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도古地圖
규장각 소장 220여종 6,000매에 달하는 고지도를
유형별, 지역별로 분류하여 한 눈에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고지도

輿地圖 여지도

  • 편저자 : [作者未詳]
  • 청구기호 : 古4709-68-v.1-6
  • 간행연도 : [刊年未詳]
  • 책권수 : 6冊, 彩色圖
  • 판본사항 : 筆寫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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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성군(杆城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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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간성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간성군 지도도 표현 양식은 다르나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비슷하다. 본 지도의 아래쪽에는 襄陽面이 적혀 있는데,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해동지도》에는 襄陽界라고 적혀 있어 본 지도와 《광여도》가 잘못 필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본 지도나 《광여도》 중의 하나가 다른 하나를 필사하면서 확인 작업을 하지 않았음도 이해할 수 있다. 본 지도에는 간성군이 마치 사각형을 이룬 것처럼 그려져 있다. 그러나 郡內面에서 북쪽으로 갈수록 동서의 폭이 점점 좁아지다가 高城界 부근에서는 거의 삼각형의 끝 모양처럼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高城과의 경계선이 마치 동서로 길게 되어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또한 향교로부터 高城界까지의 거리와 아래쪽 襄陽界까지의 거리가 거의 같다. 이렇게 그려진 이유는 사각형의 종이에 맞게 군현의 모습을 맞추려 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縣內面에 있는 하천은 동류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東北流하여 바다로 빠져나간다. 이와 같은 오류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간성 지도에서 일부 교정되며,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거의 실제와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금천현(衿川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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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금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본 지도는 아래쪽의 한강을 《광여도》에서 2개의 실선으로 표시한 것과 달리 1개의 실선으로만 표시해 혼란을 주고 있다. 읍치를 둘러싼 산줄기의 표현 양식도 《광여도》와 약간 다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금천현 지도도 표현 방법과 내용에서의 일부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구도는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위쪽의 果川界에서 들어오는 하천이 현재의 안양천이며, 왼쪽 중간의 北紫霞洞에서 내려오는 것이 현재의 도림천이다. 북자하동에는 현재 서울대학교가 들어서 있다. 고을의 통일성과 읍치의 풍수적 명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산지를 배치하였지만 대략적인 방향과 위치는 정확한 편이다. (이기봉)

  • 결성현(結城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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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결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 오른쪽에 표시된 風流島와 위쪽에 표시된 銀河峯 및 碧蹄山은 《광여도》에 없는 지명이다. 이런 지명들은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결성현 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광여도》의 제작자가 생략한 것을 본 지도의 제작자가 《해동지도》를 참조하여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의 제작자도 風流島를 2개나 적어 넣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본 고을로 들어오는 산줄기가 동쪽으로부터 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모든 방향이 정확하게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주변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 오류가 보이고 있다. 왼쪽에 보이는 海美界는 실제와 부합되지 않는 것이다. 결성현은 북쪽(왼쪽)으로 洪州와만 경계를 맞대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여지도서』에도 해미와 경계를 맞대고 있다는 기록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의 주기에는 북쪽으로 해미와 경계를 맞대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런 오류는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해동지도》의 海美界는 도로가 표시된 끝 방향에 있다.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도로 끝에 표시된 ‘○○界’가 경계가 아니라 그 도로를 따라가면 경계가 나온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해미계는 바로 이런 의미였는데 《해동지도》의 제작자가 마치 해미와 경계를 맞대고 있는 것처럼 잘못 이해하였고,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는 그것을 그대로 따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결성현의 서쪽은 현재의 천수만으로 모두 바다에 접해 있다. 그런데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바다는 본 고을의 서북쪽 일부에만 있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이런 문제점이 발생한 것은 읍치 지역을 다른 지역보다 크게 그렸기 때문이다. 오른쪽의 風流島로부터 巢許島까지의 거리와 소허도에서 龍臥川이 바다로 들어가는 지점까지의 거리는 실제로는 비슷하다. 그런데 본 지도에서는 전자가 후자의 2배 이상으로 표현되어 있어 서쪽으로 바다를 접한 후자 부분이 상대적으로 작아지게 된 것이다. (이기봉)

  • 강진현(康津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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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강진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兵營 왼쪽의 烈村面과 읍치 오른쪽의 軍需面이 《광여도》에는 각각 烈樹面과 軍營面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의 주기에는 列樹面과 軍營面으로 되어 있고, 《광여도》의 주기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광여도》를 필사하면서 誤記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강진현 지도에는 지도와 주기 모두 본 지도의 주기처럼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의 주기에는 縣內面이 있지만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광여도》 역시 동일하게 되어 있는데, 《해동지도》에는 지도와 주기에 모두 현내면이 표시되어 있다. 이 점은 《광여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추정되며, 본 지도의 필사자 역시 《광여도》의 내용을 교정 없이 그대로 따른 것으로 생각된다. 강진현에 있었던 全羅道兵馬節度使營인 兵營과 邑治 및 鎭堡를 강조하여 그렸다. 고을은 전체적으로 동서보다 남북이 훨씬 길지만 지도에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그렸다. 특히 바다에서 읍치까지의 거리가 읍치에서부터 북쪽 靈岩界까지의 거리와 거의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훨씬 짧은 것처럼 그렸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동서나 남북의 실제 폭에 상관없이 고을 전체를 꽉 차게 그렸기 때문이다. 바다에 있는 섬 역시 실제의 크기가 약간 고려되기는 했지만 위치나 거리는 실제를 반영하고 있지 않다. 예를 들어 靑山島는 薪智島보다 해안가에서 몇 배나 멀리 떨어져 있다. (이기봉)

  • 7 신령현(新寧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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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신령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그러나 《해동지도》는 세로(남북)를 가로(동서)보다 더 길게 그렸고, 본 지도는 반대로 표현하였다. 이 과정에서 하천의 흐름이 세로는 상대적으로 길게, 가로는 짧게 그려져 있다. 고을의 실제적인 모습은 남북보다는 동서가 길게 되어 있어 《해동지도》가 사실에 가깝다. 본 지도는 세로로 긴 일정한 크기의 종이에 맞추어 지도를 그렸기 때문에 그로 인한 왜곡을 피할 수 없었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수록되어 있지만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런 측면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약간의 변화를 준 것으로 추정된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다보니까 몇 가지 왜곡이 발생하였다. 신령현의 서쪽의 남북 폭은 동쪽에 비해 훨씬 좁지만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예를 들어 왼쪽 위의 雉山面은 오른쪽 위의 新村面보다 훨씬 남쪽에 있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아래쪽의 南面은 영천의 경계를 넘어 현재의 경산시 와촌면 서쪽 부분에 있었던 신령현의 월경지였다. 아래쪽에 永川界와 河陽界가 연속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은 이런 사실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南面을 잘못 이해하고 그린 것은 이미 《해동지도》에서 시작되었다. 남면은 梨旨縣面과 동일한 지역을 가리킨다. 《해동지도》의 주기에는 이지현면이 적혀 있고, 南面 역시 가장 끝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남면에는 다른 면과 달리 초경과 종경이 적혀 있지 않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은 지도를 그릴 때와 주기를 적을 때가 달랐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즉, 지도를 그릴 때는 남면으로 했다가 주기를 적을 때는 이지현면으로 바꾸었다고 생각된다. 《해동지도》의 주기 작성자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지도에 있는 남면을 주기에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의 주기에는 이지현면은 있지만 남면은 생략되어 있다. (이기봉)

  • 가산군(嘉山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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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가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가산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의 정보가 증가하였고, 그 이외 지역의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볼 때 읍치의 정보는 《해동지도》 이외의 자료를 참고하여 첨가한 것으로 보인다. 《해동지도》의 지명과 비교해 보면 본 지도의 것이 다르게 기록된 것도 있다. 예를 들어 왼쪽 아래의 乫亍洞은 《해동지도》에 乫亍浦로 되어 있다. 《광여도》에는 이 지명이 《해동지도》처럼 되어 있다. 오른쪽의 ‘古城鎭安陵淸川江’이 《해동지도》에는 서로 분리되어 있고, 특히 ‘安陵淸川江(안주의 청천강이란 뜻)’은 청천강변을 따라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에는 모두 붙여 기록하여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다른 面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는데, 왼쪽의 西面은 글씨만 적어놓은 실수도 보이고 있다. 또한 오른쪽의 大定江(현재의 대령강)이 泰川界에서 흘러 들어오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다만 하구 부분에 대정강의 발원지와 유로에 대한 정보를 적어놓아 보완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해동지도》에는 대정강이 태천계에서 흘러 들어오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가산군의 모습은 북쪽(위) 경계는 넓고, 남쪽(아래) 끝은 삼각형의 꼭지점처럼 되어 있다. 이런 모양을 사각형으로 그리다 보니 북쪽에 비해 남쪽이 상대적으로 넓게 그려져 있다. 예를 들어 왼쪽의 長水灘 하구와 오른쪽의 大定江 하구는 실제로는 꼭지점같이 거의 붙어 있다. 이런 지역을 북쪽 부분과 비슷한 거리로 그림에 따라 상당한 왜곡이 발생하였다. (이기봉)

  • ▶강원도
  • 간성군(杆城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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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간성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간성군 지도도 표현 양식은 다르나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비슷하다. 본 지도의 아래쪽에는 襄陽面이 적혀 있는데,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해동지도》에는 襄陽界라고 적혀 있어 본 지도와 《광여도》가 잘못 필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본 지도나 《광여도》 중의 하나가 다른 하나를 필사하면서 확인 작업을 하지 않았음도 이해할 수 있다. 본 지도에는 간성군이 마치 사각형을 이룬 것처럼 그려져 있다. 그러나 郡內面에서 북쪽으로 갈수록 동서의 폭이 점점 좁아지다가 高城界 부근에서는 거의 삼각형의 끝 모양처럼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高城과의 경계선이 마치 동서로 길게 되어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또한 향교로부터 高城界까지의 거리와 아래쪽 襄陽界까지의 거리가 거의 같다. 이렇게 그려진 이유는 사각형의 종이에 맞게 군현의 모습을 맞추려 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縣內面에 있는 하천은 동류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東北流하여 바다로 빠져나간다. 이와 같은 오류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간성 지도에서 일부 교정되며,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거의 실제와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간성군(杆城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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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간성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간성군 지도도 표현 양식은 다르나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비슷하다. 본 지도의 아래쪽에는 襄陽面이 적혀 있는데,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해동지도》에는 襄陽界라고 적혀 있어 본 지도와 《광여도》가 잘못 필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본 지도나 《광여도》 중의 하나가 다른 하나를 필사하면서 확인 작업을 하지 않았음도 이해할 수 있다. 본 지도에는 간성군이 마치 사각형을 이룬 것처럼 그려져 있다. 그러나 郡內面에서 북쪽으로 갈수록 동서의 폭이 점점 좁아지다가 高城界 부근에서는 거의 삼각형의 끝 모양처럼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高城과의 경계선이 마치 동서로 길게 되어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또한 향교로부터 高城界까지의 거리와 아래쪽 襄陽界까지의 거리가 거의 같다. 이렇게 그려진 이유는 사각형의 종이에 맞게 군현의 모습을 맞추려 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縣內面에 있는 하천은 동류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東北流하여 바다로 빠져나간다. 이와 같은 오류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간성 지도에서 일부 교정되며,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거의 실제와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강릉부(江陵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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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강릉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나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강릉부 지도에 비해 틀리거나 생략된 지명이 있다. 맨 위쪽의 雪來山은 雪岳來(설악산으로부터 옴)을, 그 아래의 新田面은 新里面을, 아래쪽의 三涉界는 三陟界를 잘못 기록한 것이다. 《광여도》에는 이런 지명들이 올바르게 되어 있지만 《광여도》에도 오른쪽 아래의 望祥村이 望洋村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다. 왼쪽 아래의 大和面에는 《해동지도》에 大和驛이란 문구와 面 2개가 표시되어 있다. 따라서 면과 역을 구별해서 표시한 본 지도에서는 대화역과 대화면을 따로 적어놓아야 하는데, 대화면만 적어놓고 있다. 《광여도》에서는 대화역에 보라색 사각형을 표시한 다음 面은 한 글자만 표시하고 노란색 사각형을 그려 넣지 않았다. 《광여도》 역시 《해동지도》의 내용을 확실히 이해하고 그린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강릉부는 현재의 평창읍과 미탄면 대부분을 제외한 평창군, 인제군의 내면, 정선군의 임계면 등을 포함하여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었다. 또한 남북보다 동서가 약 2배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런 강릉부를 세로로 긴 사각형 안에 맞추어 그리다보니까 오히려 남북이 동서보다 긴 모양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동해안과 大關嶺 사이의 폭보다 대관령에서 橫城界까지의 거리가 실제로는 3배에 가까운데 본 지도에는 거의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이로 인해 본 지도만으로는 강릉부의 실제 형태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동해안에 있는 香湖, 鏡湖, 楓湖 등의 석호도 해안가에 붙어있는데 본 지도에는 마치 내륙의 호수인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왼쪽 위의 內面 부근에 春川界가 적혀 있는 것은 이곳에 있었던 춘천의 월경지인 기린면과 경계를 맞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 강릉부(江陵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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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강릉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나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강릉부 지도에 비해 틀리거나 생략된 지명이 있다. 맨 위쪽의 雪來山은 雪岳來(설악산으로부터 옴)을, 그 아래의 新田面은 新里面을, 아래쪽의 三涉界는 三陟界를 잘못 기록한 것이다. 《광여도》에는 이런 지명들이 올바르게 되어 있지만 《광여도》에도 오른쪽 아래의 望祥村이 望洋村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다. 왼쪽 아래의 大和面에는 《해동지도》에 大和驛이란 문구와 面 2개가 표시되어 있다. 따라서 면과 역을 구별해서 표시한 본 지도에서는 대화역과 대화면을 따로 적어놓아야 하는데, 대화면만 적어놓고 있다. 《광여도》에서는 대화역에 보라색 사각형을 표시한 다음 面은 한 글자만 표시하고 노란색 사각형을 그려 넣지 않았다. 《광여도》 역시 《해동지도》의 내용을 확실히 이해하고 그린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강릉부는 현재의 평창읍과 미탄면 대부분을 제외한 평창군, 인제군의 내면, 정선군의 임계면 등을 포함하여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었다. 또한 남북보다 동서가 약 2배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런 강릉부를 세로로 긴 사각형 안에 맞추어 그리다보니까 오히려 남북이 동서보다 긴 모양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동해안과 大關嶺 사이의 폭보다 대관령에서 橫城界까지의 거리가 실제로는 3배에 가까운데 본 지도에는 거의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이로 인해 본 지도만으로는 강릉부의 실제 형태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동해안에 있는 香湖, 鏡湖, 楓湖 등의 석호도 해안가에 붙어있는데 본 지도에는 마치 내륙의 호수인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왼쪽 위의 內面 부근에 春川界가 적혀 있는 것은 이곳에 있었던 춘천의 월경지인 기린면과 경계를 맞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 고성군(高城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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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고성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광여도》에 비해 표현이 거칠고 몇몇 부분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읍치 왼쪽 위에는 노란색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는데 《광여도》에는 二北面이 적혀 있다. 그리고 그 오른쪽의 北面은 광여도에 一北面이라고 되어 있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의 내용과 같아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판단된다. 표현 양식이 좀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고성군 지도에도 《광여도》처럼 되어 있다. 읍치와 그 근처 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 크게 그려져 있다. 이에 따라 본 지도 안에서 각 지점 사이의 거리를 이해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해안에서 三日浦까지의 거리는 실질적으로 삼일포에서 왼쪽의 溫井嶺까지의 거리에 비해 5분의 1 정도밖에 안된다. 또한 읍치를 실제와 달리 사각형으로 묘사된 고을 지도의 중앙에 배치시켰기 때문에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읍치에서 通川界까지의 걸리는 실제로 읍치에서 왼쪽 아래의 炭嶺 부근까지의 거리에 비해 3분의 1 정도밖에 안된다. 金剛山 역시 상대적으로 북쪽으로 치우쳐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도에서는 정 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이런 거리의 왜곡 때문에 하천의 길이 역시 실제와 전혀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왼쪽 아래에서 발원한 현재의 남강은 왼쪽 위의 온정령에서 발원한 현재의 신계천보다 5배 정도 길다. 다만 읍치 주변의 하천 유로는 실제에 가깝게 되어 있다. 읍치 지역은 서쪽의 급경사에서 발원한 하천의 토사가 동해 바다의 파랑에 밀려 쌓이면서 넓은 평지가 되었다. 이로 인해 삼일포와 같은 潟湖가 생기고, 하천의 하구는 여러 갈래의 수로가 되었다. 이런 모습이 본 지도에는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기봉)

  • 고성군(高城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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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고성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광여도》에 비해 표현이 거칠고 몇몇 부분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읍치 왼쪽 위에는 노란색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는데 《광여도》에는 二北面이 적혀 있다. 그리고 그 오른쪽의 北面은 광여도에 一北面이라고 되어 있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의 내용과 같아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판단된다. 표현 양식이 좀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고성군 지도에도 《광여도》처럼 되어 있다. 읍치와 그 근처 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 크게 그려져 있다. 이에 따라 본 지도 안에서 각 지점 사이의 거리를 이해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해안에서 三日浦까지의 거리는 실질적으로 삼일포에서 왼쪽의 溫井嶺까지의 거리에 비해 5분의 1 정도밖에 안된다. 또한 읍치를 실제와 달리 사각형으로 묘사된 고을 지도의 중앙에 배치시켰기 때문에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읍치에서 通川界까지의 걸리는 실제로 읍치에서 왼쪽 아래의 炭嶺 부근까지의 거리에 비해 3분의 1 정도밖에 안된다. 金剛山 역시 상대적으로 북쪽으로 치우쳐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도에서는 정 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이런 거리의 왜곡 때문에 하천의 길이 역시 실제와 전혀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왼쪽 아래에서 발원한 현재의 남강은 왼쪽 위의 온정령에서 발원한 현재의 신계천보다 5배 정도 길다. 다만 읍치 주변의 하천 유로는 실제에 가깝게 되어 있다. 읍치 지역은 서쪽의 급경사에서 발원한 하천의 토사가 동해 바다의 파랑에 밀려 쌓이면서 넓은 평지가 되었다. 이로 인해 삼일포와 같은 潟湖가 생기고, 하천의 하구는 여러 갈래의 수로가 되었다. 이런 모습이 본 지도에는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기봉)

  • 관동도(關東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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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關東圖와 동해안의 모습과 하천의 유로가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본 지도는 하천의 유로가 거의 사실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는 반면 《광여도》에는 여러 오류가 발견되고 있다. 예를 들어 寧越 왼쪽의 하천과 杻寺 부분의 하천이 연결되어 있다. 金城 부근에서도 하천이 잘못 연결된 부분이 나타나고 있다. 수록된 지명의 양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본 지도보다 《광여도》가 훨씬 많은 편이다. 본 지도에서는 감영은 적황색 큰 원, 군현은 녹색 작은 원으로 표시하였다. 그러나 강릉 왼쪽의 麒麟은 군현이 아니라 春川의 월경지인 기린면이었다. 본 지도의 작성자가 기호 표시가 되어 있지 않은 지도를 필사하면서 기리면(옛 기린현)을 잘못 이해하여 군현의 기호를 사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맨 위쪽의 伊川 위치가 잘못되어 있다. 본 지도에서는 읍치의 위치에다 군현의 명칭을 적어놓았기 때문에 약간 아래쪽 南川 바로 위에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감영의 명칭이 原城으로 되어 있다. 原城은 原州가 1683년-1692년(숙종 9-18)과 1728년-1737년(영조 4-13) 사이에 縣으로 강등되었을 때의 명칭이다. 《광여도》에는 原州로 적혀 있다. 노란색 사각형은 종6품의 察訪이 파견되어 많은 속역을 거느리던 察訪驛에 대한 기호로 사용된 것으로 생각된다. 보통 전도나 도별도에서는 찰방역이 기호를 사용하는 정보가 되는 예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貞德驛과 巨豊驛은 찰방역이 아니었다. 또한 찰방역이었던 원주의 丹丘驛, 삼척의 平陵驛 등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이런 점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 찰방역에 대한 기호가 표시되지 않은 지도를 참조하였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찰방역에 대한 정보를 모두 검토하지 못해 오류를 범한 것이 아닌가 한다. 《광여도》에는 정덕역과 거풍역이 찰방역의 기호에서 빠졌다. 그러나 麒麟을 찰방역으로 잘못 표기하고, 다른 찰방역을 생략하는 등 역시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본 지도가 다른 지도를 필사한 것임을 알려주는 근거 중의 하나가 왼쪽 아래에 적혀 있는 ‘白川界雲山’이다. 《광여도》와 비교해 보면 이것은 堤川界와 白雲山의 기록을 혼동하여 적어놓은 것으로 ‘堤’자는 아예 생략되어 있다. 스스로 모든 것을 만든 것이라면 이와 같은 혼동은 있기 어렵다. (이기봉)

  • 관동도(關東圖)(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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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關東圖와 동해안의 모습과 하천의 유로가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본 지도는 하천의 유로가 거의 사실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는 반면 《광여도》에는 여러 오류가 발견되고 있다. 예를 들어 寧越 왼쪽의 하천과 杻寺 부분의 하천이 연결되어 있다. 金城 부근에서도 하천이 잘못 연결된 부분이 나타나고 있다. 수록된 지명의 양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본 지도보다 《광여도》가 훨씬 많은 편이다. 본 지도에서는 감영은 적황색 큰 원, 군현은 녹색 작은 원으로 표시하였다. 그러나 강릉 왼쪽의 麒麟은 군현이 아니라 春川의 월경지인 기린면이었다. 본 지도의 작성자가 기호 표시가 되어 있지 않은 지도를 필사하면서 기리면(옛 기린현)을 잘못 이해하여 군현의 기호를 사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맨 위쪽의 伊川 위치가 잘못되어 있다. 본 지도에서는 읍치의 위치에다 군현의 명칭을 적어놓았기 때문에 약간 아래쪽 南川 바로 위에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감영의 명칭이 原城으로 되어 있다. 原城은 原州가 1683년-1692년(숙종 9-18)과 1728년-1737년(영조 4-13) 사이에 縣으로 강등되었을 때의 명칭이다. 《광여도》에는 原州로 적혀 있다. 노란색 사각형은 종6품의 察訪이 파견되어 많은 속역을 거느리던 察訪驛에 대한 기호로 사용된 것으로 생각된다. 보통 전도나 도별도에서는 찰방역이 기호를 사용하는 정보가 되는 예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貞德驛과 巨豊驛은 찰방역이 아니었다. 또한 찰방역이었던 원주의 丹丘驛, 삼척의 平陵驛 등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이런 점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 찰방역에 대한 기호가 표시되지 않은 지도를 참조하였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찰방역에 대한 정보를 모두 검토하지 못해 오류를 범한 것이 아닌가 한다. 《광여도》에는 정덕역과 거풍역이 찰방역의 기호에서 빠졌다. 그러나 麒麟을 찰방역으로 잘못 표기하고, 다른 찰방역을 생략하는 등 역시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본 지도가 다른 지도를 필사한 것임을 알려주는 근거 중의 하나가 왼쪽 아래에 적혀 있는 ‘白川界雲山’이다. 《광여도》와 비교해 보면 이것은 堤川界와 白雲山의 기록을 혼동하여 적어놓은 것으로 ‘堤’자는 아예 생략되어 있다. 스스로 모든 것을 만든 것이라면 이와 같은 혼동은 있기 어렵다. (이기봉)

  • 금성현(金城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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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금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광여도》에 있던 다리와 고개의 몇 개 지명이 본 지도에서 생략되어 있을 뿐이다. 위쪽의 淮陽界에서 들어와 아래쪽의 狼川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북한강 본류이다. 읍치 방향에서 흘러와 북한강에 합류하는 하천은 현재의 금성천이다. 두 하천의 모습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체적으로 실제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고을 동쪽 모습은 실제와 상당히 다르게 되어 있다. 오른쪽 金剛路 방면은 실제로는 동쪽으로 튀어나간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러나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게 고을의 모습을 그리려다보니 이 부분이 남북 직선의 산줄기처럼 그려졌다. 또한 이곳에서 흐르는 현재의 통구천이 실제로는 西流하여 북한강에 합류됨에도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묘사되었다. 이 부근에 있는 斷髮嶺도 실제로는 金剛路 부근에 써넣어야 한다. 또한 오른쪽의 壬倉 부근에는 동쪽으로부터 현재의 금강천이 흘러들어옴에도 이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런 오류들은 근본적으로 표현 양식은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금성현 지도로부터 발생되었다. 북한강변에는 大慶津과 錢浦가 표시되어 있는데, 이 지역에서 북한강에 대한 하천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錢浦에서의 ‘浦’는 浦口라는 의미보다는 물가를 지칭하는 ‘개’에 대한 한자 표현일 뿐이다. 錢浦는 ‘돈개’라는 우리말에 대한 한자 표기로 추정된다. (이기봉)

  • 금성현(金城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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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금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광여도》에 있던 다리와 고개의 몇 개 지명이 본 지도에서 생략되어 있을 뿐이다. 위쪽의 淮陽界에서 들어와 아래쪽의 狼川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북한강 본류이다. 읍치 방향에서 흘러와 북한강에 합류하는 하천은 현재의 금성천이다. 두 하천의 모습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체적으로 실제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고을 동쪽 모습은 실제와 상당히 다르게 되어 있다. 오른쪽 金剛路 방면은 실제로는 동쪽으로 튀어나간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러나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게 고을의 모습을 그리려다보니 이 부분이 남북 직선의 산줄기처럼 그려졌다. 또한 이곳에서 흐르는 현재의 통구천이 실제로는 西流하여 북한강에 합류됨에도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묘사되었다. 이 부근에 있는 斷髮嶺도 실제로는 金剛路 부근에 써넣어야 한다. 또한 오른쪽의 壬倉 부근에는 동쪽으로부터 현재의 금강천이 흘러들어옴에도 이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런 오류들은 근본적으로 표현 양식은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금성현 지도로부터 발생되었다. 북한강변에는 大慶津과 錢浦가 표시되어 있는데, 이 지역에서 북한강에 대한 하천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錢浦에서의 ‘浦’는 浦口라는 의미보다는 물가를 지칭하는 ‘개’에 대한 한자 표현일 뿐이다. 錢浦는 ‘돈개’라는 우리말에 대한 한자 표기로 추정된다. (이기봉)

  • 김화현(金化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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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김화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에는 捷碑柳林大가 적혀 있는데 《광여도》에는 柳琳大捷碑라고 되어 있다. 또한 그 왼쪽에 표시된 銀溪驛이 《광여도》에는 生昌驛으로 되어 있다. 표현 방식에서는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김화현 지도에는 《광여도》처럼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잘못 기록한 것이다. 은계역은 김화현이 아니라 회양부에 있었다. 아래쪽에는 春川界가 적혀 있는데,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도 모두 동일하게 되어 있다. 狼川界를 잘못 쓴 것으로서 《광여도》나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의 오류를 살피지 않고 그대로 필사했음을 알려주는 근거가 된다. 읍치를 다른 지역보다 확대해서 그렸으며, 사각형이 아닌 고을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표현하였기 때문에 실제를 왜곡하는 부분이 나타났다. 예를 들어 西面과 南面은 永平界 방면의 남쪽으로 튀어나가 있는데 이것이 제대로 표현되어 있지 못하다. 또한 김화현은 平康과 서쪽에서만 경계를 접하고 있는데 마치 북쪽에도 平康界가 있는 것처럼 표시되었다. 이것은 북쪽의 동서 폭이 좁은 부분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는 과정에서 서쪽 부분의 일부가 북쪽처럼 표현 된 것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김화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런 오류들이 대부분 교정되었다. (이기봉)

  • 김화현(金化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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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김화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에는 捷碑柳林大가 적혀 있는데 《광여도》에는 柳琳大捷碑라고 되어 있다. 또한 그 왼쪽에 표시된 銀溪驛이 《광여도》에는 生昌驛으로 되어 있다. 표현 방식에서는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김화현 지도에는 《광여도》처럼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잘못 기록한 것이다. 은계역은 김화현이 아니라 회양부에 있었다. 아래쪽에는 春川界가 적혀 있는데,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도 모두 동일하게 되어 있다. 狼川界를 잘못 쓴 것으로서 《광여도》나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의 오류를 살피지 않고 그대로 필사했음을 알려주는 근거가 된다. 읍치를 다른 지역보다 확대해서 그렸으며, 사각형이 아닌 고을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표현하였기 때문에 실제를 왜곡하는 부분이 나타났다. 예를 들어 西面과 南面은 永平界 방면의 남쪽으로 튀어나가 있는데 이것이 제대로 표현되어 있지 못하다. 또한 김화현은 平康과 서쪽에서만 경계를 접하고 있는데 마치 북쪽에도 平康界가 있는 것처럼 표시되었다. 이것은 북쪽의 동서 폭이 좁은 부분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는 과정에서 서쪽 부분의 일부가 북쪽처럼 표현 된 것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김화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런 오류들이 대부분 교정되었다. (이기봉)

  • 낭천현(狼川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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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낭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서는 위쪽의 山陽驛에 面의 색인 노란색을 칠했다가 보라색을 칠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 또한 아래쪽의 居女里에는 본 지도책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 황갈색의 사각형도 그려져 있다. 《광여도》에서는 이런 실수를 범하고 있지는 않다. 표현 방식은 다르나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비슷한 《해동지도》의 낭천현 지도와 비교해 보면 《광여도》가 훨씬 필사를 잘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주기에는 있지만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은 面으로 縣內面과 北面 및 上西面이 있다. 《광여도》나 《해동지도》에도 이 3개의 면은 주기에만 있고 지도에는 없다. 본 지도와 《광여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여겨지며, 필사 과정에서 다른 자료를 통해 위치 비정을 새롭게 하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위쪽의 金城界에서 흘러와 아래쪽의 春川界로 빠져나가는 毋津江이 현재의 북한강이다. 일부 틀린 부분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실제의 유로와 거의 유사하다. 일반적인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군현의 실제 모습과 지도 위의 모습이 다른 경우가 많다. 본 지도가 실제와 유사하게 그려진 이유는 낭천현 전체의 모습이 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낭천현(狼川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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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낭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서는 위쪽의 山陽驛에 面의 색인 노란색을 칠했다가 보라색을 칠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 또한 아래쪽의 居女里에는 본 지도책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 황갈색의 사각형도 그려져 있다. 《광여도》에서는 이런 실수를 범하고 있지는 않다. 표현 방식은 다르나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비슷한 《해동지도》의 낭천현 지도와 비교해 보면 《광여도》가 훨씬 필사를 잘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주기에는 있지만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은 面으로 縣內面과 北面 및 上西面이 있다. 《광여도》나 《해동지도》에도 이 3개의 면은 주기에만 있고 지도에는 없다. 본 지도와 《광여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여겨지며, 필사 과정에서 다른 자료를 통해 위치 비정을 새롭게 하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위쪽의 金城界에서 흘러와 아래쪽의 春川界로 빠져나가는 毋津江이 현재의 북한강이다. 일부 틀린 부분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실제의 유로와 거의 유사하다. 일반적인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군현의 실제 모습과 지도 위의 모습이 다른 경우가 많다. 본 지도가 실제와 유사하게 그려진 이유는 낭천현 전체의 모습이 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삼척부(三陟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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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삼척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아래쪽에는 面의 기호인 노란색 사각형만 그려져 있고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 것이 보인다. 이곳에는 德彬面이 적혀 있어야 하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급하게 서두르다 실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실수는 지명을 잘못 적어놓은 곳에서도 발견된다. 왼쪽 가운데의 武陵界는 武陵溪를, 더 아래쪽의 昔池는 黃池를 잘못 적어놓은 것이다.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에는 모두 제대로 되어 있으며, 《광여도》 역시 올바르게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에는 대부분의 하천이 서류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읍치 아래쪽의 五十川과 交柯驛을 흐르는 하천은 거의 北流하다 바다 부근에서만 약간 東流하여 빠져나간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삼척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런 부분이 많이 시정되었지만 거의 북류에 가까운 것을 동북류 정도로 표현하고 있다. 왼쪽 아래에 昔池(黃池)는 낙동강의 발원지로 알려져 있다. 그 부근에 있는 ‘安東春陽去路’는 ‘안동의 춘양면으로 가는 길’이라는 뜻이다. 안동의 본 영역은 삼척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았으나 월경지인 춘양면이 경계를 맞대고 있었기 때문에 적힌 것이다. 왼쪽의 長生面은 현재의 삼척시 하장면으로 남한강 유역에 속해 있었다. (이기봉)

  • 삼척부(三陟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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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삼척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아래쪽에는 面의 기호인 노란색 사각형만 그려져 있고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 것이 보인다. 이곳에는 德彬面이 적혀 있어야 하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급하게 서두르다 실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실수는 지명을 잘못 적어놓은 곳에서도 발견된다. 왼쪽 가운데의 武陵界는 武陵溪를, 더 아래쪽의 昔池는 黃池를 잘못 적어놓은 것이다.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에는 모두 제대로 되어 있으며, 《광여도》 역시 올바르게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에는 대부분의 하천이 서류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읍치 아래쪽의 五十川과 交柯驛을 흐르는 하천은 거의 北流하다 바다 부근에서만 약간 東流하여 빠져나간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삼척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런 부분이 많이 시정되었지만 거의 북류에 가까운 것을 동북류 정도로 표현하고 있다. 왼쪽 아래에 昔池(黃池)는 낙동강의 발원지로 알려져 있다. 그 부근에 있는 ‘安東春陽去路’는 ‘안동의 춘양면으로 가는 길’이라는 뜻이다. 안동의 본 영역은 삼척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았으나 월경지인 춘양면이 경계를 맞대고 있었기 때문에 적힌 것이다. 왼쪽의 長生面은 현재의 삼척시 하장면으로 남한강 유역에 속해 있었다. (이기봉)

  • 안협현(安峽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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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안협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전체적인 표현은 본 지도가 《광여도》보다 더 거칠다. 그러나 본 지도의 읍치 왼쪽에 있는 擧城이란 지명은 《광여도》에 표시되어 있지 않다. 표현 양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안협현 지도에는 擧城이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가 《광여도》를 필사했다고 하더라도 《해동지도》를 참조한 것으로 생각된다. 오른쪽 아래에는 去京路(서울 가는 길)과 鐵原去路(철원 가는 길)이 기록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도로까지 표시되어 있고, 앞의 두 문구는 도로의 끝에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 도로는 생략하고, 문구만 적어놓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위쪽의 伊川界에서 들어와 아래쪽의 兎山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임진강 본류이다. 안협현 부분에서의 임진강 본류는 굴곡이 심하지만 지도에는 거의 직선화된 형태로 그려져 있다. 읍치 위쪽의 하천은 현재의 평안천이다. 평안천은 원래 平康界 너머에서 흘러들어옴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는 이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어놓았다. 《해동지도》에는 평강계 부근의 평안천을 2개의 실선으로 남겨놓아 평강 땅에서 흘러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본 지도나 《광여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의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지 못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고을의 모습은 사각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세로로 긴 사각형에 맞추어 그리다보니 마치 사각형인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런 부분들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안협 지도에 거의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 안협현(安峽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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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안협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전체적인 표현은 본 지도가 《광여도》보다 더 거칠다. 그러나 본 지도의 읍치 왼쪽에 있는 擧城이란 지명은 《광여도》에 표시되어 있지 않다. 표현 양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안협현 지도에는 擧城이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가 《광여도》를 필사했다고 하더라도 《해동지도》를 참조한 것으로 생각된다. 오른쪽 아래에는 去京路(서울 가는 길)과 鐵原去路(철원 가는 길)이 기록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도로까지 표시되어 있고, 앞의 두 문구는 도로의 끝에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 도로는 생략하고, 문구만 적어놓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위쪽의 伊川界에서 들어와 아래쪽의 兎山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임진강 본류이다. 안협현 부분에서의 임진강 본류는 굴곡이 심하지만 지도에는 거의 직선화된 형태로 그려져 있다. 읍치 위쪽의 하천은 현재의 평안천이다. 평안천은 원래 平康界 너머에서 흘러들어옴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는 이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어놓았다. 《해동지도》에는 평강계 부근의 평안천을 2개의 실선으로 남겨놓아 평강 땅에서 흘러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본 지도나 《광여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의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지 못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고을의 모습은 사각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세로로 긴 사각형에 맞추어 그리다보니 마치 사각형인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런 부분들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안협 지도에 거의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 양구현(楊口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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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구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 아래쪽의 道界峙는 《광여도》에 道里峙로, 그 왼쪽의 絲川峙는 綠川峙로 기록되어 있다. 표현 양식은 다르나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양구현 지도에는 전자는 《광여도》처럼, 후자는 본 지도처럼 되어 있다. 《광여도》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각각 다른 명칭을 잘못 옮기고 있다. 《광여도》와 본 지도 중 어느 것이 다른 것을 필사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필사하면서 《해동지도》를 참고했을 가능성이 있다. 읍치를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해서 그렸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의 모습은 소략하다. 읍치를 지나 왼쪽의 狼川界로 흘러가는 하천이 북한강의 지류인 현재의 서천이다. 그런데 이 서천의 발원지가 잘못 표시되어 있다. 오른쪽 위의 亥安面은 현재의 양구군 해안면으로서 이곳의 물은 서천으로 유입되지 않고 동쪽의 인제군 인복천으로 흘러간다. 이 점은 《광여도》와 《해동지도》 모두 동일하다. 서천과 해안면 하천의 分水界는 上東面 왼쪽에 적힌 兜率山 부근이다. 이런 잘못은 《해동지도》에서 비롯되었으며, 《광여도》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의 오류를 교정하지 않고 그대로 필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南面의 아래쪽은 현재의 소양강에 접해 있고, 양구현의 일부 지역은 소양강 너머에 있었다. 본 지도에서는 이런 사실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양구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는 이런 오류들이 거의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 양구현(楊口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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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구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 아래쪽의 道界峙는 《광여도》에 道里峙로, 그 왼쪽의 絲川峙는 綠川峙로 기록되어 있다. 표현 양식은 다르나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양구현 지도에는 전자는 《광여도》처럼, 후자는 본 지도처럼 되어 있다. 《광여도》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각각 다른 명칭을 잘못 옮기고 있다. 《광여도》와 본 지도 중 어느 것이 다른 것을 필사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필사하면서 《해동지도》를 참고했을 가능성이 있다. 읍치를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해서 그렸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의 모습은 소략하다. 읍치를 지나 왼쪽의 狼川界로 흘러가는 하천이 북한강의 지류인 현재의 서천이다. 그런데 이 서천의 발원지가 잘못 표시되어 있다. 오른쪽 위의 亥安面은 현재의 양구군 해안면으로서 이곳의 물은 서천으로 유입되지 않고 동쪽의 인제군 인복천으로 흘러간다. 이 점은 《광여도》와 《해동지도》 모두 동일하다. 서천과 해안면 하천의 分水界는 上東面 왼쪽에 적힌 兜率山 부근이다. 이런 잘못은 《해동지도》에서 비롯되었으며, 《광여도》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의 오류를 교정하지 않고 그대로 필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南面의 아래쪽은 현재의 소양강에 접해 있고, 양구현의 일부 지역은 소양강 너머에 있었다. 본 지도에서는 이런 사실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양구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는 이런 오류들이 거의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 양양부(襄陽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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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양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에 비해 본 지도에는 오른쪽 위에 靑草湖, 降仙驛, 洛山寺 등의 지명이 생략되어 있다. 표현 방식은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양양부 지도에도 이 지명들은 모두 표시되어 있다. 또한 읍치 왼쪽에는 府南面이 部南面으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하며 필사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반면에 《광여도》에는 이런 잘못들이 나타나고 있지 않다. 남북이 동서보다 약 2배 정도 긴 모양의 고을임에도 남북이 약간 긴 직사각형으로 표현되어 있다. 또한 일반적인 회화식 지도처럼 읍치 지역을 확대해서 그리고 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몇 가지 오해할 수 있는 문제들이 발생하였다.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해안선과 왼쪽의 산줄기가 마치 정북-정남 방향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서북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또한 하천들이 대부분 正東으로 흘러 바다에 들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降仙面에 있는 하천은 대체적으로 실제에 부합된다. 그러나 읍치 아래쪽에 있는 현재의 남대천은 이 지도만으로는 실제적인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다. 남대천의 본 줄기는 구룡령 근처에서 발원하여 북류하다가 읍치에서 잠깐 동류하여 바다로 들어간다. 그 길이 역시 강선면에 있는 하천보다 훨씬 길다. (이기봉)

  • 양양부(襄陽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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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양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에 비해 본 지도에는 오른쪽 위에 靑草湖, 降仙驛, 洛山寺 등의 지명이 생략되어 있다. 표현 방식은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양양부 지도에도 이 지명들은 모두 표시되어 있다. 또한 읍치 왼쪽에는 府南面이 部南面으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하며 필사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반면에 《광여도》에는 이런 잘못들이 나타나고 있지 않다. 남북이 동서보다 약 2배 정도 긴 모양의 고을임에도 남북이 약간 긴 직사각형으로 표현되어 있다. 또한 일반적인 회화식 지도처럼 읍치 지역을 확대해서 그리고 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몇 가지 오해할 수 있는 문제들이 발생하였다.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해안선과 왼쪽의 산줄기가 마치 정북-정남 방향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서북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또한 하천들이 대부분 正東으로 흘러 바다에 들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降仙面에 있는 하천은 대체적으로 실제에 부합된다. 그러나 읍치 아래쪽에 있는 현재의 남대천은 이 지도만으로는 실제적인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다. 남대천의 본 줄기는 구룡령 근처에서 발원하여 북류하다가 읍치에서 잠깐 동류하여 바다로 들어간다. 그 길이 역시 강선면에 있는 하천보다 훨씬 길다. (이기봉)

  • 영월부(寧越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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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월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는 《광여도》에 비해 글자가 잘못되거나 바뀐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莊陵 아래의 丁子閣은 丁字閣이라고 해야 하며, 그 오른쪽의 分德山은 分德峙라고 해야 한다. 그 아래의 三玉峙는 《광여도》에 三王峙라고 되어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영월부 지도에는 본 지도처럼 되어 있다. 오른쪽의 三涉界는 三陟界의 오기로서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는 모두 올바르게 되어 있다. 오른쪽 아래의 安東界는 《광여도》에는 없지만 《해동지도》에는 있다. 왼쪽 위쪽의 高德驛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高德峙로 되어 있다. 고덕치가 올바르며, 이를 통해 본 지도와 《광여도》는 동일한 오류를 범하고 있어 서로 모사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어느 것이 먼저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다른 지도를 모사하는 과정에서 《해동지도》를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영월부는 1699년(숙종 25)에 郡에서 府로 승격되므로 본 지도는 최소한 이 시기 이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왼쪽 위에는 原城界가 표시되어 있는데, 原州界를 의미한다. 原州는 1683년-1692년(숙종 9-18)과 1728년-1737년(영조 4-13) 사이에 原城縣으로 강등된 적이 있다. 영월부의 승격 연도와 관련시켜 보면 본 지도는 1728년에서 1737년 사이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영월은 남북보다는 동서의 폭이 훨씬 넓은 고을이다. 그러나 세로로 긴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기 위해 본 지도에서는 마치 남북이 훨씬 긴 것처럼 표현되었다. 이로 인해 하천의 유로 등이 실제의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아래쪽의 永春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남한강 본류이다. 읍치 왼쪽의 하천은 서강이라고 하며, 오른쪽의 하천은 동강이라고 한다. 서강은 본 지도와 달리 서쪽에서 유입되며, 동강은 동북쪽에서 유입된다. 아래쪽 下東面 방면에 있는 하천은 현재의 옥동천이다. 이 옥동천은 동쪽에서 유입되며, 그 길이 역시 지도에 표현된 서강과 동강보다 훨씬 길다. 또한 상동면은 지도의 표현과 달리 옥동천의 상류에 위치해 있어야 한다. 옥동천의 방향과 길이가 잘못 표현되었기 때문에 상동면 역시 잘못 위치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영월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는 이와 같은 사실이 잘 반영되어 있다. (이기봉)

  • 영월부(寧越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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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월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는 《광여도》에 비해 글자가 잘못되거나 바뀐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莊陵 아래의 丁子閣은 丁字閣이라고 해야 하며, 그 오른쪽의 分德山은 分德峙라고 해야 한다. 그 아래의 三玉峙는 《광여도》에 三王峙라고 되어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영월부 지도에는 본 지도처럼 되어 있다. 오른쪽의 三涉界는 三陟界의 오기로서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는 모두 올바르게 되어 있다. 오른쪽 아래의 安東界는 《광여도》에는 없지만 《해동지도》에는 있다. 왼쪽 위쪽의 高德驛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高德峙로 되어 있다. 고덕치가 올바르며, 이를 통해 본 지도와 《광여도》는 동일한 오류를 범하고 있어 서로 모사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어느 것이 먼저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다른 지도를 모사하는 과정에서 《해동지도》를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영월부는 1699년(숙종 25)에 郡에서 府로 승격되므로 본 지도는 최소한 이 시기 이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왼쪽 위에는 原城界가 표시되어 있는데, 原州界를 의미한다. 原州는 1683년-1692년(숙종 9-18)과 1728년-1737년(영조 4-13) 사이에 原城縣으로 강등된 적이 있다. 영월부의 승격 연도와 관련시켜 보면 본 지도는 1728년에서 1737년 사이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영월은 남북보다는 동서의 폭이 훨씬 넓은 고을이다. 그러나 세로로 긴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기 위해 본 지도에서는 마치 남북이 훨씬 긴 것처럼 표현되었다. 이로 인해 하천의 유로 등이 실제의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아래쪽의 永春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남한강 본류이다. 읍치 왼쪽의 하천은 서강이라고 하며, 오른쪽의 하천은 동강이라고 한다. 서강은 본 지도와 달리 서쪽에서 유입되며, 동강은 동북쪽에서 유입된다. 아래쪽 下東面 방면에 있는 하천은 현재의 옥동천이다. 이 옥동천은 동쪽에서 유입되며, 그 길이 역시 지도에 표현된 서강과 동강보다 훨씬 길다. 또한 상동면은 지도의 표현과 달리 옥동천의 상류에 위치해 있어야 한다. 옥동천의 방향과 길이가 잘못 표현되었기 때문에 상동면 역시 잘못 위치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영월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는 이와 같은 사실이 잘 반영되어 있다. (이기봉)

  • 울릉도(鬱陵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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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울릉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울릉도 지도도 표현 양식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주기에는 동서 80리, 남북50리로 되어 있으나 지도에는 남북이 약간 더 길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세로로 긴 사각형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해동지도》와 비교하여 잘못 필사된 곳도 발견된다. 섬의 오른쪽 아래에 ‘基北三四處’에서의 ‘北’은 ‘地’로 바꾸어 써야 한다. 본 지도에 나오는 基地 또는 基趾는 과거에 사람들이 거주했던 흔적을 의미하는 듯하며, 石葬은 그들의 돌무덤을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기타 船泊이 머물 수 있는 곳,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는 可居(處), 숙종 때 일본과의 소유권 분쟁 후 조선의 영토라는 내용을 새겨놓은 것으로 보이는 立標 등이 기록되어 있다. 오른쪽에 있는 于山島는 여러 사람에 의해 현재의 獨島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분명하지는 않다. 울릉도 본 섬 주위에 있는 작은 섬 중 가장 큰 관음도나 죽도를 가리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주기에는 울릉도에서 나는 특산물이 자세히 적혀 있다. (이기봉)

  • 울릉도(鬱陵島)(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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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울릉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울릉도 지도도 표현 양식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주기에는 동서 80리, 남북50리로 되어 있으나 지도에는 남북이 약간 더 길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세로로 긴 사각형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해동지도》와 비교하여 잘못 필사된 곳도 발견된다. 섬의 오른쪽 아래에 ‘基北三四處’에서의 ‘北’은 ‘地’로 바꾸어 써야 한다. 본 지도에 나오는 基地 또는 基趾는 과거에 사람들이 거주했던 흔적을 의미하는 듯하며, 石葬은 그들의 돌무덤을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기타 船泊이 머물 수 있는 곳,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는 可居(處), 숙종 때 일본과의 소유권 분쟁 후 조선의 영토라는 내용을 새겨놓은 것으로 보이는 立標 등이 기록되어 있다. 오른쪽에 있는 于山島는 여러 사람에 의해 현재의 獨島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분명하지는 않다. 울릉도 본 섬 주위에 있는 작은 섬 중 가장 큰 관음도나 죽도를 가리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주기에는 울릉도에서 나는 특산물이 자세히 적혀 있다. (이기봉)

  • 울진현(蔚珍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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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울진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의 英陽里, 古城山, 邑基는 《광여도》에 英陽界, 古山城, 邑治로 되어 있다. 표현 방식에서는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울진현 지도에는 英陽界, 古山城, 邑基로 나온다. 이를 통해 볼 때 英陽里와 古城山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邑基라는 지명을 통해 볼 때 최소한 본 지도의 지명은 《해동지도》를 참조하여 작성했음을 알 수 있다. 《해동지도》와 다르면서 《광여도》와 본 지도가 같은 지명도 있다. 맨 위쪽의 興富庫와 館은 《해동지도》에는 興富驛으로 나오며, 아래쪽의 德神驛은 《해동지도》에 德新驛으로 적혀 있다.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어 지도를 그렸기 때문에 실제로는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이 왜곡되고 있다. 본 지도에서 가장 사실과 다르게 표현된 것은 하천이다. 첫째, 斗川院 방향에서 내려오는 하천과 佛影寺 방면에서 내려오는 하천은 바다에 유입될 때까지 지도의 표현과 달리 서로 합류되지 않는다. 둘째, 遠南面과 聖留屈에서 내려오는 하천은 직접 바다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불영사에서 내려오는 물과 합해진 후 바다로 유출된다. 셋째, 英陽의 경계를 넘어 불영사에서 흘러오는 하천과 합류되는 현재의 왕피천을 구분하기 어렵다. 넷째, 서면 부분에는 낙동강의 상류 유역에 속하는 부분이 있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 중 세 번째 오류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울진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 2개의 지도는 정확성을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삼았음에도 불구하고 세 번째의 오류를 교정하지 못했다. 본 지도와 같은 정보에 기반하여 판단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왼쪽에 울진과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安東의 경계가 표시되어 있는 이유는 이곳에 안동의 월경지인 소천면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 울진현(蔚珍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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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울진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의 英陽里, 古城山, 邑基는 《광여도》에 英陽界, 古山城, 邑治로 되어 있다. 표현 방식에서는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울진현 지도에는 英陽界, 古山城, 邑基로 나온다. 이를 통해 볼 때 英陽里와 古城山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邑基라는 지명을 통해 볼 때 최소한 본 지도의 지명은 《해동지도》를 참조하여 작성했음을 알 수 있다. 《해동지도》와 다르면서 《광여도》와 본 지도가 같은 지명도 있다. 맨 위쪽의 興富庫와 館은 《해동지도》에는 興富驛으로 나오며, 아래쪽의 德神驛은 《해동지도》에 德新驛으로 적혀 있다.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어 지도를 그렸기 때문에 실제로는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이 왜곡되고 있다. 본 지도에서 가장 사실과 다르게 표현된 것은 하천이다. 첫째, 斗川院 방향에서 내려오는 하천과 佛影寺 방면에서 내려오는 하천은 바다에 유입될 때까지 지도의 표현과 달리 서로 합류되지 않는다. 둘째, 遠南面과 聖留屈에서 내려오는 하천은 직접 바다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불영사에서 내려오는 물과 합해진 후 바다로 유출된다. 셋째, 英陽의 경계를 넘어 불영사에서 흘러오는 하천과 합류되는 현재의 왕피천을 구분하기 어렵다. 넷째, 서면 부분에는 낙동강의 상류 유역에 속하는 부분이 있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 중 세 번째 오류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울진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 2개의 지도는 정확성을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삼았음에도 불구하고 세 번째의 오류를 교정하지 못했다. 본 지도와 같은 정보에 기반하여 판단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왼쪽에 울진과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安東의 경계가 표시되어 있는 이유는 이곳에 안동의 월경지인 소천면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 원성목(原城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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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지도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원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原州는 1683년-1692년(숙종 9-18)과 1728년-1737년(영조 4-13) 사이에 原城縣으로 강등된 적이 있다. 본 지도의 제목인 原城牧은 原城縣으로 강등되었을 때의 명칭과 原州가 일반적으로 牧이었다는 사실이 겹쳐져 적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즉, 본 지도의 필사 시 原州가 原城으로 강등되었을 때 縣이었던 점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위쪽의 여백에는 ‘원성은 지금의 원주이다(原城今原州)’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 문구는 원주가 다시 승격되었을 때 본 지도의 이용자가 적어 넣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에는 原州牧으로 나오며, 《광여도》도 동일하다. 본 지도는 《해동지도》에 비해 잘못 적은 것과 생략된 것이 많다. 읍치에 있는 田原驛은 由原驛을, 읍치 아래쪽의 靑丘驛은 丹丘驛을, 읍치 오른쪽 위의 草所面은 所草面을 잘못 적은 것이다. 아래쪽의 新林驛에는 보라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다. 읍치 왼쪽의 楮田洞面과 왼쪽 아래의 富論面에는 驛과 동일한 크기의 사각형에 노란색이 칠해져 있다. 아울러 왼쪽의 呂州界 방면에는 池內面이 생략되어 있기도 하다. 이와 같은 문제점들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필사 과정에서 많은 실수를 했음을 알려준다. 《광여도》에는 이런 오류들이 대부분 시정되어 있다. 그러나 왼쪽의 지내면이 본 지도와 똑같이 생략되어 있고, 干川面을 千川面으로 적는 등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남북보다 동서가 훨씬 긴 고을임에도 세로로 긴 사각형에 그림에 따라 실제 모습과 상당히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가장 크게 잘못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의 하천이 동서의 흐름은 거의 없고, 남북의 흐름만 있는 것처럼 묘사되었다는 점이다. 왼쪽의 忠州界에서 흘러와 呂州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남한강이다. 위쪽의 橫城界로부터 들어와 남한강에 합류되는 하천이 현재의 섬강이다. 섬강은 읍치 서쪽에서 서남류하는데 본 지도에서는 마치 남류하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오른쪽의 左邊面에서 右邊面쪽으로 흐르는 하천은 남한강의 지류인 현재의 주천강이다. 주천강에서 남류하는 부분도 있지만 동류하는 부분도 있는데 본 지도에는 역시 남류하는 것으로만 묘사되어 있다. 맨 오른쪽에 표시된 沙川은 현재의 평창강으로 실제로는 극히 짧은 구간인데 남북으로 길게 표현되어 있다. (이기봉)

  • 원성목(原城牧)(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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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지도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원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原州는 1683년-1692년(숙종 9-18)과 1728년-1737년(영조 4-13) 사이에 原城縣으로 강등된 적이 있다. 본 지도의 제목인 原城牧은 原城縣으로 강등되었을 때의 명칭과 原州가 일반적으로 牧이었다는 사실이 겹쳐져 적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즉, 본 지도의 필사 시 原州가 原城으로 강등되었을 때 縣이었던 점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위쪽의 여백에는 ‘원성은 지금의 원주이다(原城今原州)’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 문구는 원주가 다시 승격되었을 때 본 지도의 이용자가 적어 넣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에는 原州牧으로 나오며, 《광여도》도 동일하다. 본 지도는 《해동지도》에 비해 잘못 적은 것과 생략된 것이 많다. 읍치에 있는 田原驛은 由原驛을, 읍치 아래쪽의 靑丘驛은 丹丘驛을, 읍치 오른쪽 위의 草所面은 所草面을 잘못 적은 것이다. 아래쪽의 新林驛에는 보라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다. 읍치 왼쪽의 楮田洞面과 왼쪽 아래의 富論面에는 驛과 동일한 크기의 사각형에 노란색이 칠해져 있다. 아울러 왼쪽의 呂州界 방면에는 池內面이 생략되어 있기도 하다. 이와 같은 문제점들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필사 과정에서 많은 실수를 했음을 알려준다. 《광여도》에는 이런 오류들이 대부분 시정되어 있다. 그러나 왼쪽의 지내면이 본 지도와 똑같이 생략되어 있고, 干川面을 千川面으로 적는 등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남북보다 동서가 훨씬 긴 고을임에도 세로로 긴 사각형에 그림에 따라 실제 모습과 상당히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가장 크게 잘못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의 하천이 동서의 흐름은 거의 없고, 남북의 흐름만 있는 것처럼 묘사되었다는 점이다. 왼쪽의 忠州界에서 흘러와 呂州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남한강이다. 위쪽의 橫城界로부터 들어와 남한강에 합류되는 하천이 현재의 섬강이다. 섬강은 읍치 서쪽에서 서남류하는데 본 지도에서는 마치 남류하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오른쪽의 左邊面에서 右邊面쪽으로 흐르는 하천은 남한강의 지류인 현재의 주천강이다. 주천강에서 남류하는 부분도 있지만 동류하는 부분도 있는데 본 지도에는 역시 남류하는 것으로만 묘사되어 있다. 맨 오른쪽에 표시된 沙川은 현재의 평창강으로 실제로는 극히 짧은 구간인데 남북으로 길게 표현되어 있다. (이기봉)

  • 이천부(伊川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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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이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왼쪽 가운데의 外山面은 山外面의 誤記이고, 읍치 아래쪽에는 乾川驛이 보라색 사각형만 그려져 있고 글씨는 생략되어 있다. 《광여도》에는 이 부분이 제대로 표기되어 있으며,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이천부 지도에도 올바르게 되어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필사 과정에서 오류를 범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천부는 본 지도에도 남북이 동서보다 길게 표현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길다. 일정한 크기의 사각형 안에 고을 전체를 그리다보니까 이런 문제점이 발생한 것이다. 위쪽에서 흘러와 아래쪽 兎山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임진강 상류이다. 그런데 임진강 상류 중 일부가 잘못 표현되어 있다. 임진강 본류는 가운데 위쪽의 安邊界에 있는 防墻峙 훨씬 북쪽에서 발원하여 내려오지만 본 지도에는 그와 같은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못하다. 임진강의 지류 중의 하나인 고미탄천은 오른쪽 古味呑面에서 발원하여 平康의 땅으로 들어간다. 평강의 땅을 지난 고미탄천은 다시 聽浦面으로 들어와 임진강에 합류된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고미탄면의 물이 바로 청포면 방면으로 흘러오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평강계 방면에서 청포면으로 하천이 흘러 들어오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고미탄면의 물이 바로 들어오는 것 같은 표현은 동일하다. 또한 읍치가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되면서 그 동쪽의 하천이 지나치게 길게 그려져 있다. 임진강 본류나 고미탄천에 비하면 이 하천은 아주 작게 그려져야 사실과 부합된다. 이런 오류들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伊川 지도나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교정되어 있다. 지도 왼쪽의 外山面(山外面) 지역은 이천부 내에서 유일하게 예성강 유역에 속해 있는 곳이었다. (이기봉)

  • 이천부(伊川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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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이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왼쪽 가운데의 外山面은 山外面의 誤記이고, 읍치 아래쪽에는 乾川驛이 보라색 사각형만 그려져 있고 글씨는 생략되어 있다. 《광여도》에는 이 부분이 제대로 표기되어 있으며,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이천부 지도에도 올바르게 되어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필사 과정에서 오류를 범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천부는 본 지도에도 남북이 동서보다 길게 표현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길다. 일정한 크기의 사각형 안에 고을 전체를 그리다보니까 이런 문제점이 발생한 것이다. 위쪽에서 흘러와 아래쪽 兎山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임진강 상류이다. 그런데 임진강 상류 중 일부가 잘못 표현되어 있다. 임진강 본류는 가운데 위쪽의 安邊界에 있는 防墻峙 훨씬 북쪽에서 발원하여 내려오지만 본 지도에는 그와 같은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못하다. 임진강의 지류 중의 하나인 고미탄천은 오른쪽 古味呑面에서 발원하여 平康의 땅으로 들어간다. 평강의 땅을 지난 고미탄천은 다시 聽浦面으로 들어와 임진강에 합류된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고미탄면의 물이 바로 청포면 방면으로 흘러오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평강계 방면에서 청포면으로 하천이 흘러 들어오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고미탄면의 물이 바로 들어오는 것 같은 표현은 동일하다. 또한 읍치가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되면서 그 동쪽의 하천이 지나치게 길게 그려져 있다. 임진강 본류나 고미탄천에 비하면 이 하천은 아주 작게 그려져야 사실과 부합된다. 이런 오류들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伊川 지도나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교정되어 있다. 지도 왼쪽의 外山面(山外面) 지역은 이천부 내에서 유일하게 예성강 유역에 속해 있는 곳이었다. (이기봉)

  • 인제현(獜蹄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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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인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 오른쪽의 瑞和縣이 《광여도》에는 瑞和面, 그 아래쪽의 嵐交驛이 嵐丈驛으로 되어 있다. 표현 양식은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인제현 지도에는 2개 모두 본 지도처럼 그려져 있다. 주기에는 瑞和面이 기록되어 있어 《해동지도》에 틀리게 기록된 것을 《광여도》의 필사 시에 수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읍치 위쪽의 加兒面村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고,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주기에는 이런 명칭의 面이 없어 본 지도와 《광여도》의 필사 시에 面이란 글자 때문에 잘못 이해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도 이 지명이 나오지만 본 지도와 《광여도》에 사용된 面의 기호가 일괄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지도는 서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의 산줄기가 서북쪽으로부터 뻗어 내렸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읍치를 지나 왼쪽(서남)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소양강이다. 아래쪽(동남)에서 흘러와 읍치에서 소양강에 합류되는 하천이 내린천이고, 오른쪽 위의 高城界에서 흘러오는 하천이 현재의 인복천이다. 내린천 방면에는 《해동지도》에 麒麟界란 명칭이 적혀 있지만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적혀 있지 않다. 여기서 麒麟이란 춘천의 越境地였던 麒麟面을 의미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春川界라고 적는 것이 더 합당하다. 기타 北面은 嵐交驛 방면에 적어 넣는 것이 사실에 더 가깝다. (이기봉)

  • 인제현(獜蹄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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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인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 오른쪽의 瑞和縣이 《광여도》에는 瑞和面, 그 아래쪽의 嵐交驛이 嵐丈驛으로 되어 있다. 표현 양식은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인제현 지도에는 2개 모두 본 지도처럼 그려져 있다. 주기에는 瑞和面이 기록되어 있어 《해동지도》에 틀리게 기록된 것을 《광여도》의 필사 시에 수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읍치 위쪽의 加兒面村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고,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주기에는 이런 명칭의 面이 없어 본 지도와 《광여도》의 필사 시에 面이란 글자 때문에 잘못 이해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도 이 지명이 나오지만 본 지도와 《광여도》에 사용된 面의 기호가 일괄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지도는 서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의 산줄기가 서북쪽으로부터 뻗어 내렸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읍치를 지나 왼쪽(서남)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소양강이다. 아래쪽(동남)에서 흘러와 읍치에서 소양강에 합류되는 하천이 내린천이고, 오른쪽 위의 高城界에서 흘러오는 하천이 현재의 인복천이다. 내린천 방면에는 《해동지도》에 麒麟界란 명칭이 적혀 있지만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적혀 있지 않다. 여기서 麒麟이란 춘천의 越境地였던 麒麟面을 의미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春川界라고 적는 것이 더 합당하다. 기타 北面은 嵐交驛 방면에 적어 넣는 것이 사실에 더 가깝다. (이기봉)

  • 정선군(旌善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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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정선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오른쪽에는 三涉界가 2개 적혀 있는데, 三陟界에 대한 誤記이다. 주기에는 동쪽으로 三陟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것으로 적혀 있어 본 지도 필사 시의 실수라고 볼 수 있다. 위쪽의 江陵界에서 들어와 아래쪽의 平昌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남한강의 상류로서 현재는 동강 또는 조양강이라 불리고 있다. 읍치 부분이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되어 있지만 江陵界로부터 흘러오는 조양강의 유로는 실제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현재의 평창군 진부면에서 들어오는 오대천, 강릉시 왕산면에서 들어오는 송천, 정선군 임계면에서 들어오는 임계천의 방향이 대략 비슷하게 되어 있다. 평창군 진부면과 정선군 임계면은 조선시대에 모두 강릉부의 땅이었다. 다만 본 지도에서는 정성군 임계면에서 들어오는 임계천 부분에 三涉(陟)界가 잘못 적혀 있다. 이 점은 《광여도》에도 동일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정선군 지도에는 이 부분에 삼척계가 적혀 있지 않다. 아마 본 지도나 《광여도》의 필사 시에 주기를 토대로 삽입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러한 오류는 정확성을 추구한 《조선지도》의 정선과 삼척 지도, 김정호의 《동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면서 몇 가지 왜곡이 발생하고 있다. 南面에 있는 하천은 현재의 동남천으로 현재의 정선군 남면과 사북읍, 고한읍 지역이다. 瓦坪이라 적혀 있는 곳의 하천은 현재의 정선군 동면에 있는 하천이다. 이 두 하천은 고을 전체의 입장에서 볼 때 동남쪽으로 튀어나가 있다. 그러나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다보니 그런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읍치 오른쪽의 東面은 瓦坪 부근에 적어 넣어야 사실에 부합된다. 오른쪽 아래에 적혀 있는 安東界는 잘못된 것이다. 정선군은 안동과 경계를 접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安東界를 만날 수 있을 뿐이다. 《조선지도》의 정선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는 이런 오류가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 정선군(旌善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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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정선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오른쪽에는 三涉界가 2개 적혀 있는데, 三陟界에 대한 誤記이다. 주기에는 동쪽으로 三陟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것으로 적혀 있어 본 지도 필사 시의 실수라고 볼 수 있다. 위쪽의 江陵界에서 들어와 아래쪽의 平昌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남한강의 상류로서 현재는 동강 또는 조양강이라 불리고 있다. 읍치 부분이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되어 있지만 江陵界로부터 흘러오는 조양강의 유로는 실제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현재의 평창군 진부면에서 들어오는 오대천, 강릉시 왕산면에서 들어오는 송천, 정선군 임계면에서 들어오는 임계천의 방향이 대략 비슷하게 되어 있다. 평창군 진부면과 정선군 임계면은 조선시대에 모두 강릉부의 땅이었다. 다만 본 지도에서는 정성군 임계면에서 들어오는 임계천 부분에 三涉(陟)界가 잘못 적혀 있다. 이 점은 《광여도》에도 동일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정선군 지도에는 이 부분에 삼척계가 적혀 있지 않다. 아마 본 지도나 《광여도》의 필사 시에 주기를 토대로 삽입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러한 오류는 정확성을 추구한 《조선지도》의 정선과 삼척 지도, 김정호의 《동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면서 몇 가지 왜곡이 발생하고 있다. 南面에 있는 하천은 현재의 동남천으로 현재의 정선군 남면과 사북읍, 고한읍 지역이다. 瓦坪이라 적혀 있는 곳의 하천은 현재의 정선군 동면에 있는 하천이다. 이 두 하천은 고을 전체의 입장에서 볼 때 동남쪽으로 튀어나가 있다. 그러나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다보니 그런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읍치 오른쪽의 東面은 瓦坪 부근에 적어 넣어야 사실에 부합된다. 오른쪽 아래에 적혀 있는 安東界는 잘못된 것이다. 정선군은 안동과 경계를 접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安東界를 만날 수 있을 뿐이다. 《조선지도》의 정선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는 이런 오류가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 철원부(鐵原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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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철원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왼쪽 위에 있는 積石倉은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철원부 지도뿐만 아니라 《광여도》에도 積石寺로 나온다. 지리지의 여러 기록을 참고해 볼 때 본 지도가 잘못된 것이다. 왼쪽 아래에는 평안도에 있는 博川의 명칭이 博川界로 나온다. 《해동지도》에는 같은 곳에 漣川界로 나오고 있는데 후자가 정확하다. 오른쪽의 險屹面은 險屹津을, 그 왼쪽의 孤石松은 孤石亭을 잘못 적은 것이다. 그 아래쪽의 豊田驛에는 본 지도책의 강원도 부분에서 驛에 일관되게 적용하던 보라색 사각형의 기호가 생략되어 있다. 이런 실수들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게 점검하면서 필사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광여도》는 본 지도에 비해 잘못 필사한 것이 거의 없다. 오른쪽 平康界와 金化界에서 들어와 永平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한탄강이다. 왼쪽의 하천들은 임진강의 지류인 역곡천이다. 읍치가 다른 지역에 비해 약간 확대되어 그려졌지만 하천을 비롯하여 전반적으로 고을의 실제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는 편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철원부가 세로로 긴 사각형에 그려도 큰 왜곡이 없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이기봉)

  • 철원부(鐵原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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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철원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왼쪽 위에 있는 積石倉은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철원부 지도뿐만 아니라 《광여도》에도 積石寺로 나온다. 지리지의 여러 기록을 참고해 볼 때 본 지도가 잘못된 것이다. 왼쪽 아래에는 평안도에 있는 博川의 명칭이 博川界로 나온다. 《해동지도》에는 같은 곳에 漣川界로 나오고 있는데 후자가 정확하다. 오른쪽의 險屹面은 險屹津을, 그 왼쪽의 孤石松은 孤石亭을 잘못 적은 것이다. 그 아래쪽의 豊田驛에는 본 지도책의 강원도 부분에서 驛에 일관되게 적용하던 보라색 사각형의 기호가 생략되어 있다. 이런 실수들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게 점검하면서 필사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광여도》는 본 지도에 비해 잘못 필사한 것이 거의 없다. 오른쪽 平康界와 金化界에서 들어와 永平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한탄강이다. 왼쪽의 하천들은 임진강의 지류인 역곡천이다. 읍치가 다른 지역에 비해 약간 확대되어 그려졌지만 하천을 비롯하여 전반적으로 고을의 실제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는 편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철원부가 세로로 긴 사각형에 그려도 큰 왜곡이 없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이기봉)

  • 춘천부(春川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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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춘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위쪽의 史呑內面과 北山外面, 아래쪽의 南內面은 다른 면보다 작은 노란색 사각형으로, 오른쪽 위의 麒麟面은 노란색이 없는 적황색의 사각형으로 표현되어 있다. 또한 아래쪽의 安保驛은 노란색에 보라색을 덧칠한 듯한 색의 흔적이 보인다. 마지막으로 읍치 위쪽에는 노란색 사각형은 그렸지만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다른 지도를 필사하면서 발생한 혼란이었다고 생각된다. 《광여도》에서는 기린면이 적혀 있지 않은 것을 제외하면 이런 혼란 없이 깨끗하게 그려져 있다. 표현 방식에서는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에도 이런 지명들은 모두 제대로 적혀 있다. 위쪽의 狼川界에서 들어와 아래쪽의 陽根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북한강 본류이다. 오른쪽 위의 獜蹄界에서 들어와 북한강에 합류되는 하천이 현재의 소양강이다. 그러나 두 하천의 유로는 실제와 다른 곳이 많다. 이렇게 된 이유는 첫째,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에 맞추는 과정에서 왜곡이 발생하였다. 둘째, 읍치 지역을 다른 지역보다 훨씬 크게 그렸기 때문에 왜곡이 발생하였다. 첫 번째 이유 때문에 파생된 문제 중의 하나가 오른쪽 위의 麒麟面에 대한 표현이다. 기린면은 실제로는 홍천과 인제의 땅을 넘어가 있는 월경지이다. 현재의 인제군 기린면과 상남면에 있었는데 본 지도에는 마치 소양강 유역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둘째의 이유 때문에 파생된 문제 중의 하나는 남쪽의 洪川界를 지나 홍천강에 합류되는 작은 지류들은 거의 표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춘천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런 점들이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 춘천부(春川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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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춘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위쪽의 史呑內面과 北山外面, 아래쪽의 南內面은 다른 면보다 작은 노란색 사각형으로, 오른쪽 위의 麒麟面은 노란색이 없는 적황색의 사각형으로 표현되어 있다. 또한 아래쪽의 安保驛은 노란색에 보라색을 덧칠한 듯한 색의 흔적이 보인다. 마지막으로 읍치 위쪽에는 노란색 사각형은 그렸지만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다른 지도를 필사하면서 발생한 혼란이었다고 생각된다. 《광여도》에서는 기린면이 적혀 있지 않은 것을 제외하면 이런 혼란 없이 깨끗하게 그려져 있다. 표현 방식에서는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에도 이런 지명들은 모두 제대로 적혀 있다. 위쪽의 狼川界에서 들어와 아래쪽의 陽根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북한강 본류이다. 오른쪽 위의 獜蹄界에서 들어와 북한강에 합류되는 하천이 현재의 소양강이다. 그러나 두 하천의 유로는 실제와 다른 곳이 많다. 이렇게 된 이유는 첫째,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에 맞추는 과정에서 왜곡이 발생하였다. 둘째, 읍치 지역을 다른 지역보다 훨씬 크게 그렸기 때문에 왜곡이 발생하였다. 첫 번째 이유 때문에 파생된 문제 중의 하나가 오른쪽 위의 麒麟面에 대한 표현이다. 기린면은 실제로는 홍천과 인제의 땅을 넘어가 있는 월경지이다. 현재의 인제군 기린면과 상남면에 있었는데 본 지도에는 마치 소양강 유역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둘째의 이유 때문에 파생된 문제 중의 하나는 남쪽의 洪川界를 지나 홍천강에 합류되는 작은 지류들은 거의 표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춘천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런 점들이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 통천군(通川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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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통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에 있는 巨登驛은 《광여도》에 巨豊驛으로 나온다. 표현 방식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통천군 지도에서도 《광여도》처럼 나온다. 읍치 동남쪽 해안가에는 《광여도》와 《해동지도》에 있는 鉢里峯, 廣野川橋, 阿干里 등의 지명이 생략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본 지도가 《광여도》에 비해 오기와 생략의 오류를 범하고 있고, 표현 양식이나 글씨체가 거친 편이다. 통천군은 동서의 폭보다 남북의 폭이 훨씬 길다. 본 지도에도 동서보다 남북이 길게 표현되어 있지만 실제적인 비율은 더 크다.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그리다보니까 실제적인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동쪽의 해안가는 서북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남북 직선의 형태를 취한 것처럼 되어 있다. 하천 역시 정동 방향을 취하지 않은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만으로는 그와 같은 사실을 확인하기 어렵다. 주기의 형식과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하며, 《해동지도》와는 형식은 다르지만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이기봉)

  • 통천군(通川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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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통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에 있는 巨登驛은 《광여도》에 巨豊驛으로 나온다. 표현 방식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통천군 지도에서도 《광여도》처럼 나온다. 읍치 동남쪽 해안가에는 《광여도》와 《해동지도》에 있는 鉢里峯, 廣野川橋, 阿干里 등의 지명이 생략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본 지도가 《광여도》에 비해 오기와 생략의 오류를 범하고 있고, 표현 양식이나 글씨체가 거친 편이다. 통천군은 동서의 폭보다 남북의 폭이 훨씬 길다. 본 지도에도 동서보다 남북이 길게 표현되어 있지만 실제적인 비율은 더 크다.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그리다보니까 실제적인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동쪽의 해안가는 서북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남북 직선의 형태를 취한 것처럼 되어 있다. 하천 역시 정동 방향을 취하지 않은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만으로는 그와 같은 사실을 확인하기 어렵다. 주기의 형식과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하며, 《해동지도》와는 형식은 다르지만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이기봉)

  • 평강현(平康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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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평강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西面 부근에 新山城이 표시되어 있는데, 《광여도》에는 新城山으로 나온다. 표현 양식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평강현 지도에는 《광여도》와 동일하게 나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보인다. 본 지도에는 하천의 표시가 상당히 부정확하게 되어 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위쪽에 있는 분수령의 실제 위치가 잘못 비정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分水嶺이 훨씬 아래쪽으로, 그리고 오른쪽으로 옮겨 표시해야 한다. 분수령 위쪽의 하천은 안변을 거쳐 동해로 빠져나가는 남대천으로 상류의 일부가 평강현에 걸쳐 있었다. 분수령이 너무 북쪽으로 올라가 있기 때문에 여기서 발원하여 安峽界로 빠져나가는 현재의 평안천이 지나치게 길게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한편으로 위쪽의 伊川界로 흘러나가는 현재의 고미탄천을 지나치게 작게 표현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평강현에 걸쳐 있었던 고미탄천 유역의 실제 면적은 평안천 유역보다 더 넓다. 이로 인해 고미탄천 유역에 배치되어야 할 楡津面과 大田面, 高揷面 등이 평안천 유역에 표시되어 있다. 읍치 오른쪽의 하천은 현재의 한탄강 상류인데 유역 면적이 역시 너무 넓게 표시되어 있다. 이 역시 분수령이 지나치게 북쪽으로 올라가 있고, 이 하천의 발원지를 분수령 가까이 배치하려 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평강현에 걸쳐 있는 실제 유역 면적은 고미탄천 유역보다 작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평강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런 부분들이 모두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 평강현(平康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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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평강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西面 부근에 新山城이 표시되어 있는데, 《광여도》에는 新城山으로 나온다. 표현 양식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평강현 지도에는 《광여도》와 동일하게 나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보인다. 본 지도에는 하천의 표시가 상당히 부정확하게 되어 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위쪽에 있는 분수령의 실제 위치가 잘못 비정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分水嶺이 훨씬 아래쪽으로, 그리고 오른쪽으로 옮겨 표시해야 한다. 분수령 위쪽의 하천은 안변을 거쳐 동해로 빠져나가는 남대천으로 상류의 일부가 평강현에 걸쳐 있었다. 분수령이 너무 북쪽으로 올라가 있기 때문에 여기서 발원하여 安峽界로 빠져나가는 현재의 평안천이 지나치게 길게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한편으로 위쪽의 伊川界로 흘러나가는 현재의 고미탄천을 지나치게 작게 표현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평강현에 걸쳐 있었던 고미탄천 유역의 실제 면적은 평안천 유역보다 더 넓다. 이로 인해 고미탄천 유역에 배치되어야 할 楡津面과 大田面, 高揷面 등이 평안천 유역에 표시되어 있다. 읍치 오른쪽의 하천은 현재의 한탄강 상류인데 유역 면적이 역시 너무 넓게 표시되어 있다. 이 역시 분수령이 지나치게 북쪽으로 올라가 있고, 이 하천의 발원지를 분수령 가까이 배치하려 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평강현에 걸쳐 있는 실제 유역 면적은 고미탄천 유역보다 작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평강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런 부분들이 모두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 평창군(平昌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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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평창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평창군 지도도 표현 방식이 다르지만 내용과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다만 《해동지도》가 남북보다는 동서가 긴 형태를 취하고 있는 방면에 본 지도와 《광여도》는 동서보다는 남북이 길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에서 가장 잘못된 것은 하천의 유로 표시이다. 우선 읍치를 휘감아 돌아 아래의 原州界 방면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평창강이다. 이 하천은 실제로는 위쪽의 梨峴(뱃재) 바로 왼쪽의 江陵界로부터 흘러들어와 北面을 거쳐 읍치를 향해야 한다. 그리고 평창군의 서쪽(왼쪽)에는 江陵이 아니라 原州와 경계를 맞대고 있는데 본 지도에는 江陵界로 잘못 적혀 있다. 이러한 경계에 대한 오해가 평창강의 유입로를 잘못 이해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잘못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평창 지도에도 이어지며, 김정호의 《청구도》에도 교정되지 않고 그대로 나타난다. 김정호의 《동여도》와 《대동여지도》에 와서야 이 부분이 교정된다. 오른쪽의 하천은 현재의 동강이다. 동강은 실제로 오른쪽의 正善에서 흘러와 味呑面과 東面 사이를 가로질러 寧月界로 빠져나간다. 그런데 본 지도에서는 마치 평창에서 발원하여 영월계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미탄면과 동면은 읍치의 동남쪽 방향으로 쑥 튀어나간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런데 사각형의 종이 위에 그리다보니까 이런 모습이 상당히 왜곡되어 있다. 다만 이와 같은 오류가 《조선지도》나 김정호의 지도에까지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이기봉)

  • 평창군(平昌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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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평창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평창군 지도도 표현 방식이 다르지만 내용과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다만 《해동지도》가 남북보다는 동서가 긴 형태를 취하고 있는 방면에 본 지도와 《광여도》는 동서보다는 남북이 길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에서 가장 잘못된 것은 하천의 유로 표시이다. 우선 읍치를 휘감아 돌아 아래의 原州界 방면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평창강이다. 이 하천은 실제로는 위쪽의 梨峴(뱃재) 바로 왼쪽의 江陵界로부터 흘러들어와 北面을 거쳐 읍치를 향해야 한다. 그리고 평창군의 서쪽(왼쪽)에는 江陵이 아니라 原州와 경계를 맞대고 있는데 본 지도에는 江陵界로 잘못 적혀 있다. 이러한 경계에 대한 오해가 평창강의 유입로를 잘못 이해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잘못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평창 지도에도 이어지며, 김정호의 《청구도》에도 교정되지 않고 그대로 나타난다. 김정호의 《동여도》와 《대동여지도》에 와서야 이 부분이 교정된다. 오른쪽의 하천은 현재의 동강이다. 동강은 실제로 오른쪽의 正善에서 흘러와 味呑面과 東面 사이를 가로질러 寧月界로 빠져나간다. 그런데 본 지도에서는 마치 평창에서 발원하여 영월계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미탄면과 동면은 읍치의 동남쪽 방향으로 쑥 튀어나간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런데 사각형의 종이 위에 그리다보니까 이런 모습이 상당히 왜곡되어 있다. 다만 이와 같은 오류가 《조선지도》나 김정호의 지도에까지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이기봉)

  • 평해군(平海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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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평해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한자가 다른 경우는 위쪽의 懸鍾山이 《광여도》에 縣鍾山으로, 왼쪽 아래의 元水項은 元水頂으로 되어 있다.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여 《광여도》와 본 지도의 저본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해동지도》의 평해군 지도에는 懸鍾山과 元水嶺으로 나온다. 본 지도의 것이 《해동지도》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읍치 오른쪽에 있는 北下里面은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나오지만 주기에는 모두 下里面으로 나온다. 읍치를 다른 지역보다 확대해서 그렸기 때문에 일부 오해될 만한 곳이 발생했다. 읍치 아래쪽의 하천은 현재의 남대천이다. 그런데 왼쪽 아래의 元水項에서 발원되는 하천의 길이가 溫井에서 발원되는 하천과 길이가 거의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아주 짧게 표현되어 있다. 또한 南面은 남대천과 상관없는 위치인 箭竹山 부근에 있어야 한다. 고을의 모양이 사각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각형으로 그려 몇 가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측면도 있다. 위쪽의 金壯山부터 오른쪽 바닷가까지 蔚珍과의 경계선은 동서방향이 아니라 실제로는 동북 방향으로 되어 있다. 이에 따라 近北面과 遠北面 지역은 북쪽으로 갈수록 동서의 폭이 좁아지는데 본 지도에는 그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런 오류는 김정호의 《동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이기봉)

  • 평해군(平海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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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평해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한자가 다른 경우는 위쪽의 懸鍾山이 《광여도》에 縣鍾山으로, 왼쪽 아래의 元水項은 元水頂으로 되어 있다.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여 《광여도》와 본 지도의 저본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해동지도》의 평해군 지도에는 懸鍾山과 元水嶺으로 나온다. 본 지도의 것이 《해동지도》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읍치 오른쪽에 있는 北下里面은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나오지만 주기에는 모두 下里面으로 나온다. 읍치를 다른 지역보다 확대해서 그렸기 때문에 일부 오해될 만한 곳이 발생했다. 읍치 아래쪽의 하천은 현재의 남대천이다. 그런데 왼쪽 아래의 元水項에서 발원되는 하천의 길이가 溫井에서 발원되는 하천과 길이가 거의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아주 짧게 표현되어 있다. 또한 南面은 남대천과 상관없는 위치인 箭竹山 부근에 있어야 한다. 고을의 모양이 사각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각형으로 그려 몇 가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측면도 있다. 위쪽의 金壯山부터 오른쪽 바닷가까지 蔚珍과의 경계선은 동서방향이 아니라 실제로는 동북 방향으로 되어 있다. 이에 따라 近北面과 遠北面 지역은 북쪽으로 갈수록 동서의 폭이 좁아지는데 본 지도에는 그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런 오류는 김정호의 《동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이기봉)

  • 홍천현(洪川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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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홍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아래쪽의 歛依山面이 《광여도》에는 劒依山面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와 표현 양식에서는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홍천현 지도에는 釰依山面으로 되어 있다. 釰은 劒을 대신하여 한국에서 사용되는 한자였기 때문에 본 지도보다는 《광여도》가 올바르다. 주기에는 지도에 없는 奈村面과 芳面이 기록되어 있다. 《광여도》의 주기에는 이것이 奈村面과 北方面으로 되어 있고, 《해동지도》의 주기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지도에는 본 지도와 《광여도》에 禁村面과 北方面으로, 《해동지도》에 奈村面과 北方面으로 되어 있다. 《광여도》의 필사 시 《해동지도》의 지도를 필사하면서 주기에 잘못 적힌 芳面을 北方面으로 고쳤지만 지도에서는 ‘奈’를 ‘禁’으로 잘못 이해하는 오류도 범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의 작성자는 지도는 《광여도》의 것을 따르면서 주기는 《해동지도》의 것을 따른 것으로 생각된다. 동서가 남북보다 훨씬 고을의 모습을 반대로 남북이 동서보다 길게 표현하는 과정에서 여러 왜곡이 발생하였다. 읍치를 지나 왼쪽의 春川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홍천강이다. 홍천강의 상류에는 위쪽의 末村面에서 내려오는 현재의 장남천과 瑞石面에서 내려오는 현재의 내촌천이 있다. 이 중 내촌천이 장남천보다 훨씬 길지만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잘 표현되어 있지 않다. 이로 인해 面의 위치 표시에서 잘못 위치시킨 것이 있다. 化村面은 장남천과 내촌천이 만나는 지점에 표시되어야 하고, 禁村面(奈村面)은 화촌면 위치에 있어야 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홍천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는 대부분이 사실과 비슷하게 교정되어 있다. 다만 내촌면의 위치만은 본 지도처럼 실제와 다르게 표시되어 있다. (이기봉)

  • 홍천현(洪川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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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홍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아래쪽의 歛依山面이 《광여도》에는 劒依山面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와 표현 양식에서는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홍천현 지도에는 釰依山面으로 되어 있다. 釰은 劒을 대신하여 한국에서 사용되는 한자였기 때문에 본 지도보다는 《광여도》가 올바르다. 주기에는 지도에 없는 奈村面과 芳面이 기록되어 있다. 《광여도》의 주기에는 이것이 奈村面과 北方面으로 되어 있고, 《해동지도》의 주기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지도에는 본 지도와 《광여도》에 禁村面과 北方面으로, 《해동지도》에 奈村面과 北方面으로 되어 있다. 《광여도》의 필사 시 《해동지도》의 지도를 필사하면서 주기에 잘못 적힌 芳面을 北方面으로 고쳤지만 지도에서는 ‘奈’를 ‘禁’으로 잘못 이해하는 오류도 범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의 작성자는 지도는 《광여도》의 것을 따르면서 주기는 《해동지도》의 것을 따른 것으로 생각된다. 동서가 남북보다 훨씬 고을의 모습을 반대로 남북이 동서보다 길게 표현하는 과정에서 여러 왜곡이 발생하였다. 읍치를 지나 왼쪽의 春川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홍천강이다. 홍천강의 상류에는 위쪽의 末村面에서 내려오는 현재의 장남천과 瑞石面에서 내려오는 현재의 내촌천이 있다. 이 중 내촌천이 장남천보다 훨씬 길지만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잘 표현되어 있지 않다. 이로 인해 面의 위치 표시에서 잘못 위치시킨 것이 있다. 化村面은 장남천과 내촌천이 만나는 지점에 표시되어야 하고, 禁村面(奈村面)은 화촌면 위치에 있어야 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홍천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는 대부분이 사실과 비슷하게 교정되어 있다. 다만 내촌면의 위치만은 본 지도처럼 실제와 다르게 표시되어 있다. (이기봉)

  • 회양부(淮陽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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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회양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에 비해 잘못된 부분이 몇 개 보인다. 오른쪽 맨 위에는 ‘通杻川串界嶺’이라는 이해되기 어려운 문구가 보인다. 《해동지도》에서는 通川界와 杻串嶺이 위 아래로 적혀 있는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잘못 이해하여 난해한 문구로 바꿔놓은 것으로 생각된다. 《광여도》에서도 이 부분은 헷갈릴 수 있게 기록하였다. 읍치에 있는 德澤溟은 《해동지도》에 德津溟으로 적혀 있고, 《광여도》에는 후자처럼 기록되어 있다. 가운데에 있는 新安驛에는 驛의 기호인 보라색 사각형이 아니라 面의 기호인 노란색의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기도 하다. 《해동지도》에서는 이 부분이 올바르게 되어 있다. 읍치 왼쪽 아래에 있는 天宝菴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는데, 《광여도》에는 天實菴으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하다. 읍치를 휘감고 아래쪽의 金城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북한강 최상류이다. 금강산에서 발원하여 아래쪽의 楊口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북한강의 지류인 금강천이다. 그런데 금강천의 표현에서 오해할 수 있는 2가지 문제점이 발생되고 있다. 첫째, 회양부의 땅에 있는 금강천의 규모는 북한강 본류 유역에 비해 그렇게 작지도 않은데 지도에는 아주 작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읍치에서 볼 때 동남쪽으로 튀어나가 있는 금강천 유역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게 고을 전체의 모습을 그리면서 아주 작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둘째, 금강천은 남류하여 楊口界 방면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남류하다 서류하여 金城界로 빠져나간다. 이것은 금강천과 양구 방면으로 흘러나가는 문등면 지역의 작은 지류들을 혼동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기타 금강천 왼쪽에 적혀 있는 金城과 通溝라는 지명은 이 지역에 있었던 金城縣의 通溝面이라는 의미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회양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와 같은 측면이 사실에 가깝게 수정되어 있다. (이기봉)

  • 회양부(淮陽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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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회양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에 비해 잘못된 부분이 몇 개 보인다. 오른쪽 맨 위에는 ‘通杻川串界嶺’이라는 이해되기 어려운 문구가 보인다. 《해동지도》에서는 通川界와 杻串嶺이 위 아래로 적혀 있는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잘못 이해하여 난해한 문구로 바꿔놓은 것으로 생각된다. 《광여도》에서도 이 부분은 헷갈릴 수 있게 기록하였다. 읍치에 있는 德澤溟은 《해동지도》에 德津溟으로 적혀 있고, 《광여도》에는 후자처럼 기록되어 있다. 가운데에 있는 新安驛에는 驛의 기호인 보라색 사각형이 아니라 面의 기호인 노란색의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기도 하다. 《해동지도》에서는 이 부분이 올바르게 되어 있다. 읍치 왼쪽 아래에 있는 天宝菴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는데, 《광여도》에는 天實菴으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하다. 읍치를 휘감고 아래쪽의 金城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북한강 최상류이다. 금강산에서 발원하여 아래쪽의 楊口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북한강의 지류인 금강천이다. 그런데 금강천의 표현에서 오해할 수 있는 2가지 문제점이 발생되고 있다. 첫째, 회양부의 땅에 있는 금강천의 규모는 북한강 본류 유역에 비해 그렇게 작지도 않은데 지도에는 아주 작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읍치에서 볼 때 동남쪽으로 튀어나가 있는 금강천 유역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게 고을 전체의 모습을 그리면서 아주 작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둘째, 금강천은 남류하여 楊口界 방면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남류하다 서류하여 金城界로 빠져나간다. 이것은 금강천과 양구 방면으로 흘러나가는 문등면 지역의 작은 지류들을 혼동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기타 금강천 왼쪽에 적혀 있는 金城과 通溝라는 지명은 이 지역에 있었던 金城縣의 通溝面이라는 의미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회양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와 같은 측면이 사실에 가깝게 수정되어 있다. (이기봉)

  • 횡성현(橫城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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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횡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왼쪽 아래의 葛豊驛에 面의 색인 노란색을 칠했다가 驛의 색인 보라색을 덧칠한 것 같은 모습이 보인다. 《광여도》에는 이와 같은 오류가 나타나지 않는다. 갈풍역 위쪽의 加五峙는 《광여도》에 五加峙로 적혀 있다. 표현 양식은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횡성현 지도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본 지도와 《해동지도》의 것이 올바르며, 《광여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위쪽에 있는 松原面은 《광여도》에 松源面으로 되어 있으며, 《해동지도》에는 公根面으로 되어 있다. 《광여도》의 주기에는 공근면으로, 본 지도에는 송원면으로 되어 있다. 공근면이 맞는 것이기 때문에 광여도에서는 지도에서만 잘못되었던 것이 본 지도에서는 지도와 주기 모두 잘못되어 있다. 가장 위쪽의 泰坡山도 《광여도》에 동일하게 되어 있는데, 《해동지도》에는 泰歧山으로 되어 있다. 《해동지도》의 것이 옳으며, 본 지도와 《광여도》의 필사 시에 잘못 옮긴 것이다. 읍치 위쪽의 山頭鴻은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실제로는 鴻頭山이며, 이를 통해 한번 잘못 기록된 것이 이후의 필사 과정에서 교정되지 않았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이밖에 태기산은 실제로는 읍치의 거의 동쪽에 있는 것인데 마치 북쪽에 있는 것처럼 묘사되었다. 이에 따라 晴日面에서 내려오는 하천이 거의 南流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실제로는 태기산에서 발원하여 서류하다가 남류해야 한다. 이 하천은 지도  상의 前川보다 훨씬 긴 하천임에도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왜곡되어 있다. 甲川面의 위치도 청일면 방면에 적혀 있어야 한다. 맨 오른쪽의 하천은 주천강의 상류로서 영월로 흘러가 남한강에 합류된다. 이런 오류들의 근본적인 원인은 남북보다 동서가 긴 횡성현의 모습을 반대로 동서보다 남북이 길게 그리면서 발생한 것이다. (이기봉)

  • 횡성현(橫城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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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횡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왼쪽 아래의 葛豊驛에 面의 색인 노란색을 칠했다가 驛의 색인 보라색을 덧칠한 것 같은 모습이 보인다. 《광여도》에는 이와 같은 오류가 나타나지 않는다. 갈풍역 위쪽의 加五峙는 《광여도》에 五加峙로 적혀 있다. 표현 양식은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횡성현 지도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본 지도와 《해동지도》의 것이 올바르며, 《광여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위쪽에 있는 松原面은 《광여도》에 松源面으로 되어 있으며, 《해동지도》에는 公根面으로 되어 있다. 《광여도》의 주기에는 공근면으로, 본 지도에는 송원면으로 되어 있다. 공근면이 맞는 것이기 때문에 광여도에서는 지도에서만 잘못되었던 것이 본 지도에서는 지도와 주기 모두 잘못되어 있다. 가장 위쪽의 泰坡山도 《광여도》에 동일하게 되어 있는데, 《해동지도》에는 泰歧山으로 되어 있다. 《해동지도》의 것이 옳으며, 본 지도와 《광여도》의 필사 시에 잘못 옮긴 것이다. 읍치 위쪽의 山頭鴻은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실제로는 鴻頭山이며, 이를 통해 한번 잘못 기록된 것이 이후의 필사 과정에서 교정되지 않았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이밖에 태기산은 실제로는 읍치의 거의 동쪽에 있는 것인데 마치 북쪽에 있는 것처럼 묘사되었다. 이에 따라 晴日面에서 내려오는 하천이 거의 南流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실제로는 태기산에서 발원하여 서류하다가 남류해야 한다. 이 하천은 지도  상의 前川보다 훨씬 긴 하천임에도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왜곡되어 있다. 甲川面의 위치도 청일면 방면에 적혀 있어야 한다. 맨 오른쪽의 하천은 주천강의 상류로서 영월로 흘러가 남한강에 합류된다. 이런 오류들의 근본적인 원인은 남북보다 동서가 긴 횡성현의 모습을 반대로 동서보다 남북이 길게 그리면서 발생한 것이다. (이기봉)

  • 흡곡현(歙谷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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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흡곡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흡곡현은 일제시대의 통천군 흡곡면에 해당되는 아주 작은 군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고을과 동일한 크기의 종이 위에 그렸기 때문에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없다. 다만 주기에 호수가 겨우 778호밖에 기록되지 않아 작은 고을임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또한 고을의 서쪽은 아주 좁고, 동쪽으로 갈수록 넓은데 사각형의 종이에 맞게 그리면서 서쪽 역시 넓은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또한 남북의 폭보다 동서의 폭이 훨씬 넓음에도 불구하고 반대로 그려져 있다. 지도 위쪽에는 大路와 小路란 문구가 보이고 있다. 표현 양식이 다르나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흡곡현 지도에는 도로가 그려져 있고, 그 위에 대로와 소로의 문구가 적혀 있다. 본 지도와 《광여도》 등에서는 도로는 생략하고 문구만 남겨놓아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어놓았다. (이기봉)

  • 흡곡현(歙谷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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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흡곡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흡곡현은 일제시대의 통천군 흡곡면에 해당되는 아주 작은 군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고을과 동일한 크기의 종이 위에 그렸기 때문에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없다. 다만 주기에 호수가 겨우 778호밖에 기록되지 않아 작은 고을임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또한 고을의 서쪽은 아주 좁고, 동쪽으로 갈수록 넓은데 사각형의 종이에 맞게 그리면서 서쪽 역시 넓은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또한 남북의 폭보다 동서의 폭이 훨씬 넓음에도 불구하고 반대로 그려져 있다. 지도 위쪽에는 大路와 小路란 문구가 보이고 있다. 표현 양식이 다르나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흡곡현 지도에는 도로가 그려져 있고, 그 위에 대로와 소로의 문구가 적혀 있다. 본 지도와 《광여도》 등에서는 도로는 생략하고 문구만 남겨놓아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어놓았다. (이기봉)

  • 금천현(衿川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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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금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본 지도는 아래쪽의 한강을 《광여도》에서 2개의 실선으로 표시한 것과 달리 1개의 실선으로만 표시해 혼란을 주고 있다. 읍치를 둘러싼 산줄기의 표현 양식도 《광여도》와 약간 다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금천현 지도도 표현 방법과 내용에서의 일부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구도는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위쪽의 果川界에서 들어오는 하천이 현재의 안양천이며, 왼쪽 중간의 北紫霞洞에서 내려오는 것이 현재의 도림천이다. 북자하동에는 현재 서울대학교가 들어서 있다. 고을의 통일성과 읍치의 풍수적 명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산지를 배치하였지만 대략적인 방향과 위치는 정확한 편이다. (이기봉)

  • 결성현(結城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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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결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 오른쪽에 표시된 風流島와 위쪽에 표시된 銀河峯 및 碧蹄山은 《광여도》에 없는 지명이다. 이런 지명들은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결성현 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광여도》의 제작자가 생략한 것을 본 지도의 제작자가 《해동지도》를 참조하여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의 제작자도 風流島를 2개나 적어 넣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본 고을로 들어오는 산줄기가 동쪽으로부터 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모든 방향이 정확하게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주변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 오류가 보이고 있다. 왼쪽에 보이는 海美界는 실제와 부합되지 않는 것이다. 결성현은 북쪽(왼쪽)으로 洪州와만 경계를 맞대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여지도서』에도 해미와 경계를 맞대고 있다는 기록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의 주기에는 북쪽으로 해미와 경계를 맞대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런 오류는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해동지도》의 海美界는 도로가 표시된 끝 방향에 있다.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도로 끝에 표시된 ‘○○界’가 경계가 아니라 그 도로를 따라가면 경계가 나온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해미계는 바로 이런 의미였는데 《해동지도》의 제작자가 마치 해미와 경계를 맞대고 있는 것처럼 잘못 이해하였고,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는 그것을 그대로 따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결성현의 서쪽은 현재의 천수만으로 모두 바다에 접해 있다. 그런데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바다는 본 고을의 서북쪽 일부에만 있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이런 문제점이 발생한 것은 읍치 지역을 다른 지역보다 크게 그렸기 때문이다. 오른쪽의 風流島로부터 巢許島까지의 거리와 소허도에서 龍臥川이 바다로 들어가는 지점까지의 거리는 실제로는 비슷하다. 그런데 본 지도에서는 전자가 후자의 2배 이상으로 표현되어 있어 서쪽으로 바다를 접한 후자 부분이 상대적으로 작아지게 된 것이다. (이기봉)

  • 강진현(康津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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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강진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兵營 왼쪽의 烈村面과 읍치 오른쪽의 軍需面이 《광여도》에는 각각 烈樹面과 軍營面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의 주기에는 列樹面과 軍營面으로 되어 있고, 《광여도》의 주기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광여도》를 필사하면서 誤記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강진현 지도에는 지도와 주기 모두 본 지도의 주기처럼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의 주기에는 縣內面이 있지만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광여도》 역시 동일하게 되어 있는데, 《해동지도》에는 지도와 주기에 모두 현내면이 표시되어 있다. 이 점은 《광여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추정되며, 본 지도의 필사자 역시 《광여도》의 내용을 교정 없이 그대로 따른 것으로 생각된다. 강진현에 있었던 全羅道兵馬節度使營인 兵營과 邑治 및 鎭堡를 강조하여 그렸다. 고을은 전체적으로 동서보다 남북이 훨씬 길지만 지도에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그렸다. 특히 바다에서 읍치까지의 거리가 읍치에서부터 북쪽 靈岩界까지의 거리와 거의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훨씬 짧은 것처럼 그렸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동서나 남북의 실제 폭에 상관없이 고을 전체를 꽉 차게 그렸기 때문이다. 바다에 있는 섬 역시 실제의 크기가 약간 고려되기는 했지만 위치나 거리는 실제를 반영하고 있지 않다. 예를 들어 靑山島는 薪智島보다 해안가에서 몇 배나 멀리 떨어져 있다. (이기봉)

  • 7 신령현(新寧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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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신령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그러나 《해동지도》는 세로(남북)를 가로(동서)보다 더 길게 그렸고, 본 지도는 반대로 표현하였다. 이 과정에서 하천의 흐름이 세로는 상대적으로 길게, 가로는 짧게 그려져 있다. 고을의 실제적인 모습은 남북보다는 동서가 길게 되어 있어 《해동지도》가 사실에 가깝다. 본 지도는 세로로 긴 일정한 크기의 종이에 맞추어 지도를 그렸기 때문에 그로 인한 왜곡을 피할 수 없었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수록되어 있지만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런 측면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약간의 변화를 준 것으로 추정된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다보니까 몇 가지 왜곡이 발생하였다. 신령현의 서쪽의 남북 폭은 동쪽에 비해 훨씬 좁지만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예를 들어 왼쪽 위의 雉山面은 오른쪽 위의 新村面보다 훨씬 남쪽에 있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아래쪽의 南面은 영천의 경계를 넘어 현재의 경산시 와촌면 서쪽 부분에 있었던 신령현의 월경지였다. 아래쪽에 永川界와 河陽界가 연속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은 이런 사실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南面을 잘못 이해하고 그린 것은 이미 《해동지도》에서 시작되었다. 남면은 梨旨縣面과 동일한 지역을 가리킨다. 《해동지도》의 주기에는 이지현면이 적혀 있고, 南面 역시 가장 끝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남면에는 다른 면과 달리 초경과 종경이 적혀 있지 않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은 지도를 그릴 때와 주기를 적을 때가 달랐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즉, 지도를 그릴 때는 남면으로 했다가 주기를 적을 때는 이지현면으로 바꾸었다고 생각된다. 《해동지도》의 주기 작성자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지도에 있는 남면을 주기에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의 주기에는 이지현면은 있지만 남면은 생략되어 있다. (이기봉)

  • 가산군(嘉山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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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가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가산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의 정보가 증가하였고, 그 이외 지역의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볼 때 읍치의 정보는 《해동지도》 이외의 자료를 참고하여 첨가한 것으로 보인다. 《해동지도》의 지명과 비교해 보면 본 지도의 것이 다르게 기록된 것도 있다. 예를 들어 왼쪽 아래의 乫亍洞은 《해동지도》에 乫亍浦로 되어 있다. 《광여도》에는 이 지명이 《해동지도》처럼 되어 있다. 오른쪽의 ‘古城鎭安陵淸川江’이 《해동지도》에는 서로 분리되어 있고, 특히 ‘安陵淸川江(안주의 청천강이란 뜻)’은 청천강변을 따라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에는 모두 붙여 기록하여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다른 面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는데, 왼쪽의 西面은 글씨만 적어놓은 실수도 보이고 있다. 또한 오른쪽의 大定江(현재의 대령강)이 泰川界에서 흘러 들어오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다만 하구 부분에 대정강의 발원지와 유로에 대한 정보를 적어놓아 보완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해동지도》에는 대정강이 태천계에서 흘러 들어오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가산군의 모습은 북쪽(위) 경계는 넓고, 남쪽(아래) 끝은 삼각형의 꼭지점처럼 되어 있다. 이런 모양을 사각형으로 그리다 보니 북쪽에 비해 남쪽이 상대적으로 넓게 그려져 있다. 예를 들어 왼쪽의 長水灘 하구와 오른쪽의 大定江 하구는 실제로는 꼭지점같이 거의 붙어 있다. 이런 지역을 북쪽 부분과 비슷한 거리로 그림에 따라 상당한 왜곡이 발생하였다. (이기봉)

  • 간성군(杆城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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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간성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간성군 지도도 표현 양식은 다르나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비슷하다. 본 지도의 아래쪽에는 襄陽面이 적혀 있는데,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해동지도》에는 襄陽界라고 적혀 있어 본 지도와 《광여도》가 잘못 필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본 지도나 《광여도》 중의 하나가 다른 하나를 필사하면서 확인 작업을 하지 않았음도 이해할 수 있다. 본 지도에는 간성군이 마치 사각형을 이룬 것처럼 그려져 있다. 그러나 郡內面에서 북쪽으로 갈수록 동서의 폭이 점점 좁아지다가 高城界 부근에서는 거의 삼각형의 끝 모양처럼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高城과의 경계선이 마치 동서로 길게 되어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또한 향교로부터 高城界까지의 거리와 아래쪽 襄陽界까지의 거리가 거의 같다. 이렇게 그려진 이유는 사각형의 종이에 맞게 군현의 모습을 맞추려 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縣內面에 있는 하천은 동류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東北流하여 바다로 빠져나간다. 이와 같은 오류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간성 지도에서 일부 교정되며,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거의 실제와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경기도
  • 금천현(衿川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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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금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본 지도는 아래쪽의 한강을 《광여도》에서 2개의 실선으로 표시한 것과 달리 1개의 실선으로만 표시해 혼란을 주고 있다. 읍치를 둘러싼 산줄기의 표현 양식도 《광여도》와 약간 다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금천현 지도도 표현 방법과 내용에서의 일부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구도는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위쪽의 果川界에서 들어오는 하천이 현재의 안양천이며, 왼쪽 중간의 北紫霞洞에서 내려오는 것이 현재의 도림천이다. 북자하동에는 현재 서울대학교가 들어서 있다. 고을의 통일성과 읍치의 풍수적 명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산지를 배치하였지만 대략적인 방향과 위치는 정확한 편이다. (이기봉)

  • 금천현(衿川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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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금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본 지도는 아래쪽의 한강을 《광여도》에서 2개의 실선으로 표시한 것과 달리 1개의 실선으로만 표시해 혼란을 주고 있다. 읍치를 둘러싼 산줄기의 표현 양식도 《광여도》와 약간 다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금천현 지도도 표현 방법과 내용에서의 일부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구도는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위쪽의 果川界에서 들어오는 하천이 현재의 안양천이며, 왼쪽 중간의 北紫霞洞에서 내려오는 것이 현재의 도림천이다. 북자하동에는 현재 서울대학교가 들어서 있다. 고을의 통일성과 읍치의 풍수적 명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산지를 배치하였지만 대략적인 방향과 위치는 정확한 편이다. (이기봉)

  • 가평군(加平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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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가평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지도 왼쪽에 春川界를 春山界로, 加平川을 加平界로 잘못 적었다는 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가평군 지도는 표현 방식이나 일부 내용에서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하여 상호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본 지도와 《광여도》가 서남쪽을 위로 향해 그린 반면 《해동지도》는 읍치로 뻗은 산줄기가 오는 방향인 正西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따라서 본 지도를 왼쪽으로 90도 정도 돌리면 《해동지도》의 것과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동일해 진다. 『여지도서』의 가평군 지도는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좀 다르기는 하지만 서남쪽을 위로 향해 그린 점은 동일하다. 왜 서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는지 분명하지는 않으나 王室의 胎가 묻힌 胎峯이 같은 방향에 있는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은가 추정된다. 왼쪽의 昭陽江下流라고 적혀 있는 부분에서 들어와 오른쪽 위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북한강이다. 실제로는 북한강의 굴곡이 본 지도보다 훨씬 많이 형성되어 있다. 아래쪽 오른쪽에는 永平界가 巨林川 상류에 적혀 있다. 현재의 가평천 상류에 있는 북면의 적목리 부근이 영평 땅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 가평군(加平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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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가평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지도 왼쪽에 春川界를 春山界로, 加平川을 加平界로 잘못 적었다는 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가평군 지도는 표현 방식이나 일부 내용에서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하여 상호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본 지도와 《광여도》가 서남쪽을 위로 향해 그린 반면 《해동지도》는 읍치로 뻗은 산줄기가 오는 방향인 正西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따라서 본 지도를 왼쪽으로 90도 정도 돌리면 《해동지도》의 것과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동일해 진다. 『여지도서』의 가평군 지도는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좀 다르기는 하지만 서남쪽을 위로 향해 그린 점은 동일하다. 왜 서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는지 분명하지는 않으나 王室의 胎가 묻힌 胎峯이 같은 방향에 있는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은가 추정된다. 왼쪽의 昭陽江下流라고 적혀 있는 부분에서 들어와 오른쪽 위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북한강이다. 실제로는 북한강의 굴곡이 본 지도보다 훨씬 많이 형성되어 있다. 아래쪽 오른쪽에는 永平界가 巨林川 상류에 적혀 있다. 현재의 가평천 상류에 있는 북면의 적목리 부근이 영평 땅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 강화부(江華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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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강화부 지도와 구도 및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오른쪽 여백에 도성에서 강화까지 오는데 걸리는 날짜가, 위쪽에 강화부의 異稱들이 적혀 있는 것이 다른 점이다. 지도의 명칭은 江華府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京畿水營이 있었던 喬同府를 함께 그렸다. 특이하게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왼쪽 아래에 한강에 대해 이 지역에서 부르던 祖江이 적혀 있다. 성곽은 이중의 실선으로 그렸다. 다만 강화도의 서해안 즉, 이 지도의 왼쪽 부분에만 해안가에 성곽이 축조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섬 전체에 성곽이 축조되어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강화도의 해안가에는 종3품의 僉使, 종4품의 萬戶, 종9품의 別將 등 파견된 무관의 직급에 따라 鎭, 戶, 別 등으로 구분된 鎭堡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天登寺가 있는 곳은 현재의 정족산성이며, 月串鎭 맞은편은 文殊山城이다. 강화도와 육지 사이의 수로는 삼남의 稅穀船이 서울로 가기 위해 꼭 통과해야 하는 鹽河이다. 지도에도 위쪽에는 三南往來水口, 아래쪽에는 京城往來水口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바다에는 밀물(潮進)과 썰물(潮退)에 따라 개벌이 바뀌는 상황이 상대적으로 자세히 적혀 있다. 또한 각 섬에는 江 또는 江華로 표시된 江華府와 本營 또는 水營으로 표시된 喬同府 중 어디에 속해 있는가가 자세히 적혀 있다. 이 지역의 섬들이 거리나 방향에 상관없이 속해 있는 고을이 달랐기 때문이다. 강화도 오른쪽의 섬은 현재의 석모도이다. 현재는 간척 사업에 의해 鷹岩島와 그 위쪽의 섬도 모두 연결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도 이곳에 간척사업이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이 지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水營屬新官筒’에서 ‘筒’은 주로 간척지에서 저수지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용어이다. 그 왼쪽에 호수처럼 표시된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며, 屯田은 이러한 간척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 갯벌은 주로 소금의 생산지로 이용되었다. 塩盆과 塩釜는 그러한 煮鹽 생산지를 의미한다. (이기봉)

  • 강화부(江華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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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강화부 지도와 구도 및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오른쪽 여백에 도성에서 강화까지 오는데 걸리는 날짜가, 위쪽에 강화부의 異稱들이 적혀 있는 것이 다른 점이다. 지도의 명칭은 江華府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京畿水營이 있었던 喬同府를 함께 그렸다. 특이하게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왼쪽 아래에 한강에 대해 이 지역에서 부르던 祖江이 적혀 있다. 성곽은 이중의 실선으로 그렸다. 다만 강화도의 서해안 즉, 이 지도의 왼쪽 부분에만 해안가에 성곽이 축조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섬 전체에 성곽이 축조되어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강화도의 해안가에는 종3품의 僉使, 종4품의 萬戶, 종9품의 別將 등 파견된 무관의 직급에 따라 鎭, 戶, 別 등으로 구분된 鎭堡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天登寺가 있는 곳은 현재의 정족산성이며, 月串鎭 맞은편은 文殊山城이다. 강화도와 육지 사이의 수로는 삼남의 稅穀船이 서울로 가기 위해 꼭 통과해야 하는 鹽河이다. 지도에도 위쪽에는 三南往來水口, 아래쪽에는 京城往來水口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바다에는 밀물(潮進)과 썰물(潮退)에 따라 개벌이 바뀌는 상황이 상대적으로 자세히 적혀 있다. 또한 각 섬에는 江 또는 江華로 표시된 江華府와 本營 또는 水營으로 표시된 喬同府 중 어디에 속해 있는가가 자세히 적혀 있다. 이 지역의 섬들이 거리나 방향에 상관없이 속해 있는 고을이 달랐기 때문이다. 강화도 오른쪽의 섬은 현재의 석모도이다. 현재는 간척 사업에 의해 鷹岩島와 그 위쪽의 섬도 모두 연결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도 이곳에 간척사업이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이 지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水營屬新官筒’에서 ‘筒’은 주로 간척지에서 저수지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용어이다. 그 왼쪽에 호수처럼 표시된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며, 屯田은 이러한 간척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 갯벌은 주로 소금의 생산지로 이용되었다. 塩盆과 塩釜는 그러한 煮鹽 생산지를 의미한다. (이기봉)

  • 경기도(京畿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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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안선이나 하천의 유로 및 산줄기 등 전체적인 구도는 도성도와 마찬가지로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경기도 지도와 거의 비슷하여 상호 연관성이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주기면의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하다. 그러나 수록된 정보의 양이라는 측면에서는 《광여도》보다 축소되고 있으며, 일부 부분은 올바르게 되어 있다. 일단 축소된 내용을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모두 생략된 내용으로는 해안가에 설치되어 있던 鎭堡가 있다. 이밖에도 종6품의 察訪이 파견된 찰방역 중 良才驛이 표시되어 있지 않으며, 한성부 밑의 한강 부분에 있었던 浦口와 津渡, 烽燧 등도 많이 생략되었다. 반면에 陵墓, 書院 등은 일부를 제외하면 생략된 것이 거의 없다. 군사나 교통 관계의 정보는 주로 생략하고, 조선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정보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즉, 이 지도는 군사적 측면보다는 문화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본 지도가 올바른 측면으로는 《광여도》에서 혼란스럽게 표시되어 있던 하천의 유로가 대표적이다. 《광여도》에 아래쪽의 安城에 있는 현재의 안성천과 竹山에 있는 현재의 청미천이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그려진 것이 본 지도에는 올바르게 되어 있다. 《광여도》에 南陽의 서쪽에 하천이 남북을 가로지른 듯 그려져 있는 하천의 모습도 수정되어 있다. 표현 양식에서도 다른 측면이 있다. 이 중 본 지도가 《광여도》보다 더 혼란스러운 것은 하천의 표현 양식이다. 《광여도》에서는 한강은 두 줄의 실선으로, 나머지 하천은 한 줄의 실선으로 표시하여 구분하기가 쉬웠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모두 두 줄의 실선으로 그려 구분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長湍에서 흘러와 通津 부분에서 한강에 합류되는 하천은 현재의 임진강이다. 그런데 임진강은 북쪽의 兎山界나 동쪽의 鐵原界에서 발원하는 것이 아니라 흘러들어온다. 본 지도에서는 마치 이곳이 발원지인 것처럼 착각할 수 있게 그려져 있다. 《광여도》에서도 이 부분은 모호하게 처리되어 있다. 開城府 왼쪽의 예성강 역시 발원지를 착각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이기봉)

  • 경기도(京畿道)(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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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안선이나 하천의 유로 및 산줄기 등 전체적인 구도는 도성도와 마찬가지로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경기도 지도와 거의 비슷하여 상호 연관성이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주기면의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하다. 그러나 수록된 정보의 양이라는 측면에서는 《광여도》보다 축소되고 있으며, 일부 부분은 올바르게 되어 있다. 일단 축소된 내용을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모두 생략된 내용으로는 해안가에 설치되어 있던 鎭堡가 있다. 이밖에도 종6품의 察訪이 파견된 찰방역 중 良才驛이 표시되어 있지 않으며, 한성부 밑의 한강 부분에 있었던 浦口와 津渡, 烽燧 등도 많이 생략되었다. 반면에 陵墓, 書院 등은 일부를 제외하면 생략된 것이 거의 없다. 군사나 교통 관계의 정보는 주로 생략하고, 조선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정보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즉, 이 지도는 군사적 측면보다는 문화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본 지도가 올바른 측면으로는 《광여도》에서 혼란스럽게 표시되어 있던 하천의 유로가 대표적이다. 《광여도》에 아래쪽의 安城에 있는 현재의 안성천과 竹山에 있는 현재의 청미천이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그려진 것이 본 지도에는 올바르게 되어 있다. 《광여도》에 南陽의 서쪽에 하천이 남북을 가로지른 듯 그려져 있는 하천의 모습도 수정되어 있다. 표현 양식에서도 다른 측면이 있다. 이 중 본 지도가 《광여도》보다 더 혼란스러운 것은 하천의 표현 양식이다. 《광여도》에서는 한강은 두 줄의 실선으로, 나머지 하천은 한 줄의 실선으로 표시하여 구분하기가 쉬웠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모두 두 줄의 실선으로 그려 구분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長湍에서 흘러와 通津 부분에서 한강에 합류되는 하천은 현재의 임진강이다. 그런데 임진강은 북쪽의 兎山界나 동쪽의 鐵原界에서 발원하는 것이 아니라 흘러들어온다. 본 지도에서는 마치 이곳이 발원지인 것처럼 착각할 수 있게 그려져 있다. 《광여도》에서도 이 부분은 모호하게 처리되어 있다. 開城府 왼쪽의 예성강 역시 발원지를 착각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이기봉)

  • 고양군(高陽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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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고양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오른쪽 위에 표시된 禿山峯과 高烽峯이 《광여도》에 각각 禿山烽과 高峯烽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광여도》의 내용이 실제와 부합되어 본 지도가 전사하는 과정에서 오류를 범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고양군 지도도 일부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의 차이가 있지만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동일하여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는 도로가 표시되어 있지만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모두 생략되고 京路, 中路, 小路라는 명칭만 남아 있다. 현재의 고양시 덕양구 고양동에 있었던 읍치에는 관아건물이 상당히 자세하게 표시되어 있다. 읍치가 다른 지역보다 확대 과장되어 그려져 있다. 이것은 읍치의 풍수적 명당성을 표현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밀집되어 있는 정보를 자세히 그리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아래쪽의 하천은 현재의 한강으로 실제로는 동남쪽에서 들어와 서북쪽으로 흘러간다. 지도에는 越海라는 표현이 두 군데나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밀물 때 이곳에 바닷물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맨 오른쪽에는 京江下流라고 적혀 있는데, 도성 남쪽의 한강 구간을 京江으로 불렀기 때문이다. (이기봉)

  • 고양군(高陽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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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고양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오른쪽 위에 표시된 禿山峯과 高烽峯이 《광여도》에 각각 禿山烽과 高峯烽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광여도》의 내용이 실제와 부합되어 본 지도가 전사하는 과정에서 오류를 범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고양군 지도도 일부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의 차이가 있지만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동일하여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는 도로가 표시되어 있지만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모두 생략되고 京路, 中路, 小路라는 명칭만 남아 있다. 현재의 고양시 덕양구 고양동에 있었던 읍치에는 관아건물이 상당히 자세하게 표시되어 있다. 읍치가 다른 지역보다 확대 과장되어 그려져 있다. 이것은 읍치의 풍수적 명당성을 표현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밀집되어 있는 정보를 자세히 그리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아래쪽의 하천은 현재의 한강으로 실제로는 동남쪽에서 들어와 서북쪽으로 흘러간다. 지도에는 越海라는 표현이 두 군데나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밀물 때 이곳에 바닷물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맨 오른쪽에는 京江下流라고 적혀 있는데, 도성 남쪽의 한강 구간을 京江으로 불렀기 때문이다. (이기봉)

  • 과천현(果川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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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과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과천현 지도도 표현 방법과 내용에서의 일부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구도는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고을의 鎭山인 冠岳山(631m)과 淸溪山(582.5m) 및 修理山(474.8m)을 중심으로 여러 산줄기가 뻗어 있다. 산줄기의 이어짐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본 지도에서는 산의 높낮이가 잘 표현되어 있지 못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과천지도도 회화식으로 그렸으나 세 개의 산을 웅장하게 그린 것과 대조적이다. 본 지도에는 오른쪽 위의 양재천 유역과 아래의 안양천 유역 사이에 있는 낮은 분수계를 산줄기로 연결시키고 있다. 또한 安山界라 적혀 있는 부분도 실제로는 낮은 분수계에 불과하다. 이런 기법은 조선시대의 회화식 군현지도에 자주 나타나며, 정확성을 중요하게 여긴 김정호의 《동여도》와 《대동여지도》에도 이어지고 있다. 북쪽에 그려진 한강의 유로나 고을의 전체적인 모양 등은 실제와 상당히 다르게 묘사되어 있다. (이기봉)

  • 과천현(果川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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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과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과천현 지도도 표현 방법과 내용에서의 일부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구도는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고을의 鎭山인 冠岳山(631m)과 淸溪山(582.5m) 및 修理山(474.8m)을 중심으로 여러 산줄기가 뻗어 있다. 산줄기의 이어짐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본 지도에서는 산의 높낮이가 잘 표현되어 있지 못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과천지도도 회화식으로 그렸으나 세 개의 산을 웅장하게 그린 것과 대조적이다. 본 지도에는 오른쪽 위의 양재천 유역과 아래의 안양천 유역 사이에 있는 낮은 분수계를 산줄기로 연결시키고 있다. 또한 安山界라 적혀 있는 부분도 실제로는 낮은 분수계에 불과하다. 이런 기법은 조선시대의 회화식 군현지도에 자주 나타나며, 정확성을 중요하게 여긴 김정호의 《동여도》와 《대동여지도》에도 이어지고 있다. 북쪽에 그려진 한강의 유로나 고을의 전체적인 모양 등은 실제와 상당히 다르게 묘사되어 있다. (이기봉)

  • 광주부(廣州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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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제공되고 있는 《광여도》의 광주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다만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를 보이고 있다. 《광여도》에서는 제대로 표현되어 있는 慶安驛과 오른쪽 아래의 奉安驛이 본 지도에서는 面과 동일한 색으로 그려져 있어 혼란을 주고 있다. 왼쪽 위에 있는 彦州面 동쪽의 한강도 본 지도에서는 단지 실선으로만 표시되어 있어 혼란을 주고 있다. 이밖에 왼쪽 水原界에 《광여도》에는 德陽君墓로 되어 있는 것이 본 지도에는 德良君墓로 되어 있는 등 글자일부에서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東西南의 방향이 표시되어 있지만 대략적인 정확성만을 갖고 있다. 한강의 유로가 고을 전체를 휘감고 있는 것처럼 표현했지만 실제로는 고을 북쪽을 정동에서 정서 방향으로 지나갈 뿐이다. 읍치는 현재의 남한산성에 있었는데, 일반적인 회화식 군현지도와 마찬가지로 많은 정보를 표시하기 위해 다른 지역보다 대축척으로 그렸다. 물론 읍치 이외의 지역도 동일한 축척을 적용하여 거리의 동질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도 왼쪽 위에 보이는 聲串面과 松洞面은 각각 지금의 안산시와 화성시에 속해 있는 곳으로 읍치에서 오른쪽 屯地까지의 거리보다 약 5배 정도 떨어져 있었다. 결국 이 지도에서는 거리와 방향의 정확성보다는 대략적인 방향과 인문 정보의 수록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볼 수 있다. 지도에서 나타난 거리의 부정확성은 주기에 적어놓은 각 고을까지의 거리, 각 면의 初境과 終境 기록을 통해 보완할 수 있다. 다만 지도와 주기의 면이 일치하지 않는 것도 있다. 거리와 방향의 부정확성 때문에 회화식 고지도를 미숙한 지도로 평가하기도 했지만 보다 많은 인문 정보의 수록이나 이미지의 전달이라는 측면에서는 재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도 방향과 거리에서는 부정확하지만 정보의 이미지 전달을 중요하게 여기는 회화식의 지도들이 그려지고 있다. (이기봉)

  • 광주부(廣州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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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제공되고 있는 《광여도》의 광주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다만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를 보이고 있다. 《광여도》에서는 제대로 표현되어 있는 慶安驛과 오른쪽 아래의 奉安驛이 본 지도에서는 面과 동일한 색으로 그려져 있어 혼란을 주고 있다. 왼쪽 위에 있는 彦州面 동쪽의 한강도 본 지도에서는 단지 실선으로만 표시되어 있어 혼란을 주고 있다. 이밖에 왼쪽 水原界에 《광여도》에는 德陽君墓로 되어 있는 것이 본 지도에는 德良君墓로 되어 있는 등 글자일부에서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東西南의 방향이 표시되어 있지만 대략적인 정확성만을 갖고 있다. 한강의 유로가 고을 전체를 휘감고 있는 것처럼 표현했지만 실제로는 고을 북쪽을 정동에서 정서 방향으로 지나갈 뿐이다. 읍치는 현재의 남한산성에 있었는데, 일반적인 회화식 군현지도와 마찬가지로 많은 정보를 표시하기 위해 다른 지역보다 대축척으로 그렸다. 물론 읍치 이외의 지역도 동일한 축척을 적용하여 거리의 동질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도 왼쪽 위에 보이는 聲串面과 松洞面은 각각 지금의 안산시와 화성시에 속해 있는 곳으로 읍치에서 오른쪽 屯地까지의 거리보다 약 5배 정도 떨어져 있었다. 결국 이 지도에서는 거리와 방향의 정확성보다는 대략적인 방향과 인문 정보의 수록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볼 수 있다. 지도에서 나타난 거리의 부정확성은 주기에 적어놓은 각 고을까지의 거리, 각 면의 初境과 終境 기록을 통해 보완할 수 있다. 다만 지도와 주기의 면이 일치하지 않는 것도 있다. 거리와 방향의 부정확성 때문에 회화식 고지도를 미숙한 지도로 평가하기도 했지만 보다 많은 인문 정보의 수록이나 이미지의 전달이라는 측면에서는 재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도 방향과 거리에서는 부정확하지만 정보의 이미지 전달을 중요하게 여기는 회화식의 지도들이 그려지고 있다. (이기봉)

  • 교동수영(橋桐水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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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의 명칭이 喬桐水營으로 바뀌었지만 본 사이트에서 제공되고 있는 《광여도》의 喬桐府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일부 표현 방법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예를 들면 《광여도》에는 없지만 읍성에 적의 화살이나 총포 공격을 피하면서 적을 공격하는 성가퀴(女裝 또는 城堞)가 그려져 있다. 또한 《광여도》와 달리 읍성 왼쪽의 南面 龍井里와 북쪽의 南面 大雅里에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다. 《광여도》나 본 지도 모두 교동도의 실제 모습과 상당히 다르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우선 읍치와 기타 선창 등이 다른 지역보다 확대되어 그려졌기 때문이다. 읍치와 선창 부근에 가장 많은 정보가 밀집되어 있어 이를 자세히 수록하려면 이와 같은 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다. 船倉은 보통 戰船을 정박하던 곳을 일컫는 곳이다. 섬 중앙에 있는 花盖山(259m)을 제외하면 아주 낮은 야산에 불과하다. 하천이 표시된 지역은 대부분 저지로서 간척된 곳이 많은 섬이다. 선창 위쪽의 貯水處는 간척 후 염분을 제거하고, 관개를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교동도 이외의 지역에 대한 표시도 실제와 거의 부합하지 않는다. 인근 고을이나 섬은 단지 방향만 맞을 뿐 거리나 수로의 모습은 실제와 다르다. 다만 주기에 각 경계까지의 거리를 자세히 적어놓아 지도의 단점을 보완해 주고 있다. 본 지도의 명칭이 喬桐水營으로 된 것은 이곳에 설치되어 있던 水營 때문이다. 경기도의 수영은 원래 南陽의 花梁鎭에 있었지만 1629년(인조 7)에 본 지역으로 옮겨왔다. 이후 1633년(인조 11)에 三道統禦使를 두어 경기도, 황해도, 충청도의 水軍을 관장하게 하였다. (이기봉)

  • 교동수영(橋桐水營)(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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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의 명칭이 喬桐水營으로 바뀌었지만 본 사이트에서 제공되고 있는 《광여도》의 喬桐府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일부 표현 방법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예를 들면 《광여도》에는 없지만 읍성에 적의 화살이나 총포 공격을 피하면서 적을 공격하는 성가퀴(女裝 또는 城堞)가 그려져 있다. 또한 《광여도》와 달리 읍성 왼쪽의 南面 龍井里와 북쪽의 南面 大雅里에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다. 《광여도》나 본 지도 모두 교동도의 실제 모습과 상당히 다르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우선 읍치와 기타 선창 등이 다른 지역보다 확대되어 그려졌기 때문이다. 읍치와 선창 부근에 가장 많은 정보가 밀집되어 있어 이를 자세히 수록하려면 이와 같은 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다. 船倉은 보통 戰船을 정박하던 곳을 일컫는 곳이다. 섬 중앙에 있는 花盖山(259m)을 제외하면 아주 낮은 야산에 불과하다. 하천이 표시된 지역은 대부분 저지로서 간척된 곳이 많은 섬이다. 선창 위쪽의 貯水處는 간척 후 염분을 제거하고, 관개를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교동도 이외의 지역에 대한 표시도 실제와 거의 부합하지 않는다. 인근 고을이나 섬은 단지 방향만 맞을 뿐 거리나 수로의 모습은 실제와 다르다. 다만 주기에 각 경계까지의 거리를 자세히 적어놓아 지도의 단점을 보완해 주고 있다. 본 지도의 명칭이 喬桐水營으로 된 것은 이곳에 설치되어 있던 水營 때문이다. 경기도의 수영은 원래 南陽의 花梁鎭에 있었지만 1629년(인조 7)에 본 지역으로 옮겨왔다. 이후 1633년(인조 11)에 三道統禦使를 두어 경기도, 황해도, 충청도의 水軍을 관장하게 하였다. (이기봉)

  • 교하군(交河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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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교하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첫째, 지도의 명칭이 《광여도》에는 교하현으로 되어 있다는 점 둘째, 읍치에 있는 官舍와 司倉이 《광여도》에는 衙와 倉으로 적혀 있다는 점뿐이다. 交河는 조선 초기 이후 縣으로 있었다. 1731년(영조 7)에 읍치에 長陵을 안치하고, 읍치는 현재의 파주시 금릉동으로 옮기면서 郡으로 승격되었다. 읍치는 얼마 후에 현재의 읍치 아래쪽에 있는 長命山 동쪽인 현재의 교하면 교하리로 옮겨진다. 본 지도에 표시된 읍치는 장릉을 안치하기 이전의 위치로서 현재의 탄현면 갈현리 일대이다. 따라서 지도의 내용만으로 보면 《광여도》의 교하현이란 명칭이 적합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교하군 지도도 표현 방식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은 본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도 읍치의 위치가 본 지도와 동일함에도 교하현이 아니라 교하군으로 되어 있다. 지도의 내용은 군으로 승격되기 이전에, 지도의 명칭이 적힌 주기는 군으로 승격된 이후에 작성되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광여도》에서는 지도의 내용에 맞추기 위해 교하현으로, 본 지도는 전사된 시기의 명칭에 맞추기 위해 교하군으로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교하군(交河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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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교하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첫째, 지도의 명칭이 《광여도》에는 교하현으로 되어 있다는 점 둘째, 읍치에 있는 官舍와 司倉이 《광여도》에는 衙와 倉으로 적혀 있다는 점뿐이다. 交河는 조선 초기 이후 縣으로 있었다. 1731년(영조 7)에 읍치에 長陵을 안치하고, 읍치는 현재의 파주시 금릉동으로 옮기면서 郡으로 승격되었다. 읍치는 얼마 후에 현재의 읍치 아래쪽에 있는 長命山 동쪽인 현재의 교하면 교하리로 옮겨진다. 본 지도에 표시된 읍치는 장릉을 안치하기 이전의 위치로서 현재의 탄현면 갈현리 일대이다. 따라서 지도의 내용만으로 보면 《광여도》의 교하현이란 명칭이 적합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교하군 지도도 표현 방식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은 본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도 읍치의 위치가 본 지도와 동일함에도 교하현이 아니라 교하군으로 되어 있다. 지도의 내용은 군으로 승격되기 이전에, 지도의 명칭이 적힌 주기는 군으로 승격된 이후에 작성되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광여도》에서는 지도의 내용에 맞추기 위해 교하현으로, 본 지도는 전사된 시기의 명칭에 맞추기 위해 교하군으로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김포군(金浦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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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김포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鄕校 오른쪽의 冷井山峯과 아래쪽의 杏山이 《광여도》에는 冷井山烽과 古山으로 적혀 있다. 전자는 《광여도》가, 후자는 본 지도가 맞다. 또한 오른쪽 豊山君山所 아래쪽에 《광여도》에는 龜伏亭과 甘巖이 적혀 있다. 왼쪽에는 楊州界라고 적혀 있는데 실제로는 陽川界로 고쳐야 한다. 한가운데에 있는 章島 역시 章陵의 오기이다. 두 개 모두 《광여도》에서도 동일하게 틀리고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김포군 지도도 위쪽에 西海가 바다처럼 표시되어 있지 않은 점,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다른 점을 제외하면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동일하여 상호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위쪽의 西海와 아래쪽의 한강이 마치 동서 일직선의 형태인 것처럼 그려져 있다. 그러나 한강은 동남쪽에서 서북쪽으로 거의 일직선이며, 서해는 동남에서 서북쪽으로 향하지만 해안선이 복잡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김포군 지도도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비슷한 구도를 하고 있어 상호 관련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김포군(金浦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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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김포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鄕校 오른쪽의 冷井山峯과 아래쪽의 杏山이 《광여도》에는 冷井山烽과 古山으로 적혀 있다. 전자는 《광여도》가, 후자는 본 지도가 맞다. 또한 오른쪽 豊山君山所 아래쪽에 《광여도》에는 龜伏亭과 甘巖이 적혀 있다. 왼쪽에는 楊州界라고 적혀 있는데 실제로는 陽川界로 고쳐야 한다. 한가운데에 있는 章島 역시 章陵의 오기이다. 두 개 모두 《광여도》에서도 동일하게 틀리고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김포군 지도도 위쪽에 西海가 바다처럼 표시되어 있지 않은 점,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다른 점을 제외하면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동일하여 상호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위쪽의 西海와 아래쪽의 한강이 마치 동서 일직선의 형태인 것처럼 그려져 있다. 그러나 한강은 동남쪽에서 서북쪽으로 거의 일직선이며, 서해는 동남에서 서북쪽으로 향하지만 해안선이 복잡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김포군 지도도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비슷한 구도를 하고 있어 상호 관련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남양부(南陽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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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남양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新里面 왼쪽의 西如堤面에 다른 面처럼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그 위쪽의 花梁鎭은 《광여도》에는 面과 동일하게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에는 그런 표시를 하지 않았다. 화량진 옆의 念佛山峰에서의 峰과 細串面 왼쪽의 峯은 《광여도》에 烽으로 되어 있다. 오른쪽 위의 旀加串面은 《광여도》에 旀知串面이라 적혀 있다. 모두 《광여도》의 기록이 정확하다. 서해안에 있는 섬들의 크기와 거리는 실제와 다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德積島는 훨씬 서쪽에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아마 일정한 지면에 그리기 위해 거리를 별로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大阜島의 크기는 仙監島의 10배 이상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섬들이 모두 남양부에 속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큰 섬 중에 남양부에 속해 있었던 섬에는 本府地라고 표시되어 있다. 작은 섬 중에서도 남양부에 속해 있었던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섞여 있는데, 구분되고 있지 않다. 아래쪽에 표시된 충청도의 땅들은 실제와 전혀 관계없는 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단지 각 고을의 田稅와 大同米가 옮겨지는 船路의 방향을 표시한 것일 뿐이다. 아래쪽의 分古面은 수원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다. 지도에는 水原地, 水(原)海倉 등을 써넣어 월경지임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왼쪽의 水乾每島는 수원의 건매도란 의미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남양부 지도와 동일하지는 않지만 대략적인 구도가 비슷하여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남양부(南陽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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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남양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新里面 왼쪽의 西如堤面에 다른 面처럼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그 위쪽의 花梁鎭은 《광여도》에는 面과 동일하게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에는 그런 표시를 하지 않았다. 화량진 옆의 念佛山峰에서의 峰과 細串面 왼쪽의 峯은 《광여도》에 烽으로 되어 있다. 오른쪽 위의 旀加串面은 《광여도》에 旀知串面이라 적혀 있다. 모두 《광여도》의 기록이 정확하다. 서해안에 있는 섬들의 크기와 거리는 실제와 다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德積島는 훨씬 서쪽에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아마 일정한 지면에 그리기 위해 거리를 별로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大阜島의 크기는 仙監島의 10배 이상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섬들이 모두 남양부에 속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큰 섬 중에 남양부에 속해 있었던 섬에는 本府地라고 표시되어 있다. 작은 섬 중에서도 남양부에 속해 있었던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섞여 있는데, 구분되고 있지 않다. 아래쪽에 표시된 충청도의 땅들은 실제와 전혀 관계없는 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단지 각 고을의 田稅와 大同米가 옮겨지는 船路의 방향을 표시한 것일 뿐이다. 아래쪽의 分古面은 수원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다. 지도에는 水原地, 水(原)海倉 등을 써넣어 월경지임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왼쪽의 水乾每島는 수원의 건매도란 의미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남양부 지도와 동일하지는 않지만 대략적인 구도가 비슷하여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도성(都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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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都城이란 왕이 거주하는 궁전과 중앙 관부 및 인구 밀집 지역을 둘러싼 王城을 의미한다. 도성이란 정의에 입각하여 보면 본 지도에서는 성곽의 안쪽만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도성은 단순히 성곽의 안쪽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수도라는 일반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다. 조선에서는 수도의 고유명칭 으로서 漢城府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으며, 8道와 동급의 행정단위로 인정받았다. 한성부의 으뜸 벼슬인 漢城判尹도 정2품관으로서 外職이 아닌 內職으로 인정받았다. 본 지도에도 성곽의 안쪽만이 아니라 바깥쪽을 포함하는 한성부가 그려져 있다. 1744년(영조 20)에 편찬된《續大典》에 의하면 한성부의 경계는 동쪽이 大菩洞-水踰峴-牛耳川-上下伐里-長位-松溪橋-中浪浦, 남쪽이 箭串橋-新村-豆毛浦-龍山에 이르는 강, 서쪽이 麻浦-望遠亭-城山-沙川渡-時威洞-石串峴에 이르는 강과 내, 북쪽이 石串峴 서남의 하천 합류지점으로부터 大棗里-舊舘基-延曙-蛾眉山-猪噬峴-普賢峯-大菩洞에 이르는 산등성이로 되어 있다. 이 지도에는 《속대전》에 나오는 경계의 지명이 대부분 표시되어 있어 상호 연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도의 전체적인 구도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다만 건물이나 성곽 표시, 지명 위치에서만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을 뿐이다. 도성은 조선에서 가장 많은 인문적 정보가 집중되어 있고, 수요도 많았기 때문에 가장 많이 그려진 지도 중의 하나이다. 대부분의 회화식 지도와 마찬가지로 본 지도에도 정보가 가장 많이 밀집되어 있는 성곽 안과 밖의 축척을 달리하여 그렸다. 그러나 본 지도의 가장 큰 특징은 성곽 내부를 아주 간략하게 처리했다는 점이다.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궁전, 조선의 정통성을 의미하는 宗廟와 社稷 및 成均館은 명칭까지 자세하게 기록하였다. 반면에 현재의 세종로 양편에 즐비했던 6조를 비롯한 중앙 관부는 건물의 모습만 그려 넣었고, 풍수적인 명당수인 淸溪川과 그 위의 다리는 간단하게 표시되어 있다. 도성의 主山인 白岳山을 비롯하여 도성의 산세와 성곽 및 성문의 모습은 상대적으로 자세하게 그리고 있다. 성곽 밖은 안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세히 그렸다. 아래쪽의 한강변에는 豆毛浦로부터 西江까지 조선시대에 번영했던 포구와 나루가 대부분 그려져 있다. 맨 왼쪽의 山城은 城山의 오기이다. 한강 남쪽에 적혀 있는 산은 한강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아마 성곽 안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산줄기와 물줄기에 의해 겹겹이 싸여있는 도성의 모습을 강조하려 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1760년(영조 36)에 慶熙宮으로 개칭된 慶德宮이 원래의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어 영조대 전반기의 사정이 반영된 지도를 베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기봉)

  • 마전군(麻田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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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마전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오른쪽 위에 楡木津과 客舍 위쪽의 胎峯이 《광여도》에는 각각 楡林津과 昭峯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마전군 지도도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비슷하여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도에는 위의 지명이 각각 楡林津과 胎峯으로 되어 있다. 유림진은 일반적으로 澄波江 또는 澄波渡라고 하며, 임진강에서 배가 올라가는 최상류 지점으로 알려져 있다. 위쪽의 漣川界에서 들어와 왼쪽의 積城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임진강이다. 오른쪽의 楊州界에서 들어와 임진강에 합류하는 하천은 현재의 한탄강이다. 지도에는 모두 大江으로 적혀 있는데, 고유한 명칭이 아니라 ‘큰 강’이라는 일반명사로서 사용된 것이다. 지도에는 2개의 면만 표시되어 있는 반면에 주기에는 5개의 면이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는 점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회화식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하천의 유로나 산줄기가 실제와 정확히 부합되지는 않는다. 客舍가 있는 읍치의 풍수적으로 명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실제의 지형을 변형시켜 그린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기봉)

  • 마전군(麻田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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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마전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오른쪽 위에 楡木津과 客舍 위쪽의 胎峯이 《광여도》에는 각각 楡林津과 昭峯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마전군 지도도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비슷하여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도에는 위의 지명이 각각 楡林津과 胎峯으로 되어 있다. 유림진은 일반적으로 澄波江 또는 澄波渡라고 하며, 임진강에서 배가 올라가는 최상류 지점으로 알려져 있다. 위쪽의 漣川界에서 들어와 왼쪽의 積城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임진강이다. 오른쪽의 楊州界에서 들어와 임진강에 합류하는 하천은 현재의 한탄강이다. 지도에는 모두 大江으로 적혀 있는데, 고유한 명칭이 아니라 ‘큰 강’이라는 일반명사로서 사용된 것이다. 지도에는 2개의 면만 표시되어 있는 반면에 주기에는 5개의 면이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는 점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회화식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하천의 유로나 산줄기가 실제와 정확히 부합되지는 않는다. 客舍가 있는 읍치의 풍수적으로 명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실제의 지형을 변형시켜 그린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기봉)

  • 부평부(富平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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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부평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본 지도에는 왼쪽 위의 毛月串面과 가운데 아래의 玉毛面에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광여도》에서는 이와 같은 오류가 나타나고 있지 않다. 읍치 오른쪽 위의 古山城이 본 지도에는 명칭만 적혀 있지만 《광여도》에는 성곽 표시가 되어 있다. 富平府란 명칭 왼쪽에는 金浦界가 金津界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하다. 본 지도는 일반적인 회화식 군현지도와 마찬가지로 다른 지역에 비해 읍치가 확대 과장되어 있다. 이런 방식을 사용한 이유는 지도에 표시할 정보가 읍치에 가장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읍치의 산세를 명당인 것처럼 표현하여 정치적 위엄을 높이기 위한 목적 때문이기도 하다. 읍치에는 지방관이 업무를 수행하던 衙舍와 望闕向拜하며 왕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던 客舍를 포함하여 여러 관아 건물이 자세히 표시된 편이다. 읍치 남쪽은 현재의 굴포천 유역에 해당되는 저평한 지역이다. 산세가 높지 않은 이런 지역에서는 관개를 위해 저수지를 많이 쌓았는데, 본 지도에도 여러 개의 防築이 표시되어 있다. 본 고을은 서쪽으로 서해에 접해 있는데, 지도에도 이러한 사실이 잘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동쪽에 표시된 한강과는 직접적으로 접해 있는 지역이 없었다. 지도에는 이 고을이 한강과 직접적으로 접해 있지 않다는 사실을 陽川地, 衿川界, 陽川界, 陽川, 金浦界 등의 문자를 넣어 표시하였다. 그렇더라도 본 지도의 표현만으로는 본 고을이 한강과 접해 있는지 여부를 이해하기 어렵다. (이기봉)

  • 부평부(富平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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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부평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본 지도에는 왼쪽 위의 毛月串面과 가운데 아래의 玉毛面에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광여도》에서는 이와 같은 오류가 나타나고 있지 않다. 읍치 오른쪽 위의 古山城이 본 지도에는 명칭만 적혀 있지만 《광여도》에는 성곽 표시가 되어 있다. 富平府란 명칭 왼쪽에는 金浦界가 金津界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하다. 본 지도는 일반적인 회화식 군현지도와 마찬가지로 다른 지역에 비해 읍치가 확대 과장되어 있다. 이런 방식을 사용한 이유는 지도에 표시할 정보가 읍치에 가장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읍치의 산세를 명당인 것처럼 표현하여 정치적 위엄을 높이기 위한 목적 때문이기도 하다. 읍치에는 지방관이 업무를 수행하던 衙舍와 望闕向拜하며 왕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던 客舍를 포함하여 여러 관아 건물이 자세히 표시된 편이다. 읍치 남쪽은 현재의 굴포천 유역에 해당되는 저평한 지역이다. 산세가 높지 않은 이런 지역에서는 관개를 위해 저수지를 많이 쌓았는데, 본 지도에도 여러 개의 防築이 표시되어 있다. 본 고을은 서쪽으로 서해에 접해 있는데, 지도에도 이러한 사실이 잘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동쪽에 표시된 한강과는 직접적으로 접해 있는 지역이 없었다. 지도에는 이 고을이 한강과 직접적으로 접해 있지 않다는 사실을 陽川地, 衿川界, 陽川界, 陽川, 金浦界 등의 문자를 넣어 표시하였다. 그렇더라도 본 지도의 표현만으로는 본 고을이 한강과 접해 있는지 여부를 이해하기 어렵다. (이기봉)

  • 삭령군(朔寧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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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삭령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차이가 몇 가지 나타나고 있다. 첫째, 《광여도》에 鵬耳山으로 적혀 있던 것이 위쪽에 鴨耳山으로 기재되었다. 둘째, 각 방향의 고을 경계에 東西南北의 방향이 붙어 있다. 셋째, 본 지도에는 《광여도》에 잘못 표시한 하천의 유로가 바로잡혀 있다. ‘西界 兎山’이라 적혀 있는 곳에서 내려오는 하천은 현재의 임진강으로 지도에는 大水源으로 적혀 있다. 오른쪽 철원 방향에서 들어오는 하천은 임진강의 지류인 현재의 역곡천으로 읍치의 북쪽을 흐른다고 하여 北川이라고 불렀다. 임진강의 지류에 불과하기 때문에 지도에는 小水源이라 적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 북천의 水源으로 표시된 馬場面 지역은 임진강 본류와 멀리 떨어져 있다. 이 지도가 회화식으로 그리다보니까 마치 임진강 본류에 가까운 것처럼 표시되어 있을 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삭령군 지도도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비슷해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해동지도》에 임진강 본류와 마장면에서 내려오는 북천의 지류 중 어느 것이 큰 것인지 거의 알아볼 수 없도록 그려져 있다. 《광여도》에서는 이와 같은 점을 착각하여 두 하천이 서로 연결된 것처럼 그렸으며, 하천 폭의 차이도 구별할 수 없도록 동일하게 그려놓았다. 본 지도에서는 《광여도》와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지 않으며, 임진강 본류가 토산 쪽에서 흘러 들어옴을 분명하게 표시하여 《해동지도》에서의 애매한 표현을 교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北川合流 지점 이하의 하폭을 넓게 하였지만 그 위쪽에서는 북천과 임진강 본류 등의 하천 표현을 동일하게 하여 실제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기봉)

  • 삭령군(朔寧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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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삭령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차이가 몇 가지 나타나고 있다. 첫째, 《광여도》에 鵬耳山으로 적혀 있던 것이 위쪽에 鴨耳山으로 기재되었다. 둘째, 각 방향의 고을 경계에 東西南北의 방향이 붙어 있다. 셋째, 본 지도에는 《광여도》에 잘못 표시한 하천의 유로가 바로잡혀 있다. ‘西界 兎山’이라 적혀 있는 곳에서 내려오는 하천은 현재의 임진강으로 지도에는 大水源으로 적혀 있다. 오른쪽 철원 방향에서 들어오는 하천은 임진강의 지류인 현재의 역곡천으로 읍치의 북쪽을 흐른다고 하여 北川이라고 불렀다. 임진강의 지류에 불과하기 때문에 지도에는 小水源이라 적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 북천의 水源으로 표시된 馬場面 지역은 임진강 본류와 멀리 떨어져 있다. 이 지도가 회화식으로 그리다보니까 마치 임진강 본류에 가까운 것처럼 표시되어 있을 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삭령군 지도도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비슷해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해동지도》에 임진강 본류와 마장면에서 내려오는 북천의 지류 중 어느 것이 큰 것인지 거의 알아볼 수 없도록 그려져 있다. 《광여도》에서는 이와 같은 점을 착각하여 두 하천이 서로 연결된 것처럼 그렸으며, 하천 폭의 차이도 구별할 수 없도록 동일하게 그려놓았다. 본 지도에서는 《광여도》와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지 않으며, 임진강 본류가 토산 쪽에서 흘러 들어옴을 분명하게 표시하여 《해동지도》에서의 애매한 표현을 교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北川合流 지점 이하의 하폭을 넓게 하였지만 그 위쪽에서는 북천과 임진강 본류 등의 하천 표현을 동일하게 하여 실제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기봉)

  • 송도(松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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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개성부 지도와 거의 비슷하다. 다만 몇 군데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일단 지도의 제목이 《광여도》에서는 開城府라고 되어 있는데, 본 지도에는 松都라고 적혀 있다. 또한 《광여도》에는 주기가 없는데 본 지도에는 주기가 있다. 《광여도》와 달리 지도의 오른쪽 여백에는 도성에서 송도까지 오는데 걸리는 날짜가 적혀 있으며, 위쪽 여백에는 송도에 대한 여러 異稱이 적혀 있다. 개성부 성곽 안의 滿月臺가 《광여도》에는 터로만 표시되어 있는데 본 지도에는 건물이 그려져 있다. 반면에 위쪽의 大興山城에 《광여도》에는 이름만 적혀 있던 將臺가 본 지도에는 터의 형태로 표시되어 있다. 이밖에도 몇 개의 문자가 달라지는 변화가 약간 보이고 있을 뿐이다. 일반적인 회화식 지도와 마찬가지로 정보가 밀집되어 있는 개성부의 읍성과 대흥산성 등이 다른 지역보다 대축척으로 그려져 있다. 읍성 안에 있는 고려의 왕궁터인 滿月臺도 실제의 지형보다는 풍수적 명당 형국으로 그렸다. 아래쪽에 祖江이라 적혀 있는 한강과 왼쪽의 禮城江이 두 줄의 실선으로 그려진 반면 나머지는 한 줄의 실선으로 그려져 있다. 오른쪽의 洛河와 臨津은 현재의 임진강으로 예성강보다 더 큰 하천임에도 불구하고 한 줄의 실선으로 그려져 있다. 임진강과 그 왼쪽의 下沙川 사이는 대부분 長湍의 땅이었다. 지도에도 읍성 동쪽에 ‘長湍界’와 ‘此則長湍’이라 표시하여 이와 같은 사실을 적어두었다. 靑郊驛 아래쪽에는 豊德의 명칭이 적혀 있는데, 1823년(순조 23)에 개성에 합쳐진 고을이다. 그러나 앞쪽의 경기도 지도에는 豊德이 독자적인 고을로 표시되어 있다. 長湍처럼 개성의 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풍덕의 땅까지 그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뒤쪽에는 풍덕부의 지도가 따로 수록되어 있다. 동남쪽의 해안에는 喬同島와 江華島가 실제의 크기보다 훨씬 작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가 개성부를 중심으로 그린 것이어서 인근 지역은 대략적인 방향과 위치만을 표시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송도(松都)(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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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개성부 지도와 거의 비슷하다. 다만 몇 군데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일단 지도의 제목이 《광여도》에서는 開城府라고 되어 있는데, 본 지도에는 松都라고 적혀 있다. 또한 《광여도》에는 주기가 없는데 본 지도에는 주기가 있다. 《광여도》와 달리 지도의 오른쪽 여백에는 도성에서 송도까지 오는데 걸리는 날짜가 적혀 있으며, 위쪽 여백에는 송도에 대한 여러 異稱이 적혀 있다. 개성부 성곽 안의 滿月臺가 《광여도》에는 터로만 표시되어 있는데 본 지도에는 건물이 그려져 있다. 반면에 위쪽의 大興山城에 《광여도》에는 이름만 적혀 있던 將臺가 본 지도에는 터의 형태로 표시되어 있다. 이밖에도 몇 개의 문자가 달라지는 변화가 약간 보이고 있을 뿐이다. 일반적인 회화식 지도와 마찬가지로 정보가 밀집되어 있는 개성부의 읍성과 대흥산성 등이 다른 지역보다 대축척으로 그려져 있다. 읍성 안에 있는 고려의 왕궁터인 滿月臺도 실제의 지형보다는 풍수적 명당 형국으로 그렸다. 아래쪽에 祖江이라 적혀 있는 한강과 왼쪽의 禮城江이 두 줄의 실선으로 그려진 반면 나머지는 한 줄의 실선으로 그려져 있다. 오른쪽의 洛河와 臨津은 현재의 임진강으로 예성강보다 더 큰 하천임에도 불구하고 한 줄의 실선으로 그려져 있다. 임진강과 그 왼쪽의 下沙川 사이는 대부분 長湍의 땅이었다. 지도에도 읍성 동쪽에 ‘長湍界’와 ‘此則長湍’이라 표시하여 이와 같은 사실을 적어두었다. 靑郊驛 아래쪽에는 豊德의 명칭이 적혀 있는데, 1823년(순조 23)에 개성에 합쳐진 고을이다. 그러나 앞쪽의 경기도 지도에는 豊德이 독자적인 고을로 표시되어 있다. 長湍처럼 개성의 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풍덕의 땅까지 그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뒤쪽에는 풍덕부의 지도가 따로 수록되어 있다. 동남쪽의 해안에는 喬同島와 江華島가 실제의 크기보다 훨씬 작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가 개성부를 중심으로 그린 것이어서 인근 지역은 대략적인 방향과 위치만을 표시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수원부(水源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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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수원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다만 《광여도》에 없는 내용이 일부 적혀 있다. 예를 들어 양성의 월경지에서 지도 아래쪽 해변에 적혀 있는 陽城槐台串峯이 《광여도》에는 없다. 1789년에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지도 위의 邑內로 옮겼다. 그리고 수원부의 읍치는 八呑山이라 적혀 있는 지금의 수원 시내로 이동시켰다. 따라서 이 지도는 최소한 1789년 이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도는 북쪽을 위로 향하도록 그렸다. 아래쪽이 현재의 아산만이며, 읍내 방향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려가는 하천이 지금의 황구지천이다. 平澤界에서 흘러오는 안성천과 합류되어 아산만으로 빠져나간다. 지도 왼쪽 아래에 표시된 海倉은 이 고을의 전세와 대동미를 모아 도성으로 옮기던 곳이다. 수원부의 남쪽에는 충청도의 稷山, 경기도의 陽城과 南陽 등의 越境地가 많았다. 지도에도 월경지가 일부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보다 더 적다. 稷山倉, 陽城倉 등은 직산과 양성의 월경지에 있었던 창고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의 산세와 영역이 확대 과장되고, 산을 맥의 형식으로 그린 점 등은 회화식 고지도의 일반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다. (이기봉)

  • 수원부(水源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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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수원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다만 《광여도》에 없는 내용이 일부 적혀 있다. 예를 들어 양성의 월경지에서 지도 아래쪽 해변에 적혀 있는 陽城槐台串峯이 《광여도》에는 없다. 1789년에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지도 위의 邑內로 옮겼다. 그리고 수원부의 읍치는 八呑山이라 적혀 있는 지금의 수원 시내로 이동시켰다. 따라서 이 지도는 최소한 1789년 이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도는 북쪽을 위로 향하도록 그렸다. 아래쪽이 현재의 아산만이며, 읍내 방향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려가는 하천이 지금의 황구지천이다. 平澤界에서 흘러오는 안성천과 합류되어 아산만으로 빠져나간다. 지도 왼쪽 아래에 표시된 海倉은 이 고을의 전세와 대동미를 모아 도성으로 옮기던 곳이다. 수원부의 남쪽에는 충청도의 稷山, 경기도의 陽城과 南陽 등의 越境地가 많았다. 지도에도 월경지가 일부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보다 더 적다. 稷山倉, 陽城倉 등은 직산과 양성의 월경지에 있었던 창고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의 산세와 영역이 확대 과장되고, 산을 맥의 형식으로 그린 점 등은 회화식 고지도의 일반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다. (이기봉)

  • 안산군(安山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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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안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틀린 점이 있다면 아래쪽의 2개 섬에 田地가 없다는 사실과 烏耳島가 40리에 있다는 표현이 첨가된 것 정도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안산군 지도도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동일하여 상호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 표시되어 있던 도로가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사라지고, 단지 中路와 大路의 명칭만 기재되어 있다. 반면에 《해동지도》의 지도에는 없었던 면의 명칭이 《광여도》와 본 지도에는 첨가되어 있다. 본 지도에 적혀 있는 郡內面이 지도 위에 없는 점, 지도에 표시된 仍火谷面과 犬月面이 주기에 다르게 적혀 있는 점은 《광여도》와 동일하다. 주기의 내용은 본 지도와 《광여도》가 동일하지만 《해동지도》와는 다르다. 고을의 전체적인 실제 모습과 본 지도의 모양은 상당히 다르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 중 실제와 다른 곳이 있어 주의를 요한다. 아래쪽의 바다가 仁川과 南陽의 땅으로 둘러싸인 것처럼 표시되어 있지만 인천의 경우 실제와 전혀 다르다. 인천계 방향으로는 바다가 연속되어야 한다. 여기서 왼쪽 아래의 仁川界 부분은 육지라는 의미가 아니라 바다에서도 이 정도 선에서 인천과 안산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이기봉)

  • 안산군(安山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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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안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틀린 점이 있다면 아래쪽의 2개 섬에 田地가 없다는 사실과 烏耳島가 40리에 있다는 표현이 첨가된 것 정도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안산군 지도도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동일하여 상호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 표시되어 있던 도로가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사라지고, 단지 中路와 大路의 명칭만 기재되어 있다. 반면에 《해동지도》의 지도에는 없었던 면의 명칭이 《광여도》와 본 지도에는 첨가되어 있다. 본 지도에 적혀 있는 郡內面이 지도 위에 없는 점, 지도에 표시된 仍火谷面과 犬月面이 주기에 다르게 적혀 있는 점은 《광여도》와 동일하다. 주기의 내용은 본 지도와 《광여도》가 동일하지만 《해동지도》와는 다르다. 고을의 전체적인 실제 모습과 본 지도의 모양은 상당히 다르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 중 실제와 다른 곳이 있어 주의를 요한다. 아래쪽의 바다가 仁川과 南陽의 땅으로 둘러싸인 것처럼 표시되어 있지만 인천의 경우 실제와 전혀 다르다. 인천계 방향으로는 바다가 연속되어야 한다. 여기서 왼쪽 아래의 仁川界 부분은 육지라는 의미가 아니라 바다에서도 이 정도 선에서 인천과 안산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이기봉)

  • 안성군(安城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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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안성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광여도》에 沙溪書院으로 적혀 있는 것이 본 지도에는 沙鷄書院으로 한자가 바뀐 정도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안성군 지도도 표현 양식에서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에서 본 지도와 거의 동일하여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주기의 지지 내용은 본 지도와 《광여도》는 거의 동일하지만 《해동지도》와는 전혀 다르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라는 측면에서 볼 때 세 지도가 동일하지만 실제로는 북쪽 방향에 陽智界가 적혀 있어야 실제에 부합된다. 읍치가 지나치게 확대 강조되어 있어 그 이외 지역의 내용은 극히 소략하다. 또한 읍치로부터의 방향과 거리 등 실제적인 내용을 파악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읍치를 관통하는 하천이 현재의 안성천이며, 靑龍寺 방면에서 내려오는 하천이 안성천의 지류인 신릉천이다. 맨 왼쪽에 양성과의 경계선에 있는 하천은 현재의 안성천 지류인 한천이다. 이 지도에는 마치 양성 정도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죽산 땅이었던 현재의 용인시 원삼면에서 발원한다. (이기봉)

  • 안성군(安城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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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안성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광여도》에 沙溪書院으로 적혀 있는 것이 본 지도에는 沙鷄書院으로 한자가 바뀐 정도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안성군 지도도 표현 양식에서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에서 본 지도와 거의 동일하여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주기의 지지 내용은 본 지도와 《광여도》는 거의 동일하지만 《해동지도》와는 전혀 다르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라는 측면에서 볼 때 세 지도가 동일하지만 실제로는 북쪽 방향에 陽智界가 적혀 있어야 실제에 부합된다. 읍치가 지나치게 확대 강조되어 있어 그 이외 지역의 내용은 극히 소략하다. 또한 읍치로부터의 방향과 거리 등 실제적인 내용을 파악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읍치를 관통하는 하천이 현재의 안성천이며, 靑龍寺 방면에서 내려오는 하천이 안성천의 지류인 신릉천이다. 맨 왼쪽에 양성과의 경계선에 있는 하천은 현재의 안성천 지류인 한천이다. 이 지도에는 마치 양성 정도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죽산 땅이었던 현재의 용인시 원삼면에서 발원한다. (이기봉)

  • 양근군(楊根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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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근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틀린 점이 있다면 오른쪽 중간 부분에 徐府院破墓와 權判書亭이 《광여도》에는 徐府院君破墓와 權判書峯으로 되어 있는 정도다. 전자는 본 지도가, 후자는 《광여도》가 틀린 것으로 보인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양근군 지도도 본 지도와 거의 동일한 구도와 내용을 담고 있어 상호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에 없는 도로가 있고, 산지와 하천에 대한 표현 방법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해동지도》, 《광여도》, 본 지도 모두 하천의 본류와 지류를 구분하기 어렵게 그려놓았다. 《광여도》에서는 오른쪽 위의 春川江에서 흘러와 아래쪽의 廣州界로 흐르는 북한강을 굵게 표시하여 본류와 지류의 구분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오른쪽 위의 呂江에서 흘러와 왼쪽 아래의 蛇島에서 북한강과 합류되는 남한강은 다른 하천과 구별할 수 없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에서는 북한강 역시 다른 하천의 굵기와 차이를 보이고 있지 않아 본류와 지류의 구분이 더욱 어렵게 되어 있다. 주기의 지지 부분에는 총 8개의 면이 적혀 있지만 본 지도에는 단지 2개의 면만 표시되어 있다. 이것도 《해동지도》의 지도 위에 2개의 면 명칭만 적혀 있는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주기에 적혀 있는 본 지도의 지지 내용은 《광여도》와는 같으나 《해동지도》와는 다르다. (이기봉)

  • 양근군(楊根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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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근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틀린 점이 있다면 오른쪽 중간 부분에 徐府院破墓와 權判書亭이 《광여도》에는 徐府院君破墓와 權判書峯으로 되어 있는 정도다. 전자는 본 지도가, 후자는 《광여도》가 틀린 것으로 보인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양근군 지도도 본 지도와 거의 동일한 구도와 내용을 담고 있어 상호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에 없는 도로가 있고, 산지와 하천에 대한 표현 방법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해동지도》, 《광여도》, 본 지도 모두 하천의 본류와 지류를 구분하기 어렵게 그려놓았다. 《광여도》에서는 오른쪽 위의 春川江에서 흘러와 아래쪽의 廣州界로 흐르는 북한강을 굵게 표시하여 본류와 지류의 구분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오른쪽 위의 呂江에서 흘러와 왼쪽 아래의 蛇島에서 북한강과 합류되는 남한강은 다른 하천과 구별할 수 없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에서는 북한강 역시 다른 하천의 굵기와 차이를 보이고 있지 않아 본류와 지류의 구분이 더욱 어렵게 되어 있다. 주기의 지지 부분에는 총 8개의 면이 적혀 있지만 본 지도에는 단지 2개의 면만 표시되어 있다. 이것도 《해동지도》의 지도 위에 2개의 면 명칭만 적혀 있는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주기에 적혀 있는 본 지도의 지지 내용은 《광여도》와는 같으나 《해동지도》와는 다르다. (이기봉)

  • 양성현(陽城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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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에 읍치 위쪽에 표시된 白蓮峯과 大峙가 본 지도에 없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 표현 방식에서는 하천에서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광여도》에는 본 지도와 달리 오른쪽의 하천이 처음부터 끝까지 2개의 실선으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오른쪽의 하천은 현재의 한천으로서 읍치에서 내려가는 하천보다 훨씬 길다. 본 지도의 작성자는 읍치에서 내려오는 하천과 한천을 동일하게 취급하여 합류 지점부터만 2개의 실선으로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더욱이 한천이 마치 松五里面 북쪽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도록 그렸다. 이와 같은 오류는 회화식 군현지도가 읍치 지역을 확대 과장해서 그렸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표현 방법이나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양성현 지도에서는 아래쪽을 바다처럼 표시했는데,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수정되어 있다. 《해동지도》에서 이런 오류가 나타난 것은 본 지도의 왼쪽 아래에 있는 세 개의 면 중 2개가 수원의 경계를 넘어가 서해에 접해 있는 월경지라는 사실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반대로 본 지도에서는 이 세 개의 면이 월경지이며, 2개가 바다에 접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주기에 적혀 있는 면의 거리를 통해 월경지임을 짐작할 수는 있으나 확실하게 이해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이기봉)

  • 양성현(陽城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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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에 읍치 위쪽에 표시된 白蓮峯과 大峙가 본 지도에 없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 표현 방식에서는 하천에서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광여도》에는 본 지도와 달리 오른쪽의 하천이 처음부터 끝까지 2개의 실선으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오른쪽의 하천은 현재의 한천으로서 읍치에서 내려가는 하천보다 훨씬 길다. 본 지도의 작성자는 읍치에서 내려오는 하천과 한천을 동일하게 취급하여 합류 지점부터만 2개의 실선으로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더욱이 한천이 마치 松五里面 북쪽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도록 그렸다. 이와 같은 오류는 회화식 군현지도가 읍치 지역을 확대 과장해서 그렸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표현 방법이나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양성현 지도에서는 아래쪽을 바다처럼 표시했는데,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수정되어 있다. 《해동지도》에서 이런 오류가 나타난 것은 본 지도의 왼쪽 아래에 있는 세 개의 면 중 2개가 수원의 경계를 넘어가 서해에 접해 있는 월경지라는 사실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반대로 본 지도에서는 이 세 개의 면이 월경지이며, 2개가 바다에 접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주기에 적혀 있는 면의 거리를 통해 월경지임을 짐작할 수는 있으나 확실하게 이해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이기봉)

  • 양주목(楊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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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다만 일부 지역에서 산줄기 등의 표현이 약간 다를 뿐이다. 예를 들어 지도 왼쪽 위의 石積面과 靖嬪墓 사이에 큰 세 개의 산이 그려져 있는데 《광여도》에는 그냥 산줄기 정도로만 표현되어 있다. 오른쪽 아래의 六陵內의 경우도 원이 5개 그려져 있으나 《광여도》에는 11개나 표시되어 있다. 일부 지명의 표시도 달라지고 있다. 아래쪽에 오른쪽(동쪽)에서 왼쪽(서쪽)으로 흐르는 하천이 漢江이다. 한강 동쪽에는 豆音津이 표시되어 있는데, 《광여도》에는 禿音津이라고 되어 있다. 京 오른쪽 방향에 《광여도》에 牛耳川으로 표시된 것이 본 지도에는 生目川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양주는 크게 아래쪽의 중랑천이나 왕숙천 등 한강의 지류 유역과 위쪽의 임진강 지류인 한탄강 유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맨 위쪽에는 한탄강의 명칭이 유래된 大灘이 표시되어 있다. 한탄강은 ‘크다’는 우리말의 ‘한’에다가 ‘여울’의 한자인 ‘灘’을 합친 용어이다. 大灘을 모두 우리말로 하면 ‘한여울’이 된다. 수도인 한양 주변인만큼 陵墓와 書院 등이 즐비하게 있는 고을이었다. 이 지도에도 인문 정보 중 읍치의 여러 시설을 제외하면 두 정보가 가장 자세하게 표시되어 있다. (이기봉)

  • 양주목(楊州牧)(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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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다만 일부 지역에서 산줄기 등의 표현이 약간 다를 뿐이다. 예를 들어 지도 왼쪽 위의 石積面과 靖嬪墓 사이에 큰 세 개의 산이 그려져 있는데 《광여도》에는 그냥 산줄기 정도로만 표현되어 있다. 오른쪽 아래의 六陵內의 경우도 원이 5개 그려져 있으나 《광여도》에는 11개나 표시되어 있다. 일부 지명의 표시도 달라지고 있다. 아래쪽에 오른쪽(동쪽)에서 왼쪽(서쪽)으로 흐르는 하천이 漢江이다. 한강 동쪽에는 豆音津이 표시되어 있는데, 《광여도》에는 禿音津이라고 되어 있다. 京 오른쪽 방향에 《광여도》에 牛耳川으로 표시된 것이 본 지도에는 生目川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양주는 크게 아래쪽의 중랑천이나 왕숙천 등 한강의 지류 유역과 위쪽의 임진강 지류인 한탄강 유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맨 위쪽에는 한탄강의 명칭이 유래된 大灘이 표시되어 있다. 한탄강은 ‘크다’는 우리말의 ‘한’에다가 ‘여울’의 한자인 ‘灘’을 합친 용어이다. 大灘을 모두 우리말로 하면 ‘한여울’이 된다. 수도인 한양 주변인만큼 陵墓와 書院 등이 즐비하게 있는 고을이었다. 이 지도에도 인문 정보 중 읍치의 여러 시설을 제외하면 두 정보가 가장 자세하게 표시되어 있다. (이기봉)

  • 양지현(陽智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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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지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오른쪽 아래의 蹄村面 위쪽에 《광여도》에 있는 朴谷面과 高安面이 본 지도에서는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는 두 면의 명칭이 적혀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작성자가 실수로 빠뜨린 것으로 추정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양지현 지도도 표현 방법이나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하다. 《광여도》와 본 지도는 《해동지도》의 내용을 바탕으로 필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무조건 베낀 것은 아니며 일부에서는 《해동지도》가 틀린 부분을 보충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곳이 왼쪽 중간에 海谷里 방향에서 나와 북류하는 하천으로 《해동지도》에는 없던 것을 후에 보충하였다. 양지는 조선 초기에 서로 분리되어 있던 5개의 部曲과 1개의 鄕을 합해 하나의 고을로 만든 것이다. 이에 따라 월경지가 많이 형성되었고, 본 지도에도 이런 월경지가 실제와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오른쪽 아래는 남한강의 지류인 청미천 유역인데 이곳의 3개 面은 죽산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이다. 지도에도 읍치와 이곳 사이에 竹山이란 명칭을 여러 개 써넣어 이런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왼쪽 아래에 古北面을 포함한 4개의 면은 안성천의 지류인 한천 유역에 있었다. 이곳은 용인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에 가까운데 본 지도에도 중간에 龍仁界를 적어 넣어 이런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왼쪽 위의 하천은 팔당댐에서 한강에 합류되는 현재의 경안천 상류이고, 오른쪽은 여주에서 남한강에 합류하는 현재의 복하천 상류이다. (이기봉)

  • 양지현(陽智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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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지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오른쪽 아래의 蹄村面 위쪽에 《광여도》에 있는 朴谷面과 高安面이 본 지도에서는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는 두 면의 명칭이 적혀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작성자가 실수로 빠뜨린 것으로 추정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양지현 지도도 표현 방법이나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하다. 《광여도》와 본 지도는 《해동지도》의 내용을 바탕으로 필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무조건 베낀 것은 아니며 일부에서는 《해동지도》가 틀린 부분을 보충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곳이 왼쪽 중간에 海谷里 방향에서 나와 북류하는 하천으로 《해동지도》에는 없던 것을 후에 보충하였다. 양지는 조선 초기에 서로 분리되어 있던 5개의 部曲과 1개의 鄕을 합해 하나의 고을로 만든 것이다. 이에 따라 월경지가 많이 형성되었고, 본 지도에도 이런 월경지가 실제와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오른쪽 아래는 남한강의 지류인 청미천 유역인데 이곳의 3개 面은 죽산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이다. 지도에도 읍치와 이곳 사이에 竹山이란 명칭을 여러 개 써넣어 이런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왼쪽 아래에 古北面을 포함한 4개의 면은 안성천의 지류인 한천 유역에 있었다. 이곳은 용인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에 가까운데 본 지도에도 중간에 龍仁界를 적어 넣어 이런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왼쪽 위의 하천은 팔당댐에서 한강에 합류되는 현재의 경안천 상류이고, 오른쪽은 여주에서 남한강에 합류하는 현재의 복하천 상류이다. (이기봉)

  • 양천현(陽川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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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위쪽의 成峯은 《광여도》에 烽으로, 아래쪽의 馬上은 《광여도》에 馬山으로, 오른쪽 아래의 岩之山은 《광여도》에 嚴之山으로 표시되어 있다. 모두 후자가 타당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양천현 지도도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산이 고립되어 그려지던 것이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連脈式으로 바뀌어 있다. 이러한 연맥식 표현은 《광여도》와 본 지도책에서 일관되게 적용되는 방식으로 산에 대한 표현 방식이 지도마다 약간씩 다른 《해동지도》보다 통일적인 방식으로 지도를 그렸다고 볼 수 있다. 지도 맨 아래쪽에 있는 하천은 현재의 안양천이다. 마치 葛誕山 부근에서 발원되는 것처럼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금천 방향의 훨씬 상류에서 발원한다. 이와 같은 잘못된 표현은 《해동지도》에서는 더욱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해당 고을에서 그려 올린 것이 거의 분명한 ‘1872년 지방지도’의 양천현지도 에서도 이와 같은 오류는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해당 고을에서는 이와 같이 그려도 실제 상황을 이해하는데 큰 문제가 없지만 중앙에서 다시 전사될 경우에는 오해할 가능성이 많다. (이기봉)

  • 양천현(陽川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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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위쪽의 成峯은 《광여도》에 烽으로, 아래쪽의 馬上은 《광여도》에 馬山으로, 오른쪽 아래의 岩之山은 《광여도》에 嚴之山으로 표시되어 있다. 모두 후자가 타당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양천현 지도도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산이 고립되어 그려지던 것이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連脈式으로 바뀌어 있다. 이러한 연맥식 표현은 《광여도》와 본 지도책에서 일관되게 적용되는 방식으로 산에 대한 표현 방식이 지도마다 약간씩 다른 《해동지도》보다 통일적인 방식으로 지도를 그렸다고 볼 수 있다. 지도 맨 아래쪽에 있는 하천은 현재의 안양천이다. 마치 葛誕山 부근에서 발원되는 것처럼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금천 방향의 훨씬 상류에서 발원한다. 이와 같은 잘못된 표현은 《해동지도》에서는 더욱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해당 고을에서 그려 올린 것이 거의 분명한 ‘1872년 지방지도’의 양천현지도 에서도 이와 같은 오류는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해당 고을에서는 이와 같이 그려도 실제 상황을 이해하는데 큰 문제가 없지만 중앙에서 다시 전사될 경우에는 오해할 가능성이 많다. (이기봉)

  • 여주목(驪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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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제공되고 있는 《광여도》의 여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그러나 산줄기나 표현 방식은 본 지도가 더 거칠다. 읍치 위쪽에 표시된 等神面의 경우 《광여도》에는 제대로 표시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는 驛과 동일한 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六景이 빠진 八景에 대한 표시도 본 지도에는 지도를 읽는 사람이 헷갈리게 표현된 것이 많다. 예를 들어 읍치 위쪽에 표시된 三景인 ‘鷰灘’과 ‘歸帆’이 떨어져 있지만 《광여도》에는 함께 붙어 있다. 五景인 ‘笠岩’과 ‘層岩’도 서로 다른 것처럼 표시되어 있지만 함께 붙어 있어야 한다. 일부 지명도 빠져 있다. 예를 들어 《광여도》에는 近東面 왼쪽의 산에 仙遊臺가 적혀 있지만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향교 왼쪽에는 首界面이 首界界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하다. 이 지도만 놓고 보면 정확한 동서남북을 이해할 수 없다. 읍치 위쪽의 남한강은 오른쪽 동남쪽에서 흘러와 왼쪽 서북쪽으로 빠져나간다. 億橋가 있는 하천은 서남쪽에서 흘러와 동북쪽의 남한강에 합류된다. 忠州界에 표시된 청미천 역시 서남쪽에서 흘러와 동북쪽의 남한강에 합류된다. 반면에 原州界에 표시된 곡수천은 북쪽에서 흘러와 남쪽의 남한강에 합류된다. 회화식 고지도에서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방향은 대략적인 정확성만을 갖고 있는 것이다. 정보가 가장 많이 집약된 읍치를 다른 지역보다 대축척으로 그린 것도 일반적인 회화식 지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읍치 서쪽을 흐르는 하천은 동헌에서 향교까지의 거리보다 훨씬 먼 곳에서 발원하는데 이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못하다. 주기에는 각 고을까지의 거리, 면의 初境과 終境을 적어놓아 지도의 단점을 보완하고 있다. 그러나 각 고을까지의 거리에서 《광여도》와 달리 남쪽에 있었던 陰竹을 陰升이라 잘못 적는 오류가 발견되고 있다. 또한 各面의 경우 지도의 내용과 전혀 다르게 적혀 있어 지도와 주기의 작성 자료가 서로 어긋나고 있음을 추정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점은 《광여도》도 동일하다. (이기봉)

  • 여주목(驪州牧)(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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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제공되고 있는 《광여도》의 여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그러나 산줄기나 표현 방식은 본 지도가 더 거칠다. 읍치 위쪽에 표시된 等神面의 경우 《광여도》에는 제대로 표시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는 驛과 동일한 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六景이 빠진 八景에 대한 표시도 본 지도에는 지도를 읽는 사람이 헷갈리게 표현된 것이 많다. 예를 들어 읍치 위쪽에 표시된 三景인 ‘鷰灘’과 ‘歸帆’이 떨어져 있지만 《광여도》에는 함께 붙어 있다. 五景인 ‘笠岩’과 ‘層岩’도 서로 다른 것처럼 표시되어 있지만 함께 붙어 있어야 한다. 일부 지명도 빠져 있다. 예를 들어 《광여도》에는 近東面 왼쪽의 산에 仙遊臺가 적혀 있지만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향교 왼쪽에는 首界面이 首界界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하다. 이 지도만 놓고 보면 정확한 동서남북을 이해할 수 없다. 읍치 위쪽의 남한강은 오른쪽 동남쪽에서 흘러와 왼쪽 서북쪽으로 빠져나간다. 億橋가 있는 하천은 서남쪽에서 흘러와 동북쪽의 남한강에 합류된다. 忠州界에 표시된 청미천 역시 서남쪽에서 흘러와 동북쪽의 남한강에 합류된다. 반면에 原州界에 표시된 곡수천은 북쪽에서 흘러와 남쪽의 남한강에 합류된다. 회화식 고지도에서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방향은 대략적인 정확성만을 갖고 있는 것이다. 정보가 가장 많이 집약된 읍치를 다른 지역보다 대축척으로 그린 것도 일반적인 회화식 지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읍치 서쪽을 흐르는 하천은 동헌에서 향교까지의 거리보다 훨씬 먼 곳에서 발원하는데 이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못하다. 주기에는 각 고을까지의 거리, 면의 初境과 終境을 적어놓아 지도의 단점을 보완하고 있다. 그러나 각 고을까지의 거리에서 《광여도》와 달리 남쪽에 있었던 陰竹을 陰升이라 잘못 적는 오류가 발견되고 있다. 또한 各面의 경우 지도의 내용과 전혀 다르게 적혀 있어 지도와 주기의 작성 자료가 서로 어긋나고 있음을 추정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점은 《광여도》도 동일하다. (이기봉)

  • 연천현(漣川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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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연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지도 위쪽에 妙洞里가 《광여도》에는 沙洞里라고 적혀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연천현 지도도 표현 방법과 내용에서의 일부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구도는 동일하다. 이 《해동지도》에는 沙洞里라고 적혀 있어 본 지도가 잘못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가장 왼쪽의 하천은 현재의 임진강 본류인데, 《광여도》에서는 2개의 실선으로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에는 작은 하천처럼 1개의 실선으로 표시되어 있어 혼란을 주고 있다. 오른쪽 아래의 하천은 현재의 한탄강인데 본 지도에는 마치 懸崖項에서 내려오는 것이 본류처럼 그려져 있다. 《광여도》에는 그 오른쪽이 2개의 실선으로 이어지고 있어 발원지가 이 고을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하였다. 본 지도의 작성자가 그런 사실을 착각하여 실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紫烟瀑에 대한 묘사도 《광여도》에 비해 훨씬 간략화 되었다. 《해동지도》에는 모든 하천을 2개의 실선으로 그려 규모를 짐작하기 어렵게 한 것을 《광여도》에서 수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는 가운데의 하천 2개가 蜂岩 부근에서 연결된 것처럼 잘못 그렸는데 《광여도》와 본 지도에는 수정되어 있다. (이기봉)

  • 연천현(漣川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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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연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지도 위쪽에 妙洞里가 《광여도》에는 沙洞里라고 적혀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연천현 지도도 표현 방법과 내용에서의 일부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구도는 동일하다. 이 《해동지도》에는 沙洞里라고 적혀 있어 본 지도가 잘못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가장 왼쪽의 하천은 현재의 임진강 본류인데, 《광여도》에서는 2개의 실선으로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에는 작은 하천처럼 1개의 실선으로 표시되어 있어 혼란을 주고 있다. 오른쪽 아래의 하천은 현재의 한탄강인데 본 지도에는 마치 懸崖項에서 내려오는 것이 본류처럼 그려져 있다. 《광여도》에는 그 오른쪽이 2개의 실선으로 이어지고 있어 발원지가 이 고을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하였다. 본 지도의 작성자가 그런 사실을 착각하여 실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紫烟瀑에 대한 묘사도 《광여도》에 비해 훨씬 간략화 되었다. 《해동지도》에는 모든 하천을 2개의 실선으로 그려 규모를 짐작하기 어렵게 한 것을 《광여도》에서 수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는 가운데의 하천 2개가 蜂岩 부근에서 연결된 것처럼 잘못 그렸는데 《광여도》와 본 지도에는 수정되어 있다. (이기봉)

  • 영종(永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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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종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지도 왼쪽 위에 적혀 있는 ‘龍流物場’은 《광여도》에 ‘龍流牧場’으로 되어 있다. 후자가 올바르기 때문에 본 지도가 오류를 범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 富平界에도 水路를 水里로 잘못 기록한 것이 보인다. 永宗은 독자적인 고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도가 그려져 있다. 1705년(숙종 31)에 독자적인 영역과 주민을 갖고 있는 獨鎭이 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영종도라 불리는 섬은 월래 紫燕島라고 하였으며, 본 지도에는 영종진이 관할하는 섬만 그려져 있다. 자연도와 주변의 섬 사이에는 ‘退潮成陸’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썰물 때 육지가 된다’는 의미로서 특이하게 갯벌의 범위도 지도에 그려져 있다. 갯벌 바깥쪽이 바다인데, 그 바깥쪽에 또 다른 경계가 표시되어 있다. 이 경계는 영종진이 관할하는 범위를 가리키는 것일 뿐 육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 경계 바깥에는 인근 고을과의 水路 거리가 적혀 있다. 오른쪽 위에는 京江船路가 적혀 있다. 京江은 서울 부근의 한강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그곳으로 가는 稅穀船이 다니는 통로라는 의미이다. 왼쪽 아래에는 三南海門이 적혀 있다. 이 방향으로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의 세곡선이 드나들었기 때문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영종진 지도도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유사하여 상호 관련성을 추정할 수 있다. (이기봉)

  • 영종(永宗)(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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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종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지도 왼쪽 위에 적혀 있는 ‘龍流物場’은 《광여도》에 ‘龍流牧場’으로 되어 있다. 후자가 올바르기 때문에 본 지도가 오류를 범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 富平界에도 水路를 水里로 잘못 기록한 것이 보인다. 永宗은 독자적인 고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도가 그려져 있다. 1705년(숙종 31)에 독자적인 영역과 주민을 갖고 있는 獨鎭이 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영종도라 불리는 섬은 월래 紫燕島라고 하였으며, 본 지도에는 영종진이 관할하는 섬만 그려져 있다. 자연도와 주변의 섬 사이에는 ‘退潮成陸’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썰물 때 육지가 된다’는 의미로서 특이하게 갯벌의 범위도 지도에 그려져 있다. 갯벌 바깥쪽이 바다인데, 그 바깥쪽에 또 다른 경계가 표시되어 있다. 이 경계는 영종진이 관할하는 범위를 가리키는 것일 뿐 육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 경계 바깥에는 인근 고을과의 水路 거리가 적혀 있다. 오른쪽 위에는 京江船路가 적혀 있다. 京江은 서울 부근의 한강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그곳으로 가는 稅穀船이 다니는 통로라는 의미이다. 왼쪽 아래에는 三南海門이 적혀 있다. 이 방향으로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의 세곡선이 드나들었기 때문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영종진 지도도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유사하여 상호 관련성을 추정할 수 있다. (이기봉)

  • 영평현(永平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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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평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北面에 있는 適骨山峯이 《광여도》에는 適骨山烽으로 되어 있는데 후자가 맞는 것이다. 읍치 아래쪽에 있는 ‘南大川 津船’은 《광여도》에는 없는 것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영평현 지도도 표현 방식과 내용적인 측면에서 일부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구도는 동일하다. 《해동지도》에 있었던 도로가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사라졌으며, 일부 지명의 가감이 있다. 왼쪽에 있는 하천이 지금의 한탕강이며, 왼쪽 아래에 ‘合水去漢灘’이라고 적혀 있다. ‘漢灘’은 우리말 ‘한여울’에 대한 한자 표현으로서 ‘大灘’이라 표시된 경우가 많다. ‘한’이 크다는 뜻이므로 ‘大’자를 사용한 것이다. ‘한탄’ 또는 ‘대탄’은 원래 현재의 연천군 전곡읍 전곡리 부근에 있었던 여울 부근만을 지칭하던 것인데 일제시대 이후 본류 전체를 지칭하는 명칭으로 정해졌다. ‘合水去漢灘’이란 표현도 ‘물이 합류되어 한탄으로 내려간다’는 뜻으로 ‘한탄’이 전곡리 부근만을 지칭하기 때문에 사용될 수 있는 표현이다. 정보가 가장 많은 읍치가 대축척으로 그려지고, 산줄기식으로 읍치를 강조한 전형적인 회화식 군현지도이다. 이와 같은 지도에서는 각 정보의 거리와 방향 등이 정확하지 않으며, 산의 실제 높이도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은 오른쪽의 國望山(1168.1m)인데 이 지도만으로는 이러한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 거리와 방향 등은 주기의 지지 자료를 통해 보완할 수 있다. (이기봉)

  • 영평현(永平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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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평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北面에 있는 適骨山峯이 《광여도》에는 適骨山烽으로 되어 있는데 후자가 맞는 것이다. 읍치 아래쪽에 있는 ‘南大川 津船’은 《광여도》에는 없는 것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영평현 지도도 표현 방식과 내용적인 측면에서 일부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구도는 동일하다. 《해동지도》에 있었던 도로가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사라졌으며, 일부 지명의 가감이 있다. 왼쪽에 있는 하천이 지금의 한탕강이며, 왼쪽 아래에 ‘合水去漢灘’이라고 적혀 있다. ‘漢灘’은 우리말 ‘한여울’에 대한 한자 표현으로서 ‘大灘’이라 표시된 경우가 많다. ‘한’이 크다는 뜻이므로 ‘大’자를 사용한 것이다. ‘한탄’ 또는 ‘대탄’은 원래 현재의 연천군 전곡읍 전곡리 부근에 있었던 여울 부근만을 지칭하던 것인데 일제시대 이후 본류 전체를 지칭하는 명칭으로 정해졌다. ‘合水去漢灘’이란 표현도 ‘물이 합류되어 한탄으로 내려간다’는 뜻으로 ‘한탄’이 전곡리 부근만을 지칭하기 때문에 사용될 수 있는 표현이다. 정보가 가장 많은 읍치가 대축척으로 그려지고, 산줄기식으로 읍치를 강조한 전형적인 회화식 군현지도이다. 이와 같은 지도에서는 각 정보의 거리와 방향 등이 정확하지 않으며, 산의 실제 높이도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은 오른쪽의 國望山(1168.1m)인데 이 지도만으로는 이러한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 거리와 방향 등은 주기의 지지 자료를 통해 보완할 수 있다. (이기봉)

  • 용인현(龍仁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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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용인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위쪽에 표시된 向牛流川은 《광여도》에 向流牛川으로, 오른쪽 아래의 窟君山은 《광여도》에 窟巖山으로 표시되어 있다. 모두 《광여도》의 기록이 맞는 것이다. 客舍와 왼쪽의 趙靜菴墓는 《광여도》에는 없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용인현 지도도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동일하다. 크게 바뀐 내용이 있다면 《해동지도》에는 도로가 표시되어 있는 반면에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도로가 삭제되고 大路란 명칭만 남았다. 아래쪽의 縣內面에도 지도에 표시된 다른 하천 정도로 큰 현재의 진위천이 있었다. 《해동지도》에는 표시되어 있던 것이 《광여도》와 본 지도에 삭제되어 있다. 왼쪽 위에는 衿川이 적혀 있는데 《광여도》에는 衿川界라고 되어 있다. 《광여도》의 기록만을 놓고 보면 용인현이 금천현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해동지도》에는 ‘衿川十五里’라고 적혀 있어 경계를 맞대고 있는 것이 아니라 15리를 가면 금천이라는 뜻임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했다. 이런 오해가 발생한 것은 이 방향의 도로를 삭제했기 때문이다.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衿川이 다른 고을처럼 衿川界라고 적혀 있지 않아 꼭 하천의 명칭인 것처럼 오해를 부를 수 있다. (이기봉)

  • 용인현(龍仁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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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용인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위쪽에 표시된 向牛流川은 《광여도》에 向流牛川으로, 오른쪽 아래의 窟君山은 《광여도》에 窟巖山으로 표시되어 있다. 모두 《광여도》의 기록이 맞는 것이다. 客舍와 왼쪽의 趙靜菴墓는 《광여도》에는 없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용인현 지도도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동일하다. 크게 바뀐 내용이 있다면 《해동지도》에는 도로가 표시되어 있는 반면에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도로가 삭제되고 大路란 명칭만 남았다. 아래쪽의 縣內面에도 지도에 표시된 다른 하천 정도로 큰 현재의 진위천이 있었다. 《해동지도》에는 표시되어 있던 것이 《광여도》와 본 지도에 삭제되어 있다. 왼쪽 위에는 衿川이 적혀 있는데 《광여도》에는 衿川界라고 되어 있다. 《광여도》의 기록만을 놓고 보면 용인현이 금천현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해동지도》에는 ‘衿川十五里’라고 적혀 있어 경계를 맞대고 있는 것이 아니라 15리를 가면 금천이라는 뜻임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했다. 이런 오해가 발생한 것은 이 방향의 도로를 삭제했기 때문이다.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衿川이 다른 고을처럼 衿川界라고 적혀 있지 않아 꼭 하천의 명칭인 것처럼 오해를 부를 수 있다. (이기봉)

  • 음죽현(陰竹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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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음죽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하천에 대한 표현 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아래쪽에 흐르는 天民川이 현재의 청미천이다. 《광여도》에는 2개의 실선으로 표시되어 있으나 본 지도에는 읍치에서 내려가는 하천과 동일하게 1개의 실선으로 그려져 있다. 본 지도의 작성자가 읍치에서 내려가는 하천과 청미천을 동일하게 취급하고 합류되는 지점부터 2개의 실선으로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읍치에서 내려가는 하천은 실제적으로 청미천에 비하면 아주 짧은 하천에 불과하다. 본 지도가 회화식 지도이기 때문에 그런 점이 잘 표현되지 못했을 뿐이다. 본 지도의 작성자는 그런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왼쪽의 白山峯에서 내려가 長海院石橋에서 청미천과 합류되는 하천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광여도》에도 2개의 실선으로 표시하여 청미천과 동급의 하천처럼 그려놓았다. 본 지도와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동일한 《해동지도》의 음죽현 지도에서는 청미천이 제대로 그려져 있다. 장해원에서 청미천과 합류되는 하천은 《광여도》 또는 본 지도의 작성자가 《해동지도》를 참조하여 그리면서 도로를 하천으로 착각하여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음죽현(陰竹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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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음죽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하천에 대한 표현 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아래쪽에 흐르는 天民川이 현재의 청미천이다. 《광여도》에는 2개의 실선으로 표시되어 있으나 본 지도에는 읍치에서 내려가는 하천과 동일하게 1개의 실선으로 그려져 있다. 본 지도의 작성자가 읍치에서 내려가는 하천과 청미천을 동일하게 취급하고 합류되는 지점부터 2개의 실선으로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읍치에서 내려가는 하천은 실제적으로 청미천에 비하면 아주 짧은 하천에 불과하다. 본 지도가 회화식 지도이기 때문에 그런 점이 잘 표현되지 못했을 뿐이다. 본 지도의 작성자는 그런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왼쪽의 白山峯에서 내려가 長海院石橋에서 청미천과 합류되는 하천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광여도》에도 2개의 실선으로 표시하여 청미천과 동급의 하천처럼 그려놓았다. 본 지도와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동일한 《해동지도》의 음죽현 지도에서는 청미천이 제대로 그려져 있다. 장해원에서 청미천과 합류되는 하천은 《광여도》 또는 본 지도의 작성자가 《해동지도》를 참조하여 그리면서 도로를 하천으로 착각하여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이천부(利川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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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이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읍치의 客舍 오른쪽에 鄕校의 명칭이 사라진 점, 《광여도》에 衙와 倉으로만 쓰여 있던 것이 衙舍와 司倉으로 적혀 있는 점 정도이다. 읍치 왼쪽에 표시된 하천은 현재의 복하천이다. 지도에는 위쪽의 陽智界로부터 복하천이 흘러들어오는 것처럼 표시되어 있으나 사실과 다르다. 아래쪽의 虎岩池에서 복하천이 끝나는 것처럼 표시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麗州界 방향으로 흘러나가야 한다. 《광여도》에는 두 부분이 제대로 표현되어 있다. 주변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 표시에서도 몇 가지를 수정해야 한다. 왼쪽 竹山界와 陰竹界 사이에 다시 陽智界가 있어야 하며, 오른쪽 위에는 廣州界가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산줄기와 물줄기는 실제의 모습보다는 인식된 지형을 반영했다. 읍치를 중심으로 산줄기와 물줄기가 겹겹이 싸여있는 모습으로 그렸다. 또한 읍치에서 바라보이는 방향으로 산의 모습을 그렸다. 이것은 읍치가 풍수적 명당임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다. 조선후기에 유행했던 왕릉을 비롯한 무덤의 지도인 山圖와 기본적인 틀이 비슷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와 ‘1872년 지방지도’ 및 『여지도서』의 경기도 이천부 지도도 내용적으로는 다르나 山圖 형태의 기본적인 구도는 거의 비슷하다. (이기봉)

  • 이천부(利川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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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이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읍치의 客舍 오른쪽에 鄕校의 명칭이 사라진 점, 《광여도》에 衙와 倉으로만 쓰여 있던 것이 衙舍와 司倉으로 적혀 있는 점 정도이다. 읍치 왼쪽에 표시된 하천은 현재의 복하천이다. 지도에는 위쪽의 陽智界로부터 복하천이 흘러들어오는 것처럼 표시되어 있으나 사실과 다르다. 아래쪽의 虎岩池에서 복하천이 끝나는 것처럼 표시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麗州界 방향으로 흘러나가야 한다. 《광여도》에는 두 부분이 제대로 표현되어 있다. 주변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 표시에서도 몇 가지를 수정해야 한다. 왼쪽 竹山界와 陰竹界 사이에 다시 陽智界가 있어야 하며, 오른쪽 위에는 廣州界가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산줄기와 물줄기는 실제의 모습보다는 인식된 지형을 반영했다. 읍치를 중심으로 산줄기와 물줄기가 겹겹이 싸여있는 모습으로 그렸다. 또한 읍치에서 바라보이는 방향으로 산의 모습을 그렸다. 이것은 읍치가 풍수적 명당임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다. 조선후기에 유행했던 왕릉을 비롯한 무덤의 지도인 山圖와 기본적인 틀이 비슷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와 ‘1872년 지방지도’ 및 『여지도서』의 경기도 이천부 지도도 내용적으로는 다르나 山圖 형태의 기본적인 구도는 거의 비슷하다. (이기봉)

  • 인천부(仁川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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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인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몇 가지 부분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다른 面과 달리 鳥洞面에 노란색 사각형을 표시하지 않았다. 반면에 읍치 아래쪽의 大池를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하여 面으로 오해할 수 있도록 표시하였다. 朱崖面을 朱岩面으로, 濟物津頭를 遊物津頭로, 黃等川面을 黃川面으로 잘못 기재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오류들을 고려하면 《광여도》가 본 지도보다 더 정확하게 그렸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도는 현재의 인천광역시 남구 관교동 일대에 있었던 읍치를 중심으로 산지가 겹겹이 둘러싸인 것처럼 표현하였다. 또한 남쪽을 위로 하여 읍치에서 바라보이는 산의 형태로 그렸다. 이와 같이 실제의 지형을 풍수적 명당 관념으로 그리는 것은 조선후기의 山圖에서 잘 나타나는 표현 방식이었다. 오른쪽(서쪽) 바닷가에 표시된 섬들은 크기와 거리에서 실제와 부합되고 있지 않다. 예를 들어 八味島는 無衣島보다 훨씬 작은 섬임에도 이와 같은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또한 德積島는 해안에서 훨씬 멀리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섬들의 위치는 일정한 크기의 종이에 맞추기 위해 대략적인 방향만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인천부 지도, 『여지도서』의 인천부 지도도 《광여도》보다는 못하지만 구도가 비슷하여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인천부(仁川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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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인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몇 가지 부분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다른 面과 달리 鳥洞面에 노란색 사각형을 표시하지 않았다. 반면에 읍치 아래쪽의 大池를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하여 面으로 오해할 수 있도록 표시하였다. 朱崖面을 朱岩面으로, 濟物津頭를 遊物津頭로, 黃等川面을 黃川面으로 잘못 기재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오류들을 고려하면 《광여도》가 본 지도보다 더 정확하게 그렸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도는 현재의 인천광역시 남구 관교동 일대에 있었던 읍치를 중심으로 산지가 겹겹이 둘러싸인 것처럼 표현하였다. 또한 남쪽을 위로 하여 읍치에서 바라보이는 산의 형태로 그렸다. 이와 같이 실제의 지형을 풍수적 명당 관념으로 그리는 것은 조선후기의 山圖에서 잘 나타나는 표현 방식이었다. 오른쪽(서쪽) 바닷가에 표시된 섬들은 크기와 거리에서 실제와 부합되고 있지 않다. 예를 들어 八味島는 無衣島보다 훨씬 작은 섬임에도 이와 같은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또한 德積島는 해안에서 훨씬 멀리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섬들의 위치는 일정한 크기의 종이에 맞추기 위해 대략적인 방향만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인천부 지도, 『여지도서』의 인천부 지도도 《광여도》보다는 못하지만 구도가 비슷하여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장단부(長湍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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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장단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약간의 차이가 나타나고 있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우선 大位面과 津東面 등이 다른 面과 달리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지 않다. 三味大川은 三味大山으로, 魚龍浦는 魚龍山으로 바뀌어 있다. 骨陵이 滑陵으로, 臨江書院이 臨淸書院으로, 田齋宮이 田齊宮으로, 鳥老山이 烏老山으로, 金約谷이 金納谷으로 표시되어 있기도 하다. 지도 왼쪽 위의 城山과 왼쪽 아래의 臨津船倉은 《광여도》에는 없는 것이다. 《광여도》와 동일하게 잘못된 부분도 있다. 長北面 방향에서 江西面을 거쳐 加勿峴으로 표시된 실선은 하천이 아니라 원래 도로이다. 오른쪽 중간쯤에서 흘러들어와 왼쪽 아래로 흘러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임진강이다. 굴곡을 고려하지 않으면 실제로는 읍내 정 동쪽에서 서남쪽으로 직선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본 지도에서는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기 위해 마치 남류하다가 서류한 것처럼 그려져 있다. 다른 하천의 유로 역시 방향이 정확히 맞는 것은 아니다. 임진강 변에서 바닷배가 들어올 수 있는 최상류가 오른쪽 중간의 임진강변에 표시된 古浪浦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임진강변 최대의 포구였으며, 일제시대 까지도 번영을 누렸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장단부 지도도 내용적으로는 본 지도와 많이 다르지만 하천의 유로 등의 기본적인 구도는 서로 비슷하여 연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장단부(長湍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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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장단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약간의 차이가 나타나고 있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우선 大位面과 津東面 등이 다른 面과 달리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지 않다. 三味大川은 三味大山으로, 魚龍浦는 魚龍山으로 바뀌어 있다. 骨陵이 滑陵으로, 臨江書院이 臨淸書院으로, 田齋宮이 田齊宮으로, 鳥老山이 烏老山으로, 金約谷이 金納谷으로 표시되어 있기도 하다. 지도 왼쪽 위의 城山과 왼쪽 아래의 臨津船倉은 《광여도》에는 없는 것이다. 《광여도》와 동일하게 잘못된 부분도 있다. 長北面 방향에서 江西面을 거쳐 加勿峴으로 표시된 실선은 하천이 아니라 원래 도로이다. 오른쪽 중간쯤에서 흘러들어와 왼쪽 아래로 흘러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임진강이다. 굴곡을 고려하지 않으면 실제로는 읍내 정 동쪽에서 서남쪽으로 직선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본 지도에서는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기 위해 마치 남류하다가 서류한 것처럼 그려져 있다. 다른 하천의 유로 역시 방향이 정확히 맞는 것은 아니다. 임진강 변에서 바닷배가 들어올 수 있는 최상류가 오른쪽 중간의 임진강변에 표시된 古浪浦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임진강변 최대의 포구였으며, 일제시대 까지도 번영을 누렸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장단부 지도도 내용적으로는 본 지도와 많이 다르지만 하천의 유로 등의 기본적인 구도는 서로 비슷하여 연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적성현(積城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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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적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본 지도에 鍊武堂으로 표시된 것이 《광여도》에 鍊武廳으로 표시된 점, 《광여도》에 연무당 동쪽에 있었던 城隍壇이 본 지도에 생략된 정도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적성현 지도도 표현 방법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광여도》와 본 지도가 《해동지도》의 것을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대로 필사한 것이 아니라 선택적으로 하였으며, 일부분에서는 다른 자료를 첨가하기도 하였다. 오른쪽 아래의 廣石峴에는 절벽이 상당히 자세히 표시되어 있는데 《해동지도》에서는 상대적으로 간단하게 표현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적성현 산천 부분에 ‘사면에 돌이 깎아지른 듯하고, 둘레가 1리 이다. 높이가 50보인데 위에는 40여인이 앉을 수 있다.’는 기록을 참조하여 더 웅장하게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의 풍수적 명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남쪽에 있는 감악산을 위쪽으로, 북쪽에 있는 임진강을 아래로 배치하였다. 산줄기를 겹겹이 싸인 형태로 그려 읍치의 이미지를 강하고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적성현의 일반적인 모양이나 여러 정보의 배치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이기봉)

  • 적성현(積城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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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적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본 지도에 鍊武堂으로 표시된 것이 《광여도》에 鍊武廳으로 표시된 점, 《광여도》에 연무당 동쪽에 있었던 城隍壇이 본 지도에 생략된 정도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적성현 지도도 표현 방법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광여도》와 본 지도가 《해동지도》의 것을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대로 필사한 것이 아니라 선택적으로 하였으며, 일부분에서는 다른 자료를 첨가하기도 하였다. 오른쪽 아래의 廣石峴에는 절벽이 상당히 자세히 표시되어 있는데 《해동지도》에서는 상대적으로 간단하게 표현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적성현 산천 부분에 ‘사면에 돌이 깎아지른 듯하고, 둘레가 1리 이다. 높이가 50보인데 위에는 40여인이 앉을 수 있다.’는 기록을 참조하여 더 웅장하게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의 풍수적 명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남쪽에 있는 감악산을 위쪽으로, 북쪽에 있는 임진강을 아래로 배치하였다. 산줄기를 겹겹이 싸인 형태로 그려 읍치의 이미지를 강하고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적성현의 일반적인 모양이나 여러 정보의 배치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이기봉)

  • 죽산부(竹山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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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죽산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첫째, 邑基에 南部面을 南部山으로 잘못 기재하고 있다. 둘째, 왼쪽에 水原界, 安城界 大路 등은 《광여도》에 없는 것이다. 죽산부는 수원부와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水原界라 적혀 있는 본 지도의 내용이 잘못된 것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죽산부 지도와는 표현 방식이나 내용적으로 일부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동일하다. 《해동지도》와 비교하여 본 지도에는 도로가 생략되어 있고, 위쪽의 遠三面에서 발원하는 현재의 한천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광여도》와 본 지도가 《해동지도》의 내용을 참고하면서 좀더 간략하게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죽산부 지도도 기본적인 구도는 이 지도와 비슷하다. 아마 죽산부에서 그려진 많은 지도가 이와 같은 구도로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며, 중앙으로 올려진 지도도 그런 지도를 바탕으로 다시 그려진 것이 아닌가 한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에 大路란 표현이 나오고 있는데, 본 고을의 입장에서 大路란 의미이다. 오른쪽 아래에 적힌 乭院大路는 도성에서 동래까지 이어진 大路이다. 邑基에는 客舍가 표시되어 있다. 객사에서는 매월 1일과 15일에 도성에 살고 있는 왕을 향해 절을 올리는 望闕向拜가 이루어졌다. 이 행사는 사또가 왕을 대신하여 이 고을을 통치한다는 의미가 들어있기 때문에 객사는 그 어떤 관아 건물보다도 중요하게 인식되었고 규모도 컸다. 이에 따라 사또가 집무를 보는 東軒 또는 衙舍보다도 더 큰 상징성을 지니고 있어 지도에도 가장 많이 그려졌다. 본 지도도 조선시대의 이러한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기봉)

  • 죽산부(竹山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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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죽산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첫째, 邑基에 南部面을 南部山으로 잘못 기재하고 있다. 둘째, 왼쪽에 水原界, 安城界 大路 등은 《광여도》에 없는 것이다. 죽산부는 수원부와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水原界라 적혀 있는 본 지도의 내용이 잘못된 것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죽산부 지도와는 표현 방식이나 내용적으로 일부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동일하다. 《해동지도》와 비교하여 본 지도에는 도로가 생략되어 있고, 위쪽의 遠三面에서 발원하는 현재의 한천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광여도》와 본 지도가 《해동지도》의 내용을 참고하면서 좀더 간략하게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죽산부 지도도 기본적인 구도는 이 지도와 비슷하다. 아마 죽산부에서 그려진 많은 지도가 이와 같은 구도로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며, 중앙으로 올려진 지도도 그런 지도를 바탕으로 다시 그려진 것이 아닌가 한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에 大路란 표현이 나오고 있는데, 본 고을의 입장에서 大路란 의미이다. 오른쪽 아래에 적힌 乭院大路는 도성에서 동래까지 이어진 大路이다. 邑基에는 客舍가 표시되어 있다. 객사에서는 매월 1일과 15일에 도성에 살고 있는 왕을 향해 절을 올리는 望闕向拜가 이루어졌다. 이 행사는 사또가 왕을 대신하여 이 고을을 통치한다는 의미가 들어있기 때문에 객사는 그 어떤 관아 건물보다도 중요하게 인식되었고 규모도 컸다. 이에 따라 사또가 집무를 보는 東軒 또는 衙舍보다도 더 큰 상징성을 지니고 있어 지도에도 가장 많이 그려졌다. 본 지도도 조선시대의 이러한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기봉)

  • 지평현(砥平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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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지평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寺가 菴으로, 峙가 峴으로 바뀐 것이 몇 개 있다. 왼쪽 중간 부분에는 水路가 표시되어 있는데 이것은 水破를 잘못 옮긴 것이다. 그 아래쪽에 水源이라 적혀 있는 것은 《광여도》에 水原으로 적혀 있는데, 원래는 水破로 적어야 한다. 왼쪽 중간에 水破라 적힌 곳에 《광여도》에 있던 작은 하천 하나가 생략되어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지평현 지도는 방향과 표현 양식 및 일부의 내용에서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본 지도 아래쪽에 李判府事墓가 《광여도》에는 白鵶谷澤堂墓라고 적혀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적혀 있다. 《해동지도》에서는 본 지도의 왼쪽 하천이 읍치 부근의 하천과 연결된 것처럼 그려져 있는데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는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 지평현(砥平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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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지평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寺가 菴으로, 峙가 峴으로 바뀐 것이 몇 개 있다. 왼쪽 중간 부분에는 水路가 표시되어 있는데 이것은 水破를 잘못 옮긴 것이다. 그 아래쪽에 水源이라 적혀 있는 것은 《광여도》에 水原으로 적혀 있는데, 원래는 水破로 적어야 한다. 왼쪽 중간에 水破라 적힌 곳에 《광여도》에 있던 작은 하천 하나가 생략되어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지평현 지도는 방향과 표현 양식 및 일부의 내용에서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본 지도 아래쪽에 李判府事墓가 《광여도》에는 白鵶谷澤堂墓라고 적혀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적혀 있다. 《해동지도》에서는 본 지도의 왼쪽 하천이 읍치 부근의 하천과 연결된 것처럼 그려져 있는데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는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 진위현(振威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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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진위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 왼쪽의 東越峴이 《광여도》에 東越峙로 되어 있고, 아래쪽의 葛院酒幕의 위치는 《광여도》에 약간 위쪽에 표시되어 있다. 또한 稷山界 부분이 《광여도》에는 바다로 되어 있지 않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진위현 지도도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와 《광여도》의 지도는 《해동지도》를 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일부 지명에서 잘못된 것이 발견된다. 위쪽의 舞鶴山은 舞峰山을, 읍치 왼쪽의 皇峴은 白土峴을, 東越縣은 車越峴을 잘못 전사한 것이다. 각 지역의 축척이 다르기 때문에 방향이나 거리가 정확하지 않다. 《해동지도》에서는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다른 고을과 경계선에 읍치로부터의 거리를 적어놓았다. 예를 들어 아래쪽의 陽城界까지는 10리이고, 稷山界까지는 30리로 되어 있다. 그런데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이러한 거리 기록을 삭제했기 때문에 실질적인 거리 상황을 거의 이해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다만 주기에 각 고을 경계까지의 방향과 거리가 적혀 있어 참조하면서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이기봉)

  • 진위현(振威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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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진위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 왼쪽의 東越峴이 《광여도》에 東越峙로 되어 있고, 아래쪽의 葛院酒幕의 위치는 《광여도》에 약간 위쪽에 표시되어 있다. 또한 稷山界 부분이 《광여도》에는 바다로 되어 있지 않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진위현 지도도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와 《광여도》의 지도는 《해동지도》를 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일부 지명에서 잘못된 것이 발견된다. 위쪽의 舞鶴山은 舞峰山을, 읍치 왼쪽의 皇峴은 白土峴을, 東越縣은 車越峴을 잘못 전사한 것이다. 각 지역의 축척이 다르기 때문에 방향이나 거리가 정확하지 않다. 《해동지도》에서는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다른 고을과 경계선에 읍치로부터의 거리를 적어놓았다. 예를 들어 아래쪽의 陽城界까지는 10리이고, 稷山界까지는 30리로 되어 있다. 그런데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이러한 거리 기록을 삭제했기 때문에 실질적인 거리 상황을 거의 이해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다만 주기에 각 고을 경계까지의 방향과 거리가 적혀 있어 참조하면서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이기봉)

  • 통진부(通津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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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통진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일부 부분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왼쪽 위에 표시된 月串 留島는 《광여도》에는 기록이 있지 않다. 오른쪽 아래의 桑串面과 半里村面에 다른 면처럼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 않은데 《광여도》에는 제대로 표시되어 있다. 지도 아래쪽의 浮來島 위쪽의 해변에 《광여도》에는 표시된 德津이란 문자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본 지도는 통진부의 대략적인 모습만을 그렸을 뿐 실제와 다른 부분이 많다. 위쪽에 있는 하천은 한강이 임진강과 만나 강화도 북쪽으로 빠져나가는 부분이다. 보통 이곳의 한강 명칭을 祖江이라고 기록하였는데 지도에는 阻江이라고 적혀 있다. 한강의 유로는 이 지도와 달리 실제로는 이 고을의 동쪽을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다 다시 서쪽으로 빠져나간다. 이 고을의 서쪽에는 지도에 江都로 표시된 江華府와의 사이에 鹽河라는 좁은 물길이 있었다. 아래쪽에 大海라고 쓰여 있는 부분의 대부분은 실제로는 서쪽에 있어야 한다. 실제와 부합하려면 왼쪽 위의 留島로부터 項山島까지 일직선으로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왜곡 때문에 읍치로부터 각 지점까지의 방향과 거리가 많이 틀린다. 客舍가 표시된 읍치는 현재의 김포군 월곶면 군하리 일대에 있었다. (이기봉)

  • 통진부(通津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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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통진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일부 부분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왼쪽 위에 표시된 月串 留島는 《광여도》에는 기록이 있지 않다. 오른쪽 아래의 桑串面과 半里村面에 다른 면처럼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 않은데 《광여도》에는 제대로 표시되어 있다. 지도 아래쪽의 浮來島 위쪽의 해변에 《광여도》에는 표시된 德津이란 문자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본 지도는 통진부의 대략적인 모습만을 그렸을 뿐 실제와 다른 부분이 많다. 위쪽에 있는 하천은 한강이 임진강과 만나 강화도 북쪽으로 빠져나가는 부분이다. 보통 이곳의 한강 명칭을 祖江이라고 기록하였는데 지도에는 阻江이라고 적혀 있다. 한강의 유로는 이 지도와 달리 실제로는 이 고을의 동쪽을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다 다시 서쪽으로 빠져나간다. 이 고을의 서쪽에는 지도에 江都로 표시된 江華府와의 사이에 鹽河라는 좁은 물길이 있었다. 아래쪽에 大海라고 쓰여 있는 부분의 대부분은 실제로는 서쪽에 있어야 한다. 실제와 부합하려면 왼쪽 위의 留島로부터 項山島까지 일직선으로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왜곡 때문에 읍치로부터 각 지점까지의 방향과 거리가 많이 틀린다. 客舍가 표시된 읍치는 현재의 김포군 월곶면 군하리 일대에 있었다. (이기봉)

  • 파주목(坡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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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파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광여도》에 없는 내용으로 오른쪽 여백에 도성에서 걸리는 기간이, 위쪽에 파주목의 옛 명칭이 적혀 있다. 읍치 오른쪽 위에 표시된 猪浦險津은 《광여도》에 없는 내용이다. 또한 읍치 왼쪽의 恭陵, 順陵, 孝章墓, 惠蔭岺도 《광여도》에는 없는 내용이다.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하도록 그렸다. 그러나 본 지도 전체가 정확한 방향을 고려한 것은 아니다. 읍치 오른쪽에 있는 임진강은 동북쪽에서 흘러와 서남쪽으로 빠져나간다. 본 지도에 의하면 임진강이 마치 정 동쪽에서 흘러오는 것처럼 잘못 이해될 수 있다. 이 구간의 임진강은 굴곡이 심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실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 지역 최대의 관방처인 臨津渡가 표시되어 있지 않음이 의아하다. 본 지도에서는 花石亭이라고 표시된 부분에 임진나루가 있었다. 이곳은 도성에서 의주로 가는 大路 상에 있으며, 북쪽으로부터 쳐들어온 적으로부터 도성을 방어하는 마지막 관문으로 여겨졌다. 이곳에는 1765년(영조 41)에 臨津堡와 長山堡가 설치되고, 나루 근처에는 關門城이 축조되어 있었다. 이것을 통해 볼 때 아마 이 지도는 1765년 이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추정된다. 읍치 왼쪽을 흐르는 하천은 현재 문산천이라고 하며, 서류하다가 다시 북류하여 임진강에 합류된다. 그러나 이 지도를 통해서는 문산천의 이런 유로를 이해할 수 없다. (이기봉)

  • 파주목(坡州牧)(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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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파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광여도》에 없는 내용으로 오른쪽 여백에 도성에서 걸리는 기간이, 위쪽에 파주목의 옛 명칭이 적혀 있다. 읍치 오른쪽 위에 표시된 猪浦險津은 《광여도》에 없는 내용이다. 또한 읍치 왼쪽의 恭陵, 順陵, 孝章墓, 惠蔭岺도 《광여도》에는 없는 내용이다.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하도록 그렸다. 그러나 본 지도 전체가 정확한 방향을 고려한 것은 아니다. 읍치 오른쪽에 있는 임진강은 동북쪽에서 흘러와 서남쪽으로 빠져나간다. 본 지도에 의하면 임진강이 마치 정 동쪽에서 흘러오는 것처럼 잘못 이해될 수 있다. 이 구간의 임진강은 굴곡이 심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실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 지역 최대의 관방처인 臨津渡가 표시되어 있지 않음이 의아하다. 본 지도에서는 花石亭이라고 표시된 부분에 임진나루가 있었다. 이곳은 도성에서 의주로 가는 大路 상에 있으며, 북쪽으로부터 쳐들어온 적으로부터 도성을 방어하는 마지막 관문으로 여겨졌다. 이곳에는 1765년(영조 41)에 臨津堡와 長山堡가 설치되고, 나루 근처에는 關門城이 축조되어 있었다. 이것을 통해 볼 때 아마 이 지도는 1765년 이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추정된다. 읍치 왼쪽을 흐르는 하천은 현재 문산천이라고 하며, 서류하다가 다시 북류하여 임진강에 합류된다. 그러나 이 지도를 통해서는 문산천의 이런 유로를 이해할 수 없다. (이기봉)

  • 포천현(抱川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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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포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포천현 지도는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타나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동일한 편이다. 읍치를 강조하고, 고을 전체에 통일성을 부여하기 위해 겹겹이 싸인 산줄기를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인해 실질적인 지형은 이해하기 어렵게 그려져 있다. 오른쪽 內洞面과 東村面 사이 水源山 부근에 왼쪽과 오른쪽 산줄기를 잇는 고개가 있어야 한다. 수원산 부근의 북쪽은 현재의 화현면, 남쪽은 현재의 내촌면으로서 각각 작은 하천 유역에 속해 있다. 왼쪽에 旺方山과 國祠峯 사이에도 산줄기가 이어져 있어야 한다. 그 북쪽은 현재의 신북면으로서 또 다른 작은 하천 유역에 속해 있다. 국사봉 아래쪽의 산줄기는 실제로는 그 오른쪽의 산줄기와 겹쳐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고을의 산세를 대칭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실제와 달리 이중의 산줄기가 있는 것처럼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전형적인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고을 전체와 읍치의 이미지를 강조하여 전달하려는 목적이 강했다. 따라서 각종 정보의 위치나 방향 그리고 거리 등은 정확하지 않게 된다. 이와 같은 점을 보완하기 위해 주기에는 거리와 방향에 대한 지지적 내용을 적어놓게 된다. (이기봉)

  • 포천현(抱川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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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포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포천현 지도는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타나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동일한 편이다. 읍치를 강조하고, 고을 전체에 통일성을 부여하기 위해 겹겹이 싸인 산줄기를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인해 실질적인 지형은 이해하기 어렵게 그려져 있다. 오른쪽 內洞面과 東村面 사이 水源山 부근에 왼쪽과 오른쪽 산줄기를 잇는 고개가 있어야 한다. 수원산 부근의 북쪽은 현재의 화현면, 남쪽은 현재의 내촌면으로서 각각 작은 하천 유역에 속해 있다. 왼쪽에 旺方山과 國祠峯 사이에도 산줄기가 이어져 있어야 한다. 그 북쪽은 현재의 신북면으로서 또 다른 작은 하천 유역에 속해 있다. 국사봉 아래쪽의 산줄기는 실제로는 그 오른쪽의 산줄기와 겹쳐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고을의 산세를 대칭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실제와 달리 이중의 산줄기가 있는 것처럼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전형적인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고을 전체와 읍치의 이미지를 강조하여 전달하려는 목적이 강했다. 따라서 각종 정보의 위치나 방향 그리고 거리 등은 정확하지 않게 된다. 이와 같은 점을 보완하기 위해 주기에는 거리와 방향에 대한 지지적 내용을 적어놓게 된다. (이기봉)

  • 풍덕부(豊德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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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풍덕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다른 부분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우선 《광여도》에 森達里로 되어 있는 것이 왼쪽 아래에 森連里로 잘못 표시되어 있다. 또한 위쪽의 德積烽舍는 德積烽臺로, 왼쪽 아래의 旧城臺는 舊城基로 해야 한다. 중간 부분의 軍裝山의 한자도 軍莊山으로 바뀌어 있다. 지도 아래쪽은 한강이 바다와 만나는 부분으로 건너편이 강화부와 통진부이다. 오른쪽에 通津이 적혀 있는데 마치 나루처럼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通津府가 이 방향에 있다는 의미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풍덕부 지도의 표현 방법이 본 지도와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구도와 지명은 거의 동일하여 상호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는 通津이 하구에 표시되어 있어 실제를 반영하고 있는데 《광여도》나 본 지도에서 잘못 그렸다. 이런 잘못은 본 지도의 오른쪽에 있는 하천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해동지도》를 보면 通津 약간 상류에 交河라는 명칭이 적혀 있다. 본 지도에서는 軍莊山 오른쪽 부분이다. 이 부분 약간 하류까지는 실제로 임진강 본류에 해당되며, 여기서 長湍과의 경계선 역할을 한 沙川이 합류된다. 그런데 《해동지도》에 이와 같은 사실이 반영되지 않고 사천을 마치 임진강 본류처럼 그렸다.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이것을 다시 사천으로 인식하여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임진강 하구 맞은편에 있는 通津(府)가 마치 나루의 명칭처럼 인식되도록 표시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통진부 지도에는 비록 회화식 군현지도이지만 이 부분이 실제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이기봉)

  • 풍덕부(豊德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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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풍덕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다른 부분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우선 《광여도》에 森達里로 되어 있는 것이 왼쪽 아래에 森連里로 잘못 표시되어 있다. 또한 위쪽의 德積烽舍는 德積烽臺로, 왼쪽 아래의 旧城臺는 舊城基로 해야 한다. 중간 부분의 軍裝山의 한자도 軍莊山으로 바뀌어 있다. 지도 아래쪽은 한강이 바다와 만나는 부분으로 건너편이 강화부와 통진부이다. 오른쪽에 通津이 적혀 있는데 마치 나루처럼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通津府가 이 방향에 있다는 의미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풍덕부 지도의 표현 방법이 본 지도와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구도와 지명은 거의 동일하여 상호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는 通津이 하구에 표시되어 있어 실제를 반영하고 있는데 《광여도》나 본 지도에서 잘못 그렸다. 이런 잘못은 본 지도의 오른쪽에 있는 하천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해동지도》를 보면 通津 약간 상류에 交河라는 명칭이 적혀 있다. 본 지도에서는 軍莊山 오른쪽 부분이다. 이 부분 약간 하류까지는 실제로 임진강 본류에 해당되며, 여기서 長湍과의 경계선 역할을 한 沙川이 합류된다. 그런데 《해동지도》에 이와 같은 사실이 반영되지 않고 사천을 마치 임진강 본류처럼 그렸다.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이것을 다시 사천으로 인식하여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임진강 하구 맞은편에 있는 通津(府)가 마치 나루의 명칭처럼 인식되도록 표시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통진부 지도에는 비록 회화식 군현지도이지만 이 부분이 실제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이기봉)

  • 가평군(加平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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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가평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지도 왼쪽에 春川界를 春山界로, 加平川을 加平界로 잘못 적었다는 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가평군 지도는 표현 방식이나 일부 내용에서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하여 상호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본 지도와 《광여도》가 서남쪽을 위로 향해 그린 반면 《해동지도》는 읍치로 뻗은 산줄기가 오는 방향인 正西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따라서 본 지도를 왼쪽으로 90도 정도 돌리면 《해동지도》의 것과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동일해 진다. 『여지도서』의 가평군 지도는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좀 다르기는 하지만 서남쪽을 위로 향해 그린 점은 동일하다. 왜 서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는지 분명하지는 않으나 王室의 胎가 묻힌 胎峯이 같은 방향에 있는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은가 추정된다. 왼쪽의 昭陽江下流라고 적혀 있는 부분에서 들어와 오른쪽 위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북한강이다. 실제로는 북한강의 굴곡이 본 지도보다 훨씬 많이 형성되어 있다. 아래쪽 오른쪽에는 永平界가 巨林川 상류에 적혀 있다. 현재의 가평천 상류에 있는 북면의 적목리 부근이 영평 땅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 공주목(公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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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공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동일하다. 내용적으로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공주목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현재 公山城이라 부르는 雙樹山城의 명칭 위치가 《광여도》보다는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또한 읍치 오른쪽 아래의 月城山烽은 《광여도》에는 없지만 《해동지도》에는 있다. 그 오른쪽의 巢鶴島는 《광여도》에 巢鶴山으로 나오지만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나온다. 쌍수산성 오른쪽의 廣程驛도 《광여도》에는 廣亭驛으로 나오지만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나온다. 그러나 광정역 오른쪽의 登高山은 《광여도》와 《해동지도》 모두 高登山으로, 왼쪽 아래의 淸林寺는 靑林寺로 나온다.  본 지도의 주기 내용은 《해동지도》가 아니라 《광여도》와 동일하다. 《해동지도》는 표현 방법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나 내용이 《광여도》나 본 지도와 비슷하여 세 지도가 상호 관련성이 깊다고 할 수 있다. 정보가 가장 많이 밀집되어 있는 읍치 지역을 다른 지역보다 대축척으로 그렸다. 따라서 읍치 지역과 다른 지역의 축척이 다르며, 錦江 역시 읍치 부분이 지나치게 크게 묘사되어 있다. 조선시대에 錦江은 본 지도에 표시된 부분만 지칭하던 명칭이었는데, 일제시대 이후 본류 전체를 지칭하는 명칭으로 변하였다. (이기봉)

  • 고부군(古阜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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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고부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에는 하천의 하류를 2개의 실선으로, 상류를 1개의 실선으로 그려 구분해주고 있다. 그 구분 기준이 분명하지는 않으나 밀물 때 바닷물이 들어오는 구간을 2개의 실선으로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본 지도에도 일부 하류 구간이 구별되나 《광여도》에 비하면 구별 정도가 약하다. 특히 흥덕의 땅을 넘어가 있는 월경지인 왼쪽 아래의 富安面의 하천 표시가 애매하다. 부안면은 현재 곰소만과 접해 있어 본 지도에 하천으로 표현된 부분의 실제 넓이는 다른 하천보다 훨씬 넓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고을 위쪽의 하천 표시도 오해를 일으키도록 그려져 있다. 가장 위쪽의 하천은 현재의 동진강이다. 동진강의 본류는 伐木面 위쪽의 泰仁 방면에서 흘러들어온다. 오른쪽에 그려진 하천은 동진강의 지류인 현재의 정읍천일 뿐이다. 본 지도는 확대 과장된 읍치를 산줄기와 물줄기가 타원형으로 감싼 형태로 그렸다. 이것은 읍치의 풍수적 명당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것일 뿐이다. 읍치 오른쪽의 정읍천 뿐만 아니라 왼쪽의 현 고부천 역시 실제로는 남쪽의 정읍과 흥덕에서 흘러들어온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고부군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가 본 지도와 거의 비슷하다. (이기봉)

  • 개령현(開寧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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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개령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다. 이로 인해 하천과 산줄기의 흐름이 약간 달라졌지만 전체적으로는 비슷하다. 왼쪽의 金山界에서 흘러와 오른쪽 善山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감천이다. 왼쪽 위의 金山界부터 흘러와 감천에 합류되는 하천은 아천이다. 감천이 아천보다 훨씬 규모가 크지만 본 지도에서는 이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그렸다. 반면에 《해동지도》에는 감천을 아천보다 훨씬 굵게 그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본 지도에 수록된 읍치 이외의 지명 중 《해동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은 오른쪽 아래의 牙浦面이다. 그러나 원래부터 《해동지도》에 아포면이 없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본 지도의 아포면 위치에 《해동지도》에 지운 흔적도 보이기 때문이다. 읍치의 건물 명칭 중 《해동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은 다른 자료를 통해 보충한 것으로 생각된다. 건물의 모습 중 亭子를 초가지붕으로 그린 것이 이채롭다. 개령현은 북쪽이 좁고 남쪽은 넓다. 본 지도에서는 북쪽과 남쪽을 동일하게 그렸기 때문에 이와 같은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렇게 된 이유는 사각형의 종이 위에 고을 전체를 꽉 차게 그리려고 했기 때문이다. 다만 북쪽에는 北面 1개만이 있는데 반해 남쪽에는 면이 5개나 있어 실제 사실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이기봉)

  • 강동현(江東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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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강동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강동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 지도에는 《해동지도》에 비해 하천의 표현에서 여러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왼쪽 위의 慈山界에서 흘러와 아래쪽의 平壤界로 흘러가는 하천이 현재의 대동강 본류이다. 위쪽 가운데에서 흘러와 대동강에 합류하는 하천은 비류강이고, 아래쪽의 三登界에서 들어와 대동강에 합류하는 하천이 현재의 남강이다. 대동강 본류와 비류강, 남강의 규모는 실제로 거의 비슷하다. 《해동지도》에도 세 개의 하천은 다른 지류에 비해 훨씬 굵게 표시하여 실제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그렸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남강을 1개의 실선으로만 그려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광여도》에서는 이 부분이 사실에 가깝게 교정되어 있다. 왼쪽의 高泉面 방향에서 들어오는 하천은 대동강 본류에 비하면 아주 작은 지류에 불과하고, 다른 고을에서 흘러오지도 않는다. 《해동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쉽게 이해될 수 있도록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에는 사실과 전혀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이 점은 《광여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하천의 표현만 놓고 보면 《광여도》는 고천면 방향의 하천은 본 지도와, 남강에 대한 표현은 《해동지도》와 유사하다. 본 지도에는 남강과 읍치의 水晶川이 다른 고을에서 흘러 들어온다는 사실도 이해하기 어렵게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는 이 부분이 실제처럼 그려져 있고, 《광여도》에도 《해동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해동지도》에 표시된 정보의 일부가 생략되어 있는 반면에 읍치 지역에서는 훨씬 많은 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따라서 본 지도는 기본적으로는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읍치 지역만큼은 다른 자료를 참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갑산부(甲山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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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갑산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와 《광여도》는 기본적으로 《해동지도》의 갑산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필사 과정에서 틀린 것도 있으며, 정보의 내용을 구분하지 못한 것도 있다. 지도 위의 노란색 사각형은 《해동지도》에 읍치 이외에 건물 모양이 표시된 곳 중 鎭堡와 驛站을 바꾸어 표현한 것이다. 이 중 呼獜, 熊耳, 終浦는 역참이다. 나머지 鎭堡 표시 중 잘못된 것이 2개 발견되고 있다. 맨 위쪽의 可方 부분에는 惠山이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해동지도》에는 이 부분에 惠山과 何方金德烽 2개의 지명이 적혀 있다. 이 중 鎭의 명칭은 혜산인데 본 지도의 필사 시 何方으로 잘못 이해했으며, 더 나아가 可方으로 오기하기도 하였다. 《광여도》에서는 이 부분이 시정되어 있다. 그 아래쪽의 雲龍은 雲寵을 잘못 기록한 것이다. 이 부분은 《해동지도》에서 이미 잘못 기재되었고,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필사한 것이다. 본 지도의 주기에는 雲寵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필사 시에 조금만 검토해 봤어도 오류를 시정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광여도》에서는 이 부분도 올바르게 시정되어 있다. 위쪽의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남류하다가 왼쪽으로 흘러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압록강이다. 아래쪽에서 발원하여 북류하다가 압록강에 합류되는 하천이 현재의 허천강이다. 허천강 유역 중 黃水院이 있는 곳은 실제로는 北靑府의 영역이었다. 지도에도 終浦 아래쪽에 北靑界를 적어 넣어 이와 같은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황수원 부근에서 발원하는 부분과 그 왼쪽의 咸興界黃鐵坡에서 발원하는 부분이 실제와 다르게 되어 있다. 실제로는 황수원 부근에서 발원하는 하천이 더 길고, 발원지가 서남쪽으로 더 내려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오류가 발생한 이유는 이 하천이 발원되는 太白山의 위치가 잘못 비정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류들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고, 정확성을 추구한 《조선지도》의 북청 지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김정호의 《동여도》에서 약간 시정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이 오류가 그대로 답습되고 있다. 오른쪽 위에는 두만강의 상류 부분이 표시되어 있다. 지도에는 그 오른쪽에 茂山境이라고 되어 있지만 《조선지도》의 무산 지도나 김정호의 《동여도》를 참조해 보면 이 지역은 무산부의 땅이었다. 다만 본 지도가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동지도》가 제작될 당시에는 이곳이 갑산부 소관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본 지도책의 茂山府 지도에서 이 지역이 생략된 것도 갑산부의 영역으로 인식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해동지도》에는 갑산부와 무산부 지도 모두에 이 지역이 그려져 있다. (이기봉)

  • ▶경상도
  • 7 신령현(新寧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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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신령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그러나 《해동지도》는 세로(남북)를 가로(동서)보다 더 길게 그렸고, 본 지도는 반대로 표현하였다. 이 과정에서 하천의 흐름이 세로는 상대적으로 길게, 가로는 짧게 그려져 있다. 고을의 실제적인 모습은 남북보다는 동서가 길게 되어 있어 《해동지도》가 사실에 가깝다. 본 지도는 세로로 긴 일정한 크기의 종이에 맞추어 지도를 그렸기 때문에 그로 인한 왜곡을 피할 수 없었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수록되어 있지만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런 측면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약간의 변화를 준 것으로 추정된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다보니까 몇 가지 왜곡이 발생하였다. 신령현의 서쪽의 남북 폭은 동쪽에 비해 훨씬 좁지만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예를 들어 왼쪽 위의 雉山面은 오른쪽 위의 新村面보다 훨씬 남쪽에 있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아래쪽의 南面은 영천의 경계를 넘어 현재의 경산시 와촌면 서쪽 부분에 있었던 신령현의 월경지였다. 아래쪽에 永川界와 河陽界가 연속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은 이런 사실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南面을 잘못 이해하고 그린 것은 이미 《해동지도》에서 시작되었다. 남면은 梨旨縣面과 동일한 지역을 가리킨다. 《해동지도》의 주기에는 이지현면이 적혀 있고, 南面 역시 가장 끝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남면에는 다른 면과 달리 초경과 종경이 적혀 있지 않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은 지도를 그릴 때와 주기를 적을 때가 달랐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즉, 지도를 그릴 때는 남면으로 했다가 주기를 적을 때는 이지현면으로 바꾸었다고 생각된다. 《해동지도》의 주기 작성자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지도에 있는 남면을 주기에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의 주기에는 이지현면은 있지만 남면은 생략되어 있다. (이기봉)

  • 7 신령현(新寧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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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신령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그러나 《해동지도》는 세로(남북)를 가로(동서)보다 더 길게 그렸고, 본 지도는 반대로 표현하였다. 이 과정에서 하천의 흐름이 세로는 상대적으로 길게, 가로는 짧게 그려져 있다. 고을의 실제적인 모습은 남북보다는 동서가 길게 되어 있어 《해동지도》가 사실에 가깝다. 본 지도는 세로로 긴 일정한 크기의 종이에 맞추어 지도를 그렸기 때문에 그로 인한 왜곡을 피할 수 없었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수록되어 있지만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런 측면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약간의 변화를 준 것으로 추정된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다보니까 몇 가지 왜곡이 발생하였다. 신령현의 서쪽의 남북 폭은 동쪽에 비해 훨씬 좁지만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예를 들어 왼쪽 위의 雉山面은 오른쪽 위의 新村面보다 훨씬 남쪽에 있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아래쪽의 南面은 영천의 경계를 넘어 현재의 경산시 와촌면 서쪽 부분에 있었던 신령현의 월경지였다. 아래쪽에 永川界와 河陽界가 연속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은 이런 사실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南面을 잘못 이해하고 그린 것은 이미 《해동지도》에서 시작되었다. 남면은 梨旨縣面과 동일한 지역을 가리킨다. 《해동지도》의 주기에는 이지현면이 적혀 있고, 南面 역시 가장 끝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남면에는 다른 면과 달리 초경과 종경이 적혀 있지 않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은 지도를 그릴 때와 주기를 적을 때가 달랐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즉, 지도를 그릴 때는 남면으로 했다가 주기를 적을 때는 이지현면으로 바꾸었다고 생각된다. 《해동지도》의 주기 작성자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지도에 있는 남면을 주기에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의 주기에는 이지현면은 있지만 남면은 생략되어 있다. (이기봉)

  • 개령현(開寧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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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개령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다. 이로 인해 하천과 산줄기의 흐름이 약간 달라졌지만 전체적으로는 비슷하다. 왼쪽의 金山界에서 흘러와 오른쪽 善山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감천이다. 왼쪽 위의 金山界부터 흘러와 감천에 합류되는 하천은 아천이다. 감천이 아천보다 훨씬 규모가 크지만 본 지도에서는 이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그렸다. 반면에 《해동지도》에는 감천을 아천보다 훨씬 굵게 그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본 지도에 수록된 읍치 이외의 지명 중 《해동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은 오른쪽 아래의 牙浦面이다. 그러나 원래부터 《해동지도》에 아포면이 없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본 지도의 아포면 위치에 《해동지도》에 지운 흔적도 보이기 때문이다. 읍치의 건물 명칭 중 《해동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은 다른 자료를 통해 보충한 것으로 생각된다. 건물의 모습 중 亭子를 초가지붕으로 그린 것이 이채롭다. 개령현은 북쪽이 좁고 남쪽은 넓다. 본 지도에서는 북쪽과 남쪽을 동일하게 그렸기 때문에 이와 같은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렇게 된 이유는 사각형의 종이 위에 고을 전체를 꽉 차게 그리려고 했기 때문이다. 다만 북쪽에는 北面 1개만이 있는데 반해 남쪽에는 면이 5개나 있어 실제 사실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이기봉)

  • 개령현(開寧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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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개령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다. 이로 인해 하천과 산줄기의 흐름이 약간 달라졌지만 전체적으로는 비슷하다. 왼쪽의 金山界에서 흘러와 오른쪽 善山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감천이다. 왼쪽 위의 金山界부터 흘러와 감천에 합류되는 하천은 아천이다. 감천이 아천보다 훨씬 규모가 크지만 본 지도에서는 이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그렸다. 반면에 《해동지도》에는 감천을 아천보다 훨씬 굵게 그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본 지도에 수록된 읍치 이외의 지명 중 《해동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은 오른쪽 아래의 牙浦面이다. 그러나 원래부터 《해동지도》에 아포면이 없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본 지도의 아포면 위치에 《해동지도》에 지운 흔적도 보이기 때문이다. 읍치의 건물 명칭 중 《해동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은 다른 자료를 통해 보충한 것으로 생각된다. 건물의 모습 중 亭子를 초가지붕으로 그린 것이 이채롭다. 개령현은 북쪽이 좁고 남쪽은 넓다. 본 지도에서는 북쪽과 남쪽을 동일하게 그렸기 때문에 이와 같은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렇게 된 이유는 사각형의 종이 위에 고을 전체를 꽉 차게 그리려고 했기 때문이다. 다만 북쪽에는 北面 1개만이 있는데 반해 남쪽에는 면이 5개나 있어 실제 사실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이기봉)

  • 거제부(巨濟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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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거제부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거의 다 《해동지도》에 나오며, 하천의 표시도 길이나 유로에서 약간 차이가 나지만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와 《해동지도》는 필사 관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비해 古縣城이나 玉浦鎭 등이 훨씬 크게 적혀 있다. 이것은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은 종이 위에 지도를 그려 크기를 크게 하지 않으면 구별하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해동지도》에 비해 해안선도 단조로워졌다. 또한 《해동지도》에 어느 정도 고려되었던 섬의 크기 표현도 본 지도에서는 많이 약화되었다. 이것 역시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은 종이 위에 그렸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지도의 크기가 작기 때문에 《해동지도》에 표시한 작은 섬들을 동일한 크기로 축소하면 거의 점에 가까워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지도 위에는 4개의 면이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는 반면에 주기에는 2개 밖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반면에 《해동지도》의 지도와 주기 모두 6개의 面이 표시되어 있다. 이것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지도와 주기 모두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작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기봉)

  • 거제부(巨濟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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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거제부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거의 다 《해동지도》에 나오며, 하천의 표시도 길이나 유로에서 약간 차이가 나지만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와 《해동지도》는 필사 관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비해 古縣城이나 玉浦鎭 등이 훨씬 크게 적혀 있다. 이것은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은 종이 위에 지도를 그려 크기를 크게 하지 않으면 구별하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해동지도》에 비해 해안선도 단조로워졌다. 또한 《해동지도》에 어느 정도 고려되었던 섬의 크기 표현도 본 지도에서는 많이 약화되었다. 이것 역시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은 종이 위에 그렸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지도의 크기가 작기 때문에 《해동지도》에 표시한 작은 섬들을 동일한 크기로 축소하면 거의 점에 가까워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지도 위에는 4개의 면이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는 반면에 주기에는 2개 밖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반면에 《해동지도》의 지도와 주기 모두 6개의 面이 표시되어 있다. 이것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지도와 주기 모두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작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기봉)

  • 거창부(居昌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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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거창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비슷하다. 거창은 1729년(영조 9)에 郡에서 府로 승격되었다가 1787년(정조 11)에 縣으로 강등되었으며, 1797년(정조 21)에 다시 府가 되었다. 따라서 본 지도는 최소한 1729년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치의 일부를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나오는 것과 동일하다. 《해동지도》에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과 驛에 각각 노란색과 황색의 사각형을 덧붙였다. 그러나 읍치 동쪽의 東部面을 東北面으로 잘못 적고, 그 오른쪽에 古毛峴面을 생략하는 오류도 범하고 있다. 지명을 실수로 생략한 흔적으로 또 예를 들면 왼쪽 위에 건물 모양만 그려져 있는 것이다. 《해동지도》에는 여기에 書院이란 명칭이 적혀 있다. 《해동지도》가 가로(동서)를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세로(남북)를 길게 그렸다. 하천의 유로나 갈라지는 모습이 본 지도와 《해동지도》가 동일하지만 전체적으로 본 지도가 남북으로 더 길게 그려져 있다. 왼쪽의 安陰界에서 들어오는 하천이 《해동지도》에는 마치 안음과의 경계선이 발원지인 것처럼 그려져 있다. 실제로는 서쪽의 안음에서 흘러오기 때문에 본 지도가 사실에 더 부합된다. (이기봉)

  • 거창부(居昌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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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거창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비슷하다. 거창은 1729년(영조 9)에 郡에서 府로 승격되었다가 1787년(정조 11)에 縣으로 강등되었으며, 1797년(정조 21)에 다시 府가 되었다. 따라서 본 지도는 최소한 1729년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치의 일부를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나오는 것과 동일하다. 《해동지도》에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과 驛에 각각 노란색과 황색의 사각형을 덧붙였다. 그러나 읍치 동쪽의 東部面을 東北面으로 잘못 적고, 그 오른쪽에 古毛峴面을 생략하는 오류도 범하고 있다. 지명을 실수로 생략한 흔적으로 또 예를 들면 왼쪽 위에 건물 모양만 그려져 있는 것이다. 《해동지도》에는 여기에 書院이란 명칭이 적혀 있다. 《해동지도》가 가로(동서)를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세로(남북)를 길게 그렸다. 하천의 유로나 갈라지는 모습이 본 지도와 《해동지도》가 동일하지만 전체적으로 본 지도가 남북으로 더 길게 그려져 있다. 왼쪽의 安陰界에서 들어오는 하천이 《해동지도》에는 마치 안음과의 경계선이 발원지인 것처럼 그려져 있다. 실제로는 서쪽의 안음에서 흘러오기 때문에 본 지도가 사실에 더 부합된다. (이기봉)

  • 경산현(慶山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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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경산현 지도와 비슷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성 부분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는 지명 중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이 여러 개 있다. 본 지도에 표현된 하천의 유로 역시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보면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읍성과 일부의 정보를 참고하여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는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아래쪽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흘러가는 하천이 현재의 금호강이다. 왼쪽의 慈仁界에서 흘러와 금호강에 합류하는 하천은 현재의 오목천이다. 이 오목천의 끝이 《해동지도》에는 얇게 되어 있어 마치 자인과의 경계선이 발원지인 것처럼 오해할 수 있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다른 자료를 통해 교정한 것이 아닌가 한다. 향교를 두르고 있는 것은 성곽이 아니라 담장일 뿐이다. 이 담장은 《해동지도》에는 없던 것으로 본 지도에서 추가된 것이다. 그러나 읍성과 동일하게 표현하여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이기봉)

  • 경산현(慶山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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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경산현 지도와 비슷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성 부분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는 지명 중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이 여러 개 있다. 본 지도에 표현된 하천의 유로 역시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보면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읍성과 일부의 정보를 참고하여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는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아래쪽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흘러가는 하천이 현재의 금호강이다. 왼쪽의 慈仁界에서 흘러와 금호강에 합류하는 하천은 현재의 오목천이다. 이 오목천의 끝이 《해동지도》에는 얇게 되어 있어 마치 자인과의 경계선이 발원지인 것처럼 오해할 수 있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다른 자료를 통해 교정한 것이 아닌가 한다. 향교를 두르고 있는 것은 성곽이 아니라 담장일 뿐이다. 이 담장은 《해동지도》에는 없던 것으로 본 지도에서 추가된 것이다. 그러나 읍성과 동일하게 표현하여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이기봉)

  • 경주부(慶州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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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지도책에 수록된 대부분의 경상도 군현지도가 《해동지도》의 것과 거의 유사한 반면에 경주부의 지도는 《해동지도》와 다른 점이 여러 군데서 보이고 있다. 우선 하천의 유로라는 측면에서 몇 가지 차이가 발견되고 있다. 위쪽으로 竹長面에 표시된 현재의 금호강 최상류, 神光面에 표시된 현재의 곡강천 상류는 《해동지도》에 없는 것이다. 그 아래쪽으로 見谷面에 표시된 현재의 소현천과 아래쪽 오른쪽에 표시된 현재의 동천강 상류도 《해동지도》에 없던 것이다. 또한 읍치 아래쪽의 남천, 서천, 대천의 유로 표시가 다르며, 왼쪽 아래의 밀양강 최상류 부분도 하천의 모양이 전혀 다르다. 더 나아가 본 지도에 표시된 面 정보 역시 《해동지도》와는 전혀 다르게 되어 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책에 수록된 대부분의 경상도 군현지도와 달리 본 지도는 《해동지도》와 거의 관련이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가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되어 그려졌기 때문에 모든 지역에 동일한 축척과 방향이 적용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확실하게 잘못 표현된 부분도 여러 개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왼쪽 위에 표시된 北安谷面은 실제로는 西面路西의 좌측에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읍치 오른쪽 위의 川北面이 마치 북천 유역에 있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는 것도 약간 문제가 있다. 천북면의 핵심지역은 현곡면에서 흘러오는 소현천과 규모가 비슷한 현재의 신당천 유역에 있다. 그러나 신당천이 본 지도에 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약간만 걸쳐 있었던 북천 유역에 있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게 그려져 있다. 이 밖의 다른 지명들은 축척과 방향에서 정확하다고 할 수 없더라도 대략적인 측면에서 볼 때 크게 틀린 것은 없다고 볼 수 있다. 기타 왼쪽에 新寧界와 慈仁界가 적혀 있는데, 경주부가 두 고을과 직접 경계를 맞대고 있지는 않았다. 다만 해당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두 고을의 경계가 나온다는 측면에서 보면 틀리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이기봉)

  • 경주부(慶州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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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지도책에 수록된 대부분의 경상도 군현지도가 《해동지도》의 것과 거의 유사한 반면에 경주부의 지도는 《해동지도》와 다른 점이 여러 군데서 보이고 있다. 우선 하천의 유로라는 측면에서 몇 가지 차이가 발견되고 있다. 위쪽으로 竹長面에 표시된 현재의 금호강 최상류, 神光面에 표시된 현재의 곡강천 상류는 《해동지도》에 없는 것이다. 그 아래쪽으로 見谷面에 표시된 현재의 소현천과 아래쪽 오른쪽에 표시된 현재의 동천강 상류도 《해동지도》에 없던 것이다. 또한 읍치 아래쪽의 남천, 서천, 대천의 유로 표시가 다르며, 왼쪽 아래의 밀양강 최상류 부분도 하천의 모양이 전혀 다르다. 더 나아가 본 지도에 표시된 面 정보 역시 《해동지도》와는 전혀 다르게 되어 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책에 수록된 대부분의 경상도 군현지도와 달리 본 지도는 《해동지도》와 거의 관련이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가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되어 그려졌기 때문에 모든 지역에 동일한 축척과 방향이 적용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확실하게 잘못 표현된 부분도 여러 개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왼쪽 위에 표시된 北安谷面은 실제로는 西面路西의 좌측에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읍치 오른쪽 위의 川北面이 마치 북천 유역에 있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는 것도 약간 문제가 있다. 천북면의 핵심지역은 현곡면에서 흘러오는 소현천과 규모가 비슷한 현재의 신당천 유역에 있다. 그러나 신당천이 본 지도에 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약간만 걸쳐 있었던 북천 유역에 있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게 그려져 있다. 이 밖의 다른 지명들은 축척과 방향에서 정확하다고 할 수 없더라도 대략적인 측면에서 볼 때 크게 틀린 것은 없다고 볼 수 있다. 기타 왼쪽에 新寧界와 慈仁界가 적혀 있는데, 경주부가 두 고을과 직접 경계를 맞대고 있지는 않았다. 다만 해당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두 고을의 경계가 나온다는 측면에서 보면 틀리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이기봉)

  • 고령현(高靈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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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고령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 부분이 더 크게 그려져 있고, 赤林이 강조되어 있다. 또한 세로(남북)가 상대적으로 더 길게 그려져 있다. 반면에 하천의 유로와 지명은 거의 동일하게 되어 있다. 하천의 표현에서 《해동지도》와 다른 점이 몇 군데 보이고 있는데, 오른쪽의 낙동강이 다른 하천과 별로 구분되지 않게 표현된 것이 그 중의 하나이다. 읍치 아래쪽의 하천은 현재의 안림천으로서 실제로는 陜川界 방면에서 흘러온다. 《해동지도》에는 합천 방면에서 흘러오는 것처럼 그려져 있으나 본 지도에는 합천계를 모두 산줄기로 표현하여 上東面이 안림천의 발원지인 것처럼 표현하였다. 위쪽의 大伽川은 현재의 회천이고, 小伽川은 그 지류로서 현재도 소가천이라 부르고 있다. 두 하천 모두 星州界를 넘어서 들어온다. 그런데 《해동지도》에도 두 하천의 끝을 얇게 하여 마치 경계선 부근이 발원지인 것처럼 착각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그러나 두 하천의 끝 부분에 산줄기를 이어 그리지 않아서 성주계로부터 흘러올 수 있는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다. 반면에 본 지도에서는 대가천 상류 부분을 아예 산줄기로 연결하여 확실하게 사실과 다르게 표현하였다. 읍치의 倉과 快賓樓를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수록되어 있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수록되지 않은 것이 여러 개 있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며, 필사 과정에서 여러 오류를 범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책에서 노란색 사각형은 보통 面에만 적용시켰다. 그런데 본 지도에는 면이 아닌 지명에도 노란색 사각형을 표시하고 있어 필사 시에 정보 자체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노란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는 宜守와 宜陣은 모두 군사적 측면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마땅히 지킬만한 곳’, ‘마땅히 陣을 칠만한 곳’이라는 뜻일 뿐 面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기봉)

  • 고령현(高靈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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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고령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 부분이 더 크게 그려져 있고, 赤林이 강조되어 있다. 또한 세로(남북)가 상대적으로 더 길게 그려져 있다. 반면에 하천의 유로와 지명은 거의 동일하게 되어 있다. 하천의 표현에서 《해동지도》와 다른 점이 몇 군데 보이고 있는데, 오른쪽의 낙동강이 다른 하천과 별로 구분되지 않게 표현된 것이 그 중의 하나이다. 읍치 아래쪽의 하천은 현재의 안림천으로서 실제로는 陜川界 방면에서 흘러온다. 《해동지도》에는 합천 방면에서 흘러오는 것처럼 그려져 있으나 본 지도에는 합천계를 모두 산줄기로 표현하여 上東面이 안림천의 발원지인 것처럼 표현하였다. 위쪽의 大伽川은 현재의 회천이고, 小伽川은 그 지류로서 현재도 소가천이라 부르고 있다. 두 하천 모두 星州界를 넘어서 들어온다. 그런데 《해동지도》에도 두 하천의 끝을 얇게 하여 마치 경계선 부근이 발원지인 것처럼 착각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그러나 두 하천의 끝 부분에 산줄기를 이어 그리지 않아서 성주계로부터 흘러올 수 있는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다. 반면에 본 지도에서는 대가천 상류 부분을 아예 산줄기로 연결하여 확실하게 사실과 다르게 표현하였다. 읍치의 倉과 快賓樓를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수록되어 있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수록되지 않은 것이 여러 개 있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며, 필사 과정에서 여러 오류를 범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책에서 노란색 사각형은 보통 面에만 적용시켰다. 그런데 본 지도에는 면이 아닌 지명에도 노란색 사각형을 표시하고 있어 필사 시에 정보 자체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노란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는 宜守와 宜陣은 모두 군사적 측면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마땅히 지킬만한 곳’, ‘마땅히 陣을 칠만한 곳’이라는 뜻일 뿐 面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기봉)

  • 고성현(固城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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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固城縣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성과 통영의 성곽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해동지도》보다 본 지도의 종이가 훨씬 작기 때문에 동일한 비율로 그리면 알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다는 것은 다른 부분은 상대적으로 작게 그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하천의 유로가 약간 달라지고, 해안선이 단조로워지는 등의 변화가 발생하였다. 특히 통영 성곽을 상대적으로 크게 그린 것은 다른 부분의 묘사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생각된다. 해안선과 섬이 단조로워진 것은 지도의 크기 자체가 작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은 종이 위에 그리다보니까 복잡한 해안선이나 섬을 동일하게 표현할 수 없었다고 생각된다. 더 나아가 《해동지도》의 내용과 전혀 다른 왜곡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왼쪽 아래의 蛇梁鎭의 위치가 《해동지도》에는 床足石보다 더 남쪽으로 되어 있고, 柯島는 사량진 남쪽에 위치한 것으로 그려져 있다. 그런데 본 지도에는 사량진이 상당히 위로 올라갔고, 가도는 상족도 방향에 붙어 있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실제로는 《해동지도》의 내용이 사실에 부합된다. 따라서 본 지도의 필사 시 사실을 인식하고 있지 못했으며, 필사 과정에서 자의적인 판단으로 지명의 위치를 옮긴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성과 통영 성곽 안의 것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거의 나온다. 반대로 《해동지도》에 나오지만 본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지명이 많다. 특히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할 만큼 중요하게 생각한 面 중에서 《해동지도》에는 있지만 본 지도에는 없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해동지도》에 읍치 동쪽에 표시되어 있던 光內一運面과 光內二運面이 본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2개의 면 명칭이 주기에는 나오고 있어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으로 생각된다. 지명이 표시된 面 중에서도 명칭을 잘못 옮긴 거도 있다. 읍치 오른쪽에는 東邑內面으로 제대로 적었지만 왼쪽에는 西邑內面을 西邑面으로 적었다. 또한 왼쪽 아래에는 下里二運面으로 올바르게 기록했지만 그 위쪽에는 下里一運面을 下里運面으로 적기도 했다. (이기봉)

  • 고성현(固城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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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固城縣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성과 통영의 성곽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해동지도》보다 본 지도의 종이가 훨씬 작기 때문에 동일한 비율로 그리면 알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다는 것은 다른 부분은 상대적으로 작게 그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하천의 유로가 약간 달라지고, 해안선이 단조로워지는 등의 변화가 발생하였다. 특히 통영 성곽을 상대적으로 크게 그린 것은 다른 부분의 묘사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생각된다. 해안선과 섬이 단조로워진 것은 지도의 크기 자체가 작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은 종이 위에 그리다보니까 복잡한 해안선이나 섬을 동일하게 표현할 수 없었다고 생각된다. 더 나아가 《해동지도》의 내용과 전혀 다른 왜곡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왼쪽 아래의 蛇梁鎭의 위치가 《해동지도》에는 床足石보다 더 남쪽으로 되어 있고, 柯島는 사량진 남쪽에 위치한 것으로 그려져 있다. 그런데 본 지도에는 사량진이 상당히 위로 올라갔고, 가도는 상족도 방향에 붙어 있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실제로는 《해동지도》의 내용이 사실에 부합된다. 따라서 본 지도의 필사 시 사실을 인식하고 있지 못했으며, 필사 과정에서 자의적인 판단으로 지명의 위치를 옮긴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성과 통영 성곽 안의 것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거의 나온다. 반대로 《해동지도》에 나오지만 본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지명이 많다. 특히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할 만큼 중요하게 생각한 面 중에서 《해동지도》에는 있지만 본 지도에는 없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해동지도》에 읍치 동쪽에 표시되어 있던 光內一運面과 光內二運面이 본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2개의 면 명칭이 주기에는 나오고 있어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으로 생각된다. 지명이 표시된 面 중에서도 명칭을 잘못 옮긴 거도 있다. 읍치 오른쪽에는 東邑內面으로 제대로 적었지만 왼쪽에는 西邑內面을 西邑面으로 적었다. 또한 왼쪽 아래에는 下里二運面으로 올바르게 기록했지만 그 위쪽에는 下里一運面을 下里運面으로 적기도 했다. (이기봉)

  • 곤양군(昆陽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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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곤양군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에서는 읍성 부분을 상대적으로 훨씬 크게 그렸다. 또한 《해동지도》에 비해 해안선이나 섬을 상대적으로 단순하게 그렸고, 이런 과정에서 일부 달라진 곳도 있다.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읍성 안쪽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있는 지명 중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도 있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이며, 단지 읍성 부분만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오른쪽 위에 보이는 하천이 낙동강의 지류인 남강이고, 아래쪽은 남해에 접해 있다. 곤양군은 남북의 폭이 동서에 비해 훨씬 좁다. 본 지도에서는 반대로 남북(세로)을 동서(가로)보다 길게 그렸다. 또한 곤양군의 읍치는 동쪽에 치우쳐져 있는데, 본 지도에는 정 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그렸다. 이런 과정에서 사실과 다른 여러 왜곡이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왼쪽 위에 있는 露梁은 읍치의 서남 방향으로 동쪽 경계보다 훨씬 먼 거리에 있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 본다면 마치 서북쪽에 있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 이것은 읍치로부터 노량까지 상대적으로 먼 지역을 모두 그리기 위해서는 종이 위에서 상대적으로 긴 세로 부분에 배치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기타 북쪽에서 읍치를 지나 남해안으로 빠져나가는 현재의 곤양천도 실제로는 북쪽의 河東으로부터 들어온다. (이기봉)

  • 곤양군(昆陽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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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곤양군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에서는 읍성 부분을 상대적으로 훨씬 크게 그렸다. 또한 《해동지도》에 비해 해안선이나 섬을 상대적으로 단순하게 그렸고, 이런 과정에서 일부 달라진 곳도 있다.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읍성 안쪽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있는 지명 중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도 있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이며, 단지 읍성 부분만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오른쪽 위에 보이는 하천이 낙동강의 지류인 남강이고, 아래쪽은 남해에 접해 있다. 곤양군은 남북의 폭이 동서에 비해 훨씬 좁다. 본 지도에서는 반대로 남북(세로)을 동서(가로)보다 길게 그렸다. 또한 곤양군의 읍치는 동쪽에 치우쳐져 있는데, 본 지도에는 정 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그렸다. 이런 과정에서 사실과 다른 여러 왜곡이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왼쪽 위에 있는 露梁은 읍치의 서남 방향으로 동쪽 경계보다 훨씬 먼 거리에 있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 본다면 마치 서북쪽에 있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 이것은 읍치로부터 노량까지 상대적으로 먼 지역을 모두 그리기 위해서는 종이 위에서 상대적으로 긴 세로 부분에 배치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기타 북쪽에서 읍치를 지나 남해안으로 빠져나가는 현재의 곤양천도 실제로는 북쪽의 河東으로부터 들어온다. (이기봉)

  • 군위현(軍威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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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군위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본 지도는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해동지도》가 가로(동서)를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세로(남북)를 더 길게 그렸다. 본 지도에서는 하천의 본류와 지류의 표현에서 실제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게 그렸다. 오른쪽 위의 하천들이 그 끝을 모두 얇게 처리하여 의흥과의 경계선이 발원지인 것처럼 착각할 수 있게 그렸다. 그러나 《해동지도》에는 모두 다른 고을에서 하천이 흘러오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실제로는 《해동지도》의 표현이 올바르다. 위쪽의 義興界에서 흘러와 읍치의 아래를 지나고, 왼쪽 아래의 比安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위천 본류이다. 그리고 왼쪽 위에서 흘러와 위천에 합류되는 하천은 현재 신안천이라고 불리고 있다. 이 신안천은 위천 본류에 비하면 아주 작은 하천에 불과하다. 그런데 본 지도에는 마치 위천 본류보다도 훨씬 큰 하천인 것처럼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서도 이 점은 약간 애매하게 되어 있지만 본 지도가 훨씬 심한 왜곡을 보이고 있다. 본 지도에 수록된 지명은 읍치의 倉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나오는 縣內面이 생략되어 있고, 왼쪽 아래에 召召本面이 召召等面으로 적혀 있는 오류가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측면들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기본으로 하면서 다른 자료를 약간 첨가하여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런 필사 과정에서 꼼꼼하게 사실을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당한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군위현(軍威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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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군위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본 지도는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해동지도》가 가로(동서)를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세로(남북)를 더 길게 그렸다. 본 지도에서는 하천의 본류와 지류의 표현에서 실제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게 그렸다. 오른쪽 위의 하천들이 그 끝을 모두 얇게 처리하여 의흥과의 경계선이 발원지인 것처럼 착각할 수 있게 그렸다. 그러나 《해동지도》에는 모두 다른 고을에서 하천이 흘러오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실제로는 《해동지도》의 표현이 올바르다. 위쪽의 義興界에서 흘러와 읍치의 아래를 지나고, 왼쪽 아래의 比安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위천 본류이다. 그리고 왼쪽 위에서 흘러와 위천에 합류되는 하천은 현재 신안천이라고 불리고 있다. 이 신안천은 위천 본류에 비하면 아주 작은 하천에 불과하다. 그런데 본 지도에는 마치 위천 본류보다도 훨씬 큰 하천인 것처럼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서도 이 점은 약간 애매하게 되어 있지만 본 지도가 훨씬 심한 왜곡을 보이고 있다. 본 지도에 수록된 지명은 읍치의 倉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나오는 縣內面이 생략되어 있고, 왼쪽 아래에 召召本面이 召召等面으로 적혀 있는 오류가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측면들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기본으로 하면서 다른 자료를 약간 첨가하여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런 필사 과정에서 꼼꼼하게 사실을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당한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기장현(機張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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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기장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하천의 유로 표현이 약간 달라지긴 했지만 본류와 지류라는 측면에서 보면 거의 동일하다. 읍성이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직사각형에서 약간 둥근 형태로 바뀌어 있다. 지명은 읍성 내의 司倉과 왼쪽 위의 下西面 부근에 眞木封山이 추가된 것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있는 것은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도 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바탕으로 다른 자료를 약간 참고하여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기장현은 북쪽의 동서 폭이 남쪽보다 훨씬 더 넓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북쪽과 남쪽의 동서 폭이 거의 비슷한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가로와 세로가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고을 전체의 모습을 맞추어 그리려고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읍성이 있는 곳부터 남쪽 부분은 동서의 폭이 상당히 좁아진다. 하지만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다 보니까 동서의 폭이 좁아지지 않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몇 가지 왜곡이 발생하였다. 읍성에서 바다로 흘러가는 현재의 죽성천 남쪽의 해안선은 본 지도에 동서의 방향을 하는 것처럼 그려졌다. 그러나 실제로는 동북으로 약간 치우쳐진 남북의 방향을 하고 있다. 《해동지도》에도 정도는 덜하지만 비슷한 왜곡이 발생되어 있다. 오른쪽 위에 長安寺로부터 내려오는 현재의 장안천 동쪽의 해안선이 《해동지도》에는 동서 방향을 하고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그런데 본 지도에서는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는 과정에서 이 부분이 그냥 남북의 방향인 것처럼 바뀌어 있다. 실제적으로는 《해동지도》가 사실에 가깝다. (이기봉)

