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도古地圖
규장각 소장 220여종 6,000매에 달하는 고지도를
유형별, 지역별로 분류하여 한 눈에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고지도

關東地圖 관동지도

  • 편저자 : [作者未詳]
  • 청구기호 : 古4709-35-v.1-2
  • 간행연도 : [正祖(1776) 以前]
  • 책권수 : 帖裝 2冊, 彩色圖
  • 판본사항 : 筆寫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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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동지도(關東地圖)〈古 4709-35〉 1책 앞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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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동지도(關東地圖)〈古 4709-35〉 2책 앞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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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동지도(關東地圖)〈古 4709-35〉 1책 뒷표지입니다.

  • 뒷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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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동지도(關東地圖)〈古 4709-35〉 2책 뒷표지입니다.

  • ▶강원도
  • 강원도 (江原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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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지금의 강원도 일대를 그린 지도이다. 지도의 전체적 윤곽은 본 지도책의 다른 지도들과 마찬가지로 《東覽圖》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산지 표현에 있어 《東覽圖》 유형의 지도는 진산을 중심으로 주요 산만을 독립적으로 그렸으나, 본 사이트의 지도상에 나타나는 산지는 정상기의 《東國地圖》의 유형 지도들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연속된 산봉우리를 그려 하나의 산맥 형식으로 이어 그렸다. 그리고 하천 역시 《東覽圖》 유형의 지도와 비교해 보다 상세하게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군현의 위치 역시 수정되고 정확하게 표시되어 있다. 즉, 본 지도책은 『新增東國輿地勝覽』의 내용을 보완하는 의미의 附圖로서 매우 간략하게 제작된 《東覽圖》와 하나의 독립된 지도로 정확함까지 보여주는 정상기의 《東國地圖》 사이에 제작된 지도로, 두 지도의 특징이 부분적으로 나타나 있다. 이 형태의 지도는 규장각 소장 《地圖(古4709-92)》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전체적 윤곽 및 해안선을 비롯하여, 산지와 하천의 모습까지 본 지도와 거의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지도의 표현방법과 내용에 있어서는 차이점을 보인다. 금강산 부분을 보면 본 지도와 달리 《地圖(古4709-92)》에서는 다른 산에 비해 매우 두드러지게 표현하여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地圖(古4709-92)》에서는 동해안에 울릉도와 우산도만이 그려져 있으나 본 지도에서는 20개의 島嶼가 그려져 있다. 이는 본 지도책을 제작한 사람이 섬에 대한 관심이 높고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음을 짐작 할 수 있다. 그런데 여타의 지도책에서는 보기 힘든 동해안에 20개의 섬을 그리면서 《地圖(古4709-92)》를 비롯한 대부분의 지도책에 그려진 울릉도와 우산도가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그러나 본 지도책 1책에 수록된 조선전도에는 그려진 것으로 보아 제작자의 정보 부족에 의해 생략된 것이 아니라, 실수에 의해 생략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강원도 지도의 경우 해안을 따라 그 모습만으로도 아름다운 관동팔경이 해당지역에 표시되어 있어서, 당시에도 이곳의 명성을 짐작할 수 있다.(양윤정)

  • 강원도 주기 (江原道 註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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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地誌는 강원도에 관한 간략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감영소재지가 원성(原城, 즉 原州)이며, 서울까지의 거리는 280里이다. 동쪽은 바다와 접해 있으며, 동쪽은 경기도와 접해있다. 남북 접경지역과 경기도의 크기에 대해서는 ‘南抵, 北底, 南北’이라는 항목만 적혀있고 내용이 생략되어 있다. 강원도의 지리적 위치와 함께 기록되어 있는 관원에 대한 내용 역시 군현의 位階 항목만을 나열했다. 하단에는 강원도의 인구와 토지 면적, 그리고 군사 정보가 상단에 비하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군사 정보의 경우 山城, 烽臺 등의 지리적 정보는 생략되어 있다. 조선시대 민간에서 유행했던 목판본 지도책에 地誌가 수록된 경우, 대부분 地誌의 내용은 인구, 토지 면적, 진보와 산성, 고적, 그리고 각 지역의 연혁이 수록되어 있는데 반해, 본 지도책의 地誌 부분은 각 도의 연혁과 지리적 부분이 거의 생략되어 있으며, 각 군현에 대한 부분도 생략되어 있다. 따라서 본 地誌는 일반적인 지리지를 옮긴 것이 아니라, 행정과 군사라는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제작한 것으로 생각된다.(양윤정)

  • ▶경기도
  • 경기도 (京畿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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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지금의 경기도 일대를 그린 지도이다. 지도의 전체적 윤곽은 '東覽圖'형 지도와 유사와 유사하나, 산지 표현에 있어 주요 산을 독립적으로 표현한 '東覽圖'형 지도와 달리 본 지도는 정상기의 《東國地圖》의 유형의 지도에 표현된 산지와 비슷하게 연속된 산봉우리를 그리고 채색을 해 산맥의 형식으로 이어 그렸다. 그리고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地誌를 보완하기 위해 지역의 개략적인 모습만을 보여주는 정도로 그려졌던 '東覽圖'형 지도와 달리, 본 지도의 경우 地誌가 첨부되어 있으면서도 하나의 독립된 지도로 사용될 수 있을 정도의 정보를 지도상에 표시하고 있다. 본 지도와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규장각 소장 《地圖(古4709-92)》와 거의 유사한 형태이다. 전체적인 윤곽 모습은 두 지도가 거의 일치하며, 산지와 하천의 모습 또한 거의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정보의 표현 방법에 있어서는 몇 가지 차이점을 보이고 있는데, 우선 수도 서울의 경우 《地圖(古4709-92)》에서는 붉은 색의 테두리 원에 ‘京’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며, 원 안은 경기도의 다른 군현과 마찬가지고 황색이 칠해져 있다. 그러나 본 사이트의 지도에서는 원 자체가 붉은 색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京都’라고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鎭堡의 경우 《地圖(古4709-92)》에서는 郡縣과 색을 달리한 직사각형으로 표시하고 있으나, 본 지도에서는 기호 표시 없이 지명만을 표기하였다. 도로를 표현함에 있어서도  《地圖(古4709-92)》에서는 각 군현을 적색 선으로 연결하여 표시하고 있으나, 본 지도에서는 직사각형에 驛站을 표시하고 있다. 두 지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섬에 대한 정보이다.  《地圖(古4709-92)》의 경우 강화도와 교동을 포함하여 총 11개의 섬이 표시되어 있는 반면에, 본 지도에는  《地圖(古4709-92)》의 3배가 넘는 36개의 섬이 표시되어 있다. 이는 이 시기에 도서 지방에 대한 인식이 매우 정교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양윤정)

  • 경기도 주기 (京畿道 註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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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地誌는 경기도와 관련된 것으로, 첫 부분은 경기도의 지리적 위치가 기록되어 있다. 즉, 경기도는 동쪽으로 강원도와 접하고 있고 서쪽은 大海, 남쪽은 충청도와 경계를 이루고 있음이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경기도의 총 37官 관원에 대한 정보가 기록되어 있으며, 군사 정보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地誌의 기본적인 지형 및 산천에 관한 부분은 생략되어 있다. 이는 이 지도의 제작 목적이 불필요한 지리적 요소를 제외하고 국가의 군사·행정 체제를 바탕으로 했음을 알 수 있다.(양윤정)

  • ▶경상도
  • 경상도 (慶尙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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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지금의 경상도 일대를 그린 지도이다. 지도의 전체적인 윤곽은 『新增東國輿地勝覽』의 내용을 보완하는 의미의 附圖로서 제작된 《東覽圖》에 수록되어 있는 각 道別圖와 유사하다. 그러나 산지 표현 방식에 있어서는 《東覽圖》 유형의 독립된 산지 표현 방식이 아닌 정상기의 《東國地圖》의 유형의 지도에 표현된 산지와 비슷하게 산을 연속하여 그림으로써 하나로 연결된 산맥을 연상케 하고 있다. 또한 본 지도는 지도의 제작 목적 자체에서부터 《東覽圖》와는 차이가 있다. 즉, 《東覽圖》는 많은 정보가 수록되어 있는 地誌를 보완하는 역할로, 지도에서는 단지 그 지역의 개략적인 모습과 기본적인 정보만을 보여주고 있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地圖자체만으로는 소략한 지도이나, 《東覽圖》의 경우 지리지에 수록된 地圖로서 군현 및 주요 산지의 간략한 표시로 필요한 부분의 위치 파악에 효율적으로 제작된 지도로 그 역할에 충실하여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본 지도의 경우 《東覽圖》와 같이 地誌를 첨부하고 있으나 《東覽圖》와는 달리 하나의 독립된 지도로 편찬되어 간행된 지도책이다. 따라서 《東覽圖》 유형의 지도책에서는 생략되었던 산, 하천, 池 등의 자연적 정보와 山城, 鎭堡, 臺와 같은 지리적 정보가 지도상에 표시되어 있다. 또한 《東覽圖》 유형의 지도에서 생략되었던 섬들이 표시되어 있다. 섬에 관한 정보에 있어서는 본 지도와 비슷한 시기에 제작되었고 지도의 전체적 형식과 내용까지 유사한 규장각 소장 《地圖(古4709-92)》와 비교해 보아도 많은 정보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이 지도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짐과 동시에 많은 정보를 수집한 결과가 지도상에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본 지도책에서 다른 도와는 달리 〈경상도〉의 지도에는 각 군현을 잇는 도로가 적색 선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는 섬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이 시기에 도로 이용이 증가하고, 도로에 대한 정보의 필요성이 요구되던 시대적 변화상을 지도상에 반연한 것으로 생각된다.(양윤정)

