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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로 본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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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학십도

-그림으로 표현된 성리학의 가르침

 

문형준(한양대학교 사학과 박사과정)

 


사진 : 聖學十圖(857)

 

 

 

 

10장의 그림에 성리학의 철학을 담아내다

 

 

16세기 중엽은 한국 유학사에서 중요한 시기로 간주되는데, 한반도에 도입된 성리학이 독자성을 보이는 단계를 넘어서 난숙한 시기로 평가된다. 한국 유학을 대표하는 이이와 이황 모두 이 시기에 활약했고, 자신의 성리학 사상을 정리한 책을 써서 국왕이던 선조에게 올렸다. 그중 먼저 작성된 성학십도는 이황이 1568년 선조에게 바친 소책자이다. 제목에서 말하는 성학(聖學)은 성인이 되기 위한 학문이라는 의미이다.

 

 

성학에는 큰 단서가 있고, 심법에는 지극한 요체가 있습니다. 그것을 그림으로 보이고 해설로 가리켜 사람에게 도에 들어가는 문(入道之門)과 덕을 쌓는 기초(積德之基)를 보여주는 것은 이 또한 후현들의 부득이한 일입니다.

聖學有大端, 心法有至要. 揭之以爲圖, 指之以爲說, 以示人入道之門, 積德之基, 斯亦後賢之所不得已而作也.

(성학십도』 「『성학십도를 올리는 차자(進聖學十圖箚))

 

이 그림과 도설은 겨우 열 폭의 종이에 취하여 적어 놓은 것일 뿐이지만, 생각하고 익히며 평소 평안히 거처하는 곳에서 공부하는 과제로 삼으신다면, 도를 이루어 성인이 되는 요령과 근본을 바로잡아 정치를 경륜하는 근원이 모두 여기에 갖추어져 있습니다. 오직 왕께서 거울같은 지혜로 정신을 머물게 하고 생각을 기울여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하여 보시는 데 달려있습니다.

是其爲圖爲說, 僅取敍陳於十幅紙上, 思之習之, 只做工程於平日燕處, 而凝道作聖之要, 端本出治之源, 悉具於是. 惟在天鑑留神加意, 反復終始.

(성학십도』 「『성학십도를 올리는 차자)

 

 

성학십도는 성리학의 가르침을 그림으로 표현한 도(), 여기에 선현의 설명인 설()과 이황의 보충설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당시까지의 성리학적 철학과 이황 자신의 학문을 총괄적이면서도 중점적으로 요령있게 정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10개의 그림과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진 : 성학십도의 주요 10. 이황은 성리학의 핵심적인 가르침을 추려서 10장의 그림으로 표현했다. 이후 조선의 왕들은 성학십도를 병풍으로 만들어 평상시에도 살펴보면서 좌우명처럼 여겼다.

 

 

(1) 태극도(太極圖)

북송의 철학자 주돈이가 그린 태극도, 이에 대한 주희의 설명, 이황의 보충설명으로 구성된 장이다. 자연의 조화와 존재의 생성, 변화 과정을 설명하고, 성인은 천지자연과 합일된 삶을 실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2) 서명도(西銘圖)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의 내용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에서는 인간과 만물이 천지(天地)를 부모로 해서 태어났으며, 그 가운데에서 사람과 물질, 임금과 신하, 어른과 아이, 귀천이 나누어짐을 밝히고 있다. 후반부에서는 사람이 천지를 섬기되,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것처럼 섬겨야 한다고 한다. 궁극적으로는 덕이 천지와 일치하여 삶을 즐거워하는 성인이야말로 천지에 대한 참된 효자라고 말한다.

서명도태극도와 더불어 성리학의 존재론에서 주장하는, 자연과 인간이 별개의 존재가 아니며, 그 원리가 동일하다는 사상을 잘 보여준다.

 

(3) 소학도(小學圖)

소학은 주희가 어린아이들에게 도덕 교육을 시키기 위해 편찬한 옛 가르침과 명언을 수집해서 편찬한 책이다. 소학도는 이 소학의 목차를 이황이 그림으로 그린 것으로, 어릴 적부터 도덕적 행동을 익히면서 심성을 함양하는데 교육 목적이 있음을 보여준다. 모든 인간은 선한 본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본성을 온전히 실천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교육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마디로 인간이 본성이 선하다(性善)는 것을 재천명하며, 그런 인간의 본성이 사람이 지켜야 할 도(人道)의 영원한 원천이라는 것이다.

