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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역관은 무엇으로 중국어 회화를 공부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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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노걸대』


 

 

[고등학교 국사]

Ⅲ. 통치 구조와 정치 활동 → 3. 근세의 정치 → [5] 조선 초기의 대외 관계

Ⅵ. 민족 문화의 발달 → 3. 근세의 문화 → [1] 민족 문화의 융성

 

 

 

[중국상인] 형씨, 당신들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고려상인] 우리는 고려 왕경에서 왔습니다.

[중국상인] 지금 어디로 갑니까?

[고려상인] 우리는 북경으로 갑니다.

[중국상인] 당신들은 언제 왕경을 떠나왔습니까?

[고려상인] 우리는 이달 초하루에 왕경을 떠나왔습니다.

[중국상인] 이달 초하루에 왕경을 떠났다면, 지금 반 개월이나 되었는데 어째서 겨우 당도한 것이 여기입니까?

[고려상인] 우리 일행 중 하나가 뒤처져 와서 우리가 도중에 천천히 가면서 기다렸지요. 이 때문에 오는 것이 지체되었습니다.

[중국상인] 그 일행은 지금은 따라왔습니까?

[고려상인] 이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인데, 어젯밤에 막 도착하였습니다.

[중국상인] 당신들 이달 말에는 북경에 도착할 수 있겠습니까?

[고려상인] 어찌 알겠습니까, 그런 것을 어찌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늘이 가련히 여겨주시고 몸이 건강하다면 도착하겠지요.

 

大哥, 你從那裏來. 我從高麗王京來. 如今那裏去. 我往北京去. 你幾時離了王京. 我這月初一日離了王京. 旣是這月初一日離了王京, 到今半箇月, 怎麽纔到的這裏. 我有一箇火伴落後了來, 我沿路上漫漫的行着等候來. 因此上, 來的遲了. 那火伴如今赶上來了不曾. 這箇火伴便是, 夜來纔到. 你這月盡頭到的北京麽到不得. 知他, 那話怎敢說. 天可憐見. 身已安樂時, 也到.


『노걸대』

 

[고려상인] 형씨, 당신은 이제 어디로 갑니까?

[중국상인] 나도 북경으로 갑니다.

[고려상인] 당신이 북경으로 가신다면 우리가 고려인이라 중국 땅에 익숙하지 않으니 당신이 우리를 동행으로 삼아서 데리고 가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중국상인] 그러면 우리 함께 갑시다.

[고려상인] 형님, 당신은 성씨가 어떻게 됩니까?

[중국상인] 내 성은 왕씨요.

[고려상인] 당신 집은 어디에 삽니까?

[중국상인] 나는 요양성에 삽니다.

[고려상인] 당신은 북경에 무슨 일로 갑니까?

[중국상인] 나는 이 말 몇 필을 팔려고 갑니다.

[고려상인] 그러면 정말 잘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 몇 필의 말을 팔러 가고 있습니다. 이 말 위에 싣고 있는 약간의 모시와 삼베도 같이 팔러 갑니다.

[중국상인] 당신들이 말을 팔러 간다면 우리들이 동행이 되어 가는 것이 마침 잘되었구려.

 

大哥, 你如今那裏去. 我也往北京去. 你旣往北京去時, 我是高麗人, 漢兒地面裏不慣行, 你好歹拖帶我, 做火伴去. 這們時, 咱們一同去來. 哥哥你貴姓. 我姓王. 你家在那裏住. 我在遼陽城裏住. 你京裏有甚麼勾當去. 我將這幾箇馬賣去. 那般時最好. 我也待賣這幾箇馬去. 這馬上駞着的些小毛施布一就待賣去. 你既賣馬去時, 咱們恰好做火伴去.

 

『노걸대』

 

 

[상점주인] 당신은 고려에서 어떤 물건을 가지고 왔소?

[고려상인] 우리는 말 몇 필을 끌고 왔습니다.

[상점주인] 또 어떤 물건이 있소?

[고려상인] 달리 뭐는 없지만, 인삼과 모시와 삼베가 좀 있습니다. 지금 가격이 어떠합니까?

