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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室의 文藝
작성자 김 남 기 조회수 572

王室의 文藝

 

목차
1. 개 관
2. 국왕의 詩文
1) 열성의 시문집
2) 국왕 개인의 시문
3. 君臣의 唱和
4. 왕실의 書畵
5. 왕실의 書簡
6. 국왕 命編 詩文
7. 왕실 宣揚 詩歌
8. 기 타
9. 자료적 가치와 의미

 

1. 개 관

 

왕실의 문예는 좁은 의미로 볼 때 국왕․왕비․왕자․왕녀․왕세손 및 종친 등의 왕실 인물이 제작한 시문과 서화 등으로 한정할 수 있다. 그러나 제작의 주체를 왕실의 인물로만 한정하는 것은 왕실 문예의 실상에 부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국왕의 명을 받들어 편찬한 서적이나 왕실 혹은 왕실의 인물을 선양한 문예도 왕실의 제반 사항을 살피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왕실의 문예는 왕실 인물이 제작한 시문과 서화 등을 일차적인 자료로 하되 국왕의 명을 받들어 편찬한 서적과 시문, 왕실 내지 왕실 인물을 선양한 시가 등을 포함하는 것이 마땅하다.
규장각에는 국왕이 직접 지은 시문, 列聖 및 왕실 인물이 제작한 書畵, 임금과 신하가 함께 酬唱한 시편을 포함하여 왕명을 받들어 편찬한 서적, 왕실 인물이 쓴 편지, 왕실 내지 왕실 인물을 선양한 시가, 국왕의 활쏘기 및 신하들이 應製한 시문 등을 편찬․간행한 도서가 다수 소장되어 있다.
본 장에서는 이러한 개념과 소장 자료의 성격에 따라 왕실의 문예와 관련된 자료를 몇 개의 범주로 나누어 살펴본다. 첫째는 국왕이 지은 시문을 편찬․간행한 도서로 여기에는 역대 국왕의 시문을 편찬한 『列聖御製』, 국왕 개인의 문집을 포함하여 국왕이 특정한 상황에서 지은 개별 시문을 모아 편찬한 서적이 포함된다. 둘째로 국왕과 신하가 특정한 행사를 기념하기 위하여 지은 시편을 모아 엮은 賡載詩․聯句詩, 셋째로 임금과 왕실 인물이 제작한 글씨와 그림, 넷째로 왕실 인물이 쓴 편지, 다섯째로 국왕의 명을 받들어 우리나라와 중국의 역대 전적을 편찬․간행한 경우, 여섯째로 왕실 및 왕실 인물을 선양한 시가, 일곱째로 임금의 활쏘기 및 신하들의 應製 시문 기록 등 기타로 나누어 살펴본다.

 

2. 국왕의 詩文

 

국왕의 시문은 전통시대에 御製라는 독립적인 영역을 설정하여 편찬하였는데, 臣民에게 내리는 글, 祖宗과 臣僚를 기리는 글, 국가적인 儀禮를 거행할 때 지은 글 등 治者로서의 정치적 입장을 표명한 글은 물론이고 개인의 일상적인 생활과 정서를 표현한 글 등 매우 다양하다. 또한 詩․樂章․聯句․致詞․辭賦 등은 물론이고 詔令․奏議․傳狀․哀祭․序跋․碑誌․論辯․箴銘․頌讚․雜著 등의 다양한 문체가 망라되어 있다.
현재 규장각에는 국왕 개인의 시문을 편찬한 『弘齋全書』 등의 別集類, 역대 국왕의 시문을 집대성한 『列聖御製』 등의 叢集類는 물론이고 국왕이 특정한 상황에서 지은 시문을 별도로 편찬한 다수의 서적이 있다. 이러한 서적을 ‘열성의 시문집’과 ‘국왕 개인의 시문’으로 나누어 간행 경위와 주요 내용을 약술한다.

 

1) 열성의 시문집

규장각에 소장된 국왕 개인의 문집으로는 仁宗의 『仁廟御製』, 英祖의 『御製集慶堂編輯』․『御製續集慶堂編輯』․『英宗大王御製續編』, 莊獻世子[莊祖]의 『凌虛關漫稿』, 正祖의 『弘齋全書』 2종과 『正祖草稿』․『正宗大王御製』, 高宗의 『珠淵選集』이 남아 있다. 그리고 여러 임금의 시문을 合編하여 간행한 도서로는 『列聖御製』와 『列聖御製補遺』가 있다.
먼저 국왕 개인의 문집에 대하여 고찰한다. 인종의 『仁廟御製』는 明宗 연간에 편찬되었는데, 규장각 소장본은 1605년(선조 38)에 전라도 관찰사 權悏이 錦山에서 간행한 것으로 시 15수, 문 4편이 실려 있다. 부록에 趙光祖의 신원 상소에 대한 不允批答 1편이 실려 있다.
영조의 문집은 1768년의 『御製集慶堂編輯』, 1772년의 『御製續集慶堂編輯』, 1776년의 『英宗大王御製續編』이 남아 있다. 『御製集慶堂編輯』과 『御製續集慶堂編輯』은 1764년(영조 40) 10월부터 1770년(영조 46) 9월까지 子孫과 臣僚․耆老․軍民․閑良 등을 訓諭하기 위하여 지은 시문을 모아 편찬․간행한 것이다. 『英宗大王御製續編』은 具允明․蔡濟恭 등이 1776년(정조 즉위년)에 정조의 명을 받아 영조의 시문을 편차․교정하여 간행한 책이다. 시문을 연대순에 따라 수록하고 있어 『列聖御製』와 편차가 다르며, 현재 原編은 전하지 않는다.
莊獻世子[莊祖]의 문집인 『凌虛關漫稿』는 1803년(순조 3)에 편찬한 필사본 7권 3책, 1814년(순조 14)에 整理字로 간행한 활자본 7권 3책이 소장되어 있다. 두 본 모두 편차와 내용이 동일한데, 辭賦 14편, 시 182수, 문 573편이 실려 있다.
정조의 시문을 편찬․간행한 것으로는 『正祖草稿』, 『正宗大王御製』, 『弘齋全書』 2종이 있다. 『正祖草稿』는 정조가 왕세손으로 있던 1764년과 1765년에 지은 시문을 편집한 5책의 필사본이고, 『正宗大王御製』는 후대에 정조의 시문 일부를 선발하여 편집한 2책의 필사본이다. 『弘齋全書』는 1785년에 편집한 初集 4권 2책, 二集 61권 36책, 合 38책의 필사본과 1814년에 184권 100책으로 간행한 활자본이 있다. 初集은 「春邸錄」으로 1765년부터 1776년 즉위 이전까지 지은 시문이 실려 있고, 二集에는 1776년부터 1785년까지 지은 시문이 수록되어 있다. 1786년부터 1799년까지 지은 시문을 편찬한 三集과 四集은 藏書閣에 소장되어 있다. 1814년에 간행한 활자본 『홍재전서』는 金載瓚 등 15인이 교정하고 成海應 등 8인이 監印하였다. 권1부터 권4까지는 「春邸錄」으로 시 225수, 문 61편이 실려 있으며 권5부터 권184까지는 정조가 재위할 때 지은 詩文․經史講義․審理錄․群書標記 등이 수록되어 있다.
高宗의 시문을 선발한 『珠淵選集』은 1919년 7월에 간행하였는데, 40권 20책의 장서각 소장본 『珠淵集』(필사본)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주연선집』은 형식에 따라 시문을 13編으로 나눈 뒤 연대순으로 수록하였다. 시 38수, 聯句 1편, 樂章 41편, 致詞 4편, 箋文․序․碑記․祭文․諭文․敎文․敦諭․批․贊․銘․上樑文․雜著 등 문 1209편이 실려 있다.
규장각에 소장된 국왕 개인 시문집의 현황을 표로 보이면 다음과 같다. 정조의 경우 『홍재전서』 권64 「經史講義」 이하는 시문의 편수에서 제외하였다.

표제목 : [표1] 국왕 개인 문집의 편찬 및 체제

서명편․간년권책수국왕판본시문편수비고
仁廟御製1605년1책인종목판본시 15, 문 4
御製集慶堂編輯1768년6권 3책영조활자본문 1581764년~1767년 작
御製續集慶堂編輯1772년6권 3책영조활자본문 1291768년~1770년 작
英宗大王御製續編1776년10권 5책영조활자본문 4501758년~1761년 작
凌虛關漫稿󰊱1803년7권 3책장조필사본사부 14,시 182, 문 573
凌虛關漫稿󰊲1814년7권 3책장조활자본상동
正祖草稿1765년5책정조필사본시 8, 문 2591764년~1765년 작
正宗大王御製19세기2책정조필사본시 39, 문 84정조 어제 선편
弘齋全書󰊱1785년경38책정조필사본시 280, 문 697초집 2책, 이집 36책
弘齋全書󰊲1814년184권100책정조활자본시 459,문 1324
珠淵選集1919년1책고종활자본시 84, 문 1209고종 어제 선편


 

