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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장각 소장 宋, 元, 明初 刊本 조사보고서
작성자 옥영정 조회수 411
제목 저자 저자 소개
규장각 중국본도서 형성사 연구 연갑수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교수
규장각 소장 宋, 元, 明初 刊本 조사보고서 옥영정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문헌관리학과 교수
규장각 소장 귀중본 유서 및 총서 해제 연구 이종묵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규장각 소장 중국본 문집류 이창숙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규장각 소장 明末淸初 曆算書 박권수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학예연구사

규장각 소장 宋, 元, 明初 刊本 조사보고서

  • 옥영정(한국학중앙연구원 고문헌관리학과 교수)
  • 개 요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송, 원, 명간본은 『奎章閣圖書中國本綜合目錄』(1982)을 토대로 조사한 후 실사를 통해 수정, 보완할 결과 약 550여종이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 중 명대 이전에 간행된 귀중본인 송본이나 원본 또는 이들 송원본을 바탕으로 명대에 수보한 체수본 11종, 明 隆慶 이후에 간행된 간본은 약 328종으로 조사되었다. 미조사된 간본 중 정확한 간행시기를 알 수 없는 간본만 100여개 이상으로 명 융경이전에 간행된 명간본의 수량은 정확한 통계를 내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이 보고서에는 우선 실사한 자료 중 융경이전에 간행된 간본을 대상으로 하되 융경이후의 간본 중에서도 주제별로 묶을 수 있는 자료나 국내외에 현존본이 드문 경우 또는 동종서로서 이본간의 차이가 두드러지는 경우에는 특별히 포함시켰다.
     이렇게 선정한 자료는 명대 이전의 간본 9종과 명간본 60종으로 자세한 수록범위는 다음과 같다. 먼저 명대 이전의 간본으로는 송원체수본 國朝諸臣奏議(想白古貴 952.02J569g), 古史(奎中 5540) 등의 2종, 원간본 通志略(古貴 952.01-J954t), 大方等大集經(古貴 294.3358-B872d), 大學衍義(想白古貴 181.1181-J562d-v.21/22), 大學衍義(想白古貴 181.1181-J562d-v.43) 등 4종, 원명체수본 五代史記(奎 25002), 通志略(想白古貴 952.01-J462t-v.199), 玉海(想白古貴 039.51-W1842o) 등 3종을 수록하였다. 여기서 원명체수본의 경우에는 먼저 간행한 원간본이 포함되어 있어 명대 이전의 간본으로 포함하였다. 이와 같은 체수본의 경우에는 여러 조대를 거쳐 수보한 판이 혼재되어 있어 정확히 어느 시기라고 규정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각 판본을 감별하는 데는 보다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추후 지속적으로 연구가 진행될 경우 체수본의 판형을 지닌 간본들이 더 많이 나타날 것이라 여겨진다. 이 밖에도 비록 보고서에는 포함하지 않았으나 송원간본 낱장을 모아 후대에 첩으로 성책해놓은 宋元版本拾葉(想白古貴 093-So58)은 송원본의 서지학적 연구에 있어 귀중한 자료이다.  다음으로 명간본 63종에는 경부에 27종, 사부에 21종, 자부에 8종, 집부에 7종의 서적을 수록하였다. 여기에 수록된 명간본은 다음에 나오는 특징에서 큰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먼저 명초 영락연간에 內府에서 간행한 사서대전, 오경대전 및 성리대전을 대표적으로 손꼽을 수 있다. 이들 간본은 시기적으로도 귀중본에 속할 뿐만 아니라 명초본 그 중에서도 내부간본의 특징과 명초 장정의 변천과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뿐만 아니라 선초에 유입된 명초본이 조선간본에 어떻게 수용되고 변용되어 갔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우 소중한 자료이다. 다음으로 성화, 정덕, 가정연간에 남경의 국자감에서 이루어진 二十四史의 간행과 수보 및 만력연간에 북경국자감에서 간행한 十三經註疏의 간행을 들 수 있다. 이를 통해 남북 국자감간본의 판식 특징, 국자감 간본 내에서의 선후간본 간의 구별 및 당시 국자감에서 서적을 간행하던 일련의 과정들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보고서의 체재는 주제별 분류를 따르지 않고 먼저 송, 원, 명의 시기별로 구별한 후에 경ㆍ사ㆍ자ㆍ집의 사분법으로 세분하였다. 개별 서적의 해제방식은 먼저 해당 서적에 대한 간략한 설명 뒤에 소장본의 형태서지사항 및 장정, 묵서기록, 장서인 등의 특징적인 요소를 기술하였다. 다음으로 이들 내용을 통해 해당 서적의 간행시기를 유추한 후, 규장각본과 동일한 서적이 소장된 기관을 조사하였다. 끝으로 권수 및 간기, 특징적인 판식을 보이는 부분을 사진자료로 첨부하였다.

    1. 宋元遞修本 ▲목차

    가. 古史(奎中 5540-v.1-16)

     이 책은 北宋의 蘇轍(1039-1112)이 지은 紀傳體의 역사서이다. 전체적인 내용은 司馬遷의 『史記』의 내용과 유사하며 그 체계도 동일하다. 수록된 시기는 三皇으로부터 秦始皇까지의 역사이며, 소철은 이 시기를 7本紀, 16世家‚ 37列傳으로 서술하였다. 宋代에는 司馬光(1019-1086)의『자치통감』이후로 많은 유학자들이 史書에 관심을 가지고 저술을 하였으며, 소철의 『史記』는 그 중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이다.
     소장본은 60卷 16冊으로서 송원체수본으로 추정된다. 개장하여 4針眼으로 장정되어 있으며 본문에는 충식에 의한 구멍이 있다. 인쇄에 있어서는 동일한 판이 아닌 補板의 사용이 많이 발견되고, 보판에서는 서체가 차이나는 것이 발견된다. 또한 인출과정의 실수 등으로 인하여 본문에 번짐이나 뭉개짐, 겹침 등이 많으며, 일부 보판의 경우는 종이의 색이 확연히 차이나고 대부분의 광곽을 먹으로 덧칠하여 선명하게 보여서 체수본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다.

    古史(奎中 5540-v.1-16)

    古史(奎中 5540-v.1-16)

    나. 國朝諸臣奏議(想白古貴 952.02J569g)

     이 책은 宋의 趙汝愚(1140-1196)가 北宋의 243명 관원의 1631편의 奏議를 모은 방대한 양의 서적이다. 본래 150卷에 130여만자의 양으로 제작된 이 책의 소장본은 卷 41과 42의 2冊만이 남아있는 零本으로 ‘上仁宗論水災 係第二狀’~‘鄭獬 上英宗應詔論水災’(卷41), ‘上英宗應詔論水災’~‘上神宗答詔論彗星’(卷42)의 내용이다.
     형태는 上下單邊 左右雙邊이며, 11行 23字에 上下下向黑魚尾의 구조로 되어 있다. 宋代에 제작된 서적으로 추정되며, 版心의 상단에는 각 面의 字數가 기록되어 있다. 또한 본문에는 목판이 쪼개져 발생하는 본문의 깨짐이 발견되며 인쇄상태가 고르지 못하다. 국내ㆍ외에 전래가 드문 책으로 송판을 기본으로 원대 이후에 보완해서 인쇄한 체수본으로 판단된다.

    國朝諸臣奏議
    (想白古貴 952.02J569g)

    國朝諸臣奏議
    (想白古貴 952.02J569g)

    2. 元刊本 ▲목차

    가. 大學衍義(想白古貴 181.1181-J562d-v.43)

     南宋의 眞德秀(1178-1235)가 기존의 『大學』에 『資治通鑑綱目』을 접목시켜 제작한 서적으로 국가를 다스리는 제왕학을 중심으로 하는 서적이다. 『大學』은 본래 『禮記』의 한 편명이다. 기존의 경전이 宋代에 들어 13經의 형태를 갖추게 되고 性理學이 발전하게 되면서 경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들이 등장하였다. 朱熹(1130-1200)는 이 중에서도 『論語』, 『孟子』, 『中庸』,『大學』의 4종의 서적을 『四書集注』의 형태로 구체화시킴으로서 儒學에 있어 그 지위가 격상되었다. 이에 따라 『大學』에 있어서도 많은 서적들이 등장하였으며, 진덕수의 경우에는 經과 史를 합치는 시도를 하여 실제 정치에서 제왕학을 실현하는 것을 그 목표로 하였다. 따라서 중국뿐만이 아니라 성리학이 정착된 이후 한국에서도 조선시대에 널리 간행되었다.
     『대학연의』는 시대별로 그 판형과 형태에 있어 차이가 나는데, 宋代에는 10行 20字, 9行 17字, 元代에는 9行 17字와 11行 21字의 판본으로 크게 구분해 볼 수 있다. 이 책은 11行 21字 형태의 元代 간행서적임을 알 수 있다.
     소장본은 전체 43卷 12冊 중에서 卷43만이 있는 零本이다. 현재 규장각에는 卷43과 卷21,22(181.1181-J562d-v.21/22) 2종의 元刊本 『大學衍義』가 존재한다. 광곽은 上下單邊 左右雙邊의 형태이며, 黑口, 上下內向黑魚尾의 특징을 지닌다. 본문의 내용은 齊家之要四-敎戚屬의 부분이다. 권말에는 타원형의 ‘乾隆御覽之寶’와 정방형의 ‘天祿琳琅’ 2종의 인장이 날인되어 있다.

    大學衍義
    (想白古貴 181.1181-J562d-v.43)

    大學衍義
    (想白古貴 181.1181-J562d-v.43)

    나. 大學衍義(想白古貴 181.1181-J562d-v.21/22)

     전체 43卷 12冊 중에서 卷21~22만이 있는 零本이며, 181.1181-J562d-v.43의 『大學衍義』와는 동일한 판본이다. 광곽은 上下單邊 左右雙邊의 형태이며, 黑口, 上下內向黑魚尾의 특징을 지닌다. 본문의 내용은 格物致知之要二-辨人材(聖賢觀人之法)의 부분이다. 권말에는 정방형의 ‘正文齋藏’ 인장이 捺印되어 있다. 또한 권말에는 ‘校正 翁常’이라는 교정자의 기록이 인쇄되어 있다.

    大學衍義
    (想白古貴 181.1181-J562d- v.21 / 22)

    大學衍義
    (想白古貴 181.1181-J562d- v.21 / 22)

    다. 通志略(古貴 952.01-J954t-v.16/17)

     南宋 鄭樵(1103-1162)가 저술한 백과사전식의 서적이다. 정초는 興化郡 莆田(복건성 지방) 사람으로 일찍이 30여년간을 독서에 전념하여 夾漈先生이라 일컬어졌다. 후에 관직은 樞密院의 編修官이 되었다. 이 책은 정초가 1161년에 완성한 것으로 紀傳體의 형식을 취하여 本紀 18卷, 年譜 4卷, 略 52卷, 世家 3卷, 列傳 115卷, 載記 8卷으로 구성되어 있다. 『通志略』이라고 하는 것은 民族, 六書, 七音, 天文, 地理, 都邑, 禮, 諡, 器服, 樂, 職官, 選擧, 刑法, 食貨, 藝文, 校讎, 圖譜, 金石, 災祥, 昆蟲, 草木의 20종류의 ‘略’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기존의 紀傳體에서 ‘志’로 표기했던 것을 ‘略’으로 개칭한 것으로 氏族, 六書, 七音, 都邑, 校讎, 圖譜, 金石, 昆蟲, 草木는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부분이다. 정초 자신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 바로 ‘略’부분으로서 이후 『通志略』이라는 별도의 단행본으로 등장하였다. 소장본은 表題만이『通志略』일뿐 실제 내용은 『通志』이며 卷103, 104에 해당하는 <列傳>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규장각 소장 『通志略』은 두 종류가 있으며‚ 모두 零本이다. 이 책은 上下單邊 左右雙邊, 11行 23字, 上下內向黑魚尾의 형태이며, 元代에 간행된 것으로 판단된다. 版心의 상단에는 각 面의 字數가 기록되어 있다. 개장하여 5針眼으로 裝幀되어있다.

