접적으로 왕실을 옹호 또는 선양하는 경우도 왕실의 제반 사항을 살피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왕실의 학문을 살피기 위해서는 국왕 및 왕실가족이 생산해낸 서적 등을 일차적인 자료로 삼되 국왕의 명을 직․간접적으로 받들어 편찬한 서적 등을 포함하고자 한다.
현재 규장각에는 국왕 및 왕실 가족이 직접 참여하여 생산한 서적으로 유교의 기본경전인 사서삼경 관련 서적, 통치이념인 성리학 관련 서적, 숭유억불 정책에도 불구하고 제작된 불교 관련 서적, 왕실 서적의 규모를 알려주는 왕실도서목록이 다수 소장되어 있다.
본장에서는 이러한 개념과 소장 자료의 성격에 따라 왕실의 학문과 관련된 자료를 몇 개의 범주로 나누어 살펴본다. 첫째로 규장각에 소장된 자료들의 목록으로 여기에는 왕실서적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소장처 별로 작성한 목록, 이외의 특정한 상황에 따라 작성한 도서목록 등이 포함된다. 둘째로 유교 기본 경전인 사서삼경과 이들 경전에 대한 類書, 셋째로 통치이념인 성리학 서적, 넷째로 왕실의 불교사상 등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2. 왕실도서목록

 