다음으로 『列聖御製』의 간행 경위 및 주요 내용 등을 살핀다. 『列聖御製』는 임금의 재위 기간, 혹은 새로 즉위한 임금이 列聖御製 撰集廳이라는 임시 부서를 설치하여 간행하였다. 世祖朝에 『祖宗朝聖製集』 1권과 『御製詩文集』 3권을 편찬한 이후로 성종․연산군 때에도 열성어제의 편찬이 이루어졌으나 현재 실물이 남아 있지 않다. 규장각에는 인조․숙종․경종․영조․정조․순조․헌종․철종․고종 연간에 편찬․간행한 『열성어제』가 소장되어 있다. 연대 순서에 따라 편찬 경위와 수록 시문의 편수 등을 약술한다.
義昌君 李珖은 인조의 명을 받아 1631년(인조 9)에 『열성어제』 1책을 간행하였는데, 태조의 시 1수와 문 1편, 태종의 시 2수, 세종의 문 1편, 문종의 시 1수, 성종의 賦 4편과 시 174수 및 문 7편, 인종의 시 15수와 문 3편 및 부 1편, 선조의 시 42수와 문 2편이 실려 있다.
福昌君 李禎은 숙종의 명을 받아 1679년(숙종 5)에 『列聖御製補遺』 1책을 간행하였다. 태조부터 선조까지는 仁祖朝에 간행된 『열성어제』에 빠진 시문만을 補錄하였고, 仁祖․孝宗․顯宗 三朝의 시문은 당시 수집한 것을 수록하였다. 태조의 시 1수, 태종의 시 5수와 문 1편, 문종의 문 2편, 세조의 문 36편과 시 33수, 성종의 시 2편, 명종의 문 1편, 선조의 시 8수와 문 1편, 인조의 문 3편, 효종의 문 4편과 시 51수, 현종의 시 2수가 실려 있다.
朗善君 李俣는 『열성어제보유』에 누락된 것이 많다고 여겨 왕명을 받들어 1682년(숙종 8)에 8권 4책의 『열성어제』를 간행하였다. 권1에 태조의 시 5수와 문 6편, 정종의 聯句 1편, 태종의 시 14수와 문 1편, 권2에 세종의 시 1수와 문 20편, 문종의 시 7수와 문 5편, 권3에 세조의 시 59수, 권4에 세조의 문 79편, 예종의 문 2편, 권5에 성종의 시 204수, 권6에 성종의 賦 4편과 문 33편, 중종의 시 2수와 문 1편, 권7에 인종의 시 16수와 문 9편, 명종의 문 4편, 선조의 시 63수와 문 22편, 권8에 인조의 문 7편, 효종의 시 103수와 문 29편, 현종의 시 3수가 실려 있다.
宋相琦와 李觀命은 경종의 명을 받들어 1682년에 편찬된 『열성어제』에 端宗과 肅宗의 어제를 追錄하여 1720년(경종 즉위년)에 17권 8책의 『열성어제』를 간행하였다. 태조부터 현종까지의 시문은 권2에 追錄된 단종의 시 2수를 제외하면 1782년의 간본과 동일하다. 숙종의 시문은 권9~권12, 권17에 시 816수, 권13~권17에 문 292편이 실려 있다. 권17에는 숙종의 시문이 함께 실려 있는데, 正祖朝에 간행한 『열성어제』에는 「別編」 권2로 편차되었다.
李楫과 洪錫輔는 영조의 명을 받들어 경종의 어제를 첨부하여 1726년(영조 2)에 18권 9책, 目錄 上下 2권 2책, 합 11책의 목판본 『열성어제』를 간행하였다. 태조부터 숙종까지의 시문은 1720년의 간본과 동일하고, 권18에 경종의 시 8수와 문 17편이 수록되어 있다. 「景宗大王御製」 권18은 正祖朝에 간행한 『열성어제』에는 권17에 편차되어 있다.
具允明․蔡濟恭 등은 정조의 명을 받아 英祖의 어제를 追錄하여 1776년(정조 즉위년)에 本集 37권 19책, 別編 2권 2책, 目錄 3권 2책, 合 23책의 『열성어제』를 顯宗實錄字로 간행하였다. 景宗 이전의 詩文은 英祖朝에 목판으로 간행한 『列聖御製』와 내용과 판차가 동일하다. 새로 추가된 영조의 시문은 권18~권21에 시, 권22~권37에 문, 別編 권3에 시와 문이 편차되어 있는데, 시 831수와 문 691편이 수록되어 있다.
金載瓚 등은 순조의 명을 받들어 1814년(순조 14)에 목록 1책, 40권 20책, 별편 1책, 합 22책의 「正宗大王御製」를 간행하였다. 「正宗大王御製」부터 「哲宗大王御製」까지는 이전과는 달리 새로 즉위한 임금이 전왕의 어제만을 편찬하여 간행하였다. 권38~권41에 시, 권42~권77에 문, 별편 권4에는 시문이 편차되어 있는데, 시 443수와 문 1258편이 실려 있다.
南公轍 등은 헌종의 명을 받아 1836년(헌종 2)에 「純宗大王御製」와 「翼宗大王御製」를 간행하였다. 순조와 익종의 어제 合附本은 목록 2책, 원편 18권 9책, 별편 2권 1책, 합 12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순조의 시문은 권78부터 권89까지 12권 6책, 익종의 시문은 권90부터 권95까지 6권 3책에 실려 있다. 그리고 별편의 경우 권5에 순조, 권6에 익종의 시문이 수록되어 있다. 순조는 시 83수와 문 423편, 익종은 시 608수와 문 136편이 실려 있다.
趙寅永 등은 철종의 명을 받아 1850년(철종 1)에 목록 1책, 원편 5권 2책, 합 3책의 「憲宗大王御製」를 간행하였다. 헌종의 어제는 권96에 시․연구․치사 등 23수, 권97~권100에 문 289편이 수록되었다. 헌종과 철종의 어제는 이전에 간행한 『열성어제』와 달리 別編이 없다.
鄭元容 등은 고종의 명을 받아 1865년(고종 3)에 목록 1책, 4권 2책 합 3책의 「哲宗大王御製」를 간행하였다. 권101~권104에 시 53수, 문 293편이 실려 있다. 철종의 어제는 정조조부터 철종조까지 顯宗實錄字로 간행한 것과는 달리 整理字로 刊印하였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列聖御製』의 편찬․간행은 국가적인 사업으로 추진되었으며, 현재 原編 104권, 別編 5권(別編 1은 없고 2~6만 있음)이 남아 있다. 그리고 조선의 국왕 중에서 燕山君․光海君은 廢庶人되어 복권되지 않았고, 高宗과 純宗은 일제강점기라는 특수성 때문에 『列聖御製』가 간행되지 못하였다. 아울러 思悼世子의 경우 『凌虛關漫稿』가 남아 있으나 高宗朝에 莊祖로 추존되었기 때문에 『열성어제』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燕山君日記』, 『光海君日記』, 『日省錄』, 『高宗實錄』, 『純宗實錄』 등의 사료 및 藏書閣에 소장되어 있는 국왕의 문집을 다각도로 검토하면 역대 국왕의 시문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열성어제』의 편찬 경위 및 국왕별 시문의 편수를 표로 보이면 다음과 같다. 수록된 시문 중에서 聯句․樂章․致詞․詞 등은 시, 辭賦는 문에 포함하였고, 태조부터 영조까지는 정조조에 간행한 『열성어제』의 권차를 따랐다.

표제목 : [표2] 『列聖御製』의 편찬 사항

편찬자간년권책권차수록국왕판본비고
李珖16311책(104장) 태조~선조목판본
李禎16791책(72장) 태조~현종목판본열성어제보유
李俁16828권 4책권1~8태조~현종목판본
宋相琦 등172017권 8책권1~17태조~숙종목판본
李楫 등1726목록 2책, 18권 9책, 합11책권1~18태조~경종목판본
具允明 등1776목록 3권 2책, 37권 19책, 별편 2책, 합23책권1~37별편2․3태조~영조현종실록자
金載瓚 등1814목록 1책, 40권 20책, 별편 1책, 합22책권38~77별편4정조현종실록자
南公轍 등1836목록 2책, 18권 9책, 별편 2권 1책, 합12책권78~95별편5․6순조․익종현종실록자
趙寅永 등1850목록 1책, 5권 2책, 합3책권96~100헌종현종실록자
鄭元容 등1865목록 1책, 4권 2책, 합3책권101~104철종정리자


 

표제목 : [표3] 『列聖御製』의 체재와 시문의 편수

국왕권차국왕권차
태조권15제 5수6편선조권756제 63수22편
정종권11제 1수 인조권8 7편
태종권19제 14수1편효종권886제 103수29편
세종권21제 1수20편현종권83제 3수
문종권26제 7수 5편숙종권9~권16, 별편2577제 816수 292편
단종권21제 2수 경종권174제 8수 17편
세조권3~권432제 59수79편영조권18~권37, 별편3524제 831수 691편
예종권4 2편정조권38~권77, 별편4317제 443수1258편
성종권5~권6110제 204수37편순조권78~권89, 별편545제 83수 423편
중종권62제 2수 1편익종권90~권95, 별편6392제 608수 136편
인종권74제 16수10편헌종권96~권10023제 23수 289편
명종권7 4편철종권101~권10453제 53수 293편

 