  • 기장현(機張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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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기장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하천의 유로 표현이 약간 달라지긴 했지만 본류와 지류라는 측면에서 보면 거의 동일하다. 읍성이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직사각형에서 약간 둥근 형태로 바뀌어 있다. 지명은 읍성 내의 司倉과 왼쪽 위의 下西面 부근에 眞木封山이 추가된 것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있는 것은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도 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바탕으로 다른 자료를 약간 참고하여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기장현은 북쪽의 동서 폭이 남쪽보다 훨씬 더 넓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북쪽과 남쪽의 동서 폭이 거의 비슷한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가로와 세로가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고을 전체의 모습을 맞추어 그리려고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읍성이 있는 곳부터 남쪽 부분은 동서의 폭이 상당히 좁아진다. 하지만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다 보니까 동서의 폭이 좁아지지 않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몇 가지 왜곡이 발생하였다. 읍성에서 바다로 흘러가는 현재의 죽성천 남쪽의 해안선은 본 지도에 동서의 방향을 하는 것처럼 그려졌다. 그러나 실제로는 동북으로 약간 치우쳐진 남북의 방향을 하고 있다. 《해동지도》에도 정도는 덜하지만 비슷한 왜곡이 발생되어 있다. 오른쪽 위에 長安寺로부터 내려오는 현재의 장안천 동쪽의 해안선이 《해동지도》에는 동서 방향을 하고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그런데 본 지도에서는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는 과정에서 이 부분이 그냥 남북의 방향인 것처럼 바뀌어 있다. 실제적으로는 《해동지도》가 사실에 가깝다. (이기봉)

  • 김산군(金山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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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金山郡 지도와 비슷하다. 일단 읍치에 있는 일부 건물과 아래쪽의 乾川面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이 중 건천면은 《해동지도》에 처음부터 없었다기보다는 주기를 적는 과정에서 생략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지명의 위치가 바뀐 곳도 여러 개 보이고 있다. 이렇게 지명 위치가 바뀌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첫째, 《해동지도》는 동서(가로)를 남북(세로)보다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남북을 길게 그렸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둘째, 읍치를 상대적으로 크게 그리는 과정에서 다른 부분의 변화가 발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셋째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각형에 더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변화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지명의 위치를 배치하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面 정보를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할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였지만 읍치의 郡內面과 金泉驛舘 부근에 있었던 金泉面이 생략되어 있다. 또한 김천역관 오른쪽에 표시된 甘川橋가 《해동지도》에 甘川과 橋로 분리되어 있다. 오른쪽 아래의 延命面은 성주와 개령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이다. 《해동지도》에는 星州界가 그 안쪽에 적혀 있어 어느 정도 월경지 임을 짐작할 수 있지만 본 지도에서는 성주계가 아예 생략되어 있다.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러나 모든 지역의 방향이 정확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왼쪽에서 흘러와 오른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은 현재의 감천이다. 이 감천은 실제로는 서남쪽에서 들어와 동북쪽으로 빠져나가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왼쪽의 直指寺에서 흘러오는 하천은 현재의 직지천 인데, 실제로는 거의 東流하여 감천에 합류된다. 기타 직지사 오른쪽의 추풍령 아래쪽에 충청도 黃澗縣의 땅이 있었지만 본 지도에는 전혀 표시되어 있지 않다. 가장 위쪽의 黃金所面은 낙동강이 아닌 금강 유역에 속한 현재의 영동군 추풍령면에 있었다. (이기봉)

  • 김산군(金山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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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金山郡 지도와 비슷하다. 일단 읍치에 있는 일부 건물과 아래쪽의 乾川面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이 중 건천면은 《해동지도》에 처음부터 없었다기보다는 주기를 적는 과정에서 생략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지명의 위치가 바뀐 곳도 여러 개 보이고 있다. 이렇게 지명 위치가 바뀌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첫째, 《해동지도》는 동서(가로)를 남북(세로)보다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남북을 길게 그렸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둘째, 읍치를 상대적으로 크게 그리는 과정에서 다른 부분의 변화가 발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셋째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각형에 더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변화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지명의 위치를 배치하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面 정보를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할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였지만 읍치의 郡內面과 金泉驛舘 부근에 있었던 金泉面이 생략되어 있다. 또한 김천역관 오른쪽에 표시된 甘川橋가 《해동지도》에 甘川과 橋로 분리되어 있다. 오른쪽 아래의 延命面은 성주와 개령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이다. 《해동지도》에는 星州界가 그 안쪽에 적혀 있어 어느 정도 월경지 임을 짐작할 수 있지만 본 지도에서는 성주계가 아예 생략되어 있다.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러나 모든 지역의 방향이 정확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왼쪽에서 흘러와 오른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은 현재의 감천이다. 이 감천은 실제로는 서남쪽에서 들어와 동북쪽으로 빠져나가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왼쪽의 直指寺에서 흘러오는 하천은 현재의 직지천 인데, 실제로는 거의 東流하여 감천에 합류된다. 기타 직지사 오른쪽의 추풍령 아래쪽에 충청도 黃澗縣의 땅이 있었지만 본 지도에는 전혀 표시되어 있지 않다. 가장 위쪽의 黃金所面은 낙동강이 아닌 금강 유역에 속한 현재의 영동군 추풍령면에 있었다. (이기봉)

  • 김해부(金海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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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김해부 지도와 비슷하다. 왼쪽 위의 昌原界에서 들어와 오른쪽 아래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이다. 낙동강 에 유읍되는 여러 하천의 유로가 《해동지도》와 비슷하지만 달라진 부분이 몇몇 보이고 있다. 우선 읍치 가장 왼쪽의 하천에 《해동지도》에는 外三台 아래쪽과 연결되어 있다. 또한 《해동지도》에는 가장 아래쪽 台也面 방향에도 하천이 하나 그려져 있다. 후자는 《해동지도》가 정확하지만 전자는 낙동강 하구인 이 지역의 지형 변화가 심하기 때문에 어느 것이 맞는지 정확하게 이야기하기 어렵다. 오른쪽 아래의 德島 역시 본 지도에는 육지와 연결된 것처럼 되어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분명한 섬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부분 역시 지형 변화가 심한 곳이기 때문에 어느 것이 옳은지 분명하게 이야기하기 어렵다. 위쪽에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하천은 현재의 화포천이다. 화포천은 실제로는 조양강과 비슷하거나 더 긴 하천이지만 본 지도에는 상당히 짧은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읍치를 다른 지역보다 확대해서 그렸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읍성 주변을 싸고 있는 흙색의 선은 《해동지도》에 ‘수로왕 때 쌓은 土城이다’라고 적혀 있다. 《해동지도》에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 기호를 첨가하였다. 그러나 위쪽에 《해동지도》에는 표시되어 있던 大山面과 中北面 등이 생략되어 있다. 이 2개의 면이 주기에 적혀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 필사자의 실수라고 생각된다. 오른쪽 위에 집 모양만 표시되어 있는 곳에도 《해동지도》에는 甘露寺라는 명칭이 기록되어 있어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 아닌가 한다.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지만 아래쪽 鳴旨島까지 낙동강이 남류함에도 이와 같은 사실이 잘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기봉)

  • 김해부(金海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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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김해부 지도와 비슷하다. 왼쪽 위의 昌原界에서 들어와 오른쪽 아래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이다. 낙동강 에 유읍되는 여러 하천의 유로가 《해동지도》와 비슷하지만 달라진 부분이 몇몇 보이고 있다. 우선 읍치 가장 왼쪽의 하천에 《해동지도》에는 外三台 아래쪽과 연결되어 있다. 또한 《해동지도》에는 가장 아래쪽 台也面 방향에도 하천이 하나 그려져 있다. 후자는 《해동지도》가 정확하지만 전자는 낙동강 하구인 이 지역의 지형 변화가 심하기 때문에 어느 것이 맞는지 정확하게 이야기하기 어렵다. 오른쪽 아래의 德島 역시 본 지도에는 육지와 연결된 것처럼 되어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분명한 섬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부분 역시 지형 변화가 심한 곳이기 때문에 어느 것이 옳은지 분명하게 이야기하기 어렵다. 위쪽에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하천은 현재의 화포천이다. 화포천은 실제로는 조양강과 비슷하거나 더 긴 하천이지만 본 지도에는 상당히 짧은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읍치를 다른 지역보다 확대해서 그렸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읍성 주변을 싸고 있는 흙색의 선은 《해동지도》에 ‘수로왕 때 쌓은 土城이다’라고 적혀 있다. 《해동지도》에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 기호를 첨가하였다. 그러나 위쪽에 《해동지도》에는 표시되어 있던 大山面과 中北面 등이 생략되어 있다. 이 2개의 면이 주기에 적혀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 필사자의 실수라고 생각된다. 오른쪽 위에 집 모양만 표시되어 있는 곳에도 《해동지도》에는 甘露寺라는 명칭이 기록되어 있어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 아닌가 한다.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지만 아래쪽 鳴旨島까지 낙동강이 남류함에도 이와 같은 사실이 잘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기봉)

  • 남해현(南海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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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남해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본 지도는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성 안의 倉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반대로 《해동지도》에 나오지만 본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지명이 여러 개 있다. 게다가 본 지도에는 《해동지도》와 다르게 기록된 지명도 보이고 있다. 왼쪽 아래에는 蟹島가 2개나 적혀 있는데, 아래쪽의 것은 《해동지도》에 楮島로 되어 있다. 읍치 위쪽의 榧子島 역시 《해동지도》에는 榧子山으로 되어 있다. 필사 과정에서 바뀐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성과 鎭堡의 성곽이 크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본 지도의 크기가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즉, 《해동지도》와 동일한 크기의 비율로 그리면 정보를 이해하기 어렵게 된다. 이런 변화는 섬에 대한 표현에서도 나타난다. 昌善島를 제외하면 섬의 크기가 《해동지도》보다 대체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이 섬들은 실제로 상당히 작지만 《해동지도》와 같은 크기의 비율로 그리면 섬의 존재 자체를 표현하기 어렵다. 기타 창선도는 남해현의 땅이 아니라 진주에 속해 있었음에도 본 지도에 그려져 있다. (이기봉)

  • 남해현(南海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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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남해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본 지도는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성 안의 倉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반대로 《해동지도》에 나오지만 본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지명이 여러 개 있다. 게다가 본 지도에는 《해동지도》와 다르게 기록된 지명도 보이고 있다. 왼쪽 아래에는 蟹島가 2개나 적혀 있는데, 아래쪽의 것은 《해동지도》에 楮島로 되어 있다. 읍치 위쪽의 榧子島 역시 《해동지도》에는 榧子山으로 되어 있다. 필사 과정에서 바뀐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성과 鎭堡의 성곽이 크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본 지도의 크기가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즉, 《해동지도》와 동일한 크기의 비율로 그리면 정보를 이해하기 어렵게 된다. 이런 변화는 섬에 대한 표현에서도 나타난다. 昌善島를 제외하면 섬의 크기가 《해동지도》보다 대체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이 섬들은 실제로 상당히 작지만 《해동지도》와 같은 크기의 비율로 그리면 섬의 존재 자체를 표현하기 어렵다. 기타 창선도는 남해현의 땅이 아니라 진주에 속해 있었음에도 본 지도에 그려져 있다. (이기봉)

  • 단성현(丹城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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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단성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가 세로(남북)보다 가로(동서)를 더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가로보다 세로를 길게 그렸다. 이것은 본 지도책 자체가 세로로 긴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군현의 모습을 그렸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차이 때문에 하천의 유로가 《해동지도》와 약간 달라지게 되었다. 예를 들어 오른쪽의 宜寧界에서 흘러오는 하천이 《해동지도》에는 거의 西流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는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표현되었다. 현재 양천이라 불리는 이 하천의 유로는 《해동지도》가 사실에 가까운데, 본 지도에서 세로로 긴 사각형에 지도를 그리는 과정에서 바뀐 것이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읍치의 倉과 위쪽의 法勿也面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다.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으면서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지명도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기본적으로 《해동지도》를 기반으로 필사하면서 2개 지명 정도를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왼쪽에는 晋州界가 산줄기 안쪽에 표시되어 있다. 이것은 현재 남사천이라 불리는 하천이 단성과 진주의 경계선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기봉)

  • 단성현(丹城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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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단성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가 세로(남북)보다 가로(동서)를 더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가로보다 세로를 길게 그렸다. 이것은 본 지도책 자체가 세로로 긴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군현의 모습을 그렸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차이 때문에 하천의 유로가 《해동지도》와 약간 달라지게 되었다. 예를 들어 오른쪽의 宜寧界에서 흘러오는 하천이 《해동지도》에는 거의 西流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는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표현되었다. 현재 양천이라 불리는 이 하천의 유로는 《해동지도》가 사실에 가까운데, 본 지도에서 세로로 긴 사각형에 지도를 그리는 과정에서 바뀐 것이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읍치의 倉과 위쪽의 法勿也面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다.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으면서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지명도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기본적으로 《해동지도》를 기반으로 필사하면서 2개 지명 정도를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왼쪽에는 晋州界가 산줄기 안쪽에 표시되어 있다. 이것은 현재 남사천이라 불리는 하천이 단성과 진주의 경계선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기봉)

  • 대구부(大邱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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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대구부 지도와 비슷하다. 왼쪽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 본류이다. 오른쪽에서 들어와 낙동강에 합류되는 하천이 현재의 금호강이고, 아래쪽의 淸道界로 빠져나가는 것은 현재의 밀양강 최상류이다. 하천 流路의 일부 모습이 《해동지도》에 비해 단순하게 그려져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와 《해동지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읍성의 유무이다. 대구부의 읍성은 1736년(영조 12)에 처음 만들어지는데, 본 지도에는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없다. 따라서 읍성을 중심으로 보면 《해동지도》는 읍성 축성 이전에, 본 지도는 축성 이후에 제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해동지도》의 주기에는 읍성 둘레가 2,124步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이것을 통해 볼 때 《해동지도》의 지도 부분은 1736년 이전에 만들어지고, 주기는 그 이후에 첨가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과 驛이 본 지도에는 노란색과 황색의 사각형 기호가 덧붙여져 있다. 그러나 왼쪽 위의 金川驛에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고, 면의 명칭에 2자와 3자가 섞여 나오는 등 치밀하지 못한 부분이 눈에 띈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도 일부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왼쪽 아래의 玄風界는 《해동지도》에 낙동강 동쪽에 표시되어 있는데, 《해동지도》가 타당하다. 또 아래쪽에 密陽界가 적혀 있지만 대구부는 밀양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았다.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에서 생략된 도로 끝에 密陽界가 적혀 있는데, 해당 도로를 따라 가면 密陽界를 만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도로를 생략하니까 마치 대구부가 밀양계와 접하고 있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게 된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 위에 그렸기 때문에 사실 왜곡 현상이 심하게 나타난다. 가장 심한 곳은 아래쪽에 角자가 붙어있는 면 지역이다. 이 지역은 실제로는 현풍과 청도 사이로 남쪽 깊숙이 튀어나간 부분이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기봉)

  • 대구부(大邱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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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대구부 지도와 비슷하다. 왼쪽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 본류이다. 오른쪽에서 들어와 낙동강에 합류되는 하천이 현재의 금호강이고, 아래쪽의 淸道界로 빠져나가는 것은 현재의 밀양강 최상류이다. 하천 流路의 일부 모습이 《해동지도》에 비해 단순하게 그려져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와 《해동지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읍성의 유무이다. 대구부의 읍성은 1736년(영조 12)에 처음 만들어지는데, 본 지도에는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없다. 따라서 읍성을 중심으로 보면 《해동지도》는 읍성 축성 이전에, 본 지도는 축성 이후에 제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해동지도》의 주기에는 읍성 둘레가 2,124步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이것을 통해 볼 때 《해동지도》의 지도 부분은 1736년 이전에 만들어지고, 주기는 그 이후에 첨가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과 驛이 본 지도에는 노란색과 황색의 사각형 기호가 덧붙여져 있다. 그러나 왼쪽 위의 金川驛에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고, 면의 명칭에 2자와 3자가 섞여 나오는 등 치밀하지 못한 부분이 눈에 띈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도 일부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왼쪽 아래의 玄風界는 《해동지도》에 낙동강 동쪽에 표시되어 있는데, 《해동지도》가 타당하다. 또 아래쪽에 密陽界가 적혀 있지만 대구부는 밀양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았다.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에서 생략된 도로 끝에 密陽界가 적혀 있는데, 해당 도로를 따라 가면 密陽界를 만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도로를 생략하니까 마치 대구부가 밀양계와 접하고 있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게 된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 위에 그렸기 때문에 사실 왜곡 현상이 심하게 나타난다. 가장 심한 곳은 아래쪽에 角자가 붙어있는 면 지역이다. 이 지역은 실제로는 현풍과 청도 사이로 남쪽 깊숙이 튀어나간 부분이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기봉)

  • 동래부(東萊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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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동래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읍치에 있는 靖遠樓와 財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그러나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잘못 적힌 지명도 눈에 띈다. 읍성 안의 忠烈祠는 忠烈別祠를, 읍성 위쪽의 敎坊은 敎場을, 金井山城 안쪽의 平夷는 海月寺를 잘못 적은 것이다. 《해동지도》에는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과 鎭堡 모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가 사용되었다. 다만 面의 사각형이 상대적으로 세로가 더 길게 되어 있다. 그러나 면과 진보의 표시에서도 일관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눈에 띈다. 왼쪽의 沙川面上端의 사각형에는 노란색이 칠해져 있지 않고, 아래쪽 白山 왼쪽에는 南面下端이 빠져 있다. 또한 釜山鎭과 多大鎭에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으며, 豆毛鎭 오른쪽에는 開雲鎭이 빠져 있다. 지도 전체의 모습은 《해동지도》에 비해 남북의 길이가 더 짧게 그려졌다. 이 과정에서 일부 부분의 모습이 달라졌다. 가장 많이 달라진 부분은 남쪽 해안가로서 짧아진 남북 길이가 대부분 이곳에서 발생하였다. 이로 인해 해안선이나 섬에 대한 표현이 《해동지도》와 상당히 달라지게 되었다. 예를 들어 太宗島는 《해동지도》에 盆島라고 나오며, 太宗臺가 絶影島 끝 부분에 표시되어 있다. 沒雲臺의 경우 훨씬 아래쪽에 표시되어 있다. 對馬島 역시 《해동지도》에 비해 海雲臺에 너무 가깝게 표시되어 있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성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다. 이로 인해 산줄기와 물줄기의 표현이 약간씩 달라졌다. 읍성 오른쪽의 수영강과 왼쪽의 온정천 굴곡이 심해진 것은 그런 영향으로 생각된다. 수영강의 경우 북쪽의 梁山界나 機長界에서 흘러오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해동지도》에는 수영강의 끝 부분이 白雲山 산줄기를 넘어간 것처럼 표현하여 이런 사실의 일단을 엿볼 수 있게 하였다. (이기봉)

  • 동래부(東萊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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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동래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읍치에 있는 靖遠樓와 財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그러나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잘못 적힌 지명도 눈에 띈다. 읍성 안의 忠烈祠는 忠烈別祠를, 읍성 위쪽의 敎坊은 敎場을, 金井山城 안쪽의 平夷는 海月寺를 잘못 적은 것이다. 《해동지도》에는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과 鎭堡 모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가 사용되었다. 다만 面의 사각형이 상대적으로 세로가 더 길게 되어 있다. 그러나 면과 진보의 표시에서도 일관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눈에 띈다. 왼쪽의 沙川面上端의 사각형에는 노란색이 칠해져 있지 않고, 아래쪽 白山 왼쪽에는 南面下端이 빠져 있다. 또한 釜山鎭과 多大鎭에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으며, 豆毛鎭 오른쪽에는 開雲鎭이 빠져 있다. 지도 전체의 모습은 《해동지도》에 비해 남북의 길이가 더 짧게 그려졌다. 이 과정에서 일부 부분의 모습이 달라졌다. 가장 많이 달라진 부분은 남쪽 해안가로서 짧아진 남북 길이가 대부분 이곳에서 발생하였다. 이로 인해 해안선이나 섬에 대한 표현이 《해동지도》와 상당히 달라지게 되었다. 예를 들어 太宗島는 《해동지도》에 盆島라고 나오며, 太宗臺가 絶影島 끝 부분에 표시되어 있다. 沒雲臺의 경우 훨씬 아래쪽에 표시되어 있다. 對馬島 역시 《해동지도》에 비해 海雲臺에 너무 가깝게 표시되어 있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성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다. 이로 인해 산줄기와 물줄기의 표현이 약간씩 달라졌다. 읍성 오른쪽의 수영강과 왼쪽의 온정천 굴곡이 심해진 것은 그런 영향으로 생각된다. 수영강의 경우 북쪽의 梁山界나 機長界에서 흘러오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해동지도》에는 수영강의 끝 부분이 白雲山 산줄기를 넘어간 것처럼 표현하여 이런 사실의 일단을 엿볼 수 있게 하였다. (이기봉)

  • 문경현(聞慶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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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문경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첫째,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고 둘째, 가로에 비해 세로가 길게 그려져 있다. 이런 과정에서 하천 유로의 일부 모습이 바뀌었으나 전반적으로는 동일하다. 본 지도에 수록되어 있는 지명도 읍치의 門樓 등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기록되어 있다. 더 나아가 지명의 표기에서 본 지도에는 오류가 여러 군데 보이고 있다. 읍치 위쪽에 적혀 있는 草谷은 《해동지도》에 草谷面이라고 되어 있다. 또한 오른쪽 아래의 幽谷驛은 종6품의 찰방이 파견된 역임에도 불구하고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다. 주기의 面 부분에는 신동면, 호현면, 호남면, 가현내면, 가동면 등 여러 개가 빠져 있는 오류도 보이고 있다. 기타 오른쪽 위의 代眉山은 蛾眉山을 잘못 옮긴 것이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본 지도는 《해동지도》의 내용을 따르고 있지만 읍치에서 다른 자료를 약간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더 중요한 것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꼼꼼한 검토를 행하지 않은 부분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세로로 긴 사각형의 종이 위에 그리다 보니까 실제를 왜곡하는 경우가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加자가 붙은 면의 지역은 현재의 문경시 가은읍과 농암면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서쪽으로 튀어나가 있는 부분이다. 이런 부분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東流하는 하천이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그려지게 되었다. 또한 戶자가 붙은 면 지역은 현재의 문경시 호계면과 시내(옛 점촌시)에 있던 것으로 남쪽으로 튀어나가 있다. 역시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다보니까 南流하는 하천이 마치 東流하는 것처럼 그려지게 되었다. (이기봉)

  • 문경현(聞慶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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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문경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첫째,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고 둘째, 가로에 비해 세로가 길게 그려져 있다. 이런 과정에서 하천 유로의 일부 모습이 바뀌었으나 전반적으로는 동일하다. 본 지도에 수록되어 있는 지명도 읍치의 門樓 등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기록되어 있다. 더 나아가 지명의 표기에서 본 지도에는 오류가 여러 군데 보이고 있다. 읍치 위쪽에 적혀 있는 草谷은 《해동지도》에 草谷面이라고 되어 있다. 또한 오른쪽 아래의 幽谷驛은 종6품의 찰방이 파견된 역임에도 불구하고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다. 주기의 面 부분에는 신동면, 호현면, 호남면, 가현내면, 가동면 등 여러 개가 빠져 있는 오류도 보이고 있다. 기타 오른쪽 위의 代眉山은 蛾眉山을 잘못 옮긴 것이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본 지도는 《해동지도》의 내용을 따르고 있지만 읍치에서 다른 자료를 약간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더 중요한 것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꼼꼼한 검토를 행하지 않은 부분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세로로 긴 사각형의 종이 위에 그리다 보니까 실제를 왜곡하는 경우가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加자가 붙은 면의 지역은 현재의 문경시 가은읍과 농암면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서쪽으로 튀어나가 있는 부분이다. 이런 부분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東流하는 하천이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그려지게 되었다. 또한 戶자가 붙은 면 지역은 현재의 문경시 호계면과 시내(옛 점촌시)에 있던 것으로 남쪽으로 튀어나가 있다. 역시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다보니까 南流하는 하천이 마치 東流하는 것처럼 그려지게 되었다. (이기봉)

  • 밀양부(密陽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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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밀양부 지도와 비슷하다. 읍치에 있는 지명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수록된 지명은 거의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고, 일부를 제외하면 하천의 유로가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해동지도》와 비교해 가장 다른 점은 내부 건물의 수와 명칭이 많아진 읍성이 상대적으로 훨씬 크게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해동지도》와 본 지도를 다르게 만든 결정적인 원인이 된 것으로 생각된다. 읍성을 크게 그렸기 때문에 다른 부분은 상대적으로 작아질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하천의 유로나 산줄기, 여러 지명의 위치도 조금씩 달라질 수밖에 없다. 또한 가로(동서)가 상대적으로 길게 그려진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에는 세로(남북)가 길게 표현되어 있다. 이런 변화들 때문에 발생한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오른쪽 위의 伽智山과 天王山에서 흘러내려 현재의 밀양강에 합류되는 하천은 전반적으로 서쪽으로 흐르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남북으로 흐르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 이외의 하천은 대부분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기 때문에 流路라는 측면에서는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본 지도에서는 하천이 발원지라는 차원에서 보면 2개의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 위쪽의 淸道界에서 흘러오는 하천이 밀양강 본류이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밀양강의 발원지가 淸道界 훨씬 위쪽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가장 왼쪽의 하천은 현재의 청도천이다. 청도천의 발원지 역시 밀양이 아니라 청도인데, 본 지도에서는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오류는 《해동지도》에서도 동일하게 발생하고 있다. 《해동지도》와의 차이점 중의 하나로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사용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기봉)

  • 밀양부(密陽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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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밀양부 지도와 비슷하다. 읍치에 있는 지명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수록된 지명은 거의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고, 일부를 제외하면 하천의 유로가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해동지도》와 비교해 가장 다른 점은 내부 건물의 수와 명칭이 많아진 읍성이 상대적으로 훨씬 크게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해동지도》와 본 지도를 다르게 만든 결정적인 원인이 된 것으로 생각된다. 읍성을 크게 그렸기 때문에 다른 부분은 상대적으로 작아질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하천의 유로나 산줄기, 여러 지명의 위치도 조금씩 달라질 수밖에 없다. 또한 가로(동서)가 상대적으로 길게 그려진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에는 세로(남북)가 길게 표현되어 있다. 이런 변화들 때문에 발생한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오른쪽 위의 伽智山과 天王山에서 흘러내려 현재의 밀양강에 합류되는 하천은 전반적으로 서쪽으로 흐르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남북으로 흐르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 이외의 하천은 대부분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기 때문에 流路라는 측면에서는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본 지도에서는 하천이 발원지라는 차원에서 보면 2개의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 위쪽의 淸道界에서 흘러오는 하천이 밀양강 본류이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밀양강의 발원지가 淸道界 훨씬 위쪽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가장 왼쪽의 하천은 현재의 청도천이다. 청도천의 발원지 역시 밀양이 아니라 청도인데, 본 지도에서는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오류는 《해동지도》에서도 동일하게 발생하고 있다. 《해동지도》와의 차이점 중의 하나로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사용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기봉)

  • 봉화현(奉化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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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봉화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약간 크게 그려져 있고,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게 그리려고 하였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치의 鄕廳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수록되지 않은 것도 있다. 대표적으로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릴 만큼 중요하게 생각한 面 중에서 오른쪽 아래에 있던 南面이 생략되어 있다. 하천의 유로는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확대되고, 사각형에 맞추어지는 과정에서 약간의 변화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거의 동일하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봉화 지역은 행정 경계가 상당히 복잡한 지역이다. 일단 현재의 봉화읍이 자리한 곳은 조선시대에는 안동의 월경지였다. 봉화의 읍치는 현재의 봉성면 봉성리에 있었다. 읍치 오른쪽 아래에 榮川地가 표시되어 있는데, 현재의 명호면 고감리 일대에 있었던 영천의 월경지를 의미한다. 왼쪽 위에 있는 물야면은 현재의 영주시 물야면 가평리 일대에 있었던 봉화의 월경지였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위쪽의 上東面은 현재의 봉화군 춘양면의 운곡천 북쪽 부분에 해당되는 봉화의 월경지였다. 본 지도에는 오른쪽 중간에 安東春陽縣이란 명칭을 적어 넣어 안동의 땅을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하였다. 여기서 안동춘양현은 월래 춘양현이 안동의 속현으로 있다가 안동의 월경지로 편입된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지도 제작 당시에는 안동의 춘양면으로 편제되어 있었다. 봉화 주변에 安東界가 많이 적혀 있는 이유는 이 지역에 안동의 월경지가 많았기 때문이다. 아래쪽으로 禮安縣과 접하고 있음에도 이런 사실이 빠져 있다. 기타 오른쪽의 하천은 현재의 낙동강 본류 최상류이고, 그 왼쪽의 하천들은 내성천으로 흘러간다. (이기봉)

  • 봉화현(奉化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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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봉화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약간 크게 그려져 있고,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게 그리려고 하였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치의 鄕廳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수록되지 않은 것도 있다. 대표적으로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릴 만큼 중요하게 생각한 面 중에서 오른쪽 아래에 있던 南面이 생략되어 있다. 하천의 유로는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확대되고, 사각형에 맞추어지는 과정에서 약간의 변화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거의 동일하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봉화 지역은 행정 경계가 상당히 복잡한 지역이다. 일단 현재의 봉화읍이 자리한 곳은 조선시대에는 안동의 월경지였다. 봉화의 읍치는 현재의 봉성면 봉성리에 있었다. 읍치 오른쪽 아래에 榮川地가 표시되어 있는데, 현재의 명호면 고감리 일대에 있었던 영천의 월경지를 의미한다. 왼쪽 위에 있는 물야면은 현재의 영주시 물야면 가평리 일대에 있었던 봉화의 월경지였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위쪽의 上東面은 현재의 봉화군 춘양면의 운곡천 북쪽 부분에 해당되는 봉화의 월경지였다. 본 지도에는 오른쪽 중간에 安東春陽縣이란 명칭을 적어 넣어 안동의 땅을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하였다. 여기서 안동춘양현은 월래 춘양현이 안동의 속현으로 있다가 안동의 월경지로 편입된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지도 제작 당시에는 안동의 춘양면으로 편제되어 있었다. 봉화 주변에 安東界가 많이 적혀 있는 이유는 이 지역에 안동의 월경지가 많았기 때문이다. 아래쪽으로 禮安縣과 접하고 있음에도 이런 사실이 빠져 있다. 기타 오른쪽의 하천은 현재의 낙동강 본류 최상류이고, 그 왼쪽의 하천들은 내성천으로 흘러간다. (이기봉)

  • 비안현(比安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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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비안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가 북쪽을 위로 향해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또한 《해동지도》가 남북을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동서(세로)를 길게 그렸다. 이 과정에서 전반적인 하천의 유로는 동일하지만 길이가 《해동지도》와 다르게 표현되었다. 아래쪽의 軍威界에서 흘러와 왼쪽의 尙州界로 빠져나가는 것이 현재의 위천이다. 위쪽의 義城界에서 흘러와 위천에 합류하는 하천이 현재의 쌍계천이다. 《해동지도》에는 향교 부분까지의 위천과 쌍계천의 길이가 거의 비슷하게 그려져 있으나 본 지도에는 위천이 훨씬 길게 표현되었다. 이런 변화는 두 지도가 동서와 남북의 길이를 전혀 다르게 그렸기 때문이다. 본 지도의 지도에 표기된 面과 주기에 기록된 面의 명칭이 전혀 다르다. 『여지도서』, 『호구총수』,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비안지도를 참고해 보면 비안현에는 縣內面, 身東面, 定西面, 定東面, 定北面, 內西面, 外西面, 內北面, 外北面 등 9개 면이 있었으며, 《해동지도》의 주기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반면에 《해동지도》의 지도에는 이 중 6개만이 표시되어 있고, 내서면과 외서면이 신서면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의 지도 위에 표시되어 있는 것은 정북면을 정동면이라 기록한 것 이외에는 《해동지도》의 지도와 동일하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주기는 다른 자료를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비안현(比安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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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비안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가 북쪽을 위로 향해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또한 《해동지도》가 남북을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동서(세로)를 길게 그렸다. 이 과정에서 전반적인 하천의 유로는 동일하지만 길이가 《해동지도》와 다르게 표현되었다. 아래쪽의 軍威界에서 흘러와 왼쪽의 尙州界로 빠져나가는 것이 현재의 위천이다. 위쪽의 義城界에서 흘러와 위천에 합류하는 하천이 현재의 쌍계천이다. 《해동지도》에는 향교 부분까지의 위천과 쌍계천의 길이가 거의 비슷하게 그려져 있으나 본 지도에는 위천이 훨씬 길게 표현되었다. 이런 변화는 두 지도가 동서와 남북의 길이를 전혀 다르게 그렸기 때문이다. 본 지도의 지도에 표기된 面과 주기에 기록된 面의 명칭이 전혀 다르다. 『여지도서』, 『호구총수』,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비안지도를 참고해 보면 비안현에는 縣內面, 身東面, 定西面, 定東面, 定北面, 內西面, 外西面, 內北面, 外北面 등 9개 면이 있었으며, 《해동지도》의 주기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반면에 《해동지도》의 지도에는 이 중 6개만이 표시되어 있고, 내서면과 외서면이 신서면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의 지도 위에 표시되어 있는 것은 정북면을 정동면이라 기록한 것 이외에는 《해동지도》의 지도와 동일하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주기는 다른 자료를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사천현(泗川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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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사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는 가로(남북)가 세로(동서)보다 훨씬 길게 되어 있다. 반면에 본 지도는 세로가 가로보다 훨씬 길게 되어 있다. 가로가 세로보다 짧아졌기 때문에 해안선의 표현이 《해동지도》와 달라지게 되었다. 즉, 《해동지도》에는 해안선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완만한 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본 지도에는 거의 직각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실제의 해안선 모습은 《해동지도》의 것이 훨씬 사실에 가깝다. 이를 통해 세로로 긴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해안선에 대한 왜곡 현상이 나타났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위쪽(동)에서 아래쪽(서)으로 흐르는 하천의 길이가 《해동지도》에 비해 훨씬 길게 그려졌다. 그러나 본류와 지류에 대한 표현은 《해동지도》와 본 지도가 거의 동일하여 필사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위쪽 가운데의 高城界에서 들어오는 현재의 사천강 끝이 얇게 되어 있어 실제를 이해하기 어렵다. 《해동지도》에서는 사천강의 끝을 2개의 실선으로 그려 고성계에서 흘러들어오고 있는 모습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오른쪽 위 지역은 옛 삼천포시에 해당되는 곳으로 조선시대에는 사천과 진주, 고성의 행정 경계가 복잡하게 되어 있었다. 《해동지도》에는 統倉과 歸龍菴 사이에 晋州境, 晋州界, 泗川境 등의 문구를 여러 개 적어 넣어 이런 상황을 반영하려 하였다. 본 지도에서는 이런 문구들을 모두 생략하여 이 지역의 복잡한 행정 경계를 이해하기 어렵게 하였다. 《해동지도》에는 바다 부분에도 晋州海界와 泗川海界를 2개씩 적어 넣어 역시 복잡한 행정 경계를 표현하려고 하였다. 본 지도에는 이 중 2개가 남아 있는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확실하게 이해하고 쓴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본 지도책의 다른 지도에는 面 정보를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할 정도로 중요하게 취급하였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없을 뿐만 아니라 東面을 제외한 면은 모두 생략하였다. 아마 필사 시에 면 정보를 일괄적으로 생략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기본으로 필사되면서 실제 사실에 대해 꼼꼼하게 검토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오류가 발생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기봉)

  • 사천현(泗川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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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사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는 가로(남북)가 세로(동서)보다 훨씬 길게 되어 있다. 반면에 본 지도는 세로가 가로보다 훨씬 길게 되어 있다. 가로가 세로보다 짧아졌기 때문에 해안선의 표현이 《해동지도》와 달라지게 되었다. 즉, 《해동지도》에는 해안선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완만한 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본 지도에는 거의 직각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실제의 해안선 모습은 《해동지도》의 것이 훨씬 사실에 가깝다. 이를 통해 세로로 긴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해안선에 대한 왜곡 현상이 나타났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위쪽(동)에서 아래쪽(서)으로 흐르는 하천의 길이가 《해동지도》에 비해 훨씬 길게 그려졌다. 그러나 본류와 지류에 대한 표현은 《해동지도》와 본 지도가 거의 동일하여 필사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위쪽 가운데의 高城界에서 들어오는 현재의 사천강 끝이 얇게 되어 있어 실제를 이해하기 어렵다. 《해동지도》에서는 사천강의 끝을 2개의 실선으로 그려 고성계에서 흘러들어오고 있는 모습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오른쪽 위 지역은 옛 삼천포시에 해당되는 곳으로 조선시대에는 사천과 진주, 고성의 행정 경계가 복잡하게 되어 있었다. 《해동지도》에는 統倉과 歸龍菴 사이에 晋州境, 晋州界, 泗川境 등의 문구를 여러 개 적어 넣어 이런 상황을 반영하려 하였다. 본 지도에서는 이런 문구들을 모두 생략하여 이 지역의 복잡한 행정 경계를 이해하기 어렵게 하였다. 《해동지도》에는 바다 부분에도 晋州海界와 泗川海界를 2개씩 적어 넣어 역시 복잡한 행정 경계를 표현하려고 하였다. 본 지도에는 이 중 2개가 남아 있는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확실하게 이해하고 쓴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본 지도책의 다른 지도에는 面 정보를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할 정도로 중요하게 취급하였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없을 뿐만 아니라 東面을 제외한 면은 모두 생략하였다. 아마 필사 시에 면 정보를 일괄적으로 생략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기본으로 필사되면서 실제 사실에 대해 꼼꼼하게 검토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오류가 발생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기봉)

  • 산음현(山陰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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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산음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가 읍치를 상대적으로 훨씬 크게 그렸으며, 가로(동서)의 폭을 더 넓게 하였다. 이 과정에서 하천과 산줄기의 흐름에 일부 변화가 나타났으나 기본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하천의 흐름에 대해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읍치 왼쪽의 鏡湖水는 현재 경호강으로 불리는 남강의 상류이며, 위쪽(북)의 함양 땅으로부터 들어온다. 《해동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약간 애매하기는 하지만 실제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에서는 함양과의 북쪽 경계선을 모두 산줄기로 처리하여 경호강이 함양으로부터 들어온다는 사실 자체를 이해할 수 없게 하였다. 軍器 등 읍치에 있는 지명 몇 개를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 수록된 지명에는 여러 오류가 발견되고 있다. 읍치 오른쪽에 있는 正谷里는 正谷驛을 잘못 옮긴 것이다. 본 지도 위의 里는 다른 군현의 面과 같은 것으로서 보통은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였다. 정곡리에 노란색이 칠해져 있지 않다. 읍치 위쪽의 金谷里는 釜谷里의 오기이며, 《해동지도》에 나오는 生林里가 본 지도에 생략되어 있다. 본 지도의 주기에는 두 지명이 모두 올바르게 나오고 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며, 필사 과정에서 여러 오류가 범해진 것으로 생각된다. 기타 山陰縣은 1767년(영조 43)에 山淸縣으로 명칭이 바뀌기 때문에 본 지도는 그 이전에 필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기봉)

  • 산음현(山陰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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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산음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가 읍치를 상대적으로 훨씬 크게 그렸으며, 가로(동서)의 폭을 더 넓게 하였다. 이 과정에서 하천과 산줄기의 흐름에 일부 변화가 나타났으나 기본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하천의 흐름에 대해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읍치 왼쪽의 鏡湖水는 현재 경호강으로 불리는 남강의 상류이며, 위쪽(북)의 함양 땅으로부터 들어온다. 《해동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약간 애매하기는 하지만 실제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에서는 함양과의 북쪽 경계선을 모두 산줄기로 처리하여 경호강이 함양으로부터 들어온다는 사실 자체를 이해할 수 없게 하였다. 軍器 등 읍치에 있는 지명 몇 개를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 수록된 지명에는 여러 오류가 발견되고 있다. 읍치 오른쪽에 있는 正谷里는 正谷驛을 잘못 옮긴 것이다. 본 지도 위의 里는 다른 군현의 面과 같은 것으로서 보통은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였다. 정곡리에 노란색이 칠해져 있지 않다. 읍치 위쪽의 金谷里는 釜谷里의 오기이며, 《해동지도》에 나오는 生林里가 본 지도에 생략되어 있다. 본 지도의 주기에는 두 지명이 모두 올바르게 나오고 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며, 필사 과정에서 여러 오류가 범해진 것으로 생각된다. 기타 山陰縣은 1767년(영조 43)에 山淸縣으로 명칭이 바뀌기 때문에 본 지도는 그 이전에 필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기봉)

  • 삼가현(三嘉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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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삼가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는 가로(동서)를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세로(남북)를 길게 그렸다. 그러나 하천의 유로라는 차원에서 비교하면 두 지도는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서는 하천의 유로에서 하나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아래쪽의 하천은 남강으로 흘러가는 현재의 양천 상류이고, 위쪽의 하천은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황강의 중류 부분이다. 황강은 위쪽 왼쪽의 陜川界에서 흘러와 오른쪽의 界山里를 거쳐 빠져나간다. 왼쪽의 神旨里에서 흘러와 황강에 합류되는 하천은 현재의 신원천이다. 본 지도에는 이 신원천이 서쪽의 山陰界 너머에서 흘러온 것처럼 그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산음과의 경계선이 발원지이다.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처럼 분명하게 오류를 범하고 있지는 않으나 山陰界 너머에서 흘러오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이런 《해동지도》의 내용을 잘못 이해하여 오류를 범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특히 본 지도에서는 황강 본류와 그 지류인 신원천을 《해동지도》보다도 더 구별하기 어렵게 표현하였다. 황강은 북쪽에서 흘러와 동쪽으로 빠져나가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렇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해동지도》를 실제와 비교하지 않고 필사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는 첫째,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렸다. 둘째, 남북으로 긴 고을의 모습을 동서가 길게 그렸다. 읍치의 입장에서 보면 황강 유역은 서북쪽으로 튀어나가 있는데, 지도에는 마치 북쪽 방향에 있는 것처럼 그렸다. 이 과정에서 황강의 유로에 대한 왜곡이 발생한 것이다. 본 지도는 실제 모습을 검토하지 않고 《해동지도》에 기반하면서 세로만 길게 그렸기 때문에 황강의 유로가 더욱 왜곡되게 된 것이다. 본 지도 위에는 5개의 면이 표시되어 있지만 주기에는 이런 면의 명칭이 전혀 없다. 이런 문제점도 《해동지도》를 꼼꼼하게 검토하지 않고 필사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의 지도 위에 있는 面의 명칭은 후에 주기에 적힌 里의 명칭으로 개칭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삼가현(三嘉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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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삼가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는 가로(동서)를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세로(남북)를 길게 그렸다. 그러나 하천의 유로라는 차원에서 비교하면 두 지도는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서는 하천의 유로에서 하나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아래쪽의 하천은 남강으로 흘러가는 현재의 양천 상류이고, 위쪽의 하천은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황강의 중류 부분이다. 황강은 위쪽 왼쪽의 陜川界에서 흘러와 오른쪽의 界山里를 거쳐 빠져나간다. 왼쪽의 神旨里에서 흘러와 황강에 합류되는 하천은 현재의 신원천이다. 본 지도에는 이 신원천이 서쪽의 山陰界 너머에서 흘러온 것처럼 그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산음과의 경계선이 발원지이다.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처럼 분명하게 오류를 범하고 있지는 않으나 山陰界 너머에서 흘러오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이런 《해동지도》의 내용을 잘못 이해하여 오류를 범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특히 본 지도에서는 황강 본류와 그 지류인 신원천을 《해동지도》보다도 더 구별하기 어렵게 표현하였다. 황강은 북쪽에서 흘러와 동쪽으로 빠져나가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렇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해동지도》를 실제와 비교하지 않고 필사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는 첫째,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렸다. 둘째, 남북으로 긴 고을의 모습을 동서가 길게 그렸다. 읍치의 입장에서 보면 황강 유역은 서북쪽으로 튀어나가 있는데, 지도에는 마치 북쪽 방향에 있는 것처럼 그렸다. 이 과정에서 황강의 유로에 대한 왜곡이 발생한 것이다. 본 지도는 실제 모습을 검토하지 않고 《해동지도》에 기반하면서 세로만 길게 그렸기 때문에 황강의 유로가 더욱 왜곡되게 된 것이다. 본 지도 위에는 5개의 면이 표시되어 있지만 주기에는 이런 면의 명칭이 전혀 없다. 이런 문제점도 《해동지도》를 꼼꼼하게 검토하지 않고 필사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의 지도 위에 있는 面의 명칭은 후에 주기에 적힌 里의 명칭으로 개칭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상주목(尙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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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상주목 지도와 비슷하다. 일단 본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하천의 유로는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다만 몇 부분에서 본 지도가 오류를 범하고 있다. 오른쪽의 丹東面에서 흘러오는 하천은 낙동강의 지류인 위천이고, 위쪽의 咸昌界라고 적혀 있는 곳에서 흘러오는 하천은 낙동강의 지류인 영강이다. 본 지도에는 두 하천의 끝을 모두 얇게 그려서 마치 발원지인 것처럼 그렸지만 실제로는 모두 다른 고을에서 흘러 들어온다. 《해동지도》에는 이러한 실제 사실을 잘 표현해 놓았다. 오른쪽 위에서 흘러와 아래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 본류이고, 왼쪽의 하천은 금강의 지류인 소강이다. 읍성의 안쪽에 있는 軍器와 바깥쪽에 있는 社壇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거의 다 나온다. 다만 읍성 부분을 《해동지도》보다 상대적으로 크게 그렸으며, 읍성 위쪽에 숲이 첨가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글씨로만 쓰여 있던 面, 驛, 倉에 본 지도에는 각각 노란색 사각형, 황색 사각형, 건물 모양의 기호가 추가되어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기호의 사용과 지며으이 표기에 몇 가지 오류가 쉽게 보인다. 예를 들면 읍치 왼쪽 위의 化西面에 황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고, 읍치 왼쪽의 洛陽驛에 황색 사각형이 없으며, 읍치 위쪽에 內北面과 敎場이 內西面과 郊場으로 되어 있다. 이외에 《해동지도》가 동서가 약간 넓은 형태로 그려진 반면 본 지도는 남북이 더 길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본 지도나 《해동지도》 모두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으로 그렸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오른쪽 위의 永順面 북쪽과 왼쪽 위의 化北面 등은 북쪽으로 튀어나간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는 그런 사실이 잘 반영되어 있지 않다. 기타 주기에 적혀 있는 호구수 역시 본 지도와 《해동지도》는 다르다. (이기봉)

  • 상주목(尙州牧)(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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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상주목 지도와 비슷하다. 일단 본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하천의 유로는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다만 몇 부분에서 본 지도가 오류를 범하고 있다. 오른쪽의 丹東面에서 흘러오는 하천은 낙동강의 지류인 위천이고, 위쪽의 咸昌界라고 적혀 있는 곳에서 흘러오는 하천은 낙동강의 지류인 영강이다. 본 지도에는 두 하천의 끝을 모두 얇게 그려서 마치 발원지인 것처럼 그렸지만 실제로는 모두 다른 고을에서 흘러 들어온다. 《해동지도》에는 이러한 실제 사실을 잘 표현해 놓았다. 오른쪽 위에서 흘러와 아래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 본류이고, 왼쪽의 하천은 금강의 지류인 소강이다. 읍성의 안쪽에 있는 軍器와 바깥쪽에 있는 社壇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거의 다 나온다. 다만 읍성 부분을 《해동지도》보다 상대적으로 크게 그렸으며, 읍성 위쪽에 숲이 첨가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글씨로만 쓰여 있던 面, 驛, 倉에 본 지도에는 각각 노란색 사각형, 황색 사각형, 건물 모양의 기호가 추가되어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기호의 사용과 지며으이 표기에 몇 가지 오류가 쉽게 보인다. 예를 들면 읍치 왼쪽 위의 化西面에 황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고, 읍치 왼쪽의 洛陽驛에 황색 사각형이 없으며, 읍치 위쪽에 內北面과 敎場이 內西面과 郊場으로 되어 있다. 이외에 《해동지도》가 동서가 약간 넓은 형태로 그려진 반면 본 지도는 남북이 더 길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본 지도나 《해동지도》 모두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으로 그렸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오른쪽 위의 永順面 북쪽과 왼쪽 위의 化北面 등은 북쪽으로 튀어나간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는 그런 사실이 잘 반영되어 있지 않다. 기타 주기에 적혀 있는 호구수 역시 본 지도와 《해동지도》는 다르다. (이기봉)

  • 선산부(善山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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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선산부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거의 《해동지도》에 나온다. 다만 지명의 위치가 약간씩 다르게 표시되어 있고, 面과 驛에 노란색과 황색의 사각형이 표시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전반적으로 《해동지도》에 비해 세로가 짧게 그려졌고, 읍치가 상대적으로 넓게 표현되었다. 그러나 하천의 유로라는 측면에서 볼 때 본 지도와 《해동지도》는 거의 동일하다.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하천이 낙동강 본류이고, 왼쪽에서 흘러와 낙동강에 합류하는 하천이 현재의 감천이다. 낙동강에 본 지도에는 冷零江이라 적혀 있는데, 《해동지도》에는 洛江上流로 되어 있다. 읍치 아래쪽 감천 변에 그려진 숲은 《해동지도》에 없던 것이다. 정확한 직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세로로 긴 사각형으로 그리다 보니까 몇몇 부분에서 왜곡이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읍치 가장 왼쪽의 하천은 실제로는 거의 동류하여 감천에 합류되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남류하는 것처럼 그려졌다. 이 부분은 서쪽으로 튀어나간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이를 사각형에 맞추어 표현하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낙동강 동쪽의 경우도 위쪽(북)보다 아래쪽(남)의 동서 폭이 훨씬 넓지만 본 지도에는 거의 비슷한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선산부(善山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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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선산부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거의 《해동지도》에 나온다. 다만 지명의 위치가 약간씩 다르게 표시되어 있고, 面과 驛에 노란색과 황색의 사각형이 표시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전반적으로 《해동지도》에 비해 세로가 짧게 그려졌고, 읍치가 상대적으로 넓게 표현되었다. 그러나 하천의 유로라는 측면에서 볼 때 본 지도와 《해동지도》는 거의 동일하다.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하천이 낙동강 본류이고, 왼쪽에서 흘러와 낙동강에 합류하는 하천이 현재의 감천이다. 낙동강에 본 지도에는 冷零江이라 적혀 있는데, 《해동지도》에는 洛江上流로 되어 있다. 읍치 아래쪽 감천 변에 그려진 숲은 《해동지도》에 없던 것이다. 정확한 직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세로로 긴 사각형으로 그리다 보니까 몇몇 부분에서 왜곡이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읍치 가장 왼쪽의 하천은 실제로는 거의 동류하여 감천에 합류되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남류하는 것처럼 그려졌다. 이 부분은 서쪽으로 튀어나간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이를 사각형에 맞추어 표현하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낙동강 동쪽의 경우도 위쪽(북)보다 아래쪽(남)의 동서 폭이 훨씬 넓지만 본 지도에는 거의 비슷한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성주목(星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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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성주목 지도와 비슷하다. 본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해동지도》가 동서(세로)를 남북(가로)보다 짧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동서를 더 길게 그렸다. 또한 邑城과 禿用山城에 《해동지도》보다 정보가 많이 추가되어 있고, 상대적으로 더 크게 그렸다. 그 결과 서쪽(위)에서 동쪽(아래)으로 흐르는 하천의 길이와 유로가 약간 달라졌다. 그러나 전반적인 하천의 유로는 《해동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아래쪽 오른쪽에서 흘러와 왼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 본류이다. 읍치를 돌아 낙동강에 합류하는 하천은 현재의 백천이며, 독용산성에서 흘러가는 하천은 현재의 회천 상류이다. 독용산성과 읍성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수록된 지명은 《해동지도》에 거의 나온다. 해동지도에 글씨로만 적혀 있던 坊(보통 面이라고 한다)이 본 지도에는 노란색 사각형 안에 쓰여 있다. 다만 坊 앞의 명칭이 3자인 경우 坊을 생략하였다. 오른쪽 위에는 노란색 사각형만 있고, 坊의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경우도 보이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이곳에 非乎石坊이 적혀 있는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읍성 왼쪽의 大里坊에 황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는 실수도 보이고 있다. 왼쪽 아래에 적혀 있는 所也坊, 茂溪驛, 蘆長谷(坊)은 현재의 《해동지도》에 없는 지명이다. 원래부터 《해동지도》에 없는 것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현재 남아 있는 《해동지도》의 이 부근에는 무언가를 지우고 주기를 적은 흔적이 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주기에 2개의 坊 명칭이 보이고 있지 않아 확실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김정호의 『대동지지』에는 2개의 坊 명칭이 나온다. 그 위쪽에 있는 高靈界는 《해동지도》에 高靈坊으로 되어 있던 것이다. 고령방을 다른 기록에서 찾을 수가 없고, 이 방향에 高靈과의 경계선이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해동지도》에서 틀린 것으로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고친 것이 아닌가 한다. (이기봉)

  • 성주목(星州牧)(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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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성주목 지도와 비슷하다. 본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해동지도》가 동서(세로)를 남북(가로)보다 짧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동서를 더 길게 그렸다. 또한 邑城과 禿用山城에 《해동지도》보다 정보가 많이 추가되어 있고, 상대적으로 더 크게 그렸다. 그 결과 서쪽(위)에서 동쪽(아래)으로 흐르는 하천의 길이와 유로가 약간 달라졌다. 그러나 전반적인 하천의 유로는 《해동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아래쪽 오른쪽에서 흘러와 왼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 본류이다. 읍치를 돌아 낙동강에 합류하는 하천은 현재의 백천이며, 독용산성에서 흘러가는 하천은 현재의 회천 상류이다. 독용산성과 읍성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수록된 지명은 《해동지도》에 거의 나온다. 해동지도에 글씨로만 적혀 있던 坊(보통 面이라고 한다)이 본 지도에는 노란색 사각형 안에 쓰여 있다. 다만 坊 앞의 명칭이 3자인 경우 坊을 생략하였다. 오른쪽 위에는 노란색 사각형만 있고, 坊의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경우도 보이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이곳에 非乎石坊이 적혀 있는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읍성 왼쪽의 大里坊에 황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는 실수도 보이고 있다. 왼쪽 아래에 적혀 있는 所也坊, 茂溪驛, 蘆長谷(坊)은 현재의 《해동지도》에 없는 지명이다. 원래부터 《해동지도》에 없는 것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현재 남아 있는 《해동지도》의 이 부근에는 무언가를 지우고 주기를 적은 흔적이 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주기에 2개의 坊 명칭이 보이고 있지 않아 확실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김정호의 『대동지지』에는 2개의 坊 명칭이 나온다. 그 위쪽에 있는 高靈界는 《해동지도》에 高靈坊으로 되어 있던 것이다. 고령방을 다른 기록에서 찾을 수가 없고, 이 방향에 高靈과의 경계선이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해동지도》에서 틀린 것으로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고친 것이 아닌가 한다. (이기봉)

  • 순흥부(順興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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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순흥부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고, 남북의 길이가 약간 더 길어졌다. 이로 인해 남북 방향의 하천이 더 길어지고, 읍치에 인접한 하천의 유로가 약간 바뀌어 있다. 가장 오른쪽의 奉化界에 있었던 하천 1개가 생략되어 있기도 하다. 본 지도에 수록된 지명은 거의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다만 《해동지도》와 약간 다르게 그리는 과정에서 지명의 위치가 바뀐 곳이 몇 개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본 지도의 오른쪽 중간에 있는 東倉이 《해동지도》에는 훨씬 아래쪽에 표시되어 있다. 순흥의 영역은 인근의 군현과 상당히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본 지도에 榮川이란 명칭이 붙은 지명은 순흥의 땅을 넘어가 있는 영천의 월경지였다. 반면에 왼쪽에 있는 昌樂面과 大龍山面은 모두 豊基의 땅을 넘어가 있는 순흥의 월경지였다. 《해동지도》에는 읍치 왼쪽에 豊基라는 명칭을 적어 넣어 그런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풍기라는 지명을 삭제하였는데, 필사 시에 각 군현의 영역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주기에는 2개의 면이 월경지라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왼쪽 위에 豊基가 붙은 지명은 풍기에 속해 있던 지역임을 의미한다. 본 지도의 필사 시 面에 노란색 사각형을 그려 넣었다. 그러나 영천이나 풍기가 붙은 지명이 모두 面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자료를 꼼꼼하게 검토한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주기에는 봉화와 안동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瓦丹面이 기록되어 있지만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기타 오른쪽은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의 상류이고, 왼쪽은 내성천의 지류인 서천의 상류이다. (이기봉)

  • 순흥부(順興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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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순흥부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고, 남북의 길이가 약간 더 길어졌다. 이로 인해 남북 방향의 하천이 더 길어지고, 읍치에 인접한 하천의 유로가 약간 바뀌어 있다. 가장 오른쪽의 奉化界에 있었던 하천 1개가 생략되어 있기도 하다. 본 지도에 수록된 지명은 거의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다만 《해동지도》와 약간 다르게 그리는 과정에서 지명의 위치가 바뀐 곳이 몇 개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본 지도의 오른쪽 중간에 있는 東倉이 《해동지도》에는 훨씬 아래쪽에 표시되어 있다. 순흥의 영역은 인근의 군현과 상당히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본 지도에 榮川이란 명칭이 붙은 지명은 순흥의 땅을 넘어가 있는 영천의 월경지였다. 반면에 왼쪽에 있는 昌樂面과 大龍山面은 모두 豊基의 땅을 넘어가 있는 순흥의 월경지였다. 《해동지도》에는 읍치 왼쪽에 豊基라는 명칭을 적어 넣어 그런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풍기라는 지명을 삭제하였는데, 필사 시에 각 군현의 영역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주기에는 2개의 면이 월경지라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왼쪽 위에 豊基가 붙은 지명은 풍기에 속해 있던 지역임을 의미한다. 본 지도의 필사 시 面에 노란색 사각형을 그려 넣었다. 그러나 영천이나 풍기가 붙은 지명이 모두 面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자료를 꼼꼼하게 검토한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주기에는 봉화와 안동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瓦丹面이 기록되어 있지만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기타 오른쪽은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의 상류이고, 왼쪽은 내성천의 지류인 서천의 상류이다. (이기봉)

  • 안동부(安東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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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안동부 지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도라고 추정된다.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읍치 부분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다. 하천의 본류나 지류 역시 표현 방식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나와 있는 것과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와 가장 다른 점은 첫째, 邑治에 있는 읍성을 상대적으로 크게 그렸고, 官廳과 大同 등의 정보를 추가하였다는 것이다. 둘째, 글씨로만 적혀 있는 郡縣, 驛, 面의 정보에 황색이나 노란색 사각형 기호를 추가하였다는 것이다. 셋째, 도로와 각 지점까지의 거리가 생략되었다는 것이다. 이 중 두 번째의 부분에서 군현과 역을 동일한 황색 사각형으로 그리고 있어 정보 사이의 차이를 구별하지 않았다. 그리고 본 지도에서 順興府, 榮川郡, 奉化縣, 禮安縣의 명칭이 적혀 있는 것은 甘泉倉, 乃城倉, 春陽倉, 小川倉, 才山倉이 있는 지역이 이들 군현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越境地였기 때문이다. 하천의 표시에서 《해동지도》에는 올바르게 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는 잘못 표시된 부분도 보인다. 오른쪽 아래 臨西와 臨北에 있는 하천은 현재 낙동강의 지류인 반변천이이라고 한다. 이 반변천은 眞寶와 英陽, 靑松의 경계를 넘어서 흘러온다. 본 지도에는 반변천 끝을 얇게 하여 마치 다른 고을과의 경계 부근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표현하였다. 《해동지도》에는 진보나 청송계에서 들어오는 것으로 분명하게 표시되어 있다. 읍치를 돌아 아래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지금의 낙동강 본류이고, 가장 왼쪽의 하천이 그 지류인 내성천이다. 2개의 하천은 본 지도에는 발원지에서 모두 연결된 것처럼 그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다른 고을을 지나는 부분도 많다. 읍치 아래쪽에 銅柱라고 적혀 있는 부분에 《해동지도》에는 당간지주의 모양이 그려져 있기도 하다. 주기의 호구수는 《해동지도》와 다르며, 面에 대한 기록은 거의 동일하다. (이기봉)

  • 안동부(安東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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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안동부 지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도라고 추정된다.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읍치 부분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다. 하천의 본류나 지류 역시 표현 방식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나와 있는 것과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와 가장 다른 점은 첫째, 邑治에 있는 읍성을 상대적으로 크게 그렸고, 官廳과 大同 등의 정보를 추가하였다는 것이다. 둘째, 글씨로만 적혀 있는 郡縣, 驛, 面의 정보에 황색이나 노란색 사각형 기호를 추가하였다는 것이다. 셋째, 도로와 각 지점까지의 거리가 생략되었다는 것이다. 이 중 두 번째의 부분에서 군현과 역을 동일한 황색 사각형으로 그리고 있어 정보 사이의 차이를 구별하지 않았다. 그리고 본 지도에서 順興府, 榮川郡, 奉化縣, 禮安縣의 명칭이 적혀 있는 것은 甘泉倉, 乃城倉, 春陽倉, 小川倉, 才山倉이 있는 지역이 이들 군현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越境地였기 때문이다. 하천의 표시에서 《해동지도》에는 올바르게 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는 잘못 표시된 부분도 보인다. 오른쪽 아래 臨西와 臨北에 있는 하천은 현재 낙동강의 지류인 반변천이이라고 한다. 이 반변천은 眞寶와 英陽, 靑松의 경계를 넘어서 흘러온다. 본 지도에는 반변천 끝을 얇게 하여 마치 다른 고을과의 경계 부근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표현하였다. 《해동지도》에는 진보나 청송계에서 들어오는 것으로 분명하게 표시되어 있다. 읍치를 돌아 아래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지금의 낙동강 본류이고, 가장 왼쪽의 하천이 그 지류인 내성천이다. 2개의 하천은 본 지도에는 발원지에서 모두 연결된 것처럼 그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다른 고을을 지나는 부분도 많다. 읍치 아래쪽에 銅柱라고 적혀 있는 부분에 《해동지도》에는 당간지주의 모양이 그려져 있기도 하다. 주기의 호구수는 《해동지도》와 다르며, 面에 대한 기록은 거의 동일하다. (이기봉)

  • 안음현(安陰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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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지도책의 경상도 군현지도가 대부분 《해동지도》의 것과 비슷하지만 안음현은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지 않았다. 안음현은 1728년(영조 4)에 혁파되었다가 1736년(영조 12)에 복구되며, 1767년(영조 43)에 安義縣로 명칭을 바꾼다. 안음현의 명칭 변화를 기준으로 보면 《해동지도》는 1728년과 1736년 사이에, 본 지도는 1736년과 1767년 사이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본 지도책에 수록된 대부분의 경상도 군현지도와 달리 읍치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지지 않았다. 본 지도에서의 읍치는 아래쪽에 衙라고만 표시되어 있을 뿐이다. 현재의 함양군 안의면 금천리와 교북리 일대이다. 하천의 유로라는 입장에서 현대지도와 비교해 봐도 실제와 아주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아래쪽의 하천은 낙동강의 지류 중 가장 큰 남강의 최상류에 해당되며, 위쪽의 하천은 합천에서 낙동강과 합류하는 황강의 최상류 중의 하나인 위천천이다. 남강의 최상류에는 현재 함양군 안의면, 서하면, 서상면이 있고, 위천천 유역에는 거창군 마리면, 위천면, 북상면이 있다. 본 지도책에 수록된 경상도 대부분의 군현 지도는 주로 面 정보를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릴만큼 중요하게 표시하였다. 그리고 그 面 정보의 대부분은 《해동지도》에 나와 있는 것이었다. 본 지도에는 面 정보가 없으며, 당시에 중요한 村의 명칭이 아주 자세하게 표시되어 있다. 그밖에 사찰과 역, 창고, 서원, 점막 등의 인문 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정확한 지도라는 입장에서 보았을 때 본 지도보다 더 정확하게 그려진 안음현 고지도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확한 지도 계열로 분류되고 있으며,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안음 지도, 김정호의 《동여도》와 본 지도를 비교해 보면 이런 측면이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지도가 본 지도책에 수록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시에 정확한 군현지도의 제작 기술이 상당히 높았음을 실감할 수 있다. (이기봉)

  • 안음현(安陰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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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지도책의 경상도 군현지도가 대부분 《해동지도》의 것과 비슷하지만 안음현은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지 않았다. 안음현은 1728년(영조 4)에 혁파되었다가 1736년(영조 12)에 복구되며, 1767년(영조 43)에 安義縣로 명칭을 바꾼다. 안음현의 명칭 변화를 기준으로 보면 《해동지도》는 1728년과 1736년 사이에, 본 지도는 1736년과 1767년 사이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본 지도책에 수록된 대부분의 경상도 군현지도와 달리 읍치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지지 않았다. 본 지도에서의 읍치는 아래쪽에 衙라고만 표시되어 있을 뿐이다. 현재의 함양군 안의면 금천리와 교북리 일대이다. 하천의 유로라는 입장에서 현대지도와 비교해 봐도 실제와 아주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아래쪽의 하천은 낙동강의 지류 중 가장 큰 남강의 최상류에 해당되며, 위쪽의 하천은 합천에서 낙동강과 합류하는 황강의 최상류 중의 하나인 위천천이다. 남강의 최상류에는 현재 함양군 안의면, 서하면, 서상면이 있고, 위천천 유역에는 거창군 마리면, 위천면, 북상면이 있다. 본 지도책에 수록된 경상도 대부분의 군현 지도는 주로 面 정보를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릴만큼 중요하게 표시하였다. 그리고 그 面 정보의 대부분은 《해동지도》에 나와 있는 것이었다. 본 지도에는 面 정보가 없으며, 당시에 중요한 村의 명칭이 아주 자세하게 표시되어 있다. 그밖에 사찰과 역, 창고, 서원, 점막 등의 인문 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정확한 지도라는 입장에서 보았을 때 본 지도보다 더 정확하게 그려진 안음현 고지도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확한 지도 계열로 분류되고 있으며,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안음 지도, 김정호의 《동여도》와 본 지도를 비교해 보면 이런 측면이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지도가 본 지도책에 수록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시에 정확한 군현지도의 제작 기술이 상당히 높았음을 실감할 수 있다. (이기봉)

  • 양산군(梁山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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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양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성 안의 菖蒲亭 등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차이가 있다면 驛을 舘으로, 峴을 峙로 쓴 정도이다. 하천 역시 오른쪽 機張界에 현재의 수영강 상류가 생략된 것을 제외하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읍성이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지고,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더 맞추어 표현하였다. 이 과정에서 하천의 길이나 유로 등에서 약간이 차이가 발생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 현재의 수영강 상류가 오른쪽에 그려진 것은 사실에 부합된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이런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의적으로 생략한 것이 아닌가 한다. 왼쪽 위의 彦陽界에서 들어오는 하천은 밀양강 지류 중의 하나인 단장천의 최상류에 해당된다. 《해동지도》에는 彦陽界 부근이 발원지인 것처럼 그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본 지도처럼 언양 방면에서 들어온다. 이 하천은 읍치 부근을 지나는 현재의 양산천에 비하면 훨씬 작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왼쪽 아래에 七點山이 있는 섬은 현재의 부산광역시 대저동 일대로서 《해동지도》에 비해 훨씬 크게 그려져 있다. 또한 본 지도에는 양산천이 낙동강에 합류하는 지점에 대저도가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실제와 비교해 보면 《해동지도》의 표현이 사실에 가깝다. 읍치가 크게 그려지면서 북쪽 지역이 상대적으로 작게 그려진 것도 본 지도의 단점이다. (이기봉)

  • 양산군(梁山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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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양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성 안의 菖蒲亭 등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차이가 있다면 驛을 舘으로, 峴을 峙로 쓴 정도이다. 하천 역시 오른쪽 機張界에 현재의 수영강 상류가 생략된 것을 제외하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읍성이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지고,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더 맞추어 표현하였다. 이 과정에서 하천의 길이나 유로 등에서 약간이 차이가 발생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 현재의 수영강 상류가 오른쪽에 그려진 것은 사실에 부합된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이런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의적으로 생략한 것이 아닌가 한다. 왼쪽 위의 彦陽界에서 들어오는 하천은 밀양강 지류 중의 하나인 단장천의 최상류에 해당된다. 《해동지도》에는 彦陽界 부근이 발원지인 것처럼 그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본 지도처럼 언양 방면에서 들어온다. 이 하천은 읍치 부근을 지나는 현재의 양산천에 비하면 훨씬 작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왼쪽 아래에 七點山이 있는 섬은 현재의 부산광역시 대저동 일대로서 《해동지도》에 비해 훨씬 크게 그려져 있다. 또한 본 지도에는 양산천이 낙동강에 합류하는 지점에 대저도가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실제와 비교해 보면 《해동지도》의 표현이 사실에 가깝다. 읍치가 크게 그려지면서 북쪽 지역이 상대적으로 작게 그려진 것도 본 지도의 단점이다. (이기봉)

  • 언양현(彦陽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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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언양현 지도와 비슷하다. 하천의 유로라는 측면에서 보면 본 지도와 《해동지도》는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본 지도는 《해동지도》에 비해 첫째, 읍성이 더 크게 그려져 있고 둘째 세로(남북)가 더 길게 되어 있다. 이로 인해 하천의 유로에서 약간의 변화가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왼쪽 아래의 하천이 본 지도에는 南流하다가 西流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거의 西流하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읍치 바로 왼쪽의 하천도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보다 남류하는  듯한 인상이 더 적다. 지명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邑城과 그 주변의 지명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도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것 중에서 본 지도에 수록되지 않은 것도 있다. 이런 사실을 종합해 보면 본 지도는 기본적으로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읍치 부분은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비록 회화식으로 그려져 있어 읍치와 다른 지역 사이의 거리 축척이 다르지만 고을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실제와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언양현(彦陽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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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언양현 지도와 비슷하다. 하천의 유로라는 측면에서 보면 본 지도와 《해동지도》는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본 지도는 《해동지도》에 비해 첫째, 읍성이 더 크게 그려져 있고 둘째 세로(남북)가 더 길게 되어 있다. 이로 인해 하천의 유로에서 약간의 변화가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왼쪽 아래의 하천이 본 지도에는 南流하다가 西流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거의 西流하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읍치 바로 왼쪽의 하천도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보다 남류하는  듯한 인상이 더 적다. 지명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邑城과 그 주변의 지명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도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것 중에서 본 지도에 수록되지 않은 것도 있다. 이런 사실을 종합해 보면 본 지도는 기본적으로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읍치 부분은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비록 회화식으로 그려져 있어 읍치와 다른 지역 사이의 거리 축척이 다르지만 고을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실제와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영남도(嶺南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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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안과 섬의 모습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남도와 거의 동일하다. 산줄기의 표현 방식이 약간 다른 측면이 있지만 전체적인 산세의 흐름은 《광여도》와 거의 비슷하다. 반면에 하천의 유로나 표현 방식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경상도 지도에 가깝다. 예를 들어 《광여도》에는 경주 지역의 형산강과 울산 지역의 태화강이 마치 붙어 있는 것처럼 표기되었지만 본 지도에서는 서로 분리되어 있다. 이것은  《해동지도》와 거의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또 하나의 예를 들면 역시 형산강의 지류인 현재의 기계천이 《광여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 본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다. 이것 역시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서 하천을 2개의 실선으로 표시한 것도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광여도》에는 하나의 실선으로만 표현하였다. 감영, 수영, 통영, 군현, 찰방역, 진보 등의 기호 사용은 《해동지도》가 아니라 《광여도》와 거의 유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찰방역의 색이 《광여도》는 붉은색인데 반해 본 지도는 진보와 동일한 노란색으로 되어 있다는 정도이다. 기타 지명은 《광여도》와 거의 비슷하지만 일부 지명은 《광여도》에 없는 것도 있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하며, 《해동지도》와는 다르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광여도》와 같은 계통의 것을 기본으로 하면서 《해동지도》와 다른 자료를 보충한 것으로 생각된다. 지명이 반영하는 내용의 상한 연도는 安陰과 山陰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두 군현은 모두 1767년(영조 43)에 安義와 山淸으로 명칭을 바꾼다. 따라서 내용만으로 놓고 볼 때 본 지도는 늦어도 1767년 이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지명만으로 본 지도의 제작 연도를 추적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조선시대의 지도책 중 상당수가 제작 당시의 상황을 반영하지 않고 기존의 지도를 그대로 베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도에는 명칭에서의 오류도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오른쪽 蔚山 부근에 적혀 있는 右兵營은 左兵營의 誤記이다. 가운데 위쪽의 昌樂은 군현이 아니라 찰방역임에도 불구하고 군현의 기호를 사용하고 있다. (이기봉)

  • 영남도(嶺南圖)(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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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안과 섬의 모습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남도와 거의 동일하다. 산줄기의 표현 방식이 약간 다른 측면이 있지만 전체적인 산세의 흐름은 《광여도》와 거의 비슷하다. 반면에 하천의 유로나 표현 방식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경상도 지도에 가깝다. 예를 들어 《광여도》에는 경주 지역의 형산강과 울산 지역의 태화강이 마치 붙어 있는 것처럼 표기되었지만 본 지도에서는 서로 분리되어 있다. 이것은  《해동지도》와 거의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또 하나의 예를 들면 역시 형산강의 지류인 현재의 기계천이 《광여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 본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다. 이것 역시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서 하천을 2개의 실선으로 표시한 것도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광여도》에는 하나의 실선으로만 표현하였다. 감영, 수영, 통영, 군현, 찰방역, 진보 등의 기호 사용은 《해동지도》가 아니라 《광여도》와 거의 유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찰방역의 색이 《광여도》는 붉은색인데 반해 본 지도는 진보와 동일한 노란색으로 되어 있다는 정도이다. 기타 지명은 《광여도》와 거의 비슷하지만 일부 지명은 《광여도》에 없는 것도 있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하며, 《해동지도》와는 다르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광여도》와 같은 계통의 것을 기본으로 하면서 《해동지도》와 다른 자료를 보충한 것으로 생각된다. 지명이 반영하는 내용의 상한 연도는 安陰과 山陰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두 군현은 모두 1767년(영조 43)에 安義와 山淸으로 명칭을 바꾼다. 따라서 내용만으로 놓고 볼 때 본 지도는 늦어도 1767년 이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지명만으로 본 지도의 제작 연도를 추적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조선시대의 지도책 중 상당수가 제작 당시의 상황을 반영하지 않고 기존의 지도를 그대로 베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도에는 명칭에서의 오류도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오른쪽 蔚山 부근에 적혀 있는 右兵營은 左兵營의 誤記이다. 가운데 위쪽의 昌樂은 군현이 아니라 찰방역임에도 불구하고 군현의 기호를 사용하고 있다. (이기봉)

  • 영덕현(盈德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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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영덕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읍성 안에 있는 건물 몇 개를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표시되어 있어 서로 필사 관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驛의 표현이 황색과 무색 사각형 2개로 되는 등 본 지도에 오류가 보이고 있어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성을 상대적으로 크게 그렸으며, 고을 전체를 사각형의 모양에 더 가깝게 그렸다. 이로 인해 하천의 유로 일부가 약간 다르게 표시되었지만 본류나 지류의 표현은 전체적으로 동일하다. 왼쪽의 西面 부근에 있는 하천은 현재의 대서천으로서 경주와 청송 방면에서 흘러 들어온다. 《해동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잘 반영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는 하천 끝을 얇게 하여 마치 경계선 부근이 발원지인 것 같은 착각을 할 수 있게 그렸다. 이런 점을 통해 봐도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이 아닌가 한다.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러나 모든 부분에서 동일한 방향 기준을 적용하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해안선은 거의 남북 방향을 하고 있는데,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잘 반영되어 있지 않다. 위쪽의 眞寶界로부터 오른쪽의 해안선 부근의 寧海界까지가 북쪽의 동서 방향이고, 寧海界부터 아래쪽 淸河界까지 동쪽의 남북 방향에 해당된다. 眞寶界로부터 왼쪽의 外南面 부근까지의 경계는 서북-동남 방향으로 되어 있고, 거기부터 淸河界까지 다시 남쪽의 동서 방향이 된다. 이렇게 방향이 일정하게 정해지지 않은 이유는 첫째,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 위에 그렸기 때문이다. 둘째, 읍치를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렸기 때문이다. (이기봉)

  • 영덕현(盈德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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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영덕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읍성 안에 있는 건물 몇 개를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표시되어 있어 서로 필사 관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驛의 표현이 황색과 무색 사각형 2개로 되는 등 본 지도에 오류가 보이고 있어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성을 상대적으로 크게 그렸으며, 고을 전체를 사각형의 모양에 더 가깝게 그렸다. 이로 인해 하천의 유로 일부가 약간 다르게 표시되었지만 본류나 지류의 표현은 전체적으로 동일하다. 왼쪽의 西面 부근에 있는 하천은 현재의 대서천으로서 경주와 청송 방면에서 흘러 들어온다. 《해동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잘 반영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는 하천 끝을 얇게 하여 마치 경계선 부근이 발원지인 것 같은 착각을 할 수 있게 그렸다. 이런 점을 통해 봐도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이 아닌가 한다.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러나 모든 부분에서 동일한 방향 기준을 적용하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해안선은 거의 남북 방향을 하고 있는데,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잘 반영되어 있지 않다. 위쪽의 眞寶界로부터 오른쪽의 해안선 부근의 寧海界까지가 북쪽의 동서 방향이고, 寧海界부터 아래쪽 淸河界까지 동쪽의 남북 방향에 해당된다. 眞寶界로부터 왼쪽의 外南面 부근까지의 경계는 서북-동남 방향으로 되어 있고, 거기부터 淸河界까지 다시 남쪽의 동서 방향이 된다. 이렇게 방향이 일정하게 정해지지 않은 이유는 첫째,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 위에 그렸기 때문이다. 둘째, 읍치를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렸기 때문이다. (이기봉)

  • 영산현(靈山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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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영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지도의 명칭이 靈山縣이라고 되어 있어야 하지만 靈山界라고 되어 있어 꼼꼼하게 제작된 지도가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본 지도에 수록되어 있는 지명 중 읍치의 倉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수록되지 않은 것도 여러 개 있다. 또한 지도 왼쪽에는 長嘉面이 長喜面으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하다.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고, 남북(세로)이 동서(가로)보다 길게 그려져 있는 점이 《해동지도》와 다르다. 그러나 하천의 유로는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차치점이 있다면 첫째, 아래쪽 왼쪽에서 합류되는 낙동강과 남강이 《해동지도》에는 다른 하천보다 압도적으로 굵게 표현되어 있다. 본 지도에는 왼쪽 위의 昌寧界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그려진 현재의 계성천이 《해동지도》에는 창령계 너머에서 들어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실제의 입장에서 보면 본 지도가 아니라 《해동지도》가 정확하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기본으로 필사한 것으로 생각되며, 필사 과정에서 약간의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영산현(靈山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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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영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지도의 명칭이 靈山縣이라고 되어 있어야 하지만 靈山界라고 되어 있어 꼼꼼하게 제작된 지도가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본 지도에 수록되어 있는 지명 중 읍치의 倉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수록되지 않은 것도 여러 개 있다. 또한 지도 왼쪽에는 長嘉面이 長喜面으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하다.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고, 남북(세로)이 동서(가로)보다 길게 그려져 있는 점이 《해동지도》와 다르다. 그러나 하천의 유로는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차치점이 있다면 첫째, 아래쪽 왼쪽에서 합류되는 낙동강과 남강이 《해동지도》에는 다른 하천보다 압도적으로 굵게 표현되어 있다. 본 지도에는 왼쪽 위의 昌寧界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그려진 현재의 계성천이 《해동지도》에는 창령계 너머에서 들어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실제의 입장에서 보면 본 지도가 아니라 《해동지도》가 정확하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기본으로 필사한 것으로 생각되며, 필사 과정에서 약간의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영양현(英陽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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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영양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기 때문에 하천의 유로가 일부 달라지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도 읍치의 司倉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면서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지명은 여러 개 있다. 게다가 본 지도에는 잘못 옮겨진 지명도 보이고 있다. 위쪽의 首北面은 首比面의 오류이고, 그 아래쪽에는 北面이 北西로 적혀 있다. 또한 왼쪽의 北面初度는 北面二度라고 적혀 있어야 하며, 오른쪽 맨 위에도 蔚然山이 이상한 글자로 적혀 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기본으로 하여 필사했지만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읍치 부분은 낙동강의 지류인 반변천의 최상류에 해당된다. 수비면에 있는 하천은 울진계로 흘러가는 왕피천의 최상류이다. 그러나 왕피천이 동북쪽으로 빠져나감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는 마치 서쪽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하천에 대한 이와 같은 잘못된 묘사는 다른 지도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김정호의 《동여도》에서 이 왕피천 상류가 울진계로 흘러가지 않고, 서쪽의 낙동강 수계에 해당되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왼쪽 위에 安東才山界라고 적혀 있는 이유는 이 방향에 안동의 월경지인 재산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 영양현(英陽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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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영양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기 때문에 하천의 유로가 일부 달라지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도 읍치의 司倉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면서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지명은 여러 개 있다. 게다가 본 지도에는 잘못 옮겨진 지명도 보이고 있다. 위쪽의 首北面은 首比面의 오류이고, 그 아래쪽에는 北面이 北西로 적혀 있다. 또한 왼쪽의 北面初度는 北面二度라고 적혀 있어야 하며, 오른쪽 맨 위에도 蔚然山이 이상한 글자로 적혀 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기본으로 하여 필사했지만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읍치 부분은 낙동강의 지류인 반변천의 최상류에 해당된다. 수비면에 있는 하천은 울진계로 흘러가는 왕피천의 최상류이다. 그러나 왕피천이 동북쪽으로 빠져나감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는 마치 서쪽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하천에 대한 이와 같은 잘못된 묘사는 다른 지도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김정호의 《동여도》에서 이 왕피천 상류가 울진계로 흘러가지 않고, 서쪽의 낙동강 수계에 해당되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왼쪽 위에 安東才山界라고 적혀 있는 이유는 이 방향에 안동의 월경지인 재산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 영일현(迎日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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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영일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다만 《해동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또한 남북의 길이가 《해동지도》보다 길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세로로 긴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지도를 그렸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성 안의 倉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본 지도는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지만 아래쪽이 남쪽이 아니라 동쪽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려 했기 때문이다. 영일현은 현재의 영일만을 사이에 두고 동서 양쪽이 북쪽으로 튀어 올라가 있다. 특히 본 지도의 오른쪽 아래에 해당되는 大冬背烽 부분은 현재 장기곶이라고 부르는 지역으로 가장 북쪽에 있다. 그런데 본 지도에는 영일만이 직선으로 그려져 있다. 또한 고을의 서쪽에 있는 북쪽 끝이 왼쪽 위에 표시된 반면에 동쪽에 있는 북쪽 끝은 오른쪽 아래에 그려져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고을 북쪽의 동서 폭이 남쪽의 동서 폭보다 훨씬 긴 것을 일정한 크기의 사각형에 표현하려 했기 때문이다. 즉, 동서가 긴 북쪽을 왼쪽 위부터 오른쪽 아래까지 그려 실제 길이를 반영한 것이다. 반면에 동서의 폭이 좁은 남쪽 부분은 왼쪽의 雲梯山에서 長鬐界까지 아주 짧게 표현하였다. (이기봉)

  • 영일현(迎日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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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영일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다만 《해동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또한 남북의 길이가 《해동지도》보다 길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세로로 긴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지도를 그렸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성 안의 倉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본 지도는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지만 아래쪽이 남쪽이 아니라 동쪽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려 했기 때문이다. 영일현은 현재의 영일만을 사이에 두고 동서 양쪽이 북쪽으로 튀어 올라가 있다. 특히 본 지도의 오른쪽 아래에 해당되는 大冬背烽 부분은 현재 장기곶이라고 부르는 지역으로 가장 북쪽에 있다. 그런데 본 지도에는 영일만이 직선으로 그려져 있다. 또한 고을의 서쪽에 있는 북쪽 끝이 왼쪽 위에 표시된 반면에 동쪽에 있는 북쪽 끝은 오른쪽 아래에 그려져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고을 북쪽의 동서 폭이 남쪽의 동서 폭보다 훨씬 긴 것을 일정한 크기의 사각형에 표현하려 했기 때문이다. 즉, 동서가 긴 북쪽을 왼쪽 위부터 오른쪽 아래까지 그려 실제 길이를 반영한 것이다. 반면에 동서의 폭이 좁은 남쪽 부분은 왼쪽의 雲梯山에서 長鬐界까지 아주 짧게 표현하였다. (이기봉)

  • 영천군(榮川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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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榮川郡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읍치에 있는 同樂堂 등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하천의 유로 역시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여 두 지도가 필사 관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하천의 유로에서 2개 정도의 오류가 나타나고 있다. 왼쪽 豊基界 위쪽의 하천 부분이 본 지도에는 順興界 부근이 마치 발원지인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해동지도》에는 順興界 방면에서 흘러 들어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하천은 현재 순흥 방면에서 흘러오는 죽계천으로 《해동지도》가 사실에 부합된다. 오른쪽 위의 北面은 순흥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이다. 따라서 이 방면에서 흘러오는 내성천은 영천군의 땅에서 발원하지만 순흥 땅을 거쳐야 다시 영천군으로 들어온다. 《해동지도》에는 북면 아래쪽에 順興界를 적어 넣어 이런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지만 본 지도에서는 생략되었다. 사각형이나 원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과 원형이 혼합된 것처럼 그림에 따라 몇몇 부분에서 왜곡 현상이 발생하였다. 대표적인 것으로 가장 오른쪽에서 발원하여 川上面에서 내성천과 합류하는 현재의 용각천 유로이다. 이 하천은 실제로는 거의 西流하여 내성천에 합류하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또한 읍치가 확대되어 다른 지역은 상대적으로 작게 표현되었다. 《해동지도》에는 그냥 봉우리 모양으로 그려진 것이 본 지도에는 절벽 모양으로 바뀌어 표현된 곳도 있다. 이런 곳으로는 읍치의 東龜臺 부분과 왼쪽 위의 順興界 지역이다. 東龜臺 부분은 촛대 같은 지형을 의미하는 ‘臺’라는 글자를 통해 표현 방식을 바꾼 것으로 생각되는데, 順興界 방면의 표현이 바뀐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이기봉)

  • 영천군(榮川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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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榮川郡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읍치에 있는 同樂堂 등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하천의 유로 역시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여 두 지도가 필사 관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하천의 유로에서 2개 정도의 오류가 나타나고 있다. 왼쪽 豊基界 위쪽의 하천 부분이 본 지도에는 順興界 부근이 마치 발원지인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해동지도》에는 順興界 방면에서 흘러 들어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하천은 현재 순흥 방면에서 흘러오는 죽계천으로 《해동지도》가 사실에 부합된다. 오른쪽 위의 北面은 순흥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이다. 따라서 이 방면에서 흘러오는 내성천은 영천군의 땅에서 발원하지만 순흥 땅을 거쳐야 다시 영천군으로 들어온다. 《해동지도》에는 북면 아래쪽에 順興界를 적어 넣어 이런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지만 본 지도에서는 생략되었다. 사각형이나 원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과 원형이 혼합된 것처럼 그림에 따라 몇몇 부분에서 왜곡 현상이 발생하였다. 대표적인 것으로 가장 오른쪽에서 발원하여 川上面에서 내성천과 합류하는 현재의 용각천 유로이다. 이 하천은 실제로는 거의 西流하여 내성천에 합류하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또한 읍치가 확대되어 다른 지역은 상대적으로 작게 표현되었다. 《해동지도》에는 그냥 봉우리 모양으로 그려진 것이 본 지도에는 절벽 모양으로 바뀌어 표현된 곳도 있다. 이런 곳으로는 읍치의 東龜臺 부분과 왼쪽 위의 順興界 지역이다. 東龜臺 부분은 촛대 같은 지형을 의미하는 ‘臺’라는 글자를 통해 표현 방식을 바꾼 것으로 생각되는데, 順興界 방면의 표현이 바뀐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이기봉)

  • 영천군(永川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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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永川郡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읍치 내에 있는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표시된 지명은 《해동지도》에 거의 나온다. 또한 하천의 유로 역시 《해동지도》와 거의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첫째, 읍치가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다. 둘째,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된 面 중 읍성 내에 있었던 內西面이 생략되어 있다. 셋째, 읍치 왼쪽에 北川이라 적혀 있는 현재의 신령천이 《해동지도》에는 북쪽에서 흘러 들어오는 것처럼 표현되었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영천군 내에 발원지가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는 신령천 끝 부분에 新寧界가 적혀 있는데, 본 지도에서는 생략되어 있어 혼란을 더욱 크게 하고 있다. 오른쪽의 금호강 최상류에 있는 立岩書院 부분은 경주의 죽장면에 있는 월경지이지만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그렸다. 이 점은 《해동지도》도 마찬가지이다. 전체적으로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모양으로 그리면서 많은 왜곡이 나타났다. 가장 심한 곳은 八公山으로부터 흘러오는 현재의 청통천 유역이다. 청통천은 실제로는 西流하다가 남류하여 금호강에 합류하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남류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 지역은 원래 서쪽으로 불쑥 튀어나간 부분이지만 사각형의 모양에 맞추기 위해 그리다 보니까 직선으로 표현된 것이다. 읍치 왼쪽의 신령천이 오른쪽의 금호강 본류에 비해 영천군을 흐르는 구간이 상당히 짧음에도 불구하고 비슷하게 그려진 것 역시 사각형의 모양에 맞추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기봉)

  • 영천군(永川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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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永川郡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읍치 내에 있는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표시된 지명은 《해동지도》에 거의 나온다. 또한 하천의 유로 역시 《해동지도》와 거의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첫째, 읍치가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다. 둘째,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된 面 중 읍성 내에 있었던 內西面이 생략되어 있다. 셋째, 읍치 왼쪽에 北川이라 적혀 있는 현재의 신령천이 《해동지도》에는 북쪽에서 흘러 들어오는 것처럼 표현되었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영천군 내에 발원지가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는 신령천 끝 부분에 新寧界가 적혀 있는데, 본 지도에서는 생략되어 있어 혼란을 더욱 크게 하고 있다. 오른쪽의 금호강 최상류에 있는 立岩書院 부분은 경주의 죽장면에 있는 월경지이지만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그렸다. 이 점은 《해동지도》도 마찬가지이다. 전체적으로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모양으로 그리면서 많은 왜곡이 나타났다. 가장 심한 곳은 八公山으로부터 흘러오는 현재의 청통천 유역이다. 청통천은 실제로는 西流하다가 남류하여 금호강에 합류하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남류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 지역은 원래 서쪽으로 불쑥 튀어나간 부분이지만 사각형의 모양에 맞추기 위해 그리다 보니까 직선으로 표현된 것이다. 읍치 왼쪽의 신령천이 오른쪽의 금호강 본류에 비해 영천군을 흐르는 구간이 상당히 짧음에도 불구하고 비슷하게 그려진 것 역시 사각형의 모양에 맞추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기봉)

  • 영해부(寧海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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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영해부 지도와 비슷하다. 그러나 몇 가지 측면에서 다른 점이 있다. 가장 큰 차이는 軍器 등의 정보가 추가된 邑城이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크게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다른 부분도 변화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읍성과 동해 사이가 상대적으로 좁아져 산줄기의 표현이 단순해졌다. 읍성 서쪽 지역 역시 상대적으로 작아졌기 때문에 지명의 위치, 하천의 유로, 산줄기의 표현이 약간씩 달라졌다. 예를 들어 《해동지도》에 비해 위쪽의 烏於面 지역이 상대적으로 작아졌으며, 반대로 石保面 지역은 크게 그려졌다. 석보면은 《해동지도》에 서남쪽 구석에 있었지만 본 지도에는 정 서쪽에 있는 것으로 바뀌어 있다. 이에 따라 大泣嶺, 小泣嶺의 위치도 《해동지도》에 비해 위쪽에 표시되어 있다. 석보면 지역은 실제로는 낙동강의 지류인 반변천 상류의 일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서쪽으로 튀어나가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어 지도를 그리는 과정에서 실제의 모습이 왜곡되어 나타난 것이다. 읍성 이외의 지역에 표시된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오는 것이다. 다만 지도 왼쪽에 표시된 寧陽驛은 《해동지도》에 寧海驛이라 적혀 있는데, 본 지도의 것이 올바르다. 기타 《해동지도》에는 없었거나 다른 산과 비슷하게 그려졌던 아래쪽의 丑山과 위쪽의 여러 산이 절벽의 산지 모양으로 그려져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이기봉)

  • 영해부(寧海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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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영해부 지도와 비슷하다. 그러나 몇 가지 측면에서 다른 점이 있다. 가장 큰 차이는 軍器 등의 정보가 추가된 邑城이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크게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다른 부분도 변화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읍성과 동해 사이가 상대적으로 좁아져 산줄기의 표현이 단순해졌다. 읍성 서쪽 지역 역시 상대적으로 작아졌기 때문에 지명의 위치, 하천의 유로, 산줄기의 표현이 약간씩 달라졌다. 예를 들어 《해동지도》에 비해 위쪽의 烏於面 지역이 상대적으로 작아졌으며, 반대로 石保面 지역은 크게 그려졌다. 석보면은 《해동지도》에 서남쪽 구석에 있었지만 본 지도에는 정 서쪽에 있는 것으로 바뀌어 있다. 이에 따라 大泣嶺, 小泣嶺의 위치도 《해동지도》에 비해 위쪽에 표시되어 있다. 석보면 지역은 실제로는 낙동강의 지류인 반변천 상류의 일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서쪽으로 튀어나가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어 지도를 그리는 과정에서 실제의 모습이 왜곡되어 나타난 것이다. 읍성 이외의 지역에 표시된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오는 것이다. 다만 지도 왼쪽에 표시된 寧陽驛은 《해동지도》에 寧海驛이라 적혀 있는데, 본 지도의 것이 올바르다. 기타 《해동지도》에는 없었거나 다른 산과 비슷하게 그려졌던 아래쪽의 丑山과 위쪽의 여러 산이 절벽의 산지 모양으로 그려져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이기봉)

  • 예안현(禮安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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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예안현 지도와 비슷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읍치의 倉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더 나아가 본 지도는 지명의 표기에서 미완성인 듯한 느낌이 드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오른쪽에 지명이 적혀 있지 않으면서 집의 모양은 그려져 있는 경우가 여러 개 있다. 《해동지도》에는 이 부분에 院, 書院, 寺 등의 명칭이 적혀 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되며, 필사 과정에서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 있다고 생각된다. 오른쪽 위에서 흘러와 아래쪽 安東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 본류이다. 왼쪽 위의 하천은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 상류의 일보이다. 예안현은 낙동강을 기준으로 동쪽과 서쪽의 면적이 비슷하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동쪽이 훨씬 작게 그려져 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낙동강 서쪽에 있었던 읍치와 도산서원을 강조해서 크게 그렸기 때문이다. 또한 서쪽보다 동쪽의 산지가 높고 사람이 덜 살았기 때문으로도 볼 수 있다. 지도에도 나타나 있듯이 낙동강 동쪽에는 2개의 면이 있었던 반면에 서쪽에는 5개의 면이 있었다. 이럴 경우 인구가 조밀한 지역을 상대적으로 크게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해동지도》에 비해 산줄기의 표현이 조금 달라졌다. 특히 오른쪽 위의 淸凉山을 마치 절벽이 이어진 것처럼 그렸다. 이것은 지리지에 기록된 지형의 모습을 지도에 형상화시켜 표현하려 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예안현(禮安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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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예안현 지도와 비슷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읍치의 倉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더 나아가 본 지도는 지명의 표기에서 미완성인 듯한 느낌이 드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오른쪽에 지명이 적혀 있지 않으면서 집의 모양은 그려져 있는 경우가 여러 개 있다. 《해동지도》에는 이 부분에 院, 書院, 寺 등의 명칭이 적혀 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되며, 필사 과정에서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 있다고 생각된다. 오른쪽 위에서 흘러와 아래쪽 安東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 본류이다. 왼쪽 위의 하천은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 상류의 일보이다. 예안현은 낙동강을 기준으로 동쪽과 서쪽의 면적이 비슷하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동쪽이 훨씬 작게 그려져 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낙동강 서쪽에 있었던 읍치와 도산서원을 강조해서 크게 그렸기 때문이다. 또한 서쪽보다 동쪽의 산지가 높고 사람이 덜 살았기 때문으로도 볼 수 있다. 지도에도 나타나 있듯이 낙동강 동쪽에는 2개의 면이 있었던 반면에 서쪽에는 5개의 면이 있었다. 이럴 경우 인구가 조밀한 지역을 상대적으로 크게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해동지도》에 비해 산줄기의 표현이 조금 달라졌다. 특히 오른쪽 위의 淸凉山을 마치 절벽이 이어진 것처럼 그렸다. 이것은 지리지에 기록된 지형의 모습을 지도에 형상화시켜 표현하려 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예천군(醴泉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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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예천현 지도와 비슷하다. 醴泉은 여러 기록을 검토해 봐도 조선 초기 이후 縣이었던 적이 없기 때문에 《해동지도》가 잘못 적은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에 나와 있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또한 하천의 유로 역시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기 때문에 두 지도는 서로 필사 관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하천의 유로 표시에서 《해동지도》와 다른 부분이 2개 발견된다. 왼쪽 위의 豊基界와 가운데의 夢吟寺 부분의 하천 끝이 《해동지도》에는 다른 고을에서 흘러 들어오는 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본 지도에는 이 부분이 마치 발원지인 것처럼 묘사되어 있어 필사 시에 자의로 수정한 것이 아닌가 한다. 실제와 비교해 보면 《해동지도》가 올바르기 때문에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가장 아래쪽의 하천은 현재의 낙동강 본류로서 실제로는 오른쪽의 安東界로부터 흘러온다. 본 지도에는 낙동강 본류 역시 본 고을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는데, 《해동지도》에도 약간 애매하게 표시되어 있다.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첫째, 읍치를 상대적으로 더 크게 그렸고 둘째,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정확하게 맞추어 표현하였다. 이로 인해 지명의 위치, 하천의 유로, 산줄기의 흐름이 바뀐 곳이 여러 곳 있다. 예를 들어 왼쪽 아래에 적힌 沙川은 그 위의 하천에 적혀 있어야 한다. 특히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렸기 때문에 여러 곳에서 왜곡이 발생하였다. 왼쪽 위의 하천은 현재 금천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이 지역은 실질적으로는 서북쪽으로 튀어나가 있다. 《해동지도》에는 실제와 거의 같지는 않아도 이런 사실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는 편이다. 가장 아래쪽에 縣자가 들어간 面의 지역은 龍宮의 경계를 넘어가 현재의 의성군 다인면 지역에 있었던 월경지이다. 이 지역 역시 남쪽으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는 과정에서 본 지도처럼 그려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기타 읍치를 감아 돌아나가는 한천, 그 아래의 내성천은 본 고을에서 만난다. 그러나 낙동강과 합류되는 지점은 용궁현 지역임에도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이기봉)

  • 예천군(醴泉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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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예천현 지도와 비슷하다. 醴泉은 여러 기록을 검토해 봐도 조선 초기 이후 縣이었던 적이 없기 때문에 《해동지도》가 잘못 적은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에 나와 있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또한 하천의 유로 역시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기 때문에 두 지도는 서로 필사 관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하천의 유로 표시에서 《해동지도》와 다른 부분이 2개 발견된다. 왼쪽 위의 豊基界와 가운데의 夢吟寺 부분의 하천 끝이 《해동지도》에는 다른 고을에서 흘러 들어오는 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본 지도에는 이 부분이 마치 발원지인 것처럼 묘사되어 있어 필사 시에 자의로 수정한 것이 아닌가 한다. 실제와 비교해 보면 《해동지도》가 올바르기 때문에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가장 아래쪽의 하천은 현재의 낙동강 본류로서 실제로는 오른쪽의 安東界로부터 흘러온다. 본 지도에는 낙동강 본류 역시 본 고을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는데, 《해동지도》에도 약간 애매하게 표시되어 있다.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첫째, 읍치를 상대적으로 더 크게 그렸고 둘째,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정확하게 맞추어 표현하였다. 이로 인해 지명의 위치, 하천의 유로, 산줄기의 흐름이 바뀐 곳이 여러 곳 있다. 예를 들어 왼쪽 아래에 적힌 沙川은 그 위의 하천에 적혀 있어야 한다. 특히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렸기 때문에 여러 곳에서 왜곡이 발생하였다. 왼쪽 위의 하천은 현재 금천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이 지역은 실질적으로는 서북쪽으로 튀어나가 있다. 《해동지도》에는 실제와 거의 같지는 않아도 이런 사실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는 편이다. 가장 아래쪽에 縣자가 들어간 面의 지역은 龍宮의 경계를 넘어가 현재의 의성군 다인면 지역에 있었던 월경지이다. 이 지역 역시 남쪽으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는 과정에서 본 지도처럼 그려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기타 읍치를 감아 돌아나가는 한천, 그 아래의 내성천은 본 고을에서 만난다. 그러나 낙동강과 합류되는 지점은 용궁현 지역임에도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이기봉)

  • 용궁현(龍宮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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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용궁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고, 세로(남북)가 더 길게 되어 있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치에 있는 軍器를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그러나 읍치 아래쪽의 龍飛山은 《해동지도》에 飛龍山으로, 그 아래쪽의 引火山은 火引山으로 나온다. 이 중 전자는 여러 지지를 참고해 보면 본 지도의 것이 올바르기 때문에 필사 시에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교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반면에 본 지도에 3개나 나오는 醴川界는 醴泉界의 오류이며, 《해동지도》에는 올바르게 기록되어 있다. 기타 《해동지도》에는 津 뒤에 船자가 붙어 있어 津船이 배치된 나루임을 알 수 있도록 하였으나 본 지도에서는 船자를 생략하였다. 하천의 유로나 산줄기의 모습은 《해동지도》와 거의 같게 되어 있다. 가장 아래쪽의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 본류이고, 그 위쪽이 내성천이다. 왼쪽의 하천은 금천으로서 위쪽의 尙州界에서 흘러오는데, 본 지도의 표현은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하천의 유로 중 읍치 아래쪽이 상대적으로 크게 확대된 것을 제외하면 실제와 거의 유사하게 되어 있다. 아래쪽의 申上面은 현재의 의성군 안사면 북쪽 부분에 있었고, 南面은 예천군 풍양면 북쪽 부분에 있었다. 아래쪽에 醴川界(즉 醴泉界)가 적혀 있는 것은 이곳에 예천의 월경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 용궁현(龍宮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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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용궁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고, 세로(남북)가 더 길게 되어 있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치에 있는 軍器를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그러나 읍치 아래쪽의 龍飛山은 《해동지도》에 飛龍山으로, 그 아래쪽의 引火山은 火引山으로 나온다. 이 중 전자는 여러 지지를 참고해 보면 본 지도의 것이 올바르기 때문에 필사 시에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교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반면에 본 지도에 3개나 나오는 醴川界는 醴泉界의 오류이며, 《해동지도》에는 올바르게 기록되어 있다. 기타 《해동지도》에는 津 뒤에 船자가 붙어 있어 津船이 배치된 나루임을 알 수 있도록 하였으나 본 지도에서는 船자를 생략하였다. 하천의 유로나 산줄기의 모습은 《해동지도》와 거의 같게 되어 있다. 가장 아래쪽의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 본류이고, 그 위쪽이 내성천이다. 왼쪽의 하천은 금천으로서 위쪽의 尙州界에서 흘러오는데, 본 지도의 표현은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하천의 유로 중 읍치 아래쪽이 상대적으로 크게 확대된 것을 제외하면 실제와 거의 유사하게 되어 있다. 아래쪽의 申上面은 현재의 의성군 안사면 북쪽 부분에 있었고, 南面은 예천군 풍양면 북쪽 부분에 있었다. 아래쪽에 醴川界(즉 醴泉界)가 적혀 있는 것은 이곳에 예천의 월경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 울산부(蔚山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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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울산부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와 본 지도의 하천 유로는 동일하게 되어 있다. 다만 읍치 아래쪽을 흐르는 현재의 태화강 끝을 얇게 하여 마치 해당 지역이 발원지인 것 같은 오해를 할 수 있게 그렸다. 《해동지도》에는 이 부분이 발원지가 아님을 분명하게 표시하였다. 읍치를 제외하면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글씨로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사용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읍치 오른쪽의 柳浦面에 노란색 사각형을 그리지 않은 실수도 보이고 있다. 읍치는 《해동지도》에 없는 지명이 많이 추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다. 이로 인해 읍치로부터 서쪽과 북쪽 경계까지의 거리가 상대적으로 짧게 그려졌다. 이것이 읍치 북쪽과 왼쪽 하천의 유로 및 지명 위치가 《해동지도》와 달라지는 원인이 된 것 같다. 본 지도는 대략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러나 방향이 전 지역에 동일하게 적용된 것은 아니다. 해안선은 실제 북쪽에서 남쪽으로 향하게 되어 있지만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북-남으로 오다가 태화강 하구에서 동-서 방향으로 바뀐 듯 오해를 할 수 있다. 태화강 하구에서 해안선이 잠시 동-서 방향을 취하는 것은 맞지만 바로 북-남으로 바뀐다. 태화강 역시 서쪽의 언양 방향에서 들어와 거의 동류하다가 하구 부분에서 약간만 남류한다.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남류하다가 동류하며, 다시 남류하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가장 왼쪽에 있는 현재의 회야강은 熊村面에서 동북으로 흐르다가 靑良面부터 동남으로 빠져나간다. 역시 본 지도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방향과 거리가 실제와 다르게 그려지는 것이 일반적이며, 본 지도는 그 중에서도 가장 심한 편에 해당된다. (이기봉)

  • 울산부(蔚山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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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울산부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와 본 지도의 하천 유로는 동일하게 되어 있다. 다만 읍치 아래쪽을 흐르는 현재의 태화강 끝을 얇게 하여 마치 해당 지역이 발원지인 것 같은 오해를 할 수 있게 그렸다. 《해동지도》에는 이 부분이 발원지가 아님을 분명하게 표시하였다. 읍치를 제외하면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글씨로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사용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읍치 오른쪽의 柳浦面에 노란색 사각형을 그리지 않은 실수도 보이고 있다. 읍치는 《해동지도》에 없는 지명이 많이 추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다. 이로 인해 읍치로부터 서쪽과 북쪽 경계까지의 거리가 상대적으로 짧게 그려졌다. 이것이 읍치 북쪽과 왼쪽 하천의 유로 및 지명 위치가 《해동지도》와 달라지는 원인이 된 것 같다. 본 지도는 대략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러나 방향이 전 지역에 동일하게 적용된 것은 아니다. 해안선은 실제 북쪽에서 남쪽으로 향하게 되어 있지만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북-남으로 오다가 태화강 하구에서 동-서 방향으로 바뀐 듯 오해를 할 수 있다. 태화강 하구에서 해안선이 잠시 동-서 방향을 취하는 것은 맞지만 바로 북-남으로 바뀐다. 태화강 역시 서쪽의 언양 방향에서 들어와 거의 동류하다가 하구 부분에서 약간만 남류한다.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남류하다가 동류하며, 다시 남류하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가장 왼쪽에 있는 현재의 회야강은 熊村面에서 동북으로 흐르다가 靑良面부터 동남으로 빠져나간다. 역시 본 지도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방향과 거리가 실제와 다르게 그려지는 것이 일반적이며, 본 지도는 그 중에서도 가장 심한 편에 해당된다. (이기봉)

  • 웅천현(熊川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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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웅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는 가로(동서)가 길게 그려져 있는 반면에 본 지도는 세로(남북)가 길게 그려져 있다. 웅천현의 실제 모습은 동서가 남북보다 훨씬 길기 때문에 《해동지도》가 사실에 가깝다. 남북이 길어지고, 읍성을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지만 하천의 유로는 거의 변화가 없다. 그러나 해안선과 섬은 상대적으로 단순하게 표현되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본 지도가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은 종이 위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크기가 작기 때문에 《해동지도》에 자세하게 묘사된 해안선과 섬을 그대로 옮기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해동지도》에 어느 정도 위치가 고려되어 표시된 섬이 본 지도에서는 대략적인 위치만 알 수 있게 하였고, 섬의 명칭이 생략된 것도 여러 개 있다. 지명의 표시 역시 《해동지도》보다 본 지도가 훨씬 소략하게 처리되었다. 面의 경우 《해동지도》에 없던 邑內面이 추가되었으나 가장 서쪽에 있었던 下西面이 생략되어 있다. 또한 전통시대의 지도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군사 정보 역시 오른쪽의 淸川鎭 아래쪽에 安骨鎭이, 지도의 왼쪽에 豊德鎭이 생략되었다. 오른쪽 아래의 天城保는 天城堡의 誤記이다. 이런 사실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기본으로 하면서 읍치는 다른 자료를 일부 참고하여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가 꼼꼼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여러 곳에서 생략이나 오기 등의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기봉)

  • 웅천현(熊川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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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웅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는 가로(동서)가 길게 그려져 있는 반면에 본 지도는 세로(남북)가 길게 그려져 있다. 웅천현의 실제 모습은 동서가 남북보다 훨씬 길기 때문에 《해동지도》가 사실에 가깝다. 남북이 길어지고, 읍성을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지만 하천의 유로는 거의 변화가 없다. 그러나 해안선과 섬은 상대적으로 단순하게 표현되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본 지도가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은 종이 위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크기가 작기 때문에 《해동지도》에 자세하게 묘사된 해안선과 섬을 그대로 옮기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해동지도》에 어느 정도 위치가 고려되어 표시된 섬이 본 지도에서는 대략적인 위치만 알 수 있게 하였고, 섬의 명칭이 생략된 것도 여러 개 있다. 지명의 표시 역시 《해동지도》보다 본 지도가 훨씬 소략하게 처리되었다. 面의 경우 《해동지도》에 없던 邑內面이 추가되었으나 가장 서쪽에 있었던 下西面이 생략되어 있다. 또한 전통시대의 지도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군사 정보 역시 오른쪽의 淸川鎭 아래쪽에 安骨鎭이, 지도의 왼쪽에 豊德鎭이 생략되었다. 오른쪽 아래의 天城保는 天城堡의 誤記이다. 이런 사실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기본으로 하면서 읍치는 다른 자료를 일부 참고하여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가 꼼꼼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여러 곳에서 생략이나 오기 등의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기봉)

  • 의령현(宜寧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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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의령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상당히 급조한 느낌을 주는 지도이다. 본 지도에서는 《해동지도》에서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을 그려 넣었다. 그러나 읍치 오른쪽의 豊德面에 적황색 사각형을, 왼쪽의 大谷面과 上井面에는 색이 없는 사각형을 그려 넣었다. 왼쪽 위의 七谷面은 글자의 순서도 바뀌어 있고, 노란색 사각형도 아니다. 게다가 오른쪽 부분에 禾谷面과 田太面이 생략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면의 명칭이 주기에는 나오는 것을 통해 볼 때 빠르게 필사하는 과정에서 필사 시에 빠뜨린 것으로 생각된다. 읍치에 있는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하천의 흐름도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 위에서 낙동강이 내려오며, 왼쪽 아래에서 흘러와 낙동강에 합류하는 하천이 현재의 남강이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다보니까 실제와 다른 왜곡이 발생하였다. 왼쪽 위의 毛兒面은 서쪽으로 튀어져 나가 있는 부분이다. 이를 사각형에 맞추려다 보니까 이곳에서 흘러오는 현재의 남산천이 실제로는 거의 東流하는데, 본 지도에는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그려지게 되었다. 德谷面 부분도 실제로는 남쪽으로 약간 튀어나가 있다. 이것을 사각형에 맞추어 그리다보니까 이곳에서 흐르는 하천이 北流하는데도 마치 西流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의령현(宜寧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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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의령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상당히 급조한 느낌을 주는 지도이다. 본 지도에서는 《해동지도》에서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을 그려 넣었다. 그러나 읍치 오른쪽의 豊德面에 적황색 사각형을, 왼쪽의 大谷面과 上井面에는 색이 없는 사각형을 그려 넣었다. 왼쪽 위의 七谷面은 글자의 순서도 바뀌어 있고, 노란색 사각형도 아니다. 게다가 오른쪽 부분에 禾谷面과 田太面이 생략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면의 명칭이 주기에는 나오는 것을 통해 볼 때 빠르게 필사하는 과정에서 필사 시에 빠뜨린 것으로 생각된다. 읍치에 있는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하천의 흐름도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 위에서 낙동강이 내려오며, 왼쪽 아래에서 흘러와 낙동강에 합류하는 하천이 현재의 남강이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다보니까 실제와 다른 왜곡이 발생하였다. 왼쪽 위의 毛兒面은 서쪽으로 튀어져 나가 있는 부분이다. 이를 사각형에 맞추려다 보니까 이곳에서 흘러오는 현재의 남산천이 실제로는 거의 東流하는데, 본 지도에는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그려지게 되었다. 德谷面 부분도 실제로는 남쪽으로 약간 튀어나가 있다. 이것을 사각형에 맞추어 그리다보니까 이곳에서 흐르는 하천이 北流하는데도 마치 西流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의성현(義城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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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의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는 첫째,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둘째, 세로로 긴 사각형의 모양이 더 정확하게 맞도록 그렸다. 이 과정에서 산줄기나 하천의 흐름이 약간씩 달라졌다. 예를 들어 《해동지도》에 읍치 남쪽 부분에 작게 그려져 있던 하천이 본 지도에서는 사각형 모양에 맞추기 위해 왼쪽 아래로 옮겨져 있다. 이 지역은 현재의 금성면 도경리 지역에 있는 위천 지류의 최상류로서 《해동지도》가 본 지도보다 사실에 가깝게 그렸다. 이런 변화는 있지만 하천의 흐름은 《해동지도》와 대체적으로 동일하게 되어 있다. 다만 왼쪽 위의 하천 끝이 《해동지도》에는 比安界로부터 들어오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비안과의 경계선이 발원지인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 지역은 현재의 안평면 금곡리, 하령리 일대로서 《해동지도》의 표현이 사실에 가깝다. 읍치에 있는 건물 몇 개를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왼쪽 위의 安平倉과 아래쪽의 靑路驛은 《해동지도》에 平安倉과 靑雲驛으로 되어 있던 것을 교정한 것이다. 다른 자료에 입각해 보면 본 지도가 올바르기 때문에 본 지도의 필사 시에 다른 자료를 통해 수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읍치 오른쪽의 忠烈祠에는 《해동지도》의 내용을 잘못 옮긴 것이 분명한 내용도 있다. 본 지도에는 ‘金洪術代歷祖’와 비슷하게 적혀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金洪術代麗祖死’라고 되어 있다. 다른 자료와 비교해 보면 이 부분의 내용은 ‘김홍술, 고려의 태조를 대신하여 죽었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해동지도》가 올바르며, 본 지도의 필사 시 이 문장의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 왼쪽에는 驛에 표시하는 황색 사각형만 그려져 있고, 글씨는 적혀 있지 않은 것이 보인다. 《해동지도》에는 이곳에 朝陽舘이라고 적혀 있는데, 東軒 건물의 명칭이었다. 그런데 驛을 舘이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많다. 본 지도의 필사자도 조양관을 역으로 생각하여 황색 사각형을 그렸다가 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명칭은 적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한다. (이기봉)

  • 의성현(義城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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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의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는 첫째,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둘째, 세로로 긴 사각형의 모양이 더 정확하게 맞도록 그렸다. 이 과정에서 산줄기나 하천의 흐름이 약간씩 달라졌다. 예를 들어 《해동지도》에 읍치 남쪽 부분에 작게 그려져 있던 하천이 본 지도에서는 사각형 모양에 맞추기 위해 왼쪽 아래로 옮겨져 있다. 이 지역은 현재의 금성면 도경리 지역에 있는 위천 지류의 최상류로서 《해동지도》가 본 지도보다 사실에 가깝게 그렸다. 이런 변화는 있지만 하천의 흐름은 《해동지도》와 대체적으로 동일하게 되어 있다. 다만 왼쪽 위의 하천 끝이 《해동지도》에는 比安界로부터 들어오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비안과의 경계선이 발원지인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 지역은 현재의 안평면 금곡리, 하령리 일대로서 《해동지도》의 표현이 사실에 가깝다. 읍치에 있는 건물 몇 개를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왼쪽 위의 安平倉과 아래쪽의 靑路驛은 《해동지도》에 平安倉과 靑雲驛으로 되어 있던 것을 교정한 것이다. 다른 자료에 입각해 보면 본 지도가 올바르기 때문에 본 지도의 필사 시에 다른 자료를 통해 수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읍치 오른쪽의 忠烈祠에는 《해동지도》의 내용을 잘못 옮긴 것이 분명한 내용도 있다. 본 지도에는 ‘金洪術代歷祖’와 비슷하게 적혀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金洪術代麗祖死’라고 되어 있다. 다른 자료와 비교해 보면 이 부분의 내용은 ‘김홍술, 고려의 태조를 대신하여 죽었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해동지도》가 올바르며, 본 지도의 필사 시 이 문장의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 왼쪽에는 驛에 표시하는 황색 사각형만 그려져 있고, 글씨는 적혀 있지 않은 것이 보인다. 《해동지도》에는 이곳에 朝陽舘이라고 적혀 있는데, 東軒 건물의 명칭이었다. 그런데 驛을 舘이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많다. 본 지도의 필사자도 조양관을 역으로 생각하여 황색 사각형을 그렸다가 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명칭은 적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한다. (이기봉)

  • 의흥현(義興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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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의흥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가 동쪽을 위로 향해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리고 《해동지도》가 동서를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남북을 길게 그렸다. 이런 과정에서 《해동지도》와 본 지도가 약간 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하천의 유로가 약간 길어진 부분을 제외하면 거의 동일하다. 또한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읍치의 司倉과 選勝亭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없는 것도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기본적으로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며, 읍치 부분에서 다른 자료를 약간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다보니까 방향이나 거리 등에서 왜곡 현상이 발생하였다. 고을의 동쪽에서 발원한 현재의 위천은 읍치 남쪽을 흘러 실제로는 서쪽의 軍威界로 빠져나가지만 본 지도에서는 남쪽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 점은 《해동지도》에서도 동일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데, 읍치 서쪽에 있어야 할 牛保里面이 마치 남쪽에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는 것도 마찬가지의 맥략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아래쪽의 縣內面과 缶자가 붙은 면은 현재의 군위군 부계면과 효령면의 일부에 해당된다. 이곳에서 흘러오는 물은 실제로는 軍威의 땅을 지나 위천과 합류된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마치 군위와의 경계선에서 합류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기타 오른쪽의 小首里面에 있는 하천의 상류에는 의성의 땅이 자리잡고 있었지만 본 지도에는 표현되어 있지 않다. (이기봉)

  • 의흥현(義興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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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의흥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가 동쪽을 위로 향해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리고 《해동지도》가 동서를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남북을 길게 그렸다. 이런 과정에서 《해동지도》와 본 지도가 약간 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하천의 유로가 약간 길어진 부분을 제외하면 거의 동일하다. 또한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읍치의 司倉과 選勝亭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없는 것도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기본적으로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며, 읍치 부분에서 다른 자료를 약간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다보니까 방향이나 거리 등에서 왜곡 현상이 발생하였다. 고을의 동쪽에서 발원한 현재의 위천은 읍치 남쪽을 흘러 실제로는 서쪽의 軍威界로 빠져나가지만 본 지도에서는 남쪽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 점은 《해동지도》에서도 동일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데, 읍치 서쪽에 있어야 할 牛保里面이 마치 남쪽에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는 것도 마찬가지의 맥략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아래쪽의 縣內面과 缶자가 붙은 면은 현재의 군위군 부계면과 효령면의 일부에 해당된다. 이곳에서 흘러오는 물은 실제로는 軍威의 땅을 지나 위천과 합류된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마치 군위와의 경계선에서 합류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기타 오른쪽의 小首里面에 있는 하천의 상류에는 의성의 땅이 자리잡고 있었지만 본 지도에는 표현되어 있지 않다. (이기봉)

  • 인동부(仁同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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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인동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는 남북보다 동서가 길게 그려져 있고,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표현되었다. 또한 《해동지도》에는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으로 그렸지만 완전한 사각형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반면에 본 지도는 사각형 안에 인동부의 모습을 모두 그리려고 하였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하천의 유로 등이 거의 동일하지만 하천이나 산줄기, 지명의 위치가 여러 곳에서 바뀌었다. 예를 들어 왼쪽의 若木面은 《해동지도》에 왼쪽 아래쪽으로 치우쳐져 있지만 본 지도에는 거의 가운데에 표시되어 있다. 또한 가장 위쪽의 玉郞堤가 《해동지도》에는 읍치 바로 서쪽에 그려져 있다. 실제의 모습에 입각해 보면 《해동지도》가 사실에 가깝다. 본 지도에서 왜곡이 훨씬 심하게 발생한 이유는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억지로 맞추어 그리려 했기 때문이다. 지명의 측면에서 보면 오른쪽의 長川과 읍치의 몇몇 건물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또한 《해동지도》와 비교해 보면 잘못된 지명도 몇 군데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위쪽의 天橋場은 大橋場의, 읍치 서쪽의 東洛書院의 誤記이다. 다른 기록과 비교해 보면 전자는 《해동지도》가, 후자는 본 지도가 올바르다. 이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필사 과정에서 실수를 범함과 동시에 《해동지도》의 오류도 고치려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기봉)

  • 인동부(仁同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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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인동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는 남북보다 동서가 길게 그려져 있고,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표현되었다. 또한 《해동지도》에는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으로 그렸지만 완전한 사각형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반면에 본 지도는 사각형 안에 인동부의 모습을 모두 그리려고 하였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하천의 유로 등이 거의 동일하지만 하천이나 산줄기, 지명의 위치가 여러 곳에서 바뀌었다. 예를 들어 왼쪽의 若木面은 《해동지도》에 왼쪽 아래쪽으로 치우쳐져 있지만 본 지도에는 거의 가운데에 표시되어 있다. 또한 가장 위쪽의 玉郞堤가 《해동지도》에는 읍치 바로 서쪽에 그려져 있다. 실제의 모습에 입각해 보면 《해동지도》가 사실에 가깝다. 본 지도에서 왜곡이 훨씬 심하게 발생한 이유는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억지로 맞추어 그리려 했기 때문이다. 지명의 측면에서 보면 오른쪽의 長川과 읍치의 몇몇 건물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또한 《해동지도》와 비교해 보면 잘못된 지명도 몇 군데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위쪽의 天橋場은 大橋場의, 읍치 서쪽의 東洛書院의 誤記이다. 다른 기록과 비교해 보면 전자는 《해동지도》가, 후자는 본 지도가 올바르다. 이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필사 과정에서 실수를 범함과 동시에 《해동지도》의 오류도 고치려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기봉)

  • 자인현(慈仁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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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자인현 지도와 비슷하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본 지도가 미숙하게 필사한 듯한 측면이 몇몇 부분에서 보인다. 예를 들어 오른쪽에 명칭은 없고 건물만 표시되어 있는 것이 있다. 이 정도의 건물을 표시했다면 보통 명칭이 적혀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해동지도》와 비교해 보면 이 건물에는 盤龍寺가 적혀 있어야 한다. 읍치에도 대부분의 지도에 표시되어 있으며, 《해동지도》에도 있는 衙舍가 없다. 읍치 아래의 元堂도 《해동지도》와 비교해 보면 元堂里라고 적혀 있어야 하며, 南山과 烏見山의 위치도 바뀌어져 있다. 그러나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그대로 필사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읍치 왼쪽의 大王山와 아래쪽의 孝子徐濂旌門 앞에 있는 贈禁府都事가 《해동지도》에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해동지도》의 내용을 기반으로 일부 자료를 참고하여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面의 표시에서 《해동지도》에는 주기와 지도에 기록된 면의 명칭이 전혀 다르게 되어 있다. 이것은 《해동지도》의 지도와 주기가 다른 시기에 제작되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에서는 洞內面이 없는 것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의 지도와 동일하며, 주기에는 洞內面까지 기록하는 등 《해동지도》의 지도와 같게 되어 있다. 기타 오른쪽에 密陽界가 적혀 있는 것은 현재의 청도군 운문면 공암리 일대에 있었던 밀양의 월경지 고매부곡과 경계를 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 자인현(慈仁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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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자인현 지도와 비슷하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본 지도가 미숙하게 필사한 듯한 측면이 몇몇 부분에서 보인다. 예를 들어 오른쪽에 명칭은 없고 건물만 표시되어 있는 것이 있다. 이 정도의 건물을 표시했다면 보통 명칭이 적혀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해동지도》와 비교해 보면 이 건물에는 盤龍寺가 적혀 있어야 한다. 읍치에도 대부분의 지도에 표시되어 있으며, 《해동지도》에도 있는 衙舍가 없다. 읍치 아래의 元堂도 《해동지도》와 비교해 보면 元堂里라고 적혀 있어야 하며, 南山과 烏見山의 위치도 바뀌어져 있다. 그러나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그대로 필사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읍치 왼쪽의 大王山와 아래쪽의 孝子徐濂旌門 앞에 있는 贈禁府都事가 《해동지도》에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해동지도》의 내용을 기반으로 일부 자료를 참고하여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面의 표시에서 《해동지도》에는 주기와 지도에 기록된 면의 명칭이 전혀 다르게 되어 있다. 이것은 《해동지도》의 지도와 주기가 다른 시기에 제작되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에서는 洞內面이 없는 것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의 지도와 동일하며, 주기에는 洞內面까지 기록하는 등 《해동지도》의 지도와 같게 되어 있다. 기타 오른쪽에 密陽界가 적혀 있는 것은 현재의 청도군 운문면 공암리 일대에 있었던 밀양의 월경지 고매부곡과 경계를 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 장기현(長鬐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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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장기현 지도와 유사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성 안의 東軒과 倉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그러나 《해동지도》의 오른쪽 위에 적혀 있던 冬背串牧場이 본 지도에는 冬昔中牧場으로, 馬城門이 馬城山으로 되어 있다. 다른 자료들과 비교해보면 본 지도가 아니라 《해동지도》의 내용이 올바르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하였으며, 필사 과정에서 오류를 범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가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려는 경향이 강하다. 본 고을의 해안선이 실제로는 대략 동북에서 서남을 향하고 있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남쪽을 향하다가 서쪽으로 꺾인 것처럼 그려져 있다. 迎日의 경계선 역시 본 지도에 표현된 것보다 더 동북에서 서남 방향을 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사실에 가까운 것은 역시 본 지도가 아니라 《해동지도》이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사실을 더욱 왜곡하는 현상이 벌어졌다고 생각된다. 읍성의 모습이라는 측면에서 보아도 《해동지도》가 본 지도보다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의 표현과 달리 읍성은 동서남북이 모두 급경사의 산지 위에 축조되어 있다. (이기봉)

  • 장기현(長鬐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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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장기현 지도와 유사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성 안의 東軒과 倉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그러나 《해동지도》의 오른쪽 위에 적혀 있던 冬背串牧場이 본 지도에는 冬昔中牧場으로, 馬城門이 馬城山으로 되어 있다. 다른 자료들과 비교해보면 본 지도가 아니라 《해동지도》의 내용이 올바르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하였으며, 필사 과정에서 오류를 범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가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려는 경향이 강하다. 본 고을의 해안선이 실제로는 대략 동북에서 서남을 향하고 있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남쪽을 향하다가 서쪽으로 꺾인 것처럼 그려져 있다. 迎日의 경계선 역시 본 지도에 표현된 것보다 더 동북에서 서남 방향을 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사실에 가까운 것은 역시 본 지도가 아니라 《해동지도》이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사실을 더욱 왜곡하는 현상이 벌어졌다고 생각된다. 읍성의 모습이라는 측면에서 보아도 《해동지도》가 본 지도보다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의 표현과 달리 읍성은 동서남북이 모두 급경사의 산지 위에 축조되어 있다. (이기봉)

  • 지례현(知禮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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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지례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가 현재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려 있는 반면에 본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또한 《해동지도》가 남북을 동서보다 훨씬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남북보다 동서를 조금 길게 그렸다. 이 과정에서 하천의 유로가 약간 다르게 표현되었다. 즉, 오른쪽(북)으로 흐르는 하천보다 아래(남)로 흐르는 하천이 길게 그려졌다. 또한 비스듬하게 흐르던 하천의 유로가 보다 수직으로 흐르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치의 倉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없는 것도 있다. 또한 《해동지도》와 비교하면 다르게 적혀 있는 지명들이 여러 개 보인다. 예를 들어 왼쪽 위의 石橋는 《해동지도》에 石高山으로, 走峙는 走峙村으로 으로 나온다. 왼쪽 아래의 山衣旨峙는 山衣旨村으로, 오른쪽 위의 黃岳山來脈은 廣岳山來脈으로 적혀 있다. 이와 같은 부분들을 살펴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여러 실수를 저지른 것이 아닌가 한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몇 개의 왜곡이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왼쪽의 牛旨峙는 남쪽(왼쪽)으로 튀어나가 있는 부분이다. 이것을 사각형에 맞추는 과정에서 이 지역이 상당히 작게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는 왼쪽 위의 內甘村과 아래의 牛旨峙에서 흐르는 2개 하천의 길이가 거의 비슷함에도 본 지도에는 우지치쪽의 하천이 훨씬 짧은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지례현(知禮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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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지례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가 현재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려 있는 반면에 본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또한 《해동지도》가 남북을 동서보다 훨씬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남북보다 동서를 조금 길게 그렸다. 이 과정에서 하천의 유로가 약간 다르게 표현되었다. 즉, 오른쪽(북)으로 흐르는 하천보다 아래(남)로 흐르는 하천이 길게 그려졌다. 또한 비스듬하게 흐르던 하천의 유로가 보다 수직으로 흐르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치의 倉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없는 것도 있다. 또한 《해동지도》와 비교하면 다르게 적혀 있는 지명들이 여러 개 보인다. 예를 들어 왼쪽 위의 石橋는 《해동지도》에 石高山으로, 走峙는 走峙村으로 으로 나온다. 왼쪽 아래의 山衣旨峙는 山衣旨村으로, 오른쪽 위의 黃岳山來脈은 廣岳山來脈으로 적혀 있다. 이와 같은 부분들을 살펴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여러 실수를 저지른 것이 아닌가 한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몇 개의 왜곡이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왼쪽의 牛旨峙는 남쪽(왼쪽)으로 튀어나가 있는 부분이다. 이것을 사각형에 맞추는 과정에서 이 지역이 상당히 작게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는 왼쪽 위의 內甘村과 아래의 牛旨峙에서 흐르는 2개 하천의 길이가 거의 비슷함에도 본 지도에는 우지치쪽의 하천이 훨씬 짧은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진보현(眞寶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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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진보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지만 하천의 流路나 다른 부분의 모습은 《해동지도》의 내용과 비슷하다. 또한 읍치의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수록된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있는 지명 중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할 정도로 중요한 정보로 인식한 面 중 오른쪽 위에 北面이 생략되어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이며, 읍치 부분에서만 다른 자료를 참고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지명의 위치가 《해동지도》와 다른 부분이 여러 곳 있다. 예를 들어 오른쪽 위의 城項峙가 《해동지도》에는 도로와 함께 지금의 반변천 건너편에 적혀 있다. 그 왼쪽의 文岩 역시 《해동지도》에는 반변천 위에 文岩淵으로 표시되어 있다. 오른쪽 아래의 鬱林峙도 《해동지도》에는 上里面 바로 아래쪽에 표시되어 있다. 이러한 지명 위치의 변화는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하지 않았던 것을 알려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읍치에 있는 土城은 지명 위치가 특별히 달라졌다고 할 수는 없지만 鄕校 왼쪽의 산줄기가 《해동지도》에는 토성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진보현(眞寶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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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진보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지만 하천의 流路나 다른 부분의 모습은 《해동지도》의 내용과 비슷하다. 또한 읍치의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수록된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있는 지명 중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할 정도로 중요한 정보로 인식한 面 중 오른쪽 위에 北面이 생략되어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이며, 읍치 부분에서만 다른 자료를 참고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지명의 위치가 《해동지도》와 다른 부분이 여러 곳 있다. 예를 들어 오른쪽 위의 城項峙가 《해동지도》에는 도로와 함께 지금의 반변천 건너편에 적혀 있다. 그 왼쪽의 文岩 역시 《해동지도》에는 반변천 위에 文岩淵으로 표시되어 있다. 오른쪽 아래의 鬱林峙도 《해동지도》에는 上里面 바로 아래쪽에 표시되어 있다. 이러한 지명 위치의 변화는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하지 않았던 것을 알려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읍치에 있는 土城은 지명 위치가 특별히 달라졌다고 할 수는 없지만 鄕校 왼쪽의 산줄기가 《해동지도》에는 토성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진주목(晋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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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진주목 지도와 비슷하다. 본 지도에 수록되어 있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거의 모두 나온다. 다만 진주성 오른쪽의 召村驛은 《해동지도》에 이 역에 파견된 종6품의 지방관인 察訪이라고만 적혀 있다. 《해동지도》에 원형으로 표시된 里는 다른 고을에서는 일반적으로 面이라고 불렀다. 본 지도에는 里를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하였다. 그러나 진주성 왼쪽의 新豊里에 노란색 사각형이 없는 오류가 보인다. 아래쪽에 泗川縣이 특별히 기록되어 있는 것은 사천현을 넘어가 있는 현재의 사천시 시내 일부와 昌善島가 진주의 越境地였기 때문이다. 《해동지도》에는 창선도에 昌善島와 赤梁鎭이 적혀 있는데, 본 지도에는 노란색 사각형을 그리고 里란 글자는 생략하였다. 주기의 南面 부분에 창선리와 적량리가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즉, 본 지도에서는 기본적으로 里를 표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島와 鎭을 里로 바꾼 것이 아닌가 한다. 《해동지도》가 남북보다 동서를 약간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남북을 조금 길게 그렸다. 이로 인해 남북으로 흐르는 것처럼 표현된 하천이 상대적으로 길게 그려졌다. 또한 《해동지도》에는 진주성 북쪽에 大寺池란 명칭을 적었고, 연못처럼 표현하였다. 본 지도에는 이런 부분이 생략되어 있는데, 《해동지도》의 표현이 사실에 가깝다. 산줄기의 표현에서도 《해동지도》와 본 지도가 좀 다르게 되어 있다. 특히 북쪽에서 읍치까지 뻗은 산줄기가 서로 다르게 되어 있다. 진주목은 실제로 본 지도와 같은 사각형의 모양으로 생기지 않았다. 예를 들어 왼쪽 위의 山淸界 부근은 서북쪽으로 튀어나간 형태를 취하고 있다. 고을 전체를 산줄기에 의해 둘러싸인 형태로 그리는 것은 회화식 군현지도에서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런 과정에서 사실 왜곡이 발생하는데, 본 지도에서도 그런 왜곡 현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南江의 본류는 전라도의 운봉과 경상도의 함양에서 발원하여 산청과 단성을 거쳐 진주목의 영역으로 흘러온다. 본 지도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왼쪽 위의 山淸界는 《해동지도》에 山陰界로 나온다. 山陰縣은 1767년(영조 43)에 山淸縣으로 바뀐다. 따라서 본 지도는 1767년 이후에, 《해동지도》는 그 이전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산청이란 지명만 놓고 본다면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진주목(晋州牧)(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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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진주목 지도와 비슷하다. 본 지도에 수록되어 있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거의 모두 나온다. 다만 진주성 오른쪽의 召村驛은 《해동지도》에 이 역에 파견된 종6품의 지방관인 察訪이라고만 적혀 있다. 《해동지도》에 원형으로 표시된 里는 다른 고을에서는 일반적으로 面이라고 불렀다. 본 지도에는 里를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하였다. 그러나 진주성 왼쪽의 新豊里에 노란색 사각형이 없는 오류가 보인다. 아래쪽에 泗川縣이 특별히 기록되어 있는 것은 사천현을 넘어가 있는 현재의 사천시 시내 일부와 昌善島가 진주의 越境地였기 때문이다. 《해동지도》에는 창선도에 昌善島와 赤梁鎭이 적혀 있는데, 본 지도에는 노란색 사각형을 그리고 里란 글자는 생략하였다. 주기의 南面 부분에 창선리와 적량리가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즉, 본 지도에서는 기본적으로 里를 표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島와 鎭을 里로 바꾼 것이 아닌가 한다. 《해동지도》가 남북보다 동서를 약간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남북을 조금 길게 그렸다. 이로 인해 남북으로 흐르는 것처럼 표현된 하천이 상대적으로 길게 그려졌다. 또한 《해동지도》에는 진주성 북쪽에 大寺池란 명칭을 적었고, 연못처럼 표현하였다. 본 지도에는 이런 부분이 생략되어 있는데, 《해동지도》의 표현이 사실에 가깝다. 산줄기의 표현에서도 《해동지도》와 본 지도가 좀 다르게 되어 있다. 특히 북쪽에서 읍치까지 뻗은 산줄기가 서로 다르게 되어 있다. 진주목은 실제로 본 지도와 같은 사각형의 모양으로 생기지 않았다. 예를 들어 왼쪽 위의 山淸界 부근은 서북쪽으로 튀어나간 형태를 취하고 있다. 고을 전체를 산줄기에 의해 둘러싸인 형태로 그리는 것은 회화식 군현지도에서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런 과정에서 사실 왜곡이 발생하는데, 본 지도에서도 그런 왜곡 현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南江의 본류는 전라도의 운봉과 경상도의 함양에서 발원하여 산청과 단성을 거쳐 진주목의 영역으로 흘러온다. 본 지도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왼쪽 위의 山淸界는 《해동지도》에 山陰界로 나온다. 山陰縣은 1767년(영조 43)에 山淸縣으로 바뀐다. 따라서 본 지도는 1767년 이후에, 《해동지도》는 그 이전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산청이란 지명만 놓고 본다면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진해현(鎭海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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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진해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그러나 첫째,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더 크게 그려져 있다. 둘째, 《해동지도》는 가로(동서)로 길게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는 상대적으로 세로(남북)의 길이가 길게 그려져 있다. 이 과정에서 약간의 변화가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읍성 왼쪽에 하나로 합쳐져 바다로 흘러가는 것으로 그려진 3개의 하천이 《해동지도》에는 따로따로 바다로 흘러가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것은 가로가 좁아지고 읍성이 크게 그려지면서 이 부분의 지면이 작아지면서 발생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읍성이 있는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수록되지 않은 것도 있다. 특히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할 만큼 중요하게 여긴 정보인 面의 기록에서 《해동지도》에 읍치 오른쪽에 표시되어 있던 東面이 생략되어 있다. 지도에 표기된 지명이 몇 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읍성 오른쪽의 하천이 《해동지도》에는 다른 고을에서 들어오는 것처럼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의 표현이 실제와 부합된다. 《해동지도》에는 읍치 위쪽 산줄기 아래쪽에 咸安界가 적혀 있지만 본 지도에는 생략되었다. 산줄기 아래쪽에 함안의 땅이 있었던 곳은 서면에 있는 하천의 상류 부분이다. 《해동지도》에서는 이런 사실을 잘못 표기한 것으로 생각되며, 본 지도의 필사 시 역시 사실을 잘 몰랐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진해현(鎭海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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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진해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그러나 첫째,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더 크게 그려져 있다. 둘째, 《해동지도》는 가로(동서)로 길게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는 상대적으로 세로(남북)의 길이가 길게 그려져 있다. 이 과정에서 약간의 변화가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읍성 왼쪽에 하나로 합쳐져 바다로 흘러가는 것으로 그려진 3개의 하천이 《해동지도》에는 따로따로 바다로 흘러가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것은 가로가 좁아지고 읍성이 크게 그려지면서 이 부분의 지면이 작아지면서 발생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읍성이 있는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수록되지 않은 것도 있다. 특히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할 만큼 중요하게 여긴 정보인 面의 기록에서 《해동지도》에 읍치 오른쪽에 표시되어 있던 東面이 생략되어 있다. 지도에 표기된 지명이 몇 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읍성 오른쪽의 하천이 《해동지도》에는 다른 고을에서 들어오는 것처럼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의 표현이 실제와 부합된다. 《해동지도》에는 읍치 위쪽 산줄기 아래쪽에 咸安界가 적혀 있지만 본 지도에는 생략되었다. 산줄기 아래쪽에 함안의 땅이 있었던 곳은 서면에 있는 하천의 상류 부분이다. 《해동지도》에서는 이런 사실을 잘못 표기한 것으로 생각되며, 본 지도의 필사 시 역시 사실을 잘 몰랐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창령현(昌寧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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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창령현 지도와 비슷하다. 본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아래쪽 왼쪽(북)에서 오른쪽(남)으로 흐르는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이다. 비록 정확하지는 않지만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여러 지류의 모습이 실제에 가깝다. 다만 오른쪽 아래의 南谷面은 낙동강을 따라 남쪽으로 불쑥 튀어나가 현재의 남지읍 북쪽 지역에 있지만 사각형의 지도 모양에 맞추기 위해 실제와 다르게 그렸다. 본 지도에 표시된 지명은 읍치의 軍器와 鄕廳 및 위쪽의 大耳山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그렇지만 지명의 표기에서 잘못 옮겨 적은 것도 눈에 띈다. 왼쪽에는 合山面이 2개나 적혀 있다. 이 중 아래의 것은 《해동지도》에 ‘合山面新堤’, 즉 ‘합산면에 있는 신제’라는 뜻인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面으로 잘못 이해한 것이다. 그 오른쪽의 池浦村은 池浦面의 誤記이다. 반대로 그 아래쪽의 大招面은 《해동지도》에 大招堤로 잘못 적혀 있던 것으로 교정하기도 하였다. 하천의 유로라는 측면에서도 약간 다른 부분이 보인다. 예를 들어 가장 오른쪽의 大谷面에 있는 하천이 《해동지도》에는 대곡면에서 발원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이런 사실들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기본으로 필사하면서 일부 다른 자료도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오류가 나타나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하지는 못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이기봉)

  • 창령현(昌寧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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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창령현 지도와 비슷하다. 본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아래쪽 왼쪽(북)에서 오른쪽(남)으로 흐르는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이다. 비록 정확하지는 않지만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여러 지류의 모습이 실제에 가깝다. 다만 오른쪽 아래의 南谷面은 낙동강을 따라 남쪽으로 불쑥 튀어나가 현재의 남지읍 북쪽 지역에 있지만 사각형의 지도 모양에 맞추기 위해 실제와 다르게 그렸다. 본 지도에 표시된 지명은 읍치의 軍器와 鄕廳 및 위쪽의 大耳山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그렇지만 지명의 표기에서 잘못 옮겨 적은 것도 눈에 띈다. 왼쪽에는 合山面이 2개나 적혀 있다. 이 중 아래의 것은 《해동지도》에 ‘合山面新堤’, 즉 ‘합산면에 있는 신제’라는 뜻인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面으로 잘못 이해한 것이다. 그 오른쪽의 池浦村은 池浦面의 誤記이다. 반대로 그 아래쪽의 大招面은 《해동지도》에 大招堤로 잘못 적혀 있던 것으로 교정하기도 하였다. 하천의 유로라는 측면에서도 약간 다른 부분이 보인다. 예를 들어 가장 오른쪽의 大谷面에 있는 하천이 《해동지도》에는 대곡면에서 발원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이런 사실들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기본으로 필사하면서 일부 다른 자료도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오류가 나타나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하지는 못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이기봉)

  • 창원부(昌原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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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창원부 지도와 비슷하다. 지명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읍성 안쪽과 아래쪽 바닷가의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있다. 또한 하천의 위치와 유로 역시 거의 비슷하다. 두 지도의 차이점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해동지도》에는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길게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는 세로로 긴 사각형 모양에 고을 전체가 완전히 들어가 있는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둘째,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훨씬 크게 그려져 있다. 셋째, 《해동지도》에 있던 도로가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으며, 面에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와 본 지도는 모두 실제 사실을 아주 간략하게만 표현하였다. 그러나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차이점 때문에 본 지도가 《해동지도》에 비해 아래쪽의 마산만이 상대적으로 작게 그려져 있고, 왼쪽 위의 光山寺 부분이 넓게 표현되었다. 본 지도와 《해동지도》의 주기에 적혀 있는 戶口數 등의 숫자는 서로 다르다. 또한 《해동지도》에는 주기에 적혀 있는 면과 지도에 표시된 면이 다른 반면 본 지도에는 동일하게 되어 있다. 《해동지도》의 지도와 주기가 다른 시기에 작성되었을 것이라는 연구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기타 오른쪽 위의 하천은 현재의 낙동강 본류이다. (이기봉)

  • 창원부(昌原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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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창원부 지도와 비슷하다. 지명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읍성 안쪽과 아래쪽 바닷가의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있다. 또한 하천의 위치와 유로 역시 거의 비슷하다. 두 지도의 차이점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해동지도》에는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길게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는 세로로 긴 사각형 모양에 고을 전체가 완전히 들어가 있는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둘째,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훨씬 크게 그려져 있다. 셋째, 《해동지도》에 있던 도로가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으며, 面에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와 본 지도는 모두 실제 사실을 아주 간략하게만 표현하였다. 그러나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차이점 때문에 본 지도가 《해동지도》에 비해 아래쪽의 마산만이 상대적으로 작게 그려져 있고, 왼쪽 위의 光山寺 부분이 넓게 표현되었다. 본 지도와 《해동지도》의 주기에 적혀 있는 戶口數 등의 숫자는 서로 다르다. 또한 《해동지도》에는 주기에 적혀 있는 면과 지도에 표시된 면이 다른 반면 본 지도에는 동일하게 되어 있다. 《해동지도》의 지도와 주기가 다른 시기에 작성되었을 것이라는 연구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기타 오른쪽 위의 하천은 현재의 낙동강 본류이다. (이기봉)

  • 청도군(淸道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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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청도군 지도와 비슷하다. 읍성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다만 지명의 위치가 《해동지도》와 다르게 된 곳이 여러 곳 보인다. 또한 하천의 유로가 《해동지도》에 비해 일부 다르게 되어 있지만 기본적인 패턴은 거의 동일하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와 《해동지도》는 필사 관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해동지도》와의 차이점도 있다. 첫째, 읍성이 《해동지도》에 비해 훨씬 크게 그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몇 개의 지명이 추가되어 있다. 이 때문에 더불어 읍성을 휘감고 위쪽(남)으로 돌아나가는 현재의 청도천이 더 길게 그려졌다. 둘째, 《해동지도》는 정확한 사각형이 아니지만 본 지도는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려고 노력하였다. 이로 인해 왼쪽 아래의 孔岩 부분이 상대적으로 위로 올라갔으며, 오른쪽의 上北面 부분이 밑으로 내려갔다. 또한 왼쪽 위의 上南面과 赤岩面 부분도 《해동지도》에 비해 위쪽으로 올라가 있다. 청도군의 실제 모습은 남북보다는 동서가 길다. 그런데 본 지도에는 남북(세로)이 동서(가로)보다 길게 되어 있다. 또한 읍치의 서쪽(오른쪽)이 동쪽(왼쪽)보다 훨씬 좁다. 그러나 읍치를 크게 그리다보니까 상대적으로 서쪽(왼쪽)에 좁게 그려졌고, 실제로는 西南流하는 왼쪽의 동창천이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표현되었다. 하천의 길이도 읍치를 돌아나가는 것보다 동창천이 훨씬 길다. 이 동창천은 실제로는 慶州界로부터 흘러 들어온다. 《해동지도》에는 동창천 상류 부분에 慶州界를 적어 넣어 실제를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지만 본 지도에는 경주계를 산줄기 바깥에 적어 넣어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읍치를 감아 돌아가는 청도천의 상류는 대구의 영역이었다. 본 지도에는 大邱界를 청도천 상류에 적어 넣어 그런 사실을 암시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해동지도》에서도 동일하게 표현되었다. 왼쪽 위의 外西面은 현재의 밀양시 청도면 지역으로 거의 월경지에 가깝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기봉)

  • 청도군(淸道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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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청도군 지도와 비슷하다. 읍성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다만 지명의 위치가 《해동지도》와 다르게 된 곳이 여러 곳 보인다. 또한 하천의 유로가 《해동지도》에 비해 일부 다르게 되어 있지만 기본적인 패턴은 거의 동일하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와 《해동지도》는 필사 관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해동지도》와의 차이점도 있다. 첫째, 읍성이 《해동지도》에 비해 훨씬 크게 그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몇 개의 지명이 추가되어 있다. 이 때문에 더불어 읍성을 휘감고 위쪽(남)으로 돌아나가는 현재의 청도천이 더 길게 그려졌다. 둘째, 《해동지도》는 정확한 사각형이 아니지만 본 지도는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려고 노력하였다. 이로 인해 왼쪽 아래의 孔岩 부분이 상대적으로 위로 올라갔으며, 오른쪽의 上北面 부분이 밑으로 내려갔다. 또한 왼쪽 위의 上南面과 赤岩面 부분도 《해동지도》에 비해 위쪽으로 올라가 있다. 청도군의 실제 모습은 남북보다는 동서가 길다. 그런데 본 지도에는 남북(세로)이 동서(가로)보다 길게 되어 있다. 또한 읍치의 서쪽(오른쪽)이 동쪽(왼쪽)보다 훨씬 좁다. 그러나 읍치를 크게 그리다보니까 상대적으로 서쪽(왼쪽)에 좁게 그려졌고, 실제로는 西南流하는 왼쪽의 동창천이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표현되었다. 하천의 길이도 읍치를 돌아나가는 것보다 동창천이 훨씬 길다. 이 동창천은 실제로는 慶州界로부터 흘러 들어온다. 《해동지도》에는 동창천 상류 부분에 慶州界를 적어 넣어 실제를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지만 본 지도에는 경주계를 산줄기 바깥에 적어 넣어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읍치를 감아 돌아가는 청도천의 상류는 대구의 영역이었다. 본 지도에는 大邱界를 청도천 상류에 적어 넣어 그런 사실을 암시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해동지도》에서도 동일하게 표현되었다. 왼쪽 위의 外西面은 현재의 밀양시 청도면 지역으로 거의 월경지에 가깝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기봉)

  • 청송부(靑松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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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청송부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하천의 유로가 방향이나 길이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동일하다. 읍치를 지나 북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용전천이고, 왼쪽의 하천이 길안천이다. 오른쪽 아래의 하천은 현재 영덕을 지나 동해로 흘러가는 대서천의 상류이다.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러나 모든 지역에 동일한 방향이 적용된 것은 아니다. 특히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일부 왜곡이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오른쪽 아래의 대서천은 실제로는 東流하여 盈德界로 빠져나가지만 본 지도만을 놓고 보만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또한 읍치 부근은 남쪽에 비해 동서의 폭이 좁지만 거의 비슷하게 그려져 길안천 유역이 상대적으로 작게 표현되었다. 읍치에 있는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거의 나온다. 다만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과 驛의 이름에 본 지도에는 노란색과 황색의 사각형 기호가 사용되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산줄기의 표현 방식에서도 일부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와 달리 읍치를 둘러싼 산줄기가 그려져 있지 않다. 또한 명칭에 걸맞게 병풍의 모습으로 표현된 屛巖書院의 지형도 《해동지도》에는 다른 산지 표현 방식과 거의 동일하게 되어 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가 《해동지도》보다 읍치의 풍수적 명당성, 특이한 지형의 묘사에 더 정성을 들인 것으로 생각된다. 주기의 戶口數는 본 지도와 《해동지도》가 전혀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이기봉)

  • 청송부(靑松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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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청송부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하천의 유로가 방향이나 길이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동일하다. 읍치를 지나 북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용전천이고, 왼쪽의 하천이 길안천이다. 오른쪽 아래의 하천은 현재 영덕을 지나 동해로 흘러가는 대서천의 상류이다.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러나 모든 지역에 동일한 방향이 적용된 것은 아니다. 특히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일부 왜곡이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오른쪽 아래의 대서천은 실제로는 東流하여 盈德界로 빠져나가지만 본 지도만을 놓고 보만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또한 읍치 부근은 남쪽에 비해 동서의 폭이 좁지만 거의 비슷하게 그려져 길안천 유역이 상대적으로 작게 표현되었다. 읍치에 있는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거의 나온다. 다만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과 驛의 이름에 본 지도에는 노란색과 황색의 사각형 기호가 사용되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산줄기의 표현 방식에서도 일부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와 달리 읍치를 둘러싼 산줄기가 그려져 있지 않다. 또한 명칭에 걸맞게 병풍의 모습으로 표현된 屛巖書院의 지형도 《해동지도》에는 다른 산지 표현 방식과 거의 동일하게 되어 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가 《해동지도》보다 읍치의 풍수적 명당성, 특이한 지형의 묘사에 더 정성을 들인 것으로 생각된다. 주기의 戶口數는 본 지도와 《해동지도》가 전혀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이기봉)

  • 청하현(淸河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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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청하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고, 세로(남북)의 길이가 더 길어졌다. 읍치에 있는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그러나 지명의 위치나 명칭 자체가 달라진 곳이 있다. 예를 들어 읍치 오른쪽의 德松亭은 《해동지도》에 德松山으로 되어 있다. 대부분의 지도에는 《해동지도》처럼 되어 있지만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청하지도에는 德松亭으로 나온다. 후자의 지도가 지방에서 직접 그려 올린 지도이기 때문에 덕송정이 맞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본 지도의 필사 시에 다른 자료를 통해 《해동지도》의 내용을 수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왼쪽 가운데의 鷹烽은 鷹峯의 誤記이기도 하다. 《해동지도》와 산줄기의 모습이 다른 곳도 여러 곳 보인다. 예를 들어 왼쪽 위의 龍湫가 적혀 있는 부분에 內延山 산줄기와 神龜山 산줄기 사이에 작은 산줄기가 이어져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이 작은 산줄기가 없다. 가장 위쪽의 하천은 현재의 지경천인데, 왼쪽 가운데의 鷹峯 부근에서 발원한다. 따라서 산줄기의 입장에서만 보면 본 지도보다는 《해동지도》가 사실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읍치가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 과장되어 있기 때문에 거리나 방향에서 오류가 나타난다. 하지만 고을 전체의 모습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실제와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청하현(淸河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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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청하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고, 세로(남북)의 길이가 더 길어졌다. 읍치에 있는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그러나 지명의 위치나 명칭 자체가 달라진 곳이 있다. 예를 들어 읍치 오른쪽의 德松亭은 《해동지도》에 德松山으로 되어 있다. 대부분의 지도에는 《해동지도》처럼 되어 있지만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청하지도에는 德松亭으로 나온다. 후자의 지도가 지방에서 직접 그려 올린 지도이기 때문에 덕송정이 맞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본 지도의 필사 시에 다른 자료를 통해 《해동지도》의 내용을 수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왼쪽 가운데의 鷹烽은 鷹峯의 誤記이기도 하다. 《해동지도》와 산줄기의 모습이 다른 곳도 여러 곳 보인다. 예를 들어 왼쪽 위의 龍湫가 적혀 있는 부분에 內延山 산줄기와 神龜山 산줄기 사이에 작은 산줄기가 이어져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이 작은 산줄기가 없다. 가장 위쪽의 하천은 현재의 지경천인데, 왼쪽 가운데의 鷹峯 부근에서 발원한다. 따라서 산줄기의 입장에서만 보면 본 지도보다는 《해동지도》가 사실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읍치가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 과장되어 있기 때문에 거리나 방향에서 오류가 나타난다. 하지만 고을 전체의 모습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실제와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초계군(草溪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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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초계군 지도와 비슷하다. 읍치에 있는 勸稼樓 등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지명의 위치는 다르게 되어 있는 곳이 있고, 黃芚江이 黃花江으로 적혀 있기도 하다. 《해동지도》에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과 驛에 색이 다른 사각형 기호를 덧붙였다. 그러나 面을 주로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였지만 황색 사각형도 2개나 표시되어 있어 일관성이 부족한 편이다. 하천의 표현은 기본적으로 《해동지도》와 동일하지만 유로의 방향이 일부 달라지고 있다. 이렇게 달라진 가장 큰 이유는 《해동지도》가 남북(가로)보다 동서(가로)를 길게 그린 반면 본 지도에서는 동서보다 남북을 길게 그렸기 때문이다. 또한 《해동지도》에 비해 사각형의 모양에 정확히 맞추려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약간 비스듬하게 흐르는 것으로 그려진 낙동강이 본 지도에는 정남쪽으로 흐르다 서남쪽으로 빠져나가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왼쪽 위에서 들어와 낙동강에 합류하는 황강의 모습도 《해동지도》와 약간 다르게 되어 있다. 읍치의 여러 건물들을 둘러싼 담장의 모습이 그려진 것도 《해동지도》와 다른 점이다. (이기봉)

  • 초계군(草溪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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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초계군 지도와 비슷하다. 읍치에 있는 勸稼樓 등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지명의 위치는 다르게 되어 있는 곳이 있고, 黃芚江이 黃花江으로 적혀 있기도 하다. 《해동지도》에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과 驛에 색이 다른 사각형 기호를 덧붙였다. 그러나 面을 주로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였지만 황색 사각형도 2개나 표시되어 있어 일관성이 부족한 편이다. 하천의 표현은 기본적으로 《해동지도》와 동일하지만 유로의 방향이 일부 달라지고 있다. 이렇게 달라진 가장 큰 이유는 《해동지도》가 남북(가로)보다 동서(가로)를 길게 그린 반면 본 지도에서는 동서보다 남북을 길게 그렸기 때문이다. 또한 《해동지도》에 비해 사각형의 모양에 정확히 맞추려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약간 비스듬하게 흐르는 것으로 그려진 낙동강이 본 지도에는 정남쪽으로 흐르다 서남쪽으로 빠져나가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왼쪽 위에서 들어와 낙동강에 합류하는 황강의 모습도 《해동지도》와 약간 다르게 되어 있다. 읍치의 여러 건물들을 둘러싼 담장의 모습이 그려진 것도 《해동지도》와 다른 점이다. (이기봉)

  • 칠곡부(漆谷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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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칠곡부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사각형의 모양에 맞추려는 모습이 더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이로 인해 전체적인 하천의 유로는 거의 같지만 일부 부분에서 약간 달라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읍성인 가산산성에서 흘러가 琴湖江으로 합류하는 하천이 《해동지도》에는 정 서쪽으로 흐르기보다는 서남류 하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하천의 표시에서 본 지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낙동강 본류와 금호강이 어떻게 구분되는지 이해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낙동강은 원래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며, 금호강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 낙동강에 합류된다. 여러 지명을 통해 비교해 보면 왼쪽 蘆谷面 부근에서 금호강과 낙동강이 합류하여 星州界 방면으로 빠져나간다. 그러나 본 지도 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가산산성과 上枝面에서 흘러나오는 하천은 남류하여 금호강에 합류되는데, 본 지도에는 마치 남류하다 서류하여 합쳐지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런 오류가 벌어진 이유는 실제로는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으로 그리려 했기 때문이다. 아래쪽의 文殊面 지역은 실제로 아래쪽(남)으로 튀어나간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이것을 무리하게 사각형에 맞추다 보니까 위쪽에 그리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하천의 유로가 실제와 전혀 다르게 표현된 것이다. 금호강은 실제로는 칠곡부와 대구부의 경계를 흐르다 대구부 영역 안에 완전히 들어간 후 낙동강에 합류된다. 가산 산성에 있는 건물과 명칭의 몇몇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거의 나온다. 지명의 표시에서 글씨로만 적혀 있던 면과 역에 노란색과 황색의 사각형 기호를 첨가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아래쪽에는 《해동지도》에 있던 八莒面과 退川面이 생략되어 있다. 본 지도의 주기에 2개의 면 명칭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에 그려져 있는 가산산성의 中城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中城은 1741년(영조 17)에 축조되기 때문에 《해동지도》는 그 이전의 상황을, 본 지도는 그 이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이기봉)

  • 칠곡부(漆谷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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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칠곡부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사각형의 모양에 맞추려는 모습이 더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이로 인해 전체적인 하천의 유로는 거의 같지만 일부 부분에서 약간 달라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읍성인 가산산성에서 흘러가 琴湖江으로 합류하는 하천이 《해동지도》에는 정 서쪽으로 흐르기보다는 서남류 하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하천의 표시에서 본 지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낙동강 본류와 금호강이 어떻게 구분되는지 이해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낙동강은 원래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며, 금호강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 낙동강에 합류된다. 여러 지명을 통해 비교해 보면 왼쪽 蘆谷面 부근에서 금호강과 낙동강이 합류하여 星州界 방면으로 빠져나간다. 그러나 본 지도 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가산산성과 上枝面에서 흘러나오는 하천은 남류하여 금호강에 합류되는데, 본 지도에는 마치 남류하다 서류하여 합쳐지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런 오류가 벌어진 이유는 실제로는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으로 그리려 했기 때문이다. 아래쪽의 文殊面 지역은 실제로 아래쪽(남)으로 튀어나간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이것을 무리하게 사각형에 맞추다 보니까 위쪽에 그리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하천의 유로가 실제와 전혀 다르게 표현된 것이다. 금호강은 실제로는 칠곡부와 대구부의 경계를 흐르다 대구부 영역 안에 완전히 들어간 후 낙동강에 합류된다. 가산 산성에 있는 건물과 명칭의 몇몇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거의 나온다. 지명의 표시에서 글씨로만 적혀 있던 면과 역에 노란색과 황색의 사각형 기호를 첨가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아래쪽에는 《해동지도》에 있던 八莒面과 退川面이 생략되어 있다. 본 지도의 주기에 2개의 면 명칭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에 그려져 있는 가산산성의 中城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中城은 1741년(영조 17)에 축조되기 때문에 《해동지도》는 그 이전의 상황을, 본 지도는 그 이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이기봉)

  • 칠원현(漆原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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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칠원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첫째,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둘째,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하천의 유로나 전반적인 배치라는 입장에서 보면 본 지도와 《해동지도》는 거의 비슷하다. 본 지도에 있는 지명 중 읍치의 倉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없는 것이 여러 개 있다. 더 나아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사실을 잘못 이해하고 그린 부분도 보인다. 오른쪽에 적혀 있는 昌寧界는 昌原界의 誤記이다. 원래 이곳에 창원계가 적혀 있는 이유는 龜山面이 창원의 경계를 넘어가 현재의 마산시 구산면에 있던 월경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주기에는 구산면의 初境이 창원 경계를 넘어 50리라고 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보아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되며, 읍치 부분에서 다른 자료를 약간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러나 모든 지역에 동일한 방향이 적용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낙동강 본류는 오른쪽 함안계에서 들어와 왼쪽 위의 靈山界로 빠져나간다. 그러나 낙동강은 칠원현의 북쪽 부분만 흐를 뿐이다. 오른쪽 위의 구산면도 실제로는 남쪽에 있는데,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마치 남동쪽에 있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 읍치를 지나 낙동강으로 합류되는 현재의 광노천도 상류는 창원 땅에서 들어오는데,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이기봉)

  • 칠원현(漆原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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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칠원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첫째,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둘째,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하천의 유로나 전반적인 배치라는 입장에서 보면 본 지도와 《해동지도》는 거의 비슷하다. 본 지도에 있는 지명 중 읍치의 倉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없는 것이 여러 개 있다. 더 나아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사실을 잘못 이해하고 그린 부분도 보인다. 오른쪽에 적혀 있는 昌寧界는 昌原界의 誤記이다. 원래 이곳에 창원계가 적혀 있는 이유는 龜山面이 창원의 경계를 넘어가 현재의 마산시 구산면에 있던 월경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주기에는 구산면의 初境이 창원 경계를 넘어 50리라고 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보아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되며, 읍치 부분에서 다른 자료를 약간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러나 모든 지역에 동일한 방향이 적용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낙동강 본류는 오른쪽 함안계에서 들어와 왼쪽 위의 靈山界로 빠져나간다. 그러나 낙동강은 칠원현의 북쪽 부분만 흐를 뿐이다. 오른쪽 위의 구산면도 실제로는 남쪽에 있는데,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마치 남동쪽에 있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 읍치를 지나 낙동강으로 합류되는 현재의 광노천도 상류는 창원 땅에서 들어오는데,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이기봉)

  • 통영(統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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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통영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가 상대적으로 세로를 길게 그렸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표현 양식에서는 변화가 있다. 《해동지도》에는 고을과 진보를 모두 노란색 타원으로 그려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본 지도에서는 고을은 황갈색 사각형으로, 진보는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려 두 정보의 차이를 구분하였다. 고을의 이름이면서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된 것도 있는데, 이것은 읍치가 아니라 해당 고을에 배치된 전선 정박소인 船所의 위치를 의미한다. 水營 역시 《해동지도》에는 다른 정보와 구별되고 있지 않으나 본 지도에는 황갈색 원으로 표시하여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실수로 빠뜨리거나 잘못 표시한 지명들이 여러 군데 보이고 있다. 왼쪽 아래에는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노란색 사각형이 보이고 있다. 《해동지도》와 비교해 보면 이곳에는 防踏(鎭)이 적혀 있어야 한다. 오른쪽에는 노란색 사각형 밑에 명칭을 적은 長木(浦鎭)도 보이고 있다. 또한 晋州, 固城, 泗川은 읍치 부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보의 기호인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남해의 경우 아래쪽의 선소 부분까지 황갈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였다. 왼쪽 위쪽에는 樂安, 寶城의 선소가 생략되기도 하였다. 이런 오류가 있는 반면에 《해동지도》의 오류를 일부 수정하고 있기도 하다. 《해동지도》의 남해 부분에 노란색 타원형만 있던 곳에 船所란 명칭을 부여하였으며, 노란색 사각형이 없던 古突山(鎭)과 順天船所에 노란색 사각형을 그려 넣기도 하였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기본으로 하여 필사하였으며, 일부는 수정하면서 일부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통영성 안의 건물이 《해동지도》에 비해 소략하게 처리되고 있는데, 이것은 본 지도가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은 종이 위에 그려졌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해동지도》나 본 지도 모두 통영과 그 주변의 군사 정보를 수록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거리나 크기, 위치의 정확성은 별로 고려하지 않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통영 지도도 본 지도와 거의 동일한 구도와 내용을 갖고 있어 서로 필사 관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본 지도에서 범한 오류가 《광여도》에서 일부 교정되고 있다. (이기봉)

  •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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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기군(豊基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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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풍기현 지도와 비슷하다. 豊基는 조선 초기 이후 縣으로 강등된 적이 없기 때문에 《해동지도》의 주기 명칭이 잘못된 것이다.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나오는 西部面, 生古介面, 東村面이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 3개의 면 명칭이 나오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 아닌가 한다. 또한 上里面과 下里面의 위치도 《해동지도》와 달라지고 있다. 실제 지형과 비교해 보면 《해동지도》가 올바르게 표시되어 있기 때문에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한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지도에 그리다 보니까 몇 가지 왜곡이 발생하였다. 가장 왼쪽의 하천은 현재의 한천 최상류로서 이 지역은 풍기 읍치의 입장에서 보면 서남쪽으로 불쑥 튀어나가 있다. 또한 이 지역의 면적은 읍치 지역의 반 정도는 된다. 그러나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어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을 직선으로 하다 보니까 면적도 작아지고 하천의 유로 방향도 달라졌다. 읍치 위쪽에는 順興昌樂境이 표시되어 있어 이곳에 순흥부의 월경지가 있음을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왼쪽 아래에 順興界와 安東界가 표시되어 있는 것은 이곳에 순흥과 안동의 월경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 풍기군(豊基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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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풍기현 지도와 비슷하다. 豊基는 조선 초기 이후 縣으로 강등된 적이 없기 때문에 《해동지도》의 주기 명칭이 잘못된 것이다.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나오는 西部面, 生古介面, 東村面이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 3개의 면 명칭이 나오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 아닌가 한다. 또한 上里面과 下里面의 위치도 《해동지도》와 달라지고 있다. 실제 지형과 비교해 보면 《해동지도》가 올바르게 표시되어 있기 때문에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한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지도에 그리다 보니까 몇 가지 왜곡이 발생하였다. 가장 왼쪽의 하천은 현재의 한천 최상류로서 이 지역은 풍기 읍치의 입장에서 보면 서남쪽으로 불쑥 튀어나가 있다. 또한 이 지역의 면적은 읍치 지역의 반 정도는 된다. 그러나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어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을 직선으로 하다 보니까 면적도 작아지고 하천의 유로 방향도 달라졌다. 읍치 위쪽에는 順興昌樂境이 표시되어 있어 이곳에 순흥부의 월경지가 있음을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왼쪽 아래에 順興界와 安東界가 표시되어 있는 것은 이곳에 순흥과 안동의 월경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 하동부(河東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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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하동부 지도와 전체적으로는 비슷하다.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동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고, 《해동지도》는 대략 서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또한 본 지도는 동북-서남 방향을 길게 그렸지만 《해동지도》는 서북-동남 방향을 길게 그렸다. 이로 인해 서북에서 동남 방향으로 흐르는 섬진강이 《해동지도》보다 본 지도에서 훨씬 짧게 그려졌다. 반면에 주로 서남 방향으로 흐르는 섬진강의 지류들은 《해동지도》보다 본 지도에서 훨씬 길게 그려졌다. 하동부의 실제 모습은 서북에서 동남으로 길게 누운 형태이기 때문에 《해동지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본 지도와 《해동지도》는 하천의 길이와 유로를 다르게 표현했지만 표시된 하천의 수나 갈라진 지류의 모습은 동일하다. 본 지도에 수록된 지명도 모두 《해동지도》에 기록되어 있어 두 지도가 서로 필사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지명의 위치가 약간 달라지고, 《해동지도》에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에 본 지도에서는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첨가하였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鄕校 부근에 표시된 橫甫面과 西良谷面이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 2개의 면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를 범한 것으로 생각된다. 오른쪽 아래에 작은 섬의 형태로 적혀 있는 南海가 《해동지도》에는 섬의 일부만 그려져 있다. 또한 《해동지도》에는 남해와 하동부 사이에 昆陽地가 경계선과 함께 적혀 있다. 실제로 하동과 남해 사이에 곤양의 땅이 있었기 때문에 《해동지도》가 정확하다고 볼 수 있으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자의로 생략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기봉)

  • 하동부(河東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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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하동부 지도와 전체적으로는 비슷하다.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동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고, 《해동지도》는 대략 서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또한 본 지도는 동북-서남 방향을 길게 그렸지만 《해동지도》는 서북-동남 방향을 길게 그렸다. 이로 인해 서북에서 동남 방향으로 흐르는 섬진강이 《해동지도》보다 본 지도에서 훨씬 짧게 그려졌다. 반면에 주로 서남 방향으로 흐르는 섬진강의 지류들은 《해동지도》보다 본 지도에서 훨씬 길게 그려졌다. 하동부의 실제 모습은 서북에서 동남으로 길게 누운 형태이기 때문에 《해동지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본 지도와 《해동지도》는 하천의 길이와 유로를 다르게 표현했지만 표시된 하천의 수나 갈라진 지류의 모습은 동일하다. 본 지도에 수록된 지명도 모두 《해동지도》에 기록되어 있어 두 지도가 서로 필사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지명의 위치가 약간 달라지고, 《해동지도》에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에 본 지도에서는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첨가하였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鄕校 부근에 표시된 橫甫面과 西良谷面이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 2개의 면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를 범한 것으로 생각된다. 오른쪽 아래에 작은 섬의 형태로 적혀 있는 南海가 《해동지도》에는 섬의 일부만 그려져 있다. 또한 《해동지도》에는 남해와 하동부 사이에 昆陽地가 경계선과 함께 적혀 있다. 실제로 하동과 남해 사이에 곤양의 땅이 있었기 때문에 《해동지도》가 정확하다고 볼 수 있으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자의로 생략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기봉)

  • 하양현(河陽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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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하양현 지도와 비슷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치에 있는 司倉과 東軒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또한 하천의 유로 역시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전반적으로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읍치 부분은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그린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해동지도》와 다른 점도 있다. 위쪽에 표시된 梨旨縣은 신령현의 월경지로서 현재의 경산시 와촌면에 있었던 梨旨廢縣을 일컫는다. 가장 위쪽은 八公山은 하양현에 속해 있지 않았지만 본 고을의 산줄기가 시작되는 곳이라 그려 넣은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이런 사실을 반영하여 하양현의 영역 중 가장 북쪽에 해당되는 無落山과 팔공산 사이를 상당히 넓게 띄어 놓았다. 그런데 본 지도에서는 세로로 긴 사각형에 맞게 그리기 위해 하양현의 영역을 팔공산과 같은 높이로 처리하였다. 또한 남북(세로)보다 동서(가로)가 긴 고을의 모습을 반영했던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에서는 남북을 동서보다 더 길게 그렸다. 이와 같은 이유들로 인해 읍치 왼쪽을 흐르는 현재의 조산천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그려지게 되었다. 더 나아가 실제로는 거의 東流하여 금호강에 합류되는데, 본 지도에는 마치 南流하다 동류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는 이 하천이 거의 동류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이기봉)

  • 하양현(河陽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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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하양현 지도와 비슷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치에 있는 司倉과 東軒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또한 하천의 유로 역시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전반적으로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읍치 부분은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그린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해동지도》와 다른 점도 있다. 위쪽에 표시된 梨旨縣은 신령현의 월경지로서 현재의 경산시 와촌면에 있었던 梨旨廢縣을 일컫는다. 가장 위쪽은 八公山은 하양현에 속해 있지 않았지만 본 고을의 산줄기가 시작되는 곳이라 그려 넣은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이런 사실을 반영하여 하양현의 영역 중 가장 북쪽에 해당되는 無落山과 팔공산 사이를 상당히 넓게 띄어 놓았다. 그런데 본 지도에서는 세로로 긴 사각형에 맞게 그리기 위해 하양현의 영역을 팔공산과 같은 높이로 처리하였다. 또한 남북(세로)보다 동서(가로)가 긴 고을의 모습을 반영했던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에서는 남북을 동서보다 더 길게 그렸다. 이와 같은 이유들로 인해 읍치 왼쪽을 흐르는 현재의 조산천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그려지게 되었다. 더 나아가 실제로는 거의 東流하여 금호강에 합류되는데, 본 지도에는 마치 南流하다 동류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는 이 하천이 거의 동류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이기봉)

  • 함안군(咸安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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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함안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본 지도는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아래쪽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흘러나가는 하천이 낙동강의 지류인 현재의 남강이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성 안에 있는 太平樓를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있는 지명이 모두 본 지도에 나오는 것은 아니다. 노란색 사각형을 표시하여 중요한 정보로 여긴 面 중 오른쪽 부분에 安道面과 南山面이 빠져 있다. 또한 가장 위쪽의 北谷面은 比谷面을 잘못 옮긴 것이다. 3개의 면이 주기에는 제대로 나오고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확대되어 있고, 좀더 사각형의 모양에 맞추어 그렸다. 이로 인해 하천 유로가 약간 차이가 나지만 대체적으로 거의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볼 때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함안군의 모습이 정확하게 맞지는 않지만 대략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함안군의 모습 자체가 세로로 긴 사각형에 맞는 모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위쪽의 北谷面 즉, 比谷面은 남강 유역이 아니라 남해로 바로 빠져나가는 현재의 마산시 진전면의 진전천 상류에 있었다. 기타 함안은 조선 초기 이후 계속 郡으로 존재했기 때문에 《해동지도》에 함안현으로 적혀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기봉)

  • 함안군(咸安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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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함안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본 지도는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아래쪽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흘러나가는 하천이 낙동강의 지류인 현재의 남강이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성 안에 있는 太平樓를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있는 지명이 모두 본 지도에 나오는 것은 아니다. 노란색 사각형을 표시하여 중요한 정보로 여긴 面 중 오른쪽 부분에 安道面과 南山面이 빠져 있다. 또한 가장 위쪽의 北谷面은 比谷面을 잘못 옮긴 것이다. 3개의 면이 주기에는 제대로 나오고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확대되어 있고, 좀더 사각형의 모양에 맞추어 그렸다. 이로 인해 하천 유로가 약간 차이가 나지만 대체적으로 거의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볼 때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함안군의 모습이 정확하게 맞지는 않지만 대략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함안군의 모습 자체가 세로로 긴 사각형에 맞는 모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위쪽의 北谷面 즉, 比谷面은 남강 유역이 아니라 남해로 바로 빠져나가는 현재의 마산시 진전면의 진전천 상류에 있었다. 기타 함안은 조선 초기 이후 계속 郡으로 존재했기 때문에 《해동지도》에 함안현으로 적혀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기봉)

  • 함양부(咸陽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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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함양군 지도와 거의 비슷하다. 함양은 1729년(영조 5)에 郡에서 府로 승격되었다가 1788년(정조 12)에 다시 郡으로 강등된다. 따라서 함양의 명칭만으로 볼 때 《해동지도》는 1729년 이전에, 본 지도는 1729년과 1788년 사이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해동지도》의 함양군 지도에는 1728년(영조 4)에 혁파되었다가 1736년(영조 12)에 복구된 安陰縣이 동시에 나온다. 반면에 본 지도에는 안음현 부분이 사라지고, 安陰界라고만 적혀 있다. 안음은 1767년(영조 43)에 安義로 명칭을 바꾼다. 安陰의 변화 상황을 기준으로 볼 때 《해동지도》는 1728년과 1736년 사이에, 본 지도에는 1736년에서 1767년 사이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본 지도에 표시된 읍성이 《해동지도》에는 나오지 않는다. 함양의 읍성은 1780년에 둘레 735척의 토성으로 쌓았다가 1729년(영조 5)에 둘레 7,035척의 석성으로 수축된다. 본 지도에 있는 것은 바로 수축된 석성이라고 추정된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성 부분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오며, 글씨로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가 첨가되어 있을 뿐이다. 다만 주기에는 14개의 면이 적혀 있는데, 지도에는 12개밖에 표시되어 있지 않다. 주기에 있으면서 지도에 없는 면은 《해동지도》에 나오기 때문에 필사 과정에서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 아닌가 한다. 하천의 전체적인 구도는 《해동지도》와 비슷하지만 구체적인 유로의 입장에서 보면 약간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이기봉)

  • 함양부(咸陽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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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함양군 지도와 거의 비슷하다. 함양은 1729년(영조 5)에 郡에서 府로 승격되었다가 1788년(정조 12)에 다시 郡으로 강등된다. 따라서 함양의 명칭만으로 볼 때 《해동지도》는 1729년 이전에, 본 지도는 1729년과 1788년 사이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해동지도》의 함양군 지도에는 1728년(영조 4)에 혁파되었다가 1736년(영조 12)에 복구된 安陰縣이 동시에 나온다. 반면에 본 지도에는 안음현 부분이 사라지고, 安陰界라고만 적혀 있다. 안음은 1767년(영조 43)에 安義로 명칭을 바꾼다. 安陰의 변화 상황을 기준으로 볼 때 《해동지도》는 1728년과 1736년 사이에, 본 지도에는 1736년에서 1767년 사이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본 지도에 표시된 읍성이 《해동지도》에는 나오지 않는다. 함양의 읍성은 1780년에 둘레 735척의 토성으로 쌓았다가 1729년(영조 5)에 둘레 7,035척의 석성으로 수축된다. 본 지도에 있는 것은 바로 수축된 석성이라고 추정된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성 부분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오며, 글씨로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가 첨가되어 있을 뿐이다. 다만 주기에는 14개의 면이 적혀 있는데, 지도에는 12개밖에 표시되어 있지 않다. 주기에 있으면서 지도에 없는 면은 《해동지도》에 나오기 때문에 필사 과정에서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 아닌가 한다. 하천의 전체적인 구도는 《해동지도》와 비슷하지만 구체적인 유로의 입장에서 보면 약간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이기봉)

  • 함창현(咸昌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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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함창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러나 하천의 유로는 방향을 바꾸어서 보면 본 지도와 《해동지도》가 동일하다. 다만 읍치를 《해동지도》보다 더 크게 그리고, 남북과 동서의 폭이 달라지면서 약간의 변화가 발생했을 뿐이다. 읍치에 있는 內倉과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수록된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수록된 지명 중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할 만큼 중요하게 여긴 面 정보 중에서 東面과 北面이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며, 필사 과정에서 약간의 변화 또는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래쪽의 하천이 현재의 이안천이고, 오른쪽의 하천이 영강이다. 두 하천은 본 지도에서처럼 합류되어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왼쪽 가운데의 黃嶺寺는 현재의 상주시 은척면 황령리에 있었던 함창현의 월경지였다. 본 지도에도 함창현과 이곳 사이에 尙州界를 적어 넣어 월경지임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해동지도》에는 함창현에서 완전히 떨어진 것처럼 그려 월경지임을 더욱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아래쪽 恭儉池의 물은 남쪽의 尙州界로 빠져나간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상주계와의 사이에 산줄기를 그려 넣어 이런 사실을 전혀 이해할 수 없게 하였다. 이 점은 《해동지도》에서도 동일하게 표현되었다. (이기봉)

  • 함창현(咸昌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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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함창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러나 하천의 유로는 방향을 바꾸어서 보면 본 지도와 《해동지도》가 동일하다. 다만 읍치를 《해동지도》보다 더 크게 그리고, 남북과 동서의 폭이 달라지면서 약간의 변화가 발생했을 뿐이다. 읍치에 있는 內倉과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수록된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수록된 지명 중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할 만큼 중요하게 여긴 面 정보 중에서 東面과 北面이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며, 필사 과정에서 약간의 변화 또는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래쪽의 하천이 현재의 이안천이고, 오른쪽의 하천이 영강이다. 두 하천은 본 지도에서처럼 합류되어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왼쪽 가운데의 黃嶺寺는 현재의 상주시 은척면 황령리에 있었던 함창현의 월경지였다. 본 지도에도 함창현과 이곳 사이에 尙州界를 적어 넣어 월경지임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해동지도》에는 함창현에서 완전히 떨어진 것처럼 그려 월경지임을 더욱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아래쪽 恭儉池의 물은 남쪽의 尙州界로 빠져나간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상주계와의 사이에 산줄기를 그려 넣어 이런 사실을 전혀 이해할 수 없게 하였다. 이 점은 《해동지도》에서도 동일하게 표현되었다. (이기봉)

  • 합천군(陜川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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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이 합천군 지도와 전체적은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구체적인 모습에서 다른 측면도 있지만 하천의 본류나 지류의 흐름은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산줄기 역시 약간씩 다르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거의 비슷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읍치 위쪽의 馬峴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반대로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지명이 여러 개 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약간의 변화를 준 것이 아닌가 한다. 《해동지도》에는 里로 기록된 것이 본 지도에는 面으로 바뀌어 있으며, 노란색 사각형이 덧붙여져 있다. 그러나 왼쪽 위의 勸賓驛에도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고, 읍치 오른쪽에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노란색 사각형도 보인다. 더 나아가 《해동지도》에 적혀 있는 里 중 본 지도에 面으로 표시되지 않은 것도 여러 개 있으며, 본 지도의 주기에 적혀 있는 면과 지도에 적혀 있는 것도 동일하지 않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왼쪽의 居昌界에서 흘러와 오른쪽의 草溪界로 빠져나가는 것이 낙동강의 지류인 현재의 황강이다. 위쪽은 회천의 상류이며, 아래쪽에 있는 것은 현재의 의령군과 합천군 경계에서 낙동강에 합류되는 유곡천의 최상류이다. 이 유곡천의 최상류는 현재의 의령군 궁유면 일부로서 조선시대에는 삼가현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다. 《해동지도》에는 이 지역과 합천군 사이에 三嘉界와 草溪界를 써넣어 월경지임을 짐작하게 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이런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삼가계와 초계계를 생략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기봉)

  • 합천군(陜川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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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이 합천군 지도와 전체적은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구체적인 모습에서 다른 측면도 있지만 하천의 본류나 지류의 흐름은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산줄기 역시 약간씩 다르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거의 비슷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읍치 위쪽의 馬峴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반대로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지명이 여러 개 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약간의 변화를 준 것이 아닌가 한다. 《해동지도》에는 里로 기록된 것이 본 지도에는 面으로 바뀌어 있으며, 노란색 사각형이 덧붙여져 있다. 그러나 왼쪽 위의 勸賓驛에도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고, 읍치 오른쪽에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노란색 사각형도 보인다. 더 나아가 《해동지도》에 적혀 있는 里 중 본 지도에 面으로 표시되지 않은 것도 여러 개 있으며, 본 지도의 주기에 적혀 있는 면과 지도에 적혀 있는 것도 동일하지 않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왼쪽의 居昌界에서 흘러와 오른쪽의 草溪界로 빠져나가는 것이 낙동강의 지류인 현재의 황강이다. 위쪽은 회천의 상류이며, 아래쪽에 있는 것은 현재의 의령군과 합천군 경계에서 낙동강에 합류되는 유곡천의 최상류이다. 이 유곡천의 최상류는 현재의 의령군 궁유면 일부로서 조선시대에는 삼가현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다. 《해동지도》에는 이 지역과 합천군 사이에 三嘉界와 草溪界를 써넣어 월경지임을 짐작하게 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이런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삼가계와 초계계를 생략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기봉)

  • 현풍현(玄風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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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현풍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세로(남북)가 더 길게 되어 있고, 읍치가 상대적으로 확대되어 그려져 있다. 하천의 유로라는 측면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거의 동일하다. 또한 읍치의 司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도 모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도 있다. 본 지도에 里로 표현된 것은 다른 지역에서는 보통 面으로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에서는 里를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릴 정도로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나 《해동지도》에 왼쪽의 外倉 부근에 있는 山田里가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는 산전리가 적혀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이며, 필사 과정에서 약간씩 변화가 발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도 위쪽에 있는 玉島가 《해동지도》에 玉浦로 되어 있는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잘못 옮긴 것으로 생각된다. 낙동강은 위쪽의 星州界에서 들어와 왼쪽 아래의 昌寧界로 빠져나간다. 그러나 위쪽의 하폭이 더 넓게 되어 있어 상류와 하류의 구분이 어렵게 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하류가 상류보다 넓게 그려져 있다. 오른쪽 아래의 淸道界에서 들어오는 하천은 현재의 차천이다. 이 하천은 낙동강에 비하면 아주 작은 하천임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의 표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기봉)

  • 현풍현(玄風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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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현풍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세로(남북)가 더 길게 되어 있고, 읍치가 상대적으로 확대되어 그려져 있다. 하천의 유로라는 측면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거의 동일하다. 또한 읍치의 司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도 모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도 있다. 본 지도에 里로 표현된 것은 다른 지역에서는 보통 面으로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에서는 里를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릴 정도로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나 《해동지도》에 왼쪽의 外倉 부근에 있는 山田里가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는 산전리가 적혀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이며, 필사 과정에서 약간씩 변화가 발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도 위쪽에 있는 玉島가 《해동지도》에 玉浦로 되어 있는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잘못 옮긴 것으로 생각된다. 낙동강은 위쪽의 星州界에서 들어와 왼쪽 아래의 昌寧界로 빠져나간다. 그러나 위쪽의 하폭이 더 넓게 되어 있어 상류와 하류의 구분이 어렵게 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하류가 상류보다 넓게 그려져 있다. 오른쪽 아래의 淸道界에서 들어오는 하천은 현재의 차천이다. 이 하천은 낙동강에 비하면 아주 작은 하천임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의 표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기봉)

  • 흥해군(興海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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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흥해군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는 동쪽을 위로 한 반면에 본 지도는 북쪽을 위로 그렸다. 또한 본 지도가 읍치를 상대적으로 크게 그렸다. 본 지도에 있는 지명 중 《해동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은 鄕廳, 曲江, 鳳林浦이다. 다만 위쪽의 星山은 《해동지도》에 星峴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천의 유로나 해안선의 굴곡은 전반적으로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다른 곳이 몇 군데 있는데, 왼쪽 위의 하천이 대표적이다. 이 부분은 현재의 곡강천 상류로서 본 지도와 달리 《해동지도》에는 끝이 발원지인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慶州界가 2개 모두 더 안쪽에 표시되어 있고, 그 왼쪽의 산에는 飛鶴山의 명칭이 적혀 있다. 비학산은 현재 신광면 동쪽에 있는 것으로 지도 제작 당시에는 경주의 땅이었다. 비학산을 기준으로 보면 慶州界의 표시와 곡강천의 표현은 《해동지도》가 올바르다. 아마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하천에 대한 이해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자의적으로 잘못 고친 것이 아닌가 한다. 왼쪽 禱陰山 아래쪽 하천에 대한 표현도 마찬가지이다. 이 하천은 형산강의 지류인 기계천으로 발원지는 도음산이 아니라 훨씬 서북쪽에 있다. 본 지도와 달리 《해동지도》에는 기계천의 끝이 다른 지역에서 흘러오는 형태로 그려져 있어 사실에 가깝게 되어 있다. 面의 위치 중 오른쪽 아래에 적혀 있는 東上面이 《해동지도》에는 牛峴 부근에 표시되어 있다. 실제와 부합되는 것은 《해동지도》이기 때문에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잘못 옮긴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흥해군(興海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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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흥해군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는 동쪽을 위로 한 반면에 본 지도는 북쪽을 위로 그렸다. 또한 본 지도가 읍치를 상대적으로 크게 그렸다. 본 지도에 있는 지명 중 《해동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은 鄕廳, 曲江, 鳳林浦이다. 다만 위쪽의 星山은 《해동지도》에 星峴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천의 유로나 해안선의 굴곡은 전반적으로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다른 곳이 몇 군데 있는데, 왼쪽 위의 하천이 대표적이다. 이 부분은 현재의 곡강천 상류로서 본 지도와 달리 《해동지도》에는 끝이 발원지인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慶州界가 2개 모두 더 안쪽에 표시되어 있고, 그 왼쪽의 산에는 飛鶴山의 명칭이 적혀 있다. 비학산은 현재 신광면 동쪽에 있는 것으로 지도 제작 당시에는 경주의 땅이었다. 비학산을 기준으로 보면 慶州界의 표시와 곡강천의 표현은 《해동지도》가 올바르다. 아마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하천에 대한 이해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자의적으로 잘못 고친 것이 아닌가 한다. 왼쪽 禱陰山 아래쪽 하천에 대한 표현도 마찬가지이다. 이 하천은 형산강의 지류인 기계천으로 발원지는 도음산이 아니라 훨씬 서북쪽에 있다. 본 지도와 달리 《해동지도》에는 기계천의 끝이 다른 지역에서 흘러오는 형태로 그려져 있어 사실에 가깝게 되어 있다. 面의 위치 중 오른쪽 아래에 적혀 있는 東上面이 《해동지도》에는 牛峴 부근에 표시되어 있다. 실제와 부합되는 것은 《해동지도》이기 때문에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잘못 옮긴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가평군(加平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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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가평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지도 왼쪽에 春川界를 春山界로, 加平川을 加平界로 잘못 적었다는 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가평군 지도는 표현 방식이나 일부 내용에서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하여 상호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본 지도와 《광여도》가 서남쪽을 위로 향해 그린 반면 《해동지도》는 읍치로 뻗은 산줄기가 오는 방향인 正西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따라서 본 지도를 왼쪽으로 90도 정도 돌리면 《해동지도》의 것과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동일해 진다. 『여지도서』의 가평군 지도는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좀 다르기는 하지만 서남쪽을 위로 향해 그린 점은 동일하다. 왜 서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는지 분명하지는 않으나 王室의 胎가 묻힌 胎峯이 같은 방향에 있는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은가 추정된다. 왼쪽의 昭陽江下流라고 적혀 있는 부분에서 들어와 오른쪽 위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북한강이다. 실제로는 북한강의 굴곡이 본 지도보다 훨씬 많이 형성되어 있다. 아래쪽 오른쪽에는 永平界가 巨林川 상류에 적혀 있다. 현재의 가평천 상류에 있는 북면의 적목리 부근이 영평 땅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 공주목(公州牧)(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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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공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동일하다. 내용적으로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공주목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현재 公山城이라 부르는 雙樹山城의 명칭 위치가 《광여도》보다는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또한 읍치 오른쪽 아래의 月城山烽은 《광여도》에는 없지만 《해동지도》에는 있다. 그 오른쪽의 巢鶴島는 《광여도》에 巢鶴山으로 나오지만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나온다. 쌍수산성 오른쪽의 廣程驛도 《광여도》에는 廣亭驛으로 나오지만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나온다. 그러나 광정역 오른쪽의 登高山은 《광여도》와 《해동지도》 모두 高登山으로, 왼쪽 아래의 淸林寺는 靑林寺로 나온다.  본 지도의 주기 내용은 《해동지도》가 아니라 《광여도》와 동일하다. 《해동지도》는 표현 방법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나 내용이 《광여도》나 본 지도와 비슷하여 세 지도가 상호 관련성이 깊다고 할 수 있다. 정보가 가장 많이 밀집되어 있는 읍치 지역을 다른 지역보다 대축척으로 그렸다. 따라서 읍치 지역과 다른 지역의 축척이 다르며, 錦江 역시 읍치 부분이 지나치게 크게 묘사되어 있다. 조선시대에 錦江은 본 지도에 표시된 부분만 지칭하던 명칭이었는데, 일제시대 이후 본류 전체를 지칭하는 명칭으로 변하였다. (이기봉)

  • 고부군(古阜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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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고부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에는 하천의 하류를 2개의 실선으로, 상류를 1개의 실선으로 그려 구분해주고 있다. 그 구분 기준이 분명하지는 않으나 밀물 때 바닷물이 들어오는 구간을 2개의 실선으로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본 지도에도 일부 하류 구간이 구별되나 《광여도》에 비하면 구별 정도가 약하다. 특히 흥덕의 땅을 넘어가 있는 월경지인 왼쪽 아래의 富安面의 하천 표시가 애매하다. 부안면은 현재 곰소만과 접해 있어 본 지도에 하천으로 표현된 부분의 실제 넓이는 다른 하천보다 훨씬 넓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고을 위쪽의 하천 표시도 오해를 일으키도록 그려져 있다. 가장 위쪽의 하천은 현재의 동진강이다. 동진강의 본류는 伐木面 위쪽의 泰仁 방면에서 흘러들어온다. 오른쪽에 그려진 하천은 동진강의 지류인 현재의 정읍천일 뿐이다. 본 지도는 확대 과장된 읍치를 산줄기와 물줄기가 타원형으로 감싼 형태로 그렸다. 이것은 읍치의 풍수적 명당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것일 뿐이다. 읍치 오른쪽의 정읍천 뿐만 아니라 왼쪽의 현 고부천 역시 실제로는 남쪽의 정읍과 흥덕에서 흘러들어온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고부군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가 본 지도와 거의 비슷하다. (이기봉)

  • 개령현(開寧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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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개령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다. 이로 인해 하천과 산줄기의 흐름이 약간 달라졌지만 전체적으로는 비슷하다. 왼쪽의 金山界에서 흘러와 오른쪽 善山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감천이다. 왼쪽 위의 金山界부터 흘러와 감천에 합류되는 하천은 아천이다. 감천이 아천보다 훨씬 규모가 크지만 본 지도에서는 이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그렸다. 반면에 《해동지도》에는 감천을 아천보다 훨씬 굵게 그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본 지도에 수록된 읍치 이외의 지명 중 《해동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은 오른쪽 아래의 牙浦面이다. 그러나 원래부터 《해동지도》에 아포면이 없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본 지도의 아포면 위치에 《해동지도》에 지운 흔적도 보이기 때문이다. 읍치의 건물 명칭 중 《해동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은 다른 자료를 통해 보충한 것으로 생각된다. 건물의 모습 중 亭子를 초가지붕으로 그린 것이 이채롭다. 개령현은 북쪽이 좁고 남쪽은 넓다. 본 지도에서는 북쪽과 남쪽을 동일하게 그렸기 때문에 이와 같은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렇게 된 이유는 사각형의 종이 위에 고을 전체를 꽉 차게 그리려고 했기 때문이다. 다만 북쪽에는 北面 1개만이 있는데 반해 남쪽에는 면이 5개나 있어 실제 사실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이기봉)

  • 강동현(江東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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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강동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강동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 지도에는 《해동지도》에 비해 하천의 표현에서 여러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왼쪽 위의 慈山界에서 흘러와 아래쪽의 平壤界로 흘러가는 하천이 현재의 대동강 본류이다. 위쪽 가운데에서 흘러와 대동강에 합류하는 하천은 비류강이고, 아래쪽의 三登界에서 들어와 대동강에 합류하는 하천이 현재의 남강이다. 대동강 본류와 비류강, 남강의 규모는 실제로 거의 비슷하다. 《해동지도》에도 세 개의 하천은 다른 지류에 비해 훨씬 굵게 표시하여 실제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그렸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남강을 1개의 실선으로만 그려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광여도》에서는 이 부분이 사실에 가깝게 교정되어 있다. 왼쪽의 高泉面 방향에서 들어오는 하천은 대동강 본류에 비하면 아주 작은 지류에 불과하고, 다른 고을에서 흘러오지도 않는다. 《해동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쉽게 이해될 수 있도록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에는 사실과 전혀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이 점은 《광여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하천의 표현만 놓고 보면 《광여도》는 고천면 방향의 하천은 본 지도와, 남강에 대한 표현은 《해동지도》와 유사하다. 본 지도에는 남강과 읍치의 水晶川이 다른 고을에서 흘러 들어온다는 사실도 이해하기 어렵게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는 이 부분이 실제처럼 그려져 있고, 《광여도》에도 《해동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해동지도》에 표시된 정보의 일부가 생략되어 있는 반면에 읍치 지역에서는 훨씬 많은 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따라서 본 지도는 기본적으로는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읍치 지역만큼은 다른 자료를 참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갑산부(甲山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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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갑산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와 《광여도》는 기본적으로 《해동지도》의 갑산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필사 과정에서 틀린 것도 있으며, 정보의 내용을 구분하지 못한 것도 있다. 지도 위의 노란색 사각형은 《해동지도》에 읍치 이외에 건물 모양이 표시된 곳 중 鎭堡와 驛站을 바꾸어 표현한 것이다. 이 중 呼獜, 熊耳, 終浦는 역참이다. 나머지 鎭堡 표시 중 잘못된 것이 2개 발견되고 있다. 맨 위쪽의 可方 부분에는 惠山이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해동지도》에는 이 부분에 惠山과 何方金德烽 2개의 지명이 적혀 있다. 이 중 鎭의 명칭은 혜산인데 본 지도의 필사 시 何方으로 잘못 이해했으며, 더 나아가 可方으로 오기하기도 하였다. 《광여도》에서는 이 부분이 시정되어 있다. 그 아래쪽의 雲龍은 雲寵을 잘못 기록한 것이다. 이 부분은 《해동지도》에서 이미 잘못 기재되었고,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필사한 것이다. 본 지도의 주기에는 雲寵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필사 시에 조금만 검토해 봤어도 오류를 시정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광여도》에서는 이 부분도 올바르게 시정되어 있다. 위쪽의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남류하다가 왼쪽으로 흘러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압록강이다. 아래쪽에서 발원하여 북류하다가 압록강에 합류되는 하천이 현재의 허천강이다. 허천강 유역 중 黃水院이 있는 곳은 실제로는 北靑府의 영역이었다. 지도에도 終浦 아래쪽에 北靑界를 적어 넣어 이와 같은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황수원 부근에서 발원하는 부분과 그 왼쪽의 咸興界黃鐵坡에서 발원하는 부분이 실제와 다르게 되어 있다. 실제로는 황수원 부근에서 발원하는 하천이 더 길고, 발원지가 서남쪽으로 더 내려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오류가 발생한 이유는 이 하천이 발원되는 太白山의 위치가 잘못 비정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류들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고, 정확성을 추구한 《조선지도》의 북청 지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김정호의 《동여도》에서 약간 시정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이 오류가 그대로 답습되고 있다. 오른쪽 위에는 두만강의 상류 부분이 표시되어 있다. 지도에는 그 오른쪽에 茂山境이라고 되어 있지만 《조선지도》의 무산 지도나 김정호의 《동여도》를 참조해 보면 이 지역은 무산부의 땅이었다. 다만 본 지도가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동지도》가 제작될 당시에는 이곳이 갑산부 소관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본 지도책의 茂山府 지도에서 이 지역이 생략된 것도 갑산부의 영역으로 인식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해동지도》에는 갑산부와 무산부 지도 모두에 이 지역이 그려져 있다. (이기봉)

  • ▶기타
  • 성경여지전도(盛京輿地全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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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盛京은 淸나라가 현재의 北京으로 옮기기 전까지 수도로 삼았던 곳으로 현재는 瀋陽이라고 한다. 본 지도는 벽돌로 쌓았던 만리장성 동쪽으로부터 흑룡강에 이르는 지역을 그렸다. 만리장성 이동 지역에는 벽돌이 아닌 목책을 둘렀으며, 본 지도에는 이런 부분이 門과 함께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두 번째 지도에 城京이 붉은색 큰 사각형으로 그려져 있고, 중요 지점은 붉은색 작은 사각형의 기호와 함께 명칭이 적혀 있다. 목책의 안쪽과 동북부 寧古塔 부분에는 붉은색 작은 사각형이 보이지만 현재의 간도 지방에 해당되는 混同江 동쪽에는 전혀 표시되어 있지 않다. 청나라의 발상지라고 하여 사람들의 거주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백두산은 첫 번째 지도의 가운데 부분에 長白山이라고 적혀 있다. 조선에서는 보통 백두산이라고 불렀지만 청나라에서는 長白山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백두산은 조선뿐만 아니라 만주 일대에 기반을 둔 세력들에게 숭배의 대상이 되었던 산이었다. 조선과 만주의 경계선에 있었던 하천으로는 압록강과 두만강이 있다. 그런데 본 지도에는 두만강이 土門江으로 표기되어 있다. 백두산정계비에 나타난 ‘동쪽은 토문강을 경계선으로 한다(東爲土門)’는 내용에 대한 청나라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첫 번째 지도의 아래쪽에는 南海가 보이고 있다. 조선의 입장에서 보면 동해이지만 만주나 연해주의 입장에서 보면 남해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비록 조선에서 그렸지만 청나라에서 작성된 지도를 그대로 전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만주와 한반도의 북부 지역을 동시에 그린 《해동지도》의 西北彼我兩界全圖나 朝鮮女眞分界圖와 비교하면서 보면 공통점과 차이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기봉)

  • 성경여지전도(盛京輿地全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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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盛京은 淸나라가 현재의 北京으로 옮기기 전까지 수도로 삼았던 곳으로 현재는 瀋陽이라고 한다. 본 지도는 벽돌로 쌓았던 만리장성 동쪽으로부터 흑룡강에 이르는 지역을 그렸다. 만리장성 이동 지역에는 벽돌이 아닌 목책을 둘렀으며, 본 지도에는 이런 부분이 門과 함께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두 번째 지도에 城京이 붉은색 큰 사각형으로 그려져 있고, 중요 지점은 붉은색 작은 사각형의 기호와 함께 명칭이 적혀 있다. 목책의 안쪽과 동북부 寧古塔 부분에는 붉은색 작은 사각형이 보이지만 현재의 간도 지방에 해당되는 混同江 동쪽에는 전혀 표시되어 있지 않다. 청나라의 발상지라고 하여 사람들의 거주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백두산은 첫 번째 지도의 가운데 부분에 長白山이라고 적혀 있다. 조선에서는 보통 백두산이라고 불렀지만 청나라에서는 長白山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백두산은 조선뿐만 아니라 만주 일대에 기반을 둔 세력들에게 숭배의 대상이 되었던 산이었다. 조선과 만주의 경계선에 있었던 하천으로는 압록강과 두만강이 있다. 그런데 본 지도에는 두만강이 土門江으로 표기되어 있다. 백두산정계비에 나타난 ‘동쪽은 토문강을 경계선으로 한다(東爲土門)’는 내용에 대한 청나라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첫 번째 지도의 아래쪽에는 南海가 보이고 있다. 조선의 입장에서 보면 동해이지만 만주나 연해주의 입장에서 보면 남해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비록 조선에서 그렸지만 청나라에서 작성된 지도를 그대로 전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만주와 한반도의 북부 지역을 동시에 그린 《해동지도》의 西北彼我兩界全圖나 朝鮮女眞分界圖와 비교하면서 보면 공통점과 차이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기봉)

  •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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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요계관방지도를 필사한 지도이다. 요계관방지도가 제작된 배경에 대해서는 《해동지도》의 해제를 참고하면 된다. 《해동지도》를 필사하기는 했지만 동일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일단 《해동지도》의 가장 앞쪽에 있던 주기가 본 지도에는 모두 빠져 있다. 또한 각 정보마다 사용한 기호가 달라진 곳이 많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곳곳에 오류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페이지의 함경도 군현 표시가 보라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지만 3페이지에서는 연한 남색의 원으로 되어 있다. 평안도 군현은 흰색 원으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군현이 아닌 宣沙浦와 雲暗山城 등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평안도의 감영이 있었던 평양에는 平자 1개만 적혀 있기도 하다. 6페이지, 11페이지, 12페이지 등에는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고,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보인다. 이것들은 앞 페이지에서 이미 표기했던 지명을 다음 페이지에도 표기하여 명칭을 적지 않은 것들이다. 더 나아가 7페이지, 9페이지, 14페이지 등에는 《해동지도》에 있는 내용을 완전히 생략한 곳도 있다. 이밖에 9페이지에 지명이 생략된 사각형의 왼쪽 지명이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를 필사한 사람이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기봉)

  •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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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요계관방지도를 필사한 지도이다. 요계관방지도가 제작된 배경에 대해서는 《해동지도》의 해제를 참고하면 된다. 《해동지도》를 필사하기는 했지만 동일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일단 《해동지도》의 가장 앞쪽에 있던 주기가 본 지도에는 모두 빠져 있다. 또한 각 정보마다 사용한 기호가 달라진 곳이 많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곳곳에 오류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페이지의 함경도 군현 표시가 보라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지만 3페이지에서는 연한 남색의 원으로 되어 있다. 평안도 군현은 흰색 원으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군현이 아닌 宣沙浦와 雲暗山城 등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평안도의 감영이 있었던 평양에는 平자 1개만 적혀 있기도 하다. 6페이지, 11페이지, 12페이지 등에는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고,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보인다. 이것들은 앞 페이지에서 이미 표기했던 지명을 다음 페이지에도 표기하여 명칭을 적지 않은 것들이다. 더 나아가 7페이지, 9페이지, 14페이지 등에는 《해동지도》에 있는 내용을 완전히 생략한 곳도 있다. 이밖에 9페이지에 지명이 생략된 사각형의 왼쪽 지명이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를 필사한 사람이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기봉)

  •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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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요계관방지도를 필사한 지도이다. 요계관방지도가 제작된 배경에 대해서는 《해동지도》의 해제를 참고하면 된다. 《해동지도》를 필사하기는 했지만 동일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일단 《해동지도》의 가장 앞쪽에 있던 주기가 본 지도에는 모두 빠져 있다. 또한 각 정보마다 사용한 기호가 달라진 곳이 많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곳곳에 오류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페이지의 함경도 군현 표시가 보라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지만 3페이지에서는 연한 남색의 원으로 되어 있다. 평안도 군현은 흰색 원으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군현이 아닌 宣沙浦와 雲暗山城 등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평안도의 감영이 있었던 평양에는 平자 1개만 적혀 있기도 하다. 6페이지, 11페이지, 12페이지 등에는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고,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보인다. 이것들은 앞 페이지에서 이미 표기했던 지명을 다음 페이지에도 표기하여 명칭을 적지 않은 것들이다. 더 나아가 7페이지, 9페이지, 14페이지 등에는 《해동지도》에 있는 내용을 완전히 생략한 곳도 있다. 이밖에 9페이지에 지명이 생략된 사각형의 왼쪽 지명이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를 필사한 사람이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기봉)

  •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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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요계관방지도를 필사한 지도이다. 요계관방지도가 제작된 배경에 대해서는 《해동지도》의 해제를 참고하면 된다. 《해동지도》를 필사하기는 했지만 동일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일단 《해동지도》의 가장 앞쪽에 있던 주기가 본 지도에는 모두 빠져 있다. 또한 각 정보마다 사용한 기호가 달라진 곳이 많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곳곳에 오류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페이지의 함경도 군현 표시가 보라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지만 3페이지에서는 연한 남색의 원으로 되어 있다. 평안도 군현은 흰색 원으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군현이 아닌 宣沙浦와 雲暗山城 등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평안도의 감영이 있었던 평양에는 平자 1개만 적혀 있기도 하다. 6페이지, 11페이지, 12페이지 등에는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고,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보인다. 이것들은 앞 페이지에서 이미 표기했던 지명을 다음 페이지에도 표기하여 명칭을 적지 않은 것들이다. 더 나아가 7페이지, 9페이지, 14페이지 등에는 《해동지도》에 있는 내용을 완전히 생략한 곳도 있다. 이밖에 9페이지에 지명이 생략된 사각형의 왼쪽 지명이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를 필사한 사람이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기봉)

  •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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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요계관방지도를 필사한 지도이다. 요계관방지도가 제작된 배경에 대해서는 《해동지도》의 해제를 참고하면 된다. 《해동지도》를 필사하기는 했지만 동일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일단 《해동지도》의 가장 앞쪽에 있던 주기가 본 지도에는 모두 빠져 있다. 또한 각 정보마다 사용한 기호가 달라진 곳이 많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곳곳에 오류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페이지의 함경도 군현 표시가 보라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지만 3페이지에서는 연한 남색의 원으로 되어 있다. 평안도 군현은 흰색 원으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군현이 아닌 宣沙浦와 雲暗山城 등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평안도의 감영이 있었던 평양에는 平자 1개만 적혀 있기도 하다. 6페이지, 11페이지, 12페이지 등에는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고,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보인다. 이것들은 앞 페이지에서 이미 표기했던 지명을 다음 페이지에도 표기하여 명칭을 적지 않은 것들이다. 더 나아가 7페이지, 9페이지, 14페이지 등에는 《해동지도》에 있는 내용을 완전히 생략한 곳도 있다. 이밖에 9페이지에 지명이 생략된 사각형의 왼쪽 지명이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를 필사한 사람이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기봉)

  •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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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요계관방지도를 필사한 지도이다. 요계관방지도가 제작된 배경에 대해서는 《해동지도》의 해제를 참고하면 된다. 《해동지도》를 필사하기는 했지만 동일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일단 《해동지도》의 가장 앞쪽에 있던 주기가 본 지도에는 모두 빠져 있다. 또한 각 정보마다 사용한 기호가 달라진 곳이 많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곳곳에 오류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페이지의 함경도 군현 표시가 보라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지만 3페이지에서는 연한 남색의 원으로 되어 있다. 평안도 군현은 흰색 원으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군현이 아닌 宣沙浦와 雲暗山城 등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평안도의 감영이 있었던 평양에는 平자 1개만 적혀 있기도 하다. 6페이지, 11페이지, 12페이지 등에는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고,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보인다. 이것들은 앞 페이지에서 이미 표기했던 지명을 다음 페이지에도 표기하여 명칭을 적지 않은 것들이다. 더 나아가 7페이지, 9페이지, 14페이지 등에는 《해동지도》에 있는 내용을 완전히 생략한 곳도 있다. 이밖에 9페이지에 지명이 생략된 사각형의 왼쪽 지명이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를 필사한 사람이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기봉)

  •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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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요계관방지도를 필사한 지도이다. 요계관방지도가 제작된 배경에 대해서는 《해동지도》의 해제를 참고하면 된다. 《해동지도》를 필사하기는 했지만 동일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일단 《해동지도》의 가장 앞쪽에 있던 주기가 본 지도에는 모두 빠져 있다. 또한 각 정보마다 사용한 기호가 달라진 곳이 많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곳곳에 오류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페이지의 함경도 군현 표시가 보라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지만 3페이지에서는 연한 남색의 원으로 되어 있다. 평안도 군현은 흰색 원으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군현이 아닌 宣沙浦와 雲暗山城 등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평안도의 감영이 있었던 평양에는 平자 1개만 적혀 있기도 하다. 6페이지, 11페이지, 12페이지 등에는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고,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보인다. 이것들은 앞 페이지에서 이미 표기했던 지명을 다음 페이지에도 표기하여 명칭을 적지 않은 것들이다. 더 나아가 7페이지, 9페이지, 14페이지 등에는 《해동지도》에 있는 내용을 완전히 생략한 곳도 있다. 이밖에 9페이지에 지명이 생략된 사각형의 왼쪽 지명이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를 필사한 사람이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기봉)

  •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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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요계관방지도를 필사한 지도이다. 요계관방지도가 제작된 배경에 대해서는 《해동지도》의 해제를 참고하면 된다. 《해동지도》를 필사하기는 했지만 동일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일단 《해동지도》의 가장 앞쪽에 있던 주기가 본 지도에는 모두 빠져 있다. 또한 각 정보마다 사용한 기호가 달라진 곳이 많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곳곳에 오류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페이지의 함경도 군현 표시가 보라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지만 3페이지에서는 연한 남색의 원으로 되어 있다. 평안도 군현은 흰색 원으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군현이 아닌 宣沙浦와 雲暗山城 등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평안도의 감영이 있었던 평양에는 平자 1개만 적혀 있기도 하다. 6페이지, 11페이지, 12페이지 등에는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고,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보인다. 이것들은 앞 페이지에서 이미 표기했던 지명을 다음 페이지에도 표기하여 명칭을 적지 않은 것들이다. 더 나아가 7페이지, 9페이지, 14페이지 등에는 《해동지도》에 있는 내용을 완전히 생략한 곳도 있다. 이밖에 9페이지에 지명이 생략된 사각형의 왼쪽 지명이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를 필사한 사람이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기봉)

  •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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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요계관방지도를 필사한 지도이다. 요계관방지도가 제작된 배경에 대해서는 《해동지도》의 해제를 참고하면 된다. 《해동지도》를 필사하기는 했지만 동일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일단 《해동지도》의 가장 앞쪽에 있던 주기가 본 지도에는 모두 빠져 있다. 또한 각 정보마다 사용한 기호가 달라진 곳이 많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곳곳에 오류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페이지의 함경도 군현 표시가 보라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지만 3페이지에서는 연한 남색의 원으로 되어 있다. 평안도 군현은 흰색 원으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군현이 아닌 宣沙浦와 雲暗山城 등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평안도의 감영이 있었던 평양에는 平자 1개만 적혀 있기도 하다. 6페이지, 11페이지, 12페이지 등에는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고,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보인다. 이것들은 앞 페이지에서 이미 표기했던 지명을 다음 페이지에도 표기하여 명칭을 적지 않은 것들이다. 더 나아가 7페이지, 9페이지, 14페이지 등에는 《해동지도》에 있는 내용을 완전히 생략한 곳도 있다. 이밖에 9페이지에 지명이 생략된 사각형의 왼쪽 지명이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를 필사한 사람이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기봉)

  •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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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요계관방지도를 필사한 지도이다. 요계관방지도가 제작된 배경에 대해서는 《해동지도》의 해제를 참고하면 된다. 《해동지도》를 필사하기는 했지만 동일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일단 《해동지도》의 가장 앞쪽에 있던 주기가 본 지도에는 모두 빠져 있다. 또한 각 정보마다 사용한 기호가 달라진 곳이 많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곳곳에 오류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페이지의 함경도 군현 표시가 보라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지만 3페이지에서는 연한 남색의 원으로 되어 있다. 평안도 군현은 흰색 원으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군현이 아닌 宣沙浦와 雲暗山城 등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평안도의 감영이 있었던 평양에는 平자 1개만 적혀 있기도 하다. 6페이지, 11페이지, 12페이지 등에는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고,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보인다. 이것들은 앞 페이지에서 이미 표기했던 지명을 다음 페이지에도 표기하여 명칭을 적지 않은 것들이다. 더 나아가 7페이지, 9페이지, 14페이지 등에는 《해동지도》에 있는 내용을 완전히 생략한 곳도 있다. 이밖에 9페이지에 지명이 생략된 사각형의 왼쪽 지명이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를 필사한 사람이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기봉)

  •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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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요계관방지도를 필사한 지도이다. 요계관방지도가 제작된 배경에 대해서는 《해동지도》의 해제를 참고하면 된다. 《해동지도》를 필사하기는 했지만 동일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일단 《해동지도》의 가장 앞쪽에 있던 주기가 본 지도에는 모두 빠져 있다. 또한 각 정보마다 사용한 기호가 달라진 곳이 많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곳곳에 오류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페이지의 함경도 군현 표시가 보라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지만 3페이지에서는 연한 남색의 원으로 되어 있다. 평안도 군현은 흰색 원으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군현이 아닌 宣沙浦와 雲暗山城 등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평안도의 감영이 있었던 평양에는 平자 1개만 적혀 있기도 하다. 6페이지, 11페이지, 12페이지 등에는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고,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보인다. 이것들은 앞 페이지에서 이미 표기했던 지명을 다음 페이지에도 표기하여 명칭을 적지 않은 것들이다. 더 나아가 7페이지, 9페이지, 14페이지 등에는 《해동지도》에 있는 내용을 완전히 생략한 곳도 있다. 이밖에 9페이지에 지명이 생략된 사각형의 왼쪽 지명이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를 필사한 사람이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기봉)

  •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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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요계관방지도를 필사한 지도이다. 요계관방지도가 제작된 배경에 대해서는 《해동지도》의 해제를 참고하면 된다. 《해동지도》를 필사하기는 했지만 동일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일단 《해동지도》의 가장 앞쪽에 있던 주기가 본 지도에는 모두 빠져 있다. 또한 각 정보마다 사용한 기호가 달라진 곳이 많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곳곳에 오류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페이지의 함경도 군현 표시가 보라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지만 3페이지에서는 연한 남색의 원으로 되어 있다. 평안도 군현은 흰색 원으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군현이 아닌 宣沙浦와 雲暗山城 등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평안도의 감영이 있었던 평양에는 平자 1개만 적혀 있기도 하다. 6페이지, 11페이지, 12페이지 등에는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고,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보인다. 이것들은 앞 페이지에서 이미 표기했던 지명을 다음 페이지에도 표기하여 명칭을 적지 않은 것들이다. 더 나아가 7페이지, 9페이지, 14페이지 등에는 《해동지도》에 있는 내용을 완전히 생략한 곳도 있다. 이밖에 9페이지에 지명이 생략된 사각형의 왼쪽 지명이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를 필사한 사람이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기봉)

  •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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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요계관방지도를 필사한 지도이다. 요계관방지도가 제작된 배경에 대해서는 《해동지도》의 해제를 참고하면 된다. 《해동지도》를 필사하기는 했지만 동일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일단 《해동지도》의 가장 앞쪽에 있던 주기가 본 지도에는 모두 빠져 있다. 또한 각 정보마다 사용한 기호가 달라진 곳이 많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곳곳에 오류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페이지의 함경도 군현 표시가 보라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지만 3페이지에서는 연한 남색의 원으로 되어 있다. 평안도 군현은 흰색 원으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군현이 아닌 宣沙浦와 雲暗山城 등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평안도의 감영이 있었던 평양에는 平자 1개만 적혀 있기도 하다. 6페이지, 11페이지, 12페이지 등에는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고,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보인다. 이것들은 앞 페이지에서 이미 표기했던 지명을 다음 페이지에도 표기하여 명칭을 적지 않은 것들이다. 더 나아가 7페이지, 9페이지, 14페이지 등에는 《해동지도》에 있는 내용을 완전히 생략한 곳도 있다. 이밖에 9페이지에 지명이 생략된 사각형의 왼쪽 지명이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를 필사한 사람이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기봉)

  •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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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요계관방지도를 필사한 지도이다. 요계관방지도가 제작된 배경에 대해서는 《해동지도》의 해제를 참고하면 된다. 《해동지도》를 필사하기는 했지만 동일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일단 《해동지도》의 가장 앞쪽에 있던 주기가 본 지도에는 모두 빠져 있다. 또한 각 정보마다 사용한 기호가 달라진 곳이 많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곳곳에 오류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페이지의 함경도 군현 표시가 보라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지만 3페이지에서는 연한 남색의 원으로 되어 있다. 평안도 군현은 흰색 원으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군현이 아닌 宣沙浦와 雲暗山城 등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평안도의 감영이 있었던 평양에는 平자 1개만 적혀 있기도 하다. 6페이지, 11페이지, 12페이지 등에는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고,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보인다. 이것들은 앞 페이지에서 이미 표기했던 지명을 다음 페이지에도 표기하여 명칭을 적지 않은 것들이다. 더 나아가 7페이지, 9페이지, 14페이지 등에는 《해동지도》에 있는 내용을 완전히 생략한 곳도 있다. 이밖에 9페이지에 지명이 생략된 사각형의 왼쪽 지명이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를 필사한 사람이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기봉)

  •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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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요계관방지도를 필사한 지도이다. 요계관방지도가 제작된 배경에 대해서는 《해동지도》의 해제를 참고하면 된다. 《해동지도》를 필사하기는 했지만 동일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일단 《해동지도》의 가장 앞쪽에 있던 주기가 본 지도에는 모두 빠져 있다. 또한 각 정보마다 사용한 기호가 달라진 곳이 많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곳곳에 오류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페이지의 함경도 군현 표시가 보라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지만 3페이지에서는 연한 남색의 원으로 되어 있다. 평안도 군현은 흰색 원으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군현이 아닌 宣沙浦와 雲暗山城 등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평안도의 감영이 있었던 평양에는 平자 1개만 적혀 있기도 하다. 6페이지, 11페이지, 12페이지 등에는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고,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보인다. 이것들은 앞 페이지에서 이미 표기했던 지명을 다음 페이지에도 표기하여 명칭을 적지 않은 것들이다. 더 나아가 7페이지, 9페이지, 14페이지 등에는 《해동지도》에 있는 내용을 완전히 생략한 곳도 있다. 이밖에 9페이지에 지명이 생략된 사각형의 왼쪽 지명이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를 필사한 사람이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기봉)

  •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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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요계관방지도를 필사한 지도이다. 요계관방지도가 제작된 배경에 대해서는 《해동지도》의 해제를 참고하면 된다. 《해동지도》를 필사하기는 했지만 동일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일단 《해동지도》의 가장 앞쪽에 있던 주기가 본 지도에는 모두 빠져 있다. 또한 각 정보마다 사용한 기호가 달라진 곳이 많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곳곳에 오류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페이지의 함경도 군현 표시가 보라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지만 3페이지에서는 연한 남색의 원으로 되어 있다. 평안도 군현은 흰색 원으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군현이 아닌 宣沙浦와 雲暗山城 등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평안도의 감영이 있었던 평양에는 平자 1개만 적혀 있기도 하다. 6페이지, 11페이지, 12페이지 등에는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고,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보인다. 이것들은 앞 페이지에서 이미 표기했던 지명을 다음 페이지에도 표기하여 명칭을 적지 않은 것들이다. 더 나아가 7페이지, 9페이지, 14페이지 등에는 《해동지도》에 있는 내용을 완전히 생략한 곳도 있다. 이밖에 9페이지에 지명이 생략된 사각형의 왼쪽 지명이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를 필사한 사람이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기봉)

  •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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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요계관방지도를 필사한 지도이다. 요계관방지도가 제작된 배경에 대해서는 《해동지도》의 해제를 참고하면 된다. 《해동지도》를 필사하기는 했지만 동일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일단 《해동지도》의 가장 앞쪽에 있던 주기가 본 지도에는 모두 빠져 있다. 또한 각 정보마다 사용한 기호가 달라진 곳이 많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곳곳에 오류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페이지의 함경도 군현 표시가 보라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지만 3페이지에서는 연한 남색의 원으로 되어 있다. 평안도 군현은 흰색 원으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군현이 아닌 宣沙浦와 雲暗山城 등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평안도의 감영이 있었던 평양에는 平자 1개만 적혀 있기도 하다. 6페이지, 11페이지, 12페이지 등에는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고,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보인다. 이것들은 앞 페이지에서 이미 표기했던 지명을 다음 페이지에도 표기하여 명칭을 적지 않은 것들이다. 더 나아가 7페이지, 9페이지, 14페이지 등에는 《해동지도》에 있는 내용을 완전히 생략한 곳도 있다. 이밖에 9페이지에 지명이 생략된 사각형의 왼쪽 지명이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를 필사한 사람이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기봉)

  •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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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요계관방지도를 필사한 지도이다. 요계관방지도가 제작된 배경에 대해서는 《해동지도》의 해제를 참고하면 된다. 《해동지도》를 필사하기는 했지만 동일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일단 《해동지도》의 가장 앞쪽에 있던 주기가 본 지도에는 모두 빠져 있다. 또한 각 정보마다 사용한 기호가 달라진 곳이 많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곳곳에 오류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페이지의 함경도 군현 표시가 보라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지만 3페이지에서는 연한 남색의 원으로 되어 있다. 평안도 군현은 흰색 원으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군현이 아닌 宣沙浦와 雲暗山城 등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평안도의 감영이 있었던 평양에는 平자 1개만 적혀 있기도 하다. 6페이지, 11페이지, 12페이지 등에는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고,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보인다. 이것들은 앞 페이지에서 이미 표기했던 지명을 다음 페이지에도 표기하여 명칭을 적지 않은 것들이다. 더 나아가 7페이지, 9페이지, 14페이지 등에는 《해동지도》에 있는 내용을 완전히 생략한 곳도 있다. 이밖에 9페이지에 지명이 생략된 사각형의 왼쪽 지명이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를 필사한 사람이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기봉)

  • 조선여진양국경계도(朝鮮女眞兩國境界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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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조선여진양국경계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해동지도》의 朝鮮女眞分界圖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일부 사실이 잘못 표현되거나 생략된 것이 많다. 왼쪽의 압록강 하류에 마치 2개의 강줄기와 호수가 있는 것처럼 표현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의주를 지나 서해로 빠져나가는 부분을 크게 표현하고, 이곳에 많은 河中島를 그려 넣은 《해동지도》를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잘못 이해하여 그린 것으로 생각된다. 두만강 하류 부분에도 《해동지도》에는 큰 삼각주의 모양과 8개의 池가 표시되어 있다. 이 8개의 池는 일반적으로 八池라고 하는 것으로서 두만강 하류의 넓은 평지에 있다. 본 지도에서는 8개의 池는 생략하고 삼각주 모양만 그려 넣었다. 더 나아가 압록강 변에는 碧童이 2개나 표시되어 있다. 왼쪽에는 昌城을 써넣어야 올바르다. 만주 지방에는 가장 중요한 거점인 寧古塔과 烏喇를 비롯하여 驛站은 《해동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驛路와 각종 주기들이 생략되었다. 《광여도》에서는 본 지도의 오류들이 대부분 수정되었고, 《해동지도》에는 있으나 본 지도에는 없는 주기들도 모두 기입되어 있다. 다만 전체적인 산줄기와 물줄기의 모습은 《해동지도》가 아니라 본 지도와 거의 동일하여 상호 필사 관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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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화부(江華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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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강화부 지도와 구도 및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오른쪽 여백에 도성에서 강화까지 오는데 걸리는 날짜가, 위쪽에 강화부의 異稱들이 적혀 있는 것이 다른 점이다. 지도의 명칭은 江華府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京畿水營이 있었던 喬同府를 함께 그렸다. 특이하게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왼쪽 아래에 한강에 대해 이 지역에서 부르던 祖江이 적혀 있다. 성곽은 이중의 실선으로 그렸다. 다만 강화도의 서해안 즉, 이 지도의 왼쪽 부분에만 해안가에 성곽이 축조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섬 전체에 성곽이 축조되어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강화도의 해안가에는 종3품의 僉使, 종4품의 萬戶, 종9품의 別將 등 파견된 무관의 직급에 따라 鎭, 戶, 別 등으로 구분된 鎭堡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天登寺가 있는 곳은 현재의 정족산성이며, 月串鎭 맞은편은 文殊山城이다. 강화도와 육지 사이의 수로는 삼남의 稅穀船이 서울로 가기 위해 꼭 통과해야 하는 鹽河이다. 지도에도 위쪽에는 三南往來水口, 아래쪽에는 京城往來水口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바다에는 밀물(潮進)과 썰물(潮退)에 따라 개벌이 바뀌는 상황이 상대적으로 자세히 적혀 있다. 또한 각 섬에는 江 또는 江華로 표시된 江華府와 本營 또는 水營으로 표시된 喬同府 중 어디에 속해 있는가가 자세히 적혀 있다. 이 지역의 섬들이 거리나 방향에 상관없이 속해 있는 고을이 달랐기 때문이다. 강화도 오른쪽의 섬은 현재의 석모도이다. 현재는 간척 사업에 의해 鷹岩島와 그 위쪽의 섬도 모두 연결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도 이곳에 간척사업이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이 지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水營屬新官筒’에서 ‘筒’은 주로 간척지에서 저수지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용어이다. 그 왼쪽에 호수처럼 표시된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며, 屯田은 이러한 간척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 갯벌은 주로 소금의 생산지로 이용되었다. 塩盆과 塩釜는 그러한 煮鹽 생산지를 의미한다. (이기봉)

  • 괴산군(槐山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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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괴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위쪽의 鳳鶴山과 普光山의 위치가 《광여도》와 다르게 표시되어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도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이 《해동지도》는 鳳鶴山과 普光山의 위치가 본 지도처럼 표시되어 있다. 그 오른쪽의 日所山은 《광여도》에는 月所山으로, 《해동지도》에는 目所山으로 나온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의 괴산군 산천 항목에는 目所山으로 나오고 있어 《해동지도》가 정확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 뒤쪽의 산줄기가 서쪽에서 내려왔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아래쪽에 槐江으로 표시된 것은 현재의 달천이다. 달천은 淸州界와 七寶山 사이의 남쪽(왼쪽)에서 흘러 들어온다. 그러나 본 지도의 표현만 놓고 보면 마치 칠보산 근처가 발원지인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 이 점은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읍치 지역을 다른 지역보다 대축척으로 그렸기 때문에 거리가 지도 전체적으로 동일하지 않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한데, 《해동지도》와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이기봉)

  • 고산현(高山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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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고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주기에 적혀 있으면서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面이 西面과 雲北面, 雲東面이며,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표현 양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고산현 지도에는 본 지도의 雲化面 부분에 운북면이 기록되어 있으며, 縣內面의 아래쪽 하천 부분에 西面이 적혀 있다. 또한 전체적인 구도가 역시 비슷한 『여지도서』의 고산현 지도에는 운북면의 오른쪽에 雲東面이 적혀 있다. 따라서 《광여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잘못 필사하면서 오류를 범했고, 《해동지도》의 제작자 역시 일부 잘못을 범한 것으로 생각된다. 위쪽에서 아래로 흐르는 하천은 현재의 고산천으로 기본적으로 동북쪽에서 흘러와 서남쪽으로 빠져나간다. 위쪽의 하천은 현재의 논산천 상류로서 동남쪽에서 흘러와 서북쪽으로 흘러간다. 고산천은 향교 부근에서 鎭安界 방향으로 하나의 지류가 더 그려져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곳에 東面을 위치시키고, 동면 부분에 운동면을 써넣어야 실제와 부합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호남지도》의 고산현 지도에서는 이 부분이 실제처럼 그려져 있고,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해동지도》의 제작자가 하천 하나를 잘못 그림에 의해 面의 위치 표시가 잘못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광여도》와 본 지도의 필사 시 이러한 오류를 시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혼란스런 필사를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거제부(巨濟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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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거제부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거의 다 《해동지도》에 나오며, 하천의 표시도 길이나 유로에서 약간 차이가 나지만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와 《해동지도》는 필사 관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비해 古縣城이나 玉浦鎭 등이 훨씬 크게 적혀 있다. 이것은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은 종이 위에 지도를 그려 크기를 크게 하지 않으면 구별하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해동지도》에 비해 해안선도 단조로워졌다. 또한 《해동지도》에 어느 정도 고려되었던 섬의 크기 표현도 본 지도에서는 많이 약화되었다. 이것 역시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은 종이 위에 그렸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지도의 크기가 작기 때문에 《해동지도》에 표시한 작은 섬들을 동일한 크기로 축소하면 거의 점에 가까워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지도 위에는 4개의 면이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는 반면에 주기에는 2개 밖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반면에 《해동지도》의 지도와 주기 모두 6개의 面이 표시되어 있다. 이것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지도와 주기 모두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작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기봉)

  • 강령현(康翎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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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강령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양식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강령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러 지명이 생략되었으며, 잘못 필사한 곳도 있다. 왼쪽 아래의 臥龍司僕屯倉은 《해동지도》에 掛岩司僕屯倉으로, 그 왼쪽의 卵司僕屯倉은 島卵司僕屯倉으로 나온다. 읍치 아래쪽의 王灘浦는 《해동지도》에 王灘橋로 나온다. 이런 부분들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게 따져가며 필사한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광여도》에는 왼쪽 아래에 잘못되거나 생략되어 있던 여러 부분이 교정되고 보충되었다. 예를 들면 司僕牧場內 오른쪽에 木柵이 그려져 있고, 臥龍이 臥岩으로, 卵이 島卵으로 교정되어 있다. 또한 그 아래쪽에 登山串이 추가되고, 왼쪽의 큰 섬에 巡威島와 登山鎭이 첨가되어 있다. 이런 지명들은 모두 《해동지도》에도 그대로 나오는 것이다. 본 지도에는 《해동지도》에 있던 도로가 모두 생략되고, 문자로만 기록되어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쓰고 있다. 南面과 순위도 부분은 실제로는 강령현 서남쪽으로 길게 뻗어 있다. 본 지도에서 실제와 가장 다른 곳이 바로 이 부분이며,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어 고을 전체를 담으려고 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 순위도 부근에는 다른 섬에 비해 극히 작은 작은 돌섬들이 그려져 있다. 이것은 이 섬들이 이 지역의 水路에서 중요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이 돌섬 사이를 지나는 수로가 그려져 있다. (이기봉)

  • 강릉부(江陵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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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강릉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나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강릉부 지도에 비해 틀리거나 생략된 지명이 있다. 맨 위쪽의 雪來山은 雪岳來(설악산으로부터 옴)을, 그 아래의 新田面은 新里面을, 아래쪽의 三涉界는 三陟界를 잘못 기록한 것이다. 《광여도》에는 이런 지명들이 올바르게 되어 있지만 《광여도》에도 오른쪽 아래의 望祥村이 望洋村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다. 왼쪽 아래의 大和面에는 《해동지도》에 大和驛이란 문구와 面 2개가 표시되어 있다. 따라서 면과 역을 구별해서 표시한 본 지도에서는 대화역과 대화면을 따로 적어놓아야 하는데, 대화면만 적어놓고 있다. 《광여도》에서는 대화역에 보라색 사각형을 표시한 다음 面은 한 글자만 표시하고 노란색 사각형을 그려 넣지 않았다. 《광여도》 역시 《해동지도》의 내용을 확실히 이해하고 그린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강릉부는 현재의 평창읍과 미탄면 대부분을 제외한 평창군, 인제군의 내면, 정선군의 임계면 등을 포함하여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었다. 또한 남북보다 동서가 약 2배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런 강릉부를 세로로 긴 사각형 안에 맞추어 그리다보니까 오히려 남북이 동서보다 긴 모양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동해안과 大關嶺 사이의 폭보다 대관령에서 橫城界까지의 거리가 실제로는 3배에 가까운데 본 지도에는 거의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이로 인해 본 지도만으로는 강릉부의 실제 형태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동해안에 있는 香湖, 鏡湖, 楓湖 등의 석호도 해안가에 붙어있는데 본 지도에는 마치 내륙의 호수인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왼쪽 위의 內面 부근에 春川界가 적혀 있는 것은 이곳에 있었던 춘천의 월경지인 기린면과 경계를 맞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 ▶전라도
  • 강진현(康津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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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강진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兵營 왼쪽의 烈村面과 읍치 오른쪽의 軍需面이 《광여도》에는 각각 烈樹面과 軍營面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의 주기에는 列樹面과 軍營面으로 되어 있고, 《광여도》의 주기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광여도》를 필사하면서 誤記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강진현 지도에는 지도와 주기 모두 본 지도의 주기처럼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의 주기에는 縣內面이 있지만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광여도》 역시 동일하게 되어 있는데, 《해동지도》에는 지도와 주기에 모두 현내면이 표시되어 있다. 이 점은 《광여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추정되며, 본 지도의 필사자 역시 《광여도》의 내용을 교정 없이 그대로 따른 것으로 생각된다. 강진현에 있었던 全羅道兵馬節度使營인 兵營과 邑治 및 鎭堡를 강조하여 그렸다. 고을은 전체적으로 동서보다 남북이 훨씬 길지만 지도에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그렸다. 특히 바다에서 읍치까지의 거리가 읍치에서부터 북쪽 靈岩界까지의 거리와 거의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훨씬 짧은 것처럼 그렸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동서나 남북의 실제 폭에 상관없이 고을 전체를 꽉 차게 그렸기 때문이다. 바다에 있는 섬 역시 실제의 크기가 약간 고려되기는 했지만 위치나 거리는 실제를 반영하고 있지 않다. 예를 들어 靑山島는 薪智島보다 해안가에서 몇 배나 멀리 떨어져 있다. (이기봉)

  • 강진현(康津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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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강진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兵營 왼쪽의 烈村面과 읍치 오른쪽의 軍需面이 《광여도》에는 각각 烈樹面과 軍營面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의 주기에는 列樹面과 軍營面으로 되어 있고, 《광여도》의 주기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광여도》를 필사하면서 誤記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강진현 지도에는 지도와 주기 모두 본 지도의 주기처럼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의 주기에는 縣內面이 있지만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광여도》 역시 동일하게 되어 있는데, 《해동지도》에는 지도와 주기에 모두 현내면이 표시되어 있다. 이 점은 《광여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추정되며, 본 지도의 필사자 역시 《광여도》의 내용을 교정 없이 그대로 따른 것으로 생각된다. 강진현에 있었던 全羅道兵馬節度使營인 兵營과 邑治 및 鎭堡를 강조하여 그렸다. 고을은 전체적으로 동서보다 남북이 훨씬 길지만 지도에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그렸다. 특히 바다에서 읍치까지의 거리가 읍치에서부터 북쪽 靈岩界까지의 거리와 거의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훨씬 짧은 것처럼 그렸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동서나 남북의 실제 폭에 상관없이 고을 전체를 꽉 차게 그렸기 때문이다. 바다에 있는 섬 역시 실제의 크기가 약간 고려되기는 했지만 위치나 거리는 실제를 반영하고 있지 않다. 예를 들어 靑山島는 薪智島보다 해안가에서 몇 배나 멀리 떨어져 있다. (이기봉)

  • 고부군(古阜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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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고부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에는 하천의 하류를 2개의 실선으로, 상류를 1개의 실선으로 그려 구분해주고 있다. 그 구분 기준이 분명하지는 않으나 밀물 때 바닷물이 들어오는 구간을 2개의 실선으로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본 지도에도 일부 하류 구간이 구별되나 《광여도》에 비하면 구별 정도가 약하다. 특히 흥덕의 땅을 넘어가 있는 월경지인 왼쪽 아래의 富安面의 하천 표시가 애매하다. 부안면은 현재 곰소만과 접해 있어 본 지도에 하천으로 표현된 부분의 실제 넓이는 다른 하천보다 훨씬 넓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고을 위쪽의 하천 표시도 오해를 일으키도록 그려져 있다. 가장 위쪽의 하천은 현재의 동진강이다. 동진강의 본류는 伐木面 위쪽의 泰仁 방면에서 흘러들어온다. 오른쪽에 그려진 하천은 동진강의 지류인 현재의 정읍천일 뿐이다. 본 지도는 확대 과장된 읍치를 산줄기와 물줄기가 타원형으로 감싼 형태로 그렸다. 이것은 읍치의 풍수적 명당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것일 뿐이다. 읍치 오른쪽의 정읍천 뿐만 아니라 왼쪽의 현 고부천 역시 실제로는 남쪽의 정읍과 흥덕에서 흘러들어온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고부군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가 본 지도와 거의 비슷하다. (이기봉)

  • 고부군(古阜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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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고부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에는 하천의 하류를 2개의 실선으로, 상류를 1개의 실선으로 그려 구분해주고 있다. 그 구분 기준이 분명하지는 않으나 밀물 때 바닷물이 들어오는 구간을 2개의 실선으로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본 지도에도 일부 하류 구간이 구별되나 《광여도》에 비하면 구별 정도가 약하다. 특히 흥덕의 땅을 넘어가 있는 월경지인 왼쪽 아래의 富安面의 하천 표시가 애매하다. 부안면은 현재 곰소만과 접해 있어 본 지도에 하천으로 표현된 부분의 실제 넓이는 다른 하천보다 훨씬 넓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고을 위쪽의 하천 표시도 오해를 일으키도록 그려져 있다. 가장 위쪽의 하천은 현재의 동진강이다. 동진강의 본류는 伐木面 위쪽의 泰仁 방면에서 흘러들어온다. 오른쪽에 그려진 하천은 동진강의 지류인 현재의 정읍천일 뿐이다. 본 지도는 확대 과장된 읍치를 산줄기와 물줄기가 타원형으로 감싼 형태로 그렸다. 이것은 읍치의 풍수적 명당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것일 뿐이다. 읍치 오른쪽의 정읍천 뿐만 아니라 왼쪽의 현 고부천 역시 실제로는 남쪽의 정읍과 흥덕에서 흘러들어온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고부군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가 본 지도와 거의 비슷하다. (이기봉)

  • 고산현(高山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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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고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주기에 적혀 있으면서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面이 西面과 雲北面, 雲東面이며,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표현 양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고산현 지도에는 본 지도의 雲化面 부분에 운북면이 기록되어 있으며, 縣內面의 아래쪽 하천 부분에 西面이 적혀 있다. 또한 전체적인 구도가 역시 비슷한 『여지도서』의 고산현 지도에는 운북면의 오른쪽에 雲東面이 적혀 있다. 따라서 《광여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잘못 필사하면서 오류를 범했고, 《해동지도》의 제작자 역시 일부 잘못을 범한 것으로 생각된다. 위쪽에서 아래로 흐르는 하천은 현재의 고산천으로 기본적으로 동북쪽에서 흘러와 서남쪽으로 빠져나간다. 위쪽의 하천은 현재의 논산천 상류로서 동남쪽에서 흘러와 서북쪽으로 흘러간다. 고산천은 향교 부근에서 鎭安界 방향으로 하나의 지류가 더 그려져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곳에 東面을 위치시키고, 동면 부분에 운동면을 써넣어야 실제와 부합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호남지도》의 고산현 지도에서는 이 부분이 실제처럼 그려져 있고,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해동지도》의 제작자가 하천 하나를 잘못 그림에 의해 面의 위치 표시가 잘못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광여도》와 본 지도의 필사 시 이러한 오류를 시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혼란스런 필사를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고산현(高山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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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고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주기에 적혀 있으면서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面이 西面과 雲北面, 雲東面이며,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표현 양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고산현 지도에는 본 지도의 雲化面 부분에 운북면이 기록되어 있으며, 縣內面의 아래쪽 하천 부분에 西面이 적혀 있다. 또한 전체적인 구도가 역시 비슷한 『여지도서』의 고산현 지도에는 운북면의 오른쪽에 雲東面이 적혀 있다. 따라서 《광여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잘못 필사하면서 오류를 범했고, 《해동지도》의 제작자 역시 일부 잘못을 범한 것으로 생각된다. 위쪽에서 아래로 흐르는 하천은 현재의 고산천으로 기본적으로 동북쪽에서 흘러와 서남쪽으로 빠져나간다. 위쪽의 하천은 현재의 논산천 상류로서 동남쪽에서 흘러와 서북쪽으로 흘러간다. 고산천은 향교 부근에서 鎭安界 방향으로 하나의 지류가 더 그려져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곳에 東面을 위치시키고, 동면 부분에 운동면을 써넣어야 실제와 부합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호남지도》의 고산현 지도에서는 이 부분이 실제처럼 그려져 있고,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해동지도》의 제작자가 하천 하나를 잘못 그림에 의해 面의 위치 표시가 잘못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광여도》와 본 지도의 필사 시 이러한 오류를 시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혼란스런 필사를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고창현(高敞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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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고창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유로의 표시에서 일부 차이가 나고 있다. 《광여도》에는 왼쪽의 水谷面에서 내려가는 하천이 표시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는 茂長界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고창현 지도에는 《광여도》처럼 되어 있다. 따라서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잘못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大雅面 위쪽의 하천을 2개의 실선으로 표시한 것도 《광여도》와 다른 점이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몇 개의 지류가 합해져 나가는 부분을 구분하기 위해 스스로 고안한 방법으로 생각된다. 지도에 나타난 하천은 현재 인천강이라 부르고 있으며, 일부 지류가 왼쪽의 茂長界 방면에서 흘러 들어온다. 인천강은 남쪽에서 발원하여 북류하기 때문에 본 지도는 기본적으로 북쪽을 위로 그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읍치 오른쪽을 흐르는 하천의 모습이 실제와 다르게 되어 있다. 이 하천은 현재 고창천이라고 부르는데, 대부분 동쪽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흘러간다. 川北面과 川南面의 기준이 된 ‘川’도 이 하천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천북면이 이 하천의 오른쪽에 배치된 것은 합당하지만 읍치의 동남쪽에 있는 것처럼 되어 명칭과 어울리지 않는다. 만약 고창천을 동쪽에서 발원하여 서류하는 것으로 그리면 명칭에도 합당하게 된다. 천북면은 읍치에서 보았을 때 북쪽과 동쪽 및 동북쪽에 걸쳐 있었다. 이러한 오해가 발생하게 된 이유로는 첫째,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양을 사각형에 맞추었다는 점 둘째, 읍치를 확대 과장해서 그리면서 읍치 주위의 하천이 지나치게 크게 그려졌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이기봉)

  • 고창현(高敞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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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고창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유로의 표시에서 일부 차이가 나고 있다. 《광여도》에는 왼쪽의 水谷面에서 내려가는 하천이 표시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는 茂長界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고창현 지도에는 《광여도》처럼 되어 있다. 따라서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잘못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大雅面 위쪽의 하천을 2개의 실선으로 표시한 것도 《광여도》와 다른 점이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몇 개의 지류가 합해져 나가는 부분을 구분하기 위해 스스로 고안한 방법으로 생각된다. 지도에 나타난 하천은 현재 인천강이라 부르고 있으며, 일부 지류가 왼쪽의 茂長界 방면에서 흘러 들어온다. 인천강은 남쪽에서 발원하여 북류하기 때문에 본 지도는 기본적으로 북쪽을 위로 그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읍치 오른쪽을 흐르는 하천의 모습이 실제와 다르게 되어 있다. 이 하천은 현재 고창천이라고 부르는데, 대부분 동쪽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흘러간다. 川北面과 川南面의 기준이 된 ‘川’도 이 하천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천북면이 이 하천의 오른쪽에 배치된 것은 합당하지만 읍치의 동남쪽에 있는 것처럼 되어 명칭과 어울리지 않는다. 만약 고창천을 동쪽에서 발원하여 서류하는 것으로 그리면 명칭에도 합당하게 된다. 천북면은 읍치에서 보았을 때 북쪽과 동쪽 및 동북쪽에 걸쳐 있었다. 이러한 오해가 발생하게 된 이유로는 첫째,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양을 사각형에 맞추었다는 점 둘째, 읍치를 확대 과장해서 그리면서 읍치 주위의 하천이 지나치게 크게 그려졌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이기봉)

  • 곡성현(谷城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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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곡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왼쪽 위에서 들어와 오른쪽 求禮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섬진강이다. 왼쪽 아래의 同福界에서 들어와 섬진강에 합류하는 하천은 현재의 보성강이다. 이 중 섬진강의 유로가 실제와 상당히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섬진강은 서북쪽에서 들어와 약간만 흐르다가 거의 남쪽으로 빠져나간다. 또한 읍치 아래를 흐르는 현재의 곡성천이 고을을 가로지르는 보성강보다 훨씬 짧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이 잘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런 문제점은 사각형의 종이에 고을의 모양을 맞추려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쪽 부분의 동서 폭은 남쪽 부분보다 훨씬 좁다. 曳山面 부근에서 南原界로부터 흘러 들어오는 요천이 섬진강에 합류되고 있지만 본 지도에서는 이런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일반적으로 해당 고을의 것만 그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그 밖의 부분에서는 실제와 상당히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와 『여지도서』의 곡성현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여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곡성현(谷城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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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곡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왼쪽 위에서 들어와 오른쪽 求禮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섬진강이다. 왼쪽 아래의 同福界에서 들어와 섬진강에 합류하는 하천은 현재의 보성강이다. 이 중 섬진강의 유로가 실제와 상당히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섬진강은 서북쪽에서 들어와 약간만 흐르다가 거의 남쪽으로 빠져나간다. 또한 읍치 아래를 흐르는 현재의 곡성천이 고을을 가로지르는 보성강보다 훨씬 짧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이 잘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런 문제점은 사각형의 종이에 고을의 모양을 맞추려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쪽 부분의 동서 폭은 남쪽 부분보다 훨씬 좁다. 曳山面 부근에서 南原界로부터 흘러 들어오는 요천이 섬진강에 합류되고 있지만 본 지도에서는 이런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일반적으로 해당 고을의 것만 그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그 밖의 부분에서는 실제와 상당히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와 『여지도서』의 곡성현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여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광양현(光陽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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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광양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에 있지만 본 지도에 없는 지명이 있다. 오른쪽 위의 津下面 부근에 月浦面이, 玉谷院 오른쪽에 玉谷面이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반대로 오른쪽의 巡視峙와 外倉은 《광여도》에 없는 지명이다. 표현 양식이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광양현 지도에는 이 지명이 표시되어 있다. 본 지도는 《광여도》를 필사하면서 《해동지도》를 일부 참조한 것으로 생각된다. 왼쪽 위에서 들어와 오른쪽 아래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섬진강이다. 섬진강은 본 고을의 동북쪽에서 남남동쪽으로 흘러간다. 따라서 본 지도에 서북쪽에서 들어와 西流하다가 南流하는 듯한 섬진강의 표현은 실제와 다른 부분이다. 이런 문제점이 발생한 원인은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고을의 모습을 맞추어 그렸기 때문이다. 광양현은 위쪽의 白雲山이 있는 부분의 동서가 아래쪽보다 폭이 좁다. 이런 부분을 아래쪽과 동일한 폭으로 그리다보니 넓어지게 되고, 섬진강 역시 이 부분을 상당히 길게 표현한 것이다. 섬진강 이외의 작은 하천들이 거의 정남 방향으로 남류하는 모습은 실제에 가깝다.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여지도서』의 광양현 지도는 사각형의 종이 위에 남북보다 동서를 훨씬 길게 그렸다. 이에 따라 섬진강의 북쪽 부분은 더욱 길게 표현되는 문제가 확대되고 있다. (이기봉)

  • 광양현(光陽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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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광양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에 있지만 본 지도에 없는 지명이 있다. 오른쪽 위의 津下面 부근에 月浦面이, 玉谷院 오른쪽에 玉谷面이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반대로 오른쪽의 巡視峙와 外倉은 《광여도》에 없는 지명이다. 표현 양식이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광양현 지도에는 이 지명이 표시되어 있다. 본 지도는 《광여도》를 필사하면서 《해동지도》를 일부 참조한 것으로 생각된다. 왼쪽 위에서 들어와 오른쪽 아래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섬진강이다. 섬진강은 본 고을의 동북쪽에서 남남동쪽으로 흘러간다. 따라서 본 지도에 서북쪽에서 들어와 西流하다가 南流하는 듯한 섬진강의 표현은 실제와 다른 부분이다. 이런 문제점이 발생한 원인은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고을의 모습을 맞추어 그렸기 때문이다. 광양현은 위쪽의 白雲山이 있는 부분의 동서가 아래쪽보다 폭이 좁다. 이런 부분을 아래쪽과 동일한 폭으로 그리다보니 넓어지게 되고, 섬진강 역시 이 부분을 상당히 길게 표현한 것이다. 섬진강 이외의 작은 하천들이 거의 정남 방향으로 남류하는 모습은 실제에 가깝다.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여지도서』의 광양현 지도는 사각형의 종이 위에 남북보다 동서를 훨씬 길게 그렸다. 이에 따라 섬진강의 북쪽 부분은 더욱 길게 표현되는 문제가 확대되고 있다. (이기봉)

  • 광주목(光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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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광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광여도》와 비교할 때 몇 가지 오류가 보이고 있다. 왼쪽 위의 臣峙面은 巨峙面의, 읍성 왼쪽의 公巨井面은 瓮井面의 誤記이다. 주기에는 모두 올바르게 적혀 있어 본 지도 작성자의 오류로 생각된다. 읍성 오른쪽에는 보라색 사각형만 그려져 있고 명칭은 적혀 있지 않다. 보라색 사각형은 본 지도책에서 察訪驛을 표현하는 기호로 景陽驛이란 명칭이 적혀 있어야 한다. 《해동지도》의 광주목 지도도 본 지도와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같다. 《해동지도》에 있던 도로와 교량이 생략되어 있는 점은 본 지도와 《광여도》의 공통점이다. 《해동지도》의 읍치 위쪽에는 본 지도와 《광여도》에 없는 黃界面, 德山面, 馬池面 등이 적혀 있다. 본 지도와 《광여도》의 주기에 세 개의 면이 모두 적혀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필사 과정에서 실수로 빠뜨린 것이 아닌가 한다. 이밖에도 西倉을 비롯한 몇 개의 정보가 빠져 있다. 하천의 유로는 거칠기는 하지만 실세의 상황과 거의 비슷하다. 오른쪽 위의 潭陽界에서 들어와 왼쪽 아래의 羅州界로 빠져나가는 것이 영산강 본류이다. 남쪽에서 발원하여 읍치를 지나 영산강에 합류되는 것이 현재의 광주천이다. 다만 長城界에서 들어오는 하천은 현재의 풍영정천으로 영산강 본류보다 훨씬 작음에도 불구하고 비슷하게 표현되어 있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주기의 전반적인 체제는 《광여도》와 동일하다. 그러나 民戶와 몇 개의 통계 숫자는 《광여도》와 달라 본 지도가 작성된 시기의 것으로 바꾸었다고 추정된다. 《광여도》의 주기에 나와 있는 民戶의 수 7,753호는 《해동지도》의 7,953호를 잘못 베낀 것이 아닌가 한다. 『여지도서』의 광주목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본 지도와 비슷하다. (이기봉)

  • 광주목(光州牧)(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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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광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광여도》와 비교할 때 몇 가지 오류가 보이고 있다. 왼쪽 위의 臣峙面은 巨峙面의, 읍성 왼쪽의 公巨井面은 瓮井面의 誤記이다. 주기에는 모두 올바르게 적혀 있어 본 지도 작성자의 오류로 생각된다. 읍성 오른쪽에는 보라색 사각형만 그려져 있고 명칭은 적혀 있지 않다. 보라색 사각형은 본 지도책에서 察訪驛을 표현하는 기호로 景陽驛이란 명칭이 적혀 있어야 한다. 《해동지도》의 광주목 지도도 본 지도와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같다. 《해동지도》에 있던 도로와 교량이 생략되어 있는 점은 본 지도와 《광여도》의 공통점이다. 《해동지도》의 읍치 위쪽에는 본 지도와 《광여도》에 없는 黃界面, 德山面, 馬池面 등이 적혀 있다. 본 지도와 《광여도》의 주기에 세 개의 면이 모두 적혀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필사 과정에서 실수로 빠뜨린 것이 아닌가 한다. 이밖에도 西倉을 비롯한 몇 개의 정보가 빠져 있다. 하천의 유로는 거칠기는 하지만 실세의 상황과 거의 비슷하다. 오른쪽 위의 潭陽界에서 들어와 왼쪽 아래의 羅州界로 빠져나가는 것이 영산강 본류이다. 남쪽에서 발원하여 읍치를 지나 영산강에 합류되는 것이 현재의 광주천이다. 다만 長城界에서 들어오는 하천은 현재의 풍영정천으로 영산강 본류보다 훨씬 작음에도 불구하고 비슷하게 표현되어 있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주기의 전반적인 체제는 《광여도》와 동일하다. 그러나 民戶와 몇 개의 통계 숫자는 《광여도》와 달라 본 지도가 작성된 시기의 것으로 바꾸었다고 추정된다. 《광여도》의 주기에 나와 있는 民戶의 수 7,753호는 《해동지도》의 7,953호를 잘못 베낀 것이 아닌가 한다. 『여지도서』의 광주목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본 지도와 비슷하다. (이기봉)

  • 구례현(求禮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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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구례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오른쪽 아래에 ‘長谷十里’는 《광여도》에 ‘長谷二十里’로 적혀 있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약간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구례현 지도에는 ‘長谷三十里’로 되어 있다. 역시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여지도서』의 구례현 지도에는 이 사실이 적혀 있지 않다. 필사 과정에서 몇 차례 내용이 바뀌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왼쪽 위에서 흘러와 오른쪽 아래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지금의 섬진강이다. 섬진강의 유로는 현재와 비슷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왼쪽 위의 南原界로부터 아래 順天界까지의 길이가 상대적으로 길게 그려져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이 발생한 이유는 세로로 긴 사각형 안에 고을 전체를 꽉 차게 그렸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대부분의 고을이 실제의 모습과 관계없이 가로보다는 세로가 길게 표현될 수밖에 없다. 아래쪽의 艮田面 지역은 원래 아래쪽으로 튀어져 나가 있지만 이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것 역시 사각형에 고을의 모습을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그 결과 天皇山 등에서 발원하여 섬진강에 합류하는 하천이 실제로는 정북 방향으로 흐르지만 마치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것처럼 표현되었다.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도 이 하천들이 정북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 것으로 표현되었는데, 아마 이런 지도의 영향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기봉)

  • 구례현(求禮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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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구례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오른쪽 아래에 ‘長谷十里’는 《광여도》에 ‘長谷二十里’로 적혀 있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약간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구례현 지도에는 ‘長谷三十里’로 되어 있다. 역시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여지도서』의 구례현 지도에는 이 사실이 적혀 있지 않다. 필사 과정에서 몇 차례 내용이 바뀌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왼쪽 위에서 흘러와 오른쪽 아래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지금의 섬진강이다. 섬진강의 유로는 현재와 비슷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왼쪽 위의 南原界로부터 아래 順天界까지의 길이가 상대적으로 길게 그려져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이 발생한 이유는 세로로 긴 사각형 안에 고을 전체를 꽉 차게 그렸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대부분의 고을이 실제의 모습과 관계없이 가로보다는 세로가 길게 표현될 수밖에 없다. 아래쪽의 艮田面 지역은 원래 아래쪽으로 튀어져 나가 있지만 이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것 역시 사각형에 고을의 모습을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그 결과 天皇山 등에서 발원하여 섬진강에 합류하는 하천이 실제로는 정북 방향으로 흐르지만 마치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것처럼 표현되었다.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도 이 하천들이 정북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 것으로 표현되었는데, 아마 이런 지도의 영향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기봉)

  • 금구현(金溝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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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금구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주기에는 上南面이 있는데,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이 점은 《광여도》도 동일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금구현 지도에는 상남면이 표시되어 있다. 《광여도》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트린 것으로 생각된다. 오른쪽 위의 母岳山이 읍치의 동남쪽에 있기 때문에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동쪽을 위로 향해 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읍치로 내려온 산줄기가 동쪽으로부터 내려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읍치의 풍수적 명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북쪽과 서쪽 및 남쪽에 높은 산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산줄기로 이어 그렸다. 또한 읍치를 확대 과장해서 그리기도 했다. 그러나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드물게 고을의 실제 모습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특히 왼쪽의 두월천과 오른쪽의 원평천이 모악산에서 발원하여 합류하는 모습은 실제 유로와 거의 비슷하다.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도 본 지도와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금구현(金溝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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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금구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주기에는 上南面이 있는데,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이 점은 《광여도》도 동일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금구현 지도에는 상남면이 표시되어 있다. 《광여도》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트린 것으로 생각된다. 오른쪽 위의 母岳山이 읍치의 동남쪽에 있기 때문에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동쪽을 위로 향해 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읍치로 내려온 산줄기가 동쪽으로부터 내려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읍치의 풍수적 명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북쪽과 서쪽 및 남쪽에 높은 산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산줄기로 이어 그렸다. 또한 읍치를 확대 과장해서 그리기도 했다. 그러나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드물게 고을의 실제 모습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특히 왼쪽의 두월천과 오른쪽의 원평천이 모악산에서 발원하여 합류하는 모습은 실제 유로와 거의 비슷하다.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도 본 지도와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금산군(錦山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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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금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런데 향교 위쪽에 표시된 從容堂은 《광여도》에 從客堂으로 되어 있다. 표현 양식은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비슷한 《해동지도》의 금산군 지도에는 본 지도처럼 되어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광여도》를 필사하면서도 《해동지도》를 참조한 것으로 생각된다. 아래쪽 龍潭界에서 흘러와 위쪽 沃川界로 흘러가는 하천이 금강 본류이다. 아래쪽 富南面의 경우 금강 본류 유역인 富東面 아래쪽에 위치 시켜야 실제와 부합된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 잘못된 것은 오른쪽 永同界이다. 금산군은 충청도의 영동현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본 지도의 주기에도 동쪽으로 영동과 경계를 맞대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런 점은 《광여도》와 《해동지도》 모두 동일하다. 그러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동쪽으로 영동이 아니라 옥천과 경계를 맞대고 있다고 나오며, 1850년대에 만들어진 김정호의 《동여도》에도 동일하게 표현되어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금산군 지도에도 동쪽으로 영동과 경계를 맞대고 있다는 정보는 실려 있지 않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고, 1700년대 중반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호남지도》의 금산군 지도에도 본 지도와 비슷하게 나오고 있다. 아마 1700년대에는 중앙의 지도 제작자들에게 금산군이 동쪽으로 영동과 경계를 맞대고 있다는 정보가 유포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금산군(錦山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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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금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런데 향교 위쪽에 표시된 從容堂은 《광여도》에 從客堂으로 되어 있다. 표현 양식은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비슷한 《해동지도》의 금산군 지도에는 본 지도처럼 되어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광여도》를 필사하면서도 《해동지도》를 참조한 것으로 생각된다. 아래쪽 龍潭界에서 흘러와 위쪽 沃川界로 흘러가는 하천이 금강 본류이다. 아래쪽 富南面의 경우 금강 본류 유역인 富東面 아래쪽에 위치 시켜야 실제와 부합된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 잘못된 것은 오른쪽 永同界이다. 금산군은 충청도의 영동현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본 지도의 주기에도 동쪽으로 영동과 경계를 맞대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런 점은 《광여도》와 《해동지도》 모두 동일하다. 그러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동쪽으로 영동이 아니라 옥천과 경계를 맞대고 있다고 나오며, 1850년대에 만들어진 김정호의 《동여도》에도 동일하게 표현되어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금산군 지도에도 동쪽으로 영동과 경계를 맞대고 있다는 정보는 실려 있지 않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고, 1700년대 중반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호남지도》의 금산군 지도에도 본 지도와 비슷하게 나오고 있다. 아마 1700년대에는 중앙의 지도 제작자들에게 금산군이 동쪽으로 영동과 경계를 맞대고 있다는 정보가 유포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김제군(金堤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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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김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에 있던 오른쪽 위의 金屈面과 왼쪽 아래의 海倉이 생략된 반면에 《광여도》에 없던 읍치 위쪽의 城山과 오른쪽 위의 橫津이 추가되어 있다. 금굴면이 주기에도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제작자가 실수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성산과 횡진은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김제군 지도에 城山과 橫灘으로 나와 있어 이 지도를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와 《광여도》를 비교해 보면 아래쪽 碧骨堤堰의 모습이 약간 달라져 있다. 벽골제는 백제 때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지도 제작 당시에는 모두 메워져 논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제방의 모습은 조선 중기에도 여전히 남겨져 있었는데, 《해동지도》에는 진짜 제방의 모습처럼 그려져 있다. 그러나 《광여도》에서는 제방이라는 이미지를 받기 어렵게 그려져 있고, 본 지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래쪽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흐르는 하천이 현재의 동진강이다. 위쪽에 全州界에서 臨陂界로 흘러가는 하천은 현재의 만경강이다. 읍치의 물은 지도에는 어디로 빠져나가는지 알 수 없게 되어 있지만 읍치 위쪽에 있는 현재의 신평천에 연결된다. 읍치 아래쪽의 하천은 현재의 원평천인데, 지도의 표현과 달리 실제로는 오른쪽의 金溝界에서 흘러 들어온다. 이 지역은 한국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이 보인다는 평지임에도 마치 산줄기가 여기저기 연결된 것처럼 그렸다. 평지라고 하더라도 물줄기 사이에 산줄기가 있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왜곡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이 지도만으로는 그래도 높은 산줄기가 이어진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왼쪽에 臨陂界라고 적혀 있는데, 실제로는 임피와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다. 다만 그 방향에 약간만 가면 임피의 경계를 만날 수 있다는 의미로 읽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김제군(金堤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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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김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에 있던 오른쪽 위의 金屈面과 왼쪽 아래의 海倉이 생략된 반면에 《광여도》에 없던 읍치 위쪽의 城山과 오른쪽 위의 橫津이 추가되어 있다. 금굴면이 주기에도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제작자가 실수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성산과 횡진은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김제군 지도에 城山과 橫灘으로 나와 있어 이 지도를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와 《광여도》를 비교해 보면 아래쪽 碧骨堤堰의 모습이 약간 달라져 있다. 벽골제는 백제 때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지도 제작 당시에는 모두 메워져 논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제방의 모습은 조선 중기에도 여전히 남겨져 있었는데, 《해동지도》에는 진짜 제방의 모습처럼 그려져 있다. 그러나 《광여도》에서는 제방이라는 이미지를 받기 어렵게 그려져 있고, 본 지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래쪽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흐르는 하천이 현재의 동진강이다. 위쪽에 全州界에서 臨陂界로 흘러가는 하천은 현재의 만경강이다. 읍치의 물은 지도에는 어디로 빠져나가는지 알 수 없게 되어 있지만 읍치 위쪽에 있는 현재의 신평천에 연결된다. 읍치 아래쪽의 하천은 현재의 원평천인데, 지도의 표현과 달리 실제로는 오른쪽의 金溝界에서 흘러 들어온다. 이 지역은 한국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이 보인다는 평지임에도 마치 산줄기가 여기저기 연결된 것처럼 그렸다. 평지라고 하더라도 물줄기 사이에 산줄기가 있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왜곡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이 지도만으로는 그래도 높은 산줄기가 이어진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왼쪽에 臨陂界라고 적혀 있는데, 실제로는 임피와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다. 다만 그 방향에 약간만 가면 임피의 경계를 만날 수 있다는 의미로 읽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나주목(羅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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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나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본 지도는 《광여도》에 비해 여러 내용이 빠져 있다. 읍치 위쪽에 余皇面, 三加面, 金鞍面, 官叱洞面 등 4개 면이, 오른쪽 아래의 元井面 왼쪽에 細花面이 생략되어 있다. 왼쪽의 升浦面은 竹浦面의 오기이다. 이런 면의 명칭이 주기에는 모두 나오고 있어 본 지도의 작성자가 실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서남쪽 바다 위에는 현재의 신안군에 속해 있는 섬들이 그려져 있다. 이 섬들은 나주의 월경지였으며, 실제로는 훨씬 많은 섬이 있었다. 본 지도와 표현 방식이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錦城縣 지도에는 섬의 수가 훨씬 많이 표시되어 있으며, 《광여도》도 거의 유사하다. 이런 사실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작성자가 대부분의 섬을 생략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래쪽의 三鄕面도 현재의 무안군 삼향면에 있었던 월경지였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이곳이 월경지였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회화식 지도라고 할지라도 이런 경우 삼향면과 나주 땅 사이에 務安界라는 문구를 써넣어 월경지임을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경우가 많다. 주변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 접속 유무도 본 지도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오른쪽 아래의 長興界 왼쪽에는 靈巖界가, 오른쪽으로는 南平界와 光州界를 적어 넣어야 실제와 부합된다. 《해동지도》의 금성현 지도에는 남평계와 광주계는 적혀 있다. 본 지도와 《광여도》의 필사 시에 생략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래쪽에 영암계가 적혀 있지 않아 나주목이 바로 서해바다와 접해 있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南海堂은 南海神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祀典에 中祀로 되어 있었다. 이곳은 현재의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 남해포로서 본 지도와 달리 영산강이 내륙으로 상당히 들어와 있었다. 이와 같은 문제점이 나타난 것은 월경지인 삼향면과 나주목 사이에 있었던 務安과 남쪽에 있었던 靈巖의 영역을 표시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천의 표현에서도 몇 가지 문제점이 발견되고 있다. 영산강은 榮江津 오른쪽에서 남평으로부터 들어오는 현재의 지석강과 영산강 본류가 합해지는데 이런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또한 영산강 본류는 위쪽의 靈鷲山에서 발원하는 것이 아니라 長城界 너머에서 흘러들어온다. 이런 문제점은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나주목은 본 지도와 《광여도》의 호남도에 모두 금성현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군현지도는 본 지도와 《광여도》 모두 나주목으로 되어 있다. 반면에 《해동지도》에는 전라도 지도에는 나주로 되어 있던 것이 군현지도에는 금성현으로 되어 있다. 나주는 인조(1623-1649) 시기에 잠시, 그리고 1728년-1737년(영조 4-13) 사이에도 금성현으로 강등된 적이 있다. 《해동지도》의 금성현 지도는 후자의 시기에 그려진 것으로, 전라도 지도는 그 후에 다시 그려서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와 《광여도》의 나주목 지도는 그 이후에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고을 명칭을 수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호남도는 다시 만들어진 《해동지도》의 전라도 지도 이전에 붙어 있던 전라도 전도를 그대로 전사했기 때문에 錦城이란 명칭이 남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여지도서』의 나주목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본 지도와 비슷하다. (이기봉)

