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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여전도』와 신기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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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여전도

 

 

 

[고등학교 국사]

. 통치 구조와 정치 활동 4. 근대 태동기의 정치 [5] 대외 관계의 변화

. 민족 문화의 발달 4. 근대 태동기의 문화 [3] 과학 기술의 발달


 

 

세상에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고 하는 것은 대개 그 동정(動靜)의 뜻과 방원(方圓)의 이치를 말하는 것일 뿐이며, 그 형체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먼저 동서를[동서로 땅이 둥글다는 것을] 논하고, 다음으로 남북을[남북으로 땅이 둥글다는 것을] 논함으로써 땅이 둥글다는 논지를 증명하고자 한다.

 

世謂天圜而地方 此蓋言其動靜之義 方圓之理耳 非言其形也 今先論東西 次論南北 以證合地圜之旨

Ferdinandus Verbiest, 『坤輿圖說』 卷上, 「地體之圜」

 

아시아는 천하의 큰 대륙인데, 인류가 처음으로 생기고 성현(聖賢)이 그 세계에서 가장 먼저 나왔다. 중국은 그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예로부터 제왕이 도를 세우고(立極), 성인과 철인이 번갈아 나왔다. 명성문물예악의관의 아름다움과 무릇 산천토속물산인민의 부서(富庶)로 먼 나라와 가까운 나라가 함께 숭상하여 우러르는 바이다.

 

亞細亞 天下一大州 人類肇生 聖賢首出 其界 中國則居其東南 自古帝王聖哲 聲名文物 禮樂衣冠 遠近所宗 山川土俗物産 朝貢諸國

Ferdinandus Verbiest, 坤輿圖說 卷下亞細亞州

 

亞細亞者 天下一大州也 人類肇生之地 聖賢首出之鄕 中國則居其東南 自古帝王立極 聖哲遞興 聲名文物禮樂衣冠之美 與夫山川土俗 物産人民之富庶 遠近所共宗仰

Giulio Aleni, 職方外紀 1, 亞細亞總說

 

 

 

17세기 이후 중국을 통해 조선에 전래 된 기물 가운데 서양식 세계지도가 있다. 그 가운데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 利瑪竇)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가 유명하다. 여덟 폭의 병풍으로 만든 이 세계지도는 땅이 둥글다는 지구설에 기초하고 있으며, 동아시아의 옛 지도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경위선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마테오 리치의 세계지도 이후 이와 유사한 방식의 지도들이 다수 제작되었다. 페르비스트(Ferdinandus Verbiest, 16231688, 南懷仁)에 의해 제작된 곤여전도(坤輿全圖)는 그 가운데 하나이다.

    

곤여전도의 제작자

페르비스트은 벨기에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이다. 그는 18세 때인 1641년 예수회에 입회하였고, 벨기에에스파냐로마 등지에서 5년 동안 공부했다. 1657년 중국 선교사로 명령을 받고, 1659년 청()에 들어가 섬서(陝西) 지방에서 전교 활동을 했다. 16605월 강희제(康熙帝)의 명으로 북경(北京)에 들어가 아담 샬(Adam Schall von Bell, 1591~1666, 중국명 湯若望)과 함께 천문역산학(天文曆算學) 관련 서적들을 편찬하고, 관직에 올라 흠천감(欽天監) 감정(監正)을 지냈다.

1664년에 양광선(楊光先, ?1669) 등 보수파가 주도한 역옥(曆獄)’으로 한때 흠천감에서 추방당하고 감옥에 갇힌 일도 있었으나, 곧 복직되어 청의 역서(曆書) 제작을 감독하였다. 1669년 강희제의 명을 받들어 공부(工部)흠천감의 관리들과 함께 천문의기를 제작하기 시작하여 1673년에 6건의 의기를 완성하였고, 태상시(太常寺) ()에 봉해졌다. 페르비스트는 1672년부터 치리역법(治理曆法)’의 직무를 맡아서 죽을 때까지 수행하였는데, 이는 그가 수학에 정통하고, 천문의기의 제작에 뛰어났으며, 역법의 추산(推算)과 천문 관측에 밝아서 조정에서 명성을 얻었기 때문이다.