    通志略
    (古貴 952.01-J954t-v.16/17)

    通志略
    (古貴 952.01-J954t-v.16/17)

    라. 大方等大集經(古貴 294.3358-B872d-v.20)

     이 책은 대승 불교의 반야 空 사상에 따라 法相‚ 法數‚ 法寶 등을 비롯하여 대승 보살이 닦아야 할 불도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 경전이다. 梵語로는 ‘Mahā-saṃni-pata-sūtra’로 불리는 이 경전에서 大方等은 대승경전을 총칭하는 말이고, 大集은 크게 모아놓았다는 의미이다. 密敎적인 요소가 많은 이 책은 11품과 6분으로 되어 총 60卷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장본은 제 20권에 해당되는 <寶幢分中魔調伏品>만이 남아 있으며 서문, 발문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히 언제 제작되었는지는 추정하기 어렵다. 折帖裝의 형태인 이 책은 총 43折 88面으로 구성되어 있다. 卷首에는 ‘大方等大集經 卷第二十地 新羅國四’라고 기록되어 있다. 본문의 절첩부분은 대부분이 닳아있어 후대에 종이를 덧대 보존처리를 해 놓았다.

    大方等大集經 (古貴 294.3358-B872d-v.20)

    3. 元明遞修本 ▲목차

    가. 玉海(想白古貴 039.51-W1842o-v.79/81)

     南宋의 王應麟(1223~1296)이 편찬한 類書로서 21部, 250여 子目, 200卷으로 구성된 거질의 책이다. 왕응린의 자는 伯厚이고 호는 深寧居士이다. 고금의 역대 詩文, 故事등을 각 部의 체제로 분류하였다. 이 책에서는 특히 인용문의 출전을 밝히고 있어 目錄學뿐만 아니라 逸失된 서적을 연구하는 데에도 많은 참고가 된다. 『玉海』는 이후 왕응린의 손자인 王厚重이 편차를 정리하여 교정하여 보충을 하였다.
     소장본은 元代에 간행한 판본을 바탕으로 명 초기에 인쇄한 체수본으로 추정되며 형식은 四周單邊, 10行 20字에 上下內向黑魚尾이다. 版心의 상단에는 ‘正德元年補刻’, ‘正德二年補刻’이 쓰여진 판과 아무 기록이 없는 판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正德 2年(1507)이후에 책이 인쇄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판은 원판이며, 이후 지속적으로 補板이 거듭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일부 본문에서는 목판이 쪼개져서 갈라진 흔적이 그대로 나타나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의 목판의 제작연대가 인출당시 이미 오래 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처음의 장정은 포배장이었을 것으로 판단되지만 5針眼의 선장으로 개장되어 있으며, 현재 卷79~81만이 있는 零本이다.

    玉海
    (想白古貴 039.51-W1842o-v.79/81)

    玉海
    (想白古貴 039.51-W1842o-v.79/81)

    나. 五代史記(奎 25002)

     五代十國의 역사에 관해 歐陽脩가 편찬하고 徐無黨(1024-1086)이 주석을 가한 기전체 사서이다. 일명 『新五代史』라고도 한다. 규장각 소장본은 74卷 10冊의 완질본으로 일반적으로 上下單邊 左右雙邊 半郭 21.6 x 15.8 cm, 有界, 10行22字 註雙行, 上下花口, 上下下向黑魚尾 ; 27.5 x 18.3 cm의 판식을 지니고 있으나, 간혹 上下向黑魚尾로 이루어진 판식도 보인다. 판심 상상비에는 글자수(四, のメ 등)가 판각되어 있고, 하상비에는 각수명이 새겨져있다. 表題와 版心題는 모두 五代史로 되어있고, 卷首에 建安 陳師錫(1057-1125)이 지은 五代史記序와 五代史記目錄이 수록되어 있다. 卷74末에 宗文書院이라는 간행처가 기록되어 있다. 종문서원은 원나라 때의 서원으로 본서 이외에도 『經史證類大觀本草』를 간행하기도 했다. 규장각소장본은 종문서원에서 간행했던 당시의 元版本과 명초에 일부를 수보한 明版本이 혼재되니 元明遞修本으로 추정된다. 명대의 장정 형식이 남아있으며 장서인은 “서울大學校圖書”만이 날인되어 있다.

    五代史記(奎 25002)

    五代史記(奎 25002)

    五代史記(奎 25002)

    五代史記(奎 25002)_元版 刊記

    다. 通志略(想白古貴 952.01-J462t-v.199)

     규장각에 소장된 두 종류의 通志略 중에 원명체수본으로 1책 零本이다. 上下單邊 左右雙邊, 9行 21字, 上下下向黑魚尾의 형태이며, 元代에 제작된 것으로 판단된다. 版心의 상단에는 각 面의 字數가 기록되어 있고 일부 보판한 “成化十年”이라는 판각년도의 기록이 있어서 이후에 인쇄되었음을 알 수 있다.

    通志略
    (想白古貴 952.01-J462t- v.199)

    通志略
    (想白古貴 952.01-J462t- v.199)

    4. 明刊本 ▲목차

    가. 經部

     1) 周易[傳義](奎中 3458)
     宋 程頤의 傳과 朱子의 本義가 수록되어 있는 주역의 주석서이다. 규장각 소장 『周易[傳義]』는 2종(奎中 3458, 奎中 5541)이 있으며, 두 종 모두 명대에 간행된 중국본이다. 그 중 본서는 10卷 6冊으로 圖, 四周雙邊 半郭 21.8 x 15.2 cm, 有界, 8行14字 註雙行, 上下大黑口, 上下下向黑魚尾 ; 27.2 x 17.8 cm의 판식을 지니는 명초판본이다. 卷首題는 周易이며 表題와 판심제는 易傳義이다. 장서인은 ‘弘文館, 帝室圖書之章, 朝鮮總督府圖書之印, 京城帝國圖書章, 서울大學校圖書’가 날인되어 있다. 元符2(1099)년에 程頤가 작성한 易傳序가 있다. 이 책의 간행시기를 알려주는 간기가 없어 정확한 시기를 파악할 수는 없으나, 전형적인 명대 내부각본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명대 내부간본인 正統12(1447)年에 간행된 司禮監刊本과 비교한 결과 항자수와 판형은 유사하나 서체에 큰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서체 및 지질의 특성으로 보아 명초(1447년 이후)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간본은 또한 奎中 5541의 일부를 번각한 것으로서 서체와 목리의 깨짐 현상 등의 대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奎中 3458_序

    奎中 3458_卷1

    〈司禮監刊本과의 비교〉

    正統12(1447)年刊 司禮監刊本1)

    奎中 3458

     2) 周易[傳義](奎中 5541)
     宋 程頤의 傳과 朱子의 本義가 수록되어 있는 주역의 주석서이다. 규장각 소장 『周易[傳義]』는 2종(奎中 3458, 奎中 5541)이 있으며, 두 종 모두 명대에 간행된 중국본이다. 그 중 본서는 8卷 5冊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圖, 四周雙邊, 半葉匡郭:22×15.1 cm, 有界, 8行14字, 大黑口, 上下黑魚尾 ; 31.6 x 19.4 cm의 판식을 지닌 명판본이다. 表題는 易傳義이며, 版心題는 易傳義이다. 元符2(1099)년에 程頤가 작성한 서문이 있다. 장서인은 ‘弘文館, 帝室圖書之章, 朝鮮總督府圖書之印, 京城帝國圖書章, 서울大學校圖書’가 날인되어 있다. 이 책을 저본으로 奎中 3458을 번각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 책 역시 전형적인 명대 내부간본의 판형을 지니고 있다. 서체와 지질 등의 특징으로 보아 명초(1447년 이후)에 간행된 간본으로 추정된다.

    奎中 3458

    奎中 5541

     3) 新刊官板周易本義(奎中 4339)
     南宋의 朱熹(1130-1200)가 지은『周易』에 대한 註釋書이다. 이 책은 4卷 2冊의 完帙本으로 圖, 四周雙邊 半郭 15.2 x 12.6 cm, 無界, 11行23字, 魚尾無 ; 26.2 x 16.8 cm의 판식을 지니는 명A간본이다. 表題는 周易本義이며, 版心題는 一府易經本義이다. 권수에 總目과 周易朱子圖說이 수록되어 있고, 권말에는 “萬曆庚子(1600)孟春月書林詹霖宇梓行”이라는 간행기록이 담긴 목기가 보인다. 이를 통해 만력28년에 첨림우라는 서점에서 간행한 방각본임을 알 수 있다.

    奎中 4339

    奎中 4339

    奎中 4339

    奎中 4339

     4) 尙書註疏(奎中 4144)
     唐 孔潁達이 『尙書』에 대해 주해한 『尙書註疏』이다. 본서는 20卷 6冊의 完帙本으로 上下單邊 左右雙邊 半郭 21.6 x 14.2 cm, 有界, 9行21字 註雙行, 上花口, 上下向黑魚尾 ; 27.7 x 17.3 cm의 판식을 지니는 명말간본이다. 表題는 十三經註琉이며 版心題는 書疏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孔潁達이 지은 尙書正義序가 보이며 版心 上象鼻에 ‘萬曆十五年刊’이라는 간행연대가 판각되어 있다. 또한 각 권수면 2-3행에는 國子監祭酒인 李長春 또는 田一儁과 司經局 洗馬管 司業인 盛訥이 교정한 기록이 보인다. 북경국자감에서는 만력14-21(1581-1588)년 사이에 十三經註疏를 대대적으로 간행하는데 이 책이 바로 당시 간행했던 13경주소본의 일부로서 만력15년에 교정․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장서인으로는 “弘文館, 學部圖書, 編輯局保管, 朝鮮總督府圖書之印, 京城帝國大學圖書章, 서울大學校圖書”가 날인되어 있다. 동일본이 고려대 화산문고에 『十三經註疏』의 일부로서 포함되어 있다. 본서와 단행본으로는 中國 清華大學圖書館, 上海圖書館, 上海博物館, 山東省圖書館, 南京大學圖書館, 浙江圖書館 등 다처에 소장되어 있다.

