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간성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간성군 지도도 표현 양식은 다르나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비슷하다. 본 지도의 아래쪽에는 襄陽面이 적혀 있는데,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해동지도》에는 襄陽界라고 적혀 있어 본 지도와 《광여도》가 잘못 필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본 지도나 《광여도》 중의 하나가 다른 하나를 필사하면서 확인 작업을 하지 않았음도 이해할 수 있다. 본 지도에는 간성군이 마치 사각형을 이룬 것처럼 그려져 있다. 그러나 郡內面에서 북쪽으로 갈수록 동서의 폭이 점점 좁아지다가 高城界 부근에서는 거의 삼각형의 끝 모양처럼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高城과의 경계선이 마치 동서로 길게 되어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또한 향교로부터 高城界까지의 거리와 아래쪽 襄陽界까지의 거리가 거의 같다. 이렇게 그려진 이유는 사각형의 종이에 맞게 군현의 모습을 맞추려 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縣內面에 있는 하천은 동류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東北流하여 바다로 빠져나간다. 이와 같은 오류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간성 지도에서 일부 교정되며,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거의 실제와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간성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간성군 지도도 표현 양식은 다르나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비슷하다. 본 지도의 아래쪽에는 襄陽面이 적혀 있는데,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해동지도》에는 襄陽界라고 적혀 있어 본 지도와 《광여도》가 잘못 필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본 지도나 《광여도》 중의 하나가 다른 하나를 필사하면서 확인 작업을 하지 않았음도 이해할 수 있다. 본 지도에는 간성군이 마치 사각형을 이룬 것처럼 그려져 있다. 그러나 郡內面에서 북쪽으로 갈수록 동서의 폭이 점점 좁아지다가 高城界 부근에서는 거의 삼각형의 끝 모양처럼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高城과의 경계선이 마치 동서로 길게 되어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또한 향교로부터 高城界까지의 거리와 아래쪽 襄陽界까지의 거리가 거의 같다. 이렇게 그려진 이유는 사각형의 종이에 맞게 군현의 모습을 맞추려 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縣內面에 있는 하천은 동류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東北流하여 바다로 빠져나간다. 이와 같은 오류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간성 지도에서 일부 교정되며,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거의 실제와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강릉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나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강릉부 지도에 비해 틀리거나 생략된 지명이 있다. 맨 위쪽의 雪來山은 雪岳來(설악산으로부터 옴)을, 그 아래의 新田面은 新里面을, 아래쪽의 三涉界는 三陟界를 잘못 기록한 것이다. 《광여도》에는 이런 지명들이 올바르게 되어 있지만 《광여도》에도 오른쪽 아래의 望祥村이 望洋村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다. 왼쪽 아래의 大和面에는 《해동지도》에 大和驛이란 문구와 面 2개가 표시되어 있다. 따라서 면과 역을 구별해서 표시한 본 지도에서는 대화역과 대화면을 따로 적어놓아야 하는데, 대화면만 적어놓고 있다. 《광여도》에서는 대화역에 보라색 사각형을 표시한 다음 面은 한 글자만 표시하고 노란색 사각형을 그려 넣지 않았다. 《광여도》 역시 《해동지도》의 내용을 확실히 이해하고 그린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강릉부는 현재의 평창읍과 미탄면 대부분을 제외한 평창군, 인제군의 내면, 정선군의 임계면 등을 포함하여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었다. 또한 남북보다 동서가 약 2배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런 강릉부를 세로로 긴 사각형 안에 맞추어 그리다보니까 오히려 남북이 동서보다 긴 모양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동해안과 大關嶺 사이의 폭보다 대관령에서 橫城界까지의 거리가 실제로는 3배에 가까운데 본 지도에는 거의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이로 인해 본 지도만으로는 강릉부의 실제 형태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동해안에 있는 香湖, 鏡湖, 楓湖 등의 석호도 해안가에 붙어있는데 본 지도에는 마치 내륙의 호수인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왼쪽 위의 內面 부근에 春川界가 적혀 있는 것은 이곳에 있었던 춘천의 월경지인 기린면과 경계를 맞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강릉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나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강릉부 지도에 비해 틀리거나 생략된 지명이 있다. 맨 위쪽의 雪來山은 雪岳來(설악산으로부터 옴)을, 그 아래의 新田面은 新里面을, 아래쪽의 三涉界는 三陟界를 잘못 기록한 것이다. 《광여도》에는 이런 지명들이 올바르게 되어 있지만 《광여도》에도 오른쪽 아래의 望祥村이 望洋村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다. 왼쪽 아래의 大和面에는 《해동지도》에 大和驛이란 문구와 面 2개가 표시되어 있다. 따라서 면과 역을 구별해서 표시한 본 지도에서는 대화역과 대화면을 따로 적어놓아야 하는데, 대화면만 적어놓고 있다. 《광여도》에서는 대화역에 보라색 사각형을 표시한 다음 面은 한 글자만 표시하고 노란색 사각형을 그려 넣지 않았다. 《광여도》 역시 《해동지도》의 내용을 확실히 이해하고 그린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강릉부는 현재의 평창읍과 미탄면 대부분을 제외한 평창군, 인제군의 내면, 정선군의 임계면 등을 포함하여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었다. 또한 남북보다 동서가 약 2배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런 강릉부를 세로로 긴 사각형 안에 맞추어 그리다보니까 오히려 남북이 동서보다 긴 모양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동해안과 大關嶺 사이의 폭보다 대관령에서 橫城界까지의 거리가 실제로는 3배에 가까운데 본 지도에는 거의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이로 인해 본 지도만으로는 강릉부의 실제 형태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동해안에 있는 香湖, 鏡湖, 楓湖 등의 석호도 해안가에 붙어있는데 본 지도에는 마치 내륙의 호수인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왼쪽 위의 內面 부근에 春川界가 적혀 있는 것은 이곳에 있었던 춘천의 월경지인 기린면과 경계를 맞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고성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광여도》에 비해 표현이 거칠고 몇몇 부분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읍치 왼쪽 위에는 노란색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는데 《광여도》에는 二北面이 적혀 있다. 그리고 그 오른쪽의 北面은 광여도에 一北面이라고 되어 있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의 내용과 같아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판단된다. 표현 양식이 좀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고성군 지도에도 《광여도》처럼 되어 있다. 읍치와 그 근처 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 크게 그려져 있다. 이에 따라 본 지도 안에서 각 지점 사이의 거리를 이해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해안에서 三日浦까지의 거리는 실질적으로 삼일포에서 왼쪽의 溫井嶺까지의 거리에 비해 5분의 1 정도밖에 안된다. 또한 읍치를 실제와 달리 사각형으로 묘사된 고을 지도의 중앙에 배치시켰기 때문에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읍치에서 通川界까지의 걸리는 실제로 읍치에서 왼쪽 아래의 炭嶺 부근까지의 거리에 비해 3분의 1 정도밖에 안된다. 金剛山 역시 상대적으로 북쪽으로 치우쳐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도에서는 정 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이런 거리의 왜곡 때문에 하천의 길이 역시 실제와 전혀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왼쪽 아래에서 발원한 현재의 남강은 왼쪽 위의 온정령에서 발원한 현재의 신계천보다 5배 정도 길다. 다만 읍치 주변의 하천 유로는 실제에 가깝게 되어 있다. 읍치 지역은 서쪽의 급경사에서 발원한 하천의 토사가 동해 바다의 파랑에 밀려 쌓이면서 넓은 평지가 되었다. 이로 인해 삼일포와 같은 潟湖가 생기고, 하천의 하구는 여러 갈래의 수로가 되었다. 이런 모습이 본 지도에는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고성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광여도》에 비해 표현이 거칠고 몇몇 부분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읍치 왼쪽 위에는 노란색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는데 《광여도》에는 二北面이 적혀 있다. 그리고 그 오른쪽의 北面은 광여도에 一北面이라고 되어 있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의 내용과 같아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판단된다. 표현 양식이 좀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고성군 지도에도 《광여도》처럼 되어 있다. 읍치와 그 근처 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 크게 그려져 있다. 이에 따라 본 지도 안에서 각 지점 사이의 거리를 이해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해안에서 三日浦까지의 거리는 실질적으로 삼일포에서 왼쪽의 溫井嶺까지의 거리에 비해 5분의 1 정도밖에 안된다. 또한 읍치를 실제와 달리 사각형으로 묘사된 고을 지도의 중앙에 배치시켰기 때문에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읍치에서 通川界까지의 걸리는 실제로 읍치에서 왼쪽 아래의 炭嶺 부근까지의 거리에 비해 3분의 1 정도밖에 안된다. 金剛山 역시 상대적으로 북쪽으로 치우쳐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도에서는 정 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이런 거리의 왜곡 때문에 하천의 길이 역시 실제와 전혀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왼쪽 아래에서 발원한 현재의 남강은 왼쪽 위의 온정령에서 발원한 현재의 신계천보다 5배 정도 길다. 다만 읍치 주변의 하천 유로는 실제에 가깝게 되어 있다. 읍치 지역은 서쪽의 급경사에서 발원한 하천의 토사가 동해 바다의 파랑에 밀려 쌓이면서 넓은 평지가 되었다. 이로 인해 삼일포와 같은 潟湖가 생기고, 하천의 하구는 여러 갈래의 수로가 되었다. 이런 모습이 본 지도에는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關東圖와 동해안의 모습과 하천의 유로가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본 지도는 하천의 유로가 거의 사실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는 반면 《광여도》에는 여러 오류가 발견되고 있다. 예를 들어 寧越 왼쪽의 하천과 杻寺 부분의 하천이 연결되어 있다. 金城 부근에서도 하천이 잘못 연결된 부분이 나타나고 있다. 수록된 지명의 양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본 지도보다 《광여도》가 훨씬 많은 편이다. 본 지도에서는 감영은 적황색 큰 원, 군현은 녹색 작은 원으로 표시하였다. 그러나 강릉 왼쪽의 麒麟은 군현이 아니라 春川의 월경지인 기린면이었다. 본 지도의 작성자가 기호 표시가 되어 있지 않은 지도를 필사하면서 기리면(옛 기린현)을 잘못 이해하여 군현의 기호를 사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맨 위쪽의 伊川 위치가 잘못되어 있다. 본 지도에서는 읍치의 위치에다 군현의 명칭을 적어놓았기 때문에 약간 아래쪽 南川 바로 위에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감영의 명칭이 原城으로 되어 있다. 原城은 原州가 1683년-1692년(숙종 9-18)과 1728년-1737년(영조 4-13) 사이에 縣으로 강등되었을 때의 명칭이다. 《광여도》에는 原州로 적혀 있다. 노란색 사각형은 종6품의 察訪이 파견되어 많은 속역을 거느리던 察訪驛에 대한 기호로 사용된 것으로 생각된다. 보통 전도나 도별도에서는 찰방역이 기호를 사용하는 정보가 되는 예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貞德驛과 巨豊驛은 찰방역이 아니었다. 또한 찰방역이었던 원주의 丹丘驛, 삼척의 平陵驛 등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이런 점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 찰방역에 대한 기호가 표시되지 않은 지도를 참조하였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찰방역에 대한 정보를 모두 검토하지 못해 오류를 범한 것이 아닌가 한다. 《광여도》에는 정덕역과 거풍역이 찰방역의 기호에서 빠졌다. 그러나 麒麟을 찰방역으로 잘못 표기하고, 다른 찰방역을 생략하는 등 역시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본 지도가 다른 지도를 필사한 것임을 알려주는 근거 중의 하나가 왼쪽 아래에 적혀 있는 ‘白川界雲山’이다. 《광여도》와 비교해 보면 이것은 堤川界와 白雲山의 기록을 혼동하여 적어놓은 것으로 ‘堤’자는 아예 생략되어 있다. 스스로 모든 것을 만든 것이라면 이와 같은 혼동은 있기 어렵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關東圖와 동해안의 모습과 하천의 유로가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본 지도는 하천의 유로가 거의 사실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는 반면 《광여도》에는 여러 오류가 발견되고 있다. 예를 들어 寧越 왼쪽의 하천과 杻寺 부분의 하천이 연결되어 있다. 金城 부근에서도 하천이 잘못 연결된 부분이 나타나고 있다. 수록된 지명의 양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본 지도보다 《광여도》가 훨씬 많은 편이다. 본 지도에서는 감영은 적황색 큰 원, 군현은 녹색 작은 원으로 표시하였다. 그러나 강릉 왼쪽의 麒麟은 군현이 아니라 春川의 월경지인 기린면이었다. 본 지도의 작성자가 기호 표시가 되어 있지 않은 지도를 필사하면서 기리면(옛 기린현)을 잘못 이해하여 군현의 기호를 사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맨 위쪽의 伊川 위치가 잘못되어 있다. 본 지도에서는 읍치의 위치에다 군현의 명칭을 적어놓았기 때문에 약간 아래쪽 南川 바로 위에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감영의 명칭이 原城으로 되어 있다. 原城은 原州가 1683년-1692년(숙종 9-18)과 1728년-1737년(영조 4-13) 사이에 縣으로 강등되었을 때의 명칭이다. 《광여도》에는 原州로 적혀 있다. 노란색 사각형은 종6품의 察訪이 파견되어 많은 속역을 거느리던 察訪驛에 대한 기호로 사용된 것으로 생각된다. 보통 전도나 도별도에서는 찰방역이 기호를 사용하는 정보가 되는 예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貞德驛과 巨豊驛은 찰방역이 아니었다. 또한 찰방역이었던 원주의 丹丘驛, 삼척의 平陵驛 등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이런 점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 찰방역에 대한 기호가 표시되지 않은 지도를 참조하였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찰방역에 대한 정보를 모두 검토하지 못해 오류를 범한 것이 아닌가 한다. 《광여도》에는 정덕역과 거풍역이 찰방역의 기호에서 빠졌다. 그러나 麒麟을 찰방역으로 잘못 표기하고, 다른 찰방역을 생략하는 등 역시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본 지도가 다른 지도를 필사한 것임을 알려주는 근거 중의 하나가 왼쪽 아래에 적혀 있는 ‘白川界雲山’이다. 《광여도》와 비교해 보면 이것은 堤川界와 白雲山의 기록을 혼동하여 적어놓은 것으로 ‘堤’자는 아예 생략되어 있다. 스스로 모든 것을 만든 것이라면 이와 같은 혼동은 있기 어렵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금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광여도》에 있던 다리와 고개의 몇 개 지명이 본 지도에서 생략되어 있을 뿐이다. 위쪽의 淮陽界에서 들어와 아래쪽의 狼川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북한강 본류이다. 읍치 방향에서 흘러와 북한강에 합류하는 하천은 현재의 금성천이다. 두 하천의 모습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체적으로 실제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고을 동쪽 모습은 실제와 상당히 다르게 되어 있다. 오른쪽 金剛路 방면은 실제로는 동쪽으로 튀어나간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러나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게 고을의 모습을 그리려다보니 이 부분이 남북 직선의 산줄기처럼 그려졌다. 또한 이곳에서 흐르는 현재의 통구천이 실제로는 西流하여 북한강에 합류됨에도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묘사되었다. 이 부근에 있는 斷髮嶺도 실제로는 金剛路 부근에 써넣어야 한다. 또한 오른쪽의 壬倉 부근에는 동쪽으로부터 현재의 금강천이 흘러들어옴에도 이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런 오류들은 근본적으로 표현 양식은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금성현 지도로부터 발생되었다. 북한강변에는 大慶津과 錢浦가 표시되어 있는데, 이 지역에서 북한강에 대한 하천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錢浦에서의 ‘浦’는 浦口라는 의미보다는 물가를 지칭하는 ‘개’에 대한 한자 표현일 뿐이다. 錢浦는 ‘돈개’라는 우리말에 대한 한자 표기로 추정된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금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광여도》에 있던 다리와 고개의 몇 개 지명이 본 지도에서 생략되어 있을 뿐이다. 위쪽의 淮陽界에서 들어와 아래쪽의 狼川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북한강 본류이다. 읍치 방향에서 흘러와 북한강에 합류하는 하천은 현재의 금성천이다. 두 하천의 모습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체적으로 실제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고을 동쪽 모습은 실제와 상당히 다르게 되어 있다. 오른쪽 金剛路 방면은 실제로는 동쪽으로 튀어나간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러나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게 고을의 모습을 그리려다보니 이 부분이 남북 직선의 산줄기처럼 그려졌다. 또한 이곳에서 흐르는 현재의 통구천이 실제로는 西流하여 북한강에 합류됨에도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묘사되었다. 이 부근에 있는 斷髮嶺도 실제로는 金剛路 부근에 써넣어야 한다. 또한 오른쪽의 壬倉 부근에는 동쪽으로부터 현재의 금강천이 흘러들어옴에도 이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런 오류들은 근본적으로 표현 양식은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금성현 지도로부터 발생되었다. 북한강변에는 大慶津과 錢浦가 표시되어 있는데, 이 지역에서 북한강에 대한 하천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錢浦에서의 ‘浦’는 浦口라는 의미보다는 물가를 지칭하는 ‘개’에 대한 한자 표현일 뿐이다. 錢浦는 ‘돈개’라는 우리말에 대한 한자 표기로 추정된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김화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에는 捷碑柳林大가 적혀 있는데 《광여도》에는 柳琳大捷碑라고 되어 있다. 또한 그 왼쪽에 표시된 銀溪驛이 《광여도》에는 生昌驛으로 되어 있다. 표현 방식에서는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김화현 지도에는 《광여도》처럼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잘못 기록한 것이다. 은계역은 김화현이 아니라 회양부에 있었다. 아래쪽에는 春川界가 적혀 있는데,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도 모두 동일하게 되어 있다. 狼川界를 잘못 쓴 것으로서 《광여도》나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의 오류를 살피지 않고 그대로 필사했음을 알려주는 근거가 된다. 읍치를 다른 지역보다 확대해서 그렸으며, 사각형이 아닌 고을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표현하였기 때문에 실제를 왜곡하는 부분이 나타났다. 예를 들어 西面과 南面은 永平界 방면의 남쪽으로 튀어나가 있는데 이것이 제대로 표현되어 있지 못하다. 또한 김화현은 平康과 서쪽에서만 경계를 접하고 있는데 마치 북쪽에도 平康界가 있는 것처럼 표시되었다. 이것은 북쪽의 동서 폭이 좁은 부분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는 과정에서 서쪽 부분의 일부가 북쪽처럼 표현 된 것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김화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런 오류들이 대부분 교정되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김화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에는 捷碑柳林大가 적혀 있는데 《광여도》에는 柳琳大捷碑라고 되어 있다. 또한 그 왼쪽에 표시된 銀溪驛이 《광여도》에는 生昌驛으로 되어 있다. 표현 방식에서는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김화현 지도에는 《광여도》처럼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잘못 기록한 것이다. 은계역은 김화현이 아니라 회양부에 있었다. 아래쪽에는 春川界가 적혀 있는데,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도 모두 동일하게 되어 있다. 狼川界를 잘못 쓴 것으로서 《광여도》나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의 오류를 살피지 않고 그대로 필사했음을 알려주는 근거가 된다. 읍치를 다른 지역보다 확대해서 그렸으며, 사각형이 아닌 고을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표현하였기 때문에 실제를 왜곡하는 부분이 나타났다. 예를 들어 西面과 南面은 永平界 방면의 남쪽으로 튀어나가 있는데 이것이 제대로 표현되어 있지 못하다. 또한 김화현은 平康과 서쪽에서만 경계를 접하고 있는데 마치 북쪽에도 平康界가 있는 것처럼 표시되었다. 이것은 북쪽의 동서 폭이 좁은 부분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는 과정에서 서쪽 부분의 일부가 북쪽처럼 표현 된 것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김화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런 오류들이 대부분 교정되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낭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서는 위쪽의 山陽驛에 面의 색인 노란색을 칠했다가 보라색을 칠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 또한 아래쪽의 居女里에는 본 지도책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 황갈색의 사각형도 그려져 있다. 《광여도》에서는 이런 실수를 범하고 있지는 않다. 표현 방식은 다르나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비슷한 《해동지도》의 낭천현 지도와 비교해 보면 《광여도》가 훨씬 필사를 잘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주기에는 있지만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은 面으로 縣內面과 北面 및 上西面이 있다. 《광여도》나 《해동지도》에도 이 3개의 면은 주기에만 있고 지도에는 없다. 본 지도와 《광여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여겨지며, 필사 과정에서 다른 자료를 통해 위치 비정을 새롭게 하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위쪽의 金城界에서 흘러와 아래쪽의 春川界로 빠져나가는 毋津江이 현재의 북한강이다. 일부 틀린 부분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실제의 유로와 거의 유사하다. 일반적인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군현의 실제 모습과 지도 위의 모습이 다른 경우가 많다. 본 지도가 실제와 유사하게 그려진 이유는 낭천현 전체의 모습이 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낭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서는 위쪽의 山陽驛에 面의 색인 노란색을 칠했다가 보라색을 칠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 또한 아래쪽의 居女里에는 본 지도책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 황갈색의 사각형도 그려져 있다. 《광여도》에서는 이런 실수를 범하고 있지는 않다. 표현 방식은 다르나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비슷한 《해동지도》의 낭천현 지도와 비교해 보면 《광여도》가 훨씬 필사를 잘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주기에는 있지만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은 面으로 縣內面과 北面 및 上西面이 있다. 《광여도》나 《해동지도》에도 이 3개의 면은 주기에만 있고 지도에는 없다. 본 지도와 《광여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여겨지며, 필사 과정에서 다른 자료를 통해 위치 비정을 새롭게 하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위쪽의 金城界에서 흘러와 아래쪽의 春川界로 빠져나가는 毋津江이 현재의 북한강이다. 일부 틀린 부분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실제의 유로와 거의 유사하다. 일반적인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군현의 실제 모습과 지도 위의 모습이 다른 경우가 많다. 본 지도가 실제와 유사하게 그려진 이유는 낭천현 전체의 모습이 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삼척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아래쪽에는 面의 기호인 노란색 사각형만 그려져 있고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 것이 보인다. 이곳에는 德彬面이 적혀 있어야 하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급하게 서두르다 실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실수는 지명을 잘못 적어놓은 곳에서도 발견된다. 왼쪽 가운데의 武陵界는 武陵溪를, 더 아래쪽의 昔池는 黃池를 잘못 적어놓은 것이다.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에는 모두 제대로 되어 있으며, 《광여도》 역시 올바르게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에는 대부분의 하천이 서류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읍치 아래쪽의 五十川과 交柯驛을 흐르는 하천은 거의 北流하다 바다 부근에서만 약간 東流하여 빠져나간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삼척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런 부분이 많이 시정되었지만 거의 북류에 가까운 것을 동북류 정도로 표현하고 있다. 왼쪽 아래에 昔池(黃池)는 낙동강의 발원지로 알려져 있다. 그 부근에 있는 ‘安東春陽去路’는 ‘안동의 춘양면으로 가는 길’이라는 뜻이다. 안동의 본 영역은 삼척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았으나 월경지인 춘양면이 경계를 맞대고 있었기 때문에 적힌 것이다. 왼쪽의 長生面은 현재의 삼척시 하장면으로 남한강 유역에 속해 있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삼척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아래쪽에는 面의 기호인 노란색 사각형만 그려져 있고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 것이 보인다. 이곳에는 德彬面이 적혀 있어야 하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급하게 서두르다 실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실수는 지명을 잘못 적어놓은 곳에서도 발견된다. 왼쪽 가운데의 武陵界는 武陵溪를, 더 아래쪽의 昔池는 黃池를 잘못 적어놓은 것이다.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에는 모두 제대로 되어 있으며, 《광여도》 역시 올바르게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에는 대부분의 하천이 서류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읍치 아래쪽의 五十川과 交柯驛을 흐르는 하천은 거의 北流하다 바다 부근에서만 약간 東流하여 빠져나간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삼척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런 부분이 많이 시정되었지만 거의 북류에 가까운 것을 동북류 정도로 표현하고 있다. 왼쪽 아래에 昔池(黃池)는 낙동강의 발원지로 알려져 있다. 그 부근에 있는 ‘安東春陽去路’는 ‘안동의 춘양면으로 가는 길’이라는 뜻이다. 안동의 본 영역은 삼척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았으나 월경지인 춘양면이 경계를 맞대고 있었기 때문에 적힌 것이다. 왼쪽의 長生面은 현재의 삼척시 하장면으로 남한강 유역에 속해 있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안협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전체적인 표현은 본 지도가 《광여도》보다 더 거칠다. 그러나 본 지도의 읍치 왼쪽에 있는 擧城이란 지명은 《광여도》에 표시되어 있지 않다. 표현 양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안협현 지도에는 擧城이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가 《광여도》를 필사했다고 하더라도 《해동지도》를 참조한 것으로 생각된다. 오른쪽 아래에는 去京路(서울 가는 길)과 鐵原去路(철원 가는 길)이 기록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도로까지 표시되어 있고, 앞의 두 문구는 도로의 끝에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 도로는 생략하고, 문구만 적어놓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위쪽의 伊川界에서 들어와 아래쪽의 兎山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임진강 본류이다. 안협현 부분에서의 임진강 본류는 굴곡이 심하지만 지도에는 거의 직선화된 형태로 그려져 있다. 읍치 위쪽의 하천은 현재의 평안천이다. 평안천은 원래 平康界 너머에서 흘러들어옴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는 이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어놓았다. 《해동지도》에는 평강계 부근의 평안천을 2개의 실선으로 남겨놓아 평강 땅에서 흘러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본 지도나 《광여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의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지 못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고을의 모습은 사각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세로로 긴 사각형에 맞추어 그리다보니 마치 사각형인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런 부분들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안협 지도에 거의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안협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전체적인 표현은 본 지도가 《광여도》보다 더 거칠다. 그러나 본 지도의 읍치 왼쪽에 있는 擧城이란 지명은 《광여도》에 표시되어 있지 않다. 표현 양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안협현 지도에는 擧城이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가 《광여도》를 필사했다고 하더라도 《해동지도》를 참조한 것으로 생각된다. 오른쪽 아래에는 去京路(서울 가는 길)과 鐵原去路(철원 가는 길)이 기록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도로까지 표시되어 있고, 앞의 두 문구는 도로의 끝에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 도로는 생략하고, 문구만 적어놓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위쪽의 伊川界에서 들어와 아래쪽의 兎山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임진강 본류이다. 안협현 부분에서의 임진강 본류는 굴곡이 심하지만 지도에는 거의 직선화된 형태로 그려져 있다. 읍치 위쪽의 하천은 현재의 평안천이다. 평안천은 원래 平康界 너머에서 흘러들어옴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는 이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어놓았다. 《해동지도》에는 평강계 부근의 평안천을 2개의 실선으로 남겨놓아 평강 땅에서 흘러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본 지도나 《광여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의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지 못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고을의 모습은 사각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세로로 긴 사각형에 맞추어 그리다보니 마치 사각형인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런 부분들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안협 지도에 거의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구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 아래쪽의 道界峙는 《광여도》에 道里峙로, 그 왼쪽의 絲川峙는 綠川峙로 기록되어 있다. 표현 양식은 다르나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양구현 지도에는 전자는 《광여도》처럼, 후자는 본 지도처럼 되어 있다. 《광여도》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각각 다른 명칭을 잘못 옮기고 있다. 《광여도》와 본 지도 중 어느 것이 다른 것을 필사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필사하면서 《해동지도》를 참고했을 가능성이 있다. 읍치를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해서 그렸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의 모습은 소략하다. 읍치를 지나 왼쪽의 狼川界로 흘러가는 하천이 북한강의 지류인 현재의 서천이다. 그런데 이 서천의 발원지가 잘못 표시되어 있다. 오른쪽 위의 亥安面은 현재의 양구군 해안면으로서 이곳의 물은 서천으로 유입되지 않고 동쪽의 인제군 인복천으로 흘러간다. 이 점은 《광여도》와 《해동지도》 모두 동일하다. 서천과 해안면 하천의 分水界는 上東面 왼쪽에 적힌 兜率山 부근이다. 이런 잘못은 《해동지도》에서 비롯되었으며, 《광여도》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의 오류를 교정하지 않고 그대로 필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南面의 아래쪽은 현재의 소양강에 접해 있고, 양구현의 일부 지역은 소양강 너머에 있었다. 본 지도에서는 이런 사실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양구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는 이런 오류들이 거의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구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 아래쪽의 道界峙는 《광여도》에 道里峙로, 그 왼쪽의 絲川峙는 綠川峙로 기록되어 있다. 표현 양식은 다르나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양구현 지도에는 전자는 《광여도》처럼, 후자는 본 지도처럼 되어 있다. 《광여도》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각각 다른 명칭을 잘못 옮기고 있다. 《광여도》와 본 지도 중 어느 것이 다른 것을 필사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필사하면서 《해동지도》를 참고했을 가능성이 있다. 읍치를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해서 그렸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의 모습은 소략하다. 읍치를 지나 왼쪽의 狼川界로 흘러가는 하천이 북한강의 지류인 현재의 서천이다. 그런데 이 서천의 발원지가 잘못 표시되어 있다. 오른쪽 위의 亥安面은 현재의 양구군 해안면으로서 이곳의 물은 서천으로 유입되지 않고 동쪽의 인제군 인복천으로 흘러간다. 이 점은 《광여도》와 《해동지도》 모두 동일하다. 서천과 해안면 하천의 分水界는 上東面 왼쪽에 적힌 兜率山 부근이다. 이런 잘못은 《해동지도》에서 비롯되었으며, 《광여도》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의 오류를 교정하지 않고 그대로 필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南面의 아래쪽은 현재의 소양강에 접해 있고, 양구현의 일부 지역은 소양강 너머에 있었다. 본 지도에서는 이런 사실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양구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는 이런 오류들이 거의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양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에 비해 본 지도에는 오른쪽 위에 靑草湖, 降仙驛, 洛山寺 등의 지명이 생략되어 있다. 표현 방식은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양양부 지도에도 이 지명들은 모두 표시되어 있다. 또한 읍치 왼쪽에는 府南面이 部南面으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하며 필사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반면에 《광여도》에는 이런 잘못들이 나타나고 있지 않다. 남북이 동서보다 약 2배 정도 긴 모양의 고을임에도 남북이 약간 긴 직사각형으로 표현되어 있다. 또한 일반적인 회화식 지도처럼 읍치 지역을 확대해서 그리고 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몇 가지 오해할 수 있는 문제들이 발생하였다.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해안선과 왼쪽의 산줄기가 마치 정북-정남 방향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서북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또한 하천들이 대부분 正東으로 흘러 바다에 들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降仙面에 있는 하천은 대체적으로 실제에 부합된다. 그러나 읍치 아래쪽에 있는 현재의 남대천은 이 지도만으로는 실제적인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다. 남대천의 본 줄기는 구룡령 근처에서 발원하여 북류하다가 읍치에서 잠깐 동류하여 바다로 들어간다. 그 길이 역시 강선면에 있는 하천보다 훨씬 길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양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에 비해 본 지도에는 오른쪽 위에 靑草湖, 降仙驛, 洛山寺 등의 지명이 생략되어 있다. 표현 방식은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양양부 지도에도 이 지명들은 모두 표시되어 있다. 또한 읍치 왼쪽에는 府南面이 部南面으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하며 필사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반면에 《광여도》에는 이런 잘못들이 나타나고 있지 않다. 남북이 동서보다 약 2배 정도 긴 모양의 고을임에도 남북이 약간 긴 직사각형으로 표현되어 있다. 또한 일반적인 회화식 지도처럼 읍치 지역을 확대해서 그리고 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몇 가지 오해할 수 있는 문제들이 발생하였다.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해안선과 왼쪽의 산줄기가 마치 정북-정남 방향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서북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또한 하천들이 대부분 正東으로 흘러 바다에 들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降仙面에 있는 하천은 대체적으로 실제에 부합된다. 그러나 읍치 아래쪽에 있는 현재의 남대천은 이 지도만으로는 실제적인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다. 남대천의 본 줄기는 구룡령 근처에서 발원하여 북류하다가 읍치에서 잠깐 동류하여 바다로 들어간다. 그 길이 역시 강선면에 있는 하천보다 훨씬 길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월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는 《광여도》에 비해 글자가 잘못되거나 바뀐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莊陵 아래의 丁子閣은 丁字閣이라고 해야 하며, 그 오른쪽의 分德山은 分德峙라고 해야 한다. 그 아래의 三玉峙는 《광여도》에 三王峙라고 되어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영월부 지도에는 본 지도처럼 되어 있다. 오른쪽의 三涉界는 三陟界의 오기로서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는 모두 올바르게 되어 있다. 오른쪽 아래의 安東界는 《광여도》에는 없지만 《해동지도》에는 있다. 왼쪽 위쪽의 高德驛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高德峙로 되어 있다. 고덕치가 올바르며, 이를 통해 본 지도와 《광여도》는 동일한 오류를 범하고 있어 서로 모사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어느 것이 먼저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다른 지도를 모사하는 과정에서 《해동지도》를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영월부는 1699년(숙종 25)에 郡에서 府로 승격되므로 본 지도는 최소한 이 시기 이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왼쪽 위에는 原城界가 표시되어 있는데, 原州界를 의미한다. 原州는 1683년-1692년(숙종 9-18)과 1728년-1737년(영조 4-13) 사이에 原城縣으로 강등된 적이 있다. 영월부의 승격 연도와 관련시켜 보면 본 지도는 1728년에서 1737년 사이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영월은 남북보다는 동서의 폭이 훨씬 넓은 고을이다. 그러나 세로로 긴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기 위해 본 지도에서는 마치 남북이 훨씬 긴 것처럼 표현되었다. 이로 인해 하천의 유로 등이 실제의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아래쪽의 永春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남한강 본류이다. 읍치 왼쪽의 하천은 서강이라고 하며, 오른쪽의 하천은 동강이라고 한다. 서강은 본 지도와 달리 서쪽에서 유입되며, 동강은 동북쪽에서 유입된다. 아래쪽 下東面 방면에 있는 하천은 현재의 옥동천이다. 이 옥동천은 동쪽에서 유입되며, 그 길이 역시 지도에 표현된 서강과 동강보다 훨씬 길다. 또한 상동면은 지도의 표현과 달리 옥동천의 상류에 위치해 있어야 한다. 옥동천의 방향과 길이가 잘못 표현되었기 때문에 상동면 역시 잘못 위치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영월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는 이와 같은 사실이 잘 반영되어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월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는 《광여도》에 비해 글자가 잘못되거나 바뀐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莊陵 아래의 丁子閣은 丁字閣이라고 해야 하며, 그 오른쪽의 分德山은 分德峙라고 해야 한다. 그 아래의 三玉峙는 《광여도》에 三王峙라고 되어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영월부 지도에는 본 지도처럼 되어 있다. 오른쪽의 三涉界는 三陟界의 오기로서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는 모두 올바르게 되어 있다. 오른쪽 아래의 安東界는 《광여도》에는 없지만 《해동지도》에는 있다. 왼쪽 위쪽의 高德驛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高德峙로 되어 있다. 고덕치가 올바르며, 이를 통해 본 지도와 《광여도》는 동일한 오류를 범하고 있어 서로 모사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어느 것이 먼저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다른 지도를 모사하는 과정에서 《해동지도》를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영월부는 1699년(숙종 25)에 郡에서 府로 승격되므로 본 지도는 최소한 이 시기 이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왼쪽 위에는 原城界가 표시되어 있는데, 原州界를 의미한다. 原州는 1683년-1692년(숙종 9-18)과 1728년-1737년(영조 4-13) 사이에 原城縣으로 강등된 적이 있다. 영월부의 승격 연도와 관련시켜 보면 본 지도는 1728년에서 1737년 사이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영월은 남북보다는 동서의 폭이 훨씬 넓은 고을이다. 그러나 세로로 긴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기 위해 본 지도에서는 마치 남북이 훨씬 긴 것처럼 표현되었다. 이로 인해 하천의 유로 등이 실제의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아래쪽의 永春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남한강 본류이다. 읍치 왼쪽의 하천은 서강이라고 하며, 오른쪽의 하천은 동강이라고 한다. 서강은 본 지도와 달리 서쪽에서 유입되며, 동강은 동북쪽에서 유입된다. 아래쪽 下東面 방면에 있는 하천은 현재의 옥동천이다. 이 옥동천은 동쪽에서 유입되며, 그 길이 역시 지도에 표현된 서강과 동강보다 훨씬 길다. 또한 상동면은 지도의 표현과 달리 옥동천의 상류에 위치해 있어야 한다. 옥동천의 방향과 길이가 잘못 표현되었기 때문에 상동면 역시 잘못 위치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영월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는 이와 같은 사실이 잘 반영되어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울릉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울릉도 지도도 표현 양식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주기에는 동서 80리, 남북50리로 되어 있으나 지도에는 남북이 약간 더 길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세로로 긴 사각형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해동지도》와 비교하여 잘못 필사된 곳도 발견된다. 섬의 오른쪽 아래에 ‘基北三四處’에서의 ‘北’은 ‘地’로 바꾸어 써야 한다. 본 지도에 나오는 基地 또는 基趾는 과거에 사람들이 거주했던 흔적을 의미하는 듯하며, 石葬은 그들의 돌무덤을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기타 船泊이 머물 수 있는 곳,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는 可居(處), 숙종 때 일본과의 소유권 분쟁 후 조선의 영토라는 내용을 새겨놓은 것으로 보이는 立標 등이 기록되어 있다. 오른쪽에 있는 于山島는 여러 사람에 의해 현재의 獨島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분명하지는 않다. 울릉도 본 섬 주위에 있는 작은 섬 중 가장 큰 관음도나 죽도를 가리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주기에는 울릉도에서 나는 특산물이 자세히 적혀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울릉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울릉도 지도도 표현 양식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주기에는 동서 80리, 남북50리로 되어 있으나 지도에는 남북이 약간 더 길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세로로 긴 사각형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해동지도》와 비교하여 잘못 필사된 곳도 발견된다. 섬의 오른쪽 아래에 ‘基北三四處’에서의 ‘北’은 ‘地’로 바꾸어 써야 한다. 본 지도에 나오는 基地 또는 基趾는 과거에 사람들이 거주했던 흔적을 의미하는 듯하며, 石葬은 그들의 돌무덤을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기타 船泊이 머물 수 있는 곳,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는 可居(處), 숙종 때 일본과의 소유권 분쟁 후 조선의 영토라는 내용을 새겨놓은 것으로 보이는 立標 등이 기록되어 있다. 오른쪽에 있는 于山島는 여러 사람에 의해 현재의 獨島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분명하지는 않다. 울릉도 본 섬 주위에 있는 작은 섬 중 가장 큰 관음도나 죽도를 가리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주기에는 울릉도에서 나는 특산물이 자세히 적혀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울진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의 英陽里, 古城山, 邑基는 《광여도》에 英陽界, 古山城, 邑治로 되어 있다. 표현 방식에서는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울진현 지도에는 英陽界, 古山城, 邑基로 나온다. 이를 통해 볼 때 英陽里와 古城山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邑基라는 지명을 통해 볼 때 최소한 본 지도의 지명은 《해동지도》를 참조하여 작성했음을 알 수 있다. 《해동지도》와 다르면서 《광여도》와 본 지도가 같은 지명도 있다. 맨 위쪽의 興富庫와 館은 《해동지도》에는 興富驛으로 나오며, 아래쪽의 德神驛은 《해동지도》에 德新驛으로 적혀 있다.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어 지도를 그렸기 때문에 실제로는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이 왜곡되고 있다. 본 지도에서 가장 사실과 다르게 표현된 것은 하천이다. 첫째, 斗川院 방향에서 내려오는 하천과 佛影寺 방면에서 내려오는 하천은 바다에 유입될 때까지 지도의 표현과 달리 서로 합류되지 않는다. 둘째, 遠南面과 聖留屈에서 내려오는 하천은 직접 바다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불영사에서 내려오는 물과 합해진 후 바다로 유출된다. 셋째, 英陽의 경계를 넘어 불영사에서 흘러오는 하천과 합류되는 현재의 왕피천을 구분하기 어렵다. 넷째, 서면 부분에는 낙동강의 상류 유역에 속하는 부분이 있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 중 세 번째 오류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울진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 2개의 지도는 정확성을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삼았음에도 불구하고 세 번째의 오류를 교정하지 못했다. 본 지도와 같은 정보에 기반하여 판단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왼쪽에 울진과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安東의 경계가 표시되어 있는 이유는 이곳에 안동의 월경지인 소천면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울진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의 英陽里, 古城山, 邑基는 《광여도》에 英陽界, 古山城, 邑治로 되어 있다. 표현 방식에서는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울진현 지도에는 英陽界, 古山城, 邑基로 나온다. 이를 통해 볼 때 英陽里와 古城山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邑基라는 지명을 통해 볼 때 최소한 본 지도의 지명은 《해동지도》를 참조하여 작성했음을 알 수 있다. 《해동지도》와 다르면서 《광여도》와 본 지도가 같은 지명도 있다. 맨 위쪽의 興富庫와 館은 《해동지도》에는 興富驛으로 나오며, 아래쪽의 德神驛은 《해동지도》에 德新驛으로 적혀 있다.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어 지도를 그렸기 때문에 실제로는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이 왜곡되고 있다. 본 지도에서 가장 사실과 다르게 표현된 것은 하천이다. 첫째, 斗川院 방향에서 내려오는 하천과 佛影寺 방면에서 내려오는 하천은 바다에 유입될 때까지 지도의 표현과 달리 서로 합류되지 않는다. 둘째, 遠南面과 聖留屈에서 내려오는 하천은 직접 바다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불영사에서 내려오는 물과 합해진 후 바다로 유출된다. 셋째, 英陽의 경계를 넘어 불영사에서 흘러오는 하천과 합류되는 현재의 왕피천을 구분하기 어렵다. 넷째, 서면 부분에는 낙동강의 상류 유역에 속하는 부분이 있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 중 세 번째 오류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울진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 2개의 지도는 정확성을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삼았음에도 불구하고 세 번째의 오류를 교정하지 못했다. 본 지도와 같은 정보에 기반하여 판단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왼쪽에 울진과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安東의 경계가 표시되어 있는 이유는 이곳에 안동의 월경지인 소천면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본 지도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원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原州는 1683년-1692년(숙종 9-18)과 1728년-1737년(영조 4-13) 사이에 原城縣으로 강등된 적이 있다. 본 지도의 제목인 原城牧은 原城縣으로 강등되었을 때의 명칭과 原州가 일반적으로 牧이었다는 사실이 겹쳐져 적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즉, 본 지도의 필사 시 原州가 原城으로 강등되었을 때 縣이었던 점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위쪽의 여백에는 ‘원성은 지금의 원주이다(原城今原州)’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 문구는 원주가 다시 승격되었을 때 본 지도의 이용자가 적어 넣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에는 原州牧으로 나오며, 《광여도》도 동일하다. 본 지도는 《해동지도》에 비해 잘못 적은 것과 생략된 것이 많다. 읍치에 있는 田原驛은 由原驛을, 읍치 아래쪽의 靑丘驛은 丹丘驛을, 읍치 오른쪽 위의 草所面은 所草面을 잘못 적은 것이다. 아래쪽의 新林驛에는 보라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다. 읍치 왼쪽의 楮田洞面과 왼쪽 아래의 富論面에는 驛과 동일한 크기의 사각형에 노란색이 칠해져 있다. 아울러 왼쪽의 呂州界 방면에는 池內面이 생략되어 있기도 하다. 이와 같은 문제점들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필사 과정에서 많은 실수를 했음을 알려준다. 《광여도》에는 이런 오류들이 대부분 시정되어 있다. 그러나 왼쪽의 지내면이 본 지도와 똑같이 생략되어 있고, 干川面을 千川面으로 적는 등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남북보다 동서가 훨씬 긴 고을임에도 세로로 긴 사각형에 그림에 따라 실제 모습과 상당히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가장 크게 잘못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의 하천이 동서의 흐름은 거의 없고, 남북의 흐름만 있는 것처럼 묘사되었다는 점이다. 왼쪽의 忠州界에서 흘러와 呂州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남한강이다. 위쪽의 橫城界로부터 들어와 남한강에 합류되는 하천이 현재의 섬강이다. 섬강은 읍치 서쪽에서 서남류하는데 본 지도에서는 마치 남류하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오른쪽의 左邊面에서 右邊面쪽으로 흐르는 하천은 남한강의 지류인 현재의 주천강이다. 주천강에서 남류하는 부분도 있지만 동류하는 부분도 있는데 본 지도에는 역시 남류하는 것으로만 묘사되어 있다. 맨 오른쪽에 표시된 沙川은 현재의 평창강으로 실제로는 극히 짧은 구간인데 남북으로 길게 표현되어 있다. (이기봉)
