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도古地圖
규장각 소장 220여종 6,000매에 달하는 고지도를
유형별, 지역별로 분류하여 한 눈에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고지도

輿地圖 여지도

  • 편저자 : [作者未詳]
  • 청구기호 : 古4709-78-v.1-3
  • 간행연도 : [刊年未詳]
  • 책권수 : 3帖(별치 2軸 포함), 彩色圖
  • 판본사항 : 筆寫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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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지도(輿地圖)〈古 4709-78〉 1책 앞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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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지도(輿地圖)〈古 4709-78〉 2책 앞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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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지도(輿地圖)〈古 4709-78〉 3책 앞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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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지도(輿地圖)〈古 4709-78〉 1책 뒷표지입니다.

  • 뒷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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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지도(輿地圖)〈古 4709-78〉 2책 뒷표지입니다.

  • ▶강원도
  • 강원도 (江原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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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八道 중 〈江原道〉로, 오늘날 강원도 일대의 지도이다. 지도의 전체적인 형식과 내용은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을 따르고 있으며, 산지 표현은 하나의 연속된 산봉우리로 그리고 채색을 해 산맥의 형식으로 이어 그렸다. 우선 경기도와 충청도를 각 道別圖의 크기를 고려하여 한 장에 그리고 咸鏡道를 北道와 南道 두 장으로 나누어 그렸다. 그리고 각 道別도의 순서도 정상기의 《東國地圖》 原圖와 동일하다. 정상기의 지도 跋文에서는 각 道別圖의 순서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도별 채색을 설명하면서 京畿忠淸道, 全羅道, 慶尙道, 江原道, 黃海道, 平安道, 咸鏡南道, 咸鏡北道의 순으로 언급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지도의 구성을 이와 같은 순으로 되어 있었을 것이다. 본 지도책의 경우 경기도와 충청도를 각각 한 장에 그리고 함경도를 한 장에 그리고 있으며, 강원도가 황해도와 평안도 뒤에 첨부되었으나 전체적인 구성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각 도별도 마다 각 군현의 색을 달리 표시하고 있다. 본 사이트의 지도인 江原道는 각 군현을 純靑色으로 표시하고 있으며, 監營地인 原州는 붉은 색의 정사각형으로 표시하고 있다. 그리고 각 군현을 잇는 도로가 적색선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각 군현 사이에 驛을 붉은 직사각형으로 표시하였다. 그리고 조선시대 설치되었던 오대산 史庫는 집 모양으로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울진에서 海路로 연결되어 鬱陵島가 그려져 있으며, 그 아래 주기를 보면 順風을 따르면 이틀정도의 거리라고 적혀 있다. EH한 그 서북쪽에는 杆山島라고 표시되어 있다. 이는 오늘날 독도로 생각되며, 당시의 지도 대부분에는 이 섬을 ‘于山島’로 표기하였는데 본 지도의 경우 筆寫하는 과정에서 잘못한 것으로  생각된다.(양윤정)

  • ▶경기도
  • 경기도 (京畿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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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八道 중 〈京畿道〉로, 오늘날 경기도 일대 지도이다. 지도의 전체적 양식은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을 따르고 있다. 그리고 산지는 청색으로, 하천은 푸른색으로 채색된 필사본이다. 그리고 각 郡縣은 직사각형으로, 군사시설인 鎭堡는 작은 원으로 구분하여 표시하고 있다. 서울의 경우에는 황색의 정사각형 안에 ‘京’을 표기하고 붉은색으로 이중의 테두리가 그려져 다른 군현의 표현과는 차이를 두고 있다. 1800년 이후 제작된 지도라면 현 구리시의 六陵 표시가 七陵으로 수정되어야 하는데 六陵으로 표시된 것은 최소한 영조가 승하하기 이전의 지도임을 나타내주고 있다. 수도인 서울을 중심으로 각 군현을 연결하는 도로가 붉은 색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군현 사이에 작은 붉은 색의 작은 사각형은 역이 표시되어 있다. 이처럼 도로에 관한 정보가 상세히 표시되어 있는 점은 당시의 도로의 필요성 및 중요성을 지도상에 반영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본 지도의 전체적 모습이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을 따르고 있으나, 原圖와는 지도의 형식에 있어 큰 차이점이 있다. 즉, 초기 정상기형 지도의 경우 경기와 충청도는 면적이 좁기 때문에 합쳐서 한 장에 같이 그렸으며, 반면에 함경도는 면적이 넓어 한 장에 그릴 수 없기 때문에 북도와 남도로 나누어 그렸다. 《八道地圖(古4709-23)》는 초기 정상기형 지도의 특징과 같이 경기도와 충청도가 한 장에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의 경우 경기도와 충청도가 각각 한 장의 지도로 그려져 있다.(양윤정)

  • ▶경상도
  • 경상도 (慶尙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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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八道 중 〈慶尙道〉로, 오늘날 경상도 일대의 지도이다. 지도의 전체적인 형식과 내용은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을 따르고 있으며, 특히 지도의 형식적인 면에 있어서 초기 정상기의 《東國地圖》 原圖와 비슷하며, 규장각 소장 《八道分圖(古4709-14)》와 거의 일치한다. 그러나  내용적인 면에 있어서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 본 지도의 경우 내제 주변에 官員과 驛에 관한 간략한 수만 기록되어 있는 반면에  《八道分圖(古4709-14)》는 지도 여백에 지지적인 내용을 기록하여 지도를 보완하고 있다. 지도의 형식과 내용에 있어 다소 차이를 보이는 규장각 소장 《八道分圖(古915.1-P173)》는 본 지도보다 대략 10~20년 빨리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내용적인 면에 있어서는 본 사이트의 지도와 서로 차이가 있음을 찾아 볼 수 있다. 우선 거제도를 비교해보면, 加背粱鎭 아래쪽이 길게 뻗어나온 《八道分圖(古915.1-P173)》와 달리 거의 마무리되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固城 부근 역시 해안선에 차이가 보인다.『新增東國輿地勝覽』에 固城의 진산인 無量山은 서쪽 10里에 위치하며, 佐耳山은 서남쪽 30리에 위치한다고 기록되어 있어서 본 지도에서는 固下里面이 혓바닥과 비슷한 모양으로 그려져 있지만 《八道分圖(古915.1-P173)》에서는 무량산과 좌이산이 거의 평행선에 표시되어 있다. 그 결과 이 부분의 해아선이 본 지도와는 다른 것으로 생각된다. 南海 모양 역시 彌助項이 昌善島 아래 부분까지 길게 연결되어 있으나 《八道分圖(古915.1-P173)》에서는 昌善島 좌측 아랫부분에 彌助項이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본 지도에는 對馬島가 표시되어 있으나, 《八道分圖(古915.1-P173)》에는 對馬島가 생략되어 있다. 반면에 본 지도와 매우 유사한 《八道分圖(古4709-14)》와의 대마도 모습은 서로 매우 유사함을 알 수 있다. 다만 본 지도에서는 대마도에 日本界라고 표시되어 있으며, 《八道分圖(古4709-14)》와 달리 좌수영에서 대마도까지 海路가 연결되어 있다. 이처럼 비슷하면서도 부분적으로 차이가 보이는 것은 정상기의 《東國地圖》가 후대에 계속적으로 轉寫되는 과정 속에 본 지도와 같이 原圖를 그대로 따른 계열과 부분적으로 수정을 한 수정본 계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본 지도책은 정상기의 原圖 계열 지도이며, 《八道分圖(古915.1-P173)》은 수정본 계열의 지도로 분류될 수 있다.(양윤정)

  • ▶기타
  • 강남성(江南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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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江南省〉으로, 오늘의 중국 동북 해안에 있는 장쑤성(江蘇省) 일대 지역의 행정구역을 나타낸 지도이다. 동으로는 황해, 남으로는 저장성(浙江省), 서로는 안후이성(安徽省), 북으로는 산둥성(山東省)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성도는 ‘남쪽의 수도’라는 의미의 지닌 양쯔강(揚子江)에 연해 있는 항구이자 산업·교통의 중심지인 난징(南京)이다. 춘추시대(BC 770~476)에 장쑤 지역은 대부분 남방의 강대국이었던 오(吳)나라에 속해 있었다. 북방으로부터 이주민들이 쇄도해온 육조시대(六朝時代:220~589)와 남송대(南宋代:1127~1279)에 문화적으로 황금기를 이룩했다. 1421년까지 난징은 명나라의 수도였다. 1667년에 장쑤성은 분리되었다. 19세기 중엽 아편전쟁이 일어난 후 많은 외국 상인들이 이 성으로 들어왔다. 장쑤는 중국 국민당의 중요한 정치 거점으로서 난징은 1928~37, 1946~49년 2차례에 걸쳐 수도가 되었다. 중일전쟁(1937~45)중에는 일본에 점령되어 극심한 피해를 입었으나 그 뒤 복구되었다. 본 지도에는 ‘太平’으로 표시되어 있다. 장쑤가 지닌 가장 중요한 자연지리적인 특징은 넓은 충적평야가 있다는 점이다. 이 평야는 양쯔강(揚子江) 어귀에 의해 장난(江南)과 쑤베이(蘇北)로 나뉜다. 쑤베이 지역은 장난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있다. 장난은 양쯔 강 삼각주의 일부로, 땅이 비옥하고 관개시설이 훌륭하다. 또 비단·수공예로 유명할 뿐 아니라 인구가 조밀하고 산업이 발달해 있다. 쑤저우(蘇州)·난징·우시(無錫) 및 중국 제일의 거대 도시이자 세계적으로도 상위에 속하는 상하이(上海) 등 유명한 도시들이 모두 이곳에 있다. 양쯔 강 어귀에 있는 상하이 시는 행정상으로는 장쑤성에 속해 있지 않고, 베이징(北京)에 있는 중국 국무원(國務院)의 통제를 받는 직할시이다. 장쑤 지역은 대부분 고도가 해발 45m 이하이다. 장쑤 저지대는 거대한 양쯔 강, 화이허 강淮河, 황허 강(黃河) 및 이 강들의 지류가 쏟아낸 충적퇴적물로 이루어진 범람원이다. 이 평원은 양쯔 강과 황허 강의 운하들에 의해 장난 평원, 양쯔-화이허 평원, 쑤저우-화이허 평원 등 세 부분으로 나뉜다. 양쯔 강 남쪽의 장난 평원은 평탄면이 특징이며, 양쯔 강 삼각주의 주요부분을 이루고 있다. 양쯔-화이허 평원은 양쯔 강과 옛 화이허 운하 사이에 있으며, 이 두 강의 퇴적물에 의해 형성되었다. 쑤저우-화이허 평원은 옛 화이허 운하의 북쪽에 있다. 황해 가까이에 있는 윈타이 산(雲臺山)은 높이가 625m로 이 성에서 가장 높다.

  • 강서성(江西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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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江西省〉으로, 중국 중남부 양쯔강 남쪽에 있는 장시성(江西省)의 행정구역을 간략하게 표시한 지도이다. 장시성의 省都는 지도상의 적색의 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는 난창(南昌)이며, 약칭은 간이다. 동쪽은 우이산맥(武夷山脈), 남쪽은 난링산맥(南嶺山脈)·다위링산맥(大庾嶺山脈)·주롄산맥(九連山脈), 서쪽은 완양(萬洋)·우궁(武功)·주링(九嶺)의 각 구릉성 산지가 분포하고 있다. 중앙에 남쪽부터 간난분지·지안(吉安)분지·장시분지(江西盆地)의 3대 분지가 형성되어 북쪽으로 갈수록 낮아지며, 장시분지 북부, 즉 지도상에 성도 바로 위부분에 표시되어 있는 포양호(鄱陽湖) 담수호이다. 이들 분지를 꿰뚫고 남쪽의 경계선에서 발원한 간장강(贛江)이 흘러서, 신허강(信河)·슈수이강(修水) 등과 함께 포양호로 흘러든다. 포양호는 증수기에는 대량의 물을 받아들여, 홍수조절 기능을 수행하며 경계경계선에서 양쯔강으로 배수한다. 기후는 사계절이 분명한 온난습윤한 기후로서, 연평균기온은 17∼20℃, 강수량은 1,200∼1,700mm이다. 다만 분지이기 때문에 연교차가 크며, 겨울은 6℃ 이하, 여름은 29℃ 이상에 달한다. 산지는 비교적 서늘하고, 특히 북쪽의 루산산(廬山)은 피서지로서 알려져 있다. 핑샹萍鄕의 석탄, 다위大庾의 텅스텐은 예로부터 알려져 있었으나 공산당 정권 성립 후 텅스텐 몰리브덴·철의 광맥이 차례로 발견되어 난창의 금속·기계 화학공업, 주장九江의 방직업을 비롯하여 근대공업이 발전하였다.(양윤정)

  • 광동성(廣東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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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廣東省〉으로, 省都는 지도상에 적색의 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는 광저우(廣州)이다. 광둥성(廣東省)은 중국 남해와 근접한 성으로, 4,310km의 해안선을 끼고 있는 남쪽지방의 관문이자 수륙교통의 요충지이다. 일찍부터 서구세력과 접촉이 있었고, 華南지방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이다. 1979년 이후에는 선전(深玔)· 주하이(珠海)· 산터우(汕頭) 등이 경제특구로 지정되어 개방정책과 더불어 발전하고 있는 도시이다. 춘추시대에는 바이위에(百越)라고 불렸으며, 진나라 때는 난하이군(南海君)을 설치하였으며, 명나라 때부터 지금의 이름으로 불렸다. 당·송 때에는 해외교통이 발전하면서 북방인구가 남방으로 끊임없이 이동하였으나 송나라가 멸망하면서 약 10만 명이 줄어들었다. 산지·구릉이 70%, 평야가 30%를 차지하며, 북부는 높고 남부는 낮다. 북부의 난링산맥(南嶺山脈)은 양쯔강(揚子江)과 주장강(珠江)의 분수령을 이룬다. 주장강은 둥강(東江)·시강(西江)·베이강(北江)의 3대 지류로 이루어지며, 광저우 부근에서 합류하여 대규모의 삼각주를 형성한다. 주장강 삼각주에는 후이저우시후惠州西湖와 퉁후潼湖 등 많은 호수들이 있다. 앞바다에는 중국 제2의 섬인 하이난섬(海南島)과 둥사(東沙)·중사(中沙)·난사(南沙) 등 170여 개의 섬이 산재한다. 본 지도 아래쪽에 그려진 섬이 하이난섬(海南島)로, 廣東省의 하이난구였으나 1988년 4월 섬 전체로 하이난성을 이루어 중국의 22번째 성이 되었다. 지도상의 섬 북쪽에 적색의 작은 원으로 표시되어 있는 광둥성의 행정공서인 하이커우시(海口市)는 하이난성의 省都가 되어 하이난섬의 자치적인 수도 기능을 한다. 공산정권이 1950년에 장악하였다. 그리고 화난지방은 지리적 위치 때문에 남쪽으로부터 진출해 온 서구세력에 가장 먼저 접촉하여, 일찍이 중국의 선진지역으로 발전하였으나, 한편으론 영토의 희생도 따랐다. 아편전쟁 이후 1842년에 홍콩섬, 1860년에 주룽시가 영국에 양도되고, 1898년에는 주룽반도 전역이 영국의 租借地가 되었으며, 1887년에는 마카오(澳門)가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되었다. 프랑스가 1898년에 조차하였던 광저우만(廣州灣)은 1946년 중국에 반환되었다. (양윤정)

