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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

: 욕망의 변증법과 진정한 깨달음

 

유광수(연세대학교 학부대학 부교수)

 


사진 : 九雲夢(3350-91-v.1-4)

 

 

 

 

유복자로 태어나 귀양지에서 마친 삶

 

 

 

<구운몽(九雲夢)>을 지은 김만중(金萬重:1637~1692)은 대대로 명문가인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증조할아버지는 조선시대 예학(禮學)의 대가인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이고, 아버지는 성균관 생원으로 병자호란 때 강화도가 함락되자 순절한 김익겸(金益謙)이다. 모계 쪽 집안도 쟁쟁했는데, 어머니 윤 씨는 해남부원군(海南府院君) 윤두수(尹斗壽)4대손이자 영의정을 지낸 윤방(尹昉)의 증손녀이고, 아버지는 이조참판을 지낸 윤지(尹墀)였다.

아버지 김익겸의 순절로 유복자(遺腹子)로 태어난 김만중은 형 김만기(金萬基)와 함께 어머니 윤 씨의 엄격한 훈도를 받으며 자랐다. 14세에 진사초시에 합격하고 이어 16세에 진사에 일등으로 합격한 후, 1665년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섰으나, 정치적 부침에 따라 평생 3번의 귀양살이를 했다.

어머니 윤 씨에게 남다른 효성심이 있던 김만중은 자신이 귀양을 가게 되어 모친을 곁에서 모시지 못하는 것을 큰 불효로 생각했다. 두 번째 귀양지인 평안북도 선천에서 <구운몽>을 창작했던 것도 홀로 계신 어머님의 근심을 덜어드리려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후 세 번째 귀양지인 경상남도 남해에서 어머니의 임종 소식을 듣고도 장례식에 참석을 못했고, 결국 56세의 나이로 귀양지에서 숨을 거두었다.

 

 

 

인생무상(人生無常)이 아니라 공() 사상

 

 

 

<구운몽>의 주제를 흔히 인생무상(人生無常)’, 혹은 인생은 일장춘몽(一場春夢)이다라고 생각한다. 문학작품을 읽고 주제를 생각하는 것은 독자 개인의 문제이므로 어떻게 작품을 읽어냈고 어떻게 생각했느냐에 대해서는 뭐라 규정할 수 없다. , 옳고 그르고를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창작자인 김만중이 어떤 의도로 창작했는가에 대해서는 판단할 수 있다.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김만중이 <구운몽>에 담고자 한 것이 결코 인생무상이나 일장춘몽같은 것은 아니었다.

김만중 집안사람들은 <구운몽>의 주제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그 글의 요지는 모든 부귀영화가 다 몽환(夢幻)이라는 것이니[其旨 以爲一切富貴繁華 都是夢幻], 또한 그 뜻을 넓혀 그 슬픔을 달래기 위한 것이었다[亦所以廣其意 而慰其悲也]. - 서포연보(西浦年譜)

 

 

김만중의 후손이 김만중의 일대기를 정리하면서 <구운몽>에 대해 평한 내용인데, 이를 보면 인생무상과 거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부귀영화가 다 몽환(夢幻)이다는 것은 단순히 일장춘몽 의미 이상을 담고 있다. ‘헛되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꿈과 환상[夢幻]’ 자체를 말한 것이다. , <구운몽>은 꿈과 환상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그렇게 보아야 하는 것은 다음에 이어지는 그 뜻을 넓혀 그 슬픔을 달래기 위한 것이다는 평가 때문이다. 인생의 허무함을 말함으로써 슬픔이 달래질 수는 없고, 더욱 이 달래려는 슬픔은 자신의 슬픔이 아닌 어머니의 슬픔과 고민이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슬픔을 덜어드리기 위해서 인생의 부귀영화가 몽환(夢幻)이다는 작품을 창작했다는 것은 다음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세상에 전하기를 <구운몽>은 서포가 귀양 갔을 때 대부인의 근심을 풀어드리기 위해[爲大夫人鎖愁] 하룻밤에 지었다고 한다.

- 이규경(李圭景, 1788~1856)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물론, 일장춘몽이라고 읽은 사람도 있지만, 그 역시 본질을 놓치지는 않았다.

 

 

패설에 <구운몽>이라는 것이 있는데, 서포가 지은 것이다. 대체적인 뜻은 부귀공명이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는 것이니, 어머니의 근심 걱정을 풀어드리고자 함이었다. 그 책이 부녀자들 사이에 성행했는데, 내가 어릴 적에 그 이야기를 들었다. 대체로 석가모니의 우언(寓言)이었으나 그 속에는 초사(楚辭)<이소(離騷)>가 남긴 뜻이 많이 있다고 한다.