2) 국왕 개인의 시문

규장각에는 국왕이 臣僚․宗親․王世子․王世孫․後孫․百姓․官衙 등에 내린 綸音․訓諭 등을 포함하여 祖宗․妃嬪의 칭송과 추모, 도서의 간행, 國役의 시행, 국왕의 즉위와 보령 기념, 과거의 실시, 역대 인물의 봉안과 致祭, 자신의 감회 등을 적은 글을 별도로 묶어 편찬․간행한 서책이 여러 종 있다. 숙종․영조․정조 세 국왕이 지은 글을 수록한 도서가 남아 있는데, 국왕별로 나누어 도서의 편찬 경위와 내용 등을 살핀다.
먼저 숙종은 1692년 정월에 『大明集禮』를 간행할 때 지은 『御製御筆大明集禮後序』 1편이 있다. 『大明集禮』는 『國朝五禮儀』와 표리를 이루는 禮書이지만 궁중에 소장된 책이 많이 훼손되었으니 간행하여 널리 배포하라고 하였다.
영조는 1714년부터 1776년에 걸쳐 지은 윤음과 훈유 등의 글이 수십 편 남아 있는데, 글의 성격과 내린 대상에 따라 나누어 고찰한다. 먼저 관료와 백성, 관청 등에 내린 글로는 1741년에 金一鏡․睦虎龍 등을 처벌한 뒤 黨爭의 폐해를 일소하기 위해 지은 『御製大訓』, 1755년과 1769년에 『御製大訓』에 일부 글을 보태 편찬한 『御製添刊大訓』, 1761년에 『中庸』과 『大學』에서 후세에 경계가 될 만한 내용을 문답식으로 서술한 『御製警世問答』, 이의 속편으로 1763년에 간행한 『御製警世問答續錄』, 1762년에 백성들에게 禁酒令을 준수할 것을 당부한 한글 윤음인 『어졔경민음(御製警民音)』, 1764년에 奢侈․朋黨 등의 폐해에 대해 적은 『御製警世編』, 1765년에 효가 百行의 근원임을 천명한 『御製百行源』, 1770년 內醫院에 내린 小識를 탁본하여 만든 『御製蔘芪小識』, 1771년 景福宮 勤政殿 옛터에서 대소 臣僚에게 訓諭한 글과 小跋을 묶어 간행한 『御製勤政訓諭』, 1772년 신료들에게 黨心을 제거하라고 당부한 『壬辰十一月二十八日備忘記』, 1773년에 孝悌를 권장한 『御製勸世爲孝悌文』, 1773년에 세자의 冠禮는 10세 이전에 해도 무방하다는 견해를 피력한 『御製遵昔年定銅闈冠禮文』이 있다.
사도세자와 왕세손[正祖] 및 후손들에게 훈계한 글도 여러 편이 있는데, 대부분은 왕세손인 정조에게 내린 글이다. 사도세자에게 내린 글로는 1754년에 자신의 감회를 적으면서 근검․절약할 것을 훈계한 『御製回甲暮年書示元良』과 『御製回甲編錄』, 1746년과 1759년에 自省한 내용을 적어 후왕을 경계한 『御製自省篇』과 『御製續自省編』이 있다. 왕세손 및 후손에게 내린 글로는 1745년에 숙종을 추모하고 후왕을 훈계한 『御製常訓』과 『御製常訓諺解』, 1757년에 역대 고사를 들어 후왕을 경계한 『御製古今年代龜鑑』, 1760년에 덕을 닦으라고 훈계한 『御製書示世孫』, 1764년에 五勸과 五戒를 훈계한 『御製祖訓』, 1765년에 黨爭의 폐단을 논하고 후손들을 경계한 『御製嚴堤防裕昆錄』, 1769년에 修身의 필요성 등에 대하여 훈계한 『御製近八戒冲子文』과 『御製近八裕昆錄』, 1771년에 祖宗을 본받아 덕을 닦을 것을 당부한 『御製樹德全編』, 1773년과 1775년에 세손과 후손을 경계하기 위해 지은 『御製八旬裕後錄』과 『御製八旬書示後昆錄』, 『御製八旬裕昆錄』, 1776년에 세손을 권면하기 위하여 陳栢의 <夙興夜寐箴>을 본떠 지은 『御製誦夙夜箴勖勉冲子兼示平生予意』, 1776년에 세손과 강의한 『大學』에 대하여 적은 『御製祖孫同講大學文』이 있다.
祖宗과 妃嬪을 추모하기 위하여 지은 글은 7종이 있다. 먼저 왕대비 仁元王后를 추모하기 위하여 지은 글로는 『御製永世追慕錄』(1764년), 『御製追慕錄』(1770년), 『御製續永世追慕錄』(1770년)이 있다. 그리고 1761년에 肅宗과 景宗을 추모한 『御製自醒錄』, 1762년에 선대의 왕과 妃嬪들을 顯彰하기 위하여 지은 『揄揚盛烈錄』, 1763년에 칠순을 맞이하여 조상을 추모하고 孝悌를 강조한 『御製孝弟篇』, 1764년에 暎嬪李氏를 추모하고 大義를 천명한 『御製表義錄』이 있다.
다음으로 보모와 상궁을 애도하며 지은 제문으로는 1714년의 『祭保母文』과 1717년의 『祭尙宮文』이 있다. 그리고 1746년에 心學에 관한 글을 모아 간행한 『御製心鑑』, 1766년에 『小學』을 강론한 뒤 訓義를 적은 『御製小學指南』, 8세부터 72세까지 읽은 서명과 시기를 적어 1767년에 간행한 『御製讀書錄』, 1771년에 명나라를 추념하여 지은 『御製風泉錄』, 1772년에 종부시에 가서 강독을 시험한 뒤 시상한 내역을 적은 『宗簿寺懸板綸音』, 1774년에 청계천 준설 공사가 끝난 뒤의 감회를 적은 『御製濬川銘幷小序』가 있다.
정조는 序文․記文․賜祭文․策問 등의 개별 글을 엮어 편찬한 도서가 7종 있다. 『御製敍雷淵子稿』는 1782년에 南有容의 『雷淵集』을 간행하면서 붙인 서문이고, 『御製敦孝錄序』는 1783년에 朴聖源의 『敦孝錄』에 쓴 서문이고, 『御製提督李公祠堂記』는 1788년에 李如松의 祠堂에 내린 記文을 탁본한 것이고, 『御製至德祠記』는 1789년에 讓寧大君을 모신 至德祠에 내린 기문을 필사한 것이고, 『御製賜祭文』은 1791년에 徐命善에게 내린 賜祭文과 李晩秀의 墓表를 탁본한 것이고, 『御製策問』은 1795년에 還餉과 관련하여 내린 策問과 이에 대한 저자 미상의 對策을 수록한 것이고, 『萬川明月主人翁自序』는 篆書와 楷書의 탁본첩 2종이 있는데 1798년에 自號를 萬川明月主人翁이라 하고 그 의미에 대하여 적은 서문이다.

 

3. 君臣의 唱和

 

국왕과 신하들은 국왕과 왕비의 즉위 및 탄일, 陵園 등의 거둥과 宗廟․사직에의 제사, 왕세자와 왕세손의 책봉 및 대리청정, 耆老宴의 개최 및 几杖의 하사, 과거의 실시, 서적의 편찬 등 국가적인 경사가 있을 때에 그를 기념하기 위하여 연회를 베풀면서 시문을 酬唱하였다. 이때 지은 시편들을 보통 聯句詩 내지는 賡進詩라 하고, 詩軸을 聯韻軸․賡載軸이라고 부른다. 군신이 창화한 시편은 조선 전기부터 후기까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으나 현재 남아 있는 자료는 대부분 조선후기의 것이다. 현재 규장각에 소장된 자료 중에서 행사가 중복되는 것을 제외하면 모두 59종인데, 세조․성종․숙종이 각 1종, 영조가 19종, 정조가 36종, 철종이 2종이다. 국왕별로 편찬 경위 및 내용을 약술한다.
먼저 세조․성종․숙종 연간의 도서를 살펴본다. 『射候御製詩』는 世祖가 1457년(세조 3)에 慶會樓 근처에서 宗親 및 入直한 여러 신하들과 함께 활쏘기를 한 후 주연을 베풀던 당시 및 이전에 지은 시 210수를 모아 간행한 책이다. 『壬寅年元日內宴御製詩』는 成宗이 1482년(성종 13) 正朝에 三大妃殿께 祝壽한 뒤 대신들과 연회를 베풀면서 지은 七言律詩 3수와 月山大君 李婷 등 19인이 賡進한 시를 모아 간행한 책이다. 『光國志慶錄』은 宗系辨誣와 관련된 御製詩文과 신하들이 製進한 詩篇, 傳敎와 跋文 등을 모아 1703년(숙종 29)과 1744년(영조 20)에 간행한 책이다.
영조 연간에는 几杖의 진상, 陵幸의 영접, 祝壽 獻爵, 宗系辨誣 기념, 耆老科와 蕩平科의 실시, 嘉禮 60년 및 즉위 50년 기념, 綸音의 반포, 宣祖의 還都 180주년 기념, 왕세손의 대리청정, 질병의 쾌차 등을 기리기 위한 행사에서 군신이 수창한 시문을 편찬한 도서가 19종 있다. 『杖銘賡進編』, 『御製抑箴諸臣賡進冊』, 『迎恩慶喜錄』, 『受爵賡韻錄』, 『庚寅賡韻帖』, 『續光國志慶錄』, 『耆科賡載錄』, 『追慕垂戒錄』, 『御製蕩平科賡韻錄』, 『耆耈宴會錄』, 『南殿親享詩』, 『臨門宣諭詩』, 『慶運宮賡載錄』, 『賡載錄』, 『賡載錄』, 『甲午賡韻帖』, 『集慶堂頌』, 『賡韻帖』, 『賡進帖』 등의 도서가 그것이다.
정조 연간에는 『英祖實錄』의 편찬, 南殿․太廟의 제향, 永陵․德水川․明陵․光陵․元陵․洗心臺 등의 행차, 활쏘기와 內苑의 꽃구경, 誠正閣의 夜對, 抄啓文臣製․文武科 등의 실시, 李侑의 제사, 耆老宴․養老宴의 실시, 『人瑞錄』의 진상, 桓祖 탄신 480주년, 惠慶宮 홍씨의 周甲宴과 奉壽堂 진찬 등, 文孝世子의 상견례, 성균관에의 銀杯 하사 등 36건의 행사에서 지은 시문을 모아 서적을 편찬하였다.
특히 『賡載軸』(奎 4790 등)에는 1781년부터 1795년까지 거행한 33건의 각종 행사에서 지은 시문이 실려 있다. 그리고 여기에 실린 글 중에서 일부는 『寶鑑纂輯廳賡載軸』(奎 10276)과 같이 別冊으로 만들어진 경우도 있다. 『賡載軸』에 실리지 않은 시편은 1784년의 『元子宮相見禮日恭覩盛儀聯韻志慶』, 1790년의 『太學志慶詩』, 1799년의 『太學恩杯詩集』이 있다. 정조 연간에 간행한 賡載軸․聯韻軸은 「寶鑑纂輯廳賡載軸」, 「南殿齋宵賡載軸」, 「燕射賡載軸」, 「望廟樓齋宵賡載軸」, 「永陵輦路賡載軸」, 「德水川聯韻軸」, 「眞殿展謁日賡載軸」, 「誠正閣夜對聯韻軸」, 「高嶺里祈念閣賡載軸」, 「高陽郡行殿賡載軸」, 「瓊林讌聯韻軸」, 「光陵行幸日聯韻軸」, 「食堂日聯韻軸」, 「雪中龍虎會聯韻軸」, 「李提督侑祭日賡載軸」, 「元陵展省日聯韻軸」, 「奎選文臣製射日聯韻軸」, 「耆社賡載軸」, 「人瑞錄獻御日聯韻軸」, 「桓廟八回甲志慶聯韻軸」, 「內苑賞花戊申賡載軸」, 「內苑賞花壬子聯韻軸」, 「內苑賞花癸丑賡載軸」, 「內苑賞花甲寅賡載軸」, 「內苑賞花乙卯賡載軸」, 「洗心臺辛亥賡載軸」, 「洗心臺壬子賡載軸」, 「洗心臺甲寅賡載軸」, 「洗心臺乙卯賡載軸」, 「華城奉壽堂進饌賡載軸」, 「華城將臺閱武賡載軸」, 「華城洛南軒養老賡載軸」, 「慈宮周甲誕辰賡載軸」, 『元子宮相見禮日恭覩盛儀聯韻志慶』, 『太學志慶詩』, 『太學恩杯詩集』이 있다.
철종 연간에는 『摛文院賡載帖』과 『賡進詩』 2종이 있다. 『摛文院賡載帖』은 철종이 1852년(철종 3) 10월 규장각 摛文院에 親臨하여 지은 칠언절구와 鄭元容 등 33인이 賡進한 시를 모아 탁본한 것이고, 『賡進詩』는 1854년(철종 5) 純元王后의 66세 進宴時에 지은 철종의 七言絶句와 이에 화답한 鄭元容 등 91인 신하들의 賡進詩를 모아 6월에 간행한 시집이다.
영조와 정조 연간에 편찬한 賡載軸․聯韻軸의 撰者, 간행 목적, 판본 사항, 시문의 형식과 편수 등을 표로 보이면 아래의 [표 4], [표 5]와 같다. 왕과 왕세손은 수창 신하 숫자에서 제외하였지만 시문의 편수에는 포함하였고, 聯句는 1편으로 계산하였다. 정조 연간에 간행한 『賡載軸』의 경우 여기에 수록된 篇名을 모두 제시하였다.

