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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촌 권근(1352~1409)의 시문집

- 『양촌집(陽村集)』 -

 

 

 


사진 : 양촌집(7473-v.1-7)

 

 

 

원문과 번역

 

처음 옛날에 세상을 연[開闢] 동이왕 <始古開闢東夷主>

옛날에 신인이 박달나무[檀木] 아래로 내려오자, 나라 사람들이 그를 임금으로 모셨는데,

그 때문에 단군이라고 불렀다. 때는 당요(唐堯)원년 무진이었다.

昔神人降檀木下 國人立以爲主 因號檀君 時唐堯元年戊辰也

 

 

전설을 듣자니 아득한 옛날 / 聞說鴻荒日

단군님이 나무 곁에 내리셨다네 / 檀君降樹邊

임금 되어 동국 땅 다스렸는데 / 位臨東國土

그 때인즉 요 임금의 시대였다오/ 時在帝堯天

전해진 세대 얼마인지 모르지만 / 傳世不知幾

지난 해가 천 년이 넘었답니다 / 歷年曾過千

뒷날 기자의 대가 오고나서도 / 後來箕子代

똑같이 조선이라 이름했다네 / 同是號朝鮮

 

 

양촌집1, 應製詩

 

내가 [정도전의 글을] 받아 열심히 읽다가 감탄하여 아래와 같이 말했다.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이 바른 길[正路]를 막기에, 맹자가 말로서 물리쳤는데

불법이 중국에 들어와 그 해악이 폐해가 양주·묵적보다도 심했다

그래서 선유(先儒)들이 이따금 그 그릇됨을 비판했지만, 책을 지을 만한 사람이 없었다

당나라의 한자(韓子, 한유)와 같은 재주로도장적(張籍황보식(皇甫湜)의 무리들이 따라다니며 청했지만

그래도 역시 감히 책을 쓰지 못했는데, 하물며 그 아랫사람들은 어떻겠는가.

지금 선생은 이미 힘써 변론하여 당시를 교화하였고 또 글을 써서 후세에 전하였으니, 도를 근심한 생각이 이미 깊고도 원대하다

사람들이 불교에 현혹됨이 사생설(死生說)보다 심한 것이 없는데

선생은 스스로 불교를 물리치다가 죽어도 편하겠다 하였으니

이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미혹을 제거하게 한 것으로서, 사람에게 보인 뜻이 또한 깊고도 간절하다.

맹자가 삼성(三聖)의 계통을 잇겠다고 하였는데

선생은 또한 맹자를 계승한 분이니, 장자(張子 장재)의 이른바 독립하여 두려움이 없고

정일(精一)하기를 스스로 믿어서 남보다 월등히 뛰어난 재주가 있는 자라고 한 것이 참으로 선생을 두고 한 말이다.”

내가 실로 공경하고 감복하여 배우고자 한다. 그 때문에 일찍이 말한 것을 글로 써서 질정(質正)한다.

予受而讀之 亹亹不倦 乃歎曰

楊墨塞路 孟子辭而闢之 佛法入中國 害甚於楊墨 先儒往往雖闢其非 然未有能成書者也 以唐韓子之才 籍·湜輩從而請之 猶不敢著書 況其下乎.

今先生旣力辨以化當時 又成書以垂後世 憂道之念 旣深遠矣 人之惑佛 莫甚於死生之說 先生自以闢佛爲死而安 是欲使人祛其惑也 示人之意亦深切矣.

孟子謂承三聖之統 先生亦繼孟子者也 張子所謂獨立不懼 精一自信 有大過人之才者 眞先生之謂歟.

予實敬服而欲學焉 故書嘗所言者以質正云

 

 

 

 

 

 

양촌집과 저자 권근

 

 

양촌집은 여말선초를 대표하는 유학자·문장가·관료였던 양촌 권근(1352~1409)의 문집이다. 권근은 고려 후기를 대표하는 명족 중 하나인 안동 권씨의 일원으로 태어났다. 증조부 권보는 충렬왕대 관학 진흥을 주도한 대표적인 유학자였고, 그 제자이자 사위인 이제현, 그 제자인 이곡·이색 부자 모두가 유학자로서 당대 최고의 명성을 가지고 있었다. 권근의 출생 당시부터 권근의 친가인 안동 권씨는 주로 경기·충청 지방의 토지를 중심으로 한 경제적 기반을 보유한 상류층이었다. 외가인 청주 한씨 또한 고려 말 명가로서, 외조부 한종유는 좌정승까지 역임한 고관이었고, 첫 번째 부인의 출신가문인 고성 이씨, 두 번째 부인의 출신가문인 경주 이씨 모두 당대의 상류층 유학자 가문이었다.