왕실도서목록은 국왕 및 왕실 가족이 어떤 것을 배우고 익혔나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자료이다. 규장각에 소장된 왕실도서목록으로는 『貴重圖書目錄』󰊱, 『貴重圖書目錄』󰊲, 『奎章閣書目』󰊱, 『奎章閣書目』󰊲, 『奎章總目』, 『內閣訪書錄』, 『圖書集成分編第次目錄』, 『圖書冊數表』, 『奉謨堂奉安御書總目』, 『北漢冊目錄』, 『西庫藏書錄』, 『書目』, 『書香閣奉安總目』, 『承華樓書目』, 『新購入及寄附圖書目錄』, 『芸閣冊都錄』, 『新購入書籍目錄』, 『隆文樓書目』, 『摛文院奉安總錄』, 『帝室圖書目錄』, 『朝板圖書目錄』, 『集玉齋目錄外書冊』, 『集玉齋書籍調査記』, 『集玉齋書籍目錄』, 『春坊藏書總目』, 『曝書目錄』, 『弘文館書目』 등이 남아 있다.
『貴重圖書目錄』󰊱은 규장각 도서과에서 작성한 귀중도서의 목록이다. 내용은 經․史․子․集部의 四部로 書名과 冊數, 缺(여부), 架數, 筐數 등이 기재되어 있다. 經部는 35종, 史部는 89종, 子部는 65종, 集部는 72종 등으로 모두 271종이다. 이 가운데 29종이 조선판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貴重圖書目錄』󰊲는 조선총독부에서 규장각의 목록조사를 위해 작성한 귀중도서목록이다. 여러 목록을 합본한 원고본의 목록이다.
『奎章閣書目』󰊱은 고종 연간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규장각 서목이다. 樓上庫․樓下庫의 書目인 <奎11706>本 『奎章閣書目』과는 전연 별개의 서목이다. 正祖 이래 확충 경영되어 규모와 내용이 상당한 수준에까지 도달하였던 단계의 奎章閣에 收藏된 圖書의 전모를 알 수 있는 유일한 書目이다.
『奎章閣書目』󰊲는 光武 연간에 奎章閣圖書를 총정리하면서 점검하기 위해 작성한 서목으로 추정되는 서목이다. 같은 이름의 <奎11670>本 『奎章閣書目󰊱』과는 별개의 서목이다.
『奎章總目』은 1781년(정조 5)에 王命으로 奎章閣의 閱古觀과 皆有窩에 소장된 華本(중국본)에 간략한 解題를 붙인 書目이다. 정조는 규장각에 도서를 보존할 수 있는 서고를 여럿 설치하였는데, 도서를 중국본인 華本과 한국본인 東本으로 각각 나누어 화본은 閱古觀과 皆有窩에, 동본은 西序에 소장하였다. 원래 『奎章總目』은 화본목록과 동본목록을 합하여 부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본서는 이 가운데 화본을 소장하였던 열고관과 개유와의 목록이며, 같은 형태의 동본 목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內閣訪書錄』은 正祖 때 奎章閣에 소장된 中國本인 華本에 대한 해제목록이다. 조선후기 중국서적에 대한 조선인의 비평적인 안목의 목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圖書集成分編第次目錄』은 淸에서 구입한 『古今圖書集成』을 규장각에서 分編하고 小題目을 初出하여 만든 목록이다.
『圖書冊數表』는 20세기 초에 규장각의 소장도서에 대한 개략적인 책수를 정리한 표이다. 版心에 도서과가 인쇄되었으므로 1908년 규장각에 4과 체제가 도입된 이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奉謨堂奉安御書總目』은 奎章閣의 奉謨堂에 소장되어 있던 御製․御筆․御畵․顧命․遺誥 등 御書의 총목록이다. 奉謨堂은 昌德宮 秘苑 안의 宙合樓 西南쪽 古閱武亭趾에 건립한 것으로 譜牒을 비롯하여 御製․御筆 등을 奉安하던 곳이다. 본서는 列聖들의 기록도 있기는 하나 주로 英祖의 기록이 대다수를 차지하며 그 가운데서도 英宗大王御製帖本이 대부분을 차지하므로 영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北漢冊目錄』은 北漢山行宮에 수장되었던 서책을 기록한 목록이다.
『西庫藏書錄』은 규장각의 西庫에 수장되었던 도서의 목록이다. 본래 『奎章總目』(奎 4461)에 포함되었던 『西庫書目』을 기본으로 하여 그 후에 수집 내지 이관된 책들을 분류하여 저록한 책이다.
『書目』은 소장처가 확실하지 않은 書目이다. 수록된 책 중에 『度支定例』, 『各樣巾製』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正祖 이후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된다. 朝鮮本과 唐本(중국본)으로 나뉘며, 唐本은 뒷부분에 구분하여 기록하였다.
『書香閣奉安總目』은 창덕궁의 書香閣에서 보관하고 있던 각종 국왕 관련 자료의 목록이다. 書香閣은 昌德宮 秘苑 宙合樓 서편에 있는 건물이다. 주로 御眞․御筆․御製 등을 移安․曝曬하던 곳으로 移安閣이라고도 하였다. 1866년(고종 3)에 奎章閣이 景福宮 建春門 밖의 舊宗親府 내로 移建됨에 따라 書香閣에 奉安되었던 御眞․御製․御筆 등은 新築된 奎章閣으로 移奉되었다. 본 총목이 작성된 연대는 哲宗 이후로 추정된다.
『承華樓書目』은 조선후기 昌德宮의 承華樓에 간수된 書冊․書畵 등의 목록이다.
『新購入及寄附圖書目錄』은 20세기 초반에 규장각에서 새로 구입하고 기부받은 도서를 정리한 목록이다. 특별한 기준에 따라 구분하지 않고 임의대로 기록하였다.
『芸閣冊都錄』은 芸閣, 곧 校書館에 수장된 圖書와 冊版의 목록이다.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며, 수장된 책의 종류․冊數 및 冊板의 종류와 그 板數 등을 총망라하여 수록하였다.
『新購入書籍目錄』은 한말 宮內府에서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구입서적 목록이다. 새로 구입한 서적을 列記하였다. 편찬시기는 궁내부가 존속하였던 1910년 이전으로 추정된다.
『隆文樓書目』은 景福宮 勤政殿의 東閣樓인 隆文樓에 수장된 도서의 목록이다. 편찬시기는 미상이다.
『摛文院奉安總錄』은 조선 高宗 때 奎章閣 摛文院의 東二樓에 奉安되어 있던 書籍․碑文․祭文․冊寶․樂章․搨本 등의 목록이다.
『帝室圖書目錄』은1909년에 규장각 도서를 經․史․子․集으로 나누어 수록한 목록이다. 1909년 11월 현재 5,493부 103,680책이 소장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朝板圖書目錄』은 규장각 도서과에서 1908년 이후 조선판본의 책을 조사한 목록이다. 『奎章閣圖書韓國本綜合目錄』의 書目은 ‘朝板經部目錄’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제1책의 제목이고, 제2․3․4책의 제목은 각각, ‘朝板史部目錄’, ‘朝板子部目錄’, ‘朝板集部目錄’으로 되어 있어 4책마다 經史子集이 1책으로 나뉘어 실려 있음을 알 수 있다.
『朝板圖書目錄』은 朝鮮總督府 取調局에서 조선판의 도서를 모아서 만든 목록이다.
『集玉齋目錄外書冊』은 『集玉齋書目』이 편찬된 후에 수집 혹은 別置되거나 『집옥재서목』에서 누락된 책을 모아서 만든 서목이다.
『集玉齋書籍調査記』는 集玉齋의 장서를 조사한 목록이다. 本書目에 기록된 서적은 대부분이 淸代에 간행된 中國書籍들로서 『武英殿叢書』 등 巨帙의 책을 비롯하여 『皇淸經解』, 『十三經註疏』, 『宋元明儒學案』, 『日知錄集釋』 등 淸代 여러 학자들의 저술을 비롯하여 광범위하게 수록되어 있다.
『集玉齋書籍目錄』는 集玉齋의 장서 목록이다. 本目錄은 『集玉齋書目』(奎 11705)과 『集玉齋目錄外書冊』(奎 11703)을 합해 改編한 것이다.
『春坊藏書總目』은 왕세자의 교육을 담당하였던 侍講院에 소장되었던 장서의 목록이다.
『曝書目錄』은 1908년(융희 2) 8월 19일부터 9월 9일까지 奎章閣圖書를 曝曬하고 점검한 목록이다. 수록된 奎章閣圖書는 모두 36,565冊이다.
『弘文館書目』은 舊 弘文館 장서를 奎章閣에서 曝曬하고 점검한 목록이다. 수록된 책은 모두 4,250책이다.