표제목 : [표 4] 영조 연간의 군신 수창 시문 도서

서명권책편년판본수창 신하목적형식편수비고
杖銘賡進編1책 62장1763목판兪拓基 등 69인鳩杖 진상四言十六句70洪啓禧 跋
御製抑箴諸臣賡進冊1책 28장1763활자兪拓基 등 63인抑箴 화답四言十六句72英祖 시 2수
迎恩慶喜錄1책 22장1764목판洪鳳漢 등 31인陵幸 영접四言四句33王世孫 賡進洪鳳漢 跋
受爵賡韻錄1책 27장1765활자兪拓基 등 119인72세 獻爵四言二句187王世孫 賡進
庚寅賡韻帖1첩 13면1770필사韓翼謨 등 19인宗系辨誣七言二句20
續光國志慶錄1책 25장1771목판金相福 등 120인宗系辨誣七言二句122王世孫 賡進
耆科賡載錄1책 15장1772활자金相福 등 65인耆老科七言二句67王世孫 賡進徐命膺 跋
追慕垂戒錄1책 23장1772활자洪鳳漢 등 91인就邸 60년七言二句93王世孫 갱진徐命膺 跋
御製蕩平科賡韻錄1첩 7면1772필사任宗周 등 11인蕩平科七言二句12
耆耈宴會錄1책 46장1773목판韓翼謨 등 127인八旬, 즉위50년五言六句129王世孫 賡進徐命膺 跋
南殿親享詩1책 8장1773필사蔡濟恭 등 24인南殿 享禮七言二句26王世孫 賡進
臨門宣諭詩1책 4장1773필사李溎 등 10인綸音 반포七言二句11
慶運宮賡載錄1책 24장1773활자洪鳳漢 등 40인宣祖 還都180주년四言二十四句51王世孫 賡進徐命膺 詩序
賡載錄󰊱1책 11장1773필사蔡濟恭 등 19인과거 실시七言絶句20
賡載錄󰊲1책 5장1773필사李溎 등 13인香祝祗迎五言二句14
甲午賡韻帖1책 14장1774필사李昌壽 등 27인英祖 쾌유五言律詩27御製詩 不載
集慶堂頌1책 21장1775필사洪鳳漢 등 19인82세, 世孫 誠孝三言․四言19御製詩 不載
賡韻帖1첩 8면1776필사金致仁 등 12인世孫 聽政七言二句13
賡進帖23책1770년대필사金尙喆 등 429인八旬, 世孫聽政 등五言․七言․辭 등429御製詩 不載

표제목 : [표 5] 정조 연간의 군신 수창 시문 도서
서명(편명)권책간년판본행사년수창신하목적형식편수
寶鑑纂輯廳賡載軸제1책1795활자1781徐命膺 등 15인실록 편찬五言律詩16
南殿齋宵賡載軸제1책1795활자1781李溵 등 24인南殿 제향七言絶句25
燕射賡載軸제1책1795활자1783徐有隣 등 13인활쏘기七言律詩14
望廟樓齋宵賡載軸제1책1795활자1783徐命善 등 27인太廟 제향五律,聯句18
永陵輦路賡載軸제1책1795활자1784鄭存謙 등 15인永陵 행차七言絶句16
德水川聯韻軸제1책1795활자1784徐命善 등 15인德水川 행차聯句 1
眞殿展謁日賡載軸제1책1795활자1784金履運 등 20인眞殿 전알七言絶句21
誠正閣夜對聯韻軸제1책1795활자1784洪仁浩 등 5인誠正閣 夜對聯句(七言) 1
高嶺里祈念閣賡載軸제1책1795활자1787徐命善 등 24인高嶺里 행차七言絶句25
서명(편명)권책간년판본행사년수창신하목적형식편수
高陽郡行殿賡載軸제1책1795활자1787徐有防 등 52인明陵 행차五律,七律54
瓊林讌聯韻軸제1책1795활자1792李晩秀 등 47인瓊林 연회七言絶句48
光陵行幸日聯韻軸제1책1795활자1792蔡濟恭 등 52인光陵 행차聯句(七言)1
食堂日聯韻軸제1책1795활자1792李相璜 등 39인抄啓文臣 선발聯句(七言)1
雪中龍虎會聯韻軸제1책1795활자1792吳載純 등 28인文武科 실시聯句(五言)1
李提督侑祭日賡載軸제1책1795활자1793尹行恁 등 5인李侑 제사七言絶句6
元陵展省日聯韻軸제1책1795활자1793尹行恁 등 22인元陵 행차聯句(七言)1
奎選文臣製射日聯韻軸제1책1795활자1793鄭民始 등 39인抄啓文臣 선발聯句(七言)1
耆社賡載軸제1책1795활자1793洪樂性 등 14인耆老宴七言絶句15
人瑞錄獻御日聯韻軸제1책1795활자1794洪樂性 등 125인『人瑞錄』 진상聯句(七言)1
桓廟八回甲志慶聯韻軸제1책1795활자1795洪樂性 등 29인桓祖 誕辰八周甲聯句(七言)1
內苑賞花戊申賡載軸제2책1795활자1788徐有防 등 9인內苑賞花七言絶句10
內苑賞花壬子聯韻軸제2책1795활자1792吳載純 등 27인內苑賞花聯句(五言)1
內苑賞花癸丑賡載軸제2책1795활자1793鄭民始 등 39인內苑賞花集句詩80
內苑賞花甲寅賡載軸제2책1795활자1794洪樂性 등 99인內苑賞花五言律詩100
內苑賞花乙卯賡載軸제2책1795활자1795洪樂性 등 98인內苑賞花七言絶句99
洗心臺辛亥賡載軸제2책1795활자1791吳載純 등 16인洗心臺 행차五言,律詩17
洗心臺壬子賡載軸제2책1795활자1792朴宗岳 등 46인洗心臺 행차五律七律48
洗心臺甲寅賡載軸제2책1795활자1794鄭民始 등 30인洗心臺 행차七言絶句31
洗心臺乙卯賡載軸제2책1795활자1795鄭民始 등 55인洗心臺 행차七言絶句56
華城奉壽堂進饌賡載軸제3책1795활자1795洪駿漢 등 147인奉壽堂 進饌樂章,七律149
華城將臺閱武賡載軸제3책1795활자1795洪樂性 등 34인華城將臺 閱武五言律詩35
華城洛南軒養老賡載軸제3책1795활자1795洪樂性 등 29인洛南軒 養老宴七言絶句30
慈宮周甲誕辰賡載軸제3책1795활자1795洪駿漢 등 306인惠慶宮 周甲樂章,五律308
元子宮相見禮日恭覩盛儀聯韻志慶1첩8면1784탁본1784鄭民始 등 9인文孝世子 상견七言二句9
太學志慶詩1책1790활자1790鄭民始 등 120인원자 탄생기념七言律詩120
太學恩杯詩集5권2책1799활자1798張志憲 등 282인太學 銀杯하사四言 등317