    奎中 4144

    奎中 4144

     5) 書[集傳](奎中 4192)
     南宋 蔡沈(1167-1230)이 지은 『尙書』註解書이다. 규장각 서지사항에는 제목이 『書傳大全』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권수제에 의거해 『書[集傳]』으로 수정하였다. 본서는 卷4-6만이 남아있는 3冊의 零本으로, 모두 四周雙邊 半郭 22 x 15.1 cm, 有界, 8行14字 註雙行, 上下大黑口, 上下下向黑魚尾 ; 30.2 x 18.8 cm의 판식을 지닌 명초에 간행된 內府刊本이다. 卷首題는 書, 表題와 版心題는 書傳, 卷末題는 書序이다. 장서인은 ‘弘文館, 朝鮮總督府圖書之印, 京城帝國大學圖書章, 서울大學圖書’가 날인되어 있다. 동일한 판식을 지닌 정통12년(1447) 간행의 사례감간본에 비해 목리의 깨짐이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후쇄본으로 추정된다. 이 책의 동일본은 대만 國家圖書館, 國立古宮博物院에 다종이 소장되어 있다.

    奎中 4192_卷4

    奎中 4192_卷5

     6) 書經大全 (古貴 181.112-H65s)
     明 胡廣(1369-1418) 等이 성조의 명을 받아 편찬한 서경의 주석서이다. 본서는 제1冊(55張)만이 남아있는 零本으로 圖, 四周雙邊 半郭 19.1 x 12.7 cm, 有界, 11行18字, 黑口, 上下下向黑魚尾 ; 23.3 x 14.2 cm의 판식을 지니는 명간본이다. 전체적인 판식은 원간본과 매우 유사하며 규장각 소장 명간본인 奎中 168과는 삽도 및 체재에 있어 다소 차이를 보인다. 장서인으로는 “金元龍, ?世家, 李?君美”가 날인되어 있다. 지질 및 판식으로 보아 명초에 간행된 간본으로 추정된다.

    古貴 181.112-H65s_凡例

    古貴 181.112-H65s

     7) 書傳大全(奎中 168)
     明 胡廣(1369-1418) 等이 성조의 명을 받아 편찬한 서경의 주석서이다. 이 책은 오경대전의 일부로서 사서대전과 성리대전과 함께 영락12년(1414)에 편찬에 착수하여 영락15년(1417)에 간행이 완료되었다. 규장각에는 본서와 동일본(奎中 25013)이 1종 소장되어 있으며 모두 명대에 간행한 內府刊本이다. 본서는 10卷10冊으로 모두 圖, 四周雙邊 半郭 25.7 x 16.8cm, 有界, 10行22字, 上下大黑口, 上下內向黑魚尾 ; 35.4 x 21.6cm의 판식을 지닌 명초간본이다. 表題, 卷首題, 版心題, 書根題가 모두 書傳大全으로 동일하다. 장서인은 “李夏坤, 帝室圖書之章, 朝鮮總督府圖書之印, 京城帝國大學圖書章, 서울大學校圖書”이 날인되어 있다. 이 책과 동일한 서적이 臺灣國家圖書館, 臺灣國立古宮博物院, 美國 Princeton 대학東亞圖書館과 美國國會圖書館 등에도 남아있다.

    古貴 168

    古貴 25013

     8) 書傳大全(奎中 25013)
     明 胡廣(1369-1418) 等이 성조의 명을 받아 편찬한 서경의 주석서이다. 이 책은 오경대전의 일부로서 사서대전과 성리대전과 함께 영락12년(1414)에 편찬에 착수하여 영락15년(1417)에 간행이 완료되었다. 규장각에는 본서와 동일본(奎中 25013)이 1종 소장되어 있으며 모두 명대에 간행한 內府刊本이다. 본서는 제1冊[범례, 목차]이 누락된 9冊의 落帙本으로 四周雙邊 半郭 27.0 x 17.8 cm, 有界, 10行 22字, 黑口, 上下內向黑魚尾 ; 36.2 x 22.0 cm의 판식을 지닌 명초간본이다. 수입당시의 포배장이 그대로 남아있어 명초의 장정형식을 살피는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또한 卷10末에 書序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는 국내의 내각장판본과 체재 및 내용의 차이를 보이고 있어 국내에서의 오경대전의 변용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 여겨진다. 題簽題, 卷首題, 版心題가 모두 書傳大全으로 동일하다. 장서인은 “서울大學校圖書”만이 날인되어 있다. 목리의 깨짐현상을 볼 때 奎中 168보다 더 이전에 인출된 간본으로 추정된다. 이 책과 동일한 서적이 臺灣 國家圖書館, 臺灣 國立古宮博物院, 美國 Princeton 대학東亞圖書館과 美國國會圖書館 등에도 남아있다.
     9) 詩傳大全 (想白古貴 181.113-H65s)
     明 胡廣(1369-1418) 等이 성조의 명을 받아 편찬한 시경의 주석서이다. 이 책은 오경대전의 일부로서 사서대전과 성리대전과 함께 영락12년(1414)에 편찬에 착수하여 영락15년(1417)에 간행이 완료되었다. 본서는 卷16-17의 1冊만이 남아있는 零本으로 모두 2卷1冊 : 四周單邊 半郭 25.4 x 16.9 cm, 有界, 10行22字, 上下黑口, 上下內向黑魚尾 ; 33.4 x 21.0 cm의 판식을 지닌 명초에 간행된 內府刊本이다. 表題는 詩傳이며, 판심제는 詩傳大全이다. 전표지 裏面에 “庚辰五月二十日金健熙終書”, “冊主 朴廷梧", "劉泰晃再讀終”, “庚寅十月初一日前川面”, “辛巳十一月初六日公西固寧淸眞■”의 묵서기록과 제1장 하단에 “贍學庸” 장서기가 남아있다. 간기가 없어 정확한 간행시기를 확인할 수는 없으나 판형으로 보아 內府에서 간행된 간본으로 추정된다. 內府刊本은 이 밖에도 현재 臺灣 國家圖書館과 國立故宮博物院에 소장되어 있다.

    想白古貴 181.113-H65s

    想白古貴 181.113-H65s_卷16

     10) 詩傳大全(奎中 4128)
     明 胡廣(1369-1418) 等이 성조의 명을 받아 편찬한 시경의 주석서이다. 이 책은 오경대전의 일부로서 사서대전과 성리대전과 함께 영락12년(1414)에 편찬에 착수하여 영락15년(1417)에 간행이 완료되었다. 본서는 5冊의 낙질본으로 v.1-4와 v.5의 2종의 판으로 구성되어있다. v.1-4는 4책으로 圖, 四周雙邊 半郭 25.8 x 16.8cm, 有界, 10行22字, 上下大黑口, 上下黑魚尾; 35.2 x 21.7 cm의 판식을 지니는 명대에 간행된 내부간본이다. 이 중 v.5는 v.2와 동일본으로 전체 세로 크기가 21.1 cm로 약간 작을 뿐 판식 또한 동일하다. 그러나 목리의 깨짐현상으로 볼 때 v.5가 v.2에 비해 이후에 인출된 후쇄본으로 여겨진다. 모두 “弘文館, 朝鮮總督府圖書之印, 京城帝國大學圖書章, 서울大學校圖書”이라는 장서인이 날인되어 있으며, 수입당시의 표지 및 포배장의 흔적을 살필 수 있다.

    v.1-4와 v.5

    v.2와 v.5

    포배장의 흔적

    奎中 4128

     11) 春秋公羊傳(奎中 3124)
     戰國시대 齊나라의 公羊高가 지은 『春秋』에 대한 解說書이다. 본서는 모두 3冊으로 四周單邊, 無界, 9行19字, 上花口, 無魚尾 ; 26.0 x 16.8cm의 판식을 지니는 명말간본이다. 表題는 春秋이며 版心題는 春秋公羊傳이다. 본문에는 圈點이 欄上에는 頭註가 판각되어 있다. 卷首에 天啓元年(1621)에 閔齊伋이 지은 春秋公羊傳攷가 있다. 장서인은 “摛文院, 帝室圖書之章, 朝鮮總督府圖書之印, 京城帝國大學圖書章, 서울大學校圖書”가 날인되어 있다.

    奎中 3124

    奎中 3124

     12) 春秋左傳釋義評苑(奎中 4497)
     明 王錫爵(1534-1614)이 편집한 『春秋』의 해설서이다. 본서는 19冊(落帙本) : 四周雙邊 半郭 23.4 x 14.3cm, 有界, 10行19字, 上下花口, 上下向黑魚尾(上下向白魚尾混入) ; 26.7 x 16.9 cm의 판식으로 이루어진 명말간본이다. 表題는 左傳, 版心題는 春秋左傳釋義, 傳釋이며 欄上에 頭註가 판각되어 있다. 장서인은 “內閣, [帶方?尹, 兀/兀衢, 虛白 等], 京城帝國大學圖書章, 서울大學校圖書”가 날인되어 있다. 萬歷18年(1590) 嘉賓堂 간본이 河北省博物館 , 陝西省圖書館, 湖北省圖書館, 四川省圖書館 등에 소장되어 있으며, 본서 또한 版心 下象鼻에 ‘嘉賓堂’이라고 판각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만력연간 嘉賓堂에서 간행한 간본임을 알 수 있다.

    奎中 4497

    奎中 4497

     13) 春秋胡傳(奎中 4174)
     宋 胡安國(1074-1138년)이 편찬한 『春秋』에 대한 註釋書이다. 본서의 서명은 『奎章閣圖書中國本綜合目錄』에서는 『春秋』로, 해제에서는 『春秋胡氏傳』으로 되어 있으나 본 해제에서는 『春秋胡傳』으로 수정하였다. 본서는 30卷 5冊의 完帙本으로 圖, 四周雙邊 半郭 21.8 x 15.2cm, 有界, 8行14字 註雙行, 大黑口, 上下下向黑魚尾 ; 27.3 x 18cm의 판식을 지니는 명간본이다. 表題는 胡傳春秋이며, 卷首題는 春秋이다. 권수에는 春秋胡傳序, 春秋魯公世次圖, 春秋列國圖가 수록되어 있다. 본문에 圈點이 판각되어 있고 전형적인 司禮監刊本의 판형이다. 장서인은 “弘文館, 朝鮮總督府圖書之印, 京城帝國大學圖書章, 서울大學校圖書”가 날인되어 있다. 이 책은 正統12(1447)年에 司禮監에서 간행한 간본과 동일하며 목리의 깨짐 등으로 미루어 정통연간 이후에 인출한 명 중기간본으로 추정된다. 동일본이 臺灣 國立故宮博物院 등에 소장되어 있다.