 

3. 경 서

 

조선은 성리학을 國是로 삼은 나라이다. 유학자들은 사서와 오경, 성리학서적 중심의 독서에 매진하였다. 규장각에 소장된 경서로는 『삼경사서정문』, 『오경백편』, 『어정오경백선』, 『역학계몽요해』, 『역학계몽집전』, 『주역강의』, 『御製書傳條文』, 『尙書講義』󰊱, 『御定書傳人物類聚』․『尙書講義』󰊲, 『詩經諺解』, 『詩傳大全』, 『小學諸家集註』, 『御製小學諺解』, 『小學諸家集註增解』, 『大明集禮』, 『鄕禮合編』, 『大學章句大全』, 『御定大學類義』, 『論孟人物類聚』, 『孟子諺解』, 『御製孟子條問』, 『中庸章句』이 남아 있다.
먼저 總經類를 살펴본다. 『삼경사서정문』은 정조가 삼경 사서의 원문만을 모아서 편집한 책으로 줄여서 ‘경서정문’이라고 한다. 정조는 유학자라면 누구나 삼경 사서를 교양으로 익혀야 하지만 그 분량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여 영락대전에 포함된 주석을 제외하고 경서의 원문만을 뽑아 『경서정문』을 만들었다.
『오경백편』은 정조가 『주역』, 『서경』, 『시경』, 『춘추』, 『예기』로 구성되는 五經 중에서 핵심이 되는 100편의 구절을 뽑아 편집한 책이다. 정조는 이 책에서 100이란 숫자에 맞추어 선별한 이유를 공자가 『서경』을 산삭하여 100편을 만든 뜻을 취하였다고 하였다. 『오경백편』은 정조가 五經 중에서 늘 외우는 구절 100편을 선정하여 언제나 보고 참고할 수 있도록 1796년에 완성된 필사본 『오경백선』을 바탕으로 1797년(정조 21) 목판본으로 간행하면서 『오경백편』으로 그 명칭이 변경되었다.
그런데 『오경백편』은 제목과 달리 99편으로 구성되어 있다(도표 1). 필사본에서 100편이던 것이 목판본에서는 99편으로 줄었다. 그러나 수록된 편수가 줄어든 것은 아니고 목판본에서는 오히려 ‘思無邪’가 나오는 <彤>시가 추가되어 101편으로 늘어났다. 그렇지만 필사본에서 별도의 전으로 다룬 주자의 서문 2편을 목판본에서는 『대학』과 『중용』에 첨부하여 결국 99편이 되었던 것이다.
『역학계몽요해』는 『역학계몽』을 해석한 책이다. 『역학계몽』은 주자가 1186년에 『주역본의』를 편찬한 이후 이 책의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편찬한 책이다.
『역학계몽집전』은 『역학계몽』에 관한 중국과 조선의 주석을 집대성한 책이다. 『역학계몽』은 『주역』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기본 교재로 활용되었고, 중국과 조선에서는 『역학계몽』 주석서가 많이 나왔지만, 이들 주석서는 각각 독립된 책이기 때문에 이를 종합해서 읽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정조는 이들 주석서를 일정한 체계로 정리한 『역학계몽집전』을 편찬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 정조는 1772년에 학습의 편의를 위해 『역학계몽부주』를 저본으로 하고 조선의 성과인 『보해』와 『계몽전의』의 내용을 해당 항목별로 나누어 함께 수록하였다. 또한 『역학계몽부주』에 수록되지 않았던 여러 학자들의 설 가운데 『역학계몽』의 해석에 도움이 되는 것을 추가로 뽑아서 ‘增註’를 달도록 하였다. 따라서 『역학계몽집전』에는 기왕에 독립적으로 통행되던 주석들이 하나로 집대성되었다. 그런데 정조가 『역학계몽집전』이 『역학계몽부주』를 저본으로 삼는다고 밝혔지만 사실상 『역학계몽집전』은 『역학계몽요해』를 저본으로 하였다(도표 2).
『주역강의』는 정조가 1783년(정조 7) 抄啓文臣에 과하기 위해 易義條를 뽑아 만든 책으로, 1책 53장의 필사본이다. 당하관 중에서 유학자를 선발하여 초계문신이라 이름하고 학자들에게 문제를 제출케 하였다. 이는 호학하는 군주로서 문신들의 학문을 장려하는 뜻에서 이루어진 행사인데 이때 모두 문신들이 제출한 과제를 모아 평가하고 상벌을 실시한 것이다.
書類에는 『御製書傳條文』․『尙書講義』󰊱․『御定書傳人物類聚』․『尙書講義』󰊲 등이 있다. 『상서강의』󰊱는 정조가 1781년(정조 5)에 초계문신들에게 『상서』 중 의문 나는 곳 150조를 골라 풀이한 책이다. 『상서강의』󰊲는 정조가 李書九와 『상서』의 여러 편에 대해 질의하고 응답한 것을 엮은 책이다. 『어정서전인물유취』는 순조가 1801년(순조 1)에 朴準源, 金祖淳 등에게 書傳에 나오는 人物 88명의 略傳을 연대순으로 모아 엮어 刊行한 책이다. 『어제서전조문』은 정조가 1781년(정조 5)에 초계문신 洪履健 등에게 課題한 書傳의 의문점을 적은 책이다.