본 지도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원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原州는 1683년-1692년(숙종 9-18)과 1728년-1737년(영조 4-13) 사이에 原城縣으로 강등된 적이 있다. 본 지도의 제목인 原城牧은 原城縣으로 강등되었을 때의 명칭과 原州가 일반적으로 牧이었다는 사실이 겹쳐져 적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즉, 본 지도의 필사 시 原州가 原城으로 강등되었을 때 縣이었던 점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위쪽의 여백에는 ‘원성은 지금의 원주이다(原城今原州)’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 문구는 원주가 다시 승격되었을 때 본 지도의 이용자가 적어 넣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에는 原州牧으로 나오며, 《광여도》도 동일하다. 본 지도는 《해동지도》에 비해 잘못 적은 것과 생략된 것이 많다. 읍치에 있는 田原驛은 由原驛을, 읍치 아래쪽의 靑丘驛은 丹丘驛을, 읍치 오른쪽 위의 草所面은 所草面을 잘못 적은 것이다. 아래쪽의 新林驛에는 보라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다. 읍치 왼쪽의 楮田洞面과 왼쪽 아래의 富論面에는 驛과 동일한 크기의 사각형에 노란색이 칠해져 있다. 아울러 왼쪽의 呂州界 방면에는 池內面이 생략되어 있기도 하다. 이와 같은 문제점들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필사 과정에서 많은 실수를 했음을 알려준다. 《광여도》에는 이런 오류들이 대부분 시정되어 있다. 그러나 왼쪽의 지내면이 본 지도와 똑같이 생략되어 있고, 干川面을 千川面으로 적는 등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남북보다 동서가 훨씬 긴 고을임에도 세로로 긴 사각형에 그림에 따라 실제 모습과 상당히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가장 크게 잘못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의 하천이 동서의 흐름은 거의 없고, 남북의 흐름만 있는 것처럼 묘사되었다는 점이다. 왼쪽의 忠州界에서 흘러와 呂州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남한강이다. 위쪽의 橫城界로부터 들어와 남한강에 합류되는 하천이 현재의 섬강이다. 섬강은 읍치 서쪽에서 서남류하는데 본 지도에서는 마치 남류하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오른쪽의 左邊面에서 右邊面쪽으로 흐르는 하천은 남한강의 지류인 현재의 주천강이다. 주천강에서 남류하는 부분도 있지만 동류하는 부분도 있는데 본 지도에는 역시 남류하는 것으로만 묘사되어 있다. 맨 오른쪽에 표시된 沙川은 현재의 평창강으로 실제로는 극히 짧은 구간인데 남북으로 길게 표현되어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이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왼쪽 가운데의 外山面은 山外面의 誤記이고, 읍치 아래쪽에는 乾川驛이 보라색 사각형만 그려져 있고 글씨는 생략되어 있다. 《광여도》에는 이 부분이 제대로 표기되어 있으며,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이천부 지도에도 올바르게 되어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필사 과정에서 오류를 범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천부는 본 지도에도 남북이 동서보다 길게 표현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길다. 일정한 크기의 사각형 안에 고을 전체를 그리다보니까 이런 문제점이 발생한 것이다. 위쪽에서 흘러와 아래쪽 兎山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임진강 상류이다. 그런데 임진강 상류 중 일부가 잘못 표현되어 있다. 임진강 본류는 가운데 위쪽의 安邊界에 있는 防墻峙 훨씬 북쪽에서 발원하여 내려오지만 본 지도에는 그와 같은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못하다. 임진강의 지류 중의 하나인 고미탄천은 오른쪽 古味呑面에서 발원하여 平康의 땅으로 들어간다. 평강의 땅을 지난 고미탄천은 다시 聽浦面으로 들어와 임진강에 합류된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고미탄면의 물이 바로 청포면 방면으로 흘러오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평강계 방면에서 청포면으로 하천이 흘러 들어오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고미탄면의 물이 바로 들어오는 것 같은 표현은 동일하다. 또한 읍치가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되면서 그 동쪽의 하천이 지나치게 길게 그려져 있다. 임진강 본류나 고미탄천에 비하면 이 하천은 아주 작게 그려져야 사실과 부합된다. 이런 오류들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伊川 지도나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교정되어 있다. 지도 왼쪽의 外山面(山外面) 지역은 이천부 내에서 유일하게 예성강 유역에 속해 있는 곳이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이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왼쪽 가운데의 外山面은 山外面의 誤記이고, 읍치 아래쪽에는 乾川驛이 보라색 사각형만 그려져 있고 글씨는 생략되어 있다. 《광여도》에는 이 부분이 제대로 표기되어 있으며,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이천부 지도에도 올바르게 되어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필사 과정에서 오류를 범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천부는 본 지도에도 남북이 동서보다 길게 표현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길다. 일정한 크기의 사각형 안에 고을 전체를 그리다보니까 이런 문제점이 발생한 것이다. 위쪽에서 흘러와 아래쪽 兎山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임진강 상류이다. 그런데 임진강 상류 중 일부가 잘못 표현되어 있다. 임진강 본류는 가운데 위쪽의 安邊界에 있는 防墻峙 훨씬 북쪽에서 발원하여 내려오지만 본 지도에는 그와 같은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못하다. 임진강의 지류 중의 하나인 고미탄천은 오른쪽 古味呑面에서 발원하여 平康의 땅으로 들어간다. 평강의 땅을 지난 고미탄천은 다시 聽浦面으로 들어와 임진강에 합류된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고미탄면의 물이 바로 청포면 방면으로 흘러오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평강계 방면에서 청포면으로 하천이 흘러 들어오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고미탄면의 물이 바로 들어오는 것 같은 표현은 동일하다. 또한 읍치가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되면서 그 동쪽의 하천이 지나치게 길게 그려져 있다. 임진강 본류나 고미탄천에 비하면 이 하천은 아주 작게 그려져야 사실과 부합된다. 이런 오류들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伊川 지도나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교정되어 있다. 지도 왼쪽의 外山面(山外面) 지역은 이천부 내에서 유일하게 예성강 유역에 속해 있는 곳이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인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 오른쪽의 瑞和縣이 《광여도》에는 瑞和面, 그 아래쪽의 嵐交驛이 嵐丈驛으로 되어 있다. 표현 양식은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인제현 지도에는 2개 모두 본 지도처럼 그려져 있다. 주기에는 瑞和面이 기록되어 있어 《해동지도》에 틀리게 기록된 것을 《광여도》의 필사 시에 수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읍치 위쪽의 加兒面村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고,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주기에는 이런 명칭의 面이 없어 본 지도와 《광여도》의 필사 시에 面이란 글자 때문에 잘못 이해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도 이 지명이 나오지만 본 지도와 《광여도》에 사용된 面의 기호가 일괄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지도는 서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의 산줄기가 서북쪽으로부터 뻗어 내렸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읍치를 지나 왼쪽(서남)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소양강이다. 아래쪽(동남)에서 흘러와 읍치에서 소양강에 합류되는 하천이 내린천이고, 오른쪽 위의 高城界에서 흘러오는 하천이 현재의 인복천이다. 내린천 방면에는 《해동지도》에 麒麟界란 명칭이 적혀 있지만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적혀 있지 않다. 여기서 麒麟이란 춘천의 越境地였던 麒麟面을 의미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春川界라고 적는 것이 더 합당하다. 기타 北面은 嵐交驛 방면에 적어 넣는 것이 사실에 더 가깝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인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 오른쪽의 瑞和縣이 《광여도》에는 瑞和面, 그 아래쪽의 嵐交驛이 嵐丈驛으로 되어 있다. 표현 양식은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인제현 지도에는 2개 모두 본 지도처럼 그려져 있다. 주기에는 瑞和面이 기록되어 있어 《해동지도》에 틀리게 기록된 것을 《광여도》의 필사 시에 수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읍치 위쪽의 加兒面村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고,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주기에는 이런 명칭의 面이 없어 본 지도와 《광여도》의 필사 시에 面이란 글자 때문에 잘못 이해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도 이 지명이 나오지만 본 지도와 《광여도》에 사용된 面의 기호가 일괄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지도는 서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의 산줄기가 서북쪽으로부터 뻗어 내렸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읍치를 지나 왼쪽(서남)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소양강이다. 아래쪽(동남)에서 흘러와 읍치에서 소양강에 합류되는 하천이 내린천이고, 오른쪽 위의 高城界에서 흘러오는 하천이 현재의 인복천이다. 내린천 방면에는 《해동지도》에 麒麟界란 명칭이 적혀 있지만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적혀 있지 않다. 여기서 麒麟이란 춘천의 越境地였던 麒麟面을 의미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春川界라고 적는 것이 더 합당하다. 기타 北面은 嵐交驛 방면에 적어 넣는 것이 사실에 더 가깝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정선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오른쪽에는 三涉界가 2개 적혀 있는데, 三陟界에 대한 誤記이다. 주기에는 동쪽으로 三陟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것으로 적혀 있어 본 지도 필사 시의 실수라고 볼 수 있다. 위쪽의 江陵界에서 들어와 아래쪽의 平昌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남한강의 상류로서 현재는 동강 또는 조양강이라 불리고 있다. 읍치 부분이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되어 있지만 江陵界로부터 흘러오는 조양강의 유로는 실제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현재의 평창군 진부면에서 들어오는 오대천, 강릉시 왕산면에서 들어오는 송천, 정선군 임계면에서 들어오는 임계천의 방향이 대략 비슷하게 되어 있다. 평창군 진부면과 정선군 임계면은 조선시대에 모두 강릉부의 땅이었다. 다만 본 지도에서는 정성군 임계면에서 들어오는 임계천 부분에 三涉(陟)界가 잘못 적혀 있다. 이 점은 《광여도》에도 동일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정선군 지도에는 이 부분에 삼척계가 적혀 있지 않다. 아마 본 지도나 《광여도》의 필사 시에 주기를 토대로 삽입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러한 오류는 정확성을 추구한 《조선지도》의 정선과 삼척 지도, 김정호의 《동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면서 몇 가지 왜곡이 발생하고 있다. 南面에 있는 하천은 현재의 동남천으로 현재의 정선군 남면과 사북읍, 고한읍 지역이다. 瓦坪이라 적혀 있는 곳의 하천은 현재의 정선군 동면에 있는 하천이다. 이 두 하천은 고을 전체의 입장에서 볼 때 동남쪽으로 튀어나가 있다. 그러나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다보니 그런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읍치 오른쪽의 東面은 瓦坪 부근에 적어 넣어야 사실에 부합된다. 오른쪽 아래에 적혀 있는 安東界는 잘못된 것이다. 정선군은 안동과 경계를 접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安東界를 만날 수 있을 뿐이다. 《조선지도》의 정선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는 이런 오류가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정선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오른쪽에는 三涉界가 2개 적혀 있는데, 三陟界에 대한 誤記이다. 주기에는 동쪽으로 三陟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것으로 적혀 있어 본 지도 필사 시의 실수라고 볼 수 있다. 위쪽의 江陵界에서 들어와 아래쪽의 平昌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남한강의 상류로서 현재는 동강 또는 조양강이라 불리고 있다. 읍치 부분이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되어 있지만 江陵界로부터 흘러오는 조양강의 유로는 실제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현재의 평창군 진부면에서 들어오는 오대천, 강릉시 왕산면에서 들어오는 송천, 정선군 임계면에서 들어오는 임계천의 방향이 대략 비슷하게 되어 있다. 평창군 진부면과 정선군 임계면은 조선시대에 모두 강릉부의 땅이었다. 다만 본 지도에서는 정성군 임계면에서 들어오는 임계천 부분에 三涉(陟)界가 잘못 적혀 있다. 이 점은 《광여도》에도 동일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정선군 지도에는 이 부분에 삼척계가 적혀 있지 않다. 아마 본 지도나 《광여도》의 필사 시에 주기를 토대로 삽입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러한 오류는 정확성을 추구한 《조선지도》의 정선과 삼척 지도, 김정호의 《동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면서 몇 가지 왜곡이 발생하고 있다. 南面에 있는 하천은 현재의 동남천으로 현재의 정선군 남면과 사북읍, 고한읍 지역이다. 瓦坪이라 적혀 있는 곳의 하천은 현재의 정선군 동면에 있는 하천이다. 이 두 하천은 고을 전체의 입장에서 볼 때 동남쪽으로 튀어나가 있다. 그러나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다보니 그런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읍치 오른쪽의 東面은 瓦坪 부근에 적어 넣어야 사실에 부합된다. 오른쪽 아래에 적혀 있는 安東界는 잘못된 것이다. 정선군은 안동과 경계를 접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安東界를 만날 수 있을 뿐이다. 《조선지도》의 정선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는 이런 오류가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철원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왼쪽 위에 있는 積石倉은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철원부 지도뿐만 아니라 《광여도》에도 積石寺로 나온다. 지리지의 여러 기록을 참고해 볼 때 본 지도가 잘못된 것이다. 왼쪽 아래에는 평안도에 있는 博川의 명칭이 博川界로 나온다. 《해동지도》에는 같은 곳에 漣川界로 나오고 있는데 후자가 정확하다. 오른쪽의 險屹面은 險屹津을, 그 왼쪽의 孤石松은 孤石亭을 잘못 적은 것이다. 그 아래쪽의 豊田驛에는 본 지도책의 강원도 부분에서 驛에 일관되게 적용하던 보라색 사각형의 기호가 생략되어 있다. 이런 실수들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게 점검하면서 필사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광여도》는 본 지도에 비해 잘못 필사한 것이 거의 없다. 오른쪽 平康界와 金化界에서 들어와 永平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한탄강이다. 왼쪽의 하천들은 임진강의 지류인 역곡천이다. 읍치가 다른 지역에 비해 약간 확대되어 그려졌지만 하천을 비롯하여 전반적으로 고을의 실제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는 편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철원부가 세로로 긴 사각형에 그려도 큰 왜곡이 없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철원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왼쪽 위에 있는 積石倉은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철원부 지도뿐만 아니라 《광여도》에도 積石寺로 나온다. 지리지의 여러 기록을 참고해 볼 때 본 지도가 잘못된 것이다. 왼쪽 아래에는 평안도에 있는 博川의 명칭이 博川界로 나온다. 《해동지도》에는 같은 곳에 漣川界로 나오고 있는데 후자가 정확하다. 오른쪽의 險屹面은 險屹津을, 그 왼쪽의 孤石松은 孤石亭을 잘못 적은 것이다. 그 아래쪽의 豊田驛에는 본 지도책의 강원도 부분에서 驛에 일관되게 적용하던 보라색 사각형의 기호가 생략되어 있다. 이런 실수들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게 점검하면서 필사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광여도》는 본 지도에 비해 잘못 필사한 것이 거의 없다. 오른쪽 平康界와 金化界에서 들어와 永平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한탄강이다. 왼쪽의 하천들은 임진강의 지류인 역곡천이다. 읍치가 다른 지역에 비해 약간 확대되어 그려졌지만 하천을 비롯하여 전반적으로 고을의 실제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는 편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철원부가 세로로 긴 사각형에 그려도 큰 왜곡이 없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춘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위쪽의 史呑內面과 北山外面, 아래쪽의 南內面은 다른 면보다 작은 노란색 사각형으로, 오른쪽 위의 麒麟面은 노란색이 없는 적황색의 사각형으로 표현되어 있다. 또한 아래쪽의 安保驛은 노란색에 보라색을 덧칠한 듯한 색의 흔적이 보인다. 마지막으로 읍치 위쪽에는 노란색 사각형은 그렸지만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다른 지도를 필사하면서 발생한 혼란이었다고 생각된다. 《광여도》에서는 기린면이 적혀 있지 않은 것을 제외하면 이런 혼란 없이 깨끗하게 그려져 있다. 표현 방식에서는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에도 이런 지명들은 모두 제대로 적혀 있다. 위쪽의 狼川界에서 들어와 아래쪽의 陽根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북한강 본류이다. 오른쪽 위의 獜蹄界에서 들어와 북한강에 합류되는 하천이 현재의 소양강이다. 그러나 두 하천의 유로는 실제와 다른 곳이 많다. 이렇게 된 이유는 첫째,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에 맞추는 과정에서 왜곡이 발생하였다. 둘째, 읍치 지역을 다른 지역보다 훨씬 크게 그렸기 때문에 왜곡이 발생하였다. 첫 번째 이유 때문에 파생된 문제 중의 하나가 오른쪽 위의 麒麟面에 대한 표현이다. 기린면은 실제로는 홍천과 인제의 땅을 넘어가 있는 월경지이다. 현재의 인제군 기린면과 상남면에 있었는데 본 지도에는 마치 소양강 유역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둘째의 이유 때문에 파생된 문제 중의 하나는 남쪽의 洪川界를 지나 홍천강에 합류되는 작은 지류들은 거의 표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춘천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런 점들이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춘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위쪽의 史呑內面과 北山外面, 아래쪽의 南內面은 다른 면보다 작은 노란색 사각형으로, 오른쪽 위의 麒麟面은 노란색이 없는 적황색의 사각형으로 표현되어 있다. 또한 아래쪽의 安保驛은 노란색에 보라색을 덧칠한 듯한 색의 흔적이 보인다. 마지막으로 읍치 위쪽에는 노란색 사각형은 그렸지만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다른 지도를 필사하면서 발생한 혼란이었다고 생각된다. 《광여도》에서는 기린면이 적혀 있지 않은 것을 제외하면 이런 혼란 없이 깨끗하게 그려져 있다. 표현 방식에서는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에도 이런 지명들은 모두 제대로 적혀 있다. 위쪽의 狼川界에서 들어와 아래쪽의 陽根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북한강 본류이다. 오른쪽 위의 獜蹄界에서 들어와 북한강에 합류되는 하천이 현재의 소양강이다. 그러나 두 하천의 유로는 실제와 다른 곳이 많다. 이렇게 된 이유는 첫째,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에 맞추는 과정에서 왜곡이 발생하였다. 둘째, 읍치 지역을 다른 지역보다 훨씬 크게 그렸기 때문에 왜곡이 발생하였다. 첫 번째 이유 때문에 파생된 문제 중의 하나가 오른쪽 위의 麒麟面에 대한 표현이다. 기린면은 실제로는 홍천과 인제의 땅을 넘어가 있는 월경지이다. 현재의 인제군 기린면과 상남면에 있었는데 본 지도에는 마치 소양강 유역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둘째의 이유 때문에 파생된 문제 중의 하나는 남쪽의 洪川界를 지나 홍천강에 합류되는 작은 지류들은 거의 표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춘천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런 점들이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통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에 있는 巨登驛은 《광여도》에 巨豊驛으로 나온다. 표현 방식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통천군 지도에서도 《광여도》처럼 나온다. 읍치 동남쪽 해안가에는 《광여도》와 《해동지도》에 있는 鉢里峯, 廣野川橋, 阿干里 등의 지명이 생략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본 지도가 《광여도》에 비해 오기와 생략의 오류를 범하고 있고, 표현 양식이나 글씨체가 거친 편이다. 통천군은 동서의 폭보다 남북의 폭이 훨씬 길다. 본 지도에도 동서보다 남북이 길게 표현되어 있지만 실제적인 비율은 더 크다.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그리다보니까 실제적인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동쪽의 해안가는 서북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남북 직선의 형태를 취한 것처럼 되어 있다. 하천 역시 정동 방향을 취하지 않은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만으로는 그와 같은 사실을 확인하기 어렵다. 주기의 형식과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하며, 《해동지도》와는 형식은 다르지만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통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에 있는 巨登驛은 《광여도》에 巨豊驛으로 나온다. 표현 방식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통천군 지도에서도 《광여도》처럼 나온다. 읍치 동남쪽 해안가에는 《광여도》와 《해동지도》에 있는 鉢里峯, 廣野川橋, 阿干里 등의 지명이 생략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본 지도가 《광여도》에 비해 오기와 생략의 오류를 범하고 있고, 표현 양식이나 글씨체가 거친 편이다. 통천군은 동서의 폭보다 남북의 폭이 훨씬 길다. 본 지도에도 동서보다 남북이 길게 표현되어 있지만 실제적인 비율은 더 크다.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그리다보니까 실제적인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동쪽의 해안가는 서북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남북 직선의 형태를 취한 것처럼 되어 있다. 하천 역시 정동 방향을 취하지 않은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만으로는 그와 같은 사실을 확인하기 어렵다. 주기의 형식과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하며, 《해동지도》와는 형식은 다르지만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평강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西面 부근에 新山城이 표시되어 있는데, 《광여도》에는 新城山으로 나온다. 표현 양식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평강현 지도에는 《광여도》와 동일하게 나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보인다. 본 지도에는 하천의 표시가 상당히 부정확하게 되어 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위쪽에 있는 분수령의 실제 위치가 잘못 비정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分水嶺이 훨씬 아래쪽으로, 그리고 오른쪽으로 옮겨 표시해야 한다. 분수령 위쪽의 하천은 안변을 거쳐 동해로 빠져나가는 남대천으로 상류의 일부가 평강현에 걸쳐 있었다. 분수령이 너무 북쪽으로 올라가 있기 때문에 여기서 발원하여 安峽界로 빠져나가는 현재의 평안천이 지나치게 길게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한편으로 위쪽의 伊川界로 흘러나가는 현재의 고미탄천을 지나치게 작게 표현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평강현에 걸쳐 있었던 고미탄천 유역의 실제 면적은 평안천 유역보다 더 넓다. 이로 인해 고미탄천 유역에 배치되어야 할 楡津面과 大田面, 高揷面 등이 평안천 유역에 표시되어 있다. 읍치 오른쪽의 하천은 현재의 한탄강 상류인데 유역 면적이 역시 너무 넓게 표시되어 있다. 이 역시 분수령이 지나치게 북쪽으로 올라가 있고, 이 하천의 발원지를 분수령 가까이 배치하려 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평강현에 걸쳐 있는 실제 유역 면적은 고미탄천 유역보다 작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평강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런 부분들이 모두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평강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西面 부근에 新山城이 표시되어 있는데, 《광여도》에는 新城山으로 나온다. 표현 양식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평강현 지도에는 《광여도》와 동일하게 나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보인다. 본 지도에는 하천의 표시가 상당히 부정확하게 되어 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위쪽에 있는 분수령의 실제 위치가 잘못 비정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分水嶺이 훨씬 아래쪽으로, 그리고 오른쪽으로 옮겨 표시해야 한다. 분수령 위쪽의 하천은 안변을 거쳐 동해로 빠져나가는 남대천으로 상류의 일부가 평강현에 걸쳐 있었다. 분수령이 너무 북쪽으로 올라가 있기 때문에 여기서 발원하여 安峽界로 빠져나가는 현재의 평안천이 지나치게 길게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한편으로 위쪽의 伊川界로 흘러나가는 현재의 고미탄천을 지나치게 작게 표현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평강현에 걸쳐 있었던 고미탄천 유역의 실제 면적은 평안천 유역보다 더 넓다. 이로 인해 고미탄천 유역에 배치되어야 할 楡津面과 大田面, 高揷面 등이 평안천 유역에 표시되어 있다. 읍치 오른쪽의 하천은 현재의 한탄강 상류인데 유역 면적이 역시 너무 넓게 표시되어 있다. 이 역시 분수령이 지나치게 북쪽으로 올라가 있고, 이 하천의 발원지를 분수령 가까이 배치하려 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평강현에 걸쳐 있는 실제 유역 면적은 고미탄천 유역보다 작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평강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런 부분들이 모두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평창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평창군 지도도 표현 방식이 다르지만 내용과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다만 《해동지도》가 남북보다는 동서가 긴 형태를 취하고 있는 방면에 본 지도와 《광여도》는 동서보다는 남북이 길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에서 가장 잘못된 것은 하천의 유로 표시이다. 우선 읍치를 휘감아 돌아 아래의 原州界 방면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평창강이다. 이 하천은 실제로는 위쪽의 梨峴(뱃재) 바로 왼쪽의 江陵界로부터 흘러들어와 北面을 거쳐 읍치를 향해야 한다. 그리고 평창군의 서쪽(왼쪽)에는 江陵이 아니라 原州와 경계를 맞대고 있는데 본 지도에는 江陵界로 잘못 적혀 있다. 이러한 경계에 대한 오해가 평창강의 유입로를 잘못 이해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잘못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평창 지도에도 이어지며, 김정호의 《청구도》에도 교정되지 않고 그대로 나타난다. 김정호의 《동여도》와 《대동여지도》에 와서야 이 부분이 교정된다. 오른쪽의 하천은 현재의 동강이다. 동강은 실제로 오른쪽의 正善에서 흘러와 味呑面과 東面 사이를 가로질러 寧月界로 빠져나간다. 그런데 본 지도에서는 마치 평창에서 발원하여 영월계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미탄면과 동면은 읍치의 동남쪽 방향으로 쑥 튀어나간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런데 사각형의 종이 위에 그리다보니까 이런 모습이 상당히 왜곡되어 있다. 다만 이와 같은 오류가 《조선지도》나 김정호의 지도에까지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평창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평창군 지도도 표현 방식이 다르지만 내용과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다만 《해동지도》가 남북보다는 동서가 긴 형태를 취하고 있는 방면에 본 지도와 《광여도》는 동서보다는 남북이 길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에서 가장 잘못된 것은 하천의 유로 표시이다. 우선 읍치를 휘감아 돌아 아래의 原州界 방면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평창강이다. 이 하천은 실제로는 위쪽의 梨峴(뱃재) 바로 왼쪽의 江陵界로부터 흘러들어와 北面을 거쳐 읍치를 향해야 한다. 그리고 평창군의 서쪽(왼쪽)에는 江陵이 아니라 原州와 경계를 맞대고 있는데 본 지도에는 江陵界로 잘못 적혀 있다. 이러한 경계에 대한 오해가 평창강의 유입로를 잘못 이해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잘못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평창 지도에도 이어지며, 김정호의 《청구도》에도 교정되지 않고 그대로 나타난다. 김정호의 《동여도》와 《대동여지도》에 와서야 이 부분이 교정된다. 오른쪽의 하천은 현재의 동강이다. 동강은 실제로 오른쪽의 正善에서 흘러와 味呑面과 東面 사이를 가로질러 寧月界로 빠져나간다. 그런데 본 지도에서는 마치 평창에서 발원하여 영월계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미탄면과 동면은 읍치의 동남쪽 방향으로 쑥 튀어나간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런데 사각형의 종이 위에 그리다보니까 이런 모습이 상당히 왜곡되어 있다. 다만 이와 같은 오류가 《조선지도》나 김정호의 지도에까지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평해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한자가 다른 경우는 위쪽의 懸鍾山이 《광여도》에 縣鍾山으로, 왼쪽 아래의 元水項은 元水頂으로 되어 있다.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여 《광여도》와 본 지도의 저본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해동지도》의 평해군 지도에는 懸鍾山과 元水嶺으로 나온다. 본 지도의 것이 《해동지도》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읍치 오른쪽에 있는 北下里面은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나오지만 주기에는 모두 下里面으로 나온다. 읍치를 다른 지역보다 확대해서 그렸기 때문에 일부 오해될 만한 곳이 발생했다. 읍치 아래쪽의 하천은 현재의 남대천이다. 그런데 왼쪽 아래의 元水項에서 발원되는 하천의 길이가 溫井에서 발원되는 하천과 길이가 거의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아주 짧게 표현되어 있다. 또한 南面은 남대천과 상관없는 위치인 箭竹山 부근에 있어야 한다. 고을의 모양이 사각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각형으로 그려 몇 가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측면도 있다. 위쪽의 金壯山부터 오른쪽 바닷가까지 蔚珍과의 경계선은 동서방향이 아니라 실제로는 동북 방향으로 되어 있다. 이에 따라 近北面과 遠北面 지역은 북쪽으로 갈수록 동서의 폭이 좁아지는데 본 지도에는 그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런 오류는 김정호의 《동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평해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한자가 다른 경우는 위쪽의 懸鍾山이 《광여도》에 縣鍾山으로, 왼쪽 아래의 元水項은 元水頂으로 되어 있다.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여 《광여도》와 본 지도의 저본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해동지도》의 평해군 지도에는 懸鍾山과 元水嶺으로 나온다. 본 지도의 것이 《해동지도》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읍치 오른쪽에 있는 北下里面은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나오지만 주기에는 모두 下里面으로 나온다. 읍치를 다른 지역보다 확대해서 그렸기 때문에 일부 오해될 만한 곳이 발생했다. 읍치 아래쪽의 하천은 현재의 남대천이다. 그런데 왼쪽 아래의 元水項에서 발원되는 하천의 길이가 溫井에서 발원되는 하천과 길이가 거의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아주 짧게 표현되어 있다. 또한 南面은 남대천과 상관없는 위치인 箭竹山 부근에 있어야 한다. 고을의 모양이 사각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각형으로 그려 몇 가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측면도 있다. 위쪽의 金壯山부터 오른쪽 바닷가까지 蔚珍과의 경계선은 동서방향이 아니라 실제로는 동북 방향으로 되어 있다. 이에 따라 近北面과 遠北面 지역은 북쪽으로 갈수록 동서의 폭이 좁아지는데 본 지도에는 그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런 오류는 김정호의 《동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홍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아래쪽의 歛依山面이 《광여도》에는 劒依山面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와 표현 양식에서는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홍천현 지도에는 釰依山面으로 되어 있다. 釰은 劒을 대신하여 한국에서 사용되는 한자였기 때문에 본 지도보다는 《광여도》가 올바르다. 주기에는 지도에 없는 奈村面과 芳面이 기록되어 있다. 《광여도》의 주기에는 이것이 奈村面과 北方面으로 되어 있고, 《해동지도》의 주기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지도에는 본 지도와 《광여도》에 禁村面과 北方面으로, 《해동지도》에 奈村面과 北方面으로 되어 있다. 《광여도》의 필사 시 《해동지도》의 지도를 필사하면서 주기에 잘못 적힌 芳面을 北方面으로 고쳤지만 지도에서는 ‘奈’를 ‘禁’으로 잘못 이해하는 오류도 범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의 작성자는 지도는 《광여도》의 것을 따르면서 주기는 《해동지도》의 것을 따른 것으로 생각된다. 동서가 남북보다 훨씬 고을의 모습을 반대로 남북이 동서보다 길게 표현하는 과정에서 여러 왜곡이 발생하였다. 읍치를 지나 왼쪽의 春川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홍천강이다. 홍천강의 상류에는 위쪽의 末村面에서 내려오는 현재의 장남천과 瑞石面에서 내려오는 현재의 내촌천이 있다. 이 중 내촌천이 장남천보다 훨씬 길지만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잘 표현되어 있지 않다. 이로 인해 面의 위치 표시에서 잘못 위치시킨 것이 있다. 化村面은 장남천과 내촌천이 만나는 지점에 표시되어야 하고, 禁村面(奈村面)은 화촌면 위치에 있어야 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홍천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는 대부분이 사실과 비슷하게 교정되어 있다. 다만 내촌면의 위치만은 본 지도처럼 실제와 다르게 표시되어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홍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아래쪽의 歛依山面이 《광여도》에는 劒依山面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와 표현 양식에서는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홍천현 지도에는 釰依山面으로 되어 있다. 釰은 劒을 대신하여 한국에서 사용되는 한자였기 때문에 본 지도보다는 《광여도》가 올바르다. 주기에는 지도에 없는 奈村面과 芳面이 기록되어 있다. 《광여도》의 주기에는 이것이 奈村面과 北方面으로 되어 있고, 《해동지도》의 주기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지도에는 본 지도와 《광여도》에 禁村面과 北方面으로, 《해동지도》에 奈村面과 北方面으로 되어 있다. 《광여도》의 필사 시 《해동지도》의 지도를 필사하면서 주기에 잘못 적힌 芳面을 北方面으로 고쳤지만 지도에서는 ‘奈’를 ‘禁’으로 잘못 이해하는 오류도 범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의 작성자는 지도는 《광여도》의 것을 따르면서 주기는 《해동지도》의 것을 따른 것으로 생각된다. 동서가 남북보다 훨씬 고을의 모습을 반대로 남북이 동서보다 길게 표현하는 과정에서 여러 왜곡이 발생하였다. 읍치를 지나 왼쪽의 春川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홍천강이다. 홍천강의 상류에는 위쪽의 末村面에서 내려오는 현재의 장남천과 瑞石面에서 내려오는 현재의 내촌천이 있다. 이 중 내촌천이 장남천보다 훨씬 길지만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잘 표현되어 있지 않다. 이로 인해 面의 위치 표시에서 잘못 위치시킨 것이 있다. 化村面은 장남천과 내촌천이 만나는 지점에 표시되어야 하고, 禁村面(奈村面)은 화촌면 위치에 있어야 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홍천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는 대부분이 사실과 비슷하게 교정되어 있다. 다만 내촌면의 위치만은 본 지도처럼 실제와 다르게 표시되어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회양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에 비해 잘못된 부분이 몇 개 보인다. 오른쪽 맨 위에는 ‘通杻川串界嶺’이라는 이해되기 어려운 문구가 보인다. 《해동지도》에서는 通川界와 杻串嶺이 위 아래로 적혀 있는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잘못 이해하여 난해한 문구로 바꿔놓은 것으로 생각된다. 《광여도》에서도 이 부분은 헷갈릴 수 있게 기록하였다. 읍치에 있는 德澤溟은 《해동지도》에 德津溟으로 적혀 있고, 《광여도》에는 후자처럼 기록되어 있다. 가운데에 있는 新安驛에는 驛의 기호인 보라색 사각형이 아니라 面의 기호인 노란색의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기도 하다. 《해동지도》에서는 이 부분이 올바르게 되어 있다. 읍치 왼쪽 아래에 있는 天宝菴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는데, 《광여도》에는 天實菴으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하다. 읍치를 휘감고 아래쪽의 金城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북한강 최상류이다. 금강산에서 발원하여 아래쪽의 楊口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북한강의 지류인 금강천이다. 그런데 금강천의 표현에서 오해할 수 있는 2가지 문제점이 발생되고 있다. 첫째, 회양부의 땅에 있는 금강천의 규모는 북한강 본류 유역에 비해 그렇게 작지도 않은데 지도에는 아주 작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읍치에서 볼 때 동남쪽으로 튀어나가 있는 금강천 유역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게 고을 전체의 모습을 그리면서 아주 작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둘째, 금강천은 남류하여 楊口界 방면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남류하다 서류하여 金城界로 빠져나간다. 이것은 금강천과 양구 방면으로 흘러나가는 문등면 지역의 작은 지류들을 혼동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기타 금강천 왼쪽에 적혀 있는 金城과 通溝라는 지명은 이 지역에 있었던 金城縣의 通溝面이라는 의미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회양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와 같은 측면이 사실에 가깝게 수정되어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회양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에 비해 잘못된 부분이 몇 개 보인다. 오른쪽 맨 위에는 ‘通杻川串界嶺’이라는 이해되기 어려운 문구가 보인다. 《해동지도》에서는 通川界와 杻串嶺이 위 아래로 적혀 있는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잘못 이해하여 난해한 문구로 바꿔놓은 것으로 생각된다. 《광여도》에서도 이 부분은 헷갈릴 수 있게 기록하였다. 읍치에 있는 德澤溟은 《해동지도》에 德津溟으로 적혀 있고, 《광여도》에는 후자처럼 기록되어 있다. 가운데에 있는 新安驛에는 驛의 기호인 보라색 사각형이 아니라 面의 기호인 노란색의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기도 하다. 《해동지도》에서는 이 부분이 올바르게 되어 있다. 읍치 왼쪽 아래에 있는 天宝菴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는데, 《광여도》에는 天實菴으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하다. 읍치를 휘감고 아래쪽의 金城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북한강 최상류이다. 금강산에서 발원하여 아래쪽의 楊口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북한강의 지류인 금강천이다. 그런데 금강천의 표현에서 오해할 수 있는 2가지 문제점이 발생되고 있다. 첫째, 회양부의 땅에 있는 금강천의 규모는 북한강 본류 유역에 비해 그렇게 작지도 않은데 지도에는 아주 작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읍치에서 볼 때 동남쪽으로 튀어나가 있는 금강천 유역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게 고을 전체의 모습을 그리면서 아주 작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둘째, 금강천은 남류하여 楊口界 방면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남류하다 서류하여 金城界로 빠져나간다. 이것은 금강천과 양구 방면으로 흘러나가는 문등면 지역의 작은 지류들을 혼동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기타 금강천 왼쪽에 적혀 있는 金城과 通溝라는 지명은 이 지역에 있었던 金城縣의 通溝面이라는 의미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회양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와 같은 측면이 사실에 가깝게 수정되어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횡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왼쪽 아래의 葛豊驛에 面의 색인 노란색을 칠했다가 驛의 색인 보라색을 덧칠한 것 같은 모습이 보인다. 《광여도》에는 이와 같은 오류가 나타나지 않는다. 갈풍역 위쪽의 加五峙는 《광여도》에 五加峙로 적혀 있다. 표현 양식은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횡성현 지도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본 지도와 《해동지도》의 것이 올바르며, 《광여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위쪽에 있는 松原面은 《광여도》에 松源面으로 되어 있으며, 《해동지도》에는 公根面으로 되어 있다. 《광여도》의 주기에는 공근면으로, 본 지도에는 송원면으로 되어 있다. 공근면이 맞는 것이기 때문에 광여도에서는 지도에서만 잘못되었던 것이 본 지도에서는 지도와 주기 모두 잘못되어 있다. 가장 위쪽의 泰坡山도 《광여도》에 동일하게 되어 있는데, 《해동지도》에는 泰歧山으로 되어 있다. 《해동지도》의 것이 옳으며, 본 지도와 《광여도》의 필사 시에 잘못 옮긴 것이다. 읍치 위쪽의 山頭鴻은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실제로는 鴻頭山이며, 이를 통해 한번 잘못 기록된 것이 이후의 필사 과정에서 교정되지 않았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이밖에 태기산은 실제로는 읍치의 거의 동쪽에 있는 것인데 마치 북쪽에 있는 것처럼 묘사되었다. 이에 따라 晴日面에서 내려오는 하천이 거의 南流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실제로는 태기산에서 발원하여 서류하다가 남류해야 한다. 이 하천은 지도 상의 前川보다 훨씬 긴 하천임에도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왜곡되어 있다. 甲川面의 위치도 청일면 방면에 적혀 있어야 한다. 맨 오른쪽의 하천은 주천강의 상류로서 영월로 흘러가 남한강에 합류된다. 이런 오류들의 근본적인 원인은 남북보다 동서가 긴 횡성현의 모습을 반대로 동서보다 남북이 길게 그리면서 발생한 것이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횡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왼쪽 아래의 葛豊驛에 面의 색인 노란색을 칠했다가 驛의 색인 보라색을 덧칠한 것 같은 모습이 보인다. 《광여도》에는 이와 같은 오류가 나타나지 않는다. 갈풍역 위쪽의 加五峙는 《광여도》에 五加峙로 적혀 있다. 표현 양식은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횡성현 지도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본 지도와 《해동지도》의 것이 올바르며, 《광여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위쪽에 있는 松原面은 《광여도》에 松源面으로 되어 있으며, 《해동지도》에는 公根面으로 되어 있다. 《광여도》의 주기에는 공근면으로, 본 지도에는 송원면으로 되어 있다. 공근면이 맞는 것이기 때문에 광여도에서는 지도에서만 잘못되었던 것이 본 지도에서는 지도와 주기 모두 잘못되어 있다. 가장 위쪽의 泰坡山도 《광여도》에 동일하게 되어 있는데, 《해동지도》에는 泰歧山으로 되어 있다. 《해동지도》의 것이 옳으며, 본 지도와 《광여도》의 필사 시에 잘못 옮긴 것이다. 읍치 위쪽의 山頭鴻은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실제로는 鴻頭山이며, 이를 통해 한번 잘못 기록된 것이 이후의 필사 과정에서 교정되지 않았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이밖에 태기산은 실제로는 읍치의 거의 동쪽에 있는 것인데 마치 북쪽에 있는 것처럼 묘사되었다. 이에 따라 晴日面에서 내려오는 하천이 거의 南流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실제로는 태기산에서 발원하여 서류하다가 남류해야 한다. 이 하천은 지도 상의 前川보다 훨씬 긴 하천임에도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왜곡되어 있다. 甲川面의 위치도 청일면 방면에 적혀 있어야 한다. 맨 오른쪽의 하천은 주천강의 상류로서 영월로 흘러가 남한강에 합류된다. 이런 오류들의 근본적인 원인은 남북보다 동서가 긴 횡성현의 모습을 반대로 동서보다 남북이 길게 그리면서 발생한 것이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흡곡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흡곡현은 일제시대의 통천군 흡곡면에 해당되는 아주 작은 군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고을과 동일한 크기의 종이 위에 그렸기 때문에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없다. 다만 주기에 호수가 겨우 778호밖에 기록되지 않아 작은 고을임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또한 고을의 서쪽은 아주 좁고, 동쪽으로 갈수록 넓은데 사각형의 종이에 맞게 그리면서 서쪽 역시 넓은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또한 남북의 폭보다 동서의 폭이 훨씬 넓음에도 불구하고 반대로 그려져 있다. 지도 위쪽에는 大路와 小路란 문구가 보이고 있다. 표현 양식이 다르나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흡곡현 지도에는 도로가 그려져 있고, 그 위에 대로와 소로의 문구가 적혀 있다. 본 지도와 《광여도》 등에서는 도로는 생략하고 문구만 남겨놓아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어놓았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흡곡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흡곡현은 일제시대의 통천군 흡곡면에 해당되는 아주 작은 군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고을과 동일한 크기의 종이 위에 그렸기 때문에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없다. 다만 주기에 호수가 겨우 778호밖에 기록되지 않아 작은 고을임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또한 고을의 서쪽은 아주 좁고, 동쪽으로 갈수록 넓은데 사각형의 종이에 맞게 그리면서 서쪽 역시 넓은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또한 남북의 폭보다 동서의 폭이 훨씬 넓음에도 불구하고 반대로 그려져 있다. 지도 위쪽에는 大路와 小路란 문구가 보이고 있다. 표현 양식이 다르나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흡곡현 지도에는 도로가 그려져 있고, 그 위에 대로와 소로의 문구가 적혀 있다. 본 지도와 《광여도》 등에서는 도로는 생략하고 문구만 남겨놓아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어놓았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금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본 지도는 아래쪽의 한강을 《광여도》에서 2개의 실선으로 표시한 것과 달리 1개의 실선으로만 표시해 혼란을 주고 있다. 읍치를 둘러싼 산줄기의 표현 양식도 《광여도》와 약간 다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금천현 지도도 표현 방법과 내용에서의 일부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구도는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위쪽의 果川界에서 들어오는 하천이 현재의 안양천이며, 왼쪽 중간의 北紫霞洞에서 내려오는 것이 현재의 도림천이다. 북자하동에는 현재 서울대학교가 들어서 있다. 고을의 통일성과 읍치의 풍수적 명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산지를 배치하였지만 대략적인 방향과 위치는 정확한 편이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금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본 지도는 아래쪽의 한강을 《광여도》에서 2개의 실선으로 표시한 것과 달리 1개의 실선으로만 표시해 혼란을 주고 있다. 읍치를 둘러싼 산줄기의 표현 양식도 《광여도》와 약간 다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금천현 지도도 표현 방법과 내용에서의 일부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구도는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위쪽의 果川界에서 들어오는 하천이 현재의 안양천이며, 왼쪽 중간의 北紫霞洞에서 내려오는 것이 현재의 도림천이다. 북자하동에는 현재 서울대학교가 들어서 있다. 고을의 통일성과 읍치의 풍수적 명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산지를 배치하였지만 대략적인 방향과 위치는 정확한 편이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가평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지도 왼쪽에 春川界를 春山界로, 加平川을 加平界로 잘못 적었다는 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가평군 지도는 표현 방식이나 일부 내용에서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하여 상호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본 지도와 《광여도》가 서남쪽을 위로 향해 그린 반면 《해동지도》는 읍치로 뻗은 산줄기가 오는 방향인 正西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따라서 본 지도를 왼쪽으로 90도 정도 돌리면 《해동지도》의 것과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동일해 진다. 『여지도서』의 가평군 지도는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좀 다르기는 하지만 서남쪽을 위로 향해 그린 점은 동일하다. 왜 서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는지 분명하지는 않으나 王室의 胎가 묻힌 胎峯이 같은 방향에 있는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은가 추정된다. 왼쪽의 昭陽江下流라고 적혀 있는 부분에서 들어와 오른쪽 위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북한강이다. 실제로는 북한강의 굴곡이 본 지도보다 훨씬 많이 형성되어 있다. 아래쪽 오른쪽에는 永平界가 巨林川 상류에 적혀 있다. 현재의 가평천 상류에 있는 북면의 적목리 부근이 영평 땅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가평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지도 왼쪽에 春川界를 春山界로, 加平川을 加平界로 잘못 적었다는 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가평군 지도는 표현 방식이나 일부 내용에서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하여 상호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본 지도와 《광여도》가 서남쪽을 위로 향해 그린 반면 《해동지도》는 읍치로 뻗은 산줄기가 오는 방향인 正西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따라서 본 지도를 왼쪽으로 90도 정도 돌리면 《해동지도》의 것과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동일해 진다. 『여지도서』의 가평군 지도는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좀 다르기는 하지만 서남쪽을 위로 향해 그린 점은 동일하다. 왜 서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는지 분명하지는 않으나 王室의 胎가 묻힌 胎峯이 같은 방향에 있는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은가 추정된다. 왼쪽의 昭陽江下流라고 적혀 있는 부분에서 들어와 오른쪽 위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북한강이다. 실제로는 북한강의 굴곡이 본 지도보다 훨씬 많이 형성되어 있다. 아래쪽 오른쪽에는 永平界가 巨林川 상류에 적혀 있다. 현재의 가평천 상류에 있는 북면의 적목리 부근이 영평 땅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강화부 지도와 구도 및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오른쪽 여백에 도성에서 강화까지 오는데 걸리는 날짜가, 위쪽에 강화부의 異稱들이 적혀 있는 것이 다른 점이다. 지도의 명칭은 江華府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京畿水營이 있었던 喬同府를 함께 그렸다. 특이하게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왼쪽 아래에 한강에 대해 이 지역에서 부르던 祖江이 적혀 있다. 성곽은 이중의 실선으로 그렸다. 다만 강화도의 서해안 즉, 이 지도의 왼쪽 부분에만 해안가에 성곽이 축조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섬 전체에 성곽이 축조되어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강화도의 해안가에는 종3품의 僉使, 종4품의 萬戶, 종9품의 別將 등 파견된 무관의 직급에 따라 鎭, 戶, 別 등으로 구분된 鎭堡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天登寺가 있는 곳은 현재의 정족산성이며, 月串鎭 맞은편은 文殊山城이다. 강화도와 육지 사이의 수로는 삼남의 稅穀船이 서울로 가기 위해 꼭 통과해야 하는 鹽河이다. 지도에도 위쪽에는 三南往來水口, 아래쪽에는 京城往來水口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바다에는 밀물(潮進)과 썰물(潮退)에 따라 개벌이 바뀌는 상황이 상대적으로 자세히 적혀 있다. 또한 각 섬에는 江 또는 江華로 표시된 江華府와 本營 또는 水營으로 표시된 喬同府 중 어디에 속해 있는가가 자세히 적혀 있다. 이 지역의 섬들이 거리나 방향에 상관없이 속해 있는 고을이 달랐기 때문이다. 강화도 오른쪽의 섬은 현재의 석모도이다. 현재는 간척 사업에 의해 鷹岩島와 그 위쪽의 섬도 모두 연결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도 이곳에 간척사업이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이 지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水營屬新官筒’에서 ‘筒’은 주로 간척지에서 저수지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용어이다. 그 왼쪽에 호수처럼 표시된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며, 屯田은 이러한 간척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 갯벌은 주로 소금의 생산지로 이용되었다. 塩盆과 塩釜는 그러한 煮鹽 생산지를 의미한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강화부 지도와 구도 및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오른쪽 여백에 도성에서 강화까지 오는데 걸리는 날짜가, 위쪽에 강화부의 異稱들이 적혀 있는 것이 다른 점이다. 지도의 명칭은 江華府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京畿水營이 있었던 喬同府를 함께 그렸다. 특이하게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왼쪽 아래에 한강에 대해 이 지역에서 부르던 祖江이 적혀 있다. 성곽은 이중의 실선으로 그렸다. 다만 강화도의 서해안 즉, 이 지도의 왼쪽 부분에만 해안가에 성곽이 축조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섬 전체에 성곽이 축조되어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강화도의 해안가에는 종3품의 僉使, 종4품의 萬戶, 종9품의 別將 등 파견된 무관의 직급에 따라 鎭, 戶, 別 등으로 구분된 鎭堡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天登寺가 있는 곳은 현재의 정족산성이며, 月串鎭 맞은편은 文殊山城이다. 강화도와 육지 사이의 수로는 삼남의 稅穀船이 서울로 가기 위해 꼭 통과해야 하는 鹽河이다. 지도에도 위쪽에는 三南往來水口, 아래쪽에는 京城往來水口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바다에는 밀물(潮進)과 썰물(潮退)에 따라 개벌이 바뀌는 상황이 상대적으로 자세히 적혀 있다. 또한 각 섬에는 江 또는 江華로 표시된 江華府와 本營 또는 水營으로 표시된 喬同府 중 어디에 속해 있는가가 자세히 적혀 있다. 이 지역의 섬들이 거리나 방향에 상관없이 속해 있는 고을이 달랐기 때문이다. 강화도 오른쪽의 섬은 현재의 석모도이다. 현재는 간척 사업에 의해 鷹岩島와 그 위쪽의 섬도 모두 연결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도 이곳에 간척사업이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이 지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水營屬新官筒’에서 ‘筒’은 주로 간척지에서 저수지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용어이다. 그 왼쪽에 호수처럼 표시된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며, 屯田은 이러한 간척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 갯벌은 주로 소금의 생산지로 이용되었다. 塩盆과 塩釜는 그러한 煮鹽 생산지를 의미한다. (이기봉)
해안선이나 하천의 유로 및 산줄기 등 전체적인 구도는 도성도와 마찬가지로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경기도 지도와 거의 비슷하여 상호 연관성이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주기면의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하다. 그러나 수록된 정보의 양이라는 측면에서는 《광여도》보다 축소되고 있으며, 일부 부분은 올바르게 되어 있다. 일단 축소된 내용을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모두 생략된 내용으로는 해안가에 설치되어 있던 鎭堡가 있다. 이밖에도 종6품의 察訪이 파견된 찰방역 중 良才驛이 표시되어 있지 않으며, 한성부 밑의 한강 부분에 있었던 浦口와 津渡, 烽燧 등도 많이 생략되었다. 반면에 陵墓, 書院 등은 일부를 제외하면 생략된 것이 거의 없다. 군사나 교통 관계의 정보는 주로 생략하고, 조선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정보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즉, 이 지도는 군사적 측면보다는 문화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본 지도가 올바른 측면으로는 《광여도》에서 혼란스럽게 표시되어 있던 하천의 유로가 대표적이다. 《광여도》에 아래쪽의 安城에 있는 현재의 안성천과 竹山에 있는 현재의 청미천이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그려진 것이 본 지도에는 올바르게 되어 있다. 《광여도》에 南陽의 서쪽에 하천이 남북을 가로지른 듯 그려져 있는 하천의 모습도 수정되어 있다. 표현 양식에서도 다른 측면이 있다. 이 중 본 지도가 《광여도》보다 더 혼란스러운 것은 하천의 표현 양식이다. 《광여도》에서는 한강은 두 줄의 실선으로, 나머지 하천은 한 줄의 실선으로 표시하여 구분하기가 쉬웠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모두 두 줄의 실선으로 그려 구분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長湍에서 흘러와 通津 부분에서 한강에 합류되는 하천은 현재의 임진강이다. 그런데 임진강은 북쪽의 兎山界나 동쪽의 鐵原界에서 발원하는 것이 아니라 흘러들어온다. 본 지도에서는 마치 이곳이 발원지인 것처럼 착각할 수 있게 그려져 있다. 《광여도》에서도 이 부분은 모호하게 처리되어 있다. 開城府 왼쪽의 예성강 역시 발원지를 착각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이기봉)