 

4. 왕실의 書畵

 

조선시대에는 성리학이 지배적인 이념으로 자리잡음에 따라 문학과 書畵를 餘技로 여겨 玩物喪志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지만 직접 서화를 제작하고 품평하는가 하면 이를 시문으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국왕은 전문적으로 서화에 몰두할 수 없어 높은 예술적 성취를 이루기가 쉽지 않았지만 이에 상당한 관심을 표명하기도 하였다. 국왕의 서화에 대한 관심과 품평은 당대 서화의 경향을 반영하는 한편 새로운 지평을 여는 데에도 일정 정도 영향을 주었다.
임금이 그림을 감상하고 이를 시문으로 표현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지만 직접 그림을 그리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기록으로 볼 때 고려조에 恭愍王의 天山大獵圖, 조선조에 성종의 蘭竹圖, 인종의 石竹圖, 선조의 墨蘭圖․墨竹圖, 인조의 柳下繫馬圖․乘槎圖, 영조의 列仙圖․山水人物圖 등이 있다. 그리고 글씨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국왕이 필적을 남겼으며, 이 중에서 일부는 模刻하여 인쇄하기도 하였다. 또한 이들 書畵는 궁중이나 史庫에 보관하는 등 보전에도 만전을 기하였다.
현재 규장각에 소장된 御筆로는 여러 임금의 글씨를 모아 편찬한 『列聖御筆』, 宣祖․孝宗․肅宗․景宗․英祖․正祖․翼宗․高宗․仁穆大妃 등의 글씨만을 별도로 모아 엮은 필첩이 있다. 이외에 고려 恭愍王의 <天山大獵之圖>, 興宣大院君 李昰應의 筆帖, 1725년에 『列聖御筆』을 간행할 때의 관련 기록을 수록한 謄錄 등이 남아 있다. 국왕 및 왕비, 왕실 인물의 글씨와 그림을 시대 순서에 따라 약술한다.
고려 시대 임금 중에서 書畵 자료가 남아 있는 것은 공민왕의 <天山大獵之圖>가 유일하다. 이 그림은 天山에서의 수렵 장면을 그린 彩色圖로 일부만이 남아 있으며,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과 필력이나 화폭의 구성상 차이가 있어 후대에 새로 模寫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의 御筆 자료 중에서 여러 임금의 필적을 모아 편찬한 『列聖御筆』을 살펴본다. 『列聖御筆』󰊱(규 10311 등)은 1663년(현종 4)에 宗親府에서 간행한 1첩의 拓本 御筆帖으로 文宗․世祖․成宗․明宗․宣祖․元宗․仁祖․孝宗 등 아홉 임금의 글씨가 수록되어 있다. 『列聖御筆』󰊲(규 9824 등)는 숙종 연간 무렵에 간행한 목판본으로 宣祖․仁祖․孝宗․顯宗의 글씨가 실려 있고, 『列聖御筆』󰊳(규 10323 등)은 1723년(경종 3)에 간행한 필첩으로 문종․세조․성종․인종․명종․선조․원종․인조․효종․현종․숙종 등 11명의 국왕 글씨가 수록되어 있다. 『列聖御筆』󰊴(규 10322 등)는 1725년(영조 1)에 간행한 필첩으로 태조․문종․세조․성종․인종․명종․선조․원종․인조․효종․현종․숙종․경종 등 13명의 국왕 글씨가 실려 있다. 『列聖御筆』󰊵(규 9833)는 󰊳과 󰊴를 묶은 2첩의 필첩이며, 『列聖御筆』󰊶(규 9828 등)은 영조 연간에 󰊲에 경종의 어필을 추가하여 간행한 필첩인데, 선조의 난초 그림 1점이 추가되어 있다.
다음으로 宣祖․孝宗․肅宗․景宗․英祖․正祖․翼宗․高宗․仁穆大妃․李昰應 등 왕과 왕비 및 왕실 인물 개인의 글씨를 모아 편찬한 필첩을 약술한다. 宣祖는 『宣廟御筆』 3종이 소장되어 있다. 『宣廟御筆』󰊱(古大 2410-11)은 義昌君 李珖이 1630년(인조 8)에 선조의 글씨와 그림 2점을 모아 목판으로 간행한 것이다. 韓愈의 <符讀書城南> 등 중국 문인의 漢詩와 警句 등의 글씨 20여 편, 墨竹․墨蘭圖 2점이 실려 있으며, 말미에 이광의 발문이 있다. 『宣廟御筆』󰊲(經古 754.1-Se64s)와 『宣廟御筆』󰊳(규 10126 등)은 李珖이 1630년에 선조의 글씨와 그림 등을 모아 목판으로 간행한 필첩인데, 󰊱에 비하여 수록된 작품이 적다. 즉 󰊲에는 李白의 <望廬山瀑布> 등 한시 13수와 그림 2점, 󰊳에는 한시 5수가 실려 있다.
『仁穆王后御筆』은 그동안 宣祖의 繼妃인 仁穆大妃의 필적을 엮은 필첩으로 알려졌지만 실상은 宣祖의 御筆帖이다. 선조가 1603년(선조 36) 11월에 한글로 쓴 병문안 편지, 王勃의 <滕王閣序> 일부, 陶潛의 <四時>, 작자 미상의 칠언율시 등 4편의 시문이 실려 있다.
孝宗은 『寧考御筆』과 『孝宗大王御筆』이 남아 있다. 『寧考御筆』은 1665년(현종 6)에 효종의 어필, 宋時烈의 발문과 廉問條目을 모아 엮은 필첩이다. 효종의 어필은 1659년 경상도의 여러 고을을 廉問하는 閔維重에게 내린 것이다. 『孝宗大王御筆』은 효종의 편지 4통 및 綾城府院君 具宏의 집에 하사한 物目 등을 적은 필첩이다. 편지는 1641년과 1642년에 瀋陽에서 綾城府院君 집에 보낸 것으로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볼모로 잡혀온 애달픈 심정 등을 표현하였다.
肅宗의 필첩으로는 『肅宗大王御筆』, 『御製御筆』, 『唐詩』, 『肅宗御筆』 등이 남아 있다. 『肅宗大王御筆』은 淑明公主․延礽君 등에게 내린 시문을 陰刻하여 찍은 것으로 49판부터 64판까지만 남아 있으며, 1판부터 48판까지는 일실되었다. 淑明公主․延礽君[英祖]․延齡君․金壽恒․南九萬․臨昌君 등에게 내린 시문이 실려 있다. 『御製御筆』(古 3428-357)은 숙종이 1715년(숙종 41) 延齡君에게 내린 七言絶句 4수를 모아 엮은 필첩인데, 『肅宗大王御筆』에 모두 실려 있다. 『唐詩』는 당나라 賈島․王維․儲光羲 등의 五言詩를 草書로 쓴 것을 경종 연간에 탁본한 것으로 8수 중에서 5수만 남아 있다. 나머지 작품은 『肅宗御筆』에 모두 실려 있다. 『肅宗御筆』은 漢陽八景詩 8수와 중국 六朝와 唐宋 문인들의 오언시 8수를 목판에 새겨 경종 연간에 간행한 것이다. 漢陽八景詩는 도성과 여러 관청, 산천과 한강의 풍경 및 감회를 표현한 작품이고, 중국 문인들의 오언시 8수에는 邵雍의 <淸夜吟>, 賈島의 <尋隱者不遇>, 吳隱之의 <酌貪泉賦詩>, 王維의 <鳥鳴磵>, 宋之問의 <途中寒食>, 儲光羲의 <江南曲>과 <長安道>, 失名氏의 <伊州歌>가 포함되어 있다. 아울러 규장각에는 중국 문인들의 오언시 8수를 새긴 판목 8장이 소장되어 있다.
『景宗手筆』은 경종이 동궁으로 있을 때에 쓴 글씨와 閔鎭遠의 발문을 모아 엮은 필첩이다. 경종은 東宮으로 있던 1696년(숙종 22)에 “敬以直內, 義以方外” 여덟 자를 大字로 썼다.
英祖는 『御製御筆』 2종, 『敦寧府揭板』, 『宗簿寺揭板』, 『御製御筆北苑帖』, 『英祖御筆』 등 6종이 남아 있다. 『御製御筆』󰊱(규 11926)은 1749년(영조 25)에 간행한 『度支定例』의 서문을 판각한 것이고, 『御製御筆』󰊲(규 10214 등)는 1755년(영조 31) 11월 26일에 『闡義昭鑑』을 완성하여 올리자 修撰官 등을 불러본 뒤 卷首에 쓴 “竭誠纂修, 功存闡義, 一十六字, 以代鐵券” 16자의 大字를 탁본한 것이다. 『敦寧府揭板』은 1759년(영조 35)에 璿源殿에 들러 酌獻禮를 올리고 譜閣을 살핀 뒤의 감회를 적은 18자, 『宗簿寺揭板』은 1759년에 璿源殿에 들러 璿源譜를 살펴본 뒤의 감회를 적은 내용을 판각하여 찍은 것이다. 『御製御筆北苑帖』은 1770년(영조 46) 昌德宮 大報壇에 대하여 읊은 “北苑尺壇日月明, 西崗小閣風泉銘”을 판각하여 찍은 것이다. 『英祖御筆』은 정조가 1776년(정조 즉위년) 7월에 영조의 어필을 찍어 李最中에게 하사한 것이다. 영조의 어필은 4언과 5언 등의 시구로 되어 있는데, 대부분은 行草로 쓰여져 있다.
『御前親幕題名帖』은 別軍職과 관련된 正祖의 어필과 별군직 관원의 명단을 合綴한 첩이다. 정조의 어필 <題御前親幕題名帖>과 ‘御前親幕’, ‘御前親裨直廬’ 등은 목판본이다. 題名帖은 정조가 1787년(정조 11)에 지은 것으로 별군직의 유래와 임무에 대하여 적었다. 1776년부터 1831년까지의 별군직 관원의 명단을 적은 말미의 題名은 필사본이다.
『翼宗簡帖』은 翼宗이 누이 明溫公主 등에게 보낸 시문과 그 번역문을 모아 엮은 2첩의 필사본이다. 乾卷에는 明溫․福溫․德溫公主 등에게 보낸 시문이 대부분이고, 坤卷에는 <織錦圖>와 <龜文圖> 등이 실려 있는데, 대부분 앞에 한시 원문과 한글음을 적고 뒤에 번역문을 실었다.
『大院君筆帖』은 興宣大院君 李昰應의 일기와 편지를 모아서 간행한 2첩의 필사본이다. 1872년과 1873년 무렵에 자신의 생활과 당시의 정세 등에 대하여 적은 일기와 주변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가 실려 있다.
『御筆懸板帖』은 高宗이 1885년(고종 22)에 궁궐 안에 있던 여러 건물에 쓴 현판 글씨를 모아 엮은 필첩이다. 漱芳齋․華岳亭․攬淸軒․延春軒․坤寧閣․長安堂․觀文閣․香遠亭․寶蘇堂 등의 현판 글씨가 수록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列聖御筆刊進及景宗大王御筆屛風謄錄』은 1725년(영조 1) 宗親府에서 『列聖御筆』을 간행할 때의 관련 기록을 모아 편찬한 책이다. 1725년 3월 13일부터 11월 21일까지 관청에서 주고받은 甘結․牒呈, 국왕의 傳敎․備忘記, 물품의 조달 과정과 내역, 工役에 참여한 사람들의 숫자와 기간, 지급 내역 등이 기록되어 있다.