[상점주인] 가격은 평소와 같소. 인삼은 마침 <물건이> 떨어져서 참으로 좋은 가격이오.

[고려상인] 지금 팔면 얼마입니까?

[상점주인] 작년에는 1근에 3전이었는데 지금은 팔 것이 없어서 1근에 5전 하는 집도 찾을 수가 없소. 당신의 그 삼은 어디 삼이오?

[고려상인] 우리 것은 신라삼입니다.

[상점주인] 신라삼이면 더욱 좋소. 파는데 무슨 걱정이 있겠소?


你高麗地面裏將甚麼貨物來. 我將的幾疋馬來. 再有甚麼貨物. 別沒甚麼, 有些人蔘毛施布. 如今價錢如何. 價錢如常. 人蔘正缺着裏, 最好價錢. 如今賣的多少. 往年便則是三錢一斤, 如今爲沒有賣的, 五錢一斤家也沒處尋裏. 你那蔘那裏蔘. 我的是新羅蔘. 新羅蔘時又好, 愁甚麼賣.


『노걸대』


※ 이해를 돕기 위해 번역문에는 화자 표시를 하였습니다

 

 

 

『노걸대』는 고려 말부터 조선 시대에 걸쳐 중국어 학습을 위하여 편찬된 한어(漢語) 회화 교재이다. 고려 후기에 원과의 교류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직접적이고 빈번하게 이루어지면서 한어 교육이 더욱 중요해지게 된다. 이런 필요에 조응하여 당시 북경에서 사용되던 구어를 학습할 수 있는 교재로 만들어진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 충렬왕 대에 한어 교육을 위해 설치했던 통문관(通文館)의 후신인 사역원(司譯院)에서 이를 활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역시 건국 초부터 사역원을 설치하여 운영하면서, 『노걸대』를 『박통사』와 함께 중국어 학습의 주교재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경국대전』에 역과(譯科)의 시험 문제를 이 책들에서 출제할 것을 규정하고 있어, 당시 한어 학습에 있어서 『노걸대』라는 책이 갖는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노걸대』


조선의 대표적인 외국어 학습서임에도 불구하고, ‘노걸대’라는 책 제목의 의미가 무엇인지, 원저자가 누구인지, 정확한 편찬 시기는 언제인지 등의 문제는 여전히 수많은 의문을 남기고 있다. 책 제목과 관련해서 여러 해석이 있지만, ‘걸대’는 중국 혹은 중국인을 지칭하는 말이며 거란(契丹)의 ‘Kitai’ 혹은 ‘Kitat’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라는 주장이 폭넓은 동의를 얻고 있다. 거기에 경칭으로 ‘노’가 붙은 것으로 ‘중국(인)님’ 혹은 중국 사정에 밝은 사람인 ‘중국통(中國通)’의 의미라고 보기도 하는데, 결국 ‘노걸대’는 고려인이 중국인을 부르는 호칭이라고 할 수 있다.


명확한 기록이 없어 고려인에 의해서 14세기 중엽에 저술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뿐 구체적인 편찬 시점은 알기 어렵다. 『노걸대』는 현재 4종류가 전해지고 있는데, 『원본노걸대』, 『산개노걸대』, 『노걸대신석』, 『중간노걸대』가 그것이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 시간이 흐르면서 중국어에 변화가 생김에 따라 회화 교재인 『노걸대』의 원문에도 수정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각각 1483년(성종 14), 1761년(영조 37), 1795년(정조 19)에 한어문의 어휘와 문법 등을 일부 수정하여 간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고려 말 판본인 『원본노걸대』를 제외한 3종이 현재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위에 인용한 원문은 『원본노걸대』가 원대의 한어로 되어 있어 명대에는 통하지 않는 말이 많다는 이유로 조선 성종 대에 수정한 『산개노걸대』의 일부이다.


