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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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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에 세배하고, 추석에 송편 빚고

-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

 

 

 

 


사진 : 동국세시기(奎古31)

 

 

 

 

조선 시대 어르신의 덕담

 

우리가 역사를 다룬 드라마, 영화 또는 역사책을 보더라도 주로 눈에 띄는 것은 특별한 사건들이다. 전쟁, 당쟁, 역모 사건 등 조선 시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접할 수 없는 특별한 이벤트들이 주로 역사콘텐츠의 소재가 되어 왔다. 우리가 보는 역사콘텐츠들은 언제나 역동적이고 돌발적이며 온갖 갈등과 암투가 난무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은 사소한 분란 이외에는 언제나 비슷비슷한 날의 연속이다. 사람의 삶은 99의 일상과 1의 이벤트로 구성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조선 시대의 사람들 역시 반복되는 생활방식과 풍속 속에서 살아갔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점에서 조선 시대의 일상생활과 풍속을 담은 자료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奎古31)는 소중한 자료가 아닐 수 없다.

 

 

서울 풍속에 설날 가묘(家廟)에 인사드리고 제사 지내는 것을 차례(茶禮)라고 한다.

남녀 아이들은 모두 새 옷을 입는데 세장(歲粧:설빔)이라고 한다.

친척 어른들을 찾아뵙는 것을 세배(歲拜)라고 한다.

잘 아는 젊은이를 만나면 

"과거 급제해라", "벼슬해라", "아들 낳아라", "재물 얻어라" 따위의 말로 

덕담을 하며 축하한다.

(동국세시기정월)

 

 

설날을 맞아 집안 어른들을 찾아뵙고 세배를 드리면 어른들은 말씀하신다. 학생에겐 공부 열심히 해라’, 직장인에겐 부자 되어라라고. 한 해 동안 자신들이 소망하는 일들이 모두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일 것이다. 그러한 마음은 19세기 조선 시대의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위에 수록된 인용문은 홍석모(洪錫謨: 1781-1857)1849(헌종 15)년에 지은 동국세기시에 실린 내용이다. 조선 시대 어른들도 설날에 젊은 사람들을 만나서 "과거 급제해라", "벼슬해라", "아들 낳아라", "재물 얻어라"라고 덕담했다니, 어른들의 마음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비슷한가 보다.

 

 

 

 

실증적 학문 풍토와 세시기류의 유행

 

조선은 한때 청나라를 중화의 나라로 인정하지 않을 때가 있었다. 여진족이 세운 나라였을뿐더러 조선을 임진왜란으로부터 구해준 명나라를 무너뜨리고 세운 나라가 청나라라는 이유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17세기에는 청나라를 군사적으로 무너뜨리고자 하는 북벌론이 정치의 화두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18세기 이후에는 강희-옹정-건륭의 치세가 이어진 끝에 청나라 중심의 세계 질서가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이에 따라 조선에서도 대명의ㅤ의리론이 퇴색하고 북학의 사조가 대두되었다. 청나라의 문화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조선 문인들과 청나라 문인들의 교류도 활발해졌다.

 

동국세시기와 같은 세시기부류의 서적이 조선에서 간행된 것은 청나라의 문화적 흐름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청나라에서는 서적 모음집인 총서(叢書) 및 백과사전류 서적인 유서(類書)의 편찬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이러한 서적들은 17세기 무렵부터 청나라를 연행(燕行)하는 사신들을 통해 대량으로 조선으로 유입되었고, 조선의 학술적 유행을 선도하였다. 청나라의 총서 및 유서에 실려 있는 광범위하고 깊이 있는 지식 정보를 관찰함에 따라, 조선에서도 중국의 총서 및 유서 편찬의 흐름을 수용하고자 하였다. 조선에도 사물에 대한 고증과 분석을 위주로 하는 새로운 학풍이 출현한 것이다.

 

청 문단의 유행을 인지하고 있었던 한양 사람들이 세시기창작을 주로 담당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김매순, 홍석모, 조운종 등 세시기의 작자가 대부분 한양에서 거주하면서 최신 학술정보를 입수할 수 있는 경화세족이었고, 그렇지 않은 유득공, 유만공, 조수삼, 김형수도 모두 중국에 다녀온 경험이 있거나 국제적 감각을 지닌 이들이었다. 세시풍속에 관한 관심도 이러한 학풍에서 파생된 것이다.

 

조선에서의 세시기창작은 주로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중반에 뚜렷하게 관찰된다.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이 조수삼(趙秀三)세시기(歲時記)이다. 설날부터 섣달그믐까지 1년의 세시풍속을 모두 다루었으나 비교적 간략한 서술에 그쳤다. 최초의 본격적인 세시기는 유득공의 경도잡지(京都雜誌)(1796)이며, 이 책은 동국세시기를 비롯한 후대의 세시기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이어서 조운종(趙雲從)세시기속(歲時記俗(1818)과 김매순의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1819)가 편찬되었다. 서유구(徐有榘)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1842) 이운지(怡雲志)에 수록된 절신상락(節辰賞樂)역시 세시기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청나라의 학술적 영향을 받은 조선 세시기편찬 흐름 속에서 동국세시기가 편찬된 것이다.

 

동국세시기의 이름을 살펴보면 이 서적의 시대적 특징과 저자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먼저 동국(東國)이라는 이야기는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는 용어에서도 익숙히 들어왔다. 우리나라가 동쪽에 있는 나라라고 한다면, 중심이 되는 국가는 중원에 있는 중국이 된다. 앞서 살폈듯이 19세기에는 청나라를 명실상부한 중화 국가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고, 강한 문화적 연대의식이 생겨나고 있었다. 중국과의 긴밀한 문화적 연대를 위해서, 조선과 중국이 생활의 공동체라는 사실을 확인시키고자 한 것이다.