    春秋胡傳(奎中 4174)

    春秋胡傳(奎中 4174)

    春秋胡傳(奎中 4174)

    國立故宮博物院(故殿013519-013522)

     14) 春秋經傳集解(奎中 3360)
     晉 杜預가 지은 『春秋左氏傳』의 주석서를 토대로 明代에 穆文熙가 編纂하고 右星, 沈權 등이 校閱한 책이다. 본서는 30卷 16冊의 完帙本으로 圖, 四周雙邊, 有界, 上下二段 9行20字 註雙行, 下花口, 上下向黑魚尾 ; 26.8 x 16.6 cm의 판식을 지니는 명말간본이다. 판형은 상하2단으로 구분하여 上段에는 두주를, 下段에는 본문을 수록하였다. 본문에는 또한 판각한 圈點과 필사한 朱色의 批點이 보인다. 表題는 春秋左傳評林이며, 表題는 新刻官板春䆋左傳評林으로 되어 있다. 표제면에는 이 외에도 “萬曆歲次戊子(1588)孟䆋世德堂梓”라는 간기가 수록되어 있다. 版心 下象鼻에는 한 장에 수록된 글자수 또는 각수명을 판각하였다. 이상의 내용을 통해 이 책은 만력16년에 세덕당이라는 서점에서 간행한 방각본임을 알 수 있다. 장서인은 권수에 “文獻之章, 帝室圖書之章, 朝鮮總督府圖書之印, 京城帝國大學圖書章, 서울大學校圖書”가, 권말에 “春坊內部之章, 海東靑丘”가 날인되어 있다. 동일한 간본이 한국한중앙연구원 장서각에도 소장되어 있다.

    奎中 3360

    奎中 3360

    奎中 3360

    奎中 3360

     15) 周禮註疏(奎中 2783의2)
     漢 鄭玄이 註를 달고 唐 賈公彦이 疏를 붙여 편찬한 『周禮註疏』에 대해 明 曾朝節(1534-1604), 劉應秋(1547-1620) 등이 왕명을 받아 교정, 간행한 것이다. 본서는 42卷 13冊의 완질본으로 上下單邊, 左右雙邊 半郭 23.3 x 14.2 cm, 有界, 9行21字, 上花口, 上下向黑魚尾 ; 27.8 x 17.3 cm의 판식을 지니는 명 만력간본이다. 表題는 十三經註疏이며 권수에는 賈公彦이 지은 周禮正義序가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북경국자감에서 만력14-21(1581-1588)년 사이에 대대적으로 간행했던 十三經註疏의 일부로서 만력21년(193)에 간행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版心 上象鼻에 ‘萬曆二十一年刊’의 간행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장서인은 “弘文館, 帝室圖書之章, 朝鮮總督府圖書之印, 京城帝國大學圖書章, 서울大學校圖書”가 날인되어 있다. 본서와 동일본이 中國 清華大學圖書館, 上海圖書館, 上海博物館, 山東省圖書館, 南京大學圖書館, 浙江圖書館 등 다처에 소장되어 있다.

    奎中 2783의2

    奎中 2783의2

     16) 周禮集說(奎中 25016)
     元 陳友仁이 주례의 주석서를 모아 편찬한 책이다. 본서는 10책(卷2-11)의 零本으로 四周單邊 半郭 19.7 x 12.8cm, 有界, 11行22字, 上下內向白魚尾 ; 28.6 x 15.4 cm의 판식을 지닌 명초에 간행된 목판본이다. 表紙가 모두 落張되어 있으나 포배장의 흔적이 보인다. 成化10年(1474)에 福建에서 간행된 張瑄刊本과 동일한 간본으로 추정된다. 동일한 간본이 臺灣 國立故宮博物院과 國家圖書館에 소장되어 있다.

    奎中 25016

    포배장의 흔적

     17) 禮記[集說](奎中 2045)
     元 陳澔(1261-1341)가 『예기』의 諸說을 모아 편찬한 책이다. 규장각에 소장된 명판본 『예기집설』은 모두 3종(奎中 2045, 奎中 3588, 古貴 181.1-J562y)이다. 본서는 권5‚ 12‚ 16이 누락된 13책의 落帙本으로 모두 四周雙邊 半郭 21.9 x 15.1cm, 有界, 8行14字, 上下大黑口, 上下下向黑魚尾 ; 30.2 x 19.6cm의 판식을 지니는 明 司禮監刊本이다. 表題와 版心題는 禮記集說이며, 卷首題는 禮記이다. 권수에 正統12년(1447)에 사례감에서 간행했음을 알려주는 陳澔의 서문이 있다. 규장각 소장 명판본은 모두 동일한 간본이나, 奎中 3588은 후대에 인출한 후쇄본이다.

    奎中 2045

    奎中 2045

     18) 禮記集說(奎中 3588)
     규장각에 소장된 명판본 『예기집설』은 모두 3종(奎中 2045, 奎中 3588, 古貴 181.1-J562y)이다. 본서는 그 중 16卷 8冊의 完帙本으로 모두 四周雙邊 半郭 21.8 x 15.2 cm, 有界, 8行14字, 上下大黑口, 上下下向黑魚尾 ; 27.4 x 17.9 cm의 판식을 지니는 사례감간본이다. 版心題는 禮記集說이며, 表題와 卷首題는 禮記이다. 장서인은 “弘文館, 朝鮮總督府圖書之印, 京城帝國大學圖書章, 서울大學校圖書”가 날인되어 있다. 이 책은 奎中 2045보다 후대에 인출된 후쇄본이다.

    奎中 3588(좌)와 2045(우) 비교

    奎中 3588(좌)와 2045(우) 비교

     19) 禮記集說 (古貴 181.1-J562y)
     규장각에 소장된 명판본 『예기집설』은 모두 3종(奎中 2045, 奎中 3588, 古貴 181.1-J562y)이다. 본서는 그 중 권1‚ 6만이 남아있는 2책의 零本으로 모두 四周雙邊 半郭 22 x 15.3cm, 有界, 8行14字, 上下大黑口, 上下下向黑魚尾 ; 30.5 x 19cm의 판식을 지니는 사례감간본이다. 表題와 卷首題는 禮記이며, 版心題는 禮記集說이다. 前表紙 裏面에는 ‘甲子旬中戊在辰君山秋夜讀兵書’라는 墨書가 보인다. 이 책은 奎中 2045보다 조금 뒤에 인출한 것으로 명초간본으로 추정된다.

    古貴 181.1-J562y

    古貴 181.1-J562y

     20) 禮記集說大全 (奎 25014)
     明 胡廣(1369-1418) 等이 成祖의 명을 받아 편찬한 禮記의 주석서이다. 이 책은 오경대전의 일부로서 사서대전과 성리대전과 함께 영락12년(1414)에 편찬에 착수하여 영락15년(1417)에 간행이 완료되었다. 본서는 30卷18冊의 完帙本으로 四周雙邊 半郭 27.5 x 17.8cm, 有界, 10行22字 註雙行, 上下黑口, 上下內向黑魚尾 ; 36.2 x 21.4 cm의 판식을 지니는 명대 내부간본이다. 규장각 소장 書傳大全(奎中 25013)과 같은 계열로 보인다. 表題와 版心題 모두 禮記集說大全이며, 권수에는 ‘凡例, 찬수인명단, 禮記集說大全總論, 禮記集說序’가 수록되어 있다. 장서인으로는 ‘서울大學校圖書’만이 날인되어 있다. 간행당시의 장정인 포배장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명대 장정을 연구하는데 도움이 된다. 동일한 간본이 中國 天津市人民圖書館, 南京圖書館, 天一閣文物保管所 및 臺灣 國家圖書館, 國立故宮博物院 등에 소장되어 있다.

    奎 25014

    臺灣 國家圖書館(00435)

    奎 25014_포배장

     21) 儀禮 (奎 25005)
     周 周公이 저술하고 漢代에 鄭玄이 주석을 단 책이다. 이 책은 17卷 4冊으로 모두 四周單邊 半郭 20.0 x 14.2 cm, 有界, 10行20字 註雙行, 上下大黑口, 上下內向黑魚尾 ; 26.5 x 16.8 cm의 판식을 지니는 명 중기에 간행된 목판본이다. 表題, 卷首題, 版心題는 모두 儀禮이다. 서문은 正德16(1521)년에 陳鳳梧가 작성한 것으로 제1장이 落張되었다. 下黑口 부분에 각수가 새겨놓은 독특한 문양이 보인다. 臺灣 國家圖書館(00382) 陳鳳梧汴中刊本과 비교해 볼 때 동일한 시기에 간행되고 인출되었던 간본으로 추정된다. 이 간본은 中國 南京圖書館, 中國歷史博物館, 上海圖書館, 臺灣 國家圖書館 등에 소장되어 있다.

    奎 25005

    奎 25005

    〈臺灣 國家圖書館(00382) 소장 明 正德16(1521)年刊 陳鳳梧汴中刊本과의 비교〉

    奎 25005

    臺灣 國家圖書館(00382) 소장본

     22) 中庸或問(奎中 4112)
     이 책은 영락12년(1414)에 편찬에 착수하여 영락15년(1417)에 간행이 완료된 사서대전, 오경대전, 성리대전의 일부로 元 倪士毅 등이 편집한 『中庸或問』이다. 본서는 1冊(105張)의 완질본으로 四周雙邊 半郭 25.0 x 17.0 cm, 有界, 10行22字, 上下大黑口, 上下內向黑魚尾 ; 35.0 x 21.6 cm의 판식을 지니는 명간본이다. 표제는 없으며 권수에 ‘讀中庸法’이 누락되어 있다. 규장각 소장 『書傳大全』(奎中 168, 奎中 25013), 『詩傳大全』(想白古貴 181.113-H65s), 『禮記集說大全』(奎 25014), 『性理大全書』(奎 25015)과 동일한 판식을 지니는 明 內府刊本이다. 장서인으로는 “朝鮮總督府圖書之印, 京城帝國大學圖書章, 서울大學校圖書”가 날인되어 있다. 본서와 동일본이 天津市人民圖書館, 臺灣 國立故宮博物院에 소장되어 있다.

    奎中 4112

    奎中 4112

     23) 改倂五音類聚四聲篇(奎中 339)
     金의 韓道昭가 편찬한 韻書이다. 이 책은 15卷 5冊으로 四周雙邊 半郭 30.4 x 21.3cm, 有界, 13行18字, 大黑口, 上下黑魚尾 ; 36.8 x 25.8 cm의 판식을 지닌 명초간본이다. 表題는 五音類聚四聲篇이며, 版心題는 五音類聚이다. 장서인은“帝室圖書之章, 朝鮮總督府圖書之印, 京城帝國大學圖書章, 서울大學校圖書”이 날인되어 있다. 이 책은 金刻本, 元刻本 및 명대 성화, 정덕, 만력, 숭정연간에 걸쳐 여러 차례 重刊된 간본이 전해지고 있다. 이 중 규장각본은 元刻本과 같은 13행본으로 정확한 간행시기는 알 수 없으나 卷首에 泰和8(1208)年에 작성한 韓道昇의 서문과 成化10(1474)年에 憲宗이 작성한 어제서문을 통해 成化10年 무렵에 간행한 간본으로 추정된다. 동일본은 중국 吉林大學圖書館, 湖北省圖書館, 臺灣 國立古宮博物院에 소장되어 있다.