  • 경상도 주기 (慶尙道 註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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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地誌는 경상도에 관한 것으로, ‘경상도의 감영소재지는 대구이며 서울까지의 거리가 670里’임이 地誌 첫 부분에 기록되어 있다. 지리적 위치 및 크기는 서쪽으로 전라도 운봉까지 330리, 동쪽으로 560리, 남쪽으로는 大海 330리, 그리고 북쪽으로 강원도와 접해있어 남북의 길이가 740리에 이른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리적 위치의 좌측으로 관원에 대한 정보가 기록되어 있는데, 兵使와 水使의 군현명만이 기록되어 있을 뿐, 각 군현에 관한 일반적인 地誌 내용은 생략되어 있다. 하단에는 인구와 토지 면적, 그리고 군사적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 군사수의 경우 京案付軍摠과 道內軍摠으로 구분하여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道의 地誌에서는 항목만 적혀있던 ‘山城·烽臺·嶺隘’ 부분이 본 사이트의 地誌에서는 해당하는 곳의 지명까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山城五處 烽臺一百七處 嶺隘四處’라고 이에 해당하는 장소의 수가 기록되어 있다.(양윤정)

  • ▶기타
  • 서북피아양계지도 (西北彼我兩界之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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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현재의 북한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의 접경지대까지를 포함한 그 일대를 그린 지도이다. 다른 도별도의 경우 《東覽圖》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본 지도의 경우 《東覽圖》 유형의 지도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지도이다. 그리고 본 지도는 《東覽圖》 유형의 지도는 물론이고 조선시대 유행했던 대부분의 지도책에서는 보기 드문 지도로, 함경도의 두만강 이북 지역에 관한 정보를 자세히 그리고 있다. 본 지도와 같은 유형의 지도는 규장각 소장 《地圖(古4709-92)》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두 지도의 경우 수록되어 있는 지도와 산천 모습, 지리적 정보뿐만 아니라 여백에 적힌 주기까지 동일하다. 이는 같은 저본을 근거로 지도가 제작되었으며, 이는 17세기 후반부터 조선과 청나라와의 사이에 국경문제가 대두되면서, 오지였던 압록강, 두만강 유역에 대한 관심이 커졌으며, 지도상에 당시의 관심 지역을 그려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한 것으로 생각된다. 지도상에 표현된 산지와 하천은 매우 상세히 그려져 있으며, 지도 여백에는 황룡강과 같이 주요 河川에 관한 정보, 또는 池의 크기 등과 같은 註記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와 경계를 이루는 지역을 보면, ‘朝鮮界 ’라 표기되어 있으며, 토문강, 압록강, 白頭山에 대한 정보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는 함경도 이북 지역인 동시에 청나라와의 접경 지역을 그린 것으로 일종의 관방지도라고 볼 수 있다. (양윤정)

  • 조선전도 (朝鮮全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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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조선 전기형의 채색필사본 朝鮮全圖이다. 북부지방이 매우 압축되어 있으며, 압록강 하구에서 두만강 하구까지의 동서간의 길이와 남부 지방의 동서간의 길이가 유사하여 우리나라의 모양이 남북으로 긴 장방향이 되었다. 이는 조선시대에 유행했던 《東覽圖》 유형의 지도책에 대부분 수록되어 있는 全圖의 모습으로, 이는 당시의 변경지역에 대한 인식이 상대적으로 낮았음을 알 수 있다. 또는 변경지역에 대한 인식의 문제에 앞서서 과거부터 전해져온 조선전도의 모습을 그대로 전사했을 가능성도 크며, 지도책에 수록된 지도이므로 지도책에 맞춰 필요한 정보 위주의 지도를 그리면서 발생한 오류일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내용면에 있어서는 큰 차이점을 보인다. 《東覽圖》 유형의 지도책에 수록된 전도의 경우, 규장각 소장  《朝鮮地圖(古4709-32)》에 실려 있는 〈동국팔도대총도〉와 같이 우리나라의 鎭山과 주요 하천, 道名, 주요 섬만을 간략하게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전국의 郡縣을 각 도별로 색을 달리하여 표시하고 있으며, 군사적 요충지인 鎭堡까지 표시되어 있다. 또한 《朝鮮地圖(古4709-32)》에 비해 섬에 대한 정보가 풍부해졌다. 그리고 대부분의 지도에서는 對馬島만을 표시하고 있으나, 본 지도에서는 對馬島 우측으로 日本까지 표시하고 있다. 비록 정확한 모습은 아니지만 대략적인 위치를 표시한 것으로 보아 日本에 대한 관심이 지도상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가장 큰 차이점은 산맥을 표현한 방법으로 대부분의 《東覽圖》 유형의 조선전도에서는 주요 산을 독립적으로 그리고 있는 반면에, 본 지도에서는 연속된 산봉우리를 그리고 채색을 해 산맥의 형식으로 이어 그리고 있다.(양윤정)

  • 팔도총목 (八道摠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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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地誌는 〈八道摠目〉으로, 전국의 총 인구수와 토지 면적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군사정보 및 창고에 관한 정보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조선 후기에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던 地誌인『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군현별로 건치연혁, 군명, 성씨, 풍속, 형승, 산천, 토산, 봉수, 누정, 학교, 역원, 불우, 사묘, 능묘, 고적, 명환, 인물, 제영 등이 기록되어 있어서 백과사전식 서적이었다. 그러나 본 지도책에 수록된 地誌 부분은 성씨, 풍속, 고적, 명환, 인물 등의 역사·문화적 내용을 제외하고 인구, 토지, 관원, 및 군사시설 등에 한정되어 있다.(양윤정)

  • ▶전라도
  • 전라도 (全羅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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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지금의 전라도 일대를 그린 지도이다. 지도의 전체적 모습은 조선전기 《東覽圖》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東覽圖》는 산지를 독립된 산을 위주로 그리고 있는데 반해, 본 지도에서는 산을 연맥의 형식으로 이어 그렸다. 감영소재지인 전주를 직사각형의 다른 군현과 구별하여 붉은 원으로 표시하고, 지명 옆에 ‘監營’이라고 표기하였다. 병영과 수영의 경우에는 파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하고, 진보는 기호를 사용하지 않고 지명만을 표기하였다. 전체적 모습은 《東覽圖》 유형을 따르고 있으나, 부분적으로는 차이가 보인다. 《東覽圖》 유형의 지도는 주요 하천과 진산을 중심으로 군현의 대략적인 위치만을 표시한 것으로 해안선의 모습을 매우 단순하게 그리고 있으며, 생략된 부분도 많다. 그러나 필사본인 본 지도에서는 이런 부분을 수정·보완하며 그린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해안선 모습 또한 《東覽圖》 유형의 지도와는 상당한 차이가 보이며,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규장각 소장 《地圖(古4709-92)》와는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두 지도의 경우에도 강진의 아랫부분을 포함해 남해안 일부분에서 차이가 보인다. 또한 섬의 위치에 있어서 진도가 본 지도의 경우 우수영 남쪽에 그려져 있으나, 《地圖(古4709-92)》의 경우에는 해남 남쪽에 그려져 있는데, 이는 본 지도의 위치가 현재와 더 가까우며, 《地圖(古4709-92)》의 진도 위치에는 본 지도와 같이 완도가 그려져야 한다. 그리고 《地圖(古4709-92)》에는 제주도를 제외하고 61개의 섬이 그려져 있는 반면에, 본 지도에는 3배에 가까운 195개가 그려져 있다. 섬의 위치를 비롯한 섬에 관한 정보, 그리고 대축척의 군현지도가 아닌 도별도의 지도책임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이 많은 섬을 그렸다는 것은 섬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높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동시에 이는 이 시기에 도서 지방에 대한 인식이 매우 정교해졌으며, 도서 지방을 국토의 일부분으로 인식하고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양윤정)