詩類에는 『詩經諺解』․『詩傳大全』 등이 있다. 『시경언해』는 시경에 토를 달고 언해한 책이다. 『시전대전』은 명나라 胡廣(1370∼1418) 등이 永樂年間(1402∼1424)에 칙명으로 편찬한 『오경대전』 중 『시전대전』을 간행한 책이다.
禮類에는 소학으로 『小學諸家集註』․『御製小學諺解』․『小學諸家集註增解』 등이, 예서로 『大明集禮』․『鄕禮合編』 등이 있다.
『소학제가집주』는 李珥가 『소학』에 여러 학자들의 설을 참고하여 편찬한 책이다. 이 책은 대학을 배우기 전에 초등교육용으로 펴낸 것이요, 또 규장각 소장본은 궁중교육용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역대왕의 手澤이 되어 서지상으로 귀중본이다. 『어제소학언해』은 영조가 1588년(선조 21) 교정청에서 간행한 『소학언해』를 명하여 다시 간행한 책이다. 율곡의 『소학집주』를 참조하여 다시 언해가 이루어진 것이다. 『소학제가집주증해』은 李遂浩가 19세기 초에 편찬한 책으로, 李珥가 편찬한 『소학제가집주』의 미진한 부분을 보충한 것이다. 이 책은 송환기의 서문을 제외하고는 『소학제가집주』(奎 11009)와 큰 차이가 없다.
『대명집례』는 明太祖가 徐一夔 등에게 命하여 중국 역대의 의례를 집대성한 책으로, 1692년(숙종 18)에 조선에서 다시 간행한 것이다. 『향례합편』은 정조가 1797년(정조 21)에 李秉模 등 규장각 閣臣들에게 명하여 향례에 관한 것을 모아서 엮은 책이다. 정조는 백성이 부모에게 효도하고 연장자를 공경함으로써 향촌의 상하 질서를 유지할 수 있고, 향촌 질서의 안정을 통해 국가의 기강을 확립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백성의 교화를 위한 교재로 『향례합편』을 편찬하였다. 그러나 『향례합편』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정조는 『소학집주』와 『오륜행실도』를 보급하여 백성들에게 유학의 기본 덕목을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향례합편』은 이 두 책을 충분히 익힌 다음에 학습하도록 조처하였다.
四書類에는 『大學章句大全』․『御定大學類義』․『論孟人物類聚』․『孟子諺解』․『御製孟子條問』․『中庸章句』 등이 있다.
『대학장구대전』은 명나라 胡廣 등이 勅命으로 찬한 『大學』의 주석서이다. 이 책은 『四書大全』의 하나인데, 『四書大全』은 1414년 胡廣․楊榮 등 39명의 학자가 편집에 착수하여 1년여에 걸쳐 완성하였다.
『어정대학유의』는 정조가 제왕학의 교과서로 편찬한 책이다. 정조는 1781년부터 1799년까지 송나라 주자의 『大學章句』와 眞德秀의 『大學衍義』, 명나라 丘濬의 『大學衍義補』의 주요 구절에 批點을 찍어 완성하였다. 원래 『大學衍義』와 『大學衍義補』를 합하면 200권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므로 정조는 『大學』의 원문을 기본으로 하면서 『大學衍義』와 『大學衍義補』에서 해당하는 내용을 선별하여 책을 만들었던 것이다.
『논맹인물유취』는 『論語』뿐만 아니라 『孟子』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행적을 간략히 정리해 놓은 책이다. 본문은 論語人物類聚와 孟子人物類聚 등 2부분으로 나뉘어 졌다. 기록 방식은 1인 1조의 형식으로 먼저 이름과 字號, 출신 지역, 나라 등을 간략하게 쓰고 『논어』와 『맹자』에 수록되어 있는 이들의 행적을 정리하였다.
『맹자언해』는 『孟子』의 원문에 한글로 音과 吐를 달아 諺解한 책이다. 『어제맹자조문』은 정조가 1782년에 孟子 중의 중요한 조목을 뽑아 의견을 적은 것을 모은 책이다. 이 책은 『맹자』 全14篇을 133개 조문으로 나누었는데, 정조의 학문이 어느 정도 완숙기에 이른 30대의 撰述로서 초학자가 읽을 문헌이라기보다는 전문적인 연구가들의 참고문헌이라 하겠다.
『중용장구』는 주자가 『예기』 49편의 한 편목인 중용을 따로 떼어 내어 33장으로 정리하고 서문과 주해를 붙인 책이다. 영조는 본서의 간행 경위와 의의를 설명하면서 지난 30여 년의 재위 기간을 반성하고, 三代의 도통을 잇고자 하는 의지를 천명하였다.

