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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몽요결』, 성리학 이념을 현실에 확산시키고자 한 교육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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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격몽요결

 

 

 

[중학교 국사]

. 조선의 성립과 발전 > 2. 사림 세력의 성장 > 성리학의 발달

 

[고등학교 국사]

. 민족 문화의 발달 > 3. 근세의 문화 > [2] 성리학의 발달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학문이 아니라면 사람이 될 수 없으니, 이른바 학문이라는 것은 또한 이상스럽고 별다른 것이 아니다. 단지 아버지가 된 사람은 자애롭고, 아들이 된 사람은 효를 다하, 신하된 사람은 충을 다하고, 부부가 된 사람은 분별이 있어야 하고, 형제 간에는 우애로워야 하고, 친구 간에는 믿음이 있어야 하니, 이 모든 것은 일상의 움직이고 멈추는 사이에 일에 따라 각각 당연한 것을 취해야 할 뿐이고, 현묘한 것에 마음을 두어 기이한 것을 노려서는 안 된다. 다만 배우지 못한 사람은 마음에 띠가 생겨 막혀 있고, 식견이 아주 어둡다. 그렇기에 모름지기 독서하고 궁리하여 마땅히 행해야 하는 길을 밝힌 뒤에야 학문이 깊은 경지에 이르러 바른 것을 얻고 실천함이 합당한 것을 얻을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학문이 일상에 달린 것을 알지 못하고 망령되게 높고 멀어 행하기 어려운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미루고 스스로 포기하는데 안주하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내가 해산[해주]의 남쪽에 머물 때에 한두명의 학도가 서로 쫓아 학문을 물으니, 내가 스승이 될 수 없음을 부끄러워하면서도 또한 초학들이 향방을 모르고 또한 굳은 의지도 없으면서 그냥 배우겠다고 한다면 서로 간에 도움이 되는 것은 없고, 도리어 남의 조롱만 살 것을 우려하였다. 그래서 간략하게 책을 하나 써서 마음을 세우고 몸을 단속하고 부모를 모시고 사물을 대하는 방법을 소략하게나마 서술하여 격몽요결이라 제목을 지었다. 학생들에게 이것을 보게 하여 마음을 씻고 즉시 공부에 착수하게 하고자 하니, 나 또한 오랫동안 구습에 얽매여서 괴로워하던 차에 이 책을 가지고 스스로 반성하고자 한다. 정축년(1577) 12월 덕수 이이 씀.

 

人生斯世 非學問 無以爲人 所謂學問者 亦非異常別件物事也 只是爲父當慈 爲子當孝 爲臣當忠 爲夫婦當別 爲兄弟當友 爲少者當敬長 爲朋友當有信 皆於日用動靜之間 隨事各得其當而已 非馳心玄妙 希覬奇效者也 但不學之人 心地茅塞 識見茫昧 故必須讀書窮理 以明當行之路 然後造詣得正 而踐履得中矣 今人不知學問在於日用 而妄意高遠難行 故推與別人 自安暴棄 豈不可哀也哉 余定居海山之陽 有一二學徒 相從問學 余慙無以爲師 而且恐初學不知向方 且無堅固之志 而泛泛請益 則彼此無補 反貽人譏 故略書一冊子 粗敍立心飭躬奉親接物之方 名曰擊蒙要訣 欲使學徒觀此 洗心立脚 當日下功 而余亦久患因循 欲以自警省焉 丁丑季冬 德水李珥 書

율곡전서』 「격몽요결서

 

 


 

 

 

격몽요결(擊蒙要訣)1577(선조 10), 이이(15361584)의 나이 42세에 작성한 주자학적 관점에 입각한 교육서이다. 당시 이이는 홍문관부제학을 그만두고 해주 석담(오늘날 황해남도 벽성군 석담리)에서 거주하면서 해주 지방의 양반들을 교육하기 위해 만든 사적인 교육서이다.

