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 | 影幀摸寫都監儀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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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宗親府(朝鮮) 編] |
현대어서명 | 영정모사도감의궤 |
간행년대 | [光武5年(1901)] |
청구기호 | 奎13990-v.1-2 |
책수 | 2冊(320張), 彩色圖 |
판본 | 筆寫本 |
사이즈 | 44.2×31.4cm |
1900년(光武 4) 8월부터 1901년 5월 사이에 행해진 太祖, 肅宗, 英祖, 正祖, 純祖, 文祖, 憲宗 등 7祖의 御眞模寫 과정을 수록하였다. 詔勅 윤8월 22일條를 보면 眞殿이 불타버림으로써 그에 奉安되어 있던 列聖朝의 影幀 역시 燒盡되었는데 이 때문에 列朝 御眞의 模寫와 眞殿의 重建이 함께 결정되어 시행되게 된다. 그러나 이 작업의 직전인 1899년과 1900년 초에 太祖 및 純祖·文祖의 御眞模寫가 있었던 데다가 ≪影幀模寫都監儀軌≫[奎13982, 13983, 13986, 13988, 13989, 15069] 및 ≪影幀模寫都監補完儀軌≫(奎13984]의 解題 참조), 이번에는 한꺼번에 7祖의 影幀이 함께 제작되는 까닭에, 작업을 簡率히 하라는 명령에도 불구하고 이 때의 작업은 豪大해질 수밖에 없었다. 우선 작업기간을 보면 1904년 윤8월에 都監이 구성되어 9월에는 각처에 나뉘어 奉安되어 오던 御眞들이 수집되고 10월에 起畵가 시작, 그해 12월에 畢畵 후 다음해 5월에야 眞殿奉安이 끝남으로써 장장 9개월의 時日이 소요되고 있다. 또한 座目에는 都提調에 宮內府特進官 沈舜澤, 議政府議政 尹容善, 提調에 閔泳煥 申箕善 金奭鎭 趙熙一, 都廳에 沈啓澤 徐晩淳, 郎廳에 徐丙炎 등 5명, 監造官에 金永珪 등 11명이 기록되어 실제 참가 員役數로나, 4명 3명으로 각기 늘어난 郎廳 監造官의 定員에서 역시 豪大해진 규모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賞典>의 畵師別單에서도 그러한데, 畵師別單은 主管畵師 趙錫晋, 蔡龍臣, 同參畵師에 全修默, 白禧培, 尹錫永, 趙在興, 朴鏞薰, 徐元熙, 洪義煥, 李祺榮, 金基洛, 姜弼周, 金濟淳, 李慶桓, 劉義連이다. 圖說에서 新備되는 것으로 되어 있는 五峯屛, 海蟠桃屛 및 班次圖의 起畵畵員 總數 26명까지 합하게 되면 모두 40명이 넘는 畵師들이 이 때의 작업에 관계한 셈이다. 결국 太祖 등 七祖御眞을 模寫했다고 하는 이 儀軌의 기록은 다음해 1902년부터 본격적으로 제작된 高宗 및 皇太子 御眞·睿眞의 기록과 함께 [≪御眞圖寫都監儀軌≫[奎14000, 14001] 解題 참조 p.55] 朝鮮時代 御眞의 作成 및 保管에 있어서 그 최종적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라 하겠다. 한편 奎章閣의 ≪影幀模寫都監儀軌≫[奎13990, 13991]는 2冊으로 分冊되어 있으나 내용은 이 儀軌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