    奎中 339

    奎中 339

     24) 埤雅(奎中 2781)
     北宋 陸佃(1042-1102)이 『爾雅』의 체재를 따라 사물의 명칭에 관해서 풀이한 訓詁書이다. 규장각 소장본은 20卷6冊의 完帙本으로 四周雙邊, 有界, 10行20字, 上下大黑口, 上下內向黑魚尾 ; 28.5 x 17.6cm의 판식을 지니는 명간본이다. 表題와 版心題는 모두 埤雅이며, 권수에 宣和七年(1125)六月에 陸佃이 지은 埤雅序 및 目錄이 있다. 序文은 본문과 달리 항자수가 7行11字로 배열되어 있다. 장서인은 “弘文館, 帝室圖書之章, 朝鮮總督府圖書之印, 京城帝國大學圖書章, 서울大學校圖書”가 날인되어 있는데, 이 중 ‘弘文館’의 인장은 판식이 동일한 『埤雅』의 다른 판에서 오려 붙인 것이다. 『埤雅』는 명대에 상당히 많이 중수, 간행되었다. 이 간본은 그 중 명초에 간행된 內府刊本으로 추정된다. 동일한 간본이 中國 上海圖書館, 山東省圖書館, 天一閣文物保管所, 臺灣 國立故宮博物院, 國家圖書館 등 도처에 소장되어 있다.

    奎中 2781

    奎中 2781

    奎中 2781

    奎中 2781

     25) 大廣益會玉篇 (一簑古 495.13-D13g)
     宋 陳彭年(961-1017) 等이 왕명을 받고 편찬한 字典이다. 본서는 30卷 5冊의 완질본으로 四周雙邊 半郭 23.5 x 17.3 cm, 有界, 9行17字 註雙行, 上下大黑口, 上下內向黑魚尾 ; 28.4 x 20.5 cm의 판식을 지니는 명간본이다. 表題와 版心題는 모두 玉篇이며 卷首에 大廣益會玉篇序, 進箋文, 大廣益會玉篇總目, 玉篇廣韻指南이 차례로 수록되어 있다. 장서인은 “一簑, 方鍾鉉印, 京城大學圖書”가 날인되어 있으며 앞면지에는 1950년 6월에 分門瘟疫易解方(一簑貴 615.135-G413b) 등 5종의 책과 함께 이 책을 구입할 당시에 작성한 買得記가 첨부되어 있다. 원래 이 책은 松隱 李秉直의 소장품으로 華山 李聖儀씨를 통해 구입한 것이다. 판식 및 체재로 보아 명 중기에 內府에서 간행한 司禮監刊本으로 추정된다. 국내소장 명간본 大廣益會玉篇은 권1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본서의 경우 완질로 남아있어 조선에서 간행된 명판번각본들과의 비교연구에 있어 자료적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본서와 동일본은 臺灣 國家圖書館. 國立故宮博物院 등에 소장되어 있다.

    奎中 339

    奎中 339

     26) 洪武正韻(奎中 3361, 奎中 2128)
     明 洪武 8年(1375)에 樂韶鳳‚ 宋濂(1309-1381) 등이 왕명을 받고 편찬한 운서이다. 규장각소장 『洪武正韻』은 2종(奎中 3361, 奎中 2128)이 있다. 먼저 奎中 3361은 16卷 10冊의 완질본으로 四周雙邊 半郭 21.1 x 14.0 cm, 有界, 8行20字 註雙行, 上下大黑口, 上下內向黑魚尾 ; 26.0 x 16.7 cm의 판식을 지닌 명초에 간행된 목판본이다. 장서인은 “弘文館, 帝室圖書之章, 朝鮮總督府圖書之印, 京城帝國大學圖書章, 서울大學校圖書, 宗吉圖書(卷3末), 釋弘鎬氏(卷3末)”가 날인되어 있다. 권수에는 洪武8(1375)年에 작성한 宋濂의 서문과 범례가 수록되어 있다. 奎中 2128은 16卷 5冊의 완질본으로 四周雙邊 半郭 20.4 x 13.8 cm, 有界, 8行20字 註雙行, 下花口, 上下向黑魚尾 ; 27.2 x 17.7 cm의 판식을 지닌 명간본이다. 版心 上象鼻에는 판심제가, 下象鼻에는 각수명이 새겨져 있다. 장서인은 “帝室圖書之章, 朝鮮總督府圖書之印, 京城帝國大學圖書章, 서울大學校圖書, 敬軒, 經庫史庫子庫集庫所藏之印"이 날인되어 있으며, 前표지 裏面에는 ‘鳳蘭軒’이라는 장서기가 보인다. 이 간본은 奎中 3361과 서체와 판형의 차이를 보이며 奎中 3361보다 이후에 간행된 명간본으로 여겨진다. 판심하단에는 각수명이 판각되어 있다.

    奎中 3361

    奎中 2128

    奎中 3361

    奎中 2128

    나. 史部

     1) 史記評林 (古貴 952.01-Sa41s)
     明 凌稚隆이 萬曆5(1577)년에 간행한 『史記評林』을 저본으로 明 李光縉(1549-1623)이 增補한 책이다. 이 책은 4卷 1冊의 零本으로 모두 四周單邊 半郭 20.1 x 13.3cm, 有界, 上下2段 10行19字 註雙行, 上下向黑魚尾 ; 26.7 x 16.3 cm의 판식을 지니는 明末 萬曆年間 간본이다. 表題와 版心題는 모두 史記이며 卷首에 補史記가 첨부되어 있다. 본문에는 圈點이, 欄上에는 頭註가 판각되어 있다. 장서인은 “서울大學校圖書”가 날인되어 있다. 동일한 간본이 국립중앙도서관, 臺灣 國立故宮博物院 등에 소장되어 있다.

    古貴 952.01-Sa41s

    古貴 952.01-Sa41s

     2) 晋書 (奎 25008)
     당 태종의 명으로 房玄齡(578-648), 李廷壽 등이 西晉, 東晉 및 十六國 歷史를 서술한 官撰 紀傳體 史書이다. 이 책은 124卷 20冊의 落帙本으로 “上下單邊 左右雙邊 半郭 22.6 x 17.8cm, 有界, 10行20字, 上下內向黑魚尾 ; 27.2 x 19 cm”의 판식으로 된 명간본이다. 130卷 중에 卷7-12가 낙질되었고 명대 포배장의 모습이 남아있다. 원래는 2冊으로 分卷되어 있던 것을 후대에 한 책으로 장정한 것이다. 版心 上象鼻에는 한 張에 기록된 글자수와 간행시기, 간행처가 판각되어 있다. 이 간본은 3종 이상의 판형이 혼재되어 있다. 이는 판심 상상비에 새겨진 “正德十年 司禮監谷刊”과 “嘉靖二年 國子監刊”의 내용을 통해 정덕10(1515)년의 사례감간본과 가정2(1523)년의 국자감간본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과 유사한 간본이 臺灣 國家圖書館 외에도 여러 곳에 소장되어 있다.

    奎 25008

    奎 25008_포배장의 흔적

    版心上象鼻-正德十年 司禮監谷刊

    版心上象鼻-正德十年 司禮監谷刊

     3) 後漢書 (奎 25004)
     南北朝의 范曄(398-445)이 後漢代의 역사를 紀傳體 형식으로 편찬한 正史이다. 본서는 120卷 14冊으로 四周雙邊 半郭 22.2 x 16.2cm, 有界, 10行22字, 上下內向黑魚尾 ; 27.2 x 18.2 cm의 판식을 지니는 명대 國子監刊本이다. 卷首에는 元 大德9年(1305)의 寧國路儒學에서 간행한 기록이 수록되어 있다. 版心 上象鼻에는 “成化十二(1476)年”에서부터 “成化十八(1482)年”에 이르는 간기와 “正德十(1515)年 司禮監谷刊” 및 한 면에 수록한 글자수가 각기 판각되어 있다. 이 중 성화연간에 판각한 인출면을 살펴보면 版心 下象鼻에 교감에 참여한 監生의 이름이 판각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해당 판은 국자감에서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국자감에서 간행이 이루어진 사실은 卷末에 수록된 교정자의 직함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상의 내용을 통해 본서는 성화, 정덕연간을 거쳐 가정연간에 다시 한번 수보되었던 南京 國子監간본으로 추정된다.

    奎 25004

    奎 25004

    奎 25004

    奎 25004

     4) 宋書(奎中 2923)
     南朝 梁의 沈約(441-513)이 왕명을 받고 편찬한 南朝 宋의 역사에 관한 기전체 史書이다. 규장각 소장 중국본 『宋書』는 모두 6종으로 청간본이 4종, 명간본이 2종이 있다. 본서는 이 중 명 만력연간에 국자감에서 간행한 책으로 100卷22冊(完帙本) : 上下單邊 左右雙邊, 有界, 10行21字, 上花口, 上下向黑魚尾 ; 27.6 x 17.5cm의 판식을 지닌다. 表題와 版心題는 모두 宋書이며, 권수에 宋書目錄이 수록되어 있다. 각 권 첫머리에 수록된 “皇明朝列大夫 國子監祭酒 臣方從哲 承德郞 右春坊 右中允管 國子監司業事 臣黃汝良 等奉勅重校刊”이라는 官銜姓名 및 판심 上象鼻에 보이는 “萬曆二十四年刊”‚ “萬曆二十六年刊”‚ “萬曆二十七年刊”의 간행기록을 통해 만력24(1596)년, 26(1598)년, 27(1599)년에 국자감에서 方從哲(?-1628), 黃汝良(1554-1647) 등의 교정을 거쳐 간행한 책임을 확인할 수 있다. 장서인은 “弘文館, 帝室圖書之章, 서울大學校圖書”가 날인되어 있다.

    宋書(奎中 2923)

    宋書(奎中 2923)

     5) 元史 (奎 25001, 奎 25006)
     宋濂, 王褘 등이 왕명을 받고 편찬한 元代(1206-1368)의 역사에 관한 기전체 史書이다. 규장각에 소장된 명간본 『元史』는 모두 2종(奎 25001, 奎 25006)이나 조선본으로 분류되어 있다. 먼저 奎 25001은 16冊으로 四周雙邊 半郭 26 x 17.2cm, 有界, 10行20字, 上下大黑口, 上下內向黑魚尾의 판식을 지니는 南京 國子監刊本이다. 版心 上象鼻에는 “嘉靖八年補刊, 嘉靖九年刊, 嘉靖九年補刊, 嘉靖十年刊, 嘉靖十二年補刊”와 같이 간행시기 및 한 장에 판각된 글자수가 기록되어 있다. 版心 下象鼻에는 刻手名의 보인다. 따라서 이 책은 가정8(1529)년에서 가정12년(1533) 사이에 남경 국자감에서 수보한 간본이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奎 25006을 살펴보면 이 간본 역시 南京 國子監刊本으로 모두 10卷 5冊으로 구성되어 있다. 판식은 四周雙邊 半郭 26.0 x 17.2cm. 有界, 10行20字, 黑口, 上下內向黑魚尾 ; 31.3 x 18.8 cm로 되어 있다. 이 간본은 奎 25001보다 이른 시기에 修補되었던 간본으로 추정된다. 국내로 유입되기 이전의 表紙와 포배장의 원형를 간직하고 있다. 동일한 간본이 中國 北京師範大學圖書館, 上海圖書館, 臺灣 國家圖書館 및 일본 와세다대학교 등에 소장되어 있다.

