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및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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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장각 소장 귀중본 유서 및 총서 해제 연구
작성자 이종묵 조회수 377
제목 저자 저자 소개
규장각 중국본도서 형성사 연구 연갑수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교수
규장각 소장 宋, 元, 明初 刊本 조사보고서 옥영정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문헌관리학과 교수
규장각 소장 귀중본 유서 및 총서 해제 연구 이종묵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규장각 소장 중국본 문집류 이창숙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규장각 소장 明末淸初 曆算書 박권수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학예연구사

Ⅰ. 서론 ▲목차

 조선시대 학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서적이 類書와 叢書라 할 수 있다. 유서는 사전적인 분류를 채용하여 지식인들이 매우 자주 참조하였다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대표적인 유서의 하나인 『淵鑑類函』을 편찬할 때 『北堂書抄』, 『藝文類聚』, 徐堅의 『初學記』, 『白氏六帖』등 이른바 4대 類書를 위시하여, 『唐類函』, 『太平御覽』, 『事類合璧』, 『玉海』, 『事文類聚』, 『文苑英華』등 많은 유서가 우리나라에 전해져 널리 읽혔을 것으로 추정된다. 『세조실록』에 따르면 12년(1466) 10월 2일 申叔舟, 崔恒, 姜希孟, 梁誠之, 成任, 徐居正 등에게 명하여 여러 類聚를 가려 뽑되 易·天文·地理·醫·卜筮·詩文·書法·律呂·農桑·畜牧·譯語·算法의 편제를 택하도록 한 바 있다. 이미 중국 元代 이전에 편찬된 유서들이 웬만큼 조선에도 유통되었지만 조선의 현실에 적합한 형태로 다시 편찬하기 위하여 이러한 지시를 내린 것이라 하겠다. 이에 따라 『芝峰類說』, 『類苑叢寶』를 위시하여 조선 후기에는 『星湖僿說』, 『海東繹史』, 『波斯寶』, 『五洲衍文長箋散稿』, 『萬物叢攷』, 『文字類輯』, 『彙言錄』, 『群西淵海抄』, 『驥志』, 『儷彙』등 많은 유서들이 편찬되었다.

 조선에서 편찬된 유서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에 앞서 본고에서는 중국에서 명대 혹은 그 이전에 간행되어 조선에 유입된 중국판 유서에 대한 해제 연구를 목표로 한다. 규장각 서목에서 명간본으로 되어 있는 『北堂書抄』, 『白孔六帖』, 『新刊增補萬寶事山』, 『藝文類聚』, 『蒙求』, 『翰苑新書』, 『玉海』, 『經濟類編』, 『唐類函』, 『圖書編』, 『明辨類函』, 『山堂肆考』, 『三才圖會』, 『涉世雄譚』, 『詩雋類函』, 『荊川稗編』, 『五車韻瑞』, 『鴻書』, 『彙書詳註』등을 대상으로 하였다. 조선의 학술사의 흐름과 관련하여 중국에서 수입된 叢書는 더욱 의미가 크다. 徐命膺의 『保晩齋叢書』처럼 한 사람의 저술만을 묶어 叢書라고 한 예도 있지만 「題保晩齋叢書」에서 이른 것처럼 『漢魏叢書』, 『唐宋叢書』, 『格致叢書』등 諸家의 저술을 하나의 책으로 묶어놓은 것을 이른다. 중국의 총서 중에 위에 든 것 외에 『說郛』와 『說郛續』, 『檀几叢書』, 『陳眉公秘笈』, 『津逮祕書』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러한 총서는 특히 18세기 이래 조선에서 적극적으로 수입하여 다양한 기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여기서는 위에서 든 명판본 유서를 대상으로 하여 상세 해제를 할 예정이다.

 특히 규장각에는 19세기 왕실에서 수입하여 集玉齋에 보관한 총서가 매우 많거니와, 그 이전에 수입된 명판본 총서도 상당수에 달한다. 대부분의 총서는 분량이 방대하여 정리가 온전하게 이루어져 있지 못하다. 전체 총서에 대한 개략적인 해제는 되어 있지만, 총서에 수록되어 있는 문헌 하나하나에 대한 정보는 찾기 어렵다. 본고에서는 1차적으로 明代에 간행된 총서류에 대한 해제 연구를 목표로 한다. 다만 총서의 개념 자체가 복잡하며, 규장각 도서목록에도 총서류가 아닌 다른 분류에 들어 있는 총서도 있으며 총서류 중에서 총서라 하기 어려운 것 역시 상당수에 달한다. 여기서는 우선 규장각 도서목록에서 총서류로 분류된 것을 대상으로 하되, 향후 총서류에 포함할 수 있는 전적은 추가로 다를 예정이다. 1차년에서는 『唐宋叢書』, 『鴉村叢話』, 『少室山房筆叢』, 『商氏隨錄』, 『野客叢書, 『叢書』등을 대상으로 하였다.  해제는 총서 및 개별 문헌의 편찬자, 개별 문헌의 내용, 개별 문헌이 수록된 판본, 개별 문헌이 우리나라 기록에 인용되어 있는 상황 등을 검토하기로 한다.

Ⅱ. 明板本 類書 ▲목차

1. 唐宋代 편찬된 유서 ▲목차

 1) 『北堂書抄』
 唐의 虞世南이 편찬한 類書. 虞世南(558~638)은 字가 伯施이고, 姚江(越州 餘姚) 출신이다. 唐 太宗의 신임을 받아 弘文館 學士, 秘書監을 거쳐 銀靑光祿大夫에 올랐다. 諡號는 文懿이다. 王羲之의 書法을 익혀, 歐陽詢, 褚遂良과 함께 당나라 초기의 3대가로 일컬어지며, 특히 楷書의 1인자로 알려져 있다. 서법 이론에 대한 『筆髓論』, 『書旨述』등이 널리 알려져 있으며 『北堂書抄』외에 『群書理要』, 『兔園集』, 『虞秘監集』등의 저술이 있다.
 이 책은 隋에서 秘書郞으로 재직할 때 帝王, 後妃, 政術, 刑法, 封爵, 設官, 禮儀, 藝文, 樂, 武功, 衣冠, 儀飾, 服飾, 舟, 車, 酒食, 天, 歲時, 地 등 19部로 나누고 다시 801類로 세분하여 기술하였는데 전체가 160권이다. 歐陽詢 등의 『藝文類聚』, 白居易 등의 『白孔六帖』, 徐堅 등의 『初學記』와 더불어 唐代 4대 類書로 꼽힌다.
 규장각에 160권 15책 목판본이 전하는데(奎中 4220) 明 陳禹謨이 校訂하고 補註를 단 판본이다. 陳禹謨는 字가 錫元, 號가 海虞이고 常熟 출신이며 『經籍異同』, 『經言枝指』, 『四書名物考』, 『左氏兵略』, 『說儲』, 『駢志』, 『廣滑稽』등 많은 저술을 남긴 이름난 문인이다. 표지는 개장된 것이며 목록이 적혀 있다. 萬曆 28년(1600) 陳禹謨가 지은 序가 실려 있는데 바로 이 무렵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凡例과 卷目, 目錄이 권두에 붙어 있다. 萬曆 28년 간행된 明刊本으로 추정된다. 고려대학교에도 같은 판본이 있는데 160권 16책으로 되어 있다. 서울대 중앙도서관에 있는 판본은 160권 20책으로 光緖 14년(1888) 南海孔氏三十有三萬卷堂에서 간행한 것이며, 淸의 孫星衍, 嚴可均, 王弘之 外 8명이 校正, 增補하였다.
 『星湖僿說』, 『靑莊館全書』, 『與猶堂全書』, 『五洲衍文長箋散稿』등 여러 문헌에서 이 책을 인용하여 고증하고 있다. 李德懋는 『耳目口心書』에서 類書로서 가장 유명한 것으로 『藝文類聚』, 『北堂書鈔』, 『初學記』, 『白孔六帖』, 『杜氏通典』을 든 바 있다.
 2) 『唐宋白孔六帖』
 唐 白居易의 『白氏六帖』과 宋 孔傳이 편찬한 『後六帖』을 합쳐 만든 類書. 『白孔六帖』이라고 줄여 부르기도 한다. 『四庫全書總目提要』에는『文獻通考』를 인용하여 각기 30권으로 되어 있었는데 이 두 책을 합친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고 또 60권을 100권으로 만든 사람도 알 수 없다고 한다. 白居易(772-846)는 字가 樂天, 號가 香山居士이며 河南省 新鄭縣 출신이다. 『白樂天集』, 『元白唱和集』, 『劉白唱和集』, 『白氏六帖』등의 저술이 있다. 孔傳은 南宋 초기의 인물로 字가 世文이고 벼슬이 知撫州軍州事 兼 管內勸農使를 지냈으며 『東家雜記』등의 저술이 있다.
 白居易의 『白氏六帖』은 여러 문학 작품에 나타난 어휘를 1870여 개의 부문으로 분류하여 편찬한 것으로 律, 令, 格, 式의 條目으로 나누고 律은 擅興律, 賊盜律 등으로, 令은 樂令, 選舉令, 考課令, 封爵令, 喪葬令, 戶令, 授田令, 祠令, 雜令 등으로, 格은 倉部格, 金部格, 戶部格, 祠部格 등으로,式은 兵部式, 祠部式, 吏部式, 考功式, 戶部式, 主客式, 水部式 등으로 다시 분류하였다. 律만 전하고 令, 格, 式은 일실되었다. 孔傳의 『後六帖』은 『續六帖』으로도 되어 있는데 3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지만 현재 따로 전하지 않는다.
 『白孔六帖』은 대분류 없이 天, 地, 日, 月, 星, 明天文, 晨夜, 律曆, 律呂, 雲, 雨, 雪, 風, 霞, 霰, 雷, 雹, 虹, 蜺, 天河, 霜露, 霧, 冰, 火, 灰, 塵, 敘四時, 春, 夏, 秋, 冬, 歲陽, 歲名, 月陽, 寒, 熱, 陰陽, 元日, 人日, 正月十五, 晦日, 社日, 中和節, 寒食, 三月三, 五月五, 伏日, 七月七, 七月十五, 九月九, 歲除, 閏月, 臘 등과 같은 하위 항목 아래 바로 관련 기록을 수록하였는데 그 항목이 일반적인 유서의 내용을 두루 포괄하고 있다. 『四庫全書』에 편입되어 있다. 규장각에 (奎中 2676)과 (奎中 4654) 두 종이 전한다. (奎中 4654)은 표제가 白孔類選으로, 卷頭題는 唐宋白孔六帖으로 되어 있다. 지질은 죽엽지가 아닌 백면지이며 明刊本으로 추정된다. 100권 49책이며 韓駒의 서문이 실려 있다. ‘摛文院’의 장서인이 날인되어 있어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던 책임을 알 수 있다. ‘朴啓楨’이라는 소장인도 찍혀 있다. 明 嘉靖 年間의 刊本으로 추정된다. (奎中 2676)은 20책 零本으로 권56-77, 권82-100 부분의 20책만 소장되어 있다. (奎中 4654)에 비하여 판형이 훨씬 크다. 표지는 개장되어 있는데 淸刊本으로 추정된다.
 『靑莊館全書』에 이 책을 인용한 바 있고 『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周亮工의 『因樹屋書影』을 인용하면서 이 책을 든 바 있다. 『與猶堂全書』, 『貞㽔閣集』, 『海翁藁』등에서 이른 ‘唐六帖’이 이 책을 가리키는 듯하다. 조선시대 문헌에는 『白孔六帖』보다 『白氏六帖』를 인용한 사례가 더욱 많다. 『成宗實錄』(1470년 1월 11일), 金正國의 『思齋集』등에 『白氏六帖』을 인용하였는데 그 내용이 『白孔六帖』에 보이지 않으므로 이 시기까지 『白氏六帖』을 직접 보았을 가능성도 있다. 『白氏六帖』의 일부인 宋板本 『白氏六帖事類集』이 영인되어 전한다.
 3) 『新刊增補萬寶事山』
 宋의 錢縉이 편찬한 점술과 관련한 類書. 책 자체에서는 편찬자가 명기되어 있지 않다. 淸 黄虞稷이 편찬한 『千頃堂書目』에 “錢縉萬寶事山二十卷”이라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錢縉은 어떤 인물인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江南通志』에 송 徽宗 政和 연간의 인물로 錢縉을 적고 武進人이라 하였다. 서명에 “新刊增補”라 하였고 明刊本으로 추정되므로, 명나라 때 錢縉의 『萬寶事山』을 증보하여 간행한 책임을 추정할 수 있다.
 규장각에는 낙질 1책이 소장되어 있는데(奎中 5359) 권6-8 부분으로 明刊本으로 추정된다. 表題는 “萬寶事山”으로 되어 있다. “李正臣印”, “南陽墓會藏” 등의 장서인이 찍혀 있는데 李正臣(1660-1727)은 본관이 延安, 자는 邦彦, 호는 松蘗堂이며 李明漢의 증손이다. 이 책은 손바닥의 마디를 이용한 점술에 필요한 정보를 암기에 편하도록 七言詩 등 詩의 형태로 수록하였다. 類書의 형태를 취하기는 하였지만 실제 인용한 책을 밝힌 것은 몇 조목 되지 않는다. 권6은 時課門, 권7과 8은 星命門이다. 時課門은 袞天罡時課, 諸葛孔明馬前時課, 新增戚都督未卜先知時課 등으로 되어 있다. 袞天罡時課는 占求財, 占行人, 占失物, 占失落何方, 占見貴人 등 사례에 따라 칠언절구를 수록하였다. 諸葛孔明馬前時課는 子時斷, 丑時斷 등 시간에 따라 점을 치는 것으로 求財, 行人, 失物 등 구체적 사례에 해당하는 내용을 칠언절구로 적었다. 新增戚都督未卜先知時課는 占婚姻, 占六甲, 占求名 등과 같이 사례에 따른 내용을 칠언시로 적었다. 이어 新增占燈花, 占鴉鵲噪吉凶 둥 여러 점을 치는 법을 소개하였다. 권7의 星命門은 註解六十花甲納音篇, 天干上合, 天干化運 등으로 되어 있는데 遁時例, 起胎法, 起息法 등 다양한 사례에 따라 干支를 붙여 내용을 오언시로 풀이하였다. 권8은 天干十詠과 地支十二詠, 繼善篇, 喜忌篇으로 되어 있는데 天干十詠은 醉醒集에서 인용한 것임을 밝혔다. 이화여대 도서관에도 『新刊增補萬寶事山』1권 1책이 소장되어 있는데 제12책 「琴學門」부분이다. 이 책은 중국과 일본의 여러 서목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국내 문헌에서 이 책을 인용한 사례는 확인되지 않는다.
 4) 『藝文類聚』
 唐의 歐陽詢 등이 唐 高祖의 명을 받들어 편찬한 類書. 歐陽詢(557-641)은 字가 信本, 潭州의 臨湘 출신이다. 隋나라에 벼슬하여 太常博士를 지내다가 唐나라에 들어 太子率更令, 宏文閣學士 등을 역임하였는데 그 벼슬 때문에 歐陽率更으로 일컬어졌다. 書法에 뛰어나 虞世南, 褚遂良, 薛稷 등과 함께 初唐四大家로 칭도되었다. 행적은 『唐書』의 傳에 자세하다.
 이 책을 편찬할 때 歐陽詢를 主编으로 하여 裴矩, 陳叔達 등이 참여하여 武德 7년(624) 완성하였다. 이 책에는 蘇味道, 李嶠, 宋之問, 沈佺期 등 당 초기의 시가 수록되어 있으나 이들은 歐陽詢보다 후세의 인물이므로 후대에 덧붙여진 것이라 하겠다. 이 책은 전체가 100권이다. 46部로 구성되어 있고 部에는 727의 子目이 수록되어 있다. 事實을 앞에 두고 詩文을 뒤에 배치하였는데 類書 중에서 體例가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宋代 이후 이 책이 광범위하게 이용되면서 여러 차례 판각을 하였는데 가장 이른 것은 명말 馮舒가 교정한 판본이 가장 선본으로 일컬어진다.
 규장각에는 明의 秣陵 王元貞이 교정을 보아 간행한 목판본이 소장되어 있는데(奎中 3633) 35권 중 규장각본은 권1-2 부분 1책이 빠진 34책이 소장되어 있다. 王元貞은 많은 서적을 간행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新增說文韻府群玉』역시 그가 교정을 보아 간행한 바 있지만 그 생애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판심에 “宏達堂校榟”로 되어 있다. 宏達堂에서 간본은 光緖 5년(1880)에 간행된 것이다. 규장각 서지정보에 明刊本이라 한 것은 잘못이다. 卷末에는 “井硏廖登廷校字”라 되어 있는데 廖登廷은 淸代의 인물인데 자세한 것은 알려져 있지 않다. 책마다 앞부분에 “集玉齋” 도장이 찍혀 있다. 장서각에 소장된 100권 16책 목판본은 萬磨 15년(1587)의 序가 수록되어 있다. 고려대학에 甲辰字로 간행한 朝鮮刊本의 잔권이 전한다.
 車天輅의 『五山說林草藁』에서 처음 이 책을 인용한 사례가 보이며, 李睟光의 『芝峯類說』등 17세기 문헌에서부터 이 책을 크게 참조한 듯하다. 『潛谷遺稿』, 『自著』, 『硏經齋全集』, 『林下筆記』, 『五洲衍文長箋散稿』등에도 이 책을 인용한 바 있다. 金堉이 『類苑叢寶』를 편찬할 때 크게 참조한 책이다. 李德懋는 『耳目口心書』에서 類書로서 가장 유명한 것으로 『藝文類聚』, 『北堂書鈔』, 『初學記』, 『白孔六帖』, 『杜氏通典』을 든 바 있다.
 5) 『標題補注蒙求』
 唐의 李瀚이 편찬한 類書. 李瀚은 李翰으로 표기된 예도 있는데, 唐의 詩人으로 越州의 贊皇 출신이다. 李華의 아들이지만 生沒年은 알려져 있지 않다. 陽翟에 거주하면서 여러 차례 翰林學士로 추천되었다. 『新唐書』 「藝文志」에 개략적인 생애가 적혀 있다.
 『蒙求』가 李翰에게서 비롯하여 『李氏蒙求』라는 명칭이 생겼고 후대 이 책을 모방하여 다양한 책이 『蒙求』라는 이름만 취하였는데 『廣蒙求』, 『叙古蒙求』, 『春秋蒙求』, 『左氏蒙求』, 『十七史蒙求』, 『南北史蒙求』, 『三國蒙求』, 『唐蒙求』, 『宋蒙求』 등이 그러한 예이다. 규장각에도 李拔式의 『爾雅蒙求』, 徐朝俊의 『高厚蒙求』, 蔡友의 『文字蒙求』, 王令의 『十七史蒙求合編』, 王筠의 『文字蒙求』 등 淸代에 편찬된 책이 소장되어 있지만 모두 원래의 『蒙求』와는 별 관련이 없다. 조선에서도 李尙爀의 『借根方蒙求』가 있는데 算學에 대한 아동용 서적이다.
 『蒙求』는 이 책은 李瀚이 古人의 事迹과 관련한 자료를 모아 四字의 韻語로 對를 맞추어 암송하기 편하게 한 것이다. “王戎簡要”, “裴楷清通”, “孔明卧龍”, “吕望非熊” 등과 같이 항목 592구가 실려 있는데 앞 두 글자는 인물이고 뒤 두 글자는 중요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마지막 “浩浩萬古 不可備甄 芟煩摭華 爾曹勉旃” 4구는 고사가 아닌 권려의 말이다. 이러한 원문에 宋의 徐子光이 注를 달았으므로 『標題補注蒙求』 혹은 『蒙求補注』라고 한다. 『四庫全書』에 편입된 판본은 2권으로 되어 있다. 徐子光은 그 생애가 자세하지 않다.
 규장각에는 2종이 소장되어 있는데 (想白古 039.51-Y56p)는 卷頭題가 標題補注蒙求로 되어 있는데 明의 顧起綸이 補輯한 것이다. 上中下 3권 3책의 목판본으로 版心題는 蒙求로 되어 있다. 萬曆 改元(1573) 顧起綸이 玄中小史에서 쓴 序가 실려 있다. 이에 따르면 顧起綸이 집안에서 소장하고 있던 徐子光이 注를 단 宋本을 교정하여 간행한 것이라 한다. 顧起綸은 16세기 후반의 인물로 字는 更生,號는 元名이며,無錫 출신이다. 詩酒를 즐겼고 書法에 뛰어났으며 『句漏集』, 『赤城集』, 『國雅』 등의 저술이 있다. 표지는 개장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는 “發傳之印”, “好讀書”, “王發傳印”, “巖儼氏” 등의 장서인이 날인되어 있으나 그 내용은 미상이다. 標目에 卷上에는 賞譽, 知遇, 名儒 등 89條, 卷中에는 放達, 諫臣, 排詆 등 50條, 卷下에 素志, 守道, 淸介 등 68條가 실려 있고, 이어 引緝引注諸書라 하여 인용한 서목 75종이 나열되어 있다. 권두에 편찬자가 李翰으로 되어 있고 徐子光 補注, 顧起綸 編輯, 吳中珩 校正으로 되어 있다. 이 책은 南京圖書館에 소장된 萬曆 元年 刻本과 비슷한 시기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奎中 5140)은 『李氏蒙求補注』로 되어 있고, 淸 金三俊이 편집한 6권 4책의 목판본으로 淸 道光 9年(1829) 간행한 것이다. “集玉齋” 도장이 찍혀 있다. 總目 이 권두에 실려 있다. “後學仁和金三俊元李輯”이라 되어 있다. 金三俊은 그 생애가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十七史蒙求合編』 역시 그가 편집하여 간행한 것이므로, 19세기 출판에 관여를 많이 한 인물로 추정된다. 마지막에 「蒙求補注考證」이 실려 있는데 萬曆 초년 顧起綸이 宋本을 중간한 판본을 대상으로 오류를 고증한 것이 실려 있다.
 장서각에 소장된 『蒙求註解』는 조선의 洪翼周가 19세기 전반 集註하여 필사한 책이다. 계명대학 등에 소장되어 있는 『續蒙求分註』는 柳希春이 1575년 『蒙求』와 동일한 체제로 조선의 문헌을 보태어 새로 만든 목판본 혹은 목활자본인데, 장서각 등에 후쇄본과 필사본도 따로 전한다. 일본에서는 이 책을 바탕으로 1635년 『標題徐狀元補注蒙求』를 간행한 바 있으며 이후에도 여러 차례 간행되었는데 국내 여러 도서관에도 소장되어 있다.
 『蒙求』는 『續蒙求分註』에서 단적으로 알 수 있듯이 16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우리 문헌에 나타나는데, 李滉의 『退溪集』, 尹國馨의 『聞韶漫錄』, 趙憲의 『重峰集』, 李睟光의 『芝峯集』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6) 『翰苑新書』
 편찬한 사람 宋代의 인물이 편찬한 遺書. 明 陳文燭의 序亦에 宋人이라고만 되어 있다. 宋의 謝枋得이 편찬한 것으로 되어 있는 간본도 있는데 가탁한 것으로 추정된다. 謝枋得(1226-1289)은 南宋의 문인으로 字는 君直,號는 信州 疊山이며 信州의 弋陽 출신이다. 『批點檀弓』, 『疊山集』등의 저술이 있고,『文章軌範』에 평점을 달았다.
 이 책은 前集 70권, 後集上 26권, 後集下 6권, 別集 12권, 續集 42권으로 되어 있는데 한 사람이 일시에 편찬한 것은 아닌 듯하다. 前集에서 1권에서 60권까지는 三公, 太師, 太傅, 太保 등 관직 이름을 표제로 삼고 그 아래 다시 세부 항목을 두어 다양한 기사를 싣고 四六警語를 마지막에 배열하였다. 61권부터 70권까지는 家世, 閥閱, 座主, 門生 등으로 분류되어 있고 매 분류 아래 歷代의 事實과 宋朝의 事實, 自序, 旁引, 群書精語, 前賢 詩詞, 四六警語 등으로 구성하였다. 後集上은 登極, 遜位, 上尊號, 聖節, 慶夀, 立后妃, 皇后, 皇太后, 公主, 誕皇太子, 皇太子, 建儲 등의 주제로 나누고 歴代事實과 宋朝事實, 前賢詩詞 등으로 나누어 기록하였는데 表箋의 제작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 대부분이다. 後集下는 類姓, 發舉, 詞科, 入學 등을 다루었다. 別集에는 宋人의 劄狀, 致語, 朱表, 表文, 靑詞, 疏語, 册文, 祝文, 祭文 등을 실었다. 續集에는 宋人의 書啓를 실었는데 23권까지는 官名으로 분류하였고 24권에서 42권은 事件으로 분류하였다. 『四庫全書』에도 수록되어 있다.
 규장각에 2종이 소장되어 있는데 모두 仁壽堂에서 간행한 동일한 판본이다. 仁壽堂 간본은 日本의 公文書館에 소장되어 있는데 萬曆 19년에 간행된 것이므로, 이 책 역시 같은 시기에 간행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표지는 모두 개장되어 있고 卷頭題는 『新編簪纓必用翰苑新書』로 되어 있다. (奎中 3628)은 木版本 18冊인데 後集 3-4권, 別集 권1부분이 빠져 있다. “弘文館” 소장인이 날인되어 있다. 萬曆 19년(1591) 陳文燭의 序가 실려 있다. 陳文燭(1525-?)은 字가 玉叔, 號가 五岳山人이며 湖北의 沔陽 출신이다. 福建按察使,南京大理寺卿 등을 역임하였는데 博學하면서 시에 뛰어났으며 『二酉園集』등의 저술이 있다. 序 다음에 (新編簪纓必用翰苑新書總目)이 실려 있는데 79門 12권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혔고, “金陵書肆 龍泉唐廷仁 對峰周曰校 鐫行”으로 되어 있다. 이어 前集, 後集의 총목이 따로 실려 있다. (奎中 3629)은 목판본 12권 10책으로 全集에 해당하는 책만 남아 있다. 序와 總目과 目錄이 실린 제1책도 소장되어 있지 않다. 고려대학에도 비슷한 간본이 일부 소장되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는 후쇄본이 소장되어 있는데 明의 許以忠이 교정한 것으로 되어 있다.
 중국의 역대 騈儷文을 뽑아 간행한 편자 미상의 『儷文抄』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데 1700년 芸閣印書體字로 간행한 책으로, 『翰苑新書』에 수록된 작품을 인용하고 있다. 李德懋의 『耳目口心書』에 『淵鑑類函』을 재인용하여 이 책을 소개한 바 있다.
 7) 『小學紺珠』
 南宋 王應麟이 初學者를 위하여 편찬한 類書이다. 王應麟(1223-1296)은 字가 伯厚, 慶元府 鄞縣 출신이며, 號는 厚齋이다. 太常寺主簿‚ 知徽州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는데 丞相 留夢炎과의 不和로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와 오로지 저술에 힘썼다. 朱子에 근원을 두면서도 博學의 학문적 경향으로 是非를 고증하는 데 뛰어났다. 『玉堂類稿』‚ 『鄭氏周易注』, 『漢制考』‚ 『困學紀聞』, 『論語孟子考異』, 『通鑑地理通釋』, 『六經天文編』, 『四明文獻集』, 『小學紺珠』등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天道類, 律曆類, 地理類, 人倫類, 性理類, 人事類, 藝文類, 歷代論, 聖賢類, 名臣類, 氏族類, 職官類, 治道類, 制度類, 器用類, 儆戒類, 動植類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毛晉의 汲古閣에서 간행한 10권 9책 목판본이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데(奎中 4914) 표지는 개장이 되지 않은 것인 듯하다. 明 毛晉이 校訂을 한 明刊本으로 大德 庚子年(1300) 方回의 序와 辛丑年(1301) 牟應龍의 序가 붙어 있다. 牟應龍의 序에 따르면 王應麟의 아들 王昌世가 이 책을 간행하였다고 한다. 권2 地理에 海東三國이라 하여 新羅, 高麗, 百濟를 간략하게 적고 있다. 장서각에는 『策題紺珠』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는 유사한 계열의 목판본 10권 4책이 소장되어 있는데 宋의 王岑이 較定한 것으로 方回와 牢應龍의 序가 붙어 있다. 성균관대 존경각에는 10권 8책의 목판본이 소장되어 있는데 淸代의 간본으로 추정된다.
 『靑莊館全書』, 『與猶堂全書』, 『碩齋稿』, 『梣溪遺稿』등 18-19세기 문헌에 이 책이 자주 인용되어 있다.
 8) 『玉海』
 南宋 王應麟이 편찬한 類書이다. 王應麟(1223~1296)은 字가 伯厚, 慶元府 鄞縣 출신이며, 號는 厚齋이다. 太常寺主簿‚ 知徽州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는데 丞相 留夢炎과의 不和로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와 오로지 저술에 힘썼다. 朱子에 근원을 두면서도 博學의 학문적 경향으로 是非를 고증하는 데 뛰어났다. 『玉堂類稿』‚ 『鄭氏周易注』, 『漢制考』‚ 『困學紀聞』, 『論語孟子考異』, 『通鑑地理通釋』, 『六經天文編』, 『四明文獻集』, 『小學紺珠』등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이 책은 200권 120책으로 되어 있는데 뒤에 『辭學指南』4권이 붙어 있다. 天文, 律憲, 地理, 帝學, 聖制, 藝文, 詔令, 禮儀, 車服, 器用, 郊祀, 音樂, 學校, 選舉, 官制, 兵制, 朝貢, 宮室, 食貨, 兵捷, 祥瑞 등 21門 240여 類로 구성되어 있다. 宋代의 『實錄』과 『國史日歷』등 일실된 자료에서 인용한 것이 많아 사료적 가치가 높다. 『四庫全書』에 수록되어 있다.
 규장각에 2종이 소장되어 있는데 (想白古貴 039.51-W1842o)는 200권 중에서 권79-81 부분의 1책이 남아 있는데 元나라 때 간행한 木版本으로 추정된다. (奎中 4708)은 120책이다. 권두에 康熙 26년(1687) 李振裕의 補刊玉海序, 乾隆 3년(1738) 熊本의 序, 萬曆 己丑 趙用賢의 識가 실려 있는데 그 아래 아무런 표식 없이 楊秉鉞, 李衡, 張廷相, 唐應龍 등의 이름을 적었는데 萬曆 연간 간본에 간여한 인물로 추정된다. 이어 補刻玉海例言이 실려 있고 그 끝에 “門人 寶應 王式丹 上元 周銘 江陰 徐世沐 江寧 郭正宗 句容 李蘊 識 上元 王時中 仝校”라 되어 있다. 이어 萬曆十一年重修玉海書가 실려 있는데 王弘誨, 趙志皐, 楊秉越, 葉世冶, 臧懋循, 莊文龍, 周仕陛(土), 黃應春, 袁惟慶 등 校刊者 명단이 나열되어 있다. 또 康熙帝의 명에 의하여 간행하게 된 경위를 적은 玉海指揮 등도 수록되어 있다. 版心에는 康熙三年刊, 萬曆癸未年補刊, 康熙十六年刊, 康熙二十六年刊, 乾隆三年刊, 乾隆庚戌年刊, 乾隆五十六年刊, 崇禎丙子 등 刊記가 매우 다양하게 새겨져 있다. 제1책은 目錄이다. 元의 王厚孫이 校를 하여 明 明萬曆 연간과 嘉靖 연간에 간행한 판본, 淸의 李振裕의 校를 보태어 康熙 27년(1688) 간행한 판본, 乾隆 3년 간행한 판본 등이 있는데 규장각에 소장된 것은 乾隆 56년(1791) 이후 간행된 판본으로 추정된다.
 98책 후반부에 『辭學指南』, 『詩攷』, 『詩地理攷』, 『漢藝文志攷』, 『通監地理通釋』, 『王會』, 『漢制攷』, 『踐阼篇』, 『急就』, 『小學紺珠』, 『姓氏急就篇』, 『六經天文編』, 『周易鄭康成注』, 『通鑑答問』등 王應麟의 다른 저술들이 함께 묶여 있는데 版心題는 독립된 서명으로 되어 있지만 版心의 간기는 萬曆, 康熙, 乾隆 등 여러 시기에 판각되었음을 밝히고 있으며 이 부분까지 모두 함께 인출한 것임을 알 수 있다. 『辭學指南』은 4권으로 箴, 銘, 記, 贊, 頌, 序, 制, 誥, 詔, 表, 露布, 檄 등 다양한 문체의 성격과 예문을 실어 科擧에 대비하게 한 책이다. 『詩攷』는 1권으로 齊詩, 魯詩, 韓詩 등 『詩經』의 3종에 대한 諸家의 학설을 모은 책이다. 『詩地理攷』는 6권으로 『鄭氏詩譜』에다 『爾雅』, 『説文』, 『水經』등 『시경』의 지명과 관련한 다양한 기록을 모아 엮은 책이다. 『漢藝文志攷』20권은 『漢書』의 「藝文志」에 실린 班固의 自註는 자세하지 않고 顔師古의 注는 다양하지 못하여 王應麟이 다양한 자료를 취합하여 補註를 단 책이다. 『通監地理通釋』은 『通監』의 地理에 대한 내용을 州城, 都邑, 山川, 形勢 등의 4類로 나누어 唐河湟十一州와 石晉十六州, 燕雲十六州 등을 뒤에 붙인 책이다. 『王會』는 『周書王會』혹은 『王會篇解』, 『周書王會補注』라고도 하는데 『逸周書』의 한 편명인 「王會編」에 대한 자료를 모아 1권으로 편찬한 책이다. 『漢制攷』는 『漢書』와 『續漢書』등에서 制度를 고증한 책으로 4권으로 되어 있다. 『踐阼篇』은 『踐阼篇集解』라고도 하는데 『大戴禮』의 「武王踐阼」에 대한 고증한 1권의 책이다. 『急就』는 『急就篇』이라고도 하는데 4권으로 漢의 史游가 字義에 대해 기술한『急就』에 補注를 단 책이다. 『小學紺珠』는 初學者를 위한 類書로 10권이다. 天道類, 律曆類, 地理類, 人倫類, 性理類, 人事類, 藝文類, 歷代論, 聖賢類, 名臣類, 氏族類, 職官類, 治道類, 制度類, 器用類, 儆戒類, 動植類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10권 9책 목판본이 따로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데 明 毛晉이 校訂을 한 明刊本으로 大德庚子年(1300) 方回의 序가 붙어 있다. 『姓氏急就篇』은 漢의 史游가 편찬한 『急就篇』을 體例를 따라 姓氏를 하나의 문장으로 연결하여 암송하기 쉽도록 만든 2권의 책이다. 『六經天文編』은 三代 이전의 推歩에 대한 기록을 모아 2권으로 편찬한 책으로, 天文 이외에도 陰陽五行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周易鄭康成注』은 漢의 鄭元이 편찬한 책인데 原本이 일실된 후 王應麟이 여러 서적에서 인용된 내용을 모아서 편찬한 1권의 책이다. 『通鑑答問』은 周 威烈王에서부터 漢 元帝에 이르기까지 『通鑑』에 실린 역사에 대한 고증을 펼친 책으로 5권으로 되어 있다. 『玉海』에 붙어 있는 책은 『急就』, 『踐阼篇』등 몇 종을 제외하고 대부분 『四庫全書』에 따로 편입되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中宗 연간 간행된 丙子字 낙질이 소장되어 있다. 또 南京 國子監에서 1589년 간행한 200권 100책 목판본이 소장되어 있는데 『辭學指南』, 『詩攷』, 『漢書藝文志攷』, 『通鑑地理通釋』, 『漢制』, 『急就篇』등이 부록에 실려 있다. 至正 11년(1351) 李桓의 序, 至正 辛卯年(1351) 王介의 序, 萬歷 己丑年(1589) 趙用賢의 引 등이 실려 있다. 版心에 “萬曆癸未年補刊, 嘉靖癸戌年刊, 萬曆十六年, 萬曆丁亥年, 正德二年, 嘉靖乙卯年” 등의 간기가 있으므로, 嘉靖 연간부터 萬曆 연간까지의 여러 판본이 혼입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성균관대 존경각에는 淸 乾隆 56년(1791) 간행한 255권 100책이 소장되어 있고 장서각에는 嘉慶 11년(1806) 간행한 263권 120책이 소장되어 있다.
 田祿生의『壄隱逸稿』등 고려시대 문헌에서부터 이 책이 인용되고 있으며 『高麗史節要』에 따르면 1364년 明州의 方國珍이 사신을 통하여 이 책을 바쳤다고 하였다. 『太宗實錄』등 역대 실록에도 여러 차례 이 책이 인용되어 있다. 『眉巖日記』에는 尹弘中이 靈光에서 올려 보낸 책 중에 『玉海』57책이 들어 있다. 『熱河日記』, 『靑莊館全書』, 『海東繹史』, 『硏經齋全集』, 『林下筆記』, 『五洲衍文長箋散稿』등에도 이 책을 인용한 바 있다. 丁若鏞은 『與猶堂全書』에서 『漢魏叢書』와 함께 이 책의 博學을 높게 평가한 바 있다. 『東錄』, 『新補彙語』, 『萬家叢玉』, 『文字類輯』, 『經史集說』, 『新補彙語』, 『國朝彙言』, 『藝苑新編』, 『波斯肆』, 『波斯寶』등 우리나라에서 편찬된 대부분의 類書가 이 책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玉海』뒤에 붙어 있는 『詩攷』는 『惕齋集』, 『石泉遺稿』등에서 인용한 바 있다.