 

5. 왕실의 書簡

            

규장각에는 왕실 인물이 쓴 편지가 수록된 책이 몇 종 소장되어 있다. 仁穆大妃의 『仁穆王后筆蹟』(사실은 宣祖의 御筆임), 純元王后의 『純元王后御筆』과 『純元王后御筆封書』, 翼宗의 『翼宗簡帖』, 興宣大院君 李昰應의 『大院君筆帖』, 『簡牘』 등이 그 예이다. 이 중에서 편지만을 묶은 것은 순원왕후의 간첩이 전부이고, 나머지는 편지와 기타 글을 편집한 것이다. 물론 국왕이 신하들에게 내린 편지의 경우 『列聖御製』에는 실려 있지만 편지만을 모아 별도의 책으로 엮은 것은 없다.
『仁穆王后筆蹟』(가람 古 754.3-In6i)은 宣祖가 쓴 한글 편지와 중국 시문을 옮겨 적은 筆帖이고, 『翼宗簡帖』(古貴 3428-32)은 익종이 누이인 明溫公主 등에게 보낸 시문과 번역문을 모아 엮은 2첩의 필사본이고, 『大院君筆帖』(古貴 3438-13)은 이하응이 쓴 일기와 편지를 모아서 편집한 필첩이다. 이 3종의 필첩은 ‘왕실의 서화’에 포함시킨다. 순원왕후와 이하응의 편지만을 본 장에서 다룬다. 순원왕후의 편지는 19세기 중엽 궁중과 사대부 집안에서 쓰인 한글 편지의 특징과 언어, 書體 등을 살피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純元王后御筆』(古貴 2410-21)은 순원왕후(1789~1857)가 金興根 등 친정 일가에 보낸 한글 편지 25편을 모아놓은 書簡帖이다. 1첩에 16편, 2첩에 9편이 실려 있는데, 작성 연대가 가장 이른 것은 1837년 10월, 가장 늦은 것은 1852년 1월의 편지이다. 단순히 안부를 묻는 것에서부터 집안일과 관련된 축하나 위로, 애통한 심정을 전한 것, 집안 식구들에 대한 책망과 경계, 노여움을 전한 것, 왕실의 의례와 관련하여 자문을 구한 것, 철종에 대한 걱정, 임금을 잘 보좌하라고 당부하는 것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純元王后御筆封書』(奎 27785)은 순원왕후가 金興根․金炳㴤․金炳德 등 친정 일가에 보낸 한글 편지 33편을 모아놓은 서간첩이다. 김흥근에게 보낸 편지가 20여 통이며, 제작 시기는 1842년부터 1855년까지로 추정된다. 奉職을 잘하고 돌아오라는 안부 및 위로, 당부 같은 사적인 것에서부터 綏陵의 遷陵 때 헌종의 隨𨏐에 대한 처분, 철종의 옹립과 관련한 자신의 심정, 哲宗妃 간택 등 國事에 대한 내용도 망라되어 있다.
『簡牘』(古貴 3438-18)은 興宣大院君 李昰應(1820~1898)이 쓴 편지글 14편을 모은 簡帖이다. 수신자는 대부분 불명확하지만, 관리에게 보내는 편지도 있으며 일상적인 안부를 묻는 글, 확인이나 당부를 요하는 짧은 쪽지 형식의 간단한 편지도 여러 장 포함되어 있다. 끝에는 政事를 논한 장문의 글이 있다.

 

6. 국왕 命編 詩文

 