  • 전라도 주기 (全羅道 註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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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地誌는 전라도에 관한 것으로, 상단에는 전라도의 지리적 위치와 전라도에 소속된 총 57관원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다. 그 내용은 매우 간략하게 감영 소재지와 각 군현의 位階 정도만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제주도의 경우, 마지막 부분에 따로 분리하여 기록하고 있으며, 전라도에서의 거리(水路)와 제주도의 크기가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山城·烽臺嶺隘는 항목만 적혀 있다. 그 하단에는 인구와 토지 면적, 그리고 군사와 관련된 정보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제주도의 경우 따로 구분하여 기록하였다. 본 사이트의 地誌는 그 내용이 대부분 행정과 군사에 관련된 것으로, 지도의 제작 목적이 地誌에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新增東國輿地勝覽』과 같은 地誌의 경우, 일반적으로 각 도려의 개요와 관원을 기록하고, 군현별로 건치연혁, 군명, 성씨, 풍속, 형승, 산천, 토산, 봉수, 누정, 학교, 역원, 불우, 사묘, 능묘, 고적, 명환, 인물, 제영 등의 인문·역사·사회·문화·군사·자연 부분의 요소가 종합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본 지도의 경우에도 간략하게 산천·군현·진보를 중심으로 표시하고, 地誌 역시 그와 관련된 정보만을 선택하여 기록하고 있다.(양윤정)

  • ▶충청도
  • 충청도 (忠淸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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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지금의 충청도 일대를 그린 지도이다. 지도의 전체적 윤곽은 '東覽圖'형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산지 표현에 있어 주요 산을 독립적으로 표현한 '東覽圖'형 지도와 달리 본 지도는 정상기의 《東國地圖》의 유형의 지도에 표현된 산지와 비슷하게 연속된 산봉우리를 그리고 채색을 해 산맥의 형식으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전체적 윤곽 및 하계의 모습이 ‘東覽圖’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본 지도와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東覽圖》 유형의 규장각 소장 《地圖(古4709-92)》와 비교해 보면, 그 모습에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본 지도에서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면적이 좁은 충청도를 다른 지도와 같은 종이 크기에 확대하여 그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지도의 충청도는 《地圖(古4709-92)》에 비해  남북의 길이가 두 배 가까이 길어졌으며, 유로의 모습도 《地圖(古4709-92)》에 비해 완만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공주와 청주의 위치 역시 《地圖(古4709-92)》에서는 남북의 차가 거의 없이 나란히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에서는 상대적으로 청주가 공주의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해안선 역시 두 지도가 서로 다르게 그려져 있다. 《地圖(古4709-92)》에서는 水營의 위치가 내륙 안쪽으로 깊게 들어가 있지만, 본 지도에서는 태안반도와 비슷하게 이 부분이 돌출되어 남쪽의 비인과 비슷한 선상에 그려져 있다. 〈충청도〉 지도의 경우, 본 사이트의 지도 모습은 규장각 소장 《朝鮮地圖(古4709-32)》와 같이 조선시대에 유행하던 목판본 지도책에 수록되어 있는 충청도의 모습과 매우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본 지도의 경우 목판본 지도책에서는 표현하기 힘든 많은 섬이 그려져 있다. 섬에 대한 정보가 많은 반면에, 대부분의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는 태안반도 부근의 안면도가 그려져 있지 않다.(양윤정)

  • 충청도 주기 (忠淸道 註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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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地誌는 충청도에 관한 것으로, 충청도의 지리적 위치, 관원, 그리고 군사적 정보 및 인구, 토지 면적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관원에 대한 내용은 극히 간략하게 位階만을 정리하고 있을 뿐, 郡縣에 대한 정보는 생략되어 있다. 그러나 인구, 토지 면적, 그리고 군사와 관련된 부분은 매우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군사 정보에 있어서, 군사의 總數는 상세히 기록되어 있지만, ‘山城·烽臺·嶺隘’는 항목만 적혀 있을 뿐 그 내용이 생략되어 있다. 이처럼 地誌에 생략된 부분, 즉 각 군현의 품계, 산성 등의 정보는 지도상에 기호를 사용하여 표시하고 있으므로 지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지도상에 표시하기 힘든 부분을 地誌로 보완하고 있으며, 지도상에 정보가 더 효율적인 경우에는 地誌에 그 부분을 간략하게 기록함으로써 지도와 地誌가 서로 보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양윤정)

  • ▶평안도
  • 평안도 (平安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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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지금의 평안도 일대를 그린 지도이다. 지도의 전체적 모습은 《東覽圖》의 양식을 따라 그리고 있으나, 《東覽圖》는 산지를 독립된 산을 위주로 그리고 있는데 반해, 본 지도에서는 산을 연맥의 형식으로 이어 그렸다.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압록강 부분은 《東覽圖》 유형과 비슷하게 왜곡되어 ‘창성-벽동-철원’이 거의 일직선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그 일대에 설치된 鎭堡에 관한 정보는 자세히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의주에서 山海關에 이르는 곳의 遼東邊墻의 일부분이 그려져 있다. 요동변장은 산해관과 압록강 사이의 장성의 총칭이다. 장성을 따라 설치한 九變 중의 하나인 遼東鎭이 이 구간의 방비를 맡았다. 원래 요동변장은 명대 兀良哈 몽고와 여진의 각부를 방어하기 위해 만든 군사 시설로, 장성을 따라 堡를 만들고, 각 보마다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였다. 또한 청대에 쌓은 柳條邊도 일부 그려져 있다. 처음에는 유조변에 설치한 邊門은 21개소였는데, 그 후 한 개가 줄어 20개소로 되었다. 본 지도의 한반도 윤곽은 매우 왜곡되어 있으나, 17세기 후반부터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국경문제가 대두되면서 압록강 이북지역에 대한 부분이 지도 제작에 있어서 생략되곤 했었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이 지역에 대한 정보를 상세히 그렸으며, 이는 오지였던 압록강 이북 지역에 대한 관심이 커졌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지도상에 평안도 주변에 그려진 島嶼 정보를 통해 섬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양윤정)

  • 평안도 (平安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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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평안도 일대를 그린 지도로, 본 지도책에는 평안도 지도가 2장 수록되어 있다. 지도의 전체적 모습은 앞장에 수록된 〈평안도〉 지도와 마찬가지로 《東覽圖》의 양식을 따라 그리고 있다. 산지 표현에 있어서는 《東覽圖》 형식의 독립된 산 표현이 아니라,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에서 볼 수 있는 형식인 산을 겹쳐 하나의 산줄기로 이어 그렸다. 앞장의 지도와 전체적 모습이 비슷하기는 하지만, 이는 압록강이 거의 수평으로 흐르는 듯한 모습의 한반도 윤곽 때문이며 사실 많은 차이가 있다. 우선 압록강의 모습도 앞장의 지도에서는 유로의 굴곡이 거의 없이 위원까지 그려져 있으나, 본 지도에서는 벽동 좌측에서는 우리나라 쪽으로 살짝 만입되어 있고 반면 이산 부분에서는 중국쪽으로 휘어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위원 부분 역시 차이가 보인다. 이와 같은 차이점은 앞장의 지도와 마찬가지로 평안도 부분이 상하로 압축되어 그려지고 있으나, 본 지도의 경우 실제 모습을 반영하기 위해 부분적으로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압록강 유로뿐만이 아니라 평안도의 해안선 모습에서도 짐작 할 수 있다. 앞장의 경우 해안선의 모습을 단순하게 그리고 있으나, 본 지도에서는 보다 실제와 비슷하게 그리고 있다. 또한 함종, 삼화 부분의 경우에는 앞장의 지도의 경우 지도가 상하로 압축되면서 그 모습이 왜곡되고 있으나, 본 지도에서는 이를 수정하여 그리고 있다. 따라서 이 부분의 경우 해안선의 모습이 《東覽圖》 유형의 지도 보다는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의 지도와 더 유사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오지였던 압록강 이북 지역에 대한 정보 역시 본 지도가 앞장의 지도에 비해 상세하다. 이 지명들은 규장각 소장『조선지도』를 비롯하여 같은 계통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의 『해동여지도』, 大阪府立圖書館 소장의 『조선도』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압록강 건너편에 적혀 있는 지명은 적의 침입이 예상되는 만주쪽 지명을 의미한다. 압록강은 만주와 경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북쪽의 최전방 역할을 하고 있다. 본 지도 역시 앞장의 지도와 마찬가지로 섬에 대한 정보가 풍부한 것으로 보아 관심이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앞장의 지도와는 섬의 위치, 크기, 그리고 이름에 있어서 차이가 보인다. 본 지도에서 산지 표현이 있어 다른 섬에 비해 좀 크게 그려진 新島는 1807년(순조 2) 미곶진이 옮겨져 진이 설치된 곳이다. 그리고 미곶진에는 종3품의 첨사가 파견되어 기후가 좋을 때에는 신도에서, 나쁠 경우에는 미곶진에서 방어를 담당하였다. 압록강 하구의 모습도 앞장의 지도에서는 압축되어 그 사이 섬을 거의 확인할 수 없지만, 본 지도에서는 섬의 이름까지 표기하고 있다. 이들 섬은 보다 상류의 압록강에서 홍수 때 운반되어 온 수많은 토사가 하구 부분에 퇴적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양윤정)