2. 明代에 편찬된 유서 ▲목차

 1) 『經濟類編』
 明 馮琦가 편찬한 類書. 馮琦(1558~1604)는 字가 用韞, 號가 琢庵이며 山東 臨朐 출신이다. 萬曆 연간의 저명한 관원이자 학자로 벼슬은 禮部尚書를 지냈고 諡號는 文敏이다. 평생 實學에 힘을 기울여 政事에 임하여 부지런하고 엄숙하였고, 東林學派의 일원으로서 直言을 마다하지 않았다. 당시 부패한 官界를 비판하고 혼란한 사회현실을 힘써 개혁하고자 하였는데, 『宋史紀事本末』, 『海岱會集』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문집 『宗伯集』과 『馮用韞先生北每集』등이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은 馮琦이 개략적인 분류 작업을 하여 저술하다가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는데 그 아우 馮瑗과 門人 周家棟, 吳光儀 등이 20부류로 다시 정리하여 편찬하였다. 그 내용은 帝王類 21卷, 政治類 8卷, 儲寶類 2卷, 宮掖類 3卷, 臣類 6卷, 諫靜類 3卷, 詮衡類 6卷, 財賦類 4卷, 禮儀類 7卷, 樂類 1卷, 文學類 8卷, 武功類 13卷, 邊塞類 3卷, 刑法類 3卷, 工類 1卷, 天類 4卷, 地類 2卷, 人倫類 3卷, 人品類 5卷, 人事類 5卷, 道術類 3卷, 物類 1卷, 雜言類 2卷 등으로 되어 있다. 그 체제는 『冊府元龜』를 따랐지만 『冊府元龜』가 史傳을 중심으로 한 데 비하여 이 책은 諸子百家의 다양한 文章을 두루 수록하였다. 『四庫全書』에 이 책이 수록되어 있다.
 규장각에는 100권 100책의 목판본이 소장되어 있는데(奎中 3122) 1604년 간행된 것이다. 표지는 개장된 것이다. ‘內閣’이라는 장서인이 날인되어 있어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던 책임을 알 수 있다. 매권 卷頭에 개인의 소장인이 있었지만 오려내어 확인할 수 없다.
 卷頭에 1604년 쓴 吳光義의 序가 실려 있는데 吳光義는 明의 문인으로 字가 行可,號가 覺庵이며 無爲州 출신이다. 卷頭에 7則의 〈凡例〉가 수록되어 있는데 唐의 四家類書의 체제를 따랐다고 하였는데 곧, 『北堂書抄』, 『藝文類聚』, 『白孔六帖』, 『初學記』를 가리키는 듯하다. 馮琦가 편찬한 원본에서 중복되는 일부만 수정하였다고 한 것으로 보아 범례는 아우 馮瑗이 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어 「校刻姓氏」가 나오는데 尹應元, 馮瑗, 馮夢禎 등 44인의 이름이 보인다. 그 끝에 “大明萬曆三十二年(1604)校刻於浙虎林郡南屛山”이라는 刊記가 새겨져 있다. 전체 100권의 〈目錄〉도 실려 있다. 그 끝에 『四庫全書』에 수록된 판본에 실려 있는 馮夢禎의 序가 이곳에 있는데 서와 〈凡例〉 등과 함께 면수가 새겨져 있다는 점에서 이 순서가 옳은 듯하다. 馮夢禎은 明의 문인으로 字가 開之, 秀水人으로『歷代貢舉志』를 저술하였다. 卷頭題 아래에는 편자를 馮琦와 馮瑗이라 하였고 周家棟과 吳光義가 校閱한 것으로 되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과 장서각에 동일한 판본이 소장되어 있는데 100권 50책이다. 李瀷이 1696년 쓴 「答尹幼章」에 따르면 근래 이 책을 구하였다고 하였다. 『星湖僿說』에서 여러 차례 이 책을 인용하여 고증하였다. 李德懋의 『磊磊落落書』에는 『大淸一統志』를 인용하여 柴紹炳이 『考古經濟類編』을 저술하였다고 하였는데 곧 『省軒考古類編』으로 이 책과 별개의 것이다.
 2) 『唐類函』
 明의 兪安期가 편찬한 類書. 俞安期는 字가 羡長이며 처음에는 이름을 策이라 하고,字를 公臨이라 하였다. 吳江(지금의 江蘇 蘇州)출신인데 후에 金陵에서 거주하였다. 생몰 연대는 밝혀져 있지 않다. 문집 『寥寥集』외에 『唐類函』, 『類苑琼英』, 『啓隽類函』, 『詩雋類函』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규장각에 『詩雋類函』이 전한다.
 『唐類函』은 『北堂書鈔』, 『藝文類聚』, 『初學記』, 『白孔六帖』등 전대의 유서에서 중복되는 것은 산삭하여 하나로 만들고 『歲華紀麗』, 『通典』등을 덧보태어 편찬한 책이다. 이 책은 明의 徐顯卿이 校訂한 200권 40책본이 널리 유통되었다. 徐顯卿은 명의 학자로 字가 高望, 號가 檢菴이며 長洲 출신이며 문집 『天遠樓集』이 있다. 이 책은 크게 天部와 地部, 人部로 나누고 다시 歲時部, 帝王部, 后妃部, 儲宮部, 帝戚部, 設官部, 設官部, 封爵部, 政術部, 禮儀部, 文學部, 武功部, 邊塞部, 釋部, 道部, 靈異部, 方術部, 巧藝部, 京邑部, 州君部, 居處部, 産業部, 水部, 火部, 珍寶部, 布帛部, 儀飾部, 服飾部, 器物部, 舟部, 車部, 食物部, 五穀部, 藥部, 菜蔬部, 果部, 草部, 木部, 鳥部, 獸部, 鱗介部, 蟲豸部 등의 세부항목으로 나누어 기술하였다. 각 항목마다 『藝文類聚』, 『初學記』, 『北堂書鈔』등을 직접 인용한 다음, 專對, 詩, 賦, 贊, 表 등 문체에 따라 다양한 정보를 수록하였다.
 규장각에는 3종의 『唐類函』이 있다. 세 종 모두 明 萬曆 연간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며, 내용에도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1603년 쓴 申時行, 李維楨, 沈思孝, 程開祜 등의 서문이 앞에 실려 있는데 그 차례가 약간 다르게 실려 있으며 이어 22則의 〈目錄〉가 수록되어 있다. 〈目錄〉은 上下 2권으로 되어 있다. 卷頭에 편찬자 이름 옆에 校訂을 본 徐顯卿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兪安期와 같은 東吳 출신이라 하였다. 서문을 쓴 申時行은 明의 문인으로 字가 汝黙, 號는 瑤泉, 長洲人으로 『書經講義會編』, 『召對錄』, 『賜閒堂集』등의 저술을 남긴 이름난 학자다. 李維楨 역시 明의 이름난 학자로 字가 本寧, 京山人이며 『史通評釋』, 『黄帝祠額解』등의 저술이 있다. 沈思孝는 字繼山, 嘉興人이며 『秦錄』, 『溪山堂草』등의 저술이 있다.
 (奎中 3355)와 (奎中 3285)은 200권 40책으로 되어 있고, (奎中 3272)는 200권 60책인데 권118-127까지 5책이 일실되고 55책만 소장되어 있다. (奎中 3355)은 매권 권두에 ‘元軒’, ‘文獻之章’, ‘萬華墨書’ 등의 소장인이 날인되어 있다. 元軒은 憲宗의 호인데 헌종은 ‘元軒’과 ‘稽古右文之章’이라는 소장인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권 마지막 면에는 ‘海東靑丘’, ‘春坊內府之藏’이라는 소장인이 찍혀 있어 世子侍講院에 소장되어 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3종 모두 표지는 개장되어 있는데 그 중 (奎中 3355)본이 가장 상태가 양호하고 고급스럽게 장정되어 있다. (奎中 3285)는 ‘弘文館’ 소장인이 날인되어 있다. (奎中 3272)은 “離文院” 소장인이 찍혀 있다. 표지 이면에 “蘭居重訂”, “養正堂藏版”이라 되어 있어 養正堂에서 간행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일본 東京大에 萬曆 31년과 46년 養正堂藏版에 간행된 판본이 전한다.
 국립중앙도서관, 장서각, 존경각 등 여러 곳에 1603년 서문이 달린 중국 목판본 200권 40책이 소장되어 있다. 장서각에 초록한 필사본 1책이 전하며, 충남대 도서관에 宋의 蔣一蔡이 편찬한 『珠玉』필사본 1책이 소장되어 있는데 『堯山堂記』와 함께 『唐類函抄』가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17세기 무렵부터 우리나라에 유통되었다. 金昌業의 『老稼齋燕行錄』에 따르면1713년 청나라 황제로부터 『全唐詩』, 『佩文韵府』등과 함께 이 책을 받아온 것으로 되어 있으며, 「類苑叢寶序」에 따르면 金堉이 『類苑叢寶』를 편찬할 때 이 책을 크게 참조하였다고 한다. 『芝峯類說』, 『星湖僿說』, 『耳目口心書』, 『海東繹史』등에서 여러 가지 고증을 위하여 이 책을 널리 활용한 바 있다.
 3) 『圖書編』
 明 章潢이 易學과 天文에 대하여 편찬한 類書. 章潢(1527-1608)은 明代의 학자로, 字가 本清이고 號는 斗津이며 文德先生으로 일컬어졌다. 江西 南昌 출신으로 吳與弼, 鄧元錫, 劉元卿 등과 더불어 江右四君子로 불렸다. 白鹿洞書院에서 강학하였으며 『爲學次第』를 지어 제자를 길렀다. 이태리 신부 利瑪竇(Matteo Ricci)와 교분을 맺어 白鹿洞書院에서 西學을 강의하도록 했다. 西學을 반영한 『圖書編』을 지었으며 範淶總을 도와서 『南昌府志』를 편찬하였다. 그밖에 『周易象義』10권도 그의 저술이다.
 규장각에는 (奎中 2653) 1종이 소장되어 있는데 127권 64책으로 되어 있다. 만력 연간의 간본으로 추정된다. 앞에 만력 계축년 문인 萬尙烈이 白雲樓에서 지은 「刻章聘君先生圖書編丐敍」가 실려 있고 이어 章潢의 「自序」가 실려 있다. 萬尙烈의 序에 따르면 嘉靖 壬戌年(1562)에 편찬을 시작하여 萬曆 丁丑年(1577) 완성하였고 萬曆 41年(계축1613) 萬尙烈이 여러 문인과 벗의 도움을 받아 간행하였다고 하였다. 『四庫全書總目提要』에는 章潢의 年譜에서 1577년 『論世編』을 완성하고 萬曆 13년(1585) 『圖書編』을 간행하였다고 한 것을 들어 처음 『論世編』이라 이름한 것을 나중에 『圖書編』으로 바꾼 것이라 하였다. 규장각본은 1613년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萬尙烈은 사위이자 문인으로 字는 思文, 南昌 출신이며 저서에 『四書測』이 있다.
 이어 「圖書編原」이 붙어 있는데 ‘附’라는 표기가 되어 있다. 이어 〈凡例〉, 문인 丘曰敬, 萬尙烈, 周誠學과 아들 章自省이 편찬한 「章斗津先生年譜」, 책을 편찬할 때 참고한 서책 목록인 「圖書編採輯考證書目」, 전체 127권의 〈目錄〉이 수록되어 있다. 본문은 宋 朱震, 楊甲, 朱熹, 元張理, 吳澄, 明初 趙撝謙, 韓邦奇 등의 학술과 함께 易圖 100幅을 수록하였다. 1권에서 15권까지는 經義, 16권에서 18권까지는 象緯曆算, 29권에서 67권까지는 地理, 68권에서 125권까지는 人道이다. 126권 易象類編, 127권 學語多識은 說 뒤에 圖를 따로 붙였다. 127권 끝에 牌記가 있는데 張心虞, 王鳴陽 등 출판에 비용을 댄 인물의 성명이 기재되어 있고 “金陵 孫良富 刊督”이라 되어 있어 金陵에서 간행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부록으로 章潢의 「行狀」과 「此洗堂記」가 실려 있는데 「行狀」은 萬尙烈이 지은 것인데 「此洗堂記」는 마지막이 손상되어 찬자를 확인할 수 없다. 此洗堂은 章潢이 머물던 南昌의 집 이름이다.
 중앙도서관에는 동일한 계열의 판본 108권 51책 영본이 소장되어 있다. 장서각에 소장된 판본은 天啓 3년(1623년) 서문이 실린 127권 60책 목판본으로 明 岳元聲이 교정을 본 것이다. 章潢이 편찬한 또다른 저술 『百戰奇法』이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데 『圖書編』을 저본으로 한 것이다.
 『肅宗實錄』과 『正祖實錄』, 『承政院日記』, 『國朝寶鑑』등에 典禮를 위하여 이 책을 참조하였다고 한 것으로 보아 국가적으로 공인된 책이었음을 알 수 있다. 朴世采의 『南溪集』, 李衡祥의 『甁窩集』등 18세기 문헌에서부터 이 책이 자주 인용되고 있다. 李宜顯의 『庚子燕行雜識』에 따르면 1720년 중국에서 구입한 서책 목록 중에 이 책이 보이는데 78권이라 하였다. 78책으로 제책된 것을 구입하였다는 의미인 듯하다. 『東槎日記』, 『星湖僿說』, 『星湖全集』, 『順菴集』, 『弘齋全書』, 『硏經齋全集』, 『林下筆記』, 『靑莊館全書』, 『海東繹史』, 『五洲衍文長箋散稿』등 많은 우리 문헌에서도 이 책을 인용하여 여러 사실을 고증한 바 있다.
 4) 『明辨類函』
 明 詹景鳳이 편찬한 類書. 詹景鳳(1532-1602)은 字가 東園, 號는 白岳山人,혹은 大龍宮客이며 벼슬은 平樂府通判을 지냈다. 安徽省 休寧縣의 流塘村 출신으로 이 집안은 대대로 好古의 취미가 있어 書畵와 古玩을 많이 수장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畫苑補益』등의 저술을 남긴 바 있다. 『西遊稿』는 그의 문집이다.
 『四庫全書總目提要』에 『明史』「藝文志」와 黄虞稷의 『千頃堂書目』에는 『詹氏小辨』으로 되어 있고 崇禎 壬申刊本이라 하였는데, 곧 『明辨類函』이라 하였다. 이 책은 作者辨에서 周敦頤의 「太極圖」 등의 서적의 뜻을 풀이하고 造化辨에서 分理氣至異事 등 八目을 두었으며 人道辨에서 학문에 대한 明自言, 정치에 대한 行自言, 技藝에 대한 適自言 등으로 나누었다. 다음 人品辨에는 뜻을 이룬 君臣에 대한 得志統과 뜻을 이루지 못한 賫志統으로 나누어 자료를 모았다.
 규장각에 1종이 소장되어 있는데(奎中 4843), 崇禎 연간에 간행된 판본으로 추정된다. 표지는 개장되어 있는데 제법 고급스럽게 장황되어 있다. 표지 이면에 “鍾伯敬先生校”, “雙桂軒藏板”으로 되어있다. “文獻之章”이라는 藏書印이 찍혀 있다. 권 마지막 면에는 ‘海東靑丘’, ‘春坊內府之藏’이라는 소장인이 찍혀 있어 世子侍講院에 소장되어 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唐類函』등 규장각에 소장된 일부 중국서에 동일한 장서인이 찍힌 것이 제법 있다.
 崇禎 壬申年(1652) 張溥가 쓴 序가 권두에 수록되어 있다. 이어 〈論例〉가 실려 있는데 論大例, 道脈例, 弘辨例, 證故例, 補訂例, 修文例, 名稱例, 次序例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 범례가 매우 체계적이다. 明의 朱維藩이 訂하고 鐘惺이 校를 하였다. 朱維藩은 淮陰 출신으로 자가 价卿이며 『諧史集』을 남겼다. 鐘惺(1574-1624)은 景陵 출신으로 자가 伯敬 혹은 景伯이며 號는 退谷, 止公居士이다. 『史懷』, 『詩經圖史合考』, 『毛詩解』, 『五經纂注』, 『合刻五家言』, 『詩歸』등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牌記의 雙桂軒이 그의 집으로 추정된다. 64권의 〈目錄〉이 실려 있다. 作者辨, 造化辨, 人道辨, 人品辨으로 나누고 서문을 따로 붙였다. 作者辨은 太極圖 등 성리학의 중요한 전적과 관련한 내용이고, 造化辨은 理氣, 天地, 天文, 地理, 鬼神 등에 대한 내용이며, 人道辨은 人倫, 性命 등 개념이나 算法, 堪輿 등 주제에 대한 내용이고, 人品辨은 역대의 인물에 대한 것이다.
 이 책은 64권 20책이 완질인데 규장각본은 권36-38에 해당하는 1책이 누락되어 있다. 국내에는 완질이 없고 일본의 木村蒹葭堂舊藏本 64권 27책이 전한다. 국내 문헌에서 이 책을 인용한 사례는 확인되지 않는다.
 5) 『類書山堂肆考』
 明 彭大翼이 편찬한 類書. 彭大翼은 字가 雲舉이고 號는 林居, 一鶴, 太嶽, 猶賢軒 등을 사용하였으며 揚州 출신이다. 독서를 좋아하고 저술에 힘썼으며 학식이 넓고 행동이 고결한 것으로 이름이 높아 隆慶, 萬曆 연간에 通邑六先生으로 일컬어졌지만 生沒 연대와 알려져 있지 않고 생애도 자세하지 않다.
 규장각에는 「類書山堂肆考」라는 이름으로 2종이 소장되어 있는데(奎中 4755), (奎中 3356) 모두 1619년 무렵 간행된 石渠閣藏板이다. 전체는 48권 60책인데 (奎中 3356)은 권13-48(43책)만 소장되어 있고 ‘摛文院’, ‘弘文館’ 등의 장서인이 찍혀 있다. 표지는 개장된 것이다.
 (奎中 4755)는 표지는 개장되었고 표지 이면에 “彭雲擧先生編輯 類書山堂肆考 梅墅石渠閣藏板”이라 되어 있다. “集玉齋” 도장이 찍혀 있다. 개인 소장인으로 보이는 부분은 오려져 있어 확인할 수 없다. 卷頭에 萬曆 乙未年(1599) 지은 焦竑, 凌儒, 馮任의 序, 萬曆 丁酉年에 지은 王元禎의 序, 萬曆 乙未年에 지은 廖自伸의 序, 그리고 成友謙의 重訂序, 萬曆 乙未年에 지은 彭大翼의 自序, 아우 彭大翺의 跋, 아들 彭取第의 改跋, 萬曆 己未年(1619)에 쓴 孫壻 張幼學의 小記 등이 차례로 실려 있다. 이어 「重訂山堂肆考凡例」가 4條 실려 있다. 이를 참조할 때 이 책은 萬曆 乙未年(1595) 편찬이 완료되었지만 간행되지 못한 채 있다가 20여 년 후 萬曆 已未年(1619) 孫壻 張幼學이 增定하여 완성하였다고 한다. 〈凡例〉의 세 번째 조목에서는 원래 240권 80책으로 구성하였으나 나중에 60책으로 간편하게 수정하였다고 밝혔다. 〈凡例〉에는 책을 편찬한 경위를 적은 다음, 책을 편찬하는 데 도움을 준 사람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적었는데 〈凡例〉 다음에 「參定姓氏」와 「重訂姓氏」라 하여 명단을 적었다. 「參定姓氏」에는 焦竑, 凌儒, 廖自伸 등 13인, 「重訂姓氏」에는 馮任 등 21인과 아우 彭大翺, 손서 張儀伯 외 아들과 손자 등의 이름을 적었다. 卷頭題 아래에는 彭大翼이 纂하고 張幼學 編輯하였으며, 焦竑, 凌儒, 馮任, 成友謙, 彭大翺가 較하고 外孫 張映漢이 重較하였음을 밝혔다. 이 중 뛰어난 인물이 많은데 焦竑은 字가 弱侯이며 秣陵 출신으로 『易筌』, 『國史經籍志』, 『支談』, 『焦氏筆乘』, 『老子翼』, 『陰符經解』, 『中原文獻』등 많은 저술이 전한다. 凌儒는 秣陵 출신으로 자가 海樓이며, 王元禎은 楚麻城 출신으로 이름은 兆雲, 元禎은 그의 字이다. 『明詞林人物考』, 『王氏雜記』등의 저술이 있다.
 목록이 「山堂肆考五集總目」으로 되어 있어 서명을 山堂肆考五集이라 한 것은 宫, 商, 角, 徵, 羽 五集의 체제로 되었음을 밝힌 것이며 趙璘의 『因話錄』의 체제를 따른 것이다. 宮集에는 天文 6권, 時令 8권, 地理 17권, 君道 6권, 帝屬 4권, 臣職 7권을 수록하고, 商集에는 臣職 31권, 仕進 3권, 科第 3권, 學校 1권, 政事 4권, 親屬 6권을 수록하였으며, 角集에는 親屬 4권, 人品 12권, 形貌 2권, 性行 6권, 文學 12권, 字學 1권, 諡法 2권, 人事 6권, 誕育 2권, 民業 1권을 수록하였다. 또 徵集에는 釋教 3권, 道教 1권, 神祇 1권, 仙敎 1권, 鬼怪 1권, 曲禮 7권, 音樂 5권, 技藝 6권, 宮室 5권, 器用 9권, 珍寳 3권, 幣帛 1권, 衣服 3권, 飲食 2권을 수록하고 羽集에는 飲食 2권, 百穀 1권, 蔬菜 1권, 花品 5권, 草卉 2권, 果品 5권, 樹木 2권, 羽蟲 6권, 毛蟲 6권, 鱗蟲 2권, 甲蟲 1권, 昆蟲 3권, 補遺 12권을 수록하였다. 전체가 228권이며 補遺가 12권이다. 본문에 구두를 표기한 圈點이 있으며 상란에 간략한 주석이 붙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장서각, 존경각 등에도 동일한 계열의 판본이 소장되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239권 50책 필사본이 소장되어 있으며 장서각에도 필사본이 있어 이 책이 널리 유통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金堉의『潛谷遺稿』, 張維의『谿谷集』, 南有容의『雷淵集』, 李德懋의『靑莊館全書』, 李圭景의 『五洲衍文長箋散稿』, 崔漢綺의 『人政』등에서 이 책을 인용한 기록이 보인다. 金堉이 『類苑叢寶』를 편찬할 때 크게 참조한 책이다.
 6) 『三才圖會』
 明 王圻와 그 아들 王思義가 편찬한 類書. 王圻(1530-1615)는 字가 元翰, 號가 洪洲로 上海 출신이다. 1565년(嘉靖 44) 진사가 되었고 御史로 선발되었으나 宰相 張居正 등에게 죄를 입어 여러 차례 좌천을 경험하였고 후에는 관직에서 물러나 松江에 은거하면서 책을 모으고 저술에 힘썼다. 명대 文獻學者이자 收藏家로 이름이 높았다. 이 책 외에도 『東吳水利考』, 『諡法通考』, 『重修兩浙鹺志』, 『稗史彚編』, 『洪洲類藳』, 『續文獻通考』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稗史彚編』, 『續文獻通考』등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王思義는 字가 允明, 松江 출신으로 부친의 학문을 계승하여 『宋史纂要』, 『香雪林集』, 『故事選要』등 중요한 저술을 남겼다.
 이 책은 王圻가 편찬한 내용은 天文, 地理, 人物까지이고 나머지는 모두 王思義가 편찬하였으므로, 실질적인 편찬자는 王思義라 할 만하다. 모두 108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天文 4권, 地理 16권, 人物 14권, 時令 4권, 宮室 4권, 器用 12권, 身體 7권, 衣服 3권, 人事 10권, 儀制 8권, 珍寶 2권, 文史 4권, 鳥獸 6권, 草木 12권 등 14門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대의 서적에서 圖譜를 모으고 그 그림을 통해 사물에 대해 설명하였다.
 규장각에 3종의 판본이 소장되어 있는데 판의 형태로 볼 때 모두 萬曆 연간 간행한 槐蔭草堂藏板으로 추정된다. (奎中 2888)은 107책으로 ‘集玉齋’ 장서인이 찍혀 있다. 표지는 개장되지 않은 원래의 것으로 추정된다. 萬曆 己酉(1609)에 쓴 周孔敎과 顧秉謙, 陳繼儒의 序, 孔鶴의 引 등이 차례로 실려 있다. 周孔敎는 字가 明行이고 臨川 출신으로 서문을 쓸 때 都察院右僉都御史로 있었다. 『周中丞疏稿』, 『救荒事宜』등의 저술을 남겼다. 顧秉謙은 字가 益庵이고 호가 玉峰이며 昆山 출신으로 멸말에 재상을 지냈다. 孔鶴은 蘄州 출신으로 王圻의 孫壻이다. 孔鶴의 引에 따르면 萬曆 丁未(1607) 봄에 이 책의 편찬이 완료되었다고 한다. 이어 〈凡例〉, 〈總目〉이 실려 있고 그 끝에 〈天文圖序〉가 실려 있다. 권1 天文의 卷頭題 아래에는 “雲間元翰父王圻纂集” “曾孫爾賓重較”로 되어 있고 人物의 卷頭題 아래에는 “雲間允明父王思義續集”이라 되어 있다. (奎中 4148)은 동일한 계열의 판본으로 106책으로 되어 있고 ‘集玉齋’ 소장인이 날인되어 있다. 표지 이면에 槐蔭草堂藏板으로 되어 있다. (奎中 3286)도 동일한 계열의 판본이지만 21-27, 29-32, 50-59, 61-66, 70, 86-89책 등 24책만 소장되어 있다.
 장서각에 萬曆 37년(1609) 서문이 달린 목판본이 소장되어 있으며, 그밖에 국내 여러 도서관에 낙질이 전한다. 계명대학 등에 필사본이 일부 전하는 것으로 보아 국내에 광범위하게 유통된 것으로 보인다.
 李睟光의 『芝峯類說』에서 이 책을 중요한 참고문헌으로 사용하고 있어 17세기 바로 국내에 수입되어 읽힌 것으로 보인다. 『肅宗實錄』, 金佐明의『歸溪遺稿』, 李宜顯의『陶谷集』, 李瀷의『星湖全集』, 李萬敷의 『息山集』, 朴趾源의『燕岩集』, 李德懋의『靑莊館全書』, 成海應의 『硏經齋全集』, 李圭景의 『五洲衍文長箋散稿』등에서도 이 책을 언급하고 있다. 鄭東愈의 『晝永編』, 李德懋 등의 『武藝圖譜通志』에서도 이 책을 중요한 인용서목에 넣고 있다. 張混의 「平生志」에서 소장하고 싶은 책 가운데 이 책을 든 바 있다. 李宜顯의 『庚子燕行雜識』에서 이 책을 구입하였다고 하면서 80권이라 하였는데 80책을 가리키는 듯하다.
 7) 『涉世雄譚』
 明의 朱正色이 편찬한 類書. 朱正色(1539-1606)은 字가 應明, 南和 출신으로, 벼슬은 右副都御史 巡撫寧夏에 이르렀다. 뛰어난 牧民官으로 명성이 높았으며 고향에 十方院을 설립하여 교육에 힘을 썼다. 『涉世雄譚』이외의 다른 저술은 확인되지 않는다.
 이 책은 朱正色이 兵甘肅으로 있을 때 8권으로 편찬한 것으로, 漢에서 五代까지 여러 역사 기록 중에서 兵法과 才智, 明判決 등에 관한 것을 모아 분류하고 뒤에 評語를 붙였다. 正品과 奇品으로 문장을 크게 2綱, 9品으로 나누었는데 正品은 바꿀 수 없는 이치를 밝힌 글이고 奇品은 상시적으로 이를 수 없는 글이라 하였다. 9品은 馭虜, 弭盜, 處番, 兵機, 軍務, 玄悟, 朗鑒, 泛應, 烈女 등으로 되어 있다.
 규장각에 1종이 소장되어 있는데(奎中 4103) 8권 4책이다. 萬曆 17년(1589) 쓴 朱正色의 題詞, 萬曆 丙申(1596) 田大年이 지은 序가 실려 있다. 田大年은 字가 億伯이고 湖廣 江陵 출신으로 『百子彙言』을 편찬하였다. 이어 〈目錄〉이 실려 있다. 卷頭題 아래 “邢襄後學朱正色批輯”으로 되어 있다. 본문은 구두를 표시한 ‘、’와 ‘。’와 같은 두 종의 圈點이 있다. 행 사이에 “奇品”, “正品” 등의 評語가 있으며, 본문 아래 “批”가 따로 되어 있다. 주제별로 관련 기록을 모은 일반적인 類書와는 그 체제가 다르다. 1책은 馭虜, 弭盜, 處番, 2-3책에는 兵機, 軍務, 4책에는 玄悟, 朗鑒, 泛應, 烈女 등이 수록되어 있다.
 중국 四川省圖書館에 明 萬曆 24년 刻本이 존재하는데 동일한 판본으로 추정된다. 趙憲의 『朝天日記』에 朱正色에 대한 기록이 보이지만 이 책에 대한 기록은 우리 문헌에서 찾기 어렵다.
 8) 『詩雋類函』
 明의 兪安期가 편찬한 類書. 俞安期는 字가 羡長이며 처음에는 이름을 策이라 하고,字를 公臨이라 하였다. 吳江(지금의 江蘇 蘇州)출신인데 후에 金陵에서 거주하였다. 생몰 연대는 밝혀져 있지 않다. 문집 『寥寥集』외에 『唐類函』, 『類苑琼英』, 『啓隽類函』, 『詩雋類函』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규장각에 『唐類函』이 전한다.
 규장각에 1종이 소장되어 있는데(奎中 3786) 150권 30책 목판본이다. 표지는 개장되었다. 卷頭에 “文獻之章”이라는 장서인이 있고 卷尾에 “春坊內府之章”, “海東靑丘” 등의 장서인이 보이는데, 개장된 표지나 서체 등이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唐類函』, 『明辨類函』등과 동일하므로 한꺼번에 春坊에 수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판심제에는 “晉陵孟純禮刊”으로 되어 있다. 萬曆 己酉(1609)에 지은 顧起元, 焦竑, 李維楨 등의 序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즈음 간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顧起元(1565-1628)은 江寧 출신으로 字가 太初 혹은 瞞初이고 號를 遁園居士라 하였다. 『金陵古金石考』, 『說略』, 『客座贅語』, 『蟄菴日錄』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李維楨은 자가 本寧이고 호가 大泌山人이며 京山 출신으로 『史通評釋』, 『黄帝祠額解』등의 저술이 있다.
 每卷 卷頭題 아래 明의 梅鼎祚가 增定하였음을 밝혔는데 訂校은 卷에 따라 曹學佺, 方承郁, 胡心存, 潘之恪 등 여러 사람으로 되어 있다. 梅鼎祚(1549-1615)는 字가 禹金,號가 勝樂道人이며 宣城 출신이다. 『才鬼記』, 『梅禹金集』, 『漢魏詩乘』, 『書記洞詮』등의 저술이 전한다. 교열을 본 사람들도 저명한 학자가 많은데 예를 들면 曹學佺은 字가 能始, 侯官 출신으로 『書傳會衷』, 『易經通論』, 『春秋闡義』, 『蜀中廣記』, 『輿地名勝志』, 『蜀中名勝記』, 『西峰字說』, 『石倉歷代詩選』, 『鳳山鄭氏詩選』등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凡例〉에 따르면 〈凡例〉에 따르면 材具를 主로 하고 掇拾을 用으로 하였으므로 分門하여 摭錄하였으며 사이사이에 詩話나 小說 등을 끼워 넣었다고 한다. 또 明 張之象의 『古詩類苑』, 『唐詩類苑』등을 참조하였다고 한다. 150권의 목차인 〈目錄〉이 붙어 있다. 본문은 고대에서부터 唐代에 이르기까지의 시를 모아 만든 것으로, 盛唐 이전은 刪去하여 분량이 적고 中晚 이후는 분량이 많다. 天, 地, 京都, 州郡, 設官 등 36部 770여 類로 나누어 역대의 시를 모았다.
 서울대 중앙도서관, 성균관대학, 고려대학 등에 규장각본과 동일한 계열의 판본이 소장되어 있다. 우리나라 문헌에서 이 책을 언급한 예는 확인하지 못하였다.
 9) 『新刊唐荊川先生稗編』
 明의 唐順之가 편찬한 類書이다. 唐順之(1507-1560)는 字가 應德 혹은 義修,號는 荊川이고, 武進 출신이다. 博學하여 天文, 地理, 數學, 曆法, 兵法, 樂律에 두루 능하였고, 文章에 뛰어나 王愼中, 茅坤, 歸有光 등과 唐宋派를 대표한다. 『荊川先生文集』,『文編』, 『右編』, 『史纂左編』, 『兩漢解疑』,『武編』,『南北奉使集』,『荊川稗編』등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규장각에는 소장된 (奎中 3637)은 120권 32책의 목판본이다. 萬曆 연간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卷頭題는 新刊唐荊川先生稗編으로, 표제와 판심제에는 荊川稗編으로 되어 있다. “萬機之暇”, “弘齋”, “鮮鮮國” 등의 도장이 있어 正祖가 아껴 보던 책임을 알 수 있다. 표지는 개장되어 있다. 萬曆 辛巳年(1581) 茅坤, 唐順之의 自序, 茅一相의 「文霞閣刻牌編引」과 「例義」가 실려 있다. 이에 의하면 萬曆 9년(1581) 茅一相이 人名과 書名의 착오를 수정하여 처음으로 간행하였는데 처음에는 雜編이라 하였다가 稗編으로 바꾸었다. 또 唐順之의 문인 左丞功 方一簣가 처음 완성하였지만 간행하지 못하다가 茅一相이 간행하였다. 茅一相은 東海 출신이며 자가 康伯인데 『續欣賞編』을 저술하였다. 卷頭題 아래에는 “門生毘陵左烝考校”로 되어 있다. 左烝은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없다. 〈目錄〉은 上中下 3권이다.
 본문은 120권으로 經書와 歷史, 諸子百家, 文學, 藝術 등 다방면에 걸쳐 明代에 전해지는 여러 가지 稗官雜記를 수록하고 고증하였다. 그 체제는 章如愚의 『山堂考索』을 바탕으로 하였다. 六經總論, 易, 書, 詩, 春秋, 禮經, 禮(郊祀, 群祀, 廟, 喪服雜禮, 諸候廟服, 大夫士宗廟爲後, 士庶喪服, 婚宗, 謚法, 氏族, 器服), 樂, 諸家(法家, 名家, 墨家, 縱橫家, 雜家, 兵家, 農, 圃, 賈, 天文, 曆, 地理, 理數, 術數, 相, 醫, 道, 道, 釋) 文藝(史, 詩賦, 詞賦, 文, 學, 書法), 畵, 古器(琴, 射, 奕), 君, 相, 將, 謀, 諫, 政, 后, 儲, 宗, 戚, 主, 宦, 倖, 奸, 簒, 封建, 鎭, 亂, 夷, 名世, 節, 俠, 隱逸, 烈, 婦, 方技, 吏, 戶, 禮, 兵, , 刑, 工 등으로 부류한 다음 다양한 자료를 수록하였다.
 계명대, 충남대 등에도 같은 계열의 목판본이 소장되어 있다. 충남대본에 실린 서문에는 “萬曆辛巳(1581)春正月旣望晩學東海一相姜伯撰幷書”라 하였다. 국회도서관에 필사본 『荊川稗編抄』3책이 전한다.
 『庚子燕行雜識』에 따르면 1720년 李宜顯이 구입한 서책 목록 중에 이 책이 보이는데 『荊川稗編』60권이라 하였다. 『海東繹史』에는 『荊川稗編』120권으로 되어 있고, 『五州衍文長箋散稿』에는 서명을 『稗編』이라 줄여 표기하였다. 『南溪集』, 『游齋集』, 『陶谷集』에도 이 서명이 보인다. 李種徽의 『修山集』에 「唐荊川稗編後序」가 실려 있는데 『稗編』은 六經에서부터 諸子百家, 陰陽卜筮五行星曆風水醫巫射奕 등의 雜技에 이르기까지 빠드린 것이 없고 吏兵禮刑工戶 등 六官의 업무를 마지막에 편성하였기 때문에 宇宙間에서 반드시 있어야 하고 없어서는 아니 된다고 높게 평가한 바 있다. 이어지는 글에서 『左編』과 『文編』은 오래 세상에 유통되었고 『稗編』은 가장 나중에 나왔음에도 가장 널리 유포되었지만 『右編』만 散佚되어 전하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고 하였다. 규장각에는 『歷代史纂左編』, 『文編』등이 소장되어 있고, 『荊川文集』, 『唐荊川先生全集』도 함께 전한다.
 10) 『五車韻瑞』
 明의 凌稚隆이 편찬한 類書. 撰稚隆은 字가 以棟이고 號가 磊泉이며 浙江의 烏程 출신이다. 明初의 저명한 학자로 많은 책을 출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萬姓類苑』, 『史記評林』, 『漢書評林』, 『史記纂』등이 그가 편찬하여 간행한 서적이다. 특히 1579년 간행한 『史記評林』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套印本으로 알려져 있다.
 규장각에는 2종이 소장되어 있는데 모두 같은 계열의 明刊本으로 추정된다. 판심제에 “吳興沈□□”로 되어 있는 것도 동일하다. 표지는 개장되었다. (奎中 4177)은 160권 20책으로 “弘文館” 장서인이 날인되어 있다. 謝肇浙의 序가 실려 있다. 謝肇浙(1567-1624)은 字가 在杭이고 福建의 長樂 출신이다. 『史觹』, 『滇畧』, 『北河紀』, 『長溪瑣語』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이어 〈目錄〉이 실려 있는데 東, 冬, 江, 支 등의 4韻이 실린 부분이 빠져 있다. 〈목록〉은 韻目에 따른 한자를 망라한 것이다. 이어 『洪武正韻』에 의거한 韻目別 한자를 나열하였다. 卷頭題 아래 “吳興後學凌稚隆以棟甫編輯”라 되어 있다. 본문은 韻字 아래 小篆을 배치한 다음 관련 기록을 수록하였다. 經, 史, 子, 集, 雜 등으로 분류하였는데 雜은 주로 道敎와 佛敎의 경전에서 인용한 것이다. 賦, 頌, 歌, 詩 등을 종류에 따라 나누어 標題로 삼아 다양한 자료를 수록하였다. 『韻府羣玉』을 바탕으로 하여 體例를 약간 변형시킨 것으로 보인다. (奎中 4168)은 20책 零本으로 권1-4와 9-12 2책이 일실되었지만 〈目錄〉은 온전하다.
 고려대학에 160권 40책 목판본이 소장되어 있는데 萬歷 19년(1591)의 序가 실려 있다. 卷首에 「洪武正韻序」가 붙어 있는데 萬曆 辛卯年(1591) 五嶽山人 沔陽 陳文燭이 지은 것이라 하였다. 陳文燭은 字가 玉叔, 號가 五岳山人이며 湖北의 沔陽 출신으로 『二酉園集』을 남겼다. 일본에는 萬曆 3년의 발문이 달린 판본이 소장되어 있다.
 權萬의 『江左集』에 실려 있는 「譯解聲䪨考正序」에 따르면 權萬이 『譯解聲䪨考正』을 편찬할 때 가장 중요하게 참고한 책이라 하였다. 張混은 『平生志』에서 소장하고 싶은 책 목록에 이 책을 들었다. 『靑莊館全書』, 『弘齋全書』, 『五洲衍文長箋散稿』등에도 이 책이 인용되어 있다.
 11) 『劉氏鴻書』
 明의 劉仲達이 편찬한 類書. 劉仲逹은 字가 九逵이고 宣城 출신인데 자세한 생애는 밝혀져 있지 않다. 『四庫全書總目』에 따르면 卷頭에 湯賔尹 刪定이라 되어 있고 李維楨의 序가 실려 있는데, 이에 따르면 李成白, 謝少連 등이 간행에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또 湯賔尹의 序에는 刪定 사실을 밝히고 있지 않아 방각본으로 간행할 때 劉仲達의 명성이 높지 않아 湯賔尹의 이름을 빈 것이라 하였다. 湯賔尹은 字가 嘉賔으로 劉仲達과 같은 宣城 사람이다. 『再廣歷子品粹』, 『易經翼註』, 『睡庵集』등의 저술을 남겼다. 序를 지은 李維楨 역시 明의 이름난 학자로 字가 本寧, 京山人이며 『史通評釋』, 『黄帝祠額解』등의 저술이 있다.
 규장각에 1종이 소장되어 있는데(奎中 3296) 표지는 개장된 것이다. 원래 108권 木版本으로 간행되었는데 규장각에는 권5-108까지 14책이 소장되어 있으며 권1-4까지 1책이 일실되었다. “弘文館” 장서인이 날인되어 있다. 권마다 目錄에 앞에 붙어 있다. 卷頭題 아래 “宣城劉仲達 纂輯, 太史湯寶尹 刪正”으로 되어 있다. 만력 연간의 간본으로 추정된다.
 이 책은 天文部, 地理部, 歲時部, 世系部, 三敎部, 五倫部, 人事部, 人品部, 官職部, 文史部, 身體部, 宮室部, 飮食部, 衣帛部, 珍寶部, 器用部, 音樂部, 方術部, 花木部, 鳥獸部, 鱗介部, 昆蟲部, 錄異部, 紀龐部 등 24類로 나누고 다시 260여 子目으로 세분하여 관련한 역사와 문장을 배치하고 주석에서 출처를 명기하였다.
 京都의 陽明文庫에 萬曆 39년 간본이 소장되어 있으며 고려대에 108권 77책 중 61권 10책이 낙질로 전하는데 “萬曆 庚戌年(1610) 澹園居士 焦竑書, 萬曆 庚戌歲(1610) 李維楨 撰, 萬曆 辛亥(1611) 顧起元 撰”이라 되어 있다. 국회도서관에는 108권 24책 목판본이 소장되어 있는데 辛亥年(1611) 祁承鄴이 白雲吏隱에서 쓴 跋과 萬曆 辛亥(1611) 湯賓尹의 書가 실려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도 목판본 낙질과 『鴻書抄』로 된 필사본이 전한다. 규장각에 소장된 『枕中秘』에도 이 책이 수록되어 있다.
 『光海君日記』에 따르면 光海君이 許筠에게 이 책이 무슨 책인지 모르지만 반드시 중국에 가서 구해오되 불가능하면 『林居漫錄』을 구입해 오도록 지시하였다. 許筠의 『閒情錄』에도 이 책이 인용된 것으로 보아 許筠이 중국에서 이 책을 구입해온 것으로 추정된다. 『英祖實錄』에도 이 책을 인용한 바 있다. 李瀷의 『星湖僿說』, 安鼎福의 『順菴集』, 金鍾厚의 『本庵集』, 張混의 『而已广集』, 成大中의 『靑城雜記』, 韓致奫의 『海東繹史』, 丁若鏞의 『與猶堂全書』, 李裕元의 『林下筆記』, 李圭景의 『五洲衍文長箋散稿』등 많은 문헌에서 이 책을 인용하고 있으므로 17세기 이래 제법 많이 읽힌 것으로 추정된다.
 12) 『彙書詳註』
 明 王世貞*규장각 목록에는 찬자가 王正貞으로 되어 있다. *이 편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類書. 王世貞(1526~1590)은 字가 元美, 號가 鳳州, 弇州山人이고, 江蘇 太倉 출신이다. 그는 젊을 때부터 文名이 높아 嘉靖 前七才子의 한 사람으로 손꼽혔고, 後七子의 盟主 격인 李攀龍과 함께 ‘李王’이라 불렸다. 『弇州山人四部稿』와 『弇州山人續稿』, 『弇山堂别集』, 『嘉靖以來首輔傳』, 『史乘考誤』, 『畫苑』, 『觚不觚錄』, 『尺牘淸裁』, 『全唐詩說』, 『藝苑巵言』등 많은 저술이 있다. 규장각에는 『弇州山人四部稿』, 『弇州詩稿』, 『藝苑巵言』, 『史纂』등 여러 종의 저술이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은 『類苑詳註』, 『王氏彙苑』라고도 하는데 36권으로 되어 있다. 『四庫全書總目』에 따르면 이 책은 萬曆 乙亥年(1575) 완성되었는데 鄒善長이 重訂하여 간행하였다. 鄒善長은 생애가 밝혀져 있지 않다. 이 책은 天文, 歲時, 地理, 皇輿, 世系, 人物, 人倫, 人品, 技藝, 三敎, 官職, 人事, 文史, 宮室, 珍寶, 器用, 布帛, 衣服, 身體, 飮食, 花, 草木, 果蔬, 飛禽, 走獸, 鱗介, 昆蟲 등 27部로 되어 있다. 권두에 引用書目이 적혀 있다. 唐宋의 여러 類書에서 채록하여 만든 것인데 官職門에서 수록된 宋의 제도가 대부분 『事文類聚』, 『合璧事類』등에서 全載한 것이므로, 王世貞의 이름을 가탁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규장각에 2종이 소장되어 있는데(奎中 3840), 36권 31책의 목판본으로 표지는 개장된 것이다. 萬曆 연간의 간본으로 추정된다. “摛文院” 장서인이 날인되어 있어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던 책임을 알 수 있다. 萬曆 乙未年(1595) 任子仁과 黃鳳翔의 序가 실려 있다. 任子仁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黃鳳翔(1539-1614)은 젊을 때 이름은 鳳翥이고,字는 鳴周,號는 儀庭,노년에는 止庵,田亭山人 등의 號를 사용하였다. 泉州 출신으로 『嘉靖大政記』, 『嘉靖大政編年錄』, 『田亭草詩集』, 『續小學』, 『異夢記』, 『泉州府志』등의 저술을 남겼다. 이어 〈目錄〉이 실려 있다. 『四庫全書』수록본에 실려 있는 引用書目은 보이지 않는다. 판심에 “石渠閣”로 되어 있다. 동경대학에 소장되어 있는 『彙書詳註』는 36권인데 明 王世貞이 편찬하고 鄒道元이 校訂하였으며 萬曆 23년의 序가 붙어 있으며 梅野石渠閣에서 刊本한 것이라 하였다. 이로 보아 규장각본 역시 이 즈음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奎中 4072)은 서명이 『類苑詳註』로 되어 있다. 표제 및 卷頭題, 版心題 모두 이 서명으로 되어 있지만 서명을 제외하면 (奎中 3840)과 거의 동일하다. 표지는 개장되지 않은 듯하다. 권3-6, 27-31, 33-36 등 11책만 남아 있으며 그 중에서도 일부 면이 빠져 있다
 국민대학에 36권 13책 목판본이 소장되어 있는데 萬曆 乙未年(1595) 任子仁의 序가 실려 있다. 동국대학에 36권 18책 목판본이 소장되어 있는데 鄒道元이 편찬한 것이라 하였고 萬曆 乙未年 黃鳳翔이 편찬한 서문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이 조선시대 인용된 사례는 찾지 못하였다.