  • 나주목(羅州牧)(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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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나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본 지도는 《광여도》에 비해 여러 내용이 빠져 있다. 읍치 위쪽에 余皇面, 三加面, 金鞍面, 官叱洞面 등 4개 면이, 오른쪽 아래의 元井面 왼쪽에 細花面이 생략되어 있다. 왼쪽의 升浦面은 竹浦面의 오기이다. 이런 면의 명칭이 주기에는 모두 나오고 있어 본 지도의 작성자가 실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서남쪽 바다 위에는 현재의 신안군에 속해 있는 섬들이 그려져 있다. 이 섬들은 나주의 월경지였으며, 실제로는 훨씬 많은 섬이 있었다. 본 지도와 표현 방식이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錦城縣 지도에는 섬의 수가 훨씬 많이 표시되어 있으며, 《광여도》도 거의 유사하다. 이런 사실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작성자가 대부분의 섬을 생략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래쪽의 三鄕面도 현재의 무안군 삼향면에 있었던 월경지였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이곳이 월경지였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회화식 지도라고 할지라도 이런 경우 삼향면과 나주 땅 사이에 務安界라는 문구를 써넣어 월경지임을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경우가 많다. 주변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 접속 유무도 본 지도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오른쪽 아래의 長興界 왼쪽에는 靈巖界가, 오른쪽으로는 南平界와 光州界를 적어 넣어야 실제와 부합된다. 《해동지도》의 금성현 지도에는 남평계와 광주계는 적혀 있다. 본 지도와 《광여도》의 필사 시에 생략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래쪽에 영암계가 적혀 있지 않아 나주목이 바로 서해바다와 접해 있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南海堂은 南海神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祀典에 中祀로 되어 있었다. 이곳은 현재의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 남해포로서 본 지도와 달리 영산강이 내륙으로 상당히 들어와 있었다. 이와 같은 문제점이 나타난 것은 월경지인 삼향면과 나주목 사이에 있었던 務安과 남쪽에 있었던 靈巖의 영역을 표시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천의 표현에서도 몇 가지 문제점이 발견되고 있다. 영산강은 榮江津 오른쪽에서 남평으로부터 들어오는 현재의 지석강과 영산강 본류가 합해지는데 이런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또한 영산강 본류는 위쪽의 靈鷲山에서 발원하는 것이 아니라 長城界 너머에서 흘러들어온다. 이런 문제점은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나주목은 본 지도와 《광여도》의 호남도에 모두 금성현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군현지도는 본 지도와 《광여도》 모두 나주목으로 되어 있다. 반면에 《해동지도》에는 전라도 지도에는 나주로 되어 있던 것이 군현지도에는 금성현으로 되어 있다. 나주는 인조(1623-1649) 시기에 잠시, 그리고 1728년-1737년(영조 4-13) 사이에도 금성현으로 강등된 적이 있다. 《해동지도》의 금성현 지도는 후자의 시기에 그려진 것으로, 전라도 지도는 그 후에 다시 그려서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와 《광여도》의 나주목 지도는 그 이후에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고을 명칭을 수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호남도는 다시 만들어진 《해동지도》의 전라도 지도 이전에 붙어 있던 전라도 전도를 그대로 전사했기 때문에 錦城이란 명칭이 남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여지도서』의 나주목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본 지도와 비슷하다. (이기봉)

  • 낙안군(樂安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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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낙안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전체적인 표현이 거칠고 일부 잘못된 지명도 보이고 있다. 읍치 왼쪽의 內面面은 內西面의 오기이다. 읍치 오른쪽 아래에는 面에 대한 기호인 노란색 사각형만 그려져 있고, 東面은 생략되어 있다. 古邑面上道 아래쪽에는 古邑面下道가 아예 표시되어 있지도 않다. 이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광여도》의 것을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오른쪽의 桐華寺는 《광여도》에 祠華寺로 되어 있는데, 본 지도의 것이 올바르다. 표현 양식에서 다르지만 전반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낙안군 지도에는 본 지도처럼 나온다. 따라서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광여도》를 필사하면서 《해동지도》를 일부 참고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본 지도에서는 고을 전체를 산줄기가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표현하기 위해 실제를 약간 왜곡시키고 있다. 위쪽의 金錢山 북쪽에도 순천으로 흘러가는 이사천의 상류가 걸쳐 있다. 또한 그 외쪽의 外西面 지역도 보성강의 지류인 송광천의 지류가 걸쳐 있다. 이와 같은 문제점은 고을의 풍수적 명당성을 강조하기 위한 회화식 지도에서 자주 나타나는 것이다. 아래쪽의 船所는 주기에 적혀 있는 전선을 정박시키던 곳으로 낙안군에서 관리하였다. 海倉은 낙안군의 田稅와 大同米를 모아 한양으로 옮기던 곳이다. (이기봉)

  • 낙안군(樂安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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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낙안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전체적인 표현이 거칠고 일부 잘못된 지명도 보이고 있다. 읍치 왼쪽의 內面面은 內西面의 오기이다. 읍치 오른쪽 아래에는 面에 대한 기호인 노란색 사각형만 그려져 있고, 東面은 생략되어 있다. 古邑面上道 아래쪽에는 古邑面下道가 아예 표시되어 있지도 않다. 이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광여도》의 것을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오른쪽의 桐華寺는 《광여도》에 祠華寺로 되어 있는데, 본 지도의 것이 올바르다. 표현 양식에서 다르지만 전반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낙안군 지도에는 본 지도처럼 나온다. 따라서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광여도》를 필사하면서 《해동지도》를 일부 참고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본 지도에서는 고을 전체를 산줄기가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표현하기 위해 실제를 약간 왜곡시키고 있다. 위쪽의 金錢山 북쪽에도 순천으로 흘러가는 이사천의 상류가 걸쳐 있다. 또한 그 외쪽의 外西面 지역도 보성강의 지류인 송광천의 지류가 걸쳐 있다. 이와 같은 문제점은 고을의 풍수적 명당성을 강조하기 위한 회화식 지도에서 자주 나타나는 것이다. 아래쪽의 船所는 주기에 적혀 있는 전선을 정박시키던 곳으로 낙안군에서 관리하였다. 海倉은 낙안군의 田稅와 大同米를 모아 한양으로 옮기던 곳이다. (이기봉)

  • 남원부(南原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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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남원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에 표현 양식이 거칠고 글씨도 정제되어 있지 않다. 오른쪽 가운데의 風俗寺는 風谷寺를 잘못 쓴 것이고, 그 아래쪽의 長山法은 長法山의 순서를 바꾸어 놓았다. 아래쪽 山洞坊 왼쪽에는 栗峙險阨을 빠뜨리기도 하였다. 읍성 안쪽의 通江里坊과 西奉里坊은 노란색 사각형의 모양을 생략하기도 하였다. 하천의 표현 양식에서도 《광여도》에는 가장 왼쪽에 있는 현재의 섬진강 본류를 2개의 실선으로, 그 지류들은 1개의 실선으로 표시하여 구별하였다. 반면에 본 지도에서는 모두 동일한 선으로 그려 구별하지 않았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동일한 《해동지도》의 남원부 지도에서는 모든 하천을 2개의 실선으로 그려 본류와 지류를 구별하지 않았다. 그러나 《해동지도》에서는 섬진강 본류가 왼쪽 위의 淳昌界에서 흘러 들어오고 있는 사실을 오해할 수 있게 표현하였는데, 본 지도에서는 이 점이 시정되어 있다. 하천의 표현에서 실제와 부합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위쪽 오른쪽에서 흘러내려가 섬진강에 합류하는 하천은 현재의 오수천이다. 그런데 오수천과 섬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은 남원부의 땅이 아니라 순창군의 땅이었다. 본 지도만으로는 이와 같은 사실을 이해하기 어려우며, 《광여도》와 《해동지도》에서도 동일하게 표현되어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호남지도》의 一新 지도에서는 오수천을 고을 서북을 돌게 하고, 城南坊 등을 훨씬 상류에 배치하여 실제와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여기서 一新은 1739-1750년 사이에 남원부가 縣으로 강등되었을 때의 명칭이다. 《동여도》에는 이와 같은 사실들이 모두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 남원부(南原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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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남원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에 표현 양식이 거칠고 글씨도 정제되어 있지 않다. 오른쪽 가운데의 風俗寺는 風谷寺를 잘못 쓴 것이고, 그 아래쪽의 長山法은 長法山의 순서를 바꾸어 놓았다. 아래쪽 山洞坊 왼쪽에는 栗峙險阨을 빠뜨리기도 하였다. 읍성 안쪽의 通江里坊과 西奉里坊은 노란색 사각형의 모양을 생략하기도 하였다. 하천의 표현 양식에서도 《광여도》에는 가장 왼쪽에 있는 현재의 섬진강 본류를 2개의 실선으로, 그 지류들은 1개의 실선으로 표시하여 구별하였다. 반면에 본 지도에서는 모두 동일한 선으로 그려 구별하지 않았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동일한 《해동지도》의 남원부 지도에서는 모든 하천을 2개의 실선으로 그려 본류와 지류를 구별하지 않았다. 그러나 《해동지도》에서는 섬진강 본류가 왼쪽 위의 淳昌界에서 흘러 들어오고 있는 사실을 오해할 수 있게 표현하였는데, 본 지도에서는 이 점이 시정되어 있다. 하천의 표현에서 실제와 부합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위쪽 오른쪽에서 흘러내려가 섬진강에 합류하는 하천은 현재의 오수천이다. 그런데 오수천과 섬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은 남원부의 땅이 아니라 순창군의 땅이었다. 본 지도만으로는 이와 같은 사실을 이해하기 어려우며, 《광여도》와 《해동지도》에서도 동일하게 표현되어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호남지도》의 一新 지도에서는 오수천을 고을 서북을 돌게 하고, 城南坊 등을 훨씬 상류에 배치하여 실제와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여기서 一新은 1739-1750년 사이에 남원부가 縣으로 강등되었을 때의 명칭이다. 《동여도》에는 이와 같은 사실들이 모두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 남평현(南平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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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남평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른 지명이 있다면 아래쪽의 雲興寺 정도이다. 그런데 이 운흥사는 다른 지명과 글씨체가 달라 나중에 삽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표현 양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는 《해동지도》의 남평현 지도에는 운흥사가 표시되어 있다. 읍치의 위쪽을 흐르는 하천은 현재 영산강의 지류인 지석강이다. 이 지석강의 본류는 오른쪽의 綾州界에서 흘러 들어오지만 본 지도에는 그런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다른 고을로부터 흘러들어오는 사실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왼쪽의 亏谷面에 있는 하천도 실제로는 錦城界라 표현된 羅州界를 넘어 영산강에 합류된다. 나주는 인조(1623-1649) 시기에 잠시 금성현으로 강등되었다. 또한 1728년-1737년(영조 4-13) 사이에도 금성현으로 강등된 적이 있다. 그러나 본 지도의 제작이 금성현이 강등된 시기에 제작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해동지도》를 그대로 베꼈기 때문에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본 고을의 동남쪽은 산지로, 서북쪽은 상대적으로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모든 지역에 비슷한 크기의 산 모양을 그려 넣어 실제적인 지형을 이해하기 어렵다. 다만 面이 서북쪽에는 많고, 동남쪽에는 적은 것을 통해 인구 밀도와 지형의 관계를 대략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이기봉)

  • 남평현(南平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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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남평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른 지명이 있다면 아래쪽의 雲興寺 정도이다. 그런데 이 운흥사는 다른 지명과 글씨체가 달라 나중에 삽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표현 양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는 《해동지도》의 남평현 지도에는 운흥사가 표시되어 있다. 읍치의 위쪽을 흐르는 하천은 현재 영산강의 지류인 지석강이다. 이 지석강의 본류는 오른쪽의 綾州界에서 흘러 들어오지만 본 지도에는 그런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다른 고을로부터 흘러들어오는 사실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왼쪽의 亏谷面에 있는 하천도 실제로는 錦城界라 표현된 羅州界를 넘어 영산강에 합류된다. 나주는 인조(1623-1649) 시기에 잠시 금성현으로 강등되었다. 또한 1728년-1737년(영조 4-13) 사이에도 금성현으로 강등된 적이 있다. 그러나 본 지도의 제작이 금성현이 강등된 시기에 제작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해동지도》를 그대로 베꼈기 때문에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본 고을의 동남쪽은 산지로, 서북쪽은 상대적으로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모든 지역에 비슷한 크기의 산 모양을 그려 넣어 실제적인 지형을 이해하기 어렵다. 다만 面이 서북쪽에는 많고, 동남쪽에는 적은 것을 통해 인구 밀도와 지형의 관계를 대략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이기봉)

  • 능주목(綾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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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능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면의 명칭에서 약간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가운데의 上東面과 東邊面이 《광여도》에는 上東邊面과 下東邊面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본 지도의 주기에는 《광여도》의 것과 동일하게 되어 있고, 《광여도》의 주기에는 上東面과 下東面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와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만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능주목 지도에는 上東面과 下東邊面으로, 주기에는 上東邊面과 下東邊面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역시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여지도서』의 지도와 지지에 모두 上東邊面과 下東邊面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와 《광여도》의 필사 시에 필사 과정에서 면 명칭의 비슷함 때문에 혼란을 일으킨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를 지나 서쪽으로 흘러가는 하천을 현재 충신강이라 부르고 있으며, 왼쪽의 하천은 현재의 대초천이다. 이 중 대초천의 표현에서 일부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대초천은 서쪽의 남평현과의 경계선을 드나들며 지류 중 일부는 능주목에서, 일부는 남평현에서 나온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이와 같은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능주목 지도는 이 부분이 더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기봉)

  • 능주목(綾州牧)(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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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능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면의 명칭에서 약간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가운데의 上東面과 東邊面이 《광여도》에는 上東邊面과 下東邊面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본 지도의 주기에는 《광여도》의 것과 동일하게 되어 있고, 《광여도》의 주기에는 上東面과 下東面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와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만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능주목 지도에는 上東面과 下東邊面으로, 주기에는 上東邊面과 下東邊面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역시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여지도서』의 지도와 지지에 모두 上東邊面과 下東邊面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와 《광여도》의 필사 시에 필사 과정에서 면 명칭의 비슷함 때문에 혼란을 일으킨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를 지나 서쪽으로 흘러가는 하천을 현재 충신강이라 부르고 있으며, 왼쪽의 하천은 현재의 대초천이다. 이 중 대초천의 표현에서 일부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대초천은 서쪽의 남평현과의 경계선을 드나들며 지류 중 일부는 능주목에서, 일부는 남평현에서 나온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이와 같은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능주목 지도는 이 부분이 더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기봉)

  • 담양부(潭陽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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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담양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왼쪽의 木山土面은 본 지도의 주기와 《광여도》의 지도 및 주기에 木山上面으로 되어 있어 본 지도의 제작자가 실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담양현 지도도 표현 양식에서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비슷하다. 潭陽은 원래 본 지도에 적혀 있듯이 都護府였지만 1728-1738년과 1762-1771년 사이에 縣으로 강등된 적이 있다. 《해동지도》는 다른 고을의 내용을 고려할 때 이 중 전자의 시기를 반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 지도와 《광여도》는 담양이 都護府로 회복된 시기에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위쪽의 ‘亍八谷面’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지만 두 지도 모두 주기에는 亍入谷面으로 나온다. 《해동지도》에도 지도와 주기가 본 지도와 동일하게 나오고 있어 지도와 주기를 대조하지 않고 그대로 베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호구총수』의 담양 부분에는 주기처럼 적혀 있어 지도 작성자가 비슷한 글자를 혼동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면의 위치도 틀린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泉洞面과 龍泉洞外面은 金城山城 왼쪽의 물줄기에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동여도》에는 이 부분에 실제에 맞게 교정되어 있다. ‘1872년 지방지도’의 담양부지도도 비록 회화식으로 그렸지만 이 부분이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담양부(潭陽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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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담양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왼쪽의 木山土面은 본 지도의 주기와 《광여도》의 지도 및 주기에 木山上面으로 되어 있어 본 지도의 제작자가 실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담양현 지도도 표현 양식에서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비슷하다. 潭陽은 원래 본 지도에 적혀 있듯이 都護府였지만 1728-1738년과 1762-1771년 사이에 縣으로 강등된 적이 있다. 《해동지도》는 다른 고을의 내용을 고려할 때 이 중 전자의 시기를 반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 지도와 《광여도》는 담양이 都護府로 회복된 시기에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위쪽의 ‘亍八谷面’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지만 두 지도 모두 주기에는 亍入谷面으로 나온다. 《해동지도》에도 지도와 주기가 본 지도와 동일하게 나오고 있어 지도와 주기를 대조하지 않고 그대로 베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호구총수』의 담양 부분에는 주기처럼 적혀 있어 지도 작성자가 비슷한 글자를 혼동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면의 위치도 틀린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泉洞面과 龍泉洞外面은 金城山城 왼쪽의 물줄기에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동여도》에는 이 부분에 실제에 맞게 교정되어 있다. ‘1872년 지방지도’의 담양부지도도 비록 회화식으로 그렸지만 이 부분이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동복현(同福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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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동복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가 《광여도》보다 표현 방식이 투박하여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하천 부분에서는 본 지도가 《광여도》의 애매함을 교정하고 있다.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동복현을 가로질러 흐르는 하천이 현재의 동복천이다. 즉, 동복천은 위쪽(북)이 상류이고, 아래쪽(남)이 하류에 해당된다. 그런데 《광여도》에는 위쪽의 潭陽界 부분이 굵게 표현되어 있고, 아래쪽 寶城界 부분은 얇게 그려져 있다. 이에 따라 지도 이용자는 아래쪽이 하류이고, 위쪽이 상류라고 오해할 수 있게 된다. 본 지도에서는 반대로 아래쪽 보성계 부분을 2개의 실선으로 그리고, 위쪽을 1개의 실선으로 그려 아래쪽이 하류임을 분명하게 표현하였다. 《광여도》의 애매함은 본 지도와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동복현 지도를 필사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는 하천의 중간 부분을 상대적으로 넓게 그렸다. 이것은 이 부분에 퇴적암의 절벽 지형이 많아 당시에는 絶景으로 인식되었고, 그것을 강조하여 표현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위쪽의 상류가 아래쪽의 하류보다 약간 굵게 표현되어 있어 상류와 하류를 구분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광여도》의 필사 시 다른 자료를 통해 상류와 하류를 구분하지 않고 《해동지도》의 표현을 그대로 이해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의 필사 시 《광여도》를 필사하면서도 다른 자료를 통해 아래쪽이 하류임을 확인하여 지도에 분명하게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여지도서』의 동복현 지도에는 상류와 하류가 분명하게 구별될 수 있도록 표현되어 있어 본 지도와 상호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호남지도》의 동복현 지도에도 상류와 하류가 분명하게 구별되어 있다. (이기봉)

  • 동복현(同福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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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동복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가 《광여도》보다 표현 방식이 투박하여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하천 부분에서는 본 지도가 《광여도》의 애매함을 교정하고 있다.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동복현을 가로질러 흐르는 하천이 현재의 동복천이다. 즉, 동복천은 위쪽(북)이 상류이고, 아래쪽(남)이 하류에 해당된다. 그런데 《광여도》에는 위쪽의 潭陽界 부분이 굵게 표현되어 있고, 아래쪽 寶城界 부분은 얇게 그려져 있다. 이에 따라 지도 이용자는 아래쪽이 하류이고, 위쪽이 상류라고 오해할 수 있게 된다. 본 지도에서는 반대로 아래쪽 보성계 부분을 2개의 실선으로 그리고, 위쪽을 1개의 실선으로 그려 아래쪽이 하류임을 분명하게 표현하였다. 《광여도》의 애매함은 본 지도와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동복현 지도를 필사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는 하천의 중간 부분을 상대적으로 넓게 그렸다. 이것은 이 부분에 퇴적암의 절벽 지형이 많아 당시에는 絶景으로 인식되었고, 그것을 강조하여 표현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위쪽의 상류가 아래쪽의 하류보다 약간 굵게 표현되어 있어 상류와 하류를 구분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광여도》의 필사 시 다른 자료를 통해 상류와 하류를 구분하지 않고 《해동지도》의 표현을 그대로 이해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의 필사 시 《광여도》를 필사하면서도 다른 자료를 통해 아래쪽이 하류임을 확인하여 지도에 분명하게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여지도서』의 동복현 지도에는 상류와 하류가 분명하게 구별될 수 있도록 표현되어 있어 본 지도와 상호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호남지도》의 동복현 지도에도 상류와 하류가 분명하게 구별되어 있다. (이기봉)

  • 만경현(萬頃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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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만경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下道面 아래쪽에 上西面이 생략되어 있고, 왼쪽 아래에 串芝島가 串芝鎭으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 읍치 아래쪽의 壓湖亭은 《광여도》에 없는 지명이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만경현 지도에는 압호정이 있다. 아울러 성곽에 성가퀴가 표시되어 있는 점도 《해동지도》와 닮았다. 하천의 표현에서는 《해동지도》보다 《광여도》와 동일하다. 위쪽에 표시된 것은 현재의 만경강이 서해와 만나는 지점으로 하천이라기보다는 灣이다. 아래쪽의 南二面 아래에 표시된 하천은 현재의 신평천이며, 그 아래쪽의 것은 동진강이다. 《해동지도》에는 만경강 하구가 신평천보다 훨씬 굵게 그려져 있으며, 동진강은 그 중간 수준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광여도》에서는 만경강이 하구 부분 일부를 제외하면 1개의 실선으로 그려지고, 반대로 신평천과 동진강은 비슷한 크기의 2개 실선으로 그려진다. 《해동지도》에 실제에 가깝게 그려진 하천의 규모가 《광여도》와 본 지도로 옮겨오면서 전혀 다르게 표현된 것이다. 만경현은 산지가 거의 없는 평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개의 지도 모두 산줄기를 많이 그려 넣었다. 특히 애안가의 산지들은 높아야 80m 정도밖에 안되는데도 웅장하게 그려졌다. 이것은 읍치와 고을의 풍수적 명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산줄기를 강조하는 회화식 군현지도의 일반적인 표현 방식이다. 왼쪽의 古群山鎭의 섬들은 실제의 위치와 관계없이 해안가에 너무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러한 것은 거리가 너무 먼 지역을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그리는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기봉)

  • 만경현(萬頃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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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만경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下道面 아래쪽에 上西面이 생략되어 있고, 왼쪽 아래에 串芝島가 串芝鎭으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 읍치 아래쪽의 壓湖亭은 《광여도》에 없는 지명이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만경현 지도에는 압호정이 있다. 아울러 성곽에 성가퀴가 표시되어 있는 점도 《해동지도》와 닮았다. 하천의 표현에서는 《해동지도》보다 《광여도》와 동일하다. 위쪽에 표시된 것은 현재의 만경강이 서해와 만나는 지점으로 하천이라기보다는 灣이다. 아래쪽의 南二面 아래에 표시된 하천은 현재의 신평천이며, 그 아래쪽의 것은 동진강이다. 《해동지도》에는 만경강 하구가 신평천보다 훨씬 굵게 그려져 있으며, 동진강은 그 중간 수준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광여도》에서는 만경강이 하구 부분 일부를 제외하면 1개의 실선으로 그려지고, 반대로 신평천과 동진강은 비슷한 크기의 2개 실선으로 그려진다. 《해동지도》에 실제에 가깝게 그려진 하천의 규모가 《광여도》와 본 지도로 옮겨오면서 전혀 다르게 표현된 것이다. 만경현은 산지가 거의 없는 평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개의 지도 모두 산줄기를 많이 그려 넣었다. 특히 애안가의 산지들은 높아야 80m 정도밖에 안되는데도 웅장하게 그려졌다. 이것은 읍치와 고을의 풍수적 명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산줄기를 강조하는 회화식 군현지도의 일반적인 표현 방식이다. 왼쪽의 古群山鎭의 섬들은 실제의 위치와 관계없이 해안가에 너무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러한 것은 거리가 너무 먼 지역을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그리는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기봉)

  • 무안현(務安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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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무안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 오른쪽의 岩多山面은 《광여도》에는 巖多面으로 나온다. 그러나 본 지도와 《광여도》의 주기에는 모두 嚴多面으로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무안현 지도에는 지도와 주기 모두 엄다면으로 되어 있다. 《광여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의 엄다면을 글씨가 비슷한 암다면으로 잘못 필사하였고, 본 지도의 필사자 역시 암다면을 암다산면으로 잘못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 아래의 朴谷面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아 역시 본 지도의 필사 시 실수로 빠뜨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본 지도의 문제점 중 하나는 무안현만 그렸기 때문에 다른 고을의 월경지를 이해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아래쪽 木浦鎭의 위쪽에는 나주의 월경지인 三鄕面이 있었는데 본 지도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오른쪽에 2개 표시되어 있는 灵光界도 현재의 무안군 망운면과 운남면에 있었던 영광의 월경지였다. 이 부분은 바다 쪽으로 튀어나간 반도의 모양인데 본 지도만으로는 그러한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다만 영광계를 써넣어 무안현보다 훨씬 북쪽에 있었던 월경지가 이곳에 있었음을 암시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놓았다. 오른쪽 위에서 아래쪽으로 흘러가는 하천은 현재의 영산강 본류이다. 그러나 영산강 본류는 進禮面 오른쪽의 羅州界에서 들어오며, 위쪽의 羅州界에서 흘러오는 하천은 영산강의 지류인 막원천이다. 佐郞面에서 흘러오는 하천은 현재의 함평천으로, 실제로는 咸平界 너머에서 흘러옴에도 이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기봉)

  • 무안현(務安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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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무안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 오른쪽의 岩多山面은 《광여도》에는 巖多面으로 나온다. 그러나 본 지도와 《광여도》의 주기에는 모두 嚴多面으로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무안현 지도에는 지도와 주기 모두 엄다면으로 되어 있다. 《광여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의 엄다면을 글씨가 비슷한 암다면으로 잘못 필사하였고, 본 지도의 필사자 역시 암다면을 암다산면으로 잘못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 아래의 朴谷面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아 역시 본 지도의 필사 시 실수로 빠뜨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본 지도의 문제점 중 하나는 무안현만 그렸기 때문에 다른 고을의 월경지를 이해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아래쪽 木浦鎭의 위쪽에는 나주의 월경지인 三鄕面이 있었는데 본 지도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오른쪽에 2개 표시되어 있는 灵光界도 현재의 무안군 망운면과 운남면에 있었던 영광의 월경지였다. 이 부분은 바다 쪽으로 튀어나간 반도의 모양인데 본 지도만으로는 그러한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다만 영광계를 써넣어 무안현보다 훨씬 북쪽에 있었던 월경지가 이곳에 있었음을 암시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놓았다. 오른쪽 위에서 아래쪽으로 흘러가는 하천은 현재의 영산강 본류이다. 그러나 영산강 본류는 進禮面 오른쪽의 羅州界에서 들어오며, 위쪽의 羅州界에서 흘러오는 하천은 영산강의 지류인 막원천이다. 佐郞面에서 흘러오는 하천은 현재의 함평천으로, 실제로는 咸平界 너머에서 흘러옴에도 이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기봉)

  • 무장현(茂長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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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무장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오른쪽 일동면 부분에 《광여도》에는 있는 托谷面이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 탁곡면이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라 생각된다. 부근에 있는 新木面은 주기에 없는 것이며, 《광여도》에도 동일하다. 본 지도와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무장현 지도에는 신목면이 新木山으로 나온다. 《광여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山을 面으로 잘못 기록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읍치 위쪽의 靑海面은 주기에 海靑面으로 나오며, 이 점은 《광여도》에도 동일하다. 그런데 《해동지도》에는 지도와 주기 모두 청해면으로 나온다. 역시 《광여도》의 필사 시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실수한 것으로 생각되며, 본 지도의 필사자 역시 이 점을 교정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에서는 하천의 표시에서 실제와 다르게 표시된 부분이 있다. 오른쪽 高敞界에서 흘러와 위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인천강이다. 인천강은 현재의 곰소만인 하구 부분에서 무장현의 땅을 지나지만 중류 지역의 대부분은 고창현을 지난다. 그리고 그 상류의 일부가 무장현에서 발원한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인천강이 마치 무장현과 고창현의 경계를 흐르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또한 아래쪽 莊子山面을 흐르는 하천은 현재의 구암천과 와탄천이다. 모두 무장현에서 발원하지만 靈光界를 지나 바다로 들어간다. 본 지도만으로는 이와 같은 사실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동여도》에는 인천강의 오류는 지속되고 있지만, 나머지 부분은 수정되어 있다. (이기봉)

  • 무장현(茂長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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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무장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오른쪽 일동면 부분에 《광여도》에는 있는 托谷面이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 탁곡면이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라 생각된다. 부근에 있는 新木面은 주기에 없는 것이며, 《광여도》에도 동일하다. 본 지도와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무장현 지도에는 신목면이 新木山으로 나온다. 《광여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山을 面으로 잘못 기록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읍치 위쪽의 靑海面은 주기에 海靑面으로 나오며, 이 점은 《광여도》에도 동일하다. 그런데 《해동지도》에는 지도와 주기 모두 청해면으로 나온다. 역시 《광여도》의 필사 시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실수한 것으로 생각되며, 본 지도의 필사자 역시 이 점을 교정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에서는 하천의 표시에서 실제와 다르게 표시된 부분이 있다. 오른쪽 高敞界에서 흘러와 위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인천강이다. 인천강은 현재의 곰소만인 하구 부분에서 무장현의 땅을 지나지만 중류 지역의 대부분은 고창현을 지난다. 그리고 그 상류의 일부가 무장현에서 발원한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인천강이 마치 무장현과 고창현의 경계를 흐르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또한 아래쪽 莊子山面을 흐르는 하천은 현재의 구암천과 와탄천이다. 모두 무장현에서 발원하지만 靈光界를 지나 바다로 들어간다. 본 지도만으로는 이와 같은 사실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동여도》에는 인천강의 오류는 지속되고 있지만, 나머지 부분은 수정되어 있다. (이기봉)

  • 무주부(茂州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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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무주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와 몇 가지 지명이 다르게 적혀 있다. 《광여도》에는 가운데 위쪽의 香爐峰이 香爐烽으로, 오른쪽의 倉豊과 未峙는 豊倉과 末峙로 되어 있다. 전체적인 내용과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무주부 지도에는 각각 香爐峯과 豊倉, 朱峙로 되어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광여도》의 필사 시 잘못 베낀 향로봉은 본 지도의 필사 시 수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에 창풍은 풍창의 글자 순서를 잘못 기록하는 오류를 범한 것이며, 미치는 말치를 잘못 읽고 쓴 것이다. 이중 미치와 말치는 《광여도》와 본 지도의 필사 시 모두 원본을 잘못 이해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광여도》를 필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광여도》에 없는 赤裳山城과 致馬峙 등이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해동지도》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도 일부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고을 북쪽으로는 永同, 동북쪽으로는 知禮와 경계를 접하고 있는데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동쪽의 安陰界에서의 安陰은 1767년(영조 43)에 安義로 바뀐다. 왼쪽의 錦山界에서 들어와 위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금강의 본류이다. 아래쪽의 二安面 지역은 현재의 무주군 안성면으로서 금강의 지류 유역에 해당된다. 원래 錦山의 땅이었는데 숙종 때(1675-1720)에 무주로 편입되었다. 지도의 한가운데에는 왕조실록을 보관하고 있던 5대 史庫 중의 하나인 적산산성사고가 표시되어 있다. 璿源閣은 조선 왕조의 왕실 족보를 보관하던 곳이다. (이기봉)

  • 무주부(茂州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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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무주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와 몇 가지 지명이 다르게 적혀 있다. 《광여도》에는 가운데 위쪽의 香爐峰이 香爐烽으로, 오른쪽의 倉豊과 未峙는 豊倉과 末峙로 되어 있다. 전체적인 내용과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무주부 지도에는 각각 香爐峯과 豊倉, 朱峙로 되어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광여도》의 필사 시 잘못 베낀 향로봉은 본 지도의 필사 시 수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에 창풍은 풍창의 글자 순서를 잘못 기록하는 오류를 범한 것이며, 미치는 말치를 잘못 읽고 쓴 것이다. 이중 미치와 말치는 《광여도》와 본 지도의 필사 시 모두 원본을 잘못 이해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광여도》를 필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광여도》에 없는 赤裳山城과 致馬峙 등이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해동지도》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도 일부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고을 북쪽으로는 永同, 동북쪽으로는 知禮와 경계를 접하고 있는데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동쪽의 安陰界에서의 安陰은 1767년(영조 43)에 安義로 바뀐다. 왼쪽의 錦山界에서 들어와 위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금강의 본류이다. 아래쪽의 二安面 지역은 현재의 무주군 안성면으로서 금강의 지류 유역에 해당된다. 원래 錦山의 땅이었는데 숙종 때(1675-1720)에 무주로 편입되었다. 지도의 한가운데에는 왕조실록을 보관하고 있던 5대 史庫 중의 하나인 적산산성사고가 표시되어 있다. 璿源閣은 조선 왕조의 왕실 족보를 보관하던 곳이다. (이기봉)

  • 보성군(寶城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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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보성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면의 명칭에서 《광여도》와 2개 다른 것이 나타나고 있다. 왼쪽 위의 文田面과 伐如面이 《광여도》에는 積田面과 代如面으로 되어 있다. 이 중 전자는 본 지도와 주기 모두 기존의 글자를 지우고 후에 교정한 흔적이 보인다. 김정호의 《동여도》에는 문전면으로 나온다. 벌여면은 주기에는 岱如面으로 나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代’를 ‘伐’로 착각하여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표현 양식에서 약간 다르나 전체적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한 《해동지도》의 보성군 지도에도 대여면으로 나온다. 본 지도에서 가장 잘못된 것은 맨 아래쪽에 海倉이 있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해동지도》에 바다에 접한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광여도》에는 바다 부분이 갑자기 2개의 실선으로 표시되어 마치 하천처럼 바뀌었다. 본 지도에 이르러서는 오른쪽에서 발원하여 왼쪽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실제로는 《해동지도》가 옳기 때문에 《광여도》와 본 지도로 필사되면서 잘못 이해된 과정을 잘 엿볼 수 있다. 오른쪽 위로 흘러나가는 하천은 현재의 보성강이다. 그러나 이 보성강의 유로에서 세 지도 모두 오류를 범하고 있다. 보성강의 본류는 위쪽 蘆洞面 방향의 장흥 경계 너머에서 흘러와야 한다. 읍치 아래쪽 역시 왼쪽의 장흥 경계 너머에서 흘러와야 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호남지도》의 보성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는 이런 사실 중 전자가 사실처럼 교정되어 있다. 이런 오류를 범한 이유는 고을 전체를 산줄기에 의해 둘러싸인 모습으로 그리려는 욕구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본 지도책의 다른 회화식 군현 지도에서도 이런 식으로 그리는 예가 많다. (이기봉)

  • 보성군(寶城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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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보성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면의 명칭에서 《광여도》와 2개 다른 것이 나타나고 있다. 왼쪽 위의 文田面과 伐如面이 《광여도》에는 積田面과 代如面으로 되어 있다. 이 중 전자는 본 지도와 주기 모두 기존의 글자를 지우고 후에 교정한 흔적이 보인다. 김정호의 《동여도》에는 문전면으로 나온다. 벌여면은 주기에는 岱如面으로 나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代’를 ‘伐’로 착각하여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표현 양식에서 약간 다르나 전체적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한 《해동지도》의 보성군 지도에도 대여면으로 나온다. 본 지도에서 가장 잘못된 것은 맨 아래쪽에 海倉이 있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해동지도》에 바다에 접한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광여도》에는 바다 부분이 갑자기 2개의 실선으로 표시되어 마치 하천처럼 바뀌었다. 본 지도에 이르러서는 오른쪽에서 발원하여 왼쪽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실제로는 《해동지도》가 옳기 때문에 《광여도》와 본 지도로 필사되면서 잘못 이해된 과정을 잘 엿볼 수 있다. 오른쪽 위로 흘러나가는 하천은 현재의 보성강이다. 그러나 이 보성강의 유로에서 세 지도 모두 오류를 범하고 있다. 보성강의 본류는 위쪽 蘆洞面 방향의 장흥 경계 너머에서 흘러와야 한다. 읍치 아래쪽 역시 왼쪽의 장흥 경계 너머에서 흘러와야 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호남지도》의 보성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는 이런 사실 중 전자가 사실처럼 교정되어 있다. 이런 오류를 범한 이유는 고을 전체를 산줄기에 의해 둘러싸인 모습으로 그리려는 욕구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본 지도책의 다른 회화식 군현 지도에서도 이런 식으로 그리는 예가 많다. (이기봉)

  • 부안현(扶安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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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부안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광여도》에 비해 面을 비롯하여 여러 지명이 생략되어 있으며, 지명의 위치도 다르게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생략된 面의 이름으로는 맨 위쪽부터 上東面, 西道面, 立上面, 立下面 등이 있다. 모두 주기에 나오는 면의 명칭이기 때문에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광여도》를 필사하면서 빠뜨린 것으로 생각된다. 지명의 위치가 바뀐 面으로는 下東面, 一道面, 所山面, 乾先面 등이 있다. 이밖에 사찰의 위치도 상당히 잘못 되어 있다. 위쪽의 東津院 부분에 있었던 上東面이 《광여도》에는 旨東面으로 적혀 있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부안현 지도에는 상동면으로 제대로 적혀 있다. 《광여도》의 필사 시 역시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오류를 범한 것이다. 《광여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잘못 필사한 대표적인 것으로는 오른쪽과 위쪽의 하천에 대한 표현이다. 오른쪽의 하천은 현재의 고부천으로 부안, 김제, 고부의 경계선에서 동진강과 합류된다. 《해동지도》에는 이러한 사실이 잘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광여도》로 오면서 고부천이 동진강과 연결되지 않게 그려졌다. 더 나아가 본 지도에서는 맨 위쪽의 동진강을 하나의 선으로만 표시하고, 고부천은 2개의 실선으로 표시하여 더욱 혼란스럽게 되었다. 고부천의 서쪽에도 고부의 땅이 일부 있었다. 《해동지도》에는 古阜界가 고부천 서쪽에 표시되어 이런 사실을 일부 반영하고 있지만, 본 지도에는 고부천의 동쪽에 적혀 있다. 기타 왼쪽 아래에 적혀 있는 蝟島와 上下王登島는 실제의 위치를 반영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는 위도가 해안선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하며, 상하왕등도 역시 위도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섬의 경우 대략적인 방향만 표시하는 경우가 많다. 본 지도에 표현된 다른 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여지도서』의 부안현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여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부안현(扶安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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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부안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광여도》에 비해 面을 비롯하여 여러 지명이 생략되어 있으며, 지명의 위치도 다르게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생략된 面의 이름으로는 맨 위쪽부터 上東面, 西道面, 立上面, 立下面 등이 있다. 모두 주기에 나오는 면의 명칭이기 때문에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광여도》를 필사하면서 빠뜨린 것으로 생각된다. 지명의 위치가 바뀐 面으로는 下東面, 一道面, 所山面, 乾先面 등이 있다. 이밖에 사찰의 위치도 상당히 잘못 되어 있다. 위쪽의 東津院 부분에 있었던 上東面이 《광여도》에는 旨東面으로 적혀 있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부안현 지도에는 상동면으로 제대로 적혀 있다. 《광여도》의 필사 시 역시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오류를 범한 것이다. 《광여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잘못 필사한 대표적인 것으로는 오른쪽과 위쪽의 하천에 대한 표현이다. 오른쪽의 하천은 현재의 고부천으로 부안, 김제, 고부의 경계선에서 동진강과 합류된다. 《해동지도》에는 이러한 사실이 잘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광여도》로 오면서 고부천이 동진강과 연결되지 않게 그려졌다. 더 나아가 본 지도에서는 맨 위쪽의 동진강을 하나의 선으로만 표시하고, 고부천은 2개의 실선으로 표시하여 더욱 혼란스럽게 되었다. 고부천의 서쪽에도 고부의 땅이 일부 있었다. 《해동지도》에는 古阜界가 고부천 서쪽에 표시되어 이런 사실을 일부 반영하고 있지만, 본 지도에는 고부천의 동쪽에 적혀 있다. 기타 왼쪽 아래에 적혀 있는 蝟島와 上下王登島는 실제의 위치를 반영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는 위도가 해안선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하며, 상하왕등도 역시 위도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섬의 경우 대략적인 방향만 표시하는 경우가 많다. 본 지도에 표현된 다른 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여지도서』의 부안현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여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순창군(淳昌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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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순창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표현 양식이 거칠고 글씨도 정서되어 있지 못하다. 특히 《광여도》에는 읍치 위쪽에 仍火伐面, 왼쪽에 八等面과 德進面 등 3개의 면이 있지만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는 3개의 면이 모두 기록되어 있어 본 지도의 작성자가 실수로 빠뜨린 것으로 생각된다. 주변 고을과의 경계선 표시에서도 왼쪽 아래에 있었던 潭陽界가 생략되어 있다. 위쪽의 泰仁界에서 들어와 아래쪽의 玉果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섬진강 본류이다. 왼쪽 위의 上置等面과 福興面은 지도에서와 달리 실제로는 泰仁 방면에서 들어오는 추령천 유역이다. 이 점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으며,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순창군 지도에서도 같게 표현되어 있다. 18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호남지도》의 순창군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는 이 부분이 실제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런 문제점이 발생한 것은 복흥면에서 흘러 내려가는 하천이 태인과 임실의 영역을 돌아 순창으로 흘러들어온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순창군(淳昌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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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순창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표현 양식이 거칠고 글씨도 정서되어 있지 못하다. 특히 《광여도》에는 읍치 위쪽에 仍火伐面, 왼쪽에 八等面과 德進面 등 3개의 면이 있지만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는 3개의 면이 모두 기록되어 있어 본 지도의 작성자가 실수로 빠뜨린 것으로 생각된다. 주변 고을과의 경계선 표시에서도 왼쪽 아래에 있었던 潭陽界가 생략되어 있다. 위쪽의 泰仁界에서 들어와 아래쪽의 玉果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섬진강 본류이다. 왼쪽 위의 上置等面과 福興面은 지도에서와 달리 실제로는 泰仁 방면에서 들어오는 추령천 유역이다. 이 점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으며,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순창군 지도에서도 같게 표현되어 있다. 18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호남지도》의 순창군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는 이 부분이 실제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런 문제점이 발생한 것은 복흥면에서 흘러 내려가는 하천이 태인과 임실의 영역을 돌아 순창으로 흘러들어온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순천부(順天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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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순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와 『여지도서』의 순천부 지도도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광여도》와 비교할 때 왼쪽 중간 부분의 船所 아래의 呂水面과 古突山鎭 왼쪽의 건물 밑에 牧場이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 여수면이 있기 때문에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으로 생각된다. 船所 왼쪽의 船倉은 《광여도》에 없던 지명이며, 《해동지도》에는 있다. 위쪽의 日澄面은 주기에 月燈面으로 되어 있다.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오며, 《해동지도》와 『여지도서』에는 모두 월등면으로 기록되어 있어 본 지도와 《광여도》의 필사 시에 잘못 옮긴 것으로 생각된다. 인근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 일부 문제가 발견된다. 求禮界와 同福界 사이에 谷城의 땅과 많은 부문이 접해 있다. 또한 同福界와 樂安界 사이에도 寶城의 땅과 접해 있다. 위쪽의 하천은 현재의 섬진강과 그 지류인 보성강이다. 섬진강과 보성강이 합류되는 지점은 同福界와 大興寺에서 내려오는 하천이 합류되는 지점 사이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보성강은 실제로는 곡성의 땅을 지나와야 한다. 현재의 입장에서 보아도 3개 면 규모의 곡성 땅을 지나와야 하기 때문에 결코 짧지 않은 부분이다. 그런데 본 지도에서는 이와 같은 보성강이 마치 고을 북쪽을 휘감아 돌아나가는 것처럼 그려져 있어 혼동을 일으킬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동여도》에서는 이런 문제점이 대부분 실제와 부합되게 수정되어 있다. 아래쪽의 섬들은 실질적인 크기나 위치에 관계없이 그려져 있고, 읍치와 右水營 및 鎭의 성곽 부분이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되어 그려져 있다. 海倉은 본 고을의 田稅와 大同米를 모아 한양으로 옮기던 곳이며, 船所와 船倉은 戰船이 정박하던 장소이다. (이기봉)

  • 순천부(順天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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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순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와 『여지도서』의 순천부 지도도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광여도》와 비교할 때 왼쪽 중간 부분의 船所 아래의 呂水面과 古突山鎭 왼쪽의 건물 밑에 牧場이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 여수면이 있기 때문에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으로 생각된다. 船所 왼쪽의 船倉은 《광여도》에 없던 지명이며, 《해동지도》에는 있다. 위쪽의 日澄面은 주기에 月燈面으로 되어 있다.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오며, 《해동지도》와 『여지도서』에는 모두 월등면으로 기록되어 있어 본 지도와 《광여도》의 필사 시에 잘못 옮긴 것으로 생각된다. 인근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 일부 문제가 발견된다. 求禮界와 同福界 사이에 谷城의 땅과 많은 부문이 접해 있다. 또한 同福界와 樂安界 사이에도 寶城의 땅과 접해 있다. 위쪽의 하천은 현재의 섬진강과 그 지류인 보성강이다. 섬진강과 보성강이 합류되는 지점은 同福界와 大興寺에서 내려오는 하천이 합류되는 지점 사이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보성강은 실제로는 곡성의 땅을 지나와야 한다. 현재의 입장에서 보아도 3개 면 규모의 곡성 땅을 지나와야 하기 때문에 결코 짧지 않은 부분이다. 그런데 본 지도에서는 이와 같은 보성강이 마치 고을 북쪽을 휘감아 돌아나가는 것처럼 그려져 있어 혼동을 일으킬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동여도》에서는 이런 문제점이 대부분 실제와 부합되게 수정되어 있다. 아래쪽의 섬들은 실질적인 크기나 위치에 관계없이 그려져 있고, 읍치와 右水營 및 鎭의 성곽 부분이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되어 그려져 있다. 海倉은 본 고을의 田稅와 大同米를 모아 한양으로 옮기던 곳이며, 船所와 船倉은 戰船이 정박하던 장소이다. (이기봉)

  • 여산부(礪山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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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여산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고을의 동남쪽에 있는 天壺山으로부터 읍치까지 오는 산줄기를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왼쪽의 恩津界에서 흘러와 아래쪽의 龍安界로 흘러나가는 하천이 금강의 본류이다. 지도 전체적으로 현재의 여산면 여산리에 있었던 읍치를 확대 강조하여 그렸다. 금강 변에 있는 고을의 서부와 서북부는 산지가 거의 없는 평지임에도 불구하고 산줄기를 강조하여 그렸다. 아울러 금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이 여러 개 있음에도 불구하고 읍치에서 내려가는 하천만 그려져 있다. 읍치에서 내려가는 하천 역시 금강에 바로 합류하는 것이 아니라 恩津의 경계를 넘어 들어간다. 이런 부분 모두 읍치를 중심으로 고을 전체의 풍수적 명당성을 표현하기 위한 목적 때문에 나타난 것으로 생각된다. 아래쪽의 海倉은 여산부의 田稅와 大同米를 한양까지 실어 나르던 곳이다. 현재의 앙성면 금강 변의 나암에 있었지만 바닷물이 이곳까지 들어오기 때문에 해창이란 명칭을 붙였던 것이다. (이기봉)

  • 여산부(礪山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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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여산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고을의 동남쪽에 있는 天壺山으로부터 읍치까지 오는 산줄기를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왼쪽의 恩津界에서 흘러와 아래쪽의 龍安界로 흘러나가는 하천이 금강의 본류이다. 지도 전체적으로 현재의 여산면 여산리에 있었던 읍치를 확대 강조하여 그렸다. 금강 변에 있는 고을의 서부와 서북부는 산지가 거의 없는 평지임에도 불구하고 산줄기를 강조하여 그렸다. 아울러 금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이 여러 개 있음에도 불구하고 읍치에서 내려가는 하천만 그려져 있다. 읍치에서 내려가는 하천 역시 금강에 바로 합류하는 것이 아니라 恩津의 경계를 넘어 들어간다. 이런 부분 모두 읍치를 중심으로 고을 전체의 풍수적 명당성을 표현하기 위한 목적 때문에 나타난 것으로 생각된다. 아래쪽의 海倉은 여산부의 田稅와 大同米를 한양까지 실어 나르던 곳이다. 현재의 앙성면 금강 변의 나암에 있었지만 바닷물이 이곳까지 들어오기 때문에 해창이란 명칭을 붙였던 것이다. (이기봉)

  • 영광군(靈光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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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광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외쪽의 法聖鎭 부분에는 노란색 사각형의 面 기호는 표시되어 있지만 명칭이 기록되지 않았다. 《광여도》에는 陳良面과 道內面이 적혀 있다. 《광여도》에 비해 아예 생략된 면도 있다. 오른쪽 위의 內東面 동쪽에 外東面이, 왼쪽 가운데의 舘山面 부근에 令卞面이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는 모두 적혀 있어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광여도》를 필사하면서 실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실수는 아래쪽 牧場과 多慶浦鎭에 《광여도》에는 없었던 건물이 1개씩 더 그려져 있는 부분에서도 나타난다. 본 지도에는 일부 面의 위치와 월경지에 대한 표시가 이해하기 어렵게 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오른쪽 아래의 六昌面은 가운데의 卞山面 부근에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그 아래쪽의 望雲面과 多慶浦鎭은 함평과 무안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다. 현재의 위치는 무안군 망운면과 운남면 지역인데, 본 지도만으로는 이러한 사실을 이해할 수가 없다. 아래쪽에 표시된 섬들은 현재의 신안군 임자도 부근에 있었던 것으로 거의 월경지에 가깝다. 또한 이 섬들은 크기나 위치가 거의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에 본 지도만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런 문제점은 《광여도》뿐만 아니라 표현 양식에서는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오른쪽에 적혀 있는 錦城界는 나주와의 경계를 의미한다. 나주는 인조(1623-1649) 시기에 잠시 금성현으로 강등되었다. 또한 1728년-1737년(영조 4-13) 사이에도 금성현으로 강등된 적이 있다.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나오는데, 《광여도》와 본 지도의 작성자가 시정하지 않고 그대로 필사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생각된다. 참고로 본 지도책의 맨 앞쪽에 나오는 호남도에는 錦城으로 나오지만 군현별 지도에서는 羅州牧으로 나온다. (이기봉)

  • 영광군(靈光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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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광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외쪽의 法聖鎭 부분에는 노란색 사각형의 面 기호는 표시되어 있지만 명칭이 기록되지 않았다. 《광여도》에는 陳良面과 道內面이 적혀 있다. 《광여도》에 비해 아예 생략된 면도 있다. 오른쪽 위의 內東面 동쪽에 外東面이, 왼쪽 가운데의 舘山面 부근에 令卞面이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는 모두 적혀 있어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광여도》를 필사하면서 실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실수는 아래쪽 牧場과 多慶浦鎭에 《광여도》에는 없었던 건물이 1개씩 더 그려져 있는 부분에서도 나타난다. 본 지도에는 일부 面의 위치와 월경지에 대한 표시가 이해하기 어렵게 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오른쪽 아래의 六昌面은 가운데의 卞山面 부근에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그 아래쪽의 望雲面과 多慶浦鎭은 함평과 무안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다. 현재의 위치는 무안군 망운면과 운남면 지역인데, 본 지도만으로는 이러한 사실을 이해할 수가 없다. 아래쪽에 표시된 섬들은 현재의 신안군 임자도 부근에 있었던 것으로 거의 월경지에 가깝다. 또한 이 섬들은 크기나 위치가 거의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에 본 지도만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런 문제점은 《광여도》뿐만 아니라 표현 양식에서는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오른쪽에 적혀 있는 錦城界는 나주와의 경계를 의미한다. 나주는 인조(1623-1649) 시기에 잠시 금성현으로 강등되었다. 또한 1728년-1737년(영조 4-13) 사이에도 금성현으로 강등된 적이 있다.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나오는데, 《광여도》와 본 지도의 작성자가 시정하지 않고 그대로 필사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생각된다. 참고로 본 지도책의 맨 앞쪽에 나오는 호남도에는 錦城으로 나오지만 군현별 지도에서는 羅州牧으로 나온다. (이기봉)

  • 영암군(靈巖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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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암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본 지도는 《광여도》에 표시된 지명 중 몇 가지를 잘못 표기했거나 생략한 경우가 있다. 읍치 오른쪽의 北二面은 火隊院 위쪽에 표시되어 있어야 하며, 왼쪽의 北平面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다. 또한 읍치 오른쪽에는 北一面이, 왼쪽의 梨津鎭 부근에는 松旨面이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 이런 면의 명칭이 모두 나오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광여도》를 필사하면서 실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昆二面 역시 주기에는 있지만 지도에는 없는데,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 있다. 그러나 본 지도와 표현 양식에서 다를 뿐 전체적인 구도나 내용이 비슷한 《해동지도》의 영암군 지도에는 곤이면이 표시되어 있다. 이것을 통해 볼 때 곤이면은 《광여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빠뜨린 것이라 생각되며, 본 지도의 필사 시 역시 수정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주기에 적혀 있는 郡內面이 지도에 郡始面으로 적혀 있는 점은 세 개의 지도 모두 동일하다. 본 지도는 남쪽을 위로 향해 그리고, 月出山을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그런데 왼쪽의 북평면과 옥천면, 위쪽의 魚蘭鎭 등이 해남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라는 사실을 이 지도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현재의 해남군 옥천면, 북일면, 북평면, 송지면 등이다. 또한 왼쪽의 바닷가에 있는 섬들은 현재 완도군에 속해 있지만 대부분 영암군에 속해 있는 월경지였다. 그러나 크기나 위치 등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 그려져 있다. 예를 들면 가장 아래쪽에 있는 莞島는 이 지역에서 가장 큰 섬이지만 다른 섬들과 거의 같은 크기로 표시되어 있다. 맨 위쪽의 楸子島는 현재는 제주도 제주시에 속해 있는 섬으로 해안가에서 아주 먼 곳에 있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오른쪽 위의 荒島는 지금의 영암군 삼호면에 있는 아주 작은 섬이었다. (이기봉)

  • 영암군(靈巖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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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암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본 지도는 《광여도》에 표시된 지명 중 몇 가지를 잘못 표기했거나 생략한 경우가 있다. 읍치 오른쪽의 北二面은 火隊院 위쪽에 표시되어 있어야 하며, 왼쪽의 北平面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다. 또한 읍치 오른쪽에는 北一面이, 왼쪽의 梨津鎭 부근에는 松旨面이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 이런 면의 명칭이 모두 나오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광여도》를 필사하면서 실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昆二面 역시 주기에는 있지만 지도에는 없는데,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 있다. 그러나 본 지도와 표현 양식에서 다를 뿐 전체적인 구도나 내용이 비슷한 《해동지도》의 영암군 지도에는 곤이면이 표시되어 있다. 이것을 통해 볼 때 곤이면은 《광여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빠뜨린 것이라 생각되며, 본 지도의 필사 시 역시 수정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주기에 적혀 있는 郡內面이 지도에 郡始面으로 적혀 있는 점은 세 개의 지도 모두 동일하다. 본 지도는 남쪽을 위로 향해 그리고, 月出山을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그런데 왼쪽의 북평면과 옥천면, 위쪽의 魚蘭鎭 등이 해남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라는 사실을 이 지도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현재의 해남군 옥천면, 북일면, 북평면, 송지면 등이다. 또한 왼쪽의 바닷가에 있는 섬들은 현재 완도군에 속해 있지만 대부분 영암군에 속해 있는 월경지였다. 그러나 크기나 위치 등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 그려져 있다. 예를 들면 가장 아래쪽에 있는 莞島는 이 지역에서 가장 큰 섬이지만 다른 섬들과 거의 같은 크기로 표시되어 있다. 맨 위쪽의 楸子島는 현재는 제주도 제주시에 속해 있는 섬으로 해안가에서 아주 먼 곳에 있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오른쪽 위의 荒島는 지금의 영암군 삼호면에 있는 아주 작은 섬이었다. (이기봉)

  • 옥과현(玉果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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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옥과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 표시에서 오른쪽에 南原界가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하천이 현재의 섬진강 본류이다. 그러나 섬진강은 옥과현의 동쪽 일부분에만 걸쳐 남원과 경계를 이루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게 표시된 것은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 부분이 실제와 거의 동일하게 표현되어 있다. 兼方面 부분에서 흘러오는 현재의 삼기천은 실제로는 곡성의 경계 너머에서 흘러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처럼 그린 것은 고을 전체를 산줄기에 의해 둘러싸인 형태로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역시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실제와 비슷하게 교정되어 있다. 그 밖의 표현은 실제와 상당히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여지도서』의 옥과현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여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옥과현(玉果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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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옥과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 표시에서 오른쪽에 南原界가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하천이 현재의 섬진강 본류이다. 그러나 섬진강은 옥과현의 동쪽 일부분에만 걸쳐 남원과 경계를 이루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게 표시된 것은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 부분이 실제와 거의 동일하게 표현되어 있다. 兼方面 부분에서 흘러오는 현재의 삼기천은 실제로는 곡성의 경계 너머에서 흘러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처럼 그린 것은 고을 전체를 산줄기에 의해 둘러싸인 형태로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역시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실제와 비슷하게 교정되어 있다. 그 밖의 표현은 실제와 상당히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여지도서』의 옥과현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여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옥구현(沃溝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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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옥구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옥구현 지도 역시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그러나 《해동지도》가 《광여도》나 본 지도로 변화하면서 달라진 측면이 있다. 첫째, 《해동지도》에 있었던 도로가 일괄적으로 생략되었다. 둘째, 일부 지명이 생략되었다. 왼쪽의 筽倉島처럼 《해동지도》의 筽食島를 誤記하기도 하였다. 셋째, 하천에 대한 표현 양식이 달라졌다. 아래쪽의 경우 현재의 만경강이 바다와 만나는 부분이고, 위쪽은 금강이 바다와 만나는 부분이다. 두 지역 모두 강이라기보다는 바다에 가까우며, 폭이 상당히 넓다. 《해동지도》에는 금강의 하구 부분이 바다처럼 묘사되어 있고, 《광여도》와 본 지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만경강과 바다가 만나는 부분 역시 《해동지도》에는 꽤 넓게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바다라기보다는 하천처럼 좁게 표현되어 있어 필사 시에 잘못 이해한 것으로 생각된다. 넷째, 《해동지도》에는 북쪽의 群山鎭 부분과 읍치 사이의 산줄기가 길게 강조되어 있지만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상당히 좁게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남북을 동서보다 길게 그렸던 《해동지도》에 비해 《광여도》와 본 지도가 상대적으로 남북을 짧게 그렸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여지도서』의 옥구현 지도도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여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옥구현(沃溝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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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옥구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옥구현 지도 역시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그러나 《해동지도》가 《광여도》나 본 지도로 변화하면서 달라진 측면이 있다. 첫째, 《해동지도》에 있었던 도로가 일괄적으로 생략되었다. 둘째, 일부 지명이 생략되었다. 왼쪽의 筽倉島처럼 《해동지도》의 筽食島를 誤記하기도 하였다. 셋째, 하천에 대한 표현 양식이 달라졌다. 아래쪽의 경우 현재의 만경강이 바다와 만나는 부분이고, 위쪽은 금강이 바다와 만나는 부분이다. 두 지역 모두 강이라기보다는 바다에 가까우며, 폭이 상당히 넓다. 《해동지도》에는 금강의 하구 부분이 바다처럼 묘사되어 있고, 《광여도》와 본 지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만경강과 바다가 만나는 부분 역시 《해동지도》에는 꽤 넓게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바다라기보다는 하천처럼 좁게 표현되어 있어 필사 시에 잘못 이해한 것으로 생각된다. 넷째, 《해동지도》에는 북쪽의 群山鎭 부분과 읍치 사이의 산줄기가 길게 강조되어 있지만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상당히 좁게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남북을 동서보다 길게 그렸던 《해동지도》에 비해 《광여도》와 본 지도가 상대적으로 남북을 짧게 그렸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여지도서』의 옥구현 지도도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여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용담현(龍潭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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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용담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왼쪽 위의 埋伏處와 아래쪽의 玉女峰은 《광여도》에 없던 지명으로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용담현 지도에는 나온다. 본 지도가 전체적인 표현에서는 《광여도》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세부적으로는 《해동지도》도 참조했음을 알려주는 지명이다. 《광여도》에 비해 달라진 점 중의 하나는 하천에 대한 표현이다. 아래쪽의 鎭安界와 茂朱界에서 흘러와 위쪽의 錦山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금강이다. 그런데 《광여도》에는 아래쪽의 南面부터 東面 부근까지 하나의 실선으로만 표시하였고, 나머지 부분은 2개의 실선으로 그렸다. 1개의 실선 부분에서 갑자기 하폭이 좁아지는 것이 아니라면 《광여도》의 필사 시 하류를 2개의 실선으로, 상류를 1개의 실선으로 그리려 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무주와 진안 방면에서 금강이 흘러온다는 사실을 깨닫고 상류부분도 다시 2개의 실선으로 그린 것이 아닌가 한다. 본 지도의 필사 시 《광여도》를 필사하면서도 《해동지도》를 참조하면서 이 부분을 수정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남면 부분의 하천 표시에서 실제와 다른 측면이 일부 발견된다. 伊川으로 표시된 금강은 진안의 땅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용담현의 땅을 거쳐 무주계로 들어간다. 이렇게 된 이유는 용담현의 땅이었던 현재의 진안군 동향면이 동남쪽으로 불쑥 튀어나간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 부분이 사실에 가깝게 교정되어 있다. 『여지도서』의 용담현 지도도 《해동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비슷하여 본 지도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용담현(龍潭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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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용담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왼쪽 위의 埋伏處와 아래쪽의 玉女峰은 《광여도》에 없던 지명으로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용담현 지도에는 나온다. 본 지도가 전체적인 표현에서는 《광여도》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세부적으로는 《해동지도》도 참조했음을 알려주는 지명이다. 《광여도》에 비해 달라진 점 중의 하나는 하천에 대한 표현이다. 아래쪽의 鎭安界와 茂朱界에서 흘러와 위쪽의 錦山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금강이다. 그런데 《광여도》에는 아래쪽의 南面부터 東面 부근까지 하나의 실선으로만 표시하였고, 나머지 부분은 2개의 실선으로 그렸다. 1개의 실선 부분에서 갑자기 하폭이 좁아지는 것이 아니라면 《광여도》의 필사 시 하류를 2개의 실선으로, 상류를 1개의 실선으로 그리려 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무주와 진안 방면에서 금강이 흘러온다는 사실을 깨닫고 상류부분도 다시 2개의 실선으로 그린 것이 아닌가 한다. 본 지도의 필사 시 《광여도》를 필사하면서도 《해동지도》를 참조하면서 이 부분을 수정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남면 부분의 하천 표시에서 실제와 다른 측면이 일부 발견된다. 伊川으로 표시된 금강은 진안의 땅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용담현의 땅을 거쳐 무주계로 들어간다. 이렇게 된 이유는 용담현의 땅이었던 현재의 진안군 동향면이 동남쪽으로 불쑥 튀어나간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 부분이 사실에 가깝게 교정되어 있다. 『여지도서』의 용담현 지도도 《해동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비슷하여 본 지도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용안현(龍安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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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용안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흐르는 하천이 지금의 금강이다. 금강이 동쪽에서 흘러와 서쪽으로 빠져나가므로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고 볼 수 있다. 아래쪽의 하천은 현재의 부곡천이다. 부곡천 건너에도 용안현의 땅이 있었음에도 본 지도에는 그런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위쪽의 하천은 용안현의 땅에서 발원하는 작은 하천에 불과하다. 그러나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마치 다른 고을로부터 들어오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용안현 지도에는 최상류가 뾰족하게 되어 있어 다른 고을에서 들어오는 하천이 아닐 수도 있는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용안현은 益山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益山界가 적혀 있다. 주기에도 남쪽으로 益山까지의 거리가 5리라고 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남쪽으로 익산까지의 거리가 12리로 되어 있다. 이런 오류는 김정호의 《동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져 용안현이 마치 익산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용안현(龍安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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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용안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흐르는 하천이 지금의 금강이다. 금강이 동쪽에서 흘러와 서쪽으로 빠져나가므로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고 볼 수 있다. 아래쪽의 하천은 현재의 부곡천이다. 부곡천 건너에도 용안현의 땅이 있었음에도 본 지도에는 그런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위쪽의 하천은 용안현의 땅에서 발원하는 작은 하천에 불과하다. 그러나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마치 다른 고을로부터 들어오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용안현 지도에는 최상류가 뾰족하게 되어 있어 다른 고을에서 들어오는 하천이 아닐 수도 있는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용안현은 益山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益山界가 적혀 있다. 주기에도 남쪽으로 益山까지의 거리가 5리라고 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남쪽으로 익산까지의 거리가 12리로 되어 있다. 이런 오류는 김정호의 《동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져 용안현이 마치 익산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운봉현(雲峰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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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운봉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운봉현은 전라도에 속해 있지만 水界의 입장에서 보면 낙동강의 지류인 남강 유역에 있다. 읍치 방향에 있는 하천을 현재 광천이라 부르고, 위쪽의 東面 방향에 있는 하천을 풍천이라 부른다. 광천과 풍천은 실제로 전체의 길이나 유역 면적이 비슷하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읍치 지역을 다른 지역에 비해 크게 그렸기 때문에 광천이 더 긴 것으로 표현되었다. 또한 읍치 지역의 평지가 東面 지역의 평지보다도 훨씬 넓은 것처럼 묘사되었다.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운봉현 지도는 하천의 길이라는 측면에서는 본 지도와 비슷하지만 평지의 표현은 좀 다르게 되어 있다. 즉, 東面 지역의 평지가 본 지도보다 상대적으로 넓게 표현되어 있다. 《광여도》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동면 지역의 남북을 좁게 그리고, 더 나아가 산줄기를 추가함으로써 좁고 평지가 별로 없는 듯한 인상을 주게 된 것이다. 김정호의 《동여도》에도 본 지도의 荒山 위쪽 하천이 상대적으로 짧게 그려져 있다. 아마 본 지도와 같은 회화식 군현지도의 영향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더불어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광천의 유로에 대해 잘못 표현되어 있고, 읍치의 위치가 잘못 비정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기봉)

  • 운봉현(雲峰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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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운봉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운봉현은 전라도에 속해 있지만 水界의 입장에서 보면 낙동강의 지류인 남강 유역에 있다. 읍치 방향에 있는 하천을 현재 광천이라 부르고, 위쪽의 東面 방향에 있는 하천을 풍천이라 부른다. 광천과 풍천은 실제로 전체의 길이나 유역 면적이 비슷하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읍치 지역을 다른 지역에 비해 크게 그렸기 때문에 광천이 더 긴 것으로 표현되었다. 또한 읍치 지역의 평지가 東面 지역의 평지보다도 훨씬 넓은 것처럼 묘사되었다.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운봉현 지도는 하천의 길이라는 측면에서는 본 지도와 비슷하지만 평지의 표현은 좀 다르게 되어 있다. 즉, 東面 지역의 평지가 본 지도보다 상대적으로 넓게 표현되어 있다. 《광여도》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동면 지역의 남북을 좁게 그리고, 더 나아가 산줄기를 추가함으로써 좁고 평지가 별로 없는 듯한 인상을 주게 된 것이다. 김정호의 《동여도》에도 본 지도의 荒山 위쪽 하천이 상대적으로 짧게 그려져 있다. 아마 본 지도와 같은 회화식 군현지도의 영향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더불어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광천의 유로에 대해 잘못 표현되어 있고, 읍치의 위치가 잘못 비정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기봉)

  • 익산군(益山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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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익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북쪽의 彌勒山(430.2m)과 龍華山(342m)에서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가 특히 강조되어 있다. 그러나 미륵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는 단지 야트막한 야산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맨 아래쪽 春浦山의 경우 겨우 47.8m에 불과한 산이다. 왼쪽 아래의 全州界에서 들어와 오른쪽으로 흘러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만경강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익산군 지도도 표현 양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본 지도와 《광여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필사 과정에서 王宮塔을 비롯하여 몇 개의 지명과 도로가 생략되면서 지도의 내용이 더 단조로워졌다. 《해동지도》에는 명칭만 적혀 있던 面에 본 지도와 《광여도》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사용한 것도 하나의 변화이다. 본 지도 주기의 형식과 내용도 《광여도》와 동일하며, 《해동지도》와는 내용은 비슷하지만 형식을 재편집되어 있다. (이기봉)

  • 익산군(益山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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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익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북쪽의 彌勒山(430.2m)과 龍華山(342m)에서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가 특히 강조되어 있다. 그러나 미륵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는 단지 야트막한 야산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맨 아래쪽 春浦山의 경우 겨우 47.8m에 불과한 산이다. 왼쪽 아래의 全州界에서 들어와 오른쪽으로 흘러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만경강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익산군 지도도 표현 양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본 지도와 《광여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필사 과정에서 王宮塔을 비롯하여 몇 개의 지명과 도로가 생략되면서 지도의 내용이 더 단조로워졌다. 《해동지도》에는 명칭만 적혀 있던 面에 본 지도와 《광여도》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사용한 것도 하나의 변화이다. 본 지도 주기의 형식과 내용도 《광여도》와 동일하며, 《해동지도》와는 내용은 비슷하지만 형식을 재편집되어 있다. (이기봉)

  • 임실현(任實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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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임실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의 縣內面에 노란색 사각형을 표시하지 않은 점, 아래쪽에 사각형만 그리고 노란색이나 東面의 명칭을 넣지 않은 점 등이 눈에 띈다. 이런 점들은 본 지도가 《광여도》를 필사하면서 실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읍치에서 발원하여 고을을 빙 돌아 아래쪽의 淳昌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섬진강 본류이다. 그러나 이 섬진강 본류의 표현에서 몇 가지 오류가 발견되고 있다. 첫째, 오른쪽 위의 鎭安界 방향에서 섬진강 본류가 흘러 들어옴에도 본 지도만으로는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없다. 둘째, 왼쪽의 淳昌界와 泰仁界 사이에서 섬진강의 지류가 흘러 들어옴에도 역시 본 지도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셋째, 아래쪽의 上東面과 下東面을 흐르는 하천은 현재의 오수천인데 동쪽의 南原界에서 흘러 들어옴에도 역시 본 지도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이 오수천은 남원의 경계를 넘어 흘러가다 섬진강에 합류되는데, 역시 본 지도만으로는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하기 어렵다. 넷째, 읍치 지역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으며 그 부근의 하천 역시 실제보다 더 크게 그려져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런 오류 중 첫 번째의 것은 《해동지도》의 임실현 지도에는 실제와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광여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그리면서 첫 번째 부분을 애매하게 그렸고,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그것을 발원지처럼 인식하여 오류를 범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면의 표기에서 몇 가지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오른쪽 위쪽에 사각형만 그려져 있는 부분에 下北三面이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그 아래쪽 上北面은 上北三面으로 되어 있고, 위쪽의 下雲面 부근에 上雲面이 기록되어 있다. 이밖에도 몇 개의 면 명칭이 생략되었는데,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주기에 이런 면의 명칭이 모두 나오는 것을 통해 볼 때 《광여도》의 필사 시에 먼저 오류를 범했고,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여지도서』의 임실현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하나 내용적으로는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이기봉)

  • 임실현(任實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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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임실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의 縣內面에 노란색 사각형을 표시하지 않은 점, 아래쪽에 사각형만 그리고 노란색이나 東面의 명칭을 넣지 않은 점 등이 눈에 띈다. 이런 점들은 본 지도가 《광여도》를 필사하면서 실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읍치에서 발원하여 고을을 빙 돌아 아래쪽의 淳昌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섬진강 본류이다. 그러나 이 섬진강 본류의 표현에서 몇 가지 오류가 발견되고 있다. 첫째, 오른쪽 위의 鎭安界 방향에서 섬진강 본류가 흘러 들어옴에도 본 지도만으로는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없다. 둘째, 왼쪽의 淳昌界와 泰仁界 사이에서 섬진강의 지류가 흘러 들어옴에도 역시 본 지도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셋째, 아래쪽의 上東面과 下東面을 흐르는 하천은 현재의 오수천인데 동쪽의 南原界에서 흘러 들어옴에도 역시 본 지도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이 오수천은 남원의 경계를 넘어 흘러가다 섬진강에 합류되는데, 역시 본 지도만으로는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하기 어렵다. 넷째, 읍치 지역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으며 그 부근의 하천 역시 실제보다 더 크게 그려져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런 오류 중 첫 번째의 것은 《해동지도》의 임실현 지도에는 실제와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광여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그리면서 첫 번째 부분을 애매하게 그렸고,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그것을 발원지처럼 인식하여 오류를 범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면의 표기에서 몇 가지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오른쪽 위쪽에 사각형만 그려져 있는 부분에 下北三面이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그 아래쪽 上北面은 上北三面으로 되어 있고, 위쪽의 下雲面 부근에 上雲面이 기록되어 있다. 이밖에도 몇 개의 면 명칭이 생략되었는데,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주기에 이런 면의 명칭이 모두 나오는 것을 통해 볼 때 《광여도》의 필사 시에 먼저 오류를 범했고,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여지도서』의 임실현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하나 내용적으로는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이기봉)

  • 임피현(臨陂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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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임피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북쪽의 하천이 지금의 금강이고, 아래쪽의 하천이 지금의 만경강이다. 본 지도는 《광여도》와 마찬가지로 두 하천의 규모를 이해할 수 없게 그렸다. 그러나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임피현 지도에는 금강이 만경강보다 하폭을 넓게 그렸다. 또한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금강에만 ‘水廣五里’라는 문구가 적혀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만경강에도 ‘水廣一里’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따라서 《해동지도》에서는 하천의 표현과 문구를 통해 두 하천의 규모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하천의 규모에 대한 표현에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읍치를 확대하고, 풍수적 명당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산줄기를 겹겹이 그렸다. 그 결과 마치 모든 면이 읍치를 감싸고 있는 산줄기의 바깥쪽에 배열된 듯한 오해를 할 수 있다. 이것은 회화식 군현지도에서 읍치와 다른 부분의 축척을 전혀 다르게 적용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쪽의 海倉은 본 고을의 田稅와 大同米를 모아 한양으로 운반하던 곳이다. (이기봉)

  • 임피현(臨陂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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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임피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북쪽의 하천이 지금의 금강이고, 아래쪽의 하천이 지금의 만경강이다. 본 지도는 《광여도》와 마찬가지로 두 하천의 규모를 이해할 수 없게 그렸다. 그러나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임피현 지도에는 금강이 만경강보다 하폭을 넓게 그렸다. 또한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금강에만 ‘水廣五里’라는 문구가 적혀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만경강에도 ‘水廣一里’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따라서 《해동지도》에서는 하천의 표현과 문구를 통해 두 하천의 규모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하천의 규모에 대한 표현에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읍치를 확대하고, 풍수적 명당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산줄기를 겹겹이 그렸다. 그 결과 마치 모든 면이 읍치를 감싸고 있는 산줄기의 바깥쪽에 배열된 듯한 오해를 할 수 있다. 이것은 회화식 군현지도에서 읍치와 다른 부분의 축척을 전혀 다르게 적용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쪽의 海倉은 본 고을의 田稅와 大同米를 모아 한양으로 운반하던 곳이다. (이기봉)

  • 장성부(長城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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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장성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광여도》에 비해 面의 이름이 2개 잘못 기록되어 있다. 왼쪽 위의 北三面은 北二面을, 가운데 아래 永申驛 부근의 南三面은 南二面을 잘못 기록한 것이다. 왼쪽 위에는 面의 기호인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만 이름은 적혀 있지 않다. 그 왼쪽에는 笠岩山城에 대한 설명이 ‘동서북 삼면이 매우 험하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설명에서 ‘北三面’ 부분을 필사 시에 面으로 오해하고 노란색 사각형을 그려 넣은 것으로 생각된다. 이후 面이 아님을 깨닫고 명칭을 적어 넣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부분을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 면밀한 검토를 행하면서 필사한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오른쪽 아래쪽의 平昌界는 昌平界의 잘못으로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표현 양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장성부 지도에서는 昌平界로 되어 있다. 《광여도》의 필사 시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오류를 범했고, 본 지도의 필사자도 그 오류를 인식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 몇 가지 문제가 있다. 昌平界가 적혀 있는 이유는 현재의 담양군 수북면에 있었던 창평의 월경지와 경계를 맞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많은 경계선을 접하고 있었던 高敞, 淳昌과의 경계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해동지도》에는 순창은 없지만 고창과의 경계 표시는 있다. 고창은 영광과 정읍 사이에, 순창은 정읍과 담양 사이에 적혀 있어야 한다. 아래쪽의 錦城界에서의 錦城은 인조(1623-1649) 시기와 1728년-1737년(영조 4-13) 사이에 현으로 강등되었을 때의 나주 명칭이었다. 그러나 주기에는 남쪽으로 나주와 경계를 맞대고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광여도》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고, 《해동지도》에는 지도와 주기 모두 錦城이라고 되어 있다. 《광여도》의 필사 시 《해동지도》의 지도는 그대로 베끼면서 주기의 내용은 당시의 상황에 맞게 교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의 필사 시 면밀한 검토 없이 《광여도》의 내용을 그대로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기봉)

  • 장성부(長城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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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장성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광여도》에 비해 面의 이름이 2개 잘못 기록되어 있다. 왼쪽 위의 北三面은 北二面을, 가운데 아래 永申驛 부근의 南三面은 南二面을 잘못 기록한 것이다. 왼쪽 위에는 面의 기호인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만 이름은 적혀 있지 않다. 그 왼쪽에는 笠岩山城에 대한 설명이 ‘동서북 삼면이 매우 험하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설명에서 ‘北三面’ 부분을 필사 시에 面으로 오해하고 노란색 사각형을 그려 넣은 것으로 생각된다. 이후 面이 아님을 깨닫고 명칭을 적어 넣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부분을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 면밀한 검토를 행하면서 필사한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오른쪽 아래쪽의 平昌界는 昌平界의 잘못으로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표현 양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장성부 지도에서는 昌平界로 되어 있다. 《광여도》의 필사 시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오류를 범했고, 본 지도의 필사자도 그 오류를 인식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 몇 가지 문제가 있다. 昌平界가 적혀 있는 이유는 현재의 담양군 수북면에 있었던 창평의 월경지와 경계를 맞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많은 경계선을 접하고 있었던 高敞, 淳昌과의 경계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해동지도》에는 순창은 없지만 고창과의 경계 표시는 있다. 고창은 영광과 정읍 사이에, 순창은 정읍과 담양 사이에 적혀 있어야 한다. 아래쪽의 錦城界에서의 錦城은 인조(1623-1649) 시기와 1728년-1737년(영조 4-13) 사이에 현으로 강등되었을 때의 나주 명칭이었다. 그러나 주기에는 남쪽으로 나주와 경계를 맞대고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광여도》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고, 《해동지도》에는 지도와 주기 모두 錦城이라고 되어 있다. 《광여도》의 필사 시 《해동지도》의 지도는 그대로 베끼면서 주기의 내용은 당시의 상황에 맞게 교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의 필사 시 면밀한 검토 없이 《광여도》의 내용을 그대로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기봉)

  • 장수현(長水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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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장수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일부 산줄기나 지명의 위치에서만 차이가 날 뿐이다. 고을 전체의 모습이 실제와 동일하지는 않지만 하천의 유로 표시에서는 실제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읍치 부분에서 발원하여 위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금강 본류이다. 任縣內面에서 금강으로 합류하는 하천은 현재 장계천이라 부르고 있다. 장계천은 현재의 장계면과 계남면에서 두 물줄기가 합류되어 금강으로 흘러가는데 지도에도 이와 같은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任北面 부분에서 금강에 합류하는 하천도 현재 계북면에서 흘러가는 하천이다. 그 위쪽의 하천은 현재의 계북면에서 옛 龍潭의 경계를 넘어 금강에 합류되는데 본 지도에도 잘 표현되어 있다. 다만 방향이 약간 잘못되어 있을 뿐이다. 실제로는 북류하다가 용담의 땅에 들어가 서류한다. 왼쪽 아래의 身西面에서 흘러가는 하천은 섬진강의 지류인 오수천의 상류로서 현재의 장수군 산서면 일부이다. 그 오른쪽에 작게 표시되어 있는 하천은 섬진강의 지류인 요천 최상류 중의 하나로 현재의 장수군 장수읍에 걸쳐 있다. 가장 오른쪽에 있는 하천도 요천의 지류인 용림천의 최상류로서 역시 장수군에 걸쳐 있다. 회화식 군현지도는 고을 전체를 산줄기에 의해 둘러싸인 것처럼 표현하기 위해 읍치와 다른 유역에 속하는 작은 하천들은 그리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사실에 입각해 보면 본 지도는 회화식 군현지도이면서도 하천을 아주 상세하게 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고 볼 수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장수현 지도와 『여지도서』의 장수현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특히 《해동지도》는 가장 먼저 그려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기봉)

  • 장수현(長水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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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장수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일부 산줄기나 지명의 위치에서만 차이가 날 뿐이다. 고을 전체의 모습이 실제와 동일하지는 않지만 하천의 유로 표시에서는 실제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읍치 부분에서 발원하여 위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금강 본류이다. 任縣內面에서 금강으로 합류하는 하천은 현재 장계천이라 부르고 있다. 장계천은 현재의 장계면과 계남면에서 두 물줄기가 합류되어 금강으로 흘러가는데 지도에도 이와 같은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任北面 부분에서 금강에 합류하는 하천도 현재 계북면에서 흘러가는 하천이다. 그 위쪽의 하천은 현재의 계북면에서 옛 龍潭의 경계를 넘어 금강에 합류되는데 본 지도에도 잘 표현되어 있다. 다만 방향이 약간 잘못되어 있을 뿐이다. 실제로는 북류하다가 용담의 땅에 들어가 서류한다. 왼쪽 아래의 身西面에서 흘러가는 하천은 섬진강의 지류인 오수천의 상류로서 현재의 장수군 산서면 일부이다. 그 오른쪽에 작게 표시되어 있는 하천은 섬진강의 지류인 요천 최상류 중의 하나로 현재의 장수군 장수읍에 걸쳐 있다. 가장 오른쪽에 있는 하천도 요천의 지류인 용림천의 최상류로서 역시 장수군에 걸쳐 있다. 회화식 군현지도는 고을 전체를 산줄기에 의해 둘러싸인 것처럼 표현하기 위해 읍치와 다른 유역에 속하는 작은 하천들은 그리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사실에 입각해 보면 본 지도는 회화식 군현지도이면서도 하천을 아주 상세하게 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고 볼 수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장수현 지도와 『여지도서』의 장수현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특히 《해동지도》는 가장 먼저 그려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기봉)

  • 장흥부(長興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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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제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지도로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장흥현 지도와 『여지도서』의 장흥부 지도가 있다. 면의 위치 표기에서 잘못된 곳이 나타나고 있다. 왼쪽 위의 夫山面과 有恥面은 위치가 바뀌었다. 읍치 왼쪽의 古邑面은 南面과 大興面 사이에 위치시켜야 한다. 비록 같은 회화식 지도이지만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호남지도》와 ‘1872년 지방지도’의 장흥부 지도에는 2개의 면이 실제와 부합되게 표시되어 있다. 주기에도 夫山面은 初境이 5리, 終境이 15 리로 되어 있는 반면 有恥面은 각각 15 리와 60 리로 되어 있어 지도의 내용과 부합되고 있지 않다. 또한 古邑面도 초경이 40 리, 종경이 50 리로 되어 있어 지도의 내용과 다르게 볼 수 있다. 오른쪽 위의 하천은 현재의 보성강이고, 왼쪽 위의 하천은 현재의 탐진강이다. 이 중 탐진강의 유로 표시에서 문제가 일부 나타나고 있다. 왼쪽 위의 경우 탐진강은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羅州와 靈岩의 경계선 밖에서 흘러오도록 그려져 있어야 한다. 또한 읍치 왼쪽에 있는 현재의 금강은 강진의 성전면, 작천면, 병영면을 통해 장흥부에 들어온다. ‘1872년 지방지도’의 장흥부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잘 묘사되어 있다. 오른쪽 아래의 섬은 크기나 위치를 고려하지 않고 바다에 있는 섬을 모아 놓은 것이다.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그렸고, 섬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장흥부(長興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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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제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지도로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장흥현 지도와 『여지도서』의 장흥부 지도가 있다. 면의 위치 표기에서 잘못된 곳이 나타나고 있다. 왼쪽 위의 夫山面과 有恥面은 위치가 바뀌었다. 읍치 왼쪽의 古邑面은 南面과 大興面 사이에 위치시켜야 한다. 비록 같은 회화식 지도이지만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호남지도》와 ‘1872년 지방지도’의 장흥부 지도에는 2개의 면이 실제와 부합되게 표시되어 있다. 주기에도 夫山面은 初境이 5리, 終境이 15 리로 되어 있는 반면 有恥面은 각각 15 리와 60 리로 되어 있어 지도의 내용과 부합되고 있지 않다. 또한 古邑面도 초경이 40 리, 종경이 50 리로 되어 있어 지도의 내용과 다르게 볼 수 있다. 오른쪽 위의 하천은 현재의 보성강이고, 왼쪽 위의 하천은 현재의 탐진강이다. 이 중 탐진강의 유로 표시에서 문제가 일부 나타나고 있다. 왼쪽 위의 경우 탐진강은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羅州와 靈岩의 경계선 밖에서 흘러오도록 그려져 있어야 한다. 또한 읍치 왼쪽에 있는 현재의 금강은 강진의 성전면, 작천면, 병영면을 통해 장흥부에 들어온다. ‘1872년 지방지도’의 장흥부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잘 묘사되어 있다. 오른쪽 아래의 섬은 크기나 위치를 고려하지 않고 바다에 있는 섬을 모아 놓은 것이다.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그렸고, 섬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전주부(全州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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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전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에 비해 표현이 거칠고 오류가 몇 개 보이고 있다. 읍치 오른쪽의 府東面과 왼쪽 위의 利北面은 노란색 사각형의 면 표시가 되어 있지 않다. 주기의 면 이름 중에는 맨 마지막의 伊北面은 《광여도》에 利北面으로 적혀 있다. 본 지도의 주기에 伊北面이 2개 적혀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광여도》의 것을 잘못 베낀 것으로 생각된다. 주기에 있으면서 지도에 없는 면으로는 府北面과 府西面, 利西面 등이 있다. 이 점은 《광여도》에도 동일하다. 하지만 본 지도와 표현 양식에서 다를 뿐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전주부 지도에는 모두 적혀 있어 《광여도》의 필사 시에 빠뜨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밖에도 오른쪽 아래에 古達山이 古達로 적혀 있는 등의 오류가 보이고 있는데 큰 고을인 만큼 지명이 많아서 생긴 혼란이라고 생각된다. 오른쪽 위의 陽良所面은 高山縣의 땅을 넘어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일대에 있었던 월경지였다. 이곳은 금강의 지류인 논산천 유역에 있었는데 본 지도만으로는 그러한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 《광여도》에서도 비슷하게 표시되어 있으나 龍進面 위쪽에 있는 현재의 고산천이 五道峙에서 끊겨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마치 양량소면까지 연결시키고 있어 필사 시에 월경지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왼쪽 위의 利城倉이 있는 부분은 현재의 김제시 청하면과 공덕면에, 南一道面 부근은 현재의 익산시 시내에 있었던 월경지였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월경지가 아닌 곳과 연속적으로 그려져 있어 월경지임을 이해할 수가 없다. 이런 월경지들은 고려시대에 전주가 여러 屬縣을 거느린 主縣이었기 때문에 형성된 것이다. 즉, 조선 초기까지 지방관이 파견되지 못한 속현들은 주현인 전주의 땅이 되었고, 다른 고을의 경계선을 넘어가 있었을 경우 월경지가 되었던 것이다. 읍치 왼쪽을 흐르는 전주천의 모습이 《광여도》와 다르게 되어 있다. 《광여도》에는 전주천이 萬景臺 부근에서 끊어져 있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 본 지도에서는 上官面 부근까지 연결된 것으로 되어 있어 실제에 가깝게 수정되어 있다. 《광여도》의 필사 시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범한 오류를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수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전주부(全州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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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전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에 비해 표현이 거칠고 오류가 몇 개 보이고 있다. 읍치 오른쪽의 府東面과 왼쪽 위의 利北面은 노란색 사각형의 면 표시가 되어 있지 않다. 주기의 면 이름 중에는 맨 마지막의 伊北面은 《광여도》에 利北面으로 적혀 있다. 본 지도의 주기에 伊北面이 2개 적혀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광여도》의 것을 잘못 베낀 것으로 생각된다. 주기에 있으면서 지도에 없는 면으로는 府北面과 府西面, 利西面 등이 있다. 이 점은 《광여도》에도 동일하다. 하지만 본 지도와 표현 양식에서 다를 뿐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전주부 지도에는 모두 적혀 있어 《광여도》의 필사 시에 빠뜨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밖에도 오른쪽 아래에 古達山이 古達로 적혀 있는 등의 오류가 보이고 있는데 큰 고을인 만큼 지명이 많아서 생긴 혼란이라고 생각된다. 오른쪽 위의 陽良所面은 高山縣의 땅을 넘어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일대에 있었던 월경지였다. 이곳은 금강의 지류인 논산천 유역에 있었는데 본 지도만으로는 그러한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 《광여도》에서도 비슷하게 표시되어 있으나 龍進面 위쪽에 있는 현재의 고산천이 五道峙에서 끊겨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마치 양량소면까지 연결시키고 있어 필사 시에 월경지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왼쪽 위의 利城倉이 있는 부분은 현재의 김제시 청하면과 공덕면에, 南一道面 부근은 현재의 익산시 시내에 있었던 월경지였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월경지가 아닌 곳과 연속적으로 그려져 있어 월경지임을 이해할 수가 없다. 이런 월경지들은 고려시대에 전주가 여러 屬縣을 거느린 主縣이었기 때문에 형성된 것이다. 즉, 조선 초기까지 지방관이 파견되지 못한 속현들은 주현인 전주의 땅이 되었고, 다른 고을의 경계선을 넘어가 있었을 경우 월경지가 되었던 것이다. 읍치 왼쪽을 흐르는 전주천의 모습이 《광여도》와 다르게 되어 있다. 《광여도》에는 전주천이 萬景臺 부근에서 끊어져 있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 본 지도에서는 上官面 부근까지 연결된 것으로 되어 있어 실제에 가깝게 수정되어 있다. 《광여도》의 필사 시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범한 오류를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수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정읍현(井邑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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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정읍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만으로는 동서남북을 이해하기 어렵다. 지도 아래쪽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흘러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정읍천이다. 정읍천은 실제로 서남쪽에서 동북 방향으로 흘러나가므로, 본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고 볼 수 있다. 면의 명칭 중 西가 붙어있는 것은 실제로 서쪽과 서남쪽에, 北이 붙어 있는 것은 동북쪽에 있기 때문에 면의 명칭만으로는 방향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렵다. 《해동지도》의 정읍현 지도도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그러나 도로의 표시, 제언을 비롯한 일부 지명 등이 생략되어 있다. 또한 읍치 아래쪽의 立石과 부분의 하천이 강조되어 있는데, 《광여도》에서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대체적으로 《광여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지도이며, 본 지도는 《광여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 아래에는 高敞界가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고창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았다. 본 지도책의 다른 고을에서도 가끔 이런 경우가 나타나는데,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더라도 해당 방향으로 가면 경계가 나타난다는 의미로 쓰였다. 반대로 위쪽의 淳昌界와 古阜界 사이에는 泰仁과 경계를 맞대고 있음에도 이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해동지도》에는 泰仁界가 적혀 있다. 따라서 《광여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참고로 필사하면서 실수로 빠뜨린 것이라 생각되며, 본 지도의 필사 시 역시 《광여도》의 오류를 시정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기봉)

  • 정읍현(井邑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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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정읍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만으로는 동서남북을 이해하기 어렵다. 지도 아래쪽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흘러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정읍천이다. 정읍천은 실제로 서남쪽에서 동북 방향으로 흘러나가므로, 본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고 볼 수 있다. 면의 명칭 중 西가 붙어있는 것은 실제로 서쪽과 서남쪽에, 北이 붙어 있는 것은 동북쪽에 있기 때문에 면의 명칭만으로는 방향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렵다. 《해동지도》의 정읍현 지도도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그러나 도로의 표시, 제언을 비롯한 일부 지명 등이 생략되어 있다. 또한 읍치 아래쪽의 立石과 부분의 하천이 강조되어 있는데, 《광여도》에서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대체적으로 《광여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지도이며, 본 지도는 《광여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 아래에는 高敞界가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고창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았다. 본 지도책의 다른 고을에서도 가끔 이런 경우가 나타나는데,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더라도 해당 방향으로 가면 경계가 나타난다는 의미로 쓰였다. 반대로 위쪽의 淳昌界와 古阜界 사이에는 泰仁과 경계를 맞대고 있음에도 이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해동지도》에는 泰仁界가 적혀 있다. 따라서 《광여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참고로 필사하면서 실수로 빠뜨린 것이라 생각되며, 본 지도의 필사 시 역시 《광여도》의 오류를 시정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기봉)

  • 제주목(濟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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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제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생략된 지명이 많고 지도의 모습이 훨씬 조악한 편이다. 지도의 이름은 濟州牧이라고 적혀 있지만 실제로는 大靜縣과 旌義縣을 포함한 제주도 전체를 그렸다. 다만 제주목 관할 지역에만 지명이나 건물의 명칭을 적어 넣고 있다. 아래쪽에는 전라도 해안과 섬이 표시되어 있다. 《광여도》에는 이곳에 군현의 명칭은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하였으나 본 지도에서는 생략되었다. 이로 인해 군현과 다른 지명 사이의 구별이 어렵게 되어 있다. 해안가와 섬에 적혀 있는 지명은 대부분 鎭堡이다. 그러나 진보가 아닌 섬의 명칭도 적혀 있어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왼쪽 아래에는 對馬島도 보이고 있다. 위쪽에는 중국의 서해안이 그려져 있고, 省의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아울러 춘추전국시대의 國名이 적혀 있다. 《광여도》에는 성의 명칭에는 노란색 사각형을, 춘추전국시대의 國名에는 원의 형태를 그려 넣어 구분하였는데, 본 지도에서는 이런 구분이 어렵도록 그려져 있다. 왼쪽 위에는 日本의 명칭도 보이고 있다. 본 지도처럼 그리고자 하는 지역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주변에 관계가 있는 지역들의 방향과 명칭을 적는 방식은 고지도에서 가끔 나타난다. 정확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지도의 입장에서 보면 당혹스러운 지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거리와 방향을 정확하게 그리고자 하면 훨씬 큰 지면을 사용해야 하거나 핵심 지역이 아주 작게 그려지는 단점이 있다. 마지막으로 다른 군현의 지도와 달리 주기가 없는 것도 특이한 점이다. (이기봉)

  • 제주목(濟州牧)(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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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제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생략된 지명이 많고 지도의 모습이 훨씬 조악한 편이다. 지도의 이름은 濟州牧이라고 적혀 있지만 실제로는 大靜縣과 旌義縣을 포함한 제주도 전체를 그렸다. 다만 제주목 관할 지역에만 지명이나 건물의 명칭을 적어 넣고 있다. 아래쪽에는 전라도 해안과 섬이 표시되어 있다. 《광여도》에는 이곳에 군현의 명칭은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하였으나 본 지도에서는 생략되었다. 이로 인해 군현과 다른 지명 사이의 구별이 어렵게 되어 있다. 해안가와 섬에 적혀 있는 지명은 대부분 鎭堡이다. 그러나 진보가 아닌 섬의 명칭도 적혀 있어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왼쪽 아래에는 對馬島도 보이고 있다. 위쪽에는 중국의 서해안이 그려져 있고, 省의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아울러 춘추전국시대의 國名이 적혀 있다. 《광여도》에는 성의 명칭에는 노란색 사각형을, 춘추전국시대의 國名에는 원의 형태를 그려 넣어 구분하였는데, 본 지도에서는 이런 구분이 어렵도록 그려져 있다. 왼쪽 위에는 日本의 명칭도 보이고 있다. 본 지도처럼 그리고자 하는 지역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주변에 관계가 있는 지역들의 방향과 명칭을 적는 방식은 고지도에서 가끔 나타난다. 정확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지도의 입장에서 보면 당혹스러운 지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거리와 방향을 정확하게 그리고자 하면 훨씬 큰 지면을 사용해야 하거나 핵심 지역이 아주 작게 그려지는 단점이 있다. 마지막으로 다른 군현의 지도와 달리 주기가 없는 것도 특이한 점이다. (이기봉)

  • 진도군(珍島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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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진도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산줄기의 표현이 거칠고 몇 개의 지명이 생략되고 있다. 왼쪽 위에는 面에 대한 기호인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만 있고 古郡內面은 생략되어 있다. 아래쪽 南桃鎭 부분에는 牧場面이 아예 빠져 있다. 이와 같은 오류들을 통해 볼 때 본 지도가 《광여도》의 내용을 필사하면서 빠뜨린 것이라고 생각된다. 지도 위쪽에는 金山面이 적혀 있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진도군 지도에는 命山面으로 적혀 있다. 여러 지리지를 참고해 보면 《해동지도》가 정확하다. 《광여도》의 필사 시 ‘命’자를 ‘金’자로 오기했으며, 본 지도의 필사 시 이런 오류를 확인하지 않고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명산면은 현재의 영암군 시종면 만수리 일대에 있었다. 고려 말에 倭寇의 침입을 피해 진도의 향리들이 옮겨 살았던 곳이며, 다시 본 고을로 돌아온 후에도 진도의 땅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오른쪽의 삼촌면은 현재의 해남군 삼산면 송정리 일대에 있던 월경지였다. 본 지도에는 海南界를 특별히 적어놓아 월경지임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아래쪽에 표시된 2개의 鎭에는 船所가 표시되어 있는데, 전선을 정박하며 관리하던 곳이다. 왼쪽 아래의 섬들은 섬의 크기나 위치를 고려하지 않고 표현하였다. (이기봉)

  • 진도군(珍島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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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진도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산줄기의 표현이 거칠고 몇 개의 지명이 생략되고 있다. 왼쪽 위에는 面에 대한 기호인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만 있고 古郡內面은 생략되어 있다. 아래쪽 南桃鎭 부분에는 牧場面이 아예 빠져 있다. 이와 같은 오류들을 통해 볼 때 본 지도가 《광여도》의 내용을 필사하면서 빠뜨린 것이라고 생각된다. 지도 위쪽에는 金山面이 적혀 있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진도군 지도에는 命山面으로 적혀 있다. 여러 지리지를 참고해 보면 《해동지도》가 정확하다. 《광여도》의 필사 시 ‘命’자를 ‘金’자로 오기했으며, 본 지도의 필사 시 이런 오류를 확인하지 않고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명산면은 현재의 영암군 시종면 만수리 일대에 있었다. 고려 말에 倭寇의 침입을 피해 진도의 향리들이 옮겨 살았던 곳이며, 다시 본 고을로 돌아온 후에도 진도의 땅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오른쪽의 삼촌면은 현재의 해남군 삼산면 송정리 일대에 있던 월경지였다. 본 지도에는 海南界를 특별히 적어놓아 월경지임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아래쪽에 표시된 2개의 鎭에는 船所가 표시되어 있는데, 전선을 정박하며 관리하던 곳이다. 왼쪽 아래의 섬들은 섬의 크기나 위치를 고려하지 않고 표현하였다. (이기봉)

  • 진산군(珍山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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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진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맨 왼쪽의 하천은 현재의 갑천 상류이고, 가운데가 갑천으로 흘러가는 유등천의 상류이며, 가장 오른쪽은 옥천에서 금강과 합류되는 서화천 상류이다. 여러 지류가 합쳐져 다른 고을로 빠져나가는 하천의 표현이 《광여도》에 비하면 상당히 거칠다. 일부 유로 중 《광여도》에는 나오지 않는 부분도 있다. 위쪽의 太祖大王胎室 부분, 아래쪽 가운데의 錦山界 부분 등의 유로 모습은 표현 양식이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같은 《해동지도》의 진산군 지도와 동일하다. 따라서 본 지도는 전체적으로 《광여도》의 것을 따르면서 《해동지도》를 참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 일부 문제가 되는 부분도 있다. 진산군은 連山界와 公州界 사이에 鎭岑縣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만 본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또한 全州界와 錦山界 사이에도 전라도의 고산현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만 역시 표시되어 있지 않다. 반면에 진산현과 상당히 떨어져 있는 全州界가 표시되어 있는데, 현재의 논산시 양촌면 일대에 있었던 월경지 陽良所面과 가깝기 때문이다. 위쪽에 표시된 公州界는 《광여도》의 지도에도 마찬가지이며, 《해동지도》에는 公山界로 나온다. 공주목이 공산현으로 강등되었던 시기는 1646년(인조 24)경, 1670(현종 11)-1679년(숙종 5), 1728(영조 4)-1737(영조 13), 1778년(정조 2)경 등이다. 그런데 본 지도의 주기에는 북쪽으로 公山과, 《광여도》의 주기에는 公州와, 《해동지도》의 주기에는 公山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아마 《해동지도》는 공주가 공산으로 강등되었을 당시에 제작되었고, 《광여도》는 다시 공주로 회복되었을 때 《해동지도》를 필사했을 가능성이 높다. 본 지도는 지도 부분의 경계 표시는 《광여도》를 따르면서 주기 부분에서는 《해동지도》를 참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진산군(珍山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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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진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맨 왼쪽의 하천은 현재의 갑천 상류이고, 가운데가 갑천으로 흘러가는 유등천의 상류이며, 가장 오른쪽은 옥천에서 금강과 합류되는 서화천 상류이다. 여러 지류가 합쳐져 다른 고을로 빠져나가는 하천의 표현이 《광여도》에 비하면 상당히 거칠다. 일부 유로 중 《광여도》에는 나오지 않는 부분도 있다. 위쪽의 太祖大王胎室 부분, 아래쪽 가운데의 錦山界 부분 등의 유로 모습은 표현 양식이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같은 《해동지도》의 진산군 지도와 동일하다. 따라서 본 지도는 전체적으로 《광여도》의 것을 따르면서 《해동지도》를 참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 일부 문제가 되는 부분도 있다. 진산군은 連山界와 公州界 사이에 鎭岑縣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만 본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또한 全州界와 錦山界 사이에도 전라도의 고산현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만 역시 표시되어 있지 않다. 반면에 진산현과 상당히 떨어져 있는 全州界가 표시되어 있는데, 현재의 논산시 양촌면 일대에 있었던 월경지 陽良所面과 가깝기 때문이다. 위쪽에 표시된 公州界는 《광여도》의 지도에도 마찬가지이며, 《해동지도》에는 公山界로 나온다. 공주목이 공산현으로 강등되었던 시기는 1646년(인조 24)경, 1670(현종 11)-1679년(숙종 5), 1728(영조 4)-1737(영조 13), 1778년(정조 2)경 등이다. 그런데 본 지도의 주기에는 북쪽으로 公山과, 《광여도》의 주기에는 公州와, 《해동지도》의 주기에는 公山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아마 《해동지도》는 공주가 공산으로 강등되었을 당시에 제작되었고, 《광여도》는 다시 공주로 회복되었을 때 《해동지도》를 필사했을 가능성이 높다. 본 지도는 지도 부분의 경계 표시는 《광여도》를 따르면서 주기 부분에서는 《해동지도》를 참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진안현(鎭安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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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진안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가운데에 있는 斗美面이 《광여도》에 斗尾面으로 다르게 적혀 있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주기에는 《광여도》처럼 기록되어 있어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소리가 같은 한자로 바꾼 것으로 생각된다. 오른쪽의 하천이 현재의 금강 본류이며, 왼쪽 아래의 하천이 섬진강의 최상류에 해당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진안현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며,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가장 큰 차이는 오른쪽의 금강에 대한 표현에서 나타난다. 《해동지도》에는 금강이 마치 長水界 부근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그러나 《광여도》와 본 지도처럼 장수계 너머에서 흘러오는 것이 실제와 부합된다. 따라서 《광여도》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애매한 부분을 실제에 더 부합되도록 고친 것으로 생각된다. 오른쪽 天方山 부근 하천의 발원지가 아주 가까운 것처럼 표현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용담의 경계를 넘어 무주 방면에서 흘러온다. 이 점은 《해동지도》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그려져 있어 실제에 맞게 교정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여지도서』의 진안현 지도도 금강의 유로 표현에서는 《광여도》 및 본 지도와 동일하다. 본 지도의 가장 큰 단점은 금강이 진안현을 지나가는 부분이 극히 적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동쪽에 남북으로 길게 흐르는 것처럼 오해하게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 부분이 실제에 맞게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 진안현(鎭安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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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진안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가운데에 있는 斗美面이 《광여도》에 斗尾面으로 다르게 적혀 있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주기에는 《광여도》처럼 기록되어 있어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소리가 같은 한자로 바꾼 것으로 생각된다. 오른쪽의 하천이 현재의 금강 본류이며, 왼쪽 아래의 하천이 섬진강의 최상류에 해당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진안현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며,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가장 큰 차이는 오른쪽의 금강에 대한 표현에서 나타난다. 《해동지도》에는 금강이 마치 長水界 부근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그러나 《광여도》와 본 지도처럼 장수계 너머에서 흘러오는 것이 실제와 부합된다. 따라서 《광여도》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애매한 부분을 실제에 더 부합되도록 고친 것으로 생각된다. 오른쪽 天方山 부근 하천의 발원지가 아주 가까운 것처럼 표현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용담의 경계를 넘어 무주 방면에서 흘러온다. 이 점은 《해동지도》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그려져 있어 실제에 맞게 교정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여지도서』의 진안현 지도도 금강의 유로 표현에서는 《광여도》 및 본 지도와 동일하다. 본 지도의 가장 큰 단점은 금강이 진안현을 지나가는 부분이 극히 적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동쪽에 남북으로 길게 흐르는 것처럼 오해하게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 부분이 실제에 맞게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 창평현(昌平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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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창평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왼쪽에 노란색 사각형만 그려져 있을 뿐 면의 명칭이 적혀 있지 않다. 《광여도》에는 이곳에 南面이 기록되어 있다. 주기에 적혀 있는 西面이 표시되어 있지 않으며, 《광여도》에서도 이 점은 마찬가지이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창평현 지도에는 남면과 서면이 모두 표시되어 있다. 그러면 남면의 위치가 《광여도》와 다르며, 서면은 읍치 서쪽에 표시되어 있다. 현재의 위치와 비교해 보면 《해동지도》의 것이 대체적으로 타당하다. 그러나 《해동지도》 역시 정확하다고 볼 수 없다. 이와 같은 오류가 범해진 이유는 하천의 유로에 대한 표현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맨 위쪽의 하천이 현재의 영산강 본류이다. 읍치를 지나 영산강에 합류되는 하천은 현재 증암천으로 불리고 있다. 그런데 창평현의 남쪽은 보성강의 지류인 동복천의 최상류에 걸쳐 있다. 그러나 《해동지도》에는 보성강의 최상류가 그려져 있지 않다. 다만 남쪽에 하천이 표시되지 않은 상당한 면적이 표현되어 있다. 남면의 일부가 바로 남쪽의 동복천 최상류 지역에 있었다. 《광여도》와 본 지도는 《해동지도》에 있었던 남쪽의 동복천 최상류 지역 자체를 생략하거나 축소해 버렸다. 이로 인해 남면의 일부가 지도에서는 사라져 버린 것과 마찬가지가 된 것이다. 이것이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 남면과 서면의 표시가 《해동지도》와 달라진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창평현지도 역시 회화식으로 그렸지만 이 부분이 실제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위쪽의 長北面, 長南面, 東西面, 甲鄕面 등은 담양군의 경계를 넘어가 현재의 담양군 수북면과 대전면의 일부에 있는 월경지였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그와 같은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 역시 ‘1872년 지방지도’의 창평현 지도에는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여지도서』의 창평현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여 상호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창평현(昌平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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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창평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왼쪽에 노란색 사각형만 그려져 있을 뿐 면의 명칭이 적혀 있지 않다. 《광여도》에는 이곳에 南面이 기록되어 있다. 주기에 적혀 있는 西面이 표시되어 있지 않으며, 《광여도》에서도 이 점은 마찬가지이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창평현 지도에는 남면과 서면이 모두 표시되어 있다. 그러면 남면의 위치가 《광여도》와 다르며, 서면은 읍치 서쪽에 표시되어 있다. 현재의 위치와 비교해 보면 《해동지도》의 것이 대체적으로 타당하다. 그러나 《해동지도》 역시 정확하다고 볼 수 없다. 이와 같은 오류가 범해진 이유는 하천의 유로에 대한 표현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맨 위쪽의 하천이 현재의 영산강 본류이다. 읍치를 지나 영산강에 합류되는 하천은 현재 증암천으로 불리고 있다. 그런데 창평현의 남쪽은 보성강의 지류인 동복천의 최상류에 걸쳐 있다. 그러나 《해동지도》에는 보성강의 최상류가 그려져 있지 않다. 다만 남쪽에 하천이 표시되지 않은 상당한 면적이 표현되어 있다. 남면의 일부가 바로 남쪽의 동복천 최상류 지역에 있었다. 《광여도》와 본 지도는 《해동지도》에 있었던 남쪽의 동복천 최상류 지역 자체를 생략하거나 축소해 버렸다. 이로 인해 남면의 일부가 지도에서는 사라져 버린 것과 마찬가지가 된 것이다. 이것이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 남면과 서면의 표시가 《해동지도》와 달라진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창평현지도 역시 회화식으로 그렸지만 이 부분이 실제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위쪽의 長北面, 長南面, 東西面, 甲鄕面 등은 담양군의 경계를 넘어가 현재의 담양군 수북면과 대전면의 일부에 있는 월경지였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그와 같은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 역시 ‘1872년 지방지도’의 창평현 지도에는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여지도서』의 창평현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여 상호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태인현(泰仁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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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태인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오른쪽 아래의 七宝山은 《광여도》에 七實山으로 되어 있다. 표현 방법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태인현 지도에는 七宝山으로 나온다. 본 지도의 필사 시 《광여도》를 따르면서 《해동지도》를 참조하여 일부 교정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 표시에서는 《해동지도》의 井邑界 왼쪽에 있었던 古阜界가 생략되어 있으며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온다. 오른쪽 위의 淳昌界와 全州界 사이에 任實界가 적혀 있어야 한다. 《광여도》와 《해동지도》 모두 동일하게 적혀 있어 《해동지도》의 제작자가 최초로 오류를 범했고, 이후의 필사 때에 오류를 인식하지 못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읍치 위쪽으로는 《해동지도》에 있었던 瓮池面이 생략되어 있다.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지만 주기에는 옹지면이 적혀 있는 것을 통해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으로 생각된다. 읍치 아래의 하천은 현재의 동진강으로서 동남쪽에서 발원하여 서북쪽으로 흘러간다. 따라서 본 지도는 기본적으로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고 볼 수 있다. 읍치로 들어온 산줄기가 동쪽으로부터 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오른쪽의 山內面 지역은 동진강이 아니라 섬진강의 상류에 해당된다.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고을 전체가 산줄기로 둘러싸인 것처럼 그리기 위해 일부 다른 하천 유역에 속하는 부분을 생략하는 경향이 있다. (이기봉)

  • 태인현(泰仁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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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태인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오른쪽 아래의 七宝山은 《광여도》에 七實山으로 되어 있다. 표현 방법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태인현 지도에는 七宝山으로 나온다. 본 지도의 필사 시 《광여도》를 따르면서 《해동지도》를 참조하여 일부 교정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 표시에서는 《해동지도》의 井邑界 왼쪽에 있었던 古阜界가 생략되어 있으며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온다. 오른쪽 위의 淳昌界와 全州界 사이에 任實界가 적혀 있어야 한다. 《광여도》와 《해동지도》 모두 동일하게 적혀 있어 《해동지도》의 제작자가 최초로 오류를 범했고, 이후의 필사 때에 오류를 인식하지 못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읍치 위쪽으로는 《해동지도》에 있었던 瓮池面이 생략되어 있다.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지만 주기에는 옹지면이 적혀 있는 것을 통해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으로 생각된다. 읍치 아래의 하천은 현재의 동진강으로서 동남쪽에서 발원하여 서북쪽으로 흘러간다. 따라서 본 지도는 기본적으로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고 볼 수 있다. 읍치로 들어온 산줄기가 동쪽으로부터 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오른쪽의 山內面 지역은 동진강이 아니라 섬진강의 상류에 해당된다.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고을 전체가 산줄기로 둘러싸인 것처럼 그리기 위해 일부 다른 하천 유역에 속하는 부분을 생략하는 경향이 있다. (이기봉)

  •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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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열현(咸悅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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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함열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와 『여지도서』의 함열현 지도도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뒤의 두 지도와 다른 점은 첫째, 도로가 생략되어 있다는 것이다. 둘째, 왼쪽의 금강이 보다 얇게 표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특히 《광여도》는 금강과 다른 하천을 모두 2개의 실선으로 표시하여 구분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오른쪽의 하천은 위쪽이 현재의 함열천이고, 아래쪽이 탑천이다. 함열천은 부곡천에 합류된 후 다시 금강으로 들어간다. 본 지도는 하천의 유로라는 측면에서 볼 때 실제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반면에 거리의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사각형의 방안을 사용하여 만든 《호남지도》의 함열현 지도는 몇 가지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첫째, 함열천이 함열현의 영역 안에서 금강에 합류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둘째, 탑천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정확성을 중요하게 여긴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도 첫 번째가 《호남지도》처럼 표현되어 있다. 김정호는 첫 번째는 《호남지도》의 내용을, 두 번째는 본 지도 계열을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지도 위쪽의 聖堂倉은 남원, 운봉, 진산, 금산, 용담, 고산, 익산 등 바다를 끼고 있지 않은 고을의 전세와 대동미를 모아 한양으로 운반하던 漕倉이었다. 반면에 왼쪽의 海倉은 함열현의 전세와 대동미를 모아 한양으로 운반하던 창고였다. 대동법의 시행 이후 漕倉制의 대상 고을이 내륙의 고을로 축소되면서 조창과 해창이 동시에 존재하게 되었다. (이기봉)

  • 함열현(咸悅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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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함열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와 『여지도서』의 함열현 지도도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뒤의 두 지도와 다른 점은 첫째, 도로가 생략되어 있다는 것이다. 둘째, 왼쪽의 금강이 보다 얇게 표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특히 《광여도》는 금강과 다른 하천을 모두 2개의 실선으로 표시하여 구분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오른쪽의 하천은 위쪽이 현재의 함열천이고, 아래쪽이 탑천이다. 함열천은 부곡천에 합류된 후 다시 금강으로 들어간다. 본 지도는 하천의 유로라는 측면에서 볼 때 실제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반면에 거리의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사각형의 방안을 사용하여 만든 《호남지도》의 함열현 지도는 몇 가지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첫째, 함열천이 함열현의 영역 안에서 금강에 합류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둘째, 탑천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정확성을 중요하게 여긴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도 첫 번째가 《호남지도》처럼 표현되어 있다. 김정호는 첫 번째는 《호남지도》의 내용을, 두 번째는 본 지도 계열을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지도 위쪽의 聖堂倉은 남원, 운봉, 진산, 금산, 용담, 고산, 익산 등 바다를 끼고 있지 않은 고을의 전세와 대동미를 모아 한양으로 운반하던 漕倉이었다. 반면에 왼쪽의 海倉은 함열현의 전세와 대동미를 모아 한양으로 운반하던 창고였다. 대동법의 시행 이후 漕倉制의 대상 고을이 내륙의 고을로 축소되면서 조창과 해창이 동시에 존재하게 되었다. (이기봉)

  • 함평현(咸平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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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함평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오른쪽 아래의 倉只面은 《광여도》에 食知面으로 되어 있다. 주기에는 食知面으로 되어 있어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글자를 잘못 이해하여 기록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비슷한 《해동지도》의 함평현 지도에도 식지면으로 되어 있다. 《해동지도》의 오른쪽 위에는 月岳面이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본 지도와 《광여도》에 모두 표시되어 있지 않고, 주기에만 적혀 있다. 이것을 통해 볼 때 《광여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라고 생각되며, 본 지도의 필사 시 역시 오류를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왼쪽의 多慶面 지역은 務安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고, 남쪽으로는 靈光의 월경지와 맞닿아 있었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기 어렵다. 이외에도 고을의 전체 모습이 남북보다는 동서가 훨씬 긴 형태를 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엔 남북이 더 길게 그려져 있다. 주기에도 동서의 다른 고을과의 거리가 각각 50리와 30리로 되어 있는 반면에 남북은 각각 5리와 30리로 되어 있다. 이것은 남북이 동서보다 더 긴 종이 위에 그렸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 오른쪽 아래의 羅州界는 주기에 錦城界로 되어 있고,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나온다. 나주는 인조(1623-1649) 시기에 잠시 금성현으로 강등되었고, 1728년-1737년(영조 4-13) 사이에도 금성현으로 강등된 적이 있다. 《해동지도》의 지도와 주기의 삽입 연도가 달랐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이며, 《광여도》와 본 지도가 필사 당시의 상황에 맞게 바꾸지 않고 그대로 베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기봉)

  • 함평현(咸平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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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함평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오른쪽 아래의 倉只面은 《광여도》에 食知面으로 되어 있다. 주기에는 食知面으로 되어 있어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글자를 잘못 이해하여 기록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비슷한 《해동지도》의 함평현 지도에도 식지면으로 되어 있다. 《해동지도》의 오른쪽 위에는 月岳面이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본 지도와 《광여도》에 모두 표시되어 있지 않고, 주기에만 적혀 있다. 이것을 통해 볼 때 《광여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라고 생각되며, 본 지도의 필사 시 역시 오류를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왼쪽의 多慶面 지역은 務安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고, 남쪽으로는 靈光의 월경지와 맞닿아 있었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기 어렵다. 이외에도 고을의 전체 모습이 남북보다는 동서가 훨씬 긴 형태를 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엔 남북이 더 길게 그려져 있다. 주기에도 동서의 다른 고을과의 거리가 각각 50리와 30리로 되어 있는 반면에 남북은 각각 5리와 30리로 되어 있다. 이것은 남북이 동서보다 더 긴 종이 위에 그렸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 오른쪽 아래의 羅州界는 주기에 錦城界로 되어 있고,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나온다. 나주는 인조(1623-1649) 시기에 잠시 금성현으로 강등되었고, 1728년-1737년(영조 4-13) 사이에도 금성현으로 강등된 적이 있다. 《해동지도》의 지도와 주기의 삽입 연도가 달랐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이며, 《광여도》와 본 지도가 필사 당시의 상황에 맞게 바꾸지 않고 그대로 베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기봉)

  • 해남현(海南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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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해남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읍치에 縣內面, 아래쪽 花山面 부근에 百方山 등의 일부 지명이 《광여도》에는 있었지만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읍치와 현재의 해남군 문내면 동외리와 서상리 일대에 있었던 全羅右水營이 확대 과장되어 표현되어 있다. 그 이외의 지역은 실제의 모습을 대략적으로만 표현하고 있을 뿐 거리 등은 지역에 따라 다르게 그려져 있다. 예를 들어 읍치에서 동쪽의 靈岩界까지의 거리는 왼쪽의 牧場까지의 거리보다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이것은 읍치를 확대해서 그리고, 동쪽으로부터 뻗은 산줄기로 둘러싸인 풍수적 명당 이미지를 표현하는 과정 때문에 발생하였다. 場內面은 서해안으로 좁고 길게 뻗은 반도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넓은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렇게 표현된 가장 큰 원인은 右水營을 확대 과장해서 표현했기 때문이다. 오른쪽 위의 比谷面은 동북쪽으로 더 튀어나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사각형의 종이 위에 해남현의 모습을 그리는 과정에서 비곡면보다 서쪽으로 치우쳐져 있는 읍치 동쪽의 산줄기를 중요하게 그렸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아래쪽 三枝院에는 碧波亭까지의 거리가 10리로 되어 있다. 벽파정은 현재의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에 있던 정자로서 해남에서 건너가는 주요 통로였다. (이기봉)

  • 해남현(海南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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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해남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읍치에 縣內面, 아래쪽 花山面 부근에 百方山 등의 일부 지명이 《광여도》에는 있었지만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읍치와 현재의 해남군 문내면 동외리와 서상리 일대에 있었던 全羅右水營이 확대 과장되어 표현되어 있다. 그 이외의 지역은 실제의 모습을 대략적으로만 표현하고 있을 뿐 거리 등은 지역에 따라 다르게 그려져 있다. 예를 들어 읍치에서 동쪽의 靈岩界까지의 거리는 왼쪽의 牧場까지의 거리보다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이것은 읍치를 확대해서 그리고, 동쪽으로부터 뻗은 산줄기로 둘러싸인 풍수적 명당 이미지를 표현하는 과정 때문에 발생하였다. 場內面은 서해안으로 좁고 길게 뻗은 반도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넓은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렇게 표현된 가장 큰 원인은 右水營을 확대 과장해서 표현했기 때문이다. 오른쪽 위의 比谷面은 동북쪽으로 더 튀어나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사각형의 종이 위에 해남현의 모습을 그리는 과정에서 비곡면보다 서쪽으로 치우쳐져 있는 읍치 동쪽의 산줄기를 중요하게 그렸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아래쪽 三枝院에는 碧波亭까지의 거리가 10리로 되어 있다. 벽파정은 현재의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에 있던 정자로서 해남에서 건너가는 주요 통로였다. (이기봉)

  • 호남도(湖南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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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호남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감영, 수영, 병영, 군현, 진보, 찰방역 등의 정보는 기호와 색을 사용하여 구분하였다. 그러나 기호의 형태와 색은 《광여도》의 것과 다르다. 《광여도》에 비해 본 지도는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鎭堡를 나타내는 노란색 사각형이 古群山과 智島에만 사용되어 나머지의 진보와 다른 지명 사이의 구별이 어렵다. 察訪驛은 적황색 사각형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위쪽 錦山 부근의 濟源驛은 군현을 나타내는 보라색 원으로 표시하였고, 가운데 長城 부근의 靑岩驛과 아래쪽 寶城 부근의 碧沙驛은 기호가 아예 사용되지 않았다. 군현 중 長城은 찰방역의 기호로 잘못 표시되었고, 康津 오른쪽의 長興은 아예 기호가 사용되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부분이 잘못된 것을 보면 본 지도의 오류는 《광여도》를 필사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하천의 유로도 《광여도》와 대부분 동일하지만 일부분에서 다른 구간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경상도의 河東界 부분에 섬진강 하류가 그려져 있는데 《광여도》에는 이 부분이 없다. 위쪽의 錦山과 珍山 부분에도 《광여도》에 없는 금강의 지류가 그려져 있다. 全州 監營에서 서해로 내려가는 현재의 만경강도 《광여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이런 부분들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다른 자료를 보면서 일부 수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바다에 있는 여러 섬들은 대략적인 위치만 확인시켜줄 뿐 정확한 것은 아니다. 크기 역시 일부 큰 섬을 제외하면 실제와 상당히 다르게 그려져 있다. 아마 섬에 대한 정보가 불완전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羅州가 錦城으로 표기되어 있다. 나주는 인조(1623-1649) 시기에 잠시 금성현으로 강등되었다. 또한 1728년-1737년(영조 4-13) 사이에도 금성현으로 강등된 적이 있다. 그러나 군현별 지도에서는 금성현이 아니라 나주목이라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본 지도가 금성현으로 강등되었을 시기의 내용을 반영하지만 그것이 제작 시기라고 볼 수는 없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에 53官으로 잘못 적혀 있던 것이 56官으로 바뀐 것 이외에는 동일하다. 이 지도책의 군현별 지도의 구도와 내용이 《해동지도》와 거의 비슷하지만 본 지도는 《해동지도》의 전라도 지도와 다른 측면이 많다. (이기봉)

  • 호남도(湖南圖)(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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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호남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감영, 수영, 병영, 군현, 진보, 찰방역 등의 정보는 기호와 색을 사용하여 구분하였다. 그러나 기호의 형태와 색은 《광여도》의 것과 다르다. 《광여도》에 비해 본 지도는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鎭堡를 나타내는 노란색 사각형이 古群山과 智島에만 사용되어 나머지의 진보와 다른 지명 사이의 구별이 어렵다. 察訪驛은 적황색 사각형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위쪽 錦山 부근의 濟源驛은 군현을 나타내는 보라색 원으로 표시하였고, 가운데 長城 부근의 靑岩驛과 아래쪽 寶城 부근의 碧沙驛은 기호가 아예 사용되지 않았다. 군현 중 長城은 찰방역의 기호로 잘못 표시되었고, 康津 오른쪽의 長興은 아예 기호가 사용되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부분이 잘못된 것을 보면 본 지도의 오류는 《광여도》를 필사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하천의 유로도 《광여도》와 대부분 동일하지만 일부분에서 다른 구간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경상도의 河東界 부분에 섬진강 하류가 그려져 있는데 《광여도》에는 이 부분이 없다. 위쪽의 錦山과 珍山 부분에도 《광여도》에 없는 금강의 지류가 그려져 있다. 全州 監營에서 서해로 내려가는 현재의 만경강도 《광여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이런 부분들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다른 자료를 보면서 일부 수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바다에 있는 여러 섬들은 대략적인 위치만 확인시켜줄 뿐 정확한 것은 아니다. 크기 역시 일부 큰 섬을 제외하면 실제와 상당히 다르게 그려져 있다. 아마 섬에 대한 정보가 불완전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羅州가 錦城으로 표기되어 있다. 나주는 인조(1623-1649) 시기에 잠시 금성현으로 강등되었다. 또한 1728년-1737년(영조 4-13) 사이에도 금성현으로 강등된 적이 있다. 그러나 군현별 지도에서는 금성현이 아니라 나주목이라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본 지도가 금성현으로 강등되었을 시기의 내용을 반영하지만 그것이 제작 시기라고 볼 수는 없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에 53官으로 잘못 적혀 있던 것이 56官으로 바뀐 것 이외에는 동일하다. 이 지도책의 군현별 지도의 구도와 내용이 《해동지도》와 거의 비슷하지만 본 지도는 《해동지도》의 전라도 지도와 다른 측면이 많다. (이기봉)

  • 화순현(和順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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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화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화순현의 실제 모양은 동서가 남북의 2배 정도 된다. 그런데 본 지도에는 오히려 남북이 동서보다 더 긴 것처럼 오해될 수 있게 그려져 있다. 이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세로로 긴 사각형 안에 고을의 모습 전체를 담으로 했고,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실제의 모습과 상관없이 동서보다는 남북을 더 길게 그릴 수밖에 없게 된다. 이로 인해 하천의 유로에서 여러 왜곡이 발생하게 된다. 예를 들어 双溪寺가 있는 하천은 西面이 있는 하천의 길이와 거의 비슷하지만 훨씬 짧게 그려졌다. 또한 이 하천이 西流하여 현재의 화순천에 합류되지만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묘사되었다. 오른쪽 珠路峙 부근의 하천은 남류하는 부분보다 읍치까지 서류하는 부분이 훨씬 길지만 오히려 반대로 그려져 있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화순현 지도에서도 이런 부분들은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여지도서』의 화순현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하다. 그러나 남북보다 동서가 넓게 그려져 있어 쌍계사 부분의 하천이 서류하는 모습을 일부 표현하고 있다. 또한 주로치 부분의 하천도 남류하는 부분보다 서류하는 부분을 약간 더 길게 그리고 있다. (이기봉)

  • 화순현(和順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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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화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화순현의 실제 모양은 동서가 남북의 2배 정도 된다. 그런데 본 지도에는 오히려 남북이 동서보다 더 긴 것처럼 오해될 수 있게 그려져 있다. 이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세로로 긴 사각형 안에 고을의 모습 전체를 담으로 했고,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실제의 모습과 상관없이 동서보다는 남북을 더 길게 그릴 수밖에 없게 된다. 이로 인해 하천의 유로에서 여러 왜곡이 발생하게 된다. 예를 들어 双溪寺가 있는 하천은 西面이 있는 하천의 길이와 거의 비슷하지만 훨씬 짧게 그려졌다. 또한 이 하천이 西流하여 현재의 화순천에 합류되지만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묘사되었다. 오른쪽 珠路峙 부근의 하천은 남류하는 부분보다 읍치까지 서류하는 부분이 훨씬 길지만 오히려 반대로 그려져 있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화순현 지도에서도 이런 부분들은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여지도서』의 화순현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하다. 그러나 남북보다 동서가 넓게 그려져 있어 쌍계사 부분의 하천이 서류하는 모습을 일부 표현하고 있다. 또한 주로치 부분의 하천도 남류하는 부분보다 서류하는 부분을 약간 더 길게 그리고 있다. (이기봉)

  • 흥덕현(興德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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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흥덕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왼쪽의 二西面은 《광여도》에는 三西面으로 되어 있던 것을 교정한 것이다. 주기에 이서면으로 되어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가 정확한 것이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흥덕현 지도에는 이서면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해동지도》의 주기에는 이서면이 표시되어 있기 때문에 《광여도》의 필사 시에 주기를 보고 수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오른쪽의 二東面 위쪽의 건물 기호에 東山書院이 생략되어 있기도 하다. 맨 위쪽의 竹島는 아주 작은 섬임에도 불구하고 표시되어 있다. 죽도와 逍遙山 사이에는 현재의 고창군 부안면 북쪽에 해당되는 고부의 월경지가 끼어 있었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보통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해당 고을만 그리기 때문에 다른 고을의 월경지가 있더라도 그리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다른 고을과 경계를 맞대고 있다는 표시 정도는 하는 경우가 있는데, 본 지도에는 그런 표시도 하지 않았다. 읍치를 확대 강조하기는 했지만 전체적인 모습이 고을의 실제 모습과 유사한 편이다. 읍치 왼쪽의 하천은 현재의 갈곡천이고, 오른쪽은 고부천의 상류에 해당된다. (이기봉)

  • 흥덕현(興德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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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흥덕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왼쪽의 二西面은 《광여도》에는 三西面으로 되어 있던 것을 교정한 것이다. 주기에 이서면으로 되어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가 정확한 것이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흥덕현 지도에는 이서면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해동지도》의 주기에는 이서면이 표시되어 있기 때문에 《광여도》의 필사 시에 주기를 보고 수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오른쪽의 二東面 위쪽의 건물 기호에 東山書院이 생략되어 있기도 하다. 맨 위쪽의 竹島는 아주 작은 섬임에도 불구하고 표시되어 있다. 죽도와 逍遙山 사이에는 현재의 고창군 부안면 북쪽에 해당되는 고부의 월경지가 끼어 있었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보통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해당 고을만 그리기 때문에 다른 고을의 월경지가 있더라도 그리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다른 고을과 경계를 맞대고 있다는 표시 정도는 하는 경우가 있는데, 본 지도에는 그런 표시도 하지 않았다. 읍치를 확대 강조하기는 했지만 전체적인 모습이 고을의 실제 모습과 유사한 편이다. 읍치 왼쪽의 하천은 현재의 갈곡천이고, 오른쪽은 고부천의 상류에 해당된다. (이기봉)

  • 흥양현(興陽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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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흥양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전체적으로 본 지도의 표현이 거칠고 조잡한 편이어서 본 지도가 《광여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가운데의 上岩面은 주기에는 點岩面으로 적혀 있다. 반면에 《광여도》에는 지도와 주기에 모두 점암면으로 기록되어 있다. 가운데 아래의 道化面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지 않기도 하였다. 다른 면의 경우도 노란색 사각형의 모습이 일정하지 않아 표현이 정제되어 있는 《광여도》와 비교된다. 그런데 《광여도》에 없는 지명들도 본 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예를 들어 아래쪽의 鉢浦鎭과 蛇島鎭, 가운데 약간 위쪽의 牛島 등이 그런 것이다. 표현 양식이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흥양현 지도에는 이런 지명들이 나오고 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광여도》를 필사하면서 일부 내용은 《해동지도》를 참고로 하여 기입해 넣은 것으로 생각된다. 『여지도서』의 흥양현 지도는 《광여도》나 본 지도보다 《해동지도》와 거의 유사하다. 다만 남북보다는 동서를 더 길게 그렸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읍치와 진보 등을 다른 지역보다 확대해서 그렸지만 고을의 전체 모습은 실제와 거의 유사하게 그렸다. 다만 아래쪽의 섬들은 실제의 크기나 위치 등을 거의 고려하지 않고 그려 넣었다. 예를 들어 水樂島는 外羅老島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섬이며, 巨文島는 수락도에 비해 10배 이상 해안으로부터 떨어져 있다. 이러한 문제점은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고을 전체를 다 담으려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기봉)

  • 흥양현(興陽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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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흥양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전체적으로 본 지도의 표현이 거칠고 조잡한 편이어서 본 지도가 《광여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가운데의 上岩面은 주기에는 點岩面으로 적혀 있다. 반면에 《광여도》에는 지도와 주기에 모두 점암면으로 기록되어 있다. 가운데 아래의 道化面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지 않기도 하였다. 다른 면의 경우도 노란색 사각형의 모습이 일정하지 않아 표현이 정제되어 있는 《광여도》와 비교된다. 그런데 《광여도》에 없는 지명들도 본 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예를 들어 아래쪽의 鉢浦鎭과 蛇島鎭, 가운데 약간 위쪽의 牛島 등이 그런 것이다. 표현 양식이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흥양현 지도에는 이런 지명들이 나오고 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광여도》를 필사하면서 일부 내용은 《해동지도》를 참고로 하여 기입해 넣은 것으로 생각된다. 『여지도서』의 흥양현 지도는 《광여도》나 본 지도보다 《해동지도》와 거의 유사하다. 다만 남북보다는 동서를 더 길게 그렸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읍치와 진보 등을 다른 지역보다 확대해서 그렸지만 고을의 전체 모습은 실제와 거의 유사하게 그렸다. 다만 아래쪽의 섬들은 실제의 크기나 위치 등을 거의 고려하지 않고 그려 넣었다. 예를 들어 水樂島는 外羅老島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섬이며, 巨文島는 수락도에 비해 10배 이상 해안으로부터 떨어져 있다. 이러한 문제점은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고을 전체를 다 담으려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기봉)

  • 강화부(江華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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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강화부 지도와 구도 및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오른쪽 여백에 도성에서 강화까지 오는데 걸리는 날짜가, 위쪽에 강화부의 異稱들이 적혀 있는 것이 다른 점이다. 지도의 명칭은 江華府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京畿水營이 있었던 喬同府를 함께 그렸다. 특이하게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왼쪽 아래에 한강에 대해 이 지역에서 부르던 祖江이 적혀 있다. 성곽은 이중의 실선으로 그렸다. 다만 강화도의 서해안 즉, 이 지도의 왼쪽 부분에만 해안가에 성곽이 축조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섬 전체에 성곽이 축조되어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강화도의 해안가에는 종3품의 僉使, 종4품의 萬戶, 종9품의 別將 등 파견된 무관의 직급에 따라 鎭, 戶, 別 등으로 구분된 鎭堡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天登寺가 있는 곳은 현재의 정족산성이며, 月串鎭 맞은편은 文殊山城이다. 강화도와 육지 사이의 수로는 삼남의 稅穀船이 서울로 가기 위해 꼭 통과해야 하는 鹽河이다. 지도에도 위쪽에는 三南往來水口, 아래쪽에는 京城往來水口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바다에는 밀물(潮進)과 썰물(潮退)에 따라 개벌이 바뀌는 상황이 상대적으로 자세히 적혀 있다. 또한 각 섬에는 江 또는 江華로 표시된 江華府와 本營 또는 水營으로 표시된 喬同府 중 어디에 속해 있는가가 자세히 적혀 있다. 이 지역의 섬들이 거리나 방향에 상관없이 속해 있는 고을이 달랐기 때문이다. 강화도 오른쪽의 섬은 현재의 석모도이다. 현재는 간척 사업에 의해 鷹岩島와 그 위쪽의 섬도 모두 연결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도 이곳에 간척사업이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이 지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水營屬新官筒’에서 ‘筒’은 주로 간척지에서 저수지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용어이다. 그 왼쪽에 호수처럼 표시된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며, 屯田은 이러한 간척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 갯벌은 주로 소금의 생산지로 이용되었다. 塩盆과 塩釜는 그러한 煮鹽 생산지를 의미한다. (이기봉)

  • 괴산군(槐山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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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괴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위쪽의 鳳鶴山과 普光山의 위치가 《광여도》와 다르게 표시되어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도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이 《해동지도》는 鳳鶴山과 普光山의 위치가 본 지도처럼 표시되어 있다. 그 오른쪽의 日所山은 《광여도》에는 月所山으로, 《해동지도》에는 目所山으로 나온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의 괴산군 산천 항목에는 目所山으로 나오고 있어 《해동지도》가 정확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 뒤쪽의 산줄기가 서쪽에서 내려왔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아래쪽에 槐江으로 표시된 것은 현재의 달천이다. 달천은 淸州界와 七寶山 사이의 남쪽(왼쪽)에서 흘러 들어온다. 그러나 본 지도의 표현만 놓고 보면 마치 칠보산 근처가 발원지인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 이 점은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읍치 지역을 다른 지역보다 대축척으로 그렸기 때문에 거리가 지도 전체적으로 동일하지 않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한데, 《해동지도》와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이기봉)

  • 고산현(高山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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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고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주기에 적혀 있으면서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面이 西面과 雲北面, 雲東面이며,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표현 양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고산현 지도에는 본 지도의 雲化面 부분에 운북면이 기록되어 있으며, 縣內面의 아래쪽 하천 부분에 西面이 적혀 있다. 또한 전체적인 구도가 역시 비슷한 『여지도서』의 고산현 지도에는 운북면의 오른쪽에 雲東面이 적혀 있다. 따라서 《광여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잘못 필사하면서 오류를 범했고, 《해동지도》의 제작자 역시 일부 잘못을 범한 것으로 생각된다. 위쪽에서 아래로 흐르는 하천은 현재의 고산천으로 기본적으로 동북쪽에서 흘러와 서남쪽으로 빠져나간다. 위쪽의 하천은 현재의 논산천 상류로서 동남쪽에서 흘러와 서북쪽으로 흘러간다. 고산천은 향교 부근에서 鎭安界 방향으로 하나의 지류가 더 그려져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곳에 東面을 위치시키고, 동면 부분에 운동면을 써넣어야 실제와 부합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호남지도》의 고산현 지도에서는 이 부분이 실제처럼 그려져 있고,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해동지도》의 제작자가 하천 하나를 잘못 그림에 의해 面의 위치 표시가 잘못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광여도》와 본 지도의 필사 시 이러한 오류를 시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혼란스런 필사를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거제부(巨濟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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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거제부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거의 다 《해동지도》에 나오며, 하천의 표시도 길이나 유로에서 약간 차이가 나지만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와 《해동지도》는 필사 관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비해 古縣城이나 玉浦鎭 등이 훨씬 크게 적혀 있다. 이것은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은 종이 위에 지도를 그려 크기를 크게 하지 않으면 구별하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해동지도》에 비해 해안선도 단조로워졌다. 또한 《해동지도》에 어느 정도 고려되었던 섬의 크기 표현도 본 지도에서는 많이 약화되었다. 이것 역시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은 종이 위에 그렸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지도의 크기가 작기 때문에 《해동지도》에 표시한 작은 섬들을 동일한 크기로 축소하면 거의 점에 가까워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지도 위에는 4개의 면이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는 반면에 주기에는 2개 밖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반면에 《해동지도》의 지도와 주기 모두 6개의 面이 표시되어 있다. 이것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지도와 주기 모두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작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기봉)

  • 강령현(康翎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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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강령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양식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강령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러 지명이 생략되었으며, 잘못 필사한 곳도 있다. 왼쪽 아래의 臥龍司僕屯倉은 《해동지도》에 掛岩司僕屯倉으로, 그 왼쪽의 卵司僕屯倉은 島卵司僕屯倉으로 나온다. 읍치 아래쪽의 王灘浦는 《해동지도》에 王灘橋로 나온다. 이런 부분들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게 따져가며 필사한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광여도》에는 왼쪽 아래에 잘못되거나 생략되어 있던 여러 부분이 교정되고 보충되었다. 예를 들면 司僕牧場內 오른쪽에 木柵이 그려져 있고, 臥龍이 臥岩으로, 卵이 島卵으로 교정되어 있다. 또한 그 아래쪽에 登山串이 추가되고, 왼쪽의 큰 섬에 巡威島와 登山鎭이 첨가되어 있다. 이런 지명들은 모두 《해동지도》에도 그대로 나오는 것이다. 본 지도에는 《해동지도》에 있던 도로가 모두 생략되고, 문자로만 기록되어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쓰고 있다. 南面과 순위도 부분은 실제로는 강령현 서남쪽으로 길게 뻗어 있다. 본 지도에서 실제와 가장 다른 곳이 바로 이 부분이며,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어 고을 전체를 담으려고 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 순위도 부근에는 다른 섬에 비해 극히 작은 작은 돌섬들이 그려져 있다. 이것은 이 섬들이 이 지역의 水路에서 중요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이 돌섬 사이를 지나는 수로가 그려져 있다. (이기봉)

  • 강릉부(江陵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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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강릉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나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강릉부 지도에 비해 틀리거나 생략된 지명이 있다. 맨 위쪽의 雪來山은 雪岳來(설악산으로부터 옴)을, 그 아래의 新田面은 新里面을, 아래쪽의 三涉界는 三陟界를 잘못 기록한 것이다. 《광여도》에는 이런 지명들이 올바르게 되어 있지만 《광여도》에도 오른쪽 아래의 望祥村이 望洋村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다. 왼쪽 아래의 大和面에는 《해동지도》에 大和驛이란 문구와 面 2개가 표시되어 있다. 따라서 면과 역을 구별해서 표시한 본 지도에서는 대화역과 대화면을 따로 적어놓아야 하는데, 대화면만 적어놓고 있다. 《광여도》에서는 대화역에 보라색 사각형을 표시한 다음 面은 한 글자만 표시하고 노란색 사각형을 그려 넣지 않았다. 《광여도》 역시 《해동지도》의 내용을 확실히 이해하고 그린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강릉부는 현재의 평창읍과 미탄면 대부분을 제외한 평창군, 인제군의 내면, 정선군의 임계면 등을 포함하여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었다. 또한 남북보다 동서가 약 2배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런 강릉부를 세로로 긴 사각형 안에 맞추어 그리다보니까 오히려 남북이 동서보다 긴 모양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동해안과 大關嶺 사이의 폭보다 대관령에서 橫城界까지의 거리가 실제로는 3배에 가까운데 본 지도에는 거의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이로 인해 본 지도만으로는 강릉부의 실제 형태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동해안에 있는 香湖, 鏡湖, 楓湖 등의 석호도 해안가에 붙어있는데 본 지도에는 마치 내륙의 호수인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왼쪽 위의 內面 부근에 春川界가 적혀 있는 것은 이곳에 있었던 춘천의 월경지인 기린면과 경계를 맞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 ▶충청도
  • 결성현(結城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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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결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 오른쪽에 표시된 風流島와 위쪽에 표시된 銀河峯 및 碧蹄山은 《광여도》에 없는 지명이다. 이런 지명들은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결성현 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광여도》의 제작자가 생략한 것을 본 지도의 제작자가 《해동지도》를 참조하여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의 제작자도 風流島를 2개나 적어 넣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본 고을로 들어오는 산줄기가 동쪽으로부터 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모든 방향이 정확하게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주변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 오류가 보이고 있다. 왼쪽에 보이는 海美界는 실제와 부합되지 않는 것이다. 결성현은 북쪽(왼쪽)으로 洪州와만 경계를 맞대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여지도서』에도 해미와 경계를 맞대고 있다는 기록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의 주기에는 북쪽으로 해미와 경계를 맞대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런 오류는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해동지도》의 海美界는 도로가 표시된 끝 방향에 있다.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도로 끝에 표시된 ‘○○界’가 경계가 아니라 그 도로를 따라가면 경계가 나온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해미계는 바로 이런 의미였는데 《해동지도》의 제작자가 마치 해미와 경계를 맞대고 있는 것처럼 잘못 이해하였고,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는 그것을 그대로 따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결성현의 서쪽은 현재의 천수만으로 모두 바다에 접해 있다. 그런데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바다는 본 고을의 서북쪽 일부에만 있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이런 문제점이 발생한 것은 읍치 지역을 다른 지역보다 크게 그렸기 때문이다. 오른쪽의 風流島로부터 巢許島까지의 거리와 소허도에서 龍臥川이 바다로 들어가는 지점까지의 거리는 실제로는 비슷하다. 그런데 본 지도에서는 전자가 후자의 2배 이상으로 표현되어 있어 서쪽으로 바다를 접한 후자 부분이 상대적으로 작아지게 된 것이다. (이기봉)

  • 결성현(結城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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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결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 오른쪽에 표시된 風流島와 위쪽에 표시된 銀河峯 및 碧蹄山은 《광여도》에 없는 지명이다. 이런 지명들은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결성현 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광여도》의 제작자가 생략한 것을 본 지도의 제작자가 《해동지도》를 참조하여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의 제작자도 風流島를 2개나 적어 넣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본 고을로 들어오는 산줄기가 동쪽으로부터 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모든 방향이 정확하게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주변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 오류가 보이고 있다. 왼쪽에 보이는 海美界는 실제와 부합되지 않는 것이다. 결성현은 북쪽(왼쪽)으로 洪州와만 경계를 맞대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여지도서』에도 해미와 경계를 맞대고 있다는 기록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의 주기에는 북쪽으로 해미와 경계를 맞대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런 오류는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해동지도》의 海美界는 도로가 표시된 끝 방향에 있다.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도로 끝에 표시된 ‘○○界’가 경계가 아니라 그 도로를 따라가면 경계가 나온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해미계는 바로 이런 의미였는데 《해동지도》의 제작자가 마치 해미와 경계를 맞대고 있는 것처럼 잘못 이해하였고,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는 그것을 그대로 따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결성현의 서쪽은 현재의 천수만으로 모두 바다에 접해 있다. 그런데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바다는 본 고을의 서북쪽 일부에만 있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이런 문제점이 발생한 것은 읍치 지역을 다른 지역보다 크게 그렸기 때문이다. 오른쪽의 風流島로부터 巢許島까지의 거리와 소허도에서 龍臥川이 바다로 들어가는 지점까지의 거리는 실제로는 비슷하다. 그런데 본 지도에서는 전자가 후자의 2배 이상으로 표현되어 있어 서쪽으로 바다를 접한 후자 부분이 상대적으로 작아지게 된 것이다. (이기봉)

  • 공주목(公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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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공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동일하다. 내용적으로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공주목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현재 公山城이라 부르는 雙樹山城의 명칭 위치가 《광여도》보다는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또한 읍치 오른쪽 아래의 月城山烽은 《광여도》에는 없지만 《해동지도》에는 있다. 그 오른쪽의 巢鶴島는 《광여도》에 巢鶴山으로 나오지만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나온다. 쌍수산성 오른쪽의 廣程驛도 《광여도》에는 廣亭驛으로 나오지만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나온다. 그러나 광정역 오른쪽의 登高山은 《광여도》와 《해동지도》 모두 高登山으로, 왼쪽 아래의 淸林寺는 靑林寺로 나온다.  본 지도의 주기 내용은 《해동지도》가 아니라 《광여도》와 동일하다. 《해동지도》는 표현 방법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나 내용이 《광여도》나 본 지도와 비슷하여 세 지도가 상호 관련성이 깊다고 할 수 있다. 정보가 가장 많이 밀집되어 있는 읍치 지역을 다른 지역보다 대축척으로 그렸다. 따라서 읍치 지역과 다른 지역의 축척이 다르며, 錦江 역시 읍치 부분이 지나치게 크게 묘사되어 있다. 조선시대에 錦江은 본 지도에 표시된 부분만 지칭하던 명칭이었는데, 일제시대 이후 본류 전체를 지칭하는 명칭으로 변하였다. (이기봉)

  • 공주목(公州牧)(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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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공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동일하다. 내용적으로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공주목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현재 公山城이라 부르는 雙樹山城의 명칭 위치가 《광여도》보다는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또한 읍치 오른쪽 아래의 月城山烽은 《광여도》에는 없지만 《해동지도》에는 있다. 그 오른쪽의 巢鶴島는 《광여도》에 巢鶴山으로 나오지만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나온다. 쌍수산성 오른쪽의 廣程驛도 《광여도》에는 廣亭驛으로 나오지만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나온다. 그러나 광정역 오른쪽의 登高山은 《광여도》와 《해동지도》 모두 高登山으로, 왼쪽 아래의 淸林寺는 靑林寺로 나온다.  본 지도의 주기 내용은 《해동지도》가 아니라 《광여도》와 동일하다. 《해동지도》는 표현 방법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나 내용이 《광여도》나 본 지도와 비슷하여 세 지도가 상호 관련성이 깊다고 할 수 있다. 정보가 가장 많이 밀집되어 있는 읍치 지역을 다른 지역보다 대축척으로 그렸다. 따라서 읍치 지역과 다른 지역의 축척이 다르며, 錦江 역시 읍치 부분이 지나치게 크게 묘사되어 있다. 조선시대에 錦江은 본 지도에 표시된 부분만 지칭하던 명칭이었는데, 일제시대 이후 본류 전체를 지칭하는 명칭으로 변하였다. (이기봉)

  • 괴산군(槐山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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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괴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위쪽의 鳳鶴山과 普光山의 위치가 《광여도》와 다르게 표시되어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도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이 《해동지도》는 鳳鶴山과 普光山의 위치가 본 지도처럼 표시되어 있다. 그 오른쪽의 日所山은 《광여도》에는 月所山으로, 《해동지도》에는 目所山으로 나온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의 괴산군 산천 항목에는 目所山으로 나오고 있어 《해동지도》가 정확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 뒤쪽의 산줄기가 서쪽에서 내려왔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아래쪽에 槐江으로 표시된 것은 현재의 달천이다. 달천은 淸州界와 七寶山 사이의 남쪽(왼쪽)에서 흘러 들어온다. 그러나 본 지도의 표현만 놓고 보면 마치 칠보산 근처가 발원지인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 이 점은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읍치 지역을 다른 지역보다 대축척으로 그렸기 때문에 거리가 지도 전체적으로 동일하지 않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한데, 《해동지도》와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이기봉)

  • 괴산군(槐山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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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괴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위쪽의 鳳鶴山과 普光山의 위치가 《광여도》와 다르게 표시되어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도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이 《해동지도》는 鳳鶴山과 普光山의 위치가 본 지도처럼 표시되어 있다. 그 오른쪽의 日所山은 《광여도》에는 月所山으로, 《해동지도》에는 目所山으로 나온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의 괴산군 산천 항목에는 目所山으로 나오고 있어 《해동지도》가 정확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 뒤쪽의 산줄기가 서쪽에서 내려왔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아래쪽에 槐江으로 표시된 것은 현재의 달천이다. 달천은 淸州界와 七寶山 사이의 남쪽(왼쪽)에서 흘러 들어온다. 그러나 본 지도의 표현만 놓고 보면 마치 칠보산 근처가 발원지인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 이 점은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읍치 지역을 다른 지역보다 대축척으로 그렸기 때문에 거리가 지도 전체적으로 동일하지 않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한데, 《해동지도》와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이기봉)

  • 남포현(藍浦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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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남포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남포현 지도도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비슷하다.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는데, 읍치의 산줄기가 동쪽으로부터 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읍치 지역의 풍수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해서 그렸다. 남포현의 모습에 관한 본 지도의 특징은 고을 전체가 바다 쪽으로 튀어나간 반도처럼 그렸다는 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호서지도》, 《조선지도》, ‘1872년 지방지도’ 의 남포현 지도들은 고을 전체를 반도처럼 그리지 않았다. 북쪽의 保寧, 남쪽의 庇仁과의 경계 부근이 밀물 때 바닷물이 육지 깊숙이 들어오는 만이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지도 위쪽 여백에는 남포현의 옛 명칭, 충청우도에 속해 있다는 ‘右’가 표시되어 있다. 오른쪽 여백에는 한양으로부터 5일 걸린다는 의미의 ‘五日’, 洪州 鎭管에 속해 있다는 ‘洪’, 본 지도책에 수록된 47번째 고을이라는 ‘四十七’이 표시되어 있다. 여백의 이런 내용들은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는 없던 것으로서 본 지도책의 이용자가 필요하게 여긴 추가적인 정보가 무엇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하며, 《해동지도》의 내용을 새로운 체제로 재편한 것에 불과하다. (이기봉)

  • 남포현(藍浦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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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남포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남포현 지도도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비슷하다.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는데, 읍치의 산줄기가 동쪽으로부터 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읍치 지역의 풍수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해서 그렸다. 남포현의 모습에 관한 본 지도의 특징은 고을 전체가 바다 쪽으로 튀어나간 반도처럼 그렸다는 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호서지도》, 《조선지도》, ‘1872년 지방지도’ 의 남포현 지도들은 고을 전체를 반도처럼 그리지 않았다. 북쪽의 保寧, 남쪽의 庇仁과의 경계 부근이 밀물 때 바닷물이 육지 깊숙이 들어오는 만이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지도 위쪽 여백에는 남포현의 옛 명칭, 충청우도에 속해 있다는 ‘右’가 표시되어 있다. 오른쪽 여백에는 한양으로부터 5일 걸린다는 의미의 ‘五日’, 洪州 鎭管에 속해 있다는 ‘洪’, 본 지도책에 수록된 47번째 고을이라는 ‘四十七’이 표시되어 있다. 여백의 이런 내용들은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는 없던 것으로서 본 지도책의 이용자가 필요하게 여긴 추가적인 정보가 무엇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하며, 《해동지도》의 내용을 새로운 체제로 재편한 것에 불과하다. (이기봉)

  • 단양현(丹陽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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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단양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오른쪽에 적혀 있는 呂泉界는 《광여도》에 醴泉界로 기록되어 있는데 후자가 올바르다. 또한 上仙岩 위쪽에 血峙와 雲岩이 생략되어 있으며, 그 아래쪽에 《광여도》에 燕飛山으로 되어 있는 것이 鷰飛山으로 바뀌어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단양군 지도도 표현 방법이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하다. 앞의 내용들이 《해동지도》에도 《광여도》와 동일하게 나오고 있어 본 지도가 오류를 범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을의 이름도 본 지도에는 丹陽縣으로 되어 있는데, 《광여도》와 《해동지도》에 나오는 丹陽郡이 정확하다.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으며, 永春界에서 들어와 淸風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남한강 본류이다. 본류와 지류의 굵기를 달리하여 표현하여 이해하기 쉽도록 한 점은 《광여도》와 동일하다. 4각형의 지면에 맞게 그렸기 때문에 고을 전체의 실질적인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다. 이 구간에는 남한강의 굴곡이 심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이 잘 표현되어 있지 않다. 특히 島潭이라 표시한 부분은 본 지도와 달리 굴곡이 아주 심한 부분이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한데, 民戶에서 一百을 二百으로 잘못 표기하기도 하였다. 본 지도책의 군현 주기가 일반적으로 《해동지도》와 다르지만 본 지도는 거의 비슷하다. (이기봉)

  • 단양현(丹陽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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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단양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오른쪽에 적혀 있는 呂泉界는 《광여도》에 醴泉界로 기록되어 있는데 후자가 올바르다. 또한 上仙岩 위쪽에 血峙와 雲岩이 생략되어 있으며, 그 아래쪽에 《광여도》에 燕飛山으로 되어 있는 것이 鷰飛山으로 바뀌어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단양군 지도도 표현 방법이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하다. 앞의 내용들이 《해동지도》에도 《광여도》와 동일하게 나오고 있어 본 지도가 오류를 범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을의 이름도 본 지도에는 丹陽縣으로 되어 있는데, 《광여도》와 《해동지도》에 나오는 丹陽郡이 정확하다.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으며, 永春界에서 들어와 淸風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남한강 본류이다. 본류와 지류의 굵기를 달리하여 표현하여 이해하기 쉽도록 한 점은 《광여도》와 동일하다. 4각형의 지면에 맞게 그렸기 때문에 고을 전체의 실질적인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다. 이 구간에는 남한강의 굴곡이 심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이 잘 표현되어 있지 않다. 특히 島潭이라 표시한 부분은 본 지도와 달리 굴곡이 아주 심한 부분이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한데, 民戶에서 一百을 二百으로 잘못 표기하기도 하였다. 본 지도책의 군현 주기가 일반적으로 《해동지도》와 다르지만 본 지도는 거의 비슷하다. (이기봉)

  • 당진현(唐津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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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당진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왼쪽에 있는 海雲樓, 小蘭芝, 蘭芝島, 非見 등의 지명은 《광여도》에 없으며, 읍치의 창고 위쪽에 《광여도》에 있었던 厲壇이 본 지도에 없다. 본 지도와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당진현 지도에는 5개의 지명이 모두 있어 筆寫者에 따라 생략을 다르게 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읍치 지역을 지나치게 확대해서 그렸기 때문에 다른 지역의 실제 상황이 많이 왜곡되었다. 彩雲橋가 있는 하천은 현재의 역천으로 海美界의 남쪽에서 들어와 북류하여 바다로 빠져나간다.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마치 동쪽에서 들어와 서류하다가 북류하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읍치 왼쪽 위의 橋路는 현재의 당진군 석문면 교로리 부근이다. 이곳은 서북쪽 바닷가로 튀어나가 있는 곳으로 읍치에서 海美界까지의 거리보다 약 4-5배 정도 멀다. 이런 내용이 왜곡되다보니까 읍치의 서북쪽에 있어야 할 大眞面이 마치 서남쪽에 있는 것처럼 표시되어 있다. 또한 外孟面과 高山面 사이에 있어야 할 內孟面이 읍치 위쪽으로 배치되어 있다. 내맹면의 위치는 《광여도》에서도 똑같은데, 《해동지도》에는 고산면 서쪽에 표시되어 있다. 실제의 위치는 《해동지도》의 자료가 올바르다. 본 지도와 《광여도》의 필사 시에 다른 자료를 보고 잘못 비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지도》의 당진 지도와 《동여도》에는 외맹면과 내맹면의 위치가 본 지도와 바뀌어 있으며, 외맹면 부분에 실제로는 없는 半島가 그려져 있다. 당진현에서 그려 올린 것이 분명한 ‘1872년 지방지도’의 당진현지도 역시 회화식으로 그렸지만 이런 정보들의 위치가 실제와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해안가에 있는 3개의 섬은 본래의 위치는 橋路 서쪽 방향에 위치시켜야 사실과 부합된다. 섬의 크기는 실제와 관계없이 그려져 있다. (이기봉)

  • 당진현(唐津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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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당진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왼쪽에 있는 海雲樓, 小蘭芝, 蘭芝島, 非見 등의 지명은 《광여도》에 없으며, 읍치의 창고 위쪽에 《광여도》에 있었던 厲壇이 본 지도에 없다. 본 지도와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당진현 지도에는 5개의 지명이 모두 있어 筆寫者에 따라 생략을 다르게 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읍치 지역을 지나치게 확대해서 그렸기 때문에 다른 지역의 실제 상황이 많이 왜곡되었다. 彩雲橋가 있는 하천은 현재의 역천으로 海美界의 남쪽에서 들어와 북류하여 바다로 빠져나간다.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마치 동쪽에서 들어와 서류하다가 북류하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읍치 왼쪽 위의 橋路는 현재의 당진군 석문면 교로리 부근이다. 이곳은 서북쪽 바닷가로 튀어나가 있는 곳으로 읍치에서 海美界까지의 거리보다 약 4-5배 정도 멀다. 이런 내용이 왜곡되다보니까 읍치의 서북쪽에 있어야 할 大眞面이 마치 서남쪽에 있는 것처럼 표시되어 있다. 또한 外孟面과 高山面 사이에 있어야 할 內孟面이 읍치 위쪽으로 배치되어 있다. 내맹면의 위치는 《광여도》에서도 똑같은데, 《해동지도》에는 고산면 서쪽에 표시되어 있다. 실제의 위치는 《해동지도》의 자료가 올바르다. 본 지도와 《광여도》의 필사 시에 다른 자료를 보고 잘못 비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지도》의 당진 지도와 《동여도》에는 외맹면과 내맹면의 위치가 본 지도와 바뀌어 있으며, 외맹면 부분에 실제로는 없는 半島가 그려져 있다. 당진현에서 그려 올린 것이 분명한 ‘1872년 지방지도’의 당진현지도 역시 회화식으로 그렸지만 이런 정보들의 위치가 실제와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해안가에 있는 3개의 섬은 본래의 위치는 橋路 서쪽 방향에 위치시켜야 사실과 부합된다. 섬의 크기는 실제와 관계없이 그려져 있다. (이기봉)

  • 대흥군(大興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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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대흥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단지 산세의 표현이나 顯宗大王胎室의 실질적인 모습이 생략되는 등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대흥군 지도도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해동지도》에는 오른쪽 위의 예산에서 遠東面 지역으로 현재의 화산천이 흘러오는 것을 분명하게 표현하였으나 본 지도나 《광여도》에서는 애매하게 그려져 있다. 현재의 신양천이 중앙의 靑陽界 남쪽에서 흘러들어옴에도 《광여도》에는 마치 靑陽界가 발원지인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본 지도와 《해동지도》에서는 발원지처럼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산줄기를 가운데 그려 넣어 오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하지만 《해동지도》와도 전혀 다른 것은 아니어서 세 지도가 상호 관련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기봉)

  • 대흥군(大興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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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대흥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단지 산세의 표현이나 顯宗大王胎室의 실질적인 모습이 생략되는 등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대흥군 지도도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해동지도》에는 오른쪽 위의 예산에서 遠東面 지역으로 현재의 화산천이 흘러오는 것을 분명하게 표현하였으나 본 지도나 《광여도》에서는 애매하게 그려져 있다. 현재의 신양천이 중앙의 靑陽界 남쪽에서 흘러들어옴에도 《광여도》에는 마치 靑陽界가 발원지인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본 지도와 《해동지도》에서는 발원지처럼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산줄기를 가운데 그려 넣어 오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하지만 《해동지도》와도 전혀 다른 것은 아니어서 세 지도가 상호 관련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기봉)

  • 덕산현(德山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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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덕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지도 왼쪽 위에 표시된 洪川界는 洪州界에 대한 誤記이며, 이 방면에 홍주와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잘못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덕산현 지도를 보면 그 의미가 이해된다. 《해동지도》에는 도로가 연결되는 끝 부분에 고을의 경계 표시를 해 놓았다. 《해동지도》의 왼쪽 아래에는 본 지도에서는 생략된 結城界가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덕산현은 결성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해당 도로를 따라가면 결성의 경계가 나온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 위쪽의 洪州界 역시 홍주와 경계를 맞대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해당 도로를 따라가면 현재의 서산시 운산면 서쪽에 있었던 홍주의 월경지 운천면 경계가 나온다는 뜻이다.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는 《해동지도》에 있었던 도로를 생략함에 따라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 대한 이해를 어렵게 하고 있다. 오른쪽 위에 있는 非方串面은 현재의 당진군 점원리 부근에 있었던 월경지였다. 덕산현과 이 고을 사이에는 역시 홍주의 월경지가 있었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덕산현 지도는 비록 회화식으로 그렸지만 비방곶면과 덕산현 사이에 홍주와 천안 등의 문자를 넣어 월경지임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비변사印방안지도’ 《호서지도》의 덕산 지도에서는 아예 월경지로 그려주었다. 주기에 비방곶면이 다른 면에 비해 거리가 먼 편이지만 이것만으로 월경지임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본 지도의 작성자는 비방곶면이 월경지였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지도 왼쪽에 표시된 場村面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으나 위치가 잘못되어 있다. 실제로는 오른쪽의 삽교천 너머에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해동지도》에는 올바르게 표시되어 있는데, 어떤 자료를 근거로 잘못 표시하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광여도》와 본 지도를 제외하면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대부분의 지도에서 모두 올바르게 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덕산현 지역에서 흘러오는 삽교천의 지류가 2개로 되어 있는데, 비슷한 크기의 하천을 그린 것이라면 실제로는 3개가 그려져 있어야 한다. ‘1872년 지방지도’의 덕산현 지도에는 사실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덕산현(德山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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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덕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지도 왼쪽 위에 표시된 洪川界는 洪州界에 대한 誤記이며, 이 방면에 홍주와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잘못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덕산현 지도를 보면 그 의미가 이해된다. 《해동지도》에는 도로가 연결되는 끝 부분에 고을의 경계 표시를 해 놓았다. 《해동지도》의 왼쪽 아래에는 본 지도에서는 생략된 結城界가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덕산현은 결성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해당 도로를 따라가면 결성의 경계가 나온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 위쪽의 洪州界 역시 홍주와 경계를 맞대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해당 도로를 따라가면 현재의 서산시 운산면 서쪽에 있었던 홍주의 월경지 운천면 경계가 나온다는 뜻이다.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는 《해동지도》에 있었던 도로를 생략함에 따라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 대한 이해를 어렵게 하고 있다. 오른쪽 위에 있는 非方串面은 현재의 당진군 점원리 부근에 있었던 월경지였다. 덕산현과 이 고을 사이에는 역시 홍주의 월경지가 있었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덕산현 지도는 비록 회화식으로 그렸지만 비방곶면과 덕산현 사이에 홍주와 천안 등의 문자를 넣어 월경지임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비변사印방안지도’ 《호서지도》의 덕산 지도에서는 아예 월경지로 그려주었다. 주기에 비방곶면이 다른 면에 비해 거리가 먼 편이지만 이것만으로 월경지임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본 지도의 작성자는 비방곶면이 월경지였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지도 왼쪽에 표시된 場村面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으나 위치가 잘못되어 있다. 실제로는 오른쪽의 삽교천 너머에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해동지도》에는 올바르게 표시되어 있는데, 어떤 자료를 근거로 잘못 표시하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광여도》와 본 지도를 제외하면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대부분의 지도에서 모두 올바르게 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덕산현 지역에서 흘러오는 삽교천의 지류가 2개로 되어 있는데, 비슷한 크기의 하천을 그린 것이라면 실제로는 3개가 그려져 있어야 한다. ‘1872년 지방지도’의 덕산현 지도에는 사실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면천군(沔川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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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면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면천현 지도도 표현 방식에서 일부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본 지도와 비슷하다. 위쪽의 蒼澤烽과 아래쪽의 馬山面이 《광여도》에 蒼驛烽과 馬山界로 적혀 있는데 모두 전자가 정확하다. 오른쪽 위의 洪陽界는 《광여도》에 洪州界로 적혀 있는데, 《해동지도》의 면천현 지도에는 모두 본 지도처럼 표시되어 있다. 홍주는 顯宗(1660-1674) 때 잠시 洪陽縣으로 강등되는데, 《해동지도》와 본 지도의 洪陽界는 그런 사실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적인 구도에서 본 지도는 《광여도》와 거의 동일하지만 내용적으로는 《해동지도》를 참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洪陽界는 현재의 당진군 신평면에 있었던 홍주의 월경지 古新平縣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본 지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표현은 하천과 바다이다. 지도 오른쪽 위에 적혀 있는 大津은 현재 당진군의 송악면 한진리에 있었다. 이곳은 현재 아산만 입구에 해당되며, 하천보다는 바다로 표시되어야 한다. 이곳부터 왼쪽의 唐津界까지 모두 바다인데, 본 지도에서는 마치 하천처럼 표현되어 있다. 다만 漁場이란 표시가 있어 바다임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읍치 아래를 흘러 오른쪽(서)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은 현재 삽교천의 지류인 남원천이라 불리고 있다. 그러나 이 하천이 大津까지 연결된 것처럼 표현된 것은 실제와 부합되지 않는다. 남원천과 大津 사이에는 아산과 홍주의 월경지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제에 부합되려면 남원천은 草川面 정도에서 끊겨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문제점은 《해동지도》의 면천현 지도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참고로 《해동지도》에 기록된 면천현은 면천군으로 해야 올바르다. (이기봉)

  • 면천군(沔川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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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면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면천현 지도도 표현 방식에서 일부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본 지도와 비슷하다. 위쪽의 蒼澤烽과 아래쪽의 馬山面이 《광여도》에 蒼驛烽과 馬山界로 적혀 있는데 모두 전자가 정확하다. 오른쪽 위의 洪陽界는 《광여도》에 洪州界로 적혀 있는데, 《해동지도》의 면천현 지도에는 모두 본 지도처럼 표시되어 있다. 홍주는 顯宗(1660-1674) 때 잠시 洪陽縣으로 강등되는데, 《해동지도》와 본 지도의 洪陽界는 그런 사실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적인 구도에서 본 지도는 《광여도》와 거의 동일하지만 내용적으로는 《해동지도》를 참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洪陽界는 현재의 당진군 신평면에 있었던 홍주의 월경지 古新平縣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본 지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표현은 하천과 바다이다. 지도 오른쪽 위에 적혀 있는 大津은 현재 당진군의 송악면 한진리에 있었다. 이곳은 현재 아산만 입구에 해당되며, 하천보다는 바다로 표시되어야 한다. 이곳부터 왼쪽의 唐津界까지 모두 바다인데, 본 지도에서는 마치 하천처럼 표현되어 있다. 다만 漁場이란 표시가 있어 바다임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읍치 아래를 흘러 오른쪽(서)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은 현재 삽교천의 지류인 남원천이라 불리고 있다. 그러나 이 하천이 大津까지 연결된 것처럼 표현된 것은 실제와 부합되지 않는다. 남원천과 大津 사이에는 아산과 홍주의 월경지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제에 부합되려면 남원천은 草川面 정도에서 끊겨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문제점은 《해동지도》의 면천현 지도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참고로 《해동지도》에 기록된 면천현은 면천군으로 해야 올바르다. (이기봉)

  • 목천현(木川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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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목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오른쪽의 一遠東面에 표시된 하천이 《광여도》에는 없고, 伏龍亭이 《광여도》에 伏龜亭으로 표시되어 있는 정도이다. 표현 방식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에는 伏龍亭이 伏龍寺로 되어 있다. 그러나 『여지도서』의 목천현 지도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비변사印방안지도’의 《호서지도》 목천 지도에는 모두 伏龜亭으로 나와 있다. 본 지도는 《광여도》와 《해동지도》를 절충적으로 이해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비록 읍치를 상대적으로 확대해서 그리고, 읍치와 고을 전체의 풍수적 명당성을 부각시킨 회화식 지도이지만 하천의 유로나 각 면의 위치 등이 실제와 가깝게 그려져 있다. 고을의 여러 물줄기를 모아 오른쪽 아래쪽(서남)으로 흘러나가는 하천이 미호천의 지류인 현재의 병천천(아우내)이다. 오른쪽의 一遠東面은 본 지도 위의 하천과 다른 水界에 속해 있었다. 본 지도에서도 비록 하천을 그려 넣지는 않았지만 二遠東面 지역과 산줄기로 분리된 것처럼 그려 수계가 다름을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그렸다. (이기봉)

  • 목천현(木川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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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목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오른쪽의 一遠東面에 표시된 하천이 《광여도》에는 없고, 伏龍亭이 《광여도》에 伏龜亭으로 표시되어 있는 정도이다. 표현 방식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에는 伏龍亭이 伏龍寺로 되어 있다. 그러나 『여지도서』의 목천현 지도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비변사印방안지도’의 《호서지도》 목천 지도에는 모두 伏龜亭으로 나와 있다. 본 지도는 《광여도》와 《해동지도》를 절충적으로 이해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비록 읍치를 상대적으로 확대해서 그리고, 읍치와 고을 전체의 풍수적 명당성을 부각시킨 회화식 지도이지만 하천의 유로나 각 면의 위치 등이 실제와 가깝게 그려져 있다. 고을의 여러 물줄기를 모아 오른쪽 아래쪽(서남)으로 흘러나가는 하천이 미호천의 지류인 현재의 병천천(아우내)이다. 오른쪽의 一遠東面은 본 지도 위의 하천과 다른 水界에 속해 있었다. 본 지도에서도 비록 하천을 그려 넣지는 않았지만 二遠東面 지역과 산줄기로 분리된 것처럼 그려 수계가 다름을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그렸다. (이기봉)

  • 문의현(文義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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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문의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왼쪽 위의 公山界가 《광여도》에 公州界로 적혀 있고, 堤堰의 모습이 《광여도》에 그려져 있는 반면에 본 지도에는 없다는 점 정도이다. 지도 외곽 위쪽에 문의현의 옛 명칭과 충청좌도에 속해 있다는 ‘左’, 오른쪽에 한양으로부터 3일 걸린다는 ‘三日’ 등의 문자가 적혀 있는 것도 다른 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문의현 지도도 표현 양식과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하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하지만 《해동지도》의 내용과도 배치되지는 않는다. 본 지도는 서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의 산세가 서북쪽으로부터 왔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왼쪽 아래의 淸州界로부터 들어와 위쪽의 公山界로 흘러나가는 芙蓉江이 현재의 금강이다. 왼쪽 아래에 淸州界가 적혀 있는 것은 현재의 대전광역시 동구 북쪽 지역에 淸州의 월경지인 周岸面이 있었기 때문이다. 읍치 위쪽의 2개 하천은 오른쪽의 淸州界 경계를 넘어 흘러오며, 읍치 바로 오른쪽의 栗峴(밤나무재) 너머에도 청주 시내를 흐르는 무한천의 일부가 걸쳐 있어야 한다. 읍치 지역을 확대해서 그리고, 일부 하천의 표시가 틀리지만 일반적인 회화식 군현지도에 비해 거리와 방향 등이 상대적으로 정확한 편이다. (이기봉)

  • 문의현(文義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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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문의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왼쪽 위의 公山界가 《광여도》에 公州界로 적혀 있고, 堤堰의 모습이 《광여도》에 그려져 있는 반면에 본 지도에는 없다는 점 정도이다. 지도 외곽 위쪽에 문의현의 옛 명칭과 충청좌도에 속해 있다는 ‘左’, 오른쪽에 한양으로부터 3일 걸린다는 ‘三日’ 등의 문자가 적혀 있는 것도 다른 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문의현 지도도 표현 양식과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하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하지만 《해동지도》의 내용과도 배치되지는 않는다. 본 지도는 서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의 산세가 서북쪽으로부터 왔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왼쪽 아래의 淸州界로부터 들어와 위쪽의 公山界로 흘러나가는 芙蓉江이 현재의 금강이다. 왼쪽 아래에 淸州界가 적혀 있는 것은 현재의 대전광역시 동구 북쪽 지역에 淸州의 월경지인 周岸面이 있었기 때문이다. 읍치 위쪽의 2개 하천은 오른쪽의 淸州界 경계를 넘어 흘러오며, 읍치 바로 오른쪽의 栗峴(밤나무재) 너머에도 청주 시내를 흐르는 무한천의 일부가 걸쳐 있어야 한다. 읍치 지역을 확대해서 그리고, 일부 하천의 표시가 틀리지만 일반적인 회화식 군현지도에 비해 거리와 방향 등이 상대적으로 정확한 편이다. (이기봉)

  • 보령현(保寧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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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보령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보령현 지도도 표현 양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까지 뻗은 산줄기가 동쪽으로부터 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방향이 모든 지점에 동일하게 적용된 것은 아니다. 본 지도의 가장 큰 특징은 고을을 바다로 튀어나간 반도처럼 그렸다는 점이다. 고을의 북쪽(왼쪽)과 남쪽(오른쪽)에 있는 灣을 다른 고을의 땅을 생략한 채 표현하여 반도처럼 그려지게 된 것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호서지도》의 보령 지도에는 灣을 거의 하천처럼 그려 바다가 아주 작게 그려져 있기도 하다. 현재의 보령시 주포면 보령리에 있었던 읍성을 특히 확대 강조하여 읍치가 마치 바다와 아주 가까운 것처럼 오해될 수도 있다. 실제로는 바다로부터 상당히 떨어져 있다. 현재의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에 있었던 水營의 성곽은 지형의 굴곡을 최대한 이용해서 만든 것인데 본 지도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아래쪽의 船泊處는 보령현에 배치된 戰船을 정박시키던 곳이다. 주기에 기록된 防船, 兵船, 伺候船 각 1척은 선박처에 있었던 것이다. (이기봉)

  • 보령현(保寧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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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보령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보령현 지도도 표현 양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까지 뻗은 산줄기가 동쪽으로부터 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방향이 모든 지점에 동일하게 적용된 것은 아니다. 본 지도의 가장 큰 특징은 고을을 바다로 튀어나간 반도처럼 그렸다는 점이다. 고을의 북쪽(왼쪽)과 남쪽(오른쪽)에 있는 灣을 다른 고을의 땅을 생략한 채 표현하여 반도처럼 그려지게 된 것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호서지도》의 보령 지도에는 灣을 거의 하천처럼 그려 바다가 아주 작게 그려져 있기도 하다. 현재의 보령시 주포면 보령리에 있었던 읍성을 특히 확대 강조하여 읍치가 마치 바다와 아주 가까운 것처럼 오해될 수도 있다. 실제로는 바다로부터 상당히 떨어져 있다. 현재의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에 있었던 水營의 성곽은 지형의 굴곡을 최대한 이용해서 만든 것인데 본 지도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아래쪽의 船泊處는 보령현에 배치된 戰船을 정박시키던 곳이다. 주기에 기록된 防船, 兵船, 伺候船 각 1척은 선박처에 있었던 것이다. (이기봉)

  • 보은현(報恩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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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보은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광여도》에 속리산의 법주사에 大雄殿으로, 읍치 위쪽에 燕峙로 적혀 있던 것이 본 지도에서는 大雄閣과 鷰峙로 바뀌어 있다는 점뿐이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는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처럼 쓰여 있어 상호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회화식 군현지도임에도 불구하고 읍치가 별로 확대 과장되어 있지 않고, 산줄기와 물줄기의 표현이 상세하고 사실에 가까운 편이다. 아래쪽은 금강의 지류인 보청천 유역이고, 위쪽의 속리산 방향은 달천의 지류인 속리천 유역이다. 《광여도》에는 아래쪽 靑山界 방향으로 빠져나가는 보청천이 약간 애매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오른쪽 尙州界 방향에 보청천의 지류가 흘러들어옴에도 이와 같은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또한 왼쪽의 內北面이 있는 상류에는 懷仁의 땅도 일부 속해 있었다. 이런 부분은 극히 일부에 해당되기 때문에 지리지를 통해서는 확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당시의 지도 제작자들에게는 구분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동여도》를 비롯하여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모든 보은 지도에서 이런 부분이 표시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내북면 지역은 靑山의 월경지인 酒城面과도 접해 있어 보통은 靑山界라고도 적혀 있어야 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보은현 지도와 《동여도》에는 이와 같이 되어 있다. (이기봉)

  • 보은현(報恩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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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보은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광여도》에 속리산의 법주사에 大雄殿으로, 읍치 위쪽에 燕峙로 적혀 있던 것이 본 지도에서는 大雄閣과 鷰峙로 바뀌어 있다는 점뿐이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는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처럼 쓰여 있어 상호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회화식 군현지도임에도 불구하고 읍치가 별로 확대 과장되어 있지 않고, 산줄기와 물줄기의 표현이 상세하고 사실에 가까운 편이다. 아래쪽은 금강의 지류인 보청천 유역이고, 위쪽의 속리산 방향은 달천의 지류인 속리천 유역이다. 《광여도》에는 아래쪽 靑山界 방향으로 빠져나가는 보청천이 약간 애매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오른쪽 尙州界 방향에 보청천의 지류가 흘러들어옴에도 이와 같은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또한 왼쪽의 內北面이 있는 상류에는 懷仁의 땅도 일부 속해 있었다. 이런 부분은 극히 일부에 해당되기 때문에 지리지를 통해서는 확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당시의 지도 제작자들에게는 구분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동여도》를 비롯하여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모든 보은 지도에서 이런 부분이 표시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내북면 지역은 靑山의 월경지인 酒城面과도 접해 있어 보통은 靑山界라고도 적혀 있어야 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보은현 지도와 《동여도》에는 이와 같이 되어 있다. (이기봉)

  • 부여현(夫餘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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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부여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지도 위쪽의 崇角寺는 《광여도》에 崇角山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와 표현 양식에선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부여현 지도에서는 崇角寺로 되어 있고, 건물까지 그려져 있다. 지리지에도 崇角寺로 나오고 있어 《광여도》가 오류를 범한 것으로 보인다. 읍치 위쪽의 道成面은 주기에는 道城面으로 적혀 있다. 《광여도》와 《해동지도》에 모두 道城面으로 되어 있어 본 지도 작성자의 오류로 추정된다. 그 밖에 《광여도》에는 없는 白馬江이 본 지도에 적혀 있고, 반대로 《광여도》에 있는 縣內面 왼쪽의 新池가 생략되어 있다. 본 지도는 전체적으로 보면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러나 읍치는 이런 방향과 어긋나게 그려져 있다. 읍치는 북쪽에 부소산을 두고 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본 지도만으로 보면 부소산이 읍치의 서쪽에 있는 것처럼 이해될 수 있다. 이런 문제가 나타난 것은 오른쪽의 公州界에서 들어와 왼쪽의 石城界로 빠져나가는 현재의 금강(白馬江) 유로에 대한 잘못된 표현 때문으로 추정된다. 금강은 부소산 부근에서 거의 서남쪽으로 흐르다 남쪽-동남쪽으로 유로를 바꾼다. 서남쪽으로 흐르는 금강에 부소산이 있고, 부소산 아래에 읍치가 있다면 부소산은 읍치의 북쪽에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향에 대한 오류는 회화식 군현지도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부여현 지도 역시 회화식으로 그렸지만 부소산과 읍치의 방향은 제대로 표시되어 있다. (이기봉)

  • 부여현(夫餘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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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부여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지도 위쪽의 崇角寺는 《광여도》에 崇角山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와 표현 양식에선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부여현 지도에서는 崇角寺로 되어 있고, 건물까지 그려져 있다. 지리지에도 崇角寺로 나오고 있어 《광여도》가 오류를 범한 것으로 보인다. 읍치 위쪽의 道成面은 주기에는 道城面으로 적혀 있다. 《광여도》와 《해동지도》에 모두 道城面으로 되어 있어 본 지도 작성자의 오류로 추정된다. 그 밖에 《광여도》에는 없는 白馬江이 본 지도에 적혀 있고, 반대로 《광여도》에 있는 縣內面 왼쪽의 新池가 생략되어 있다. 본 지도는 전체적으로 보면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러나 읍치는 이런 방향과 어긋나게 그려져 있다. 읍치는 북쪽에 부소산을 두고 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본 지도만으로 보면 부소산이 읍치의 서쪽에 있는 것처럼 이해될 수 있다. 이런 문제가 나타난 것은 오른쪽의 公州界에서 들어와 왼쪽의 石城界로 빠져나가는 현재의 금강(白馬江) 유로에 대한 잘못된 표현 때문으로 추정된다. 금강은 부소산 부근에서 거의 서남쪽으로 흐르다 남쪽-동남쪽으로 유로를 바꾼다. 서남쪽으로 흐르는 금강에 부소산이 있고, 부소산 아래에 읍치가 있다면 부소산은 읍치의 북쪽에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향에 대한 오류는 회화식 군현지도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부여현 지도 역시 회화식으로 그렸지만 부소산과 읍치의 방향은 제대로 표시되어 있다. (이기봉)

  • 비인현(庇仁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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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비인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비인현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가 본 지도와 거의 비슷하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 《해동지도》에는 고을의 남북보다 동서의 폭이 더 넓게 그려졌다. 반면에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는 동서보다 남북의 폭이 더 넓다. 이것은 고을의 실제를 반영한 것이 아니라 가로보다 세로가 더 긴 종이의 크기에 맞추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지도 아래쪽에 그려진 섬들은 크기나 위치가 고려되지 않았다. 烟島는 河尾島보다 수십 배 더 큰 섬이며, 해안가에서 떨어진 거리도 수십 배 멀다. 회화식 지도에서는 섬의 크기나 위치의 실제 거리를 고려하지 않고 그냥 ‘있다’는 사실만을 보여주는 것이 대부분이다. 지도에는 船泊處가 2개 표시되어 있다. 아래쪽의 것은 庇仁縣에서 관리하던 戰船을 정박하던 곳이며, 왼쪽의 것은 馬梁鎭에 배치된 전선이 있던 곳이다. 주기에는 비인현과 마량진에서 관리하던 배의 종류와 수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여러 고을의 세곡을 모아 한꺼번에 한양으로 운반하던 漕倉 제도는 대동법의 시행 이후 水運이 불가능한 山郡 지역으로 축소되었다. 바닷가를 끼고 있는 비인현의 경우 독자적으로 田稅와 大同米을 한양으로 운반해야 했으며, 그곳이 바로 지도 아래쪽에 표시된 海倉이다. (이기봉)

  • 비인현(庇仁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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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비인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비인현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가 본 지도와 거의 비슷하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 《해동지도》에는 고을의 남북보다 동서의 폭이 더 넓게 그려졌다. 반면에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는 동서보다 남북의 폭이 더 넓다. 이것은 고을의 실제를 반영한 것이 아니라 가로보다 세로가 더 긴 종이의 크기에 맞추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지도 아래쪽에 그려진 섬들은 크기나 위치가 고려되지 않았다. 烟島는 河尾島보다 수십 배 더 큰 섬이며, 해안가에서 떨어진 거리도 수십 배 멀다. 회화식 지도에서는 섬의 크기나 위치의 실제 거리를 고려하지 않고 그냥 ‘있다’는 사실만을 보여주는 것이 대부분이다. 지도에는 船泊處가 2개 표시되어 있다. 아래쪽의 것은 庇仁縣에서 관리하던 戰船을 정박하던 곳이며, 왼쪽의 것은 馬梁鎭에 배치된 전선이 있던 곳이다. 주기에는 비인현과 마량진에서 관리하던 배의 종류와 수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여러 고을의 세곡을 모아 한꺼번에 한양으로 운반하던 漕倉 제도는 대동법의 시행 이후 水運이 불가능한 山郡 지역으로 축소되었다. 바닷가를 끼고 있는 비인현의 경우 독자적으로 田稅와 大同米을 한양으로 운반해야 했으며, 그곳이 바로 지도 아래쪽에 표시된 海倉이다. (이기봉)

  • 서산군(瑞山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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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서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위쪽의 永豊豆倉面이 《광여도》에는 永登倉面으로 적혀 있다는 점뿐이다. 《광여도》와 본 지도의 주기에는 영풍두창면이 영등창면으로 적혀 있어 본 지도의 제작자가 오류를 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서산군 지역은 남북으로 육지 속으로 깊숙이 들어온 灣이 많이 발달해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이런 사실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읍치 왼쪽에 仁政面으로부터 영풍두창면 까지 마치 하천에 의해 바다가 연결된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그 왼쪽의 泰安界에도 비슷한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특히 태안계 부분은 고려와 조선 초기에 운하를 뚫어 조운로를 개척하려다 기반암이 광범위하게 발견되면서 실패한 지역이기도 하다. 이런 오류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서산군 지도에도 동일하면서 더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광여도》와 본 지도가 《해동지도》의 것을 기본으로 하여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해동지도》를 그대로 필사한 것이 아니라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변화를 주고 있다. 가장 심한 변화는 《해동지도》에 표시되어 있던 안면도와 기타 섬들이 《광여도》와 본 지도에 생략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안면도는 國用 목재를 조달하기 위해 일반인의 이용을 금지하던 封山 중 가장 큰 곳으로서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여기던 곳이다. 《광여도》와 본 지도는 일정한 크기의 사각형 용지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아래쪽으로 튀어져 나가 있던 안면도 부분을 생략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서산군(瑞山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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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서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위쪽의 永豊豆倉面이 《광여도》에는 永登倉面으로 적혀 있다는 점뿐이다. 《광여도》와 본 지도의 주기에는 영풍두창면이 영등창면으로 적혀 있어 본 지도의 제작자가 오류를 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서산군 지역은 남북으로 육지 속으로 깊숙이 들어온 灣이 많이 발달해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이런 사실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읍치 왼쪽에 仁政面으로부터 영풍두창면 까지 마치 하천에 의해 바다가 연결된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그 왼쪽의 泰安界에도 비슷한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특히 태안계 부분은 고려와 조선 초기에 운하를 뚫어 조운로를 개척하려다 기반암이 광범위하게 발견되면서 실패한 지역이기도 하다. 이런 오류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서산군 지도에도 동일하면서 더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광여도》와 본 지도가 《해동지도》의 것을 기본으로 하여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해동지도》를 그대로 필사한 것이 아니라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변화를 주고 있다. 가장 심한 변화는 《해동지도》에 표시되어 있던 안면도와 기타 섬들이 《광여도》와 본 지도에 생략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안면도는 國用 목재를 조달하기 위해 일반인의 이용을 금지하던 封山 중 가장 큰 곳으로서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여기던 곳이다. 《광여도》와 본 지도는 일정한 크기의 사각형 용지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아래쪽으로 튀어져 나가 있던 안면도 부분을 생략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서천군(舒川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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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서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서천군 지도도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하다. 읍치 위쪽의 月鉤山과 扶蘇峴이 《광여도》에는 月劒山과 夫餘峴으로 되어 있다. 아래쪽의 舒川浦는 《광여도》에 舒川浦鎭으로 되어 있고, 그 오른쪽의 龍塘津은 《광여도》에 표시되어 있지 않다. 기타 아래쪽의 섬 명칭에 대한 표현도 《광여도》와 다르다. 月鉤山을 제외하면 이런 내용들은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月鉤山는 《해동지도》의 月釣山에 대한 誤記이다. 읍치 지역을 다른 지역보다 대축척으로 그려내고, 풍수적 명당 이미지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고을 전체의 모습에 여러 왜곡이 발생하였다. 왼쪽 위의 鴻山界에는 庇仁界라고 쓰는 것이 더 정확하다. 鴻山界는 읍치 동북쪽의 일부에 걸쳐 있을 뿐이다. 홍산계가 이렇게 표시된 이유는 읍치 위쪽으로부터 읍치까지 뻗은 산줄기를 강조하려 했기 때문이다. 金丹山이나 月林山 모두 읍치 동북쪽 방향에 있다. 읍치 왼쪽 위의 文長面도 이 산줄기의 오른쪽에 있어야 한다. 아울러 읍치 왼쪽의 하천은 庇仁의 땅으로부터 발원되며, 본 고을을 지나는 부분은 극히 짧다. 만약 읍치의 축척을 다른 지역과 비슷하게 그렸다면 읍치의 위쪽의 烏石山 부근에서 庇仁界와 만나게 된다. 그 위쪽의 산줄기는 동북 방향에 위치시키고 산줄기의 왼쪽은 庇仁界로, 위쪽은 鴻山界로 하면 실제와 부합된다. 아래쪽 금강 하구에 있는 여러 섬도 실제 위치나 크기와는 전혀 관계없이 표현되어 있다. 이와 같은 문제점은 본 지도가 정보의 위치나 거리에 대한 정확성보다는 고을의 풍수적 명당 이미지를 중요하게 여긴 회화식 군현지도이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이기봉)

  • 서천군(舒川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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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서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서천군 지도도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하다. 읍치 위쪽의 月鉤山과 扶蘇峴이 《광여도》에는 月劒山과 夫餘峴으로 되어 있다. 아래쪽의 舒川浦는 《광여도》에 舒川浦鎭으로 되어 있고, 그 오른쪽의 龍塘津은 《광여도》에 표시되어 있지 않다. 기타 아래쪽의 섬 명칭에 대한 표현도 《광여도》와 다르다. 月鉤山을 제외하면 이런 내용들은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月鉤山는 《해동지도》의 月釣山에 대한 誤記이다. 읍치 지역을 다른 지역보다 대축척으로 그려내고, 풍수적 명당 이미지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고을 전체의 모습에 여러 왜곡이 발생하였다. 왼쪽 위의 鴻山界에는 庇仁界라고 쓰는 것이 더 정확하다. 鴻山界는 읍치 동북쪽의 일부에 걸쳐 있을 뿐이다. 홍산계가 이렇게 표시된 이유는 읍치 위쪽으로부터 읍치까지 뻗은 산줄기를 강조하려 했기 때문이다. 金丹山이나 月林山 모두 읍치 동북쪽 방향에 있다. 읍치 왼쪽 위의 文長面도 이 산줄기의 오른쪽에 있어야 한다. 아울러 읍치 왼쪽의 하천은 庇仁의 땅으로부터 발원되며, 본 고을을 지나는 부분은 극히 짧다. 만약 읍치의 축척을 다른 지역과 비슷하게 그렸다면 읍치의 위쪽의 烏石山 부근에서 庇仁界와 만나게 된다. 그 위쪽의 산줄기는 동북 방향에 위치시키고 산줄기의 왼쪽은 庇仁界로, 위쪽은 鴻山界로 하면 실제와 부합된다. 아래쪽 금강 하구에 있는 여러 섬도 실제 위치나 크기와는 전혀 관계없이 표현되어 있다. 이와 같은 문제점은 본 지도가 정보의 위치나 거리에 대한 정확성보다는 고을의 풍수적 명당 이미지를 중요하게 여긴 회화식 군현지도이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이기봉)

  • 석성현(石城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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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석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서는 《광여도》에 있는 堤 중 총 6개가 생략되어 있고, 제언의 모양 표시도 사라졌다. 반면에 《광여도》에는 없었던 梨峴이 오른쪽에 적혀 있다. 이 지명은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동일한 《해동지도》의 석성현 지도에 나오고 있어 상호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梨峴 오른쪽의 魯山面은 본 지도의 주기, 《광여도》의 지도와 주기 모두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해동지도》에는 曾山面으로 나오고 있으며, 『여지도서』와 『대동지지』 등에는 甑山面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본 지도와 《광여도》의 제작자가 ‘曾’자를 ‘魯’자로 잘못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의 풍수적 명당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거의 평지라고 표현해도 좋은 아래쪽 부분에 산줄기가 그려져 있다. 또한 읍치 지역을 상대적으로 크게 그렸다. 이 때문에 扶餘界로부터 들어오는 현재의 석성천이 읍치 동쪽의 하천보다 훨씬 규모가 큰 하천임에도 이런 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서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는데 이것도 읍치로 내려오는 산줄기가 이 방향에서 오기 때문이다. 위쪽에서 흘러와 아래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금강이다. 금강 변에 있는 津은 나루이기도 하지만 이 부분에서는 금강의 명칭으로도 사용되었다. 江倉은 대동법의 시행 이후 漕倉制가 대폭 축소되면서 석성현의 田稅와 大同米를 모았다가 한양으로 운반하던 곳이었다. (이기봉)

  • 석성현(石城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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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석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서는 《광여도》에 있는 堤 중 총 6개가 생략되어 있고, 제언의 모양 표시도 사라졌다. 반면에 《광여도》에는 없었던 梨峴이 오른쪽에 적혀 있다. 이 지명은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동일한 《해동지도》의 석성현 지도에 나오고 있어 상호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梨峴 오른쪽의 魯山面은 본 지도의 주기, 《광여도》의 지도와 주기 모두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해동지도》에는 曾山面으로 나오고 있으며, 『여지도서』와 『대동지지』 등에는 甑山面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본 지도와 《광여도》의 제작자가 ‘曾’자를 ‘魯’자로 잘못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의 풍수적 명당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거의 평지라고 표현해도 좋은 아래쪽 부분에 산줄기가 그려져 있다. 또한 읍치 지역을 상대적으로 크게 그렸다. 이 때문에 扶餘界로부터 들어오는 현재의 석성천이 읍치 동쪽의 하천보다 훨씬 규모가 큰 하천임에도 이런 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서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는데 이것도 읍치로 내려오는 산줄기가 이 방향에서 오기 때문이다. 위쪽에서 흘러와 아래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금강이다. 금강 변에 있는 津은 나루이기도 하지만 이 부분에서는 금강의 명칭으로도 사용되었다. 江倉은 대동법의 시행 이후 漕倉制가 대폭 축소되면서 석성현의 田稅와 大同米를 모았다가 한양으로 운반하던 곳이었다. (이기봉)

  • 수영(水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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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水營圖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충청도의 水營은 현재의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에 있었다. 수영의 성곽과 부근을 확대하여 자세히 그렸고, 다른 지역은 실제 모습과 관련 없이 산줄기가 겹겹이 싸여있는 형태로 그렸다. 烏栖山 아래쪽이 《광여도》에는 바다의 색으로 칠해져 있으나 본 지도에서는 생략되었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수영 지도와 비교해 보면 《광여도》와 본 지도가 잘못 이해하여 필사한 부분이 있다. 烏栖山 위쪽이 《해동지도》에는 바다의 색으로 칠해져 있지 않은데,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바다와 같은 색으로 칠해져 있다. 이렇게 되면 수영 왼쪽에 雲山寺가 있는 곳이 섬으로 오해될 수 있다. 그러나 이곳은 현재의 보령시 천북면 지역으로서 섬이 아니라 반도이다. 따라서 《해동지도》에 올바르게 표현된 내용이 筆寫 과정에서 잘못 이해되어 상당한 왜곡이 발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수영의 성곽과 부근과 다른 지역이 거리나 면적, 방향 등에서 전혀 다르게 배치되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면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수영 왼쪽에 舟란 글씨가 표시된 바다보다 安眠島와 육지 사이의 바다가 10배 이상 넓지만 본 지도를 오해하면 더 좁은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안면도 이외의 섬들도 실제의 위치나 거리, 면적을 제대로 반영한 것이 아니다. 수영 주변의 고을에 대한 표시도 해당 방향으로 가면 경계를 만난다는 의미일 뿐 직접 경계를 맞대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왼쪽 위에 있는 洪陽은 洪州를 의미한다. 홍주는 顯宗(1660-1674) 때 잠시 洪陽縣으로 강등되는데, 이 사실과 관계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기봉)

  • 수영(水營)(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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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水營圖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충청도의 水營은 현재의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에 있었다. 수영의 성곽과 부근을 확대하여 자세히 그렸고, 다른 지역은 실제 모습과 관련 없이 산줄기가 겹겹이 싸여있는 형태로 그렸다. 烏栖山 아래쪽이 《광여도》에는 바다의 색으로 칠해져 있으나 본 지도에서는 생략되었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수영 지도와 비교해 보면 《광여도》와 본 지도가 잘못 이해하여 필사한 부분이 있다. 烏栖山 위쪽이 《해동지도》에는 바다의 색으로 칠해져 있지 않은데,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바다와 같은 색으로 칠해져 있다. 이렇게 되면 수영 왼쪽에 雲山寺가 있는 곳이 섬으로 오해될 수 있다. 그러나 이곳은 현재의 보령시 천북면 지역으로서 섬이 아니라 반도이다. 따라서 《해동지도》에 올바르게 표현된 내용이 筆寫 과정에서 잘못 이해되어 상당한 왜곡이 발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수영의 성곽과 부근과 다른 지역이 거리나 면적, 방향 등에서 전혀 다르게 배치되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면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수영 왼쪽에 舟란 글씨가 표시된 바다보다 安眠島와 육지 사이의 바다가 10배 이상 넓지만 본 지도를 오해하면 더 좁은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안면도 이외의 섬들도 실제의 위치나 거리, 면적을 제대로 반영한 것이 아니다. 수영 주변의 고을에 대한 표시도 해당 방향으로 가면 경계를 만난다는 의미일 뿐 직접 경계를 맞대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왼쪽 위에 있는 洪陽은 洪州를 의미한다. 홍주는 顯宗(1660-1674) 때 잠시 洪陽縣으로 강등되는데, 이 사실과 관계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기봉)

  • 신창현(新昌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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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신창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오른쪽에서 지도 위쪽으로 흐르는 曲橋川은 현재도 곡교천으로 불리고 있다. 그런데 昌德驛에서 흘러오는 것이 곡교천의 본류가 아니다. 곡교천의 본류는 牙山界로부터 들어와야 하며, 小東面 부근에서 창덕역 방향의 지류와 합류되는 방식으로 그려져야 한다. 외쪽 아래의 禮山界에서 흘러오는 하천은 현재의 삽교천이다. 이 삽교천은 丹津倉 부근에서 곡교천과 합류하여 북쪽으로 흘러가야 하는데 지도에는 이와 같은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못하다. 오히려 삽교천의 상류 방향에 해당되는 禮山界의 삽교천을 굵게 표현하여 하류인 것처럼 오해하도록 그렸다. 이와 같은 오류는 《광여도》와 《해동지도》의 신창현 지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고을과 읍치를 산줄기와 물줄기가 겹겹이 싸인 풍수적 명당 형국으로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1872년 지방지도’의 신창현지도 역시 회화식으로 그렸지만 하천에 대한 표현은 정확한 편이다. 읍치와 창덕역 사이에는 작은 언덕 정도밖에 안되는 分水界가 있었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마치 높은 산줄기가 있는 것처럼 표시되어 있는데, 읍치의 풍수적 명당성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와 관련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밖에 오른쪽 위쪽의 丹津倉 부근과 小西面 부근에 천안의 월경지와 접해 있었던 사실도 본 지도에는 표현되어 있지 않다. (이기봉)

  • 신창현(新昌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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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신창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오른쪽에서 지도 위쪽으로 흐르는 曲橋川은 현재도 곡교천으로 불리고 있다. 그런데 昌德驛에서 흘러오는 것이 곡교천의 본류가 아니다. 곡교천의 본류는 牙山界로부터 들어와야 하며, 小東面 부근에서 창덕역 방향의 지류와 합류되는 방식으로 그려져야 한다. 외쪽 아래의 禮山界에서 흘러오는 하천은 현재의 삽교천이다. 이 삽교천은 丹津倉 부근에서 곡교천과 합류하여 북쪽으로 흘러가야 하는데 지도에는 이와 같은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못하다. 오히려 삽교천의 상류 방향에 해당되는 禮山界의 삽교천을 굵게 표현하여 하류인 것처럼 오해하도록 그렸다. 이와 같은 오류는 《광여도》와 《해동지도》의 신창현 지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고을과 읍치를 산줄기와 물줄기가 겹겹이 싸인 풍수적 명당 형국으로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1872년 지방지도’의 신창현지도 역시 회화식으로 그렸지만 하천에 대한 표현은 정확한 편이다. 읍치와 창덕역 사이에는 작은 언덕 정도밖에 안되는 分水界가 있었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마치 높은 산줄기가 있는 것처럼 표시되어 있는데, 읍치의 풍수적 명당성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와 관련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밖에 오른쪽 위쪽의 丹津倉 부근과 小西面 부근에 천안의 월경지와 접해 있었던 사실도 본 지도에는 표현되어 있지 않다. (이기봉)

  • 아산현(牙山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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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아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방향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아래쪽에 있는 新昌界의 오른쪽에는 온양과 경계를 접하고 있었기 때문에 溫陽界가 적혀 있어야 한다. 《해동지도》의 아산현 지도에는 온양계가 표시되어 있다. 신창계에 있는 于坪津은 현재 삽교호로 흘러가는 곡교천이다. 이 하천은 동쪽의 天安界에서 흘러온다. 읍치의 입장에서 보면 남쪽에 있었다. 오른쪽 아래의 遠西面은 遠南面의 誤記이다. 水原界 오른쪽의 하천은 현재의 아산만에 있는 안성천이다. 이 하천은 거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가는데 마치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곳에 있는 唐津界는 《해동지도》에 唐津浦로 나오는 것을 잘못 옮긴 것이다.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오는데, 唐津이 근처에 있었던 고을 이름과 같기 때문에 지도 제작자가 착각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위쪽의 平澤界에 있는 하천은 현재의 군계천이다. 이 하천은 읍치 입장에서 보면 동북쪽에 있다. 그런데 본 지도에서는 마치 북쪽에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三北面과 一北面도 北이라는 문자가 들어가 있지만 실제로는 읍치의 동북쪽에 있었다. 방향이나 거리가 정확하지 않은 것은 회화식 군현지도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왼쪽 아래의 貢稅倉은 현재의 인주면 공세리에 있었던 곳으로서 漕倉이었다. 그 왼쪽의 ‘西江漕泊’ 읍치의 서쪽에 있는 西江에 漕運船이 정박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이기봉)

  • 아산현(牙山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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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아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방향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아래쪽에 있는 新昌界의 오른쪽에는 온양과 경계를 접하고 있었기 때문에 溫陽界가 적혀 있어야 한다. 《해동지도》의 아산현 지도에는 온양계가 표시되어 있다. 신창계에 있는 于坪津은 현재 삽교호로 흘러가는 곡교천이다. 이 하천은 동쪽의 天安界에서 흘러온다. 읍치의 입장에서 보면 남쪽에 있었다. 오른쪽 아래의 遠西面은 遠南面의 誤記이다. 水原界 오른쪽의 하천은 현재의 아산만에 있는 안성천이다. 이 하천은 거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가는데 마치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곳에 있는 唐津界는 《해동지도》에 唐津浦로 나오는 것을 잘못 옮긴 것이다.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오는데, 唐津이 근처에 있었던 고을 이름과 같기 때문에 지도 제작자가 착각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위쪽의 平澤界에 있는 하천은 현재의 군계천이다. 이 하천은 읍치 입장에서 보면 동북쪽에 있다. 그런데 본 지도에서는 마치 북쪽에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三北面과 一北面도 北이라는 문자가 들어가 있지만 실제로는 읍치의 동북쪽에 있었다. 방향이나 거리가 정확하지 않은 것은 회화식 군현지도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왼쪽 아래의 貢稅倉은 현재의 인주면 공세리에 있었던 곳으로서 漕倉이었다. 그 왼쪽의 ‘西江漕泊’ 읍치의 서쪽에 있는 西江에 漕運船이 정박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이기봉)

  • 연기현(燕歧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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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지도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연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에는 왼쪽의 金沙驛이 노란색 사각형만 그려진 채 기록되어 있지 않다. 《광여도》에서는 驛 보라색 사각형으로 표시하는데, 색을 面에 해당되는 노란색으로 칠하면서 역의 이름을 생략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 아래에 있는 釜洞과 白川이 《광여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동일 방향에 생략된 것으로 통해 볼 때 역시 《광여도》 제작자의 실수로 생각된다. 오른쪽 아래의 文義界에서 들어와 왼쪽의 공주계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금강 본류이다. 오른쪽의 淸州界에서 들어와 合江 부근에서 금강에 합류되는 하천이 현재의 미호천이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청주계에서 미호천이 흘러 들어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도록 그려져 있다. 《광여도》의 경우 淸州界란 글씨 위에 하천 줄기가 그려져 있어 미호천이 흘러 들어옴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비슷한 《해동지도》의 연기현 지도에서도 이 부분을 본 지도처럼 표현하였다. 《광여도》가 다른 자료를 통해 《해동지도》의 문제점을 고쳐나간 반면 본 지도는 그대로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오른쪽 아래의 白川은 미호천보다 규모가 훨씬 작은 하천이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미호천보다 더 굵게 그려져 있어 사실과 반대로 오해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이 점은 《광여도》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고 있으며, 《해동지도》에서도 정도는 덜 하지만 비슷하게 표현되어 있다. 하천을 2개의 실선으로 그린 《해동지도》와 달리 본류는 2개의 실선으로, 지류는 1개의 실선으로 그리는 과정에서 문제가 더욱 커진 것으로 추정된다. 南面에 그려진 하천의 경우 원래 公州의 경계를 넘어 금강에 합류된다. 본 지도에는 마치 전 지역이 연기현인 것처럼 착각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연기현(燕歧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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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지도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연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에는 왼쪽의 金沙驛이 노란색 사각형만 그려진 채 기록되어 있지 않다. 《광여도》에서는 驛 보라색 사각형으로 표시하는데, 색을 面에 해당되는 노란색으로 칠하면서 역의 이름을 생략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 아래에 있는 釜洞과 白川이 《광여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동일 방향에 생략된 것으로 통해 볼 때 역시 《광여도》 제작자의 실수로 생각된다. 오른쪽 아래의 文義界에서 들어와 왼쪽의 공주계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금강 본류이다. 오른쪽의 淸州界에서 들어와 合江 부근에서 금강에 합류되는 하천이 현재의 미호천이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청주계에서 미호천이 흘러 들어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도록 그려져 있다. 《광여도》의 경우 淸州界란 글씨 위에 하천 줄기가 그려져 있어 미호천이 흘러 들어옴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비슷한 《해동지도》의 연기현 지도에서도 이 부분을 본 지도처럼 표현하였다. 《광여도》가 다른 자료를 통해 《해동지도》의 문제점을 고쳐나간 반면 본 지도는 그대로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오른쪽 아래의 白川은 미호천보다 규모가 훨씬 작은 하천이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미호천보다 더 굵게 그려져 있어 사실과 반대로 오해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이 점은 《광여도》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고 있으며, 《해동지도》에서도 정도는 덜 하지만 비슷하게 표현되어 있다. 하천을 2개의 실선으로 그린 《해동지도》와 달리 본류는 2개의 실선으로, 지류는 1개의 실선으로 그리는 과정에서 문제가 더욱 커진 것으로 추정된다. 南面에 그려진 하천의 경우 원래 公州의 경계를 넘어 금강에 합류된다. 본 지도에는 마치 전 지역이 연기현인 것처럼 착각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연산현(連山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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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연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왼쪽의 落水菴이 《광여도》에는 水落菴으로 적혀 있다는 정도이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비슷한 《해동지도》의 연산현 지도에는 水落菴으로 되어 있다. 지도 주변에 경계를 맞대고 있는 고을의 명칭 표시가 잘못된 것이 보인다. 연산현은 전라도의 礪山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礪山界가 표시되어 있다. 전라도의 高山과도 거의 경계를 맞대고 있었다고 볼 수 없다. 맞대고 있는 부분은 대둔산 지역 일부로서 올바르게 표시하려면 全州界 오른쪽에 표시되어야 한다. 아래쪽에 본 고을과 멀리 떨어져 있는 全州界가 적혀 있는 것은 현재의 논산시 양촌면에 있었던 전주의 월경지 陽良所面 때문이다. 주기에 보면 북쪽으로 公州와 경계를 맞대고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럼에도 본 지도에는 계룡산 부근에 표시되어야 할 公州界가 없다. 이런 문제점이 나타난 것은 《해동지도》의 연산현 지도에 바탕을 두고 그리면서 도로를 생략시켰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도로의 끝에 고을 경계의 명칭이 적혀 있다. 이것은 경계라는 의미 이외에 해당 도로를 따라가면 표시된 고을의 경계를 만날 수 있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따라서 직접 경계를 맞대고 있는 고을이 아니더라도 ‘○○界’라는 표시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公州처럼 경계를 맞대고 있다 할지라도 공주와 통하는 주요 도로가 지도에 표시되지 않으면 ‘公州界’가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본 지도에서는 방향을 이해하기도 어렵게 되어 있다. 오른쪽의 위의 鷄龍山은 읍치의 거의 정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읍치에서 내려가는 현재의 연산천과 아래쪽에서 위로 흐르는 현재의 논산천이 만나는 지점은 읍치의 거의 정 서쪽에 해당된다. 아래쪽에 全州界라고 적혀 있는 부분은 읍치의 거의 정 남쪽에 해당된다. 오른쪽의 豆麻面은 읍치의 동북쪽에 있다. 본 지도와 같은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동서남북 등의 방향은 대략적인 것일 뿐 정확한 것은 아니다. 오른쪽의 하천은 出口가 표시되어 있지 않다. 실제로는 豆麻面 표시 정도에서 鎭岑 방향으로 흘러나가는 현재의 갑천이다. (이기봉)

  • 연산현(連山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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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연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왼쪽의 落水菴이 《광여도》에는 水落菴으로 적혀 있다는 정도이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비슷한 《해동지도》의 연산현 지도에는 水落菴으로 되어 있다. 지도 주변에 경계를 맞대고 있는 고을의 명칭 표시가 잘못된 것이 보인다. 연산현은 전라도의 礪山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礪山界가 표시되어 있다. 전라도의 高山과도 거의 경계를 맞대고 있었다고 볼 수 없다. 맞대고 있는 부분은 대둔산 지역 일부로서 올바르게 표시하려면 全州界 오른쪽에 표시되어야 한다. 아래쪽에 본 고을과 멀리 떨어져 있는 全州界가 적혀 있는 것은 현재의 논산시 양촌면에 있었던 전주의 월경지 陽良所面 때문이다. 주기에 보면 북쪽으로 公州와 경계를 맞대고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럼에도 본 지도에는 계룡산 부근에 표시되어야 할 公州界가 없다. 이런 문제점이 나타난 것은 《해동지도》의 연산현 지도에 바탕을 두고 그리면서 도로를 생략시켰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도로의 끝에 고을 경계의 명칭이 적혀 있다. 이것은 경계라는 의미 이외에 해당 도로를 따라가면 표시된 고을의 경계를 만날 수 있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따라서 직접 경계를 맞대고 있는 고을이 아니더라도 ‘○○界’라는 표시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公州처럼 경계를 맞대고 있다 할지라도 공주와 통하는 주요 도로가 지도에 표시되지 않으면 ‘公州界’가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본 지도에서는 방향을 이해하기도 어렵게 되어 있다. 오른쪽의 위의 鷄龍山은 읍치의 거의 정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읍치에서 내려가는 현재의 연산천과 아래쪽에서 위로 흐르는 현재의 논산천이 만나는 지점은 읍치의 거의 정 서쪽에 해당된다. 아래쪽에 全州界라고 적혀 있는 부분은 읍치의 거의 정 남쪽에 해당된다. 오른쪽의 豆麻面은 읍치의 동북쪽에 있다. 본 지도와 같은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동서남북 등의 방향은 대략적인 것일 뿐 정확한 것은 아니다. 오른쪽의 하천은 出口가 표시되어 있지 않다. 실제로는 豆麻面 표시 정도에서 鎭岑 방향으로 흘러나가는 현재의 갑천이다. (이기봉)

  • 연풍현(延豊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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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연풍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연풍현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가 본 지도와 비슷하나 내용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다. 《해동지도》의 산세 표현 방식이 본 지도나 《광여도》와 다르다. 읍치 왼쪽 위의 龍湫와 오른쪽 아래의 覺淵寺 등은 《광여도》와 본 지도에는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있으면서 본 지도와 《광여도》에 없는 것도 있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하며, 《해동지도》와도 별로 다르지는 않다. 본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의 산세가 동쪽에서 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위쪽의 鳥嶺城門 주위의 봉우리는 굉장히 험준하게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서도 험준하게 표현되어 있지만 상대적으로 본 지도와 《광여도》가 더 험준하게 표현하였다. 鳥嶺의 관문으로서의 성격을 더 부각시켜 보여주려 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도의 위쪽 여백에는 연풍현의 옛 명칭과 충청좌도에 속한다는 ‘左’, 오른쪽 여백에는 한양에서 4일 걸린다는 ‘四日’ 등이 표시되어 있다. 이런 표시는 《광여도》나 《해동지도》 어디에도 없던 것으로서 이 지도의 이용자들이 필요로 했던 정보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기봉)

  • 연풍현(延豊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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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연풍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연풍현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가 본 지도와 비슷하나 내용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다. 《해동지도》의 산세 표현 방식이 본 지도나 《광여도》와 다르다. 읍치 왼쪽 위의 龍湫와 오른쪽 아래의 覺淵寺 등은 《광여도》와 본 지도에는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있으면서 본 지도와 《광여도》에 없는 것도 있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하며, 《해동지도》와도 별로 다르지는 않다. 본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의 산세가 동쪽에서 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위쪽의 鳥嶺城門 주위의 봉우리는 굉장히 험준하게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서도 험준하게 표현되어 있지만 상대적으로 본 지도와 《광여도》가 더 험준하게 표현하였다. 鳥嶺의 관문으로서의 성격을 더 부각시켜 보여주려 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도의 위쪽 여백에는 연풍현의 옛 명칭과 충청좌도에 속한다는 ‘左’, 오른쪽 여백에는 한양에서 4일 걸린다는 ‘四日’ 등이 표시되어 있다. 이런 표시는 《광여도》나 《해동지도》 어디에도 없던 것으로서 이 지도의 이용자들이 필요로 했던 정보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기봉)

  • 영동현(永同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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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동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위쪽에 小蛇가 《광여도》에 小蛇峙로 되어 있고, 오른쪽의 沙邑峙가 《광여도》에 없다는 점 정도이다. 이 사읍치가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영동현 지도에는 나오고 있어 상호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왼쪽 아래의 沃川界로부터 위의 沃川界로 흘러가는 하천이 지금의 금강 본류이다. 위쪽에 松川이라 적혀 있는 것이 현재의 초강천이다. 그런데 초강천의 표현에 오류가 발생하고 있다. 초강천의 한 줄기가 三峯山(930.2m)과 天馬岺(925.6m) 부근에서 발원하는 것은 맞지만 모두 黃澗의 땅에 속해 있다. 따라서 黃澗界 부근에서 더 이상 표시되지 않아야 실제에 부합된다. 더군다나 삼봉산과 천마령은 높은 산줄기에 의해 연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는 이어져 있지 않아 마치 낮은 고개인 듯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영동현지도도 역시 회화식으로 그린 지도이지만 이 부분이 실제와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영동현(永同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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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동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위쪽에 小蛇가 《광여도》에 小蛇峙로 되어 있고, 오른쪽의 沙邑峙가 《광여도》에 없다는 점 정도이다. 이 사읍치가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영동현 지도에는 나오고 있어 상호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왼쪽 아래의 沃川界로부터 위의 沃川界로 흘러가는 하천이 지금의 금강 본류이다. 위쪽에 松川이라 적혀 있는 것이 현재의 초강천이다. 그런데 초강천의 표현에 오류가 발생하고 있다. 초강천의 한 줄기가 三峯山(930.2m)과 天馬岺(925.6m) 부근에서 발원하는 것은 맞지만 모두 黃澗의 땅에 속해 있다. 따라서 黃澗界 부근에서 더 이상 표시되지 않아야 실제에 부합된다. 더군다나 삼봉산과 천마령은 높은 산줄기에 의해 연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는 이어져 있지 않아 마치 낮은 고개인 듯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영동현지도도 역시 회화식으로 그린 지도이지만 이 부분이 실제와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영춘현(永春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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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춘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 위쪽의 北澤과 왼쪽 방향의 三召山은 《광여도》에 北津과 三台山으로 되어 있다. 《광여도》가 맞는 것으로서 본 지도의 작성자가 글자를 잘못 판독하여 誤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 왼쪽에는 松板書院과 門岩이 헷갈릴 수 있는 형태로 기록되어 있는데, 《광여도》에서는 분명하게 분리되어 있다. 오른쪽 위(동북)에서 흘러와 왼쪽 아래(서남)로 흘러가는 하천이 지금의 남한강 본류이다. 남한강은 영춘현에서 상당히 많은 굴곡을 이루고 있지만 본 지도에는 잘 표현되어 있지 않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는 《해동지도》의 영춘현 지도는 고을을 마치 원형으로 그리고 있다. 그런데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는 고을의 모습이 세로로 약간 긴 사각형으로 변화되어 있다. 아마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는 과정에서 변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해동지도》를 비롯하여 《광여도》와 본 지도 모두 고을 전체의 실제 모습과 상당히 다르게 되어 있다. 실제로는 남한강이 흐르는 동북-서남의 길이보다 서북-동남의 길이가 거의 2배 이상 된다. 이런 회화식 지도에서 정확한 위치의 방향이나 거리보다는 고을 전체 또는 읍치의 풍수적 명당성을 강조하려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이기봉)

  • 영춘현(永春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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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춘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 위쪽의 北澤과 왼쪽 방향의 三召山은 《광여도》에 北津과 三台山으로 되어 있다. 《광여도》가 맞는 것으로서 본 지도의 작성자가 글자를 잘못 판독하여 誤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 왼쪽에는 松板書院과 門岩이 헷갈릴 수 있는 형태로 기록되어 있는데, 《광여도》에서는 분명하게 분리되어 있다. 오른쪽 위(동북)에서 흘러와 왼쪽 아래(서남)로 흘러가는 하천이 지금의 남한강 본류이다. 남한강은 영춘현에서 상당히 많은 굴곡을 이루고 있지만 본 지도에는 잘 표현되어 있지 않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는 《해동지도》의 영춘현 지도는 고을을 마치 원형으로 그리고 있다. 그런데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는 고을의 모습이 세로로 약간 긴 사각형으로 변화되어 있다. 아마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는 과정에서 변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해동지도》를 비롯하여 《광여도》와 본 지도 모두 고을 전체의 실제 모습과 상당히 다르게 되어 있다. 실제로는 남한강이 흐르는 동북-서남의 길이보다 서북-동남의 길이가 거의 2배 이상 된다. 이런 회화식 지도에서 정확한 위치의 방향이나 거리보다는 고을 전체 또는 읍치의 풍수적 명당성을 강조하려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이기봉)

  • 예산현(禮山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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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예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 洪陽界는 洪州界를, 公山界는 公州界를 의미한다. 공주목이 공산현으로 강등되었던 시기는 1646년(인조 24)경, 1670(현종 11)-1679년(숙종 5), 1728(영조 4)-1737(영조 13), 1778년(정조 2)경 등이다. 홍주는 顯宗(1660-1674) 때 잠시 洪陽縣으로 강등된다. 《해동지도》의 예산현 지도에서도 동일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광여도》에서는 公山界가 公州界로 바뀌어 있다. 가장 왼쪽의 하천이 현재의 삽교천 본류이고, 그 다음이 삽교천의 지류인 무한천이다. 삽교천은 洪州 방향에서, 무한천은 大興 방향에서 흘러들어옴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그려져 있다. 오른쪽의 大枝洞面과 述谷面은 현재의 예산군 대술면으로서 이곳의 물은 북류하여 무한천의 상류로 합류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서는 이 지역 동쪽의 산줄기가 鎭山까지 연결된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고을 전체를 산줄기가 겹겹이 둘러싼 풍수적 명당 이미지로 묘사하려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고을 전체의 모습은 본 지도와 달리 서북에서 동남으로 길게 뻗은 모양을 하고 있다. (이기봉)

  • 예산현(禮山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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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예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 洪陽界는 洪州界를, 公山界는 公州界를 의미한다. 공주목이 공산현으로 강등되었던 시기는 1646년(인조 24)경, 1670(현종 11)-1679년(숙종 5), 1728(영조 4)-1737(영조 13), 1778년(정조 2)경 등이다. 홍주는 顯宗(1660-1674) 때 잠시 洪陽縣으로 강등된다. 《해동지도》의 예산현 지도에서도 동일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광여도》에서는 公山界가 公州界로 바뀌어 있다. 가장 왼쪽의 하천이 현재의 삽교천 본류이고, 그 다음이 삽교천의 지류인 무한천이다. 삽교천은 洪州 방향에서, 무한천은 大興 방향에서 흘러들어옴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그려져 있다. 오른쪽의 大枝洞面과 述谷面은 현재의 예산군 대술면으로서 이곳의 물은 북류하여 무한천의 상류로 합류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서는 이 지역 동쪽의 산줄기가 鎭山까지 연결된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고을 전체를 산줄기가 겹겹이 둘러싼 풍수적 명당 이미지로 묘사하려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고을 전체의 모습은 본 지도와 달리 서북에서 동남으로 길게 뻗은 모양을 하고 있다. (이기봉)

  • 옥천군(沃川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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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옥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지도 아래쪽의 永登界는 《광여도》에는 永同界라고 적혀 있다. 후자가 정확한 것이기 때문에 본 지도의 작성자가 오류를 범한 것이다. 지도 가운데의 土坡驛은 《광여도》에 土陀驛으로 적혀 있는데, 본 지도가 올바르다. 본 지도와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에서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옥천군 지도에도 土坡驛으로 적혀 있다. 왼쪽 아래의 錦山界에서 흘러와 오른쪽을 휘감고 왼쪽 위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금강이다. 그런데 금강은 원래 錦山界에서 옥천군의 陽南面과 陽內面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永同縣의 영역에 들어가며, 다시 옥천군의 利南面으로 들어온다. 이 구간이 짧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서는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가 없다. 사실에 맞게 그리려면 利南面과 利內面이 月伊山烽 위쪽에 그려져야 한다. 그리고 赤登津 부근은 永同縣의 영역으로 표시되어야 한다. 靑山界 방면에서도 큰 하천이 합류하지만 본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이런 것들은 읍치에 대한 정보 수록과 풍수적 이미지의 구현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거리나 위치 등에는 별로 주목하지 않은 회화식 군현지도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점이다. (이기봉)

  • 옥천군(沃川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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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옥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지도 아래쪽의 永登界는 《광여도》에는 永同界라고 적혀 있다. 후자가 정확한 것이기 때문에 본 지도의 작성자가 오류를 범한 것이다. 지도 가운데의 土坡驛은 《광여도》에 土陀驛으로 적혀 있는데, 본 지도가 올바르다. 본 지도와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에서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옥천군 지도에도 土坡驛으로 적혀 있다. 왼쪽 아래의 錦山界에서 흘러와 오른쪽을 휘감고 왼쪽 위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금강이다. 그런데 금강은 원래 錦山界에서 옥천군의 陽南面과 陽內面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永同縣의 영역에 들어가며, 다시 옥천군의 利南面으로 들어온다. 이 구간이 짧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서는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가 없다. 사실에 맞게 그리려면 利南面과 利內面이 月伊山烽 위쪽에 그려져야 한다. 그리고 赤登津 부근은 永同縣의 영역으로 표시되어야 한다. 靑山界 방면에서도 큰 하천이 합류하지만 본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이런 것들은 읍치에 대한 정보 수록과 풍수적 이미지의 구현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거리나 위치 등에는 별로 주목하지 않은 회화식 군현지도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점이다. (이기봉)

  • 온양군(溫陽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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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온양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읍치를 지나 위쪽으로 흐르는 현재의 곡교천이 1개의 실선으로 그려진 점, 오른쪽의 堤가 제언 모습 없이 글씨로만 적혀 있는 점이 다를 뿐이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 표시 중 오른쪽 아래의 全義界와 위의 稷山界는 실질적으로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다. 위쪽에는 牙山界가 적혀 있어야 실제를 잘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주기의 사방 경계 기록을 보면 이와 같은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점들은 표현 방식에서 약간의 차이가 나타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온양군 지도에도 동일하게 나오고 있다. 《광여도》와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새롭게 그리면서 내용적으로는 그대로 따랐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으로 추정된다.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와 같은 점이 사실과 같게 표시되어 있다. 天安界에 표시된 하천과 東面 사이에 작은 산줄기가 하나 있어야 한다. 실제로 介峙에서 흘러오는 하천 유역의 대부분은 天安의 영역에 속해 있었지 온양과는 관계가 없었다. 읍치의 영역을 대축척으로 그리고, 풍수적인 명당적 이미지를 과장적으로 표현한 전형적인 회화식 지도이기 때문에 정보의 방향이나 거리 등은 상당히 부정확하다. (이기봉)

  • 온양군(溫陽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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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온양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읍치를 지나 위쪽으로 흐르는 현재의 곡교천이 1개의 실선으로 그려진 점, 오른쪽의 堤가 제언 모습 없이 글씨로만 적혀 있는 점이 다를 뿐이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 표시 중 오른쪽 아래의 全義界와 위의 稷山界는 실질적으로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다. 위쪽에는 牙山界가 적혀 있어야 실제를 잘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주기의 사방 경계 기록을 보면 이와 같은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점들은 표현 방식에서 약간의 차이가 나타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온양군 지도에도 동일하게 나오고 있다. 《광여도》와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새롭게 그리면서 내용적으로는 그대로 따랐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으로 추정된다.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와 같은 점이 사실과 같게 표시되어 있다. 天安界에 표시된 하천과 東面 사이에 작은 산줄기가 하나 있어야 한다. 실제로 介峙에서 흘러오는 하천 유역의 대부분은 天安의 영역에 속해 있었지 온양과는 관계가 없었다. 읍치의 영역을 대축척으로 그리고, 풍수적인 명당적 이미지를 과장적으로 표현한 전형적인 회화식 지도이기 때문에 정보의 방향이나 거리 등은 상당히 부정확하다. (이기봉)

  • 은진현(恩津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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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은진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제언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지 않고, 《광여도》에 彌羅橋라고 적혀 있던 것이 아래쪽에 稱羅橋로 되어 있는 정도이다. 『여지도서』의 은진현 지도에는 潮岩橋라고 나와 있으며, 일명 彌羅라고 한다고 되어 있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은진현 지도에는 칭라교라고 되어 있어 본 지도와 상호 연관된 것으로 추정된다. 왼쪽에 江倉이 있는 곳은 조선시대에 금강에서 가장 번성한 포구가 있었던 江景이다. 밀물 때 바닷배가 이곳까지 들어오고, 평지 속의 강가에 江景山이라 표시된 낮은 산이 있어 포구로서 번성하게 되었다. 이 부근부터 금강의 본류이다. 보통 큰 하천의 본류는 들어오는 곳과 나가는 곳이 표시되어 있는데 본 지도에는 그렇지 않아 혼란을 주고 있다. 논산시 시내가 들어선 論山橋에서 흘러온 현재의 논산천은 강경 부근에서 금강 본류와 합류된다. 아래쪽 稱羅橋라 적혀 있는 현재의 강경천이 전라도의 礪山界에서 흘러들어옴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기타 오른쪽에 은진현과 상당히 떨어져 있는 全州界가 적혀 있는 것은 전주의 월경지인 陽良所面과 접해 있기 때문이다. 원래 陽良所였던 곳이 전주에 편입된 곳으로 현재의 논산시 양촌면의 남쪽 부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기봉)

  • 은진현(恩津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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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은진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제언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지 않고, 《광여도》에 彌羅橋라고 적혀 있던 것이 아래쪽에 稱羅橋로 되어 있는 정도이다. 『여지도서』의 은진현 지도에는 潮岩橋라고 나와 있으며, 일명 彌羅라고 한다고 되어 있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은진현 지도에는 칭라교라고 되어 있어 본 지도와 상호 연관된 것으로 추정된다. 왼쪽에 江倉이 있는 곳은 조선시대에 금강에서 가장 번성한 포구가 있었던 江景이다. 밀물 때 바닷배가 이곳까지 들어오고, 평지 속의 강가에 江景山이라 표시된 낮은 산이 있어 포구로서 번성하게 되었다. 이 부근부터 금강의 본류이다. 보통 큰 하천의 본류는 들어오는 곳과 나가는 곳이 표시되어 있는데 본 지도에는 그렇지 않아 혼란을 주고 있다. 논산시 시내가 들어선 論山橋에서 흘러온 현재의 논산천은 강경 부근에서 금강 본류와 합류된다. 아래쪽 稱羅橋라 적혀 있는 현재의 강경천이 전라도의 礪山界에서 흘러들어옴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기타 오른쪽에 은진현과 상당히 떨어져 있는 全州界가 적혀 있는 것은 전주의 월경지인 陽良所面과 접해 있기 때문이다. 원래 陽良所였던 곳이 전주에 편입된 곳으로 현재의 논산시 양촌면의 남쪽 부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기봉)

  • 음성현(陰城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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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음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읍치 아래쪽의 坎原驛이 《광여도》에는 玖原驛으로 표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음성현 지도에도 전자처럼 표시되어 있다. 여러 지리지와 지도를 검토해 보아도 《광여도》가 틀렸다.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 특이한 것은 읍치에 邑城이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해동지도》에도 이런 표시는 없었으며, 다른 지도나 지리지에서도 읍성이 있었다는 흔적을 찾기가 어렵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음성현 지도에 보면 衙舍와 客舍가 동일한 담장 안에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일반적으로 읍성 안에 있는 倉庫도 밖에 표시되어 있다. 아울러 주기에도 읍성을 의미하는 성곽이 없었던 것으로 되어 있다. 《광여도》와 본 지도의 작성자가 여러 지도를 그리면서 잘못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 지역의 풍수적 명당 이미지를 확대 과장해서 그렸기 때문에 실제와 다르게 표현된 측면이 발견된다. 읍치 아래쪽을 흐르는 하천이 현재 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음성천이다. 그런데 아래쪽에 표시된 遠西面이 마치 음성천 유역에 있었던 것처럼 표현된 것은 잘못이다. 원서면은 鎭川界로 흘러가는 미호천의 지류인 초평천의 상류에 해당된다. 《해동지도》의 경우 이 하천이 작게나마 그려져 있다. 그런데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아예 이 하천의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아마 고을 전체와 읍치의 풍수적 명당성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생략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동여도》의 이 부분을 비교하면서 보면 잘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기봉)

  • 음성현(陰城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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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음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읍치 아래쪽의 坎原驛이 《광여도》에는 玖原驛으로 표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음성현 지도에도 전자처럼 표시되어 있다. 여러 지리지와 지도를 검토해 보아도 《광여도》가 틀렸다.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 특이한 것은 읍치에 邑城이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해동지도》에도 이런 표시는 없었으며, 다른 지도나 지리지에서도 읍성이 있었다는 흔적을 찾기가 어렵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음성현 지도에 보면 衙舍와 客舍가 동일한 담장 안에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일반적으로 읍성 안에 있는 倉庫도 밖에 표시되어 있다. 아울러 주기에도 읍성을 의미하는 성곽이 없었던 것으로 되어 있다. 《광여도》와 본 지도의 작성자가 여러 지도를 그리면서 잘못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 지역의 풍수적 명당 이미지를 확대 과장해서 그렸기 때문에 실제와 다르게 표현된 측면이 발견된다. 읍치 아래쪽을 흐르는 하천이 현재 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음성천이다. 그런데 아래쪽에 표시된 遠西面이 마치 음성천 유역에 있었던 것처럼 표현된 것은 잘못이다. 원서면은 鎭川界로 흘러가는 미호천의 지류인 초평천의 상류에 해당된다. 《해동지도》의 경우 이 하천이 작게나마 그려져 있다. 그런데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아예 이 하천의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아마 고을 전체와 읍치의 풍수적 명당성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생략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동여도》의 이 부분을 비교하면서 보면 잘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기봉)

  • 이산현(尼山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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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이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 위쪽에 曾城山이 표시되어 있다. 《광여도》에는 魯魚山이라 되어 있고, 《해동지도》의 이산현 지도에는 魯城山이라고 적혀 있다. 『여지도서』의 이산현 지도에도 魯城山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의 曾城山의 ‘曾’은 ‘魯’를 잘못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본 고을의 명칭은 尼山은 1776년(정조 1)에 尼城으로 고쳤고, 1800년(순조 원년)에는 魯城으로 바뀌었다. 본 지도는 읍치와 고을의 풍수적 명당 이미지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산줄기와 물줄기를 겹겹이 둘러싸인 형태로 그렸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실제적인 내용을 여러 측면에서 왜곡시킨다. 우선 오른쪽 위의 板峙嶺(널티)는 이산현이 아니라 공주목의 경계 안에 있는 곳이다. 계룡산으로부터 읍치까지 뻗은 산줄기를 강조하기 위해 지도에 그려 넣은 것으로 추정된다. 왼쪽의 素沙面을 흐르는 현재의 우교천은 公州界 너머에서 흘러들어옴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성현의 땅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읍치 지역을 상대적으로 확대해서 그렸기 때문에 다른 지역과 축척이 다르다. 이에 따라 본 지도만으로는 각 지역의 실제적인 거리와 방향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지도 왼쪽 아래의 烏山(오미)에는 海倉이 표시되어 있다. 이 부근까지 밀물 때 바닷물이 들어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성현의 田稅와 大同米를 모아서 한양까지 운반하던 창고이다. 현재의 논산시 성동면 삼호리 오미 마을에 있었다. (이기봉)

  • 이산현(尼山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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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이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 위쪽에 曾城山이 표시되어 있다. 《광여도》에는 魯魚山이라 되어 있고, 《해동지도》의 이산현 지도에는 魯城山이라고 적혀 있다. 『여지도서』의 이산현 지도에도 魯城山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의 曾城山의 ‘曾’은 ‘魯’를 잘못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본 고을의 명칭은 尼山은 1776년(정조 1)에 尼城으로 고쳤고, 1800년(순조 원년)에는 魯城으로 바뀌었다. 본 지도는 읍치와 고을의 풍수적 명당 이미지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산줄기와 물줄기를 겹겹이 둘러싸인 형태로 그렸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실제적인 내용을 여러 측면에서 왜곡시킨다. 우선 오른쪽 위의 板峙嶺(널티)는 이산현이 아니라 공주목의 경계 안에 있는 곳이다. 계룡산으로부터 읍치까지 뻗은 산줄기를 강조하기 위해 지도에 그려 넣은 것으로 추정된다. 왼쪽의 素沙面을 흐르는 현재의 우교천은 公州界 너머에서 흘러들어옴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성현의 땅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읍치 지역을 상대적으로 확대해서 그렸기 때문에 다른 지역과 축척이 다르다. 이에 따라 본 지도만으로는 각 지역의 실제적인 거리와 방향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지도 왼쪽 아래의 烏山(오미)에는 海倉이 표시되어 있다. 이 부근까지 밀물 때 바닷물이 들어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성현의 田稅와 大同米를 모아서 한양까지 운반하던 창고이다. 현재의 논산시 성동면 삼호리 오미 마을에 있었다. (이기봉)

  • 임천군(林川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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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임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일부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왼쪽 아래의 公主胎室이 《광여도》에는 宣祖大王胎室 부분에 있다. 또한 왼쪽 曲顧山의 오른쪽 건물에 《광여도》에는 德林菴이, 중간 부분의 聖興山 오른쪽 건물에 《광여도》에는 慶興菴이 적혀 있다. 위쪽의 扶餘界에서 왼쪽 아래의 韓山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지금의 금강이다. 금강 변에 적혀 있는 場岩津과 南唐津이 《광여도》에는 없다. 이런 부분들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임천현 지도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광여도》와 《해동지도》에 표시된 堤堰 모양이 본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오른쪽 아래의 豆毛谷面 왼쪽에 《광여도》와 《해동지도》에 있었던 灰堤가 본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은데, 본 지도 제작자의 실수로 판단된다.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방향이나 거리 등이 별로 맞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 반면 본 지도는 정확하지는 않아도 상대적으로 잘 들어맞고 있다. 일반적인 회화식 군현 지도에서 읍치 지역을 아주 크게 그린 반면 본 지도에서는 상대적으로 작게 그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읍치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하천은 다른 하천에 비해 상대적으로 길게 표현되어 있다. (이기봉)

  • 임천군(林川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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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임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일부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왼쪽 아래의 公主胎室이 《광여도》에는 宣祖大王胎室 부분에 있다. 또한 왼쪽 曲顧山의 오른쪽 건물에 《광여도》에는 德林菴이, 중간 부분의 聖興山 오른쪽 건물에 《광여도》에는 慶興菴이 적혀 있다. 위쪽의 扶餘界에서 왼쪽 아래의 韓山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지금의 금강이다. 금강 변에 적혀 있는 場岩津과 南唐津이 《광여도》에는 없다. 이런 부분들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임천현 지도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광여도》와 《해동지도》에 표시된 堤堰 모양이 본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오른쪽 아래의 豆毛谷面 왼쪽에 《광여도》와 《해동지도》에 있었던 灰堤가 본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은데, 본 지도 제작자의 실수로 판단된다.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방향이나 거리 등이 별로 맞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 반면 본 지도는 정확하지는 않아도 상대적으로 잘 들어맞고 있다. 일반적인 회화식 군현 지도에서 읍치 지역을 아주 크게 그린 반면 본 지도에서는 상대적으로 작게 그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읍치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하천은 다른 하천에 비해 상대적으로 길게 표현되어 있다. (이기봉)

  • 전의현(全義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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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전의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읍치 위쪽에 있는 大西面을 大面面으로 잘못 기록했다는 점이다. 본 지도에서 가장 잘못된 것은 왼쪽의 公州界에서 들어와 淸州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다. 이 하천은 현재 미호천으로 들어가는 조천천으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본 지도와 달리 조천천은 공주와의 경계선에서 발원할 뿐이다. 따라서 왼쪽 아래의 공주계에는 산줄기가 이어진 것처럼 그려져 있어야 한다. 본 지도는 서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기 때문에 방향은 실제와 대체적으로 부합된다. 왼쪽 위(서쪽)의 公州界는 淸州界가 잘못 표시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방향에는 청주의 월경지인 덕평면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의현이 공주목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부분은 읍치 남쪽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또한 위쪽의 公州界에는 삽교천으로 흘러가는 곡교천의 상류 일부가 걸쳐 있어야 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도 비록 회화식으로 그렸지만 이런 사실들이 사실과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이러한 문제점은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전의현 지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더 나아가 《해동지도》에는 공주계 방향이 청주계 방향보다 하천 폭이 더 넓게 그려져 있어 마치 공주계 방향이 하류인 것처럼 착각하도록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는 오른쪽의 公州界가 公山界라고 적혀 있다. 공주목이 공산현으로 강등되었던 시기는 1646년(인조 24)경, 1670(현종 11)-1679년(숙종 5), 1728(영조 4)-1737(영조 13), 1778년(정조 2)경 등이다. (이기봉)

  • 전의현(全義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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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전의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읍치 위쪽에 있는 大西面을 大面面으로 잘못 기록했다는 점이다. 본 지도에서 가장 잘못된 것은 왼쪽의 公州界에서 들어와 淸州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다. 이 하천은 현재 미호천으로 들어가는 조천천으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본 지도와 달리 조천천은 공주와의 경계선에서 발원할 뿐이다. 따라서 왼쪽 아래의 공주계에는 산줄기가 이어진 것처럼 그려져 있어야 한다. 본 지도는 서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기 때문에 방향은 실제와 대체적으로 부합된다. 왼쪽 위(서쪽)의 公州界는 淸州界가 잘못 표시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방향에는 청주의 월경지인 덕평면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의현이 공주목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부분은 읍치 남쪽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또한 위쪽의 公州界에는 삽교천으로 흘러가는 곡교천의 상류 일부가 걸쳐 있어야 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도 비록 회화식으로 그렸지만 이런 사실들이 사실과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이러한 문제점은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전의현 지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더 나아가 《해동지도》에는 공주계 방향이 청주계 방향보다 하천 폭이 더 넓게 그려져 있어 마치 공주계 방향이 하류인 것처럼 착각하도록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는 오른쪽의 公州界가 公山界라고 적혀 있다. 공주목이 공산현으로 강등되었던 시기는 1646년(인조 24)경, 1670(현종 11)-1679년(숙종 5), 1728(영조 4)-1737(영조 13), 1778년(정조 2)경 등이다. (이기봉)

  • 정산현(定山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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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정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에 大朴谷面이라 적혀 있는 것이 본 지도에는 오른쪽 위에 大方谷面으로 바뀌어 있다. 본 지도와 《광여도》 모두 대박곡면으로 적혀 있어 본 지도의 제작자가 실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밖에 《광여도》에 표시된 2개의 제언 모양을 그리지 않은 차이점밖에 없다. 본 지도는 서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로 뻗은 산줄기가 서북쪽에서 오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아래쪽에 公州界에서 扶餘界로 흘러가는 하천이 현재의 금강 본류이다. 왼쪽의 鵲川은 실제로는 청양읍 지역에서 발원하여 七甲山 서쪽을 돌아 부여와의 경계선을 타고 흐르다 금강에 합류된다. 본 지도에서는 마치 赤谷面 지역에서 발원한 것처럼 잘못 표시되어 있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비슷한 《해동지도》의 정산현 지도에도 비슷하게 표현되어 있어 상호 관련성을 엿볼 수 있다. 《해동지도》를 보면 ‘○○界’가 모두 도로의 끝 부분에 적혀 있다.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는 도로가 생략되었기 때문에 경계 표시가 도로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없다. 주기에는 북쪽으로 大興의 경계까지 30리라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것을 사실과 다른 것으로, 북쪽으로 경계를 맞대고 있었던 고을은 靑陽이라고 해야 올바르다. (이기봉)

  • 정산현(定山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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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정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에 大朴谷面이라 적혀 있는 것이 본 지도에는 오른쪽 위에 大方谷面으로 바뀌어 있다. 본 지도와 《광여도》 모두 대박곡면으로 적혀 있어 본 지도의 제작자가 실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밖에 《광여도》에 표시된 2개의 제언 모양을 그리지 않은 차이점밖에 없다. 본 지도는 서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로 뻗은 산줄기가 서북쪽에서 오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아래쪽에 公州界에서 扶餘界로 흘러가는 하천이 현재의 금강 본류이다. 왼쪽의 鵲川은 실제로는 청양읍 지역에서 발원하여 七甲山 서쪽을 돌아 부여와의 경계선을 타고 흐르다 금강에 합류된다. 본 지도에서는 마치 赤谷面 지역에서 발원한 것처럼 잘못 표시되어 있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비슷한 《해동지도》의 정산현 지도에도 비슷하게 표현되어 있어 상호 관련성을 엿볼 수 있다. 《해동지도》를 보면 ‘○○界’가 모두 도로의 끝 부분에 적혀 있다.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는 도로가 생략되었기 때문에 경계 표시가 도로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없다. 주기에는 북쪽으로 大興의 경계까지 30리라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것을 사실과 다른 것으로, 북쪽으로 경계를 맞대고 있었던 고을은 靑陽이라고 해야 올바르다. (이기봉)

  • 제천현(堤川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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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제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지도 아래쪽에 있는 山城은 《광여도》에 城山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후자가 올바른 것이다. 그 외에 왼쪽 위의 梨峴과 중간 부분의 巖峴이 《광여도》에 峙로 되어 있다는 것 말고는 거의 동일하다. 다른 회화식 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확대 과장되어 있지 않다. 또한 하천의 유로 표시가 아주 복잡하면서 자세한 편이다. 문제점이 있다면 近右面을 흘러내리는 하천이 원래 原州界 방면에서 내려오는데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확인하기 어렵게 그려져 있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제천현 지도에서는 이 부분이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즉, 原州界 부분에서 하천의 끝 부분을 뾰족하게 그리지 않아 이곳이 발원지가 아님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본 지도와 《광여도》의 제작자는 이런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고 마치 발원지가 그곳인 것처럼 오해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는 고을 동서의 폭이 더 넓게 그려진 반면 본 지도와 《광여도》는 남북의 폭이 더 넓게 그려져 있다. 세로로 긴 사각형에 맞추는 과정에서 변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는 남북보다 동서의 폭이 더 길다. (이기봉)

  • 제천현(堤川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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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제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지도 아래쪽에 있는 山城은 《광여도》에 城山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후자가 올바른 것이다. 그 외에 왼쪽 위의 梨峴과 중간 부분의 巖峴이 《광여도》에 峙로 되어 있다는 것 말고는 거의 동일하다. 다른 회화식 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확대 과장되어 있지 않다. 또한 하천의 유로 표시가 아주 복잡하면서 자세한 편이다. 문제점이 있다면 近右面을 흘러내리는 하천이 원래 原州界 방면에서 내려오는데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확인하기 어렵게 그려져 있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제천현 지도에서는 이 부분이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즉, 原州界 부분에서 하천의 끝 부분을 뾰족하게 그리지 않아 이곳이 발원지가 아님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본 지도와 《광여도》의 제작자는 이런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고 마치 발원지가 그곳인 것처럼 오해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는 고을 동서의 폭이 더 넓게 그려진 반면 본 지도와 《광여도》는 남북의 폭이 더 넓게 그려져 있다. 세로로 긴 사각형에 맞추는 과정에서 변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는 남북보다 동서의 폭이 더 길다. (이기봉)

  • 직산현(稷山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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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직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지도 왼쪽에 《광여도》에 있었던 康津界(唐津界의 오류)와 沔川界가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는 점 정도이다. 왼쪽 위에 洪陽界라 적혀 있는 부분에는 洪州의 월경지가 있었다. 顯宗(1660-1674) 때 洪州가 잠시 洪陽縣으로 강등되는데 본 지도의 洪陽界는 그런 사실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 지도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문제점은 越境地에 대한 이해를 잘 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왼쪽 위의 慶陽面과 堰里面 및 外也串面은 모두 팽택과 수원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다. 언리면 오른쪽에 陽城界라고 적혀 있는 것은 언리면과 외야곶면이 양성의 월경지와 접해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런 월경지들이 제대로 이해되려면 경양면과 읍치 사이에 平澤界가, 외야곶면 부근에 水原界가 적혀 있어야 한다. 주기에도 가장 멀리 있는 외야곶면의 初境이 10리로, 終境이 15리로 잘못 기록되어 있다. 『대동지지』에는 외야곶면이 “수원 서남의 경계를 넘어 (면천의) 大津 북서쪽 大海에 임해 있다”고, 『여지도서』에는 “官門으로부터 80리에 있다”고 되어 있다. 홍주를 의미하는 洪陽界가 특별히 적혀 있는 곳은 외야곶면 맞은편에 홍주의 월경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二西面과 一西面 왼쪽의 하천은 《광여도》와 《해동지도》의 직산현 지도를 참조해 볼 때 현재의 삽교천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부분도 실제와 전혀 다르게 그려진 것이다. 삽교천은 아산현을 넘어가 있으며, 직산현과는 전혀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다. 또한 읍치 왼쪽의 성환천과 오른쪽의 입장천이 북쪽으로 흘러 안성천에 합류한 다음 평택과 아산 및 수원 등의 경계를 지나 삽교천과 합류된다. 안성천은 그 중간에 경양면과 언리면도 지나게 되는데, 본 지도의 작성자는 2개의 면이 월경지 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지도를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오류들이 겹쳐지면서 직산현이 마치 삽교천에도 닿아 있는 것처럼 그린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이런 오류는 근본적으로 《해동지도》의 직산현 지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직산현 지도는 직산현에서 직접 그려서 올려 보낸 지도의 원본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지도는 비록 회화식으로 그렸지만 월경지와 하천에 대한 표현에서 본 지도와 《광여도》 및 《해동지도》의 오류를 범하고 있지는 않다. 또한 지방에서 올린 지도를 그대로 전제한 것으로 알려진 『여지도서』의 직산현 지도에서도 이와 같은 오류는 발생하지 않고 있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세 지도에서 나타난 심각한 오류들은 세 지도가 지리지를 참고하며 그리다가 범했거나, 지방에서 올린 지도를 중앙에서 傳寫할 때 잘못 이해하여 발생했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기봉)

  • 직산현(稷山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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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직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지도 왼쪽에 《광여도》에 있었던 康津界(唐津界의 오류)와 沔川界가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는 점 정도이다. 왼쪽 위에 洪陽界라 적혀 있는 부분에는 洪州의 월경지가 있었다. 顯宗(1660-1674) 때 洪州가 잠시 洪陽縣으로 강등되는데 본 지도의 洪陽界는 그런 사실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 지도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문제점은 越境地에 대한 이해를 잘 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왼쪽 위의 慶陽面과 堰里面 및 外也串面은 모두 팽택과 수원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다. 언리면 오른쪽에 陽城界라고 적혀 있는 것은 언리면과 외야곶면이 양성의 월경지와 접해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런 월경지들이 제대로 이해되려면 경양면과 읍치 사이에 平澤界가, 외야곶면 부근에 水原界가 적혀 있어야 한다. 주기에도 가장 멀리 있는 외야곶면의 初境이 10리로, 終境이 15리로 잘못 기록되어 있다. 『대동지지』에는 외야곶면이 “수원 서남의 경계를 넘어 (면천의) 大津 북서쪽 大海에 임해 있다”고, 『여지도서』에는 “官門으로부터 80리에 있다”고 되어 있다. 홍주를 의미하는 洪陽界가 특별히 적혀 있는 곳은 외야곶면 맞은편에 홍주의 월경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二西面과 一西面 왼쪽의 하천은 《광여도》와 《해동지도》의 직산현 지도를 참조해 볼 때 현재의 삽교천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부분도 실제와 전혀 다르게 그려진 것이다. 삽교천은 아산현을 넘어가 있으며, 직산현과는 전혀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다. 또한 읍치 왼쪽의 성환천과 오른쪽의 입장천이 북쪽으로 흘러 안성천에 합류한 다음 평택과 아산 및 수원 등의 경계를 지나 삽교천과 합류된다. 안성천은 그 중간에 경양면과 언리면도 지나게 되는데, 본 지도의 작성자는 2개의 면이 월경지 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지도를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오류들이 겹쳐지면서 직산현이 마치 삽교천에도 닿아 있는 것처럼 그린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이런 오류는 근본적으로 《해동지도》의 직산현 지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직산현 지도는 직산현에서 직접 그려서 올려 보낸 지도의 원본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지도는 비록 회화식으로 그렸지만 월경지와 하천에 대한 표현에서 본 지도와 《광여도》 및 《해동지도》의 오류를 범하고 있지는 않다. 또한 지방에서 올린 지도를 그대로 전제한 것으로 알려진 『여지도서』의 직산현 지도에서도 이와 같은 오류는 발생하지 않고 있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세 지도에서 나타난 심각한 오류들은 세 지도가 지리지를 참고하며 그리다가 범했거나, 지방에서 올린 지도를 중앙에서 傳寫할 때 잘못 이해하여 발생했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기봉)

  • 진잠현(鎭岑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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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진잠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지도의 여백 위쪽에는 진잠현의 옛 명칭과 충청좌도에 속했다는 ‘左’가 표시되어 있다. 여백 오른쪽에는 한양에서 4일 반이 걸린다는 ‘四日半’고, 公州 鎭管에 속해 있다는 ‘公’, 이 지도책에서 36번째 고을에 해당된다는 ‘三十六’이 적혀 있다. 이런 부분은 《광여도》에는 없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진잠현 지도도 표현 방식에서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가 서쪽의 산줄기를 등지고 들어서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지도에 표시된 大川은 현재 갑천이라 부르고 있다. 갑천의 발원지는 본 지도에 표시된 계룡산 이외에도 여러 곳이 있다. 이 중 본 지도 왼쪽의 連山界와 珍山界 사이로 대둔산에서 발원한 현재의 대곡천이 흘러 들어와야 한다. 이 하천은 계룡산에서 발원한 것보다 더 큼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公州界가 동쪽에도 적혀 있는 것은 현재의 대전광역시 서부 북부, 중구, 동구 남부 등에도 공주의 땅이 걸쳐 있었기 때문이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하며, 《해동지도》와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이기봉)

  • 진잠현(鎭岑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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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진잠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지도의 여백 위쪽에는 진잠현의 옛 명칭과 충청좌도에 속했다는 ‘左’가 표시되어 있다. 여백 오른쪽에는 한양에서 4일 반이 걸린다는 ‘四日半’고, 公州 鎭管에 속해 있다는 ‘公’, 이 지도책에서 36번째 고을에 해당된다는 ‘三十六’이 적혀 있다. 이런 부분은 《광여도》에는 없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진잠현 지도도 표현 방식에서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가 서쪽의 산줄기를 등지고 들어서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지도에 표시된 大川은 현재 갑천이라 부르고 있다. 갑천의 발원지는 본 지도에 표시된 계룡산 이외에도 여러 곳이 있다. 이 중 본 지도 왼쪽의 連山界와 珍山界 사이로 대둔산에서 발원한 현재의 대곡천이 흘러 들어와야 한다. 이 하천은 계룡산에서 발원한 것보다 더 큼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公州界가 동쪽에도 적혀 있는 것은 현재의 대전광역시 서부 북부, 중구, 동구 남부 등에도 공주의 땅이 걸쳐 있었기 때문이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하며, 《해동지도》와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이기봉)

  • 진천현(鎭川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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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진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오른쪽에 陰城界가 적혀 있지 않고, 읍치에 恕樓가 적혀 있다는 점뿐이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밖에 없는 《해동지도》의 진천현 지도에 恕樓가 적혀 있어 본 지도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본 고을이 실제로 음성과 접해 있었기 때문에 陰城界가 생략된 것은 본 지도의 제작자가 실수를 범한 것으로 보인다. 본 지도에는 고을 전체가 산줄기에 의해 겹겹이 둘러싸이고, 산줄기 사이로 물이 흘러 泮灘에서 하나로 합쳐지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읍치와 고을 전체가 풍수적으로 명당임을 표현하기 위해 실제 지형을 이미지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실제적인 측면이 몇 가지 왜곡되고 있다. 읍치로 뻗어 내린 산줄기가 시작되는 萬弩山이 실제로는 서쪽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쪽에 치우친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로 인해 聖岩面에서 흐르는 하천이 지나치게 길게 그려졌다. 또한 현재 성암천으로 불리는 이 하천이 남쪽으로 흘러 미호천에 바로 합류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반탄(현재의 초평면 연담리) 부근에서 합쳐지는 것처럼 표현하였다. 오른쪽 아래의 山井面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표현된 하천도 실제로는 陰城界 동쪽에서 흘러들어온다. 또한 萬升面과 梨谷面, 月村面을 흐르는 하천도 실제로는 竹山界와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은 오른쪽의 忠州界 너머에서 흘러온다. (이기봉)

  • 진천현(鎭川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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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진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오른쪽에 陰城界가 적혀 있지 않고, 읍치에 恕樓가 적혀 있다는 점뿐이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밖에 없는 《해동지도》의 진천현 지도에 恕樓가 적혀 있어 본 지도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본 고을이 실제로 음성과 접해 있었기 때문에 陰城界가 생략된 것은 본 지도의 제작자가 실수를 범한 것으로 보인다. 본 지도에는 고을 전체가 산줄기에 의해 겹겹이 둘러싸이고, 산줄기 사이로 물이 흘러 泮灘에서 하나로 합쳐지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읍치와 고을 전체가 풍수적으로 명당임을 표현하기 위해 실제 지형을 이미지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실제적인 측면이 몇 가지 왜곡되고 있다. 읍치로 뻗어 내린 산줄기가 시작되는 萬弩山이 실제로는 서쪽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쪽에 치우친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로 인해 聖岩面에서 흐르는 하천이 지나치게 길게 그려졌다. 또한 현재 성암천으로 불리는 이 하천이 남쪽으로 흘러 미호천에 바로 합류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반탄(현재의 초평면 연담리) 부근에서 합쳐지는 것처럼 표현하였다. 오른쪽 아래의 山井面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표현된 하천도 실제로는 陰城界 동쪽에서 흘러들어온다. 또한 萬升面과 梨谷面, 月村面을 흐르는 하천도 실제로는 竹山界와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은 오른쪽의 忠州界 너머에서 흘러온다. (이기봉)

  • 천안군(天安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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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천안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 오른쪽에 《광여도》에는 上里面이 적혀 있는데, 본 지도에는 빠져 있다. 주기에 보면 상리면이 있어 본 지도의 작성자가 실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천안군 지도도 표현 방법이나 내용적 측면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하다. 가장 다르게 그리고 있는 부분은 왼쪽에 潮水라 쓰인 위쪽의 하천이다. 《해동지도》에는 이곳이 바닷처럼 표현되었지만 《광여도》와 본 지도에는 일반적인 하천과 동일하게 그려져 있다. 이곳에 있는 세 개의 면은 현재 아산시 인주면과 선장면, 예산군 신암면의 삽교천 부근에 있었다. 즉, 溫陽과 新昌 및 牙山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만으로는 이러한 사실을 이해할 수가 없다. 반면에 《해동지도》에는 이곳을 마치 바다처럼 표시했는데, 이 지역의 삽교천이 원래 밀물 때 바닷물에 잠기는 구간이었기 때문에 사실과 부합된다고 할 수 있다. 《광여도》와 본 지도의 작성자는 이런 사실을 잘못 이해하여 일반적인 하천처럼 표시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세 개의 면 중 興德面은 德興面의 誤記이다. 《광여도》의 지도와 주기에도 본 지도처럼 잘못 기록되어 있는데, 《해동지도》에는 덕흥면이라고 올바르게 적혀 있다. 천안의 읍치에서 이곳으로 내려가는 하천은 현재 삽교천의 지류인 곡교천이다. 세 개의 면 중 덕흥면과 신종면은 이 하천의 아래와 왼쪽에 표시되어야 사실과 부합된다. 맨 위쪽에 있는 毛山面은 현재의 아산시 둔포면에 있었으며, 稷山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다. 역시 이 지도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읍치를 지나는 하천보다 一南面과 二南面을 흐르는 하천이 훨씬 길다. 역시 이 지도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문제점이 나타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읍치 지역을 다른 지역보다 훨씬 대축척으로 그린 회화식 군현지도였기 때문이다. 이런 지도에서는 방향은 대략 비슷하더라도 거리는 지도 위의 내용만으로 거의 파악하기 어렵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주기에는 각 면의 初境과 終境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이기봉)

  • 천안군(天安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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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천안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 오른쪽에 《광여도》에는 上里面이 적혀 있는데, 본 지도에는 빠져 있다. 주기에 보면 상리면이 있어 본 지도의 작성자가 실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천안군 지도도 표현 방법이나 내용적 측면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하다. 가장 다르게 그리고 있는 부분은 왼쪽에 潮水라 쓰인 위쪽의 하천이다. 《해동지도》에는 이곳이 바닷처럼 표현되었지만 《광여도》와 본 지도에는 일반적인 하천과 동일하게 그려져 있다. 이곳에 있는 세 개의 면은 현재 아산시 인주면과 선장면, 예산군 신암면의 삽교천 부근에 있었다. 즉, 溫陽과 新昌 및 牙山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만으로는 이러한 사실을 이해할 수가 없다. 반면에 《해동지도》에는 이곳을 마치 바다처럼 표시했는데, 이 지역의 삽교천이 원래 밀물 때 바닷물에 잠기는 구간이었기 때문에 사실과 부합된다고 할 수 있다. 《광여도》와 본 지도의 작성자는 이런 사실을 잘못 이해하여 일반적인 하천처럼 표시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세 개의 면 중 興德面은 德興面의 誤記이다. 《광여도》의 지도와 주기에도 본 지도처럼 잘못 기록되어 있는데, 《해동지도》에는 덕흥면이라고 올바르게 적혀 있다. 천안의 읍치에서 이곳으로 내려가는 하천은 현재 삽교천의 지류인 곡교천이다. 세 개의 면 중 덕흥면과 신종면은 이 하천의 아래와 왼쪽에 표시되어야 사실과 부합된다. 맨 위쪽에 있는 毛山面은 현재의 아산시 둔포면에 있었으며, 稷山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다. 역시 이 지도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읍치를 지나는 하천보다 一南面과 二南面을 흐르는 하천이 훨씬 길다. 역시 이 지도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문제점이 나타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읍치 지역을 다른 지역보다 훨씬 대축척으로 그린 회화식 군현지도였기 때문이다. 이런 지도에서는 방향은 대략 비슷하더라도 거리는 지도 위의 내용만으로 거의 파악하기 어렵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주기에는 각 면의 初境과 終境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이기봉)

  • 청산현(靑山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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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청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광여도》에는 있었던 오른쪽 위의 酒城倉 담장 모습이 사라진 점 정도이다. 주성면은 報恩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로서 현재의 보은군 내북면 대안리와 화전리 일대에 있었다. 그러나 본 지도와 《광여도》의 표현에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주기에 청산현의 동서남북의 최대 거리가 24리에 불과한 반면 주성면의 初境이 90리이고, 終境이 100리라는 표현을 통해 대략적으로 짐작할 수는 있다. 본 지도와 표현 방식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청산현 지도에는 ‘관문으로부터 80 리’라는 표현을 써놓아 월경지임을 추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본 지도는 서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로 내려오는 산세가 서북쪽에서 왔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왼쪽의 아래에서 위로 흘러가는 하천이 현재의 금강 본류이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흘러 금강에 합류하는 하천이 금강의 지류인 현재의 보청천이다. 보청천이 금강과 합류하는 지점의 굴곡이 실제처럼 잘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읍치를 상대적으로 확대해서 그리다보니까 보청천으로 흘러드는 작은 하천들이 거의 그려지지 않았다. 여백의 위쪽에는 청산현의 옛 명칭과 충청좌도에 속해 있다는 ‘左’가 표시되어 있다. 오른쪽 여백에는 한양에서 5일 걸린다는 ‘五日’과 淸州 鎭管에 속해 있다는 ‘淸’, 본 책에 31번째로 수록된 고을이라는 ‘三十一’이 적혀 있다. 여백에 적혀 있는 이런 내용들은 《광여도》나 《해동지도》에는 없던 것으로 본 지도책의 이용자가 새롭게 필요로 한 정보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기봉)

  • 청산현(靑山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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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청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광여도》에는 있었던 오른쪽 위의 酒城倉 담장 모습이 사라진 점 정도이다. 주성면은 報恩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로서 현재의 보은군 내북면 대안리와 화전리 일대에 있었다. 그러나 본 지도와 《광여도》의 표현에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주기에 청산현의 동서남북의 최대 거리가 24리에 불과한 반면 주성면의 初境이 90리이고, 終境이 100리라는 표현을 통해 대략적으로 짐작할 수는 있다. 본 지도와 표현 방식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청산현 지도에는 ‘관문으로부터 80 리’라는 표현을 써놓아 월경지임을 추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본 지도는 서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로 내려오는 산세가 서북쪽에서 왔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왼쪽의 아래에서 위로 흘러가는 하천이 현재의 금강 본류이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흘러 금강에 합류하는 하천이 금강의 지류인 현재의 보청천이다. 보청천이 금강과 합류하는 지점의 굴곡이 실제처럼 잘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읍치를 상대적으로 확대해서 그리다보니까 보청천으로 흘러드는 작은 하천들이 거의 그려지지 않았다. 여백의 위쪽에는 청산현의 옛 명칭과 충청좌도에 속해 있다는 ‘左’가 표시되어 있다. 오른쪽 여백에는 한양에서 5일 걸린다는 ‘五日’과 淸州 鎭管에 속해 있다는 ‘淸’, 본 책에 31번째로 수록된 고을이라는 ‘三十一’이 적혀 있다. 여백에 적혀 있는 이런 내용들은 《광여도》나 《해동지도》에는 없던 것으로 본 지도책의 이용자가 새롭게 필요로 한 정보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기봉)

