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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궤를 통해 본 왕실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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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구자탕(悅口子湯, 悅口資湯, 悅口旨 : 신선로)

 

 


양진석 (서울대 규장각 학예연구관)


열구자탕은 화로 모양의 신선로(神仙爐)에 여러 가지 어육(魚肉)과 채소를 넣어 끓인 음식으로 다채로운 색깔을 띠고 있으며, 맛이 좋다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다. 열구자탕을 소개한 책자들은 『소문사설(謏聞事說)』,『송남잡지(松南雜識)』, 『규합총서(閨閤叢書)』, 『시의전서(是議全書)』·『해동죽지(海東竹枝)』,『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책 외에도 의궤나 등록으로는 1765년(영조 41)의 행사를 기록한 『(乙酉)受爵儀軌』과 『경현당수작시등록(景賢堂受爵時謄錄)』등을 들 수 있으며, 이후 『園幸乙卯整理儀軌』, 『內外進宴謄錄』,『高宗壬寅進宴儀軌』 등 다수의 의궤에도 등장한다.



<그림1> 열구자탕 사진


열구자탕의 이치는 수화기제(水火旣濟)의 이치를 이용하여 화로를 만든 것으로, 여러 가지 채소를 한데 넣어 익혀 먹는 것이다. 이를 만든 이가 신선이 되어 속세를 떠나간 뒤에 세상 사람들이 그 화로를 신선로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열구자탕이 등장하는 빠른 의궤의 기록은 1765년(영조 41)에 등장하고 있다.


1902년(광무 6)에 열린 행사를 기록한『고종임인진연의궤(高宗壬寅進宴儀軌)』 찬품(饌品) 항목에서 보이는 열구자탕은 궁중에서도 대전(大殿)과 황태자(皇太子)에게만 올리고 있다. 이로써 볼 때 열구자탕을 올리는 대상은 궁중에서도 매우 제한적인 대상에게만 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때 열린 진연에서도 열구자탕이 올려지는 것은 전설사(典膳司) 외숙설소(外熟設所)에서 담당하였던 중화전진연(中和殿進宴), 내숙설소(內熟設所)에서 담당한 관명전정일진연(觀明殿正日進宴) 등 여러 행사에서 등장하고 있다. 의궤 외에도 구체적으로 열자자탕이 올려졌음을 보여주는 자료로는 광무 5년~6년(1901~1902)에 작성된 『내외진연등록(內外進宴謄錄)』(奎 13012)이 있으며, 내용에서 신축년 즉 1901년(광무 5)에 열구자탕을 올린 대상들은 고종황제(高宗皇帝), 황태자(皇太子), 영친왕(英親王), 순빈궁(淳嬪宮)들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열구자탕은 대전이나 황태자 등에게 올릴 때에는 진어미수(進御味數) 즉 찬품을 올리는 차례는 초미(初味), 재미(再味)에 주로 해당되었다. 이때 올려진 재료를 살펴보면 고종과 황태자에게 올린 것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 열구자탕이라 해도 같은 재료를 고집하였던 것은 아니었다. 왕실(황실 포함)에서의 등급에 따라 열구자탕에 넣는 재료의 종류와 양도 조금씩 달랐다.


찬품단자(饌品單子)에 열거된 열구자탕의 재료들을 보면, 1기(器)에 소 안심고기(內心肉) ·대장(大腸)·곤자소니(昆者巽 : 소의 창자 끝에 달린 기름기가 많은 부분)·부화(浮花)·소밥통(羘領)·간(肝)·천엽(千葉)·돼지고기(猪肉)·돼지새끼(豬胎)·꿩(生雉)·묵은닭(陳鷄)·전복(全鰒)·해삼(海蔘)·숭어(秀魚)·게알(蟹卵)·표고(蔈古)·목이(木耳)·황화(黃花)·무(菁根)·미나리(水芹)·파(生蔥)·오이(靑瓜)·등뼈(背骨)·머리뼈(頭骨)·달걀(鷄卵)·녹말(菉末)·면(眞末)·참기름(眞油)·잣(栢子)·은행(銀杏)·호두(實胡桃)·황밤(黃栗)·대추(大棗)·박고지(朴古之)·도라지(桔莄)·간장(艮醬)·후추가루(胡椒末) 등 다양한 것들이 이용되었다.


열구자탕 즉 신선로는 육류, 해물, 채소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여 만든 궁중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현재는 우리의 음식의 고급스러움과 영양, 맛을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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