표제목 : [표 1] 오경백편의 내용과 편수

五經내용편수
필사본목판본
乾, 坤, 泰, 大有, 復, 繫辭專上下, 序卦傳上下77
虞書 : 堯典, 舜典, 大禹謨, 皐陶謨, 益稷夏書 : 禹貢商書 : 湯誥, 盤庚上中下, 說命上中下周書 : 洪範, 召誥, 無逸1212
國風 : 關雎, 葛覃, 鵲巢, 采蘩, 谷風, 簡兮, 定之方中, 淇奧, 氓, 緇衣, 女曰鷄鳴, 鷄鳴, 陟岵, 伐檀, 蟋蟀, 小戎, 蒹葭, 匪風, 下泉, 七月, 東山小雅:鹿鳴, 皇皇者華, 伐木, 天保, 出車, 南山有臺, 六月,車攻, 吉日, 鶴鳴, 白駒, 斯干, 無羊, 大東, 楚茨, 信南山, 浦田, 大田, 賓之初筵大雅:文王, 大明, 緜, 城樸, 旱麓, 思齊, 皇矣, 靈臺, 生民行葦, 旣醉, 公劉, 抑, 崧高, 蒸民, 韓奕, 江漢頌 : 維天之命, 天祚, 思文, 豐年, 敬之, 駉, 泮水, 閟宮, 那, 長發6667
春秋左氏傳魯取郜大鼎(桓 2), 諸侯伐楚(僖 4), 城濮之前(僖 28), 楚子問鼎(宣 3), 邲之戰(宣 12), 鞍之役(成 2), 鄢陵之戰(16), 穆叔如晉(襄 4), 諸侯伐齊(襄 18), 季札觀周樂(襄 29)1010
禮記 樂記, 大學 附章句序, 中庸 附章句序53
10099


 

표제목 : [표 2] 역학계몽요해와 역학계몽집전의 목차

역학계몽요해역학계몽집전
卷首御製易學啓蒙要解序(宣祖)易學啓蒙序(朱子)御製易學啓蒙要解序(宣祖)易學啓蒙序(朱子) 易學啓蒙集箋凡例 引用先儒姓氏
권1本圖書(要解/補解)本圖書(要解․增註/補解․傳疑․考異)
권2原卦畵(要解/補解)原卦畵(要解․增註/補解․傳疑․考異)
권3明蓍策(要解/補解)明蓍策(要解․增註/補解․傳疑․考異)
권4考變占(要解/補解)玉齋胡氏通釋附圖附筮儀考變占(要解․增註/補解․傳疑․考異)附筮儀
卷末易學啓蒙要解跋(崔恒)易學啓蒙要解跋(崔恒)學啓蒙集箋跋(徐命膺)


 

*김문식, 정조의 경학과 주자학, 문헌과해석사, 2000에서 재인용.

 

4. 유교사상

 