  • 광서성(廣西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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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廣西省〉으로, 중국 남부에 위치한 현재는 광시좡족자치구(廣西壯族自治區)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산지와 행정구역을 중심으로 그린 지도이다. 광시좡족자치구는 광둥성(廣東省)· 구이저우성(貴州省)· 위난성(雲南省)과 접하고 있으며, 약칭은 구이(桂), 현재의 主都는 난닝(南寧)이다. 현 행정구역은 5개의 地區와 9개의 시, 10개의 현급 시, 59개의 현, 12개의 자치현으로 나뉜다. 진시황제가 난닝(南嶺)을 통일하면서 지도상에 적색의 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는 省都인 구이린군(桂林君)을 설치하였고, 청나라 때 광시성(廣西省)으로 불렸다가, 1958년 자치구가 되었다. 주강(珠江) 수계인 시강(西江) 유역을 차지하며, 북서부는 윈구이雲貴고원에 속하고, 대부분의 지역은 사암· 석회암으로 된 량광(兩廣)산지의 낮은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광둥성(廣東省)과의 경계부근에 험준한 협곡이 있어서 고립지대를 이루며, 주강의 본·지류에 의해 開析된 河谷平野에는 곳곳에 奇峰이 솟아 있다. 주요하천은 홍수이허(紅水河)·류강(柳江)·위강·구이강 등이며, 펑황호(鳳凰湖)·난호(南湖)·바이룽호(白龍湖) 등의 호수가 많다. 주요항구로는 우저우를 비롯하여 베이하이(北海)·방청(防城)·난닝 등이 있다. 主都인 난닝과 구이린, 베트남과의 국경에서 가까운 花山風景區는 관광명승지로 유명하다. (양윤정)

  • 귀주성(貴州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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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貴州省〉으로, 중국 남서부 윈구이고원(雲貴高原)에 위치한 구이저우성(貴州省)의 행정구역을 중심으로 그린 지도이다. 지도상의 표시된 省都는 적색의 사각형으로 표시된 ‘㝎畨’이지만, 현재 구이저우성의 省都는 㝎畨 서북쪽 분홍색 직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는 구이양(貴陽)이다. 그리고 구이양 서부의 안순(安順)과 수려한 황구오슈폭포(黃果樹瀑布)를 안고 있는 전닝(鎭寧) 등이 주요 도시이다. 또한 구이저우성은 전국시대 초나라의 ‘黔中之地’라 불렀던 곳이기 때문에 ‘첸성(黔省)’이라고도 한다. 북쪽은 쓰촨성(四川省), 동쪽은 후난성(湖南省), 남쪽은 광시좍족자치구(廣西壯族自治區)와 경계를 이룬다. 윈구이ㅣ고원의 동반부를 차지하여 서부와 중부 해발고도 1,000∼2,000m에 달하나, 북·동·남쪽 변두리는 600m 정도로 낮다. 큰 산맥은 없으나, 북부에 다로우산맥(大婁山脈), 남부에 양쯔강(揚子江)과 주장강(珠)의 분수령을 이루는 먀오링산맥(苗嶺山脈)이 있다. 고원은 여러 하천에 의해 開析되어 고원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기복이 심하다. 그리고 이 지역은 1,000m 이상의 험준한 산악지형 때문에 사람들의 왕래가 적어서 문화적으로 낙후된 지역이며, 소수민족이 많이 살고 있는 세계 최고의 오지로 알려져 있다. 광물·에너지 및 동식물 자원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개발이 부진하여 산시성과 더불어 빈곤지역으로 분류된다. (양윤정)

  • 도성도 (都城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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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도성 안쪽을 중심으로 그린 채색 필사본의 서울지도이다. 도성의 내부와 함께 도성 밖은 남쪽 한강까지 포괄하고 있으나, 대부분의 도성도와 마찬가지로 도성 안과 도성 밖의 축척이 다른 이원적 축척이 적용된 지도이다. 도성 내부는 당시 5부에 소속된 행정구역인 坊과 그에 소속된 洞의 지명이 상세하게 표시되어 있다. 궁궐, 사묘 등은 울타리 모양을 그려 넣어 강조하며, 나무를 그려 회화적 요소를 가미하기도 하였다. 삼각산의 경우에도 다른 산에 비해 매우 강조하면서 회화적 요소를 많이 가미하여 그 자체를 부각시키고 있다. 하천은 푸른색으로 표시하고 있고, 도로의 경우에는 붉은색으로 표시하고 있다. 그리고 도로의 크기에 따라 그 굵기를 달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동대문과 남대문 밖에는 중국 삼국시대 蜀漢의 장수인 관우의 묘가 그려져 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군사가 내원하여 일본군을 격퇴시킨 것은 관우의 도움에 의한 것이라 하여 關羽廟를 세우게 되었던 것이다. 대사동에는 원각사의 석탑이 독특하게 그려져 있으며, 도성 수비를 담당하던 三軍門의 관할 구역이 표시되어 있다. 창덕궁 후원에는 임진왜란 때 원군을 보낸 중국 명나라 신종의 恩義를 기리기 위해 1705년(숙종 31) 창덕궁 금원 옆에 설치한 대보단의 모습도 보인다.(양윤정)

  • 복건성(福建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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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福建省〉으로, 중국의 남동부 타이완 해협에 면하는 省으로 지금의 푸젠성(福建省)의 행정구역을 중심으로 그린 지도이다. 省都는 지도상에 적색의 사가형으로 표시되어 있는 푸저우(福州)이다. 산이 많은 지역으로 면적의 대부분이 산지와 구릉이다. 성의 서쪽 경계에 우이산맥(武夷:杉嶺)이 뻗어 있고 성내에도 이 산맥과 나란히 북동∼남서 방향으로 달리는 다이윈산(戴雲山) 등의 지루산지(地壘山地)가 많다. 해안은 굴곡이 심한 리아스식 해안이며, 해안선의 길이는 280km나 된다. 앞바다에는 지도상에도 표시되어 있듯이 둥산섬(東山島)· 진먼섬(金門島)을 비롯한 섬들이 많이 분포해 있는데, 진먼·마쭈(馬祖) 두 섬은 타이완의 영토이다. 하천은 지루산지 사이를 흐르는 짧고 작은 것이 많고 하류에는 작은 삼각주를 형성한다. 성내의 가장 큰 강은 지도상에 푸저우 바로 밑에 표시되어 있는 민장강(閩江)이며 유역면적은 성 전체의 33% 이상을 차지한다. 源流는 장시성(江西省)과의 경계를 이루는 우이(武夷)산맥에서 발원하는 젠시강(建溪)·푸툰강(富屯溪)·사시강(沙溪)이다. 그들 하천이 성 중앙부의 난핑(南平) 부근에서 합류하여 민장강이 되고, 남동류하여 푸저우를 거쳐 남중국해로 흘러든다. 난핑까지 작은 기선이 왕래하며 범선은 성경(省境) 부근까지 왕래한다. 특히 하천이 산지를 횡단하는 지대에는 경치가 뛰어난 곳이 많다. 지도와 우측 하단에는 琉球國의 일부 모습도 그려져 있다. (양윤정)

  • 북경도성삼가육시오단팔묘전도 (北京都城三街六市五壇八廟全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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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중국 淸代의 수도인 北京의 중심부를 그린 지도로, 내제가 ‘北京都城三街六市五壇八廟全圖’이다. 즉, 직사각형 모양의 城, 3개의 대도로, 여섯 개의 市, 5개의 壇, 여덟 개의 廟가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의 경우 ‘북경’이라고 내제에 명시되어 있는데, 중국의 경우 중국 고대 춘추시대에 燕나라가 이곳에 있었기 때문에 북경 이외의 ‘燕京’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어 연경으로 표시되기도 한다. 이 시기 조선인의 중국 여행 중 으뜸으로 가는 곳이 북경이었으며, 북경지도는 중국에 사신으로 왕래했던 사람들에게는 매우 필요한 자료였을 것이다. 좌우대칭의 가로망과 건물배치 등 계획도시의 특징이 매우 잘 나타나 있다. 내성의 가운데에 皇城이 있으며, 황성 북쪽에 정전이 태화전이 그려져 있다. 大淸門, 天安門 등 문루의 모습 역시 매우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외성의 동문인 朝陽門은 우리나라 사신들이 이 문을 통해 성으로 들어갔던 곳이다. 남쪽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天壇과 신농씨와 후직씨에 제사를 지내던 先農壇의 모습이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본 지도는 회화식 요소가 짙게 보이는 나무를 비롯하여 성곽의 모습, 각 門을 비롯해 다리까지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진 지도이다. 남서쪽에는 1605년 서양의 선교사들이 들어와 세웠던 성당인 天主堂의 모습도 宣武門 안쪽에 보이고 있다.(양윤정)

  • 사천성(泗川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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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泗川省〉으로, 지금의 중국 남서부 양쯔강 상류에 위치한 쓰촨성(泗川省)의 행정구역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그린 지도이다. 省都는 지도에서 적색의 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는 청두(成都)이다. 양쯔강·민장강(岷江)·퉈강(沱江)·자링강(嘉陵江)의 4대 강이 성내를 흐르기 때문에 ‘四川’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하천은 모두 양쯔강 수계에 속하고 양쯔강의 본류가 우산산을 횡단하는 성의 경계에는 예로부터 험하기로 이름난 싼샤(三峽)가 나타난다. 동부분지에서는 겨울이 따뜻하고 여름에 극심한 무더위가 계속된다. 강수량은 1,000mm 내외이며 ‘촉(蜀)의 개는 해를 보면 짖는다’는 말이 있을 만큼 안개가 잦다. 그 반면 서부고원은 서늘하고 건조한 기후를 나타낸다. 그리고 쓰촨성은 동쪽의 쓰촨분지(사천분지)와 서부고원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쓰촨분지는 적색 토양으로 구성되어 있어 ‘적색분지’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분지 주위에는 해발고도 1,000∼3,000m의 다량산(大凉山)·민산(岷山)·다바산(大巴山)·우산(巫山) 등의 산지와 고원이 펼쳐진다. 省都로 표시되어 있는 청두(成都)는 전국시대부터 있어온 도시로, 춘추전국시대에는 촉의 수도였다. 진·전한 때는 蜀郡이 관할하는 청두현(成都縣)이 설치되었고, 후한 때에는 이저우(益州)의 통치도 겸하게 하였다. 삼국시대 때 유비가 촉한을 통일하고 수도를 건립한 곳이기도 하다. 삼국시대에는 촉한의 중심지로서 번영하였으며 당의 玄宗은 안사의 난 때에 이곳으로 피신하였다. 수당 시대 때는 창안(長安), 양저우(揚州), 둔황(敦煌)과 같이 4대 도시였다. 옛날부터 방직업이 발달되었고, 1928년에 성도가 설치되었다. 군사적으로도 매우 중요시되어 청대에는 쓰촨 총독 및 청두 장군을 이곳에 두었고, 중화민국 정부가 들어선 뒤 1930년에 시제를 실시하였다. 부근에는 사적이 풍부한데 그 중에서도 제갈량을 모시는 武侯祠를 비롯하여 杜甫草堂·望江樓 등이 있다. (양윤정)

  • 산동성(山東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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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山東省〉으로, 지금의 중국 화북지방에 있는 산둥성(山東省) 일대 지역의 행정구역을 나타낸 지도이다. 省都는 지도상에 적색의 정상각형으로 표시된 지난(濟南)이다. 북쪽은 보하이해(渤海), 남동쪽은 황해(黃海)에 면하고, 남쪽은 장쑤성(江蘇省)·안후이성(安徽省), 남서쪽은 허난성(河南省), 북서쪽은 허베이성(河北省)에 접하고 있다. 성의 동쪽은 라이저우만(萊州灣)과 자오저우만(膠州灣)을 연결하는 자오웨이주랑(膠濰走廊) 서쪽의 산둥반도로, 200m 전후의 구릉지대이며, 성의 서쪽은 황허강(黃河) 이북의 화베이평원의 일부를 이루는 황허강 하류부의 평원이다. 그리고 성의 중부지역은 타이산산(泰山)·루산산(魯山) 등 해발고도 400m 전후의 산지이다. 그리고 省의 동반부가 바다에 둘러싸여 있어 기후는 해양성 기후를 나타낸다. 여름에는 온화하여 칭다오(靑島) 등은 피서지로 이용되며, 겨울철에는 한류의 영향도 있어서 내륙 하천은 동결될 때가 많다. 농경지가 전체의 60%를 차지하고 노동력도 풍부하여 농업이 발달되어 있다. 省都인 지난(濟南)은 황허강(黃河)의 하류 샤오칭강(小淸河) 남안에 있다. 신석기시대 후기부터 이곳에 인류의 거주가 시작되었다고 하며 춘추전국시대 齊의 서부의 도시로 번영하였고, 한(漢)에 와서 도시 북쪽을 지수이강濟水이 흐르고 있다고 해서 지난이라 하였다. 이후 隋·唐·元·宋·明·淸 등의 시대를 통해서 번영하였다. 오늘날 시가는 톈진(天津)~푸커우(浦口)간 철도와 칭다오(靑島)∼지난(濟南)간 철도의 분기점인 역을 중심으로 선로의 남쪽에 동서로 뻗어 있다. 명승지로 내성 북부의 다밍호(大明湖)·바오투천(趵突泉)등이 있고 千佛山의 불상조각도 유명하다. (양윤정)

  • 산서성(山西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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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山西省〉으로, 이는 지금의 중국 산시성(山西省) 일대의 행정구역을 간략하게 그린 지도이다. 동쪽은 太行山脈과 五臺山脈, 서쪽과 남쪽은 黃河 중류의 협곡, 북쪽은 만리장성으로 둘러싸여 있어, 각각 河北省·河南省·陝西省의 각 성 및 內蒙古自治區와 접한다. 적색의 정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는 ‘太原府’는 현재 사신성의 省都로, 당나라 때에는 太原府를 설치, 河東節度使를 주재시켜 突厥의 침입에 대비하였으며, 五代 때에는 後唐·後晉·後漢 등이 이곳에서 일어났다. 현재의 타이위안시 중심부가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982년 송나라의 태종이 陽曲縣을 이곳으로 옮겨 幷州라고 한 뒤 河東路轉運使의 치소를 둔 데서 비롯한다. 또한 明나라 때는 다시 태원부로 고쳤으며, 지금까지 남아 있는 주위 12km의 성벽은 이 때 축조된 것이다. 명·청 시대 이후 산시성의 성도가 되었고, 1927년 市制가 실시되었다. 중화민국 성립 후에는 옌시산(閻錫山)이 산시 먼로주의를 제창하고 여기에 반독립정권을 세웠으며, 이와 함께 전성(全省)의 산업·경제가 급속도로 개발되었다. 스타이(石太) 철도로 허베이성(河北省)과, 퉁푸(同蒲) 철도로 네이멍구(內蒙古) 및 허난성(河南省) 방면과 연결된다. 곡물·목화·잎담배 등을 집산하고 구리그릇·제지 등의 전통공업 외에 제철·기계·화학·방적 등의 근대공업도 발달하였다. 지도 여백에 기록된 註記에 따르면, 북경까지의 거리는 一千二百五十里이며, 山西省은 3곳의 府와 18州, 그리고 76개의 縣으로 되어있다.(양윤정)