 

(4) 대학도(大學圖)

성리학의 논리는 먼저 자신을 수양한 후, 이를 외연으로 확장(가정-국가-천하)하면서 다른 사람을 다스린다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을 기본으로 한다. 이를 잘 표현한 유학 경전인 대학의 체계를 보여주는 그림으로, 개인의 인격수양이 국가 사회에 있어서 모든 문제 해결의 핵심이라는 것을 역설한다.

 

(5) 백록동규도(白鹿洞規圖)

남송의 주희가 백록동 서원의 학자들에게 게시하기 위해 지은 규문(規文)의 목차를 이황이 도표로 만든 것이다. 오륜을 위에 배치하고, 아래에는 중용을 기반으로 한 학문의 방법을 배치하고 있다.

 

(6)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

정복심이 그린 상도(上圖)와 이황이 그린 중도(中圖) 및 하도(下圖)로 구성되어 있다. 상도에서 마음이 본성과 성품을 통섭한다(心統性情)”는 명제를 역설하고, 본성을 다시 사단(四端. 본질적이고 순수한 본성)과 칠정(七情. 기질적이고 불완전한 본성)으로 나누어서 중도와 하도에서 설명한다. 이황이 생각한 사단칠정론의 핵심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7) 인설도(仁說圖)

세상의 이치()를 통해 본 인간의 마음은 인()이며, 인간의 가치의식과 가치의 발현 일체는 모두 인에 의해 가능하다는 것을 설명한다. 성리학적 관점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해명하고자 한 부분이다.

 

(8) 심학도(心學圖)

성현들이 논한 심학(心學)에 관한 명언들을 뽑아 만든 것으로, 상하로 나누어진 도와 도설로 구성되어 있다. 윗부분에서 인간의 몸을 주재하는 마음의 기능과 그 명칭을 보여주며, 아래에서는 마음을 주재하는 경()을 중심으로 해서 마음을 수양하는 방법들을 나열하고 설명한다.

 

(9) 경재잠도(敬齋箴圖)

()을 공부하는 것에 대해 다룬 첫 번째 그림이다. 행동하거나 고요할 때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행동을 조심하여 바르게 하고, 일을 처리할 때에는 그 일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한다. 이것이 경을 유지함”(持敬)이며, 이 태도를 잃으면 사욕이 멋대로 일어나 인륜이 무너진다고 한다.

 

(10) 숙흥야매잠도(夙興夜寐箴圖)

송의 학자 진백(陳柏)이 스스로를 경계하기 위해 지은 글을 이황이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시간에 따라서 해야 하는 공부를 다루고 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난 후 밤 늦게 잠잘 때까지 바른 자세로 고요하게 앉고(靜坐), 책을 읽고(讀書), 일에 응하면서(應事) 항상 경을 유지해야 함을 강조한다.

 

 

 

 

성리학을 담은 철학적, 교육적 구상

 

 

이황은 자신이 그린 10도를 두 가지 방법으로 나누어서 설명했다.

 

(1) 1~5/6~10

 

 

이상 다섯 그림은 천도에 근본한 것으로서, 그 공()은 인륜을 밝히고 덕업에 힘쓰는 데 있습니다.

以上五圖, 本於天道, 而功在明人倫懋德業.

(성학십도』 「백록동규도(白鹿洞規圖))

 

이상 다섯 그림은 심성(心性)에 근원하고 있는 것으로서, 요점은 일상의 실용(日用)에 힘쓰고 경외(敬畏)의 태도를 높이는 데 있습니다.

以上五圖, 原於心性, 而要在勉日用崇敬畏.

(성학십도』 「숙흥야매잠도(夙興夜寐箴圖))

 

 

1~2도가 천도와 인간 본성의 관계, 3~4도는 본성과 학문의 관계, 5도는 학문의 내용을 밝힌 것이다. 그리고 학문의 내용은 삼강오륜으로 대표되는 인륜의 실현이기에, 천도에 근본을 두고 인륜을 밝히는데 공이 있다는 것이다. 이어서 6~8도에서 마음이 본성 및 성품과 가지는 관계 및 여러 가지 개념을 설명하고, 9~10장에서 경()을 바탕으로 일상생활에서 마음을 바로잡는 것을 실천할 것을 강조하는 구조이다. 이런 구도는 존재론적, 심성론적 근거를 바탕으로 유학의 가르침을 세워놓은 구상이기 때문에 철학적, 이론적 구상으로 볼 수 있다.