  • 청안현(淸安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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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청안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은 《광여도》에 있는 2개의 제언이 사라진 점, 《광여도》에 있는 읍치의 客舍와 衙舍의 담장 모습이 본 지도에 없는 점, 《광여도》에 北面 위쪽의 하천이 陰城界에서 들어오는 것으로 표현된 것이 바뀐 점 등이다. 이 중 세 번째 부분은 《광여도》가 맞는 것으로서,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청안현 지도에도 동일하게 나온다. 본 지도에서 가장 잘못된 부분은 東面 부분이다. 이 지역은 남한강의 지류인 달천의 최상류 중의 하나인 괴곡천이다. 읍치를 지나 서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은 금강의 지류인 미호천의 최상류 중의 하나이다. 두 유역이 갈리는 부분은 읍치 오른쪽의 七寶山(540m)이다. 이런 문제점은 본 지도뿐만 아니라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본 지도의 작성자도 《해동지도》에서 잘못된 표현을 교정하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청안현지도도 회화식으로 그렸지만 이 부분이 사실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청안현(淸安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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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청안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은 《광여도》에 있는 2개의 제언이 사라진 점, 《광여도》에 있는 읍치의 客舍와 衙舍의 담장 모습이 본 지도에 없는 점, 《광여도》에 北面 위쪽의 하천이 陰城界에서 들어오는 것으로 표현된 것이 바뀐 점 등이다. 이 중 세 번째 부분은 《광여도》가 맞는 것으로서,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청안현 지도에도 동일하게 나온다. 본 지도에서 가장 잘못된 부분은 東面 부분이다. 이 지역은 남한강의 지류인 달천의 최상류 중의 하나인 괴곡천이다. 읍치를 지나 서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은 금강의 지류인 미호천의 최상류 중의 하나이다. 두 유역이 갈리는 부분은 읍치 오른쪽의 七寶山(540m)이다. 이런 문제점은 본 지도뿐만 아니라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본 지도의 작성자도 《해동지도》에서 잘못된 표현을 교정하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청안현지도도 회화식으로 그렸지만 이 부분이 사실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청양현(靑陽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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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청양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아래쪽 金井驛 오른쪽에 南下面이 생략되어 있다. 《광여도》나 《해동지도》의 청양현 지도에 모두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 제작자의 실수로 판단된다. 본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지만 모든 방향이 정확한 것은 아니다. 왼쪽 위의 公山界는 公州界를, 아래쪽의 洪陽界는 洪州界를 의미한다. 공주목이 공산현으로 강등되었던 시기는 1646년(인조 24)경, 1670(현종 11)-1679년(숙종 5), 1728(영조 4)-1737(영조 13), 1778년(정조 2)경 등이다. 홍주는 顯宗(1660-1674) 때 잠시 洪陽縣으로 강등된다. 본 지도는 하천의 표시에서 몇 가지 문제가 있다. 西上面과 西下面은 현재의 청양군 비봉면 일대로서 북쪽의 삽교호로 흘러가는 무한천의 지류인 강촌천 유역에 속하지만 본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北上面과 北下面은 현재의 청양군 운곡면 일대로서 역시 무한천의 지류인 신양천 유역에 속한다. 그런데 본 지도에서는 마치 현재 금강의 지류인 지천으로 불리는 鵲川과 연결된 것처럼 잘못 표시되어 있다. 이와 같은 오류는 《광여도》와 《해동지도》 모두에 나타나고 있다. ‘비변사인방안지도’ 《호서지도》의 청양 지도나 ‘1872년 지방지도’의 청양현지도에는 모두 사실과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청양현(靑陽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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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청양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아래쪽 金井驛 오른쪽에 南下面이 생략되어 있다. 《광여도》나 《해동지도》의 청양현 지도에 모두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 제작자의 실수로 판단된다. 본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지만 모든 방향이 정확한 것은 아니다. 왼쪽 위의 公山界는 公州界를, 아래쪽의 洪陽界는 洪州界를 의미한다. 공주목이 공산현으로 강등되었던 시기는 1646년(인조 24)경, 1670(현종 11)-1679년(숙종 5), 1728(영조 4)-1737(영조 13), 1778년(정조 2)경 등이다. 홍주는 顯宗(1660-1674) 때 잠시 洪陽縣으로 강등된다. 본 지도는 하천의 표시에서 몇 가지 문제가 있다. 西上面과 西下面은 현재의 청양군 비봉면 일대로서 북쪽의 삽교호로 흘러가는 무한천의 지류인 강촌천 유역에 속하지만 본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北上面과 北下面은 현재의 청양군 운곡면 일대로서 역시 무한천의 지류인 신양천 유역에 속한다. 그런데 본 지도에서는 마치 현재 금강의 지류인 지천으로 불리는 鵲川과 연결된 것처럼 잘못 표시되어 있다. 이와 같은 오류는 《광여도》와 《해동지도》 모두에 나타나고 있다. ‘비변사인방안지도’ 《호서지도》의 청양 지도나 ‘1872년 지방지도’의 청양현지도에는 모두 사실과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청주목(淸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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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청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오른쪽 가운데의 公松寺는 《광여도》에 公林寺로 나온다. 표현 방식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청주목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여 상호 관련성을 추정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동지도》의 청주목 지도와 주기가 같은 것도 아니다. 《광여도》의 청주목 지도가 다른 군현 지도와 표현 방식이나 색감이 다른 점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광여도》에 있는 청주목 지도는 다른 군현의 지도와 다른 시기에 그려져 삽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 표시에서 鎭川界와 槐山界 사이에 淸安界가, 天安界와 燕歧界 사이에 全義界가 적혀 있어야 올바르다. 왼쪽의 하천은 현재 금강의 지류인 미호천이다. 미호천의 본류는 북쪽의 鎭川과 淸安에서, 지류 중의 하나인 병천천이 서쪽의 木川에서 흘러들어옴에도 이와 같은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미호천의 지류인 無心川 역시 최상류가 文義와 懷仁에 일부 걸쳐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문제점은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오른쪽은 남한강의 지류인 達川 유역이다. 지도를 남북으로 긴 사각형 안에 그리다가 보니까 고을 동서의 폭이 상대적으로 짧게 그려져 있다. 달천 유역 역시 동서보다는 남북이 길게 그려져 있어 잘못 이해할 수 있다. 靑川面과 華陽洞書院 등은 읍치의 거의 정동 쪽에 위치해 있어야 한다. 달천 역시 보은이나 상주 등에도 일부 걸쳐 있어야 하는데 이와 같은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왼쪽 아래에 있는 德平面은 원래 덕평향 이었고, 全義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다. 아래쪽의 周岸面 역시 월래 주안향 이었으며, 文義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두개의 면이 월경지였다는 사실을 파악하기 어렵다. 이와 같은 문제점은 《광여도》와 《해동지도》에서도 나타난다. (이기봉)

  • 청주목(淸州牧)(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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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청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오른쪽 가운데의 公松寺는 《광여도》에 公林寺로 나온다. 표현 방식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청주목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여 상호 관련성을 추정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동지도》의 청주목 지도와 주기가 같은 것도 아니다. 《광여도》의 청주목 지도가 다른 군현 지도와 표현 방식이나 색감이 다른 점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광여도》에 있는 청주목 지도는 다른 군현의 지도와 다른 시기에 그려져 삽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 표시에서 鎭川界와 槐山界 사이에 淸安界가, 天安界와 燕歧界 사이에 全義界가 적혀 있어야 올바르다. 왼쪽의 하천은 현재 금강의 지류인 미호천이다. 미호천의 본류는 북쪽의 鎭川과 淸安에서, 지류 중의 하나인 병천천이 서쪽의 木川에서 흘러들어옴에도 이와 같은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미호천의 지류인 無心川 역시 최상류가 文義와 懷仁에 일부 걸쳐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문제점은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오른쪽은 남한강의 지류인 達川 유역이다. 지도를 남북으로 긴 사각형 안에 그리다가 보니까 고을 동서의 폭이 상대적으로 짧게 그려져 있다. 달천 유역 역시 동서보다는 남북이 길게 그려져 있어 잘못 이해할 수 있다. 靑川面과 華陽洞書院 등은 읍치의 거의 정동 쪽에 위치해 있어야 한다. 달천 역시 보은이나 상주 등에도 일부 걸쳐 있어야 하는데 이와 같은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왼쪽 아래에 있는 德平面은 원래 덕평향 이었고, 全義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다. 아래쪽의 周岸面 역시 월래 주안향 이었으며, 文義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두개의 면이 월경지였다는 사실을 파악하기 어렵다. 이와 같은 문제점은 《광여도》와 《해동지도》에서도 나타난다. (이기봉)

  • 청풍부(淸風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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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청풍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오른쪽 위에 있는 東面은 面을 의미하는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로 표시하지 않았는데, 지도 제작자가 실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의 龜潭과 아래쪽의 遠南面은 《광여도》에 없는 것이며, 위쪽의 長善峙는 《광여도》에 長善山으로 표시되어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청풍부 지도는 표현 방식에서의 차이가 있지만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나 내용적 측면에서 서로 비슷하다. 《광여도》와 본 지도가 다른 龜潭, 遠南面, 長善峙는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본 지도의 주기 내용과 표현 양식은 《해동지도》가 아니라 《광여도》와 동일하다. 오른쪽 丹陽界에서 들어와 왼쪽 忠州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남한강 본류이다. 본 지도에서는 남한강 본류와 각 지류들의 하천 굵기를 동일하게 표시하여 구분이 어렵게 되어 있다. 이 점 역시 《광여도》와 동일한데, 《해동지도》에는 본류와 지류를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반대로 《광여도》에는 남한강이 丹陽界 방향에서 흘러들어오는 사실을 반영하지 않았음에 비해 《해동지도》에는 분명하게 반영되어 있다. 이 점에서 본 지도는 《광여도》보다 《해동지도》의 내용을 따르고 있다. (이기봉)

  • 청풍부(淸風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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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청풍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오른쪽 위에 있는 東面은 面을 의미하는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로 표시하지 않았는데, 지도 제작자가 실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의 龜潭과 아래쪽의 遠南面은 《광여도》에 없는 것이며, 위쪽의 長善峙는 《광여도》에 長善山으로 표시되어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청풍부 지도는 표현 방식에서의 차이가 있지만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나 내용적 측면에서 서로 비슷하다. 《광여도》와 본 지도가 다른 龜潭, 遠南面, 長善峙는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본 지도의 주기 내용과 표현 양식은 《해동지도》가 아니라 《광여도》와 동일하다. 오른쪽 丹陽界에서 들어와 왼쪽 忠州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남한강 본류이다. 본 지도에서는 남한강 본류와 각 지류들의 하천 굵기를 동일하게 표시하여 구분이 어렵게 되어 있다. 이 점 역시 《광여도》와 동일한데, 《해동지도》에는 본류와 지류를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반대로 《광여도》에는 남한강이 丹陽界 방향에서 흘러들어오는 사실을 반영하지 않았음에 비해 《해동지도》에는 분명하게 반영되어 있다. 이 점에서 본 지도는 《광여도》보다 《해동지도》의 내용을 따르고 있다. (이기봉)

  • 충주목(忠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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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충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충주목 지도는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거의 동일하여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본 지도는 《광여도》에 비해 아래쪽 法王面 부근에 金木洞面과 省洞面, 그 위쪽에 龍安倉 등이 생략되어 있다. 그 왼쪽의 卜城洞面과 왼쪽 위의 嚴政面은 《광여도》와 한자가 다르며,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읍치 오른쪽 위에 있는 毛女峴과 心項山烽은 《광여도》에는 없고, 《해동지도》에 있는 것이다. 결국 전체적인 구도는 《광여도》의 것과 동일하지만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해동지도》를 참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동쪽의 높은 산지를 등지고 들어선 읍치의 좌 향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위쪽에서 아래로 흘러가는 하천이 남한강 본류이다. 읍치 아래쪽에서 합류하는 하천이 남한강의 지류인 달천이다. 《광여도》와 《해동지도》에 하천을 모두 2개의 실선으로 표현한 반면 본 지도에서는 남한강은 2개의 실선으로, 그 지류는 1개의 실선으로 그려 구분해주고 있다. 竹山界에서 흘러와 남한강의 山溪津에서 합류되는 하천은 현재의 청미천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청미천이 실제로는 竹山과 陰竹 등의 경계를 타고 흐르기 때문에 분명하지는 않다. 陰竹界과 竹山界 및 鎭川界 부근의 여러 면은 남한강의 지류인 청미천과 금강의 지류인 미호천 상류에 해당되나 이 지도만으로는 그러한 사실을 확인하기 어렵다. 읍치가 다른 지역에 비해 대축척으로 그려진 전형적인 회화식 군현지도이기 때문에 거리와 방향 등에서 많은 오차를 보이고 있다. (이기봉)

  • 충주목(忠州牧)(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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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충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충주목 지도는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거의 동일하여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본 지도는 《광여도》에 비해 아래쪽 法王面 부근에 金木洞面과 省洞面, 그 위쪽에 龍安倉 등이 생략되어 있다. 그 왼쪽의 卜城洞面과 왼쪽 위의 嚴政面은 《광여도》와 한자가 다르며,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읍치 오른쪽 위에 있는 毛女峴과 心項山烽은 《광여도》에는 없고, 《해동지도》에 있는 것이다. 결국 전체적인 구도는 《광여도》의 것과 동일하지만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해동지도》를 참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동쪽의 높은 산지를 등지고 들어선 읍치의 좌 향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위쪽에서 아래로 흘러가는 하천이 남한강 본류이다. 읍치 아래쪽에서 합류하는 하천이 남한강의 지류인 달천이다. 《광여도》와 《해동지도》에 하천을 모두 2개의 실선으로 표현한 반면 본 지도에서는 남한강은 2개의 실선으로, 그 지류는 1개의 실선으로 그려 구분해주고 있다. 竹山界에서 흘러와 남한강의 山溪津에서 합류되는 하천은 현재의 청미천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청미천이 실제로는 竹山과 陰竹 등의 경계를 타고 흐르기 때문에 분명하지는 않다. 陰竹界과 竹山界 및 鎭川界 부근의 여러 면은 남한강의 지류인 청미천과 금강의 지류인 미호천 상류에 해당되나 이 지도만으로는 그러한 사실을 확인하기 어렵다. 읍치가 다른 지역에 비해 대축척으로 그려진 전형적인 회화식 군현지도이기 때문에 거리와 방향 등에서 많은 오차를 보이고 있다. (이기봉)

  • 태안군(泰安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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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태안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북쪽의 北面과 牧場을 하나의 사각형 안에 표시한 점, 아래쪽의 安眠島에 ‘人居四百餘戶’라는 문구가 사라진 정도이다. 태안군은 바다가 육지 쪽으로 쑥 들어온 灣이 아주 많은 곳이다. 지도에도 이와 같은 사실이 실제와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태안군이 마치 섬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 이유는 동쪽으로 연결된 瑞山界 부분까지 바다처럼 표현했기 때문이다. 이곳이 비록 좁은 地峽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육지로 연결되어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태안군 지도도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하다. 이 《해동지도》에는 바다는 푸른색으로, 육지는 황색으로 표현하였고, 태안군이 서산군과 육지로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그렸다. 《광여도》와 본 지도, 특히 본 지도로 옮기면서 태안군 이외 지역을 모두 동일한 색으로 표현하여 오해할 수 있는 소지가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해동지도》와의 차이점 중 하나는 해안가에 있는 여러 섬들이 생략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섬들은 海運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광여도》와 본 지도의 제작자들은 그런 사실을 간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왼쪽 安興鎭에는 섬인 新鎭(島)가 마치 육지와 연결된 것처럼 표시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아 《광여도》와 본 지도의 제작자가 잘못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안흥진과 신진도 사이는 밀물과 썰물 때 물살이 빠르고 암초가 많아 선박들이 자주 난파하는 곳으로 유명하다.(이기봉)

  • 태안군(泰安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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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태안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북쪽의 北面과 牧場을 하나의 사각형 안에 표시한 점, 아래쪽의 安眠島에 ‘人居四百餘戶’라는 문구가 사라진 정도이다. 태안군은 바다가 육지 쪽으로 쑥 들어온 灣이 아주 많은 곳이다. 지도에도 이와 같은 사실이 실제와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태안군이 마치 섬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 이유는 동쪽으로 연결된 瑞山界 부분까지 바다처럼 표현했기 때문이다. 이곳이 비록 좁은 地峽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육지로 연결되어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태안군 지도도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하다. 이 《해동지도》에는 바다는 푸른색으로, 육지는 황색으로 표현하였고, 태안군이 서산군과 육지로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그렸다. 《광여도》와 본 지도, 특히 본 지도로 옮기면서 태안군 이외 지역을 모두 동일한 색으로 표현하여 오해할 수 있는 소지가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해동지도》와의 차이점 중 하나는 해안가에 있는 여러 섬들이 생략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섬들은 海運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광여도》와 본 지도의 제작자들은 그런 사실을 간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왼쪽 安興鎭에는 섬인 新鎭(島)가 마치 육지와 연결된 것처럼 표시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아 《광여도》와 본 지도의 제작자가 잘못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안흥진과 신진도 사이는 밀물과 썰물 때 물살이 빠르고 암초가 많아 선박들이 자주 난파하는 곳으로 유명하다.(이기봉)

  • 평택현(平澤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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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평택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왼쪽의 土城 위치가 《광여도》에는 西面과 邑內面의 정 가운데 정도에 있다는 정도이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평택현 지도에서는 본 지도처럼 표시되어 있다. 본 지도의 전체적인 구도가 《광여도》와 거의 동일하지만 토성의 위치라는 측면에서는 《해동지도》를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평택현은 현재의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일대에 있었다. 이 지역은 거의 산이 없는 평지에 해당되며, 가장 높은 곳이 지도 위의 土城이 있었던 부용산(34.5m)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는 많은 산줄기가 그려져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평택현 지도도 회화식으로 그렸지만 부용산을 높게 표현한 것 이외에는 산을 거의 그리지 않았다. 본 지도의 작성자는 이러한 평택현의 지형에 대한 인식이 아주 없었거나 아니면 작은 언덕이나 숲에 불과한 것을 산줄기로 인식하여 그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 북쪽을 흐르는 하천이 현재의 안성천 본류이고, 아래쪽의 濁川이 현재의 군계천이다. 안성천의 본류는 오른쪽 振威界 부근의 동쪽에서 흘러오며, 稷山界에서 흘러오는 하천은 성환천이다. 군계천과 성환천 모두 평택현 지역이 발원지가 아니다. 또한 水原界라고 적혀 있는 부분에서 현재의 진위천이 합류되는데 본 지도에서는 그러한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이와 같은 측면들이 가장 사실과 부합되게 그려진 지도 중의 하나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평택 지도이다. 南面과 西面 사이에는 진위현의 월경지인 景陽面이 있었다. 따라서 稷山界가 이곳에 표시되어 있어야 사실에 가깝다. (이기봉)

  • 평택현(平澤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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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평택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왼쪽의 土城 위치가 《광여도》에는 西面과 邑內面의 정 가운데 정도에 있다는 정도이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평택현 지도에서는 본 지도처럼 표시되어 있다. 본 지도의 전체적인 구도가 《광여도》와 거의 동일하지만 토성의 위치라는 측면에서는 《해동지도》를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평택현은 현재의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일대에 있었다. 이 지역은 거의 산이 없는 평지에 해당되며, 가장 높은 곳이 지도 위의 土城이 있었던 부용산(34.5m)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는 많은 산줄기가 그려져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평택현 지도도 회화식으로 그렸지만 부용산을 높게 표현한 것 이외에는 산을 거의 그리지 않았다. 본 지도의 작성자는 이러한 평택현의 지형에 대한 인식이 아주 없었거나 아니면 작은 언덕이나 숲에 불과한 것을 산줄기로 인식하여 그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 북쪽을 흐르는 하천이 현재의 안성천 본류이고, 아래쪽의 濁川이 현재의 군계천이다. 안성천의 본류는 오른쪽 振威界 부근의 동쪽에서 흘러오며, 稷山界에서 흘러오는 하천은 성환천이다. 군계천과 성환천 모두 평택현 지역이 발원지가 아니다. 또한 水原界라고 적혀 있는 부분에서 현재의 진위천이 합류되는데 본 지도에서는 그러한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이와 같은 측면들이 가장 사실과 부합되게 그려진 지도 중의 하나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평택 지도이다. 南面과 西面 사이에는 진위현의 월경지인 景陽面이 있었다. 따라서 稷山界가 이곳에 표시되어 있어야 사실에 가깝다. (이기봉)

  •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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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산군(韓山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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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한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한산군 지도도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하다. 읍치 왼쪽의 光峴山은 《광여도》에 光觀山으로 적혀 있고, 오른쪽의 馬山과 於里山의 위치가 《광여도》와 다르게 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이 세 지명이 본 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물론 다른 지명의 위치나 하천 등은 모두 《광여도》와 동일하다. 읍치 공간이 다른 지역에 비해 대축척으로 그려져 있고, 北面의 동서 폭이 극히 좁은데도 넓게 표시된 점 등을 제외하면 대략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아래의 오른쪽(동)에서 왼쪽(서)으로 흐르는 하천이 현재의 금강이다. 금강 변에는 海倉이 표시되어 있다. 밀물 때 바닷물이 이곳에 들어오기 때문에 ‘海’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다. 대동법 시행 이후 여러 고을의 조세를 모아 한양으로 나르던 漕倉制度는 바다나 강을 끼고 있지 않은 고을에만 한정되게 되었다. 본 지도의 해창은 본 고을의 大同米와 田稅를 모았다가 한양으로 나르던 창고이다. 지도 위쪽에는 한산군의 옛 명칭이 표시되어 있으며, 지도 명 위쪽의 ‘右’는 忠淸右道에 속해 있다는 표시이다. 오른쪽의 ‘五日’은 한양으로부터 5일 걸린다는 의미이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하며, 《해동지도》와도 대략 비슷하다. (이기봉)

  • 한산군(韓山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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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한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한산군 지도도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하다. 읍치 왼쪽의 光峴山은 《광여도》에 光觀山으로 적혀 있고, 오른쪽의 馬山과 於里山의 위치가 《광여도》와 다르게 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이 세 지명이 본 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물론 다른 지명의 위치나 하천 등은 모두 《광여도》와 동일하다. 읍치 공간이 다른 지역에 비해 대축척으로 그려져 있고, 北面의 동서 폭이 극히 좁은데도 넓게 표시된 점 등을 제외하면 대략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아래의 오른쪽(동)에서 왼쪽(서)으로 흐르는 하천이 현재의 금강이다. 금강 변에는 海倉이 표시되어 있다. 밀물 때 바닷물이 이곳에 들어오기 때문에 ‘海’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다. 대동법 시행 이후 여러 고을의 조세를 모아 한양으로 나르던 漕倉制度는 바다나 강을 끼고 있지 않은 고을에만 한정되게 되었다. 본 지도의 해창은 본 고을의 大同米와 田稅를 모았다가 한양으로 나르던 창고이다. 지도 위쪽에는 한산군의 옛 명칭이 표시되어 있으며, 지도 명 위쪽의 ‘右’는 忠淸右道에 속해 있다는 표시이다. 오른쪽의 ‘五日’은 한양으로부터 5일 걸린다는 의미이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하며, 《해동지도》와도 대략 비슷하다. (이기봉)

  • 해미현(海美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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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해미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왼쪽의 夢能驛이 《광여도》에 夢龍驛으로 되어 있고, 아래쪽의 瑞山界가 《광여도》에 생략되어 있는 정도이다. 《해동지도》의 해미현 지도에는 夢能驛으로 되어 있어 《광여도》가 ‘能’을 ‘龍’으로 착각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대동지지』에는 모두 夢熊驛으로 나오고 있어 《해동지도》도 오류를 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 몇 가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왼쪽 위의 德山界가 三峯寺 위에 써있고, 더 왼쪽으로 沔川界와 唐津界가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면천계와 당진계가 아예 생략되어 버렸다. 이것은 《해동지도》를 필사한 사람이 경계에 대한 이해를 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와 《광여도》의 주기에는 《해동지도》의 주기에 있었던 面에 대한 정보가 아예 수록되어 있지 않다. 본 지도책의 다른 지도에 면에 대한 정보가 대부분 수록되어 있는 점을 고려할 때 본 지도의 작성자가 면 정보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광여도》에는 아래쪽의 瑞山界까지 생략되어 있어 해미현의 실제 상황을 더욱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지도 왼쪽의 西面과 海倉은 지금의 당진군 대호지면에 있어 읍치에서 보면 거의 정북 방향에 있다. 본 지도만으로 보면 서면과 해창이 마치 읍치의 서쪽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瑞山界를 생략한 《광여도》의 입장에서 보면 서산계 방향이 바다처럼 표시되어 있어 서면과 해창이 더욱더 읍치 서쪽의 바닷가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문제점은 위치의 정확성을 추구한 《조선지도》의 해미 지도에서 서면과 해창을 읍치의 서쪽에 배치하는 잘못을 범하게 만든 원인이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동여도》에서도 서면과 해창의 읍치가 《조선지도》와 동일하게 표시되어 있어 김정호조차도 잘못을 교정하지 못하게 한 근본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 서면의 명칭은 읍치의 정북에 있기 때문에 읍치의 방향에 따라 결정된 것이 아니다. 읍치의 북쪽에 있었던 貞海古縣의 서쪽에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해미현(海美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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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해미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왼쪽의 夢能驛이 《광여도》에 夢龍驛으로 되어 있고, 아래쪽의 瑞山界가 《광여도》에 생략되어 있는 정도이다. 《해동지도》의 해미현 지도에는 夢能驛으로 되어 있어 《광여도》가 ‘能’을 ‘龍’으로 착각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대동지지』에는 모두 夢熊驛으로 나오고 있어 《해동지도》도 오류를 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 몇 가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왼쪽 위의 德山界가 三峯寺 위에 써있고, 더 왼쪽으로 沔川界와 唐津界가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면천계와 당진계가 아예 생략되어 버렸다. 이것은 《해동지도》를 필사한 사람이 경계에 대한 이해를 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와 《광여도》의 주기에는 《해동지도》의 주기에 있었던 面에 대한 정보가 아예 수록되어 있지 않다. 본 지도책의 다른 지도에 면에 대한 정보가 대부분 수록되어 있는 점을 고려할 때 본 지도의 작성자가 면 정보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광여도》에는 아래쪽의 瑞山界까지 생략되어 있어 해미현의 실제 상황을 더욱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지도 왼쪽의 西面과 海倉은 지금의 당진군 대호지면에 있어 읍치에서 보면 거의 정북 방향에 있다. 본 지도만으로 보면 서면과 해창이 마치 읍치의 서쪽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瑞山界를 생략한 《광여도》의 입장에서 보면 서산계 방향이 바다처럼 표시되어 있어 서면과 해창이 더욱더 읍치 서쪽의 바닷가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문제점은 위치의 정확성을 추구한 《조선지도》의 해미 지도에서 서면과 해창을 읍치의 서쪽에 배치하는 잘못을 범하게 만든 원인이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동여도》에서도 서면과 해창의 읍치가 《조선지도》와 동일하게 표시되어 있어 김정호조차도 잘못을 교정하지 못하게 한 근본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 서면의 명칭은 읍치의 정북에 있기 때문에 읍치의 방향에 따라 결정된 것이 아니다. 읍치의 북쪽에 있었던 貞海古縣의 서쪽에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호서도(湖西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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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湖西圖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안이나 하천의 유로, 산줄기 등은 두 지도가 거의 동일하여 상호 연관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광여도》보다는 본 지도가 생략된 것이 더 많다. 가운데의 淸州 오른쪽에는 淸安에 ‘淸’자만 쓰여 있다. 그 왼쪽 아래의 懷德은 懷仁을 잘못 쓴 것이다. 懷德이 청주 남쪽 방향에 또 있는데 이것이 옳은 것이다. 水營 오른쪽에 있는 保寧은 군현임에도 불구하고 鎭堡의 기호로서 표시되어 있는 오류도 보인다. 公州 아래쪽에 표시되어야 할 利仁驛이 생략되어 있다. 충청도에 있었던 察訪驛 중 이인역을 제외한 成歡, 時興, 栗峯, 連源, 金井 등의 역이 모두 표시되어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지도 작성자가 실수로 빠뜨린 것으로 추정된다. 公州 왼쪽 방향에 있는 金井驛은 察訪驛임에도 노란색 사각형의 鎭堡 기호로 표시되어 있기도 하다. 공주 아래쪽에 있는 尼山은 1776년(정조 1)에 尼城으로 고쳤고, 1800년(순조 원년)에는 魯城으로 개명하였다. 본 지도에는 尼山으로 나와 내용적으로 1776년 이전을, 《광여도》의 호서도에는 魯城으로 나와 내용적으로 1800년 이후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광여도》에도 군현별 지도에는 魯城이라 되어 있지 않고 尼山으로 나온다. 고을의 위치도 실제와 다른 경우가 많다. 가운데 위쪽의 平澤은 직산 위쪽에 표시되는 것이 실제에 더 부합된다. 禮山은 新昌 아래쪽에 표시되어야 한다. 오른쪽의 丹陽은 淸風 오른쪽에 표시되어야 한다. 위치 표시 중 가장 잘못된 것은 왼쪽 바닷가에 있는 安眠(島)이다. 실제로는 安興(鎭) 아래쪽에 있어야 한다. 永同에 있는 것은 금강의 상류이다. 그러나 본 지도와 달리 금강은 더 남쪽의 전라도에서 영동으로 흘러 들어와야 한다. 《광여도》에는 본 지도와 달리 실제에 부합되도록 그려져 있다. (이기봉)

  • 호서도(湖西圖)(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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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湖西圖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안이나 하천의 유로, 산줄기 등은 두 지도가 거의 동일하여 상호 연관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광여도》보다는 본 지도가 생략된 것이 더 많다. 가운데의 淸州 오른쪽에는 淸安에 ‘淸’자만 쓰여 있다. 그 왼쪽 아래의 懷德은 懷仁을 잘못 쓴 것이다. 懷德이 청주 남쪽 방향에 또 있는데 이것이 옳은 것이다. 水營 오른쪽에 있는 保寧은 군현임에도 불구하고 鎭堡의 기호로서 표시되어 있는 오류도 보인다. 公州 아래쪽에 표시되어야 할 利仁驛이 생략되어 있다. 충청도에 있었던 察訪驛 중 이인역을 제외한 成歡, 時興, 栗峯, 連源, 金井 등의 역이 모두 표시되어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지도 작성자가 실수로 빠뜨린 것으로 추정된다. 公州 왼쪽 방향에 있는 金井驛은 察訪驛임에도 노란색 사각형의 鎭堡 기호로 표시되어 있기도 하다. 공주 아래쪽에 있는 尼山은 1776년(정조 1)에 尼城으로 고쳤고, 1800년(순조 원년)에는 魯城으로 개명하였다. 본 지도에는 尼山으로 나와 내용적으로 1776년 이전을, 《광여도》의 호서도에는 魯城으로 나와 내용적으로 1800년 이후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광여도》에도 군현별 지도에는 魯城이라 되어 있지 않고 尼山으로 나온다. 고을의 위치도 실제와 다른 경우가 많다. 가운데 위쪽의 平澤은 직산 위쪽에 표시되는 것이 실제에 더 부합된다. 禮山은 新昌 아래쪽에 표시되어야 한다. 오른쪽의 丹陽은 淸風 오른쪽에 표시되어야 한다. 위치 표시 중 가장 잘못된 것은 왼쪽 바닷가에 있는 安眠(島)이다. 실제로는 安興(鎭) 아래쪽에 있어야 한다. 永同에 있는 것은 금강의 상류이다. 그러나 본 지도와 달리 금강은 더 남쪽의 전라도에서 영동으로 흘러 들어와야 한다. 《광여도》에는 본 지도와 달리 실제에 부합되도록 그려져 있다. (이기봉)

  • 홍산현(鴻山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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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홍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 위쪽의 月明山과 荒次山이 《광여도》에는 없다. 오른쪽 아래의 新橋와 仇仰浦가 《광여도》에는 新橋와 九郞浦로 적혀 있다. 仇仰浦가 仇乙仰浦로 적혀 있는 것을 제외하면 세 가지는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홍산현 지도에 모두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해동지도》와 《광여도》에 모두 나오는 지명 중 오른쪽 아래에 扶餘頭와 林川界가 본 지도에는 빠져 있다. 또한 읍치 아래쪽의 縣西面은 주기에 縣內面이라 적혀 있다. 《광여도》에는 동일하게 나오며, 《해동지도》에는 모두 縣內面으로 나온다. 이 부분은 본 지도와 《광여도》가 잘못된 것이다. 오른쪽 扶餘界에 있는 하천이 바치 부여 방면에서 본류가 흘러오는 것처럼 표시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오른쪽 아래에 표시된 白馬江은 이 하천의 명칭 아니라 백마강으로 흘러들어간다는 의미이다. 읍치 아래쪽을 흐르는 하천은 현재 금천이라 부른다. 왼쪽 위의 하천은 서쪽으로 흘러 보령시 웅천읍에서 바다로 들어가는 웅천의 최상류이다. 이곳의 최북단에는 洪陽으로 표시된 洪州와 靑陽 및 保寧의 경계선이 鴻山과 약간씩 맞닿아 있다. 본 지도에서는 이런 세세한 경계선의 표시라는 측면에서는 상당히 사실에 부합되도록 기록하였다. 그러나 웅천의 최상류와 읍치 오른쪽 하천의 최상류는 서로 맞닿아 있지 않으며, 웅천의 최상류가 훨씬 북쪽에 있다. 왼쪽 위에 있는 星台山 역시 오른쪽 위의 望心山보다 훨씬 북쪽에 있다. 이러한 문제점은 고을 전체와 읍치를 산줄기와 물줄기에 의해 겹겹이 둘러싸이게 그려 풍수적 명당 이미지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홍산현(鴻山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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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홍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 위쪽의 月明山과 荒次山이 《광여도》에는 없다. 오른쪽 아래의 新橋와 仇仰浦가 《광여도》에는 新橋와 九郞浦로 적혀 있다. 仇仰浦가 仇乙仰浦로 적혀 있는 것을 제외하면 세 가지는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홍산현 지도에 모두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해동지도》와 《광여도》에 모두 나오는 지명 중 오른쪽 아래에 扶餘頭와 林川界가 본 지도에는 빠져 있다. 또한 읍치 아래쪽의 縣西面은 주기에 縣內面이라 적혀 있다. 《광여도》에는 동일하게 나오며, 《해동지도》에는 모두 縣內面으로 나온다. 이 부분은 본 지도와 《광여도》가 잘못된 것이다. 오른쪽 扶餘界에 있는 하천이 바치 부여 방면에서 본류가 흘러오는 것처럼 표시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오른쪽 아래에 표시된 白馬江은 이 하천의 명칭 아니라 백마강으로 흘러들어간다는 의미이다. 읍치 아래쪽을 흐르는 하천은 현재 금천이라 부른다. 왼쪽 위의 하천은 서쪽으로 흘러 보령시 웅천읍에서 바다로 들어가는 웅천의 최상류이다. 이곳의 최북단에는 洪陽으로 표시된 洪州와 靑陽 및 保寧의 경계선이 鴻山과 약간씩 맞닿아 있다. 본 지도에서는 이런 세세한 경계선의 표시라는 측면에서는 상당히 사실에 부합되도록 기록하였다. 그러나 웅천의 최상류와 읍치 오른쪽 하천의 최상류는 서로 맞닿아 있지 않으며, 웅천의 최상류가 훨씬 북쪽에 있다. 왼쪽 위에 있는 星台山 역시 오른쪽 위의 望心山보다 훨씬 북쪽에 있다. 이러한 문제점은 고을 전체와 읍치를 산줄기와 물줄기에 의해 겹겹이 둘러싸이게 그려 풍수적 명당 이미지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홍주목(洪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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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홍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읍치 주변에 많이 기록되어 있는 堤가 《광여도》에는 圓形의 제언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 차이가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홍주목 지도도 표현 방식에서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는데, 읍치의 산세를 고려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형적인 회화식 지도인 만큼 거리와 방향 및 면적 등은 대략적으로만 맞을 뿐 정확하지 않다. 홍주는 특히 월경지가 많은데 본 지도에서는 월경지를 거의 구분하기 어렵도록 그렸다. 오른쪽 아래의 新南面과 新北面은 현재의 당진군 신평면 지역에, 그 왼쪽의 縣內面과 合北面 및 合南面은 현재의 합덕읍 지역에 있었던 월경지로서 德山縣의 경계선을 넘어가 있었다. 그리고 두 월경지는 지도에 마치 붙어 있는 것처럼 표시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沔川郡의 땅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었다. 위쪽의 雲川面은 海美縣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고, 현재의 서산시 운산면 일부에 있었다. 위쪽의 用川面과 바다 위의 섬 역시 結成縣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다. 바다 위의 섬들은 크기나 해안으로부터의 거리가 전혀 고려되지 않고 그려져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주기에 각 면의 初境과 終境을 적어놓았다. 주기를 보면 각 면의 거리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으나 월경지라는 표시가 없기 때문에 계속 이어진 것과 같은 오해를 할 수 있다. (이기봉)

  • 홍주목(洪州牧)(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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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홍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읍치 주변에 많이 기록되어 있는 堤가 《광여도》에는 圓形의 제언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 차이가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홍주목 지도도 표현 방식에서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는데, 읍치의 산세를 고려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형적인 회화식 지도인 만큼 거리와 방향 및 면적 등은 대략적으로만 맞을 뿐 정확하지 않다. 홍주는 특히 월경지가 많은데 본 지도에서는 월경지를 거의 구분하기 어렵도록 그렸다. 오른쪽 아래의 新南面과 新北面은 현재의 당진군 신평면 지역에, 그 왼쪽의 縣內面과 合北面 및 合南面은 현재의 합덕읍 지역에 있었던 월경지로서 德山縣의 경계선을 넘어가 있었다. 그리고 두 월경지는 지도에 마치 붙어 있는 것처럼 표시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沔川郡의 땅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었다. 위쪽의 雲川面은 海美縣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고, 현재의 서산시 운산면 일부에 있었다. 위쪽의 用川面과 바다 위의 섬 역시 結成縣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다. 바다 위의 섬들은 크기나 해안으로부터의 거리가 전혀 고려되지 않고 그려져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주기에 각 면의 初境과 終境을 적어놓았다. 주기를 보면 각 면의 거리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으나 월경지라는 표시가 없기 때문에 계속 이어진 것과 같은 오해를 할 수 있다. (이기봉)

  • 황간현(黃澗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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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황간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광여도》에 올바르게 적혀 있는 冷泉이 본 지도에는 오른쪽에 令泉으로 잘못 표시되어 있다는 점 정도이다. 《해동지도》의 황간현 지도도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다만 하천의 표현 방법에서는 《광여도》와 본 지도가 더 실제에 가깝다. 맨 위쪽의 하천은 현재의 금상천이고, 그 다음이 현재 소강이라 부르는 하천이다. 둘 다 상주에서 들어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규모는 두 번째의 소강이 훨씬 크다. 그러나 《해동지도》에는 하천의 굵기를 거의 비슷하게 표현하여 이런 사실을 혼동할 수 있도록 그렸다. 《광여도》와 본 지도의 제작자가 다른 자료를 통해 교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 아래쪽을 지나는 초강천 역시 소강과 그 규모가 거의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단지 1개의 실선으로만 표시하였다. 《해동지도》에는 소강보다 약간 굵게 표시하여 《광여도》나 본 지도보다 사실에 더 가깝게 그려져 있다. 오른쪽 아래의 南面은 낙동강의 지류인 감천 유역에 있다. 현재의 김천시 봉산면 일대로서 원래 金化部曲이었다고 황간현에 편입된 지역이다. 본 지도에도 掛榜嶺을 써넣어 이와 같은 사실을 일부 전하고 있다. 그러나 산지가 둘러싼 것처럼 그려서 낙동강 수계에 속하고 있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하였다. 秋風嶺 왼쪽에는 金山의 땅이 있었다. 현재의 추풍령면 지역으로서 원래는 추풍향 이었는데 金山에 속하게 된 것이다. 본 지도는 이러한 사실을 이해할 수 없게 그려져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지도 중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전하고 있는 것은 ‘비변사印방안지도’ 《영남지도》의 金山 지도이다. 《동여도》에서도 이 부분은 잘못 표현되어 있다. (이기봉)

  • 황간현(黃澗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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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황간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광여도》에 올바르게 적혀 있는 冷泉이 본 지도에는 오른쪽에 令泉으로 잘못 표시되어 있다는 점 정도이다. 《해동지도》의 황간현 지도도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다만 하천의 표현 방법에서는 《광여도》와 본 지도가 더 실제에 가깝다. 맨 위쪽의 하천은 현재의 금상천이고, 그 다음이 현재 소강이라 부르는 하천이다. 둘 다 상주에서 들어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규모는 두 번째의 소강이 훨씬 크다. 그러나 《해동지도》에는 하천의 굵기를 거의 비슷하게 표현하여 이런 사실을 혼동할 수 있도록 그렸다. 《광여도》와 본 지도의 제작자가 다른 자료를 통해 교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 아래쪽을 지나는 초강천 역시 소강과 그 규모가 거의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단지 1개의 실선으로만 표시하였다. 《해동지도》에는 소강보다 약간 굵게 표시하여 《광여도》나 본 지도보다 사실에 더 가깝게 그려져 있다. 오른쪽 아래의 南面은 낙동강의 지류인 감천 유역에 있다. 현재의 김천시 봉산면 일대로서 원래 金化部曲이었다고 황간현에 편입된 지역이다. 본 지도에도 掛榜嶺을 써넣어 이와 같은 사실을 일부 전하고 있다. 그러나 산지가 둘러싼 것처럼 그려서 낙동강 수계에 속하고 있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하였다. 秋風嶺 왼쪽에는 金山의 땅이 있었다. 현재의 추풍령면 지역으로서 원래는 추풍향 이었는데 金山에 속하게 된 것이다. 본 지도는 이러한 사실을 이해할 수 없게 그려져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지도 중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전하고 있는 것은 ‘비변사印방안지도’ 《영남지도》의 金山 지도이다. 《동여도》에서도 이 부분은 잘못 표현되어 있다. (이기봉)

  • 회덕현(懷德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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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회덕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池의 모양이 생략되어 있다는 정도이다. 대덕현은 현재의 대전광역시 대덕구와 그 주변에 있었다. 그런데 본 지도에서는 남쪽과 서쪽에 모두 公州界라고 표시되어 있다. 현재의 대전광역시 동구의 남부, 서구의 북쪽 등에 해당되는 지역이 모두 公州牧의 땅이었기 때문이다. 위쪽(북)의 하천은 현재의 금강 본류이며, 왼쪽의 하천은 지도에는 甲川이라고 적혀 있지만 현재는 유등천 으로 불리고 있다. 지도의 甲川은 실제로는 公州界 남쪽의 대둔산에서 흘러오는 것이 읍치 동쪽에서 흘러오는 것보다 규모가 훨씬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서는 마치 남쪽의 공주 경계에서 흘러오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지도 오른쪽에 珍山界라고 적혀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주기에도 남쪽이 珍山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것처럼 기록되어 있으나 역시 잘못된 것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회덕 지도나 《동여도》에는 이런 사실이 교정되어 있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표현되어 있어 상호 관련성을 엿볼 수 있다. (이기봉)

  • 회덕현(懷德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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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회덕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池의 모양이 생략되어 있다는 정도이다. 대덕현은 현재의 대전광역시 대덕구와 그 주변에 있었다. 그런데 본 지도에서는 남쪽과 서쪽에 모두 公州界라고 표시되어 있다. 현재의 대전광역시 동구의 남부, 서구의 북쪽 등에 해당되는 지역이 모두 公州牧의 땅이었기 때문이다. 위쪽(북)의 하천은 현재의 금강 본류이며, 왼쪽의 하천은 지도에는 甲川이라고 적혀 있지만 현재는 유등천 으로 불리고 있다. 지도의 甲川은 실제로는 公州界 남쪽의 대둔산에서 흘러오는 것이 읍치 동쪽에서 흘러오는 것보다 규모가 훨씬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서는 마치 남쪽의 공주 경계에서 흘러오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지도 오른쪽에 珍山界라고 적혀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주기에도 남쪽이 珍山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것처럼 기록되어 있으나 역시 잘못된 것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회덕 지도나 《동여도》에는 이런 사실이 교정되어 있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표현되어 있어 상호 관련성을 엿볼 수 있다. (이기봉)

  • 회인현(懷仁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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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회인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아래쪽의 沃川界에서 들어와 文義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금강 본류이다. 위쪽(북)에서 아래로 흘러 금강에 합류하는 하천은 현재의 회인천이다. 고을 전체를 모두 연결된 산줄기에 의해 감싸인 형태로 그려 회인천 유역에 있지 않은 마을들이 생략되어 있다. 서면의 일부 마을은 왼쪽의 산줄기를 넘어 있었고, 동면과 북면의 일부 마을 역시 위쪽과 오른쪽의 산줄기를 넘어 있었다. 이런 문제점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회인현 지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산세를 강조하여 읍치의 풍수적 명당성을 강조한 반면 하천의 유로에 대한 표현은 약하다. 회인천은 동서에서 여러 작은 지류를 합류시켜 흘러감에도 단선으로만 표현되어 있지만 《해동지도》에서는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는 고을의 전체적인 모습이 남북보다는 동서가 긴 형태로 그려져 있다. 반대로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는 동서보다는 남북이 긴 형태로 그려져 있다. 이것은 두 지도가 《해동지도》를 참조하였지만 세로로 긴 사각형의 용지에 맞추어 그렸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본 지도에는 《해동지도》와 《광여도》에 없었던 내용이 여백에 적혀 잇다. 위쪽 여백에는 옛 명칭과 충청좌도에 속해 있다는 ‘左’가 적혀 있다. 오른쪽 여백에는 한양에서 4일 걸린다는 ‘四日’과 본 고을이 淸州의 鎭管에 속해 있다는 ‘淸’ 그리고 본 지도책에서 35번째에 해당된다는 ‘三十五’가 적혀 있다. 본 지도를 이용했던 사람들이 지도의 내용 이외에 필요로 했던 정보가 무엇인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이기봉)

  • 회인현(懷仁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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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회인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아래쪽의 沃川界에서 들어와 文義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금강 본류이다. 위쪽(북)에서 아래로 흘러 금강에 합류하는 하천은 현재의 회인천이다. 고을 전체를 모두 연결된 산줄기에 의해 감싸인 형태로 그려 회인천 유역에 있지 않은 마을들이 생략되어 있다. 서면의 일부 마을은 왼쪽의 산줄기를 넘어 있었고, 동면과 북면의 일부 마을 역시 위쪽과 오른쪽의 산줄기를 넘어 있었다. 이런 문제점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회인현 지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산세를 강조하여 읍치의 풍수적 명당성을 강조한 반면 하천의 유로에 대한 표현은 약하다. 회인천은 동서에서 여러 작은 지류를 합류시켜 흘러감에도 단선으로만 표현되어 있지만 《해동지도》에서는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는 고을의 전체적인 모습이 남북보다는 동서가 긴 형태로 그려져 있다. 반대로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는 동서보다는 남북이 긴 형태로 그려져 있다. 이것은 두 지도가 《해동지도》를 참조하였지만 세로로 긴 사각형의 용지에 맞추어 그렸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본 지도에는 《해동지도》와 《광여도》에 없었던 내용이 여백에 적혀 잇다. 위쪽 여백에는 옛 명칭과 충청좌도에 속해 있다는 ‘左’가 적혀 있다. 오른쪽 여백에는 한양에서 4일 걸린다는 ‘四日’과 본 고을이 淸州의 鎭管에 속해 있다는 ‘淸’ 그리고 본 지도책에서 35번째에 해당된다는 ‘三十五’가 적혀 있다. 본 지도를 이용했던 사람들이 지도의 내용 이외에 필요로 했던 정보가 무엇인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이기봉)

  • 경기도(京畿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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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안선이나 하천의 유로 및 산줄기 등 전체적인 구도는 도성도와 마찬가지로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경기도 지도와 거의 비슷하여 상호 연관성이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주기면의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하다. 그러나 수록된 정보의 양이라는 측면에서는 《광여도》보다 축소되고 있으며, 일부 부분은 올바르게 되어 있다. 일단 축소된 내용을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모두 생략된 내용으로는 해안가에 설치되어 있던 鎭堡가 있다. 이밖에도 종6품의 察訪이 파견된 찰방역 중 良才驛이 표시되어 있지 않으며, 한성부 밑의 한강 부분에 있었던 浦口와 津渡, 烽燧 등도 많이 생략되었다. 반면에 陵墓, 書院 등은 일부를 제외하면 생략된 것이 거의 없다. 군사나 교통 관계의 정보는 주로 생략하고, 조선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정보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즉, 이 지도는 군사적 측면보다는 문화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본 지도가 올바른 측면으로는 《광여도》에서 혼란스럽게 표시되어 있던 하천의 유로가 대표적이다. 《광여도》에 아래쪽의 安城에 있는 현재의 안성천과 竹山에 있는 현재의 청미천이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그려진 것이 본 지도에는 올바르게 되어 있다. 《광여도》에 南陽의 서쪽에 하천이 남북을 가로지른 듯 그려져 있는 하천의 모습도 수정되어 있다. 표현 양식에서도 다른 측면이 있다. 이 중 본 지도가 《광여도》보다 더 혼란스러운 것은 하천의 표현 양식이다. 《광여도》에서는 한강은 두 줄의 실선으로, 나머지 하천은 한 줄의 실선으로 표시하여 구분하기가 쉬웠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모두 두 줄의 실선으로 그려 구분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長湍에서 흘러와 通津 부분에서 한강에 합류되는 하천은 현재의 임진강이다. 그런데 임진강은 북쪽의 兎山界나 동쪽의 鐵原界에서 발원하는 것이 아니라 흘러들어온다. 본 지도에서는 마치 이곳이 발원지인 것처럼 착각할 수 있게 그려져 있다. 《광여도》에서도 이 부분은 모호하게 처리되어 있다. 開城府 왼쪽의 예성강 역시 발원지를 착각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이기봉)

  • 남포현(藍浦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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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남포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남포현 지도도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비슷하다.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는데, 읍치의 산줄기가 동쪽으로부터 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읍치 지역의 풍수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해서 그렸다. 남포현의 모습에 관한 본 지도의 특징은 고을 전체가 바다 쪽으로 튀어나간 반도처럼 그렸다는 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호서지도》, 《조선지도》, ‘1872년 지방지도’ 의 남포현 지도들은 고을 전체를 반도처럼 그리지 않았다. 북쪽의 保寧, 남쪽의 庇仁과의 경계 부근이 밀물 때 바닷물이 육지 깊숙이 들어오는 만이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지도 위쪽 여백에는 남포현의 옛 명칭, 충청우도에 속해 있다는 ‘右’가 표시되어 있다. 오른쪽 여백에는 한양으로부터 5일 걸린다는 의미의 ‘五日’, 洪州 鎭管에 속해 있다는 ‘洪’, 본 지도책에 수록된 47번째 고을이라는 ‘四十七’이 표시되어 있다. 여백의 이런 내용들은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는 없던 것으로서 본 지도책의 이용자가 필요하게 여긴 추가적인 정보가 무엇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하며, 《해동지도》의 내용을 새로운 체제로 재편한 것에 불과하다. (이기봉)

  • 고창현(高敞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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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고창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유로의 표시에서 일부 차이가 나고 있다. 《광여도》에는 왼쪽의 水谷面에서 내려가는 하천이 표시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는 茂長界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고창현 지도에는 《광여도》처럼 되어 있다. 따라서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잘못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大雅面 위쪽의 하천을 2개의 실선으로 표시한 것도 《광여도》와 다른 점이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몇 개의 지류가 합해져 나가는 부분을 구분하기 위해 스스로 고안한 방법으로 생각된다. 지도에 나타난 하천은 현재 인천강이라 부르고 있으며, 일부 지류가 왼쪽의 茂長界 방면에서 흘러 들어온다. 인천강은 남쪽에서 발원하여 북류하기 때문에 본 지도는 기본적으로 북쪽을 위로 그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읍치 오른쪽을 흐르는 하천의 모습이 실제와 다르게 되어 있다. 이 하천은 현재 고창천이라고 부르는데, 대부분 동쪽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흘러간다. 川北面과 川南面의 기준이 된 ‘川’도 이 하천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천북면이 이 하천의 오른쪽에 배치된 것은 합당하지만 읍치의 동남쪽에 있는 것처럼 되어 명칭과 어울리지 않는다. 만약 고창천을 동쪽에서 발원하여 서류하는 것으로 그리면 명칭에도 합당하게 된다. 천북면은 읍치에서 보았을 때 북쪽과 동쪽 및 동북쪽에 걸쳐 있었다. 이러한 오해가 발생하게 된 이유로는 첫째,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양을 사각형에 맞추었다는 점 둘째, 읍치를 확대 과장해서 그리면서 읍치 주위의 하천이 지나치게 크게 그려졌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이기봉)

  • 거창부(居昌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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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거창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비슷하다. 거창은 1729년(영조 9)에 郡에서 府로 승격되었다가 1787년(정조 11)에 縣으로 강등되었으며, 1797년(정조 21)에 다시 府가 되었다. 따라서 본 지도는 최소한 1729년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치의 일부를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나오는 것과 동일하다. 《해동지도》에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과 驛에 각각 노란색과 황색의 사각형을 덧붙였다. 그러나 읍치 동쪽의 東部面을 東北面으로 잘못 적고, 그 오른쪽에 古毛峴面을 생략하는 오류도 범하고 있다. 지명을 실수로 생략한 흔적으로 또 예를 들면 왼쪽 위에 건물 모양만 그려져 있는 것이다. 《해동지도》에는 여기에 書院이란 명칭이 적혀 있다. 《해동지도》가 가로(동서)를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세로(남북)를 길게 그렸다. 하천의 유로나 갈라지는 모습이 본 지도와 《해동지도》가 동일하지만 전체적으로 본 지도가 남북으로 더 길게 그려져 있다. 왼쪽의 安陰界에서 들어오는 하천이 《해동지도》에는 마치 안음과의 경계선이 발원지인 것처럼 그려져 있다. 실제로는 서쪽의 안음에서 흘러오기 때문에 본 지도가 사실에 더 부합된다. (이기봉)

  • 강서현(江西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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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강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강서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해동지도》와 비교하여 본 지도에는 몇 가지 달라지거나 잘못된 점이 보인다. 왼쪽 아래의 大垢鄕과 草城面 위쪽의 하천이 《해동지도》와 다르게 되어 있다. 면의 명칭에서도 閑龍面이 關龍面으로, 水川面이 永川面으로 적혀 있다. 주기에도 永川面이라 적혀 있으며, 閑龍面은 아예 빠져 있다. 이 점에서는 《광여도》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아래쪽의 普院面 자리에 沙津面이 있고, 보원면은 약간 아래쪽에 명칭이 없는 건물 위치에 있었다. 《광여도》에서는 이 부분이 《해동지도》처럼 바뀌어 있다. 가장 아래쪽의 夫石面은 《해동지도》에는 주기에만 있고, 지도에는 없던 것이다. 실제의 강서현 모양과 본 지도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이렇게 된 가장 원인은 첫째, 읍치 부분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확대되어 그려졌기 때문이다. 둘째, 실제로는 사각형이 아닌 강서현의 모습을 세로로 약간 긴 사각형 안에 그렸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위쪽(서북)의 한룡면은 위쪽으로 더 튀어나가게 그려져 있어야 실제와 비슷하다. 또한 아래쪽의 보원면 밑은 아래쪽(남)으로 길게 뻗어 있어야 한다. 이런 오류는 강서현 동남쪽에 접해 있는 대동강 구간이 상대적으로 짧게 그려지게 만든 원인이 되기도 했다고 생각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고, 정확성을 중요하게 여긴 《조선지도》의 강서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도 강서현에 접한 대동강이 실제보다 더 짧게 그려져 있어 상호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강서현 지도에는 대동강의 길이가 실제에 가깝게 상대적으로 더 길게 표현되어 있다. (이기봉)

  • 경성부(鏡城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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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경성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전반적인 내용은 《해동지도》의 경성부 지도와 비슷하여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해동지도》의 가로 폭이 본 지도보다 더 넓은 편이다. 세로로 긴 노란색 사각형이 7개이고, 가로로 긴 노란색 사각형이 3개이다. 세로로 긴 6개의 사각형은 鎭堡를 의미하지만 立岩은 단순한 바위일 뿐 진보가 아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생각되며, 이런 실수는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보라색 사각형을 통해서도 이해될 수 있다. 《광여도》에서는 立岩에 대한 내용이 시정되어 있다. 본 지도책에서는 驛의 경우 보라색 사각형으로 표시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본 지도에서는 가로로 긴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읍치 아래쪽에 있는 吾村驛에는 노란색 사각형을 표시하지 않았다. 주기에는 吾村社가 2개 적혀 있는데 이 중 站과 같이 쓰여 있는 것은 吾村站이라고 바꾸어놓아야 한다. 지도에 오촌역이 노란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지 않은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의 주기에는 吾村站으로 되어 있고, 《광여도》의 주기에는 본 지도처럼 되어 있다. 가운데의 水康驛은 永康驛의 오기이며, 《광여도》에도 이런 잘못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한편 《광여도》에는 종6품의 찰방이 파견된 輸城驛에만 보라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다. 다른 2개의 역은 그대로 노란색으로 표시한 것으로 보아 역과 진보를 확실히 구분하여 이해한 것 같지는 않다. 위쪽의 長白山을 다른 산줄기와 달리 흰색으로 그린 것은 ‘5월이 되어서야 눈이 녹고 7월이 되면 다시 눈이 쌓인다’는 지리지의 기록을 이미지로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회화식 지도임에도 전체적인 고을의 모습이 대략 사실과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평안도
  • 가산군(嘉山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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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가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가산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의 정보가 증가하였고, 그 이외 지역의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볼 때 읍치의 정보는 《해동지도》 이외의 자료를 참고하여 첨가한 것으로 보인다. 《해동지도》의 지명과 비교해 보면 본 지도의 것이 다르게 기록된 것도 있다. 예를 들어 왼쪽 아래의 乫亍洞은 《해동지도》에 乫亍浦로 되어 있다. 《광여도》에는 이 지명이 《해동지도》처럼 되어 있다. 오른쪽의 ‘古城鎭安陵淸川江’이 《해동지도》에는 서로 분리되어 있고, 특히 ‘安陵淸川江(안주의 청천강이란 뜻)’은 청천강변을 따라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에는 모두 붙여 기록하여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다른 面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는데, 왼쪽의 西面은 글씨만 적어놓은 실수도 보이고 있다. 또한 오른쪽의 大定江(현재의 대령강)이 泰川界에서 흘러 들어오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다만 하구 부분에 대정강의 발원지와 유로에 대한 정보를 적어놓아 보완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해동지도》에는 대정강이 태천계에서 흘러 들어오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가산군의 모습은 북쪽(위) 경계는 넓고, 남쪽(아래) 끝은 삼각형의 꼭지점처럼 되어 있다. 이런 모양을 사각형으로 그리다 보니 북쪽에 비해 남쪽이 상대적으로 넓게 그려져 있다. 예를 들어 왼쪽의 長水灘 하구와 오른쪽의 大定江 하구는 실제로는 꼭지점같이 거의 붙어 있다. 이런 지역을 북쪽 부분과 비슷한 거리로 그림에 따라 상당한 왜곡이 발생하였다. (이기봉)

  • 가산군(嘉山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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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가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가산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의 정보가 증가하였고, 그 이외 지역의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볼 때 읍치의 정보는 《해동지도》 이외의 자료를 참고하여 첨가한 것으로 보인다. 《해동지도》의 지명과 비교해 보면 본 지도의 것이 다르게 기록된 것도 있다. 예를 들어 왼쪽 아래의 乫亍洞은 《해동지도》에 乫亍浦로 되어 있다. 《광여도》에는 이 지명이 《해동지도》처럼 되어 있다. 오른쪽의 ‘古城鎭安陵淸川江’이 《해동지도》에는 서로 분리되어 있고, 특히 ‘安陵淸川江(안주의 청천강이란 뜻)’은 청천강변을 따라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에는 모두 붙여 기록하여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다른 面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는데, 왼쪽의 西面은 글씨만 적어놓은 실수도 보이고 있다. 또한 오른쪽의 大定江(현재의 대령강)이 泰川界에서 흘러 들어오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다만 하구 부분에 대정강의 발원지와 유로에 대한 정보를 적어놓아 보완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해동지도》에는 대정강이 태천계에서 흘러 들어오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가산군의 모습은 북쪽(위) 경계는 넓고, 남쪽(아래) 끝은 삼각형의 꼭지점처럼 되어 있다. 이런 모양을 사각형으로 그리다 보니 북쪽에 비해 남쪽이 상대적으로 넓게 그려져 있다. 예를 들어 왼쪽의 長水灘 하구와 오른쪽의 大定江 하구는 실제로는 꼭지점같이 거의 붙어 있다. 이런 지역을 북쪽 부분과 비슷한 거리로 그림에 따라 상당한 왜곡이 발생하였다. (이기봉)

  • 강동현(江東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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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강동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강동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 지도에는 《해동지도》에 비해 하천의 표현에서 여러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왼쪽 위의 慈山界에서 흘러와 아래쪽의 平壤界로 흘러가는 하천이 현재의 대동강 본류이다. 위쪽 가운데에서 흘러와 대동강에 합류하는 하천은 비류강이고, 아래쪽의 三登界에서 들어와 대동강에 합류하는 하천이 현재의 남강이다. 대동강 본류와 비류강, 남강의 규모는 실제로 거의 비슷하다. 《해동지도》에도 세 개의 하천은 다른 지류에 비해 훨씬 굵게 표시하여 실제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그렸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남강을 1개의 실선으로만 그려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광여도》에서는 이 부분이 사실에 가깝게 교정되어 있다. 왼쪽의 高泉面 방향에서 들어오는 하천은 대동강 본류에 비하면 아주 작은 지류에 불과하고, 다른 고을에서 흘러오지도 않는다. 《해동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쉽게 이해될 수 있도록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에는 사실과 전혀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이 점은 《광여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하천의 표현만 놓고 보면 《광여도》는 고천면 방향의 하천은 본 지도와, 남강에 대한 표현은 《해동지도》와 유사하다. 본 지도에는 남강과 읍치의 水晶川이 다른 고을에서 흘러 들어온다는 사실도 이해하기 어렵게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는 이 부분이 실제처럼 그려져 있고, 《광여도》에도 《해동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해동지도》에 표시된 정보의 일부가 생략되어 있는 반면에 읍치 지역에서는 훨씬 많은 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따라서 본 지도는 기본적으로는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읍치 지역만큼은 다른 자료를 참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강동현(江東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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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강동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강동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 지도에는 《해동지도》에 비해 하천의 표현에서 여러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왼쪽 위의 慈山界에서 흘러와 아래쪽의 平壤界로 흘러가는 하천이 현재의 대동강 본류이다. 위쪽 가운데에서 흘러와 대동강에 합류하는 하천은 비류강이고, 아래쪽의 三登界에서 들어와 대동강에 합류하는 하천이 현재의 남강이다. 대동강 본류와 비류강, 남강의 규모는 실제로 거의 비슷하다. 《해동지도》에도 세 개의 하천은 다른 지류에 비해 훨씬 굵게 표시하여 실제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그렸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남강을 1개의 실선으로만 그려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광여도》에서는 이 부분이 사실에 가깝게 교정되어 있다. 왼쪽의 高泉面 방향에서 들어오는 하천은 대동강 본류에 비하면 아주 작은 지류에 불과하고, 다른 고을에서 흘러오지도 않는다. 《해동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쉽게 이해될 수 있도록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에는 사실과 전혀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이 점은 《광여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하천의 표현만 놓고 보면 《광여도》는 고천면 방향의 하천은 본 지도와, 남강에 대한 표현은 《해동지도》와 유사하다. 본 지도에는 남강과 읍치의 水晶川이 다른 고을에서 흘러 들어온다는 사실도 이해하기 어렵게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는 이 부분이 실제처럼 그려져 있고, 《광여도》에도 《해동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해동지도》에 표시된 정보의 일부가 생략되어 있는 반면에 읍치 지역에서는 훨씬 많은 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따라서 본 지도는 기본적으로는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읍치 지역만큼은 다른 자료를 참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강서현(江西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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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강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강서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해동지도》와 비교하여 본 지도에는 몇 가지 달라지거나 잘못된 점이 보인다. 왼쪽 아래의 大垢鄕과 草城面 위쪽의 하천이 《해동지도》와 다르게 되어 있다. 면의 명칭에서도 閑龍面이 關龍面으로, 水川面이 永川面으로 적혀 있다. 주기에도 永川面이라 적혀 있으며, 閑龍面은 아예 빠져 있다. 이 점에서는 《광여도》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아래쪽의 普院面 자리에 沙津面이 있고, 보원면은 약간 아래쪽에 명칭이 없는 건물 위치에 있었다. 《광여도》에서는 이 부분이 《해동지도》처럼 바뀌어 있다. 가장 아래쪽의 夫石面은 《해동지도》에는 주기에만 있고, 지도에는 없던 것이다. 실제의 강서현 모양과 본 지도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이렇게 된 가장 원인은 첫째, 읍치 부분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확대되어 그려졌기 때문이다. 둘째, 실제로는 사각형이 아닌 강서현의 모습을 세로로 약간 긴 사각형 안에 그렸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위쪽(서북)의 한룡면은 위쪽으로 더 튀어나가게 그려져 있어야 실제와 비슷하다. 또한 아래쪽의 보원면 밑은 아래쪽(남)으로 길게 뻗어 있어야 한다. 이런 오류는 강서현 동남쪽에 접해 있는 대동강 구간이 상대적으로 짧게 그려지게 만든 원인이 되기도 했다고 생각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고, 정확성을 중요하게 여긴 《조선지도》의 강서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도 강서현에 접한 대동강이 실제보다 더 짧게 그려져 있어 상호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강서현 지도에는 대동강의 길이가 실제에 가깝게 상대적으로 더 길게 표현되어 있다. (이기봉)

  • 강서현(江西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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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강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강서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해동지도》와 비교하여 본 지도에는 몇 가지 달라지거나 잘못된 점이 보인다. 왼쪽 아래의 大垢鄕과 草城面 위쪽의 하천이 《해동지도》와 다르게 되어 있다. 면의 명칭에서도 閑龍面이 關龍面으로, 水川面이 永川面으로 적혀 있다. 주기에도 永川面이라 적혀 있으며, 閑龍面은 아예 빠져 있다. 이 점에서는 《광여도》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아래쪽의 普院面 자리에 沙津面이 있고, 보원면은 약간 아래쪽에 명칭이 없는 건물 위치에 있었다. 《광여도》에서는 이 부분이 《해동지도》처럼 바뀌어 있다. 가장 아래쪽의 夫石面은 《해동지도》에는 주기에만 있고, 지도에는 없던 것이다. 실제의 강서현 모양과 본 지도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이렇게 된 가장 원인은 첫째, 읍치 부분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확대되어 그려졌기 때문이다. 둘째, 실제로는 사각형이 아닌 강서현의 모습을 세로로 약간 긴 사각형 안에 그렸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위쪽(서북)의 한룡면은 위쪽으로 더 튀어나가게 그려져 있어야 실제와 비슷하다. 또한 아래쪽의 보원면 밑은 아래쪽(남)으로 길게 뻗어 있어야 한다. 이런 오류는 강서현 동남쪽에 접해 있는 대동강 구간이 상대적으로 짧게 그려지게 만든 원인이 되기도 했다고 생각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고, 정확성을 중요하게 여긴 《조선지도》의 강서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도 강서현에 접한 대동강이 실제보다 더 짧게 그려져 있어 상호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강서현 지도에는 대동강의 길이가 실제에 가깝게 상대적으로 더 길게 표현되어 있다. (이기봉)

  • 개천군(价川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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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개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개천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의 하천 표현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아래쪽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흐르는 하천이 현재의 대동강 본류이다. 왼쪽 위의 寧邊界에서 安陵界(安州界)까지 개천군은 청천강을 사이에 두고 寧邊과 경계를 맞대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이 청천강의 하천 유로가 대동강과 같은 규모로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바다인 것처럼 그려져 있다. 《광여도》에는 이렇게 바다처럼 표현한 점은 시정되었다. 하지만 2개의 실선으로 표시된 대동강과 달리 다른 지류와 마찬가지로 1개의 실선으로 그려 실제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  이런 오류는 面의 명칭 표기에도 나타나고 있다. 오른쪽의 內外面은 內東面을 잘못 옮긴 것이다. 《광여도》에는 이 점이 교정되어 있다. 주기에는 지도에 표기된 面 이외에도 여러 개가 더 기록되어 있다. 이런 面들이 지도에 표기되지 않은 이유는 《해동지도》에도 표기되지 않은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즉, 《해동지도》에 표기되지 않은 면의 위치를 비정하면서 지도를 필사한 것은 아니라고 추정된다. 이런 점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본 지도에 표시된 지명이나 건물은 읍치에 있는 것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있는 것이다. 읍치에는 《해동지도》에 3개의 건물과 명칭밖에 없었지만 본 지도에는 9개의 건물과 5개의 명칭이 적혀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읍치 부분만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개천군(价川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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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개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개천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의 하천 표현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아래쪽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흐르는 하천이 현재의 대동강 본류이다. 왼쪽 위의 寧邊界에서 安陵界(安州界)까지 개천군은 청천강을 사이에 두고 寧邊과 경계를 맞대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이 청천강의 하천 유로가 대동강과 같은 규모로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바다인 것처럼 그려져 있다. 《광여도》에는 이렇게 바다처럼 표현한 점은 시정되었다. 하지만 2개의 실선으로 표시된 대동강과 달리 다른 지류와 마찬가지로 1개의 실선으로 그려 실제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  이런 오류는 面의 명칭 표기에도 나타나고 있다. 오른쪽의 內外面은 內東面을 잘못 옮긴 것이다. 《광여도》에는 이 점이 교정되어 있다. 주기에는 지도에 표기된 面 이외에도 여러 개가 더 기록되어 있다. 이런 面들이 지도에 표기되지 않은 이유는 《해동지도》에도 표기되지 않은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즉, 《해동지도》에 표기되지 않은 면의 위치를 비정하면서 지도를 필사한 것은 아니라고 추정된다. 이런 점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본 지도에 표시된 지명이나 건물은 읍치에 있는 것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있는 것이다. 읍치에는 《해동지도》에 3개의 건물과 명칭밖에 없었지만 본 지도에는 9개의 건물과 5개의 명칭이 적혀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읍치 부분만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곽산군(郭山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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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곽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곽산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가장 다른 점은 읍치와 雲興舘에 건물과 명칭이 추가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외의 지명 중 《해동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은 없기 때문에 두 지역의 정보 표시에서만 다른 자료를 참고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와 비교하여 달라진 지명의 예로 읍치 위쪽의 釰隱이 있다. 《해동지도》에는 劒隱山으로 되어 있던 것으로 본 지도만으로는 산을 지칭하는 것인지 분명하게 이해하기 어렵다. 읍치 아래쪽의 通塵山은 《해동지도》에 通慶山으로 나오는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잘못 적은 것이 아닌가 한다. 오른쪽 아래의 龜城塩田은 이곳에 있던 龜城의 월경지인 塩里面을 의미한다. 《해동지도》에는 龜城塩里로 올바르게 적혀 있는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염리면이란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임의적으로 바꾼 것이 아닌가 한다. 《광여도》에는 앞의 2개는 그대로 되어 있고, 구성염전은 구성염리로 교정하였다. 주기에 있지만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면으로 東面이 있다. 이 점은 《해동지도》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 《해동지도》의 것을 그대로 필사할 뿐 面의 위치를 새롭게 비정하는 등의 일은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고을의 전체 모습은 실제와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고을의 실제 모습 자체가 세로로 약간 긴 사각형 안에 그려도 크게 왜곡되지 않는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기봉)

  • 곽산군(郭山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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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곽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곽산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가장 다른 점은 읍치와 雲興舘에 건물과 명칭이 추가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외의 지명 중 《해동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은 없기 때문에 두 지역의 정보 표시에서만 다른 자료를 참고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와 비교하여 달라진 지명의 예로 읍치 위쪽의 釰隱이 있다. 《해동지도》에는 劒隱山으로 되어 있던 것으로 본 지도만으로는 산을 지칭하는 것인지 분명하게 이해하기 어렵다. 읍치 아래쪽의 通塵山은 《해동지도》에 通慶山으로 나오는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잘못 적은 것이 아닌가 한다. 오른쪽 아래의 龜城塩田은 이곳에 있던 龜城의 월경지인 塩里面을 의미한다. 《해동지도》에는 龜城塩里로 올바르게 적혀 있는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염리면이란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임의적으로 바꾼 것이 아닌가 한다. 《광여도》에는 앞의 2개는 그대로 되어 있고, 구성염전은 구성염리로 교정하였다. 주기에 있지만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면으로 東面이 있다. 이 점은 《해동지도》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 《해동지도》의 것을 그대로 필사할 뿐 面의 위치를 새롭게 비정하는 등의 일은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고을의 전체 모습은 실제와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고을의 실제 모습 자체가 세로로 약간 긴 사각형 안에 그려도 크게 왜곡되지 않는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기봉)

  • 구성부(龜城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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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구성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이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구성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생략된 지명이 많고, 몇몇 부분에서는 다르게 표현된 것도 있다. 읍성이 《해동지도》에는 지형을 이용해 축조되었음이 잘 나타나 있지만 본 지도에는 그런 사실이 생략되어 있다. 《광여도》에서는 이 점이 《해동지도》처럼 일부 시정되었지만 완전하지는 않다. 《해동지도》에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가 추가되어 있다. 하지만 읍치 아래쪽의 西山面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 않고, 아래쪽에는 屯山面이 北屯面으로 기록되어 있다. 물론 《해동지도》에 표시된 屯山面 역시 주기에는 屯田面으로 되어 있다. 아울러 그 왼쪽에 있는 方古介面이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광여도》에는 서산면에 노란색 사각형을 표시한 것 이외에는 본 지도와 동일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오른쪽의 하천은 현재 대령강의 지류인 천방강 유역이고, 왼쪽은 압록강의 지류인 삼교천의 상류이다. 비록 회화식으로 그려 위치나 면적, 그리고 거리에서의 오류는 있지만 물줄기의 흐름은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구성부(龜城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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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구성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이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구성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생략된 지명이 많고, 몇몇 부분에서는 다르게 표현된 것도 있다. 읍성이 《해동지도》에는 지형을 이용해 축조되었음이 잘 나타나 있지만 본 지도에는 그런 사실이 생략되어 있다. 《광여도》에서는 이 점이 《해동지도》처럼 일부 시정되었지만 완전하지는 않다. 《해동지도》에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가 추가되어 있다. 하지만 읍치 아래쪽의 西山面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 않고, 아래쪽에는 屯山面이 北屯面으로 기록되어 있다. 물론 《해동지도》에 표시된 屯山面 역시 주기에는 屯田面으로 되어 있다. 아울러 그 왼쪽에 있는 方古介面이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광여도》에는 서산면에 노란색 사각형을 표시한 것 이외에는 본 지도와 동일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오른쪽의 하천은 현재 대령강의 지류인 천방강 유역이고, 왼쪽은 압록강의 지류인 삼교천의 상류이다. 비록 회화식으로 그려 위치나 면적, 그리고 거리에서의 오류는 있지만 물줄기의 흐름은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덕천군(德川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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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덕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약간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덕천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읍치에 舘舍, 衙舍, 鄕校 3개의 정보만 수록되어 있다. 반면에 본 지도에는 건물의 수도 11개이고, 명칭도 6개나 적혀 있다. 읍치 이외의 지명 중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지 않은 것이 없다. 이런 사실을 고려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읍치 부분만 다른 자료를 참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읍치에는 鄕校가 2개 표시되어 있는데, 《광여도》에는 訓練 왼쪽의 것이 鄕廳으로 교정되어 있다. 위쪽에는 寧邊界가 寧越界로 잘못 적혀 있다. 본 지도에는 본 지도책의 다른 군현 지도에 대부분 적혀 있는 面이 생략되어 있다. 이것은 본 지도가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동지도》 자체에 面이 표기되어 있지 않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오른쪽 위의 熙川界에서 들어와 아래쪽 順川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대동강 본류이다. 본 지도에는 대동강의 지류에 대한 표기에서 크게 2개의 잘못을 범하고 있다. 첫째, 오른쪽의 孟山界에서 현재의 맹산강이 흘러들어오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본 고을 안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둘째, 왼쪽의 价川界에서 대동강의 지류가 흘러오는 것처럼 그려져 있지만 실제로 그런 지류는 없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덕천 지도, 김정호의 《동여도》와 비교해 보면 이런 오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해동지도》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어 필사 시 《해동지도》의 오류를 꼼꼼하게 점검하면서 필사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기타 아래쪽에 順川界가 적혀 있는 것은 이곳에 順川의 월경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 덕천군(德川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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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덕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약간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덕천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읍치에 舘舍, 衙舍, 鄕校 3개의 정보만 수록되어 있다. 반면에 본 지도에는 건물의 수도 11개이고, 명칭도 6개나 적혀 있다. 읍치 이외의 지명 중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지 않은 것이 없다. 이런 사실을 고려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읍치 부분만 다른 자료를 참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읍치에는 鄕校가 2개 표시되어 있는데, 《광여도》에는 訓練 왼쪽의 것이 鄕廳으로 교정되어 있다. 위쪽에는 寧邊界가 寧越界로 잘못 적혀 있다. 본 지도에는 본 지도책의 다른 군현 지도에 대부분 적혀 있는 面이 생략되어 있다. 이것은 본 지도가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동지도》 자체에 面이 표기되어 있지 않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오른쪽 위의 熙川界에서 들어와 아래쪽 順川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대동강 본류이다. 본 지도에는 대동강의 지류에 대한 표기에서 크게 2개의 잘못을 범하고 있다. 첫째, 오른쪽의 孟山界에서 현재의 맹산강이 흘러들어오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본 고을 안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둘째, 왼쪽의 价川界에서 대동강의 지류가 흘러오는 것처럼 그려져 있지만 실제로 그런 지류는 없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덕천 지도, 김정호의 《동여도》와 비교해 보면 이런 오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해동지도》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어 필사 시 《해동지도》의 오류를 꼼꼼하게 점검하면서 필사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기타 아래쪽에 順川界가 적혀 있는 것은 이곳에 順川의 월경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 맹산현(孟山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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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맹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맹산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는 서북쪽을 위로 향해 그린 반면 본 지도는 동남쪽을 위로 배치하였다. 왼쪽 위의 陽德界에서 발원하여 아래쪽의 德川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 대동강의 지류인 맹산강이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맹산강의 상류와 하류를 구분할 수 없도록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 상류와 하류가 분명히 구별되도록 그려져 있던 것에 비하면 본 지도의 필사 시 하천에 대한 충분한 인식을 하지 못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광여도》에는 《해동지도》만큼은 못하지만 상류와 하류를 구분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읍치 지역을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해서 그렸기 때문에 실제에 대한 왜곡 현상이 나타났다. 맹산강을 중심으로 실제로는 고을의 동쪽인 왼쪽 부분이 서쪽인 오른쪽 부분보다 훨씬 넓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는 정반대로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서쪽에 있었던 읍치 지역을 확대하여 그렸기 때문이다. 왼쪽 위에는 定平界가 보이고 있는데, 맹산현은 정평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다. 이런 오류는 《해동지도》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어 이런 계통 지도의 최초 제작자가 정보를 잘못 인식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맹산 지도나 김정호의 《동여도》에는 이 부분이 사실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맹산현(孟山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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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맹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맹산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는 서북쪽을 위로 향해 그린 반면 본 지도는 동남쪽을 위로 배치하였다. 왼쪽 위의 陽德界에서 발원하여 아래쪽의 德川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 대동강의 지류인 맹산강이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맹산강의 상류와 하류를 구분할 수 없도록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 상류와 하류가 분명히 구별되도록 그려져 있던 것에 비하면 본 지도의 필사 시 하천에 대한 충분한 인식을 하지 못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광여도》에는 《해동지도》만큼은 못하지만 상류와 하류를 구분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읍치 지역을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해서 그렸기 때문에 실제에 대한 왜곡 현상이 나타났다. 맹산강을 중심으로 실제로는 고을의 동쪽인 왼쪽 부분이 서쪽인 오른쪽 부분보다 훨씬 넓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는 정반대로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서쪽에 있었던 읍치 지역을 확대하여 그렸기 때문이다. 왼쪽 위에는 定平界가 보이고 있는데, 맹산현은 정평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다. 이런 오류는 《해동지도》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어 이런 계통 지도의 최초 제작자가 정보를 잘못 인식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맹산 지도나 김정호의 《동여도》에는 이 부분이 사실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박천군(博川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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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박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박천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몇 가지 달라진 점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오른쪽과 위쪽에 적혀 있는 寧越界는 《해동지도》의 寧邊界를 잘못 옮긴 것이다. 《광여도》에는 이 부분이 올바르게 적혀 있다. 아래쪽 望毛老 아래쪽이 《해동지도》에는 반도처럼 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는 잘려 있다. 이것은 《해동지도》보다 세로의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종이 위에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오른쪽의 淸川江 본류가 竝溫山烽 아래쪽 부분에서 오른쪽으로부터 흘러들어오는 모습이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광여도》에는 이 부분이 《해동지도》와 동일하게 그려져 있다. 읍치에 《해동지도》에 없던 訓練 건물이 있고, 《해동지도》에 邑倉으로 되어 있던 것이 倉으로 바뀌어 있다. 《광여도》에는 본 지도처럼 訓練 건물이 있지만 倉이 《해동지도》처럼 邑倉으로 바뀌어 있다. 아래쪽의 古城鎭에는 《해동지도》보다 건물이 1개 더 그려져 있고, 鎭舍는 없고 舘舍가 나온다. 《광여도》에는 舘舍와 鎭舍가 동시에 적혀 있다. 그 오른쪽의 黑飛嶺은 《해동지도》의 黑飛頉을 잘못 옮긴 것이다. 《광여도》에는 《해동지도》처럼 흑비탈로 적혀 있다. 이런 부분들을 종합해 보면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참조하여 필사했지만 몇몇 부분에서 변화를 주었다. 《광여도》는 전체적인 구도에서 본 지도를 참조로 필사했지만 《해동지도》의 내용도 참조하여 본 지도의 오류를 교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박천군 지역은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평야임에도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마치 높은 산줄기가 이어진 고을로 착각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이기봉)

  • 박천군(博川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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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박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박천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몇 가지 달라진 점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오른쪽과 위쪽에 적혀 있는 寧越界는 《해동지도》의 寧邊界를 잘못 옮긴 것이다. 《광여도》에는 이 부분이 올바르게 적혀 있다. 아래쪽 望毛老 아래쪽이 《해동지도》에는 반도처럼 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는 잘려 있다. 이것은 《해동지도》보다 세로의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종이 위에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오른쪽의 淸川江 본류가 竝溫山烽 아래쪽 부분에서 오른쪽으로부터 흘러들어오는 모습이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광여도》에는 이 부분이 《해동지도》와 동일하게 그려져 있다. 읍치에 《해동지도》에 없던 訓練 건물이 있고, 《해동지도》에 邑倉으로 되어 있던 것이 倉으로 바뀌어 있다. 《광여도》에는 본 지도처럼 訓練 건물이 있지만 倉이 《해동지도》처럼 邑倉으로 바뀌어 있다. 아래쪽의 古城鎭에는 《해동지도》보다 건물이 1개 더 그려져 있고, 鎭舍는 없고 舘舍가 나온다. 《광여도》에는 舘舍와 鎭舍가 동시에 적혀 있다. 그 오른쪽의 黑飛嶺은 《해동지도》의 黑飛頉을 잘못 옮긴 것이다. 《광여도》에는 《해동지도》처럼 흑비탈로 적혀 있다. 이런 부분들을 종합해 보면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참조하여 필사했지만 몇몇 부분에서 변화를 주었다. 《광여도》는 전체적인 구도에서 본 지도를 참조로 필사했지만 《해동지도》의 내용도 참조하여 본 지도의 오류를 교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박천군 지역은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평야임에도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마치 높은 산줄기가 이어진 고을로 착각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이기봉)

  • 벽동군(碧潼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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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벽동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벽동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비해 몇 가지의 차이가 있다. 우선 도로와 각 지점까지의 거리는 모두 생략되어 있고, 지명 역시 많이 누락되었다. 지명 중 面은 노란색 사각형을 그리면서까지 표현하였기 때문에 南倉 부근에 있던 南面이 생략된 것은 필사 시의 실수로 생각된다. 이러한 오류는 《광여도》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본 지도는 동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아래쪽의 하천이 현재의 압록강 본류이고, 왼쪽의 하천이 그 지류인 동건강이다. 《해동지도》에는 압록강이 왼쪽 아래 방향에서 흘러 들어와 동건강을 합류시켜 오른쪽으로 빠져나가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본 지도에는 동건강과 압록강의 합류 모습을 그리지 않아 동건강이 압록강 본류인 것처럼 표현할 수 있게 하였다. 《광여도》에서는 압록강 본류와 동건강이 합류되는 것으로 교정되어 있다. 벽동군 전체의 모습은 남동쪽 끝을 정점으로 한 삼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러나 본 지도는 벽동군의 모습을 사각형으로 그리고 있다. 이것은 사각형 모양의 종이에 맞추어 지도를 그렸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에 따라 점점 좁아지는 남동쪽(위)의 하천들이 대부분 北流함에도 東流하는 것처럼 표현되었다. 아래쪽 하천들의 유로는 상대적으로 정확하게 그려진 편이다. (이기봉)

  • 벽동군(碧潼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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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벽동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벽동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비해 몇 가지의 차이가 있다. 우선 도로와 각 지점까지의 거리는 모두 생략되어 있고, 지명 역시 많이 누락되었다. 지명 중 面은 노란색 사각형을 그리면서까지 표현하였기 때문에 南倉 부근에 있던 南面이 생략된 것은 필사 시의 실수로 생각된다. 이러한 오류는 《광여도》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본 지도는 동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아래쪽의 하천이 현재의 압록강 본류이고, 왼쪽의 하천이 그 지류인 동건강이다. 《해동지도》에는 압록강이 왼쪽 아래 방향에서 흘러 들어와 동건강을 합류시켜 오른쪽으로 빠져나가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본 지도에는 동건강과 압록강의 합류 모습을 그리지 않아 동건강이 압록강 본류인 것처럼 표현할 수 있게 하였다. 《광여도》에서는 압록강 본류와 동건강이 합류되는 것으로 교정되어 있다. 벽동군 전체의 모습은 남동쪽 끝을 정점으로 한 삼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러나 본 지도는 벽동군의 모습을 사각형으로 그리고 있다. 이것은 사각형 모양의 종이에 맞추어 지도를 그렸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에 따라 점점 좁아지는 남동쪽(위)의 하천들이 대부분 北流함에도 東流하는 것처럼 표현되었다. 아래쪽 하천들의 유로는 상대적으로 정확하게 그려진 편이다. (이기봉)

  • 삭주부(朔州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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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삭주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를 보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삭주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달라지거나 잘못 표기된 경우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해동지도》에 비해 세로 부분이 더 짧아졌다. 이것은 본 지도책 전체가 동일한 크기의 종이 위에 그렸기 때문에 그 크기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 지명의 수가 《해동지도》보다 더 적게 기록되었을 뿐만 아니라 烽燧의 경우 명칭은 적지 않고 봉수라는 사실만 간단하게 표시하였다. 읍치 왼쪽의 향교 밑에 표시된 關門城도 《해동지도》에는 향교 위쪽에 있었다. 잘못 기록한 대표적인 지명으로는 아래쪽에 仇寧鎭이 仇寧嶺으로, 위쪽에서는 幕嶺鎭이 幕鎭岺으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 《광여도》에서는 향교 부근의 관문성은 아예 생략되어 있고, 구령진과 막령진은 교정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글자로만 기록되어 있던 面이 본 지도에서는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위쪽의 大朔州 부근에 있었던 白呂字面이 빠져 있으며, 《광여도》에도 이 점은 동일하게 나타나 있다. 삭주부는 남북으로 긴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본 지도에서는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아래쪽 왼쪽의 昌城界에서 흘러와 오른쪽 義州界로 빠져나가는 것이 압록강 본류이다. 위쪽의 대삭주는 현재의 대령강 상류 유역에 걸쳐 있다. (이기봉)

  • 삭주부(朔州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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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삭주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를 보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삭주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달라지거나 잘못 표기된 경우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해동지도》에 비해 세로 부분이 더 짧아졌다. 이것은 본 지도책 전체가 동일한 크기의 종이 위에 그렸기 때문에 그 크기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 지명의 수가 《해동지도》보다 더 적게 기록되었을 뿐만 아니라 烽燧의 경우 명칭은 적지 않고 봉수라는 사실만 간단하게 표시하였다. 읍치 왼쪽의 향교 밑에 표시된 關門城도 《해동지도》에는 향교 위쪽에 있었다. 잘못 기록한 대표적인 지명으로는 아래쪽에 仇寧鎭이 仇寧嶺으로, 위쪽에서는 幕嶺鎭이 幕鎭岺으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 《광여도》에서는 향교 부근의 관문성은 아예 생략되어 있고, 구령진과 막령진은 교정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글자로만 기록되어 있던 面이 본 지도에서는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위쪽의 大朔州 부근에 있었던 白呂字面이 빠져 있으며, 《광여도》에도 이 점은 동일하게 나타나 있다. 삭주부는 남북으로 긴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본 지도에서는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아래쪽 왼쪽의 昌城界에서 흘러와 오른쪽 義州界로 빠져나가는 것이 압록강 본류이다. 위쪽의 대삭주는 현재의 대령강 상류 유역에 걸쳐 있다. (이기봉)

  • 삼등현(三登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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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삼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삼등현 지도를 필사한 것이라 생각된다. 지도에는 西境面이라 적혀 있지만 주기에는 西面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점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광여도》 역시 다르지 않다. 또한 읍치 이외의 지명들은 모두 《해동지도》에 나오는 것이다. 다만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의 정보가 훨씬 많아졌다. 이를 통해 볼 때 일반적으로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읍치 지역만큼은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가 남북보다는 동서를 길게 그린 반면 본 지도는 남북을 동서보다 길게 그렸다. 그 영향으로 읍치 왼쪽의 하천이 상대적으로 길게 그려졌다. 또한 古丁洞面이 있는 하천은 동서 방향에서 남북 방향으로 유로가 바뀌어 표현되었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 잘못된 것이 있다. 오른쪽 아래에는 陽德界가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로 삼등현은 양덕현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았다. 또한 왼쪽에 祥原界가 표시되어 있는데, 실제로 삼등현은 아래쪽 綾城江(현재의 남강)을 경계로 상원군과 경계를 맞대고 있었을 뿐이다. 이런 오류는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광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져 있다. 이런 종류의 지도를 최초로 제작한 사람이 삼등현의 경계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삼등현(三登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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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삼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삼등현 지도를 필사한 것이라 생각된다. 지도에는 西境面이라 적혀 있지만 주기에는 西面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점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광여도》 역시 다르지 않다. 또한 읍치 이외의 지명들은 모두 《해동지도》에 나오는 것이다. 다만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의 정보가 훨씬 많아졌다. 이를 통해 볼 때 일반적으로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읍치 지역만큼은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가 남북보다는 동서를 길게 그린 반면 본 지도는 남북을 동서보다 길게 그렸다. 그 영향으로 읍치 왼쪽의 하천이 상대적으로 길게 그려졌다. 또한 古丁洞面이 있는 하천은 동서 방향에서 남북 방향으로 유로가 바뀌어 표현되었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 잘못된 것이 있다. 오른쪽 아래에는 陽德界가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로 삼등현은 양덕현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았다. 또한 왼쪽에 祥原界가 표시되어 있는데, 실제로 삼등현은 아래쪽 綾城江(현재의 남강)을 경계로 상원군과 경계를 맞대고 있었을 뿐이다. 이런 오류는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광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져 있다. 이런 종류의 지도를 최초로 제작한 사람이 삼등현의 경계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삼화부(三和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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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삼화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차이가 나지만 하천의 유로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읍치와 廣梁鎭만은 《해동지도》보다 건물이 더 많이 표시되어 있고, 鄕廳과 倉은 《해동지도》에 없는 것이다. 이를 통해 볼 때 전반적으로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읍치와 광량진에서만큼은 다른 자료도 참조한 것으로 생각된다. 표현한 정보가 많고, 본 지도의 종이 크기가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아 읍치와 광량진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다. 이로 인해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에서 서쪽 바다까지의 부분이 상대적으로 작게 묘사되었으며, 광량진 안쪽의 灣 역시 작게 묘사되었다. 읍치에서는 하천의 유로가 일부 바뀌어 표현되기도 하였다. 《해동지도》에는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에 본 지도에서는 노란색 사각형이 첨가되어 있다. 다만 왼쪽 가운데의 朴甘洞面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다. 또한 박감동면은 주기에도 동일하게 적혀 있는데, 甘朴洞面을 잘못 옮겨 적은 것이다. 《광여도》에는 이곳에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만 박감동면이란 명칭은 변경되지 않았다. 오른쪽의 東面은 東里面을 잘못 적은 것이며, 《광여도》에는 이 점이 시정되어 있다. 기타 삼화부는 1686년(숙종 12)에 縣에서 府로 승격되었다. (이기봉)

  • 삼화부(三和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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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삼화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차이가 나지만 하천의 유로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읍치와 廣梁鎭만은 《해동지도》보다 건물이 더 많이 표시되어 있고, 鄕廳과 倉은 《해동지도》에 없는 것이다. 이를 통해 볼 때 전반적으로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읍치와 광량진에서만큼은 다른 자료도 참조한 것으로 생각된다. 표현한 정보가 많고, 본 지도의 종이 크기가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아 읍치와 광량진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다. 이로 인해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에서 서쪽 바다까지의 부분이 상대적으로 작게 묘사되었으며, 광량진 안쪽의 灣 역시 작게 묘사되었다. 읍치에서는 하천의 유로가 일부 바뀌어 표현되기도 하였다. 《해동지도》에는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에 본 지도에서는 노란색 사각형이 첨가되어 있다. 다만 왼쪽 가운데의 朴甘洞面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다. 또한 박감동면은 주기에도 동일하게 적혀 있는데, 甘朴洞面을 잘못 옮겨 적은 것이다. 《광여도》에는 이곳에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만 박감동면이란 명칭은 변경되지 않았다. 오른쪽의 東面은 東里面을 잘못 적은 것이며, 《광여도》에는 이 점이 시정되어 있다. 기타 삼화부는 1686년(숙종 12)에 縣에서 府로 승격되었다. (이기봉)

  • 상원군(祥原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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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상원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과 내용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상원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가 달라진 점이 몇 가지 있다. 《해동지도》는 세로보다 가로가 긴 형태로 그렸지만 본 지도는 종이의 크기에 맞추기 위해 세로가 가로보다 더 길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는데, 상원군은 실제로 남북이 동서보다 더 긴 형태를 취하고 있다. 따라서 본 지도보다는 《해동지도》가 실제에 더 부합된다고 할 수 있다. 《해동지도》에는 읍치에 4개의 건물과 명칭이 표시되어 있을 뿐인데, 본 지도에는 8개의 건물과 7개의 명칭이 그려져 있다. 그 이외의 지명 중 《해동지도》에 나오지 않는 지명이 없어 읍치 부분에서만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추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읍치의 크기가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다. 이것은 첫째, 정보가 많이 표시되어 있기 때문이고 둘째, 《해동지도》보다 본 지도책의 크기가 훨씬 작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즉, 정보는 많고, 크기는 작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읍치를 크게 그릴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본 지도의 오류가 몇 군데 보이고 있다. 우선 《해동지도》에 읍치 아래쪽에 표기된 紅岩面이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 홍암면이 적혀 있으므로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래쪽의 三登界는 《해동지도》에 遂安界로 되어 있다. 三登縣의 영역은 대동강의 지류로 현재 남강으로 불리는 오른쪽의 能成江 건너편에만 있었다. 따라서 본 지도가 잘못된 것으로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같은 오류는 《광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어 《광여도》의 필사 역시 꼼꼼하게 점검하면서 필사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기봉)

  • 상원군(祥原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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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상원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과 내용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상원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가 달라진 점이 몇 가지 있다. 《해동지도》는 세로보다 가로가 긴 형태로 그렸지만 본 지도는 종이의 크기에 맞추기 위해 세로가 가로보다 더 길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는데, 상원군은 실제로 남북이 동서보다 더 긴 형태를 취하고 있다. 따라서 본 지도보다는 《해동지도》가 실제에 더 부합된다고 할 수 있다. 《해동지도》에는 읍치에 4개의 건물과 명칭이 표시되어 있을 뿐인데, 본 지도에는 8개의 건물과 7개의 명칭이 그려져 있다. 그 이외의 지명 중 《해동지도》에 나오지 않는 지명이 없어 읍치 부분에서만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추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읍치의 크기가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다. 이것은 첫째, 정보가 많이 표시되어 있기 때문이고 둘째, 《해동지도》보다 본 지도책의 크기가 훨씬 작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즉, 정보는 많고, 크기는 작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읍치를 크게 그릴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본 지도의 오류가 몇 군데 보이고 있다. 우선 《해동지도》에 읍치 아래쪽에 표기된 紅岩面이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 홍암면이 적혀 있으므로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래쪽의 三登界는 《해동지도》에 遂安界로 되어 있다. 三登縣의 영역은 대동강의 지류로 현재 남강으로 불리는 오른쪽의 能成江 건너편에만 있었다. 따라서 본 지도가 잘못된 것으로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같은 오류는 《광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어 《광여도》의 필사 역시 꼼꼼하게 점검하면서 필사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기봉)

  • 선천부(宣川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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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선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선천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더 크게 그려져 있다. 읍치에 있는 訓練, 鄕廳 등의 건물은 《해동지도》에는 없던 것이다. 이렇게 추가된 정보를 《해동지도》의 크기보다 훨씬 작은 종이 위에 표시하기 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더 크게 그려진 것으로 생각된다. 읍치 부분에 적혀 있는 동서남북 경계까지의 거리도 《해동지도》에 없던 것이다. 그 외에 왼쪽 아래의 水淸面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지명과 주기가 《해동지도》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面의 표시에서 일부 미숙하게 필사된 부분도 발견되고 있다. 읍치 왼쪽의 新府面에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 않은데, 《광여도》에는 교정되어 있다. 주기에 있으면서 지도에 없는 面으로는 南面이 있다. 그러나 이 南面은 《해동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표시되어 있지 않아 《해동지도》 이후의 필사 시 그 위치를 꼼꼼하게 비정하면서 그리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아래쪽(남)의 바닷가에 있는 섬들은 身彌島를 제외하면 실질적인 크기를 별로 반영하고 있지 않다. 또한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그리려고 하다보니까 해안가로부터 섬까지의 거리가 제대로 반영되어 있지 않다. 지도 전체적으로는 고을의 실제 모습과 상당히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고을의 모습 자체가 세로로 약간 긴 종이의 형태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기봉)

  • 선천부(宣川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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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선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선천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더 크게 그려져 있다. 읍치에 있는 訓練, 鄕廳 등의 건물은 《해동지도》에는 없던 것이다. 이렇게 추가된 정보를 《해동지도》의 크기보다 훨씬 작은 종이 위에 표시하기 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더 크게 그려진 것으로 생각된다. 읍치 부분에 적혀 있는 동서남북 경계까지의 거리도 《해동지도》에 없던 것이다. 그 외에 왼쪽 아래의 水淸面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지명과 주기가 《해동지도》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面의 표시에서 일부 미숙하게 필사된 부분도 발견되고 있다. 읍치 왼쪽의 新府面에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 않은데, 《광여도》에는 교정되어 있다. 주기에 있으면서 지도에 없는 面으로는 南面이 있다. 그러나 이 南面은 《해동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표시되어 있지 않아 《해동지도》 이후의 필사 시 그 위치를 꼼꼼하게 비정하면서 그리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아래쪽(남)의 바닷가에 있는 섬들은 身彌島를 제외하면 실질적인 크기를 별로 반영하고 있지 않다. 또한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그리려고 하다보니까 해안가로부터 섬까지의 거리가 제대로 반영되어 있지 않다. 지도 전체적으로는 고을의 실제 모습과 상당히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고을의 모습 자체가 세로로 약간 긴 종이의 형태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기봉)

  • 성천부(成川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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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성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성천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본 지도의 필사 시 여러 부분에서 잘못을 범하고 있다. 왼쪽 아래의 慈山界에서 들어와 아래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대동강 본류이다. 오른쪽 아래의 谷山界에서 들어와 왼쪽으로 흘러가는 하천이 대동강의 지류인 현재의 남강이다. 대동강 본류와 남강 사이에는 江東과 三登의 땅이 넓게 포진해 있지만 본 지도에는 아주 작은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와 같은 표현 방식은 본 지도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해동지도》에서부터 이루어진 것이다. 오른쪽 위의 陽德界에서 흘러와 대동강에 합류하는 하천이 비류강이다. 비류강과 대동강 본류 및 남강은 실제로 규모가 비슷하며, 《해동지도》에도 비슷한 굵기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본 지도의 필사 시 대동강과 남강을 2개의 실선으로 그리고, 비류강은 단지 1개의 실선으로만 그려 실제 사실을 착각할 수 있게 그렸다. 더 나아가 양덕계 부근의 비류강 끝을 얇아지는 형태로 그려 이곳이 발원지인 것처럼 오해할 수 있도록 그렸다. 《광여도》에서는 양덕계 부근이 발원지인 듯이 표현을 고쳤을 뿐 나머지 부분은 본 지도와 거의 동일하게 되어 있다. 지명 표기에서도 오류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을 들면 우선 위쪽의 朔面과 왼쪽 아래의 柳洞面에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다. 또한 왼쪽의 藍田面 부근에 泉谷面이 생략되어 있다. 《광여도》에서는 이 중 전자는 교정되어 있지만 후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읍치에 있는 上衙는 《해동지도》의 上部를 잘못 적은 것이다. 《광여도》에는 이것이 上部面으로 교정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해동지도》에는 위쪽에 있는 北倉 왼쪽으로 성곽 표시가 되어 있다. 본 지도에서는 성곽을 2줄의 실선으로 표시했는데, 하천과 혼돈을 일으킬 수 있는 형태로 그려져 있다. 《광여도》에서는 이것을 하천과 동일한 양식으로 그려 성곽이라는 정보의 성격이 완전히 변화되어 있다. (이기봉)

  • 성천부(成川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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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성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성천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본 지도의 필사 시 여러 부분에서 잘못을 범하고 있다. 왼쪽 아래의 慈山界에서 들어와 아래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대동강 본류이다. 오른쪽 아래의 谷山界에서 들어와 왼쪽으로 흘러가는 하천이 대동강의 지류인 현재의 남강이다. 대동강 본류와 남강 사이에는 江東과 三登의 땅이 넓게 포진해 있지만 본 지도에는 아주 작은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와 같은 표현 방식은 본 지도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해동지도》에서부터 이루어진 것이다. 오른쪽 위의 陽德界에서 흘러와 대동강에 합류하는 하천이 비류강이다. 비류강과 대동강 본류 및 남강은 실제로 규모가 비슷하며, 《해동지도》에도 비슷한 굵기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본 지도의 필사 시 대동강과 남강을 2개의 실선으로 그리고, 비류강은 단지 1개의 실선으로만 그려 실제 사실을 착각할 수 있게 그렸다. 더 나아가 양덕계 부근의 비류강 끝을 얇아지는 형태로 그려 이곳이 발원지인 것처럼 오해할 수 있도록 그렸다. 《광여도》에서는 양덕계 부근이 발원지인 듯이 표현을 고쳤을 뿐 나머지 부분은 본 지도와 거의 동일하게 되어 있다. 지명 표기에서도 오류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을 들면 우선 위쪽의 朔面과 왼쪽 아래의 柳洞面에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다. 또한 왼쪽의 藍田面 부근에 泉谷面이 생략되어 있다. 《광여도》에서는 이 중 전자는 교정되어 있지만 후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읍치에 있는 上衙는 《해동지도》의 上部를 잘못 적은 것이다. 《광여도》에는 이것이 上部面으로 교정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해동지도》에는 위쪽에 있는 北倉 왼쪽으로 성곽 표시가 되어 있다. 본 지도에서는 성곽을 2줄의 실선으로 표시했는데, 하천과 혼돈을 일으킬 수 있는 형태로 그려져 있다. 《광여도》에서는 이것을 하천과 동일한 양식으로 그려 성곽이라는 정보의 성격이 완전히 변화되어 있다. (이기봉)

  • 숙천부(肅川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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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숙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숙천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생략되거나 잘못 옮겨진 내용이 있다. 오른쪽의 曰里面은 《해동지도》에 三里面으로, 왼쪽의 平里面은 坪里面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의 주기에는 모두 《해동지도》처럼 되어 있으며, 《광여도》에도 마찬가지이다. 《해동지도》에 아래쪽 法里面 부근에 있던 釰山面이 본 지도에 생략되어 있으나 주기에는 적혀 있다.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어 본 지도에서 범한 오류가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읍성이 지세를 이용하여 축조된 모습이 잘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에는 그런 사실이 생략되었다. 《광여도》에서는 읍성의 전체적인 모양은 본 지도와 거의 동일하게 되어 있지만 지세를 이용하여 축조된 모습은 《해동지도》에 가깝다. 읍성 안의 건물과 명칭은 《해동지도》보다 증가했으며, 《광여도》에서도 동일하다. 숙천부는 남북보다 동서가 긴 고을이지만 지도에는 반대로 되어 있다. 이것은 세로로 긴 사각형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현상으로 생각된다. 이로 인해 서쪽으로 튀어나가 있어야 할 고리면, 당리면, 식리면, 평리면 등이 마치 남북으로 늘어선 것처럼 그려져 있다. 또한 동쪽에서 발원하는 하천이 마치 북쪽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기도 하다. 위쪽의 安陵界는 安州界를 의미하며, 《해동지도》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이기봉)

  • 숙천부(肅川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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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숙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숙천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생략되거나 잘못 옮겨진 내용이 있다. 오른쪽의 曰里面은 《해동지도》에 三里面으로, 왼쪽의 平里面은 坪里面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의 주기에는 모두 《해동지도》처럼 되어 있으며, 《광여도》에도 마찬가지이다. 《해동지도》에 아래쪽 法里面 부근에 있던 釰山面이 본 지도에 생략되어 있으나 주기에는 적혀 있다.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어 본 지도에서 범한 오류가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읍성이 지세를 이용하여 축조된 모습이 잘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에는 그런 사실이 생략되었다. 《광여도》에서는 읍성의 전체적인 모양은 본 지도와 거의 동일하게 되어 있지만 지세를 이용하여 축조된 모습은 《해동지도》에 가깝다. 읍성 안의 건물과 명칭은 《해동지도》보다 증가했으며, 《광여도》에서도 동일하다. 숙천부는 남북보다 동서가 긴 고을이지만 지도에는 반대로 되어 있다. 이것은 세로로 긴 사각형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현상으로 생각된다. 이로 인해 서쪽으로 튀어나가 있어야 할 고리면, 당리면, 식리면, 평리면 등이 마치 남북으로 늘어선 것처럼 그려져 있다. 또한 동쪽에서 발원하는 하천이 마치 북쪽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기도 하다. 위쪽의 安陵界는 安州界를 의미하며, 《해동지도》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이기봉)

  • 순안현(順安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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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순안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순안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몇 가지 바뀐 내용이 있다. 왼쪽의 和順面은 《해동지도》에 順和面으로, 冬春面은 冬花日面으로 나온다. 《광여도》에는 이 부분이 《해동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동춘면 이란 명칭은 본 지도 이외에도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순안 지도와 《동여도》에도 나온다. 반면에 동화일면의 경우 《해동지도》 이외에도 《광여도》,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지는 않지만 『여지도서』의 지도와 지지 부분에도 나온다. 따라서 어느 것이 맞는지 분명하지는 않다. 본 지도는 전체적으로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다른 자료도 참고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본 지도에는 나오지만 《해동지도》에는 나오지 않는 지명 중 하나로 읍치에 있는 訓練과 擺撥이 있다. 또한 《해동지도》에 읍치의 건물이 4개밖에 그려져 있지 않지만 본 지도에는 무려 11개나 된다. 왼쪽의 大船串烽도 《해동지도》에 없는 지명이다. 이런 점들은 본 지도가 《해동지도》 이외의 자료도 참조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부분이다.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되는 부분으로는 왼쪽의 鎭里面에 대한 표현이 있다. 진리면은 원래 永柔와 平壤의 경계를 넘어가 해안가에 있는 越境地이다. 《해동지도》의 경우 永柔界와 平壤界가 진리면과 순화면 사이를 가르듯이 적혀 있고, 산줄기가 이어져 있지 않아 월경지인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영유계와 평양계가 적혀 있는 방식뿐만 아니라 마치 산줄기가 이어진 것처럼 그려져 있어 진리면이 월경지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주기에는 《해동지도》를 비롯하여 다른 자료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는 擧島面이 적혀 있기도 하다. 다른 面과 달리 初境과 終境의 기록이 없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적어놓은 것이 아닌가 한다. (이기봉)

  • 순안현(順安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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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순안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순안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몇 가지 바뀐 내용이 있다. 왼쪽의 和順面은 《해동지도》에 順和面으로, 冬春面은 冬花日面으로 나온다. 《광여도》에는 이 부분이 《해동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동춘면 이란 명칭은 본 지도 이외에도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순안 지도와 《동여도》에도 나온다. 반면에 동화일면의 경우 《해동지도》 이외에도 《광여도》,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지는 않지만 『여지도서』의 지도와 지지 부분에도 나온다. 따라서 어느 것이 맞는지 분명하지는 않다. 본 지도는 전체적으로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다른 자료도 참고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본 지도에는 나오지만 《해동지도》에는 나오지 않는 지명 중 하나로 읍치에 있는 訓練과 擺撥이 있다. 또한 《해동지도》에 읍치의 건물이 4개밖에 그려져 있지 않지만 본 지도에는 무려 11개나 된다. 왼쪽의 大船串烽도 《해동지도》에 없는 지명이다. 이런 점들은 본 지도가 《해동지도》 이외의 자료도 참조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부분이다.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되는 부분으로는 왼쪽의 鎭里面에 대한 표현이 있다. 진리면은 원래 永柔와 平壤의 경계를 넘어가 해안가에 있는 越境地이다. 《해동지도》의 경우 永柔界와 平壤界가 진리면과 순화면 사이를 가르듯이 적혀 있고, 산줄기가 이어져 있지 않아 월경지인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영유계와 평양계가 적혀 있는 방식뿐만 아니라 마치 산줄기가 이어진 것처럼 그려져 있어 진리면이 월경지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주기에는 《해동지도》를 비롯하여 다른 자료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는 擧島面이 적혀 있기도 하다. 다른 面과 달리 初境과 終境의 기록이 없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적어놓은 것이 아닌가 한다. (이기봉)

  • 순천군(順川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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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순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순천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본 지도는 몇 가지 잘못을 범하고 있다. 가장 큰 잘못은 본 지도만으로는 하천의 본류와 지류, 크기 등을 이해할 수 없게 그린 점이다. 왼쪽의 德川江下流에서 흘러와 오른쪽의 殷山地 방향으로 흘러나가는 것이 현재의 대동강 본류이다. 《해동지도》에는 대동강 본류가 다른 하천보다 훨씬 굵게 그려져 있어 지류와 분명하게 구분해주고 있다. 아울러 대동강의 상류와 하류의 굵기도 약간 다르게 표현하여 구분을 쉽게 하였다. 이러한 오류는 《광여도》에서 더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광여도》에는 대부분의 하천을 1개의 실선으로 나타내었다. 다만 왼쪽의 德川江下流 부분과 오른쪽의 殷山地 부분을 2개의 실선으로 표시하여 다른 부분과 구분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런 표현은 하천의 상류와 하류를 더욱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광여도》의 필사 자 자체가 하천들 사이의 규모 차이, 대동강의 상류와 하류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더 나아가 《광여도》가 《해동지도》를 참조하지 않고 하천의 이해를 어렵게 만든 본 지도만을 필사했기 때문으로도 추정된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지 못한 면은 面의 기록에도 나타나고 있다. 위쪽에는 密田面이 田面으로, 粘石浦面이 粘伊彦面으로 나온다. 이 부분은 주기와 《광여도》에는 올바르게 되어 있다. 또한 蚕倉面이 지도에는 蚕食面으로, 주기에는 蚕舍面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 부분이 《광여도》의 지도에는 교정되어 있지만 주기에는 본 지도의 주기처럼 잘못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의 중간 아래쪽에는 殷山地가 3개 적혀 있다. 이것은 위쪽 부분과 아래쪽 부분 사이에 殷山縣이 있었기 때문이다. 읍치가 아래쪽에 있었기 때문에 위쪽은 越境地였다고 볼 수 있다. 두 지역은 실질적으로 상당히 떨어져 있었지만 일정한 크기의 종이 안에 그리기 위해 아주 가까운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기봉)

  • 순천군(順川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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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순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순천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본 지도는 몇 가지 잘못을 범하고 있다. 가장 큰 잘못은 본 지도만으로는 하천의 본류와 지류, 크기 등을 이해할 수 없게 그린 점이다. 왼쪽의 德川江下流에서 흘러와 오른쪽의 殷山地 방향으로 흘러나가는 것이 현재의 대동강 본류이다. 《해동지도》에는 대동강 본류가 다른 하천보다 훨씬 굵게 그려져 있어 지류와 분명하게 구분해주고 있다. 아울러 대동강의 상류와 하류의 굵기도 약간 다르게 표현하여 구분을 쉽게 하였다. 이러한 오류는 《광여도》에서 더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광여도》에는 대부분의 하천을 1개의 실선으로 나타내었다. 다만 왼쪽의 德川江下流 부분과 오른쪽의 殷山地 부분을 2개의 실선으로 표시하여 다른 부분과 구분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런 표현은 하천의 상류와 하류를 더욱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광여도》의 필사 자 자체가 하천들 사이의 규모 차이, 대동강의 상류와 하류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더 나아가 《광여도》가 《해동지도》를 참조하지 않고 하천의 이해를 어렵게 만든 본 지도만을 필사했기 때문으로도 추정된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지 못한 면은 面의 기록에도 나타나고 있다. 위쪽에는 密田面이 田面으로, 粘石浦面이 粘伊彦面으로 나온다. 이 부분은 주기와 《광여도》에는 올바르게 되어 있다. 또한 蚕倉面이 지도에는 蚕食面으로, 주기에는 蚕舍面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 부분이 《광여도》의 지도에는 교정되어 있지만 주기에는 본 지도의 주기처럼 잘못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의 중간 아래쪽에는 殷山地가 3개 적혀 있다. 이것은 위쪽 부분과 아래쪽 부분 사이에 殷山縣이 있었기 때문이다. 읍치가 아래쪽에 있었기 때문에 위쪽은 越境地였다고 볼 수 있다. 두 지역은 실질적으로 상당히 떨어져 있었지만 일정한 크기의 종이 안에 그리기 위해 아주 가까운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기봉)

  • 안주목(安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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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안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차이가 있지만 하천의 유로는 거의 동일한 《해동지도》의 안주목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지만 본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또한 《해동지도》는 동서를 남북보다 훨씬 길게 그렸지만 본 지도는 남북을 동서보다 길게 그렸다. 이렇게 된 이유는 본 지도가 세로로 긴 사각형의 종이에 맞게 고을의 모습을 그리려고 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고을의 실제 모습은 동서가 남북보다 긴 형태를 이루고 있어 《해동지도》가 사실에 가깝다. 동서와 남북의 길이에 대한 차이 때문에 하천의 유로에 대한 표현이 많이 달라졌다. 읍치 위쪽의 청천강은 《해동지도》에는 실제처럼 거의 西流하는 것으로 그려졌지만 본 지도는 마치 서류하다가 南流하는 것처럼 표현되었다. 오른쪽 위에 順川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은 실제로는 고을의 동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이 하천의 위치가 실제와 유사한 위치에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동북쪽에 있는 것처럼 잘못 표현되어 있다. 외쪽 아래의 老江鎭 역시 《해동지도》에는 실제와 가깝게 읍치의 서남 방향에 있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남쪽에 있는 것처럼 표시되어 있다. 面은 《해동지도》에 글씨로만 적혀 있지만 본 지도에는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가 덧붙여져 있다. 그러나 아래쪽 南面 부근에 있던 葛串面이 빠져 있다. 《광여도》에는 갈곶면이 추가되어 있다. 주기를 보면 州內面이 다른 면의 글씨 크기와 다르게 적혀 있다. 주내면은 《해동지도》에도 없던 것으로 본 지도가 제작된 이후에 언젠가 새롭게 추가된 것으로 생각된다. 《광여도》에도 주기에 주내면이 기록되어 있는데, 다른 면과 글씨체나 크기가 동일하여 후에 추가하여 기록한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이기봉)

  • 안주목(安州牧)(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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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안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차이가 있지만 하천의 유로는 거의 동일한 《해동지도》의 안주목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지만 본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또한 《해동지도》는 동서를 남북보다 훨씬 길게 그렸지만 본 지도는 남북을 동서보다 길게 그렸다. 이렇게 된 이유는 본 지도가 세로로 긴 사각형의 종이에 맞게 고을의 모습을 그리려고 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고을의 실제 모습은 동서가 남북보다 긴 형태를 이루고 있어 《해동지도》가 사실에 가깝다. 동서와 남북의 길이에 대한 차이 때문에 하천의 유로에 대한 표현이 많이 달라졌다. 읍치 위쪽의 청천강은 《해동지도》에는 실제처럼 거의 西流하는 것으로 그려졌지만 본 지도는 마치 서류하다가 南流하는 것처럼 표현되었다. 오른쪽 위에 順川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은 실제로는 고을의 동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이 하천의 위치가 실제와 유사한 위치에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동북쪽에 있는 것처럼 잘못 표현되어 있다. 외쪽 아래의 老江鎭 역시 《해동지도》에는 실제와 가깝게 읍치의 서남 방향에 있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남쪽에 있는 것처럼 표시되어 있다. 面은 《해동지도》에 글씨로만 적혀 있지만 본 지도에는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가 덧붙여져 있다. 그러나 아래쪽 南面 부근에 있던 葛串面이 빠져 있다. 《광여도》에는 갈곶면이 추가되어 있다. 주기를 보면 州內面이 다른 면의 글씨 크기와 다르게 적혀 있다. 주내면은 《해동지도》에도 없던 것으로 본 지도가 제작된 이후에 언젠가 새롭게 추가된 것으로 생각된다. 《광여도》에도 주기에 주내면이 기록되어 있는데, 다른 면과 글씨체나 크기가 동일하여 후에 추가하여 기록한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이기봉)

  • 양덕현(陽德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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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덕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양덕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 위의 吳江面에서 발원하여 왼쪽 成川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대동강의 지류인 현재의 비류강 최상류이다. 읍치 방향에서 비류강에 합류되는 하천은 현재 평원천이라 불리고 있다. 오른쪽의 溫井面 지역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가는 하천은 대동강의 지류인 현재의 남강 최상류이다. 3개 하천의 길이와 유역 면적은 실제로는 거의 비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의 내용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렇게 된 첫 번째 이유는 읍치 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확대되어 그려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읍치 지역을 흐르는 평원천 유역의 면적이 넓어지고, 상대적으로 다른 두 하천 유역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이유는 실제로는 사각형이 아니면서 동서가 남북보다 긴 양덕현의 모습을 세로(남북)가 긴 사각형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평원천 유역의 동쪽 부분이 상대적으로 매우 작게 그려지게 되었다. 이와 같은 문제점들은 《해동지도》와 《광여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에 표시된 정보의 양이 늘어났으며, 아울러 읍치 지역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읍치 이외 지역의 정보는 《해동지도》에 모두 있으며, 본 지도의 지명수가 《해동지도》의 것보다 적다. 《해동지도》에 비해 잘못 옮겨진 지명도 보이고 있다. 위쪽의 如城山은 《해동지도》에 姑城山이라 적혀 있는데, 《광여도》에도 姑城山으로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 양덕현(陽德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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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덕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양덕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 위의 吳江面에서 발원하여 왼쪽 成川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대동강의 지류인 현재의 비류강 최상류이다. 읍치 방향에서 비류강에 합류되는 하천은 현재 평원천이라 불리고 있다. 오른쪽의 溫井面 지역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가는 하천은 대동강의 지류인 현재의 남강 최상류이다. 3개 하천의 길이와 유역 면적은 실제로는 거의 비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의 내용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렇게 된 첫 번째 이유는 읍치 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확대되어 그려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읍치 지역을 흐르는 평원천 유역의 면적이 넓어지고, 상대적으로 다른 두 하천 유역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이유는 실제로는 사각형이 아니면서 동서가 남북보다 긴 양덕현의 모습을 세로(남북)가 긴 사각형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평원천 유역의 동쪽 부분이 상대적으로 매우 작게 그려지게 되었다. 이와 같은 문제점들은 《해동지도》와 《광여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에 표시된 정보의 양이 늘어났으며, 아울러 읍치 지역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읍치 이외 지역의 정보는 《해동지도》에 모두 있으며, 본 지도의 지명수가 《해동지도》의 것보다 적다. 《해동지도》에 비해 잘못 옮겨진 지명도 보이고 있다. 위쪽의 如城山은 《해동지도》에 姑城山이라 적혀 있는데, 《광여도》에도 姑城山으로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 영변부(寧邊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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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변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차이가 있지만 하천의 유로는 거의 동일한 《해동지도》의 영변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달라진 점이 많다. 우선 鐵甕山城으로 불리던 읍성의 모습이 상당히 간단하게 그려졌다. 《해동지도》에는 철옹산성이란 명칭에 걸맞게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성곽이 축조된 모습이 강조되어 있다. 《광여도》에서는 《해동지도》보다는 못하지만 본 지도보다는 지형을 이용한 성곽의 축조 모습이 더 잘 묘사되어 있다. 성곽 안의 물줄기가 밖으로 연결되는 부분이 정확히 그려져 있지 않다. 이 점은 《광여도》에서도 비슷한데, 《해동지도》에는 水口를 통해 흘러가는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읍성 안과 왼쪽의 天水鎭에 표현된 건물은 《해동지도》보다 본 지도가 훨씬 자세하다. 이 점 역시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어 관아 건물의 표현에서는 《해동지도》 이외의 자료를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된 面의 경우 아래쪽에 사각형만 그리고 명칭을 적어 넣지 않은 것이 보인다. 이 사각형이 있는 곳에는 《해동지도》와 《광여도》 모두 面이 표시되어 있지 않아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면의 명칭에서도 일부 오류가 나타나고 있다. 본 지도의 하천 유로는 《해동지도》나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오른쪽의 하천이 청천강 본류이며, 왼쪽의 하천이 그 지류인 구룡강이다. 그런데 청천강의 표현에서 큰 실수가 발견된다. 청천강은 위쪽의 熙川界에서 흘러옴에도 본 지도에는 그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구룡강 역시 雲山界에서 흘러 들어오지만 하천 끝을 얇게 하여 마치 최상류인 것처럼 착각하도록 그려져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청천강과 구룡강이 만나는 지점부터 2개의 실선으로 그리는 것을 통해 볼 때 두 하천에 대한 정보를 이해하고 있지 못했던 것 같다. 영변부의 실제 모습은 동북에서 서남으로 길게 뻗은 모양을 하고 있지만 이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영변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를 참조하면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이기봉)

  • 영변부(寧邊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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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변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차이가 있지만 하천의 유로는 거의 동일한 《해동지도》의 영변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달라진 점이 많다. 우선 鐵甕山城으로 불리던 읍성의 모습이 상당히 간단하게 그려졌다. 《해동지도》에는 철옹산성이란 명칭에 걸맞게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성곽이 축조된 모습이 강조되어 있다. 《광여도》에서는 《해동지도》보다는 못하지만 본 지도보다는 지형을 이용한 성곽의 축조 모습이 더 잘 묘사되어 있다. 성곽 안의 물줄기가 밖으로 연결되는 부분이 정확히 그려져 있지 않다. 이 점은 《광여도》에서도 비슷한데, 《해동지도》에는 水口를 통해 흘러가는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읍성 안과 왼쪽의 天水鎭에 표현된 건물은 《해동지도》보다 본 지도가 훨씬 자세하다. 이 점 역시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어 관아 건물의 표현에서는 《해동지도》 이외의 자료를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된 面의 경우 아래쪽에 사각형만 그리고 명칭을 적어 넣지 않은 것이 보인다. 이 사각형이 있는 곳에는 《해동지도》와 《광여도》 모두 面이 표시되어 있지 않아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면의 명칭에서도 일부 오류가 나타나고 있다. 본 지도의 하천 유로는 《해동지도》나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오른쪽의 하천이 청천강 본류이며, 왼쪽의 하천이 그 지류인 구룡강이다. 그런데 청천강의 표현에서 큰 실수가 발견된다. 청천강은 위쪽의 熙川界에서 흘러옴에도 본 지도에는 그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구룡강 역시 雲山界에서 흘러 들어오지만 하천 끝을 얇게 하여 마치 최상류인 것처럼 착각하도록 그려져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청천강과 구룡강이 만나는 지점부터 2개의 실선으로 그리는 것을 통해 볼 때 두 하천에 대한 정보를 이해하고 있지 못했던 것 같다. 영변부의 실제 모습은 동북에서 서남으로 길게 뻗은 모양을 하고 있지만 이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영변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를 참조하면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이기봉)

  • 영원군(寧遠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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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원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약간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영원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지만 《해동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해동지도》가 동서를 남북보다 1.5배 정도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남북을 동서보다 약간 길게 그렸다. 북쪽을 위로 하면서 세로로 약간 긴 종이 위에 영원군의 영역을 다 담으려 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영원군의 모습은 동서가 남북보다 더 길기 때문에 《해동지도》가 실제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본 지도에 나오는 대부분의 지명은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지만 읍치에는 건물과 그 명칭이 《해동지도》보다 더 많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읍치의 크기가 《해동지도》보다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더 많아진 정보와 작아진 종이 크기를 고려하여 그렸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오른쪽 위(동북)에서 발원하여 왼쪽 아래의 德川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대동강 본류이다. 읍치를 확대하였기 때문에 읍치 부근의 대동강 지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에서 가장 문제가 많은 부분 중의 하나는 면의 명칭에 대한 표기이다. 이곳에는 창고가 많이 표기되어 있는데, 그 명칭 앞에서 郡과 鎭의 글자가 적혀 있다. 여기서 郡은 영원군을 의미하고, 鎭은 지도에는 적혀 있지 않지만 오른쪽 중간에 鎭舍가 표시되어 있는 寧城鎭을 의미한다. 창고 중에 영원군의 관할과 영성진의 관할을 구분하기 위해 郡과 鎭을 붙인 것일 뿐이다. 창고의 명칭을 면의 명칭으로 사용한 경우에 본 지도의 작성자는 郡자를 붙이고 있는데 잘못된 것이다. 따라서 郡자가 붙은 면의 명칭에서는 郡자를 제외시켜야 한다. 또한 읍치 위쪽의 倉面은 古倉面으로, 영성진 위쪽의 倉面은 新倉面으로, 郡鎭面은 鎭倉面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런 혼란은 본 지도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해동지도》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광여도》에서도 이런 오류는 시정되어 있지 않다. (이기봉)

  • 영원군(寧遠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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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원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약간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영원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지만 《해동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해동지도》가 동서를 남북보다 1.5배 정도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남북을 동서보다 약간 길게 그렸다. 북쪽을 위로 하면서 세로로 약간 긴 종이 위에 영원군의 영역을 다 담으려 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영원군의 모습은 동서가 남북보다 더 길기 때문에 《해동지도》가 실제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본 지도에 나오는 대부분의 지명은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지만 읍치에는 건물과 그 명칭이 《해동지도》보다 더 많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읍치의 크기가 《해동지도》보다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더 많아진 정보와 작아진 종이 크기를 고려하여 그렸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오른쪽 위(동북)에서 발원하여 왼쪽 아래의 德川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대동강 본류이다. 읍치를 확대하였기 때문에 읍치 부근의 대동강 지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에서 가장 문제가 많은 부분 중의 하나는 면의 명칭에 대한 표기이다. 이곳에는 창고가 많이 표기되어 있는데, 그 명칭 앞에서 郡과 鎭의 글자가 적혀 있다. 여기서 郡은 영원군을 의미하고, 鎭은 지도에는 적혀 있지 않지만 오른쪽 중간에 鎭舍가 표시되어 있는 寧城鎭을 의미한다. 창고 중에 영원군의 관할과 영성진의 관할을 구분하기 위해 郡과 鎭을 붙인 것일 뿐이다. 창고의 명칭을 면의 명칭으로 사용한 경우에 본 지도의 작성자는 郡자를 붙이고 있는데 잘못된 것이다. 따라서 郡자가 붙은 면의 명칭에서는 郡자를 제외시켜야 한다. 또한 읍치 위쪽의 倉面은 古倉面으로, 영성진 위쪽의 倉面은 新倉面으로, 郡鎭面은 鎭倉面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런 혼란은 본 지도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해동지도》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광여도》에서도 이런 오류는 시정되어 있지 않다. (이기봉)

  • 영유현(永柔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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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유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과 내용에서 일부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영유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 있는 지명 중 일부가 생략되었을 뿐 대부분의 지명이 본 지도에 나타나고 있다. 옮겨 적는 과정에서 일부 잘못된 지명도 있다. 왼쪽 아래의 盆湖는 盆浦를, 蓮花面은 蓮下面을 잘못 옮긴 것이다. 《광여도》에서는 전자는 교정되지 않았지만 후자는 교정되어 있다. 하천의 표현에서도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잘못 옮긴 것이 있다. 읍치에서 흘러나가는 하천 중 紫華山 아래쪽에 표시된 것은 《해동지도》에는 그 위쪽에 그려져 있다. 이 점은 《광여도》에도 본 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아래쪽의 德池筒에 2개의 섬이 하천에 의해 둘러싸인 것처럼 표현한 것도 《해동지도》의 내용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德池筒은 둘레가 5萬尺을 넘는 저수지였는데, 1731년(영조 7)에 모두 메워 논으로 만들었다. 德池 안에 있는 鎭舍․鎭廳은 德池鎭을 의미하며 1748년(영조 23)에 폐지되었다. 《광여도》에는 《해동지도》에 없고 본 지도에만 있는 鎭倉을 표시했지만 덕지통 자체의 모습은 《해동지도》처럼 그렸다. 본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고, 읍치 지역을 상대적으로 크게 표현하였다. 아래쪽(서)에 면이 밀집되어 있는 것처럼 그려진 것은 동쪽(위)에 있는 읍치 지역이 지나치게 확대되어 그려졌기 때문이다. 영유현의 전체적인 모습은 동쪽의 남북 폭이 좁고, 서쪽은 넓다. (이기봉)

  • 영유현(永柔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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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유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과 내용에서 일부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영유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 있는 지명 중 일부가 생략되었을 뿐 대부분의 지명이 본 지도에 나타나고 있다. 옮겨 적는 과정에서 일부 잘못된 지명도 있다. 왼쪽 아래의 盆湖는 盆浦를, 蓮花面은 蓮下面을 잘못 옮긴 것이다. 《광여도》에서는 전자는 교정되지 않았지만 후자는 교정되어 있다. 하천의 표현에서도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잘못 옮긴 것이 있다. 읍치에서 흘러나가는 하천 중 紫華山 아래쪽에 표시된 것은 《해동지도》에는 그 위쪽에 그려져 있다. 이 점은 《광여도》에도 본 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아래쪽의 德池筒에 2개의 섬이 하천에 의해 둘러싸인 것처럼 표현한 것도 《해동지도》의 내용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德池筒은 둘레가 5萬尺을 넘는 저수지였는데, 1731년(영조 7)에 모두 메워 논으로 만들었다. 德池 안에 있는 鎭舍․鎭廳은 德池鎭을 의미하며 1748년(영조 23)에 폐지되었다. 《광여도》에는 《해동지도》에 없고 본 지도에만 있는 鎭倉을 표시했지만 덕지통 자체의 모습은 《해동지도》처럼 그렸다. 본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고, 읍치 지역을 상대적으로 크게 표현하였다. 아래쪽(서)에 면이 밀집되어 있는 것처럼 그려진 것은 동쪽(위)에 있는 읍치 지역이 지나치게 확대되어 그려졌기 때문이다. 영유현의 전체적인 모습은 동쪽의 남북 폭이 좁고, 서쪽은 넓다. (이기봉)

  • 용강현(龍崗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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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용강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용강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먼저 읍치 부분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기록되어 있어 읍치 부분만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첨가한 것으로 보인다. 읍치에는 鄕校가 2개 표시되어 있는데, 아래쪽의 것이 《광여도》에 鄕廳으로 교정되어 있다. 面의 명칭에서도 오류가 나타나고 있다. 오른쪽의 月連也面은 《해동지도》에 月連池面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의 주기에도 이 면의 명칭이 日蓮池面으로 잘못 적혀 있다. 《광여도》의 지도 부분에는 월연지면으로 교정되어 있지만 주기에는 본 지도처럼 잘못 기록되어 있다. 《해동지도》는 본 지도보다 상대적으로 세로가 가로보다 더 길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책처럼 세로가 약간 긴 종이 위에 그리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세로 부분이 축소된 것으로 보인다. 가로가 상대적으로 길어짐에 따라 하천의 길이 표현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본 지도는 대략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는데, 남쪽(왼쪽)으로 흐르는 하천의 길이가 《해동지도》보다 더 길게 그려져 있다. 반면에 동쪽(아래)으로 흐르는 하천은 상대적으로 짧게 그려져 있다. 왼쪽의 三和界로 연결되는 육지도 본 지도에는 폭이 좁게 그려져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상대적으로 넓게 그려져 있다. 이것 역시 세로의 폭이 좁아지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용강현의 실제 모습은 동서로 길게 누운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본 지도보다는 《해동지도》가 실제에 더 가깝게 그려졌다고 볼 수 있다. (이기봉)

  • 용강현(龍崗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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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용강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용강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먼저 읍치 부분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기록되어 있어 읍치 부분만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첨가한 것으로 보인다. 읍치에는 鄕校가 2개 표시되어 있는데, 아래쪽의 것이 《광여도》에 鄕廳으로 교정되어 있다. 面의 명칭에서도 오류가 나타나고 있다. 오른쪽의 月連也面은 《해동지도》에 月連池面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의 주기에도 이 면의 명칭이 日蓮池面으로 잘못 적혀 있다. 《광여도》의 지도 부분에는 월연지면으로 교정되어 있지만 주기에는 본 지도처럼 잘못 기록되어 있다. 《해동지도》는 본 지도보다 상대적으로 세로가 가로보다 더 길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책처럼 세로가 약간 긴 종이 위에 그리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세로 부분이 축소된 것으로 보인다. 가로가 상대적으로 길어짐에 따라 하천의 길이 표현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본 지도는 대략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는데, 남쪽(왼쪽)으로 흐르는 하천의 길이가 《해동지도》보다 더 길게 그려져 있다. 반면에 동쪽(아래)으로 흐르는 하천은 상대적으로 짧게 그려져 있다. 왼쪽의 三和界로 연결되는 육지도 본 지도에는 폭이 좁게 그려져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상대적으로 넓게 그려져 있다. 이것 역시 세로의 폭이 좁아지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용강현의 실제 모습은 동서로 길게 누운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본 지도보다는 《해동지도》가 실제에 더 가깝게 그려졌다고 볼 수 있다. (이기봉)

  • 용천부(龍川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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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용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용천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첨가되거나 변화된 것이 있다. 《해동지도》에 비해 세로보다 가로가 상대적으로 더 길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상대적으로 세로가 짧아진 종이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또한 읍치와 龍骨山城, 위쪽의 良策站이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읍치와 양책참 등에 《해동지도》에 없는 정보가 추가되었고, 상대적으로 훨씬 작은 종이 위에 많은 정보를 수록하려 했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으로 생각된다. 필사 과정에서 일부의 글자가 생략되거나 잘못된 것도 있다. 面의 명칭에서 北面을 제외하면 일괄적으로 ‘端’자가 빠져 있다. 이것은 《해동지도》에 지도에는 ‘端’가 적혀 있지만 주기에는 없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주기에는 府內面이 府川面으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한데, 《광여도》에는 이 부분이 교정되어 있다. 《해동지도》에 주기에는 있으면서 지도에는 없는 面으로 府內面, 北面, 西面, 東上面, 東下面 5개가 있다. 이 중 본 지도에는 北面만이 적혀 있으며, 《광여도》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본 지도와 《광여도》의 필사 시에 나머지 4개의 面 위치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는 동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고을의 모습은 실제와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고을 모습 자체가 세로로 약간 긴 사각형의 종이에 그려도 왜곡되지 않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아래쪽의 바다에 있는 섬들은 크기나 거리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해동지도》에는 이 지역에서 가장 큰 薪島를 제외하면 나머지 섬들의 크기나 거리가 실제를 반영하고 있지 않다. 거리가 고려되지 않은 이유는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그렸기 때문이다. 크기가 반영되지 않은 이유는 지도 제작 당시에 섬의 크기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지리지에 섬의 크기가 기록되어 있는 경우는 별로 많지 않다. (이기봉)

  • 용천부(龍川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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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용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용천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첨가되거나 변화된 것이 있다. 《해동지도》에 비해 세로보다 가로가 상대적으로 더 길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상대적으로 세로가 짧아진 종이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또한 읍치와 龍骨山城, 위쪽의 良策站이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읍치와 양책참 등에 《해동지도》에 없는 정보가 추가되었고, 상대적으로 훨씬 작은 종이 위에 많은 정보를 수록하려 했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으로 생각된다. 필사 과정에서 일부의 글자가 생략되거나 잘못된 것도 있다. 面의 명칭에서 北面을 제외하면 일괄적으로 ‘端’자가 빠져 있다. 이것은 《해동지도》에 지도에는 ‘端’가 적혀 있지만 주기에는 없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주기에는 府內面이 府川面으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한데, 《광여도》에는 이 부분이 교정되어 있다. 《해동지도》에 주기에는 있으면서 지도에는 없는 面으로 府內面, 北面, 西面, 東上面, 東下面 5개가 있다. 이 중 본 지도에는 北面만이 적혀 있으며, 《광여도》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본 지도와 《광여도》의 필사 시에 나머지 4개의 面 위치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는 동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고을의 모습은 실제와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고을 모습 자체가 세로로 약간 긴 사각형의 종이에 그려도 왜곡되지 않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아래쪽의 바다에 있는 섬들은 크기나 거리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해동지도》에는 이 지역에서 가장 큰 薪島를 제외하면 나머지 섬들의 크기나 거리가 실제를 반영하고 있지 않다. 거리가 고려되지 않은 이유는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그렸기 때문이다. 크기가 반영되지 않은 이유는 지도 제작 당시에 섬의 크기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지리지에 섬의 크기가 기록되어 있는 경우는 별로 많지 않다. (이기봉)

  • 운산군(雲山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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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운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운산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다른 점이 몇 가지 발견되고 있다. 우선 읍치와 委曲鎭에 있는 건물의 수가 《해동지도》보다 훨씬 많고, 《해동지도》에 없는 倉, 鎭舍 등의 지명이 더 적혀 있다. 이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도 읍치와 위곡진에 대한 표현에서는 다른 자료도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위곡진 오른쪽에는 발음이 같은 면의 명칭이 委谷面과 委曲面으로 적혀 있다. 《해동지도》에는 각각의 지명 위치에 委曲面과 委曲江이 기록되어 있어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광여도》에는 委谷面 자리에 委曲面을, 委曲面 자리에 古延州面을 적어 넣었다. 고연주면의 경우 그 오른쪽에 구연주창이 있기 때문에 바꾸어 넣은 것으로 생각된다. 주기에는 총 7개의 면 명칭이 적혀 있지만 본 지도에 있는 것은 잘못 적힌 1개를 제외하면 2개에 불과하다. 이것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어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했을 것으로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본 지도의 필사 시 필사 과정에서 면의 위치에 대한 비정은 스스로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광여도》에서도 고연주면을 제외하면 이 점은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기타 본 지도와 《해동지도》 및 《광여도》 모두 대령강 하구의 정주 땅에 있었던 古雲山面의 월경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실려 있지 않다. (이기봉)

  • 운산군(雲山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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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운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운산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다른 점이 몇 가지 발견되고 있다. 우선 읍치와 委曲鎭에 있는 건물의 수가 《해동지도》보다 훨씬 많고, 《해동지도》에 없는 倉, 鎭舍 등의 지명이 더 적혀 있다. 이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도 읍치와 위곡진에 대한 표현에서는 다른 자료도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위곡진 오른쪽에는 발음이 같은 면의 명칭이 委谷面과 委曲面으로 적혀 있다. 《해동지도》에는 각각의 지명 위치에 委曲面과 委曲江이 기록되어 있어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광여도》에는 委谷面 자리에 委曲面을, 委曲面 자리에 古延州面을 적어 넣었다. 고연주면의 경우 그 오른쪽에 구연주창이 있기 때문에 바꾸어 넣은 것으로 생각된다. 주기에는 총 7개의 면 명칭이 적혀 있지만 본 지도에 있는 것은 잘못 적힌 1개를 제외하면 2개에 불과하다. 이것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어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했을 것으로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본 지도의 필사 시 필사 과정에서 면의 위치에 대한 비정은 스스로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광여도》에서도 고연주면을 제외하면 이 점은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기타 본 지도와 《해동지도》 및 《광여도》 모두 대령강 하구의 정주 땅에 있었던 古雲山面의 월경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실려 있지 않다. (이기봉)

  • 위원군(渭原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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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위원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위원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보다 읍치의 건물수와 명칭이 늘어난 것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 정보는 모두 《해동지도》에도 나온다. 본 지도는 동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아래쪽의 하천이 압록강 본류이고, 왼쪽의 하천이 그 지류인 독로강이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압록강과 그 지류인 독로강이 직접 연결되어 있어 본류와 지류의 구분을 어렵게 하였다. 《해동지도》에는 압록강이 왼쪽(동북)에서 흘러들어오며, 독로강이 합류되는 형식으로 그려져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필사 과정에서 내용을 바꾼 것으로 생각된다. 《광여도》에는 압록강 본류와 지류인 독로강을 구별할 수 있도록 교정되어 있다. 지명의 표기에서도 본 지도에는 오류가 나타나고 있다. 일단 읍치 왼쪽의 西面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왼쪽에 기록되어 있는 ‘禿老江一名西江’에서의 西江 역시 《해동지도》의 兩江을 잘못 옮긴 것이다. 《광여도》에는 2개의 오류가 《해동지도》처럼 교정되어 있다. 비록 회화식으로 그렸지만 위원군 전체의 모습이나 하천의 유로 등이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위원군의 실제 모습 자체가 동남-서북 방향으로 그리면 세로로 약간 긴 사각형 모양이 되기 때문이다. (이기봉)

  • 위원군(渭原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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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위원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위원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보다 읍치의 건물수와 명칭이 늘어난 것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 정보는 모두 《해동지도》에도 나온다. 본 지도는 동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아래쪽의 하천이 압록강 본류이고, 왼쪽의 하천이 그 지류인 독로강이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압록강과 그 지류인 독로강이 직접 연결되어 있어 본류와 지류의 구분을 어렵게 하였다. 《해동지도》에는 압록강이 왼쪽(동북)에서 흘러들어오며, 독로강이 합류되는 형식으로 그려져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필사 과정에서 내용을 바꾼 것으로 생각된다. 《광여도》에는 압록강 본류와 지류인 독로강을 구별할 수 있도록 교정되어 있다. 지명의 표기에서도 본 지도에는 오류가 나타나고 있다. 일단 읍치 왼쪽의 西面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왼쪽에 기록되어 있는 ‘禿老江一名西江’에서의 西江 역시 《해동지도》의 兩江을 잘못 옮긴 것이다. 《광여도》에는 2개의 오류가 《해동지도》처럼 교정되어 있다. 비록 회화식으로 그렸지만 위원군 전체의 모습이나 하천의 유로 등이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위원군의 실제 모습 자체가 동남-서북 방향으로 그리면 세로로 약간 긴 사각형 모양이 되기 때문이다. (이기봉)

  • 은산현(殷山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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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은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은산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필사과정에서 바뀌거나 잘못된 부분이 여러 곳 있다. 우선 읍치가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래쪽에 그려져 있다. 이 때문에 오른쪽 위의 天聖山에서 발원하는 하천이 《해동지도》에 비해 길고, 좀더 서남쪽으로 기운 형태를 취하고 있다. 두 번째로 하천 유로의 일부가 잘못되어 있다. 오른쪽 위의 順川界에서 들어와 왼쪽을 휘감고 오른쪽 아래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대동강 본류이다. 그런데 본 지도에서는 順川界 부분이 대동강의 발원지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그려져 있다. 또한 《해동지도》에는 오른쪽의 順川界에서 읍치 방향으로 현재의 장선강이 흘러 들어오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본 지도에는 이 부분을 아예 생략하여 위쪽의 천성산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왼쪽 위에는 价川界에는 왼쪽으로 빠져나가거나 아니면 흘러들어오는 하천이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는 이 하천이 없으며, 無盡臺의 위치도 다르다. 왼쪽 아래에 대동강 본류와 장선강이 합류되는 지점부터 2개의 실선으로 하천을 표시하였다. 이런 표현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대동강 본류와 장선강을 본 지도의 내용처럼 은산현에서 발원한 하천 정도로 착각한 것이 아닌가 한다. 《광여도》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이 모두 교정되어 있다. 그러나 《해동지도》에서 대동강 본류와 지류를 굵기로서 분명히 표현해준 것에 비해 《광여도》에서는 동일한 굵기의 선으로 표시하였다. 위쪽에 馬山面을 馬上面으로 잘못 적는 오류도 범하고 있다. 《광여도》에서는 이 오류도 시정되어 있다. (이기봉)

  • 은산현(殷山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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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은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은산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필사과정에서 바뀌거나 잘못된 부분이 여러 곳 있다. 우선 읍치가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래쪽에 그려져 있다. 이 때문에 오른쪽 위의 天聖山에서 발원하는 하천이 《해동지도》에 비해 길고, 좀더 서남쪽으로 기운 형태를 취하고 있다. 두 번째로 하천 유로의 일부가 잘못되어 있다. 오른쪽 위의 順川界에서 들어와 왼쪽을 휘감고 오른쪽 아래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대동강 본류이다. 그런데 본 지도에서는 順川界 부분이 대동강의 발원지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그려져 있다. 또한 《해동지도》에는 오른쪽의 順川界에서 읍치 방향으로 현재의 장선강이 흘러 들어오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본 지도에는 이 부분을 아예 생략하여 위쪽의 천성산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왼쪽 위에는 价川界에는 왼쪽으로 빠져나가거나 아니면 흘러들어오는 하천이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는 이 하천이 없으며, 無盡臺의 위치도 다르다. 왼쪽 아래에 대동강 본류와 장선강이 합류되는 지점부터 2개의 실선으로 하천을 표시하였다. 이런 표현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대동강 본류와 장선강을 본 지도의 내용처럼 은산현에서 발원한 하천 정도로 착각한 것이 아닌가 한다. 《광여도》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이 모두 교정되어 있다. 그러나 《해동지도》에서 대동강 본류와 지류를 굵기로서 분명히 표현해준 것에 비해 《광여도》에서는 동일한 굵기의 선으로 표시하였다. 위쪽에 馬山面을 馬上面으로 잘못 적는 오류도 범하고 있다. 《광여도》에서는 이 오류도 시정되어 있다. (이기봉)

  • 의주부(義州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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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의주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의주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는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지만 본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또한 《해동지도》는 남북을 훨씬 길게 그렸지만 본 지도에서는 남북과 동서를 비슷하게 그렸다. 하천의 유로는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지명이 많이 생략되고 잘못 필사된 것이 많다. 《해동지도》에는 문자로만 적혀 있던 面이 본 지도에는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로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주기에는 21개의 면이 기록되어 있지만 지도에는 단지 12개만 표시되어 있다. 또한 아래쪽 枇項面과 光化面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도 않다. 《해동지도》에는 21개의 면이 모두 표시되어 있다는 점과 비교하면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필사 과정에서 많이 빠뜨렸다고 볼 수 있다. 《광여도》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지 않은 면이 없다. 그러나 본 지도에 彌羅山面 1개만 추가하여 13개만이 표기되어 있어 역시 꼼꼼하게 검토하며 필사한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아래쪽의 於骨山은 松骨山을, 獜川鎭은 獜山鎭을 잘못 옮긴 것이며, 이런 지명은 이외에도 많다. 《광여도》에서는 본 지도에서 잘못 옮긴 것을 상당히 교정해 놓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정보가 추가된 곳은 읍치이다. 건물수가 늘어났고, 鄕社堂이란 지명이 추가되어 있다. 《광여도》에서는 읍치를 상대적으로 더 크게 묘사하였으며, 鄕射堂으로 바뀌어 있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했지만 여러 면에서 틀린 것이 많으며, 《광여도》는 본 지도의 문제점을 일부 개선했지만 모두 교정한 것은 아니다. (이기봉)

  • 의주부(義州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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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의주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의주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는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지만 본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또한 《해동지도》는 남북을 훨씬 길게 그렸지만 본 지도에서는 남북과 동서를 비슷하게 그렸다. 하천의 유로는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지명이 많이 생략되고 잘못 필사된 것이 많다. 《해동지도》에는 문자로만 적혀 있던 面이 본 지도에는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로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주기에는 21개의 면이 기록되어 있지만 지도에는 단지 12개만 표시되어 있다. 또한 아래쪽 枇項面과 光化面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도 않다. 《해동지도》에는 21개의 면이 모두 표시되어 있다는 점과 비교하면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필사 과정에서 많이 빠뜨렸다고 볼 수 있다. 《광여도》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지 않은 면이 없다. 그러나 본 지도에 彌羅山面 1개만 추가하여 13개만이 표기되어 있어 역시 꼼꼼하게 검토하며 필사한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아래쪽의 於骨山은 松骨山을, 獜川鎭은 獜山鎭을 잘못 옮긴 것이며, 이런 지명은 이외에도 많다. 《광여도》에서는 본 지도에서 잘못 옮긴 것을 상당히 교정해 놓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정보가 추가된 곳은 읍치이다. 건물수가 늘어났고, 鄕社堂이란 지명이 추가되어 있다. 《광여도》에서는 읍치를 상대적으로 더 크게 묘사하였으며, 鄕射堂으로 바뀌어 있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했지만 여러 면에서 틀린 것이 많으며, 《광여도》는 본 지도의 문제점을 일부 개선했지만 모두 교정한 것은 아니다. (이기봉)

  • 이산부(理山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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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이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이산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理山은 1724년(경종 4)에 郡에서 府로 승격된다. 《해동지도》와 본 지도의 명칭은 이산부로 되어 있어 내용적으로 1724년 이후의 상황을 반영했을 가능성이 있다. 《광여도》에는 이산군으로 되어 있어 고을 명칭만으로는 1724년 이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지도는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아래쪽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흘러가는 하천이 현재의 압록강이다. 위쪽(남)에서 발원하여 압록강으로 흘러가는 하천이 현재의 충만강이다. 본 지도는 《해동지도》와 비교하여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본 지도에서는 이산부의 읍치가 어디인지 확인하기 어렵다. 《해동지도》에는 아래쪽 가장 왼쪽의 성곽에 理山府의 명칭이 적혀 있다. 또한 《해동지도》에 위쪽의 車岺鎭 오른쪽에 표기된 車嶺面이 주기에는 나오지만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이런 문제점을 통해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두 가지의 문제점은 《광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본 지도와 《광여도》 중 어느 것이 필사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나중의 필사 역시 꼼꼼하게 검토한 것이 아님도 이해할 수 있다. 오른쪽 아래에 적혀 있는 東寧府와 元刺山城에 대한 설명은 《해동지도》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해동지도》의 이 부분이 새로 오려붙인 것이기 때문에 원래부터 없었던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기봉)

  • 이산부(理山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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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이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이산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理山은 1724년(경종 4)에 郡에서 府로 승격된다. 《해동지도》와 본 지도의 명칭은 이산부로 되어 있어 내용적으로 1724년 이후의 상황을 반영했을 가능성이 있다. 《광여도》에는 이산군으로 되어 있어 고을 명칭만으로는 1724년 이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지도는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아래쪽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흘러가는 하천이 현재의 압록강이다. 위쪽(남)에서 발원하여 압록강으로 흘러가는 하천이 현재의 충만강이다. 본 지도는 《해동지도》와 비교하여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본 지도에서는 이산부의 읍치가 어디인지 확인하기 어렵다. 《해동지도》에는 아래쪽 가장 왼쪽의 성곽에 理山府의 명칭이 적혀 있다. 또한 《해동지도》에 위쪽의 車岺鎭 오른쪽에 표기된 車嶺面이 주기에는 나오지만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이런 문제점을 통해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두 가지의 문제점은 《광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본 지도와 《광여도》 중 어느 것이 필사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나중의 필사 역시 꼼꼼하게 검토한 것이 아님도 이해할 수 있다. 오른쪽 아래에 적혀 있는 東寧府와 元刺山城에 대한 설명은 《해동지도》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해동지도》의 이 부분이 새로 오려붙인 것이기 때문에 원래부터 없었던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기봉)

  • 자산부(慈山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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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자산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자산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는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지만 《해동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또한 《해동지도》는 남북보다 동서를 길게 그렸고, 본 지도는 반대로 남북을 동서보다 길게 그렸다. 이에 따라 《해동지도》에 동서로 길게 그려진 하천이 본 지도에서는 남북으로 길게 그려지게 되었다. 자산부의 실제 모습은 본 지도처럼 남북이 더 긴 형태를 취하고 있다. 《광여도》는 본 지도와 거의 동일하게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의 정보가 자세해졌지만 慈母城의 정보는 더 소략해졌다. 읍치 이외의 정보는 모두 《해동지도》에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읍치 부분만 다른 자료를 참조한 것으로 생각된다. 필사 과정에서 잘못 필사된 곳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위쪽의 城池洞은 《해동지도》에 城洞面으로 나온다. 주기에 나오는 面 중에서 본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것은 성동면 이외에도 五灘面과 獜洞面이 있다. 오탄면은 《해동지도》에 표시되어 있어 본 지도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인탄면은 《해동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고, 주기에도 初境과 終境의 정보만 나온다. 따라서 방향이 있는 다른 자료를 참조하지 않는 한 지도 위에 표기할 수 없다. 面의 표기 내용은 《광여도》에도 본 지도와 동일하게 나오고 있다. (이기봉)

  • 자산부(慈山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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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자산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자산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는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지만 《해동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또한 《해동지도》는 남북보다 동서를 길게 그렸고, 본 지도는 반대로 남북을 동서보다 길게 그렸다. 이에 따라 《해동지도》에 동서로 길게 그려진 하천이 본 지도에서는 남북으로 길게 그려지게 되었다. 자산부의 실제 모습은 본 지도처럼 남북이 더 긴 형태를 취하고 있다. 《광여도》는 본 지도와 거의 동일하게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의 정보가 자세해졌지만 慈母城의 정보는 더 소략해졌다. 읍치 이외의 정보는 모두 《해동지도》에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읍치 부분만 다른 자료를 참조한 것으로 생각된다. 필사 과정에서 잘못 필사된 곳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위쪽의 城池洞은 《해동지도》에 城洞面으로 나온다. 주기에 나오는 面 중에서 본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것은 성동면 이외에도 五灘面과 獜洞面이 있다. 오탄면은 《해동지도》에 표시되어 있어 본 지도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인탄면은 《해동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고, 주기에도 初境과 終境의 정보만 나온다. 따라서 방향이 있는 다른 자료를 참조하지 않는 한 지도 위에 표기할 수 없다. 面의 표기 내용은 《광여도》에도 본 지도와 동일하게 나오고 있다. (이기봉)

  • 정주목(定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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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정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정주목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는 읍치가 지형을 이용해 축조되었음을 분명하게 표현하였다. 하지만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생략되었다. 《광여도》에는 지형을 이용하여 축조된 모습이 《해동지도》보다는 덜하지만 어느 정도 표현되어 있다. 읍치가 다른 지역에 비해 크게 그려졌다. 또한 읍치로부터 서쪽(왼쪽)까지의 거리는 동쪽(오른쪽)까지의 거리에 비해 4분의 1정도밖에 안되는데, 거의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축소되어 그려진 동쪽 부분에는 面이 조밀하게 기록될 수밖에 없었다. 오른쪽에 長水灘이라고 적혀 있는 하천은 실제로는 嘉山과의 경계선 역할을 하였다. 본 지도에도 嘉山界를 하천 옆에 적어놓아 이런 사실을 엿볼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경계선 밖의 부분에도 산줄기를 그려 넣어 실제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읍치에 있는 건물과 명칭을 제외하면 모든 지명이 《해동지도》에 나오는 것이다. 본 지도는 《해동지도》의 지명을 모두 필사한 것이 아니라 생략한 것도 여러 개 있다. 이 중 읍치 위쪽에 東州面이 생략된 것은 면에 노란색 사각형까지 그려 넣은 점을 고려할 때 본 지도 필사 시의 실수라고 생각된다. 이런 오류는 《광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아래쪽의 섬은 실질적인 위치나 크기를 고려하여 그린 것이 아니다. (이기봉)

  • 정주목(定州牧)(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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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정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정주목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는 읍치가 지형을 이용해 축조되었음을 분명하게 표현하였다. 하지만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생략되었다. 《광여도》에는 지형을 이용하여 축조된 모습이 《해동지도》보다는 덜하지만 어느 정도 표현되어 있다. 읍치가 다른 지역에 비해 크게 그려졌다. 또한 읍치로부터 서쪽(왼쪽)까지의 거리는 동쪽(오른쪽)까지의 거리에 비해 4분의 1정도밖에 안되는데, 거의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축소되어 그려진 동쪽 부분에는 面이 조밀하게 기록될 수밖에 없었다. 오른쪽에 長水灘이라고 적혀 있는 하천은 실제로는 嘉山과의 경계선 역할을 하였다. 본 지도에도 嘉山界를 하천 옆에 적어놓아 이런 사실을 엿볼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경계선 밖의 부분에도 산줄기를 그려 넣어 실제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읍치에 있는 건물과 명칭을 제외하면 모든 지명이 《해동지도》에 나오는 것이다. 본 지도는 《해동지도》의 지명을 모두 필사한 것이 아니라 생략한 것도 여러 개 있다. 이 중 읍치 위쪽에 東州面이 생략된 것은 면에 노란색 사각형까지 그려 넣은 점을 고려할 때 본 지도 필사 시의 실수라고 생각된다. 이런 오류는 《광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아래쪽의 섬은 실질적인 위치나 크기를 고려하여 그린 것이 아니다. (이기봉)

  • 중화부(中和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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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중화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약간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중화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몇 가지 변화가 발생하였다. 읍치에 있는 건물의 수가 훨씬 늘어났고, 표기된 지명 역시 많아졌다. 이것은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도 읍치 부분에서만큼은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첨가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많아진 읍치의 정보를 표시하기 위해 읍치 지역이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크게 그려졌다. 이로 인해 읍치 아래쪽 부분이 상대적으로 작게 그려졌다. 또한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로가 길게 그려졌다. 이에 따라 동쪽(위)에서 서쪽(아래)으로 길게 뻗은 고을의 실제 모습이 더욱더 왜곡되게 표현되었다. 이것은 하천에 대한 이해에서도 오해를 낳을 수 있게 하였다. 실제로는 하천이 위에서 아래로 즉, 西流하는 길이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즉, 北流하는 길이보다 훨씬 길다. 필사 과정에서 잘못 옮겨진 지명도 보이고 있다. 읍치 아래쪽의 羊王代面은 羊毛代面을 잘못 옮겨 쓴 것이다. 주기에는 올바르게 적혀 있으며, 《광여도》에는 교정되어 있다. 아래쪽은 바다처럼 그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대동강의 하류 부분이다. 다만 밀물 때 이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오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바다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곳에 적혀 있는 海倉이란 지명이 그런 인식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기봉)

  • 중화부(中和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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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중화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약간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중화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몇 가지 변화가 발생하였다. 읍치에 있는 건물의 수가 훨씬 늘어났고, 표기된 지명 역시 많아졌다. 이것은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도 읍치 부분에서만큼은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첨가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많아진 읍치의 정보를 표시하기 위해 읍치 지역이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크게 그려졌다. 이로 인해 읍치 아래쪽 부분이 상대적으로 작게 그려졌다. 또한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로가 길게 그려졌다. 이에 따라 동쪽(위)에서 서쪽(아래)으로 길게 뻗은 고을의 실제 모습이 더욱더 왜곡되게 표현되었다. 이것은 하천에 대한 이해에서도 오해를 낳을 수 있게 하였다. 실제로는 하천이 위에서 아래로 즉, 西流하는 길이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즉, 北流하는 길이보다 훨씬 길다. 필사 과정에서 잘못 옮겨진 지명도 보이고 있다. 읍치 아래쪽의 羊王代面은 羊毛代面을 잘못 옮겨 쓴 것이다. 주기에는 올바르게 적혀 있으며, 《광여도》에는 교정되어 있다. 아래쪽은 바다처럼 그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대동강의 하류 부분이다. 다만 밀물 때 이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오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바다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곳에 적혀 있는 海倉이란 지명이 그런 인식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기봉)

  • 증산현(甑山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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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증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증산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지명이 《해동지도》에 나오는 것이지만 왼쪽의 車踰嶺과 兎山烟臺는 《해동지도》에 없는 지명이다. 읍치의 건물수와 명칭도 《해동지도》와는 다르게 되어 있다. 이런 부분들은 《해동지도》 이외의 자료를 참고하여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읍치가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고, 고을 전체의 세로(남북) 역시 더 길게 표현되었다. 이에 따라 읍치 지역을 지나는 하천의 모습이 달라져 있다. 《해동지도》에는 南流하다가 西流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에는 거의 西南流하는 모양으로 바뀌어 있다. 지도와 주기에 동일하게 되어 있는 下防面과 上防面에서의 防이 《해동지도》의 지도와 주기에는 坊으로 되어 있다. 《광여도》에는 지도는 《해동지도》처럼, 주기는 본 지도처럼 기록되어 있다. (이기봉)

  • 증산현(甑山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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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증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증산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지명이 《해동지도》에 나오는 것이지만 왼쪽의 車踰嶺과 兎山烟臺는 《해동지도》에 없는 지명이다. 읍치의 건물수와 명칭도 《해동지도》와는 다르게 되어 있다. 이런 부분들은 《해동지도》 이외의 자료를 참고하여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읍치가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고, 고을 전체의 세로(남북) 역시 더 길게 표현되었다. 이에 따라 읍치 지역을 지나는 하천의 모습이 달라져 있다. 《해동지도》에는 南流하다가 西流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에는 거의 西南流하는 모양으로 바뀌어 있다. 지도와 주기에 동일하게 되어 있는 下防面과 上防面에서의 防이 《해동지도》의 지도와 주기에는 坊으로 되어 있다. 《광여도》에는 지도는 《해동지도》처럼, 주기는 본 지도처럼 기록되어 있다. (이기봉)

  • 창성부(昌城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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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창성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창성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몇 가지 내용이 생략되거나 다르게 필사되었다. 본 지도는 남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위쪽은 대령강의 지류인 창성강 유역이고, 아래쪽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르는 압록강 유역이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는 세로가 축소되었고, 특히 창성강 유역이 상대적으로 작게 그려졌다. 또한 두 유역을 가로지르는 산줄기 위에 《해동지도》에는 3개의 關門城이 표시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는 小防墻岺 1곳에만 그려져 있다. 압록강 변의 성곽에는 《해동지도》에 있던 城堞 표시가 사라졌다. 鄕校가 있는 읍성은 《해동지도》에 지형을 이용해 축조된 모습이 잘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에는 이런 부분이 생략되었다. 또한 아래쪽 왼쪽에 廟洞堡가 廟洞保로 적혀 있는 등 잘못 필사된 글자들도 보이고 있다. 《광여도》에서는 오자가 개선된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본 지도와 동일하다. 본 지도에는 본 책의 다른 지도와 달리 面이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려져 있지 않으며, 《광여도》에도 동일하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본 지도가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동지도》에 面이 표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주기에도 面이 大吉號里堡 끝에 3개가 적혀 있을 뿐이인데, 《해동지도》의 주기에 적혀 있는 것과 동일하다. 그러나 이 당시에 面이 3개밖에 있다고 단정 짓기 어렵다. 177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창성 지도에는 3개 이외의 面이 여러 개 등장하고 있다. (이기봉)

  • 창성부(昌城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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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창성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창성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몇 가지 내용이 생략되거나 다르게 필사되었다. 본 지도는 남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위쪽은 대령강의 지류인 창성강 유역이고, 아래쪽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르는 압록강 유역이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는 세로가 축소되었고, 특히 창성강 유역이 상대적으로 작게 그려졌다. 또한 두 유역을 가로지르는 산줄기 위에 《해동지도》에는 3개의 關門城이 표시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는 小防墻岺 1곳에만 그려져 있다. 압록강 변의 성곽에는 《해동지도》에 있던 城堞 표시가 사라졌다. 鄕校가 있는 읍성은 《해동지도》에 지형을 이용해 축조된 모습이 잘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에는 이런 부분이 생략되었다. 또한 아래쪽 왼쪽에 廟洞堡가 廟洞保로 적혀 있는 등 잘못 필사된 글자들도 보이고 있다. 《광여도》에서는 오자가 개선된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본 지도와 동일하다. 본 지도에는 본 책의 다른 지도와 달리 面이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려져 있지 않으며, 《광여도》에도 동일하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본 지도가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동지도》에 面이 표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주기에도 面이 大吉號里堡 끝에 3개가 적혀 있을 뿐이인데, 《해동지도》의 주기에 적혀 있는 것과 동일하다. 그러나 이 당시에 面이 3개밖에 있다고 단정 짓기 어렵다. 177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창성 지도에는 3개 이외의 面이 여러 개 등장하고 있다. (이기봉)

  • 철산부(鐵山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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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철산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철산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와 車輦舘에 그려진 건물의 수가 훨씬 증가하였고, 상대적으로 더 크게 그려져 있다. 또한 세로(남북)의 길이가 동서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아졌다. 이 2개의 이유 때문에 《해동지도》에는 읍치에서 해안까지의 거리가 위쪽 義州界까지보다 멀게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에서는 비슷하게 바뀌었다. 읍치 이외의 정보는 모두 《해동지도》에 나오는 것이다. 《해동지도》에 나오는 정보 중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이 있으며, 약간 바뀌어 표현된 것도 있다. 바뀐 것으로 대표적인 것이 읍치 아래쪽에 土城이라 적혀 있는 곳부터 天荒山까지 그려져 있는 하천이다. 《해동지도》에는 이것이 하천이 아니라 土城의 형태로 그려져 있다. 이 토성을 하천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해동지도》에 下惠面으로부터 아래쪽으로 이어져 있던 산줄기 역시 끊어져 있다. 이 부분은 《해동지도》의 내용이 사실에 가깝다. 《광여도》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어 《광여도》의 필사 역시 꼼꼼하게 검토하며 필사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철산부의 읍치는 1751년(영조 27)에 본 지도의 읍치에서 車輦舘으로 옮겼다가 1769년(영조 45)에 다시 원래 자리로 되돌아간다. 이러한 읍치의 위치는 《해동지도》, 《광여도》, 본 지도가 동일하게 되어 있다. 반면에 본 지도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철산 지도, 『여지도서』의 철산부 지도에는 車輦舘에 읍치가 표시되어 있다. (이기봉)

  • 철산부(鐵山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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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철산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철산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와 車輦舘에 그려진 건물의 수가 훨씬 증가하였고, 상대적으로 더 크게 그려져 있다. 또한 세로(남북)의 길이가 동서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아졌다. 이 2개의 이유 때문에 《해동지도》에는 읍치에서 해안까지의 거리가 위쪽 義州界까지보다 멀게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에서는 비슷하게 바뀌었다. 읍치 이외의 정보는 모두 《해동지도》에 나오는 것이다. 《해동지도》에 나오는 정보 중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이 있으며, 약간 바뀌어 표현된 것도 있다. 바뀐 것으로 대표적인 것이 읍치 아래쪽에 土城이라 적혀 있는 곳부터 天荒山까지 그려져 있는 하천이다. 《해동지도》에는 이것이 하천이 아니라 土城의 형태로 그려져 있다. 이 토성을 하천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해동지도》에 下惠面으로부터 아래쪽으로 이어져 있던 산줄기 역시 끊어져 있다. 이 부분은 《해동지도》의 내용이 사실에 가깝다. 《광여도》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어 《광여도》의 필사 역시 꼼꼼하게 검토하며 필사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철산부의 읍치는 1751년(영조 27)에 본 지도의 읍치에서 車輦舘으로 옮겼다가 1769년(영조 45)에 다시 원래 자리로 되돌아간다. 이러한 읍치의 위치는 《해동지도》, 《광여도》, 본 지도가 동일하게 되어 있다. 반면에 본 지도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철산 지도, 『여지도서』의 철산부 지도에는 車輦舘에 읍치가 표시되어 있다. (이기봉)

  • 태천군(泰川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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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태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태천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泰川은 1895년에 郡으로 되기까지 조선 초기부터 계속 縣으로 존재했다. 《해동지도》와 《광여도》에도 태천현으로 나오는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하여 태천군이라 기록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읍치에 衙舍, 客舍, 鄕校만이 나오지만 본 지도에는 鄕廳과 訓練, 倉 등이 첨가되어 있다. 다른 부분의 정보는 모두 《해동지도》에 나오기 때문에 읍치 부분만 다른 자료를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읍치가 비록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되어 그려져 있지만 하천의 유로나 고을 전체의 모습이 상당히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태천군 자체의 모습이 세로로 약간 긴 사각형의 모습을 띄고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 표시에서 오른쪽에 雲山界와 寧邊界가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주기에는 동쪽으로 雲山과 경계를 접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기봉)

  • 태천군(泰川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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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태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태천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泰川은 1895년에 郡으로 되기까지 조선 초기부터 계속 縣으로 존재했다. 《해동지도》와 《광여도》에도 태천현으로 나오는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하여 태천군이라 기록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읍치에 衙舍, 客舍, 鄕校만이 나오지만 본 지도에는 鄕廳과 訓練, 倉 등이 첨가되어 있다. 다른 부분의 정보는 모두 《해동지도》에 나오기 때문에 읍치 부분만 다른 자료를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읍치가 비록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되어 그려져 있지만 하천의 유로나 고을 전체의 모습이 상당히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태천군 자체의 모습이 세로로 약간 긴 사각형의 모습을 띄고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 표시에서 오른쪽에 雲山界와 寧邊界가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주기에는 동쪽으로 雲山과 경계를 접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기봉)

  • 평양(平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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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평양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책에 있는 평안도의 군현 지도가 대부분 《해동지도》의 것을 필사한 반면에 본 지도는 《해동지도》의 평양부 지도와 전혀 다르다. 《해동지도》에 있는 대부분 군현지도가 오려붙이고 있지만 평양부 지도는 그런 흔적이 없다. 또한 산지의 표현 양식과 색감도 다른 지도와 전혀 다르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해동지도》에 있는 평양부 지도는 후에 다시 삽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 지도는 원래부터 있던 《해동지도》의 평양부 지도를 필사했을 가능성이 있다. 면은 노란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는데, 주기와 비교해 보면 몇 가지 오류가 발생하고 있다. 오른쪽의 推㐚味面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 않고, 왼쪽의 乺村面 부근에는 金呂氏面이 金昌○面으로 나온다. 그 왼쪽에는 抄道面이 抄道洞으로 적혀 있기도 하다. 《광여도》에는 이런 오류가 모두 교정되어 있다. 또한 외쪽 위에 西海와의 경계선이 하천과 동일한 선으로 되어 있다. 이곳은 현재 북한 행정구역으로 평안남도 증산군과 평원군 사이의 해안가로서 西海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것이 맞다. 본 지도의 필사 시 그런 사실을 잘못 이해하여 해안선을 하천처럼 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만약 해안선이라고 인식했다면 대동강과 육지의 경계선처럼 진한 실선으로 표현했을 것이다. 《광여도》에서는 이 오류도 시정되어 있다. 평양성에서도 여러 오류가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성곽 북쪽의 普通門은 글씨 왼쪽에 있는 것이고, 그 아래의 문은 七星門이다. 《광여도》에는 이런 오류가 역시 시정되어 있으며, 본 지도보다 훨씬 정교하고 정확하게 그려져 있다. 이런 오류들을 종합해 보면 본 지도의 제작자가 이런 유형의 지도를 최초로 그린 사람이 아니라 다른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기봉)

  • 평양(平壤)(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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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평양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책에 있는 평안도의 군현 지도가 대부분 《해동지도》의 것을 필사한 반면에 본 지도는 《해동지도》의 평양부 지도와 전혀 다르다. 《해동지도》에 있는 대부분 군현지도가 오려붙이고 있지만 평양부 지도는 그런 흔적이 없다. 또한 산지의 표현 양식과 색감도 다른 지도와 전혀 다르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해동지도》에 있는 평양부 지도는 후에 다시 삽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 지도는 원래부터 있던 《해동지도》의 평양부 지도를 필사했을 가능성이 있다. 면은 노란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는데, 주기와 비교해 보면 몇 가지 오류가 발생하고 있다. 오른쪽의 推㐚味面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 않고, 왼쪽의 乺村面 부근에는 金呂氏面이 金昌○面으로 나온다. 그 왼쪽에는 抄道面이 抄道洞으로 적혀 있기도 하다. 《광여도》에는 이런 오류가 모두 교정되어 있다. 또한 외쪽 위에 西海와의 경계선이 하천과 동일한 선으로 되어 있다. 이곳은 현재 북한 행정구역으로 평안남도 증산군과 평원군 사이의 해안가로서 西海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것이 맞다. 본 지도의 필사 시 그런 사실을 잘못 이해하여 해안선을 하천처럼 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만약 해안선이라고 인식했다면 대동강과 육지의 경계선처럼 진한 실선으로 표현했을 것이다. 《광여도》에서는 이 오류도 시정되어 있다. 평양성에서도 여러 오류가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성곽 북쪽의 普通門은 글씨 왼쪽에 있는 것이고, 그 아래의 문은 七星門이다. 《광여도》에는 이런 오류가 역시 시정되어 있으며, 본 지도보다 훨씬 정교하고 정확하게 그려져 있다. 이런 오류들을 종합해 보면 본 지도의 제작자가 이런 유형의 지도를 최초로 그린 사람이 아니라 다른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기봉)

  • 폐사군(廢四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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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폐사군 지도와 하천의 유로와 수록된 정보의 양이 비슷하다. 그러나 《광여도》에 비해 본 지도는 기호의 사용이 거칠고 수록된 지명이 적은 편이다. 본 지도에는 폐사군과 鎭堡가 동일하게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다. 또한 오른쪽의 滿浦鎭과 伐登浦鎭은 노란색이라고 보기 어렵기도 하다. 江界 위쪽의 板秋는 楸坡鎭의 오기이기도 하다. 《광여도》에서는 폐사군은 분홍색 사각형으로, 鎭堡는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려 구분해주고 있다. 또한 楸坡鎭도 올바르게 표시되어 있다. 《광여도》는 본 지도에 비해 가로보다 세로의 폭이 상대적으로 넓어졌고, 慈城江 위쪽이 상대적으로 좁아졌다. 자성강 남쪽의 하천들이 상대적으로 더 심하게 위-아래를 향하게 되었고, 鎭堡의 표시가 깔끔해졌다. 본 지도에 비해 《광여도》에는 산줄기가 훨씬 많아졌다. 특히 압록강 건너에도 산줄기가 표현되어 있고, 지명 역시 약간 더 많이 표시되어 있다. 지도는 전반적으로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동쪽에서 흘러온 압록강이 북쪽을 휘감고 서쪽으로 빠져나간다. 압록강에는 오른쪽 위에 ‘江邊把守一百處’라고 적혀 있다. 파수는 현재의 국경 초소 정도에 해당된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70개가 조금 넘게 적혀 있으며, 《광여도》에는 80개 이상이 기록되어 있다. 왼쪽의 압록강 건너에 있는 皇城은 현재 고구려의 수도였던 國內城으로 밝혀져 있다. 전체적인 구도는 사실에 가까운 편이나 너무 간략하게 그려져 있다. 오른쪽 위에는 압록강이 발원하는 白頭山이 적혀 있기도 하다. 백두산은 훨씬 동쪽에 있지만 발원지라는 상징 때문에 넣은 것으로 생각된다. 평안도의 다른 지도들이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것을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나 본 지도만은 《해동지도》의 것과 다른 점이 너무 많다. (이기봉)

  • 폐사군(廢四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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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폐사군 지도와 하천의 유로와 수록된 정보의 양이 비슷하다. 그러나 《광여도》에 비해 본 지도는 기호의 사용이 거칠고 수록된 지명이 적은 편이다. 본 지도에는 폐사군과 鎭堡가 동일하게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다. 또한 오른쪽의 滿浦鎭과 伐登浦鎭은 노란색이라고 보기 어렵기도 하다. 江界 위쪽의 板秋는 楸坡鎭의 오기이기도 하다. 《광여도》에서는 폐사군은 분홍색 사각형으로, 鎭堡는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려 구분해주고 있다. 또한 楸坡鎭도 올바르게 표시되어 있다. 《광여도》는 본 지도에 비해 가로보다 세로의 폭이 상대적으로 넓어졌고, 慈城江 위쪽이 상대적으로 좁아졌다. 자성강 남쪽의 하천들이 상대적으로 더 심하게 위-아래를 향하게 되었고, 鎭堡의 표시가 깔끔해졌다. 본 지도에 비해 《광여도》에는 산줄기가 훨씬 많아졌다. 특히 압록강 건너에도 산줄기가 표현되어 있고, 지명 역시 약간 더 많이 표시되어 있다. 지도는 전반적으로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동쪽에서 흘러온 압록강이 북쪽을 휘감고 서쪽으로 빠져나간다. 압록강에는 오른쪽 위에 ‘江邊把守一百處’라고 적혀 있다. 파수는 현재의 국경 초소 정도에 해당된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70개가 조금 넘게 적혀 있으며, 《광여도》에는 80개 이상이 기록되어 있다. 왼쪽의 압록강 건너에 있는 皇城은 현재 고구려의 수도였던 國內城으로 밝혀져 있다. 전체적인 구도는 사실에 가까운 편이나 너무 간략하게 그려져 있다. 오른쪽 위에는 압록강이 발원하는 白頭山이 적혀 있기도 하다. 백두산은 훨씬 동쪽에 있지만 발원지라는 상징 때문에 넣은 것으로 생각된다. 평안도의 다른 지도들이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것을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나 본 지도만은 《해동지도》의 것과 다른 점이 너무 많다. (이기봉)

  • 함종부(咸從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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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함종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함종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咸從은 원래 縣이었는데, 1721년(경종 1)에 중전이었던 宣懿王后 魚氏의 본관 지역이라고 하여 府로 승격되었다. 따라서 본 지도와 《해동지도》는 1721년 이후의 상황을 반영했을 가능성이 높다. 《광여도》에 함종현으로 되어 있는 것은 이러한 군현의 승격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읍치 부분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도 나온다. 읍치 부분은 《해동지도》에 비해 더 많은 정보가 표시되어 있어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와 비교해 보면 다르게 되어 있는 지명이 여러 곳 보인다. 일단 오른쪽의 江田分界라고 적혀 있는 것은 江西界의 잘못이 분명하다. 《해동지도》와 《광여도》에는 이 부분이 올바르게 되어 있다. 왼쪽의 三岳島와 岩鶴은 《해동지도》에 二岳島와 鶴岩으로 되어 있다. 『여지도서』에는 《해동지도》가 맞는 것으로 되어 있다. 《광여도》에는 후자는 교정되어 있지만 전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그밖에 오른쪽 아래의 鰲面은 《해동지도》와 《광여도》에 모두 鰲山面으로 되어 있다. 함종부는 남북보다 동서가 약간 긴 형태를 취하고 있다. 본 지도는 세로(남북)가 약간 긴 종이 위에 그렸기 때문에 남북이 동서보다 더 길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함종부(咸從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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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함종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함종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咸從은 원래 縣이었는데, 1721년(경종 1)에 중전이었던 宣懿王后 魚氏의 본관 지역이라고 하여 府로 승격되었다. 따라서 본 지도와 《해동지도》는 1721년 이후의 상황을 반영했을 가능성이 높다. 《광여도》에 함종현으로 되어 있는 것은 이러한 군현의 승격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읍치 부분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도 나온다. 읍치 부분은 《해동지도》에 비해 더 많은 정보가 표시되어 있어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와 비교해 보면 다르게 되어 있는 지명이 여러 곳 보인다. 일단 오른쪽의 江田分界라고 적혀 있는 것은 江西界의 잘못이 분명하다. 《해동지도》와 《광여도》에는 이 부분이 올바르게 되어 있다. 왼쪽의 三岳島와 岩鶴은 《해동지도》에 二岳島와 鶴岩으로 되어 있다. 『여지도서』에는 《해동지도》가 맞는 것으로 되어 있다. 《광여도》에는 후자는 교정되어 있지만 전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그밖에 오른쪽 아래의 鰲面은 《해동지도》와 《광여도》에 모두 鰲山面으로 되어 있다. 함종부는 남북보다 동서가 약간 긴 형태를 취하고 있다. 본 지도는 세로(남북)가 약간 긴 종이 위에 그렸기 때문에 남북이 동서보다 더 길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희천군(熙川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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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희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희천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희천군의 실제적인 모습은 마름모(◇) 형태에 가깝다. 이것을 직사각형의 형태(□)로 그리고, 읍치를 다른 지역보다 확대해서 그리다보니까 몇 가지 왜곡이 발생하였다. 오른쪽 위의 甲峴嶺 부근에서 발원하여 왼쪽 아래의 寧邊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청천강 본류이다. 청천강 본류의 실제 유로는 대략 동북에서 서남 방향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남류하다가 읍치 부근에서 서류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또한 하천의 남쪽 부분도 북쪽 부분과 비슷한 규모임에도 아주 작게 그려져 있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 오른쪽의 寧邊界 2개는 寧遠界를 잘못 기록한 것이다. 이런 오류는 《해동지도》에서 비롯되었으며,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이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와 《광여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오른쪽의 新倉 부근에는 寧遠 방면에서 하천이 흘러오는 것처럼 그려져 있지만 잘못된 것이다. 이것 역시 《해동지도》에서 비롯된 것이며,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와 오른쪽 위의 柔院鎭 부분의 정보가 더 많아졌다. 그러나 그 이외 지역의 정보는 거의 《해동지도》에 나오는 것이다. (이기봉)

  • 희천군(熙川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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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희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희천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희천군의 실제적인 모습은 마름모(◇) 형태에 가깝다. 이것을 직사각형의 형태(□)로 그리고, 읍치를 다른 지역보다 확대해서 그리다보니까 몇 가지 왜곡이 발생하였다. 오른쪽 위의 甲峴嶺 부근에서 발원하여 왼쪽 아래의 寧邊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청천강 본류이다. 청천강 본류의 실제 유로는 대략 동북에서 서남 방향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남류하다가 읍치 부근에서 서류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또한 하천의 남쪽 부분도 북쪽 부분과 비슷한 규모임에도 아주 작게 그려져 있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 오른쪽의 寧邊界 2개는 寧遠界를 잘못 기록한 것이다. 이런 오류는 《해동지도》에서 비롯되었으며,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이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와 《광여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오른쪽의 新倉 부근에는 寧遠 방면에서 하천이 흘러오는 것처럼 그려져 있지만 잘못된 것이다. 이것 역시 《해동지도》에서 비롯된 것이며,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와 오른쪽 위의 柔院鎭 부분의 정보가 더 많아졌다. 그러나 그 이외 지역의 정보는 거의 《해동지도》에 나오는 것이다. (이기봉)

  • 경기도(京畿道)(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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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안선이나 하천의 유로 및 산줄기 등 전체적인 구도는 도성도와 마찬가지로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경기도 지도와 거의 비슷하여 상호 연관성이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주기면의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하다. 그러나 수록된 정보의 양이라는 측면에서는 《광여도》보다 축소되고 있으며, 일부 부분은 올바르게 되어 있다. 일단 축소된 내용을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모두 생략된 내용으로는 해안가에 설치되어 있던 鎭堡가 있다. 이밖에도 종6품의 察訪이 파견된 찰방역 중 良才驛이 표시되어 있지 않으며, 한성부 밑의 한강 부분에 있었던 浦口와 津渡, 烽燧 등도 많이 생략되었다. 반면에 陵墓, 書院 등은 일부를 제외하면 생략된 것이 거의 없다. 군사나 교통 관계의 정보는 주로 생략하고, 조선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정보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즉, 이 지도는 군사적 측면보다는 문화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본 지도가 올바른 측면으로는 《광여도》에서 혼란스럽게 표시되어 있던 하천의 유로가 대표적이다. 《광여도》에 아래쪽의 安城에 있는 현재의 안성천과 竹山에 있는 현재의 청미천이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그려진 것이 본 지도에는 올바르게 되어 있다. 《광여도》에 南陽의 서쪽에 하천이 남북을 가로지른 듯 그려져 있는 하천의 모습도 수정되어 있다. 표현 양식에서도 다른 측면이 있다. 이 중 본 지도가 《광여도》보다 더 혼란스러운 것은 하천의 표현 양식이다. 《광여도》에서는 한강은 두 줄의 실선으로, 나머지 하천은 한 줄의 실선으로 표시하여 구분하기가 쉬웠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모두 두 줄의 실선으로 그려 구분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長湍에서 흘러와 通津 부분에서 한강에 합류되는 하천은 현재의 임진강이다. 그런데 임진강은 북쪽의 兎山界나 동쪽의 鐵原界에서 발원하는 것이 아니라 흘러들어온다. 본 지도에서는 마치 이곳이 발원지인 것처럼 착각할 수 있게 그려져 있다. 《광여도》에서도 이 부분은 모호하게 처리되어 있다. 開城府 왼쪽의 예성강 역시 발원지를 착각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이기봉)

  • 남포현(藍浦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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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남포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남포현 지도도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비슷하다.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는데, 읍치의 산줄기가 동쪽으로부터 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읍치 지역의 풍수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해서 그렸다. 남포현의 모습에 관한 본 지도의 특징은 고을 전체가 바다 쪽으로 튀어나간 반도처럼 그렸다는 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호서지도》, 《조선지도》, ‘1872년 지방지도’ 의 남포현 지도들은 고을 전체를 반도처럼 그리지 않았다. 북쪽의 保寧, 남쪽의 庇仁과의 경계 부근이 밀물 때 바닷물이 육지 깊숙이 들어오는 만이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지도 위쪽 여백에는 남포현의 옛 명칭, 충청우도에 속해 있다는 ‘右’가 표시되어 있다. 오른쪽 여백에는 한양으로부터 5일 걸린다는 의미의 ‘五日’, 洪州 鎭管에 속해 있다는 ‘洪’, 본 지도책에 수록된 47번째 고을이라는 ‘四十七’이 표시되어 있다. 여백의 이런 내용들은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는 없던 것으로서 본 지도책의 이용자가 필요하게 여긴 추가적인 정보가 무엇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하며, 《해동지도》의 내용을 새로운 체제로 재편한 것에 불과하다. (이기봉)

  • 고창현(高敞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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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고창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유로의 표시에서 일부 차이가 나고 있다. 《광여도》에는 왼쪽의 水谷面에서 내려가는 하천이 표시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는 茂長界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고창현 지도에는 《광여도》처럼 되어 있다. 따라서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잘못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大雅面 위쪽의 하천을 2개의 실선으로 표시한 것도 《광여도》와 다른 점이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몇 개의 지류가 합해져 나가는 부분을 구분하기 위해 스스로 고안한 방법으로 생각된다. 지도에 나타난 하천은 현재 인천강이라 부르고 있으며, 일부 지류가 왼쪽의 茂長界 방면에서 흘러 들어온다. 인천강은 남쪽에서 발원하여 북류하기 때문에 본 지도는 기본적으로 북쪽을 위로 그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읍치 오른쪽을 흐르는 하천의 모습이 실제와 다르게 되어 있다. 이 하천은 현재 고창천이라고 부르는데, 대부분 동쪽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흘러간다. 川北面과 川南面의 기준이 된 ‘川’도 이 하천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천북면이 이 하천의 오른쪽에 배치된 것은 합당하지만 읍치의 동남쪽에 있는 것처럼 되어 명칭과 어울리지 않는다. 만약 고창천을 동쪽에서 발원하여 서류하는 것으로 그리면 명칭에도 합당하게 된다. 천북면은 읍치에서 보았을 때 북쪽과 동쪽 및 동북쪽에 걸쳐 있었다. 이러한 오해가 발생하게 된 이유로는 첫째,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양을 사각형에 맞추었다는 점 둘째, 읍치를 확대 과장해서 그리면서 읍치 주위의 하천이 지나치게 크게 그려졌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이기봉)

  • 거창부(居昌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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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거창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비슷하다. 거창은 1729년(영조 9)에 郡에서 府로 승격되었다가 1787년(정조 11)에 縣으로 강등되었으며, 1797년(정조 21)에 다시 府가 되었다. 따라서 본 지도는 최소한 1729년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치의 일부를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나오는 것과 동일하다. 《해동지도》에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과 驛에 각각 노란색과 황색의 사각형을 덧붙였다. 그러나 읍치 동쪽의 東部面을 東北面으로 잘못 적고, 그 오른쪽에 古毛峴面을 생략하는 오류도 범하고 있다. 지명을 실수로 생략한 흔적으로 또 예를 들면 왼쪽 위에 건물 모양만 그려져 있는 것이다. 《해동지도》에는 여기에 書院이란 명칭이 적혀 있다. 《해동지도》가 가로(동서)를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세로(남북)를 길게 그렸다. 하천의 유로나 갈라지는 모습이 본 지도와 《해동지도》가 동일하지만 전체적으로 본 지도가 남북으로 더 길게 그려져 있다. 왼쪽의 安陰界에서 들어오는 하천이 《해동지도》에는 마치 안음과의 경계선이 발원지인 것처럼 그려져 있다. 실제로는 서쪽의 안음에서 흘러오기 때문에 본 지도가 사실에 더 부합된다. (이기봉)

  • 강서현(江西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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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강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강서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해동지도》와 비교하여 본 지도에는 몇 가지 달라지거나 잘못된 점이 보인다. 왼쪽 아래의 大垢鄕과 草城面 위쪽의 하천이 《해동지도》와 다르게 되어 있다. 면의 명칭에서도 閑龍面이 關龍面으로, 水川面이 永川面으로 적혀 있다. 주기에도 永川面이라 적혀 있으며, 閑龍面은 아예 빠져 있다. 이 점에서는 《광여도》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아래쪽의 普院面 자리에 沙津面이 있고, 보원면은 약간 아래쪽에 명칭이 없는 건물 위치에 있었다. 《광여도》에서는 이 부분이 《해동지도》처럼 바뀌어 있다. 가장 아래쪽의 夫石面은 《해동지도》에는 주기에만 있고, 지도에는 없던 것이다. 실제의 강서현 모양과 본 지도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이렇게 된 가장 원인은 첫째, 읍치 부분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확대되어 그려졌기 때문이다. 둘째, 실제로는 사각형이 아닌 강서현의 모습을 세로로 약간 긴 사각형 안에 그렸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위쪽(서북)의 한룡면은 위쪽으로 더 튀어나가게 그려져 있어야 실제와 비슷하다. 또한 아래쪽의 보원면 밑은 아래쪽(남)으로 길게 뻗어 있어야 한다. 이런 오류는 강서현 동남쪽에 접해 있는 대동강 구간이 상대적으로 짧게 그려지게 만든 원인이 되기도 했다고 생각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고, 정확성을 중요하게 여긴 《조선지도》의 강서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도 강서현에 접한 대동강이 실제보다 더 짧게 그려져 있어 상호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강서현 지도에는 대동강의 길이가 실제에 가깝게 상대적으로 더 길게 표현되어 있다. (이기봉)

  • 경성부(鏡城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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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경성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전반적인 내용은 《해동지도》의 경성부 지도와 비슷하여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해동지도》의 가로 폭이 본 지도보다 더 넓은 편이다. 세로로 긴 노란색 사각형이 7개이고, 가로로 긴 노란색 사각형이 3개이다. 세로로 긴 6개의 사각형은 鎭堡를 의미하지만 立岩은 단순한 바위일 뿐 진보가 아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생각되며, 이런 실수는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보라색 사각형을 통해서도 이해될 수 있다. 《광여도》에서는 立岩에 대한 내용이 시정되어 있다. 본 지도책에서는 驛의 경우 보라색 사각형으로 표시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본 지도에서는 가로로 긴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읍치 아래쪽에 있는 吾村驛에는 노란색 사각형을 표시하지 않았다. 주기에는 吾村社가 2개 적혀 있는데 이 중 站과 같이 쓰여 있는 것은 吾村站이라고 바꾸어놓아야 한다. 지도에 오촌역이 노란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지 않은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의 주기에는 吾村站으로 되어 있고, 《광여도》의 주기에는 본 지도처럼 되어 있다. 가운데의 水康驛은 永康驛의 오기이며, 《광여도》에도 이런 잘못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한편 《광여도》에는 종6품의 찰방이 파견된 輸城驛에만 보라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다. 다른 2개의 역은 그대로 노란색으로 표시한 것으로 보아 역과 진보를 확실히 구분하여 이해한 것 같지는 않다. 위쪽의 長白山을 다른 산줄기와 달리 흰색으로 그린 것은 ‘5월이 되어서야 눈이 녹고 7월이 되면 다시 눈이 쌓인다’는 지리지의 기록을 이미지로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회화식 지도임에도 전체적인 고을의 모습이 대략 사실과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함경도
  • 갑산부(甲山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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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갑산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와 《광여도》는 기본적으로 《해동지도》의 갑산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필사 과정에서 틀린 것도 있으며, 정보의 내용을 구분하지 못한 것도 있다. 지도 위의 노란색 사각형은 《해동지도》에 읍치 이외에 건물 모양이 표시된 곳 중 鎭堡와 驛站을 바꾸어 표현한 것이다. 이 중 呼獜, 熊耳, 終浦는 역참이다. 나머지 鎭堡 표시 중 잘못된 것이 2개 발견되고 있다. 맨 위쪽의 可方 부분에는 惠山이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해동지도》에는 이 부분에 惠山과 何方金德烽 2개의 지명이 적혀 있다. 이 중 鎭의 명칭은 혜산인데 본 지도의 필사 시 何方으로 잘못 이해했으며, 더 나아가 可方으로 오기하기도 하였다. 《광여도》에서는 이 부분이 시정되어 있다. 그 아래쪽의 雲龍은 雲寵을 잘못 기록한 것이다. 이 부분은 《해동지도》에서 이미 잘못 기재되었고,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필사한 것이다. 본 지도의 주기에는 雲寵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필사 시에 조금만 검토해 봤어도 오류를 시정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광여도》에서는 이 부분도 올바르게 시정되어 있다. 위쪽의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남류하다가 왼쪽으로 흘러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압록강이다. 아래쪽에서 발원하여 북류하다가 압록강에 합류되는 하천이 현재의 허천강이다. 허천강 유역 중 黃水院이 있는 곳은 실제로는 北靑府의 영역이었다. 지도에도 終浦 아래쪽에 北靑界를 적어 넣어 이와 같은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황수원 부근에서 발원하는 부분과 그 왼쪽의 咸興界黃鐵坡에서 발원하는 부분이 실제와 다르게 되어 있다. 실제로는 황수원 부근에서 발원하는 하천이 더 길고, 발원지가 서남쪽으로 더 내려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오류가 발생한 이유는 이 하천이 발원되는 太白山의 위치가 잘못 비정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류들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고, 정확성을 추구한 《조선지도》의 북청 지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김정호의 《동여도》에서 약간 시정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이 오류가 그대로 답습되고 있다. 오른쪽 위에는 두만강의 상류 부분이 표시되어 있다. 지도에는 그 오른쪽에 茂山境이라고 되어 있지만 《조선지도》의 무산 지도나 김정호의 《동여도》를 참조해 보면 이 지역은 무산부의 땅이었다. 다만 본 지도가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동지도》가 제작될 당시에는 이곳이 갑산부 소관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본 지도책의 茂山府 지도에서 이 지역이 생략된 것도 갑산부의 영역으로 인식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해동지도》에는 갑산부와 무산부 지도 모두에 이 지역이 그려져 있다. (이기봉)

  • 갑산부(甲山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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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갑산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와 《광여도》는 기본적으로 《해동지도》의 갑산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필사 과정에서 틀린 것도 있으며, 정보의 내용을 구분하지 못한 것도 있다. 지도 위의 노란색 사각형은 《해동지도》에 읍치 이외에 건물 모양이 표시된 곳 중 鎭堡와 驛站을 바꾸어 표현한 것이다. 이 중 呼獜, 熊耳, 終浦는 역참이다. 나머지 鎭堡 표시 중 잘못된 것이 2개 발견되고 있다. 맨 위쪽의 可方 부분에는 惠山이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해동지도》에는 이 부분에 惠山과 何方金德烽 2개의 지명이 적혀 있다. 이 중 鎭의 명칭은 혜산인데 본 지도의 필사 시 何方으로 잘못 이해했으며, 더 나아가 可方으로 오기하기도 하였다. 《광여도》에서는 이 부분이 시정되어 있다. 그 아래쪽의 雲龍은 雲寵을 잘못 기록한 것이다. 이 부분은 《해동지도》에서 이미 잘못 기재되었고,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필사한 것이다. 본 지도의 주기에는 雲寵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필사 시에 조금만 검토해 봤어도 오류를 시정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광여도》에서는 이 부분도 올바르게 시정되어 있다. 위쪽의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남류하다가 왼쪽으로 흘러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압록강이다. 아래쪽에서 발원하여 북류하다가 압록강에 합류되는 하천이 현재의 허천강이다. 허천강 유역 중 黃水院이 있는 곳은 실제로는 北靑府의 영역이었다. 지도에도 終浦 아래쪽에 北靑界를 적어 넣어 이와 같은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황수원 부근에서 발원하는 부분과 그 왼쪽의 咸興界黃鐵坡에서 발원하는 부분이 실제와 다르게 되어 있다. 실제로는 황수원 부근에서 발원하는 하천이 더 길고, 발원지가 서남쪽으로 더 내려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오류가 발생한 이유는 이 하천이 발원되는 太白山의 위치가 잘못 비정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류들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고, 정확성을 추구한 《조선지도》의 북청 지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김정호의 《동여도》에서 약간 시정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이 오류가 그대로 답습되고 있다. 오른쪽 위에는 두만강의 상류 부분이 표시되어 있다. 지도에는 그 오른쪽에 茂山境이라고 되어 있지만 《조선지도》의 무산 지도나 김정호의 《동여도》를 참조해 보면 이 지역은 무산부의 땅이었다. 다만 본 지도가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동지도》가 제작될 당시에는 이곳이 갑산부 소관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본 지도책의 茂山府 지도에서 이 지역이 생략된 것도 갑산부의 영역으로 인식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해동지도》에는 갑산부와 무산부 지도 모두에 이 지역이 그려져 있다. (이기봉)

  • 경성부(鏡城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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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경성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전반적인 내용은 《해동지도》의 경성부 지도와 비슷하여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해동지도》의 가로 폭이 본 지도보다 더 넓은 편이다. 세로로 긴 노란색 사각형이 7개이고, 가로로 긴 노란색 사각형이 3개이다. 세로로 긴 6개의 사각형은 鎭堡를 의미하지만 立岩은 단순한 바위일 뿐 진보가 아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생각되며, 이런 실수는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보라색 사각형을 통해서도 이해될 수 있다. 《광여도》에서는 立岩에 대한 내용이 시정되어 있다. 본 지도책에서는 驛의 경우 보라색 사각형으로 표시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본 지도에서는 가로로 긴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읍치 아래쪽에 있는 吾村驛에는 노란색 사각형을 표시하지 않았다. 주기에는 吾村社가 2개 적혀 있는데 이 중 站과 같이 쓰여 있는 것은 吾村站이라고 바꾸어놓아야 한다. 지도에 오촌역이 노란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지 않은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의 주기에는 吾村站으로 되어 있고, 《광여도》의 주기에는 본 지도처럼 되어 있다. 가운데의 水康驛은 永康驛의 오기이며, 《광여도》에도 이런 잘못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한편 《광여도》에는 종6품의 찰방이 파견된 輸城驛에만 보라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다. 다른 2개의 역은 그대로 노란색으로 표시한 것으로 보아 역과 진보를 확실히 구분하여 이해한 것 같지는 않다. 위쪽의 長白山을 다른 산줄기와 달리 흰색으로 그린 것은 ‘5월이 되어서야 눈이 녹고 7월이 되면 다시 눈이 쌓인다’는 지리지의 기록을 이미지로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회화식 지도임에도 전체적인 고을의 모습이 대략 사실과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경성부(鏡城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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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경성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전반적인 내용은 《해동지도》의 경성부 지도와 비슷하여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해동지도》의 가로 폭이 본 지도보다 더 넓은 편이다. 세로로 긴 노란색 사각형이 7개이고, 가로로 긴 노란색 사각형이 3개이다. 세로로 긴 6개의 사각형은 鎭堡를 의미하지만 立岩은 단순한 바위일 뿐 진보가 아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생각되며, 이런 실수는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보라색 사각형을 통해서도 이해될 수 있다. 《광여도》에서는 立岩에 대한 내용이 시정되어 있다. 본 지도책에서는 驛의 경우 보라색 사각형으로 표시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본 지도에서는 가로로 긴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읍치 아래쪽에 있는 吾村驛에는 노란색 사각형을 표시하지 않았다. 주기에는 吾村社가 2개 적혀 있는데 이 중 站과 같이 쓰여 있는 것은 吾村站이라고 바꾸어놓아야 한다. 지도에 오촌역이 노란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지 않은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의 주기에는 吾村站으로 되어 있고, 《광여도》의 주기에는 본 지도처럼 되어 있다. 가운데의 水康驛은 永康驛의 오기이며, 《광여도》에도 이런 잘못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한편 《광여도》에는 종6품의 찰방이 파견된 輸城驛에만 보라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다. 다른 2개의 역은 그대로 노란색으로 표시한 것으로 보아 역과 진보를 확실히 구분하여 이해한 것 같지는 않다. 위쪽의 長白山을 다른 산줄기와 달리 흰색으로 그린 것은 ‘5월이 되어서야 눈이 녹고 7월이 되면 다시 눈이 쌓인다’는 지리지의 기록을 이미지로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회화식 지도임에도 전체적인 고을의 모습이 대략 사실과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경원부(慶源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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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경원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광여도》에는 본 지도에 있는 지명 중 몇 개가 생략되어 있는 정도이다. 표현 방식은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경원부 지도에 있는 지명 중 많은 수가 본 지도에 생략되어 있다. 특히 중남부 지방에서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릴 만큼 필수적인 정보로 인식되던 社(다른 도에서는 面)가 지도에 모두 생략되어 있다. 5개의 노란색 사각형이 있는데, 《해동지도》에는 모두 건물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4개는 당시에 존재하던 鎭堡이고, 1개는 이미 혁파된 古鎭堡이다. 지도를 제작하거나 필사하던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을 몰랐거나 잘 검토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驛에는 보라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주기를 보면 3개의 驛站이 있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본 지도에는 《해동지도》에 표시된 역에만 보라색 사각형을 그려 넣은 것이다. 주기에 보면 160리나 떨어진 海津社가 있다. 경흥부의 경계를 넘어 동해 있던 월경지인데 본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회화식 지도임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인 고을의 모습과 유로가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경원부(慶源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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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경원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광여도》에는 본 지도에 있는 지명 중 몇 개가 생략되어 있는 정도이다. 표현 방식은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경원부 지도에 있는 지명 중 많은 수가 본 지도에 생략되어 있다. 특히 중남부 지방에서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릴 만큼 필수적인 정보로 인식되던 社(다른 도에서는 面)가 지도에 모두 생략되어 있다. 5개의 노란색 사각형이 있는데, 《해동지도》에는 모두 건물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4개는 당시에 존재하던 鎭堡이고, 1개는 이미 혁파된 古鎭堡이다. 지도를 제작하거나 필사하던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을 몰랐거나 잘 검토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驛에는 보라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주기를 보면 3개의 驛站이 있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본 지도에는 《해동지도》에 표시된 역에만 보라색 사각형을 그려 넣은 것이다. 주기에 보면 160리나 떨어진 海津社가 있다. 경흥부의 경계를 넘어 동해 있던 월경지인데 본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회화식 지도임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인 고을의 모습과 유로가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경흥부(慶興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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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경흥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광여도》에는 두만강이 1개의 실선으로 표시된 반면 본 지도에서는 2개의 실선으로 표시하여 지류와 구분하였다. 표현 양식이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경흥부 지도에도 두만강 본류와 지류를 구분할 수 있도록 그렸다.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지명에서 잘못 기록된 것도 있다. 아래쪽의 水湖는 湖水를 잘못 쓴 것인데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도에는 다섯 개의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모두 건물 모양이 있던 것으로 본 지도에서 기호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본 지도의 필사 시에 다섯 개의 지명을 모두 동일한 정보로 착각한 것으로 생각된다. 네 개는 모두 鎭堡인 반면에 德明은 驛이다. 본 지도책에서 驛은 보라색 사각형으로 표현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자료의 대조를 통해 정보를 분석하면서 필사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회화식 군현지도임에도 불구하고 읍치가 특별히 확대되어 그려지지도 않았고, 하천의 유로나 고을 전체의 모습이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1833년(순조 33)에 읍치와 撫夷鎭의 위치를 바꾼다. (이기봉)

  • 경흥부(慶興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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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경흥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광여도》에는 두만강이 1개의 실선으로 표시된 반면 본 지도에서는 2개의 실선으로 표시하여 지류와 구분하였다. 표현 양식이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경흥부 지도에도 두만강 본류와 지류를 구분할 수 있도록 그렸다.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지명에서 잘못 기록된 것도 있다. 아래쪽의 水湖는 湖水를 잘못 쓴 것인데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도에는 다섯 개의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모두 건물 모양이 있던 것으로 본 지도에서 기호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본 지도의 필사 시에 다섯 개의 지명을 모두 동일한 정보로 착각한 것으로 생각된다. 네 개는 모두 鎭堡인 반면에 德明은 驛이다. 본 지도책에서 驛은 보라색 사각형으로 표현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자료의 대조를 통해 정보를 분석하면서 필사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회화식 군현지도임에도 불구하고 읍치가 특별히 확대되어 그려지지도 않았고, 하천의 유로나 고을 전체의 모습이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1833년(순조 33)에 읍치와 撫夷鎭의 위치를 바꾼다. (이기봉)

  • 고원군(高原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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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고원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로 뻗은 산줄기가 서쪽으로부터 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는 《해동지도》의 고원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잘못된 것이 여러 군데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아래쪽의 文川貴는 文川界의 오류이고, 오른쪽 위의 水는 淵의 古字인 囦를 잘못 기록한 것이다. 오른쪽에는 ‘永興의 雲水寺’가 永興寺와 水寺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하다. 이런 오류들은 《광여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아래쪽의 龍興江口에 용흥강의 모습을 일부 그려 넣었지만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는 생략되어 있다. 왼쪽에 文川이란 문자가 여러 개 보이고 있는데 모두 본 고을의 남쪽에 있었던 文川郡을 의미한다. 읍치 지역을 확대해서 그린 것을 제외하면 고을 전체의 모습을 사실에 가깝게 그렸다. 위쪽(서)의 경우 본 고을이 아니라 永興에 속한 땅까지도 그려 넣었지만 永興雲谷이란 문구를 넣어 구별해 주었다. 주기에도 지도에 鉢山社로 되어 있는 것을 鐵山社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하다. 《해동지도》와 《광여도》에서는 이 부분이 모두 올바르게 되어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광여도》는 본 지도와 같은 계통이면서 일부 지명에서는 본 지도의 오류가 교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기봉)

  • 고원군(高原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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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고원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로 뻗은 산줄기가 서쪽으로부터 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는 《해동지도》의 고원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잘못된 것이 여러 군데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아래쪽의 文川貴는 文川界의 오류이고, 오른쪽 위의 水는 淵의 古字인 囦를 잘못 기록한 것이다. 오른쪽에는 ‘永興의 雲水寺’가 永興寺와 水寺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하다. 이런 오류들은 《광여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아래쪽의 龍興江口에 용흥강의 모습을 일부 그려 넣었지만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는 생략되어 있다. 왼쪽에 文川이란 문자가 여러 개 보이고 있는데 모두 본 고을의 남쪽에 있었던 文川郡을 의미한다. 읍치 지역을 확대해서 그린 것을 제외하면 고을 전체의 모습을 사실에 가깝게 그렸다. 위쪽(서)의 경우 본 고을이 아니라 永興에 속한 땅까지도 그려 넣었지만 永興雲谷이란 문구를 넣어 구별해 주었다. 주기에도 지도에 鉢山社로 되어 있는 것을 鐵山社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하다. 《해동지도》와 《광여도》에서는 이 부분이 모두 올바르게 되어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광여도》는 본 지도와 같은 계통이면서 일부 지명에서는 본 지도의 오류가 교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기봉)

  • 관북도(關北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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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관북도와 함경도의 전체적인 모습이나 산줄기와 물줄기 등의 표현이 거의 동일하다. 거리나 지명의 표시에서 본 지도는 일관성이 별로 없다. 특히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한 鎭堡는 표시된 것보다 표시되지 않은 것이 훨씬 많다. 노란색 사각형을 그리고 명칭을 적어 넣지 않은 것도 보이고 있으며, 中嶺이 적혀 있어야 한다. 파란색 원으로 표시한 군현의 경우에도 원은 그렸지만 오른쪽 위에는 명칭을 적어 놓지 않은 것이 보인다. 이곳에는 慶興府가 있었기 때문에 慶興이라고 적어 넣어야 한다. 황색 사각형이 3개 있는데, 가장 왼쪽의 廟坡는 진보이므로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되어야 한다. 오른쪽의 麻田과 燕基 일반 역참으로 기호를 사용해야 할 만큼 중요한 정보가 아니다. 본 지도의 제작자가 어떤 혼란을 일으켜서 잘못 써놓은 것이 아닌가 한다. 監營은 황색의 큰 원, 兵營이 있는 곳은 보라색 사각형으로 표현되어 있다. 기호의 사용에서 오는 오류들은 《광여도》에서 대부분 시정되어 있다. 여기에 《광여도》에는 찰방역도 하나의 붉은색 사각형으로 기호화 되어 있다. 주기의 내용은 본 지도와 《광여도》가 동일하다. 따라서 두 지도는 필사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광여도》가 본 지도를 필사하되 오류인 곳은 다른 자료를 보고 모두 수정해 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함흥 위쪽의 長津 지역에는 1667년(현종 8)에 堡가 설치되며, 1785년(정조 9)에 鎭으로 승격되고, 1787년(정조 11)에는 府가 된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長津이 鎭堡로만 표시되어 있어 늦어도 1787년 이전의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지도책의 함경도 군현 지도가 대부분 사실에 가깝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대략적인 형태만 비슷할 뿐 아주 거칠게 그려져 있다. 특히 북쪽의 白頭山 부분과 압록강, 두만강의 표현은 실제와 가장 다른 부분이다. 해안가의 섬에 대한 표현도 실제와는 너무 다르다. 이 지역에서 큰 섬은 馬養島와 草島, 두만강 하구에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 鹿屯島 정도이다. 그 이외에 지도에 그려진 섬들은 마양도에 비한다면 겨우 점 정도로만 표시되어야 할 정도로 작다. (이기봉)

  • 관북도(關北圖)(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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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관북도와 함경도의 전체적인 모습이나 산줄기와 물줄기 등의 표현이 거의 동일하다. 거리나 지명의 표시에서 본 지도는 일관성이 별로 없다. 특히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한 鎭堡는 표시된 것보다 표시되지 않은 것이 훨씬 많다. 노란색 사각형을 그리고 명칭을 적어 넣지 않은 것도 보이고 있으며, 中嶺이 적혀 있어야 한다. 파란색 원으로 표시한 군현의 경우에도 원은 그렸지만 오른쪽 위에는 명칭을 적어 놓지 않은 것이 보인다. 이곳에는 慶興府가 있었기 때문에 慶興이라고 적어 넣어야 한다. 황색 사각형이 3개 있는데, 가장 왼쪽의 廟坡는 진보이므로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되어야 한다. 오른쪽의 麻田과 燕基 일반 역참으로 기호를 사용해야 할 만큼 중요한 정보가 아니다. 본 지도의 제작자가 어떤 혼란을 일으켜서 잘못 써놓은 것이 아닌가 한다. 監營은 황색의 큰 원, 兵營이 있는 곳은 보라색 사각형으로 표현되어 있다. 기호의 사용에서 오는 오류들은 《광여도》에서 대부분 시정되어 있다. 여기에 《광여도》에는 찰방역도 하나의 붉은색 사각형으로 기호화 되어 있다. 주기의 내용은 본 지도와 《광여도》가 동일하다. 따라서 두 지도는 필사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광여도》가 본 지도를 필사하되 오류인 곳은 다른 자료를 보고 모두 수정해 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함흥 위쪽의 長津 지역에는 1667년(현종 8)에 堡가 설치되며, 1785년(정조 9)에 鎭으로 승격되고, 1787년(정조 11)에는 府가 된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長津이 鎭堡로만 표시되어 있어 늦어도 1787년 이전의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지도책의 함경도 군현 지도가 대부분 사실에 가깝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대략적인 형태만 비슷할 뿐 아주 거칠게 그려져 있다. 특히 북쪽의 白頭山 부분과 압록강, 두만강의 표현은 실제와 가장 다른 부분이다. 해안가의 섬에 대한 표현도 실제와는 너무 다르다. 이 지역에서 큰 섬은 馬養島와 草島, 두만강 하구에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 鹿屯島 정도이다. 그 이외에 지도에 그려진 섬들은 마양도에 비한다면 겨우 점 정도로만 표시되어야 할 정도로 작다. (이기봉)

  • 길주목(吉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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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길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와 《광여도》는 《해동지도》의 길주목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잘못된 것도 있고, 생략된 것도 많다. 맨 위쪽의 軒頭嶺은 斬頭嶺의, 아래쪽의 鎭東은 嶺東의 誤記이다. 생략된 것으로는 面에 해당되는 社가 있으며, 그 밖에 烽燧 등도 여러 개가 생략되어 있다. 지도에는 5개의 노란색 사각형이 있다. 臨溟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읍치가 아니면서도 건물 모양이 그려져 있던 곳이다. 이 중 西北, 胡打里, 城津은 군사기지이며, 나머지 2개는 驛站이다. 본 지도책의 다른 군현에서는 驛站을 보라색 사각형으로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본 지도에서는 적용되지 않았다. 본 지도는 읍치 왼쪽에 있는 현재의 남대천 유로를 볼 때 北北西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대체적으로 일반적인 회화식 지도와 달리 읍치를 확대하지 않았고, 고을의 모습도 실제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해안선이 실제로는 서남-동북 방향임에도 본 지도에는 서-동 방향으로 그려져 있는 단점도 있다. 이런 단점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길주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기봉)

  • 길주목(吉州牧)(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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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길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와 《광여도》는 《해동지도》의 길주목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잘못된 것도 있고, 생략된 것도 많다. 맨 위쪽의 軒頭嶺은 斬頭嶺의, 아래쪽의 鎭東은 嶺東의 誤記이다. 생략된 것으로는 面에 해당되는 社가 있으며, 그 밖에 烽燧 등도 여러 개가 생략되어 있다. 지도에는 5개의 노란색 사각형이 있다. 臨溟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읍치가 아니면서도 건물 모양이 그려져 있던 곳이다. 이 중 西北, 胡打里, 城津은 군사기지이며, 나머지 2개는 驛站이다. 본 지도책의 다른 군현에서는 驛站을 보라색 사각형으로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본 지도에서는 적용되지 않았다. 본 지도는 읍치 왼쪽에 있는 현재의 남대천 유로를 볼 때 北北西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대체적으로 일반적인 회화식 지도와 달리 읍치를 확대하지 않았고, 고을의 모습도 실제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해안선이 실제로는 서남-동북 방향임에도 본 지도에는 서-동 방향으로 그려져 있는 단점도 있다. 이런 단점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길주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기봉)

  • 단천부(端川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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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단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은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에는 단천군으로 되어 있다. 端川은 1720년(숙종 46)에 郡에서 府로 승격되므로 《해동지도》는 그 이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노란색 사각형은 다른 道의 지도에서는 面에 사용되었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鎭堡를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麻谷은 진보가 아니라 驛이기 때문에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생각되며, 《광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실수는 근본적으로 《해동지도》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에서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된 부분에 모두 ‘倉’이란 글씨가 없는 건물 모양이 표시되어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 이것을 모두 진보로 해석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위쪽의 㐚足 역시 《해동지도》에 건물이 표시되어 있지만 주기에 보면 진보로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곳에는 원래 堡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이미 혁파되어 있었고, 《해동지도》에는 廢라는 문자를 삽입하여 이런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오른쪽 아래에는 노란색 사각형만 있고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데 《광여도》에는 城津이라 적혀 있다. 城津鎭이지만 단천이 아니라 길주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 아닌가 한다. 아래쪽의 胡打里堡는 1723년(경종 3)에 본 지도 위의 장소로 옮겨지고, 1745년(영조 21)에 혁파된다. 따라서 본 지도는 이 시기의 내용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반적인 회화식 지도에서는 고을의 모습이 상당히 왜곡되는 경우가 많지만 본 지도는 사실에 상당히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첫째, 읍치를 특별히 확대해서 그리지 않았고 둘째, 고을 자체의 보습이 사각형 모양의 종이 위에 그려도 왜곡되지 않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이기봉)

  • 단천부(端川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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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단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은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에는 단천군으로 되어 있다. 端川은 1720년(숙종 46)에 郡에서 府로 승격되므로 《해동지도》는 그 이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노란색 사각형은 다른 道의 지도에서는 面에 사용되었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鎭堡를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麻谷은 진보가 아니라 驛이기 때문에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생각되며, 《광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실수는 근본적으로 《해동지도》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에서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된 부분에 모두 ‘倉’이란 글씨가 없는 건물 모양이 표시되어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 이것을 모두 진보로 해석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위쪽의 㐚足 역시 《해동지도》에 건물이 표시되어 있지만 주기에 보면 진보로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곳에는 원래 堡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이미 혁파되어 있었고, 《해동지도》에는 廢라는 문자를 삽입하여 이런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오른쪽 아래에는 노란색 사각형만 있고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데 《광여도》에는 城津이라 적혀 있다. 城津鎭이지만 단천이 아니라 길주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 아닌가 한다. 아래쪽의 胡打里堡는 1723년(경종 3)에 본 지도 위의 장소로 옮겨지고, 1745년(영조 21)에 혁파된다. 따라서 본 지도는 이 시기의 내용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반적인 회화식 지도에서는 고을의 모습이 상당히 왜곡되는 경우가 많지만 본 지도는 사실에 상당히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첫째, 읍치를 특별히 확대해서 그리지 않았고 둘째, 고을 자체의 보습이 사각형 모양의 종이 위에 그려도 왜곡되지 않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이기봉)

  • 덕원부(德源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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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덕원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두 지도 모두 《해동지도》의 덕원부 지도를 필사한 계통으로 생각된다. 지명의 수록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두 지도는 《해동지도》의 것을 일부 생략하면서 필사하였다. 그리고 필사 과정에서 일부 잘못된 것도 있다. 오른쪽의 龜瑟山은 琵琶山을 잘못 옮긴 것으로 《광여도》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읍치 왼쪽에 있는 赤川社는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아마 《해동지도》의 安養寺 부근에 표시된 赤田社에 대한 오기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赤田社가 2개 기록되어 있다.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로 뻗은 산줄기가 서쪽으로부터 오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왼쪽 아래의 元山坪은 현재의 원산시 일대이며, 그 오른쪽의 連島는 현재의 갈마반도이다. 섬의 위치는 해안에서 가까운 경우 비슷하지만 멀수록 실제와 다르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熊島는 고을의 동서 폭 정도의 먼 거리에 위치해 있다. 본 책의 다른 지도에서는 대부분 표현되어 있는 인근 군현과의 경계 표시가 되어 있지 않다. 오른쪽은 文川郡이고, 위쪽과 왼쪽은 安邊府이다. (이기봉)

  • 덕원부(德源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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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덕원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두 지도 모두 《해동지도》의 덕원부 지도를 필사한 계통으로 생각된다. 지명의 수록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두 지도는 《해동지도》의 것을 일부 생략하면서 필사하였다. 그리고 필사 과정에서 일부 잘못된 것도 있다. 오른쪽의 龜瑟山은 琵琶山을 잘못 옮긴 것으로 《광여도》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읍치 왼쪽에 있는 赤川社는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아마 《해동지도》의 安養寺 부근에 표시된 赤田社에 대한 오기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赤田社가 2개 기록되어 있다.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로 뻗은 산줄기가 서쪽으로부터 오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왼쪽 아래의 元山坪은 현재의 원산시 일대이며, 그 오른쪽의 連島는 현재의 갈마반도이다. 섬의 위치는 해안에서 가까운 경우 비슷하지만 멀수록 실제와 다르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熊島는 고을의 동서 폭 정도의 먼 거리에 위치해 있다. 본 책의 다른 지도에서는 대부분 표현되어 있는 인근 군현과의 경계 표시가 되어 있지 않다. 오른쪽은 文川郡이고, 위쪽과 왼쪽은 安邊府이다. (이기봉)

  • 명천부(明川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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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명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왼쪽 아래에 下加란 지명이 추가되어 있는 정도이다. 본 지도와 《광여도》는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명천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생략이 많이 되고 있으며, 일부는 다르게 필사된 곳도 있다. 도로, 봉수는 모두 생략되었고, 창고와 산지를 비롯한 기타 지명들도 상당히 많이 생략되었다. 또한 아래쪽의 七寶山에서 동해로 빠져나가는 하천 역시 생략되어 있다. 생략된 지명을 보면 특별한 원칙에 의해 생략을 한 것 같아 보이지는 않으며, 필사자의 자의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책에 있는 함경도의 군현 대부분이 고을 전체의 모습을 비슷하게 그렸는데 반해 본 지도는 명천부의 실제 모습과 상당히 다르게 그려져 있다. 가장 다르게 그려진 부분은 아래쪽의 동해 해안가이다. 본 지도는 魚郞川의 유로를 참조해 보면 대략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리고 동해안의 해안선은 실제로 왼쪽은 거의 동서 방향, 오른쪽은 거의 남북 방향이다. 따라서 해안선이 거의 직각의 방향을 취하고 있지만 본 지도에는 대략 일직선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 부분의 해안선은 조선후기 내내 그려진 정확한 지도에서도 대부분 실제와 다르게 표현된 부분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명천부 지도 해안선이 조선후기에 정확성을 추구한 지도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그려진 모습이다. 김정호의 《동여도》에 이르러서야 본 지역의 해안선이 실제에 가깝게 그려진다. 위쪽의 長白山은 다른 산지와 달리 흰색으로 표현되어 있다. 대부분의 지리지에 장백산에는 ‘5월이 되서야 눈이 녹고, 7월이 되면 다시 눈이 쌓인다’는 표현이 나오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 장백산은 단지 하나의 산이 아니라 여러 개의 산이 연결된 큰 규모를 지칭한다. 그런데 지리지에는 이 부근의 하천이 대부분 장백산에서 발원하는 것으로 나온다. 따라서 장백산을 하나의 산으로 인식하면 지도의 제작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본 지도 역시 어랑천이 장백산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장백산 줄기의 하나로부터 흘러나온다. (이기봉)

  • 명천부(明川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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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명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왼쪽 아래에 下加란 지명이 추가되어 있는 정도이다. 본 지도와 《광여도》는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명천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생략이 많이 되고 있으며, 일부는 다르게 필사된 곳도 있다. 도로, 봉수는 모두 생략되었고, 창고와 산지를 비롯한 기타 지명들도 상당히 많이 생략되었다. 또한 아래쪽의 七寶山에서 동해로 빠져나가는 하천 역시 생략되어 있다. 생략된 지명을 보면 특별한 원칙에 의해 생략을 한 것 같아 보이지는 않으며, 필사자의 자의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책에 있는 함경도의 군현 대부분이 고을 전체의 모습을 비슷하게 그렸는데 반해 본 지도는 명천부의 실제 모습과 상당히 다르게 그려져 있다. 가장 다르게 그려진 부분은 아래쪽의 동해 해안가이다. 본 지도는 魚郞川의 유로를 참조해 보면 대략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리고 동해안의 해안선은 실제로 왼쪽은 거의 동서 방향, 오른쪽은 거의 남북 방향이다. 따라서 해안선이 거의 직각의 방향을 취하고 있지만 본 지도에는 대략 일직선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 부분의 해안선은 조선후기 내내 그려진 정확한 지도에서도 대부분 실제와 다르게 표현된 부분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명천부 지도 해안선이 조선후기에 정확성을 추구한 지도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그려진 모습이다. 김정호의 《동여도》에 이르러서야 본 지역의 해안선이 실제에 가깝게 그려진다. 위쪽의 長白山은 다른 산지와 달리 흰색으로 표현되어 있다. 대부분의 지리지에 장백산에는 ‘5월이 되서야 눈이 녹고, 7월이 되면 다시 눈이 쌓인다’는 표현이 나오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 장백산은 단지 하나의 산이 아니라 여러 개의 산이 연결된 큰 규모를 지칭한다. 그런데 지리지에는 이 부근의 하천이 대부분 장백산에서 발원하는 것으로 나온다. 따라서 장백산을 하나의 산으로 인식하면 지도의 제작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본 지도 역시 어랑천이 장백산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장백산 줄기의 하나로부터 흘러나온다. (이기봉)

  • 무산부(茂山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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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무산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무산부 지도와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본 지도책의 함경도 군현이 대부분 《해동지도》의 것을 필사한 것처럼 본 지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추정된다. 그러나 본 지도는 다른 군현과 달리 《해동지도》의 구도나 내용과 다른 곳이 많다. 그렇게 된 첫 번째 이유는 가로로 길게 되어 있던 《해동지도》를 세로로 긴 사각형에 맞추었기 때문이다. 둘째, 첫 번째와 연관되는 것이지만 《해동지도》에 나와 있던 백두산 부분을 본 지도에서 생략하였다. 즉, 본 지도에서는 魚潤江과 緩項嶺의 선을 중심으로 그 북쪽 지역을 생략하였다. 두만강 본류의 유로 표시에서 몇 가지 오해할만한 부분이 발생하였다. 읍치 위쪽에 만주 방면에서 오는 지류를 굵게 표현하고, 지류의 유로와 같은 방향으로 豆滿江을 적어놓았기 때문에 마치 백두산 방향의 두만강이 지류인 것 같은 착각을 할 수 있다. 《해동지도》에는 만주 방면에서 오는 지류를 얇게, 그리고 두만강이란 명칭도 본류에 적어놓았다. 두만강의 상류 부분인 왼쪽 위를 읍치 부근보다 더 굵게 표현하여 상류와 하류를 이해하기 어렵게 하기도 했다. 또한 오른쪽 아래의 하류 부분은 마치 하폭이 갑자기 넓어지는 것처럼 묘사하였다. 《광여도》에서 상류와 하류를 아주 굵은 2개의 실선으로 표현하고, 중간 부분은 단지 1개의 실선으로만 표현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상류와 하류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도록 그렸다. 지명의 오기도 보이고 있다. 읍치 왼쪽 위의 林下川은 朴下川을 잘못 옮긴 것으로 《광여도》에도 본 지도처럼 기록되어 있다. 두만강이 이 지역에서 일반적으로 東流하므로 본 지도는 서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고 볼 수 있다. (이기봉)

  • 무산부(茂山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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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무산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무산부 지도와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본 지도책의 함경도 군현이 대부분 《해동지도》의 것을 필사한 것처럼 본 지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추정된다. 그러나 본 지도는 다른 군현과 달리 《해동지도》의 구도나 내용과 다른 곳이 많다. 그렇게 된 첫 번째 이유는 가로로 길게 되어 있던 《해동지도》를 세로로 긴 사각형에 맞추었기 때문이다. 둘째, 첫 번째와 연관되는 것이지만 《해동지도》에 나와 있던 백두산 부분을 본 지도에서 생략하였다. 즉, 본 지도에서는 魚潤江과 緩項嶺의 선을 중심으로 그 북쪽 지역을 생략하였다. 두만강 본류의 유로 표시에서 몇 가지 오해할만한 부분이 발생하였다. 읍치 위쪽에 만주 방면에서 오는 지류를 굵게 표현하고, 지류의 유로와 같은 방향으로 豆滿江을 적어놓았기 때문에 마치 백두산 방향의 두만강이 지류인 것 같은 착각을 할 수 있다. 《해동지도》에는 만주 방면에서 오는 지류를 얇게, 그리고 두만강이란 명칭도 본류에 적어놓았다. 두만강의 상류 부분인 왼쪽 위를 읍치 부근보다 더 굵게 표현하여 상류와 하류를 이해하기 어렵게 하기도 했다. 또한 오른쪽 아래의 하류 부분은 마치 하폭이 갑자기 넓어지는 것처럼 묘사하였다. 《광여도》에서 상류와 하류를 아주 굵은 2개의 실선으로 표현하고, 중간 부분은 단지 1개의 실선으로만 표현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상류와 하류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도록 그렸다. 지명의 오기도 보이고 있다. 읍치 왼쪽 위의 林下川은 朴下川을 잘못 옮긴 것으로 《광여도》에도 본 지도처럼 기록되어 있다. 두만강이 이 지역에서 일반적으로 東流하므로 본 지도는 서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고 볼 수 있다. (이기봉)

  • 문천군(文川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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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문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읍치 아래쪽에 《광여도》에 있던 德源龍城津 정도가 생략되어 있다는 점 정도이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는 《해동지도》의 문천군 지도에는 이 지명이 나오고 있다.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로 뻗어 내린 산줄기가 서쪽에서 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고을의 실제 모습과 상당히 다르게 그려져 있다. 본 고을은 서쪽이 넓고 바다에 접한 동쪽이 훨씬 좁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 지도에는 서쪽 부분을 실제보다 좁게 그리면서 동쪽은 실제보다 넓게 그려져 있다. 특히 위쪽의 雲林倉이 있는 부분이 실제보다 너무 작게 그려져 있다. 예를 들어 읍치에서 德平으로 뻗은 하천보다 雲林倉 방향에서 내려온 하천의 길이가 실제로는 훨씬 길다. 또한 이 하천은 발원지에서 北流하다가 덕평 부근에서 서류하는 형태를 취하는데 이런 사실도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런 오류는 표현 양식과 내용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같은 《해동지도》의 문천군 지도를 잘못 필사하면서 더욱 심해졌다. 《해동지도》에는 읍치 오른쪽의 물줄기가 泥峴을 경계로  위 아래로 갈라지는 것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 이 사실을 잘못 이해하여 마치 읍치 오른쪽에서 발원한 물이 모두 덕평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그렸다. 《광여도》에는 이 부분이 《해동지도》처럼 되어 있다. 본 지도에는 다른 道의 面에 해당되는 社가 2개 적혀 있다. 그런데 다른 道에서는 面을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였지만 본 지도에서는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마 社가 面과 동일한 행정단위였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주기를 보면 社가 총 6개 나오고 있는데 지도에는 2개만 표시되어 있다.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社는 草閑社를 제외하면 모두 倉으로만 되어 있다. 倉이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 문천군(文川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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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문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읍치 아래쪽에 《광여도》에 있던 德源龍城津 정도가 생략되어 있다는 점 정도이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는 《해동지도》의 문천군 지도에는 이 지명이 나오고 있다.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로 뻗어 내린 산줄기가 서쪽에서 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고을의 실제 모습과 상당히 다르게 그려져 있다. 본 고을은 서쪽이 넓고 바다에 접한 동쪽이 훨씬 좁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 지도에는 서쪽 부분을 실제보다 좁게 그리면서 동쪽은 실제보다 넓게 그려져 있다. 특히 위쪽의 雲林倉이 있는 부분이 실제보다 너무 작게 그려져 있다. 예를 들어 읍치에서 德平으로 뻗은 하천보다 雲林倉 방향에서 내려온 하천의 길이가 실제로는 훨씬 길다. 또한 이 하천은 발원지에서 北流하다가 덕평 부근에서 서류하는 형태를 취하는데 이런 사실도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런 오류는 표현 양식과 내용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같은 《해동지도》의 문천군 지도를 잘못 필사하면서 더욱 심해졌다. 《해동지도》에는 읍치 오른쪽의 물줄기가 泥峴을 경계로  위 아래로 갈라지는 것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 이 사실을 잘못 이해하여 마치 읍치 오른쪽에서 발원한 물이 모두 덕평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그렸다. 《광여도》에는 이 부분이 《해동지도》처럼 되어 있다. 본 지도에는 다른 道의 面에 해당되는 社가 2개 적혀 있다. 그런데 다른 道에서는 面을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였지만 본 지도에서는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마 社가 面과 동일한 행정단위였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주기를 보면 社가 총 6개 나오고 있는데 지도에는 2개만 표시되어 있다.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社는 草閑社를 제외하면 모두 倉으로만 되어 있다. 倉이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 부평부(富寧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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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부령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보라색 사각형은 본 지도책에서 驛에 적용되던 기호였다. 본 지도에도 懷綏驛에 적용되고 있어 일반적인 경향성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왼쪽에 있는 輸城은 察訪驛임에도 불구하고 노란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 점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수성이 역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가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동지도》의 부령부 지도에 輸城이 驛이라는 정보가 전혀 수록되어 있지 않은 점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수성역은 찰방역이기 때문에 지리지 자료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을 통해 보면 본 지도의 필사 시 《해동지도》만을 참고하였으며, 애매한 것은 필사자의 자의대로 판단한 것으로 생각된다. 읍치 오른쪽에는 노란색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는데, 《광여도》에는 古堡라고 되어 있다. 茂山鎭이 있던 곳으로 이미 후대의 무산부 읍치로 옮겨간 뒤였다. 따라서 본 지도나 《광여도》의 필사 시에 이런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위쪽의 노란색 사각형에 기록된 廢茂山은 폐무산보를 의미한다. 주기에 폐무산보가 북쪽으로 45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폐무산보는 1710년(숙종 36)에 읍치 남쪽 50리로 옮겨가는데, 본 지도에서는 이러한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읍치에서 내려가는 하천은 현재의 수성천으로 실제로는 남류 하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서남류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기봉)

  • 부평부(富寧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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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부령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보라색 사각형은 본 지도책에서 驛에 적용되던 기호였다. 본 지도에도 懷綏驛에 적용되고 있어 일반적인 경향성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왼쪽에 있는 輸城은 察訪驛임에도 불구하고 노란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 점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수성이 역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가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동지도》의 부령부 지도에 輸城이 驛이라는 정보가 전혀 수록되어 있지 않은 점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수성역은 찰방역이기 때문에 지리지 자료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을 통해 보면 본 지도의 필사 시 《해동지도》만을 참고하였으며, 애매한 것은 필사자의 자의대로 판단한 것으로 생각된다. 읍치 오른쪽에는 노란색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는데, 《광여도》에는 古堡라고 되어 있다. 茂山鎭이 있던 곳으로 이미 후대의 무산부 읍치로 옮겨간 뒤였다. 따라서 본 지도나 《광여도》의 필사 시에 이런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위쪽의 노란색 사각형에 기록된 廢茂山은 폐무산보를 의미한다. 주기에 폐무산보가 북쪽으로 45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폐무산보는 1710년(숙종 36)에 읍치 남쪽 50리로 옮겨가는데, 본 지도에서는 이러한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읍치에서 내려가는 하천은 현재의 수성천으로 실제로는 남류 하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서남류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기봉)

  • 북청부(北靑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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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북청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와 《광여도》는 《해동지도》의 북청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런 필사 과정에서 전체적인 구도는 별로 변하지 않았지만 내용적으로 생략되거나 잘못 이해된 부분이 있다. 본 지도에는 보라색의 사각형이 1개, 노란색 사각형이 4개 나타나고 있다. 보라색 사각형은 본 지도책에서 驛에 대한 기호로 일관되게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濟仁舘(또는 驛)에만 사용되고 있다.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된 것 중 土城을 제외한 3개도 모두 驛이다. 특히 居山驛은 종6품의 찰방이 파견되어 많은 屬驛을 거느리고 있던 察訪驛이었다. 《광여도》에는 居山이 居川으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하다.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된 土城은 당시에 남아 있던 옛 虛川坪城일 뿐이다. 이런 것을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 《해동지도》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거나 다른 자료를 검토하면서 필사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오른쪽에 적혀 있는 利城 역시 《해동지도》에는 利城界라고 되어 있다. 본 고을의 동쪽에 있었던 利城縣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보면 성곽으로 착각할 수 있다. 위쪽에는 압록강의 지류인 허천강 유역에 있었던 북청부의 땅이 그려져 있다. 현재의 북한 행정구역으로 량강도 김형권군 지역으로서 실제로는 왼쪽의 太白山 쪽의 咸興界까지 걸쳐 있어야 한다. 이러한 오류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으며, 정확성을 중요하게 여긴 《조선지도》의 북청 지도에도 반영되어 있다.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 부분이 상당히 시정되어 있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이기봉)

  • 북청부(北靑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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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북청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와 《광여도》는 《해동지도》의 북청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런 필사 과정에서 전체적인 구도는 별로 변하지 않았지만 내용적으로 생략되거나 잘못 이해된 부분이 있다. 본 지도에는 보라색의 사각형이 1개, 노란색 사각형이 4개 나타나고 있다. 보라색 사각형은 본 지도책에서 驛에 대한 기호로 일관되게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濟仁舘(또는 驛)에만 사용되고 있다.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된 것 중 土城을 제외한 3개도 모두 驛이다. 특히 居山驛은 종6품의 찰방이 파견되어 많은 屬驛을 거느리고 있던 察訪驛이었다. 《광여도》에는 居山이 居川으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하다.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된 土城은 당시에 남아 있던 옛 虛川坪城일 뿐이다. 이런 것을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 《해동지도》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거나 다른 자료를 검토하면서 필사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오른쪽에 적혀 있는 利城 역시 《해동지도》에는 利城界라고 되어 있다. 본 고을의 동쪽에 있었던 利城縣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보면 성곽으로 착각할 수 있다. 위쪽에는 압록강의 지류인 허천강 유역에 있었던 북청부의 땅이 그려져 있다. 현재의 북한 행정구역으로 량강도 김형권군 지역으로서 실제로는 왼쪽의 太白山 쪽의 咸興界까지 걸쳐 있어야 한다. 이러한 오류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으며, 정확성을 중요하게 여긴 《조선지도》의 북청 지도에도 반영되어 있다.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 부분이 상당히 시정되어 있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이기봉)

  • 삼수부(三水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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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삼수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와 《광여도》는 모두 《해동지도》의 삼수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는 본 지도나 《광여도》에 비해 세로가 상대적으로 더 길게 되어 있다. 일정한 크기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변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오른쪽 위의 압록강 건너에 있는 지명들은 《해동지도》에는 없다. 그러나 현존하는 《해동지도》에는 이 부분이 오려져 나간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원래 《해동지도》의 지도 부분에는 이 지명들이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해동지도》의 지도와 주기는 제작 연대가 다른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아래쪽에서 발원하여 압록강에 합류되는 하천은 현재의 장진강이다. 이 지역에는 1667년(현종 8)에 堡가 설치되며, 1785년(정조 9)에 鎭으로 승격되고, 1787년(정조 11)에는 府가 된다. 그러나 본 지도는 아직 장진부가 형성되기 이전이므로 1787년 이전의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삼수는 1710년(숙종 36)에 府로 승격되므로 그 이후의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압록강과 장진강을 따라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는데, 모두 군사기지인 鎭堡이다. 그런데 이 진보의 명칭이 잘못된 것이 2개나 보이고 있다. 오른쪽 위의 仁達은 글씨의 모양이 비슷한 仁遮의 誤記이다. 그 왼쪽의 禿陽新茄知는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내용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에 기록된 것이다. 《해동지도》에는 이곳에 禿湯과 新加坡知가 있는데, 본 지도의 필사 시 이것을 합해 기록한 것이다. 《광여도》에는 이러한 지명의 오류가 모두 교정되어 있다. 이런 사실을 통해 볼 때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하였고, 《광여도》가 본 지도를 필사하면서 《해동지도》를 참고하여 오류를 교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 지도는 일반적인 회화식 지도와 달리 읍치가 특별히 확대되어 있지 않고, 고을의 전체 모습이 실제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삼수부(三水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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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삼수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와 《광여도》는 모두 《해동지도》의 삼수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는 본 지도나 《광여도》에 비해 세로가 상대적으로 더 길게 되어 있다. 일정한 크기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변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오른쪽 위의 압록강 건너에 있는 지명들은 《해동지도》에는 없다. 그러나 현존하는 《해동지도》에는 이 부분이 오려져 나간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원래 《해동지도》의 지도 부분에는 이 지명들이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해동지도》의 지도와 주기는 제작 연대가 다른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아래쪽에서 발원하여 압록강에 합류되는 하천은 현재의 장진강이다. 이 지역에는 1667년(현종 8)에 堡가 설치되며, 1785년(정조 9)에 鎭으로 승격되고, 1787년(정조 11)에는 府가 된다. 그러나 본 지도는 아직 장진부가 형성되기 이전이므로 1787년 이전의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삼수는 1710년(숙종 36)에 府로 승격되므로 그 이후의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압록강과 장진강을 따라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는데, 모두 군사기지인 鎭堡이다. 그런데 이 진보의 명칭이 잘못된 것이 2개나 보이고 있다. 오른쪽 위의 仁達은 글씨의 모양이 비슷한 仁遮의 誤記이다. 그 왼쪽의 禿陽新茄知는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내용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에 기록된 것이다. 《해동지도》에는 이곳에 禿湯과 新加坡知가 있는데, 본 지도의 필사 시 이것을 합해 기록한 것이다. 《광여도》에는 이러한 지명의 오류가 모두 교정되어 있다. 이런 사실을 통해 볼 때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하였고, 《광여도》가 본 지도를 필사하면서 《해동지도》를 참고하여 오류를 교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 지도는 일반적인 회화식 지도와 달리 읍치가 특별히 확대되어 있지 않고, 고을의 전체 모습이 실제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안변부(安邊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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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안변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와 《광여도》는 《해동지도》의 안변부 지도를 필사한 동일 계통의 지도라고 생각된다. 본 지도에는 사각형이 보라색과 노란색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보라색과 노란색으로 되어 있는 지명은 모두 驛이다. 이 중 高山驛이 종6품의 찰방이 파견된 찰방역이며, 그 나머지는 모두 고산역에 딸린 屬驛이다. 그런데 노란색으로 된 것은 남산역과 사등역이고, 다른 3가지는 보라색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어떤 근거를 통해 이런 구분을 했는지 분명하지 않다. 《광여도》에는 南山驛만 노란색으로 되어 있고 나머지는 모두 보라색으로 되어 있다. 《해동지도》의 지도에는 高山과 南山이 驛이라는 정보가 없다. 본 지도책의 함경도 군현 지도에서는 이런 정보가 없을 경우 그대로 필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만 본 지도의 주기에는 站의 명칭이 적혀 있고, 거기에 高山站과 南山站이 나온다. 본 지도의 필사 시 이 정보를 바탕으로 驛으로 인식한 것이 아닌가 한다. 주기에 나오는 鐵關站은 《해동지도》의 지도 위에 표시되어 있지 않아 본 지도의 필사자도 베끼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는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로 뻗은 산줄기가 남쪽으로부터 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위쪽(남)에는 臨津江源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현재의 법동군 지역으로서 유로의 방향이 약간 잘못되긴 했지만 유역의 입장에서는 사실에 부합된다. 동해로 빠지는 하천과 임진강의 分水界 부근에 伊川界가 적혀 있다. 이것은 伊川의 땅이 이곳에 깊숙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발원하는 현재의 고미탄천은 평강의 땅을 거쳐 이천에서 임진강과 합류된다. 왼쪽의 淮陽界 방면은 북한강의 최상류에 해당된다. 비록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적인 하천의 유로 등은 사실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는 편이다. (이기봉)

  • 안변부(安邊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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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안변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와 《광여도》는 《해동지도》의 안변부 지도를 필사한 동일 계통의 지도라고 생각된다. 본 지도에는 사각형이 보라색과 노란색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보라색과 노란색으로 되어 있는 지명은 모두 驛이다. 이 중 高山驛이 종6품의 찰방이 파견된 찰방역이며, 그 나머지는 모두 고산역에 딸린 屬驛이다. 그런데 노란색으로 된 것은 남산역과 사등역이고, 다른 3가지는 보라색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어떤 근거를 통해 이런 구분을 했는지 분명하지 않다. 《광여도》에는 南山驛만 노란색으로 되어 있고 나머지는 모두 보라색으로 되어 있다. 《해동지도》의 지도에는 高山과 南山이 驛이라는 정보가 없다. 본 지도책의 함경도 군현 지도에서는 이런 정보가 없을 경우 그대로 필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만 본 지도의 주기에는 站의 명칭이 적혀 있고, 거기에 高山站과 南山站이 나온다. 본 지도의 필사 시 이 정보를 바탕으로 驛으로 인식한 것이 아닌가 한다. 주기에 나오는 鐵關站은 《해동지도》의 지도 위에 표시되어 있지 않아 본 지도의 필사자도 베끼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는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로 뻗은 산줄기가 남쪽으로부터 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위쪽(남)에는 臨津江源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현재의 법동군 지역으로서 유로의 방향이 약간 잘못되긴 했지만 유역의 입장에서는 사실에 부합된다. 동해로 빠지는 하천과 임진강의 分水界 부근에 伊川界가 적혀 있다. 이것은 伊川의 땅이 이곳에 깊숙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발원하는 현재의 고미탄천은 평강의 땅을 거쳐 이천에서 임진강과 합류된다. 왼쪽의 淮陽界 방면은 북한강의 최상류에 해당된다. 비록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적인 하천의 유로 등은 사실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는 편이다. (이기봉)

  • 영흥부(永興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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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흥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영흥부 지도도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는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본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까지 뻗은 산줄기가 서쪽으로부터 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위쪽의 鐵瓮城이 실제에 부합되게 튀어나가 있는 형태로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거의 일직선의 산줄기에 있는 것처럼 그렸다. 또한 아래쪽의 龍興江과 동해 사이가 《해동지도》에는 상대적으로 굵게 그려져 있다. 용흥강의 하구에《해동지도》에는 5개의 섬이 그려져 있는 반면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3개만 그려져 있다. 또한 현재 호도반도로 불리고 있는 그 아래쪽이 《해동지도》에는 반도로 표시된 반면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마치 섬처럼 그려져 있다. 이런 부분들은 《해동지도》가 실제에 더 가깝다. 《해동지도》와 가장 다른 점 중의 하나는 본 지도와 《광여도》에 도로가 생략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본 지도만으로는 다른 지역과의 연결 관계를 분명하게 이해하기 어렵다. 영흥부의 모습은 서쪽이 남북으로 넓고 읍치 부근에서 아주 좁아지다가 동쪽의 바닷가에 오면서 약간 넓어지고 있다. 본 지도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실제에 가깝게 표현하고 있다. 다만 서쪽 부분이 더 넓게 표현되어야 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영흥 지도는 현재와 가장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의 영흥부 윤곽과 비교해 보면 문제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기봉)

  • 영흥부(永興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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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흥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영흥부 지도도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는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본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까지 뻗은 산줄기가 서쪽으로부터 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위쪽의 鐵瓮城이 실제에 부합되게 튀어나가 있는 형태로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거의 일직선의 산줄기에 있는 것처럼 그렸다. 또한 아래쪽의 龍興江과 동해 사이가 《해동지도》에는 상대적으로 굵게 그려져 있다. 용흥강의 하구에《해동지도》에는 5개의 섬이 그려져 있는 반면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3개만 그려져 있다. 또한 현재 호도반도로 불리고 있는 그 아래쪽이 《해동지도》에는 반도로 표시된 반면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마치 섬처럼 그려져 있다. 이런 부분들은 《해동지도》가 실제에 더 가깝다. 《해동지도》와 가장 다른 점 중의 하나는 본 지도와 《광여도》에 도로가 생략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본 지도만으로는 다른 지역과의 연결 관계를 분명하게 이해하기 어렵다. 영흥부의 모습은 서쪽이 남북으로 넓고 읍치 부근에서 아주 좁아지다가 동쪽의 바닷가에 오면서 약간 넓어지고 있다. 본 지도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실제에 가깝게 표현하고 있다. 다만 서쪽 부분이 더 넓게 표현되어야 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영흥 지도는 현재와 가장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의 영흥부 윤곽과 비교해 보면 문제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기봉)

  • 온성부(穩城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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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온성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두만강은 왼쪽에서 흘러와 오른쪽으로 빠져나간다. 본 지도는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온성부 지도에 나오는 두만강의 유로를 거의 그대로 필사하였다. 그러나 《광여도》에서는 왼쪽이 2중의 실선으로 표시되어 있고, 오른쪽은 1개의 실선으로만 표시되어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광여도》의 필사 시 두만강의 상류와 하류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본 지도와 《광여도》는 아래쪽 慶源界 남쪽에 있었던 온성부의 월경지를 모두 생략하였다. 온성부의 월경지는 현재의 새별군, 은덕군, 나선시 등에 걸쳐 있었고, 그 면적은 본 지도에 표현된 지역보다 약간 적은 정도였다. 더군다나 동해와 접해 있는 지역도 있었는데, 본 지도나 《광여도》의 필사 시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본 지도에 표시된 노란색 사각형은 鎭堡를 의미한다. 다른 道의 지도에서는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가 面에 사용되었다. 함경도에서는 面 대신에 社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해동지도》에는 社가 지도와 주기 모두 적혀 있었지만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는 지도에서는 社가 모두 생략되어 있다. 아마 社가 面이라는 사실을 필사 시에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일반적인 회화식 지도에 비해 읍치를 확대해서 그리지도 않았고, 전체적인 모습이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온성부(穩城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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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온성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두만강은 왼쪽에서 흘러와 오른쪽으로 빠져나간다. 본 지도는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온성부 지도에 나오는 두만강의 유로를 거의 그대로 필사하였다. 그러나 《광여도》에서는 왼쪽이 2중의 실선으로 표시되어 있고, 오른쪽은 1개의 실선으로만 표시되어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광여도》의 필사 시 두만강의 상류와 하류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본 지도와 《광여도》는 아래쪽 慶源界 남쪽에 있었던 온성부의 월경지를 모두 생략하였다. 온성부의 월경지는 현재의 새별군, 은덕군, 나선시 등에 걸쳐 있었고, 그 면적은 본 지도에 표현된 지역보다 약간 적은 정도였다. 더군다나 동해와 접해 있는 지역도 있었는데, 본 지도나 《광여도》의 필사 시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본 지도에 표시된 노란색 사각형은 鎭堡를 의미한다. 다른 道의 지도에서는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가 面에 사용되었다. 함경도에서는 面 대신에 社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해동지도》에는 社가 지도와 주기 모두 적혀 있었지만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는 지도에서는 社가 모두 생략되어 있다. 아마 社가 面이라는 사실을 필사 시에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일반적인 회화식 지도에 비해 읍치를 확대해서 그리지도 않았고, 전체적인 모습이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이성현(利城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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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이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이성현은 1800년(정조 24)에 利原縣으로 이름을 바꾼다. 따라서 이 지도는 아무리 늦어도 1800년 이전의 상황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오른쪽에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는 谷口는 驛이다. 가장 오른쪽의 端川은 하천이 아니라 이성현 동쪽에 있었던 端川府를 가리킨다. 본 지도는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이성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상당수의 정보가 생략되었고, 이 점에서는 《광여도》도 동일하다. 대표적으로는 본 지도의 南松亭이란 문자 근처에 있던 2개의 하천이 생략되었다. 또한 그 근처에 있는 6개 섬의 크기도 더 크게 표현되었다. 이런 부분은 《해동지도》가 더 사실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에 어떤 자료적 근거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필사 시의 자의에 따른 것으로 생각된다. 생략이 거의 되지 않은 부분이 위쪽의 산줄기에 표시되어 있는 고개의 명칭이다. 이 고개들은 《해동지도》에 모두 도로와 연결되어 있다. 본 지도에는 도로가 생략되어 있다. 고을의 전반적인 모습은 실제에 상당히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이성현(利城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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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이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이성현은 1800년(정조 24)에 利原縣으로 이름을 바꾼다. 따라서 이 지도는 아무리 늦어도 1800년 이전의 상황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오른쪽에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는 谷口는 驛이다. 가장 오른쪽의 端川은 하천이 아니라 이성현 동쪽에 있었던 端川府를 가리킨다. 본 지도는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이성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상당수의 정보가 생략되었고, 이 점에서는 《광여도》도 동일하다. 대표적으로는 본 지도의 南松亭이란 문자 근처에 있던 2개의 하천이 생략되었다. 또한 그 근처에 있는 6개 섬의 크기도 더 크게 표현되었다. 이런 부분은 《해동지도》가 더 사실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에 어떤 자료적 근거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필사 시의 자의에 따른 것으로 생각된다. 생략이 거의 되지 않은 부분이 위쪽의 산줄기에 표시되어 있는 고개의 명칭이다. 이 고개들은 《해동지도》에 모두 도로와 연결되어 있다. 본 지도에는 도로가 생략되어 있다. 고을의 전반적인 모습은 실제에 상당히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정평부(定平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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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정평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위쪽의 加莫洞은 《광여도》에 없으며, 중간 부분의 中月雲烽은 中月雲嶺이라고 되어 있다. 표현 양식은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정평부 지도에는 가막동이 나오며, 중월운령으로 되어 있다. 전자의 지명은 《광여도》의 필사 시에 생략한 것이며, 후자의 지명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잘못 쓴 것으로 볼 수 있다. 읍치 왼쪽에는 草原이란 지명에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다. 다른 道의 지도에는 面을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렸지만 초원은 面이 아니라 驛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린 것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잘못 이해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즉, 《해동지도》에는 읍치 오른쪽의 蓬臺驛에는 驛이 적혀 있지만 草原에는 驛이 적혀 있지 않다. 초원역은 원래 察訪이 파견된 찰방역으로 많은 屬驛을 거느리고 있었던 중요한 역임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의 필사 시 역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점은 《광여도》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社’가 여러 개 표시되어 있는데 함경도 지방에서는 面을 社라고 기록하였지만 본 지도에서는 모두 생략하였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社가 面이라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본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기 때문에 세로가 서-동의 방향을 나타낸다. 정평부의 모습은 남북으로 긴 형태를 취하고 있어 본 지도에서는 상대적으로 짧게 표시된 남북 방향의 왜곡이 심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것이 읍치 왼쪽에 있는 金津江으로 원래는 북쪽에서 발원하여 南流하다가 東流하여 바다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또한 남류하는 구간이 동류하는 구간의 3배에 가깝다. 본 지도에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본 지도에서는 해당 고을의 영역만 그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아래쪽에는 咸興界가 적혀 있다. 본 지도에는 마치 정평부가 이 부분에서 바로 바다와 접해 있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지만 함흥의 땅을 넘어야 바다가 나온다. (이기봉)

  • 정평부(定平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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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정평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위쪽의 加莫洞은 《광여도》에 없으며, 중간 부분의 中月雲烽은 中月雲嶺이라고 되어 있다. 표현 양식은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정평부 지도에는 가막동이 나오며, 중월운령으로 되어 있다. 전자의 지명은 《광여도》의 필사 시에 생략한 것이며, 후자의 지명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잘못 쓴 것으로 볼 수 있다. 읍치 왼쪽에는 草原이란 지명에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다. 다른 道의 지도에는 面을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렸지만 초원은 面이 아니라 驛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린 것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잘못 이해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즉, 《해동지도》에는 읍치 오른쪽의 蓬臺驛에는 驛이 적혀 있지만 草原에는 驛이 적혀 있지 않다. 초원역은 원래 察訪이 파견된 찰방역으로 많은 屬驛을 거느리고 있었던 중요한 역임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의 필사 시 역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점은 《광여도》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社’가 여러 개 표시되어 있는데 함경도 지방에서는 面을 社라고 기록하였지만 본 지도에서는 모두 생략하였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社가 面이라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본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기 때문에 세로가 서-동의 방향을 나타낸다. 정평부의 모습은 남북으로 긴 형태를 취하고 있어 본 지도에서는 상대적으로 짧게 표시된 남북 방향의 왜곡이 심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것이 읍치 왼쪽에 있는 金津江으로 원래는 북쪽에서 발원하여 南流하다가 東流하여 바다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또한 남류하는 구간이 동류하는 구간의 3배에 가깝다. 본 지도에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본 지도에서는 해당 고을의 영역만 그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아래쪽에는 咸興界가 적혀 있다. 본 지도에는 마치 정평부가 이 부분에서 바로 바다와 접해 있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지만 함흥의 땅을 넘어야 바다가 나온다. (이기봉)

  • 종성부(鍾城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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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종성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노란색 사각형이 3개 있다. 《해동지도》의 종성부 지도에 읍치(府衙)와 北兵營 이외에 건물 모양이 표시된 것을 본 지도에서는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였다. 위쪽의 潼關과 防垣은 군사시설인 鎭堡이고, 아래쪽의 鹿野는 교통 통신 시설인 驛站이다. 보통 역참의 경우 본 지도책에서는 보라색 사각형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본 지도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주기를 보면 面에 社가 7개나 기록되어 있지만 지도에는 2개밖에 표시되어 있지 않다. 이 2개는 《해동지도》에 표시된 것으로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그대로 필사했을 뿐 다른 위치 정보를 참조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왼쪽 아래에서 위로 흘러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두만강이고, 북병영이 있는 곳은 두만강의 지류인 오룡천의 상류 유역이다. 아래쪽 산줄기 너머의 동해안에도 주기에 造山社로 기록된 종성의 땅이 있었지만 지도에는 그려지지 않았다. 현재 란선시에 포함되어 있는 곳으로서 일제시대에는 경흥군 풍해면이었다. 조산사 지역이 본 지도에 그려지지 않은 것도 이 지역이 표현되어 있지 않은 《해동지도》를 그대로 필사했기 때문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종성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는 조선사가 실제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는 비록 회화식으로 표현되었지만 읍치가 특별히 확대되어 있지 않고, 고을 전체 모습도 실제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종성부(鍾城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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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종성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노란색 사각형이 3개 있다. 《해동지도》의 종성부 지도에 읍치(府衙)와 北兵營 이외에 건물 모양이 표시된 것을 본 지도에서는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였다. 위쪽의 潼關과 防垣은 군사시설인 鎭堡이고, 아래쪽의 鹿野는 교통 통신 시설인 驛站이다. 보통 역참의 경우 본 지도책에서는 보라색 사각형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본 지도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주기를 보면 面에 社가 7개나 기록되어 있지만 지도에는 2개밖에 표시되어 있지 않다. 이 2개는 《해동지도》에 표시된 것으로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그대로 필사했을 뿐 다른 위치 정보를 참조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왼쪽 아래에서 위로 흘러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두만강이고, 북병영이 있는 곳은 두만강의 지류인 오룡천의 상류 유역이다. 아래쪽 산줄기 너머의 동해안에도 주기에 造山社로 기록된 종성의 땅이 있었지만 지도에는 그려지지 않았다. 현재 란선시에 포함되어 있는 곳으로서 일제시대에는 경흥군 풍해면이었다. 조산사 지역이 본 지도에 그려지지 않은 것도 이 지역이 표현되어 있지 않은 《해동지도》를 그대로 필사했기 때문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종성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는 조선사가 실제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는 비록 회화식으로 표현되었지만 읍치가 특별히 확대되어 있지 않고, 고을 전체 모습도 실제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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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흥부(咸興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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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함흥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해동지도》의 함흥부 지도를 필사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동일하게 필사한 것이 아니라 표현 양식이나 기호, 일부 지명 등에서 다르게 되어 있다. 가장 큰 변화 중의 하나는 도로가 생략되었다. 이로 인해 본 지도에는 오해도 발생하고 있다. 오른쪽에 표현된 咸原驛은 함흥가 아니라 동쪽의 홍원현에 있는 것이다. 《해동지도》를 보면 도로의 끝에 함원역이 기록되어 있고, 이것은 함원역으로 연결된다는 의미이다. 본 지도의 필사 시 이런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함원역에 驛站을 나타내는 노란색 사각형을 그려 넣었다. 주기에는 나머지 2개의 驛站은 나오지만 함원역이 나오고 있지 않아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했다면 함원역이 함흥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표현되어 있어 《광여도》의 필사 역시 꼼꼼하게 검토한 것으로 볼 수 없다. 본 지도책의 함경도 대부분의 군현 지도에서 面에 해당되는 社에 대해 특별한 기호를 표시하지는 않았다. 반면에 본 지도에서는 적황색 테두리의 무색 사각형을 그려 넣었는데, 《해동지도》에 社가 대부분 적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부분이다. 그러나 사각형이 그려지지 않은 社도 보이고 있어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역시 꼼꼼하게 검토하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광여도》에서는 社에 대한 기호를 사용하지 않았다. 함경도의 다른 군현에서 대부분 읍치의 성곽 유무를 표시했음에 반해 본 지도에서는 衙라는 문자와 건물 표시만 한 점도 특이한 부분이다. 또한 《해동지도》에 풍수적인 명당 형국으로 표현한 陵도 본 지도에서는 단지 글씨만 적어 넣었다.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도 陵園을 풍수적 명당 형국으로 표현했다는 점과 비교해 보면 역시 본 지도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된 것은 牧場을 제외하면 군사기지인 鎭堡이다. 남쪽으로 흘러 동해로 들어가는 하천은 현재의 성천강 유역이다. 하구에 형성된 삼각주의 형태까지 자세하게 표현한 편이다. 위쪽의 하천은 현재 장진강이라고 부르는 압록강의 지류이다. 이 지역에는 1667년(현종 8)에 堡가 설치되며, 1785년(정조 9)에 鎭으로 승격되고, 1787년(정조 11)에는 府가 된다. 그러나 본 지도는 아직 장진부가 형성되기 이전이므로 1787년 이전의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지도책의 삼수부 지도에도 이곳이 그려져 있지만 장진부가 설치되기 이전까지는 함흥부 지역이었다. 일반적인 회화식 지도와 달리 읍치를 확대하지 않았고, 고을 전체의 모습이나 유로 등이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함흥부(咸興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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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함흥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해동지도》의 함흥부 지도를 필사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동일하게 필사한 것이 아니라 표현 양식이나 기호, 일부 지명 등에서 다르게 되어 있다. 가장 큰 변화 중의 하나는 도로가 생략되었다. 이로 인해 본 지도에는 오해도 발생하고 있다. 오른쪽에 표현된 咸原驛은 함흥가 아니라 동쪽의 홍원현에 있는 것이다. 《해동지도》를 보면 도로의 끝에 함원역이 기록되어 있고, 이것은 함원역으로 연결된다는 의미이다. 본 지도의 필사 시 이런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함원역에 驛站을 나타내는 노란색 사각형을 그려 넣었다. 주기에는 나머지 2개의 驛站은 나오지만 함원역이 나오고 있지 않아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했다면 함원역이 함흥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표현되어 있어 《광여도》의 필사 역시 꼼꼼하게 검토한 것으로 볼 수 없다. 본 지도책의 함경도 대부분의 군현 지도에서 面에 해당되는 社에 대해 특별한 기호를 표시하지는 않았다. 반면에 본 지도에서는 적황색 테두리의 무색 사각형을 그려 넣었는데, 《해동지도》에 社가 대부분 적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부분이다. 그러나 사각형이 그려지지 않은 社도 보이고 있어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역시 꼼꼼하게 검토하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광여도》에서는 社에 대한 기호를 사용하지 않았다. 함경도의 다른 군현에서 대부분 읍치의 성곽 유무를 표시했음에 반해 본 지도에서는 衙라는 문자와 건물 표시만 한 점도 특이한 부분이다. 또한 《해동지도》에 풍수적인 명당 형국으로 표현한 陵도 본 지도에서는 단지 글씨만 적어 넣었다.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도 陵園을 풍수적 명당 형국으로 표현했다는 점과 비교해 보면 역시 본 지도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된 것은 牧場을 제외하면 군사기지인 鎭堡이다. 남쪽으로 흘러 동해로 들어가는 하천은 현재의 성천강 유역이다. 하구에 형성된 삼각주의 형태까지 자세하게 표현한 편이다. 위쪽의 하천은 현재 장진강이라고 부르는 압록강의 지류이다. 이 지역에는 1667년(현종 8)에 堡가 설치되며, 1785년(정조 9)에 鎭으로 승격되고, 1787년(정조 11)에는 府가 된다. 그러나 본 지도는 아직 장진부가 형성되기 이전이므로 1787년 이전의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지도책의 삼수부 지도에도 이곳이 그려져 있지만 장진부가 설치되기 이전까지는 함흥부 지역이었다. 일반적인 회화식 지도와 달리 읍치를 확대하지 않았고, 고을 전체의 모습이나 유로 등이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홍원현(洪原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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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홍원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와 《광여도》는 거의 동일하여 서로 필사 관계에 있다. 또한 두 지도는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홍원현 지도를 필사하고 있다. 그러나 필사 시 《해동지도》의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읍치의 것을 제외하면 驛은 동일한 건물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필사 시 驛이란 문자가 적혀 있는 新恩驛 이외에도 平浦와 咸原 역시 驛이란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와 《광여도》에 이 역들이 전혀 다른 기호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도의 정보라면 지리지를 조금만 찾아봐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필사 시 지리지를 참조하지 않고 《해동지도》의 내용을 본인의 판단에 따라 이해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이 지도만으로는 어떤 정보를 표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지명이 여러 곳에 있다. 위쪽으로부터 富民, 新翼, 要原 등이 그것이다. 주기를 보면 모두 社로 나오며, 아울러 蘆洞과 景浦 역시 社였다. 지도에는 社란 문자를 사용한 것으로 號賢社만이 표시되어 있다. 社란 다른 道의 面에 해당되는 것으로 다른 도에서는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일관되게 사용하였다. (이기봉)