  • 평안도 주기 (平安道 註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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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地誌는 평안도에 관한 것으로, 첫 부분은 평안도의 지리적 위치가 기록되어 있다. 감영소재지는 평양이며, 서울까지의 거리는 항목만 있고 내용이 생략되어 있다. 그리고 동쪽으로 함경도와 접하고 있고 서쪽은 大海, 남쪽은 황해도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중국과 경계를 이루는 있는 북쪽은 ‘野人界’라고 적혀있다. 평안도의 군현은 청천강을 기준으로 남쪽에 33官, 북쪽에 19官이 있으며, 본 사이트의 지지 부분에는 각 군현의 지리적 내용은 생략되고 官貟의 숫자만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군사 정보 역시 山城과 烽臺, ·嶺隘의 지리적 내용은 생략하고 병력에 관한 내용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본 사이트의 地誌는 기본적으로 지형 및 산천, 문화 및 역사에 관한 부분은 생략되어 있다. 즉, 본 지지는 일반 지리지를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군사와 행정이라는 특정 부분만을 선택하였고, 이 지도책 또한 그와 같은 목적으로 제작되었음을 짐작 할 수 있다. (양윤정)

  • ▶함경도
  • 함경도 (咸鏡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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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현재의 북한 행정구역상 함경도와 량강도에 해당하는 일대를 그린 지도이다. 전체적인 모습은 《東覽圖》의 양식을 따라 그리고 있다. 그러나 간략하게 산천의 모습을 그려 군현의 위치만을 표시했던 《東覽圖》 유형의 지도에서는 지리지를 보완하는 의미에서 제작되었기 때문에 지도상에 축척의 의미는 거의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八道 가운데 면적이 상대적으로 가장 큰 함경도를 지도책 크기에 맞춰 그리고 위해 함경도의 서쪽 지역을 지도의 윅쪽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은 지도를 제작하면서 축척에 대해 제작자가 고민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전제적인 형식이 《東覽圖》 유형의 지도와 유사 할뿐, 두만강 부분이 상하로 압축되어 그려졌던 《東覽圖》 유형의 지도와는 그 윤곽의 차이가 크다. 그리고 산지 표현에 있어서도 東覽圖》 형식의 독립된 산 표현이 아니라,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에서 볼 수 있는 형식인 산을 겹쳐 하나의 산줄기로 이어 그렸다. 백두산은 다른 산에 비해 웅장하게 그리고 있으며, 이 지도의 제작 하한선을 알 수 있는 定界碑가 그려져 있다. 이는 평안도 지도와 더불어 중국과의 국경문제가 지도상에 반영된 것으로 짐작된다. 지도상에 각 군현은 물론이고 진보까지 연결된 적색 선은 도로망을 표시한 것으로 도로에 대한 정보의 필요성이 요구되던 시대적 변화상을 지도상에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다른 도와 마찬가지로 섬에 대한 정보가 매우 풍부하다. 이는 이 시기에 도서 지방에 대한 인식이 매우 정교해졌으며, 도서 지방을 국토의 일부분으로 인식하고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양윤정)

  • 함경도 (주기 (咸鏡道 註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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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地誌는 함경도에 관함 것으로, 다른 도와 마찬가지로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감영소재지가 咸興이며, 서울까지의 거리는 870里이다. 지리적 위치를 알 수 있는 항목(地方東低, 西低, 北低, 南低)이 있으나, 북쪽만 기록되어 있고 해당 내용이 생략되어 있다. 북쪽의 경우 ‘慶興一千三百二十里’라고 적혀 있는데 거리는 서울까지의 거리를 의미한다. 그리고 地誌상에 각 군현의 관한 내용은 군현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는 관원의 位階에 따른 분류만이 되어 있다. 그리고 각 분류 역시 간략하게 그 숫자만이 기록되어 있을 뿐, 군현에 대한 내용은 생략되어 있다. 대부분의 지지의 경우 각 군현의 위치 및 크기, 그리고 연혁 등이 기록되어 있는데, 본 지지의 경우 문화, 역사, 자연과 관계된 지리적 내용은 생략되어 있다. 대신에 인구와 토지 면적, 그리고 병력에 대해서는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본 지지와 지도는 행정과 군사라는 특정한 목적에 의해 제작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군사와 관련된 부분의 경우에도 山城과 烽臺, ·嶺隘의 위치와 같은 지리적 부분은 생략되어 있다. (양윤정)

  • ▶황해도
  • 황해도 (黃海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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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지금의 황해도 일대를 그린 지도이다. 지도의 전체적 모습은 《東覽圖》의 양식을 따라 그리고 있다. 그러나 《東覽圖》는 산지를 독립된 산을 위주로 그리고 있는데 반해, 본 지도에서는 산을 연맥의 형식으로 이어 그렸다. 감영소재지인 海州를 직사각형의 다른 군현과 구별하여 노란색 원으로 표시하고, 지명 우측에 ‘監營’이라고 표기하였다. 兵營 소재지인 黃州는 파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하고 지명 우측에 ‘兵營’을 병기하고 있다. 그리고 종3품의 僉使가 파견된 吾叉鎭 등의 鎭堡는 특별한 기호를 사용하지 않고 지명만 표기하고 있다. 所江行營은 원래 종3품의 水軍僉使가 파견된 소강진이었는데, 숙종 45년(1719)에 옹진도호부사가 황해도 수군절도사를 겸하게 되면서 行營으로 승격된 곳이지만, 본 지도에는 ‘所江’으로 옹진 좌측에 표시되어 있다.  오차진 좌측에 바다 쪽으로 길게 돌출된 지역은 일반인들에게 ‘장산곶매’라는 지명으로 더 익숙한 곳이다. 육지가 바다 쪽으로 쑥 나가 있어 밀물과 썰물 때 물살이 빠르기로 유명하며, 조운선을 비롯한 배의 운항에서 위험한 지역 중의 하나이다. 본 지도의 경우, 이 시기에 제작된 여타의 지도책에 비해 섬에 대한 정보가 풍부하다. 본 지도와 제작시기 및 전체적 모습이 유사한 규장각 소장 《地圖(古4709-92)》와 비교해 보았을 때, 《地圖(古4709-92)》에는 황해도 앞바다에 5개의 섬만이 표시되어 있으나, 본 지도에는 풍천 앞바다의 7개를 포함헤 총 26개의 섬이 표시되어 있다. 섬의 위치는 두 지도가 어느 정도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地圖(古4709-92)》에는 백령도가 장산곶 남쪽에 그려져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장산곶 북쪽 즉, 장연 앞바다 쪽에 그려져 있다. 文獻備考에는 백령도가 장연 서쪽 60리, 수로로는 100리에 있고, 대청도는 장연 남쪽 50리 백령도 동쪽에 있으며, 소청도는 대청도 동쪽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본 사이트의 『청구요람』과 『동여도』 및 『대동여지도』에도 백령도의 위치는 계속 장산곶의 서쪽에 그려 넣고 있어 김정호는 끝까지 위의 기록을 옳은 것으로 보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실제로 백령도는 장산곶 남쪽에 있어 《地圖(古4709-92)》가 사실에 맞게 그린 것이며, 본 지도의 경우 文獻備考의 내용과 맞게 그려진 것으로 보아 地誌를 바탕으로 그린 것으로 생각된다. (양윤정)

  • 황해도 주기 (黃海道 註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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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地誌는 황해도에 관한 것으로, 다른 도별도에 첨부된 地誌와 마찬가지로 첫 부분에 감영소재지(海州)가 기록되어 있으며 서울까지의 거리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황해도의 지리적 위치는 동쪽이 강원도, 서쪽이 바다, 남쪽이 경기도, 그리고 북쪽이 평안도에 접하고 있다. 황해도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는 동서, 남북의 거리는 현재 항목만 적혀 있다. 관원에 관한 부분도 현재 관원의 位階 항목만 열거되어 있을 뿐, 그에 해당하는 郡縣에 대한 설명이 없다. 즉, 대부분의 지리지 또는 지도에 첨부된 지지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郡縣에 관한 부분이 본 사이트에서는 생략되어 있다. 아랫부분에는 황해도의 인구와 토지면적에 관한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地誌 내용의 대부분은 군사 정보에 관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병력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山城과 烽臺, ·嶺隘의 지리적 위치, 특징 등은 생략되어 있다. (양윤정)

  • 앞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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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동지도(關東地圖)〈古 4709-35〉 1책 앞표지입니다.