해안선이나 하천의 유로 및 산줄기 등 전체적인 구도는 도성도와 마찬가지로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경기도 지도와 거의 비슷하여 상호 연관성이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주기면의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하다. 그러나 수록된 정보의 양이라는 측면에서는 《광여도》보다 축소되고 있으며, 일부 부분은 올바르게 되어 있다. 일단 축소된 내용을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모두 생략된 내용으로는 해안가에 설치되어 있던 鎭堡가 있다. 이밖에도 종6품의 察訪이 파견된 찰방역 중 良才驛이 표시되어 있지 않으며, 한성부 밑의 한강 부분에 있었던 浦口와 津渡, 烽燧 등도 많이 생략되었다. 반면에 陵墓, 書院 등은 일부를 제외하면 생략된 것이 거의 없다. 군사나 교통 관계의 정보는 주로 생략하고, 조선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정보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즉, 이 지도는 군사적 측면보다는 문화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본 지도가 올바른 측면으로는 《광여도》에서 혼란스럽게 표시되어 있던 하천의 유로가 대표적이다. 《광여도》에 아래쪽의 安城에 있는 현재의 안성천과 竹山에 있는 현재의 청미천이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그려진 것이 본 지도에는 올바르게 되어 있다. 《광여도》에 南陽의 서쪽에 하천이 남북을 가로지른 듯 그려져 있는 하천의 모습도 수정되어 있다. 표현 양식에서도 다른 측면이 있다. 이 중 본 지도가 《광여도》보다 더 혼란스러운 것은 하천의 표현 양식이다. 《광여도》에서는 한강은 두 줄의 실선으로, 나머지 하천은 한 줄의 실선으로 표시하여 구분하기가 쉬웠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모두 두 줄의 실선으로 그려 구분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長湍에서 흘러와 通津 부분에서 한강에 합류되는 하천은 현재의 임진강이다. 그런데 임진강은 북쪽의 兎山界나 동쪽의 鐵原界에서 발원하는 것이 아니라 흘러들어온다. 본 지도에서는 마치 이곳이 발원지인 것처럼 착각할 수 있게 그려져 있다. 《광여도》에서도 이 부분은 모호하게 처리되어 있다. 開城府 왼쪽의 예성강 역시 발원지를 착각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고양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오른쪽 위에 표시된 禿山峯과 高烽峯이 《광여도》에 각각 禿山烽과 高峯烽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광여도》의 내용이 실제와 부합되어 본 지도가 전사하는 과정에서 오류를 범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고양군 지도도 일부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의 차이가 있지만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동일하여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는 도로가 표시되어 있지만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모두 생략되고 京路, 中路, 小路라는 명칭만 남아 있다. 현재의 고양시 덕양구 고양동에 있었던 읍치에는 관아건물이 상당히 자세하게 표시되어 있다. 읍치가 다른 지역보다 확대 과장되어 그려져 있다. 이것은 읍치의 풍수적 명당성을 표현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밀집되어 있는 정보를 자세히 그리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아래쪽의 하천은 현재의 한강으로 실제로는 동남쪽에서 들어와 서북쪽으로 흘러간다. 지도에는 越海라는 표현이 두 군데나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밀물 때 이곳에 바닷물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맨 오른쪽에는 京江下流라고 적혀 있는데, 도성 남쪽의 한강 구간을 京江으로 불렀기 때문이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고양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오른쪽 위에 표시된 禿山峯과 高烽峯이 《광여도》에 각각 禿山烽과 高峯烽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광여도》의 내용이 실제와 부합되어 본 지도가 전사하는 과정에서 오류를 범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고양군 지도도 일부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의 차이가 있지만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동일하여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는 도로가 표시되어 있지만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모두 생략되고 京路, 中路, 小路라는 명칭만 남아 있다. 현재의 고양시 덕양구 고양동에 있었던 읍치에는 관아건물이 상당히 자세하게 표시되어 있다. 읍치가 다른 지역보다 확대 과장되어 그려져 있다. 이것은 읍치의 풍수적 명당성을 표현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밀집되어 있는 정보를 자세히 그리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아래쪽의 하천은 현재의 한강으로 실제로는 동남쪽에서 들어와 서북쪽으로 흘러간다. 지도에는 越海라는 표현이 두 군데나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밀물 때 이곳에 바닷물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맨 오른쪽에는 京江下流라고 적혀 있는데, 도성 남쪽의 한강 구간을 京江으로 불렀기 때문이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과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과천현 지도도 표현 방법과 내용에서의 일부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구도는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고을의 鎭山인 冠岳山(631m)과 淸溪山(582.5m) 및 修理山(474.8m)을 중심으로 여러 산줄기가 뻗어 있다. 산줄기의 이어짐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본 지도에서는 산의 높낮이가 잘 표현되어 있지 못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과천지도도 회화식으로 그렸으나 세 개의 산을 웅장하게 그린 것과 대조적이다. 본 지도에는 오른쪽 위의 양재천 유역과 아래의 안양천 유역 사이에 있는 낮은 분수계를 산줄기로 연결시키고 있다. 또한 安山界라 적혀 있는 부분도 실제로는 낮은 분수계에 불과하다. 이런 기법은 조선시대의 회화식 군현지도에 자주 나타나며, 정확성을 중요하게 여긴 김정호의 《동여도》와 《대동여지도》에도 이어지고 있다. 북쪽에 그려진 한강의 유로나 고을의 전체적인 모양 등은 실제와 상당히 다르게 묘사되어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과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과천현 지도도 표현 방법과 내용에서의 일부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구도는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고을의 鎭山인 冠岳山(631m)과 淸溪山(582.5m) 및 修理山(474.8m)을 중심으로 여러 산줄기가 뻗어 있다. 산줄기의 이어짐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본 지도에서는 산의 높낮이가 잘 표현되어 있지 못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과천지도도 회화식으로 그렸으나 세 개의 산을 웅장하게 그린 것과 대조적이다. 본 지도에는 오른쪽 위의 양재천 유역과 아래의 안양천 유역 사이에 있는 낮은 분수계를 산줄기로 연결시키고 있다. 또한 安山界라 적혀 있는 부분도 실제로는 낮은 분수계에 불과하다. 이런 기법은 조선시대의 회화식 군현지도에 자주 나타나며, 정확성을 중요하게 여긴 김정호의 《동여도》와 《대동여지도》에도 이어지고 있다. 북쪽에 그려진 한강의 유로나 고을의 전체적인 모양 등은 실제와 상당히 다르게 묘사되어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제공되고 있는 《광여도》의 광주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다만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를 보이고 있다. 《광여도》에서는 제대로 표현되어 있는 慶安驛과 오른쪽 아래의 奉安驛이 본 지도에서는 面과 동일한 색으로 그려져 있어 혼란을 주고 있다. 왼쪽 위에 있는 彦州面 동쪽의 한강도 본 지도에서는 단지 실선으로만 표시되어 있어 혼란을 주고 있다. 이밖에 왼쪽 水原界에 《광여도》에는 德陽君墓로 되어 있는 것이 본 지도에는 德良君墓로 되어 있는 등 글자일부에서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東西南의 방향이 표시되어 있지만 대략적인 정확성만을 갖고 있다. 한강의 유로가 고을 전체를 휘감고 있는 것처럼 표현했지만 실제로는 고을 북쪽을 정동에서 정서 방향으로 지나갈 뿐이다. 읍치는 현재의 남한산성에 있었는데, 일반적인 회화식 군현지도와 마찬가지로 많은 정보를 표시하기 위해 다른 지역보다 대축척으로 그렸다. 물론 읍치 이외의 지역도 동일한 축척을 적용하여 거리의 동질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도 왼쪽 위에 보이는 聲串面과 松洞面은 각각 지금의 안산시와 화성시에 속해 있는 곳으로 읍치에서 오른쪽 屯地까지의 거리보다 약 5배 정도 떨어져 있었다. 결국 이 지도에서는 거리와 방향의 정확성보다는 대략적인 방향과 인문 정보의 수록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볼 수 있다. 지도에서 나타난 거리의 부정확성은 주기에 적어놓은 각 고을까지의 거리, 각 면의 初境과 終境 기록을 통해 보완할 수 있다. 다만 지도와 주기의 면이 일치하지 않는 것도 있다. 거리와 방향의 부정확성 때문에 회화식 고지도를 미숙한 지도로 평가하기도 했지만 보다 많은 인문 정보의 수록이나 이미지의 전달이라는 측면에서는 재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도 방향과 거리에서는 부정확하지만 정보의 이미지 전달을 중요하게 여기는 회화식의 지도들이 그려지고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제공되고 있는 《광여도》의 광주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다만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를 보이고 있다. 《광여도》에서는 제대로 표현되어 있는 慶安驛과 오른쪽 아래의 奉安驛이 본 지도에서는 面과 동일한 색으로 그려져 있어 혼란을 주고 있다. 왼쪽 위에 있는 彦州面 동쪽의 한강도 본 지도에서는 단지 실선으로만 표시되어 있어 혼란을 주고 있다. 이밖에 왼쪽 水原界에 《광여도》에는 德陽君墓로 되어 있는 것이 본 지도에는 德良君墓로 되어 있는 등 글자일부에서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東西南의 방향이 표시되어 있지만 대략적인 정확성만을 갖고 있다. 한강의 유로가 고을 전체를 휘감고 있는 것처럼 표현했지만 실제로는 고을 북쪽을 정동에서 정서 방향으로 지나갈 뿐이다. 읍치는 현재의 남한산성에 있었는데, 일반적인 회화식 군현지도와 마찬가지로 많은 정보를 표시하기 위해 다른 지역보다 대축척으로 그렸다. 물론 읍치 이외의 지역도 동일한 축척을 적용하여 거리의 동질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도 왼쪽 위에 보이는 聲串面과 松洞面은 각각 지금의 안산시와 화성시에 속해 있는 곳으로 읍치에서 오른쪽 屯地까지의 거리보다 약 5배 정도 떨어져 있었다. 결국 이 지도에서는 거리와 방향의 정확성보다는 대략적인 방향과 인문 정보의 수록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볼 수 있다. 지도에서 나타난 거리의 부정확성은 주기에 적어놓은 각 고을까지의 거리, 각 면의 初境과 終境 기록을 통해 보완할 수 있다. 다만 지도와 주기의 면이 일치하지 않는 것도 있다. 거리와 방향의 부정확성 때문에 회화식 고지도를 미숙한 지도로 평가하기도 했지만 보다 많은 인문 정보의 수록이나 이미지의 전달이라는 측면에서는 재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도 방향과 거리에서는 부정확하지만 정보의 이미지 전달을 중요하게 여기는 회화식의 지도들이 그려지고 있다. (이기봉)
지도의 명칭이 喬桐水營으로 바뀌었지만 본 사이트에서 제공되고 있는 《광여도》의 喬桐府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일부 표현 방법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예를 들면 《광여도》에는 없지만 읍성에 적의 화살이나 총포 공격을 피하면서 적을 공격하는 성가퀴(女裝 또는 城堞)가 그려져 있다. 또한 《광여도》와 달리 읍성 왼쪽의 南面 龍井里와 북쪽의 南面 大雅里에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다. 《광여도》나 본 지도 모두 교동도의 실제 모습과 상당히 다르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우선 읍치와 기타 선창 등이 다른 지역보다 확대되어 그려졌기 때문이다. 읍치와 선창 부근에 가장 많은 정보가 밀집되어 있어 이를 자세히 수록하려면 이와 같은 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다. 船倉은 보통 戰船을 정박하던 곳을 일컫는 곳이다. 섬 중앙에 있는 花盖山(259m)을 제외하면 아주 낮은 야산에 불과하다. 하천이 표시된 지역은 대부분 저지로서 간척된 곳이 많은 섬이다. 선창 위쪽의 貯水處는 간척 후 염분을 제거하고, 관개를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교동도 이외의 지역에 대한 표시도 실제와 거의 부합하지 않는다. 인근 고을이나 섬은 단지 방향만 맞을 뿐 거리나 수로의 모습은 실제와 다르다. 다만 주기에 각 경계까지의 거리를 자세히 적어놓아 지도의 단점을 보완해 주고 있다. 본 지도의 명칭이 喬桐水營으로 된 것은 이곳에 설치되어 있던 水營 때문이다. 경기도의 수영은 원래 南陽의 花梁鎭에 있었지만 1629년(인조 7)에 본 지역으로 옮겨왔다. 이후 1633년(인조 11)에 三道統禦使를 두어 경기도, 황해도, 충청도의 水軍을 관장하게 하였다. (이기봉)
지도의 명칭이 喬桐水營으로 바뀌었지만 본 사이트에서 제공되고 있는 《광여도》의 喬桐府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일부 표현 방법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예를 들면 《광여도》에는 없지만 읍성에 적의 화살이나 총포 공격을 피하면서 적을 공격하는 성가퀴(女裝 또는 城堞)가 그려져 있다. 또한 《광여도》와 달리 읍성 왼쪽의 南面 龍井里와 북쪽의 南面 大雅里에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다. 《광여도》나 본 지도 모두 교동도의 실제 모습과 상당히 다르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우선 읍치와 기타 선창 등이 다른 지역보다 확대되어 그려졌기 때문이다. 읍치와 선창 부근에 가장 많은 정보가 밀집되어 있어 이를 자세히 수록하려면 이와 같은 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다. 船倉은 보통 戰船을 정박하던 곳을 일컫는 곳이다. 섬 중앙에 있는 花盖山(259m)을 제외하면 아주 낮은 야산에 불과하다. 하천이 표시된 지역은 대부분 저지로서 간척된 곳이 많은 섬이다. 선창 위쪽의 貯水處는 간척 후 염분을 제거하고, 관개를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교동도 이외의 지역에 대한 표시도 실제와 거의 부합하지 않는다. 인근 고을이나 섬은 단지 방향만 맞을 뿐 거리나 수로의 모습은 실제와 다르다. 다만 주기에 각 경계까지의 거리를 자세히 적어놓아 지도의 단점을 보완해 주고 있다. 본 지도의 명칭이 喬桐水營으로 된 것은 이곳에 설치되어 있던 水營 때문이다. 경기도의 수영은 원래 南陽의 花梁鎭에 있었지만 1629년(인조 7)에 본 지역으로 옮겨왔다. 이후 1633년(인조 11)에 三道統禦使를 두어 경기도, 황해도, 충청도의 水軍을 관장하게 하였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교하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첫째, 지도의 명칭이 《광여도》에는 교하현으로 되어 있다는 점 둘째, 읍치에 있는 官舍와 司倉이 《광여도》에는 衙와 倉으로 적혀 있다는 점뿐이다. 交河는 조선 초기 이후 縣으로 있었다. 1731년(영조 7)에 읍치에 長陵을 안치하고, 읍치는 현재의 파주시 금릉동으로 옮기면서 郡으로 승격되었다. 읍치는 얼마 후에 현재의 읍치 아래쪽에 있는 長命山 동쪽인 현재의 교하면 교하리로 옮겨진다. 본 지도에 표시된 읍치는 장릉을 안치하기 이전의 위치로서 현재의 탄현면 갈현리 일대이다. 따라서 지도의 내용만으로 보면 《광여도》의 교하현이란 명칭이 적합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교하군 지도도 표현 방식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은 본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도 읍치의 위치가 본 지도와 동일함에도 교하현이 아니라 교하군으로 되어 있다. 지도의 내용은 군으로 승격되기 이전에, 지도의 명칭이 적힌 주기는 군으로 승격된 이후에 작성되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광여도》에서는 지도의 내용에 맞추기 위해 교하현으로, 본 지도는 전사된 시기의 명칭에 맞추기 위해 교하군으로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교하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첫째, 지도의 명칭이 《광여도》에는 교하현으로 되어 있다는 점 둘째, 읍치에 있는 官舍와 司倉이 《광여도》에는 衙와 倉으로 적혀 있다는 점뿐이다. 交河는 조선 초기 이후 縣으로 있었다. 1731년(영조 7)에 읍치에 長陵을 안치하고, 읍치는 현재의 파주시 금릉동으로 옮기면서 郡으로 승격되었다. 읍치는 얼마 후에 현재의 읍치 아래쪽에 있는 長命山 동쪽인 현재의 교하면 교하리로 옮겨진다. 본 지도에 표시된 읍치는 장릉을 안치하기 이전의 위치로서 현재의 탄현면 갈현리 일대이다. 따라서 지도의 내용만으로 보면 《광여도》의 교하현이란 명칭이 적합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교하군 지도도 표현 방식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은 본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도 읍치의 위치가 본 지도와 동일함에도 교하현이 아니라 교하군으로 되어 있다. 지도의 내용은 군으로 승격되기 이전에, 지도의 명칭이 적힌 주기는 군으로 승격된 이후에 작성되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광여도》에서는 지도의 내용에 맞추기 위해 교하현으로, 본 지도는 전사된 시기의 명칭에 맞추기 위해 교하군으로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김포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鄕校 오른쪽의 冷井山峯과 아래쪽의 杏山이 《광여도》에는 冷井山烽과 古山으로 적혀 있다. 전자는 《광여도》가, 후자는 본 지도가 맞다. 또한 오른쪽 豊山君山所 아래쪽에 《광여도》에는 龜伏亭과 甘巖이 적혀 있다. 왼쪽에는 楊州界라고 적혀 있는데 실제로는 陽川界로 고쳐야 한다. 한가운데에 있는 章島 역시 章陵의 오기이다. 두 개 모두 《광여도》에서도 동일하게 틀리고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김포군 지도도 위쪽에 西海가 바다처럼 표시되어 있지 않은 점,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다른 점을 제외하면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동일하여 상호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위쪽의 西海와 아래쪽의 한강이 마치 동서 일직선의 형태인 것처럼 그려져 있다. 그러나 한강은 동남쪽에서 서북쪽으로 거의 일직선이며, 서해는 동남에서 서북쪽으로 향하지만 해안선이 복잡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김포군 지도도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비슷한 구도를 하고 있어 상호 관련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김포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鄕校 오른쪽의 冷井山峯과 아래쪽의 杏山이 《광여도》에는 冷井山烽과 古山으로 적혀 있다. 전자는 《광여도》가, 후자는 본 지도가 맞다. 또한 오른쪽 豊山君山所 아래쪽에 《광여도》에는 龜伏亭과 甘巖이 적혀 있다. 왼쪽에는 楊州界라고 적혀 있는데 실제로는 陽川界로 고쳐야 한다. 한가운데에 있는 章島 역시 章陵의 오기이다. 두 개 모두 《광여도》에서도 동일하게 틀리고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김포군 지도도 위쪽에 西海가 바다처럼 표시되어 있지 않은 점,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다른 점을 제외하면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동일하여 상호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위쪽의 西海와 아래쪽의 한강이 마치 동서 일직선의 형태인 것처럼 그려져 있다. 그러나 한강은 동남쪽에서 서북쪽으로 거의 일직선이며, 서해는 동남에서 서북쪽으로 향하지만 해안선이 복잡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김포군 지도도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비슷한 구도를 하고 있어 상호 관련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남양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新里面 왼쪽의 西如堤面에 다른 面처럼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그 위쪽의 花梁鎭은 《광여도》에는 面과 동일하게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에는 그런 표시를 하지 않았다. 화량진 옆의 念佛山峰에서의 峰과 細串面 왼쪽의 峯은 《광여도》에 烽으로 되어 있다. 오른쪽 위의 旀加串面은 《광여도》에 旀知串面이라 적혀 있다. 모두 《광여도》의 기록이 정확하다. 서해안에 있는 섬들의 크기와 거리는 실제와 다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德積島는 훨씬 서쪽에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아마 일정한 지면에 그리기 위해 거리를 별로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大阜島의 크기는 仙監島의 10배 이상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섬들이 모두 남양부에 속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큰 섬 중에 남양부에 속해 있었던 섬에는 本府地라고 표시되어 있다. 작은 섬 중에서도 남양부에 속해 있었던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섞여 있는데, 구분되고 있지 않다. 아래쪽에 표시된 충청도의 땅들은 실제와 전혀 관계없는 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단지 각 고을의 田稅와 大同米가 옮겨지는 船路의 방향을 표시한 것일 뿐이다. 아래쪽의 分古面은 수원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다. 지도에는 水原地, 水(原)海倉 등을 써넣어 월경지임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왼쪽의 水乾每島는 수원의 건매도란 의미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남양부 지도와 동일하지는 않지만 대략적인 구도가 비슷하여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남양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新里面 왼쪽의 西如堤面에 다른 面처럼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그 위쪽의 花梁鎭은 《광여도》에는 面과 동일하게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에는 그런 표시를 하지 않았다. 화량진 옆의 念佛山峰에서의 峰과 細串面 왼쪽의 峯은 《광여도》에 烽으로 되어 있다. 오른쪽 위의 旀加串面은 《광여도》에 旀知串面이라 적혀 있다. 모두 《광여도》의 기록이 정확하다. 서해안에 있는 섬들의 크기와 거리는 실제와 다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德積島는 훨씬 서쪽에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아마 일정한 지면에 그리기 위해 거리를 별로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大阜島의 크기는 仙監島의 10배 이상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섬들이 모두 남양부에 속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큰 섬 중에 남양부에 속해 있었던 섬에는 本府地라고 표시되어 있다. 작은 섬 중에서도 남양부에 속해 있었던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섞여 있는데, 구분되고 있지 않다. 아래쪽에 표시된 충청도의 땅들은 실제와 전혀 관계없는 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단지 각 고을의 田稅와 大同米가 옮겨지는 船路의 방향을 표시한 것일 뿐이다. 아래쪽의 分古面은 수원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다. 지도에는 水原地, 水(原)海倉 등을 써넣어 월경지임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왼쪽의 水乾每島는 수원의 건매도란 의미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남양부 지도와 동일하지는 않지만 대략적인 구도가 비슷하여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都城이란 왕이 거주하는 궁전과 중앙 관부 및 인구 밀집 지역을 둘러싼 王城을 의미한다. 도성이란 정의에 입각하여 보면 본 지도에서는 성곽의 안쪽만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도성은 단순히 성곽의 안쪽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수도라는 일반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다. 조선에서는 수도의 고유명칭 으로서 漢城府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으며, 8道와 동급의 행정단위로 인정받았다. 한성부의 으뜸 벼슬인 漢城判尹도 정2품관으로서 外職이 아닌 內職으로 인정받았다. 본 지도에도 성곽의 안쪽만이 아니라 바깥쪽을 포함하는 한성부가 그려져 있다. 1744년(영조 20)에 편찬된《續大典》에 의하면 한성부의 경계는 동쪽이 大菩洞-水踰峴-牛耳川-上下伐里-長位-松溪橋-中浪浦, 남쪽이 箭串橋-新村-豆毛浦-龍山에 이르는 강, 서쪽이 麻浦-望遠亭-城山-沙川渡-時威洞-石串峴에 이르는 강과 내, 북쪽이 石串峴 서남의 하천 합류지점으로부터 大棗里-舊舘基-延曙-蛾眉山-猪噬峴-普賢峯-大菩洞에 이르는 산등성이로 되어 있다. 이 지도에는 《속대전》에 나오는 경계의 지명이 대부분 표시되어 있어 상호 연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도의 전체적인 구도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다만 건물이나 성곽 표시, 지명 위치에서만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을 뿐이다. 도성은 조선에서 가장 많은 인문적 정보가 집중되어 있고, 수요도 많았기 때문에 가장 많이 그려진 지도 중의 하나이다. 대부분의 회화식 지도와 마찬가지로 본 지도에도 정보가 가장 많이 밀집되어 있는 성곽 안과 밖의 축척을 달리하여 그렸다. 그러나 본 지도의 가장 큰 특징은 성곽 내부를 아주 간략하게 처리했다는 점이다.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궁전, 조선의 정통성을 의미하는 宗廟와 社稷 및 成均館은 명칭까지 자세하게 기록하였다. 반면에 현재의 세종로 양편에 즐비했던 6조를 비롯한 중앙 관부는 건물의 모습만 그려 넣었고, 풍수적인 명당수인 淸溪川과 그 위의 다리는 간단하게 표시되어 있다. 도성의 主山인 白岳山을 비롯하여 도성의 산세와 성곽 및 성문의 모습은 상대적으로 자세하게 그리고 있다. 성곽 밖은 안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세히 그렸다. 아래쪽의 한강변에는 豆毛浦로부터 西江까지 조선시대에 번영했던 포구와 나루가 대부분 그려져 있다. 맨 왼쪽의 山城은 城山의 오기이다. 한강 남쪽에 적혀 있는 산은 한강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아마 성곽 안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산줄기와 물줄기에 의해 겹겹이 싸여있는 도성의 모습을 강조하려 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1760년(영조 36)에 慶熙宮으로 개칭된 慶德宮이 원래의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어 영조대 전반기의 사정이 반영된 지도를 베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마전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오른쪽 위에 楡木津과 客舍 위쪽의 胎峯이 《광여도》에는 각각 楡林津과 昭峯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마전군 지도도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비슷하여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도에는 위의 지명이 각각 楡林津과 胎峯으로 되어 있다. 유림진은 일반적으로 澄波江 또는 澄波渡라고 하며, 임진강에서 배가 올라가는 최상류 지점으로 알려져 있다. 위쪽의 漣川界에서 들어와 왼쪽의 積城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임진강이다. 오른쪽의 楊州界에서 들어와 임진강에 합류하는 하천은 현재의 한탄강이다. 지도에는 모두 大江으로 적혀 있는데, 고유한 명칭이 아니라 ‘큰 강’이라는 일반명사로서 사용된 것이다. 지도에는 2개의 면만 표시되어 있는 반면에 주기에는 5개의 면이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는 점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회화식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하천의 유로나 산줄기가 실제와 정확히 부합되지는 않는다. 客舍가 있는 읍치의 풍수적으로 명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실제의 지형을 변형시켜 그린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마전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오른쪽 위에 楡木津과 客舍 위쪽의 胎峯이 《광여도》에는 각각 楡林津과 昭峯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마전군 지도도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비슷하여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도에는 위의 지명이 각각 楡林津과 胎峯으로 되어 있다. 유림진은 일반적으로 澄波江 또는 澄波渡라고 하며, 임진강에서 배가 올라가는 최상류 지점으로 알려져 있다. 위쪽의 漣川界에서 들어와 왼쪽의 積城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임진강이다. 오른쪽의 楊州界에서 들어와 임진강에 합류하는 하천은 현재의 한탄강이다. 지도에는 모두 大江으로 적혀 있는데, 고유한 명칭이 아니라 ‘큰 강’이라는 일반명사로서 사용된 것이다. 지도에는 2개의 면만 표시되어 있는 반면에 주기에는 5개의 면이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는 점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회화식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하천의 유로나 산줄기가 실제와 정확히 부합되지는 않는다. 客舍가 있는 읍치의 풍수적으로 명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실제의 지형을 변형시켜 그린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부평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본 지도에는 왼쪽 위의 毛月串面과 가운데 아래의 玉毛面에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광여도》에서는 이와 같은 오류가 나타나고 있지 않다. 읍치 오른쪽 위의 古山城이 본 지도에는 명칭만 적혀 있지만 《광여도》에는 성곽 표시가 되어 있다. 富平府란 명칭 왼쪽에는 金浦界가 金津界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하다. 본 지도는 일반적인 회화식 군현지도와 마찬가지로 다른 지역에 비해 읍치가 확대 과장되어 있다. 이런 방식을 사용한 이유는 지도에 표시할 정보가 읍치에 가장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읍치의 산세를 명당인 것처럼 표현하여 정치적 위엄을 높이기 위한 목적 때문이기도 하다. 읍치에는 지방관이 업무를 수행하던 衙舍와 望闕向拜하며 왕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던 客舍를 포함하여 여러 관아 건물이 자세히 표시된 편이다. 읍치 남쪽은 현재의 굴포천 유역에 해당되는 저평한 지역이다. 산세가 높지 않은 이런 지역에서는 관개를 위해 저수지를 많이 쌓았는데, 본 지도에도 여러 개의 防築이 표시되어 있다. 본 고을은 서쪽으로 서해에 접해 있는데, 지도에도 이러한 사실이 잘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동쪽에 표시된 한강과는 직접적으로 접해 있는 지역이 없었다. 지도에는 이 고을이 한강과 직접적으로 접해 있지 않다는 사실을 陽川地, 衿川界, 陽川界, 陽川, 金浦界 등의 문자를 넣어 표시하였다. 그렇더라도 본 지도의 표현만으로는 본 고을이 한강과 접해 있는지 여부를 이해하기 어렵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부평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본 지도에는 왼쪽 위의 毛月串面과 가운데 아래의 玉毛面에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광여도》에서는 이와 같은 오류가 나타나고 있지 않다. 읍치 오른쪽 위의 古山城이 본 지도에는 명칭만 적혀 있지만 《광여도》에는 성곽 표시가 되어 있다. 富平府란 명칭 왼쪽에는 金浦界가 金津界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하다. 본 지도는 일반적인 회화식 군현지도와 마찬가지로 다른 지역에 비해 읍치가 확대 과장되어 있다. 이런 방식을 사용한 이유는 지도에 표시할 정보가 읍치에 가장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읍치의 산세를 명당인 것처럼 표현하여 정치적 위엄을 높이기 위한 목적 때문이기도 하다. 읍치에는 지방관이 업무를 수행하던 衙舍와 望闕向拜하며 왕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던 客舍를 포함하여 여러 관아 건물이 자세히 표시된 편이다. 읍치 남쪽은 현재의 굴포천 유역에 해당되는 저평한 지역이다. 산세가 높지 않은 이런 지역에서는 관개를 위해 저수지를 많이 쌓았는데, 본 지도에도 여러 개의 防築이 표시되어 있다. 본 고을은 서쪽으로 서해에 접해 있는데, 지도에도 이러한 사실이 잘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동쪽에 표시된 한강과는 직접적으로 접해 있는 지역이 없었다. 지도에는 이 고을이 한강과 직접적으로 접해 있지 않다는 사실을 陽川地, 衿川界, 陽川界, 陽川, 金浦界 등의 문자를 넣어 표시하였다. 그렇더라도 본 지도의 표현만으로는 본 고을이 한강과 접해 있는지 여부를 이해하기 어렵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삭령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차이가 몇 가지 나타나고 있다. 첫째, 《광여도》에 鵬耳山으로 적혀 있던 것이 위쪽에 鴨耳山으로 기재되었다. 둘째, 각 방향의 고을 경계에 東西南北의 방향이 붙어 있다. 셋째, 본 지도에는 《광여도》에 잘못 표시한 하천의 유로가 바로잡혀 있다. ‘西界 兎山’이라 적혀 있는 곳에서 내려오는 하천은 현재의 임진강으로 지도에는 大水源으로 적혀 있다. 오른쪽 철원 방향에서 들어오는 하천은 임진강의 지류인 현재의 역곡천으로 읍치의 북쪽을 흐른다고 하여 北川이라고 불렀다. 임진강의 지류에 불과하기 때문에 지도에는 小水源이라 적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 북천의 水源으로 표시된 馬場面 지역은 임진강 본류와 멀리 떨어져 있다. 이 지도가 회화식으로 그리다보니까 마치 임진강 본류에 가까운 것처럼 표시되어 있을 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삭령군 지도도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비슷해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해동지도》에 임진강 본류와 마장면에서 내려오는 북천의 지류 중 어느 것이 큰 것인지 거의 알아볼 수 없도록 그려져 있다. 《광여도》에서는 이와 같은 점을 착각하여 두 하천이 서로 연결된 것처럼 그렸으며, 하천 폭의 차이도 구별할 수 없도록 동일하게 그려놓았다. 본 지도에서는 《광여도》와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지 않으며, 임진강 본류가 토산 쪽에서 흘러 들어옴을 분명하게 표시하여 《해동지도》에서의 애매한 표현을 교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北川合流 지점 이하의 하폭을 넓게 하였지만 그 위쪽에서는 북천과 임진강 본류 등의 하천 표현을 동일하게 하여 실제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삭령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차이가 몇 가지 나타나고 있다. 첫째, 《광여도》에 鵬耳山으로 적혀 있던 것이 위쪽에 鴨耳山으로 기재되었다. 둘째, 각 방향의 고을 경계에 東西南北의 방향이 붙어 있다. 셋째, 본 지도에는 《광여도》에 잘못 표시한 하천의 유로가 바로잡혀 있다. ‘西界 兎山’이라 적혀 있는 곳에서 내려오는 하천은 현재의 임진강으로 지도에는 大水源으로 적혀 있다. 오른쪽 철원 방향에서 들어오는 하천은 임진강의 지류인 현재의 역곡천으로 읍치의 북쪽을 흐른다고 하여 北川이라고 불렀다. 임진강의 지류에 불과하기 때문에 지도에는 小水源이라 적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 북천의 水源으로 표시된 馬場面 지역은 임진강 본류와 멀리 떨어져 있다. 이 지도가 회화식으로 그리다보니까 마치 임진강 본류에 가까운 것처럼 표시되어 있을 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삭령군 지도도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비슷해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해동지도》에 임진강 본류와 마장면에서 내려오는 북천의 지류 중 어느 것이 큰 것인지 거의 알아볼 수 없도록 그려져 있다. 《광여도》에서는 이와 같은 점을 착각하여 두 하천이 서로 연결된 것처럼 그렸으며, 하천 폭의 차이도 구별할 수 없도록 동일하게 그려놓았다. 본 지도에서는 《광여도》와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지 않으며, 임진강 본류가 토산 쪽에서 흘러 들어옴을 분명하게 표시하여 《해동지도》에서의 애매한 표현을 교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北川合流 지점 이하의 하폭을 넓게 하였지만 그 위쪽에서는 북천과 임진강 본류 등의 하천 표현을 동일하게 하여 실제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개성부 지도와 거의 비슷하다. 다만 몇 군데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일단 지도의 제목이 《광여도》에서는 開城府라고 되어 있는데, 본 지도에는 松都라고 적혀 있다. 또한 《광여도》에는 주기가 없는데 본 지도에는 주기가 있다. 《광여도》와 달리 지도의 오른쪽 여백에는 도성에서 송도까지 오는데 걸리는 날짜가 적혀 있으며, 위쪽 여백에는 송도에 대한 여러 異稱이 적혀 있다. 개성부 성곽 안의 滿月臺가 《광여도》에는 터로만 표시되어 있는데 본 지도에는 건물이 그려져 있다. 반면에 위쪽의 大興山城에 《광여도》에는 이름만 적혀 있던 將臺가 본 지도에는 터의 형태로 표시되어 있다. 이밖에도 몇 개의 문자가 달라지는 변화가 약간 보이고 있을 뿐이다. 일반적인 회화식 지도와 마찬가지로 정보가 밀집되어 있는 개성부의 읍성과 대흥산성 등이 다른 지역보다 대축척으로 그려져 있다. 읍성 안에 있는 고려의 왕궁터인 滿月臺도 실제의 지형보다는 풍수적 명당 형국으로 그렸다. 아래쪽에 祖江이라 적혀 있는 한강과 왼쪽의 禮城江이 두 줄의 실선으로 그려진 반면 나머지는 한 줄의 실선으로 그려져 있다. 오른쪽의 洛河와 臨津은 현재의 임진강으로 예성강보다 더 큰 하천임에도 불구하고 한 줄의 실선으로 그려져 있다. 임진강과 그 왼쪽의 下沙川 사이는 대부분 長湍의 땅이었다. 지도에도 읍성 동쪽에 ‘長湍界’와 ‘此則長湍’이라 표시하여 이와 같은 사실을 적어두었다. 靑郊驛 아래쪽에는 豊德의 명칭이 적혀 있는데, 1823년(순조 23)에 개성에 합쳐진 고을이다. 그러나 앞쪽의 경기도 지도에는 豊德이 독자적인 고을로 표시되어 있다. 長湍처럼 개성의 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풍덕의 땅까지 그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뒤쪽에는 풍덕부의 지도가 따로 수록되어 있다. 동남쪽의 해안에는 喬同島와 江華島가 실제의 크기보다 훨씬 작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가 개성부를 중심으로 그린 것이어서 인근 지역은 대략적인 방향과 위치만을 표시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개성부 지도와 거의 비슷하다. 다만 몇 군데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일단 지도의 제목이 《광여도》에서는 開城府라고 되어 있는데, 본 지도에는 松都라고 적혀 있다. 또한 《광여도》에는 주기가 없는데 본 지도에는 주기가 있다. 《광여도》와 달리 지도의 오른쪽 여백에는 도성에서 송도까지 오는데 걸리는 날짜가 적혀 있으며, 위쪽 여백에는 송도에 대한 여러 異稱이 적혀 있다. 개성부 성곽 안의 滿月臺가 《광여도》에는 터로만 표시되어 있는데 본 지도에는 건물이 그려져 있다. 반면에 위쪽의 大興山城에 《광여도》에는 이름만 적혀 있던 將臺가 본 지도에는 터의 형태로 표시되어 있다. 이밖에도 몇 개의 문자가 달라지는 변화가 약간 보이고 있을 뿐이다. 일반적인 회화식 지도와 마찬가지로 정보가 밀집되어 있는 개성부의 읍성과 대흥산성 등이 다른 지역보다 대축척으로 그려져 있다. 읍성 안에 있는 고려의 왕궁터인 滿月臺도 실제의 지형보다는 풍수적 명당 형국으로 그렸다. 아래쪽에 祖江이라 적혀 있는 한강과 왼쪽의 禮城江이 두 줄의 실선으로 그려진 반면 나머지는 한 줄의 실선으로 그려져 있다. 오른쪽의 洛河와 臨津은 현재의 임진강으로 예성강보다 더 큰 하천임에도 불구하고 한 줄의 실선으로 그려져 있다. 임진강과 그 왼쪽의 下沙川 사이는 대부분 長湍의 땅이었다. 지도에도 읍성 동쪽에 ‘長湍界’와 ‘此則長湍’이라 표시하여 이와 같은 사실을 적어두었다. 靑郊驛 아래쪽에는 豊德의 명칭이 적혀 있는데, 1823년(순조 23)에 개성에 합쳐진 고을이다. 그러나 앞쪽의 경기도 지도에는 豊德이 독자적인 고을로 표시되어 있다. 長湍처럼 개성의 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풍덕의 땅까지 그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뒤쪽에는 풍덕부의 지도가 따로 수록되어 있다. 동남쪽의 해안에는 喬同島와 江華島가 실제의 크기보다 훨씬 작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가 개성부를 중심으로 그린 것이어서 인근 지역은 대략적인 방향과 위치만을 표시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수원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다만 《광여도》에 없는 내용이 일부 적혀 있다. 예를 들어 양성의 월경지에서 지도 아래쪽 해변에 적혀 있는 陽城槐台串峯이 《광여도》에는 없다. 1789년에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지도 위의 邑內로 옮겼다. 그리고 수원부의 읍치는 八呑山이라 적혀 있는 지금의 수원 시내로 이동시켰다. 따라서 이 지도는 최소한 1789년 이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도는 북쪽을 위로 향하도록 그렸다. 아래쪽이 현재의 아산만이며, 읍내 방향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려가는 하천이 지금의 황구지천이다. 平澤界에서 흘러오는 안성천과 합류되어 아산만으로 빠져나간다. 지도 왼쪽 아래에 표시된 海倉은 이 고을의 전세와 대동미를 모아 도성으로 옮기던 곳이다. 수원부의 남쪽에는 충청도의 稷山, 경기도의 陽城과 南陽 등의 越境地가 많았다. 지도에도 월경지가 일부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보다 더 적다. 稷山倉, 陽城倉 등은 직산과 양성의 월경지에 있었던 창고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의 산세와 영역이 확대 과장되고, 산을 맥의 형식으로 그린 점 등은 회화식 고지도의 일반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수원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다만 《광여도》에 없는 내용이 일부 적혀 있다. 예를 들어 양성의 월경지에서 지도 아래쪽 해변에 적혀 있는 陽城槐台串峯이 《광여도》에는 없다. 1789년에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지도 위의 邑內로 옮겼다. 그리고 수원부의 읍치는 八呑山이라 적혀 있는 지금의 수원 시내로 이동시켰다. 따라서 이 지도는 최소한 1789년 이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도는 북쪽을 위로 향하도록 그렸다. 아래쪽이 현재의 아산만이며, 읍내 방향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려가는 하천이 지금의 황구지천이다. 平澤界에서 흘러오는 안성천과 합류되어 아산만으로 빠져나간다. 지도 왼쪽 아래에 표시된 海倉은 이 고을의 전세와 대동미를 모아 도성으로 옮기던 곳이다. 수원부의 남쪽에는 충청도의 稷山, 경기도의 陽城과 南陽 등의 越境地가 많았다. 지도에도 월경지가 일부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보다 더 적다. 稷山倉, 陽城倉 등은 직산과 양성의 월경지에 있었던 창고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의 산세와 영역이 확대 과장되고, 산을 맥의 형식으로 그린 점 등은 회화식 고지도의 일반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안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틀린 점이 있다면 아래쪽의 2개 섬에 田地가 없다는 사실과 烏耳島가 40리에 있다는 표현이 첨가된 것 정도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안산군 지도도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동일하여 상호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 표시되어 있던 도로가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사라지고, 단지 中路와 大路의 명칭만 기재되어 있다. 반면에 《해동지도》의 지도에는 없었던 면의 명칭이 《광여도》와 본 지도에는 첨가되어 있다. 본 지도에 적혀 있는 郡內面이 지도 위에 없는 점, 지도에 표시된 仍火谷面과 犬月面이 주기에 다르게 적혀 있는 점은 《광여도》와 동일하다. 주기의 내용은 본 지도와 《광여도》가 동일하지만 《해동지도》와는 다르다. 고을의 전체적인 실제 모습과 본 지도의 모양은 상당히 다르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 중 실제와 다른 곳이 있어 주의를 요한다. 아래쪽의 바다가 仁川과 南陽의 땅으로 둘러싸인 것처럼 표시되어 있지만 인천의 경우 실제와 전혀 다르다. 인천계 방향으로는 바다가 연속되어야 한다. 여기서 왼쪽 아래의 仁川界 부분은 육지라는 의미가 아니라 바다에서도 이 정도 선에서 인천과 안산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안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틀린 점이 있다면 아래쪽의 2개 섬에 田地가 없다는 사실과 烏耳島가 40리에 있다는 표현이 첨가된 것 정도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안산군 지도도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동일하여 상호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 표시되어 있던 도로가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사라지고, 단지 中路와 大路의 명칭만 기재되어 있다. 반면에 《해동지도》의 지도에는 없었던 면의 명칭이 《광여도》와 본 지도에는 첨가되어 있다. 본 지도에 적혀 있는 郡內面이 지도 위에 없는 점, 지도에 표시된 仍火谷面과 犬月面이 주기에 다르게 적혀 있는 점은 《광여도》와 동일하다. 주기의 내용은 본 지도와 《광여도》가 동일하지만 《해동지도》와는 다르다. 고을의 전체적인 실제 모습과 본 지도의 모양은 상당히 다르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 중 실제와 다른 곳이 있어 주의를 요한다. 아래쪽의 바다가 仁川과 南陽의 땅으로 둘러싸인 것처럼 표시되어 있지만 인천의 경우 실제와 전혀 다르다. 인천계 방향으로는 바다가 연속되어야 한다. 여기서 왼쪽 아래의 仁川界 부분은 육지라는 의미가 아니라 바다에서도 이 정도 선에서 인천과 안산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안성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광여도》에 沙溪書院으로 적혀 있는 것이 본 지도에는 沙鷄書院으로 한자가 바뀐 정도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안성군 지도도 표현 양식에서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에서 본 지도와 거의 동일하여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주기의 지지 내용은 본 지도와 《광여도》는 거의 동일하지만 《해동지도》와는 전혀 다르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라는 측면에서 볼 때 세 지도가 동일하지만 실제로는 북쪽 방향에 陽智界가 적혀 있어야 실제에 부합된다. 읍치가 지나치게 확대 강조되어 있어 그 이외 지역의 내용은 극히 소략하다. 또한 읍치로부터의 방향과 거리 등 실제적인 내용을 파악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읍치를 관통하는 하천이 현재의 안성천이며, 靑龍寺 방면에서 내려오는 하천이 안성천의 지류인 신릉천이다. 맨 왼쪽에 양성과의 경계선에 있는 하천은 현재의 안성천 지류인 한천이다. 이 지도에는 마치 양성 정도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죽산 땅이었던 현재의 용인시 원삼면에서 발원한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안성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광여도》에 沙溪書院으로 적혀 있는 것이 본 지도에는 沙鷄書院으로 한자가 바뀐 정도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안성군 지도도 표현 양식에서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에서 본 지도와 거의 동일하여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주기의 지지 내용은 본 지도와 《광여도》는 거의 동일하지만 《해동지도》와는 전혀 다르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라는 측면에서 볼 때 세 지도가 동일하지만 실제로는 북쪽 방향에 陽智界가 적혀 있어야 실제에 부합된다. 읍치가 지나치게 확대 강조되어 있어 그 이외 지역의 내용은 극히 소략하다. 또한 읍치로부터의 방향과 거리 등 실제적인 내용을 파악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읍치를 관통하는 하천이 현재의 안성천이며, 靑龍寺 방면에서 내려오는 하천이 안성천의 지류인 신릉천이다. 맨 왼쪽에 양성과의 경계선에 있는 하천은 현재의 안성천 지류인 한천이다. 이 지도에는 마치 양성 정도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죽산 땅이었던 현재의 용인시 원삼면에서 발원한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근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틀린 점이 있다면 오른쪽 중간 부분에 徐府院破墓와 權判書亭이 《광여도》에는 徐府院君破墓와 權判書峯으로 되어 있는 정도다. 전자는 본 지도가, 후자는 《광여도》가 틀린 것으로 보인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양근군 지도도 본 지도와 거의 동일한 구도와 내용을 담고 있어 상호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에 없는 도로가 있고, 산지와 하천에 대한 표현 방법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해동지도》, 《광여도》, 본 지도 모두 하천의 본류와 지류를 구분하기 어렵게 그려놓았다. 《광여도》에서는 오른쪽 위의 春川江에서 흘러와 아래쪽의 廣州界로 흐르는 북한강을 굵게 표시하여 본류와 지류의 구분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오른쪽 위의 呂江에서 흘러와 왼쪽 아래의 蛇島에서 북한강과 합류되는 남한강은 다른 하천과 구별할 수 없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에서는 북한강 역시 다른 하천의 굵기와 차이를 보이고 있지 않아 본류와 지류의 구분이 더욱 어렵게 되어 있다. 주기의 지지 부분에는 총 8개의 면이 적혀 있지만 본 지도에는 단지 2개의 면만 표시되어 있다. 이것도 《해동지도》의 지도 위에 2개의 면 명칭만 적혀 있는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주기에 적혀 있는 본 지도의 지지 내용은 《광여도》와는 같으나 《해동지도》와는 다르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근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틀린 점이 있다면 오른쪽 중간 부분에 徐府院破墓와 權判書亭이 《광여도》에는 徐府院君破墓와 權判書峯으로 되어 있는 정도다. 전자는 본 지도가, 후자는 《광여도》가 틀린 것으로 보인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양근군 지도도 본 지도와 거의 동일한 구도와 내용을 담고 있어 상호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에 없는 도로가 있고, 산지와 하천에 대한 표현 방법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해동지도》, 《광여도》, 본 지도 모두 하천의 본류와 지류를 구분하기 어렵게 그려놓았다. 《광여도》에서는 오른쪽 위의 春川江에서 흘러와 아래쪽의 廣州界로 흐르는 북한강을 굵게 표시하여 본류와 지류의 구분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오른쪽 위의 呂江에서 흘러와 왼쪽 아래의 蛇島에서 북한강과 합류되는 남한강은 다른 하천과 구별할 수 없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에서는 북한강 역시 다른 하천의 굵기와 차이를 보이고 있지 않아 본류와 지류의 구분이 더욱 어렵게 되어 있다. 주기의 지지 부분에는 총 8개의 면이 적혀 있지만 본 지도에는 단지 2개의 면만 표시되어 있다. 이것도 《해동지도》의 지도 위에 2개의 면 명칭만 적혀 있는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주기에 적혀 있는 본 지도의 지지 내용은 《광여도》와는 같으나 《해동지도》와는 다르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에 읍치 위쪽에 표시된 白蓮峯과 大峙가 본 지도에 없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 표현 방식에서는 하천에서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광여도》에는 본 지도와 달리 오른쪽의 하천이 처음부터 끝까지 2개의 실선으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오른쪽의 하천은 현재의 한천으로서 읍치에서 내려가는 하천보다 훨씬 길다. 본 지도의 작성자는 읍치에서 내려오는 하천과 한천을 동일하게 취급하여 합류 지점부터만 2개의 실선으로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더욱이 한천이 마치 松五里面 북쪽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도록 그렸다. 이와 같은 오류는 회화식 군현지도가 읍치 지역을 확대 과장해서 그렸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표현 방법이나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양성현 지도에서는 아래쪽을 바다처럼 표시했는데,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수정되어 있다. 《해동지도》에서 이런 오류가 나타난 것은 본 지도의 왼쪽 아래에 있는 세 개의 면 중 2개가 수원의 경계를 넘어가 서해에 접해 있는 월경지라는 사실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반대로 본 지도에서는 이 세 개의 면이 월경지이며, 2개가 바다에 접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주기에 적혀 있는 면의 거리를 통해 월경지임을 짐작할 수는 있으나 확실하게 이해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에 읍치 위쪽에 표시된 白蓮峯과 大峙가 본 지도에 없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 표현 방식에서는 하천에서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광여도》에는 본 지도와 달리 오른쪽의 하천이 처음부터 끝까지 2개의 실선으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오른쪽의 하천은 현재의 한천으로서 읍치에서 내려가는 하천보다 훨씬 길다. 본 지도의 작성자는 읍치에서 내려오는 하천과 한천을 동일하게 취급하여 합류 지점부터만 2개의 실선으로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더욱이 한천이 마치 松五里面 북쪽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도록 그렸다. 이와 같은 오류는 회화식 군현지도가 읍치 지역을 확대 과장해서 그렸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표현 방법이나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양성현 지도에서는 아래쪽을 바다처럼 표시했는데,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수정되어 있다. 《해동지도》에서 이런 오류가 나타난 것은 본 지도의 왼쪽 아래에 있는 세 개의 면 중 2개가 수원의 경계를 넘어가 서해에 접해 있는 월경지라는 사실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반대로 본 지도에서는 이 세 개의 면이 월경지이며, 2개가 바다에 접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주기에 적혀 있는 면의 거리를 통해 월경지임을 짐작할 수는 있으나 확실하게 이해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다만 일부 지역에서 산줄기 등의 표현이 약간 다를 뿐이다. 예를 들어 지도 왼쪽 위의 石積面과 靖嬪墓 사이에 큰 세 개의 산이 그려져 있는데 《광여도》에는 그냥 산줄기 정도로만 표현되어 있다. 오른쪽 아래의 六陵內의 경우도 원이 5개 그려져 있으나 《광여도》에는 11개나 표시되어 있다. 일부 지명의 표시도 달라지고 있다. 아래쪽에 오른쪽(동쪽)에서 왼쪽(서쪽)으로 흐르는 하천이 漢江이다. 한강 동쪽에는 豆音津이 표시되어 있는데, 《광여도》에는 禿音津이라고 되어 있다. 京 오른쪽 방향에 《광여도》에 牛耳川으로 표시된 것이 본 지도에는 生目川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양주는 크게 아래쪽의 중랑천이나 왕숙천 등 한강의 지류 유역과 위쪽의 임진강 지류인 한탄강 유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맨 위쪽에는 한탄강의 명칭이 유래된 大灘이 표시되어 있다. 한탄강은 ‘크다’는 우리말의 ‘한’에다가 ‘여울’의 한자인 ‘灘’을 합친 용어이다. 大灘을 모두 우리말로 하면 ‘한여울’이 된다. 수도인 한양 주변인만큼 陵墓와 書院 등이 즐비하게 있는 고을이었다. 이 지도에도 인문 정보 중 읍치의 여러 시설을 제외하면 두 정보가 가장 자세하게 표시되어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다만 일부 지역에서 산줄기 등의 표현이 약간 다를 뿐이다. 예를 들어 지도 왼쪽 위의 石積面과 靖嬪墓 사이에 큰 세 개의 산이 그려져 있는데 《광여도》에는 그냥 산줄기 정도로만 표현되어 있다. 오른쪽 아래의 六陵內의 경우도 원이 5개 그려져 있으나 《광여도》에는 11개나 표시되어 있다. 일부 지명의 표시도 달라지고 있다. 아래쪽에 오른쪽(동쪽)에서 왼쪽(서쪽)으로 흐르는 하천이 漢江이다. 한강 동쪽에는 豆音津이 표시되어 있는데, 《광여도》에는 禿音津이라고 되어 있다. 京 오른쪽 방향에 《광여도》에 牛耳川으로 표시된 것이 본 지도에는 生目川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양주는 크게 아래쪽의 중랑천이나 왕숙천 등 한강의 지류 유역과 위쪽의 임진강 지류인 한탄강 유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맨 위쪽에는 한탄강의 명칭이 유래된 大灘이 표시되어 있다. 한탄강은 ‘크다’는 우리말의 ‘한’에다가 ‘여울’의 한자인 ‘灘’을 합친 용어이다. 大灘을 모두 우리말로 하면 ‘한여울’이 된다. 수도인 한양 주변인만큼 陵墓와 書院 등이 즐비하게 있는 고을이었다. 이 지도에도 인문 정보 중 읍치의 여러 시설을 제외하면 두 정보가 가장 자세하게 표시되어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지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오른쪽 아래의 蹄村面 위쪽에 《광여도》에 있는 朴谷面과 高安面이 본 지도에서는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는 두 면의 명칭이 적혀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작성자가 실수로 빠뜨린 것으로 추정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양지현 지도도 표현 방법이나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하다. 《광여도》와 본 지도는 《해동지도》의 내용을 바탕으로 필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무조건 베낀 것은 아니며 일부에서는 《해동지도》가 틀린 부분을 보충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곳이 왼쪽 중간에 海谷里 방향에서 나와 북류하는 하천으로 《해동지도》에는 없던 것을 후에 보충하였다. 양지는 조선 초기에 서로 분리되어 있던 5개의 部曲과 1개의 鄕을 합해 하나의 고을로 만든 것이다. 이에 따라 월경지가 많이 형성되었고, 본 지도에도 이런 월경지가 실제와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오른쪽 아래는 남한강의 지류인 청미천 유역인데 이곳의 3개 面은 죽산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이다. 지도에도 읍치와 이곳 사이에 竹山이란 명칭을 여러 개 써넣어 이런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왼쪽 아래에 古北面을 포함한 4개의 면은 안성천의 지류인 한천 유역에 있었다. 이곳은 용인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에 가까운데 본 지도에도 중간에 龍仁界를 적어 넣어 이런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왼쪽 위의 하천은 팔당댐에서 한강에 합류되는 현재의 경안천 상류이고, 오른쪽은 여주에서 남한강에 합류하는 현재의 복하천 상류이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지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오른쪽 아래의 蹄村面 위쪽에 《광여도》에 있는 朴谷面과 高安面이 본 지도에서는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는 두 면의 명칭이 적혀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작성자가 실수로 빠뜨린 것으로 추정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양지현 지도도 표현 방법이나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하다. 《광여도》와 본 지도는 《해동지도》의 내용을 바탕으로 필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무조건 베낀 것은 아니며 일부에서는 《해동지도》가 틀린 부분을 보충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곳이 왼쪽 중간에 海谷里 방향에서 나와 북류하는 하천으로 《해동지도》에는 없던 것을 후에 보충하였다. 양지는 조선 초기에 서로 분리되어 있던 5개의 部曲과 1개의 鄕을 합해 하나의 고을로 만든 것이다. 이에 따라 월경지가 많이 형성되었고, 본 지도에도 이런 월경지가 실제와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오른쪽 아래는 남한강의 지류인 청미천 유역인데 이곳의 3개 面은 죽산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이다. 지도에도 읍치와 이곳 사이에 竹山이란 명칭을 여러 개 써넣어 이런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왼쪽 아래에 古北面을 포함한 4개의 면은 안성천의 지류인 한천 유역에 있었다. 이곳은 용인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에 가까운데 본 지도에도 중간에 龍仁界를 적어 넣어 이런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왼쪽 위의 하천은 팔당댐에서 한강에 합류되는 현재의 경안천 상류이고, 오른쪽은 여주에서 남한강에 합류하는 현재의 복하천 상류이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위쪽의 成峯은 《광여도》에 烽으로, 아래쪽의 馬上은 《광여도》에 馬山으로, 오른쪽 아래의 岩之山은 《광여도》에 嚴之山으로 표시되어 있다. 모두 후자가 타당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양천현 지도도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산이 고립되어 그려지던 것이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連脈式으로 바뀌어 있다. 이러한 연맥식 표현은 《광여도》와 본 지도책에서 일관되게 적용되는 방식으로 산에 대한 표현 방식이 지도마다 약간씩 다른 《해동지도》보다 통일적인 방식으로 지도를 그렸다고 볼 수 있다. 지도 맨 아래쪽에 있는 하천은 현재의 안양천이다. 마치 葛誕山 부근에서 발원되는 것처럼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금천 방향의 훨씬 상류에서 발원한다. 