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사료로 본 한국사

이전

< 등록(謄錄)이라는 기록체계 >


 


 

사진 1 : 備邊司謄錄(15044)

 

 

여기 내용이 동일한 원본(原本) 문서와 사본(寫本) 문서가 있다.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우리는 이 두 문서 중 원본 문서를 더욱 신뢰할 것이다. 물론 원본 문서의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거나 또는 업무 활용의 편의를 위해 그 신뢰 여부와는 별개로 사본기록을 사용하는 경우는 많다. 그러나 원본이 아닌 사본은 상대적으로 위·변조에 취약하기에, 원본에 비해 그 신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사본이 본질적으로 원본을 대체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사본이 원본과 동일한 위상을 지니거나 원본을 완벽히 대체하는 사례가 거의 드문 것 또한 이러한 이유에 근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본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의 신뢰성을 지닌 사본기록이 우리 역사에 존재한 적이 있다. 바로 조선의 등록(謄錄)이 그것이다.

 

 

 

 

등록(謄錄)의 의미

 

등록이라는 한자를 글자 그대로 풀이해보자. 베낄 등()자에 기록할 록()자이다. 즉 등록은 베껴서 적는 행위또는 베껴서 적어낸 기록이 된다. 그러나 조선의 등록은 단순히 원문을 그대로 베껴 적은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조선에서 등록은 일정한 기준에 따라 원문서(原文書)의 전문(全文) 또는 일부를 선별하여 별도의 기록물로 편찬해 낸 것을 지칭하였다.

즉 등록은 본질적으로 사본기록이면서 일정한 기준에 따라 원문을 정리하여 생산한 2차 기록이기도 하다. 그러나 조선에서 등록은 단순한 참고자료 수준이 아닌 국가 업무행정의 근간이 되는 기록물로 인정되고 활용되었다. 등록은 원문서에 앞서 각 관사(官司)에서 수행하는 업무의 공식적인 전고(典故)이자 증빙(證憑)으로 활용되었으며, 더 나아가 조선 역사편찬체계의 최고봉인 실록(實錄)의 참고자료로까지 활용되었다. 심지어 등록이 소실되어 참고가 불가능하게 되자, 이를 재편찬하기 위해 지방에서 보관하고 있었던 기존 원본 문서를 올려보내라는 명령이 내려질 정도였다. 즉 원본문서 그 자체를 참고하기 위해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등록을 만들기 위해 원본문서를 동원하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이처럼 조선에서 등록은 단순히 업무참고를 위해 생산한 사본이 아닌, 원본을 공식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위상을 지닌 기록이었다.

 

 

 

 

등록(謄錄)의 역할

 

등록은 조선에서 수행되는 기록관리체계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조선에서 수행되는 기록관리체계는 다음과 같은데, 우선 업무수행을 위한 원문서가 생산되고 이것이 유통·시행된다. 그리고 행정적 필요를 다한 문서는 향후의 필요성 등을 고려하여 보존 여부가 결정되며, 그 보존방식은 크게 원문서 자체를 보존하는 방식과 등록을 통한 보존 방식으로 구분된다. 일단 보존이 확정된 문서는 바로 등록되지 않더라도, 향후의 필요에 따라 재선별되어 등록되기도 하였다. 즉 등록은 문서의 보존 가치를 선별하여 영구적으로 또는 장기적으로 보존·활용하기 위한 장치였다.

이처럼 등록 자체가 영구적 또는 장기적으로 기록을 보존·활용하기 위해 편찬된 것이었기에, 다양한 행정 영역에서 공무 수행을 위해 활용할만한 전례(前例) 및 전고(典故)로서 인정될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실록과 같은 국가 주요 사서(史書)의 전거자료로써의 역할도 수행하였다. 실제 실록이나 승정원일기의 기록을 살펴보면, 조정에서 특정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이와 관련된 등록을 수시로 상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활용 영역은 국왕의 가례(嘉禮)나 국가 외교·안보에 관한 국가 중대사에서부터 일반 궁인(宮人)의 상례(喪禮)나 입양(入養) 관련 증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심지어 나중에는 등록을 참고하는 정도를 넘어 아예 이에 의존해 업무를 처리하는 행태까지 벌어지기도 하였다. 전례(前例)를 상고한다는 핑계로 관료가 기존 등록물의 내용을 그대로 베껴 국왕에게 보고해 추고(推考)를 받기도 하고, 국왕이 등록에 기재된 내용만을 쫓아 업무를 처리하는 조정의 풍조에 대해 탄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는 달리 생각하면 등록이 조정 대소사(大小事)에서 상당히 자주 그리고 널리 활용되었음을 반증(反證)하는 것이기도 하다.

