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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書 예서

  • 편저자 : 陳祥道(宋) 譔
  • 청구기호 : 奎中3160-v.1-12
  • 간행연도 : 光緖2年(1876)
  • 책권수 : 150卷 12冊
  • 판본사항 : 木版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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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禮書
저자 陳祥道(宋) 讚
현대어서명 예서
간행년대 1876년(淸 光緖 2)
청구기호 奎中3160
책수 150卷 12冊
판본 목판본
사이즈 25.6×15.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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陳祥道(1053-1093)가 天子의 服飾에서부터 喪禮에 이르는 여러 禮制를 모아 논의하고 자신의 견해를 덧붙인 책이다. 陳祥道의 字는 用之‚ 福建 福州 사람이다. 治平(1064-1066)년간에 진사에 급제하였으며‚ 除館閣校勘‚ 후에 太常博士가 되어 緋衣를 하사받았으며‚ 관직은 左宣義郞에 이르렀다. 저서로는 ≪論語全解≫ 등이 있다. 晁公武의 ≪郡齋讀書志≫에 의하면‚ 진상도는 王安石의 제자로서‚ 그의 사상은 ‘경전을 말할 때는 반드시 새로운 뜻을 밝히고‚ 先儒의 주장과 옛설들을 배척하는데 힘쓴다는 왕안석의 방법을 계승하였다’고 한다. 그 책의 내용은 왕안석의 새로운 經義에 근거하여 鄭學에 대해 많은 비판을 하였다. 예를 들면 廟制를 말할 때 진상도는 鄭玄의 5廟說을 반대하고 ≪周禮≫‚ ≪孔子家語≫‚ ≪荀子≫‚ ≪春秋穀梁傳≫ 등을 인용하여 고대의 天子들은 모두 7廟를 쓴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禘祫의 문제에 있어서도 禘가 즉 圜丘라는 정현의 설과는 달리‚ 圜丘는 원구이고 禘는 禘라는 주장을 하는 등‚ 옛 사람이 밝히지 못한 것을 드러내고 새로운 뜻을 만드는데 힘을 쏟아 一家를 이루고자 하였다. 晁公武의 ≪直齋書錄解除≫에 의하면‚ 진상도는 元祐(1086-1093)년간에 ≪예서≫를 완성하여 조정에 바쳤다고 한다. 판본으로는 宋刊本‚ ≪通志堂解經≫본‚ 明張溥盛順本‚ 嘉慶郭龍光刻本‚ 陸有元刊本‚ 福建刊本‚ 光緖廣東刊本이 있다. 규장각 소장본은 1876년(光緖 2)에 卷首에 1876년(光緖 2)에 方濬師가 쓴 <重錄禮書序>와 張溥西의 <禮書敍> 및 진상도의 <陳禮書表>와 <禮書序>가 실려있다. ≪禮書≫ 전체를 볼 때‚ 經傳을 관통하여 조목 조목 명확하게 분석하였고‚ 고증 또한 상세하다. 각 항목에 대해 먼저 說을 앞에 놓고 뒤에 그림을 두었다. 陳振林은 ≪예서≫에 대해 論辨이 정밀하고‚ 繪畵 唐代학자들의 논의와 攝崇義의 ≪三禮圖≫에 대해 그 잘못된 것을 바로잡거나 모자란 곳을 보충하였다고 칭찬하였다. 취할 점이 많아서 당시 사람들이 중시하였다. (박미라) 참고서목: ≪四庫大辭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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