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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궤를 통해 본 왕실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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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찬의궤(進饌儀軌)』에 보이는 ‘고임’의 의미

 

 


양진석 (서울대 규장각 학예연구관)


‘고임’이라 하면 역사를 공부한 사람들에게도 매우 생소한 단어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물건의 밑을 받쳐서 괴는 일 또는 물건”이라고 정의 되어 있다. 이 정도의 풀이로는 감을 잡을 수 없다. 앞에서 정의한 것과 연계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는 기껏해야 ‘굄대’, ‘굄목’, ‘굄돌’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 아직도 사용되고 있는 것이 있다. 결혼식 때 폐백으로 사용되고 있는 ‘대추고임’이다. 대추고임은 대추를 실로 끼운 것을 목기에 돌려 담아 사용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돌잔치에 가면 돌떡을 높이 고여서 화려하게 상을 장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829년(순조 29)에 효명세자가 국왕인 아버지 순조의 40세와 즉위 30년을 맞이하여 이를 경축하기 위해 연향을 올린 기록인 『순조기축진찬의궤(純祖己丑進饌儀軌)』에서도 고임에 대한 기록들을 살필 수 있다.



<그림1> 『순조기축진찬의궤』 중 「자경전진찬도(慈慶殿進饌圖)」


고임과 관련한 기록을 모두 살피기에는 지면상 힘들기 때문에, 내숙설소(內熟設所)에서 마련한 자경전진찬(慈慶殿進饌)만을 대상으로 살펴보겠다. 우선 대전(大殿)에 올려 진 것을 보면, 각색의 멥쌀 시루떡, 찹쌀시루떡, 조악(助岳, 주악)과 화전(花煎), 양색단자(兩色團子), 대약과(大藥果), 다식과(茶食果)와 만두과(饅頭果), 각색절육(各色截肉) 등은 각각 1개의 그룻에 담았으며 높이가 2자 2치이다. 이 외에도 삼색료화(三色蓼花), 유자와 귤, 석류는 2자 1치이며, 검은깨황률다식(黑荏子黃栗茶食)과 녹말송화다식(菉末松花茶食), 양색매화강정(兩色梅花强精), 양색강정, 삼색매화연사과(三色梅花軟絲果), 각색당(各色糖), 용안(龍眼), 여지(荔芰), 곶감, 밤, 대추, 잣(松柏子) 등은 그릇 1개에 높이가 1자 9치이고, 편육(片肉), 양전(羘煎) 및 해삼전, 간전(肝煎)과 어전, 전복홍합볶음(全鰒紅蛤炒), 각색화양적(各色花陽炙), 어채(魚菜), 삼색갑회(三色甲膾) 등은 1자 6치이며, 각색정과는 1자 1치이다.


음식의 특성에 따라 고임의 높이가 달라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지위에 따라서도 음식의 종류와 고임의 높이가 달라지고 있음은 왕비, 세자 및 세자빈에게 올려진 것의 고임의 높이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우선 왕비에게 올려 진 것을 보면, 각색의 떡(餠), 각색의 조악 및 화전과 단자잡과떡, 약과와 만두과, 각색절육 등을 1개의 그릇에 담았으며 높이는 대전 보다 낮은 1자 5치이고, 삼색다식과 양색강정, 양색매화연사과, 각색당, 용안과 여지, 유자와 석류 및 배, 곶감, 대추와 밤, 잣은 1자 3치이며, 편육, 양전과 해삼전, 간전과 어전, 각색화양적, 어만두, 양색갑회은 8치, 조란과 율란 및 강란, 삼색녹말떡은 7치, 각색정과는 6치이다.


세자와 세자빈에게 올려진 것을 보면, 각색떡, 각색조악과 화전 및 단자와 잡과떡, 약과 및 만두과, 각색절육은 1자 7치, 석류와 배는 1자5치, 각색다식, 양색강정, 삼색매화연사과, 곶감, 대추와 밤, 는 1자4치, 편육, 양전과 해삼전, 간전과 어전, 전복홍합볶음, 각색화양적, 어만두, 양색갑회는 1자 1치, 삼색녹말떡은 9치, 각색정과는 6치인데, 각각 2그릇을 올렸다.


명온공주의 찬상은 각색떡, 각색절육은 1자 3치, 약과, 삼색매화연사과, 삼색료화, 석류와 배는 1자 2치, 삼색다식, 곶감, 대추와 밤은 1자, 편육은 8치, 양색전유화, 전복홍합볶음, 각색화양적, 양색갑회는 8치, 삼색녹말떡은 7치, 조란(棗卵)과 율란(栗卵) 및 강란(薑卵) 6치, 각색정과 5치이다.


국왕을 비롯하여 왕비 및 세자와 세자빈 등 왕실 내에서의 각각 차지하는 지위에 따라 음식의 종류와 양들이 달랐으며, 한편 고임의 높이도 같은 음식이라 해도 왕실 내에서의 지위에 따라 달리 올려졌다. 고임은 화려한 겉모양과 함께 고급스런 품격을 보이면서 한편으로는 지위에 따른 크기의 차이를 통하여 권위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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