이와 같은 잘못된 표현은 《해동지도》에서는 더욱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해당 고을에서 그려 올린 것이 거의 분명한 ‘1872년 지방지도’의 양천현지도 에서도 이와 같은 오류는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해당 고을에서는 이와 같이 그려도 실제 상황을 이해하는데 큰 문제가 없지만 중앙에서 다시 전사될 경우에는 오해할 가능성이 많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위쪽의 成峯은 《광여도》에 烽으로, 아래쪽의 馬上은 《광여도》에 馬山으로, 오른쪽 아래의 岩之山은 《광여도》에 嚴之山으로 표시되어 있다. 모두 후자가 타당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양천현 지도도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산이 고립되어 그려지던 것이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連脈式으로 바뀌어 있다. 이러한 연맥식 표현은 《광여도》와 본 지도책에서 일관되게 적용되는 방식으로 산에 대한 표현 방식이 지도마다 약간씩 다른 《해동지도》보다 통일적인 방식으로 지도를 그렸다고 볼 수 있다. 지도 맨 아래쪽에 있는 하천은 현재의 안양천이다. 마치 葛誕山 부근에서 발원되는 것처럼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금천 방향의 훨씬 상류에서 발원한다. 이와 같은 잘못된 표현은 《해동지도》에서는 더욱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해당 고을에서 그려 올린 것이 거의 분명한 ‘1872년 지방지도’의 양천현지도 에서도 이와 같은 오류는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해당 고을에서는 이와 같이 그려도 실제 상황을 이해하는데 큰 문제가 없지만 중앙에서 다시 전사될 경우에는 오해할 가능성이 많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제공되고 있는 《광여도》의 여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그러나 산줄기나 표현 방식은 본 지도가 더 거칠다. 읍치 위쪽에 표시된 等神面의 경우 《광여도》에는 제대로 표시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는 驛과 동일한 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六景이 빠진 八景에 대한 표시도 본 지도에는 지도를 읽는 사람이 헷갈리게 표현된 것이 많다. 예를 들어 읍치 위쪽에 표시된 三景인 ‘鷰灘’과 ‘歸帆’이 떨어져 있지만 《광여도》에는 함께 붙어 있다. 五景인 ‘笠岩’과 ‘層岩’도 서로 다른 것처럼 표시되어 있지만 함께 붙어 있어야 한다. 일부 지명도 빠져 있다. 예를 들어 《광여도》에는 近東面 왼쪽의 산에 仙遊臺가 적혀 있지만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향교 왼쪽에는 首界面이 首界界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하다. 이 지도만 놓고 보면 정확한 동서남북을 이해할 수 없다. 읍치 위쪽의 남한강은 오른쪽 동남쪽에서 흘러와 왼쪽 서북쪽으로 빠져나간다. 億橋가 있는 하천은 서남쪽에서 흘러와 동북쪽의 남한강에 합류된다. 忠州界에 표시된 청미천 역시 서남쪽에서 흘러와 동북쪽의 남한강에 합류된다. 반면에 原州界에 표시된 곡수천은 북쪽에서 흘러와 남쪽의 남한강에 합류된다. 회화식 고지도에서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방향은 대략적인 정확성만을 갖고 있는 것이다. 정보가 가장 많이 집약된 읍치를 다른 지역보다 대축척으로 그린 것도 일반적인 회화식 지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읍치 서쪽을 흐르는 하천은 동헌에서 향교까지의 거리보다 훨씬 먼 곳에서 발원하는데 이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못하다. 주기에는 각 고을까지의 거리, 면의 初境과 終境을 적어놓아 지도의 단점을 보완하고 있다. 그러나 각 고을까지의 거리에서 《광여도》와 달리 남쪽에 있었던 陰竹을 陰升이라 잘못 적는 오류가 발견되고 있다. 또한 各面의 경우 지도의 내용과 전혀 다르게 적혀 있어 지도와 주기의 작성 자료가 서로 어긋나고 있음을 추정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점은 《광여도》도 동일하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제공되고 있는 《광여도》의 여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그러나 산줄기나 표현 방식은 본 지도가 더 거칠다. 읍치 위쪽에 표시된 等神面의 경우 《광여도》에는 제대로 표시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는 驛과 동일한 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六景이 빠진 八景에 대한 표시도 본 지도에는 지도를 읽는 사람이 헷갈리게 표현된 것이 많다. 예를 들어 읍치 위쪽에 표시된 三景인 ‘鷰灘’과 ‘歸帆’이 떨어져 있지만 《광여도》에는 함께 붙어 있다. 五景인 ‘笠岩’과 ‘層岩’도 서로 다른 것처럼 표시되어 있지만 함께 붙어 있어야 한다. 일부 지명도 빠져 있다. 예를 들어 《광여도》에는 近東面 왼쪽의 산에 仙遊臺가 적혀 있지만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향교 왼쪽에는 首界面이 首界界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하다. 이 지도만 놓고 보면 정확한 동서남북을 이해할 수 없다. 읍치 위쪽의 남한강은 오른쪽 동남쪽에서 흘러와 왼쪽 서북쪽으로 빠져나간다. 億橋가 있는 하천은 서남쪽에서 흘러와 동북쪽의 남한강에 합류된다. 忠州界에 표시된 청미천 역시 서남쪽에서 흘러와 동북쪽의 남한강에 합류된다. 반면에 原州界에 표시된 곡수천은 북쪽에서 흘러와 남쪽의 남한강에 합류된다. 회화식 고지도에서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방향은 대략적인 정확성만을 갖고 있는 것이다. 정보가 가장 많이 집약된 읍치를 다른 지역보다 대축척으로 그린 것도 일반적인 회화식 지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읍치 서쪽을 흐르는 하천은 동헌에서 향교까지의 거리보다 훨씬 먼 곳에서 발원하는데 이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못하다. 주기에는 각 고을까지의 거리, 면의 初境과 終境을 적어놓아 지도의 단점을 보완하고 있다. 그러나 각 고을까지의 거리에서 《광여도》와 달리 남쪽에 있었던 陰竹을 陰升이라 잘못 적는 오류가 발견되고 있다. 또한 各面의 경우 지도의 내용과 전혀 다르게 적혀 있어 지도와 주기의 작성 자료가 서로 어긋나고 있음을 추정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점은 《광여도》도 동일하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연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지도 위쪽에 妙洞里가 《광여도》에는 沙洞里라고 적혀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연천현 지도도 표현 방법과 내용에서의 일부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구도는 동일하다. 이 《해동지도》에는 沙洞里라고 적혀 있어 본 지도가 잘못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가장 왼쪽의 하천은 현재의 임진강 본류인데, 《광여도》에서는 2개의 실선으로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에는 작은 하천처럼 1개의 실선으로 표시되어 있어 혼란을 주고 있다. 오른쪽 아래의 하천은 현재의 한탄강인데 본 지도에는 마치 懸崖項에서 내려오는 것이 본류처럼 그려져 있다. 《광여도》에는 그 오른쪽이 2개의 실선으로 이어지고 있어 발원지가 이 고을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하였다. 본 지도의 작성자가 그런 사실을 착각하여 실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紫烟瀑에 대한 묘사도 《광여도》에 비해 훨씬 간략화 되었다. 《해동지도》에는 모든 하천을 2개의 실선으로 그려 규모를 짐작하기 어렵게 한 것을 《광여도》에서 수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는 가운데의 하천 2개가 蜂岩 부근에서 연결된 것처럼 잘못 그렸는데 《광여도》와 본 지도에는 수정되어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연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지도 위쪽에 妙洞里가 《광여도》에는 沙洞里라고 적혀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연천현 지도도 표현 방법과 내용에서의 일부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구도는 동일하다. 이 《해동지도》에는 沙洞里라고 적혀 있어 본 지도가 잘못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가장 왼쪽의 하천은 현재의 임진강 본류인데, 《광여도》에서는 2개의 실선으로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에는 작은 하천처럼 1개의 실선으로 표시되어 있어 혼란을 주고 있다. 오른쪽 아래의 하천은 현재의 한탄강인데 본 지도에는 마치 懸崖項에서 내려오는 것이 본류처럼 그려져 있다. 《광여도》에는 그 오른쪽이 2개의 실선으로 이어지고 있어 발원지가 이 고을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하였다. 본 지도의 작성자가 그런 사실을 착각하여 실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紫烟瀑에 대한 묘사도 《광여도》에 비해 훨씬 간략화 되었다. 《해동지도》에는 모든 하천을 2개의 실선으로 그려 규모를 짐작하기 어렵게 한 것을 《광여도》에서 수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는 가운데의 하천 2개가 蜂岩 부근에서 연결된 것처럼 잘못 그렸는데 《광여도》와 본 지도에는 수정되어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종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지도 왼쪽 위에 적혀 있는 ‘龍流物場’은 《광여도》에 ‘龍流牧場’으로 되어 있다. 후자가 올바르기 때문에 본 지도가 오류를 범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 富平界에도 水路를 水里로 잘못 기록한 것이 보인다. 永宗은 독자적인 고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도가 그려져 있다. 1705년(숙종 31)에 독자적인 영역과 주민을 갖고 있는 獨鎭이 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영종도라 불리는 섬은 월래 紫燕島라고 하였으며, 본 지도에는 영종진이 관할하는 섬만 그려져 있다. 자연도와 주변의 섬 사이에는 ‘退潮成陸’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썰물 때 육지가 된다’는 의미로서 특이하게 갯벌의 범위도 지도에 그려져 있다. 갯벌 바깥쪽이 바다인데, 그 바깥쪽에 또 다른 경계가 표시되어 있다. 이 경계는 영종진이 관할하는 범위를 가리키는 것일 뿐 육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 경계 바깥에는 인근 고을과의 水路 거리가 적혀 있다. 오른쪽 위에는 京江船路가 적혀 있다. 京江은 서울 부근의 한강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그곳으로 가는 稅穀船이 다니는 통로라는 의미이다. 왼쪽 아래에는 三南海門이 적혀 있다. 이 방향으로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의 세곡선이 드나들었기 때문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영종진 지도도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유사하여 상호 관련성을 추정할 수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종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지도 왼쪽 위에 적혀 있는 ‘龍流物場’은 《광여도》에 ‘龍流牧場’으로 되어 있다. 후자가 올바르기 때문에 본 지도가 오류를 범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 富平界에도 水路를 水里로 잘못 기록한 것이 보인다. 永宗은 독자적인 고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도가 그려져 있다. 1705년(숙종 31)에 독자적인 영역과 주민을 갖고 있는 獨鎭이 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영종도라 불리는 섬은 월래 紫燕島라고 하였으며, 본 지도에는 영종진이 관할하는 섬만 그려져 있다. 자연도와 주변의 섬 사이에는 ‘退潮成陸’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썰물 때 육지가 된다’는 의미로서 특이하게 갯벌의 범위도 지도에 그려져 있다. 갯벌 바깥쪽이 바다인데, 그 바깥쪽에 또 다른 경계가 표시되어 있다. 이 경계는 영종진이 관할하는 범위를 가리키는 것일 뿐 육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 경계 바깥에는 인근 고을과의 水路 거리가 적혀 있다. 오른쪽 위에는 京江船路가 적혀 있다. 京江은 서울 부근의 한강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그곳으로 가는 稅穀船이 다니는 통로라는 의미이다. 왼쪽 아래에는 三南海門이 적혀 있다. 이 방향으로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의 세곡선이 드나들었기 때문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영종진 지도도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유사하여 상호 관련성을 추정할 수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평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北面에 있는 適骨山峯이 《광여도》에는 適骨山烽으로 되어 있는데 후자가 맞는 것이다. 읍치 아래쪽에 있는 ‘南大川 津船’은 《광여도》에는 없는 것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영평현 지도도 표현 방식과 내용적인 측면에서 일부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구도는 동일하다. 《해동지도》에 있었던 도로가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사라졌으며, 일부 지명의 가감이 있다. 왼쪽에 있는 하천이 지금의 한탕강이며, 왼쪽 아래에 ‘合水去漢灘’이라고 적혀 있다. ‘漢灘’은 우리말 ‘한여울’에 대한 한자 표현으로서 ‘大灘’이라 표시된 경우가 많다. ‘한’이 크다는 뜻이므로 ‘大’자를 사용한 것이다. ‘한탄’ 또는 ‘대탄’은 원래 현재의 연천군 전곡읍 전곡리 부근에 있었던 여울 부근만을 지칭하던 것인데 일제시대 이후 본류 전체를 지칭하는 명칭으로 정해졌다. ‘合水去漢灘’이란 표현도 ‘물이 합류되어 한탄으로 내려간다’는 뜻으로 ‘한탄’이 전곡리 부근만을 지칭하기 때문에 사용될 수 있는 표현이다. 정보가 가장 많은 읍치가 대축척으로 그려지고, 산줄기식으로 읍치를 강조한 전형적인 회화식 군현지도이다. 이와 같은 지도에서는 각 정보의 거리와 방향 등이 정확하지 않으며, 산의 실제 높이도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은 오른쪽의 國望山(1168.1m)인데 이 지도만으로는 이러한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 거리와 방향 등은 주기의 지지 자료를 통해 보완할 수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평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北面에 있는 適骨山峯이 《광여도》에는 適骨山烽으로 되어 있는데 후자가 맞는 것이다. 읍치 아래쪽에 있는 ‘南大川 津船’은 《광여도》에는 없는 것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영평현 지도도 표현 방식과 내용적인 측면에서 일부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구도는 동일하다. 《해동지도》에 있었던 도로가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사라졌으며, 일부 지명의 가감이 있다. 왼쪽에 있는 하천이 지금의 한탕강이며, 왼쪽 아래에 ‘合水去漢灘’이라고 적혀 있다. ‘漢灘’은 우리말 ‘한여울’에 대한 한자 표현으로서 ‘大灘’이라 표시된 경우가 많다. ‘한’이 크다는 뜻이므로 ‘大’자를 사용한 것이다. ‘한탄’ 또는 ‘대탄’은 원래 현재의 연천군 전곡읍 전곡리 부근에 있었던 여울 부근만을 지칭하던 것인데 일제시대 이후 본류 전체를 지칭하는 명칭으로 정해졌다. ‘合水去漢灘’이란 표현도 ‘물이 합류되어 한탄으로 내려간다’는 뜻으로 ‘한탄’이 전곡리 부근만을 지칭하기 때문에 사용될 수 있는 표현이다. 정보가 가장 많은 읍치가 대축척으로 그려지고, 산줄기식으로 읍치를 강조한 전형적인 회화식 군현지도이다. 이와 같은 지도에서는 각 정보의 거리와 방향 등이 정확하지 않으며, 산의 실제 높이도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은 오른쪽의 國望山(1168.1m)인데 이 지도만으로는 이러한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 거리와 방향 등은 주기의 지지 자료를 통해 보완할 수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용인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위쪽에 표시된 向牛流川은 《광여도》에 向流牛川으로, 오른쪽 아래의 窟君山은 《광여도》에 窟巖山으로 표시되어 있다. 모두 《광여도》의 기록이 맞는 것이다. 客舍와 왼쪽의 趙靜菴墓는 《광여도》에는 없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용인현 지도도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동일하다. 크게 바뀐 내용이 있다면 《해동지도》에는 도로가 표시되어 있는 반면에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도로가 삭제되고 大路란 명칭만 남았다. 아래쪽의 縣內面에도 지도에 표시된 다른 하천 정도로 큰 현재의 진위천이 있었다. 《해동지도》에는 표시되어 있던 것이 《광여도》와 본 지도에 삭제되어 있다. 왼쪽 위에는 衿川이 적혀 있는데 《광여도》에는 衿川界라고 되어 있다. 《광여도》의 기록만을 놓고 보면 용인현이 금천현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해동지도》에는 ‘衿川十五里’라고 적혀 있어 경계를 맞대고 있는 것이 아니라 15리를 가면 금천이라는 뜻임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했다. 이런 오해가 발생한 것은 이 방향의 도로를 삭제했기 때문이다.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衿川이 다른 고을처럼 衿川界라고 적혀 있지 않아 꼭 하천의 명칭인 것처럼 오해를 부를 수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용인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위쪽에 표시된 向牛流川은 《광여도》에 向流牛川으로, 오른쪽 아래의 窟君山은 《광여도》에 窟巖山으로 표시되어 있다. 모두 《광여도》의 기록이 맞는 것이다. 客舍와 왼쪽의 趙靜菴墓는 《광여도》에는 없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용인현 지도도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동일하다. 크게 바뀐 내용이 있다면 《해동지도》에는 도로가 표시되어 있는 반면에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도로가 삭제되고 大路란 명칭만 남았다. 아래쪽의 縣內面에도 지도에 표시된 다른 하천 정도로 큰 현재의 진위천이 있었다. 《해동지도》에는 표시되어 있던 것이 《광여도》와 본 지도에 삭제되어 있다. 왼쪽 위에는 衿川이 적혀 있는데 《광여도》에는 衿川界라고 되어 있다. 《광여도》의 기록만을 놓고 보면 용인현이 금천현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해동지도》에는 ‘衿川十五里’라고 적혀 있어 경계를 맞대고 있는 것이 아니라 15리를 가면 금천이라는 뜻임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했다. 이런 오해가 발생한 것은 이 방향의 도로를 삭제했기 때문이다.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衿川이 다른 고을처럼 衿川界라고 적혀 있지 않아 꼭 하천의 명칭인 것처럼 오해를 부를 수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음죽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하천에 대한 표현 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아래쪽에 흐르는 天民川이 현재의 청미천이다. 《광여도》에는 2개의 실선으로 표시되어 있으나 본 지도에는 읍치에서 내려가는 하천과 동일하게 1개의 실선으로 그려져 있다. 본 지도의 작성자가 읍치에서 내려가는 하천과 청미천을 동일하게 취급하고 합류되는 지점부터 2개의 실선으로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읍치에서 내려가는 하천은 실제적으로 청미천에 비하면 아주 짧은 하천에 불과하다. 본 지도가 회화식 지도이기 때문에 그런 점이 잘 표현되지 못했을 뿐이다. 본 지도의 작성자는 그런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왼쪽의 白山峯에서 내려가 長海院石橋에서 청미천과 합류되는 하천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광여도》에도 2개의 실선으로 표시하여 청미천과 동급의 하천처럼 그려놓았다. 본 지도와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동일한 《해동지도》의 음죽현 지도에서는 청미천이 제대로 그려져 있다. 장해원에서 청미천과 합류되는 하천은 《광여도》 또는 본 지도의 작성자가 《해동지도》를 참조하여 그리면서 도로를 하천으로 착각하여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음죽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하천에 대한 표현 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아래쪽에 흐르는 天民川이 현재의 청미천이다. 《광여도》에는 2개의 실선으로 표시되어 있으나 본 지도에는 읍치에서 내려가는 하천과 동일하게 1개의 실선으로 그려져 있다. 본 지도의 작성자가 읍치에서 내려가는 하천과 청미천을 동일하게 취급하고 합류되는 지점부터 2개의 실선으로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읍치에서 내려가는 하천은 실제적으로 청미천에 비하면 아주 짧은 하천에 불과하다. 본 지도가 회화식 지도이기 때문에 그런 점이 잘 표현되지 못했을 뿐이다. 본 지도의 작성자는 그런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왼쪽의 白山峯에서 내려가 長海院石橋에서 청미천과 합류되는 하천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광여도》에도 2개의 실선으로 표시하여 청미천과 동급의 하천처럼 그려놓았다. 본 지도와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동일한 《해동지도》의 음죽현 지도에서는 청미천이 제대로 그려져 있다. 장해원에서 청미천과 합류되는 하천은 《광여도》 또는 본 지도의 작성자가 《해동지도》를 참조하여 그리면서 도로를 하천으로 착각하여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이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읍치의 客舍 오른쪽에 鄕校의 명칭이 사라진 점, 《광여도》에 衙와 倉으로만 쓰여 있던 것이 衙舍와 司倉으로 적혀 있는 점 정도이다. 읍치 왼쪽에 표시된 하천은 현재의 복하천이다. 지도에는 위쪽의 陽智界로부터 복하천이 흘러들어오는 것처럼 표시되어 있으나 사실과 다르다. 아래쪽의 虎岩池에서 복하천이 끝나는 것처럼 표시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麗州界 방향으로 흘러나가야 한다. 《광여도》에는 두 부분이 제대로 표현되어 있다. 주변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 표시에서도 몇 가지를 수정해야 한다. 왼쪽 竹山界와 陰竹界 사이에 다시 陽智界가 있어야 하며, 오른쪽 위에는 廣州界가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산줄기와 물줄기는 실제의 모습보다는 인식된 지형을 반영했다. 읍치를 중심으로 산줄기와 물줄기가 겹겹이 싸여있는 모습으로 그렸다. 또한 읍치에서 바라보이는 방향으로 산의 모습을 그렸다. 이것은 읍치가 풍수적 명당임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다. 조선후기에 유행했던 왕릉을 비롯한 무덤의 지도인 山圖와 기본적인 틀이 비슷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와 ‘1872년 지방지도’ 및 『여지도서』의 경기도 이천부 지도도 내용적으로는 다르나 山圖 형태의 기본적인 구도는 거의 비슷하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이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읍치의 客舍 오른쪽에 鄕校의 명칭이 사라진 점, 《광여도》에 衙와 倉으로만 쓰여 있던 것이 衙舍와 司倉으로 적혀 있는 점 정도이다. 읍치 왼쪽에 표시된 하천은 현재의 복하천이다. 지도에는 위쪽의 陽智界로부터 복하천이 흘러들어오는 것처럼 표시되어 있으나 사실과 다르다. 아래쪽의 虎岩池에서 복하천이 끝나는 것처럼 표시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麗州界 방향으로 흘러나가야 한다. 《광여도》에는 두 부분이 제대로 표현되어 있다. 주변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 표시에서도 몇 가지를 수정해야 한다. 왼쪽 竹山界와 陰竹界 사이에 다시 陽智界가 있어야 하며, 오른쪽 위에는 廣州界가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산줄기와 물줄기는 실제의 모습보다는 인식된 지형을 반영했다. 읍치를 중심으로 산줄기와 물줄기가 겹겹이 싸여있는 모습으로 그렸다. 또한 읍치에서 바라보이는 방향으로 산의 모습을 그렸다. 이것은 읍치가 풍수적 명당임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다. 조선후기에 유행했던 왕릉을 비롯한 무덤의 지도인 山圖와 기본적인 틀이 비슷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와 ‘1872년 지방지도’ 및 『여지도서』의 경기도 이천부 지도도 내용적으로는 다르나 山圖 형태의 기본적인 구도는 거의 비슷하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인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몇 가지 부분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다른 面과 달리 鳥洞面에 노란색 사각형을 표시하지 않았다. 반면에 읍치 아래쪽의 大池를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하여 面으로 오해할 수 있도록 표시하였다. 朱崖面을 朱岩面으로, 濟物津頭를 遊物津頭로, 黃等川面을 黃川面으로 잘못 기재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오류들을 고려하면 《광여도》가 본 지도보다 더 정확하게 그렸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도는 현재의 인천광역시 남구 관교동 일대에 있었던 읍치를 중심으로 산지가 겹겹이 둘러싸인 것처럼 표현하였다. 또한 남쪽을 위로 하여 읍치에서 바라보이는 산의 형태로 그렸다. 이와 같이 실제의 지형을 풍수적 명당 관념으로 그리는 것은 조선후기의 山圖에서 잘 나타나는 표현 방식이었다. 오른쪽(서쪽) 바닷가에 표시된 섬들은 크기와 거리에서 실제와 부합되고 있지 않다. 예를 들어 八味島는 無衣島보다 훨씬 작은 섬임에도 이와 같은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또한 德積島는 해안에서 훨씬 멀리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섬들의 위치는 일정한 크기의 종이에 맞추기 위해 대략적인 방향만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인천부 지도, 『여지도서』의 인천부 지도도 《광여도》보다는 못하지만 구도가 비슷하여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인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몇 가지 부분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다른 面과 달리 鳥洞面에 노란색 사각형을 표시하지 않았다. 반면에 읍치 아래쪽의 大池를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하여 面으로 오해할 수 있도록 표시하였다. 朱崖面을 朱岩面으로, 濟物津頭를 遊物津頭로, 黃等川面을 黃川面으로 잘못 기재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오류들을 고려하면 《광여도》가 본 지도보다 더 정확하게 그렸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도는 현재의 인천광역시 남구 관교동 일대에 있었던 읍치를 중심으로 산지가 겹겹이 둘러싸인 것처럼 표현하였다. 또한 남쪽을 위로 하여 읍치에서 바라보이는 산의 형태로 그렸다. 이와 같이 실제의 지형을 풍수적 명당 관념으로 그리는 것은 조선후기의 山圖에서 잘 나타나는 표현 방식이었다. 오른쪽(서쪽) 바닷가에 표시된 섬들은 크기와 거리에서 실제와 부합되고 있지 않다. 예를 들어 八味島는 無衣島보다 훨씬 작은 섬임에도 이와 같은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또한 德積島는 해안에서 훨씬 멀리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섬들의 위치는 일정한 크기의 종이에 맞추기 위해 대략적인 방향만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인천부 지도, 『여지도서』의 인천부 지도도 《광여도》보다는 못하지만 구도가 비슷하여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장단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약간의 차이가 나타나고 있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우선 大位面과 津東面 등이 다른 面과 달리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지 않다. 三味大川은 三味大山으로, 魚龍浦는 魚龍山으로 바뀌어 있다. 骨陵이 滑陵으로, 臨江書院이 臨淸書院으로, 田齋宮이 田齊宮으로, 鳥老山이 烏老山으로, 金約谷이 金納谷으로 표시되어 있기도 하다. 지도 왼쪽 위의 城山과 왼쪽 아래의 臨津船倉은 《광여도》에는 없는 것이다. 《광여도》와 동일하게 잘못된 부분도 있다. 長北面 방향에서 江西面을 거쳐 加勿峴으로 표시된 실선은 하천이 아니라 원래 도로이다. 오른쪽 중간쯤에서 흘러들어와 왼쪽 아래로 흘러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임진강이다. 굴곡을 고려하지 않으면 실제로는 읍내 정 동쪽에서 서남쪽으로 직선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본 지도에서는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기 위해 마치 남류하다가 서류한 것처럼 그려져 있다. 다른 하천의 유로 역시 방향이 정확히 맞는 것은 아니다. 임진강 변에서 바닷배가 들어올 수 있는 최상류가 오른쪽 중간의 임진강변에 표시된 古浪浦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임진강변 최대의 포구였으며, 일제시대 까지도 번영을 누렸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장단부 지도도 내용적으로는 본 지도와 많이 다르지만 하천의 유로 등의 기본적인 구도는 서로 비슷하여 연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장단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약간의 차이가 나타나고 있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우선 大位面과 津東面 등이 다른 面과 달리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지 않다. 三味大川은 三味大山으로, 魚龍浦는 魚龍山으로 바뀌어 있다. 骨陵이 滑陵으로, 臨江書院이 臨淸書院으로, 田齋宮이 田齊宮으로, 鳥老山이 烏老山으로, 金約谷이 金納谷으로 표시되어 있기도 하다. 지도 왼쪽 위의 城山과 왼쪽 아래의 臨津船倉은 《광여도》에는 없는 것이다. 《광여도》와 동일하게 잘못된 부분도 있다. 長北面 방향에서 江西面을 거쳐 加勿峴으로 표시된 실선은 하천이 아니라 원래 도로이다. 오른쪽 중간쯤에서 흘러들어와 왼쪽 아래로 흘러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임진강이다. 굴곡을 고려하지 않으면 실제로는 읍내 정 동쪽에서 서남쪽으로 직선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본 지도에서는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기 위해 마치 남류하다가 서류한 것처럼 그려져 있다. 다른 하천의 유로 역시 방향이 정확히 맞는 것은 아니다. 임진강 변에서 바닷배가 들어올 수 있는 최상류가 오른쪽 중간의 임진강변에 표시된 古浪浦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임진강변 최대의 포구였으며, 일제시대 까지도 번영을 누렸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장단부 지도도 내용적으로는 본 지도와 많이 다르지만 하천의 유로 등의 기본적인 구도는 서로 비슷하여 연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적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본 지도에 鍊武堂으로 표시된 것이 《광여도》에 鍊武廳으로 표시된 점, 《광여도》에 연무당 동쪽에 있었던 城隍壇이 본 지도에 생략된 정도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적성현 지도도 표현 방법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광여도》와 본 지도가 《해동지도》의 것을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대로 필사한 것이 아니라 선택적으로 하였으며, 일부분에서는 다른 자료를 첨가하기도 하였다. 오른쪽 아래의 廣石峴에는 절벽이 상당히 자세히 표시되어 있는데 《해동지도》에서는 상대적으로 간단하게 표현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적성현 산천 부분에 ‘사면에 돌이 깎아지른 듯하고, 둘레가 1리 이다. 높이가 50보인데 위에는 40여인이 앉을 수 있다.’는 기록을 참조하여 더 웅장하게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의 풍수적 명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남쪽에 있는 감악산을 위쪽으로, 북쪽에 있는 임진강을 아래로 배치하였다. 산줄기를 겹겹이 싸인 형태로 그려 읍치의 이미지를 강하고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적성현의 일반적인 모양이나 여러 정보의 배치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적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본 지도에 鍊武堂으로 표시된 것이 《광여도》에 鍊武廳으로 표시된 점, 《광여도》에 연무당 동쪽에 있었던 城隍壇이 본 지도에 생략된 정도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적성현 지도도 표현 방법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광여도》와 본 지도가 《해동지도》의 것을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대로 필사한 것이 아니라 선택적으로 하였으며, 일부분에서는 다른 자료를 첨가하기도 하였다. 오른쪽 아래의 廣石峴에는 절벽이 상당히 자세히 표시되어 있는데 《해동지도》에서는 상대적으로 간단하게 표현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적성현 산천 부분에 ‘사면에 돌이 깎아지른 듯하고, 둘레가 1리 이다. 높이가 50보인데 위에는 40여인이 앉을 수 있다.’는 기록을 참조하여 더 웅장하게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의 풍수적 명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남쪽에 있는 감악산을 위쪽으로, 북쪽에 있는 임진강을 아래로 배치하였다. 산줄기를 겹겹이 싸인 형태로 그려 읍치의 이미지를 강하고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적성현의 일반적인 모양이나 여러 정보의 배치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죽산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첫째, 邑基에 南部面을 南部山으로 잘못 기재하고 있다. 둘째, 왼쪽에 水原界, 安城界 大路 등은 《광여도》에 없는 것이다. 죽산부는 수원부와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水原界라 적혀 있는 본 지도의 내용이 잘못된 것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죽산부 지도와는 표현 방식이나 내용적으로 일부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동일하다. 《해동지도》와 비교하여 본 지도에는 도로가 생략되어 있고, 위쪽의 遠三面에서 발원하는 현재의 한천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광여도》와 본 지도가 《해동지도》의 내용을 참고하면서 좀더 간략하게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죽산부 지도도 기본적인 구도는 이 지도와 비슷하다. 아마 죽산부에서 그려진 많은 지도가 이와 같은 구도로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며, 중앙으로 올려진 지도도 그런 지도를 바탕으로 다시 그려진 것이 아닌가 한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에 大路란 표현이 나오고 있는데, 본 고을의 입장에서 大路란 의미이다. 오른쪽 아래에 적힌 乭院大路는 도성에서 동래까지 이어진 大路이다. 邑基에는 客舍가 표시되어 있다. 객사에서는 매월 1일과 15일에 도성에 살고 있는 왕을 향해 절을 올리는 望闕向拜가 이루어졌다. 이 행사는 사또가 왕을 대신하여 이 고을을 통치한다는 의미가 들어있기 때문에 객사는 그 어떤 관아 건물보다도 중요하게 인식되었고 규모도 컸다. 이에 따라 사또가 집무를 보는 東軒 또는 衙舍보다도 더 큰 상징성을 지니고 있어 지도에도 가장 많이 그려졌다. 본 지도도 조선시대의 이러한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죽산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첫째, 邑基에 南部面을 南部山으로 잘못 기재하고 있다. 둘째, 왼쪽에 水原界, 安城界 大路 등은 《광여도》에 없는 것이다. 죽산부는 수원부와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水原界라 적혀 있는 본 지도의 내용이 잘못된 것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죽산부 지도와는 표현 방식이나 내용적으로 일부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동일하다. 《해동지도》와 비교하여 본 지도에는 도로가 생략되어 있고, 위쪽의 遠三面에서 발원하는 현재의 한천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광여도》와 본 지도가 《해동지도》의 내용을 참고하면서 좀더 간략하게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죽산부 지도도 기본적인 구도는 이 지도와 비슷하다. 아마 죽산부에서 그려진 많은 지도가 이와 같은 구도로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며, 중앙으로 올려진 지도도 그런 지도를 바탕으로 다시 그려진 것이 아닌가 한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에 大路란 표현이 나오고 있는데, 본 고을의 입장에서 大路란 의미이다. 오른쪽 아래에 적힌 乭院大路는 도성에서 동래까지 이어진 大路이다. 邑基에는 客舍가 표시되어 있다. 객사에서는 매월 1일과 15일에 도성에 살고 있는 왕을 향해 절을 올리는 望闕向拜가 이루어졌다. 이 행사는 사또가 왕을 대신하여 이 고을을 통치한다는 의미가 들어있기 때문에 객사는 그 어떤 관아 건물보다도 중요하게 인식되었고 규모도 컸다. 이에 따라 사또가 집무를 보는 東軒 또는 衙舍보다도 더 큰 상징성을 지니고 있어 지도에도 가장 많이 그려졌다. 본 지도도 조선시대의 이러한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지평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寺가 菴으로, 峙가 峴으로 바뀐 것이 몇 개 있다. 왼쪽 중간 부분에는 水路가 표시되어 있는데 이것은 水破를 잘못 옮긴 것이다. 그 아래쪽에 水源이라 적혀 있는 것은 《광여도》에 水原으로 적혀 있는데, 원래는 水破로 적어야 한다. 왼쪽 중간에 水破라 적힌 곳에 《광여도》에 있던 작은 하천 하나가 생략되어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지평현 지도는 방향과 표현 양식 및 일부의 내용에서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본 지도 아래쪽에 李判府事墓가 《광여도》에는 白鵶谷澤堂墓라고 적혀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적혀 있다. 《해동지도》에서는 본 지도의 왼쪽 하천이 읍치 부근의 하천과 연결된 것처럼 그려져 있는데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는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지평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寺가 菴으로, 峙가 峴으로 바뀐 것이 몇 개 있다. 왼쪽 중간 부분에는 水路가 표시되어 있는데 이것은 水破를 잘못 옮긴 것이다. 그 아래쪽에 水源이라 적혀 있는 것은 《광여도》에 水原으로 적혀 있는데, 원래는 水破로 적어야 한다. 왼쪽 중간에 水破라 적힌 곳에 《광여도》에 있던 작은 하천 하나가 생략되어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지평현 지도는 방향과 표현 양식 및 일부의 내용에서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본 지도 아래쪽에 李判府事墓가 《광여도》에는 白鵶谷澤堂墓라고 적혀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적혀 있다. 《해동지도》에서는 본 지도의 왼쪽 하천이 읍치 부근의 하천과 연결된 것처럼 그려져 있는데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는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진위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 왼쪽의 東越峴이 《광여도》에 東越峙로 되어 있고, 아래쪽의 葛院酒幕의 위치는 《광여도》에 약간 위쪽에 표시되어 있다. 또한 稷山界 부분이 《광여도》에는 바다로 되어 있지 않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진위현 지도도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와 《광여도》의 지도는 《해동지도》를 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일부 지명에서 잘못된 것이 발견된다. 위쪽의 舞鶴山은 舞峰山을, 읍치 왼쪽의 皇峴은 白土峴을, 東越縣은 車越峴을 잘못 전사한 것이다. 각 지역의 축척이 다르기 때문에 방향이나 거리가 정확하지 않다. 《해동지도》에서는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다른 고을과 경계선에 읍치로부터의 거리를 적어놓았다. 예를 들어 아래쪽의 陽城界까지는 10리이고, 稷山界까지는 30리로 되어 있다. 그런데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이러한 거리 기록을 삭제했기 때문에 실질적인 거리 상황을 거의 이해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다만 주기에 각 고을 경계까지의 방향과 거리가 적혀 있어 참조하면서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진위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 왼쪽의 東越峴이 《광여도》에 東越峙로 되어 있고, 아래쪽의 葛院酒幕의 위치는 《광여도》에 약간 위쪽에 표시되어 있다. 또한 稷山界 부분이 《광여도》에는 바다로 되어 있지 않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진위현 지도도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와 《광여도》의 지도는 《해동지도》를 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일부 지명에서 잘못된 것이 발견된다. 위쪽의 舞鶴山은 舞峰山을, 읍치 왼쪽의 皇峴은 白土峴을, 東越縣은 車越峴을 잘못 전사한 것이다. 각 지역의 축척이 다르기 때문에 방향이나 거리가 정확하지 않다. 《해동지도》에서는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다른 고을과 경계선에 읍치로부터의 거리를 적어놓았다. 예를 들어 아래쪽의 陽城界까지는 10리이고, 稷山界까지는 30리로 되어 있다. 그런데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이러한 거리 기록을 삭제했기 때문에 실질적인 거리 상황을 거의 이해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다만 주기에 각 고을 경계까지의 방향과 거리가 적혀 있어 참조하면서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통진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일부 부분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왼쪽 위에 표시된 月串 留島는 《광여도》에는 기록이 있지 않다. 오른쪽 아래의 桑串面과 半里村面에 다른 면처럼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 않은데 《광여도》에는 제대로 표시되어 있다. 지도 아래쪽의 浮來島 위쪽의 해변에 《광여도》에는 표시된 德津이란 문자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본 지도는 통진부의 대략적인 모습만을 그렸을 뿐 실제와 다른 부분이 많다. 위쪽에 있는 하천은 한강이 임진강과 만나 강화도 북쪽으로 빠져나가는 부분이다. 보통 이곳의 한강 명칭을 祖江이라고 기록하였는데 지도에는 阻江이라고 적혀 있다. 한강의 유로는 이 지도와 달리 실제로는 이 고을의 동쪽을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다 다시 서쪽으로 빠져나간다. 이 고을의 서쪽에는 지도에 江都로 표시된 江華府와의 사이에 鹽河라는 좁은 물길이 있었다. 아래쪽에 大海라고 쓰여 있는 부분의 대부분은 실제로는 서쪽에 있어야 한다. 실제와 부합하려면 왼쪽 위의 留島로부터 項山島까지 일직선으로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왜곡 때문에 읍치로부터 각 지점까지의 방향과 거리가 많이 틀린다. 客舍가 표시된 읍치는 현재의 김포군 월곶면 군하리 일대에 있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통진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일부 부분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왼쪽 위에 표시된 月串 留島는 《광여도》에는 기록이 있지 않다. 오른쪽 아래의 桑串面과 半里村面에 다른 면처럼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 않은데 《광여도》에는 제대로 표시되어 있다. 지도 아래쪽의 浮來島 위쪽의 해변에 《광여도》에는 표시된 德津이란 문자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본 지도는 통진부의 대략적인 모습만을 그렸을 뿐 실제와 다른 부분이 많다. 위쪽에 있는 하천은 한강이 임진강과 만나 강화도 북쪽으로 빠져나가는 부분이다. 보통 이곳의 한강 명칭을 祖江이라고 기록하였는데 지도에는 阻江이라고 적혀 있다. 한강의 유로는 이 지도와 달리 실제로는 이 고을의 동쪽을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다 다시 서쪽으로 빠져나간다. 이 고을의 서쪽에는 지도에 江都로 표시된 江華府와의 사이에 鹽河라는 좁은 물길이 있었다. 아래쪽에 大海라고 쓰여 있는 부분의 대부분은 실제로는 서쪽에 있어야 한다. 실제와 부합하려면 왼쪽 위의 留島로부터 項山島까지 일직선으로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왜곡 때문에 읍치로부터 각 지점까지의 방향과 거리가 많이 틀린다. 客舍가 표시된 읍치는 현재의 김포군 월곶면 군하리 일대에 있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파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광여도》에 없는 내용으로 오른쪽 여백에 도성에서 걸리는 기간이, 위쪽에 파주목의 옛 명칭이 적혀 있다. 읍치 오른쪽 위에 표시된 猪浦險津은 《광여도》에 없는 내용이다. 또한 읍치 왼쪽의 恭陵, 順陵, 孝章墓, 惠蔭岺도 《광여도》에는 없는 내용이다.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하도록 그렸다. 그러나 본 지도 전체가 정확한 방향을 고려한 것은 아니다. 읍치 오른쪽에 있는 임진강은 동북쪽에서 흘러와 서남쪽으로 빠져나간다. 본 지도에 의하면 임진강이 마치 정 동쪽에서 흘러오는 것처럼 잘못 이해될 수 있다. 이 구간의 임진강은 굴곡이 심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실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 지역 최대의 관방처인 臨津渡가 표시되어 있지 않음이 의아하다. 본 지도에서는 花石亭이라고 표시된 부분에 임진나루가 있었다. 이곳은 도성에서 의주로 가는 大路 상에 있으며, 북쪽으로부터 쳐들어온 적으로부터 도성을 방어하는 마지막 관문으로 여겨졌다. 이곳에는 1765년(영조 41)에 臨津堡와 長山堡가 설치되고, 나루 근처에는 關門城이 축조되어 있었다. 이것을 통해 볼 때 아마 이 지도는 1765년 이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추정된다. 읍치 왼쪽을 흐르는 하천은 현재 문산천이라고 하며, 서류하다가 다시 북류하여 임진강에 합류된다. 그러나 이 지도를 통해서는 문산천의 이런 유로를 이해할 수 없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파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광여도》에 없는 내용으로 오른쪽 여백에 도성에서 걸리는 기간이, 위쪽에 파주목의 옛 명칭이 적혀 있다. 읍치 오른쪽 위에 표시된 猪浦險津은 《광여도》에 없는 내용이다. 또한 읍치 왼쪽의 恭陵, 順陵, 孝章墓, 惠蔭岺도 《광여도》에는 없는 내용이다.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하도록 그렸다. 그러나 본 지도 전체가 정확한 방향을 고려한 것은 아니다. 읍치 오른쪽에 있는 임진강은 동북쪽에서 흘러와 서남쪽으로 빠져나간다. 본 지도에 의하면 임진강이 마치 정 동쪽에서 흘러오는 것처럼 잘못 이해될 수 있다. 이 구간의 임진강은 굴곡이 심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실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 지역 최대의 관방처인 臨津渡가 표시되어 있지 않음이 의아하다. 본 지도에서는 花石亭이라고 표시된 부분에 임진나루가 있었다. 이곳은 도성에서 의주로 가는 大路 상에 있으며, 북쪽으로부터 쳐들어온 적으로부터 도성을 방어하는 마지막 관문으로 여겨졌다. 이곳에는 1765년(영조 41)에 臨津堡와 長山堡가 설치되고, 나루 근처에는 關門城이 축조되어 있었다. 이것을 통해 볼 때 아마 이 지도는 1765년 이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추정된다. 읍치 왼쪽을 흐르는 하천은 현재 문산천이라고 하며, 서류하다가 다시 북류하여 임진강에 합류된다. 그러나 이 지도를 통해서는 문산천의 이런 유로를 이해할 수 없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포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포천현 지도는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타나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동일한 편이다. 읍치를 강조하고, 고을 전체에 통일성을 부여하기 위해 겹겹이 싸인 산줄기를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인해 실질적인 지형은 이해하기 어렵게 그려져 있다. 오른쪽 內洞面과 東村面 사이 水源山 부근에 왼쪽과 오른쪽 산줄기를 잇는 고개가 있어야 한다. 수원산 부근의 북쪽은 현재의 화현면, 남쪽은 현재의 내촌면으로서 각각 작은 하천 유역에 속해 있다. 왼쪽에 旺方山과 國祠峯 사이에도 산줄기가 이어져 있어야 한다. 그 북쪽은 현재의 신북면으로서 또 다른 작은 하천 유역에 속해 있다. 국사봉 아래쪽의 산줄기는 실제로는 그 오른쪽의 산줄기와 겹쳐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고을의 산세를 대칭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실제와 달리 이중의 산줄기가 있는 것처럼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전형적인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고을 전체와 읍치의 이미지를 강조하여 전달하려는 목적이 강했다. 따라서 각종 정보의 위치나 방향 그리고 거리 등은 정확하지 않게 된다. 이와 같은 점을 보완하기 위해 주기에는 거리와 방향에 대한 지지적 내용을 적어놓게 된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포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포천현 지도는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타나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동일한 편이다. 읍치를 강조하고, 고을 전체에 통일성을 부여하기 위해 겹겹이 싸인 산줄기를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인해 실질적인 지형은 이해하기 어렵게 그려져 있다. 오른쪽 內洞面과 東村面 사이 水源山 부근에 왼쪽과 오른쪽 산줄기를 잇는 고개가 있어야 한다. 수원산 부근의 북쪽은 현재의 화현면, 남쪽은 현재의 내촌면으로서 각각 작은 하천 유역에 속해 있다. 왼쪽에 旺方山과 國祠峯 사이에도 산줄기가 이어져 있어야 한다. 그 북쪽은 현재의 신북면으로서 또 다른 작은 하천 유역에 속해 있다. 국사봉 아래쪽의 산줄기는 실제로는 그 오른쪽의 산줄기와 겹쳐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고을의 산세를 대칭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실제와 달리 이중의 산줄기가 있는 것처럼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전형적인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고을 전체와 읍치의 이미지를 강조하여 전달하려는 목적이 강했다. 따라서 각종 정보의 위치나 방향 그리고 거리 등은 정확하지 않게 된다. 이와 같은 점을 보완하기 위해 주기에는 거리와 방향에 대한 지지적 내용을 적어놓게 된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풍덕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다른 부분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우선 《광여도》에 森達里로 되어 있는 것이 왼쪽 아래에 森連里로 잘못 표시되어 있다. 또한 위쪽의 德積烽舍는 德積烽臺로, 왼쪽 아래의 旧城臺는 舊城基로 해야 한다. 중간 부분의 軍裝山의 한자도 軍莊山으로 바뀌어 있다. 지도 아래쪽은 한강이 바다와 만나는 부분으로 건너편이 강화부와 통진부이다. 오른쪽에 通津이 적혀 있는데 마치 나루처럼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通津府가 이 방향에 있다는 의미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풍덕부 지도의 표현 방법이 본 지도와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구도와 지명은 거의 동일하여 상호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는 通津이 하구에 표시되어 있어 실제를 반영하고 있는데 《광여도》나 본 지도에서 잘못 그렸다. 이런 잘못은 본 지도의 오른쪽에 있는 하천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해동지도》를 보면 通津 약간 상류에 交河라는 명칭이 적혀 있다. 본 지도에서는 軍莊山 오른쪽 부분이다. 이 부분 약간 하류까지는 실제로 임진강 본류에 해당되며, 여기서 長湍과의 경계선 역할을 한 沙川이 합류된다. 그런데 《해동지도》에 이와 같은 사실이 반영되지 않고 사천을 마치 임진강 본류처럼 그렸다.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이것을 다시 사천으로 인식하여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임진강 하구 맞은편에 있는 通津(府)가 마치 나루의 명칭처럼 인식되도록 표시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통진부 지도에는 비록 회화식 군현지도이지만 이 부분이 실제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풍덕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다른 부분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우선 《광여도》에 森達里로 되어 있는 것이 왼쪽 아래에 森連里로 잘못 표시되어 있다. 또한 위쪽의 德積烽舍는 德積烽臺로, 왼쪽 아래의 旧城臺는 舊城基로 해야 한다. 중간 부분의 軍裝山의 한자도 軍莊山으로 바뀌어 있다. 지도 아래쪽은 한강이 바다와 만나는 부분으로 건너편이 강화부와 통진부이다. 오른쪽에 通津이 적혀 있는데 마치 나루처럼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通津府가 이 방향에 있다는 의미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풍덕부 지도의 표현 방법이 본 지도와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구도와 지명은 거의 동일하여 상호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는 通津이 하구에 표시되어 있어 실제를 반영하고 있는데 《광여도》나 본 지도에서 잘못 그렸다. 이런 잘못은 본 지도의 오른쪽에 있는 하천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해동지도》를 보면 通津 약간 상류에 交河라는 명칭이 적혀 있다. 본 지도에서는 軍莊山 오른쪽 부분이다. 이 부분 약간 하류까지는 실제로 임진강 본류에 해당되며, 여기서 長湍과의 경계선 역할을 한 沙川이 합류된다. 그런데 《해동지도》에 이와 같은 사실이 반영되지 않고 사천을 마치 임진강 본류처럼 그렸다.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이것을 다시 사천으로 인식하여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임진강 하구 맞은편에 있는 通津(府)가 마치 나루의 명칭처럼 인식되도록 표시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통진부 지도에는 비록 회화식 군현지도이지만 이 부분이 실제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신령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그러나 《해동지도》는 세로(남북)를 가로(동서)보다 더 길게 그렸고, 본 지도는 반대로 표현하였다. 이 과정에서 하천의 흐름이 세로는 상대적으로 길게, 가로는 짧게 그려져 있다. 고을의 실제적인 모습은 남북보다는 동서가 길게 되어 있어 《해동지도》가 사실에 가깝다. 본 지도는 세로로 긴 일정한 크기의 종이에 맞추어 지도를 그렸기 때문에 그로 인한 왜곡을 피할 수 없었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수록되어 있지만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런 측면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약간의 변화를 준 것으로 추정된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다보니까 몇 가지 왜곡이 발생하였다. 신령현의 서쪽의 남북 폭은 동쪽에 비해 훨씬 좁지만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예를 들어 왼쪽 위의 雉山面은 오른쪽 위의 新村面보다 훨씬 남쪽에 있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아래쪽의 南面은 영천의 경계를 넘어 현재의 경산시 와촌면 서쪽 부분에 있었던 신령현의 월경지였다. 아래쪽에 永川界와 河陽界가 연속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은 이런 사실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南面을 잘못 이해하고 그린 것은 이미 《해동지도》에서 시작되었다. 남면은 梨旨縣面과 동일한 지역을 가리킨다. 《해동지도》의 주기에는 이지현면이 적혀 있고, 南面 역시 가장 끝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남면에는 다른 면과 달리 초경과 종경이 적혀 있지 않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은 지도를 그릴 때와 주기를 적을 때가 달랐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즉, 지도를 그릴 때는 남면으로 했다가 주기를 적을 때는 이지현면으로 바꾸었다고 생각된다. 《해동지도》의 주기 작성자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지도에 있는 남면을 주기에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의 주기에는 이지현면은 있지만 남면은 생략되어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신령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그러나 《해동지도》는 세로(남북)를 가로(동서)보다 더 길게 그렸고, 본 지도는 반대로 표현하였다. 이 과정에서 하천의 흐름이 세로는 상대적으로 길게, 가로는 짧게 그려져 있다. 고을의 실제적인 모습은 남북보다는 동서가 길게 되어 있어 《해동지도》가 사실에 가깝다. 본 지도는 세로로 긴 일정한 크기의 종이에 맞추어 지도를 그렸기 때문에 그로 인한 왜곡을 피할 수 없었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수록되어 있지만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런 측면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약간의 변화를 준 것으로 추정된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다보니까 몇 가지 왜곡이 발생하였다. 신령현의 서쪽의 남북 폭은 동쪽에 비해 훨씬 좁지만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예를 들어 왼쪽 위의 雉山面은 오른쪽 위의 新村面보다 훨씬 남쪽에 있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아래쪽의 南面은 영천의 경계를 넘어 현재의 경산시 와촌면 서쪽 부분에 있었던 신령현의 월경지였다. 아래쪽에 永川界와 河陽界가 연속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은 이런 사실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南面을 잘못 이해하고 그린 것은 이미 《해동지도》에서 시작되었다. 남면은 梨旨縣面과 동일한 지역을 가리킨다. 《해동지도》의 주기에는 이지현면이 적혀 있고, 南面 역시 가장 끝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남면에는 다른 면과 달리 초경과 종경이 적혀 있지 않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은 지도를 그릴 때와 주기를 적을 때가 달랐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즉, 지도를 그릴 때는 남면으로 했다가 주기를 적을 때는 이지현면으로 바꾸었다고 생각된다. 《해동지도》의 주기 작성자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지도에 있는 남면을 주기에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의 주기에는 이지현면은 있지만 남면은 생략되어 있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개령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다. 이로 인해 하천과 산줄기의 흐름이 약간 달라졌지만 전체적으로는 비슷하다. 왼쪽의 金山界에서 흘러와 오른쪽 善山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감천이다. 왼쪽 위의 金山界부터 흘러와 감천에 합류되는 하천은 아천이다. 감천이 아천보다 훨씬 규모가 크지만 본 지도에서는 이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그렸다. 반면에 《해동지도》에는 감천을 아천보다 훨씬 굵게 그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본 지도에 수록된 읍치 이외의 지명 중 《해동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은 오른쪽 아래의 牙浦面이다. 그러나 원래부터 《해동지도》에 아포면이 없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본 지도의 아포면 위치에 《해동지도》에 지운 흔적도 보이기 때문이다. 읍치의 건물 명칭 중 《해동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은 다른 자료를 통해 보충한 것으로 생각된다. 건물의 모습 중 亭子를 초가지붕으로 그린 것이 이채롭다. 