  • 성경성(盛京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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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盛京省〉으로, 성경성이란 지금의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일대의 행정구역을 간략하게 보여주는 지도이다. 랴오닝성은 중국 동북지역의 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도를 나타나 있듯이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조선과 마주하고 있는 지역이다. 지도 중앙에 표시된 松花江은 숭가리강이라고 한다. 길이 약 1,960km. 黑龍江의 최대 지류이다. 白頭山 천지에서 발원하여 북서쪽으로 흘러 지린성 북서단의 三岔河에서 남류하는 嫩江을 합친 뒤 북동쪽으로 유로를 바꾼다. 哈爾濱을 거쳐 依蘭에서 牧丹江을 합치고, 다시 佳木斯를 지나 헤이룽장성 북동단에서 본류(헤이룽강)에 합류한다. 상류부는 長白山地를 흘러내리는데, 유역에 삼림이 무성하다. ‘盛京’과 ‘寧古塔城’은 적색의 정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그 외의 官은 분홍색 직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다. 지도명 좌측에 의하면 府 4곳, 縣 5곳, 州 2곳이지만, 지도상에는 9곳이 표시되어 있다. 盛京 동남쪽에 위치한 興京은 청조(淸朝)의 발상지로서 1603년 청태조 奴兒哈赤가 이곳에 성을 축조하고 1619년 자이피얀으로 천도할 때까지 16년간의 근거지로 건국의 기초를 다진 곳으로, 지금은 토성 터와 궁전 터의 일부가 남아 있다. 그리고 盛京 동북쪽에 盛京과 같은 기호로 표시되어 있는 寧古塔城은 지금의 닝안(寧安)시로, 漢나라 이래 알려졌던 古都)로, 康熙 1년(1662년) 진수 寧古塔等處將軍을 둔 후에 개척되기 시작하였다. 淸나라 때인 1902년에 綏芬廳을 세우고, 1909년에 綏芬府로 승격하였다. 1910년에 寧安府로 개칭, 1993년 市가 된 곳이다. 또한 이곳은 1923년 김좌진이 대한독립단 회의를 개최했던 곳이다.(양윤정)

  • 운남성(雲南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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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雲南省〉으로, 중국 남서부에 위치한 윈난성(雲南省)의 행정구역을 중심으로 그린 지도이다. 이 지역은 원래 타이족의 南詔國과 大理國이 있었는데, 13세기경부터 중국 중앙정부의 지배를 받게 되고, 17세기 말 淸代에 윈난성이 설치되었다. 지도상에 省都는 적색의 사각형으로 雲南府이지만, 현재 윈남성의 省都는 雲南府 바로 좌측에 표시되어 있는 쿤밍(昆明)이다. 쿤밍 역시 본래는 타이족의 영역이었으나 원대 이후 중국 중앙정부에서 관할하게 되었고, 청국·프랑스 조약 및 윈난~베트남 철도의 개통 등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북쪽은 쓰촨성(四川省)과 시짱 자치구, 동쪽은 광시좡족(廣西壯族) 자치구와 구이저우성(貴州省), 남쪽은 베트남과 라오스, 서쪽은 미얀마와 접하고 있다. 서부를 남동쪽으로 흐르는 위안장강(沅江)을 경계로 동부는 윈구이(雲貴) 고원 서부를 이루는 해발고도 1,500∼2,000m의 뎬둥(滇東) 고원, 서부는 여러 줄기의 산맥과 그 사이를 누장강(怒江:살윈강 상류)·란찬강(瀾滄江: 메콩강 상류)· 진사강(金沙江) 등이 흐르는 협곡이 나란히 뻗어 뎬시종곡(滇西縱谷) 지대로 나뉜다. 또한 서부 등지에서는 아직도 단층작용이 계속되기 때문에 이곳은 지진 빈발지역에 속하며, 아열대지만 고도가 높아 겨울은 온난하고 여름은 서늘하여 날씨가 1년 내내 봄과 같다. 강수량도 여름을 중심으로 1,000∼2,000mm로 많은 편이다. (양윤정)

  • 의주북경사행로 (義州北京使行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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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압록강변의 의주 맞은편에서 북경에 이르는 사신의 통행로를 중심으로 그린 지도이다. 지도상에 표현된 산지와 하천은 매우 상세히 그려져 있으며, 특히 의주에서 산해관에 이르는 곳의 遼東邊墻이 그려져 있다. 요동변장은 산해관과 압록강 사이의 장성의 총칭이다. 장성을 따라 설치한 九邊 중의 하나인 요동진이 이 구간의 방비를 맡았다. 원래 요동변장은 명대 兀良哈 몽고와 여진의 각부를 방어하기 위해 만든 군사 시설로 장성을 따라 보를 만들고, 각 보마다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였다. 즉, 이는 함경도 이북 지역인 동시에 청나라와의 접경 지역을 그린 것으로 일종의 관방지도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교통로와 교통로상의 주요 도시 등도 기재되어 있어서 이 시기 만주지역의 모습을 파악하는데 매우 용이하다.(양윤정)

  • 절강성(浙江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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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浙江省〉으로, 중국 동부의 동중국해 연안에 위치한 저장성(浙江省)의 행정구역을 중심으로 그린 지도이다. 저장성의 省都는 지도상에 적색의 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는 항저우(杭州)로, 첸탄강(錢塘江)의 하구에 위치하고 있다 서쪽 교외에 시후호(西湖)를 끼고 있어 쑤저우(蘇州)와 함께 아름다운 고장으로 알려졌다. 7세기 수나라가 건설한 강남하(江南河:大運河의 일부)의 종점으로 도시가 열려 남송시대에는 수도가 되었으나, 임시수도라는 뜻에서 行在라고 하다가 臨安이라고 개칭하였다. 10세기 이후에는 외국선박의 출입도 많았고, 원대에는 M.폴로, 이븐 바투타 등이 이곳을 방문하여 행재의 와전인 ‘킨자이(Khinzai)', '칸자이(Khanzai)' 등의 명칭으로 유럽에 소개되었다. 지형적으로는 북부평원과 남부 구릉지대로 대별되며, 70%가 구릉성 산지에 속한다. 북부평원은 타이후호(太湖)에서 첸탄강(錢唐江) 하류에 걸친 평야와 항저우만 남안(南岸)의 닝보寧波· 사오잉(紹興)평야로 이루어지며, 저장(浙江)평야라고도 하는데 해발고도 20m 이하로 수로망이 발달하였다. 남부에는 구릉 외에 셴샤링(仙霞嶺), 후이지산(會稽山), 톈타이산(天臺山), 톈무산(天目山), 모간산(莫干山) 등의 산지가 있으며, 남단의 산들은 해발고도 1,500m를 넘는다. 항저우만 이남의 해안은 지도에서도 이를 반영한 듯 복잡하게 그려져 있는데, 리아스식해안으로 천연의 양항이 많으며, 앞바다에는 1,800여 개의 섬들이 산재한다. 특히 저우산군도(舟山群島)는 저우산섬 등 40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군도 가운데 소도 푸퉈산(普陀山)은 불교의 4대 명산의 하나로 꼽힌다. 첸탕강은 본성 최대의 하천으로 상류는 신안강(信安江)으로 갈라진다. (양윤정)

  • 조선일본유구국도 (朝鮮日本琉球國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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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18세기 말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지도이다. 조선 후기 지도 발달에 큰 획을 그었던 정상기의 《東國地圖》의 계열에 속하는 全圖이다. 대부분의 지도의 경우 간략하게 각 도를 표기하는 반면에, 본 지도의 경우에는 각 도의 감영소재지를 색을 구별하여 표시하였다. 그리고 군현의 경우 全圖의 가운데 부분을 제외한 해안선을 따라 붉은색의 사각형으로 표시하고 있으며, 군사시설인 진보의 경우 붉은 원으로 군현과 마찬가지로 해안선을 따라 표시하고 있다. 산천의 경우에는 주요 산맥과 하천만을 간략하게 표시하여, 백두산, 묘향산, 금강산, 지리산, 구월산, 태백산 등이 하나의 산맥을 이루고 있으며 백두산에서 토문강, 흑륭강, 압록강의 지류가 흘러나감을 찾아 볼 수 있다. 제주도의 경우 울릉도의 2배 정도로 그리고 있으며, 간략하게 행정구역만을 표시하였다. 그리고 조선 남쪽으로 일본이 그려져 있다. 그 모습이 많이 왜곡되어 있으며, 크기 또한 조선의 1/2정도 그려져 있다. 일본의 모습뿐만 아니라 산천의 모습도 극히 일부분만을 간략하게 그리고 있다. 반면에 일본의 행정 구역은 매우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이는  즉, 본 지도가 조선을 중심으로 조선과 일본의 정치 또는 행정에 기본이 되는 정보를 간략하게 제공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양윤정)

  • 중국지도 (中國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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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지도책의 제작시기인 18세기 말에 제작된 채색 필사본의 중국지도로 추측한다. 그러나 지도의 내용은 明代의 상황을 보여준다. 이는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를 중국으로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임진왜란 때 도와준 명을 존숭하는 대명 의리의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湖廣省이 청나라 강희제 때 湖南省과 湖北省으로 나누어지기 이전의 행정구역 상황이 그려져 있으며, 陝西省도 甘潚省으로 나누어지기 이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중국 본토의 각 省은 분홍색 사각형으로 표시하고 있으며, 그 주변에는 《大明一統志》에 수록된 각 省에서 수도인 북경까지의 거리가 기재되어 있다. 그리고 황하가 星宿海에서 발원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성숙해가 황하 바로 옆에 그려져 그곳에서부터 황하가 시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성숙해를 비롯해 다른 하천의 경우 푸른색으로 표현되어 있으나, 황하의 경우에는 강 이름과 같이 黃色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朝鮮國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그 크기 역시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백두산, 묘향산, 금강산, 지리산, 구월산, 태백산이 표시되어 있으며, 백두산에서 토문강, 흑륭강, 압록강의 지류가 흘러나감을 찾아 볼 수 있다. 지도상에 ‘관서·관북·해서·관동·경·호서·영남·호남’이 표시도어 있으며, 섬은 울릉도, 제주도가 耽羅로, 그리고 교동이 그려져 있다. 그 외에도 백령도 등의 섬이 島名은 표기되어 있지만 그 위치에 표시되어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즉, 본 지도는 중국을 중심으로  중국과 조선의 정치 또는 행정에 기본이 되는 정보를 간략하게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다른 지역에 비해 조선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며, 그 외의 지역은 매우 간략하게 그려져 있다. 특히 조선 아랫부분에 그려져 있는 일본의 경우 그 위치와 모양이 매우 왜곡되어 있으며. 중국의 남쪽에는 여인국, 소인국, 대인국과 같은 상상의 나라도 그려져 있다.(양윤정)

  • 직례성(直隸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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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直隸省〉으로, 이는 지금의 중국 허베이성(河北省) 일대의 행정구역을 보여주는 지도이다. 화북평야 북부에서 內蒙古 고원 남동부에 걸친 지역을 차지한다. 《서경(書經)》의 〈禹貢篇〉에 나오는 冀州에 해당하기 때문에 冀省이라고도 한다. 淸代에는 즈리성直隷省이라고 불렀고, 辛亥革命 후 1928년 허베이성이라고 고쳤으며, 공산정권 수립 후 察哈爾·熱河 두 성의 일부를 편입하였다. 북쪽에 표시된 성곽은 ‘山海關’으로, 둥베이 방면과의 연안 육상교통로의 관문이다. 楡關이라고도 하며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요지이다.  하이관성 동쪽에는 만리장성 동문성루에‘ 天下第一關’이라  씌어진 현판이 걸려 있다. 만리장성 동쪽 끝 시작지점으로 예로부터 자주 싸움터가 되어왔고, 특히 明末 淸軍의 關內 침입 때 명의 대군이 이곳을 거점으로 끝까지 저항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산하이관이란 지명은 14세기 초 명대(明代)에 성을 쌓고 山海衛를 설치하고 군대를 주둔시킨 데서 유래되었으며, 산과 바다 사이에 있는 關이라는 뜻이다. 일찍이 隋·唐代에는 臨關, 遼 金代에는 遷民縣·遷民鎭 등으로 불렸다. 隋나라 때 臨關이라 일컬었지만 현재보다 약간 서쪽에 위치하였고 현재의 위치로 옮겨진 것은 11세기 초 療나라 때이다. 역사적으로 이곳은 화베이와 화둥의 중요한 군사요지였다. 현재 京山·瀋山 두 철도의 접속지로서 교통상 요지이며, 부근에 만리장성 전설에 관한 유적들이 많다.(양윤정)

  • 천하도지도 (天下都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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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18세기 말 정조대에 편찬된 서구식 한역세계지도이다. 중국에 왔던 서양선교사 알레니가 쓴 『職方外紀(1623년)』에 수록된 〈萬國全圖〉를 바탕으로 제작된 지도이다. 『職方外紀』에 실린 지도와 세부적인 차이는 있으나 지도의 윤곽, 도법, 지명 등에서 대부분이 일치한다. 본 사이트의 세계지도를 보면 오늘날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모습과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마테오리치의 《坤輿萬國全圖》와 마찬가지로 본 지도의 모습도 지도의 중앙경선을 태평양 중앙에 둠으로써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를 중앙 부분에 배치하였다. 그리고 조선의 크기가 다른 지역에 비해 크게 그려져 있다. 이는 중국을 중심에 두는 중화사상과 마찬가지로 지도상에 지도를 제작하는 사람의 생각이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의 경우 그 모습은 오늘날과 비슷하나 그 위치가 현 위치보다 북쪽으로 치우쳐 있다. 이는 전통적인 중화사상을 고려하여 의도적으로 유럽 중심의 세계지도의 구도를 태평양 중심의 세계지도 구도로 바꾼 것이다. 근대식 지도 제작 기법을 사용한 지도이지만 남방의 대륙은 미지의 땅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오세아니아 대륙을 비롯한 남방은 아직 탐험이 안 된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본 지도는 조선 후기에 국가적 차원에서도 서양 지도 및 서양 서양 세계에 관심이 있었음을 보여 주는 지도이다.