Ⅲ. 明板本 叢書 ▲목차

1. 胡應麟이 편찬한 叢書 ▲목차

 1) 『鴉村叢話』
 明 胡應麟이 편찬한 叢書. 胡應麟(1551-1602)은 字가 元瑞, 혹은 明瑞이고 號는 少室山人, 혹은 石羊生이며 蘭溪 출신이다. 明末五子로 일컬어지는 뛰어난 문인이다. 『少室山房類稿』, 『少室山房續藁』, 『少室山房筆叢』, 『詩藪』, 『六經疑義』, 『補劉氏山棲志』, 『駱侍御忠孝辨』, 『七言律範』등의 저술을 남겼다.
 『鴉村叢話』는 규장각에만 1책 소장되어 있고(奎中 4532)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서목이 확인되지 않는다. 明刊本으로 추정된다. 첫면에 “重林馬龍山 發行”이라 인쇄되어 있다. 卷頭에 胡應麟의 「叢話引」이 실려 있는데 사대부들이 稗官雜記를 천시하는 것을 안타까워 하면서 “산에서 기거하다가 일이 없으면 늘 서적을 들추어 그 중 근심, 걱정을 해소하고 이야깃거리나 권태로움을 잊게 해주는 것을 골라 한 권으로 엮었다”고 하였다. 이어 「鴉村叢話總目」이 실려 있고 본문에는 『家世舊聞』, 『錢氏私志』, 『三朝野史』, 『甲乙剩言』, 『桐陰舊話』, 『吳中故語』등이 수록되어 있는데 수록한 문헌 뒤에는 書誌에 대한 간략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楚卿”, “摛文院” 등의 장서인이 찍혀 있다. 「鴉村叢話總目」에 따르면 이는 권6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나머지는 총 40권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宣政雜錄』, 『聞見雜錄』, 『遂昌雜錄』, 『文昌雜錄』, 『墨客雜錄』, 『古杭雜記』, 『樂郊私語』, 『委巷叢談』, 『塵談』, 『諧史』, 『寢言』, 『淸言』, 『偶談』, 『俗老』, 『猥談』, 『淸尊錄』, 『昨夢錄』, 『諧噱錄』, 『□聽錄』, 『瀟湘錄』, 『就日錄』, 『漫笑錄』, 『劇談錄』, 『記事錄』, 『樂善錄』,『解醒錄』, 『已□錄』, 『括異志』, 『志怪錄』, 『靈應錄』, 『定命錄』, 『耳目記』, 『睽車志』등이 실려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墨客雜錄』, 『寢言』, 『俗老』, 『瀟湘錄』, 『劇談錄』, 『記事錄』, 『定命錄』, 『睽車志』등은 『說郛』등 비슷한 시기 明代의 총서에 편입된 적이 없는 문헌이라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규장각본에 수록되어 있는 문헌은 아래와 같다.
 (1) 『家世舊聞』
 宋 陸游가 편찬하고 李衡星이 校閱한 잡록. 陸游(1125-1210)는 字가 務觀‚ 호는 放翁이며 越州 山陰(지금의 浙江 紹興市) 출신이다. 抗金復國의 애국적 문인으로 『劍南詩稿』, 『渭南文集』‚ 『老學庵筆記』‚ 『南唐書』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이 책은 陸軫, 陸佃, 陸珍, 陸鈞 등 陸氏 집안의 일화를 기록하였다.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陸游의 『陸放翁全集』, 『說郛』, 『宋人百家小說』등에도 이 책이 수록되어 있다. 『芝峰類說』, 『海東繹史』, 『硏經齋全集』, 『靑莊館全書』등에 이 책을 인용하고 있어 17세기 이후 조선에서 자주 읽혔음을 알 수 있다.
 (2) 『錢氏私志』
 宋 錢世昭가 편찬하고 仲震이 교열한 잡록. 錢彦遠, 錢愐, 錢惟演 등이 편찬한 것으로 되어 있는 곳도 있다. 錢愐은 彭城王 錢景臻의 아들이다. 錢彦遠은 彭城王의 再從叔侄이지만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卷末의 序에는 錢世昭이 지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곧 錢愐의 조카이다. 대부분의 문헌에는 편찬자가 錢世昭로 되어 있다. 『曆代小史』에는 錢惟演이 편찬하였다고 하였는데 錢惟演은 字가 希聖圣이고 錢塘 출신이며 吳越 忠懿王 錢俶의 아들이다. 이 책은 錢氏 집안의 선조에 대한 일화가 중심이지만 宋代 풍속에 대해서도 함께 기록하여 후대 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歷代小史』, 『說郛』, 『宋人百家小說』등에도 이 책이 수록되어 있다. 『四庫全書』에도 편입되어 있다. 『硏經齋全集』, 『斗室存稿』등 일부 문헌에서 이 책을 인용한 바 있다.
 (3) 『三朝野史』
 元 吳萊가 편찬하고 余繼祖가 교열한 野史. 吳萊는 字가 立夫이며 本名은 來鳳이며 浦陽 출신이다. 학문에 뛰어나 淵潁先生으로 일컬어졌으며 『淵潁吳先生集』을 남겼다. 『四庫全書總目』에는 宋의 遺民이 편찬한 것으로 19條에 불과하며 내용이 외설스러워 볼 만하지 못하다고 비판하였지만 『說郛』에는 이 책이 수록하고 편찬자를 吳萊라 하였다. 史彌遠, 馬光祖, 趙以夫, 徐清叟, 包恢, 賈似道, 文天祥, 彭大雅 등에 대한 人物譚을 모은 것이다. 우리나라 문헌에서 이 책을 든 예는 보이지 않는다.
 (4) 『甲乙剩言』
 胡應麟이 편찬하고 裘昌今이 교열한 잡록. 張元弢가 “이 초본을 얻어 20자를 교정하였고 다시 5자를 찾아내었으니, 판각 후에는 어떠할지 모를 따름이다. 옛 사람은, 교정은 낙엽을 쓸 듯이 떨어지는 곳을 따라가며 쓰는 법이라 하였으니, 이것이 마땅하리라”라는 교정 사실을 밝혔다. 주로 薛素素, 太太, 合卺 등 풍속과 세태를 다루고 있다. 『甲乙剩言』은 沈天生과 沈白生 형제가 엮은 『尙白齋鐫陳眉公訂正秘笈』, 그밖에 『說郛』와 『叢書』등에도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星湖傞說』, 『林下筆記』, 『海東繹史』, 『硏經齋全集』, 『洛下生集』등에 인용되어 있으므로 조선후기 광범위하게 읽힌 책으로 추정된다.
 (5)『桐陰舊話』
 宋 韓元吉이 편찬하고 胡潛이 교열한 잡록. 韓元吉(1118-1187)은 字가 无咎이며 宰相 韓維의 元孫이며 許昌 출신이다. 龍圖閣學士와 吏部尙書를 지냈다. 廣信溪 남쪽에 은거하면서 自號를 南澗居士라 하였다. 『澗泉集』, 『澗泉日記』, 『南澗甲乙稿』, 『南澗詩餘』등의 저술이 있다. 이 책은 10권으로 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1권만 남아 있다. 韓億, 韓綜, 韓綘, 韓繹, 韓維, 韓縝 등에 대한 人物譚 23條를 수록하였다. 당시 京師의 저택에는 오동나무를 심었기에 서명을 桐陰舊話라 한 것이다. 『說郛』에도 수록되어 있다. 우리나라 문헌에서 이 책을 인용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
 (6) 『吳中故語』
 明의 楊循吉이 편찬하고 祝允明이 교열한 잡록. 楊循吉(1456-1544)은 字가 君卿, 혹은 君謙이며, 吳縣 출신이다. 支硎山 아래 은거하면서 讀書와 저술에 힘을 쏟았으며, 『蘇州府纂修識畧』, 『吳中往哲記』, 『吳中故實記』, 『七人聯句詩記』, 『吳邑志』, 『金山襍志』, 『廬陽客記』, 『奚囊手鏡』, 『都下贈僧詩』등의 저술을 남겼다. 太傅收城, 魏守改郡治, 嚴都堂剛鯁, 況侯抑中官, 錢曄陷楊貢, 王文捕許妖, 三學罵王敬 등의 항목으로 나누어져 있다. 『說郛』에도 수록되어 있다. 『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이 책을 인용한 바 있다.
 2) 『筆叢』
 明 胡應麟이 자신이 저술한 서적의 일부를 모은 叢書. 이 책은 『少室山房筆叢』라고도 한다. 卷頭에 陳文煬의 「少室山房餘集序」가 수록되어 있으므로 원래는 『少室山房餘集』이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규장각에 1종이 소장되어 있는데(규중 4559) 8책으로 되어 있다. 明 江湛然이 편집한 목판본이다. 江湛然은 字가 清臣이고 歙縣 출신인데 자세한 생애는 밝혀져 있지 않다. 『少室山房集』도 그가 편집하여 간행하였다. “弘文館” 장서인이 찍혀 있다.
 이 책은 正集 32권, 續集 16권으로 되어 있는데, 正集에는 『經籍會通』, 『史書佔畢』, 『九流緖論』, 『四部正訛』, 『三墳補逸』, 『二酉綴遺』, 『華陽博議』, 『蔣岳委談』, 『玉壺遐覽』, 『雙樹幻抄』등 10종의 전적으로 되어 있고 續集은 『丹鉛新錄』과 『藝林學山』2종으로 되어 있으며 마지막에 『甲乙剩言』이 더 붙어 있다. 『經籍會通』에는 “筆叢甲部”라고 되어 있는데 天干에 따라 명칭을 부여하였다. 책마다 모두 胡應麟의 引이 붙어 있는데 그 시기는 1584년, 1586년, 1589년, 1592년 등 다르며 續集은 모두 1590년에 제작한 引이 붙어 있다. 일본 東大東文研 등에 明 萬曆 34년(1606) 序가 실린 판본이 소장되어 있는데, 규장각본이 이와 유사한 계열의 판본로 추정된다. 『四庫全書』에도 正編만 수록되고 續編을 수록되지 못하였으며, 引은 모두 빠져 있고 도 마지막의 『甲乙剩言』은 실려 있지 않다. 『星湖僿說』, 『靑莊館全書』, 『五洲衍文長箋散稿』등에 이 책이 인용되어 있고 徐慶淳의 『夢經堂日史』에는 『經籍會通』만 따로 인용한 바 있다. 성균관대에 필사본이 전하므로, 18세기 유통된 서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규장각본에 수록된 문헌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1)『經籍會通』
 藏書의 存亡과 集散을 다룬 책으로 4권이다. 墳籍의 始肇, 六經의 刪修, 藝文志에 수록된 서적, 正史 이외의 奉命纂修, 역대 墳籍의 畜聚, 舊唐書經籍志序, 弘文館, 唐 玄宗의 書籍 구입, 舊唐書志後序, 陸子淵家의 藏書, 서적의 五厄, 역대 왕조의 典籍數, 經史子集의 區分, 역대의 유명한 藏書家 등 서적과 관련한 다양한 내용을 다루었다.
 (2)『史書佔畢』
 역사서에 대하여 논한 책으로 6권이다. 内篇, 外篇, 冗篇, 雜篇 등으로 나누어 『尚書』, 『春秋』등의 經典類, 『史記』, 『漢書』등의 正史 등 史書에 대한 논의에서부터 구체적인 역사 사실에 대하여 다양한 논의를 펼쳤다.
 (3) 『九流緖論』
 諸子百家의 원류를 논한 책으로 上中下 3권이다. 儒家, 雜家, 兵家, 農家, 術家, 藝家, 説家, 道家, 釋家 등 諸子百家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펼쳤다.
 (4) 『四部正訛』
 僞書에 대해 고증한 책으로 3권이다. 僞作於前代而世率知之者, 偽而非偽者, 非偽而實偽者, 當時知其偽而後世弗傳者, 本無撰人後人因近似而偽託者 등 다양한 분류하고 구체적으로 僞書 하나하나를 들어 고증하였다. 『連山易』, 『歸藏易』, 『子夏易』등 다양한 僞書를 다루고 있다.
 (5) 『三墳補逸』
 『竹書紀年』과 『逸周書』, 『穆天子傳』등 3종의 서적에 대해 논한 책으로 2권이다.
 (6) 『二酉綴遺』
 기이한 이야기를 채록한 책으로 上中下 3권이다. 二酉는 藏書를 맡은 府인데 『洞天福地志』에 나오는 大酉山과 小酉山의 石穴에 수천 권을 비장하였다는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酉陽雜爼』, 『諾臯記』, 『能改齋漫錄』, 『容齋四筆』, 『太平御覽』 등 다양한 전적에서 기이한 이야기를 인용하였다.
 (7) 『華陽博議』
 古來의 博聞强記에 대해 적은 책으로 2권이다. 經史子集, 九家, 歷代王朝에 따라 다양한 학문에 대해 소개하였다.
 (8) 『蔣岳委談』
 여러 雜事와 戱曲, 小說 등의 오류를 질정한 책으로 2권이다. 宋代의 小說, 宋元의 詞와 戱曲, 그밖의 『酉陽雜俎』, 『夢蕉詩話』, 『北夢瑣言』등 다양한 잡록을 인용하였다.
 (9) 『玉壺遐覽』
 道家書에 대해 논한 책으로 4권이다. 『隋經籍志』, 『經籍考』, 『青巖叢錄』등 다양한 서적을 인용하고 있으며 太極眞人, 無上眞人, 太和眞人, 清虛眞人, 大羅眞人, 桐栢眞人, 青葢眞人, 少室眞人, 太元眞人, 太清眞人, 太微眞人, 秦隴眞人, 靖明眞人 등 道敎의 신선 이름에 대해서도 두루 설명하고 있다.
 (10) 『雙樹幻抄』
 佛敎에 대해 논한 책으로 3권이다. 禪宗과 敎宗의 本末과 폐해, 불교의 핵심적인 교리 등 다양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11) 『丹鉛新錄』
 楊愼이 제시한 학설의 오류를 고증한 책으로 8권이다. 明 楊慎이 편찬한 筆記인 『丹鉛總錄』을 비판하기 위하여 『丹鉛新錄』이라 하였다. 丹鉛이라는 명칭은 옛날 죄인의 호적을 붉은 글씨(丹)로 쓰고 납(鉛)으로 묶었던 것을 빌어 자신의 처지를 비유한 것이다.
 (12) 『藝林學山』
 『丹鉛新錄』과 함께 楊愼이 제시한 학설의 오류를 고증한 책으로 8권이다. 방대한 서적을 동원하여 고증하려 하였지만 오류가 많은 것으로 평가된다.
 (13) 『甲乙剩言』
 앞의 『鴉村叢話』에서 소개하였다. 앞에 「甲乙剩言序」가 붙어 있다.

