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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궤를 통해 본 왕실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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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궤속의 시각

 

 

 

박권수 (충북대 교수)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인들은 결혼식을 올리기에 길한 날을 무당이나 점장이한테 가서 받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른바 ‘날을 받는 풍습’이 그것이었는데, 이런 길일을 잡아서 결혼식과 같은 행사를 치룸으로써 사람들은 인생을 새롭게 출발하는 시점이 혹여라도 ‘마’가 끼인 날이거나 불길한 날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만약 잘못 알고서 불길한 날에 의식을 행할 경우 앞날에 무슨 불행이 닥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어떤 행사나 의식을 수행하려면 언제 그 행사나 의식을 시작할지를 미리 약속해놓고 행사를 수행한다. 하지만 막상 그 행사나 의식을 언제 시작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누구나 ‘좋은 때’를 골라서 행사를 행하고 싶어하는 법이다. 따라서 과거 한국인들이,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도 그러한데, 결혼식의 날짜로 길한 날을 잡기 위해 점쟁이나 무당을 찾아가는 것이 그다지 이상한 일만은 아니다.

어느 날 어느 때가 행사를 수행하기에 길한 때인가를 따지는 풍속은 전통시대에는 생활의 깊숙한 부분에까지 중요하게 작동을 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길한 날을 잡는 여러 풍속도 알고 보면 대부분 조선시대의 선조들이 그렇게 하던 풍습이 오늘날까지 남아서 내려온 결과이다.


조선시대에는 특정 ‘시각’이 해당 의식을 거행하기 좋은지 아니면 나쁜지 아주 엄밀하고 세밀하게 따졌다. 다시 말해 모든 의식과 행사는 반드시 길일(吉日), 즉 길한 날과 길한 때를 잡아서 수행되어야만 했고, 그래야만이 앞으로의 일에 행운이 따르고 뒤탈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사가기 좋은날, 지붕고치기 좋은날, 외출하기에 불길한 날, 집안의 담장을 고치면 불길한 날, 결혼식 하기 좋은날 등등 일상생활의 모든 일들에 대해 길한 날과 불길한 날을 따져서 거행했던 것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길일과 길시를 아주 엄밀히 따지는 풍습은 사실 왕실의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조선의 왕실의례에서는 결혼과 같은 기쁜 행사이건 국장과 같은 슬픈 행사이건 간에 일반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여러 날에 걸쳐서 행사를 위해 동원되어야 했다. 따라서 왕실행사를 거행하기 위해서는 의식을 구성하는 모든 절차들에 대해 미시적(微視的) 단위의 길일과 길시가 엄밀하게 지정되어야 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국왕의 장례식의 경우에는 상여꾼들만 하더라도 수천 명이 동원되었고 무려 5개월 정도의 기간에 걸쳐서 의식이 진행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의식의 전 과정에서 국왕에서부터 상여꾼들에 이르기까지 의례에 참여하는 모든 인원들이 절차에 맞추어 각자가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정확한 시점을 알려주지 않는다면, 우왕좌왕하여 행사가 제대로 진행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들 각각의 일시들은 왕실의 행사였던 것만큼 더욱더 길한 날로 택해져야만 했다.

 


<그림1> 현륭원 원소택일별단

 

이와 같은 길한 날과 길한 때를 잡는 일을 조선시대에는 택일(擇日)과 택시(擇時) 업무라고 현륭원 원소택일별단 하였고, 관상감(觀象監)이 그 일을 담당하였다. 관상감에서는 왕실에서 거행되는 대부분의 의식에 대해 의식을 구성하는 여러 절차들에 필요한 날자와 시각을 정하여 ‘택일단자(擇日單子)’로 작성하여 국왕에게 올려야 했다.

일례로, 국왕의 장례의 경우 얼마나 많은 날짜들이 택일되어야 했는지 살펴보자.


사도세자의 묘를 지금의 융릉 자리에 옮기는 일을 수행하였던 현륭원(顯륭園) 천원(遷園)은 1789년에 이루어졌다. 이 현륭원 천원의 의식을 수행하기 위해 관상감에서는 1789년 7월 11일 원소택일단자(園所擇日別單)를 적상하여 보고하였다. 여기에는 천원(遷園)의 일을 시작하는 ‘시역일(始役日, 7월 20일 辰時), 참초파토(斬草破土, 묘를 새로 쓸 곳의 풀을 베고 땅을 파내는 일, 7월 26일 巳時), 땅의 神에게 祭祀를 지내는 사후투(祀后土, 참초파토(斬草破土)와 같은 날 수행), 원상각(園上閣, 옹가(甕家) 즉 묘를 쓸 혈(穴) 자리 위에 설치하는 구조물)을 설치하는 일(8월 26일 巳時), 개금정(開金井, 하관(下官)할 혈처의 땅을 파는 일, 10월 초3일 午時), 성빈(成殯, 외재궁(外梓宮)이 천원(遷園)하는 곳에 도착한 후에 머무를 빈소(殯所)를 설치하는 일)시에 꺼려야 할 방위, 하현궁(下玄宮)의 일시(임금의 관(棺)인 재궁(梓宮)을 능에 마지막으로 묻고 봉인(封印)하는 일, 11월 2일 巳時)가 순차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택일단자(擇日單子)의 뒤 부분은 천원의 역에 참가하는 이들이 삼가해야 하는 방위와 적합한 방위, 특히 하현궁(下玄宮)하는 작업 시에 자리를 피해야 하는 생년(生年) 등이 서술되어 있다.


이처럼 왕실의례를 구성하는 모든 세세한 절차들에 대해 길일이 잡혀야만이 행사가 원활하고 마땅하게 진행되어 행사의 주체들에게 행운을 가져온다고 믿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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