  • 하남성(河南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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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河南省〉으로, 지금의 중국 허난성(河南省) 일대 지역의 행정구역을 나타낸 지도이다.이다. 현재의 省都는 정저우(鄭州)이며, 북쪽은 허베이성(河北省), 북동쪽은 산둥성(山東省), 동쪽은 안후이성(安徽省), 남서쪽은 후베이성(湖北省), 서쪽은 산시성(陝西省), 북서쪽은 산시성(山西省)의 각 省과 접해 있는 지역이다. 지형적으로는 서부의 산지, 동부의 평원으로 나누어진다. 즉, 서부산지는 북서부의 타이항(太行)산맥, 서부의 친링계(秦嶺系)의 푸뉴(伏牛)산맥, 남부의 퉁바이(桐柏)·다볘(大別)산맥 등으로 이루어지고, 화북평원은 지도상에 黃色으로 표시된 북부의 황허강(黃河)·화이허강(淮河)에 의한 평원과, 남부의 한수이강(漢水)에 의한 난양평원(南陽平原)으로 나누어진다. 그 외에 하이허강계(海河系)가 있는데, 모두 황천(荒川)으로 예로부터 자주 수해를 일으켰기 때문에, 공산정권 성립 후 치수공사를 하여 북서부의 싼먼샤(三門峽)댐·평원부의 런민성리거(人民勝利渠)·왕라오보축홍구(王老波蓄洪區) 등이 완성되었다. 이 평원은 일찍부터 발전한 지역이며, 문자 그대로 ‘中華’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그리고 본 지도상에 적색의 정사각형으로 표시된 省都인 카이펑(開封)은 허난성 북동부의 있는 도시로, 黃河 남쪽의 대평원에 있으며 롄윈(連雲)~란저우(蘭州)간 룽하이철도(隴海哲道) 연변에 위치하는 중국 7대 고도(古都)의 하나이다. 명칭은 전국시대의 대량(大梁) 남쪽 25km 지점에 있는 카이펑읍(邑)에서 유래되었다. (양윤정)

  • 협서성(陝西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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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陝西省〉으로, 지금의 중국 산시성(陝西省) 일대 지역의 행정구역을 나타낸 지도이다. 省都는 지도상에 적색의 정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는 시안(西安)이며, 黃河 중류 유역에 있다. 시안 부근에는 주·진·한으로부터 수·당에 걸쳐 역대 국도(國都)가 자리 잡고 있었으며, 당시 중국의 문화·정치·경제의 중심지로서 번영하였다. 그리고 친링산맥이 성의 남쪽부근에 동서로 뻗어 있으며, 그 남쪽은 양쯔강(揚子江) 수계의 한수이강(漢水)의 유역이고, 그 북쪽은 황허강 유역에 속한다. 친링에서 성 남단의 다바산지(大巴山地)까지는 친바산지(秦巴山地)로 불리는데, 두 산지 사이에 한수이강에 연하여 비옥한 한중(漢中)·안캉(安康)의 양 분지가 있다. 지도의 오른쪽(동쪽)과 위부분(북서쪽)에 그려진 黃江은 황허강으로 강 이름처럼 黃色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처럼 黃色으로 색을 칠하는 이유는 황허강이 본성과 山西省 사이를 깊은 협곡을 만들며 남류하고, 본성에서 흘러나오는 우딩강(無定河)·옌허강(延河)·뤄허강(洛河)·웨이허강을 합류시키는데, 이들 지류로부터 대량의 진흙이 유입되어 흙탕물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물과 흙의 유출을 방지하기 위하여 수토보지공사가 넓은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황허강 중·하류는 중국문명의 요람지로서 이름 높다. 유역에는 산시성 란톈현(藍田縣)에서 발견된 란톈원인(藍田原人)의 유적을 비롯한 彩陶 ·黑陶期와 은나라의 유물이 수없이 발견되었고 그 밖에 역대 왕조의 사적도 무수히 남아 있다. (양윤정)

  • 호광성(湖廣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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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湖廣省〉으로, 지금의 중국 중앙부에 위치한 후베이성(湖北省) 일대의 행정구역을 간략하게 나타낸 지도이다. 후베이성은 양쯔강(揚子江) 중류 유역에 있다. 원래 후난성(湖南省)과 합해서 후광성(湖廣省)이라고 불렸던 곳이나, 1667년에 둥티호(洞庭湖)를 경계로 남북으로 나뉜 것이 기원이다. 일찍이 춘추전국시대에는 초나라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楚省이라고도 불렸고, 초나라의 鄂王이 지금의 武漢에 도읍을 둔 것에 연유하여 鄂省이라고도 불린다. 성 서쪽에는 어시(鄂西) 산지로 총칭되는 우당산(武當山)·우산산(巫山) 등 1,000m급의 산지가 있으며, 양쯔강이 우산산을 가로지르는 곳에 싼샤(三峽)의 협곡이 있다. 동쪽 성계에는 다볘산(大別山) 등의 구릉성 산지가 있으나, 중앙에는 후광(湖廣)평야·장한(江漢)평야 등으로 불리는 저평한 대평원이 있다. 남쪽 성계 부근을 횡단하여 양쯔강이 관류하며, 그 최대 지류 한수이강(漢水)은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흘러 우한시에서 본류에 흘러든다. 평원에는 1만을 넘는 호소(湖沼)가 산재하고, 양쯔강과 한수이강 사이에는 무수한 수로가 종횡으로 서로 통한다. 양쯔강이 심하게 곡류하여 흐르는 沙市에서 웨양(岳陽)까지의 사이는 진장강荊江이라 불리는데, 과거에는 심한 수해지구로 알려져 있었다. 이 지구의 홍수를 막기 위하여 양쯔강 남안에 진장펑홍荊江分洪이라는 遊水池를 만들었다. 지도상에 省都로 표시되어 있는 우한시(武昌府)의 옛 이름은 江夏 또는 鄂渚이다. 일찍이 우한 三鎭의 하나로 알려졌으나, 1950년 한양(漢陽)·한커우(漢口)와 합병해서 우한시가 되었다. 대안의 한양과 함께 三國時代에는 오나라의 손권이 점거했던 이름난 고을이다. 양쯔강(揚子江)과 한수이강(漢水)이 합류하는 우안에 위치하며, 강안에 솟아 있는 서산산(蛇山)이 대안의 구이산산(龜山)과 마주하여 강을 건너는 데 적합한 지점을 이루었기 때문에 예로부터 쟁탈지점이 되어 왔다. 1911년 신해혁명이 발발했던 곳이기도 하다.(양윤정)

  • ▶목록
  • 뒷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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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지도(輿地圖)〈古 4709-78〉 3책 뒷표지입니다.

  • ▶전라도
  • 전라도 (全羅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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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八道 중 〈全羅道〉로, 오늘날 전라도 일대 지도이다. 지도의 전체적 양식은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을 따르고 있다.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을 따르고 있는 도별도 대부분은 정상기의 원래 지도를 그대로 모사한 사본들로 한반도의 윤곽을 비롯한 전체적인 표현 형태가 그대로 이어지고 지명과 같이 후대에 변화된 내용이 수정된 사본들이다. 제주도를 포함한 전라도 해안 부분 역시 본 지도와 19세기 초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되는 규장각 소장 《海東地圖(古4709-61)》의 해안선이 거의 동일함을 알 수 있다. 특히 지금의 고흥반도와 여수반도 사이에 白也串이 근처 섬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비교적 큰 섬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이는 두 지도 모두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으로, 정상기의 《東國地圖》 原圖에서 범한 실수를 시정하지 않고 그대로 옮긴 것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정상기의 原圖 계열을 따르는 사본의 제주도 지역을 보면 18세기에 제작된 초기 사본지도들 대부분은 旌義縣 서쪽 지역이 彎으로 표시되어 있으나 후대 사본인 경우에는 彎이 아닌 호수로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原圖와는 차이가 좀 보여 초기 수정본으로 추정되는 본 지도에서는 旌義縣 서쪽이 호수로 표현되었던 원도 계열 사본의 오류를 바로 잡고 있다. 그러나 같은 유형의 초기 수정본을 추정되는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 《八道分圖》의 경우  본 지도와 달리 原圖의 초기 사본들과 유사하게 旌義縣 서쪽 지역에 彎으로 표시되어 있다.(양윤정)

  • ▶충청도
  • 충청도 (忠淸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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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八道 중 〈忠淸道〉로, 오늘날 충청도 일대 지도이다. 지도의 전체적 양식은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을 따르고 있으며,『新增東國輿地勝覽』의 附圖적 성격이 강해 간략한 정보만이 표시된 '東覽圖'형의 지도와는 달리 독립된 도별도이다. 그리고 정보의 효율적 전달을 위해 기호 사용에도 위계가 나타나 있다. 각 郡縣은 순백의 직사각형으로 표시하고 있으며, 감영소재지인 경우에는 일반 군현과 달리 붉은색의 정사각형에 표현하고 있다.‘충청도 지역의 경우 같은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의 지도 사이에도 상당한 차이가 보이는 곳이 있다. 본 사이트의 지도와 제작시기가 비슷한 규장각 소장 《八道地圖(古4709-23)》, 그리고 이보다 늦은 시기인 19세기 초반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규장각 소장 《海東地圖(古4709-61)》의 태안반도 부근을 살펴보면, 각각 모두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본 사이트의 지도에 나타난 태안반도 모습은 거의 알파벳 H 모양과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八道地圖(古4709-23)》의 경우에는 瑞山 아랫부분이 길게 돌출되어 해안선 부분에 차이가 있으며, 《八道地圖(古4709-23)》의 해안선  형태는 《海東地圖(古4709-61)》와 더 유사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해안선과 섬의 위치 및 지명은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八道分圖》와 대체적으로 동일하다. 그러나 1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 《八道分圖》의 경우 지도 여백에 註記가 있으며, 郡縣 표현 방식에 차이가 나타난다. 본 지도의 경우 내제 아래쪽과 좌측에 官員과 驛의 수만이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양윤정)

  • ▶평안도
  • 평안도 (平安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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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八道 중 〈平安道〉로, 오늘날 평안도 일대의 지도이다. 지도의 전체적인 형식과 내용은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을 따르고 있으며, 산지는 하나의 연속된 산봉우리로 그리고 채색을 해 산맥의 형식으로 그리고 있으며, 道別에 따라 군현을 나타내는 채색을 달리하고 있다. 이처럼 전체적인 형식이나 내용면에 있어서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을 따르고 있는 지도들도 후대에 轉寫되면서 크게 두 계열로 나눠진다. 본 지도책과 같이 우선 정상기의 《東國地圖》의 原圖를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는 原圖 계열과 原圖의 잘못된 부분이나 부족한 부분을 부분적으로 수정하여 轉寫한 수정본 계열이다. 본 사이트의 지도인 평안도 일대 역시 두 계열의 차이점이 보이는 곳이다. 原圖 계열인 본 지도를 보면, 중강진에서 만포로 이어지는 압록강의 유로 부분이 다소 완만하게 나타나고 있다. 물론 평안도의 경우 조선 초기에 제작된 지도의 오류에 비하면 국경선이 많이 수정되고 정확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반해, 규장각 소장《八道分圖(古915.1-P173)》와 같은 수정본에 있어서는 중강진에서 만포로 이어지는 압록강의 유로 부분이 우리나라 쪽으로 깊게 만입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수정본 계열과 같은 압록강 부분의 윤곽은 19세기에 제작되는 여러 지도에서 보이는데 이들 지도의 系譜를 밝히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후의 지도들에서 정상기 原圖의 윤곽 대신에 본 지도의 윤곽을 많이 따른다는 점에서 이후 지도제작에 미친 영향은 원도 계열의 사본들보다는 훨씬 크다고 볼 수 있다. 본 지도의 모습은 규장각 소장 《八道分圖(古4709-14)》와 거의 일치한다. 그러나 두 지도 사이에도 차이점이 보이는데, 가장 큰 차이점은 압록강 이북 지역에 대한 정보이다. 본 지도의 경우 압록강 이북 지역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 그러나 《八道分圖(古4709-14)》의 경우에는 그 지역에 관한 많은 정보를 추가했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초기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 지도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압록강 이북의 지명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후기에 전사된 지도에서는 《八道分圖(古4709-14)》와 같이 계속적인 수정과 보완을 통해 압록강 이북의 지류뿐만 아니라 지명까지도 상세하게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두 지도의 차이점은 바로 섬에 대한 정보이다. 《八道分圖(古4709-14)》의 경우 황해도 앞바다에 그려진 섬은 이름이 표기되지 않은 3개의 섬을 합쳐 총 10개인것에 비해 본 지도의 경우에는 6배인 60개가 그려져 있다. 이는 이 지도를 제작한 사람이 섬에 대한 관심이 높고, 정보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양윤정)

  • ▶함경도
  • 함경도 (咸鏡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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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八道 중 〈咸鏡島〉으로, 오늘날 함경도 일대 지도이다. 지도의 전반적인 형식과 내용은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을 따르고 있으나, 큰 차이점은 정상기의 《東國地圖》 原圖의 경우  도별도의 크기를 고려하여 함경도를 北道와 南道 두 장으로 나눠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한 장에 함경도를 그리고 있다. 그러나 두만강의 유로를 비롯하여 초기 수정본 계열로 생각되는 규장각 소장 《八道分圖(古915.1-P173)》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 오히려 모습은 원도 계열에 규장각 소장 《八道分圖(古4709-14)》와 거의 유사하다. 그리고 내용면에 있어서도 《八道分圖(古915.1-P173)》는 原圖 系列의 寫本에 비해 풍부한 지리적 사상이 포함되어 있다. 山川, 峴, 峙, 嶺 등과 같은 자연적 사상은 물론이고 山城, 寺, 郡縣內의 坊里, 일부 面名, 津, 亭子 등과 같은 정상기의 原圖 系列의 寫本에서는 거의 표현되지 않고 있는 방대한 인문적 요소까지 지도상에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본 지도의 경우 方里나 面名의 정보는 생략하고 군현과 진보와 주요 驛을 중심으로 인문적 정보를 표시하였다. 해안선의 모습 및 내용이 거의 유사한 《八道分圖(古4709-14)》와 비교해 보았을 때 본 지도의 경우 많은 섬이 표시되어 있다. 《八道分圖(古4709-14)》의 경우 咸鏡南道에 3개의 섬이, 그리고 北道에는 鹿島 하나만이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본 지도의 경우 이름이 없는 無名島그 5개를 포함하여 총 47개의 섬이 표시되어 있다. 이는 이 시기에 이미 도서지방에 대한 인식이 매우 정교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양윤정)

  • ▶황해도
  • 황해도 (黃海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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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八道 중 〈黃海道〉로, 오늘날 황해도 일대 지도이다.  지도의 전체적인 형식과 내용은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을 따르고 있다. 산지는 하나의 연속된 산봉우리로 그리고 채색을 해 산맥의 형식으로 이어 그려 정상기의 《東國地圖》와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하천의 경우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의 지도를 보면, 대부분 본류의 경우 두 줄, 지류의 경우 한 줄로 그리고 있는데 반해, 본 지도에서는 모든 하천을 두 줄로 그리면서 해안선에 차이가 보인다. 지류를 한 줄로 표현한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東國地圖》와 비교해 보면 본 지도의 해안선이 대체적으로 두 줄을 사용함으로써 지류 곡류 등의 변화를 섬세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대부분 물줄기가 완만하게 표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군현과 같은 인문적 요소를 표현함에 있어서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東國地圖》의 경우 원을 사용하고 있으나, 본 지도에서는 그 성격에 따라 차이가 다른 기호를 사용하고 있다. 군현의 경우에는 노란색의 직사각형을 사용하였고, 監營地인 海州는 붉은색으로 표시하였다. 그리고 군사 시설인 鎭堡는 붉은색의 작은 원으로 표시하고, 山城은 요철 모양이 아닌 반원을 겹으로 그리고 있다. 烽火는 촛불 모양의 기호를 사용해 표시하였다. 본 지도와 해안선의 모습이 거의 유사한 규장각 소장 《八道分圖(古4709-14)》와는 기호 사용면에서 서로 차이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섬의 경우에는 《八道分圖(古4709-14)》와 거의 비슷한 위치에 그리고 있다. 그러나 백령도의 경우에는 본 지도가 《八道分圖(古4709-14)》보다 실제와 비슷한 위치에 그려져 있다. 『大東地志』에 의하면, 百翎島는 長山串의 서쪽 바다에 위치하며 그 거리는 水路로 70里이며, 大靑島는 백령도 동남쪽 40里이다. 《八道分圖(古4709-14)》의 경우 백령도의 위치가 장산곶에서 매우 가깝게 그려져 있다. 그리고 대청도의 경우에는 《八道分圖(古4709-14)》와 본 지도 모두 백령도의 동남쪽이 아니라 거의 정남쪽에 그려져 있다. 반면에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東國地圖》의 황해도 부분을 보면, 백령도와 대청도의 위치가 제대로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島嶼에 관한 정보가 부족하고, 轉寫한 사람이 島嶼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백령도의 위치를 보면, 島嶼의 위치를 정확하게 그리지 못하고 종이의 여백에 島嶼를 맞춰 그림으로써 오류가 발생했을 가능성도 보인다.(양윤정)

  • 앞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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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지도(輿地圖)〈古 4709-78〉 2책 앞표지입니다.