2. 鍾人傑의 『唐宋叢書』 ▲목차

 明 鍾人傑이 唐宋 시기를 위주로 하여 古今의 저술들을 모은 叢書. 鍾人傑은 字가 瑞先이고 錢塘 출신인데 明 崇禎 연간의 인물이지만 자세한 생몰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가 편찬한『性理會通』이 『四庫全書』에 편입되어 있다.
 『唐宋叢書』는 몇 종의 서로 다른 판본이 있는데 明刊本, 淸初刊本, 王文誥輯刊袖珍本 등이 알려져 있다. 일본에는 公文書館에 소장된 62책본 明刊本과 東洋文庫本 39책 淸刊本이 소장되어 있는데 鍾人傑과 張遂辰이 함께 편집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두 종은 모두 90종을 수록하고 있지만 수록한 전적의 목록이 서로 다르다. 張遂辰은 明末淸初의 浙江 錢唐 출신으로 字가 相期, 號가 西農이며 저술에 『張卿子四編』이 있다. 이화여대에 木活字本 32책이 소장되어 있는데 經德堂藏板으로 冊 1-4에는 經翼이, 冊 4-10에는 別史, 冊 11-15에는 子餘, 冊 16-32에는 載籍이 실려 있다. 일본 法政大에도 經德堂藏板本 48책이 소장되어 있다. 唐宋의 저술을 중심으로 하되 先秦, 六朝의 문헌 20종과 元代의 문헌 2종 등 도합 90종의 문헌을 수록하였다.
 규장각에 1종이 소장되어 있는데(奎中 4312) 43책의 목판본으로 표지는 개장되었는데 수록 문헌 목록이 필사되어 있다. 戴澳의 序와 鍾人傑의 識가 붙어 있다. 戴澳은 奉化 출신으로 字는 有斐이다. 萬曆 연간에 進士가 되었고 應天府丞을 지냈으며 『杜曲集』을 남겼다. 규장각 소장본은 萬曆 연간에 간행된 明刊本으로 추정되는데, 戴澳의 序와 鍾人傑의 識는 다른 판본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陳繼儒나 陶宗儀가 교정한 판본이 실려 있어 『尙白齋鐫陳眉公訂正秘笈』, 『說郛』의 판본을 이용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弘文館 인장과 함께 元繼孫의 장서인도 보이는데 元繼孫은 생부가 元景夏이며 元仁孫이 그의 형이다. 중간에 보사한 곳이 제법 있다.
 규장각본은 체제가 經翼, 別史, 子餘, 載籍의 4類로 나누어져 있는데 『說郛』판본을 중간한 책이 이러한 체제를 따르고 있으며 鍾人傑과 張遂辰이 함께 편집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규장각본은 이러한 사실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目錄 다음에 “又補漢魏失刻二十種”이라 새겨져 있는데, 여기서 20종은 『漢魏叢書』에 수록되지 않은 先秦, 六朝의 문헌 20종만 든 것으로 추정된다.
 李瀷이 『星湖僿說』에 이 책을 인용한 바 있으므로, 17세기 무렵부터 조선에서 통용된 듯하다. 徐命膺의 『保晚齋集』의 「題保晩齋叢書」에 『漢魏叢書』, 『格致叢書』등과 함께 이 책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保晩齋叢書』를 편찬할 때 이 책을 참조한 듯하다. 成海應의 『硏經齋全集』에도 이 책을 들고 있다. 『唐宋叢書』에 편입되어 있는 개별적인 전적 중에 조선시대 널리 이용된 것이 많지만, 이 책을 참조한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說郛』나 『說郛續』에 실린 것과 겹치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說郛』가 더욱 광범위하게 읽혔을 가능성이 높다. 또 일본 東京大 등에 소장된 『唐宋叢書』가 『說郛』을 묶은 것이기도 하다.
 규장각 소장본에서 수록된 문헌은 다음과 같다.
 [經翼]
 (1)『關氏易傳』
 北魏 關朗이 『周易』에 대해 풀이한 책. 唐 趙㽔가 注를 달았다. 關朗은 字가 子明이며 河東 출신이다. 趙㽔는 字가 大賔이고 梓州 鹽亭 출신이다. 『隋書』나 『唐書』등에 이 책이 보이지 않다가 李淑의 『邯鄲圖書志』에 비로소 등장하는데 李淑은 趙㽔와 동시대인이다. 『中興書目』에는 宋 神宗 무렵 阮逸이 詮次하여 간행하였다고 되어 있다. 『說郛』에도 수록되어 있는데 卜百年義, 統言易義, 大衍義, 乾坤之䇿義, 盈虛義, 闔闢義, 理性義, 時變義, 動静義, 神義, 雜義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唐宋叢書』, 『漢魏叢書』에 수록되어 있다. 우리 문헌에서 이 서명이 언급된 예는 보이지 않는다.
 (2)『潛虛』
 宋 司馬光이 『周易』에 대해 풀이한 책. 司馬光(1019-1086)은 字가 君實‚ 諡號가 文正이며‚ 陝州 夏縣의 涑水 출신으로서, 『資治通鑑』, 『涑水紀文』, 『司馬文正公集』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이 책은 漢 揚雄의 『太玄』을 모방하여 1권으로 편찬한 것으로 1086년 완성되었다. 義理, 圖式, 術數 등으로 나누었는데 義理는 五行을 중심으로 하여 萬物 생성의 원리를 설명하였다. 圖式은 氣, 體, 性, 名, 行, 命 등에 대한 그림을 붙이고 풀이를 하였다. 術數는 生數, 成數 등의 개념을 통하여 점을 치는 방식을 설명한 것이다. 끝에 司馬光의 발문이 실려 있다. 『唐宋叢書』, 『知不足齋叢書』, 『性理會通』, 『說郛』, 『四庫全書』등에 수록되어 있다. 『旅軒集』, 『靑莊館全書』, 『性齋集』, 『五洲衍文長箋散稿』등 여러 문헌에서 이 책을 언급하고 있으므로, 조선시대 상당한 영향을 끼친 책이라 할 수 있다.
 (3)『詩小序』
 衛 卜商이 『詩經』에 대해 풀이한 책. 卜商은 春秋 말기의 학자로 晉國 溫地 출신이다. 字가 子夏로 孔子의 제자인데 文學으로 일컬어졌다. 『詩經』의 개별 작품 아래 작품의 내용과 의미 등을 간략하게 소개한 것으로 작품 전체의 의미를 설명한 『詩大序』와 구분하여 부른다. 『詩大序』역시 卜商이 지은 것이다. 朱子는 이 둘을 모은 책이 『詩序』인데 규장각에 목판본이 전한다. 『唐宋叢書』외에 『說郛』, 『稗編』에도 따로 수록되어 있으며, 『詩經』을 수록한 대부분의 책에도 실려 있다. 『詩經』을 공부한 사람들은 모두 『詩小序』의 내용을 익혔다.
 (4) 『孔子集語』
 宋 薛據이 孔子의 語錄을 모은 책이다. 『唐宋叢書』에는 『孔氏集語』라 되어 있고 唐 薛據가 편찬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잘못이다. 薛據는 字가 叔容이며 永嘉 출신이다. 당의 이름난 시인 중에 동일한 인물이 있어 오류가 생긴 듯하다. 『四庫全書』에 『孔子集語』라는 이름으로 2권이 편입되어 있는데 1246년 薛據가 쓴 서문이 권두에 실려 있다. 『唐宋叢書』에는 卷頭題가 『集語』로 되어 있고 上下 2권으로 되어 있다. 易者, 子貢, 孔子御, 持盈, 子觀, 公父文伯, 文藝, 依賢, 漆雕氏, 楚昭王, 子岀衛, 顔叔子, 齊侯問, 文王, 齊桓公, 公索氏, 子夏問, 楚伐陳, 孔子先, 曾子 등 20개의 표제 아래 여러 문헌에 나오는 공자의 語錄을 모았다. 『曾子』, 『大戴禮』, 『孔叢子』, 『孔子家語』, 『搜神記』, 『白虎通』, 『國語』, 『論衡』등 30여 종의 전적을 인용하였다. 본문과 상란에 주석이 있다. 『五洲衍文長箋散稿』에 이 책이 인용되어 있다.
 (5) 『經外雜抄』
 宋 魏了翁가 역대의 인물과 고사, 작품 등에 대한 잡다한 기록을 모으고 자신의 의견을 붙인 책. 魏了翁(1178-1237)은 字가 華父, 號는 鶴山이며 臨卭 출신이다. 經學에 뛰어나 여러 경전의 註疏를 모아 『九經要義』를 편찬하였다. 『古今考』, 『讀書雜鈔』, 『鶴山筆錄』등도 그의 저술이다. 이 책은 『唐宋叢書』에 “陳繼儒輯”으로 되어 있고 2권이다. 全文을 인용하지 않고 필요한 대목만 들어 考證을 위한 자료로 삼고자 한 것으로 著書의 형태를 취한 것은 아닌데 후대에 그 원고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古詩十九首」, 「素問」, 蘇軾의 「天慶觀乳泉賦」 등 여러 글이 수록되어 있다. 『唐宋叢書』외에 『尙白齋鐫陳眉公訂正秘笈』에도 수록되어 있고 『四庫全書』에도 편입되어 있다. 역대 魏了翁에 대한 관심은 높았지만 이 책을 직접 인용한 사례는 확인되지 않는다.
 (6) 『讀書雜抄』
 宋 魏了翁가 經典의 어휘에 대해 변증한 雜錄. 『左傳』, 『洪範』등의 주석을 중심으로 변증한 것이 많다. 『唐宋叢書』에는 權頭題가 『鶴山渠陽讀書雜抄』로 되어 있고 上下 2권이다. 陳繼儒가 교열을 본 것으로 되어 있다. 『唐宋叢書』외에 『尙白齋鐫陳眉公訂正秘笈』에도 수록되어 있다. 『與猶堂全書』, 『五洲衍文長箋散稿』등에 이 책이 인용되어 있다.
 (7) 『鼠璞』
 宋 戴埴이 편찬한 雜錄이다. 戴埴은 字가 仲培이고 桃源 출신인데 南宋 때의 인물이라는 점 외에는 그 생애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책은 經傳에 대한 변증과 物名에 대해 考證과 訓詁를 중심으로 하고 있어 『文獻通考』에는 小說家로 분류되어 있지만 잘못이다. 書名의 鼠璞는 쓰임새가 별로 없는 사물을 비유하는 말이다. 上下 2권으로 되어 있다. 媵妾, 篙師, 泮宮, 探花郎, 彭籛經, 扶桑, 俗字, 次對, 琉璃, 鬻爵, 傲骨, 麟趾, 防海 등과 같이 특수한 용어의 유래에 대한 것이 많다. 『唐宋叢書』외에 『說郛』와 『四庫全書』에 이 책이 수록되어 있다. 『星湖僿說』에서 이 책을 인용하여 媵妾의 문제를 다루었다.
 [別史]
 (8) 『創業起居注』
 唐 溫大雅이 唐 高祖의 開國과 관련한 사건을 모아 편찬한 책. 溫大雅는 隋末唐初의 학자로, 字는 彦寵이고 并州 출신이다. 『舊唐書』에 傳이 실려 있다. 『唐宋叢書』에는 卷頭題가 『大唐創業起居注』로 되어 있고 3권으로 되어 있다. 唐 高祖가 처음 일어나 즉위할 때까지의 357일의 사건을 다루었는데, 『唐書』의 「高祖本紀」와 약간 비슷하지만 高祖의 記室參軍으로 직접 보고 들은 일을 기록한 것이어서 사료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중간에 산삭된 행이 제법 있다. 『唐宋叢書』외에 『說郛』와 『四庫全書』에도 편입되어 있다. 우리나라 문헌에서 이 책을 인용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
 (9) 『唐國史補』
 唐의 李肇가 편찬한 역사서. 李肇는 唐 憲宗 연간의 문인이지만 생애가 자세하지 않다. 尙書左司郞, 補闕, 翰林學士, 中書舍人 등의 벼슬을 지냈다. 『唐國史補』외에 『翰林志』를 저술하였다. 이 책은 『國史補』라고도 한다. 李肇가 尙書左司郞으로 있을 때 편찬한 것으로 開元 연간에서 長慶 연간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다. 上卷과 中卷에 103조목, 下卷에 102조목을 수록하였다. 매 조목을 五字로 標題로 삼았다. 규장각 등에 소장되어 있는 『唐宋叢書』에도 上中下 3권이 수록되어 있다. “陶宗儀閱”로 되어 있다. 『說郛』등에도 수록되어 있다.『白湖全書』, 『壽谷集』, 『頭陀草』, 『星湖僿說』, 『海東繹史』, 『與猶堂全書』, 『警修堂全藁』, 『性齋集』등에 이 책이 인용되어 있다. 『硏經齋全集』에는 李肇의 『國史補』와 함께 蔡絛와 焦竑의 『國史補』두 종을 들고 있지만 다른 책이다. 『五洲衍文長箋散稿』에 인용한 것은 『弇州四部稿』의 재인용인 듯하다. 국립중앙도서관에 1782년 일본에서 간행한 목판본 2권 2책가 소장되어 있다.
 (10) 『歲華紀麗』
 唐 韓鄂이 風俗과 歲時에 대해 기록한 책. 韓鄂은 唐末五代 때의 인물이지만 貫鄕이나 생애가 밝혀져 있지 않다. 『唐宋叢書』에 4권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四時, 十二月, 節序로 나누고 騈侶文으로 관련 事實을 적은 다음 『爾雅』, 『文選』등 역대의 문헌을 인용하여 주석을 달았다는 점에서 『北堂書抄』, 『六帖』등과 체제가 유사하다. 胡震亨과 毛晉의 『津逮秘書』에 넣어 간행하였는데, 胡震亨이 跋에서 鄭曉의 집에서 구한 책이라 하였다. 이에 대해 王士禎은 『居易錄』에서 胡震亨의 僞作이라 하였으니 후에 宋板이 나와서 이 설은 부정되었다. 『唐宋叢書』외에 『尙白齋鐫陳眉公訂正秘笈』, 『說郛』, 『唐類函』등에도 수록되어 있으며, 국립중앙도서관에 필사본이 전한다. 『靑莊館全書』, 『警修堂全藁』등에서 이 책을 인용한 바 있다.
 (11) 『東京夢華錄』
 宋 孟元老가 北宋의 수도 汴京(開封)의 지리와 풍속 등에 대해 기술한 책. 『唐宋叢書』에는 孟元老가 편찬하고 沈士龍이 교열한 것으로 되어 있다. 孟元老는 北宋의 학자로 號가 幽蘭居士, 본명은 孟鉞이라는 사실 외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沈士龍은 明의 학자로 『易傳』등의 저술이 있고 『尙白齋鐫陳眉公訂正秘笈』의 『玉照新志』를 교열한 바 있다. 이 책은 宋이 남쪽으로 내려간 후 汴京을 그리워하여 편찬한 것으로, 宋 徽宗 崇寧에서 宣和 연간(1102-1125)까지를 중심으로 하여 都城, 坊市, 節序, 風俗, 典禮, 儀衛 등을 10권으로 엮었다. 『唐宋叢書』에는 10권으로 편성되어 수록되어 있다.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說郛』와 『叢書』에도 수록되어 있고 『四庫全書』에 전편이 수록되었다. 卷頭에 序가 실려 있고, 卷一에 東都外城, 舊京城, 河道, 大内, 内諸司, 外諸司 등이, 卷二에 御街, 宣德樓前省府宮宇, 朱雀門外街巷, 州橋夜市, 東角樓街巷, 潘樓東街巷, 酒樓, 飮食果子 등이, 卷三에 馬行街北諸醫鋪, 大内西右掖門外街巷, 大内前州橋東街巷, 相國寺内萬姓交易, 寺東門街巷, 上清宮, 馬行街鋪席, 般載雜賣, 都市錢陌, 雇覓人力, 防火, 天曉諸人入市, 諸色雜賣 등이, 卷四에 軍頭司, 皇太子納妃, 公主出降, 皇后出乘輿, 雜賃, 修整雜貨及齋僧請道, 筵㑹假賃, 會仙酒樓, 食店, 肉行, 餅店, 魚行 등이, 卷五에 民俗, 京瓦伎藝, 娶婦, 育子 등이, 卷六에 正月, 元旦朝會, 立春, 元宵, 十四日車駕幸五岳觀, 十五日駕詣上清官, 十六日, 收燈都人出城探春 등이, 卷七에 清明節, 三月一日開金明池瓊林苑, 駕幸臨水殿觀爭標錫宴, 駕幸瓊林苑, 駕幸寳津樓宴殿, 駕登寳津樓諸軍呈百戲, 駕幸射殿射弓, 池苑内縱人關撲遊戲, 駕回儀衛 등이, 卷八에 四月八日, 端午, 六月六日崔府君生日二十四日神保觀神生日, 是月巷陌雜賣, 七夕, 中元節, 立秋, 秋社, 中秋, 重陽 등이, 卷九에 十月一日, 天寜節, 宰執親王宗室百官入内上夀, 立冬 등이, 卷十에 冬至, 大禮預教車象, 車駕宿大慶殿, 駕行儀衛, 駕宿太廟奉神主出室, 駕詣青城齋宮, 駕詣郊壇行禮, 郊畢駕囬, 下赦, 駕還詣諸宮行謝, 十二月, 除夕 등이 실려 있으며, 마지막에 孟元老의 識가 실려 있다. 『世宗實錄』에 보이므로 이른 시기 조선에 유입된 책으로 추정된다. 『南溪集』, 『息山集』, 『洛下生集』, 『海東繹史』, 『斗室存稿』, 『五洲衍文長箋散稿』에도 이 책을 인용한 바 있다.
 (12) 『大業雜記』
 南朝 宋의 劉義慶이 隋 煬帝 大業 연간(605-616)의 사건을 기록한 책이다. 劉義慶(403-444)은 字가 季伯, 彭城 출신으로 臨川王에 襲封되었고 『世說新語』, 『幽明錄』등을 저술하였다. 이 책은 1권으로 城郭과 西苑, 毓德殿, 天經宮, 仙都宫, 汾陽宫, 宫苑 등의 연혁과 제도를 중심으로 기술하였다. 『唐宋叢書』에는 朱書로 교열이 되어 있다. 『說郛』등에도 이 책이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文獻通考』, 『郡齋讀書志』, 『直齋書録解題』등에는 많은 문헌에는 이 책의 편찬자를 唐 杜寳라 하였는데 곧 『大業拾遺錄』을 가리킨다. 杜寳는 武后 때의 사람으로 著作郎 등의 벼슬을 지냈고, 『杜儒童隋季革命記』등을 저술하였다. 『說郛』에는 劉義慶의 『大業雜記』외에 杜寳의 『大業拾遺錄』이 따로 수록되어 있다. 『大業拾遺錄』은 唐 杜寳가 604년 隋 煬帝가 제위에 오른 때부터 618년 越王이 王世充이 唐에 항복할 때까지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杜寳는 武后 때의 사람으로 著作郎 등의 벼슬을 지냈고, 『杜儒童隋季革命記』등을 저술하였다. 劉義慶의 『大業雜記』는 우리나라 문헌에서 인용된 사례가 보이지 않으며 『大業拾遺錄』은 『五洲衍文長箋散稿』에 인용되어 있다.
 (13) 『蓮社高賢傳』
 無名氏가 南朝 晉과 宋의 승려 傳記를 모아 편찬한 책이다. 이 책은 北宋 熙寧(1068-1077) 연간에 처음 간행되었는데 1107년 沙門 懷悟가 增補하여 18명 승려의 행적을 함께 기록하였다. 卷頭에 黄汝亭의 序가 있고 「百二十三人傳」과 「不入社諸賢傳」 두 편이 붙어 있으며 跋도 2편 수록되어 있다. 北宋 元豊 3년(1080) 李伯時가 「蓮社十八賢圖」를 傳 앞에 붙였고 이듬해 李冲元이 記를 지어 傳 뒤에 붙였다. 『說郛』에는 『東林蓮社十八高賢傳』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편찬자를 밝히지 않았다. 『唐宋叢書』에는 晉 亡名氏라 하였고 權頭題는 『東林蓮社十八高賢傳』으로 되어 있다. 慧遠法師, 慧永法師, 慧持法師, 道生法師, 曇順法師, 僧叡法師, 曇恒法師, 道昞法師, 曇詵法師, 道敬法師, 佛䭾邪舍尊者, 佛䭾跋陀羅尊者, 劉程之, 張野, 周續之, 張詮, 宗炳, 雷次宗, 百二十三人傳, 不入社諸賢傳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漢魏叢書』에도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雲養集』외의 문헌에서 인용된 사례를 찾을 수는 없지만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는 필사본 『雜抄』에 수록되어 있으므로 제법 유통된 책으로 보인다.
 (14) 『聞見近錄』
 宋 王鞏이 편찬한 雜錄. 王鞏은 宋 神宗 때의 학자로, 字는 定國, 號는 清虛이며 莘系 출신이지만 자세한 생애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책은 1권 104條로 周 世宗에서부터 宋 神宗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는데 太祖와 太宗, 眞宗, 仁宗 때의 일이 대부분이다. 王鞏은 비슷한 성격의 『甲申雜記』, 『隨手雜錄』도 편찬하였는데 『甲申雜記』는 1권 12條로 되어 있고 仁宗에서 徽宗 초기까지의 일화를 적었고, 『隨手雜錄』은 33條 1권으로 되어 있고 周와 南唐, 吳越에서부터 시작하여 宋 英宗 초기의 일을 다루었다. 이 세 편이 묶여서 『四庫全書總目』에서 편입되었다. 『說郛』에는 『甲申雜記』,『隨手雜錄』과 함께 『聞見雜錄』을 수록하였다. 우리 문헌에서 이 책이 인용된 사례는 확인되지 않는다.
 (15) 『春明退朝錄』
 宋 宋敏求이 편찬한 雜錄. 宋敏求(1019-1079)는 北宋의 학자로 字가 次道,越州의 平棘 출신이다. 史館馆修撰, 龍圖閣直學士를 지내면서 『新唐書』편찬에 참여하였고 私撰으로 『唐大詔令集』을 편찬하였으며 『長安志』도 그의 저술이다. 이 책은 『退朝錄』이라고도 한다. 『唐宋叢書』에 卷頭에 宋敏求의 序가 실려 있다. 熙寧 三年(1070) 諌議大夫로 있다가 퇴근 후에 역사서를 두루 보아서 이 책을 편찬하였고 선영이 春明里에 있어 제목으로 삼았다고 하였다. 宋代의 掌故와 雜說, 雜事 등을 모은 책인데 上中下 3권으로 되어 있다. 『四庫全書』에도 3권이 모두 편입되어 있다. 『說郛』에도 序와 함께 일부의 기록이 수록되어 있다. 규장각에 소장된 『叢書』에도 이 책이 수록되어 있다. 『惺所覆瓿藁』, 『五洲衍文長箋散稿』등에 이 서명이 보인다.
 (16) 『燕翼貽謀錄』
 宋 王栐이 宋의 문물과 제도에 대해 기술한 책. 王栐은 字가 叔永이고 號가 求志老叟이며 晉陽 출신인데 山陰에 우거하였다. 자세한 생애는 밝혀져 있지 않다. 『唐宋叢書』에는 서명이 『貽謀錄』으로 되어 있다. 『唐宋叢書』에 이 책은 5권으로 실려 있다. 王栐이 北宋의 멸망 후 지켜나가야 할 宋의 제도에 대해 기록한 것으로 建隆에서부터 嘉祐까지를 대상으로 하여 進士特奏, 御試不稱門生, 吏銓試書判 등 126條로 구성되어 있다. 官員의 服飾 등 여러 가지 제도에 대해 매우 자세하게 기술하여 사료적인 가치가 높다. 『說郛』에도 수록되어 있다. 『與猶堂全書』, 『海東繹史』등에 이 책이 인용되어 있으며, 충남대 도서관에 필사본이 전하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 제법 유통된 책으로 추정할 수 있다.
 (17) 『佛國記』
 東晋 法顯이 印度 일대에 대해 기록한 책. 法顯(334-420)은 이름난 高僧으로, 司州 平陽郡 武陽 출신이며 并州의 上黨郡 襄垣 출신이라는 설도 있다. 처음 法名은 法明인데 中宗의 諱를 피하여 法顯으로 바꾸었다. 399년 長安에서 출발하여 敦煌, 焉夷, 南越을 거쳐 印度로 들어가 佛法을 전수받고 돌아와 『佛游天竺記』, 『歷游天竺記傳』, 『佛國記』등을 저술하였다. 『摩訶僧祗律』, 『大般泥洹經』등의 불경을 번역하였다. 『唐宋叢書』에는 1권으로 『佛國記』가 실려 있다. 중앙아시아와 印度 등 30國의 地理와 風俗, 物産 등을 자세하게 적었다. 『說郛』, 『漢魏叢書』, 『四庫全書』에도 수록되어 있다. 『五洲衍文長箋散稿』에 이 책이 인용되어 있다. 규장각에 淸末에 목판으로 간행한 판본이 소장되어 있고 장서각에 소장된 『雜抄』에도 이 책이 수록되어 있다.
 (18) 『吳地記』
 唐 陸廣微가 吳 지역의 지리와 역사, 풍물 등을 기록한 책이다. 周 敬王 6年에서부터 唐 乾符 3年까지 1895년의 일을 기록하였다. 『宋史』와 대부분의 書目에 陸廣微를 편찬자로 하고 있지만 『四庫全書總目』에서는 宋代의 詞가 실려 있고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은 것이 있어 僞作으로 보았다. 뒤에 後集 1巻이 더 실려 있는데 후대인이 덧붙인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 이름은 밝혀져 있지 않다. 규장각에 소장된 『說郛』와 『唐宋叢書』등에 실려 있는데 後集은 수록되어 있지 않다. 『靑莊館全書』와 『與猶堂全書』등에서 서명이 보인다. 『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吳地志』와 『吳地記』가 혼용되고 있다.
 (19) 『夷俗考』
 宋 方鳳이 변방의 풍속에 대해 적은 책. 方鳳(1241-1322)은 이름을 景山이라고도 하는데 字가 韶卿이고 號는 岩南老人이며 浦江 後鄭村 출신이다. 『野服考』, 『方韶卿集』, 『存雅堂遺稿』, 『金華游錄』등의 저술이 있다. 『唐宋叢書』에는 1권이 실려 있는데 卷頭에 序가 실려 있다. 4條가 수록되어 있는데〈東〉에는 馬韓, 高句麗의 풍속, 高麗가 宋으로부터 요청받은 서책 목록 및 고려의 풍속과 제도 등에 대한 기사가 수록되어 있다. 〈西〉는 乙弗敵, 〈南〉은 附國, 〈北〉은 烏桓 중국 변방 국가의 혼인 풍속에 대해 적었다. 『說郛』, 『亦政堂鐫陳眉公家藏彙祕笈』등에도 『夷俗志』로 실려 있다. 明 蕭大亨이 韃靼의 風俗을 기록한 『夷俗記』는 다른 책이다. 우리나라 문헌에서 이 책을 인용한 사례는 확인되지 않는다.
 (20) 『南唐書』
 宋의 馬令이 편찬한 五代 南唐의 역사서. 馬令은 宜興 출신이지만 字號나 貫鄕이 알려져 있지 않다. 馬元康이 金陵에서 세거하여 南唐의 역사를 잘 알고 있어 遺老의 見聞과 함께 小說 등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여 史書를 편찬하려 하였지만 완성하지 못하였는데, 손자 馬令이 그 일을 계승하여 30권으로 완성하였다. 北宋의 徽宗 崇寧 4년(1105) 완성하였는데 『三國志』「蜀書」의 例를 따라 先主書, 嗣主書, 後主書를 두고 이어 女憲傳, 宗室傳, 義養傳, 列傳, 儒者傳, 隱者傳, 義死傳, 廉隅傳, 苛政傳, 誅死傳, 黨與傳, 歸明傳, 方術傳, 談諧傳, 浮屠傳, 叛臣傳, 滅國傳, 建國譜, 世系譜 등으로 구성하였다. 『南唐書』는 宋 陸游가 편찬한 것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데 宋 胡恢가 가장 먼저 편찬하였으나 일실되었고 宋 馬令이 편찬한 것과 陸游가 편찬한 것이 전한다. 馬令의 것을 『馬氏南唐書』, 陸游의 것을 『陸氏南唐書』라 하여 구분한다. 明 李清이 陸游의 『南唐書』를 주로 하고 馬令의 것을 보완하고 그밖의 野史 등의 자료를 보완하여 『南唐書合證』을 편찬한 바 있다. 『四庫全書』에 30권이 수록되어 있다. 우리나라 문헌 중에는 『五洲衍文長箋散稿』에 이 책을 소개하고 있으며 『硏經齋全集』에는 『南唐書合證』에 대한 소개가 실려 있다. 『靑莊館全書』, 『海東繹史』, 이 서명을 인용하고 있지만 陸游의 것을 든 것이다.
 (21) 『南唐近事』
 宋 鄭文寶가 南唐의 역사를 기술한 역사서. 鄭文寶(953-1013)는 字가 仲賢이고 汀州 寧化水茜鄉 鄭家坊 출신이다. 벼슬은 兵部員外郎을 지냈다. 小篆에 뛰어나 『嶧山碑』를 남겼고, 『南唐近事』외에 『歷代帝王譜』, 『談苑』, 『玉璽記』, 『鄭文寶集』등의 저술이 있다. 이 책은 南唐 天福 丁酉(937)에서 開寶 乙亥(975)까지 40년의 역사사적을 기술하고 있는데 正史의 편제가 아니라 野史나 雜錄과 같은 성격이다. 明 萬曆本, 崇禎本 등이 있다. 『唐宋叢書』에는 陳繼儒가 교정한 판본이 실려 있는데 鄭文寶의 序는 실려 있지 않으며 上下 2권으로 되어 있다. 烈祖, 齊王元宗, 江夢孫 등의 표제를 달고 있다. 『說郛』, 『寶顏堂秘笈』, 『四庫全書』, 『續百川學海』등에도 편입되어 있으며 규장각에 소장된 『叢書』에도 수록되어 있다. 『碩齋稿』와 『五洲衍文長箋散稿』에 인용되어 있다.
 (22) 『武林舊事』
 宋 周密이 南宋의 수도 臨安의 지리와 풍물 등에 대해 기술한 雜錄이다. 周密(1232-1298)은 字가 公謹, 號는 草窗, 四水潛夫, 弁陽老人, 華不注山人 등을 사용하였다. 豊儲倉檢察, 義烏令 등의 벼슬을 지냈지만 송이 멸망한 후 은거하였다. 『齊東野語』, 『志雅堂雜抄』, 『武林舊事』, 『癸辛雜識』, 『雲烟過眼錄』등의 저술이 있다. 이 책은 宋의 멸망 후 臨安에 은거하던 노년에 편찬한 것으로 추정된다. 武林은 곧 臨安으로 지금의 浙江 杭州 일대를 가리킨다. 10권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은 각종 典禮와 風俗, 地理, 經濟, 文化 등 다방면에 걸친 내용을 담고 있다. 『唐宋叢書』에는 “四水潛夫輯”으로 되어 있다. 권을 나누지 않고 「古都宮殿紀」, 「南宋市肆紀」, 「偏安藝流紀」, 「敎坊樂部紀」, 「雜劇段數紀」, 「幸張府節略」 등의 독립적으로 편제되어 합쳐져 있다. 『四庫全書』에는 10권으로 되어 있고 周密의 序가 실려 있으며 慶夀冊寳, 四孟駕出, 大禮, 登門肆赦, 恭謝, 聖節, 祇應人 등의 항목으로 되어 있다. 『知不足齋叢書』, 『尙白齋鐫陳眉公訂正秘笈』등에도 편입되어 있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 유통된 문헌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子餘]
 (23) 『譚子化書』
 南唐의 譚峭가 편찬한 잡록이다. 『唐宋叢書』에는 편찬자의 이름이 譚景昇으로 되어 있는데 景昇은 譚峭의 字이다. 譚峭는 福建 泉州 출신으로 唐末 五代의 이름난 道士이다. 崇山의 道士를 스승으로 하여 10년 동안 辟榖과 養氣의 術을 터득하였고 南嶽에서 鍊丹術을 익힌 후 青城山에 은거하였다. 이 책은 전체가 6권 112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권1은 道化, 권2는 術化, 권3은 德化, 권4는 仁化, 권5는 食化, 권6은 儉化 등의 부문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 부문 아래 다시 소제목을 붙여 기술하였다. 『說郛』에도 편찬자의 이름이 譚景昇으로 되어 있다. 규장각에 소장된 『尙白齋鐫陳眉公訂正秘笈』에는 『化書』라는 서명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四庫全書』에도 『化書』로 수록되어 있다. 『唐宋叢書』에도 版心題는 『化書』로 되어 있다. 『弘齋全書』와 『五洲衍文長箋散稿』등에 이 서명이 보인다.
 (24) 『武候心書』
 漢 諸葛亮이 편찬한 兵法書. 諸葛亮(181-234)은 字가 孔明이며 號는 臥龍, 諡號는 忠武侯이다. 琅琊의 陽都 출신이다. 「出師表」, 「誡子書」 등이 명편을 남겼다. 편찬자가 諸葛亮으로 되어 있는 책이 많지만 대부분 僞撰으로 평가된다.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火攻備要』, 『火龍經全集』등이 그러한 예이다. 『武候心書』는 『心書』, 『新書』, 『諸葛武侯心書』, 『將苑』, 『治兵心書』등 다양한 이름으로 되어 있다. 이 책은 대부분이 用兵術에 대한 것인데 陶宗儀의 『說郛』에는 『新書』로 되어 있다. 明 弘治 연간 劉讓이 처음 목판으로 인쇄할 때 『心書』라는 명칭이 붙었다. 『唐宋叢書』에는 卷頭題가 『武候心書』로, 版心題는 『心書』로 되어 있으며 1권으로 되어 있다. 兵機, 逐惡, 知人性, 將材, 將器, 將弊, 將忠 등의 표제어를 달았다. 규장각본 『唐宋叢書』는 필사본을 끼워 넣었다. 『說郛』에는 「前出師表」와 「後出師表」가 뒤에 붙어 있으며 嘉靖 연간 張銳이 重刊할 때 「䕫門圖」를 붙이고 劉讓의 序와 冦韋의 跋을 붙였다. 50편의 글이 대부분 『孫子』에 나오므로 후인의 위작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규장각에 1618년 序가 실린 목판본 『諸葛武侯心書』가 소장되어 있고 광해군 연간에 목활자로 간행한 판본이 전한다. 『治兵心書』는 19세기 후반 중국에서 간행한 판본이다. 또 明 王士騏가 편찬한 『諸葛忠武侯全書』에도 이 책이 수록되어 있다. 『漢魏叢書』, 『百家類纂』등 여러 문헌에도 이 책을 실려 있다. 朴世采는 「題武侯心書後」에서 여러 書目을 통하여 이 책에 대해 변증한 바 있다. 또 任埅의 「先考今是堂府君行狀」에 따르면 부친 任義伯이 『孫武子』와 이 책을 합쳐 1권의 책으로 만들어 늘 보았다고 한다. 『星湖僿說』, 『游齋集』등에도 이 책을 인용한 바 있다. 17세기 이후 제법 널리 유통되었던 책으로 추정된다.