권근은 공민왕 18(1369) 과거에 급제해 관직에 진출했으며, 창왕 1(1389) 유배될 때 까지 20여년간 관료로 활동하면서, 주로 교육·문장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였다. 권근은 창왕 1(1389) 명나라에 사행을 다녀온 뒤, 사전개혁 문제로 인한 정치적 대립 끝에 탄핵되어 유배를 갔고, 공양왕 2(1390) 유배에서 풀려난 뒤 고향인 충주 양촌으로 내려가 조선 개국 후까지 은거하였다. 조선 태조 2(1393), 계룡산에 행차한 태조의 부름을 받고 다시 출사한 권근은 태조 5(1396) 명에 올린 표전문을 둘러싼 외교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입지와 명성을 크게 떨치게 된다. 권근의 위상은 태종이 즉위하자 더욱 부각되었는데, 태종 즉위 후 권근은 정도전을 간신으로 규정하고 정몽주를 비롯한 고려 구신들의 절의를 다시 추증하고, 관학의 학제 및 과거제도를 정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권근은 태종 9(1409) 2월에 사망하여, 단종 2(1454) 좌의정 길창부원군에 추증되었다.

 

 

 

 

 

 

양촌집에는 어떤 글들이 들어 있을까 

 

 


사진 : 양촌집(7473-v.1-7) 1009a,b.

 

 

권근의 문집 양촌집은 권근의 아들인 권도에 의해 편찬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 정확한 간행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세종대에 처음으로 편찬 간행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 첫번째 간행된 판본의 전체는 전해지지 않고 규장각, 고려대 일부분이 소장되어 있다. 양촌집은 이후로 1674년 중간본, 1718년 삼간본이 만들어진다. 중간본은 권근의 10대손 권주가 자신의 외손 남몽뢰의 도움을 받아 진주에서 간행하였다. 중간본은 허목의 서문을 싣고 世系는 제외하였으며 연보도 체제가 달라졌지만, 본집의 내용은 같다. 삼간본은 12대손 권업이 거창에서 간행되었고, 현재 규장각, 고려대 중앙도서관 등에 소장중이다.

양촌집4010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는 1674년에 쓴 허목의 중간서(重刊序목록·연보 및 명태조 주원장이 내려준 어제시 3수가 실려 있다. 1은 권근이 명태조의 주원장의 앞에서 지은 응제시(應製詩), 9~10은 시(), 11~33은 문(), 34는 권근이 고대부터의 역사를 기록한 동국사략에 대한 견해를 담은 동국사략론(東國史略論), 35는 고려후기 명현 24인의 사적으로 뽑은 동현사략(東賢事略), 36~40은 비석에 새겨졌던 비명(碑銘), 무덤 속에 함께 넣어둔 글귀인 묘지(墓誌), 권근의 스승 목은 이색의 생애를 요약한 목은선생이문정공행장牧隱先生李文靖公行狀이 수록되어있다.

 

 

 

 

 

양촌집내에서 주목되는 한시 자료들

 

 


사진 : 양촌집(7473-v.1-7) 1015a,b

 

 

양촌집은 방대한 분량의 문집이고, 그 만큼 자료적 가치가 중요한 문헌들이 다수 수록되어, 국문학·역사학·철학을 막론한 여러 분야들에서 주목받아왔다.

우선 주목되는 문헌은 권1에 수록된 응제시 31수다. 권근은 1396년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황제의 명으로 시를 짓는데, 그 때 지었던 시 24수와, 귀국 후 조선건국을 찬미하여 지어 올린 시 7수를 합한 것이다. 응제시는 이후 1461년 권근의 손자 권람이 주석을 붙여 간행하기도 했다.

응제시에는 조선이라는 국호를 내려준 명 황제에 대한 사대의식과, 동시에 東國으로서의 조선의 역사·지리·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함께 표현한 것이 주목된다. 특히 권근은 조선의 오랜 역사를, 중국 당요(唐堯) 원년에 단군이 나라를 세운 것과, 그 후 중국 은나라의 성인인 기자(箕子)가 조선에 중국 문명을 전파한 것 모두를 중시하였다. 이후 권람은 이에 대해 주석을 달면서, 단군이 도읍한 것을 전조선(前朝鮮), 기자가 도읍한 것을 후조선(後朝鮮)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는 1285년 일연이 편찬한 삼국유사에서 단군의 왕조를 기자의 조선(朝鮮)’에 대비해 고조선(古朝鮮)/왕검조선(王儉朝鮮)’이라고 불렀고, 1287년 이승휴가 편찬한 제왕운기에서 단군의 건국을 설명한 이후, 기자의 왕조를 후조선으로 칭했던 전통으로부터 이어져온 개념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권근은 자국사의 근간을 중국과 차별화된 지리·문화적 기원을 상징하는 단군과, 중국으로부터 문물을 수용한 보편문화를 상징하는 기자를 중심으로 이해하고 있음이 응제시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 후 권2~10에 수록된 시는 연도가 섞여있는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저술시기 순서대로 배치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각 시기별로 권근이 겪었던 구체적인 체험들과 그 개별 국면들에 대한 권근 자신의 감상·생각들을 파악할 수 있다. 일례로 권5점마행록(點馬行錄)으로 시작되는 시문들은, 1387412일에 서북면에서 점마(點馬), 즉 말의 실태를 조사하는 임무를 수행하라는 명을 받고, 다음날 서울을 떠나 평양을 거쳐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과정에 지은 시들이 연이어 수록되어 있는데, 그 여정에서의 바라본 평양성·대동강 등의 풍경, 평안북도 정주(靜州)에서 목격한 백성의 빈곤, 평안북도 용주(龍州)의 동림참(東臨站)의 여관 시설이 새로 지어져서 좋았다는 점, 점마 절차가 새벽부터 시작되어 늦도록 끝이 나지 않았던 점 등에 대해서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 중 권6에 수록된 봉사록(奉使錄)1389년 명에 사신을 가던 도중의 일정을 묘사한 것이 시간 순서대로 정리되어 있는데, 여기에서도 명으로 가는 여정 중에 만난 풍경·체험들, 그리고 사행길에 나서는 권근 자신의 생각들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특히 봉사록에는 당시 명의 수도였던 남경 황궁의 모습이나, 황제를 지척에서 알현한 감동 등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 주목된다. 이 당시의 경험은 권9에서 명 사신 육옹(陸顒단목례(端木禮장근(章謹)과 시문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다시금 회자되는데, 이를 통해 당시의 일을 권근이 각별히 여겼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외에도 권7에는 남행록(南行綠)으로 이름이 붙은 일련의 시문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는 1389년 당시 대간의 탄핵을 받고 있던 이숭인을 옹호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유배를 가던 중 작성한 기록들이다. 남행록에 해당되는 시문에서는 그 과정에서 방문한 경상도 김해(金海양주(梁州) 등의 지방행정, 왜구방비등의 상황에 대한 권근의 겪은 바와 그 생각을 읽을 수 있어 주목 된다.