  • 홍원현(洪原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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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홍원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와 《광여도》는 거의 동일하여 서로 필사 관계에 있다. 또한 두 지도는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홍원현 지도를 필사하고 있다. 그러나 필사 시 《해동지도》의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읍치의 것을 제외하면 驛은 동일한 건물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필사 시 驛이란 문자가 적혀 있는 新恩驛 이외에도 平浦와 咸原 역시 驛이란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와 《광여도》에 이 역들이 전혀 다른 기호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도의 정보라면 지리지를 조금만 찾아봐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필사 시 지리지를 참조하지 않고 《해동지도》의 내용을 본인의 판단에 따라 이해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이 지도만으로는 어떤 정보를 표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지명이 여러 곳에 있다. 위쪽으로부터 富民, 新翼, 要原 등이 그것이다. 주기를 보면 모두 社로 나오며, 아울러 蘆洞과 景浦 역시 社였다. 지도에는 社란 문자를 사용한 것으로 號賢社만이 표시되어 있다. 社란 다른 道의 面에 해당되는 것으로 다른 도에서는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일관되게 사용하였다. (이기봉)

  • 회령부(會寧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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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회령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와 《광여도》는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회령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대로 필사한 것이 아니라 표현 양식이나 내용을 약간씩 바꿨다. 일단 잘못 필사한 지명도 보인다. 읍치(府) 아래쪽의 幹水河는 斡木河의 誤記이며,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해동지도》의 내용 중 생략된 정보로는 도로와 봉수가 있다. 또한 아래쪽 산줄기 너머 동해와 접해 있던 지역도 생략되었다. 이 부분은 고을의 실제적인 모습을 잘못 이해하게 할 수 있는 중요한 실수이다. 이 지역은 현재의 북한 행정구역으로 함경북도 라선시 동쪽 부분이며, 일제시대에는 부령군 관해면이었다. 《해동지도》에 읍치 이외에 건물 모양이 표시되어 있던 곳은 모두 노란색 사각형으로 바뀌었다. 모두 군사 주둔지인 鎭堡이다. 왼쪽의 甫乙下堡에 있는 하천이 상대적으로 길게 표현된 것을 제외하면 실질적인 모습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茂山界가 왼쪽과 아래에 2개 기록되어 있는데, 아래쪽의 것은 동해안에 접해 있던 무산의 월경지와의 경계를 의미한다. (이기봉)

  • 회령부(會寧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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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회령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와 《광여도》는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회령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대로 필사한 것이 아니라 표현 양식이나 내용을 약간씩 바꿨다. 일단 잘못 필사한 지명도 보인다. 읍치(府) 아래쪽의 幹水河는 斡木河의 誤記이며,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해동지도》의 내용 중 생략된 정보로는 도로와 봉수가 있다. 또한 아래쪽 산줄기 너머 동해와 접해 있던 지역도 생략되었다. 이 부분은 고을의 실제적인 모습을 잘못 이해하게 할 수 있는 중요한 실수이다. 이 지역은 현재의 북한 행정구역으로 함경북도 라선시 동쪽 부분이며, 일제시대에는 부령군 관해면이었다. 《해동지도》에 읍치 이외에 건물 모양이 표시되어 있던 곳은 모두 노란색 사각형으로 바뀌었다. 모두 군사 주둔지인 鎭堡이다. 왼쪽의 甫乙下堡에 있는 하천이 상대적으로 길게 표현된 것을 제외하면 실질적인 모습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茂山界가 왼쪽과 아래에 2개 기록되어 있는데, 아래쪽의 것은 동해안에 접해 있던 무산의 월경지와의 경계를 의미한다. (이기봉)

  • 고양군(高陽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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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고양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오른쪽 위에 표시된 禿山峯과 高烽峯이 《광여도》에 각각 禿山烽과 高峯烽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광여도》의 내용이 실제와 부합되어 본 지도가 전사하는 과정에서 오류를 범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고양군 지도도 일부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의 차이가 있지만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동일하여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는 도로가 표시되어 있지만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모두 생략되고 京路, 中路, 小路라는 명칭만 남아 있다. 현재의 고양시 덕양구 고양동에 있었던 읍치에는 관아건물이 상당히 자세하게 표시되어 있다. 읍치가 다른 지역보다 확대 과장되어 그려져 있다. 이것은 읍치의 풍수적 명당성을 표현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밀집되어 있는 정보를 자세히 그리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아래쪽의 하천은 현재의 한강으로 실제로는 동남쪽에서 들어와 서북쪽으로 흘러간다. 지도에는 越海라는 표현이 두 군데나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밀물 때 이곳에 바닷물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맨 오른쪽에는 京江下流라고 적혀 있는데, 도성 남쪽의 한강 구간을 京江으로 불렀기 때문이다. (이기봉)

  • 단양현(丹陽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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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단양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오른쪽에 적혀 있는 呂泉界는 《광여도》에 醴泉界로 기록되어 있는데 후자가 올바르다. 또한 上仙岩 위쪽에 血峙와 雲岩이 생략되어 있으며, 그 아래쪽에 《광여도》에 燕飛山으로 되어 있는 것이 鷰飛山으로 바뀌어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단양군 지도도 표현 방법이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하다. 앞의 내용들이 《해동지도》에도 《광여도》와 동일하게 나오고 있어 본 지도가 오류를 범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을의 이름도 본 지도에는 丹陽縣으로 되어 있는데, 《광여도》와 《해동지도》에 나오는 丹陽郡이 정확하다.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으며, 永春界에서 들어와 淸風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남한강 본류이다. 본류와 지류의 굵기를 달리하여 표현하여 이해하기 쉽도록 한 점은 《광여도》와 동일하다. 4각형의 지면에 맞게 그렸기 때문에 고을 전체의 실질적인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다. 이 구간에는 남한강의 굴곡이 심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이 잘 표현되어 있지 않다. 특히 島潭이라 표시한 부분은 본 지도와 달리 굴곡이 아주 심한 부분이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한데, 民戶에서 一百을 二百으로 잘못 표기하기도 하였다. 본 지도책의 군현 주기가 일반적으로 《해동지도》와 다르지만 본 지도는 거의 비슷하다. (이기봉)

  • 곡성현(谷城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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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곡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왼쪽 위에서 들어와 오른쪽 求禮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섬진강이다. 왼쪽 아래의 同福界에서 들어와 섬진강에 합류하는 하천은 현재의 보성강이다. 이 중 섬진강의 유로가 실제와 상당히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섬진강은 서북쪽에서 들어와 약간만 흐르다가 거의 남쪽으로 빠져나간다. 또한 읍치 아래를 흐르는 현재의 곡성천이 고을을 가로지르는 보성강보다 훨씬 짧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이 잘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런 문제점은 사각형의 종이에 고을의 모양을 맞추려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쪽 부분의 동서 폭은 남쪽 부분보다 훨씬 좁다. 曳山面 부근에서 南原界로부터 흘러 들어오는 요천이 섬진강에 합류되고 있지만 본 지도에서는 이런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일반적으로 해당 고을의 것만 그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그 밖의 부분에서는 실제와 상당히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와 『여지도서』의 곡성현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여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경산현(慶山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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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경산현 지도와 비슷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성 부분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는 지명 중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이 여러 개 있다. 본 지도에 표현된 하천의 유로 역시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보면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읍성과 일부의 정보를 참고하여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는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아래쪽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흘러가는 하천이 현재의 금호강이다. 왼쪽의 慈仁界에서 흘러와 금호강에 합류하는 하천은 현재의 오목천이다. 이 오목천의 끝이 《해동지도》에는 얇게 되어 있어 마치 자인과의 경계선이 발원지인 것처럼 오해할 수 있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다른 자료를 통해 교정한 것이 아닌가 한다. 향교를 두르고 있는 것은 성곽이 아니라 담장일 뿐이다. 이 담장은 《해동지도》에는 없던 것으로 본 지도에서 추가된 것이다. 그러나 읍성과 동일하게 표현하여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이기봉)

  • 개천군(价川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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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개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개천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의 하천 표현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아래쪽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흐르는 하천이 현재의 대동강 본류이다. 왼쪽 위의 寧邊界에서 安陵界(安州界)까지 개천군은 청천강을 사이에 두고 寧邊과 경계를 맞대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이 청천강의 하천 유로가 대동강과 같은 규모로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바다인 것처럼 그려져 있다. 《광여도》에는 이렇게 바다처럼 표현한 점은 시정되었다. 하지만 2개의 실선으로 표시된 대동강과 달리 다른 지류와 마찬가지로 1개의 실선으로 그려 실제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  이런 오류는 面의 명칭 표기에도 나타나고 있다. 오른쪽의 內外面은 內東面을 잘못 옮긴 것이다. 《광여도》에는 이 점이 교정되어 있다. 주기에는 지도에 표기된 面 이외에도 여러 개가 더 기록되어 있다. 이런 面들이 지도에 표기되지 않은 이유는 《해동지도》에도 표기되지 않은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즉, 《해동지도》에 표기되지 않은 면의 위치를 비정하면서 지도를 필사한 것은 아니라고 추정된다. 이런 점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본 지도에 표시된 지명이나 건물은 읍치에 있는 것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있는 것이다. 읍치에는 《해동지도》에 3개의 건물과 명칭밖에 없었지만 본 지도에는 9개의 건물과 5개의 명칭이 적혀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읍치 부분만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경원부(慶源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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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경원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광여도》에는 본 지도에 있는 지명 중 몇 개가 생략되어 있는 정도이다. 표현 방식은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경원부 지도에 있는 지명 중 많은 수가 본 지도에 생략되어 있다. 특히 중남부 지방에서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릴 만큼 필수적인 정보로 인식되던 社(다른 도에서는 面)가 지도에 모두 생략되어 있다. 5개의 노란색 사각형이 있는데, 《해동지도》에는 모두 건물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4개는 당시에 존재하던 鎭堡이고, 1개는 이미 혁파된 古鎭堡이다. 지도를 제작하거나 필사하던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을 몰랐거나 잘 검토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驛에는 보라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주기를 보면 3개의 驛站이 있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본 지도에는 《해동지도》에 표시된 역에만 보라색 사각형을 그려 넣은 것이다. 주기에 보면 160리나 떨어진 海津社가 있다. 경흥부의 경계를 넘어 동해 있던 월경지인데 본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회화식 지도임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인 고을의 모습과 유로가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황해도
  • 강령현(康翎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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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강령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양식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강령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러 지명이 생략되었으며, 잘못 필사한 곳도 있다. 왼쪽 아래의 臥龍司僕屯倉은 《해동지도》에 掛岩司僕屯倉으로, 그 왼쪽의 卵司僕屯倉은 島卵司僕屯倉으로 나온다. 읍치 아래쪽의 王灘浦는 《해동지도》에 王灘橋로 나온다. 이런 부분들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게 따져가며 필사한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광여도》에는 왼쪽 아래에 잘못되거나 생략되어 있던 여러 부분이 교정되고 보충되었다. 예를 들면 司僕牧場內 오른쪽에 木柵이 그려져 있고, 臥龍이 臥岩으로, 卵이 島卵으로 교정되어 있다. 또한 그 아래쪽에 登山串이 추가되고, 왼쪽의 큰 섬에 巡威島와 登山鎭이 첨가되어 있다. 이런 지명들은 모두 《해동지도》에도 그대로 나오는 것이다. 본 지도에는 《해동지도》에 있던 도로가 모두 생략되고, 문자로만 기록되어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쓰고 있다. 南面과 순위도 부분은 실제로는 강령현 서남쪽으로 길게 뻗어 있다. 본 지도에서 실제와 가장 다른 곳이 바로 이 부분이며,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어 고을 전체를 담으려고 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 순위도 부근에는 다른 섬에 비해 극히 작은 작은 돌섬들이 그려져 있다. 이것은 이 섬들이 이 지역의 水路에서 중요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이 돌섬 사이를 지나는 수로가 그려져 있다. (이기봉)

  • 강령현(康翎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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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강령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양식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강령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러 지명이 생략되었으며, 잘못 필사한 곳도 있다. 왼쪽 아래의 臥龍司僕屯倉은 《해동지도》에 掛岩司僕屯倉으로, 그 왼쪽의 卵司僕屯倉은 島卵司僕屯倉으로 나온다. 읍치 아래쪽의 王灘浦는 《해동지도》에 王灘橋로 나온다. 이런 부분들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게 따져가며 필사한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광여도》에는 왼쪽 아래에 잘못되거나 생략되어 있던 여러 부분이 교정되고 보충되었다. 예를 들면 司僕牧場內 오른쪽에 木柵이 그려져 있고, 臥龍이 臥岩으로, 卵이 島卵으로 교정되어 있다. 또한 그 아래쪽에 登山串이 추가되고, 왼쪽의 큰 섬에 巡威島와 登山鎭이 첨가되어 있다. 이런 지명들은 모두 《해동지도》에도 그대로 나오는 것이다. 본 지도에는 《해동지도》에 있던 도로가 모두 생략되고, 문자로만 기록되어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쓰고 있다. 南面과 순위도 부분은 실제로는 강령현 서남쪽으로 길게 뻗어 있다. 본 지도에서 실제와 가장 다른 곳이 바로 이 부분이며,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어 고을 전체를 담으려고 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 순위도 부근에는 다른 섬에 비해 극히 작은 작은 돌섬들이 그려져 있다. 이것은 이 섬들이 이 지역의 水路에서 중요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이 돌섬 사이를 지나는 수로가 그려져 있다. (이기봉)

  • 곡산부(谷山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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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곡산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비록 전체적인 모양이나 표현 양식에서 일부 차이가 나지만 하천의 유로와 지명은 《해동지도》의 곡산부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책의 황해도 군현 지도가 대부분 《해동지도》를 필사하고 있으므로 본 지도도 마찬가지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비해 달라진 점이 여러 곳 있다. 첫째, 《해동지도》는 북쪽을 위로 그렸고, 본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하게 했다. 둘째, 《해동지도》는 남북이 동서보다 훨씬 길게 표현된 반면에 본 지도는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셋째, 《해동지도》에 있던 모든 도로가 생략되었다. 넷째, 글자로만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 기호를 첨가하였다. 이런 변화 속에서 본 지도에는 《해동지도》를 잘못 필사한 곳도 보이고 있다.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된 面 중에서 왼쪽의 道上面은 道下面의 오기이다. 오른쪽의 刀三旀面과 分三面은 《해동지도》에 ‘三刀旀面分九里’ 즉, ‘삼도며면 : 9개의 리로 나누어짐’으로 로 되어 있다. 《해동지도》의 주기에 삼도며면이 도삼며면으로 되어 있어 지도의 표현에 잘못이 있다. 본 지도에서는 삼도며면의 오류는 고쳤지만 分三面이라는 것은 무엇을 근거로 쓴 것인지 이해되지 않는다. 《해동지도》뿐만 아니라 본 지도와 《광여도》의 주기에도 분삼면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른 지리지에서도 이 지명은 찾아지고 있지 않아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광여도》에는 도상면을 도하면으로 바꾸는 교정은 했지만 분삼면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어 상호 필사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도삼며면 위쪽에는 河南山을 2개나 적은 오류도 보이고 있으며, 역시 《광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北道面 오른쪽에 있는 客舍와 衙는 文城鎭에 있는 것이며, 지도에는 新文城이라고 되어 있다. 그 위쪽의 旧文城에서 옮겨 왔기 때문이다. 오른쪽 陽德에서 흘러와 위쪽(서)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은 대동강의 지류인 현재의 남강이다. 문헌 기록 속에서는 能江, 能城江 등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기봉)

  • 곡산부(谷山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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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곡산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비록 전체적인 모양이나 표현 양식에서 일부 차이가 나지만 하천의 유로와 지명은 《해동지도》의 곡산부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책의 황해도 군현 지도가 대부분 《해동지도》를 필사하고 있으므로 본 지도도 마찬가지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비해 달라진 점이 여러 곳 있다. 첫째, 《해동지도》는 북쪽을 위로 그렸고, 본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하게 했다. 둘째, 《해동지도》는 남북이 동서보다 훨씬 길게 표현된 반면에 본 지도는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셋째, 《해동지도》에 있던 모든 도로가 생략되었다. 넷째, 글자로만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 기호를 첨가하였다. 이런 변화 속에서 본 지도에는 《해동지도》를 잘못 필사한 곳도 보이고 있다.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된 面 중에서 왼쪽의 道上面은 道下面의 오기이다. 오른쪽의 刀三旀面과 分三面은 《해동지도》에 ‘三刀旀面分九里’ 즉, ‘삼도며면 : 9개의 리로 나누어짐’으로 로 되어 있다. 《해동지도》의 주기에 삼도며면이 도삼며면으로 되어 있어 지도의 표현에 잘못이 있다. 본 지도에서는 삼도며면의 오류는 고쳤지만 分三面이라는 것은 무엇을 근거로 쓴 것인지 이해되지 않는다. 《해동지도》뿐만 아니라 본 지도와 《광여도》의 주기에도 분삼면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른 지리지에서도 이 지명은 찾아지고 있지 않아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광여도》에는 도상면을 도하면으로 바꾸는 교정은 했지만 분삼면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어 상호 필사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도삼며면 위쪽에는 河南山을 2개나 적은 오류도 보이고 있으며, 역시 《광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北道面 오른쪽에 있는 客舍와 衙는 文城鎭에 있는 것이며, 지도에는 新文城이라고 되어 있다. 그 위쪽의 旧文城에서 옮겨 왔기 때문이다. 오른쪽 陽德에서 흘러와 위쪽(서)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은 대동강의 지류인 현재의 남강이다. 문헌 기록 속에서는 能江, 能城江 등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기봉)

  • 금천군(金川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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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金川郡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역은 원래 牛峰縣이었는데 1651년(효종 2)에 江陰縣을 병합하여 金川郡으로 승격되었다. 읍치는 본 지도와 같은 吾早川의 남쪽에 두었고, 이후 1678년(숙종 4)에 본 지도에 旧金川이라 적혀 있는 곳으로 옮긴다. 다시 1753년(영조 29)에 읍내의 水土가 나쁘다 하여 다시 본 지도와 같은 오조천의 남쪽으로 옮겼다. 후에 다시 구금천인 저탄의 남쪽으로 옮겼다. 이것만을 참조하면 본 지도는 1678년 이전이나 1753년 이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읍치의 위치는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도 본 지도와 동일하게 그려져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서지도》의 금천 지도와 ‘1872년 지방지도’의 금천군지도, 김정호의 《동여도》에도 본 지도처럼 되어 있다. 《조선지도》의 금천 지도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는 것은 아니지만 『여지도서』의 금천군 지도에는 본 지도의 구금천이 읍치로 표시되어 있다. 본 지도는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금천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세로의 폭이 본 지도에 와서 좁아졌고, 도로가 모두 생략되었다. 또한 문자로만 적혀 있던 面이 노란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다. 面의 명칭 중 주기와 다른 것이 2개 있다. 왼쪽 위의 耳洞面은 주기에 咠洞面으로, 오른쪽 아래의 江南面은 江山外面으로 되어 있다. 《해동지도》의 지도에는 咠洞面과 江南面으로 되어 있고, 주기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咠洞面을 잘못 기록한 것으로 보이며, 《광여도》에서는 이 부분이 수정되어 있다. 왼쪽 위에서 흘러와 오른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예성강이다. 그런데 예성강은 금천군 지역에서 대체적으로 북에서 남으로 흐른다. 본 지도는 예성강의 유로 방향이라는 측면에서는 실제를 반영하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읍치를 지나는 吾助川 역시 실제로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다가 다시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 예성강에 합류되는 것으로 표현해야 실제에 부합된다. 이렇듯 방향이나 위치 등이 정확하지 못하다는 측면에서 볼 때 본 지도는 전형적인 회화식 군현지도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오류가 발생한 이유는 금천군의 전체적인 형태가 사각형의 모양으로 표현하기 어려웠기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금천군(金川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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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金川郡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역은 원래 牛峰縣이었는데 1651년(효종 2)에 江陰縣을 병합하여 金川郡으로 승격되었다. 읍치는 본 지도와 같은 吾早川의 남쪽에 두었고, 이후 1678년(숙종 4)에 본 지도에 旧金川이라 적혀 있는 곳으로 옮긴다. 다시 1753년(영조 29)에 읍내의 水土가 나쁘다 하여 다시 본 지도와 같은 오조천의 남쪽으로 옮겼다. 후에 다시 구금천인 저탄의 남쪽으로 옮겼다. 이것만을 참조하면 본 지도는 1678년 이전이나 1753년 이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읍치의 위치는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도 본 지도와 동일하게 그려져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서지도》의 금천 지도와 ‘1872년 지방지도’의 금천군지도, 김정호의 《동여도》에도 본 지도처럼 되어 있다. 《조선지도》의 금천 지도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는 것은 아니지만 『여지도서』의 금천군 지도에는 본 지도의 구금천이 읍치로 표시되어 있다. 본 지도는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금천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세로의 폭이 본 지도에 와서 좁아졌고, 도로가 모두 생략되었다. 또한 문자로만 적혀 있던 面이 노란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다. 面의 명칭 중 주기와 다른 것이 2개 있다. 왼쪽 위의 耳洞面은 주기에 咠洞面으로, 오른쪽 아래의 江南面은 江山外面으로 되어 있다. 《해동지도》의 지도에는 咠洞面과 江南面으로 되어 있고, 주기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咠洞面을 잘못 기록한 것으로 보이며, 《광여도》에서는 이 부분이 수정되어 있다. 왼쪽 위에서 흘러와 오른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예성강이다. 그런데 예성강은 금천군 지역에서 대체적으로 북에서 남으로 흐른다. 본 지도는 예성강의 유로 방향이라는 측면에서는 실제를 반영하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읍치를 지나는 吾助川 역시 실제로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다가 다시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 예성강에 합류되는 것으로 표현해야 실제에 부합된다. 이렇듯 방향이나 위치 등이 정확하지 못하다는 측면에서 볼 때 본 지도는 전형적인 회화식 군현지도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오류가 발생한 이유는 금천군의 전체적인 형태가 사각형의 모양으로 표현하기 어려웠기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문화현(文化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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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문화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방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문화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 문자로만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사용하였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오류도 발생하고 있다. 오른쪽의 古灵은 《해동지도》의 古靈山을 면으로 잘못 이해하여 표시한 것이다. 面자가 빠진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자도 문제점을 발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 위쪽에는 西部面이 2개나 표시되어 있는데, 이것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던 것이다. 《광여도》에서는 古灵에서 노란색 사각형을 제거하여 古靈이라 표현하여 오류를 시정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古靈山이었다는 사실까지 꼼꼼하게 교정하지는 못했다. 西部面이 2개인 것은 《광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해동지도》에 九月山城 안에 있었던 많은 건물이 생략되었다. 또한 왼쪽 위의 大樂山 부근에서 발원하여 松禾界로 빠져나가던 하천이 그려져 있지 않다. 이런 점 역시 《광여도》에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구월산성은 읍치에서 보아 서북쪽에 있다. 그리고 왼쪽 아래로 빠져나가는 하천은 현재의 재령강 지류인 서강의 한 줄기로서 동쪽으로 빠져나간다. 이런 지표들만 놓고 볼 때 본 지도의 방향은 모든 지점에 정확하게 적용되지 않았다. 방향이나 거리의 부정확성은 회화식 군현지도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기봉)

  • 문화현(文化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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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문화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방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문화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 문자로만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사용하였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오류도 발생하고 있다. 오른쪽의 古灵은 《해동지도》의 古靈山을 면으로 잘못 이해하여 표시한 것이다. 面자가 빠진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자도 문제점을 발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 위쪽에는 西部面이 2개나 표시되어 있는데, 이것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던 것이다. 《광여도》에서는 古灵에서 노란색 사각형을 제거하여 古靈이라 표현하여 오류를 시정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古靈山이었다는 사실까지 꼼꼼하게 교정하지는 못했다. 西部面이 2개인 것은 《광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해동지도》에 九月山城 안에 있었던 많은 건물이 생략되었다. 또한 왼쪽 위의 大樂山 부근에서 발원하여 松禾界로 빠져나가던 하천이 그려져 있지 않다. 이런 점 역시 《광여도》에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구월산성은 읍치에서 보아 서북쪽에 있다. 그리고 왼쪽 아래로 빠져나가는 하천은 현재의 재령강 지류인 서강의 한 줄기로서 동쪽으로 빠져나간다. 이런 지표들만 놓고 볼 때 본 지도의 방향은 모든 지점에 정확하게 적용되지 않았다. 방향이나 거리의 부정확성은 회화식 군현지도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기봉)

  • 배천군(白川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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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배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배천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차이가 있다면 읍치를 《해동지도》보다 상대적으로 크게 그리고 도로가 생략되었다는 점뿐이고, 하천이나 산줄기의 흐름은 거의 비슷하다. 《해동지도》에는 문자로만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을 그려 넣었다. 그러나 金谷驛도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여 기호의 사용에서 일관성을 보이고 있지 못하다. 또한 아래쪽 柳川面 근처에 있었던 道下面이 생략되어 있기도 하다. 주기에 도하면이 적혀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라고 생각된다. 《광여도》에도 도하면은 생략되어 있으며, 금곡역은 보라색 사각형으로 교정되어 있다. 오른쪽의 하천이 현재의 예성강이고, 아래쪽으로는 바다에 접해 있다. 회화식 군현 지도 계통이지만 읍치가 확대된 것을 제외하면 고을의 실제 모습과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도 사실과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주기의 내용도 《광여도》와 동일하며, 《해동지도》와도 형식이 다를 뿐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이기봉)

  • 배천군(白川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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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배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배천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차이가 있다면 읍치를 《해동지도》보다 상대적으로 크게 그리고 도로가 생략되었다는 점뿐이고, 하천이나 산줄기의 흐름은 거의 비슷하다. 《해동지도》에는 문자로만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을 그려 넣었다. 그러나 金谷驛도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여 기호의 사용에서 일관성을 보이고 있지 못하다. 또한 아래쪽 柳川面 근처에 있었던 道下面이 생략되어 있기도 하다. 주기에 도하면이 적혀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라고 생각된다. 《광여도》에도 도하면은 생략되어 있으며, 금곡역은 보라색 사각형으로 교정되어 있다. 오른쪽의 하천이 현재의 예성강이고, 아래쪽으로는 바다에 접해 있다. 회화식 군현 지도 계통이지만 읍치가 확대된 것을 제외하면 고을의 실제 모습과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도 사실과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주기의 내용도 《광여도》와 동일하며, 《해동지도》와도 형식이 다를 뿐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이기봉)

  • 봉산군(鳳山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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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봉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양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비슷한 《해동지도》의 봉산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해동지도》보다 본 지도책의 크기가 훨씬 작아 같은 비율로 그리면 읍치의 여러 정보를 표현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와 같은 경향은 다른 부분에도 적용되어 본 지도가 《해동지도》보다 산지 등이 훨씬 밀집되어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예를 들어 《해동지도》에는 읍치 아래쪽 부분이 산지가 별로 없는 느낌을 받지만 본 지도에서는 그런 느낌을 받기가 어렵다. 《해동지도》에 문자로만 되어 있던 面이 본 지도에는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오른쪽 아래의 東西里面은 東四里面의 오기일 뿐만 아니라 노란색 사각형도 표시되어 있지 않다. 오른쪽 위쪽의 東一面은 노란색 사각형은 그려져 있지만 東一里面이라 기록해야 하며, 왼쪽에는 北二里面이 北里二面으로 적혀 있기도 하다. 이러한 면의 정보 오류는 《광여도》에서는 모두 교정되어 있다. 반면에 면이 아닌 부분에서의 誤記는 《광여도》에서도 수정되지 않고 있다. 古邑城 오른쪽의 ‘東里屬館山’에서의 ‘동리속’은 《해동지도》에 加倉 왼쪽에 붙어 있던 것을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잘못 적은 것이다. 이것은 加倉이 東里面에 속해 있다는 뜻이다. 읍치의 梨衣堂 역시 梨花堂을 잘못 적은 것이다. 《광여도》에도 이런 오류가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面에 대한 정보는 주기에 있기 때문에 교정이 가능하지만 그 이외의 정보는 교정이 어렵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봉산군(鳳山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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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봉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양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비슷한 《해동지도》의 봉산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해동지도》보다 본 지도책의 크기가 훨씬 작아 같은 비율로 그리면 읍치의 여러 정보를 표현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와 같은 경향은 다른 부분에도 적용되어 본 지도가 《해동지도》보다 산지 등이 훨씬 밀집되어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예를 들어 《해동지도》에는 읍치 아래쪽 부분이 산지가 별로 없는 느낌을 받지만 본 지도에서는 그런 느낌을 받기가 어렵다. 《해동지도》에 문자로만 되어 있던 面이 본 지도에는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오른쪽 아래의 東西里面은 東四里面의 오기일 뿐만 아니라 노란색 사각형도 표시되어 있지 않다. 오른쪽 위쪽의 東一面은 노란색 사각형은 그려져 있지만 東一里面이라 기록해야 하며, 왼쪽에는 北二里面이 北里二面으로 적혀 있기도 하다. 이러한 면의 정보 오류는 《광여도》에서는 모두 교정되어 있다. 반면에 면이 아닌 부분에서의 誤記는 《광여도》에서도 수정되지 않고 있다. 古邑城 오른쪽의 ‘東里屬館山’에서의 ‘동리속’은 《해동지도》에 加倉 왼쪽에 붙어 있던 것을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잘못 적은 것이다. 이것은 加倉이 東里面에 속해 있다는 뜻이다. 읍치의 梨衣堂 역시 梨花堂을 잘못 적은 것이다. 《광여도》에도 이런 오류가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面에 대한 정보는 주기에 있기 때문에 교정이 가능하지만 그 이외의 정보는 교정이 어렵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서흥현(瑞興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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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서흥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완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서흥부는 1671년(현종 12)부터 1762년(영조 38)까지, 1777년(정조 1)부터 1786년(정조 10)까지 縣으로 강등되어 있었다. 본 지도는 縣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강등된 시기에, 《광여도》는 府로 회복된 시기에 필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본 지도가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동지도》에는 서흥현으로 나온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와 大峴山城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의 크기는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다. 따라서 《해동지도》의 비율로 읍치와 대현산성을 그리면 밀집된 정보를 자세하게 수록할 수 없어 상대적으로 크게 그린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와 비교하여 도로가 생략되었고, 문자로만 기록되었던 坊에 노란색 사각형을 첨가하였다. 읍치에 있는 中部坊에 노란색 사각형이 생략되고, 위쪽에 小飛山이 山飛山으로 잘못 적히는 등의 오류도 보이고 있다. 《광여도》에서는 이런 오류가 수정되어 있다. 서흥현의 전체적인 모습은 동서보다 남북이 훨씬 긴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본 지도에는 약간만 긴 정도로 표현되었다. 이것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아니라 《해동지도》 자체에서 시작된 모습이다. 위쪽의 하천은 현재의 황주강 상류이며, 아래쪽은 서흥강에 해당된다. (이기봉)

  • 서흥현(瑞興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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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서흥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완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서흥부는 1671년(현종 12)부터 1762년(영조 38)까지, 1777년(정조 1)부터 1786년(정조 10)까지 縣으로 강등되어 있었다. 본 지도는 縣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강등된 시기에, 《광여도》는 府로 회복된 시기에 필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본 지도가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동지도》에는 서흥현으로 나온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와 大峴山城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의 크기는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다. 따라서 《해동지도》의 비율로 읍치와 대현산성을 그리면 밀집된 정보를 자세하게 수록할 수 없어 상대적으로 크게 그린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와 비교하여 도로가 생략되었고, 문자로만 기록되었던 坊에 노란색 사각형을 첨가하였다. 읍치에 있는 中部坊에 노란색 사각형이 생략되고, 위쪽에 小飛山이 山飛山으로 잘못 적히는 등의 오류도 보이고 있다. 《광여도》에서는 이런 오류가 수정되어 있다. 서흥현의 전체적인 모습은 동서보다 남북이 훨씬 긴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본 지도에는 약간만 긴 정도로 표현되었다. 이것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아니라 《해동지도》 자체에서 시작된 모습이다. 위쪽의 하천은 현재의 황주강 상류이며, 아래쪽은 서흥강에 해당된다. (이기봉)

  • 송화현(松禾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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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송화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방식에서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송화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해동지도》가 북쪽을 위로 향해 그린 반면 본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해동지도》에 동서가 남북보다 길게 그려진 것을 본 지도처럼 세로로 긴 사각형에 맞추기 위해 방향을 바꾼 것으로 생각된다. 필사 과정에서 읍치 지역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다. 또한 문자로만 기록되어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을 추가하였다. 그러나 추가 과정에서 정밀하게 하지 않은 측면도 보이고 있다. 우선 面과 坊이 혼재되어 사용되고 있다. 보통은 面이라고 했으며, 황해도와 평안도 등의 지역에서 坊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었다. 《해동지도》에는 지도에는 모두 坊으로, 주기에는 모두 面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의 주기에도 모두 面으로 되어 있어 필사 시에 혼돈을 일으킬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광여도》에는 《해동지도》처럼 지도에는 모두 坊으로, 주기에는 모두 面으로 기록하였다. 方竹筒에는 坊이나 面이라는 글자가 생략되어 있기도 하다. 본 지도의 전체적인 모습은 송화현의 실제 형태와 거의 닮지 않았다. 송화현은 서북-동남 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다만 방향이나 거리의 정확성을 바라지 않고 산줄기와 물줄기, 그리고 지명을 비교하면 대체적으로 실제와 부합되고 있다. (이기봉)

  • 송화현(松禾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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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송화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방식에서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송화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해동지도》가 북쪽을 위로 향해 그린 반면 본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해동지도》에 동서가 남북보다 길게 그려진 것을 본 지도처럼 세로로 긴 사각형에 맞추기 위해 방향을 바꾼 것으로 생각된다. 필사 과정에서 읍치 지역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다. 또한 문자로만 기록되어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을 추가하였다. 그러나 추가 과정에서 정밀하게 하지 않은 측면도 보이고 있다. 우선 面과 坊이 혼재되어 사용되고 있다. 보통은 面이라고 했으며, 황해도와 평안도 등의 지역에서 坊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었다. 《해동지도》에는 지도에는 모두 坊으로, 주기에는 모두 面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의 주기에도 모두 面으로 되어 있어 필사 시에 혼돈을 일으킬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광여도》에는 《해동지도》처럼 지도에는 모두 坊으로, 주기에는 모두 面으로 기록하였다. 方竹筒에는 坊이나 面이라는 글자가 생략되어 있기도 하다. 본 지도의 전체적인 모습은 송화현의 실제 형태와 거의 닮지 않았다. 송화현은 서북-동남 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다만 방향이나 거리의 정확성을 바라지 않고 산줄기와 물줄기, 그리고 지명을 비교하면 대체적으로 실제와 부합되고 있다. (이기봉)

  • 수안군(遂安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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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수안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수안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일하게 한 것이 아니라 약간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우선 《해동지도》에 비해 남북이 좁아지고, 동서가 넓어졌다. 이것은 본 지도책처럼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 다음으로 읍치가 《해동지도》보다 상대적으로 크게 그렸다. 이것은 《해동지도》에 비해 상당히 적은 종이 위에 그리는 과정에서 읍치의 정보를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문자로만 기록되어 있던 坊에 노란색 사각형을 그려 넣었다. 坊이란 황해도나 평안도 등의 지역에서 面에 대한 명칭으로 사용하던 행정단위였다. 본 지도에는 西部面, 東部面, 栗界面 등 面으로 적힌 것도 나타나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모두 坊으로 되어 있고, 본 지도의 주기에도 모두 坊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面으로 지칭한 수많은 군현을 그리던 습관 때문에 잘못 기록한 것으로 생각된다. 아래쪽의 城東坊은 城洞坊의 誤記이다. 《광여도》에는 모두 坊으로 수정되어 있으며, 城洞坊으로 기록되어 있다. 위쪽의 하천은 대동강의 지류인 남강의 일부로서 오른쪽에서 흘러와 왼쪽으로 빠져나간다. 아래쪽의 하천은 예성의 최상류에 해당된다. 읍치의 訓練이나 그 오른쪽의 東華菴 등 《해동지도》에는 없던 지명도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다른 자료도 일부 참조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수안군(遂安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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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수안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수안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일하게 한 것이 아니라 약간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우선 《해동지도》에 비해 남북이 좁아지고, 동서가 넓어졌다. 이것은 본 지도책처럼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 다음으로 읍치가 《해동지도》보다 상대적으로 크게 그렸다. 이것은 《해동지도》에 비해 상당히 적은 종이 위에 그리는 과정에서 읍치의 정보를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문자로만 기록되어 있던 坊에 노란색 사각형을 그려 넣었다. 坊이란 황해도나 평안도 등의 지역에서 面에 대한 명칭으로 사용하던 행정단위였다. 본 지도에는 西部面, 東部面, 栗界面 등 面으로 적힌 것도 나타나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모두 坊으로 되어 있고, 본 지도의 주기에도 모두 坊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面으로 지칭한 수많은 군현을 그리던 습관 때문에 잘못 기록한 것으로 생각된다. 아래쪽의 城東坊은 城洞坊의 誤記이다. 《광여도》에는 모두 坊으로 수정되어 있으며, 城洞坊으로 기록되어 있다. 위쪽의 하천은 대동강의 지류인 남강의 일부로서 오른쪽에서 흘러와 왼쪽으로 빠져나간다. 아래쪽의 하천은 예성의 최상류에 해당된다. 읍치의 訓練이나 그 오른쪽의 東華菴 등 《해동지도》에는 없던 지명도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다른 자료도 일부 참조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신계현(新溪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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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신계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양식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신계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에서는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보다 본 지도의 크기가 훨씬 작아 읍치의 자세한 정보를 표현하기 위해 읍치를 상대적으로 크게 그린 것으로 생각된다. 필사 과정에서 실수도 보이고 있다. 읍치 위쪽의 光山罷陣旧基에서의 陣은 鎭을 잘못 쓴 것이다. 왼쪽 위의 赤岩面 부근에는 餘背耳面이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 이 면의 명칭이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임을 알 수 있다. 《광여도》에도 이런 오류는 동일하게 이어지고 있다. 왼쪽에 ‘十知谷面’으로도 읽힐 수 있는 글자는 亇知谷面이다. ‘亇’자를 ‘十’자와 비슷하게 쓰는 경우가 많다. 위쪽의 遂安界에서 흘러와 아래쪽 平山界로 빠져나가는 沙羅川이 현재의 예성강 본류이다. 예성강 서쪽의 마지곡면과 적암면 부분은 실제로는 서쪽으로 더 튀어나가 있다. 읍치를 중심으로 사각형에 맞추기 위해 서쪽 경계가 직선으로 표현되면서 실제와 다르게 되었다. 이것은 이곳에서 흘러와 예성강에 합류되는 하천 자체도 작게 그려지는 원인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위쪽의 지파막면과 사리곡면 지역도 실제로는 북쪽으로 더 튀어나가 있다. 이 부분도 읍치를 중심으로 사각형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실제와 좀 다르게 그려졌다. 萊村面에서 흘러오는 하천이 실제로는 西南流하여 예성과에 합류됨에도 마치 西流하는 것처럼 그려진 것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기봉)

  • 신계현(新溪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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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신계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양식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신계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에서는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보다 본 지도의 크기가 훨씬 작아 읍치의 자세한 정보를 표현하기 위해 읍치를 상대적으로 크게 그린 것으로 생각된다. 필사 과정에서 실수도 보이고 있다. 읍치 위쪽의 光山罷陣旧基에서의 陣은 鎭을 잘못 쓴 것이다. 왼쪽 위의 赤岩面 부근에는 餘背耳面이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 이 면의 명칭이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임을 알 수 있다. 《광여도》에도 이런 오류는 동일하게 이어지고 있다. 왼쪽에 ‘十知谷面’으로도 읽힐 수 있는 글자는 亇知谷面이다. ‘亇’자를 ‘十’자와 비슷하게 쓰는 경우가 많다. 위쪽의 遂安界에서 흘러와 아래쪽 平山界로 빠져나가는 沙羅川이 현재의 예성강 본류이다. 예성강 서쪽의 마지곡면과 적암면 부분은 실제로는 서쪽으로 더 튀어나가 있다. 읍치를 중심으로 사각형에 맞추기 위해 서쪽 경계가 직선으로 표현되면서 실제와 다르게 되었다. 이것은 이곳에서 흘러와 예성강에 합류되는 하천 자체도 작게 그려지는 원인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위쪽의 지파막면과 사리곡면 지역도 실제로는 북쪽으로 더 튀어나가 있다. 이 부분도 읍치를 중심으로 사각형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실제와 좀 다르게 그려졌다. 萊村面에서 흘러오는 하천이 실제로는 西南流하여 예성과에 합류됨에도 마치 西流하는 것처럼 그려진 것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기봉)

  • 신천군(信川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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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신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에서는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신천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문자로만 기록된 面이 본 지도에는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로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元山驛도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하여 일관성을 결여하고 있다. 또한 加山面에는 노란색 사각형을 그리지 않는 실수도 하고 있다. 주기에 있지만 지도에 없는 面의 명칭이 3개 있다. 이 중 頭羅面은 아래쪽에 頭羅山으로, 蓮寺面은 오른쪽 아래에 蓮寺洞으로 잘못 옮겨져 있다. 於項面은 《해동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다. 《광여도》에서는 加山面에 노란색 사각형을 그려 넣고, 元山驛을 보라색 사각형으로 그린 것 이외에는 본 지도와 동일한 오류를 반복하고 있다. 전형적인 회화식 지도의 형태로 그려져 있다. 읍치가 상대적으로 확대 과장되게 표현되었고, 풍수적 명당의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고을 전체가 마치 산줄기에 의해 겹겹이 둘러싸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실제 모습이라기보다는 인식된 지형일 뿐이다. 동쪽으로는 마치 바다에 접한 것처럼 표현되었지만 이것 역시 실제를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이곳은 재령강의 지류인 서강이며, 밀물 때 바닷물이 들어오는 구간일 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신천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를 비교하면서 이해하면 도움이 된다. (이기봉)

  • 신천군(信川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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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신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에서는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신천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문자로만 기록된 面이 본 지도에는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로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元山驛도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하여 일관성을 결여하고 있다. 또한 加山面에는 노란색 사각형을 그리지 않는 실수도 하고 있다. 주기에 있지만 지도에 없는 面의 명칭이 3개 있다. 이 중 頭羅面은 아래쪽에 頭羅山으로, 蓮寺面은 오른쪽 아래에 蓮寺洞으로 잘못 옮겨져 있다. 於項面은 《해동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다. 《광여도》에서는 加山面에 노란색 사각형을 그려 넣고, 元山驛을 보라색 사각형으로 그린 것 이외에는 본 지도와 동일한 오류를 반복하고 있다. 전형적인 회화식 지도의 형태로 그려져 있다. 읍치가 상대적으로 확대 과장되게 표현되었고, 풍수적 명당의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고을 전체가 마치 산줄기에 의해 겹겹이 둘러싸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실제 모습이라기보다는 인식된 지형일 뿐이다. 동쪽으로는 마치 바다에 접한 것처럼 표현되었지만 이것 역시 실제를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이곳은 재령강의 지류인 서강이며, 밀물 때 바닷물이 들어오는 구간일 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신천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를 비교하면서 이해하면 도움이 된다. (이기봉)

  • 안악군(安岳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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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안안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안악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다른 군현의 지도에서는 본 지도책이 《해동지도》보다 지명이 더 적은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본 지도에는 《해동지도》에 없는 지명도 기입되어 있다. 대표적인 것이 가운데 아래쪽의 長慶嶺과 長慶塔, 赤大路와 黃中路 및 靑小路 등이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했다고 하더라도 다른 자료를 참고하면서 일부 지명을 첨가했다고 볼 수 있다. 《해동지도》에는 문자로만 표시되어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덧붙였다. 그러나 읍치 오른쪽에 있었던 板橋面이 생략되어 있으며, 安谷面이 安國面으로 바뀌어 있다. 주기에는 판교면이 있고, 안곡면으로 적혀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문제점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오른쪽의 하천이 현재의 재령강이고, 아래쪽의 하천이 그 지류인 서강이다. 위쪽은 재령강과 대동강이 합류하여 서해로 빠져나가는 부분이다. 일부 하천의 방향에서 약간의 왜곡이 나타나지만 전체적으로 고을의 실제 모습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고을의 모습 자체가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표현하기 좋은 모양을 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안악군(安岳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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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안안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안악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다른 군현의 지도에서는 본 지도책이 《해동지도》보다 지명이 더 적은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본 지도에는 《해동지도》에 없는 지명도 기입되어 있다. 대표적인 것이 가운데 아래쪽의 長慶嶺과 長慶塔, 赤大路와 黃中路 및 靑小路 등이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했다고 하더라도 다른 자료를 참고하면서 일부 지명을 첨가했다고 볼 수 있다. 《해동지도》에는 문자로만 표시되어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덧붙였다. 그러나 읍치 오른쪽에 있었던 板橋面이 생략되어 있으며, 安谷面이 安國面으로 바뀌어 있다. 주기에는 판교면이 있고, 안곡면으로 적혀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문제점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오른쪽의 하천이 현재의 재령강이고, 아래쪽의 하천이 그 지류인 서강이다. 위쪽은 재령강과 대동강이 합류하여 서해로 빠져나가는 부분이다. 일부 하천의 방향에서 약간의 왜곡이 나타나지만 전체적으로 고을의 실제 모습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고을의 모습 자체가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표현하기 좋은 모양을 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연안부(延安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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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연안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연안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에서는 面을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였지만 《해동지도》에 비해 몇 가지 오류를 범하고 있다. 우선 다른 군현 지도에서 대부분 보라색 사각형으로 표시한 深洞驛을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고 있다. 위쪽의 三屯田은 三屯面의 왼쪽 아래의 並城界는 並城面을 잘못 기록한 것이다. 아래쪽의 食尺面과 읍치 위쪽의 北部面은 노란색 사각형이 생략되어 있다. 더 나아가 오른쪽의 洪村面은 池村面의 誤記이고, 그 왼쪽에는 石串面이 생략되어 있다. 《광여도》에서는 삼둔전, 북부면, 식척면에서의 오류는 시정되어 있지만 나머지는 동일하게 오류를 범하고 있다. 주기에는 이런 오류들이 모두 시정되어 있고, 《광여도》의 주기도 동일하여 두 지도의 필사 시에 주도면밀하게 검토하면서 지도를 그린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검토를 통해 볼 때 본 지도와 《광여도》가 《해동지도》의 필사본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동일하게 필사한 것이 아니다. 가장 큰 차이는 본 지도에서 읍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해동지도》보다 훨씬 크다는 점이다. 이것은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은 본 지도책에 《해동지도》의 비율로 읍성을 그리면 성곽과 내부의 정보를 표현하기가 어렵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읍성의 확대는 해안선이나 다른 부분에서의 변화도 유발시킨다. (이기봉)

  • 연안부(延安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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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연안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연안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에서는 面을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였지만 《해동지도》에 비해 몇 가지 오류를 범하고 있다. 우선 다른 군현 지도에서 대부분 보라색 사각형으로 표시한 深洞驛을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고 있다. 위쪽의 三屯田은 三屯面의 왼쪽 아래의 並城界는 並城面을 잘못 기록한 것이다. 아래쪽의 食尺面과 읍치 위쪽의 北部面은 노란색 사각형이 생략되어 있다. 더 나아가 오른쪽의 洪村面은 池村面의 誤記이고, 그 왼쪽에는 石串面이 생략되어 있다. 《광여도》에서는 삼둔전, 북부면, 식척면에서의 오류는 시정되어 있지만 나머지는 동일하게 오류를 범하고 있다. 주기에는 이런 오류들이 모두 시정되어 있고, 《광여도》의 주기도 동일하여 두 지도의 필사 시에 주도면밀하게 검토하면서 지도를 그린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검토를 통해 볼 때 본 지도와 《광여도》가 《해동지도》의 필사본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동일하게 필사한 것이 아니다. 가장 큰 차이는 본 지도에서 읍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해동지도》보다 훨씬 크다는 점이다. 이것은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은 본 지도책에 《해동지도》의 비율로 읍성을 그리면 성곽과 내부의 정보를 표현하기가 어렵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읍성의 확대는 해안선이나 다른 부분에서의 변화도 유발시킨다. (이기봉)

  • 옹진부(瓮津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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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옹진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옹진부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의 읍성과 所江鎭 부분이 더 확대되어 그려져 있다. 이런 차이가 발생한 이유는 본 지도의 크기가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만약 본 지도처럼 작은 종이 위에 《해동지도》와 동일한 비율로 읍성과 소강진을 그리면 성곽과 성곽 안의 정보를 표현하기가 어렵다. 특히 본 지도는 《해동지도》에 비해 읍성과 소강진 안의 건물들이 훨씬 많아졌다. 주기에는 소강진을 所江行營이라고 표현하였다. 소강진이 1719년(숙종 45)에 황해도 수군절도사영으로 승격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 옹진현도 옹진부로 승격되고, 옹진부사가 수군절도사를 겸하게 된다. 따라서 주기만을 놓고 보면 본 지도는 1719년 이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광여도》에는 소강행영이라고 해놓고, 지도의 명칭은 옹진현이라고 되어 있어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 《광여도》의 주기에는 본 지도의 주기에 나오는 南距大海十里 오른쪽 부분이 빠져 있기도 하다. 읍치와 소강진을 다른 지역에 비해 지나치게 확대하다보니까 나머지 지역의 모습이 많이 왜곡되었다. 예를 들어 西面이 본 지도에서는 마치 읍치 북쪽에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이것은 소강진 이서 지역이 극히 작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소강진부터 서쪽 끝 부분까지의 거리가 동쪽 끝 부분까지의 거리보다 더 멀다. 만약 서쪽 부분을 실제처럼 그렸다면 서면이 소강진 서쪽에, 龍淵面은 더 서쪽에 배치되어야 한다. 읍치 오른쪽에는 東面이 바다에 있는 것처럼 기록되었고, 노란색 사각형도 표시되어 있지 않다. 이 역시 읍치 부분이 확대되어 그려지면서 동쪽 부분 역시 극도로 축소되었기 때문이다. 《광여도》에는 동면이 육지 부분에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옹진부(瓮津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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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옹진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옹진부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의 읍성과 所江鎭 부분이 더 확대되어 그려져 있다. 이런 차이가 발생한 이유는 본 지도의 크기가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만약 본 지도처럼 작은 종이 위에 《해동지도》와 동일한 비율로 읍성과 소강진을 그리면 성곽과 성곽 안의 정보를 표현하기가 어렵다. 특히 본 지도는 《해동지도》에 비해 읍성과 소강진 안의 건물들이 훨씬 많아졌다. 주기에는 소강진을 所江行營이라고 표현하였다. 소강진이 1719년(숙종 45)에 황해도 수군절도사영으로 승격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 옹진현도 옹진부로 승격되고, 옹진부사가 수군절도사를 겸하게 된다. 따라서 주기만을 놓고 보면 본 지도는 1719년 이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광여도》에는 소강행영이라고 해놓고, 지도의 명칭은 옹진현이라고 되어 있어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 《광여도》의 주기에는 본 지도의 주기에 나오는 南距大海十里 오른쪽 부분이 빠져 있기도 하다. 읍치와 소강진을 다른 지역에 비해 지나치게 확대하다보니까 나머지 지역의 모습이 많이 왜곡되었다. 예를 들어 西面이 본 지도에서는 마치 읍치 북쪽에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이것은 소강진 이서 지역이 극히 작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소강진부터 서쪽 끝 부분까지의 거리가 동쪽 끝 부분까지의 거리보다 더 멀다. 만약 서쪽 부분을 실제처럼 그렸다면 서면이 소강진 서쪽에, 龍淵面은 더 서쪽에 배치되어야 한다. 읍치 오른쪽에는 東面이 바다에 있는 것처럼 기록되었고, 노란색 사각형도 표시되어 있지 않다. 이 역시 읍치 부분이 확대되어 그려지면서 동쪽 부분 역시 극도로 축소되었기 때문이다. 《광여도》에는 동면이 육지 부분에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은율현(殷栗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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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은율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은율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에는 客舍가 있는 읍치와 九月山城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는 본 지도보다 훨씬 큰 종이에 그려져 있어 작은 종이에 옮기면 정보가 밀집된 읍치와 구월산성을 제대로 표현하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또한 왼쪽 위의 바다 부분 역시 《해동지도》보다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실제적으로 은율현은 북서쪽 일부에만 바다에 접해 있어 《해동지도》가 사실에 더 가깝다. 필사 과정에서 사실이 왜곡되는 모습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바다에 있는 섬은 크기나 위치를 고려하지 않고 그려져 있다. 예를 들어 席島는 나머지 2개의 섬보다 훨씬 클 뿐만 아니라 더 북쪽에 위치해 있다. 이러한 왜곡에 따라 남쪽에서 발원하여 거의 북류하는 漢川의 모습 역시 조금 왜곡되어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은율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를 참고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기타 《해동지도》에 있던 도로가 생략되었고, 문자로만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가 첨가되었다. (이기봉)

  • 은율현(殷栗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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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은율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은율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에는 客舍가 있는 읍치와 九月山城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는 본 지도보다 훨씬 큰 종이에 그려져 있어 작은 종이에 옮기면 정보가 밀집된 읍치와 구월산성을 제대로 표현하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또한 왼쪽 위의 바다 부분 역시 《해동지도》보다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실제적으로 은율현은 북서쪽 일부에만 바다에 접해 있어 《해동지도》가 사실에 더 가깝다. 필사 과정에서 사실이 왜곡되는 모습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바다에 있는 섬은 크기나 위치를 고려하지 않고 그려져 있다. 예를 들어 席島는 나머지 2개의 섬보다 훨씬 클 뿐만 아니라 더 북쪽에 위치해 있다. 이러한 왜곡에 따라 남쪽에서 발원하여 거의 북류하는 漢川의 모습 역시 조금 왜곡되어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은율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를 참고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기타 《해동지도》에 있던 도로가 생략되었고, 문자로만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가 첨가되었다. (이기봉)

  • 장련현(長連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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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장련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방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장련현 지도를 필사한 것이라고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몇 가지 오류를 범하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의 道里面 왼쪽 부분이 반도 모양으로 되어 있으며, 산줄기도 이어져 있다. 또한 위쪽 松串壇 북쪽으로는 바다로 되어 있으며, 오른쪽 위의 大津 역시 반도로 표현되었다. 《해동지도》의 표현에 약간의 오류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장련현의 실제 모습을 대략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제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의로 표현하면서 장련현의 형태 자체에 대한 파악이 어렵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광여도》에서는 《해동지도》에 있던 道里面 왼쪽의 산줄기와 지명들이 모두 그려져 있다. 그러나 그 왼쪽과 장련현이 바다라는 사실은 수정되지 않았다. 이것을 통해 볼 때 《광여도》의 필사자도 장련현의 실제 모습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지는 않았다고 생각된다. 본 지도에서 생략된 부분을 《해동지도》를 통해 보충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의 것을 그대로 따랐다. 그 밖에 본 지도가 《해동지도》와 달라진 점은 도로가 모두 생략되었고, 문자로만 적혀 있던 面을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통해 표현했다는 점이다. (이기봉)

  • 장련현(長連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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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장련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방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장련현 지도를 필사한 것이라고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몇 가지 오류를 범하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의 道里面 왼쪽 부분이 반도 모양으로 되어 있으며, 산줄기도 이어져 있다. 또한 위쪽 松串壇 북쪽으로는 바다로 되어 있으며, 오른쪽 위의 大津 역시 반도로 표현되었다. 《해동지도》의 표현에 약간의 오류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장련현의 실제 모습을 대략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제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의로 표현하면서 장련현의 형태 자체에 대한 파악이 어렵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광여도》에서는 《해동지도》에 있던 道里面 왼쪽의 산줄기와 지명들이 모두 그려져 있다. 그러나 그 왼쪽과 장련현이 바다라는 사실은 수정되지 않았다. 이것을 통해 볼 때 《광여도》의 필사자도 장련현의 실제 모습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지는 않았다고 생각된다. 본 지도에서 생략된 부분을 《해동지도》를 통해 보충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의 것을 그대로 따랐다. 그 밖에 본 지도가 《해동지도》와 달라진 점은 도로가 모두 생략되었고, 문자로만 적혀 있던 面을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통해 표현했다는 점이다. (이기봉)

  • 장연부(長淵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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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장연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해동지도》의 장연부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본 지도책의 상당 부분이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이므로 본 지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해동지도》는 동서를 길게 그린 반면 본 지도는 세로로 긴 사각형에 맞추기 위해 남북을 길게 그렸다. 또한 읍치 지역을 작아진 종이에 맞추면서 밀집된 정보를 표시하기 위해 《해동지도》보다 상대적으로 더 크게 그렸다. 이로 인해 해안선이나 하천의 길이 등에서 변화가 발생하였으나 수록된 내용은 전체적으로 거의 동일하다. 읍치에 있는 건물의 수가 《해동지도》보다 더 많아지는 등의 변화도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지명이라는 입장에서 볼 때 더 추가되어 있는 것은 없다. 본 지도에서는 面을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하였다. 주기에 적혀 있는 면과 비교해 보면 읍치 위쪽에 있는 蒪池面의 명칭이 생략되어 있고, 이 점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서쪽의 大海 부분에 경계선이 표시되어 있어 마치 본 고을의 서쪽에 거대한 호수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난다. 이것은 《해동지도》에 푸른색으로 칠해져 있는 바다 부분을 선으로 표시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이 부분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장연부의 서쪽은 본 지도에 쓰여 있듯이 大海가 펼쳐져 있다. 고을의 전반적인 모습은 실제와 거의 닮지 않았다. (이기봉)

  • 장연부(長淵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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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장연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해동지도》의 장연부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본 지도책의 상당 부분이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이므로 본 지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해동지도》는 동서를 길게 그린 반면 본 지도는 세로로 긴 사각형에 맞추기 위해 남북을 길게 그렸다. 또한 읍치 지역을 작아진 종이에 맞추면서 밀집된 정보를 표시하기 위해 《해동지도》보다 상대적으로 더 크게 그렸다. 이로 인해 해안선이나 하천의 길이 등에서 변화가 발생하였으나 수록된 내용은 전체적으로 거의 동일하다. 읍치에 있는 건물의 수가 《해동지도》보다 더 많아지는 등의 변화도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지명이라는 입장에서 볼 때 더 추가되어 있는 것은 없다. 본 지도에서는 面을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하였다. 주기에 적혀 있는 면과 비교해 보면 읍치 위쪽에 있는 蒪池面의 명칭이 생략되어 있고, 이 점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서쪽의 大海 부분에 경계선이 표시되어 있어 마치 본 고을의 서쪽에 거대한 호수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난다. 이것은 《해동지도》에 푸른색으로 칠해져 있는 바다 부분을 선으로 표시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이 부분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장연부의 서쪽은 본 지도에 쓰여 있듯이 大海가 펼쳐져 있다. 고을의 전반적인 모습은 실제와 거의 닮지 않았다. (이기봉)

  • 재령군(載寧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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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재령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재령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필사 과정에서 읍치와 장수산성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확대되었다.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은 종이에 그리면서 정보가 밀집된 읍치와 장수산성을 자세하게 묘사하기 위한 방법으로 생각된다. 또한 남북이 폭이 상대적으로 좁아지고, 동서가 넓어졌다. 가로 세로가 일정한 크기의 종이에 고을 전체를 꽉 차게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 고을의 전체적인 모습은 남북이 동서보다 훨씬 길다. 《해동지도》에는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을 본 지도에서는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方洞面과 銀叱只面은 무색의 사각형이 있어 필자사의 치밀하지 못한 모습이 엿보인다. 주기에 있지만 지도에는 없는 花山面이 《해동지도》에는 있기 때문에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라 생각된다. 《광여도》에는 무색의 사각형이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지만 화산면이 빠져 있어 본 지도와 필사 관계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오른쪽의 하천이 재령강 본류이고, 왼쪽의 하천이 그 지류인 서강이다. 서강 중 읍치 왼쪽에 있는 것의 표현이 애매한데, 원래는 信川界 방면에서 흘러오도록 그려져 있어야 한다. 본 지도는 거리와 위치의 정확성 보다는 중요 부분을 확대해서 그리고, 풍수적 명당 이미지를 강조한 전형적인 회화식 군현 지도이다. (이기봉)

  • 재령군(載寧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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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재령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재령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필사 과정에서 읍치와 장수산성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확대되었다.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은 종이에 그리면서 정보가 밀집된 읍치와 장수산성을 자세하게 묘사하기 위한 방법으로 생각된다. 또한 남북이 폭이 상대적으로 좁아지고, 동서가 넓어졌다. 가로 세로가 일정한 크기의 종이에 고을 전체를 꽉 차게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 고을의 전체적인 모습은 남북이 동서보다 훨씬 길다. 《해동지도》에는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을 본 지도에서는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方洞面과 銀叱只面은 무색의 사각형이 있어 필자사의 치밀하지 못한 모습이 엿보인다. 주기에 있지만 지도에는 없는 花山面이 《해동지도》에는 있기 때문에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라 생각된다. 《광여도》에는 무색의 사각형이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지만 화산면이 빠져 있어 본 지도와 필사 관계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오른쪽의 하천이 재령강 본류이고, 왼쪽의 하천이 그 지류인 서강이다. 서강 중 읍치 왼쪽에 있는 것의 표현이 애매한데, 원래는 信川界 방면에서 흘러오도록 그려져 있어야 한다. 본 지도는 거리와 위치의 정확성 보다는 중요 부분을 확대해서 그리고, 풍수적 명당 이미지를 강조한 전형적인 회화식 군현 지도이다. (이기봉)

  • 토산현(兎山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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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토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토산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필사 과정에서 생략된 지명이 많다. 그 중에서 노란색 사각형을 표현한 面 중 邑內面이 생략된 것은 필사자의 실수라고 생각된다. 읍치 아래쪽에는 《해동지도》에 龍馬淵이라 적혀 있던 것이 馬龍淵으로 誤記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부분들은 《광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에 추가된 지명들도 있다. 이런 지명들은 모두 읍치에서 나타나고 있다. 오른쪽의 향교에 있는 西齋와 東齋, 內東軒과 外東軒, 鄕廳 등은 《해동지도》에 없던 지명이다.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첨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부분 역시 《광여도》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지도 오른쪽의 하천은 현재의 임진강 본류이고, 왼쪽은 예성강의 지류인 구연강의 상류이다. 규모로는 임진강이 훨씬 크지만 본 지도에는 구연강도 비슷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광여도》에서는 임진강 본류는 2개의 실선으로 나타낸 반면 구연강은 모두 1개의 실선으로 표시하여 실질적인 하천 규모의 차이를 반영하고 있다. (이기봉)

  • 토산현(兎山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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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토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토산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필사 과정에서 생략된 지명이 많다. 그 중에서 노란색 사각형을 표현한 面 중 邑內面이 생략된 것은 필사자의 실수라고 생각된다. 읍치 아래쪽에는 《해동지도》에 龍馬淵이라 적혀 있던 것이 馬龍淵으로 誤記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부분들은 《광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에 추가된 지명들도 있다. 이런 지명들은 모두 읍치에서 나타나고 있다. 오른쪽의 향교에 있는 西齋와 東齋, 內東軒과 外東軒, 鄕廳 등은 《해동지도》에 없던 지명이다.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첨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부분 역시 《광여도》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지도 오른쪽의 하천은 현재의 임진강 본류이고, 왼쪽은 예성강의 지류인 구연강의 상류이다. 규모로는 임진강이 훨씬 크지만 본 지도에는 구연강도 비슷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광여도》에서는 임진강 본류는 2개의 실선으로 나타낸 반면 구연강은 모두 1개의 실선으로 표시하여 실질적인 하천 규모의 차이를 반영하고 있다. (이기봉)

  • 평산부(平山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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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평산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전반적으로 《해동지도》의 평산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필사 과정에서 몇 가지의 변화가 발생하였다. 본 지도에는 《해동지도》에 문자로만 기록된 面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寶山面이 생략되고, 읍치 왼쪽의 古之面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주기에 있으면서 본 지도에 없는 面 중의 하나가 外邑內面인데, 이것은 《해동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다. 《광여도》에는 고지면에 노란색 사각형을 표시한 것 이외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본 지도에는 《해동지도》에 鐵峯面으로 되어 있던 것을 鐵峯山으로 교정해 놓기도 하였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와 太白山城이 확대되어 그려졌다. 이에 따라 오른쪽의 예성강 유로에 변화가 발생하였다. 또한 왼쪽 위의 上月面과 下月面 부분이 보다 남쪽으로 배치되었다. 《해동지도》에는 이 2개의 면이 文丘面보다 약간 위쪽에 그려져 있었는데,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기 위해 위치에 변화를 준 것으로 생각된다. 왼쪽 아래의 道下面과 弓位面 지역은 해주와 연안의 사이로 남쪽으로 불쑥 튀어나가 서해에 접해 있는 지역이다. 따라서 실제로는 예성강의 猪灘橋 부분보다 훨씬 남쪽에 있다.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이런 사실이 왜곡되어 표현된 것으로 생각된다. 평산부는 남북보다는 동서의 폭이 더 넓은 고을이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세로로 긴 사각형에 맞추기 위해 동서보다 남북이 더 길게 그려졌다. 이 과정에서 왜곡이 발생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積岩面 부근의 하천이다. 이 하천은 현재 누천이라고 부르며, 실제로는 東流하는 부분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남북을 더 길게 하는 과정에서 마치 南流하는 하천처럼 표현되었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도 아래쪽에 白川界가 없으며, 이미 金川에 합쳐져 있었던 江陰界가 적혀 있기도 하다. (이기봉)

  • 평산부(平山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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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평산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전반적으로 《해동지도》의 평산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필사 과정에서 몇 가지의 변화가 발생하였다. 본 지도에는 《해동지도》에 문자로만 기록된 面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寶山面이 생략되고, 읍치 왼쪽의 古之面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주기에 있으면서 본 지도에 없는 面 중의 하나가 外邑內面인데, 이것은 《해동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다. 《광여도》에는 고지면에 노란색 사각형을 표시한 것 이외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본 지도에는 《해동지도》에 鐵峯面으로 되어 있던 것을 鐵峯山으로 교정해 놓기도 하였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와 太白山城이 확대되어 그려졌다. 이에 따라 오른쪽의 예성강 유로에 변화가 발생하였다. 또한 왼쪽 위의 上月面과 下月面 부분이 보다 남쪽으로 배치되었다. 《해동지도》에는 이 2개의 면이 文丘面보다 약간 위쪽에 그려져 있었는데,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기 위해 위치에 변화를 준 것으로 생각된다. 왼쪽 아래의 道下面과 弓位面 지역은 해주와 연안의 사이로 남쪽으로 불쑥 튀어나가 서해에 접해 있는 지역이다. 따라서 실제로는 예성강의 猪灘橋 부분보다 훨씬 남쪽에 있다.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이런 사실이 왜곡되어 표현된 것으로 생각된다. 평산부는 남북보다는 동서의 폭이 더 넓은 고을이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세로로 긴 사각형에 맞추기 위해 동서보다 남북이 더 길게 그려졌다. 이 과정에서 왜곡이 발생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積岩面 부근의 하천이다. 이 하천은 현재 누천이라고 부르며, 실제로는 東流하는 부분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남북을 더 길게 하는 과정에서 마치 南流하는 하천처럼 표현되었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도 아래쪽에 白川界가 없으며, 이미 金川에 합쳐져 있었던 江陰界가 적혀 있기도 하다. (이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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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천부(豊川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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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풍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풍천부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그러나 몇 가지 부분에서 다른 점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전체 지도에서 읍치의 크기가 차지하는 비율이 《해동지도》보다 본 지도가 훨씬 크다. 이것은 본 지도책이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만약 《해동지도》에서 읍치가 차지하는 비율과 동일하게 그리면 본 지도책에서는 너무 작아 읍성과 그 안쪽의 정보를 표현하기가 어렵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읍치를 더 확대해서 그린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이런 읍치의 확대는 다른 지역이 상대적으로 좁게 그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과정에서 해안선이나 산줄기와 물줄기의 표현이 약간씩 달라질 수 있다. 본 지도에서는 面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맨 아래쪽에 栗里面이 생략되어 있다. 본 지도의 주기에는 율리면이 나오고 있다. 이 점은 《광여도》도 동일하여 본 지도와 상관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왼쪽 위의 琵琶山은 《광여도》에 없는 지명이다. 본 지도에 없으면서 《광여도》에 있는 지명도 있다. 오른쪽 泉洞面 아래에 《광여도》에는 所要項院이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 2개의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본 지도와 《광여도》 중 어느 것이 필사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필사하면서 《해동지도》를 참고한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주기의 호수가 《광여도》와 천의 자리가 다른데,  《해동지도》는 본 지도와 동일하다. (이기봉)

  • 풍천부(豊川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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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풍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풍천부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그러나 몇 가지 부분에서 다른 점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전체 지도에서 읍치의 크기가 차지하는 비율이 《해동지도》보다 본 지도가 훨씬 크다. 이것은 본 지도책이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만약 《해동지도》에서 읍치가 차지하는 비율과 동일하게 그리면 본 지도책에서는 너무 작아 읍성과 그 안쪽의 정보를 표현하기가 어렵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읍치를 더 확대해서 그린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이런 읍치의 확대는 다른 지역이 상대적으로 좁게 그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과정에서 해안선이나 산줄기와 물줄기의 표현이 약간씩 달라질 수 있다. 본 지도에서는 面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맨 아래쪽에 栗里面이 생략되어 있다. 본 지도의 주기에는 율리면이 나오고 있다. 이 점은 《광여도》도 동일하여 본 지도와 상관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왼쪽 위의 琵琶山은 《광여도》에 없는 지명이다. 본 지도에 없으면서 《광여도》에 있는 지명도 있다. 오른쪽 泉洞面 아래에 《광여도》에는 所要項院이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 2개의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본 지도와 《광여도》 중 어느 것이 필사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필사하면서 《해동지도》를 참고한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주기의 호수가 《광여도》와 천의 자리가 다른데,  《해동지도》는 본 지도와 동일하다. (이기봉)

  • 해주목(海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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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해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해동지도》의 해주목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약간의 변화가 발생하였다. 본 지도는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지만 《해동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해주목은 남북보다 동서가 훨씬 긴 고을이다. 《해동지도》는 이 점을 고려하여 세로보다 짧은 가로 방향을 남-북으로 잡은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는 훨씬 더 긴 동서 방향을 더 짧은 가로로 배치하여 남북보다 동서의 거리 왜곡이 심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오른쪽 아래의 下平倉面 부근에 3개의 면 명칭이 빼곡히 적혀 있는데, 《해동지도》에는 모두 넓게 표시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이 본 지도에서는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아래쪽의 龍媒鎭은 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기호로 표시되어 있다. 面의 명칭은 적혀 있지만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은 것도 있다. 또한 아예 면의 명칭 자체도 기록되지 않은 것도 있다. 《광여도》에서는 오른쪽 아래의 면 명칭에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지 않은 것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서 나타나는 面의 정보에 대한 문제점이 상당히 교정되어 있다. 본 지도에는 지명을 잘못 옮긴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오른쪽 아래의 史串峯은 《해동지도》에 皮串峯臺라고 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도 烽이 峯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는데, 《광여도》에서는 皮串烽으로 교정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읍치와 首陽山城이 확대되어 그려져 그 주변 지역 역시 확대되어 표현되었다. 그러나 그 이외 지역의 전체적인 모습은 실제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해주목(海州牧)(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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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해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해동지도》의 해주목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약간의 변화가 발생하였다. 본 지도는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지만 《해동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해주목은 남북보다 동서가 훨씬 긴 고을이다. 《해동지도》는 이 점을 고려하여 세로보다 짧은 가로 방향을 남-북으로 잡은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는 훨씬 더 긴 동서 방향을 더 짧은 가로로 배치하여 남북보다 동서의 거리 왜곡이 심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오른쪽 아래의 下平倉面 부근에 3개의 면 명칭이 빼곡히 적혀 있는데, 《해동지도》에는 모두 넓게 표시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이 본 지도에서는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아래쪽의 龍媒鎭은 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기호로 표시되어 있다. 面의 명칭은 적혀 있지만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은 것도 있다. 또한 아예 면의 명칭 자체도 기록되지 않은 것도 있다. 《광여도》에서는 오른쪽 아래의 면 명칭에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지 않은 것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서 나타나는 面의 정보에 대한 문제점이 상당히 교정되어 있다. 본 지도에는 지명을 잘못 옮긴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오른쪽 아래의 史串峯은 《해동지도》에 皮串峯臺라고 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도 烽이 峯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는데, 《광여도》에서는 皮串烽으로 교정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읍치와 首陽山城이 확대되어 그려져 그 주변 지역 역시 확대되어 표현되었다. 그러나 그 이외 지역의 전체적인 모습은 실제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황주목(黃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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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황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책의 다른 지도들처럼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황주목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몇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 우선 兵營이 있었던 읍치와 正方山城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그려졌다. 이것은 부수적으로 다른 부분에서의 변화도 유발시킨다. 예를 들어 읍치 아래쪽, 정방산성 왼쪽의 공간이 좁아지게 된다. 이에 따라 이 지역에 있던 지명들이 상당히 밀집되어 기록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천의 유로 역시 많이 달라지는 부분 중의 하나이다. 이런 변화가 나타난 것은 《해동지도》의 크기보다 본 지도는 4분의 1 이상으로 축소되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만약 이런 상태에서 읍치와 정방산성을 《해동지도》의 비율처럼 그리게 되면 성곽과 그 안의 여러 가지 정보를 표현할 수 없게 된다. 본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로 뻗은 산줄기가 동쪽으로부터 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아래쪽(서)은 본 지도에 마치 바다처럼 그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대동강 하구 부근이다. 지도 제작자가 의도적으로 왜곡했다기보다는 다른 고을을 그리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지도에는 面에 해당되는 坊에 노란색 사각형의 모양이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아래쪽에 分田界는 分田坊의 誤記이고, 오른쪽 아래의 蒜山嶺은 蒜山鎭을 잘못 기록한 것일뿐만 아니라 면이 아닌데도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였다. 《광여도》에는 이것을 蒜山坊으로 표시하여 더 왜곡시키고 있다. 그 위쪽의 北南面은 州南坊의 誤記이며, 《광여도》에는 北南坊으로 적혀 있다. 읍치 위쪽의 斗岩坊은 제대로 표현된 것인데, 《광여도》에는 耳嚴坊으로 잘못 기재되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여러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광여도》의 필사 시 본 지도보다도 더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광여도》에는 본 지도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해동지도》에 있는 지명도 몇 개 표시되어 있다. (이기봉)

  • 황주목(黃州牧)(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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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황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책의 다른 지도들처럼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황주목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몇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 우선 兵營이 있었던 읍치와 正方山城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그려졌다. 이것은 부수적으로 다른 부분에서의 변화도 유발시킨다. 예를 들어 읍치 아래쪽, 정방산성 왼쪽의 공간이 좁아지게 된다. 이에 따라 이 지역에 있던 지명들이 상당히 밀집되어 기록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천의 유로 역시 많이 달라지는 부분 중의 하나이다. 이런 변화가 나타난 것은 《해동지도》의 크기보다 본 지도는 4분의 1 이상으로 축소되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만약 이런 상태에서 읍치와 정방산성을 《해동지도》의 비율처럼 그리게 되면 성곽과 그 안의 여러 가지 정보를 표현할 수 없게 된다. 본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로 뻗은 산줄기가 동쪽으로부터 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아래쪽(서)은 본 지도에 마치 바다처럼 그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대동강 하구 부근이다. 지도 제작자가 의도적으로 왜곡했다기보다는 다른 고을을 그리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지도에는 面에 해당되는 坊에 노란색 사각형의 모양이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아래쪽에 分田界는 分田坊의 誤記이고, 오른쪽 아래의 蒜山嶺은 蒜山鎭을 잘못 기록한 것일뿐만 아니라 면이 아닌데도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였다. 《광여도》에는 이것을 蒜山坊으로 표시하여 더 왜곡시키고 있다. 그 위쪽의 北南面은 州南坊의 誤記이며, 《광여도》에는 北南坊으로 적혀 있다. 읍치 위쪽의 斗岩坊은 제대로 표현된 것인데, 《광여도》에는 耳嚴坊으로 잘못 기재되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여러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광여도》의 필사 시 본 지도보다도 더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광여도》에는 본 지도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해동지도》에 있는 지명도 몇 개 표시되어 있다. (이기봉)

  • 황해도(黃海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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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海西圖와 거의 동일하다. 監營은 붉은색 큰 원으로, 兵營은 보라색 큰 사각형으로, 일반 郡縣은 흰색 작은 원으로 표시하였다. 鎭堡는 수군이 주둔하는 곳은 노란색 사각형으로, 육군이 주둔하는 곳은 적황색 사각형으로 표시하였다. 그러나 鎭堡의 표시에서는 여러 문제점이 발견되고 있다. 왼쪽 위의 椒島에도 鎭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표시되지 않았다. 아울러 초도는 섬임에도 불구하고 육지에 연결된 것처럼 표현하였다. 오른쪽 아래의 白峙鎭은 황해도가 아니라 경기도의 개성에 속해 있었는데 본 지도에 잘못 그려진 것이다. 육군이 주둔하는 진보의 경우 文山鎭, 位羅鎭, 所已鎭 등이 표시되지 않았다. 《광여도》에는 文山鎭이 빠져있는 것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서 나타난 문제점은 모두 시정되어 있다. 왼쪽의 所江鎭은 1719년(숙종 45)에 황해도 수군절도사영으로 승격되었다. 본래 水營일 경우 지도에 표시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다른 道와의 경계는 마치 바다처럼 표현하여 오해할 수 있게 하였다. 위쪽의 中和, 祥原, 成川, 陽德은 육지로 연결되어 있는 평안도의 고을이다. 오른쪽의 安邊은 함경도의, 伊川은 강원도의, 朔寧, 長湍, 開城은 경기도의 고을로서 육지로 연결되어 있다. 경계가 표시된 나머지 고을은 바다나 하구를 경계로 맞대고 있다. 대체적으로 하천의 유로나 황해도 전체의 모습이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황해도(黃海道)(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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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海西圖와 거의 동일하다. 監營은 붉은색 큰 원으로, 兵營은 보라색 큰 사각형으로, 일반 郡縣은 흰색 작은 원으로 표시하였다. 鎭堡는 수군이 주둔하는 곳은 노란색 사각형으로, 육군이 주둔하는 곳은 적황색 사각형으로 표시하였다. 그러나 鎭堡의 표시에서는 여러 문제점이 발견되고 있다. 왼쪽 위의 椒島에도 鎭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표시되지 않았다. 아울러 초도는 섬임에도 불구하고 육지에 연결된 것처럼 표현하였다. 오른쪽 아래의 白峙鎭은 황해도가 아니라 경기도의 개성에 속해 있었는데 본 지도에 잘못 그려진 것이다. 육군이 주둔하는 진보의 경우 文山鎭, 位羅鎭, 所已鎭 등이 표시되지 않았다. 《광여도》에는 文山鎭이 빠져있는 것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서 나타난 문제점은 모두 시정되어 있다. 왼쪽의 所江鎭은 1719년(숙종 45)에 황해도 수군절도사영으로 승격되었다. 본래 水營일 경우 지도에 표시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다른 道와의 경계는 마치 바다처럼 표현하여 오해할 수 있게 하였다. 위쪽의 中和, 祥原, 成川, 陽德은 육지로 연결되어 있는 평안도의 고을이다. 오른쪽의 安邊은 함경도의, 伊川은 강원도의, 朔寧, 長湍, 開城은 경기도의 고을로서 육지로 연결되어 있다. 경계가 표시된 나머지 고을은 바다나 하구를 경계로 맞대고 있다. 대체적으로 하천의 유로나 황해도 전체의 모습이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고양군(高陽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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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고양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오른쪽 위에 표시된 禿山峯과 高烽峯이 《광여도》에 각각 禿山烽과 高峯烽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광여도》의 내용이 실제와 부합되어 본 지도가 전사하는 과정에서 오류를 범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고양군 지도도 일부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의 차이가 있지만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동일하여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는 도로가 표시되어 있지만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모두 생략되고 京路, 中路, 小路라는 명칭만 남아 있다. 현재의 고양시 덕양구 고양동에 있었던 읍치에는 관아건물이 상당히 자세하게 표시되어 있다. 읍치가 다른 지역보다 확대 과장되어 그려져 있다. 이것은 읍치의 풍수적 명당성을 표현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밀집되어 있는 정보를 자세히 그리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아래쪽의 하천은 현재의 한강으로 실제로는 동남쪽에서 들어와 서북쪽으로 흘러간다. 지도에는 越海라는 표현이 두 군데나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밀물 때 이곳에 바닷물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맨 오른쪽에는 京江下流라고 적혀 있는데, 도성 남쪽의 한강 구간을 京江으로 불렀기 때문이다. (이기봉)

  • 단양현(丹陽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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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단양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오른쪽에 적혀 있는 呂泉界는 《광여도》에 醴泉界로 기록되어 있는데 후자가 올바르다. 또한 上仙岩 위쪽에 血峙와 雲岩이 생략되어 있으며, 그 아래쪽에 《광여도》에 燕飛山으로 되어 있는 것이 鷰飛山으로 바뀌어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단양군 지도도 표현 방법이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하다. 앞의 내용들이 《해동지도》에도 《광여도》와 동일하게 나오고 있어 본 지도가 오류를 범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을의 이름도 본 지도에는 丹陽縣으로 되어 있는데, 《광여도》와 《해동지도》에 나오는 丹陽郡이 정확하다.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으며, 永春界에서 들어와 淸風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남한강 본류이다. 본류와 지류의 굵기를 달리하여 표현하여 이해하기 쉽도록 한 점은 《광여도》와 동일하다. 4각형의 지면에 맞게 그렸기 때문에 고을 전체의 실질적인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다. 이 구간에는 남한강의 굴곡이 심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이 잘 표현되어 있지 않다. 특히 島潭이라 표시한 부분은 본 지도와 달리 굴곡이 아주 심한 부분이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한데, 民戶에서 一百을 二百으로 잘못 표기하기도 하였다. 본 지도책의 군현 주기가 일반적으로 《해동지도》와 다르지만 본 지도는 거의 비슷하다. (이기봉)

  • 곡성현(谷城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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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곡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왼쪽 위에서 들어와 오른쪽 求禮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섬진강이다. 왼쪽 아래의 同福界에서 들어와 섬진강에 합류하는 하천은 현재의 보성강이다. 이 중 섬진강의 유로가 실제와 상당히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섬진강은 서북쪽에서 들어와 약간만 흐르다가 거의 남쪽으로 빠져나간다. 또한 읍치 아래를 흐르는 현재의 곡성천이 고을을 가로지르는 보성강보다 훨씬 짧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이 잘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런 문제점은 사각형의 종이에 고을의 모양을 맞추려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쪽 부분의 동서 폭은 남쪽 부분보다 훨씬 좁다. 曳山面 부근에서 南原界로부터 흘러 들어오는 요천이 섬진강에 합류되고 있지만 본 지도에서는 이런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일반적으로 해당 고을의 것만 그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그 밖의 부분에서는 실제와 상당히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와 『여지도서』의 곡성현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여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경산현(慶山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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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경산현 지도와 비슷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성 부분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는 지명 중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이 여러 개 있다. 본 지도에 표현된 하천의 유로 역시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보면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읍성과 일부의 정보를 참고하여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는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아래쪽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흘러가는 하천이 현재의 금호강이다. 왼쪽의 慈仁界에서 흘러와 금호강에 합류하는 하천은 현재의 오목천이다. 이 오목천의 끝이 《해동지도》에는 얇게 되어 있어 마치 자인과의 경계선이 발원지인 것처럼 오해할 수 있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다른 자료를 통해 교정한 것이 아닌가 한다. 향교를 두르고 있는 것은 성곽이 아니라 담장일 뿐이다. 이 담장은 《해동지도》에는 없던 것으로 본 지도에서 추가된 것이다. 그러나 읍성과 동일하게 표현하여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이기봉)

  • 개천군(价川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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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개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개천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의 하천 표현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아래쪽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흐르는 하천이 현재의 대동강 본류이다. 왼쪽 위의 寧邊界에서 安陵界(安州界)까지 개천군은 청천강을 사이에 두고 寧邊과 경계를 맞대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이 청천강의 하천 유로가 대동강과 같은 규모로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바다인 것처럼 그려져 있다. 《광여도》에는 이렇게 바다처럼 표현한 점은 시정되었다. 하지만 2개의 실선으로 표시된 대동강과 달리 다른 지류와 마찬가지로 1개의 실선으로 그려 실제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  이런 오류는 面의 명칭 표기에도 나타나고 있다. 오른쪽의 內外面은 內東面을 잘못 옮긴 것이다. 《광여도》에는 이 점이 교정되어 있다. 주기에는 지도에 표기된 面 이외에도 여러 개가 더 기록되어 있다. 이런 面들이 지도에 표기되지 않은 이유는 《해동지도》에도 표기되지 않은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즉, 《해동지도》에 표기되지 않은 면의 위치를 비정하면서 지도를 필사한 것은 아니라고 추정된다. 이런 점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본 지도에 표시된 지명이나 건물은 읍치에 있는 것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있는 것이다. 읍치에는 《해동지도》에 3개의 건물과 명칭밖에 없었지만 본 지도에는 9개의 건물과 5개의 명칭이 적혀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읍치 부분만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경원부(慶源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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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경원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광여도》에는 본 지도에 있는 지명 중 몇 개가 생략되어 있는 정도이다. 표현 방식은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경원부 지도에 있는 지명 중 많은 수가 본 지도에 생략되어 있다. 특히 중남부 지방에서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릴 만큼 필수적인 정보로 인식되던 社(다른 도에서는 面)가 지도에 모두 생략되어 있다. 5개의 노란색 사각형이 있는데, 《해동지도》에는 모두 건물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4개는 당시에 존재하던 鎭堡이고, 1개는 이미 혁파된 古鎭堡이다. 지도를 제작하거나 필사하던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을 몰랐거나 잘 검토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驛에는 보라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주기를 보면 3개의 驛站이 있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본 지도에는 《해동지도》에 표시된 역에만 보라색 사각형을 그려 넣은 것이다. 주기에 보면 160리나 떨어진 海津社가 있다. 경흥부의 경계를 넘어 동해 있던 월경지인데 본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회화식 지도임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인 고을의 모습과 유로가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과천현(果川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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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과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과천현 지도도 표현 방법과 내용에서의 일부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구도는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고을의 鎭山인 冠岳山(631m)과 淸溪山(582.5m) 및 修理山(474.8m)을 중심으로 여러 산줄기가 뻗어 있다. 산줄기의 이어짐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본 지도에서는 산의 높낮이가 잘 표현되어 있지 못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과천지도도 회화식으로 그렸으나 세 개의 산을 웅장하게 그린 것과 대조적이다. 본 지도에는 오른쪽 위의 양재천 유역과 아래의 안양천 유역 사이에 있는 낮은 분수계를 산줄기로 연결시키고 있다. 또한 安山界라 적혀 있는 부분도 실제로는 낮은 분수계에 불과하다. 이런 기법은 조선시대의 회화식 군현지도에 자주 나타나며, 정확성을 중요하게 여긴 김정호의 《동여도》와 《대동여지도》에도 이어지고 있다. 북쪽에 그려진 한강의 유로나 고을의 전체적인 모양 등은 실제와 상당히 다르게 묘사되어 있다. (이기봉)

  • 당진현(唐津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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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당진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왼쪽에 있는 海雲樓, 小蘭芝, 蘭芝島, 非見 등의 지명은 《광여도》에 없으며, 읍치의 창고 위쪽에 《광여도》에 있었던 厲壇이 본 지도에 없다. 본 지도와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당진현 지도에는 5개의 지명이 모두 있어 筆寫者에 따라 생략을 다르게 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읍치 지역을 지나치게 확대해서 그렸기 때문에 다른 지역의 실제 상황이 많이 왜곡되었다. 彩雲橋가 있는 하천은 현재의 역천으로 海美界의 남쪽에서 들어와 북류하여 바다로 빠져나간다.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마치 동쪽에서 들어와 서류하다가 북류하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읍치 왼쪽 위의 橋路는 현재의 당진군 석문면 교로리 부근이다. 이곳은 서북쪽 바닷가로 튀어나가 있는 곳으로 읍치에서 海美界까지의 거리보다 약 4-5배 정도 멀다. 이런 내용이 왜곡되다보니까 읍치의 서북쪽에 있어야 할 大眞面이 마치 서남쪽에 있는 것처럼 표시되어 있다. 또한 外孟面과 高山面 사이에 있어야 할 內孟面이 읍치 위쪽으로 배치되어 있다. 내맹면의 위치는 《광여도》에서도 똑같은데, 《해동지도》에는 고산면 서쪽에 표시되어 있다. 실제의 위치는 《해동지도》의 자료가 올바르다. 본 지도와 《광여도》의 필사 시에 다른 자료를 보고 잘못 비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지도》의 당진 지도와 《동여도》에는 외맹면과 내맹면의 위치가 본 지도와 바뀌어 있으며, 외맹면 부분에 실제로는 없는 半島가 그려져 있다. 당진현에서 그려 올린 것이 분명한 ‘1872년 지방지도’의 당진현지도 역시 회화식으로 그렸지만 이런 정보들의 위치가 실제와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해안가에 있는 3개의 섬은 본래의 위치는 橋路 서쪽 방향에 위치시켜야 사실과 부합된다. 섬의 크기는 실제와 관계없이 그려져 있다. (이기봉)

  • 광양현(光陽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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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광양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에 있지만 본 지도에 없는 지명이 있다. 오른쪽 위의 津下面 부근에 月浦面이, 玉谷院 오른쪽에 玉谷面이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반대로 오른쪽의 巡視峙와 外倉은 《광여도》에 없는 지명이다. 표현 양식이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광양현 지도에는 이 지명이 표시되어 있다. 본 지도는 《광여도》를 필사하면서 《해동지도》를 일부 참조한 것으로 생각된다. 왼쪽 위에서 들어와 오른쪽 아래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섬진강이다. 섬진강은 본 고을의 동북쪽에서 남남동쪽으로 흘러간다. 따라서 본 지도에 서북쪽에서 들어와 西流하다가 南流하는 듯한 섬진강의 표현은 실제와 다른 부분이다. 이런 문제점이 발생한 원인은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고을의 모습을 맞추어 그렸기 때문이다. 광양현은 위쪽의 白雲山이 있는 부분의 동서가 아래쪽보다 폭이 좁다. 이런 부분을 아래쪽과 동일한 폭으로 그리다보니 넓어지게 되고, 섬진강 역시 이 부분을 상당히 길게 표현한 것이다. 섬진강 이외의 작은 하천들이 거의 정남 방향으로 남류하는 모습은 실제에 가깝다.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여지도서』의 광양현 지도는 사각형의 종이 위에 남북보다 동서를 훨씬 길게 그렸다. 이에 따라 섬진강의 북쪽 부분은 더욱 길게 표현되는 문제가 확대되고 있다. (이기봉)

  • 경주부(慶州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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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지도책에 수록된 대부분의 경상도 군현지도가 《해동지도》의 것과 거의 유사한 반면에 경주부의 지도는 《해동지도》와 다른 점이 여러 군데서 보이고 있다. 우선 하천의 유로라는 측면에서 몇 가지 차이가 발견되고 있다. 위쪽으로 竹長面에 표시된 현재의 금호강 최상류, 神光面에 표시된 현재의 곡강천 상류는 《해동지도》에 없는 것이다. 그 아래쪽으로 見谷面에 표시된 현재의 소현천과 아래쪽 오른쪽에 표시된 현재의 동천강 상류도 《해동지도》에 없던 것이다. 또한 읍치 아래쪽의 남천, 서천, 대천의 유로 표시가 다르며, 왼쪽 아래의 밀양강 최상류 부분도 하천의 모양이 전혀 다르다. 더 나아가 본 지도에 표시된 面 정보 역시 《해동지도》와는 전혀 다르게 되어 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책에 수록된 대부분의 경상도 군현지도와 달리 본 지도는 《해동지도》와 거의 관련이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가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되어 그려졌기 때문에 모든 지역에 동일한 축척과 방향이 적용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확실하게 잘못 표현된 부분도 여러 개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왼쪽 위에 표시된 北安谷面은 실제로는 西面路西의 좌측에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읍치 오른쪽 위의 川北面이 마치 북천 유역에 있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는 것도 약간 문제가 있다. 천북면의 핵심지역은 현곡면에서 흘러오는 소현천과 규모가 비슷한 현재의 신당천 유역에 있다. 그러나 신당천이 본 지도에 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약간만 걸쳐 있었던 북천 유역에 있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게 그려져 있다. 이 밖의 다른 지명들은 축척과 방향에서 정확하다고 할 수 없더라도 대략적인 측면에서 볼 때 크게 틀린 것은 없다고 볼 수 있다. 기타 왼쪽에 新寧界와 慈仁界가 적혀 있는데, 경주부가 두 고을과 직접 경계를 맞대고 있지는 않았다. 다만 해당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두 고을의 경계가 나온다는 측면에서 보면 틀리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이기봉)

  • 곡산부(谷山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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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곡산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비록 전체적인 모양이나 표현 양식에서 일부 차이가 나지만 하천의 유로와 지명은 《해동지도》의 곡산부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책의 황해도 군현 지도가 대부분 《해동지도》를 필사하고 있으므로 본 지도도 마찬가지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비해 달라진 점이 여러 곳 있다. 첫째, 《해동지도》는 북쪽을 위로 그렸고, 본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하게 했다. 둘째, 《해동지도》는 남북이 동서보다 훨씬 길게 표현된 반면에 본 지도는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셋째, 《해동지도》에 있던 모든 도로가 생략되었다. 넷째, 글자로만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 기호를 첨가하였다. 이런 변화 속에서 본 지도에는 《해동지도》를 잘못 필사한 곳도 보이고 있다.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된 面 중에서 왼쪽의 道上面은 道下面의 오기이다. 오른쪽의 刀三旀面과 分三面은 《해동지도》에 ‘三刀旀面分九里’ 즉, ‘삼도며면 : 9개의 리로 나누어짐’으로 로 되어 있다. 《해동지도》의 주기에 삼도며면이 도삼며면으로 되어 있어 지도의 표현에 잘못이 있다. 본 지도에서는 삼도며면의 오류는 고쳤지만 分三面이라는 것은 무엇을 근거로 쓴 것인지 이해되지 않는다. 《해동지도》뿐만 아니라 본 지도와 《광여도》의 주기에도 분삼면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른 지리지에서도 이 지명은 찾아지고 있지 않아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광여도》에는 도상면을 도하면으로 바꾸는 교정은 했지만 분삼면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어 상호 필사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도삼며면 위쪽에는 河南山을 2개나 적은 오류도 보이고 있으며, 역시 《광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北道面 오른쪽에 있는 客舍와 衙는 文城鎭에 있는 것이며, 지도에는 新文城이라고 되어 있다. 그 위쪽의 旧文城에서 옮겨 왔기 때문이다. 오른쪽 陽德에서 흘러와 위쪽(서)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은 대동강의 지류인 현재의 남강이다. 문헌 기록 속에서는 能江, 能城江 등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기봉)

  • 경흥부(慶興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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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경흥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광여도》에는 두만강이 1개의 실선으로 표시된 반면 본 지도에서는 2개의 실선으로 표시하여 지류와 구분하였다. 표현 양식이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경흥부 지도에도 두만강 본류와 지류를 구분할 수 있도록 그렸다.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지명에서 잘못 기록된 것도 있다. 아래쪽의 水湖는 湖水를 잘못 쓴 것인데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도에는 다섯 개의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모두 건물 모양이 있던 것으로 본 지도에서 기호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본 지도의 필사 시에 다섯 개의 지명을 모두 동일한 정보로 착각한 것으로 생각된다. 네 개는 모두 鎭堡인 반면에 德明은 驛이다. 본 지도책에서 驛은 보라색 사각형으로 표현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자료의 대조를 통해 정보를 분석하면서 필사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회화식 군현지도임에도 불구하고 읍치가 특별히 확대되어 그려지지도 않았고, 하천의 유로나 고을 전체의 모습이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1833년(순조 33)에 읍치와 撫夷鎭의 위치를 바꾼다. (이기봉)

  • 과천현(果川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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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과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과천현 지도도 표현 방법과 내용에서의 일부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구도는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고을의 鎭山인 冠岳山(631m)과 淸溪山(582.5m) 및 修理山(474.8m)을 중심으로 여러 산줄기가 뻗어 있다. 산줄기의 이어짐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본 지도에서는 산의 높낮이가 잘 표현되어 있지 못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과천지도도 회화식으로 그렸으나 세 개의 산을 웅장하게 그린 것과 대조적이다. 본 지도에는 오른쪽 위의 양재천 유역과 아래의 안양천 유역 사이에 있는 낮은 분수계를 산줄기로 연결시키고 있다. 또한 安山界라 적혀 있는 부분도 실제로는 낮은 분수계에 불과하다. 이런 기법은 조선시대의 회화식 군현지도에 자주 나타나며, 정확성을 중요하게 여긴 김정호의 《동여도》와 《대동여지도》에도 이어지고 있다. 북쪽에 그려진 한강의 유로나 고을의 전체적인 모양 등은 실제와 상당히 다르게 묘사되어 있다. (이기봉)

  • 당진현(唐津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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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당진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왼쪽에 있는 海雲樓, 小蘭芝, 蘭芝島, 非見 등의 지명은 《광여도》에 없으며, 읍치의 창고 위쪽에 《광여도》에 있었던 厲壇이 본 지도에 없다. 본 지도와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당진현 지도에는 5개의 지명이 모두 있어 筆寫者에 따라 생략을 다르게 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읍치 지역을 지나치게 확대해서 그렸기 때문에 다른 지역의 실제 상황이 많이 왜곡되었다. 彩雲橋가 있는 하천은 현재의 역천으로 海美界의 남쪽에서 들어와 북류하여 바다로 빠져나간다.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마치 동쪽에서 들어와 서류하다가 북류하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읍치 왼쪽 위의 橋路는 현재의 당진군 석문면 교로리 부근이다. 이곳은 서북쪽 바닷가로 튀어나가 있는 곳으로 읍치에서 海美界까지의 거리보다 약 4-5배 정도 멀다. 이런 내용이 왜곡되다보니까 읍치의 서북쪽에 있어야 할 大眞面이 마치 서남쪽에 있는 것처럼 표시되어 있다. 또한 外孟面과 高山面 사이에 있어야 할 內孟面이 읍치 위쪽으로 배치되어 있다. 내맹면의 위치는 《광여도》에서도 똑같은데, 《해동지도》에는 고산면 서쪽에 표시되어 있다. 실제의 위치는 《해동지도》의 자료가 올바르다. 본 지도와 《광여도》의 필사 시에 다른 자료를 보고 잘못 비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지도》의 당진 지도와 《동여도》에는 외맹면과 내맹면의 위치가 본 지도와 바뀌어 있으며, 외맹면 부분에 실제로는 없는 半島가 그려져 있다. 당진현에서 그려 올린 것이 분명한 ‘1872년 지방지도’의 당진현지도 역시 회화식으로 그렸지만 이런 정보들의 위치가 실제와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해안가에 있는 3개의 섬은 본래의 위치는 橋路 서쪽 방향에 위치시켜야 사실과 부합된다. 섬의 크기는 실제와 관계없이 그려져 있다. (이기봉)

  • 광양현(光陽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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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광양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에 있지만 본 지도에 없는 지명이 있다. 오른쪽 위의 津下面 부근에 月浦面이, 玉谷院 오른쪽에 玉谷面이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반대로 오른쪽의 巡視峙와 外倉은 《광여도》에 없는 지명이다. 표현 양식이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광양현 지도에는 이 지명이 표시되어 있다. 본 지도는 《광여도》를 필사하면서 《해동지도》를 일부 참조한 것으로 생각된다. 왼쪽 위에서 들어와 오른쪽 아래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섬진강이다. 섬진강은 본 고을의 동북쪽에서 남남동쪽으로 흘러간다. 따라서 본 지도에 서북쪽에서 들어와 西流하다가 南流하는 듯한 섬진강의 표현은 실제와 다른 부분이다. 이런 문제점이 발생한 원인은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고을의 모습을 맞추어 그렸기 때문이다. 광양현은 위쪽의 白雲山이 있는 부분의 동서가 아래쪽보다 폭이 좁다. 이런 부분을 아래쪽과 동일한 폭으로 그리다보니 넓어지게 되고, 섬진강 역시 이 부분을 상당히 길게 표현한 것이다. 섬진강 이외의 작은 하천들이 거의 정남 방향으로 남류하는 모습은 실제에 가깝다.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여지도서』의 광양현 지도는 사각형의 종이 위에 남북보다 동서를 훨씬 길게 그렸다. 이에 따라 섬진강의 북쪽 부분은 더욱 길게 표현되는 문제가 확대되고 있다. (이기봉)

  • 경주부(慶州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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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지도책에 수록된 대부분의 경상도 군현지도가 《해동지도》의 것과 거의 유사한 반면에 경주부의 지도는 《해동지도》와 다른 점이 여러 군데서 보이고 있다. 우선 하천의 유로라는 측면에서 몇 가지 차이가 발견되고 있다. 위쪽으로 竹長面에 표시된 현재의 금호강 최상류, 神光面에 표시된 현재의 곡강천 상류는 《해동지도》에 없는 것이다. 그 아래쪽으로 見谷面에 표시된 현재의 소현천과 아래쪽 오른쪽에 표시된 현재의 동천강 상류도 《해동지도》에 없던 것이다. 또한 읍치 아래쪽의 남천, 서천, 대천의 유로 표시가 다르며, 왼쪽 아래의 밀양강 최상류 부분도 하천의 모양이 전혀 다르다. 더 나아가 본 지도에 표시된 面 정보 역시 《해동지도》와는 전혀 다르게 되어 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책에 수록된 대부분의 경상도 군현지도와 달리 본 지도는 《해동지도》와 거의 관련이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가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되어 그려졌기 때문에 모든 지역에 동일한 축척과 방향이 적용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확실하게 잘못 표현된 부분도 여러 개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왼쪽 위에 표시된 北安谷面은 실제로는 西面路西의 좌측에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읍치 오른쪽 위의 川北面이 마치 북천 유역에 있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는 것도 약간 문제가 있다. 천북면의 핵심지역은 현곡면에서 흘러오는 소현천과 규모가 비슷한 현재의 신당천 유역에 있다. 그러나 신당천이 본 지도에 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약간만 걸쳐 있었던 북천 유역에 있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게 그려져 있다. 이 밖의 다른 지명들은 축척과 방향에서 정확하다고 할 수 없더라도 대략적인 측면에서 볼 때 크게 틀린 것은 없다고 볼 수 있다. 기타 왼쪽에 新寧界와 慈仁界가 적혀 있는데, 경주부가 두 고을과 직접 경계를 맞대고 있지는 않았다. 다만 해당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두 고을의 경계가 나온다는 측면에서 보면 틀리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이기봉)

  • 곡산부(谷山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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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곡산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비록 전체적인 모양이나 표현 양식에서 일부 차이가 나지만 하천의 유로와 지명은 《해동지도》의 곡산부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책의 황해도 군현 지도가 대부분 《해동지도》를 필사하고 있으므로 본 지도도 마찬가지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비해 달라진 점이 여러 곳 있다. 첫째, 《해동지도》는 북쪽을 위로 그렸고, 본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하게 했다. 둘째, 《해동지도》는 남북이 동서보다 훨씬 길게 표현된 반면에 본 지도는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셋째, 《해동지도》에 있던 모든 도로가 생략되었다. 넷째, 글자로만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 기호를 첨가하였다. 이런 변화 속에서 본 지도에는 《해동지도》를 잘못 필사한 곳도 보이고 있다.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된 面 중에서 왼쪽의 道上面은 道下面의 오기이다. 오른쪽의 刀三旀面과 分三面은 《해동지도》에 ‘三刀旀面分九里’ 즉, ‘삼도며면 : 9개의 리로 나누어짐’으로 로 되어 있다. 《해동지도》의 주기에 삼도며면이 도삼며면으로 되어 있어 지도의 표현에 잘못이 있다. 본 지도에서는 삼도며면의 오류는 고쳤지만 分三面이라는 것은 무엇을 근거로 쓴 것인지 이해되지 않는다. 《해동지도》뿐만 아니라 본 지도와 《광여도》의 주기에도 분삼면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른 지리지에서도 이 지명은 찾아지고 있지 않아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광여도》에는 도상면을 도하면으로 바꾸는 교정은 했지만 분삼면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어 상호 필사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도삼며면 위쪽에는 河南山을 2개나 적은 오류도 보이고 있으며, 역시 《광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北道面 오른쪽에 있는 客舍와 衙는 文城鎭에 있는 것이며, 지도에는 新文城이라고 되어 있다. 그 위쪽의 旧文城에서 옮겨 왔기 때문이다. 오른쪽 陽德에서 흘러와 위쪽(서)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은 대동강의 지류인 현재의 남강이다. 문헌 기록 속에서는 能江, 能城江 등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기봉)

  • 경흥부(慶興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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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경흥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광여도》에는 두만강이 1개의 실선으로 표시된 반면 본 지도에서는 2개의 실선으로 표시하여 지류와 구분하였다. 표현 양식이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경흥부 지도에도 두만강 본류와 지류를 구분할 수 있도록 그렸다.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지명에서 잘못 기록된 것도 있다. 아래쪽의 水湖는 湖水를 잘못 쓴 것인데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도에는 다섯 개의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모두 건물 모양이 있던 것으로 본 지도에서 기호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본 지도의 필사 시에 다섯 개의 지명을 모두 동일한 정보로 착각한 것으로 생각된다. 네 개는 모두 鎭堡인 반면에 德明은 驛이다. 본 지도책에서 驛은 보라색 사각형으로 표현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자료의 대조를 통해 정보를 분석하면서 필사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회화식 군현지도임에도 불구하고 읍치가 특별히 확대되어 그려지지도 않았고, 하천의 유로나 고을 전체의 모습이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1833년(순조 33)에 읍치와 撫夷鎭의 위치를 바꾼다. (이기봉)

  • 광주부(廣州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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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제공되고 있는 《광여도》의 광주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다만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를 보이고 있다. 《광여도》에서는 제대로 표현되어 있는 慶安驛과 오른쪽 아래의 奉安驛이 본 지도에서는 面과 동일한 색으로 그려져 있어 혼란을 주고 있다. 왼쪽 위에 있는 彦州面 동쪽의 한강도 본 지도에서는 단지 실선으로만 표시되어 있어 혼란을 주고 있다. 이밖에 왼쪽 水原界에 《광여도》에는 德陽君墓로 되어 있는 것이 본 지도에는 德良君墓로 되어 있는 등 글자일부에서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東西南의 방향이 표시되어 있지만 대략적인 정확성만을 갖고 있다. 한강의 유로가 고을 전체를 휘감고 있는 것처럼 표현했지만 실제로는 고을 북쪽을 정동에서 정서 방향으로 지나갈 뿐이다. 읍치는 현재의 남한산성에 있었는데, 일반적인 회화식 군현지도와 마찬가지로 많은 정보를 표시하기 위해 다른 지역보다 대축척으로 그렸다. 물론 읍치 이외의 지역도 동일한 축척을 적용하여 거리의 동질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도 왼쪽 위에 보이는 聲串面과 松洞面은 각각 지금의 안산시와 화성시에 속해 있는 곳으로 읍치에서 오른쪽 屯地까지의 거리보다 약 5배 정도 떨어져 있었다. 결국 이 지도에서는 거리와 방향의 정확성보다는 대략적인 방향과 인문 정보의 수록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볼 수 있다. 지도에서 나타난 거리의 부정확성은 주기에 적어놓은 각 고을까지의 거리, 각 면의 初境과 終境 기록을 통해 보완할 수 있다. 다만 지도와 주기의 면이 일치하지 않는 것도 있다. 거리와 방향의 부정확성 때문에 회화식 고지도를 미숙한 지도로 평가하기도 했지만 보다 많은 인문 정보의 수록이나 이미지의 전달이라는 측면에서는 재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도 방향과 거리에서는 부정확하지만 정보의 이미지 전달을 중요하게 여기는 회화식의 지도들이 그려지고 있다. (이기봉)

  • 대흥군(大興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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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대흥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단지 산세의 표현이나 顯宗大王胎室의 실질적인 모습이 생략되는 등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대흥군 지도도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해동지도》에는 오른쪽 위의 예산에서 遠東面 지역으로 현재의 화산천이 흘러오는 것을 분명하게 표현하였으나 본 지도나 《광여도》에서는 애매하게 그려져 있다. 현재의 신양천이 중앙의 靑陽界 남쪽에서 흘러들어옴에도 《광여도》에는 마치 靑陽界가 발원지인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본 지도와 《해동지도》에서는 발원지처럼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산줄기를 가운데 그려 넣어 오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하지만 《해동지도》와도 전혀 다른 것은 아니어서 세 지도가 상호 관련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기봉)

  • 광주목(光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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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광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광여도》와 비교할 때 몇 가지 오류가 보이고 있다. 왼쪽 위의 臣峙面은 巨峙面의, 읍성 왼쪽의 公巨井面은 瓮井面의 誤記이다. 주기에는 모두 올바르게 적혀 있어 본 지도 작성자의 오류로 생각된다. 읍성 오른쪽에는 보라색 사각형만 그려져 있고 명칭은 적혀 있지 않다. 보라색 사각형은 본 지도책에서 察訪驛을 표현하는 기호로 景陽驛이란 명칭이 적혀 있어야 한다. 《해동지도》의 광주목 지도도 본 지도와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같다. 《해동지도》에 있던 도로와 교량이 생략되어 있는 점은 본 지도와 《광여도》의 공통점이다. 《해동지도》의 읍치 위쪽에는 본 지도와 《광여도》에 없는 黃界面, 德山面, 馬池面 등이 적혀 있다. 본 지도와 《광여도》의 주기에 세 개의 면이 모두 적혀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필사 과정에서 실수로 빠뜨린 것이 아닌가 한다. 이밖에도 西倉을 비롯한 몇 개의 정보가 빠져 있다. 하천의 유로는 거칠기는 하지만 실세의 상황과 거의 비슷하다. 오른쪽 위의 潭陽界에서 들어와 왼쪽 아래의 羅州界로 빠져나가는 것이 영산강 본류이다. 남쪽에서 발원하여 읍치를 지나 영산강에 합류되는 것이 현재의 광주천이다. 다만 長城界에서 들어오는 하천은 현재의 풍영정천으로 영산강 본류보다 훨씬 작음에도 불구하고 비슷하게 표현되어 있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주기의 전반적인 체제는 《광여도》와 동일하다. 그러나 民戶와 몇 개의 통계 숫자는 《광여도》와 달라 본 지도가 작성된 시기의 것으로 바꾸었다고 추정된다. 《광여도》의 주기에 나와 있는 民戶의 수 7,753호는 《해동지도》의 7,953호를 잘못 베낀 것이 아닌가 한다. 『여지도서』의 광주목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본 지도와 비슷하다. (이기봉)

  • 고령현(高靈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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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고령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 부분이 더 크게 그려져 있고, 赤林이 강조되어 있다. 또한 세로(남북)가 상대적으로 더 길게 그려져 있다. 반면에 하천의 유로와 지명은 거의 동일하게 되어 있다. 하천의 표현에서 《해동지도》와 다른 점이 몇 군데 보이고 있는데, 오른쪽의 낙동강이 다른 하천과 별로 구분되지 않게 표현된 것이 그 중의 하나이다. 읍치 아래쪽의 하천은 현재의 안림천으로서 실제로는 陜川界 방면에서 흘러온다. 《해동지도》에는 합천 방면에서 흘러오는 것처럼 그려져 있으나 본 지도에는 합천계를 모두 산줄기로 표현하여 上東面이 안림천의 발원지인 것처럼 표현하였다. 위쪽의 大伽川은 현재의 회천이고, 小伽川은 그 지류로서 현재도 소가천이라 부르고 있다. 두 하천 모두 星州界를 넘어서 들어온다. 그런데 《해동지도》에도 두 하천의 끝을 얇게 하여 마치 경계선 부근이 발원지인 것처럼 착각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그러나 두 하천의 끝 부분에 산줄기를 이어 그리지 않아서 성주계로부터 흘러올 수 있는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다. 반면에 본 지도에서는 대가천 상류 부분을 아예 산줄기로 연결하여 확실하게 사실과 다르게 표현하였다. 읍치의 倉과 快賓樓를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수록되어 있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수록되지 않은 것이 여러 개 있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며, 필사 과정에서 여러 오류를 범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책에서 노란색 사각형은 보통 面에만 적용시켰다. 그런데 본 지도에는 면이 아닌 지명에도 노란색 사각형을 표시하고 있어 필사 시에 정보 자체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노란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는 宜守와 宜陣은 모두 군사적 측면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마땅히 지킬만한 곳’, ‘마땅히 陣을 칠만한 곳’이라는 뜻일 뿐 面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기봉)

  • 곽산군(郭山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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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곽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곽산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가장 다른 점은 읍치와 雲興舘에 건물과 명칭이 추가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외의 지명 중 《해동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은 없기 때문에 두 지역의 정보 표시에서만 다른 자료를 참고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와 비교하여 달라진 지명의 예로 읍치 위쪽의 釰隱이 있다. 《해동지도》에는 劒隱山으로 되어 있던 것으로 본 지도만으로는 산을 지칭하는 것인지 분명하게 이해하기 어렵다. 읍치 아래쪽의 通塵山은 《해동지도》에 通慶山으로 나오는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잘못 적은 것이 아닌가 한다. 오른쪽 아래의 龜城塩田은 이곳에 있던 龜城의 월경지인 塩里面을 의미한다. 《해동지도》에는 龜城塩里로 올바르게 적혀 있는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염리면이란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임의적으로 바꾼 것이 아닌가 한다. 《광여도》에는 앞의 2개는 그대로 되어 있고, 구성염전은 구성염리로 교정하였다. 주기에 있지만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면으로 東面이 있다. 이 점은 《해동지도》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 《해동지도》의 것을 그대로 필사할 뿐 面의 위치를 새롭게 비정하는 등의 일은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고을의 전체 모습은 실제와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고을의 실제 모습 자체가 세로로 약간 긴 사각형 안에 그려도 크게 왜곡되지 않는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기봉)

  • 고성군(高城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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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고성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광여도》에 비해 표현이 거칠고 몇몇 부분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읍치 왼쪽 위에는 노란색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는데 《광여도》에는 二北面이 적혀 있다. 그리고 그 오른쪽의 北面은 광여도에 一北面이라고 되어 있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의 내용과 같아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판단된다. 표현 양식이 좀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고성군 지도에도 《광여도》처럼 되어 있다. 읍치와 그 근처 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 크게 그려져 있다. 이에 따라 본 지도 안에서 각 지점 사이의 거리를 이해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해안에서 三日浦까지의 거리는 실질적으로 삼일포에서 왼쪽의 溫井嶺까지의 거리에 비해 5분의 1 정도밖에 안된다. 또한 읍치를 실제와 달리 사각형으로 묘사된 고을 지도의 중앙에 배치시켰기 때문에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읍치에서 通川界까지의 걸리는 실제로 읍치에서 왼쪽 아래의 炭嶺 부근까지의 거리에 비해 3분의 1 정도밖에 안된다. 金剛山 역시 상대적으로 북쪽으로 치우쳐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도에서는 정 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이런 거리의 왜곡 때문에 하천의 길이 역시 실제와 전혀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왼쪽 아래에서 발원한 현재의 남강은 왼쪽 위의 온정령에서 발원한 현재의 신계천보다 5배 정도 길다. 다만 읍치 주변의 하천 유로는 실제에 가깝게 되어 있다. 읍치 지역은 서쪽의 급경사에서 발원한 하천의 토사가 동해 바다의 파랑에 밀려 쌓이면서 넓은 평지가 되었다. 이로 인해 삼일포와 같은 潟湖가 생기고, 하천의 하구는 여러 갈래의 수로가 되었다. 이런 모습이 본 지도에는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기봉)

  • 광주부(廣州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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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제공되고 있는 《광여도》의 광주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다만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를 보이고 있다. 《광여도》에서는 제대로 표현되어 있는 慶安驛과 오른쪽 아래의 奉安驛이 본 지도에서는 面과 동일한 색으로 그려져 있어 혼란을 주고 있다. 왼쪽 위에 있는 彦州面 동쪽의 한강도 본 지도에서는 단지 실선으로만 표시되어 있어 혼란을 주고 있다. 이밖에 왼쪽 水原界에 《광여도》에는 德陽君墓로 되어 있는 것이 본 지도에는 德良君墓로 되어 있는 등 글자일부에서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東西南의 방향이 표시되어 있지만 대략적인 정확성만을 갖고 있다. 한강의 유로가 고을 전체를 휘감고 있는 것처럼 표현했지만 실제로는 고을 북쪽을 정동에서 정서 방향으로 지나갈 뿐이다. 읍치는 현재의 남한산성에 있었는데, 일반적인 회화식 군현지도와 마찬가지로 많은 정보를 표시하기 위해 다른 지역보다 대축척으로 그렸다. 물론 읍치 이외의 지역도 동일한 축척을 적용하여 거리의 동질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도 왼쪽 위에 보이는 聲串面과 松洞面은 각각 지금의 안산시와 화성시에 속해 있는 곳으로 읍치에서 오른쪽 屯地까지의 거리보다 약 5배 정도 떨어져 있었다. 결국 이 지도에서는 거리와 방향의 정확성보다는 대략적인 방향과 인문 정보의 수록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볼 수 있다. 지도에서 나타난 거리의 부정확성은 주기에 적어놓은 각 고을까지의 거리, 각 면의 初境과 終境 기록을 통해 보완할 수 있다. 다만 지도와 주기의 면이 일치하지 않는 것도 있다. 거리와 방향의 부정확성 때문에 회화식 고지도를 미숙한 지도로 평가하기도 했지만 보다 많은 인문 정보의 수록이나 이미지의 전달이라는 측면에서는 재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도 방향과 거리에서는 부정확하지만 정보의 이미지 전달을 중요하게 여기는 회화식의 지도들이 그려지고 있다. (이기봉)

  • 대흥군(大興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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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대흥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단지 산세의 표현이나 顯宗大王胎室의 실질적인 모습이 생략되는 등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대흥군 지도도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해동지도》에는 오른쪽 위의 예산에서 遠東面 지역으로 현재의 화산천이 흘러오는 것을 분명하게 표현하였으나 본 지도나 《광여도》에서는 애매하게 그려져 있다. 현재의 신양천이 중앙의 靑陽界 남쪽에서 흘러들어옴에도 《광여도》에는 마치 靑陽界가 발원지인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본 지도와 《해동지도》에서는 발원지처럼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산줄기를 가운데 그려 넣어 오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하지만 《해동지도》와도 전혀 다른 것은 아니어서 세 지도가 상호 관련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기봉)

  • 광주목(光州牧)(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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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광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광여도》와 비교할 때 몇 가지 오류가 보이고 있다. 왼쪽 위의 臣峙面은 巨峙面의, 읍성 왼쪽의 公巨井面은 瓮井面의 誤記이다. 주기에는 모두 올바르게 적혀 있어 본 지도 작성자의 오류로 생각된다. 읍성 오른쪽에는 보라색 사각형만 그려져 있고 명칭은 적혀 있지 않다. 보라색 사각형은 본 지도책에서 察訪驛을 표현하는 기호로 景陽驛이란 명칭이 적혀 있어야 한다. 《해동지도》의 광주목 지도도 본 지도와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같다. 《해동지도》에 있던 도로와 교량이 생략되어 있는 점은 본 지도와 《광여도》의 공통점이다. 《해동지도》의 읍치 위쪽에는 본 지도와 《광여도》에 없는 黃界面, 德山面, 馬池面 등이 적혀 있다. 본 지도와 《광여도》의 주기에 세 개의 면이 모두 적혀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필사 과정에서 실수로 빠뜨린 것이 아닌가 한다. 이밖에도 西倉을 비롯한 몇 개의 정보가 빠져 있다. 하천의 유로는 거칠기는 하지만 실세의 상황과 거의 비슷하다. 오른쪽 위의 潭陽界에서 들어와 왼쪽 아래의 羅州界로 빠져나가는 것이 영산강 본류이다. 남쪽에서 발원하여 읍치를 지나 영산강에 합류되는 것이 현재의 광주천이다. 다만 長城界에서 들어오는 하천은 현재의 풍영정천으로 영산강 본류보다 훨씬 작음에도 불구하고 비슷하게 표현되어 있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주기의 전반적인 체제는 《광여도》와 동일하다. 그러나 民戶와 몇 개의 통계 숫자는 《광여도》와 달라 본 지도가 작성된 시기의 것으로 바꾸었다고 추정된다. 《광여도》의 주기에 나와 있는 民戶의 수 7,753호는 《해동지도》의 7,953호를 잘못 베낀 것이 아닌가 한다. 『여지도서』의 광주목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본 지도와 비슷하다. (이기봉)

  • 고령현(高靈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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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고령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 부분이 더 크게 그려져 있고, 赤林이 강조되어 있다. 또한 세로(남북)가 상대적으로 더 길게 그려져 있다. 반면에 하천의 유로와 지명은 거의 동일하게 되어 있다. 하천의 표현에서 《해동지도》와 다른 점이 몇 군데 보이고 있는데, 오른쪽의 낙동강이 다른 하천과 별로 구분되지 않게 표현된 것이 그 중의 하나이다. 읍치 아래쪽의 하천은 현재의 안림천으로서 실제로는 陜川界 방면에서 흘러온다. 《해동지도》에는 합천 방면에서 흘러오는 것처럼 그려져 있으나 본 지도에는 합천계를 모두 산줄기로 표현하여 上東面이 안림천의 발원지인 것처럼 표현하였다. 위쪽의 大伽川은 현재의 회천이고, 小伽川은 그 지류로서 현재도 소가천이라 부르고 있다. 두 하천 모두 星州界를 넘어서 들어온다. 그런데 《해동지도》에도 두 하천의 끝을 얇게 하여 마치 경계선 부근이 발원지인 것처럼 착각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그러나 두 하천의 끝 부분에 산줄기를 이어 그리지 않아서 성주계로부터 흘러올 수 있는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다. 반면에 본 지도에서는 대가천 상류 부분을 아예 산줄기로 연결하여 확실하게 사실과 다르게 표현하였다. 읍치의 倉과 快賓樓를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수록되어 있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수록되지 않은 것이 여러 개 있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며, 필사 과정에서 여러 오류를 범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책에서 노란색 사각형은 보통 面에만 적용시켰다. 그런데 본 지도에는 면이 아닌 지명에도 노란색 사각형을 표시하고 있어 필사 시에 정보 자체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노란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는 宜守와 宜陣은 모두 군사적 측면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마땅히 지킬만한 곳’, ‘마땅히 陣을 칠만한 곳’이라는 뜻일 뿐 面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기봉)

  • 곽산군(郭山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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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곽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곽산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가장 다른 점은 읍치와 雲興舘에 건물과 명칭이 추가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외의 지명 중 《해동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은 없기 때문에 두 지역의 정보 표시에서만 다른 자료를 참고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와 비교하여 달라진 지명의 예로 읍치 위쪽의 釰隱이 있다. 《해동지도》에는 劒隱山으로 되어 있던 것으로 본 지도만으로는 산을 지칭하는 것인지 분명하게 이해하기 어렵다. 읍치 아래쪽의 通塵山은 《해동지도》에 通慶山으로 나오는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잘못 적은 것이 아닌가 한다. 오른쪽 아래의 龜城塩田은 이곳에 있던 龜城의 월경지인 塩里面을 의미한다. 《해동지도》에는 龜城塩里로 올바르게 적혀 있는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염리면이란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임의적으로 바꾼 것이 아닌가 한다. 《광여도》에는 앞의 2개는 그대로 되어 있고, 구성염전은 구성염리로 교정하였다. 주기에 있지만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면으로 東面이 있다. 이 점은 《해동지도》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 《해동지도》의 것을 그대로 필사할 뿐 面의 위치를 새롭게 비정하는 등의 일은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고을의 전체 모습은 실제와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고을의 실제 모습 자체가 세로로 약간 긴 사각형 안에 그려도 크게 왜곡되지 않는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기봉)

  • 고성군(高城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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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고성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광여도》에 비해 표현이 거칠고 몇몇 부분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읍치 왼쪽 위에는 노란색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는데 《광여도》에는 二北面이 적혀 있다. 그리고 그 오른쪽의 北面은 광여도에 一北面이라고 되어 있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의 내용과 같아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판단된다. 표현 양식이 좀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고성군 지도에도 《광여도》처럼 되어 있다. 읍치와 그 근처 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 크게 그려져 있다. 이에 따라 본 지도 안에서 각 지점 사이의 거리를 이해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해안에서 三日浦까지의 거리는 실질적으로 삼일포에서 왼쪽의 溫井嶺까지의 거리에 비해 5분의 1 정도밖에 안된다. 또한 읍치를 실제와 달리 사각형으로 묘사된 고을 지도의 중앙에 배치시켰기 때문에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읍치에서 通川界까지의 걸리는 실제로 읍치에서 왼쪽 아래의 炭嶺 부근까지의 거리에 비해 3분의 1 정도밖에 안된다. 金剛山 역시 상대적으로 북쪽으로 치우쳐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도에서는 정 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이런 거리의 왜곡 때문에 하천의 길이 역시 실제와 전혀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왼쪽 아래에서 발원한 현재의 남강은 왼쪽 위의 온정령에서 발원한 현재의 신계천보다 5배 정도 길다. 다만 읍치 주변의 하천 유로는 실제에 가깝게 되어 있다. 읍치 지역은 서쪽의 급경사에서 발원한 하천의 토사가 동해 바다의 파랑에 밀려 쌓이면서 넓은 평지가 되었다. 이로 인해 삼일포와 같은 潟湖가 생기고, 하천의 하구는 여러 갈래의 수로가 되었다. 이런 모습이 본 지도에는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기봉)

  • 교동수영(橋桐水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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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의 명칭이 喬桐水營으로 바뀌었지만 본 사이트에서 제공되고 있는 《광여도》의 喬桐府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일부 표현 방법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예를 들면 《광여도》에는 없지만 읍성에 적의 화살이나 총포 공격을 피하면서 적을 공격하는 성가퀴(女裝 또는 城堞)가 그려져 있다. 또한 《광여도》와 달리 읍성 왼쪽의 南面 龍井里와 북쪽의 南面 大雅里에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다. 《광여도》나 본 지도 모두 교동도의 실제 모습과 상당히 다르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우선 읍치와 기타 선창 등이 다른 지역보다 확대되어 그려졌기 때문이다. 읍치와 선창 부근에 가장 많은 정보가 밀집되어 있어 이를 자세히 수록하려면 이와 같은 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다. 船倉은 보통 戰船을 정박하던 곳을 일컫는 곳이다. 섬 중앙에 있는 花盖山(259m)을 제외하면 아주 낮은 야산에 불과하다. 하천이 표시된 지역은 대부분 저지로서 간척된 곳이 많은 섬이다. 선창 위쪽의 貯水處는 간척 후 염분을 제거하고, 관개를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교동도 이외의 지역에 대한 표시도 실제와 거의 부합하지 않는다. 인근 고을이나 섬은 단지 방향만 맞을 뿐 거리나 수로의 모습은 실제와 다르다. 다만 주기에 각 경계까지의 거리를 자세히 적어놓아 지도의 단점을 보완해 주고 있다. 본 지도의 명칭이 喬桐水營으로 된 것은 이곳에 설치되어 있던 水營 때문이다. 경기도의 수영은 원래 南陽의 花梁鎭에 있었지만 1629년(인조 7)에 본 지역으로 옮겨왔다. 이후 1633년(인조 11)에 三道統禦使를 두어 경기도, 황해도, 충청도의 水軍을 관장하게 하였다. (이기봉)

  • 덕산현(德山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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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덕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지도 왼쪽 위에 표시된 洪川界는 洪州界에 대한 誤記이며, 이 방면에 홍주와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잘못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덕산현 지도를 보면 그 의미가 이해된다. 《해동지도》에는 도로가 연결되는 끝 부분에 고을의 경계 표시를 해 놓았다. 《해동지도》의 왼쪽 아래에는 본 지도에서는 생략된 結城界가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덕산현은 결성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해당 도로를 따라가면 결성의 경계가 나온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 위쪽의 洪州界 역시 홍주와 경계를 맞대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해당 도로를 따라가면 현재의 서산시 운산면 서쪽에 있었던 홍주의 월경지 운천면 경계가 나온다는 뜻이다.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는 《해동지도》에 있었던 도로를 생략함에 따라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 대한 이해를 어렵게 하고 있다. 오른쪽 위에 있는 非方串面은 현재의 당진군 점원리 부근에 있었던 월경지였다. 덕산현과 이 고을 사이에는 역시 홍주의 월경지가 있었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덕산현 지도는 비록 회화식으로 그렸지만 비방곶면과 덕산현 사이에 홍주와 천안 등의 문자를 넣어 월경지임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비변사印방안지도’ 《호서지도》의 덕산 지도에서는 아예 월경지로 그려주었다. 주기에 비방곶면이 다른 면에 비해 거리가 먼 편이지만 이것만으로 월경지임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본 지도의 작성자는 비방곶면이 월경지였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지도 왼쪽에 표시된 場村面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으나 위치가 잘못되어 있다. 실제로는 오른쪽의 삽교천 너머에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해동지도》에는 올바르게 표시되어 있는데, 어떤 자료를 근거로 잘못 표시하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광여도》와 본 지도를 제외하면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대부분의 지도에서 모두 올바르게 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덕산현 지역에서 흘러오는 삽교천의 지류가 2개로 되어 있는데, 비슷한 크기의 하천을 그린 것이라면 실제로는 3개가 그려져 있어야 한다. ‘1872년 지방지도’의 덕산현 지도에는 사실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구례현(求禮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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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구례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오른쪽 아래에 ‘長谷十里’는 《광여도》에 ‘長谷二十里’로 적혀 있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약간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구례현 지도에는 ‘長谷三十里’로 되어 있다. 역시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여지도서』의 구례현 지도에는 이 사실이 적혀 있지 않다. 필사 과정에서 몇 차례 내용이 바뀌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왼쪽 위에서 흘러와 오른쪽 아래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지금의 섬진강이다. 섬진강의 유로는 현재와 비슷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왼쪽 위의 南原界로부터 아래 順天界까지의 길이가 상대적으로 길게 그려져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이 발생한 이유는 세로로 긴 사각형 안에 고을 전체를 꽉 차게 그렸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대부분의 고을이 실제의 모습과 관계없이 가로보다는 세로가 길게 표현될 수밖에 없다. 아래쪽의 艮田面 지역은 원래 아래쪽으로 튀어져 나가 있지만 이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것 역시 사각형에 고을의 모습을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그 결과 天皇山 등에서 발원하여 섬진강에 합류하는 하천이 실제로는 정북 방향으로 흐르지만 마치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것처럼 표현되었다.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도 이 하천들이 정북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 것으로 표현되었는데, 아마 이런 지도의 영향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기봉)

  • 고성현(固城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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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固城縣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성과 통영의 성곽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해동지도》보다 본 지도의 종이가 훨씬 작기 때문에 동일한 비율로 그리면 알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다는 것은 다른 부분은 상대적으로 작게 그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하천의 유로가 약간 달라지고, 해안선이 단조로워지는 등의 변화가 발생하였다. 특히 통영 성곽을 상대적으로 크게 그린 것은 다른 부분의 묘사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생각된다. 해안선과 섬이 단조로워진 것은 지도의 크기 자체가 작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은 종이 위에 그리다보니까 복잡한 해안선이나 섬을 동일하게 표현할 수 없었다고 생각된다. 더 나아가 《해동지도》의 내용과 전혀 다른 왜곡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왼쪽 아래의 蛇梁鎭의 위치가 《해동지도》에는 床足石보다 더 남쪽으로 되어 있고, 柯島는 사량진 남쪽에 위치한 것으로 그려져 있다. 그런데 본 지도에는 사량진이 상당히 위로 올라갔고, 가도는 상족도 방향에 붙어 있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실제로는 《해동지도》의 내용이 사실에 부합된다. 따라서 본 지도의 필사 시 사실을 인식하고 있지 못했으며, 필사 과정에서 자의적인 판단으로 지명의 위치를 옮긴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성과 통영 성곽 안의 것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거의 나온다. 반대로 《해동지도》에 나오지만 본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지명이 많다. 특히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할 만큼 중요하게 생각한 面 중에서 《해동지도》에는 있지만 본 지도에는 없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해동지도》에 읍치 동쪽에 표시되어 있던 光內一運面과 光內二運面이 본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2개의 면 명칭이 주기에는 나오고 있어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으로 생각된다. 지명이 표시된 面 중에서도 명칭을 잘못 옮긴 거도 있다. 읍치 오른쪽에는 東邑內面으로 제대로 적었지만 왼쪽에는 西邑內面을 西邑面으로 적었다. 또한 왼쪽 아래에는 下里二運面으로 올바르게 기록했지만 그 위쪽에는 下里一運面을 下里運面으로 적기도 했다. (이기봉)

  • 구성부(龜城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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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구성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이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구성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생략된 지명이 많고, 몇몇 부분에서는 다르게 표현된 것도 있다. 읍성이 《해동지도》에는 지형을 이용해 축조되었음이 잘 나타나 있지만 본 지도에는 그런 사실이 생략되어 있다. 《광여도》에서는 이 점이 《해동지도》처럼 일부 시정되었지만 완전하지는 않다. 《해동지도》에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가 추가되어 있다. 하지만 읍치 아래쪽의 西山面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 않고, 아래쪽에는 屯山面이 北屯面으로 기록되어 있다. 물론 《해동지도》에 표시된 屯山面 역시 주기에는 屯田面으로 되어 있다. 아울러 그 왼쪽에 있는 方古介面이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광여도》에는 서산면에 노란색 사각형을 표시한 것 이외에는 본 지도와 동일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오른쪽의 하천은 현재 대령강의 지류인 천방강 유역이고, 왼쪽은 압록강의 지류인 삼교천의 상류이다. 비록 회화식으로 그려 위치나 면적, 그리고 거리에서의 오류는 있지만 물줄기의 흐름은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고원군(高原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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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고원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로 뻗은 산줄기가 서쪽으로부터 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는 《해동지도》의 고원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잘못된 것이 여러 군데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아래쪽의 文川貴는 文川界의 오류이고, 오른쪽 위의 水는 淵의 古字인 囦를 잘못 기록한 것이다. 오른쪽에는 ‘永興의 雲水寺’가 永興寺와 水寺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하다. 이런 오류들은 《광여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아래쪽의 龍興江口에 용흥강의 모습을 일부 그려 넣었지만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는 생략되어 있다. 왼쪽에 文川이란 문자가 여러 개 보이고 있는데 모두 본 고을의 남쪽에 있었던 文川郡을 의미한다. 읍치 지역을 확대해서 그린 것을 제외하면 고을 전체의 모습을 사실에 가깝게 그렸다. 위쪽(서)의 경우 본 고을이 아니라 永興에 속한 땅까지도 그려 넣었지만 永興雲谷이란 문구를 넣어 구별해 주었다. 주기에도 지도에 鉢山社로 되어 있는 것을 鐵山社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하다. 《해동지도》와 《광여도》에서는 이 부분이 모두 올바르게 되어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광여도》는 본 지도와 같은 계통이면서 일부 지명에서는 본 지도의 오류가 교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기봉)

  • 교동수영(橋桐水營)(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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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의 명칭이 喬桐水營으로 바뀌었지만 본 사이트에서 제공되고 있는 《광여도》의 喬桐府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일부 표현 방법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예를 들면 《광여도》에는 없지만 읍성에 적의 화살이나 총포 공격을 피하면서 적을 공격하는 성가퀴(女裝 또는 城堞)가 그려져 있다. 또한 《광여도》와 달리 읍성 왼쪽의 南面 龍井里와 북쪽의 南面 大雅里에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다. 《광여도》나 본 지도 모두 교동도의 실제 모습과 상당히 다르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우선 읍치와 기타 선창 등이 다른 지역보다 확대되어 그려졌기 때문이다. 읍치와 선창 부근에 가장 많은 정보가 밀집되어 있어 이를 자세히 수록하려면 이와 같은 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다. 船倉은 보통 戰船을 정박하던 곳을 일컫는 곳이다. 섬 중앙에 있는 花盖山(259m)을 제외하면 아주 낮은 야산에 불과하다. 하천이 표시된 지역은 대부분 저지로서 간척된 곳이 많은 섬이다. 선창 위쪽의 貯水處는 간척 후 염분을 제거하고, 관개를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교동도 이외의 지역에 대한 표시도 실제와 거의 부합하지 않는다. 인근 고을이나 섬은 단지 방향만 맞을 뿐 거리나 수로의 모습은 실제와 다르다. 다만 주기에 각 경계까지의 거리를 자세히 적어놓아 지도의 단점을 보완해 주고 있다. 본 지도의 명칭이 喬桐水營으로 된 것은 이곳에 설치되어 있던 水營 때문이다. 경기도의 수영은 원래 南陽의 花梁鎭에 있었지만 1629년(인조 7)에 본 지역으로 옮겨왔다. 이후 1633년(인조 11)에 三道統禦使를 두어 경기도, 황해도, 충청도의 水軍을 관장하게 하였다. (이기봉)

  • 덕산현(德山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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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덕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지도 왼쪽 위에 표시된 洪川界는 洪州界에 대한 誤記이며, 이 방면에 홍주와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잘못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덕산현 지도를 보면 그 의미가 이해된다. 《해동지도》에는 도로가 연결되는 끝 부분에 고을의 경계 표시를 해 놓았다. 《해동지도》의 왼쪽 아래에는 본 지도에서는 생략된 結城界가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덕산현은 결성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해당 도로를 따라가면 결성의 경계가 나온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 위쪽의 洪州界 역시 홍주와 경계를 맞대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해당 도로를 따라가면 현재의 서산시 운산면 서쪽에 있었던 홍주의 월경지 운천면 경계가 나온다는 뜻이다.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는 《해동지도》에 있었던 도로를 생략함에 따라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 대한 이해를 어렵게 하고 있다. 오른쪽 위에 있는 非方串面은 현재의 당진군 점원리 부근에 있었던 월경지였다. 덕산현과 이 고을 사이에는 역시 홍주의 월경지가 있었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덕산현 지도는 비록 회화식으로 그렸지만 비방곶면과 덕산현 사이에 홍주와 천안 등의 문자를 넣어 월경지임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비변사印방안지도’ 《호서지도》의 덕산 지도에서는 아예 월경지로 그려주었다. 주기에 비방곶면이 다른 면에 비해 거리가 먼 편이지만 이것만으로 월경지임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본 지도의 작성자는 비방곶면이 월경지였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지도 왼쪽에 표시된 場村面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으나 위치가 잘못되어 있다. 실제로는 오른쪽의 삽교천 너머에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해동지도》에는 올바르게 표시되어 있는데, 어떤 자료를 근거로 잘못 표시하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광여도》와 본 지도를 제외하면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대부분의 지도에서 모두 올바르게 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덕산현 지역에서 흘러오는 삽교천의 지류가 2개로 되어 있는데, 비슷한 크기의 하천을 그린 것이라면 실제로는 3개가 그려져 있어야 한다. ‘1872년 지방지도’의 덕산현 지도에는 사실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구례현(求禮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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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구례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오른쪽 아래에 ‘長谷十里’는 《광여도》에 ‘長谷二十里’로 적혀 있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약간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구례현 지도에는 ‘長谷三十里’로 되어 있다. 역시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여지도서』의 구례현 지도에는 이 사실이 적혀 있지 않다. 필사 과정에서 몇 차례 내용이 바뀌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왼쪽 위에서 흘러와 오른쪽 아래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지금의 섬진강이다. 섬진강의 유로는 현재와 비슷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왼쪽 위의 南原界로부터 아래 順天界까지의 길이가 상대적으로 길게 그려져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이 발생한 이유는 세로로 긴 사각형 안에 고을 전체를 꽉 차게 그렸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대부분의 고을이 실제의 모습과 관계없이 가로보다는 세로가 길게 표현될 수밖에 없다. 아래쪽의 艮田面 지역은 원래 아래쪽으로 튀어져 나가 있지만 이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것 역시 사각형에 고을의 모습을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그 결과 天皇山 등에서 발원하여 섬진강에 합류하는 하천이 실제로는 정북 방향으로 흐르지만 마치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것처럼 표현되었다.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도 이 하천들이 정북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 것으로 표현되었는데, 아마 이런 지도의 영향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기봉)

  • 고성현(固城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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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固城縣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성과 통영의 성곽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해동지도》보다 본 지도의 종이가 훨씬 작기 때문에 동일한 비율로 그리면 알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다는 것은 다른 부분은 상대적으로 작게 그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하천의 유로가 약간 달라지고, 해안선이 단조로워지는 등의 변화가 발생하였다. 특히 통영 성곽을 상대적으로 크게 그린 것은 다른 부분의 묘사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생각된다. 해안선과 섬이 단조로워진 것은 지도의 크기 자체가 작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은 종이 위에 그리다보니까 복잡한 해안선이나 섬을 동일하게 표현할 수 없었다고 생각된다. 더 나아가 《해동지도》의 내용과 전혀 다른 왜곡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왼쪽 아래의 蛇梁鎭의 위치가 《해동지도》에는 床足石보다 더 남쪽으로 되어 있고, 柯島는 사량진 남쪽에 위치한 것으로 그려져 있다. 그런데 본 지도에는 사량진이 상당히 위로 올라갔고, 가도는 상족도 방향에 붙어 있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실제로는 《해동지도》의 내용이 사실에 부합된다. 따라서 본 지도의 필사 시 사실을 인식하고 있지 못했으며, 필사 과정에서 자의적인 판단으로 지명의 위치를 옮긴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성과 통영 성곽 안의 것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거의 나온다. 반대로 《해동지도》에 나오지만 본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지명이 많다. 특히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할 만큼 중요하게 생각한 面 중에서 《해동지도》에는 있지만 본 지도에는 없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해동지도》에 읍치 동쪽에 표시되어 있던 光內一運面과 光內二運面이 본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2개의 면 명칭이 주기에는 나오고 있어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으로 생각된다. 지명이 표시된 面 중에서도 명칭을 잘못 옮긴 거도 있다. 읍치 오른쪽에는 東邑內面으로 제대로 적었지만 왼쪽에는 西邑內面을 西邑面으로 적었다. 또한 왼쪽 아래에는 下里二運面으로 올바르게 기록했지만 그 위쪽에는 下里一運面을 下里運面으로 적기도 했다. (이기봉)

  • 구성부(龜城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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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구성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이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구성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생략된 지명이 많고, 몇몇 부분에서는 다르게 표현된 것도 있다. 읍성이 《해동지도》에는 지형을 이용해 축조되었음이 잘 나타나 있지만 본 지도에는 그런 사실이 생략되어 있다. 《광여도》에서는 이 점이 《해동지도》처럼 일부 시정되었지만 완전하지는 않다. 《해동지도》에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가 추가되어 있다. 하지만 읍치 아래쪽의 西山面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 않고, 아래쪽에는 屯山面이 北屯面으로 기록되어 있다. 물론 《해동지도》에 표시된 屯山面 역시 주기에는 屯田面으로 되어 있다. 아울러 그 왼쪽에 있는 方古介面이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광여도》에는 서산면에 노란색 사각형을 표시한 것 이외에는 본 지도와 동일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오른쪽의 하천은 현재 대령강의 지류인 천방강 유역이고, 왼쪽은 압록강의 지류인 삼교천의 상류이다. 비록 회화식으로 그려 위치나 면적, 그리고 거리에서의 오류는 있지만 물줄기의 흐름은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고원군(高原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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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고원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로 뻗은 산줄기가 서쪽으로부터 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는 《해동지도》의 고원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잘못된 것이 여러 군데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아래쪽의 文川貴는 文川界의 오류이고, 오른쪽 위의 水는 淵의 古字인 囦를 잘못 기록한 것이다. 오른쪽에는 ‘永興의 雲水寺’가 永興寺와 水寺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하다. 이런 오류들은 《광여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아래쪽의 龍興江口에 용흥강의 모습을 일부 그려 넣었지만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는 생략되어 있다. 왼쪽에 文川이란 문자가 여러 개 보이고 있는데 모두 본 고을의 남쪽에 있었던 文川郡을 의미한다. 읍치 지역을 확대해서 그린 것을 제외하면 고을 전체의 모습을 사실에 가깝게 그렸다. 위쪽(서)의 경우 본 고을이 아니라 永興에 속한 땅까지도 그려 넣었지만 永興雲谷이란 문구를 넣어 구별해 주었다. 주기에도 지도에 鉢山社로 되어 있는 것을 鐵山社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하다. 《해동지도》와 《광여도》에서는 이 부분이 모두 올바르게 되어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광여도》는 본 지도와 같은 계통이면서 일부 지명에서는 본 지도의 오류가 교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기봉)

  • 교하군(交河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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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교하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첫째, 지도의 명칭이 《광여도》에는 교하현으로 되어 있다는 점 둘째, 읍치에 있는 官舍와 司倉이 《광여도》에는 衙와 倉으로 적혀 있다는 점뿐이다. 交河는 조선 초기 이후 縣으로 있었다. 1731년(영조 7)에 읍치에 長陵을 안치하고, 읍치는 현재의 파주시 금릉동으로 옮기면서 郡으로 승격되었다. 읍치는 얼마 후에 현재의 읍치 아래쪽에 있는 長命山 동쪽인 현재의 교하면 교하리로 옮겨진다. 본 지도에 표시된 읍치는 장릉을 안치하기 이전의 위치로서 현재의 탄현면 갈현리 일대이다. 따라서 지도의 내용만으로 보면 《광여도》의 교하현이란 명칭이 적합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교하군 지도도 표현 방식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은 본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도 읍치의 위치가 본 지도와 동일함에도 교하현이 아니라 교하군으로 되어 있다. 지도의 내용은 군으로 승격되기 이전에, 지도의 명칭이 적힌 주기는 군으로 승격된 이후에 작성되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광여도》에서는 지도의 내용에 맞추기 위해 교하현으로, 본 지도는 전사된 시기의 명칭에 맞추기 위해 교하군으로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면천군(沔川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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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면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면천현 지도도 표현 방식에서 일부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본 지도와 비슷하다. 위쪽의 蒼澤烽과 아래쪽의 馬山面이 《광여도》에 蒼驛烽과 馬山界로 적혀 있는데 모두 전자가 정확하다. 오른쪽 위의 洪陽界는 《광여도》에 洪州界로 적혀 있는데, 《해동지도》의 면천현 지도에는 모두 본 지도처럼 표시되어 있다. 홍주는 顯宗(1660-1674) 때 잠시 洪陽縣으로 강등되는데, 《해동지도》와 본 지도의 洪陽界는 그런 사실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적인 구도에서 본 지도는 《광여도》와 거의 동일하지만 내용적으로는 《해동지도》를 참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洪陽界는 현재의 당진군 신평면에 있었던 홍주의 월경지 古新平縣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본 지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표현은 하천과 바다이다. 지도 오른쪽 위에 적혀 있는 大津은 현재 당진군의 송악면 한진리에 있었다. 이곳은 현재 아산만 입구에 해당되며, 하천보다는 바다로 표시되어야 한다. 이곳부터 왼쪽의 唐津界까지 모두 바다인데, 본 지도에서는 마치 하천처럼 표현되어 있다. 다만 漁場이란 표시가 있어 바다임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읍치 아래를 흘러 오른쪽(서)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은 현재 삽교천의 지류인 남원천이라 불리고 있다. 그러나 이 하천이 大津까지 연결된 것처럼 표현된 것은 실제와 부합되지 않는다. 남원천과 大津 사이에는 아산과 홍주의 월경지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제에 부합되려면 남원천은 草川面 정도에서 끊겨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문제점은 《해동지도》의 면천현 지도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참고로 《해동지도》에 기록된 면천현은 면천군으로 해야 올바르다. (이기봉)

  • 금구현(金溝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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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금구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주기에는 上南面이 있는데,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이 점은 《광여도》도 동일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금구현 지도에는 상남면이 표시되어 있다. 《광여도》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트린 것으로 생각된다. 오른쪽 위의 母岳山이 읍치의 동남쪽에 있기 때문에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동쪽을 위로 향해 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읍치로 내려온 산줄기가 동쪽으로부터 내려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읍치의 풍수적 명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북쪽과 서쪽 및 남쪽에 높은 산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산줄기로 이어 그렸다. 또한 읍치를 확대 과장해서 그리기도 했다. 그러나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드물게 고을의 실제 모습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특히 왼쪽의 두월천과 오른쪽의 원평천이 모악산에서 발원하여 합류하는 모습은 실제 유로와 거의 비슷하다.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도 본 지도와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곤양군(昆陽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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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곤양군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에서는 읍성 부분을 상대적으로 훨씬 크게 그렸다. 또한 《해동지도》에 비해 해안선이나 섬을 상대적으로 단순하게 그렸고, 이런 과정에서 일부 달라진 곳도 있다.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읍성 안쪽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있는 지명 중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도 있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이며, 단지 읍성 부분만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오른쪽 위에 보이는 하천이 낙동강의 지류인 남강이고, 아래쪽은 남해에 접해 있다. 곤양군은 남북의 폭이 동서에 비해 훨씬 좁다. 본 지도에서는 반대로 남북(세로)을 동서(가로)보다 길게 그렸다. 또한 곤양군의 읍치는 동쪽에 치우쳐져 있는데, 본 지도에는 정 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그렸다. 이런 과정에서 사실과 다른 여러 왜곡이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왼쪽 위에 있는 露梁은 읍치의 서남 방향으로 동쪽 경계보다 훨씬 먼 거리에 있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 본다면 마치 서북쪽에 있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 이것은 읍치로부터 노량까지 상대적으로 먼 지역을 모두 그리기 위해서는 종이 위에서 상대적으로 긴 세로 부분에 배치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기타 북쪽에서 읍치를 지나 남해안으로 빠져나가는 현재의 곤양천도 실제로는 북쪽의 河東으로부터 들어온다. (이기봉)

  • 금천군(金川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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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金川郡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역은 원래 牛峰縣이었는데 1651년(효종 2)에 江陰縣을 병합하여 金川郡으로 승격되었다. 읍치는 본 지도와 같은 吾早川의 남쪽에 두었고, 이후 1678년(숙종 4)에 본 지도에 旧金川이라 적혀 있는 곳으로 옮긴다. 다시 1753년(영조 29)에 읍내의 水土가 나쁘다 하여 다시 본 지도와 같은 오조천의 남쪽으로 옮겼다. 후에 다시 구금천인 저탄의 남쪽으로 옮겼다. 이것만을 참조하면 본 지도는 1678년 이전이나 1753년 이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읍치의 위치는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도 본 지도와 동일하게 그려져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서지도》의 금천 지도와 ‘1872년 지방지도’의 금천군지도, 김정호의 《동여도》에도 본 지도처럼 되어 있다. 《조선지도》의 금천 지도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는 것은 아니지만 『여지도서』의 금천군 지도에는 본 지도의 구금천이 읍치로 표시되어 있다. 본 지도는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금천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세로의 폭이 본 지도에 와서 좁아졌고, 도로가 모두 생략되었다. 또한 문자로만 적혀 있던 面이 노란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다. 面의 명칭 중 주기와 다른 것이 2개 있다. 왼쪽 위의 耳洞面은 주기에 咠洞面으로, 오른쪽 아래의 江南面은 江山外面으로 되어 있다. 《해동지도》의 지도에는 咠洞面과 江南面으로 되어 있고, 주기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咠洞面을 잘못 기록한 것으로 보이며, 《광여도》에서는 이 부분이 수정되어 있다. 왼쪽 위에서 흘러와 오른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예성강이다. 그런데 예성강은 금천군 지역에서 대체적으로 북에서 남으로 흐른다. 본 지도는 예성강의 유로 방향이라는 측면에서는 실제를 반영하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읍치를 지나는 吾助川 역시 실제로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다가 다시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 예성강에 합류되는 것으로 표현해야 실제에 부합된다. 이렇듯 방향이나 위치 등이 정확하지 못하다는 측면에서 볼 때 본 지도는 전형적인 회화식 군현지도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오류가 발생한 이유는 금천군의 전체적인 형태가 사각형의 모양으로 표현하기 어려웠기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관동도(關東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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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關東圖와 동해안의 모습과 하천의 유로가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본 지도는 하천의 유로가 거의 사실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는 반면 《광여도》에는 여러 오류가 발견되고 있다. 예를 들어 寧越 왼쪽의 하천과 杻寺 부분의 하천이 연결되어 있다. 金城 부근에서도 하천이 잘못 연결된 부분이 나타나고 있다. 수록된 지명의 양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본 지도보다 《광여도》가 훨씬 많은 편이다. 본 지도에서는 감영은 적황색 큰 원, 군현은 녹색 작은 원으로 표시하였다. 그러나 강릉 왼쪽의 麒麟은 군현이 아니라 春川의 월경지인 기린면이었다. 본 지도의 작성자가 기호 표시가 되어 있지 않은 지도를 필사하면서 기리면(옛 기린현)을 잘못 이해하여 군현의 기호를 사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맨 위쪽의 伊川 위치가 잘못되어 있다. 본 지도에서는 읍치의 위치에다 군현의 명칭을 적어놓았기 때문에 약간 아래쪽 南川 바로 위에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감영의 명칭이 原城으로 되어 있다. 原城은 原州가 1683년-1692년(숙종 9-18)과 1728년-1737년(영조 4-13) 사이에 縣으로 강등되었을 때의 명칭이다. 《광여도》에는 原州로 적혀 있다. 노란색 사각형은 종6품의 察訪이 파견되어 많은 속역을 거느리던 察訪驛에 대한 기호로 사용된 것으로 생각된다. 보통 전도나 도별도에서는 찰방역이 기호를 사용하는 정보가 되는 예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貞德驛과 巨豊驛은 찰방역이 아니었다. 또한 찰방역이었던 원주의 丹丘驛, 삼척의 平陵驛 등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이런 점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 찰방역에 대한 기호가 표시되지 않은 지도를 참조하였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찰방역에 대한 정보를 모두 검토하지 못해 오류를 범한 것이 아닌가 한다. 《광여도》에는 정덕역과 거풍역이 찰방역의 기호에서 빠졌다. 그러나 麒麟을 찰방역으로 잘못 표기하고, 다른 찰방역을 생략하는 등 역시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본 지도가 다른 지도를 필사한 것임을 알려주는 근거 중의 하나가 왼쪽 아래에 적혀 있는 ‘白川界雲山’이다. 《광여도》와 비교해 보면 이것은 堤川界와 白雲山의 기록을 혼동하여 적어놓은 것으로 ‘堤’자는 아예 생략되어 있다. 스스로 모든 것을 만든 것이라면 이와 같은 혼동은 있기 어렵다. (이기봉)

  • 교하군(交河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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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교하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첫째, 지도의 명칭이 《광여도》에는 교하현으로 되어 있다는 점 둘째, 읍치에 있는 官舍와 司倉이 《광여도》에는 衙와 倉으로 적혀 있다는 점뿐이다. 交河는 조선 초기 이후 縣으로 있었다. 1731년(영조 7)에 읍치에 長陵을 안치하고, 읍치는 현재의 파주시 금릉동으로 옮기면서 郡으로 승격되었다. 읍치는 얼마 후에 현재의 읍치 아래쪽에 있는 長命山 동쪽인 현재의 교하면 교하리로 옮겨진다. 본 지도에 표시된 읍치는 장릉을 안치하기 이전의 위치로서 현재의 탄현면 갈현리 일대이다. 따라서 지도의 내용만으로 보면 《광여도》의 교하현이란 명칭이 적합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교하군 지도도 표현 방식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은 본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도 읍치의 위치가 본 지도와 동일함에도 교하현이 아니라 교하군으로 되어 있다. 지도의 내용은 군으로 승격되기 이전에, 지도의 명칭이 적힌 주기는 군으로 승격된 이후에 작성되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광여도》에서는 지도의 내용에 맞추기 위해 교하현으로, 본 지도는 전사된 시기의 명칭에 맞추기 위해 교하군으로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면천군(沔川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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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면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면천현 지도도 표현 방식에서 일부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본 지도와 비슷하다. 위쪽의 蒼澤烽과 아래쪽의 馬山面이 《광여도》에 蒼驛烽과 馬山界로 적혀 있는데 모두 전자가 정확하다. 오른쪽 위의 洪陽界는 《광여도》에 洪州界로 적혀 있는데, 《해동지도》의 면천현 지도에는 모두 본 지도처럼 표시되어 있다. 홍주는 顯宗(1660-1674) 때 잠시 洪陽縣으로 강등되는데, 《해동지도》와 본 지도의 洪陽界는 그런 사실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적인 구도에서 본 지도는 《광여도》와 거의 동일하지만 내용적으로는 《해동지도》를 참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洪陽界는 현재의 당진군 신평면에 있었던 홍주의 월경지 古新平縣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본 지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표현은 하천과 바다이다. 지도 오른쪽 위에 적혀 있는 大津은 현재 당진군의 송악면 한진리에 있었다. 이곳은 현재 아산만 입구에 해당되며, 하천보다는 바다로 표시되어야 한다. 이곳부터 왼쪽의 唐津界까지 모두 바다인데, 본 지도에서는 마치 하천처럼 표현되어 있다. 다만 漁場이란 표시가 있어 바다임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읍치 아래를 흘러 오른쪽(서)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은 현재 삽교천의 지류인 남원천이라 불리고 있다. 그러나 이 하천이 大津까지 연결된 것처럼 표현된 것은 실제와 부합되지 않는다. 남원천과 大津 사이에는 아산과 홍주의 월경지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제에 부합되려면 남원천은 草川面 정도에서 끊겨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문제점은 《해동지도》의 면천현 지도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참고로 《해동지도》에 기록된 면천현은 면천군으로 해야 올바르다. (이기봉)

  • 금구현(金溝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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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금구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주기에는 上南面이 있는데,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이 점은 《광여도》도 동일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금구현 지도에는 상남면이 표시되어 있다. 《광여도》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트린 것으로 생각된다. 오른쪽 위의 母岳山이 읍치의 동남쪽에 있기 때문에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동쪽을 위로 향해 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읍치로 내려온 산줄기가 동쪽으로부터 내려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읍치의 풍수적 명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북쪽과 서쪽 및 남쪽에 높은 산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산줄기로 이어 그렸다. 또한 읍치를 확대 과장해서 그리기도 했다. 그러나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드물게 고을의 실제 모습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특히 왼쪽의 두월천과 오른쪽의 원평천이 모악산에서 발원하여 합류하는 모습은 실제 유로와 거의 비슷하다.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도 본 지도와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곤양군(昆陽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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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곤양군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에서는 읍성 부분을 상대적으로 훨씬 크게 그렸다. 또한 《해동지도》에 비해 해안선이나 섬을 상대적으로 단순하게 그렸고, 이런 과정에서 일부 달라진 곳도 있다.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읍성 안쪽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있는 지명 중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도 있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이며, 단지 읍성 부분만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오른쪽 위에 보이는 하천이 낙동강의 지류인 남강이고, 아래쪽은 남해에 접해 있다. 곤양군은 남북의 폭이 동서에 비해 훨씬 좁다. 본 지도에서는 반대로 남북(세로)을 동서(가로)보다 길게 그렸다. 또한 곤양군의 읍치는 동쪽에 치우쳐져 있는데, 본 지도에는 정 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그렸다. 이런 과정에서 사실과 다른 여러 왜곡이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왼쪽 위에 있는 露梁은 읍치의 서남 방향으로 동쪽 경계보다 훨씬 먼 거리에 있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 본다면 마치 서북쪽에 있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 이것은 읍치로부터 노량까지 상대적으로 먼 지역을 모두 그리기 위해서는 종이 위에서 상대적으로 긴 세로 부분에 배치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기타 북쪽에서 읍치를 지나 남해안으로 빠져나가는 현재의 곤양천도 실제로는 북쪽의 河東으로부터 들어온다. (이기봉)

  • 금천군(金川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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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金川郡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역은 원래 牛峰縣이었는데 1651년(효종 2)에 江陰縣을 병합하여 金川郡으로 승격되었다. 읍치는 본 지도와 같은 吾早川의 남쪽에 두었고, 이후 1678년(숙종 4)에 본 지도에 旧金川이라 적혀 있는 곳으로 옮긴다. 다시 1753년(영조 29)에 읍내의 水土가 나쁘다 하여 다시 본 지도와 같은 오조천의 남쪽으로 옮겼다. 후에 다시 구금천인 저탄의 남쪽으로 옮겼다. 이것만을 참조하면 본 지도는 1678년 이전이나 1753년 이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읍치의 위치는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도 본 지도와 동일하게 그려져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서지도》의 금천 지도와 ‘1872년 지방지도’의 금천군지도, 김정호의 《동여도》에도 본 지도처럼 되어 있다. 《조선지도》의 금천 지도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는 것은 아니지만 『여지도서』의 금천군 지도에는 본 지도의 구금천이 읍치로 표시되어 있다. 본 지도는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금천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세로의 폭이 본 지도에 와서 좁아졌고, 도로가 모두 생략되었다. 또한 문자로만 적혀 있던 面이 노란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다. 面의 명칭 중 주기와 다른 것이 2개 있다. 왼쪽 위의 耳洞面은 주기에 咠洞面으로, 오른쪽 아래의 江南面은 江山外面으로 되어 있다. 《해동지도》의 지도에는 咠洞面과 江南面으로 되어 있고, 주기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咠洞面을 잘못 기록한 것으로 보이며, 《광여도》에서는 이 부분이 수정되어 있다. 왼쪽 위에서 흘러와 오른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예성강이다. 그런데 예성강은 금천군 지역에서 대체적으로 북에서 남으로 흐른다. 본 지도는 예성강의 유로 방향이라는 측면에서는 실제를 반영하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읍치를 지나는 吾助川 역시 실제로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다가 다시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 예성강에 합류되는 것으로 표현해야 실제에 부합된다. 이렇듯 방향이나 위치 등이 정확하지 못하다는 측면에서 볼 때 본 지도는 전형적인 회화식 군현지도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오류가 발생한 이유는 금천군의 전체적인 형태가 사각형의 모양으로 표현하기 어려웠기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관동도(關東圖)(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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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關東圖와 동해안의 모습과 하천의 유로가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본 지도는 하천의 유로가 거의 사실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는 반면 《광여도》에는 여러 오류가 발견되고 있다. 예를 들어 寧越 왼쪽의 하천과 杻寺 부분의 하천이 연결되어 있다. 金城 부근에서도 하천이 잘못 연결된 부분이 나타나고 있다. 수록된 지명의 양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본 지도보다 《광여도》가 훨씬 많은 편이다. 본 지도에서는 감영은 적황색 큰 원, 군현은 녹색 작은 원으로 표시하였다. 그러나 강릉 왼쪽의 麒麟은 군현이 아니라 春川의 월경지인 기린면이었다. 본 지도의 작성자가 기호 표시가 되어 있지 않은 지도를 필사하면서 기리면(옛 기린현)을 잘못 이해하여 군현의 기호를 사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맨 위쪽의 伊川 위치가 잘못되어 있다. 본 지도에서는 읍치의 위치에다 군현의 명칭을 적어놓았기 때문에 약간 아래쪽 南川 바로 위에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감영의 명칭이 原城으로 되어 있다. 原城은 原州가 1683년-1692년(숙종 9-18)과 1728년-1737년(영조 4-13) 사이에 縣으로 강등되었을 때의 명칭이다. 《광여도》에는 原州로 적혀 있다. 노란색 사각형은 종6품의 察訪이 파견되어 많은 속역을 거느리던 察訪驛에 대한 기호로 사용된 것으로 생각된다. 보통 전도나 도별도에서는 찰방역이 기호를 사용하는 정보가 되는 예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貞德驛과 巨豊驛은 찰방역이 아니었다. 또한 찰방역이었던 원주의 丹丘驛, 삼척의 平陵驛 등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이런 점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 찰방역에 대한 기호가 표시되지 않은 지도를 참조하였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찰방역에 대한 정보를 모두 검토하지 못해 오류를 범한 것이 아닌가 한다. 《광여도》에는 정덕역과 거풍역이 찰방역의 기호에서 빠졌다. 그러나 麒麟을 찰방역으로 잘못 표기하고, 다른 찰방역을 생략하는 등 역시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본 지도가 다른 지도를 필사한 것임을 알려주는 근거 중의 하나가 왼쪽 아래에 적혀 있는 ‘白川界雲山’이다. 《광여도》와 비교해 보면 이것은 堤川界와 白雲山의 기록을 혼동하여 적어놓은 것으로 ‘堤’자는 아예 생략되어 있다. 스스로 모든 것을 만든 것이라면 이와 같은 혼동은 있기 어렵다. (이기봉)

  • 김포군(金浦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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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김포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鄕校 오른쪽의 冷井山峯과 아래쪽의 杏山이 《광여도》에는 冷井山烽과 古山으로 적혀 있다. 전자는 《광여도》가, 후자는 본 지도가 맞다. 또한 오른쪽 豊山君山所 아래쪽에 《광여도》에는 龜伏亭과 甘巖이 적혀 있다. 왼쪽에는 楊州界라고 적혀 있는데 실제로는 陽川界로 고쳐야 한다. 한가운데에 있는 章島 역시 章陵의 오기이다. 두 개 모두 《광여도》에서도 동일하게 틀리고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김포군 지도도 위쪽에 西海가 바다처럼 표시되어 있지 않은 점,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다른 점을 제외하면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동일하여 상호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위쪽의 西海와 아래쪽의 한강이 마치 동서 일직선의 형태인 것처럼 그려져 있다. 그러나 한강은 동남쪽에서 서북쪽으로 거의 일직선이며, 서해는 동남에서 서북쪽으로 향하지만 해안선이 복잡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김포군 지도도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비슷한 구도를 하고 있어 상호 관련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목천현(木川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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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목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오른쪽의 一遠東面에 표시된 하천이 《광여도》에는 없고, 伏龍亭이 《광여도》에 伏龜亭으로 표시되어 있는 정도이다. 표현 방식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에는 伏龍亭이 伏龍寺로 되어 있다. 그러나 『여지도서』의 목천현 지도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비변사印방안지도’의 《호서지도》 목천 지도에는 모두 伏龜亭으로 나와 있다. 본 지도는 《광여도》와 《해동지도》를 절충적으로 이해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비록 읍치를 상대적으로 확대해서 그리고, 읍치와 고을 전체의 풍수적 명당성을 부각시킨 회화식 지도이지만 하천의 유로나 각 면의 위치 등이 실제와 가깝게 그려져 있다. 고을의 여러 물줄기를 모아 오른쪽 아래쪽(서남)으로 흘러나가는 하천이 미호천의 지류인 현재의 병천천(아우내)이다. 오른쪽의 一遠東面은 본 지도 위의 하천과 다른 水界에 속해 있었다. 본 지도에서도 비록 하천을 그려 넣지는 않았지만 二遠東面 지역과 산줄기로 분리된 것처럼 그려 수계가 다름을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그렸다. (이기봉)

  • 금산군(錦山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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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금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런데 향교 위쪽에 표시된 從容堂은 《광여도》에 從客堂으로 되어 있다. 표현 양식은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비슷한 《해동지도》의 금산군 지도에는 본 지도처럼 되어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광여도》를 필사하면서도 《해동지도》를 참조한 것으로 생각된다. 아래쪽 龍潭界에서 흘러와 위쪽 沃川界로 흘러가는 하천이 금강 본류이다. 아래쪽 富南面의 경우 금강 본류 유역인 富東面 아래쪽에 위치 시켜야 실제와 부합된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 잘못된 것은 오른쪽 永同界이다. 금산군은 충청도의 영동현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본 지도의 주기에도 동쪽으로 영동과 경계를 맞대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런 점은 《광여도》와 《해동지도》 모두 동일하다. 그러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동쪽으로 영동이 아니라 옥천과 경계를 맞대고 있다고 나오며, 1850년대에 만들어진 김정호의 《동여도》에도 동일하게 표현되어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금산군 지도에도 동쪽으로 영동과 경계를 맞대고 있다는 정보는 실려 있지 않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고, 1700년대 중반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호남지도》의 금산군 지도에도 본 지도와 비슷하게 나오고 있다. 아마 1700년대에는 중앙의 지도 제작자들에게 금산군이 동쪽으로 영동과 경계를 맞대고 있다는 정보가 유포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군위현(軍威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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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군위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본 지도는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해동지도》가 가로(동서)를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세로(남북)를 더 길게 그렸다. 본 지도에서는 하천의 본류와 지류의 표현에서 실제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게 그렸다. 오른쪽 위의 하천들이 그 끝을 모두 얇게 처리하여 의흥과의 경계선이 발원지인 것처럼 착각할 수 있게 그렸다. 그러나 《해동지도》에는 모두 다른 고을에서 하천이 흘러오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실제로는 《해동지도》의 표현이 올바르다. 위쪽의 義興界에서 흘러와 읍치의 아래를 지나고, 왼쪽 아래의 比安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위천 본류이다. 그리고 왼쪽 위에서 흘러와 위천에 합류되는 하천은 현재 신안천이라고 불리고 있다. 이 신안천은 위천 본류에 비하면 아주 작은 하천에 불과하다. 그런데 본 지도에는 마치 위천 본류보다도 훨씬 큰 하천인 것처럼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서도 이 점은 약간 애매하게 되어 있지만 본 지도가 훨씬 심한 왜곡을 보이고 있다. 본 지도에 수록된 지명은 읍치의 倉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나오는 縣內面이 생략되어 있고, 왼쪽 아래에 召召本面이 召召等面으로 적혀 있는 오류가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측면들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기본으로 하면서 다른 자료를 약간 첨가하여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런 필사 과정에서 꼼꼼하게 사실을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당한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덕천군(德川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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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덕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약간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덕천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읍치에 舘舍, 衙舍, 鄕校 3개의 정보만 수록되어 있다. 반면에 본 지도에는 건물의 수도 11개이고, 명칭도 6개나 적혀 있다. 읍치 이외의 지명 중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지 않은 것이 없다. 이런 사실을 고려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읍치 부분만 다른 자료를 참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읍치에는 鄕校가 2개 표시되어 있는데, 《광여도》에는 訓練 왼쪽의 것이 鄕廳으로 교정되어 있다. 위쪽에는 寧邊界가 寧越界로 잘못 적혀 있다. 본 지도에는 본 지도책의 다른 군현 지도에 대부분 적혀 있는 面이 생략되어 있다. 이것은 본 지도가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동지도》 자체에 面이 표기되어 있지 않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오른쪽 위의 熙川界에서 들어와 아래쪽 順川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대동강 본류이다. 본 지도에는 대동강의 지류에 대한 표기에서 크게 2개의 잘못을 범하고 있다. 첫째, 오른쪽의 孟山界에서 현재의 맹산강이 흘러들어오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본 고을 안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둘째, 왼쪽의 价川界에서 대동강의 지류가 흘러오는 것처럼 그려져 있지만 실제로 그런 지류는 없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덕천 지도, 김정호의 《동여도》와 비교해 보면 이런 오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해동지도》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어 필사 시 《해동지도》의 오류를 꼼꼼하게 점검하면서 필사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기타 아래쪽에 順川界가 적혀 있는 것은 이곳에 順川의 월경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 관북도(關北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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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관북도와 함경도의 전체적인 모습이나 산줄기와 물줄기 등의 표현이 거의 동일하다. 거리나 지명의 표시에서 본 지도는 일관성이 별로 없다. 특히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한 鎭堡는 표시된 것보다 표시되지 않은 것이 훨씬 많다. 노란색 사각형을 그리고 명칭을 적어 넣지 않은 것도 보이고 있으며, 中嶺이 적혀 있어야 한다. 파란색 원으로 표시한 군현의 경우에도 원은 그렸지만 오른쪽 위에는 명칭을 적어 놓지 않은 것이 보인다. 이곳에는 慶興府가 있었기 때문에 慶興이라고 적어 넣어야 한다. 황색 사각형이 3개 있는데, 가장 왼쪽의 廟坡는 진보이므로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되어야 한다. 오른쪽의 麻田과 燕基 일반 역참으로 기호를 사용해야 할 만큼 중요한 정보가 아니다. 본 지도의 제작자가 어떤 혼란을 일으켜서 잘못 써놓은 것이 아닌가 한다. 監營은 황색의 큰 원, 兵營이 있는 곳은 보라색 사각형으로 표현되어 있다. 기호의 사용에서 오는 오류들은 《광여도》에서 대부분 시정되어 있다. 여기에 《광여도》에는 찰방역도 하나의 붉은색 사각형으로 기호화 되어 있다. 주기의 내용은 본 지도와 《광여도》가 동일하다. 따라서 두 지도는 필사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광여도》가 본 지도를 필사하되 오류인 곳은 다른 자료를 보고 모두 수정해 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함흥 위쪽의 長津 지역에는 1667년(현종 8)에 堡가 설치되며, 1785년(정조 9)에 鎭으로 승격되고, 1787년(정조 11)에는 府가 된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長津이 鎭堡로만 표시되어 있어 늦어도 1787년 이전의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지도책의 함경도 군현 지도가 대부분 사실에 가깝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대략적인 형태만 비슷할 뿐 아주 거칠게 그려져 있다. 특히 북쪽의 白頭山 부분과 압록강, 두만강의 표현은 실제와 가장 다른 부분이다. 해안가의 섬에 대한 표현도 실제와는 너무 다르다. 이 지역에서 큰 섬은 馬養島와 草島, 두만강 하구에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 鹿屯島 정도이다. 그 이외에 지도에 그려진 섬들은 마양도에 비한다면 겨우 점 정도로만 표시되어야 할 정도로 작다. (이기봉)

  • 김포군(金浦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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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김포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鄕校 오른쪽의 冷井山峯과 아래쪽의 杏山이 《광여도》에는 冷井山烽과 古山으로 적혀 있다. 전자는 《광여도》가, 후자는 본 지도가 맞다. 또한 오른쪽 豊山君山所 아래쪽에 《광여도》에는 龜伏亭과 甘巖이 적혀 있다. 왼쪽에는 楊州界라고 적혀 있는데 실제로는 陽川界로 고쳐야 한다. 한가운데에 있는 章島 역시 章陵의 오기이다. 두 개 모두 《광여도》에서도 동일하게 틀리고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김포군 지도도 위쪽에 西海가 바다처럼 표시되어 있지 않은 점,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다른 점을 제외하면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동일하여 상호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위쪽의 西海와 아래쪽의 한강이 마치 동서 일직선의 형태인 것처럼 그려져 있다. 그러나 한강은 동남쪽에서 서북쪽으로 거의 일직선이며, 서해는 동남에서 서북쪽으로 향하지만 해안선이 복잡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김포군 지도도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비슷한 구도를 하고 있어 상호 관련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목천현(木川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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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목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오른쪽의 一遠東面에 표시된 하천이 《광여도》에는 없고, 伏龍亭이 《광여도》에 伏龜亭으로 표시되어 있는 정도이다. 표현 방식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에는 伏龍亭이 伏龍寺로 되어 있다. 그러나 『여지도서』의 목천현 지도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비변사印방안지도’의 《호서지도》 목천 지도에는 모두 伏龜亭으로 나와 있다. 본 지도는 《광여도》와 《해동지도》를 절충적으로 이해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비록 읍치를 상대적으로 확대해서 그리고, 읍치와 고을 전체의 풍수적 명당성을 부각시킨 회화식 지도이지만 하천의 유로나 각 면의 위치 등이 실제와 가깝게 그려져 있다. 고을의 여러 물줄기를 모아 오른쪽 아래쪽(서남)으로 흘러나가는 하천이 미호천의 지류인 현재의 병천천(아우내)이다. 오른쪽의 一遠東面은 본 지도 위의 하천과 다른 水界에 속해 있었다. 본 지도에서도 비록 하천을 그려 넣지는 않았지만 二遠東面 지역과 산줄기로 분리된 것처럼 그려 수계가 다름을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그렸다. (이기봉)

  • 금산군(錦山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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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금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런데 향교 위쪽에 표시된 從容堂은 《광여도》에 從客堂으로 되어 있다. 표현 양식은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비슷한 《해동지도》의 금산군 지도에는 본 지도처럼 되어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광여도》를 필사하면서도 《해동지도》를 참조한 것으로 생각된다. 아래쪽 龍潭界에서 흘러와 위쪽 沃川界로 흘러가는 하천이 금강 본류이다. 아래쪽 富南面의 경우 금강 본류 유역인 富東面 아래쪽에 위치 시켜야 실제와 부합된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 잘못된 것은 오른쪽 永同界이다. 금산군은 충청도의 영동현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본 지도의 주기에도 동쪽으로 영동과 경계를 맞대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런 점은 《광여도》와 《해동지도》 모두 동일하다. 그러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동쪽으로 영동이 아니라 옥천과 경계를 맞대고 있다고 나오며, 1850년대에 만들어진 김정호의 《동여도》에도 동일하게 표현되어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금산군 지도에도 동쪽으로 영동과 경계를 맞대고 있다는 정보는 실려 있지 않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고, 1700년대 중반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호남지도》의 금산군 지도에도 본 지도와 비슷하게 나오고 있다. 아마 1700년대에는 중앙의 지도 제작자들에게 금산군이 동쪽으로 영동과 경계를 맞대고 있다는 정보가 유포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군위현(軍威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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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군위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본 지도는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해동지도》가 가로(동서)를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세로(남북)를 더 길게 그렸다. 본 지도에서는 하천의 본류와 지류의 표현에서 실제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게 그렸다. 오른쪽 위의 하천들이 그 끝을 모두 얇게 처리하여 의흥과의 경계선이 발원지인 것처럼 착각할 수 있게 그렸다. 그러나 《해동지도》에는 모두 다른 고을에서 하천이 흘러오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실제로는 《해동지도》의 표현이 올바르다. 위쪽의 義興界에서 흘러와 읍치의 아래를 지나고, 왼쪽 아래의 比安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위천 본류이다. 그리고 왼쪽 위에서 흘러와 위천에 합류되는 하천은 현재 신안천이라고 불리고 있다. 이 신안천은 위천 본류에 비하면 아주 작은 하천에 불과하다. 그런데 본 지도에는 마치 위천 본류보다도 훨씬 큰 하천인 것처럼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서도 이 점은 약간 애매하게 되어 있지만 본 지도가 훨씬 심한 왜곡을 보이고 있다. 본 지도에 수록된 지명은 읍치의 倉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나오는 縣內面이 생략되어 있고, 왼쪽 아래에 召召本面이 召召等面으로 적혀 있는 오류가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측면들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기본으로 하면서 다른 자료를 약간 첨가하여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런 필사 과정에서 꼼꼼하게 사실을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당한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덕천군(德川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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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덕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약간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덕천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읍치에 舘舍, 衙舍, 鄕校 3개의 정보만 수록되어 있다. 반면에 본 지도에는 건물의 수도 11개이고, 명칭도 6개나 적혀 있다. 읍치 이외의 지명 중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지 않은 것이 없다. 이런 사실을 고려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읍치 부분만 다른 자료를 참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읍치에는 鄕校가 2개 표시되어 있는데, 《광여도》에는 訓練 왼쪽의 것이 鄕廳으로 교정되어 있다. 위쪽에는 寧邊界가 寧越界로 잘못 적혀 있다. 본 지도에는 본 지도책의 다른 군현 지도에 대부분 적혀 있는 面이 생략되어 있다. 이것은 본 지도가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동지도》 자체에 面이 표기되어 있지 않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오른쪽 위의 熙川界에서 들어와 아래쪽 順川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대동강 본류이다. 본 지도에는 대동강의 지류에 대한 표기에서 크게 2개의 잘못을 범하고 있다. 첫째, 오른쪽의 孟山界에서 현재의 맹산강이 흘러들어오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본 고을 안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둘째, 왼쪽의 价川界에서 대동강의 지류가 흘러오는 것처럼 그려져 있지만 실제로 그런 지류는 없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덕천 지도, 김정호의 《동여도》와 비교해 보면 이런 오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해동지도》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어 필사 시 《해동지도》의 오류를 꼼꼼하게 점검하면서 필사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기타 아래쪽에 順川界가 적혀 있는 것은 이곳에 順川의 월경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 관북도(關北圖)(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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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관북도와 함경도의 전체적인 모습이나 산줄기와 물줄기 등의 표현이 거의 동일하다. 거리나 지명의 표시에서 본 지도는 일관성이 별로 없다. 특히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한 鎭堡는 표시된 것보다 표시되지 않은 것이 훨씬 많다. 노란색 사각형을 그리고 명칭을 적어 넣지 않은 것도 보이고 있으며, 中嶺이 적혀 있어야 한다. 파란색 원으로 표시한 군현의 경우에도 원은 그렸지만 오른쪽 위에는 명칭을 적어 놓지 않은 것이 보인다. 이곳에는 慶興府가 있었기 때문에 慶興이라고 적어 넣어야 한다. 황색 사각형이 3개 있는데, 가장 왼쪽의 廟坡는 진보이므로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되어야 한다. 오른쪽의 麻田과 燕基 일반 역참으로 기호를 사용해야 할 만큼 중요한 정보가 아니다. 본 지도의 제작자가 어떤 혼란을 일으켜서 잘못 써놓은 것이 아닌가 한다. 監營은 황색의 큰 원, 兵營이 있는 곳은 보라색 사각형으로 표현되어 있다. 기호의 사용에서 오는 오류들은 《광여도》에서 대부분 시정되어 있다. 여기에 《광여도》에는 찰방역도 하나의 붉은색 사각형으로 기호화 되어 있다. 주기의 내용은 본 지도와 《광여도》가 동일하다. 따라서 두 지도는 필사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광여도》가 본 지도를 필사하되 오류인 곳은 다른 자료를 보고 모두 수정해 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함흥 위쪽의 長津 지역에는 1667년(현종 8)에 堡가 설치되며, 1785년(정조 9)에 鎭으로 승격되고, 1787년(정조 11)에는 府가 된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長津이 鎭堡로만 표시되어 있어 늦어도 1787년 이전의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지도책의 함경도 군현 지도가 대부분 사실에 가깝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대략적인 형태만 비슷할 뿐 아주 거칠게 그려져 있다. 특히 북쪽의 白頭山 부분과 압록강, 두만강의 표현은 실제와 가장 다른 부분이다. 해안가의 섬에 대한 표현도 실제와는 너무 다르다. 이 지역에서 큰 섬은 馬養島와 草島, 두만강 하구에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 鹿屯島 정도이다. 그 이외에 지도에 그려진 섬들은 마양도에 비한다면 겨우 점 정도로만 표시되어야 할 정도로 작다. (이기봉)

  • 남양부(南陽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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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남양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新里面 왼쪽의 西如堤面에 다른 面처럼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그 위쪽의 花梁鎭은 《광여도》에는 面과 동일하게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에는 그런 표시를 하지 않았다. 화량진 옆의 念佛山峰에서의 峰과 細串面 왼쪽의 峯은 《광여도》에 烽으로 되어 있다. 오른쪽 위의 旀加串面은 《광여도》에 旀知串面이라 적혀 있다. 모두 《광여도》의 기록이 정확하다. 서해안에 있는 섬들의 크기와 거리는 실제와 다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德積島는 훨씬 서쪽에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아마 일정한 지면에 그리기 위해 거리를 별로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大阜島의 크기는 仙監島의 10배 이상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섬들이 모두 남양부에 속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큰 섬 중에 남양부에 속해 있었던 섬에는 本府地라고 표시되어 있다. 작은 섬 중에서도 남양부에 속해 있었던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섞여 있는데, 구분되고 있지 않다. 아래쪽에 표시된 충청도의 땅들은 실제와 전혀 관계없는 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단지 각 고을의 田稅와 大同米가 옮겨지는 船路의 방향을 표시한 것일 뿐이다. 아래쪽의 分古面은 수원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다. 지도에는 水原地, 水(原)海倉 등을 써넣어 월경지임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왼쪽의 水乾每島는 수원의 건매도란 의미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남양부 지도와 동일하지는 않지만 대략적인 구도가 비슷하여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문의현(文義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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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문의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왼쪽 위의 公山界가 《광여도》에 公州界로 적혀 있고, 堤堰의 모습이 《광여도》에 그려져 있는 반면에 본 지도에는 없다는 점 정도이다. 지도 외곽 위쪽에 문의현의 옛 명칭과 충청좌도에 속해 있다는 ‘左’, 오른쪽에 한양으로부터 3일 걸린다는 ‘三日’ 등의 문자가 적혀 있는 것도 다른 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문의현 지도도 표현 양식과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하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하지만 《해동지도》의 내용과도 배치되지는 않는다. 본 지도는 서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의 산세가 서북쪽으로부터 왔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왼쪽 아래의 淸州界로부터 들어와 위쪽의 公山界로 흘러나가는 芙蓉江이 현재의 금강이다. 왼쪽 아래에 淸州界가 적혀 있는 것은 현재의 대전광역시 동구 북쪽 지역에 淸州의 월경지인 周岸面이 있었기 때문이다. 읍치 위쪽의 2개 하천은 오른쪽의 淸州界 경계를 넘어 흘러오며, 읍치 바로 오른쪽의 栗峴(밤나무재) 너머에도 청주 시내를 흐르는 무한천의 일부가 걸쳐 있어야 한다. 읍치 지역을 확대해서 그리고, 일부 하천의 표시가 틀리지만 일반적인 회화식 군현지도에 비해 거리와 방향 등이 상대적으로 정확한 편이다. (이기봉)

  • 김제군(金堤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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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김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에 있던 오른쪽 위의 金屈面과 왼쪽 아래의 海倉이 생략된 반면에 《광여도》에 없던 읍치 위쪽의 城山과 오른쪽 위의 橫津이 추가되어 있다. 금굴면이 주기에도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제작자가 실수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성산과 횡진은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김제군 지도에 城山과 橫灘으로 나와 있어 이 지도를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와 《광여도》를 비교해 보면 아래쪽 碧骨堤堰의 모습이 약간 달라져 있다. 벽골제는 백제 때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지도 제작 당시에는 모두 메워져 논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제방의 모습은 조선 중기에도 여전히 남겨져 있었는데, 《해동지도》에는 진짜 제방의 모습처럼 그려져 있다. 그러나 《광여도》에서는 제방이라는 이미지를 받기 어렵게 그려져 있고, 본 지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래쪽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흐르는 하천이 현재의 동진강이다. 위쪽에 全州界에서 臨陂界로 흘러가는 하천은 현재의 만경강이다. 읍치의 물은 지도에는 어디로 빠져나가는지 알 수 없게 되어 있지만 읍치 위쪽에 있는 현재의 신평천에 연결된다. 읍치 아래쪽의 하천은 현재의 원평천인데, 지도의 표현과 달리 실제로는 오른쪽의 金溝界에서 흘러 들어온다. 이 지역은 한국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이 보인다는 평지임에도 마치 산줄기가 여기저기 연결된 것처럼 그렸다. 평지라고 하더라도 물줄기 사이에 산줄기가 있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왜곡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이 지도만으로는 그래도 높은 산줄기가 이어진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왼쪽에 臨陂界라고 적혀 있는데, 실제로는 임피와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다. 다만 그 방향에 약간만 가면 임피의 경계를 만날 수 있다는 의미로 읽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기장현(機張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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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기장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하천의 유로 표현이 약간 달라지긴 했지만 본류와 지류라는 측면에서 보면 거의 동일하다. 읍성이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직사각형에서 약간 둥근 형태로 바뀌어 있다. 지명은 읍성 내의 司倉과 왼쪽 위의 下西面 부근에 眞木封山이 추가된 것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있는 것은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도 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바탕으로 다른 자료를 약간 참고하여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기장현은 북쪽의 동서 폭이 남쪽보다 훨씬 더 넓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북쪽과 남쪽의 동서 폭이 거의 비슷한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가로와 세로가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고을 전체의 모습을 맞추어 그리려고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읍성이 있는 곳부터 남쪽 부분은 동서의 폭이 상당히 좁아진다. 하지만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다 보니까 동서의 폭이 좁아지지 않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몇 가지 왜곡이 발생하였다. 읍성에서 바다로 흘러가는 현재의 죽성천 남쪽의 해안선은 본 지도에 동서의 방향을 하는 것처럼 그려졌다. 그러나 실제로는 동북으로 약간 치우쳐진 남북의 방향을 하고 있다. 《해동지도》에도 정도는 덜하지만 비슷한 왜곡이 발생되어 있다. 오른쪽 위에 長安寺로부터 내려오는 현재의 장안천 동쪽의 해안선이 《해동지도》에는 동서 방향을 하고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그런데 본 지도에서는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는 과정에서 이 부분이 그냥 남북의 방향인 것처럼 바뀌어 있다. 실제적으로는 《해동지도》가 사실에 가깝다. (이기봉)

  • 맹산현(孟山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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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맹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맹산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는 서북쪽을 위로 향해 그린 반면 본 지도는 동남쪽을 위로 배치하였다. 왼쪽 위의 陽德界에서 발원하여 아래쪽의 德川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 대동강의 지류인 맹산강이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맹산강의 상류와 하류를 구분할 수 없도록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 상류와 하류가 분명히 구별되도록 그려져 있던 것에 비하면 본 지도의 필사 시 하천에 대한 충분한 인식을 하지 못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광여도》에는 《해동지도》만큼은 못하지만 상류와 하류를 구분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읍치 지역을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해서 그렸기 때문에 실제에 대한 왜곡 현상이 나타났다. 맹산강을 중심으로 실제로는 고을의 동쪽인 왼쪽 부분이 서쪽인 오른쪽 부분보다 훨씬 넓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는 정반대로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서쪽에 있었던 읍치 지역을 확대하여 그렸기 때문이다. 왼쪽 위에는 定平界가 보이고 있는데, 맹산현은 정평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다. 이런 오류는 《해동지도》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어 이런 계통 지도의 최초 제작자가 정보를 잘못 인식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맹산 지도나 김정호의 《동여도》에는 이 부분이 사실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금성현(金城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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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금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광여도》에 있던 다리와 고개의 몇 개 지명이 본 지도에서 생략되어 있을 뿐이다. 위쪽의 淮陽界에서 들어와 아래쪽의 狼川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북한강 본류이다. 읍치 방향에서 흘러와 북한강에 합류하는 하천은 현재의 금성천이다. 두 하천의 모습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체적으로 실제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고을 동쪽 모습은 실제와 상당히 다르게 되어 있다. 오른쪽 金剛路 방면은 실제로는 동쪽으로 튀어나간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러나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게 고을의 모습을 그리려다보니 이 부분이 남북 직선의 산줄기처럼 그려졌다. 또한 이곳에서 흐르는 현재의 통구천이 실제로는 西流하여 북한강에 합류됨에도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묘사되었다. 이 부근에 있는 斷髮嶺도 실제로는 金剛路 부근에 써넣어야 한다. 또한 오른쪽의 壬倉 부근에는 동쪽으로부터 현재의 금강천이 흘러들어옴에도 이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런 오류들은 근본적으로 표현 양식은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금성현 지도로부터 발생되었다. 북한강변에는 大慶津과 錢浦가 표시되어 있는데, 이 지역에서 북한강에 대한 하천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錢浦에서의 ‘浦’는 浦口라는 의미보다는 물가를 지칭하는 ‘개’에 대한 한자 표현일 뿐이다. 錢浦는 ‘돈개’라는 우리말에 대한 한자 표기로 추정된다. (이기봉)

  • 남양부(南陽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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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남양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新里面 왼쪽의 西如堤面에 다른 面처럼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그 위쪽의 花梁鎭은 《광여도》에는 面과 동일하게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에는 그런 표시를 하지 않았다. 화량진 옆의 念佛山峰에서의 峰과 細串面 왼쪽의 峯은 《광여도》에 烽으로 되어 있다. 오른쪽 위의 旀加串面은 《광여도》에 旀知串面이라 적혀 있다. 모두 《광여도》의 기록이 정확하다. 서해안에 있는 섬들의 크기와 거리는 실제와 다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德積島는 훨씬 서쪽에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아마 일정한 지면에 그리기 위해 거리를 별로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大阜島의 크기는 仙監島의 10배 이상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섬들이 모두 남양부에 속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큰 섬 중에 남양부에 속해 있었던 섬에는 本府地라고 표시되어 있다. 작은 섬 중에서도 남양부에 속해 있었던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섞여 있는데, 구분되고 있지 않다. 아래쪽에 표시된 충청도의 땅들은 실제와 전혀 관계없는 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단지 각 고을의 田稅와 大同米가 옮겨지는 船路의 방향을 표시한 것일 뿐이다. 아래쪽의 分古面은 수원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다. 지도에는 水原地, 水(原)海倉 등을 써넣어 월경지임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왼쪽의 水乾每島는 수원의 건매도란 의미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남양부 지도와 동일하지는 않지만 대략적인 구도가 비슷하여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문의현(文義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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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문의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왼쪽 위의 公山界가 《광여도》에 公州界로 적혀 있고, 堤堰의 모습이 《광여도》에 그려져 있는 반면에 본 지도에는 없다는 점 정도이다. 지도 외곽 위쪽에 문의현의 옛 명칭과 충청좌도에 속해 있다는 ‘左’, 오른쪽에 한양으로부터 3일 걸린다는 ‘三日’ 등의 문자가 적혀 있는 것도 다른 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문의현 지도도 표현 양식과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하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하지만 《해동지도》의 내용과도 배치되지는 않는다. 본 지도는 서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의 산세가 서북쪽으로부터 왔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왼쪽 아래의 淸州界로부터 들어와 위쪽의 公山界로 흘러나가는 芙蓉江이 현재의 금강이다. 왼쪽 아래에 淸州界가 적혀 있는 것은 현재의 대전광역시 동구 북쪽 지역에 淸州의 월경지인 周岸面이 있었기 때문이다. 읍치 위쪽의 2개 하천은 오른쪽의 淸州界 경계를 넘어 흘러오며, 읍치 바로 오른쪽의 栗峴(밤나무재) 너머에도 청주 시내를 흐르는 무한천의 일부가 걸쳐 있어야 한다. 읍치 지역을 확대해서 그리고, 일부 하천의 표시가 틀리지만 일반적인 회화식 군현지도에 비해 거리와 방향 등이 상대적으로 정확한 편이다. (이기봉)

  • 김제군(金堤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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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김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에 있던 오른쪽 위의 金屈面과 왼쪽 아래의 海倉이 생략된 반면에 《광여도》에 없던 읍치 위쪽의 城山과 오른쪽 위의 橫津이 추가되어 있다. 금굴면이 주기에도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제작자가 실수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성산과 횡진은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김제군 지도에 城山과 橫灘으로 나와 있어 이 지도를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와 《광여도》를 비교해 보면 아래쪽 碧骨堤堰의 모습이 약간 달라져 있다. 벽골제는 백제 때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지도 제작 당시에는 모두 메워져 논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제방의 모습은 조선 중기에도 여전히 남겨져 있었는데, 《해동지도》에는 진짜 제방의 모습처럼 그려져 있다. 그러나 《광여도》에서는 제방이라는 이미지를 받기 어렵게 그려져 있고, 본 지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래쪽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흐르는 하천이 현재의 동진강이다. 위쪽에 全州界에서 臨陂界로 흘러가는 하천은 현재의 만경강이다. 읍치의 물은 지도에는 어디로 빠져나가는지 알 수 없게 되어 있지만 읍치 위쪽에 있는 현재의 신평천에 연결된다. 읍치 아래쪽의 하천은 현재의 원평천인데, 지도의 표현과 달리 실제로는 오른쪽의 金溝界에서 흘러 들어온다. 이 지역은 한국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이 보인다는 평지임에도 마치 산줄기가 여기저기 연결된 것처럼 그렸다. 평지라고 하더라도 물줄기 사이에 산줄기가 있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왜곡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이 지도만으로는 그래도 높은 산줄기가 이어진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왼쪽에 臨陂界라고 적혀 있는데, 실제로는 임피와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다. 다만 그 방향에 약간만 가면 임피의 경계를 만날 수 있다는 의미로 읽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기장현(機張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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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기장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하천의 유로 표현이 약간 달라지긴 했지만 본류와 지류라는 측면에서 보면 거의 동일하다. 읍성이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직사각형에서 약간 둥근 형태로 바뀌어 있다. 지명은 읍성 내의 司倉과 왼쪽 위의 下西面 부근에 眞木封山이 추가된 것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있는 것은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도 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바탕으로 다른 자료를 약간 참고하여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기장현은 북쪽의 동서 폭이 남쪽보다 훨씬 더 넓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북쪽과 남쪽의 동서 폭이 거의 비슷한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가로와 세로가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고을 전체의 모습을 맞추어 그리려고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읍성이 있는 곳부터 남쪽 부분은 동서의 폭이 상당히 좁아진다. 하지만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다 보니까 동서의 폭이 좁아지지 않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몇 가지 왜곡이 발생하였다. 읍성에서 바다로 흘러가는 현재의 죽성천 남쪽의 해안선은 본 지도에 동서의 방향을 하는 것처럼 그려졌다. 그러나 실제로는 동북으로 약간 치우쳐진 남북의 방향을 하고 있다. 《해동지도》에도 정도는 덜하지만 비슷한 왜곡이 발생되어 있다. 오른쪽 위에 長安寺로부터 내려오는 현재의 장안천 동쪽의 해안선이 《해동지도》에는 동서 방향을 하고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그런데 본 지도에서는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는 과정에서 이 부분이 그냥 남북의 방향인 것처럼 바뀌어 있다. 실제적으로는 《해동지도》가 사실에 가깝다. (이기봉)

  • 맹산현(孟山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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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맹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맹산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는 서북쪽을 위로 향해 그린 반면 본 지도는 동남쪽을 위로 배치하였다. 왼쪽 위의 陽德界에서 발원하여 아래쪽의 德川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 대동강의 지류인 맹산강이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맹산강의 상류와 하류를 구분할 수 없도록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 상류와 하류가 분명히 구별되도록 그려져 있던 것에 비하면 본 지도의 필사 시 하천에 대한 충분한 인식을 하지 못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광여도》에는 《해동지도》만큼은 못하지만 상류와 하류를 구분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읍치 지역을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해서 그렸기 때문에 실제에 대한 왜곡 현상이 나타났다. 맹산강을 중심으로 실제로는 고을의 동쪽인 왼쪽 부분이 서쪽인 오른쪽 부분보다 훨씬 넓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는 정반대로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서쪽에 있었던 읍치 지역을 확대하여 그렸기 때문이다. 왼쪽 위에는 定平界가 보이고 있는데, 맹산현은 정평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다. 이런 오류는 《해동지도》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어 이런 계통 지도의 최초 제작자가 정보를 잘못 인식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맹산 지도나 김정호의 《동여도》에는 이 부분이 사실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금성현(金城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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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금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광여도》에 있던 다리와 고개의 몇 개 지명이 본 지도에서 생략되어 있을 뿐이다. 위쪽의 淮陽界에서 들어와 아래쪽의 狼川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북한강 본류이다. 읍치 방향에서 흘러와 북한강에 합류하는 하천은 현재의 금성천이다. 두 하천의 모습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체적으로 실제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고을 동쪽 모습은 실제와 상당히 다르게 되어 있다. 오른쪽 金剛路 방면은 실제로는 동쪽으로 튀어나간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러나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게 고을의 모습을 그리려다보니 이 부분이 남북 직선의 산줄기처럼 그려졌다. 또한 이곳에서 흐르는 현재의 통구천이 실제로는 西流하여 북한강에 합류됨에도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묘사되었다. 이 부근에 있는 斷髮嶺도 실제로는 金剛路 부근에 써넣어야 한다. 또한 오른쪽의 壬倉 부근에는 동쪽으로부터 현재의 금강천이 흘러들어옴에도 이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런 오류들은 근본적으로 표현 양식은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금성현 지도로부터 발생되었다. 북한강변에는 大慶津과 錢浦가 표시되어 있는데, 이 지역에서 북한강에 대한 하천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錢浦에서의 ‘浦’는 浦口라는 의미보다는 물가를 지칭하는 ‘개’에 대한 한자 표현일 뿐이다. 錢浦는 ‘돈개’라는 우리말에 대한 한자 표기로 추정된다. (이기봉)

  • 도성(都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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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都城이란 왕이 거주하는 궁전과 중앙 관부 및 인구 밀집 지역을 둘러싼 王城을 의미한다. 도성이란 정의에 입각하여 보면 본 지도에서는 성곽의 안쪽만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도성은 단순히 성곽의 안쪽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수도라는 일반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다. 조선에서는 수도의 고유명칭 으로서 漢城府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으며, 8道와 동급의 행정단위로 인정받았다. 한성부의 으뜸 벼슬인 漢城判尹도 정2품관으로서 外職이 아닌 內職으로 인정받았다. 본 지도에도 성곽의 안쪽만이 아니라 바깥쪽을 포함하는 한성부가 그려져 있다. 1744년(영조 20)에 편찬된《續大典》에 의하면 한성부의 경계는 동쪽이 大菩洞-水踰峴-牛耳川-上下伐里-長位-松溪橋-中浪浦, 남쪽이 箭串橋-新村-豆毛浦-龍山에 이르는 강, 서쪽이 麻浦-望遠亭-城山-沙川渡-時威洞-石串峴에 이르는 강과 내, 북쪽이 石串峴 서남의 하천 합류지점으로부터 大棗里-舊舘基-延曙-蛾眉山-猪噬峴-普賢峯-大菩洞에 이르는 산등성이로 되어 있다. 이 지도에는 《속대전》에 나오는 경계의 지명이 대부분 표시되어 있어 상호 연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도의 전체적인 구도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다만 건물이나 성곽 표시, 지명 위치에서만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을 뿐이다. 도성은 조선에서 가장 많은 인문적 정보가 집중되어 있고, 수요도 많았기 때문에 가장 많이 그려진 지도 중의 하나이다. 대부분의 회화식 지도와 마찬가지로 본 지도에도 정보가 가장 많이 밀집되어 있는 성곽 안과 밖의 축척을 달리하여 그렸다. 그러나 본 지도의 가장 큰 특징은 성곽 내부를 아주 간략하게 처리했다는 점이다.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궁전, 조선의 정통성을 의미하는 宗廟와 社稷 및 成均館은 명칭까지 자세하게 기록하였다. 반면에 현재의 세종로 양편에 즐비했던 6조를 비롯한 중앙 관부는 건물의 모습만 그려 넣었고, 풍수적인 명당수인 淸溪川과 그 위의 다리는 간단하게 표시되어 있다. 도성의 主山인 白岳山을 비롯하여 도성의 산세와 성곽 및 성문의 모습은 상대적으로 자세하게 그리고 있다. 성곽 밖은 안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세히 그렸다. 아래쪽의 한강변에는 豆毛浦로부터 西江까지 조선시대에 번영했던 포구와 나루가 대부분 그려져 있다. 맨 왼쪽의 山城은 城山의 오기이다. 한강 남쪽에 적혀 있는 산은 한강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아마 성곽 안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산줄기와 물줄기에 의해 겹겹이 싸여있는 도성의 모습을 강조하려 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1760년(영조 36)에 慶熙宮으로 개칭된 慶德宮이 원래의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어 영조대 전반기의 사정이 반영된 지도를 베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기봉)

  • 보령현(保寧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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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보령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보령현 지도도 표현 양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까지 뻗은 산줄기가 동쪽으로부터 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방향이 모든 지점에 동일하게 적용된 것은 아니다. 본 지도의 가장 큰 특징은 고을을 바다로 튀어나간 반도처럼 그렸다는 점이다. 고을의 북쪽(왼쪽)과 남쪽(오른쪽)에 있는 灣을 다른 고을의 땅을 생략한 채 표현하여 반도처럼 그려지게 된 것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호서지도》의 보령 지도에는 灣을 거의 하천처럼 그려 바다가 아주 작게 그려져 있기도 하다. 현재의 보령시 주포면 보령리에 있었던 읍성을 특히 확대 강조하여 읍치가 마치 바다와 아주 가까운 것처럼 오해될 수도 있다. 실제로는 바다로부터 상당히 떨어져 있다. 현재의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에 있었던 水營의 성곽은 지형의 굴곡을 최대한 이용해서 만든 것인데 본 지도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아래쪽의 船泊處는 보령현에 배치된 戰船을 정박시키던 곳이다. 주기에 기록된 防船, 兵船, 伺候船 각 1척은 선박처에 있었던 것이다. (이기봉)

  • 나주목(羅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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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나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본 지도는 《광여도》에 비해 여러 내용이 빠져 있다. 읍치 위쪽에 余皇面, 三加面, 金鞍面, 官叱洞面 등 4개 면이, 오른쪽 아래의 元井面 왼쪽에 細花面이 생략되어 있다. 왼쪽의 升浦面은 竹浦面의 오기이다. 이런 면의 명칭이 주기에는 모두 나오고 있어 본 지도의 작성자가 실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서남쪽 바다 위에는 현재의 신안군에 속해 있는 섬들이 그려져 있다. 이 섬들은 나주의 월경지였으며, 실제로는 훨씬 많은 섬이 있었다. 본 지도와 표현 방식이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錦城縣 지도에는 섬의 수가 훨씬 많이 표시되어 있으며, 《광여도》도 거의 유사하다. 이런 사실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작성자가 대부분의 섬을 생략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래쪽의 三鄕面도 현재의 무안군 삼향면에 있었던 월경지였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이곳이 월경지였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회화식 지도라고 할지라도 이런 경우 삼향면과 나주 땅 사이에 務安界라는 문구를 써넣어 월경지임을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경우가 많다. 주변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 접속 유무도 본 지도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오른쪽 아래의 長興界 왼쪽에는 靈巖界가, 오른쪽으로는 南平界와 光州界를 적어 넣어야 실제와 부합된다. 《해동지도》의 금성현 지도에는 남평계와 광주계는 적혀 있다. 본 지도와 《광여도》의 필사 시에 생략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래쪽에 영암계가 적혀 있지 않아 나주목이 바로 서해바다와 접해 있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南海堂은 南海神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祀典에 中祀로 되어 있었다. 이곳은 현재의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 남해포로서 본 지도와 달리 영산강이 내륙으로 상당히 들어와 있었다. 이와 같은 문제점이 나타난 것은 월경지인 삼향면과 나주목 사이에 있었던 務安과 남쪽에 있었던 靈巖의 영역을 표시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천의 표현에서도 몇 가지 문제점이 발견되고 있다. 영산강은 榮江津 오른쪽에서 남평으로부터 들어오는 현재의 지석강과 영산강 본류가 합해지는데 이런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또한 영산강 본류는 위쪽의 靈鷲山에서 발원하는 것이 아니라 長城界 너머에서 흘러들어온다. 이런 문제점은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나주목은 본 지도와 《광여도》의 호남도에 모두 금성현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군현지도는 본 지도와 《광여도》 모두 나주목으로 되어 있다. 반면에 《해동지도》에는 전라도 지도에는 나주로 되어 있던 것이 군현지도에는 금성현으로 되어 있다. 나주는 인조(1623-1649) 시기에 잠시, 그리고 1728년-1737년(영조 4-13) 사이에도 금성현으로 강등된 적이 있다. 《해동지도》의 금성현 지도는 후자의 시기에 그려진 것으로, 전라도 지도는 그 후에 다시 그려서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와 《광여도》의 나주목 지도는 그 이후에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고을 명칭을 수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호남도는 다시 만들어진 《해동지도》의 전라도 지도 이전에 붙어 있던 전라도 전도를 그대로 전사했기 때문에 錦城이란 명칭이 남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여지도서』의 나주목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본 지도와 비슷하다. (이기봉)

  • 김산군(金山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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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金山郡 지도와 비슷하다. 일단 읍치에 있는 일부 건물과 아래쪽의 乾川面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이 중 건천면은 《해동지도》에 처음부터 없었다기보다는 주기를 적는 과정에서 생략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지명의 위치가 바뀐 곳도 여러 개 보이고 있다. 이렇게 지명 위치가 바뀌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첫째, 《해동지도》는 동서(가로)를 남북(세로)보다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남북을 길게 그렸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둘째, 읍치를 상대적으로 크게 그리는 과정에서 다른 부분의 변화가 발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셋째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각형에 더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변화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지명의 위치를 배치하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面 정보를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할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였지만 읍치의 郡內面과 金泉驛舘 부근에 있었던 金泉面이 생략되어 있다. 또한 김천역관 오른쪽에 표시된 甘川橋가 《해동지도》에 甘川과 橋로 분리되어 있다. 오른쪽 아래의 延命面은 성주와 개령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이다. 《해동지도》에는 星州界가 그 안쪽에 적혀 있어 어느 정도 월경지 임을 짐작할 수 있지만 본 지도에서는 성주계가 아예 생략되어 있다.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러나 모든 지역의 방향이 정확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왼쪽에서 흘러와 오른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은 현재의 감천이다. 이 감천은 실제로는 서남쪽에서 들어와 동북쪽으로 빠져나가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왼쪽의 直指寺에서 흘러오는 하천은 현재의 직지천 인데, 실제로는 거의 東流하여 감천에 합류된다. 기타 직지사 오른쪽의 추풍령 아래쪽에 충청도 黃澗縣의 땅이 있었지만 본 지도에는 전혀 표시되어 있지 않다. 가장 위쪽의 黃金所面은 낙동강이 아닌 금강 유역에 속한 현재의 영동군 추풍령면에 있었다. (이기봉)

  • 문화현(文化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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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문화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방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문화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 문자로만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사용하였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오류도 발생하고 있다. 오른쪽의 古灵은 《해동지도》의 古靈山을 면으로 잘못 이해하여 표시한 것이다. 面자가 빠진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자도 문제점을 발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 위쪽에는 西部面이 2개나 표시되어 있는데, 이것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던 것이다. 《광여도》에서는 古灵에서 노란색 사각형을 제거하여 古靈이라 표현하여 오류를 시정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古靈山이었다는 사실까지 꼼꼼하게 교정하지는 못했다. 西部面이 2개인 것은 《광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해동지도》에 九月山城 안에 있었던 많은 건물이 생략되었다. 또한 왼쪽 위의 大樂山 부근에서 발원하여 松禾界로 빠져나가던 하천이 그려져 있지 않다. 이런 점 역시 《광여도》에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구월산성은 읍치에서 보아 서북쪽에 있다. 그리고 왼쪽 아래로 빠져나가는 하천은 현재의 재령강 지류인 서강의 한 줄기로서 동쪽으로 빠져나간다. 이런 지표들만 놓고 볼 때 본 지도의 방향은 모든 지점에 정확하게 적용되지 않았다. 방향이나 거리의 부정확성은 회화식 군현지도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기봉)

  • 길주목(吉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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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길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와 《광여도》는 《해동지도》의 길주목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잘못된 것도 있고, 생략된 것도 많다. 맨 위쪽의 軒頭嶺은 斬頭嶺의, 아래쪽의 鎭東은 嶺東의 誤記이다. 생략된 것으로는 面에 해당되는 社가 있으며, 그 밖에 烽燧 등도 여러 개가 생략되어 있다. 지도에는 5개의 노란색 사각형이 있다. 臨溟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읍치가 아니면서도 건물 모양이 그려져 있던 곳이다. 이 중 西北, 胡打里, 城津은 군사기지이며, 나머지 2개는 驛站이다. 본 지도책의 다른 군현에서는 驛站을 보라색 사각형으로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본 지도에서는 적용되지 않았다. 본 지도는 읍치 왼쪽에 있는 현재의 남대천 유로를 볼 때 北北西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대체적으로 일반적인 회화식 지도와 달리 읍치를 확대하지 않았고, 고을의 모습도 실제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해안선이 실제로는 서남-동북 방향임에도 본 지도에는 서-동 방향으로 그려져 있는 단점도 있다. 이런 단점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길주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기봉)

  • 마전군(麻田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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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마전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오른쪽 위에 楡木津과 客舍 위쪽의 胎峯이 《광여도》에는 각각 楡林津과 昭峯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마전군 지도도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비슷하여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도에는 위의 지명이 각각 楡林津과 胎峯으로 되어 있다. 유림진은 일반적으로 澄波江 또는 澄波渡라고 하며, 임진강에서 배가 올라가는 최상류 지점으로 알려져 있다. 위쪽의 漣川界에서 들어와 왼쪽의 積城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임진강이다. 오른쪽의 楊州界에서 들어와 임진강에 합류하는 하천은 현재의 한탄강이다. 지도에는 모두 大江으로 적혀 있는데, 고유한 명칭이 아니라 ‘큰 강’이라는 일반명사로서 사용된 것이다. 지도에는 2개의 면만 표시되어 있는 반면에 주기에는 5개의 면이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는 점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회화식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하천의 유로나 산줄기가 실제와 정확히 부합되지는 않는다. 客舍가 있는 읍치의 풍수적으로 명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실제의 지형을 변형시켜 그린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기봉)

  • 보령현(保寧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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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보령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보령현 지도도 표현 양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까지 뻗은 산줄기가 동쪽으로부터 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방향이 모든 지점에 동일하게 적용된 것은 아니다. 본 지도의 가장 큰 특징은 고을을 바다로 튀어나간 반도처럼 그렸다는 점이다. 고을의 북쪽(왼쪽)과 남쪽(오른쪽)에 있는 灣을 다른 고을의 땅을 생략한 채 표현하여 반도처럼 그려지게 된 것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호서지도》의 보령 지도에는 灣을 거의 하천처럼 그려 바다가 아주 작게 그려져 있기도 하다. 현재의 보령시 주포면 보령리에 있었던 읍성을 특히 확대 강조하여 읍치가 마치 바다와 아주 가까운 것처럼 오해될 수도 있다. 실제로는 바다로부터 상당히 떨어져 있다. 현재의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에 있었던 水營의 성곽은 지형의 굴곡을 최대한 이용해서 만든 것인데 본 지도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아래쪽의 船泊處는 보령현에 배치된 戰船을 정박시키던 곳이다. 주기에 기록된 防船, 兵船, 伺候船 각 1척은 선박처에 있었던 것이다. (이기봉)

  • 나주목(羅州牧)(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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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나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본 지도는 《광여도》에 비해 여러 내용이 빠져 있다. 읍치 위쪽에 余皇面, 三加面, 金鞍面, 官叱洞面 등 4개 면이, 오른쪽 아래의 元井面 왼쪽에 細花面이 생략되어 있다. 왼쪽의 升浦面은 竹浦面의 오기이다. 이런 면의 명칭이 주기에는 모두 나오고 있어 본 지도의 작성자가 실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서남쪽 바다 위에는 현재의 신안군에 속해 있는 섬들이 그려져 있다. 이 섬들은 나주의 월경지였으며, 실제로는 훨씬 많은 섬이 있었다. 본 지도와 표현 방식이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錦城縣 지도에는 섬의 수가 훨씬 많이 표시되어 있으며, 《광여도》도 거의 유사하다. 이런 사실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작성자가 대부분의 섬을 생략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래쪽의 三鄕面도 현재의 무안군 삼향면에 있었던 월경지였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이곳이 월경지였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회화식 지도라고 할지라도 이런 경우 삼향면과 나주 땅 사이에 務安界라는 문구를 써넣어 월경지임을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경우가 많다. 주변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 접속 유무도 본 지도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오른쪽 아래의 長興界 왼쪽에는 靈巖界가, 오른쪽으로는 南平界와 光州界를 적어 넣어야 실제와 부합된다. 《해동지도》의 금성현 지도에는 남평계와 광주계는 적혀 있다. 본 지도와 《광여도》의 필사 시에 생략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래쪽에 영암계가 적혀 있지 않아 나주목이 바로 서해바다와 접해 있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南海堂은 南海神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祀典에 中祀로 되어 있었다. 이곳은 현재의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 남해포로서 본 지도와 달리 영산강이 내륙으로 상당히 들어와 있었다. 이와 같은 문제점이 나타난 것은 월경지인 삼향면과 나주목 사이에 있었던 務安과 남쪽에 있었던 靈巖의 영역을 표시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천의 표현에서도 몇 가지 문제점이 발견되고 있다. 영산강은 榮江津 오른쪽에서 남평으로부터 들어오는 현재의 지석강과 영산강 본류가 합해지는데 이런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또한 영산강 본류는 위쪽의 靈鷲山에서 발원하는 것이 아니라 長城界 너머에서 흘러들어온다. 이런 문제점은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나주목은 본 지도와 《광여도》의 호남도에 모두 금성현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군현지도는 본 지도와 《광여도》 모두 나주목으로 되어 있다. 반면에 《해동지도》에는 전라도 지도에는 나주로 되어 있던 것이 군현지도에는 금성현으로 되어 있다. 나주는 인조(1623-1649) 시기에 잠시, 그리고 1728년-1737년(영조 4-13) 사이에도 금성현으로 강등된 적이 있다. 《해동지도》의 금성현 지도는 후자의 시기에 그려진 것으로, 전라도 지도는 그 후에 다시 그려서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와 《광여도》의 나주목 지도는 그 이후에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고을 명칭을 수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호남도는 다시 만들어진 《해동지도》의 전라도 지도 이전에 붙어 있던 전라도 전도를 그대로 전사했기 때문에 錦城이란 명칭이 남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여지도서』의 나주목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본 지도와 비슷하다. (이기봉)

  • 김산군(金山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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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金山郡 지도와 비슷하다. 일단 읍치에 있는 일부 건물과 아래쪽의 乾川面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이 중 건천면은 《해동지도》에 처음부터 없었다기보다는 주기를 적는 과정에서 생략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지명의 위치가 바뀐 곳도 여러 개 보이고 있다. 이렇게 지명 위치가 바뀌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첫째, 《해동지도》는 동서(가로)를 남북(세로)보다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남북을 길게 그렸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둘째, 읍치를 상대적으로 크게 그리는 과정에서 다른 부분의 변화가 발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셋째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각형에 더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변화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지명의 위치를 배치하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面 정보를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할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였지만 읍치의 郡內面과 金泉驛舘 부근에 있었던 金泉面이 생략되어 있다. 또한 김천역관 오른쪽에 표시된 甘川橋가 《해동지도》에 甘川과 橋로 분리되어 있다. 오른쪽 아래의 延命面은 성주와 개령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이다. 《해동지도》에는 星州界가 그 안쪽에 적혀 있어 어느 정도 월경지 임을 짐작할 수 있지만 본 지도에서는 성주계가 아예 생략되어 있다.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러나 모든 지역의 방향이 정확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왼쪽에서 흘러와 오른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은 현재의 감천이다. 이 감천은 실제로는 서남쪽에서 들어와 동북쪽으로 빠져나가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왼쪽의 直指寺에서 흘러오는 하천은 현재의 직지천 인데, 실제로는 거의 東流하여 감천에 합류된다. 기타 직지사 오른쪽의 추풍령 아래쪽에 충청도 黃澗縣의 땅이 있었지만 본 지도에는 전혀 표시되어 있지 않다. 가장 위쪽의 黃金所面은 낙동강이 아닌 금강 유역에 속한 현재의 영동군 추풍령면에 있었다. (이기봉)

  • 문화현(文化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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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문화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방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문화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 문자로만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사용하였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오류도 발생하고 있다. 오른쪽의 古灵은 《해동지도》의 古靈山을 면으로 잘못 이해하여 표시한 것이다. 面자가 빠진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자도 문제점을 발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 위쪽에는 西部面이 2개나 표시되어 있는데, 이것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던 것이다. 《광여도》에서는 古灵에서 노란색 사각형을 제거하여 古靈이라 표현하여 오류를 시정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古靈山이었다는 사실까지 꼼꼼하게 교정하지는 못했다. 西部面이 2개인 것은 《광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해동지도》에 九月山城 안에 있었던 많은 건물이 생략되었다. 또한 왼쪽 위의 大樂山 부근에서 발원하여 松禾界로 빠져나가던 하천이 그려져 있지 않다. 이런 점 역시 《광여도》에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구월산성은 읍치에서 보아 서북쪽에 있다. 그리고 왼쪽 아래로 빠져나가는 하천은 현재의 재령강 지류인 서강의 한 줄기로서 동쪽으로 빠져나간다. 이런 지표들만 놓고 볼 때 본 지도의 방향은 모든 지점에 정확하게 적용되지 않았다. 방향이나 거리의 부정확성은 회화식 군현지도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기봉)

  • 길주목(吉州牧)(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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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길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와 《광여도》는 《해동지도》의 길주목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잘못된 것도 있고, 생략된 것도 많다. 맨 위쪽의 軒頭嶺은 斬頭嶺의, 아래쪽의 鎭東은 嶺東의 誤記이다. 생략된 것으로는 面에 해당되는 社가 있으며, 그 밖에 烽燧 등도 여러 개가 생략되어 있다. 지도에는 5개의 노란색 사각형이 있다. 臨溟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읍치가 아니면서도 건물 모양이 그려져 있던 곳이다. 이 중 西北, 胡打里, 城津은 군사기지이며, 나머지 2개는 驛站이다. 본 지도책의 다른 군현에서는 驛站을 보라색 사각형으로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본 지도에서는 적용되지 않았다. 본 지도는 읍치 왼쪽에 있는 현재의 남대천 유로를 볼 때 北北西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대체적으로 일반적인 회화식 지도와 달리 읍치를 확대하지 않았고, 고을의 모습도 실제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해안선이 실제로는 서남-동북 방향임에도 본 지도에는 서-동 방향으로 그려져 있는 단점도 있다. 이런 단점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길주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기봉)

  • 마전군(麻田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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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마전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오른쪽 위에 楡木津과 客舍 위쪽의 胎峯이 《광여도》에는 각각 楡林津과 昭峯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마전군 지도도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비슷하여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도에는 위의 지명이 각각 楡林津과 胎峯으로 되어 있다. 유림진은 일반적으로 澄波江 또는 澄波渡라고 하며, 임진강에서 배가 올라가는 최상류 지점으로 알려져 있다. 위쪽의 漣川界에서 들어와 왼쪽의 積城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임진강이다. 오른쪽의 楊州界에서 들어와 임진강에 합류하는 하천은 현재의 한탄강이다. 지도에는 모두 大江으로 적혀 있는데, 고유한 명칭이 아니라 ‘큰 강’이라는 일반명사로서 사용된 것이다. 지도에는 2개의 면만 표시되어 있는 반면에 주기에는 5개의 면이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는 점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회화식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하천의 유로나 산줄기가 실제와 정확히 부합되지는 않는다. 客舍가 있는 읍치의 풍수적으로 명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실제의 지형을 변형시켜 그린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기봉)

  • 보은현(報恩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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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보은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광여도》에 속리산의 법주사에 大雄殿으로, 읍치 위쪽에 燕峙로 적혀 있던 것이 본 지도에서는 大雄閣과 鷰峙로 바뀌어 있다는 점뿐이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는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처럼 쓰여 있어 상호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회화식 군현지도임에도 불구하고 읍치가 별로 확대 과장되어 있지 않고, 산줄기와 물줄기의 표현이 상세하고 사실에 가까운 편이다. 아래쪽은 금강의 지류인 보청천 유역이고, 위쪽의 속리산 방향은 달천의 지류인 속리천 유역이다. 《광여도》에는 아래쪽 靑山界 방향으로 빠져나가는 보청천이 약간 애매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오른쪽 尙州界 방향에 보청천의 지류가 흘러들어옴에도 이와 같은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또한 왼쪽의 內北面이 있는 상류에는 懷仁의 땅도 일부 속해 있었다. 이런 부분은 극히 일부에 해당되기 때문에 지리지를 통해서는 확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당시의 지도 제작자들에게는 구분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동여도》를 비롯하여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모든 보은 지도에서 이런 부분이 표시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내북면 지역은 靑山의 월경지인 酒城面과도 접해 있어 보통은 靑山界라고도 적혀 있어야 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보은현 지도와 《동여도》에는 이와 같이 되어 있다. (이기봉)

  • 낙안군(樂安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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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낙안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전체적인 표현이 거칠고 일부 잘못된 지명도 보이고 있다. 읍치 왼쪽의 內面面은 內西面의 오기이다. 읍치 오른쪽 아래에는 面에 대한 기호인 노란색 사각형만 그려져 있고, 東面은 생략되어 있다. 古邑面上道 아래쪽에는 古邑面下道가 아예 표시되어 있지도 않다. 이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광여도》의 것을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오른쪽의 桐華寺는 《광여도》에 祠華寺로 되어 있는데, 본 지도의 것이 올바르다. 표현 양식에서 다르지만 전반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낙안군 지도에는 본 지도처럼 나온다. 따라서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광여도》를 필사하면서 《해동지도》를 일부 참고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본 지도에서는 고을 전체를 산줄기가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표현하기 위해 실제를 약간 왜곡시키고 있다. 위쪽의 金錢山 북쪽에도 순천으로 흘러가는 이사천의 상류가 걸쳐 있다. 또한 그 외쪽의 外西面 지역도 보성강의 지류인 송광천의 지류가 걸쳐 있다. 이와 같은 문제점은 고을의 풍수적 명당성을 강조하기 위한 회화식 지도에서 자주 나타나는 것이다. 아래쪽의 船所는 주기에 적혀 있는 전선을 정박시키던 곳으로 낙안군에서 관리하였다. 海倉은 낙안군의 田稅와 大同米를 모아 한양으로 옮기던 곳이다. (이기봉)

  • 김해부(金海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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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김해부 지도와 비슷하다. 왼쪽 위의 昌原界에서 들어와 오른쪽 아래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이다. 낙동강 에 유읍되는 여러 하천의 유로가 《해동지도》와 비슷하지만 달라진 부분이 몇몇 보이고 있다. 우선 읍치 가장 왼쪽의 하천에 《해동지도》에는 外三台 아래쪽과 연결되어 있다. 또한 《해동지도》에는 가장 아래쪽 台也面 방향에도 하천이 하나 그려져 있다. 후자는 《해동지도》가 정확하지만 전자는 낙동강 하구인 이 지역의 지형 변화가 심하기 때문에 어느 것이 맞는지 정확하게 이야기하기 어렵다. 오른쪽 아래의 德島 역시 본 지도에는 육지와 연결된 것처럼 되어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분명한 섬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부분 역시 지형 변화가 심한 곳이기 때문에 어느 것이 옳은지 분명하게 이야기하기 어렵다. 위쪽에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하천은 현재의 화포천이다. 화포천은 실제로는 조양강과 비슷하거나 더 긴 하천이지만 본 지도에는 상당히 짧은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읍치를 다른 지역보다 확대해서 그렸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읍성 주변을 싸고 있는 흙색의 선은 《해동지도》에 ‘수로왕 때 쌓은 土城이다’라고 적혀 있다. 《해동지도》에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 기호를 첨가하였다. 그러나 위쪽에 《해동지도》에는 표시되어 있던 大山面과 中北面 등이 생략되어 있다. 이 2개의 면이 주기에 적혀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 필사자의 실수라고 생각된다. 오른쪽 위에 집 모양만 표시되어 있는 곳에도 《해동지도》에는 甘露寺라는 명칭이 기록되어 있어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 아닌가 한다.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지만 아래쪽 鳴旨島까지 낙동강이 남류함에도 이와 같은 사실이 잘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기봉)

  • 박천군(博川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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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박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박천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몇 가지 달라진 점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오른쪽과 위쪽에 적혀 있는 寧越界는 《해동지도》의 寧邊界를 잘못 옮긴 것이다. 《광여도》에는 이 부분이 올바르게 적혀 있다. 아래쪽 望毛老 아래쪽이 《해동지도》에는 반도처럼 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는 잘려 있다. 이것은 《해동지도》보다 세로의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종이 위에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오른쪽의 淸川江 본류가 竝溫山烽 아래쪽 부분에서 오른쪽으로부터 흘러들어오는 모습이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광여도》에는 이 부분이 《해동지도》와 동일하게 그려져 있다. 읍치에 《해동지도》에 없던 訓練 건물이 있고, 《해동지도》에 邑倉으로 되어 있던 것이 倉으로 바뀌어 있다. 《광여도》에는 본 지도처럼 訓練 건물이 있지만 倉이 《해동지도》처럼 邑倉으로 바뀌어 있다. 아래쪽의 古城鎭에는 《해동지도》보다 건물이 1개 더 그려져 있고, 鎭舍는 없고 舘舍가 나온다. 《광여도》에는 舘舍와 鎭舍가 동시에 적혀 있다. 그 오른쪽의 黑飛嶺은 《해동지도》의 黑飛頉을 잘못 옮긴 것이다. 《광여도》에는 《해동지도》처럼 흑비탈로 적혀 있다. 이런 부분들을 종합해 보면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참조하여 필사했지만 몇몇 부분에서 변화를 주었다. 《광여도》는 전체적인 구도에서 본 지도를 참조로 필사했지만 《해동지도》의 내용도 참조하여 본 지도의 오류를 교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박천군 지역은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평야임에도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마치 높은 산줄기가 이어진 고을로 착각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이기봉)

  • 김화현(金化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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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김화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에는 捷碑柳林大가 적혀 있는데 《광여도》에는 柳琳大捷碑라고 되어 있다. 또한 그 왼쪽에 표시된 銀溪驛이 《광여도》에는 生昌驛으로 되어 있다. 표현 방식에서는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김화현 지도에는 《광여도》처럼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잘못 기록한 것이다. 은계역은 김화현이 아니라 회양부에 있었다. 아래쪽에는 春川界가 적혀 있는데,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도 모두 동일하게 되어 있다. 狼川界를 잘못 쓴 것으로서 《광여도》나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의 오류를 살피지 않고 그대로 필사했음을 알려주는 근거가 된다. 읍치를 다른 지역보다 확대해서 그렸으며, 사각형이 아닌 고을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표현하였기 때문에 실제를 왜곡하는 부분이 나타났다. 예를 들어 西面과 南面은 永平界 방면의 남쪽으로 튀어나가 있는데 이것이 제대로 표현되어 있지 못하다. 또한 김화현은 平康과 서쪽에서만 경계를 접하고 있는데 마치 북쪽에도 平康界가 있는 것처럼 표시되었다. 이것은 북쪽의 동서 폭이 좁은 부분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는 과정에서 서쪽 부분의 일부가 북쪽처럼 표현 된 것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김화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런 오류들이 대부분 교정되었다. (이기봉)

  • 부평부(富平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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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부평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본 지도에는 왼쪽 위의 毛月串面과 가운데 아래의 玉毛面에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광여도》에서는 이와 같은 오류가 나타나고 있지 않다. 읍치 오른쪽 위의 古山城이 본 지도에는 명칭만 적혀 있지만 《광여도》에는 성곽 표시가 되어 있다. 富平府란 명칭 왼쪽에는 金浦界가 金津界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하다. 본 지도는 일반적인 회화식 군현지도와 마찬가지로 다른 지역에 비해 읍치가 확대 과장되어 있다. 이런 방식을 사용한 이유는 지도에 표시할 정보가 읍치에 가장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읍치의 산세를 명당인 것처럼 표현하여 정치적 위엄을 높이기 위한 목적 때문이기도 하다. 읍치에는 지방관이 업무를 수행하던 衙舍와 望闕向拜하며 왕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던 客舍를 포함하여 여러 관아 건물이 자세히 표시된 편이다. 읍치 남쪽은 현재의 굴포천 유역에 해당되는 저평한 지역이다. 산세가 높지 않은 이런 지역에서는 관개를 위해 저수지를 많이 쌓았는데, 본 지도에도 여러 개의 防築이 표시되어 있다. 본 고을은 서쪽으로 서해에 접해 있는데, 지도에도 이러한 사실이 잘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동쪽에 표시된 한강과는 직접적으로 접해 있는 지역이 없었다. 지도에는 이 고을이 한강과 직접적으로 접해 있지 않다는 사실을 陽川地, 衿川界, 陽川界, 陽川, 金浦界 등의 문자를 넣어 표시하였다. 그렇더라도 본 지도의 표현만으로는 본 고을이 한강과 접해 있는지 여부를 이해하기 어렵다. (이기봉)

  • 보은현(報恩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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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보은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광여도》에 속리산의 법주사에 大雄殿으로, 읍치 위쪽에 燕峙로 적혀 있던 것이 본 지도에서는 大雄閣과 鷰峙로 바뀌어 있다는 점뿐이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는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처럼 쓰여 있어 상호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회화식 군현지도임에도 불구하고 읍치가 별로 확대 과장되어 있지 않고, 산줄기와 물줄기의 표현이 상세하고 사실에 가까운 편이다. 아래쪽은 금강의 지류인 보청천 유역이고, 위쪽의 속리산 방향은 달천의 지류인 속리천 유역이다. 《광여도》에는 아래쪽 靑山界 방향으로 빠져나가는 보청천이 약간 애매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오른쪽 尙州界 방향에 보청천의 지류가 흘러들어옴에도 이와 같은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또한 왼쪽의 內北面이 있는 상류에는 懷仁의 땅도 일부 속해 있었다. 이런 부분은 극히 일부에 해당되기 때문에 지리지를 통해서는 확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당시의 지도 제작자들에게는 구분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동여도》를 비롯하여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모든 보은 지도에서 이런 부분이 표시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내북면 지역은 靑山의 월경지인 酒城面과도 접해 있어 보통은 靑山界라고도 적혀 있어야 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보은현 지도와 《동여도》에는 이와 같이 되어 있다. (이기봉)

  • 낙안군(樂安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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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낙안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전체적인 표현이 거칠고 일부 잘못된 지명도 보이고 있다. 읍치 왼쪽의 內面面은 內西面의 오기이다. 읍치 오른쪽 아래에는 面에 대한 기호인 노란색 사각형만 그려져 있고, 東面은 생략되어 있다. 古邑面上道 아래쪽에는 古邑面下道가 아예 표시되어 있지도 않다. 이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광여도》의 것을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오른쪽의 桐華寺는 《광여도》에 祠華寺로 되어 있는데, 본 지도의 것이 올바르다. 표현 양식에서 다르지만 전반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낙안군 지도에는 본 지도처럼 나온다. 따라서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광여도》를 필사하면서 《해동지도》를 일부 참고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본 지도에서는 고을 전체를 산줄기가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표현하기 위해 실제를 약간 왜곡시키고 있다. 위쪽의 金錢山 북쪽에도 순천으로 흘러가는 이사천의 상류가 걸쳐 있다. 또한 그 외쪽의 外西面 지역도 보성강의 지류인 송광천의 지류가 걸쳐 있다. 이와 같은 문제점은 고을의 풍수적 명당성을 강조하기 위한 회화식 지도에서 자주 나타나는 것이다. 아래쪽의 船所는 주기에 적혀 있는 전선을 정박시키던 곳으로 낙안군에서 관리하였다. 海倉은 낙안군의 田稅와 大同米를 모아 한양으로 옮기던 곳이다. (이기봉)

  • 김해부(金海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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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김해부 지도와 비슷하다. 왼쪽 위의 昌原界에서 들어와 오른쪽 아래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이다. 낙동강 에 유읍되는 여러 하천의 유로가 《해동지도》와 비슷하지만 달라진 부분이 몇몇 보이고 있다. 우선 읍치 가장 왼쪽의 하천에 《해동지도》에는 外三台 아래쪽과 연결되어 있다. 또한 《해동지도》에는 가장 아래쪽 台也面 방향에도 하천이 하나 그려져 있다. 후자는 《해동지도》가 정확하지만 전자는 낙동강 하구인 이 지역의 지형 변화가 심하기 때문에 어느 것이 맞는지 정확하게 이야기하기 어렵다. 오른쪽 아래의 德島 역시 본 지도에는 육지와 연결된 것처럼 되어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분명한 섬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부분 역시 지형 변화가 심한 곳이기 때문에 어느 것이 옳은지 분명하게 이야기하기 어렵다. 위쪽에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하천은 현재의 화포천이다. 화포천은 실제로는 조양강과 비슷하거나 더 긴 하천이지만 본 지도에는 상당히 짧은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읍치를 다른 지역보다 확대해서 그렸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읍성 주변을 싸고 있는 흙색의 선은 《해동지도》에 ‘수로왕 때 쌓은 土城이다’라고 적혀 있다. 《해동지도》에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 기호를 첨가하였다. 그러나 위쪽에 《해동지도》에는 표시되어 있던 大山面과 中北面 등이 생략되어 있다. 이 2개의 면이 주기에 적혀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 필사자의 실수라고 생각된다. 오른쪽 위에 집 모양만 표시되어 있는 곳에도 《해동지도》에는 甘露寺라는 명칭이 기록되어 있어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 아닌가 한다.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지만 아래쪽 鳴旨島까지 낙동강이 남류함에도 이와 같은 사실이 잘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기봉)

  • 박천군(博川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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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박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박천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몇 가지 달라진 점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오른쪽과 위쪽에 적혀 있는 寧越界는 《해동지도》의 寧邊界를 잘못 옮긴 것이다. 《광여도》에는 이 부분이 올바르게 적혀 있다. 아래쪽 望毛老 아래쪽이 《해동지도》에는 반도처럼 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는 잘려 있다. 이것은 《해동지도》보다 세로의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종이 위에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오른쪽의 淸川江 본류가 竝溫山烽 아래쪽 부분에서 오른쪽으로부터 흘러들어오는 모습이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광여도》에는 이 부분이 《해동지도》와 동일하게 그려져 있다. 읍치에 《해동지도》에 없던 訓練 건물이 있고, 《해동지도》에 邑倉으로 되어 있던 것이 倉으로 바뀌어 있다. 《광여도》에는 본 지도처럼 訓練 건물이 있지만 倉이 《해동지도》처럼 邑倉으로 바뀌어 있다. 아래쪽의 古城鎭에는 《해동지도》보다 건물이 1개 더 그려져 있고, 鎭舍는 없고 舘舍가 나온다. 《광여도》에는 舘舍와 鎭舍가 동시에 적혀 있다. 그 오른쪽의 黑飛嶺은 《해동지도》의 黑飛頉을 잘못 옮긴 것이다. 《광여도》에는 《해동지도》처럼 흑비탈로 적혀 있다. 이런 부분들을 종합해 보면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참조하여 필사했지만 몇몇 부분에서 변화를 주었다. 《광여도》는 전체적인 구도에서 본 지도를 참조로 필사했지만 《해동지도》의 내용도 참조하여 본 지도의 오류를 교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박천군 지역은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평야임에도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마치 높은 산줄기가 이어진 고을로 착각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이기봉)

  • 김화현(金化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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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김화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에는 捷碑柳林大가 적혀 있는데 《광여도》에는 柳琳大捷碑라고 되어 있다. 또한 그 왼쪽에 표시된 銀溪驛이 《광여도》에는 生昌驛으로 되어 있다. 표현 방식에서는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김화현 지도에는 《광여도》처럼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잘못 기록한 것이다. 은계역은 김화현이 아니라 회양부에 있었다. 아래쪽에는 春川界가 적혀 있는데,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도 모두 동일하게 되어 있다. 狼川界를 잘못 쓴 것으로서 《광여도》나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의 오류를 살피지 않고 그대로 필사했음을 알려주는 근거가 된다. 읍치를 다른 지역보다 확대해서 그렸으며, 사각형이 아닌 고을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표현하였기 때문에 실제를 왜곡하는 부분이 나타났다. 예를 들어 西面과 南面은 永平界 방면의 남쪽으로 튀어나가 있는데 이것이 제대로 표현되어 있지 못하다. 또한 김화현은 平康과 서쪽에서만 경계를 접하고 있는데 마치 북쪽에도 平康界가 있는 것처럼 표시되었다. 이것은 북쪽의 동서 폭이 좁은 부분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는 과정에서 서쪽 부분의 일부가 북쪽처럼 표현 된 것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김화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런 오류들이 대부분 교정되었다. (이기봉)

  • 부평부(富平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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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부평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본 지도에는 왼쪽 위의 毛月串面과 가운데 아래의 玉毛面에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광여도》에서는 이와 같은 오류가 나타나고 있지 않다. 읍치 오른쪽 위의 古山城이 본 지도에는 명칭만 적혀 있지만 《광여도》에는 성곽 표시가 되어 있다. 富平府란 명칭 왼쪽에는 金浦界가 金津界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하다. 본 지도는 일반적인 회화식 군현지도와 마찬가지로 다른 지역에 비해 읍치가 확대 과장되어 있다. 이런 방식을 사용한 이유는 지도에 표시할 정보가 읍치에 가장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읍치의 산세를 명당인 것처럼 표현하여 정치적 위엄을 높이기 위한 목적 때문이기도 하다. 읍치에는 지방관이 업무를 수행하던 衙舍와 望闕向拜하며 왕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던 客舍를 포함하여 여러 관아 건물이 자세히 표시된 편이다. 읍치 남쪽은 현재의 굴포천 유역에 해당되는 저평한 지역이다. 산세가 높지 않은 이런 지역에서는 관개를 위해 저수지를 많이 쌓았는데, 본 지도에도 여러 개의 防築이 표시되어 있다. 본 고을은 서쪽으로 서해에 접해 있는데, 지도에도 이러한 사실이 잘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동쪽에 표시된 한강과는 직접적으로 접해 있는 지역이 없었다. 지도에는 이 고을이 한강과 직접적으로 접해 있지 않다는 사실을 陽川地, 衿川界, 陽川界, 陽川, 金浦界 등의 문자를 넣어 표시하였다. 그렇더라도 본 지도의 표현만으로는 본 고을이 한강과 접해 있는지 여부를 이해하기 어렵다. (이기봉)

  • 부여현(夫餘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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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부여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지도 위쪽의 崇角寺는 《광여도》에 崇角山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와 표현 양식에선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부여현 지도에서는 崇角寺로 되어 있고, 건물까지 그려져 있다. 지리지에도 崇角寺로 나오고 있어 《광여도》가 오류를 범한 것으로 보인다. 읍치 위쪽의 道成面은 주기에는 道城面으로 적혀 있다. 《광여도》와 《해동지도》에 모두 道城面으로 되어 있어 본 지도 작성자의 오류로 추정된다. 그 밖에 《광여도》에는 없는 白馬江이 본 지도에 적혀 있고, 반대로 《광여도》에 있는 縣內面 왼쪽의 新池가 생략되어 있다. 본 지도는 전체적으로 보면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러나 읍치는 이런 방향과 어긋나게 그려져 있다. 읍치는 북쪽에 부소산을 두고 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본 지도만으로 보면 부소산이 읍치의 서쪽에 있는 것처럼 이해될 수 있다. 이런 문제가 나타난 것은 오른쪽의 公州界에서 들어와 왼쪽의 石城界로 빠져나가는 현재의 금강(白馬江) 유로에 대한 잘못된 표현 때문으로 추정된다. 금강은 부소산 부근에서 거의 서남쪽으로 흐르다 남쪽-동남쪽으로 유로를 바꾼다. 서남쪽으로 흐르는 금강에 부소산이 있고, 부소산 아래에 읍치가 있다면 부소산은 읍치의 북쪽에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향에 대한 오류는 회화식 군현지도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부여현 지도 역시 회화식으로 그렸지만 부소산과 읍치의 방향은 제대로 표시되어 있다. (이기봉)

  • 남원부(南原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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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남원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에 표현 양식이 거칠고 글씨도 정제되어 있지 않다. 오른쪽 가운데의 風俗寺는 風谷寺를 잘못 쓴 것이고, 그 아래쪽의 長山法은 長法山의 순서를 바꾸어 놓았다. 아래쪽 山洞坊 왼쪽에는 栗峙險阨을 빠뜨리기도 하였다. 읍성 안쪽의 通江里坊과 西奉里坊은 노란색 사각형의 모양을 생략하기도 하였다. 하천의 표현 양식에서도 《광여도》에는 가장 왼쪽에 있는 현재의 섬진강 본류를 2개의 실선으로, 그 지류들은 1개의 실선으로 표시하여 구별하였다. 반면에 본 지도에서는 모두 동일한 선으로 그려 구별하지 않았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동일한 《해동지도》의 남원부 지도에서는 모든 하천을 2개의 실선으로 그려 본류와 지류를 구별하지 않았다. 그러나 《해동지도》에서는 섬진강 본류가 왼쪽 위의 淳昌界에서 흘러 들어오고 있는 사실을 오해할 수 있게 표현하였는데, 본 지도에서는 이 점이 시정되어 있다. 하천의 표현에서 실제와 부합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위쪽 오른쪽에서 흘러내려가 섬진강에 합류하는 하천은 현재의 오수천이다. 그런데 오수천과 섬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은 남원부의 땅이 아니라 순창군의 땅이었다. 본 지도만으로는 이와 같은 사실을 이해하기 어려우며, 《광여도》와 《해동지도》에서도 동일하게 표현되어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호남지도》의 一新 지도에서는 오수천을 고을 서북을 돌게 하고, 城南坊 등을 훨씬 상류에 배치하여 실제와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여기서 一新은 1739-1750년 사이에 남원부가 縣으로 강등되었을 때의 명칭이다. 《동여도》에는 이와 같은 사실들이 모두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 남해현(南海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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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남해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본 지도는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성 안의 倉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반대로 《해동지도》에 나오지만 본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지명이 여러 개 있다. 게다가 본 지도에는 《해동지도》와 다르게 기록된 지명도 보이고 있다. 왼쪽 아래에는 蟹島가 2개나 적혀 있는데, 아래쪽의 것은 《해동지도》에 楮島로 되어 있다. 읍치 위쪽의 榧子島 역시 《해동지도》에는 榧子山으로 되어 있다. 필사 과정에서 바뀐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성과 鎭堡의 성곽이 크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본 지도의 크기가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즉, 《해동지도》와 동일한 크기의 비율로 그리면 정보를 이해하기 어렵게 된다. 이런 변화는 섬에 대한 표현에서도 나타난다. 昌善島를 제외하면 섬의 크기가 《해동지도》보다 대체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이 섬들은 실제로 상당히 작지만 《해동지도》와 같은 크기의 비율로 그리면 섬의 존재 자체를 표현하기 어렵다. 기타 창선도는 남해현의 땅이 아니라 진주에 속해 있었음에도 본 지도에 그려져 있다. (이기봉)

  • 배천군(白川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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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배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배천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차이가 있다면 읍치를 《해동지도》보다 상대적으로 크게 그리고 도로가 생략되었다는 점뿐이고, 하천이나 산줄기의 흐름은 거의 비슷하다. 《해동지도》에는 문자로만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을 그려 넣었다. 그러나 金谷驛도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여 기호의 사용에서 일관성을 보이고 있지 못하다. 또한 아래쪽 柳川面 근처에 있었던 道下面이 생략되어 있기도 하다. 주기에 도하면이 적혀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라고 생각된다. 《광여도》에도 도하면은 생략되어 있으며, 금곡역은 보라색 사각형으로 교정되어 있다. 오른쪽의 하천이 현재의 예성강이고, 아래쪽으로는 바다에 접해 있다. 회화식 군현 지도 계통이지만 읍치가 확대된 것을 제외하면 고을의 실제 모습과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도 사실과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주기의 내용도 《광여도》와 동일하며, 《해동지도》와도 형식이 다를 뿐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이기봉)

  • 낭천현(狼川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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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낭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서는 위쪽의 山陽驛에 面의 색인 노란색을 칠했다가 보라색을 칠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 또한 아래쪽의 居女里에는 본 지도책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 황갈색의 사각형도 그려져 있다. 《광여도》에서는 이런 실수를 범하고 있지는 않다. 표현 방식은 다르나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비슷한 《해동지도》의 낭천현 지도와 비교해 보면 《광여도》가 훨씬 필사를 잘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주기에는 있지만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은 面으로 縣內面과 北面 및 上西面이 있다. 《광여도》나 《해동지도》에도 이 3개의 면은 주기에만 있고 지도에는 없다. 본 지도와 《광여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여겨지며, 필사 과정에서 다른 자료를 통해 위치 비정을 새롭게 하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위쪽의 金城界에서 흘러와 아래쪽의 春川界로 빠져나가는 毋津江이 현재의 북한강이다. 일부 틀린 부분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실제의 유로와 거의 유사하다. 일반적인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군현의 실제 모습과 지도 위의 모습이 다른 경우가 많다. 본 지도가 실제와 유사하게 그려진 이유는 낭천현 전체의 모습이 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삭령군(朔寧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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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삭령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차이가 몇 가지 나타나고 있다. 첫째, 《광여도》에 鵬耳山으로 적혀 있던 것이 위쪽에 鴨耳山으로 기재되었다. 둘째, 각 방향의 고을 경계에 東西南北의 방향이 붙어 있다. 셋째, 본 지도에는 《광여도》에 잘못 표시한 하천의 유로가 바로잡혀 있다. ‘西界 兎山’이라 적혀 있는 곳에서 내려오는 하천은 현재의 임진강으로 지도에는 大水源으로 적혀 있다. 오른쪽 철원 방향에서 들어오는 하천은 임진강의 지류인 현재의 역곡천으로 읍치의 북쪽을 흐른다고 하여 北川이라고 불렀다. 임진강의 지류에 불과하기 때문에 지도에는 小水源이라 적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 북천의 水源으로 표시된 馬場面 지역은 임진강 본류와 멀리 떨어져 있다. 이 지도가 회화식으로 그리다보니까 마치 임진강 본류에 가까운 것처럼 표시되어 있을 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삭령군 지도도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비슷해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해동지도》에 임진강 본류와 마장면에서 내려오는 북천의 지류 중 어느 것이 큰 것인지 거의 알아볼 수 없도록 그려져 있다. 《광여도》에서는 이와 같은 점을 착각하여 두 하천이 서로 연결된 것처럼 그렸으며, 하천 폭의 차이도 구별할 수 없도록 동일하게 그려놓았다. 본 지도에서는 《광여도》와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지 않으며, 임진강 본류가 토산 쪽에서 흘러 들어옴을 분명하게 표시하여 《해동지도》에서의 애매한 표현을 교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北川合流 지점 이하의 하폭을 넓게 하였지만 그 위쪽에서는 북천과 임진강 본류 등의 하천 표현을 동일하게 하여 실제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기봉)

  • 부여현(夫餘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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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부여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지도 위쪽의 崇角寺는 《광여도》에 崇角山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와 표현 양식에선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부여현 지도에서는 崇角寺로 되어 있고, 건물까지 그려져 있다. 지리지에도 崇角寺로 나오고 있어 《광여도》가 오류를 범한 것으로 보인다. 읍치 위쪽의 道成面은 주기에는 道城面으로 적혀 있다. 《광여도》와 《해동지도》에 모두 道城面으로 되어 있어 본 지도 작성자의 오류로 추정된다. 그 밖에 《광여도》에는 없는 白馬江이 본 지도에 적혀 있고, 반대로 《광여도》에 있는 縣內面 왼쪽의 新池가 생략되어 있다. 본 지도는 전체적으로 보면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러나 읍치는 이런 방향과 어긋나게 그려져 있다. 읍치는 북쪽에 부소산을 두고 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본 지도만으로 보면 부소산이 읍치의 서쪽에 있는 것처럼 이해될 수 있다. 이런 문제가 나타난 것은 오른쪽의 公州界에서 들어와 왼쪽의 石城界로 빠져나가는 현재의 금강(白馬江) 유로에 대한 잘못된 표현 때문으로 추정된다. 금강은 부소산 부근에서 거의 서남쪽으로 흐르다 남쪽-동남쪽으로 유로를 바꾼다. 서남쪽으로 흐르는 금강에 부소산이 있고, 부소산 아래에 읍치가 있다면 부소산은 읍치의 북쪽에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향에 대한 오류는 회화식 군현지도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부여현 지도 역시 회화식으로 그렸지만 부소산과 읍치의 방향은 제대로 표시되어 있다. (이기봉)

  • 남원부(南原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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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남원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에 표현 양식이 거칠고 글씨도 정제되어 있지 않다. 오른쪽 가운데의 風俗寺는 風谷寺를 잘못 쓴 것이고, 그 아래쪽의 長山法은 長法山의 순서를 바꾸어 놓았다. 아래쪽 山洞坊 왼쪽에는 栗峙險阨을 빠뜨리기도 하였다. 읍성 안쪽의 通江里坊과 西奉里坊은 노란색 사각형의 모양을 생략하기도 하였다. 하천의 표현 양식에서도 《광여도》에는 가장 왼쪽에 있는 현재의 섬진강 본류를 2개의 실선으로, 그 지류들은 1개의 실선으로 표시하여 구별하였다. 반면에 본 지도에서는 모두 동일한 선으로 그려 구별하지 않았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동일한 《해동지도》의 남원부 지도에서는 모든 하천을 2개의 실선으로 그려 본류와 지류를 구별하지 않았다. 그러나 《해동지도》에서는 섬진강 본류가 왼쪽 위의 淳昌界에서 흘러 들어오고 있는 사실을 오해할 수 있게 표현하였는데, 본 지도에서는 이 점이 시정되어 있다. 하천의 표현에서 실제와 부합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위쪽 오른쪽에서 흘러내려가 섬진강에 합류하는 하천은 현재의 오수천이다. 그런데 오수천과 섬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은 남원부의 땅이 아니라 순창군의 땅이었다. 본 지도만으로는 이와 같은 사실을 이해하기 어려우며, 《광여도》와 《해동지도》에서도 동일하게 표현되어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호남지도》의 一新 지도에서는 오수천을 고을 서북을 돌게 하고, 城南坊 등을 훨씬 상류에 배치하여 실제와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여기서 一新은 1739-1750년 사이에 남원부가 縣으로 강등되었을 때의 명칭이다. 《동여도》에는 이와 같은 사실들이 모두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 남해현(南海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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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남해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본 지도는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성 안의 倉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반대로 《해동지도》에 나오지만 본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지명이 여러 개 있다. 게다가 본 지도에는 《해동지도》와 다르게 기록된 지명도 보이고 있다. 왼쪽 아래에는 蟹島가 2개나 적혀 있는데, 아래쪽의 것은 《해동지도》에 楮島로 되어 있다. 읍치 위쪽의 榧子島 역시 《해동지도》에는 榧子山으로 되어 있다. 필사 과정에서 바뀐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성과 鎭堡의 성곽이 크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본 지도의 크기가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즉, 《해동지도》와 동일한 크기의 비율로 그리면 정보를 이해하기 어렵게 된다. 이런 변화는 섬에 대한 표현에서도 나타난다. 昌善島를 제외하면 섬의 크기가 《해동지도》보다 대체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이 섬들은 실제로 상당히 작지만 《해동지도》와 같은 크기의 비율로 그리면 섬의 존재 자체를 표현하기 어렵다. 기타 창선도는 남해현의 땅이 아니라 진주에 속해 있었음에도 본 지도에 그려져 있다. (이기봉)

  • 배천군(白川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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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배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배천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차이가 있다면 읍치를 《해동지도》보다 상대적으로 크게 그리고 도로가 생략되었다는 점뿐이고, 하천이나 산줄기의 흐름은 거의 비슷하다. 《해동지도》에는 문자로만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을 그려 넣었다. 그러나 金谷驛도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여 기호의 사용에서 일관성을 보이고 있지 못하다. 또한 아래쪽 柳川面 근처에 있었던 道下面이 생략되어 있기도 하다. 주기에 도하면이 적혀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라고 생각된다. 《광여도》에도 도하면은 생략되어 있으며, 금곡역은 보라색 사각형으로 교정되어 있다. 오른쪽의 하천이 현재의 예성강이고, 아래쪽으로는 바다에 접해 있다. 회화식 군현 지도 계통이지만 읍치가 확대된 것을 제외하면 고을의 실제 모습과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도 사실과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주기의 내용도 《광여도》와 동일하며, 《해동지도》와도 형식이 다를 뿐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이기봉)

  • 낭천현(狼川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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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낭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서는 위쪽의 山陽驛에 面의 색인 노란색을 칠했다가 보라색을 칠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 또한 아래쪽의 居女里에는 본 지도책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 황갈색의 사각형도 그려져 있다. 《광여도》에서는 이런 실수를 범하고 있지는 않다. 표현 방식은 다르나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비슷한 《해동지도》의 낭천현 지도와 비교해 보면 《광여도》가 훨씬 필사를 잘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주기에는 있지만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은 面으로 縣內面과 北面 및 上西面이 있다. 《광여도》나 《해동지도》에도 이 3개의 면은 주기에만 있고 지도에는 없다. 본 지도와 《광여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여겨지며, 필사 과정에서 다른 자료를 통해 위치 비정을 새롭게 하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위쪽의 金城界에서 흘러와 아래쪽의 春川界로 빠져나가는 毋津江이 현재의 북한강이다. 일부 틀린 부분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실제의 유로와 거의 유사하다. 일반적인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군현의 실제 모습과 지도 위의 모습이 다른 경우가 많다. 본 지도가 실제와 유사하게 그려진 이유는 낭천현 전체의 모습이 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삭령군(朔寧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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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삭령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차이가 몇 가지 나타나고 있다. 첫째, 《광여도》에 鵬耳山으로 적혀 있던 것이 위쪽에 鴨耳山으로 기재되었다. 둘째, 각 방향의 고을 경계에 東西南北의 방향이 붙어 있다. 셋째, 본 지도에는 《광여도》에 잘못 표시한 하천의 유로가 바로잡혀 있다. ‘西界 兎山’이라 적혀 있는 곳에서 내려오는 하천은 현재의 임진강으로 지도에는 大水源으로 적혀 있다. 오른쪽 철원 방향에서 들어오는 하천은 임진강의 지류인 현재의 역곡천으로 읍치의 북쪽을 흐른다고 하여 北川이라고 불렀다. 임진강의 지류에 불과하기 때문에 지도에는 小水源이라 적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 북천의 水源으로 표시된 馬場面 지역은 임진강 본류와 멀리 떨어져 있다. 이 지도가 회화식으로 그리다보니까 마치 임진강 본류에 가까운 것처럼 표시되어 있을 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삭령군 지도도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비슷해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해동지도》에 임진강 본류와 마장면에서 내려오는 북천의 지류 중 어느 것이 큰 것인지 거의 알아볼 수 없도록 그려져 있다. 《광여도》에서는 이와 같은 점을 착각하여 두 하천이 서로 연결된 것처럼 그렸으며, 하천 폭의 차이도 구별할 수 없도록 동일하게 그려놓았다. 본 지도에서는 《광여도》와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지 않으며, 임진강 본류가 토산 쪽에서 흘러 들어옴을 분명하게 표시하여 《해동지도》에서의 애매한 표현을 교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北川合流 지점 이하의 하폭을 넓게 하였지만 그 위쪽에서는 북천과 임진강 본류 등의 하천 표현을 동일하게 하여 실제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기봉)

  • 비인현(庇仁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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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비인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비인현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가 본 지도와 거의 비슷하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 《해동지도》에는 고을의 남북보다 동서의 폭이 더 넓게 그려졌다. 반면에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는 동서보다 남북의 폭이 더 넓다. 이것은 고을의 실제를 반영한 것이 아니라 가로보다 세로가 더 긴 종이의 크기에 맞추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지도 아래쪽에 그려진 섬들은 크기나 위치가 고려되지 않았다. 烟島는 河尾島보다 수십 배 더 큰 섬이며, 해안가에서 떨어진 거리도 수십 배 멀다. 회화식 지도에서는 섬의 크기나 위치의 실제 거리를 고려하지 않고 그냥 ‘있다’는 사실만을 보여주는 것이 대부분이다. 지도에는 船泊處가 2개 표시되어 있다. 아래쪽의 것은 庇仁縣에서 관리하던 戰船을 정박하던 곳이며, 왼쪽의 것은 馬梁鎭에 배치된 전선이 있던 곳이다. 주기에는 비인현과 마량진에서 관리하던 배의 종류와 수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여러 고을의 세곡을 모아 한꺼번에 한양으로 운반하던 漕倉 제도는 대동법의 시행 이후 水運이 불가능한 山郡 지역으로 축소되었다. 바닷가를 끼고 있는 비인현의 경우 독자적으로 田稅와 大同米을 한양으로 운반해야 했으며, 그곳이 바로 지도 아래쪽에 표시된 海倉이다. (이기봉)

  • 남평현(南平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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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남평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른 지명이 있다면 아래쪽의 雲興寺 정도이다. 그런데 이 운흥사는 다른 지명과 글씨체가 달라 나중에 삽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표현 양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는 《해동지도》의 남평현 지도에는 운흥사가 표시되어 있다. 읍치의 위쪽을 흐르는 하천은 현재 영산강의 지류인 지석강이다. 이 지석강의 본류는 오른쪽의 綾州界에서 흘러 들어오지만 본 지도에는 그런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다른 고을로부터 흘러들어오는 사실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왼쪽의 亏谷面에 있는 하천도 실제로는 錦城界라 표현된 羅州界를 넘어 영산강에 합류된다. 나주는 인조(1623-1649) 시기에 잠시 금성현으로 강등되었다. 또한 1728년-1737년(영조 4-13) 사이에도 금성현으로 강등된 적이 있다. 그러나 본 지도의 제작이 금성현이 강등된 시기에 제작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해동지도》를 그대로 베꼈기 때문에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본 고을의 동남쪽은 산지로, 서북쪽은 상대적으로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모든 지역에 비슷한 크기의 산 모양을 그려 넣어 실제적인 지형을 이해하기 어렵다. 다만 面이 서북쪽에는 많고, 동남쪽에는 적은 것을 통해 인구 밀도와 지형의 관계를 대략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이기봉)

  • 단성현(丹城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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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단성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가 세로(남북)보다 가로(동서)를 더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가로보다 세로를 길게 그렸다. 이것은 본 지도책 자체가 세로로 긴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군현의 모습을 그렸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차이 때문에 하천의 유로가 《해동지도》와 약간 달라지게 되었다. 예를 들어 오른쪽의 宜寧界에서 흘러오는 하천이 《해동지도》에는 거의 西流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는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표현되었다. 현재 양천이라 불리는 이 하천의 유로는 《해동지도》가 사실에 가까운데, 본 지도에서 세로로 긴 사각형에 지도를 그리는 과정에서 바뀐 것이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읍치의 倉과 위쪽의 法勿也面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다.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으면서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지명도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기본적으로 《해동지도》를 기반으로 필사하면서 2개 지명 정도를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왼쪽에는 晋州界가 산줄기 안쪽에 표시되어 있다. 이것은 현재 남사천이라 불리는 하천이 단성과 진주의 경계선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기봉)

  • 벽동군(碧潼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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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벽동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벽동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비해 몇 가지의 차이가 있다. 우선 도로와 각 지점까지의 거리는 모두 생략되어 있고, 지명 역시 많이 누락되었다. 지명 중 面은 노란색 사각형을 그리면서까지 표현하였기 때문에 南倉 부근에 있던 南面이 생략된 것은 필사 시의 실수로 생각된다. 이러한 오류는 《광여도》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본 지도는 동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아래쪽의 하천이 현재의 압록강 본류이고, 왼쪽의 하천이 그 지류인 동건강이다. 《해동지도》에는 압록강이 왼쪽 아래 방향에서 흘러 들어와 동건강을 합류시켜 오른쪽으로 빠져나가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본 지도에는 동건강과 압록강의 합류 모습을 그리지 않아 동건강이 압록강 본류인 것처럼 표현할 수 있게 하였다. 《광여도》에서는 압록강 본류와 동건강이 합류되는 것으로 교정되어 있다. 벽동군 전체의 모습은 남동쪽 끝을 정점으로 한 삼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러나 본 지도는 벽동군의 모습을 사각형으로 그리고 있다. 이것은 사각형 모양의 종이에 맞추어 지도를 그렸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에 따라 점점 좁아지는 남동쪽(위)의 하천들이 대부분 北流함에도 東流하는 것처럼 표현되었다. 아래쪽 하천들의 유로는 상대적으로 정확하게 그려진 편이다. (이기봉)

  • 단천부(端川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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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단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은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에는 단천군으로 되어 있다. 端川은 1720년(숙종 46)에 郡에서 府로 승격되므로 《해동지도》는 그 이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노란색 사각형은 다른 道의 지도에서는 面에 사용되었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鎭堡를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麻谷은 진보가 아니라 驛이기 때문에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생각되며, 《광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실수는 근본적으로 《해동지도》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에서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된 부분에 모두 ‘倉’이란 글씨가 없는 건물 모양이 표시되어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 이것을 모두 진보로 해석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위쪽의 㐚足 역시 《해동지도》에 건물이 표시되어 있지만 주기에 보면 진보로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곳에는 원래 堡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이미 혁파되어 있었고, 《해동지도》에는 廢라는 문자를 삽입하여 이런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오른쪽 아래에는 노란색 사각형만 있고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데 《광여도》에는 城津이라 적혀 있다. 城津鎭이지만 단천이 아니라 길주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 아닌가 한다. 아래쪽의 胡打里堡는 1723년(경종 3)에 본 지도 위의 장소로 옮겨지고, 1745년(영조 21)에 혁파된다. 따라서 본 지도는 이 시기의 내용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반적인 회화식 지도에서는 고을의 모습이 상당히 왜곡되는 경우가 많지만 본 지도는 사실에 상당히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첫째, 읍치를 특별히 확대해서 그리지 않았고 둘째, 고을 자체의 보습이 사각형 모양의 종이 위에 그려도 왜곡되지 않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이기봉)

  • 비인현(庇仁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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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비인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비인현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가 본 지도와 거의 비슷하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 《해동지도》에는 고을의 남북보다 동서의 폭이 더 넓게 그려졌다. 반면에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는 동서보다 남북의 폭이 더 넓다. 이것은 고을의 실제를 반영한 것이 아니라 가로보다 세로가 더 긴 종이의 크기에 맞추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지도 아래쪽에 그려진 섬들은 크기나 위치가 고려되지 않았다. 烟島는 河尾島보다 수십 배 더 큰 섬이며, 해안가에서 떨어진 거리도 수십 배 멀다. 회화식 지도에서는 섬의 크기나 위치의 실제 거리를 고려하지 않고 그냥 ‘있다’는 사실만을 보여주는 것이 대부분이다. 지도에는 船泊處가 2개 표시되어 있다. 아래쪽의 것은 庇仁縣에서 관리하던 戰船을 정박하던 곳이며, 왼쪽의 것은 馬梁鎭에 배치된 전선이 있던 곳이다. 주기에는 비인현과 마량진에서 관리하던 배의 종류와 수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여러 고을의 세곡을 모아 한꺼번에 한양으로 운반하던 漕倉 제도는 대동법의 시행 이후 水運이 불가능한 山郡 지역으로 축소되었다. 바닷가를 끼고 있는 비인현의 경우 독자적으로 田稅와 大同米을 한양으로 운반해야 했으며, 그곳이 바로 지도 아래쪽에 표시된 海倉이다. (이기봉)