 (25) 『枕中書』
 晋 葛洪이 편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道家書. 葛洪(284-364 혹은 343)은 東晋 때의 인물로 字는 稚川, 號는 抱朴子이며, 丹陽郡의 句容 출신이다. 三國時代의 方士 葛玄의 侄孫孙으로 小仙翁으로 일컬어졌다. 『神仙傳』, 『抱朴子』, 『肘後備急方』, 『西京雜記』등이 그의 저술로 알려져 있다. 『元始上眞衆仙記』와 같은 책이라는 설도 있으나 『通志』에 실린 것과 다소 차이가 있어 믿기 어렵다. 元始天尊과 太元玉女의 通氣結精으로 扶桑大帝와 九光元女를 낳았다는 등 황탄한 내용이 많으며 眞靈位業圖 등에 후대 인물이 보인다는 점에서 僞撰으로 평가된다. 『唐宋叢書』에는 1권으로 되어 있다. 『說郛』, 『漢魏叢書』, 『龍威秘書』, 『尙白齋鐫陳眉公訂正秘笈』등 여러 叢書에도 이 책이 수록되어 있다.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는 필사본 『雜抄』에도 실려 있으며, 『與猶堂全書』, 『洛下生集』, 『韶濩堂集』등에도 이 서명이 보인다.
 (26) 『道德指歸論』
 漢 嚴遵이 『老子』를 풀이한 책. 嚴遵은 字가 君平이고 蜀郡 출신이다. 老莊을 좋아하여 은거하며 出仕하지 않고 成都에서 卜筮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이 책은 『老子指歸』, 『嚴遵道德指歸論』등으로도 불리는데 『老子』를 조목마다 풀이하였다. 『四庫全書總目』에서는 曹學佺의 「元羽外篇序」에 의거하여 明末의 僞撰한 것이라 하였다. 『四庫全書』에 6권으로 편입되어 있는데 劉鳯의 序, 胡震亨의 識 등이 실려 있다. 『唐宋叢書』에는 “邵國鏡校閱”로 되어 있으며 6권이 수록되어 있다. 說目이 먼저 실려 있고 上德不徳篇, 得一萹, 上士聞道篇 등 60여 편으로 되어 있지만 序나 識는 실려 있지 않다. 邵國鏡은 어떤 인물인지 알려져 있지 않다. 『臺山集』과 『五洲衍文長箋散稿』에 이 책을 인용한 바 있다. 규장각에 徐命膺이 주석을 단 필사본 『道德指歸』이 소장되어 있는데 이 책을 많이 참조하여 『道德經』을 풀이한 책이다. 徐有榘의 「書祖考文靖公遺事」, 「跋道德指歸」에 이에 대해 자세하다.
 (27) 『孔氏譚苑』
 宋 孔平仲이 편찬한 雜錄. 孔平仲은 北宋의 문인으로, 字가 毅父 혹은 義甫이며, 淸江三孔의 한 사람이다. 『珩璜新論, 『續世說』, 『朝散集』, 『良史事證』, 『孔氏譚苑』등의 저술이 있다. 『唐宋叢書』에는 卷頭題오하 版心題가 모두 『談苑』으로 되어 있다. “仲震閱”로 되어 있는데 仲震는 어떤 인물인지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책은 4권으로 되어 있는데 北宋을 중심으로 하여 이전 왕조의 政事와 典章, 人物, 風俗, 土山 등에 대해 다루고 있다. 宋代의 여러 잡록과 다소 出入이 있어 당시의 여러 서적을 참조하여 편집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곳에서만 보이는 기록도 있다. 『四庫全書總目』에서는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아 孔平仲이 직접 편찬한 것은 아니라 하였다. 『四庫全書』에 편입되어 있다. 『唐宋叢書』외에 『尙白齋鐫陳眉公訂正秘笈』에도 수록되어 있다. 『靑莊館全書』, 『與猶堂全書』, 『海東繹史』, 『五洲衍文長箋散稿』등에 이 책이 인용되어 있다.
 (28) 『孔氏雜說』
 宋 孔平仲이 편찬한 雜錄. 이 책은 『珩璜新論』이라고도 하는데 國家의 故實과 賢哲의 文章 등에 대해 기록하였다. 서명이 『孔氏雜記』로 된 데도 있다. 『陳眉公訂正叢書』에 수록된 본은 王體國이 교정을 본 것인데 「以名爲字」, 「三世用之字」, 「或諱或不諱」, 「古文字通稱」, 「龍不止比君徳」, 「大人」, 「射䇿對䇿」, 「可憑」, 「佛氏」, 「留落」, 「得太上皇名」, 「古人名字」, 「羃帷」, 「稱謂可通用」, 「巾箱五經」, 「更點擊鐘」, 「用仰字」, 「累重」, 「阿誰」, 「日子」, 「功夫」, 「停待」,「日許」, 「抽替」, 「五夜」, 「課馬」, 「太夫人」 등의 표제를 달았다. 『四庫全書』에도 2권으로 수록되어 있지만 항목의 표제는 보이지 않는다. 『說郛』에도 수록된 판본 역시 표제는 없다. 『唐宋叢書』에도 표제는 두지 않았으며 4권으로 편집되어 있다. 『與猶堂全書』, 『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孔氏雜記』로 인용되어 있다.
 (29) 『緗素雜記』
 宋 黃朝英이 편찬한 잡록. 黃朝英은 字가 士俊이고 建安 출신이다. 생몰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哲宗과 徽宗 연간의 인물이다. 『唐宋叢書』에는 서명이 『靖康緗素雜記』로 되어 있고 10권으로 편집되어 있다. 緗素는 서적의 별칭이다. 黄閣, 蚩尾, 夕郎, 軒渠, 婪尾, 乾没, 貌侵, 阿堵, 格五, 刋詔, 濌伯, 慮囚, 鄭重, 伎養, 醖藉 등 표제 아래 기사가 실려 있으며 『說郛』에 수록된 것과 내용이 동일하다. 『四庫全書總目』에 따르면 이 책은 원래 200 조목 내외의 기사가 수록되어 있었지만 하였으나 明代에 刪削이 이루어져 90여 조목만 남아 있게 되었다고 한다. 고증을 위주로 한 책으로 『新經義』, 『字說』등 다양한 전적을 인용하였다. 王安石의 학통과 유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四庫全書』에는 10권으로 편입되어 있다. 『芝峯類說』, 『星湖僿說』, 『秋齋集』등에서 이 책을 인용하여 고증하고 있다.
 (30) 『捫虱新話』
 南宋 陳善이 편찬한 雜錄. 陳善은 字가 子兼 혹은 敬甫이며 號는 秋塘이고, 罗源 출신이다. 정확한 생몰년은 밝혀져 있지 않은데 대략 宋 高宗 紹興 연간에 활동하였다. 이 책은 15권으로 되어 있지만 『唐宋叢書』에는 4권으로 편집되어 있고, 道在六經不在浮屠, 敺陽公信經廢傳 등과 같은 표제를 달았다. 『中庸』, 『論語』, 『孟子』등 經史와 陶淵明, 杜甫, 蘇軾 歐陽修 등의 詩文과 문장에 대한 일반론, 그밖의 雜事 등에 대한 다양한 내용을 싣고 있는데 고증을 주로 하였다. 佛道를 正道로 삼고 王安石을 宗主로 삼았다는 특징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필사본 『樂浪齋叢書』에 이 책이 실려 있는데 宋 羅源이 편찬한 것으로 되어 있다. 『說郛』에도 일부가 수록되어 있다. 『芝峰類說』, 『星湖僿說』, 『硏經齋全集』등에 이 책이 인용되어 있다.
 (31) 『羅湖野錄』
 宋의 승려 曉瑩이 편찬한 잡록. 『唐宋叢書』에는 曉瑩의 自序가 실려 있으며 羅湖로 돌아와 예전 보고들은 것을 기억하여 편찬하였다고 하였다. 4권으로 편집된 본도 있는데 『唐宋叢書』는 권이 나누어져 있지 않다. 禪門의 故實에 대한 서술이 상세하며 당시의 士大夫와 수창한 시를 많이 수록하고 있다. 空室道人, 小南禪師, 圎照禪師, 性空菴主, 靈源禪師 등 승려에 대한 일화 외에도 黄庭堅 등 일반 문사에 대한 기록도 있다. 『四庫全書』에는 4권이 수록되어 있다. 『尙白齋鐫陳眉公訂正秘笈』, 『說郛』등에도 일부가 수록되어 있는데 曉瑩의 自序도 함께 실려 있다. 우리나라 문헌에서 이 책을 언급한 것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32) 『林下偶譚』
 宋代 편찬자를 알 수 없는 잡록. 『四庫全書』에는 『荆溪林下偶談』이라는 서명으로 4권이 실려 있다. 『四庫全書總目』에는 편찬자는 알 수 없고 내용을 통해 볼 때 성이 吳氏임을 알 수 있고, 元代 편찬자를 알 수 없는 『南溪詩話』에서 이 책을 인용하면서 吳子良의 『荆溪林下偶談』이라 하였으며 陳櫟勤의 『有堂隨錄』에는 呉荆溪의 이름은 子良이고 字가 明輔라 하였으므로, 吳子良이 이 책의 편찬자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하였다. 『唐宋叢書』에는 편찬자를 宋荊溪吳氏라 하고 沈鼎新이 교열하였다고 되어 있으며, 4권으로 편제되어 있다. 吳子良은 臨海 출신으로 南宋寶 理宗 연간에 활동한 문인이며 문집 『荆溪集』이 있었지만 일실되었다. 沈鼎新은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없다. 이 책은 주로 시와 문장, 기타 잡사에 대한 비평과 고증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특히 宋 葉適과 관련한 기사가 많다는 점이 한 특징이다. 『唐宋叢書』에는 退之元姓, 退之作墓銘, 柳子厚龍城錄 등과 같은 표제를 달고 있고 『說郛』에도 退之慚筆, 水心文章之妙, 歐公文林, 水心能斷大事, 晦翁斬大囚, 和平之言難工, 詞科習氣, 李習之諸人文字, 劉原父文, 近世詩人, 太史公循吏傳, 賈誼傳贊, 程蘇分黨, 王介甫初字介卿, 山谷詩與杜牧鄭谷同意, 飲墨, 食酒, 離騷名義, 坡賦祖莊子, 詩人以草爲諷, 文字有江湖之思, 水心文可資爲史 등과 일부만 수록하였다. 서울대 중앙도서관에 『寶顔堂訂正荊溪林下偶談』이 소장되어 있고, 규장각에 소장된 『尙白齋鐫陳眉公訂正秘笈』, 에도 수록되어 있다. 『星湖僿說』, 『弘齋全書』등에서 이 책을 인용하고 있다.
 (33) 『後山談叢』
 宋 陳師道가 편찬한 잡록. 陳師道(1053-1102)의 字는 履常,無己,號는 後山이며 彭城(지금의 江蘇 徐州) 출신이다. 당시에 王安石이 經義로서 과거시험을 보는 것에 반대하여 시험을 보지 않았다. 詩作과 문장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저서로 『後山集』20권과 『後山詩話』, 『後山談叢』등이 전한다. 이 책은 『後山譚叢』이라고도 적는데 宋代의 잡다한 일화를 기록하고 있다. 몇몇 의심스러운 기사가 있어 陸游는 僞書일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지만 洪邁는 高簡한 필치를 들어 宋代의 저술로 보았다. 『四庫全書』에 4권으로 편입되어 있다. 『說郛』, 『尙白齋鐫陳眉公訂正秘笈』등에도 일부가 수록되어 있다. 『唐宋叢書』에는 4권으로 편집되어 있다. 『芝山集』, 『硏經齋全集』, 『與猶堂全書』등에도 이 책을 인용한 바 있다.
 (34) 『演繁露』
 宋 程大昌이 董仲舒의 『春秋繁露』를 보충하여 편찬한 책이다. 程大昌(1123-1195)은 字가 泰之이며 徽州 休寧 출신이다. 벼슬이 吏部尚書에 이르렀다. 문집 『程文簡集』은 일실되었지만 『詩論』, 『考古編』등의 저술은 전하고 있다. 이 책은 『程氏演繁錄』이라고도 한다. 紹興 연간에 『春秋繁露』가 처음 나오자 程大昌은 이를 僞書로 배척하고 이 책을 엮었다. 모두 16권이며, 格物致知를 宗旨로 삼아 三代로부터 宋代에 이르기까지의 사실 488항을 수록하였는데 따로 부류를 나누지는 않았다. 名物과 典故에 대한 고증이 상세하며, 출전이 부기되어 있어 찾기에 편리하다. 『續演繁露』는 6권으로 원편과 달리 制度, 文類, 詩事, 談助 등으로 분류하였다. 『四庫全書』에 원편과 속편이 모두 편입되어 있지만, 『唐宋叢書』에는 권이 나누어져 있지 않으며 邸閣, 霤, 筮遠日 등과 같이 표제를 달아 일부를 수록하였다. 『說郛』와 동일한 것으로 보인다. 『星湖僿說』, 『海東繹史』, 『靑莊館全書』, 『閒靜堂集』, 『硏經齋全集』, 『與猶堂全書』, 『性齋集』등 여러 문헌에 두루 인용되어 있다. 규장각에 소장된 『唐宋叢書』에도 수록되어 있다.
 (35) 『補筆譚』
 宋 沈括이 편찬한 雜錄이다. 沈括(1031-1095)은 字는 存中이며 錢塘人이다. 벼슬은 翰林學士, 光祿寺少卿 등을 지냈다. 數學과 天文學에도 뛰어난 학자였다. 노년에 潤州의 夢溪에 은거하면서 학문과 저술에 힘을 쏟았다. 『長興集』, 『本朝茶法』, 『忘懷錄』등이 그의 대표적인 저술이다. 『補筆譚』은 『補筆談』으로 표기하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沈括은 『夢溪筆談』26卷을 지은 후 『補筆談』2卷을 더 지어 빠진 부분을 보완하였다. 故事, 辨證, 樂律, 象數, 官政, 權智, 藝文, 器用, 異事, 雜誌, 藥議 등 11門으로 되어 있다. 그 외 『續筆談』이 더 있는데 11篇으로 되어 있다. 『唐宋叢書』에는 上下 2권으로 편집되어 있으며 補第二卷後十件, 補第三卷後二件, 補第四卷後十件, 補第二卷一件, 補第六卷後三件, 補第七卷十件, 補第八卷一件, 補第九卷一件, 補第十卷後七件, 補第十一卷一件, 補第十卷二件, 補第十四卷後一件, 補第十八卷後五事, 補第二十卷後三事, 補第二十三卷二件, 補第二十五卷後一件, 補第二十六卷一件, 補第二十七卷一件, 補第二十八卷後八事, 補第二十九卷後三事, 補第三十卷十二件 등과 같은 제목이 달려 있어 『夢溪筆談』과 합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규장각에 소장된 『野客叢書』역시 이와 같은 체제로 되어 있으나 1권이며 표기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稗海』등에도 수록되어 있다. 서울대 중앙도서관 등에 중국에서 1906년 목판으로 간행한 책 『補筆談』이 소장되어 있다. 『夢溪筆談』은 1479년 姜希孟의 跋이 실린 朝鮮板이 일부 전하며 『筆苑雜記』, 『燕山君日記』등 이른 시기 문헌에서부터 이 책이 인용되었는데 『補筆譚』이라는 서명으로는 『宋子大全』에서 인용한 바 있다.
 (36) 『野客叢談』
 宋 王楙가 편찬한 雜錄이다. 王楙(1151~1213)는 字가 勉夫이며 長洲 출신이다. 모친을 봉양하기 위해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오로지 저술에만 몰두하였다. 이 책은 대부분 『野客叢書』로 되어 있다. 주된 내용은 典籍의 同異에 대한 考證이다. 『四庫全書總目』에서는 총 30권인데 다른 저술의 오류를 많이 바로잡았지만 적지 않은 오류를 가지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아울러 고증이 해박하고 정확하여 『夢溪筆談』, 『緗素雜記』, 『容齋隨筆』사이에 놓을 수 있다고 고평하였다. 『唐宋叢書』에는 卷頭題와 版心題가 모두 『野客叢談』으로 되어 있고 12권으로 편집되어 있다. 漢再受命之兆, 班史略於節義, 落英, 炎凉世態, 王章孔融兒女. 文無害 등과 같은 표제어를 두었다. 규장각에 明刊本으로 보이는 목판본 20책이 소장되어 있는데 『野客叢書』외에 『游宦紀聞』, 『夢溪筆談』, 『補筆談』, 『學齋佔畢纂』, 『儲華谷祛疑說纂』, 『墨莊漫錄』, 『侍兒小名錄拾遺』, 『雲麓漫抄』, 『石林燕語』, 『避署錄話』, 『淸波雜志』, 『墨客揮犀』, 『異聞總錄』, 『西溪叢語』, 『螢雪叢說』등을 함께 수록한 叢書이며, 원 총서의 이름은 밝혀져 있지 않다. 서울대 중앙도서관에는 『陳眉公重訂野客叢書』12권이 소장되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1653년 일본에서 간행한 목판본이 소장되어 있다. 존경각에도 30권 5책 중국본이 소장되어 있다. 『說郛』, 『稗海』, 『尙白齋鐫陳眉公訂正秘笈』등에도 이 책의 일부가 수록되어 있으며 『四庫全書』에는 30권이 모두 수록되어 있다. 『農巖集』, 『靑莊館全書』, 『與猶堂全書』, 『五洲衍文長箋散稿』등 조선 후기 문헌에 이 책이 자주 인용되고 있다.
 (37) 『野老記聞』
 宋 孫穀祥이 편찬한 잡록. 『唐宋叢書』에는 宋 王楙가 편찬자로 되어 있다. 권두의 서문에는 부친이 元祐 연간의 일화를 기록한 것이라 하였으므로 王楙의 부친이 편찬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四庫全書總目』에는 그 부친의 이름을 알 수 없다고 하였다. 『說郛』에 이 책이 수록되어 있는데 편찬자를 孫穀祥이라 하였다. 『唐宋叢書』에는 1권으로 되어 있으며 韓愈, 蔡京, 蘇軾, 黄庭堅, 司馬光 등에 대한 36條의 일화가 수록되어 있다. 『四庫全書』에는 『野客叢書』의 부록으로 실려 있다. 『五洲衍文長箋散稿』에 이 책이 인용되어 있고 편찬자를 孫穀祥이라 적었다.
 (38) 『楓窓小牘』
 宋 袁褧이 편찬한 잡록. 袁褧은 字가 尚之,吳縣 출신인데 아우 6인과 袁氏六俊으로 일컬어진 뛰어난 학자이다. 晚年에 謝湖에서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은거하여 號를 謝湖居士라 하였다. 書法이 뛰어나 文徵明과 이름을 나란히 하였고 花鳥畵에도 뛰어났다. 『奉天刑賞錄』, 『田舍集』등의 저술이 있다. 『楓窓小牘』은 2권으로 되어 있는데 아들 袁頤가 袁褧을 이어 완성하였다. 袁頤는 그 생애가 자세하지 않다. 『說郛』와 『唐宋叢書』에는 宋 袁褧이 편찬한 것으로 上下 2권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宋 米芾, 혹은 宋 張端義가 편찬했다는 설도 있으며 崇寧 연간에서 嘉泰 2년까지 97년의 견문을 기록하였다는 점에서 편찬자 미상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尙白齋鐫陳眉公訂正秘笈』에는 편찬자를 袁氏라 하였고 『稗海』에는 闕名으로 되어 있다. 『四庫全書總目』에는 편자 미상이라 하였다. 책 본문으로 볼 때 편찬자의 성이 袁氏임은 분명하다. 이 책은 宋의 수도 汴京의 人物과 故事, 逸史, 그리고 臨安의 여러 雜事를 기록하였는데 특히 艮獄, 京城, 河渠, 官闕, 戶口 등이 주목되는 자료로 평가된다. 卷頭에 明 海鹽 姚士粦의 序가 있는 판본도 있지만 규장각본 『唐宋叢書』에는 서문이 실려 있지만 작자가 밝혀져 있지 않으며 권이 나누어져 있지 않다. 이 책은 『星湖僿說』, 『熱河日記』, 『靑莊館全書』, 『與猶堂全書』, 『五洲衍文長箋散稿』등에 인용되어 있는데 편찬자는 모두 밝히지 않았다.
 (39) 『硏北雜志』
 宋 陸友仁이 편찬한 잡록. 陸友仁은 『唐宋叢書』에는 宋代의 인물이라 하였으나 元 文宗 至順 연간(1330년 전후)에 활동하였으므로 元代의 인물로 보는 것이 옳다. 字는 輔之이고 號는 研北生이며 吳郡 출신인데 자세한 생애는 알려져 있지 않다. 상인의 아들이지만 독학으로 학문을 익혔고 글씨와 시에도 뛰어났다. 『吳中舊』, 『詞旨』, 『硯史』, 『墨史』, 『印史』, 『菊軒稿』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四庫全書總目』에는 편찬자가 陸友로 된 데도 있는데 이는 字가 友仁 혹은 宅之로 吳郡 출신이지만 다른 사람이다. 이 책은 書畵와 古器에 대한 것이 주종을 이루고 詩文에 대한 고증도 제법 있다. 『四庫全書』에 自序와 함께 2권이 모두 수록되어 있다. 『唐宋叢書』에는 自序가 실려 있고 上下 2권으로 편집되어 있다. 『說郛』에도 自序와 함께 일부가 초록되어 있다. 『硏經齋全集』, 『與猶堂全書』, 『碩齋稿』, 『五洲衍文長箋散稿』등 여러 문헌에 이 책이 인용되어 있다.
 (40) 『石林四筆』
 宋 葉夢得이 편찬한 잡록. 葉夢得(1077-1148)은 字가 少蘊이고 自號 石林居士라 하였으며 蘇州 吳縣 사람인데 烏程에서 우거하였다. 南宋에서 金에 대항하여 많은 활동을 하였으며 戶部尚書, 尚書左丞 등을 지냈다. 博學하고 시에 뛰어났으며 晚年에 卞山 아래 은거하면서 수만 권의 藏書를 갖추어두었다. 『石林春秋讞』, 『春秋考』, 『建康集』, 『石林詞』, 『石林燕語』, 『石林家訓』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규장각에 소장된 『唐宋叢書』에는 『巖下放言』, 『玉澗雜書』, 『避暑錄話』, 『石林燕語』네 종의 저술을 묶어 『石林四筆』라 하였다. 表題에는 『石林四筆』이라 하지 않고 『巖下放言』, 『玉澗雜書』, 『避暑錄話』, 『石林燕語』를 따로 적었다. 『石林四筆』이라는 서명은 다른 곳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巖下放言』은 字釋, 揚雄好奇, 卒語之辭 등과 같은 표제어를 달아 그 다양한 고사와 일화를 수록하였다. 崇慶節度使로 있다 致仕하여 卞山에 물러나 있을 때 편찬한 책이다. 『說郛』에도 비슷하게 수록되어 있다. 『四庫全書總目』에 따르면 明 商濬의 『稗海』에 鄭景望이 편찬한 『蒙齋筆談』2卷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책과 내용이 거의 같다는 점에서 鄭景望이 이 책을 표절하였다고 보았다. 『四庫全書』에는 3권으로 편입되어 있는데 표제어를 두지 않았다. 『玉澗雜書』는 따로 표제어를 두지 않고 陶淵明, 杜甫 등 인물에 대한 고사와 함께 和詩 등 시문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개진하고 있다. 『直齋書錄解題』에는 宣和 연간에 10권으로 편찬한 책이며 玉澗은 石林의 개울 이름이라 하였다. 陶淵明 등의 일화나 은거와 관련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說郛』에도 수록되어 있다. 『芝峯類說』에서 이 책을 인용한 바 있다. 『避暑錄話』는 晁公武의 『讀書志』에는 15권이라 하였지만 『四庫全書』에는 2권으로 편입되어 있다. 杜甫, 歐陽修, 王安石 등 문인의 문학 작품에 대한 것이 주를 이룬다. 『說郛』에도 수록되어 있다. 『閑情錄』, 『海東繹史』등에서 이 책을 인용한 바 있다. 『石林燕語』는 葉夢得이 徽宗 때 司綸誥를 지내면서 국가의 典故를 잘 알아 이를 바탕으로 편찬한 책이다. 『直齋書錄解題』에는 宣和 5年(1123)년 완성되었다고 하였지만 그 이후의 기록도 있어 南宋으로 들어간 이후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부분적인 오류가 있어 汪應辰이 『石林燕語辨』을 편찬하고 宇文紹奕이 이 책을 교감하여 『石林燕語考異』를 편찬한 바 있다. 『四庫全書』에는 『石林燕語』와 『石林燕語考異』를 합친 판본이 수록되어 있는데 전체가 10권으로 되어 있다. 『說郛』에는 그 중 聖筊, 禁中, 母后加謚, 皇考, 天子之居, 淳化帖, 鹵簿, 進退 등 특수한 용어에 대한 해설을 중심으로 일부만 수록하였다. 『唐宋叢書』에는 표제어를 두지 않고 극히 일부만 수록하였다. 『野客叢書』, 『津逮秘書』, 『稗海』, 『宋人百家小說』등에도 이 책이 수록되어 있다. 『芝峯類說』, 『農巖集』, 『陶谷集』, 『閒靜堂集』, 『靑莊館全書』, 『碩齋稿』, 『磻溪隨錄』, 『五洲衍文長箋散稿』등 조선 후기 많은 문헌에서 이 책을 인용하고 있어 조선시대 학술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책이라 할 수 있다. 「刪正石林燕語序」에 따르면 尹行恁이 『石林燕語』를 산정하여 8권으로 엮었다고 한다. 許傳이 편찬한 『哲命篇』도 이 책을 중요한 참고문헌으로 삼은 바 있다.
 (41) 『鄰幾雜誌』
 宋 江休復가 편찬한 잡록. 江休復는 字가 鄰幾이고 開封의 陳留 출신이다. 刑部郎中, 修起居註 등의 벼슬을 지냈으며 문집이 있었다고 하나 전하지 않고 이 책만 현전한다. 『唐宋叢書』에는 서명이 이렇게 되어 있으나 보통은 『嘉祐雜志』로 알려져 있다. 『文獻通考』나 『宋史』등에는 3권이라 하였는데 『稗海』와 『唐宋叢書』에는 권이 나누어져 있지 않았으며 『四庫全書』에는 1권으로 실려 있다. 黄庭堅의 「茶磨銘」, 大歷十才子 등 문학과 관련한 내용이 매우 풍부하다. 江休復이 1060년 사망하기 1년 전의 기사까지 수록되어 있다. 『唐宋叢書』에는 李貴, 陸參, 李戡 등에 대한 기사가 수록되어 있는데 대부분 매우 짧은 분량이다. 『說郛』에는 10항목만 수록되어 있다. 『農巖集』, 『燕巖集』『靑莊館全書』등에는 『江鄰幾雜誌』라는 이름으로 인용하고 있다. 『海東繹史』에는 『鄰幾雜誌』가 곧 『嘉祐雜志』라 하였다.
 (42) 『王氏談錄』
 宋 王欽臣이 편찬한 筆記. 『說郛』와 『唐宋叢書』에는 王洙가 편찬한 것으로 되어 있다. 王洙(997-1057)는 字가 原叔이고 應天의 宋城(지금의 河南 商丘南) 출신인데 博覽强記로 이름을 떨쳤으며 方技, 術數, 陰陽五行, 音韻, 訓詁, 書法 등 다양한 분야에 능력을 발휘하였다. 그런데 이 책에는 先公 또는 公이라 일컬은 부분이 많으므로 王洙가 아닌 그 아들 王欽臣이 편찬한 것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王欽臣은 字가 仲至이고 宋城 출신이다. 高麗에 사신을 간 바 있다. 『廣諷味集』이 있었다 하나 지금은 일실되었다. 이 책은 『王氏譚錄』으로 표기된 데도 있다. 『唐宋叢書』에는 王洙의 언행을 訓子, 爾雅, 筆法, 爲文 등 표제어를 달아 99 조항으로 기록하였다. 마지막에 「編錄觀覽書目」이라 하여 참고한 문헌을 모두 적고 끝에 王洙가 家塾에 기록한다고 표기되어 있다. 『尙白齋鐫陳眉公訂正秘笈』에도 수록되어 있는데 편찬자를 王氏로 적었다. 『四庫全書』에는 王欽臣이 편찬한 것으로 되어 있다. 『星湖僿說』에서 이 책을 인용한 바 있다.
 [戴籍]
 (43) 『山海經贊』
 晋 郭璞이 『山海經』에 붙인 贊을 모은 책. 『山海經』은 夏禹, 혹은 그의 신하인 伯益이 治水를 하면서 편찬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周文王이 거론되고 秦漢代의 지명이 나오므로 魏晉 이후에 편찬된 것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郭璞은 山西 聞喜 출신으로 字는 景純이다. 『洞林』‚ 『新林』‚ 『卜韻』등의 저술이 있다. 郭璞이 주를 단 『山海經』은 보통 18권본이지만 처음으로 『山海經』을 정리한 劉歆은 「上山海經表」에서 4권이라 하였다. 그런데 韓致奫은 『海東繹史』에서 『山海經』이 “중국 고대의 地理書로 성립 연대는 미상이며, 禹 임금 때 伯益의 저술이라 하나 분명치 않으며, 전국시대 때의 저술일 것으로 추측된다. 당초에는 13권이었으나, 한나라 때 劉歆이 大荒南經에서 海內經까지 5권을 추가하여 총 18권이다. 地理, 山脈, 河川, 物産 등에 대해 기록하였다.”다고 하고, 이어 『山海經贊』은 “晉의 郭璞이 『山海經』의 원문에 讃을 붙인 것으로, 2권이다.”라 하였으며, 또 『山海經註』는 “晉의 郭璞이 『山海經』에 주석을 한 것으로 18권이다.”라 하였다. 『唐宋叢書』에는 上中下 3권으로 되어 있으며 南山經圖讚, 西山經圖讚, 北山經圖讚, 東山經圖讚, 中山經圖讚, 海外南經圖讚, 海外北經圖讚, 海外西經圖讚, 海外東經圖讚, 海內北經圖讚, 海內東經圖讚 등으로 분류하여 다양한 사물에 대한 讚을 수록하였다.
 (44) 『周髀算經』
 편찬자를 알 수 없는 고대의 算術書. 원래 서명은『周髀』였는데, 당나라 초기 國子監 明算科의 교재 가운데 하나가 되면서 『周髀算經』으로 改名되었다. 周는 圓의 뜻이고 髀는 股의 뜻으로 곧 고대 수학의 원리를 나타내는 말이다. 편찬자는 알려져 있지 않은데 卷頭에 周公과 商高의 대화를 수록하고 있어 周公의 저술로 오인된 바도 있다. 『說郛』에는 謝察微이 편찬한 것으로 『唐宋叢書』에는 漢 趙㽔이 편찬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정설로 인정되지 않는다. 『新唐書』와 『宋史』등에 謝察微가 『算經』2권을 편찬하였고 趙㽔는 唐의 문인으로 그가 편찬한 『長短經』9권이 『四庫全書』에 수록되어 있는데 두 책 모두 『周髀算經』과는 다른 책이다. 이 책은 天文曆法을 주로 하여 日月星辰의 運行과 四季의 교체,氣候의 변화,南極과 北極,晝夜의 推移 등을 설명하였다. 三國時代 吳의 趙爽, 唐의 李淳風 등이 주석을 달았다. 南宋 嘉定 6년(1213)에 처음 간행된 것이 上海圖書館에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책은 일찍이 조선과 일본으로 유입되어 翻刻 注釋本이 간행되었다고 한다. 『唐宋叢書』와 『四庫全書』에는 3권으로 편입되어 있다. 『象村稿』, 『星湖全集』, 『與猶堂全書』, 『林下筆記』, 『弘齋全書』등에 이 책이 인용되어 있다.
 (45)『文則』
 唐 陳騤이 文章의 體制에 대해 기술한 책. 陳騤는 字가 叔進, 台州의 臨海 출신이며 벼슬은 知樞宻院事 겸 㕘知政事 등을 지냈다. 『南宋館閣錄』이 그의 대표적인 저술이다. 『文則』은 對偶, 助辭, 倒言, 倒文, 病辭, 交錯 등 문장의 수사에 대한 것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尙白齋鐫陳眉公訂正秘笈』, 『說郛』등에도 수록되어 있다. 『唐宋叢書』에 수록된 것은 『陳眉公訂正文則』으로 되어 있고 上下 2권으로 되어 있으며 甲, 乙, 丙으로 시작하여 癸까지 나누어 수록하였다. 1728년 日本의 山鼎이 句讀를 단 판본이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우리나라 문헌에서 이 책을 언급한 예는 찾기 어렵다.