    

곤여전도의 제작과 판본

곤여전도는 마테오 리치의 곤여만국전도를 포함해서 알레니(Giulio Aleni, 1582~1649, 艾儒略)직방외기(職方外紀), 롱고바르디(Niccolo Longobardi, 1559~1654, 龍華民)지진해(地震解), 우르시스(Sabbathino de Ursis, 1575~1620, 熊三拔)표도설(表度說)등 명말 청초 유럽 선교사들의 천문지리 성과를 비롯하여 요안 블라외(Joan Blaeu, 1596~1673)의 지도학적 성과를 반영하여 제작되었다.

청에서 제작된 곤여전도1674년에 제작된 북경판과 1858년에 제작된 광동판이 있다. 북경판 곤여전도는 현재 숭실대 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북경판 곤여전도의 제2폭 우측 하단에는 강희갑인세일전추자지차(康熙甲寅歲日躔娵訾之次)”라는 간기가 기재되어 있다. ‘강희갑인세란 강희 갑인년(강희 13, 1674)이고, ‘일전추자지차란 태양의 궤도가 12차 가운데 추자(娵訾)의 위치에 있다는 뜻으로 1월을 가리킨다. 따라서 북경판은 16741월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7폭의 좌측 하단에는 치리역법극서남회인입법(治理曆法極西南懷仁立法)”이라고 하여 이 지도의 제작 원리[立法]를 제공한 사람이 페르비스트[南懷仁]임을 밝혔다.

광동판 곤여전도는 북경판과 비교해 볼 때 제1폭과 제8폭의 위치가 뒤바뀌어 있다. 광동판의 제2폭 우측 하단에도 역시 간기가 기재되어 있는데 강희갑인세일전추자지차(康熙甲寅歲日躔娵訾之次)”라는 기존의 간기 왼쪽에 함풍병진강루광동성중간(咸豐丙辰降婁廣東省重刊)”이라고 추가로 기록하였다. 함풍 병진년(함풍 6, 1856)2월에 광동성에서 중간(重刊)했다는 뜻이다.

페르비스트가 제작한 세계지리서인 곤여도설(坤輿圖說)은 경종 원년(1721) 왕세제(王世弟) 책봉(冊封) 주청사(奏請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에 파견되었던 유척기(俞拓基, 16911767)에 의해 이듬해 수입되었는데, 이때 곤여전도도 함께 전래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동시기에 활동했던 이익(李瀷, 16811763)곤여도설을 통해 서양의 조석설(潮汐說)을 열람한 바 있었다.

숭실대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곤여전도는 조선에서 1860년에 제작한 8폭짜리 목판본 세계지도이다. 2폭의 우측 하단부에 치리역법극서남회인역법(治理曆法極西南懷仁立法)”이라고 기재되어 있고, 7폭의 좌측 하단부에는 함풍경신강루해동중간(咸豐庚申降婁海東重刊)”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전자는 이 지도의 입법을 페르비스트가 했다는 것이고, 후자는 함풍 경신년, 즉 함풍 10(철종 11, 1860)에 해동(海東), 즉 조선에서 중간했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이를 해동판 곤여전도라고 부른다.

현재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보물 제882곤여전도 목판1856년에 재판된 광동판을 토대로 조선에서 새롭게 새긴 목판이다. 현재 1폭과 8폭의 주기 부분은 유실되었고 지도 부분만이 보존되어 있다.

 

 

곤여전도의 구성

8폭의 목판 가운데 세계지도는 2폭에서 7폭에 걸쳐 그려져 있다. 2폭에서 4폭까지의 서반구에는 남북아묵리가(南北亞墨利加), 5폭에서 7폭까지의 동반구에는 아세아(亞細亞), 구라파(歐邏[]), 리미아(利未亞)가 그려져 있고, 묵와랍니가(墨瓦蠟泥加, 남방대륙)는 양반구에 걸쳐 그려져 있다.