개령현은 북쪽이 좁고 남쪽은 넓다. 본 지도에서는 북쪽과 남쪽을 동일하게 그렸기 때문에 이와 같은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렇게 된 이유는 사각형의 종이 위에 고을 전체를 꽉 차게 그리려고 했기 때문이다. 다만 북쪽에는 北面 1개만이 있는데 반해 남쪽에는 면이 5개나 있어 실제 사실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개령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다. 이로 인해 하천과 산줄기의 흐름이 약간 달라졌지만 전체적으로는 비슷하다. 왼쪽의 金山界에서 흘러와 오른쪽 善山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감천이다. 왼쪽 위의 金山界부터 흘러와 감천에 합류되는 하천은 아천이다. 감천이 아천보다 훨씬 규모가 크지만 본 지도에서는 이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그렸다. 반면에 《해동지도》에는 감천을 아천보다 훨씬 굵게 그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본 지도에 수록된 읍치 이외의 지명 중 《해동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은 오른쪽 아래의 牙浦面이다. 그러나 원래부터 《해동지도》에 아포면이 없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본 지도의 아포면 위치에 《해동지도》에 지운 흔적도 보이기 때문이다. 읍치의 건물 명칭 중 《해동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은 다른 자료를 통해 보충한 것으로 생각된다. 건물의 모습 중 亭子를 초가지붕으로 그린 것이 이채롭다. 개령현은 북쪽이 좁고 남쪽은 넓다. 본 지도에서는 북쪽과 남쪽을 동일하게 그렸기 때문에 이와 같은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렇게 된 이유는 사각형의 종이 위에 고을 전체를 꽉 차게 그리려고 했기 때문이다. 다만 북쪽에는 北面 1개만이 있는데 반해 남쪽에는 면이 5개나 있어 실제 사실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거제부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거의 다 《해동지도》에 나오며, 하천의 표시도 길이나 유로에서 약간 차이가 나지만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와 《해동지도》는 필사 관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비해 古縣城이나 玉浦鎭 등이 훨씬 크게 적혀 있다. 이것은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은 종이 위에 지도를 그려 크기를 크게 하지 않으면 구별하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해동지도》에 비해 해안선도 단조로워졌다. 또한 《해동지도》에 어느 정도 고려되었던 섬의 크기 표현도 본 지도에서는 많이 약화되었다. 이것 역시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은 종이 위에 그렸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지도의 크기가 작기 때문에 《해동지도》에 표시한 작은 섬들을 동일한 크기로 축소하면 거의 점에 가까워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지도 위에는 4개의 면이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는 반면에 주기에는 2개 밖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반면에 《해동지도》의 지도와 주기 모두 6개의 面이 표시되어 있다. 이것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지도와 주기 모두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작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거제부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거의 다 《해동지도》에 나오며, 하천의 표시도 길이나 유로에서 약간 차이가 나지만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와 《해동지도》는 필사 관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비해 古縣城이나 玉浦鎭 등이 훨씬 크게 적혀 있다. 이것은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은 종이 위에 지도를 그려 크기를 크게 하지 않으면 구별하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해동지도》에 비해 해안선도 단조로워졌다. 또한 《해동지도》에 어느 정도 고려되었던 섬의 크기 표현도 본 지도에서는 많이 약화되었다. 이것 역시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은 종이 위에 그렸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지도의 크기가 작기 때문에 《해동지도》에 표시한 작은 섬들을 동일한 크기로 축소하면 거의 점에 가까워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지도 위에는 4개의 면이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는 반면에 주기에는 2개 밖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반면에 《해동지도》의 지도와 주기 모두 6개의 面이 표시되어 있다. 이것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지도와 주기 모두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작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거창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비슷하다. 거창은 1729년(영조 9)에 郡에서 府로 승격되었다가 1787년(정조 11)에 縣으로 강등되었으며, 1797년(정조 21)에 다시 府가 되었다. 따라서 본 지도는 최소한 1729년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치의 일부를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나오는 것과 동일하다. 《해동지도》에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과 驛에 각각 노란색과 황색의 사각형을 덧붙였다. 그러나 읍치 동쪽의 東部面을 東北面으로 잘못 적고, 그 오른쪽에 古毛峴面을 생략하는 오류도 범하고 있다. 지명을 실수로 생략한 흔적으로 또 예를 들면 왼쪽 위에 건물 모양만 그려져 있는 것이다. 《해동지도》에는 여기에 書院이란 명칭이 적혀 있다. 《해동지도》가 가로(동서)를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세로(남북)를 길게 그렸다. 하천의 유로나 갈라지는 모습이 본 지도와 《해동지도》가 동일하지만 전체적으로 본 지도가 남북으로 더 길게 그려져 있다. 왼쪽의 安陰界에서 들어오는 하천이 《해동지도》에는 마치 안음과의 경계선이 발원지인 것처럼 그려져 있다. 실제로는 서쪽의 안음에서 흘러오기 때문에 본 지도가 사실에 더 부합된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거창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비슷하다. 거창은 1729년(영조 9)에 郡에서 府로 승격되었다가 1787년(정조 11)에 縣으로 강등되었으며, 1797년(정조 21)에 다시 府가 되었다. 따라서 본 지도는 최소한 1729년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치의 일부를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나오는 것과 동일하다. 《해동지도》에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과 驛에 각각 노란색과 황색의 사각형을 덧붙였다. 그러나 읍치 동쪽의 東部面을 東北面으로 잘못 적고, 그 오른쪽에 古毛峴面을 생략하는 오류도 범하고 있다. 지명을 실수로 생략한 흔적으로 또 예를 들면 왼쪽 위에 건물 모양만 그려져 있는 것이다. 《해동지도》에는 여기에 書院이란 명칭이 적혀 있다. 《해동지도》가 가로(동서)를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세로(남북)를 길게 그렸다. 하천의 유로나 갈라지는 모습이 본 지도와 《해동지도》가 동일하지만 전체적으로 본 지도가 남북으로 더 길게 그려져 있다. 왼쪽의 安陰界에서 들어오는 하천이 《해동지도》에는 마치 안음과의 경계선이 발원지인 것처럼 그려져 있다. 실제로는 서쪽의 안음에서 흘러오기 때문에 본 지도가 사실에 더 부합된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경산현 지도와 비슷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성 부분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는 지명 중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이 여러 개 있다. 본 지도에 표현된 하천의 유로 역시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보면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읍성과 일부의 정보를 참고하여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는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아래쪽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흘러가는 하천이 현재의 금호강이다. 왼쪽의 慈仁界에서 흘러와 금호강에 합류하는 하천은 현재의 오목천이다. 이 오목천의 끝이 《해동지도》에는 얇게 되어 있어 마치 자인과의 경계선이 발원지인 것처럼 오해할 수 있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다른 자료를 통해 교정한 것이 아닌가 한다. 향교를 두르고 있는 것은 성곽이 아니라 담장일 뿐이다. 이 담장은 《해동지도》에는 없던 것으로 본 지도에서 추가된 것이다. 그러나 읍성과 동일하게 표현하여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경산현 지도와 비슷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성 부분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는 지명 중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이 여러 개 있다. 본 지도에 표현된 하천의 유로 역시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보면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읍성과 일부의 정보를 참고하여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는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아래쪽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흘러가는 하천이 현재의 금호강이다. 왼쪽의 慈仁界에서 흘러와 금호강에 합류하는 하천은 현재의 오목천이다. 이 오목천의 끝이 《해동지도》에는 얇게 되어 있어 마치 자인과의 경계선이 발원지인 것처럼 오해할 수 있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다른 자료를 통해 교정한 것이 아닌가 한다. 향교를 두르고 있는 것은 성곽이 아니라 담장일 뿐이다. 이 담장은 《해동지도》에는 없던 것으로 본 지도에서 추가된 것이다. 그러나 읍성과 동일하게 표현하여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이기봉)
본 지도책에 수록된 대부분의 경상도 군현지도가 《해동지도》의 것과 거의 유사한 반면에 경주부의 지도는 《해동지도》와 다른 점이 여러 군데서 보이고 있다. 우선 하천의 유로라는 측면에서 몇 가지 차이가 발견되고 있다. 위쪽으로 竹長面에 표시된 현재의 금호강 최상류, 神光面에 표시된 현재의 곡강천 상류는 《해동지도》에 없는 것이다. 그 아래쪽으로 見谷面에 표시된 현재의 소현천과 아래쪽 오른쪽에 표시된 현재의 동천강 상류도 《해동지도》에 없던 것이다. 또한 읍치 아래쪽의 남천, 서천, 대천의 유로 표시가 다르며, 왼쪽 아래의 밀양강 최상류 부분도 하천의 모양이 전혀 다르다. 더 나아가 본 지도에 표시된 面 정보 역시 《해동지도》와는 전혀 다르게 되어 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책에 수록된 대부분의 경상도 군현지도와 달리 본 지도는 《해동지도》와 거의 관련이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가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되어 그려졌기 때문에 모든 지역에 동일한 축척과 방향이 적용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확실하게 잘못 표현된 부분도 여러 개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왼쪽 위에 표시된 北安谷面은 실제로는 西面路西의 좌측에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읍치 오른쪽 위의 川北面이 마치 북천 유역에 있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는 것도 약간 문제가 있다. 천북면의 핵심지역은 현곡면에서 흘러오는 소현천과 규모가 비슷한 현재의 신당천 유역에 있다. 그러나 신당천이 본 지도에 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약간만 걸쳐 있었던 북천 유역에 있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게 그려져 있다. 이 밖의 다른 지명들은 축척과 방향에서 정확하다고 할 수 없더라도 대략적인 측면에서 볼 때 크게 틀린 것은 없다고 볼 수 있다. 기타 왼쪽에 新寧界와 慈仁界가 적혀 있는데, 경주부가 두 고을과 직접 경계를 맞대고 있지는 않았다. 다만 해당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두 고을의 경계가 나온다는 측면에서 보면 틀리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이기봉)
본 지도책에 수록된 대부분의 경상도 군현지도가 《해동지도》의 것과 거의 유사한 반면에 경주부의 지도는 《해동지도》와 다른 점이 여러 군데서 보이고 있다. 우선 하천의 유로라는 측면에서 몇 가지 차이가 발견되고 있다. 위쪽으로 竹長面에 표시된 현재의 금호강 최상류, 神光面에 표시된 현재의 곡강천 상류는 《해동지도》에 없는 것이다. 그 아래쪽으로 見谷面에 표시된 현재의 소현천과 아래쪽 오른쪽에 표시된 현재의 동천강 상류도 《해동지도》에 없던 것이다. 또한 읍치 아래쪽의 남천, 서천, 대천의 유로 표시가 다르며, 왼쪽 아래의 밀양강 최상류 부분도 하천의 모양이 전혀 다르다. 더 나아가 본 지도에 표시된 面 정보 역시 《해동지도》와는 전혀 다르게 되어 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책에 수록된 대부분의 경상도 군현지도와 달리 본 지도는 《해동지도》와 거의 관련이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가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되어 그려졌기 때문에 모든 지역에 동일한 축척과 방향이 적용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확실하게 잘못 표현된 부분도 여러 개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왼쪽 위에 표시된 北安谷面은 실제로는 西面路西의 좌측에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읍치 오른쪽 위의 川北面이 마치 북천 유역에 있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는 것도 약간 문제가 있다. 천북면의 핵심지역은 현곡면에서 흘러오는 소현천과 규모가 비슷한 현재의 신당천 유역에 있다. 그러나 신당천이 본 지도에 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약간만 걸쳐 있었던 북천 유역에 있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게 그려져 있다. 이 밖의 다른 지명들은 축척과 방향에서 정확하다고 할 수 없더라도 대략적인 측면에서 볼 때 크게 틀린 것은 없다고 볼 수 있다. 기타 왼쪽에 新寧界와 慈仁界가 적혀 있는데, 경주부가 두 고을과 직접 경계를 맞대고 있지는 않았다. 다만 해당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두 고을의 경계가 나온다는 측면에서 보면 틀리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고령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 부분이 더 크게 그려져 있고, 赤林이 강조되어 있다. 또한 세로(남북)가 상대적으로 더 길게 그려져 있다. 반면에 하천의 유로와 지명은 거의 동일하게 되어 있다. 하천의 표현에서 《해동지도》와 다른 점이 몇 군데 보이고 있는데, 오른쪽의 낙동강이 다른 하천과 별로 구분되지 않게 표현된 것이 그 중의 하나이다. 읍치 아래쪽의 하천은 현재의 안림천으로서 실제로는 陜川界 방면에서 흘러온다. 《해동지도》에는 합천 방면에서 흘러오는 것처럼 그려져 있으나 본 지도에는 합천계를 모두 산줄기로 표현하여 上東面이 안림천의 발원지인 것처럼 표현하였다. 위쪽의 大伽川은 현재의 회천이고, 小伽川은 그 지류로서 현재도 소가천이라 부르고 있다. 두 하천 모두 星州界를 넘어서 들어온다. 그런데 《해동지도》에도 두 하천의 끝을 얇게 하여 마치 경계선 부근이 발원지인 것처럼 착각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그러나 두 하천의 끝 부분에 산줄기를 이어 그리지 않아서 성주계로부터 흘러올 수 있는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다. 반면에 본 지도에서는 대가천 상류 부분을 아예 산줄기로 연결하여 확실하게 사실과 다르게 표현하였다. 읍치의 倉과 快賓樓를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수록되어 있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수록되지 않은 것이 여러 개 있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며, 필사 과정에서 여러 오류를 범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책에서 노란색 사각형은 보통 面에만 적용시켰다. 그런데 본 지도에는 면이 아닌 지명에도 노란색 사각형을 표시하고 있어 필사 시에 정보 자체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노란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는 宜守와 宜陣은 모두 군사적 측면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마땅히 지킬만한 곳’, ‘마땅히 陣을 칠만한 곳’이라는 뜻일 뿐 面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고령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 부분이 더 크게 그려져 있고, 赤林이 강조되어 있다. 또한 세로(남북)가 상대적으로 더 길게 그려져 있다. 반면에 하천의 유로와 지명은 거의 동일하게 되어 있다. 하천의 표현에서 《해동지도》와 다른 점이 몇 군데 보이고 있는데, 오른쪽의 낙동강이 다른 하천과 별로 구분되지 않게 표현된 것이 그 중의 하나이다. 읍치 아래쪽의 하천은 현재의 안림천으로서 실제로는 陜川界 방면에서 흘러온다. 《해동지도》에는 합천 방면에서 흘러오는 것처럼 그려져 있으나 본 지도에는 합천계를 모두 산줄기로 표현하여 上東面이 안림천의 발원지인 것처럼 표현하였다. 위쪽의 大伽川은 현재의 회천이고, 小伽川은 그 지류로서 현재도 소가천이라 부르고 있다. 두 하천 모두 星州界를 넘어서 들어온다. 그런데 《해동지도》에도 두 하천의 끝을 얇게 하여 마치 경계선 부근이 발원지인 것처럼 착각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그러나 두 하천의 끝 부분에 산줄기를 이어 그리지 않아서 성주계로부터 흘러올 수 있는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다. 반면에 본 지도에서는 대가천 상류 부분을 아예 산줄기로 연결하여 확실하게 사실과 다르게 표현하였다. 읍치의 倉과 快賓樓를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수록되어 있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수록되지 않은 것이 여러 개 있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며, 필사 과정에서 여러 오류를 범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책에서 노란색 사각형은 보통 面에만 적용시켰다. 그런데 본 지도에는 면이 아닌 지명에도 노란색 사각형을 표시하고 있어 필사 시에 정보 자체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노란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는 宜守와 宜陣은 모두 군사적 측면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마땅히 지킬만한 곳’, ‘마땅히 陣을 칠만한 곳’이라는 뜻일 뿐 面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固城縣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성과 통영의 성곽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해동지도》보다 본 지도의 종이가 훨씬 작기 때문에 동일한 비율로 그리면 알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다는 것은 다른 부분은 상대적으로 작게 그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하천의 유로가 약간 달라지고, 해안선이 단조로워지는 등의 변화가 발생하였다. 특히 통영 성곽을 상대적으로 크게 그린 것은 다른 부분의 묘사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생각된다. 해안선과 섬이 단조로워진 것은 지도의 크기 자체가 작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은 종이 위에 그리다보니까 복잡한 해안선이나 섬을 동일하게 표현할 수 없었다고 생각된다. 더 나아가 《해동지도》의 내용과 전혀 다른 왜곡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왼쪽 아래의 蛇梁鎭의 위치가 《해동지도》에는 床足石보다 더 남쪽으로 되어 있고, 柯島는 사량진 남쪽에 위치한 것으로 그려져 있다. 그런데 본 지도에는 사량진이 상당히 위로 올라갔고, 가도는 상족도 방향에 붙어 있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실제로는 《해동지도》의 내용이 사실에 부합된다. 따라서 본 지도의 필사 시 사실을 인식하고 있지 못했으며, 필사 과정에서 자의적인 판단으로 지명의 위치를 옮긴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성과 통영 성곽 안의 것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거의 나온다. 반대로 《해동지도》에 나오지만 본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지명이 많다. 특히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할 만큼 중요하게 생각한 面 중에서 《해동지도》에는 있지만 본 지도에는 없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해동지도》에 읍치 동쪽에 표시되어 있던 光內一運面과 光內二運面이 본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2개의 면 명칭이 주기에는 나오고 있어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으로 생각된다. 지명이 표시된 面 중에서도 명칭을 잘못 옮긴 거도 있다. 읍치 오른쪽에는 東邑內面으로 제대로 적었지만 왼쪽에는 西邑內面을 西邑面으로 적었다. 또한 왼쪽 아래에는 下里二運面으로 올바르게 기록했지만 그 위쪽에는 下里一運面을 下里運面으로 적기도 했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固城縣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성과 통영의 성곽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해동지도》보다 본 지도의 종이가 훨씬 작기 때문에 동일한 비율로 그리면 알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다는 것은 다른 부분은 상대적으로 작게 그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하천의 유로가 약간 달라지고, 해안선이 단조로워지는 등의 변화가 발생하였다. 특히 통영 성곽을 상대적으로 크게 그린 것은 다른 부분의 묘사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생각된다. 해안선과 섬이 단조로워진 것은 지도의 크기 자체가 작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은 종이 위에 그리다보니까 복잡한 해안선이나 섬을 동일하게 표현할 수 없었다고 생각된다. 더 나아가 《해동지도》의 내용과 전혀 다른 왜곡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왼쪽 아래의 蛇梁鎭의 위치가 《해동지도》에는 床足石보다 더 남쪽으로 되어 있고, 柯島는 사량진 남쪽에 위치한 것으로 그려져 있다. 그런데 본 지도에는 사량진이 상당히 위로 올라갔고, 가도는 상족도 방향에 붙어 있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실제로는 《해동지도》의 내용이 사실에 부합된다. 따라서 본 지도의 필사 시 사실을 인식하고 있지 못했으며, 필사 과정에서 자의적인 판단으로 지명의 위치를 옮긴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성과 통영 성곽 안의 것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거의 나온다. 반대로 《해동지도》에 나오지만 본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지명이 많다. 특히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할 만큼 중요하게 생각한 面 중에서 《해동지도》에는 있지만 본 지도에는 없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해동지도》에 읍치 동쪽에 표시되어 있던 光內一運面과 光內二運面이 본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2개의 면 명칭이 주기에는 나오고 있어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으로 생각된다. 지명이 표시된 面 중에서도 명칭을 잘못 옮긴 거도 있다. 읍치 오른쪽에는 東邑內面으로 제대로 적었지만 왼쪽에는 西邑內面을 西邑面으로 적었다. 또한 왼쪽 아래에는 下里二運面으로 올바르게 기록했지만 그 위쪽에는 下里一運面을 下里運面으로 적기도 했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곤양군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에서는 읍성 부분을 상대적으로 훨씬 크게 그렸다. 또한 《해동지도》에 비해 해안선이나 섬을 상대적으로 단순하게 그렸고, 이런 과정에서 일부 달라진 곳도 있다.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읍성 안쪽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있는 지명 중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도 있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이며, 단지 읍성 부분만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오른쪽 위에 보이는 하천이 낙동강의 지류인 남강이고, 아래쪽은 남해에 접해 있다. 곤양군은 남북의 폭이 동서에 비해 훨씬 좁다. 본 지도에서는 반대로 남북(세로)을 동서(가로)보다 길게 그렸다. 또한 곤양군의 읍치는 동쪽에 치우쳐져 있는데, 본 지도에는 정 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그렸다. 이런 과정에서 사실과 다른 여러 왜곡이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왼쪽 위에 있는 露梁은 읍치의 서남 방향으로 동쪽 경계보다 훨씬 먼 거리에 있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 본다면 마치 서북쪽에 있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 이것은 읍치로부터 노량까지 상대적으로 먼 지역을 모두 그리기 위해서는 종이 위에서 상대적으로 긴 세로 부분에 배치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기타 북쪽에서 읍치를 지나 남해안으로 빠져나가는 현재의 곤양천도 실제로는 북쪽의 河東으로부터 들어온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곤양군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에서는 읍성 부분을 상대적으로 훨씬 크게 그렸다. 또한 《해동지도》에 비해 해안선이나 섬을 상대적으로 단순하게 그렸고, 이런 과정에서 일부 달라진 곳도 있다.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읍성 안쪽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있는 지명 중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도 있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이며, 단지 읍성 부분만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오른쪽 위에 보이는 하천이 낙동강의 지류인 남강이고, 아래쪽은 남해에 접해 있다. 곤양군은 남북의 폭이 동서에 비해 훨씬 좁다. 본 지도에서는 반대로 남북(세로)을 동서(가로)보다 길게 그렸다. 또한 곤양군의 읍치는 동쪽에 치우쳐져 있는데, 본 지도에는 정 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그렸다. 이런 과정에서 사실과 다른 여러 왜곡이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왼쪽 위에 있는 露梁은 읍치의 서남 방향으로 동쪽 경계보다 훨씬 먼 거리에 있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 본다면 마치 서북쪽에 있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 이것은 읍치로부터 노량까지 상대적으로 먼 지역을 모두 그리기 위해서는 종이 위에서 상대적으로 긴 세로 부분에 배치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기타 북쪽에서 읍치를 지나 남해안으로 빠져나가는 현재의 곤양천도 실제로는 북쪽의 河東으로부터 들어온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군위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본 지도는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해동지도》가 가로(동서)를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세로(남북)를 더 길게 그렸다. 본 지도에서는 하천의 본류와 지류의 표현에서 실제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게 그렸다. 오른쪽 위의 하천들이 그 끝을 모두 얇게 처리하여 의흥과의 경계선이 발원지인 것처럼 착각할 수 있게 그렸다. 그러나 《해동지도》에는 모두 다른 고을에서 하천이 흘러오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실제로는 《해동지도》의 표현이 올바르다. 위쪽의 義興界에서 흘러와 읍치의 아래를 지나고, 왼쪽 아래의 比安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위천 본류이다. 그리고 왼쪽 위에서 흘러와 위천에 합류되는 하천은 현재 신안천이라고 불리고 있다. 이 신안천은 위천 본류에 비하면 아주 작은 하천에 불과하다. 그런데 본 지도에는 마치 위천 본류보다도 훨씬 큰 하천인 것처럼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서도 이 점은 약간 애매하게 되어 있지만 본 지도가 훨씬 심한 왜곡을 보이고 있다. 본 지도에 수록된 지명은 읍치의 倉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나오는 縣內面이 생략되어 있고, 왼쪽 아래에 召召本面이 召召等面으로 적혀 있는 오류가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측면들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기본으로 하면서 다른 자료를 약간 첨가하여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런 필사 과정에서 꼼꼼하게 사실을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당한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군위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본 지도는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해동지도》가 가로(동서)를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세로(남북)를 더 길게 그렸다. 본 지도에서는 하천의 본류와 지류의 표현에서 실제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게 그렸다. 오른쪽 위의 하천들이 그 끝을 모두 얇게 처리하여 의흥과의 경계선이 발원지인 것처럼 착각할 수 있게 그렸다. 그러나 《해동지도》에는 모두 다른 고을에서 하천이 흘러오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실제로는 《해동지도》의 표현이 올바르다. 위쪽의 義興界에서 흘러와 읍치의 아래를 지나고, 왼쪽 아래의 比安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위천 본류이다. 그리고 왼쪽 위에서 흘러와 위천에 합류되는 하천은 현재 신안천이라고 불리고 있다. 이 신안천은 위천 본류에 비하면 아주 작은 하천에 불과하다. 그런데 본 지도에는 마치 위천 본류보다도 훨씬 큰 하천인 것처럼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서도 이 점은 약간 애매하게 되어 있지만 본 지도가 훨씬 심한 왜곡을 보이고 있다. 본 지도에 수록된 지명은 읍치의 倉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나오는 縣內面이 생략되어 있고, 왼쪽 아래에 召召本面이 召召等面으로 적혀 있는 오류가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측면들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기본으로 하면서 다른 자료를 약간 첨가하여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런 필사 과정에서 꼼꼼하게 사실을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당한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기장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하천의 유로 표현이 약간 달라지긴 했지만 본류와 지류라는 측면에서 보면 거의 동일하다. 읍성이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직사각형에서 약간 둥근 형태로 바뀌어 있다. 지명은 읍성 내의 司倉과 왼쪽 위의 下西面 부근에 眞木封山이 추가된 것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있는 것은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도 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바탕으로 다른 자료를 약간 참고하여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기장현은 북쪽의 동서 폭이 남쪽보다 훨씬 더 넓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북쪽과 남쪽의 동서 폭이 거의 비슷한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가로와 세로가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고을 전체의 모습을 맞추어 그리려고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읍성이 있는 곳부터 남쪽 부분은 동서의 폭이 상당히 좁아진다. 하지만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다 보니까 동서의 폭이 좁아지지 않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몇 가지 왜곡이 발생하였다. 읍성에서 바다로 흘러가는 현재의 죽성천 남쪽의 해안선은 본 지도에 동서의 방향을 하는 것처럼 그려졌다. 그러나 실제로는 동북으로 약간 치우쳐진 남북의 방향을 하고 있다. 《해동지도》에도 정도는 덜하지만 비슷한 왜곡이 발생되어 있다. 오른쪽 위에 長安寺로부터 내려오는 현재의 장안천 동쪽의 해안선이 《해동지도》에는 동서 방향을 하고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그런데 본 지도에서는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는 과정에서 이 부분이 그냥 남북의 방향인 것처럼 바뀌어 있다. 실제적으로는 《해동지도》가 사실에 가깝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기장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하천의 유로 표현이 약간 달라지긴 했지만 본류와 지류라는 측면에서 보면 거의 동일하다. 읍성이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직사각형에서 약간 둥근 형태로 바뀌어 있다. 지명은 읍성 내의 司倉과 왼쪽 위의 下西面 부근에 眞木封山이 추가된 것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있는 것은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도 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바탕으로 다른 자료를 약간 참고하여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기장현은 북쪽의 동서 폭이 남쪽보다 훨씬 더 넓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북쪽과 남쪽의 동서 폭이 거의 비슷한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가로와 세로가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고을 전체의 모습을 맞추어 그리려고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읍성이 있는 곳부터 남쪽 부분은 동서의 폭이 상당히 좁아진다. 하지만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다 보니까 동서의 폭이 좁아지지 않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몇 가지 왜곡이 발생하였다. 읍성에서 바다로 흘러가는 현재의 죽성천 남쪽의 해안선은 본 지도에 동서의 방향을 하는 것처럼 그려졌다. 그러나 실제로는 동북으로 약간 치우쳐진 남북의 방향을 하고 있다. 《해동지도》에도 정도는 덜하지만 비슷한 왜곡이 발생되어 있다. 오른쪽 위에 長安寺로부터 내려오는 현재의 장안천 동쪽의 해안선이 《해동지도》에는 동서 방향을 하고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그런데 본 지도에서는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는 과정에서 이 부분이 그냥 남북의 방향인 것처럼 바뀌어 있다. 실제적으로는 《해동지도》가 사실에 가깝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金山郡 지도와 비슷하다. 일단 읍치에 있는 일부 건물과 아래쪽의 乾川面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이 중 건천면은 《해동지도》에 처음부터 없었다기보다는 주기를 적는 과정에서 생략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지명의 위치가 바뀐 곳도 여러 개 보이고 있다. 이렇게 지명 위치가 바뀌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첫째, 《해동지도》는 동서(가로)를 남북(세로)보다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남북을 길게 그렸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둘째, 읍치를 상대적으로 크게 그리는 과정에서 다른 부분의 변화가 발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셋째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각형에 더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변화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지명의 위치를 배치하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面 정보를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할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였지만 읍치의 郡內面과 金泉驛舘 부근에 있었던 金泉面이 생략되어 있다. 또한 김천역관 오른쪽에 표시된 甘川橋가 《해동지도》에 甘川과 橋로 분리되어 있다. 오른쪽 아래의 延命面은 성주와 개령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이다. 《해동지도》에는 星州界가 그 안쪽에 적혀 있어 어느 정도 월경지 임을 짐작할 수 있지만 본 지도에서는 성주계가 아예 생략되어 있다.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러나 모든 지역의 방향이 정확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왼쪽에서 흘러와 오른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은 현재의 감천이다. 이 감천은 실제로는 서남쪽에서 들어와 동북쪽으로 빠져나가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왼쪽의 直指寺에서 흘러오는 하천은 현재의 직지천 인데, 실제로는 거의 東流하여 감천에 합류된다. 기타 직지사 오른쪽의 추풍령 아래쪽에 충청도 黃澗縣의 땅이 있었지만 본 지도에는 전혀 표시되어 있지 않다. 가장 위쪽의 黃金所面은 낙동강이 아닌 금강 유역에 속한 현재의 영동군 추풍령면에 있었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金山郡 지도와 비슷하다. 일단 읍치에 있는 일부 건물과 아래쪽의 乾川面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이 중 건천면은 《해동지도》에 처음부터 없었다기보다는 주기를 적는 과정에서 생략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지명의 위치가 바뀐 곳도 여러 개 보이고 있다. 이렇게 지명 위치가 바뀌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첫째, 《해동지도》는 동서(가로)를 남북(세로)보다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남북을 길게 그렸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둘째, 읍치를 상대적으로 크게 그리는 과정에서 다른 부분의 변화가 발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셋째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각형에 더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변화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지명의 위치를 배치하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面 정보를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할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였지만 읍치의 郡內面과 金泉驛舘 부근에 있었던 金泉面이 생략되어 있다. 또한 김천역관 오른쪽에 표시된 甘川橋가 《해동지도》에 甘川과 橋로 분리되어 있다. 오른쪽 아래의 延命面은 성주와 개령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이다. 《해동지도》에는 星州界가 그 안쪽에 적혀 있어 어느 정도 월경지 임을 짐작할 수 있지만 본 지도에서는 성주계가 아예 생략되어 있다.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러나 모든 지역의 방향이 정확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왼쪽에서 흘러와 오른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은 현재의 감천이다. 이 감천은 실제로는 서남쪽에서 들어와 동북쪽으로 빠져나가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왼쪽의 直指寺에서 흘러오는 하천은 현재의 직지천 인데, 실제로는 거의 東流하여 감천에 합류된다. 기타 직지사 오른쪽의 추풍령 아래쪽에 충청도 黃澗縣의 땅이 있었지만 본 지도에는 전혀 표시되어 있지 않다. 가장 위쪽의 黃金所面은 낙동강이 아닌 금강 유역에 속한 현재의 영동군 추풍령면에 있었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김해부 지도와 비슷하다. 왼쪽 위의 昌原界에서 들어와 오른쪽 아래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이다. 낙동강 에 유읍되는 여러 하천의 유로가 《해동지도》와 비슷하지만 달라진 부분이 몇몇 보이고 있다. 우선 읍치 가장 왼쪽의 하천에 《해동지도》에는 外三台 아래쪽과 연결되어 있다. 또한 《해동지도》에는 가장 아래쪽 台也面 방향에도 하천이 하나 그려져 있다. 후자는 《해동지도》가 정확하지만 전자는 낙동강 하구인 이 지역의 지형 변화가 심하기 때문에 어느 것이 맞는지 정확하게 이야기하기 어렵다. 오른쪽 아래의 德島 역시 본 지도에는 육지와 연결된 것처럼 되어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분명한 섬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부분 역시 지형 변화가 심한 곳이기 때문에 어느 것이 옳은지 분명하게 이야기하기 어렵다. 위쪽에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하천은 현재의 화포천이다. 화포천은 실제로는 조양강과 비슷하거나 더 긴 하천이지만 본 지도에는 상당히 짧은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읍치를 다른 지역보다 확대해서 그렸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읍성 주변을 싸고 있는 흙색의 선은 《해동지도》에 ‘수로왕 때 쌓은 土城이다’라고 적혀 있다. 《해동지도》에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 기호를 첨가하였다. 그러나 위쪽에 《해동지도》에는 표시되어 있던 大山面과 中北面 등이 생략되어 있다. 이 2개의 면이 주기에 적혀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 필사자의 실수라고 생각된다. 오른쪽 위에 집 모양만 표시되어 있는 곳에도 《해동지도》에는 甘露寺라는 명칭이 기록되어 있어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 아닌가 한다.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지만 아래쪽 鳴旨島까지 낙동강이 남류함에도 이와 같은 사실이 잘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김해부 지도와 비슷하다. 왼쪽 위의 昌原界에서 들어와 오른쪽 아래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이다. 낙동강 에 유읍되는 여러 하천의 유로가 《해동지도》와 비슷하지만 달라진 부분이 몇몇 보이고 있다. 우선 읍치 가장 왼쪽의 하천에 《해동지도》에는 外三台 아래쪽과 연결되어 있다. 또한 《해동지도》에는 가장 아래쪽 台也面 방향에도 하천이 하나 그려져 있다. 후자는 《해동지도》가 정확하지만 전자는 낙동강 하구인 이 지역의 지형 변화가 심하기 때문에 어느 것이 맞는지 정확하게 이야기하기 어렵다. 오른쪽 아래의 德島 역시 본 지도에는 육지와 연결된 것처럼 되어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분명한 섬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부분 역시 지형 변화가 심한 곳이기 때문에 어느 것이 옳은지 분명하게 이야기하기 어렵다. 위쪽에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하천은 현재의 화포천이다. 화포천은 실제로는 조양강과 비슷하거나 더 긴 하천이지만 본 지도에는 상당히 짧은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읍치를 다른 지역보다 확대해서 그렸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읍성 주변을 싸고 있는 흙색의 선은 《해동지도》에 ‘수로왕 때 쌓은 土城이다’라고 적혀 있다. 《해동지도》에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 기호를 첨가하였다. 그러나 위쪽에 《해동지도》에는 표시되어 있던 大山面과 中北面 등이 생략되어 있다. 이 2개의 면이 주기에 적혀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 필사자의 실수라고 생각된다. 오른쪽 위에 집 모양만 표시되어 있는 곳에도 《해동지도》에는 甘露寺라는 명칭이 기록되어 있어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 아닌가 한다.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지만 아래쪽 鳴旨島까지 낙동강이 남류함에도 이와 같은 사실이 잘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남해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본 지도는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성 안의 倉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반대로 《해동지도》에 나오지만 본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지명이 여러 개 있다. 게다가 본 지도에는 《해동지도》와 다르게 기록된 지명도 보이고 있다. 왼쪽 아래에는 蟹島가 2개나 적혀 있는데, 아래쪽의 것은 《해동지도》에 楮島로 되어 있다. 읍치 위쪽의 榧子島 역시 《해동지도》에는 榧子山으로 되어 있다. 필사 과정에서 바뀐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성과 鎭堡의 성곽이 크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본 지도의 크기가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즉, 《해동지도》와 동일한 크기의 비율로 그리면 정보를 이해하기 어렵게 된다. 이런 변화는 섬에 대한 표현에서도 나타난다. 昌善島를 제외하면 섬의 크기가 《해동지도》보다 대체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이 섬들은 실제로 상당히 작지만 《해동지도》와 같은 크기의 비율로 그리면 섬의 존재 자체를 표현하기 어렵다. 기타 창선도는 남해현의 땅이 아니라 진주에 속해 있었음에도 본 지도에 그려져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남해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본 지도는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성 안의 倉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반대로 《해동지도》에 나오지만 본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지명이 여러 개 있다. 게다가 본 지도에는 《해동지도》와 다르게 기록된 지명도 보이고 있다. 왼쪽 아래에는 蟹島가 2개나 적혀 있는데, 아래쪽의 것은 《해동지도》에 楮島로 되어 있다. 읍치 위쪽의 榧子島 역시 《해동지도》에는 榧子山으로 되어 있다. 필사 과정에서 바뀐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성과 鎭堡의 성곽이 크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본 지도의 크기가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즉, 《해동지도》와 동일한 크기의 비율로 그리면 정보를 이해하기 어렵게 된다. 이런 변화는 섬에 대한 표현에서도 나타난다. 昌善島를 제외하면 섬의 크기가 《해동지도》보다 대체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이 섬들은 실제로 상당히 작지만 《해동지도》와 같은 크기의 비율로 그리면 섬의 존재 자체를 표현하기 어렵다. 기타 창선도는 남해현의 땅이 아니라 진주에 속해 있었음에도 본 지도에 그려져 있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단성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가 세로(남북)보다 가로(동서)를 더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가로보다 세로를 길게 그렸다. 이것은 본 지도책 자체가 세로로 긴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군현의 모습을 그렸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차이 때문에 하천의 유로가 《해동지도》와 약간 달라지게 되었다. 예를 들어 오른쪽의 宜寧界에서 흘러오는 하천이 《해동지도》에는 거의 西流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는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표현되었다. 현재 양천이라 불리는 이 하천의 유로는 《해동지도》가 사실에 가까운데, 본 지도에서 세로로 긴 사각형에 지도를 그리는 과정에서 바뀐 것이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읍치의 倉과 위쪽의 法勿也面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다.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으면서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지명도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기본적으로 《해동지도》를 기반으로 필사하면서 2개 지명 정도를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왼쪽에는 晋州界가 산줄기 안쪽에 표시되어 있다. 이것은 현재 남사천이라 불리는 하천이 단성과 진주의 경계선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단성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가 세로(남북)보다 가로(동서)를 더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가로보다 세로를 길게 그렸다. 이것은 본 지도책 자체가 세로로 긴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군현의 모습을 그렸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차이 때문에 하천의 유로가 《해동지도》와 약간 달라지게 되었다. 예를 들어 오른쪽의 宜寧界에서 흘러오는 하천이 《해동지도》에는 거의 西流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는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표현되었다. 현재 양천이라 불리는 이 하천의 유로는 《해동지도》가 사실에 가까운데, 본 지도에서 세로로 긴 사각형에 지도를 그리는 과정에서 바뀐 것이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읍치의 倉과 위쪽의 法勿也面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다.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으면서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지명도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기본적으로 《해동지도》를 기반으로 필사하면서 2개 지명 정도를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왼쪽에는 晋州界가 산줄기 안쪽에 표시되어 있다. 이것은 현재 남사천이라 불리는 하천이 단성과 진주의 경계선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대구부 지도와 비슷하다. 왼쪽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 본류이다. 오른쪽에서 들어와 낙동강에 합류되는 하천이 현재의 금호강이고, 아래쪽의 淸道界로 빠져나가는 것은 현재의 밀양강 최상류이다. 하천 流路의 일부 모습이 《해동지도》에 비해 단순하게 그려져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와 《해동지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읍성의 유무이다. 대구부의 읍성은 1736년(영조 12)에 처음 만들어지는데, 본 지도에는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없다. 따라서 읍성을 중심으로 보면 《해동지도》는 읍성 축성 이전에, 본 지도는 축성 이후에 제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해동지도》의 주기에는 읍성 둘레가 2,124步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이것을 통해 볼 때 《해동지도》의 지도 부분은 1736년 이전에 만들어지고, 주기는 그 이후에 첨가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과 驛이 본 지도에는 노란색과 황색의 사각형 기호가 덧붙여져 있다. 그러나 왼쪽 위의 金川驛에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고, 면의 명칭에 2자와 3자가 섞여 나오는 등 치밀하지 못한 부분이 눈에 띈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도 일부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왼쪽 아래의 玄風界는 《해동지도》에 낙동강 동쪽에 표시되어 있는데, 《해동지도》가 타당하다. 또 아래쪽에 密陽界가 적혀 있지만 대구부는 밀양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았다.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에서 생략된 도로 끝에 密陽界가 적혀 있는데, 해당 도로를 따라 가면 密陽界를 만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도로를 생략하니까 마치 대구부가 밀양계와 접하고 있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게 된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 위에 그렸기 때문에 사실 왜곡 현상이 심하게 나타난다. 가장 심한 곳은 아래쪽에 角자가 붙어있는 면 지역이다. 이 지역은 실제로는 현풍과 청도 사이로 남쪽 깊숙이 튀어나간 부분이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대구부 지도와 비슷하다. 왼쪽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 본류이다. 오른쪽에서 들어와 낙동강에 합류되는 하천이 현재의 금호강이고, 아래쪽의 淸道界로 빠져나가는 것은 현재의 밀양강 최상류이다. 하천 流路의 일부 모습이 《해동지도》에 비해 단순하게 그려져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와 《해동지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읍성의 유무이다. 대구부의 읍성은 1736년(영조 12)에 처음 만들어지는데, 본 지도에는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없다. 따라서 읍성을 중심으로 보면 《해동지도》는 읍성 축성 이전에, 본 지도는 축성 이후에 제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해동지도》의 주기에는 읍성 둘레가 2,124步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이것을 통해 볼 때 《해동지도》의 지도 부분은 1736년 이전에 만들어지고, 주기는 그 이후에 첨가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과 驛이 본 지도에는 노란색과 황색의 사각형 기호가 덧붙여져 있다. 그러나 왼쪽 위의 金川驛에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고, 면의 명칭에 2자와 3자가 섞여 나오는 등 치밀하지 못한 부분이 눈에 띈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도 일부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왼쪽 아래의 玄風界는 《해동지도》에 낙동강 동쪽에 표시되어 있는데, 《해동지도》가 타당하다. 또 아래쪽에 密陽界가 적혀 있지만 대구부는 밀양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았다.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에서 생략된 도로 끝에 密陽界가 적혀 있는데, 해당 도로를 따라 가면 密陽界를 만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도로를 생략하니까 마치 대구부가 밀양계와 접하고 있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게 된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 위에 그렸기 때문에 사실 왜곡 현상이 심하게 나타난다. 가장 심한 곳은 아래쪽에 角자가 붙어있는 면 지역이다. 이 지역은 실제로는 현풍과 청도 사이로 남쪽 깊숙이 튀어나간 부분이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동래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읍치에 있는 靖遠樓와 財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그러나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잘못 적힌 지명도 눈에 띈다. 읍성 안의 忠烈祠는 忠烈別祠를, 읍성 위쪽의 敎坊은 敎場을, 金井山城 안쪽의 平夷는 海月寺를 잘못 적은 것이다. 《해동지도》에는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과 鎭堡 모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가 사용되었다. 다만 面의 사각형이 상대적으로 세로가 더 길게 되어 있다. 그러나 면과 진보의 표시에서도 일관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눈에 띈다. 왼쪽의 沙川面上端의 사각형에는 노란색이 칠해져 있지 않고, 아래쪽 白山 왼쪽에는 南面下端이 빠져 있다. 또한 釜山鎭과 多大鎭에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으며, 豆毛鎭 오른쪽에는 開雲鎭이 빠져 있다. 지도 전체의 모습은 《해동지도》에 비해 남북의 길이가 더 짧게 그려졌다. 이 과정에서 일부 부분의 모습이 달라졌다. 가장 많이 달라진 부분은 남쪽 해안가로서 짧아진 남북 길이가 대부분 이곳에서 발생하였다. 이로 인해 해안선이나 섬에 대한 표현이 《해동지도》와 상당히 달라지게 되었다. 예를 들어 太宗島는 《해동지도》에 盆島라고 나오며, 太宗臺가 絶影島 끝 부분에 표시되어 있다. 沒雲臺의 경우 훨씬 아래쪽에 표시되어 있다. 對馬島 역시 《해동지도》에 비해 海雲臺에 너무 가깝게 표시되어 있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성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다. 이로 인해 산줄기와 물줄기의 표현이 약간씩 달라졌다. 읍성 오른쪽의 수영강과 왼쪽의 온정천 굴곡이 심해진 것은 그런 영향으로 생각된다. 수영강의 경우 북쪽의 梁山界나 機長界에서 흘러오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해동지도》에는 수영강의 끝 부분이 白雲山 산줄기를 넘어간 것처럼 표현하여 이런 사실의 일단을 엿볼 수 있게 하였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동래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읍치에 있는 靖遠樓와 財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그러나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잘못 적힌 지명도 눈에 띈다. 읍성 안의 忠烈祠는 忠烈別祠를, 읍성 위쪽의 敎坊은 敎場을, 金井山城 안쪽의 平夷는 海月寺를 잘못 적은 것이다. 《해동지도》에는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과 鎭堡 모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가 사용되었다. 다만 面의 사각형이 상대적으로 세로가 더 길게 되어 있다. 그러나 면과 진보의 표시에서도 일관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눈에 띈다. 왼쪽의 沙川面上端의 사각형에는 노란색이 칠해져 있지 않고, 아래쪽 白山 왼쪽에는 南面下端이 빠져 있다. 또한 釜山鎭과 多大鎭에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으며, 豆毛鎭 오른쪽에는 開雲鎭이 빠져 있다. 지도 전체의 모습은 《해동지도》에 비해 남북의 길이가 더 짧게 그려졌다. 이 과정에서 일부 부분의 모습이 달라졌다. 가장 많이 달라진 부분은 남쪽 해안가로서 짧아진 남북 길이가 대부분 이곳에서 발생하였다. 이로 인해 해안선이나 섬에 대한 표현이 《해동지도》와 상당히 달라지게 되었다. 예를 들어 太宗島는 《해동지도》에 盆島라고 나오며, 太宗臺가 絶影島 끝 부분에 표시되어 있다. 沒雲臺의 경우 훨씬 아래쪽에 표시되어 있다. 對馬島 역시 《해동지도》에 비해 海雲臺에 너무 가깝게 표시되어 있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성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다. 이로 인해 산줄기와 물줄기의 표현이 약간씩 달라졌다. 읍성 오른쪽의 수영강과 왼쪽의 온정천 굴곡이 심해진 것은 그런 영향으로 생각된다. 