조선시대의 도서는 임금의 명령을 받아 궁중이나 지방 관아에서 편찬․간행한 것이 대부분이다. 특히 정조 연간에 왕명으로 편찬․간행한 도서가 많다. 따라서 集部에 포함된 도서는 대부분 命編․御定書에 포함된다. 그렇지만 이렇게 분류하면 도서의 성격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국왕의 詩文集, 군신의 唱和集, 왕실의 서간․선양 시가․서화 등은 별도로 독립시키고, ‘국왕 명편 시문’에서는 국왕의 명을 받들어 편찬한 역대의 시문선집, 개인의 문집 등을 중심으로 하여 약술한다. 그리고 임금의 명을 받들어 편찬한 문집의 경우 종수가 매우 많으므로 임금이 序文을 쓴 것으로 한정하되 도서의 편찬 등은 개괄적으로 다룬다.
먼저 우리나라와 중국의 역대 시문을 선발하여 편찬한 시문선집을 살펴본다. 우리나라의 시문을 선발한 책자로는 『東文選』 2종, 『續東文選』, 『詞苑英華』, 『文苑黼黻』, 『文苑黼黻續編』, 『文苑大方』 등이 있다. 『東文選』󰊱은 우리나라의 역대 시문선집으로 徐居正 등이 성종의 명을 받아 삼국․고려․조선 초기의 각종 시문을 선발하여 1478년(성종 9)에 편찬을 완료하였다. 목록 3권 2책, 원문 130권 43책, 합 45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崔致遠․金富軾․李仁老․李奎報․李齊賢․李穡․鄭道傳․權近 등 삼국시대부터 편찬 당시까지의 작가 500여 명의 시문을 辭賦․古詩․近體詩․敎書․批答․箴銘․頌贊․奏議․書․序跋․祭文․碑銘․傳狀․雜著 등 55종의 문체로 분류하여 해당 시문을 수록하였다. 『續東文選』은 申用漑 등이 왕명을 받들어 『東文選』 편찬 이후 작가들의 시문을 선발하여 1518년(중종 13)에 편찬한 21권 11책의 시문선집이다. 徐居正․金守溫․南孝溫․姜希孟․金宗直․洪貴達 등의 辭賦와 詩文이 실려 있다. 『東文選』󰊲는 宋相琦 등이 숙종의 명을 받아 삼국시대부터 17세기까지의 역대 시문을 선발하여 1713년(숙종 39)에 간행한 시문선집이다. 본서는 康熙帝의 요청에 따라 편찬되었는데, 수록 작품 중의 3분의 2 이상이 명종~숙종 연간에 활동한 문인들의 것이다. 崔致遠․李奎報․李齊賢․李穡․鄭道傳․權近․金宗直․崔岦․張維․李廷龜 등이 지은 시문 1,215편이 실려 있다.
『詞苑英華』는 정조가 왕세손으로 있던 1775년(영조 51)에 조선초기부터 당대까지 신하들이 지은 頒敎文․上樑文․祭文 등을 편찬한 책으로 『文苑黼黻』, 『文苑黼黻續編』, 『文苑大方』의 전범이 되었다. 『文苑黼黻』은 尊賢閣에서 정조의 명을 받아 조선초기부터 1780년대 중반까지 館閣에서 지은 各體의 文章을 모아 1787년(정조 11)에 간행한 文選集이다. 목록 1책, 原集 40권 19책, 別編 4권 2책, 합 22책이며 玉冊․頒敎․敎命․竹冊․祭文․樂章․哀冊․上樑․賜額․敎書․敎旨․不允批答․表․箋․咨文․國書․露布․奏文 등이 실려 있다. 『文苑黼黻續編』은 哲宗의 명을 받아 尊賢閣에서 館閣의 문장을 선발하여 1852년(철종 3)에 간행한 『文苑黼黻』의 續編이다. 목록 1책, 원집 10권 5책, 합 6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文苑黼黻』이 간행된 이후인 1787년부터 1852년 사이에 지은 문장이 실려 있다. 『文苑大方』은 高宗 연간에 高麗와 朝鮮은 물론이고 중국의 문인들이 지은 館閣文 各體를 선발하여 엮은 30책의 文選集이다. 고려와 중국의 문장은 많지 않고 대부분이 조선조의 작품인데, 특히 正祖朝부터 高宗朝까지의 館閣文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18세기 말엽과 19세기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선발한 것은 『詞苑英華』, 『文苑黼黻』, 『文苑黼黻續編』을 보완하려는 목적에서 연유한 듯하다.
다음으로 중국의 시문을 선발하여 간행한 책자를 살펴본다. 시선집으로는 『杜律分韻』, 『陸律分韻』, 『杜陸千選』, 『雅誦』 등이 있고, 문선집으로는 『唐宋八子百選』, 『朱書百選』, 『陸奏約選』, 『文史咀英』 등이 있다.
詩敎를 중시한 정조는 杜甫․陸游․朱熹의 시를 선발하여 『杜律分韻』, 『陸律分韻』, 『杜陸千選』, 『雅誦』을 간행하였다. 정조는 1798년(정조 22)에 杜甫의 律詩 777수를 선발한 5권 2책의 『杜律分韻』, 陸游의 율시 4877수를 선발한 39권 13책의 『陸律分韻』을 간행하였고, 이듬해에 『杜律分韻』과 『陸律分韻』에서 각각 500수를 선발하여 『杜陸千選』을 간행하였다. 그리고 朱熹의 시 415수와 몇 편의 문을 덧붙여 8권 2책의 『雅誦』을 간행하였다. 또한 현재 전해지지는 않지만 『詩觀』과 『律英』을 편찬하기도 하였다. 『詩觀』은 1792년에 『詩經』부터 명나라의 前後七子까지 역대의 중국 한시를 선발한 책자로 560권에 이르는 방대한 양이었고, 『律英』은 1799년에 중국의 唐․宋․明의 시인 68인, 조선 시인 11인의 칠언율시를 선발한 시선집이다. 현재 규장각에는 詩經․逸詩․古逸, 宋代의 篇名과 篇數를 적은 『詩觀總目』 2책만이 소장되어 있다.
『唐宋八子百選』은 정조가 唐宋의 文章家 여덟 명의 글 가운데 100편을 선발하여 1781년에 6권 3책으로 간행한 책이고, 『朱書百選』은 정조가 주자의 書簡 가운데 100편을 뽑아 1794년에 6권 2책으로 간행한 책이다. 정조는 1797년에 陸贄의 奏議文 29편을 선발하여 『陸奏約選』을 간행하였다. 또한 정조는 宋나라의 程顥․程頤․朱熹 등 3인과 조선의 趙光祖․李滉․成渾․李珥․趙憲․金長生․金集․宋浚吉․宋時烈 등 9인의 奏疏를 선발하여 1780년에 『奏議纂要』를 간행하였다. 아울러 1796년에 『史記』와 『漢書』에서 중요한 부분을 발췌하여 『史記英選』을 간행하였다. 그리고 朴宗薰 등은 순조의 명을 받아 歐陽修와 蘇軾의 문장을 선발한 『文史咀英』 8권 4책을 1829년에 간행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편찬․간행 사업의 연장선에서 나온 결과물이 『四部手圈』이다. 정조는 1798년부터 2년에 걸쳐 經史子集에서 중요한 글을 선발하고, 여기에 批點과 圈點을 덧붙여 25권 12책의 『사부수권』을 편찬하였다. 여기에는 『儀禮』․『周禮』․『禮記』에서 뽑은 三禮手圈, 『史記』․『漢書』․『後漢書』에서 뽑은 兩京手圈, 周敦頤․程顥․程頤․張載․朱熹의 글에서 뽑은 五子手圈, 陸贄의 글을 선발한 陸稿手圈, 唐宋八大家의 문장을 선발한 八子手圈이 실려 있다. 그리고 『四部手圈』의 편찬 작업 일정을 정리한 『四部手圈課程日表』도 소장되어 있다.
임금의 명을 받아 간행한 개인문집으로는 月山大君 李婷의 『風月亭集』(1727), 金鎭圭의 『竹泉集』(1773), 南有容의 『雷淵集』(1782), 金德齡의 『金忠壯公遺事』(1790), 林慶業의 『林忠愍公實記』(1791), 梁誠之의 『訥齋集』(1791), 車天輅의 『五山集』(1791), 蔡濟恭의 『樊巖集』(1791, 1824), 鄭道傳의 『三峰集』(1794), 李舜臣의 『李忠武公全書』(1795), 朴誾의 『增訂挹翠軒遺稿』(1795), 趙文命의 『鶴巖集』(1797), 梁大樸의 『梁大司馬實記』(1799) 등이 있다. 이들 문집은 문물과 제도의 정비에 공적이 크거나 나라를 위해 節義를 세운 경우, 정조의 측근에서 文敎에 힘쓴 이유로 말미암아 간행되었다. 위의 문집 중에서 『竹泉集』에 영조의 御製序, 『金忠壯公遺事』에 정조의 <御製賜祭文>, 『梁大司馬實記』에 정조의 <御製致祭文>, 『雷淵集』․『樊巖集』․『鶴巖集』에 정조의 御製序가 수록되어 있다.
왕명에 의해 편찬된 서적 가운데 시문선집이나 개인문집의 범주에 포함시키기 어려운 것도 여러 종이 있다. 『御定人瑞錄』, 『百歲榮壽帖』, 『壽進寶酌帖』, 『應製詩』 등이 그 예이다. 『御定人瑞錄』은 정조가 1795년에 어머니 惠慶宮洪氏의 回甲, 英祖妃 金氏가 51세가 되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잔치를 베풀고 전국의 老人 중에서 70세 이상의 관원과 80세 이상의 庶人 75,145명에게 賞을 내린 것을 수록한 책이다. 『百歲榮壽帖』은 고종이 1865년(고종 2)에 宗親 李容華의 나이가 101세가 되자 그에게 知中樞府使라는 벼슬을 내리고 御前에 불러 축하할 때 宗親 및 高官들이 지은 詩를 모아 간행한 책이다. 『壽進寶酌帖』은 고종이 1865년 서울 북쪽 외곽에서 발견된 소라 모양의 술잔인 ‘壽進寶酌’을 經筵에 가지고 나와 보인 뒤 신하들이 지은 記文과 銘을 모아 엮은 帖이다. 『應製詩』는 權近이 明나라 太祖의 명을 좇아 지은 24수의 應製詩에 손자 權擥이 주석을 붙여 편찬한 책이다.

 

7. 왕실 宣揚 詩歌

 

조선 왕실에서는 궁중의 연회․의례 등을 거행할 때 列聖을 기리는 樂章․歌詞․致詞 등을 제작하여 사용하였다. 이들 시편은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천명하는 한편 왕업이 무궁하기를 기원하였고, 아울러 왕과 왕비의 성덕을 칭송하였다. 현재 규장각에는 六祖의 功業과 후손에의 권계를 담은 『龍飛御天歌』, 궁중의 연회와 의례에서 사용된 노래를 편집한 『國朝樂章』과 『俗樂歌詞』가 소장되어 있다. 또한 특정한 행사를 기념하기 위하여 임금이나 신하가 지은 樂章 등을 별책으로 묶은 것도 몇 종 소장되어 있다. 이들 도서의 간행 경위와 내용 등을 약술한다.
먼저 『龍飛御天歌』는 權踶․鄭麟趾․安止 등이 조선 건국의 기틀을 잡은 穆祖에서 太宗에 이르는 여섯 임금의 행적을 기린 125장의 가사이다. 1445년에 노래의 본문과 한시가 제작되었고, 2년 뒤인 1447년에 註解를 붙여 간행하였는데, 규장각에 6종이 소장되어 있다. 조선 건국의 정당성, 왕업의 번창, 穆祖․翼祖․度祖․桓祖․太祖․太宗의 聖德과 공업에 대한 칭송, 후대 왕에 대한 권면 등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國朝樂章』은 洪啓禧․徐命膺 등이 1765년(영조 41) 4월에 임금의 명을 받아 우리나라의 樂章을 모아 편찬한 책이다. 宗廟․文昭殿․列廟․列朝上尊號․列朝追上尊號․進豊呈․朝會禮宴儀․親耕․觀刈․親蠶․大射禮 등의 儀禮를 거행할 때 사용하던 11편의 樂章을 수록하였다. 『俗樂歌詞』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宗廟와 文廟의 祭禮와 宴禮에 사용한 雅樂과 俗樂의 歌詞를 모아 엮은 歌集이다. ‘國朝詞章’ 혹은 ‘國朝樂章’으로 불리기도 한다. 宗廟永寧殿․閟宮․武安王廟 등에 사용하던 俗樂歌詞, 風雲雷雨․社稷․先農․先蠶․雩祀․文宣王에 사용하던 雅樂歌詞, <與民樂> 등 24편의 歌詞가 실려 있다.
다음으로 특정한 행사를 기념하여 국왕이나 신하가 제작한 악장․치사 등을 시대 순서에 따라 살펴본다. 현재 규장각에 소장된 자료는 趙觀彬․正祖․純宗이 지은 악장․가사 5종, 찬자 미상의 악장․치사 2종이 있다. 『親臨觀刈時出入大次樂章文』은 趙觀彬이 1747년(영조 23)에 지은 악장으로 임금께서 교외에 나가 친히 곡식을 수확하는 것을 칭송하였다. <親臨觀刈時出入大次樂章文>과 <親臨觀刈時樂章文>으로 구성되었는데, 『國朝樂章』에도 수록되어 있다. 정조의 경우 1795년 華城에서 어머니 惠慶宮의 회갑연을 개최할 때 지은 3종의 악장이 있다. 그런데 『慈宮臨華城行宮進饌樂章』(奎 2065)과 『慈宮周甲日進饌樂章』(奎 1474)에 수록된 글은 『慈宮臨華城行宮進饌樂章』(奎 7084 등)에 실려 있으므로 <奎 7084>를 중심으로 약술한다. <長樂>과 <觀華>로 구성된 「慈宮臨華城行宮進饌樂章」, <老萊衣>와 <萬年>으로 구성된 「慈宮周甲日進饌樂章」, <致詞>가 실려 있다. 『睿製樂歌詞』는 純宗이 世子로 있을 때인 1892년(고종 29)에 고종의 재위 30년, 寶齡 41세를 기념하여 지은 국한문 혼용 樂歌詞이다. <福祿川至一疊>, <共樂秋登一疊>, <聖恩頌一疊>, <萬世基一疊>, <福祿川至一疊>, <共樂秋登一疊> 총 6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致詞』와 『익일악쟝(翼日樂章)』, 『春帖子』를 살펴본다. 『致詞』는 임금의 誕日에 영의정이 올린 <致詞>와 예조판서 등의 관원들이 올린 <宣箋目> 양식을 수록한 필사본 帖이다. 임금의 탄일을 경하하고 만수를 누리기를 축원하였다. 『익일악장』은 掌樂院에서 편찬한 4언 10구의 악장으로 한글로 쓰여 있다. 『詩經』 <賓之初筵>과 <行葦> 등의 시편에서 구절을 발췌하여 集句詩 형식으로 악장을 제작하였다. 『春帖子』는 沈象奎 등 여러 신하가 1781년(정조 5)부터 1841년(헌종 7)까지 지은 春帖子․端午帖․延祥詩의 各體詩를 모아 엮은 책을 1925년 8월에 다시 필사한 것이다. 정조~헌종 연간에 여러 신하들이 원단․입춘․단오를 맞이하여 왕과 왕비, 원자와 세자 등에게 祝壽와 경하를 올린 시편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8. 기 타

