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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궤를 통해 본 왕실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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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궤에 기술된 유형거(游衡車)에 대하여

 

 


양진석 (서울대 규장각 학예연구관)


유형거는 다산 정약용이 설계하여 제작한 수레를 말한다. 다산 정약용은 조선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인물로 잘 알려진 인물로서 그의 저술은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로 잘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으로는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심서(欽欽新書)』등이 있다. 그는 조선후기 사회의 개혁을 위해 힘을 썼을 뿐만 아니라, 경전을 새롭게 해석하려는 노력을 보인 인물이기도 하며, 그 외에도 과학기술을 도입하여 실제로 적용한 인물로서도 잘 알려져 있다. 정약용은 화성(華城, 지금의 수원성)을 축조에 자신의 학문을 실제적인 일에 적용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큰 역할을 하였다.


이때 정약용이 제작한 것으로 잘 알려진 것은 기중기(起重機)의 역할을 하였다고 알려진 거중기(擧重機)를 들 수 있으나, 그 외에도 다산이 고안하여 자주 언급한 것으로는 유형거(游衡車)가 있다.


다산 정약용은 유형거를 제작함으로써 무거운 짐을 적은 인원으로 쉽게 운반할 수 있다는데 큰 매력을 느꼈다. 우선 1대를 제작하는 비용도 100전을 넘지 않는다는 점과 함께, 그에 따른 부담도 민호에 고루 배정하게 되면 얼마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고용하여 운반하면 백성들이 피해도 입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즉 수많은 인력을 들이지 않고 몇 사람의 힘으로도 힘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산에서 석재(石材)를 채취하거나, 산림(山林)에서 목재를 베어 운반할 때 부역을 크게 줄 일 수 있다는 점은 그에게 유형거를 매우 효율적인 기계라고 생각하게 하였다.



<그림1> 『화성성역의궤』속의 유형거


위의 그림은 화성을 축조하는 데 따른 논의과정 및 제반 공문서들을 기록하고, 아울러 그에 따른 인력을 비롯하여 비용들도 자세하게 담고 있는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에 실린 유형거의 모습이다.


유형거와 관련하여 의궤를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은 국왕이 유형거 1량(輛)을 제작하여 내렸고, 수원부에서는 이를 모방하여 10량을 더 주조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이는 유형거의 필요성이 매우 컸음을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유형거의 장점은 짐을 실고 운반하는 데에 따른 편의성 정도에만 그치지 않았다. 짐을 싣고 경사지를 쉽게 올라갈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운반에 따른 효율성도 고려된 것이었다. 게다가 바퀴에 복토를 달아 짐을 싣는 판이 항상 평형을 유지하게 하는 등 운반과정에서의 편의성 및 안정성을 모두 고려한 것이었다.


유형거는 수레가 갖는 문제점인 수레에 싣는 짐의 무게도 견딜 수 있도록 제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바퀴의 크기도 함께 고려된 것이었다. 무거운 돌, 벽돌, 복재 등을 운반하는 것을 고려하여 부서지지 않도록 튼튼하게 제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바퀴의 크기도 짐을 싣고 내리는데 편리하게 설계되었다.


『화성성역의궤』에 따르면, 성 한 층을 한 바퀴 쌓는 데 약 3,600수레의 돌을 운반해야 하는데, 9층을 쌓으려면 32,400수레가 필요하였다. 그는 유형거 70대를 사용하여 하루에 3번씩 돌을 운반하면 154일 만에 모두 운반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유형거가 운반에 따른 효율성이 매우 높아서 공사기간을 크게 단축시키는 역할을 하였으며, 비용절약에도 대단히 기여했음을 말해준다. 이와 같은 공기의 단축은 당시 역(役)을 져야 하는 백성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는 것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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