 

(2) 3,4/1,2/5~10

 

대개 위의 두 그림(1~2)은 실마리를 구하여 확충하고, 하늘의 도를 본받아 도를 다하는 극치점으로 소학대학의 표준과 본원이 되고, 아래 여섯 그림(5~10)은 선을 밝히고(明善), 자신을 참되게 하며(誠身), 덕을 높이고(崇德), 학업을 넓히며(廣業) 힘을 기울여야 할 점으로 소학과 대학의 바탕(田地)과 결과(事功)가 되는 것입니다.

蓋上二圖, 是求端擴充體天盡道極致之處, 爲小學大學之標準本原, 下六圖, 是明善誠身崇德廣業用力之處, 爲小學大學之田地事功.

(성학십도』 「대학도(大學圖))

 

먼저 소학대학을 기반으로 한 3~4도가 학문의 궁극적 지향점이자 표준이 되고, 이를 1~2도가 존재론적으로 뒷받침하면서 5~10도가 학문의 구체적인 방법이자 결과를 제시하는 구도가 된다. 가르침을 실천과 연관된 구조여서 교육적, 실천학문적 구상이라고 할 수 있는 구도이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유학의 지향점인 수기치인(修己治人)에서 이황은 수기(修己)에 해당되는 내용까지만 다루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성학십도는 제왕의 자기 수양을 극도로 강조하는 성리학 교과서가 되었다.

 

 

 

 

자기 자신의 마음을 이길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이황이 이렇게까지 군주의 수신을 강조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황에게 있어서 마음은 개인이 생각하고 행동하는데 결정을 내리는 주체이다. 결국 국왕의 마음은 단순히 개인의 마음이 아니라, 국정을 검토하고 결정하는 책임을 맡은 주체가 된다. 그런 만큼 더욱 태만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물며 임금의 마음은 온갖 일이 말미암는 바이며, 모든 책임이 모이는 곳이며, 뭇 욕구들이 서로 공격하고 뭇 사특함들이 번갈아 뚫고자 하는 곳입니다. 한번 태만하여 소홀해지고 방종이 계속되면 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넘치는 것같이 될 것이니,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而況人主一心, 萬幾所由, 百責所萃, 衆欲互攻, 群邪迭鑽. 一有怠忽, 而放縱繼之, 則如山之崩, 如海之蕩, 誰得而禦之!

(성학십도』 「『성학십도를 올리는 차자)

 

 

비단 군주가 아니더라도, 사람이 결정을 내리는데 있어서 마음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문제는 인간의 마음이 항상 올바르지만은 않다는 것인데, 이럴 때 마음의 주체성을 잡아주는 것이 경()이다.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마음과 행동, 마음의 원리와 현상을 올바르게 이끌어주는 존재이자 실천적 방법이 경이다. 그렇기에 성학십도는 모두 경()을 중심으로 삼았다고 할 정도로 이황은 경()을 강조했다.

성리학적 존재론이 가진 철학의 위상이 약해지고, 유교적 윤리의 파급력도 옅어진 현대인들에게는 이황의 주장이 와닿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에는 이성과 감성이 모두 들어있고, 인간은 이성만으로 설득되는 존재가 아니다. 경우와 상황에 따라서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고,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조절하면서도 이용할 줄 알아야 하는데, 이때 사람에게 가장 강력한 적이 자기 자신(의 마음)이 된다.

경을 강조하는 이황의 주장은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우리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지배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역사를 보면, 인간이 선택을 하는데 있어서 감성이 작용하는 것을 간파하고, 자신의 감성에 종속되지 않고 감성을 지배하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 승자가 되고, 리더가 되었다.

 

 

 

 

참고문헌

 

이광호, 1988, 李退溪聖學十圖硏究, 태동고전연구4

황금중, 2003, 退溪栗谷工夫論 比較 硏究 : 聖學十圖聖學輯要를 중심으로, 한국교육사학25

이황 지음, 윤사순 옮김, 2007, 퇴계선집, 현암사

윤사순, 2012, 한국유학사()-한국유학의 특수성 탐구, 지식산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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