    奎 25001

    奎 25001

    奎 25006

    奎 25006

    奎 25006

    奎 25006

     6) 三國志 (一簑古 952.01-J563s)
     魏·蜀·吳 三國시기의 事迹에 관해 저술한 紀傳體 史書로 晉 陳壽(233-297)가 저술하고 劉宋의 裴松之(372-451)가 註를 달았다. 본서는 14冊으로 모두 四周單邊, 有界, 10行20字 註雙行, 上花口, 上下向黑魚尾 ; 28.0 x 17.6 cm의 판식을 지니는 명말간본이다. 表題와 版心題는 모두 三國志이다. 卷首에는 天啓6(1626)년에 작성된 陳仁錫(1581-1636)의 序문과 萬曆24(1596)년에 작성된 馮夢禎(1548-1595)과 黃汝良(1554-1647)의 重刻序文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만력24년에 풍몽정이 南京 國子監 祭酒로 있을 당시에 교정한 간본을 저본으로 진인석이 평열을 가한 것이다. 版心 下象鼻에는 한 장에 판각된 글자수가 기록되어 있으며, 장서인은 “金容觀印, 京城大學圖書”가 날인되어 있다.

    三國志(一簑古 952.01-J563s)

    三國志(一簑古 952.01-J563s)

     7) 少微通鑑節要 (一簑古貴 952.01-G155sa)
     宋의 司馬光의 『資治通鑑』294卷에서 대요만을 뽑아 北宋 江贄가 50卷으로 節要한 책이다. 규장각 소장 『少微通鑑節要』의 명판본은 모두 3종(一簑古貴 952.01-G155s, 一簑古貴 952.01-G155sa, 奎中 2849)이 있다. 그 중 본서는 卷32-35의 1冊만이 남아있는 零本으로 四周雙邊 半郭 21.6 x 15.0 cm, 有界, 9行15字 註雙行, 上下大黑口, 上下內向黑魚尾 ; 28.8 x 18.0 cm의 판식을 지니는 正德9(1514)年 北京 司禮監刊本이다. 表題는 通鑑常拾이며, 版心題는 通鑑이다. 本文은 上下2段으로 欄上에 頭註가 판각되어 있다. 장서인은 “廣運之寶, 京城大學圖書”가 날인되어 있다. 동일한 간본이 北京大學圖書館, 中國人民大學圖書館, 臺灣 國家圖書館 외에도 여러 곳에 소장되어 있다.

    少微通鑑節要(一簑古貴 952.01-G155sa)

    少微通鑑節要(一簑古貴 952.01-G155sa)

     8) 小微通鑑節要(奎中 2849)
     본서는 宋 江贄가 지은 少微通鑒節要 50卷, 外紀4卷과 明 張光啓가 편찬한 資治通鑒節要續編30卷 총 84卷40冊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두 四周雙邊 半郭 21.5 x 15.0 cm, 有界, 9行15字, 大黑口, 上下黑魚尾 ; 31.0 x 19.2 cm의 판식을 지니는 明 正德9(1514)年 사례감에서 간행된 간본이다. 表題와 版心題는 모두 通鑑이며, 欄上에 頭註가 판각되어 있다. 正德9(1514)年 11月 13日에 작성한 御製重刊少微資治通鑑節要序가 外紀目錄 앞에 수록되어 있다. 장서인은 “廣運之寶, 元垂, 帝室圖書之章, 朝鮮總督府圖書之印, 서울大學校圖書”가 날인되어 있다. 동일한 간본은 國家圖書館, 北京大學圖書館, 北京大學圖書館 등 여러 곳에 소장되어 있다.

    奎中 2849

    奎中 2849

     9) 資治通鑑節要續編(奎中 4194)
     明 張光啓가 편찬한 資治通鑒節要續編 30卷이다. 본서는 1冊(卷4)의 零本으 로四周雙邊, 9行15字 註雙行, 上下大黑口, 上下內向黑魚尾 ; 32.3 x 19.8cm 의 판식을 갖는 明 正德9(1514)年 사례감에서 간행된 간본이다. 表題는 通鑑節要이며 版心題는 通鑑이며, 欄上에 頭註가 판각되어 있다. 장서인은 “廣運之寶, 朝鮮總督府圖書之印, 京城帝國大學圖書章, 서울大學校圖書”가 날인되어 있다. 규장각 소장 小微通鑑節要(奎中 2849)와 동일본이다.

    資治通鑑節要續編(奎中 4194)

    資治通鑑節要續編(奎中 4194)

     10) 資治通鑑綱目集覽(奎中 2042)
     元 王幼學가 지은 책이다. 본서는 59卷12冊의 完帙本으로 모두 四周雙邊 半郭 26.4 x 17.0 cm, 有界, 8行18字, 大黑口, 上下黑魚尾 ; 32.4 x 20.2 cm의 판식을 지니는 명대에 간행된 經廠刊本이다. 表題, 版心題는 모두 綱目集覽이며, 卷首에는 永樂20(1422)년에 陳濟가 지은 資治通鑑綱目集覽敍例가 수록되어 있다. 장서인은 “蓍齋, 重光之章, 春宮, 帝室圖書之章, 朝鮮總督府圖書之印, 서울大學校圖書”가 날인되어 있다. 동일본은 중국 國家圖書館, 清華大學圖書館, 中國人民大學圖書館 등 여러 곳에 소장되어 있다.

    資治通鑑節要續編(奎中 2042)

    資治通鑑節要續編(奎中 2042)

     11) 宋元通鑑(奎中 2608)
     宋 太祖에서 元 順帝에 이르는 480年間의 역사에 관해 明 薛應旂(1500-1573)가 편집하고 陳仁錫(1581-1636)이 評閱을 가한 編年體 史書이다. 이 책은 157卷 30冊으로 四周單邊, 有界, 10行20字 註雙行, 上花口, 上下向黑魚尾 ; 26.8 x 16.7 cm의 판식을 지니는 명말간본이다. 표제와 권수제는 宋元通鑑이며 판심제는 通鑑이다. 권수에 天啓6(1626)年에 陳仁錫이 작성한 서문이 있고 이어서 嘉靖45(1566)年에 薛應旂가 지은 서문이 수록되어 있다. 제1책 1장의 版心 下象鼻에서만 유일하게 “古吳 金麟書”라고 판각되어 있다. 장서인은 “集玉齋, 帝室圖書之章, 朝鮮總督府圖書之印, 서울大學校圖書”가 날인되어 있다.

    宋元通鑑(奎中 2608)

    宋元通鑑(奎中 2608)

     12) 三朝要典(奎中 2857)
     萬曆(1573-1620), 泰昌(1620), 天啓(1621-1627) 연간에 발생했던 三案(梃擊案, 移宮案, 紅丸案)과 관련된 공문서를 顧秉謙, 黃立極‚ 馮銓(1595-1692) 등이 왕명을 받아 편찬한 政書이다. 이 책은 24卷 12冊의 완질본으로 四周雙邊 半郭 26.8 x 17.2 cm, 有界, 8行18字, 上下大黑口, 上下內向黑魚尾 ; 33.4 x 20.0 cm의 판식을 지니는 天啓年間 간본이다. 권수에는 天啓6(1626)年에 작성한 御製序, 聖諭, 聖旨, 奏文, 進箋表, 찬수인명단 등이 수록되어 있다. 전형적인 內府刊本의 판식을 지니고 있으며 圈點이 판각되어 있다. 인기는 “摛文院, 帝室圖書之章, 朝鮮總督府圖書之印, 서울大學校圖書”가 날인되어 있다. 中國의 北京大學圖書館, 中國社會科學院歷史研究所, 臺灣의 國家圖書館, 國立故宮博物院, 中央硏究院 傅斯年圖書館, 美國國會圖書館 등 여러 곳에 소장되어 있다.

    三朝要典(奎中 2857)

    三朝要典(奎中 2857)

     13) 孤樹裒談(奎中 3218)
     李黙 혹은 趙可與가 편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明 洪武에서 正德年間까지의 編年體 史書이다. 규장각 소장 『고수부담』은 모두 2종(奎中 5219, 奎中 3218)이 있다. 이 간본은 10卷 5冊의 完帙本으로 四周單邊, 有界, 13行24字 註雙行, 上下內向黑魚尾 ; 30.5 x 17.8 cm의 판식을 지니는 16세기 이후의 명간본이다. 권수에 引用書目이 있고, 각권은 甲集~癸集으로 구분되어 있다. 인기는 “帝室圖書之章, 朝鮮總督府圖書之印, 京城帝國大學圖書章, 서울大學校圖書”가 날인되어 있다.
     14) 孤樹裒談(奎中 5219)
     李黙 혹은 趙可與가 편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明 洪武에서 正德年間까지의 編年體 史書이다. 규장각 소장 『고수부담』은 모두 2종(奎中 5219, 奎中 3218)이 있다. 이 간본은 그 중 卷1‚ 卷3-5‚ 卷8-9만이 남아있는 6卷 6冊의 落帙本으로 四周單邊, 有界, 13行24字 註雙行, 上下下向黑魚尾 ; 25.0 x 15.6 cm의 판식을 지니는 16세기 이후의 명간본이다. 권수에 引用書目이 있으나 제1장은 筆寫되어 있다. 이 간본은 奎中 3218과는 달리 甲集~癸集의 分卷표시와 인용서목 중의 『出仕錄』하단에 보이는 저자명이 모두 생략되어 있다. 목리의 깨짐 및 인출 상태로 보아 奎中 3218보다 이후에 인출된 간본으로 보인다. 인기는 “帝弘文館, 帝室圖書之章, 朝鮮總督府圖書之印, 서울大學校圖書”가 날인되어 있다.

    〈奎中 5219(左)와 奎中 3218(右)과의 비교〉

     15) 皇明詔令(奎中 3919)
     明 太祖 洪武 元年에서 世宗 嘉靖18年(1539)까지의 총 12代에 거쳐 황제의 詔令을 모아놓은 책이다. 본서는 21卷 10冊의 完帙本으로 모두 四周雙邊 半郭 20.5 x 14.6 cm, 有界, 10行20字, 上下內向白魚尾 ; 31.2 x 18.0 cm의 판식을 지니는 명 嘉靖年間에 간행된 간본이다. 表題는 皇明詔令이며 간혹 版心 下象鼻에는 “梅元紹, 梅元紹 寫二百二十五”와 같이 刻手 및 한 장에 수록된 글자수가 판각되어 있다. 장서인은 “弘文館, 帝室圖書之章, 朝鮮總督府圖書之印, 서울大學校圖書”이 날인되어 있다.

    皇明詔令(奎中 3919)

    皇明詔令(奎中 3919)

    皇明詔令(奎中 3919)

    皇明詔令(奎中 3919)

     16) 文獻通考(奎中 3612)
     이 책은 元 馬端臨(1254-1324?)이 지은 三皇五帝부터 南宋 寧宗 연간(1208-1224)까지의 典章制度를 정리한 政書類의 서적이다. 본서는 114冊의 落帙本으로 四周單邊 半郭 24.7 x 16.6 cm, 有界, 10行20字 註雙行, 上下向黑魚尾, 上花口 ; 23.0 x 15.6 cm의 판식을 지닌 명말 간본이다. 권수에 嘉靖三(1524)年에 작성된 御製序와 馬端臨의 自序 및 延祐6(1319)年의 王壽衍이 작성한 進書表, 至治2(1322)年의 抄白이 수록되어 있다. 장서인은 “內閣, 朝鮮總督府圖書之印, 서울大學校圖書”가 날인되어 있다. 본문에는 圈點이 판각되어 있으며 欄上 곳곳에 열람한 흔적인 附籤이 보인다. 본서는 서체와 판형으로 보아 嘉靖3年에 간행된 司禮監刊本이 아닌 명말에 간행된 간본으로 추정된다.