  • 앞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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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지도(輿地圖)〈古 4709-78〉 3책 앞표지입니다.

  • 앞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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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지도(輿地圖)〈古 4709-78〉 1책 앞표지입니다.

  • 강원도 (江原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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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八道 중 〈江原道〉로, 오늘날 강원도 일대의 지도이다. 지도의 전체적인 형식과 내용은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을 따르고 있으며, 산지 표현은 하나의 연속된 산봉우리로 그리고 채색을 해 산맥의 형식으로 이어 그렸다. 우선 경기도와 충청도를 각 道別圖의 크기를 고려하여 한 장에 그리고 咸鏡道를 北道와 南道 두 장으로 나누어 그렸다. 그리고 각 道別도의 순서도 정상기의 《東國地圖》 原圖와 동일하다. 정상기의 지도 跋文에서는 각 道別圖의 순서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도별 채색을 설명하면서 京畿忠淸道, 全羅道, 慶尙道, 江原道, 黃海道, 平安道, 咸鏡南道, 咸鏡北道의 순으로 언급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지도의 구성을 이와 같은 순으로 되어 있었을 것이다. 본 지도책의 경우 경기도와 충청도를 각각 한 장에 그리고 함경도를 한 장에 그리고 있으며, 강원도가 황해도와 평안도 뒤에 첨부되었으나 전체적인 구성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각 도별도 마다 각 군현의 색을 달리 표시하고 있다. 본 사이트의 지도인 江原道는 각 군현을 純靑色으로 표시하고 있으며, 監營地인 原州는 붉은 색의 정사각형으로 표시하고 있다. 그리고 각 군현을 잇는 도로가 적색선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각 군현 사이에 驛을 붉은 직사각형으로 표시하였다. 그리고 조선시대 설치되었던 오대산 史庫는 집 모양으로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울진에서 海路로 연결되어 鬱陵島가 그려져 있으며, 그 아래 주기를 보면 順風을 따르면 이틀정도의 거리라고 적혀 있다. EH한 그 서북쪽에는 杆山島라고 표시되어 있다. 이는 오늘날 독도로 생각되며, 당시의 지도 대부분에는 이 섬을 ‘于山島’로 표기하였는데 본 지도의 경우 筆寫하는 과정에서 잘못한 것으로  생각된다.(양윤정)

  • 강남성(江南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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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江南省〉으로, 오늘의 중국 동북 해안에 있는 장쑤성(江蘇省) 일대 지역의 행정구역을 나타낸 지도이다. 동으로는 황해, 남으로는 저장성(浙江省), 서로는 안후이성(安徽省), 북으로는 산둥성(山東省)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성도는 ‘남쪽의 수도’라는 의미의 지닌 양쯔강(揚子江)에 연해 있는 항구이자 산업·교통의 중심지인 난징(南京)이다. 춘추시대(BC 770~476)에 장쑤 지역은 대부분 남방의 강대국이었던 오(吳)나라에 속해 있었다. 북방으로부터 이주민들이 쇄도해온 육조시대(六朝時代:220~589)와 남송대(南宋代:1127~1279)에 문화적으로 황금기를 이룩했다. 1421년까지 난징은 명나라의 수도였다. 1667년에 장쑤성은 분리되었다. 19세기 중엽 아편전쟁이 일어난 후 많은 외국 상인들이 이 성으로 들어왔다. 장쑤는 중국 국민당의 중요한 정치 거점으로서 난징은 1928~37, 1946~49년 2차례에 걸쳐 수도가 되었다. 중일전쟁(1937~45)중에는 일본에 점령되어 극심한 피해를 입었으나 그 뒤 복구되었다. 본 지도에는 ‘太平’으로 표시되어 있다. 장쑤가 지닌 가장 중요한 자연지리적인 특징은 넓은 충적평야가 있다는 점이다. 이 평야는 양쯔강(揚子江) 어귀에 의해 장난(江南)과 쑤베이(蘇北)로 나뉜다. 쑤베이 지역은 장난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있다. 장난은 양쯔 강 삼각주의 일부로, 땅이 비옥하고 관개시설이 훌륭하다. 또 비단·수공예로 유명할 뿐 아니라 인구가 조밀하고 산업이 발달해 있다. 쑤저우(蘇州)·난징·우시(無錫) 및 중국 제일의 거대 도시이자 세계적으로도 상위에 속하는 상하이(上海) 등 유명한 도시들이 모두 이곳에 있다. 양쯔 강 어귀에 있는 상하이 시는 행정상으로는 장쑤성에 속해 있지 않고, 베이징(北京)에 있는 중국 국무원(國務院)의 통제를 받는 직할시이다. 장쑤 지역은 대부분 고도가 해발 45m 이하이다. 장쑤 저지대는 거대한 양쯔 강, 화이허 강淮河, 황허 강(黃河) 및 이 강들의 지류가 쏟아낸 충적퇴적물로 이루어진 범람원이다. 이 평원은 양쯔 강과 황허 강의 운하들에 의해 장난 평원, 양쯔-화이허 평원, 쑤저우-화이허 평원 등 세 부분으로 나뉜다. 양쯔 강 남쪽의 장난 평원은 평탄면이 특징이며, 양쯔 강 삼각주의 주요부분을 이루고 있다. 양쯔-화이허 평원은 양쯔 강과 옛 화이허 운하 사이에 있으며, 이 두 강의 퇴적물에 의해 형성되었다. 쑤저우-화이허 평원은 옛 화이허 운하의 북쪽에 있다. 황해 가까이에 있는 윈타이 산(雲臺山)은 높이가 625m로 이 성에서 가장 높다.

  • ▶제목없음.
  • 도성도 (都城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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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도성 안쪽을 중심으로 그린 채색 필사본의 서울지도이다. 도성의 내부와 함께 도성 밖은 남쪽 한강까지 포괄하고 있으나, 대부분의 도성도와 마찬가지로 도성 안과 도성 밖의 축척이 다른 이원적 축척이 적용된 지도이다. 도성 내부는 당시 5부에 소속된 행정구역인 坊과 그에 소속된 洞의 지명이 상세하게 표시되어 있다. 궁궐, 사묘 등은 울타리 모양을 그려 넣어 강조하며, 나무를 그려 회화적 요소를 가미하기도 하였다. 삼각산의 경우에도 다른 산에 비해 매우 강조하면서 회화적 요소를 많이 가미하여 그 자체를 부각시키고 있다. 하천은 푸른색으로 표시하고 있고, 도로의 경우에는 붉은색으로 표시하고 있다. 그리고 도로의 크기에 따라 그 굵기를 달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동대문과 남대문 밖에는 중국 삼국시대 蜀漢의 장수인 관우의 묘가 그려져 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군사가 내원하여 일본군을 격퇴시킨 것은 관우의 도움에 의한 것이라 하여 關羽廟를 세우게 되었던 것이다. 대사동에는 원각사의 석탑이 독특하게 그려져 있으며, 도성 수비를 담당하던 三軍門의 관할 구역이 표시되어 있다. 창덕궁 후원에는 임진왜란 때 원군을 보낸 중국 명나라 신종의 恩義를 기리기 위해 1705년(숙종 31) 창덕궁 금원 옆에 설치한 대보단의 모습도 보인다.(양윤정)

  • 의주북경사행로 (義州北京使行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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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압록강변의 의주 맞은편에서 북경에 이르는 사신의 통행로를 중심으로 그린 지도이다. 지도상에 표현된 산지와 하천은 매우 상세히 그려져 있으며, 특히 의주에서 산해관에 이르는 곳의 遼東邊墻이 그려져 있다. 요동변장은 산해관과 압록강 사이의 장성의 총칭이다. 장성을 따라 설치한 九邊 중의 하나인 요동진이 이 구간의 방비를 맡았다. 원래 요동변장은 명대 兀良哈 몽고와 여진의 각부를 방어하기 위해 만든 군사 시설로 장성을 따라 보를 만들고, 각 보마다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였다. 즉, 이는 함경도 이북 지역인 동시에 청나라와의 접경 지역을 그린 것으로 일종의 관방지도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교통로와 교통로상의 주요 도시 등도 기재되어 있어서 이 시기 만주지역의 모습을 파악하는데 매우 용이하다.(양윤정)

  • 천하도지도 (天下都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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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18세기 말 정조대에 편찬된 서구식 한역세계지도이다. 중국에 왔던 서양선교사 알레니가 쓴 『職方外紀(1623년)』에 수록된 〈萬國全圖〉를 바탕으로 제작된 지도이다. 『職方外紀』에 실린 지도와 세부적인 차이는 있으나 지도의 윤곽, 도법, 지명 등에서 대부분이 일치한다. 본 사이트의 세계지도를 보면 오늘날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모습과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마테오리치의 《坤輿萬國全圖》와 마찬가지로 본 지도의 모습도 지도의 중앙경선을 태평양 중앙에 둠으로써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를 중앙 부분에 배치하였다. 그리고 조선의 크기가 다른 지역에 비해 크게 그려져 있다. 이는 중국을 중심에 두는 중화사상과 마찬가지로 지도상에 지도를 제작하는 사람의 생각이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의 경우 그 모습은 오늘날과 비슷하나 그 위치가 현 위치보다 북쪽으로 치우쳐 있다. 이는 전통적인 중화사상을 고려하여 의도적으로 유럽 중심의 세계지도의 구도를 태평양 중심의 세계지도 구도로 바꾼 것이다. 근대식 지도 제작 기법을 사용한 지도이지만 남방의 대륙은 미지의 땅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오세아니아 대륙을 비롯한 남방은 아직 탐험이 안 된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본 지도는 조선 후기에 국가적 차원에서도 서양 지도 및 서양 서양 세계에 관심이 있었음을 보여 주는 지도이다.

  • 경기도 (京畿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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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八道 중 〈京畿道〉로, 오늘날 경기도 일대 지도이다. 지도의 전체적 양식은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을 따르고 있다. 그리고 산지는 청색으로, 하천은 푸른색으로 채색된 필사본이다. 그리고 각 郡縣은 직사각형으로, 군사시설인 鎭堡는 작은 원으로 구분하여 표시하고 있다. 서울의 경우에는 황색의 정사각형 안에 ‘京’을 표기하고 붉은색으로 이중의 테두리가 그려져 다른 군현의 표현과는 차이를 두고 있다. 1800년 이후 제작된 지도라면 현 구리시의 六陵 표시가 七陵으로 수정되어야 하는데 六陵으로 표시된 것은 최소한 영조가 승하하기 이전의 지도임을 나타내주고 있다. 수도인 서울을 중심으로 각 군현을 연결하는 도로가 붉은 색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군현 사이에 작은 붉은 색의 작은 사각형은 역이 표시되어 있다. 이처럼 도로에 관한 정보가 상세히 표시되어 있는 점은 당시의 도로의 필요성 및 중요성을 지도상에 반영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본 지도의 전체적 모습이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을 따르고 있으나, 原圖와는 지도의 형식에 있어 큰 차이점이 있다. 즉, 초기 정상기형 지도의 경우 경기와 충청도는 면적이 좁기 때문에 합쳐서 한 장에 같이 그렸으며, 반면에 함경도는 면적이 넓어 한 장에 그릴 수 없기 때문에 북도와 남도로 나누어 그렸다. 《八道地圖(古4709-23)》는 초기 정상기형 지도의 특징과 같이 경기도와 충청도가 한 장에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의 경우 경기도와 충청도가 각각 한 장의 지도로 그려져 있다.(양윤정)

  • 강서성(江西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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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江西省〉으로, 중국 중남부 양쯔강 남쪽에 있는 장시성(江西省)의 행정구역을 간략하게 표시한 지도이다. 장시성의 省都는 지도상의 적색의 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는 난창(南昌)이며, 약칭은 간이다. 동쪽은 우이산맥(武夷山脈), 남쪽은 난링산맥(南嶺山脈)·다위링산맥(大庾嶺山脈)·주롄산맥(九連山脈), 서쪽은 완양(萬洋)·우궁(武功)·주링(九嶺)의 각 구릉성 산지가 분포하고 있다. 중앙에 남쪽부터 간난분지·지안(吉安)분지·장시분지(江西盆地)의 3대 분지가 형성되어 북쪽으로 갈수록 낮아지며, 장시분지 북부, 즉 지도상에 성도 바로 위부분에 표시되어 있는 포양호(鄱陽湖) 담수호이다. 이들 분지를 꿰뚫고 남쪽의 경계선에서 발원한 간장강(贛江)이 흘러서, 신허강(信河)·슈수이강(修水) 등과 함께 포양호로 흘러든다. 포양호는 증수기에는 대량의 물을 받아들여, 홍수조절 기능을 수행하며 경계경계선에서 양쯔강으로 배수한다. 기후는 사계절이 분명한 온난습윤한 기후로서, 연평균기온은 17∼20℃, 강수량은 1,200∼1,700mm이다. 다만 분지이기 때문에 연교차가 크며, 겨울은 6℃ 이하, 여름은 29℃ 이상에 달한다. 산지는 비교적 서늘하고, 특히 북쪽의 루산산(廬山)은 피서지로서 알려져 있다. 핑샹萍鄕의 석탄, 다위大庾의 텅스텐은 예로부터 알려져 있었으나 공산당 정권 성립 후 텅스텐 몰리브덴·철의 광맥이 차례로 발견되어 난창의 금속·기계 화학공업, 주장九江의 방직업을 비롯하여 근대공업이 발전하였다.(양윤정)

  • ▶제목없음.
  • 북경도성삼가육시오단팔묘전도 (北京都城三街六市五壇八廟全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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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중국 淸代의 수도인 北京의 중심부를 그린 지도로, 내제가 ‘北京都城三街六市五壇八廟全圖’이다. 즉, 직사각형 모양의 城, 3개의 대도로, 여섯 개의 市, 5개의 壇, 여덟 개의 廟가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의 경우 ‘북경’이라고 내제에 명시되어 있는데, 중국의 경우 중국 고대 춘추시대에 燕나라가 이곳에 있었기 때문에 북경 이외의 ‘燕京’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어 연경으로 표시되기도 한다. 이 시기 조선인의 중국 여행 중 으뜸으로 가는 곳이 북경이었으며, 북경지도는 중국에 사신으로 왕래했던 사람들에게는 매우 필요한 자료였을 것이다. 좌우대칭의 가로망과 건물배치 등 계획도시의 특징이 매우 잘 나타나 있다. 내성의 가운데에 皇城이 있으며, 황성 북쪽에 정전이 태화전이 그려져 있다. 大淸門, 天安門 등 문루의 모습 역시 매우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외성의 동문인 朝陽門은 우리나라 사신들이 이 문을 통해 성으로 들어갔던 곳이다. 남쪽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天壇과 신농씨와 후직씨에 제사를 지내던 先農壇의 모습이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본 지도는 회화식 요소가 짙게 보이는 나무를 비롯하여 성곽의 모습, 각 門을 비롯해 다리까지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진 지도이다. 남서쪽에는 1605년 서양의 선교사들이 들어와 세웠던 성당인 天主堂의 모습도 宣武門 안쪽에 보이고 있다.(양윤정)