  • 남평현(南平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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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남평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른 지명이 있다면 아래쪽의 雲興寺 정도이다. 그런데 이 운흥사는 다른 지명과 글씨체가 달라 나중에 삽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표현 양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는 《해동지도》의 남평현 지도에는 운흥사가 표시되어 있다. 읍치의 위쪽을 흐르는 하천은 현재 영산강의 지류인 지석강이다. 이 지석강의 본류는 오른쪽의 綾州界에서 흘러 들어오지만 본 지도에는 그런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다른 고을로부터 흘러들어오는 사실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왼쪽의 亏谷面에 있는 하천도 실제로는 錦城界라 표현된 羅州界를 넘어 영산강에 합류된다. 나주는 인조(1623-1649) 시기에 잠시 금성현으로 강등되었다. 또한 1728년-1737년(영조 4-13) 사이에도 금성현으로 강등된 적이 있다. 그러나 본 지도의 제작이 금성현이 강등된 시기에 제작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해동지도》를 그대로 베꼈기 때문에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본 고을의 동남쪽은 산지로, 서북쪽은 상대적으로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모든 지역에 비슷한 크기의 산 모양을 그려 넣어 실제적인 지형을 이해하기 어렵다. 다만 面이 서북쪽에는 많고, 동남쪽에는 적은 것을 통해 인구 밀도와 지형의 관계를 대략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이기봉)

  • 단성현(丹城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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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단성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가 세로(남북)보다 가로(동서)를 더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가로보다 세로를 길게 그렸다. 이것은 본 지도책 자체가 세로로 긴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군현의 모습을 그렸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차이 때문에 하천의 유로가 《해동지도》와 약간 달라지게 되었다. 예를 들어 오른쪽의 宜寧界에서 흘러오는 하천이 《해동지도》에는 거의 西流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는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표현되었다. 현재 양천이라 불리는 이 하천의 유로는 《해동지도》가 사실에 가까운데, 본 지도에서 세로로 긴 사각형에 지도를 그리는 과정에서 바뀐 것이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읍치의 倉과 위쪽의 法勿也面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다.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으면서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지명도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기본적으로 《해동지도》를 기반으로 필사하면서 2개 지명 정도를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왼쪽에는 晋州界가 산줄기 안쪽에 표시되어 있다. 이것은 현재 남사천이라 불리는 하천이 단성과 진주의 경계선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기봉)

  • 벽동군(碧潼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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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벽동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벽동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비해 몇 가지의 차이가 있다. 우선 도로와 각 지점까지의 거리는 모두 생략되어 있고, 지명 역시 많이 누락되었다. 지명 중 面은 노란색 사각형을 그리면서까지 표현하였기 때문에 南倉 부근에 있던 南面이 생략된 것은 필사 시의 실수로 생각된다. 이러한 오류는 《광여도》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본 지도는 동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아래쪽의 하천이 현재의 압록강 본류이고, 왼쪽의 하천이 그 지류인 동건강이다. 《해동지도》에는 압록강이 왼쪽 아래 방향에서 흘러 들어와 동건강을 합류시켜 오른쪽으로 빠져나가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본 지도에는 동건강과 압록강의 합류 모습을 그리지 않아 동건강이 압록강 본류인 것처럼 표현할 수 있게 하였다. 《광여도》에서는 압록강 본류와 동건강이 합류되는 것으로 교정되어 있다. 벽동군 전체의 모습은 남동쪽 끝을 정점으로 한 삼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러나 본 지도는 벽동군의 모습을 사각형으로 그리고 있다. 이것은 사각형 모양의 종이에 맞추어 지도를 그렸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에 따라 점점 좁아지는 남동쪽(위)의 하천들이 대부분 北流함에도 東流하는 것처럼 표현되었다. 아래쪽 하천들의 유로는 상대적으로 정확하게 그려진 편이다. (이기봉)

  • 단천부(端川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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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단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은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에는 단천군으로 되어 있다. 端川은 1720년(숙종 46)에 郡에서 府로 승격되므로 《해동지도》는 그 이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노란색 사각형은 다른 道의 지도에서는 面에 사용되었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鎭堡를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麻谷은 진보가 아니라 驛이기 때문에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생각되며, 《광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실수는 근본적으로 《해동지도》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에서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된 부분에 모두 ‘倉’이란 글씨가 없는 건물 모양이 표시되어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 이것을 모두 진보로 해석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위쪽의 㐚足 역시 《해동지도》에 건물이 표시되어 있지만 주기에 보면 진보로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곳에는 원래 堡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이미 혁파되어 있었고, 《해동지도》에는 廢라는 문자를 삽입하여 이런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오른쪽 아래에는 노란색 사각형만 있고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데 《광여도》에는 城津이라 적혀 있다. 城津鎭이지만 단천이 아니라 길주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 아닌가 한다. 아래쪽의 胡打里堡는 1723년(경종 3)에 본 지도 위의 장소로 옮겨지고, 1745년(영조 21)에 혁파된다. 따라서 본 지도는 이 시기의 내용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반적인 회화식 지도에서는 고을의 모습이 상당히 왜곡되는 경우가 많지만 본 지도는 사실에 상당히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첫째, 읍치를 특별히 확대해서 그리지 않았고 둘째, 고을 자체의 보습이 사각형 모양의 종이 위에 그려도 왜곡되지 않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이기봉)

  • 성경여지전도(盛京輿地全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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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盛京은 淸나라가 현재의 北京으로 옮기기 전까지 수도로 삼았던 곳으로 현재는 瀋陽이라고 한다. 본 지도는 벽돌로 쌓았던 만리장성 동쪽으로부터 흑룡강에 이르는 지역을 그렸다. 만리장성 이동 지역에는 벽돌이 아닌 목책을 둘렀으며, 본 지도에는 이런 부분이 門과 함께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두 번째 지도에 城京이 붉은색 큰 사각형으로 그려져 있고, 중요 지점은 붉은색 작은 사각형의 기호와 함께 명칭이 적혀 있다. 목책의 안쪽과 동북부 寧古塔 부분에는 붉은색 작은 사각형이 보이지만 현재의 간도 지방에 해당되는 混同江 동쪽에는 전혀 표시되어 있지 않다. 청나라의 발상지라고 하여 사람들의 거주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백두산은 첫 번째 지도의 가운데 부분에 長白山이라고 적혀 있다. 조선에서는 보통 백두산이라고 불렀지만 청나라에서는 長白山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백두산은 조선뿐만 아니라 만주 일대에 기반을 둔 세력들에게 숭배의 대상이 되었던 산이었다. 조선과 만주의 경계선에 있었던 하천으로는 압록강과 두만강이 있다. 그런데 본 지도에는 두만강이 土門江으로 표기되어 있다. 백두산정계비에 나타난 ‘동쪽은 토문강을 경계선으로 한다(東爲土門)’는 내용에 대한 청나라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첫 번째 지도의 아래쪽에는 南海가 보이고 있다. 조선의 입장에서 보면 동해이지만 만주나 연해주의 입장에서 보면 남해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비록 조선에서 그렸지만 청나라에서 작성된 지도를 그대로 전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만주와 한반도의 북부 지역을 동시에 그린 《해동지도》의 西北彼我兩界全圖나 朝鮮女眞分界圖와 비교하면서 보면 공통점과 차이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기봉)

  • 서산군(瑞山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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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서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위쪽의 永豊豆倉面이 《광여도》에는 永登倉面으로 적혀 있다는 점뿐이다. 《광여도》와 본 지도의 주기에는 영풍두창면이 영등창면으로 적혀 있어 본 지도의 제작자가 오류를 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서산군 지역은 남북으로 육지 속으로 깊숙이 들어온 灣이 많이 발달해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이런 사실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읍치 왼쪽에 仁政面으로부터 영풍두창면 까지 마치 하천에 의해 바다가 연결된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그 왼쪽의 泰安界에도 비슷한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특히 태안계 부분은 고려와 조선 초기에 운하를 뚫어 조운로를 개척하려다 기반암이 광범위하게 발견되면서 실패한 지역이기도 하다. 이런 오류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서산군 지도에도 동일하면서 더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광여도》와 본 지도가 《해동지도》의 것을 기본으로 하여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해동지도》를 그대로 필사한 것이 아니라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변화를 주고 있다. 가장 심한 변화는 《해동지도》에 표시되어 있던 안면도와 기타 섬들이 《광여도》와 본 지도에 생략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안면도는 國用 목재를 조달하기 위해 일반인의 이용을 금지하던 封山 중 가장 큰 곳으로서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여기던 곳이다. 《광여도》와 본 지도는 일정한 크기의 사각형 용지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아래쪽으로 튀어져 나가 있던 안면도 부분을 생략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능주목(綾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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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능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면의 명칭에서 약간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가운데의 上東面과 東邊面이 《광여도》에는 上東邊面과 下東邊面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본 지도의 주기에는 《광여도》의 것과 동일하게 되어 있고, 《광여도》의 주기에는 上東面과 下東面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와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만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능주목 지도에는 上東面과 下東邊面으로, 주기에는 上東邊面과 下東邊面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역시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여지도서』의 지도와 지지에 모두 上東邊面과 下東邊面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와 《광여도》의 필사 시에 필사 과정에서 면 명칭의 비슷함 때문에 혼란을 일으킨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를 지나 서쪽으로 흘러가는 하천을 현재 충신강이라 부르고 있으며, 왼쪽의 하천은 현재의 대초천이다. 이 중 대초천의 표현에서 일부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대초천은 서쪽의 남평현과의 경계선을 드나들며 지류 중 일부는 능주목에서, 일부는 남평현에서 나온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이와 같은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능주목 지도는 이 부분이 더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기봉)

  • 대구부(大邱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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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대구부 지도와 비슷하다. 왼쪽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 본류이다. 오른쪽에서 들어와 낙동강에 합류되는 하천이 현재의 금호강이고, 아래쪽의 淸道界로 빠져나가는 것은 현재의 밀양강 최상류이다. 하천 流路의 일부 모습이 《해동지도》에 비해 단순하게 그려져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와 《해동지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읍성의 유무이다. 대구부의 읍성은 1736년(영조 12)에 처음 만들어지는데, 본 지도에는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없다. 따라서 읍성을 중심으로 보면 《해동지도》는 읍성 축성 이전에, 본 지도는 축성 이후에 제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해동지도》의 주기에는 읍성 둘레가 2,124步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이것을 통해 볼 때 《해동지도》의 지도 부분은 1736년 이전에 만들어지고, 주기는 그 이후에 첨가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과 驛이 본 지도에는 노란색과 황색의 사각형 기호가 덧붙여져 있다. 그러나 왼쪽 위의 金川驛에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고, 면의 명칭에 2자와 3자가 섞여 나오는 등 치밀하지 못한 부분이 눈에 띈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도 일부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왼쪽 아래의 玄風界는 《해동지도》에 낙동강 동쪽에 표시되어 있는데, 《해동지도》가 타당하다. 또 아래쪽에 密陽界가 적혀 있지만 대구부는 밀양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았다.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에서 생략된 도로 끝에 密陽界가 적혀 있는데, 해당 도로를 따라 가면 密陽界를 만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도로를 생략하니까 마치 대구부가 밀양계와 접하고 있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게 된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 위에 그렸기 때문에 사실 왜곡 현상이 심하게 나타난다. 가장 심한 곳은 아래쪽에 角자가 붙어있는 면 지역이다. 이 지역은 실제로는 현풍과 청도 사이로 남쪽 깊숙이 튀어나간 부분이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기봉)

  • 봉산군(鳳山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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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봉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양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비슷한 《해동지도》의 봉산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해동지도》보다 본 지도책의 크기가 훨씬 작아 같은 비율로 그리면 읍치의 여러 정보를 표현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와 같은 경향은 다른 부분에도 적용되어 본 지도가 《해동지도》보다 산지 등이 훨씬 밀집되어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예를 들어 《해동지도》에는 읍치 아래쪽 부분이 산지가 별로 없는 느낌을 받지만 본 지도에서는 그런 느낌을 받기가 어렵다. 《해동지도》에 문자로만 되어 있던 面이 본 지도에는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오른쪽 아래의 東西里面은 東四里面의 오기일 뿐만 아니라 노란색 사각형도 표시되어 있지 않다. 오른쪽 위쪽의 東一面은 노란색 사각형은 그려져 있지만 東一里面이라 기록해야 하며, 왼쪽에는 北二里面이 北里二面으로 적혀 있기도 하다. 이러한 면의 정보 오류는 《광여도》에서는 모두 교정되어 있다. 반면에 면이 아닌 부분에서의 誤記는 《광여도》에서도 수정되지 않고 있다. 古邑城 오른쪽의 ‘東里屬館山’에서의 ‘동리속’은 《해동지도》에 加倉 왼쪽에 붙어 있던 것을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잘못 적은 것이다. 이것은 加倉이 東里面에 속해 있다는 뜻이다. 읍치의 梨衣堂 역시 梨花堂을 잘못 적은 것이다. 《광여도》에도 이런 오류가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面에 대한 정보는 주기에 있기 때문에 교정이 가능하지만 그 이외의 정보는 교정이 어렵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덕원부(德源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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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덕원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두 지도 모두 《해동지도》의 덕원부 지도를 필사한 계통으로 생각된다. 지명의 수록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두 지도는 《해동지도》의 것을 일부 생략하면서 필사하였다. 그리고 필사 과정에서 일부 잘못된 것도 있다. 오른쪽의 龜瑟山은 琵琶山을 잘못 옮긴 것으로 《광여도》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읍치 왼쪽에 있는 赤川社는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아마 《해동지도》의 安養寺 부근에 표시된 赤田社에 대한 오기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赤田社가 2개 기록되어 있다.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로 뻗은 산줄기가 서쪽으로부터 오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왼쪽 아래의 元山坪은 현재의 원산시 일대이며, 그 오른쪽의 連島는 현재의 갈마반도이다. 섬의 위치는 해안에서 가까운 경우 비슷하지만 멀수록 실제와 다르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熊島는 고을의 동서 폭 정도의 먼 거리에 위치해 있다. 본 책의 다른 지도에서는 대부분 표현되어 있는 인근 군현과의 경계 표시가 되어 있지 않다. 오른쪽은 文川郡이고, 위쪽과 왼쪽은 安邊府이다. (이기봉)

  • 송도(松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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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개성부 지도와 거의 비슷하다. 다만 몇 군데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일단 지도의 제목이 《광여도》에서는 開城府라고 되어 있는데, 본 지도에는 松都라고 적혀 있다. 또한 《광여도》에는 주기가 없는데 본 지도에는 주기가 있다. 《광여도》와 달리 지도의 오른쪽 여백에는 도성에서 송도까지 오는데 걸리는 날짜가 적혀 있으며, 위쪽 여백에는 송도에 대한 여러 異稱이 적혀 있다. 개성부 성곽 안의 滿月臺가 《광여도》에는 터로만 표시되어 있는데 본 지도에는 건물이 그려져 있다. 반면에 위쪽의 大興山城에 《광여도》에는 이름만 적혀 있던 將臺가 본 지도에는 터의 형태로 표시되어 있다. 이밖에도 몇 개의 문자가 달라지는 변화가 약간 보이고 있을 뿐이다. 일반적인 회화식 지도와 마찬가지로 정보가 밀집되어 있는 개성부의 읍성과 대흥산성 등이 다른 지역보다 대축척으로 그려져 있다. 읍성 안에 있는 고려의 왕궁터인 滿月臺도 실제의 지형보다는 풍수적 명당 형국으로 그렸다. 아래쪽에 祖江이라 적혀 있는 한강과 왼쪽의 禮城江이 두 줄의 실선으로 그려진 반면 나머지는 한 줄의 실선으로 그려져 있다. 오른쪽의 洛河와 臨津은 현재의 임진강으로 예성강보다 더 큰 하천임에도 불구하고 한 줄의 실선으로 그려져 있다. 임진강과 그 왼쪽의 下沙川 사이는 대부분 長湍의 땅이었다. 지도에도 읍성 동쪽에 ‘長湍界’와 ‘此則長湍’이라 표시하여 이와 같은 사실을 적어두었다. 靑郊驛 아래쪽에는 豊德의 명칭이 적혀 있는데, 1823년(순조 23)에 개성에 합쳐진 고을이다. 그러나 앞쪽의 경기도 지도에는 豊德이 독자적인 고을로 표시되어 있다. 長湍처럼 개성의 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풍덕의 땅까지 그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뒤쪽에는 풍덕부의 지도가 따로 수록되어 있다. 동남쪽의 해안에는 喬同島와 江華島가 실제의 크기보다 훨씬 작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가 개성부를 중심으로 그린 것이어서 인근 지역은 대략적인 방향과 위치만을 표시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서산군(瑞山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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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서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위쪽의 永豊豆倉面이 《광여도》에는 永登倉面으로 적혀 있다는 점뿐이다. 《광여도》와 본 지도의 주기에는 영풍두창면이 영등창면으로 적혀 있어 본 지도의 제작자가 오류를 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서산군 지역은 남북으로 육지 속으로 깊숙이 들어온 灣이 많이 발달해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이런 사실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읍치 왼쪽에 仁政面으로부터 영풍두창면 까지 마치 하천에 의해 바다가 연결된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그 왼쪽의 泰安界에도 비슷한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특히 태안계 부분은 고려와 조선 초기에 운하를 뚫어 조운로를 개척하려다 기반암이 광범위하게 발견되면서 실패한 지역이기도 하다. 이런 오류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서산군 지도에도 동일하면서 더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광여도》와 본 지도가 《해동지도》의 것을 기본으로 하여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해동지도》를 그대로 필사한 것이 아니라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변화를 주고 있다. 가장 심한 변화는 《해동지도》에 표시되어 있던 안면도와 기타 섬들이 《광여도》와 본 지도에 생략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안면도는 國用 목재를 조달하기 위해 일반인의 이용을 금지하던 封山 중 가장 큰 곳으로서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여기던 곳이다. 《광여도》와 본 지도는 일정한 크기의 사각형 용지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아래쪽으로 튀어져 나가 있던 안면도 부분을 생략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능주목(綾州牧)(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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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능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면의 명칭에서 약간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가운데의 上東面과 東邊面이 《광여도》에는 上東邊面과 下東邊面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본 지도의 주기에는 《광여도》의 것과 동일하게 되어 있고, 《광여도》의 주기에는 上東面과 下東面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와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만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능주목 지도에는 上東面과 下東邊面으로, 주기에는 上東邊面과 下東邊面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역시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여지도서』의 지도와 지지에 모두 上東邊面과 下東邊面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와 《광여도》의 필사 시에 필사 과정에서 면 명칭의 비슷함 때문에 혼란을 일으킨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를 지나 서쪽으로 흘러가는 하천을 현재 충신강이라 부르고 있으며, 왼쪽의 하천은 현재의 대초천이다. 이 중 대초천의 표현에서 일부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대초천은 서쪽의 남평현과의 경계선을 드나들며 지류 중 일부는 능주목에서, 일부는 남평현에서 나온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이와 같은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능주목 지도는 이 부분이 더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기봉)

  • 대구부(大邱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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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대구부 지도와 비슷하다. 왼쪽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 본류이다. 오른쪽에서 들어와 낙동강에 합류되는 하천이 현재의 금호강이고, 아래쪽의 淸道界로 빠져나가는 것은 현재의 밀양강 최상류이다. 하천 流路의 일부 모습이 《해동지도》에 비해 단순하게 그려져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와 《해동지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읍성의 유무이다. 대구부의 읍성은 1736년(영조 12)에 처음 만들어지는데, 본 지도에는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없다. 따라서 읍성을 중심으로 보면 《해동지도》는 읍성 축성 이전에, 본 지도는 축성 이후에 제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해동지도》의 주기에는 읍성 둘레가 2,124步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이것을 통해 볼 때 《해동지도》의 지도 부분은 1736년 이전에 만들어지고, 주기는 그 이후에 첨가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과 驛이 본 지도에는 노란색과 황색의 사각형 기호가 덧붙여져 있다. 그러나 왼쪽 위의 金川驛에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고, 면의 명칭에 2자와 3자가 섞여 나오는 등 치밀하지 못한 부분이 눈에 띈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도 일부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왼쪽 아래의 玄風界는 《해동지도》에 낙동강 동쪽에 표시되어 있는데, 《해동지도》가 타당하다. 또 아래쪽에 密陽界가 적혀 있지만 대구부는 밀양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았다.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에서 생략된 도로 끝에 密陽界가 적혀 있는데, 해당 도로를 따라 가면 密陽界를 만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도로를 생략하니까 마치 대구부가 밀양계와 접하고 있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게 된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 위에 그렸기 때문에 사실 왜곡 현상이 심하게 나타난다. 가장 심한 곳은 아래쪽에 角자가 붙어있는 면 지역이다. 이 지역은 실제로는 현풍과 청도 사이로 남쪽 깊숙이 튀어나간 부분이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기봉)

  • 봉산군(鳳山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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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봉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양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비슷한 《해동지도》의 봉산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해동지도》보다 본 지도책의 크기가 훨씬 작아 같은 비율로 그리면 읍치의 여러 정보를 표현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와 같은 경향은 다른 부분에도 적용되어 본 지도가 《해동지도》보다 산지 등이 훨씬 밀집되어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예를 들어 《해동지도》에는 읍치 아래쪽 부분이 산지가 별로 없는 느낌을 받지만 본 지도에서는 그런 느낌을 받기가 어렵다. 《해동지도》에 문자로만 되어 있던 面이 본 지도에는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오른쪽 아래의 東西里面은 東四里面의 오기일 뿐만 아니라 노란색 사각형도 표시되어 있지 않다. 오른쪽 위쪽의 東一面은 노란색 사각형은 그려져 있지만 東一里面이라 기록해야 하며, 왼쪽에는 北二里面이 北里二面으로 적혀 있기도 하다. 이러한 면의 정보 오류는 《광여도》에서는 모두 교정되어 있다. 반면에 면이 아닌 부분에서의 誤記는 《광여도》에서도 수정되지 않고 있다. 古邑城 오른쪽의 ‘東里屬館山’에서의 ‘동리속’은 《해동지도》에 加倉 왼쪽에 붙어 있던 것을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잘못 적은 것이다. 이것은 加倉이 東里面에 속해 있다는 뜻이다. 읍치의 梨衣堂 역시 梨花堂을 잘못 적은 것이다. 《광여도》에도 이런 오류가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面에 대한 정보는 주기에 있기 때문에 교정이 가능하지만 그 이외의 정보는 교정이 어렵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덕원부(德源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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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덕원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두 지도 모두 《해동지도》의 덕원부 지도를 필사한 계통으로 생각된다. 지명의 수록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두 지도는 《해동지도》의 것을 일부 생략하면서 필사하였다. 그리고 필사 과정에서 일부 잘못된 것도 있다. 오른쪽의 龜瑟山은 琵琶山을 잘못 옮긴 것으로 《광여도》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읍치 왼쪽에 있는 赤川社는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아마 《해동지도》의 安養寺 부근에 표시된 赤田社에 대한 오기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赤田社가 2개 기록되어 있다.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로 뻗은 산줄기가 서쪽으로부터 오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왼쪽 아래의 元山坪은 현재의 원산시 일대이며, 그 오른쪽의 連島는 현재의 갈마반도이다. 섬의 위치는 해안에서 가까운 경우 비슷하지만 멀수록 실제와 다르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熊島는 고을의 동서 폭 정도의 먼 거리에 위치해 있다. 본 책의 다른 지도에서는 대부분 표현되어 있는 인근 군현과의 경계 표시가 되어 있지 않다. 오른쪽은 文川郡이고, 위쪽과 왼쪽은 安邊府이다. (이기봉)

  • 송도(松都)(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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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개성부 지도와 거의 비슷하다. 다만 몇 군데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일단 지도의 제목이 《광여도》에서는 開城府라고 되어 있는데, 본 지도에는 松都라고 적혀 있다. 또한 《광여도》에는 주기가 없는데 본 지도에는 주기가 있다. 《광여도》와 달리 지도의 오른쪽 여백에는 도성에서 송도까지 오는데 걸리는 날짜가 적혀 있으며, 위쪽 여백에는 송도에 대한 여러 異稱이 적혀 있다. 개성부 성곽 안의 滿月臺가 《광여도》에는 터로만 표시되어 있는데 본 지도에는 건물이 그려져 있다. 반면에 위쪽의 大興山城에 《광여도》에는 이름만 적혀 있던 將臺가 본 지도에는 터의 형태로 표시되어 있다. 이밖에도 몇 개의 문자가 달라지는 변화가 약간 보이고 있을 뿐이다. 일반적인 회화식 지도와 마찬가지로 정보가 밀집되어 있는 개성부의 읍성과 대흥산성 등이 다른 지역보다 대축척으로 그려져 있다. 읍성 안에 있는 고려의 왕궁터인 滿月臺도 실제의 지형보다는 풍수적 명당 형국으로 그렸다. 아래쪽에 祖江이라 적혀 있는 한강과 왼쪽의 禮城江이 두 줄의 실선으로 그려진 반면 나머지는 한 줄의 실선으로 그려져 있다. 오른쪽의 洛河와 臨津은 현재의 임진강으로 예성강보다 더 큰 하천임에도 불구하고 한 줄의 실선으로 그려져 있다. 임진강과 그 왼쪽의 下沙川 사이는 대부분 長湍의 땅이었다. 지도에도 읍성 동쪽에 ‘長湍界’와 ‘此則長湍’이라 표시하여 이와 같은 사실을 적어두었다. 靑郊驛 아래쪽에는 豊德의 명칭이 적혀 있는데, 1823년(순조 23)에 개성에 합쳐진 고을이다. 그러나 앞쪽의 경기도 지도에는 豊德이 독자적인 고을로 표시되어 있다. 長湍처럼 개성의 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풍덕의 땅까지 그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뒤쪽에는 풍덕부의 지도가 따로 수록되어 있다. 동남쪽의 해안에는 喬同島와 江華島가 실제의 크기보다 훨씬 작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가 개성부를 중심으로 그린 것이어서 인근 지역은 대략적인 방향과 위치만을 표시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서천군(舒川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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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서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서천군 지도도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하다. 읍치 위쪽의 月鉤山과 扶蘇峴이 《광여도》에는 月劒山과 夫餘峴으로 되어 있다. 아래쪽의 舒川浦는 《광여도》에 舒川浦鎭으로 되어 있고, 그 오른쪽의 龍塘津은 《광여도》에 표시되어 있지 않다. 기타 아래쪽의 섬 명칭에 대한 표현도 《광여도》와 다르다. 月鉤山을 제외하면 이런 내용들은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月鉤山는 《해동지도》의 月釣山에 대한 誤記이다. 읍치 지역을 다른 지역보다 대축척으로 그려내고, 풍수적 명당 이미지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고을 전체의 모습에 여러 왜곡이 발생하였다. 왼쪽 위의 鴻山界에는 庇仁界라고 쓰는 것이 더 정확하다. 鴻山界는 읍치 동북쪽의 일부에 걸쳐 있을 뿐이다. 홍산계가 이렇게 표시된 이유는 읍치 위쪽으로부터 읍치까지 뻗은 산줄기를 강조하려 했기 때문이다. 金丹山이나 月林山 모두 읍치 동북쪽 방향에 있다. 읍치 왼쪽 위의 文長面도 이 산줄기의 오른쪽에 있어야 한다. 아울러 읍치 왼쪽의 하천은 庇仁의 땅으로부터 발원되며, 본 고을을 지나는 부분은 극히 짧다. 만약 읍치의 축척을 다른 지역과 비슷하게 그렸다면 읍치의 위쪽의 烏石山 부근에서 庇仁界와 만나게 된다. 그 위쪽의 산줄기는 동북 방향에 위치시키고 산줄기의 왼쪽은 庇仁界로, 위쪽은 鴻山界로 하면 실제와 부합된다. 아래쪽 금강 하구에 있는 여러 섬도 실제 위치나 크기와는 전혀 관계없이 표현되어 있다. 이와 같은 문제점은 본 지도가 정보의 위치나 거리에 대한 정확성보다는 고을의 풍수적 명당 이미지를 중요하게 여긴 회화식 군현지도이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이기봉)

  • 담양부(潭陽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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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담양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왼쪽의 木山土面은 본 지도의 주기와 《광여도》의 지도 및 주기에 木山上面으로 되어 있어 본 지도의 제작자가 실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담양현 지도도 표현 양식에서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비슷하다. 潭陽은 원래 본 지도에 적혀 있듯이 都護府였지만 1728-1738년과 1762-1771년 사이에 縣으로 강등된 적이 있다. 《해동지도》는 다른 고을의 내용을 고려할 때 이 중 전자의 시기를 반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 지도와 《광여도》는 담양이 都護府로 회복된 시기에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위쪽의 ‘亍八谷面’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지만 두 지도 모두 주기에는 亍入谷面으로 나온다. 《해동지도》에도 지도와 주기가 본 지도와 동일하게 나오고 있어 지도와 주기를 대조하지 않고 그대로 베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호구총수』의 담양 부분에는 주기처럼 적혀 있어 지도 작성자가 비슷한 글자를 혼동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면의 위치도 틀린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泉洞面과 龍泉洞外面은 金城山城 왼쪽의 물줄기에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동여도》에는 이 부분에 실제에 맞게 교정되어 있다. ‘1872년 지방지도’의 담양부지도도 비록 회화식으로 그렸지만 이 부분이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동래부(東萊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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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동래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읍치에 있는 靖遠樓와 財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그러나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잘못 적힌 지명도 눈에 띈다. 읍성 안의 忠烈祠는 忠烈別祠를, 읍성 위쪽의 敎坊은 敎場을, 金井山城 안쪽의 平夷는 海月寺를 잘못 적은 것이다. 《해동지도》에는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과 鎭堡 모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가 사용되었다. 다만 面의 사각형이 상대적으로 세로가 더 길게 되어 있다. 그러나 면과 진보의 표시에서도 일관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눈에 띈다. 왼쪽의 沙川面上端의 사각형에는 노란색이 칠해져 있지 않고, 아래쪽 白山 왼쪽에는 南面下端이 빠져 있다. 또한 釜山鎭과 多大鎭에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으며, 豆毛鎭 오른쪽에는 開雲鎭이 빠져 있다. 지도 전체의 모습은 《해동지도》에 비해 남북의 길이가 더 짧게 그려졌다. 이 과정에서 일부 부분의 모습이 달라졌다. 가장 많이 달라진 부분은 남쪽 해안가로서 짧아진 남북 길이가 대부분 이곳에서 발생하였다. 이로 인해 해안선이나 섬에 대한 표현이 《해동지도》와 상당히 달라지게 되었다. 예를 들어 太宗島는 《해동지도》에 盆島라고 나오며, 太宗臺가 絶影島 끝 부분에 표시되어 있다. 沒雲臺의 경우 훨씬 아래쪽에 표시되어 있다. 對馬島 역시 《해동지도》에 비해 海雲臺에 너무 가깝게 표시되어 있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성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다. 이로 인해 산줄기와 물줄기의 표현이 약간씩 달라졌다. 읍성 오른쪽의 수영강과 왼쪽의 온정천 굴곡이 심해진 것은 그런 영향으로 생각된다. 수영강의 경우 북쪽의 梁山界나 機長界에서 흘러오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해동지도》에는 수영강의 끝 부분이 白雲山 산줄기를 넘어간 것처럼 표현하여 이런 사실의 일단을 엿볼 수 있게 하였다. (이기봉)

  • 삭주부(朔州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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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삭주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를 보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삭주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달라지거나 잘못 표기된 경우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해동지도》에 비해 세로 부분이 더 짧아졌다. 이것은 본 지도책 전체가 동일한 크기의 종이 위에 그렸기 때문에 그 크기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 지명의 수가 《해동지도》보다 더 적게 기록되었을 뿐만 아니라 烽燧의 경우 명칭은 적지 않고 봉수라는 사실만 간단하게 표시하였다. 읍치 왼쪽의 향교 밑에 표시된 關門城도 《해동지도》에는 향교 위쪽에 있었다. 잘못 기록한 대표적인 지명으로는 아래쪽에 仇寧鎭이 仇寧嶺으로, 위쪽에서는 幕嶺鎭이 幕鎭岺으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 《광여도》에서는 향교 부근의 관문성은 아예 생략되어 있고, 구령진과 막령진은 교정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글자로만 기록되어 있던 面이 본 지도에서는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위쪽의 大朔州 부근에 있었던 白呂字面이 빠져 있으며, 《광여도》에도 이 점은 동일하게 나타나 있다. 삭주부는 남북으로 긴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본 지도에서는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아래쪽 왼쪽의 昌城界에서 흘러와 오른쪽 義州界로 빠져나가는 것이 압록강 본류이다. 위쪽의 대삭주는 현재의 대령강 상류 유역에 걸쳐 있다. (이기봉)

  • 명천부(明川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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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명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왼쪽 아래에 下加란 지명이 추가되어 있는 정도이다. 본 지도와 《광여도》는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명천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생략이 많이 되고 있으며, 일부는 다르게 필사된 곳도 있다. 도로, 봉수는 모두 생략되었고, 창고와 산지를 비롯한 기타 지명들도 상당히 많이 생략되었다. 또한 아래쪽의 七寶山에서 동해로 빠져나가는 하천 역시 생략되어 있다. 생략된 지명을 보면 특별한 원칙에 의해 생략을 한 것 같아 보이지는 않으며, 필사자의 자의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책에 있는 함경도의 군현 대부분이 고을 전체의 모습을 비슷하게 그렸는데 반해 본 지도는 명천부의 실제 모습과 상당히 다르게 그려져 있다. 가장 다르게 그려진 부분은 아래쪽의 동해 해안가이다. 본 지도는 魚郞川의 유로를 참조해 보면 대략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리고 동해안의 해안선은 실제로 왼쪽은 거의 동서 방향, 오른쪽은 거의 남북 방향이다. 따라서 해안선이 거의 직각의 방향을 취하고 있지만 본 지도에는 대략 일직선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 부분의 해안선은 조선후기 내내 그려진 정확한 지도에서도 대부분 실제와 다르게 표현된 부분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명천부 지도 해안선이 조선후기에 정확성을 추구한 지도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그려진 모습이다. 김정호의 《동여도》에 이르러서야 본 지역의 해안선이 실제에 가깝게 그려진다. 위쪽의 長白山은 다른 산지와 달리 흰색으로 표현되어 있다. 대부분의 지리지에 장백산에는 ‘5월이 되서야 눈이 녹고, 7월이 되면 다시 눈이 쌓인다’는 표현이 나오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 장백산은 단지 하나의 산이 아니라 여러 개의 산이 연결된 큰 규모를 지칭한다. 그런데 지리지에는 이 부근의 하천이 대부분 장백산에서 발원하는 것으로 나온다. 따라서 장백산을 하나의 산으로 인식하면 지도의 제작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본 지도 역시 어랑천이 장백산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장백산 줄기의 하나로부터 흘러나온다. (이기봉)

  • 수원부(水源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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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수원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다만 《광여도》에 없는 내용이 일부 적혀 있다. 예를 들어 양성의 월경지에서 지도 아래쪽 해변에 적혀 있는 陽城槐台串峯이 《광여도》에는 없다. 1789년에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지도 위의 邑內로 옮겼다. 그리고 수원부의 읍치는 八呑山이라 적혀 있는 지금의 수원 시내로 이동시켰다. 따라서 이 지도는 최소한 1789년 이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도는 북쪽을 위로 향하도록 그렸다. 아래쪽이 현재의 아산만이며, 읍내 방향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려가는 하천이 지금의 황구지천이다. 平澤界에서 흘러오는 안성천과 합류되어 아산만으로 빠져나간다. 지도 왼쪽 아래에 표시된 海倉은 이 고을의 전세와 대동미를 모아 도성으로 옮기던 곳이다. 수원부의 남쪽에는 충청도의 稷山, 경기도의 陽城과 南陽 등의 越境地가 많았다. 지도에도 월경지가 일부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보다 더 적다. 稷山倉, 陽城倉 등은 직산과 양성의 월경지에 있었던 창고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의 산세와 영역이 확대 과장되고, 산을 맥의 형식으로 그린 점 등은 회화식 고지도의 일반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다. (이기봉)

  • 서천군(舒川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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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서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서천군 지도도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하다. 읍치 위쪽의 月鉤山과 扶蘇峴이 《광여도》에는 月劒山과 夫餘峴으로 되어 있다. 아래쪽의 舒川浦는 《광여도》에 舒川浦鎭으로 되어 있고, 그 오른쪽의 龍塘津은 《광여도》에 표시되어 있지 않다. 기타 아래쪽의 섬 명칭에 대한 표현도 《광여도》와 다르다. 月鉤山을 제외하면 이런 내용들은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月鉤山는 《해동지도》의 月釣山에 대한 誤記이다. 읍치 지역을 다른 지역보다 대축척으로 그려내고, 풍수적 명당 이미지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고을 전체의 모습에 여러 왜곡이 발생하였다. 왼쪽 위의 鴻山界에는 庇仁界라고 쓰는 것이 더 정확하다. 鴻山界는 읍치 동북쪽의 일부에 걸쳐 있을 뿐이다. 홍산계가 이렇게 표시된 이유는 읍치 위쪽으로부터 읍치까지 뻗은 산줄기를 강조하려 했기 때문이다. 金丹山이나 月林山 모두 읍치 동북쪽 방향에 있다. 읍치 왼쪽 위의 文長面도 이 산줄기의 오른쪽에 있어야 한다. 아울러 읍치 왼쪽의 하천은 庇仁의 땅으로부터 발원되며, 본 고을을 지나는 부분은 극히 짧다. 만약 읍치의 축척을 다른 지역과 비슷하게 그렸다면 읍치의 위쪽의 烏石山 부근에서 庇仁界와 만나게 된다. 그 위쪽의 산줄기는 동북 방향에 위치시키고 산줄기의 왼쪽은 庇仁界로, 위쪽은 鴻山界로 하면 실제와 부합된다. 아래쪽 금강 하구에 있는 여러 섬도 실제 위치나 크기와는 전혀 관계없이 표현되어 있다. 이와 같은 문제점은 본 지도가 정보의 위치나 거리에 대한 정확성보다는 고을의 풍수적 명당 이미지를 중요하게 여긴 회화식 군현지도이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이기봉)

  • 담양부(潭陽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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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담양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왼쪽의 木山土面은 본 지도의 주기와 《광여도》의 지도 및 주기에 木山上面으로 되어 있어 본 지도의 제작자가 실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담양현 지도도 표현 양식에서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비슷하다. 潭陽은 원래 본 지도에 적혀 있듯이 都護府였지만 1728-1738년과 1762-1771년 사이에 縣으로 강등된 적이 있다. 《해동지도》는 다른 고을의 내용을 고려할 때 이 중 전자의 시기를 반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 지도와 《광여도》는 담양이 都護府로 회복된 시기에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위쪽의 ‘亍八谷面’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지만 두 지도 모두 주기에는 亍入谷面으로 나온다. 《해동지도》에도 지도와 주기가 본 지도와 동일하게 나오고 있어 지도와 주기를 대조하지 않고 그대로 베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호구총수』의 담양 부분에는 주기처럼 적혀 있어 지도 작성자가 비슷한 글자를 혼동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면의 위치도 틀린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泉洞面과 龍泉洞外面은 金城山城 왼쪽의 물줄기에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동여도》에는 이 부분에 실제에 맞게 교정되어 있다. ‘1872년 지방지도’의 담양부지도도 비록 회화식으로 그렸지만 이 부분이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동래부(東萊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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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동래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읍치에 있는 靖遠樓와 財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그러나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잘못 적힌 지명도 눈에 띈다. 읍성 안의 忠烈祠는 忠烈別祠를, 읍성 위쪽의 敎坊은 敎場을, 金井山城 안쪽의 平夷는 海月寺를 잘못 적은 것이다. 《해동지도》에는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과 鎭堡 모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가 사용되었다. 다만 面의 사각형이 상대적으로 세로가 더 길게 되어 있다. 그러나 면과 진보의 표시에서도 일관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눈에 띈다. 왼쪽의 沙川面上端의 사각형에는 노란색이 칠해져 있지 않고, 아래쪽 白山 왼쪽에는 南面下端이 빠져 있다. 또한 釜山鎭과 多大鎭에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으며, 豆毛鎭 오른쪽에는 開雲鎭이 빠져 있다. 지도 전체의 모습은 《해동지도》에 비해 남북의 길이가 더 짧게 그려졌다. 이 과정에서 일부 부분의 모습이 달라졌다. 가장 많이 달라진 부분은 남쪽 해안가로서 짧아진 남북 길이가 대부분 이곳에서 발생하였다. 이로 인해 해안선이나 섬에 대한 표현이 《해동지도》와 상당히 달라지게 되었다. 예를 들어 太宗島는 《해동지도》에 盆島라고 나오며, 太宗臺가 絶影島 끝 부분에 표시되어 있다. 沒雲臺의 경우 훨씬 아래쪽에 표시되어 있다. 對馬島 역시 《해동지도》에 비해 海雲臺에 너무 가깝게 표시되어 있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성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다. 이로 인해 산줄기와 물줄기의 표현이 약간씩 달라졌다. 읍성 오른쪽의 수영강과 왼쪽의 온정천 굴곡이 심해진 것은 그런 영향으로 생각된다. 수영강의 경우 북쪽의 梁山界나 機長界에서 흘러오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해동지도》에는 수영강의 끝 부분이 白雲山 산줄기를 넘어간 것처럼 표현하여 이런 사실의 일단을 엿볼 수 있게 하였다. (이기봉)

  • 삭주부(朔州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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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삭주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를 보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삭주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달라지거나 잘못 표기된 경우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해동지도》에 비해 세로 부분이 더 짧아졌다. 이것은 본 지도책 전체가 동일한 크기의 종이 위에 그렸기 때문에 그 크기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 지명의 수가 《해동지도》보다 더 적게 기록되었을 뿐만 아니라 烽燧의 경우 명칭은 적지 않고 봉수라는 사실만 간단하게 표시하였다. 읍치 왼쪽의 향교 밑에 표시된 關門城도 《해동지도》에는 향교 위쪽에 있었다. 잘못 기록한 대표적인 지명으로는 아래쪽에 仇寧鎭이 仇寧嶺으로, 위쪽에서는 幕嶺鎭이 幕鎭岺으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 《광여도》에서는 향교 부근의 관문성은 아예 생략되어 있고, 구령진과 막령진은 교정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글자로만 기록되어 있던 面이 본 지도에서는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위쪽의 大朔州 부근에 있었던 白呂字面이 빠져 있으며, 《광여도》에도 이 점은 동일하게 나타나 있다. 삭주부는 남북으로 긴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본 지도에서는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아래쪽 왼쪽의 昌城界에서 흘러와 오른쪽 義州界로 빠져나가는 것이 압록강 본류이다. 위쪽의 대삭주는 현재의 대령강 상류 유역에 걸쳐 있다. (이기봉)

  • 명천부(明川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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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명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왼쪽 아래에 下加란 지명이 추가되어 있는 정도이다. 본 지도와 《광여도》는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명천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생략이 많이 되고 있으며, 일부는 다르게 필사된 곳도 있다. 도로, 봉수는 모두 생략되었고, 창고와 산지를 비롯한 기타 지명들도 상당히 많이 생략되었다. 또한 아래쪽의 七寶山에서 동해로 빠져나가는 하천 역시 생략되어 있다. 생략된 지명을 보면 특별한 원칙에 의해 생략을 한 것 같아 보이지는 않으며, 필사자의 자의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책에 있는 함경도의 군현 대부분이 고을 전체의 모습을 비슷하게 그렸는데 반해 본 지도는 명천부의 실제 모습과 상당히 다르게 그려져 있다. 가장 다르게 그려진 부분은 아래쪽의 동해 해안가이다. 본 지도는 魚郞川의 유로를 참조해 보면 대략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리고 동해안의 해안선은 실제로 왼쪽은 거의 동서 방향, 오른쪽은 거의 남북 방향이다. 따라서 해안선이 거의 직각의 방향을 취하고 있지만 본 지도에는 대략 일직선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 부분의 해안선은 조선후기 내내 그려진 정확한 지도에서도 대부분 실제와 다르게 표현된 부분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명천부 지도 해안선이 조선후기에 정확성을 추구한 지도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그려진 모습이다. 김정호의 《동여도》에 이르러서야 본 지역의 해안선이 실제에 가깝게 그려진다. 위쪽의 長白山은 다른 산지와 달리 흰색으로 표현되어 있다. 대부분의 지리지에 장백산에는 ‘5월이 되서야 눈이 녹고, 7월이 되면 다시 눈이 쌓인다’는 표현이 나오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 장백산은 단지 하나의 산이 아니라 여러 개의 산이 연결된 큰 규모를 지칭한다. 그런데 지리지에는 이 부근의 하천이 대부분 장백산에서 발원하는 것으로 나온다. 따라서 장백산을 하나의 산으로 인식하면 지도의 제작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본 지도 역시 어랑천이 장백산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장백산 줄기의 하나로부터 흘러나온다. (이기봉)

  • 수원부(水源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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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수원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다만 《광여도》에 없는 내용이 일부 적혀 있다. 예를 들어 양성의 월경지에서 지도 아래쪽 해변에 적혀 있는 陽城槐台串峯이 《광여도》에는 없다. 1789년에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지도 위의 邑內로 옮겼다. 그리고 수원부의 읍치는 八呑山이라 적혀 있는 지금의 수원 시내로 이동시켰다. 따라서 이 지도는 최소한 1789년 이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도는 북쪽을 위로 향하도록 그렸다. 아래쪽이 현재의 아산만이며, 읍내 방향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려가는 하천이 지금의 황구지천이다. 平澤界에서 흘러오는 안성천과 합류되어 아산만으로 빠져나간다. 지도 왼쪽 아래에 표시된 海倉은 이 고을의 전세와 대동미를 모아 도성으로 옮기던 곳이다. 수원부의 남쪽에는 충청도의 稷山, 경기도의 陽城과 南陽 등의 越境地가 많았다. 지도에도 월경지가 일부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보다 더 적다. 稷山倉, 陽城倉 등은 직산과 양성의 월경지에 있었던 창고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의 산세와 영역이 확대 과장되고, 산을 맥의 형식으로 그린 점 등은 회화식 고지도의 일반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다. (이기봉)

  • 석성현(石城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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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석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서는 《광여도》에 있는 堤 중 총 6개가 생략되어 있고, 제언의 모양 표시도 사라졌다. 반면에 《광여도》에는 없었던 梨峴이 오른쪽에 적혀 있다. 이 지명은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동일한 《해동지도》의 석성현 지도에 나오고 있어 상호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梨峴 오른쪽의 魯山面은 본 지도의 주기, 《광여도》의 지도와 주기 모두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해동지도》에는 曾山面으로 나오고 있으며, 『여지도서』와 『대동지지』 등에는 甑山面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본 지도와 《광여도》의 제작자가 ‘曾’자를 ‘魯’자로 잘못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의 풍수적 명당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거의 평지라고 표현해도 좋은 아래쪽 부분에 산줄기가 그려져 있다. 또한 읍치 지역을 상대적으로 크게 그렸다. 이 때문에 扶餘界로부터 들어오는 현재의 석성천이 읍치 동쪽의 하천보다 훨씬 규모가 큰 하천임에도 이런 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서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는데 이것도 읍치로 내려오는 산줄기가 이 방향에서 오기 때문이다. 위쪽에서 흘러와 아래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금강이다. 금강 변에 있는 津은 나루이기도 하지만 이 부분에서는 금강의 명칭으로도 사용되었다. 江倉은 대동법의 시행 이후 漕倉制가 대폭 축소되면서 석성현의 田稅와 大同米를 모았다가 한양으로 운반하던 곳이었다. (이기봉)

  • 동복현(同福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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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동복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가 《광여도》보다 표현 방식이 투박하여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하천 부분에서는 본 지도가 《광여도》의 애매함을 교정하고 있다.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동복현을 가로질러 흐르는 하천이 현재의 동복천이다. 즉, 동복천은 위쪽(북)이 상류이고, 아래쪽(남)이 하류에 해당된다. 그런데 《광여도》에는 위쪽의 潭陽界 부분이 굵게 표현되어 있고, 아래쪽 寶城界 부분은 얇게 그려져 있다. 이에 따라 지도 이용자는 아래쪽이 하류이고, 위쪽이 상류라고 오해할 수 있게 된다. 본 지도에서는 반대로 아래쪽 보성계 부분을 2개의 실선으로 그리고, 위쪽을 1개의 실선으로 그려 아래쪽이 하류임을 분명하게 표현하였다. 《광여도》의 애매함은 본 지도와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동복현 지도를 필사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는 하천의 중간 부분을 상대적으로 넓게 그렸다. 이것은 이 부분에 퇴적암의 절벽 지형이 많아 당시에는 絶景으로 인식되었고, 그것을 강조하여 표현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위쪽의 상류가 아래쪽의 하류보다 약간 굵게 표현되어 있어 상류와 하류를 구분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광여도》의 필사 시 다른 자료를 통해 상류와 하류를 구분하지 않고 《해동지도》의 표현을 그대로 이해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의 필사 시 《광여도》를 필사하면서도 다른 자료를 통해 아래쪽이 하류임을 확인하여 지도에 분명하게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여지도서』의 동복현 지도에는 상류와 하류가 분명하게 구별될 수 있도록 표현되어 있어 본 지도와 상호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호남지도》의 동복현 지도에도 상류와 하류가 분명하게 구별되어 있다. (이기봉)

  • 문경현(聞慶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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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문경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첫째,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고 둘째, 가로에 비해 세로가 길게 그려져 있다. 이런 과정에서 하천 유로의 일부 모습이 바뀌었으나 전반적으로는 동일하다. 본 지도에 수록되어 있는 지명도 읍치의 門樓 등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기록되어 있다. 더 나아가 지명의 표기에서 본 지도에는 오류가 여러 군데 보이고 있다. 읍치 위쪽에 적혀 있는 草谷은 《해동지도》에 草谷面이라고 되어 있다. 또한 오른쪽 아래의 幽谷驛은 종6품의 찰방이 파견된 역임에도 불구하고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다. 주기의 面 부분에는 신동면, 호현면, 호남면, 가현내면, 가동면 등 여러 개가 빠져 있는 오류도 보이고 있다. 기타 오른쪽 위의 代眉山은 蛾眉山을 잘못 옮긴 것이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본 지도는 《해동지도》의 내용을 따르고 있지만 읍치에서 다른 자료를 약간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더 중요한 것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꼼꼼한 검토를 행하지 않은 부분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세로로 긴 사각형의 종이 위에 그리다 보니까 실제를 왜곡하는 경우가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加자가 붙은 면의 지역은 현재의 문경시 가은읍과 농암면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서쪽으로 튀어나가 있는 부분이다. 이런 부분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東流하는 하천이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그려지게 되었다. 또한 戶자가 붙은 면 지역은 현재의 문경시 호계면과 시내(옛 점촌시)에 있던 것으로 남쪽으로 튀어나가 있다. 역시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다보니까 南流하는 하천이 마치 東流하는 것처럼 그려지게 되었다. (이기봉)

  • 삼등현(三登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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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삼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삼등현 지도를 필사한 것이라 생각된다. 지도에는 西境面이라 적혀 있지만 주기에는 西面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점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광여도》 역시 다르지 않다. 또한 읍치 이외의 지명들은 모두 《해동지도》에 나오는 것이다. 다만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의 정보가 훨씬 많아졌다. 이를 통해 볼 때 일반적으로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읍치 지역만큼은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가 남북보다는 동서를 길게 그린 반면 본 지도는 남북을 동서보다 길게 그렸다. 그 영향으로 읍치 왼쪽의 하천이 상대적으로 길게 그려졌다. 또한 古丁洞面이 있는 하천은 동서 방향에서 남북 방향으로 유로가 바뀌어 표현되었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 잘못된 것이 있다. 오른쪽 아래에는 陽德界가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로 삼등현은 양덕현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았다. 또한 왼쪽에 祥原界가 표시되어 있는데, 실제로 삼등현은 아래쪽 綾城江(현재의 남강)을 경계로 상원군과 경계를 맞대고 있었을 뿐이다. 이런 오류는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광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져 있다. 이런 종류의 지도를 최초로 제작한 사람이 삼등현의 경계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무산부(茂山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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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무산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무산부 지도와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본 지도책의 함경도 군현이 대부분 《해동지도》의 것을 필사한 것처럼 본 지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추정된다. 그러나 본 지도는 다른 군현과 달리 《해동지도》의 구도나 내용과 다른 곳이 많다. 그렇게 된 첫 번째 이유는 가로로 길게 되어 있던 《해동지도》를 세로로 긴 사각형에 맞추었기 때문이다. 둘째, 첫 번째와 연관되는 것이지만 《해동지도》에 나와 있던 백두산 부분을 본 지도에서 생략하였다. 즉, 본 지도에서는 魚潤江과 緩項嶺의 선을 중심으로 그 북쪽 지역을 생략하였다. 두만강 본류의 유로 표시에서 몇 가지 오해할만한 부분이 발생하였다. 읍치 위쪽에 만주 방면에서 오는 지류를 굵게 표현하고, 지류의 유로와 같은 방향으로 豆滿江을 적어놓았기 때문에 마치 백두산 방향의 두만강이 지류인 것 같은 착각을 할 수 있다. 《해동지도》에는 만주 방면에서 오는 지류를 얇게, 그리고 두만강이란 명칭도 본류에 적어놓았다. 두만강의 상류 부분인 왼쪽 위를 읍치 부근보다 더 굵게 표현하여 상류와 하류를 이해하기 어렵게 하기도 했다. 또한 오른쪽 아래의 하류 부분은 마치 하폭이 갑자기 넓어지는 것처럼 묘사하였다. 《광여도》에서 상류와 하류를 아주 굵은 2개의 실선으로 표현하고, 중간 부분은 단지 1개의 실선으로만 표현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상류와 하류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도록 그렸다. 지명의 오기도 보이고 있다. 읍치 왼쪽 위의 林下川은 朴下川을 잘못 옮긴 것으로 《광여도》에도 본 지도처럼 기록되어 있다. 두만강이 이 지역에서 일반적으로 東流하므로 본 지도는 서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고 볼 수 있다. (이기봉)

  • 안산군(安山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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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안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틀린 점이 있다면 아래쪽의 2개 섬에 田地가 없다는 사실과 烏耳島가 40리에 있다는 표현이 첨가된 것 정도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안산군 지도도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동일하여 상호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 표시되어 있던 도로가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사라지고, 단지 中路와 大路의 명칭만 기재되어 있다. 반면에 《해동지도》의 지도에는 없었던 면의 명칭이 《광여도》와 본 지도에는 첨가되어 있다. 본 지도에 적혀 있는 郡內面이 지도 위에 없는 점, 지도에 표시된 仍火谷面과 犬月面이 주기에 다르게 적혀 있는 점은 《광여도》와 동일하다. 주기의 내용은 본 지도와 《광여도》가 동일하지만 《해동지도》와는 다르다. 고을의 전체적인 실제 모습과 본 지도의 모양은 상당히 다르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 중 실제와 다른 곳이 있어 주의를 요한다. 아래쪽의 바다가 仁川과 南陽의 땅으로 둘러싸인 것처럼 표시되어 있지만 인천의 경우 실제와 전혀 다르다. 인천계 방향으로는 바다가 연속되어야 한다. 여기서 왼쪽 아래의 仁川界 부분은 육지라는 의미가 아니라 바다에서도 이 정도 선에서 인천과 안산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이기봉)

  • 석성현(石城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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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석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서는 《광여도》에 있는 堤 중 총 6개가 생략되어 있고, 제언의 모양 표시도 사라졌다. 반면에 《광여도》에는 없었던 梨峴이 오른쪽에 적혀 있다. 이 지명은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동일한 《해동지도》의 석성현 지도에 나오고 있어 상호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梨峴 오른쪽의 魯山面은 본 지도의 주기, 《광여도》의 지도와 주기 모두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해동지도》에는 曾山面으로 나오고 있으며, 『여지도서』와 『대동지지』 등에는 甑山面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본 지도와 《광여도》의 제작자가 ‘曾’자를 ‘魯’자로 잘못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의 풍수적 명당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거의 평지라고 표현해도 좋은 아래쪽 부분에 산줄기가 그려져 있다. 또한 읍치 지역을 상대적으로 크게 그렸다. 이 때문에 扶餘界로부터 들어오는 현재의 석성천이 읍치 동쪽의 하천보다 훨씬 규모가 큰 하천임에도 이런 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서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는데 이것도 읍치로 내려오는 산줄기가 이 방향에서 오기 때문이다. 위쪽에서 흘러와 아래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금강이다. 금강 변에 있는 津은 나루이기도 하지만 이 부분에서는 금강의 명칭으로도 사용되었다. 江倉은 대동법의 시행 이후 漕倉制가 대폭 축소되면서 석성현의 田稅와 大同米를 모았다가 한양으로 운반하던 곳이었다. (이기봉)

  • 동복현(同福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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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동복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가 《광여도》보다 표현 방식이 투박하여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하천 부분에서는 본 지도가 《광여도》의 애매함을 교정하고 있다.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동복현을 가로질러 흐르는 하천이 현재의 동복천이다. 즉, 동복천은 위쪽(북)이 상류이고, 아래쪽(남)이 하류에 해당된다. 그런데 《광여도》에는 위쪽의 潭陽界 부분이 굵게 표현되어 있고, 아래쪽 寶城界 부분은 얇게 그려져 있다. 이에 따라 지도 이용자는 아래쪽이 하류이고, 위쪽이 상류라고 오해할 수 있게 된다. 본 지도에서는 반대로 아래쪽 보성계 부분을 2개의 실선으로 그리고, 위쪽을 1개의 실선으로 그려 아래쪽이 하류임을 분명하게 표현하였다. 《광여도》의 애매함은 본 지도와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동복현 지도를 필사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는 하천의 중간 부분을 상대적으로 넓게 그렸다. 이것은 이 부분에 퇴적암의 절벽 지형이 많아 당시에는 絶景으로 인식되었고, 그것을 강조하여 표현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위쪽의 상류가 아래쪽의 하류보다 약간 굵게 표현되어 있어 상류와 하류를 구분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광여도》의 필사 시 다른 자료를 통해 상류와 하류를 구분하지 않고 《해동지도》의 표현을 그대로 이해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의 필사 시 《광여도》를 필사하면서도 다른 자료를 통해 아래쪽이 하류임을 확인하여 지도에 분명하게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여지도서』의 동복현 지도에는 상류와 하류가 분명하게 구별될 수 있도록 표현되어 있어 본 지도와 상호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호남지도》의 동복현 지도에도 상류와 하류가 분명하게 구별되어 있다. (이기봉)

  • 문경현(聞慶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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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문경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첫째,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고 둘째, 가로에 비해 세로가 길게 그려져 있다. 이런 과정에서 하천 유로의 일부 모습이 바뀌었으나 전반적으로는 동일하다. 본 지도에 수록되어 있는 지명도 읍치의 門樓 등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기록되어 있다. 더 나아가 지명의 표기에서 본 지도에는 오류가 여러 군데 보이고 있다. 읍치 위쪽에 적혀 있는 草谷은 《해동지도》에 草谷面이라고 되어 있다. 또한 오른쪽 아래의 幽谷驛은 종6품의 찰방이 파견된 역임에도 불구하고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다. 주기의 面 부분에는 신동면, 호현면, 호남면, 가현내면, 가동면 등 여러 개가 빠져 있는 오류도 보이고 있다. 기타 오른쪽 위의 代眉山은 蛾眉山을 잘못 옮긴 것이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본 지도는 《해동지도》의 내용을 따르고 있지만 읍치에서 다른 자료를 약간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더 중요한 것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꼼꼼한 검토를 행하지 않은 부분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세로로 긴 사각형의 종이 위에 그리다 보니까 실제를 왜곡하는 경우가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加자가 붙은 면의 지역은 현재의 문경시 가은읍과 농암면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서쪽으로 튀어나가 있는 부분이다. 이런 부분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東流하는 하천이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그려지게 되었다. 또한 戶자가 붙은 면 지역은 현재의 문경시 호계면과 시내(옛 점촌시)에 있던 것으로 남쪽으로 튀어나가 있다. 역시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다보니까 南流하는 하천이 마치 東流하는 것처럼 그려지게 되었다. (이기봉)

  • 삼등현(三登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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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삼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삼등현 지도를 필사한 것이라 생각된다. 지도에는 西境面이라 적혀 있지만 주기에는 西面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점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광여도》 역시 다르지 않다. 또한 읍치 이외의 지명들은 모두 《해동지도》에 나오는 것이다. 다만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의 정보가 훨씬 많아졌다. 이를 통해 볼 때 일반적으로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읍치 지역만큼은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가 남북보다는 동서를 길게 그린 반면 본 지도는 남북을 동서보다 길게 그렸다. 그 영향으로 읍치 왼쪽의 하천이 상대적으로 길게 그려졌다. 또한 古丁洞面이 있는 하천은 동서 방향에서 남북 방향으로 유로가 바뀌어 표현되었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 잘못된 것이 있다. 오른쪽 아래에는 陽德界가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로 삼등현은 양덕현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았다. 또한 왼쪽에 祥原界가 표시되어 있는데, 실제로 삼등현은 아래쪽 綾城江(현재의 남강)을 경계로 상원군과 경계를 맞대고 있었을 뿐이다. 이런 오류는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광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져 있다. 이런 종류의 지도를 최초로 제작한 사람이 삼등현의 경계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무산부(茂山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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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무산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무산부 지도와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본 지도책의 함경도 군현이 대부분 《해동지도》의 것을 필사한 것처럼 본 지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추정된다. 그러나 본 지도는 다른 군현과 달리 《해동지도》의 구도나 내용과 다른 곳이 많다. 그렇게 된 첫 번째 이유는 가로로 길게 되어 있던 《해동지도》를 세로로 긴 사각형에 맞추었기 때문이다. 둘째, 첫 번째와 연관되는 것이지만 《해동지도》에 나와 있던 백두산 부분을 본 지도에서 생략하였다. 즉, 본 지도에서는 魚潤江과 緩項嶺의 선을 중심으로 그 북쪽 지역을 생략하였다. 두만강 본류의 유로 표시에서 몇 가지 오해할만한 부분이 발생하였다. 읍치 위쪽에 만주 방면에서 오는 지류를 굵게 표현하고, 지류의 유로와 같은 방향으로 豆滿江을 적어놓았기 때문에 마치 백두산 방향의 두만강이 지류인 것 같은 착각을 할 수 있다. 《해동지도》에는 만주 방면에서 오는 지류를 얇게, 그리고 두만강이란 명칭도 본류에 적어놓았다. 두만강의 상류 부분인 왼쪽 위를 읍치 부근보다 더 굵게 표현하여 상류와 하류를 이해하기 어렵게 하기도 했다. 또한 오른쪽 아래의 하류 부분은 마치 하폭이 갑자기 넓어지는 것처럼 묘사하였다. 《광여도》에서 상류와 하류를 아주 굵은 2개의 실선으로 표현하고, 중간 부분은 단지 1개의 실선으로만 표현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상류와 하류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도록 그렸다. 지명의 오기도 보이고 있다. 읍치 왼쪽 위의 林下川은 朴下川을 잘못 옮긴 것으로 《광여도》에도 본 지도처럼 기록되어 있다. 두만강이 이 지역에서 일반적으로 東流하므로 본 지도는 서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고 볼 수 있다. (이기봉)

  • 안산군(安山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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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안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틀린 점이 있다면 아래쪽의 2개 섬에 田地가 없다는 사실과 烏耳島가 40리에 있다는 표현이 첨가된 것 정도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안산군 지도도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동일하여 상호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 표시되어 있던 도로가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사라지고, 단지 中路와 大路의 명칭만 기재되어 있다. 반면에 《해동지도》의 지도에는 없었던 면의 명칭이 《광여도》와 본 지도에는 첨가되어 있다. 본 지도에 적혀 있는 郡內面이 지도 위에 없는 점, 지도에 표시된 仍火谷面과 犬月面이 주기에 다르게 적혀 있는 점은 《광여도》와 동일하다. 주기의 내용은 본 지도와 《광여도》가 동일하지만 《해동지도》와는 다르다. 고을의 전체적인 실제 모습과 본 지도의 모양은 상당히 다르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 중 실제와 다른 곳이 있어 주의를 요한다. 아래쪽의 바다가 仁川과 南陽의 땅으로 둘러싸인 것처럼 표시되어 있지만 인천의 경우 실제와 전혀 다르다. 인천계 방향으로는 바다가 연속되어야 한다. 여기서 왼쪽 아래의 仁川界 부분은 육지라는 의미가 아니라 바다에서도 이 정도 선에서 인천과 안산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이기봉)

  • 수영(水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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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水營圖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충청도의 水營은 현재의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에 있었다. 수영의 성곽과 부근을 확대하여 자세히 그렸고, 다른 지역은 실제 모습과 관련 없이 산줄기가 겹겹이 싸여있는 형태로 그렸다. 烏栖山 아래쪽이 《광여도》에는 바다의 색으로 칠해져 있으나 본 지도에서는 생략되었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수영 지도와 비교해 보면 《광여도》와 본 지도가 잘못 이해하여 필사한 부분이 있다. 烏栖山 위쪽이 《해동지도》에는 바다의 색으로 칠해져 있지 않은데,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바다와 같은 색으로 칠해져 있다. 이렇게 되면 수영 왼쪽에 雲山寺가 있는 곳이 섬으로 오해될 수 있다. 그러나 이곳은 현재의 보령시 천북면 지역으로서 섬이 아니라 반도이다. 따라서 《해동지도》에 올바르게 표현된 내용이 筆寫 과정에서 잘못 이해되어 상당한 왜곡이 발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수영의 성곽과 부근과 다른 지역이 거리나 면적, 방향 등에서 전혀 다르게 배치되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면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수영 왼쪽에 舟란 글씨가 표시된 바다보다 安眠島와 육지 사이의 바다가 10배 이상 넓지만 본 지도를 오해하면 더 좁은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안면도 이외의 섬들도 실제의 위치나 거리, 면적을 제대로 반영한 것이 아니다. 수영 주변의 고을에 대한 표시도 해당 방향으로 가면 경계를 만난다는 의미일 뿐 직접 경계를 맞대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왼쪽 위에 있는 洪陽은 洪州를 의미한다. 홍주는 顯宗(1660-1674) 때 잠시 洪陽縣으로 강등되는데, 이 사실과 관계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기봉)

  • 만경현(萬頃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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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만경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下道面 아래쪽에 上西面이 생략되어 있고, 왼쪽 아래에 串芝島가 串芝鎭으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 읍치 아래쪽의 壓湖亭은 《광여도》에 없는 지명이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만경현 지도에는 압호정이 있다. 아울러 성곽에 성가퀴가 표시되어 있는 점도 《해동지도》와 닮았다. 하천의 표현에서는 《해동지도》보다 《광여도》와 동일하다. 위쪽에 표시된 것은 현재의 만경강이 서해와 만나는 지점으로 하천이라기보다는 灣이다. 아래쪽의 南二面 아래에 표시된 하천은 현재의 신평천이며, 그 아래쪽의 것은 동진강이다. 《해동지도》에는 만경강 하구가 신평천보다 훨씬 굵게 그려져 있으며, 동진강은 그 중간 수준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광여도》에서는 만경강이 하구 부분 일부를 제외하면 1개의 실선으로 그려지고, 반대로 신평천과 동진강은 비슷한 크기의 2개 실선으로 그려진다. 《해동지도》에 실제에 가깝게 그려진 하천의 규모가 《광여도》와 본 지도로 옮겨오면서 전혀 다르게 표현된 것이다. 만경현은 산지가 거의 없는 평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개의 지도 모두 산줄기를 많이 그려 넣었다. 특히 애안가의 산지들은 높아야 80m 정도밖에 안되는데도 웅장하게 그려졌다. 이것은 읍치와 고을의 풍수적 명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산줄기를 강조하는 회화식 군현지도의 일반적인 표현 방식이다. 왼쪽의 古群山鎭의 섬들은 실제의 위치와 관계없이 해안가에 너무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러한 것은 거리가 너무 먼 지역을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그리는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기봉)

  • 밀양부(密陽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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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밀양부 지도와 비슷하다. 읍치에 있는 지명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수록된 지명은 거의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고, 일부를 제외하면 하천의 유로가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해동지도》와 비교해 가장 다른 점은 내부 건물의 수와 명칭이 많아진 읍성이 상대적으로 훨씬 크게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해동지도》와 본 지도를 다르게 만든 결정적인 원인이 된 것으로 생각된다. 읍성을 크게 그렸기 때문에 다른 부분은 상대적으로 작아질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하천의 유로나 산줄기, 여러 지명의 위치도 조금씩 달라질 수밖에 없다. 또한 가로(동서)가 상대적으로 길게 그려진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에는 세로(남북)가 길게 표현되어 있다. 이런 변화들 때문에 발생한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오른쪽 위의 伽智山과 天王山에서 흘러내려 현재의 밀양강에 합류되는 하천은 전반적으로 서쪽으로 흐르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남북으로 흐르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 이외의 하천은 대부분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기 때문에 流路라는 측면에서는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본 지도에서는 하천이 발원지라는 차원에서 보면 2개의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 위쪽의 淸道界에서 흘러오는 하천이 밀양강 본류이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밀양강의 발원지가 淸道界 훨씬 위쪽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가장 왼쪽의 하천은 현재의 청도천이다. 청도천의 발원지 역시 밀양이 아니라 청도인데, 본 지도에서는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오류는 《해동지도》에서도 동일하게 발생하고 있다. 《해동지도》와의 차이점 중의 하나로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사용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기봉)

  • 삼화부(三和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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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삼화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차이가 나지만 하천의 유로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읍치와 廣梁鎭만은 《해동지도》보다 건물이 더 많이 표시되어 있고, 鄕廳과 倉은 《해동지도》에 없는 것이다. 이를 통해 볼 때 전반적으로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읍치와 광량진에서만큼은 다른 자료도 참조한 것으로 생각된다. 표현한 정보가 많고, 본 지도의 종이 크기가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아 읍치와 광량진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다. 이로 인해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에서 서쪽 바다까지의 부분이 상대적으로 작게 묘사되었으며, 광량진 안쪽의 灣 역시 작게 묘사되었다. 읍치에서는 하천의 유로가 일부 바뀌어 표현되기도 하였다. 《해동지도》에는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에 본 지도에서는 노란색 사각형이 첨가되어 있다. 다만 왼쪽 가운데의 朴甘洞面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다. 또한 박감동면은 주기에도 동일하게 적혀 있는데, 甘朴洞面을 잘못 옮겨 적은 것이다. 《광여도》에는 이곳에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만 박감동면이란 명칭은 변경되지 않았다. 오른쪽의 東面은 東里面을 잘못 적은 것이며, 《광여도》에는 이 점이 시정되어 있다. 기타 삼화부는 1686년(숙종 12)에 縣에서 府로 승격되었다. (이기봉)

  • 문천군(文川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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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문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읍치 아래쪽에 《광여도》에 있던 德源龍城津 정도가 생략되어 있다는 점 정도이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는 《해동지도》의 문천군 지도에는 이 지명이 나오고 있다.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로 뻗어 내린 산줄기가 서쪽에서 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고을의 실제 모습과 상당히 다르게 그려져 있다. 본 고을은 서쪽이 넓고 바다에 접한 동쪽이 훨씬 좁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 지도에는 서쪽 부분을 실제보다 좁게 그리면서 동쪽은 실제보다 넓게 그려져 있다. 특히 위쪽의 雲林倉이 있는 부분이 실제보다 너무 작게 그려져 있다. 예를 들어 읍치에서 德平으로 뻗은 하천보다 雲林倉 방향에서 내려온 하천의 길이가 실제로는 훨씬 길다. 또한 이 하천은 발원지에서 北流하다가 덕평 부근에서 서류하는 형태를 취하는데 이런 사실도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런 오류는 표현 양식과 내용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같은 《해동지도》의 문천군 지도를 잘못 필사하면서 더욱 심해졌다. 《해동지도》에는 읍치 오른쪽의 물줄기가 泥峴을 경계로  위 아래로 갈라지는 것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 이 사실을 잘못 이해하여 마치 읍치 오른쪽에서 발원한 물이 모두 덕평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그렸다. 《광여도》에는 이 부분이 《해동지도》처럼 되어 있다. 본 지도에는 다른 道의 面에 해당되는 社가 2개 적혀 있다. 그런데 다른 道에서는 面을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였지만 본 지도에서는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마 社가 面과 동일한 행정단위였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주기를 보면 社가 총 6개 나오고 있는데 지도에는 2개만 표시되어 있다.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社는 草閑社를 제외하면 모두 倉으로만 되어 있다. 倉이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 안성군(安城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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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안성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광여도》에 沙溪書院으로 적혀 있는 것이 본 지도에는 沙鷄書院으로 한자가 바뀐 정도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안성군 지도도 표현 양식에서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에서 본 지도와 거의 동일하여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주기의 지지 내용은 본 지도와 《광여도》는 거의 동일하지만 《해동지도》와는 전혀 다르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라는 측면에서 볼 때 세 지도가 동일하지만 실제로는 북쪽 방향에 陽智界가 적혀 있어야 실제에 부합된다. 읍치가 지나치게 확대 강조되어 있어 그 이외 지역의 내용은 극히 소략하다. 또한 읍치로부터의 방향과 거리 등 실제적인 내용을 파악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읍치를 관통하는 하천이 현재의 안성천이며, 靑龍寺 방면에서 내려오는 하천이 안성천의 지류인 신릉천이다. 맨 왼쪽에 양성과의 경계선에 있는 하천은 현재의 안성천 지류인 한천이다. 이 지도에는 마치 양성 정도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죽산 땅이었던 현재의 용인시 원삼면에서 발원한다. (이기봉)

  • 수영(水營)(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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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水營圖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충청도의 水營은 현재의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에 있었다. 수영의 성곽과 부근을 확대하여 자세히 그렸고, 다른 지역은 실제 모습과 관련 없이 산줄기가 겹겹이 싸여있는 형태로 그렸다. 烏栖山 아래쪽이 《광여도》에는 바다의 색으로 칠해져 있으나 본 지도에서는 생략되었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수영 지도와 비교해 보면 《광여도》와 본 지도가 잘못 이해하여 필사한 부분이 있다. 烏栖山 위쪽이 《해동지도》에는 바다의 색으로 칠해져 있지 않은데,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바다와 같은 색으로 칠해져 있다. 이렇게 되면 수영 왼쪽에 雲山寺가 있는 곳이 섬으로 오해될 수 있다. 그러나 이곳은 현재의 보령시 천북면 지역으로서 섬이 아니라 반도이다. 따라서 《해동지도》에 올바르게 표현된 내용이 筆寫 과정에서 잘못 이해되어 상당한 왜곡이 발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수영의 성곽과 부근과 다른 지역이 거리나 면적, 방향 등에서 전혀 다르게 배치되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면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수영 왼쪽에 舟란 글씨가 표시된 바다보다 安眠島와 육지 사이의 바다가 10배 이상 넓지만 본 지도를 오해하면 더 좁은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안면도 이외의 섬들도 실제의 위치나 거리, 면적을 제대로 반영한 것이 아니다. 수영 주변의 고을에 대한 표시도 해당 방향으로 가면 경계를 만난다는 의미일 뿐 직접 경계를 맞대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왼쪽 위에 있는 洪陽은 洪州를 의미한다. 홍주는 顯宗(1660-1674) 때 잠시 洪陽縣으로 강등되는데, 이 사실과 관계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기봉)

  • 만경현(萬頃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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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만경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下道面 아래쪽에 上西面이 생략되어 있고, 왼쪽 아래에 串芝島가 串芝鎭으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 읍치 아래쪽의 壓湖亭은 《광여도》에 없는 지명이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만경현 지도에는 압호정이 있다. 아울러 성곽에 성가퀴가 표시되어 있는 점도 《해동지도》와 닮았다. 하천의 표현에서는 《해동지도》보다 《광여도》와 동일하다. 위쪽에 표시된 것은 현재의 만경강이 서해와 만나는 지점으로 하천이라기보다는 灣이다. 아래쪽의 南二面 아래에 표시된 하천은 현재의 신평천이며, 그 아래쪽의 것은 동진강이다. 《해동지도》에는 만경강 하구가 신평천보다 훨씬 굵게 그려져 있으며, 동진강은 그 중간 수준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광여도》에서는 만경강이 하구 부분 일부를 제외하면 1개의 실선으로 그려지고, 반대로 신평천과 동진강은 비슷한 크기의 2개 실선으로 그려진다. 《해동지도》에 실제에 가깝게 그려진 하천의 규모가 《광여도》와 본 지도로 옮겨오면서 전혀 다르게 표현된 것이다. 만경현은 산지가 거의 없는 평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개의 지도 모두 산줄기를 많이 그려 넣었다. 특히 애안가의 산지들은 높아야 80m 정도밖에 안되는데도 웅장하게 그려졌다. 이것은 읍치와 고을의 풍수적 명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산줄기를 강조하는 회화식 군현지도의 일반적인 표현 방식이다. 왼쪽의 古群山鎭의 섬들은 실제의 위치와 관계없이 해안가에 너무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러한 것은 거리가 너무 먼 지역을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그리는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기봉)

  • 밀양부(密陽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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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밀양부 지도와 비슷하다. 읍치에 있는 지명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수록된 지명은 거의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고, 일부를 제외하면 하천의 유로가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해동지도》와 비교해 가장 다른 점은 내부 건물의 수와 명칭이 많아진 읍성이 상대적으로 훨씬 크게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해동지도》와 본 지도를 다르게 만든 결정적인 원인이 된 것으로 생각된다. 읍성을 크게 그렸기 때문에 다른 부분은 상대적으로 작아질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하천의 유로나 산줄기, 여러 지명의 위치도 조금씩 달라질 수밖에 없다. 또한 가로(동서)가 상대적으로 길게 그려진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에는 세로(남북)가 길게 표현되어 있다. 이런 변화들 때문에 발생한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오른쪽 위의 伽智山과 天王山에서 흘러내려 현재의 밀양강에 합류되는 하천은 전반적으로 서쪽으로 흐르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남북으로 흐르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 이외의 하천은 대부분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기 때문에 流路라는 측면에서는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본 지도에서는 하천이 발원지라는 차원에서 보면 2개의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 위쪽의 淸道界에서 흘러오는 하천이 밀양강 본류이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밀양강의 발원지가 淸道界 훨씬 위쪽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가장 왼쪽의 하천은 현재의 청도천이다. 청도천의 발원지 역시 밀양이 아니라 청도인데, 본 지도에서는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오류는 《해동지도》에서도 동일하게 발생하고 있다. 《해동지도》와의 차이점 중의 하나로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사용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기봉)

  • 삼화부(三和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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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삼화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차이가 나지만 하천의 유로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읍치와 廣梁鎭만은 《해동지도》보다 건물이 더 많이 표시되어 있고, 鄕廳과 倉은 《해동지도》에 없는 것이다. 이를 통해 볼 때 전반적으로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읍치와 광량진에서만큼은 다른 자료도 참조한 것으로 생각된다. 표현한 정보가 많고, 본 지도의 종이 크기가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아 읍치와 광량진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다. 이로 인해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에서 서쪽 바다까지의 부분이 상대적으로 작게 묘사되었으며, 광량진 안쪽의 灣 역시 작게 묘사되었다. 읍치에서는 하천의 유로가 일부 바뀌어 표현되기도 하였다. 《해동지도》에는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에 본 지도에서는 노란색 사각형이 첨가되어 있다. 다만 왼쪽 가운데의 朴甘洞面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다. 또한 박감동면은 주기에도 동일하게 적혀 있는데, 甘朴洞面을 잘못 옮겨 적은 것이다. 《광여도》에는 이곳에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만 박감동면이란 명칭은 변경되지 않았다. 오른쪽의 東面은 東里面을 잘못 적은 것이며, 《광여도》에는 이 점이 시정되어 있다. 기타 삼화부는 1686년(숙종 12)에 縣에서 府로 승격되었다. (이기봉)

  • 문천군(文川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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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문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읍치 아래쪽에 《광여도》에 있던 德源龍城津 정도가 생략되어 있다는 점 정도이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는 《해동지도》의 문천군 지도에는 이 지명이 나오고 있다.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로 뻗어 내린 산줄기가 서쪽에서 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고을의 실제 모습과 상당히 다르게 그려져 있다. 본 고을은 서쪽이 넓고 바다에 접한 동쪽이 훨씬 좁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 지도에는 서쪽 부분을 실제보다 좁게 그리면서 동쪽은 실제보다 넓게 그려져 있다. 특히 위쪽의 雲林倉이 있는 부분이 실제보다 너무 작게 그려져 있다. 예를 들어 읍치에서 德平으로 뻗은 하천보다 雲林倉 방향에서 내려온 하천의 길이가 실제로는 훨씬 길다. 또한 이 하천은 발원지에서 北流하다가 덕평 부근에서 서류하는 형태를 취하는데 이런 사실도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런 오류는 표현 양식과 내용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같은 《해동지도》의 문천군 지도를 잘못 필사하면서 더욱 심해졌다. 《해동지도》에는 읍치 오른쪽의 물줄기가 泥峴을 경계로  위 아래로 갈라지는 것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 이 사실을 잘못 이해하여 마치 읍치 오른쪽에서 발원한 물이 모두 덕평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그렸다. 《광여도》에는 이 부분이 《해동지도》처럼 되어 있다. 본 지도에는 다른 道의 面에 해당되는 社가 2개 적혀 있다. 그런데 다른 道에서는 面을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였지만 본 지도에서는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마 社가 面과 동일한 행정단위였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주기를 보면 社가 총 6개 나오고 있는데 지도에는 2개만 표시되어 있다.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社는 草閑社를 제외하면 모두 倉으로만 되어 있다. 倉이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 안성군(安城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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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안성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광여도》에 沙溪書院으로 적혀 있는 것이 본 지도에는 沙鷄書院으로 한자가 바뀐 정도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안성군 지도도 표현 양식에서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에서 본 지도와 거의 동일하여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주기의 지지 내용은 본 지도와 《광여도》는 거의 동일하지만 《해동지도》와는 전혀 다르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라는 측면에서 볼 때 세 지도가 동일하지만 실제로는 북쪽 방향에 陽智界가 적혀 있어야 실제에 부합된다. 읍치가 지나치게 확대 강조되어 있어 그 이외 지역의 내용은 극히 소략하다. 또한 읍치로부터의 방향과 거리 등 실제적인 내용을 파악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읍치를 관통하는 하천이 현재의 안성천이며, 靑龍寺 방면에서 내려오는 하천이 안성천의 지류인 신릉천이다. 맨 왼쪽에 양성과의 경계선에 있는 하천은 현재의 안성천 지류인 한천이다. 이 지도에는 마치 양성 정도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죽산 땅이었던 현재의 용인시 원삼면에서 발원한다. (이기봉)

  • 신창현(新昌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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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신창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오른쪽에서 지도 위쪽으로 흐르는 曲橋川은 현재도 곡교천으로 불리고 있다. 그런데 昌德驛에서 흘러오는 것이 곡교천의 본류가 아니다. 곡교천의 본류는 牙山界로부터 들어와야 하며, 小東面 부근에서 창덕역 방향의 지류와 합류되는 방식으로 그려져야 한다. 외쪽 아래의 禮山界에서 흘러오는 하천은 현재의 삽교천이다. 이 삽교천은 丹津倉 부근에서 곡교천과 합류하여 북쪽으로 흘러가야 하는데 지도에는 이와 같은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못하다. 오히려 삽교천의 상류 방향에 해당되는 禮山界의 삽교천을 굵게 표현하여 하류인 것처럼 오해하도록 그렸다. 이와 같은 오류는 《광여도》와 《해동지도》의 신창현 지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고을과 읍치를 산줄기와 물줄기가 겹겹이 싸인 풍수적 명당 형국으로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1872년 지방지도’의 신창현지도 역시 회화식으로 그렸지만 하천에 대한 표현은 정확한 편이다. 읍치와 창덕역 사이에는 작은 언덕 정도밖에 안되는 分水界가 있었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마치 높은 산줄기가 있는 것처럼 표시되어 있는데, 읍치의 풍수적 명당성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와 관련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밖에 오른쪽 위쪽의 丹津倉 부근과 小西面 부근에 천안의 월경지와 접해 있었던 사실도 본 지도에는 표현되어 있지 않다. (이기봉)

  • 무안현(務安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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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무안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 오른쪽의 岩多山面은 《광여도》에는 巖多面으로 나온다. 그러나 본 지도와 《광여도》의 주기에는 모두 嚴多面으로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무안현 지도에는 지도와 주기 모두 엄다면으로 되어 있다. 《광여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의 엄다면을 글씨가 비슷한 암다면으로 잘못 필사하였고, 본 지도의 필사자 역시 암다면을 암다산면으로 잘못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 아래의 朴谷面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아 역시 본 지도의 필사 시 실수로 빠뜨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본 지도의 문제점 중 하나는 무안현만 그렸기 때문에 다른 고을의 월경지를 이해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아래쪽 木浦鎭의 위쪽에는 나주의 월경지인 三鄕面이 있었는데 본 지도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오른쪽에 2개 표시되어 있는 灵光界도 현재의 무안군 망운면과 운남면에 있었던 영광의 월경지였다. 이 부분은 바다 쪽으로 튀어나간 반도의 모양인데 본 지도만으로는 그러한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다만 영광계를 써넣어 무안현보다 훨씬 북쪽에 있었던 월경지가 이곳에 있었음을 암시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놓았다. 오른쪽 위에서 아래쪽으로 흘러가는 하천은 현재의 영산강 본류이다. 그러나 영산강 본류는 進禮面 오른쪽의 羅州界에서 들어오며, 위쪽의 羅州界에서 흘러오는 하천은 영산강의 지류인 막원천이다. 佐郞面에서 흘러오는 하천은 현재의 함평천으로, 실제로는 咸平界 너머에서 흘러옴에도 이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기봉)

  • 봉화현(奉化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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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봉화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약간 크게 그려져 있고,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게 그리려고 하였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치의 鄕廳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수록되지 않은 것도 있다. 대표적으로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릴 만큼 중요하게 생각한 面 중에서 오른쪽 아래에 있던 南面이 생략되어 있다. 하천의 유로는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확대되고, 사각형에 맞추어지는 과정에서 약간의 변화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거의 동일하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봉화 지역은 행정 경계가 상당히 복잡한 지역이다. 일단 현재의 봉화읍이 자리한 곳은 조선시대에는 안동의 월경지였다. 봉화의 읍치는 현재의 봉성면 봉성리에 있었다. 읍치 오른쪽 아래에 榮川地가 표시되어 있는데, 현재의 명호면 고감리 일대에 있었던 영천의 월경지를 의미한다. 왼쪽 위에 있는 물야면은 현재의 영주시 물야면 가평리 일대에 있었던 봉화의 월경지였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위쪽의 上東面은 현재의 봉화군 춘양면의 운곡천 북쪽 부분에 해당되는 봉화의 월경지였다. 본 지도에는 오른쪽 중간에 安東春陽縣이란 명칭을 적어 넣어 안동의 땅을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하였다. 여기서 안동춘양현은 월래 춘양현이 안동의 속현으로 있다가 안동의 월경지로 편입된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지도 제작 당시에는 안동의 춘양면으로 편제되어 있었다. 봉화 주변에 安東界가 많이 적혀 있는 이유는 이 지역에 안동의 월경지가 많았기 때문이다. 아래쪽으로 禮安縣과 접하고 있음에도 이런 사실이 빠져 있다. 기타 오른쪽의 하천은 현재의 낙동강 본류 최상류이고, 그 왼쪽의 하천들은 내성천으로 흘러간다. (이기봉)

  • 상원군(祥原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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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상원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과 내용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상원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가 달라진 점이 몇 가지 있다. 《해동지도》는 세로보다 가로가 긴 형태로 그렸지만 본 지도는 종이의 크기에 맞추기 위해 세로가 가로보다 더 길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는데, 상원군은 실제로 남북이 동서보다 더 긴 형태를 취하고 있다. 따라서 본 지도보다는 《해동지도》가 실제에 더 부합된다고 할 수 있다. 《해동지도》에는 읍치에 4개의 건물과 명칭이 표시되어 있을 뿐인데, 본 지도에는 8개의 건물과 7개의 명칭이 그려져 있다. 그 이외의 지명 중 《해동지도》에 나오지 않는 지명이 없어 읍치 부분에서만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추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읍치의 크기가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다. 이것은 첫째, 정보가 많이 표시되어 있기 때문이고 둘째, 《해동지도》보다 본 지도책의 크기가 훨씬 작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즉, 정보는 많고, 크기는 작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읍치를 크게 그릴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본 지도의 오류가 몇 군데 보이고 있다. 우선 《해동지도》에 읍치 아래쪽에 표기된 紅岩面이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 홍암면이 적혀 있으므로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래쪽의 三登界는 《해동지도》에 遂安界로 되어 있다. 三登縣의 영역은 대동강의 지류로 현재 남강으로 불리는 오른쪽의 能成江 건너편에만 있었다. 따라서 본 지도가 잘못된 것으로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같은 오류는 《광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어 《광여도》의 필사 역시 꼼꼼하게 점검하면서 필사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기봉)

  • 부평부(富寧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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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부령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보라색 사각형은 본 지도책에서 驛에 적용되던 기호였다. 본 지도에도 懷綏驛에 적용되고 있어 일반적인 경향성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왼쪽에 있는 輸城은 察訪驛임에도 불구하고 노란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 점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수성이 역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가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동지도》의 부령부 지도에 輸城이 驛이라는 정보가 전혀 수록되어 있지 않은 점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수성역은 찰방역이기 때문에 지리지 자료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을 통해 보면 본 지도의 필사 시 《해동지도》만을 참고하였으며, 애매한 것은 필사자의 자의대로 판단한 것으로 생각된다. 읍치 오른쪽에는 노란색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는데, 《광여도》에는 古堡라고 되어 있다. 茂山鎭이 있던 곳으로 이미 후대의 무산부 읍치로 옮겨간 뒤였다. 따라서 본 지도나 《광여도》의 필사 시에 이런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위쪽의 노란색 사각형에 기록된 廢茂山은 폐무산보를 의미한다. 주기에 폐무산보가 북쪽으로 45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폐무산보는 1710년(숙종 36)에 읍치 남쪽 50리로 옮겨가는데, 본 지도에서는 이러한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읍치에서 내려가는 하천은 현재의 수성천으로 실제로는 남류 하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서남류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양근군(楊根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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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근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틀린 점이 있다면 오른쪽 중간 부분에 徐府院破墓와 權判書亭이 《광여도》에는 徐府院君破墓와 權判書峯으로 되어 있는 정도다. 전자는 본 지도가, 후자는 《광여도》가 틀린 것으로 보인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양근군 지도도 본 지도와 거의 동일한 구도와 내용을 담고 있어 상호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에 없는 도로가 있고, 산지와 하천에 대한 표현 방법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해동지도》, 《광여도》, 본 지도 모두 하천의 본류와 지류를 구분하기 어렵게 그려놓았다. 《광여도》에서는 오른쪽 위의 春川江에서 흘러와 아래쪽의 廣州界로 흐르는 북한강을 굵게 표시하여 본류와 지류의 구분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오른쪽 위의 呂江에서 흘러와 왼쪽 아래의 蛇島에서 북한강과 합류되는 남한강은 다른 하천과 구별할 수 없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에서는 북한강 역시 다른 하천의 굵기와 차이를 보이고 있지 않아 본류와 지류의 구분이 더욱 어렵게 되어 있다. 주기의 지지 부분에는 총 8개의 면이 적혀 있지만 본 지도에는 단지 2개의 면만 표시되어 있다. 이것도 《해동지도》의 지도 위에 2개의 면 명칭만 적혀 있는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주기에 적혀 있는 본 지도의 지지 내용은 《광여도》와는 같으나 《해동지도》와는 다르다. (이기봉)

  • 신창현(新昌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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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신창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오른쪽에서 지도 위쪽으로 흐르는 曲橋川은 현재도 곡교천으로 불리고 있다. 그런데 昌德驛에서 흘러오는 것이 곡교천의 본류가 아니다. 곡교천의 본류는 牙山界로부터 들어와야 하며, 小東面 부근에서 창덕역 방향의 지류와 합류되는 방식으로 그려져야 한다. 외쪽 아래의 禮山界에서 흘러오는 하천은 현재의 삽교천이다. 이 삽교천은 丹津倉 부근에서 곡교천과 합류하여 북쪽으로 흘러가야 하는데 지도에는 이와 같은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못하다. 오히려 삽교천의 상류 방향에 해당되는 禮山界의 삽교천을 굵게 표현하여 하류인 것처럼 오해하도록 그렸다. 이와 같은 오류는 《광여도》와 《해동지도》의 신창현 지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고을과 읍치를 산줄기와 물줄기가 겹겹이 싸인 풍수적 명당 형국으로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1872년 지방지도’의 신창현지도 역시 회화식으로 그렸지만 하천에 대한 표현은 정확한 편이다. 읍치와 창덕역 사이에는 작은 언덕 정도밖에 안되는 分水界가 있었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마치 높은 산줄기가 있는 것처럼 표시되어 있는데, 읍치의 풍수적 명당성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와 관련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밖에 오른쪽 위쪽의 丹津倉 부근과 小西面 부근에 천안의 월경지와 접해 있었던 사실도 본 지도에는 표현되어 있지 않다. (이기봉)

  • 무안현(務安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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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무안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 오른쪽의 岩多山面은 《광여도》에는 巖多面으로 나온다. 그러나 본 지도와 《광여도》의 주기에는 모두 嚴多面으로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무안현 지도에는 지도와 주기 모두 엄다면으로 되어 있다. 《광여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의 엄다면을 글씨가 비슷한 암다면으로 잘못 필사하였고, 본 지도의 필사자 역시 암다면을 암다산면으로 잘못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 아래의 朴谷面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아 역시 본 지도의 필사 시 실수로 빠뜨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본 지도의 문제점 중 하나는 무안현만 그렸기 때문에 다른 고을의 월경지를 이해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아래쪽 木浦鎭의 위쪽에는 나주의 월경지인 三鄕面이 있었는데 본 지도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오른쪽에 2개 표시되어 있는 灵光界도 현재의 무안군 망운면과 운남면에 있었던 영광의 월경지였다. 이 부분은 바다 쪽으로 튀어나간 반도의 모양인데 본 지도만으로는 그러한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다만 영광계를 써넣어 무안현보다 훨씬 북쪽에 있었던 월경지가 이곳에 있었음을 암시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놓았다. 오른쪽 위에서 아래쪽으로 흘러가는 하천은 현재의 영산강 본류이다. 그러나 영산강 본류는 進禮面 오른쪽의 羅州界에서 들어오며, 위쪽의 羅州界에서 흘러오는 하천은 영산강의 지류인 막원천이다. 佐郞面에서 흘러오는 하천은 현재의 함평천으로, 실제로는 咸平界 너머에서 흘러옴에도 이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기봉)

  • 봉화현(奉化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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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봉화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약간 크게 그려져 있고,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게 그리려고 하였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치의 鄕廳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수록되지 않은 것도 있다. 대표적으로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릴 만큼 중요하게 생각한 面 중에서 오른쪽 아래에 있던 南面이 생략되어 있다. 하천의 유로는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확대되고, 사각형에 맞추어지는 과정에서 약간의 변화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거의 동일하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봉화 지역은 행정 경계가 상당히 복잡한 지역이다. 일단 현재의 봉화읍이 자리한 곳은 조선시대에는 안동의 월경지였다. 봉화의 읍치는 현재의 봉성면 봉성리에 있었다. 읍치 오른쪽 아래에 榮川地가 표시되어 있는데, 현재의 명호면 고감리 일대에 있었던 영천의 월경지를 의미한다. 왼쪽 위에 있는 물야면은 현재의 영주시 물야면 가평리 일대에 있었던 봉화의 월경지였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위쪽의 上東面은 현재의 봉화군 춘양면의 운곡천 북쪽 부분에 해당되는 봉화의 월경지였다. 본 지도에는 오른쪽 중간에 安東春陽縣이란 명칭을 적어 넣어 안동의 땅을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하였다. 여기서 안동춘양현은 월래 춘양현이 안동의 속현으로 있다가 안동의 월경지로 편입된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지도 제작 당시에는 안동의 춘양면으로 편제되어 있었다. 봉화 주변에 安東界가 많이 적혀 있는 이유는 이 지역에 안동의 월경지가 많았기 때문이다. 아래쪽으로 禮安縣과 접하고 있음에도 이런 사실이 빠져 있다. 기타 오른쪽의 하천은 현재의 낙동강 본류 최상류이고, 그 왼쪽의 하천들은 내성천으로 흘러간다. (이기봉)

  • 상원군(祥原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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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상원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과 내용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상원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가 달라진 점이 몇 가지 있다. 《해동지도》는 세로보다 가로가 긴 형태로 그렸지만 본 지도는 종이의 크기에 맞추기 위해 세로가 가로보다 더 길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는데, 상원군은 실제로 남북이 동서보다 더 긴 형태를 취하고 있다. 따라서 본 지도보다는 《해동지도》가 실제에 더 부합된다고 할 수 있다. 《해동지도》에는 읍치에 4개의 건물과 명칭이 표시되어 있을 뿐인데, 본 지도에는 8개의 건물과 7개의 명칭이 그려져 있다. 그 이외의 지명 중 《해동지도》에 나오지 않는 지명이 없어 읍치 부분에서만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추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읍치의 크기가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다. 이것은 첫째, 정보가 많이 표시되어 있기 때문이고 둘째, 《해동지도》보다 본 지도책의 크기가 훨씬 작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즉, 정보는 많고, 크기는 작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읍치를 크게 그릴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본 지도의 오류가 몇 군데 보이고 있다. 우선 《해동지도》에 읍치 아래쪽에 표기된 紅岩面이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 홍암면이 적혀 있으므로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래쪽의 三登界는 《해동지도》에 遂安界로 되어 있다. 三登縣의 영역은 대동강의 지류로 현재 남강으로 불리는 오른쪽의 能成江 건너편에만 있었다. 따라서 본 지도가 잘못된 것으로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같은 오류는 《광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어 《광여도》의 필사 역시 꼼꼼하게 점검하면서 필사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기봉)

  • 부평부(富寧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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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부령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보라색 사각형은 본 지도책에서 驛에 적용되던 기호였다. 본 지도에도 懷綏驛에 적용되고 있어 일반적인 경향성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왼쪽에 있는 輸城은 察訪驛임에도 불구하고 노란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 점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수성이 역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가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동지도》의 부령부 지도에 輸城이 驛이라는 정보가 전혀 수록되어 있지 않은 점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수성역은 찰방역이기 때문에 지리지 자료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을 통해 보면 본 지도의 필사 시 《해동지도》만을 참고하였으며, 애매한 것은 필사자의 자의대로 판단한 것으로 생각된다. 읍치 오른쪽에는 노란색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는데, 《광여도》에는 古堡라고 되어 있다. 茂山鎭이 있던 곳으로 이미 후대의 무산부 읍치로 옮겨간 뒤였다. 따라서 본 지도나 《광여도》의 필사 시에 이런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위쪽의 노란색 사각형에 기록된 廢茂山은 폐무산보를 의미한다. 주기에 폐무산보가 북쪽으로 45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폐무산보는 1710년(숙종 36)에 읍치 남쪽 50리로 옮겨가는데, 본 지도에서는 이러한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읍치에서 내려가는 하천은 현재의 수성천으로 실제로는 남류 하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서남류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양근군(楊根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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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근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틀린 점이 있다면 오른쪽 중간 부분에 徐府院破墓와 權判書亭이 《광여도》에는 徐府院君破墓와 權判書峯으로 되어 있는 정도다. 전자는 본 지도가, 후자는 《광여도》가 틀린 것으로 보인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양근군 지도도 본 지도와 거의 동일한 구도와 내용을 담고 있어 상호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에 없는 도로가 있고, 산지와 하천에 대한 표현 방법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해동지도》, 《광여도》, 본 지도 모두 하천의 본류와 지류를 구분하기 어렵게 그려놓았다. 《광여도》에서는 오른쪽 위의 春川江에서 흘러와 아래쪽의 廣州界로 흐르는 북한강을 굵게 표시하여 본류와 지류의 구분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오른쪽 위의 呂江에서 흘러와 왼쪽 아래의 蛇島에서 북한강과 합류되는 남한강은 다른 하천과 구별할 수 없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에서는 북한강 역시 다른 하천의 굵기와 차이를 보이고 있지 않아 본류와 지류의 구분이 더욱 어렵게 되어 있다. 주기의 지지 부분에는 총 8개의 면이 적혀 있지만 본 지도에는 단지 2개의 면만 표시되어 있다. 이것도 《해동지도》의 지도 위에 2개의 면 명칭만 적혀 있는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주기에 적혀 있는 본 지도의 지지 내용은 《광여도》와는 같으나 《해동지도》와는 다르다. (이기봉)

  • 아산현(牙山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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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아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방향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아래쪽에 있는 新昌界의 오른쪽에는 온양과 경계를 접하고 있었기 때문에 溫陽界가 적혀 있어야 한다. 《해동지도》의 아산현 지도에는 온양계가 표시되어 있다. 신창계에 있는 于坪津은 현재 삽교호로 흘러가는 곡교천이다. 이 하천은 동쪽의 天安界에서 흘러온다. 읍치의 입장에서 보면 남쪽에 있었다. 오른쪽 아래의 遠西面은 遠南面의 誤記이다. 水原界 오른쪽의 하천은 현재의 아산만에 있는 안성천이다. 이 하천은 거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가는데 마치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곳에 있는 唐津界는 《해동지도》에 唐津浦로 나오는 것을 잘못 옮긴 것이다.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오는데, 唐津이 근처에 있었던 고을 이름과 같기 때문에 지도 제작자가 착각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위쪽의 平澤界에 있는 하천은 현재의 군계천이다. 이 하천은 읍치 입장에서 보면 동북쪽에 있다. 그런데 본 지도에서는 마치 북쪽에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三北面과 一北面도 北이라는 문자가 들어가 있지만 실제로는 읍치의 동북쪽에 있었다. 방향이나 거리가 정확하지 않은 것은 회화식 군현지도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왼쪽 아래의 貢稅倉은 현재의 인주면 공세리에 있었던 곳으로서 漕倉이었다. 그 왼쪽의 ‘西江漕泊’ 읍치의 서쪽에 있는 西江에 漕運船이 정박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이기봉)

  • 무장현(茂長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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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무장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오른쪽 일동면 부분에 《광여도》에는 있는 托谷面이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 탁곡면이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라 생각된다. 부근에 있는 新木面은 주기에 없는 것이며, 《광여도》에도 동일하다. 본 지도와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무장현 지도에는 신목면이 新木山으로 나온다. 《광여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山을 面으로 잘못 기록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읍치 위쪽의 靑海面은 주기에 海靑面으로 나오며, 이 점은 《광여도》에도 동일하다. 그런데 《해동지도》에는 지도와 주기 모두 청해면으로 나온다. 역시 《광여도》의 필사 시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실수한 것으로 생각되며, 본 지도의 필사자 역시 이 점을 교정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에서는 하천의 표시에서 실제와 다르게 표시된 부분이 있다. 오른쪽 高敞界에서 흘러와 위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인천강이다. 인천강은 현재의 곰소만인 하구 부분에서 무장현의 땅을 지나지만 중류 지역의 대부분은 고창현을 지난다. 그리고 그 상류의 일부가 무장현에서 발원한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인천강이 마치 무장현과 고창현의 경계를 흐르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또한 아래쪽 莊子山面을 흐르는 하천은 현재의 구암천과 와탄천이다. 모두 무장현에서 발원하지만 靈光界를 지나 바다로 들어간다. 본 지도만으로는 이와 같은 사실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동여도》에는 인천강의 오류는 지속되고 있지만, 나머지 부분은 수정되어 있다. (이기봉)

  • 비안현(比安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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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비안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가 북쪽을 위로 향해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또한 《해동지도》가 남북을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동서(세로)를 길게 그렸다. 이 과정에서 전반적인 하천의 유로는 동일하지만 길이가 《해동지도》와 다르게 표현되었다. 아래쪽의 軍威界에서 흘러와 왼쪽의 尙州界로 빠져나가는 것이 현재의 위천이다. 위쪽의 義城界에서 흘러와 위천에 합류하는 하천이 현재의 쌍계천이다. 《해동지도》에는 향교 부분까지의 위천과 쌍계천의 길이가 거의 비슷하게 그려져 있으나 본 지도에는 위천이 훨씬 길게 표현되었다. 이런 변화는 두 지도가 동서와 남북의 길이를 전혀 다르게 그렸기 때문이다. 본 지도의 지도에 표기된 面과 주기에 기록된 面의 명칭이 전혀 다르다. 『여지도서』, 『호구총수』,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비안지도를 참고해 보면 비안현에는 縣內面, 身東面, 定西面, 定東面, 定北面, 內西面, 外西面, 內北面, 外北面 등 9개 면이 있었으며, 《해동지도》의 주기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반면에 《해동지도》의 지도에는 이 중 6개만이 표시되어 있고, 내서면과 외서면이 신서면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의 지도 위에 표시되어 있는 것은 정북면을 정동면이라 기록한 것 이외에는 《해동지도》의 지도와 동일하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주기는 다른 자료를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서흥현(瑞興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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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서흥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완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서흥부는 1671년(현종 12)부터 1762년(영조 38)까지, 1777년(정조 1)부터 1786년(정조 10)까지 縣으로 강등되어 있었다. 본 지도는 縣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강등된 시기에, 《광여도》는 府로 회복된 시기에 필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본 지도가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동지도》에는 서흥현으로 나온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와 大峴山城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의 크기는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다. 따라서 《해동지도》의 비율로 읍치와 대현산성을 그리면 밀집된 정보를 자세하게 수록할 수 없어 상대적으로 크게 그린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와 비교하여 도로가 생략되었고, 문자로만 기록되었던 坊에 노란색 사각형을 첨가하였다. 읍치에 있는 中部坊에 노란색 사각형이 생략되고, 위쪽에 小飛山이 山飛山으로 잘못 적히는 등의 오류도 보이고 있다. 《광여도》에서는 이런 오류가 수정되어 있다. 서흥현의 전체적인 모습은 동서보다 남북이 훨씬 긴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본 지도에는 약간만 긴 정도로 표현되었다. 이것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아니라 《해동지도》 자체에서 시작된 모습이다. 위쪽의 하천은 현재의 황주강 상류이며, 아래쪽은 서흥강에 해당된다. (이기봉)

  • 북청부(北靑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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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북청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와 《광여도》는 《해동지도》의 북청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런 필사 과정에서 전체적인 구도는 별로 변하지 않았지만 내용적으로 생략되거나 잘못 이해된 부분이 있다. 본 지도에는 보라색의 사각형이 1개, 노란색 사각형이 4개 나타나고 있다. 보라색 사각형은 본 지도책에서 驛에 대한 기호로 일관되게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濟仁舘(또는 驛)에만 사용되고 있다.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된 것 중 土城을 제외한 3개도 모두 驛이다. 특히 居山驛은 종6품의 찰방이 파견되어 많은 屬驛을 거느리고 있던 察訪驛이었다. 《광여도》에는 居山이 居川으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하다.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된 土城은 당시에 남아 있던 옛 虛川坪城일 뿐이다. 이런 것을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 《해동지도》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거나 다른 자료를 검토하면서 필사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오른쪽에 적혀 있는 利城 역시 《해동지도》에는 利城界라고 되어 있다. 본 고을의 동쪽에 있었던 利城縣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보면 성곽으로 착각할 수 있다. 위쪽에는 압록강의 지류인 허천강 유역에 있었던 북청부의 땅이 그려져 있다. 현재의 북한 행정구역으로 량강도 김형권군 지역으로서 실제로는 왼쪽의 太白山 쪽의 咸興界까지 걸쳐 있어야 한다. 이러한 오류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으며, 정확성을 중요하게 여긴 《조선지도》의 북청 지도에도 반영되어 있다.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 부분이 상당히 시정되어 있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이기봉)

  • 양성현(陽城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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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에 읍치 위쪽에 표시된 白蓮峯과 大峙가 본 지도에 없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 표현 방식에서는 하천에서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광여도》에는 본 지도와 달리 오른쪽의 하천이 처음부터 끝까지 2개의 실선으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오른쪽의 하천은 현재의 한천으로서 읍치에서 내려가는 하천보다 훨씬 길다. 본 지도의 작성자는 읍치에서 내려오는 하천과 한천을 동일하게 취급하여 합류 지점부터만 2개의 실선으로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더욱이 한천이 마치 松五里面 북쪽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도록 그렸다. 이와 같은 오류는 회화식 군현지도가 읍치 지역을 확대 과장해서 그렸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표현 방법이나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양성현 지도에서는 아래쪽을 바다처럼 표시했는데,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수정되어 있다. 《해동지도》에서 이런 오류가 나타난 것은 본 지도의 왼쪽 아래에 있는 세 개의 면 중 2개가 수원의 경계를 넘어가 서해에 접해 있는 월경지라는 사실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반대로 본 지도에서는 이 세 개의 면이 월경지이며, 2개가 바다에 접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주기에 적혀 있는 면의 거리를 통해 월경지임을 짐작할 수는 있으나 확실하게 이해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이기봉)

  • 아산현(牙山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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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아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방향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아래쪽에 있는 新昌界의 오른쪽에는 온양과 경계를 접하고 있었기 때문에 溫陽界가 적혀 있어야 한다. 《해동지도》의 아산현 지도에는 온양계가 표시되어 있다. 신창계에 있는 于坪津은 현재 삽교호로 흘러가는 곡교천이다. 이 하천은 동쪽의 天安界에서 흘러온다. 읍치의 입장에서 보면 남쪽에 있었다. 오른쪽 아래의 遠西面은 遠南面의 誤記이다. 水原界 오른쪽의 하천은 현재의 아산만에 있는 안성천이다. 이 하천은 거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가는데 마치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곳에 있는 唐津界는 《해동지도》에 唐津浦로 나오는 것을 잘못 옮긴 것이다.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오는데, 唐津이 근처에 있었던 고을 이름과 같기 때문에 지도 제작자가 착각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위쪽의 平澤界에 있는 하천은 현재의 군계천이다. 이 하천은 읍치 입장에서 보면 동북쪽에 있다. 그런데 본 지도에서는 마치 북쪽에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三北面과 一北面도 北이라는 문자가 들어가 있지만 실제로는 읍치의 동북쪽에 있었다. 방향이나 거리가 정확하지 않은 것은 회화식 군현지도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왼쪽 아래의 貢稅倉은 현재의 인주면 공세리에 있었던 곳으로서 漕倉이었다. 그 왼쪽의 ‘西江漕泊’ 읍치의 서쪽에 있는 西江에 漕運船이 정박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이기봉)

  • 무장현(茂長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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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무장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오른쪽 일동면 부분에 《광여도》에는 있는 托谷面이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 탁곡면이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라 생각된다. 부근에 있는 新木面은 주기에 없는 것이며, 《광여도》에도 동일하다. 본 지도와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무장현 지도에는 신목면이 新木山으로 나온다. 《광여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山을 面으로 잘못 기록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읍치 위쪽의 靑海面은 주기에 海靑面으로 나오며, 이 점은 《광여도》에도 동일하다. 그런데 《해동지도》에는 지도와 주기 모두 청해면으로 나온다. 역시 《광여도》의 필사 시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실수한 것으로 생각되며, 본 지도의 필사자 역시 이 점을 교정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에서는 하천의 표시에서 실제와 다르게 표시된 부분이 있다. 오른쪽 高敞界에서 흘러와 위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인천강이다. 인천강은 현재의 곰소만인 하구 부분에서 무장현의 땅을 지나지만 중류 지역의 대부분은 고창현을 지난다. 그리고 그 상류의 일부가 무장현에서 발원한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인천강이 마치 무장현과 고창현의 경계를 흐르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또한 아래쪽 莊子山面을 흐르는 하천은 현재의 구암천과 와탄천이다. 모두 무장현에서 발원하지만 靈光界를 지나 바다로 들어간다. 본 지도만으로는 이와 같은 사실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동여도》에는 인천강의 오류는 지속되고 있지만, 나머지 부분은 수정되어 있다. (이기봉)

  • 비안현(比安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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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비안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가 북쪽을 위로 향해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또한 《해동지도》가 남북을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동서(세로)를 길게 그렸다. 이 과정에서 전반적인 하천의 유로는 동일하지만 길이가 《해동지도》와 다르게 표현되었다. 아래쪽의 軍威界에서 흘러와 왼쪽의 尙州界로 빠져나가는 것이 현재의 위천이다. 위쪽의 義城界에서 흘러와 위천에 합류하는 하천이 현재의 쌍계천이다. 《해동지도》에는 향교 부분까지의 위천과 쌍계천의 길이가 거의 비슷하게 그려져 있으나 본 지도에는 위천이 훨씬 길게 표현되었다. 이런 변화는 두 지도가 동서와 남북의 길이를 전혀 다르게 그렸기 때문이다. 본 지도의 지도에 표기된 面과 주기에 기록된 面의 명칭이 전혀 다르다. 『여지도서』, 『호구총수』,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비안지도를 참고해 보면 비안현에는 縣內面, 身東面, 定西面, 定東面, 定北面, 內西面, 外西面, 內北面, 外北面 등 9개 면이 있었으며, 《해동지도》의 주기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반면에 《해동지도》의 지도에는 이 중 6개만이 표시되어 있고, 내서면과 외서면이 신서면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의 지도 위에 표시되어 있는 것은 정북면을 정동면이라 기록한 것 이외에는 《해동지도》의 지도와 동일하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주기는 다른 자료를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서흥현(瑞興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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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서흥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완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서흥부는 1671년(현종 12)부터 1762년(영조 38)까지, 1777년(정조 1)부터 1786년(정조 10)까지 縣으로 강등되어 있었다. 본 지도는 縣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강등된 시기에, 《광여도》는 府로 회복된 시기에 필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본 지도가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동지도》에는 서흥현으로 나온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와 大峴山城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의 크기는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다. 따라서 《해동지도》의 비율로 읍치와 대현산성을 그리면 밀집된 정보를 자세하게 수록할 수 없어 상대적으로 크게 그린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와 비교하여 도로가 생략되었고, 문자로만 기록되었던 坊에 노란색 사각형을 첨가하였다. 읍치에 있는 中部坊에 노란색 사각형이 생략되고, 위쪽에 小飛山이 山飛山으로 잘못 적히는 등의 오류도 보이고 있다. 《광여도》에서는 이런 오류가 수정되어 있다. 서흥현의 전체적인 모습은 동서보다 남북이 훨씬 긴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본 지도에는 약간만 긴 정도로 표현되었다. 이것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아니라 《해동지도》 자체에서 시작된 모습이다. 위쪽의 하천은 현재의 황주강 상류이며, 아래쪽은 서흥강에 해당된다. (이기봉)

  • 북청부(北靑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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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북청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와 《광여도》는 《해동지도》의 북청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런 필사 과정에서 전체적인 구도는 별로 변하지 않았지만 내용적으로 생략되거나 잘못 이해된 부분이 있다. 본 지도에는 보라색의 사각형이 1개, 노란색 사각형이 4개 나타나고 있다. 보라색 사각형은 본 지도책에서 驛에 대한 기호로 일관되게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濟仁舘(또는 驛)에만 사용되고 있다.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된 것 중 土城을 제외한 3개도 모두 驛이다. 특히 居山驛은 종6품의 찰방이 파견되어 많은 屬驛을 거느리고 있던 察訪驛이었다. 《광여도》에는 居山이 居川으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하다.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된 土城은 당시에 남아 있던 옛 虛川坪城일 뿐이다. 이런 것을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 《해동지도》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거나 다른 자료를 검토하면서 필사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오른쪽에 적혀 있는 利城 역시 《해동지도》에는 利城界라고 되어 있다. 본 고을의 동쪽에 있었던 利城縣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보면 성곽으로 착각할 수 있다. 위쪽에는 압록강의 지류인 허천강 유역에 있었던 북청부의 땅이 그려져 있다. 현재의 북한 행정구역으로 량강도 김형권군 지역으로서 실제로는 왼쪽의 太白山 쪽의 咸興界까지 걸쳐 있어야 한다. 이러한 오류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으며, 정확성을 중요하게 여긴 《조선지도》의 북청 지도에도 반영되어 있다.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 부분이 상당히 시정되어 있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이기봉)

  • 양성현(陽城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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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에 읍치 위쪽에 표시된 白蓮峯과 大峙가 본 지도에 없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 표현 방식에서는 하천에서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광여도》에는 본 지도와 달리 오른쪽의 하천이 처음부터 끝까지 2개의 실선으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오른쪽의 하천은 현재의 한천으로서 읍치에서 내려가는 하천보다 훨씬 길다. 본 지도의 작성자는 읍치에서 내려오는 하천과 한천을 동일하게 취급하여 합류 지점부터만 2개의 실선으로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더욱이 한천이 마치 松五里面 북쪽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도록 그렸다. 이와 같은 오류는 회화식 군현지도가 읍치 지역을 확대 과장해서 그렸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표현 방법이나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양성현 지도에서는 아래쪽을 바다처럼 표시했는데,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수정되어 있다. 《해동지도》에서 이런 오류가 나타난 것은 본 지도의 왼쪽 아래에 있는 세 개의 면 중 2개가 수원의 경계를 넘어가 서해에 접해 있는 월경지라는 사실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반대로 본 지도에서는 이 세 개의 면이 월경지이며, 2개가 바다에 접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주기에 적혀 있는 면의 거리를 통해 월경지임을 짐작할 수는 있으나 확실하게 이해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이기봉)

  • 연기현(燕歧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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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지도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연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에는 왼쪽의 金沙驛이 노란색 사각형만 그려진 채 기록되어 있지 않다. 《광여도》에서는 驛 보라색 사각형으로 표시하는데, 색을 面에 해당되는 노란색으로 칠하면서 역의 이름을 생략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 아래에 있는 釜洞과 白川이 《광여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동일 방향에 생략된 것으로 통해 볼 때 역시 《광여도》 제작자의 실수로 생각된다. 오른쪽 아래의 文義界에서 들어와 왼쪽의 공주계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금강 본류이다. 오른쪽의 淸州界에서 들어와 合江 부근에서 금강에 합류되는 하천이 현재의 미호천이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청주계에서 미호천이 흘러 들어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도록 그려져 있다. 《광여도》의 경우 淸州界란 글씨 위에 하천 줄기가 그려져 있어 미호천이 흘러 들어옴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비슷한 《해동지도》의 연기현 지도에서도 이 부분을 본 지도처럼 표현하였다. 《광여도》가 다른 자료를 통해 《해동지도》의 문제점을 고쳐나간 반면 본 지도는 그대로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오른쪽 아래의 白川은 미호천보다 규모가 훨씬 작은 하천이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미호천보다 더 굵게 그려져 있어 사실과 반대로 오해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이 점은 《광여도》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고 있으며, 《해동지도》에서도 정도는 덜 하지만 비슷하게 표현되어 있다. 하천을 2개의 실선으로 그린 《해동지도》와 달리 본류는 2개의 실선으로, 지류는 1개의 실선으로 그리는 과정에서 문제가 더욱 커진 것으로 추정된다. 南面에 그려진 하천의 경우 원래 公州의 경계를 넘어 금강에 합류된다. 본 지도에는 마치 전 지역이 연기현인 것처럼 착각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이기봉)

  • 무주부(茂州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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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무주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와 몇 가지 지명이 다르게 적혀 있다. 《광여도》에는 가운데 위쪽의 香爐峰이 香爐烽으로, 오른쪽의 倉豊과 未峙는 豊倉과 末峙로 되어 있다. 전체적인 내용과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무주부 지도에는 각각 香爐峯과 豊倉, 朱峙로 되어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광여도》의 필사 시 잘못 베낀 향로봉은 본 지도의 필사 시 수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에 창풍은 풍창의 글자 순서를 잘못 기록하는 오류를 범한 것이며, 미치는 말치를 잘못 읽고 쓴 것이다. 이중 미치와 말치는 《광여도》와 본 지도의 필사 시 모두 원본을 잘못 이해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광여도》를 필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광여도》에 없는 赤裳山城과 致馬峙 등이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해동지도》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도 일부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고을 북쪽으로는 永同, 동북쪽으로는 知禮와 경계를 접하고 있는데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동쪽의 安陰界에서의 安陰은 1767년(영조 43)에 安義로 바뀐다. 왼쪽의 錦山界에서 들어와 위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금강의 본류이다. 아래쪽의 二安面 지역은 현재의 무주군 안성면으로서 금강의 지류 유역에 해당된다. 원래 錦山의 땅이었는데 숙종 때(1675-1720)에 무주로 편입되었다. 지도의 한가운데에는 왕조실록을 보관하고 있던 5대 史庫 중의 하나인 적산산성사고가 표시되어 있다. 璿源閣은 조선 왕조의 왕실 족보를 보관하던 곳이다. (이기봉)

  • 사천현(泗川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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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사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는 가로(남북)가 세로(동서)보다 훨씬 길게 되어 있다. 반면에 본 지도는 세로가 가로보다 훨씬 길게 되어 있다. 가로가 세로보다 짧아졌기 때문에 해안선의 표현이 《해동지도》와 달라지게 되었다. 즉, 《해동지도》에는 해안선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완만한 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본 지도에는 거의 직각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실제의 해안선 모습은 《해동지도》의 것이 훨씬 사실에 가깝다. 이를 통해 세로로 긴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해안선에 대한 왜곡 현상이 나타났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위쪽(동)에서 아래쪽(서)으로 흐르는 하천의 길이가 《해동지도》에 비해 훨씬 길게 그려졌다. 그러나 본류와 지류에 대한 표현은 《해동지도》와 본 지도가 거의 동일하여 필사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위쪽 가운데의 高城界에서 들어오는 현재의 사천강 끝이 얇게 되어 있어 실제를 이해하기 어렵다. 《해동지도》에서는 사천강의 끝을 2개의 실선으로 그려 고성계에서 흘러들어오고 있는 모습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오른쪽 위 지역은 옛 삼천포시에 해당되는 곳으로 조선시대에는 사천과 진주, 고성의 행정 경계가 복잡하게 되어 있었다. 《해동지도》에는 統倉과 歸龍菴 사이에 晋州境, 晋州界, 泗川境 등의 문구를 여러 개 적어 넣어 이런 상황을 반영하려 하였다. 본 지도에서는 이런 문구들을 모두 생략하여 이 지역의 복잡한 행정 경계를 이해하기 어렵게 하였다. 《해동지도》에는 바다 부분에도 晋州海界와 泗川海界를 2개씩 적어 넣어 역시 복잡한 행정 경계를 표현하려고 하였다. 본 지도에는 이 중 2개가 남아 있는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확실하게 이해하고 쓴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본 지도책의 다른 지도에는 面 정보를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할 정도로 중요하게 취급하였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없을 뿐만 아니라 東面을 제외한 면은 모두 생략하였다. 아마 필사 시에 면 정보를 일괄적으로 생략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기본으로 필사되면서 실제 사실에 대해 꼼꼼하게 검토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오류가 발생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기봉)

  • 선천부(宣川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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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선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선천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더 크게 그려져 있다. 읍치에 있는 訓練, 鄕廳 등의 건물은 《해동지도》에는 없던 것이다. 이렇게 추가된 정보를 《해동지도》의 크기보다 훨씬 작은 종이 위에 표시하기 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더 크게 그려진 것으로 생각된다. 읍치 부분에 적혀 있는 동서남북 경계까지의 거리도 《해동지도》에 없던 것이다. 그 외에 왼쪽 아래의 水淸面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지명과 주기가 《해동지도》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面의 표시에서 일부 미숙하게 필사된 부분도 발견되고 있다. 읍치 왼쪽의 新府面에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 않은데, 《광여도》에는 교정되어 있다. 주기에 있으면서 지도에 없는 面으로는 南面이 있다. 그러나 이 南面은 《해동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표시되어 있지 않아 《해동지도》 이후의 필사 시 그 위치를 꼼꼼하게 비정하면서 그리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아래쪽(남)의 바닷가에 있는 섬들은 身彌島를 제외하면 실질적인 크기를 별로 반영하고 있지 않다. 또한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그리려고 하다보니까 해안가로부터 섬까지의 거리가 제대로 반영되어 있지 않다. 지도 전체적으로는 고을의 실제 모습과 상당히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고을의 모습 자체가 세로로 약간 긴 종이의 형태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기봉)

  • 삼수부(三水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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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삼수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와 《광여도》는 모두 《해동지도》의 삼수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는 본 지도나 《광여도》에 비해 세로가 상대적으로 더 길게 되어 있다. 일정한 크기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변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오른쪽 위의 압록강 건너에 있는 지명들은 《해동지도》에는 없다. 그러나 현존하는 《해동지도》에는 이 부분이 오려져 나간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원래 《해동지도》의 지도 부분에는 이 지명들이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해동지도》의 지도와 주기는 제작 연대가 다른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아래쪽에서 발원하여 압록강에 합류되는 하천은 현재의 장진강이다. 이 지역에는 1667년(현종 8)에 堡가 설치되며, 1785년(정조 9)에 鎭으로 승격되고, 1787년(정조 11)에는 府가 된다. 그러나 본 지도는 아직 장진부가 형성되기 이전이므로 1787년 이전의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삼수는 1710년(숙종 36)에 府로 승격되므로 그 이후의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압록강과 장진강을 따라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는데, 모두 군사기지인 鎭堡이다. 그런데 이 진보의 명칭이 잘못된 것이 2개나 보이고 있다. 오른쪽 위의 仁達은 글씨의 모양이 비슷한 仁遮의 誤記이다. 그 왼쪽의 禿陽新茄知는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내용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에 기록된 것이다. 《해동지도》에는 이곳에 禿湯과 新加坡知가 있는데, 본 지도의 필사 시 이것을 합해 기록한 것이다. 《광여도》에는 이러한 지명의 오류가 모두 교정되어 있다. 이런 사실을 통해 볼 때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하였고, 《광여도》가 본 지도를 필사하면서 《해동지도》를 참고하여 오류를 교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 지도는 일반적인 회화식 지도와 달리 읍치가 특별히 확대되어 있지 않고, 고을의 전체 모습이 실제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양주목(楊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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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다만 일부 지역에서 산줄기 등의 표현이 약간 다를 뿐이다. 예를 들어 지도 왼쪽 위의 石積面과 靖嬪墓 사이에 큰 세 개의 산이 그려져 있는데 《광여도》에는 그냥 산줄기 정도로만 표현되어 있다. 오른쪽 아래의 六陵內의 경우도 원이 5개 그려져 있으나 《광여도》에는 11개나 표시되어 있다. 일부 지명의 표시도 달라지고 있다. 아래쪽에 오른쪽(동쪽)에서 왼쪽(서쪽)으로 흐르는 하천이 漢江이다. 한강 동쪽에는 豆音津이 표시되어 있는데, 《광여도》에는 禿音津이라고 되어 있다. 京 오른쪽 방향에 《광여도》에 牛耳川으로 표시된 것이 본 지도에는 生目川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양주는 크게 아래쪽의 중랑천이나 왕숙천 등 한강의 지류 유역과 위쪽의 임진강 지류인 한탄강 유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맨 위쪽에는 한탄강의 명칭이 유래된 大灘이 표시되어 있다. 한탄강은 ‘크다’는 우리말의 ‘한’에다가 ‘여울’의 한자인 ‘灘’을 합친 용어이다. 大灘을 모두 우리말로 하면 ‘한여울’이 된다. 수도인 한양 주변인만큼 陵墓와 書院 등이 즐비하게 있는 고을이었다. 이 지도에도 인문 정보 중 읍치의 여러 시설을 제외하면 두 정보가 가장 자세하게 표시되어 있다. (이기봉)

  • 연기현(燕歧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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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지도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연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에는 왼쪽의 金沙驛이 노란색 사각형만 그려진 채 기록되어 있지 않다. 《광여도》에서는 驛 보라색 사각형으로 표시하는데, 색을 面에 해당되는 노란색으로 칠하면서 역의 이름을 생략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 아래에 있는 釜洞과 白川이 《광여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동일 방향에 생략된 것으로 통해 볼 때 역시 《광여도》 제작자의 실수로 생각된다. 오른쪽 아래의 文義界에서 들어와 왼쪽의 공주계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금강 본류이다. 오른쪽의 淸州界에서 들어와 合江 부근에서 금강에 합류되는 하천이 현재의 미호천이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청주계에서 미호천이 흘러 들어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도록 그려져 있다. 《광여도》의 경우 淸州界란 글씨 위에 하천 줄기가 그려져 있어 미호천이 흘러 들어옴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비슷한 《해동지도》의 연기현 지도에서도 이 부분을 본 지도처럼 표현하였다. 《광여도》가 다른 자료를 통해 《해동지도》의 문제점을 고쳐나간 반면 본 지도는 그대로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오른쪽 아래의 白川은 미호천보다 규모가 훨씬 작은 하천이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미호천보다 더 굵게 그려져 있어 사실과 반대로 오해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이 점은 《광여도》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고 있으며, 《해동지도》에서도 정도는 덜 하지만 비슷하게 표현되어 있다. 하천을 2개의 실선으로 그린 《해동지도》와 달리 본류는 2개의 실선으로, 지류는 1개의 실선으로 그리는 과정에서 문제가 더욱 커진 것으로 추정된다. 南面에 그려진 하천의 경우 원래 公州의 경계를 넘어 금강에 합류된다. 본 지도에는 마치 전 지역이 연기현인 것처럼 착각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이기봉)

  • 무주부(茂州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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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무주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와 몇 가지 지명이 다르게 적혀 있다. 《광여도》에는 가운데 위쪽의 香爐峰이 香爐烽으로, 오른쪽의 倉豊과 未峙는 豊倉과 末峙로 되어 있다. 전체적인 내용과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무주부 지도에는 각각 香爐峯과 豊倉, 朱峙로 되어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광여도》의 필사 시 잘못 베낀 향로봉은 본 지도의 필사 시 수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에 창풍은 풍창의 글자 순서를 잘못 기록하는 오류를 범한 것이며, 미치는 말치를 잘못 읽고 쓴 것이다. 이중 미치와 말치는 《광여도》와 본 지도의 필사 시 모두 원본을 잘못 이해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광여도》를 필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광여도》에 없는 赤裳山城과 致馬峙 등이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해동지도》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도 일부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고을 북쪽으로는 永同, 동북쪽으로는 知禮와 경계를 접하고 있는데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동쪽의 安陰界에서의 安陰은 1767년(영조 43)에 安義로 바뀐다. 왼쪽의 錦山界에서 들어와 위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금강의 본류이다. 아래쪽의 二安面 지역은 현재의 무주군 안성면으로서 금강의 지류 유역에 해당된다. 원래 錦山의 땅이었는데 숙종 때(1675-1720)에 무주로 편입되었다. 지도의 한가운데에는 왕조실록을 보관하고 있던 5대 史庫 중의 하나인 적산산성사고가 표시되어 있다. 璿源閣은 조선 왕조의 왕실 족보를 보관하던 곳이다. (이기봉)

  • 사천현(泗川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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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사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는 가로(남북)가 세로(동서)보다 훨씬 길게 되어 있다. 반면에 본 지도는 세로가 가로보다 훨씬 길게 되어 있다. 가로가 세로보다 짧아졌기 때문에 해안선의 표현이 《해동지도》와 달라지게 되었다. 즉, 《해동지도》에는 해안선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완만한 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본 지도에는 거의 직각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실제의 해안선 모습은 《해동지도》의 것이 훨씬 사실에 가깝다. 이를 통해 세로로 긴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해안선에 대한 왜곡 현상이 나타났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위쪽(동)에서 아래쪽(서)으로 흐르는 하천의 길이가 《해동지도》에 비해 훨씬 길게 그려졌다. 그러나 본류와 지류에 대한 표현은 《해동지도》와 본 지도가 거의 동일하여 필사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위쪽 가운데의 高城界에서 들어오는 현재의 사천강 끝이 얇게 되어 있어 실제를 이해하기 어렵다. 《해동지도》에서는 사천강의 끝을 2개의 실선으로 그려 고성계에서 흘러들어오고 있는 모습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오른쪽 위 지역은 옛 삼천포시에 해당되는 곳으로 조선시대에는 사천과 진주, 고성의 행정 경계가 복잡하게 되어 있었다. 《해동지도》에는 統倉과 歸龍菴 사이에 晋州境, 晋州界, 泗川境 등의 문구를 여러 개 적어 넣어 이런 상황을 반영하려 하였다. 본 지도에서는 이런 문구들을 모두 생략하여 이 지역의 복잡한 행정 경계를 이해하기 어렵게 하였다. 《해동지도》에는 바다 부분에도 晋州海界와 泗川海界를 2개씩 적어 넣어 역시 복잡한 행정 경계를 표현하려고 하였다. 본 지도에는 이 중 2개가 남아 있는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확실하게 이해하고 쓴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본 지도책의 다른 지도에는 面 정보를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할 정도로 중요하게 취급하였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없을 뿐만 아니라 東面을 제외한 면은 모두 생략하였다. 아마 필사 시에 면 정보를 일괄적으로 생략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기본으로 필사되면서 실제 사실에 대해 꼼꼼하게 검토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오류가 발생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기봉)

  • 선천부(宣川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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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선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선천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더 크게 그려져 있다. 읍치에 있는 訓練, 鄕廳 등의 건물은 《해동지도》에는 없던 것이다. 이렇게 추가된 정보를 《해동지도》의 크기보다 훨씬 작은 종이 위에 표시하기 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더 크게 그려진 것으로 생각된다. 읍치 부분에 적혀 있는 동서남북 경계까지의 거리도 《해동지도》에 없던 것이다. 그 외에 왼쪽 아래의 水淸面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지명과 주기가 《해동지도》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面의 표시에서 일부 미숙하게 필사된 부분도 발견되고 있다. 읍치 왼쪽의 新府面에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 않은데, 《광여도》에는 교정되어 있다. 주기에 있으면서 지도에 없는 面으로는 南面이 있다. 그러나 이 南面은 《해동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표시되어 있지 않아 《해동지도》 이후의 필사 시 그 위치를 꼼꼼하게 비정하면서 그리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아래쪽(남)의 바닷가에 있는 섬들은 身彌島를 제외하면 실질적인 크기를 별로 반영하고 있지 않다. 또한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그리려고 하다보니까 해안가로부터 섬까지의 거리가 제대로 반영되어 있지 않다. 지도 전체적으로는 고을의 실제 모습과 상당히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고을의 모습 자체가 세로로 약간 긴 종이의 형태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기봉)

  • 삼수부(三水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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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삼수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와 《광여도》는 모두 《해동지도》의 삼수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는 본 지도나 《광여도》에 비해 세로가 상대적으로 더 길게 되어 있다. 일정한 크기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변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오른쪽 위의 압록강 건너에 있는 지명들은 《해동지도》에는 없다. 그러나 현존하는 《해동지도》에는 이 부분이 오려져 나간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원래 《해동지도》의 지도 부분에는 이 지명들이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해동지도》의 지도와 주기는 제작 연대가 다른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아래쪽에서 발원하여 압록강에 합류되는 하천은 현재의 장진강이다. 이 지역에는 1667년(현종 8)에 堡가 설치되며, 1785년(정조 9)에 鎭으로 승격되고, 1787년(정조 11)에는 府가 된다. 그러나 본 지도는 아직 장진부가 형성되기 이전이므로 1787년 이전의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삼수는 1710년(숙종 36)에 府로 승격되므로 그 이후의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압록강과 장진강을 따라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는데, 모두 군사기지인 鎭堡이다. 그런데 이 진보의 명칭이 잘못된 것이 2개나 보이고 있다. 오른쪽 위의 仁達은 글씨의 모양이 비슷한 仁遮의 誤記이다. 그 왼쪽의 禿陽新茄知는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내용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에 기록된 것이다. 《해동지도》에는 이곳에 禿湯과 新加坡知가 있는데, 본 지도의 필사 시 이것을 합해 기록한 것이다. 《광여도》에는 이러한 지명의 오류가 모두 교정되어 있다. 이런 사실을 통해 볼 때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하였고, 《광여도》가 본 지도를 필사하면서 《해동지도》를 참고하여 오류를 교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 지도는 일반적인 회화식 지도와 달리 읍치가 특별히 확대되어 있지 않고, 고을의 전체 모습이 실제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양주목(楊州牧)(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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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다만 일부 지역에서 산줄기 등의 표현이 약간 다를 뿐이다. 예를 들어 지도 왼쪽 위의 石積面과 靖嬪墓 사이에 큰 세 개의 산이 그려져 있는데 《광여도》에는 그냥 산줄기 정도로만 표현되어 있다. 오른쪽 아래의 六陵內의 경우도 원이 5개 그려져 있으나 《광여도》에는 11개나 표시되어 있다. 일부 지명의 표시도 달라지고 있다. 아래쪽에 오른쪽(동쪽)에서 왼쪽(서쪽)으로 흐르는 하천이 漢江이다. 한강 동쪽에는 豆音津이 표시되어 있는데, 《광여도》에는 禿音津이라고 되어 있다. 京 오른쪽 방향에 《광여도》에 牛耳川으로 표시된 것이 본 지도에는 生目川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양주는 크게 아래쪽의 중랑천이나 왕숙천 등 한강의 지류 유역과 위쪽의 임진강 지류인 한탄강 유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맨 위쪽에는 한탄강의 명칭이 유래된 大灘이 표시되어 있다. 한탄강은 ‘크다’는 우리말의 ‘한’에다가 ‘여울’의 한자인 ‘灘’을 합친 용어이다. 大灘을 모두 우리말로 하면 ‘한여울’이 된다. 수도인 한양 주변인만큼 陵墓와 書院 등이 즐비하게 있는 고을이었다. 이 지도에도 인문 정보 중 읍치의 여러 시설을 제외하면 두 정보가 가장 자세하게 표시되어 있다. (이기봉)

  • 연산현(連山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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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연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왼쪽의 落水菴이 《광여도》에는 水落菴으로 적혀 있다는 정도이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비슷한 《해동지도》의 연산현 지도에는 水落菴으로 되어 있다. 지도 주변에 경계를 맞대고 있는 고을의 명칭 표시가 잘못된 것이 보인다. 연산현은 전라도의 礪山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礪山界가 표시되어 있다. 전라도의 高山과도 거의 경계를 맞대고 있었다고 볼 수 없다. 맞대고 있는 부분은 대둔산 지역 일부로서 올바르게 표시하려면 全州界 오른쪽에 표시되어야 한다. 아래쪽에 본 고을과 멀리 떨어져 있는 全州界가 적혀 있는 것은 현재의 논산시 양촌면에 있었던 전주의 월경지 陽良所面 때문이다. 주기에 보면 북쪽으로 公州와 경계를 맞대고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럼에도 본 지도에는 계룡산 부근에 표시되어야 할 公州界가 없다. 이런 문제점이 나타난 것은 《해동지도》의 연산현 지도에 바탕을 두고 그리면서 도로를 생략시켰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도로의 끝에 고을 경계의 명칭이 적혀 있다. 이것은 경계라는 의미 이외에 해당 도로를 따라가면 표시된 고을의 경계를 만날 수 있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따라서 직접 경계를 맞대고 있는 고을이 아니더라도 ‘○○界’라는 표시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公州처럼 경계를 맞대고 있다 할지라도 공주와 통하는 주요 도로가 지도에 표시되지 않으면 ‘公州界’가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본 지도에서는 방향을 이해하기도 어렵게 되어 있다. 오른쪽의 위의 鷄龍山은 읍치의 거의 정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읍치에서 내려가는 현재의 연산천과 아래쪽에서 위로 흐르는 현재의 논산천이 만나는 지점은 읍치의 거의 정 서쪽에 해당된다. 아래쪽에 全州界라고 적혀 있는 부분은 읍치의 거의 정 남쪽에 해당된다. 오른쪽의 豆麻面은 읍치의 동북쪽에 있다. 본 지도와 같은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동서남북 등의 방향은 대략적인 것일 뿐 정확한 것은 아니다. 오른쪽의 하천은 出口가 표시되어 있지 않다. 실제로는 豆麻面 표시 정도에서 鎭岑 방향으로 흘러나가는 현재의 갑천이다. (이기봉)

  • 보성군(寶城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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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보성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면의 명칭에서 《광여도》와 2개 다른 것이 나타나고 있다. 왼쪽 위의 文田面과 伐如面이 《광여도》에는 積田面과 代如面으로 되어 있다. 이 중 전자는 본 지도와 주기 모두 기존의 글자를 지우고 후에 교정한 흔적이 보인다. 김정호의 《동여도》에는 문전면으로 나온다. 벌여면은 주기에는 岱如面으로 나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代’를 ‘伐’로 착각하여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표현 양식에서 약간 다르나 전체적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한 《해동지도》의 보성군 지도에도 대여면으로 나온다. 본 지도에서 가장 잘못된 것은 맨 아래쪽에 海倉이 있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해동지도》에 바다에 접한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광여도》에는 바다 부분이 갑자기 2개의 실선으로 표시되어 마치 하천처럼 바뀌었다. 본 지도에 이르러서는 오른쪽에서 발원하여 왼쪽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실제로는 《해동지도》가 옳기 때문에 《광여도》와 본 지도로 필사되면서 잘못 이해된 과정을 잘 엿볼 수 있다. 오른쪽 위로 흘러나가는 하천은 현재의 보성강이다. 그러나 이 보성강의 유로에서 세 지도 모두 오류를 범하고 있다. 보성강의 본류는 위쪽 蘆洞面 방향의 장흥 경계 너머에서 흘러와야 한다. 읍치 아래쪽 역시 왼쪽의 장흥 경계 너머에서 흘러와야 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호남지도》의 보성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는 이런 사실 중 전자가 사실처럼 교정되어 있다. 이런 오류를 범한 이유는 고을 전체를 산줄기에 의해 둘러싸인 모습으로 그리려는 욕구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본 지도책의 다른 회화식 군현 지도에서도 이런 식으로 그리는 예가 많다. (이기봉)

  • 산음현(山陰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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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산음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가 읍치를 상대적으로 훨씬 크게 그렸으며, 가로(동서)의 폭을 더 넓게 하였다. 이 과정에서 하천과 산줄기의 흐름에 일부 변화가 나타났으나 기본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하천의 흐름에 대해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읍치 왼쪽의 鏡湖水는 현재 경호강으로 불리는 남강의 상류이며, 위쪽(북)의 함양 땅으로부터 들어온다. 《해동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약간 애매하기는 하지만 실제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에서는 함양과의 북쪽 경계선을 모두 산줄기로 처리하여 경호강이 함양으로부터 들어온다는 사실 자체를 이해할 수 없게 하였다. 軍器 등 읍치에 있는 지명 몇 개를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 수록된 지명에는 여러 오류가 발견되고 있다. 읍치 오른쪽에 있는 正谷里는 正谷驛을 잘못 옮긴 것이다. 본 지도 위의 里는 다른 군현의 面과 같은 것으로서 보통은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였다. 정곡리에 노란색이 칠해져 있지 않다. 읍치 위쪽의 金谷里는 釜谷里의 오기이며, 《해동지도》에 나오는 生林里가 본 지도에 생략되어 있다. 본 지도의 주기에는 두 지명이 모두 올바르게 나오고 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며, 필사 과정에서 여러 오류가 범해진 것으로 생각된다. 기타 山陰縣은 1767년(영조 43)에 山淸縣으로 명칭이 바뀌기 때문에 본 지도는 그 이전에 필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기봉)

  • 성천부(成川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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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성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성천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본 지도의 필사 시 여러 부분에서 잘못을 범하고 있다. 왼쪽 아래의 慈山界에서 들어와 아래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대동강 본류이다. 오른쪽 아래의 谷山界에서 들어와 왼쪽으로 흘러가는 하천이 대동강의 지류인 현재의 남강이다. 대동강 본류와 남강 사이에는 江東과 三登의 땅이 넓게 포진해 있지만 본 지도에는 아주 작은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와 같은 표현 방식은 본 지도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해동지도》에서부터 이루어진 것이다. 오른쪽 위의 陽德界에서 흘러와 대동강에 합류하는 하천이 비류강이다. 비류강과 대동강 본류 및 남강은 실제로 규모가 비슷하며, 《해동지도》에도 비슷한 굵기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본 지도의 필사 시 대동강과 남강을 2개의 실선으로 그리고, 비류강은 단지 1개의 실선으로만 그려 실제 사실을 착각할 수 있게 그렸다. 더 나아가 양덕계 부근의 비류강 끝을 얇아지는 형태로 그려 이곳이 발원지인 것처럼 오해할 수 있도록 그렸다. 《광여도》에서는 양덕계 부근이 발원지인 듯이 표현을 고쳤을 뿐 나머지 부분은 본 지도와 거의 동일하게 되어 있다. 지명 표기에서도 오류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을 들면 우선 위쪽의 朔面과 왼쪽 아래의 柳洞面에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다. 또한 왼쪽의 藍田面 부근에 泉谷面이 생략되어 있다. 《광여도》에서는 이 중 전자는 교정되어 있지만 후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읍치에 있는 上衙는 《해동지도》의 上部를 잘못 적은 것이다. 《광여도》에는 이것이 上部面으로 교정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해동지도》에는 위쪽에 있는 北倉 왼쪽으로 성곽 표시가 되어 있다. 본 지도에서는 성곽을 2줄의 실선으로 표시했는데, 하천과 혼돈을 일으킬 수 있는 형태로 그려져 있다. 《광여도》에서는 이것을 하천과 동일한 양식으로 그려 성곽이라는 정보의 성격이 완전히 변화되어 있다. (이기봉)

  • 삼척부(三陟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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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삼척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아래쪽에는 面의 기호인 노란색 사각형만 그려져 있고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 것이 보인다. 이곳에는 德彬面이 적혀 있어야 하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급하게 서두르다 실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실수는 지명을 잘못 적어놓은 곳에서도 발견된다. 왼쪽 가운데의 武陵界는 武陵溪를, 더 아래쪽의 昔池는 黃池를 잘못 적어놓은 것이다.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에는 모두 제대로 되어 있으며, 《광여도》 역시 올바르게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에는 대부분의 하천이 서류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읍치 아래쪽의 五十川과 交柯驛을 흐르는 하천은 거의 北流하다 바다 부근에서만 약간 東流하여 빠져나간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삼척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런 부분이 많이 시정되었지만 거의 북류에 가까운 것을 동북류 정도로 표현하고 있다. 왼쪽 아래에 昔池(黃池)는 낙동강의 발원지로 알려져 있다. 그 부근에 있는 ‘安東春陽去路’는 ‘안동의 춘양면으로 가는 길’이라는 뜻이다. 안동의 본 영역은 삼척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았으나 월경지인 춘양면이 경계를 맞대고 있었기 때문에 적힌 것이다. 왼쪽의 長生面은 현재의 삼척시 하장면으로 남한강 유역에 속해 있었다. (이기봉)

  • 양지현(陽智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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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지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오른쪽 아래의 蹄村面 위쪽에 《광여도》에 있는 朴谷面과 高安面이 본 지도에서는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는 두 면의 명칭이 적혀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작성자가 실수로 빠뜨린 것으로 추정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양지현 지도도 표현 방법이나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하다. 《광여도》와 본 지도는 《해동지도》의 내용을 바탕으로 필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무조건 베낀 것은 아니며 일부에서는 《해동지도》가 틀린 부분을 보충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곳이 왼쪽 중간에 海谷里 방향에서 나와 북류하는 하천으로 《해동지도》에는 없던 것을 후에 보충하였다. 양지는 조선 초기에 서로 분리되어 있던 5개의 部曲과 1개의 鄕을 합해 하나의 고을로 만든 것이다. 이에 따라 월경지가 많이 형성되었고, 본 지도에도 이런 월경지가 실제와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오른쪽 아래는 남한강의 지류인 청미천 유역인데 이곳의 3개 面은 죽산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이다. 지도에도 읍치와 이곳 사이에 竹山이란 명칭을 여러 개 써넣어 이런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왼쪽 아래에 古北面을 포함한 4개의 면은 안성천의 지류인 한천 유역에 있었다. 이곳은 용인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에 가까운데 본 지도에도 중간에 龍仁界를 적어 넣어 이런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왼쪽 위의 하천은 팔당댐에서 한강에 합류되는 현재의 경안천 상류이고, 오른쪽은 여주에서 남한강에 합류하는 현재의 복하천 상류이다. (이기봉)

  • 연산현(連山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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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연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왼쪽의 落水菴이 《광여도》에는 水落菴으로 적혀 있다는 정도이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비슷한 《해동지도》의 연산현 지도에는 水落菴으로 되어 있다. 지도 주변에 경계를 맞대고 있는 고을의 명칭 표시가 잘못된 것이 보인다. 연산현은 전라도의 礪山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礪山界가 표시되어 있다. 전라도의 高山과도 거의 경계를 맞대고 있었다고 볼 수 없다. 맞대고 있는 부분은 대둔산 지역 일부로서 올바르게 표시하려면 全州界 오른쪽에 표시되어야 한다. 아래쪽에 본 고을과 멀리 떨어져 있는 全州界가 적혀 있는 것은 현재의 논산시 양촌면에 있었던 전주의 월경지 陽良所面 때문이다. 주기에 보면 북쪽으로 公州와 경계를 맞대고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럼에도 본 지도에는 계룡산 부근에 표시되어야 할 公州界가 없다. 이런 문제점이 나타난 것은 《해동지도》의 연산현 지도에 바탕을 두고 그리면서 도로를 생략시켰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도로의 끝에 고을 경계의 명칭이 적혀 있다. 이것은 경계라는 의미 이외에 해당 도로를 따라가면 표시된 고을의 경계를 만날 수 있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따라서 직접 경계를 맞대고 있는 고을이 아니더라도 ‘○○界’라는 표시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公州처럼 경계를 맞대고 있다 할지라도 공주와 통하는 주요 도로가 지도에 표시되지 않으면 ‘公州界’가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본 지도에서는 방향을 이해하기도 어렵게 되어 있다. 오른쪽의 위의 鷄龍山은 읍치의 거의 정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읍치에서 내려가는 현재의 연산천과 아래쪽에서 위로 흐르는 현재의 논산천이 만나는 지점은 읍치의 거의 정 서쪽에 해당된다. 아래쪽에 全州界라고 적혀 있는 부분은 읍치의 거의 정 남쪽에 해당된다. 오른쪽의 豆麻面은 읍치의 동북쪽에 있다. 본 지도와 같은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동서남북 등의 방향은 대략적인 것일 뿐 정확한 것은 아니다. 오른쪽의 하천은 出口가 표시되어 있지 않다. 실제로는 豆麻面 표시 정도에서 鎭岑 방향으로 흘러나가는 현재의 갑천이다. (이기봉)

  • 보성군(寶城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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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보성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면의 명칭에서 《광여도》와 2개 다른 것이 나타나고 있다. 왼쪽 위의 文田面과 伐如面이 《광여도》에는 積田面과 代如面으로 되어 있다. 이 중 전자는 본 지도와 주기 모두 기존의 글자를 지우고 후에 교정한 흔적이 보인다. 김정호의 《동여도》에는 문전면으로 나온다. 벌여면은 주기에는 岱如面으로 나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代’를 ‘伐’로 착각하여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표현 양식에서 약간 다르나 전체적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한 《해동지도》의 보성군 지도에도 대여면으로 나온다. 본 지도에서 가장 잘못된 것은 맨 아래쪽에 海倉이 있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해동지도》에 바다에 접한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광여도》에는 바다 부분이 갑자기 2개의 실선으로 표시되어 마치 하천처럼 바뀌었다. 본 지도에 이르러서는 오른쪽에서 발원하여 왼쪽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실제로는 《해동지도》가 옳기 때문에 《광여도》와 본 지도로 필사되면서 잘못 이해된 과정을 잘 엿볼 수 있다. 오른쪽 위로 흘러나가는 하천은 현재의 보성강이다. 그러나 이 보성강의 유로에서 세 지도 모두 오류를 범하고 있다. 보성강의 본류는 위쪽 蘆洞面 방향의 장흥 경계 너머에서 흘러와야 한다. 읍치 아래쪽 역시 왼쪽의 장흥 경계 너머에서 흘러와야 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호남지도》의 보성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는 이런 사실 중 전자가 사실처럼 교정되어 있다. 이런 오류를 범한 이유는 고을 전체를 산줄기에 의해 둘러싸인 모습으로 그리려는 욕구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본 지도책의 다른 회화식 군현 지도에서도 이런 식으로 그리는 예가 많다. (이기봉)

  • 산음현(山陰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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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산음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가 읍치를 상대적으로 훨씬 크게 그렸으며, 가로(동서)의 폭을 더 넓게 하였다. 이 과정에서 하천과 산줄기의 흐름에 일부 변화가 나타났으나 기본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하천의 흐름에 대해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읍치 왼쪽의 鏡湖水는 현재 경호강으로 불리는 남강의 상류이며, 위쪽(북)의 함양 땅으로부터 들어온다. 《해동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약간 애매하기는 하지만 실제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에서는 함양과의 북쪽 경계선을 모두 산줄기로 처리하여 경호강이 함양으로부터 들어온다는 사실 자체를 이해할 수 없게 하였다. 軍器 등 읍치에 있는 지명 몇 개를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 수록된 지명에는 여러 오류가 발견되고 있다. 읍치 오른쪽에 있는 正谷里는 正谷驛을 잘못 옮긴 것이다. 본 지도 위의 里는 다른 군현의 面과 같은 것으로서 보통은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였다. 정곡리에 노란색이 칠해져 있지 않다. 읍치 위쪽의 金谷里는 釜谷里의 오기이며, 《해동지도》에 나오는 生林里가 본 지도에 생략되어 있다. 본 지도의 주기에는 두 지명이 모두 올바르게 나오고 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며, 필사 과정에서 여러 오류가 범해진 것으로 생각된다. 기타 山陰縣은 1767년(영조 43)에 山淸縣으로 명칭이 바뀌기 때문에 본 지도는 그 이전에 필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기봉)

  • 성천부(成川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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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성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성천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본 지도의 필사 시 여러 부분에서 잘못을 범하고 있다. 왼쪽 아래의 慈山界에서 들어와 아래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대동강 본류이다. 오른쪽 아래의 谷山界에서 들어와 왼쪽으로 흘러가는 하천이 대동강의 지류인 현재의 남강이다. 대동강 본류와 남강 사이에는 江東과 三登의 땅이 넓게 포진해 있지만 본 지도에는 아주 작은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와 같은 표현 방식은 본 지도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해동지도》에서부터 이루어진 것이다. 오른쪽 위의 陽德界에서 흘러와 대동강에 합류하는 하천이 비류강이다. 비류강과 대동강 본류 및 남강은 실제로 규모가 비슷하며, 《해동지도》에도 비슷한 굵기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본 지도의 필사 시 대동강과 남강을 2개의 실선으로 그리고, 비류강은 단지 1개의 실선으로만 그려 실제 사실을 착각할 수 있게 그렸다. 더 나아가 양덕계 부근의 비류강 끝을 얇아지는 형태로 그려 이곳이 발원지인 것처럼 오해할 수 있도록 그렸다. 《광여도》에서는 양덕계 부근이 발원지인 듯이 표현을 고쳤을 뿐 나머지 부분은 본 지도와 거의 동일하게 되어 있다. 지명 표기에서도 오류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을 들면 우선 위쪽의 朔面과 왼쪽 아래의 柳洞面에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다. 또한 왼쪽의 藍田面 부근에 泉谷面이 생략되어 있다. 《광여도》에서는 이 중 전자는 교정되어 있지만 후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읍치에 있는 上衙는 《해동지도》의 上部를 잘못 적은 것이다. 《광여도》에는 이것이 上部面으로 교정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해동지도》에는 위쪽에 있는 北倉 왼쪽으로 성곽 표시가 되어 있다. 본 지도에서는 성곽을 2줄의 실선으로 표시했는데, 하천과 혼돈을 일으킬 수 있는 형태로 그려져 있다. 《광여도》에서는 이것을 하천과 동일한 양식으로 그려 성곽이라는 정보의 성격이 완전히 변화되어 있다. (이기봉)

  • 삼척부(三陟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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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삼척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아래쪽에는 面의 기호인 노란색 사각형만 그려져 있고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 것이 보인다. 이곳에는 德彬面이 적혀 있어야 하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급하게 서두르다 실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실수는 지명을 잘못 적어놓은 곳에서도 발견된다. 왼쪽 가운데의 武陵界는 武陵溪를, 더 아래쪽의 昔池는 黃池를 잘못 적어놓은 것이다.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에는 모두 제대로 되어 있으며, 《광여도》 역시 올바르게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에는 대부분의 하천이 서류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읍치 아래쪽의 五十川과 交柯驛을 흐르는 하천은 거의 北流하다 바다 부근에서만 약간 東流하여 빠져나간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삼척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런 부분이 많이 시정되었지만 거의 북류에 가까운 것을 동북류 정도로 표현하고 있다. 왼쪽 아래에 昔池(黃池)는 낙동강의 발원지로 알려져 있다. 그 부근에 있는 ‘安東春陽去路’는 ‘안동의 춘양면으로 가는 길’이라는 뜻이다. 안동의 본 영역은 삼척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았으나 월경지인 춘양면이 경계를 맞대고 있었기 때문에 적힌 것이다. 왼쪽의 長生面은 현재의 삼척시 하장면으로 남한강 유역에 속해 있었다. (이기봉)

  • 양지현(陽智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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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지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오른쪽 아래의 蹄村面 위쪽에 《광여도》에 있는 朴谷面과 高安面이 본 지도에서는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는 두 면의 명칭이 적혀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작성자가 실수로 빠뜨린 것으로 추정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양지현 지도도 표현 방법이나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하다. 《광여도》와 본 지도는 《해동지도》의 내용을 바탕으로 필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무조건 베낀 것은 아니며 일부에서는 《해동지도》가 틀린 부분을 보충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곳이 왼쪽 중간에 海谷里 방향에서 나와 북류하는 하천으로 《해동지도》에는 없던 것을 후에 보충하였다. 양지는 조선 초기에 서로 분리되어 있던 5개의 部曲과 1개의 鄕을 합해 하나의 고을로 만든 것이다. 이에 따라 월경지가 많이 형성되었고, 본 지도에도 이런 월경지가 실제와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오른쪽 아래는 남한강의 지류인 청미천 유역인데 이곳의 3개 面은 죽산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이다. 지도에도 읍치와 이곳 사이에 竹山이란 명칭을 여러 개 써넣어 이런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왼쪽 아래에 古北面을 포함한 4개의 면은 안성천의 지류인 한천 유역에 있었다. 이곳은 용인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에 가까운데 본 지도에도 중간에 龍仁界를 적어 넣어 이런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왼쪽 위의 하천은 팔당댐에서 한강에 합류되는 현재의 경안천 상류이고, 오른쪽은 여주에서 남한강에 합류하는 현재의 복하천 상류이다. (이기봉)

  • 연풍현(延豊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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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연풍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연풍현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가 본 지도와 비슷하나 내용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다. 《해동지도》의 산세 표현 방식이 본 지도나 《광여도》와 다르다. 읍치 왼쪽 위의 龍湫와 오른쪽 아래의 覺淵寺 등은 《광여도》와 본 지도에는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있으면서 본 지도와 《광여도》에 없는 것도 있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하며, 《해동지도》와도 별로 다르지는 않다. 본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의 산세가 동쪽에서 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위쪽의 鳥嶺城門 주위의 봉우리는 굉장히 험준하게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서도 험준하게 표현되어 있지만 상대적으로 본 지도와 《광여도》가 더 험준하게 표현하였다. 鳥嶺의 관문으로서의 성격을 더 부각시켜 보여주려 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도의 위쪽 여백에는 연풍현의 옛 명칭과 충청좌도에 속한다는 ‘左’, 오른쪽 여백에는 한양에서 4일 걸린다는 ‘四日’ 등이 표시되어 있다. 이런 표시는 《광여도》나 《해동지도》 어디에도 없던 것으로서 이 지도의 이용자들이 필요로 했던 정보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기봉)

  • 부안현(扶安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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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부안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광여도》에 비해 面을 비롯하여 여러 지명이 생략되어 있으며, 지명의 위치도 다르게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생략된 面의 이름으로는 맨 위쪽부터 上東面, 西道面, 立上面, 立下面 등이 있다. 모두 주기에 나오는 면의 명칭이기 때문에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광여도》를 필사하면서 빠뜨린 것으로 생각된다. 지명의 위치가 바뀐 面으로는 下東面, 一道面, 所山面, 乾先面 등이 있다. 이밖에 사찰의 위치도 상당히 잘못 되어 있다. 위쪽의 東津院 부분에 있었던 上東面이 《광여도》에는 旨東面으로 적혀 있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부안현 지도에는 상동면으로 제대로 적혀 있다. 《광여도》의 필사 시 역시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오류를 범한 것이다. 《광여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잘못 필사한 대표적인 것으로는 오른쪽과 위쪽의 하천에 대한 표현이다. 오른쪽의 하천은 현재의 고부천으로 부안, 김제, 고부의 경계선에서 동진강과 합류된다. 《해동지도》에는 이러한 사실이 잘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광여도》로 오면서 고부천이 동진강과 연결되지 않게 그려졌다. 더 나아가 본 지도에서는 맨 위쪽의 동진강을 하나의 선으로만 표시하고, 고부천은 2개의 실선으로 표시하여 더욱 혼란스럽게 되었다. 고부천의 서쪽에도 고부의 땅이 일부 있었다. 《해동지도》에는 古阜界가 고부천 서쪽에 표시되어 이런 사실을 일부 반영하고 있지만, 본 지도에는 고부천의 동쪽에 적혀 있다. 기타 왼쪽 아래에 적혀 있는 蝟島와 上下王登島는 실제의 위치를 반영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는 위도가 해안선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하며, 상하왕등도 역시 위도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섬의 경우 대략적인 방향만 표시하는 경우가 많다. 본 지도에 표현된 다른 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여지도서』의 부안현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여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삼가현(三嘉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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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삼가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는 가로(동서)를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세로(남북)를 길게 그렸다. 그러나 하천의 유로라는 차원에서 비교하면 두 지도는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서는 하천의 유로에서 하나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아래쪽의 하천은 남강으로 흘러가는 현재의 양천 상류이고, 위쪽의 하천은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황강의 중류 부분이다. 황강은 위쪽 왼쪽의 陜川界에서 흘러와 오른쪽의 界山里를 거쳐 빠져나간다. 왼쪽의 神旨里에서 흘러와 황강에 합류되는 하천은 현재의 신원천이다. 본 지도에는 이 신원천이 서쪽의 山陰界 너머에서 흘러온 것처럼 그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산음과의 경계선이 발원지이다.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처럼 분명하게 오류를 범하고 있지는 않으나 山陰界 너머에서 흘러오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이런 《해동지도》의 내용을 잘못 이해하여 오류를 범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특히 본 지도에서는 황강 본류와 그 지류인 신원천을 《해동지도》보다도 더 구별하기 어렵게 표현하였다. 황강은 북쪽에서 흘러와 동쪽으로 빠져나가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렇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해동지도》를 실제와 비교하지 않고 필사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는 첫째,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렸다. 둘째, 남북으로 긴 고을의 모습을 동서가 길게 그렸다. 읍치의 입장에서 보면 황강 유역은 서북쪽으로 튀어나가 있는데, 지도에는 마치 북쪽 방향에 있는 것처럼 그렸다. 이 과정에서 황강의 유로에 대한 왜곡이 발생한 것이다. 본 지도는 실제 모습을 검토하지 않고 《해동지도》에 기반하면서 세로만 길게 그렸기 때문에 황강의 유로가 더욱 왜곡되게 된 것이다. 본 지도 위에는 5개의 면이 표시되어 있지만 주기에는 이런 면의 명칭이 전혀 없다. 이런 문제점도 《해동지도》를 꼼꼼하게 검토하지 않고 필사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의 지도 위에 있는 面의 명칭은 후에 주기에 적힌 里의 명칭으로 개칭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송화현(松禾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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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송화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방식에서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송화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해동지도》가 북쪽을 위로 향해 그린 반면 본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해동지도》에 동서가 남북보다 길게 그려진 것을 본 지도처럼 세로로 긴 사각형에 맞추기 위해 방향을 바꾼 것으로 생각된다. 필사 과정에서 읍치 지역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다. 또한 문자로만 기록되어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을 추가하였다. 그러나 추가 과정에서 정밀하게 하지 않은 측면도 보이고 있다. 우선 面과 坊이 혼재되어 사용되고 있다. 보통은 面이라고 했으며, 황해도와 평안도 등의 지역에서 坊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었다. 《해동지도》에는 지도에는 모두 坊으로, 주기에는 모두 面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의 주기에도 모두 面으로 되어 있어 필사 시에 혼돈을 일으킬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광여도》에는 《해동지도》처럼 지도에는 모두 坊으로, 주기에는 모두 面으로 기록하였다. 方竹筒에는 坊이나 面이라는 글자가 생략되어 있기도 하다. 본 지도의 전체적인 모습은 송화현의 실제 형태와 거의 닮지 않았다. 송화현은 서북-동남 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다만 방향이나 거리의 정확성을 바라지 않고 산줄기와 물줄기, 그리고 지명을 비교하면 대체적으로 실제와 부합되고 있다. (이기봉)

  • 안변부(安邊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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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안변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와 《광여도》는 《해동지도》의 안변부 지도를 필사한 동일 계통의 지도라고 생각된다. 본 지도에는 사각형이 보라색과 노란색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보라색과 노란색으로 되어 있는 지명은 모두 驛이다. 이 중 高山驛이 종6품의 찰방이 파견된 찰방역이며, 그 나머지는 모두 고산역에 딸린 屬驛이다. 그런데 노란색으로 된 것은 남산역과 사등역이고, 다른 3가지는 보라색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어떤 근거를 통해 이런 구분을 했는지 분명하지 않다. 《광여도》에는 南山驛만 노란색으로 되어 있고 나머지는 모두 보라색으로 되어 있다. 《해동지도》의 지도에는 高山과 南山이 驛이라는 정보가 없다. 본 지도책의 함경도 군현 지도에서는 이런 정보가 없을 경우 그대로 필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만 본 지도의 주기에는 站의 명칭이 적혀 있고, 거기에 高山站과 南山站이 나온다. 본 지도의 필사 시 이 정보를 바탕으로 驛으로 인식한 것이 아닌가 한다. 주기에 나오는 鐵關站은 《해동지도》의 지도 위에 표시되어 있지 않아 본 지도의 필사자도 베끼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는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로 뻗은 산줄기가 남쪽으로부터 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위쪽(남)에는 臨津江源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현재의 법동군 지역으로서 유로의 방향이 약간 잘못되긴 했지만 유역의 입장에서는 사실에 부합된다. 동해로 빠지는 하천과 임진강의 分水界 부근에 伊川界가 적혀 있다. 이것은 伊川의 땅이 이곳에 깊숙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발원하는 현재의 고미탄천은 평강의 땅을 거쳐 이천에서 임진강과 합류된다. 왼쪽의 淮陽界 방면은 북한강의 최상류에 해당된다. 비록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적인 하천의 유로 등은 사실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는 편이다. (이기봉)

  • 양천현(陽川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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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위쪽의 成峯은 《광여도》에 烽으로, 아래쪽의 馬上은 《광여도》에 馬山으로, 오른쪽 아래의 岩之山은 《광여도》에 嚴之山으로 표시되어 있다. 모두 후자가 타당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양천현 지도도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산이 고립되어 그려지던 것이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連脈式으로 바뀌어 있다. 이러한 연맥식 표현은 《광여도》와 본 지도책에서 일관되게 적용되는 방식으로 산에 대한 표현 방식이 지도마다 약간씩 다른 《해동지도》보다 통일적인 방식으로 지도를 그렸다고 볼 수 있다. 지도 맨 아래쪽에 있는 하천은 현재의 안양천이다. 마치 葛誕山 부근에서 발원되는 것처럼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금천 방향의 훨씬 상류에서 발원한다. 이와 같은 잘못된 표현은 《해동지도》에서는 더욱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해당 고을에서 그려 올린 것이 거의 분명한 ‘1872년 지방지도’의 양천현지도 에서도 이와 같은 오류는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해당 고을에서는 이와 같이 그려도 실제 상황을 이해하는데 큰 문제가 없지만 중앙에서 다시 전사될 경우에는 오해할 가능성이 많다. (이기봉)

  • 연풍현(延豊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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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연풍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연풍현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가 본 지도와 비슷하나 내용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다. 《해동지도》의 산세 표현 방식이 본 지도나 《광여도》와 다르다. 읍치 왼쪽 위의 龍湫와 오른쪽 아래의 覺淵寺 등은 《광여도》와 본 지도에는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있으면서 본 지도와 《광여도》에 없는 것도 있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하며, 《해동지도》와도 별로 다르지는 않다. 본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의 산세가 동쪽에서 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위쪽의 鳥嶺城門 주위의 봉우리는 굉장히 험준하게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서도 험준하게 표현되어 있지만 상대적으로 본 지도와 《광여도》가 더 험준하게 표현하였다. 鳥嶺의 관문으로서의 성격을 더 부각시켜 보여주려 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도의 위쪽 여백에는 연풍현의 옛 명칭과 충청좌도에 속한다는 ‘左’, 오른쪽 여백에는 한양에서 4일 걸린다는 ‘四日’ 등이 표시되어 있다. 이런 표시는 《광여도》나 《해동지도》 어디에도 없던 것으로서 이 지도의 이용자들이 필요로 했던 정보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기봉)

  • 부안현(扶安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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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부안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광여도》에 비해 面을 비롯하여 여러 지명이 생략되어 있으며, 지명의 위치도 다르게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생략된 面의 이름으로는 맨 위쪽부터 上東面, 西道面, 立上面, 立下面 등이 있다. 모두 주기에 나오는 면의 명칭이기 때문에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광여도》를 필사하면서 빠뜨린 것으로 생각된다. 지명의 위치가 바뀐 面으로는 下東面, 一道面, 所山面, 乾先面 등이 있다. 이밖에 사찰의 위치도 상당히 잘못 되어 있다. 위쪽의 東津院 부분에 있었던 上東面이 《광여도》에는 旨東面으로 적혀 있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부안현 지도에는 상동면으로 제대로 적혀 있다. 《광여도》의 필사 시 역시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오류를 범한 것이다. 《광여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잘못 필사한 대표적인 것으로는 오른쪽과 위쪽의 하천에 대한 표현이다. 오른쪽의 하천은 현재의 고부천으로 부안, 김제, 고부의 경계선에서 동진강과 합류된다. 《해동지도》에는 이러한 사실이 잘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광여도》로 오면서 고부천이 동진강과 연결되지 않게 그려졌다. 더 나아가 본 지도에서는 맨 위쪽의 동진강을 하나의 선으로만 표시하고, 고부천은 2개의 실선으로 표시하여 더욱 혼란스럽게 되었다. 고부천의 서쪽에도 고부의 땅이 일부 있었다. 《해동지도》에는 古阜界가 고부천 서쪽에 표시되어 이런 사실을 일부 반영하고 있지만, 본 지도에는 고부천의 동쪽에 적혀 있다. 기타 왼쪽 아래에 적혀 있는 蝟島와 上下王登島는 실제의 위치를 반영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는 위도가 해안선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하며, 상하왕등도 역시 위도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섬의 경우 대략적인 방향만 표시하는 경우가 많다. 본 지도에 표현된 다른 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여지도서』의 부안현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여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삼가현(三嘉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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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삼가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는 가로(동서)를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세로(남북)를 길게 그렸다. 그러나 하천의 유로라는 차원에서 비교하면 두 지도는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서는 하천의 유로에서 하나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아래쪽의 하천은 남강으로 흘러가는 현재의 양천 상류이고, 위쪽의 하천은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황강의 중류 부분이다. 황강은 위쪽 왼쪽의 陜川界에서 흘러와 오른쪽의 界山里를 거쳐 빠져나간다. 왼쪽의 神旨里에서 흘러와 황강에 합류되는 하천은 현재의 신원천이다. 본 지도에는 이 신원천이 서쪽의 山陰界 너머에서 흘러온 것처럼 그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산음과의 경계선이 발원지이다.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처럼 분명하게 오류를 범하고 있지는 않으나 山陰界 너머에서 흘러오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이런 《해동지도》의 내용을 잘못 이해하여 오류를 범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특히 본 지도에서는 황강 본류와 그 지류인 신원천을 《해동지도》보다도 더 구별하기 어렵게 표현하였다. 황강은 북쪽에서 흘러와 동쪽으로 빠져나가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렇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해동지도》를 실제와 비교하지 않고 필사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는 첫째,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렸다. 둘째, 남북으로 긴 고을의 모습을 동서가 길게 그렸다. 읍치의 입장에서 보면 황강 유역은 서북쪽으로 튀어나가 있는데, 지도에는 마치 북쪽 방향에 있는 것처럼 그렸다. 이 과정에서 황강의 유로에 대한 왜곡이 발생한 것이다. 본 지도는 실제 모습을 검토하지 않고 《해동지도》에 기반하면서 세로만 길게 그렸기 때문에 황강의 유로가 더욱 왜곡되게 된 것이다. 본 지도 위에는 5개의 면이 표시되어 있지만 주기에는 이런 면의 명칭이 전혀 없다. 이런 문제점도 《해동지도》를 꼼꼼하게 검토하지 않고 필사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의 지도 위에 있는 面의 명칭은 후에 주기에 적힌 里의 명칭으로 개칭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송화현(松禾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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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송화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방식에서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송화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해동지도》가 북쪽을 위로 향해 그린 반면 본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해동지도》에 동서가 남북보다 길게 그려진 것을 본 지도처럼 세로로 긴 사각형에 맞추기 위해 방향을 바꾼 것으로 생각된다. 필사 과정에서 읍치 지역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다. 또한 문자로만 기록되어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을 추가하였다. 그러나 추가 과정에서 정밀하게 하지 않은 측면도 보이고 있다. 우선 面과 坊이 혼재되어 사용되고 있다. 보통은 面이라고 했으며, 황해도와 평안도 등의 지역에서 坊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었다. 《해동지도》에는 지도에는 모두 坊으로, 주기에는 모두 面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의 주기에도 모두 面으로 되어 있어 필사 시에 혼돈을 일으킬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광여도》에는 《해동지도》처럼 지도에는 모두 坊으로, 주기에는 모두 面으로 기록하였다. 方竹筒에는 坊이나 面이라는 글자가 생략되어 있기도 하다. 본 지도의 전체적인 모습은 송화현의 실제 형태와 거의 닮지 않았다. 송화현은 서북-동남 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다만 방향이나 거리의 정확성을 바라지 않고 산줄기와 물줄기, 그리고 지명을 비교하면 대체적으로 실제와 부합되고 있다. (이기봉)

  • 안변부(安邊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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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안변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와 《광여도》는 《해동지도》의 안변부 지도를 필사한 동일 계통의 지도라고 생각된다. 본 지도에는 사각형이 보라색과 노란색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보라색과 노란색으로 되어 있는 지명은 모두 驛이다. 이 중 高山驛이 종6품의 찰방이 파견된 찰방역이며, 그 나머지는 모두 고산역에 딸린 屬驛이다. 그런데 노란색으로 된 것은 남산역과 사등역이고, 다른 3가지는 보라색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어떤 근거를 통해 이런 구분을 했는지 분명하지 않다. 《광여도》에는 南山驛만 노란색으로 되어 있고 나머지는 모두 보라색으로 되어 있다. 《해동지도》의 지도에는 高山과 南山이 驛이라는 정보가 없다. 본 지도책의 함경도 군현 지도에서는 이런 정보가 없을 경우 그대로 필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만 본 지도의 주기에는 站의 명칭이 적혀 있고, 거기에 高山站과 南山站이 나온다. 본 지도의 필사 시 이 정보를 바탕으로 驛으로 인식한 것이 아닌가 한다. 주기에 나오는 鐵關站은 《해동지도》의 지도 위에 표시되어 있지 않아 본 지도의 필사자도 베끼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는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로 뻗은 산줄기가 남쪽으로부터 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위쪽(남)에는 臨津江源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현재의 법동군 지역으로서 유로의 방향이 약간 잘못되긴 했지만 유역의 입장에서는 사실에 부합된다. 동해로 빠지는 하천과 임진강의 分水界 부근에 伊川界가 적혀 있다. 이것은 伊川의 땅이 이곳에 깊숙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발원하는 현재의 고미탄천은 평강의 땅을 거쳐 이천에서 임진강과 합류된다. 왼쪽의 淮陽界 방면은 북한강의 최상류에 해당된다. 비록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적인 하천의 유로 등은 사실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는 편이다. (이기봉)

  • 양천현(陽川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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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위쪽의 成峯은 《광여도》에 烽으로, 아래쪽의 馬上은 《광여도》에 馬山으로, 오른쪽 아래의 岩之山은 《광여도》에 嚴之山으로 표시되어 있다. 모두 후자가 타당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양천현 지도도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산이 고립되어 그려지던 것이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連脈式으로 바뀌어 있다. 이러한 연맥식 표현은 《광여도》와 본 지도책에서 일관되게 적용되는 방식으로 산에 대한 표현 방식이 지도마다 약간씩 다른 《해동지도》보다 통일적인 방식으로 지도를 그렸다고 볼 수 있다. 지도 맨 아래쪽에 있는 하천은 현재의 안양천이다. 마치 葛誕山 부근에서 발원되는 것처럼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금천 방향의 훨씬 상류에서 발원한다. 이와 같은 잘못된 표현은 《해동지도》에서는 더욱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해당 고을에서 그려 올린 것이 거의 분명한 ‘1872년 지방지도’의 양천현지도 에서도 이와 같은 오류는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해당 고을에서는 이와 같이 그려도 실제 상황을 이해하는데 큰 문제가 없지만 중앙에서 다시 전사될 경우에는 오해할 가능성이 많다. (이기봉)

  • 영동현(永同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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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동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위쪽에 小蛇가 《광여도》에 小蛇峙로 되어 있고, 오른쪽의 沙邑峙가 《광여도》에 없다는 점 정도이다. 이 사읍치가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영동현 지도에는 나오고 있어 상호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왼쪽 아래의 沃川界로부터 위의 沃川界로 흘러가는 하천이 지금의 금강 본류이다. 위쪽에 松川이라 적혀 있는 것이 현재의 초강천이다. 그런데 초강천의 표현에 오류가 발생하고 있다. 초강천의 한 줄기가 三峯山(930.2m)과 天馬岺(925.6m) 부근에서 발원하는 것은 맞지만 모두 黃澗의 땅에 속해 있다. 따라서 黃澗界 부근에서 더 이상 표시되지 않아야 실제에 부합된다. 더군다나 삼봉산과 천마령은 높은 산줄기에 의해 연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는 이어져 있지 않아 마치 낮은 고개인 듯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영동현지도도 역시 회화식으로 그린 지도이지만 이 부분이 실제와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순창군(淳昌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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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순창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표현 양식이 거칠고 글씨도 정서되어 있지 못하다. 특히 《광여도》에는 읍치 위쪽에 仍火伐面, 왼쪽에 八等面과 德進面 등 3개의 면이 있지만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는 3개의 면이 모두 기록되어 있어 본 지도의 작성자가 실수로 빠뜨린 것으로 생각된다. 주변 고을과의 경계선 표시에서도 왼쪽 아래에 있었던 潭陽界가 생략되어 있다. 위쪽의 泰仁界에서 들어와 아래쪽의 玉果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섬진강 본류이다. 왼쪽 위의 上置等面과 福興面은 지도에서와 달리 실제로는 泰仁 방면에서 들어오는 추령천 유역이다. 이 점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으며,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순창군 지도에서도 같게 표현되어 있다. 18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호남지도》의 순창군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는 이 부분이 실제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런 문제점이 발생한 것은 복흥면에서 흘러 내려가는 하천이 태인과 임실의 영역을 돌아 순창으로 흘러들어온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상주목(尙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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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상주목 지도와 비슷하다. 일단 본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하천의 유로는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다만 몇 부분에서 본 지도가 오류를 범하고 있다. 오른쪽의 丹東面에서 흘러오는 하천은 낙동강의 지류인 위천이고, 위쪽의 咸昌界라고 적혀 있는 곳에서 흘러오는 하천은 낙동강의 지류인 영강이다. 본 지도에는 두 하천의 끝을 모두 얇게 그려서 마치 발원지인 것처럼 그렸지만 실제로는 모두 다른 고을에서 흘러 들어온다. 《해동지도》에는 이러한 실제 사실을 잘 표현해 놓았다. 오른쪽 위에서 흘러와 아래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 본류이고, 왼쪽의 하천은 금강의 지류인 소강이다. 읍성의 안쪽에 있는 軍器와 바깥쪽에 있는 社壇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거의 다 나온다. 다만 읍성 부분을 《해동지도》보다 상대적으로 크게 그렸으며, 읍성 위쪽에 숲이 첨가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글씨로만 쓰여 있던 面, 驛, 倉에 본 지도에는 각각 노란색 사각형, 황색 사각형, 건물 모양의 기호가 추가되어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기호의 사용과 지며으이 표기에 몇 가지 오류가 쉽게 보인다. 예를 들면 읍치 왼쪽 위의 化西面에 황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고, 읍치 왼쪽의 洛陽驛에 황색 사각형이 없으며, 읍치 위쪽에 內北面과 敎場이 內西面과 郊場으로 되어 있다. 이외에 《해동지도》가 동서가 약간 넓은 형태로 그려진 반면 본 지도는 남북이 더 길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본 지도나 《해동지도》 모두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으로 그렸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오른쪽 위의 永順面 북쪽과 왼쪽 위의 化北面 등은 북쪽으로 튀어나간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는 그런 사실이 잘 반영되어 있지 않다. 기타 주기에 적혀 있는 호구수 역시 본 지도와 《해동지도》는 다르다. (이기봉)

  • 수안군(遂安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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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수안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수안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일하게 한 것이 아니라 약간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우선 《해동지도》에 비해 남북이 좁아지고, 동서가 넓어졌다. 이것은 본 지도책처럼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 다음으로 읍치가 《해동지도》보다 상대적으로 크게 그렸다. 이것은 《해동지도》에 비해 상당히 적은 종이 위에 그리는 과정에서 읍치의 정보를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문자로만 기록되어 있던 坊에 노란색 사각형을 그려 넣었다. 坊이란 황해도나 평안도 등의 지역에서 面에 대한 명칭으로 사용하던 행정단위였다. 본 지도에는 西部面, 東部面, 栗界面 등 面으로 적힌 것도 나타나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모두 坊으로 되어 있고, 본 지도의 주기에도 모두 坊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面으로 지칭한 수많은 군현을 그리던 습관 때문에 잘못 기록한 것으로 생각된다. 아래쪽의 城東坊은 城洞坊의 誤記이다. 《광여도》에는 모두 坊으로 수정되어 있으며, 城洞坊으로 기록되어 있다. 위쪽의 하천은 대동강의 지류인 남강의 일부로서 오른쪽에서 흘러와 왼쪽으로 빠져나간다. 아래쪽의 하천은 예성의 최상류에 해당된다. 읍치의 訓練이나 그 오른쪽의 東華菴 등 《해동지도》에는 없던 지명도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다른 자료도 일부 참조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안협현(安峽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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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안협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전체적인 표현은 본 지도가 《광여도》보다 더 거칠다. 그러나 본 지도의 읍치 왼쪽에 있는 擧城이란 지명은 《광여도》에 표시되어 있지 않다. 표현 양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안협현 지도에는 擧城이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가 《광여도》를 필사했다고 하더라도 《해동지도》를 참조한 것으로 생각된다. 오른쪽 아래에는 去京路(서울 가는 길)과 鐵原去路(철원 가는 길)이 기록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도로까지 표시되어 있고, 앞의 두 문구는 도로의 끝에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 도로는 생략하고, 문구만 적어놓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위쪽의 伊川界에서 들어와 아래쪽의 兎山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임진강 본류이다. 안협현 부분에서의 임진강 본류는 굴곡이 심하지만 지도에는 거의 직선화된 형태로 그려져 있다. 읍치 위쪽의 하천은 현재의 평안천이다. 평안천은 원래 平康界 너머에서 흘러들어옴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는 이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어놓았다. 《해동지도》에는 평강계 부근의 평안천을 2개의 실선으로 남겨놓아 평강 땅에서 흘러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본 지도나 《광여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의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지 못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고을의 모습은 사각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세로로 긴 사각형에 맞추어 그리다보니 마치 사각형인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런 부분들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안협 지도에 거의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 여주목(驪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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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제공되고 있는 《광여도》의 여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그러나 산줄기나 표현 방식은 본 지도가 더 거칠다. 읍치 위쪽에 표시된 等神面의 경우 《광여도》에는 제대로 표시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는 驛과 동일한 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六景이 빠진 八景에 대한 표시도 본 지도에는 지도를 읽는 사람이 헷갈리게 표현된 것이 많다. 예를 들어 읍치 위쪽에 표시된 三景인 ‘鷰灘’과 ‘歸帆’이 떨어져 있지만 《광여도》에는 함께 붙어 있다. 五景인 ‘笠岩’과 ‘層岩’도 서로 다른 것처럼 표시되어 있지만 함께 붙어 있어야 한다. 일부 지명도 빠져 있다. 예를 들어 《광여도》에는 近東面 왼쪽의 산에 仙遊臺가 적혀 있지만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향교 왼쪽에는 首界面이 首界界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하다. 이 지도만 놓고 보면 정확한 동서남북을 이해할 수 없다. 읍치 위쪽의 남한강은 오른쪽 동남쪽에서 흘러와 왼쪽 서북쪽으로 빠져나간다. 億橋가 있는 하천은 서남쪽에서 흘러와 동북쪽의 남한강에 합류된다. 忠州界에 표시된 청미천 역시 서남쪽에서 흘러와 동북쪽의 남한강에 합류된다. 반면에 原州界에 표시된 곡수천은 북쪽에서 흘러와 남쪽의 남한강에 합류된다. 회화식 고지도에서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방향은 대략적인 정확성만을 갖고 있는 것이다. 정보가 가장 많이 집약된 읍치를 다른 지역보다 대축척으로 그린 것도 일반적인 회화식 지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읍치 서쪽을 흐르는 하천은 동헌에서 향교까지의 거리보다 훨씬 먼 곳에서 발원하는데 이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못하다. 주기에는 각 고을까지의 거리, 면의 初境과 終境을 적어놓아 지도의 단점을 보완하고 있다. 그러나 각 고을까지의 거리에서 《광여도》와 달리 남쪽에 있었던 陰竹을 陰升이라 잘못 적는 오류가 발견되고 있다. 또한 各面의 경우 지도의 내용과 전혀 다르게 적혀 있어 지도와 주기의 작성 자료가 서로 어긋나고 있음을 추정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점은 《광여도》도 동일하다. (이기봉)

  • 영동현(永同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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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동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위쪽에 小蛇가 《광여도》에 小蛇峙로 되어 있고, 오른쪽의 沙邑峙가 《광여도》에 없다는 점 정도이다. 이 사읍치가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영동현 지도에는 나오고 있어 상호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왼쪽 아래의 沃川界로부터 위의 沃川界로 흘러가는 하천이 지금의 금강 본류이다. 위쪽에 松川이라 적혀 있는 것이 현재의 초강천이다. 그런데 초강천의 표현에 오류가 발생하고 있다. 초강천의 한 줄기가 三峯山(930.2m)과 天馬岺(925.6m) 부근에서 발원하는 것은 맞지만 모두 黃澗의 땅에 속해 있다. 따라서 黃澗界 부근에서 더 이상 표시되지 않아야 실제에 부합된다. 더군다나 삼봉산과 천마령은 높은 산줄기에 의해 연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는 이어져 있지 않아 마치 낮은 고개인 듯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영동현지도도 역시 회화식으로 그린 지도이지만 이 부분이 실제와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순창군(淳昌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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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순창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표현 양식이 거칠고 글씨도 정서되어 있지 못하다. 특히 《광여도》에는 읍치 위쪽에 仍火伐面, 왼쪽에 八等面과 德進面 등 3개의 면이 있지만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는 3개의 면이 모두 기록되어 있어 본 지도의 작성자가 실수로 빠뜨린 것으로 생각된다. 주변 고을과의 경계선 표시에서도 왼쪽 아래에 있었던 潭陽界가 생략되어 있다. 위쪽의 泰仁界에서 들어와 아래쪽의 玉果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섬진강 본류이다. 왼쪽 위의 上置等面과 福興面은 지도에서와 달리 실제로는 泰仁 방면에서 들어오는 추령천 유역이다. 이 점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으며,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순창군 지도에서도 같게 표현되어 있다. 18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호남지도》의 순창군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는 이 부분이 실제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런 문제점이 발생한 것은 복흥면에서 흘러 내려가는 하천이 태인과 임실의 영역을 돌아 순창으로 흘러들어온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상주목(尙州牧)(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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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상주목 지도와 비슷하다. 일단 본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하천의 유로는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다만 몇 부분에서 본 지도가 오류를 범하고 있다. 오른쪽의 丹東面에서 흘러오는 하천은 낙동강의 지류인 위천이고, 위쪽의 咸昌界라고 적혀 있는 곳에서 흘러오는 하천은 낙동강의 지류인 영강이다. 본 지도에는 두 하천의 끝을 모두 얇게 그려서 마치 발원지인 것처럼 그렸지만 실제로는 모두 다른 고을에서 흘러 들어온다. 《해동지도》에는 이러한 실제 사실을 잘 표현해 놓았다. 오른쪽 위에서 흘러와 아래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 본류이고, 왼쪽의 하천은 금강의 지류인 소강이다. 읍성의 안쪽에 있는 軍器와 바깥쪽에 있는 社壇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거의 다 나온다. 다만 읍성 부분을 《해동지도》보다 상대적으로 크게 그렸으며, 읍성 위쪽에 숲이 첨가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글씨로만 쓰여 있던 面, 驛, 倉에 본 지도에는 각각 노란색 사각형, 황색 사각형, 건물 모양의 기호가 추가되어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기호의 사용과 지며으이 표기에 몇 가지 오류가 쉽게 보인다. 예를 들면 읍치 왼쪽 위의 化西面에 황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고, 읍치 왼쪽의 洛陽驛에 황색 사각형이 없으며, 읍치 위쪽에 內北面과 敎場이 內西面과 郊場으로 되어 있다. 이외에 《해동지도》가 동서가 약간 넓은 형태로 그려진 반면 본 지도는 남북이 더 길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본 지도나 《해동지도》 모두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으로 그렸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오른쪽 위의 永順面 북쪽과 왼쪽 위의 化北面 등은 북쪽으로 튀어나간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는 그런 사실이 잘 반영되어 있지 않다. 기타 주기에 적혀 있는 호구수 역시 본 지도와 《해동지도》는 다르다. (이기봉)

  • 수안군(遂安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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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수안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수안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일하게 한 것이 아니라 약간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우선 《해동지도》에 비해 남북이 좁아지고, 동서가 넓어졌다. 이것은 본 지도책처럼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 다음으로 읍치가 《해동지도》보다 상대적으로 크게 그렸다. 이것은 《해동지도》에 비해 상당히 적은 종이 위에 그리는 과정에서 읍치의 정보를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문자로만 기록되어 있던 坊에 노란색 사각형을 그려 넣었다. 坊이란 황해도나 평안도 등의 지역에서 面에 대한 명칭으로 사용하던 행정단위였다. 본 지도에는 西部面, 東部面, 栗界面 등 面으로 적힌 것도 나타나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모두 坊으로 되어 있고, 본 지도의 주기에도 모두 坊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面으로 지칭한 수많은 군현을 그리던 습관 때문에 잘못 기록한 것으로 생각된다. 아래쪽의 城東坊은 城洞坊의 誤記이다. 《광여도》에는 모두 坊으로 수정되어 있으며, 城洞坊으로 기록되어 있다. 위쪽의 하천은 대동강의 지류인 남강의 일부로서 오른쪽에서 흘러와 왼쪽으로 빠져나간다. 아래쪽의 하천은 예성의 최상류에 해당된다. 읍치의 訓練이나 그 오른쪽의 東華菴 등 《해동지도》에는 없던 지명도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다른 자료도 일부 참조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안협현(安峽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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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안협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전체적인 표현은 본 지도가 《광여도》보다 더 거칠다. 그러나 본 지도의 읍치 왼쪽에 있는 擧城이란 지명은 《광여도》에 표시되어 있지 않다. 표현 양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안협현 지도에는 擧城이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가 《광여도》를 필사했다고 하더라도 《해동지도》를 참조한 것으로 생각된다. 오른쪽 아래에는 去京路(서울 가는 길)과 鐵原去路(철원 가는 길)이 기록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도로까지 표시되어 있고, 앞의 두 문구는 도로의 끝에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 도로는 생략하고, 문구만 적어놓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위쪽의 伊川界에서 들어와 아래쪽의 兎山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임진강 본류이다. 안협현 부분에서의 임진강 본류는 굴곡이 심하지만 지도에는 거의 직선화된 형태로 그려져 있다. 읍치 위쪽의 하천은 현재의 평안천이다. 평안천은 원래 平康界 너머에서 흘러들어옴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는 이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어놓았다. 《해동지도》에는 평강계 부근의 평안천을 2개의 실선으로 남겨놓아 평강 땅에서 흘러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본 지도나 《광여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의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지 못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고을의 모습은 사각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세로로 긴 사각형에 맞추어 그리다보니 마치 사각형인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런 부분들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안협 지도에 거의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 여주목(驪州牧)(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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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제공되고 있는 《광여도》의 여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그러나 산줄기나 표현 방식은 본 지도가 더 거칠다. 읍치 위쪽에 표시된 等神面의 경우 《광여도》에는 제대로 표시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는 驛과 동일한 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六景이 빠진 八景에 대한 표시도 본 지도에는 지도를 읽는 사람이 헷갈리게 표현된 것이 많다. 예를 들어 읍치 위쪽에 표시된 三景인 ‘鷰灘’과 ‘歸帆’이 떨어져 있지만 《광여도》에는 함께 붙어 있다. 五景인 ‘笠岩’과 ‘層岩’도 서로 다른 것처럼 표시되어 있지만 함께 붙어 있어야 한다. 일부 지명도 빠져 있다. 예를 들어 《광여도》에는 近東面 왼쪽의 산에 仙遊臺가 적혀 있지만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향교 왼쪽에는 首界面이 首界界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하다. 이 지도만 놓고 보면 정확한 동서남북을 이해할 수 없다. 읍치 위쪽의 남한강은 오른쪽 동남쪽에서 흘러와 왼쪽 서북쪽으로 빠져나간다. 億橋가 있는 하천은 서남쪽에서 흘러와 동북쪽의 남한강에 합류된다. 忠州界에 표시된 청미천 역시 서남쪽에서 흘러와 동북쪽의 남한강에 합류된다. 반면에 原州界에 표시된 곡수천은 북쪽에서 흘러와 남쪽의 남한강에 합류된다. 회화식 고지도에서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방향은 대략적인 정확성만을 갖고 있는 것이다. 정보가 가장 많이 집약된 읍치를 다른 지역보다 대축척으로 그린 것도 일반적인 회화식 지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읍치 서쪽을 흐르는 하천은 동헌에서 향교까지의 거리보다 훨씬 먼 곳에서 발원하는데 이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못하다. 주기에는 각 고을까지의 거리, 면의 初境과 終境을 적어놓아 지도의 단점을 보완하고 있다. 그러나 각 고을까지의 거리에서 《광여도》와 달리 남쪽에 있었던 陰竹을 陰升이라 잘못 적는 오류가 발견되고 있다. 또한 各面의 경우 지도의 내용과 전혀 다르게 적혀 있어 지도와 주기의 작성 자료가 서로 어긋나고 있음을 추정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점은 《광여도》도 동일하다. (이기봉)

  • 영춘현(永春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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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춘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 위쪽의 北澤과 왼쪽 방향의 三召山은 《광여도》에 北津과 三台山으로 되어 있다. 《광여도》가 맞는 것으로서 본 지도의 작성자가 글자를 잘못 판독하여 誤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 왼쪽에는 松板書院과 門岩이 헷갈릴 수 있는 형태로 기록되어 있는데, 《광여도》에서는 분명하게 분리되어 있다. 오른쪽 위(동북)에서 흘러와 왼쪽 아래(서남)로 흘러가는 하천이 지금의 남한강 본류이다. 남한강은 영춘현에서 상당히 많은 굴곡을 이루고 있지만 본 지도에는 잘 표현되어 있지 않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는 《해동지도》의 영춘현 지도는 고을을 마치 원형으로 그리고 있다. 그런데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는 고을의 모습이 세로로 약간 긴 사각형으로 변화되어 있다. 아마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는 과정에서 변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해동지도》를 비롯하여 《광여도》와 본 지도 모두 고을 전체의 실제 모습과 상당히 다르게 되어 있다. 실제로는 남한강이 흐르는 동북-서남의 길이보다 서북-동남의 길이가 거의 2배 이상 된다. 이런 회화식 지도에서 정확한 위치의 방향이나 거리보다는 고을 전체 또는 읍치의 풍수적 명당성을 강조하려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이기봉)

  • 순천부(順天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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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순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와 『여지도서』의 순천부 지도도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광여도》와 비교할 때 왼쪽 중간 부분의 船所 아래의 呂水面과 古突山鎭 왼쪽의 건물 밑에 牧場이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 여수면이 있기 때문에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으로 생각된다. 船所 왼쪽의 船倉은 《광여도》에 없던 지명이며, 《해동지도》에는 있다. 위쪽의 日澄面은 주기에 月燈面으로 되어 있다.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오며, 《해동지도》와 『여지도서』에는 모두 월등면으로 기록되어 있어 본 지도와 《광여도》의 필사 시에 잘못 옮긴 것으로 생각된다. 인근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 일부 문제가 발견된다. 求禮界와 同福界 사이에 谷城의 땅과 많은 부문이 접해 있다. 또한 同福界와 樂安界 사이에도 寶城의 땅과 접해 있다. 위쪽의 하천은 현재의 섬진강과 그 지류인 보성강이다. 섬진강과 보성강이 합류되는 지점은 同福界와 大興寺에서 내려오는 하천이 합류되는 지점 사이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보성강은 실제로는 곡성의 땅을 지나와야 한다. 현재의 입장에서 보아도 3개 면 규모의 곡성 땅을 지나와야 하기 때문에 결코 짧지 않은 부분이다. 그런데 본 지도에서는 이와 같은 보성강이 마치 고을 북쪽을 휘감아 돌아나가는 것처럼 그려져 있어 혼동을 일으킬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동여도》에서는 이런 문제점이 대부분 실제와 부합되게 수정되어 있다. 아래쪽의 섬들은 실질적인 크기나 위치에 관계없이 그려져 있고, 읍치와 右水營 및 鎭의 성곽 부분이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되어 그려져 있다. 海倉은 본 고을의 田稅와 大同米를 모아 한양으로 옮기던 곳이며, 船所와 船倉은 戰船이 정박하던 장소이다. (이기봉)

  • 선산부(善山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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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선산부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거의 《해동지도》에 나온다. 다만 지명의 위치가 약간씩 다르게 표시되어 있고, 面과 驛에 노란색과 황색의 사각형이 표시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전반적으로 《해동지도》에 비해 세로가 짧게 그려졌고, 읍치가 상대적으로 넓게 표현되었다. 그러나 하천의 유로라는 측면에서 볼 때 본 지도와 《해동지도》는 거의 동일하다.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하천이 낙동강 본류이고, 왼쪽에서 흘러와 낙동강에 합류하는 하천이 현재의 감천이다. 낙동강에 본 지도에는 冷零江이라 적혀 있는데, 《해동지도》에는 洛江上流로 되어 있다. 읍치 아래쪽 감천 변에 그려진 숲은 《해동지도》에 없던 것이다. 정확한 직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세로로 긴 사각형으로 그리다 보니까 몇몇 부분에서 왜곡이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읍치 가장 왼쪽의 하천은 실제로는 거의 동류하여 감천에 합류되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남류하는 것처럼 그려졌다. 이 부분은 서쪽으로 튀어나간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이를 사각형에 맞추어 표현하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낙동강 동쪽의 경우도 위쪽(북)보다 아래쪽(남)의 동서 폭이 훨씬 넓지만 본 지도에는 거의 비슷한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숙천부(肅川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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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숙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숙천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생략되거나 잘못 옮겨진 내용이 있다. 오른쪽의 曰里面은 《해동지도》에 三里面으로, 왼쪽의 平里面은 坪里面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의 주기에는 모두 《해동지도》처럼 되어 있으며, 《광여도》에도 마찬가지이다. 《해동지도》에 아래쪽 法里面 부근에 있던 釰山面이 본 지도에 생략되어 있으나 주기에는 적혀 있다.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어 본 지도에서 범한 오류가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읍성이 지세를 이용하여 축조된 모습이 잘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에는 그런 사실이 생략되었다. 《광여도》에서는 읍성의 전체적인 모양은 본 지도와 거의 동일하게 되어 있지만 지세를 이용하여 축조된 모습은 《해동지도》에 가깝다. 읍성 안의 건물과 명칭은 《해동지도》보다 증가했으며, 《광여도》에서도 동일하다. 숙천부는 남북보다 동서가 긴 고을이지만 지도에는 반대로 되어 있다. 이것은 세로로 긴 사각형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현상으로 생각된다. 이로 인해 서쪽으로 튀어나가 있어야 할 고리면, 당리면, 식리면, 평리면 등이 마치 남북으로 늘어선 것처럼 그려져 있다. 또한 동쪽에서 발원하는 하천이 마치 북쪽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기도 하다. 위쪽의 安陵界는 安州界를 의미하며, 《해동지도》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이기봉)

  • 양구현(楊口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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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구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 아래쪽의 道界峙는 《광여도》에 道里峙로, 그 왼쪽의 絲川峙는 綠川峙로 기록되어 있다. 표현 양식은 다르나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양구현 지도에는 전자는 《광여도》처럼, 후자는 본 지도처럼 되어 있다. 《광여도》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각각 다른 명칭을 잘못 옮기고 있다. 《광여도》와 본 지도 중 어느 것이 다른 것을 필사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필사하면서 《해동지도》를 참고했을 가능성이 있다. 읍치를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해서 그렸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의 모습은 소략하다. 읍치를 지나 왼쪽의 狼川界로 흘러가는 하천이 북한강의 지류인 현재의 서천이다. 그런데 이 서천의 발원지가 잘못 표시되어 있다. 오른쪽 위의 亥安面은 현재의 양구군 해안면으로서 이곳의 물은 서천으로 유입되지 않고 동쪽의 인제군 인복천으로 흘러간다. 이 점은 《광여도》와 《해동지도》 모두 동일하다. 서천과 해안면 하천의 分水界는 上東面 왼쪽에 적힌 兜率山 부근이다. 이런 잘못은 《해동지도》에서 비롯되었으며, 《광여도》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의 오류를 교정하지 않고 그대로 필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南面의 아래쪽은 현재의 소양강에 접해 있고, 양구현의 일부 지역은 소양강 너머에 있었다. 본 지도에서는 이런 사실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양구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는 이런 오류들이 거의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 연천현(漣川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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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연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지도 위쪽에 妙洞里가 《광여도》에는 沙洞里라고 적혀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연천현 지도도 표현 방법과 내용에서의 일부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구도는 동일하다. 이 《해동지도》에는 沙洞里라고 적혀 있어 본 지도가 잘못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가장 왼쪽의 하천은 현재의 임진강 본류인데, 《광여도》에서는 2개의 실선으로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에는 작은 하천처럼 1개의 실선으로 표시되어 있어 혼란을 주고 있다. 오른쪽 아래의 하천은 현재의 한탄강인데 본 지도에는 마치 懸崖項에서 내려오는 것이 본류처럼 그려져 있다. 《광여도》에는 그 오른쪽이 2개의 실선으로 이어지고 있어 발원지가 이 고을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하였다. 본 지도의 작성자가 그런 사실을 착각하여 실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紫烟瀑에 대한 묘사도 《광여도》에 비해 훨씬 간략화 되었다. 《해동지도》에는 모든 하천을 2개의 실선으로 그려 규모를 짐작하기 어렵게 한 것을 《광여도》에서 수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는 가운데의 하천 2개가 蜂岩 부근에서 연결된 것처럼 잘못 그렸는데 《광여도》와 본 지도에는 수정되어 있다. (이기봉)

  • 영춘현(永春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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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춘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 위쪽의 北澤과 왼쪽 방향의 三召山은 《광여도》에 北津과 三台山으로 되어 있다. 《광여도》가 맞는 것으로서 본 지도의 작성자가 글자를 잘못 판독하여 誤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 왼쪽에는 松板書院과 門岩이 헷갈릴 수 있는 형태로 기록되어 있는데, 《광여도》에서는 분명하게 분리되어 있다. 오른쪽 위(동북)에서 흘러와 왼쪽 아래(서남)로 흘러가는 하천이 지금의 남한강 본류이다. 남한강은 영춘현에서 상당히 많은 굴곡을 이루고 있지만 본 지도에는 잘 표현되어 있지 않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는 《해동지도》의 영춘현 지도는 고을을 마치 원형으로 그리고 있다. 그런데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는 고을의 모습이 세로로 약간 긴 사각형으로 변화되어 있다. 아마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는 과정에서 변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해동지도》를 비롯하여 《광여도》와 본 지도 모두 고을 전체의 실제 모습과 상당히 다르게 되어 있다. 실제로는 남한강이 흐르는 동북-서남의 길이보다 서북-동남의 길이가 거의 2배 이상 된다. 이런 회화식 지도에서 정확한 위치의 방향이나 거리보다는 고을 전체 또는 읍치의 풍수적 명당성을 강조하려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이기봉)

  • 순천부(順天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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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순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와 『여지도서』의 순천부 지도도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광여도》와 비교할 때 왼쪽 중간 부분의 船所 아래의 呂水面과 古突山鎭 왼쪽의 건물 밑에 牧場이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 여수면이 있기 때문에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으로 생각된다. 船所 왼쪽의 船倉은 《광여도》에 없던 지명이며, 《해동지도》에는 있다. 위쪽의 日澄面은 주기에 月燈面으로 되어 있다.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오며, 《해동지도》와 『여지도서』에는 모두 월등면으로 기록되어 있어 본 지도와 《광여도》의 필사 시에 잘못 옮긴 것으로 생각된다. 인근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 일부 문제가 발견된다. 求禮界와 同福界 사이에 谷城의 땅과 많은 부문이 접해 있다. 또한 同福界와 樂安界 사이에도 寶城의 땅과 접해 있다. 위쪽의 하천은 현재의 섬진강과 그 지류인 보성강이다. 섬진강과 보성강이 합류되는 지점은 同福界와 大興寺에서 내려오는 하천이 합류되는 지점 사이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보성강은 실제로는 곡성의 땅을 지나와야 한다. 현재의 입장에서 보아도 3개 면 규모의 곡성 땅을 지나와야 하기 때문에 결코 짧지 않은 부분이다. 그런데 본 지도에서는 이와 같은 보성강이 마치 고을 북쪽을 휘감아 돌아나가는 것처럼 그려져 있어 혼동을 일으킬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동여도》에서는 이런 문제점이 대부분 실제와 부합되게 수정되어 있다. 아래쪽의 섬들은 실질적인 크기나 위치에 관계없이 그려져 있고, 읍치와 右水營 및 鎭의 성곽 부분이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되어 그려져 있다. 海倉은 본 고을의 田稅와 大同米를 모아 한양으로 옮기던 곳이며, 船所와 船倉은 戰船이 정박하던 장소이다. (이기봉)

  • 선산부(善山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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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선산부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거의 《해동지도》에 나온다. 다만 지명의 위치가 약간씩 다르게 표시되어 있고, 面과 驛에 노란색과 황색의 사각형이 표시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전반적으로 《해동지도》에 비해 세로가 짧게 그려졌고, 읍치가 상대적으로 넓게 표현되었다. 그러나 하천의 유로라는 측면에서 볼 때 본 지도와 《해동지도》는 거의 동일하다.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하천이 낙동강 본류이고, 왼쪽에서 흘러와 낙동강에 합류하는 하천이 현재의 감천이다. 낙동강에 본 지도에는 冷零江이라 적혀 있는데, 《해동지도》에는 洛江上流로 되어 있다. 읍치 아래쪽 감천 변에 그려진 숲은 《해동지도》에 없던 것이다. 정확한 직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세로로 긴 사각형으로 그리다 보니까 몇몇 부분에서 왜곡이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읍치 가장 왼쪽의 하천은 실제로는 거의 동류하여 감천에 합류되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남류하는 것처럼 그려졌다. 이 부분은 서쪽으로 튀어나간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이를 사각형에 맞추어 표현하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낙동강 동쪽의 경우도 위쪽(북)보다 아래쪽(남)의 동서 폭이 훨씬 넓지만 본 지도에는 거의 비슷한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숙천부(肅川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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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숙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숙천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생략되거나 잘못 옮겨진 내용이 있다. 오른쪽의 曰里面은 《해동지도》에 三里面으로, 왼쪽의 平里面은 坪里面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의 주기에는 모두 《해동지도》처럼 되어 있으며, 《광여도》에도 마찬가지이다. 《해동지도》에 아래쪽 法里面 부근에 있던 釰山面이 본 지도에 생략되어 있으나 주기에는 적혀 있다.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어 본 지도에서 범한 오류가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읍성이 지세를 이용하여 축조된 모습이 잘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에는 그런 사실이 생략되었다. 《광여도》에서는 읍성의 전체적인 모양은 본 지도와 거의 동일하게 되어 있지만 지세를 이용하여 축조된 모습은 《해동지도》에 가깝다. 읍성 안의 건물과 명칭은 《해동지도》보다 증가했으며, 《광여도》에서도 동일하다. 숙천부는 남북보다 동서가 긴 고을이지만 지도에는 반대로 되어 있다. 이것은 세로로 긴 사각형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현상으로 생각된다. 이로 인해 서쪽으로 튀어나가 있어야 할 고리면, 당리면, 식리면, 평리면 등이 마치 남북으로 늘어선 것처럼 그려져 있다. 또한 동쪽에서 발원하는 하천이 마치 북쪽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기도 하다. 위쪽의 安陵界는 安州界를 의미하며, 《해동지도》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이기봉)

  • 양구현(楊口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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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구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 아래쪽의 道界峙는 《광여도》에 道里峙로, 그 왼쪽의 絲川峙는 綠川峙로 기록되어 있다. 표현 양식은 다르나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양구현 지도에는 전자는 《광여도》처럼, 후자는 본 지도처럼 되어 있다. 《광여도》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각각 다른 명칭을 잘못 옮기고 있다. 《광여도》와 본 지도 중 어느 것이 다른 것을 필사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필사하면서 《해동지도》를 참고했을 가능성이 있다. 읍치를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해서 그렸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의 모습은 소략하다. 읍치를 지나 왼쪽의 狼川界로 흘러가는 하천이 북한강의 지류인 현재의 서천이다. 그런데 이 서천의 발원지가 잘못 표시되어 있다. 오른쪽 위의 亥安面은 현재의 양구군 해안면으로서 이곳의 물은 서천으로 유입되지 않고 동쪽의 인제군 인복천으로 흘러간다. 이 점은 《광여도》와 《해동지도》 모두 동일하다. 서천과 해안면 하천의 分水界는 上東面 왼쪽에 적힌 兜率山 부근이다. 이런 잘못은 《해동지도》에서 비롯되었으며, 《광여도》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의 오류를 교정하지 않고 그대로 필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南面의 아래쪽은 현재의 소양강에 접해 있고, 양구현의 일부 지역은 소양강 너머에 있었다. 본 지도에서는 이런 사실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양구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는 이런 오류들이 거의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 연천현(漣川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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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연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지도 위쪽에 妙洞里가 《광여도》에는 沙洞里라고 적혀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연천현 지도도 표현 방법과 내용에서의 일부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구도는 동일하다. 이 《해동지도》에는 沙洞里라고 적혀 있어 본 지도가 잘못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가장 왼쪽의 하천은 현재의 임진강 본류인데, 《광여도》에서는 2개의 실선으로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에는 작은 하천처럼 1개의 실선으로 표시되어 있어 혼란을 주고 있다. 오른쪽 아래의 하천은 현재의 한탄강인데 본 지도에는 마치 懸崖項에서 내려오는 것이 본류처럼 그려져 있다. 《광여도》에는 그 오른쪽이 2개의 실선으로 이어지고 있어 발원지가 이 고을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하였다. 본 지도의 작성자가 그런 사실을 착각하여 실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紫烟瀑에 대한 묘사도 《광여도》에 비해 훨씬 간략화 되었다. 《해동지도》에는 모든 하천을 2개의 실선으로 그려 규모를 짐작하기 어렵게 한 것을 《광여도》에서 수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는 가운데의 하천 2개가 蜂岩 부근에서 연결된 것처럼 잘못 그렸는데 《광여도》와 본 지도에는 수정되어 있다. (이기봉)

  • 예산현(禮山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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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예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 洪陽界는 洪州界를, 公山界는 公州界를 의미한다. 공주목이 공산현으로 강등되었던 시기는 1646년(인조 24)경, 1670(현종 11)-1679년(숙종 5), 1728(영조 4)-1737(영조 13), 1778년(정조 2)경 등이다. 홍주는 顯宗(1660-1674) 때 잠시 洪陽縣으로 강등된다. 《해동지도》의 예산현 지도에서도 동일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광여도》에서는 公山界가 公州界로 바뀌어 있다. 가장 왼쪽의 하천이 현재의 삽교천 본류이고, 그 다음이 삽교천의 지류인 무한천이다. 삽교천은 洪州 방향에서, 무한천은 大興 방향에서 흘러들어옴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그려져 있다. 오른쪽의 大枝洞面과 述谷面은 현재의 예산군 대술면으로서 이곳의 물은 북류하여 무한천의 상류로 합류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서는 이 지역 동쪽의 산줄기가 鎭山까지 연결된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고을 전체를 산줄기가 겹겹이 둘러싼 풍수적 명당 이미지로 묘사하려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고을 전체의 모습은 본 지도와 달리 서북에서 동남으로 길게 뻗은 모양을 하고 있다. (이기봉)

  • 여산부(礪山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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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여산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고을의 동남쪽에 있는 天壺山으로부터 읍치까지 오는 산줄기를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왼쪽의 恩津界에서 흘러와 아래쪽의 龍安界로 흘러나가는 하천이 금강의 본류이다. 지도 전체적으로 현재의 여산면 여산리에 있었던 읍치를 확대 강조하여 그렸다. 금강 변에 있는 고을의 서부와 서북부는 산지가 거의 없는 평지임에도 불구하고 산줄기를 강조하여 그렸다. 아울러 금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이 여러 개 있음에도 불구하고 읍치에서 내려가는 하천만 그려져 있다. 읍치에서 내려가는 하천 역시 금강에 바로 합류하는 것이 아니라 恩津의 경계를 넘어 들어간다. 이런 부분 모두 읍치를 중심으로 고을 전체의 풍수적 명당성을 표현하기 위한 목적 때문에 나타난 것으로 생각된다. 아래쪽의 海倉은 여산부의 田稅와 大同米를 한양까지 실어 나르던 곳이다. 현재의 앙성면 금강 변의 나암에 있었지만 바닷물이 이곳까지 들어오기 때문에 해창이란 명칭을 붙였던 것이다. (이기봉)

  • 성주목(星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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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성주목 지도와 비슷하다. 본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해동지도》가 동서(세로)를 남북(가로)보다 짧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동서를 더 길게 그렸다. 또한 邑城과 禿用山城에 《해동지도》보다 정보가 많이 추가되어 있고, 상대적으로 더 크게 그렸다. 그 결과 서쪽(위)에서 동쪽(아래)으로 흐르는 하천의 길이와 유로가 약간 달라졌다. 그러나 전반적인 하천의 유로는 《해동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아래쪽 오른쪽에서 흘러와 왼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 본류이다. 읍치를 돌아 낙동강에 합류하는 하천은 현재의 백천이며, 독용산성에서 흘러가는 하천은 현재의 회천 상류이다. 독용산성과 읍성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수록된 지명은 《해동지도》에 거의 나온다. 해동지도에 글씨로만 적혀 있던 坊(보통 面이라고 한다)이 본 지도에는 노란색 사각형 안에 쓰여 있다. 다만 坊 앞의 명칭이 3자인 경우 坊을 생략하였다. 오른쪽 위에는 노란색 사각형만 있고, 坊의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경우도 보이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이곳에 非乎石坊이 적혀 있는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읍성 왼쪽의 大里坊에 황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는 실수도 보이고 있다. 왼쪽 아래에 적혀 있는 所也坊, 茂溪驛, 蘆長谷(坊)은 현재의 《해동지도》에 없는 지명이다. 원래부터 《해동지도》에 없는 것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현재 남아 있는 《해동지도》의 이 부근에는 무언가를 지우고 주기를 적은 흔적이 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주기에 2개의 坊 명칭이 보이고 있지 않아 확실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김정호의 『대동지지』에는 2개의 坊 명칭이 나온다. 그 위쪽에 있는 高靈界는 《해동지도》에 高靈坊으로 되어 있던 것이다. 고령방을 다른 기록에서 찾을 수가 없고, 이 방향에 高靈과의 경계선이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해동지도》에서 틀린 것으로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고친 것이 아닌가 한다. (이기봉)

  • 순안현(順安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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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순안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순안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몇 가지 바뀐 내용이 있다. 왼쪽의 和順面은 《해동지도》에 順和面으로, 冬春面은 冬花日面으로 나온다. 《광여도》에는 이 부분이 《해동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동춘면 이란 명칭은 본 지도 이외에도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순안 지도와 《동여도》에도 나온다. 반면에 동화일면의 경우 《해동지도》 이외에도 《광여도》,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지는 않지만 『여지도서』의 지도와 지지 부분에도 나온다. 따라서 어느 것이 맞는지 분명하지는 않다. 본 지도는 전체적으로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다른 자료도 참고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본 지도에는 나오지만 《해동지도》에는 나오지 않는 지명 중 하나로 읍치에 있는 訓練과 擺撥이 있다. 또한 《해동지도》에 읍치의 건물이 4개밖에 그려져 있지 않지만 본 지도에는 무려 11개나 된다. 왼쪽의 大船串烽도 《해동지도》에 없는 지명이다. 이런 점들은 본 지도가 《해동지도》 이외의 자료도 참조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부분이다.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되는 부분으로는 왼쪽의 鎭里面에 대한 표현이 있다. 진리면은 원래 永柔와 平壤의 경계를 넘어가 해안가에 있는 越境地이다. 《해동지도》의 경우 永柔界와 平壤界가 진리면과 순화면 사이를 가르듯이 적혀 있고, 산줄기가 이어져 있지 않아 월경지인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영유계와 평양계가 적혀 있는 방식뿐만 아니라 마치 산줄기가 이어진 것처럼 그려져 있어 진리면이 월경지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주기에는 《해동지도》를 비롯하여 다른 자료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는 擧島面이 적혀 있기도 하다. 다른 面과 달리 初境과 終境의 기록이 없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적어놓은 것이 아닌가 한다. (이기봉)

  • 양양부(襄陽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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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양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에 비해 본 지도에는 오른쪽 위에 靑草湖, 降仙驛, 洛山寺 등의 지명이 생략되어 있다. 표현 방식은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양양부 지도에도 이 지명들은 모두 표시되어 있다. 또한 읍치 왼쪽에는 府南面이 部南面으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하며 필사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반면에 《광여도》에는 이런 잘못들이 나타나고 있지 않다. 남북이 동서보다 약 2배 정도 긴 모양의 고을임에도 남북이 약간 긴 직사각형으로 표현되어 있다. 또한 일반적인 회화식 지도처럼 읍치 지역을 확대해서 그리고 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몇 가지 오해할 수 있는 문제들이 발생하였다.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해안선과 왼쪽의 산줄기가 마치 정북-정남 방향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서북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또한 하천들이 대부분 正東으로 흘러 바다에 들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降仙面에 있는 하천은 대체적으로 실제에 부합된다. 그러나 읍치 아래쪽에 있는 현재의 남대천은 이 지도만으로는 실제적인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다. 남대천의 본 줄기는 구룡령 근처에서 발원하여 북류하다가 읍치에서 잠깐 동류하여 바다로 들어간다. 그 길이 역시 강선면에 있는 하천보다 훨씬 길다. (이기봉)

  • 영종(永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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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종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지도 왼쪽 위에 적혀 있는 ‘龍流物場’은 《광여도》에 ‘龍流牧場’으로 되어 있다. 후자가 올바르기 때문에 본 지도가 오류를 범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 富平界에도 水路를 水里로 잘못 기록한 것이 보인다. 永宗은 독자적인 고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도가 그려져 있다. 1705년(숙종 31)에 독자적인 영역과 주민을 갖고 있는 獨鎭이 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영종도라 불리는 섬은 월래 紫燕島라고 하였으며, 본 지도에는 영종진이 관할하는 섬만 그려져 있다. 자연도와 주변의 섬 사이에는 ‘退潮成陸’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썰물 때 육지가 된다’는 의미로서 특이하게 갯벌의 범위도 지도에 그려져 있다. 갯벌 바깥쪽이 바다인데, 그 바깥쪽에 또 다른 경계가 표시되어 있다. 이 경계는 영종진이 관할하는 범위를 가리키는 것일 뿐 육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 경계 바깥에는 인근 고을과의 水路 거리가 적혀 있다. 오른쪽 위에는 京江船路가 적혀 있다. 京江은 서울 부근의 한강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그곳으로 가는 稅穀船이 다니는 통로라는 의미이다. 왼쪽 아래에는 三南海門이 적혀 있다. 이 방향으로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의 세곡선이 드나들었기 때문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영종진 지도도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유사하여 상호 관련성을 추정할 수 있다. (이기봉)

  • 예산현(禮山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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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예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 洪陽界는 洪州界를, 公山界는 公州界를 의미한다. 공주목이 공산현으로 강등되었던 시기는 1646년(인조 24)경, 1670(현종 11)-1679년(숙종 5), 1728(영조 4)-1737(영조 13), 1778년(정조 2)경 등이다. 홍주는 顯宗(1660-1674) 때 잠시 洪陽縣으로 강등된다. 《해동지도》의 예산현 지도에서도 동일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광여도》에서는 公山界가 公州界로 바뀌어 있다. 가장 왼쪽의 하천이 현재의 삽교천 본류이고, 그 다음이 삽교천의 지류인 무한천이다. 삽교천은 洪州 방향에서, 무한천은 大興 방향에서 흘러들어옴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그려져 있다. 오른쪽의 大枝洞面과 述谷面은 현재의 예산군 대술면으로서 이곳의 물은 북류하여 무한천의 상류로 합류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서는 이 지역 동쪽의 산줄기가 鎭山까지 연결된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고을 전체를 산줄기가 겹겹이 둘러싼 풍수적 명당 이미지로 묘사하려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고을 전체의 모습은 본 지도와 달리 서북에서 동남으로 길게 뻗은 모양을 하고 있다. (이기봉)

  • 여산부(礪山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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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여산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고을의 동남쪽에 있는 天壺山으로부터 읍치까지 오는 산줄기를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왼쪽의 恩津界에서 흘러와 아래쪽의 龍安界로 흘러나가는 하천이 금강의 본류이다. 지도 전체적으로 현재의 여산면 여산리에 있었던 읍치를 확대 강조하여 그렸다. 금강 변에 있는 고을의 서부와 서북부는 산지가 거의 없는 평지임에도 불구하고 산줄기를 강조하여 그렸다. 아울러 금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이 여러 개 있음에도 불구하고 읍치에서 내려가는 하천만 그려져 있다. 읍치에서 내려가는 하천 역시 금강에 바로 합류하는 것이 아니라 恩津의 경계를 넘어 들어간다. 이런 부분 모두 읍치를 중심으로 고을 전체의 풍수적 명당성을 표현하기 위한 목적 때문에 나타난 것으로 생각된다. 아래쪽의 海倉은 여산부의 田稅와 大同米를 한양까지 실어 나르던 곳이다. 현재의 앙성면 금강 변의 나암에 있었지만 바닷물이 이곳까지 들어오기 때문에 해창이란 명칭을 붙였던 것이다. (이기봉)

  • 성주목(星州牧)(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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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성주목 지도와 비슷하다. 본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해동지도》가 동서(세로)를 남북(가로)보다 짧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동서를 더 길게 그렸다. 또한 邑城과 禿用山城에 《해동지도》보다 정보가 많이 추가되어 있고, 상대적으로 더 크게 그렸다. 그 결과 서쪽(위)에서 동쪽(아래)으로 흐르는 하천의 길이와 유로가 약간 달라졌다. 그러나 전반적인 하천의 유로는 《해동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아래쪽 오른쪽에서 흘러와 왼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 본류이다. 읍치를 돌아 낙동강에 합류하는 하천은 현재의 백천이며, 독용산성에서 흘러가는 하천은 현재의 회천 상류이다. 독용산성과 읍성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수록된 지명은 《해동지도》에 거의 나온다. 해동지도에 글씨로만 적혀 있던 坊(보통 面이라고 한다)이 본 지도에는 노란색 사각형 안에 쓰여 있다. 다만 坊 앞의 명칭이 3자인 경우 坊을 생략하였다. 오른쪽 위에는 노란색 사각형만 있고, 坊의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경우도 보이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이곳에 非乎石坊이 적혀 있는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읍성 왼쪽의 大里坊에 황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는 실수도 보이고 있다. 왼쪽 아래에 적혀 있는 所也坊, 茂溪驛, 蘆長谷(坊)은 현재의 《해동지도》에 없는 지명이다. 원래부터 《해동지도》에 없는 것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현재 남아 있는 《해동지도》의 이 부근에는 무언가를 지우고 주기를 적은 흔적이 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주기에 2개의 坊 명칭이 보이고 있지 않아 확실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김정호의 『대동지지』에는 2개의 坊 명칭이 나온다. 그 위쪽에 있는 高靈界는 《해동지도》에 高靈坊으로 되어 있던 것이다. 고령방을 다른 기록에서 찾을 수가 없고, 이 방향에 高靈과의 경계선이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해동지도》에서 틀린 것으로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고친 것이 아닌가 한다. (이기봉)

  • 순안현(順安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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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순안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순안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몇 가지 바뀐 내용이 있다. 왼쪽의 和順面은 《해동지도》에 順和面으로, 冬春面은 冬花日面으로 나온다. 《광여도》에는 이 부분이 《해동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동춘면 이란 명칭은 본 지도 이외에도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순안 지도와 《동여도》에도 나온다. 반면에 동화일면의 경우 《해동지도》 이외에도 《광여도》,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지는 않지만 『여지도서』의 지도와 지지 부분에도 나온다. 따라서 어느 것이 맞는지 분명하지는 않다. 본 지도는 전체적으로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다른 자료도 참고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본 지도에는 나오지만 《해동지도》에는 나오지 않는 지명 중 하나로 읍치에 있는 訓練과 擺撥이 있다. 또한 《해동지도》에 읍치의 건물이 4개밖에 그려져 있지 않지만 본 지도에는 무려 11개나 된다. 왼쪽의 大船串烽도 《해동지도》에 없는 지명이다. 이런 점들은 본 지도가 《해동지도》 이외의 자료도 참조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부분이다.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되는 부분으로는 왼쪽의 鎭里面에 대한 표현이 있다. 진리면은 원래 永柔와 平壤의 경계를 넘어가 해안가에 있는 越境地이다. 《해동지도》의 경우 永柔界와 平壤界가 진리면과 순화면 사이를 가르듯이 적혀 있고, 산줄기가 이어져 있지 않아 월경지인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영유계와 평양계가 적혀 있는 방식뿐만 아니라 마치 산줄기가 이어진 것처럼 그려져 있어 진리면이 월경지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주기에는 《해동지도》를 비롯하여 다른 자료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는 擧島面이 적혀 있기도 하다. 다른 面과 달리 初境과 終境의 기록이 없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적어놓은 것이 아닌가 한다. (이기봉)

  • 양양부(襄陽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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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양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에 비해 본 지도에는 오른쪽 위에 靑草湖, 降仙驛, 洛山寺 등의 지명이 생략되어 있다. 표현 방식은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양양부 지도에도 이 지명들은 모두 표시되어 있다. 또한 읍치 왼쪽에는 府南面이 部南面으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하며 필사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반면에 《광여도》에는 이런 잘못들이 나타나고 있지 않다. 남북이 동서보다 약 2배 정도 긴 모양의 고을임에도 남북이 약간 긴 직사각형으로 표현되어 있다. 또한 일반적인 회화식 지도처럼 읍치 지역을 확대해서 그리고 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몇 가지 오해할 수 있는 문제들이 발생하였다.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해안선과 왼쪽의 산줄기가 마치 정북-정남 방향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서북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또한 하천들이 대부분 正東으로 흘러 바다에 들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降仙面에 있는 하천은 대체적으로 실제에 부합된다. 그러나 읍치 아래쪽에 있는 현재의 남대천은 이 지도만으로는 실제적인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다. 남대천의 본 줄기는 구룡령 근처에서 발원하여 북류하다가 읍치에서 잠깐 동류하여 바다로 들어간다. 그 길이 역시 강선면에 있는 하천보다 훨씬 길다. (이기봉)

  • 영종(永宗)(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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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종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지도 왼쪽 위에 적혀 있는 ‘龍流物場’은 《광여도》에 ‘龍流牧場’으로 되어 있다. 후자가 올바르기 때문에 본 지도가 오류를 범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 富平界에도 水路를 水里로 잘못 기록한 것이 보인다. 永宗은 독자적인 고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도가 그려져 있다. 1705년(숙종 31)에 독자적인 영역과 주민을 갖고 있는 獨鎭이 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영종도라 불리는 섬은 월래 紫燕島라고 하였으며, 본 지도에는 영종진이 관할하는 섬만 그려져 있다. 자연도와 주변의 섬 사이에는 ‘退潮成陸’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썰물 때 육지가 된다’는 의미로서 특이하게 갯벌의 범위도 지도에 그려져 있다. 갯벌 바깥쪽이 바다인데, 그 바깥쪽에 또 다른 경계가 표시되어 있다. 이 경계는 영종진이 관할하는 범위를 가리키는 것일 뿐 육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 경계 바깥에는 인근 고을과의 水路 거리가 적혀 있다. 오른쪽 위에는 京江船路가 적혀 있다. 京江은 서울 부근의 한강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그곳으로 가는 稅穀船이 다니는 통로라는 의미이다. 왼쪽 아래에는 三南海門이 적혀 있다. 이 방향으로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의 세곡선이 드나들었기 때문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영종진 지도도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유사하여 상호 관련성을 추정할 수 있다. (이기봉)

  • 옥천군(沃川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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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옥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지도 아래쪽의 永登界는 《광여도》에는 永同界라고 적혀 있다. 후자가 정확한 것이기 때문에 본 지도의 작성자가 오류를 범한 것이다. 지도 가운데의 土坡驛은 《광여도》에 土陀驛으로 적혀 있는데, 본 지도가 올바르다. 본 지도와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에서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옥천군 지도에도 土坡驛으로 적혀 있다. 왼쪽 아래의 錦山界에서 흘러와 오른쪽을 휘감고 왼쪽 위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금강이다. 그런데 금강은 원래 錦山界에서 옥천군의 陽南面과 陽內面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永同縣의 영역에 들어가며, 다시 옥천군의 利南面으로 들어온다. 이 구간이 짧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서는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가 없다. 사실에 맞게 그리려면 利南面과 利內面이 月伊山烽 위쪽에 그려져야 한다. 그리고 赤登津 부근은 永同縣의 영역으로 표시되어야 한다. 靑山界 방면에서도 큰 하천이 합류하지만 본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이런 것들은 읍치에 대한 정보 수록과 풍수적 이미지의 구현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거리나 위치 등에는 별로 주목하지 않은 회화식 군현지도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점이다. (이기봉)

  • 영광군(靈光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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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광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외쪽의 法聖鎭 부분에는 노란색 사각형의 面 기호는 표시되어 있지만 명칭이 기록되지 않았다. 《광여도》에는 陳良面과 道內面이 적혀 있다. 《광여도》에 비해 아예 생략된 면도 있다. 오른쪽 위의 內東面 동쪽에 外東面이, 왼쪽 가운데의 舘山面 부근에 令卞面이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는 모두 적혀 있어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광여도》를 필사하면서 실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실수는 아래쪽 牧場과 多慶浦鎭에 《광여도》에는 없었던 건물이 1개씩 더 그려져 있는 부분에서도 나타난다. 본 지도에는 일부 面의 위치와 월경지에 대한 표시가 이해하기 어렵게 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오른쪽 아래의 六昌面은 가운데의 卞山面 부근에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그 아래쪽의 望雲面과 多慶浦鎭은 함평과 무안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다. 현재의 위치는 무안군 망운면과 운남면 지역인데, 본 지도만으로는 이러한 사실을 이해할 수가 없다. 아래쪽에 표시된 섬들은 현재의 신안군 임자도 부근에 있었던 것으로 거의 월경지에 가깝다. 또한 이 섬들은 크기나 위치가 거의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에 본 지도만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런 문제점은 《광여도》뿐만 아니라 표현 양식에서는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오른쪽에 적혀 있는 錦城界는 나주와의 경계를 의미한다. 나주는 인조(1623-1649) 시기에 잠시 금성현으로 강등되었다. 또한 1728년-1737년(영조 4-13) 사이에도 금성현으로 강등된 적이 있다.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나오는데, 《광여도》와 본 지도의 작성자가 시정하지 않고 그대로 필사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생각된다. 참고로 본 지도책의 맨 앞쪽에 나오는 호남도에는 錦城으로 나오지만 군현별 지도에서는 羅州牧으로 나온다. (이기봉)

  • 순흥부(順興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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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순흥부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고, 남북의 길이가 약간 더 길어졌다. 이로 인해 남북 방향의 하천이 더 길어지고, 읍치에 인접한 하천의 유로가 약간 바뀌어 있다. 가장 오른쪽의 奉化界에 있었던 하천 1개가 생략되어 있기도 하다. 본 지도에 수록된 지명은 거의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다만 《해동지도》와 약간 다르게 그리는 과정에서 지명의 위치가 바뀐 곳이 몇 개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본 지도의 오른쪽 중간에 있는 東倉이 《해동지도》에는 훨씬 아래쪽에 표시되어 있다. 순흥의 영역은 인근의 군현과 상당히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본 지도에 榮川이란 명칭이 붙은 지명은 순흥의 땅을 넘어가 있는 영천의 월경지였다. 반면에 왼쪽에 있는 昌樂面과 大龍山面은 모두 豊基의 땅을 넘어가 있는 순흥의 월경지였다. 《해동지도》에는 읍치 왼쪽에 豊基라는 명칭을 적어 넣어 그런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풍기라는 지명을 삭제하였는데, 필사 시에 각 군현의 영역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주기에는 2개의 면이 월경지라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왼쪽 위에 豊基가 붙은 지명은 풍기에 속해 있던 지역임을 의미한다. 본 지도의 필사 시 面에 노란색 사각형을 그려 넣었다. 그러나 영천이나 풍기가 붙은 지명이 모두 面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자료를 꼼꼼하게 검토한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주기에는 봉화와 안동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瓦丹面이 기록되어 있지만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기타 오른쪽은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의 상류이고, 왼쪽은 내성천의 지류인 서천의 상류이다. (이기봉)

  • 순천군(順川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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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순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순천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본 지도는 몇 가지 잘못을 범하고 있다. 가장 큰 잘못은 본 지도만으로는 하천의 본류와 지류, 크기 등을 이해할 수 없게 그린 점이다. 왼쪽의 德川江下流에서 흘러와 오른쪽의 殷山地 방향으로 흘러나가는 것이 현재의 대동강 본류이다. 《해동지도》에는 대동강 본류가 다른 하천보다 훨씬 굵게 그려져 있어 지류와 분명하게 구분해주고 있다. 아울러 대동강의 상류와 하류의 굵기도 약간 다르게 표현하여 구분을 쉽게 하였다. 이러한 오류는 《광여도》에서 더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광여도》에는 대부분의 하천을 1개의 실선으로 나타내었다. 다만 왼쪽의 德川江下流 부분과 오른쪽의 殷山地 부분을 2개의 실선으로 표시하여 다른 부분과 구분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런 표현은 하천의 상류와 하류를 더욱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광여도》의 필사 자 자체가 하천들 사이의 규모 차이, 대동강의 상류와 하류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더 나아가 《광여도》가 《해동지도》를 참조하지 않고 하천의 이해를 어렵게 만든 본 지도만을 필사했기 때문으로도 추정된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지 못한 면은 面의 기록에도 나타나고 있다. 위쪽에는 密田面이 田面으로, 粘石浦面이 粘伊彦面으로 나온다. 이 부분은 주기와 《광여도》에는 올바르게 되어 있다. 또한 蚕倉面이 지도에는 蚕食面으로, 주기에는 蚕舍面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 부분이 《광여도》의 지도에는 교정되어 있지만 주기에는 본 지도의 주기처럼 잘못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의 중간 아래쪽에는 殷山地가 3개 적혀 있다. 이것은 위쪽 부분과 아래쪽 부분 사이에 殷山縣이 있었기 때문이다. 읍치가 아래쪽에 있었기 때문에 위쪽은 越境地였다고 볼 수 있다. 두 지역은 실질적으로 상당히 떨어져 있었지만 일정한 크기의 종이 안에 그리기 위해 아주 가까운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기봉)

  • 영월부(寧越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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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월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는 《광여도》에 비해 글자가 잘못되거나 바뀐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莊陵 아래의 丁子閣은 丁字閣이라고 해야 하며, 그 오른쪽의 分德山은 分德峙라고 해야 한다. 그 아래의 三玉峙는 《광여도》에 三王峙라고 되어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영월부 지도에는 본 지도처럼 되어 있다. 오른쪽의 三涉界는 三陟界의 오기로서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는 모두 올바르게 되어 있다. 오른쪽 아래의 安東界는 《광여도》에는 없지만 《해동지도》에는 있다. 왼쪽 위쪽의 高德驛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高德峙로 되어 있다. 고덕치가 올바르며, 이를 통해 본 지도와 《광여도》는 동일한 오류를 범하고 있어 서로 모사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어느 것이 먼저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다른 지도를 모사하는 과정에서 《해동지도》를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영월부는 1699년(숙종 25)에 郡에서 府로 승격되므로 본 지도는 최소한 이 시기 이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왼쪽 위에는 原城界가 표시되어 있는데, 原州界를 의미한다. 原州는 1683년-1692년(숙종 9-18)과 1728년-1737년(영조 4-13) 사이에 原城縣으로 강등된 적이 있다. 영월부의 승격 연도와 관련시켜 보면 본 지도는 1728년에서 1737년 사이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영월은 남북보다는 동서의 폭이 훨씬 넓은 고을이다. 그러나 세로로 긴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기 위해 본 지도에서는 마치 남북이 훨씬 긴 것처럼 표현되었다. 이로 인해 하천의 유로 등이 실제의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아래쪽의 永春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남한강 본류이다. 읍치 왼쪽의 하천은 서강이라고 하며, 오른쪽의 하천은 동강이라고 한다. 서강은 본 지도와 달리 서쪽에서 유입되며, 동강은 동북쪽에서 유입된다. 아래쪽 下東面 방면에 있는 하천은 현재의 옥동천이다. 이 옥동천은 동쪽에서 유입되며, 그 길이 역시 지도에 표현된 서강과 동강보다 훨씬 길다. 또한 상동면은 지도의 표현과 달리 옥동천의 상류에 위치해 있어야 한다. 옥동천의 방향과 길이가 잘못 표현되었기 때문에 상동면 역시 잘못 위치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영월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는 이와 같은 사실이 잘 반영되어 있다. (이기봉)

  • 영평현(永平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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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평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北面에 있는 適骨山峯이 《광여도》에는 適骨山烽으로 되어 있는데 후자가 맞는 것이다. 읍치 아래쪽에 있는 ‘南大川 津船’은 《광여도》에는 없는 것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영평현 지도도 표현 방식과 내용적인 측면에서 일부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구도는 동일하다. 《해동지도》에 있었던 도로가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사라졌으며, 일부 지명의 가감이 있다. 왼쪽에 있는 하천이 지금의 한탕강이며, 왼쪽 아래에 ‘合水去漢灘’이라고 적혀 있다. ‘漢灘’은 우리말 ‘한여울’에 대한 한자 표현으로서 ‘大灘’이라 표시된 경우가 많다. ‘한’이 크다는 뜻이므로 ‘大’자를 사용한 것이다. ‘한탄’ 또는 ‘대탄’은 원래 현재의 연천군 전곡읍 전곡리 부근에 있었던 여울 부근만을 지칭하던 것인데 일제시대 이후 본류 전체를 지칭하는 명칭으로 정해졌다. ‘合水去漢灘’이란 표현도 ‘물이 합류되어 한탄으로 내려간다’는 뜻으로 ‘한탄’이 전곡리 부근만을 지칭하기 때문에 사용될 수 있는 표현이다. 정보가 가장 많은 읍치가 대축척으로 그려지고, 산줄기식으로 읍치를 강조한 전형적인 회화식 군현지도이다. 이와 같은 지도에서는 각 정보의 거리와 방향 등이 정확하지 않으며, 산의 실제 높이도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은 오른쪽의 國望山(1168.1m)인데 이 지도만으로는 이러한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 거리와 방향 등은 주기의 지지 자료를 통해 보완할 수 있다. (이기봉)

  • 옥천군(沃川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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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옥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지도 아래쪽의 永登界는 《광여도》에는 永同界라고 적혀 있다. 후자가 정확한 것이기 때문에 본 지도의 작성자가 오류를 범한 것이다. 지도 가운데의 土坡驛은 《광여도》에 土陀驛으로 적혀 있는데, 본 지도가 올바르다. 본 지도와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에서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옥천군 지도에도 土坡驛으로 적혀 있다. 왼쪽 아래의 錦山界에서 흘러와 오른쪽을 휘감고 왼쪽 위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금강이다. 그런데 금강은 원래 錦山界에서 옥천군의 陽南面과 陽內面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永同縣의 영역에 들어가며, 다시 옥천군의 利南面으로 들어온다. 이 구간이 짧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서는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가 없다. 사실에 맞게 그리려면 利南面과 利內面이 月伊山烽 위쪽에 그려져야 한다. 그리고 赤登津 부근은 永同縣의 영역으로 표시되어야 한다. 靑山界 방면에서도 큰 하천이 합류하지만 본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이런 것들은 읍치에 대한 정보 수록과 풍수적 이미지의 구현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거리나 위치 등에는 별로 주목하지 않은 회화식 군현지도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점이다. (이기봉)

  • 영광군(靈光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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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광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외쪽의 法聖鎭 부분에는 노란색 사각형의 面 기호는 표시되어 있지만 명칭이 기록되지 않았다. 《광여도》에는 陳良面과 道內面이 적혀 있다. 《광여도》에 비해 아예 생략된 면도 있다. 오른쪽 위의 內東面 동쪽에 外東面이, 왼쪽 가운데의 舘山面 부근에 令卞面이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는 모두 적혀 있어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광여도》를 필사하면서 실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실수는 아래쪽 牧場과 多慶浦鎭에 《광여도》에는 없었던 건물이 1개씩 더 그려져 있는 부분에서도 나타난다. 본 지도에는 일부 面의 위치와 월경지에 대한 표시가 이해하기 어렵게 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오른쪽 아래의 六昌面은 가운데의 卞山面 부근에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그 아래쪽의 望雲面과 多慶浦鎭은 함평과 무안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다. 현재의 위치는 무안군 망운면과 운남면 지역인데, 본 지도만으로는 이러한 사실을 이해할 수가 없다. 아래쪽에 표시된 섬들은 현재의 신안군 임자도 부근에 있었던 것으로 거의 월경지에 가깝다. 또한 이 섬들은 크기나 위치가 거의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에 본 지도만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런 문제점은 《광여도》뿐만 아니라 표현 양식에서는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오른쪽에 적혀 있는 錦城界는 나주와의 경계를 의미한다. 나주는 인조(1623-1649) 시기에 잠시 금성현으로 강등되었다. 또한 1728년-1737년(영조 4-13) 사이에도 금성현으로 강등된 적이 있다.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나오는데, 《광여도》와 본 지도의 작성자가 시정하지 않고 그대로 필사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생각된다. 참고로 본 지도책의 맨 앞쪽에 나오는 호남도에는 錦城으로 나오지만 군현별 지도에서는 羅州牧으로 나온다. (이기봉)

  • 순흥부(順興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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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순흥부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고, 남북의 길이가 약간 더 길어졌다. 이로 인해 남북 방향의 하천이 더 길어지고, 읍치에 인접한 하천의 유로가 약간 바뀌어 있다. 가장 오른쪽의 奉化界에 있었던 하천 1개가 생략되어 있기도 하다. 본 지도에 수록된 지명은 거의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다만 《해동지도》와 약간 다르게 그리는 과정에서 지명의 위치가 바뀐 곳이 몇 개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본 지도의 오른쪽 중간에 있는 東倉이 《해동지도》에는 훨씬 아래쪽에 표시되어 있다. 순흥의 영역은 인근의 군현과 상당히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본 지도에 榮川이란 명칭이 붙은 지명은 순흥의 땅을 넘어가 있는 영천의 월경지였다. 반면에 왼쪽에 있는 昌樂面과 大龍山面은 모두 豊基의 땅을 넘어가 있는 순흥의 월경지였다. 《해동지도》에는 읍치 왼쪽에 豊基라는 명칭을 적어 넣어 그런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풍기라는 지명을 삭제하였는데, 필사 시에 각 군현의 영역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주기에는 2개의 면이 월경지라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왼쪽 위에 豊基가 붙은 지명은 풍기에 속해 있던 지역임을 의미한다. 본 지도의 필사 시 面에 노란색 사각형을 그려 넣었다. 그러나 영천이나 풍기가 붙은 지명이 모두 面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자료를 꼼꼼하게 검토한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주기에는 봉화와 안동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瓦丹面이 기록되어 있지만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기타 오른쪽은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의 상류이고, 왼쪽은 내성천의 지류인 서천의 상류이다. (이기봉)

  • 순천군(順川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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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순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순천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본 지도는 몇 가지 잘못을 범하고 있다. 가장 큰 잘못은 본 지도만으로는 하천의 본류와 지류, 크기 등을 이해할 수 없게 그린 점이다. 왼쪽의 德川江下流에서 흘러와 오른쪽의 殷山地 방향으로 흘러나가는 것이 현재의 대동강 본류이다. 《해동지도》에는 대동강 본류가 다른 하천보다 훨씬 굵게 그려져 있어 지류와 분명하게 구분해주고 있다. 아울러 대동강의 상류와 하류의 굵기도 약간 다르게 표현하여 구분을 쉽게 하였다. 이러한 오류는 《광여도》에서 더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광여도》에는 대부분의 하천을 1개의 실선으로 나타내었다. 다만 왼쪽의 德川江下流 부분과 오른쪽의 殷山地 부분을 2개의 실선으로 표시하여 다른 부분과 구분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런 표현은 하천의 상류와 하류를 더욱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광여도》의 필사 자 자체가 하천들 사이의 규모 차이, 대동강의 상류와 하류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더 나아가 《광여도》가 《해동지도》를 참조하지 않고 하천의 이해를 어렵게 만든 본 지도만을 필사했기 때문으로도 추정된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지 못한 면은 面의 기록에도 나타나고 있다. 위쪽에는 密田面이 田面으로, 粘石浦面이 粘伊彦面으로 나온다. 이 부분은 주기와 《광여도》에는 올바르게 되어 있다. 또한 蚕倉面이 지도에는 蚕食面으로, 주기에는 蚕舍面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 부분이 《광여도》의 지도에는 교정되어 있지만 주기에는 본 지도의 주기처럼 잘못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의 중간 아래쪽에는 殷山地가 3개 적혀 있다. 이것은 위쪽 부분과 아래쪽 부분 사이에 殷山縣이 있었기 때문이다. 읍치가 아래쪽에 있었기 때문에 위쪽은 越境地였다고 볼 수 있다. 두 지역은 실질적으로 상당히 떨어져 있었지만 일정한 크기의 종이 안에 그리기 위해 아주 가까운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기봉)

  • 영월부(寧越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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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월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는 《광여도》에 비해 글자가 잘못되거나 바뀐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莊陵 아래의 丁子閣은 丁字閣이라고 해야 하며, 그 오른쪽의 分德山은 分德峙라고 해야 한다. 그 아래의 三玉峙는 《광여도》에 三王峙라고 되어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영월부 지도에는 본 지도처럼 되어 있다. 오른쪽의 三涉界는 三陟界의 오기로서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는 모두 올바르게 되어 있다. 오른쪽 아래의 安東界는 《광여도》에는 없지만 《해동지도》에는 있다. 왼쪽 위쪽의 高德驛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高德峙로 되어 있다. 고덕치가 올바르며, 이를 통해 본 지도와 《광여도》는 동일한 오류를 범하고 있어 서로 모사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어느 것이 먼저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다른 지도를 모사하는 과정에서 《해동지도》를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영월부는 1699년(숙종 25)에 郡에서 府로 승격되므로 본 지도는 최소한 이 시기 이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왼쪽 위에는 原城界가 표시되어 있는데, 原州界를 의미한다. 原州는 1683년-1692년(숙종 9-18)과 1728년-1737년(영조 4-13) 사이에 原城縣으로 강등된 적이 있다. 영월부의 승격 연도와 관련시켜 보면 본 지도는 1728년에서 1737년 사이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영월은 남북보다는 동서의 폭이 훨씬 넓은 고을이다. 그러나 세로로 긴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기 위해 본 지도에서는 마치 남북이 훨씬 긴 것처럼 표현되었다. 이로 인해 하천의 유로 등이 실제의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아래쪽의 永春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남한강 본류이다. 읍치 왼쪽의 하천은 서강이라고 하며, 오른쪽의 하천은 동강이라고 한다. 서강은 본 지도와 달리 서쪽에서 유입되며, 동강은 동북쪽에서 유입된다. 아래쪽 下東面 방면에 있는 하천은 현재의 옥동천이다. 이 옥동천은 동쪽에서 유입되며, 그 길이 역시 지도에 표현된 서강과 동강보다 훨씬 길다. 또한 상동면은 지도의 표현과 달리 옥동천의 상류에 위치해 있어야 한다. 옥동천의 방향과 길이가 잘못 표현되었기 때문에 상동면 역시 잘못 위치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영월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는 이와 같은 사실이 잘 반영되어 있다. (이기봉)

  • 영평현(永平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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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평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北面에 있는 適骨山峯이 《광여도》에는 適骨山烽으로 되어 있는데 후자가 맞는 것이다. 읍치 아래쪽에 있는 ‘南大川 津船’은 《광여도》에는 없는 것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영평현 지도도 표현 방식과 내용적인 측면에서 일부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구도는 동일하다. 《해동지도》에 있었던 도로가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사라졌으며, 일부 지명의 가감이 있다. 왼쪽에 있는 하천이 지금의 한탕강이며, 왼쪽 아래에 ‘合水去漢灘’이라고 적혀 있다. ‘漢灘’은 우리말 ‘한여울’에 대한 한자 표현으로서 ‘大灘’이라 표시된 경우가 많다. ‘한’이 크다는 뜻이므로 ‘大’자를 사용한 것이다. ‘한탄’ 또는 ‘대탄’은 원래 현재의 연천군 전곡읍 전곡리 부근에 있었던 여울 부근만을 지칭하던 것인데 일제시대 이후 본류 전체를 지칭하는 명칭으로 정해졌다. ‘合水去漢灘’이란 표현도 ‘물이 합류되어 한탄으로 내려간다’는 뜻으로 ‘한탄’이 전곡리 부근만을 지칭하기 때문에 사용될 수 있는 표현이다. 정보가 가장 많은 읍치가 대축척으로 그려지고, 산줄기식으로 읍치를 강조한 전형적인 회화식 군현지도이다. 이와 같은 지도에서는 각 정보의 거리와 방향 등이 정확하지 않으며, 산의 실제 높이도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은 오른쪽의 國望山(1168.1m)인데 이 지도만으로는 이러한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 거리와 방향 등은 주기의 지지 자료를 통해 보완할 수 있다. (이기봉)

  • 온양군(溫陽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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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온양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읍치를 지나 위쪽으로 흐르는 현재의 곡교천이 1개의 실선으로 그려진 점, 오른쪽의 堤가 제언 모습 없이 글씨로만 적혀 있는 점이 다를 뿐이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 표시 중 오른쪽 아래의 全義界와 위의 稷山界는 실질적으로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다. 위쪽에는 牙山界가 적혀 있어야 실제를 잘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주기의 사방 경계 기록을 보면 이와 같은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점들은 표현 방식에서 약간의 차이가 나타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온양군 지도에도 동일하게 나오고 있다. 《광여도》와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새롭게 그리면서 내용적으로는 그대로 따랐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으로 추정된다.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와 같은 점이 사실과 같게 표시되어 있다. 天安界에 표시된 하천과 東面 사이에 작은 산줄기가 하나 있어야 한다. 실제로 介峙에서 흘러오는 하천 유역의 대부분은 天安의 영역에 속해 있었지 온양과는 관계가 없었다. 읍치의 영역을 대축척으로 그리고, 풍수적인 명당적 이미지를 과장적으로 표현한 전형적인 회화식 지도이기 때문에 정보의 방향이나 거리 등은 상당히 부정확하다. (이기봉)

  • 영암군(靈巖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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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암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본 지도는 《광여도》에 표시된 지명 중 몇 가지를 잘못 표기했거나 생략한 경우가 있다. 읍치 오른쪽의 北二面은 火隊院 위쪽에 표시되어 있어야 하며, 왼쪽의 北平面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다. 또한 읍치 오른쪽에는 北一面이, 왼쪽의 梨津鎭 부근에는 松旨面이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 이런 면의 명칭이 모두 나오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광여도》를 필사하면서 실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昆二面 역시 주기에는 있지만 지도에는 없는데,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 있다. 그러나 본 지도와 표현 양식에서 다를 뿐 전체적인 구도나 내용이 비슷한 《해동지도》의 영암군 지도에는 곤이면이 표시되어 있다. 이것을 통해 볼 때 곤이면은 《광여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빠뜨린 것이라 생각되며, 본 지도의 필사 시 역시 수정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주기에 적혀 있는 郡內面이 지도에 郡始面으로 적혀 있는 점은 세 개의 지도 모두 동일하다. 본 지도는 남쪽을 위로 향해 그리고, 月出山을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그런데 왼쪽의 북평면과 옥천면, 위쪽의 魚蘭鎭 등이 해남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라는 사실을 이 지도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현재의 해남군 옥천면, 북일면, 북평면, 송지면 등이다. 또한 왼쪽의 바닷가에 있는 섬들은 현재 완도군에 속해 있지만 대부분 영암군에 속해 있는 월경지였다. 그러나 크기나 위치 등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 그려져 있다. 예를 들면 가장 아래쪽에 있는 莞島는 이 지역에서 가장 큰 섬이지만 다른 섬들과 거의 같은 크기로 표시되어 있다. 맨 위쪽의 楸子島는 현재는 제주도 제주시에 속해 있는 섬으로 해안가에서 아주 먼 곳에 있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오른쪽 위의 荒島는 지금의 영암군 삼호면에 있는 아주 작은 섬이었다. (이기봉)

  • 안동부(安東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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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안동부 지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도라고 추정된다.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읍치 부분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다. 하천의 본류나 지류 역시 표현 방식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나와 있는 것과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와 가장 다른 점은 첫째, 邑治에 있는 읍성을 상대적으로 크게 그렸고, 官廳과 大同 등의 정보를 추가하였다는 것이다. 둘째, 글씨로만 적혀 있는 郡縣, 驛, 面의 정보에 황색이나 노란색 사각형 기호를 추가하였다는 것이다. 셋째, 도로와 각 지점까지의 거리가 생략되었다는 것이다. 이 중 두 번째의 부분에서 군현과 역을 동일한 황색 사각형으로 그리고 있어 정보 사이의 차이를 구별하지 않았다. 그리고 본 지도에서 順興府, 榮川郡, 奉化縣, 禮安縣의 명칭이 적혀 있는 것은 甘泉倉, 乃城倉, 春陽倉, 小川倉, 才山倉이 있는 지역이 이들 군현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越境地였기 때문이다. 하천의 표시에서 《해동지도》에는 올바르게 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는 잘못 표시된 부분도 보인다. 오른쪽 아래 臨西와 臨北에 있는 하천은 현재 낙동강의 지류인 반변천이이라고 한다. 이 반변천은 眞寶와 英陽, 靑松의 경계를 넘어서 흘러온다. 본 지도에는 반변천 끝을 얇게 하여 마치 다른 고을과의 경계 부근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표현하였다. 《해동지도》에는 진보나 청송계에서 들어오는 것으로 분명하게 표시되어 있다. 읍치를 돌아 아래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지금의 낙동강 본류이고, 가장 왼쪽의 하천이 그 지류인 내성천이다. 2개의 하천은 본 지도에는 발원지에서 모두 연결된 것처럼 그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다른 고을을 지나는 부분도 많다. 읍치 아래쪽에 銅柱라고 적혀 있는 부분에 《해동지도》에는 당간지주의 모양이 그려져 있기도 하다. 주기의 호구수는 《해동지도》와 다르며, 面에 대한 기록은 거의 동일하다. (이기봉)

  • 신계현(新溪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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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신계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양식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신계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에서는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보다 본 지도의 크기가 훨씬 작아 읍치의 자세한 정보를 표현하기 위해 읍치를 상대적으로 크게 그린 것으로 생각된다. 필사 과정에서 실수도 보이고 있다. 읍치 위쪽의 光山罷陣旧基에서의 陣은 鎭을 잘못 쓴 것이다. 왼쪽 위의 赤岩面 부근에는 餘背耳面이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 이 면의 명칭이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임을 알 수 있다. 《광여도》에도 이런 오류는 동일하게 이어지고 있다. 왼쪽에 ‘十知谷面’으로도 읽힐 수 있는 글자는 亇知谷面이다. ‘亇’자를 ‘十’자와 비슷하게 쓰는 경우가 많다. 위쪽의 遂安界에서 흘러와 아래쪽 平山界로 빠져나가는 沙羅川이 현재의 예성강 본류이다. 예성강 서쪽의 마지곡면과 적암면 부분은 실제로는 서쪽으로 더 튀어나가 있다. 읍치를 중심으로 사각형에 맞추기 위해 서쪽 경계가 직선으로 표현되면서 실제와 다르게 되었다. 이것은 이곳에서 흘러와 예성강에 합류되는 하천 자체도 작게 그려지는 원인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위쪽의 지파막면과 사리곡면 지역도 실제로는 북쪽으로 더 튀어나가 있다. 이 부분도 읍치를 중심으로 사각형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실제와 좀 다르게 그려졌다. 萊村面에서 흘러오는 하천이 실제로는 西南流하여 예성과에 합류됨에도 마치 西流하는 것처럼 그려진 것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기봉)

  • 영흥부(永興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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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흥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영흥부 지도도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는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본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까지 뻗은 산줄기가 서쪽으로부터 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위쪽의 鐵瓮城이 실제에 부합되게 튀어나가 있는 형태로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거의 일직선의 산줄기에 있는 것처럼 그렸다. 또한 아래쪽의 龍興江과 동해 사이가 《해동지도》에는 상대적으로 굵게 그려져 있다. 용흥강의 하구에《해동지도》에는 5개의 섬이 그려져 있는 반면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3개만 그려져 있다. 또한 현재 호도반도로 불리고 있는 그 아래쪽이 《해동지도》에는 반도로 표시된 반면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마치 섬처럼 그려져 있다. 이런 부분들은 《해동지도》가 실제에 더 가깝다. 《해동지도》와 가장 다른 점 중의 하나는 본 지도와 《광여도》에 도로가 생략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본 지도만으로는 다른 지역과의 연결 관계를 분명하게 이해하기 어렵다. 영흥부의 모습은 서쪽이 남북으로 넓고 읍치 부근에서 아주 좁아지다가 동쪽의 바닷가에 오면서 약간 넓어지고 있다. 본 지도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실제에 가깝게 표현하고 있다. 다만 서쪽 부분이 더 넓게 표현되어야 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영흥 지도는 현재와 가장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의 영흥부 윤곽과 비교해 보면 문제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기봉)

  •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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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요계관방지도를 필사한 지도이다. 요계관방지도가 제작된 배경에 대해서는 《해동지도》의 해제를 참고하면 된다. 《해동지도》를 필사하기는 했지만 동일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일단 《해동지도》의 가장 앞쪽에 있던 주기가 본 지도에는 모두 빠져 있다. 또한 각 정보마다 사용한 기호가 달라진 곳이 많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곳곳에 오류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페이지의 함경도 군현 표시가 보라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지만 3페이지에서는 연한 남색의 원으로 되어 있다. 평안도 군현은 흰색 원으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군현이 아닌 宣沙浦와 雲暗山城 등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평안도의 감영이 있었던 평양에는 平자 1개만 적혀 있기도 하다. 6페이지, 11페이지, 12페이지 등에는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고,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보인다. 이것들은 앞 페이지에서 이미 표기했던 지명을 다음 페이지에도 표기하여 명칭을 적지 않은 것들이다. 더 나아가 7페이지, 9페이지, 14페이지 등에는 《해동지도》에 있는 내용을 완전히 생략한 곳도 있다. 이밖에 9페이지에 지명이 생략된 사각형의 왼쪽 지명이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를 필사한 사람이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기봉)

  • 온양군(溫陽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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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온양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읍치를 지나 위쪽으로 흐르는 현재의 곡교천이 1개의 실선으로 그려진 점, 오른쪽의 堤가 제언 모습 없이 글씨로만 적혀 있는 점이 다를 뿐이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 표시 중 오른쪽 아래의 全義界와 위의 稷山界는 실질적으로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다. 위쪽에는 牙山界가 적혀 있어야 실제를 잘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주기의 사방 경계 기록을 보면 이와 같은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점들은 표현 방식에서 약간의 차이가 나타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온양군 지도에도 동일하게 나오고 있다. 《광여도》와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새롭게 그리면서 내용적으로는 그대로 따랐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으로 추정된다.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와 같은 점이 사실과 같게 표시되어 있다. 天安界에 표시된 하천과 東面 사이에 작은 산줄기가 하나 있어야 한다. 실제로 介峙에서 흘러오는 하천 유역의 대부분은 天安의 영역에 속해 있었지 온양과는 관계가 없었다. 읍치의 영역을 대축척으로 그리고, 풍수적인 명당적 이미지를 과장적으로 표현한 전형적인 회화식 지도이기 때문에 정보의 방향이나 거리 등은 상당히 부정확하다. (이기봉)

  • 영암군(靈巖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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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암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본 지도는 《광여도》에 표시된 지명 중 몇 가지를 잘못 표기했거나 생략한 경우가 있다. 읍치 오른쪽의 北二面은 火隊院 위쪽에 표시되어 있어야 하며, 왼쪽의 北平面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다. 또한 읍치 오른쪽에는 北一面이, 왼쪽의 梨津鎭 부근에는 松旨面이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 이런 면의 명칭이 모두 나오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광여도》를 필사하면서 실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昆二面 역시 주기에는 있지만 지도에는 없는데,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 있다. 그러나 본 지도와 표현 양식에서 다를 뿐 전체적인 구도나 내용이 비슷한 《해동지도》의 영암군 지도에는 곤이면이 표시되어 있다. 이것을 통해 볼 때 곤이면은 《광여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빠뜨린 것이라 생각되며, 본 지도의 필사 시 역시 수정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주기에 적혀 있는 郡內面이 지도에 郡始面으로 적혀 있는 점은 세 개의 지도 모두 동일하다. 본 지도는 남쪽을 위로 향해 그리고, 月出山을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그런데 왼쪽의 북평면과 옥천면, 위쪽의 魚蘭鎭 등이 해남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라는 사실을 이 지도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현재의 해남군 옥천면, 북일면, 북평면, 송지면 등이다. 또한 왼쪽의 바닷가에 있는 섬들은 현재 완도군에 속해 있지만 대부분 영암군에 속해 있는 월경지였다. 그러나 크기나 위치 등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 그려져 있다. 예를 들면 가장 아래쪽에 있는 莞島는 이 지역에서 가장 큰 섬이지만 다른 섬들과 거의 같은 크기로 표시되어 있다. 맨 위쪽의 楸子島는 현재는 제주도 제주시에 속해 있는 섬으로 해안가에서 아주 먼 곳에 있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오른쪽 위의 荒島는 지금의 영암군 삼호면에 있는 아주 작은 섬이었다. (이기봉)

  • 안동부(安東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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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안동부 지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도라고 추정된다.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읍치 부분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다. 하천의 본류나 지류 역시 표현 방식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나와 있는 것과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와 가장 다른 점은 첫째, 邑治에 있는 읍성을 상대적으로 크게 그렸고, 官廳과 大同 등의 정보를 추가하였다는 것이다. 둘째, 글씨로만 적혀 있는 郡縣, 驛, 面의 정보에 황색이나 노란색 사각형 기호를 추가하였다는 것이다. 셋째, 도로와 각 지점까지의 거리가 생략되었다는 것이다. 이 중 두 번째의 부분에서 군현과 역을 동일한 황색 사각형으로 그리고 있어 정보 사이의 차이를 구별하지 않았다. 그리고 본 지도에서 順興府, 榮川郡, 奉化縣, 禮安縣의 명칭이 적혀 있는 것은 甘泉倉, 乃城倉, 春陽倉, 小川倉, 才山倉이 있는 지역이 이들 군현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越境地였기 때문이다. 하천의 표시에서 《해동지도》에는 올바르게 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는 잘못 표시된 부분도 보인다. 오른쪽 아래 臨西와 臨北에 있는 하천은 현재 낙동강의 지류인 반변천이이라고 한다. 이 반변천은 眞寶와 英陽, 靑松의 경계를 넘어서 흘러온다. 본 지도에는 반변천 끝을 얇게 하여 마치 다른 고을과의 경계 부근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표현하였다. 《해동지도》에는 진보나 청송계에서 들어오는 것으로 분명하게 표시되어 있다. 읍치를 돌아 아래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지금의 낙동강 본류이고, 가장 왼쪽의 하천이 그 지류인 내성천이다. 2개의 하천은 본 지도에는 발원지에서 모두 연결된 것처럼 그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다른 고을을 지나는 부분도 많다. 읍치 아래쪽에 銅柱라고 적혀 있는 부분에 《해동지도》에는 당간지주의 모양이 그려져 있기도 하다. 주기의 호구수는 《해동지도》와 다르며, 面에 대한 기록은 거의 동일하다. (이기봉)

  • 신계현(新溪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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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신계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양식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신계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에서는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보다 본 지도의 크기가 훨씬 작아 읍치의 자세한 정보를 표현하기 위해 읍치를 상대적으로 크게 그린 것으로 생각된다. 필사 과정에서 실수도 보이고 있다. 읍치 위쪽의 光山罷陣旧基에서의 陣은 鎭을 잘못 쓴 것이다. 왼쪽 위의 赤岩面 부근에는 餘背耳面이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 이 면의 명칭이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임을 알 수 있다. 《광여도》에도 이런 오류는 동일하게 이어지고 있다. 왼쪽에 ‘十知谷面’으로도 읽힐 수 있는 글자는 亇知谷面이다. ‘亇’자를 ‘十’자와 비슷하게 쓰는 경우가 많다. 위쪽의 遂安界에서 흘러와 아래쪽 平山界로 빠져나가는 沙羅川이 현재의 예성강 본류이다. 예성강 서쪽의 마지곡면과 적암면 부분은 실제로는 서쪽으로 더 튀어나가 있다. 읍치를 중심으로 사각형에 맞추기 위해 서쪽 경계가 직선으로 표현되면서 실제와 다르게 되었다. 이것은 이곳에서 흘러와 예성강에 합류되는 하천 자체도 작게 그려지는 원인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위쪽의 지파막면과 사리곡면 지역도 실제로는 북쪽으로 더 튀어나가 있다. 이 부분도 읍치를 중심으로 사각형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실제와 좀 다르게 그려졌다. 萊村面에서 흘러오는 하천이 실제로는 西南流하여 예성과에 합류됨에도 마치 西流하는 것처럼 그려진 것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기봉)