 

규장각에는 正祖의 활쏘기 관련 기록 4종, 국왕․세자의 시에 次韻하거나 應製한 시문 4종, 왕조의 발상지인 함경도에서 시행된 향약 관련 기록 1종이 소장되어 있다. 이들 도서는 국왕이 직접 지은 시문을 수록한 것이 아니라 왕실의 문예 범주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왕의 동정과 여가 활동, 왕실의 문예와 학문, 정책 등을 고찰하는 데에 보조적인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이들 도서의 편찬 경위와 내용을 약술한다.
먼저 정조가 활을 쏜 성적과 陪臣에게 古風을 하사한 내역을 기록한 古風帖 등을 살펴본다. 『御射古風帖』󰊱(奎 10252)은 정조가 1792년(정조 16) 10월 30일 昌德宮 內苑에서 활을 쏜 성적, 徐榮輔의 기문, 古風을 하사받은 陪臣 명단, 1805년 무렵에 쓴 朴允黙 등의 시문을 모아 엮은 첩이다. 御射古風帖󰊲(奎 9991)는 정조가 1792년(정조 16) 10월 30일과 11월 11일에 親射한 성적, 別軍職 永興府使 朴基豊에게 활과 활집을 古風으로 내린 전말 및 尹行任의 서문을 탁본한 것이다. 御射古風帖󰊳(古大 4206-80)은 정조가 1791년(정조 15) 7월 7일부터 1792년(정조 16) 12월 23일까지 조총과 활을 쏘아 과녁에 맞춘 점수와 蓮府[壯勇營]에 재직하던 李堯憲에게 내린 古風의 物目을 기록한 帖이다. 『御射臺帖』은 李敏采가 1792년 楊州의 射臺에서 활을 쏜 正祖의 사적에 대하여 기록한 비문을 탁본한 첩이다.
다음으로 蔡得沂․李崑秀․李勉昇이 應製․講義하거나 하사받은 물품을 기록한 도서를 살펴본다. 『君臣言志錄』과 『雩潭先生遺稿』는 雩潭 蔡得沂가 청나라 瀋陽에 볼모로 잡혀간 昭顯世子와 鳳林大君을 모시면서 주고받은 시 및 채득기와 관련된 글을 모아 엮은 책이다. 『零金』(奎 15175)은 李崑秀가 1782년부터 1787년까지 지은 應製錄․詩文鈔․講義 등을 모아 엮은 책이다. 應製錄․賡載詩․聯句․講義․日得聖語錄 등을 통하여 1782년부터 1787년까지 시행한 課試의 경향, 정조와 신하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시문의 수창, 정조의 학문과 어록 등을 살피는데 도움이 된다. 『感恩編』은 李勉昇이 抄啓文臣으로 있을 때에 지은 詩文과 正祖께 하사받은 물품 등을 적은 책이다. 「恩賡錄」, 「恩賜錄」, 「恩課錄」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鄕憲』은 朱楨燮 등이 高宗의 명을 받아 조선초기부터 당대까지 함경도 일대에서 시행된 鄕約 관련 기록을 合編하여 1903년(광무 7)에 3권 3책으로 간행한 책이다. 본 책에는 孝寧大君의 憲目序, 태조의 憲目, 세종의 節目, 정조의 綸音, 고종의 詔勅, 李乾夏의 奏本, 李容翊 등 149인의 上疏, 京約所座目, 李容翊의 <三禮錄序>, 鄕飮酒義, 鄕射義, 鄕約講義, 鄕約, 朱楨燮의跋文 등이 실려 있다.

 

9. 자료적 가치와 의미

 

조선 시대에 국왕 등 왕실 인물이 제작한 시문과 서화, 임금의 명을 받들어 편찬․간행한 도서 등은 당대의 문예적 취향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 등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이들 도서에는 당대의 문화와 학문의 경향, 궁중의 생활상과 각종 의례, 제도의 정비와 풍속의 교화, 도서의 간행과 보급, 군신의 회합과 풍류, 인재의 선발, 왕실 및 관리들의 언행과 업적 등 經學․譜學․史學․文學․語學․禮學․刑政․軍事․醫學․地理․法典․書畵․出版․藏書 등에 다양한 인식과 정보가 담겨 있다.
왕실의 문예에서 다룬 규장각 소장 도서를 몇 개의 범주로 그 가치와 의미를 약술한다. 먼저 국왕의 시문은 그들의 시문 전체를 편찬한 『列聖御製』와 문집, 특정한 행사에서 지은 시문만을 편찬한 개별 도서가 있다. 太祖부터 哲宗까지 국왕 24명의 시문을 수록한 『列聖御製』, 인종․영조․장조․정조․고종 등의 문집에는 국왕의 문화․문예적 소양뿐만 아니라 당대의 정치․사회적 상황과 시책, 학문의 경향과 수준, 각종 의례의 집행과 의미, 인물의 언행과 업적 등 다양한 정보가 담겨 있다. 아울러 국왕이 특정한 행사에서 지은 시문을 편찬한 도서에도 臣民과 官署에 대한 정치적 조처는 물론이고 각종 행사의 거행과 관련된 입장이 표명되어 있다. 實錄 등의 史書에는 綸音․敎書 등이 발췌되어 있지만 이들 자료는 全文이 실려 있어 당대 사회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다음으로 임금과 신하가 경사를 맞이하여 수창한 시문을 편찬․간행한 賡載軸․聯韻軸에는 군신의 회합과 행사가 갖는 의미 등이 잘 드러나 있다. 國王․大妃․慈宮의 祝壽, 宗系辨誣의 성공, 几杖의 진상, 陵園의 행차와 영접, 과거의 실시와 인재의 선발, 嘉禮․卽位․誕辰․還都 등의 기념, 綸音의 반포와 도서의 편찬, 세자의 相見과 代理聽政, 祭享과 宴會 등의 각종 儀禮, 신하의 召對와 유생의 우대, 耆老宴․養老宴의 실시 등 다양한 경사를 맞이하여 군신이 그 의미를 되새기고 태평성세를 칭송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왕실 인물이 제작한 서화와 서간은 글씨와 그림에 대한 그들의 예술적 성취는 물론 주변 인물에 대한 돈독한 정을 잘 보여주는 자료이다. 왕과 왕비의 필적은 親筆本으로 남아 있는 경우도 있고, 널리 보급하기 위하여 模刻․인쇄하여 궁중이나 史庫 등에 보관하는 등 세심한 주위를 기울였다. 아울러 『列聖御製』, 『奎章總目』, 『奉謨堂奉安御書總目』, 『承華樓書目』 등에 보이는 書畵 관련 기록은 이들의 소장 경위, 보관 방법, 模刻과 인출 과정 등을 보여주는 자료라 할 수 있다. 그리고 純元王后 등이 남긴 편지는 궁중의 서체와 언어는 물론이고 주위 사람에 대한 친밀한 정과 정국의 동향 등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임금의 명을 받들어 편찬․간행한 서적은 당시의 출판 문화의 경향과 수준은 물론이고 학문에 대한 정책적 관심을 잘 보여준다. 역대 우리나라와 중국의 시문을 선발하여 편찬한 선집 및 개인 문집 등은 전적을 집대성하여 새로운 文風과 문화를 이끌려고 하는 의식이 담겨 있다. 또한 『龍飛御天歌』를 포함한 여러 종의 樂章 등은 祖宗을 존숭하는 의식 및 왕실에서 거행한 행사의 절차와 의미 등을 담고 있다. 그리고 정조의 활쏘기 관련 기록, 蔡得沂․李崑秀․李勉昇 등의 應製 시문은 당대의 학문과 정책, 군신의 의미 있는 만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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