 

 

 

 

조선팔도를 사랑한 홍석모


동국세시기의 저자 홍석모는 한양의 벌열가문인 풍산홍씨 가문 사람이었다. 홍석모의 직계 조상은 대대로 고관대작을 역임하였는데, 할아버지 홍양호는 홍문관 대제학, 아버지 홍희준은 이조판서를 지냈다. 홍석모 자신은 음서로 관직에 올라 과천현감, 황간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홍석모 자신은 부유한 집안에서 모자랄 것 없이 성장하였으나, 할아버지, 아버지가 높은 관직을 역임한 데 비하여 비교적 낮은 관직에 머물렀던 것이 마음의 부담이 되었던 듯하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의 서문을 쓴 이교영(李敎英)의 평에 의하면 "그는 결국 운명에 막혀 쌓아놓은 높은 재주를 아무도 사지 않아 저 대궐의 풍부한 책들을 접할 수 있는 높은 벼슬은 남에게 넘겨주고 말단 관리로 머물면서 늘그막에는 자포자기하여 오직 사부(辭賦)와 시율(詩律)로써 스스로 무료함을 보내고 적적하고 우울하고 평온치 못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으니, 어찌 이리도 어그러진 일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홍석모가 중앙 관료로 활발히 활동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여러 글을 쓰는 데 노력을 기울였음을 보여준다.

 

 


사진 : 동국세시기 序文

 

 

그렇지만 홍석모가 동국세시기를 집필한 것이 단순히 개인적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홍석모가 동국세시기를 저술한 배경에는 조선팔도에 대한 깊은 관심이 자리하고 있다. 홍석모는 젊어서부터 조선 팔도를 다니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여행을 좋아하였다. 그가 다닌 곳을 살펴보면 평양 2, 강화도 4, 개성, 남한강, 황해도, 함경도, 금강산, 황간, 김천, 금강, 가야산, 관동, 관서, 남원 2회 등 국내 여행뿐 아니라 중국의 연경 사행도 2차례 다녀올 만큼 열성적인 여행가였다. 이는 단지 젊을 때의 취미가 아니라 만년에 이를 때까지도 꾸준히 이어진 습관이었다. 홍석모는 여행할 때마다 자신이 경험한 명승고적과 국토 자연을 시로 형상화하였다.

 

이뿐 아니라 여행하는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풍속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여기서 느낀 소회를 글로 남겼다. 도하세시기속시(都下歲時紀俗詩), 유연고(遊燕藁), 동국세시기등의 저술은 전통 풍속과 연희에 관심을 가지고 저술한 저작들이었다. ‘가까운 서울부터 먼 시골에 이르기까지 평범한 한 가지 일이라도 명절에 해당하는 것이라면 비록 비속하더라도 남김없이 기록하였다는 동국세시기서문의 내용처럼 이는 풍속에 관한 관심이 있었기에 편찬될 수 있었다.

 

홍석모가 동국세시기를 지은 시점은 1849(헌종 15)년이다. 기존에 있던 조선의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지봉유설(芝峯類說), 경도잡지(京都雜誌),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를 참조했고,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 세시잡기(歲時雜記)등 중국의 세시기도 널리 인용하여 저술하였다.

 

동국세시기에는 조선사람들의 일상이 들어있다. 이 책은 1월부터 12월까지 1년간의 세시풍속들을 월별로 정연하게 기록하고 있다. 단오·추석 등과 같이 날짜가 분명한 것들은 모두 항목을 별도로 설정하여 설명하였고, 날짜가 분명하지 않은 풍속들은 매월마다 월내(月內)라는 항목 안에 몰아서 기술하고 있다.

 

전반적인 행사를 살펴볼 때 봄에 씨뿌리고 여름에 가꾸며 가을에 거둬들이고 겨울에 갈무리하는 농경 세시와 여름에 장 담그고 겨울에 김장하는 음식 세시남쪽 지방의 술과 북부의 떡을 가리키는 지역 세시여름에 부채 겨울에 달력을 나눠주는 계절 세시, 보리, 콩의 양식 세시설날과 한가위, 수릿날의 명절 세시궁중과 일반, 양반과 서민의 세시와 토착 신앙과 외래종교의 습합으로 신앙 세시를 이루었다. 수록된 행사는 총 267개인데, 전국 행사 167(62.5)궁중 사대부 행사 44(16.47)지방 행사 56(20.97)이다. 내용으로 보아 행사 50(18.72)예방 49(18.35)축원 32(11.98)음식 73(27.4) 항목이 수록되어 있다.

 

특히 저자는 사대부 계층에서부터 일반 서민층의 세시풍속에 이르기까지 유래와 변천연원 등을 밝히려 했으며 내용 면에서도 물질문화, 놀이, 민간신앙, 의식주 등 전통문화 전반을 다루었다. 기존에 쓰인 세시기들의 내용을 보충하여 내용이 제일 세밀하고 분량도 많았으니, 그야말로 책의 이름대로 동국(東國), 곧 한국의 세시풍속 민속지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김월덕, 2009, 세시기를 통해서 본 세시풍속의 재구성과 재탄생」 『민속학연구24.

성원경, 1998, 동국세시기 연구-예기월령과의 비교」 『성곡논총29.

정승모, 2001, 歲時關聯 記錄들을 통해 본 조선시기 歲時風俗變化」 『역사민속학13.

조성산, 2012, 18세기 후반~19세기 중반 조선(朝鮮) 세시풍속서 서술의 특징과 의의」 『朝鮮時代史學報60.

진경환, 2020, 「『동국세시기번역과 주석의 문제 -정월 풍속을 중심으로-」 『民族文化55.

홍석모 저, 장유승 역해, 2016, 동국세시기아카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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