 (46) 『詩式』
 唐 皎然이 편찬한 詩法에 대한 책. 皎然은 唐의 詩僧으로 俗姓은 謝이고, 字는 清晝이며 湖州 吳興 출신이다. 謝靈運의 10세손인데 開元, 天寶 연간에 태어나 貞元, 永貞 연간에 죽었다. 『詩式』외에 문집 『杼山集』, 『詩評』등이 있다. 이 책은 5권본과 1권본이 전하는데 『說郛』, 『學海類篇』, 『歷代詩話』등에는 1권본이 실려 있고 清末 陸心源의 『十萬卷樓叢書』에는 5권본이 수록되어 있다. 『唐宋叢書』에는 5권이 수록되어 있는데 詩式은 시를 짓는 법식을 이르는 말로 한시의 창작과 미학에 대한 종합적인 논의를 하였다. 總序, 明勢, 明作用, 明四聲, 詩有五格 등과 같이 표제를 달았으며, 用事와 聲律, 對偶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권2에서 5까지는 구체적인 시에 대한 품평으로 채워져 있다. 『說郛』등에는 貞, 忠, 節, 志, 德, 誠, 忠, 怨, 意, 高, 逸, 氣, 情, 思, 閑, 達, 力, 靜, 遠 등 19종으로 나누어 설명한 부분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47) 『墨藪』
 唐 韋續이 편찬한 書法書. 韋續의 관향과 생애는 자세하지 않다. 『唐宋叢書』에는 表題가 『墨藪』로 되어 있다. 두 번째 장에 『墨藪』의 목록이 따로 적혀 있어 착간으로 보인다. 목록에는 五十六書法, 九品書, 書品優劣, 續書品, 書評, 梁武帝書評, 筆陣圖, 筆髓論, 四體書勢, 羲之筆勢로 되어 있다. 版心題가 書法, 墨藪, 九品書, 書品優劣, 續書品, 書評, 梁武帝書評, 筆陣圖, 筆髓論, 四體書勢, 筆勢略論 등으로 따로 되어 있고 卷頭題 아래 편찬자의 성명이 따로 표기하였다. 이 중에서 五十六書法, 九品書, 書品優劣, 續書品은 韋續의 글이지만 書評은 梁 袁昻과 梁武帝, 筆陣圖는 晉 衛夫人, 筆髓論은 唐 虞勢南, 四體書勢는 晉 衛恒, 筆勢略論은 晉 王羲之의 글임을 분명하게 적고 있다. 五十六書法은 字形의 변천을 서술하고 五易, 八體, 十二時書, 三十三體를 합하고 중복되는 것을 제외하여 龍書에서 花書에 이르기까지 56종의 서체를 망라하였다. 九品書는 109인의 서예가를 上上, 上中, 上下, 中上, 中中, 中下, 下上, 下中, 下下로 나누어 놓은 것으로 上上에는 夏禹, 周史, 高祖, 李斯, 蔡邕 등 13인을 두었다. 書品優劣은 李陽冰의 篆, 梁昇卿 등의 八分書, 薛稷 등의 眞行書, 張旭 등의 草書를 품평한 것이다. 續書品은 역대의 서예가를 上品上, 上品中, 上品下 등 9品으로 나눈 것이다. 『四庫全書』에는 2권으로 편입되어 있는데 書論, 論篆, 用筆法并口訣, 筆陣圖, 又筆陣圖, 張長史十二意法, 王逸少筆勢傳, 指意筆髓, 王逸少筆勢傳, 筆意, 晉衛恒等書勢, 勸學, 貞觀論, 書訣, 徐氏書記, 唐朝書法 등 21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說郛』에는 이 책의 일부인 『五十六書法』이 수록되어 있다. 숭실대학에 『靑丘墨藪』가 소장되어 있고, 李匡師 등이 각종 서체로 쓴 『墨藪』가 전하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 서법가 사이에는 제법 유통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문헌에서 정확하게 이 책을 인용한 것은 『五洲衍文長箋散稿』에 불과하다. 『五十六書法』은 따로 『五洲衍文長箋散稿』에 인용되어 있다.
 (48) 『佩觿』
 宋 郭忠恕가 편찬한 文字學에 대한 책. 郭忠恕(?~977)는 五代 末期부터 宋初까지 활동했던 문인으로, 字는 恕先 혹은 國寶이며 洛陽 출신이다. 文字學과 文學에 정통하였고 篆書와 隸書도 잘 썼으며 특히 누각이나 정자, 수레와 배 등을 그리는 界畫로 유명하였다. 그가 편찬한 『汗簡』은 古文字學에 대한 저술이다. 『佩觽』는 『佩觽集』이라고도 한다. 『唐宋叢書』에 수록된 판본은 3권으로 되어 있는데 上卷은 造字,四聲,傳寫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中卷과 下卷은 유사한 글자를 나란히 싣고 의미의 차이를 설명하였다. 자세한 주석이 함께 실려 있다. 규장각에 淸代에 간행한 목판본이 소장되어 있다. 『說郛』등에도 수록되어 있다. 『貞㽔閣集』, 『石泉遺稿』, 『與猶堂全書』,『五洲衍文長箋散稿』등에서 이 책을 인용한 바 있다.
 (49) 『籟記』
 陳 王叔齋가 편찬한 雜錄. 수록된 문헌에 따라 편찬자의 이름이 다른데 『唐宋叢書』에는 陳 王叔齋로 되어 있고 『說郛』에는 陳 王叔齊로, 『知不足齋叢書 』에는 陳 王叔齊 혹은 陳 陳叔齊로 되어 있다. 『陳書』에 新蔡王 叔齊가 高宗의 11子라 하였으므로 陳叔齊가 옳다. 新蔡王에 봉해졌기에 후대 혼선이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7세에 六經을 외워 天才로 알려졌고 文學에도 능하였다. 陳이 망한 후 隋에 출사하여 尚書主客郎이 되었다. 『知不足齋叢書 』에는 서명이 『籟紀』로 되어 있다. 『唐宋叢書』에 수록된 판본은 1권으로 條風, 明庶風, 淸明風, 景風, 凉風, 閶闔風, 不周風, 廣莫風, 雷, 雨, 霰, 雹, 雪, 餘溜, 野哭, 聞歎, 孤嘯, 市譁, 村唱, 宵春, 夜織, 擣衣, 城柝, 戍鼓, 昏鐘, 巷笛, 邊笳者, 歸輪, 鳴楫, 蟬聲, 蟋蟀聲, 雁聲, 鳥聲, 鴟聲 등 여러 종류의 소리와 관련한 용어를 풀이하였다. 우리나라 문헌에서 이 책에 대한 언급은 찾기 어렵다.
 (50) 『尤射』
 魏 繆襲의 편찬한 활쏘기에 대한 책. 繆襲은 字가 熙伯이며 侍中의 벼슬을 지냈지만 자세한 생애는 알려져 있지 않는다. 문헌에 『列女讚』등을 저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說郛』에 수록된 판본은 稽觀, 報聘, 遇射, 尤戒, 贈玉, 學訓, 東役, 腆致, 糊言, 志服, 赤帝, 紫幃, 承澤, 卜會, 實至, 華蟲, 追捫, 雨會, 命史, 復射 등 20 항목 아래 간략한 설명을 붙였는데 闕字가 많고 내용도 매우 난삽하다. 『唐宋叢書』에 수록된 판본은 稽觀, 報聘, 遇射, 尤戒, 贈玉, 學訓, 東役, 腆致, 糊言, 志服, 赤帝, 紫幃, 承澤, 卜會, 實至, 華蟲, 追捫, 雨會, 命史, 復射 등이 모두 편명으로 되어 있다. 『漢魏叢書』에도 실려 있다. 『弘齋全書』의 『日得錄』에 따르면 正祖가 20편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이 錯簡이 있기는 하지만 글이 험하여 읽을 만하다고 한 바 있다. 『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도 이 책을 인용한 바 있다.
 (51) 『握奇經』
 편찬자를 알 수 없는 兵書. 『唐宋叢書』에는 편찬자를 漢 無名氏라 하였다. 黃帝의 大臣 風後가 필사한 것을 姜太公이 引申하였고,漢의 公孫弘가 註解를 하였다고 한다. 朱熹는 唐 李筌의 저작이라고 하였다. 『風后握奇經』, 『握機經』또는 『幄機經』이라고도 한다. 『唐宋叢書』에 수록된 판본은 1권 380여 자의 짧은 분량이며, 本文, 屬圖, 總述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로 陣法에 관한 내용이다. 주석이 매우 상세하다. 편자 미상의 『握奇經續圖』와 晉 馬隆이 편찬한 『八陣圖總述』붙어 있다. 『說郛』, 『續百川學海』, 『小十三經』, 『津逮秘書』, 『四庫全書』등의 총서에 편입되어 있는 판본도 이와 유사하다.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1647년 간행된 宛委山堂本이 전한다.『睿宗實錄』에 이 책이 언급된 것으로 보아, 이미 조선 초기부터 일부 武人들이 학습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兵家節要跋」에 따르면 金得臣이 이 책을 위주로 여러 병서를 요약하여 『兵家節要』를 편찬하였다고 한다. 安命老의 『演機新編』에 실려 있는 「握奇經註解」는 『握奇經』의 원문을 고증하고 주석을 단 것이며 「九軍變爲握奇圓陣圖」, 「唐獨孤及風后握奇陣圖」 등도 이 책과 관련한 내용을 다룬 것이다. 『武經節要』에서도 이 책을 크게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朱子가 이 책의 문장을 극찬하여 조선 문인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正祖는 이 “握奇”라는 이 책의 제목으로 策問을 짓게 하였는데 徐瀅修의 「握奇經對」가 이때 지은 작품이다. 『星湖僿說』,『靑莊館全書』,『五洲衍文長箋散稿』등에도 이 책이 인용되어 있다.
 (52) 『相貝經』
 漢 朱仲이 조개에 대해 저술한 책. 朱仲은 어떤 사람인지 알려져 있지 않다. 『直齋書録解題』등에는 편찬자를 알 수 없다고 하였다. 『唐宋叢書』와 『說郛』에 이 책이 실려 있는데 편찬자를 朱仲이라 하였고, 紫貝, 朱貝, 綬貝, 霞貝 등의 조개를 소개하고 그 효과와 부작용을 간략하게 설명한 한 조목만 수록되어 있다. 조선시대 이 문헌을 언급한 예는 찾기 어렵다.
 (53) 『禽經』
 春秋時代 晋 師曠이 편찬한 새에 대한 자료를 모아 편찬한 책. 師曠은 字가 子野이며 山西 洪洞 출신이다. 師는 성이 아니라 지위가 높은 音樂家의 이름 앞에 붙이는 용어이다. 맹인이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뛰어난 음악가가 될 수 있었다. 「陽春」, 「白雪」 등이 그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저자 이름을 붙여 『師曠禽經』이라고도 한다. 『唐宋叢書』와 『說郛』등에는 편찬자를 晉 張華라 하였는데 張華는 이 책에 주석을 단 인물이다. 張華(232-300)는 字가 茂先이고 范陽 方城 출신으로 『博物志』, 『張茂先集』등의 저술이 있다. 이 책은 陸佃의 『埤雅』에서부터 언급되기 시작하였고 師曠이라는 이름 역시 여기서 비롯하였다. 張華의 註는 左圭의 『百川學海』에서 보인다. 『四庫全書』에도 편입되어 있다. 『四庫全書總目』에는 師曠이 편찬하였고 張華가 주석을 달았다는 설은 근거가 없다고 하였다. 『唐宋叢書』에 수록된 판본은 본문과 별행으로 주석을 병기하였다. 마지막에 宋 王楙의 「補禽經說」이 실려 있다. 『唐宋叢書』외에 『說郛』, 『漢魏叢書』등에도 수록되어 있다. 成海應은 「燕中雜錄」에서 『禽經』이 분류가 체계적이지 못하고 牽强附會가 많다고 비판한 바 있다. 『耳溪集』, 『弘齋全書』, 『靑莊館全書』,『與猶堂全書』,『岱淵遺藁』,『警修堂全藁』,『五洲衍文長箋散稿』등에서도 이 책을 인용하고 있다.
 (54) 『酒譜』
 宋 竇苹이 편찬한 술에 대한 서적. 竇苹은 字가 子野이고 汶上 출신이다. 『酒譜』외에 『唐書音訓』등의 저술이 있다. 규장각에 소장된 『唐宋叢書』와 『說郛』에는 宋 竇革이 편찬자로 되어 있는데 竇苹의 잘못이다. 판본에 따라 竇憲으로 된 데도 있다. 竇憲(?-92)은 漢의 문인으로 字가 伯度이고,竇融의 曾孫이며 東漢의 外戚 출신의 權臣이다. 이 책은 술과 관련한 고사를 다양하게 기술한 것으로 몇 조목에 불과하여 후대 상당 부분이 일실된 것으로 보이지만 酒名에서 시작하여 酒令으로 마친다는 점에서 통일성을 갖추고 있다. 『唐宋叢書』에 수록된 판본은 酒之源, 酒之名, 酒之事, 酒之功, 溫克, 亂德, 誡失, 神異, 異域, 性味, 飮器, 酒令, 總論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說郛』에는 酒名, 歡伯, 㰂酒, 酒旗, 劉白墮, 醉聖, 祖台州書, 般若湯, 崑崙觴, 卧黍穰, 癭木杯, 竹根, 蓮子杯, 安石榴, 酒令 등의 표제어를 달았다. 『四庫全書』등에도 편입되어 있다. 『芝峯類說』, 『雲坪集』,『旅菴遺稿』,『警修堂全藁』,『星湖全集』,『五洲衍文長箋散稿』등 여러 문헌에 이 서명을 언급한 바 있다. 『海東雜錄』에는 蕉華가 『酒譜』를 지었다고 하였는데 근거를 알 수 없다.
 (55) 『茶經』
 唐의 陸羽가 茶에 대해 기술한 책이다. 陸羽(733-804)는 字가 鴻漸, 季疵,號는 竟陵子, 桑苧翁, 東岡子, 茶山御史 등을 사용하였다. 復州 竟陵(지금의 湖北 天門市) 출신으로 평생을 茶의 연구에 매진하여 후인들이 茶神이라 부르고 제사를 지냈다. 『茶經』은 『陸子茶經』이라고도 하는데 3권으로 되어 있다. 『唐宋叢書』에 수록된 판본에는 唐 皮日休가 지은 序가 수록되어 있다. 源, 具, 造, 器, 煮, 飮, 事, 出, 略, 圖 등 10편으로 되어 있다. 『說郛』, 『四庫全書』등에도 수록된 판본도 이와 같다. 고려시대 李奎報, 李穡 이래 수많은 문인들의 글에 이 책을 인용할 정도로 영향이 컸다. 특히 金八元이 이 책을 읽고 쓴 「讀茶經」이 『芝山文集』에 실려 있으며, 『栢潭文集』에 실려 있는 具鳳齡의 「讀茶經」도 이 책을 읽고 쓴 시다. 『芝峯類說』, 『五洲衍文長箋散稿』등 조선 후기 문헌에도 매우 빈번하게 이 책을 인용하고 있다.
 (56) 『香譜』
 宋 洪芻가 香에 대한 자료를 모아 편찬한 책. 洪芻는 字가 駒父이고 建昌軍 출신이다. 洪朋, 洪炎, 洪羽 등의 형제과 함께 豫章四洪으로 일컬어진 北宋의 詩人이다. 『香譜』외에 『老圃集』, 『豫章職方乘』등이 있다. 『直齋書録解題』등에서는 이 책의 편찬자 이름을 알 수 없다고 하여 洪芻가 편찬자인지에 대해 다소 의문이 있다. 이 책은 원래 5권으로 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2권만 전한다. 『唐宋叢書』에 수록된 판본에는 1권으로 되어 있고 唐 皮日休가 지은 「香序」가 수록되어 있다. 香之品에 龍腦香, 麝香, 沉水香, 白檀香 등을 들었고, 香之異에서 都夷香, 荼蕪香, 辟寒香 등을 기술하였으며, 香之事에서 述香, 香序, 香尉 등 여러 항목을 두었고, 香之法에서 蜀王薰御衣法, 唐化度寺牙香法 등을 다루었다. 『說郛』, 『四庫全書』등에 수록된 판본도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香譜』는 宋 陳敬이 편찬한 것이 따로 있는데 이는 沈立, 洪芻 등 11가의 『香譜』를 모아 한 권으로 만든 것이다. 그밖에 宋 葉廷珪이 편찬한 『名香譜』가 있는데 이 역시 줄여서 『香譜』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 문헌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香譜』가 구체적으로 어떤 책인지는 확실하지 않고, 편찬자를 명기한 것은 『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인용한 葉廷珪의 『香譜』정도이다.
 (57) 『筍譜』
 吳의 승려 贊寧이 竹筍에 대한 자료를 엮은 책. 贊寧은 杭州의 龍興寺에 출가하여 呉越王 錢鏐署에 의하여 兩浙僧統이 되었다. 『筍譜』외에 『高僧傳』, 『物類相感志』등의 저술이 있다. 『筍譜』의 편찬자에 대해서는 異說이 있다. 편찬자를 알 수 없다고 한 데도 있고, 晁公武의 『讀書志』에는 僧 恵崇으로 되어 있지만, 『宋史』와 陳振孫의 『書錄解題』僧 贊寧으로 되어 있어 贊寧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恵崇은 宋初의 승려로 시와 그림에 능하였고 『句圖』등의 저술이 있다. 이 책은 陸羽의 『茶經』의 체제를 따라 名, 出, 食, 事, 雜說 등 5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양한 서적을 인용하여 죽순에 대해 고증하였다. 『唐宋叢書』외에 『說郛』, 『四庫全書』등에도 수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退溪先生文集攷證』에서 이 책은 인용한 바 있다.
 (58) 『桐譜』
 宋 陳翥가 오동나무에 대해 편찬한 책. 陳翥(982-1061)는 北宋의 문인으로 銅陵 출신이며 字가 子翔이다. 『唐宋叢書』에 수록된 판본에는 皇祐 元年(1046)에 쓴 서문이 달려 있다. 『茶經』과 『竹譜』는 있지만 대나무에 대한 책이 없어 직접 대나무를 심고 그와 관련한 기록을 모았다고 하였다. 叙源, 類屬, 種植, 所宜, 所出, 采斫, 器用, 襍說, 記誌, 詩賦 등 10편으로 나누어 기술하였다. 『唐宋叢書』외에 『說郛』, 『四庫全書』등에도 수록되어 있다. 우리나라 문헌에서 이 책을 언급한 예는 찾기 어렵다.
 (59) 『續竹譜』
 元 劉美之가 대나무에 대해 편찬한 책. 규장각의 『唐宋叢書』목록에는 『續行譜』로 되어 있으나 잘못이다. 劉美之는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없다. 이 책은 晋 戴凯의 『竹譜』를 보완한 것으로 추정된다. 釣絲竹, 毛竹, 方竹, 沙摩竹, 簞竹, 斑竹, 黃竹, 紫竹, 㯶竹, 猫兒竹 등 다양한 대나무에 대해 설명하고 있지만 16條에 불과하다. 『唐宋叢書』외에 『說郛』에도 수록되어 있는데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우리나라 문헌에 이 책에 대해 언급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
 (60) 『雲林石譜』
 宋 杜綰이 돌의 품목에 대해 편찬한 책. 杜綰은 字가 季揚,號는 雲林居士이며 越州의 山陰 출신이다. 이 책을 『石譜』라고도 한다. 『唐宋叢書』에 수록된 판본에는 宋 紹興 癸丑年 孔傅가 쓴 題가 卷頭에 실려 있다. 이 책은 上中下 3권에 116종의 石品에 대해 적고 있는데, 產地, 採取法, 形狀, 品質 등을 두루 기록하였다. 靈璧石, 青州石, 林慮石, 平江府太湖石 등과 같은 표제를 붙였다. 卷頭에 孔傳의 序가 실려 있다. 『唐宋叢書』외에 『說郛』,『御覽知不足齋叢書』, 『四庫全書』등에도 수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弘齋全書』에서 이 책을 인용한 바 있다.
 (61) 『宣和畵譜』
 宋代 편찬자를 알 수 없는 畵譜. 『王肯堂筆麈』에 徽宗의 御撰이라 하였는데 잘못이다. 宣和는 徽宗의 연호인데, 徽宗은 그림에 능하였고 또 많은 그림을 수장하기도 하였다. 『唐宋叢書』에 수록된 판본에는 3책 20권으로 되어 있고 제일 앞에 목록이 실려 있다. 卷頭에 “武林 高拱明重校”라 되어 있다. 高拱明이 어떤 인물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道釋, 人物, 宫室, 蕃族, 龍魚, 山水, 鳥獸, 花木, 墨竹, 蔬果 등 十門으로 分類하여 顧愷之, 陸探微, 張僧繇 등 231인에 대하여 자세히 기술하고 그들이 그린 그림 6396軸을 설명하였다. 『四庫全書』에도 수록되어 있는데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靑莊館全書』, 『金陵集』등 우리나라 문헌에도 인용되어 있거니와 회화사의 전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62) 『古今畵鑑』
 元 湯垕가 편찬한 書畵에 대한 비평서. 湯垕는 字가 君載,號가 采眞子이며 山陽(지금의 江蘇 淮安) 출신으로 대략 曆元 연간과 至元 연간에 생존했다. 『說郛』, 『四庫全書』에는 湯垕로, 『學海類編』등에는 湯厚로 되어 있는데 湯垕가 옳은 듯하다. 考古學에 정통하여 天曆 元年(1328)에 京師에서 鑒畫博士 柯九思과 그림에 대해 토론한 것을 정리하여 이 책을 편찬하였다. 규장각 소장 『唐宋叢書』에 수록된 판본은 湯垕로 되어 있고 1권이다. 卷頭의 序가 실려 있는데 監書博士 柯敬仲과 그림에 대해 논하다가 이 책을 저술하였다고 하였다. 표제는 古今畵鑑로 되어 있지만 卷頭題와 版心題는 畵鑑으로 되어 있다. 吳畫, 晉畫, 六朝畫, 唐畫, 五代畫, 宋畫, 金畫, 元畫 등으로 나누어 독창적으로 그림에 대해 평론하고 畫法의 이론을 세운 책이다. 『說郛』에 수록된 판본도 이와 대동소이하다. 『四庫全書』에는 말미에 『雜論』1권을 덧붙여 그림의 鑒賞과 收藏 등의 문제를 약술하였다. 『海東繹史』, 『五洲衍文長箋散稿』등에 이 책이 인용되어 있다.
 (63) 『公私畵史』
 唐 裴孝源이 편찬한 繪畵에 대한 책이다. 裴孝源은 貫鄕이 알려져 있지 않은데 卷首에 貞觀 13년의 自序가 있어 이 무렵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唐書』에는 『畫品錄』1권이 있다고 하고 中書舍人의 벼슬을 지냈다고 하였다. 『公私畵史』라고도 하는데 1권이다. 隋代 官庫에 있던 그림에서부터 貞觀 初까지 남아 있던 그림을 대상으로 하여 먼저 명칭을 나열하고 화가의 이름을 뒤에 적었다. 唐 貞觀까지 隋의 황실에서 소장되어 있던 그림의 명칭과 작자에 대해 기술하였다. 陸探微, 魏 高貴鄉公, 衛協, 晉 明帝, 謝稚, 顧景秀, 毛惠遠, 毛惠秀, 袁蒨, 劉塡, 蘧師珍, 嵇康, 蔡邕, 楊倄, 史道碩, 戴逵, 顧愷之, 顧寳光, 曹不興, 戴勃, 陸綏, 史文敬, 史藝, 陶景真, 宗炳, 姚曇度, 月長生, 卷濮萬年 등의 그림을 수록하였다. 『說郛』에도 실려 있는데 그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海東繹史』에서 이 책을 인용한 바 있다.
 (64) 『益州名畵錄』
 宋 黃休復이 益州에서 본 그림에 대해 기술한 책. 黃休復은 江夏 출신으로 字가 歸本이다. 『春秋』에 박통하였고 『益州名畵錄』외에 『成都名畵記』, 『茆亭客話』등의 저술을 남겼는데 『益州名畵錄』와 『成都名畵記』는 동일한 책으로 추정된다. 『四庫全書』에 수록된 판본은 3권으로 되어 있는데 卷頭에 景德 3년(1005) 李畋의 序가 실려 있다. 본문은 唐 乾元(758)부터 北宋 乾德 연간(963-967)까지 益州에서 본 그림에 대해 기술하였다. 58인의 화가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작품에 대한 품평을 실었다. 品評은 逸, 神, 妙, 能의 四格으로 나누고 妙格과 能格은 다시 上中下의 3품으로 세분하였다. 『唐宋叢書』에 수록된 판본은 서문이 없고, 그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唐宋叢書』외에 『說郛』, 서울대 도서관에 소장된 『函海』등에도 거의 같은 내용으로 실려 있다. 朴永元의 『梧墅集』에서 王維, 賀知章, 陳子昂 등을 그린 十友圖에 대해 소개하면서 이 책을 인용한 바 있다.
 (65) 『桂海虞衡志』
 南宋 范成大가 편찬한 地方志. 范成大(1126-1193)는 字가 致能, 號가 石湖居士이고, 蘇州 吳縣 출신이다. 『石湖居士詩集』, 『石湖詞』, 『吳船錄』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이 책은 范成大가 지금의 廣西 桂林 지역인 靜江과 四川 등지에 재직하면서 보고 들은 풍물을 기록한 것이다. 『唐宋叢書』에는 淳熙 2년 范成大가 쓴 서문이 수록되어 있다. 권두에 목록이 실려 있다. 본문은 卷頭題와 版心題를 『桂海巖洞志』, 『桂海金石志』, 『桂海香志』, 『桂海酒志』, 『桂海器志』, 『桂海禽志』, 『桂海蟲魚志』, 『桂海花志』, 『桂海果志』, 『桂海雜志』, 『桂海蠻志』등 독립된 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每篇마다 范成大의 序가 앞부분에 실려 있다. 明 陸楫이 편찬한 『古今說海』, 淸 鮑廷博이 편찬한 『御覽知不足齋叢書』,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는 明 何鏜이 편찬한 『漢魏叢書』, 淸 汪士漢이 편찬한 『秘書二十一種』, 그밖에 『文娛』, 『古今說海』, 『秘書二十一種』, 『卄一種秘書』등 많은 叢書類에 수록되어 있다. 『星湖僿說』, 『息山集』, 『頭陀抄』, 『靑莊館全書』, 『硏經齋全集』, 『與猶堂全書』, 『舫山集』, 『五洲衍文長箋散稿』등 여러 문헌에 그 서명이 보이므로, 조선후기 널리 유통된 책이라 하겠다. 『芝峯集』과 『芝峰類說』에는 『桂海志』라는 이름으로 인용되어 있다.
 (66) 『學古篇』
 元 吾丘衍가 文字와 書體, 印章 등에 대해 기술한 책. 吾丘衍(1272-1311)은 吾衍이라고도 하는데 字는 子行,號는 貞白인데 竹房, 竹素, 别署眞白居士, 布衣道士 등 여러 가지를 두루 사용하였다. 衢縣 棠村 출신인데 杭州에 우거하였다. 한 눈이 멀고 다리를 절었음에도 불구하고 학문에 열중하여 『學古篇』외에도 『周秦石刻釋音』, 『閒居錄』, 『竹素山房詩集』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이 책은 1300년 무렵 완성되었는데 『說郛』에 수록된 판본은 卷頭에 大德 4年 自序가 짧게 실려 있고 이어 三十五擧,合用文籍品目, 附錄 등이 실려 있다. 三十五舉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으로 篆書, 隸書 등의 書體와 白文印, 朱文印 등의 印章를 35가지로 나누어 기술하였는데 특히 인장에 새기는 名과 字 등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루어 印人柱石이라는 평을 들었다. 이 책의 서명이 『三十五擧』으로 된 데도 있다. 合用文籍品目에서는 小篆品五則, 鐘鼎品二則, 古文品一則, 碑刻品九則, 附用器品九則, 辨謬品六則, 隸書品七則, 字源八辯字 등으로 되어 있는데 『說文解字』등 문자학이나 비석, 인장 등과 관련한 문헌 39종을 다양하게 인용하였다. 부록에는 洗印法, 印油法, 世存古今圖印譜式, 取字法 등을 다루었다. 『唐宋叢書』나 『尙白齋鐫陳眉公訂正秘笈』등에도 수록된 판본도 이와 대동소이하다. 국립중앙도서관에 18세기 일본에서 간행한 목판본이 소장되어 있다. 『金陵集』, 『五洲衍文長箋散稿』등의 문헌에 이 책을 인용하고 있고, 경상대학 도서관에 필사본이 소장되어 있다는 점에 조선 후기 제법 유통된 책으로 추정된다.
 (67) 『洞天淸錄』
 宋 趙希鵠이 古器의 감별에 대해 적은 책이다. 趙希鵠은 宋의 宗室의 후손이지만 이력은 자세하지 않다. 『四庫全書』에 수록된 판본은 1권인데 古琴辨 32條, 古硯辨 12條, 古鐘鼎彛器辨 20條, 怪石辨 11條, 硯屏辨 5條, 筆格辨 3條, 水滴辨 2條, 古翰墨眞迹辨 4條, 古今石刻辨 5條, 古今紙花印色辨 15條, 古畫辨 29條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說郛』, 『唐宋叢書』등에도 수록된 판본은 그 중 筆格, 硏山, 筆床, 筆屛, 筆筒, 筆船, 筆洗 등과 같은 표제어 아래 붓과 연적, 칼, 거울 등 다양한 器物에 대해 적었다. 『唐宋叢書』에는 표제에 『洞天淸錄』만 적혀 있지만 내용에는 『洞天遊錄』, 『洞天帖錄』, 『洞天琴錄』, 『洞天畵錄』, 『洞天墨錄』, 『洞天紙錄』, 『洞天書錄』, 『洞天硏錄』, 『洞天筆錄』, 『洞天香錄』이 더 수록되어 있는데 모두 趙希鵠이 편찬한 책으로 그 성격은 유사하다. 卷頭題와 版心題가 모두 독립되어 있는데 『四庫全書』에는 이를 모두 모아 『洞天淸錄』이라 한 것이다. 『洞天遊錄』은 笠, 杖, 漁竿, 舟, 葉箋, 葫蘆 등 14종의 기물에 대해 적고 뒷부분에 太極樽, 葫蘆樽式, 山遊提合圖式, 提爐圖式 휴대용 기물 4종을 그림으로 그려 풀이하였다. 『洞天帖錄』은 墨跡難辯, 南北紙墨, 古今帖辨 , 贋帖, 藏帖, 學書 등 書帖과 관련한 항목을 풀이하였다. 『洞天琴錄』은 論琴, 古琴色, 古斷紋, 古琴灰, 古琴材, 琴軫, 琴徽 , 琴絃, 琴臺, 琴室, 唐琴, 宋琴, 元琴, 國朝琴, 蕉葉琴, 百衲琴, 拄琴, 琴匣, 抱琴, 對鶴, 對月, 對花, 臨水, 焚香, 盥手, 露下, 飮酒, 琴壇十友 등을 표제어로 하여 琴과 관련한 내용을 다루었다. 『洞天畵錄』은 賞鑑, 似不似, 古畵, 唐畵, 宋畵, 元畵, 國朝畵家, 邪學, 粉本, 臨畵, 宋繡畵, 看畵法, 品第畵, 無名畵, 單條畵, 古絹素, 裱錦, 學畵, 軸頭, 藏畵, 小畵匣, 捲畵, 拭畵, 出示畵, 裱畵, 拄畵 등을 표제어로 하여 회화에 대한 기술을 싣고 있다. 『洞天墨錄』,에는 論墨, 古製墨法, 朱萬初墨, 玉泉墨畵眉墨, 松墨, 香與墨同關紐 등을 표제어로 하여 먹과 관련한 내용을 구성되어 있다. 『洞天紙錄』은 南北紙, 唐紙, 宋紙, 元紙, 國朝紙, 高麗紙, 造葵箋法, 染宋箋色法, 染紙作畵不用膠法, 造搥白紙法 , 造金銀印花箋法, 造松花箋法 등 종이의 종류와 제조법을 기술하였다. 『洞天書錄』은 論書, 獻售, 各地, 印書, 書直, 讐對, 藏書, 觀書 등 서적과 관련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洞天硏錄』은 論硏, 養硏, 滌硏, 試新墨, 藏硏, 冬月硏, 朱硏, 墨繡 등 벼루와 관련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洞天筆錄』은 筆法, 毫, 管, 式, 工, 藏, 滌, 瘞, 筆經 등 붓과 관련한 내용이고, 『洞天香錄』은 論香, 伽南香, 角沉香, 片速香, 唵叺香, 香角, 降眞香, 白膠香, 黃檀香, 芙蓉香, 蒼朮, 萬春香, 蘭香, 安息香, 龍拄香, 甛香, 黃香餠, 墨香餠, 京線香, 龍樓香, 玉華香, 暖閣香, 墨芸香, 香爐, 香盒, 隔火, 匙筋, 香盤, 爐, 爐, 灰, 香炭塹, 留宿火法, 香都總匣 등 향과 관련한 항목을 풀이하였다. 『靑莊館全書』, 『五洲衍文長箋散稿』등에 『洞天淸錄』을 인용한 바 있다.
 (68) 『世範』