  • 앞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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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동지도(關東地圖)〈古 4709-35〉 2책 앞표지입니다.

  • 경기도 (京畿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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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지금의 경기도 일대를 그린 지도이다. 지도의 전체적 윤곽은 '東覽圖'형 지도와 유사와 유사하나, 산지 표현에 있어 주요 산을 독립적으로 표현한 '東覽圖'형 지도와 달리 본 지도는 정상기의 《東國地圖》의 유형의 지도에 표현된 산지와 비슷하게 연속된 산봉우리를 그리고 채색을 해 산맥의 형식으로 이어 그렸다. 그리고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地誌를 보완하기 위해 지역의 개략적인 모습만을 보여주는 정도로 그려졌던 '東覽圖'형 지도와 달리, 본 지도의 경우 地誌가 첨부되어 있으면서도 하나의 독립된 지도로 사용될 수 있을 정도의 정보를 지도상에 표시하고 있다. 본 지도와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규장각 소장 《地圖(古4709-92)》와 거의 유사한 형태이다. 전체적인 윤곽 모습은 두 지도가 거의 일치하며, 산지와 하천의 모습 또한 거의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정보의 표현 방법에 있어서는 몇 가지 차이점을 보이고 있는데, 우선 수도 서울의 경우 《地圖(古4709-92)》에서는 붉은 색의 테두리 원에 ‘京’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며, 원 안은 경기도의 다른 군현과 마찬가지고 황색이 칠해져 있다. 그러나 본 사이트의 지도에서는 원 자체가 붉은 색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京都’라고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鎭堡의 경우 《地圖(古4709-92)》에서는 郡縣과 색을 달리한 직사각형으로 표시하고 있으나, 본 지도에서는 기호 표시 없이 지명만을 표기하였다. 도로를 표현함에 있어서도  《地圖(古4709-92)》에서는 각 군현을 적색 선으로 연결하여 표시하고 있으나, 본 지도에서는 직사각형에 驛站을 표시하고 있다. 두 지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섬에 대한 정보이다.  《地圖(古4709-92)》의 경우 강화도와 교동을 포함하여 총 11개의 섬이 표시되어 있는 반면에, 본 지도에는  《地圖(古4709-92)》의 3배가 넘는 36개의 섬이 표시되어 있다. 이는 이 시기에 도서 지방에 대한 인식이 매우 정교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양윤정)

  • 강원도 (江原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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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지금의 강원도 일대를 그린 지도이다. 지도의 전체적 윤곽은 본 지도책의 다른 지도들과 마찬가지로 《東覽圖》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산지 표현에 있어 《東覽圖》 유형의 지도는 진산을 중심으로 주요 산만을 독립적으로 그렸으나, 본 사이트의 지도상에 나타나는 산지는 정상기의 《東國地圖》의 유형 지도들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연속된 산봉우리를 그려 하나의 산맥 형식으로 이어 그렸다. 그리고 하천 역시 《東覽圖》 유형의 지도와 비교해 보다 상세하게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군현의 위치 역시 수정되고 정확하게 표시되어 있다. 즉, 본 지도책은 『新增東國輿地勝覽』의 내용을 보완하는 의미의 附圖로서 매우 간략하게 제작된 《東覽圖》와 하나의 독립된 지도로 정확함까지 보여주는 정상기의 《東國地圖》 사이에 제작된 지도로, 두 지도의 특징이 부분적으로 나타나 있다. 이 형태의 지도는 규장각 소장 《地圖(古4709-92)》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전체적 윤곽 및 해안선을 비롯하여, 산지와 하천의 모습까지 본 지도와 거의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지도의 표현방법과 내용에 있어서는 차이점을 보인다. 금강산 부분을 보면 본 지도와 달리 《地圖(古4709-92)》에서는 다른 산에 비해 매우 두드러지게 표현하여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地圖(古4709-92)》에서는 동해안에 울릉도와 우산도만이 그려져 있으나 본 지도에서는 20개의 島嶼가 그려져 있다. 이는 본 지도책을 제작한 사람이 섬에 대한 관심이 높고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음을 짐작 할 수 있다. 그런데 여타의 지도책에서는 보기 힘든 동해안에 20개의 섬을 그리면서 《地圖(古4709-92)》를 비롯한 대부분의 지도책에 그려진 울릉도와 우산도가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그러나 본 지도책 1책에 수록된 조선전도에는 그려진 것으로 보아 제작자의 정보 부족에 의해 생략된 것이 아니라, 실수에 의해 생략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강원도 지도의 경우 해안을 따라 그 모습만으로도 아름다운 관동팔경이 해당지역에 표시되어 있어서, 당시에도 이곳의 명성을 짐작할 수 있다.(양윤정)

  • 경기도 주기 (京畿道 註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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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地誌는 경기도와 관련된 것으로, 첫 부분은 경기도의 지리적 위치가 기록되어 있다. 즉, 경기도는 동쪽으로 강원도와 접하고 있고 서쪽은 大海, 남쪽은 충청도와 경계를 이루고 있음이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경기도의 총 37官 관원에 대한 정보가 기록되어 있으며, 군사 정보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地誌의 기본적인 지형 및 산천에 관한 부분은 생략되어 있다. 이는 이 지도의 제작 목적이 불필요한 지리적 요소를 제외하고 국가의 군사·행정 체제를 바탕으로 했음을 알 수 있다.(양윤정)

  • 강원도 주기 (江原道 註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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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地誌는 강원도에 관한 간략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감영소재지가 원성(原城, 즉 原州)이며, 서울까지의 거리는 280里이다. 동쪽은 바다와 접해 있으며, 동쪽은 경기도와 접해있다. 남북 접경지역과 경기도의 크기에 대해서는 ‘南抵, 北底, 南北’이라는 항목만 적혀있고 내용이 생략되어 있다. 강원도의 지리적 위치와 함께 기록되어 있는 관원에 대한 내용 역시 군현의 位階 항목만을 나열했다. 하단에는 강원도의 인구와 토지 면적, 그리고 군사 정보가 상단에 비하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군사 정보의 경우 山城, 烽臺 등의 지리적 정보는 생략되어 있다. 조선시대 민간에서 유행했던 목판본 지도책에 地誌가 수록된 경우, 대부분 地誌의 내용은 인구, 토지 면적, 진보와 산성, 고적, 그리고 각 지역의 연혁이 수록되어 있는데 반해, 본 지도책의 地誌 부분은 각 도의 연혁과 지리적 부분이 거의 생략되어 있으며, 각 군현에 대한 부분도 생략되어 있다. 따라서 본 地誌는 일반적인 지리지를 옮긴 것이 아니라, 행정과 군사라는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제작한 것으로 생각된다.(양윤정)