 

 

 

 

등록(謄錄)의 편찬과 활용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등록은 보통 그 행정적 가치가 종료된 문서를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등록의 편찬 목적 자체가 현재의 업무 수행을 위해서가 아닌 향후의 증빙(證憑)이나 전고(典故)로 사용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생산된 모든 문서가 등록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었으며, 향후의 증빙 및 참고로 삼기 위해 주로 장기적인 보존이나 관리가 필요한 문서들을 대상으로 등록이 편찬되었다.

조선에서 등록은 규격화된 업무절차에 따라 상시적으로 생산·편찬된 것으로 보이는데, 대부분 관서에서 시행하는 등록의 편찬과정은 그 유형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절차를 따르고 있다. 원문서(原文書)의 수집 등록대상 문서의 선별(選別) 선별된 문서의 내용을 별도의 책자로 옮겨 적기 검토 및 간행의 순서가 그것이다.

등록 편찬 과정에서는 각 직급별로 담당하는 업무가 정해져 있었는데, 보통 당상관(堂上官) 이상 고위관료는 범례(凡例)와 같은 일종의 편찬 기준을 정하고 등록물의 편찬 과정을 관리·감독하며, 실무관료인 낭청(郎廳)급은 문서를 총괄 관리하는 자리로서 소관하는 문서 내용의 경중(輕重)을 평가해 등록해야 할 부분을 세부적으로 분류·지정하여 이를 직접 등서(謄書)하거나 등록할 것을 하급관리에게 지시한 것으로 보인다. 각 관청에 속한 서리(書吏) 등의 이서(吏胥)들은 낭청이 지정·지시한 내용을 직접 등록물에 옮겨 적거나, 교정사항을 반영하여 정서(正書)하는 등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등록을 활용하기 위한 나름의 절차도 있었다. 먼저 등록의 참고를 요하는 사안이 발생하면 주무 관사(官司)를 확인하고, 이 관사의 낭청이 사안과 관계된 등록을 찾는다. 그리고 해당 기록을 찾게 되면 그 내용을 확인하여 초출(抄出)하게 된다. 다만 장기적으로 열람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해당 내용을 뽑아 정리한 등록초(謄錄抄)를 만들어 두어 활용하기도 했다.

등록은 이미 조선 건국 초기부터 생산·활용되었음이 1416(태종 16) 태종실록(太宗實錄)의 기사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예조(禮曹)의 낭관(郎官) 1명으로 하여금 검상조례사(檢詳條例司) 검상관(檢詳官)을 겸하도록 하였다

예조에서 아뢰길, “검상조례사는 문서를 등록(謄錄)하는데 그 소임이 가볍지 않습니다.” 하였다.

 

태종실록32, 태종 1678일 정유(丁酉)

 

 

다만 초창기의 등록은 대체로 법전(法典)을 보완하기 위한 일종의 수교집(受敎輯)이나 사례집 형태로 운용되는 것이 대부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후기로 갈수록 다양한 성격의 등록이 편찬·활용되었는데, 초기와는 달리 일반적인 각사(各司)의 공문서 또한 등록을 통해 관리되고 있음이 확인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등록은 행정업무의 편의를 위한 수단을 넘어 업무의 증빙(證憑)과 전고(典故)로서의 역할이 보다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등록(謄錄)의 유형과 내용

 

 

등록은 그 목적과 서술 방식에 따라 관청일지·준법전·공문서철·업무지침서·자료집·기타 등의 성격으로 분류될 수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서 소장 중인 등록류 기록을 통해서도 이를 쉽게 확인해 볼 수 있다.