 

 

 

 

 

양촌집내에서 주목되는 산문 자료들

 

 


사진 : 양촌집(7473-v.1-7) 7018a,b.

 

11~40까지 수록된 산문들은 여말선초 문장가로 유명했던 권근이 다양한 목적으로 쓴 쓰여졌는데, 각각의 글들은 이를 주고받은 인물들을 기반으로 한 권근의 사적 교유관계는 물론, 정치·학문적 입장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그 중에서는 정도전의 저술에 대한 서·발문이 권근의 정치사상의 변천을 파악하는 연구에서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기왕의 연구에 따르면 정도전과 권근은 공민왕 16년 이후 성균관에서 교유하면서 성리학을 함께 익히며 동지의식을 나누었고, 그 중 사전개혁에 대한 견해차이로 정도전과 정치적으로 대립하여 유배를 떠나기도 했지만, 그 도중에도 인적 교유관계는 이어졌고, 조선 개국 후 권근은 자신의 정치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정도전의 주요 저술들에 서·발문을 쓰고 그 의의를 설명했다. 16에 수록된 심기리삼편서(心氣理三篇序)심기리삼편 후 부집 서心氣理三篇後附集序, 17에 수록된 불씨잡변설 서(佛氏雜辨說序), 22에 실린 경제문감 감사요략 발(經濟文鑑監司要略跋)등이 그 중요한 사례다. 그 외에도 정도전·권근과의 관계를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로 권23삼봉선생진찬(三峯先生眞讚), 경숙택주진찬(慶淑宅主眞讚)도 꼽을 수 있다. 이는 권근이 정도전과 그 부인 최씨의 초상화를 보고 그에 대한 글을 써 준 것이다. 여기서도 권근은 정도전의 용모·기상·재기·학문, 부인 최씨의 덕망 등에 대해 찬양의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 외에 주목되는 자료는 권34·35에 실려있는 역사 관련 서술이다. 34에는 동국사략론(東國史略論), 35에는 동현사략(東賢史略)이 실려있는데, 동국사략론은 신라를 중심으로 중요한 사건들을 뽑아 그에 대한 권근 나름의 비평적인 견해를 서술한 글로서, 박혁거세가 알영을 왕비로 세운 것부터, 정강왕이 진성여왕에게 왕위를 물려준 것 까지 28개 항목이 수록되어 있다. 35에 실린 동현사략(東賢史略)은 허공 김방경 등 주로 고려후기 인물 24인에 대해 열전 형식으로 기록된 전기집인데, 주로 권근과 권근 가족을 중심으로 연결고리가 있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한 인물들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 권근은 자신의 가문과 관련이 있는 인물들을 동현(東賢)으로 선정하여, 가문의 위상을 높이고자 했던 것이다.

 

 

 

 

 

 

 

 

 

참고문헌

 

박천규, 1979 陽村集 解題, 민족문화5

김기빈, 1991, 양촌집(陽村集), 한국문집총간 해제

(이상 한국고전종합 DB 참조 https://db.itkc.or.kr/)

 

강문식, 2008, 권근의 경학사상 연구, 일지사

도현철, 2012, 권근의 유교 정치 이념과 정도전과의 관계, 역사와현실84

변성아, 2016, 入傳인물을 통해 본 東賢事略의 성격, 한국중세사연구48

최봉준, 2013, 14세기 고려 성리학자의 역사인식과 문명론, 연세대학교 사학과 박사학위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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