  • 경상도 (慶尙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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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八道 중 〈慶尙道〉로, 오늘날 경상도 일대의 지도이다. 지도의 전체적인 형식과 내용은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을 따르고 있으며, 특히 지도의 형식적인 면에 있어서 초기 정상기의 《東國地圖》 原圖와 비슷하며, 규장각 소장 《八道分圖(古4709-14)》와 거의 일치한다. 그러나  내용적인 면에 있어서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 본 지도의 경우 내제 주변에 官員과 驛에 관한 간략한 수만 기록되어 있는 반면에  《八道分圖(古4709-14)》는 지도 여백에 지지적인 내용을 기록하여 지도를 보완하고 있다. 지도의 형식과 내용에 있어 다소 차이를 보이는 규장각 소장 《八道分圖(古915.1-P173)》는 본 지도보다 대략 10~20년 빨리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내용적인 면에 있어서는 본 사이트의 지도와 서로 차이가 있음을 찾아 볼 수 있다. 우선 거제도를 비교해보면, 加背粱鎭 아래쪽이 길게 뻗어나온 《八道分圖(古915.1-P173)》와 달리 거의 마무리되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固城 부근 역시 해안선에 차이가 보인다.『新增東國輿地勝覽』에 固城의 진산인 無量山은 서쪽 10里에 위치하며, 佐耳山은 서남쪽 30리에 위치한다고 기록되어 있어서 본 지도에서는 固下里面이 혓바닥과 비슷한 모양으로 그려져 있지만 《八道分圖(古915.1-P173)》에서는 무량산과 좌이산이 거의 평행선에 표시되어 있다. 그 결과 이 부분의 해아선이 본 지도와는 다른 것으로 생각된다. 南海 모양 역시 彌助項이 昌善島 아래 부분까지 길게 연결되어 있으나 《八道分圖(古915.1-P173)》에서는 昌善島 좌측 아랫부분에 彌助項이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본 지도에는 對馬島가 표시되어 있으나, 《八道分圖(古915.1-P173)》에는 對馬島가 생략되어 있다. 반면에 본 지도와 매우 유사한 《八道分圖(古4709-14)》와의 대마도 모습은 서로 매우 유사함을 알 수 있다. 다만 본 지도에서는 대마도에 日本界라고 표시되어 있으며, 《八道分圖(古4709-14)》와 달리 좌수영에서 대마도까지 海路가 연결되어 있다. 이처럼 비슷하면서도 부분적으로 차이가 보이는 것은 정상기의 《東國地圖》가 후대에 계속적으로 轉寫되는 과정 속에 본 지도와 같이 原圖를 그대로 따른 계열과 부분적으로 수정을 한 수정본 계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본 지도책은 정상기의 原圖 계열 지도이며, 《八道分圖(古915.1-P173)》은 수정본 계열의 지도로 분류될 수 있다.(양윤정)

  • 광동성(廣東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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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廣東省〉으로, 省都는 지도상에 적색의 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는 광저우(廣州)이다. 광둥성(廣東省)은 중국 남해와 근접한 성으로, 4,310km의 해안선을 끼고 있는 남쪽지방의 관문이자 수륙교통의 요충지이다. 일찍부터 서구세력과 접촉이 있었고, 華南지방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이다. 1979년 이후에는 선전(深玔)· 주하이(珠海)· 산터우(汕頭) 등이 경제특구로 지정되어 개방정책과 더불어 발전하고 있는 도시이다. 춘추시대에는 바이위에(百越)라고 불렸으며, 진나라 때는 난하이군(南海君)을 설치하였으며, 명나라 때부터 지금의 이름으로 불렸다. 당·송 때에는 해외교통이 발전하면서 북방인구가 남방으로 끊임없이 이동하였으나 송나라가 멸망하면서 약 10만 명이 줄어들었다. 산지·구릉이 70%, 평야가 30%를 차지하며, 북부는 높고 남부는 낮다. 북부의 난링산맥(南嶺山脈)은 양쯔강(揚子江)과 주장강(珠江)의 분수령을 이룬다. 주장강은 둥강(東江)·시강(西江)·베이강(北江)의 3대 지류로 이루어지며, 광저우 부근에서 합류하여 대규모의 삼각주를 형성한다. 주장강 삼각주에는 후이저우시후惠州西湖와 퉁후潼湖 등 많은 호수들이 있다. 앞바다에는 중국 제2의 섬인 하이난섬(海南島)과 둥사(東沙)·중사(中沙)·난사(南沙) 등 170여 개의 섬이 산재한다. 본 지도 아래쪽에 그려진 섬이 하이난섬(海南島)로, 廣東省의 하이난구였으나 1988년 4월 섬 전체로 하이난성을 이루어 중국의 22번째 성이 되었다. 지도상의 섬 북쪽에 적색의 작은 원으로 표시되어 있는 광둥성의 행정공서인 하이커우시(海口市)는 하이난성의 省都가 되어 하이난섬의 자치적인 수도 기능을 한다. 공산정권이 1950년에 장악하였다. 그리고 화난지방은 지리적 위치 때문에 남쪽으로부터 진출해 온 서구세력에 가장 먼저 접촉하여, 일찍이 중국의 선진지역으로 발전하였으나, 한편으론 영토의 희생도 따랐다. 아편전쟁 이후 1842년에 홍콩섬, 1860년에 주룽시가 영국에 양도되고, 1898년에는 주룽반도 전역이 영국의 租借地가 되었으며, 1887년에는 마카오(澳門)가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되었다. 프랑스가 1898년에 조차하였던 광저우만(廣州灣)은 1946년 중국에 반환되었다. (양윤정)

  • 아국총도(我國摠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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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국총도(我國摠圖)

  • 전라도 (全羅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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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八道 중 〈全羅道〉로, 오늘날 전라도 일대 지도이다. 지도의 전체적 양식은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을 따르고 있다.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을 따르고 있는 도별도 대부분은 정상기의 원래 지도를 그대로 모사한 사본들로 한반도의 윤곽을 비롯한 전체적인 표현 형태가 그대로 이어지고 지명과 같이 후대에 변화된 내용이 수정된 사본들이다. 제주도를 포함한 전라도 해안 부분 역시 본 지도와 19세기 초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되는 규장각 소장 《海東地圖(古4709-61)》의 해안선이 거의 동일함을 알 수 있다. 특히 지금의 고흥반도와 여수반도 사이에 白也串이 근처 섬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비교적 큰 섬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이는 두 지도 모두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으로, 정상기의 《東國地圖》 原圖에서 범한 실수를 시정하지 않고 그대로 옮긴 것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정상기의 原圖 계열을 따르는 사본의 제주도 지역을 보면 18세기에 제작된 초기 사본지도들 대부분은 旌義縣 서쪽 지역이 彎으로 표시되어 있으나 후대 사본인 경우에는 彎이 아닌 호수로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原圖와는 차이가 좀 보여 초기 수정본으로 추정되는 본 지도에서는 旌義縣 서쪽이 호수로 표현되었던 원도 계열 사본의 오류를 바로 잡고 있다. 그러나 같은 유형의 초기 수정본을 추정되는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 《八道分圖》의 경우  본 지도와 달리 原圖의 초기 사본들과 유사하게 旌義縣 서쪽 지역에 彎으로 표시되어 있다.(양윤정)

  • 광서성(廣西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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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廣西省〉으로, 중국 남부에 위치한 현재는 광시좡족자치구(廣西壯族自治區)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산지와 행정구역을 중심으로 그린 지도이다. 광시좡족자치구는 광둥성(廣東省)· 구이저우성(貴州省)· 위난성(雲南省)과 접하고 있으며, 약칭은 구이(桂), 현재의 主都는 난닝(南寧)이다. 현 행정구역은 5개의 地區와 9개의 시, 10개의 현급 시, 59개의 현, 12개의 자치현으로 나뉜다. 진시황제가 난닝(南嶺)을 통일하면서 지도상에 적색의 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는 省都인 구이린군(桂林君)을 설치하였고, 청나라 때 광시성(廣西省)으로 불렸다가, 1958년 자치구가 되었다. 주강(珠江) 수계인 시강(西江) 유역을 차지하며, 북서부는 윈구이雲貴고원에 속하고, 대부분의 지역은 사암· 석회암으로 된 량광(兩廣)산지의 낮은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광둥성(廣東省)과의 경계부근에 험준한 협곡이 있어서 고립지대를 이루며, 주강의 본·지류에 의해 開析된 河谷平野에는 곳곳에 奇峰이 솟아 있다. 주요하천은 홍수이허(紅水河)·류강(柳江)·위강·구이강 등이며, 펑황호(鳳凰湖)·난호(南湖)·바이룽호(白龍湖) 등의 호수가 많다. 주요항구로는 우저우를 비롯하여 베이하이(北海)·방청(防城)·난닝 등이 있다. 主都인 난닝과 구이린, 베트남과의 국경에서 가까운 花山風景區는 관광명승지로 유명하다. (양윤정)

  • 조선일본유구국도 (朝鮮日本琉球國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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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18세기 말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지도이다. 조선 후기 지도 발달에 큰 획을 그었던 정상기의 《東國地圖》의 계열에 속하는 全圖이다. 대부분의 지도의 경우 간략하게 각 도를 표기하는 반면에, 본 지도의 경우에는 각 도의 감영소재지를 색을 구별하여 표시하였다. 그리고 군현의 경우 全圖의 가운데 부분을 제외한 해안선을 따라 붉은색의 사각형으로 표시하고 있으며, 군사시설인 진보의 경우 붉은 원으로 군현과 마찬가지로 해안선을 따라 표시하고 있다. 산천의 경우에는 주요 산맥과 하천만을 간략하게 표시하여, 백두산, 묘향산, 금강산, 지리산, 구월산, 태백산 등이 하나의 산맥을 이루고 있으며 백두산에서 토문강, 흑륭강, 압록강의 지류가 흘러나감을 찾아 볼 수 있다. 제주도의 경우 울릉도의 2배 정도로 그리고 있으며, 간략하게 행정구역만을 표시하였다. 그리고 조선 남쪽으로 일본이 그려져 있다. 그 모습이 많이 왜곡되어 있으며, 크기 또한 조선의 1/2정도 그려져 있다. 일본의 모습뿐만 아니라 산천의 모습도 극히 일부분만을 간략하게 그리고 있다. 반면에 일본의 행정 구역은 매우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이는  즉, 본 지도가 조선을 중심으로 조선과 일본의 정치 또는 행정에 기본이 되는 정보를 간략하게 제공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양윤정)

  • 충청도 (忠淸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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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八道 중 〈忠淸道〉로, 오늘날 충청도 일대 지도이다. 지도의 전체적 양식은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을 따르고 있으며,『新增東國輿地勝覽』의 附圖적 성격이 강해 간략한 정보만이 표시된 '東覽圖'형의 지도와는 달리 독립된 도별도이다. 그리고 정보의 효율적 전달을 위해 기호 사용에도 위계가 나타나 있다. 각 郡縣은 순백의 직사각형으로 표시하고 있으며, 감영소재지인 경우에는 일반 군현과 달리 붉은색의 정사각형에 표현하고 있다.‘충청도 지역의 경우 같은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의 지도 사이에도 상당한 차이가 보이는 곳이 있다. 본 사이트의 지도와 제작시기가 비슷한 규장각 소장 《八道地圖(古4709-23)》, 그리고 이보다 늦은 시기인 19세기 초반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규장각 소장 《海東地圖(古4709-61)》의 태안반도 부근을 살펴보면, 각각 모두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본 사이트의 지도에 나타난 태안반도 모습은 거의 알파벳 H 모양과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八道地圖(古4709-23)》의 경우에는 瑞山 아랫부분이 길게 돌출되어 해안선 부분에 차이가 있으며, 《八道地圖(古4709-23)》의 해안선  형태는 《海東地圖(古4709-61)》와 더 유사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해안선과 섬의 위치 및 지명은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八道分圖》와 대체적으로 동일하다. 그러나 1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 《八道分圖》의 경우 지도 여백에 註記가 있으며, 郡縣 표현 방식에 차이가 나타난다. 본 지도의 경우 내제 아래쪽과 좌측에 官員과 驛의 수만이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양윤정)

  • 귀주성(貴州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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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貴州省〉으로, 중국 남서부 윈구이고원(雲貴高原)에 위치한 구이저우성(貴州省)의 행정구역을 중심으로 그린 지도이다. 지도상의 표시된 省都는 적색의 사각형으로 표시된 ‘㝎畨’이지만, 현재 구이저우성의 省都는 㝎畨 서북쪽 분홍색 직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는 구이양(貴陽)이다. 그리고 구이양 서부의 안순(安順)과 수려한 황구오슈폭포(黃果樹瀑布)를 안고 있는 전닝(鎭寧) 등이 주요 도시이다. 또한 구이저우성은 전국시대 초나라의 ‘黔中之地’라 불렀던 곳이기 때문에 ‘첸성(黔省)’이라고도 한다. 북쪽은 쓰촨성(四川省), 동쪽은 후난성(湖南省), 남쪽은 광시좍족자치구(廣西壯族自治區)와 경계를 이룬다. 윈구이ㅣ고원의 동반부를 차지하여 서부와 중부 해발고도 1,000∼2,000m에 달하나, 북·동·남쪽 변두리는 600m 정도로 낮다. 큰 산맥은 없으나, 북부에 다로우산맥(大婁山脈), 남부에 양쯔강(揚子江)과 주장강(珠)의 분수령을 이루는 먀오링산맥(苗嶺山脈)이 있다. 고원은 여러 하천에 의해 開析되어 고원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기복이 심하다. 그리고 이 지역은 1,000m 이상의 험준한 산악지형 때문에 사람들의 왕래가 적어서 문화적으로 낙후된 지역이며, 소수민족이 많이 살고 있는 세계 최고의 오지로 알려져 있다. 광물·에너지 및 동식물 자원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개발이 부진하여 산시성과 더불어 빈곤지역으로 분류된다. (양윤정)

  • 중국지도 (中國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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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지도책의 제작시기인 18세기 말에 제작된 채색 필사본의 중국지도로 추측한다. 그러나 지도의 내용은 明代의 상황을 보여준다. 이는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를 중국으로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임진왜란 때 도와준 명을 존숭하는 대명 의리의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湖廣省이 청나라 강희제 때 湖南省과 湖北省으로 나누어지기 이전의 행정구역 상황이 그려져 있으며, 陝西省도 甘潚省으로 나누어지기 이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중국 본토의 각 省은 분홍색 사각형으로 표시하고 있으며, 그 주변에는 《大明一統志》에 수록된 각 省에서 수도인 북경까지의 거리가 기재되어 있다. 그리고 황하가 星宿海에서 발원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성숙해가 황하 바로 옆에 그려져 그곳에서부터 황하가 시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성숙해를 비롯해 다른 하천의 경우 푸른색으로 표현되어 있으나, 황하의 경우에는 강 이름과 같이 黃色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朝鮮國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그 크기 역시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백두산, 묘향산, 금강산, 지리산, 구월산, 태백산이 표시되어 있으며, 백두산에서 토문강, 흑륭강, 압록강의 지류가 흘러나감을 찾아 볼 수 있다. 지도상에 ‘관서·관북·해서·관동·경·호서·영남·호남’이 표시도어 있으며, 섬은 울릉도, 제주도가 耽羅로, 그리고 교동이 그려져 있다. 그 외에도 백령도 등의 섬이 島名은 표기되어 있지만 그 위치에 표시되어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즉, 본 지도는 중국을 중심으로  중국과 조선의 정치 또는 행정에 기본이 되는 정보를 간략하게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다른 지역에 비해 조선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며, 그 외의 지역은 매우 간략하게 그려져 있다. 특히 조선 아랫부분에 그려져 있는 일본의 경우 그 위치와 모양이 매우 왜곡되어 있으며. 중국의 남쪽에는 여인국, 소인국, 대인국과 같은 상상의 나라도 그려져 있다.(양윤정)