- 이재(李縡:16801740) 삼관기(三官記)

 

 

이재(李縡)<구운몽>의 주제에 대해서 부귀공명은 일장춘몽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 자체로는 한 사람의 독자로서 의미 있는 평가이다. 그런데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말은 일장춘몽과 조금 어긋나는 느낌이 든다. ‘부귀공명이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는 것으로 어머니의 근심 걱정을 풀어드릴 수 있을지의문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홀로 늙으신 어머님에게 효자 아들이 귀양지에서 위로한답시고 하는 말이 어머니, 부귀공명은 한바탕 꿈같은 거예요라고 말했을까? 그리고 그 말을 듣고 어머니는 위로를 받았을까? 오히려 근심이 더 늘지 않았을까 

이 논평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구운몽>이 석가모니의 우언(寓言)이라는 지적이다. 이는 곧 부처의 비유, 불교의 빗댄 가르침이란 뜻이다. 이 논평을 <구운몽>의 실제 내용과 함께 생각해 보면, 불교의 공() 사상을 의미하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실제로 서사 마지막에서 육관대사가 설법을 하는데, 그것이 바로 공 사상을 담고 있는 금강경의 그 유명한 4구게이기도 하다.

공 사상은 인생의 헛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생이 헛되다고 생각하는 그 생각까지 헛됨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의 부귀영화가 헛되다는 것이 아니라, 그 부귀영화가 헛되다는 생각과 관념까지도 헛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공 사상이다.

<구운몽>은 얼핏 단순히 보면 일장춘몽의 헛됨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진정에는 공 사상에는 깊은 깨달음이 담겨져 있다. 독자들이 그렇게 읽든 읽지 않든, 혹은 읽지 못하든, 작가 김만중은 그렇게 <구운몽>을 창작했다.

효자 아들이 어머니를 진심으로 위로해 드리려고, 피눈물 나는 마음으로 귀양지에서 쓴 명작이 <구운몽>인 것이다.

 

 

 

9명의 꿈같은 이야기

 

 

<구운몽(九雲夢)>은 다른 여느 소설들의 제명과는 확연히 다르게, ‘아홉의 구름 같은 꿈이라는 함축적인 제명이다. 주인공 성진과 8선녀가 그야말로 구름 같은 꿈을 꾸는 내용이며, 구름 같고 꿈 같은 인생을 사는 내용이다.

불제자 성진과 위부인의 시녀인 8선녀를 꿈꾸게 하는 사람은 성진의 스승 육관대사(六觀大師)이다. 육관대사는 이 꿈을 통해 진실과 거짓, 삶과 죽음, 현실과 꿈의 이분법적 사고를 뛰어넘는 진정한 깨달음을 제자들에게 알려주려 했다.

육관대사 입장에서 보면, <구운몽>은 천축국의 외국인 승려가 중국에 건너와 불도(佛道)를 전할 제자 성진을 크게 깨우쳐 도를 전하고 돌아가는 이야기라 할 수 있고, 성진 입장에서 보면, <구운몽>은 성진이 꿈에 양소유가 되어 인간 욕망을 실현하여 부귀의 정점에 올랐다가 그 시점에서 무상감을 느끼고 꿈을 깨고 이후 진정한 큰 깨달음을 얻는다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하룻밤의 꿈을 통해 이루어져지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인생이 고작 하룻밤이니, 하룻밤의 깨달음으로도 인생을 초월할 수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석가모니의 말처럼 고개만 돌리면 극락이 있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불가(佛家)의 승려 성진은 육관대사의 수제자로 불심이 아주 높았으나, 8선녀를 만나 유가(儒家)의 삶을 욕망하게 되어 꿈에 양소유가 되어 부귀공명의 욕망을 한없이 성취한다. 그렇게 출장입상(出將入相)하며 아름다운 8명의 여인들과 만나는 인생의 지극한 행복을 누리나, 자신이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고 현실의 삶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자신의 부귀영화가 무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또 다른 것을 욕망하는 것이다. 그렇게 대장군이자 대승상인 양소유가 인생의 무상감을 느끼고 불가(佛家)의 삶을 욕망하게 되어 결국 꿈에서 깨게 된다. 그렇게 처음 모습인 불가의 승려 성진으로 돌아온다.

꿈으로 인생무상을 경험한 성진은 기쁨에 스승 육관대사를 만나서 인간세상의 삶이 헛되고 거짓이며 진실은 바로 지금과 같은 불가에 있다는 취지의 말을 한다. 너무나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육관대사는 아직 깨달음이 멀었다고 말한다.