    文獻通考(奎中 3612)

    文獻通考(奎中 3612)

    열람의 흔적

    열람의 흔적

     17) 歷代君鑒(奎中 4111, 奎中 4120)
     明 代宗 朱祁鈺의 명에 의해 三皇五帝로부터 明 宣德帝(1426-1435)까지 歷代 帝王들의 행적을 모아 편찬한 官箴書이다. 규장각 소장 『歷代君鑒』은 모두 4종(奎中 4111‚ 奎中 4120, 奎中 1927, 奎中 1926)이 있으며 이 중 奎中 4111‚ 奎中 4120이 명간본이며 나머지 2종은 영조이후에 간행한 조선본이다. 명간본 2종은 모두 50卷 10冊의 完帙本본으로 四周雙邊 半郭 27.0 x 16. 8cm, 有界, 10行20字, 上下大黑口, 上下黑魚尾 ; 35.7 x 22.0 cm의 판식을 지니고 있으나 奎中 4111이 奎中 4120에 비해 후대에 인출된 간본으로 추정된다. 두 간본 모두 표제는 歷代君鑑, 판심제는 君鑒이다. 권수에는 景泰4(1453)年에 작성한 代宗의 어제서문이 수록되어 있다. 판식의 형태, 현존본과의 비교를 통해 이 간본은 어제서문이 작성되었던 경태4년 무렵에 간행된 內府刊本으로 추정된다. 장서인은 “廣運之寶, 帝室圖書之章, 朝鮮總督府圖書之印, 서울大學校圖書”이 날인되어 있다. 동일한 간본이 국립중앙도서관 및 中國 南京圖書館, 臺灣 國家圖書館, 美國 Princeton 대학에 드물게 소장되어 있다.

    奎中 4120

    奎中 4111

    奎中 4120(좌)과 奎中 4111(우)의 비교

     18) 歷代臣鑒(奎中 3173)
     明 宣德帝 朱瞻基의 명으로 春秋戰國시대로부터 元代에 이르기까지의 귀감이 될만한 역대 신하들의 사적을 수록한 감계류의 서적이다. 규장각 소장본은 37卷10冊의 完帙本으로 四周雙邊 半郭 26.0 x 17.0 cm, 有界, 10行20字, 上下大黑口, 上下黑魚尾 ; 32.0 x 19.3 cm의 판식을 지니는 명간본이다. 권수에 宣德元(1426)年에 작성된 宣宗의 어제서문이 수록되어 있다. 表題는 歷代臣鑑이며 판심제는 臣鑒이다. 권1의 제1장이 낙장되어 補寫하였다. 판형이 전형적인 내부간본의 틀을 보이고 있으며 목리가 많이 보이는 점으로 보아 어제서가 작성되었던 선덕원년 보다는 이후에 인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동일한 간본이 中國 北京大學圖書館, 南京圖書館, 臺灣 國家圖書館 등 여러 곳에 소장되어 있다.

    歷代臣鑒(奎中 3173)

    歷代臣鑒(奎中 3173)

     19) 大明一統志(奎中 3665, 奎中 3666)
     이 책은 明 李賢(1408-1466) 등이 왕명을 받아 『大元一統志』, 『寰宇通志』의 체제를 본떠 편찬한 전국 지리서이다. 규장각소장 『大明一統志』는 모두 2종(奎中 3665, 奎中 3666)이 있다. 그 중 본서는 90卷 50冊의 完帙本으로 地圖, 四周單邊 半郭 21.1 x 14.0 cm, 有界, 10行22字 註雙行, 上下向黑魚尾, 上下花口 ; 26.1 x 16.3 cm의 판식으로 된 명말간본이다. 권수에는 天順5(1461)년의 御製序, 進書表, 圖敍, 編纂官員名, 目錄, 地圖가 수록되어 있으며, 판심 下象鼻에 간행처인 ‘萬壽堂刊’이 판각되어 있다. 각 冊의 卷首에는 ‘侍講院, 帝室圖書之章, 朝鮮總督府圖書之印, 서울大學校圖書’의 인장이 날인되어 있다. 서체 및 지질의 특징으로 보아 가정연간 이후에 간행된 明板本으로 추정된다. 조선에서는 이 책이 유입된 이후 성종(중종)연간에 을해자본을 이용하여 인출하기도 하였다. 동일한 간본이 전남대, 충남대, 고려대 및 미국 국회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大明一統志(奎中 3665)

    大明一統志(奎中 3665)

    다. 子部

     1) 大學衍義(奎中 2737)
     이 책은 南宋 眞德秀(1178-1235)가 『大學』의 뜻을 해설하기 위해 여러 사적을 두루 참고하여 편찬한 것이다. 규장각 소장 明刊本 『대학연의』는 모두 2종(奎中 2737, 奎中 4611)이 있다. 그 중 이 책은 43卷 20冊의 完帙本으로 모두 四周雙邊 半郭 21.7 x 15.4cm, 有界, 8行17字 註雙行, 上下大黑口, 上下下向黑魚尾 ; 29.0 x 18.6 cm의 판식을 지닌 明 司禮監刊本이다. 권수에는 嘉靖6年(1527)에 明 世宗이 작성한 御製重刊序가 있고, 권말에는 同年에 楊一淸(1454-1530)이 작성한 重刊後序가 있다. 장서인은 “弘文館, 學部圖書, 編輯局保管, 朝鮮總督府圖書之印, 京城帝國大學圖書章, 서울大學校圖書”가 날인되어 있다. 이 밖에 奎中 4611은 明 陳仁錫(1581-1636)이 評閱을 가한 것으로 숭정5(1632)년에 간행된 私刊本이다.

    奎中 2737

    奎中 2737

     2) 性理大全書 (奎 25015)
     明 胡廣(1370-1418) 등이 왕명을 받들어 宋儒의 性理學說을 집대성한 책으로 1415년(영락 13)에 완성되었다. 본서는 29卷 14冊의 零本으로 四周雙邊 半郭 27.3 x 18.0cm, 有界, 10行 22字, 黑口, 上下內向黑魚尾 ; 36.5 x 22.0 cm의 판식을 지니는 明初에 간행된 內府刊本이다. 소장본은 卷11-15, 18-19, 22-23, 32-37, 52-64, 70만이 남아있다. 印記로는 “서울大學校圖書”만이 날인되어 있다. 명대에 간행되었을 당시의 포배장의 원형이 보존되어 있어 명초 장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동일한 간본이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奎 25015

    奎 25015

    奎 25015

    奎 25015

     3) 性理大全書(想白古 181.135-H65s)
     明 胡廣(1370-1418) 등이 왕명을 받들어 宋儒의 性理學說을 집대성한 책으로 1415년(영락 13)에 완성되었다. 본서는 6卷 4冊의 零本으로 四周雙邊 半郭 21.5 x 14.1cm, 有界, 10行20字, 上下下向黑魚尾 ; 32.4 x 18.4 cm의 판식으로 이루어진 明刊本이다. 소장본은 卷19, 22-26만이 남아있다. 嘉靖35(1556)년 建陽府간본과 가정22(1543) 應天府學간본과 유사한 판형을 보이는 점으로 보아 이 간본 역시 가정연간에 지방에서 간행한 관판본으로 추정된다. 인기로는 “서울大學校圖書”가 날인되어 있다.

    想白古 181.135-H65s

    想白古 181.135-H65s

     4) 魯齋遺書(奎中 3879)
     何瑭이 교정한 元 許衡(1209-1281)의『魯齋全書』를 토대로 應良이 다시 편집하고 蕭鳴鳳이 교정한 책이다. 규장각소장 『魯齋遺書』는 모두 2종(奎中 3879, 奎中 3729)이며 각기 다른 시기에 간행된 명간본이다. 본서는 10卷 5冊의 完帙本으로 四周雙邊 半郭 21×14.5cm, 有界, 10行21字, 上下大黑口, 上下內向黑魚尾 ; 25.4×16.8cm의 판식을 지니는 명간본이다. 권수에는 嘉靖4(1525)년에 소명봉이 작성한 重刻序가 수록되어 있어 이 책의 간행경위를 살펴볼 수 있다. 서문, 題識의 기록 및 현존본과의 비교를 통해 가정4년 무렵에 간행된 명간본임을 알 수 있다. 인기로는 “弘文館, 帝室圖書之章 , 朝鮮總督府圖書之印, 京城帝國大學圖書章, 서울大學校圖書”가 날인되어 있다.

    奎中 3879

    奎中 3879

     5) 魯齋遺書(奎中 3729)
     元 許衡(1209-1281)의『魯齋遺書』를 明 怡愉가 교정하여 江學詩 등과 더불어 간행한 책이다. 규장각소장 『魯齋遺書』는 모두 2종(奎中 3879, 奎中 3729)이 있다. 14卷 8冊의 完帙本으로 肖像, 先塋圖, 祠堂圖, 族譜, 四周雙邊, 有界, 10行22字, 上花口, 上下向黑魚尾 ; 26.0 x 18.0 cm의 판식을 지니고 있는 명간본이다. 卷首에 萬曆24(1596)年에 작성된 張泰徵과 江學詩의 重刻序 및 怡愉의 序가 첨부되어 있다. 목록 1면 하단에는 刊行, 編輯, 校閱者의 명단과 版心 下象鼻에는 “吏房貼書陳?寫”가 판각되어 있다. 간행과 관련된 인물은 모두 懷慶府의 관리이다. 권말에는 萬曆24(1596)에 작성한 鄭道興의 발문이 수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이 간본은 만력24년에 懷慶府에서 간행한 간본임을 알 수 있다. 인기로는 “玉주堂(?), 觀物軒, 貳極之章, 帝室圖書之章, 朝鮮總督府圖書之印. 京城帝國大學圖書章, 서울大學校圖書”가 날인되어 있다.

    奎中 3729

    奎中 3729

     6) 奇效良方(奎中 4121)
     董宿이 지은 醫書에 대해서 明 憲宗代의 太醫院使 方賢이 纂集하고 御醫 楊文翰 등이 교정하여 69卷 64門으로 완성한 책으로, 책을 완성하자 마자 왕에게 진헌하였다. 본서는 69卷 20冊의 完帙本으로 四周雙邊 半郭 21.4 x 13.4cm, 有界, 11行24字 註雙行, 上下黑口, 上下內向黑魚尾 ; 35.2 x 18.8cm의 판식을 지니는 명간본이다. 권수에 成化6(1470)年에 작성한 商輅의 序, 萬安의 序와 成化7(1471)年에 작성한 姚夔의 序, 陳鑑의 書가 있다. 이어서 간행자의 명단과 총목, 목록이 수록되어 있다. 권말에는 成化9(1473)年에 작성한 岳正의 발문이 있다. 인기로는 “帝室圖書之章, 朝鮮總督府圖書之印, 京城帝國大學圖書章, 서울大學校圖書”가 날인되어 있다. 이 책은 木理의 흔적으로 보아 成化7年보다 조금 늦은 시기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간본은 현전본이 비교적 드물며 동간본이 충남대학교 도서관 및 國家圖書館, 北京大學圖書館, 中醫研究院, 北京市中醫醫院圖書館 등에 소장되어 있다.