수영강의 경우 북쪽의 梁山界나 機長界에서 흘러오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해동지도》에는 수영강의 끝 부분이 白雲山 산줄기를 넘어간 것처럼 표현하여 이런 사실의 일단을 엿볼 수 있게 하였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문경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첫째,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고 둘째, 가로에 비해 세로가 길게 그려져 있다. 이런 과정에서 하천 유로의 일부 모습이 바뀌었으나 전반적으로는 동일하다. 본 지도에 수록되어 있는 지명도 읍치의 門樓 등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기록되어 있다. 더 나아가 지명의 표기에서 본 지도에는 오류가 여러 군데 보이고 있다. 읍치 위쪽에 적혀 있는 草谷은 《해동지도》에 草谷面이라고 되어 있다. 또한 오른쪽 아래의 幽谷驛은 종6품의 찰방이 파견된 역임에도 불구하고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다. 주기의 面 부분에는 신동면, 호현면, 호남면, 가현내면, 가동면 등 여러 개가 빠져 있는 오류도 보이고 있다. 기타 오른쪽 위의 代眉山은 蛾眉山을 잘못 옮긴 것이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본 지도는 《해동지도》의 내용을 따르고 있지만 읍치에서 다른 자료를 약간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더 중요한 것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꼼꼼한 검토를 행하지 않은 부분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세로로 긴 사각형의 종이 위에 그리다 보니까 실제를 왜곡하는 경우가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加자가 붙은 면의 지역은 현재의 문경시 가은읍과 농암면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서쪽으로 튀어나가 있는 부분이다. 이런 부분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東流하는 하천이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그려지게 되었다. 또한 戶자가 붙은 면 지역은 현재의 문경시 호계면과 시내(옛 점촌시)에 있던 것으로 남쪽으로 튀어나가 있다. 역시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다보니까 南流하는 하천이 마치 東流하는 것처럼 그려지게 되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문경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첫째,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고 둘째, 가로에 비해 세로가 길게 그려져 있다. 이런 과정에서 하천 유로의 일부 모습이 바뀌었으나 전반적으로는 동일하다. 본 지도에 수록되어 있는 지명도 읍치의 門樓 등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기록되어 있다. 더 나아가 지명의 표기에서 본 지도에는 오류가 여러 군데 보이고 있다. 읍치 위쪽에 적혀 있는 草谷은 《해동지도》에 草谷面이라고 되어 있다. 또한 오른쪽 아래의 幽谷驛은 종6품의 찰방이 파견된 역임에도 불구하고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다. 주기의 面 부분에는 신동면, 호현면, 호남면, 가현내면, 가동면 등 여러 개가 빠져 있는 오류도 보이고 있다. 기타 오른쪽 위의 代眉山은 蛾眉山을 잘못 옮긴 것이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본 지도는 《해동지도》의 내용을 따르고 있지만 읍치에서 다른 자료를 약간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더 중요한 것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꼼꼼한 검토를 행하지 않은 부분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세로로 긴 사각형의 종이 위에 그리다 보니까 실제를 왜곡하는 경우가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加자가 붙은 면의 지역은 현재의 문경시 가은읍과 농암면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서쪽으로 튀어나가 있는 부분이다. 이런 부분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東流하는 하천이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그려지게 되었다. 또한 戶자가 붙은 면 지역은 현재의 문경시 호계면과 시내(옛 점촌시)에 있던 것으로 남쪽으로 튀어나가 있다. 역시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다보니까 南流하는 하천이 마치 東流하는 것처럼 그려지게 되었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밀양부 지도와 비슷하다. 읍치에 있는 지명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수록된 지명은 거의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고, 일부를 제외하면 하천의 유로가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해동지도》와 비교해 가장 다른 점은 내부 건물의 수와 명칭이 많아진 읍성이 상대적으로 훨씬 크게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해동지도》와 본 지도를 다르게 만든 결정적인 원인이 된 것으로 생각된다. 읍성을 크게 그렸기 때문에 다른 부분은 상대적으로 작아질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하천의 유로나 산줄기, 여러 지명의 위치도 조금씩 달라질 수밖에 없다. 또한 가로(동서)가 상대적으로 길게 그려진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에는 세로(남북)가 길게 표현되어 있다. 이런 변화들 때문에 발생한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오른쪽 위의 伽智山과 天王山에서 흘러내려 현재의 밀양강에 합류되는 하천은 전반적으로 서쪽으로 흐르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남북으로 흐르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 이외의 하천은 대부분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기 때문에 流路라는 측면에서는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본 지도에서는 하천이 발원지라는 차원에서 보면 2개의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 위쪽의 淸道界에서 흘러오는 하천이 밀양강 본류이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밀양강의 발원지가 淸道界 훨씬 위쪽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가장 왼쪽의 하천은 현재의 청도천이다. 청도천의 발원지 역시 밀양이 아니라 청도인데, 본 지도에서는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오류는 《해동지도》에서도 동일하게 발생하고 있다. 《해동지도》와의 차이점 중의 하나로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사용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밀양부 지도와 비슷하다. 읍치에 있는 지명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수록된 지명은 거의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고, 일부를 제외하면 하천의 유로가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해동지도》와 비교해 가장 다른 점은 내부 건물의 수와 명칭이 많아진 읍성이 상대적으로 훨씬 크게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해동지도》와 본 지도를 다르게 만든 결정적인 원인이 된 것으로 생각된다. 읍성을 크게 그렸기 때문에 다른 부분은 상대적으로 작아질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하천의 유로나 산줄기, 여러 지명의 위치도 조금씩 달라질 수밖에 없다. 또한 가로(동서)가 상대적으로 길게 그려진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에는 세로(남북)가 길게 표현되어 있다. 이런 변화들 때문에 발생한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오른쪽 위의 伽智山과 天王山에서 흘러내려 현재의 밀양강에 합류되는 하천은 전반적으로 서쪽으로 흐르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남북으로 흐르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 이외의 하천은 대부분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기 때문에 流路라는 측면에서는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본 지도에서는 하천이 발원지라는 차원에서 보면 2개의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 위쪽의 淸道界에서 흘러오는 하천이 밀양강 본류이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밀양강의 발원지가 淸道界 훨씬 위쪽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가장 왼쪽의 하천은 현재의 청도천이다. 청도천의 발원지 역시 밀양이 아니라 청도인데, 본 지도에서는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오류는 《해동지도》에서도 동일하게 발생하고 있다. 《해동지도》와의 차이점 중의 하나로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사용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봉화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약간 크게 그려져 있고,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게 그리려고 하였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치의 鄕廳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수록되지 않은 것도 있다. 대표적으로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릴 만큼 중요하게 생각한 面 중에서 오른쪽 아래에 있던 南面이 생략되어 있다. 하천의 유로는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확대되고, 사각형에 맞추어지는 과정에서 약간의 변화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거의 동일하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봉화 지역은 행정 경계가 상당히 복잡한 지역이다. 일단 현재의 봉화읍이 자리한 곳은 조선시대에는 안동의 월경지였다. 봉화의 읍치는 현재의 봉성면 봉성리에 있었다. 읍치 오른쪽 아래에 榮川地가 표시되어 있는데, 현재의 명호면 고감리 일대에 있었던 영천의 월경지를 의미한다. 왼쪽 위에 있는 물야면은 현재의 영주시 물야면 가평리 일대에 있었던 봉화의 월경지였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위쪽의 上東面은 현재의 봉화군 춘양면의 운곡천 북쪽 부분에 해당되는 봉화의 월경지였다. 본 지도에는 오른쪽 중간에 安東春陽縣이란 명칭을 적어 넣어 안동의 땅을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하였다. 여기서 안동춘양현은 월래 춘양현이 안동의 속현으로 있다가 안동의 월경지로 편입된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지도 제작 당시에는 안동의 춘양면으로 편제되어 있었다. 봉화 주변에 安東界가 많이 적혀 있는 이유는 이 지역에 안동의 월경지가 많았기 때문이다. 아래쪽으로 禮安縣과 접하고 있음에도 이런 사실이 빠져 있다. 기타 오른쪽의 하천은 현재의 낙동강 본류 최상류이고, 그 왼쪽의 하천들은 내성천으로 흘러간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봉화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약간 크게 그려져 있고,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게 그리려고 하였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치의 鄕廳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수록되지 않은 것도 있다. 대표적으로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릴 만큼 중요하게 생각한 面 중에서 오른쪽 아래에 있던 南面이 생략되어 있다. 하천의 유로는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확대되고, 사각형에 맞추어지는 과정에서 약간의 변화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거의 동일하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봉화 지역은 행정 경계가 상당히 복잡한 지역이다. 일단 현재의 봉화읍이 자리한 곳은 조선시대에는 안동의 월경지였다. 봉화의 읍치는 현재의 봉성면 봉성리에 있었다. 읍치 오른쪽 아래에 榮川地가 표시되어 있는데, 현재의 명호면 고감리 일대에 있었던 영천의 월경지를 의미한다. 왼쪽 위에 있는 물야면은 현재의 영주시 물야면 가평리 일대에 있었던 봉화의 월경지였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위쪽의 上東面은 현재의 봉화군 춘양면의 운곡천 북쪽 부분에 해당되는 봉화의 월경지였다. 본 지도에는 오른쪽 중간에 安東春陽縣이란 명칭을 적어 넣어 안동의 땅을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하였다. 여기서 안동춘양현은 월래 춘양현이 안동의 속현으로 있다가 안동의 월경지로 편입된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지도 제작 당시에는 안동의 춘양면으로 편제되어 있었다. 봉화 주변에 安東界가 많이 적혀 있는 이유는 이 지역에 안동의 월경지가 많았기 때문이다. 아래쪽으로 禮安縣과 접하고 있음에도 이런 사실이 빠져 있다. 기타 오른쪽의 하천은 현재의 낙동강 본류 최상류이고, 그 왼쪽의 하천들은 내성천으로 흘러간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비안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가 북쪽을 위로 향해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또한 《해동지도》가 남북을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동서(세로)를 길게 그렸다. 이 과정에서 전반적인 하천의 유로는 동일하지만 길이가 《해동지도》와 다르게 표현되었다. 아래쪽의 軍威界에서 흘러와 왼쪽의 尙州界로 빠져나가는 것이 현재의 위천이다. 위쪽의 義城界에서 흘러와 위천에 합류하는 하천이 현재의 쌍계천이다. 《해동지도》에는 향교 부분까지의 위천과 쌍계천의 길이가 거의 비슷하게 그려져 있으나 본 지도에는 위천이 훨씬 길게 표현되었다. 이런 변화는 두 지도가 동서와 남북의 길이를 전혀 다르게 그렸기 때문이다. 본 지도의 지도에 표기된 面과 주기에 기록된 面의 명칭이 전혀 다르다. 『여지도서』, 『호구총수』,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비안지도를 참고해 보면 비안현에는 縣內面, 身東面, 定西面, 定東面, 定北面, 內西面, 外西面, 內北面, 外北面 등 9개 면이 있었으며, 《해동지도》의 주기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반면에 《해동지도》의 지도에는 이 중 6개만이 표시되어 있고, 내서면과 외서면이 신서면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의 지도 위에 표시되어 있는 것은 정북면을 정동면이라 기록한 것 이외에는 《해동지도》의 지도와 동일하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주기는 다른 자료를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비안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가 북쪽을 위로 향해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또한 《해동지도》가 남북을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동서(세로)를 길게 그렸다. 이 과정에서 전반적인 하천의 유로는 동일하지만 길이가 《해동지도》와 다르게 표현되었다. 아래쪽의 軍威界에서 흘러와 왼쪽의 尙州界로 빠져나가는 것이 현재의 위천이다. 위쪽의 義城界에서 흘러와 위천에 합류하는 하천이 현재의 쌍계천이다. 《해동지도》에는 향교 부분까지의 위천과 쌍계천의 길이가 거의 비슷하게 그려져 있으나 본 지도에는 위천이 훨씬 길게 표현되었다. 이런 변화는 두 지도가 동서와 남북의 길이를 전혀 다르게 그렸기 때문이다. 본 지도의 지도에 표기된 面과 주기에 기록된 面의 명칭이 전혀 다르다. 『여지도서』, 『호구총수』,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비안지도를 참고해 보면 비안현에는 縣內面, 身東面, 定西面, 定東面, 定北面, 內西面, 外西面, 內北面, 外北面 등 9개 면이 있었으며, 《해동지도》의 주기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반면에 《해동지도》의 지도에는 이 중 6개만이 표시되어 있고, 내서면과 외서면이 신서면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의 지도 위에 표시되어 있는 것은 정북면을 정동면이라 기록한 것 이외에는 《해동지도》의 지도와 동일하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주기는 다른 자료를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사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는 가로(남북)가 세로(동서)보다 훨씬 길게 되어 있다. 반면에 본 지도는 세로가 가로보다 훨씬 길게 되어 있다. 가로가 세로보다 짧아졌기 때문에 해안선의 표현이 《해동지도》와 달라지게 되었다. 즉, 《해동지도》에는 해안선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완만한 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본 지도에는 거의 직각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실제의 해안선 모습은 《해동지도》의 것이 훨씬 사실에 가깝다. 이를 통해 세로로 긴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해안선에 대한 왜곡 현상이 나타났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위쪽(동)에서 아래쪽(서)으로 흐르는 하천의 길이가 《해동지도》에 비해 훨씬 길게 그려졌다. 그러나 본류와 지류에 대한 표현은 《해동지도》와 본 지도가 거의 동일하여 필사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위쪽 가운데의 高城界에서 들어오는 현재의 사천강 끝이 얇게 되어 있어 실제를 이해하기 어렵다. 《해동지도》에서는 사천강의 끝을 2개의 실선으로 그려 고성계에서 흘러들어오고 있는 모습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오른쪽 위 지역은 옛 삼천포시에 해당되는 곳으로 조선시대에는 사천과 진주, 고성의 행정 경계가 복잡하게 되어 있었다. 《해동지도》에는 統倉과 歸龍菴 사이에 晋州境, 晋州界, 泗川境 등의 문구를 여러 개 적어 넣어 이런 상황을 반영하려 하였다. 본 지도에서는 이런 문구들을 모두 생략하여 이 지역의 복잡한 행정 경계를 이해하기 어렵게 하였다. 《해동지도》에는 바다 부분에도 晋州海界와 泗川海界를 2개씩 적어 넣어 역시 복잡한 행정 경계를 표현하려고 하였다. 본 지도에는 이 중 2개가 남아 있는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확실하게 이해하고 쓴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본 지도책의 다른 지도에는 面 정보를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할 정도로 중요하게 취급하였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없을 뿐만 아니라 東面을 제외한 면은 모두 생략하였다. 아마 필사 시에 면 정보를 일괄적으로 생략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기본으로 필사되면서 실제 사실에 대해 꼼꼼하게 검토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오류가 발생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사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는 가로(남북)가 세로(동서)보다 훨씬 길게 되어 있다. 반면에 본 지도는 세로가 가로보다 훨씬 길게 되어 있다. 가로가 세로보다 짧아졌기 때문에 해안선의 표현이 《해동지도》와 달라지게 되었다. 즉, 《해동지도》에는 해안선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완만한 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본 지도에는 거의 직각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실제의 해안선 모습은 《해동지도》의 것이 훨씬 사실에 가깝다. 이를 통해 세로로 긴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해안선에 대한 왜곡 현상이 나타났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위쪽(동)에서 아래쪽(서)으로 흐르는 하천의 길이가 《해동지도》에 비해 훨씬 길게 그려졌다. 그러나 본류와 지류에 대한 표현은 《해동지도》와 본 지도가 거의 동일하여 필사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위쪽 가운데의 高城界에서 들어오는 현재의 사천강 끝이 얇게 되어 있어 실제를 이해하기 어렵다. 《해동지도》에서는 사천강의 끝을 2개의 실선으로 그려 고성계에서 흘러들어오고 있는 모습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오른쪽 위 지역은 옛 삼천포시에 해당되는 곳으로 조선시대에는 사천과 진주, 고성의 행정 경계가 복잡하게 되어 있었다. 《해동지도》에는 統倉과 歸龍菴 사이에 晋州境, 晋州界, 泗川境 등의 문구를 여러 개 적어 넣어 이런 상황을 반영하려 하였다. 본 지도에서는 이런 문구들을 모두 생략하여 이 지역의 복잡한 행정 경계를 이해하기 어렵게 하였다. 《해동지도》에는 바다 부분에도 晋州海界와 泗川海界를 2개씩 적어 넣어 역시 복잡한 행정 경계를 표현하려고 하였다. 본 지도에는 이 중 2개가 남아 있는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확실하게 이해하고 쓴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본 지도책의 다른 지도에는 面 정보를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할 정도로 중요하게 취급하였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없을 뿐만 아니라 東面을 제외한 면은 모두 생략하였다. 아마 필사 시에 면 정보를 일괄적으로 생략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기본으로 필사되면서 실제 사실에 대해 꼼꼼하게 검토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오류가 발생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산음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가 읍치를 상대적으로 훨씬 크게 그렸으며, 가로(동서)의 폭을 더 넓게 하였다. 이 과정에서 하천과 산줄기의 흐름에 일부 변화가 나타났으나 기본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하천의 흐름에 대해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읍치 왼쪽의 鏡湖水는 현재 경호강으로 불리는 남강의 상류이며, 위쪽(북)의 함양 땅으로부터 들어온다. 《해동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약간 애매하기는 하지만 실제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에서는 함양과의 북쪽 경계선을 모두 산줄기로 처리하여 경호강이 함양으로부터 들어온다는 사실 자체를 이해할 수 없게 하였다. 軍器 등 읍치에 있는 지명 몇 개를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 수록된 지명에는 여러 오류가 발견되고 있다. 읍치 오른쪽에 있는 正谷里는 正谷驛을 잘못 옮긴 것이다. 본 지도 위의 里는 다른 군현의 面과 같은 것으로서 보통은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였다. 정곡리에 노란색이 칠해져 있지 않다. 읍치 위쪽의 金谷里는 釜谷里의 오기이며, 《해동지도》에 나오는 生林里가 본 지도에 생략되어 있다. 본 지도의 주기에는 두 지명이 모두 올바르게 나오고 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며, 필사 과정에서 여러 오류가 범해진 것으로 생각된다. 기타 山陰縣은 1767년(영조 43)에 山淸縣으로 명칭이 바뀌기 때문에 본 지도는 그 이전에 필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산음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가 읍치를 상대적으로 훨씬 크게 그렸으며, 가로(동서)의 폭을 더 넓게 하였다. 이 과정에서 하천과 산줄기의 흐름에 일부 변화가 나타났으나 기본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하천의 흐름에 대해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읍치 왼쪽의 鏡湖水는 현재 경호강으로 불리는 남강의 상류이며, 위쪽(북)의 함양 땅으로부터 들어온다. 《해동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약간 애매하기는 하지만 실제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에서는 함양과의 북쪽 경계선을 모두 산줄기로 처리하여 경호강이 함양으로부터 들어온다는 사실 자체를 이해할 수 없게 하였다. 軍器 등 읍치에 있는 지명 몇 개를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 수록된 지명에는 여러 오류가 발견되고 있다. 읍치 오른쪽에 있는 正谷里는 正谷驛을 잘못 옮긴 것이다. 본 지도 위의 里는 다른 군현의 面과 같은 것으로서 보통은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였다. 정곡리에 노란색이 칠해져 있지 않다. 읍치 위쪽의 金谷里는 釜谷里의 오기이며, 《해동지도》에 나오는 生林里가 본 지도에 생략되어 있다. 본 지도의 주기에는 두 지명이 모두 올바르게 나오고 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며, 필사 과정에서 여러 오류가 범해진 것으로 생각된다. 기타 山陰縣은 1767년(영조 43)에 山淸縣으로 명칭이 바뀌기 때문에 본 지도는 그 이전에 필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삼가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는 가로(동서)를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세로(남북)를 길게 그렸다. 그러나 하천의 유로라는 차원에서 비교하면 두 지도는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서는 하천의 유로에서 하나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아래쪽의 하천은 남강으로 흘러가는 현재의 양천 상류이고, 위쪽의 하천은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황강의 중류 부분이다. 황강은 위쪽 왼쪽의 陜川界에서 흘러와 오른쪽의 界山里를 거쳐 빠져나간다. 왼쪽의 神旨里에서 흘러와 황강에 합류되는 하천은 현재의 신원천이다. 본 지도에는 이 신원천이 서쪽의 山陰界 너머에서 흘러온 것처럼 그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산음과의 경계선이 발원지이다.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처럼 분명하게 오류를 범하고 있지는 않으나 山陰界 너머에서 흘러오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이런 《해동지도》의 내용을 잘못 이해하여 오류를 범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특히 본 지도에서는 황강 본류와 그 지류인 신원천을 《해동지도》보다도 더 구별하기 어렵게 표현하였다. 황강은 북쪽에서 흘러와 동쪽으로 빠져나가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렇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해동지도》를 실제와 비교하지 않고 필사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는 첫째,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렸다. 둘째, 남북으로 긴 고을의 모습을 동서가 길게 그렸다. 읍치의 입장에서 보면 황강 유역은 서북쪽으로 튀어나가 있는데, 지도에는 마치 북쪽 방향에 있는 것처럼 그렸다. 이 과정에서 황강의 유로에 대한 왜곡이 발생한 것이다. 본 지도는 실제 모습을 검토하지 않고 《해동지도》에 기반하면서 세로만 길게 그렸기 때문에 황강의 유로가 더욱 왜곡되게 된 것이다. 본 지도 위에는 5개의 면이 표시되어 있지만 주기에는 이런 면의 명칭이 전혀 없다. 이런 문제점도 《해동지도》를 꼼꼼하게 검토하지 않고 필사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의 지도 위에 있는 面의 명칭은 후에 주기에 적힌 里의 명칭으로 개칭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삼가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는 가로(동서)를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세로(남북)를 길게 그렸다. 그러나 하천의 유로라는 차원에서 비교하면 두 지도는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서는 하천의 유로에서 하나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아래쪽의 하천은 남강으로 흘러가는 현재의 양천 상류이고, 위쪽의 하천은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황강의 중류 부분이다. 황강은 위쪽 왼쪽의 陜川界에서 흘러와 오른쪽의 界山里를 거쳐 빠져나간다. 왼쪽의 神旨里에서 흘러와 황강에 합류되는 하천은 현재의 신원천이다. 본 지도에는 이 신원천이 서쪽의 山陰界 너머에서 흘러온 것처럼 그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산음과의 경계선이 발원지이다.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처럼 분명하게 오류를 범하고 있지는 않으나 山陰界 너머에서 흘러오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이런 《해동지도》의 내용을 잘못 이해하여 오류를 범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특히 본 지도에서는 황강 본류와 그 지류인 신원천을 《해동지도》보다도 더 구별하기 어렵게 표현하였다. 황강은 북쪽에서 흘러와 동쪽으로 빠져나가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렇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해동지도》를 실제와 비교하지 않고 필사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는 첫째,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렸다. 둘째, 남북으로 긴 고을의 모습을 동서가 길게 그렸다. 읍치의 입장에서 보면 황강 유역은 서북쪽으로 튀어나가 있는데, 지도에는 마치 북쪽 방향에 있는 것처럼 그렸다. 이 과정에서 황강의 유로에 대한 왜곡이 발생한 것이다. 본 지도는 실제 모습을 검토하지 않고 《해동지도》에 기반하면서 세로만 길게 그렸기 때문에 황강의 유로가 더욱 왜곡되게 된 것이다. 본 지도 위에는 5개의 면이 표시되어 있지만 주기에는 이런 면의 명칭이 전혀 없다. 이런 문제점도 《해동지도》를 꼼꼼하게 검토하지 않고 필사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의 지도 위에 있는 面의 명칭은 후에 주기에 적힌 里의 명칭으로 개칭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상주목 지도와 비슷하다. 일단 본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하천의 유로는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다만 몇 부분에서 본 지도가 오류를 범하고 있다. 오른쪽의 丹東面에서 흘러오는 하천은 낙동강의 지류인 위천이고, 위쪽의 咸昌界라고 적혀 있는 곳에서 흘러오는 하천은 낙동강의 지류인 영강이다. 본 지도에는 두 하천의 끝을 모두 얇게 그려서 마치 발원지인 것처럼 그렸지만 실제로는 모두 다른 고을에서 흘러 들어온다. 《해동지도》에는 이러한 실제 사실을 잘 표현해 놓았다. 오른쪽 위에서 흘러와 아래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 본류이고, 왼쪽의 하천은 금강의 지류인 소강이다. 읍성의 안쪽에 있는 軍器와 바깥쪽에 있는 社壇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거의 다 나온다. 다만 읍성 부분을 《해동지도》보다 상대적으로 크게 그렸으며, 읍성 위쪽에 숲이 첨가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글씨로만 쓰여 있던 面, 驛, 倉에 본 지도에는 각각 노란색 사각형, 황색 사각형, 건물 모양의 기호가 추가되어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기호의 사용과 지며으이 표기에 몇 가지 오류가 쉽게 보인다. 예를 들면 읍치 왼쪽 위의 化西面에 황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고, 읍치 왼쪽의 洛陽驛에 황색 사각형이 없으며, 읍치 위쪽에 內北面과 敎場이 內西面과 郊場으로 되어 있다. 이외에 《해동지도》가 동서가 약간 넓은 형태로 그려진 반면 본 지도는 남북이 더 길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본 지도나 《해동지도》 모두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으로 그렸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오른쪽 위의 永順面 북쪽과 왼쪽 위의 化北面 등은 북쪽으로 튀어나간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는 그런 사실이 잘 반영되어 있지 않다. 기타 주기에 적혀 있는 호구수 역시 본 지도와 《해동지도》는 다르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상주목 지도와 비슷하다. 일단 본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하천의 유로는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다만 몇 부분에서 본 지도가 오류를 범하고 있다. 오른쪽의 丹東面에서 흘러오는 하천은 낙동강의 지류인 위천이고, 위쪽의 咸昌界라고 적혀 있는 곳에서 흘러오는 하천은 낙동강의 지류인 영강이다. 본 지도에는 두 하천의 끝을 모두 얇게 그려서 마치 발원지인 것처럼 그렸지만 실제로는 모두 다른 고을에서 흘러 들어온다. 《해동지도》에는 이러한 실제 사실을 잘 표현해 놓았다. 오른쪽 위에서 흘러와 아래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 본류이고, 왼쪽의 하천은 금강의 지류인 소강이다. 읍성의 안쪽에 있는 軍器와 바깥쪽에 있는 社壇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거의 다 나온다. 다만 읍성 부분을 《해동지도》보다 상대적으로 크게 그렸으며, 읍성 위쪽에 숲이 첨가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글씨로만 쓰여 있던 面, 驛, 倉에 본 지도에는 각각 노란색 사각형, 황색 사각형, 건물 모양의 기호가 추가되어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기호의 사용과 지며으이 표기에 몇 가지 오류가 쉽게 보인다. 예를 들면 읍치 왼쪽 위의 化西面에 황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고, 읍치 왼쪽의 洛陽驛에 황색 사각형이 없으며, 읍치 위쪽에 內北面과 敎場이 內西面과 郊場으로 되어 있다. 이외에 《해동지도》가 동서가 약간 넓은 형태로 그려진 반면 본 지도는 남북이 더 길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본 지도나 《해동지도》 모두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으로 그렸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오른쪽 위의 永順面 북쪽과 왼쪽 위의 化北面 등은 북쪽으로 튀어나간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는 그런 사실이 잘 반영되어 있지 않다. 기타 주기에 적혀 있는 호구수 역시 본 지도와 《해동지도》는 다르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선산부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거의 《해동지도》에 나온다. 다만 지명의 위치가 약간씩 다르게 표시되어 있고, 面과 驛에 노란색과 황색의 사각형이 표시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전반적으로 《해동지도》에 비해 세로가 짧게 그려졌고, 읍치가 상대적으로 넓게 표현되었다. 그러나 하천의 유로라는 측면에서 볼 때 본 지도와 《해동지도》는 거의 동일하다.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하천이 낙동강 본류이고, 왼쪽에서 흘러와 낙동강에 합류하는 하천이 현재의 감천이다. 낙동강에 본 지도에는 冷零江이라 적혀 있는데, 《해동지도》에는 洛江上流로 되어 있다. 읍치 아래쪽 감천 변에 그려진 숲은 《해동지도》에 없던 것이다. 정확한 직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세로로 긴 사각형으로 그리다 보니까 몇몇 부분에서 왜곡이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읍치 가장 왼쪽의 하천은 실제로는 거의 동류하여 감천에 합류되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남류하는 것처럼 그려졌다. 이 부분은 서쪽으로 튀어나간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이를 사각형에 맞추어 표현하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낙동강 동쪽의 경우도 위쪽(북)보다 아래쪽(남)의 동서 폭이 훨씬 넓지만 본 지도에는 거의 비슷한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선산부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거의 《해동지도》에 나온다. 다만 지명의 위치가 약간씩 다르게 표시되어 있고, 面과 驛에 노란색과 황색의 사각형이 표시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전반적으로 《해동지도》에 비해 세로가 짧게 그려졌고, 읍치가 상대적으로 넓게 표현되었다. 그러나 하천의 유로라는 측면에서 볼 때 본 지도와 《해동지도》는 거의 동일하다.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하천이 낙동강 본류이고, 왼쪽에서 흘러와 낙동강에 합류하는 하천이 현재의 감천이다. 낙동강에 본 지도에는 冷零江이라 적혀 있는데, 《해동지도》에는 洛江上流로 되어 있다. 읍치 아래쪽 감천 변에 그려진 숲은 《해동지도》에 없던 것이다. 정확한 직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세로로 긴 사각형으로 그리다 보니까 몇몇 부분에서 왜곡이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읍치 가장 왼쪽의 하천은 실제로는 거의 동류하여 감천에 합류되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남류하는 것처럼 그려졌다. 이 부분은 서쪽으로 튀어나간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이를 사각형에 맞추어 표현하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낙동강 동쪽의 경우도 위쪽(북)보다 아래쪽(남)의 동서 폭이 훨씬 넓지만 본 지도에는 거의 비슷한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성주목 지도와 비슷하다. 본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해동지도》가 동서(세로)를 남북(가로)보다 짧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동서를 더 길게 그렸다. 또한 邑城과 禿用山城에 《해동지도》보다 정보가 많이 추가되어 있고, 상대적으로 더 크게 그렸다. 그 결과 서쪽(위)에서 동쪽(아래)으로 흐르는 하천의 길이와 유로가 약간 달라졌다. 그러나 전반적인 하천의 유로는 《해동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아래쪽 오른쪽에서 흘러와 왼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 본류이다. 읍치를 돌아 낙동강에 합류하는 하천은 현재의 백천이며, 독용산성에서 흘러가는 하천은 현재의 회천 상류이다. 독용산성과 읍성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수록된 지명은 《해동지도》에 거의 나온다. 해동지도에 글씨로만 적혀 있던 坊(보통 面이라고 한다)이 본 지도에는 노란색 사각형 안에 쓰여 있다. 다만 坊 앞의 명칭이 3자인 경우 坊을 생략하였다. 오른쪽 위에는 노란색 사각형만 있고, 坊의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경우도 보이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이곳에 非乎石坊이 적혀 있는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읍성 왼쪽의 大里坊에 황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는 실수도 보이고 있다. 왼쪽 아래에 적혀 있는 所也坊, 茂溪驛, 蘆長谷(坊)은 현재의 《해동지도》에 없는 지명이다. 원래부터 《해동지도》에 없는 것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현재 남아 있는 《해동지도》의 이 부근에는 무언가를 지우고 주기를 적은 흔적이 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주기에 2개의 坊 명칭이 보이고 있지 않아 확실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김정호의 『대동지지』에는 2개의 坊 명칭이 나온다. 그 위쪽에 있는 高靈界는 《해동지도》에 高靈坊으로 되어 있던 것이다. 고령방을 다른 기록에서 찾을 수가 없고, 이 방향에 高靈과의 경계선이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해동지도》에서 틀린 것으로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고친 것이 아닌가 한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성주목 지도와 비슷하다. 본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해동지도》가 동서(세로)를 남북(가로)보다 짧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동서를 더 길게 그렸다. 또한 邑城과 禿用山城에 《해동지도》보다 정보가 많이 추가되어 있고, 상대적으로 더 크게 그렸다. 그 결과 서쪽(위)에서 동쪽(아래)으로 흐르는 하천의 길이와 유로가 약간 달라졌다. 그러나 전반적인 하천의 유로는 《해동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아래쪽 오른쪽에서 흘러와 왼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 본류이다. 읍치를 돌아 낙동강에 합류하는 하천은 현재의 백천이며, 독용산성에서 흘러가는 하천은 현재의 회천 상류이다. 독용산성과 읍성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수록된 지명은 《해동지도》에 거의 나온다. 해동지도에 글씨로만 적혀 있던 坊(보통 面이라고 한다)이 본 지도에는 노란색 사각형 안에 쓰여 있다. 다만 坊 앞의 명칭이 3자인 경우 坊을 생략하였다. 오른쪽 위에는 노란색 사각형만 있고, 坊의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경우도 보이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이곳에 非乎石坊이 적혀 있는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읍성 왼쪽의 大里坊에 황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는 실수도 보이고 있다. 왼쪽 아래에 적혀 있는 所也坊, 茂溪驛, 蘆長谷(坊)은 현재의 《해동지도》에 없는 지명이다. 원래부터 《해동지도》에 없는 것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현재 남아 있는 《해동지도》의 이 부근에는 무언가를 지우고 주기를 적은 흔적이 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주기에 2개의 坊 명칭이 보이고 있지 않아 확실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김정호의 『대동지지』에는 2개의 坊 명칭이 나온다. 그 위쪽에 있는 高靈界는 《해동지도》에 高靈坊으로 되어 있던 것이다. 고령방을 다른 기록에서 찾을 수가 없고, 이 방향에 高靈과의 경계선이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해동지도》에서 틀린 것으로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고친 것이 아닌가 한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순흥부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고, 남북의 길이가 약간 더 길어졌다. 이로 인해 남북 방향의 하천이 더 길어지고, 읍치에 인접한 하천의 유로가 약간 바뀌어 있다. 가장 오른쪽의 奉化界에 있었던 하천 1개가 생략되어 있기도 하다. 본 지도에 수록된 지명은 거의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다만 《해동지도》와 약간 다르게 그리는 과정에서 지명의 위치가 바뀐 곳이 몇 개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본 지도의 오른쪽 중간에 있는 東倉이 《해동지도》에는 훨씬 아래쪽에 표시되어 있다. 순흥의 영역은 인근의 군현과 상당히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본 지도에 榮川이란 명칭이 붙은 지명은 순흥의 땅을 넘어가 있는 영천의 월경지였다. 반면에 왼쪽에 있는 昌樂面과 大龍山面은 모두 豊基의 땅을 넘어가 있는 순흥의 월경지였다. 《해동지도》에는 읍치 왼쪽에 豊基라는 명칭을 적어 넣어 그런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풍기라는 지명을 삭제하였는데, 필사 시에 각 군현의 영역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주기에는 2개의 면이 월경지라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왼쪽 위에 豊基가 붙은 지명은 풍기에 속해 있던 지역임을 의미한다. 본 지도의 필사 시 面에 노란색 사각형을 그려 넣었다. 그러나 영천이나 풍기가 붙은 지명이 모두 面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자료를 꼼꼼하게 검토한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주기에는 봉화와 안동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瓦丹面이 기록되어 있지만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기타 오른쪽은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의 상류이고, 왼쪽은 내성천의 지류인 서천의 상류이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순흥부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고, 남북의 길이가 약간 더 길어졌다. 이로 인해 남북 방향의 하천이 더 길어지고, 읍치에 인접한 하천의 유로가 약간 바뀌어 있다. 가장 오른쪽의 奉化界에 있었던 하천 1개가 생략되어 있기도 하다. 본 지도에 수록된 지명은 거의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다만 《해동지도》와 약간 다르게 그리는 과정에서 지명의 위치가 바뀐 곳이 몇 개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본 지도의 오른쪽 중간에 있는 東倉이 《해동지도》에는 훨씬 아래쪽에 표시되어 있다. 순흥의 영역은 인근의 군현과 상당히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본 지도에 榮川이란 명칭이 붙은 지명은 순흥의 땅을 넘어가 있는 영천의 월경지였다. 반면에 왼쪽에 있는 昌樂面과 大龍山面은 모두 豊基의 땅을 넘어가 있는 순흥의 월경지였다. 《해동지도》에는 읍치 왼쪽에 豊基라는 명칭을 적어 넣어 그런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풍기라는 지명을 삭제하였는데, 필사 시에 각 군현의 영역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주기에는 2개의 면이 월경지라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왼쪽 위에 豊基가 붙은 지명은 풍기에 속해 있던 지역임을 의미한다. 본 지도의 필사 시 面에 노란색 사각형을 그려 넣었다. 그러나 영천이나 풍기가 붙은 지명이 모두 面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자료를 꼼꼼하게 검토한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주기에는 봉화와 안동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瓦丹面이 기록되어 있지만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기타 오른쪽은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의 상류이고, 왼쪽은 내성천의 지류인 서천의 상류이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안동부 지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도라고 추정된다.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읍치 부분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다. 하천의 본류나 지류 역시 표현 방식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나와 있는 것과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와 가장 다른 점은 첫째, 邑治에 있는 읍성을 상대적으로 크게 그렸고, 官廳과 大同 등의 정보를 추가하였다는 것이다. 둘째, 글씨로만 적혀 있는 郡縣, 驛, 面의 정보에 황색이나 노란색 사각형 기호를 추가하였다는 것이다. 셋째, 도로와 각 지점까지의 거리가 생략되었다는 것이다. 이 중 두 번째의 부분에서 군현과 역을 동일한 황색 사각형으로 그리고 있어 정보 사이의 차이를 구별하지 않았다. 그리고 본 지도에서 順興府, 榮川郡, 奉化縣, 禮安縣의 명칭이 적혀 있는 것은 甘泉倉, 乃城倉, 春陽倉, 小川倉, 才山倉이 있는 지역이 이들 군현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越境地였기 때문이다. 하천의 표시에서 《해동지도》에는 올바르게 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는 잘못 표시된 부분도 보인다. 오른쪽 아래 臨西와 臨北에 있는 하천은 현재 낙동강의 지류인 반변천이이라고 한다. 이 반변천은 眞寶와 英陽, 靑松의 경계를 넘어서 흘러온다. 본 지도에는 반변천 끝을 얇게 하여 마치 다른 고을과의 경계 부근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표현하였다. 《해동지도》에는 진보나 청송계에서 들어오는 것으로 분명하게 표시되어 있다. 읍치를 돌아 아래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지금의 낙동강 본류이고, 가장 왼쪽의 하천이 그 지류인 내성천이다. 2개의 하천은 본 지도에는 발원지에서 모두 연결된 것처럼 그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다른 고을을 지나는 부분도 많다. 읍치 아래쪽에 銅柱라고 적혀 있는 부분에 《해동지도》에는 당간지주의 모양이 그려져 있기도 하다. 주기의 호구수는 《해동지도》와 다르며, 面에 대한 기록은 거의 동일하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안동부 지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도라고 추정된다.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읍치 부분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다. 하천의 본류나 지류 역시 표현 방식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나와 있는 것과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와 가장 다른 점은 첫째, 邑治에 있는 읍성을 상대적으로 크게 그렸고, 官廳과 大同 등의 정보를 추가하였다는 것이다. 둘째, 글씨로만 적혀 있는 郡縣, 驛, 面의 정보에 황색이나 노란색 사각형 기호를 추가하였다는 것이다. 셋째, 도로와 각 지점까지의 거리가 생략되었다는 것이다. 이 중 두 번째의 부분에서 군현과 역을 동일한 황색 사각형으로 그리고 있어 정보 사이의 차이를 구별하지 않았다. 그리고 본 지도에서 順興府, 榮川郡, 奉化縣, 禮安縣의 명칭이 적혀 있는 것은 甘泉倉, 乃城倉, 春陽倉, 小川倉, 才山倉이 있는 지역이 이들 군현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越境地였기 때문이다. 하천의 표시에서 《해동지도》에는 올바르게 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는 잘못 표시된 부분도 보인다. 오른쪽 아래 臨西와 臨北에 있는 하천은 현재 낙동강의 지류인 반변천이이라고 한다. 이 반변천은 眞寶와 英陽, 靑松의 경계를 넘어서 흘러온다. 본 지도에는 반변천 끝을 얇게 하여 마치 다른 고을과의 경계 부근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표현하였다. 《해동지도》에는 진보나 청송계에서 들어오는 것으로 분명하게 표시되어 있다. 읍치를 돌아 아래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지금의 낙동강 본류이고, 가장 왼쪽의 하천이 그 지류인 내성천이다. 2개의 하천은 본 지도에는 발원지에서 모두 연결된 것처럼 그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다른 고을을 지나는 부분도 많다. 읍치 아래쪽에 銅柱라고 적혀 있는 부분에 《해동지도》에는 당간지주의 모양이 그려져 있기도 하다. 주기의 호구수는 《해동지도》와 다르며, 面에 대한 기록은 거의 동일하다. (이기봉)
본 지도책의 경상도 군현지도가 대부분 《해동지도》의 것과 비슷하지만 안음현은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지 않았다. 안음현은 1728년(영조 4)에 혁파되었다가 1736년(영조 12)에 복구되며, 1767년(영조 43)에 安義縣로 명칭을 바꾼다. 안음현의 명칭 변화를 기준으로 보면 《해동지도》는 1728년과 1736년 사이에, 본 지도는 1736년과 1767년 사이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본 지도책에 수록된 대부분의 경상도 군현지도와 달리 읍치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지지 않았다. 본 지도에서의 읍치는 아래쪽에 衙라고만 표시되어 있을 뿐이다. 현재의 함양군 안의면 금천리와 교북리 일대이다. 하천의 유로라는 입장에서 현대지도와 비교해 봐도 실제와 아주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아래쪽의 하천은 낙동강의 지류 중 가장 큰 남강의 최상류에 해당되며, 위쪽의 하천은 합천에서 낙동강과 합류하는 황강의 최상류 중의 하나인 위천천이다. 남강의 최상류에는 현재 함양군 안의면, 서하면, 서상면이 있고, 위천천 유역에는 거창군 마리면, 위천면, 북상면이 있다. 본 지도책에 수록된 경상도 대부분의 군현 지도는 주로 面 정보를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릴만큼 중요하게 표시하였다. 그리고 그 面 정보의 대부분은 《해동지도》에 나와 있는 것이었다. 본 지도에는 面 정보가 없으며, 당시에 중요한 村의 명칭이 아주 자세하게 표시되어 있다. 그밖에 사찰과 역, 창고, 서원, 점막 등의 인문 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정확한 지도라는 입장에서 보았을 때 본 지도보다 더 정확하게 그려진 안음현 고지도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확한 지도 계열로 분류되고 있으며,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안음 지도, 김정호의 《동여도》와 본 지도를 비교해 보면 이런 측면이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지도가 본 지도책에 수록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시에 정확한 군현지도의 제작 기술이 상당히 높았음을 실감할 수 있다. (이기봉)
본 지도책의 경상도 군현지도가 대부분 《해동지도》의 것과 비슷하지만 안음현은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지 않았다. 안음현은 1728년(영조 4)에 혁파되었다가 1736년(영조 12)에 복구되며, 1767년(영조 43)에 安義縣로 명칭을 바꾼다. 안음현의 명칭 변화를 기준으로 보면 《해동지도》는 1728년과 1736년 사이에, 본 지도는 1736년과 1767년 사이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본 지도책에 수록된 대부분의 경상도 군현지도와 달리 읍치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지지 않았다. 본 지도에서의 읍치는 아래쪽에 衙라고만 표시되어 있을 뿐이다. 현재의 함양군 안의면 금천리와 교북리 일대이다. 하천의 유로라는 입장에서 현대지도와 비교해 봐도 실제와 아주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아래쪽의 하천은 낙동강의 지류 중 가장 큰 남강의 최상류에 해당되며, 위쪽의 하천은 합천에서 낙동강과 합류하는 황강의 최상류 중의 하나인 위천천이다. 남강의 최상류에는 현재 함양군 안의면, 서하면, 서상면이 있고, 위천천 유역에는 거창군 마리면, 위천면, 북상면이 있다. 본 지도책에 수록된 경상도 대부분의 군현 지도는 주로 面 정보를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릴만큼 중요하게 표시하였다. 그리고 그 面 정보의 대부분은 《해동지도》에 나와 있는 것이었다. 본 지도에는 面 정보가 없으며, 당시에 중요한 村의 명칭이 아주 자세하게 표시되어 있다. 그밖에 사찰과 역, 창고, 서원, 점막 등의 인문 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정확한 지도라는 입장에서 보았을 때 본 지도보다 더 정확하게 그려진 안음현 고지도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확한 지도 계열로 분류되고 있으며,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안음 지도, 김정호의 《동여도》와 본 지도를 비교해 보면 이런 측면이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지도가 본 지도책에 수록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시에 정확한 군현지도의 제작 기술이 상당히 높았음을 실감할 수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양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성 안의 菖蒲亭 등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차이가 있다면 驛을 舘으로, 峴을 峙로 쓴 정도이다. 하천 역시 오른쪽 機張界에 현재의 수영강 상류가 생략된 것을 제외하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읍성이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지고,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더 맞추어 표현하였다. 이 과정에서 하천의 길이나 유로 등에서 약간이 차이가 발생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 현재의 수영강 상류가 오른쪽에 그려진 것은 사실에 부합된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이런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의적으로 생략한 것이 아닌가 한다. 왼쪽 위의 彦陽界에서 들어오는 하천은 밀양강 지류 중의 하나인 단장천의 최상류에 해당된다. 《해동지도》에는 彦陽界 부근이 발원지인 것처럼 그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본 지도처럼 언양 방면에서 들어온다. 이 하천은 읍치 부근을 지나는 현재의 양산천에 비하면 훨씬 작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왼쪽 아래에 七點山이 있는 섬은 현재의 부산광역시 대저동 일대로서 《해동지도》에 비해 훨씬 크게 그려져 있다. 또한 본 지도에는 양산천이 낙동강에 합류하는 지점에 대저도가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실제와 비교해 보면 《해동지도》의 표현이 사실에 가깝다. 읍치가 크게 그려지면서 북쪽 지역이 상대적으로 작게 그려진 것도 본 지도의 단점이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양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성 안의 菖蒲亭 등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차이가 있다면 驛을 舘으로, 峴을 峙로 쓴 정도이다. 하천 역시 오른쪽 機張界에 현재의 수영강 상류가 생략된 것을 제외하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읍성이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지고,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더 맞추어 표현하였다. 이 과정에서 하천의 길이나 유로 등에서 약간이 차이가 발생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 현재의 수영강 상류가 오른쪽에 그려진 것은 사실에 부합된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이런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의적으로 생략한 것이 아닌가 한다. 왼쪽 위의 彦陽界에서 들어오는 하천은 밀양강 지류 중의 하나인 단장천의 최상류에 해당된다. 《해동지도》에는 彦陽界 부근이 발원지인 것처럼 그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본 지도처럼 언양 방면에서 들어온다. 이 하천은 읍치 부근을 지나는 현재의 양산천에 비하면 훨씬 작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왼쪽 아래에 七點山이 있는 섬은 현재의 부산광역시 대저동 일대로서 《해동지도》에 비해 훨씬 크게 그려져 있다. 또한 본 지도에는 양산천이 낙동강에 합류하는 지점에 대저도가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실제와 비교해 보면 《해동지도》의 표현이 사실에 가깝다. 읍치가 크게 그려지면서 북쪽 지역이 상대적으로 작게 그려진 것도 본 지도의 단점이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언양현 지도와 비슷하다. 하천의 유로라는 측면에서 보면 본 지도와 《해동지도》는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본 지도는 《해동지도》에 비해 첫째, 읍성이 더 크게 그려져 있고 둘째 세로(남북)가 더 길게 되어 있다. 이로 인해 하천의 유로에서 약간의 변화가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왼쪽 아래의 하천이 본 지도에는 南流하다가 西流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거의 西流하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읍치 바로 왼쪽의 하천도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보다 남류하는 듯한 인상이 더 적다. 지명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邑城과 그 주변의 지명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도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것 중에서 본 지도에 수록되지 않은 것도 있다. 이런 사실을 종합해 보면 본 지도는 기본적으로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읍치 부분은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비록 회화식으로 그려져 있어 읍치와 다른 지역 사이의 거리 축척이 다르지만 고을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실제와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언양현 지도와 비슷하다. 하천의 유로라는 측면에서 보면 본 지도와 《해동지도》는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본 지도는 《해동지도》에 비해 첫째, 읍성이 더 크게 그려져 있고 둘째 세로(남북)가 더 길게 되어 있다. 이로 인해 하천의 유로에서 약간의 변화가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왼쪽 아래의 하천이 본 지도에는 南流하다가 西流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거의 西流하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읍치 바로 왼쪽의 하천도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보다 남류하는 듯한 인상이 더 적다. 지명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邑城과 그 주변의 지명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도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것 중에서 본 지도에 수록되지 않은 것도 있다. 이런 사실을 종합해 보면 본 지도는 기본적으로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읍치 부분은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비록 회화식으로 그려져 있어 읍치와 다른 지역 사이의 거리 축척이 다르지만 고을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실제와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해안과 섬의 모습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남도와 거의 동일하다. 산줄기의 표현 방식이 약간 다른 측면이 있지만 전체적인 산세의 흐름은 《광여도》와 거의 비슷하다. 반면에 하천의 유로나 표현 방식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경상도 지도에 가깝다. 예를 들어 《광여도》에는 경주 지역의 형산강과 울산 지역의 태화강이 마치 붙어 있는 것처럼 표기되었지만 본 지도에서는 서로 분리되어 있다. 이것은 《해동지도》와 거의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또 하나의 예를 들면 역시 형산강의 지류인 현재의 기계천이 《광여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 본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다. 이것 역시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서 하천을 2개의 실선으로 표시한 것도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광여도》에는 하나의 실선으로만 표현하였다. 감영, 수영, 통영, 군현, 찰방역, 진보 등의 기호 사용은 《해동지도》가 아니라 《광여도》와 거의 유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찰방역의 색이 《광여도》는 붉은색인데 반해 본 지도는 진보와 동일한 노란색으로 되어 있다는 정도이다. 기타 지명은 《광여도》와 거의 비슷하지만 일부 지명은 《광여도》에 없는 것도 있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하며, 《해동지도》와는 다르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광여도》와 같은 계통의 것을 기본으로 하면서 《해동지도》와 다른 자료를 보충한 것으로 생각된다. 지명이 반영하는 내용의 상한 연도는 安陰과 山陰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두 군현은 모두 1767년(영조 43)에 安義와 山淸으로 명칭을 바꾼다. 따라서 내용만으로 놓고 볼 때 본 지도는 늦어도 1767년 이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지명만으로 본 지도의 제작 연도를 추적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조선시대의 지도책 중 상당수가 제작 당시의 상황을 반영하지 않고 기존의 지도를 그대로 베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도에는 명칭에서의 오류도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오른쪽 蔚山 부근에 적혀 있는 右兵營은 左兵營의 誤記이다. 가운데 위쪽의 昌樂은 군현이 아니라 찰방역임에도 불구하고 군현의 기호를 사용하고 있다. (이기봉)