  • 영흥부(永興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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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흥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영흥부 지도도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는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본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까지 뻗은 산줄기가 서쪽으로부터 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위쪽의 鐵瓮城이 실제에 부합되게 튀어나가 있는 형태로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거의 일직선의 산줄기에 있는 것처럼 그렸다. 또한 아래쪽의 龍興江과 동해 사이가 《해동지도》에는 상대적으로 굵게 그려져 있다. 용흥강의 하구에《해동지도》에는 5개의 섬이 그려져 있는 반면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3개만 그려져 있다. 또한 현재 호도반도로 불리고 있는 그 아래쪽이 《해동지도》에는 반도로 표시된 반면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마치 섬처럼 그려져 있다. 이런 부분들은 《해동지도》가 실제에 더 가깝다. 《해동지도》와 가장 다른 점 중의 하나는 본 지도와 《광여도》에 도로가 생략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본 지도만으로는 다른 지역과의 연결 관계를 분명하게 이해하기 어렵다. 영흥부의 모습은 서쪽이 남북으로 넓고 읍치 부근에서 아주 좁아지다가 동쪽의 바닷가에 오면서 약간 넓어지고 있다. 본 지도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실제에 가깝게 표현하고 있다. 다만 서쪽 부분이 더 넓게 표현되어야 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영흥 지도는 현재와 가장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의 영흥부 윤곽과 비교해 보면 문제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기봉)

  •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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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요계관방지도를 필사한 지도이다. 요계관방지도가 제작된 배경에 대해서는 《해동지도》의 해제를 참고하면 된다. 《해동지도》를 필사하기는 했지만 동일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일단 《해동지도》의 가장 앞쪽에 있던 주기가 본 지도에는 모두 빠져 있다. 또한 각 정보마다 사용한 기호가 달라진 곳이 많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곳곳에 오류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페이지의 함경도 군현 표시가 보라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지만 3페이지에서는 연한 남색의 원으로 되어 있다. 평안도 군현은 흰색 원으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군현이 아닌 宣沙浦와 雲暗山城 등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평안도의 감영이 있었던 평양에는 平자 1개만 적혀 있기도 하다. 6페이지, 11페이지, 12페이지 등에는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고,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보인다. 이것들은 앞 페이지에서 이미 표기했던 지명을 다음 페이지에도 표기하여 명칭을 적지 않은 것들이다. 더 나아가 7페이지, 9페이지, 14페이지 등에는 《해동지도》에 있는 내용을 완전히 생략한 곳도 있다. 이밖에 9페이지에 지명이 생략된 사각형의 왼쪽 지명이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를 필사한 사람이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기봉)

  • 은진현(恩津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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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은진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제언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지 않고, 《광여도》에 彌羅橋라고 적혀 있던 것이 아래쪽에 稱羅橋로 되어 있는 정도이다. 『여지도서』의 은진현 지도에는 潮岩橋라고 나와 있으며, 일명 彌羅라고 한다고 되어 있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은진현 지도에는 칭라교라고 되어 있어 본 지도와 상호 연관된 것으로 추정된다. 왼쪽에 江倉이 있는 곳은 조선시대에 금강에서 가장 번성한 포구가 있었던 江景이다. 밀물 때 바닷배가 이곳까지 들어오고, 평지 속의 강가에 江景山이라 표시된 낮은 산이 있어 포구로서 번성하게 되었다. 이 부근부터 금강의 본류이다. 보통 큰 하천의 본류는 들어오는 곳과 나가는 곳이 표시되어 있는데 본 지도에는 그렇지 않아 혼란을 주고 있다. 논산시 시내가 들어선 論山橋에서 흘러온 현재의 논산천은 강경 부근에서 금강 본류와 합류된다. 아래쪽 稱羅橋라 적혀 있는 현재의 강경천이 전라도의 礪山界에서 흘러들어옴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기타 오른쪽에 은진현과 상당히 떨어져 있는 全州界가 적혀 있는 것은 전주의 월경지인 陽良所面과 접해 있기 때문이다. 원래 陽良所였던 곳이 전주에 편입된 곳으로 현재의 논산시 양촌면의 남쪽 부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기봉)

  • 옥과현(玉果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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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옥과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 표시에서 오른쪽에 南原界가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하천이 현재의 섬진강 본류이다. 그러나 섬진강은 옥과현의 동쪽 일부분에만 걸쳐 남원과 경계를 이루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게 표시된 것은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 부분이 실제와 거의 동일하게 표현되어 있다. 兼方面 부분에서 흘러오는 현재의 삼기천은 실제로는 곡성의 경계 너머에서 흘러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처럼 그린 것은 고을 전체를 산줄기에 의해 둘러싸인 형태로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역시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실제와 비슷하게 교정되어 있다. 그 밖의 표현은 실제와 상당히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여지도서』의 옥과현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여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안음현(安陰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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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지도책의 경상도 군현지도가 대부분 《해동지도》의 것과 비슷하지만 안음현은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지 않았다. 안음현은 1728년(영조 4)에 혁파되었다가 1736년(영조 12)에 복구되며, 1767년(영조 43)에 安義縣로 명칭을 바꾼다. 안음현의 명칭 변화를 기준으로 보면 《해동지도》는 1728년과 1736년 사이에, 본 지도는 1736년과 1767년 사이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본 지도책에 수록된 대부분의 경상도 군현지도와 달리 읍치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지지 않았다. 본 지도에서의 읍치는 아래쪽에 衙라고만 표시되어 있을 뿐이다. 현재의 함양군 안의면 금천리와 교북리 일대이다. 하천의 유로라는 입장에서 현대지도와 비교해 봐도 실제와 아주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아래쪽의 하천은 낙동강의 지류 중 가장 큰 남강의 최상류에 해당되며, 위쪽의 하천은 합천에서 낙동강과 합류하는 황강의 최상류 중의 하나인 위천천이다. 남강의 최상류에는 현재 함양군 안의면, 서하면, 서상면이 있고, 위천천 유역에는 거창군 마리면, 위천면, 북상면이 있다. 본 지도책에 수록된 경상도 대부분의 군현 지도는 주로 面 정보를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릴만큼 중요하게 표시하였다. 그리고 그 面 정보의 대부분은 《해동지도》에 나와 있는 것이었다. 본 지도에는 面 정보가 없으며, 당시에 중요한 村의 명칭이 아주 자세하게 표시되어 있다. 그밖에 사찰과 역, 창고, 서원, 점막 등의 인문 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정확한 지도라는 입장에서 보았을 때 본 지도보다 더 정확하게 그려진 안음현 고지도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확한 지도 계열로 분류되고 있으며,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안음 지도, 김정호의 《동여도》와 본 지도를 비교해 보면 이런 측면이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지도가 본 지도책에 수록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시에 정확한 군현지도의 제작 기술이 상당히 높았음을 실감할 수 있다. (이기봉)

  • 신천군(信川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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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신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에서는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신천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문자로만 기록된 面이 본 지도에는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로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元山驛도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하여 일관성을 결여하고 있다. 또한 加山面에는 노란색 사각형을 그리지 않는 실수도 하고 있다. 주기에 있지만 지도에 없는 面의 명칭이 3개 있다. 이 중 頭羅面은 아래쪽에 頭羅山으로, 蓮寺面은 오른쪽 아래에 蓮寺洞으로 잘못 옮겨져 있다. 於項面은 《해동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다. 《광여도》에서는 加山面에 노란색 사각형을 그려 넣고, 元山驛을 보라색 사각형으로 그린 것 이외에는 본 지도와 동일한 오류를 반복하고 있다. 전형적인 회화식 지도의 형태로 그려져 있다. 읍치가 상대적으로 확대 과장되게 표현되었고, 풍수적 명당의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고을 전체가 마치 산줄기에 의해 겹겹이 둘러싸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실제 모습이라기보다는 인식된 지형일 뿐이다. 동쪽으로는 마치 바다에 접한 것처럼 표현되었지만 이것 역시 실제를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이곳은 재령강의 지류인 서강이며, 밀물 때 바닷물이 들어오는 구간일 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신천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를 비교하면서 이해하면 도움이 된다. (이기봉)

  • 온성부(穩城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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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온성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두만강은 왼쪽에서 흘러와 오른쪽으로 빠져나간다. 본 지도는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온성부 지도에 나오는 두만강의 유로를 거의 그대로 필사하였다. 그러나 《광여도》에서는 왼쪽이 2중의 실선으로 표시되어 있고, 오른쪽은 1개의 실선으로만 표시되어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광여도》의 필사 시 두만강의 상류와 하류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본 지도와 《광여도》는 아래쪽 慶源界 남쪽에 있었던 온성부의 월경지를 모두 생략하였다. 온성부의 월경지는 현재의 새별군, 은덕군, 나선시 등에 걸쳐 있었고, 그 면적은 본 지도에 표현된 지역보다 약간 적은 정도였다. 더군다나 동해와 접해 있는 지역도 있었는데, 본 지도나 《광여도》의 필사 시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본 지도에 표시된 노란색 사각형은 鎭堡를 의미한다. 다른 道의 지도에서는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가 面에 사용되었다. 함경도에서는 面 대신에 社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해동지도》에는 社가 지도와 주기 모두 적혀 있었지만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는 지도에서는 社가 모두 생략되어 있다. 아마 社가 面이라는 사실을 필사 시에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일반적인 회화식 지도에 비해 읍치를 확대해서 그리지도 않았고, 전체적인 모습이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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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요계관방지도를 필사한 지도이다. 요계관방지도가 제작된 배경에 대해서는 《해동지도》의 해제를 참고하면 된다. 《해동지도》를 필사하기는 했지만 동일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일단 《해동지도》의 가장 앞쪽에 있던 주기가 본 지도에는 모두 빠져 있다. 또한 각 정보마다 사용한 기호가 달라진 곳이 많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곳곳에 오류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페이지의 함경도 군현 표시가 보라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지만 3페이지에서는 연한 남색의 원으로 되어 있다. 평안도 군현은 흰색 원으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군현이 아닌 宣沙浦와 雲暗山城 등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평안도의 감영이 있었던 평양에는 平자 1개만 적혀 있기도 하다. 6페이지, 11페이지, 12페이지 등에는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고,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보인다. 이것들은 앞 페이지에서 이미 표기했던 지명을 다음 페이지에도 표기하여 명칭을 적지 않은 것들이다. 더 나아가 7페이지, 9페이지, 14페이지 등에는 《해동지도》에 있는 내용을 완전히 생략한 곳도 있다. 이밖에 9페이지에 지명이 생략된 사각형의 왼쪽 지명이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를 필사한 사람이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기봉)

  • 은진현(恩津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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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은진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제언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지 않고, 《광여도》에 彌羅橋라고 적혀 있던 것이 아래쪽에 稱羅橋로 되어 있는 정도이다. 『여지도서』의 은진현 지도에는 潮岩橋라고 나와 있으며, 일명 彌羅라고 한다고 되어 있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은진현 지도에는 칭라교라고 되어 있어 본 지도와 상호 연관된 것으로 추정된다. 왼쪽에 江倉이 있는 곳은 조선시대에 금강에서 가장 번성한 포구가 있었던 江景이다. 밀물 때 바닷배가 이곳까지 들어오고, 평지 속의 강가에 江景山이라 표시된 낮은 산이 있어 포구로서 번성하게 되었다. 이 부근부터 금강의 본류이다. 보통 큰 하천의 본류는 들어오는 곳과 나가는 곳이 표시되어 있는데 본 지도에는 그렇지 않아 혼란을 주고 있다. 논산시 시내가 들어선 論山橋에서 흘러온 현재의 논산천은 강경 부근에서 금강 본류와 합류된다. 아래쪽 稱羅橋라 적혀 있는 현재의 강경천이 전라도의 礪山界에서 흘러들어옴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기타 오른쪽에 은진현과 상당히 떨어져 있는 全州界가 적혀 있는 것은 전주의 월경지인 陽良所面과 접해 있기 때문이다. 원래 陽良所였던 곳이 전주에 편입된 곳으로 현재의 논산시 양촌면의 남쪽 부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기봉)

  • 옥과현(玉果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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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옥과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 표시에서 오른쪽에 南原界가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하천이 현재의 섬진강 본류이다. 그러나 섬진강은 옥과현의 동쪽 일부분에만 걸쳐 남원과 경계를 이루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게 표시된 것은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 부분이 실제와 거의 동일하게 표현되어 있다. 兼方面 부분에서 흘러오는 현재의 삼기천은 실제로는 곡성의 경계 너머에서 흘러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처럼 그린 것은 고을 전체를 산줄기에 의해 둘러싸인 형태로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역시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실제와 비슷하게 교정되어 있다. 그 밖의 표현은 실제와 상당히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여지도서』의 옥과현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여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안음현(安陰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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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지도책의 경상도 군현지도가 대부분 《해동지도》의 것과 비슷하지만 안음현은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지 않았다. 안음현은 1728년(영조 4)에 혁파되었다가 1736년(영조 12)에 복구되며, 1767년(영조 43)에 安義縣로 명칭을 바꾼다. 안음현의 명칭 변화를 기준으로 보면 《해동지도》는 1728년과 1736년 사이에, 본 지도는 1736년과 1767년 사이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본 지도책에 수록된 대부분의 경상도 군현지도와 달리 읍치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지지 않았다. 본 지도에서의 읍치는 아래쪽에 衙라고만 표시되어 있을 뿐이다. 현재의 함양군 안의면 금천리와 교북리 일대이다. 하천의 유로라는 입장에서 현대지도와 비교해 봐도 실제와 아주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아래쪽의 하천은 낙동강의 지류 중 가장 큰 남강의 최상류에 해당되며, 위쪽의 하천은 합천에서 낙동강과 합류하는 황강의 최상류 중의 하나인 위천천이다. 남강의 최상류에는 현재 함양군 안의면, 서하면, 서상면이 있고, 위천천 유역에는 거창군 마리면, 위천면, 북상면이 있다. 본 지도책에 수록된 경상도 대부분의 군현 지도는 주로 面 정보를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릴만큼 중요하게 표시하였다. 그리고 그 面 정보의 대부분은 《해동지도》에 나와 있는 것이었다. 본 지도에는 面 정보가 없으며, 당시에 중요한 村의 명칭이 아주 자세하게 표시되어 있다. 그밖에 사찰과 역, 창고, 서원, 점막 등의 인문 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정확한 지도라는 입장에서 보았을 때 본 지도보다 더 정확하게 그려진 안음현 고지도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확한 지도 계열로 분류되고 있으며,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안음 지도, 김정호의 《동여도》와 본 지도를 비교해 보면 이런 측면이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지도가 본 지도책에 수록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시에 정확한 군현지도의 제작 기술이 상당히 높았음을 실감할 수 있다. (이기봉)

  • 신천군(信川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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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신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에서는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신천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문자로만 기록된 面이 본 지도에는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로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元山驛도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하여 일관성을 결여하고 있다. 또한 加山面에는 노란색 사각형을 그리지 않는 실수도 하고 있다. 주기에 있지만 지도에 없는 面의 명칭이 3개 있다. 이 중 頭羅面은 아래쪽에 頭羅山으로, 蓮寺面은 오른쪽 아래에 蓮寺洞으로 잘못 옮겨져 있다. 於項面은 《해동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다. 《광여도》에서는 加山面에 노란색 사각형을 그려 넣고, 元山驛을 보라색 사각형으로 그린 것 이외에는 본 지도와 동일한 오류를 반복하고 있다. 전형적인 회화식 지도의 형태로 그려져 있다. 읍치가 상대적으로 확대 과장되게 표현되었고, 풍수적 명당의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고을 전체가 마치 산줄기에 의해 겹겹이 둘러싸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실제 모습이라기보다는 인식된 지형일 뿐이다. 동쪽으로는 마치 바다에 접한 것처럼 표현되었지만 이것 역시 실제를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이곳은 재령강의 지류인 서강이며, 밀물 때 바닷물이 들어오는 구간일 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신천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를 비교하면서 이해하면 도움이 된다. (이기봉)

  • 온성부(穩城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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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온성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두만강은 왼쪽에서 흘러와 오른쪽으로 빠져나간다. 본 지도는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온성부 지도에 나오는 두만강의 유로를 거의 그대로 필사하였다. 그러나 《광여도》에서는 왼쪽이 2중의 실선으로 표시되어 있고, 오른쪽은 1개의 실선으로만 표시되어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광여도》의 필사 시 두만강의 상류와 하류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본 지도와 《광여도》는 아래쪽 慶源界 남쪽에 있었던 온성부의 월경지를 모두 생략하였다. 온성부의 월경지는 현재의 새별군, 은덕군, 나선시 등에 걸쳐 있었고, 그 면적은 본 지도에 표현된 지역보다 약간 적은 정도였다. 더군다나 동해와 접해 있는 지역도 있었는데, 본 지도나 《광여도》의 필사 시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본 지도에 표시된 노란색 사각형은 鎭堡를 의미한다. 다른 道의 지도에서는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가 面에 사용되었다. 함경도에서는 面 대신에 社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해동지도》에는 社가 지도와 주기 모두 적혀 있었지만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는 지도에서는 社가 모두 생략되어 있다. 아마 社가 面이라는 사실을 필사 시에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일반적인 회화식 지도에 비해 읍치를 확대해서 그리지도 않았고, 전체적인 모습이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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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요계관방지도를 필사한 지도이다. 요계관방지도가 제작된 배경에 대해서는 《해동지도》의 해제를 참고하면 된다. 《해동지도》를 필사하기는 했지만 동일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일단 《해동지도》의 가장 앞쪽에 있던 주기가 본 지도에는 모두 빠져 있다. 또한 각 정보마다 사용한 기호가 달라진 곳이 많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곳곳에 오류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페이지의 함경도 군현 표시가 보라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지만 3페이지에서는 연한 남색의 원으로 되어 있다. 평안도 군현은 흰색 원으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군현이 아닌 宣沙浦와 雲暗山城 등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평안도의 감영이 있었던 평양에는 平자 1개만 적혀 있기도 하다. 6페이지, 11페이지, 12페이지 등에는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고,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보인다. 이것들은 앞 페이지에서 이미 표기했던 지명을 다음 페이지에도 표기하여 명칭을 적지 않은 것들이다. 더 나아가 7페이지, 9페이지, 14페이지 등에는 《해동지도》에 있는 내용을 완전히 생략한 곳도 있다. 이밖에 9페이지에 지명이 생략된 사각형의 왼쪽 지명이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를 필사한 사람이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기봉)

  • 음성현(陰城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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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음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읍치 아래쪽의 坎原驛이 《광여도》에는 玖原驛으로 표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음성현 지도에도 전자처럼 표시되어 있다. 여러 지리지와 지도를 검토해 보아도 《광여도》가 틀렸다.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 특이한 것은 읍치에 邑城이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해동지도》에도 이런 표시는 없었으며, 다른 지도나 지리지에서도 읍성이 있었다는 흔적을 찾기가 어렵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음성현 지도에 보면 衙舍와 客舍가 동일한 담장 안에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일반적으로 읍성 안에 있는 倉庫도 밖에 표시되어 있다. 아울러 주기에도 읍성을 의미하는 성곽이 없었던 것으로 되어 있다. 《광여도》와 본 지도의 작성자가 여러 지도를 그리면서 잘못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 지역의 풍수적 명당 이미지를 확대 과장해서 그렸기 때문에 실제와 다르게 표현된 측면이 발견된다. 읍치 아래쪽을 흐르는 하천이 현재 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음성천이다. 그런데 아래쪽에 표시된 遠西面이 마치 음성천 유역에 있었던 것처럼 표현된 것은 잘못이다. 원서면은 鎭川界로 흘러가는 미호천의 지류인 초평천의 상류에 해당된다. 《해동지도》의 경우 이 하천이 작게나마 그려져 있다. 그런데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아예 이 하천의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아마 고을 전체와 읍치의 풍수적 명당성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생략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동여도》의 이 부분을 비교하면서 보면 잘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기봉)

  • 옥구현(沃溝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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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옥구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옥구현 지도 역시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그러나 《해동지도》가 《광여도》나 본 지도로 변화하면서 달라진 측면이 있다. 첫째, 《해동지도》에 있었던 도로가 일괄적으로 생략되었다. 둘째, 일부 지명이 생략되었다. 왼쪽의 筽倉島처럼 《해동지도》의 筽食島를 誤記하기도 하였다. 셋째, 하천에 대한 표현 양식이 달라졌다. 아래쪽의 경우 현재의 만경강이 바다와 만나는 부분이고, 위쪽은 금강이 바다와 만나는 부분이다. 두 지역 모두 강이라기보다는 바다에 가까우며, 폭이 상당히 넓다. 《해동지도》에는 금강의 하구 부분이 바다처럼 묘사되어 있고, 《광여도》와 본 지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만경강과 바다가 만나는 부분 역시 《해동지도》에는 꽤 넓게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바다라기보다는 하천처럼 좁게 표현되어 있어 필사 시에 잘못 이해한 것으로 생각된다. 넷째, 《해동지도》에는 북쪽의 群山鎭 부분과 읍치 사이의 산줄기가 길게 강조되어 있지만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상당히 좁게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남북을 동서보다 길게 그렸던 《해동지도》에 비해 《광여도》와 본 지도가 상대적으로 남북을 짧게 그렸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여지도서』의 옥구현 지도도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여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양산군(梁山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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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양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성 안의 菖蒲亭 등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차이가 있다면 驛을 舘으로, 峴을 峙로 쓴 정도이다. 하천 역시 오른쪽 機張界에 현재의 수영강 상류가 생략된 것을 제외하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읍성이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지고,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더 맞추어 표현하였다. 이 과정에서 하천의 길이나 유로 등에서 약간이 차이가 발생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 현재의 수영강 상류가 오른쪽에 그려진 것은 사실에 부합된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이런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의적으로 생략한 것이 아닌가 한다. 왼쪽 위의 彦陽界에서 들어오는 하천은 밀양강 지류 중의 하나인 단장천의 최상류에 해당된다. 《해동지도》에는 彦陽界 부근이 발원지인 것처럼 그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본 지도처럼 언양 방면에서 들어온다. 이 하천은 읍치 부근을 지나는 현재의 양산천에 비하면 훨씬 작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왼쪽 아래에 七點山이 있는 섬은 현재의 부산광역시 대저동 일대로서 《해동지도》에 비해 훨씬 크게 그려져 있다. 또한 본 지도에는 양산천이 낙동강에 합류하는 지점에 대저도가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실제와 비교해 보면 《해동지도》의 표현이 사실에 가깝다. 읍치가 크게 그려지면서 북쪽 지역이 상대적으로 작게 그려진 것도 본 지도의 단점이다. (이기봉)

  • 안악군(安岳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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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안안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안악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다른 군현의 지도에서는 본 지도책이 《해동지도》보다 지명이 더 적은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본 지도에는 《해동지도》에 없는 지명도 기입되어 있다. 대표적인 것이 가운데 아래쪽의 長慶嶺과 長慶塔, 赤大路와 黃中路 및 靑小路 등이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했다고 하더라도 다른 자료를 참고하면서 일부 지명을 첨가했다고 볼 수 있다. 《해동지도》에는 문자로만 표시되어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덧붙였다. 그러나 읍치 오른쪽에 있었던 板橋面이 생략되어 있으며, 安谷面이 安國面으로 바뀌어 있다. 주기에는 판교면이 있고, 안곡면으로 적혀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문제점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오른쪽의 하천이 현재의 재령강이고, 아래쪽의 하천이 그 지류인 서강이다. 위쪽은 재령강과 대동강이 합류하여 서해로 빠져나가는 부분이다. 일부 하천의 방향에서 약간의 왜곡이 나타나지만 전체적으로 고을의 실제 모습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고을의 모습 자체가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표현하기 좋은 모양을 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울릉도(鬱陵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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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울릉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울릉도 지도도 표현 양식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주기에는 동서 80리, 남북50리로 되어 있으나 지도에는 남북이 약간 더 길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세로로 긴 사각형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해동지도》와 비교하여 잘못 필사된 곳도 발견된다. 섬의 오른쪽 아래에 ‘基北三四處’에서의 ‘北’은 ‘地’로 바꾸어 써야 한다. 본 지도에 나오는 基地 또는 基趾는 과거에 사람들이 거주했던 흔적을 의미하는 듯하며, 石葬은 그들의 돌무덤을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기타 船泊이 머물 수 있는 곳,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는 可居(處), 숙종 때 일본과의 소유권 분쟁 후 조선의 영토라는 내용을 새겨놓은 것으로 보이는 立標 등이 기록되어 있다. 오른쪽에 있는 于山島는 여러 사람에 의해 현재의 獨島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분명하지는 않다. 울릉도 본 섬 주위에 있는 작은 섬 중 가장 큰 관음도나 죽도를 가리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주기에는 울릉도에서 나는 특산물이 자세히 적혀 있다. (이기봉)

  •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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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요계관방지도를 필사한 지도이다. 요계관방지도가 제작된 배경에 대해서는 《해동지도》의 해제를 참고하면 된다. 《해동지도》를 필사하기는 했지만 동일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일단 《해동지도》의 가장 앞쪽에 있던 주기가 본 지도에는 모두 빠져 있다. 또한 각 정보마다 사용한 기호가 달라진 곳이 많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곳곳에 오류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페이지의 함경도 군현 표시가 보라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지만 3페이지에서는 연한 남색의 원으로 되어 있다. 평안도 군현은 흰색 원으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군현이 아닌 宣沙浦와 雲暗山城 등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평안도의 감영이 있었던 평양에는 平자 1개만 적혀 있기도 하다. 6페이지, 11페이지, 12페이지 등에는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고,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보인다. 이것들은 앞 페이지에서 이미 표기했던 지명을 다음 페이지에도 표기하여 명칭을 적지 않은 것들이다. 더 나아가 7페이지, 9페이지, 14페이지 등에는 《해동지도》에 있는 내용을 완전히 생략한 곳도 있다. 이밖에 9페이지에 지명이 생략된 사각형의 왼쪽 지명이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를 필사한 사람이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기봉)

  • 음성현(陰城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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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음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읍치 아래쪽의 坎原驛이 《광여도》에는 玖原驛으로 표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음성현 지도에도 전자처럼 표시되어 있다. 여러 지리지와 지도를 검토해 보아도 《광여도》가 틀렸다.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 특이한 것은 읍치에 邑城이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해동지도》에도 이런 표시는 없었으며, 다른 지도나 지리지에서도 읍성이 있었다는 흔적을 찾기가 어렵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음성현 지도에 보면 衙舍와 客舍가 동일한 담장 안에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일반적으로 읍성 안에 있는 倉庫도 밖에 표시되어 있다. 아울러 주기에도 읍성을 의미하는 성곽이 없었던 것으로 되어 있다. 《광여도》와 본 지도의 작성자가 여러 지도를 그리면서 잘못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 지역의 풍수적 명당 이미지를 확대 과장해서 그렸기 때문에 실제와 다르게 표현된 측면이 발견된다. 읍치 아래쪽을 흐르는 하천이 현재 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음성천이다. 그런데 아래쪽에 표시된 遠西面이 마치 음성천 유역에 있었던 것처럼 표현된 것은 잘못이다. 원서면은 鎭川界로 흘러가는 미호천의 지류인 초평천의 상류에 해당된다. 《해동지도》의 경우 이 하천이 작게나마 그려져 있다. 그런데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아예 이 하천의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아마 고을 전체와 읍치의 풍수적 명당성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생략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동여도》의 이 부분을 비교하면서 보면 잘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기봉)

  • 옥구현(沃溝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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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옥구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옥구현 지도 역시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그러나 《해동지도》가 《광여도》나 본 지도로 변화하면서 달라진 측면이 있다. 첫째, 《해동지도》에 있었던 도로가 일괄적으로 생략되었다. 둘째, 일부 지명이 생략되었다. 왼쪽의 筽倉島처럼 《해동지도》의 筽食島를 誤記하기도 하였다. 셋째, 하천에 대한 표현 양식이 달라졌다. 아래쪽의 경우 현재의 만경강이 바다와 만나는 부분이고, 위쪽은 금강이 바다와 만나는 부분이다. 두 지역 모두 강이라기보다는 바다에 가까우며, 폭이 상당히 넓다. 《해동지도》에는 금강의 하구 부분이 바다처럼 묘사되어 있고, 《광여도》와 본 지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만경강과 바다가 만나는 부분 역시 《해동지도》에는 꽤 넓게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바다라기보다는 하천처럼 좁게 표현되어 있어 필사 시에 잘못 이해한 것으로 생각된다. 넷째, 《해동지도》에는 북쪽의 群山鎭 부분과 읍치 사이의 산줄기가 길게 강조되어 있지만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상당히 좁게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남북을 동서보다 길게 그렸던 《해동지도》에 비해 《광여도》와 본 지도가 상대적으로 남북을 짧게 그렸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여지도서』의 옥구현 지도도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여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양산군(梁山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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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양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성 안의 菖蒲亭 등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차이가 있다면 驛을 舘으로, 峴을 峙로 쓴 정도이다. 하천 역시 오른쪽 機張界에 현재의 수영강 상류가 생략된 것을 제외하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읍성이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지고,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더 맞추어 표현하였다. 이 과정에서 하천의 길이나 유로 등에서 약간이 차이가 발생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 현재의 수영강 상류가 오른쪽에 그려진 것은 사실에 부합된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이런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의적으로 생략한 것이 아닌가 한다. 왼쪽 위의 彦陽界에서 들어오는 하천은 밀양강 지류 중의 하나인 단장천의 최상류에 해당된다. 《해동지도》에는 彦陽界 부근이 발원지인 것처럼 그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본 지도처럼 언양 방면에서 들어온다. 이 하천은 읍치 부근을 지나는 현재의 양산천에 비하면 훨씬 작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왼쪽 아래에 七點山이 있는 섬은 현재의 부산광역시 대저동 일대로서 《해동지도》에 비해 훨씬 크게 그려져 있다. 또한 본 지도에는 양산천이 낙동강에 합류하는 지점에 대저도가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실제와 비교해 보면 《해동지도》의 표현이 사실에 가깝다. 읍치가 크게 그려지면서 북쪽 지역이 상대적으로 작게 그려진 것도 본 지도의 단점이다. (이기봉)

  • 안악군(安岳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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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안안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안악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다른 군현의 지도에서는 본 지도책이 《해동지도》보다 지명이 더 적은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본 지도에는 《해동지도》에 없는 지명도 기입되어 있다. 대표적인 것이 가운데 아래쪽의 長慶嶺과 長慶塔, 赤大路와 黃中路 및 靑小路 등이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했다고 하더라도 다른 자료를 참고하면서 일부 지명을 첨가했다고 볼 수 있다. 《해동지도》에는 문자로만 표시되어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덧붙였다. 그러나 읍치 오른쪽에 있었던 板橋面이 생략되어 있으며, 安谷面이 安國面으로 바뀌어 있다. 주기에는 판교면이 있고, 안곡면으로 적혀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문제점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오른쪽의 하천이 현재의 재령강이고, 아래쪽의 하천이 그 지류인 서강이다. 위쪽은 재령강과 대동강이 합류하여 서해로 빠져나가는 부분이다. 일부 하천의 방향에서 약간의 왜곡이 나타나지만 전체적으로 고을의 실제 모습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고을의 모습 자체가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표현하기 좋은 모양을 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울릉도(鬱陵島)(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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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울릉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울릉도 지도도 표현 양식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주기에는 동서 80리, 남북50리로 되어 있으나 지도에는 남북이 약간 더 길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세로로 긴 사각형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해동지도》와 비교하여 잘못 필사된 곳도 발견된다. 섬의 오른쪽 아래에 ‘基北三四處’에서의 ‘北’은 ‘地’로 바꾸어 써야 한다. 본 지도에 나오는 基地 또는 基趾는 과거에 사람들이 거주했던 흔적을 의미하는 듯하며, 石葬은 그들의 돌무덤을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기타 船泊이 머물 수 있는 곳,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는 可居(處), 숙종 때 일본과의 소유권 분쟁 후 조선의 영토라는 내용을 새겨놓은 것으로 보이는 立標 등이 기록되어 있다. 오른쪽에 있는 于山島는 여러 사람에 의해 현재의 獨島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분명하지는 않다. 울릉도 본 섬 주위에 있는 작은 섬 중 가장 큰 관음도나 죽도를 가리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주기에는 울릉도에서 나는 특산물이 자세히 적혀 있다. (이기봉)

  •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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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요계관방지도를 필사한 지도이다. 요계관방지도가 제작된 배경에 대해서는 《해동지도》의 해제를 참고하면 된다. 《해동지도》를 필사하기는 했지만 동일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일단 《해동지도》의 가장 앞쪽에 있던 주기가 본 지도에는 모두 빠져 있다. 또한 각 정보마다 사용한 기호가 달라진 곳이 많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곳곳에 오류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페이지의 함경도 군현 표시가 보라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지만 3페이지에서는 연한 남색의 원으로 되어 있다. 평안도 군현은 흰색 원으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군현이 아닌 宣沙浦와 雲暗山城 등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평안도의 감영이 있었던 평양에는 平자 1개만 적혀 있기도 하다. 6페이지, 11페이지, 12페이지 등에는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고,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보인다. 이것들은 앞 페이지에서 이미 표기했던 지명을 다음 페이지에도 표기하여 명칭을 적지 않은 것들이다. 더 나아가 7페이지, 9페이지, 14페이지 등에는 《해동지도》에 있는 내용을 완전히 생략한 곳도 있다. 이밖에 9페이지에 지명이 생략된 사각형의 왼쪽 지명이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를 필사한 사람이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기봉)

  • 이산현(尼山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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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이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 위쪽에 曾城山이 표시되어 있다. 《광여도》에는 魯魚山이라 되어 있고, 《해동지도》의 이산현 지도에는 魯城山이라고 적혀 있다. 『여지도서』의 이산현 지도에도 魯城山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의 曾城山의 ‘曾’은 ‘魯’를 잘못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본 고을의 명칭은 尼山은 1776년(정조 1)에 尼城으로 고쳤고, 1800년(순조 원년)에는 魯城으로 바뀌었다. 본 지도는 읍치와 고을의 풍수적 명당 이미지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산줄기와 물줄기를 겹겹이 둘러싸인 형태로 그렸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실제적인 내용을 여러 측면에서 왜곡시킨다. 우선 오른쪽 위의 板峙嶺(널티)는 이산현이 아니라 공주목의 경계 안에 있는 곳이다. 계룡산으로부터 읍치까지 뻗은 산줄기를 강조하기 위해 지도에 그려 넣은 것으로 추정된다. 왼쪽의 素沙面을 흐르는 현재의 우교천은 公州界 너머에서 흘러들어옴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성현의 땅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읍치 지역을 상대적으로 확대해서 그렸기 때문에 다른 지역과 축척이 다르다. 이에 따라 본 지도만으로는 각 지역의 실제적인 거리와 방향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지도 왼쪽 아래의 烏山(오미)에는 海倉이 표시되어 있다. 이 부근까지 밀물 때 바닷물이 들어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성현의 田稅와 大同米를 모아서 한양까지 운반하던 창고이다. 현재의 논산시 성동면 삼호리 오미 마을에 있었다. (이기봉)

  • 용담현(龍潭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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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용담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왼쪽 위의 埋伏處와 아래쪽의 玉女峰은 《광여도》에 없던 지명으로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용담현 지도에는 나온다. 본 지도가 전체적인 표현에서는 《광여도》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세부적으로는 《해동지도》도 참조했음을 알려주는 지명이다. 《광여도》에 비해 달라진 점 중의 하나는 하천에 대한 표현이다. 아래쪽의 鎭安界와 茂朱界에서 흘러와 위쪽의 錦山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금강이다. 그런데 《광여도》에는 아래쪽의 南面부터 東面 부근까지 하나의 실선으로만 표시하였고, 나머지 부분은 2개의 실선으로 그렸다. 1개의 실선 부분에서 갑자기 하폭이 좁아지는 것이 아니라면 《광여도》의 필사 시 하류를 2개의 실선으로, 상류를 1개의 실선으로 그리려 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무주와 진안 방면에서 금강이 흘러온다는 사실을 깨닫고 상류부분도 다시 2개의 실선으로 그린 것이 아닌가 한다. 본 지도의 필사 시 《광여도》를 필사하면서도 《해동지도》를 참조하면서 이 부분을 수정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남면 부분의 하천 표시에서 실제와 다른 측면이 일부 발견된다. 伊川으로 표시된 금강은 진안의 땅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용담현의 땅을 거쳐 무주계로 들어간다. 이렇게 된 이유는 용담현의 땅이었던 현재의 진안군 동향면이 동남쪽으로 불쑥 튀어나간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 부분이 사실에 가깝게 교정되어 있다. 『여지도서』의 용담현 지도도 《해동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비슷하여 본 지도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언양현(彦陽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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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언양현 지도와 비슷하다. 하천의 유로라는 측면에서 보면 본 지도와 《해동지도》는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본 지도는 《해동지도》에 비해 첫째, 읍성이 더 크게 그려져 있고 둘째 세로(남북)가 더 길게 되어 있다. 이로 인해 하천의 유로에서 약간의 변화가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왼쪽 아래의 하천이 본 지도에는 南流하다가 西流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거의 西流하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읍치 바로 왼쪽의 하천도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보다 남류하는  듯한 인상이 더 적다. 지명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邑城과 그 주변의 지명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도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것 중에서 본 지도에 수록되지 않은 것도 있다. 이런 사실을 종합해 보면 본 지도는 기본적으로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읍치 부분은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비록 회화식으로 그려져 있어 읍치와 다른 지역 사이의 거리 축척이 다르지만 고을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실제와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안주목(安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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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안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차이가 있지만 하천의 유로는 거의 동일한 《해동지도》의 안주목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지만 본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또한 《해동지도》는 동서를 남북보다 훨씬 길게 그렸지만 본 지도는 남북을 동서보다 길게 그렸다. 이렇게 된 이유는 본 지도가 세로로 긴 사각형의 종이에 맞게 고을의 모습을 그리려고 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고을의 실제 모습은 동서가 남북보다 긴 형태를 이루고 있어 《해동지도》가 사실에 가깝다. 동서와 남북의 길이에 대한 차이 때문에 하천의 유로에 대한 표현이 많이 달라졌다. 읍치 위쪽의 청천강은 《해동지도》에는 실제처럼 거의 西流하는 것으로 그려졌지만 본 지도는 마치 서류하다가 南流하는 것처럼 표현되었다. 오른쪽 위에 順川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은 실제로는 고을의 동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이 하천의 위치가 실제와 유사한 위치에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동북쪽에 있는 것처럼 잘못 표현되어 있다. 외쪽 아래의 老江鎭 역시 《해동지도》에는 실제와 가깝게 읍치의 서남 방향에 있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남쪽에 있는 것처럼 표시되어 있다. 面은 《해동지도》에 글씨로만 적혀 있지만 본 지도에는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가 덧붙여져 있다. 그러나 아래쪽 南面 부근에 있던 葛串面이 빠져 있다. 《광여도》에는 갈곶면이 추가되어 있다. 주기를 보면 州內面이 다른 면의 글씨 크기와 다르게 적혀 있다. 주내면은 《해동지도》에도 없던 것으로 본 지도가 제작된 이후에 언젠가 새롭게 추가된 것으로 생각된다. 《광여도》에도 주기에 주내면이 기록되어 있는데, 다른 면과 글씨체나 크기가 동일하여 후에 추가하여 기록한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이기봉)

  • 울진현(蔚珍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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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울진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의 英陽里, 古城山, 邑基는 《광여도》에 英陽界, 古山城, 邑治로 되어 있다. 표현 방식에서는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울진현 지도에는 英陽界, 古山城, 邑基로 나온다. 이를 통해 볼 때 英陽里와 古城山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邑基라는 지명을 통해 볼 때 최소한 본 지도의 지명은 《해동지도》를 참조하여 작성했음을 알 수 있다. 《해동지도》와 다르면서 《광여도》와 본 지도가 같은 지명도 있다. 맨 위쪽의 興富庫와 館은 《해동지도》에는 興富驛으로 나오며, 아래쪽의 德神驛은 《해동지도》에 德新驛으로 적혀 있다.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어 지도를 그렸기 때문에 실제로는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이 왜곡되고 있다. 본 지도에서 가장 사실과 다르게 표현된 것은 하천이다. 첫째, 斗川院 방향에서 내려오는 하천과 佛影寺 방면에서 내려오는 하천은 바다에 유입될 때까지 지도의 표현과 달리 서로 합류되지 않는다. 둘째, 遠南面과 聖留屈에서 내려오는 하천은 직접 바다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불영사에서 내려오는 물과 합해진 후 바다로 유출된다. 셋째, 英陽의 경계를 넘어 불영사에서 흘러오는 하천과 합류되는 현재의 왕피천을 구분하기 어렵다. 넷째, 서면 부분에는 낙동강의 상류 유역에 속하는 부분이 있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 중 세 번째 오류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울진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 2개의 지도는 정확성을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삼았음에도 불구하고 세 번째의 오류를 교정하지 못했다. 본 지도와 같은 정보에 기반하여 판단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왼쪽에 울진과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安東의 경계가 표시되어 있는 이유는 이곳에 안동의 월경지인 소천면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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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요계관방지도를 필사한 지도이다. 요계관방지도가 제작된 배경에 대해서는 《해동지도》의 해제를 참고하면 된다. 《해동지도》를 필사하기는 했지만 동일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일단 《해동지도》의 가장 앞쪽에 있던 주기가 본 지도에는 모두 빠져 있다. 또한 각 정보마다 사용한 기호가 달라진 곳이 많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곳곳에 오류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페이지의 함경도 군현 표시가 보라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지만 3페이지에서는 연한 남색의 원으로 되어 있다. 평안도 군현은 흰색 원으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군현이 아닌 宣沙浦와 雲暗山城 등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평안도의 감영이 있었던 평양에는 平자 1개만 적혀 있기도 하다. 6페이지, 11페이지, 12페이지 등에는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고,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보인다. 이것들은 앞 페이지에서 이미 표기했던 지명을 다음 페이지에도 표기하여 명칭을 적지 않은 것들이다. 더 나아가 7페이지, 9페이지, 14페이지 등에는 《해동지도》에 있는 내용을 완전히 생략한 곳도 있다. 이밖에 9페이지에 지명이 생략된 사각형의 왼쪽 지명이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를 필사한 사람이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기봉)

  • 이산현(尼山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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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이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 위쪽에 曾城山이 표시되어 있다. 《광여도》에는 魯魚山이라 되어 있고, 《해동지도》의 이산현 지도에는 魯城山이라고 적혀 있다. 『여지도서』의 이산현 지도에도 魯城山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의 曾城山의 ‘曾’은 ‘魯’를 잘못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본 고을의 명칭은 尼山은 1776년(정조 1)에 尼城으로 고쳤고, 1800년(순조 원년)에는 魯城으로 바뀌었다. 본 지도는 읍치와 고을의 풍수적 명당 이미지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산줄기와 물줄기를 겹겹이 둘러싸인 형태로 그렸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실제적인 내용을 여러 측면에서 왜곡시킨다. 우선 오른쪽 위의 板峙嶺(널티)는 이산현이 아니라 공주목의 경계 안에 있는 곳이다. 계룡산으로부터 읍치까지 뻗은 산줄기를 강조하기 위해 지도에 그려 넣은 것으로 추정된다. 왼쪽의 素沙面을 흐르는 현재의 우교천은 公州界 너머에서 흘러들어옴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성현의 땅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읍치 지역을 상대적으로 확대해서 그렸기 때문에 다른 지역과 축척이 다르다. 이에 따라 본 지도만으로는 각 지역의 실제적인 거리와 방향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지도 왼쪽 아래의 烏山(오미)에는 海倉이 표시되어 있다. 이 부근까지 밀물 때 바닷물이 들어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성현의 田稅와 大同米를 모아서 한양까지 운반하던 창고이다. 현재의 논산시 성동면 삼호리 오미 마을에 있었다. (이기봉)

  • 용담현(龍潭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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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용담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왼쪽 위의 埋伏處와 아래쪽의 玉女峰은 《광여도》에 없던 지명으로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용담현 지도에는 나온다. 본 지도가 전체적인 표현에서는 《광여도》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세부적으로는 《해동지도》도 참조했음을 알려주는 지명이다. 《광여도》에 비해 달라진 점 중의 하나는 하천에 대한 표현이다. 아래쪽의 鎭安界와 茂朱界에서 흘러와 위쪽의 錦山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금강이다. 그런데 《광여도》에는 아래쪽의 南面부터 東面 부근까지 하나의 실선으로만 표시하였고, 나머지 부분은 2개의 실선으로 그렸다. 1개의 실선 부분에서 갑자기 하폭이 좁아지는 것이 아니라면 《광여도》의 필사 시 하류를 2개의 실선으로, 상류를 1개의 실선으로 그리려 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무주와 진안 방면에서 금강이 흘러온다는 사실을 깨닫고 상류부분도 다시 2개의 실선으로 그린 것이 아닌가 한다. 본 지도의 필사 시 《광여도》를 필사하면서도 《해동지도》를 참조하면서 이 부분을 수정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남면 부분의 하천 표시에서 실제와 다른 측면이 일부 발견된다. 伊川으로 표시된 금강은 진안의 땅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용담현의 땅을 거쳐 무주계로 들어간다. 이렇게 된 이유는 용담현의 땅이었던 현재의 진안군 동향면이 동남쪽으로 불쑥 튀어나간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 부분이 사실에 가깝게 교정되어 있다. 『여지도서』의 용담현 지도도 《해동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비슷하여 본 지도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언양현(彦陽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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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언양현 지도와 비슷하다. 하천의 유로라는 측면에서 보면 본 지도와 《해동지도》는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본 지도는 《해동지도》에 비해 첫째, 읍성이 더 크게 그려져 있고 둘째 세로(남북)가 더 길게 되어 있다. 이로 인해 하천의 유로에서 약간의 변화가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왼쪽 아래의 하천이 본 지도에는 南流하다가 西流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거의 西流하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읍치 바로 왼쪽의 하천도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보다 남류하는  듯한 인상이 더 적다. 지명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邑城과 그 주변의 지명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도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것 중에서 본 지도에 수록되지 않은 것도 있다. 이런 사실을 종합해 보면 본 지도는 기본적으로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읍치 부분은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비록 회화식으로 그려져 있어 읍치와 다른 지역 사이의 거리 축척이 다르지만 고을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실제와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안주목(安州牧)(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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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안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차이가 있지만 하천의 유로는 거의 동일한 《해동지도》의 안주목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지만 본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또한 《해동지도》는 동서를 남북보다 훨씬 길게 그렸지만 본 지도는 남북을 동서보다 길게 그렸다. 이렇게 된 이유는 본 지도가 세로로 긴 사각형의 종이에 맞게 고을의 모습을 그리려고 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고을의 실제 모습은 동서가 남북보다 긴 형태를 이루고 있어 《해동지도》가 사실에 가깝다. 동서와 남북의 길이에 대한 차이 때문에 하천의 유로에 대한 표현이 많이 달라졌다. 읍치 위쪽의 청천강은 《해동지도》에는 실제처럼 거의 西流하는 것으로 그려졌지만 본 지도는 마치 서류하다가 南流하는 것처럼 표현되었다. 오른쪽 위에 順川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은 실제로는 고을의 동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이 하천의 위치가 실제와 유사한 위치에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동북쪽에 있는 것처럼 잘못 표현되어 있다. 외쪽 아래의 老江鎭 역시 《해동지도》에는 실제와 가깝게 읍치의 서남 방향에 있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남쪽에 있는 것처럼 표시되어 있다. 面은 《해동지도》에 글씨로만 적혀 있지만 본 지도에는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가 덧붙여져 있다. 그러나 아래쪽 南面 부근에 있던 葛串面이 빠져 있다. 《광여도》에는 갈곶면이 추가되어 있다. 주기를 보면 州內面이 다른 면의 글씨 크기와 다르게 적혀 있다. 주내면은 《해동지도》에도 없던 것으로 본 지도가 제작된 이후에 언젠가 새롭게 추가된 것으로 생각된다. 《광여도》에도 주기에 주내면이 기록되어 있는데, 다른 면과 글씨체나 크기가 동일하여 후에 추가하여 기록한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이기봉)

  • 울진현(蔚珍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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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울진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의 英陽里, 古城山, 邑基는 《광여도》에 英陽界, 古山城, 邑治로 되어 있다. 표현 방식에서는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울진현 지도에는 英陽界, 古山城, 邑基로 나온다. 이를 통해 볼 때 英陽里와 古城山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邑基라는 지명을 통해 볼 때 최소한 본 지도의 지명은 《해동지도》를 참조하여 작성했음을 알 수 있다. 《해동지도》와 다르면서 《광여도》와 본 지도가 같은 지명도 있다. 맨 위쪽의 興富庫와 館은 《해동지도》에는 興富驛으로 나오며, 아래쪽의 德神驛은 《해동지도》에 德新驛으로 적혀 있다.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어 지도를 그렸기 때문에 실제로는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이 왜곡되고 있다. 본 지도에서 가장 사실과 다르게 표현된 것은 하천이다. 첫째, 斗川院 방향에서 내려오는 하천과 佛影寺 방면에서 내려오는 하천은 바다에 유입될 때까지 지도의 표현과 달리 서로 합류되지 않는다. 둘째, 遠南面과 聖留屈에서 내려오는 하천은 직접 바다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불영사에서 내려오는 물과 합해진 후 바다로 유출된다. 셋째, 英陽의 경계를 넘어 불영사에서 흘러오는 하천과 합류되는 현재의 왕피천을 구분하기 어렵다. 넷째, 서면 부분에는 낙동강의 상류 유역에 속하는 부분이 있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 중 세 번째 오류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울진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 2개의 지도는 정확성을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삼았음에도 불구하고 세 번째의 오류를 교정하지 못했다. 본 지도와 같은 정보에 기반하여 판단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왼쪽에 울진과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安東의 경계가 표시되어 있는 이유는 이곳에 안동의 월경지인 소천면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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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요계관방지도를 필사한 지도이다. 요계관방지도가 제작된 배경에 대해서는 《해동지도》의 해제를 참고하면 된다. 《해동지도》를 필사하기는 했지만 동일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일단 《해동지도》의 가장 앞쪽에 있던 주기가 본 지도에는 모두 빠져 있다. 또한 각 정보마다 사용한 기호가 달라진 곳이 많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곳곳에 오류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페이지의 함경도 군현 표시가 보라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지만 3페이지에서는 연한 남색의 원으로 되어 있다. 평안도 군현은 흰색 원으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군현이 아닌 宣沙浦와 雲暗山城 등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평안도의 감영이 있었던 평양에는 平자 1개만 적혀 있기도 하다. 6페이지, 11페이지, 12페이지 등에는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고,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보인다. 이것들은 앞 페이지에서 이미 표기했던 지명을 다음 페이지에도 표기하여 명칭을 적지 않은 것들이다. 더 나아가 7페이지, 9페이지, 14페이지 등에는 《해동지도》에 있는 내용을 완전히 생략한 곳도 있다. 이밖에 9페이지에 지명이 생략된 사각형의 왼쪽 지명이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를 필사한 사람이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기봉)

  • 임천군(林川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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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임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일부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왼쪽 아래의 公主胎室이 《광여도》에는 宣祖大王胎室 부분에 있다. 또한 왼쪽 曲顧山의 오른쪽 건물에 《광여도》에는 德林菴이, 중간 부분의 聖興山 오른쪽 건물에 《광여도》에는 慶興菴이 적혀 있다. 위쪽의 扶餘界에서 왼쪽 아래의 韓山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지금의 금강이다. 금강 변에 적혀 있는 場岩津과 南唐津이 《광여도》에는 없다. 이런 부분들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임천현 지도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광여도》와 《해동지도》에 표시된 堤堰 모양이 본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오른쪽 아래의 豆毛谷面 왼쪽에 《광여도》와 《해동지도》에 있었던 灰堤가 본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은데, 본 지도 제작자의 실수로 판단된다.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방향이나 거리 등이 별로 맞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 반면 본 지도는 정확하지는 않아도 상대적으로 잘 들어맞고 있다. 일반적인 회화식 군현 지도에서 읍치 지역을 아주 크게 그린 반면 본 지도에서는 상대적으로 작게 그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읍치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하천은 다른 하천에 비해 상대적으로 길게 표현되어 있다. (이기봉)

  • 용안현(龍安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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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용안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흐르는 하천이 지금의 금강이다. 금강이 동쪽에서 흘러와 서쪽으로 빠져나가므로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고 볼 수 있다. 아래쪽의 하천은 현재의 부곡천이다. 부곡천 건너에도 용안현의 땅이 있었음에도 본 지도에는 그런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위쪽의 하천은 용안현의 땅에서 발원하는 작은 하천에 불과하다. 그러나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마치 다른 고을로부터 들어오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용안현 지도에는 최상류가 뾰족하게 되어 있어 다른 고을에서 들어오는 하천이 아닐 수도 있는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용안현은 益山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益山界가 적혀 있다. 주기에도 남쪽으로 益山까지의 거리가 5리라고 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남쪽으로 익산까지의 거리가 12리로 되어 있다. 이런 오류는 김정호의 《동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져 용안현이 마치 익산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영남도(嶺南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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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안과 섬의 모습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남도와 거의 동일하다. 산줄기의 표현 방식이 약간 다른 측면이 있지만 전체적인 산세의 흐름은 《광여도》와 거의 비슷하다. 반면에 하천의 유로나 표현 방식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경상도 지도에 가깝다. 예를 들어 《광여도》에는 경주 지역의 형산강과 울산 지역의 태화강이 마치 붙어 있는 것처럼 표기되었지만 본 지도에서는 서로 분리되어 있다. 이것은  《해동지도》와 거의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또 하나의 예를 들면 역시 형산강의 지류인 현재의 기계천이 《광여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 본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다. 이것 역시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서 하천을 2개의 실선으로 표시한 것도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광여도》에는 하나의 실선으로만 표현하였다. 감영, 수영, 통영, 군현, 찰방역, 진보 등의 기호 사용은 《해동지도》가 아니라 《광여도》와 거의 유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찰방역의 색이 《광여도》는 붉은색인데 반해 본 지도는 진보와 동일한 노란색으로 되어 있다는 정도이다. 기타 지명은 《광여도》와 거의 비슷하지만 일부 지명은 《광여도》에 없는 것도 있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하며, 《해동지도》와는 다르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광여도》와 같은 계통의 것을 기본으로 하면서 《해동지도》와 다른 자료를 보충한 것으로 생각된다. 지명이 반영하는 내용의 상한 연도는 安陰과 山陰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두 군현은 모두 1767년(영조 43)에 安義와 山淸으로 명칭을 바꾼다. 따라서 내용만으로 놓고 볼 때 본 지도는 늦어도 1767년 이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지명만으로 본 지도의 제작 연도를 추적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조선시대의 지도책 중 상당수가 제작 당시의 상황을 반영하지 않고 기존의 지도를 그대로 베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도에는 명칭에서의 오류도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오른쪽 蔚山 부근에 적혀 있는 右兵營은 左兵營의 誤記이다. 가운데 위쪽의 昌樂은 군현이 아니라 찰방역임에도 불구하고 군현의 기호를 사용하고 있다. (이기봉)

  • 양덕현(陽德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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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덕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양덕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 위의 吳江面에서 발원하여 왼쪽 成川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대동강의 지류인 현재의 비류강 최상류이다. 읍치 방향에서 비류강에 합류되는 하천은 현재 평원천이라 불리고 있다. 오른쪽의 溫井面 지역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가는 하천은 대동강의 지류인 현재의 남강 최상류이다. 3개 하천의 길이와 유역 면적은 실제로는 거의 비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의 내용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렇게 된 첫 번째 이유는 읍치 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확대되어 그려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읍치 지역을 흐르는 평원천 유역의 면적이 넓어지고, 상대적으로 다른 두 하천 유역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이유는 실제로는 사각형이 아니면서 동서가 남북보다 긴 양덕현의 모습을 세로(남북)가 긴 사각형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평원천 유역의 동쪽 부분이 상대적으로 매우 작게 그려지게 되었다. 이와 같은 문제점들은 《해동지도》와 《광여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에 표시된 정보의 양이 늘어났으며, 아울러 읍치 지역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읍치 이외 지역의 정보는 《해동지도》에 모두 있으며, 본 지도의 지명수가 《해동지도》의 것보다 적다. 《해동지도》에 비해 잘못 옮겨진 지명도 보이고 있다. 위쪽의 如城山은 《해동지도》에 姑城山이라 적혀 있는데, 《광여도》에도 姑城山으로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 원성목(原城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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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지도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원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原州는 1683년-1692년(숙종 9-18)과 1728년-1737년(영조 4-13) 사이에 原城縣으로 강등된 적이 있다. 본 지도의 제목인 原城牧은 原城縣으로 강등되었을 때의 명칭과 原州가 일반적으로 牧이었다는 사실이 겹쳐져 적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즉, 본 지도의 필사 시 原州가 原城으로 강등되었을 때 縣이었던 점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위쪽의 여백에는 ‘원성은 지금의 원주이다(原城今原州)’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 문구는 원주가 다시 승격되었을 때 본 지도의 이용자가 적어 넣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에는 原州牧으로 나오며, 《광여도》도 동일하다. 본 지도는 《해동지도》에 비해 잘못 적은 것과 생략된 것이 많다. 읍치에 있는 田原驛은 由原驛을, 읍치 아래쪽의 靑丘驛은 丹丘驛을, 읍치 오른쪽 위의 草所面은 所草面을 잘못 적은 것이다. 아래쪽의 新林驛에는 보라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다. 읍치 왼쪽의 楮田洞面과 왼쪽 아래의 富論面에는 驛과 동일한 크기의 사각형에 노란색이 칠해져 있다. 아울러 왼쪽의 呂州界 방면에는 池內面이 생략되어 있기도 하다. 이와 같은 문제점들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필사 과정에서 많은 실수를 했음을 알려준다. 《광여도》에는 이런 오류들이 대부분 시정되어 있다. 그러나 왼쪽의 지내면이 본 지도와 똑같이 생략되어 있고, 干川面을 千川面으로 적는 등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남북보다 동서가 훨씬 긴 고을임에도 세로로 긴 사각형에 그림에 따라 실제 모습과 상당히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가장 크게 잘못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의 하천이 동서의 흐름은 거의 없고, 남북의 흐름만 있는 것처럼 묘사되었다는 점이다. 왼쪽의 忠州界에서 흘러와 呂州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남한강이다. 위쪽의 橫城界로부터 들어와 남한강에 합류되는 하천이 현재의 섬강이다. 섬강은 읍치 서쪽에서 서남류하는데 본 지도에서는 마치 남류하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오른쪽의 左邊面에서 右邊面쪽으로 흐르는 하천은 남한강의 지류인 현재의 주천강이다. 주천강에서 남류하는 부분도 있지만 동류하는 부분도 있는데 본 지도에는 역시 남류하는 것으로만 묘사되어 있다. 맨 오른쪽에 표시된 沙川은 현재의 평창강으로 실제로는 극히 짧은 구간인데 남북으로 길게 표현되어 있다. (이기봉)

  •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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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요계관방지도를 필사한 지도이다. 요계관방지도가 제작된 배경에 대해서는 《해동지도》의 해제를 참고하면 된다. 《해동지도》를 필사하기는 했지만 동일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일단 《해동지도》의 가장 앞쪽에 있던 주기가 본 지도에는 모두 빠져 있다. 또한 각 정보마다 사용한 기호가 달라진 곳이 많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곳곳에 오류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페이지의 함경도 군현 표시가 보라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지만 3페이지에서는 연한 남색의 원으로 되어 있다. 평안도 군현은 흰색 원으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군현이 아닌 宣沙浦와 雲暗山城 등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평안도의 감영이 있었던 평양에는 平자 1개만 적혀 있기도 하다. 6페이지, 11페이지, 12페이지 등에는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고,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보인다. 이것들은 앞 페이지에서 이미 표기했던 지명을 다음 페이지에도 표기하여 명칭을 적지 않은 것들이다. 더 나아가 7페이지, 9페이지, 14페이지 등에는 《해동지도》에 있는 내용을 완전히 생략한 곳도 있다. 이밖에 9페이지에 지명이 생략된 사각형의 왼쪽 지명이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를 필사한 사람이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기봉)

  •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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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요계관방지도를 필사한 지도이다. 요계관방지도가 제작된 배경에 대해서는 《해동지도》의 해제를 참고하면 된다. 《해동지도》를 필사하기는 했지만 동일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일단 《해동지도》의 가장 앞쪽에 있던 주기가 본 지도에는 모두 빠져 있다. 또한 각 정보마다 사용한 기호가 달라진 곳이 많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곳곳에 오류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페이지의 함경도 군현 표시가 보라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지만 3페이지에서는 연한 남색의 원으로 되어 있다. 평안도 군현은 흰색 원으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군현이 아닌 宣沙浦와 雲暗山城 등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평안도의 감영이 있었던 평양에는 平자 1개만 적혀 있기도 하다. 6페이지, 11페이지, 12페이지 등에는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고,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보인다. 이것들은 앞 페이지에서 이미 표기했던 지명을 다음 페이지에도 표기하여 명칭을 적지 않은 것들이다. 더 나아가 7페이지, 9페이지, 14페이지 등에는 《해동지도》에 있는 내용을 완전히 생략한 곳도 있다. 이밖에 9페이지에 지명이 생략된 사각형의 왼쪽 지명이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를 필사한 사람이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기봉)

  • 임천군(林川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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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임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일부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왼쪽 아래의 公主胎室이 《광여도》에는 宣祖大王胎室 부분에 있다. 또한 왼쪽 曲顧山의 오른쪽 건물에 《광여도》에는 德林菴이, 중간 부분의 聖興山 오른쪽 건물에 《광여도》에는 慶興菴이 적혀 있다. 위쪽의 扶餘界에서 왼쪽 아래의 韓山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지금의 금강이다. 금강 변에 적혀 있는 場岩津과 南唐津이 《광여도》에는 없다. 이런 부분들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임천현 지도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광여도》와 《해동지도》에 표시된 堤堰 모양이 본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오른쪽 아래의 豆毛谷面 왼쪽에 《광여도》와 《해동지도》에 있었던 灰堤가 본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은데, 본 지도 제작자의 실수로 판단된다.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방향이나 거리 등이 별로 맞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 반면 본 지도는 정확하지는 않아도 상대적으로 잘 들어맞고 있다. 일반적인 회화식 군현 지도에서 읍치 지역을 아주 크게 그린 반면 본 지도에서는 상대적으로 작게 그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읍치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하천은 다른 하천에 비해 상대적으로 길게 표현되어 있다. (이기봉)

  • 용안현(龍安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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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용안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흐르는 하천이 지금의 금강이다. 금강이 동쪽에서 흘러와 서쪽으로 빠져나가므로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고 볼 수 있다. 아래쪽의 하천은 현재의 부곡천이다. 부곡천 건너에도 용안현의 땅이 있었음에도 본 지도에는 그런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위쪽의 하천은 용안현의 땅에서 발원하는 작은 하천에 불과하다. 그러나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마치 다른 고을로부터 들어오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용안현 지도에는 최상류가 뾰족하게 되어 있어 다른 고을에서 들어오는 하천이 아닐 수도 있는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용안현은 益山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益山界가 적혀 있다. 주기에도 남쪽으로 益山까지의 거리가 5리라고 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남쪽으로 익산까지의 거리가 12리로 되어 있다. 이런 오류는 김정호의 《동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져 용안현이 마치 익산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영남도(嶺南圖)(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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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안과 섬의 모습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남도와 거의 동일하다. 산줄기의 표현 방식이 약간 다른 측면이 있지만 전체적인 산세의 흐름은 《광여도》와 거의 비슷하다. 반면에 하천의 유로나 표현 방식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경상도 지도에 가깝다. 예를 들어 《광여도》에는 경주 지역의 형산강과 울산 지역의 태화강이 마치 붙어 있는 것처럼 표기되었지만 본 지도에서는 서로 분리되어 있다. 이것은  《해동지도》와 거의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또 하나의 예를 들면 역시 형산강의 지류인 현재의 기계천이 《광여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 본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다. 이것 역시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서 하천을 2개의 실선으로 표시한 것도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광여도》에는 하나의 실선으로만 표현하였다. 감영, 수영, 통영, 군현, 찰방역, 진보 등의 기호 사용은 《해동지도》가 아니라 《광여도》와 거의 유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찰방역의 색이 《광여도》는 붉은색인데 반해 본 지도는 진보와 동일한 노란색으로 되어 있다는 정도이다. 기타 지명은 《광여도》와 거의 비슷하지만 일부 지명은 《광여도》에 없는 것도 있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하며, 《해동지도》와는 다르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광여도》와 같은 계통의 것을 기본으로 하면서 《해동지도》와 다른 자료를 보충한 것으로 생각된다. 지명이 반영하는 내용의 상한 연도는 安陰과 山陰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두 군현은 모두 1767년(영조 43)에 安義와 山淸으로 명칭을 바꾼다. 따라서 내용만으로 놓고 볼 때 본 지도는 늦어도 1767년 이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지명만으로 본 지도의 제작 연도를 추적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조선시대의 지도책 중 상당수가 제작 당시의 상황을 반영하지 않고 기존의 지도를 그대로 베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도에는 명칭에서의 오류도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오른쪽 蔚山 부근에 적혀 있는 右兵營은 左兵營의 誤記이다. 가운데 위쪽의 昌樂은 군현이 아니라 찰방역임에도 불구하고 군현의 기호를 사용하고 있다. (이기봉)

  • 양덕현(陽德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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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양덕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양덕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 위의 吳江面에서 발원하여 왼쪽 成川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대동강의 지류인 현재의 비류강 최상류이다. 읍치 방향에서 비류강에 합류되는 하천은 현재 평원천이라 불리고 있다. 오른쪽의 溫井面 지역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가는 하천은 대동강의 지류인 현재의 남강 최상류이다. 3개 하천의 길이와 유역 면적은 실제로는 거의 비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의 내용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렇게 된 첫 번째 이유는 읍치 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확대되어 그려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읍치 지역을 흐르는 평원천 유역의 면적이 넓어지고, 상대적으로 다른 두 하천 유역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이유는 실제로는 사각형이 아니면서 동서가 남북보다 긴 양덕현의 모습을 세로(남북)가 긴 사각형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평원천 유역의 동쪽 부분이 상대적으로 매우 작게 그려지게 되었다. 이와 같은 문제점들은 《해동지도》와 《광여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에 표시된 정보의 양이 늘어났으며, 아울러 읍치 지역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읍치 이외 지역의 정보는 《해동지도》에 모두 있으며, 본 지도의 지명수가 《해동지도》의 것보다 적다. 《해동지도》에 비해 잘못 옮겨진 지명도 보이고 있다. 위쪽의 如城山은 《해동지도》에 姑城山이라 적혀 있는데, 《광여도》에도 姑城山으로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 원성목(原城牧)(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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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지도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원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原州는 1683년-1692년(숙종 9-18)과 1728년-1737년(영조 4-13) 사이에 原城縣으로 강등된 적이 있다. 본 지도의 제목인 原城牧은 原城縣으로 강등되었을 때의 명칭과 原州가 일반적으로 牧이었다는 사실이 겹쳐져 적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즉, 본 지도의 필사 시 原州가 原城으로 강등되었을 때 縣이었던 점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위쪽의 여백에는 ‘원성은 지금의 원주이다(原城今原州)’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 문구는 원주가 다시 승격되었을 때 본 지도의 이용자가 적어 넣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에는 原州牧으로 나오며, 《광여도》도 동일하다. 본 지도는 《해동지도》에 비해 잘못 적은 것과 생략된 것이 많다. 읍치에 있는 田原驛은 由原驛을, 읍치 아래쪽의 靑丘驛은 丹丘驛을, 읍치 오른쪽 위의 草所面은 所草面을 잘못 적은 것이다. 아래쪽의 新林驛에는 보라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다. 읍치 왼쪽의 楮田洞面과 왼쪽 아래의 富論面에는 驛과 동일한 크기의 사각형에 노란색이 칠해져 있다. 아울러 왼쪽의 呂州界 방면에는 池內面이 생략되어 있기도 하다. 이와 같은 문제점들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필사 과정에서 많은 실수를 했음을 알려준다. 《광여도》에는 이런 오류들이 대부분 시정되어 있다. 그러나 왼쪽의 지내면이 본 지도와 똑같이 생략되어 있고, 干川面을 千川面으로 적는 등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남북보다 동서가 훨씬 긴 고을임에도 세로로 긴 사각형에 그림에 따라 실제 모습과 상당히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가장 크게 잘못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의 하천이 동서의 흐름은 거의 없고, 남북의 흐름만 있는 것처럼 묘사되었다는 점이다. 왼쪽의 忠州界에서 흘러와 呂州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남한강이다. 위쪽의 橫城界로부터 들어와 남한강에 합류되는 하천이 현재의 섬강이다. 섬강은 읍치 서쪽에서 서남류하는데 본 지도에서는 마치 남류하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오른쪽의 左邊面에서 右邊面쪽으로 흐르는 하천은 남한강의 지류인 현재의 주천강이다. 주천강에서 남류하는 부분도 있지만 동류하는 부분도 있는데 본 지도에는 역시 남류하는 것으로만 묘사되어 있다. 맨 오른쪽에 표시된 沙川은 현재의 평창강으로 실제로는 극히 짧은 구간인데 남북으로 길게 표현되어 있다. (이기봉)

  •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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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요계관방지도를 필사한 지도이다. 요계관방지도가 제작된 배경에 대해서는 《해동지도》의 해제를 참고하면 된다. 《해동지도》를 필사하기는 했지만 동일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일단 《해동지도》의 가장 앞쪽에 있던 주기가 본 지도에는 모두 빠져 있다. 또한 각 정보마다 사용한 기호가 달라진 곳이 많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곳곳에 오류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페이지의 함경도 군현 표시가 보라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지만 3페이지에서는 연한 남색의 원으로 되어 있다. 평안도 군현은 흰색 원으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군현이 아닌 宣沙浦와 雲暗山城 등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평안도의 감영이 있었던 평양에는 平자 1개만 적혀 있기도 하다. 6페이지, 11페이지, 12페이지 등에는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고,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보인다. 이것들은 앞 페이지에서 이미 표기했던 지명을 다음 페이지에도 표기하여 명칭을 적지 않은 것들이다. 더 나아가 7페이지, 9페이지, 14페이지 등에는 《해동지도》에 있는 내용을 완전히 생략한 곳도 있다. 이밖에 9페이지에 지명이 생략된 사각형의 왼쪽 지명이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를 필사한 사람이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기봉)

  • 전의현(全義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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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전의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읍치 위쪽에 있는 大西面을 大面面으로 잘못 기록했다는 점이다. 본 지도에서 가장 잘못된 것은 왼쪽의 公州界에서 들어와 淸州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다. 이 하천은 현재 미호천으로 들어가는 조천천으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본 지도와 달리 조천천은 공주와의 경계선에서 발원할 뿐이다. 따라서 왼쪽 아래의 공주계에는 산줄기가 이어진 것처럼 그려져 있어야 한다. 본 지도는 서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기 때문에 방향은 실제와 대체적으로 부합된다. 왼쪽 위(서쪽)의 公州界는 淸州界가 잘못 표시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방향에는 청주의 월경지인 덕평면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의현이 공주목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부분은 읍치 남쪽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또한 위쪽의 公州界에는 삽교천으로 흘러가는 곡교천의 상류 일부가 걸쳐 있어야 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도 비록 회화식으로 그렸지만 이런 사실들이 사실과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이러한 문제점은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전의현 지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더 나아가 《해동지도》에는 공주계 방향이 청주계 방향보다 하천 폭이 더 넓게 그려져 있어 마치 공주계 방향이 하류인 것처럼 착각하도록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는 오른쪽의 公州界가 公山界라고 적혀 있다. 공주목이 공산현으로 강등되었던 시기는 1646년(인조 24)경, 1670(현종 11)-1679년(숙종 5), 1728(영조 4)-1737(영조 13), 1778년(정조 2)경 등이다. (이기봉)

  • 운봉현(雲峰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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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운봉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운봉현은 전라도에 속해 있지만 水界의 입장에서 보면 낙동강의 지류인 남강 유역에 있다. 읍치 방향에 있는 하천을 현재 광천이라 부르고, 위쪽의 東面 방향에 있는 하천을 풍천이라 부른다. 광천과 풍천은 실제로 전체의 길이나 유역 면적이 비슷하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읍치 지역을 다른 지역에 비해 크게 그렸기 때문에 광천이 더 긴 것으로 표현되었다. 또한 읍치 지역의 평지가 東面 지역의 평지보다도 훨씬 넓은 것처럼 묘사되었다.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운봉현 지도는 하천의 길이라는 측면에서는 본 지도와 비슷하지만 평지의 표현은 좀 다르게 되어 있다. 즉, 東面 지역의 평지가 본 지도보다 상대적으로 넓게 표현되어 있다. 《광여도》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동면 지역의 남북을 좁게 그리고, 더 나아가 산줄기를 추가함으로써 좁고 평지가 별로 없는 듯한 인상을 주게 된 것이다. 김정호의 《동여도》에도 본 지도의 荒山 위쪽 하천이 상대적으로 짧게 그려져 있다. 아마 본 지도와 같은 회화식 군현지도의 영향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더불어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광천의 유로에 대해 잘못 표현되어 있고, 읍치의 위치가 잘못 비정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기봉)

  • 영덕현(盈德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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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영덕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읍성 안에 있는 건물 몇 개를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표시되어 있어 서로 필사 관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驛의 표현이 황색과 무색 사각형 2개로 되는 등 본 지도에 오류가 보이고 있어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성을 상대적으로 크게 그렸으며, 고을 전체를 사각형의 모양에 더 가깝게 그렸다. 이로 인해 하천의 유로 일부가 약간 다르게 표시되었지만 본류나 지류의 표현은 전체적으로 동일하다. 왼쪽의 西面 부근에 있는 하천은 현재의 대서천으로서 경주와 청송 방면에서 흘러 들어온다. 《해동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잘 반영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는 하천 끝을 얇게 하여 마치 경계선 부근이 발원지인 것 같은 착각을 할 수 있게 그렸다. 이런 점을 통해 봐도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이 아닌가 한다.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러나 모든 부분에서 동일한 방향 기준을 적용하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해안선은 거의 남북 방향을 하고 있는데,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잘 반영되어 있지 않다. 위쪽의 眞寶界로부터 오른쪽의 해안선 부근의 寧海界까지가 북쪽의 동서 방향이고, 寧海界부터 아래쪽 淸河界까지 동쪽의 남북 방향에 해당된다. 眞寶界로부터 왼쪽의 外南面 부근까지의 경계는 서북-동남 방향으로 되어 있고, 거기부터 淸河界까지 다시 남쪽의 동서 방향이 된다. 이렇게 방향이 일정하게 정해지지 않은 이유는 첫째,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 위에 그렸기 때문이다. 둘째, 읍치를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렸기 때문이다. (이기봉)

  • 연안부(延安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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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연안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연안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에서는 面을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였지만 《해동지도》에 비해 몇 가지 오류를 범하고 있다. 우선 다른 군현 지도에서 대부분 보라색 사각형으로 표시한 深洞驛을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고 있다. 위쪽의 三屯田은 三屯面의 왼쪽 아래의 並城界는 並城面을 잘못 기록한 것이다. 아래쪽의 食尺面과 읍치 위쪽의 北部面은 노란색 사각형이 생략되어 있다. 더 나아가 오른쪽의 洪村面은 池村面의 誤記이고, 그 왼쪽에는 石串面이 생략되어 있다. 《광여도》에서는 삼둔전, 북부면, 식척면에서의 오류는 시정되어 있지만 나머지는 동일하게 오류를 범하고 있다. 주기에는 이런 오류들이 모두 시정되어 있고, 《광여도》의 주기도 동일하여 두 지도의 필사 시에 주도면밀하게 검토하면서 지도를 그린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검토를 통해 볼 때 본 지도와 《광여도》가 《해동지도》의 필사본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동일하게 필사한 것이 아니다. 가장 큰 차이는 본 지도에서 읍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해동지도》보다 훨씬 크다는 점이다. 이것은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은 본 지도책에 《해동지도》의 비율로 읍성을 그리면 성곽과 내부의 정보를 표현하기가 어렵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읍성의 확대는 해안선이나 다른 부분에서의 변화도 유발시킨다. (이기봉)

  • 이성현(利城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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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이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이성현은 1800년(정조 24)에 利原縣으로 이름을 바꾼다. 따라서 이 지도는 아무리 늦어도 1800년 이전의 상황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오른쪽에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는 谷口는 驛이다. 가장 오른쪽의 端川은 하천이 아니라 이성현 동쪽에 있었던 端川府를 가리킨다. 본 지도는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이성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상당수의 정보가 생략되었고, 이 점에서는 《광여도》도 동일하다. 대표적으로는 본 지도의 南松亭이란 문자 근처에 있던 2개의 하천이 생략되었다. 또한 그 근처에 있는 6개 섬의 크기도 더 크게 표현되었다. 이런 부분은 《해동지도》가 더 사실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에 어떤 자료적 근거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필사 시의 자의에 따른 것으로 생각된다. 생략이 거의 되지 않은 부분이 위쪽의 산줄기에 표시되어 있는 고개의 명칭이다. 이 고개들은 《해동지도》에 모두 도로와 연결되어 있다. 본 지도에는 도로가 생략되어 있다. 고을의 전반적인 모습은 실제에 상당히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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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요계관방지도를 필사한 지도이다. 요계관방지도가 제작된 배경에 대해서는 《해동지도》의 해제를 참고하면 된다. 《해동지도》를 필사하기는 했지만 동일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일단 《해동지도》의 가장 앞쪽에 있던 주기가 본 지도에는 모두 빠져 있다. 또한 각 정보마다 사용한 기호가 달라진 곳이 많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곳곳에 오류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페이지의 함경도 군현 표시가 보라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지만 3페이지에서는 연한 남색의 원으로 되어 있다. 평안도 군현은 흰색 원으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군현이 아닌 宣沙浦와 雲暗山城 등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평안도의 감영이 있었던 평양에는 平자 1개만 적혀 있기도 하다. 6페이지, 11페이지, 12페이지 등에는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고,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보인다. 이것들은 앞 페이지에서 이미 표기했던 지명을 다음 페이지에도 표기하여 명칭을 적지 않은 것들이다. 더 나아가 7페이지, 9페이지, 14페이지 등에는 《해동지도》에 있는 내용을 완전히 생략한 곳도 있다. 이밖에 9페이지에 지명이 생략된 사각형의 왼쪽 지명이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를 필사한 사람이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기봉)

  • 전의현(全義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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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전의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읍치 위쪽에 있는 大西面을 大面面으로 잘못 기록했다는 점이다. 본 지도에서 가장 잘못된 것은 왼쪽의 公州界에서 들어와 淸州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다. 이 하천은 현재 미호천으로 들어가는 조천천으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본 지도와 달리 조천천은 공주와의 경계선에서 발원할 뿐이다. 따라서 왼쪽 아래의 공주계에는 산줄기가 이어진 것처럼 그려져 있어야 한다. 본 지도는 서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기 때문에 방향은 실제와 대체적으로 부합된다. 왼쪽 위(서쪽)의 公州界는 淸州界가 잘못 표시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방향에는 청주의 월경지인 덕평면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의현이 공주목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부분은 읍치 남쪽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또한 위쪽의 公州界에는 삽교천으로 흘러가는 곡교천의 상류 일부가 걸쳐 있어야 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도 비록 회화식으로 그렸지만 이런 사실들이 사실과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이러한 문제점은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전의현 지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더 나아가 《해동지도》에는 공주계 방향이 청주계 방향보다 하천 폭이 더 넓게 그려져 있어 마치 공주계 방향이 하류인 것처럼 착각하도록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는 오른쪽의 公州界가 公山界라고 적혀 있다. 공주목이 공산현으로 강등되었던 시기는 1646년(인조 24)경, 1670(현종 11)-1679년(숙종 5), 1728(영조 4)-1737(영조 13), 1778년(정조 2)경 등이다. (이기봉)

  • 운봉현(雲峰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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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운봉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운봉현은 전라도에 속해 있지만 水界의 입장에서 보면 낙동강의 지류인 남강 유역에 있다. 읍치 방향에 있는 하천을 현재 광천이라 부르고, 위쪽의 東面 방향에 있는 하천을 풍천이라 부른다. 광천과 풍천은 실제로 전체의 길이나 유역 면적이 비슷하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읍치 지역을 다른 지역에 비해 크게 그렸기 때문에 광천이 더 긴 것으로 표현되었다. 또한 읍치 지역의 평지가 東面 지역의 평지보다도 훨씬 넓은 것처럼 묘사되었다.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운봉현 지도는 하천의 길이라는 측면에서는 본 지도와 비슷하지만 평지의 표현은 좀 다르게 되어 있다. 즉, 東面 지역의 평지가 본 지도보다 상대적으로 넓게 표현되어 있다. 《광여도》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동면 지역의 남북을 좁게 그리고, 더 나아가 산줄기를 추가함으로써 좁고 평지가 별로 없는 듯한 인상을 주게 된 것이다. 김정호의 《동여도》에도 본 지도의 荒山 위쪽 하천이 상대적으로 짧게 그려져 있다. 아마 본 지도와 같은 회화식 군현지도의 영향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더불어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광천의 유로에 대해 잘못 표현되어 있고, 읍치의 위치가 잘못 비정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기봉)

  • 영덕현(盈德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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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영덕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읍성 안에 있는 건물 몇 개를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표시되어 있어 서로 필사 관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驛의 표현이 황색과 무색 사각형 2개로 되는 등 본 지도에 오류가 보이고 있어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성을 상대적으로 크게 그렸으며, 고을 전체를 사각형의 모양에 더 가깝게 그렸다. 이로 인해 하천의 유로 일부가 약간 다르게 표시되었지만 본류나 지류의 표현은 전체적으로 동일하다. 왼쪽의 西面 부근에 있는 하천은 현재의 대서천으로서 경주와 청송 방면에서 흘러 들어온다. 《해동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잘 반영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는 하천 끝을 얇게 하여 마치 경계선 부근이 발원지인 것 같은 착각을 할 수 있게 그렸다. 이런 점을 통해 봐도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이 아닌가 한다.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러나 모든 부분에서 동일한 방향 기준을 적용하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해안선은 거의 남북 방향을 하고 있는데,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잘 반영되어 있지 않다. 위쪽의 眞寶界로부터 오른쪽의 해안선 부근의 寧海界까지가 북쪽의 동서 방향이고, 寧海界부터 아래쪽 淸河界까지 동쪽의 남북 방향에 해당된다. 眞寶界로부터 왼쪽의 外南面 부근까지의 경계는 서북-동남 방향으로 되어 있고, 거기부터 淸河界까지 다시 남쪽의 동서 방향이 된다. 이렇게 방향이 일정하게 정해지지 않은 이유는 첫째,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 위에 그렸기 때문이다. 둘째, 읍치를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렸기 때문이다. (이기봉)

  • 연안부(延安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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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연안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연안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에서는 面을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였지만 《해동지도》에 비해 몇 가지 오류를 범하고 있다. 우선 다른 군현 지도에서 대부분 보라색 사각형으로 표시한 深洞驛을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고 있다. 위쪽의 三屯田은 三屯面의 왼쪽 아래의 並城界는 並城面을 잘못 기록한 것이다. 아래쪽의 食尺面과 읍치 위쪽의 北部面은 노란색 사각형이 생략되어 있다. 더 나아가 오른쪽의 洪村面은 池村面의 誤記이고, 그 왼쪽에는 石串面이 생략되어 있다. 《광여도》에서는 삼둔전, 북부면, 식척면에서의 오류는 시정되어 있지만 나머지는 동일하게 오류를 범하고 있다. 주기에는 이런 오류들이 모두 시정되어 있고, 《광여도》의 주기도 동일하여 두 지도의 필사 시에 주도면밀하게 검토하면서 지도를 그린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검토를 통해 볼 때 본 지도와 《광여도》가 《해동지도》의 필사본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동일하게 필사한 것이 아니다. 가장 큰 차이는 본 지도에서 읍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해동지도》보다 훨씬 크다는 점이다. 이것은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은 본 지도책에 《해동지도》의 비율로 읍성을 그리면 성곽과 내부의 정보를 표현하기가 어렵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읍성의 확대는 해안선이나 다른 부분에서의 변화도 유발시킨다. (이기봉)

  • 이성현(利城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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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이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이성현은 1800년(정조 24)에 利原縣으로 이름을 바꾼다. 따라서 이 지도는 아무리 늦어도 1800년 이전의 상황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오른쪽에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는 谷口는 驛이다. 가장 오른쪽의 端川은 하천이 아니라 이성현 동쪽에 있었던 端川府를 가리킨다. 본 지도는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이성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상당수의 정보가 생략되었고, 이 점에서는 《광여도》도 동일하다. 대표적으로는 본 지도의 南松亭이란 문자 근처에 있던 2개의 하천이 생략되었다. 또한 그 근처에 있는 6개 섬의 크기도 더 크게 표현되었다. 이런 부분은 《해동지도》가 더 사실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에 어떤 자료적 근거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필사 시의 자의에 따른 것으로 생각된다. 생략이 거의 되지 않은 부분이 위쪽의 산줄기에 표시되어 있는 고개의 명칭이다. 이 고개들은 《해동지도》에 모두 도로와 연결되어 있다. 본 지도에는 도로가 생략되어 있다. 고을의 전반적인 모습은 실제에 상당히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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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요계관방지도를 필사한 지도이다. 요계관방지도가 제작된 배경에 대해서는 《해동지도》의 해제를 참고하면 된다. 《해동지도》를 필사하기는 했지만 동일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일단 《해동지도》의 가장 앞쪽에 있던 주기가 본 지도에는 모두 빠져 있다. 또한 각 정보마다 사용한 기호가 달라진 곳이 많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곳곳에 오류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페이지의 함경도 군현 표시가 보라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지만 3페이지에서는 연한 남색의 원으로 되어 있다. 평안도 군현은 흰색 원으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군현이 아닌 宣沙浦와 雲暗山城 등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평안도의 감영이 있었던 평양에는 平자 1개만 적혀 있기도 하다. 6페이지, 11페이지, 12페이지 등에는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고,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보인다. 이것들은 앞 페이지에서 이미 표기했던 지명을 다음 페이지에도 표기하여 명칭을 적지 않은 것들이다. 더 나아가 7페이지, 9페이지, 14페이지 등에는 《해동지도》에 있는 내용을 완전히 생략한 곳도 있다. 이밖에 9페이지에 지명이 생략된 사각형의 왼쪽 지명이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를 필사한 사람이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기봉)

  • 정산현(定山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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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정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에 大朴谷面이라 적혀 있는 것이 본 지도에는 오른쪽 위에 大方谷面으로 바뀌어 있다. 본 지도와 《광여도》 모두 대박곡면으로 적혀 있어 본 지도의 제작자가 실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밖에 《광여도》에 표시된 2개의 제언 모양을 그리지 않은 차이점밖에 없다. 본 지도는 서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로 뻗은 산줄기가 서북쪽에서 오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아래쪽에 公州界에서 扶餘界로 흘러가는 하천이 현재의 금강 본류이다. 왼쪽의 鵲川은 실제로는 청양읍 지역에서 발원하여 七甲山 서쪽을 돌아 부여와의 경계선을 타고 흐르다 금강에 합류된다. 본 지도에서는 마치 赤谷面 지역에서 발원한 것처럼 잘못 표시되어 있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비슷한 《해동지도》의 정산현 지도에도 비슷하게 표현되어 있어 상호 관련성을 엿볼 수 있다. 《해동지도》를 보면 ‘○○界’가 모두 도로의 끝 부분에 적혀 있다.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는 도로가 생략되었기 때문에 경계 표시가 도로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없다. 주기에는 북쪽으로 大興의 경계까지 30리라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것을 사실과 다른 것으로, 북쪽으로 경계를 맞대고 있었던 고을은 靑陽이라고 해야 올바르다. (이기봉)

  • 익산군(益山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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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익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북쪽의 彌勒山(430.2m)과 龍華山(342m)에서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가 특히 강조되어 있다. 그러나 미륵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는 단지 야트막한 야산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맨 아래쪽 春浦山의 경우 겨우 47.8m에 불과한 산이다. 왼쪽 아래의 全州界에서 들어와 오른쪽으로 흘러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만경강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익산군 지도도 표현 양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본 지도와 《광여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필사 과정에서 王宮塔을 비롯하여 몇 개의 지명과 도로가 생략되면서 지도의 내용이 더 단조로워졌다. 《해동지도》에는 명칭만 적혀 있던 面에 본 지도와 《광여도》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사용한 것도 하나의 변화이다. 본 지도 주기의 형식과 내용도 《광여도》와 동일하며, 《해동지도》와는 내용은 비슷하지만 형식을 재편집되어 있다. (이기봉)

  • 영산현(靈山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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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영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지도의 명칭이 靈山縣이라고 되어 있어야 하지만 靈山界라고 되어 있어 꼼꼼하게 제작된 지도가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본 지도에 수록되어 있는 지명 중 읍치의 倉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수록되지 않은 것도 여러 개 있다. 또한 지도 왼쪽에는 長嘉面이 長喜面으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하다.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고, 남북(세로)이 동서(가로)보다 길게 그려져 있는 점이 《해동지도》와 다르다. 그러나 하천의 유로는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차치점이 있다면 첫째, 아래쪽 왼쪽에서 합류되는 낙동강과 남강이 《해동지도》에는 다른 하천보다 압도적으로 굵게 표현되어 있다. 본 지도에는 왼쪽 위의 昌寧界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그려진 현재의 계성천이 《해동지도》에는 창령계 너머에서 들어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실제의 입장에서 보면 본 지도가 아니라 《해동지도》가 정확하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기본으로 필사한 것으로 생각되며, 필사 과정에서 약간의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영변부(寧邊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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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변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차이가 있지만 하천의 유로는 거의 동일한 《해동지도》의 영변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달라진 점이 많다. 우선 鐵甕山城으로 불리던 읍성의 모습이 상당히 간단하게 그려졌다. 《해동지도》에는 철옹산성이란 명칭에 걸맞게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성곽이 축조된 모습이 강조되어 있다. 《광여도》에서는 《해동지도》보다는 못하지만 본 지도보다는 지형을 이용한 성곽의 축조 모습이 더 잘 묘사되어 있다. 성곽 안의 물줄기가 밖으로 연결되는 부분이 정확히 그려져 있지 않다. 이 점은 《광여도》에서도 비슷한데, 《해동지도》에는 水口를 통해 흘러가는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읍성 안과 왼쪽의 天水鎭에 표현된 건물은 《해동지도》보다 본 지도가 훨씬 자세하다. 이 점 역시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어 관아 건물의 표현에서는 《해동지도》 이외의 자료를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된 面의 경우 아래쪽에 사각형만 그리고 명칭을 적어 넣지 않은 것이 보인다. 이 사각형이 있는 곳에는 《해동지도》와 《광여도》 모두 面이 표시되어 있지 않아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면의 명칭에서도 일부 오류가 나타나고 있다. 본 지도의 하천 유로는 《해동지도》나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오른쪽의 하천이 청천강 본류이며, 왼쪽의 하천이 그 지류인 구룡강이다. 그런데 청천강의 표현에서 큰 실수가 발견된다. 청천강은 위쪽의 熙川界에서 흘러옴에도 본 지도에는 그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구룡강 역시 雲山界에서 흘러 들어오지만 하천 끝을 얇게 하여 마치 최상류인 것처럼 착각하도록 그려져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청천강과 구룡강이 만나는 지점부터 2개의 실선으로 그리는 것을 통해 볼 때 두 하천에 대한 정보를 이해하고 있지 못했던 것 같다. 영변부의 실제 모습은 동북에서 서남으로 길게 뻗은 모양을 하고 있지만 이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영변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를 참조하면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이기봉)

  • 이천부(伊川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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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이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왼쪽 가운데의 外山面은 山外面의 誤記이고, 읍치 아래쪽에는 乾川驛이 보라색 사각형만 그려져 있고 글씨는 생략되어 있다. 《광여도》에는 이 부분이 제대로 표기되어 있으며,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이천부 지도에도 올바르게 되어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필사 과정에서 오류를 범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천부는 본 지도에도 남북이 동서보다 길게 표현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길다. 일정한 크기의 사각형 안에 고을 전체를 그리다보니까 이런 문제점이 발생한 것이다. 위쪽에서 흘러와 아래쪽 兎山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임진강 상류이다. 그런데 임진강 상류 중 일부가 잘못 표현되어 있다. 임진강 본류는 가운데 위쪽의 安邊界에 있는 防墻峙 훨씬 북쪽에서 발원하여 내려오지만 본 지도에는 그와 같은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못하다. 임진강의 지류 중의 하나인 고미탄천은 오른쪽 古味呑面에서 발원하여 平康의 땅으로 들어간다. 평강의 땅을 지난 고미탄천은 다시 聽浦面으로 들어와 임진강에 합류된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고미탄면의 물이 바로 청포면 방면으로 흘러오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평강계 방면에서 청포면으로 하천이 흘러 들어오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고미탄면의 물이 바로 들어오는 것 같은 표현은 동일하다. 또한 읍치가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되면서 그 동쪽의 하천이 지나치게 길게 그려져 있다. 임진강 본류나 고미탄천에 비하면 이 하천은 아주 작게 그려져야 사실과 부합된다. 이런 오류들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伊川 지도나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교정되어 있다. 지도 왼쪽의 外山面(山外面) 지역은 이천부 내에서 유일하게 예성강 유역에 속해 있는 곳이었다. (이기봉)

  •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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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요계관방지도를 필사한 지도이다. 요계관방지도가 제작된 배경에 대해서는 《해동지도》의 해제를 참고하면 된다. 《해동지도》를 필사하기는 했지만 동일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일단 《해동지도》의 가장 앞쪽에 있던 주기가 본 지도에는 모두 빠져 있다. 또한 각 정보마다 사용한 기호가 달라진 곳이 많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곳곳에 오류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페이지의 함경도 군현 표시가 보라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지만 3페이지에서는 연한 남색의 원으로 되어 있다. 평안도 군현은 흰색 원으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군현이 아닌 宣沙浦와 雲暗山城 등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평안도의 감영이 있었던 평양에는 平자 1개만 적혀 있기도 하다. 6페이지, 11페이지, 12페이지 등에는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고,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보인다. 이것들은 앞 페이지에서 이미 표기했던 지명을 다음 페이지에도 표기하여 명칭을 적지 않은 것들이다. 더 나아가 7페이지, 9페이지, 14페이지 등에는 《해동지도》에 있는 내용을 완전히 생략한 곳도 있다. 이밖에 9페이지에 지명이 생략된 사각형의 왼쪽 지명이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를 필사한 사람이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기봉)

  • 정산현(定山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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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정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에 大朴谷面이라 적혀 있는 것이 본 지도에는 오른쪽 위에 大方谷面으로 바뀌어 있다. 본 지도와 《광여도》 모두 대박곡면으로 적혀 있어 본 지도의 제작자가 실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밖에 《광여도》에 표시된 2개의 제언 모양을 그리지 않은 차이점밖에 없다. 본 지도는 서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로 뻗은 산줄기가 서북쪽에서 오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아래쪽에 公州界에서 扶餘界로 흘러가는 하천이 현재의 금강 본류이다. 왼쪽의 鵲川은 실제로는 청양읍 지역에서 발원하여 七甲山 서쪽을 돌아 부여와의 경계선을 타고 흐르다 금강에 합류된다. 본 지도에서는 마치 赤谷面 지역에서 발원한 것처럼 잘못 표시되어 있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비슷한 《해동지도》의 정산현 지도에도 비슷하게 표현되어 있어 상호 관련성을 엿볼 수 있다. 《해동지도》를 보면 ‘○○界’가 모두 도로의 끝 부분에 적혀 있다.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는 도로가 생략되었기 때문에 경계 표시가 도로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없다. 주기에는 북쪽으로 大興의 경계까지 30리라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것을 사실과 다른 것으로, 북쪽으로 경계를 맞대고 있었던 고을은 靑陽이라고 해야 올바르다. (이기봉)

  • 익산군(益山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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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익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북쪽의 彌勒山(430.2m)과 龍華山(342m)에서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가 특히 강조되어 있다. 그러나 미륵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는 단지 야트막한 야산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맨 아래쪽 春浦山의 경우 겨우 47.8m에 불과한 산이다. 왼쪽 아래의 全州界에서 들어와 오른쪽으로 흘러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만경강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익산군 지도도 표현 양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본 지도와 《광여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필사 과정에서 王宮塔을 비롯하여 몇 개의 지명과 도로가 생략되면서 지도의 내용이 더 단조로워졌다. 《해동지도》에는 명칭만 적혀 있던 面에 본 지도와 《광여도》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사용한 것도 하나의 변화이다. 본 지도 주기의 형식과 내용도 《광여도》와 동일하며, 《해동지도》와는 내용은 비슷하지만 형식을 재편집되어 있다. (이기봉)

  • 영산현(靈山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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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영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지도의 명칭이 靈山縣이라고 되어 있어야 하지만 靈山界라고 되어 있어 꼼꼼하게 제작된 지도가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본 지도에 수록되어 있는 지명 중 읍치의 倉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수록되지 않은 것도 여러 개 있다. 또한 지도 왼쪽에는 長嘉面이 長喜面으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하다.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고, 남북(세로)이 동서(가로)보다 길게 그려져 있는 점이 《해동지도》와 다르다. 그러나 하천의 유로는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차치점이 있다면 첫째, 아래쪽 왼쪽에서 합류되는 낙동강과 남강이 《해동지도》에는 다른 하천보다 압도적으로 굵게 표현되어 있다. 본 지도에는 왼쪽 위의 昌寧界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그려진 현재의 계성천이 《해동지도》에는 창령계 너머에서 들어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실제의 입장에서 보면 본 지도가 아니라 《해동지도》가 정확하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기본으로 필사한 것으로 생각되며, 필사 과정에서 약간의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영변부(寧邊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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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변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차이가 있지만 하천의 유로는 거의 동일한 《해동지도》의 영변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달라진 점이 많다. 우선 鐵甕山城으로 불리던 읍성의 모습이 상당히 간단하게 그려졌다. 《해동지도》에는 철옹산성이란 명칭에 걸맞게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성곽이 축조된 모습이 강조되어 있다. 《광여도》에서는 《해동지도》보다는 못하지만 본 지도보다는 지형을 이용한 성곽의 축조 모습이 더 잘 묘사되어 있다. 성곽 안의 물줄기가 밖으로 연결되는 부분이 정확히 그려져 있지 않다. 이 점은 《광여도》에서도 비슷한데, 《해동지도》에는 水口를 통해 흘러가는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읍성 안과 왼쪽의 天水鎭에 표현된 건물은 《해동지도》보다 본 지도가 훨씬 자세하다. 이 점 역시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어 관아 건물의 표현에서는 《해동지도》 이외의 자료를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된 面의 경우 아래쪽에 사각형만 그리고 명칭을 적어 넣지 않은 것이 보인다. 이 사각형이 있는 곳에는 《해동지도》와 《광여도》 모두 面이 표시되어 있지 않아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면의 명칭에서도 일부 오류가 나타나고 있다. 본 지도의 하천 유로는 《해동지도》나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오른쪽의 하천이 청천강 본류이며, 왼쪽의 하천이 그 지류인 구룡강이다. 그런데 청천강의 표현에서 큰 실수가 발견된다. 청천강은 위쪽의 熙川界에서 흘러옴에도 본 지도에는 그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구룡강 역시 雲山界에서 흘러 들어오지만 하천 끝을 얇게 하여 마치 최상류인 것처럼 착각하도록 그려져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청천강과 구룡강이 만나는 지점부터 2개의 실선으로 그리는 것을 통해 볼 때 두 하천에 대한 정보를 이해하고 있지 못했던 것 같다. 영변부의 실제 모습은 동북에서 서남으로 길게 뻗은 모양을 하고 있지만 이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영변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를 참조하면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이기봉)

  • 이천부(伊川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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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이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왼쪽 가운데의 外山面은 山外面의 誤記이고, 읍치 아래쪽에는 乾川驛이 보라색 사각형만 그려져 있고 글씨는 생략되어 있다. 《광여도》에는 이 부분이 제대로 표기되어 있으며,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이천부 지도에도 올바르게 되어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필사 과정에서 오류를 범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천부는 본 지도에도 남북이 동서보다 길게 표현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길다. 일정한 크기의 사각형 안에 고을 전체를 그리다보니까 이런 문제점이 발생한 것이다. 위쪽에서 흘러와 아래쪽 兎山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임진강 상류이다. 그런데 임진강 상류 중 일부가 잘못 표현되어 있다. 임진강 본류는 가운데 위쪽의 安邊界에 있는 防墻峙 훨씬 북쪽에서 발원하여 내려오지만 본 지도에는 그와 같은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못하다. 임진강의 지류 중의 하나인 고미탄천은 오른쪽 古味呑面에서 발원하여 平康의 땅으로 들어간다. 평강의 땅을 지난 고미탄천은 다시 聽浦面으로 들어와 임진강에 합류된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고미탄면의 물이 바로 청포면 방면으로 흘러오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평강계 방면에서 청포면으로 하천이 흘러 들어오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고미탄면의 물이 바로 들어오는 것 같은 표현은 동일하다. 또한 읍치가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되면서 그 동쪽의 하천이 지나치게 길게 그려져 있다. 임진강 본류나 고미탄천에 비하면 이 하천은 아주 작게 그려져야 사실과 부합된다. 이런 오류들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伊川 지도나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교정되어 있다. 지도 왼쪽의 外山面(山外面) 지역은 이천부 내에서 유일하게 예성강 유역에 속해 있는 곳이었다. (이기봉)

  •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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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요계관방지도를 필사한 지도이다. 요계관방지도가 제작된 배경에 대해서는 《해동지도》의 해제를 참고하면 된다. 《해동지도》를 필사하기는 했지만 동일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일단 《해동지도》의 가장 앞쪽에 있던 주기가 본 지도에는 모두 빠져 있다. 또한 각 정보마다 사용한 기호가 달라진 곳이 많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곳곳에 오류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페이지의 함경도 군현 표시가 보라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지만 3페이지에서는 연한 남색의 원으로 되어 있다. 평안도 군현은 흰색 원으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군현이 아닌 宣沙浦와 雲暗山城 등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평안도의 감영이 있었던 평양에는 平자 1개만 적혀 있기도 하다. 6페이지, 11페이지, 12페이지 등에는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고,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보인다. 이것들은 앞 페이지에서 이미 표기했던 지명을 다음 페이지에도 표기하여 명칭을 적지 않은 것들이다. 더 나아가 7페이지, 9페이지, 14페이지 등에는 《해동지도》에 있는 내용을 완전히 생략한 곳도 있다. 이밖에 9페이지에 지명이 생략된 사각형의 왼쪽 지명이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를 필사한 사람이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기봉)

  • 제천현(堤川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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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제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지도 아래쪽에 있는 山城은 《광여도》에 城山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후자가 올바른 것이다. 그 외에 왼쪽 위의 梨峴과 중간 부분의 巖峴이 《광여도》에 峙로 되어 있다는 것 말고는 거의 동일하다. 다른 회화식 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확대 과장되어 있지 않다. 또한 하천의 유로 표시가 아주 복잡하면서 자세한 편이다. 문제점이 있다면 近右面을 흘러내리는 하천이 원래 原州界 방면에서 내려오는데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확인하기 어렵게 그려져 있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제천현 지도에서는 이 부분이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즉, 原州界 부분에서 하천의 끝 부분을 뾰족하게 그리지 않아 이곳이 발원지가 아님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본 지도와 《광여도》의 제작자는 이런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고 마치 발원지가 그곳인 것처럼 오해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는 고을 동서의 폭이 더 넓게 그려진 반면 본 지도와 《광여도》는 남북의 폭이 더 넓게 그려져 있다. 세로로 긴 사각형에 맞추는 과정에서 변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는 남북보다 동서의 폭이 더 길다. (이기봉)

  • 임실현(任實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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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임실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의 縣內面에 노란색 사각형을 표시하지 않은 점, 아래쪽에 사각형만 그리고 노란색이나 東面의 명칭을 넣지 않은 점 등이 눈에 띈다. 이런 점들은 본 지도가 《광여도》를 필사하면서 실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읍치에서 발원하여 고을을 빙 돌아 아래쪽의 淳昌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섬진강 본류이다. 그러나 이 섬진강 본류의 표현에서 몇 가지 오류가 발견되고 있다. 첫째, 오른쪽 위의 鎭安界 방향에서 섬진강 본류가 흘러 들어옴에도 본 지도만으로는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없다. 둘째, 왼쪽의 淳昌界와 泰仁界 사이에서 섬진강의 지류가 흘러 들어옴에도 역시 본 지도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셋째, 아래쪽의 上東面과 下東面을 흐르는 하천은 현재의 오수천인데 동쪽의 南原界에서 흘러 들어옴에도 역시 본 지도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이 오수천은 남원의 경계를 넘어 흘러가다 섬진강에 합류되는데, 역시 본 지도만으로는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하기 어렵다. 넷째, 읍치 지역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으며 그 부근의 하천 역시 실제보다 더 크게 그려져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런 오류 중 첫 번째의 것은 《해동지도》의 임실현 지도에는 실제와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광여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그리면서 첫 번째 부분을 애매하게 그렸고,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그것을 발원지처럼 인식하여 오류를 범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면의 표기에서 몇 가지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오른쪽 위쪽에 사각형만 그려져 있는 부분에 下北三面이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그 아래쪽 上北面은 上北三面으로 되어 있고, 위쪽의 下雲面 부근에 上雲面이 기록되어 있다. 이밖에도 몇 개의 면 명칭이 생략되었는데,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주기에 이런 면의 명칭이 모두 나오는 것을 통해 볼 때 《광여도》의 필사 시에 먼저 오류를 범했고,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여지도서』의 임실현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하나 내용적으로는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이기봉)

  • 영양현(英陽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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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영양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기 때문에 하천의 유로가 일부 달라지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도 읍치의 司倉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면서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지명은 여러 개 있다. 게다가 본 지도에는 잘못 옮겨진 지명도 보이고 있다. 위쪽의 首北面은 首比面의 오류이고, 그 아래쪽에는 北面이 北西로 적혀 있다. 또한 왼쪽의 北面初度는 北面二度라고 적혀 있어야 하며, 오른쪽 맨 위에도 蔚然山이 이상한 글자로 적혀 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기본으로 하여 필사했지만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읍치 부분은 낙동강의 지류인 반변천의 최상류에 해당된다. 수비면에 있는 하천은 울진계로 흘러가는 왕피천의 최상류이다. 그러나 왕피천이 동북쪽으로 빠져나감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는 마치 서쪽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하천에 대한 이와 같은 잘못된 묘사는 다른 지도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김정호의 《동여도》에서 이 왕피천 상류가 울진계로 흘러가지 않고, 서쪽의 낙동강 수계에 해당되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왼쪽 위에 安東才山界라고 적혀 있는 이유는 이 방향에 안동의 월경지인 재산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 영원군(寧遠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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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원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약간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영원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지만 《해동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해동지도》가 동서를 남북보다 1.5배 정도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남북을 동서보다 약간 길게 그렸다. 북쪽을 위로 하면서 세로로 약간 긴 종이 위에 영원군의 영역을 다 담으려 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영원군의 모습은 동서가 남북보다 더 길기 때문에 《해동지도》가 실제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본 지도에 나오는 대부분의 지명은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지만 읍치에는 건물과 그 명칭이 《해동지도》보다 더 많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읍치의 크기가 《해동지도》보다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더 많아진 정보와 작아진 종이 크기를 고려하여 그렸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오른쪽 위(동북)에서 발원하여 왼쪽 아래의 德川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대동강 본류이다. 읍치를 확대하였기 때문에 읍치 부근의 대동강 지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에서 가장 문제가 많은 부분 중의 하나는 면의 명칭에 대한 표기이다. 이곳에는 창고가 많이 표기되어 있는데, 그 명칭 앞에서 郡과 鎭의 글자가 적혀 있다. 여기서 郡은 영원군을 의미하고, 鎭은 지도에는 적혀 있지 않지만 오른쪽 중간에 鎭舍가 표시되어 있는 寧城鎭을 의미한다. 창고 중에 영원군의 관할과 영성진의 관할을 구분하기 위해 郡과 鎭을 붙인 것일 뿐이다. 창고의 명칭을 면의 명칭으로 사용한 경우에 본 지도의 작성자는 郡자를 붙이고 있는데 잘못된 것이다. 따라서 郡자가 붙은 면의 명칭에서는 郡자를 제외시켜야 한다. 또한 읍치 위쪽의 倉面은 古倉面으로, 영성진 위쪽의 倉面은 新倉面으로, 郡鎭面은 鎭倉面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런 혼란은 본 지도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해동지도》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광여도》에서도 이런 오류는 시정되어 있지 않다. (이기봉)

  • 인제현(獜蹄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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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인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 오른쪽의 瑞和縣이 《광여도》에는 瑞和面, 그 아래쪽의 嵐交驛이 嵐丈驛으로 되어 있다. 표현 양식은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인제현 지도에는 2개 모두 본 지도처럼 그려져 있다. 주기에는 瑞和面이 기록되어 있어 《해동지도》에 틀리게 기록된 것을 《광여도》의 필사 시에 수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읍치 위쪽의 加兒面村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고,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주기에는 이런 명칭의 面이 없어 본 지도와 《광여도》의 필사 시에 面이란 글자 때문에 잘못 이해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도 이 지명이 나오지만 본 지도와 《광여도》에 사용된 面의 기호가 일괄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지도는 서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의 산줄기가 서북쪽으로부터 뻗어 내렸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읍치를 지나 왼쪽(서남)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소양강이다. 아래쪽(동남)에서 흘러와 읍치에서 소양강에 합류되는 하천이 내린천이고, 오른쪽 위의 高城界에서 흘러오는 하천이 현재의 인복천이다. 내린천 방면에는 《해동지도》에 麒麟界란 명칭이 적혀 있지만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적혀 있지 않다. 여기서 麒麟이란 춘천의 越境地였던 麒麟面을 의미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春川界라고 적는 것이 더 합당하다. 기타 北面은 嵐交驛 방면에 적어 넣는 것이 사실에 더 가깝다. (이기봉)

  •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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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요계관방지도를 필사한 지도이다. 요계관방지도가 제작된 배경에 대해서는 《해동지도》의 해제를 참고하면 된다. 《해동지도》를 필사하기는 했지만 동일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일단 《해동지도》의 가장 앞쪽에 있던 주기가 본 지도에는 모두 빠져 있다. 또한 각 정보마다 사용한 기호가 달라진 곳이 많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곳곳에 오류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페이지의 함경도 군현 표시가 보라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지만 3페이지에서는 연한 남색의 원으로 되어 있다. 평안도 군현은 흰색 원으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군현이 아닌 宣沙浦와 雲暗山城 등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평안도의 감영이 있었던 평양에는 平자 1개만 적혀 있기도 하다. 6페이지, 11페이지, 12페이지 등에는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고,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보인다. 이것들은 앞 페이지에서 이미 표기했던 지명을 다음 페이지에도 표기하여 명칭을 적지 않은 것들이다. 더 나아가 7페이지, 9페이지, 14페이지 등에는 《해동지도》에 있는 내용을 완전히 생략한 곳도 있다. 이밖에 9페이지에 지명이 생략된 사각형의 왼쪽 지명이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를 필사한 사람이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기봉)

  • 제천현(堤川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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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제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지도 아래쪽에 있는 山城은 《광여도》에 城山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후자가 올바른 것이다. 그 외에 왼쪽 위의 梨峴과 중간 부분의 巖峴이 《광여도》에 峙로 되어 있다는 것 말고는 거의 동일하다. 다른 회화식 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확대 과장되어 있지 않다. 또한 하천의 유로 표시가 아주 복잡하면서 자세한 편이다. 문제점이 있다면 近右面을 흘러내리는 하천이 원래 原州界 방면에서 내려오는데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확인하기 어렵게 그려져 있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제천현 지도에서는 이 부분이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즉, 原州界 부분에서 하천의 끝 부분을 뾰족하게 그리지 않아 이곳이 발원지가 아님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본 지도와 《광여도》의 제작자는 이런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고 마치 발원지가 그곳인 것처럼 오해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는 고을 동서의 폭이 더 넓게 그려진 반면 본 지도와 《광여도》는 남북의 폭이 더 넓게 그려져 있다. 세로로 긴 사각형에 맞추는 과정에서 변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는 남북보다 동서의 폭이 더 길다. (이기봉)

  • 임실현(任實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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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임실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의 縣內面에 노란색 사각형을 표시하지 않은 점, 아래쪽에 사각형만 그리고 노란색이나 東面의 명칭을 넣지 않은 점 등이 눈에 띈다. 이런 점들은 본 지도가 《광여도》를 필사하면서 실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읍치에서 발원하여 고을을 빙 돌아 아래쪽의 淳昌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섬진강 본류이다. 그러나 이 섬진강 본류의 표현에서 몇 가지 오류가 발견되고 있다. 첫째, 오른쪽 위의 鎭安界 방향에서 섬진강 본류가 흘러 들어옴에도 본 지도만으로는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없다. 둘째, 왼쪽의 淳昌界와 泰仁界 사이에서 섬진강의 지류가 흘러 들어옴에도 역시 본 지도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셋째, 아래쪽의 上東面과 下東面을 흐르는 하천은 현재의 오수천인데 동쪽의 南原界에서 흘러 들어옴에도 역시 본 지도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이 오수천은 남원의 경계를 넘어 흘러가다 섬진강에 합류되는데, 역시 본 지도만으로는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하기 어렵다. 넷째, 읍치 지역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으며 그 부근의 하천 역시 실제보다 더 크게 그려져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런 오류 중 첫 번째의 것은 《해동지도》의 임실현 지도에는 실제와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광여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그리면서 첫 번째 부분을 애매하게 그렸고,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그것을 발원지처럼 인식하여 오류를 범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면의 표기에서 몇 가지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오른쪽 위쪽에 사각형만 그려져 있는 부분에 下北三面이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그 아래쪽 上北面은 上北三面으로 되어 있고, 위쪽의 下雲面 부근에 上雲面이 기록되어 있다. 이밖에도 몇 개의 면 명칭이 생략되었는데,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주기에 이런 면의 명칭이 모두 나오는 것을 통해 볼 때 《광여도》의 필사 시에 먼저 오류를 범했고,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여지도서』의 임실현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하나 내용적으로는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이기봉)

  • 영양현(英陽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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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영양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기 때문에 하천의 유로가 일부 달라지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도 읍치의 司倉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면서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지명은 여러 개 있다. 게다가 본 지도에는 잘못 옮겨진 지명도 보이고 있다. 위쪽의 首北面은 首比面의 오류이고, 그 아래쪽에는 北面이 北西로 적혀 있다. 또한 왼쪽의 北面初度는 北面二度라고 적혀 있어야 하며, 오른쪽 맨 위에도 蔚然山이 이상한 글자로 적혀 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기본으로 하여 필사했지만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읍치 부분은 낙동강의 지류인 반변천의 최상류에 해당된다. 수비면에 있는 하천은 울진계로 흘러가는 왕피천의 최상류이다. 그러나 왕피천이 동북쪽으로 빠져나감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는 마치 서쪽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하천에 대한 이와 같은 잘못된 묘사는 다른 지도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김정호의 《동여도》에서 이 왕피천 상류가 울진계로 흘러가지 않고, 서쪽의 낙동강 수계에 해당되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왼쪽 위에 安東才山界라고 적혀 있는 이유는 이 방향에 안동의 월경지인 재산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 영원군(寧遠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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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원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약간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영원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지만 《해동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해동지도》가 동서를 남북보다 1.5배 정도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남북을 동서보다 약간 길게 그렸다. 북쪽을 위로 하면서 세로로 약간 긴 종이 위에 영원군의 영역을 다 담으려 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영원군의 모습은 동서가 남북보다 더 길기 때문에 《해동지도》가 실제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본 지도에 나오는 대부분의 지명은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지만 읍치에는 건물과 그 명칭이 《해동지도》보다 더 많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읍치의 크기가 《해동지도》보다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더 많아진 정보와 작아진 종이 크기를 고려하여 그렸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오른쪽 위(동북)에서 발원하여 왼쪽 아래의 德川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대동강 본류이다. 읍치를 확대하였기 때문에 읍치 부근의 대동강 지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에서 가장 문제가 많은 부분 중의 하나는 면의 명칭에 대한 표기이다. 이곳에는 창고가 많이 표기되어 있는데, 그 명칭 앞에서 郡과 鎭의 글자가 적혀 있다. 여기서 郡은 영원군을 의미하고, 鎭은 지도에는 적혀 있지 않지만 오른쪽 중간에 鎭舍가 표시되어 있는 寧城鎭을 의미한다. 창고 중에 영원군의 관할과 영성진의 관할을 구분하기 위해 郡과 鎭을 붙인 것일 뿐이다. 창고의 명칭을 면의 명칭으로 사용한 경우에 본 지도의 작성자는 郡자를 붙이고 있는데 잘못된 것이다. 따라서 郡자가 붙은 면의 명칭에서는 郡자를 제외시켜야 한다. 또한 읍치 위쪽의 倉面은 古倉面으로, 영성진 위쪽의 倉面은 新倉面으로, 郡鎭面은 鎭倉面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런 혼란은 본 지도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해동지도》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광여도》에서도 이런 오류는 시정되어 있지 않다. (이기봉)

  • 인제현(獜蹄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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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인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 오른쪽의 瑞和縣이 《광여도》에는 瑞和面, 그 아래쪽의 嵐交驛이 嵐丈驛으로 되어 있다. 표현 양식은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인제현 지도에는 2개 모두 본 지도처럼 그려져 있다. 주기에는 瑞和面이 기록되어 있어 《해동지도》에 틀리게 기록된 것을 《광여도》의 필사 시에 수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읍치 위쪽의 加兒面村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고,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주기에는 이런 명칭의 面이 없어 본 지도와 《광여도》의 필사 시에 面이란 글자 때문에 잘못 이해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도 이 지명이 나오지만 본 지도와 《광여도》에 사용된 面의 기호가 일괄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지도는 서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의 산줄기가 서북쪽으로부터 뻗어 내렸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읍치를 지나 왼쪽(서남)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소양강이다. 아래쪽(동남)에서 흘러와 읍치에서 소양강에 합류되는 하천이 내린천이고, 오른쪽 위의 高城界에서 흘러오는 하천이 현재의 인복천이다. 내린천 방면에는 《해동지도》에 麒麟界란 명칭이 적혀 있지만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적혀 있지 않다. 여기서 麒麟이란 춘천의 越境地였던 麒麟面을 의미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春川界라고 적는 것이 더 합당하다. 기타 北面은 嵐交驛 방면에 적어 넣는 것이 사실에 더 가깝다. (이기봉)

  •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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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요계관방지도를 필사한 지도이다. 요계관방지도가 제작된 배경에 대해서는 《해동지도》의 해제를 참고하면 된다. 《해동지도》를 필사하기는 했지만 동일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일단 《해동지도》의 가장 앞쪽에 있던 주기가 본 지도에는 모두 빠져 있다. 또한 각 정보마다 사용한 기호가 달라진 곳이 많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곳곳에 오류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페이지의 함경도 군현 표시가 보라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지만 3페이지에서는 연한 남색의 원으로 되어 있다. 평안도 군현은 흰색 원으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군현이 아닌 宣沙浦와 雲暗山城 등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평안도의 감영이 있었던 평양에는 平자 1개만 적혀 있기도 하다. 6페이지, 11페이지, 12페이지 등에는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고,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보인다. 이것들은 앞 페이지에서 이미 표기했던 지명을 다음 페이지에도 표기하여 명칭을 적지 않은 것들이다. 더 나아가 7페이지, 9페이지, 14페이지 등에는 《해동지도》에 있는 내용을 완전히 생략한 곳도 있다. 이밖에 9페이지에 지명이 생략된 사각형의 왼쪽 지명이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를 필사한 사람이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기봉)

  • 직산현(稷山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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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직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지도 왼쪽에 《광여도》에 있었던 康津界(唐津界의 오류)와 沔川界가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는 점 정도이다. 왼쪽 위에 洪陽界라 적혀 있는 부분에는 洪州의 월경지가 있었다. 顯宗(1660-1674) 때 洪州가 잠시 洪陽縣으로 강등되는데 본 지도의 洪陽界는 그런 사실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 지도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문제점은 越境地에 대한 이해를 잘 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왼쪽 위의 慶陽面과 堰里面 및 外也串面은 모두 팽택과 수원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다. 언리면 오른쪽에 陽城界라고 적혀 있는 것은 언리면과 외야곶면이 양성의 월경지와 접해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런 월경지들이 제대로 이해되려면 경양면과 읍치 사이에 平澤界가, 외야곶면 부근에 水原界가 적혀 있어야 한다. 주기에도 가장 멀리 있는 외야곶면의 初境이 10리로, 終境이 15리로 잘못 기록되어 있다. 『대동지지』에는 외야곶면이 “수원 서남의 경계를 넘어 (면천의) 大津 북서쪽 大海에 임해 있다”고, 『여지도서』에는 “官門으로부터 80리에 있다”고 되어 있다. 홍주를 의미하는 洪陽界가 특별히 적혀 있는 곳은 외야곶면 맞은편에 홍주의 월경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二西面과 一西面 왼쪽의 하천은 《광여도》와 《해동지도》의 직산현 지도를 참조해 볼 때 현재의 삽교천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부분도 실제와 전혀 다르게 그려진 것이다. 삽교천은 아산현을 넘어가 있으며, 직산현과는 전혀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다. 또한 읍치 왼쪽의 성환천과 오른쪽의 입장천이 북쪽으로 흘러 안성천에 합류한 다음 평택과 아산 및 수원 등의 경계를 지나 삽교천과 합류된다. 안성천은 그 중간에 경양면과 언리면도 지나게 되는데, 본 지도의 작성자는 2개의 면이 월경지 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지도를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오류들이 겹쳐지면서 직산현이 마치 삽교천에도 닿아 있는 것처럼 그린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이런 오류는 근본적으로 《해동지도》의 직산현 지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직산현 지도는 직산현에서 직접 그려서 올려 보낸 지도의 원본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지도는 비록 회화식으로 그렸지만 월경지와 하천에 대한 표현에서 본 지도와 《광여도》 및 《해동지도》의 오류를 범하고 있지는 않다. 또한 지방에서 올린 지도를 그대로 전제한 것으로 알려진 『여지도서』의 직산현 지도에서도 이와 같은 오류는 발생하지 않고 있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세 지도에서 나타난 심각한 오류들은 세 지도가 지리지를 참고하며 그리다가 범했거나, 지방에서 올린 지도를 중앙에서 傳寫할 때 잘못 이해하여 발생했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기봉)

  • 임피현(臨陂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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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임피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북쪽의 하천이 지금의 금강이고, 아래쪽의 하천이 지금의 만경강이다. 본 지도는 《광여도》와 마찬가지로 두 하천의 규모를 이해할 수 없게 그렸다. 그러나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임피현 지도에는 금강이 만경강보다 하폭을 넓게 그렸다. 또한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금강에만 ‘水廣五里’라는 문구가 적혀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만경강에도 ‘水廣一里’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따라서 《해동지도》에서는 하천의 표현과 문구를 통해 두 하천의 규모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하천의 규모에 대한 표현에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읍치를 확대하고, 풍수적 명당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산줄기를 겹겹이 그렸다. 그 결과 마치 모든 면이 읍치를 감싸고 있는 산줄기의 바깥쪽에 배열된 듯한 오해를 할 수 있다. 이것은 회화식 군현지도에서 읍치와 다른 부분의 축척을 전혀 다르게 적용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쪽의 海倉은 본 고을의 田稅와 大同米를 모아 한양으로 운반하던 곳이다. (이기봉)

  • 영일현(迎日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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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영일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다만 《해동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또한 남북의 길이가 《해동지도》보다 길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세로로 긴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지도를 그렸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성 안의 倉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본 지도는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지만 아래쪽이 남쪽이 아니라 동쪽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려 했기 때문이다. 영일현은 현재의 영일만을 사이에 두고 동서 양쪽이 북쪽으로 튀어 올라가 있다. 특히 본 지도의 오른쪽 아래에 해당되는 大冬背烽 부분은 현재 장기곶이라고 부르는 지역으로 가장 북쪽에 있다. 그런데 본 지도에는 영일만이 직선으로 그려져 있다. 또한 고을의 서쪽에 있는 북쪽 끝이 왼쪽 위에 표시된 반면에 동쪽에 있는 북쪽 끝은 오른쪽 아래에 그려져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고을 북쪽의 동서 폭이 남쪽의 동서 폭보다 훨씬 긴 것을 일정한 크기의 사각형에 표현하려 했기 때문이다. 즉, 동서가 긴 북쪽을 왼쪽 위부터 오른쪽 아래까지 그려 실제 길이를 반영한 것이다. 반면에 동서의 폭이 좁은 남쪽 부분은 왼쪽의 雲梯山에서 長鬐界까지 아주 짧게 표현하였다. (이기봉)

  • 영유현(永柔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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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유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과 내용에서 일부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영유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 있는 지명 중 일부가 생략되었을 뿐 대부분의 지명이 본 지도에 나타나고 있다. 옮겨 적는 과정에서 일부 잘못된 지명도 있다. 왼쪽 아래의 盆湖는 盆浦를, 蓮花面은 蓮下面을 잘못 옮긴 것이다. 《광여도》에서는 전자는 교정되지 않았지만 후자는 교정되어 있다. 하천의 표현에서도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잘못 옮긴 것이 있다. 읍치에서 흘러나가는 하천 중 紫華山 아래쪽에 표시된 것은 《해동지도》에는 그 위쪽에 그려져 있다. 이 점은 《광여도》에도 본 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아래쪽의 德池筒에 2개의 섬이 하천에 의해 둘러싸인 것처럼 표현한 것도 《해동지도》의 내용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德池筒은 둘레가 5萬尺을 넘는 저수지였는데, 1731년(영조 7)에 모두 메워 논으로 만들었다. 德池 안에 있는 鎭舍․鎭廳은 德池鎭을 의미하며 1748년(영조 23)에 폐지되었다. 《광여도》에는 《해동지도》에 없고 본 지도에만 있는 鎭倉을 표시했지만 덕지통 자체의 모습은 《해동지도》처럼 그렸다. 본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고, 읍치 지역을 상대적으로 크게 표현하였다. 아래쪽(서)에 면이 밀집되어 있는 것처럼 그려진 것은 동쪽(위)에 있는 읍치 지역이 지나치게 확대되어 그려졌기 때문이다. 영유현의 전체적인 모습은 동쪽의 남북 폭이 좁고, 서쪽은 넓다. (이기봉)

  • 정선군(旌善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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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정선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오른쪽에는 三涉界가 2개 적혀 있는데, 三陟界에 대한 誤記이다. 주기에는 동쪽으로 三陟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것으로 적혀 있어 본 지도 필사 시의 실수라고 볼 수 있다. 위쪽의 江陵界에서 들어와 아래쪽의 平昌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남한강의 상류로서 현재는 동강 또는 조양강이라 불리고 있다. 읍치 부분이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되어 있지만 江陵界로부터 흘러오는 조양강의 유로는 실제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현재의 평창군 진부면에서 들어오는 오대천, 강릉시 왕산면에서 들어오는 송천, 정선군 임계면에서 들어오는 임계천의 방향이 대략 비슷하게 되어 있다. 평창군 진부면과 정선군 임계면은 조선시대에 모두 강릉부의 땅이었다. 다만 본 지도에서는 정성군 임계면에서 들어오는 임계천 부분에 三涉(陟)界가 잘못 적혀 있다. 이 점은 《광여도》에도 동일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정선군 지도에는 이 부분에 삼척계가 적혀 있지 않다. 아마 본 지도나 《광여도》의 필사 시에 주기를 토대로 삽입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러한 오류는 정확성을 추구한 《조선지도》의 정선과 삼척 지도, 김정호의 《동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면서 몇 가지 왜곡이 발생하고 있다. 南面에 있는 하천은 현재의 동남천으로 현재의 정선군 남면과 사북읍, 고한읍 지역이다. 瓦坪이라 적혀 있는 곳의 하천은 현재의 정선군 동면에 있는 하천이다. 이 두 하천은 고을 전체의 입장에서 볼 때 동남쪽으로 튀어나가 있다. 그러나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다보니 그런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읍치 오른쪽의 東面은 瓦坪 부근에 적어 넣어야 사실에 부합된다. 오른쪽 아래에 적혀 있는 安東界는 잘못된 것이다. 정선군은 안동과 경계를 접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安東界를 만날 수 있을 뿐이다. 《조선지도》의 정선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는 이런 오류가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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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요계관방지도를 필사한 지도이다. 요계관방지도가 제작된 배경에 대해서는 《해동지도》의 해제를 참고하면 된다. 《해동지도》를 필사하기는 했지만 동일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일단 《해동지도》의 가장 앞쪽에 있던 주기가 본 지도에는 모두 빠져 있다. 또한 각 정보마다 사용한 기호가 달라진 곳이 많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곳곳에 오류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페이지의 함경도 군현 표시가 보라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지만 3페이지에서는 연한 남색의 원으로 되어 있다. 평안도 군현은 흰색 원으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군현이 아닌 宣沙浦와 雲暗山城 등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평안도의 감영이 있었던 평양에는 平자 1개만 적혀 있기도 하다. 6페이지, 11페이지, 12페이지 등에는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고,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보인다. 이것들은 앞 페이지에서 이미 표기했던 지명을 다음 페이지에도 표기하여 명칭을 적지 않은 것들이다. 더 나아가 7페이지, 9페이지, 14페이지 등에는 《해동지도》에 있는 내용을 완전히 생략한 곳도 있다. 이밖에 9페이지에 지명이 생략된 사각형의 왼쪽 지명이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를 필사한 사람이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기봉)

  • 직산현(稷山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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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직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지도 왼쪽에 《광여도》에 있었던 康津界(唐津界의 오류)와 沔川界가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는 점 정도이다. 왼쪽 위에 洪陽界라 적혀 있는 부분에는 洪州의 월경지가 있었다. 顯宗(1660-1674) 때 洪州가 잠시 洪陽縣으로 강등되는데 본 지도의 洪陽界는 그런 사실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 지도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문제점은 越境地에 대한 이해를 잘 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왼쪽 위의 慶陽面과 堰里面 및 外也串面은 모두 팽택과 수원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다. 언리면 오른쪽에 陽城界라고 적혀 있는 것은 언리면과 외야곶면이 양성의 월경지와 접해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런 월경지들이 제대로 이해되려면 경양면과 읍치 사이에 平澤界가, 외야곶면 부근에 水原界가 적혀 있어야 한다. 주기에도 가장 멀리 있는 외야곶면의 初境이 10리로, 終境이 15리로 잘못 기록되어 있다. 『대동지지』에는 외야곶면이 “수원 서남의 경계를 넘어 (면천의) 大津 북서쪽 大海에 임해 있다”고, 『여지도서』에는 “官門으로부터 80리에 있다”고 되어 있다. 홍주를 의미하는 洪陽界가 특별히 적혀 있는 곳은 외야곶면 맞은편에 홍주의 월경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二西面과 一西面 왼쪽의 하천은 《광여도》와 《해동지도》의 직산현 지도를 참조해 볼 때 현재의 삽교천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부분도 실제와 전혀 다르게 그려진 것이다. 삽교천은 아산현을 넘어가 있으며, 직산현과는 전혀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다. 또한 읍치 왼쪽의 성환천과 오른쪽의 입장천이 북쪽으로 흘러 안성천에 합류한 다음 평택과 아산 및 수원 등의 경계를 지나 삽교천과 합류된다. 안성천은 그 중간에 경양면과 언리면도 지나게 되는데, 본 지도의 작성자는 2개의 면이 월경지 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지도를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오류들이 겹쳐지면서 직산현이 마치 삽교천에도 닿아 있는 것처럼 그린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이런 오류는 근본적으로 《해동지도》의 직산현 지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직산현 지도는 직산현에서 직접 그려서 올려 보낸 지도의 원본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지도는 비록 회화식으로 그렸지만 월경지와 하천에 대한 표현에서 본 지도와 《광여도》 및 《해동지도》의 오류를 범하고 있지는 않다. 또한 지방에서 올린 지도를 그대로 전제한 것으로 알려진 『여지도서』의 직산현 지도에서도 이와 같은 오류는 발생하지 않고 있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세 지도에서 나타난 심각한 오류들은 세 지도가 지리지를 참고하며 그리다가 범했거나, 지방에서 올린 지도를 중앙에서 傳寫할 때 잘못 이해하여 발생했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기봉)

  • 임피현(臨陂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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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임피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북쪽의 하천이 지금의 금강이고, 아래쪽의 하천이 지금의 만경강이다. 본 지도는 《광여도》와 마찬가지로 두 하천의 규모를 이해할 수 없게 그렸다. 그러나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임피현 지도에는 금강이 만경강보다 하폭을 넓게 그렸다. 또한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금강에만 ‘水廣五里’라는 문구가 적혀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만경강에도 ‘水廣一里’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따라서 《해동지도》에서는 하천의 표현과 문구를 통해 두 하천의 규모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하천의 규모에 대한 표현에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읍치를 확대하고, 풍수적 명당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산줄기를 겹겹이 그렸다. 그 결과 마치 모든 면이 읍치를 감싸고 있는 산줄기의 바깥쪽에 배열된 듯한 오해를 할 수 있다. 이것은 회화식 군현지도에서 읍치와 다른 부분의 축척을 전혀 다르게 적용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쪽의 海倉은 본 고을의 田稅와 大同米를 모아 한양으로 운반하던 곳이다. (이기봉)

  • 영일현(迎日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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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영일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다만 《해동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또한 남북의 길이가 《해동지도》보다 길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세로로 긴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지도를 그렸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성 안의 倉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본 지도는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지만 아래쪽이 남쪽이 아니라 동쪽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려 했기 때문이다. 영일현은 현재의 영일만을 사이에 두고 동서 양쪽이 북쪽으로 튀어 올라가 있다. 특히 본 지도의 오른쪽 아래에 해당되는 大冬背烽 부분은 현재 장기곶이라고 부르는 지역으로 가장 북쪽에 있다. 그런데 본 지도에는 영일만이 직선으로 그려져 있다. 또한 고을의 서쪽에 있는 북쪽 끝이 왼쪽 위에 표시된 반면에 동쪽에 있는 북쪽 끝은 오른쪽 아래에 그려져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고을 북쪽의 동서 폭이 남쪽의 동서 폭보다 훨씬 긴 것을 일정한 크기의 사각형에 표현하려 했기 때문이다. 즉, 동서가 긴 북쪽을 왼쪽 위부터 오른쪽 아래까지 그려 실제 길이를 반영한 것이다. 반면에 동서의 폭이 좁은 남쪽 부분은 왼쪽의 雲梯山에서 長鬐界까지 아주 짧게 표현하였다. (이기봉)

  • 영유현(永柔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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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영유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과 내용에서 일부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영유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 있는 지명 중 일부가 생략되었을 뿐 대부분의 지명이 본 지도에 나타나고 있다. 옮겨 적는 과정에서 일부 잘못된 지명도 있다. 왼쪽 아래의 盆湖는 盆浦를, 蓮花面은 蓮下面을 잘못 옮긴 것이다. 《광여도》에서는 전자는 교정되지 않았지만 후자는 교정되어 있다. 하천의 표현에서도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잘못 옮긴 것이 있다. 읍치에서 흘러나가는 하천 중 紫華山 아래쪽에 표시된 것은 《해동지도》에는 그 위쪽에 그려져 있다. 이 점은 《광여도》에도 본 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아래쪽의 德池筒에 2개의 섬이 하천에 의해 둘러싸인 것처럼 표현한 것도 《해동지도》의 내용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德池筒은 둘레가 5萬尺을 넘는 저수지였는데, 1731년(영조 7)에 모두 메워 논으로 만들었다. 德池 안에 있는 鎭舍․鎭廳은 德池鎭을 의미하며 1748년(영조 23)에 폐지되었다. 《광여도》에는 《해동지도》에 없고 본 지도에만 있는 鎭倉을 표시했지만 덕지통 자체의 모습은 《해동지도》처럼 그렸다. 본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고, 읍치 지역을 상대적으로 크게 표현하였다. 아래쪽(서)에 면이 밀집되어 있는 것처럼 그려진 것은 동쪽(위)에 있는 읍치 지역이 지나치게 확대되어 그려졌기 때문이다. 영유현의 전체적인 모습은 동쪽의 남북 폭이 좁고, 서쪽은 넓다. (이기봉)

  • 정선군(旌善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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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정선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오른쪽에는 三涉界가 2개 적혀 있는데, 三陟界에 대한 誤記이다. 주기에는 동쪽으로 三陟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것으로 적혀 있어 본 지도 필사 시의 실수라고 볼 수 있다. 위쪽의 江陵界에서 들어와 아래쪽의 平昌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남한강의 상류로서 현재는 동강 또는 조양강이라 불리고 있다. 읍치 부분이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되어 있지만 江陵界로부터 흘러오는 조양강의 유로는 실제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현재의 평창군 진부면에서 들어오는 오대천, 강릉시 왕산면에서 들어오는 송천, 정선군 임계면에서 들어오는 임계천의 방향이 대략 비슷하게 되어 있다. 평창군 진부면과 정선군 임계면은 조선시대에 모두 강릉부의 땅이었다. 다만 본 지도에서는 정성군 임계면에서 들어오는 임계천 부분에 三涉(陟)界가 잘못 적혀 있다. 이 점은 《광여도》에도 동일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정선군 지도에는 이 부분에 삼척계가 적혀 있지 않다. 아마 본 지도나 《광여도》의 필사 시에 주기를 토대로 삽입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러한 오류는 정확성을 추구한 《조선지도》의 정선과 삼척 지도, 김정호의 《동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면서 몇 가지 왜곡이 발생하고 있다. 南面에 있는 하천은 현재의 동남천으로 현재의 정선군 남면과 사북읍, 고한읍 지역이다. 瓦坪이라 적혀 있는 곳의 하천은 현재의 정선군 동면에 있는 하천이다. 이 두 하천은 고을 전체의 입장에서 볼 때 동남쪽으로 튀어나가 있다. 그러나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다보니 그런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읍치 오른쪽의 東面은 瓦坪 부근에 적어 넣어야 사실에 부합된다. 오른쪽 아래에 적혀 있는 安東界는 잘못된 것이다. 정선군은 안동과 경계를 접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安東界를 만날 수 있을 뿐이다. 《조선지도》의 정선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는 이런 오류가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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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요계관방지도를 필사한 지도이다. 요계관방지도가 제작된 배경에 대해서는 《해동지도》의 해제를 참고하면 된다. 《해동지도》를 필사하기는 했지만 동일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일단 《해동지도》의 가장 앞쪽에 있던 주기가 본 지도에는 모두 빠져 있다. 또한 각 정보마다 사용한 기호가 달라진 곳이 많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곳곳에 오류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페이지의 함경도 군현 표시가 보라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지만 3페이지에서는 연한 남색의 원으로 되어 있다. 평안도 군현은 흰색 원으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군현이 아닌 宣沙浦와 雲暗山城 등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평안도의 감영이 있었던 평양에는 平자 1개만 적혀 있기도 하다. 6페이지, 11페이지, 12페이지 등에는 사각형만 표시되어 있고,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보인다. 이것들은 앞 페이지에서 이미 표기했던 지명을 다음 페이지에도 표기하여 명칭을 적지 않은 것들이다. 더 나아가 7페이지, 9페이지, 14페이지 등에는 《해동지도》에 있는 내용을 완전히 생략한 곳도 있다. 이밖에 9페이지에 지명이 생략된 사각형의 왼쪽 지명이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를 필사한 사람이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기봉)

  • 진잠현(鎭岑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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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진잠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지도의 여백 위쪽에는 진잠현의 옛 명칭과 충청좌도에 속했다는 ‘左’가 표시되어 있다. 여백 오른쪽에는 한양에서 4일 반이 걸린다는 ‘四日半’고, 公州 鎭管에 속해 있다는 ‘公’, 이 지도책에서 36번째 고을에 해당된다는 ‘三十六’이 적혀 있다. 이런 부분은 《광여도》에는 없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진잠현 지도도 표현 방식에서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가 서쪽의 산줄기를 등지고 들어서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지도에 표시된 大川은 현재 갑천이라 부르고 있다. 갑천의 발원지는 본 지도에 표시된 계룡산 이외에도 여러 곳이 있다. 이 중 본 지도 왼쪽의 連山界와 珍山界 사이로 대둔산에서 발원한 현재의 대곡천이 흘러 들어와야 한다. 이 하천은 계룡산에서 발원한 것보다 더 큼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公州界가 동쪽에도 적혀 있는 것은 현재의 대전광역시 서부 북부, 중구, 동구 남부 등에도 공주의 땅이 걸쳐 있었기 때문이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하며, 《해동지도》와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이기봉)

  • 장성부(長城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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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장성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광여도》에 비해 面의 이름이 2개 잘못 기록되어 있다. 왼쪽 위의 北三面은 北二面을, 가운데 아래 永申驛 부근의 南三面은 南二面을 잘못 기록한 것이다. 왼쪽 위에는 面의 기호인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만 이름은 적혀 있지 않다. 그 왼쪽에는 笠岩山城에 대한 설명이 ‘동서북 삼면이 매우 험하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설명에서 ‘北三面’ 부분을 필사 시에 面으로 오해하고 노란색 사각형을 그려 넣은 것으로 생각된다. 이후 面이 아님을 깨닫고 명칭을 적어 넣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부분을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 면밀한 검토를 행하면서 필사한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오른쪽 아래쪽의 平昌界는 昌平界의 잘못으로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표현 양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장성부 지도에서는 昌平界로 되어 있다. 《광여도》의 필사 시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오류를 범했고, 본 지도의 필사자도 그 오류를 인식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 몇 가지 문제가 있다. 昌平界가 적혀 있는 이유는 현재의 담양군 수북면에 있었던 창평의 월경지와 경계를 맞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많은 경계선을 접하고 있었던 高敞, 淳昌과의 경계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해동지도》에는 순창은 없지만 고창과의 경계 표시는 있다. 고창은 영광과 정읍 사이에, 순창은 정읍과 담양 사이에 적혀 있어야 한다. 아래쪽의 錦城界에서의 錦城은 인조(1623-1649) 시기와 1728년-1737년(영조 4-13) 사이에 현으로 강등되었을 때의 나주 명칭이었다. 그러나 주기에는 남쪽으로 나주와 경계를 맞대고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광여도》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고, 《해동지도》에는 지도와 주기 모두 錦城이라고 되어 있다. 《광여도》의 필사 시 《해동지도》의 지도는 그대로 베끼면서 주기의 내용은 당시의 상황에 맞게 교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의 필사 시 면밀한 검토 없이 《광여도》의 내용을 그대로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기봉)

  • 영천군(榮川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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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榮川郡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읍치에 있는 同樂堂 등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하천의 유로 역시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여 두 지도가 필사 관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하천의 유로에서 2개 정도의 오류가 나타나고 있다. 왼쪽 豊基界 위쪽의 하천 부분이 본 지도에는 順興界 부근이 마치 발원지인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해동지도》에는 順興界 방면에서 흘러 들어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하천은 현재 순흥 방면에서 흘러오는 죽계천으로 《해동지도》가 사실에 부합된다. 오른쪽 위의 北面은 순흥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이다. 따라서 이 방면에서 흘러오는 내성천은 영천군의 땅에서 발원하지만 순흥 땅을 거쳐야 다시 영천군으로 들어온다. 《해동지도》에는 북면 아래쪽에 順興界를 적어 넣어 이런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지만 본 지도에서는 생략되었다. 사각형이나 원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과 원형이 혼합된 것처럼 그림에 따라 몇몇 부분에서 왜곡 현상이 발생하였다. 대표적인 것으로 가장 오른쪽에서 발원하여 川上面에서 내성천과 합류하는 현재의 용각천 유로이다. 이 하천은 실제로는 거의 西流하여 내성천에 합류하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또한 읍치가 확대되어 다른 지역은 상대적으로 작게 표현되었다. 《해동지도》에는 그냥 봉우리 모양으로 그려진 것이 본 지도에는 절벽 모양으로 바뀌어 표현된 곳도 있다. 이런 곳으로는 읍치의 東龜臺 부분과 왼쪽 위의 順興界 지역이다. 東龜臺 부분은 촛대 같은 지형을 의미하는 ‘臺’라는 글자를 통해 표현 방식을 바꾼 것으로 생각되는데, 順興界 방면의 표현이 바뀐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이기봉)

  • 옹진부(瓮津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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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옹진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옹진부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의 읍성과 所江鎭 부분이 더 확대되어 그려져 있다. 이런 차이가 발생한 이유는 본 지도의 크기가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만약 본 지도처럼 작은 종이 위에 《해동지도》와 동일한 비율로 읍성과 소강진을 그리면 성곽과 성곽 안의 정보를 표현하기가 어렵다. 특히 본 지도는 《해동지도》에 비해 읍성과 소강진 안의 건물들이 훨씬 많아졌다. 주기에는 소강진을 所江行營이라고 표현하였다. 소강진이 1719년(숙종 45)에 황해도 수군절도사영으로 승격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 옹진현도 옹진부로 승격되고, 옹진부사가 수군절도사를 겸하게 된다. 따라서 주기만을 놓고 보면 본 지도는 1719년 이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광여도》에는 소강행영이라고 해놓고, 지도의 명칭은 옹진현이라고 되어 있어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 《광여도》의 주기에는 본 지도의 주기에 나오는 南距大海十里 오른쪽 부분이 빠져 있기도 하다. 읍치와 소강진을 다른 지역에 비해 지나치게 확대하다보니까 나머지 지역의 모습이 많이 왜곡되었다. 예를 들어 西面이 본 지도에서는 마치 읍치 북쪽에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이것은 소강진 이서 지역이 극히 작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소강진부터 서쪽 끝 부분까지의 거리가 동쪽 끝 부분까지의 거리보다 더 멀다. 만약 서쪽 부분을 실제처럼 그렸다면 서면이 소강진 서쪽에, 龍淵面은 더 서쪽에 배치되어야 한다. 읍치 오른쪽에는 東面이 바다에 있는 것처럼 기록되었고, 노란색 사각형도 표시되어 있지 않다. 이 역시 읍치 부분이 확대되어 그려지면서 동쪽 부분 역시 극도로 축소되었기 때문이다. 《광여도》에는 동면이 육지 부분에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정평부(定平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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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정평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위쪽의 加莫洞은 《광여도》에 없으며, 중간 부분의 中月雲烽은 中月雲嶺이라고 되어 있다. 표현 양식은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정평부 지도에는 가막동이 나오며, 중월운령으로 되어 있다. 전자의 지명은 《광여도》의 필사 시에 생략한 것이며, 후자의 지명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잘못 쓴 것으로 볼 수 있다. 읍치 왼쪽에는 草原이란 지명에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다. 다른 道의 지도에는 面을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렸지만 초원은 面이 아니라 驛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린 것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잘못 이해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즉, 《해동지도》에는 읍치 오른쪽의 蓬臺驛에는 驛이 적혀 있지만 草原에는 驛이 적혀 있지 않다. 초원역은 원래 察訪이 파견된 찰방역으로 많은 屬驛을 거느리고 있었던 중요한 역임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의 필사 시 역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점은 《광여도》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社’가 여러 개 표시되어 있는데 함경도 지방에서는 面을 社라고 기록하였지만 본 지도에서는 모두 생략하였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社가 面이라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본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기 때문에 세로가 서-동의 방향을 나타낸다. 정평부의 모습은 남북으로 긴 형태를 취하고 있어 본 지도에서는 상대적으로 짧게 표시된 남북 방향의 왜곡이 심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것이 읍치 왼쪽에 있는 金津江으로 원래는 북쪽에서 발원하여 南流하다가 東流하여 바다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또한 남류하는 구간이 동류하는 구간의 3배에 가깝다. 본 지도에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본 지도에서는 해당 고을의 영역만 그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아래쪽에는 咸興界가 적혀 있다. 본 지도에는 마치 정평부가 이 부분에서 바로 바다와 접해 있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지만 함흥의 땅을 넘어야 바다가 나온다. (이기봉)

  • 용인현(龍仁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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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용인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위쪽에 표시된 向牛流川은 《광여도》에 向流牛川으로, 오른쪽 아래의 窟君山은 《광여도》에 窟巖山으로 표시되어 있다. 모두 《광여도》의 기록이 맞는 것이다. 客舍와 왼쪽의 趙靜菴墓는 《광여도》에는 없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용인현 지도도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동일하다. 크게 바뀐 내용이 있다면 《해동지도》에는 도로가 표시되어 있는 반면에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도로가 삭제되고 大路란 명칭만 남았다. 아래쪽의 縣內面에도 지도에 표시된 다른 하천 정도로 큰 현재의 진위천이 있었다. 《해동지도》에는 표시되어 있던 것이 《광여도》와 본 지도에 삭제되어 있다. 왼쪽 위에는 衿川이 적혀 있는데 《광여도》에는 衿川界라고 되어 있다. 《광여도》의 기록만을 놓고 보면 용인현이 금천현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해동지도》에는 ‘衿川十五里’라고 적혀 있어 경계를 맞대고 있는 것이 아니라 15리를 가면 금천이라는 뜻임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했다. 이런 오해가 발생한 것은 이 방향의 도로를 삭제했기 때문이다.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衿川이 다른 고을처럼 衿川界라고 적혀 있지 않아 꼭 하천의 명칭인 것처럼 오해를 부를 수 있다. (이기봉)

  • 진잠현(鎭岑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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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진잠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지도의 여백 위쪽에는 진잠현의 옛 명칭과 충청좌도에 속했다는 ‘左’가 표시되어 있다. 여백 오른쪽에는 한양에서 4일 반이 걸린다는 ‘四日半’고, 公州 鎭管에 속해 있다는 ‘公’, 이 지도책에서 36번째 고을에 해당된다는 ‘三十六’이 적혀 있다. 이런 부분은 《광여도》에는 없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진잠현 지도도 표현 방식에서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가 서쪽의 산줄기를 등지고 들어서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지도에 표시된 大川은 현재 갑천이라 부르고 있다. 갑천의 발원지는 본 지도에 표시된 계룡산 이외에도 여러 곳이 있다. 이 중 본 지도 왼쪽의 連山界와 珍山界 사이로 대둔산에서 발원한 현재의 대곡천이 흘러 들어와야 한다. 이 하천은 계룡산에서 발원한 것보다 더 큼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公州界가 동쪽에도 적혀 있는 것은 현재의 대전광역시 서부 북부, 중구, 동구 남부 등에도 공주의 땅이 걸쳐 있었기 때문이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하며, 《해동지도》와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이기봉)

  • 장성부(長城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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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장성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광여도》에 비해 面의 이름이 2개 잘못 기록되어 있다. 왼쪽 위의 北三面은 北二面을, 가운데 아래 永申驛 부근의 南三面은 南二面을 잘못 기록한 것이다. 왼쪽 위에는 面의 기호인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만 이름은 적혀 있지 않다. 그 왼쪽에는 笠岩山城에 대한 설명이 ‘동서북 삼면이 매우 험하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설명에서 ‘北三面’ 부분을 필사 시에 面으로 오해하고 노란색 사각형을 그려 넣은 것으로 생각된다. 이후 面이 아님을 깨닫고 명칭을 적어 넣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부분을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 면밀한 검토를 행하면서 필사한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오른쪽 아래쪽의 平昌界는 昌平界의 잘못으로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표현 양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장성부 지도에서는 昌平界로 되어 있다. 《광여도》의 필사 시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오류를 범했고, 본 지도의 필사자도 그 오류를 인식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 몇 가지 문제가 있다. 昌平界가 적혀 있는 이유는 현재의 담양군 수북면에 있었던 창평의 월경지와 경계를 맞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많은 경계선을 접하고 있었던 高敞, 淳昌과의 경계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해동지도》에는 순창은 없지만 고창과의 경계 표시는 있다. 고창은 영광과 정읍 사이에, 순창은 정읍과 담양 사이에 적혀 있어야 한다. 아래쪽의 錦城界에서의 錦城은 인조(1623-1649) 시기와 1728년-1737년(영조 4-13) 사이에 현으로 강등되었을 때의 나주 명칭이었다. 그러나 주기에는 남쪽으로 나주와 경계를 맞대고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광여도》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고, 《해동지도》에는 지도와 주기 모두 錦城이라고 되어 있다. 《광여도》의 필사 시 《해동지도》의 지도는 그대로 베끼면서 주기의 내용은 당시의 상황에 맞게 교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의 필사 시 면밀한 검토 없이 《광여도》의 내용을 그대로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기봉)

  • 영천군(榮川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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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榮川郡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읍치에 있는 同樂堂 등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하천의 유로 역시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여 두 지도가 필사 관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하천의 유로에서 2개 정도의 오류가 나타나고 있다. 왼쪽 豊基界 위쪽의 하천 부분이 본 지도에는 順興界 부근이 마치 발원지인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해동지도》에는 順興界 방면에서 흘러 들어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하천은 현재 순흥 방면에서 흘러오는 죽계천으로 《해동지도》가 사실에 부합된다. 오른쪽 위의 北面은 순흥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이다. 따라서 이 방면에서 흘러오는 내성천은 영천군의 땅에서 발원하지만 순흥 땅을 거쳐야 다시 영천군으로 들어온다. 《해동지도》에는 북면 아래쪽에 順興界를 적어 넣어 이런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지만 본 지도에서는 생략되었다. 사각형이나 원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과 원형이 혼합된 것처럼 그림에 따라 몇몇 부분에서 왜곡 현상이 발생하였다. 대표적인 것으로 가장 오른쪽에서 발원하여 川上面에서 내성천과 합류하는 현재의 용각천 유로이다. 이 하천은 실제로는 거의 西流하여 내성천에 합류하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또한 읍치가 확대되어 다른 지역은 상대적으로 작게 표현되었다. 《해동지도》에는 그냥 봉우리 모양으로 그려진 것이 본 지도에는 절벽 모양으로 바뀌어 표현된 곳도 있다. 이런 곳으로는 읍치의 東龜臺 부분과 왼쪽 위의 順興界 지역이다. 東龜臺 부분은 촛대 같은 지형을 의미하는 ‘臺’라는 글자를 통해 표현 방식을 바꾼 것으로 생각되는데, 順興界 방면의 표현이 바뀐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이기봉)

  • 옹진부(瓮津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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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옹진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옹진부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의 읍성과 所江鎭 부분이 더 확대되어 그려져 있다. 이런 차이가 발생한 이유는 본 지도의 크기가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만약 본 지도처럼 작은 종이 위에 《해동지도》와 동일한 비율로 읍성과 소강진을 그리면 성곽과 성곽 안의 정보를 표현하기가 어렵다. 특히 본 지도는 《해동지도》에 비해 읍성과 소강진 안의 건물들이 훨씬 많아졌다. 주기에는 소강진을 所江行營이라고 표현하였다. 소강진이 1719년(숙종 45)에 황해도 수군절도사영으로 승격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 옹진현도 옹진부로 승격되고, 옹진부사가 수군절도사를 겸하게 된다. 따라서 주기만을 놓고 보면 본 지도는 1719년 이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광여도》에는 소강행영이라고 해놓고, 지도의 명칭은 옹진현이라고 되어 있어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 《광여도》의 주기에는 본 지도의 주기에 나오는 南距大海十里 오른쪽 부분이 빠져 있기도 하다. 읍치와 소강진을 다른 지역에 비해 지나치게 확대하다보니까 나머지 지역의 모습이 많이 왜곡되었다. 예를 들어 西面이 본 지도에서는 마치 읍치 북쪽에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이것은 소강진 이서 지역이 극히 작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소강진부터 서쪽 끝 부분까지의 거리가 동쪽 끝 부분까지의 거리보다 더 멀다. 만약 서쪽 부분을 실제처럼 그렸다면 서면이 소강진 서쪽에, 龍淵面은 더 서쪽에 배치되어야 한다. 읍치 오른쪽에는 東面이 바다에 있는 것처럼 기록되었고, 노란색 사각형도 표시되어 있지 않다. 이 역시 읍치 부분이 확대되어 그려지면서 동쪽 부분 역시 극도로 축소되었기 때문이다. 《광여도》에는 동면이 육지 부분에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정평부(定平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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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정평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위쪽의 加莫洞은 《광여도》에 없으며, 중간 부분의 中月雲烽은 中月雲嶺이라고 되어 있다. 표현 양식은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정평부 지도에는 가막동이 나오며, 중월운령으로 되어 있다. 전자의 지명은 《광여도》의 필사 시에 생략한 것이며, 후자의 지명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잘못 쓴 것으로 볼 수 있다. 읍치 왼쪽에는 草原이란 지명에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다. 다른 道의 지도에는 面을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렸지만 초원은 面이 아니라 驛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린 것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잘못 이해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즉, 《해동지도》에는 읍치 오른쪽의 蓬臺驛에는 驛이 적혀 있지만 草原에는 驛이 적혀 있지 않다. 초원역은 원래 察訪이 파견된 찰방역으로 많은 屬驛을 거느리고 있었던 중요한 역임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의 필사 시 역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점은 《광여도》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社’가 여러 개 표시되어 있는데 함경도 지방에서는 面을 社라고 기록하였지만 본 지도에서는 모두 생략하였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社가 面이라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본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기 때문에 세로가 서-동의 방향을 나타낸다. 정평부의 모습은 남북으로 긴 형태를 취하고 있어 본 지도에서는 상대적으로 짧게 표시된 남북 방향의 왜곡이 심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것이 읍치 왼쪽에 있는 金津江으로 원래는 북쪽에서 발원하여 南流하다가 東流하여 바다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또한 남류하는 구간이 동류하는 구간의 3배에 가깝다. 본 지도에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본 지도에서는 해당 고을의 영역만 그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아래쪽에는 咸興界가 적혀 있다. 본 지도에는 마치 정평부가 이 부분에서 바로 바다와 접해 있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지만 함흥의 땅을 넘어야 바다가 나온다. (이기봉)

  • 용인현(龍仁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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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용인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위쪽에 표시된 向牛流川은 《광여도》에 向流牛川으로, 오른쪽 아래의 窟君山은 《광여도》에 窟巖山으로 표시되어 있다. 모두 《광여도》의 기록이 맞는 것이다. 客舍와 왼쪽의 趙靜菴墓는 《광여도》에는 없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용인현 지도도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동일하다. 크게 바뀐 내용이 있다면 《해동지도》에는 도로가 표시되어 있는 반면에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도로가 삭제되고 大路란 명칭만 남았다. 아래쪽의 縣內面에도 지도에 표시된 다른 하천 정도로 큰 현재의 진위천이 있었다. 《해동지도》에는 표시되어 있던 것이 《광여도》와 본 지도에 삭제되어 있다. 왼쪽 위에는 衿川이 적혀 있는데 《광여도》에는 衿川界라고 되어 있다. 《광여도》의 기록만을 놓고 보면 용인현이 금천현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해동지도》에는 ‘衿川十五里’라고 적혀 있어 경계를 맞대고 있는 것이 아니라 15리를 가면 금천이라는 뜻임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했다. 이런 오해가 발생한 것은 이 방향의 도로를 삭제했기 때문이다.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衿川이 다른 고을처럼 衿川界라고 적혀 있지 않아 꼭 하천의 명칭인 것처럼 오해를 부를 수 있다. (이기봉)

  • 진천현(鎭川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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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진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오른쪽에 陰城界가 적혀 있지 않고, 읍치에 恕樓가 적혀 있다는 점뿐이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밖에 없는 《해동지도》의 진천현 지도에 恕樓가 적혀 있어 본 지도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본 고을이 실제로 음성과 접해 있었기 때문에 陰城界가 생략된 것은 본 지도의 제작자가 실수를 범한 것으로 보인다. 본 지도에는 고을 전체가 산줄기에 의해 겹겹이 둘러싸이고, 산줄기 사이로 물이 흘러 泮灘에서 하나로 합쳐지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읍치와 고을 전체가 풍수적으로 명당임을 표현하기 위해 실제 지형을 이미지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실제적인 측면이 몇 가지 왜곡되고 있다. 읍치로 뻗어 내린 산줄기가 시작되는 萬弩山이 실제로는 서쪽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쪽에 치우친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로 인해 聖岩面에서 흐르는 하천이 지나치게 길게 그려졌다. 또한 현재 성암천으로 불리는 이 하천이 남쪽으로 흘러 미호천에 바로 합류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반탄(현재의 초평면 연담리) 부근에서 합쳐지는 것처럼 표현하였다. 오른쪽 아래의 山井面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표현된 하천도 실제로는 陰城界 동쪽에서 흘러들어온다. 또한 萬升面과 梨谷面, 月村面을 흐르는 하천도 실제로는 竹山界와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은 오른쪽의 忠州界 너머에서 흘러온다. (이기봉)

  • 장수현(長水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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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장수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일부 산줄기나 지명의 위치에서만 차이가 날 뿐이다. 고을 전체의 모습이 실제와 동일하지는 않지만 하천의 유로 표시에서는 실제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읍치 부분에서 발원하여 위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금강 본류이다. 任縣內面에서 금강으로 합류하는 하천은 현재 장계천이라 부르고 있다. 장계천은 현재의 장계면과 계남면에서 두 물줄기가 합류되어 금강으로 흘러가는데 지도에도 이와 같은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任北面 부분에서 금강에 합류하는 하천도 현재 계북면에서 흘러가는 하천이다. 그 위쪽의 하천은 현재의 계북면에서 옛 龍潭의 경계를 넘어 금강에 합류되는데 본 지도에도 잘 표현되어 있다. 다만 방향이 약간 잘못되어 있을 뿐이다. 실제로는 북류하다가 용담의 땅에 들어가 서류한다. 왼쪽 아래의 身西面에서 흘러가는 하천은 섬진강의 지류인 오수천의 상류로서 현재의 장수군 산서면 일부이다. 그 오른쪽에 작게 표시되어 있는 하천은 섬진강의 지류인 요천 최상류 중의 하나로 현재의 장수군 장수읍에 걸쳐 있다. 가장 오른쪽에 있는 하천도 요천의 지류인 용림천의 최상류로서 역시 장수군에 걸쳐 있다. 회화식 군현지도는 고을 전체를 산줄기에 의해 둘러싸인 것처럼 표현하기 위해 읍치와 다른 유역에 속하는 작은 하천들은 그리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사실에 입각해 보면 본 지도는 회화식 군현지도이면서도 하천을 아주 상세하게 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고 볼 수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장수현 지도와 『여지도서』의 장수현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특히 《해동지도》는 가장 먼저 그려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기봉)

  • 영천군(永川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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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永川郡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읍치 내에 있는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표시된 지명은 《해동지도》에 거의 나온다. 또한 하천의 유로 역시 《해동지도》와 거의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첫째, 읍치가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다. 둘째,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된 面 중 읍성 내에 있었던 內西面이 생략되어 있다. 셋째, 읍치 왼쪽에 北川이라 적혀 있는 현재의 신령천이 《해동지도》에는 북쪽에서 흘러 들어오는 것처럼 표현되었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영천군 내에 발원지가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는 신령천 끝 부분에 新寧界가 적혀 있는데, 본 지도에서는 생략되어 있어 혼란을 더욱 크게 하고 있다. 오른쪽의 금호강 최상류에 있는 立岩書院 부분은 경주의 죽장면에 있는 월경지이지만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그렸다. 이 점은 《해동지도》도 마찬가지이다. 전체적으로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모양으로 그리면서 많은 왜곡이 나타났다. 가장 심한 곳은 八公山으로부터 흘러오는 현재의 청통천 유역이다. 청통천은 실제로는 西流하다가 남류하여 금호강에 합류하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남류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 지역은 원래 서쪽으로 불쑥 튀어나간 부분이지만 사각형의 모양에 맞추기 위해 그리다 보니까 직선으로 표현된 것이다. 읍치 왼쪽의 신령천이 오른쪽의 금호강 본류에 비해 영천군을 흐르는 구간이 상당히 짧음에도 불구하고 비슷하게 그려진 것 역시 사각형의 모양에 맞추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기봉)

  • 용강현(龍崗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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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용강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용강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먼저 읍치 부분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기록되어 있어 읍치 부분만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첨가한 것으로 보인다. 읍치에는 鄕校가 2개 표시되어 있는데, 아래쪽의 것이 《광여도》에 鄕廳으로 교정되어 있다. 面의 명칭에서도 오류가 나타나고 있다. 오른쪽의 月連也面은 《해동지도》에 月連池面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의 주기에도 이 면의 명칭이 日蓮池面으로 잘못 적혀 있다. 《광여도》의 지도 부분에는 월연지면으로 교정되어 있지만 주기에는 본 지도처럼 잘못 기록되어 있다. 《해동지도》는 본 지도보다 상대적으로 세로가 가로보다 더 길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책처럼 세로가 약간 긴 종이 위에 그리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세로 부분이 축소된 것으로 보인다. 가로가 상대적으로 길어짐에 따라 하천의 길이 표현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본 지도는 대략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는데, 남쪽(왼쪽)으로 흐르는 하천의 길이가 《해동지도》보다 더 길게 그려져 있다. 반면에 동쪽(아래)으로 흐르는 하천은 상대적으로 짧게 그려져 있다. 왼쪽의 三和界로 연결되는 육지도 본 지도에는 폭이 좁게 그려져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상대적으로 넓게 그려져 있다. 이것 역시 세로의 폭이 좁아지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용강현의 실제 모습은 동서로 길게 누운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본 지도보다는 《해동지도》가 실제에 더 가깝게 그려졌다고 볼 수 있다. (이기봉)

  • 조선여진양국경계도(朝鮮女眞兩國境界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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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조선여진양국경계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해동지도》의 朝鮮女眞分界圖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일부 사실이 잘못 표현되거나 생략된 것이 많다. 왼쪽의 압록강 하류에 마치 2개의 강줄기와 호수가 있는 것처럼 표현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의주를 지나 서해로 빠져나가는 부분을 크게 표현하고, 이곳에 많은 河中島를 그려 넣은 《해동지도》를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잘못 이해하여 그린 것으로 생각된다. 두만강 하류 부분에도 《해동지도》에는 큰 삼각주의 모양과 8개의 池가 표시되어 있다. 이 8개의 池는 일반적으로 八池라고 하는 것으로서 두만강 하류의 넓은 평지에 있다. 본 지도에서는 8개의 池는 생략하고 삼각주 모양만 그려 넣었다. 더 나아가 압록강 변에는 碧童이 2개나 표시되어 있다. 왼쪽에는 昌城을 써넣어야 올바르다. 만주 지방에는 가장 중요한 거점인 寧古塔과 烏喇를 비롯하여 驛站은 《해동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驛路와 각종 주기들이 생략되었다. 《광여도》에서는 본 지도의 오류들이 대부분 수정되었고, 《해동지도》에는 있으나 본 지도에는 없는 주기들도 모두 기입되어 있다. 다만 전체적인 산줄기와 물줄기의 모습은 《해동지도》가 아니라 본 지도와 거의 동일하여 상호 필사 관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음죽현(陰竹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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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음죽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하천에 대한 표현 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아래쪽에 흐르는 天民川이 현재의 청미천이다. 《광여도》에는 2개의 실선으로 표시되어 있으나 본 지도에는 읍치에서 내려가는 하천과 동일하게 1개의 실선으로 그려져 있다. 본 지도의 작성자가 읍치에서 내려가는 하천과 청미천을 동일하게 취급하고 합류되는 지점부터 2개의 실선으로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읍치에서 내려가는 하천은 실제적으로 청미천에 비하면 아주 짧은 하천에 불과하다. 본 지도가 회화식 지도이기 때문에 그런 점이 잘 표현되지 못했을 뿐이다. 본 지도의 작성자는 그런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왼쪽의 白山峯에서 내려가 長海院石橋에서 청미천과 합류되는 하천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광여도》에도 2개의 실선으로 표시하여 청미천과 동급의 하천처럼 그려놓았다. 본 지도와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동일한 《해동지도》의 음죽현 지도에서는 청미천이 제대로 그려져 있다. 장해원에서 청미천과 합류되는 하천은 《광여도》 또는 본 지도의 작성자가 《해동지도》를 참조하여 그리면서 도로를 하천으로 착각하여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진천현(鎭川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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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진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오른쪽에 陰城界가 적혀 있지 않고, 읍치에 恕樓가 적혀 있다는 점뿐이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밖에 없는 《해동지도》의 진천현 지도에 恕樓가 적혀 있어 본 지도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본 고을이 실제로 음성과 접해 있었기 때문에 陰城界가 생략된 것은 본 지도의 제작자가 실수를 범한 것으로 보인다. 본 지도에는 고을 전체가 산줄기에 의해 겹겹이 둘러싸이고, 산줄기 사이로 물이 흘러 泮灘에서 하나로 합쳐지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읍치와 고을 전체가 풍수적으로 명당임을 표현하기 위해 실제 지형을 이미지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실제적인 측면이 몇 가지 왜곡되고 있다. 읍치로 뻗어 내린 산줄기가 시작되는 萬弩山이 실제로는 서쪽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쪽에 치우친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로 인해 聖岩面에서 흐르는 하천이 지나치게 길게 그려졌다. 또한 현재 성암천으로 불리는 이 하천이 남쪽으로 흘러 미호천에 바로 합류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반탄(현재의 초평면 연담리) 부근에서 합쳐지는 것처럼 표현하였다. 오른쪽 아래의 山井面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표현된 하천도 실제로는 陰城界 동쪽에서 흘러들어온다. 또한 萬升面과 梨谷面, 月村面을 흐르는 하천도 실제로는 竹山界와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은 오른쪽의 忠州界 너머에서 흘러온다. (이기봉)

  • 장수현(長水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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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장수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일부 산줄기나 지명의 위치에서만 차이가 날 뿐이다. 고을 전체의 모습이 실제와 동일하지는 않지만 하천의 유로 표시에서는 실제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읍치 부분에서 발원하여 위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금강 본류이다. 任縣內面에서 금강으로 합류하는 하천은 현재 장계천이라 부르고 있다. 장계천은 현재의 장계면과 계남면에서 두 물줄기가 합류되어 금강으로 흘러가는데 지도에도 이와 같은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任北面 부분에서 금강에 합류하는 하천도 현재 계북면에서 흘러가는 하천이다. 그 위쪽의 하천은 현재의 계북면에서 옛 龍潭의 경계를 넘어 금강에 합류되는데 본 지도에도 잘 표현되어 있다. 다만 방향이 약간 잘못되어 있을 뿐이다. 실제로는 북류하다가 용담의 땅에 들어가 서류한다. 왼쪽 아래의 身西面에서 흘러가는 하천은 섬진강의 지류인 오수천의 상류로서 현재의 장수군 산서면 일부이다. 그 오른쪽에 작게 표시되어 있는 하천은 섬진강의 지류인 요천 최상류 중의 하나로 현재의 장수군 장수읍에 걸쳐 있다. 가장 오른쪽에 있는 하천도 요천의 지류인 용림천의 최상류로서 역시 장수군에 걸쳐 있다. 회화식 군현지도는 고을 전체를 산줄기에 의해 둘러싸인 것처럼 표현하기 위해 읍치와 다른 유역에 속하는 작은 하천들은 그리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사실에 입각해 보면 본 지도는 회화식 군현지도이면서도 하천을 아주 상세하게 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고 볼 수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장수현 지도와 『여지도서』의 장수현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특히 《해동지도》는 가장 먼저 그려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기봉)

  • 영천군(永川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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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永川郡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읍치 내에 있는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표시된 지명은 《해동지도》에 거의 나온다. 또한 하천의 유로 역시 《해동지도》와 거의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첫째, 읍치가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다. 둘째,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된 面 중 읍성 내에 있었던 內西面이 생략되어 있다. 셋째, 읍치 왼쪽에 北川이라 적혀 있는 현재의 신령천이 《해동지도》에는 북쪽에서 흘러 들어오는 것처럼 표현되었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영천군 내에 발원지가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는 신령천 끝 부분에 新寧界가 적혀 있는데, 본 지도에서는 생략되어 있어 혼란을 더욱 크게 하고 있다. 오른쪽의 금호강 최상류에 있는 立岩書院 부분은 경주의 죽장면에 있는 월경지이지만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그렸다. 이 점은 《해동지도》도 마찬가지이다. 전체적으로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모양으로 그리면서 많은 왜곡이 나타났다. 가장 심한 곳은 八公山으로부터 흘러오는 현재의 청통천 유역이다. 청통천은 실제로는 西流하다가 남류하여 금호강에 합류하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남류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 지역은 원래 서쪽으로 불쑥 튀어나간 부분이지만 사각형의 모양에 맞추기 위해 그리다 보니까 직선으로 표현된 것이다. 읍치 왼쪽의 신령천이 오른쪽의 금호강 본류에 비해 영천군을 흐르는 구간이 상당히 짧음에도 불구하고 비슷하게 그려진 것 역시 사각형의 모양에 맞추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기봉)

  • 용강현(龍崗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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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용강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용강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먼저 읍치 부분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기록되어 있어 읍치 부분만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첨가한 것으로 보인다. 읍치에는 鄕校가 2개 표시되어 있는데, 아래쪽의 것이 《광여도》에 鄕廳으로 교정되어 있다. 面의 명칭에서도 오류가 나타나고 있다. 오른쪽의 月連也面은 《해동지도》에 月連池面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의 주기에도 이 면의 명칭이 日蓮池面으로 잘못 적혀 있다. 《광여도》의 지도 부분에는 월연지면으로 교정되어 있지만 주기에는 본 지도처럼 잘못 기록되어 있다. 《해동지도》는 본 지도보다 상대적으로 세로가 가로보다 더 길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책처럼 세로가 약간 긴 종이 위에 그리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세로 부분이 축소된 것으로 보인다. 가로가 상대적으로 길어짐에 따라 하천의 길이 표현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본 지도는 대략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는데, 남쪽(왼쪽)으로 흐르는 하천의 길이가 《해동지도》보다 더 길게 그려져 있다. 반면에 동쪽(아래)으로 흐르는 하천은 상대적으로 짧게 그려져 있다. 왼쪽의 三和界로 연결되는 육지도 본 지도에는 폭이 좁게 그려져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상대적으로 넓게 그려져 있다. 이것 역시 세로의 폭이 좁아지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용강현의 실제 모습은 동서로 길게 누운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본 지도보다는 《해동지도》가 실제에 더 가깝게 그려졌다고 볼 수 있다. (이기봉)

  • 종성부(鍾城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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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종성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노란색 사각형이 3개 있다. 《해동지도》의 종성부 지도에 읍치(府衙)와 北兵營 이외에 건물 모양이 표시된 것을 본 지도에서는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였다. 위쪽의 潼關과 防垣은 군사시설인 鎭堡이고, 아래쪽의 鹿野는 교통 통신 시설인 驛站이다. 보통 역참의 경우 본 지도책에서는 보라색 사각형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본 지도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주기를 보면 面에 社가 7개나 기록되어 있지만 지도에는 2개밖에 표시되어 있지 않다. 이 2개는 《해동지도》에 표시된 것으로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그대로 필사했을 뿐 다른 위치 정보를 참조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왼쪽 아래에서 위로 흘러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두만강이고, 북병영이 있는 곳은 두만강의 지류인 오룡천의 상류 유역이다. 아래쪽 산줄기 너머의 동해안에도 주기에 造山社로 기록된 종성의 땅이 있었지만 지도에는 그려지지 않았다. 현재 란선시에 포함되어 있는 곳으로서 일제시대에는 경흥군 풍해면이었다. 조산사 지역이 본 지도에 그려지지 않은 것도 이 지역이 표현되어 있지 않은 《해동지도》를 그대로 필사했기 때문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종성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는 조선사가 실제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는 비록 회화식으로 표현되었지만 읍치가 특별히 확대되어 있지 않고, 고을 전체 모습도 실제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음죽현(陰竹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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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음죽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하천에 대한 표현 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아래쪽에 흐르는 天民川이 현재의 청미천이다. 《광여도》에는 2개의 실선으로 표시되어 있으나 본 지도에는 읍치에서 내려가는 하천과 동일하게 1개의 실선으로 그려져 있다. 본 지도의 작성자가 읍치에서 내려가는 하천과 청미천을 동일하게 취급하고 합류되는 지점부터 2개의 실선으로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읍치에서 내려가는 하천은 실제적으로 청미천에 비하면 아주 짧은 하천에 불과하다. 본 지도가 회화식 지도이기 때문에 그런 점이 잘 표현되지 못했을 뿐이다. 본 지도의 작성자는 그런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왼쪽의 白山峯에서 내려가 長海院石橋에서 청미천과 합류되는 하천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광여도》에도 2개의 실선으로 표시하여 청미천과 동급의 하천처럼 그려놓았다. 본 지도와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동일한 《해동지도》의 음죽현 지도에서는 청미천이 제대로 그려져 있다. 장해원에서 청미천과 합류되는 하천은 《광여도》 또는 본 지도의 작성자가 《해동지도》를 참조하여 그리면서 도로를 하천으로 착각하여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천안군(天安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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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천안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 오른쪽에 《광여도》에는 上里面이 적혀 있는데, 본 지도에는 빠져 있다. 주기에 보면 상리면이 있어 본 지도의 작성자가 실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천안군 지도도 표현 방법이나 내용적 측면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하다. 가장 다르게 그리고 있는 부분은 왼쪽에 潮水라 쓰인 위쪽의 하천이다. 《해동지도》에는 이곳이 바닷처럼 표현되었지만 《광여도》와 본 지도에는 일반적인 하천과 동일하게 그려져 있다. 이곳에 있는 세 개의 면은 현재 아산시 인주면과 선장면, 예산군 신암면의 삽교천 부근에 있었다. 즉, 溫陽과 新昌 및 牙山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만으로는 이러한 사실을 이해할 수가 없다. 반면에 《해동지도》에는 이곳을 마치 바다처럼 표시했는데, 이 지역의 삽교천이 원래 밀물 때 바닷물에 잠기는 구간이었기 때문에 사실과 부합된다고 할 수 있다. 《광여도》와 본 지도의 작성자는 이런 사실을 잘못 이해하여 일반적인 하천처럼 표시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세 개의 면 중 興德面은 德興面의 誤記이다. 《광여도》의 지도와 주기에도 본 지도처럼 잘못 기록되어 있는데, 《해동지도》에는 덕흥면이라고 올바르게 적혀 있다. 천안의 읍치에서 이곳으로 내려가는 하천은 현재 삽교천의 지류인 곡교천이다. 세 개의 면 중 덕흥면과 신종면은 이 하천의 아래와 왼쪽에 표시되어야 사실과 부합된다. 맨 위쪽에 있는 毛山面은 현재의 아산시 둔포면에 있었으며, 稷山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다. 역시 이 지도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읍치를 지나는 하천보다 一南面과 二南面을 흐르는 하천이 훨씬 길다. 역시 이 지도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문제점이 나타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읍치 지역을 다른 지역보다 훨씬 대축척으로 그린 회화식 군현지도였기 때문이다. 이런 지도에서는 방향은 대략 비슷하더라도 거리는 지도 위의 내용만으로 거의 파악하기 어렵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주기에는 각 면의 初境과 終境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이기봉)

  • 장흥부(長興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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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제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지도로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장흥현 지도와 『여지도서』의 장흥부 지도가 있다. 면의 위치 표기에서 잘못된 곳이 나타나고 있다. 왼쪽 위의 夫山面과 有恥面은 위치가 바뀌었다. 읍치 왼쪽의 古邑面은 南面과 大興面 사이에 위치시켜야 한다. 비록 같은 회화식 지도이지만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호남지도》와 ‘1872년 지방지도’의 장흥부 지도에는 2개의 면이 실제와 부합되게 표시되어 있다. 주기에도 夫山面은 初境이 5리, 終境이 15 리로 되어 있는 반면 有恥面은 각각 15 리와 60 리로 되어 있어 지도의 내용과 부합되고 있지 않다. 또한 古邑面도 초경이 40 리, 종경이 50 리로 되어 있어 지도의 내용과 다르게 볼 수 있다. 오른쪽 위의 하천은 현재의 보성강이고, 왼쪽 위의 하천은 현재의 탐진강이다. 이 중 탐진강의 유로 표시에서 문제가 일부 나타나고 있다. 왼쪽 위의 경우 탐진강은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羅州와 靈岩의 경계선 밖에서 흘러오도록 그려져 있어야 한다. 또한 읍치 왼쪽에 있는 현재의 금강은 강진의 성전면, 작천면, 병영면을 통해 장흥부에 들어온다. ‘1872년 지방지도’의 장흥부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잘 묘사되어 있다. 오른쪽 아래의 섬은 크기나 위치를 고려하지 않고 바다에 있는 섬을 모아 놓은 것이다.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그렸고, 섬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영해부(寧海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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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영해부 지도와 비슷하다. 그러나 몇 가지 측면에서 다른 점이 있다. 가장 큰 차이는 軍器 등의 정보가 추가된 邑城이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크게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다른 부분도 변화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읍성과 동해 사이가 상대적으로 좁아져 산줄기의 표현이 단순해졌다. 읍성 서쪽 지역 역시 상대적으로 작아졌기 때문에 지명의 위치, 하천의 유로, 산줄기의 표현이 약간씩 달라졌다. 예를 들어 《해동지도》에 비해 위쪽의 烏於面 지역이 상대적으로 작아졌으며, 반대로 石保面 지역은 크게 그려졌다. 석보면은 《해동지도》에 서남쪽 구석에 있었지만 본 지도에는 정 서쪽에 있는 것으로 바뀌어 있다. 이에 따라 大泣嶺, 小泣嶺의 위치도 《해동지도》에 비해 위쪽에 표시되어 있다. 석보면 지역은 실제로는 낙동강의 지류인 반변천 상류의 일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서쪽으로 튀어나가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어 지도를 그리는 과정에서 실제의 모습이 왜곡되어 나타난 것이다. 읍성 이외의 지역에 표시된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오는 것이다. 다만 지도 왼쪽에 표시된 寧陽驛은 《해동지도》에 寧海驛이라 적혀 있는데, 본 지도의 것이 올바르다. 기타 《해동지도》에는 없었거나 다른 산과 비슷하게 그려졌던 아래쪽의 丑山과 위쪽의 여러 산이 절벽의 산지 모양으로 그려져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이기봉)

  • 용천부(龍川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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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용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용천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첨가되거나 변화된 것이 있다. 《해동지도》에 비해 세로보다 가로가 상대적으로 더 길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상대적으로 세로가 짧아진 종이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또한 읍치와 龍骨山城, 위쪽의 良策站이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읍치와 양책참 등에 《해동지도》에 없는 정보가 추가되었고, 상대적으로 훨씬 작은 종이 위에 많은 정보를 수록하려 했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으로 생각된다. 필사 과정에서 일부의 글자가 생략되거나 잘못된 것도 있다. 面의 명칭에서 北面을 제외하면 일괄적으로 ‘端’자가 빠져 있다. 이것은 《해동지도》에 지도에는 ‘端’가 적혀 있지만 주기에는 없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주기에는 府內面이 府川面으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한데, 《광여도》에는 이 부분이 교정되어 있다. 《해동지도》에 주기에는 있으면서 지도에는 없는 面으로 府內面, 北面, 西面, 東上面, 東下面 5개가 있다. 이 중 본 지도에는 北面만이 적혀 있으며, 《광여도》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본 지도와 《광여도》의 필사 시에 나머지 4개의 面 위치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는 동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고을의 모습은 실제와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고을 모습 자체가 세로로 약간 긴 사각형의 종이에 그려도 왜곡되지 않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아래쪽의 바다에 있는 섬들은 크기나 거리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해동지도》에는 이 지역에서 가장 큰 薪島를 제외하면 나머지 섬들의 크기나 거리가 실제를 반영하고 있지 않다. 거리가 고려되지 않은 이유는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그렸기 때문이다. 크기가 반영되지 않은 이유는 지도 제작 당시에 섬의 크기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지리지에 섬의 크기가 기록되어 있는 경우는 별로 많지 않다. (이기봉)

  • 종성부(鍾城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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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종성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노란색 사각형이 3개 있다. 《해동지도》의 종성부 지도에 읍치(府衙)와 北兵營 이외에 건물 모양이 표시된 것을 본 지도에서는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였다. 위쪽의 潼關과 防垣은 군사시설인 鎭堡이고, 아래쪽의 鹿野는 교통 통신 시설인 驛站이다. 보통 역참의 경우 본 지도책에서는 보라색 사각형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본 지도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주기를 보면 面에 社가 7개나 기록되어 있지만 지도에는 2개밖에 표시되어 있지 않다. 이 2개는 《해동지도》에 표시된 것으로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그대로 필사했을 뿐 다른 위치 정보를 참조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왼쪽 아래에서 위로 흘러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두만강이고, 북병영이 있는 곳은 두만강의 지류인 오룡천의 상류 유역이다. 아래쪽 산줄기 너머의 동해안에도 주기에 造山社로 기록된 종성의 땅이 있었지만 지도에는 그려지지 않았다. 현재 란선시에 포함되어 있는 곳으로서 일제시대에는 경흥군 풍해면이었다. 조산사 지역이 본 지도에 그려지지 않은 것도 이 지역이 표현되어 있지 않은 《해동지도》를 그대로 필사했기 때문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종성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는 조선사가 실제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는 비록 회화식으로 표현되었지만 읍치가 특별히 확대되어 있지 않고, 고을 전체 모습도 실제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이천부(利川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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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이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읍치의 客舍 오른쪽에 鄕校의 명칭이 사라진 점, 《광여도》에 衙와 倉으로만 쓰여 있던 것이 衙舍와 司倉으로 적혀 있는 점 정도이다. 읍치 왼쪽에 표시된 하천은 현재의 복하천이다. 지도에는 위쪽의 陽智界로부터 복하천이 흘러들어오는 것처럼 표시되어 있으나 사실과 다르다. 아래쪽의 虎岩池에서 복하천이 끝나는 것처럼 표시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麗州界 방향으로 흘러나가야 한다. 《광여도》에는 두 부분이 제대로 표현되어 있다. 주변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 표시에서도 몇 가지를 수정해야 한다. 왼쪽 竹山界와 陰竹界 사이에 다시 陽智界가 있어야 하며, 오른쪽 위에는 廣州界가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산줄기와 물줄기는 실제의 모습보다는 인식된 지형을 반영했다. 읍치를 중심으로 산줄기와 물줄기가 겹겹이 싸여있는 모습으로 그렸다. 또한 읍치에서 바라보이는 방향으로 산의 모습을 그렸다. 이것은 읍치가 풍수적 명당임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다. 조선후기에 유행했던 왕릉을 비롯한 무덤의 지도인 山圖와 기본적인 틀이 비슷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와 ‘1872년 지방지도’ 및 『여지도서』의 경기도 이천부 지도도 내용적으로는 다르나 山圖 형태의 기본적인 구도는 거의 비슷하다. (이기봉)

  • 천안군(天安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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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천안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 오른쪽에 《광여도》에는 上里面이 적혀 있는데, 본 지도에는 빠져 있다. 주기에 보면 상리면이 있어 본 지도의 작성자가 실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천안군 지도도 표현 방법이나 내용적 측면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하다. 가장 다르게 그리고 있는 부분은 왼쪽에 潮水라 쓰인 위쪽의 하천이다. 《해동지도》에는 이곳이 바닷처럼 표현되었지만 《광여도》와 본 지도에는 일반적인 하천과 동일하게 그려져 있다. 이곳에 있는 세 개의 면은 현재 아산시 인주면과 선장면, 예산군 신암면의 삽교천 부근에 있었다. 즉, 溫陽과 新昌 및 牙山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만으로는 이러한 사실을 이해할 수가 없다. 반면에 《해동지도》에는 이곳을 마치 바다처럼 표시했는데, 이 지역의 삽교천이 원래 밀물 때 바닷물에 잠기는 구간이었기 때문에 사실과 부합된다고 할 수 있다. 《광여도》와 본 지도의 작성자는 이런 사실을 잘못 이해하여 일반적인 하천처럼 표시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세 개의 면 중 興德面은 德興面의 誤記이다. 《광여도》의 지도와 주기에도 본 지도처럼 잘못 기록되어 있는데, 《해동지도》에는 덕흥면이라고 올바르게 적혀 있다. 천안의 읍치에서 이곳으로 내려가는 하천은 현재 삽교천의 지류인 곡교천이다. 세 개의 면 중 덕흥면과 신종면은 이 하천의 아래와 왼쪽에 표시되어야 사실과 부합된다. 맨 위쪽에 있는 毛山面은 현재의 아산시 둔포면에 있었으며, 稷山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다. 역시 이 지도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읍치를 지나는 하천보다 一南面과 二南面을 흐르는 하천이 훨씬 길다. 역시 이 지도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문제점이 나타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읍치 지역을 다른 지역보다 훨씬 대축척으로 그린 회화식 군현지도였기 때문이다. 이런 지도에서는 방향은 대략 비슷하더라도 거리는 지도 위의 내용만으로 거의 파악하기 어렵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주기에는 각 면의 初境과 終境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이기봉)

  • 장흥부(長興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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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제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지도로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장흥현 지도와 『여지도서』의 장흥부 지도가 있다. 면의 위치 표기에서 잘못된 곳이 나타나고 있다. 왼쪽 위의 夫山面과 有恥面은 위치가 바뀌었다. 읍치 왼쪽의 古邑面은 南面과 大興面 사이에 위치시켜야 한다. 비록 같은 회화식 지도이지만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호남지도》와 ‘1872년 지방지도’의 장흥부 지도에는 2개의 면이 실제와 부합되게 표시되어 있다. 주기에도 夫山面은 初境이 5리, 終境이 15 리로 되어 있는 반면 有恥面은 각각 15 리와 60 리로 되어 있어 지도의 내용과 부합되고 있지 않다. 또한 古邑面도 초경이 40 리, 종경이 50 리로 되어 있어 지도의 내용과 다르게 볼 수 있다. 오른쪽 위의 하천은 현재의 보성강이고, 왼쪽 위의 하천은 현재의 탐진강이다. 이 중 탐진강의 유로 표시에서 문제가 일부 나타나고 있다. 왼쪽 위의 경우 탐진강은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羅州와 靈岩의 경계선 밖에서 흘러오도록 그려져 있어야 한다. 또한 읍치 왼쪽에 있는 현재의 금강은 강진의 성전면, 작천면, 병영면을 통해 장흥부에 들어온다. ‘1872년 지방지도’의 장흥부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잘 묘사되어 있다. 오른쪽 아래의 섬은 크기나 위치를 고려하지 않고 바다에 있는 섬을 모아 놓은 것이다.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그렸고, 섬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영해부(寧海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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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영해부 지도와 비슷하다. 그러나 몇 가지 측면에서 다른 점이 있다. 가장 큰 차이는 軍器 등의 정보가 추가된 邑城이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크게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다른 부분도 변화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읍성과 동해 사이가 상대적으로 좁아져 산줄기의 표현이 단순해졌다. 읍성 서쪽 지역 역시 상대적으로 작아졌기 때문에 지명의 위치, 하천의 유로, 산줄기의 표현이 약간씩 달라졌다. 예를 들어 《해동지도》에 비해 위쪽의 烏於面 지역이 상대적으로 작아졌으며, 반대로 石保面 지역은 크게 그려졌다. 석보면은 《해동지도》에 서남쪽 구석에 있었지만 본 지도에는 정 서쪽에 있는 것으로 바뀌어 있다. 이에 따라 大泣嶺, 小泣嶺의 위치도 《해동지도》에 비해 위쪽에 표시되어 있다. 석보면 지역은 실제로는 낙동강의 지류인 반변천 상류의 일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서쪽으로 튀어나가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어 지도를 그리는 과정에서 실제의 모습이 왜곡되어 나타난 것이다. 읍성 이외의 지역에 표시된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오는 것이다. 다만 지도 왼쪽에 표시된 寧陽驛은 《해동지도》에 寧海驛이라 적혀 있는데, 본 지도의 것이 올바르다. 기타 《해동지도》에는 없었거나 다른 산과 비슷하게 그려졌던 아래쪽의 丑山과 위쪽의 여러 산이 절벽의 산지 모양으로 그려져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이기봉)

  • 용천부(龍川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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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용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용천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첨가되거나 변화된 것이 있다. 《해동지도》에 비해 세로보다 가로가 상대적으로 더 길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상대적으로 세로가 짧아진 종이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또한 읍치와 龍骨山城, 위쪽의 良策站이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읍치와 양책참 등에 《해동지도》에 없는 정보가 추가되었고, 상대적으로 훨씬 작은 종이 위에 많은 정보를 수록하려 했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으로 생각된다. 필사 과정에서 일부의 글자가 생략되거나 잘못된 것도 있다. 面의 명칭에서 北面을 제외하면 일괄적으로 ‘端’자가 빠져 있다. 이것은 《해동지도》에 지도에는 ‘端’가 적혀 있지만 주기에는 없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주기에는 府內面이 府川面으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한데, 《광여도》에는 이 부분이 교정되어 있다. 《해동지도》에 주기에는 있으면서 지도에는 없는 面으로 府內面, 北面, 西面, 東上面, 東下面 5개가 있다. 이 중 본 지도에는 北面만이 적혀 있으며, 《광여도》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본 지도와 《광여도》의 필사 시에 나머지 4개의 面 위치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는 동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고을의 모습은 실제와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고을 모습 자체가 세로로 약간 긴 사각형의 종이에 그려도 왜곡되지 않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아래쪽의 바다에 있는 섬들은 크기나 거리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해동지도》에는 이 지역에서 가장 큰 薪島를 제외하면 나머지 섬들의 크기나 거리가 실제를 반영하고 있지 않다. 거리가 고려되지 않은 이유는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그렸기 때문이다. 크기가 반영되지 않은 이유는 지도 제작 당시에 섬의 크기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지리지에 섬의 크기가 기록되어 있는 경우는 별로 많지 않다. (이기봉)

  • 철원부(鐵原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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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철원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왼쪽 위에 있는 積石倉은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철원부 지도뿐만 아니라 《광여도》에도 積石寺로 나온다. 지리지의 여러 기록을 참고해 볼 때 본 지도가 잘못된 것이다. 왼쪽 아래에는 평안도에 있는 博川의 명칭이 博川界로 나온다. 《해동지도》에는 같은 곳에 漣川界로 나오고 있는데 후자가 정확하다. 오른쪽의 險屹面은 險屹津을, 그 왼쪽의 孤石松은 孤石亭을 잘못 적은 것이다. 그 아래쪽의 豊田驛에는 본 지도책의 강원도 부분에서 驛에 일관되게 적용하던 보라색 사각형의 기호가 생략되어 있다. 이런 실수들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게 점검하면서 필사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광여도》는 본 지도에 비해 잘못 필사한 것이 거의 없다. 오른쪽 平康界와 金化界에서 들어와 永平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한탄강이다. 왼쪽의 하천들은 임진강의 지류인 역곡천이다. 읍치가 다른 지역에 비해 약간 확대되어 그려졌지만 하천을 비롯하여 전반적으로 고을의 실제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는 편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철원부가 세로로 긴 사각형에 그려도 큰 왜곡이 없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이기봉)

  • 이천부(利川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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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이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읍치의 客舍 오른쪽에 鄕校의 명칭이 사라진 점, 《광여도》에 衙와 倉으로만 쓰여 있던 것이 衙舍와 司倉으로 적혀 있는 점 정도이다. 읍치 왼쪽에 표시된 하천은 현재의 복하천이다. 지도에는 위쪽의 陽智界로부터 복하천이 흘러들어오는 것처럼 표시되어 있으나 사실과 다르다. 아래쪽의 虎岩池에서 복하천이 끝나는 것처럼 표시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麗州界 방향으로 흘러나가야 한다. 《광여도》에는 두 부분이 제대로 표현되어 있다. 주변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 표시에서도 몇 가지를 수정해야 한다. 왼쪽 竹山界와 陰竹界 사이에 다시 陽智界가 있어야 하며, 오른쪽 위에는 廣州界가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산줄기와 물줄기는 실제의 모습보다는 인식된 지형을 반영했다. 읍치를 중심으로 산줄기와 물줄기가 겹겹이 싸여있는 모습으로 그렸다. 또한 읍치에서 바라보이는 방향으로 산의 모습을 그렸다. 이것은 읍치가 풍수적 명당임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다. 조선후기에 유행했던 왕릉을 비롯한 무덤의 지도인 山圖와 기본적인 틀이 비슷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와 ‘1872년 지방지도’ 및 『여지도서』의 경기도 이천부 지도도 내용적으로는 다르나 山圖 형태의 기본적인 구도는 거의 비슷하다. (이기봉)

  • 청산현(靑山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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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청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광여도》에는 있었던 오른쪽 위의 酒城倉 담장 모습이 사라진 점 정도이다. 주성면은 報恩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로서 현재의 보은군 내북면 대안리와 화전리 일대에 있었다. 그러나 본 지도와 《광여도》의 표현에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주기에 청산현의 동서남북의 최대 거리가 24리에 불과한 반면 주성면의 初境이 90리이고, 終境이 100리라는 표현을 통해 대략적으로 짐작할 수는 있다. 본 지도와 표현 방식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청산현 지도에는 ‘관문으로부터 80 리’라는 표현을 써놓아 월경지임을 추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본 지도는 서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로 내려오는 산세가 서북쪽에서 왔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왼쪽의 아래에서 위로 흘러가는 하천이 현재의 금강 본류이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흘러 금강에 합류하는 하천이 금강의 지류인 현재의 보청천이다. 보청천이 금강과 합류하는 지점의 굴곡이 실제처럼 잘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읍치를 상대적으로 확대해서 그리다보니까 보청천으로 흘러드는 작은 하천들이 거의 그려지지 않았다. 여백의 위쪽에는 청산현의 옛 명칭과 충청좌도에 속해 있다는 ‘左’가 표시되어 있다. 오른쪽 여백에는 한양에서 5일 걸린다는 ‘五日’과 淸州 鎭管에 속해 있다는 ‘淸’, 본 책에 31번째로 수록된 고을이라는 ‘三十一’이 적혀 있다. 여백에 적혀 있는 이런 내용들은 《광여도》나 《해동지도》에는 없던 것으로 본 지도책의 이용자가 새롭게 필요로 한 정보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기봉)

  • 전주부(全州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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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전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에 비해 표현이 거칠고 오류가 몇 개 보이고 있다. 읍치 오른쪽의 府東面과 왼쪽 위의 利北面은 노란색 사각형의 면 표시가 되어 있지 않다. 주기의 면 이름 중에는 맨 마지막의 伊北面은 《광여도》에 利北面으로 적혀 있다. 본 지도의 주기에 伊北面이 2개 적혀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광여도》의 것을 잘못 베낀 것으로 생각된다. 주기에 있으면서 지도에 없는 면으로는 府北面과 府西面, 利西面 등이 있다. 이 점은 《광여도》에도 동일하다. 하지만 본 지도와 표현 양식에서 다를 뿐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전주부 지도에는 모두 적혀 있어 《광여도》의 필사 시에 빠뜨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밖에도 오른쪽 아래에 古達山이 古達로 적혀 있는 등의 오류가 보이고 있는데 큰 고을인 만큼 지명이 많아서 생긴 혼란이라고 생각된다. 오른쪽 위의 陽良所面은 高山縣의 땅을 넘어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일대에 있었던 월경지였다. 이곳은 금강의 지류인 논산천 유역에 있었는데 본 지도만으로는 그러한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 《광여도》에서도 비슷하게 표시되어 있으나 龍進面 위쪽에 있는 현재의 고산천이 五道峙에서 끊겨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마치 양량소면까지 연결시키고 있어 필사 시에 월경지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왼쪽 위의 利城倉이 있는 부분은 현재의 김제시 청하면과 공덕면에, 南一道面 부근은 현재의 익산시 시내에 있었던 월경지였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월경지가 아닌 곳과 연속적으로 그려져 있어 월경지임을 이해할 수가 없다. 이런 월경지들은 고려시대에 전주가 여러 屬縣을 거느린 主縣이었기 때문에 형성된 것이다. 즉, 조선 초기까지 지방관이 파견되지 못한 속현들은 주현인 전주의 땅이 되었고, 다른 고을의 경계선을 넘어가 있었을 경우 월경지가 되었던 것이다. 읍치 왼쪽을 흐르는 전주천의 모습이 《광여도》와 다르게 되어 있다. 《광여도》에는 전주천이 萬景臺 부근에서 끊어져 있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 본 지도에서는 上官面 부근까지 연결된 것으로 되어 있어 실제에 가깝게 수정되어 있다. 《광여도》의 필사 시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범한 오류를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수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예안현(禮安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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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예안현 지도와 비슷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읍치의 倉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더 나아가 본 지도는 지명의 표기에서 미완성인 듯한 느낌이 드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오른쪽에 지명이 적혀 있지 않으면서 집의 모양은 그려져 있는 경우가 여러 개 있다. 《해동지도》에는 이 부분에 院, 書院, 寺 등의 명칭이 적혀 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되며, 필사 과정에서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 있다고 생각된다. 오른쪽 위에서 흘러와 아래쪽 安東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 본류이다. 왼쪽 위의 하천은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 상류의 일보이다. 예안현은 낙동강을 기준으로 동쪽과 서쪽의 면적이 비슷하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동쪽이 훨씬 작게 그려져 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낙동강 서쪽에 있었던 읍치와 도산서원을 강조해서 크게 그렸기 때문이다. 또한 서쪽보다 동쪽의 산지가 높고 사람이 덜 살았기 때문으로도 볼 수 있다. 지도에도 나타나 있듯이 낙동강 동쪽에는 2개의 면이 있었던 반면에 서쪽에는 5개의 면이 있었다. 이럴 경우 인구가 조밀한 지역을 상대적으로 크게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해동지도》에 비해 산줄기의 표현이 조금 달라졌다. 특히 오른쪽 위의 淸凉山을 마치 절벽이 이어진 것처럼 그렸다. 이것은 지리지에 기록된 지형의 모습을 지도에 형상화시켜 표현하려 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운산군(雲山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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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운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운산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다른 점이 몇 가지 발견되고 있다. 우선 읍치와 委曲鎭에 있는 건물의 수가 《해동지도》보다 훨씬 많고, 《해동지도》에 없는 倉, 鎭舍 등의 지명이 더 적혀 있다. 이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도 읍치와 위곡진에 대한 표현에서는 다른 자료도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위곡진 오른쪽에는 발음이 같은 면의 명칭이 委谷面과 委曲面으로 적혀 있다. 《해동지도》에는 각각의 지명 위치에 委曲面과 委曲江이 기록되어 있어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광여도》에는 委谷面 자리에 委曲面을, 委曲面 자리에 古延州面을 적어 넣었다. 고연주면의 경우 그 오른쪽에 구연주창이 있기 때문에 바꾸어 넣은 것으로 생각된다. 주기에는 총 7개의 면 명칭이 적혀 있지만 본 지도에 있는 것은 잘못 적힌 1개를 제외하면 2개에 불과하다. 이것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어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했을 것으로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본 지도의 필사 시 필사 과정에서 면의 위치에 대한 비정은 스스로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광여도》에서도 고연주면을 제외하면 이 점은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기타 본 지도와 《해동지도》 및 《광여도》 모두 대령강 하구의 정주 땅에 있었던 古雲山面의 월경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실려 있지 않다. (이기봉)

  • 철원부(鐵原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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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철원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왼쪽 위에 있는 積石倉은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철원부 지도뿐만 아니라 《광여도》에도 積石寺로 나온다. 지리지의 여러 기록을 참고해 볼 때 본 지도가 잘못된 것이다. 왼쪽 아래에는 평안도에 있는 博川의 명칭이 博川界로 나온다. 《해동지도》에는 같은 곳에 漣川界로 나오고 있는데 후자가 정확하다. 오른쪽의 險屹面은 險屹津을, 그 왼쪽의 孤石松은 孤石亭을 잘못 적은 것이다. 그 아래쪽의 豊田驛에는 본 지도책의 강원도 부분에서 驛에 일관되게 적용하던 보라색 사각형의 기호가 생략되어 있다. 이런 실수들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게 점검하면서 필사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광여도》는 본 지도에 비해 잘못 필사한 것이 거의 없다. 오른쪽 平康界와 金化界에서 들어와 永平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한탄강이다. 왼쪽의 하천들은 임진강의 지류인 역곡천이다. 읍치가 다른 지역에 비해 약간 확대되어 그려졌지만 하천을 비롯하여 전반적으로 고을의 실제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는 편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철원부가 세로로 긴 사각형에 그려도 큰 왜곡이 없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이기봉)

  • 인천부(仁川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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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인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몇 가지 부분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다른 面과 달리 鳥洞面에 노란색 사각형을 표시하지 않았다. 반면에 읍치 아래쪽의 大池를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하여 面으로 오해할 수 있도록 표시하였다. 朱崖面을 朱岩面으로, 濟物津頭를 遊物津頭로, 黃等川面을 黃川面으로 잘못 기재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오류들을 고려하면 《광여도》가 본 지도보다 더 정확하게 그렸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도는 현재의 인천광역시 남구 관교동 일대에 있었던 읍치를 중심으로 산지가 겹겹이 둘러싸인 것처럼 표현하였다. 또한 남쪽을 위로 하여 읍치에서 바라보이는 산의 형태로 그렸다. 이와 같이 실제의 지형을 풍수적 명당 관념으로 그리는 것은 조선후기의 山圖에서 잘 나타나는 표현 방식이었다. 오른쪽(서쪽) 바닷가에 표시된 섬들은 크기와 거리에서 실제와 부합되고 있지 않다. 예를 들어 八味島는 無衣島보다 훨씬 작은 섬임에도 이와 같은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또한 德積島는 해안에서 훨씬 멀리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섬들의 위치는 일정한 크기의 종이에 맞추기 위해 대략적인 방향만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인천부 지도, 『여지도서』의 인천부 지도도 《광여도》보다는 못하지만 구도가 비슷하여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청산현(靑山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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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청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광여도》에는 있었던 오른쪽 위의 酒城倉 담장 모습이 사라진 점 정도이다. 주성면은 報恩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로서 현재의 보은군 내북면 대안리와 화전리 일대에 있었다. 그러나 본 지도와 《광여도》의 표현에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주기에 청산현의 동서남북의 최대 거리가 24리에 불과한 반면 주성면의 初境이 90리이고, 終境이 100리라는 표현을 통해 대략적으로 짐작할 수는 있다. 본 지도와 표현 방식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청산현 지도에는 ‘관문으로부터 80 리’라는 표현을 써놓아 월경지임을 추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본 지도는 서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로 내려오는 산세가 서북쪽에서 왔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왼쪽의 아래에서 위로 흘러가는 하천이 현재의 금강 본류이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흘러 금강에 합류하는 하천이 금강의 지류인 현재의 보청천이다. 보청천이 금강과 합류하는 지점의 굴곡이 실제처럼 잘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읍치를 상대적으로 확대해서 그리다보니까 보청천으로 흘러드는 작은 하천들이 거의 그려지지 않았다. 여백의 위쪽에는 청산현의 옛 명칭과 충청좌도에 속해 있다는 ‘左’가 표시되어 있다. 오른쪽 여백에는 한양에서 5일 걸린다는 ‘五日’과 淸州 鎭管에 속해 있다는 ‘淸’, 본 책에 31번째로 수록된 고을이라는 ‘三十一’이 적혀 있다. 여백에 적혀 있는 이런 내용들은 《광여도》나 《해동지도》에는 없던 것으로 본 지도책의 이용자가 새롭게 필요로 한 정보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기봉)

  • 전주부(全州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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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전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광여도》에 비해 표현이 거칠고 오류가 몇 개 보이고 있다. 읍치 오른쪽의 府東面과 왼쪽 위의 利北面은 노란색 사각형의 면 표시가 되어 있지 않다. 주기의 면 이름 중에는 맨 마지막의 伊北面은 《광여도》에 利北面으로 적혀 있다. 본 지도의 주기에 伊北面이 2개 적혀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광여도》의 것을 잘못 베낀 것으로 생각된다. 주기에 있으면서 지도에 없는 면으로는 府北面과 府西面, 利西面 등이 있다. 이 점은 《광여도》에도 동일하다. 하지만 본 지도와 표현 양식에서 다를 뿐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전주부 지도에는 모두 적혀 있어 《광여도》의 필사 시에 빠뜨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밖에도 오른쪽 아래에 古達山이 古達로 적혀 있는 등의 오류가 보이고 있는데 큰 고을인 만큼 지명이 많아서 생긴 혼란이라고 생각된다. 오른쪽 위의 陽良所面은 高山縣의 땅을 넘어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일대에 있었던 월경지였다. 이곳은 금강의 지류인 논산천 유역에 있었는데 본 지도만으로는 그러한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 《광여도》에서도 비슷하게 표시되어 있으나 龍進面 위쪽에 있는 현재의 고산천이 五道峙에서 끊겨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마치 양량소면까지 연결시키고 있어 필사 시에 월경지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왼쪽 위의 利城倉이 있는 부분은 현재의 김제시 청하면과 공덕면에, 南一道面 부근은 현재의 익산시 시내에 있었던 월경지였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월경지가 아닌 곳과 연속적으로 그려져 있어 월경지임을 이해할 수가 없다. 이런 월경지들은 고려시대에 전주가 여러 屬縣을 거느린 主縣이었기 때문에 형성된 것이다. 즉, 조선 초기까지 지방관이 파견되지 못한 속현들은 주현인 전주의 땅이 되었고, 다른 고을의 경계선을 넘어가 있었을 경우 월경지가 되었던 것이다. 읍치 왼쪽을 흐르는 전주천의 모습이 《광여도》와 다르게 되어 있다. 《광여도》에는 전주천이 萬景臺 부근에서 끊어져 있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 본 지도에서는 上官面 부근까지 연결된 것으로 되어 있어 실제에 가깝게 수정되어 있다. 《광여도》의 필사 시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범한 오류를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수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예안현(禮安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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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예안현 지도와 비슷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읍치의 倉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더 나아가 본 지도는 지명의 표기에서 미완성인 듯한 느낌이 드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오른쪽에 지명이 적혀 있지 않으면서 집의 모양은 그려져 있는 경우가 여러 개 있다. 《해동지도》에는 이 부분에 院, 書院, 寺 등의 명칭이 적혀 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되며, 필사 과정에서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 있다고 생각된다. 오른쪽 위에서 흘러와 아래쪽 安東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 본류이다. 왼쪽 위의 하천은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 상류의 일보이다. 예안현은 낙동강을 기준으로 동쪽과 서쪽의 면적이 비슷하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동쪽이 훨씬 작게 그려져 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낙동강 서쪽에 있었던 읍치와 도산서원을 강조해서 크게 그렸기 때문이다. 또한 서쪽보다 동쪽의 산지가 높고 사람이 덜 살았기 때문으로도 볼 수 있다. 지도에도 나타나 있듯이 낙동강 동쪽에는 2개의 면이 있었던 반면에 서쪽에는 5개의 면이 있었다. 이럴 경우 인구가 조밀한 지역을 상대적으로 크게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해동지도》에 비해 산줄기의 표현이 조금 달라졌다. 특히 오른쪽 위의 淸凉山을 마치 절벽이 이어진 것처럼 그렸다. 이것은 지리지에 기록된 지형의 모습을 지도에 형상화시켜 표현하려 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운산군(雲山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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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운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운산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다른 점이 몇 가지 발견되고 있다. 우선 읍치와 委曲鎭에 있는 건물의 수가 《해동지도》보다 훨씬 많고, 《해동지도》에 없는 倉, 鎭舍 등의 지명이 더 적혀 있다. 이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도 읍치와 위곡진에 대한 표현에서는 다른 자료도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위곡진 오른쪽에는 발음이 같은 면의 명칭이 委谷面과 委曲面으로 적혀 있다. 《해동지도》에는 각각의 지명 위치에 委曲面과 委曲江이 기록되어 있어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광여도》에는 委谷面 자리에 委曲面을, 委曲面 자리에 古延州面을 적어 넣었다. 고연주면의 경우 그 오른쪽에 구연주창이 있기 때문에 바꾸어 넣은 것으로 생각된다. 주기에는 총 7개의 면 명칭이 적혀 있지만 본 지도에 있는 것은 잘못 적힌 1개를 제외하면 2개에 불과하다. 이것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어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했을 것으로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본 지도의 필사 시 필사 과정에서 면의 위치에 대한 비정은 스스로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광여도》에서도 고연주면을 제외하면 이 점은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기타 본 지도와 《해동지도》 및 《광여도》 모두 대령강 하구의 정주 땅에 있었던 古雲山面의 월경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실려 있지 않다. (이기봉)

  • 춘천부(春川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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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춘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위쪽의 史呑內面과 北山外面, 아래쪽의 南內面은 다른 면보다 작은 노란색 사각형으로, 오른쪽 위의 麒麟面은 노란색이 없는 적황색의 사각형으로 표현되어 있다. 또한 아래쪽의 安保驛은 노란색에 보라색을 덧칠한 듯한 색의 흔적이 보인다. 마지막으로 읍치 위쪽에는 노란색 사각형은 그렸지만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다른 지도를 필사하면서 발생한 혼란이었다고 생각된다. 《광여도》에서는 기린면이 적혀 있지 않은 것을 제외하면 이런 혼란 없이 깨끗하게 그려져 있다. 표현 방식에서는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에도 이런 지명들은 모두 제대로 적혀 있다. 위쪽의 狼川界에서 들어와 아래쪽의 陽根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북한강 본류이다. 오른쪽 위의 獜蹄界에서 들어와 북한강에 합류되는 하천이 현재의 소양강이다. 그러나 두 하천의 유로는 실제와 다른 곳이 많다. 이렇게 된 이유는 첫째,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에 맞추는 과정에서 왜곡이 발생하였다. 둘째, 읍치 지역을 다른 지역보다 훨씬 크게 그렸기 때문에 왜곡이 발생하였다. 첫 번째 이유 때문에 파생된 문제 중의 하나가 오른쪽 위의 麒麟面에 대한 표현이다. 기린면은 실제로는 홍천과 인제의 땅을 넘어가 있는 월경지이다. 현재의 인제군 기린면과 상남면에 있었는데 본 지도에는 마치 소양강 유역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둘째의 이유 때문에 파생된 문제 중의 하나는 남쪽의 洪川界를 지나 홍천강에 합류되는 작은 지류들은 거의 표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춘천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런 점들이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 인천부(仁川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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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인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몇 가지 부분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다른 面과 달리 鳥洞面에 노란색 사각형을 표시하지 않았다. 반면에 읍치 아래쪽의 大池를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하여 面으로 오해할 수 있도록 표시하였다. 朱崖面을 朱岩面으로, 濟物津頭를 遊物津頭로, 黃等川面을 黃川面으로 잘못 기재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오류들을 고려하면 《광여도》가 본 지도보다 더 정확하게 그렸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도는 현재의 인천광역시 남구 관교동 일대에 있었던 읍치를 중심으로 산지가 겹겹이 둘러싸인 것처럼 표현하였다. 또한 남쪽을 위로 하여 읍치에서 바라보이는 산의 형태로 그렸다. 이와 같이 실제의 지형을 풍수적 명당 관념으로 그리는 것은 조선후기의 山圖에서 잘 나타나는 표현 방식이었다. 오른쪽(서쪽) 바닷가에 표시된 섬들은 크기와 거리에서 실제와 부합되고 있지 않다. 예를 들어 八味島는 無衣島보다 훨씬 작은 섬임에도 이와 같은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또한 德積島는 해안에서 훨씬 멀리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섬들의 위치는 일정한 크기의 종이에 맞추기 위해 대략적인 방향만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인천부 지도, 『여지도서』의 인천부 지도도 《광여도》보다는 못하지만 구도가 비슷하여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청안현(淸安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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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청안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은 《광여도》에 있는 2개의 제언이 사라진 점, 《광여도》에 있는 읍치의 客舍와 衙舍의 담장 모습이 본 지도에 없는 점, 《광여도》에 北面 위쪽의 하천이 陰城界에서 들어오는 것으로 표현된 것이 바뀐 점 등이다. 이 중 세 번째 부분은 《광여도》가 맞는 것으로서,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청안현 지도에도 동일하게 나온다. 본 지도에서 가장 잘못된 부분은 東面 부분이다. 이 지역은 남한강의 지류인 달천의 최상류 중의 하나인 괴곡천이다. 읍치를 지나 서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은 금강의 지류인 미호천의 최상류 중의 하나이다. 두 유역이 갈리는 부분은 읍치 오른쪽의 七寶山(540m)이다. 이런 문제점은 본 지도뿐만 아니라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본 지도의 작성자도 《해동지도》에서 잘못된 표현을 교정하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청안현지도도 회화식으로 그렸지만 이 부분이 사실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정읍현(井邑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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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정읍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만으로는 동서남북을 이해하기 어렵다. 지도 아래쪽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흘러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정읍천이다. 정읍천은 실제로 서남쪽에서 동북 방향으로 흘러나가므로, 본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고 볼 수 있다. 면의 명칭 중 西가 붙어있는 것은 실제로 서쪽과 서남쪽에, 北이 붙어 있는 것은 동북쪽에 있기 때문에 면의 명칭만으로는 방향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렵다. 《해동지도》의 정읍현 지도도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그러나 도로의 표시, 제언을 비롯한 일부 지명 등이 생략되어 있다. 또한 읍치 아래쪽의 立石과 부분의 하천이 강조되어 있는데, 《광여도》에서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대체적으로 《광여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지도이며, 본 지도는 《광여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 아래에는 高敞界가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고창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았다. 본 지도책의 다른 고을에서도 가끔 이런 경우가 나타나는데,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더라도 해당 방향으로 가면 경계가 나타난다는 의미로 쓰였다. 반대로 위쪽의 淳昌界와 古阜界 사이에는 泰仁과 경계를 맞대고 있음에도 이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해동지도》에는 泰仁界가 적혀 있다. 따라서 《광여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참고로 필사하면서 실수로 빠뜨린 것이라 생각되며, 본 지도의 필사 시 역시 《광여도》의 오류를 시정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기봉)

  • 예천군(醴泉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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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예천현 지도와 비슷하다. 醴泉은 여러 기록을 검토해 봐도 조선 초기 이후 縣이었던 적이 없기 때문에 《해동지도》가 잘못 적은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에 나와 있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또한 하천의 유로 역시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기 때문에 두 지도는 서로 필사 관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하천의 유로 표시에서 《해동지도》와 다른 부분이 2개 발견된다. 왼쪽 위의 豊基界와 가운데의 夢吟寺 부분의 하천 끝이 《해동지도》에는 다른 고을에서 흘러 들어오는 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본 지도에는 이 부분이 마치 발원지인 것처럼 묘사되어 있어 필사 시에 자의로 수정한 것이 아닌가 한다. 실제와 비교해 보면 《해동지도》가 올바르기 때문에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가장 아래쪽의 하천은 현재의 낙동강 본류로서 실제로는 오른쪽의 安東界로부터 흘러온다. 본 지도에는 낙동강 본류 역시 본 고을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는데, 《해동지도》에도 약간 애매하게 표시되어 있다.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첫째, 읍치를 상대적으로 더 크게 그렸고 둘째,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정확하게 맞추어 표현하였다. 이로 인해 지명의 위치, 하천의 유로, 산줄기의 흐름이 바뀐 곳이 여러 곳 있다. 예를 들어 왼쪽 아래에 적힌 沙川은 그 위의 하천에 적혀 있어야 한다. 특히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렸기 때문에 여러 곳에서 왜곡이 발생하였다. 왼쪽 위의 하천은 현재 금천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이 지역은 실질적으로는 서북쪽으로 튀어나가 있다. 《해동지도》에는 실제와 거의 같지는 않아도 이런 사실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는 편이다. 가장 아래쪽에 縣자가 들어간 面의 지역은 龍宮의 경계를 넘어가 현재의 의성군 다인면 지역에 있었던 월경지이다. 이 지역 역시 남쪽으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는 과정에서 본 지도처럼 그려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기타 읍치를 감아 돌아나가는 한천, 그 아래의 내성천은 본 고을에서 만난다. 그러나 낙동강과 합류되는 지점은 용궁현 지역임에도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이기봉)

  • 위원군(渭原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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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위원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위원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보다 읍치의 건물수와 명칭이 늘어난 것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 정보는 모두 《해동지도》에도 나온다. 본 지도는 동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아래쪽의 하천이 압록강 본류이고, 왼쪽의 하천이 그 지류인 독로강이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압록강과 그 지류인 독로강이 직접 연결되어 있어 본류와 지류의 구분을 어렵게 하였다. 《해동지도》에는 압록강이 왼쪽(동북)에서 흘러들어오며, 독로강이 합류되는 형식으로 그려져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필사 과정에서 내용을 바꾼 것으로 생각된다. 《광여도》에는 압록강 본류와 지류인 독로강을 구별할 수 있도록 교정되어 있다. 지명의 표기에서도 본 지도에는 오류가 나타나고 있다. 일단 읍치 왼쪽의 西面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왼쪽에 기록되어 있는 ‘禿老江一名西江’에서의 西江 역시 《해동지도》의 兩江을 잘못 옮긴 것이다. 《광여도》에는 2개의 오류가 《해동지도》처럼 교정되어 있다. 비록 회화식으로 그렸지만 위원군 전체의 모습이나 하천의 유로 등이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위원군의 실제 모습 자체가 동남-서북 방향으로 그리면 세로로 약간 긴 사각형 모양이 되기 때문이다. (이기봉)

  • 춘천부(春川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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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춘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위쪽의 史呑內面과 北山外面, 아래쪽의 南內面은 다른 면보다 작은 노란색 사각형으로, 오른쪽 위의 麒麟面은 노란색이 없는 적황색의 사각형으로 표현되어 있다. 또한 아래쪽의 安保驛은 노란색에 보라색을 덧칠한 듯한 색의 흔적이 보인다. 마지막으로 읍치 위쪽에는 노란색 사각형은 그렸지만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다른 지도를 필사하면서 발생한 혼란이었다고 생각된다. 《광여도》에서는 기린면이 적혀 있지 않은 것을 제외하면 이런 혼란 없이 깨끗하게 그려져 있다. 표현 방식에서는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에도 이런 지명들은 모두 제대로 적혀 있다. 위쪽의 狼川界에서 들어와 아래쪽의 陽根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북한강 본류이다. 오른쪽 위의 獜蹄界에서 들어와 북한강에 합류되는 하천이 현재의 소양강이다. 그러나 두 하천의 유로는 실제와 다른 곳이 많다. 이렇게 된 이유는 첫째,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에 맞추는 과정에서 왜곡이 발생하였다. 둘째, 읍치 지역을 다른 지역보다 훨씬 크게 그렸기 때문에 왜곡이 발생하였다. 첫 번째 이유 때문에 파생된 문제 중의 하나가 오른쪽 위의 麒麟面에 대한 표현이다. 기린면은 실제로는 홍천과 인제의 땅을 넘어가 있는 월경지이다. 현재의 인제군 기린면과 상남면에 있었는데 본 지도에는 마치 소양강 유역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둘째의 이유 때문에 파생된 문제 중의 하나는 남쪽의 洪川界를 지나 홍천강에 합류되는 작은 지류들은 거의 표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춘천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런 점들이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 장단부(長湍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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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장단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약간의 차이가 나타나고 있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우선 大位面과 津東面 등이 다른 面과 달리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지 않다. 三味大川은 三味大山으로, 魚龍浦는 魚龍山으로 바뀌어 있다. 骨陵이 滑陵으로, 臨江書院이 臨淸書院으로, 田齋宮이 田齊宮으로, 鳥老山이 烏老山으로, 金約谷이 金納谷으로 표시되어 있기도 하다. 지도 왼쪽 위의 城山과 왼쪽 아래의 臨津船倉은 《광여도》에는 없는 것이다. 《광여도》와 동일하게 잘못된 부분도 있다. 長北面 방향에서 江西面을 거쳐 加勿峴으로 표시된 실선은 하천이 아니라 원래 도로이다. 오른쪽 중간쯤에서 흘러들어와 왼쪽 아래로 흘러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임진강이다. 굴곡을 고려하지 않으면 실제로는 읍내 정 동쪽에서 서남쪽으로 직선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본 지도에서는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기 위해 마치 남류하다가 서류한 것처럼 그려져 있다. 다른 하천의 유로 역시 방향이 정확히 맞는 것은 아니다. 임진강 변에서 바닷배가 들어올 수 있는 최상류가 오른쪽 중간의 임진강변에 표시된 古浪浦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임진강변 최대의 포구였으며, 일제시대 까지도 번영을 누렸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장단부 지도도 내용적으로는 본 지도와 많이 다르지만 하천의 유로 등의 기본적인 구도는 서로 비슷하여 연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청안현(淸安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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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청안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은 《광여도》에 있는 2개의 제언이 사라진 점, 《광여도》에 있는 읍치의 客舍와 衙舍의 담장 모습이 본 지도에 없는 점, 《광여도》에 北面 위쪽의 하천이 陰城界에서 들어오는 것으로 표현된 것이 바뀐 점 등이다. 이 중 세 번째 부분은 《광여도》가 맞는 것으로서,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청안현 지도에도 동일하게 나온다. 본 지도에서 가장 잘못된 부분은 東面 부분이다. 이 지역은 남한강의 지류인 달천의 최상류 중의 하나인 괴곡천이다. 읍치를 지나 서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은 금강의 지류인 미호천의 최상류 중의 하나이다. 두 유역이 갈리는 부분은 읍치 오른쪽의 七寶山(540m)이다. 이런 문제점은 본 지도뿐만 아니라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본 지도의 작성자도 《해동지도》에서 잘못된 표현을 교정하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청안현지도도 회화식으로 그렸지만 이 부분이 사실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정읍현(井邑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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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정읍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만으로는 동서남북을 이해하기 어렵다. 지도 아래쪽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흘러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정읍천이다. 정읍천은 실제로 서남쪽에서 동북 방향으로 흘러나가므로, 본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고 볼 수 있다. 면의 명칭 중 西가 붙어있는 것은 실제로 서쪽과 서남쪽에, 北이 붙어 있는 것은 동북쪽에 있기 때문에 면의 명칭만으로는 방향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렵다. 《해동지도》의 정읍현 지도도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그러나 도로의 표시, 제언을 비롯한 일부 지명 등이 생략되어 있다. 또한 읍치 아래쪽의 立石과 부분의 하천이 강조되어 있는데, 《광여도》에서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대체적으로 《광여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지도이며, 본 지도는 《광여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 아래에는 高敞界가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고창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았다. 본 지도책의 다른 고을에서도 가끔 이런 경우가 나타나는데,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더라도 해당 방향으로 가면 경계가 나타난다는 의미로 쓰였다. 반대로 위쪽의 淳昌界와 古阜界 사이에는 泰仁과 경계를 맞대고 있음에도 이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해동지도》에는 泰仁界가 적혀 있다. 따라서 《광여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참고로 필사하면서 실수로 빠뜨린 것이라 생각되며, 본 지도의 필사 시 역시 《광여도》의 오류를 시정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기봉)

  • 예천군(醴泉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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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예천현 지도와 비슷하다. 醴泉은 여러 기록을 검토해 봐도 조선 초기 이후 縣이었던 적이 없기 때문에 《해동지도》가 잘못 적은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에 나와 있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또한 하천의 유로 역시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기 때문에 두 지도는 서로 필사 관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하천의 유로 표시에서 《해동지도》와 다른 부분이 2개 발견된다. 왼쪽 위의 豊基界와 가운데의 夢吟寺 부분의 하천 끝이 《해동지도》에는 다른 고을에서 흘러 들어오는 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본 지도에는 이 부분이 마치 발원지인 것처럼 묘사되어 있어 필사 시에 자의로 수정한 것이 아닌가 한다. 실제와 비교해 보면 《해동지도》가 올바르기 때문에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가장 아래쪽의 하천은 현재의 낙동강 본류로서 실제로는 오른쪽의 安東界로부터 흘러온다. 본 지도에는 낙동강 본류 역시 본 고을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는데, 《해동지도》에도 약간 애매하게 표시되어 있다.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첫째, 읍치를 상대적으로 더 크게 그렸고 둘째,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정확하게 맞추어 표현하였다. 이로 인해 지명의 위치, 하천의 유로, 산줄기의 흐름이 바뀐 곳이 여러 곳 있다. 예를 들어 왼쪽 아래에 적힌 沙川은 그 위의 하천에 적혀 있어야 한다. 특히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렸기 때문에 여러 곳에서 왜곡이 발생하였다. 왼쪽 위의 하천은 현재 금천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이 지역은 실질적으로는 서북쪽으로 튀어나가 있다. 《해동지도》에는 실제와 거의 같지는 않아도 이런 사실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는 편이다. 가장 아래쪽에 縣자가 들어간 面의 지역은 龍宮의 경계를 넘어가 현재의 의성군 다인면 지역에 있었던 월경지이다. 이 지역 역시 남쪽으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는 과정에서 본 지도처럼 그려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기타 읍치를 감아 돌아나가는 한천, 그 아래의 내성천은 본 고을에서 만난다. 그러나 낙동강과 합류되는 지점은 용궁현 지역임에도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이기봉)

  • 위원군(渭原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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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위원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위원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보다 읍치의 건물수와 명칭이 늘어난 것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 정보는 모두 《해동지도》에도 나온다. 본 지도는 동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아래쪽의 하천이 압록강 본류이고, 왼쪽의 하천이 그 지류인 독로강이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압록강과 그 지류인 독로강이 직접 연결되어 있어 본류와 지류의 구분을 어렵게 하였다. 《해동지도》에는 압록강이 왼쪽(동북)에서 흘러들어오며, 독로강이 합류되는 형식으로 그려져 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필사 과정에서 내용을 바꾼 것으로 생각된다. 《광여도》에는 압록강 본류와 지류인 독로강을 구별할 수 있도록 교정되어 있다. 지명의 표기에서도 본 지도에는 오류가 나타나고 있다. 일단 읍치 왼쪽의 西面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왼쪽에 기록되어 있는 ‘禿老江一名西江’에서의 西江 역시 《해동지도》의 兩江을 잘못 옮긴 것이다. 《광여도》에는 2개의 오류가 《해동지도》처럼 교정되어 있다. 비록 회화식으로 그렸지만 위원군 전체의 모습이나 하천의 유로 등이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위원군의 실제 모습 자체가 동남-서북 방향으로 그리면 세로로 약간 긴 사각형 모양이 되기 때문이다. (이기봉)

  • 통천군(通川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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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통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에 있는 巨登驛은 《광여도》에 巨豊驛으로 나온다. 표현 방식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통천군 지도에서도 《광여도》처럼 나온다. 읍치 동남쪽 해안가에는 《광여도》와 《해동지도》에 있는 鉢里峯, 廣野川橋, 阿干里 등의 지명이 생략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본 지도가 《광여도》에 비해 오기와 생략의 오류를 범하고 있고, 표현 양식이나 글씨체가 거친 편이다. 통천군은 동서의 폭보다 남북의 폭이 훨씬 길다. 본 지도에도 동서보다 남북이 길게 표현되어 있지만 실제적인 비율은 더 크다.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그리다보니까 실제적인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동쪽의 해안가는 서북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남북 직선의 형태를 취한 것처럼 되어 있다. 하천 역시 정동 방향을 취하지 않은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만으로는 그와 같은 사실을 확인하기 어렵다. 주기의 형식과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하며, 《해동지도》와는 형식은 다르지만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이기봉)

  • 장단부(長湍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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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장단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약간의 차이가 나타나고 있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우선 大位面과 津東面 등이 다른 面과 달리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지 않다. 三味大川은 三味大山으로, 魚龍浦는 魚龍山으로 바뀌어 있다. 骨陵이 滑陵으로, 臨江書院이 臨淸書院으로, 田齋宮이 田齊宮으로, 鳥老山이 烏老山으로, 金約谷이 金納谷으로 표시되어 있기도 하다. 지도 왼쪽 위의 城山과 왼쪽 아래의 臨津船倉은 《광여도》에는 없는 것이다. 《광여도》와 동일하게 잘못된 부분도 있다. 長北面 방향에서 江西面을 거쳐 加勿峴으로 표시된 실선은 하천이 아니라 원래 도로이다. 오른쪽 중간쯤에서 흘러들어와 왼쪽 아래로 흘러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임진강이다. 굴곡을 고려하지 않으면 실제로는 읍내 정 동쪽에서 서남쪽으로 직선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본 지도에서는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기 위해 마치 남류하다가 서류한 것처럼 그려져 있다. 다른 하천의 유로 역시 방향이 정확히 맞는 것은 아니다. 임진강 변에서 바닷배가 들어올 수 있는 최상류가 오른쪽 중간의 임진강변에 표시된 古浪浦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임진강변 최대의 포구였으며, 일제시대 까지도 번영을 누렸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장단부 지도도 내용적으로는 본 지도와 많이 다르지만 하천의 유로 등의 기본적인 구도는 서로 비슷하여 연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청양현(靑陽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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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청양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아래쪽 金井驛 오른쪽에 南下面이 생략되어 있다. 《광여도》나 《해동지도》의 청양현 지도에 모두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 제작자의 실수로 판단된다. 본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지만 모든 방향이 정확한 것은 아니다. 왼쪽 위의 公山界는 公州界를, 아래쪽의 洪陽界는 洪州界를 의미한다. 공주목이 공산현으로 강등되었던 시기는 1646년(인조 24)경, 1670(현종 11)-1679년(숙종 5), 1728(영조 4)-1737(영조 13), 1778년(정조 2)경 등이다. 홍주는 顯宗(1660-1674) 때 잠시 洪陽縣으로 강등된다. 본 지도는 하천의 표시에서 몇 가지 문제가 있다. 西上面과 西下面은 현재의 청양군 비봉면 일대로서 북쪽의 삽교호로 흘러가는 무한천의 지류인 강촌천 유역에 속하지만 본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北上面과 北下面은 현재의 청양군 운곡면 일대로서 역시 무한천의 지류인 신양천 유역에 속한다. 그런데 본 지도에서는 마치 현재 금강의 지류인 지천으로 불리는 鵲川과 연결된 것처럼 잘못 표시되어 있다. 이와 같은 오류는 《광여도》와 《해동지도》 모두에 나타나고 있다. ‘비변사인방안지도’ 《호서지도》의 청양 지도나 ‘1872년 지방지도’의 청양현지도에는 모두 사실과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제주목(濟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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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제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생략된 지명이 많고 지도의 모습이 훨씬 조악한 편이다. 지도의 이름은 濟州牧이라고 적혀 있지만 실제로는 大靜縣과 旌義縣을 포함한 제주도 전체를 그렸다. 다만 제주목 관할 지역에만 지명이나 건물의 명칭을 적어 넣고 있다. 아래쪽에는 전라도 해안과 섬이 표시되어 있다. 《광여도》에는 이곳에 군현의 명칭은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하였으나 본 지도에서는 생략되었다. 이로 인해 군현과 다른 지명 사이의 구별이 어렵게 되어 있다. 해안가와 섬에 적혀 있는 지명은 대부분 鎭堡이다. 그러나 진보가 아닌 섬의 명칭도 적혀 있어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왼쪽 아래에는 對馬島도 보이고 있다. 위쪽에는 중국의 서해안이 그려져 있고, 省의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아울러 춘추전국시대의 國名이 적혀 있다. 《광여도》에는 성의 명칭에는 노란색 사각형을, 춘추전국시대의 國名에는 원의 형태를 그려 넣어 구분하였는데, 본 지도에서는 이런 구분이 어렵도록 그려져 있다. 왼쪽 위에는 日本의 명칭도 보이고 있다. 본 지도처럼 그리고자 하는 지역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주변에 관계가 있는 지역들의 방향과 명칭을 적는 방식은 고지도에서 가끔 나타난다. 정확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지도의 입장에서 보면 당혹스러운 지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거리와 방향을 정확하게 그리고자 하면 훨씬 큰 지면을 사용해야 하거나 핵심 지역이 아주 작게 그려지는 단점이 있다. 마지막으로 다른 군현의 지도와 달리 주기가 없는 것도 특이한 점이다. (이기봉)

  • 용궁현(龍宮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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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용궁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고, 세로(남북)가 더 길게 되어 있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치에 있는 軍器를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그러나 읍치 아래쪽의 龍飛山은 《해동지도》에 飛龍山으로, 그 아래쪽의 引火山은 火引山으로 나온다. 이 중 전자는 여러 지지를 참고해 보면 본 지도의 것이 올바르기 때문에 필사 시에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교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반면에 본 지도에 3개나 나오는 醴川界는 醴泉界의 오류이며, 《해동지도》에는 올바르게 기록되어 있다. 기타 《해동지도》에는 津 뒤에 船자가 붙어 있어 津船이 배치된 나루임을 알 수 있도록 하였으나 본 지도에서는 船자를 생략하였다. 하천의 유로나 산줄기의 모습은 《해동지도》와 거의 같게 되어 있다. 가장 아래쪽의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 본류이고, 그 위쪽이 내성천이다. 왼쪽의 하천은 금천으로서 위쪽의 尙州界에서 흘러오는데, 본 지도의 표현은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하천의 유로 중 읍치 아래쪽이 상대적으로 크게 확대된 것을 제외하면 실제와 거의 유사하게 되어 있다. 아래쪽의 申上面은 현재의 의성군 안사면 북쪽 부분에 있었고, 南面은 예천군 풍양면 북쪽 부분에 있었다. 아래쪽에 醴川界(즉 醴泉界)가 적혀 있는 것은 이곳에 예천의 월경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 은산현(殷山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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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은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은산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필사과정에서 바뀌거나 잘못된 부분이 여러 곳 있다. 우선 읍치가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래쪽에 그려져 있다. 이 때문에 오른쪽 위의 天聖山에서 발원하는 하천이 《해동지도》에 비해 길고, 좀더 서남쪽으로 기운 형태를 취하고 있다. 두 번째로 하천 유로의 일부가 잘못되어 있다. 오른쪽 위의 順川界에서 들어와 왼쪽을 휘감고 오른쪽 아래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대동강 본류이다. 그런데 본 지도에서는 順川界 부분이 대동강의 발원지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그려져 있다. 또한 《해동지도》에는 오른쪽의 順川界에서 읍치 방향으로 현재의 장선강이 흘러 들어오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본 지도에는 이 부분을 아예 생략하여 위쪽의 천성산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왼쪽 위에는 价川界에는 왼쪽으로 빠져나가거나 아니면 흘러들어오는 하천이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는 이 하천이 없으며, 無盡臺의 위치도 다르다. 왼쪽 아래에 대동강 본류와 장선강이 합류되는 지점부터 2개의 실선으로 하천을 표시하였다. 이런 표현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대동강 본류와 장선강을 본 지도의 내용처럼 은산현에서 발원한 하천 정도로 착각한 것이 아닌가 한다. 《광여도》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이 모두 교정되어 있다. 그러나 《해동지도》에서 대동강 본류와 지류를 굵기로서 분명히 표현해준 것에 비해 《광여도》에서는 동일한 굵기의 선으로 표시하였다. 위쪽에 馬山面을 馬上面으로 잘못 적는 오류도 범하고 있다. 《광여도》에서는 이 오류도 시정되어 있다. (이기봉)

  • 통천군(通川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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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통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에 있는 巨登驛은 《광여도》에 巨豊驛으로 나온다. 표현 방식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통천군 지도에서도 《광여도》처럼 나온다. 읍치 동남쪽 해안가에는 《광여도》와 《해동지도》에 있는 鉢里峯, 廣野川橋, 阿干里 등의 지명이 생략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본 지도가 《광여도》에 비해 오기와 생략의 오류를 범하고 있고, 표현 양식이나 글씨체가 거친 편이다. 통천군은 동서의 폭보다 남북의 폭이 훨씬 길다. 본 지도에도 동서보다 남북이 길게 표현되어 있지만 실제적인 비율은 더 크다.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그리다보니까 실제적인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동쪽의 해안가는 서북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남북 직선의 형태를 취한 것처럼 되어 있다. 하천 역시 정동 방향을 취하지 않은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만으로는 그와 같은 사실을 확인하기 어렵다. 주기의 형식과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하며, 《해동지도》와는 형식은 다르지만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이기봉)

  • 적성현(積城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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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적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본 지도에 鍊武堂으로 표시된 것이 《광여도》에 鍊武廳으로 표시된 점, 《광여도》에 연무당 동쪽에 있었던 城隍壇이 본 지도에 생략된 정도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적성현 지도도 표현 방법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광여도》와 본 지도가 《해동지도》의 것을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대로 필사한 것이 아니라 선택적으로 하였으며, 일부분에서는 다른 자료를 첨가하기도 하였다. 오른쪽 아래의 廣石峴에는 절벽이 상당히 자세히 표시되어 있는데 《해동지도》에서는 상대적으로 간단하게 표현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적성현 산천 부분에 ‘사면에 돌이 깎아지른 듯하고, 둘레가 1리 이다. 높이가 50보인데 위에는 40여인이 앉을 수 있다.’는 기록을 참조하여 더 웅장하게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의 풍수적 명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남쪽에 있는 감악산을 위쪽으로, 북쪽에 있는 임진강을 아래로 배치하였다. 산줄기를 겹겹이 싸인 형태로 그려 읍치의 이미지를 강하고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적성현의 일반적인 모양이나 여러 정보의 배치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이기봉)

  • 청양현(靑陽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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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청양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아래쪽 金井驛 오른쪽에 南下面이 생략되어 있다. 《광여도》나 《해동지도》의 청양현 지도에 모두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 제작자의 실수로 판단된다. 본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지만 모든 방향이 정확한 것은 아니다. 왼쪽 위의 公山界는 公州界를, 아래쪽의 洪陽界는 洪州界를 의미한다. 공주목이 공산현으로 강등되었던 시기는 1646년(인조 24)경, 1670(현종 11)-1679년(숙종 5), 1728(영조 4)-1737(영조 13), 1778년(정조 2)경 등이다. 홍주는 顯宗(1660-1674) 때 잠시 洪陽縣으로 강등된다. 본 지도는 하천의 표시에서 몇 가지 문제가 있다. 西上面과 西下面은 현재의 청양군 비봉면 일대로서 북쪽의 삽교호로 흘러가는 무한천의 지류인 강촌천 유역에 속하지만 본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北上面과 北下面은 현재의 청양군 운곡면 일대로서 역시 무한천의 지류인 신양천 유역에 속한다. 그런데 본 지도에서는 마치 현재 금강의 지류인 지천으로 불리는 鵲川과 연결된 것처럼 잘못 표시되어 있다. 이와 같은 오류는 《광여도》와 《해동지도》 모두에 나타나고 있다. ‘비변사인방안지도’ 《호서지도》의 청양 지도나 ‘1872년 지방지도’의 청양현지도에는 모두 사실과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제주목(濟州牧)(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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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제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생략된 지명이 많고 지도의 모습이 훨씬 조악한 편이다. 지도의 이름은 濟州牧이라고 적혀 있지만 실제로는 大靜縣과 旌義縣을 포함한 제주도 전체를 그렸다. 다만 제주목 관할 지역에만 지명이나 건물의 명칭을 적어 넣고 있다. 아래쪽에는 전라도 해안과 섬이 표시되어 있다. 《광여도》에는 이곳에 군현의 명칭은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하였으나 본 지도에서는 생략되었다. 이로 인해 군현과 다른 지명 사이의 구별이 어렵게 되어 있다. 해안가와 섬에 적혀 있는 지명은 대부분 鎭堡이다. 그러나 진보가 아닌 섬의 명칭도 적혀 있어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왼쪽 아래에는 對馬島도 보이고 있다. 위쪽에는 중국의 서해안이 그려져 있고, 省의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아울러 춘추전국시대의 國名이 적혀 있다. 《광여도》에는 성의 명칭에는 노란색 사각형을, 춘추전국시대의 國名에는 원의 형태를 그려 넣어 구분하였는데, 본 지도에서는 이런 구분이 어렵도록 그려져 있다. 왼쪽 위에는 日本의 명칭도 보이고 있다. 본 지도처럼 그리고자 하는 지역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주변에 관계가 있는 지역들의 방향과 명칭을 적는 방식은 고지도에서 가끔 나타난다. 정확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지도의 입장에서 보면 당혹스러운 지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거리와 방향을 정확하게 그리고자 하면 훨씬 큰 지면을 사용해야 하거나 핵심 지역이 아주 작게 그려지는 단점이 있다. 마지막으로 다른 군현의 지도와 달리 주기가 없는 것도 특이한 점이다. (이기봉)

  • 용궁현(龍宮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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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용궁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고, 세로(남북)가 더 길게 되어 있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치에 있는 軍器를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그러나 읍치 아래쪽의 龍飛山은 《해동지도》에 飛龍山으로, 그 아래쪽의 引火山은 火引山으로 나온다. 이 중 전자는 여러 지지를 참고해 보면 본 지도의 것이 올바르기 때문에 필사 시에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교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반면에 본 지도에 3개나 나오는 醴川界는 醴泉界의 오류이며, 《해동지도》에는 올바르게 기록되어 있다. 기타 《해동지도》에는 津 뒤에 船자가 붙어 있어 津船이 배치된 나루임을 알 수 있도록 하였으나 본 지도에서는 船자를 생략하였다. 하천의 유로나 산줄기의 모습은 《해동지도》와 거의 같게 되어 있다. 가장 아래쪽의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 본류이고, 그 위쪽이 내성천이다. 왼쪽의 하천은 금천으로서 위쪽의 尙州界에서 흘러오는데, 본 지도의 표현은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하천의 유로 중 읍치 아래쪽이 상대적으로 크게 확대된 것을 제외하면 실제와 거의 유사하게 되어 있다. 아래쪽의 申上面은 현재의 의성군 안사면 북쪽 부분에 있었고, 南面은 예천군 풍양면 북쪽 부분에 있었다. 아래쪽에 醴川界(즉 醴泉界)가 적혀 있는 것은 이곳에 예천의 월경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 은산현(殷山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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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은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은산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필사과정에서 바뀌거나 잘못된 부분이 여러 곳 있다. 우선 읍치가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래쪽에 그려져 있다. 이 때문에 오른쪽 위의 天聖山에서 발원하는 하천이 《해동지도》에 비해 길고, 좀더 서남쪽으로 기운 형태를 취하고 있다. 두 번째로 하천 유로의 일부가 잘못되어 있다. 오른쪽 위의 順川界에서 들어와 왼쪽을 휘감고 오른쪽 아래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대동강 본류이다. 그런데 본 지도에서는 順川界 부분이 대동강의 발원지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그려져 있다. 또한 《해동지도》에는 오른쪽의 順川界에서 읍치 방향으로 현재의 장선강이 흘러 들어오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본 지도에는 이 부분을 아예 생략하여 위쪽의 천성산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왼쪽 위에는 价川界에는 왼쪽으로 빠져나가거나 아니면 흘러들어오는 하천이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는 이 하천이 없으며, 無盡臺의 위치도 다르다. 왼쪽 아래에 대동강 본류와 장선강이 합류되는 지점부터 2개의 실선으로 하천을 표시하였다. 이런 표현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대동강 본류와 장선강을 본 지도의 내용처럼 은산현에서 발원한 하천 정도로 착각한 것이 아닌가 한다. 《광여도》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이 모두 교정되어 있다. 그러나 《해동지도》에서 대동강 본류와 지류를 굵기로서 분명히 표현해준 것에 비해 《광여도》에서는 동일한 굵기의 선으로 표시하였다. 위쪽에 馬山面을 馬上面으로 잘못 적는 오류도 범하고 있다. 《광여도》에서는 이 오류도 시정되어 있다. (이기봉)

  • 평강현(平康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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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평강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西面 부근에 新山城이 표시되어 있는데, 《광여도》에는 新城山으로 나온다. 표현 양식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평강현 지도에는 《광여도》와 동일하게 나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보인다. 본 지도에는 하천의 표시가 상당히 부정확하게 되어 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위쪽에 있는 분수령의 실제 위치가 잘못 비정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分水嶺이 훨씬 아래쪽으로, 그리고 오른쪽으로 옮겨 표시해야 한다. 분수령 위쪽의 하천은 안변을 거쳐 동해로 빠져나가는 남대천으로 상류의 일부가 평강현에 걸쳐 있었다. 분수령이 너무 북쪽으로 올라가 있기 때문에 여기서 발원하여 安峽界로 빠져나가는 현재의 평안천이 지나치게 길게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한편으로 위쪽의 伊川界로 흘러나가는 현재의 고미탄천을 지나치게 작게 표현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평강현에 걸쳐 있었던 고미탄천 유역의 실제 면적은 평안천 유역보다 더 넓다. 이로 인해 고미탄천 유역에 배치되어야 할 楡津面과 大田面, 高揷面 등이 평안천 유역에 표시되어 있다. 읍치 오른쪽의 하천은 현재의 한탄강 상류인데 유역 면적이 역시 너무 넓게 표시되어 있다. 이 역시 분수령이 지나치게 북쪽으로 올라가 있고, 이 하천의 발원지를 분수령 가까이 배치하려 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평강현에 걸쳐 있는 실제 유역 면적은 고미탄천 유역보다 작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평강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런 부분들이 모두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 적성현(積城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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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적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본 지도에 鍊武堂으로 표시된 것이 《광여도》에 鍊武廳으로 표시된 점, 《광여도》에 연무당 동쪽에 있었던 城隍壇이 본 지도에 생략된 정도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적성현 지도도 표현 방법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광여도》와 본 지도가 《해동지도》의 것을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대로 필사한 것이 아니라 선택적으로 하였으며, 일부분에서는 다른 자료를 첨가하기도 하였다. 오른쪽 아래의 廣石峴에는 절벽이 상당히 자세히 표시되어 있는데 《해동지도》에서는 상대적으로 간단하게 표현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적성현 산천 부분에 ‘사면에 돌이 깎아지른 듯하고, 둘레가 1리 이다. 높이가 50보인데 위에는 40여인이 앉을 수 있다.’는 기록을 참조하여 더 웅장하게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의 풍수적 명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남쪽에 있는 감악산을 위쪽으로, 북쪽에 있는 임진강을 아래로 배치하였다. 산줄기를 겹겹이 싸인 형태로 그려 읍치의 이미지를 강하고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적성현의 일반적인 모양이나 여러 정보의 배치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이기봉)

  • 청주목(淸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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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청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오른쪽 가운데의 公松寺는 《광여도》에 公林寺로 나온다. 표현 방식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청주목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여 상호 관련성을 추정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동지도》의 청주목 지도와 주기가 같은 것도 아니다. 《광여도》의 청주목 지도가 다른 군현 지도와 표현 방식이나 색감이 다른 점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광여도》에 있는 청주목 지도는 다른 군현의 지도와 다른 시기에 그려져 삽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 표시에서 鎭川界와 槐山界 사이에 淸安界가, 天安界와 燕歧界 사이에 全義界가 적혀 있어야 올바르다. 왼쪽의 하천은 현재 금강의 지류인 미호천이다. 미호천의 본류는 북쪽의 鎭川과 淸安에서, 지류 중의 하나인 병천천이 서쪽의 木川에서 흘러들어옴에도 이와 같은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미호천의 지류인 無心川 역시 최상류가 文義와 懷仁에 일부 걸쳐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문제점은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오른쪽은 남한강의 지류인 達川 유역이다. 지도를 남북으로 긴 사각형 안에 그리다가 보니까 고을 동서의 폭이 상대적으로 짧게 그려져 있다. 달천 유역 역시 동서보다는 남북이 길게 그려져 있어 잘못 이해할 수 있다. 靑川面과 華陽洞書院 등은 읍치의 거의 정동 쪽에 위치해 있어야 한다. 달천 역시 보은이나 상주 등에도 일부 걸쳐 있어야 하는데 이와 같은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왼쪽 아래에 있는 德平面은 원래 덕평향 이었고, 全義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다. 아래쪽의 周岸面 역시 월래 주안향 이었으며, 文義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두개의 면이 월경지였다는 사실을 파악하기 어렵다. 이와 같은 문제점은 《광여도》와 《해동지도》에서도 나타난다. (이기봉)

  • 진도군(珍島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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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진도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산줄기의 표현이 거칠고 몇 개의 지명이 생략되고 있다. 왼쪽 위에는 面에 대한 기호인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만 있고 古郡內面은 생략되어 있다. 아래쪽 南桃鎭 부분에는 牧場面이 아예 빠져 있다. 이와 같은 오류들을 통해 볼 때 본 지도가 《광여도》의 내용을 필사하면서 빠뜨린 것이라고 생각된다. 지도 위쪽에는 金山面이 적혀 있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진도군 지도에는 命山面으로 적혀 있다. 여러 지리지를 참고해 보면 《해동지도》가 정확하다. 《광여도》의 필사 시 ‘命’자를 ‘金’자로 오기했으며, 본 지도의 필사 시 이런 오류를 확인하지 않고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명산면은 현재의 영암군 시종면 만수리 일대에 있었다. 고려 말에 倭寇의 침입을 피해 진도의 향리들이 옮겨 살았던 곳이며, 다시 본 고을로 돌아온 후에도 진도의 땅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오른쪽의 삼촌면은 현재의 해남군 삼산면 송정리 일대에 있던 월경지였다. 본 지도에는 海南界를 특별히 적어놓아 월경지임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아래쪽에 표시된 2개의 鎭에는 船所가 표시되어 있는데, 전선을 정박하며 관리하던 곳이다. 왼쪽 아래의 섬들은 섬의 크기나 위치를 고려하지 않고 표현하였다. (이기봉)

  • 울산부(蔚山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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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울산부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와 본 지도의 하천 유로는 동일하게 되어 있다. 다만 읍치 아래쪽을 흐르는 현재의 태화강 끝을 얇게 하여 마치 해당 지역이 발원지인 것 같은 오해를 할 수 있게 그렸다. 《해동지도》에는 이 부분이 발원지가 아님을 분명하게 표시하였다. 읍치를 제외하면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글씨로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사용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읍치 오른쪽의 柳浦面에 노란색 사각형을 그리지 않은 실수도 보이고 있다. 읍치는 《해동지도》에 없는 지명이 많이 추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다. 이로 인해 읍치로부터 서쪽과 북쪽 경계까지의 거리가 상대적으로 짧게 그려졌다. 이것이 읍치 북쪽과 왼쪽 하천의 유로 및 지명 위치가 《해동지도》와 달라지는 원인이 된 것 같다. 본 지도는 대략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러나 방향이 전 지역에 동일하게 적용된 것은 아니다. 해안선은 실제 북쪽에서 남쪽으로 향하게 되어 있지만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북-남으로 오다가 태화강 하구에서 동-서 방향으로 바뀐 듯 오해를 할 수 있다. 태화강 하구에서 해안선이 잠시 동-서 방향을 취하는 것은 맞지만 바로 북-남으로 바뀐다. 태화강 역시 서쪽의 언양 방향에서 들어와 거의 동류하다가 하구 부분에서 약간만 남류한다.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남류하다가 동류하며, 다시 남류하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가장 왼쪽에 있는 현재의 회야강은 熊村面에서 동북으로 흐르다가 靑良面부터 동남으로 빠져나간다. 역시 본 지도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방향과 거리가 실제와 다르게 그려지는 것이 일반적이며, 본 지도는 그 중에서도 가장 심한 편에 해당된다. (이기봉)

  • 은율현(殷栗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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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은율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은율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에는 客舍가 있는 읍치와 九月山城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는 본 지도보다 훨씬 큰 종이에 그려져 있어 작은 종이에 옮기면 정보가 밀집된 읍치와 구월산성을 제대로 표현하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또한 왼쪽 위의 바다 부분 역시 《해동지도》보다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실제적으로 은율현은 북서쪽 일부에만 바다에 접해 있어 《해동지도》가 사실에 더 가깝다. 필사 과정에서 사실이 왜곡되는 모습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바다에 있는 섬은 크기나 위치를 고려하지 않고 그려져 있다. 예를 들어 席島는 나머지 2개의 섬보다 훨씬 클 뿐만 아니라 더 북쪽에 위치해 있다. 이러한 왜곡에 따라 남쪽에서 발원하여 거의 북류하는 漢川의 모습 역시 조금 왜곡되어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은율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를 참고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기타 《해동지도》에 있던 도로가 생략되었고, 문자로만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가 첨가되었다. (이기봉)

  • 평강현(平康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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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평강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西面 부근에 新山城이 표시되어 있는데, 《광여도》에는 新城山으로 나온다. 표현 양식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평강현 지도에는 《광여도》와 동일하게 나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보인다. 본 지도에는 하천의 표시가 상당히 부정확하게 되어 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위쪽에 있는 분수령의 실제 위치가 잘못 비정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分水嶺이 훨씬 아래쪽으로, 그리고 오른쪽으로 옮겨 표시해야 한다. 분수령 위쪽의 하천은 안변을 거쳐 동해로 빠져나가는 남대천으로 상류의 일부가 평강현에 걸쳐 있었다. 분수령이 너무 북쪽으로 올라가 있기 때문에 여기서 발원하여 安峽界로 빠져나가는 현재의 평안천이 지나치게 길게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한편으로 위쪽의 伊川界로 흘러나가는 현재의 고미탄천을 지나치게 작게 표현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평강현에 걸쳐 있었던 고미탄천 유역의 실제 면적은 평안천 유역보다 더 넓다. 이로 인해 고미탄천 유역에 배치되어야 할 楡津面과 大田面, 高揷面 등이 평안천 유역에 표시되어 있다. 읍치 오른쪽의 하천은 현재의 한탄강 상류인데 유역 면적이 역시 너무 넓게 표시되어 있다. 이 역시 분수령이 지나치게 북쪽으로 올라가 있고, 이 하천의 발원지를 분수령 가까이 배치하려 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평강현에 걸쳐 있는 실제 유역 면적은 고미탄천 유역보다 작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평강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런 부분들이 모두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 죽산부(竹山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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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죽산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첫째, 邑基에 南部面을 南部山으로 잘못 기재하고 있다. 둘째, 왼쪽에 水原界, 安城界 大路 등은 《광여도》에 없는 것이다. 죽산부는 수원부와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水原界라 적혀 있는 본 지도의 내용이 잘못된 것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죽산부 지도와는 표현 방식이나 내용적으로 일부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동일하다. 《해동지도》와 비교하여 본 지도에는 도로가 생략되어 있고, 위쪽의 遠三面에서 발원하는 현재의 한천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광여도》와 본 지도가 《해동지도》의 내용을 참고하면서 좀더 간략하게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죽산부 지도도 기본적인 구도는 이 지도와 비슷하다. 아마 죽산부에서 그려진 많은 지도가 이와 같은 구도로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며, 중앙으로 올려진 지도도 그런 지도를 바탕으로 다시 그려진 것이 아닌가 한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에 大路란 표현이 나오고 있는데, 본 고을의 입장에서 大路란 의미이다. 오른쪽 아래에 적힌 乭院大路는 도성에서 동래까지 이어진 大路이다. 邑基에는 客舍가 표시되어 있다. 객사에서는 매월 1일과 15일에 도성에 살고 있는 왕을 향해 절을 올리는 望闕向拜가 이루어졌다. 이 행사는 사또가 왕을 대신하여 이 고을을 통치한다는 의미가 들어있기 때문에 객사는 그 어떤 관아 건물보다도 중요하게 인식되었고 규모도 컸다. 이에 따라 사또가 집무를 보는 東軒 또는 衙舍보다도 더 큰 상징성을 지니고 있어 지도에도 가장 많이 그려졌다. 본 지도도 조선시대의 이러한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기봉)

  • 청주목(淸州牧)(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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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청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오른쪽 가운데의 公松寺는 《광여도》에 公林寺로 나온다. 표현 방식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청주목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여 상호 관련성을 추정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동지도》의 청주목 지도와 주기가 같은 것도 아니다. 《광여도》의 청주목 지도가 다른 군현 지도와 표현 방식이나 색감이 다른 점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광여도》에 있는 청주목 지도는 다른 군현의 지도와 다른 시기에 그려져 삽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 표시에서 鎭川界와 槐山界 사이에 淸安界가, 天安界와 燕歧界 사이에 全義界가 적혀 있어야 올바르다. 왼쪽의 하천은 현재 금강의 지류인 미호천이다. 미호천의 본류는 북쪽의 鎭川과 淸安에서, 지류 중의 하나인 병천천이 서쪽의 木川에서 흘러들어옴에도 이와 같은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미호천의 지류인 無心川 역시 최상류가 文義와 懷仁에 일부 걸쳐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문제점은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오른쪽은 남한강의 지류인 達川 유역이다. 지도를 남북으로 긴 사각형 안에 그리다가 보니까 고을 동서의 폭이 상대적으로 짧게 그려져 있다. 달천 유역 역시 동서보다는 남북이 길게 그려져 있어 잘못 이해할 수 있다. 靑川面과 華陽洞書院 등은 읍치의 거의 정동 쪽에 위치해 있어야 한다. 달천 역시 보은이나 상주 등에도 일부 걸쳐 있어야 하는데 이와 같은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왼쪽 아래에 있는 德平面은 원래 덕평향 이었고, 全義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다. 아래쪽의 周岸面 역시 월래 주안향 이었으며, 文義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두개의 면이 월경지였다는 사실을 파악하기 어렵다. 이와 같은 문제점은 《광여도》와 《해동지도》에서도 나타난다. (이기봉)

  • 진도군(珍島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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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진도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산줄기의 표현이 거칠고 몇 개의 지명이 생략되고 있다. 왼쪽 위에는 面에 대한 기호인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만 있고 古郡內面은 생략되어 있다. 아래쪽 南桃鎭 부분에는 牧場面이 아예 빠져 있다. 이와 같은 오류들을 통해 볼 때 본 지도가 《광여도》의 내용을 필사하면서 빠뜨린 것이라고 생각된다. 지도 위쪽에는 金山面이 적혀 있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진도군 지도에는 命山面으로 적혀 있다. 여러 지리지를 참고해 보면 《해동지도》가 정확하다. 《광여도》의 필사 시 ‘命’자를 ‘金’자로 오기했으며, 본 지도의 필사 시 이런 오류를 확인하지 않고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명산면은 현재의 영암군 시종면 만수리 일대에 있었다. 고려 말에 倭寇의 침입을 피해 진도의 향리들이 옮겨 살았던 곳이며, 다시 본 고을로 돌아온 후에도 진도의 땅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오른쪽의 삼촌면은 현재의 해남군 삼산면 송정리 일대에 있던 월경지였다. 본 지도에는 海南界를 특별히 적어놓아 월경지임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아래쪽에 표시된 2개의 鎭에는 船所가 표시되어 있는데, 전선을 정박하며 관리하던 곳이다. 왼쪽 아래의 섬들은 섬의 크기나 위치를 고려하지 않고 표현하였다. (이기봉)

  • 울산부(蔚山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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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는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울산부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와 본 지도의 하천 유로는 동일하게 되어 있다. 다만 읍치 아래쪽을 흐르는 현재의 태화강 끝을 얇게 하여 마치 해당 지역이 발원지인 것 같은 오해를 할 수 있게 그렸다. 《해동지도》에는 이 부분이 발원지가 아님을 분명하게 표시하였다. 읍치를 제외하면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글씨로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사용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읍치 오른쪽의 柳浦面에 노란색 사각형을 그리지 않은 실수도 보이고 있다. 읍치는 《해동지도》에 없는 지명이 많이 추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다. 이로 인해 읍치로부터 서쪽과 북쪽 경계까지의 거리가 상대적으로 짧게 그려졌다. 이것이 읍치 북쪽과 왼쪽 하천의 유로 및 지명 위치가 《해동지도》와 달라지는 원인이 된 것 같다. 본 지도는 대략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러나 방향이 전 지역에 동일하게 적용된 것은 아니다. 해안선은 실제 북쪽에서 남쪽으로 향하게 되어 있지만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북-남으로 오다가 태화강 하구에서 동-서 방향으로 바뀐 듯 오해를 할 수 있다. 태화강 하구에서 해안선이 잠시 동-서 방향을 취하는 것은 맞지만 바로 북-남으로 바뀐다. 태화강 역시 서쪽의 언양 방향에서 들어와 거의 동류하다가 하구 부분에서 약간만 남류한다.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남류하다가 동류하며, 다시 남류하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가장 왼쪽에 있는 현재의 회야강은 熊村面에서 동북으로 흐르다가 靑良面부터 동남으로 빠져나간다. 역시 본 지도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방향과 거리가 실제와 다르게 그려지는 것이 일반적이며, 본 지도는 그 중에서도 가장 심한 편에 해당된다. (이기봉)

  • 은율현(殷栗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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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은율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은율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에는 客舍가 있는 읍치와 九月山城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는 본 지도보다 훨씬 큰 종이에 그려져 있어 작은 종이에 옮기면 정보가 밀집된 읍치와 구월산성을 제대로 표현하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또한 왼쪽 위의 바다 부분 역시 《해동지도》보다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실제적으로 은율현은 북서쪽 일부에만 바다에 접해 있어 《해동지도》가 사실에 더 가깝다. 필사 과정에서 사실이 왜곡되는 모습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바다에 있는 섬은 크기나 위치를 고려하지 않고 그려져 있다. 예를 들어 席島는 나머지 2개의 섬보다 훨씬 클 뿐만 아니라 더 북쪽에 위치해 있다. 이러한 왜곡에 따라 남쪽에서 발원하여 거의 북류하는 漢川의 모습 역시 조금 왜곡되어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은율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를 참고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기타 《해동지도》에 있던 도로가 생략되었고, 문자로만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가 첨가되었다. (이기봉)

  • 평창군(平昌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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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평창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평창군 지도도 표현 방식이 다르지만 내용과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다만 《해동지도》가 남북보다는 동서가 긴 형태를 취하고 있는 방면에 본 지도와 《광여도》는 동서보다는 남북이 길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에서 가장 잘못된 것은 하천의 유로 표시이다. 우선 읍치를 휘감아 돌아 아래의 原州界 방면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평창강이다. 이 하천은 실제로는 위쪽의 梨峴(뱃재) 바로 왼쪽의 江陵界로부터 흘러들어와 北面을 거쳐 읍치를 향해야 한다. 그리고 평창군의 서쪽(왼쪽)에는 江陵이 아니라 原州와 경계를 맞대고 있는데 본 지도에는 江陵界로 잘못 적혀 있다. 이러한 경계에 대한 오해가 평창강의 유입로를 잘못 이해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잘못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평창 지도에도 이어지며, 김정호의 《청구도》에도 교정되지 않고 그대로 나타난다. 김정호의 《동여도》와 《대동여지도》에 와서야 이 부분이 교정된다. 오른쪽의 하천은 현재의 동강이다. 동강은 실제로 오른쪽의 正善에서 흘러와 味呑面과 東面 사이를 가로질러 寧月界로 빠져나간다. 그런데 본 지도에서는 마치 평창에서 발원하여 영월계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미탄면과 동면은 읍치의 동남쪽 방향으로 쑥 튀어나간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런데 사각형의 종이 위에 그리다보니까 이런 모습이 상당히 왜곡되어 있다. 다만 이와 같은 오류가 《조선지도》나 김정호의 지도에까지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이기봉)