 元 袁采이 세상의 모범이 될 만한 사례를 모아 편찬한 책. 袁采(?-1195)는 字가 君載이고 信安 출신이며 벼슬은 監登聞闻鼓院에 이르렀다. 『樂清縣志』, 『雁蕩荡山記』등을 편찬하였고 그밖에 『世苑』등의 저술도 있다. 이 책은 『顔氏家訓』을 계승한 책으로 『袁氏世範』, 『俗訓』이라고도 하였다. 『唐宋叢書』에는 3권으로 되어 있으며 睦親, 處己, 治家 등으로 분류되어 있다. 가정과 친척의 화목, 수양과 처세, 집안을 다스리는 원리 등을 자세하게 적었다. 『說郛』, 『御覽知不足齋叢書』등에도 수록되어 있다. 『眉巖集』, 『星湖僿說』, 『楓石全集』, 『艮齋集』, 『五洲衍文長箋散稿』등에 이 책이 인용되어 있다.
 (69) 『異苑』
 宋 劉敬叔이 당시의 神怪한 일을 채록하여 편찬한 책이다. 明 胡震亨이 이 책을 叢書 『秘冊匯函』에 넣어 간행하려 할 때 처음 「劉敬叔傳」을 지어 그 생애에 대하여 간략하게 살폈다. 劉敬叔은 彭城人인데 給事黄門郎 등의 벼슬을 지냈다. 『異苑』외에 『梁淸傳』도 저술하였는데 『說郛續』에 실려 있다. 『異苑』은 『唐宋叢書』에 10권이 모두 수록되어 있다. 卷頭題 아래 “陳大武橋閱”이라 되어 있다. 중간에 補寫한 면이 여럿 있다. 마지막에 胡震亨의 「劉敬叔傳」이 실려 있다. 『四庫全書』에도 小說家類로 10권이 편입되어 있다. 『五朝小說』, 『說郛續』등에는 1권만 실려 있다.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叢書』에도 이 책이 실려 있다. 『津逮秘書』, 『學津討原』, 『說庫』, 『古今說部叢書』등에도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希樂堂稿』, 『仁宗實錄』등 조선 전기 문헌에서부터 확인되므로 이른 시기부터 조선에 널리 유통되었다고 볼 수 있다. 조선 후기에도 『宋子大全』, 『自著』, 『斗室存稿』, 『海東繹史』, 『五洲衍文長箋散稿』등 여러 문헌에 인용되어 있다.
 (70) 『異林』
 宋 李兼이 편찬한 志怪小說集. 李兼은 어떤 인물인지 알려져 있지 않다. 『物異考』의 편찬자 方鳳이 明代의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明代의 편찬물로 보아야 할 듯하다. 이 책은 唐 陸勳이 편찬한 『集異志』, 宋 魯應龍이 편찬한 『括異志』, 宋 侯君素이 편찬한 『旌異志』, 吳 方鳳이 편찬한 『物異考』등 4종을 모은 것이다. 첫면에 目錄이 실려 있는데 이 부분만 卷頭題와 版心題가 『異林』이고 나머지 부분은 모두 卷頭題와 版心題가 독립된 체제로 되어 있다. 『唐宋叢書』외에는 이 4종을 묶어 『異林』이라 한 예를 찾기 어렵다. 4종의 책 모두 당시에 유통되는 신이한 이야기를 모은 것이다. 『集異志』는 薛用弱의 『集異記』와 혼돈을 피하려고 『陸氏集異記』라고도 한다. 『書錄解題』나 『宋史』등에는 2권으로 되어 있는데 지금은 32조목만 전한다. 陸勳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규장각에 소장된 『尙白齋鐫陳眉公訂正秘笈』와 『說郛』, 장서각에 소장된 『秘書二十一種』등에 실려 있다. 『括異志』는 『閒窻括異志』라고도 하는데 因果應報를 주제로 하여 神怪한 이야기 88편을 적었다. 편찬자 魯應龍은 생애가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嘉興 출신으로 理宗 연간에 활동한 인물인 듯하다. 규장각에는 『閑窓括異志』라는 이름으로 2종이 소장되어 있으며 규장각에 소장된 『稗海』, 『說郛』, 『宋人百家小說』등에도 수록되어 있다. 『旌異志』는 『舊唐書』에 15권으로 侯君素가 편찬하였다고 하였으므로 唐代의 인물인 듯하고 唐의 승려 道世이 편찬한 『法苑珠林』에는 『旌異傳』20권은 隋朝의 相州 秀才 儒林郎 侯君素가 文皇帝의 敕命으로 편찬하였다고 하여 隋代의 인물로 기록하고 있다. 규장각에 소장된 『叢書』와 『說郛』에도 실려 있다. 『物異考』를 편찬한 方鳳은 明의 인물인데 『唐宋叢書』에서는 吳代의 인물이라 하였지만 잘못이다. 方鳳은 字가 時鳴, 號는 改亭이며 崑山 출신이다. 正德 연간 벼슬길에 나아가 廣東提學僉事의 벼슬을 지냈다. 『物異考』는 첫면에 짧은 서문이 있는데 “子不語怪力亂神”을 인용하면서도 우주에는 신이한 이야기가 많아 이를 7조목으로 기록한다고 하였는데 李兼의 의도 역시 이와 같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物異考』는 水異, 火異, 靑異, 木異, 金石異, 人異, 蟲異 등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다른 3종은 표제어나 분류가 이루어져 있지 않다. 규장각에 소장된 『叢書』에도 수록되어 있다. 『異林』으로 된 책이 여러 종 있는데 『說郛續』에는 吳 徐禎卿이 편찬한 것으로 되어 있다. 東京大 등에 소장된 『唐宋叢書』에는 편찬자가 徐禎卿으로 되어 있다. 『五洲衍文長箋散稿』에도 이 책을 인용하였는데 편찬자를 徐禎卿이라 하였다. 徐禎卿(1479-1511)은 字가 昌谷 혹은 昌國이며 常熟梅李鎭 출신인데 후에 吳縣으로 옮겨가 살았다. 吳中詩冠으로 일컬어진 뛰어난 시인이며 書法에도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迪功集』, 『談藝錄』, 『翦勝野聞』, 『異林』등의 저술이 있다. 明 支允堅도 동일한 서명의 『異林』을 편찬하였는데 구분하기 위하여 『梅花渡異林』이라도 하며 『弘齋全書』에 인용되어 있다. 明 朱睦㮮도 같은 이름의 책을 편찬한 바 있다.
 (71) 『還寃記』
 北齋 顔之推가 편찬한 雜錄. 顔之推(531-595?)는 南北朝時代 末期의 學者로 字는 介이다. 琅邪郡 臨沂縣 출신인데 建康에 世居하였다. 『還寃記』외에 『顔氏家訓』등의 저술이 있다. 『唐宋叢書』와 『說郛』에는 『還寃記』라는 이름으로 수록되어 있지만 『漢魏叢書』, 『尙白齋鐫陳眉公訂正秘笈』, 『四庫全書』등에는 모두 『還寃志』라는 이름으로 되어 있다. 이 책은 원한과 보응 등의 일을 기록한 것인데 金玄玄, 諸葛覆, 夏侯玄, 孫策, 文姜, 夫差, 張頎 등 인물을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다. 『唐宋叢書』에는 필사본이 실려 있는데 版心題까지 필사하였고 魚尾의 문양도 같이 그려 넣었으므로 온전한 원본을 보고 필사한 듯하다. 우리나라 문헌에는 이 책이 인용된 사례가 보이지 않는다.
 (72) 『前定錄』
 唐 鍾輅이 편찬한 잡록. 鍾輅는 唐 文宗 太和 연간(827-835)에 활동한 문인으로, 벼슬은 崇文館 校書郞을 지냈지만 자세한 생애는 밝혀져 있지 않다. 권두에 自序가 있고 본문에 鄭虔, 裴諝, 劉邈之, 武殷, 豆盧署, 喬琳, 張轅, 龐嚴, 李敏求, 韓晉公, 張宣, 杜思溫, 李相國揆, 薛少殷, 袁孝叔, 馬遊秦, 韋泛, 陳彥博, 陸賓於, 王璠, 柳及, 延陵包隰, 沙門道昭 등 23건의 일화가 기록되어 있다. 인간의 길흉화복은 본인의 전생에 이미 결정된 것이라는 설에 입각하여 저술한 책. 續錄 1권이 더 있는데 편찬자는 알 수 없다. 唐 明皇과 唐 元宗 때의 일도 기록하고 있으며 柳宗元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唐 이전의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續錄에는 竇相易眞, 柳宗元, 李逢吉, 崔羣, 盧貞白, 牛師, 陳存, 鄭滂, 孔温裕, 王蒙, 黄損, 張寶藏, 崔龜從, 孫思邈, 武居常, 房玄齡, 玄宗, 姚宋, 李景讓, 劉逸 등의 일화를 다루었다. 『唐宋叢書』에 수록된 판본은 鍾輅의 序와 目次가 있고 그 내용은 대동소이하지만 續錄은 실리지 않았다. 『說郛』, 『唐代叢書』, 『四庫全書』등에 수록되어 있고, 규장각에 소장된 『叢書』에도 실려 있다. 『太宗實錄』에 기록된 忠州史庫에 소장되어 있던 서목에서 이 책이 보이지만 조선시대 이 책을 직접 인용한 것은 『林下筆記』외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73) 『集異記』
 唐 薛用弱이 唐代의 逸話와 傳奇를 모아 편찬한 책. 薛用弱은 字가 中勝, 河東人이며 光州刺史를 역임하였다. 이 책은 『古異記』라고도 하는데 원래 3卷이었지만 지금은 2卷 16篇이 전한다. 徐佐卿, 王積薪, 平等閣, 裴珙, 蕭頴士, 韋宥, 蔡少霞, 集翠裘, 王維, 王之渙, 張鎰, 裴通遠, 邢曹退, 韋知微, 狄梁公, 寧王 등의 항목으로 되어 있다. 『唐宋叢書』, 『說郛』, 『四庫全書』등 여러 곳에 실려 있는데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국립중앙도서관과 장서각, 존경각 등에 소장되어 있는 『秘書』에도 수록되어 있다. 『明皐全集』, 『五洲衍文長箋散稿』등에 이 서명이 보인다.
 (74) 『博異志』
 唐 鄭還古가 唐代의 신이한 이야기를 모아 편찬한 책. 唐 谷神子, 馮廓 등이 편찬자라는 설도 있지만 鄭還古와 마찬가지로 모두 확증하기 어렵다. 『四庫全書』에는 『博異記』로 되어 있다. 이 책은 敬元頴, 許漢陽, 王昌齡, 張竭忠, 陰隱客, 岑文本, 沈亞之, 劉方玄, 馬侍中 등 10條로 되어 있는데 모두 鬼神의 신이한 행적을 기록한 것이다. 『說郛』,『唐宋叢書』등에도 실려 있는데 체제와 내용은 거의 같다. 『漢魏叢書』, 『龍威秘書』등에 수록되어 있으며 국립중앙도서관과 장서각, 존경각 등에 소장되어 있는 『秘書』에도 실려 있다. 우리나라 문헌에는 이 서명이 확인되지 않는다.
 (75) 『甘澤謠』
 唐 袁郊가 당시의 신이한 이야기를 모은 책. 袁郊는 字가 子乾이며 벼슬은 刑部郎中, 虢州刺史 등을 지냈다. 『郡齋讀書志』에 따르면 咸通 연간(860-873) 오래 비가 내려 누워 있을 때 저술한 것이라 이 제목이 붙었다고 한다. 권두에 咸通 戊子年(868) 지은 自序가 실려 있다. 1권으로 되어 있으며 魏先生, 素娥, 陶峴, 賴殘, 聶隱娘, 韋騶, 圓觀, 紅線, 許雲封 등의 표제 아래 9편이 실려 있는데 그 내용은 모두 『太平廣記』에 실려 있다. 『唐宋叢書』, 『說郛』, 『四庫全書』등에도 수록되어 있는데 그 체제와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心庵遺稿』에는 南秉哲과 趙斗淳이 『津逮祕書』에 실려 있는 이 책을 여러 번 읽었다고 한 바 있다.
 (76) 『冥通記』
 梁 陶弘景이 신선을 만난 신이한 이야기를 기록한 책. 陶弘景(456-536)은 丹陽 秣陵 출신으로 字가 通明이고 華陽에 隱居하며 華陽隱居라는 호를 사용하였다. 『梁書』「處士傅」에 자세한 이력이 보인다. 『三命抄略』, 『靈寶眞靈位業圖』, 『古今刀劍錄』등의 저술이 있다. 이 책은 『周氏冥通記』라고도 하는데 내용에 周子良이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四庫全書總目』에는 書名이 『冥通記』로 되어 있고 편찬자를 周子良이며 4권이라 하였다. 周子良은 字가 元龢이고 茅山 출신인데 陶弘景의 제자이다. 『唐宋叢書』에 수록된 판본은 앞에 「周傳」이라 하여 周子良의 행적을 기록한 글을 실었다. 권1에는 天監 14년 夏至인 5월 23일에서부터 28일까지의 일을 4조목으로 적었고 권2에는 6월 1일부터 29일까지의 일을 13조목으로 적었다. 권3에는 7월 3일부터 25일까지의 일을 7조목으로 기록하였고, 권4에는 乙未年 5월 23일부터 이듬해 丙申年 7월말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다. 『說郛』에는 일부의 기사만 초록하였다. 『道藏』에도 『周氏冥通記』가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星湖僿說』, 『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이 책을 인용하고 있는데, 『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는 周子良이 편찬한 것으로 보았다.
 (77) 『夢遊錄』
 唐 任蕃이 꿈속에서 겪은 신이한 이야기를 모은 책. 任蕃은 江東 출신인데 字나 貫鄕이 밝혀져 있지 않으며 唐 武宗 연간의 인물로 추정된다. 任飜으로 된 데도 있다. 이 책은 櫻桃青衣, 獨孤遐叔, 邢鳯, 沈亞之, 張生, 劉道濟 등 6條가 실려 있다. 唐의 玄宗, 德宗, 憲宗, 文宗, 昭宗 연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說郛』, 『唐宋叢書』, 『古今說海』등에도 수록되어 있다. 『唐宋叢書』에는 첫 3장이 빠져 있다. 우리나라 문헌에는 이 책을 인용한 사례가 확인되지 않는다.
 (78) 『本事詩』
 唐 孟啓가 편찬한 詩話雜錄. 孟棨는 字가 初中인데 자세한 생애는 밝혀져 있지 않다. 『新唐書』, 『津逮秘書』등에는 孟啟로 되어 있다. 唐代 詩人의 逸事를 수록한 책으로 일실된 詩人과 作品을 다수 수록하고 있어 가치가 높다. 『唐宋叢書』에 수록된 판본은 1권이며 情感, 事感, 高逸, 怨憤, 征異, 徵咎, 嘲戲 등 7類로 분류하여 41則을 수록하였다. 宋 武帝, 徐德言 등 일부 六朝 時期의 작품도 있지만 대부분 唐代의 일화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龍威秘書』, 『說郛』등에도 비슷한 체제와 내용으로 실려 있다. 『古今逸史』, 『顧氏四十家小說』, 『津逮秘書』, 『歷代詩話續編』등에도 수록되어 있다. 서울대 중앙도서관에 청말에 목판으로 간행한 판본이 소장되어 있다. 『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이 책은 인용한 바 있다.
 (79) 『揮麈錄』
 宋의 楊萬里가 편찬한 잡록. 楊萬里(1127-1206)는 字가 廷秀,號가 誠齋이며 吉州 吉水 출신이다. 南宋의 걸출한 시인, 학자로 『誠齋易傳』, 『誠齋集』, 『誠齋詩話』등의 저술이 있다. 『唐宋叢書』에 수록된 판본은 2권으로 되어 있는데 唐 明皇의 탄생일, 역대 제왕의 畵像과 祠廟, 陵寢, 南京 應天寺, 仁宗의 服飾, 李和文이 수장한 書畵, 宋의 樞密院과 같은 제도나 명현의 일화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誠齋揮塵錄』라고도 한다. 宋 王明淸이 편찬한 동일한 이름의 책이 『說郛』, 『四庫全書』등에 수록되어 있는데 이 책과 관련이 깊다. 王明清은 字가 仲言이고 汝陰 출신이며 후에 嘉興에 우거하였다. 南宋 孝宗에서 寧宗 연간에 활동한 문인이지만 자세한 것은 밝혀져 있지 않다. 『揮塵錄』외에 『玉照新志』, 『投轄錄』, 『摭青雜記』, 『熙豐日歷』등의 저술이 있는데 대부분 『說郛』에 실려 전한다. 이 책은 『揮塵錄』으로 된 데도 있는데 잘못이다. 또 편자를 王淸臣이라 한 곳도 있는데 동일 인물인 듯하다. 『四庫全書』에 수록된 판본은 前錄 四卷, 後錄 十一卷, 第三錄 三卷, 餘話 二卷 등으로 되어 있는데 朝廷의 典故와 賢哲의 言行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乾道 丙戌年(1166) 會稽에서 기록한 것인 많은데 史書에 보이지 않은 기록이 제법 있어 가치가 높다. 마지막에 王明淸의 跋文이 실려 있다. 『說郛』의 판본 중에는 편찬자를 王明淸이라 한 데도 있고 王淸臣이라 한 데도 있다. 仁宗不寶玉帶, 欲封夫子爲帝, 避諱易姓, 沿襲之誤, 古印章, 告身著形貎, 潮, 降王舊臣修書, 帝學權輿, 赤脚仙人, 高宗臥處龍現, 愼刑, 温公得人心, 蔡元長南遷, 碑工辭刻黨人碑, 蘇叔黨榮遇 등의 항목에 제목을 달아서 수록하였다. 또 『揮塵餘話』를 나란히 실었는데 역시 편찬자를 王淸臣이라 하였으며 永昌陵, 符兆, 阜陵中選, 平楚樓, 秦熺 등의 항목을 수록하였다. 『唐宋叢書』에 수록된 판본과 서로 겹치는 내용이 많아 楊萬里는 王明清의 책에서 많은 부분을 가져온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靑莊館全書』, 『金陵集』, 『浣亭集』, 『海東繹史』, 『靑莊館全書』등에서 인용한 『揮麈錄』은 王淸臣의 것이며, 李德懋가 『宋史筌』을 편찬할 때 크게 참조한 책 역시 王明清의 것이다.
 (80) 『因話錄』
 唐 趙璘이 편찬한 筆記小說集. 趙璘은 字가 澤章이며 平原 출신인데 생몰년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大和와 開成, 大中 연간에 활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벼슬은 左補闕, 衢州刺史 등을 지냈다.『四庫全書』에는 6권이 실려 있는데 五音으로 분류하였다. 宮部는 帝王에 대한 기사를 싣고 商部에서는 公卿百僚에 대한 기사를 실었으며 角部는 로 벼슬하지 않은 인물과 諧戱와 관련한 인물을 함께 수록하였고, 徵部에서는 국가의 典故에 대해 실었고 六羽에서는 기타 見聞雜錄을 실었다. 元和 연간 이후의 문단 상황, 文淑僧의 講經, 女儱의 弄假官戱 등이 주목되는 자료로 평가된다. 『說郛』에는 遞遷月令, 大僚子安得居山, 不賞父之都虞候而惜母之阿乳兒, 好脚門生, 茶須活火煎, 讃招隱寺, 晉公不服食, 口占進玉帶狀, 和尚教坊, 陸羽歌, 御史三院, 䑓中無不揖, 諸察院㕔名, 東譲客非禮, 文章托名, 閣下, 文章李益, 山公, 七七, 孟詩韓筆, 時世粧, 屬意蜂蝶, 會稽二清, 幾至失名, 南榻北榻 등 일부 항목만 수록되어 있다. 『唐宋叢書』에 수록된 판본에는 편찬자 이름 아래 “張遂辰閱”로 되어 있다. 張遂辰은 浙江 錢唐 출신으로 字는 相期, 號는 西農이며 『張卿子四編』등의 저술이 있다. 『唐宋叢書』의 편집에도 크게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上中下 3권으로 되어 있고 柳婕妤, 肅宗, 安祿山, 政和公主, 郭汾陽 등 표제를 달고 있는데 『說郛』와 수록된 항목이 다소 다르다.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稗海』, 『叢書』에도 수록되어 있다. 『芝峯類說』와 『沙溪全書』에 이 책을 인용하였는데 편찬자를 趙璘으로 표기하였다.
 (81) 『淸異錄』
 宋 陶穀이 편찬한 잡록. 陶穀(903-970)은 字가 秀實이고, 號는 鹿門先生이라 하였다. 邠州 新平 출신으로, 本姓은 唐인데 先代에 避諱하여 陶로 바꾸었다. 刑部와 户部의 尙書를 지냈다. 이 책은 唐과 五代 新潁의 일화를 天文, 地理, 君道, 官志, 人事, 女行, 私魔, 釋族, 仙宗, 草, 木, 花, 菓, 蔬, 藥, 禽, 獸, 蟲, 魚, 肢體, 居, 衣服, 陳設, 器具, 文用, 武器, 酒漿, 茗荈, 薰燎, 喪葬, 鬼, 神, 妖 등 37門으로 나누고 아래 標題를 달아 관련 事實을 기술하였다. 『四庫全書』에 2권으로 편입되어 있고 『說郛』, 『唐宋叢書』등에도 수록되어 있다. 『唐宋叢書』에는 4권으로 되어 있고 편찬자 이름 아래 “明沈循閱”이라 되어 있다. 沈循은 어떤 인물인지 알려져 있지 않다. 天文, 地理 등의 분류 아래 龍潤, 跋扈將軍, 奇水 등과 같은 표제어를 달았다. 『芝峯類說』, 『無名子集』, 『斗室存稿』, 『靑莊館全書』, 『與猶堂全書』, 『阮堂集』, 『海東繹史』, 『林下筆記』, 『五洲衍文長箋散稿』등 여러 문헌에 이 책이 인용되어 있다.
 (82) 『搜神後記』
 저자를 알 수 없는 志怪說話集. 『唐宋叢書』에는 晉 陶潛이 편찬하였다고 하였으나 나 僞作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陶潛(365-427) 사후인 437년과 439년의 기사가 있으므로 후대에 假託한 것으로 보지만 후대에 일부가 增補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서명이 『續搜神記』로 된 데도 있는데 곧 『搜神記』의 속편이다. 10권으로 되어 있으며 117條의 기사를 다루었다. 神仙洞窟에 대한 것, 山川風物과 世態人情을 다룬 것,인간과 신 혹은 귀신과의 사랑을 다룬 것, 귀신과 관련한 해학과 무용에 대한 것 등이 중심을 이룬다. 袁栢根碩, 韶舞, 梅花泉, 武昌山毛人, 吳猛, 謝允, 麻衣道士, 鏡耗, 郭璞自占, 杜不愆, 術士戴洋, 夏侯綜, 范啓母墓, 李子豫, 斛茗瘕, 腹瑕病, 蕨蛇, 周畛奴, 胡道人, 沙門曇猷, 歷陽神祠, 高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四庫全書』에는 10권이 모두 편입되어 있다.『說郛』에는 陶潛이 편찬한 것으로 하여 2권이 편입되어 있다. 『唐宋叢書』에는 10권으로 편제되어 있지만 한권의 분량은 매우 적다. 표제어 없이 丁令威, 崇高山 등에 대한 기록을 수록하였다.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漢魏叢書』, 『龍威秘書』, 『叢書』에도 수록되어 있다. 규장각에는 조선 후기 간행된 조선간본 1책도 소장되어 있다. 李德懋의『靑莊館全書』, 李圭景의『五洲衍文長箋散稿』등에서 이 책을 인용한 바 있다.
 (83) 『續博物志』
 宋 李石이 편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雜錄. 李石은 자세한 생애는 알려져 있지 않아 晉의 문인으로 된 데도 있으나 宋初의 인물이다. 隴西 출신으로 都官員外郞을 역임하였다. 號를 方舟先生이라 하였고 『方舟易學』, 『詩如例』, 『詩補遺』, 『左氏君子例』, 『方舟集』등의 저술이 있다. 이 책은 張華의 『博物志』를 보완한 것으로 『四庫全書』에 10권이 모두 편집되어 있다. 『埤雅』, 『子華子』, 『遯齋閑覽』, 『集仙傳』등 다양한 전적을 인용하여 天文과 曆法부터 신이한 이야기 등 다양한 내용을 담았다. 『唐宋叢書』에는 10권으로 되어 있으며 권두에 自序가 실려 있다. 편찬자를 晉 李石이라 하고 권마다 교열자를 밝혔는데 吳琯이 가장 많은 부분을 맡았고 吳中珩, 于國輔 등도 일부를 교열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漢魏叢書』, 『龍威秘書』, 『稗海』, 『叢書』, 『孔聖全書』에도 수록되어 있으며, 서울대 중앙도서관에는 『稗海』에 수록된 汪士漢 교감본 『續博物志』가 소장되어 있다.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는 『卄一種秘書』에도 이 책이 실려 있다. 李睟光의『芝峯類說』, 金昌協의『農巖集』, 李瀷의『星湖僿說』, 李德懋의『靑莊館全書』, 李圭景의 『五洲衍文長箋散稿』등 조선 후기 문헌에 이 책을 자주 인용하고 있다.
 (84) 『明道雜志』
 宋 張耒가 편찬한 雜錄. 張耒(1054-1114)는 字가 文潛, 號가 柯山 혹은 宛丘이며, 楚州 淮陰 출신이다. 벼슬은 起居舍人을 지냈다. 『詩說』등의 저술을 남겼으며, 규장각에 그의 산문을 선발한 『宛丘先生文粹』가 전한다. 『唐宋叢書』와 『說郛』에 이 책이 수록되어 있는데, 白居易, 韓愈, 歐陽修, 杜甫, 蘇舜元, 楊大年 등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문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唐宋叢書』에 수록된 판본은 권 표시가 없지만 실제로는 2권으로 나누어져 있다. 마지막에 慶元 庚申年 陳升의 발문이 수록되어 있다. 『說郛』에는 張耒가 편찬한 『續明道雜志』도 함께 수록하고 있는데 이 책과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조선시대 문헌 중에는 『農巖集』에서부터 이 책에 대한 기사가 보인다. 『星湖僿說』, 『靑莊館全書』, 『與猶堂全書』에는 『續明道雜志』에 실린 내용을 인용하였다. 『五洲衍文長箋散稿』에 『明道雜志』를 인용하였다고 하였지만 『續明道雜志』다.
 (85) 『雲仙雜記』
 唐 馮贄가 편찬한 잡록. 馮贄는 字는 알려져 있지 않고 金城 출신이다. 생몰연대는 알 수 없지만 唐 昭宗 연간에 활동한 인물이다. 9대에 걸쳐 20만 권의 서적을 소장하여 이를 바탕으로 이 책을 엮었다고 하지만 『直齋書錄解題』등에는 편자 미상으로 되어 있고 『四庫全書總目』에도 王銍의 僞撰으로 보았다. 馮贄의 自序에 따르면 926년 무렵 이 책을 편찬한 듯하다. 이 책은 『雲仙雜志』, 『雲仙散錄』라고도 한다. 10권으로 되어 있으며 五代의 逸話를 365條로 수록하였는데 幽人筆, 飛雲履, 孫登琴 등과 같은 표제를 달아 기술하였다. 『纂異記』, 『金鑾密記』, 『南康記』등 100여 종의 서적을 인용하였는데 현재 전하지 않는 책이 많다. 『四庫全書』에 10권이 모두 편입되어 있고, 『唐宋叢書』에도 10권으로 실려 있으며, 그 체제와 내용이 대동소이하다. 『說郛』에는 4권이 수록되어 있다. 『唐宋叢書』, 『龍威秘書』에도 실려 있다. 『與猶堂全書』, 『斗室存稿』, 『海東繹史』등에 이 책이 인용되어 있다.
 (86) 『碧鷄漫志』
 宋 王灼이 편찬한 詞曲과 관련한 잡록. 王灼(1081-1160 전후)는 字가 晦叔이고 號가 頤堂이며 四川 遂寧 출신이다. 벼슬을 하지 못하여 유랑하였으며 晚年에 成都의 和遂寧에 은거하면서 저술에 힘을 쏟았다. 『頤堂文集』, 『周書音訓』, 『疏食譜』등의 저술이 있었다 하나 일실되고 『碧鷄漫志』외에 문집의 일부를 모은 『頤堂先生文集』, 그밖에 『頤堂詞』, 『糖霜譜』등이 전한다. 『碧鷄漫志』는 만년의 저술로 曲詞의 源流를 자세하게 기술하였다. 紹興 15년(1145) 겨울 成都의 碧鷄坊 妙勝院에 우거할 때 이 책을 집필하여 19년에 5권으로 완성하였다. 고대에서 唐宋까지를 대상으로 하여 歌謠의 유래와 변천을 적은 다음, 列凉州, 伊州 등 28曲을 적었으며 그 명칭의 유래와 宋詞로 변하게 되는 과정을 기술하였다. 『四庫全書』에는 1권이 수록되어 있으며 『說郛』, 『唐宋叢書』, 『知不足齋叢書』, 『孔聖全書』등에도 수록되어 있다. 『唐宋叢書』에는 몇 장을 제외하고 모두 補寫한 것이다. 마지막에 짧은 발문이 실려 있는데 고증과 인용이 상세하여 唐 段安節의 『樂府雜錄』과 나란하다고 칭친하였다. 우리 문헌에서는 『海東繹史』, 『五洲衍文長箋散稿』에 이 서명이 보이지만 모두 『曝書亭集』에서 재인용한 것이다. 『海東繹史』에는 서명이 『碧溪漫志』로 되어 있는데 일부 중국 문헌에도 이렇게 잘못 표기된 사례가 있다.
 (87) 『玉照新志』
 宋의 王明淸이 朝野의 野史와 逸話 등을 기록한 책. 王明清은 字가 仲言이고 汝陰 출신이며 후에 嘉興에 우거하였다. 南宋 孝宗에서 寧宗 연간에 활동한 문인이지만 자세한 것은 밝혀져 있지 않다. 『揮塵錄』, 『玉照新志』, 『投轄錄』, 『摭青雜記』, 『熙豐日歷』등의 저술이 있는데 대부분 『說郛』에 실려 전한다. 이 책은 6권으로 전편이 『四庫全書』에 편입되어 있으며 앞에 간략한 서문이 함께 실려 있다. 王堯臣, 李長民, 姚平仲, 曾布馮 등의 시문의 출처로 알려져 그 가치가 높이 평가받았다. 前代의 逸文과 자신의 見聞을 수록하여 사료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唐宋叢書』에는 慶元 丙午年에 쓴 서문이 수록되어 있으며 내용은 6권으로 되어 있다. 『說郛續』에는 4권이 수록되어 있고 『尙白齋鐫陳眉公訂正秘笈』, 『叢書』 등에도 실려 있다. 『星湖僿說』, 『楓皐集』, 『五洲衍文長箋散稿』등에 이 서명이 보인다.
 (88) 『東觀奏記』
 唐 裴庭裕가 筆記體로 편찬한 史書. 규장각에 소장된 『唐宋叢書』에는 裴庭裕가 宋代의 인물로 적었지만 근거를 알 수 없다. 『說郛』, 『稗海』, 『小石山房叢書』등 이 책을 수록한 대부분의 문헌에는 편찬자가 裴庭裕로 되어 있지만 일부 裴仁裕로 된 곳도 있다. 『全唐詩』, 『郡齋讀書志』, 『唐詩紀事』등에는 裴廷裕로 되어 있다. 『四庫全書』에 3권이 모두 수록되어 있는데 裴庭裕로 표기하고 廷裕라고도 적는다 하였다. 裴庭裕는 字가 膺餘, 聞喜 출신으로 벼슬은 右補闕을 지냈다. 이 책은 裴庭裕가 昭宗 때 翰林學士로 있었는데 僖宗 때 宣宗과 懿宗, 僖宗 三朝의 實錄을 편찬하는 데 참여하였으나 자료가 부족하여 완성하지 못하고 대신 宣宗 18년간의 사건을 연월일 날짜에 따라 89항목으로 정리한 것이다. 『唐宋叢書』에도 3권으로 수록되어 있다. 金昌協이 『農巖集』에서 이 책을 인용한 바 있다.
 (89) 『井觀瑣言』
 宋 鄭瑗이 편찬한 잡록. 일부 『唐宋叢書』에 실린 판본에는 鄭瑗이 宋代의 인물이라 하였지만 책 안에 明初 인물에 대한 기사가 있어 明代의 학자로 보아야 한다. 鄭瑗은 成化 연간에 활동한 인물로 字가 仲璧이고 莆田 출신이며 『蜩笑偶言』, 『省齋集』등의 저술이 있다. 『唐宋叢書』에는 편찬자를 “閩南鄭瑗”으로 적었다. 3권으로 되어 있는데 주로 역사적인 사실을 고증하고 고금 인물을 품평하였다. 『四庫全書』에도 3권이 편입되어 있다. 규장각에 소장된 『唐宋叢書』, 『尙白齋鐫陳眉公訂正秘笈』, 『說郛續』등에 이 책이 실려 있다. 『弘齋全書』에서는 서명을 밝히지 않았지만 歐陽脩와 王從之를 언급한 대목은 바로 이 책에서 가져온 것이다.
 (90) 『雲煙過眼錄』
 宋 周密이 편찬한 잡록. 周密(1232-1298)은 字가 公謹, 호가 草窓이다. 詞와 書畵, 醫藥에 조예가 깊었다. 義烏縣令을 지냈으며, 송이 멸망하자 관직을 버리고 弁山에 은거하였다. 저서로 『齊東野語』, 『志雅堂雜鈔』, 『癸辛雜識』등이 있다. 이 책은 古董書畵를 품평한 내용으로 4권으로 되어 있는데 續錄 1권이 더 있다. 1296년경 완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四庫全書』에 전권이 수록되어 있다. 喬達之簣成號中山所藏, 焦達卿敏中所藏, 鮮于伯機樞所藏 등과 같이 소장가를 중심으로 항목이 되어 있다. 私家의 所藏品이 주를 이루나 南宋 皇室의 수장품도 보인다. 趙與懃, 王芝, 郭佑之, 趙孟俯, 莊肅 등의 작품이 작자, 작품명, 印記, 題跋, 流傳 경위, 품평 등과 함께 기록되어 있다. 『唐宋叢書』에는 편찬자 이름 아래 陳繼儒가 교정을 본 판본임을 밝혔으며 上下 2권으로 되어 있다. 『尙白齋鐫陳眉公訂正秘笈』등에도 수록되어 있다. 『海東繹史』에서 이 책을 인용한 바 있다.