  • 평안도 (平安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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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八道 중 〈平安道〉로, 오늘날 평안도 일대의 지도이다. 지도의 전체적인 형식과 내용은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을 따르고 있으며, 산지는 하나의 연속된 산봉우리로 그리고 채색을 해 산맥의 형식으로 그리고 있으며, 道別에 따라 군현을 나타내는 채색을 달리하고 있다. 이처럼 전체적인 형식이나 내용면에 있어서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을 따르고 있는 지도들도 후대에 轉寫되면서 크게 두 계열로 나눠진다. 본 지도책과 같이 우선 정상기의 《東國地圖》의 原圖를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는 原圖 계열과 原圖의 잘못된 부분이나 부족한 부분을 부분적으로 수정하여 轉寫한 수정본 계열이다. 본 사이트의 지도인 평안도 일대 역시 두 계열의 차이점이 보이는 곳이다. 原圖 계열인 본 지도를 보면, 중강진에서 만포로 이어지는 압록강의 유로 부분이 다소 완만하게 나타나고 있다. 물론 평안도의 경우 조선 초기에 제작된 지도의 오류에 비하면 국경선이 많이 수정되고 정확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반해, 규장각 소장《八道分圖(古915.1-P173)》와 같은 수정본에 있어서는 중강진에서 만포로 이어지는 압록강의 유로 부분이 우리나라 쪽으로 깊게 만입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수정본 계열과 같은 압록강 부분의 윤곽은 19세기에 제작되는 여러 지도에서 보이는데 이들 지도의 系譜를 밝히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후의 지도들에서 정상기 原圖의 윤곽 대신에 본 지도의 윤곽을 많이 따른다는 점에서 이후 지도제작에 미친 영향은 원도 계열의 사본들보다는 훨씬 크다고 볼 수 있다. 본 지도의 모습은 규장각 소장 《八道分圖(古4709-14)》와 거의 일치한다. 그러나 두 지도 사이에도 차이점이 보이는데, 가장 큰 차이점은 압록강 이북 지역에 대한 정보이다. 본 지도의 경우 압록강 이북 지역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 그러나 《八道分圖(古4709-14)》의 경우에는 그 지역에 관한 많은 정보를 추가했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초기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 지도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압록강 이북의 지명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후기에 전사된 지도에서는 《八道分圖(古4709-14)》와 같이 계속적인 수정과 보완을 통해 압록강 이북의 지류뿐만 아니라 지명까지도 상세하게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두 지도의 차이점은 바로 섬에 대한 정보이다. 《八道分圖(古4709-14)》의 경우 황해도 앞바다에 그려진 섬은 이름이 표기되지 않은 3개의 섬을 합쳐 총 10개인것에 비해 본 지도의 경우에는 6배인 60개가 그려져 있다. 이는 이 지도를 제작한 사람이 섬에 대한 관심이 높고, 정보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양윤정)

  • 복건성(福建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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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福建省〉으로, 중국의 남동부 타이완 해협에 면하는 省으로 지금의 푸젠성(福建省)의 행정구역을 중심으로 그린 지도이다. 省都는 지도상에 적색의 사가형으로 표시되어 있는 푸저우(福州)이다. 산이 많은 지역으로 면적의 대부분이 산지와 구릉이다. 성의 서쪽 경계에 우이산맥(武夷:杉嶺)이 뻗어 있고 성내에도 이 산맥과 나란히 북동∼남서 방향으로 달리는 다이윈산(戴雲山) 등의 지루산지(地壘山地)가 많다. 해안은 굴곡이 심한 리아스식 해안이며, 해안선의 길이는 280km나 된다. 앞바다에는 지도상에도 표시되어 있듯이 둥산섬(東山島)· 진먼섬(金門島)을 비롯한 섬들이 많이 분포해 있는데, 진먼·마쭈(馬祖) 두 섬은 타이완의 영토이다. 하천은 지루산지 사이를 흐르는 짧고 작은 것이 많고 하류에는 작은 삼각주를 형성한다. 성내의 가장 큰 강은 지도상에 푸저우 바로 밑에 표시되어 있는 민장강(閩江)이며 유역면적은 성 전체의 33% 이상을 차지한다. 源流는 장시성(江西省)과의 경계를 이루는 우이(武夷)산맥에서 발원하는 젠시강(建溪)·푸툰강(富屯溪)·사시강(沙溪)이다. 그들 하천이 성 중앙부의 난핑(南平) 부근에서 합류하여 민장강이 되고, 남동류하여 푸저우를 거쳐 남중국해로 흘러든다. 난핑까지 작은 기선이 왕래하며 범선은 성경(省境) 부근까지 왕래한다. 특히 하천이 산지를 횡단하는 지대에는 경치가 뛰어난 곳이 많다. 지도와 우측 하단에는 琉球國의 일부 모습도 그려져 있다. (양윤정)

  • 뒷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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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지도(輿地圖)〈古 4709-78〉 1책 뒷표지입니다.

  • 함경도 (咸鏡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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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八道 중 〈咸鏡島〉으로, 오늘날 함경도 일대 지도이다. 지도의 전반적인 형식과 내용은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을 따르고 있으나, 큰 차이점은 정상기의 《東國地圖》 原圖의 경우  도별도의 크기를 고려하여 함경도를 北道와 南道 두 장으로 나눠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한 장에 함경도를 그리고 있다. 그러나 두만강의 유로를 비롯하여 초기 수정본 계열로 생각되는 규장각 소장 《八道分圖(古915.1-P173)》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 오히려 모습은 원도 계열에 규장각 소장 《八道分圖(古4709-14)》와 거의 유사하다. 그리고 내용면에 있어서도 《八道分圖(古915.1-P173)》는 原圖 系列의 寫本에 비해 풍부한 지리적 사상이 포함되어 있다. 山川, 峴, 峙, 嶺 등과 같은 자연적 사상은 물론이고 山城, 寺, 郡縣內의 坊里, 일부 面名, 津, 亭子 등과 같은 정상기의 原圖 系列의 寫本에서는 거의 표현되지 않고 있는 방대한 인문적 요소까지 지도상에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본 지도의 경우 方里나 面名의 정보는 생략하고 군현과 진보와 주요 驛을 중심으로 인문적 정보를 표시하였다. 해안선의 모습 및 내용이 거의 유사한 《八道分圖(古4709-14)》와 비교해 보았을 때 본 지도의 경우 많은 섬이 표시되어 있다. 《八道分圖(古4709-14)》의 경우 咸鏡南道에 3개의 섬이, 그리고 北道에는 鹿島 하나만이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본 지도의 경우 이름이 없는 無名島그 5개를 포함하여 총 47개의 섬이 표시되어 있다. 이는 이 시기에 이미 도서지방에 대한 인식이 매우 정교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양윤정)

  • 사천성(泗川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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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泗川省〉으로, 지금의 중국 남서부 양쯔강 상류에 위치한 쓰촨성(泗川省)의 행정구역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그린 지도이다. 省都는 지도에서 적색의 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는 청두(成都)이다. 양쯔강·민장강(岷江)·퉈강(沱江)·자링강(嘉陵江)의 4대 강이 성내를 흐르기 때문에 ‘四川’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하천은 모두 양쯔강 수계에 속하고 양쯔강의 본류가 우산산을 횡단하는 성의 경계에는 예로부터 험하기로 이름난 싼샤(三峽)가 나타난다. 동부분지에서는 겨울이 따뜻하고 여름에 극심한 무더위가 계속된다. 강수량은 1,000mm 내외이며 ‘촉(蜀)의 개는 해를 보면 짖는다’는 말이 있을 만큼 안개가 잦다. 그 반면 서부고원은 서늘하고 건조한 기후를 나타낸다. 그리고 쓰촨성은 동쪽의 쓰촨분지(사천분지)와 서부고원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쓰촨분지는 적색 토양으로 구성되어 있어 ‘적색분지’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분지 주위에는 해발고도 1,000∼3,000m의 다량산(大凉山)·민산(岷山)·다바산(大巴山)·우산(巫山) 등의 산지와 고원이 펼쳐진다. 省都로 표시되어 있는 청두(成都)는 전국시대부터 있어온 도시로, 춘추전국시대에는 촉의 수도였다. 진·전한 때는 蜀郡이 관할하는 청두현(成都縣)이 설치되었고, 후한 때에는 이저우(益州)의 통치도 겸하게 하였다. 삼국시대 때 유비가 촉한을 통일하고 수도를 건립한 곳이기도 하다. 삼국시대에는 촉한의 중심지로서 번영하였으며 당의 玄宗은 안사의 난 때에 이곳으로 피신하였다. 수당 시대 때는 창안(長安), 양저우(揚州), 둔황(敦煌)과 같이 4대 도시였다. 옛날부터 방직업이 발달되었고, 1928년에 성도가 설치되었다. 군사적으로도 매우 중요시되어 청대에는 쓰촨 총독 및 청두 장군을 이곳에 두었고, 중화민국 정부가 들어선 뒤 1930년에 시제를 실시하였다. 부근에는 사적이 풍부한데 그 중에서도 제갈량을 모시는 武侯祠를 비롯하여 杜甫草堂·望江樓 등이 있다. (양윤정)

  • 황해도 (黃海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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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八道 중 〈黃海道〉로, 오늘날 황해도 일대 지도이다.  지도의 전체적인 형식과 내용은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을 따르고 있다. 산지는 하나의 연속된 산봉우리로 그리고 채색을 해 산맥의 형식으로 이어 그려 정상기의 《東國地圖》와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하천의 경우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의 지도를 보면, 대부분 본류의 경우 두 줄, 지류의 경우 한 줄로 그리고 있는데 반해, 본 지도에서는 모든 하천을 두 줄로 그리면서 해안선에 차이가 보인다. 지류를 한 줄로 표현한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東國地圖》와 비교해 보면 본 지도의 해안선이 대체적으로 두 줄을 사용함으로써 지류 곡류 등의 변화를 섬세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대부분 물줄기가 완만하게 표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군현과 같은 인문적 요소를 표현함에 있어서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東國地圖》의 경우 원을 사용하고 있으나, 본 지도에서는 그 성격에 따라 차이가 다른 기호를 사용하고 있다. 군현의 경우에는 노란색의 직사각형을 사용하였고, 監營地인 海州는 붉은색으로 표시하였다. 그리고 군사 시설인 鎭堡는 붉은색의 작은 원으로 표시하고, 山城은 요철 모양이 아닌 반원을 겹으로 그리고 있다. 烽火는 촛불 모양의 기호를 사용해 표시하였다. 본 지도와 해안선의 모습이 거의 유사한 규장각 소장 《八道分圖(古4709-14)》와는 기호 사용면에서 서로 차이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섬의 경우에는 《八道分圖(古4709-14)》와 거의 비슷한 위치에 그리고 있다. 그러나 백령도의 경우에는 본 지도가 《八道分圖(古4709-14)》보다 실제와 비슷한 위치에 그려져 있다. 『大東地志』에 의하면, 百翎島는 長山串의 서쪽 바다에 위치하며 그 거리는 水路로 70里이며, 大靑島는 백령도 동남쪽 40里이다. 《八道分圖(古4709-14)》의 경우 백령도의 위치가 장산곶에서 매우 가깝게 그려져 있다. 그리고 대청도의 경우에는 《八道分圖(古4709-14)》와 본 지도 모두 백령도의 동남쪽이 아니라 거의 정남쪽에 그려져 있다. 반면에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東國地圖》의 황해도 부분을 보면, 백령도와 대청도의 위치가 제대로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島嶼에 관한 정보가 부족하고, 轉寫한 사람이 島嶼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백령도의 위치를 보면, 島嶼의 위치를 정확하게 그리지 못하고 종이의 여백에 島嶼를 맞춰 그림으로써 오류가 발생했을 가능성도 보인다.(양윤정)

  • 산동성(山東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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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山東省〉으로, 지금의 중국 화북지방에 있는 산둥성(山東省) 일대 지역의 행정구역을 나타낸 지도이다. 省都는 지도상에 적색의 정상각형으로 표시된 지난(濟南)이다. 북쪽은 보하이해(渤海), 남동쪽은 황해(黃海)에 면하고, 남쪽은 장쑤성(江蘇省)·안후이성(安徽省), 남서쪽은 허난성(河南省), 북서쪽은 허베이성(河北省)에 접하고 있다. 성의 동쪽은 라이저우만(萊州灣)과 자오저우만(膠州灣)을 연결하는 자오웨이주랑(膠濰走廊) 서쪽의 산둥반도로, 200m 전후의 구릉지대이며, 성의 서쪽은 황허강(黃河) 이북의 화베이평원의 일부를 이루는 황허강 하류부의 평원이다. 그리고 성의 중부지역은 타이산산(泰山)·루산산(魯山) 등 해발고도 400m 전후의 산지이다. 그리고 省의 동반부가 바다에 둘러싸여 있어 기후는 해양성 기후를 나타낸다. 여름에는 온화하여 칭다오(靑島) 등은 피서지로 이용되며, 겨울철에는 한류의 영향도 있어서 내륙 하천은 동결될 때가 많다. 농경지가 전체의 60%를 차지하고 노동력도 풍부하여 농업이 발달되어 있다. 省都인 지난(濟南)은 황허강(黃河)의 하류 샤오칭강(小淸河) 남안에 있다. 신석기시대 후기부터 이곳에 인류의 거주가 시작되었다고 하며 춘추전국시대 齊의 서부의 도시로 번영하였고, 한(漢)에 와서 도시 북쪽을 지수이강濟水이 흐르고 있다고 해서 지난이라 하였다. 이후 隋·唐·元·宋·明·淸 등의 시대를 통해서 번영하였다. 오늘날 시가는 톈진(天津)~푸커우(浦口)간 철도와 칭다오(靑島)∼지난(濟南)간 철도의 분기점인 역을 중심으로 선로의 남쪽에 동서로 뻗어 있다. 명승지로 내성 북부의 다밍호(大明湖)·바오투천(趵突泉)등이 있고 千佛山의 불상조각도 유명하다. (양윤정)

  • 뒷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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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지도(輿地圖)〈古 4709-78〉 2책 뒷표지입니다.