    

이이는 격몽요결의 격몽(擊蒙)주역의 산수몽에서 유래하는 단어로 어리석은 사람을 깨우치거나 징벌한다는 뜻이고 요결(要訣)은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격몽요결은 말 그대로 어리석은 사람을 깨우쳐 주고자 가장 중요한 방법을 제시한 책이다. 실제 이이는 격몽요결초학(初學)’을 위한 교육서임을 표방하였다. 이때 초학의 의미는 말 그대로 처음 배우는 사람으로 89세부터 1516세에 이르는 학생인 아직 깨우치지 못한 어린아이 혹은 주자학에 입문하여 본격적으로 익히려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어느 쪽이나 이이의 격몽요결이 성리학의 세계에 입문하여 흠뻑 젖어 들도록 유도한 교육서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격몽요결은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 1장 뜻을 세우는 방법(立志), 2장 옛 습관을 혁신하는 방법(革舊習), 3장 몸가짐을 바르게 할 것(持身), 4장 독서(讀書), 5장 부모를 모시는 방법(事親), 6장 부모 및 친척상을 치루는 방법(喪制), 7장 제사의 원칙과 방법(祭禮), 8장 처자와 가족들을 거느리는 방법(居家), 9장 사람을 만나고 친구를 고르고 향촌 사람들과 교제하는 방법(接人), 10장 처세(處世)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 10장의 내용은 14장은 본인의 마음공부, 몸가짐 등 나를 중심으로 하는 영역, 58장은 부모님을 모시는 일부터 집안을 다스리는 일까지를 대상으로 가족의 영역, 9장은 향촌에서 이웃 사람들과 교제하고 만나는 향촌의 영역, 10장은 과거에 급제해서 나라를 다스릴 자격을 얻는 것과 연결된 영역이다. 이처럼 격몽요결의 교육 구성은 나를 중심으로 가족, 향촌, 국가로 연결되며 확장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이이는 성리학에서 몸을 닦고 가지런히 하며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안케 하는 순서에 따라 공부하는 방법과 내용을 제시하고자 한 것이었다.

각 장의 내용을 우선 나의 영역에서부터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1장에서 모든 사람들이 성인이 될 수 있으며 단지 마음속에 있는 옛 습관만 제거하면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2장에서 뜻을 세우는데 방해되는 모든 것을 옛 습관으로 범주화하고 제거할 것을 말하였다. 3장에서 이이는 경()에 거처(居敬)하여 근본을 세우고 이치를 탐구(窮理)하여 선을 밝히고 힘써 행하여 실천할 것을 제시했다. 4장에서 소학(小學)에서 사서[四書, 대학(大學)』・『논어(論語)』・『맹자(孟子)』・『중용(中庸)], 오경[五經, (), (), (), 춘추(春秋), 예기(禮記)], 기타 성리서(性理書) 및 사서(史書) 등을 읽는 순서와 그 배우고 실천해야 할 바를 말하는 것이다. 특히 이이는 3, 4장에서 그 원리를 중단 없이 실천해 나갈 것을 말하고 있다. 이처럼 이이가 나의 영역에서 제시하고자 하는 내용은 배우는 사람이라면 성인을 목표로 하여 그 공부를 중단 없이 해나갈 것으로 집약된다.

가족의 영역에서는 우선 5장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윤리로 효를 제시하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부모와 자식의 효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6장과 7장에서 유교식으로 상을 치르고 제사지내는 것으로 보는 것이었다. 더욱이 격몽요결에서는 제의가 부록으로 붙어 있는데, 그 이유에 대해 이이는 의례를 실천하는 방식이 집집마다 달라서 통일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 하였다. 이는 15세기와 같이 불교식으로 상을 치르고 제사를 지내는 방식에서 벗어나 유교식으로 행하는 그러한 의례 역시도 통일적으로 시행하려 한 움직임이 등장했음을 보여준다. 그 외에 8장은 형제, 부부와 관련된 사항을 다룬 부분으로 노비를 대하는 도덕규범도 아울러 설명하고 있다.

