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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궤를 통해 본 왕실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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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친정기(親政期) ‘예람용(睿覽用) 의궤’의 출현

 

 

 

 

 

 

 

3종류의 의궤

 

예람용 의궤

 

고종대의 예람용 의궤 제작


강문식 (서울대 규장각 학예연구사)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조선왕조 의궤는 국왕이 보는 어람용(御覽用) 의궤와 관청 및 사고(史庫)에서 보관하는 분상용(分上用) 의궤 등 2가지 종류가 제작되었다. 어람용 의궤는 분상용 의궤와 내용은 동일했지만, 국왕의 위엄을 높이기 위해 초주지(草注紙)에 붉은 인찰선을 사용하고 녹색 비단 표지, 놋쇠 변철, 국화동(菊花童)으로 장정(裝幀)하는 등 분상용 의궤와는 다른 모습을 띠었다. 또, 1897년 대한제국 선포 이후에는 황제국의 위상이 의궤 제작에도 반영되어, 황색 비단 표지의 황제용 의궤 외에 붉은 비단 표지의 황태자용 의궤가 별도로 제작되어, 황제용·황태자용·분상용 등 3종류의 의궤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왕위 계승자(왕세자 또는 황태자)를 위한 의궤가 별도로 만들어진 것이 대한제국 선포 후 처음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1897년 대한제국 선포 이전, 즉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고 고종의 친정(親政)이 시작된 1873년(고종 10)부터 이미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 올려지는 왕세자용 의궤, 즉 ‘예람용(禮覽用) 의궤’가 제작되고 있었다. 현재 규장각에 소장된 고종대 예람용 의궤 중 제작 시기가 가장 이른 것은 1873년에 만들어진 「고종신정왕후효정왕후철인왕후명성왕후상존호도감의궤(高宗神貞王后孝定王后哲仁王后明成王后]上尊號都監儀軌」<규 13458·13459>이다. 이 의궤 이후 대한제국 선포 전까지 만들어진 의궤들은 대부분 예람용 의궤가 별도로 제작되었다.



<그림1> 「고종신정왕후효정왕후철인왕후명성왕후상존호도감의궤」(오대산 분상용 표지)

 

 

 

예람용 의궤는 어람용 의궤와 동일한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즉, 녹색 비단 표지, 놋쇠 변철, 국화동 5개로 장정한 외형이나, 초추지에 붉은 인찰선이 그려진 책지(冊紙)를 사용한 것 등이 어람용과 완전히 일치한다. 그 결과, 앞서 언급한 『고종신정왕후효정왕후철인왕후명성왕후상존호도감의궤』 이후 만들어진 의궤들은 대부분 어람용 형태의 의궤가 두 건씩 제작되었다. 즉, 둘 중 하나는 어람용이고, 다른 하나는 예람용인 셈이다. 하지만 어람용이나 예람용 의궤에는 분상처가 따로 표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의궤사목」을 통해 어람용과 예람용이 따로 제작되었음은 확인할 수 있지만, 현전하는 실물 중에서 어느 것이 어람용이고 어느 것이 예람용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래의 도판은 규장각에 소장된 「보인소의궤(寶印所儀軌)」 중 어람의 형태를 갖춘 두 책의 첫 장을 비교한 것으로, 어람용과 예람용이 외형적으로 동일하게 제작되었음을 잘 보여준다.

 


<그림2> 「보인소의궤」 <규 14218> 「보인소의궤」 <규 14219> 규장각 소장 

「보인소의궤」의 어람용과 예람용 비교

 

 

 

고종대에 예람용 의궤가 제작되기 시작한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그런데, 고종의 왕세자인 순종은 1874년(고종 11)에 출생했으므로, 예람용 의궤 제작이 처음 시작된 1873년 당시에는 아직 왕세자가 없었다. 왕세자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에 예람용 의궤를 제작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여기에 어떤 정치적 목적이 개입되어 있음을 시사해 준다. 이와 관련되어 주목되는 것은 예람용 의궤의 제작 시점이 고종의 친정이 시작된 시기와 일치한다는 점이다. 이는 고종이 친정 개시와 함께 왕실의 위엄을 높이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예람용 의궤 제작을 추진했을 것이라는 추정을 가능하게 해 준다. 즉, 고종은 예람용 의궤 제작을 통해 왕위 계승자인 왕세자의 위상을 국왕에 준하도록 격상시킴으로써 왕실의 권위를 높이고, 이를 바탕으로 정국 운영의 주도권을 공고히 하려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렇게 볼 때, 고종 친정기에 처음 나타난 예람용 의궤의 제작은 조선시대 의궤 제작 방식의 변화라는 측면뿐만 아니라 고종대 정치사의 전개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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