  • 죽산부(竹山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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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죽산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첫째, 邑基에 南部面을 南部山으로 잘못 기재하고 있다. 둘째, 왼쪽에 水原界, 安城界 大路 등은 《광여도》에 없는 것이다. 죽산부는 수원부와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水原界라 적혀 있는 본 지도의 내용이 잘못된 것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죽산부 지도와는 표현 방식이나 내용적으로 일부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동일하다. 《해동지도》와 비교하여 본 지도에는 도로가 생략되어 있고, 위쪽의 遠三面에서 발원하는 현재의 한천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광여도》와 본 지도가 《해동지도》의 내용을 참고하면서 좀더 간략하게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죽산부 지도도 기본적인 구도는 이 지도와 비슷하다. 아마 죽산부에서 그려진 많은 지도가 이와 같은 구도로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며, 중앙으로 올려진 지도도 그런 지도를 바탕으로 다시 그려진 것이 아닌가 한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에 大路란 표현이 나오고 있는데, 본 고을의 입장에서 大路란 의미이다. 오른쪽 아래에 적힌 乭院大路는 도성에서 동래까지 이어진 大路이다. 邑基에는 客舍가 표시되어 있다. 객사에서는 매월 1일과 15일에 도성에 살고 있는 왕을 향해 절을 올리는 望闕向拜가 이루어졌다. 이 행사는 사또가 왕을 대신하여 이 고을을 통치한다는 의미가 들어있기 때문에 객사는 그 어떤 관아 건물보다도 중요하게 인식되었고 규모도 컸다. 이에 따라 사또가 집무를 보는 東軒 또는 衙舍보다도 더 큰 상징성을 지니고 있어 지도에도 가장 많이 그려졌다. 본 지도도 조선시대의 이러한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기봉)

  • 청풍부(淸風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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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청풍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오른쪽 위에 있는 東面은 面을 의미하는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로 표시하지 않았는데, 지도 제작자가 실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의 龜潭과 아래쪽의 遠南面은 《광여도》에 없는 것이며, 위쪽의 長善峙는 《광여도》에 長善山으로 표시되어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청풍부 지도는 표현 방식에서의 차이가 있지만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나 내용적 측면에서 서로 비슷하다. 《광여도》와 본 지도가 다른 龜潭, 遠南面, 長善峙는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본 지도의 주기 내용과 표현 양식은 《해동지도》가 아니라 《광여도》와 동일하다. 오른쪽 丹陽界에서 들어와 왼쪽 忠州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남한강 본류이다. 본 지도에서는 남한강 본류와 각 지류들의 하천 굵기를 동일하게 표시하여 구분이 어렵게 되어 있다. 이 점 역시 《광여도》와 동일한데, 《해동지도》에는 본류와 지류를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반대로 《광여도》에는 남한강이 丹陽界 방향에서 흘러들어오는 사실을 반영하지 않았음에 비해 《해동지도》에는 분명하게 반영되어 있다. 이 점에서 본 지도는 《광여도》보다 《해동지도》의 내용을 따르고 있다. (이기봉)

  • 진산군(珍山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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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진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맨 왼쪽의 하천은 현재의 갑천 상류이고, 가운데가 갑천으로 흘러가는 유등천의 상류이며, 가장 오른쪽은 옥천에서 금강과 합류되는 서화천 상류이다. 여러 지류가 합쳐져 다른 고을로 빠져나가는 하천의 표현이 《광여도》에 비하면 상당히 거칠다. 일부 유로 중 《광여도》에는 나오지 않는 부분도 있다. 위쪽의 太祖大王胎室 부분, 아래쪽 가운데의 錦山界 부분 등의 유로 모습은 표현 양식이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같은 《해동지도》의 진산군 지도와 동일하다. 따라서 본 지도는 전체적으로 《광여도》의 것을 따르면서 《해동지도》를 참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 일부 문제가 되는 부분도 있다. 진산군은 連山界와 公州界 사이에 鎭岑縣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만 본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또한 全州界와 錦山界 사이에도 전라도의 고산현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만 역시 표시되어 있지 않다. 반면에 진산현과 상당히 떨어져 있는 全州界가 표시되어 있는데, 현재의 논산시 양촌면 일대에 있었던 월경지 陽良所面과 가깝기 때문이다. 위쪽에 표시된 公州界는 《광여도》의 지도에도 마찬가지이며, 《해동지도》에는 公山界로 나온다. 공주목이 공산현으로 강등되었던 시기는 1646년(인조 24)경, 1670(현종 11)-1679년(숙종 5), 1728(영조 4)-1737(영조 13), 1778년(정조 2)경 등이다. 그런데 본 지도의 주기에는 북쪽으로 公山과, 《광여도》의 주기에는 公州와, 《해동지도》의 주기에는 公山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아마 《해동지도》는 공주가 공산으로 강등되었을 당시에 제작되었고, 《광여도》는 다시 공주로 회복되었을 때 《해동지도》를 필사했을 가능성이 높다. 본 지도는 지도 부분의 경계 표시는 《광여도》를 따르면서 주기 부분에서는 《해동지도》를 참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웅천현(熊川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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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웅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는 가로(동서)가 길게 그려져 있는 반면에 본 지도는 세로(남북)가 길게 그려져 있다. 웅천현의 실제 모습은 동서가 남북보다 훨씬 길기 때문에 《해동지도》가 사실에 가깝다. 남북이 길어지고, 읍성을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지만 하천의 유로는 거의 변화가 없다. 그러나 해안선과 섬은 상대적으로 단순하게 표현되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본 지도가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은 종이 위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크기가 작기 때문에 《해동지도》에 자세하게 묘사된 해안선과 섬을 그대로 옮기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해동지도》에 어느 정도 위치가 고려되어 표시된 섬이 본 지도에서는 대략적인 위치만 알 수 있게 하였고, 섬의 명칭이 생략된 것도 여러 개 있다. 지명의 표시 역시 《해동지도》보다 본 지도가 훨씬 소략하게 처리되었다. 面의 경우 《해동지도》에 없던 邑內面이 추가되었으나 가장 서쪽에 있었던 下西面이 생략되어 있다. 또한 전통시대의 지도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군사 정보 역시 오른쪽의 淸川鎭 아래쪽에 安骨鎭이, 지도의 왼쪽에 豊德鎭이 생략되었다. 오른쪽 아래의 天城保는 天城堡의 誤記이다. 이런 사실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기본으로 하면서 읍치는 다른 자료를 일부 참고하여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가 꼼꼼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여러 곳에서 생략이나 오기 등의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기봉)

  • 의주부(義州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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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의주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의주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는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지만 본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또한 《해동지도》는 남북을 훨씬 길게 그렸지만 본 지도에서는 남북과 동서를 비슷하게 그렸다. 하천의 유로는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지명이 많이 생략되고 잘못 필사된 것이 많다. 《해동지도》에는 문자로만 적혀 있던 面이 본 지도에는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로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주기에는 21개의 면이 기록되어 있지만 지도에는 단지 12개만 표시되어 있다. 또한 아래쪽 枇項面과 光化面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도 않다. 《해동지도》에는 21개의 면이 모두 표시되어 있다는 점과 비교하면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필사 과정에서 많이 빠뜨렸다고 볼 수 있다. 《광여도》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지 않은 면이 없다. 그러나 본 지도에 彌羅山面 1개만 추가하여 13개만이 표기되어 있어 역시 꼼꼼하게 검토하며 필사한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아래쪽의 於骨山은 松骨山을, 獜川鎭은 獜山鎭을 잘못 옮긴 것이며, 이런 지명은 이외에도 많다. 《광여도》에서는 본 지도에서 잘못 옮긴 것을 상당히 교정해 놓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정보가 추가된 곳은 읍치이다. 건물수가 늘어났고, 鄕社堂이란 지명이 추가되어 있다. 《광여도》에서는 읍치를 상대적으로 더 크게 묘사하였으며, 鄕射堂으로 바뀌어 있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했지만 여러 면에서 틀린 것이 많으며, 《광여도》는 본 지도의 문제점을 일부 개선했지만 모두 교정한 것은 아니다. (이기봉)

  • 평창군(平昌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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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평창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의 평창군 지도도 표현 방식이 다르지만 내용과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다만 《해동지도》가 남북보다는 동서가 긴 형태를 취하고 있는 방면에 본 지도와 《광여도》는 동서보다는 남북이 길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에서 가장 잘못된 것은 하천의 유로 표시이다. 우선 읍치를 휘감아 돌아 아래의 原州界 방면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평창강이다. 이 하천은 실제로는 위쪽의 梨峴(뱃재) 바로 왼쪽의 江陵界로부터 흘러들어와 北面을 거쳐 읍치를 향해야 한다. 그리고 평창군의 서쪽(왼쪽)에는 江陵이 아니라 原州와 경계를 맞대고 있는데 본 지도에는 江陵界로 잘못 적혀 있다. 이러한 경계에 대한 오해가 평창강의 유입로를 잘못 이해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잘못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평창 지도에도 이어지며, 김정호의 《청구도》에도 교정되지 않고 그대로 나타난다. 김정호의 《동여도》와 《대동여지도》에 와서야 이 부분이 교정된다. 오른쪽의 하천은 현재의 동강이다. 동강은 실제로 오른쪽의 正善에서 흘러와 味呑面과 東面 사이를 가로질러 寧月界로 빠져나간다. 그런데 본 지도에서는 마치 평창에서 발원하여 영월계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미탄면과 동면은 읍치의 동남쪽 방향으로 쑥 튀어나간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런데 사각형의 종이 위에 그리다보니까 이런 모습이 상당히 왜곡되어 있다. 다만 이와 같은 오류가 《조선지도》나 김정호의 지도에까지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이기봉)

  • 지평현(砥平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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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지평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寺가 菴으로, 峙가 峴으로 바뀐 것이 몇 개 있다. 왼쪽 중간 부분에는 水路가 표시되어 있는데 이것은 水破를 잘못 옮긴 것이다. 그 아래쪽에 水源이라 적혀 있는 것은 《광여도》에 水原으로 적혀 있는데, 원래는 水破로 적어야 한다. 왼쪽 중간에 水破라 적힌 곳에 《광여도》에 있던 작은 하천 하나가 생략되어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지평현 지도는 방향과 표현 양식 및 일부의 내용에서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본 지도 아래쪽에 李判府事墓가 《광여도》에는 白鵶谷澤堂墓라고 적혀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적혀 있다. 《해동지도》에서는 본 지도의 왼쪽 하천이 읍치 부근의 하천과 연결된 것처럼 그려져 있는데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는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 청풍부(淸風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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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청풍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오른쪽 위에 있는 東面은 面을 의미하는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로 표시하지 않았는데, 지도 제작자가 실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의 龜潭과 아래쪽의 遠南面은 《광여도》에 없는 것이며, 위쪽의 長善峙는 《광여도》에 長善山으로 표시되어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청풍부 지도는 표현 방식에서의 차이가 있지만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나 내용적 측면에서 서로 비슷하다. 《광여도》와 본 지도가 다른 龜潭, 遠南面, 長善峙는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본 지도의 주기 내용과 표현 양식은 《해동지도》가 아니라 《광여도》와 동일하다. 오른쪽 丹陽界에서 들어와 왼쪽 忠州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남한강 본류이다. 본 지도에서는 남한강 본류와 각 지류들의 하천 굵기를 동일하게 표시하여 구분이 어렵게 되어 있다. 이 점 역시 《광여도》와 동일한데, 《해동지도》에는 본류와 지류를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반대로 《광여도》에는 남한강이 丹陽界 방향에서 흘러들어오는 사실을 반영하지 않았음에 비해 《해동지도》에는 분명하게 반영되어 있다. 이 점에서 본 지도는 《광여도》보다 《해동지도》의 내용을 따르고 있다. (이기봉)

  • 진산군(珍山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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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진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맨 왼쪽의 하천은 현재의 갑천 상류이고, 가운데가 갑천으로 흘러가는 유등천의 상류이며, 가장 오른쪽은 옥천에서 금강과 합류되는 서화천 상류이다. 여러 지류가 합쳐져 다른 고을로 빠져나가는 하천의 표현이 《광여도》에 비하면 상당히 거칠다. 일부 유로 중 《광여도》에는 나오지 않는 부분도 있다. 위쪽의 太祖大王胎室 부분, 아래쪽 가운데의 錦山界 부분 등의 유로 모습은 표현 양식이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같은 《해동지도》의 진산군 지도와 동일하다. 따라서 본 지도는 전체적으로 《광여도》의 것을 따르면서 《해동지도》를 참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 일부 문제가 되는 부분도 있다. 진산군은 連山界와 公州界 사이에 鎭岑縣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만 본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또한 全州界와 錦山界 사이에도 전라도의 고산현과 경계를 맞대고 있지만 역시 표시되어 있지 않다. 반면에 진산현과 상당히 떨어져 있는 全州界가 표시되어 있는데, 현재의 논산시 양촌면 일대에 있었던 월경지 陽良所面과 가깝기 때문이다. 위쪽에 표시된 公州界는 《광여도》의 지도에도 마찬가지이며, 《해동지도》에는 公山界로 나온다. 공주목이 공산현으로 강등되었던 시기는 1646년(인조 24)경, 1670(현종 11)-1679년(숙종 5), 1728(영조 4)-1737(영조 13), 1778년(정조 2)경 등이다. 그런데 본 지도의 주기에는 북쪽으로 公山과, 《광여도》의 주기에는 公州와, 《해동지도》의 주기에는 公山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아마 《해동지도》는 공주가 공산으로 강등되었을 당시에 제작되었고, 《광여도》는 다시 공주로 회복되었을 때 《해동지도》를 필사했을 가능성이 높다. 본 지도는 지도 부분의 경계 표시는 《광여도》를 따르면서 주기 부분에서는 《해동지도》를 참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웅천현(熊川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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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웅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는 가로(동서)가 길게 그려져 있는 반면에 본 지도는 세로(남북)가 길게 그려져 있다. 웅천현의 실제 모습은 동서가 남북보다 훨씬 길기 때문에 《해동지도》가 사실에 가깝다. 남북이 길어지고, 읍성을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지만 하천의 유로는 거의 변화가 없다. 그러나 해안선과 섬은 상대적으로 단순하게 표현되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본 지도가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은 종이 위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크기가 작기 때문에 《해동지도》에 자세하게 묘사된 해안선과 섬을 그대로 옮기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해동지도》에 어느 정도 위치가 고려되어 표시된 섬이 본 지도에서는 대략적인 위치만 알 수 있게 하였고, 섬의 명칭이 생략된 것도 여러 개 있다. 지명의 표시 역시 《해동지도》보다 본 지도가 훨씬 소략하게 처리되었다. 面의 경우 《해동지도》에 없던 邑內面이 추가되었으나 가장 서쪽에 있었던 下西面이 생략되어 있다. 또한 전통시대의 지도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군사 정보 역시 오른쪽의 淸川鎭 아래쪽에 安骨鎭이, 지도의 왼쪽에 豊德鎭이 생략되었다. 오른쪽 아래의 天城保는 天城堡의 誤記이다. 이런 사실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기본으로 하면서 읍치는 다른 자료를 일부 참고하여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가 꼼꼼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여러 곳에서 생략이나 오기 등의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기봉)

  • 의주부(義州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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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의주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의주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는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지만 본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또한 《해동지도》는 남북을 훨씬 길게 그렸지만 본 지도에서는 남북과 동서를 비슷하게 그렸다. 하천의 유로는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지명이 많이 생략되고 잘못 필사된 것이 많다. 《해동지도》에는 문자로만 적혀 있던 面이 본 지도에는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로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주기에는 21개의 면이 기록되어 있지만 지도에는 단지 12개만 표시되어 있다. 또한 아래쪽 枇項面과 光化面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도 않다. 《해동지도》에는 21개의 면이 모두 표시되어 있다는 점과 비교하면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필사 과정에서 많이 빠뜨렸다고 볼 수 있다. 《광여도》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지 않은 면이 없다. 그러나 본 지도에 彌羅山面 1개만 추가하여 13개만이 표기되어 있어 역시 꼼꼼하게 검토하며 필사한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아래쪽의 於骨山은 松骨山을, 獜川鎭은 獜山鎭을 잘못 옮긴 것이며, 이런 지명은 이외에도 많다. 《광여도》에서는 본 지도에서 잘못 옮긴 것을 상당히 교정해 놓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정보가 추가된 곳은 읍치이다. 건물수가 늘어났고, 鄕社堂이란 지명이 추가되어 있다. 《광여도》에서는 읍치를 상대적으로 더 크게 묘사하였으며, 鄕射堂으로 바뀌어 있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했지만 여러 면에서 틀린 것이 많으며, 《광여도》는 본 지도의 문제점을 일부 개선했지만 모두 교정한 것은 아니다. (이기봉)

  • 평해군(平海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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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평해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한자가 다른 경우는 위쪽의 懸鍾山이 《광여도》에 縣鍾山으로, 왼쪽 아래의 元水項은 元水頂으로 되어 있다.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여 《광여도》와 본 지도의 저본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해동지도》의 평해군 지도에는 懸鍾山과 元水嶺으로 나온다. 본 지도의 것이 《해동지도》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읍치 오른쪽에 있는 北下里面은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나오지만 주기에는 모두 下里面으로 나온다. 읍치를 다른 지역보다 확대해서 그렸기 때문에 일부 오해될 만한 곳이 발생했다. 읍치 아래쪽의 하천은 현재의 남대천이다. 그런데 왼쪽 아래의 元水項에서 발원되는 하천의 길이가 溫井에서 발원되는 하천과 길이가 거의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아주 짧게 표현되어 있다. 또한 南面은 남대천과 상관없는 위치인 箭竹山 부근에 있어야 한다. 고을의 모양이 사각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각형으로 그려 몇 가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측면도 있다. 위쪽의 金壯山부터 오른쪽 바닷가까지 蔚珍과의 경계선은 동서방향이 아니라 실제로는 동북 방향으로 되어 있다. 이에 따라 近北面과 遠北面 지역은 북쪽으로 갈수록 동서의 폭이 좁아지는데 본 지도에는 그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런 오류는 김정호의 《동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이기봉)

  • 지평현(砥平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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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지평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寺가 菴으로, 峙가 峴으로 바뀐 것이 몇 개 있다. 왼쪽 중간 부분에는 水路가 표시되어 있는데 이것은 水破를 잘못 옮긴 것이다. 그 아래쪽에 水源이라 적혀 있는 것은 《광여도》에 水原으로 적혀 있는데, 원래는 水破로 적어야 한다. 왼쪽 중간에 水破라 적힌 곳에 《광여도》에 있던 작은 하천 하나가 생략되어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지평현 지도는 방향과 표현 양식 및 일부의 내용에서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본 지도 아래쪽에 李判府事墓가 《광여도》에는 白鵶谷澤堂墓라고 적혀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적혀 있다. 《해동지도》에서는 본 지도의 왼쪽 하천이 읍치 부근의 하천과 연결된 것처럼 그려져 있는데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는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 충주목(忠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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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충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충주목 지도는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거의 동일하여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본 지도는 《광여도》에 비해 아래쪽 法王面 부근에 金木洞面과 省洞面, 그 위쪽에 龍安倉 등이 생략되어 있다. 그 왼쪽의 卜城洞面과 왼쪽 위의 嚴政面은 《광여도》와 한자가 다르며,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읍치 오른쪽 위에 있는 毛女峴과 心項山烽은 《광여도》에는 없고, 《해동지도》에 있는 것이다. 결국 전체적인 구도는 《광여도》의 것과 동일하지만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해동지도》를 참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동쪽의 높은 산지를 등지고 들어선 읍치의 좌 향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위쪽에서 아래로 흘러가는 하천이 남한강 본류이다. 읍치 아래쪽에서 합류하는 하천이 남한강의 지류인 달천이다. 《광여도》와 《해동지도》에 하천을 모두 2개의 실선으로 표현한 반면 본 지도에서는 남한강은 2개의 실선으로, 그 지류는 1개의 실선으로 그려 구분해주고 있다. 竹山界에서 흘러와 남한강의 山溪津에서 합류되는 하천은 현재의 청미천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청미천이 실제로는 竹山과 陰竹 등의 경계를 타고 흐르기 때문에 분명하지는 않다. 陰竹界과 竹山界 및 鎭川界 부근의 여러 면은 남한강의 지류인 청미천과 금강의 지류인 미호천 상류에 해당되나 이 지도만으로는 그러한 사실을 확인하기 어렵다. 읍치가 다른 지역에 비해 대축척으로 그려진 전형적인 회화식 군현지도이기 때문에 거리와 방향 등에서 많은 오차를 보이고 있다. (이기봉)

  • 진안현(鎭安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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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진안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가운데에 있는 斗美面이 《광여도》에 斗尾面으로 다르게 적혀 있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주기에는 《광여도》처럼 기록되어 있어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소리가 같은 한자로 바꾼 것으로 생각된다. 오른쪽의 하천이 현재의 금강 본류이며, 왼쪽 아래의 하천이 섬진강의 최상류에 해당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진안현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며,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가장 큰 차이는 오른쪽의 금강에 대한 표현에서 나타난다. 《해동지도》에는 금강이 마치 長水界 부근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그러나 《광여도》와 본 지도처럼 장수계 너머에서 흘러오는 것이 실제와 부합된다. 따라서 《광여도》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애매한 부분을 실제에 더 부합되도록 고친 것으로 생각된다. 오른쪽 天方山 부근 하천의 발원지가 아주 가까운 것처럼 표현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용담의 경계를 넘어 무주 방면에서 흘러온다. 이 점은 《해동지도》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그려져 있어 실제에 맞게 교정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여지도서』의 진안현 지도도 금강의 유로 표현에서는 《광여도》 및 본 지도와 동일하다. 본 지도의 가장 큰 단점은 금강이 진안현을 지나가는 부분이 극히 적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동쪽에 남북으로 길게 흐르는 것처럼 오해하게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 부분이 실제에 맞게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 의령현(宜寧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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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의령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상당히 급조한 느낌을 주는 지도이다. 본 지도에서는 《해동지도》에서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을 그려 넣었다. 그러나 읍치 오른쪽의 豊德面에 적황색 사각형을, 왼쪽의 大谷面과 上井面에는 색이 없는 사각형을 그려 넣었다. 왼쪽 위의 七谷面은 글자의 순서도 바뀌어 있고, 노란색 사각형도 아니다. 게다가 오른쪽 부분에 禾谷面과 田太面이 생략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면의 명칭이 주기에는 나오는 것을 통해 볼 때 빠르게 필사하는 과정에서 필사 시에 빠뜨린 것으로 생각된다. 읍치에 있는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하천의 흐름도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 위에서 낙동강이 내려오며, 왼쪽 아래에서 흘러와 낙동강에 합류하는 하천이 현재의 남강이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다보니까 실제와 다른 왜곡이 발생하였다. 왼쪽 위의 毛兒面은 서쪽으로 튀어져 나가 있는 부분이다. 이를 사각형에 맞추려다 보니까 이곳에서 흘러오는 현재의 남산천이 실제로는 거의 東流하는데, 본 지도에는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그려지게 되었다. 德谷面 부분도 실제로는 남쪽으로 약간 튀어나가 있다. 이것을 사각형에 맞추어 그리다보니까 이곳에서 흐르는 하천이 北流하는데도 마치 西流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이산부(理山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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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이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이산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理山은 1724년(경종 4)에 郡에서 府로 승격된다. 《해동지도》와 본 지도의 명칭은 이산부로 되어 있어 내용적으로 1724년 이후의 상황을 반영했을 가능성이 있다. 《광여도》에는 이산군으로 되어 있어 고을 명칭만으로는 1724년 이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지도는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아래쪽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흘러가는 하천이 현재의 압록강이다. 위쪽(남)에서 발원하여 압록강으로 흘러가는 하천이 현재의 충만강이다. 본 지도는 《해동지도》와 비교하여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본 지도에서는 이산부의 읍치가 어디인지 확인하기 어렵다. 《해동지도》에는 아래쪽 가장 왼쪽의 성곽에 理山府의 명칭이 적혀 있다. 또한 《해동지도》에 위쪽의 車岺鎭 오른쪽에 표기된 車嶺面이 주기에는 나오지만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이런 문제점을 통해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두 가지의 문제점은 《광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본 지도와 《광여도》 중 어느 것이 필사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나중의 필사 역시 꼼꼼하게 검토한 것이 아님도 이해할 수 있다. 오른쪽 아래에 적혀 있는 東寧府와 元刺山城에 대한 설명은 《해동지도》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해동지도》의 이 부분이 새로 오려붙인 것이기 때문에 원래부터 없었던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기봉)

  • 평해군(平海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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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평해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한자가 다른 경우는 위쪽의 懸鍾山이 《광여도》에 縣鍾山으로, 왼쪽 아래의 元水項은 元水頂으로 되어 있다.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여 《광여도》와 본 지도의 저본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해동지도》의 평해군 지도에는 懸鍾山과 元水嶺으로 나온다. 본 지도의 것이 《해동지도》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읍치 오른쪽에 있는 北下里面은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나오지만 주기에는 모두 下里面으로 나온다. 읍치를 다른 지역보다 확대해서 그렸기 때문에 일부 오해될 만한 곳이 발생했다. 읍치 아래쪽의 하천은 현재의 남대천이다. 그런데 왼쪽 아래의 元水項에서 발원되는 하천의 길이가 溫井에서 발원되는 하천과 길이가 거의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아주 짧게 표현되어 있다. 또한 南面은 남대천과 상관없는 위치인 箭竹山 부근에 있어야 한다. 고을의 모양이 사각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각형으로 그려 몇 가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측면도 있다. 위쪽의 金壯山부터 오른쪽 바닷가까지 蔚珍과의 경계선은 동서방향이 아니라 실제로는 동북 방향으로 되어 있다. 이에 따라 近北面과 遠北面 지역은 북쪽으로 갈수록 동서의 폭이 좁아지는데 본 지도에는 그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런 오류는 김정호의 《동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이기봉)

  • 진위현(振威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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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진위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 왼쪽의 東越峴이 《광여도》에 東越峙로 되어 있고, 아래쪽의 葛院酒幕의 위치는 《광여도》에 약간 위쪽에 표시되어 있다. 또한 稷山界 부분이 《광여도》에는 바다로 되어 있지 않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진위현 지도도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와 《광여도》의 지도는 《해동지도》를 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일부 지명에서 잘못된 것이 발견된다. 위쪽의 舞鶴山은 舞峰山을, 읍치 왼쪽의 皇峴은 白土峴을, 東越縣은 車越峴을 잘못 전사한 것이다. 각 지역의 축척이 다르기 때문에 방향이나 거리가 정확하지 않다. 《해동지도》에서는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다른 고을과 경계선에 읍치로부터의 거리를 적어놓았다. 예를 들어 아래쪽의 陽城界까지는 10리이고, 稷山界까지는 30리로 되어 있다. 그런데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이러한 거리 기록을 삭제했기 때문에 실질적인 거리 상황을 거의 이해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다만 주기에 각 고을 경계까지의 방향과 거리가 적혀 있어 참조하면서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이기봉)

  • 충주목(忠州牧)(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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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충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충주목 지도는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거의 동일하여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본 지도는 《광여도》에 비해 아래쪽 法王面 부근에 金木洞面과 省洞面, 그 위쪽에 龍安倉 등이 생략되어 있다. 그 왼쪽의 卜城洞面과 왼쪽 위의 嚴政面은 《광여도》와 한자가 다르며,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읍치 오른쪽 위에 있는 毛女峴과 心項山烽은 《광여도》에는 없고, 《해동지도》에 있는 것이다. 결국 전체적인 구도는 《광여도》의 것과 동일하지만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해동지도》를 참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동쪽의 높은 산지를 등지고 들어선 읍치의 좌 향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위쪽에서 아래로 흘러가는 하천이 남한강 본류이다. 읍치 아래쪽에서 합류하는 하천이 남한강의 지류인 달천이다. 《광여도》와 《해동지도》에 하천을 모두 2개의 실선으로 표현한 반면 본 지도에서는 남한강은 2개의 실선으로, 그 지류는 1개의 실선으로 그려 구분해주고 있다. 竹山界에서 흘러와 남한강의 山溪津에서 합류되는 하천은 현재의 청미천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청미천이 실제로는 竹山과 陰竹 등의 경계를 타고 흐르기 때문에 분명하지는 않다. 陰竹界과 竹山界 및 鎭川界 부근의 여러 면은 남한강의 지류인 청미천과 금강의 지류인 미호천 상류에 해당되나 이 지도만으로는 그러한 사실을 확인하기 어렵다. 읍치가 다른 지역에 비해 대축척으로 그려진 전형적인 회화식 군현지도이기 때문에 거리와 방향 등에서 많은 오차를 보이고 있다. (이기봉)

  • 진안현(鎭安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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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진안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가운데에 있는 斗美面이 《광여도》에 斗尾面으로 다르게 적혀 있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주기에는 《광여도》처럼 기록되어 있어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소리가 같은 한자로 바꾼 것으로 생각된다. 오른쪽의 하천이 현재의 금강 본류이며, 왼쪽 아래의 하천이 섬진강의 최상류에 해당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진안현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며,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가장 큰 차이는 오른쪽의 금강에 대한 표현에서 나타난다. 《해동지도》에는 금강이 마치 長水界 부근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그러나 《광여도》와 본 지도처럼 장수계 너머에서 흘러오는 것이 실제와 부합된다. 따라서 《광여도》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애매한 부분을 실제에 더 부합되도록 고친 것으로 생각된다. 오른쪽 天方山 부근 하천의 발원지가 아주 가까운 것처럼 표현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용담의 경계를 넘어 무주 방면에서 흘러온다. 이 점은 《해동지도》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그려져 있어 실제에 맞게 교정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여지도서』의 진안현 지도도 금강의 유로 표현에서는 《광여도》 및 본 지도와 동일하다. 본 지도의 가장 큰 단점은 금강이 진안현을 지나가는 부분이 극히 적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동쪽에 남북으로 길게 흐르는 것처럼 오해하게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 부분이 실제에 맞게 교정되어 있다. (이기봉)

  • 의령현(宜寧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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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의령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상당히 급조한 느낌을 주는 지도이다. 본 지도에서는 《해동지도》에서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을 그려 넣었다. 그러나 읍치 오른쪽의 豊德面에 적황색 사각형을, 왼쪽의 大谷面과 上井面에는 색이 없는 사각형을 그려 넣었다. 왼쪽 위의 七谷面은 글자의 순서도 바뀌어 있고, 노란색 사각형도 아니다. 게다가 오른쪽 부분에 禾谷面과 田太面이 생략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면의 명칭이 주기에는 나오는 것을 통해 볼 때 빠르게 필사하는 과정에서 필사 시에 빠뜨린 것으로 생각된다. 읍치에 있는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하천의 흐름도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 위에서 낙동강이 내려오며, 왼쪽 아래에서 흘러와 낙동강에 합류하는 하천이 현재의 남강이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다보니까 실제와 다른 왜곡이 발생하였다. 왼쪽 위의 毛兒面은 서쪽으로 튀어져 나가 있는 부분이다. 이를 사각형에 맞추려다 보니까 이곳에서 흘러오는 현재의 남산천이 실제로는 거의 東流하는데, 본 지도에는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그려지게 되었다. 德谷面 부분도 실제로는 남쪽으로 약간 튀어나가 있다. 이것을 사각형에 맞추어 그리다보니까 이곳에서 흐르는 하천이 北流하는데도 마치 西流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이산부(理山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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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이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이산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理山은 1724년(경종 4)에 郡에서 府로 승격된다. 《해동지도》와 본 지도의 명칭은 이산부로 되어 있어 내용적으로 1724년 이후의 상황을 반영했을 가능성이 있다. 《광여도》에는 이산군으로 되어 있어 고을 명칭만으로는 1724년 이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지도는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아래쪽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흘러가는 하천이 현재의 압록강이다. 위쪽(남)에서 발원하여 압록강으로 흘러가는 하천이 현재의 충만강이다. 본 지도는 《해동지도》와 비교하여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본 지도에서는 이산부의 읍치가 어디인지 확인하기 어렵다. 《해동지도》에는 아래쪽 가장 왼쪽의 성곽에 理山府의 명칭이 적혀 있다. 또한 《해동지도》에 위쪽의 車岺鎭 오른쪽에 표기된 車嶺面이 주기에는 나오지만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이런 문제점을 통해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두 가지의 문제점은 《광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본 지도와 《광여도》 중 어느 것이 필사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나중의 필사 역시 꼼꼼하게 검토한 것이 아님도 이해할 수 있다. 오른쪽 아래에 적혀 있는 東寧府와 元刺山城에 대한 설명은 《해동지도》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해동지도》의 이 부분이 새로 오려붙인 것이기 때문에 원래부터 없었던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기봉)

  •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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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위현(振威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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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진위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 왼쪽의 東越峴이 《광여도》에 東越峙로 되어 있고, 아래쪽의 葛院酒幕의 위치는 《광여도》에 약간 위쪽에 표시되어 있다. 또한 稷山界 부분이 《광여도》에는 바다로 되어 있지 않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진위현 지도도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와 《광여도》의 지도는 《해동지도》를 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일부 지명에서 잘못된 것이 발견된다. 위쪽의 舞鶴山은 舞峰山을, 읍치 왼쪽의 皇峴은 白土峴을, 東越縣은 車越峴을 잘못 전사한 것이다. 각 지역의 축척이 다르기 때문에 방향이나 거리가 정확하지 않다. 《해동지도》에서는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다른 고을과 경계선에 읍치로부터의 거리를 적어놓았다. 예를 들어 아래쪽의 陽城界까지는 10리이고, 稷山界까지는 30리로 되어 있다. 그런데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이러한 거리 기록을 삭제했기 때문에 실질적인 거리 상황을 거의 이해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다만 주기에 각 고을 경계까지의 방향과 거리가 적혀 있어 참조하면서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이기봉)

  • 태안군(泰安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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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태안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북쪽의 北面과 牧場을 하나의 사각형 안에 표시한 점, 아래쪽의 安眠島에 ‘人居四百餘戶’라는 문구가 사라진 정도이다. 태안군은 바다가 육지 쪽으로 쑥 들어온 灣이 아주 많은 곳이다. 지도에도 이와 같은 사실이 실제와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태안군이 마치 섬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 이유는 동쪽으로 연결된 瑞山界 부분까지 바다처럼 표현했기 때문이다. 이곳이 비록 좁은 地峽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육지로 연결되어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태안군 지도도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하다. 이 《해동지도》에는 바다는 푸른색으로, 육지는 황색으로 표현하였고, 태안군이 서산군과 육지로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그렸다. 《광여도》와 본 지도, 특히 본 지도로 옮기면서 태안군 이외 지역을 모두 동일한 색으로 표현하여 오해할 수 있는 소지가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해동지도》와의 차이점 중 하나는 해안가에 있는 여러 섬들이 생략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섬들은 海運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광여도》와 본 지도의 제작자들은 그런 사실을 간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왼쪽 安興鎭에는 섬인 新鎭(島)가 마치 육지와 연결된 것처럼 표시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아 《광여도》와 본 지도의 제작자가 잘못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안흥진과 신진도 사이는 밀물과 썰물 때 물살이 빠르고 암초가 많아 선박들이 자주 난파하는 곳으로 유명하다.(이기봉)

  • 창평현(昌平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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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창평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왼쪽에 노란색 사각형만 그려져 있을 뿐 면의 명칭이 적혀 있지 않다. 《광여도》에는 이곳에 南面이 기록되어 있다. 주기에 적혀 있는 西面이 표시되어 있지 않으며, 《광여도》에서도 이 점은 마찬가지이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창평현 지도에는 남면과 서면이 모두 표시되어 있다. 그러면 남면의 위치가 《광여도》와 다르며, 서면은 읍치 서쪽에 표시되어 있다. 현재의 위치와 비교해 보면 《해동지도》의 것이 대체적으로 타당하다. 그러나 《해동지도》 역시 정확하다고 볼 수 없다. 이와 같은 오류가 범해진 이유는 하천의 유로에 대한 표현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맨 위쪽의 하천이 현재의 영산강 본류이다. 읍치를 지나 영산강에 합류되는 하천은 현재 증암천으로 불리고 있다. 그런데 창평현의 남쪽은 보성강의 지류인 동복천의 최상류에 걸쳐 있다. 그러나 《해동지도》에는 보성강의 최상류가 그려져 있지 않다. 다만 남쪽에 하천이 표시되지 않은 상당한 면적이 표현되어 있다. 남면의 일부가 바로 남쪽의 동복천 최상류 지역에 있었다. 《광여도》와 본 지도는 《해동지도》에 있었던 남쪽의 동복천 최상류 지역 자체를 생략하거나 축소해 버렸다. 이로 인해 남면의 일부가 지도에서는 사라져 버린 것과 마찬가지가 된 것이다. 이것이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 남면과 서면의 표시가 《해동지도》와 달라진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창평현지도 역시 회화식으로 그렸지만 이 부분이 실제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위쪽의 長北面, 長南面, 東西面, 甲鄕面 등은 담양군의 경계를 넘어가 현재의 담양군 수북면과 대전면의 일부에 있는 월경지였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그와 같은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 역시 ‘1872년 지방지도’의 창평현 지도에는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여지도서』의 창평현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여 상호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의성현(義城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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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의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는 첫째,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둘째, 세로로 긴 사각형의 모양이 더 정확하게 맞도록 그렸다. 이 과정에서 산줄기나 하천의 흐름이 약간씩 달라졌다. 예를 들어 《해동지도》에 읍치 남쪽 부분에 작게 그려져 있던 하천이 본 지도에서는 사각형 모양에 맞추기 위해 왼쪽 아래로 옮겨져 있다. 이 지역은 현재의 금성면 도경리 지역에 있는 위천 지류의 최상류로서 《해동지도》가 본 지도보다 사실에 가깝게 그렸다. 이런 변화는 있지만 하천의 흐름은 《해동지도》와 대체적으로 동일하게 되어 있다. 다만 왼쪽 위의 하천 끝이 《해동지도》에는 比安界로부터 들어오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비안과의 경계선이 발원지인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 지역은 현재의 안평면 금곡리, 하령리 일대로서 《해동지도》의 표현이 사실에 가깝다. 읍치에 있는 건물 몇 개를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왼쪽 위의 安平倉과 아래쪽의 靑路驛은 《해동지도》에 平安倉과 靑雲驛으로 되어 있던 것을 교정한 것이다. 다른 자료에 입각해 보면 본 지도가 올바르기 때문에 본 지도의 필사 시에 다른 자료를 통해 수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읍치 오른쪽의 忠烈祠에는 《해동지도》의 내용을 잘못 옮긴 것이 분명한 내용도 있다. 본 지도에는 ‘金洪術代歷祖’와 비슷하게 적혀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金洪術代麗祖死’라고 되어 있다. 다른 자료와 비교해 보면 이 부분의 내용은 ‘김홍술, 고려의 태조를 대신하여 죽었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해동지도》가 올바르며, 본 지도의 필사 시 이 문장의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 왼쪽에는 驛에 표시하는 황색 사각형만 그려져 있고, 글씨는 적혀 있지 않은 것이 보인다. 《해동지도》에는 이곳에 朝陽舘이라고 적혀 있는데, 東軒 건물의 명칭이었다. 그런데 驛을 舘이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많다. 본 지도의 필사자도 조양관을 역으로 생각하여 황색 사각형을 그렸다가 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명칭은 적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한다. (이기봉)

  • 자산부(慈山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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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자산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자산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는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지만 《해동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또한 《해동지도》는 남북보다 동서를 길게 그렸고, 본 지도는 반대로 남북을 동서보다 길게 그렸다. 이에 따라 《해동지도》에 동서로 길게 그려진 하천이 본 지도에서는 남북으로 길게 그려지게 되었다. 자산부의 실제 모습은 본 지도처럼 남북이 더 긴 형태를 취하고 있다. 《광여도》는 본 지도와 거의 동일하게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의 정보가 자세해졌지만 慈母城의 정보는 더 소략해졌다. 읍치 이외의 정보는 모두 《해동지도》에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읍치 부분만 다른 자료를 참조한 것으로 생각된다. 필사 과정에서 잘못 필사된 곳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위쪽의 城池洞은 《해동지도》에 城洞面으로 나온다. 주기에 나오는 面 중에서 본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것은 성동면 이외에도 五灘面과 獜洞面이 있다. 오탄면은 《해동지도》에 표시되어 있어 본 지도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인탄면은 《해동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고, 주기에도 初境과 終境의 정보만 나온다. 따라서 방향이 있는 다른 자료를 참조하지 않는 한 지도 위에 표기할 수 없다. 面의 표기 내용은 《광여도》에도 본 지도와 동일하게 나오고 있다. (이기봉)

  • 함흥부(咸興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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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함흥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해동지도》의 함흥부 지도를 필사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동일하게 필사한 것이 아니라 표현 양식이나 기호, 일부 지명 등에서 다르게 되어 있다. 가장 큰 변화 중의 하나는 도로가 생략되었다. 이로 인해 본 지도에는 오해도 발생하고 있다. 오른쪽에 표현된 咸原驛은 함흥가 아니라 동쪽의 홍원현에 있는 것이다. 《해동지도》를 보면 도로의 끝에 함원역이 기록되어 있고, 이것은 함원역으로 연결된다는 의미이다. 본 지도의 필사 시 이런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함원역에 驛站을 나타내는 노란색 사각형을 그려 넣었다. 주기에는 나머지 2개의 驛站은 나오지만 함원역이 나오고 있지 않아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했다면 함원역이 함흥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표현되어 있어 《광여도》의 필사 역시 꼼꼼하게 검토한 것으로 볼 수 없다. 본 지도책의 함경도 대부분의 군현 지도에서 面에 해당되는 社에 대해 특별한 기호를 표시하지는 않았다. 반면에 본 지도에서는 적황색 테두리의 무색 사각형을 그려 넣었는데, 《해동지도》에 社가 대부분 적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부분이다. 그러나 사각형이 그려지지 않은 社도 보이고 있어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역시 꼼꼼하게 검토하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광여도》에서는 社에 대한 기호를 사용하지 않았다. 함경도의 다른 군현에서 대부분 읍치의 성곽 유무를 표시했음에 반해 본 지도에서는 衙라는 문자와 건물 표시만 한 점도 특이한 부분이다. 또한 《해동지도》에 풍수적인 명당 형국으로 표현한 陵도 본 지도에서는 단지 글씨만 적어 넣었다.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도 陵園을 풍수적 명당 형국으로 표현했다는 점과 비교해 보면 역시 본 지도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된 것은 牧場을 제외하면 군사기지인 鎭堡이다. 남쪽으로 흘러 동해로 들어가는 하천은 현재의 성천강 유역이다. 하구에 형성된 삼각주의 형태까지 자세하게 표현한 편이다. 위쪽의 하천은 현재 장진강이라고 부르는 압록강의 지류이다. 이 지역에는 1667년(현종 8)에 堡가 설치되며, 1785년(정조 9)에 鎭으로 승격되고, 1787년(정조 11)에는 府가 된다. 그러나 본 지도는 아직 장진부가 형성되기 이전이므로 1787년 이전의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지도책의 삼수부 지도에도 이곳이 그려져 있지만 장진부가 설치되기 이전까지는 함흥부 지역이었다. 일반적인 회화식 지도와 달리 읍치를 확대하지 않았고, 고을 전체의 모습이나 유로 등이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통진부(通津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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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통진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일부 부분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왼쪽 위에 표시된 月串 留島는 《광여도》에는 기록이 있지 않다. 오른쪽 아래의 桑串面과 半里村面에 다른 면처럼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 않은데 《광여도》에는 제대로 표시되어 있다. 지도 아래쪽의 浮來島 위쪽의 해변에 《광여도》에는 표시된 德津이란 문자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본 지도는 통진부의 대략적인 모습만을 그렸을 뿐 실제와 다른 부분이 많다. 위쪽에 있는 하천은 한강이 임진강과 만나 강화도 북쪽으로 빠져나가는 부분이다. 보통 이곳의 한강 명칭을 祖江이라고 기록하였는데 지도에는 阻江이라고 적혀 있다. 한강의 유로는 이 지도와 달리 실제로는 이 고을의 동쪽을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다 다시 서쪽으로 빠져나간다. 이 고을의 서쪽에는 지도에 江都로 표시된 江華府와의 사이에 鹽河라는 좁은 물길이 있었다. 아래쪽에 大海라고 쓰여 있는 부분의 대부분은 실제로는 서쪽에 있어야 한다. 실제와 부합하려면 왼쪽 위의 留島로부터 項山島까지 일직선으로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왜곡 때문에 읍치로부터 각 지점까지의 방향과 거리가 많이 틀린다. 客舍가 표시된 읍치는 현재의 김포군 월곶면 군하리 일대에 있었다. (이기봉)

  • 태안군(泰安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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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태안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북쪽의 北面과 牧場을 하나의 사각형 안에 표시한 점, 아래쪽의 安眠島에 ‘人居四百餘戶’라는 문구가 사라진 정도이다. 태안군은 바다가 육지 쪽으로 쑥 들어온 灣이 아주 많은 곳이다. 지도에도 이와 같은 사실이 실제와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태안군이 마치 섬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 이유는 동쪽으로 연결된 瑞山界 부분까지 바다처럼 표현했기 때문이다. 이곳이 비록 좁은 地峽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육지로 연결되어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태안군 지도도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하다. 이 《해동지도》에는 바다는 푸른색으로, 육지는 황색으로 표현하였고, 태안군이 서산군과 육지로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그렸다. 《광여도》와 본 지도, 특히 본 지도로 옮기면서 태안군 이외 지역을 모두 동일한 색으로 표현하여 오해할 수 있는 소지가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해동지도》와의 차이점 중 하나는 해안가에 있는 여러 섬들이 생략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섬들은 海運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광여도》와 본 지도의 제작자들은 그런 사실을 간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왼쪽 安興鎭에는 섬인 新鎭(島)가 마치 육지와 연결된 것처럼 표시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아 《광여도》와 본 지도의 제작자가 잘못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안흥진과 신진도 사이는 밀물과 썰물 때 물살이 빠르고 암초가 많아 선박들이 자주 난파하는 곳으로 유명하다.(이기봉)

  • 창평현(昌平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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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창평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왼쪽에 노란색 사각형만 그려져 있을 뿐 면의 명칭이 적혀 있지 않다. 《광여도》에는 이곳에 南面이 기록되어 있다. 주기에 적혀 있는 西面이 표시되어 있지 않으며, 《광여도》에서도 이 점은 마찬가지이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창평현 지도에는 남면과 서면이 모두 표시되어 있다. 그러면 남면의 위치가 《광여도》와 다르며, 서면은 읍치 서쪽에 표시되어 있다. 현재의 위치와 비교해 보면 《해동지도》의 것이 대체적으로 타당하다. 그러나 《해동지도》 역시 정확하다고 볼 수 없다. 이와 같은 오류가 범해진 이유는 하천의 유로에 대한 표현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맨 위쪽의 하천이 현재의 영산강 본류이다. 읍치를 지나 영산강에 합류되는 하천은 현재 증암천으로 불리고 있다. 그런데 창평현의 남쪽은 보성강의 지류인 동복천의 최상류에 걸쳐 있다. 그러나 《해동지도》에는 보성강의 최상류가 그려져 있지 않다. 다만 남쪽에 하천이 표시되지 않은 상당한 면적이 표현되어 있다. 남면의 일부가 바로 남쪽의 동복천 최상류 지역에 있었다. 《광여도》와 본 지도는 《해동지도》에 있었던 남쪽의 동복천 최상류 지역 자체를 생략하거나 축소해 버렸다. 이로 인해 남면의 일부가 지도에서는 사라져 버린 것과 마찬가지가 된 것이다. 이것이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 남면과 서면의 표시가 《해동지도》와 달라진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창평현지도 역시 회화식으로 그렸지만 이 부분이 실제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위쪽의 長北面, 長南面, 東西面, 甲鄕面 등은 담양군의 경계를 넘어가 현재의 담양군 수북면과 대전면의 일부에 있는 월경지였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그와 같은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 역시 ‘1872년 지방지도’의 창평현 지도에는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여지도서』의 창평현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여 상호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의성현(義城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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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의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는 첫째,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둘째, 세로로 긴 사각형의 모양이 더 정확하게 맞도록 그렸다. 이 과정에서 산줄기나 하천의 흐름이 약간씩 달라졌다. 예를 들어 《해동지도》에 읍치 남쪽 부분에 작게 그려져 있던 하천이 본 지도에서는 사각형 모양에 맞추기 위해 왼쪽 아래로 옮겨져 있다. 이 지역은 현재의 금성면 도경리 지역에 있는 위천 지류의 최상류로서 《해동지도》가 본 지도보다 사실에 가깝게 그렸다. 이런 변화는 있지만 하천의 흐름은 《해동지도》와 대체적으로 동일하게 되어 있다. 다만 왼쪽 위의 하천 끝이 《해동지도》에는 比安界로부터 들어오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비안과의 경계선이 발원지인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 지역은 현재의 안평면 금곡리, 하령리 일대로서 《해동지도》의 표현이 사실에 가깝다. 읍치에 있는 건물 몇 개를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왼쪽 위의 安平倉과 아래쪽의 靑路驛은 《해동지도》에 平安倉과 靑雲驛으로 되어 있던 것을 교정한 것이다. 다른 자료에 입각해 보면 본 지도가 올바르기 때문에 본 지도의 필사 시에 다른 자료를 통해 수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읍치 오른쪽의 忠烈祠에는 《해동지도》의 내용을 잘못 옮긴 것이 분명한 내용도 있다. 본 지도에는 ‘金洪術代歷祖’와 비슷하게 적혀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金洪術代麗祖死’라고 되어 있다. 다른 자료와 비교해 보면 이 부분의 내용은 ‘김홍술, 고려의 태조를 대신하여 죽었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해동지도》가 올바르며, 본 지도의 필사 시 이 문장의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 왼쪽에는 驛에 표시하는 황색 사각형만 그려져 있고, 글씨는 적혀 있지 않은 것이 보인다. 《해동지도》에는 이곳에 朝陽舘이라고 적혀 있는데, 東軒 건물의 명칭이었다. 그런데 驛을 舘이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많다. 본 지도의 필사자도 조양관을 역으로 생각하여 황색 사각형을 그렸다가 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명칭은 적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한다. (이기봉)

  • 자산부(慈山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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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자산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자산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는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지만 《해동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또한 《해동지도》는 남북보다 동서를 길게 그렸고, 본 지도는 반대로 남북을 동서보다 길게 그렸다. 이에 따라 《해동지도》에 동서로 길게 그려진 하천이 본 지도에서는 남북으로 길게 그려지게 되었다. 자산부의 실제 모습은 본 지도처럼 남북이 더 긴 형태를 취하고 있다. 《광여도》는 본 지도와 거의 동일하게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의 정보가 자세해졌지만 慈母城의 정보는 더 소략해졌다. 읍치 이외의 정보는 모두 《해동지도》에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읍치 부분만 다른 자료를 참조한 것으로 생각된다. 필사 과정에서 잘못 필사된 곳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위쪽의 城池洞은 《해동지도》에 城洞面으로 나온다. 주기에 나오는 面 중에서 본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것은 성동면 이외에도 五灘面과 獜洞面이 있다. 오탄면은 《해동지도》에 표시되어 있어 본 지도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인탄면은 《해동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고, 주기에도 初境과 終境의 정보만 나온다. 따라서 방향이 있는 다른 자료를 참조하지 않는 한 지도 위에 표기할 수 없다. 面의 표기 내용은 《광여도》에도 본 지도와 동일하게 나오고 있다. (이기봉)

  • 함흥부(咸興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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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함흥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해동지도》의 함흥부 지도를 필사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동일하게 필사한 것이 아니라 표현 양식이나 기호, 일부 지명 등에서 다르게 되어 있다. 가장 큰 변화 중의 하나는 도로가 생략되었다. 이로 인해 본 지도에는 오해도 발생하고 있다. 오른쪽에 표현된 咸原驛은 함흥가 아니라 동쪽의 홍원현에 있는 것이다. 《해동지도》를 보면 도로의 끝에 함원역이 기록되어 있고, 이것은 함원역으로 연결된다는 의미이다. 본 지도의 필사 시 이런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함원역에 驛站을 나타내는 노란색 사각형을 그려 넣었다. 주기에는 나머지 2개의 驛站은 나오지만 함원역이 나오고 있지 않아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했다면 함원역이 함흥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표현되어 있어 《광여도》의 필사 역시 꼼꼼하게 검토한 것으로 볼 수 없다. 본 지도책의 함경도 대부분의 군현 지도에서 面에 해당되는 社에 대해 특별한 기호를 표시하지는 않았다. 반면에 본 지도에서는 적황색 테두리의 무색 사각형을 그려 넣었는데, 《해동지도》에 社가 대부분 적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부분이다. 그러나 사각형이 그려지지 않은 社도 보이고 있어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역시 꼼꼼하게 검토하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광여도》에서는 社에 대한 기호를 사용하지 않았다. 함경도의 다른 군현에서 대부분 읍치의 성곽 유무를 표시했음에 반해 본 지도에서는 衙라는 문자와 건물 표시만 한 점도 특이한 부분이다. 또한 《해동지도》에 풍수적인 명당 형국으로 표현한 陵도 본 지도에서는 단지 글씨만 적어 넣었다.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도 陵園을 풍수적 명당 형국으로 표현했다는 점과 비교해 보면 역시 본 지도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된 것은 牧場을 제외하면 군사기지인 鎭堡이다. 남쪽으로 흘러 동해로 들어가는 하천은 현재의 성천강 유역이다. 하구에 형성된 삼각주의 형태까지 자세하게 표현한 편이다. 위쪽의 하천은 현재 장진강이라고 부르는 압록강의 지류이다. 이 지역에는 1667년(현종 8)에 堡가 설치되며, 1785년(정조 9)에 鎭으로 승격되고, 1787년(정조 11)에는 府가 된다. 그러나 본 지도는 아직 장진부가 형성되기 이전이므로 1787년 이전의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지도책의 삼수부 지도에도 이곳이 그려져 있지만 장진부가 설치되기 이전까지는 함흥부 지역이었다. 일반적인 회화식 지도와 달리 읍치를 확대하지 않았고, 고을 전체의 모습이나 유로 등이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통진부(通津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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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통진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일부 부분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왼쪽 위에 표시된 月串 留島는 《광여도》에는 기록이 있지 않다. 오른쪽 아래의 桑串面과 半里村面에 다른 면처럼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 않은데 《광여도》에는 제대로 표시되어 있다. 지도 아래쪽의 浮來島 위쪽의 해변에 《광여도》에는 표시된 德津이란 문자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본 지도는 통진부의 대략적인 모습만을 그렸을 뿐 실제와 다른 부분이 많다. 위쪽에 있는 하천은 한강이 임진강과 만나 강화도 북쪽으로 빠져나가는 부분이다. 보통 이곳의 한강 명칭을 祖江이라고 기록하였는데 지도에는 阻江이라고 적혀 있다. 한강의 유로는 이 지도와 달리 실제로는 이 고을의 동쪽을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다 다시 서쪽으로 빠져나간다. 이 고을의 서쪽에는 지도에 江都로 표시된 江華府와의 사이에 鹽河라는 좁은 물길이 있었다. 아래쪽에 大海라고 쓰여 있는 부분의 대부분은 실제로는 서쪽에 있어야 한다. 실제와 부합하려면 왼쪽 위의 留島로부터 項山島까지 일직선으로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왜곡 때문에 읍치로부터 각 지점까지의 방향과 거리가 많이 틀린다. 客舍가 표시된 읍치는 현재의 김포군 월곶면 군하리 일대에 있었다. (이기봉)

  • 평택현(平澤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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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평택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왼쪽의 土城 위치가 《광여도》에는 西面과 邑內面의 정 가운데 정도에 있다는 정도이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평택현 지도에서는 본 지도처럼 표시되어 있다. 본 지도의 전체적인 구도가 《광여도》와 거의 동일하지만 토성의 위치라는 측면에서는 《해동지도》를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평택현은 현재의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일대에 있었다. 이 지역은 거의 산이 없는 평지에 해당되며, 가장 높은 곳이 지도 위의 土城이 있었던 부용산(34.5m)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는 많은 산줄기가 그려져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평택현 지도도 회화식으로 그렸지만 부용산을 높게 표현한 것 이외에는 산을 거의 그리지 않았다. 본 지도의 작성자는 이러한 평택현의 지형에 대한 인식이 아주 없었거나 아니면 작은 언덕이나 숲에 불과한 것을 산줄기로 인식하여 그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 북쪽을 흐르는 하천이 현재의 안성천 본류이고, 아래쪽의 濁川이 현재의 군계천이다. 안성천의 본류는 오른쪽 振威界 부근의 동쪽에서 흘러오며, 稷山界에서 흘러오는 하천은 성환천이다. 군계천과 성환천 모두 평택현 지역이 발원지가 아니다. 또한 水原界라고 적혀 있는 부분에서 현재의 진위천이 합류되는데 본 지도에서는 그러한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이와 같은 측면들이 가장 사실과 부합되게 그려진 지도 중의 하나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평택 지도이다. 南面과 西面 사이에는 진위현의 월경지인 景陽面이 있었다. 따라서 稷山界가 이곳에 표시되어 있어야 사실에 가깝다. (이기봉)

  • 태인현(泰仁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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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태인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오른쪽 아래의 七宝山은 《광여도》에 七實山으로 되어 있다. 표현 방법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태인현 지도에는 七宝山으로 나온다. 본 지도의 필사 시 《광여도》를 따르면서 《해동지도》를 참조하여 일부 교정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 표시에서는 《해동지도》의 井邑界 왼쪽에 있었던 古阜界가 생략되어 있으며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온다. 오른쪽 위의 淳昌界와 全州界 사이에 任實界가 적혀 있어야 한다. 《광여도》와 《해동지도》 모두 동일하게 적혀 있어 《해동지도》의 제작자가 최초로 오류를 범했고, 이후의 필사 때에 오류를 인식하지 못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읍치 위쪽으로는 《해동지도》에 있었던 瓮池面이 생략되어 있다.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지만 주기에는 옹지면이 적혀 있는 것을 통해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으로 생각된다. 읍치 아래의 하천은 현재의 동진강으로서 동남쪽에서 발원하여 서북쪽으로 흘러간다. 따라서 본 지도는 기본적으로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고 볼 수 있다. 읍치로 들어온 산줄기가 동쪽으로부터 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오른쪽의 山內面 지역은 동진강이 아니라 섬진강의 상류에 해당된다.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고을 전체가 산줄기로 둘러싸인 것처럼 그리기 위해 일부 다른 하천 유역에 속하는 부분을 생략하는 경향이 있다. (이기봉)

  • 의흥현(義興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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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의흥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가 동쪽을 위로 향해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리고 《해동지도》가 동서를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남북을 길게 그렸다. 이런 과정에서 《해동지도》와 본 지도가 약간 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하천의 유로가 약간 길어진 부분을 제외하면 거의 동일하다. 또한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읍치의 司倉과 選勝亭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없는 것도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기본적으로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며, 읍치 부분에서 다른 자료를 약간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다보니까 방향이나 거리 등에서 왜곡 현상이 발생하였다. 고을의 동쪽에서 발원한 현재의 위천은 읍치 남쪽을 흘러 실제로는 서쪽의 軍威界로 빠져나가지만 본 지도에서는 남쪽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 점은 《해동지도》에서도 동일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데, 읍치 서쪽에 있어야 할 牛保里面이 마치 남쪽에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는 것도 마찬가지의 맥략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아래쪽의 縣內面과 缶자가 붙은 면은 현재의 군위군 부계면과 효령면의 일부에 해당된다. 이곳에서 흘러오는 물은 실제로는 軍威의 땅을 지나 위천과 합류된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마치 군위와의 경계선에서 합류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기타 오른쪽의 小首里面에 있는 하천의 상류에는 의성의 땅이 자리잡고 있었지만 본 지도에는 표현되어 있지 않다. (이기봉)

  • 장련현(長連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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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장련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방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장련현 지도를 필사한 것이라고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몇 가지 오류를 범하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의 道里面 왼쪽 부분이 반도 모양으로 되어 있으며, 산줄기도 이어져 있다. 또한 위쪽 松串壇 북쪽으로는 바다로 되어 있으며, 오른쪽 위의 大津 역시 반도로 표현되었다. 《해동지도》의 표현에 약간의 오류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장련현의 실제 모습을 대략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제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의로 표현하면서 장련현의 형태 자체에 대한 파악이 어렵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광여도》에서는 《해동지도》에 있던 道里面 왼쪽의 산줄기와 지명들이 모두 그려져 있다. 그러나 그 왼쪽과 장련현이 바다라는 사실은 수정되지 않았다. 이것을 통해 볼 때 《광여도》의 필사자도 장련현의 실제 모습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지는 않았다고 생각된다. 본 지도에서 생략된 부분을 《해동지도》를 통해 보충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의 것을 그대로 따랐다. 그 밖에 본 지도가 《해동지도》와 달라진 점은 도로가 모두 생략되었고, 문자로만 적혀 있던 面을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통해 표현했다는 점이다. (이기봉)

  • 홍원현(洪原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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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홍원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와 《광여도》는 거의 동일하여 서로 필사 관계에 있다. 또한 두 지도는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홍원현 지도를 필사하고 있다. 그러나 필사 시 《해동지도》의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읍치의 것을 제외하면 驛은 동일한 건물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필사 시 驛이란 문자가 적혀 있는 新恩驛 이외에도 平浦와 咸原 역시 驛이란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와 《광여도》에 이 역들이 전혀 다른 기호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도의 정보라면 지리지를 조금만 찾아봐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필사 시 지리지를 참조하지 않고 《해동지도》의 내용을 본인의 판단에 따라 이해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이 지도만으로는 어떤 정보를 표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지명이 여러 곳에 있다. 위쪽으로부터 富民, 新翼, 要原 등이 그것이다. 주기를 보면 모두 社로 나오며, 아울러 蘆洞과 景浦 역시 社였다. 지도에는 社란 문자를 사용한 것으로 號賢社만이 표시되어 있다. 社란 다른 道의 面에 해당되는 것으로 다른 도에서는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일관되게 사용하였다. (이기봉)

  • 파주목(坡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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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파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광여도》에 없는 내용으로 오른쪽 여백에 도성에서 걸리는 기간이, 위쪽에 파주목의 옛 명칭이 적혀 있다. 읍치 오른쪽 위에 표시된 猪浦險津은 《광여도》에 없는 내용이다. 또한 읍치 왼쪽의 恭陵, 順陵, 孝章墓, 惠蔭岺도 《광여도》에는 없는 내용이다.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하도록 그렸다. 그러나 본 지도 전체가 정확한 방향을 고려한 것은 아니다. 읍치 오른쪽에 있는 임진강은 동북쪽에서 흘러와 서남쪽으로 빠져나간다. 본 지도에 의하면 임진강이 마치 정 동쪽에서 흘러오는 것처럼 잘못 이해될 수 있다. 이 구간의 임진강은 굴곡이 심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실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 지역 최대의 관방처인 臨津渡가 표시되어 있지 않음이 의아하다. 본 지도에서는 花石亭이라고 표시된 부분에 임진나루가 있었다. 이곳은 도성에서 의주로 가는 大路 상에 있으며, 북쪽으로부터 쳐들어온 적으로부터 도성을 방어하는 마지막 관문으로 여겨졌다. 이곳에는 1765년(영조 41)에 臨津堡와 長山堡가 설치되고, 나루 근처에는 關門城이 축조되어 있었다. 이것을 통해 볼 때 아마 이 지도는 1765년 이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추정된다. 읍치 왼쪽을 흐르는 하천은 현재 문산천이라고 하며, 서류하다가 다시 북류하여 임진강에 합류된다. 그러나 이 지도를 통해서는 문산천의 이런 유로를 이해할 수 없다. (이기봉)

  • 평택현(平澤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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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평택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왼쪽의 土城 위치가 《광여도》에는 西面과 邑內面의 정 가운데 정도에 있다는 정도이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평택현 지도에서는 본 지도처럼 표시되어 있다. 본 지도의 전체적인 구도가 《광여도》와 거의 동일하지만 토성의 위치라는 측면에서는 《해동지도》를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평택현은 현재의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일대에 있었다. 이 지역은 거의 산이 없는 평지에 해당되며, 가장 높은 곳이 지도 위의 土城이 있었던 부용산(34.5m)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는 많은 산줄기가 그려져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평택현 지도도 회화식으로 그렸지만 부용산을 높게 표현한 것 이외에는 산을 거의 그리지 않았다. 본 지도의 작성자는 이러한 평택현의 지형에 대한 인식이 아주 없었거나 아니면 작은 언덕이나 숲에 불과한 것을 산줄기로 인식하여 그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 북쪽을 흐르는 하천이 현재의 안성천 본류이고, 아래쪽의 濁川이 현재의 군계천이다. 안성천의 본류는 오른쪽 振威界 부근의 동쪽에서 흘러오며, 稷山界에서 흘러오는 하천은 성환천이다. 군계천과 성환천 모두 평택현 지역이 발원지가 아니다. 또한 水原界라고 적혀 있는 부분에서 현재의 진위천이 합류되는데 본 지도에서는 그러한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이와 같은 측면들이 가장 사실과 부합되게 그려진 지도 중의 하나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평택 지도이다. 南面과 西面 사이에는 진위현의 월경지인 景陽面이 있었다. 따라서 稷山界가 이곳에 표시되어 있어야 사실에 가깝다. (이기봉)

  • 태인현(泰仁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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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태인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오른쪽 아래의 七宝山은 《광여도》에 七實山으로 되어 있다. 표현 방법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태인현 지도에는 七宝山으로 나온다. 본 지도의 필사 시 《광여도》를 따르면서 《해동지도》를 참조하여 일부 교정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 표시에서는 《해동지도》의 井邑界 왼쪽에 있었던 古阜界가 생략되어 있으며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온다. 오른쪽 위의 淳昌界와 全州界 사이에 任實界가 적혀 있어야 한다. 《광여도》와 《해동지도》 모두 동일하게 적혀 있어 《해동지도》의 제작자가 최초로 오류를 범했고, 이후의 필사 때에 오류를 인식하지 못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읍치 위쪽으로는 《해동지도》에 있었던 瓮池面이 생략되어 있다.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지만 주기에는 옹지면이 적혀 있는 것을 통해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으로 생각된다. 읍치 아래의 하천은 현재의 동진강으로서 동남쪽에서 발원하여 서북쪽으로 흘러간다. 따라서 본 지도는 기본적으로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고 볼 수 있다. 읍치로 들어온 산줄기가 동쪽으로부터 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오른쪽의 山內面 지역은 동진강이 아니라 섬진강의 상류에 해당된다.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고을 전체가 산줄기로 둘러싸인 것처럼 그리기 위해 일부 다른 하천 유역에 속하는 부분을 생략하는 경향이 있다. (이기봉)

  • 의흥현(義興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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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의흥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가 동쪽을 위로 향해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리고 《해동지도》가 동서를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남북을 길게 그렸다. 이런 과정에서 《해동지도》와 본 지도가 약간 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하천의 유로가 약간 길어진 부분을 제외하면 거의 동일하다. 또한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읍치의 司倉과 選勝亭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없는 것도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기본적으로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며, 읍치 부분에서 다른 자료를 약간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다보니까 방향이나 거리 등에서 왜곡 현상이 발생하였다. 고을의 동쪽에서 발원한 현재의 위천은 읍치 남쪽을 흘러 실제로는 서쪽의 軍威界로 빠져나가지만 본 지도에서는 남쪽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 점은 《해동지도》에서도 동일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데, 읍치 서쪽에 있어야 할 牛保里面이 마치 남쪽에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는 것도 마찬가지의 맥략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아래쪽의 縣內面과 缶자가 붙은 면은 현재의 군위군 부계면과 효령면의 일부에 해당된다. 이곳에서 흘러오는 물은 실제로는 軍威의 땅을 지나 위천과 합류된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마치 군위와의 경계선에서 합류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기타 오른쪽의 小首里面에 있는 하천의 상류에는 의성의 땅이 자리잡고 있었지만 본 지도에는 표현되어 있지 않다. (이기봉)

  • 장련현(長連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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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장련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방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장련현 지도를 필사한 것이라고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몇 가지 오류를 범하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의 道里面 왼쪽 부분이 반도 모양으로 되어 있으며, 산줄기도 이어져 있다. 또한 위쪽 松串壇 북쪽으로는 바다로 되어 있으며, 오른쪽 위의 大津 역시 반도로 표현되었다. 《해동지도》의 표현에 약간의 오류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장련현의 실제 모습을 대략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제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의로 표현하면서 장련현의 형태 자체에 대한 파악이 어렵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광여도》에서는 《해동지도》에 있던 道里面 왼쪽의 산줄기와 지명들이 모두 그려져 있다. 그러나 그 왼쪽과 장련현이 바다라는 사실은 수정되지 않았다. 이것을 통해 볼 때 《광여도》의 필사자도 장련현의 실제 모습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지는 않았다고 생각된다. 본 지도에서 생략된 부분을 《해동지도》를 통해 보충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의 것을 그대로 따랐다. 그 밖에 본 지도가 《해동지도》와 달라진 점은 도로가 모두 생략되었고, 문자로만 적혀 있던 面을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통해 표현했다는 점이다. (이기봉)

  • 홍원현(洪原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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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홍원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와 《광여도》는 거의 동일하여 서로 필사 관계에 있다. 또한 두 지도는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홍원현 지도를 필사하고 있다. 그러나 필사 시 《해동지도》의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읍치의 것을 제외하면 驛은 동일한 건물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필사 시 驛이란 문자가 적혀 있는 新恩驛 이외에도 平浦와 咸原 역시 驛이란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와 《광여도》에 이 역들이 전혀 다른 기호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도의 정보라면 지리지를 조금만 찾아봐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필사 시 지리지를 참조하지 않고 《해동지도》의 내용을 본인의 판단에 따라 이해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이 지도만으로는 어떤 정보를 표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지명이 여러 곳에 있다. 위쪽으로부터 富民, 新翼, 要原 등이 그것이다. 주기를 보면 모두 社로 나오며, 아울러 蘆洞과 景浦 역시 社였다. 지도에는 社란 문자를 사용한 것으로 號賢社만이 표시되어 있다. 社란 다른 道의 面에 해당되는 것으로 다른 도에서는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일관되게 사용하였다. (이기봉)

  • 파주목(坡州牧)(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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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파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광여도》에 없는 내용으로 오른쪽 여백에 도성에서 걸리는 기간이, 위쪽에 파주목의 옛 명칭이 적혀 있다. 읍치 오른쪽 위에 표시된 猪浦險津은 《광여도》에 없는 내용이다. 또한 읍치 왼쪽의 恭陵, 順陵, 孝章墓, 惠蔭岺도 《광여도》에는 없는 내용이다.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하도록 그렸다. 그러나 본 지도 전체가 정확한 방향을 고려한 것은 아니다. 읍치 오른쪽에 있는 임진강은 동북쪽에서 흘러와 서남쪽으로 빠져나간다. 본 지도에 의하면 임진강이 마치 정 동쪽에서 흘러오는 것처럼 잘못 이해될 수 있다. 이 구간의 임진강은 굴곡이 심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실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 지역 최대의 관방처인 臨津渡가 표시되어 있지 않음이 의아하다. 본 지도에서는 花石亭이라고 표시된 부분에 임진나루가 있었다. 이곳은 도성에서 의주로 가는 大路 상에 있으며, 북쪽으로부터 쳐들어온 적으로부터 도성을 방어하는 마지막 관문으로 여겨졌다. 이곳에는 1765년(영조 41)에 臨津堡와 長山堡가 설치되고, 나루 근처에는 關門城이 축조되어 있었다. 이것을 통해 볼 때 아마 이 지도는 1765년 이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추정된다. 읍치 왼쪽을 흐르는 하천은 현재 문산천이라고 하며, 서류하다가 다시 북류하여 임진강에 합류된다. 그러나 이 지도를 통해서는 문산천의 이런 유로를 이해할 수 없다. (이기봉)

  •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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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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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동부(仁同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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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인동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는 남북보다 동서가 길게 그려져 있고,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표현되었다. 또한 《해동지도》에는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으로 그렸지만 완전한 사각형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반면에 본 지도는 사각형 안에 인동부의 모습을 모두 그리려고 하였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하천의 유로 등이 거의 동일하지만 하천이나 산줄기, 지명의 위치가 여러 곳에서 바뀌었다. 예를 들어 왼쪽의 若木面은 《해동지도》에 왼쪽 아래쪽으로 치우쳐져 있지만 본 지도에는 거의 가운데에 표시되어 있다. 또한 가장 위쪽의 玉郞堤가 《해동지도》에는 읍치 바로 서쪽에 그려져 있다. 실제의 모습에 입각해 보면 《해동지도》가 사실에 가깝다. 본 지도에서 왜곡이 훨씬 심하게 발생한 이유는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억지로 맞추어 그리려 했기 때문이다. 지명의 측면에서 보면 오른쪽의 長川과 읍치의 몇몇 건물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또한 《해동지도》와 비교해 보면 잘못된 지명도 몇 군데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위쪽의 天橋場은 大橋場의, 읍치 서쪽의 東洛書院의 誤記이다. 다른 기록과 비교해 보면 전자는 《해동지도》가, 후자는 본 지도가 올바르다. 이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필사 과정에서 실수를 범함과 동시에 《해동지도》의 오류도 고치려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기봉)

  • 장연부(長淵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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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장연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해동지도》의 장연부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본 지도책의 상당 부분이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이므로 본 지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해동지도》는 동서를 길게 그린 반면 본 지도는 세로로 긴 사각형에 맞추기 위해 남북을 길게 그렸다. 또한 읍치 지역을 작아진 종이에 맞추면서 밀집된 정보를 표시하기 위해 《해동지도》보다 상대적으로 더 크게 그렸다. 이로 인해 해안선이나 하천의 길이 등에서 변화가 발생하였으나 수록된 내용은 전체적으로 거의 동일하다. 읍치에 있는 건물의 수가 《해동지도》보다 더 많아지는 등의 변화도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지명이라는 입장에서 볼 때 더 추가되어 있는 것은 없다. 본 지도에서는 面을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하였다. 주기에 적혀 있는 면과 비교해 보면 읍치 위쪽에 있는 蒪池面의 명칭이 생략되어 있고, 이 점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서쪽의 大海 부분에 경계선이 표시되어 있어 마치 본 고을의 서쪽에 거대한 호수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난다. 이것은 《해동지도》에 푸른색으로 칠해져 있는 바다 부분을 선으로 표시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이 부분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장연부의 서쪽은 본 지도에 쓰여 있듯이 大海가 펼쳐져 있다. 고을의 전반적인 모습은 실제와 거의 닮지 않았다. (이기봉)

  • 홍천현(洪川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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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홍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아래쪽의 歛依山面이 《광여도》에는 劒依山面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와 표현 양식에서는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홍천현 지도에는 釰依山面으로 되어 있다. 釰은 劒을 대신하여 한국에서 사용되는 한자였기 때문에 본 지도보다는 《광여도》가 올바르다. 주기에는 지도에 없는 奈村面과 芳面이 기록되어 있다. 《광여도》의 주기에는 이것이 奈村面과 北方面으로 되어 있고, 《해동지도》의 주기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지도에는 본 지도와 《광여도》에 禁村面과 北方面으로, 《해동지도》에 奈村面과 北方面으로 되어 있다. 《광여도》의 필사 시 《해동지도》의 지도를 필사하면서 주기에 잘못 적힌 芳面을 北方面으로 고쳤지만 지도에서는 ‘奈’를 ‘禁’으로 잘못 이해하는 오류도 범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의 작성자는 지도는 《광여도》의 것을 따르면서 주기는 《해동지도》의 것을 따른 것으로 생각된다. 동서가 남북보다 훨씬 고을의 모습을 반대로 남북이 동서보다 길게 표현하는 과정에서 여러 왜곡이 발생하였다. 읍치를 지나 왼쪽의 春川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홍천강이다. 홍천강의 상류에는 위쪽의 末村面에서 내려오는 현재의 장남천과 瑞石面에서 내려오는 현재의 내촌천이 있다. 이 중 내촌천이 장남천보다 훨씬 길지만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잘 표현되어 있지 않다. 이로 인해 面의 위치 표시에서 잘못 위치시킨 것이 있다. 化村面은 장남천과 내촌천이 만나는 지점에 표시되어야 하고, 禁村面(奈村面)은 화촌면 위치에 있어야 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홍천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는 대부분이 사실과 비슷하게 교정되어 있다. 다만 내촌면의 위치만은 본 지도처럼 실제와 다르게 표시되어 있다. (이기봉)

  • 포천현(抱川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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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포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포천현 지도는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타나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동일한 편이다. 읍치를 강조하고, 고을 전체에 통일성을 부여하기 위해 겹겹이 싸인 산줄기를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인해 실질적인 지형은 이해하기 어렵게 그려져 있다. 오른쪽 內洞面과 東村面 사이 水源山 부근에 왼쪽과 오른쪽 산줄기를 잇는 고개가 있어야 한다. 수원산 부근의 북쪽은 현재의 화현면, 남쪽은 현재의 내촌면으로서 각각 작은 하천 유역에 속해 있다. 왼쪽에 旺方山과 國祠峯 사이에도 산줄기가 이어져 있어야 한다. 그 북쪽은 현재의 신북면으로서 또 다른 작은 하천 유역에 속해 있다. 국사봉 아래쪽의 산줄기는 실제로는 그 오른쪽의 산줄기와 겹쳐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고을의 산세를 대칭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실제와 달리 이중의 산줄기가 있는 것처럼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전형적인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고을 전체와 읍치의 이미지를 강조하여 전달하려는 목적이 강했다. 따라서 각종 정보의 위치나 방향 그리고 거리 등은 정확하지 않게 된다. 이와 같은 점을 보완하기 위해 주기에는 거리와 방향에 대한 지지적 내용을 적어놓게 된다. (이기봉)

  • 한산군(韓山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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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한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한산군 지도도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하다. 읍치 왼쪽의 光峴山은 《광여도》에 光觀山으로 적혀 있고, 오른쪽의 馬山과 於里山의 위치가 《광여도》와 다르게 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이 세 지명이 본 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물론 다른 지명의 위치나 하천 등은 모두 《광여도》와 동일하다. 읍치 공간이 다른 지역에 비해 대축척으로 그려져 있고, 北面의 동서 폭이 극히 좁은데도 넓게 표시된 점 등을 제외하면 대략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아래의 오른쪽(동)에서 왼쪽(서)으로 흐르는 하천이 현재의 금강이다. 금강 변에는 海倉이 표시되어 있다. 밀물 때 바닷물이 이곳에 들어오기 때문에 ‘海’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다. 대동법 시행 이후 여러 고을의 조세를 모아 한양으로 나르던 漕倉制度는 바다나 강을 끼고 있지 않은 고을에만 한정되게 되었다. 본 지도의 해창은 본 고을의 大同米와 田稅를 모았다가 한양으로 나르던 창고이다. 지도 위쪽에는 한산군의 옛 명칭이 표시되어 있으며, 지도 명 위쪽의 ‘右’는 忠淸右道에 속해 있다는 표시이다. 오른쪽의 ‘五日’은 한양으로부터 5일 걸린다는 의미이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하며, 《해동지도》와도 대략 비슷하다. (이기봉)

  • 함열현(咸悅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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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함열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와 『여지도서』의 함열현 지도도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뒤의 두 지도와 다른 점은 첫째, 도로가 생략되어 있다는 것이다. 둘째, 왼쪽의 금강이 보다 얇게 표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특히 《광여도》는 금강과 다른 하천을 모두 2개의 실선으로 표시하여 구분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오른쪽의 하천은 위쪽이 현재의 함열천이고, 아래쪽이 탑천이다. 함열천은 부곡천에 합류된 후 다시 금강으로 들어간다. 본 지도는 하천의 유로라는 측면에서 볼 때 실제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반면에 거리의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사각형의 방안을 사용하여 만든 《호남지도》의 함열현 지도는 몇 가지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첫째, 함열천이 함열현의 영역 안에서 금강에 합류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둘째, 탑천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정확성을 중요하게 여긴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도 첫 번째가 《호남지도》처럼 표현되어 있다. 김정호는 첫 번째는 《호남지도》의 내용을, 두 번째는 본 지도 계열을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지도 위쪽의 聖堂倉은 남원, 운봉, 진산, 금산, 용담, 고산, 익산 등 바다를 끼고 있지 않은 고을의 전세와 대동미를 모아 한양으로 운반하던 漕倉이었다. 반면에 왼쪽의 海倉은 함열현의 전세와 대동미를 모아 한양으로 운반하던 창고였다. 대동법의 시행 이후 漕倉制의 대상 고을이 내륙의 고을로 축소되면서 조창과 해창이 동시에 존재하게 되었다. (이기봉)

  • 인동부(仁同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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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인동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는 남북보다 동서가 길게 그려져 있고,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표현되었다. 또한 《해동지도》에는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으로 그렸지만 완전한 사각형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반면에 본 지도는 사각형 안에 인동부의 모습을 모두 그리려고 하였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하천의 유로 등이 거의 동일하지만 하천이나 산줄기, 지명의 위치가 여러 곳에서 바뀌었다. 예를 들어 왼쪽의 若木面은 《해동지도》에 왼쪽 아래쪽으로 치우쳐져 있지만 본 지도에는 거의 가운데에 표시되어 있다. 또한 가장 위쪽의 玉郞堤가 《해동지도》에는 읍치 바로 서쪽에 그려져 있다. 실제의 모습에 입각해 보면 《해동지도》가 사실에 가깝다. 본 지도에서 왜곡이 훨씬 심하게 발생한 이유는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억지로 맞추어 그리려 했기 때문이다. 지명의 측면에서 보면 오른쪽의 長川과 읍치의 몇몇 건물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또한 《해동지도》와 비교해 보면 잘못된 지명도 몇 군데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위쪽의 天橋場은 大橋場의, 읍치 서쪽의 東洛書院의 誤記이다. 다른 기록과 비교해 보면 전자는 《해동지도》가, 후자는 본 지도가 올바르다. 이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필사 과정에서 실수를 범함과 동시에 《해동지도》의 오류도 고치려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기봉)

  • 장연부(長淵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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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장연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해동지도》의 장연부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본 지도책의 상당 부분이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이므로 본 지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해동지도》는 동서를 길게 그린 반면 본 지도는 세로로 긴 사각형에 맞추기 위해 남북을 길게 그렸다. 또한 읍치 지역을 작아진 종이에 맞추면서 밀집된 정보를 표시하기 위해 《해동지도》보다 상대적으로 더 크게 그렸다. 이로 인해 해안선이나 하천의 길이 등에서 변화가 발생하였으나 수록된 내용은 전체적으로 거의 동일하다. 읍치에 있는 건물의 수가 《해동지도》보다 더 많아지는 등의 변화도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지명이라는 입장에서 볼 때 더 추가되어 있는 것은 없다. 본 지도에서는 面을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하였다. 주기에 적혀 있는 면과 비교해 보면 읍치 위쪽에 있는 蒪池面의 명칭이 생략되어 있고, 이 점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서쪽의 大海 부분에 경계선이 표시되어 있어 마치 본 고을의 서쪽에 거대한 호수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난다. 이것은 《해동지도》에 푸른색으로 칠해져 있는 바다 부분을 선으로 표시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이 부분은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장연부의 서쪽은 본 지도에 쓰여 있듯이 大海가 펼쳐져 있다. 고을의 전반적인 모습은 실제와 거의 닮지 않았다. (이기봉)

  • 홍천현(洪川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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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홍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아래쪽의 歛依山面이 《광여도》에는 劒依山面으로 되어 있다. 본 지도와 표현 양식에서는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홍천현 지도에는 釰依山面으로 되어 있다. 釰은 劒을 대신하여 한국에서 사용되는 한자였기 때문에 본 지도보다는 《광여도》가 올바르다. 주기에는 지도에 없는 奈村面과 芳面이 기록되어 있다. 《광여도》의 주기에는 이것이 奈村面과 北方面으로 되어 있고, 《해동지도》의 주기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지도에는 본 지도와 《광여도》에 禁村面과 北方面으로, 《해동지도》에 奈村面과 北方面으로 되어 있다. 《광여도》의 필사 시 《해동지도》의 지도를 필사하면서 주기에 잘못 적힌 芳面을 北方面으로 고쳤지만 지도에서는 ‘奈’를 ‘禁’으로 잘못 이해하는 오류도 범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의 작성자는 지도는 《광여도》의 것을 따르면서 주기는 《해동지도》의 것을 따른 것으로 생각된다. 동서가 남북보다 훨씬 고을의 모습을 반대로 남북이 동서보다 길게 표현하는 과정에서 여러 왜곡이 발생하였다. 읍치를 지나 왼쪽의 春川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홍천강이다. 홍천강의 상류에는 위쪽의 末村面에서 내려오는 현재의 장남천과 瑞石面에서 내려오는 현재의 내촌천이 있다. 이 중 내촌천이 장남천보다 훨씬 길지만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잘 표현되어 있지 않다. 이로 인해 面의 위치 표시에서 잘못 위치시킨 것이 있다. 化村面은 장남천과 내촌천이 만나는 지점에 표시되어야 하고, 禁村面(奈村面)은 화촌면 위치에 있어야 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홍천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는 대부분이 사실과 비슷하게 교정되어 있다. 다만 내촌면의 위치만은 본 지도처럼 실제와 다르게 표시되어 있다. (이기봉)

  • 포천현(抱川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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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포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포천현 지도는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타나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동일한 편이다. 읍치를 강조하고, 고을 전체에 통일성을 부여하기 위해 겹겹이 싸인 산줄기를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인해 실질적인 지형은 이해하기 어렵게 그려져 있다. 오른쪽 內洞面과 東村面 사이 水源山 부근에 왼쪽과 오른쪽 산줄기를 잇는 고개가 있어야 한다. 수원산 부근의 북쪽은 현재의 화현면, 남쪽은 현재의 내촌면으로서 각각 작은 하천 유역에 속해 있다. 왼쪽에 旺方山과 國祠峯 사이에도 산줄기가 이어져 있어야 한다. 그 북쪽은 현재의 신북면으로서 또 다른 작은 하천 유역에 속해 있다. 국사봉 아래쪽의 산줄기는 실제로는 그 오른쪽의 산줄기와 겹쳐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고을의 산세를 대칭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실제와 달리 이중의 산줄기가 있는 것처럼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전형적인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고을 전체와 읍치의 이미지를 강조하여 전달하려는 목적이 강했다. 따라서 각종 정보의 위치나 방향 그리고 거리 등은 정확하지 않게 된다. 이와 같은 점을 보완하기 위해 주기에는 거리와 방향에 대한 지지적 내용을 적어놓게 된다. (이기봉)

  • 한산군(韓山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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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한산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한산군 지도도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하다. 읍치 왼쪽의 光峴山은 《광여도》에 光觀山으로 적혀 있고, 오른쪽의 馬山과 於里山의 위치가 《광여도》와 다르게 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이 세 지명이 본 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물론 다른 지명의 위치나 하천 등은 모두 《광여도》와 동일하다. 읍치 공간이 다른 지역에 비해 대축척으로 그려져 있고, 北面의 동서 폭이 극히 좁은데도 넓게 표시된 점 등을 제외하면 대략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아래의 오른쪽(동)에서 왼쪽(서)으로 흐르는 하천이 현재의 금강이다. 금강 변에는 海倉이 표시되어 있다. 밀물 때 바닷물이 이곳에 들어오기 때문에 ‘海’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다. 대동법 시행 이후 여러 고을의 조세를 모아 한양으로 나르던 漕倉制度는 바다나 강을 끼고 있지 않은 고을에만 한정되게 되었다. 본 지도의 해창은 본 고을의 大同米와 田稅를 모았다가 한양으로 나르던 창고이다. 지도 위쪽에는 한산군의 옛 명칭이 표시되어 있으며, 지도 명 위쪽의 ‘右’는 忠淸右道에 속해 있다는 표시이다. 오른쪽의 ‘五日’은 한양으로부터 5일 걸린다는 의미이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와 동일하며, 《해동지도》와도 대략 비슷하다. (이기봉)

  • 함열현(咸悅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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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함열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와 『여지도서』의 함열현 지도도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뒤의 두 지도와 다른 점은 첫째, 도로가 생략되어 있다는 것이다. 둘째, 왼쪽의 금강이 보다 얇게 표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특히 《광여도》는 금강과 다른 하천을 모두 2개의 실선으로 표시하여 구분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오른쪽의 하천은 위쪽이 현재의 함열천이고, 아래쪽이 탑천이다. 함열천은 부곡천에 합류된 후 다시 금강으로 들어간다. 본 지도는 하천의 유로라는 측면에서 볼 때 실제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반면에 거리의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사각형의 방안을 사용하여 만든 《호남지도》의 함열현 지도는 몇 가지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첫째, 함열천이 함열현의 영역 안에서 금강에 합류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둘째, 탑천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정확성을 중요하게 여긴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도 첫 번째가 《호남지도》처럼 표현되어 있다. 김정호는 첫 번째는 《호남지도》의 내용을, 두 번째는 본 지도 계열을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지도 위쪽의 聖堂倉은 남원, 운봉, 진산, 금산, 용담, 고산, 익산 등 바다를 끼고 있지 않은 고을의 전세와 대동미를 모아 한양으로 운반하던 漕倉이었다. 반면에 왼쪽의 海倉은 함열현의 전세와 대동미를 모아 한양으로 운반하던 창고였다. 대동법의 시행 이후 漕倉制의 대상 고을이 내륙의 고을로 축소되면서 조창과 해창이 동시에 존재하게 되었다. (이기봉)

  • 자인현(慈仁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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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자인현 지도와 비슷하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본 지도가 미숙하게 필사한 듯한 측면이 몇몇 부분에서 보인다. 예를 들어 오른쪽에 명칭은 없고 건물만 표시되어 있는 것이 있다. 이 정도의 건물을 표시했다면 보통 명칭이 적혀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해동지도》와 비교해 보면 이 건물에는 盤龍寺가 적혀 있어야 한다. 읍치에도 대부분의 지도에 표시되어 있으며, 《해동지도》에도 있는 衙舍가 없다. 읍치 아래의 元堂도 《해동지도》와 비교해 보면 元堂里라고 적혀 있어야 하며, 南山과 烏見山의 위치도 바뀌어져 있다. 그러나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그대로 필사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읍치 왼쪽의 大王山와 아래쪽의 孝子徐濂旌門 앞에 있는 贈禁府都事가 《해동지도》에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해동지도》의 내용을 기반으로 일부 자료를 참고하여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面의 표시에서 《해동지도》에는 주기와 지도에 기록된 면의 명칭이 전혀 다르게 되어 있다. 이것은 《해동지도》의 지도와 주기가 다른 시기에 제작되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에서는 洞內面이 없는 것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의 지도와 동일하며, 주기에는 洞內面까지 기록하는 등 《해동지도》의 지도와 같게 되어 있다. 기타 오른쪽에 密陽界가 적혀 있는 것은 현재의 청도군 운문면 공암리 일대에 있었던 밀양의 월경지 고매부곡과 경계를 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 재령군(載寧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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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재령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재령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필사 과정에서 읍치와 장수산성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확대되었다.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은 종이에 그리면서 정보가 밀집된 읍치와 장수산성을 자세하게 묘사하기 위한 방법으로 생각된다. 또한 남북이 폭이 상대적으로 좁아지고, 동서가 넓어졌다. 가로 세로가 일정한 크기의 종이에 고을 전체를 꽉 차게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 고을의 전체적인 모습은 남북이 동서보다 훨씬 길다. 《해동지도》에는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을 본 지도에서는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方洞面과 銀叱只面은 무색의 사각형이 있어 필자사의 치밀하지 못한 모습이 엿보인다. 주기에 있지만 지도에는 없는 花山面이 《해동지도》에는 있기 때문에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라 생각된다. 《광여도》에는 무색의 사각형이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지만 화산면이 빠져 있어 본 지도와 필사 관계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오른쪽의 하천이 재령강 본류이고, 왼쪽의 하천이 그 지류인 서강이다. 서강 중 읍치 왼쪽에 있는 것의 표현이 애매한데, 원래는 信川界 방면에서 흘러오도록 그려져 있어야 한다. 본 지도는 거리와 위치의 정확성 보다는 중요 부분을 확대해서 그리고, 풍수적 명당 이미지를 강조한 전형적인 회화식 군현 지도이다. (이기봉)

  • 회령부(會寧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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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회령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와 《광여도》는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회령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대로 필사한 것이 아니라 표현 양식이나 내용을 약간씩 바꿨다. 일단 잘못 필사한 지명도 보인다. 읍치(府) 아래쪽의 幹水河는 斡木河의 誤記이며,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해동지도》의 내용 중 생략된 정보로는 도로와 봉수가 있다. 또한 아래쪽 산줄기 너머 동해와 접해 있던 지역도 생략되었다. 이 부분은 고을의 실제적인 모습을 잘못 이해하게 할 수 있는 중요한 실수이다. 이 지역은 현재의 북한 행정구역으로 함경북도 라선시 동쪽 부분이며, 일제시대에는 부령군 관해면이었다. 《해동지도》에 읍치 이외에 건물 모양이 표시되어 있던 곳은 모두 노란색 사각형으로 바뀌었다. 모두 군사 주둔지인 鎭堡이다. 왼쪽의 甫乙下堡에 있는 하천이 상대적으로 길게 표현된 것을 제외하면 실질적인 모습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茂山界가 왼쪽과 아래에 2개 기록되어 있는데, 아래쪽의 것은 동해안에 접해 있던 무산의 월경지와의 경계를 의미한다. (이기봉)

  •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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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미현(海美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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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해미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왼쪽의 夢能驛이 《광여도》에 夢龍驛으로 되어 있고, 아래쪽의 瑞山界가 《광여도》에 생략되어 있는 정도이다. 《해동지도》의 해미현 지도에는 夢能驛으로 되어 있어 《광여도》가 ‘能’을 ‘龍’으로 착각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대동지지』에는 모두 夢熊驛으로 나오고 있어 《해동지도》도 오류를 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 몇 가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왼쪽 위의 德山界가 三峯寺 위에 써있고, 더 왼쪽으로 沔川界와 唐津界가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면천계와 당진계가 아예 생략되어 버렸다. 이것은 《해동지도》를 필사한 사람이 경계에 대한 이해를 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와 《광여도》의 주기에는 《해동지도》의 주기에 있었던 面에 대한 정보가 아예 수록되어 있지 않다. 본 지도책의 다른 지도에 면에 대한 정보가 대부분 수록되어 있는 점을 고려할 때 본 지도의 작성자가 면 정보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광여도》에는 아래쪽의 瑞山界까지 생략되어 있어 해미현의 실제 상황을 더욱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지도 왼쪽의 西面과 海倉은 지금의 당진군 대호지면에 있어 읍치에서 보면 거의 정북 방향에 있다. 본 지도만으로 보면 서면과 해창이 마치 읍치의 서쪽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瑞山界를 생략한 《광여도》의 입장에서 보면 서산계 방향이 바다처럼 표시되어 있어 서면과 해창이 더욱더 읍치 서쪽의 바닷가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문제점은 위치의 정확성을 추구한 《조선지도》의 해미 지도에서 서면과 해창을 읍치의 서쪽에 배치하는 잘못을 범하게 만든 원인이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동여도》에서도 서면과 해창의 읍치가 《조선지도》와 동일하게 표시되어 있어 김정호조차도 잘못을 교정하지 못하게 한 근본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 서면의 명칭은 읍치의 정북에 있기 때문에 읍치의 방향에 따라 결정된 것이 아니다. 읍치의 북쪽에 있었던 貞海古縣의 서쪽에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함평현(咸平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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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함평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오른쪽 아래의 倉只面은 《광여도》에 食知面으로 되어 있다. 주기에는 食知面으로 되어 있어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글자를 잘못 이해하여 기록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비슷한 《해동지도》의 함평현 지도에도 식지면으로 되어 있다. 《해동지도》의 오른쪽 위에는 月岳面이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본 지도와 《광여도》에 모두 표시되어 있지 않고, 주기에만 적혀 있다. 이것을 통해 볼 때 《광여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라고 생각되며, 본 지도의 필사 시 역시 오류를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왼쪽의 多慶面 지역은 務安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고, 남쪽으로는 靈光의 월경지와 맞닿아 있었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기 어렵다. 이외에도 고을의 전체 모습이 남북보다는 동서가 훨씬 긴 형태를 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엔 남북이 더 길게 그려져 있다. 주기에도 동서의 다른 고을과의 거리가 각각 50리와 30리로 되어 있는 반면에 남북은 각각 5리와 30리로 되어 있다. 이것은 남북이 동서보다 더 긴 종이 위에 그렸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 오른쪽 아래의 羅州界는 주기에 錦城界로 되어 있고,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나온다. 나주는 인조(1623-1649) 시기에 잠시 금성현으로 강등되었고, 1728년-1737년(영조 4-13) 사이에도 금성현으로 강등된 적이 있다. 《해동지도》의 지도와 주기의 삽입 연도가 달랐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이며, 《광여도》와 본 지도가 필사 당시의 상황에 맞게 바꾸지 않고 그대로 베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기봉)

  • 자인현(慈仁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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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자인현 지도와 비슷하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본 지도가 미숙하게 필사한 듯한 측면이 몇몇 부분에서 보인다. 예를 들어 오른쪽에 명칭은 없고 건물만 표시되어 있는 것이 있다. 이 정도의 건물을 표시했다면 보통 명칭이 적혀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해동지도》와 비교해 보면 이 건물에는 盤龍寺가 적혀 있어야 한다. 읍치에도 대부분의 지도에 표시되어 있으며, 《해동지도》에도 있는 衙舍가 없다. 읍치 아래의 元堂도 《해동지도》와 비교해 보면 元堂里라고 적혀 있어야 하며, 南山과 烏見山의 위치도 바뀌어져 있다. 그러나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그대로 필사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읍치 왼쪽의 大王山와 아래쪽의 孝子徐濂旌門 앞에 있는 贈禁府都事가 《해동지도》에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해동지도》의 내용을 기반으로 일부 자료를 참고하여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面의 표시에서 《해동지도》에는 주기와 지도에 기록된 면의 명칭이 전혀 다르게 되어 있다. 이것은 《해동지도》의 지도와 주기가 다른 시기에 제작되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에서는 洞內面이 없는 것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의 지도와 동일하며, 주기에는 洞內面까지 기록하는 등 《해동지도》의 지도와 같게 되어 있다. 기타 오른쪽에 密陽界가 적혀 있는 것은 현재의 청도군 운문면 공암리 일대에 있었던 밀양의 월경지 고매부곡과 경계를 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 재령군(載寧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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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재령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재령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필사 과정에서 읍치와 장수산성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확대되었다.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은 종이에 그리면서 정보가 밀집된 읍치와 장수산성을 자세하게 묘사하기 위한 방법으로 생각된다. 또한 남북이 폭이 상대적으로 좁아지고, 동서가 넓어졌다. 가로 세로가 일정한 크기의 종이에 고을 전체를 꽉 차게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 고을의 전체적인 모습은 남북이 동서보다 훨씬 길다. 《해동지도》에는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을 본 지도에서는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方洞面과 銀叱只面은 무색의 사각형이 있어 필자사의 치밀하지 못한 모습이 엿보인다. 주기에 있지만 지도에는 없는 花山面이 《해동지도》에는 있기 때문에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라 생각된다. 《광여도》에는 무색의 사각형이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지만 화산면이 빠져 있어 본 지도와 필사 관계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오른쪽의 하천이 재령강 본류이고, 왼쪽의 하천이 그 지류인 서강이다. 서강 중 읍치 왼쪽에 있는 것의 표현이 애매한데, 원래는 信川界 방면에서 흘러오도록 그려져 있어야 한다. 본 지도는 거리와 위치의 정확성 보다는 중요 부분을 확대해서 그리고, 풍수적 명당 이미지를 강조한 전형적인 회화식 군현 지도이다. (이기봉)

  • 회령부(會寧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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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회령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와 《광여도》는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회령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대로 필사한 것이 아니라 표현 양식이나 내용을 약간씩 바꿨다. 일단 잘못 필사한 지명도 보인다. 읍치(府) 아래쪽의 幹水河는 斡木河의 誤記이며,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해동지도》의 내용 중 생략된 정보로는 도로와 봉수가 있다. 또한 아래쪽 산줄기 너머 동해와 접해 있던 지역도 생략되었다. 이 부분은 고을의 실제적인 모습을 잘못 이해하게 할 수 있는 중요한 실수이다. 이 지역은 현재의 북한 행정구역으로 함경북도 라선시 동쪽 부분이며, 일제시대에는 부령군 관해면이었다. 《해동지도》에 읍치 이외에 건물 모양이 표시되어 있던 곳은 모두 노란색 사각형으로 바뀌었다. 모두 군사 주둔지인 鎭堡이다. 왼쪽의 甫乙下堡에 있는 하천이 상대적으로 길게 표현된 것을 제외하면 실질적인 모습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茂山界가 왼쪽과 아래에 2개 기록되어 있는데, 아래쪽의 것은 동해안에 접해 있던 무산의 월경지와의 경계를 의미한다. (이기봉)

  • 풍덕부(豊德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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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풍덕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다른 부분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우선 《광여도》에 森達里로 되어 있는 것이 왼쪽 아래에 森連里로 잘못 표시되어 있다. 또한 위쪽의 德積烽舍는 德積烽臺로, 왼쪽 아래의 旧城臺는 舊城基로 해야 한다. 중간 부분의 軍裝山의 한자도 軍莊山으로 바뀌어 있다. 지도 아래쪽은 한강이 바다와 만나는 부분으로 건너편이 강화부와 통진부이다. 오른쪽에 通津이 적혀 있는데 마치 나루처럼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通津府가 이 방향에 있다는 의미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풍덕부 지도의 표현 방법이 본 지도와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구도와 지명은 거의 동일하여 상호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는 通津이 하구에 표시되어 있어 실제를 반영하고 있는데 《광여도》나 본 지도에서 잘못 그렸다. 이런 잘못은 본 지도의 오른쪽에 있는 하천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해동지도》를 보면 通津 약간 상류에 交河라는 명칭이 적혀 있다. 본 지도에서는 軍莊山 오른쪽 부분이다. 이 부분 약간 하류까지는 실제로 임진강 본류에 해당되며, 여기서 長湍과의 경계선 역할을 한 沙川이 합류된다. 그런데 《해동지도》에 이와 같은 사실이 반영되지 않고 사천을 마치 임진강 본류처럼 그렸다.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이것을 다시 사천으로 인식하여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임진강 하구 맞은편에 있는 通津(府)가 마치 나루의 명칭처럼 인식되도록 표시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통진부 지도에는 비록 회화식 군현지도이지만 이 부분이 실제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이기봉)

  • 해미현(海美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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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해미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왼쪽의 夢能驛이 《광여도》에 夢龍驛으로 되어 있고, 아래쪽의 瑞山界가 《광여도》에 생략되어 있는 정도이다. 《해동지도》의 해미현 지도에는 夢能驛으로 되어 있어 《광여도》가 ‘能’을 ‘龍’으로 착각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대동지지』에는 모두 夢熊驛으로 나오고 있어 《해동지도》도 오류를 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 몇 가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왼쪽 위의 德山界가 三峯寺 위에 써있고, 더 왼쪽으로 沔川界와 唐津界가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 본 지도와 《광여도》에는 면천계와 당진계가 아예 생략되어 버렸다. 이것은 《해동지도》를 필사한 사람이 경계에 대한 이해를 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와 《광여도》의 주기에는 《해동지도》의 주기에 있었던 面에 대한 정보가 아예 수록되어 있지 않다. 본 지도책의 다른 지도에 면에 대한 정보가 대부분 수록되어 있는 점을 고려할 때 본 지도의 작성자가 면 정보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광여도》에는 아래쪽의 瑞山界까지 생략되어 있어 해미현의 실제 상황을 더욱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지도 왼쪽의 西面과 海倉은 지금의 당진군 대호지면에 있어 읍치에서 보면 거의 정북 방향에 있다. 본 지도만으로 보면 서면과 해창이 마치 읍치의 서쪽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瑞山界를 생략한 《광여도》의 입장에서 보면 서산계 방향이 바다처럼 표시되어 있어 서면과 해창이 더욱더 읍치 서쪽의 바닷가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문제점은 위치의 정확성을 추구한 《조선지도》의 해미 지도에서 서면과 해창을 읍치의 서쪽에 배치하는 잘못을 범하게 만든 원인이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동여도》에서도 서면과 해창의 읍치가 《조선지도》와 동일하게 표시되어 있어 김정호조차도 잘못을 교정하지 못하게 한 근본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 서면의 명칭은 읍치의 정북에 있기 때문에 읍치의 방향에 따라 결정된 것이 아니다. 읍치의 북쪽에 있었던 貞海古縣의 서쪽에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기봉)

  • 함평현(咸平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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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함평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오른쪽 아래의 倉只面은 《광여도》에 食知面으로 되어 있다. 주기에는 食知面으로 되어 있어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글자를 잘못 이해하여 기록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거의 비슷한 《해동지도》의 함평현 지도에도 식지면으로 되어 있다. 《해동지도》의 오른쪽 위에는 月岳面이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본 지도와 《광여도》에 모두 표시되어 있지 않고, 주기에만 적혀 있다. 이것을 통해 볼 때 《광여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라고 생각되며, 본 지도의 필사 시 역시 오류를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왼쪽의 多慶面 지역은 務安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고, 남쪽으로는 靈光의 월경지와 맞닿아 있었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기 어렵다. 이외에도 고을의 전체 모습이 남북보다는 동서가 훨씬 긴 형태를 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엔 남북이 더 길게 그려져 있다. 주기에도 동서의 다른 고을과의 거리가 각각 50리와 30리로 되어 있는 반면에 남북은 각각 5리와 30리로 되어 있다. 이것은 남북이 동서보다 더 긴 종이 위에 그렸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 오른쪽 아래의 羅州界는 주기에 錦城界로 되어 있고,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나온다. 나주는 인조(1623-1649) 시기에 잠시 금성현으로 강등되었고, 1728년-1737년(영조 4-13) 사이에도 금성현으로 강등된 적이 있다. 《해동지도》의 지도와 주기의 삽입 연도가 달랐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이며, 《광여도》와 본 지도가 필사 당시의 상황에 맞게 바꾸지 않고 그대로 베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기봉)

  • 장기현(長鬐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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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장기현 지도와 유사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성 안의 東軒과 倉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그러나 《해동지도》의 오른쪽 위에 적혀 있던 冬背串牧場이 본 지도에는 冬昔中牧場으로, 馬城門이 馬城山으로 되어 있다. 다른 자료들과 비교해보면 본 지도가 아니라 《해동지도》의 내용이 올바르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하였으며, 필사 과정에서 오류를 범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가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려는 경향이 강하다. 본 고을의 해안선이 실제로는 대략 동북에서 서남을 향하고 있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남쪽을 향하다가 서쪽으로 꺾인 것처럼 그려져 있다. 迎日의 경계선 역시 본 지도에 표현된 것보다 더 동북에서 서남 방향을 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사실에 가까운 것은 역시 본 지도가 아니라 《해동지도》이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사실을 더욱 왜곡하는 현상이 벌어졌다고 생각된다. 읍성의 모습이라는 측면에서 보아도 《해동지도》가 본 지도보다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의 표현과 달리 읍성은 동서남북이 모두 급경사의 산지 위에 축조되어 있다. (이기봉)

  • 정주목(定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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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정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정주목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는 읍치가 지형을 이용해 축조되었음을 분명하게 표현하였다. 하지만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생략되었다. 《광여도》에는 지형을 이용하여 축조된 모습이 《해동지도》보다는 덜하지만 어느 정도 표현되어 있다. 읍치가 다른 지역에 비해 크게 그려졌다. 또한 읍치로부터 서쪽(왼쪽)까지의 거리는 동쪽(오른쪽)까지의 거리에 비해 4분의 1정도밖에 안되는데, 거의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축소되어 그려진 동쪽 부분에는 面이 조밀하게 기록될 수밖에 없었다. 오른쪽에 長水灘이라고 적혀 있는 하천은 실제로는 嘉山과의 경계선 역할을 하였다. 본 지도에도 嘉山界를 하천 옆에 적어놓아 이런 사실을 엿볼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경계선 밖의 부분에도 산줄기를 그려 넣어 실제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읍치에 있는 건물과 명칭을 제외하면 모든 지명이 《해동지도》에 나오는 것이다. 본 지도는 《해동지도》의 지명을 모두 필사한 것이 아니라 생략한 것도 여러 개 있다. 이 중 읍치 위쪽에 東州面이 생략된 것은 면에 노란색 사각형까지 그려 넣은 점을 고려할 때 본 지도 필사 시의 실수라고 생각된다. 이런 오류는 《광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아래쪽의 섬은 실질적인 위치나 크기를 고려하여 그린 것이 아니다. (이기봉)

  • 회양부(淮陽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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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회양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에 비해 잘못된 부분이 몇 개 보인다. 오른쪽 맨 위에는 ‘通杻川串界嶺’이라는 이해되기 어려운 문구가 보인다. 《해동지도》에서는 通川界와 杻串嶺이 위 아래로 적혀 있는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잘못 이해하여 난해한 문구로 바꿔놓은 것으로 생각된다. 《광여도》에서도 이 부분은 헷갈릴 수 있게 기록하였다. 읍치에 있는 德澤溟은 《해동지도》에 德津溟으로 적혀 있고, 《광여도》에는 후자처럼 기록되어 있다. 가운데에 있는 新安驛에는 驛의 기호인 보라색 사각형이 아니라 面의 기호인 노란색의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기도 하다. 《해동지도》에서는 이 부분이 올바르게 되어 있다. 읍치 왼쪽 아래에 있는 天宝菴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는데, 《광여도》에는 天實菴으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하다. 읍치를 휘감고 아래쪽의 金城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북한강 최상류이다. 금강산에서 발원하여 아래쪽의 楊口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북한강의 지류인 금강천이다. 그런데 금강천의 표현에서 오해할 수 있는 2가지 문제점이 발생되고 있다. 첫째, 회양부의 땅에 있는 금강천의 규모는 북한강 본류 유역에 비해 그렇게 작지도 않은데 지도에는 아주 작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읍치에서 볼 때 동남쪽으로 튀어나가 있는 금강천 유역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게 고을 전체의 모습을 그리면서 아주 작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둘째, 금강천은 남류하여 楊口界 방면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남류하다 서류하여 金城界로 빠져나간다. 이것은 금강천과 양구 방면으로 흘러나가는 문등면 지역의 작은 지류들을 혼동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기타 금강천 왼쪽에 적혀 있는 金城과 通溝라는 지명은 이 지역에 있었던 金城縣의 通溝面이라는 의미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회양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와 같은 측면이 사실에 가깝게 수정되어 있다. (이기봉)

  • 풍덕부(豊德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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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풍덕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다른 부분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우선 《광여도》에 森達里로 되어 있는 것이 왼쪽 아래에 森連里로 잘못 표시되어 있다. 또한 위쪽의 德積烽舍는 德積烽臺로, 왼쪽 아래의 旧城臺는 舊城基로 해야 한다. 중간 부분의 軍裝山의 한자도 軍莊山으로 바뀌어 있다. 지도 아래쪽은 한강이 바다와 만나는 부분으로 건너편이 강화부와 통진부이다. 오른쪽에 通津이 적혀 있는데 마치 나루처럼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通津府가 이 방향에 있다는 의미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풍덕부 지도의 표현 방법이 본 지도와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구도와 지명은 거의 동일하여 상호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는 通津이 하구에 표시되어 있어 실제를 반영하고 있는데 《광여도》나 본 지도에서 잘못 그렸다. 이런 잘못은 본 지도의 오른쪽에 있는 하천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해동지도》를 보면 通津 약간 상류에 交河라는 명칭이 적혀 있다. 본 지도에서는 軍莊山 오른쪽 부분이다. 이 부분 약간 하류까지는 실제로 임진강 본류에 해당되며, 여기서 長湍과의 경계선 역할을 한 沙川이 합류된다. 그런데 《해동지도》에 이와 같은 사실이 반영되지 않고 사천을 마치 임진강 본류처럼 그렸다.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이것을 다시 사천으로 인식하여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임진강 하구 맞은편에 있는 通津(府)가 마치 나루의 명칭처럼 인식되도록 표시된 것으로 생각된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통진부 지도에는 비록 회화식 군현지도이지만 이 부분이 실제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이기봉)

  • 호서도(湖西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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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湖西圖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안이나 하천의 유로, 산줄기 등은 두 지도가 거의 동일하여 상호 연관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광여도》보다는 본 지도가 생략된 것이 더 많다. 가운데의 淸州 오른쪽에는 淸安에 ‘淸’자만 쓰여 있다. 그 왼쪽 아래의 懷德은 懷仁을 잘못 쓴 것이다. 懷德이 청주 남쪽 방향에 또 있는데 이것이 옳은 것이다. 水營 오른쪽에 있는 保寧은 군현임에도 불구하고 鎭堡의 기호로서 표시되어 있는 오류도 보인다. 公州 아래쪽에 표시되어야 할 利仁驛이 생략되어 있다. 충청도에 있었던 察訪驛 중 이인역을 제외한 成歡, 時興, 栗峯, 連源, 金井 등의 역이 모두 표시되어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지도 작성자가 실수로 빠뜨린 것으로 추정된다. 公州 왼쪽 방향에 있는 金井驛은 察訪驛임에도 노란색 사각형의 鎭堡 기호로 표시되어 있기도 하다. 공주 아래쪽에 있는 尼山은 1776년(정조 1)에 尼城으로 고쳤고, 1800년(순조 원년)에는 魯城으로 개명하였다. 본 지도에는 尼山으로 나와 내용적으로 1776년 이전을, 《광여도》의 호서도에는 魯城으로 나와 내용적으로 1800년 이후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광여도》에도 군현별 지도에는 魯城이라 되어 있지 않고 尼山으로 나온다. 고을의 위치도 실제와 다른 경우가 많다. 가운데 위쪽의 平澤은 직산 위쪽에 표시되는 것이 실제에 더 부합된다. 禮山은 新昌 아래쪽에 표시되어야 한다. 오른쪽의 丹陽은 淸風 오른쪽에 표시되어야 한다. 위치 표시 중 가장 잘못된 것은 왼쪽 바닷가에 있는 安眠(島)이다. 실제로는 安興(鎭) 아래쪽에 있어야 한다. 永同에 있는 것은 금강의 상류이다. 그러나 본 지도와 달리 금강은 더 남쪽의 전라도에서 영동으로 흘러 들어와야 한다. 《광여도》에는 본 지도와 달리 실제에 부합되도록 그려져 있다. (이기봉)

  • 해남현(海南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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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해남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읍치에 縣內面, 아래쪽 花山面 부근에 百方山 등의 일부 지명이 《광여도》에는 있었지만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읍치와 현재의 해남군 문내면 동외리와 서상리 일대에 있었던 全羅右水營이 확대 과장되어 표현되어 있다. 그 이외의 지역은 실제의 모습을 대략적으로만 표현하고 있을 뿐 거리 등은 지역에 따라 다르게 그려져 있다. 예를 들어 읍치에서 동쪽의 靈岩界까지의 거리는 왼쪽의 牧場까지의 거리보다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이것은 읍치를 확대해서 그리고, 동쪽으로부터 뻗은 산줄기로 둘러싸인 풍수적 명당 이미지를 표현하는 과정 때문에 발생하였다. 場內面은 서해안으로 좁고 길게 뻗은 반도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넓은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렇게 표현된 가장 큰 원인은 右水營을 확대 과장해서 표현했기 때문이다. 오른쪽 위의 比谷面은 동북쪽으로 더 튀어나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사각형의 종이 위에 해남현의 모습을 그리는 과정에서 비곡면보다 서쪽으로 치우쳐져 있는 읍치 동쪽의 산줄기를 중요하게 그렸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아래쪽 三枝院에는 碧波亭까지의 거리가 10리로 되어 있다. 벽파정은 현재의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에 있던 정자로서 해남에서 건너가는 주요 통로였다. (이기봉)

  • 장기현(長鬐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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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장기현 지도와 유사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성 안의 東軒과 倉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그러나 《해동지도》의 오른쪽 위에 적혀 있던 冬背串牧場이 본 지도에는 冬昔中牧場으로, 馬城門이 馬城山으로 되어 있다. 다른 자료들과 비교해보면 본 지도가 아니라 《해동지도》의 내용이 올바르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하였으며, 필사 과정에서 오류를 범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가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려는 경향이 강하다. 본 고을의 해안선이 실제로는 대략 동북에서 서남을 향하고 있지만 본 지도에는 마치 남쪽을 향하다가 서쪽으로 꺾인 것처럼 그려져 있다. 迎日의 경계선 역시 본 지도에 표현된 것보다 더 동북에서 서남 방향을 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사실에 가까운 것은 역시 본 지도가 아니라 《해동지도》이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사실을 더욱 왜곡하는 현상이 벌어졌다고 생각된다. 읍성의 모습이라는 측면에서 보아도 《해동지도》가 본 지도보다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의 표현과 달리 읍성은 동서남북이 모두 급경사의 산지 위에 축조되어 있다. (이기봉)

  • 정주목(定州牧)(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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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정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정주목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는 읍치가 지형을 이용해 축조되었음을 분명하게 표현하였다. 하지만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생략되었다. 《광여도》에는 지형을 이용하여 축조된 모습이 《해동지도》보다는 덜하지만 어느 정도 표현되어 있다. 읍치가 다른 지역에 비해 크게 그려졌다. 또한 읍치로부터 서쪽(왼쪽)까지의 거리는 동쪽(오른쪽)까지의 거리에 비해 4분의 1정도밖에 안되는데, 거의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축소되어 그려진 동쪽 부분에는 面이 조밀하게 기록될 수밖에 없었다. 오른쪽에 長水灘이라고 적혀 있는 하천은 실제로는 嘉山과의 경계선 역할을 하였다. 본 지도에도 嘉山界를 하천 옆에 적어놓아 이런 사실을 엿볼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경계선 밖의 부분에도 산줄기를 그려 넣어 실제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읍치에 있는 건물과 명칭을 제외하면 모든 지명이 《해동지도》에 나오는 것이다. 본 지도는 《해동지도》의 지명을 모두 필사한 것이 아니라 생략한 것도 여러 개 있다. 이 중 읍치 위쪽에 東州面이 생략된 것은 면에 노란색 사각형까지 그려 넣은 점을 고려할 때 본 지도 필사 시의 실수라고 생각된다. 이런 오류는 《광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아래쪽의 섬은 실질적인 위치나 크기를 고려하여 그린 것이 아니다. (이기봉)

  • 회양부(淮陽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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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회양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에서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에 비해 잘못된 부분이 몇 개 보인다. 오른쪽 맨 위에는 ‘通杻川串界嶺’이라는 이해되기 어려운 문구가 보인다. 《해동지도》에서는 通川界와 杻串嶺이 위 아래로 적혀 있는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잘못 이해하여 난해한 문구로 바꿔놓은 것으로 생각된다. 《광여도》에서도 이 부분은 헷갈릴 수 있게 기록하였다. 읍치에 있는 德澤溟은 《해동지도》에 德津溟으로 적혀 있고, 《광여도》에는 후자처럼 기록되어 있다. 가운데에 있는 新安驛에는 驛의 기호인 보라색 사각형이 아니라 面의 기호인 노란색의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기도 하다. 《해동지도》에서는 이 부분이 올바르게 되어 있다. 읍치 왼쪽 아래에 있는 天宝菴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는데, 《광여도》에는 天實菴으로 잘못 적혀 있기도 하다. 읍치를 휘감고 아래쪽의 金城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북한강 최상류이다. 금강산에서 발원하여 아래쪽의 楊口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북한강의 지류인 금강천이다. 그런데 금강천의 표현에서 오해할 수 있는 2가지 문제점이 발생되고 있다. 첫째, 회양부의 땅에 있는 금강천의 규모는 북한강 본류 유역에 비해 그렇게 작지도 않은데 지도에는 아주 작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읍치에서 볼 때 동남쪽으로 튀어나가 있는 금강천 유역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게 고을 전체의 모습을 그리면서 아주 작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둘째, 금강천은 남류하여 楊口界 방면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남류하다 서류하여 金城界로 빠져나간다. 이것은 금강천과 양구 방면으로 흘러나가는 문등면 지역의 작은 지류들을 혼동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기타 금강천 왼쪽에 적혀 있는 金城과 通溝라는 지명은 이 지역에 있었던 金城縣의 通溝面이라는 의미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회양 지도와 김정호의 《동여도》에서는 이와 같은 측면이 사실에 가깝게 수정되어 있다. (이기봉)

  • 호서도(湖西圖)(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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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湖西圖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해안이나 하천의 유로, 산줄기 등은 두 지도가 거의 동일하여 상호 연관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광여도》보다는 본 지도가 생략된 것이 더 많다. 가운데의 淸州 오른쪽에는 淸安에 ‘淸’자만 쓰여 있다. 그 왼쪽 아래의 懷德은 懷仁을 잘못 쓴 것이다. 懷德이 청주 남쪽 방향에 또 있는데 이것이 옳은 것이다. 水營 오른쪽에 있는 保寧은 군현임에도 불구하고 鎭堡의 기호로서 표시되어 있는 오류도 보인다. 公州 아래쪽에 표시되어야 할 利仁驛이 생략되어 있다. 충청도에 있었던 察訪驛 중 이인역을 제외한 成歡, 時興, 栗峯, 連源, 金井 등의 역이 모두 표시되어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지도 작성자가 실수로 빠뜨린 것으로 추정된다. 公州 왼쪽 방향에 있는 金井驛은 察訪驛임에도 노란색 사각형의 鎭堡 기호로 표시되어 있기도 하다. 공주 아래쪽에 있는 尼山은 1776년(정조 1)에 尼城으로 고쳤고, 1800년(순조 원년)에는 魯城으로 개명하였다. 본 지도에는 尼山으로 나와 내용적으로 1776년 이전을, 《광여도》의 호서도에는 魯城으로 나와 내용적으로 1800년 이후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광여도》에도 군현별 지도에는 魯城이라 되어 있지 않고 尼山으로 나온다. 고을의 위치도 실제와 다른 경우가 많다. 가운데 위쪽의 平澤은 직산 위쪽에 표시되는 것이 실제에 더 부합된다. 禮山은 新昌 아래쪽에 표시되어야 한다. 오른쪽의 丹陽은 淸風 오른쪽에 표시되어야 한다. 위치 표시 중 가장 잘못된 것은 왼쪽 바닷가에 있는 安眠(島)이다. 실제로는 安興(鎭) 아래쪽에 있어야 한다. 永同에 있는 것은 금강의 상류이다. 그러나 본 지도와 달리 금강은 더 남쪽의 전라도에서 영동으로 흘러 들어와야 한다. 《광여도》에는 본 지도와 달리 실제에 부합되도록 그려져 있다. (이기봉)

  • 해남현(海南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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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해남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읍치에 縣內面, 아래쪽 花山面 부근에 百方山 등의 일부 지명이 《광여도》에는 있었지만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읍치와 현재의 해남군 문내면 동외리와 서상리 일대에 있었던 全羅右水營이 확대 과장되어 표현되어 있다. 그 이외의 지역은 실제의 모습을 대략적으로만 표현하고 있을 뿐 거리 등은 지역에 따라 다르게 그려져 있다. 예를 들어 읍치에서 동쪽의 靈岩界까지의 거리는 왼쪽의 牧場까지의 거리보다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이것은 읍치를 확대해서 그리고, 동쪽으로부터 뻗은 산줄기로 둘러싸인 풍수적 명당 이미지를 표현하는 과정 때문에 발생하였다. 場內面은 서해안으로 좁고 길게 뻗은 반도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넓은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렇게 표현된 가장 큰 원인은 右水營을 확대 과장해서 표현했기 때문이다. 오른쪽 위의 比谷面은 동북쪽으로 더 튀어나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사각형의 종이 위에 해남현의 모습을 그리는 과정에서 비곡면보다 서쪽으로 치우쳐져 있는 읍치 동쪽의 산줄기를 중요하게 그렸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아래쪽 三枝院에는 碧波亭까지의 거리가 10리로 되어 있다. 벽파정은 현재의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에 있던 정자로서 해남에서 건너가는 주요 통로였다. (이기봉)

  • 지례현(知禮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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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지례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가 현재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려 있는 반면에 본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또한 《해동지도》가 남북을 동서보다 훨씬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남북보다 동서를 조금 길게 그렸다. 이 과정에서 하천의 유로가 약간 다르게 표현되었다. 즉, 오른쪽(북)으로 흐르는 하천보다 아래(남)로 흐르는 하천이 길게 그려졌다. 또한 비스듬하게 흐르던 하천의 유로가 보다 수직으로 흐르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치의 倉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없는 것도 있다. 또한 《해동지도》와 비교하면 다르게 적혀 있는 지명들이 여러 개 보인다. 예를 들어 왼쪽 위의 石橋는 《해동지도》에 石高山으로, 走峙는 走峙村으로 으로 나온다. 왼쪽 아래의 山衣旨峙는 山衣旨村으로, 오른쪽 위의 黃岳山來脈은 廣岳山來脈으로 적혀 있다. 이와 같은 부분들을 살펴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여러 실수를 저지른 것이 아닌가 한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몇 개의 왜곡이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왼쪽의 牛旨峙는 남쪽(왼쪽)으로 튀어나가 있는 부분이다. 이것을 사각형에 맞추는 과정에서 이 지역이 상당히 작게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는 왼쪽 위의 內甘村과 아래의 牛旨峙에서 흐르는 2개 하천의 길이가 거의 비슷함에도 본 지도에는 우지치쪽의 하천이 훨씬 짧은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중화부(中和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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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중화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약간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중화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몇 가지 변화가 발생하였다. 읍치에 있는 건물의 수가 훨씬 늘어났고, 표기된 지명 역시 많아졌다. 이것은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도 읍치 부분에서만큼은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첨가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많아진 읍치의 정보를 표시하기 위해 읍치 지역이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크게 그려졌다. 이로 인해 읍치 아래쪽 부분이 상대적으로 작게 그려졌다. 또한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로가 길게 그려졌다. 이에 따라 동쪽(위)에서 서쪽(아래)으로 길게 뻗은 고을의 실제 모습이 더욱더 왜곡되게 표현되었다. 이것은 하천에 대한 이해에서도 오해를 낳을 수 있게 하였다. 실제로는 하천이 위에서 아래로 즉, 西流하는 길이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즉, 北流하는 길이보다 훨씬 길다. 필사 과정에서 잘못 옮겨진 지명도 보이고 있다. 읍치 아래쪽의 羊王代面은 羊毛代面을 잘못 옮겨 쓴 것이다. 주기에는 올바르게 적혀 있으며, 《광여도》에는 교정되어 있다. 아래쪽은 바다처럼 그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대동강의 하류 부분이다. 다만 밀물 때 이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오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바다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곳에 적혀 있는 海倉이란 지명이 그런 인식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기봉)

  • 횡성현(橫城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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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횡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왼쪽 아래의 葛豊驛에 面의 색인 노란색을 칠했다가 驛의 색인 보라색을 덧칠한 것 같은 모습이 보인다. 《광여도》에는 이와 같은 오류가 나타나지 않는다. 갈풍역 위쪽의 加五峙는 《광여도》에 五加峙로 적혀 있다. 표현 양식은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횡성현 지도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본 지도와 《해동지도》의 것이 올바르며, 《광여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위쪽에 있는 松原面은 《광여도》에 松源面으로 되어 있으며, 《해동지도》에는 公根面으로 되어 있다. 《광여도》의 주기에는 공근면으로, 본 지도에는 송원면으로 되어 있다. 공근면이 맞는 것이기 때문에 광여도에서는 지도에서만 잘못되었던 것이 본 지도에서는 지도와 주기 모두 잘못되어 있다. 가장 위쪽의 泰坡山도 《광여도》에 동일하게 되어 있는데, 《해동지도》에는 泰歧山으로 되어 있다. 《해동지도》의 것이 옳으며, 본 지도와 《광여도》의 필사 시에 잘못 옮긴 것이다. 읍치 위쪽의 山頭鴻은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실제로는 鴻頭山이며, 이를 통해 한번 잘못 기록된 것이 이후의 필사 과정에서 교정되지 않았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이밖에 태기산은 실제로는 읍치의 거의 동쪽에 있는 것인데 마치 북쪽에 있는 것처럼 묘사되었다. 이에 따라 晴日面에서 내려오는 하천이 거의 南流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실제로는 태기산에서 발원하여 서류하다가 남류해야 한다. 이 하천은 지도  상의 前川보다 훨씬 긴 하천임에도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왜곡되어 있다. 甲川面의 위치도 청일면 방면에 적혀 있어야 한다. 맨 오른쪽의 하천은 주천강의 상류로서 영월로 흘러가 남한강에 합류된다. 이런 오류들의 근본적인 원인은 남북보다 동서가 긴 횡성현의 모습을 반대로 동서보다 남북이 길게 그리면서 발생한 것이다. (이기봉)

  • 홍산현(鴻山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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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홍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 위쪽의 月明山과 荒次山이 《광여도》에는 없다. 오른쪽 아래의 新橋와 仇仰浦가 《광여도》에는 新橋와 九郞浦로 적혀 있다. 仇仰浦가 仇乙仰浦로 적혀 있는 것을 제외하면 세 가지는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홍산현 지도에 모두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해동지도》와 《광여도》에 모두 나오는 지명 중 오른쪽 아래에 扶餘頭와 林川界가 본 지도에는 빠져 있다. 또한 읍치 아래쪽의 縣西面은 주기에 縣內面이라 적혀 있다. 《광여도》에는 동일하게 나오며, 《해동지도》에는 모두 縣內面으로 나온다. 이 부분은 본 지도와 《광여도》가 잘못된 것이다. 오른쪽 扶餘界에 있는 하천이 바치 부여 방면에서 본류가 흘러오는 것처럼 표시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오른쪽 아래에 표시된 白馬江은 이 하천의 명칭 아니라 백마강으로 흘러들어간다는 의미이다. 읍치 아래쪽을 흐르는 하천은 현재 금천이라 부른다. 왼쪽 위의 하천은 서쪽으로 흘러 보령시 웅천읍에서 바다로 들어가는 웅천의 최상류이다. 이곳의 최북단에는 洪陽으로 표시된 洪州와 靑陽 및 保寧의 경계선이 鴻山과 약간씩 맞닿아 있다. 본 지도에서는 이런 세세한 경계선의 표시라는 측면에서는 상당히 사실에 부합되도록 기록하였다. 그러나 웅천의 최상류와 읍치 오른쪽 하천의 최상류는 서로 맞닿아 있지 않으며, 웅천의 최상류가 훨씬 북쪽에 있다. 왼쪽 위에 있는 星台山 역시 오른쪽 위의 望心山보다 훨씬 북쪽에 있다. 이러한 문제점은 고을 전체와 읍치를 산줄기와 물줄기에 의해 겹겹이 둘러싸이게 그려 풍수적 명당 이미지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호남도(湖南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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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호남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감영, 수영, 병영, 군현, 진보, 찰방역 등의 정보는 기호와 색을 사용하여 구분하였다. 그러나 기호의 형태와 색은 《광여도》의 것과 다르다. 《광여도》에 비해 본 지도는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鎭堡를 나타내는 노란색 사각형이 古群山과 智島에만 사용되어 나머지의 진보와 다른 지명 사이의 구별이 어렵다. 察訪驛은 적황색 사각형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위쪽 錦山 부근의 濟源驛은 군현을 나타내는 보라색 원으로 표시하였고, 가운데 長城 부근의 靑岩驛과 아래쪽 寶城 부근의 碧沙驛은 기호가 아예 사용되지 않았다. 군현 중 長城은 찰방역의 기호로 잘못 표시되었고, 康津 오른쪽의 長興은 아예 기호가 사용되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부분이 잘못된 것을 보면 본 지도의 오류는 《광여도》를 필사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하천의 유로도 《광여도》와 대부분 동일하지만 일부분에서 다른 구간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경상도의 河東界 부분에 섬진강 하류가 그려져 있는데 《광여도》에는 이 부분이 없다. 위쪽의 錦山과 珍山 부분에도 《광여도》에 없는 금강의 지류가 그려져 있다. 全州 監營에서 서해로 내려가는 현재의 만경강도 《광여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이런 부분들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다른 자료를 보면서 일부 수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바다에 있는 여러 섬들은 대략적인 위치만 확인시켜줄 뿐 정확한 것은 아니다. 크기 역시 일부 큰 섬을 제외하면 실제와 상당히 다르게 그려져 있다. 아마 섬에 대한 정보가 불완전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羅州가 錦城으로 표기되어 있다. 나주는 인조(1623-1649) 시기에 잠시 금성현으로 강등되었다. 또한 1728년-1737년(영조 4-13) 사이에도 금성현으로 강등된 적이 있다. 그러나 군현별 지도에서는 금성현이 아니라 나주목이라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본 지도가 금성현으로 강등되었을 시기의 내용을 반영하지만 그것이 제작 시기라고 볼 수는 없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에 53官으로 잘못 적혀 있던 것이 56官으로 바뀐 것 이외에는 동일하다. 이 지도책의 군현별 지도의 구도와 내용이 《해동지도》와 거의 비슷하지만 본 지도는 《해동지도》의 전라도 지도와 다른 측면이 많다. (이기봉)

  • 지례현(知禮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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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지례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가 현재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려 있는 반면에 본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또한 《해동지도》가 남북을 동서보다 훨씬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남북보다 동서를 조금 길게 그렸다. 이 과정에서 하천의 유로가 약간 다르게 표현되었다. 즉, 오른쪽(북)으로 흐르는 하천보다 아래(남)로 흐르는 하천이 길게 그려졌다. 또한 비스듬하게 흐르던 하천의 유로가 보다 수직으로 흐르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치의 倉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없는 것도 있다. 또한 《해동지도》와 비교하면 다르게 적혀 있는 지명들이 여러 개 보인다. 예를 들어 왼쪽 위의 石橋는 《해동지도》에 石高山으로, 走峙는 走峙村으로 으로 나온다. 왼쪽 아래의 山衣旨峙는 山衣旨村으로, 오른쪽 위의 黃岳山來脈은 廣岳山來脈으로 적혀 있다. 이와 같은 부분들을 살펴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여러 실수를 저지른 것이 아닌가 한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몇 개의 왜곡이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왼쪽의 牛旨峙는 남쪽(왼쪽)으로 튀어나가 있는 부분이다. 이것을 사각형에 맞추는 과정에서 이 지역이 상당히 작게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는 왼쪽 위의 內甘村과 아래의 牛旨峙에서 흐르는 2개 하천의 길이가 거의 비슷함에도 본 지도에는 우지치쪽의 하천이 훨씬 짧은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중화부(中和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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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중화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약간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중화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몇 가지 변화가 발생하였다. 읍치에 있는 건물의 수가 훨씬 늘어났고, 표기된 지명 역시 많아졌다. 이것은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도 읍치 부분에서만큼은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첨가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많아진 읍치의 정보를 표시하기 위해 읍치 지역이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크게 그려졌다. 이로 인해 읍치 아래쪽 부분이 상대적으로 작게 그려졌다. 또한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로가 길게 그려졌다. 이에 따라 동쪽(위)에서 서쪽(아래)으로 길게 뻗은 고을의 실제 모습이 더욱더 왜곡되게 표현되었다. 이것은 하천에 대한 이해에서도 오해를 낳을 수 있게 하였다. 실제로는 하천이 위에서 아래로 즉, 西流하는 길이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즉, 北流하는 길이보다 훨씬 길다. 필사 과정에서 잘못 옮겨진 지명도 보이고 있다. 읍치 아래쪽의 羊王代面은 羊毛代面을 잘못 옮겨 쓴 것이다. 주기에는 올바르게 적혀 있으며, 《광여도》에는 교정되어 있다. 아래쪽은 바다처럼 그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대동강의 하류 부분이다. 다만 밀물 때 이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오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바다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곳에 적혀 있는 海倉이란 지명이 그런 인식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기봉)

  • 횡성현(橫城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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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횡성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왼쪽 아래의 葛豊驛에 面의 색인 노란색을 칠했다가 驛의 색인 보라색을 덧칠한 것 같은 모습이 보인다. 《광여도》에는 이와 같은 오류가 나타나지 않는다. 갈풍역 위쪽의 加五峙는 《광여도》에 五加峙로 적혀 있다. 표현 양식은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횡성현 지도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본 지도와 《해동지도》의 것이 올바르며, 《광여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위쪽에 있는 松原面은 《광여도》에 松源面으로 되어 있으며, 《해동지도》에는 公根面으로 되어 있다. 《광여도》의 주기에는 공근면으로, 본 지도에는 송원면으로 되어 있다. 공근면이 맞는 것이기 때문에 광여도에서는 지도에서만 잘못되었던 것이 본 지도에서는 지도와 주기 모두 잘못되어 있다. 가장 위쪽의 泰坡山도 《광여도》에 동일하게 되어 있는데, 《해동지도》에는 泰歧山으로 되어 있다. 《해동지도》의 것이 옳으며, 본 지도와 《광여도》의 필사 시에 잘못 옮긴 것이다. 읍치 위쪽의 山頭鴻은 《광여도》와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실제로는 鴻頭山이며, 이를 통해 한번 잘못 기록된 것이 이후의 필사 과정에서 교정되지 않았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이밖에 태기산은 실제로는 읍치의 거의 동쪽에 있는 것인데 마치 북쪽에 있는 것처럼 묘사되었다. 이에 따라 晴日面에서 내려오는 하천이 거의 南流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실제로는 태기산에서 발원하여 서류하다가 남류해야 한다. 이 하천은 지도  상의 前川보다 훨씬 긴 하천임에도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왜곡되어 있다. 甲川面의 위치도 청일면 방면에 적혀 있어야 한다. 맨 오른쪽의 하천은 주천강의 상류로서 영월로 흘러가 남한강에 합류된다. 이런 오류들의 근본적인 원인은 남북보다 동서가 긴 횡성현의 모습을 반대로 동서보다 남북이 길게 그리면서 발생한 것이다. (이기봉)

  • 홍산현(鴻山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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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홍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읍치 위쪽의 月明山과 荒次山이 《광여도》에는 없다. 오른쪽 아래의 新橋와 仇仰浦가 《광여도》에는 新橋와 九郞浦로 적혀 있다. 仇仰浦가 仇乙仰浦로 적혀 있는 것을 제외하면 세 가지는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홍산현 지도에 모두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해동지도》와 《광여도》에 모두 나오는 지명 중 오른쪽 아래에 扶餘頭와 林川界가 본 지도에는 빠져 있다. 또한 읍치 아래쪽의 縣西面은 주기에 縣內面이라 적혀 있다. 《광여도》에는 동일하게 나오며, 《해동지도》에는 모두 縣內面으로 나온다. 이 부분은 본 지도와 《광여도》가 잘못된 것이다. 오른쪽 扶餘界에 있는 하천이 바치 부여 방면에서 본류가 흘러오는 것처럼 표시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오른쪽 아래에 표시된 白馬江은 이 하천의 명칭 아니라 백마강으로 흘러들어간다는 의미이다. 읍치 아래쪽을 흐르는 하천은 현재 금천이라 부른다. 왼쪽 위의 하천은 서쪽으로 흘러 보령시 웅천읍에서 바다로 들어가는 웅천의 최상류이다. 이곳의 최북단에는 洪陽으로 표시된 洪州와 靑陽 및 保寧의 경계선이 鴻山과 약간씩 맞닿아 있다. 본 지도에서는 이런 세세한 경계선의 표시라는 측면에서는 상당히 사실에 부합되도록 기록하였다. 그러나 웅천의 최상류와 읍치 오른쪽 하천의 최상류는 서로 맞닿아 있지 않으며, 웅천의 최상류가 훨씬 북쪽에 있다. 왼쪽 위에 있는 星台山 역시 오른쪽 위의 望心山보다 훨씬 북쪽에 있다. 이러한 문제점은 고을 전체와 읍치를 산줄기와 물줄기에 의해 겹겹이 둘러싸이게 그려 풍수적 명당 이미지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호남도(湖南圖)(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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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호남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감영, 수영, 병영, 군현, 진보, 찰방역 등의 정보는 기호와 색을 사용하여 구분하였다. 그러나 기호의 형태와 색은 《광여도》의 것과 다르다. 《광여도》에 비해 본 지도는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鎭堡를 나타내는 노란색 사각형이 古群山과 智島에만 사용되어 나머지의 진보와 다른 지명 사이의 구별이 어렵다. 察訪驛은 적황색 사각형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위쪽 錦山 부근의 濟源驛은 군현을 나타내는 보라색 원으로 표시하였고, 가운데 長城 부근의 靑岩驛과 아래쪽 寶城 부근의 碧沙驛은 기호가 아예 사용되지 않았다. 군현 중 長城은 찰방역의 기호로 잘못 표시되었고, 康津 오른쪽의 長興은 아예 기호가 사용되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부분이 잘못된 것을 보면 본 지도의 오류는 《광여도》를 필사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하천의 유로도 《광여도》와 대부분 동일하지만 일부분에서 다른 구간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경상도의 河東界 부분에 섬진강 하류가 그려져 있는데 《광여도》에는 이 부분이 없다. 위쪽의 錦山과 珍山 부분에도 《광여도》에 없는 금강의 지류가 그려져 있다. 全州 監營에서 서해로 내려가는 현재의 만경강도 《광여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이런 부분들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다른 자료를 보면서 일부 수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바다에 있는 여러 섬들은 대략적인 위치만 확인시켜줄 뿐 정확한 것은 아니다. 크기 역시 일부 큰 섬을 제외하면 실제와 상당히 다르게 그려져 있다. 아마 섬에 대한 정보가 불완전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羅州가 錦城으로 표기되어 있다. 나주는 인조(1623-1649) 시기에 잠시 금성현으로 강등되었다. 또한 1728년-1737년(영조 4-13) 사이에도 금성현으로 강등된 적이 있다. 그러나 군현별 지도에서는 금성현이 아니라 나주목이라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본 지도가 금성현으로 강등되었을 시기의 내용을 반영하지만 그것이 제작 시기라고 볼 수는 없다. 주기의 내용은 《광여도》에 53官으로 잘못 적혀 있던 것이 56官으로 바뀐 것 이외에는 동일하다. 이 지도책의 군현별 지도의 구도와 내용이 《해동지도》와 거의 비슷하지만 본 지도는 《해동지도》의 전라도 지도와 다른 측면이 많다. (이기봉)

  • 진보현(眞寶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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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진보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지만 하천의 流路나 다른 부분의 모습은 《해동지도》의 내용과 비슷하다. 또한 읍치의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수록된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있는 지명 중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할 정도로 중요한 정보로 인식한 面 중 오른쪽 위에 北面이 생략되어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이며, 읍치 부분에서만 다른 자료를 참고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지명의 위치가 《해동지도》와 다른 부분이 여러 곳 있다. 예를 들어 오른쪽 위의 城項峙가 《해동지도》에는 도로와 함께 지금의 반변천 건너편에 적혀 있다. 그 왼쪽의 文岩 역시 《해동지도》에는 반변천 위에 文岩淵으로 표시되어 있다. 오른쪽 아래의 鬱林峙도 《해동지도》에는 上里面 바로 아래쪽에 표시되어 있다. 이러한 지명 위치의 변화는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하지 않았던 것을 알려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읍치에 있는 土城은 지명 위치가 특별히 달라졌다고 할 수는 없지만 鄕校 왼쪽의 산줄기가 《해동지도》에는 토성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증산현(甑山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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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증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증산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지명이 《해동지도》에 나오는 것이지만 왼쪽의 車踰嶺과 兎山烟臺는 《해동지도》에 없는 지명이다. 읍치의 건물수와 명칭도 《해동지도》와는 다르게 되어 있다. 이런 부분들은 《해동지도》 이외의 자료를 참고하여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읍치가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고, 고을 전체의 세로(남북) 역시 더 길게 표현되었다. 이에 따라 읍치 지역을 지나는 하천의 모습이 달라져 있다. 《해동지도》에는 南流하다가 西流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에는 거의 西南流하는 모양으로 바뀌어 있다. 지도와 주기에 동일하게 되어 있는 下防面과 上防面에서의 防이 《해동지도》의 지도와 주기에는 坊으로 되어 있다. 《광여도》에는 지도는 《해동지도》처럼, 주기는 본 지도처럼 기록되어 있다. (이기봉)

  • 흡곡현(歙谷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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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흡곡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흡곡현은 일제시대의 통천군 흡곡면에 해당되는 아주 작은 군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고을과 동일한 크기의 종이 위에 그렸기 때문에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없다. 다만 주기에 호수가 겨우 778호밖에 기록되지 않아 작은 고을임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또한 고을의 서쪽은 아주 좁고, 동쪽으로 갈수록 넓은데 사각형의 종이에 맞게 그리면서 서쪽 역시 넓은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또한 남북의 폭보다 동서의 폭이 훨씬 넓음에도 불구하고 반대로 그려져 있다. 지도 위쪽에는 大路와 小路란 문구가 보이고 있다. 표현 양식이 다르나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흡곡현 지도에는 도로가 그려져 있고, 그 위에 대로와 소로의 문구가 적혀 있다. 본 지도와 《광여도》 등에서는 도로는 생략하고 문구만 남겨놓아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어놓았다. (이기봉)

  • 홍주목(洪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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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홍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읍치 주변에 많이 기록되어 있는 堤가 《광여도》에는 圓形의 제언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 차이가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홍주목 지도도 표현 방식에서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는데, 읍치의 산세를 고려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형적인 회화식 지도인 만큼 거리와 방향 및 면적 등은 대략적으로만 맞을 뿐 정확하지 않다. 홍주는 특히 월경지가 많은데 본 지도에서는 월경지를 거의 구분하기 어렵도록 그렸다. 오른쪽 아래의 新南面과 新北面은 현재의 당진군 신평면 지역에, 그 왼쪽의 縣內面과 合北面 및 合南面은 현재의 합덕읍 지역에 있었던 월경지로서 德山縣의 경계선을 넘어가 있었다. 그리고 두 월경지는 지도에 마치 붙어 있는 것처럼 표시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沔川郡의 땅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었다. 위쪽의 雲川面은 海美縣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고, 현재의 서산시 운산면 일부에 있었다. 위쪽의 用川面과 바다 위의 섬 역시 結成縣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다. 바다 위의 섬들은 크기나 해안으로부터의 거리가 전혀 고려되지 않고 그려져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주기에 각 면의 初境과 終境을 적어놓았다. 주기를 보면 각 면의 거리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으나 월경지라는 표시가 없기 때문에 계속 이어진 것과 같은 오해를 할 수 있다. (이기봉)

  • 화순현(和順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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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화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화순현의 실제 모양은 동서가 남북의 2배 정도 된다. 그런데 본 지도에는 오히려 남북이 동서보다 더 긴 것처럼 오해될 수 있게 그려져 있다. 이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세로로 긴 사각형 안에 고을의 모습 전체를 담으로 했고,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실제의 모습과 상관없이 동서보다는 남북을 더 길게 그릴 수밖에 없게 된다. 이로 인해 하천의 유로에서 여러 왜곡이 발생하게 된다. 예를 들어 双溪寺가 있는 하천은 西面이 있는 하천의 길이와 거의 비슷하지만 훨씬 짧게 그려졌다. 또한 이 하천이 西流하여 현재의 화순천에 합류되지만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묘사되었다. 오른쪽 珠路峙 부근의 하천은 남류하는 부분보다 읍치까지 서류하는 부분이 훨씬 길지만 오히려 반대로 그려져 있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화순현 지도에서도 이런 부분들은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여지도서』의 화순현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하다. 그러나 남북보다 동서가 넓게 그려져 있어 쌍계사 부분의 하천이 서류하는 모습을 일부 표현하고 있다. 또한 주로치 부분의 하천도 남류하는 부분보다 서류하는 부분을 약간 더 길게 그리고 있다. (이기봉)

  • 진보현(眞寶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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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진보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지만 하천의 流路나 다른 부분의 모습은 《해동지도》의 내용과 비슷하다. 또한 읍치의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수록된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있는 지명 중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할 정도로 중요한 정보로 인식한 面 중 오른쪽 위에 北面이 생략되어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이며, 읍치 부분에서만 다른 자료를 참고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지명의 위치가 《해동지도》와 다른 부분이 여러 곳 있다. 예를 들어 오른쪽 위의 城項峙가 《해동지도》에는 도로와 함께 지금의 반변천 건너편에 적혀 있다. 그 왼쪽의 文岩 역시 《해동지도》에는 반변천 위에 文岩淵으로 표시되어 있다. 오른쪽 아래의 鬱林峙도 《해동지도》에는 上里面 바로 아래쪽에 표시되어 있다. 이러한 지명 위치의 변화는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하지 않았던 것을 알려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읍치에 있는 土城은 지명 위치가 특별히 달라졌다고 할 수는 없지만 鄕校 왼쪽의 산줄기가 《해동지도》에는 토성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증산현(甑山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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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증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증산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지명이 《해동지도》에 나오는 것이지만 왼쪽의 車踰嶺과 兎山烟臺는 《해동지도》에 없는 지명이다. 읍치의 건물수와 명칭도 《해동지도》와는 다르게 되어 있다. 이런 부분들은 《해동지도》 이외의 자료를 참고하여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읍치가 《해동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고, 고을 전체의 세로(남북) 역시 더 길게 표현되었다. 이에 따라 읍치 지역을 지나는 하천의 모습이 달라져 있다. 《해동지도》에는 南流하다가 西流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에는 거의 西南流하는 모양으로 바뀌어 있다. 지도와 주기에 동일하게 되어 있는 下防面과 上防面에서의 防이 《해동지도》의 지도와 주기에는 坊으로 되어 있다. 《광여도》에는 지도는 《해동지도》처럼, 주기는 본 지도처럼 기록되어 있다. (이기봉)

  • 흡곡현(歙谷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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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흡곡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흡곡현은 일제시대의 통천군 흡곡면에 해당되는 아주 작은 군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고을과 동일한 크기의 종이 위에 그렸기 때문에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없다. 다만 주기에 호수가 겨우 778호밖에 기록되지 않아 작은 고을임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또한 고을의 서쪽은 아주 좁고, 동쪽으로 갈수록 넓은데 사각형의 종이에 맞게 그리면서 서쪽 역시 넓은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또한 남북의 폭보다 동서의 폭이 훨씬 넓음에도 불구하고 반대로 그려져 있다. 지도 위쪽에는 大路와 小路란 문구가 보이고 있다. 표현 양식이 다르나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흡곡현 지도에는 도로가 그려져 있고, 그 위에 대로와 소로의 문구가 적혀 있다. 본 지도와 《광여도》 등에서는 도로는 생략하고 문구만 남겨놓아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어놓았다. (이기봉)

  • 홍주목(洪州牧)(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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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홍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읍치 주변에 많이 기록되어 있는 堤가 《광여도》에는 圓形의 제언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 차이가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홍주목 지도도 표현 방식에서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는데, 읍치의 산세를 고려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형적인 회화식 지도인 만큼 거리와 방향 및 면적 등은 대략적으로만 맞을 뿐 정확하지 않다. 홍주는 특히 월경지가 많은데 본 지도에서는 월경지를 거의 구분하기 어렵도록 그렸다. 오른쪽 아래의 新南面과 新北面은 현재의 당진군 신평면 지역에, 그 왼쪽의 縣內面과 合北面 및 合南面은 현재의 합덕읍 지역에 있었던 월경지로서 德山縣의 경계선을 넘어가 있었다. 그리고 두 월경지는 지도에 마치 붙어 있는 것처럼 표시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沔川郡의 땅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었다. 위쪽의 雲川面은 海美縣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고, 현재의 서산시 운산면 일부에 있었다. 위쪽의 用川面과 바다 위의 섬 역시 結成縣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다. 바다 위의 섬들은 크기나 해안으로부터의 거리가 전혀 고려되지 않고 그려져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주기에 각 면의 初境과 終境을 적어놓았다. 주기를 보면 각 면의 거리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으나 월경지라는 표시가 없기 때문에 계속 이어진 것과 같은 오해를 할 수 있다. (이기봉)

  • 화순현(和順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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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화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화순현의 실제 모양은 동서가 남북의 2배 정도 된다. 그런데 본 지도에는 오히려 남북이 동서보다 더 긴 것처럼 오해될 수 있게 그려져 있다. 이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세로로 긴 사각형 안에 고을의 모습 전체를 담으로 했고,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실제의 모습과 상관없이 동서보다는 남북을 더 길게 그릴 수밖에 없게 된다. 이로 인해 하천의 유로에서 여러 왜곡이 발생하게 된다. 예를 들어 双溪寺가 있는 하천은 西面이 있는 하천의 길이와 거의 비슷하지만 훨씬 짧게 그려졌다. 또한 이 하천이 西流하여 현재의 화순천에 합류되지만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묘사되었다. 오른쪽 珠路峙 부근의 하천은 남류하는 부분보다 읍치까지 서류하는 부분이 훨씬 길지만 오히려 반대로 그려져 있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화순현 지도에서도 이런 부분들은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여지도서』의 화순현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는 본 지도와 비슷하다. 그러나 남북보다 동서가 넓게 그려져 있어 쌍계사 부분의 하천이 서류하는 모습을 일부 표현하고 있다. 또한 주로치 부분의 하천도 남류하는 부분보다 서류하는 부분을 약간 더 길게 그리고 있다. (이기봉)

  • 진주목(晋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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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진주목 지도와 비슷하다. 본 지도에 수록되어 있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거의 모두 나온다. 다만 진주성 오른쪽의 召村驛은 《해동지도》에 이 역에 파견된 종6품의 지방관인 察訪이라고만 적혀 있다. 《해동지도》에 원형으로 표시된 里는 다른 고을에서는 일반적으로 面이라고 불렀다. 본 지도에는 里를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하였다. 그러나 진주성 왼쪽의 新豊里에 노란색 사각형이 없는 오류가 보인다. 아래쪽에 泗川縣이 특별히 기록되어 있는 것은 사천현을 넘어가 있는 현재의 사천시 시내 일부와 昌善島가 진주의 越境地였기 때문이다. 《해동지도》에는 창선도에 昌善島와 赤梁鎭이 적혀 있는데, 본 지도에는 노란색 사각형을 그리고 里란 글자는 생략하였다. 주기의 南面 부분에 창선리와 적량리가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즉, 본 지도에서는 기본적으로 里를 표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島와 鎭을 里로 바꾼 것이 아닌가 한다. 《해동지도》가 남북보다 동서를 약간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남북을 조금 길게 그렸다. 이로 인해 남북으로 흐르는 것처럼 표현된 하천이 상대적으로 길게 그려졌다. 또한 《해동지도》에는 진주성 북쪽에 大寺池란 명칭을 적었고, 연못처럼 표현하였다. 본 지도에는 이런 부분이 생략되어 있는데, 《해동지도》의 표현이 사실에 가깝다. 산줄기의 표현에서도 《해동지도》와 본 지도가 좀 다르게 되어 있다. 특히 북쪽에서 읍치까지 뻗은 산줄기가 서로 다르게 되어 있다. 진주목은 실제로 본 지도와 같은 사각형의 모양으로 생기지 않았다. 예를 들어 왼쪽 위의 山淸界 부근은 서북쪽으로 튀어나간 형태를 취하고 있다. 고을 전체를 산줄기에 의해 둘러싸인 형태로 그리는 것은 회화식 군현지도에서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런 과정에서 사실 왜곡이 발생하는데, 본 지도에서도 그런 왜곡 현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南江의 본류는 전라도의 운봉과 경상도의 함양에서 발원하여 산청과 단성을 거쳐 진주목의 영역으로 흘러온다. 본 지도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왼쪽 위의 山淸界는 《해동지도》에 山陰界로 나온다. 山陰縣은 1767년(영조 43)에 山淸縣으로 바뀐다. 따라서 본 지도는 1767년 이후에, 《해동지도》는 그 이전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산청이란 지명만 놓고 본다면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창성부(昌城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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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창성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창성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몇 가지 내용이 생략되거나 다르게 필사되었다. 본 지도는 남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위쪽은 대령강의 지류인 창성강 유역이고, 아래쪽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르는 압록강 유역이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는 세로가 축소되었고, 특히 창성강 유역이 상대적으로 작게 그려졌다. 또한 두 유역을 가로지르는 산줄기 위에 《해동지도》에는 3개의 關門城이 표시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는 小防墻岺 1곳에만 그려져 있다. 압록강 변의 성곽에는 《해동지도》에 있던 城堞 표시가 사라졌다. 鄕校가 있는 읍성은 《해동지도》에 지형을 이용해 축조된 모습이 잘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에는 이런 부분이 생략되었다. 또한 아래쪽 왼쪽에 廟洞堡가 廟洞保로 적혀 있는 등 잘못 필사된 글자들도 보이고 있다. 《광여도》에서는 오자가 개선된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본 지도와 동일하다. 본 지도에는 본 책의 다른 지도와 달리 面이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려져 있지 않으며, 《광여도》에도 동일하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본 지도가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동지도》에 面이 표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주기에도 面이 大吉號里堡 끝에 3개가 적혀 있을 뿐이인데, 《해동지도》의 주기에 적혀 있는 것과 동일하다. 그러나 이 당시에 面이 3개밖에 있다고 단정 짓기 어렵다. 177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창성 지도에는 3개 이외의 面이 여러 개 등장하고 있다. (이기봉)

  • 황간현(黃澗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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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황간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광여도》에 올바르게 적혀 있는 冷泉이 본 지도에는 오른쪽에 令泉으로 잘못 표시되어 있다는 점 정도이다. 《해동지도》의 황간현 지도도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다만 하천의 표현 방법에서는 《광여도》와 본 지도가 더 실제에 가깝다. 맨 위쪽의 하천은 현재의 금상천이고, 그 다음이 현재 소강이라 부르는 하천이다. 둘 다 상주에서 들어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규모는 두 번째의 소강이 훨씬 크다. 그러나 《해동지도》에는 하천의 굵기를 거의 비슷하게 표현하여 이런 사실을 혼동할 수 있도록 그렸다. 《광여도》와 본 지도의 제작자가 다른 자료를 통해 교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 아래쪽을 지나는 초강천 역시 소강과 그 규모가 거의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단지 1개의 실선으로만 표시하였다. 《해동지도》에는 소강보다 약간 굵게 표시하여 《광여도》나 본 지도보다 사실에 더 가깝게 그려져 있다. 오른쪽 아래의 南面은 낙동강의 지류인 감천 유역에 있다. 현재의 김천시 봉산면 일대로서 원래 金化部曲이었다고 황간현에 편입된 지역이다. 본 지도에도 掛榜嶺을 써넣어 이와 같은 사실을 일부 전하고 있다. 그러나 산지가 둘러싼 것처럼 그려서 낙동강 수계에 속하고 있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하였다. 秋風嶺 왼쪽에는 金山의 땅이 있었다. 현재의 추풍령면 지역으로서 원래는 추풍향 이었는데 金山에 속하게 된 것이다. 본 지도는 이러한 사실을 이해할 수 없게 그려져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지도 중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전하고 있는 것은 ‘비변사印방안지도’ 《영남지도》의 金山 지도이다. 《동여도》에서도 이 부분은 잘못 표현되어 있다. (이기봉)

  • 흥덕현(興德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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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흥덕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왼쪽의 二西面은 《광여도》에는 三西面으로 되어 있던 것을 교정한 것이다. 주기에 이서면으로 되어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가 정확한 것이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흥덕현 지도에는 이서면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해동지도》의 주기에는 이서면이 표시되어 있기 때문에 《광여도》의 필사 시에 주기를 보고 수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오른쪽의 二東面 위쪽의 건물 기호에 東山書院이 생략되어 있기도 하다. 맨 위쪽의 竹島는 아주 작은 섬임에도 불구하고 표시되어 있다. 죽도와 逍遙山 사이에는 현재의 고창군 부안면 북쪽에 해당되는 고부의 월경지가 끼어 있었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보통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해당 고을만 그리기 때문에 다른 고을의 월경지가 있더라도 그리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다른 고을과 경계를 맞대고 있다는 표시 정도는 하는 경우가 있는데, 본 지도에는 그런 표시도 하지 않았다. 읍치를 확대 강조하기는 했지만 전체적인 모습이 고을의 실제 모습과 유사한 편이다. 읍치 왼쪽의 하천은 현재의 갈곡천이고, 오른쪽은 고부천의 상류에 해당된다. (이기봉)

  • 진주목(晋州牧)(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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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진주목 지도와 비슷하다. 본 지도에 수록되어 있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거의 모두 나온다. 다만 진주성 오른쪽의 召村驛은 《해동지도》에 이 역에 파견된 종6품의 지방관인 察訪이라고만 적혀 있다. 《해동지도》에 원형으로 표시된 里는 다른 고을에서는 일반적으로 面이라고 불렀다. 본 지도에는 里를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하였다. 그러나 진주성 왼쪽의 新豊里에 노란색 사각형이 없는 오류가 보인다. 아래쪽에 泗川縣이 특별히 기록되어 있는 것은 사천현을 넘어가 있는 현재의 사천시 시내 일부와 昌善島가 진주의 越境地였기 때문이다. 《해동지도》에는 창선도에 昌善島와 赤梁鎭이 적혀 있는데, 본 지도에는 노란색 사각형을 그리고 里란 글자는 생략하였다. 주기의 南面 부분에 창선리와 적량리가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즉, 본 지도에서는 기본적으로 里를 표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島와 鎭을 里로 바꾼 것이 아닌가 한다. 《해동지도》가 남북보다 동서를 약간 길게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남북을 조금 길게 그렸다. 이로 인해 남북으로 흐르는 것처럼 표현된 하천이 상대적으로 길게 그려졌다. 또한 《해동지도》에는 진주성 북쪽에 大寺池란 명칭을 적었고, 연못처럼 표현하였다. 본 지도에는 이런 부분이 생략되어 있는데, 《해동지도》의 표현이 사실에 가깝다. 산줄기의 표현에서도 《해동지도》와 본 지도가 좀 다르게 되어 있다. 특히 북쪽에서 읍치까지 뻗은 산줄기가 서로 다르게 되어 있다. 진주목은 실제로 본 지도와 같은 사각형의 모양으로 생기지 않았다. 예를 들어 왼쪽 위의 山淸界 부근은 서북쪽으로 튀어나간 형태를 취하고 있다. 고을 전체를 산줄기에 의해 둘러싸인 형태로 그리는 것은 회화식 군현지도에서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런 과정에서 사실 왜곡이 발생하는데, 본 지도에서도 그런 왜곡 현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南江의 본류는 전라도의 운봉과 경상도의 함양에서 발원하여 산청과 단성을 거쳐 진주목의 영역으로 흘러온다. 본 지도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왼쪽 위의 山淸界는 《해동지도》에 山陰界로 나온다. 山陰縣은 1767년(영조 43)에 山淸縣으로 바뀐다. 따라서 본 지도는 1767년 이후에, 《해동지도》는 그 이전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산청이란 지명만 놓고 본다면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창성부(昌城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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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창성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창성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몇 가지 내용이 생략되거나 다르게 필사되었다. 본 지도는 남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위쪽은 대령강의 지류인 창성강 유역이고, 아래쪽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르는 압록강 유역이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는 세로가 축소되었고, 특히 창성강 유역이 상대적으로 작게 그려졌다. 또한 두 유역을 가로지르는 산줄기 위에 《해동지도》에는 3개의 關門城이 표시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는 小防墻岺 1곳에만 그려져 있다. 압록강 변의 성곽에는 《해동지도》에 있던 城堞 표시가 사라졌다. 鄕校가 있는 읍성은 《해동지도》에 지형을 이용해 축조된 모습이 잘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에는 이런 부분이 생략되었다. 또한 아래쪽 왼쪽에 廟洞堡가 廟洞保로 적혀 있는 등 잘못 필사된 글자들도 보이고 있다. 《광여도》에서는 오자가 개선된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본 지도와 동일하다. 본 지도에는 본 책의 다른 지도와 달리 面이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려져 있지 않으며, 《광여도》에도 동일하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본 지도가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동지도》에 面이 표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주기에도 面이 大吉號里堡 끝에 3개가 적혀 있을 뿐이인데, 《해동지도》의 주기에 적혀 있는 것과 동일하다. 그러나 이 당시에 面이 3개밖에 있다고 단정 짓기 어렵다. 177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창성 지도에는 3개 이외의 面이 여러 개 등장하고 있다. (이기봉)

  • 황간현(黃澗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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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황간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광여도》에 올바르게 적혀 있는 冷泉이 본 지도에는 오른쪽에 令泉으로 잘못 표시되어 있다는 점 정도이다. 《해동지도》의 황간현 지도도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하다. 다만 하천의 표현 방법에서는 《광여도》와 본 지도가 더 실제에 가깝다. 맨 위쪽의 하천은 현재의 금상천이고, 그 다음이 현재 소강이라 부르는 하천이다. 둘 다 상주에서 들어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규모는 두 번째의 소강이 훨씬 크다. 그러나 《해동지도》에는 하천의 굵기를 거의 비슷하게 표현하여 이런 사실을 혼동할 수 있도록 그렸다. 《광여도》와 본 지도의 제작자가 다른 자료를 통해 교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 아래쪽을 지나는 초강천 역시 소강과 그 규모가 거의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광여도》와 본 지도에서는 단지 1개의 실선으로만 표시하였다. 《해동지도》에는 소강보다 약간 굵게 표시하여 《광여도》나 본 지도보다 사실에 더 가깝게 그려져 있다. 오른쪽 아래의 南面은 낙동강의 지류인 감천 유역에 있다. 현재의 김천시 봉산면 일대로서 원래 金化部曲이었다고 황간현에 편입된 지역이다. 본 지도에도 掛榜嶺을 써넣어 이와 같은 사실을 일부 전하고 있다. 그러나 산지가 둘러싼 것처럼 그려서 낙동강 수계에 속하고 있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하였다. 秋風嶺 왼쪽에는 金山의 땅이 있었다. 현재의 추풍령면 지역으로서 원래는 추풍향 이었는데 金山에 속하게 된 것이다. 본 지도는 이러한 사실을 이해할 수 없게 그려져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지도 중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전하고 있는 것은 ‘비변사印방안지도’ 《영남지도》의 金山 지도이다. 《동여도》에서도 이 부분은 잘못 표현되어 있다. (이기봉)

  • 흥덕현(興德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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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흥덕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왼쪽의 二西面은 《광여도》에는 三西面으로 되어 있던 것을 교정한 것이다. 주기에 이서면으로 되어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가 정확한 것이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흥덕현 지도에는 이서면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해동지도》의 주기에는 이서면이 표시되어 있기 때문에 《광여도》의 필사 시에 주기를 보고 수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오른쪽의 二東面 위쪽의 건물 기호에 東山書院이 생략되어 있기도 하다. 맨 위쪽의 竹島는 아주 작은 섬임에도 불구하고 표시되어 있다. 죽도와 逍遙山 사이에는 현재의 고창군 부안면 북쪽에 해당되는 고부의 월경지가 끼어 있었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보통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는 해당 고을만 그리기 때문에 다른 고을의 월경지가 있더라도 그리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다른 고을과 경계를 맞대고 있다는 표시 정도는 하는 경우가 있는데, 본 지도에는 그런 표시도 하지 않았다. 읍치를 확대 강조하기는 했지만 전체적인 모습이 고을의 실제 모습과 유사한 편이다. 읍치 왼쪽의 하천은 현재의 갈곡천이고, 오른쪽은 고부천의 상류에 해당된다. (이기봉)

  • 진해현(鎭海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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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진해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그러나 첫째,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더 크게 그려져 있다. 둘째, 《해동지도》는 가로(동서)로 길게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는 상대적으로 세로(남북)의 길이가 길게 그려져 있다. 이 과정에서 약간의 변화가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읍성 왼쪽에 하나로 합쳐져 바다로 흘러가는 것으로 그려진 3개의 하천이 《해동지도》에는 따로따로 바다로 흘러가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것은 가로가 좁아지고 읍성이 크게 그려지면서 이 부분의 지면이 작아지면서 발생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읍성이 있는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수록되지 않은 것도 있다. 특히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할 만큼 중요하게 여긴 정보인 面의 기록에서 《해동지도》에 읍치 오른쪽에 표시되어 있던 東面이 생략되어 있다. 지도에 표기된 지명이 몇 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읍성 오른쪽의 하천이 《해동지도》에는 다른 고을에서 들어오는 것처럼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의 표현이 실제와 부합된다. 《해동지도》에는 읍치 위쪽 산줄기 아래쪽에 咸安界가 적혀 있지만 본 지도에는 생략되었다. 산줄기 아래쪽에 함안의 땅이 있었던 곳은 서면에 있는 하천의 상류 부분이다. 《해동지도》에서는 이런 사실을 잘못 표기한 것으로 생각되며, 본 지도의 필사 시 역시 사실을 잘 몰랐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철산부(鐵山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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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철산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철산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와 車輦舘에 그려진 건물의 수가 훨씬 증가하였고, 상대적으로 더 크게 그려져 있다. 또한 세로(남북)의 길이가 동서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아졌다. 이 2개의 이유 때문에 《해동지도》에는 읍치에서 해안까지의 거리가 위쪽 義州界까지보다 멀게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에서는 비슷하게 바뀌었다. 읍치 이외의 정보는 모두 《해동지도》에 나오는 것이다. 《해동지도》에 나오는 정보 중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이 있으며, 약간 바뀌어 표현된 것도 있다. 바뀐 것으로 대표적인 것이 읍치 아래쪽에 土城이라 적혀 있는 곳부터 天荒山까지 그려져 있는 하천이다. 《해동지도》에는 이것이 하천이 아니라 土城의 형태로 그려져 있다. 이 토성을 하천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해동지도》에 下惠面으로부터 아래쪽으로 이어져 있던 산줄기 역시 끊어져 있다. 이 부분은 《해동지도》의 내용이 사실에 가깝다. 《광여도》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어 《광여도》의 필사 역시 꼼꼼하게 검토하며 필사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철산부의 읍치는 1751년(영조 27)에 본 지도의 읍치에서 車輦舘으로 옮겼다가 1769년(영조 45)에 다시 원래 자리로 되돌아간다. 이러한 읍치의 위치는 《해동지도》, 《광여도》, 본 지도가 동일하게 되어 있다. 반면에 본 지도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철산 지도, 『여지도서』의 철산부 지도에는 車輦舘에 읍치가 표시되어 있다. (이기봉)

  • 회덕현(懷德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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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회덕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池의 모양이 생략되어 있다는 정도이다. 대덕현은 현재의 대전광역시 대덕구와 그 주변에 있었다. 그런데 본 지도에서는 남쪽과 서쪽에 모두 公州界라고 표시되어 있다. 현재의 대전광역시 동구의 남부, 서구의 북쪽 등에 해당되는 지역이 모두 公州牧의 땅이었기 때문이다. 위쪽(북)의 하천은 현재의 금강 본류이며, 왼쪽의 하천은 지도에는 甲川이라고 적혀 있지만 현재는 유등천 으로 불리고 있다. 지도의 甲川은 실제로는 公州界 남쪽의 대둔산에서 흘러오는 것이 읍치 동쪽에서 흘러오는 것보다 규모가 훨씬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서는 마치 남쪽의 공주 경계에서 흘러오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지도 오른쪽에 珍山界라고 적혀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주기에도 남쪽이 珍山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것처럼 기록되어 있으나 역시 잘못된 것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회덕 지도나 《동여도》에는 이런 사실이 교정되어 있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표현되어 있어 상호 관련성을 엿볼 수 있다. (이기봉)

  • 흥양현(興陽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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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흥양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전체적으로 본 지도의 표현이 거칠고 조잡한 편이어서 본 지도가 《광여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가운데의 上岩面은 주기에는 點岩面으로 적혀 있다. 반면에 《광여도》에는 지도와 주기에 모두 점암면으로 기록되어 있다. 가운데 아래의 道化面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지 않기도 하였다. 다른 면의 경우도 노란색 사각형의 모습이 일정하지 않아 표현이 정제되어 있는 《광여도》와 비교된다. 그런데 《광여도》에 없는 지명들도 본 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예를 들어 아래쪽의 鉢浦鎭과 蛇島鎭, 가운데 약간 위쪽의 牛島 등이 그런 것이다. 표현 양식이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흥양현 지도에는 이런 지명들이 나오고 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광여도》를 필사하면서 일부 내용은 《해동지도》를 참고로 하여 기입해 넣은 것으로 생각된다. 『여지도서』의 흥양현 지도는 《광여도》나 본 지도보다 《해동지도》와 거의 유사하다. 다만 남북보다는 동서를 더 길게 그렸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읍치와 진보 등을 다른 지역보다 확대해서 그렸지만 고을의 전체 모습은 실제와 거의 유사하게 그렸다. 다만 아래쪽의 섬들은 실제의 크기나 위치 등을 거의 고려하지 않고 그려 넣었다. 예를 들어 水樂島는 外羅老島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섬이며, 巨文島는 수락도에 비해 10배 이상 해안으로부터 떨어져 있다. 이러한 문제점은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고을 전체를 다 담으려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기봉)

  • 진해현(鎭海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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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진해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그러나 첫째,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더 크게 그려져 있다. 둘째, 《해동지도》는 가로(동서)로 길게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는 상대적으로 세로(남북)의 길이가 길게 그려져 있다. 이 과정에서 약간의 변화가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읍성 왼쪽에 하나로 합쳐져 바다로 흘러가는 것으로 그려진 3개의 하천이 《해동지도》에는 따로따로 바다로 흘러가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것은 가로가 좁아지고 읍성이 크게 그려지면서 이 부분의 지면이 작아지면서 발생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읍성이 있는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수록되지 않은 것도 있다. 특히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할 만큼 중요하게 여긴 정보인 面의 기록에서 《해동지도》에 읍치 오른쪽에 표시되어 있던 東面이 생략되어 있다. 지도에 표기된 지명이 몇 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읍성 오른쪽의 하천이 《해동지도》에는 다른 고을에서 들어오는 것처럼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의 표현이 실제와 부합된다. 《해동지도》에는 읍치 위쪽 산줄기 아래쪽에 咸安界가 적혀 있지만 본 지도에는 생략되었다. 산줄기 아래쪽에 함안의 땅이 있었던 곳은 서면에 있는 하천의 상류 부분이다. 《해동지도》에서는 이런 사실을 잘못 표기한 것으로 생각되며, 본 지도의 필사 시 역시 사실을 잘 몰랐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철산부(鐵山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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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철산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철산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와 車輦舘에 그려진 건물의 수가 훨씬 증가하였고, 상대적으로 더 크게 그려져 있다. 또한 세로(남북)의 길이가 동서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아졌다. 이 2개의 이유 때문에 《해동지도》에는 읍치에서 해안까지의 거리가 위쪽 義州界까지보다 멀게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에서는 비슷하게 바뀌었다. 읍치 이외의 정보는 모두 《해동지도》에 나오는 것이다. 《해동지도》에 나오는 정보 중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이 있으며, 약간 바뀌어 표현된 것도 있다. 바뀐 것으로 대표적인 것이 읍치 아래쪽에 土城이라 적혀 있는 곳부터 天荒山까지 그려져 있는 하천이다. 《해동지도》에는 이것이 하천이 아니라 土城의 형태로 그려져 있다. 이 토성을 하천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해동지도》에 下惠面으로부터 아래쪽으로 이어져 있던 산줄기 역시 끊어져 있다. 이 부분은 《해동지도》의 내용이 사실에 가깝다. 《광여도》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어 《광여도》의 필사 역시 꼼꼼하게 검토하며 필사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철산부의 읍치는 1751년(영조 27)에 본 지도의 읍치에서 車輦舘으로 옮겼다가 1769년(영조 45)에 다시 원래 자리로 되돌아간다. 이러한 읍치의 위치는 《해동지도》, 《광여도》, 본 지도가 동일하게 되어 있다. 반면에 본 지도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철산 지도, 『여지도서』의 철산부 지도에는 車輦舘에 읍치가 표시되어 있다. (이기봉)

  • 회덕현(懷德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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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회덕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池의 모양이 생략되어 있다는 정도이다. 대덕현은 현재의 대전광역시 대덕구와 그 주변에 있었다. 그런데 본 지도에서는 남쪽과 서쪽에 모두 公州界라고 표시되어 있다. 현재의 대전광역시 동구의 남부, 서구의 북쪽 등에 해당되는 지역이 모두 公州牧의 땅이었기 때문이다. 위쪽(북)의 하천은 현재의 금강 본류이며, 왼쪽의 하천은 지도에는 甲川이라고 적혀 있지만 현재는 유등천 으로 불리고 있다. 지도의 甲川은 실제로는 公州界 남쪽의 대둔산에서 흘러오는 것이 읍치 동쪽에서 흘러오는 것보다 규모가 훨씬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서는 마치 남쪽의 공주 경계에서 흘러오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지도 오른쪽에 珍山界라고 적혀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주기에도 남쪽이 珍山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것처럼 기록되어 있으나 역시 잘못된 것이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의 회덕 지도나 《동여도》에는 이런 사실이 교정되어 있다. 본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표현되어 있어 상호 관련성을 엿볼 수 있다. (이기봉)

  • 흥양현(興陽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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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흥양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전체적으로 본 지도의 표현이 거칠고 조잡한 편이어서 본 지도가 《광여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가운데의 上岩面은 주기에는 點岩面으로 적혀 있다. 반면에 《광여도》에는 지도와 주기에 모두 점암면으로 기록되어 있다. 가운데 아래의 道化面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지 않기도 하였다. 다른 면의 경우도 노란색 사각형의 모습이 일정하지 않아 표현이 정제되어 있는 《광여도》와 비교된다. 그런데 《광여도》에 없는 지명들도 본 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예를 들어 아래쪽의 鉢浦鎭과 蛇島鎭, 가운데 약간 위쪽의 牛島 등이 그런 것이다. 표현 양식이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흥양현 지도에는 이런 지명들이 나오고 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광여도》를 필사하면서 일부 내용은 《해동지도》를 참고로 하여 기입해 넣은 것으로 생각된다. 『여지도서』의 흥양현 지도는 《광여도》나 본 지도보다 《해동지도》와 거의 유사하다. 다만 남북보다는 동서를 더 길게 그렸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읍치와 진보 등을 다른 지역보다 확대해서 그렸지만 고을의 전체 모습은 실제와 거의 유사하게 그렸다. 다만 아래쪽의 섬들은 실제의 크기나 위치 등을 거의 고려하지 않고 그려 넣었다. 예를 들어 水樂島는 外羅老島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섬이며, 巨文島는 수락도에 비해 10배 이상 해안으로부터 떨어져 있다. 이러한 문제점은 일정한 크기의 종이 위에 고을 전체를 다 담으려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기봉)

  • 창령현(昌寧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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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창령현 지도와 비슷하다. 본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아래쪽 왼쪽(북)에서 오른쪽(남)으로 흐르는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이다. 비록 정확하지는 않지만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여러 지류의 모습이 실제에 가깝다. 다만 오른쪽 아래의 南谷面은 낙동강을 따라 남쪽으로 불쑥 튀어나가 현재의 남지읍 북쪽 지역에 있지만 사각형의 지도 모양에 맞추기 위해 실제와 다르게 그렸다. 본 지도에 표시된 지명은 읍치의 軍器와 鄕廳 및 위쪽의 大耳山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그렇지만 지명의 표기에서 잘못 옮겨 적은 것도 눈에 띈다. 왼쪽에는 合山面이 2개나 적혀 있다. 이 중 아래의 것은 《해동지도》에 ‘合山面新堤’, 즉 ‘합산면에 있는 신제’라는 뜻인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面으로 잘못 이해한 것이다. 그 오른쪽의 池浦村은 池浦面의 誤記이다. 반대로 그 아래쪽의 大招面은 《해동지도》에 大招堤로 잘못 적혀 있던 것으로 교정하기도 하였다. 하천의 유로라는 측면에서도 약간 다른 부분이 보인다. 예를 들어 가장 오른쪽의 大谷面에 있는 하천이 《해동지도》에는 대곡면에서 발원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이런 사실들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기본으로 필사하면서 일부 다른 자료도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오류가 나타나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하지는 못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이기봉)

  • 태천군(泰川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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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태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태천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泰川은 1895년에 郡으로 되기까지 조선 초기부터 계속 縣으로 존재했다. 《해동지도》와 《광여도》에도 태천현으로 나오는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하여 태천군이라 기록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읍치에 衙舍, 客舍, 鄕校만이 나오지만 본 지도에는 鄕廳과 訓練, 倉 등이 첨가되어 있다. 다른 부분의 정보는 모두 《해동지도》에 나오기 때문에 읍치 부분만 다른 자료를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읍치가 비록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되어 그려져 있지만 하천의 유로나 고을 전체의 모습이 상당히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태천군 자체의 모습이 세로로 약간 긴 사각형의 모습을 띄고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 표시에서 오른쪽에 雲山界와 寧邊界가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주기에는 동쪽으로 雲山과 경계를 접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기봉)

  • 회인현(懷仁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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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회인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아래쪽의 沃川界에서 들어와 文義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금강 본류이다. 위쪽(북)에서 아래로 흘러 금강에 합류하는 하천은 현재의 회인천이다. 고을 전체를 모두 연결된 산줄기에 의해 감싸인 형태로 그려 회인천 유역에 있지 않은 마을들이 생략되어 있다. 서면의 일부 마을은 왼쪽의 산줄기를 넘어 있었고, 동면과 북면의 일부 마을 역시 위쪽과 오른쪽의 산줄기를 넘어 있었다. 이런 문제점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회인현 지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산세를 강조하여 읍치의 풍수적 명당성을 강조한 반면 하천의 유로에 대한 표현은 약하다. 회인천은 동서에서 여러 작은 지류를 합류시켜 흘러감에도 단선으로만 표현되어 있지만 《해동지도》에서는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는 고을의 전체적인 모습이 남북보다는 동서가 긴 형태로 그려져 있다. 반대로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는 동서보다는 남북이 긴 형태로 그려져 있다. 이것은 두 지도가 《해동지도》를 참조하였지만 세로로 긴 사각형의 용지에 맞추어 그렸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본 지도에는 《해동지도》와 《광여도》에 없었던 내용이 여백에 적혀 잇다. 위쪽 여백에는 옛 명칭과 충청좌도에 속해 있다는 ‘左’가 적혀 있다. 오른쪽 여백에는 한양에서 4일 걸린다는 ‘四日’과 본 고을이 淸州의 鎭管에 속해 있다는 ‘淸’ 그리고 본 지도책에서 35번째에 해당된다는 ‘三十五’가 적혀 있다. 본 지도를 이용했던 사람들이 지도의 내용 이외에 필요로 했던 정보가 무엇인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이기봉)

  • 창령현(昌寧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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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창령현 지도와 비슷하다. 본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아래쪽 왼쪽(북)에서 오른쪽(남)으로 흐르는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이다. 비록 정확하지는 않지만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여러 지류의 모습이 실제에 가깝다. 다만 오른쪽 아래의 南谷面은 낙동강을 따라 남쪽으로 불쑥 튀어나가 현재의 남지읍 북쪽 지역에 있지만 사각형의 지도 모양에 맞추기 위해 실제와 다르게 그렸다. 본 지도에 표시된 지명은 읍치의 軍器와 鄕廳 및 위쪽의 大耳山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그렇지만 지명의 표기에서 잘못 옮겨 적은 것도 눈에 띈다. 왼쪽에는 合山面이 2개나 적혀 있다. 이 중 아래의 것은 《해동지도》에 ‘合山面新堤’, 즉 ‘합산면에 있는 신제’라는 뜻인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面으로 잘못 이해한 것이다. 그 오른쪽의 池浦村은 池浦面의 誤記이다. 반대로 그 아래쪽의 大招面은 《해동지도》에 大招堤로 잘못 적혀 있던 것으로 교정하기도 하였다. 하천의 유로라는 측면에서도 약간 다른 부분이 보인다. 예를 들어 가장 오른쪽의 大谷面에 있는 하천이 《해동지도》에는 대곡면에서 발원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이런 사실들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기본으로 필사하면서 일부 다른 자료도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오류가 나타나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하지는 못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이기봉)

  • 태천군(泰川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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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태천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태천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泰川은 1895년에 郡으로 되기까지 조선 초기부터 계속 縣으로 존재했다. 《해동지도》와 《광여도》에도 태천현으로 나오는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하여 태천군이라 기록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읍치에 衙舍, 客舍, 鄕校만이 나오지만 본 지도에는 鄕廳과 訓練, 倉 등이 첨가되어 있다. 다른 부분의 정보는 모두 《해동지도》에 나오기 때문에 읍치 부분만 다른 자료를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읍치가 비록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되어 그려져 있지만 하천의 유로나 고을 전체의 모습이 상당히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태천군 자체의 모습이 세로로 약간 긴 사각형의 모습을 띄고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 표시에서 오른쪽에 雲山界와 寧邊界가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주기에는 동쪽으로 雲山과 경계를 접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기봉)

  • 회인현(懷仁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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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회인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아래쪽의 沃川界에서 들어와 文義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금강 본류이다. 위쪽(북)에서 아래로 흘러 금강에 합류하는 하천은 현재의 회인천이다. 고을 전체를 모두 연결된 산줄기에 의해 감싸인 형태로 그려 회인천 유역에 있지 않은 마을들이 생략되어 있다. 서면의 일부 마을은 왼쪽의 산줄기를 넘어 있었고, 동면과 북면의 일부 마을 역시 위쪽과 오른쪽의 산줄기를 넘어 있었다. 이런 문제점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회인현 지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산세를 강조하여 읍치의 풍수적 명당성을 강조한 반면 하천의 유로에 대한 표현은 약하다. 회인천은 동서에서 여러 작은 지류를 합류시켜 흘러감에도 단선으로만 표현되어 있지만 《해동지도》에서는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는 고을의 전체적인 모습이 남북보다는 동서가 긴 형태로 그려져 있다. 반대로 본 지도와 《광여도》에서는 동서보다는 남북이 긴 형태로 그려져 있다. 이것은 두 지도가 《해동지도》를 참조하였지만 세로로 긴 사각형의 용지에 맞추어 그렸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본 지도에는 《해동지도》와 《광여도》에 없었던 내용이 여백에 적혀 잇다. 위쪽 여백에는 옛 명칭과 충청좌도에 속해 있다는 ‘左’가 적혀 있다. 오른쪽 여백에는 한양에서 4일 걸린다는 ‘四日’과 본 고을이 淸州의 鎭管에 속해 있다는 ‘淸’ 그리고 본 지도책에서 35번째에 해당된다는 ‘三十五’가 적혀 있다. 본 지도를 이용했던 사람들이 지도의 내용 이외에 필요로 했던 정보가 무엇인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이기봉)

  • 창원부(昌原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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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창원부 지도와 비슷하다. 지명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읍성 안쪽과 아래쪽 바닷가의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있다. 또한 하천의 위치와 유로 역시 거의 비슷하다. 두 지도의 차이점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해동지도》에는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길게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는 세로로 긴 사각형 모양에 고을 전체가 완전히 들어가 있는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둘째,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훨씬 크게 그려져 있다. 셋째, 《해동지도》에 있던 도로가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으며, 面에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와 본 지도는 모두 실제 사실을 아주 간략하게만 표현하였다. 그러나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차이점 때문에 본 지도가 《해동지도》에 비해 아래쪽의 마산만이 상대적으로 작게 그려져 있고, 왼쪽 위의 光山寺 부분이 넓게 표현되었다. 본 지도와 《해동지도》의 주기에 적혀 있는 戶口數 등의 숫자는 서로 다르다. 또한 《해동지도》에는 주기에 적혀 있는 면과 지도에 표시된 면이 다른 반면 본 지도에는 동일하게 되어 있다. 《해동지도》의 지도와 주기가 다른 시기에 작성되었을 것이라는 연구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기타 오른쪽 위의 하천은 현재의 낙동강 본류이다. (이기봉)

  • 토산현(兎山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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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토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토산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필사 과정에서 생략된 지명이 많다. 그 중에서 노란색 사각형을 표현한 面 중 邑內面이 생략된 것은 필사자의 실수라고 생각된다. 읍치 아래쪽에는 《해동지도》에 龍馬淵이라 적혀 있던 것이 馬龍淵으로 誤記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부분들은 《광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에 추가된 지명들도 있다. 이런 지명들은 모두 읍치에서 나타나고 있다. 오른쪽의 향교에 있는 西齋와 東齋, 內東軒과 外東軒, 鄕廳 등은 《해동지도》에 없던 지명이다.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첨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부분 역시 《광여도》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지도 오른쪽의 하천은 현재의 임진강 본류이고, 왼쪽은 예성강의 지류인 구연강의 상류이다. 규모로는 임진강이 훨씬 크지만 본 지도에는 구연강도 비슷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광여도》에서는 임진강 본류는 2개의 실선으로 나타낸 반면 구연강은 모두 1개의 실선으로 표시하여 실질적인 하천 규모의 차이를 반영하고 있다. (이기봉)

  • 창원부(昌原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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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창원부 지도와 비슷하다. 지명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읍성 안쪽과 아래쪽 바닷가의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있다. 또한 하천의 위치와 유로 역시 거의 비슷하다. 두 지도의 차이점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해동지도》에는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길게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는 세로로 긴 사각형 모양에 고을 전체가 완전히 들어가 있는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둘째,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훨씬 크게 그려져 있다. 셋째, 《해동지도》에 있던 도로가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으며, 面에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와 본 지도는 모두 실제 사실을 아주 간략하게만 표현하였다. 그러나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차이점 때문에 본 지도가 《해동지도》에 비해 아래쪽의 마산만이 상대적으로 작게 그려져 있고, 왼쪽 위의 光山寺 부분이 넓게 표현되었다. 본 지도와 《해동지도》의 주기에 적혀 있는 戶口數 등의 숫자는 서로 다르다. 또한 《해동지도》에는 주기에 적혀 있는 면과 지도에 표시된 면이 다른 반면 본 지도에는 동일하게 되어 있다. 《해동지도》의 지도와 주기가 다른 시기에 작성되었을 것이라는 연구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기타 오른쪽 위의 하천은 현재의 낙동강 본류이다. (이기봉)

  • 토산현(兎山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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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토산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표현 양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토산현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필사 과정에서 생략된 지명이 많다. 그 중에서 노란색 사각형을 표현한 面 중 邑內面이 생략된 것은 필사자의 실수라고 생각된다. 읍치 아래쪽에는 《해동지도》에 龍馬淵이라 적혀 있던 것이 馬龍淵으로 誤記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부분들은 《광여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에 추가된 지명들도 있다. 이런 지명들은 모두 읍치에서 나타나고 있다. 오른쪽의 향교에 있는 西齋와 東齋, 內東軒과 外東軒, 鄕廳 등은 《해동지도》에 없던 지명이다.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첨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부분 역시 《광여도》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지도 오른쪽의 하천은 현재의 임진강 본류이고, 왼쪽은 예성강의 지류인 구연강의 상류이다. 규모로는 임진강이 훨씬 크지만 본 지도에는 구연강도 비슷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해동지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광여도》에서는 임진강 본류는 2개의 실선으로 나타낸 반면 구연강은 모두 1개의 실선으로 표시하여 실질적인 하천 규모의 차이를 반영하고 있다. (이기봉)

  • 청도군(淸道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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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청도군 지도와 비슷하다. 읍성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다만 지명의 위치가 《해동지도》와 다르게 된 곳이 여러 곳 보인다. 또한 하천의 유로가 《해동지도》에 비해 일부 다르게 되어 있지만 기본적인 패턴은 거의 동일하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와 《해동지도》는 필사 관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해동지도》와의 차이점도 있다. 첫째, 읍성이 《해동지도》에 비해 훨씬 크게 그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몇 개의 지명이 추가되어 있다. 이 때문에 더불어 읍성을 휘감고 위쪽(남)으로 돌아나가는 현재의 청도천이 더 길게 그려졌다. 둘째, 《해동지도》는 정확한 사각형이 아니지만 본 지도는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려고 노력하였다. 이로 인해 왼쪽 아래의 孔岩 부분이 상대적으로 위로 올라갔으며, 오른쪽의 上北面 부분이 밑으로 내려갔다. 또한 왼쪽 위의 上南面과 赤岩面 부분도 《해동지도》에 비해 위쪽으로 올라가 있다. 청도군의 실제 모습은 남북보다는 동서가 길다. 그런데 본 지도에는 남북(세로)이 동서(가로)보다 길게 되어 있다. 또한 읍치의 서쪽(오른쪽)이 동쪽(왼쪽)보다 훨씬 좁다. 그러나 읍치를 크게 그리다보니까 상대적으로 서쪽(왼쪽)에 좁게 그려졌고, 실제로는 西南流하는 왼쪽의 동창천이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표현되었다. 하천의 길이도 읍치를 돌아나가는 것보다 동창천이 훨씬 길다. 이 동창천은 실제로는 慶州界로부터 흘러 들어온다. 《해동지도》에는 동창천 상류 부분에 慶州界를 적어 넣어 실제를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지만 본 지도에는 경주계를 산줄기 바깥에 적어 넣어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읍치를 감아 돌아가는 청도천의 상류는 대구의 영역이었다. 본 지도에는 大邱界를 청도천 상류에 적어 넣어 그런 사실을 암시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해동지도》에서도 동일하게 표현되었다. 왼쪽 위의 外西面은 현재의 밀양시 청도면 지역으로 거의 월경지에 가깝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기봉)

  • 평산부(平山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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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평산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전반적으로 《해동지도》의 평산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필사 과정에서 몇 가지의 변화가 발생하였다. 본 지도에는 《해동지도》에 문자로만 기록된 面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寶山面이 생략되고, 읍치 왼쪽의 古之面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주기에 있으면서 본 지도에 없는 面 중의 하나가 外邑內面인데, 이것은 《해동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다. 《광여도》에는 고지면에 노란색 사각형을 표시한 것 이외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본 지도에는 《해동지도》에 鐵峯面으로 되어 있던 것을 鐵峯山으로 교정해 놓기도 하였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와 太白山城이 확대되어 그려졌다. 이에 따라 오른쪽의 예성강 유로에 변화가 발생하였다. 또한 왼쪽 위의 上月面과 下月面 부분이 보다 남쪽으로 배치되었다. 《해동지도》에는 이 2개의 면이 文丘面보다 약간 위쪽에 그려져 있었는데,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기 위해 위치에 변화를 준 것으로 생각된다. 왼쪽 아래의 道下面과 弓位面 지역은 해주와 연안의 사이로 남쪽으로 불쑥 튀어나가 서해에 접해 있는 지역이다. 따라서 실제로는 예성강의 猪灘橋 부분보다 훨씬 남쪽에 있다.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이런 사실이 왜곡되어 표현된 것으로 생각된다. 평산부는 남북보다는 동서의 폭이 더 넓은 고을이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세로로 긴 사각형에 맞추기 위해 동서보다 남북이 더 길게 그려졌다. 이 과정에서 왜곡이 발생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積岩面 부근의 하천이다. 이 하천은 현재 누천이라고 부르며, 실제로는 東流하는 부분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남북을 더 길게 하는 과정에서 마치 南流하는 하천처럼 표현되었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도 아래쪽에 白川界가 없으며, 이미 金川에 합쳐져 있었던 江陰界가 적혀 있기도 하다. (이기봉)

  • 청도군(淸道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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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청도군 지도와 비슷하다. 읍성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다만 지명의 위치가 《해동지도》와 다르게 된 곳이 여러 곳 보인다. 또한 하천의 유로가 《해동지도》에 비해 일부 다르게 되어 있지만 기본적인 패턴은 거의 동일하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와 《해동지도》는 필사 관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해동지도》와의 차이점도 있다. 첫째, 읍성이 《해동지도》에 비해 훨씬 크게 그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몇 개의 지명이 추가되어 있다. 이 때문에 더불어 읍성을 휘감고 위쪽(남)으로 돌아나가는 현재의 청도천이 더 길게 그려졌다. 둘째, 《해동지도》는 정확한 사각형이 아니지만 본 지도는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려고 노력하였다. 이로 인해 왼쪽 아래의 孔岩 부분이 상대적으로 위로 올라갔으며, 오른쪽의 上北面 부분이 밑으로 내려갔다. 또한 왼쪽 위의 上南面과 赤岩面 부분도 《해동지도》에 비해 위쪽으로 올라가 있다. 청도군의 실제 모습은 남북보다는 동서가 길다. 그런데 본 지도에는 남북(세로)이 동서(가로)보다 길게 되어 있다. 또한 읍치의 서쪽(오른쪽)이 동쪽(왼쪽)보다 훨씬 좁다. 그러나 읍치를 크게 그리다보니까 상대적으로 서쪽(왼쪽)에 좁게 그려졌고, 실제로는 西南流하는 왼쪽의 동창천이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표현되었다. 하천의 길이도 읍치를 돌아나가는 것보다 동창천이 훨씬 길다. 이 동창천은 실제로는 慶州界로부터 흘러 들어온다. 《해동지도》에는 동창천 상류 부분에 慶州界를 적어 넣어 실제를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지만 본 지도에는 경주계를 산줄기 바깥에 적어 넣어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읍치를 감아 돌아가는 청도천의 상류는 대구의 영역이었다. 본 지도에는 大邱界를 청도천 상류에 적어 넣어 그런 사실을 암시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해동지도》에서도 동일하게 표현되었다. 왼쪽 위의 外西面은 현재의 밀양시 청도면 지역으로 거의 월경지에 가깝지만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기봉)

  • 평산부(平山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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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평산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전반적으로 《해동지도》의 평산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필사 과정에서 몇 가지의 변화가 발생하였다. 본 지도에는 《해동지도》에 문자로만 기록된 面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寶山面이 생략되고, 읍치 왼쪽의 古之面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주기에 있으면서 본 지도에 없는 面 중의 하나가 外邑內面인데, 이것은 《해동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다. 《광여도》에는 고지면에 노란색 사각형을 표시한 것 이외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본 지도에는 《해동지도》에 鐵峯面으로 되어 있던 것을 鐵峯山으로 교정해 놓기도 하였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와 太白山城이 확대되어 그려졌다. 이에 따라 오른쪽의 예성강 유로에 변화가 발생하였다. 또한 왼쪽 위의 上月面과 下月面 부분이 보다 남쪽으로 배치되었다. 《해동지도》에는 이 2개의 면이 文丘面보다 약간 위쪽에 그려져 있었는데,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기 위해 위치에 변화를 준 것으로 생각된다. 왼쪽 아래의 道下面과 弓位面 지역은 해주와 연안의 사이로 남쪽으로 불쑥 튀어나가 서해에 접해 있는 지역이다. 따라서 실제로는 예성강의 猪灘橋 부분보다 훨씬 남쪽에 있다.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이런 사실이 왜곡되어 표현된 것으로 생각된다. 평산부는 남북보다는 동서의 폭이 더 넓은 고을이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세로로 긴 사각형에 맞추기 위해 동서보다 남북이 더 길게 그려졌다. 이 과정에서 왜곡이 발생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積岩面 부근의 하천이다. 이 하천은 현재 누천이라고 부르며, 실제로는 東流하는 부분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남북을 더 길게 하는 과정에서 마치 南流하는 하천처럼 표현되었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도 아래쪽에 白川界가 없으며, 이미 金川에 합쳐져 있었던 江陰界가 적혀 있기도 하다. (이기봉)

  • 청송부(靑松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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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청송부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하천의 유로가 방향이나 길이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동일하다. 읍치를 지나 북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용전천이고, 왼쪽의 하천이 길안천이다. 오른쪽 아래의 하천은 현재 영덕을 지나 동해로 흘러가는 대서천의 상류이다.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러나 모든 지역에 동일한 방향이 적용된 것은 아니다. 특히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일부 왜곡이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오른쪽 아래의 대서천은 실제로는 東流하여 盈德界로 빠져나가지만 본 지도만을 놓고 보만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또한 읍치 부근은 남쪽에 비해 동서의 폭이 좁지만 거의 비슷하게 그려져 길안천 유역이 상대적으로 작게 표현되었다. 읍치에 있는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거의 나온다. 다만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과 驛의 이름에 본 지도에는 노란색과 황색의 사각형 기호가 사용되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산줄기의 표현 방식에서도 일부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와 달리 읍치를 둘러싼 산줄기가 그려져 있지 않다. 또한 명칭에 걸맞게 병풍의 모습으로 표현된 屛巖書院의 지형도 《해동지도》에는 다른 산지 표현 방식과 거의 동일하게 되어 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가 《해동지도》보다 읍치의 풍수적 명당성, 특이한 지형의 묘사에 더 정성을 들인 것으로 생각된다. 주기의 戶口數는 본 지도와 《해동지도》가 전혀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이기봉)

  • 평양(平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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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평양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책에 있는 평안도의 군현 지도가 대부분 《해동지도》의 것을 필사한 반면에 본 지도는 《해동지도》의 평양부 지도와 전혀 다르다. 《해동지도》에 있는 대부분 군현지도가 오려붙이고 있지만 평양부 지도는 그런 흔적이 없다. 또한 산지의 표현 양식과 색감도 다른 지도와 전혀 다르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해동지도》에 있는 평양부 지도는 후에 다시 삽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 지도는 원래부터 있던 《해동지도》의 평양부 지도를 필사했을 가능성이 있다. 면은 노란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는데, 주기와 비교해 보면 몇 가지 오류가 발생하고 있다. 오른쪽의 推㐚味面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 않고, 왼쪽의 乺村面 부근에는 金呂氏面이 金昌○面으로 나온다. 그 왼쪽에는 抄道面이 抄道洞으로 적혀 있기도 하다. 《광여도》에는 이런 오류가 모두 교정되어 있다. 또한 외쪽 위에 西海와의 경계선이 하천과 동일한 선으로 되어 있다. 이곳은 현재 북한 행정구역으로 평안남도 증산군과 평원군 사이의 해안가로서 西海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것이 맞다. 본 지도의 필사 시 그런 사실을 잘못 이해하여 해안선을 하천처럼 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만약 해안선이라고 인식했다면 대동강과 육지의 경계선처럼 진한 실선으로 표현했을 것이다. 《광여도》에서는 이 오류도 시정되어 있다. 평양성에서도 여러 오류가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성곽 북쪽의 普通門은 글씨 왼쪽에 있는 것이고, 그 아래의 문은 七星門이다. 《광여도》에는 이런 오류가 역시 시정되어 있으며, 본 지도보다 훨씬 정교하고 정확하게 그려져 있다. 이런 오류들을 종합해 보면 본 지도의 제작자가 이런 유형의 지도를 최초로 그린 사람이 아니라 다른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기봉)

  • 청송부(靑松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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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청송부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하천의 유로가 방향이나 길이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동일하다. 읍치를 지나 북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용전천이고, 왼쪽의 하천이 길안천이다. 오른쪽 아래의 하천은 현재 영덕을 지나 동해로 흘러가는 대서천의 상류이다.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러나 모든 지역에 동일한 방향이 적용된 것은 아니다. 특히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종이에 맞추어 그리는 과정에서 일부 왜곡이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오른쪽 아래의 대서천은 실제로는 東流하여 盈德界로 빠져나가지만 본 지도만을 놓고 보만 마치 南流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또한 읍치 부근은 남쪽에 비해 동서의 폭이 좁지만 거의 비슷하게 그려져 길안천 유역이 상대적으로 작게 표현되었다. 읍치에 있는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거의 나온다. 다만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과 驛의 이름에 본 지도에는 노란색과 황색의 사각형 기호가 사용되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산줄기의 표현 방식에서도 일부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와 달리 읍치를 둘러싼 산줄기가 그려져 있지 않다. 또한 명칭에 걸맞게 병풍의 모습으로 표현된 屛巖書院의 지형도 《해동지도》에는 다른 산지 표현 방식과 거의 동일하게 되어 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가 《해동지도》보다 읍치의 풍수적 명당성, 특이한 지형의 묘사에 더 정성을 들인 것으로 생각된다. 주기의 戶口數는 본 지도와 《해동지도》가 전혀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이기봉)

  • 평양(平壤)(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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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평양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책에 있는 평안도의 군현 지도가 대부분 《해동지도》의 것을 필사한 반면에 본 지도는 《해동지도》의 평양부 지도와 전혀 다르다. 《해동지도》에 있는 대부분 군현지도가 오려붙이고 있지만 평양부 지도는 그런 흔적이 없다. 또한 산지의 표현 양식과 색감도 다른 지도와 전혀 다르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해동지도》에 있는 평양부 지도는 후에 다시 삽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 지도는 원래부터 있던 《해동지도》의 평양부 지도를 필사했을 가능성이 있다. 면은 노란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는데, 주기와 비교해 보면 몇 가지 오류가 발생하고 있다. 오른쪽의 推㐚味面에는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지 않고, 왼쪽의 乺村面 부근에는 金呂氏面이 金昌○面으로 나온다. 그 왼쪽에는 抄道面이 抄道洞으로 적혀 있기도 하다. 《광여도》에는 이런 오류가 모두 교정되어 있다. 또한 외쪽 위에 西海와의 경계선이 하천과 동일한 선으로 되어 있다. 이곳은 현재 북한 행정구역으로 평안남도 증산군과 평원군 사이의 해안가로서 西海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것이 맞다. 본 지도의 필사 시 그런 사실을 잘못 이해하여 해안선을 하천처럼 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만약 해안선이라고 인식했다면 대동강과 육지의 경계선처럼 진한 실선으로 표현했을 것이다. 《광여도》에서는 이 오류도 시정되어 있다. 평양성에서도 여러 오류가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성곽 북쪽의 普通門은 글씨 왼쪽에 있는 것이고, 그 아래의 문은 七星門이다. 《광여도》에는 이런 오류가 역시 시정되어 있으며, 본 지도보다 훨씬 정교하고 정확하게 그려져 있다. 이런 오류들을 종합해 보면 본 지도의 제작자가 이런 유형의 지도를 최초로 그린 사람이 아니라 다른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기봉)

  • 청하현(淸河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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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청하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고, 세로(남북)의 길이가 더 길어졌다. 읍치에 있는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그러나 지명의 위치나 명칭 자체가 달라진 곳이 있다. 예를 들어 읍치 오른쪽의 德松亭은 《해동지도》에 德松山으로 되어 있다. 대부분의 지도에는 《해동지도》처럼 되어 있지만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청하지도에는 德松亭으로 나온다. 후자의 지도가 지방에서 직접 그려 올린 지도이기 때문에 덕송정이 맞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본 지도의 필사 시에 다른 자료를 통해 《해동지도》의 내용을 수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왼쪽 가운데의 鷹烽은 鷹峯의 誤記이기도 하다. 《해동지도》와 산줄기의 모습이 다른 곳도 여러 곳 보인다. 예를 들어 왼쪽 위의 龍湫가 적혀 있는 부분에 內延山 산줄기와 神龜山 산줄기 사이에 작은 산줄기가 이어져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이 작은 산줄기가 없다. 가장 위쪽의 하천은 현재의 지경천인데, 왼쪽 가운데의 鷹峯 부근에서 발원한다. 따라서 산줄기의 입장에서만 보면 본 지도보다는 《해동지도》가 사실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읍치가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 과장되어 있기 때문에 거리나 방향에서 오류가 나타난다. 하지만 고을 전체의 모습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실제와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폐사군(廢四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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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폐사군 지도와 하천의 유로와 수록된 정보의 양이 비슷하다. 그러나 《광여도》에 비해 본 지도는 기호의 사용이 거칠고 수록된 지명이 적은 편이다. 본 지도에는 폐사군과 鎭堡가 동일하게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다. 또한 오른쪽의 滿浦鎭과 伐登浦鎭은 노란색이라고 보기 어렵기도 하다. 江界 위쪽의 板秋는 楸坡鎭의 오기이기도 하다. 《광여도》에서는 폐사군은 분홍색 사각형으로, 鎭堡는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려 구분해주고 있다. 또한 楸坡鎭도 올바르게 표시되어 있다. 《광여도》는 본 지도에 비해 가로보다 세로의 폭이 상대적으로 넓어졌고, 慈城江 위쪽이 상대적으로 좁아졌다. 자성강 남쪽의 하천들이 상대적으로 더 심하게 위-아래를 향하게 되었고, 鎭堡의 표시가 깔끔해졌다. 본 지도에 비해 《광여도》에는 산줄기가 훨씬 많아졌다. 특히 압록강 건너에도 산줄기가 표현되어 있고, 지명 역시 약간 더 많이 표시되어 있다. 지도는 전반적으로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동쪽에서 흘러온 압록강이 북쪽을 휘감고 서쪽으로 빠져나간다. 압록강에는 오른쪽 위에 ‘江邊把守一百處’라고 적혀 있다. 파수는 현재의 국경 초소 정도에 해당된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70개가 조금 넘게 적혀 있으며, 《광여도》에는 80개 이상이 기록되어 있다. 왼쪽의 압록강 건너에 있는 皇城은 현재 고구려의 수도였던 國內城으로 밝혀져 있다. 전체적인 구도는 사실에 가까운 편이나 너무 간략하게 그려져 있다. 오른쪽 위에는 압록강이 발원하는 白頭山이 적혀 있기도 하다. 백두산은 훨씬 동쪽에 있지만 발원지라는 상징 때문에 넣은 것으로 생각된다. 평안도의 다른 지도들이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것을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나 본 지도만은 《해동지도》의 것과 다른 점이 너무 많다. (이기봉)

  • 청하현(淸河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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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청하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졌고, 세로(남북)의 길이가 더 길어졌다. 읍치에 있는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그러나 지명의 위치나 명칭 자체가 달라진 곳이 있다. 예를 들어 읍치 오른쪽의 德松亭은 《해동지도》에 德松山으로 되어 있다. 대부분의 지도에는 《해동지도》처럼 되어 있지만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1872년 지방지도’의 청하지도에는 德松亭으로 나온다. 후자의 지도가 지방에서 직접 그려 올린 지도이기 때문에 덕송정이 맞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본 지도의 필사 시에 다른 자료를 통해 《해동지도》의 내용을 수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왼쪽 가운데의 鷹烽은 鷹峯의 誤記이기도 하다. 《해동지도》와 산줄기의 모습이 다른 곳도 여러 곳 보인다. 예를 들어 왼쪽 위의 龍湫가 적혀 있는 부분에 內延山 산줄기와 神龜山 산줄기 사이에 작은 산줄기가 이어져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이 작은 산줄기가 없다. 가장 위쪽의 하천은 현재의 지경천인데, 왼쪽 가운데의 鷹峯 부근에서 발원한다. 따라서 산줄기의 입장에서만 보면 본 지도보다는 《해동지도》가 사실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읍치가 다른 지역에 비해 확대 과장되어 있기 때문에 거리나 방향에서 오류가 나타난다. 하지만 고을 전체의 모습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실제와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폐사군(廢四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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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폐사군 지도와 하천의 유로와 수록된 정보의 양이 비슷하다. 그러나 《광여도》에 비해 본 지도는 기호의 사용이 거칠고 수록된 지명이 적은 편이다. 본 지도에는 폐사군과 鎭堡가 동일하게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다. 또한 오른쪽의 滿浦鎭과 伐登浦鎭은 노란색이라고 보기 어렵기도 하다. 江界 위쪽의 板秋는 楸坡鎭의 오기이기도 하다. 《광여도》에서는 폐사군은 분홍색 사각형으로, 鎭堡는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려 구분해주고 있다. 또한 楸坡鎭도 올바르게 표시되어 있다. 《광여도》는 본 지도에 비해 가로보다 세로의 폭이 상대적으로 넓어졌고, 慈城江 위쪽이 상대적으로 좁아졌다. 자성강 남쪽의 하천들이 상대적으로 더 심하게 위-아래를 향하게 되었고, 鎭堡의 표시가 깔끔해졌다. 본 지도에 비해 《광여도》에는 산줄기가 훨씬 많아졌다. 특히 압록강 건너에도 산줄기가 표현되어 있고, 지명 역시 약간 더 많이 표시되어 있다. 지도는 전반적으로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동쪽에서 흘러온 압록강이 북쪽을 휘감고 서쪽으로 빠져나간다. 압록강에는 오른쪽 위에 ‘江邊把守一百處’라고 적혀 있다. 파수는 현재의 국경 초소 정도에 해당된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70개가 조금 넘게 적혀 있으며, 《광여도》에는 80개 이상이 기록되어 있다. 왼쪽의 압록강 건너에 있는 皇城은 현재 고구려의 수도였던 國內城으로 밝혀져 있다. 전체적인 구도는 사실에 가까운 편이나 너무 간략하게 그려져 있다. 오른쪽 위에는 압록강이 발원하는 白頭山이 적혀 있기도 하다. 백두산은 훨씬 동쪽에 있지만 발원지라는 상징 때문에 넣은 것으로 생각된다. 평안도의 다른 지도들이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것을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나 본 지도만은 《해동지도》의 것과 다른 점이 너무 많다. (이기봉)

  • 초계군(草溪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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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초계군 지도와 비슷하다. 읍치에 있는 勸稼樓 등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지명의 위치는 다르게 되어 있는 곳이 있고, 黃芚江이 黃花江으로 적혀 있기도 하다. 《해동지도》에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과 驛에 색이 다른 사각형 기호를 덧붙였다. 그러나 面을 주로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였지만 황색 사각형도 2개나 표시되어 있어 일관성이 부족한 편이다. 하천의 표현은 기본적으로 《해동지도》와 동일하지만 유로의 방향이 일부 달라지고 있다. 이렇게 달라진 가장 큰 이유는 《해동지도》가 남북(가로)보다 동서(가로)를 길게 그린 반면 본 지도에서는 동서보다 남북을 길게 그렸기 때문이다. 또한 《해동지도》에 비해 사각형의 모양에 정확히 맞추려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약간 비스듬하게 흐르는 것으로 그려진 낙동강이 본 지도에는 정남쪽으로 흐르다 서남쪽으로 빠져나가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왼쪽 위에서 들어와 낙동강에 합류하는 황강의 모습도 《해동지도》와 약간 다르게 되어 있다. 읍치의 여러 건물들을 둘러싼 담장의 모습이 그려진 것도 《해동지도》와 다른 점이다. (이기봉)

  •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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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계군(草溪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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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초계군 지도와 비슷하다. 읍치에 있는 勸稼樓 등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지명의 위치는 다르게 되어 있는 곳이 있고, 黃芚江이 黃花江으로 적혀 있기도 하다. 《해동지도》에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과 驛에 색이 다른 사각형 기호를 덧붙였다. 그러나 面을 주로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였지만 황색 사각형도 2개나 표시되어 있어 일관성이 부족한 편이다. 하천의 표현은 기본적으로 《해동지도》와 동일하지만 유로의 방향이 일부 달라지고 있다. 이렇게 달라진 가장 큰 이유는 《해동지도》가 남북(가로)보다 동서(가로)를 길게 그린 반면 본 지도에서는 동서보다 남북을 길게 그렸기 때문이다. 또한 《해동지도》에 비해 사각형의 모양에 정확히 맞추려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약간 비스듬하게 흐르는 것으로 그려진 낙동강이 본 지도에는 정남쪽으로 흐르다 서남쪽으로 빠져나가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왼쪽 위에서 들어와 낙동강에 합류하는 황강의 모습도 《해동지도》와 약간 다르게 되어 있다. 읍치의 여러 건물들을 둘러싼 담장의 모습이 그려진 것도 《해동지도》와 다른 점이다. (이기봉)

  • 풍천부(豊川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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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풍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풍천부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그러나 몇 가지 부분에서 다른 점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전체 지도에서 읍치의 크기가 차지하는 비율이 《해동지도》보다 본 지도가 훨씬 크다. 이것은 본 지도책이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만약 《해동지도》에서 읍치가 차지하는 비율과 동일하게 그리면 본 지도책에서는 너무 작아 읍성과 그 안쪽의 정보를 표현하기가 어렵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읍치를 더 확대해서 그린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이런 읍치의 확대는 다른 지역이 상대적으로 좁게 그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과정에서 해안선이나 산줄기와 물줄기의 표현이 약간씩 달라질 수 있다. 본 지도에서는 面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맨 아래쪽에 栗里面이 생략되어 있다. 본 지도의 주기에는 율리면이 나오고 있다. 이 점은 《광여도》도 동일하여 본 지도와 상관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왼쪽 위의 琵琶山은 《광여도》에 없는 지명이다. 본 지도에 없으면서 《광여도》에 있는 지명도 있다. 오른쪽 泉洞面 아래에 《광여도》에는 所要項院이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 2개의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본 지도와 《광여도》 중 어느 것이 필사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필사하면서 《해동지도》를 참고한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주기의 호수가 《광여도》와 천의 자리가 다른데,  《해동지도》는 본 지도와 동일하다. (이기봉)

  • 칠곡부(漆谷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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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칠곡부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사각형의 모양에 맞추려는 모습이 더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이로 인해 전체적인 하천의 유로는 거의 같지만 일부 부분에서 약간 달라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읍성인 가산산성에서 흘러가 琴湖江으로 합류하는 하천이 《해동지도》에는 정 서쪽으로 흐르기보다는 서남류 하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하천의 표시에서 본 지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낙동강 본류와 금호강이 어떻게 구분되는지 이해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낙동강은 원래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며, 금호강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 낙동강에 합류된다. 여러 지명을 통해 비교해 보면 왼쪽 蘆谷面 부근에서 금호강과 낙동강이 합류하여 星州界 방면으로 빠져나간다. 그러나 본 지도 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가산산성과 上枝面에서 흘러나오는 하천은 남류하여 금호강에 합류되는데, 본 지도에는 마치 남류하다 서류하여 합쳐지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런 오류가 벌어진 이유는 실제로는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으로 그리려 했기 때문이다. 아래쪽의 文殊面 지역은 실제로 아래쪽(남)으로 튀어나간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이것을 무리하게 사각형에 맞추다 보니까 위쪽에 그리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하천의 유로가 실제와 전혀 다르게 표현된 것이다. 금호강은 실제로는 칠곡부와 대구부의 경계를 흐르다 대구부 영역 안에 완전히 들어간 후 낙동강에 합류된다. 가산 산성에 있는 건물과 명칭의 몇몇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거의 나온다. 지명의 표시에서 글씨로만 적혀 있던 면과 역에 노란색과 황색의 사각형 기호를 첨가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아래쪽에는 《해동지도》에 있던 八莒面과 退川面이 생략되어 있다. 본 지도의 주기에 2개의 면 명칭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에 그려져 있는 가산산성의 中城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中城은 1741년(영조 17)에 축조되기 때문에 《해동지도》는 그 이전의 상황을, 본 지도는 그 이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이기봉)

  • 풍천부(豊川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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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풍천부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풍천부 지도도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그러나 몇 가지 부분에서 다른 점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전체 지도에서 읍치의 크기가 차지하는 비율이 《해동지도》보다 본 지도가 훨씬 크다. 이것은 본 지도책이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만약 《해동지도》에서 읍치가 차지하는 비율과 동일하게 그리면 본 지도책에서는 너무 작아 읍성과 그 안쪽의 정보를 표현하기가 어렵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읍치를 더 확대해서 그린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이런 읍치의 확대는 다른 지역이 상대적으로 좁게 그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과정에서 해안선이나 산줄기와 물줄기의 표현이 약간씩 달라질 수 있다. 본 지도에서는 面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맨 아래쪽에 栗里面이 생략되어 있다. 본 지도의 주기에는 율리면이 나오고 있다. 이 점은 《광여도》도 동일하여 본 지도와 상관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왼쪽 위의 琵琶山은 《광여도》에 없는 지명이다. 본 지도에 없으면서 《광여도》에 있는 지명도 있다. 오른쪽 泉洞面 아래에 《광여도》에는 所要項院이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 2개의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본 지도와 《광여도》 중 어느 것이 필사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필사하면서 《해동지도》를 참고한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주기의 호수가 《광여도》와 천의 자리가 다른데,  《해동지도》는 본 지도와 동일하다. (이기봉)

  • 칠곡부(漆谷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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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칠곡부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사각형의 모양에 맞추려는 모습이 더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이로 인해 전체적인 하천의 유로는 거의 같지만 일부 부분에서 약간 달라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읍성인 가산산성에서 흘러가 琴湖江으로 합류하는 하천이 《해동지도》에는 정 서쪽으로 흐르기보다는 서남류 하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하천의 표시에서 본 지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낙동강 본류와 금호강이 어떻게 구분되는지 이해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낙동강은 원래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며, 금호강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 낙동강에 합류된다. 여러 지명을 통해 비교해 보면 왼쪽 蘆谷面 부근에서 금호강과 낙동강이 합류하여 星州界 방면으로 빠져나간다. 그러나 본 지도 만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가산산성과 上枝面에서 흘러나오는 하천은 남류하여 금호강에 합류되는데, 본 지도에는 마치 남류하다 서류하여 합쳐지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런 오류가 벌어진 이유는 실제로는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으로 그리려 했기 때문이다. 아래쪽의 文殊面 지역은 실제로 아래쪽(남)으로 튀어나간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이것을 무리하게 사각형에 맞추다 보니까 위쪽에 그리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하천의 유로가 실제와 전혀 다르게 표현된 것이다. 금호강은 실제로는 칠곡부와 대구부의 경계를 흐르다 대구부 영역 안에 완전히 들어간 후 낙동강에 합류된다. 가산 산성에 있는 건물과 명칭의 몇몇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거의 나온다. 지명의 표시에서 글씨로만 적혀 있던 면과 역에 노란색과 황색의 사각형 기호를 첨가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아래쪽에는 《해동지도》에 있던 八莒面과 退川面이 생략되어 있다. 본 지도의 주기에 2개의 면 명칭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본 지도에 그려져 있는 가산산성의 中城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中城은 1741년(영조 17)에 축조되기 때문에 《해동지도》는 그 이전의 상황을, 본 지도는 그 이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이기봉)

  • 함종부(咸從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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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함종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함종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咸從은 원래 縣이었는데, 1721년(경종 1)에 중전이었던 宣懿王后 魚氏의 본관 지역이라고 하여 府로 승격되었다. 따라서 본 지도와 《해동지도》는 1721년 이후의 상황을 반영했을 가능성이 높다. 《광여도》에 함종현으로 되어 있는 것은 이러한 군현의 승격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읍치 부분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도 나온다. 읍치 부분은 《해동지도》에 비해 더 많은 정보가 표시되어 있어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와 비교해 보면 다르게 되어 있는 지명이 여러 곳 보인다. 일단 오른쪽의 江田分界라고 적혀 있는 것은 江西界의 잘못이 분명하다. 《해동지도》와 《광여도》에는 이 부분이 올바르게 되어 있다. 왼쪽의 三岳島와 岩鶴은 《해동지도》에 二岳島와 鶴岩으로 되어 있다. 『여지도서』에는 《해동지도》가 맞는 것으로 되어 있다. 《광여도》에는 후자는 교정되어 있지만 전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그밖에 오른쪽 아래의 鰲面은 《해동지도》와 《광여도》에 모두 鰲山面으로 되어 있다. 함종부는 남북보다 동서가 약간 긴 형태를 취하고 있다. 본 지도는 세로(남북)가 약간 긴 종이 위에 그렸기 때문에 남북이 동서보다 더 길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칠원현(漆原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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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칠원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첫째,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둘째,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하천의 유로나 전반적인 배치라는 입장에서 보면 본 지도와 《해동지도》는 거의 비슷하다. 본 지도에 있는 지명 중 읍치의 倉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없는 것이 여러 개 있다. 더 나아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사실을 잘못 이해하고 그린 부분도 보인다. 오른쪽에 적혀 있는 昌寧界는 昌原界의 誤記이다. 원래 이곳에 창원계가 적혀 있는 이유는 龜山面이 창원의 경계를 넘어가 현재의 마산시 구산면에 있던 월경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주기에는 구산면의 初境이 창원 경계를 넘어 50리라고 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보아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되며, 읍치 부분에서 다른 자료를 약간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러나 모든 지역에 동일한 방향이 적용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낙동강 본류는 오른쪽 함안계에서 들어와 왼쪽 위의 靈山界로 빠져나간다. 그러나 낙동강은 칠원현의 북쪽 부분만 흐를 뿐이다. 오른쪽 위의 구산면도 실제로는 남쪽에 있는데,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마치 남동쪽에 있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 읍치를 지나 낙동강으로 합류되는 현재의 광노천도 상류는 창원 땅에서 들어오는데,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이기봉)

  • 함종부(咸從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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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함종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한 《해동지도》의 함종부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咸從은 원래 縣이었는데, 1721년(경종 1)에 중전이었던 宣懿王后 魚氏의 본관 지역이라고 하여 府로 승격되었다. 따라서 본 지도와 《해동지도》는 1721년 이후의 상황을 반영했을 가능성이 높다. 《광여도》에 함종현으로 되어 있는 것은 이러한 군현의 승격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읍치 부분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도 나온다. 읍치 부분은 《해동지도》에 비해 더 많은 정보가 표시되어 있어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첨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와 비교해 보면 다르게 되어 있는 지명이 여러 곳 보인다. 일단 오른쪽의 江田分界라고 적혀 있는 것은 江西界의 잘못이 분명하다. 《해동지도》와 《광여도》에는 이 부분이 올바르게 되어 있다. 왼쪽의 三岳島와 岩鶴은 《해동지도》에 二岳島와 鶴岩으로 되어 있다. 『여지도서』에는 《해동지도》가 맞는 것으로 되어 있다. 《광여도》에는 후자는 교정되어 있지만 전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그밖에 오른쪽 아래의 鰲面은 《해동지도》와 《광여도》에 모두 鰲山面으로 되어 있다. 함종부는 남북보다 동서가 약간 긴 형태를 취하고 있다. 본 지도는 세로(남북)가 약간 긴 종이 위에 그렸기 때문에 남북이 동서보다 더 길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칠원현(漆原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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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칠원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첫째,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둘째,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하천의 유로나 전반적인 배치라는 입장에서 보면 본 지도와 《해동지도》는 거의 비슷하다. 본 지도에 있는 지명 중 읍치의 倉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없는 것이 여러 개 있다. 더 나아가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사실을 잘못 이해하고 그린 부분도 보인다. 오른쪽에 적혀 있는 昌寧界는 昌原界의 誤記이다. 원래 이곳에 창원계가 적혀 있는 이유는 龜山面이 창원의 경계를 넘어가 현재의 마산시 구산면에 있던 월경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 지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주기에는 구산면의 初境이 창원 경계를 넘어 50리라고 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보아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되며, 읍치 부분에서 다른 자료를 약간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러나 모든 지역에 동일한 방향이 적용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낙동강 본류는 오른쪽 함안계에서 들어와 왼쪽 위의 靈山界로 빠져나간다. 그러나 낙동강은 칠원현의 북쪽 부분만 흐를 뿐이다. 오른쪽 위의 구산면도 실제로는 남쪽에 있는데, 본 지도만을 놓고 보면 마치 남동쪽에 있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 읍치를 지나 낙동강으로 합류되는 현재의 광노천도 상류는 창원 땅에서 들어오는데,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이기봉)

  • 해주목(海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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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해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해동지도》의 해주목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약간의 변화가 발생하였다. 본 지도는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지만 《해동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해주목은 남북보다 동서가 훨씬 긴 고을이다. 《해동지도》는 이 점을 고려하여 세로보다 짧은 가로 방향을 남-북으로 잡은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는 훨씬 더 긴 동서 방향을 더 짧은 가로로 배치하여 남북보다 동서의 거리 왜곡이 심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오른쪽 아래의 下平倉面 부근에 3개의 면 명칭이 빼곡히 적혀 있는데, 《해동지도》에는 모두 넓게 표시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이 본 지도에서는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아래쪽의 龍媒鎭은 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기호로 표시되어 있다. 面의 명칭은 적혀 있지만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은 것도 있다. 또한 아예 면의 명칭 자체도 기록되지 않은 것도 있다. 《광여도》에서는 오른쪽 아래의 면 명칭에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지 않은 것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서 나타나는 面의 정보에 대한 문제점이 상당히 교정되어 있다. 본 지도에는 지명을 잘못 옮긴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오른쪽 아래의 史串峯은 《해동지도》에 皮串峯臺라고 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도 烽이 峯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는데, 《광여도》에서는 皮串烽으로 교정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읍치와 首陽山城이 확대되어 그려져 그 주변 지역 역시 확대되어 표현되었다. 그러나 그 이외 지역의 전체적인 모습은 실제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통영(統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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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통영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가 상대적으로 세로를 길게 그렸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표현 양식에서는 변화가 있다. 《해동지도》에는 고을과 진보를 모두 노란색 타원으로 그려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본 지도에서는 고을은 황갈색 사각형으로, 진보는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려 두 정보의 차이를 구분하였다. 고을의 이름이면서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된 것도 있는데, 이것은 읍치가 아니라 해당 고을에 배치된 전선 정박소인 船所의 위치를 의미한다. 水營 역시 《해동지도》에는 다른 정보와 구별되고 있지 않으나 본 지도에는 황갈색 원으로 표시하여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실수로 빠뜨리거나 잘못 표시한 지명들이 여러 군데 보이고 있다. 왼쪽 아래에는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노란색 사각형이 보이고 있다. 《해동지도》와 비교해 보면 이곳에는 防踏(鎭)이 적혀 있어야 한다. 오른쪽에는 노란색 사각형 밑에 명칭을 적은 長木(浦鎭)도 보이고 있다. 또한 晋州, 固城, 泗川은 읍치 부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보의 기호인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남해의 경우 아래쪽의 선소 부분까지 황갈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였다. 왼쪽 위쪽에는 樂安, 寶城의 선소가 생략되기도 하였다. 이런 오류가 있는 반면에 《해동지도》의 오류를 일부 수정하고 있기도 하다. 《해동지도》의 남해 부분에 노란색 타원형만 있던 곳에 船所란 명칭을 부여하였으며, 노란색 사각형이 없던 古突山(鎭)과 順天船所에 노란색 사각형을 그려 넣기도 하였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기본으로 하여 필사하였으며, 일부는 수정하면서 일부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통영성 안의 건물이 《해동지도》에 비해 소략하게 처리되고 있는데, 이것은 본 지도가 《해동지도》보다 훨씬 작은 종이 위에 그려졌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해동지도》나 본 지도 모두 통영과 그 주변의 군사 정보를 수록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거리나 크기, 위치의 정확성은 별로 고려하지 않았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통영 지도도 본 지도와 거의 동일한 구도와 내용을 갖고 있어 서로 필사 관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본 지도에서 범한 오류가 《광여도》에서 일부 교정되고 있다. (이기봉)

  • 해주목(海州牧)(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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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해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는 《해동지도》의 해주목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약간의 변화가 발생하였다. 본 지도는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지만 《해동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해주목은 남북보다 동서가 훨씬 긴 고을이다. 《해동지도》는 이 점을 고려하여 세로보다 짧은 가로 방향을 남-북으로 잡은 것으로 생각된다. 본 지도는 훨씬 더 긴 동서 방향을 더 짧은 가로로 배치하여 남북보다 동서의 거리 왜곡이 심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오른쪽 아래의 下平倉面 부근에 3개의 면 명칭이 빼곡히 적혀 있는데, 《해동지도》에는 모두 넓게 표시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이 본 지도에서는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아래쪽의 龍媒鎭은 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기호로 표시되어 있다. 面의 명칭은 적혀 있지만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지 않은 것도 있다. 또한 아예 면의 명칭 자체도 기록되지 않은 것도 있다. 《광여도》에서는 오른쪽 아래의 면 명칭에 노란색 사각형이 표시되지 않은 것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서 나타나는 面의 정보에 대한 문제점이 상당히 교정되어 있다. 본 지도에는 지명을 잘못 옮긴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오른쪽 아래의 史串峯은 《해동지도》에 皮串峯臺라고 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도 烽이 峯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는데, 《광여도》에서는 皮串烽으로 교정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읍치와 首陽山城이 확대되어 그려져 그 주변 지역 역시 확대되어 표현되었다. 그러나 그 이외 지역의 전체적인 모습은 실제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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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주목(黃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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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황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책의 다른 지도들처럼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황주목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몇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 우선 兵營이 있었던 읍치와 正方山城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그려졌다. 이것은 부수적으로 다른 부분에서의 변화도 유발시킨다. 예를 들어 읍치 아래쪽, 정방산성 왼쪽의 공간이 좁아지게 된다. 이에 따라 이 지역에 있던 지명들이 상당히 밀집되어 기록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천의 유로 역시 많이 달라지는 부분 중의 하나이다. 이런 변화가 나타난 것은 《해동지도》의 크기보다 본 지도는 4분의 1 이상으로 축소되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만약 이런 상태에서 읍치와 정방산성을 《해동지도》의 비율처럼 그리게 되면 성곽과 그 안의 여러 가지 정보를 표현할 수 없게 된다. 본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로 뻗은 산줄기가 동쪽으로부터 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아래쪽(서)은 본 지도에 마치 바다처럼 그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대동강 하구 부근이다. 지도 제작자가 의도적으로 왜곡했다기보다는 다른 고을을 그리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지도에는 面에 해당되는 坊에 노란색 사각형의 모양이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아래쪽에 分田界는 分田坊의 誤記이고, 오른쪽 아래의 蒜山嶺은 蒜山鎭을 잘못 기록한 것일뿐만 아니라 면이 아닌데도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였다. 《광여도》에는 이것을 蒜山坊으로 표시하여 더 왜곡시키고 있다. 그 위쪽의 北南面은 州南坊의 誤記이며, 《광여도》에는 北南坊으로 적혀 있다. 읍치 위쪽의 斗岩坊은 제대로 표현된 것인데, 《광여도》에는 耳嚴坊으로 잘못 기재되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여러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광여도》의 필사 시 본 지도보다도 더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광여도》에는 본 지도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해동지도》에 있는 지명도 몇 개 표시되어 있다. (이기봉)

  • 풍기군(豊基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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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풍기현 지도와 비슷하다. 豊基는 조선 초기 이후 縣으로 강등된 적이 없기 때문에 《해동지도》의 주기 명칭이 잘못된 것이다.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나오는 西部面, 生古介面, 東村面이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 3개의 면 명칭이 나오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 아닌가 한다. 또한 上里面과 下里面의 위치도 《해동지도》와 달라지고 있다. 실제 지형과 비교해 보면 《해동지도》가 올바르게 표시되어 있기 때문에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한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지도에 그리다 보니까 몇 가지 왜곡이 발생하였다. 가장 왼쪽의 하천은 현재의 한천 최상류로서 이 지역은 풍기 읍치의 입장에서 보면 서남쪽으로 불쑥 튀어나가 있다. 또한 이 지역의 면적은 읍치 지역의 반 정도는 된다. 그러나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어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을 직선으로 하다 보니까 면적도 작아지고 하천의 유로 방향도 달라졌다. 읍치 위쪽에는 順興昌樂境이 표시되어 있어 이곳에 순흥부의 월경지가 있음을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왼쪽 아래에 順興界와 安東界가 표시되어 있는 것은 이곳에 순흥과 안동의 월경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 황주목(黃州牧)(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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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황주목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본 지도책의 다른 지도들처럼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황주목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몇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 우선 兵營이 있었던 읍치와 正方山城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그려졌다. 이것은 부수적으로 다른 부분에서의 변화도 유발시킨다. 예를 들어 읍치 아래쪽, 정방산성 왼쪽의 공간이 좁아지게 된다. 이에 따라 이 지역에 있던 지명들이 상당히 밀집되어 기록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천의 유로 역시 많이 달라지는 부분 중의 하나이다. 이런 변화가 나타난 것은 《해동지도》의 크기보다 본 지도는 4분의 1 이상으로 축소되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만약 이런 상태에서 읍치와 정방산성을 《해동지도》의 비율처럼 그리게 되면 성곽과 그 안의 여러 가지 정보를 표현할 수 없게 된다. 본 지도는 동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읍치로 뻗은 산줄기가 동쪽으로부터 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아래쪽(서)은 본 지도에 마치 바다처럼 그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대동강 하구 부근이다. 지도 제작자가 의도적으로 왜곡했다기보다는 다른 고을을 그리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지도에는 面에 해당되는 坊에 노란색 사각형의 모양이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아래쪽에 分田界는 分田坊의 誤記이고, 오른쪽 아래의 蒜山嶺은 蒜山鎭을 잘못 기록한 것일뿐만 아니라 면이 아닌데도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현하였다. 《광여도》에는 이것을 蒜山坊으로 표시하여 더 왜곡시키고 있다. 그 위쪽의 北南面은 州南坊의 誤記이며, 《광여도》에는 北南坊으로 적혀 있다. 읍치 위쪽의 斗岩坊은 제대로 표현된 것인데, 《광여도》에는 耳嚴坊으로 잘못 기재되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여러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광여도》의 필사 시 본 지도보다도 더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광여도》에는 본 지도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해동지도》에 있는 지명도 몇 개 표시되어 있다. (이기봉)

  • 풍기군(豊基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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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풍기현 지도와 비슷하다. 豊基는 조선 초기 이후 縣으로 강등된 적이 없기 때문에 《해동지도》의 주기 명칭이 잘못된 것이다.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나오는 西部面, 生古介面, 東村面이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 3개의 면 명칭이 나오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 아닌가 한다. 또한 上里面과 下里面의 위치도 《해동지도》와 달라지고 있다. 실제 지형과 비교해 보면 《해동지도》가 올바르게 표시되어 있기 때문에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한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사각형이 아닌 고을의 모습을 사각형의 지도에 그리다 보니까 몇 가지 왜곡이 발생하였다. 가장 왼쪽의 하천은 현재의 한천 최상류로서 이 지역은 풍기 읍치의 입장에서 보면 서남쪽으로 불쑥 튀어나가 있다. 또한 이 지역의 면적은 읍치 지역의 반 정도는 된다. 그러나 사각형의 종이 모양에 맞추어 다른 고을과의 경계선을 직선으로 하다 보니까 면적도 작아지고 하천의 유로 방향도 달라졌다. 읍치 위쪽에는 順興昌樂境이 표시되어 있어 이곳에 순흥부의 월경지가 있음을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왼쪽 아래에 順興界와 安東界가 표시되어 있는 것은 이곳에 순흥과 안동의 월경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봉)

  • 황해도(黃海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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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海西圖와 거의 동일하다. 監營은 붉은색 큰 원으로, 兵營은 보라색 큰 사각형으로, 일반 郡縣은 흰색 작은 원으로 표시하였다. 鎭堡는 수군이 주둔하는 곳은 노란색 사각형으로, 육군이 주둔하는 곳은 적황색 사각형으로 표시하였다. 그러나 鎭堡의 표시에서는 여러 문제점이 발견되고 있다. 왼쪽 위의 椒島에도 鎭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표시되지 않았다. 아울러 초도는 섬임에도 불구하고 육지에 연결된 것처럼 표현하였다. 오른쪽 아래의 白峙鎭은 황해도가 아니라 경기도의 개성에 속해 있었는데 본 지도에 잘못 그려진 것이다. 육군이 주둔하는 진보의 경우 文山鎭, 位羅鎭, 所已鎭 등이 표시되지 않았다. 《광여도》에는 文山鎭이 빠져있는 것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서 나타난 문제점은 모두 시정되어 있다. 왼쪽의 所江鎭은 1719년(숙종 45)에 황해도 수군절도사영으로 승격되었다. 본래 水營일 경우 지도에 표시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다른 道와의 경계는 마치 바다처럼 표현하여 오해할 수 있게 하였다. 위쪽의 中和, 祥原, 成川, 陽德은 육지로 연결되어 있는 평안도의 고을이다. 오른쪽의 安邊은 함경도의, 伊川은 강원도의, 朔寧, 長湍, 開城은 경기도의 고을로서 육지로 연결되어 있다. 경계가 표시된 나머지 고을은 바다나 하구를 경계로 맞대고 있다. 대체적으로 하천의 유로나 황해도 전체의 모습이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하동부(河東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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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하동부 지도와 전체적으로는 비슷하다.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동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고, 《해동지도》는 대략 서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또한 본 지도는 동북-서남 방향을 길게 그렸지만 《해동지도》는 서북-동남 방향을 길게 그렸다. 이로 인해 서북에서 동남 방향으로 흐르는 섬진강이 《해동지도》보다 본 지도에서 훨씬 짧게 그려졌다. 반면에 주로 서남 방향으로 흐르는 섬진강의 지류들은 《해동지도》보다 본 지도에서 훨씬 길게 그려졌다. 하동부의 실제 모습은 서북에서 동남으로 길게 누운 형태이기 때문에 《해동지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본 지도와 《해동지도》는 하천의 길이와 유로를 다르게 표현했지만 표시된 하천의 수나 갈라진 지류의 모습은 동일하다. 본 지도에 수록된 지명도 모두 《해동지도》에 기록되어 있어 두 지도가 서로 필사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지명의 위치가 약간 달라지고, 《해동지도》에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에 본 지도에서는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첨가하였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鄕校 부근에 표시된 橫甫面과 西良谷面이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 2개의 면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를 범한 것으로 생각된다. 오른쪽 아래에 작은 섬의 형태로 적혀 있는 南海가 《해동지도》에는 섬의 일부만 그려져 있다. 또한 《해동지도》에는 남해와 하동부 사이에 昆陽地가 경계선과 함께 적혀 있다. 실제로 하동과 남해 사이에 곤양의 땅이 있었기 때문에 《해동지도》가 정확하다고 볼 수 있으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자의로 생략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기봉)

  • 황해도(黃海道)(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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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海西圖와 거의 동일하다. 監營은 붉은색 큰 원으로, 兵營은 보라색 큰 사각형으로, 일반 郡縣은 흰색 작은 원으로 표시하였다. 鎭堡는 수군이 주둔하는 곳은 노란색 사각형으로, 육군이 주둔하는 곳은 적황색 사각형으로 표시하였다. 그러나 鎭堡의 표시에서는 여러 문제점이 발견되고 있다. 왼쪽 위의 椒島에도 鎭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표시되지 않았다. 아울러 초도는 섬임에도 불구하고 육지에 연결된 것처럼 표현하였다. 오른쪽 아래의 白峙鎭은 황해도가 아니라 경기도의 개성에 속해 있었는데 본 지도에 잘못 그려진 것이다. 육군이 주둔하는 진보의 경우 文山鎭, 位羅鎭, 所已鎭 등이 표시되지 않았다. 《광여도》에는 文山鎭이 빠져있는 것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서 나타난 문제점은 모두 시정되어 있다. 왼쪽의 所江鎭은 1719년(숙종 45)에 황해도 수군절도사영으로 승격되었다. 본래 水營일 경우 지도에 표시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다른 道와의 경계는 마치 바다처럼 표현하여 오해할 수 있게 하였다. 위쪽의 中和, 祥原, 成川, 陽德은 육지로 연결되어 있는 평안도의 고을이다. 오른쪽의 安邊은 함경도의, 伊川은 강원도의, 朔寧, 長湍, 開城은 경기도의 고을로서 육지로 연결되어 있다. 경계가 표시된 나머지 고을은 바다나 하구를 경계로 맞대고 있다. 대체적으로 하천의 유로나 황해도 전체의 모습이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하동부(河東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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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하동부 지도와 전체적으로는 비슷하다. 본 지도는 대체적으로 동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고, 《해동지도》는 대략 서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또한 본 지도는 동북-서남 방향을 길게 그렸지만 《해동지도》는 서북-동남 방향을 길게 그렸다. 이로 인해 서북에서 동남 방향으로 흐르는 섬진강이 《해동지도》보다 본 지도에서 훨씬 짧게 그려졌다. 반면에 주로 서남 방향으로 흐르는 섬진강의 지류들은 《해동지도》보다 본 지도에서 훨씬 길게 그려졌다. 하동부의 실제 모습은 서북에서 동남으로 길게 누운 형태이기 때문에 《해동지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본 지도와 《해동지도》는 하천의 길이와 유로를 다르게 표현했지만 표시된 하천의 수나 갈라진 지류의 모습은 동일하다. 본 지도에 수록된 지명도 모두 《해동지도》에 기록되어 있어 두 지도가 서로 필사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지명의 위치가 약간 달라지고, 《해동지도》에 글씨로만 적혀 있던 面에 본 지도에서는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를 첨가하였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鄕校 부근에 표시된 橫甫面과 西良谷面이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 2개의 면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를 범한 것으로 생각된다. 오른쪽 아래에 작은 섬의 형태로 적혀 있는 南海가 《해동지도》에는 섬의 일부만 그려져 있다. 또한 《해동지도》에는 남해와 하동부 사이에 昆陽地가 경계선과 함께 적혀 있다. 실제로 하동과 남해 사이에 곤양의 땅이 있었기 때문에 《해동지도》가 정확하다고 볼 수 있으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자의로 생략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기봉)

  • 희천군(熙川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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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희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희천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희천군의 실제적인 모습은 마름모(◇) 형태에 가깝다. 이것을 직사각형의 형태(□)로 그리고, 읍치를 다른 지역보다 확대해서 그리다보니까 몇 가지 왜곡이 발생하였다. 오른쪽 위의 甲峴嶺 부근에서 발원하여 왼쪽 아래의 寧邊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청천강 본류이다. 청천강 본류의 실제 유로는 대략 동북에서 서남 방향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남류하다가 읍치 부근에서 서류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또한 하천의 남쪽 부분도 북쪽 부분과 비슷한 규모임에도 아주 작게 그려져 있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 오른쪽의 寧邊界 2개는 寧遠界를 잘못 기록한 것이다. 이런 오류는 《해동지도》에서 비롯되었으며,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이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와 《광여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오른쪽의 新倉 부근에는 寧遠 방면에서 하천이 흘러오는 것처럼 그려져 있지만 잘못된 것이다. 이것 역시 《해동지도》에서 비롯된 것이며,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와 오른쪽 위의 柔院鎭 부분의 정보가 더 많아졌다. 그러나 그 이외 지역의 정보는 거의 《해동지도》에 나오는 것이다. (이기봉)

  • 하양현(河陽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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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하양현 지도와 비슷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치에 있는 司倉과 東軒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또한 하천의 유로 역시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전반적으로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읍치 부분은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그린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해동지도》와 다른 점도 있다. 위쪽에 표시된 梨旨縣은 신령현의 월경지로서 현재의 경산시 와촌면에 있었던 梨旨廢縣을 일컫는다. 가장 위쪽은 八公山은 하양현에 속해 있지 않았지만 본 고을의 산줄기가 시작되는 곳이라 그려 넣은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이런 사실을 반영하여 하양현의 영역 중 가장 북쪽에 해당되는 無落山과 팔공산 사이를 상당히 넓게 띄어 놓았다. 그런데 본 지도에서는 세로로 긴 사각형에 맞게 그리기 위해 하양현의 영역을 팔공산과 같은 높이로 처리하였다. 또한 남북(세로)보다 동서(가로)가 긴 고을의 모습을 반영했던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에서는 남북을 동서보다 더 길게 그렸다. 이와 같은 이유들로 인해 읍치 왼쪽을 흐르는 현재의 조산천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그려지게 되었다. 더 나아가 실제로는 거의 東流하여 금호강에 합류되는데, 본 지도에는 마치 南流하다 동류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는 이 하천이 거의 동류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이기봉)

  • 희천군(熙川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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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광여도》의 희천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한 《해동지도》의 희천군 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희천군의 실제적인 모습은 마름모(◇) 형태에 가깝다. 이것을 직사각형의 형태(□)로 그리고, 읍치를 다른 지역보다 확대해서 그리다보니까 몇 가지 왜곡이 발생하였다. 오른쪽 위의 甲峴嶺 부근에서 발원하여 왼쪽 아래의 寧邊界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청천강 본류이다. 청천강 본류의 실제 유로는 대략 동북에서 서남 방향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남류하다가 읍치 부근에서 서류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또한 하천의 남쪽 부분도 북쪽 부분과 비슷한 규모임에도 아주 작게 그려져 있다. 다른 고을과의 경계 표시에서 오른쪽의 寧邊界 2개는 寧遠界를 잘못 기록한 것이다. 이런 오류는 《해동지도》에서 비롯되었으며,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이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와 《광여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오른쪽의 新倉 부근에는 寧遠 방면에서 하천이 흘러오는 것처럼 그려져 있지만 잘못된 것이다. 이것 역시 《해동지도》에서 비롯된 것이며, 《광여도》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와 오른쪽 위의 柔院鎭 부분의 정보가 더 많아졌다. 그러나 그 이외 지역의 정보는 거의 《해동지도》에 나오는 것이다. (이기봉)

  • 하양현(河陽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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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하양현 지도와 비슷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치에 있는 司倉과 東軒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또한 하천의 유로 역시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전반적으로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읍치 부분은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그린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해동지도》와 다른 점도 있다. 위쪽에 표시된 梨旨縣은 신령현의 월경지로서 현재의 경산시 와촌면에 있었던 梨旨廢縣을 일컫는다. 가장 위쪽은 八公山은 하양현에 속해 있지 않았지만 본 고을의 산줄기가 시작되는 곳이라 그려 넣은 것으로 생각된다. 《해동지도》에는 이런 사실을 반영하여 하양현의 영역 중 가장 북쪽에 해당되는 無落山과 팔공산 사이를 상당히 넓게 띄어 놓았다. 그런데 본 지도에서는 세로로 긴 사각형에 맞게 그리기 위해 하양현의 영역을 팔공산과 같은 높이로 처리하였다. 또한 남북(세로)보다 동서(가로)가 긴 고을의 모습을 반영했던 《해동지도》에 비해 본 지도에서는 남북을 동서보다 더 길게 그렸다. 이와 같은 이유들로 인해 읍치 왼쪽을 흐르는 현재의 조산천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그려지게 되었다. 더 나아가 실제로는 거의 東流하여 금호강에 합류되는데, 본 지도에는 마치 南流하다 동류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해동지도》에는 이 하천이 거의 동류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이기봉)

  • 함안군(咸安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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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함안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본 지도는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아래쪽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흘러나가는 하천이 낙동강의 지류인 현재의 남강이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성 안에 있는 太平樓를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있는 지명이 모두 본 지도에 나오는 것은 아니다. 노란색 사각형을 표시하여 중요한 정보로 여긴 面 중 오른쪽 부분에 安道面과 南山面이 빠져 있다. 또한 가장 위쪽의 北谷面은 比谷面을 잘못 옮긴 것이다. 3개의 면이 주기에는 제대로 나오고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확대되어 있고, 좀더 사각형의 모양에 맞추어 그렸다. 이로 인해 하천 유로가 약간 차이가 나지만 대체적으로 거의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볼 때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함안군의 모습이 정확하게 맞지는 않지만 대략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함안군의 모습 자체가 세로로 긴 사각형에 맞는 모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위쪽의 北谷面 즉, 比谷面은 남강 유역이 아니라 남해로 바로 빠져나가는 현재의 마산시 진전면의 진전천 상류에 있었다. 기타 함안은 조선 초기 이후 계속 郡으로 존재했기 때문에 《해동지도》에 함안현으로 적혀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기봉)

  • 함안군(咸安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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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함안군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본 지도는 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아래쪽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흘러나가는 하천이 낙동강의 지류인 현재의 남강이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성 안에 있는 太平樓를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온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있는 지명이 모두 본 지도에 나오는 것은 아니다. 노란색 사각형을 표시하여 중요한 정보로 여긴 面 중 오른쪽 부분에 安道面과 南山面이 빠져 있다. 또한 가장 위쪽의 北谷面은 比谷面을 잘못 옮긴 것이다. 3개의 면이 주기에는 제대로 나오고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확대되어 있고, 좀더 사각형의 모양에 맞추어 그렸다. 이로 인해 하천 유로가 약간 차이가 나지만 대체적으로 거의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볼 때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함안군의 모습이 정확하게 맞지는 않지만 대략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함안군의 모습 자체가 세로로 긴 사각형에 맞는 모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위쪽의 北谷面 즉, 比谷面은 남강 유역이 아니라 남해로 바로 빠져나가는 현재의 마산시 진전면의 진전천 상류에 있었다. 기타 함안은 조선 초기 이후 계속 郡으로 존재했기 때문에 《해동지도》에 함안현으로 적혀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기봉)

  • 함양부(咸陽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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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함양군 지도와 거의 비슷하다. 함양은 1729년(영조 5)에 郡에서 府로 승격되었다가 1788년(정조 12)에 다시 郡으로 강등된다. 따라서 함양의 명칭만으로 볼 때 《해동지도》는 1729년 이전에, 본 지도는 1729년과 1788년 사이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해동지도》의 함양군 지도에는 1728년(영조 4)에 혁파되었다가 1736년(영조 12)에 복구된 安陰縣이 동시에 나온다. 반면에 본 지도에는 안음현 부분이 사라지고, 安陰界라고만 적혀 있다. 안음은 1767년(영조 43)에 安義로 명칭을 바꾼다. 安陰의 변화 상황을 기준으로 볼 때 《해동지도》는 1728년과 1736년 사이에, 본 지도에는 1736년에서 1767년 사이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본 지도에 표시된 읍성이 《해동지도》에는 나오지 않는다. 함양의 읍성은 1780년에 둘레 735척의 토성으로 쌓았다가 1729년(영조 5)에 둘레 7,035척의 석성으로 수축된다. 본 지도에 있는 것은 바로 수축된 석성이라고 추정된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성 부분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오며, 글씨로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가 첨가되어 있을 뿐이다. 다만 주기에는 14개의 면이 적혀 있는데, 지도에는 12개밖에 표시되어 있지 않다. 주기에 있으면서 지도에 없는 면은 《해동지도》에 나오기 때문에 필사 과정에서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 아닌가 한다. 하천의 전체적인 구도는 《해동지도》와 비슷하지만 구체적인 유로의 입장에서 보면 약간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이기봉)

  • 함양부(咸陽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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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함양군 지도와 거의 비슷하다. 함양은 1729년(영조 5)에 郡에서 府로 승격되었다가 1788년(정조 12)에 다시 郡으로 강등된다. 따라서 함양의 명칭만으로 볼 때 《해동지도》는 1729년 이전에, 본 지도는 1729년과 1788년 사이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해동지도》의 함양군 지도에는 1728년(영조 4)에 혁파되었다가 1736년(영조 12)에 복구된 安陰縣이 동시에 나온다. 반면에 본 지도에는 안음현 부분이 사라지고, 安陰界라고만 적혀 있다. 안음은 1767년(영조 43)에 安義로 명칭을 바꾼다. 安陰의 변화 상황을 기준으로 볼 때 《해동지도》는 1728년과 1736년 사이에, 본 지도에는 1736년에서 1767년 사이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본 지도에 표시된 읍성이 《해동지도》에는 나오지 않는다. 함양의 읍성은 1780년에 둘레 735척의 토성으로 쌓았다가 1729년(영조 5)에 둘레 7,035척의 석성으로 수축된다. 본 지도에 있는 것은 바로 수축된 석성이라고 추정된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읍성 부분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오며, 글씨로 적혀 있던 面에 노란색 사각형의 기호가 첨가되어 있을 뿐이다. 다만 주기에는 14개의 면이 적혀 있는데, 지도에는 12개밖에 표시되어 있지 않다. 주기에 있으면서 지도에 없는 면은 《해동지도》에 나오기 때문에 필사 과정에서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이 아닌가 한다. 하천의 전체적인 구도는 《해동지도》와 비슷하지만 구체적인 유로의 입장에서 보면 약간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이기봉)

  • 함창현(咸昌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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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함창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러나 하천의 유로는 방향을 바꾸어서 보면 본 지도와 《해동지도》가 동일하다. 다만 읍치를 《해동지도》보다 더 크게 그리고, 남북과 동서의 폭이 달라지면서 약간의 변화가 발생했을 뿐이다. 읍치에 있는 內倉과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수록된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수록된 지명 중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할 만큼 중요하게 여긴 面 정보 중에서 東面과 北面이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며, 필사 과정에서 약간의 변화 또는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래쪽의 하천이 현재의 이안천이고, 오른쪽의 하천이 영강이다. 두 하천은 본 지도에서처럼 합류되어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왼쪽 가운데의 黃嶺寺는 현재의 상주시 은척면 황령리에 있었던 함창현의 월경지였다. 본 지도에도 함창현과 이곳 사이에 尙州界를 적어 넣어 월경지임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해동지도》에는 함창현에서 완전히 떨어진 것처럼 그려 월경지임을 더욱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아래쪽 恭儉池의 물은 남쪽의 尙州界로 빠져나간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상주계와의 사이에 산줄기를 그려 넣어 이런 사실을 전혀 이해할 수 없게 하였다. 이 점은 《해동지도》에서도 동일하게 표현되었다. (이기봉)

  • 함창현(咸昌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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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함창현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해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다. 그러나 하천의 유로는 방향을 바꾸어서 보면 본 지도와 《해동지도》가 동일하다. 다만 읍치를 《해동지도》보다 더 크게 그리고, 남북과 동서의 폭이 달라지면서 약간의 변화가 발생했을 뿐이다. 읍치에 있는 內倉과 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수록된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수록된 지명 중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할 만큼 중요하게 여긴 面 정보 중에서 東面과 北面이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며, 필사 과정에서 약간의 변화 또는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래쪽의 하천이 현재의 이안천이고, 오른쪽의 하천이 영강이다. 두 하천은 본 지도에서처럼 합류되어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왼쪽 가운데의 黃嶺寺는 현재의 상주시 은척면 황령리에 있었던 함창현의 월경지였다. 본 지도에도 함창현과 이곳 사이에 尙州界를 적어 넣어 월경지임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해동지도》에는 함창현에서 완전히 떨어진 것처럼 그려 월경지임을 더욱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아래쪽 恭儉池의 물은 남쪽의 尙州界로 빠져나간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상주계와의 사이에 산줄기를 그려 넣어 이런 사실을 전혀 이해할 수 없게 하였다. 이 점은 《해동지도》에서도 동일하게 표현되었다. (이기봉)

  • 합천군(陜川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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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이 합천군 지도와 전체적은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구체적인 모습에서 다른 측면도 있지만 하천의 본류나 지류의 흐름은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산줄기 역시 약간씩 다르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거의 비슷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읍치 위쪽의 馬峴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반대로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지명이 여러 개 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약간의 변화를 준 것이 아닌가 한다. 《해동지도》에는 里로 기록된 것이 본 지도에는 面으로 바뀌어 있으며, 노란색 사각형이 덧붙여져 있다. 그러나 왼쪽 위의 勸賓驛에도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고, 읍치 오른쪽에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노란색 사각형도 보인다. 더 나아가 《해동지도》에 적혀 있는 里 중 본 지도에 面으로 표시되지 않은 것도 여러 개 있으며, 본 지도의 주기에 적혀 있는 면과 지도에 적혀 있는 것도 동일하지 않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왼쪽의 居昌界에서 흘러와 오른쪽의 草溪界로 빠져나가는 것이 낙동강의 지류인 현재의 황강이다. 위쪽은 회천의 상류이며, 아래쪽에 있는 것은 현재의 의령군과 합천군 경계에서 낙동강에 합류되는 유곡천의 최상류이다. 이 유곡천의 최상류는 현재의 의령군 궁유면 일부로서 조선시대에는 삼가현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다. 《해동지도》에는 이 지역과 합천군 사이에 三嘉界와 草溪界를 써넣어 월경지임을 짐작하게 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이런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삼가계와 초계계를 생략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기봉)

  • 합천군(陜川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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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이 합천군 지도와 전체적은 구도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읍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구체적인 모습에서 다른 측면도 있지만 하천의 본류나 지류의 흐름은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산줄기 역시 약간씩 다르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거의 비슷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읍치 위쪽의 馬峴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온다. 반대로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지명이 여러 개 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가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약간의 변화를 준 것이 아닌가 한다. 《해동지도》에는 里로 기록된 것이 본 지도에는 面으로 바뀌어 있으며, 노란색 사각형이 덧붙여져 있다. 그러나 왼쪽 위의 勸賓驛에도 노란색 사각형이 그려져 있고, 읍치 오른쪽에 명칭이 적혀 있지 않은 노란색 사각형도 보인다. 더 나아가 《해동지도》에 적혀 있는 里 중 본 지도에 面으로 표시되지 않은 것도 여러 개 있으며, 본 지도의 주기에 적혀 있는 면과 지도에 적혀 있는 것도 동일하지 않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필사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왼쪽의 居昌界에서 흘러와 오른쪽의 草溪界로 빠져나가는 것이 낙동강의 지류인 현재의 황강이다. 위쪽은 회천의 상류이며, 아래쪽에 있는 것은 현재의 의령군과 합천군 경계에서 낙동강에 합류되는 유곡천의 최상류이다. 이 유곡천의 최상류는 현재의 의령군 궁유면 일부로서 조선시대에는 삼가현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였다. 《해동지도》에는 이 지역과 합천군 사이에 三嘉界와 草溪界를 써넣어 월경지임을 짐작하게 했다.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이런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삼가계와 초계계를 생략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기봉)

  • 현풍현(玄風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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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현풍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세로(남북)가 더 길게 되어 있고, 읍치가 상대적으로 확대되어 그려져 있다. 하천의 유로라는 측면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거의 동일하다. 또한 읍치의 司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도 모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도 있다. 본 지도에 里로 표현된 것은 다른 지역에서는 보통 面으로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에서는 里를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릴 정도로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나 《해동지도》에 왼쪽의 外倉 부근에 있는 山田里가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는 산전리가 적혀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이며, 필사 과정에서 약간씩 변화가 발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도 위쪽에 있는 玉島가 《해동지도》에 玉浦로 되어 있는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잘못 옮긴 것으로 생각된다. 낙동강은 위쪽의 星州界에서 들어와 왼쪽 아래의 昌寧界로 빠져나간다. 그러나 위쪽의 하폭이 더 넓게 되어 있어 상류와 하류의 구분이 어렵게 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하류가 상류보다 넓게 그려져 있다. 오른쪽 아래의 淸道界에서 들어오는 하천은 현재의 차천이다. 이 하천은 낙동강에 비하면 아주 작은 하천임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의 표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기봉)

  • 현풍현(玄風縣)(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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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현풍현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세로(남북)가 더 길게 되어 있고, 읍치가 상대적으로 확대되어 그려져 있다. 하천의 유로라는 측면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거의 동일하다. 또한 읍치의 司倉을 제외하면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도 모두 나온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도 있다. 본 지도에 里로 표현된 것은 다른 지역에서는 보통 面으로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에서는 里를 노란색 사각형으로 그릴 정도로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나 《해동지도》에 왼쪽의 外倉 부근에 있는 山田里가 생략되어 있다. 주기에는 산전리가 적혀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실수로 빠뜨린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보이며, 필사 과정에서 약간씩 변화가 발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도 위쪽에 있는 玉島가 《해동지도》에 玉浦로 되어 있는데,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잘못 옮긴 것으로 생각된다. 낙동강은 위쪽의 星州界에서 들어와 왼쪽 아래의 昌寧界로 빠져나간다. 그러나 위쪽의 하폭이 더 넓게 되어 있어 상류와 하류의 구분이 어렵게 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하류가 상류보다 넓게 그려져 있다. 오른쪽 아래의 淸道界에서 들어오는 하천은 현재의 차천이다. 이 하천은 낙동강에 비하면 아주 작은 하천임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의 표현만으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기봉)

  • 흥해군(興海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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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흥해군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는 동쪽을 위로 한 반면에 본 지도는 북쪽을 위로 그렸다. 또한 본 지도가 읍치를 상대적으로 크게 그렸다. 본 지도에 있는 지명 중 《해동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은 鄕廳, 曲江, 鳳林浦이다. 다만 위쪽의 星山은 《해동지도》에 星峴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천의 유로나 해안선의 굴곡은 전반적으로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다른 곳이 몇 군데 있는데, 왼쪽 위의 하천이 대표적이다. 이 부분은 현재의 곡강천 상류로서 본 지도와 달리 《해동지도》에는 끝이 발원지인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慶州界가 2개 모두 더 안쪽에 표시되어 있고, 그 왼쪽의 산에는 飛鶴山의 명칭이 적혀 있다. 비학산은 현재 신광면 동쪽에 있는 것으로 지도 제작 당시에는 경주의 땅이었다. 비학산을 기준으로 보면 慶州界의 표시와 곡강천의 표현은 《해동지도》가 올바르다. 아마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하천에 대한 이해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자의적으로 잘못 고친 것이 아닌가 한다. 왼쪽 禱陰山 아래쪽 하천에 대한 표현도 마찬가지이다. 이 하천은 형산강의 지류인 기계천으로 발원지는 도음산이 아니라 훨씬 서북쪽에 있다. 본 지도와 달리 《해동지도》에는 기계천의 끝이 다른 지역에서 흘러오는 형태로 그려져 있어 사실에 가깝게 되어 있다. 面의 위치 중 오른쪽 아래에 적혀 있는 東上面이 《해동지도》에는 牛峴 부근에 표시되어 있다. 실제와 부합되는 것은 《해동지도》이기 때문에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잘못 옮긴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 흥해군(興海郡)(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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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인 구도가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해동지도》의 흥해군 지도와 비슷하다. 《해동지도》는 동쪽을 위로 한 반면에 본 지도는 북쪽을 위로 그렸다. 또한 본 지도가 읍치를 상대적으로 크게 그렸다. 본 지도에 있는 지명 중 《해동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은 鄕廳, 曲江, 鳳林浦이다. 다만 위쪽의 星山은 《해동지도》에 星峴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천의 유로나 해안선의 굴곡은 전반적으로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다른 곳이 몇 군데 있는데, 왼쪽 위의 하천이 대표적이다. 이 부분은 현재의 곡강천 상류로서 본 지도와 달리 《해동지도》에는 끝이 발원지인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慶州界가 2개 모두 더 안쪽에 표시되어 있고, 그 왼쪽의 산에는 飛鶴山의 명칭이 적혀 있다. 비학산은 현재 신광면 동쪽에 있는 것으로 지도 제작 당시에는 경주의 땅이었다. 비학산을 기준으로 보면 慶州界의 표시와 곡강천의 표현은 《해동지도》가 올바르다. 아마 본 지도의 필사 시에 하천에 대한 이해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자의적으로 잘못 고친 것이 아닌가 한다. 왼쪽 禱陰山 아래쪽 하천에 대한 표현도 마찬가지이다. 이 하천은 형산강의 지류인 기계천으로 발원지는 도음산이 아니라 훨씬 서북쪽에 있다. 본 지도와 달리 《해동지도》에는 기계천의 끝이 다른 지역에서 흘러오는 형태로 그려져 있어 사실에 가깝게 되어 있다. 面의 위치 중 오른쪽 아래에 적혀 있는 東上面이 《해동지도》에는 牛峴 부근에 표시되어 있다. 실제와 부합되는 것은 《해동지도》이기 때문에 본 지도의 필사 시에 잘못 옮긴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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