향촌의 영역을 다룬 부분은 9장이다. 9장에서 오륜(五倫)의 분류에 따르면 장유(長幼)와 붕우(朋友)에 해당하는 인간관계에서 실천하는 도덕규범을 설명하고 있다. 이때 장유는 어른과 아이 사이의 차례와 질서를 뜻하고 붕우는 학문을 통해 맺는 친구 사이의 신의를 뜻한다. 이 두 관계는 모두 마을이나 향촌에서 발생하는 인간관계의 성격을 지닌다. 이이는 9장의 첫 머리에 나이가 나보다 배가 되면 아버지처럼 섬길 것이요, 10년이 위이면 형으로 모시고, 5년 위라도 조금은 공경해야 하고, 벗을 선택할 때에는 반드시 학문을 좋아하고 착한 것을 좋아하며, 바르고 엄숙하며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을 취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이는 곧 당시 향촌에서 양반사대부 사회가 혈연, 지연, 그리고 학연이 겹쳐 있으며 상호 간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것을 말한 것이었다. 여기에 덧붙여 수령과 잦은 접견, 간청 등을 금지하기도 하였다. 결국 9장의 내용은 16세기 향촌에서 세력을 키워가던 재지사족의 상호 결집을 도모하고 중앙정부와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목적이 반영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국가의 영역에 해당하는 처세의 부분이다. 격몽요결에서 처세와 관련되어 주목할 부분은 과거와 관련된 부분이다. 이이는 과거공부와 성리학 공부가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이에 의하면 과거 공부를 하면서도 그 지킴을 잃지 않는다면 과거 공부와 성리학 공부가 병행되어 어긋남이 없을 것이라 하였다. 16세기에는 양반사대부 내부에서 과거를 둘러싼 경쟁이 심화되어 가고 있었으며, 과거는 성리학의 가르침과 배치되는 측면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이는 과거와 성리학 간의 균형 잡힌 공부가 가능하다는 전제 위에 과거를 통한 사환을 긍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는 이이가 가지고 있는 현실적, 실용적인 사고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이이의 격몽요결16세기 사림들이 현실 속에서 성리학 사회를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가를 고심한 결과 끝에 나온 교육서라 할 수 있다. 16세기에는 과거 응시자의 급증, 관권과 향촌 자치 간의 대립, 당쟁의 활성화 등으로 인한 양반사대부 내부의 대립과 갈등을 조정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사림계통의 성리학 사회 실현에 대한 고심은 성리학의 기초적인 교육서인 소학물 뿌리고 쓸며 어른을 대하고 대답하는 도리라는 기본적인 규범을 몸에 젖도록 교육시킴으로써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안정케 하는 근본을 다할 수 있는 도리를 다하도록 하는데 있었다. 그러나 소학의 경우에는 다양한 경전에서의 인용, 중국의 고사가 담겨 있어 초학들이 접근하기에 어려운 점이 많았다. 이에 따라 소학이전의 단계에서 초학들을 교육시킬 수 있는 책들이 편찬되었고, 대표적으로 중종 대 최세진(14681542)언해효경(諺解孝經), 훈몽자회(訓蒙字會), 박세무(14871564)동몽선습(童蒙先習)이 그것이라 할 수 있다. 이이의 격몽요결역시 그러한 흐름을 이어받아 본격적으로 사림의 시대가 열린 선조 초반에 사림의 성리학 이념을 현실에서 실현, 확산시키고자 한 교육서로서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김훈식, 2002, 조선전기 몽구서의 편찬 仁齊論叢17

정호훈, 2005, 16세기 말 율곡 이이의 교육론 격몽요결』・『학교모범을 중심으로 - 韓國思想史學』 25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 개인의 견해이므로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공식적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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