해안과 섬의 모습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남도와 거의 동일하다. 산줄기의 표현 방식이 약간 다른 측면이 있지만 전체적인 산세의 흐름은 《광여도》와 거의 비슷하다. 반면에 하천의 유로나 표현 방식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경상도 지도에 가깝다. 예를 들어 《광여도》에는 경주 지역의 형산강과 울산 지역의 태화강이 마치 붙어 있는 것처럼 표기되었지만 본 지도에서는 서로 분리되어 있다. 이것은 《해동지도》와 거의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또 하나의 예를 들면 역시 형산강의 지류인 현재의 기계천이 《광여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 본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다. 이것 역시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서 하천을 2개의 실선으로 표시한 것도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광여도》에는 하나의 실선으로만 표현하였다. 감영, 수영, 통영, 군현, 찰방역, 진보 등의 기호 사용은 《해동지도》가 아니라 《광여도》와 거의 유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찰방역의 색이 《광여도》는 붉은색인데 반해 본 지도는 진보와 동일한 노란색으로 되어 있다는 정도이다. 기타 지명은 《광여도》와 거의 비슷하지만 일부 지명은 《광여도》에 없는 것도 있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하며, 《해동지도》와는 다르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광여도》와 같은 계통의 것을 기본으로 하면서 《해동지도》와 다른 자료를 보충한 것으로 생각된다. 지명이 반영하는 내용의 상한 연도는 安陰과 山陰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두 군현은 모두 1767년(영조 43)에 安義와 山淸으로 명칭을 바꾼다. 따라서 내용만으로 놓고 볼 때 본 지도는 늦어도 1767년 이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지명만으로 본 지도의 제작 연도를 추적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조선시대의 지도책 중 상당수가 제작 당시의 상황을 반영하지 않고 기존의 지도를 그대로 베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도에는 명칭에서의 오류도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오른쪽 蔚山 부근에 적혀 있는 右兵營은 左兵營의 誤記이다. 가운데 위쪽의 昌樂은 군현이 아니라 찰방역임에도 불구하고 군현의 기호를 사용하고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영덕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읍성 안에 있는 건물 몇 개를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표시되어 있어 서로 필사 관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驛의 표현이 황색과 무색 사각형 2개로 되는 등 본 지도에 오류가 보이고 있어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성을 상대적으로 크게 그렸으며, 고을 전체를 사각형의 모양에 더 가깝게 그렸다. 이로 인해 하천의 유로 일부가 약간 다르게 표시되었지만 본류나 지류의 표현은 전체적으로 동일하다. 왼쪽의 西面 부근에 있는 하천은 현재의 대서천으로서 경주와 청송 방면에서 흘러 들어온다. 《해동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잘 반영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는 하천 끝을 얇게 하여 마치 경계선 부근이 발원지인 것 같은 착각을 할 수 있게 그렸다. 이런 점을 통해 봐도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이 아닌가 한다.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러나 모든 부분에서 동일한 방향 기준을 적용하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해안선은 거의 남북 방향을 하고 있는데,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잘 반영되어 있지 않다. 위쪽의 眞寶界로부터 오른쪽의 해안선 부근의 寧海界까지가 북쪽의 동서 방향이고, 寧海界부터 아래쪽 淸河界까지 동쪽의 남북 방향에 해당된다. 眞寶界로부터 왼쪽의 外南面 부근까지의 경계는 서북-동남 방향으로 되어 있고, 거기부터 淸河界까지 다시 남쪽의 동서 방향이 된다. 이렇게 방향이 일정하게 정해지지 않은 이유는 첫째,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 위에 그렸기 때문이다. 둘째, 읍치를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렸기 때문이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영덕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읍성 안에 있는 건물 몇 개를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표시되어 있어 서로 필사 관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驛의 표현이 황색과 무색 사각형 2개로 되는 등 본 지도에 오류가 보이고 있어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성을 상대적으로 크게 그렸으며, 고을 전체를 사각형의 모양에 더 가깝게 그렸다. 이로 인해 하천의 유로 일부가 약간 다르게 표시되었지만 본류나 지류의 표현은 전체적으로 동일하다. 왼쪽의 西面 부근에 있는 하천은 현재의 대서천으로서 경주와 청송 방면에서 흘러 들어온다. 《해동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잘 반영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는 하천 끝을 얇게 하여 마치 경계선 부근이 발원지인 것 같은 착각을 할 수 있게 그렸다. 이런 점을 통해 봐도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이 아닌가 한다.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러나 모든 부분에서 동일한 방향 기준을 적용하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해안선은 거의 남북 방향을 하고 있는데,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잘 반영되어 있지 않다. 위쪽의 眞寶界로부터 오른쪽의 해안선 부근의 寧海界까지가 북쪽의 동서 방향이고, 寧海界부터 아래쪽 淸河界까지 동쪽의 남북 방향에 해당된다. 眞寶界로부터 왼쪽의 外南面 부근까지의 경계는 서북-동남 방향으로 되어 있고, 거기부터 淸河界까지 다시 남쪽의 동서 방향이 된다. 이렇게 방향이 일정하게 정해지지 않은 이유는 첫째,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 위에 그렸기 때문이다. 둘째, 읍치를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렸기 때문이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영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지도의 명칭이 靈山縣이라고 되어 있어야 하지만 靈山界라고 되어 있어 꼼꼼하게 제작된 지도가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본 지도에 수록되어 있는 지명 중 읍치의 倉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수록되지 않은 것도 여러 개 있다. 또한 지도 왼쪽에는 長嘉面이 長喜面으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하다.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고, 남북(세로)이 동서(가로)보다 길게 그려져 있는 점이 《해동지도》와 다르다. 그러나 하천의 유로는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차치점이 있다면 첫째, 아래쪽 왼쪽에서 합류되는 낙동강과 남강이 《해동지도》에는 다른 하천보다 압도적으로 굵게 표현되어 있다. 본 지도에는 왼쪽 위의 昌寧界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그려진 현재의 계성천이 《해동지도》에는 창령계 너머에서 들어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실제의 입장에서 보면 본 지도가 아니라 《해동지도》가 정확하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기본으로 필사한 것으로 생각되며, 필사 과정에서 약간의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영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지도의 명칭이 靈山縣이라고 되어 있어야 하지만 靈山界라고 되어 있어 꼼꼼하게 제작된 지도가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본 지도에 수록되어 있는 지명 중 읍치의 倉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수록되지 않은 것도 여러 개 있다. 또한 지도 왼쪽에는 長嘉面이 長喜面으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하다.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고, 남북(세로)이 동서(가로)보다 길게 그려져 있는 점이 《해동지도》와 다르다. 그러나 하천의 유로는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차치점이 있다면 첫째, 아래쪽 왼쪽에서 합류되는 낙동강과 남강이 《해동지도》에는 다른 하천보다 압도적으로 굵게 표현되어 있다. 본 지도에는 왼쪽 위의 昌寧界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그려진 현재의 계성천이 《해동지도》에는 창령계 너머에서 들어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실제의 입장에서 보면 본 지도가 아니라 《해동지도》가 정확하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기본으로 필사한 것으로 생각되며, 필사 과정에서 약간의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영양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기 때문에 하천의 유로가 일부 달라지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도 읍치의 司倉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면서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지명은 여러 개 있다. 게다가 본 지도에는 잘못 옮겨진 지명도 보이고 있다. 위쪽의 首北面은 首比面의 오류이고, 그 아래쪽에는 北面이 北西로 적혀 있다. 또한 왼쪽의 北面初度는 北面二度라고 적혀 있어야 하며, 오른쪽 맨 위에도 蔚然山이 이상한 글자로 적혀 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기본으로 하여 필사했지만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읍치 부분은 낙동강의 지류인 반변천의 최상류에 해당된다. 수비면에 있는 하천은 울진계로 흘러가는 왕피천의 최상류이다. 그러나 왕피천이 동북쪽으로 빠져나감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는 마치 서쪽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하천에 대한 이와 같은 잘못된 묘사는 다른 지도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김정호의 《동여도》에서 이 왕피천 상류가 울진계로 흘러가지 않고, 서쪽의 낙동강 수계에 해당되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왼쪽 위에 安東才山界라고 적혀 있는 이유는 이 방향에 안동의 월경지인 재산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영양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기 때문에 하천의 유로가 일부 달라지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도 읍치의 司倉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면서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지명은 여러 개 있다. 게다가 본 지도에는 잘못 옮겨진 지명도 보이고 있다. 위쪽의 首北面은 首比面의 오류이고, 그 아래쪽에는 北面이 北西로 적혀 있다. 또한 왼쪽의 北面初度는 北面二度라고 적혀 있어야 하며, 오른쪽 맨 위에도 蔚然山이 이상한 글자로 적혀 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기본으로 하여 필사했지만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읍치 부분은 낙동강의 지류인 반변천의 최상류에 해당된다. 수비면에 있는 하천은 울진계로 흘러가는 왕피천의 최상류이다. 그러나 왕피천이 동북쪽으로 빠져나감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는 마치 서쪽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하천에 대한 이와 같은 잘못된 묘사는 다른 지도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김정호의 《동여도》에서 이 왕피천 상류가 울진계로 흘러가지 않고, 서쪽의 낙동강 수계에 해당되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왼쪽 위에 安東才山界라고 적혀 있는 이유는 이 방향에 안동의 월경지인 재산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영일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다만 《해동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또한 남북의 길이가 《해동지도》보다 길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세로로 긴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지도를 그렸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성 안의 倉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본 지도는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지만 아래쪽이 남쪽이 아니라 동쪽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려 했기 때문이다. 영일현은 현재의 영일만을 사이에 두고 동서 양쪽이 북쪽으로 튀어 올라가 있다. 특히 본 지도의 오른쪽 아래에 해당되는 大冬背烽 부분은 현재 장기곶이라고 부르는 지역으로 가장 북쪽에 있다. 그런데 본 지도에는 영일만이 직선으로 그려져 있다. 또한 고을의 서쪽에 있는 북쪽 끝이 왼쪽 위에 표시된 반면에 동쪽에 있는 북쪽 끝은 오른쪽 아래에 그려져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고을 북쪽의 동서 폭이 남쪽의 동서 폭보다 훨씬 긴 것을 일정한 크기의 사각형에 표현하려 했기 때문이다. 즉, 동서가 긴 북쪽을 왼쪽 위부터 오른쪽 아래까지 그려 실제 길이를 반영한 것이다. 반면에 동서의 폭이 좁은 남쪽 부분은 왼쪽의 雲梯山에서 長鬐界까지 아주 짧게 표현하였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영일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다만 《해동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또한 남북의 길이가 《해동지도》보다 길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세로로 긴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지도를 그렸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성 안의 倉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본 지도는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지만 아래쪽이 남쪽이 아니라 동쪽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려 했기 때문이다. 영일현은 현재의 영일만을 사이에 두고 동서 양쪽이 북쪽으로 튀어 올라가 있다. 특히 본 지도의 오른쪽 아래에 해당되는 大冬背烽 부분은 현재 장기곶이라고 부르는 지역으로 가장 북쪽에 있다. 그런데 본 지도에는 영일만이 직선으로 그려져 있다. 또한 고을의 서쪽에 있는 북쪽 끝이 왼쪽 위에 표시된 반면에 동쪽에 있는 북쪽 끝은 오른쪽 아래에 그려져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고을 북쪽의 동서 폭이 남쪽의 동서 폭보다 훨씬 긴 것을 일정한 크기의 사각형에 표현하려 했기 때문이다. 즉, 동서가 긴 북쪽을 왼쪽 위부터 오른쪽 아래까지 그려 실제 길이를 반영한 것이다. 반면에 동서의 폭이 좁은 남쪽 부분은 왼쪽의 雲梯山에서 長鬐界까지 아주 짧게 표현하였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榮川郡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읍치에 있는 同樂堂 등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하천의 유로 역시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여 두 지도가 필사 관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하천의 유로에서 2개 정도의 오류가 나타나고 있다. 왼쪽 豊基界 위쪽의 하천 부분이 본 지도에는 順興界 부근이 마치 발원지인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해동지도》에는 順興界 방면에서 흘러 들어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하천은 현재 순흥 방면에서 흘러오는 죽계천으로 《해동지도》가 사실에 부합된다. 오른쪽 위의 北面은 순흥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이다. 따라서 이 방면에서 흘러오는 내성천은 영천군의 땅에서 발원하지만 순흥 땅을 거쳐야 다시 영천군으로 들어온다. 《해동지도》에는 북면 아래쪽에 順興界를 적어 넣어 이런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지만 본 지도에서는 생략되었다. 사각형이나 원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과 원형이 혼합된 것처럼 그림에 따라 몇몇 부분에서 왜곡 현상이 발생하였다. 대표적인 것으로 가장 오른쪽에서 발원하여 川上面에서 내성천과 합류하는 현재의 용각천 유로이다. 이 하천은 실제로는 거의 西流하여 내성천에 합류하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또한 읍치가 확대되어 다른 지역은 상대적으로 작게 표현되었다. 《해동지도》에는 그냥 봉우리 모양으로 그려진 것이 본 지도에는 절벽 모양으로 바뀌어 표현된 곳도 있다. 이런 곳으로는 읍치의 東龜臺 부분과 왼쪽 위의 順興界 지역이다. 東龜臺 부분은 촛대 같은 지형을 의미하는 ‘臺’라는 글자를 통해 표현 방식을 바꾼 것으로 생각되는데, 順興界 방면의 표현이 바뀐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榮川郡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읍치에 있는 同樂堂 등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하천의 유로 역시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여 두 지도가 필사 관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하천의 유로에서 2개 정도의 오류가 나타나고 있다. 왼쪽 豊基界 위쪽의 하천 부분이 본 지도에는 順興界 부근이 마치 발원지인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해동지도》에는 順興界 방면에서 흘러 들어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하천은 현재 순흥 방면에서 흘러오는 죽계천으로 《해동지도》가 사실에 부합된다. 오른쪽 위의 北面은 순흥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이다. 따라서 이 방면에서 흘러오는 내성천은 영천군의 땅에서 발원하지만 순흥 땅을 거쳐야 다시 영천군으로 들어온다. 《해동지도》에는 북면 아래쪽에 順興界를 적어 넣어 이런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지만 본 지도에서는 생략되었다. 사각형이나 원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과 원형이 혼합된 것처럼 그림에 따라 몇몇 부분에서 왜곡 현상이 발생하였다. 대표적인 것으로 가장 오른쪽에서 발원하여 川上面에서 내성천과 합류하는 현재의 용각천 유로이다. 이 하천은 실제로는 거의 西流하여 내성천에 합류하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또한 읍치가 확대되어 다른 지역은 상대적으로 작게 표현되었다. 《해동지도》에는 그냥 봉우리 모양으로 그려진 것이 본 지도에는 절벽 모양으로 바뀌어 표현된 곳도 있다. 이런 곳으로는 읍치의 東龜臺 부분과 왼쪽 위의 順興界 지역이다. 東龜臺 부분은 촛대 같은 지형을 의미하는 ‘臺’라는 글자를 통해 표현 방식을 바꾼 것으로 생각되는데, 順興界 방면의 표현이 바뀐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永川郡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읍치 내에 있는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표시된 지명은 《해동지도》에 거의 나온다. 또한 하천의 유로 역시 《해동지도》와 거의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첫째, 읍치가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다. 둘째,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된 面 중 읍성 내에 있었던 內西面이 생략되어 있다. 셋째, 읍치 왼쪽에 北川이라 적혀 있는 현재의 신령천이 《해동지도》에는 북쪽에서 흘러 들어오는 것처럼 표현되었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영천군 내에 발원지가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는 신령천 끝 부분에 新寧界가 적혀 있는데, 본 지도에서는 생략되어 있어 혼란을 더욱 크게 하고 있다. 오른쪽의 금호강 최상류에 있는 立岩書院 부분은 경주의 죽장면에 있는 월경지이지만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그렸다. 이 점은 《해동지도》도 마찬가지이다. 전체적으로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모양으로 그리면서 많은 왜곡이 나타났다. 가장 심한 곳은 八公山으로부터 흘러오는 현재의 청통천 유역이다. 청통천은 실제로는 西流하다가 남류하여 금호강에 합류하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남류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 지역은 원래 서쪽으로 불쑥 튀어나간 부분이지만 사각형의 모양에 맞추기 위해 그리다 보니까 직선으로 표현된 것이다. 읍치 왼쪽의 신령천이 오른쪽의 금호강 본류에 비해 영천군을 흐르는 구간이 상당히 짧음에도 불구하고 비슷하게 그려진 것 역시 사각형의 모양에 맞추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永川郡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읍치 내에 있는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표시된 지명은 《해동지도》에 거의 나온다. 또한 하천의 유로 역시 《해동지도》와 거의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첫째, 읍치가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다. 둘째,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된 面 중 읍성 내에 있었던 內西面이 생략되어 있다. 셋째, 읍치 왼쪽에 北川이라 적혀 있는 현재의 신령천이 《해동지도》에는 북쪽에서 흘러 들어오는 것처럼 표현되었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영천군 내에 발원지가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는 신령천 끝 부분에 新寧界가 적혀 있는데, 본 지도에서는 생략되어 있어 혼란을 더욱 크게 하고 있다. 오른쪽의 금호강 최상류에 있는 立岩書院 부분은 경주의 죽장면에 있는 월경지이지만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그렸다. 이 점은 《해동지도》도 마찬가지이다. 전체적으로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모양으로 그리면서 많은 왜곡이 나타났다. 가장 심한 곳은 八公山으로부터 흘러오는 현재의 청통천 유역이다. 청통천은 실제로는 西流하다가 남류하여 금호강에 합류하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남류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 지역은 원래 서쪽으로 불쑥 튀어나간 부분이지만 사각형의 모양에 맞추기 위해 그리다 보니까 직선으로 표현된 것이다. 읍치 왼쪽의 신령천이 오른쪽의 금호강 본류에 비해 영천군을 흐르는 구간이 상당히 짧음에도 불구하고 비슷하게 그려진 것 역시 사각형의 모양에 맞추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영해부 지도와 비슷하다. 그러나 몇 가지 측면에서 다른 점이 있다. 가장 큰 차이는 軍器 등의 정보가 추가된 邑城이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크게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다른 부분도 변화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읍성과 동해 사이가 상대적으로 좁아져 산줄기의 표현이 단순해졌다. 읍성 서쪽 지역 역시 상대적으로 작아졌기 때문에 지명의 위치, 하천의 유로, 산줄기의 표현이 약간씩 달라졌다. 예를 들어 《해동지도》에 비해 위쪽의 烏於面 지역이 상대적으로 작아졌으며, 반대로 石保面 지역은 크게 그려졌다. 석보면은 《해동지도》에 서남쪽 구석에 있었지만 본 지도에는 정 서쪽에 있는 것으로 바뀌어 있다. 이에 따라 大泣嶺, 小泣嶺의 위치도 《해동지도》에 비해 위쪽에 표시되어 있다. 석보면 지역은 실제로는 낙동강의 지류인 반변천 상류의 일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서쪽으로 튀어나가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어 지도를 그리는 과정에서 실제의 모습이 왜곡되어 나타난 것이다. 읍성 이외의 지역에 표시된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오는 것이다. 다만 지도 왼쪽에 표시된 寧陽驛은 《해동지도》에 寧海驛이라 적혀 있는데, 본 지도의 것이 올바르다. 기타 《해동지도》에는 없었거나 다른 산과 비슷하게 그려졌던 아래쪽의 丑山과 위쪽의 여러 산이 절벽의 산지 모양으로 그려져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영해부 지도와 비슷하다. 그러나 몇 가지 측면에서 다른 점이 있다. 가장 큰 차이는 軍器 등의 정보가 추가된 邑城이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크게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다른 부분도 변화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읍성과 동해 사이가 상대적으로 좁아져 산줄기의 표현이 단순해졌다. 읍성 서쪽 지역 역시 상대적으로 작아졌기 때문에 지명의 위치, 하천의 유로, 산줄기의 표현이 약간씩 달라졌다. 예를 들어 《해동지도》에 비해 위쪽의 烏於面 지역이 상대적으로 작아졌으며, 반대로 石保面 지역은 크게 그려졌다. 석보면은 《해동지도》에 서남쪽 구석에 있었지만 본 지도에는 정 서쪽에 있는 것으로 바뀌어 있다. 이에 따라 大泣嶺, 小泣嶺의 위치도 《해동지도》에 비해 위쪽에 표시되어 있다. 석보면 지역은 실제로는 낙동강의 지류인 반변천 상류의 일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서쪽으로 튀어나가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어 지도를 그리는 과정에서 실제의 모습이 왜곡되어 나타난 것이다. 읍성 이외의 지역에 표시된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오는 것이다. 다만 지도 왼쪽에 표시된 寧陽驛은 《해동지도》에 寧海驛이라 적혀 있는데, 본 지도의 것이 올바르다. 기타 《해동지도》에는 없었거나 다른 산과 비슷하게 그려졌던 아래쪽의 丑山과 위쪽의 여러 산이 절벽의 산지 모양으로 그려져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예안현 지도와 비슷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읍치의 倉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더 나아가 본 지도는 지명의 표기에서 미완성인 듯한 느낌이 드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오른쪽에 지명이 적혀 있지 않으면서 집의 모양은 그려져 있는 경우가 여러 개 있다. 《해동지도》에는 이 부분에 院, 書院, 寺 등의 명칭이 적혀 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되며, 필사 과정에서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 있다고 생각된다. 오른쪽 위에서 흘러와 아래쪽 安東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 본류이다. 왼쪽 위의 하천은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 상류의 일보이다. 예안현은 낙동강을 기준으로 동쪽과 서쪽의 면적이 비슷하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동쪽이 훨씬 작게 그려져 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낙동강 서쪽에 있었던 읍치와 도산서원을 강조해서 크게 그렸기 때문이다. 또한 서쪽보다 동쪽의 산지가 높고 사람이 덜 살았기 때문으로도 볼 수 있다. 지도에도 나타나 있듯이 낙동강 동쪽에는 2개의 면이 있었던 반면에 서쪽에는 5개의 면이 있었다. 이럴 경우 인구가 조밀한 지역을 상대적으로 크게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해동지도》에 비해 산줄기의 표현이 조금 달라졌다. 특히 오른쪽 위의 淸凉山을 마치 절벽이 이어진 것처럼 그렸다. 이것은 지리지에 기록된 지형의 모습을 지도에 형상화시켜 표현하려 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예안현 지도와 비슷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읍치의 倉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더 나아가 본 지도는 지명의 표기에서 미완성인 듯한 느낌이 드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오른쪽에 지명이 적혀 있지 않으면서 집의 모양은 그려져 있는 경우가 여러 개 있다. 《해동지도》에는 이 부분에 院, 書院, 寺 등의 명칭이 적혀 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되며, 필사 과정에서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 있다고 생각된다. 오른쪽 위에서 흘러와 아래쪽 安東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 본류이다. 왼쪽 위의 하천은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 상류의 일보이다. 예안현은 낙동강을 기준으로 동쪽과 서쪽의 면적이 비슷하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동쪽이 훨씬 작게 그려져 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낙동강 서쪽에 있었던 읍치와 도산서원을 강조해서 크게 그렸기 때문이다. 또한 서쪽보다 동쪽의 산지가 높고 사람이 덜 살았기 때문으로도 볼 수 있다. 지도에도 나타나 있듯이 낙동강 동쪽에는 2개의 면이 있었던 반면에 서쪽에는 5개의 면이 있었다. 이럴 경우 인구가 조밀한 지역을 상대적으로 크게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해동지도》에 비해 산줄기의 표현이 조금 달라졌다. 특히 오른쪽 위의 淸凉山을 마치 절벽이 이어진 것처럼 그렸다. 이것은 지리지에 기록된 지형의 모습을 지도에 형상화시켜 표현하려 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예천현 지도와 비슷하다. 醴泉은 여러 기록을 검토해 봐도 조선 초기 이후 縣이었던 적이 없기 때문에 《해동지도》가 잘못 적은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에 나와 있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또한 하천의 유로 역시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기 때문에 두 지도는 서로 필사 관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하천의 유로 표시에서 《해동지도》와 다른 부분이 2개 발견된다. 왼쪽 위의 豊基界와 가운데의 夢吟寺 부분의 하천 끝이 《해동지도》에는 다른 고을에서 흘러 들어오는 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본 지도에는 이 부분이 마치 발원지인 것처럼 묘사되어 있어 필사 시에 자의로 수정한 것이 아닌가 한다. 실제와 비교해 보면 《해동지도》가 올바르기 때문에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가장 아래쪽의 하천은 현재의 낙동강 본류로서 실제로는 오른쪽의 安東界로부터 흘러온다. 본 지도에는 낙동강 본류 역시 본 고을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는데, 《해동지도》에도 약간 애매하게 표시되어 있다.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첫째, 읍치를 상대적으로 더 크게 그렸고 둘째,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정확하게 맞추어 표현하였다. 이로 인해 지명의 위치, 하천의 유로, 산줄기의 흐름이 바뀐 곳이 여러 곳 있다. 예를 들어 왼쪽 아래에 적힌 沙川은 그 위의 하천에 적혀 있어야 한다. 특히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렸기 때문에 여러 곳에서 왜곡이 발생하였다. 왼쪽 위의 하천은 현재 금천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이 지역은 실질적으로는 서북쪽으로 튀어나가 있다. 《해동지도》에는 실제와 거의 같지는 않아도 이런 사실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는 편이다. 가장 아래쪽에 縣자가 들어간 面의 지역은 龍宮의 경계를 넘어가 현재의 의성군 다인면 지역에 있었던 월경지이다. 이 지역 역시 남쪽으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는 과정에서 본 지도처럼 그려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기타 읍치를 감아 돌아나가는 한천, 그 아래의 내성천은 본 고을에서 만난다. 그러나 낙동강과 합류되는 지점은 용궁현 지역임에도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예천현 지도와 비슷하다. 醴泉은 여러 기록을 검토해 봐도 조선 초기 이후 縣이었던 적이 없기 때문에 《해동지도》가 잘못 적은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에 나와 있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또한 하천의 유로 역시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기 때문에 두 지도는 서로 필사 관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하천의 유로 표시에서 《해동지도》와 다른 부분이 2개 발견된다. 왼쪽 위의 豊基界와 가운데의 夢吟寺 부분의 하천 끝이 《해동지도》에는 다른 고을에서 흘러 들어오는 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본 지도에는 이 부분이 마치 발원지인 것처럼 묘사되어 있어 필사 시에 자의로 수정한 것이 아닌가 한다. 실제와 비교해 보면 《해동지도》가 올바르기 때문에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가장 아래쪽의 하천은 현재의 낙동강 본류로서 실제로는 오른쪽의 安東界로부터 흘러온다. 본 지도에는 낙동강 본류 역시 본 고을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는데, 《해동지도》에도 약간 애매하게 표시되어 있다.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첫째, 읍치를 상대적으로 더 크게 그렸고 둘째,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정확하게 맞추어 표현하였다. 이로 인해 지명의 위치, 하천의 유로, 산줄기의 흐름이 바뀐 곳이 여러 곳 있다. 예를 들어 왼쪽 아래에 적힌 沙川은 그 위의 하천에 적혀 있어야 한다. 특히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렸기 때문에 여러 곳에서 왜곡이 발생하였다. 왼쪽 위의 하천은 현재 금천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이 지역은 실질적으로는 서북쪽으로 튀어나가 있다. 《해동지도》에는 실제와 거의 같지는 않아도 이런 사실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는 편이다. 가장 아래쪽에 縣자가 들어간 面의 지역은 龍宮의 경계를 넘어가 현재의 의성군 다인면 지역에 있었던 월경지이다. 이 지역 역시 남쪽으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는 과정에서 본 지도처럼 그려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기타 읍치를 감아 돌아나가는 한천, 그 아래의 내성천은 본 고을에서 만난다. 그러나 낙동강과 합류되는 지점은 용궁현 지역임에도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용궁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고, 세로(남북)가 더 길게 되어 있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치에 있는 軍器를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그러나 읍치 아래쪽의 龍飛山은 《해동지도》에 飛龍山으로, 그 아래쪽의 引火山은 火引山으로 나온다. 이 중 전자는 여러 지지를 참고해 보면 본 지도의 것이 올바르기 때문에 필사 시에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교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반면에 본 지도에 3개나 나오는 醴川界는 醴泉界의 오류이며, 《해동지도》에는 올바르게 기록되어 있다. 기타 《해동지도》에는 津 뒤에 船자가 붙어 있어 津船이 배치된 나루임을 알 수 있도록 하였으나 본 지도에서는 船자를 생략하였다. 하천의 유로나 산줄기의 모습은 《해동지도》와 거의 같게 되어 있다. 가장 아래쪽의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 본류이고, 그 위쪽이 내성천이다. 왼쪽의 하천은 금천으로서 위쪽의 尙州界에서 흘러오는데, 본 지도의 표현은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하천의 유로 중 읍치 아래쪽이 상대적으로 크게 확대된 것을 제외하면 실제와 거의 유사하게 되어 있다. 아래쪽의 申上面은 현재의 의성군 안사면 북쪽 부분에 있었고, 南面은 예천군 풍양면 북쪽 부분에 있었다. 아래쪽에 醴川界(즉 醴泉界)가 적혀 있는 것은 이곳에 예천의 월경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용궁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고, 세로(남북)가 더 길게 되어 있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치에 있는 軍器를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그러나 읍치 아래쪽의 龍飛山은 《해동지도》에 飛龍山으로, 그 아래쪽의 引火山은 火引山으로 나온다. 이 중 전자는 여러 지지를 참고해 보면 본 지도의 것이 올바르기 때문에 필사 시에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교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반면에 본 지도에 3개나 나오는 醴川界는 醴泉界의 오류이며, 《해동지도》에는 올바르게 기록되어 있다. 기타 《해동지도》에는 津 뒤에 船자가 붙어 있어 津船이 배치된 나루임을 알 수 있도록 하였으나 본 지도에서는 船자를 생략하였다. 하천의 유로나 산줄기의 모습은 《해동지도》와 거의 같게 되어 있다. 가장 아래쪽의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 본류이고, 그 위쪽이 내성천이다. 왼쪽의 하천은 금천으로서 위쪽의 尙州界에서 흘러오는데, 본 지도의 표현은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하천의 유로 중 읍치 아래쪽이 상대적으로 크게 확대된 것을 제외하면 실제와 거의 유사하게 되어 있다. 아래쪽의 申上面은 현재의 의성군 안사면 북쪽 부분에 있었고, 南面은 예천군 풍양면 북쪽 부분에 있었다. 아래쪽에 醴川界(즉 醴泉界)가 적혀 있는 것은 이곳에 예천의 월경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울산부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와 본 지도의 하천 유로는 동일하게 되어 있다. 다만 읍치 아래쪽을 흐르는 현재의 태화강 끝을 얇게 하여 마치 해당 지역이 발원지인 것 같은 오해를 할 수 있게 그렸다. 《해동지도》에는 이 부분이 발원지가 아님을 분명하게 표시하였다. 읍치를 제외하면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글씨로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사용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읍치 오른쪽의 柳浦面에 노란색 사각형을 그리지 않은 실수도 보이고 있다. 읍치는 《해동지도》에 없는 지명이 많이 추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다. 이로 인해 읍치로부터 서쪽과 북쪽 경계까지의 거리가 상대적으로 짧게 그려졌다. 이것이 읍치 북쪽과 왼쪽 하천의 유로 및 지명 위치가 《해동지도》와 달라지는 원인이 된 것 같다. 본 지도는 대략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러나 방향이 전 지역에 동일하게 적용된 것은 아니다. 해안선은 실제 북쪽에서 남쪽으로 향하게 되어 있지만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북-남으로 오다가 태화강 하구에서 동-서 방향으로 바뀐 듯 오해를 할 수 있다. 태화강 하구에서 해안선이 잠시 동-서 방향을 취하는 것은 맞지만 바로 북-남으로 바뀐다. 태화강 역시 서쪽의 언양 방향에서 들어와 거의 동류하다가 하구 부분에서 약간만 남류한다.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남류하다가 동류하며, 다시 남류하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가장 왼쪽에 있는 현재의 회야강은 熊村面에서 동북으로 흐르다가 靑良面부터 동남으로 빠져나간다. 역시 본 지도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방향과 거리가 실제와 다르게 그려지는 것이 일반적이며, 본 지도는 그 중에서도 가장 심한 편에 해당된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울산부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와 본 지도의 하천 유로는 동일하게 되어 있다. 다만 읍치 아래쪽을 흐르는 현재의 태화강 끝을 얇게 하여 마치 해당 지역이 발원지인 것 같은 오해를 할 수 있게 그렸다. 《해동지도》에는 이 부분이 발원지가 아님을 분명하게 표시하였다. 읍치를 제외하면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글씨로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사용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읍치 오른쪽의 柳浦面에 노란색 사각형을 그리지 않은 실수도 보이고 있다. 읍치는 《해동지도》에 없는 지명이 많이 추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다. 이로 인해 읍치로부터 서쪽과 북쪽 경계까지의 거리가 상대적으로 짧게 그려졌다. 이것이 읍치 북쪽과 왼쪽 하천의 유로 및 지명 위치가 《해동지도》와 달라지는 원인이 된 것 같다. 본 지도는 대략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러나 방향이 전 지역에 동일하게 적용된 것은 아니다. 해안선은 실제 북쪽에서 남쪽으로 향하게 되어 있지만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북-남으로 오다가 태화강 하구에서 동-서 방향으로 바뀐 듯 오해를 할 수 있다. 태화강 하구에서 해안선이 잠시 동-서 방향을 취하는 것은 맞지만 바로 북-남으로 바뀐다. 태화강 역시 서쪽의 언양 방향에서 들어와 거의 동류하다가 하구 부분에서 약간만 남류한다.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남류하다가 동류하며, 다시 남류하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가장 왼쪽에 있는 현재의 회야강은 熊村面에서 동북으로 흐르다가 靑良面부터 동남으로 빠져나간다. 역시 본 지도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방향과 거리가 실제와 다르게 그려지는 것이 일반적이며, 본 지도는 그 중에서도 가장 심한 편에 해당된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웅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는 가로(동서)가 길게 그려져 있는 반면에 본 지도는 세로(남북)가 길게 그려져 있다. 웅천현의 실제 모습은 동서가 남북보다 훨씬 길기 때문에 《해동지도》가 사실에 가깝다. 남북이 길어지고, 읍성을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지만 하천의 유로는 거의 변화가 없다. 그러나 해안선과 섬은 상대적으로 단순하게 표현되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본 지도가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은 종이 위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크기가 작기 때문에 《해동지도》에 자세하게 묘사된 해안선과 섬을 그대로 옮기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해동지도》에 어느 정도 위치가 고려되어 표시된 섬이 본 지도에서는 대략적인 위치만 알 수 있게 하였고, 섬의 명칭이 생략된 것도 여러 개 있다. 지명의 표시 역시 《해동지도》보다 본 지도가 훨씬 소략하게 처리되었다. 面의 경우 《해동지도》에 없던 邑內面이 추가되었으나 가장 서쪽에 있었던 下西面이 생략되어 있다. 또한 전통시대의 지도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군사 정보 역시 오른쪽의 淸川鎭 아래쪽에 安骨鎭이, 지도의 왼쪽에 豊德鎭이 생략되었다. 오른쪽 아래의 天城保는 天城堡의 誤記이다. 이런 사실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기본으로 하면서 읍치는 다른 자료를 일부 참고하여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가 꼼꼼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여러 곳에서 생략이나 오기 등의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웅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는 가로(동서)가 길게 그려져 있는 반면에 본 지도는 세로(남북)가 길게 그려져 있다. 웅천현의 실제 모습은 동서가 남북보다 훨씬 길기 때문에 《해동지도》가 사실에 가깝다. 남북이 길어지고, 읍성을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지만 하천의 유로는 거의 변화가 없다. 그러나 해안선과 섬은 상대적으로 단순하게 표현되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본 지도가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은 종이 위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크기가 작기 때문에 《해동지도》에 자세하게 묘사된 해안선과 섬을 그대로 옮기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해동지도》에 어느 정도 위치가 고려되어 표시된 섬이 본 지도에서는 대략적인 위치만 알 수 있게 하였고, 섬의 명칭이 생략된 것도 여러 개 있다. 지명의 표시 역시 《해동지도》보다 본 지도가 훨씬 소략하게 처리되었다. 面의 경우 《해동지도》에 없던 邑內面이 추가되었으나 가장 서쪽에 있었던 下西面이 생략되어 있다. 또한 전통시대의 지도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군사 정보 역시 오른쪽의 淸川鎭 아래쪽에 安骨鎭이, 지도의 왼쪽에 豊德鎭이 생략되었다. 오른쪽 아래의 天城保는 天城堡의 誤記이다. 이런 사실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기본으로 하면서 읍치는 다른 자료를 일부 참고하여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가 꼼꼼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여러 곳에서 생략이나 오기 등의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의령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상당히 급조한 느낌을 주는 지도이다. 본 지도에서는 《해동지도》에서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을 그려 넣었다. 그러나 읍치 오른쪽의 豊德面에 적황색 사각형을, 왼쪽의 大谷面과 上井面에는 색이 없는 사각형을 그려 넣었다. 왼쪽 위의 七谷面은 글자의 순서도 바뀌어 있고, 노란색 사각형도 아니다. 게다가 오른쪽 부분에 禾谷面과 田太面이 생략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면의 명칭이 주기에는 나오는 것을 통해 볼 때 빠르게 필사하는 과정에서 필사 시에 빠뜨린 것으로 생각된다. 읍치에 있는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하천의 흐름도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 위에서 낙동강이 내려오며, 왼쪽 아래에서 흘러와 낙동강에 합류하는 하천이 현재의 남강이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다보니까 실제와 다른 왜곡이 발생하였다. 왼쪽 위의 毛兒面은 서쪽으로 튀어져 나가 있는 부분이다. 이를 사각형에 맞추려다 보니까 이곳에서 흘러오는 현재의 남산천이 실제로는 거의 東流하는데, 본 지도에는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그려지게 되었다. 德谷面 부분도 실제로는 남쪽으로 약간 튀어나가 있다. 이것을 사각형에 맞추어 그리다보니까 이곳에서 흐르는 하천이 北流하는데도 마치 西流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의령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상당히 급조한 느낌을 주는 지도이다. 본 지도에서는 《해동지도》에서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을 그려 넣었다. 그러나 읍치 오른쪽의 豊德面에 적황색 사각형을, 왼쪽의 大谷面과 上井面에는 색이 없는 사각형을 그려 넣었다. 왼쪽 위의 七谷面은 글자의 순서도 바뀌어 있고, 노란색 사각형도 아니다. 게다가 오른쪽 부분에 禾谷面과 田太面이 생략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면의 명칭이 주기에는 나오는 것을 통해 볼 때 빠르게 필사하는 과정에서 필사 시에 빠뜨린 것으로 생각된다. 읍치에 있는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하천의 흐름도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 위에서 낙동강이 내려오며, 왼쪽 아래에서 흘러와 낙동강에 합류하는 하천이 현재의 남강이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다보니까 실제와 다른 왜곡이 발생하였다. 왼쪽 위의 毛兒面은 서쪽으로 튀어져 나가 있는 부분이다. 이를 사각형에 맞추려다 보니까 이곳에서 흘러오는 현재의 남산천이 실제로는 거의 東流하는데, 본 지도에는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그려지게 되었다. 德谷面 부분도 실제로는 남쪽으로 약간 튀어나가 있다. 이것을 사각형에 맞추어 그리다보니까 이곳에서 흐르는 하천이 北流하는데도 마치 西流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의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는 첫째,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둘째, 세로로 긴 사각형의 모양이 더 정확하게 맞도록 그렸다. 이 과정에서 산줄기나 하천의 흐름이 약간씩 달라졌다. 예를 들어 《해동지도》에 읍치 남쪽 부분에 작게 그려져 있던 하천이 본 지도에서는 사각형 모양에 맞추기 위해 왼쪽 아래로 옮겨져 있다. 이 지역은 현재의 금성면 도경리 지역에 있는 위천 지류의 최상류로서 《해동지도》가 본 지도보다 사실에 가깝게 그렸다. 이런 변화는 있지만 하천의 흐름은 《해동지도》와 대체적으로 동일하게 되어 있다. 다만 왼쪽 위의 하천 끝이 《해동지도》에는 比安界로부터 들어오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비안과의 경계선이 발원지인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 지역은 현재의 안평면 금곡리, 하령리 일대로서 《해동지도》의 표현이 사실에 가깝다. 읍치에 있는 건물 몇 개를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왼쪽 위의 安平倉과 아래쪽의 靑路驛은 《해동지도》에 平安倉과 靑雲驛으로 되어 있던 것을 교정한 것이다. 다른 자료에 입각해 보면 본 지도가 올바르기 때문에 본 지도의 필사 시에 다른 자료를 통해 수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읍치 오른쪽의 忠烈祠에는 《해동지도》의 내용을 잘못 옮긴 것이 분명한 내용도 있다. 본 지도에는 ‘金洪術代歷祖’와 비슷하게 적혀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金洪術代麗祖死’라고 되어 있다. 다른 자료와 비교해 보면 이 부분의 내용은 ‘김홍술, 고려의 태조를 대신하여 죽었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해동지도》가 올바르며, 본 지도의 필사 시 이 문장의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 왼쪽에는 驛에 표시하는 황색 사각형만 그려져 있고, 글씨는 적혀 있지 않은 것이 보인다. 《해동지도》에는 이곳에 朝陽舘이라고 적혀 있는데, 東軒 건물의 명칭이었다. 그런데 驛을 舘이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많다. 본 지도의 필사자도 조양관을 역으로 생각하여 황색 사각형을 그렸다가 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명칭은 적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한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의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는 첫째,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둘째, 세로로 긴 사각형의 모양이 더 정확하게 맞도록 그렸다. 이 과정에서 산줄기나 하천의 흐름이 약간씩 달라졌다. 예를 들어 《해동지도》에 읍치 남쪽 부분에 작게 그려져 있던 하천이 본 지도에서는 사각형 모양에 맞추기 위해 왼쪽 아래로 옮겨져 있다. 이 지역은 현재의 금성면 도경리 지역에 있는 위천 지류의 최상류로서 《해동지도》가 본 지도보다 사실에 가깝게 그렸다. 이런 변화는 있지만 하천의 흐름은 《해동지도》와 대체적으로 동일하게 되어 있다. 다만 왼쪽 위의 하천 끝이 《해동지도》에는 比安界로부터 들어오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비안과의 경계선이 발원지인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 지역은 현재의 안평면 금곡리, 하령리 일대로서 《해동지도》의 표현이 사실에 가깝다. 읍치에 있는 건물 몇 개를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왼쪽 위의 安平倉과 아래쪽의 靑路驛은 《해동지도》에 平安倉과 靑雲驛으로 되어 있던 것을 교정한 것이다. 다른 자료에 입각해 보면 본 지도가 올바르기 때문에 본 지도의 필사 시에 다른 자료를 통해 수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읍치 오른쪽의 忠烈祠에는 《해동지도》의 내용을 잘못 옮긴 것이 분명한 내용도 있다. 본 지도에는 ‘金洪術代歷祖’와 비슷하게 적혀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金洪術代麗祖死’라고 되어 있다. 다른 자료와 비교해 보면 이 부분의 내용은 ‘김홍술, 고려의 태조를 대신하여 죽었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해동지도》가 올바르며, 본 지도의 필사 시 이 문장의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 왼쪽에는 驛에 표시하는 황색 사각형만 그려져 있고, 글씨는 적혀 있지 않은 것이 보인다. 《해동지도》에는 이곳에 朝陽舘이라고 적혀 있는데, 東軒 건물의 명칭이었다. 그런데 驛을 舘이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많다. 본 지도의 필사자도 조양관을 역으로 생각하여 황색 사각형을 그렸다가 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명칭은 적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한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의흥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가 동쪽을 위로 향해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리고 《해동지도》가 동서를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남북을 길게 그렸다. 이런 과정에서 《해동지도》와 본 지도가 약간 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하천의 유로가 약간 길어진 부분을 제외하면 거의 동일하다. 또한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읍치의 司倉과 選勝亭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없는 것도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기본적으로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며, 읍치 부분에서 다른 자료를 약간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다보니까 방향이나 거리 등에서 왜곡 현상이 발생하였다. 고을의 동쪽에서 발원한 현재의 위천은 읍치 남쪽을 흘러 실제로는 서쪽의 軍威界로 빠져나가지만 본 지도에서는 남쪽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 점은 《해동지도》에서도 동일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데, 읍치 서쪽에 있어야 할 牛保里面이 마치 남쪽에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는 것도 마찬가지의 맥략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아래쪽의 縣內面과 缶자가 붙은 면은 현재의 군위군 부계면과 효령면의 일부에 해당된다. 이곳에서 흘러오는 물은 실제로는 軍威의 땅을 지나 위천과 합류된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마치 군위와의 경계선에서 합류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기타 오른쪽의 小首里面에 있는 하천의 상류에는 의성의 땅이 자리잡고 있었지만 본 지도에는 표현되어 있지 않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의흥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가 동쪽을 위로 향해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리고 《해동지도》가 동서를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남북을 길게 그렸다. 이런 과정에서 《해동지도》와 본 지도가 약간 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하천의 유로가 약간 길어진 부분을 제외하면 거의 동일하다. 또한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읍치의 司倉과 選勝亭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없는 것도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기본적으로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며, 읍치 부분에서 다른 자료를 약간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다보니까 방향이나 거리 등에서 왜곡 현상이 발생하였다. 