  • 산서성(山西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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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山西省〉으로, 이는 지금의 중국 산시성(山西省) 일대의 행정구역을 간략하게 그린 지도이다. 동쪽은 太行山脈과 五臺山脈, 서쪽과 남쪽은 黃河 중류의 협곡, 북쪽은 만리장성으로 둘러싸여 있어, 각각 河北省·河南省·陝西省의 각 성 및 內蒙古自治區와 접한다. 적색의 정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는 ‘太原府’는 현재 사신성의 省都로, 당나라 때에는 太原府를 설치, 河東節度使를 주재시켜 突厥의 침입에 대비하였으며, 五代 때에는 後唐·後晉·後漢 등이 이곳에서 일어났다. 현재의 타이위안시 중심부가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982년 송나라의 태종이 陽曲縣을 이곳으로 옮겨 幷州라고 한 뒤 河東路轉運使의 치소를 둔 데서 비롯한다. 또한 明나라 때는 다시 태원부로 고쳤으며, 지금까지 남아 있는 주위 12km의 성벽은 이 때 축조된 것이다. 명·청 시대 이후 산시성의 성도가 되었고, 1927년 市制가 실시되었다. 중화민국 성립 후에는 옌시산(閻錫山)이 산시 먼로주의를 제창하고 여기에 반독립정권을 세웠으며, 이와 함께 전성(全省)의 산업·경제가 급속도로 개발되었다. 스타이(石太) 철도로 허베이성(河北省)과, 퉁푸(同蒲) 철도로 네이멍구(內蒙古) 및 허난성(河南省) 방면과 연결된다. 곡물·목화·잎담배 등을 집산하고 구리그릇·제지 등의 전통공업 외에 제철·기계·화학·방적 등의 근대공업도 발달하였다. 지도 여백에 기록된 註記에 따르면, 북경까지의 거리는 一千二百五十里이며, 山西省은 3곳의 府와 18州, 그리고 76개의 縣으로 되어있다.(양윤정)

  • 성경성(盛京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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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盛京省〉으로, 성경성이란 지금의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일대의 행정구역을 간략하게 보여주는 지도이다. 랴오닝성은 중국 동북지역의 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도를 나타나 있듯이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조선과 마주하고 있는 지역이다. 지도 중앙에 표시된 松花江은 숭가리강이라고 한다. 길이 약 1,960km. 黑龍江의 최대 지류이다. 白頭山 천지에서 발원하여 북서쪽으로 흘러 지린성 북서단의 三岔河에서 남류하는 嫩江을 합친 뒤 북동쪽으로 유로를 바꾼다. 哈爾濱을 거쳐 依蘭에서 牧丹江을 합치고, 다시 佳木斯를 지나 헤이룽장성 북동단에서 본류(헤이룽강)에 합류한다. 상류부는 長白山地를 흘러내리는데, 유역에 삼림이 무성하다. ‘盛京’과 ‘寧古塔城’은 적색의 정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그 외의 官은 분홍색 직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다. 지도명 좌측에 의하면 府 4곳, 縣 5곳, 州 2곳이지만, 지도상에는 9곳이 표시되어 있다. 盛京 동남쪽에 위치한 興京은 청조(淸朝)의 발상지로서 1603년 청태조 奴兒哈赤가 이곳에 성을 축조하고 1619년 자이피얀으로 천도할 때까지 16년간의 근거지로 건국의 기초를 다진 곳으로, 지금은 토성 터와 궁전 터의 일부가 남아 있다. 그리고 盛京 동북쪽에 盛京과 같은 기호로 표시되어 있는 寧古塔城은 지금의 닝안(寧安)시로, 漢나라 이래 알려졌던 古都)로, 康熙 1년(1662년) 진수 寧古塔等處將軍을 둔 후에 개척되기 시작하였다. 淸나라 때인 1902년에 綏芬廳을 세우고, 1909년에 綏芬府로 승격하였다. 1910년에 寧安府로 개칭, 1993년 市가 된 곳이다. 또한 이곳은 1923년 김좌진이 대한독립단 회의를 개최했던 곳이다.(양윤정)

  • 운남성(雲南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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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雲南省〉으로, 중국 남서부에 위치한 윈난성(雲南省)의 행정구역을 중심으로 그린 지도이다. 이 지역은 원래 타이족의 南詔國과 大理國이 있었는데, 13세기경부터 중국 중앙정부의 지배를 받게 되고, 17세기 말 淸代에 윈난성이 설치되었다. 지도상에 省都는 적색의 사각형으로 雲南府이지만, 현재 윈남성의 省都는 雲南府 바로 좌측에 표시되어 있는 쿤밍(昆明)이다. 쿤밍 역시 본래는 타이족의 영역이었으나 원대 이후 중국 중앙정부에서 관할하게 되었고, 청국·프랑스 조약 및 윈난~베트남 철도의 개통 등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북쪽은 쓰촨성(四川省)과 시짱 자치구, 동쪽은 광시좡족(廣西壯族) 자치구와 구이저우성(貴州省), 남쪽은 베트남과 라오스, 서쪽은 미얀마와 접하고 있다. 서부를 남동쪽으로 흐르는 위안장강(沅江)을 경계로 동부는 윈구이(雲貴) 고원 서부를 이루는 해발고도 1,500∼2,000m의 뎬둥(滇東) 고원, 서부는 여러 줄기의 산맥과 그 사이를 누장강(怒江:살윈강 상류)·란찬강(瀾滄江: 메콩강 상류)· 진사강(金沙江) 등이 흐르는 협곡이 나란히 뻗어 뎬시종곡(滇西縱谷) 지대로 나뉜다. 또한 서부 등지에서는 아직도 단층작용이 계속되기 때문에 이곳은 지진 빈발지역에 속하며, 아열대지만 고도가 높아 겨울은 온난하고 여름은 서늘하여 날씨가 1년 내내 봄과 같다. 강수량도 여름을 중심으로 1,000∼2,000mm로 많은 편이다. (양윤정)

  • 절강성(浙江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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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浙江省〉으로, 중국 동부의 동중국해 연안에 위치한 저장성(浙江省)의 행정구역을 중심으로 그린 지도이다. 저장성의 省都는 지도상에 적색의 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는 항저우(杭州)로, 첸탄강(錢塘江)의 하구에 위치하고 있다 서쪽 교외에 시후호(西湖)를 끼고 있어 쑤저우(蘇州)와 함께 아름다운 고장으로 알려졌다. 7세기 수나라가 건설한 강남하(江南河:大運河의 일부)의 종점으로 도시가 열려 남송시대에는 수도가 되었으나, 임시수도라는 뜻에서 行在라고 하다가 臨安이라고 개칭하였다. 10세기 이후에는 외국선박의 출입도 많았고, 원대에는 M.폴로, 이븐 바투타 등이 이곳을 방문하여 행재의 와전인 ‘킨자이(Khinzai)', '칸자이(Khanzai)' 등의 명칭으로 유럽에 소개되었다. 지형적으로는 북부평원과 남부 구릉지대로 대별되며, 70%가 구릉성 산지에 속한다. 북부평원은 타이후호(太湖)에서 첸탄강(錢唐江) 하류에 걸친 평야와 항저우만 남안(南岸)의 닝보寧波· 사오잉(紹興)평야로 이루어지며, 저장(浙江)평야라고도 하는데 해발고도 20m 이하로 수로망이 발달하였다. 남부에는 구릉 외에 셴샤링(仙霞嶺), 후이지산(會稽山), 톈타이산(天臺山), 톈무산(天目山), 모간산(莫干山) 등의 산지가 있으며, 남단의 산들은 해발고도 1,500m를 넘는다. 항저우만 이남의 해안은 지도에서도 이를 반영한 듯 복잡하게 그려져 있는데, 리아스식해안으로 천연의 양항이 많으며, 앞바다에는 1,800여 개의 섬들이 산재한다. 특히 저우산군도(舟山群島)는 저우산섬 등 40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군도 가운데 소도 푸퉈산(普陀山)은 불교의 4대 명산의 하나로 꼽힌다. 첸탕강은 본성 최대의 하천으로 상류는 신안강(信安江)으로 갈라진다. (양윤정)

  • 직례성(直隸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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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直隸省〉으로, 이는 지금의 중국 허베이성(河北省) 일대의 행정구역을 보여주는 지도이다. 화북평야 북부에서 內蒙古 고원 남동부에 걸친 지역을 차지한다. 《서경(書經)》의 〈禹貢篇〉에 나오는 冀州에 해당하기 때문에 冀省이라고도 한다. 淸代에는 즈리성直隷省이라고 불렀고, 辛亥革命 후 1928년 허베이성이라고 고쳤으며, 공산정권 수립 후 察哈爾·熱河 두 성의 일부를 편입하였다. 북쪽에 표시된 성곽은 ‘山海關’으로, 둥베이 방면과의 연안 육상교통로의 관문이다. 楡關이라고도 하며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요지이다.  하이관성 동쪽에는 만리장성 동문성루에‘ 天下第一關’이라  씌어진 현판이 걸려 있다. 만리장성 동쪽 끝 시작지점으로 예로부터 자주 싸움터가 되어왔고, 특히 明末 淸軍의 關內 침입 때 명의 대군이 이곳을 거점으로 끝까지 저항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산하이관이란 지명은 14세기 초 명대(明代)에 성을 쌓고 山海衛를 설치하고 군대를 주둔시킨 데서 유래되었으며, 산과 바다 사이에 있는 關이라는 뜻이다. 일찍이 隋·唐代에는 臨關, 遼 金代에는 遷民縣·遷民鎭 등으로 불렸다. 隋나라 때 臨關이라 일컬었지만 현재보다 약간 서쪽에 위치하였고 현재의 위치로 옮겨진 것은 11세기 초 療나라 때이다. 역사적으로 이곳은 화베이와 화둥의 중요한 군사요지였다. 현재 京山·瀋山 두 철도의 접속지로서 교통상 요지이며, 부근에 만리장성 전설에 관한 유적들이 많다.(양윤정)

  • 하남성(河南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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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河南省〉으로, 지금의 중국 허난성(河南省) 일대 지역의 행정구역을 나타낸 지도이다.이다. 현재의 省都는 정저우(鄭州)이며, 북쪽은 허베이성(河北省), 북동쪽은 산둥성(山東省), 동쪽은 안후이성(安徽省), 남서쪽은 후베이성(湖北省), 서쪽은 산시성(陝西省), 북서쪽은 산시성(山西省)의 각 省과 접해 있는 지역이다. 지형적으로는 서부의 산지, 동부의 평원으로 나누어진다. 즉, 서부산지는 북서부의 타이항(太行)산맥, 서부의 친링계(秦嶺系)의 푸뉴(伏牛)산맥, 남부의 퉁바이(桐柏)·다볘(大別)산맥 등으로 이루어지고, 화북평원은 지도상에 黃色으로 표시된 북부의 황허강(黃河)·화이허강(淮河)에 의한 평원과, 남부의 한수이강(漢水)에 의한 난양평원(南陽平原)으로 나누어진다. 그 외에 하이허강계(海河系)가 있는데, 모두 황천(荒川)으로 예로부터 자주 수해를 일으켰기 때문에, 공산정권 성립 후 치수공사를 하여 북서부의 싼먼샤(三門峽)댐·평원부의 런민성리거(人民勝利渠)·왕라오보축홍구(王老波蓄洪區) 등이 완성되었다. 이 평원은 일찍부터 발전한 지역이며, 문자 그대로 ‘中華’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그리고 본 지도상에 적색의 정사각형으로 표시된 省都인 카이펑(開封)은 허난성 북동부의 있는 도시로, 黃河 남쪽의 대평원에 있으며 롄윈(連雲)~란저우(蘭州)간 룽하이철도(隴海哲道) 연변에 위치하는 중국 7대 고도(古都)의 하나이다. 명칭은 전국시대의 대량(大梁) 남쪽 25km 지점에 있는 카이펑읍(邑)에서 유래되었다. (양윤정)

  • 협서성(陝西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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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陝西省〉으로, 지금의 중국 산시성(陝西省) 일대 지역의 행정구역을 나타낸 지도이다. 省都는 지도상에 적색의 정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는 시안(西安)이며, 黃河 중류 유역에 있다. 시안 부근에는 주·진·한으로부터 수·당에 걸쳐 역대 국도(國都)가 자리 잡고 있었으며, 당시 중국의 문화·정치·경제의 중심지로서 번영하였다. 그리고 친링산맥이 성의 남쪽부근에 동서로 뻗어 있으며, 그 남쪽은 양쯔강(揚子江) 수계의 한수이강(漢水)의 유역이고, 그 북쪽은 황허강 유역에 속한다. 친링에서 성 남단의 다바산지(大巴山地)까지는 친바산지(秦巴山地)로 불리는데, 두 산지 사이에 한수이강에 연하여 비옥한 한중(漢中)·안캉(安康)의 양 분지가 있다. 지도의 오른쪽(동쪽)과 위부분(북서쪽)에 그려진 黃江은 황허강으로 강 이름처럼 黃色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처럼 黃色으로 색을 칠하는 이유는 황허강이 본성과 山西省 사이를 깊은 협곡을 만들며 남류하고, 본성에서 흘러나오는 우딩강(無定河)·옌허강(延河)·뤄허강(洛河)·웨이허강을 합류시키는데, 이들 지류로부터 대량의 진흙이 유입되어 흙탕물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물과 흙의 유출을 방지하기 위하여 수토보지공사가 넓은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황허강 중·하류는 중국문명의 요람지로서 이름 높다. 유역에는 산시성 란톈현(藍田縣)에서 발견된 란톈원인(藍田原人)의 유적을 비롯한 彩陶 ·黑陶期와 은나라의 유물이 수없이 발견되었고 그 밖에 역대 왕조의 사적도 무수히 남아 있다. (양윤정)

  • 호광성(湖廣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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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湖廣省〉으로, 지금의 중국 중앙부에 위치한 후베이성(湖北省) 일대의 행정구역을 간략하게 나타낸 지도이다. 후베이성은 양쯔강(揚子江) 중류 유역에 있다. 원래 후난성(湖南省)과 합해서 후광성(湖廣省)이라고 불렸던 곳이나, 1667년에 둥티호(洞庭湖)를 경계로 남북으로 나뉜 것이 기원이다. 일찍이 춘추전국시대에는 초나라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楚省이라고도 불렸고, 초나라의 鄂王이 지금의 武漢에 도읍을 둔 것에 연유하여 鄂省이라고도 불린다. 성 서쪽에는 어시(鄂西) 산지로 총칭되는 우당산(武當山)·우산산(巫山) 등 1,000m급의 산지가 있으며, 양쯔강이 우산산을 가로지르는 곳에 싼샤(三峽)의 협곡이 있다. 동쪽 성계에는 다볘산(大別山) 등의 구릉성 산지가 있으나, 중앙에는 후광(湖廣)평야·장한(江漢)평야 등으로 불리는 저평한 대평원이 있다. 남쪽 성계 부근을 횡단하여 양쯔강이 관류하며, 그 최대 지류 한수이강(漢水)은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흘러 우한시에서 본류에 흘러든다. 평원에는 1만을 넘는 호소(湖沼)가 산재하고, 양쯔강과 한수이강 사이에는 무수한 수로가 종횡으로 서로 통한다. 양쯔강이 심하게 곡류하여 흐르는 沙市에서 웨양(岳陽)까지의 사이는 진장강荊江이라 불리는데, 과거에는 심한 수해지구로 알려져 있었다. 이 지구의 홍수를 막기 위하여 양쯔강 남안에 진장펑홍荊江分洪이라는 遊水池를 만들었다. 지도상에 省都로 표시되어 있는 우한시(武昌府)의 옛 이름은 江夏 또는 鄂渚이다. 일찍이 우한 三鎭의 하나로 알려졌으나, 1950년 한양(漢陽)·한커우(漢口)와 합병해서 우한시가 되었다. 대안의 한양과 함께 三國時代에는 오나라의 손권이 점거했던 이름난 고을이다. 양쯔강(揚子江)과 한수이강(漢水)이 합류하는 우안에 위치하며, 강안에 솟아 있는 서산산(蛇山)이 대안의 구이산산(龜山)과 마주하여 강을 건너는 데 적합한 지점을 이루었기 때문에 예로부터 쟁탈지점이 되어 왔다. 1911년 신해혁명이 발발했던 곳이기도 하다.(양윤정)

  • 뒷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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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지도(輿地圖)〈古 4709-78〉 3책 뒷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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