먼저 관청일지 성격의 등록은 기관의 인력·업무·기타 운영에 관한 현황 등을 일자별로 정리한 형식을 취한 등록이다. 대표적으로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의정부등록(議政府謄錄)등이 해당된다. 이들 유형의 등록은 관청에서 생산·수집한 문서의 내용을 비롯하여 해당 관청의 주요 업무동향 및 인사사항 등을 시간 순서에 맞게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일부 관청일지 성격의 등록물은 매월 첫 기사에 좌목(座目)이라는 인력 명단을 두기도 한다.

준법전적 성격을 지닌 등록은 법전(法典)을 보조하는 형태로서 전교(傳敎수교(受敎) 또는 법전의 해석 등을 수록한 것이다. 당시의 법 개념상 최상위 법인 대전(大典)의 개정·보완이 상당 부분 제한되었기에, 시대의 흐름에 따라 나타나는 법과 현실 간의 괴리를 어느 정도 보완하기 위한 목적에서 편찬된 것이 대부분이다. 수교등록(受敎謄錄)이나 수교집록(受敎輯錄)등의 기록물이 해당 유형의 등록이라 하겠다.


사진 2 : 규장각 소장 수교등록(受敎謄錄)(15142)

 

 

공문서철 성격의 등록은 가장 보편적 형태의 등록물이다. 이들은 일정한 기간을 두고 상시적인 업무에 관련하여 생산·접수된 문서를 등서(謄書)한 형태의 기록으로서 계후등록(繼後謄錄)이나 추안급국안(推案及鞫案)등을 그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겠다. 이들은 대체로 업무 행위나 자격을 증빙하기 위해 활용되기도 하고, 기존에 시행한 사안의 전말을 참고하기 위해 활용되기도 하였다.

 

 


사진 3 : 규장각 소장 계후등록(繼後謄錄)(12869)

 

 

업무지침서 성격의 등록은 일종의 지침·설명서로서 현대의 매뉴얼이나 사례집 개념과 유사한 등록물이다. 주로 문서 서식과 적용례, 주요 업무 절차 및 사례, 관련 공문서 등이 등록 대상이나, 그 편찬 체제가 규정화된 것은 아니기에 반드시 위의 요소를 모두 포함하고 있지는 않다. 규장각 소장 칙사시각항의주등록(勅使時各項儀註謄錄)이 해당 성격의 등록이라 할 수 있다.

 


사진 4 : 규장각 소장 칙사시각항의주등록(勅使時各項儀註謄錄)(129061)

 

 

마지막으로 자료집 성격의 등록은 특정 의례(儀禮)나 사건과 관련된 기록을 보존하고 보고하기 위해 해당 자료를 등록한 기록이다. 이들 자료집 성격의 등록은 공통적으로 보고서 또는 사례집으로 활용하기 위한 목적에서 작성되기에, 해당 등록물이 다루는 주제가 일회적이거나 단일한 사안 및 사건 또는 행사 등에만 한정된다는 특징이 있다. 예컨대 특정 민란 토벌에 관한 등록물이나 개별 의례 및 행사에 관한 등록물 등이 그러하다. 영조무신별등록(英祖戊申別謄)이나 문희묘영건청등록(文禧廟營建廳謄錄)이 그 예시라 하겠다.

 


사진 5 : 규장각 소장 문희묘영건청등록(文禧廟營建廳謄錄)(12930)

 

 

다만 이렇게 현재 남아있는 대다수 등록은 조선 후기에 작성된 것이 대부분이기에, 조선 전기의 등록 실물은 극히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전란(戰亂)이나 화재 등의 재변(災變) 그리고 보관상의 부주의 등으로 인한 기록의 손상 등으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전하는 다양한 등록물을 통해 조선의 기록관리가 등록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나름의 체계성을 갖추고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들 등록은 실록과 승정원일기에서 미처 담아내지 못한 당시의 국정 운영과 상황을 보다 내밀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기록물로서 무궁한 연구가치를 지닌 사료라고도 할 수 있겠다.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