1폭과 제8폭에는 각각 네 개의 주기가 차원과 사각형의 틀 안에 제시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각각 지진(地震), 인물(人物), 강하(江河), 산악(山岳), 사원행지서병기형(四元行之序並其形), 지구남북양극 필대천상남북양극 불이천지중심(地球南北兩極, 必對天上南北兩極, 不離天之中心), 지원(地圜), 지체지원(地體之圜)이다. 이외에도 2폭과 7, 4-5폭 사이에도 주기가 수록되어 있다. 주기의 내용은 페르비스트의 곤여도설권상에 수록된 기사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아마도 곤여도설에는 지도가 수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곤여전도를 제작하면서 권상의 내용을 주기로 수록했던 것으로 보인다.

    

곤여만국전도곤여전도의 차이점

곤여만국전도곤여전도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세계지도의 형태가 다르다. 곤여만국전도는 아피아누스(Apianus) 투영법을 이용한 타원형(=계란형)의 지도였는데, 곤여전도는 시점을 적도상에 둔 평사도법(平射圖法, stereographic projection)으로 동반구(東半球)와 서반구(西半球)를 분리하여 두 개의 원 안에 그린 지도였다.

둘째, 세계지도의 여백에 수록한 주기(註記)의 구성과 내용이 달라졌다. 곤여만국전도에는 마테오 리치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서문(序文)발문(跋文)과 함께 각종 주기가 수록되어 있다. 거기에는 지구 위의 지리학적 정보뿐만 아니라 구중천도(九重天圖), 천지의도(天地儀圖), 일월식도(日月蝕圖)등과 같이 우주의 구조와 일월식의 원리를 보여주는 그림과 설명문이 포함되어 있다. 요컨대 곤여만국전도에는 지리적 정보와 함께 천문학적 지식이 망라되어 있었던 것이다. 반면 곤여전도의 주기에서는 지표면의 구체적 자연현상과 지리적 사실에 보다 중점을 두고 있다.

셋째, 곤여전도에서는 남극 대륙을 비롯하여 바다 위에 각종 이수(異獸)와 기물(奇物)을 그려 넣었다. 물론 곤여만국전도가운데에도 지도의 해상 위에 선박과 기이한 어류를 그리고, 지상에도 이상한 짐승을 그린 것이 있다. 이를 지도에 그림을 집어넣었다는 뜻으로 회입(繪入)’ 곤여만국전도라고 부른다. 북경고궁박물관 소장본과 한국전쟁 때 소실된 봉선사(奉先寺) 소장본, 그리고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본 곤여만국전도가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그림을 집어넣은 곤여만국전도는 대체로 사본이었다. 반면에 곤여전도는 목판본 자체에 그림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페르비스트는 왜 이와 같은 그림을 지도에 집어넣게 되었을까? 묵와랍니가는 남극 주위의 상상의 대지였다. 페르비스트는 옛날부터 항해하는 사람들이 그 내지에 들어가지 못하여 그곳인 인물, 풍속, 산천, 축산, 조수, 어충(魚蟲) 등이 어떠한지 알 수 없다고 하였다. 그가 곤여전도를 제작하면서 남극 주위의 빈 곳에 천하 사주(四州), 즉 네 대륙의 이수(異獸)와 기물(奇物) 여러 종류의 형상을 그린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들의 상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곤여도설의 말미에 그림과 함께 수록해 놓았다.

 

 

 

金良善, 1972, 韓國古地圖硏究抄世界地圖-」 梅山國學散稿崇田大學校 博物館

한영우안휘준배우성, 1999, 우리 옛지도와 그 아름다움효형출판

줄리오 알레니 저천기철 역, 2005, 직방외기일조각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2013,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옛지도 속의 하늘과 땅,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서윤정, 2019, 조선후기 채색필사본 병풍 <곤여만국전도(坤與萬國全圖)><곤여전도(坤輿全圖)>의 동물 삽화 : 지식과 도상의 전승과 변용 美術史學硏究303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 개인의 견해이므로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공식적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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