성리학은 조선왕조의 통치이념으로서 조선시대 유교사상의 주류를 이루어 왔다. 이후 5백년 동안 성리학은 절대적 권위를 지속하였고, 이 권위의 뒷받침 위에 조선왕조 군주의 지배체제가 확립되었다.
왕실 관련 유교정치 자료를 검토해보면, 강력한 왕권을 지향하는 군주인 영․정조대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內訓』을 제외하면 영조대에 9편, 정조대에 6편이 집중되어 있다. 물론 영조대 9편의 경우는 『女四書諺解』, 『永壽百世錄』을 제외하면 전대에 간행한 한 책이다. 마찬가지로 정조대 6편 중 『朱書百選』, 『五倫行實圖』, 『周公書』 등을 제외하면 전대에 간행한 책이다.
먼저 『내훈』을 살펴본다. 『내훈』은 성종의 어머니 昭惠王后(1437~1504, 仁粹大妃)가 부녀자의 훈육을 위해 편찬한 책으로, 중국의 『列女傳』․『小學』․『女敎』․『明鑑』 등에서 부녀자 교육에 필요한 내용들을 뽑아 편찬하였다.
영조대에는 『女四書』, 『여사서언해』, 『古鏡重磨方』, 『夙興夜寐箴註解』, 『政經』, 『種德新編』, 『종덕신편언해』, 『近思錄』, 『永壽百世錄』 등 9편이다.
『여사서』는 後漢 班昭의 『女誡』, 唐나라 宋若昭의 『女論語』, 明나라 仁孝文皇后의 『內訓』, 明나라 江寧人 劉氏의 『女範』 등 여성 수신서로서 전범이 될만한 책들을 한 권으로 편집한 여성 수신 교화서이다. 본래 『女四書』는 淸나라 王相이 편집하였는데, 조선에서는 영조가 李德壽에게 諺解를 달아 간행하도록 하였다.
『여사서언해』는 영조가 李德壽(1673~1744)에게 명하여 1737년(영조 13)에 교서관에서 4권 3책으로 간행한 책이다. 권1은 『女誡』, 권2는 『女論語』, 권3은 『內訓』, 권4는 『女範捷錄』 의 순서로 되어 있어 원전인 『女四書』의 권차와 달리 되어 있다. 이러한 차이는 저작의 연대순에 따른 것이다.
『古鏡重磨方』은 李滉(1501~1570)이 1607년(선조 40)에 古代 成湯의 <盤銘>에서 宋代 眞德秀의 <虛舟銘>에 이르기까지 銘, 箴, 贊 중에서 뽑아 編한 책이다. 내용은 古代의 聖主인 殷湯의 <盤銘>과 周武王의 <席四端銘> 등에서부터 唐宋의 名賢인 韓退之의 <五箴>, 程子의 <四勿箴>등 23人의 箴銘 76편을 수록하였다.
『夙興夜寐箴註解』는 盧守愼이 1568년(선조 1)에 송나라의 陳栢이 지은 『夙興夜寐箴』을 8장으로 나누고 주해한 성리학의 수신서이다. 『政經』은 송나라 眞德秀가 經書에서 정치에 필요한 名句를 집록하고, 또한 자신이 관직에서 經歷한 사항을 수록한 것이다. 『種德新編』은 金堉(1580~1658)이 소학을 읽고, 德을 함양시키기 위해 그 요령을 경전 중에서 뽑아 엮은 책이다. 내용은 上․中․下로 나누고, <釋疑錄>을 下에 부록하였다. 『종덕신편언해』는 金堉의 『種德新編』을 언해한 책이다. ‘種德’이란 덕을 심는다는 뜻으로 덕행의 모범이 될 만한 고인의 아름다운 행실과 일화를 모은 책이다.
『근사록』은 朱憙와 呂祖謙이 편한 『近思錄』(集解)을 조선에서 펴낸 책이다. 이 책은 성리학의 이념과 체계가 분명하게 나타나 있기 때문에 예로부터 성리학을 배우는 사람들의 필독서였으며, 일종의 철학 선집으로서 性理大全의 전형이 되기도 하였다. 주자학의 보급과 함께 학자들이 이 책을 존숭하여 四書, 小學과 함께 병칭하였다.
『永壽百世錄』은 英祖가 1772년(영조 48) 3월에 신하들에게 자신의 탕평책을 지지할 것을 다짐하는 글을 쓰게 하여 편집한 책이다. 당시 영조는 탕평을 반대하고 당파를 조성했다는 이유를 들어 영의정 金致仁 등을 축출한 다음 여러 신하들에게 탕평을 찬미하는 글을 짓게 하였다.
정조대에는 『敦孝錄』, 『朱書百選』, 『심경부주』, 『五倫行實圖』, 『周公書』, 『後自警編』 등 6편이다.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돈효록』은 朴聖源(1697~1757)이 『孝經』과 『西銘』을 비롯하여 經史와 여러 가지 文獻에서 孝에 관한 각종 敎訓과 故事를 뽑아 편찬한 책이다. 내용은 孝義, 孝敎, ”Ÿ事, 喪事, 奉祭, 孝感, 顯美, 繼述, 廣孝, 守身, 處變 등이다.
『주서백선』은 정조가 1794년(정조 18)에 주자의 문집에 실린 편지글 중에서 의미가 있는 것을 선별하여 편집한 책이다. 『주서백선』에 실린 주자의 편지는 전문이 실린 것이 아니라 흔히 있는 인사말이나 격식에 해당되는 부분을 삭제한 핵심내용을 간추린 것이며, 본문을 읽는데 참고되는 사항을 간략하게 頭注로 달았다. 주석은 수신자의 이름과 약력, 편지가 쓰여진 시기와 배경, 본문 중에 어려운 문구에 대한 해설 등을 담고 있다. 또한 본문의 처음에는 주자의 스승인 李侗의 글을, 마지막에는 주자의 제자인 黃幹의 글을 배치하여 주자의 학문이 이동→주자→황간으로 계승됨을 알 수 있도록 하였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활자본의 배포처를 완전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심경부주』는 宋나라의 眞德秀가 편찬한 『心經』에 明나라 程敏政이 주석을 달아 간행한 책이다.
『五倫行實圖』는 正祖가 1797년(정조 21)에 백성의 교화를 위해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를 합한 책이다. 『오륜행실도』는 중국과 조선에서 오륜의 실천에 모범을 보인 인물 가운데 150인을 선별하여 그 행적을 기록한 것으로 조선 전기에 편찬된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를 합하여 재정리한 것이다(표 3). 그런데 이 책에서는 해당 인물의 행적을 기록하고 노래한 한문 원문과 함께 한글 언해와 원문 내용을 요약한 삽화가 들어 배우지 못한 백성들이라도 책의 내용을 쉽게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하였다.