  • 경상도 (慶尙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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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지금의 경상도 일대를 그린 지도이다. 지도의 전체적인 윤곽은 『新增東國輿地勝覽』의 내용을 보완하는 의미의 附圖로서 제작된 《東覽圖》에 수록되어 있는 각 道別圖와 유사하다. 그러나 산지 표현 방식에 있어서는 《東覽圖》 유형의 독립된 산지 표현 방식이 아닌 정상기의 《東國地圖》의 유형의 지도에 표현된 산지와 비슷하게 산을 연속하여 그림으로써 하나로 연결된 산맥을 연상케 하고 있다. 또한 본 지도는 지도의 제작 목적 자체에서부터 《東覽圖》와는 차이가 있다. 즉, 《東覽圖》는 많은 정보가 수록되어 있는 地誌를 보완하는 역할로, 지도에서는 단지 그 지역의 개략적인 모습과 기본적인 정보만을 보여주고 있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地圖자체만으로는 소략한 지도이나, 《東覽圖》의 경우 지리지에 수록된 地圖로서 군현 및 주요 산지의 간략한 표시로 필요한 부분의 위치 파악에 효율적으로 제작된 지도로 그 역할에 충실하여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본 지도의 경우 《東覽圖》와 같이 地誌를 첨부하고 있으나 《東覽圖》와는 달리 하나의 독립된 지도로 편찬되어 간행된 지도책이다. 따라서 《東覽圖》 유형의 지도책에서는 생략되었던 산, 하천, 池 등의 자연적 정보와 山城, 鎭堡, 臺와 같은 지리적 정보가 지도상에 표시되어 있다. 또한 《東覽圖》 유형의 지도에서 생략되었던 섬들이 표시되어 있다. 섬에 관한 정보에 있어서는 본 지도와 비슷한 시기에 제작되었고 지도의 전체적 형식과 내용까지 유사한 규장각 소장 《地圖(古4709-92)》와 비교해 보아도 많은 정보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이 지도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짐과 동시에 많은 정보를 수집한 결과가 지도상에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본 지도책에서 다른 도와는 달리 〈경상도〉의 지도에는 각 군현을 잇는 도로가 적색 선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는 섬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이 시기에 도로 이용이 증가하고, 도로에 대한 정보의 필요성이 요구되던 시대적 변화상을 지도상에 반연한 것으로 생각된다.(양윤정)

  • 서북피아양계지도 (西北彼我兩界之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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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현재의 북한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의 접경지대까지를 포함한 그 일대를 그린 지도이다. 다른 도별도의 경우 《東覽圖》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본 지도의 경우 《東覽圖》 유형의 지도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지도이다. 그리고 본 지도는 《東覽圖》 유형의 지도는 물론이고 조선시대 유행했던 대부분의 지도책에서는 보기 드문 지도로, 함경도의 두만강 이북 지역에 관한 정보를 자세히 그리고 있다. 본 지도와 같은 유형의 지도는 규장각 소장 《地圖(古4709-92)》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두 지도의 경우 수록되어 있는 지도와 산천 모습, 지리적 정보뿐만 아니라 여백에 적힌 주기까지 동일하다. 이는 같은 저본을 근거로 지도가 제작되었으며, 이는 17세기 후반부터 조선과 청나라와의 사이에 국경문제가 대두되면서, 오지였던 압록강, 두만강 유역에 대한 관심이 커졌으며, 지도상에 당시의 관심 지역을 그려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한 것으로 생각된다. 지도상에 표현된 산지와 하천은 매우 상세히 그려져 있으며, 지도 여백에는 황룡강과 같이 주요 河川에 관한 정보, 또는 池의 크기 등과 같은 註記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와 경계를 이루는 지역을 보면, ‘朝鮮界 ’라 표기되어 있으며, 토문강, 압록강, 白頭山에 대한 정보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는 함경도 이북 지역인 동시에 청나라와의 접경 지역을 그린 것으로 일종의 관방지도라고 볼 수 있다. (양윤정)

  • 경상도 주기 (慶尙道 註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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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地誌는 경상도에 관한 것으로, ‘경상도의 감영소재지는 대구이며 서울까지의 거리가 670里’임이 地誌 첫 부분에 기록되어 있다. 지리적 위치 및 크기는 서쪽으로 전라도 운봉까지 330리, 동쪽으로 560리, 남쪽으로는 大海 330리, 그리고 북쪽으로 강원도와 접해있어 남북의 길이가 740리에 이른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리적 위치의 좌측으로 관원에 대한 정보가 기록되어 있는데, 兵使와 水使의 군현명만이 기록되어 있을 뿐, 각 군현에 관한 일반적인 地誌 내용은 생략되어 있다. 하단에는 인구와 토지 면적, 그리고 군사적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 군사수의 경우 京案付軍摠과 道內軍摠으로 구분하여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道의 地誌에서는 항목만 적혀있던 ‘山城·烽臺·嶺隘’ 부분이 본 사이트의 地誌에서는 해당하는 곳의 지명까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山城五處 烽臺一百七處 嶺隘四處’라고 이에 해당하는 장소의 수가 기록되어 있다.(양윤정)

  • 평안도 (平安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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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지금의 평안도 일대를 그린 지도이다. 지도의 전체적 모습은 《東覽圖》의 양식을 따라 그리고 있으나, 《東覽圖》는 산지를 독립된 산을 위주로 그리고 있는데 반해, 본 지도에서는 산을 연맥의 형식으로 이어 그렸다.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압록강 부분은 《東覽圖》 유형과 비슷하게 왜곡되어 ‘창성-벽동-철원’이 거의 일직선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그 일대에 설치된 鎭堡에 관한 정보는 자세히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의주에서 山海關에 이르는 곳의 遼東邊墻의 일부분이 그려져 있다. 요동변장은 산해관과 압록강 사이의 장성의 총칭이다. 장성을 따라 설치한 九變 중의 하나인 遼東鎭이 이 구간의 방비를 맡았다. 원래 요동변장은 명대 兀良哈 몽고와 여진의 각부를 방어하기 위해 만든 군사 시설로, 장성을 따라 堡를 만들고, 각 보마다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였다. 또한 청대에 쌓은 柳條邊도 일부 그려져 있다. 처음에는 유조변에 설치한 邊門은 21개소였는데, 그 후 한 개가 줄어 20개소로 되었다. 본 지도의 한반도 윤곽은 매우 왜곡되어 있으나, 17세기 후반부터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국경문제가 대두되면서 압록강 이북지역에 대한 부분이 지도 제작에 있어서 생략되곤 했었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이 지역에 대한 정보를 상세히 그렸으며, 이는 오지였던 압록강 이북 지역에 대한 관심이 커졌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지도상에 평안도 주변에 그려진 島嶼 정보를 통해 섬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양윤정)

  • 전라도 (全羅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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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지금의 전라도 일대를 그린 지도이다. 지도의 전체적 모습은 조선전기 《東覽圖》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東覽圖》는 산지를 독립된 산을 위주로 그리고 있는데 반해, 본 지도에서는 산을 연맥의 형식으로 이어 그렸다. 감영소재지인 전주를 직사각형의 다른 군현과 구별하여 붉은 원으로 표시하고, 지명 옆에 ‘監營’이라고 표기하였다. 병영과 수영의 경우에는 파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하고, 진보는 기호를 사용하지 않고 지명만을 표기하였다. 전체적 모습은 《東覽圖》 유형을 따르고 있으나, 부분적으로는 차이가 보인다. 《東覽圖》 유형의 지도는 주요 하천과 진산을 중심으로 군현의 대략적인 위치만을 표시한 것으로 해안선의 모습을 매우 단순하게 그리고 있으며, 생략된 부분도 많다. 그러나 필사본인 본 지도에서는 이런 부분을 수정·보완하며 그린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해안선 모습 또한 《東覽圖》 유형의 지도와는 상당한 차이가 보이며,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규장각 소장 《地圖(古4709-92)》와는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두 지도의 경우에도 강진의 아랫부분을 포함해 남해안 일부분에서 차이가 보인다. 또한 섬의 위치에 있어서 진도가 본 지도의 경우 우수영 남쪽에 그려져 있으나, 《地圖(古4709-92)》의 경우에는 해남 남쪽에 그려져 있는데, 이는 본 지도의 위치가 현재와 더 가까우며, 《地圖(古4709-92)》의 진도 위치에는 본 지도와 같이 완도가 그려져야 한다. 그리고 《地圖(古4709-92)》에는 제주도를 제외하고 61개의 섬이 그려져 있는 반면에, 본 지도에는 3배에 가까운 195개가 그려져 있다. 섬의 위치를 비롯한 섬에 관한 정보, 그리고 대축척의 군현지도가 아닌 도별도의 지도책임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이 많은 섬을 그렸다는 것은 섬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높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동시에 이는 이 시기에 도서 지방에 대한 인식이 매우 정교해졌으며, 도서 지방을 국토의 일부분으로 인식하고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양윤정)