3. 『稗海』계열의 총서 ▲목차

 明 商維濬은 商濬이라고도 하는데 會稽 출신으로 字는 初陽이다. 생졸 연대와 행적은 자세히 밝혀져 있지 않다. 『稗海』외에 『古今評錄』등의 저술이 있다. 당시 會稽 지역에 紐世溪라는 사람이 世學樓를 세우고 백만 권의 장서를 소장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교정하는 일을 맡으면서 다른 서적을 두루 모아 『稗海』를 편찬하였다.
 『稗海』는 총 365권이며 魏晉 이후로 전래되던 74종의 소설, 잡기류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明 萬曆 연간 商氏半埜堂에서 간행한 판본과 康熙 연간 振鷺堂 간행된 판본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규장각에 중국 振鷺堂藏版本 100책(奎中 4255)이 소장되어 있고 이와 별도로 本衙藏版本 80책(奎中 3656)도 소장되어 있다. 두 종 모두 청판본이다. 서울대중앙도서관과 고려대 등에도 청대의 목판본이 전한다. 그밖에 규장각에 몇 종의 『稗海』에서 일부를 모아 엮은 책이 전하는데 『商氏隨錄』,『野客叢書』가 그러하다. 『稗海』는 『惺所覆瓿藁』, 『農巖集』등 17세기 문헌에서부터 인용되어 있다. 『定齋集』, 『修山集』, 『靑莊館全書』, 『明皐全集』, 『弘齋全書』, 『而已广集』, 『硏經齋全集』, 『星湖僿說』, 『海東繹史』, 『五洲衍文長箋散稿』등 많은 문헌에도 이 서명이 보인다.
 1) 『商氏隨錄』
 『稗海』의 일부를 뽑아 엮은 책으로 추정된다. 宋 許顗의 『彦周詩話』, 宋 胡錡의 『耕祿藁』, 宋 李元綱의 『厚德錄』등 3종의 전적을 수록하였는데 교열자가 商維濬으로 되어 있다. 明末의 간본으로 추정되는데 淸刊本 『稗海』와 한 면의 구성은 동일하지만 글자가 더 크다. 현재 규장각에 1책만 남아 있어(奎中 3392) 전체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알 수 없다. 『商氏隨錄 』이라는 서명 자체는 개장된 표지에만 적혀 있는데, 원래 『許彦周詩話』라 적힌 것을 지우고 이렇게 적었으므로 원서명이 이러하였는지도 알 수 없다.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과 일본의 서목에서도 이 서명을 확인할 수 없다. 이 서명으로 된 책은 오직 규장각에만 소장되어 있다.
 (1) 『許彦周詩話』
 宋 許顗가 편찬한 詩話書. 許顗는 襄邑 출신인데 彦周가 그의 字로 보이지만 자세한 이력은 알 수 없다. 卷頭에 建炎 戊申(1128)에 쓴 自序가 실려 있다. 1권으로 되어 있으며 李白, 杜甫, 盧仝, 韓愈, 杜牧, 蘇軾 등 唐宋 시인에 대한 기사가 대부분이다. 『彦周詩話』라는 서명으로 『說郛』에도 소장되어 있다. 규장각의 필사본 『古今詩話抄』에도 수록되어 있다. 『五洲衍文長箋散稿』에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다.
 (2) 『耕祿藁』
 宋 胡錡가 편찬한 잡록. 胡錡는 括倉 출신으로 자가 國器인데 자세한 생애는 밝혀져 있지 않다. 『耕祿藁』에는 「擬力田詔」, 「代田萬頃到任謝表」, 「擬常熟縣開國侯穀實進封常熟縣開國公加食邑實封制」, 「穀實謝表/擬隴西郡開國侯来牟進封闗内侯加食邑實封制」, 「代来牟謝表/擬米秫除祭酒誥」, 「代米秫謝表」, 「擬馬菽除駕部誥/代馬菽謝表」, 「擬良耜除司農卿誥/代良耜謝表」, 「擬水部車龍除水陸轉運使誥」, 「代車龍到任謝表」, 「擬趙鎛除金部誥」, 「代趙鎛謝表」 등의 館閣文字가 수록되어 있는데 『耕祿藁』이외의 문헌에서는 확인할 수 없는 글이다. 모두 代作이나 擬作으로 胡錡 자신의 글인지도 알 수 없다. 『耕祿藁』는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說郛』, 『宋人百家小說』등에도 수록되어 있다. 『弘齋全書』에서 正祖가 滑稽文字 가운데 「毛穎傳」이나 「花九錫」이 『耕祿藁』보다 낫다고 한 것으로 보아 조선에서도 이 책이 통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3) 『厚德錄』
 宋 李元綱이 편찬한 잡록. 李元綱은 字가 國紀이고 號가 百鍊眞隱이며 錢塘 출신이지만 자세한 생애는 밝혀져 있지 않다. 『厚德錄』외에 『聖門事業圖』등의 저술을 남겼다. 『商氏隨錄』에 수록된 판본은 4권으로 되어 있으며 錢若水, 李繼隆, 曹彬, 王旦, 呂蒙正, 趙閲道, 范重淹, 蘇舜欽, 楊玢, 李沆, 韓琦, 李宗諤, 蘇軾 등 중국 역대 명현의 인물에 대한 기록을 모은 책이다. 『說郛』에도 수록되어 있다. 우리나라 문헌에서 이 책을 인용한 사례는 잘 확인되지 않는다.
 2) 『野客叢書』
 『稗海』에서 宋 王楙의 『野客叢書』등 22종의 문헌을 모아놓은 책이다. 규장각에 소장된 것은 24책본(奎中 4277)으로 표지에 “共二十四冊”이라 하였으므로 완질로 추정된다. 표제가 『野客叢書』로 되어 있지만 『野客叢書』자체가 『稗海』에 수록된 한 종의 문헌이므로 전체 서명으로 삼기에는 문제가 있어, 『野客叢書』본 『稗海』라 부르기로 한다. 수록된 문헌은 형태면에서 振鷺堂藏版本(奎中 4255)과 일치한다.
 (1) 『游宦紀聞』
 宋 張世南이 편찬한 잡록. 陳振孫의 『書錄解題』에 따르면 張世南은 字가 光叔이고,鄱陽 출신인데 이름이 士南으로 되어 있어 무엇이 옳은 것인지 확인할 수 없다. 宋 寧宗과 理宗 연간의 학자로 추정된다. 明 陳汝元이 교열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陳汝元은 山陰 출신이지만 자세한 것은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책은 『四庫全書』에는 10권으로 되어 있지만 『野客叢書』本에는 5권으로 수록되어 있다. 『書經』, 『七譚』, 『百中經』, 『本草』등 여러 전적에 수록된 내용에 대한 고증, 劉過 , 余儔 등 당대 인물의 일화, 刺字 등의 제도, 金橘 등의 産物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당시의 시사적인 것은 배제하였다. 『說郛』, 『御覽知不足齋叢書』, 『宋人百家小說』등 다양한 叢書에도 두루 실려 있다. 『熱河日記』, 『硏經齋全集』, 『靑莊館全書』, 『舫山集』, 『海東繹史』, 『林下筆記』, 『五洲衍文長箋散稿』등 18세기 문헌에 빈번하게 나타나기 시작한다. 『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서명이 『宦游錄聞』으로도 표기되어 있다.
 (2) 『夢溪筆談』
 宋 沈括이 편찬한 잡록이다. 沈括(1031-1095)은 字는 存中이며 錢塘人이다. 벼슬은 翰林學士, 光祿寺少卿 등을 지냈다. 數學과 天文學에도 뛰어난 학자였다. 노년에 潤州의 夢溪에 은거하면서 학문과 저술에 힘을 쏟았다. 『長興集』, 『本朝茶法』, 『忘懷錄』등이 그의 대표적인 저술이다. 『夢溪筆談』26卷 외에 『補筆談』2卷, 『續筆談』1卷이 더 있다. 『野客叢書』本에 수록된 판본은 앞에 乾道 2년(1068) 湯修年의 跋이 먼저 실려 있고, 이어 沈括의 序가 실려 있다. 이어 목차가 실려 있고 26권으로 되어 있다. 故事, 辨證, 樂律, 象數, 人事, 官政, 權智, 藝文, 書畫, 技藝, 器用, 神奇, 異事, 謬誤, 譏謔, 襍志, 藥議 등 17門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609항목으로 되어 있다. 『說郛』, 『津逮秘書』등에도 수록되어 있다. 明 商濬이 교열을 보아 간행한 목판본이 장서각에 전하며 동국대에 1479년 姜希孟의 跋이 실린 朝鮮板이 일부 전한다. 『筆苑雜記』, 『燕山君日記』등 이른 시기 문헌에서부터 이 책이 인용되었고 조선시대에도 『芝峯類說』, 『靑莊館全書』, 『金陵集』, 『與猶堂全書』등 다양한 책에 이 서명이 보인다. 『補筆譚』도 『宋子大全』, 『醒齋遺稿』, 『斗室存稿』, 『海東繹史』, 『五洲衍文長箋散稿』등 여러 문헌에서 따로 인용되었는데 『續筆談』역시 『宋子大全』에서 소개한 바 있다.
 (3) 『補筆談』
 宋 沈括이 편찬한 雜錄이다. 『補筆譚』은 『補筆談』으로 표기하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沈括은 『夢溪筆談』26卷을 지은 후 『補筆談』2卷을 더 지어 빠진 부분을 보완하였다. 『野客叢書』에는 1권으로 수록되었고 補第二卷後十件, 補第三卷二件, 補第四卷後十件, 補第五卷一件, 補第六卷三件, 補第七卷十件, 補第八卷一件, 補第九卷一件, 補第十卷後七件, 補第十一卷一件, 補第十三卷三件, 補第十五卷後六件, 補第十八卷後五件, 補第二十三卷二件, 補第二十五卷後一件, 補第二十六卷一件, 補第二十七卷一件, 補第二十八卷後八件, 補第二十九卷後三件, 補第三十卷十二件 등과 같은 제목이 달려 있어 『夢溪筆談』과 합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唐宋叢書』本에도 이와 같은 체제로 되어 있으나 표기에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이 책에 실린 것이 좀 더 정확한 것으로 판단된다. 故事, 辨證, 樂律, 象數, 官政, 權智, 藝文, 器用, 異事, 雜誌, 藥議 등의 내용으로 되어 있다. 서울대 중앙도서관 등에 중국에서 1906년 목판으로 간행한 판본이 소장되어 있다. 『補筆譚』이라는 서명으로는 『宋子大全』에서 인용된 바 있다.
 (4)『學齋佔畢纂』
 宋 沈括이 편찬한 雜錄이다. 『學齋佔畢』이라고도 한다. 『野客叢書』에 수록되어 있는 판본은 1권으로 되어 있으며 宋 沈括이 편찬한 것으로 되어 적었지만 주석에서 내용 중에 朱熹의 魏鶴山에서 한 말을 인용하고 있으므로 沈括이 편찬한 것이 아니라 하였고 또 商氏의 잘못이라 하였다. 동일한 내용이 振鷺堂藏版本 『稗海』에도 그대로 실려 있다. 商氏는 『稗海』를 편찬한 商維濬을 가리키는 듯하다. 『弘齋全書』, 『與猶堂全書』, 『五洲衍文長箋散稿』등에서 이 책을 인용한 바 있는데 편찬자가 『弘齋全書』에는 沈括, 『與猶堂全書』에는 史繩祖, 『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亡名氏라 하였다. 『野客叢書』에 수록된 판본은 稱物平施, 八卦四朞之數, 中孚起於甲子非卦起於中孚, 以三乘倍易數起律呂之妙 등 20여 표제를 달고 있다. 이 책은 宋 史繩祖이 편찬한 것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史繩祖(1192-1274)는 字가 慶長이고 眉山 출신으로, 魏了翁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고 벼슬은 朝請大夫,直煥章閣 등을 지냈다. 이 책은 『四庫全書』4권으로 되어 있는데 卷頭에 自序가 있고 太極과 兩儀, 無極而太極, 八卦四朞, 洪範商書, 逸詩句 등의 표제를 달았다.
 (5)『儲華谷祛疑說纂』
 宋 儲泳이 편찬한 잡록. 儲泳은 字가 文卿,號가 華谷이며 華亭에 우거하였다. 문집을 일실되고 몇몇 작품이 다른 문헌에 실려 있을 뿐이다. 『周易』에 뛰어나 『周易參同契』의 주석을 단 것으로 유명하다. 이 책은 줄여서 『祛疑說』이라고도 한다. 『野客叢書』本에 수록된 판본에는 편찬자를 밝히지 않았다. 이 책은 陰陽五行說을 고찰하고 方士의 術數를 배격한 것이 주를 이루며, 醫學과 먹에 대한 기사도 실려 있다. 易占說, 辨針, 行持是正心誠意之學, 符印呪訣不靈, 覆射, 陰陽家多拘忌, 辯身壬法, 赤口煞, 三刑是極數, 六壬三殺乃先天四衝數, 貴人是十干合氣, 黄白之術, 燒金煉銀, 煅硃砂說, 服丹藥, 論男女之分生殺之炁, 龜卜說, 刻漏說, 大五行說, 故辛納乙, 辨歲本說 등의 표제어를 달고 있다. 『四庫全書』에는 1권으로 편입되어 있는데 易占說, 辨脈, 辨針, 墨說, 行持是正心誠意之學, 符印呪訣不靈祭將召邪, 咒水自沸移景法, 叱劍斬鬼, 咒棗煙起咒棗自焦, 燒香召雷神錢入水即化, 請封書僊, 呼鶴自至, 呼鼠祛蚊, 覆射, 知術, 邪正, 鬼神之理, 陽神陰靈之說, 天道不遠說, 神像所以靈, 陰陽家多拘忌, 辨身壬法, 赤口煞, 驛馬是先天三合數, 三刑是極數, 六壬三殺乃先天四衝數, 貴人是十干合氣, 黄白之術, 燒金煉銀, 煅硃砂說, 服丹藥, 論男女之分生殺之炁, 龜卜說, 刻漏說, 大五行說, 辨歲本說 등의 항목으로 되어 있어 『野客叢書』本에 수록된 판본보다 훨씬 양이 많다. 『五洲衍文長箋散稿』에 인용되어 있다.
 (6)『墨莊漫錄』
 宋의 張邦基가 편찬한 잡록. 張邦基는 字가 子賢이고 淮海 출신으로 북송과 남송 사이에 활동한 문인인데 자세한 생애는 밝혀져 있지 않다. 『四庫全書』에 10권이 모두 편입되어 있다. 自序에 따르면 평소 藏書를 좋아하여 집 이름을 墨莊이라 하고 이 책의 이름으로 삼았다. 이 책은 당시 떠돌던 신이한 이야기를 수록한 것이 대부분이지만, 杜甫, 韓愈, 蘇軾, 黃庭堅 등의 시, 碧雲騢와 龍城錄, 雲仙散錄, 漢宮香方, 玫瑰油粘葉書, 旋風葉書 등에 대한 고증 등은 후대에 주목을 받았다. 규장각에 소장된 『野客叢書』本에도 10권 모두 실려 있고 卷頭에 序가 있다. 『說郛』에는 극히 일부만 뽑아 수록하였다. 『芝峯類說』, 『夢經堂日史』, 『靑莊館全書』, 『斗室存稿』, 『洛下生集』, 『山林經濟』, 『五洲衍文長箋散稿』등 역대 많은 문헌에서 이 책을 인용하면서 변증하고 있어 조선 후기 학술사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7) 『侍兒小名錄拾遺』
 宋의 張邦幾이 고대에서부터 唐宋에 이르기까지 皇帝나 名士의 妻妾, 妓女들과 관련한 일화를 모은 책. 洪駒父의 『侍兒小名錄』을 보완한 것이다. 張邦基는 앞에 보였다. 卷頭에 自序가 있는데 이에 따르면 洪駒父의 『侍兒小名錄』과 王銍의 『補侍兒小名錄』을 보고 이 책을 편찬하였다고 한다. 晁公武의 『讀書志』에는 편찬자가 朋溪先生으로만 되어 있고 董逌(자는 彦遠) 집안의 자제가 편찬하였다고 하였다. 劉商, 蘇軾, 孫亮, 愛愛 등 다양한 인물에 대한 일화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樹萱錄』, 『翰府名談』, 『王直方詩話』, 『愛愛集』, 『無咎記』, 『洞冥記』, 『大業拾遺』, 『明皇雜錄』, 『吳越春秋』, 『高齋詩話』등 다양한 문헌에서 인용하였다. 규장각에 明 陳汝元을 교열한 청판본 1책이 소장되어 있는데 『侍兒小名錄拾遺』, 『補侍兒小名錄』, 『續補侍兒小名錄』으로 구성되어 있다.
 (8) 『補侍兒小名錄』
 宋 王銍이 편찬한 잡록. 王銍은 汝陰 출신으로 字는 性之이며 汝陰老民이라 일컬었는데 생애는 자세하지 않다. 洪駒父의 『侍兒小名錄』을 보완한 것인데 「霍小玉傳」 등을 수록하고 있다. 『祖台志怪』, 『續搜神記』, 『南史』, 『戚苑』, 『至隱晉書』, 『古今注』, 『晉起居注』등 다양한 문헌을 이용하여 인물의 일화나 기담을 수록하였다.
 (9)『續補侍兒小名錄』
 宋 溫豫가 편찬한 잡록. 溫豫는 晉陽 출신이고 字는 彦幾인데 생애가 잘 밝혀져 있지 않으며 『素問入式運氣論奥』를 남겼다. 이 책 역시 『補侍兒小名錄』과 흡사하다. 29條로 되어 있다. 『五洲衍文長箋散稿』에 『侍兒小名錄』을 인용한 바 있지만 『侍兒小名錄拾遺』, 『補侍兒小名錄』, 『續補侍兒小名錄』등에 대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10) 『雲麓漫抄』
 宋 趙彦衛이 편찬한 잡록이다. 趙彦衛(1155-1218)는 宋 寧宗 연간에 활동한 문인으로 字가 景安이지만 자세한 생애는 밝혀져 있지 않다. 이 책은 『四庫全書』에 전체 15권으로 실려 있는데 卷頭에 開禧 2年(1206)의 序가 있다. 이에 따르면 葉夢得의 『避暑錄話』에 비견할 만하다 자부하였으며, 처음에 『擁鑪閒記』라 하여 漢東學宮에서 인쇄하였다고 한다. 당시의 雜事를 기록하고 名物訓詁를 고증한 것이 대부분이다. 『野客叢書』本에 수록된 판본에는 序가 없고 4권으로 되어 있다. 御史, 節度使, 廉察使 등 唐의 제도에서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說郛』, 『稗海』등에는 일부를 수록하고 있다. 『農巖集』, 『靑莊館全書』, 『五洲衍文長箋散稿』등에 이 서명이 보인다.
 (11) 『石林燕語』
 宋 葉夢得이 편찬한 雜錄. 葉夢得(1077-1148)은 字가 少蘊이고‚ 號는 石林居士이며 吳縣人이다. 벼슬은 戶部尙書를 지냈고 『石林燕語』‚ 『玉洵雜書』‚ 『石林避暑錄』, 『巖下放言』, 『健康集』, 『石林詩話』, 『春秋傳』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葉夢은 徽宗 때 司綸誥를 지내면서 국가의 典故를 잘 알아 이를 바탕으로 이 책을 편찬하였다. 『書錄解題』에는 宣和 5年(1123)년 완성되었다고 하였지만 그 이후의 기록도 있어 南宋으로 들어간 이후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부분적인 오류가 있어 汪應辰이 『石林燕語辨』을 편찬하고 宇文紹奕이 이 책을 교감하여 『石林燕語考異』를 편찬한 바 있다. 『四庫全書』에는 『石林燕語』와 『石林燕語考異』를 합친 판본이 수록되어 있는데 전체가 10권으로 되어 있다. 『野客叢書』本에 수록된 판본도 10권인데 『石林燕語考異』는 실리지 않았다. 아들 葉棟, 葉桯, 葉模가 편집한 것으로 되어 있다. 『說郛』에는 聖筊, 禁中, 母后加謚, 皇考, 天子之居, 淳化帖, 鹵簿, 進退 등 특수한 용어에 대한 해설을 중심으로 일부만 수록하였다. 『津逮秘書』, 『宋人百家小說』 등에도 수록되어 있다. 『芝峯類說』, 『農巖集』, 『陶谷集』, 『閒靜堂集』, 『靑莊館全書』, 『碩齋稿』, 『磻溪隨錄』, 『五洲衍文長箋散稿』등 조선 후기 많은 문헌에서 이 책을 인용하고 있어 조선시대 학술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책이라 할 수 있다. 「刪正石林燕語序」에 따르면 尹行恁이 『石林燕語』를 산정하여 8권으로 엮었다고 한다. 許傳이 편찬한 『哲命篇』도 이 책을 중요한 참고문헌으로 삼은 바 있다.
 (12) 『避署錄話』
 宋 葉夢得이 편찬한 잡록. 葉夢得은 앞에서 보였다. 이 책은 唐代와 宋代의 인물에 얽힌 일화, 고사와 佚事, 역사 비평 및 시가와 문학 비평 등 다양한 내용이 수록된 필기로 唐代와 宋代의 正史를 보충할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野客叢書』에 수록된 판본은 上下 2권 2책으로 되어 있는데 杜甫의 「飮中八仙歌」에서부터 시작하여 楊子雲의 일화에 이르기까지 上下 합쳐 166장에 이르는 비교적 장편의 문헌이다.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說郛』, 『宋人百家小說』, 『津逮秘書』등에 수록되어 있다. 許筠의 『閒情錄』, 韓致奫의 『海東繹史』에 이 책이 인용되어 있다.
 (13) 『淸波雜志』
 宋 周輝가 편찬한 잡록. 周輝(1127-?)는 周煇라고도 적는데 字가 昭禮이며, 淮海 출신이다. 博學宏詞로 이름을 날렸지만 金나라가 들어서자 杭州 清波門에 만여 권을 장서를 갖추고 은거하였다. 『清波雜誌』는 『別志』3卷을 포함하여 15권으로 되어 있는데 당시의 逸話와 逸文, 逸詩를 많이 수록하였으며, 制度와 風俗에 대해서도 다채롭게 기록하였다. 『四庫全書』에 15권이 모두 실려 있다. 乾隆帝의 御製詩, 1193년 張貴謨이 쓴 序와 1192년 周輝가 쓴 序가 卷頭에 실려 있다. 『野客叢書』本에는 上中下 3권으로 되어 있는데 下卷은 다음 제15책 『墨客揮犀』뒤쪽에 붙어 있어 제책 과정에서의 오류로 보인다. 『說郛』, 『御覽知不足齋叢書』등에는 일부만 수록되어 있다. 李睟光의 『芝峯類說』, 李德懋의 『靑莊館全書』, 李圭景의 『五洲衍文長箋散稿』등에 이 책을 인용한 바 있다.
 (14) 『墨客揮犀』
 宋 彭乘이 宋代의 逸話나 詩話와 文評 등을 모은 잡록이다. 彭乘(985-1049)은 筠州 高安 출신인데 그 이력이 자세하지 않다. 北宋에 華陽人으로 翰林學士를 지낸 彭乘이 있지만 다른 인물이다. 원래 10권으로 되어 있고 續集 10권도 있었는데 『四庫全書』에는 續集은 망실된 채 原集 10권만 실려 있다. 『野客叢書』本에 수록된 판본에도 10권으로 수록되어 있다. 당시의 逸話나 詩話, 文評 등을 싣고 있는데 대체로 蘇軾과 黄庭堅을 추숭하고 있다. 『說郛』에는 40여 항목만 수록되어 있다. 『古今說海』에도 수록되어 있다. 『古今說海』에는 찬자 미상으로 되어 있다. 『芝峯類說』, 『無名子集』, 『靑莊館全書』, 『秋齋集』, 『海東繹史』, 『五洲衍文長箋散稿』등 여러 문헌에 이 서명이 보이므로 조선시대 상당히 널리 영향을 끼친 책으로 보인다.
 (15) 『異聞總錄』
 편찬자가 알려져 있지 않은 小說雜錄. 편찬자는 물론 편찬시기도 밝혀져 있지 않은데 책 안에 “大德丁酉”라는 말이 있어 元代 인물이 편찬한 듯하다. 판본에 따라 宋代의 편찬물로 된 데도 있다. 이 책은 4권으로 宋代의 풍속과 세태를 기록한 책인데 신이한 이야기를 주를 이루고 있다. 『野客叢書』本에는 4권으로 실려 있으며 편찬자가 “宋 闕名”으로 되어 있다. 『稗海』에도 수록되어 전한다. 『耳目口心書』에는 『稗海』는 한 번도 손을 대지 않은 것처럼 깨끗한데 『酉陽雜俎』, 『異聞總錄』, 『宣室志』등 귀신과 꿈에 대해 적은 책은 굴뚝에서 꺼낸 것처럼 지저분할 정도로 많이 보았다고 하였다.
 (16) 『遂昌雜錄』
 元 鄭元祐이 편찬한 잡록. 鄭元祐(1292-1364)는 字가 明德이고 遂昌 출신인데 후에 錢塘으로 이주하였다. 문집 『僑吳集』이 있다. 이 책은 宋末과 元代 廉希眞 등 명현의 일화를 중심으로 자신이 직접 듣고 본 내용을 기록하였다. 규장각에 明 商濬이 교열한 근대의 석판본이 전한다. 『五洲衍文長箋散稿』에 이 책을 인용한 바 있다. 규장각 서지 정보에는 빠져 있다.
 (17) 『野客叢書』
 宋 王楙가 편찬한 雜錄이다. 王楙(1151~1213)는 字가 勉夫이며 長洲 출신이다. 모친을 봉양하기 위해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오로지 저술에만 몰두하였다. 이 책은 총 30권으로, 주된 내용은 典籍의 同異에 대한 考證이다. 『四庫全書總目』에서는 본서가 다른 저술의 오류를 많이 지적하였으나, 본서 역시 적지 않은 오류를 범하였다 하고 그 예를 일일이 지적하였다. 아울러 고증이 해박하고 정확하여 『夢溪筆談』, 『緗素雜記』, 『容齋隨筆』사이에 놓을 수 있다고 고평하였다. 『野客叢書』本에 수록되어 있는 판본은 앞에 郭紹彭이 지은 「宋王先生壙銘」, 「臨終詩」, 宋 嘉泰 壬戌年에 陳造가 쓴 「宋浙西參議陳公跋」이 실려 있다. 『四庫全書』등 대부분의 문헌에는 마지막 부록으로 실려 있는 『野老記聞』1권이 먼저 실려 있고 그 편찬자를 王楙라 하였다. 서문에 부친이 元祐 연간의 일화를 기록한 것이라 하였는데 『四庫全書總目』에는 그 부친의 이름을 알 수 없다고 하였다. 『說郛』에 이 책을 수록하면서 편찬자를 孫穀祥이라 하였다. 韓愈, 蔡京, 蘇軾, 黄庭堅, 司馬光 등에 대한 36條의 일화가 수록되어 있다. 『五洲衍文長箋散稿』에 이 책이 인용되어 있고 편찬자를 孫穀祥이라 적었다. 이어 慶元 元年에 쓴 「野客叢書小序」가 실려 있는데 30권으로 되어 있다고 하였다. 嘉泰 2년 儀眞의 관아 平易堂에서 다시 쓴 서문이 덧붙여 있는데 慶元 元年 이후 다른 서적을 참고하여 세 번 수정하였고 正續 몇 권이 別錄에 있다고 하였다. 別錄은 실리지 않았다. 총 30권의 目錄이 실려 있고 마지막에 부록으로 『野老記聞』과 「宋王先生壙銘」을 적고 있지만 실제 편차는 이와 달리 제일 먼저 실려 있다. 漢再受命之兆, 班史略於節義, 歐公譏荊公落英事, 文帝露臺, 蘭亭不入選, 高帝棄二子, 古者男女相見無嫌 등과 같은 표제어를 두었는데 그 범위는 經史, 碑刻, 經濟, 地理, 文字, 詩詞, 名物, 制度, 故事, 風俗 등 매우 다양하다. 『野客叢書』는 서울대 중앙도서관에 『陳眉公重訂野客叢書』12권이 소장되어 있고, 국립중앙도서관에 1653년 일본에서 간행한 목판본이 소장되어 있다. 존경각에도 30권 5책 중국본이 소장되어 있다. 『唐宋叢書』, 『說郛』, 『尙白齋鐫陳眉公訂正秘笈』등에도 이 책의 일부가 수록되어 있으며 『四庫全書』에는 30권이 모두 수록되어 있다. 『農巖集』, 『靑莊館全書』, 『與猶堂全書』, 『五洲衍文長箋散稿』등 조선 후기 문헌에 이 책이 자주 인용되고 있다.
 (18) 『西溪叢語』
 宋 姚寬이 편찬한 잡록. 姚寬은 字가 令威이고 號는 剡川이며 嵊縣 출신이다. 南宋에서 權尚書戶部,員外郎과 樞密院編修官을 지냈다. 이 책은 『周易』, 『論語』, 『文選』, 『說文』등에 보이는 특정한 구절에 대한 고증을 주로 하였다. 杜甫, 劉攽, 黃庭堅, 歐陽修, 王安石, 陶潛, 劉禹錫 등 다양한 문인들과 『玉臺新詠』, 『詩品』등의 전적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루었다. 『四庫全書』에 3권으로 실려 있고 『說郛』에는 일부만 수록하였다. 『唐宋叢書』本에는 上下 2권으로 실려 있다. 『稗海』에도 수록되어 있다. 우리나라 문헌에서는 『靑莊館全書』, 『五洲衍文長箋散稿』등에 인용되어 있다.
 (19) 『螢雪叢說』
 南宋 俞成이 편찬한 雜記. 俞成은 南宋 高宗 연간에 활동한 문인으로 字가 元德이고 東陽 출신이다. 『唐宋叢書』本에 실린 판본은 卷頭에 慶元 6년(1200)에 쓴 「自序」가 실려 있다. 上下 2권으로 되어 있는데 科舉에 대한 내용이 많고 詩論 등에 대해서도 주목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盧仝과 杜甫, 王勃, 嚴子陵 등 문인들의 작품에 대한 비평이나 活法, 點化 등 중요한 詩法 용어에 대한 풀이도 볼 만하다. 상권은 致字說, 忍字說, 記史法, 解書訣, 歌頌, 祭文, 四凶辯, 賦假人名體狀題意, 賦善使事, 韻學, 詩隨景物下語, 詩人警句, 史臣不載人臣實事, 功臣特奏朝請, 試畫工形容詩題, 陳同甫議論作文之法, 文章活法, 注題目出處, 文字節要, 以論語法言章句戲有官君子, 夢見主盟道學, 不責酒過, 不怪炎涼, 矢魚于棠, 溺於陰陽, 人之小名, 事要有分, 得失有時 등의 항목으로 되어 있고, 하권은 克己復禮天下歸仁, 聖人之於天道, 學易無大過, 解書, 解孟子, 東萊教學者作文之法, 徐積悟作文之法, 辯滕王閣序落霞之說, 賦以一字見工拙, 詩貴熟讀, 廷對二說, 自悟前身, 天堂地獄, 修外功徳内功徳, 善惡有報, 心目相亂, 責己說, 斷飲說, 茹蔬說, 聲律對偶假借用字, 戒食菰蕈 등으로 되어 있다. 『說郛』에도 2권에 걸쳐 모두 59 항목의 기사를 수록하였으며 편찬자를 子俞子라 하였다. 수록한 내용은 거의 같다. 『五洲衍文長箋散稿』에 이 책이 인용되어 있다.
 (20) 『孫公談圃』
 宋 孫升이 편찬한 잡록. 孫升은 高郵 출신으로 字는 君孚이다. 문집 『孫文恪集』을 남겼고 孫墀와 함께 『忠烈編』을 편찬한 바 있다. 『唐宋叢書』에 실린 판본에는 卷頭에 乾道 2년(1068) 손자 孫兢이 쓴 서문과 建中(당 德宗?) 원년 劉延世가 쓴 서문이 실려 있다. 이에 따르면 北宋 哲宗 연간에 孫升이 당쟁에 휘말려 臨汀에 유배가서 죽었는데 이를 기리기 위하여 이 책을 편찬한 것이라 한다. 이 때문에 『四庫全書總目』에는 劉延世가 孫升으로부터 들은 바를 기록한 책이라 하였다. 이 책은 趙晉, 趙抃, 蘇軾, 司馬光, 王安石 등 당시의 인물에 대한 일화를 上下 2권으로 나누어 실었다. 『靑莊館全書』, 『海東繹史』등에 수록되어 있다. 규장각 서지 정보에는 빠져 있다.
 (21) 『許彦周詩話』
 宋 許顗가 편찬한 詩話書. 許顗는 襄邑 출신인데 彦周가 그의 字로 보이지만 자세한 이력은 알 수 없다. 『唐宋叢書』에 실린 판본에는 卷頭에 建炎 戊申(1128)에 쓴 自序가 실려 있다. 1권으로 되어 있으며 李白, 杜甫, 盧仝, 韓愈, 杜牧, 蘇軾 등 唐宋 시인에 대한 기사가 대부분이다. 『彦周詩話』라는 서명으로 『稗海』, 『說郛』등에 소장되어 있고 규장각의 필사본 『古今詩話抄』에도 수록되어 있다. 『五洲衍文長箋散稿』에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다. 규장각 서지 정보에는 빠져 있다.
 (22) 『后山居士詩話』
 宋 陳師道가 편찬한 詩話書. 陳師道(1053-1102)는 字가 履常 혹은無己이고 號는 後山이다. 彭城 출신으로 文集 『後山集』외에 『後山詩話』, 『後山談叢』등을 저술하였다. 이 책은 陳師道의 詩論과 評論, 詩人들의 일화들을 수록하였다. 蘇軾, 黄庭堅, 秦觀 등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여 陸游는 『老學庵筆記』에서 이 책과 함께 『後山談叢』이 陳師道의 저술이 아닐 것이라 하였다. 『文獻通考』에는 2권으로 되어 있지만 후대에 덧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說郛』에도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林下筆記』, 『五洲衍文長箋散稿』등에 인용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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