표제목 : [표 3] 삼강행실도․이륜행실도․오륜행실도의 내용

삼강행실도(수정본)이륜행실도오륜행실도
孝 子郭巨埋子․元覺警父(35인) 삭제(33인)
忠 臣枋得茹蔬(35인) →枋得不食(35인)
烈 女彌妻啖草(35인) →彌妻偕逃(35인)
兄 弟 盧操策驢(25인)삭제(24인)
附宗族 元伯同釁(7인)→張閏同釁(7인)
朋 友 (11인)(11인)
附師生 (4인)元定對榻 추가(5인)
105인47인150인


 

『오륜행실도』는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를 합한 것이지만, 단지 『삼강행실도』는 효자․충신․열녀가 각 110인씩 총 330인으로 구성된 세종대의 초간본이 아니라 이를 각 35인씩 총 105인으로 요약한 성종대의 수정본이었다. 이처럼 『삼강행실도』를 초간본이 아닌 수정본을 이용한 것은 정조의 의도가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예컨대 정조는 郭巨의 행적 이외에 노령의 할아버지를 내다버린 부친에게 경고를 한 元覺과 계모가 낳은 동생을 주인처럼 모신 盧操의 행적을 삭제했는데, 이들을 효나 우애를 실천한 모범적 사례로 다루기에는 너무 지나친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제목을 바꾼 경우도 세 곳이나 있다.
『오륜행실도』는 인쇄한 직후 관례에 따라 주요 관청과 문신, 편찬에 참여한 규장각의 각신과 초계문신들에게 배포하였다. 그리고 『향례합편』과 마찬가지로 서울의 5부, 팔도의 감영, 四都의 유수부, 330주현의 관리와 향교에도 각각 한 질씩 배포하였다. 『오륜행실도』의 배포처가 다른 책에 비해 많은 것은 『삼강행실도』가 3000질이라는 방대한 양이 인쇄되어 배포된 것에서 보듯 교화서를 많이 보급하려는 조선왕조의 전통을 따른 것이다.
『주공서』는 正祖가 1800년(정조 24)에 주나라의 제도와 문화를 이룩한 주공의 저작을 하나로 모은 일종의 전서다. 이 책에는 제일 먼저 周易 64괘의 爻辭를 수록하였다. 다음으로 상서에서는 주공이 직접한 말을 기록한 大誥․多士․無逸편과 사관의 기록이지만 그 내용의 대부분이 주공에게서 나온 洛誥․君奭․多方․立政편을 수록하였다. 마지막으로 주례는 그 진위 문제와 상관없이 ‘주례는 성인만이 만들 수 있다’는 정주의 발언을 근거로 하여 주공의 저작으로 여겼다. 심지어 한대에 만들어진 考工記까지도 大學 보망장처럼 주례의 冬官 부분을 보충해준다는 의미에서 함께 수록하였다.
『후자경편』은 金昌集(1648~1722)이 우리나라 賢士大夫의 碑志․野史․雜記 등에서 自警에 도움이 될 만한 사적을 뽑아 엮은 책이다. 내용은 學問․見識․器量․正心․檢身 등 50항목이 수록되어 있다.

 

5. 불교사상

 