    奎中 4121

    奎中 4121

     7) 玉機微義(奎中 3941)
     明代의 醫家 徐彦純이 編輯하고 劉宗厚가 增益한 醫書이다. 규장각소장 『옥기미의』는 모두 2종(奎中 3941, 奎中 4254)이 있다. 본서는 50卷12冊으로 이루어진 완질본으로 四周雙邊, 10行21字 註雙行, 有界, 上下內向黑魚尾 ; 27.0 x 16.8cm 의 판식을 지니는 16세기에 간행된 명간본이다. 表題는 玉機微義이며 版心題는 玉機이다. 권수에 正德1(1506)年 汪舜民의 重刊序, 正統4(1439)年 楊士奇의 序, 洪武29(1436)年 劉純, 莫士安의 序, 正統5(1440)年 王暹의 書玉機微義後가 수록되어 있다. 장서인은 “帝室圖書之章, 朝鮮總督府圖書之印, 京城帝國大學圖書章, 서울大學校圖書”가 날인되어 있다. 동일한 간본이 『中國國家圖書館善本書目』에도 수록되지 않은 점으로 보아 매우 드문 간본으로 여겨진다.

    奎中 3941

    奎中 3941

     8) 鶴林玉露(奎中 4410)
     南宋 羅大經(1196-1242)이 지은 筆記集이다. 본서는 16卷4冊의 完帙本으로 四周單邊, 9行20字, 上花口, 上下向黑魚尾 ; 25.4 x 16.0 cm의 판식을 지니는 명간본이다. 『학림옥로』는 명대에 이르러 嘉靖(1522-1566)刊本, 萬曆3年(1575) 南臺간본, 萬曆7(1579)年 莆田林大黼修補 南京舊刊本, 萬曆29年(1601) 武林 謝天瑞 刊本, 松陵王叔承校刊本 외 11행본, 10행본의 명간본으로 다양하게 간행되었다. 그러나 규장각 소장본은 이들 간본과 체재가 다른 9행본이며 현존본 또한 매우 드물다. 卷首에는 鶴林玉露補遺가 수록되어 있으며, 장서인은 “朝鮮總督府圖書之印, 서울大學校圖書”가 날인되어 있다.

    奎中 4410

    奎中 4410

    라. 集部

     1) 三蘇文集(奎中 3696)
     三蘇 즉, 蘇洵, 蘇轍, 蘇軾의 문집이다. 본서는 卷首 1권, 본집 70권, 拾遺 1卷 총 72권 12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두 四周雙邊, 有界, 10行21字, 上花口, 上下內向黑魚尾 ; 27.8 x 16.0 cm의 판식을 지니는 명간본이다. 표제는 三蘇文集이며 版心題는 上象鼻에 三蘇文集과 三蘇文이 혼용되어 있다. 卷首에는 朱廷立이 嘉靖12(1533)년에 작성한 敍刻三蘇文集이 있고, 권말에는 같은 해에 작성된 劉天民의 三蘇文集後序, 顧陽和의 三蘇文集序, 余承勛의 刻三蘇先生文集敍가 수록되어 있다. 이들 내용을 통해 본서는 당시 眉州 太守인 明 楊煦의 주도하에 嘉靖12(1533)년에 간행된 眉州刊本임을 알 수 있다. 장서인은 “經延, 摛文院, 帝室圖書之章, 朝鮮總督府圖書之印, 서울大學校圖書”가 날인되어 있다. 본서와 동일본은 중국 上海圖書館, 浙江圖書館과 臺灣 國家圖書館 등에 소장되어 있다.

    奎中 3696

    대만 국가도서관(14499) 소장본
    【嘉靖12(1533) 眉州刊本】

     2) 文苑英華(奎中 4467)
     宋 太宗 太平興國 7년(982)에 李昉(925-996) 등이 왕명을 받고 편찬한 詩文總集이다. 본서는 1000卷100冊의 完帙本으로 모두 四周單邊, 有界, 11行22字 註雙行, 上下花口, 上下向白魚尾 ; 25.4 x 17.2 cm의 판식을 지니는 명간본이다. 卷首에는 隆慶元年(1567)에 塗澤民, 胡維新이 작성한 刻文苑英華序가 수록되어 있다. 版心 下象鼻에는 “壬申重刊, 萬曆六年刊, 萬曆六年重刊, 二十六年刊, 三十六年(1608)刊, 重刊, 刊”과 같은 간행사항과 “劉亨, 長子, 朱良, 黃乃, 乃, 北斗, 斗, 得”과 같은 각수명을 새겨놓았다. 이상의 내용을 통해 본서는 隆慶元年(1567)에 간행된 原版을 가지고 隆慶6(1572)년, 萬曆6(1578)년, 萬曆26(1598)년, 萬曆36(1608)년에 일부를 補刻한 후에 인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장서인으로는 “侍講院, 帝室圖書之章, 朝鮮總督府圖書之印, 서울大學校圖書”가 날인되어 있다.

    文苑英華(奎中 4467)

    文苑英華(奎中 4467)

     3) 瓊臺詩文會稿重編(奎中 3718, 奎中 3719)
     明 丘濬(1420- 1495)의 시문집으로 그의 후손인 7대손인 丘爾穀, 丘爾懿가 편찬한 책이다. 그의 문집은 후손과 문인에 의해 여러 차례 편찬되었는데 그 중 이 책의 편찬이 가장 늦게 이루어졌다. 규장각 소장본은 모두 2종(奎中 3718, 奎中 3719)이 있으며 두 종 모두 肖像, 四周單邊, 有界, 9行20字, 上下向黑魚尾 ; 27.0 x 16.0 cm의 판식을 지니는 天啓연간에 간행된 명말간본이다. 그러나 체재에 있어 다소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먼저 奎中 3718은 본래 22권10책이 완질본이나 目錄과 卷首에 해당하는 제1책이 누락된 9책의 낙질본이며 奎中 3719는 24권 12책본의 완질본이다. 두 간본 모두 版心題는 會稿重編이며 上象鼻에 판각되어 있다. 두 간본의 차이는 먼저 表題에 있어서 奎中 3718은 瓊臺會稿, 奎中 3719는 丘文莊集으로 묵서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외에 奎中 3719의 卷22末에는 黃獻宏이 지은 重編瓊臺會稿後跋이 수록되어 있는 반면 奎中 3718에서는 누락되어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전체적인 판식은 매우 흡사하며 동일한 부분에 유사한 목리가 발견되지만, 奎中 3719에서 목리의 깨짐이 더 심한 점과 권책수의 차이로 보아 奎中 3719는 奎中 3718을 저본으로 修補한 것으로 추정된다. 장서인은 奎中 3718은 “集玉齋, 帝室圖書之章, 朝鮮總督府圖書之印, 서울大學校圖書”가, 奎中 3719는 “宛平王氏房藏, 監定慕齋, 弘文館, 摛文院, 帝室圖書之章, 朝鮮總督府圖書之印, 京城帝國大學圖書章, 서울大學校圖書”가 날인되어 있다. 奎中 3719와 동일본이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奎中 3718과 奎中 3719의 비교

    奎中 3718과 奎中 3719의 비교

     4) 歐陽文忠公集(奎中 5025)
     宋 歐陽修(1007-1072)의 詩文集으로, 歐陽文忠公全集이라고도 한다. 본서는 19冊의 落帙本으로 肖象, 年譜, 四周雙邊 半郭 20.0 x 12.2cm, 有界, 10行20字, 上下大黑口, 上下內向黑魚尾 ; 26.2 x 15.4 cm의 판식을 지니는 명 嘉靖年間에 간행된 官版本이다. 表題는 歐陽公集이며 版心題는 歐文이다. 卷首에는 天順6(1462)年 錢溥, 天順5(1461)年 彭最, 南宋 慶元2(1196)年 周必大의 서문과 年譜 및 總目이 차례로 수록되어 있다. 권말에는 弘治5(1492)年 王世賞, 正德7(1512)年 劉喬, 嘉靖16(1537) 詹治의 발문이 보인다. 이들 내용을 통해 본서는 가정16년에 江西省 吉安府(現 吉州)에서 간행한 관판본임을 알 수 있다. 장서인은 “弘文館, 朝鮮總督府圖書之印, 京城帝國大學圖書章, 서울大學校圖書”가 날인되어 있다. 동일한 간본이 臺灣 國家圖書館 등에 소장되어 있다.

    奎中 5025

    奎中 5025

    奎中 5025

    奎中 5025

     5) 歐陽文忠公集(奎中 5188)
     宋 歐陽修(1007-1072)의 詩文集으로, 歐陽文忠公全集이라고도 한다. 본서는 卷首1卷, 本集 130卷, 附錄4卷 총16冊으로 이루어진 완질본으로 四周單邊, 有界, 10行20字 註雙行, 上下花口, 上下向黑魚尾 ; 26.6 x 16.5 cm의 판식을 지니는 명 만력연간에 간행된 목판본이다. 表題는 歐陽公集이며 版心題는 上象鼻에 歐陽文忠公集으로 되어 있다. 版心 下象鼻에는 “江夏 吳大玉刊, 吳 二百二十七, 吳 四百一十, 貴 大一百一十六 小四十四[대소자기록], 高文通 四百0五, 刘三百七十 小四十, 小卄四 大四百, 承意 二百一十一”과 같이 각수 및 한 장에 수록되는 글자수를 판각해놓았다. 卷首에는 萬曆40(1612)年에 작성한 重刻序가 보인다. 이들 내용을 통해 본서는 만력40년에 吉州에서 간행한 관판본임을 알 수 있다. 규장각소장 奎中 5025와 비교해 볼 때 체재에 있어 상당히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장서인은 “弘文館, 朝鮮總督府圖書之印, 京城帝國大學圖書章, 서울大學校圖書”가 날인되어 있다. 동일한 간본이 臺灣 國家圖書館 등에 소장되어 있다.

    奎中 5188

    奎中 5188

    奎中 5188

    奎中 5188

     6) 何氏語林(奎中 3300)
     明代 何良俊(1506-1573)이 편찬한 何氏語林에 茅坤(1512-1601)이 評語를 붙어 다시 간행한 책이다. 이 책은 30卷 6冊의 完帙本으로 四周單邊, 無界, 9行19字 小字註, 上花口, 無魚尾 ; 26.4 x 17.0 cm의 판식을 지니는 명말간본이다. 권수에는 天啓4(1624)年에 작성한 文震孟의 語林評序, 天啓3(1623)에 작성한 吳振纓의 刻鹿門先生評何氏語林序, 嘉靖30(1551)年에 작성한 文徵明(1470-1559)의 何氏語林序가 있다. 장서인으로는 “帝室圖書之章, 朝鮮總督府圖書之印, 京城帝國大學圖書章, 서울大學校圖書”가 날인되어 있다. 이 책은 현재 嘉靖本과 天啓本이 남아있는데 본서는 그 중 천계4년에 간행된 책으로 현재 中國科學院圖書館, 吉林市圖書館, 南京圖書館, 臨海縣博物館에 소장되어 있다. 천계본은 가정본에 비해 드문 간본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는 가정본이 소장되어 있다.

    奎中 3300

    奎中 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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