당연히 성진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 성진을 향해 육관대사는 성진과 양소유 삶의 진실과 거짓이 어느 것인지를 묻고,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 고사를 들려주고, 금강경(金剛經)을 일러줌으로써 진정한 깨달음에 도달하게 한다.

그렇게 진정한 깨달음[大覺]에 이른 성진은 성진대사가 되어 육관대사의 의발(衣鉢)을 전수받아 주위 모든 중생들을 제도한다는 이야기이다.

한 마디로 <구운몽>을 요약하면, 열심히 불도를 닦던 수제자 성진이 세상의 부귀공명을 흠모하여 흔들리다가 꿈을 꾸는데, 그 꿈속에서 양소유로 환생한 후 인간 욕망을 실현하여 정점에 올랐다가 무상감을 느끼고 꿈을 깨고, 이후 진정한 큰 깨달음을 얻는다는 이야기다.

 

 

 

두 욕망을 뛰어넘는 변증법적 깨달음

 

 

<구운몽>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한 이유는 욕망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반대로 욕망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구운몽>은 그 욕망 자체의 공()을 말하고 있다.

부귀공명(富貴功名)을 바라는 성진의 욕망이나, 불생불멸(不生不滅)을 추구하는 양소유의 욕망은 모두 욕망이 발현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육관대사는 인간은 누구나 희로애락에 얽매인 욕망의 존재임을 알아야 하고, 그것을 인지했다면 그런 얽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성진과 8선녀를 꿈꾸게 만들었다. 유가(儒家)의 욕망이나 불가(佛家)의 욕망 같은 그런 욕망 자체에 얽매이지 말라는 것이다. 두 욕망을 뛰어넘어 진정한 깨달음을 얻으라는 촉구인 것이다.

이런 육관대사의 큰 그림이 <구운몽>으로, 작품을 읽는 독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큰 그림 속에 스며들게 된다. 이런 서술 방식은 작가 김만중이 독자에게 핵심을 교술적으로 설명하여 강요하려한 것이 아니라, 독자들 스스로 느끼고 인정하고 따르게 하려했기 때문이다. 소설이 보여주는 구체적인 과정에 따라 독자들은 성진과 양소유와 욕망에 공감하고 몰입하게 된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소설이란 가상 체험을 통해서는 출장입상도 불생불멸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독자들은 성진과 양소유를 통해 그것을 대리 체험하고 그 경험을 공유한다. 그렇게 욕망의 양 극단을 모두 경험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꿈에서 깬 성진처럼 진정한 깨달음을 바라게 된다. 결국 <구운몽>은 독자들을 그렇게 안내하고 궁극적 깨달음에 도달하도록 이끄는 깨달음의 안내서인 셈이다. 이재(李縡)가 말했던 석가모니의 우언(寓言)’이란 논평이 바로 이것이다.

이렇게 <구운몽>은 성진의 이야기이며 동시에 독자의 이야기이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자신들이 비록 욕망의 과정에 있지만, 욕망을 성취한 정점에 섰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 순간 작가가 제시한 무상감인정하고 느끼게된다. 그리고 작가의 의도대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양소유가 고민했던 것처럼 독자도 같이 골몰한다. 갑작스럽게 꿈에서 깨어나는 충격적 장면에서 성진이 놀라 한동안 어리둥절했던 것처럼 독자들도 충격을 받고, 성진이 진정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육관에게 간청할 때 독자들도 같이 머리를 조아린다. 그리고 윤회가 꿈이었던 것처럼 인간 삶을 꿈처럼[如夢] 바라보아야 한다는 육관의 언술’,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 ‘금강경설법을 통해, 성진이 진정한 깨달음을 얻었던 것처럼 독자들 역시 깨달을 수 있다. 이것이 대리 체험을 장르적으로 전제하는 소설(小說)의 효과이고 가치이다.

<구운몽>은 결코 설강록(設講錄)이나 교훈서(敎訓書)가 아니다. <구운몽>은 허구성과 쾌락성의 효용을 인식한 작가의 소설(小說)이다. 작가는 인간 욕망의 허망함과 인식의 빗겨나감을 소설 텍스트를 통해 세련되게 형상화해냈다. 이것이 <구운몽>의 이유이며 목적이고 결과이다.

 

 

 

참고문헌

 

김병국 외, 1992 서포연보, 서울대학교 출판부.

유광수, 2006 <구운몽>: ‘자기 망각자기 기억의 서사 -성진이 양소유 되기, 고전문학연구29, 한국고전문학회.

유광수, 2007 <구운몽>: 두 욕망의 순환과 진정한 깨달음의 서사 -양소유가 성진 되기, 열상고전연구26, 열상고전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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