  • 평안도 (平安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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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평안도 일대를 그린 지도로, 본 지도책에는 평안도 지도가 2장 수록되어 있다. 지도의 전체적 모습은 앞장에 수록된 〈평안도〉 지도와 마찬가지로 《東覽圖》의 양식을 따라 그리고 있다. 산지 표현에 있어서는 《東覽圖》 형식의 독립된 산 표현이 아니라,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에서 볼 수 있는 형식인 산을 겹쳐 하나의 산줄기로 이어 그렸다. 앞장의 지도와 전체적 모습이 비슷하기는 하지만, 이는 압록강이 거의 수평으로 흐르는 듯한 모습의 한반도 윤곽 때문이며 사실 많은 차이가 있다. 우선 압록강의 모습도 앞장의 지도에서는 유로의 굴곡이 거의 없이 위원까지 그려져 있으나, 본 지도에서는 벽동 좌측에서는 우리나라 쪽으로 살짝 만입되어 있고 반면 이산 부분에서는 중국쪽으로 휘어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위원 부분 역시 차이가 보인다. 이와 같은 차이점은 앞장의 지도와 마찬가지로 평안도 부분이 상하로 압축되어 그려지고 있으나, 본 지도의 경우 실제 모습을 반영하기 위해 부분적으로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압록강 유로뿐만이 아니라 평안도의 해안선 모습에서도 짐작 할 수 있다. 앞장의 경우 해안선의 모습을 단순하게 그리고 있으나, 본 지도에서는 보다 실제와 비슷하게 그리고 있다. 또한 함종, 삼화 부분의 경우에는 앞장의 지도의 경우 지도가 상하로 압축되면서 그 모습이 왜곡되고 있으나, 본 지도에서는 이를 수정하여 그리고 있다. 따라서 이 부분의 경우 해안선의 모습이 《東覽圖》 유형의 지도 보다는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의 지도와 더 유사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오지였던 압록강 이북 지역에 대한 정보 역시 본 지도가 앞장의 지도에 비해 상세하다. 이 지명들은 규장각 소장『조선지도』를 비롯하여 같은 계통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의 『해동여지도』, 大阪府立圖書館 소장의 『조선도』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압록강 건너편에 적혀 있는 지명은 적의 침입이 예상되는 만주쪽 지명을 의미한다. 압록강은 만주와 경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북쪽의 최전방 역할을 하고 있다. 본 지도 역시 앞장의 지도와 마찬가지로 섬에 대한 정보가 풍부한 것으로 보아 관심이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앞장의 지도와는 섬의 위치, 크기, 그리고 이름에 있어서 차이가 보인다. 본 지도에서 산지 표현이 있어 다른 섬에 비해 좀 크게 그려진 新島는 1807년(순조 2) 미곶진이 옮겨져 진이 설치된 곳이다. 그리고 미곶진에는 종3품의 첨사가 파견되어 기후가 좋을 때에는 신도에서, 나쁠 경우에는 미곶진에서 방어를 담당하였다. 압록강 하구의 모습도 앞장의 지도에서는 압축되어 그 사이 섬을 거의 확인할 수 없지만, 본 지도에서는 섬의 이름까지 표기하고 있다. 이들 섬은 보다 상류의 압록강에서 홍수 때 운반되어 온 수많은 토사가 하구 부분에 퇴적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양윤정)

  • 전라도 주기 (全羅道 註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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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地誌는 전라도에 관한 것으로, 상단에는 전라도의 지리적 위치와 전라도에 소속된 총 57관원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다. 그 내용은 매우 간략하게 감영 소재지와 각 군현의 位階 정도만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제주도의 경우, 마지막 부분에 따로 분리하여 기록하고 있으며, 전라도에서의 거리(水路)와 제주도의 크기가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山城·烽臺嶺隘는 항목만 적혀 있다. 그 하단에는 인구와 토지 면적, 그리고 군사와 관련된 정보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제주도의 경우 따로 구분하여 기록하였다. 본 사이트의 地誌는 그 내용이 대부분 행정과 군사에 관련된 것으로, 지도의 제작 목적이 地誌에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新增東國輿地勝覽』과 같은 地誌의 경우, 일반적으로 각 도려의 개요와 관원을 기록하고, 군현별로 건치연혁, 군명, 성씨, 풍속, 형승, 산천, 토산, 봉수, 누정, 학교, 역원, 불우, 사묘, 능묘, 고적, 명환, 인물, 제영 등의 인문·역사·사회·문화·군사·자연 부분의 요소가 종합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본 지도의 경우에도 간략하게 산천·군현·진보를 중심으로 표시하고, 地誌 역시 그와 관련된 정보만을 선택하여 기록하고 있다.(양윤정)

  • 평안도 주기 (平安道 註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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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地誌는 평안도에 관한 것으로, 첫 부분은 평안도의 지리적 위치가 기록되어 있다. 감영소재지는 평양이며, 서울까지의 거리는 항목만 있고 내용이 생략되어 있다. 그리고 동쪽으로 함경도와 접하고 있고 서쪽은 大海, 남쪽은 황해도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중국과 경계를 이루는 있는 북쪽은 ‘野人界’라고 적혀있다. 평안도의 군현은 청천강을 기준으로 남쪽에 33官, 북쪽에 19官이 있으며, 본 사이트의 지지 부분에는 각 군현의 지리적 내용은 생략되고 官貟의 숫자만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군사 정보 역시 山城과 烽臺, ·嶺隘의 지리적 내용은 생략하고 병력에 관한 내용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본 사이트의 地誌는 기본적으로 지형 및 산천, 문화 및 역사에 관한 부분은 생략되어 있다. 즉, 본 지지는 일반 지리지를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군사와 행정이라는 특정 부분만을 선택하였고, 이 지도책 또한 그와 같은 목적으로 제작되었음을 짐작 할 수 있다. (양윤정)

  • 조선전도 (朝鮮全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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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조선 전기형의 채색필사본 朝鮮全圖이다. 북부지방이 매우 압축되어 있으며, 압록강 하구에서 두만강 하구까지의 동서간의 길이와 남부 지방의 동서간의 길이가 유사하여 우리나라의 모양이 남북으로 긴 장방향이 되었다. 이는 조선시대에 유행했던 《東覽圖》 유형의 지도책에 대부분 수록되어 있는 全圖의 모습으로, 이는 당시의 변경지역에 대한 인식이 상대적으로 낮았음을 알 수 있다. 또는 변경지역에 대한 인식의 문제에 앞서서 과거부터 전해져온 조선전도의 모습을 그대로 전사했을 가능성도 크며, 지도책에 수록된 지도이므로 지도책에 맞춰 필요한 정보 위주의 지도를 그리면서 발생한 오류일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내용면에 있어서는 큰 차이점을 보인다. 《東覽圖》 유형의 지도책에 수록된 전도의 경우, 규장각 소장  《朝鮮地圖(古4709-32)》에 실려 있는 〈동국팔도대총도〉와 같이 우리나라의 鎭山과 주요 하천, 道名, 주요 섬만을 간략하게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전국의 郡縣을 각 도별로 색을 달리하여 표시하고 있으며, 군사적 요충지인 鎭堡까지 표시되어 있다. 또한 《朝鮮地圖(古4709-32)》에 비해 섬에 대한 정보가 풍부해졌다. 그리고 대부분의 지도에서는 對馬島만을 표시하고 있으나, 본 지도에서는 對馬島 우측으로 日本까지 표시하고 있다. 비록 정확한 모습은 아니지만 대략적인 위치를 표시한 것으로 보아 日本에 대한 관심이 지도상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가장 큰 차이점은 산맥을 표현한 방법으로 대부분의 《東覽圖》 유형의 조선전도에서는 주요 산을 독립적으로 그리고 있는 반면에, 본 지도에서는 연속된 산봉우리를 그리고 채색을 해 산맥의 형식으로 이어 그리고 있다.(양윤정)

  • 함경도 (咸鏡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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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현재의 북한 행정구역상 함경도와 량강도에 해당하는 일대를 그린 지도이다. 전체적인 모습은 《東覽圖》의 양식을 따라 그리고 있다. 그러나 간략하게 산천의 모습을 그려 군현의 위치만을 표시했던 《東覽圖》 유형의 지도에서는 지리지를 보완하는 의미에서 제작되었기 때문에 지도상에 축척의 의미는 거의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八道 가운데 면적이 상대적으로 가장 큰 함경도를 지도책 크기에 맞춰 그리고 위해 함경도의 서쪽 지역을 지도의 윅쪽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은 지도를 제작하면서 축척에 대해 제작자가 고민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전제적인 형식이 《東覽圖》 유형의 지도와 유사 할뿐, 두만강 부분이 상하로 압축되어 그려졌던 《東覽圖》 유형의 지도와는 그 윤곽의 차이가 크다. 그리고 산지 표현에 있어서도 東覽圖》 형식의 독립된 산 표현이 아니라,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에서 볼 수 있는 형식인 산을 겹쳐 하나의 산줄기로 이어 그렸다. 백두산은 다른 산에 비해 웅장하게 그리고 있으며, 이 지도의 제작 하한선을 알 수 있는 定界碑가 그려져 있다. 이는 평안도 지도와 더불어 중국과의 국경문제가 지도상에 반영된 것으로 짐작된다. 지도상에 각 군현은 물론이고 진보까지 연결된 적색 선은 도로망을 표시한 것으로 도로에 대한 정보의 필요성이 요구되던 시대적 변화상을 지도상에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다른 도와 마찬가지로 섬에 대한 정보가 매우 풍부하다. 이는 이 시기에 도서 지방에 대한 인식이 매우 정교해졌으며, 도서 지방을 국토의 일부분으로 인식하고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양윤정)