이러한 『노걸대』의 이본들은 기본적인 내용에는 큰 차이가 없지만, 원·명·청의 여러 시대를 거치며 발생한 언어의 변화 양상을 고스란히 볼 수 있어 흥미롭다. 예를 들어, ‘고려 왕경에서 왔습니다.’라는 부분이 조선 후기 간행본에서는 ‘조선 왕경에서 왔습니다.’라고 수정되어 있다. 이 외에도 ‘대도(大都)’가 ‘북경’으로, ‘한아언어(漢兒言語)’가 ‘관화(官話)’로 ‘한아인(漢兒人)’이 ‘중국인’, ‘남방인’ 등으로 바뀌는 것처럼 시대성을 짙게 보여주는 한어의 어휘 및 문법의 변천를 담고 있다.


『노걸대』는 대표적인 중국어 학습서로서 흔히 『박통사』와 함께 거론되곤 한다. 두 책의 내용과 문체를 통해 비교해 보았을 때, 『박통사』가 세시, 오락, 종교, 문서, 혼인과 상사 등 중국의 사회적 풍속과 생활 문화를 폭넓게 반영한 고급회화서라고 한다면, 『노걸대』는 여행과 교역을 중심으로 한 실용적인 초급회화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노걸대』는 주인공을 포함한 고려 상인 4인이 고려의 말, 인삼, 모시 등을 가지고 개경을 출발하여 요동을 거쳐 북경으로 행상하러 가는 도중에 중국 상인 왕씨를 만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들이 동행이 되어 함께 북경으로 가는 여정에 따라 내용이 전개되는데, 그 과정에서 부딪히는 여러 가지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대화가 주된 줄거리를 이룬다. 중국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실제로 필요한 회화문을 당시 통용되는 한어를 통해 학습할 수 있도록 장면이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주인공 일행이 목적지에 도착하여 가지고 간 고려의 화물들을 판매하고 다시 고려에 가지고 갈 견직물이나 잡화 등을 구입한 뒤 중국 상인 왕씨와 작별 인사를 나누는 장면에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내용의 대부분은 우연히 동행이 된 주인공 일행이 북경으로 가는 도중에 숙식을 해결하면서 나누는 대화와 물건을 사고 팔면서 흥정하고 계약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나누는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집주인과 나눈 대화는 여행과 일상생활에 필요한 실용적인 회화체를 익힐 수 있게 하며, 집주인들의 말과 태도를 통해 당시 인심 세태를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한어의 어휘 습득을 위해 일부러 설정된 장면도 주목이 된다. 각 장면에 맞추어 친척의 호칭, 중국 요리나 채소·과일의 명칭, 말과 비단의 종류, 수십 가지의 잡화 상품명 등을 나열하여 학습자가 필요한 어휘를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게 구성하고 있다.


한편 다소 이례적인 장면도 삽입되어 있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에 어울리지 않는 내용인 데다 형식도 대화체가 아닌 1인 설교 형식으로 된 장면이 책 후반부 중간에 장황하게 들어가 있다.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르니 인생을 즐겨야 한다는 내용으로 시작하여 각종 처세술에 관한 내용, 부자 부모 밑에서 태어나 방탕한 생활을 하면 결국 가산을 탕진하고 하인 신세가 된다는 내용까지 다소 뜬금없는 이야기가 실려 있는 것이다. 아마 별도의 목적으로 설정되었던 부분이 편찬 당시 잘못 삽입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고려-조선의 중국어 교과서였던 만큼 『노걸대』 속 한어문은 원-명-청대의 중국어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또한 한어 원문에 훈민정음으로 음을 달고 국역을 부기한 번역·언해본도 여러 차례 수정·간행되어 전해져, 국어의 변화를 연구하는 자료로 활용되어 왔다. 『노걸대』는 편찬 당시의 중국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한어를 반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원과의 교역 관행이나 물가, 의식주와 관련한 생활상, 풍속 등 당시 사회의 모습을 풍부하게 담아내고 있다. 무엇보다 『노걸대』 자체가 우리에게 고려인과 조선인이 어떻게 외국어 회화를 공부했는지를 생생하게 알려 주고 있어 흥미롭다 할 수 있다.

 

 

 

이육화, 2015 『原本老乞大 新註新譯』, 신아사

梁伍鎭, 2008 『漢學書 老乞大 朴通事 硏究』, 제이앤씨

정광, 2010 『譯註 原本 老乞大』, 박문사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 개인의 견해이므로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공식적 의견과는 무관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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