조선시대의 불교는 숭유억불 정책으로 山中僧團의 불교이다. 규장각에는 왕실 관련 불교자료는 매우 적다. 곧 15세기 불경언해 자료인 『般若心經諺解』, 『永嘉大師證道歌南明泉禪師偈頌[諺解]』, 『佛說阿彌陀經諺解』 등 3種이, 『月印釋譜』, 정조가 직접 지은 『御製花山龍珠寺奉佛祈福偈』 1種이 있을 뿐이다.
먼저 『般若心經諺解』에 대해 고찰한다. 『般若心經諺解』은 세조가 무지한 승려들을 위해서 특별히 懸吐하여 내리고 孝寧大君과 韓繼禧 등에게 명하여 번역 간행하게 하였다고 한다.
현재까지 알려진 이 책의 판본은 네 종류이다. 1464년(세조 10)의 초쇄본과 이의 후쇄본(1495년), 그리고 복각본 두 가지로 곧 1553년(명종 8)의 황해도 黃州 深源寺板本과 1565년(명종 20)의 전남 淳昌 無量寺板本 등이다.
다음으로 『永嘉大師證道歌南明泉禪師偈頌[諺解]』은 唐나라 永嘉大師 玄覺(665∼713)의 語錄인 『證道歌』를 언해한 책이다. 조선의 선종에서도 『證道歌』는 매우 중시되었는데, 특히 세종은 문종과 수양대군[세조]에게 언해를 맡겼다.
『佛說阿彌陀經諺解』 세조가 정토에 대해 설명한 경전인 『佛說阿彌陀經』(또는 『아미타경』)에 한글로 구결을 달고 언해한 책이다. 『불설아미타경』은 부처가 祇園精舍에서 舍利佛 등을 위하여 西方의 아미타불과 그 국토인 극락세계의 공덕과 장엄을 이르고, 아미타불의 名號를 일심불란으로 부르면 극락세계에 태어나며, 六方의 많은 부처가 석가모니 부처의 말씀이 진실한 것임을 증명하고, 염불하는 중생을 부처가 護念함을 설한 것이다.
『月印釋譜』는 세조가 昭憲王后의 명복을 빌기 위해 한글로 된 석가의 일대기인 <釋譜詳節>을 지어 올리자 세종이 이를 보고 한글 樂章인 <月印千江之曲>을 지었는데, 이후 세조가 1495년 두 책을 합편하여 간행한 책이다. 이 책은 『석보상절』로 미루어서 모두 24권으로 추정되지만, 현재 전하고 있는 것은 중간본까지 합쳐도 완질이 되지 못한다.
이외의 불경자료는 정조가 직접 지은 龍珠寺의 祈福偈를 作帖으로 만든 『御製花山龍珠寺奉佛祈福偈』(奎 9988)가 있을 뿐이다. 책의 내용은 <初序>, <正宗>, <結偈>인데, 각기 다 5言 4句의 게문이 있고, 아울러 모두 해석이 첨부되어 있다.

 

6. 자료적 가치와 의미

 

조선시대에 국왕 및 왕실 가족이 撰한 서적, 임금의 명을 직접 받들거나 스스로 왕실을 옹호 또는 선양하는 서적 등은 왕실 학문의 수준뿐만 아니라 당대의 학문 수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들 서적에는 개별 국왕의 학문적 경향이나 당대의 정치․경제․사회적 상황을 포함하는 학문적 경향과 수준 등 다양한 정보가 담겨 있다. 아울러 국왕이 특정한 의도에서 지은 서적에도 정치적 배려는 물론이고 학문적 입장이 표명되어 있다.
왕실의 학문에서 다룬 규장각 소장 도서를 몇 개의 범주로 그 가치와 의미를 약술한다. 먼저 왕실도서목록은 숙종 때부터 왕실자료를 본격적으로 수합 정리하면서 목록작성의 단초를 열었다. 정조 때에는 왕실자료의 체계적 관리를 위해 奉謨堂을 설치하였다. 봉모당 이외에도 규장각의 西庫, 東二樓, 外奎章閣, 宙合樓, 書香閣 등에 왕실 관련의 자료를 수장하였다. 고종 때에는 帝室圖書館을 설립하고자 여러 전적을 수집하고 『帝室圖書目錄』을 작성하였다. 이후 일제의 강점으로 규장각이 폐지되고, 규장각도서는 조선총독부 취조국으로 인계되었다. 한편 조선시대에 규장각에 소장되었던 대표적인 자료목록으로는 『奉謨堂奉安御書總目』, 『奎章總目』, 『書香閣奉安總目』, 『奎章閣書目』 등이 있다.
다음으로 경서에는 유교의 기본 경전인 사서삼경에 대한 입장이 잘 드러나 있다. 특히 정조는 君師, 즉 군주이면서 학자였던 삼대 聖王들의 모습을 회복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유교경전에 대한 독자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여러 서적을 찬술 간행하였다.
성리학은 조선왕조의 통치이념으로서 조선시대 유교사상의 주류를 이루어 왔다. 이후 5백년 동안 성리학은 절대적 권위를 지속하였다. 따라서 왕권 강화 시기인 영․정조대에 성리학 관련 서적이 집중되는 일은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총 16편에서 영조대에 9편, 정조대에 6편이 있다.
조선시대에 국왕이 불교 관련 서적을 직접 諺解하거나 찬술하는 일은 숭유억불 정책과는 위배되는 일이다. 이에 역대 국왕 중에 불교 서적을 찬술한 경우는 거의 없다. 다만 국왕이 불교를 정치적 필요에 따라 수용하려는 경우가 보인다. 예를 들면 『御製花山龍珠寺奉佛祈福偈』는 정조가 불교세력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경우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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