고을의 동쪽에서 발원한 현재의 위천은 읍치 남쪽을 흘러 실제로는 서쪽의 軍威界로 빠져나가지만 본 지도에서는 남쪽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 점은 《해동지도》에서도 동일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데, 읍치 서쪽에 있어야 할 牛保里面이 마치 남쪽에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는 것도 마찬가지의 맥략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아래쪽의 縣內面과 缶자가 붙은 면은 현재의 군위군 부계면과 효령면의 일부에 해당된다. 이곳에서 흘러오는 물은 실제로는 軍威의 땅을 지나 위천과 합류된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마치 군위와의 경계선에서 합류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기타 오른쪽의 小首里面에 있는 하천의 상류에는 의성의 땅이 자리잡고 있었지만 본 지도에는 표현되어 있지 않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인동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는 남북보다 동서가 길게 그려져 있고,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표현되었다. 또한 《해동지도》에는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으로 그렸지만 완전한 사각형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반면에 본 지도는 사각형 안에 인동부의 모습을 모두 그리려고 하였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하천의 유로 등이 거의 동일하지만 하천이나 산줄기, 지명의 위치가 여러 곳에서 바뀌었다. 예를 들어 왼쪽의 若木面은 《해동지도》에 왼쪽 아래쪽으로 치우쳐져 있지만 본 지도에는 거의 가운데에 표시되어 있다. 또한 가장 위쪽의 玉郞堤가 《해동지도》에는 읍치 바로 서쪽에 그려져 있다. 실제의 모습에 입각해 보면 《해동지도》가 사실에 가깝다. 본 지도에서 왜곡이 훨씬 심하게 발생한 이유는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억지로 맞추어 그리려 했기 때문이다. 지명의 측면에서 보면 오른쪽의 長川과 읍치의 몇몇 건물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또한 《해동지도》와 비교해 보면 잘못된 지명도 몇 군데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위쪽의 天橋場은 大橋場의, 읍치 서쪽의 東洛書院의 誤記이다. 다른 기록과 비교해 보면 전자는 《해동지도》가, 후자는 본 지도가 올바르다. 이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필사 과정에서 실수를 범함과 동시에 《해동지도》의 오류도 고치려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인동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는 남북보다 동서가 길게 그려져 있고,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표현되었다. 또한 《해동지도》에는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으로 그렸지만 완전한 사각형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반면에 본 지도는 사각형 안에 인동부의 모습을 모두 그리려고 하였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하천의 유로 등이 거의 동일하지만 하천이나 산줄기, 지명의 위치가 여러 곳에서 바뀌었다. 예를 들어 왼쪽의 若木面은 《해동지도》에 왼쪽 아래쪽으로 치우쳐져 있지만 본 지도에는 거의 가운데에 표시되어 있다. 또한 가장 위쪽의 玉郞堤가 《해동지도》에는 읍치 바로 서쪽에 그려져 있다. 실제의 모습에 입각해 보면 《해동지도》가 사실에 가깝다. 본 지도에서 왜곡이 훨씬 심하게 발생한 이유는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억지로 맞추어 그리려 했기 때문이다. 지명의 측면에서 보면 오른쪽의 長川과 읍치의 몇몇 건물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또한 《해동지도》와 비교해 보면 잘못된 지명도 몇 군데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위쪽의 天橋場은 大橋場의, 읍치 서쪽의 東洛書院의 誤記이다. 다른 기록과 비교해 보면 전자는 《해동지도》가, 후자는 본 지도가 올바르다. 이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필사 과정에서 실수를 범함과 동시에 《해동지도》의 오류도 고치려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자인현 지도와 비슷하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본 지도가 미숙하게 필사한 듯한 측면이 몇몇 부분에서 보인다. 예를 들어 오른쪽에 명칭은 없고 건물만 표시되어 있는 것이 있다. 이 정도의 건물을 표시했다면 보통 명칭이 적혀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해동지도》와 비교해 보면 이 건물에는 盤龍寺가 적혀 있어야 한다. 읍치에도 대부분의 지도에 표시되어 있으며, 《해동지도》에도 있는 衙舍가 없다. 읍치 아래의 元堂도 《해동지도》와 비교해 보면 元堂里라고 적혀 있어야 하며, 南山과 烏見山의 위치도 바뀌어져 있다. 그러나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그대로 필사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읍치 왼쪽의 大王山와 아래쪽의 孝子徐濂旌門 앞에 있는 贈禁府都事가 《해동지도》에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해동지도》의 내용을 기반으로 일부 자료를 참고하여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面의 표시에서 《해동지도》에는 주기와 지도에 기록된 면의 명칭이 전혀 다르게 되어 있다. 이것은 《해동지도》의 지도와 주기가 다른 시기에 제작되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에서는 洞內面이 없는 것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의 지도와 동일하며, 주기에는 洞內面까지 기록하는 등 《해동지도》의 지도와 같게 되어 있다. 기타 오른쪽에 密陽界가 적혀 있는 것은 현재의 청도군 운문면 공암리 일대에 있었던 밀양의 월경지 고매부곡과 경계를 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자인현 지도와 비슷하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본 지도가 미숙하게 필사한 듯한 측면이 몇몇 부분에서 보인다. 예를 들어 오른쪽에 명칭은 없고 건물만 표시되어 있는 것이 있다. 이 정도의 건물을 표시했다면 보통 명칭이 적혀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해동지도》와 비교해 보면 이 건물에는 盤龍寺가 적혀 있어야 한다. 읍치에도 대부분의 지도에 표시되어 있으며, 《해동지도》에도 있는 衙舍가 없다. 읍치 아래의 元堂도 《해동지도》와 비교해 보면 元堂里라고 적혀 있어야 하며, 南山과 烏見山의 위치도 바뀌어져 있다. 그러나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그대로 필사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읍치 왼쪽의 大王山와 아래쪽의 孝子徐濂旌門 앞에 있는 贈禁府都事가 《해동지도》에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해동지도》의 내용을 기반으로 일부 자료를 참고하여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面의 표시에서 《해동지도》에는 주기와 지도에 기록된 면의 명칭이 전혀 다르게 되어 있다. 이것은 《해동지도》의 지도와 주기가 다른 시기에 제작되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에서는 洞內面이 없는 것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의 지도와 동일하며, 주기에는 洞內面까지 기록하는 등 《해동지도》의 지도와 같게 되어 있다. 기타 오른쪽에 密陽界가 적혀 있는 것은 현재의 청도군 운문면 공암리 일대에 있었던 밀양의 월경지 고매부곡과 경계를 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장기현 지도와 유사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성 안의 東軒과 倉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그러나 《해동지도》의 오른쪽 위에 적혀 있던 冬背串牧場이 본 지도에는 冬昔中牧場으로, 馬城門이 馬城山으로 되어 있다. 다른 자료들과 비교해보면 본 지도가 아니라 《해동지도》의 내용이 올바르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하였으며, 필사 과정에서 오류를 범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가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려는 경향이 강하다. 본 고을의 해안선이 실제로는 대략 동북에서 서남을 향하고 있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남쪽을 향하다가 서쪽으로 꺾인 것처럼 그려져 있다. 迎日의 경계선 역시 본 지도에 표현된 것보다 더 동북에서 서남 방향을 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사실에 가까운 것은 역시 본 지도가 아니라 《해동지도》이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사실을 더욱 왜곡하는 현상이 벌어졌다고 생각된다. 읍성의 모습이라는 측면에서 보아도 《해동지도》가 본 지도보다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의 표현과 달리 읍성은 동서남북이 모두 급경사의 산지 위에 축조되어 있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장기현 지도와 유사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성 안의 東軒과 倉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그러나 《해동지도》의 오른쪽 위에 적혀 있던 冬背串牧場이 본 지도에는 冬昔中牧場으로, 馬城門이 馬城山으로 되어 있다. 다른 자료들과 비교해보면 본 지도가 아니라 《해동지도》의 내용이 올바르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하였으며, 필사 과정에서 오류를 범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가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려는 경향이 강하다. 본 고을의 해안선이 실제로는 대략 동북에서 서남을 향하고 있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남쪽을 향하다가 서쪽으로 꺾인 것처럼 그려져 있다. 迎日의 경계선 역시 본 지도에 표현된 것보다 더 동북에서 서남 방향을 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사실에 가까운 것은 역시 본 지도가 아니라 《해동지도》이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사실을 더욱 왜곡하는 현상이 벌어졌다고 생각된다. 읍성의 모습이라는 측면에서 보아도 《해동지도》가 본 지도보다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의 표현과 달리 읍성은 동서남북이 모두 급경사의 산지 위에 축조되어 있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지례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가 현재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려 있는 반면에 본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또한 《해동지도》가 남북을 동서보다 훨씬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남북보다 동서를 조금 길게 그렸다. 이 과정에서 하천의 유로가 약간 다르게 표현되었다. 즉, 오른쪽(북)으로 흐르는 하천보다 아래(남)로 흐르는 하천이 길게 그려졌다. 또한 비스듬하게 흐르던 하천의 유로가 보다 수직으로 흐르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치의 倉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없는 것도 있다. 또한 《해동지도》와 비교하면 다르게 적혀 있는 지명들이 여러 개 보인다. 예를 들어 왼쪽 위의 石橋는 《해동지도》에 石高山으로, 走峙는 走峙村으로 으로 나온다. 왼쪽 아래의 山衣旨峙는 山衣旨村으로, 오른쪽 위의 黃岳山來脈은 廣岳山來脈으로 적혀 있다. 이와 같은 부분들을 살펴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여러 실수를 저지른 것이 아닌가 한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몇 개의 왜곡이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왼쪽의 牛旨峙는 남쪽(왼쪽)으로 튀어나가 있는 부분이다. 이것을 사각형에 맞추는 과정에서 이 지역이 상당히 작게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는 왼쪽 위의 內甘村과 아래의 牛旨峙에서 흐르는 2개 하천의 길이가 거의 비슷함에도 본 지도에는 우지치쪽의 하천이 훨씬 짧은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지례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가 현재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려 있는 반면에 본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또한 《해동지도》가 남북을 동서보다 훨씬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남북보다 동서를 조금 길게 그렸다. 이 과정에서 하천의 유로가 약간 다르게 표현되었다. 즉, 오른쪽(북)으로 흐르는 하천보다 아래(남)로 흐르는 하천이 길게 그려졌다. 또한 비스듬하게 흐르던 하천의 유로가 보다 수직으로 흐르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치의 倉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없는 것도 있다. 또한 《해동지도》와 비교하면 다르게 적혀 있는 지명들이 여러 개 보인다. 예를 들어 왼쪽 위의 石橋는 《해동지도》에 石高山으로, 走峙는 走峙村으로 으로 나온다. 왼쪽 아래의 山衣旨峙는 山衣旨村으로, 오른쪽 위의 黃岳山來脈은 廣岳山來脈으로 적혀 있다. 이와 같은 부분들을 살펴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여러 실수를 저지른 것이 아닌가 한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몇 개의 왜곡이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왼쪽의 牛旨峙는 남쪽(왼쪽)으로 튀어나가 있는 부분이다. 이것을 사각형에 맞추는 과정에서 이 지역이 상당히 작게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는 왼쪽 위의 內甘村과 아래의 牛旨峙에서 흐르는 2개 하천의 길이가 거의 비슷함에도 본 지도에는 우지치쪽의 하천이 훨씬 짧은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진보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지만 하천의 流路나 다른 부분의 모습은 《해동지도》의 내용과 비슷하다. 또한 읍치의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수록된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있는 지명 중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할 정도로 중요한 정보로 인식한 面 중 오른쪽 위에 北面이 생략되어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이며, 읍치 부분에서만 다른 자료를 참고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지명의 위치가 《해동지도》와 다른 부분이 여러 곳 있다. 예를 들어 오른쪽 위의 城項峙가 《해동지도》에는 도로와 함께 지금의 반변천 건너편에 적혀 있다. 그 왼쪽의 文岩 역시 《해동지도》에는 반변천 위에 文岩淵으로 표시되어 있다. 오른쪽 아래의 鬱林峙도 《해동지도》에는 上里面 바로 아래쪽에 표시되어 있다. 이러한 지명 위치의 변화는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하지 않았던 것을 알려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읍치에 있는 土城은 지명 위치가 특별히 달라졌다고 할 수는 없지만 鄕校 왼쪽의 산줄기가 《해동지도》에는 토성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진보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지만 하천의 流路나 다른 부분의 모습은 《해동지도》의 내용과 비슷하다. 또한 읍치의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수록된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있는 지명 중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할 정도로 중요한 정보로 인식한 面 중 오른쪽 위에 北面이 생략되어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이며, 읍치 부분에서만 다른 자료를 참고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지명의 위치가 《해동지도》와 다른 부분이 여러 곳 있다. 예를 들어 오른쪽 위의 城項峙가 《해동지도》에는 도로와 함께 지금의 반변천 건너편에 적혀 있다. 그 왼쪽의 文岩 역시 《해동지도》에는 반변천 위에 文岩淵으로 표시되어 있다. 오른쪽 아래의 鬱林峙도 《해동지도》에는 上里面 바로 아래쪽에 표시되어 있다. 이러한 지명 위치의 변화는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하지 않았던 것을 알려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읍치에 있는 土城은 지명 위치가 특별히 달라졌다고 할 수는 없지만 鄕校 왼쪽의 산줄기가 《해동지도》에는 토성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진주목 지도와 비슷하다. 본 지도에 수록되어 있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거의 모두 나온다. 다만 진주성 오른쪽의 召村驛은 《해동지도》에 이 역에 파견된 종6품의 지방관인 察訪이라고만 적혀 있다. 《해동지도》에 원형으로 표시된 里는 다른 고을에서는 일반적으로 面이라고 불렀다. 본 지도에는 里를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하였다. 그러나 진주성 왼쪽의 新豊里에 노란색 사각형이 없는 오류가 보인다. 아래쪽에 泗川縣이 특별히 기록되어 있는 것은 사천현을 넘어가 있는 현재의 사천시 시내 일부와 昌善島가 진주의 越境地였기 때문이다. 《해동지도》에는 창선도에 昌善島와 赤梁鎭이 적혀 있는데, 본 지도에는 노란색 사각형을 그리고 里란 글자는 생략하였다. 주기의 南面 부분에 창선리와 적량리가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즉, 본 지도에서는 기본적으로 里를 표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島와 鎭을 里로 바꾼 것이 아닌가 한다. 《해동지도》가 남북보다 동서를 약간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남북을 조금 길게 그렸다. 이로 인해 남북으로 흐르는 것처럼 표현된 하천이 상대적으로 길게 그려졌다. 또한 《해동지도》에는 진주성 북쪽에 大寺池란 명칭을 적었고, 연못처럼 표현하였다. 본 지도에는 이런 부분이 생략되어 있는데, 《해동지도》의 표현이 사실에 가깝다. 산줄기의 표현에서도 《해동지도》와 본 지도가 좀 다르게 되어 있다. 특히 북쪽에서 읍치까지 뻗은 산줄기가 서로 다르게 되어 있다. 진주목은 실제로 본 지도와 같은 사각형의 모양으로 생기지 않았다. 예를 들어 왼쪽 위의 山淸界 부근은 서북쪽으로 튀어나간 형태를 취하고 있다. 고을 전체를 산줄기에 의해 둘러싸인 형태로 그리는 것은 회화식 군현지도에서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런 과정에서 사실 왜곡이 발생하는데, 본 지도에서도 그런 왜곡 현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南江의 본류는 전라도의 운봉과 경상도의 함양에서 발원하여 산청과 단성을 거쳐 진주목의 영역으로 흘러온다. 본 지도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왼쪽 위의 山淸界는 《해동지도》에 山陰界로 나온다. 山陰縣은 1767년(영조 43)에 山淸縣으로 바뀐다. 따라서 본 지도는 1767년 이후에, 《해동지도》는 그 이전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산청이란 지명만 놓고 본다면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진주목 지도와 비슷하다. 본 지도에 수록되어 있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거의 모두 나온다. 다만 진주성 오른쪽의 召村驛은 《해동지도》에 이 역에 파견된 종6품의 지방관인 察訪이라고만 적혀 있다. 《해동지도》에 원형으로 표시된 里는 다른 고을에서는 일반적으로 面이라고 불렀다. 본 지도에는 里를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하였다. 그러나 진주성 왼쪽의 新豊里에 노란색 사각형이 없는 오류가 보인다. 아래쪽에 泗川縣이 특별히 기록되어 있는 것은 사천현을 넘어가 있는 현재의 사천시 시내 일부와 昌善島가 진주의 越境地였기 때문이다. 《해동지도》에는 창선도에 昌善島와 赤梁鎭이 적혀 있는데, 본 지도에는 노란색 사각형을 그리고 里란 글자는 생략하였다. 주기의 南面 부분에 창선리와 적량리가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즉, 본 지도에서는 기본적으로 里를 표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島와 鎭을 里로 바꾼 것이 아닌가 한다. 《해동지도》가 남북보다 동서를 약간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남북을 조금 길게 그렸다. 이로 인해 남북으로 흐르는 것처럼 표현된 하천이 상대적으로 길게 그려졌다. 또한 《해동지도》에는 진주성 북쪽에 大寺池란 명칭을 적었고, 연못처럼 표현하였다. 본 지도에는 이런 부분이 생략되어 있는데, 《해동지도》의 표현이 사실에 가깝다. 산줄기의 표현에서도 《해동지도》와 본 지도가 좀 다르게 되어 있다. 특히 북쪽에서 읍치까지 뻗은 산줄기가 서로 다르게 되어 있다. 진주목은 실제로 본 지도와 같은 사각형의 모양으로 생기지 않았다. 예를 들어 왼쪽 위의 山淸界 부근은 서북쪽으로 튀어나간 형태를 취하고 있다. 고을 전체를 산줄기에 의해 둘러싸인 형태로 그리는 것은 회화식 군현지도에서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런 과정에서 사실 왜곡이 발생하는데, 본 지도에서도 그런 왜곡 현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南江의 본류는 전라도의 운봉과 경상도의 함양에서 발원하여 산청과 단성을 거쳐 진주목의 영역으로 흘러온다. 본 지도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왼쪽 위의 山淸界는 《해동지도》에 山陰界로 나온다. 山陰縣은 1767년(영조 43)에 山淸縣으로 바뀐다. 따라서 본 지도는 1767년 이후에, 《해동지도》는 그 이전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산청이란 지명만 놓고 본다면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진해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그러나 첫째,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더 크게 그려져 있다. 둘째, 《해동지도》는 가로(동서)로 길게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는 상대적으로 세로(남북)의 길이가 길게 그려져 있다. 이 과정에서 약간의 변화가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읍성 왼쪽에 하나로 합쳐져 바다로 흘러가는 것으로 그려진 3개의 하천이 《해동지도》에는 따로따로 바다로 흘러가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것은 가로가 좁아지고 읍성이 크게 그려지면서 이 부분의 지면이 작아지면서 발생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읍성이 있는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수록되지 않은 것도 있다. 특히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할 만큼 중요하게 여긴 정보인 面의 기록에서 《해동지도》에 읍치 오른쪽에 표시되어 있던 東面이 생략되어 있다. 지도에 표기된 지명이 몇 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읍성 오른쪽의 하천이 《해동지도》에는 다른 고을에서 들어오는 것처럼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의 표현이 실제와 부합된다. 《해동지도》에는 읍치 위쪽 산줄기 아래쪽에 咸安界가 적혀 있지만 본 지도에는 생략되었다. 산줄기 아래쪽에 함안의 땅이 있었던 곳은 서면에 있는 하천의 상류 부분이다. 《해동지도》에서는 이런 사실을 잘못 표기한 것으로 생각되며, 본 지도의 필사 시 역시 사실을 잘 몰랐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진해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그러나 첫째,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더 크게 그려져 있다. 둘째, 《해동지도》는 가로(동서)로 길게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는 상대적으로 세로(남북)의 길이가 길게 그려져 있다. 이 과정에서 약간의 변화가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읍성 왼쪽에 하나로 합쳐져 바다로 흘러가는 것으로 그려진 3개의 하천이 《해동지도》에는 따로따로 바다로 흘러가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것은 가로가 좁아지고 읍성이 크게 그려지면서 이 부분의 지면이 작아지면서 발생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읍성이 있는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수록되지 않은 것도 있다. 특히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할 만큼 중요하게 여긴 정보인 面의 기록에서 《해동지도》에 읍치 오른쪽에 표시되어 있던 東面이 생략되어 있다. 지도에 표기된 지명이 몇 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읍성 오른쪽의 하천이 《해동지도》에는 다른 고을에서 들어오는 것처럼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의 표현이 실제와 부합된다. 《해동지도》에는 읍치 위쪽 산줄기 아래쪽에 咸安界가 적혀 있지만 본 지도에는 생략되었다. 산줄기 아래쪽에 함안의 땅이 있었던 곳은 서면에 있는 하천의 상류 부분이다. 《해동지도》에서는 이런 사실을 잘못 표기한 것으로 생각되며, 본 지도의 필사 시 역시 사실을 잘 몰랐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창령현 지도와 비슷하다. 본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아래쪽 왼쪽(북)에서 오른쪽(남)으로 흐르는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이다. 비록 정확하지는 않지만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여러 지류의 모습이 실제에 가깝다. 다만 오른쪽 아래의 南谷面은 낙동강을 따라 남쪽으로 불쑥 튀어나가 현재의 남지읍 북쪽 지역에 있지만 사각형의 지도 모양에 맞추기 위해 실제와 다르게 그렸다. 본 지도에 표시된 지명은 읍치의 軍器와 鄕廳 및 위쪽의 大耳山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그렇지만 지명의 표기에서 잘못 옮겨 적은 것도 눈에 띈다. 왼쪽에는 合山面이 2개나 적혀 있다. 이 중 아래의 것은 《해동지도》에 ‘合山面新堤’, 즉 ‘합산면에 있는 신제’라는 뜻인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面으로 잘못 이해한 것이다. 그 오른쪽의 池浦村은 池浦面의 誤記이다. 반대로 그 아래쪽의 大招面은 《해동지도》에 大招堤로 잘못 적혀 있던 것으로 교정하기도 하였다. 하천의 유로라는 측면에서도 약간 다른 부분이 보인다. 예를 들어 가장 오른쪽의 大谷面에 있는 하천이 《해동지도》에는 대곡면에서 발원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이런 사실들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기본으로 필사하면서 일부 다른 자료도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오류가 나타나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하지는 못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창령현 지도와 비슷하다. 본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아래쪽 왼쪽(북)에서 오른쪽(남)으로 흐르는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이다. 비록 정확하지는 않지만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여러 지류의 모습이 실제에 가깝다. 다만 오른쪽 아래의 南谷面은 낙동강을 따라 남쪽으로 불쑥 튀어나가 현재의 남지읍 북쪽 지역에 있지만 사각형의 지도 모양에 맞추기 위해 실제와 다르게 그렸다. 본 지도에 표시된 지명은 읍치의 軍器와 鄕廳 및 위쪽의 大耳山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그렇지만 지명의 표기에서 잘못 옮겨 적은 것도 눈에 띈다. 왼쪽에는 合山面이 2개나 적혀 있다. 이 중 아래의 것은 《해동지도》에 ‘合山面新堤’, 즉 ‘합산면에 있는 신제’라는 뜻인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面으로 잘못 이해한 것이다. 그 오른쪽의 池浦村은 池浦面의 誤記이다. 반대로 그 아래쪽의 大招面은 《해동지도》에 大招堤로 잘못 적혀 있던 것으로 교정하기도 하였다. 하천의 유로라는 측면에서도 약간 다른 부분이 보인다. 예를 들어 가장 오른쪽의 大谷面에 있는 하천이 《해동지도》에는 대곡면에서 발원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이런 사실들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기본으로 필사하면서 일부 다른 자료도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오류가 나타나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하지는 못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창원부 지도와 비슷하다. 지명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읍성 안쪽과 아래쪽 바닷가의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있다. 또한 하천의 위치와 유로 역시 거의 비슷하다. 두 지도의 차이점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해동지도》에는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길게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는 세로로 긴 사각형 모양에 고을 전체가 완전히 들어가 있는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둘째,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훨씬 크게 그려져 있다. 셋째, 《해동지도》에 있던 도로가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으며, 面에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와 본 지도는 모두 실제 사실을 아주 간략하게만 표현하였다. 그러나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차이점 때문에 본 지도가 《해동지도》에 비해 아래쪽의 마산만이 상대적으로 작게 그려져 있고, 왼쪽 위의 光山寺 부분이 넓게 표현되었다. 본 지도와 《해동지도》의 주기에 적혀 있는 戶口數 등의 숫자는 서로 다르다. 또한 《해동지도》에는 주기에 적혀 있는 면과 지도에 표시된 면이 다른 반면 본 지도에는 동일하게 되어 있다. 《해동지도》의 지도와 주기가 다른 시기에 작성되었을 것이라는 연구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기타 오른쪽 위의 하천은 현재의 낙동강 본류이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창원부 지도와 비슷하다. 지명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읍성 안쪽과 아래쪽 바닷가의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있다. 또한 하천의 위치와 유로 역시 거의 비슷하다. 두 지도의 차이점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해동지도》에는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길게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는 세로로 긴 사각형 모양에 고을 전체가 완전히 들어가 있는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둘째,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훨씬 크게 그려져 있다. 셋째, 《해동지도》에 있던 도로가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으며, 面에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와 본 지도는 모두 실제 사실을 아주 간략하게만 표현하였다. 그러나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차이점 때문에 본 지도가 《해동지도》에 비해 아래쪽의 마산만이 상대적으로 작게 그려져 있고, 왼쪽 위의 光山寺 부분이 넓게 표현되었다. 본 지도와 《해동지도》의 주기에 적혀 있는 戶口數 등의 숫자는 서로 다르다. 또한 《해동지도》에는 주기에 적혀 있는 면과 지도에 표시된 면이 다른 반면 본 지도에는 동일하게 되어 있다. 《해동지도》의 지도와 주기가 다른 시기에 작성되었을 것이라는 연구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기타 오른쪽 위의 하천은 현재의 낙동강 본류이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청도군 지도와 비슷하다. 읍성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다만 지명의 위치가 《해동지도》와 다르게 된 곳이 여러 곳 보인다. 또한 하천의 유로가 《해동지도》에 비해 일부 다르게 되어 있지만 기본적인 패턴은 거의 동일하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와 《해동지도》는 필사 관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해동지도》와의 차이점도 있다. 첫째, 읍성이 《해동지도》에 비해 훨씬 크게 그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몇 개의 지명이 추가되어 있다. 이 때문에 더불어 읍성을 휘감고 위쪽(남)으로 돌아나가는 현재의 청도천이 더 길게 그려졌다. 둘째, 《해동지도》는 정확한 사각형이 아니지만 본 지도는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려고 노력하였다. 이로 인해 왼쪽 아래의 孔岩 부분이 상대적으로 위로 올라갔으며, 오른쪽의 上北面 부분이 밑으로 내려갔다. 또한 왼쪽 위의 上南面과 赤岩面 부분도 《해동지도》에 비해 위쪽으로 올라가 있다. 청도군의 실제 모습은 남북보다는 동서가 길다. 그런데 본 지도에는 남북(세로)이 동서(가로)보다 길게 되어 있다. 또한 읍치의 서쪽(오른쪽)이 동쪽(왼쪽)보다 훨씬 좁다. 그러나 읍치를 크게 그리다보니까 상대적으로 서쪽(왼쪽)에 좁게 그려졌고, 실제로는 西南流하는 왼쪽의 동창천이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표현되었다. 하천의 길이도 읍치를 돌아나가는 것보다 동창천이 훨씬 길다. 이 동창천은 실제로는 慶州界로부터 흘러 들어온다. 《해동지도》에는 동창천 상류 부분에 慶州界를 적어 넣어 실제를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지만 본 지도에는 경주계를 산줄기 바깥에 적어 넣어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읍치를 감아 돌아가는 청도천의 상류는 대구의 영역이었다. 본 지도에는 大邱界를 청도천 상류에 적어 넣어 그런 사실을 암시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해동지도》에서도 동일하게 표현되었다. 왼쪽 위의 外西面은 현재의 밀양시 청도면 지역으로 거의 월경지에 가깝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청도군 지도와 비슷하다. 읍성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다만 지명의 위치가 《해동지도》와 다르게 된 곳이 여러 곳 보인다. 또한 하천의 유로가 《해동지도》에 비해 일부 다르게 되어 있지만 기본적인 패턴은 거의 동일하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와 《해동지도》는 필사 관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해동지도》와의 차이점도 있다. 첫째, 읍성이 《해동지도》에 비해 훨씬 크게 그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몇 개의 지명이 추가되어 있다. 이 때문에 더불어 읍성을 휘감고 위쪽(남)으로 돌아나가는 현재의 청도천이 더 길게 그려졌다. 둘째, 《해동지도》는 정확한 사각형이 아니지만 본 지도는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려고 노력하였다. 이로 인해 왼쪽 아래의 孔岩 부분이 상대적으로 위로 올라갔으며, 오른쪽의 上北面 부분이 밑으로 내려갔다. 또한 왼쪽 위의 上南面과 赤岩面 부분도 《해동지도》에 비해 위쪽으로 올라가 있다. 청도군의 실제 모습은 남북보다는 동서가 길다. 그런데 본 지도에는 남북(세로)이 동서(가로)보다 길게 되어 있다. 또한 읍치의 서쪽(오른쪽)이 동쪽(왼쪽)보다 훨씬 좁다. 그러나 읍치를 크게 그리다보니까 상대적으로 서쪽(왼쪽)에 좁게 그려졌고, 실제로는 西南流하는 왼쪽의 동창천이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표현되었다. 하천의 길이도 읍치를 돌아나가는 것보다 동창천이 훨씬 길다. 이 동창천은 실제로는 慶州界로부터 흘러 들어온다. 《해동지도》에는 동창천 상류 부분에 慶州界를 적어 넣어 실제를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지만 본 지도에는 경주계를 산줄기 바깥에 적어 넣어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읍치를 감아 돌아가는 청도천의 상류는 대구의 영역이었다. 본 지도에는 大邱界를 청도천 상류에 적어 넣어 그런 사실을 암시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해동지도》에서도 동일하게 표현되었다. 왼쪽 위의 外西面은 현재의 밀양시 청도면 지역으로 거의 월경지에 가깝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청송부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하천의 유로가 방향이나 길이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동일하다. 읍치를 지나 북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용전천이고, 왼쪽의 하천이 길안천이다. 오른쪽 아래의 하천은 현재 영덕을 지나 동해로 흘러가는 대서천의 상류이다.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러나 모든 지역에 동일한 방향이 적용된 것은 아니다. 특히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일부 왜곡이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오른쪽 아래의 대서천은 실제로는 東流하여 盈德界로 빠져나가지만 본 지도만을 놓고 보만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또한 읍치 부근은 남쪽에 비해 동서의 폭이 좁지만 거의 비슷하게 그려져 길안천 유역이 상대적으로 작게 표현되었다. 읍치에 있는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거의 나온다. 다만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과 驛의 이름에 본 지도에는 노란색과 황색의 사각형 기호가 사용되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산줄기의 표현 방식에서도 일부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와 달리 읍치를 둘러싼 산줄기가 그려져 있지 않다. 또한 명칭에 걸맞게 병풍의 모습으로 표현된 屛巖書院의 지형도 《해동지도》에는 다른 산지 표현 방식과 거의 동일하게 되어 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가 《해동지도》보다 읍치의 풍수적 명당성, 특이한 지형의 묘사에 더 정성을 들인 것으로 생각된다. 주기의 戶口數는 본 지도와 《해동지도》가 전혀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청송부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하천의 유로가 방향이나 길이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동일하다. 읍치를 지나 북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용전천이고, 왼쪽의 하천이 길안천이다. 오른쪽 아래의 하천은 현재 영덕을 지나 동해로 흘러가는 대서천의 상류이다.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러나 모든 지역에 동일한 방향이 적용된 것은 아니다. 특히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일부 왜곡이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오른쪽 아래의 대서천은 실제로는 東流하여 盈德界로 빠져나가지만 본 지도만을 놓고 보만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또한 읍치 부근은 남쪽에 비해 동서의 폭이 좁지만 거의 비슷하게 그려져 길안천 유역이 상대적으로 작게 표현되었다. 읍치에 있는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거의 나온다. 다만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과 驛의 이름에 본 지도에는 노란색과 황색의 사각형 기호가 사용되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산줄기의 표현 방식에서도 일부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와 달리 읍치를 둘러싼 산줄기가 그려져 있지 않다. 또한 명칭에 걸맞게 병풍의 모습으로 표현된 屛巖書院의 지형도 《해동지도》에는 다른 산지 표현 방식과 거의 동일하게 되어 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가 《해동지도》보다 읍치의 풍수적 명당성, 특이한 지형의 묘사에 더 정성을 들인 것으로 생각된다. 주기의 戶口數는 본 지도와 《해동지도》가 전혀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청하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고, 세로(남북)의 길이가 더 길어졌다. 읍치에 있는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그러나 지명의 위치나 명칭 자체가 달라진 곳이 있다. 예를 들어 읍치 오른쪽의 德松亭은 《해동지도》에 德松山으로 되어 있다. 대부분의 지도에는 《해동지도》처럼 되어 있지만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청하지도에는 德松亭으로 나온다. 후자의 지도가 지방에서 직접 그려 올린 지도이기 때문에 덕송정이 맞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본 지도의 필사 시에 다른 자료를 통해 《해동지도》의 내용을 수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왼쪽 가운데의 鷹烽은 鷹峯의 誤記이기도 하다. 《해동지도》와 산줄기의 모습이 다른 곳도 여러 곳 보인다. 예를 들어 왼쪽 위의 龍湫가 적혀 있는 부분에 內延山 산줄기와 神龜山 산줄기 사이에 작은 산줄기가 이어져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이 작은 산줄기가 없다. 가장 위쪽의 하천은 현재의 지경천인데, 왼쪽 가운데의 鷹峯 부근에서 발원한다. 따라서 산줄기의 입장에서만 보면 본 지도보다는 《해동지도》가 사실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읍치가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 과장되어 있기 때문에 거리나 방향에서 오류가 나타난다. 하지만 고을 전체의 모습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실제와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청하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고, 세로(남북)의 길이가 더 길어졌다. 읍치에 있는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그러나 지명의 위치나 명칭 자체가 달라진 곳이 있다. 예를 들어 읍치 오른쪽의 德松亭은 《해동지도》에 德松山으로 되어 있다. 대부분의 지도에는 《해동지도》처럼 되어 있지만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청하지도에는 德松亭으로 나온다. 후자의 지도가 지방에서 직접 그려 올린 지도이기 때문에 덕송정이 맞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본 지도의 필사 시에 다른 자료를 통해 《해동지도》의 내용을 수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왼쪽 가운데의 鷹烽은 鷹峯의 誤記이기도 하다. 《해동지도》와 산줄기의 모습이 다른 곳도 여러 곳 보인다. 예를 들어 왼쪽 위의 龍湫가 적혀 있는 부분에 內延山 산줄기와 神龜山 산줄기 사이에 작은 산줄기가 이어져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이 작은 산줄기가 없다. 가장 위쪽의 하천은 현재의 지경천인데, 왼쪽 가운데의 鷹峯 부근에서 발원한다. 따라서 산줄기의 입장에서만 보면 본 지도보다는 《해동지도》가 사실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읍치가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 과장되어 있기 때문에 거리나 방향에서 오류가 나타난다. 하지만 고을 전체의 모습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실제와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초계군 지도와 비슷하다. 읍치에 있는 勸稼樓 등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지명의 위치는 다르게 되어 있는 곳이 있고, 黃芚江이 黃花江으로 적혀 있기도 하다. 《해동지도》에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과 驛에 색이 다른 사각형 기호를 덧붙였다. 그러나 面을 주로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였지만 황색 사각형도 2개나 표시되어 있어 일관성이 부족한 편이다. 하천의 표현은 기본적으로 《해동지도》와 동일하지만 유로의 방향이 일부 달라지고 있다. 이렇게 달라진 가장 큰 이유는 《해동지도》가 남북(가로)보다 동서(가로)를 길게 그린 반면 본 지도에서는 동서보다 남북을 길게 그렸기 때문이다. 또한 《해동지도》에 비해 사각형의 모양에 정확히 맞추려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약간 비스듬하게 흐르는 것으로 그려진 낙동강이 본 지도에는 정남쪽으로 흐르다 서남쪽으로 빠져나가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왼쪽 위에서 들어와 낙동강에 합류하는 황강의 모습도 《해동지도》와 약간 다르게 되어 있다. 읍치의 여러 건물들을 둘러싼 담장의 모습이 그려진 것도 《해동지도》와 다른 점이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초계군 지도와 비슷하다. 읍치에 있는 勸稼樓 등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지명의 위치는 다르게 되어 있는 곳이 있고, 黃芚江이 黃花江으로 적혀 있기도 하다. 《해동지도》에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과 驛에 색이 다른 사각형 기호를 덧붙였다. 그러나 面을 주로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였지만 황색 사각형도 2개나 표시되어 있어 일관성이 부족한 편이다. 하천의 표현은 기본적으로 《해동지도》와 동일하지만 유로의 방향이 일부 달라지고 있다. 이렇게 달라진 가장 큰 이유는 《해동지도》가 남북(가로)보다 동서(가로)를 길게 그린 반면 본 지도에서는 동서보다 남북을 길게 그렸기 때문이다. 또한 《해동지도》에 비해 사각형의 모양에 정확히 맞추려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약간 비스듬하게 흐르는 것으로 그려진 낙동강이 본 지도에는 정남쪽으로 흐르다 서남쪽으로 빠져나가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왼쪽 위에서 들어와 낙동강에 합류하는 황강의 모습도 《해동지도》와 약간 다르게 되어 있다. 읍치의 여러 건물들을 둘러싼 담장의 모습이 그려진 것도 《해동지도》와 다른 점이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칠곡부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사각형의 모양에 맞추려는 모습이 더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이로 인해 전체적인 하천의 유로는 거의 같지만 일부 부분에서 약간 달라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읍성인 가산산성에서 흘러가 琴湖江으로 합류하는 하천이 《해동지도》에는 정 서쪽으로 흐르기보다는 서남류 하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하천의 표시에서 본 지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낙동강 본류와 금호강이 어떻게 구분되는지 이해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낙동강은 원래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며, 금호강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 낙동강에 합류된다. 여러 지명을 통해 비교해 보면 왼쪽 蘆谷面 부근에서 금호강과 낙동강이 합류하여 星州界 방면으로 빠져나간다. 그러나 본 지도 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가산산성과 上枝面에서 흘러나오는 하천은 남류하여 금호강에 합류되는데, 본 지도에는 마치 남류하다 서류하여 합쳐지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런 오류가 벌어진 이유는 실제로는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으로 그리려 했기 때문이다. 아래쪽의 文殊面 지역은 실제로 아래쪽(남)으로 튀어나간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이것을 무리하게 사각형에 맞추다 보니까 위쪽에 그리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하천의 유로가 실제와 전혀 다르게 표현된 것이다. 금호강은 실제로는 칠곡부와 대구부의 경계를 흐르다 대구부 영역 안에 완전히 들어간 후 낙동강에 합류된다. 가산 산성에 있는 건물과 명칭의 몇몇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거의 나온다. 지명의 표시에서 글씨로만 적혀 있던 면과 역에 노란색과 황색의 사각형 기호를 첨가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아래쪽에는 《해동지도》에 있던 八莒面과 退川面이 생략되어 있다. 본 지도의 주기에 2개의 면 명칭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에 그려져 있는 가산산성의 中城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中城은 1741년(영조 17)에 축조되기 때문에 《해동지도》는 그 이전의 상황을, 본 지도는 그 이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칠곡부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사각형의 모양에 맞추려는 모습이 더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이로 인해 전체적인 하천의 유로는 거의 같지만 일부 부분에서 약간 달라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읍성인 가산산성에서 흘러가 琴湖江으로 합류하는 하천이 《해동지도》에는 정 서쪽으로 흐르기보다는 서남류 하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하천의 표시에서 본 지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낙동강 본류와 금호강이 어떻게 구분되는지 이해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낙동강은 원래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며, 금호강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 낙동강에 합류된다. 여러 지명을 통해 비교해 보면 왼쪽 蘆谷面 부근에서 금호강과 낙동강이 합류하여 星州界 방면으로 빠져나간다. 그러나 본 지도 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가산산성과 上枝面에서 흘러나오는 하천은 남류하여 금호강에 합류되는데, 본 지도에는 마치 남류하다 서류하여 합쳐지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런 오류가 벌어진 이유는 실제로는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으로 그리려 했기 때문이다. 아래쪽의 文殊面 지역은 실제로 아래쪽(남)으로 튀어나간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이것을 무리하게 사각형에 맞추다 보니까 위쪽에 그리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하천의 유로가 실제와 전혀 다르게 표현된 것이다. 금호강은 실제로는 칠곡부와 대구부의 경계를 흐르다 대구부 영역 안에 완전히 들어간 후 낙동강에 합류된다. 가산 산성에 있는 건물과 명칭의 몇몇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거의 나온다. 지명의 표시에서 글씨로만 적혀 있던 면과 역에 노란색과 황색의 사각형 기호를 첨가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아래쪽에는 《해동지도》에 있던 八莒面과 退川面이 생략되어 있다. 본 지도의 주기에 2개의 면 명칭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에 그려져 있는 가산산성의 中城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中城은 1741년(영조 17)에 축조되기 때문에 《해동지도》는 그 이전의 상황을, 본 지도는 그 이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칠원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첫째,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둘째,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하천의 유로나 전반적인 배치라는 입장에서 보면 본 지도와 《해동지도》는 거의 비슷하다. 본 지도에 있는 지명 중 읍치의 倉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없는 것이 여러 개 있다. 더 나아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사실을 잘못 이해하고 그린 부분도 보인다. 오른쪽에 적혀 있는 昌寧界는 昌原界의 誤記이다. 원래 이곳에 창원계가 적혀 있는 이유는 龜山面이 창원의 경계를 넘어가 현재의 마산시 구산면에 있던 월경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주기에는 구산면의 初境이 창원 경계를 넘어 50리라고 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보아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되며, 읍치 부분에서 다른 자료를 약간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러나 모든 지역에 동일한 방향이 적용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낙동강 본류는 오른쪽 함안계에서 들어와 왼쪽 위의 靈山界로 빠져나간다. 그러나 낙동강은 칠원현의 북쪽 부분만 흐를 뿐이다. 오른쪽 위의 구산면도 실제로는 남쪽에 있는데,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마치 남동쪽에 있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 읍치를 지나 낙동강으로 합류되는 현재의 광노천도 상류는 창원 땅에서 들어오는데,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칠원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첫째,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둘째,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하천의 유로나 전반적인 배치라는 입장에서 보면 본 지도와 《해동지도》는 거의 비슷하다. 본 지도에 있는 지명 중 읍치의 倉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없는 것이 여러 개 있다. 더 나아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사실을 잘못 이해하고 그린 부분도 보인다. 오른쪽에 적혀 있는 昌寧界는 昌原界의 誤記이다. 원래 이곳에 창원계가 적혀 있는 이유는 龜山面이 창원의 경계를 넘어가 현재의 마산시 구산면에 있던 월경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주기에는 구산면의 初境이 창원 경계를 넘어 50리라고 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보아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되며, 읍치 부분에서 다른 자료를 약간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러나 모든 지역에 동일한 방향이 적용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낙동강 본류는 오른쪽 함안계에서 들어와 왼쪽 위의 靈山界로 빠져나간다. 그러나 낙동강은 칠원현의 북쪽 부분만 흐를 뿐이다. 오른쪽 위의 구산면도 실제로는 남쪽에 있는데,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마치 남동쪽에 있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 읍치를 지나 낙동강으로 합류되는 현재의 광노천도 상류는 창원 땅에서 들어오는데,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통영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가 상대적으로 세로를 길게 그렸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표현 양식에서는 변화가 있다. 《해동지도》에는 고을과 진보를 모두 노란색 타원으로 그려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본 지도에서는 고을은 황갈색 사각형으로, 진보는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려 두 정보의 차이를 구분하였다. 고을의 이름이면서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된 것도 있는데, 이것은 읍치가 아니라 해당 고을에 배치된 전선 정박소인 船所의 위치를 의미한다. 水營 역시 《해동지도》에는 다른 정보와 구별되고 있지 않으나 본 지도에는 황갈색 원으로 표시하여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실수로 빠뜨리거나 잘못 표시한 지명들이 여러 군데 보이고 있다. 왼쪽 아래에는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노란색 사각형이 보이고 있다. 《해동지도》와 비교해 보면 이곳에는 防踏(鎭)이 적혀 있어야 한다. 오른쪽에는 노란색 사각형 밑에 명칭을 적은 長木(浦鎭)도 보이고 있다. 또한 晋州, 固城, 泗川은 읍치 부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보의 기호인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남해의 경우 아래쪽의 선소 부분까지 황갈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였다. 왼쪽 위쪽에는 樂安, 寶城의 선소가 생략되기도 하였다. 이런 오류가 있는 반면에 《해동지도》의 오류를 일부 수정하고 있기도 하다. 《해동지도》의 남해 부분에 노란색 타원형만 있던 곳에 船所란 명칭을 부여하였으며, 노란색 사각형이 없던 古突山(鎭)과 順天船所에 노란색 사각형을 그려 넣기도 하였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기본으로 하여 필사하였으며, 일부는 수정하면서 일부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통영성 안의 건물이 《해동지도》에 비해 소략하게 처리되고 있는데, 이것은 본 지도가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은 종이 위에 그려졌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해동지도》나 본 지도 모두 통영과 그 주변의 군사 정보를 수록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거리나 크기, 위치의 정확성은 별로 고려하지 않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통영 지도도 본 지도와 거의 동일한 구도와 내용을 갖고 있어 서로 필사 관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본 지도에서 범한 오류가 《광여도》에서 일부 교정되고 있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풍기현 지도와 비슷하다. 豊基는 조선 초기 이후 縣으로 강등된 적이 없기 때문에 《해동지도》의 주기 명칭이 잘못된 것이다.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나오는 西部面, 生古介面, 東村面이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 3개의 면 명칭이 나오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 아닌가 한다. 또한 上里面과 下里面의 위치도 《해동지도》와 달라지고 있다. 실제 지형과 비교해 보면 《해동지도》가 올바르게 표시되어 있기 때문에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한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지도에 그리다 보니까 몇 가지 왜곡이 발생하였다. 가장 왼쪽의 하천은 현재의 한천 최상류로서 이 지역은 풍기 읍치의 입장에서 보면 서남쪽으로 불쑥 튀어나가 있다. 또한 이 지역의 면적은 읍치 지역의 반 정도는 된다. 그러나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어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을 직선으로 하다 보니까 면적도 작아지고 하천의 유로 방향도 달라졌다. 읍치 위쪽에는 順興昌樂境이 표시되어 있어 이곳에 순흥부의 월경지가 있음을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왼쪽 아래에 順興界와 安東界가 표시되어 있는 것은 이곳에 순흥과 안동의 월경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풍기현 지도와 비슷하다. 豊基는 조선 초기 이후 縣으로 강등된 적이 없기 때문에 《해동지도》의 주기 명칭이 잘못된 것이다.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나오는 西部面, 生古介面, 東村面이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 3개의 면 명칭이 나오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 아닌가 한다. 또한 上里面과 下里面의 위치도 《해동지도》와 달라지고 있다. 실제 지형과 비교해 보면 《해동지도》가 올바르게 표시되어 있기 때문에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한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지도에 그리다 보니까 몇 가지 왜곡이 발생하였다. 가장 왼쪽의 하천은 현재의 한천 최상류로서 이 지역은 풍기 읍치의 입장에서 보면 서남쪽으로 불쑥 튀어나가 있다. 또한 이 지역의 면적은 읍치 지역의 반 정도는 된다. 그러나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어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을 직선으로 하다 보니까 면적도 작아지고 하천의 유로 방향도 달라졌다. 읍치 위쪽에는 順興昌樂境이 표시되어 있어 이곳에 순흥부의 월경지가 있음을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왼쪽 아래에 順興界와 安東界가 표시되어 있는 것은 이곳에 순흥과 안동의 월경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