  • 충청도 (忠淸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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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지금의 충청도 일대를 그린 지도이다. 지도의 전체적 윤곽은 '東覽圖'형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산지 표현에 있어 주요 산을 독립적으로 표현한 '東覽圖'형 지도와 달리 본 지도는 정상기의 《東國地圖》의 유형의 지도에 표현된 산지와 비슷하게 연속된 산봉우리를 그리고 채색을 해 산맥의 형식으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전체적 윤곽 및 하계의 모습이 ‘東覽圖’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본 지도와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東覽圖》 유형의 규장각 소장 《地圖(古4709-92)》와 비교해 보면, 그 모습에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본 지도에서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면적이 좁은 충청도를 다른 지도와 같은 종이 크기에 확대하여 그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지도의 충청도는 《地圖(古4709-92)》에 비해  남북의 길이가 두 배 가까이 길어졌으며, 유로의 모습도 《地圖(古4709-92)》에 비해 완만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공주와 청주의 위치 역시 《地圖(古4709-92)》에서는 남북의 차가 거의 없이 나란히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에서는 상대적으로 청주가 공주의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해안선 역시 두 지도가 서로 다르게 그려져 있다. 《地圖(古4709-92)》에서는 水營의 위치가 내륙 안쪽으로 깊게 들어가 있지만, 본 지도에서는 태안반도와 비슷하게 이 부분이 돌출되어 남쪽의 비인과 비슷한 선상에 그려져 있다. 〈충청도〉 지도의 경우, 본 사이트의 지도 모습은 규장각 소장 《朝鮮地圖(古4709-32)》와 같이 조선시대에 유행하던 목판본 지도책에 수록되어 있는 충청도의 모습과 매우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본 지도의 경우 목판본 지도책에서는 표현하기 힘든 많은 섬이 그려져 있다. 섬에 대한 정보가 많은 반면에, 대부분의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는 태안반도 부근의 안면도가 그려져 있지 않다.(양윤정)

  • 함경도 (주기 (咸鏡道 註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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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地誌는 함경도에 관함 것으로, 다른 도와 마찬가지로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감영소재지가 咸興이며, 서울까지의 거리는 870里이다. 지리적 위치를 알 수 있는 항목(地方東低, 西低, 北低, 南低)이 있으나, 북쪽만 기록되어 있고 해당 내용이 생략되어 있다. 북쪽의 경우 ‘慶興一千三百二十里’라고 적혀 있는데 거리는 서울까지의 거리를 의미한다. 그리고 地誌상에 각 군현의 관한 내용은 군현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는 관원의 位階에 따른 분류만이 되어 있다. 그리고 각 분류 역시 간략하게 그 숫자만이 기록되어 있을 뿐, 군현에 대한 내용은 생략되어 있다. 대부분의 지지의 경우 각 군현의 위치 및 크기, 그리고 연혁 등이 기록되어 있는데, 본 지지의 경우 문화, 역사, 자연과 관계된 지리적 내용은 생략되어 있다. 대신에 인구와 토지 면적, 그리고 병력에 대해서는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본 지지와 지도는 행정과 군사라는 특정한 목적에 의해 제작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군사와 관련된 부분의 경우에도 山城과 烽臺, ·嶺隘의 위치와 같은 지리적 부분은 생략되어 있다. (양윤정)

  • 충청도 주기 (忠淸道 註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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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地誌는 충청도에 관한 것으로, 충청도의 지리적 위치, 관원, 그리고 군사적 정보 및 인구, 토지 면적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관원에 대한 내용은 극히 간략하게 位階만을 정리하고 있을 뿐, 郡縣에 대한 정보는 생략되어 있다. 그러나 인구, 토지 면적, 그리고 군사와 관련된 부분은 매우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군사 정보에 있어서, 군사의 總數는 상세히 기록되어 있지만, ‘山城·烽臺·嶺隘’는 항목만 적혀 있을 뿐 그 내용이 생략되어 있다. 이처럼 地誌에 생략된 부분, 즉 각 군현의 품계, 산성 등의 정보는 지도상에 기호를 사용하여 표시하고 있으므로 지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지도상에 표시하기 힘든 부분을 地誌로 보완하고 있으며, 지도상에 정보가 더 효율적인 경우에는 地誌에 그 부분을 간략하게 기록함으로써 지도와 地誌가 서로 보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양윤정)

  • 황해도 (黃海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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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지금의 황해도 일대를 그린 지도이다. 지도의 전체적 모습은 《東覽圖》의 양식을 따라 그리고 있다. 그러나 《東覽圖》는 산지를 독립된 산을 위주로 그리고 있는데 반해, 본 지도에서는 산을 연맥의 형식으로 이어 그렸다. 감영소재지인 海州를 직사각형의 다른 군현과 구별하여 노란색 원으로 표시하고, 지명 우측에 ‘監營’이라고 표기하였다. 兵營 소재지인 黃州는 파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하고 지명 우측에 ‘兵營’을 병기하고 있다. 그리고 종3품의 僉使가 파견된 吾叉鎭 등의 鎭堡는 특별한 기호를 사용하지 않고 지명만 표기하고 있다. 所江行營은 원래 종3품의 水軍僉使가 파견된 소강진이었는데, 숙종 45년(1719)에 옹진도호부사가 황해도 수군절도사를 겸하게 되면서 行營으로 승격된 곳이지만, 본 지도에는 ‘所江’으로 옹진 좌측에 표시되어 있다.  오차진 좌측에 바다 쪽으로 길게 돌출된 지역은 일반인들에게 ‘장산곶매’라는 지명으로 더 익숙한 곳이다. 육지가 바다 쪽으로 쑥 나가 있어 밀물과 썰물 때 물살이 빠르기로 유명하며, 조운선을 비롯한 배의 운항에서 위험한 지역 중의 하나이다. 본 지도의 경우, 이 시기에 제작된 여타의 지도책에 비해 섬에 대한 정보가 풍부하다. 본 지도와 제작시기 및 전체적 모습이 유사한 규장각 소장 《地圖(古4709-92)》와 비교해 보았을 때, 《地圖(古4709-92)》에는 황해도 앞바다에 5개의 섬만이 표시되어 있으나, 본 지도에는 풍천 앞바다의 7개를 포함헤 총 26개의 섬이 표시되어 있다. 섬의 위치는 두 지도가 어느 정도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地圖(古4709-92)》에는 백령도가 장산곶 남쪽에 그려져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장산곶 북쪽 즉, 장연 앞바다 쪽에 그려져 있다. 文獻備考에는 백령도가 장연 서쪽 60리, 수로로는 100리에 있고, 대청도는 장연 남쪽 50리 백령도 동쪽에 있으며, 소청도는 대청도 동쪽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본 사이트의 『청구요람』과 『동여도』 및 『대동여지도』에도 백령도의 위치는 계속 장산곶의 서쪽에 그려 넣고 있어 김정호는 끝까지 위의 기록을 옳은 것으로 보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실제로 백령도는 장산곶 남쪽에 있어 《地圖(古4709-92)》가 사실에 맞게 그린 것이며, 본 지도의 경우 文獻備考의 내용과 맞게 그려진 것으로 보아 地誌를 바탕으로 그린 것으로 생각된다. (양윤정)

  • 팔도총목 (八道摠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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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地誌는 〈八道摠目〉으로, 전국의 총 인구수와 토지 면적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군사정보 및 창고에 관한 정보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조선 후기에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던 地誌인『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군현별로 건치연혁, 군명, 성씨, 풍속, 형승, 산천, 토산, 봉수, 누정, 학교, 역원, 불우, 사묘, 능묘, 고적, 명환, 인물, 제영 등이 기록되어 있어서 백과사전식 서적이었다. 그러나 본 지도책에 수록된 地誌 부분은 성씨, 풍속, 고적, 명환, 인물 등의 역사·문화적 내용을 제외하고 인구, 토지, 관원, 및 군사시설 등에 한정되어 있다.(양윤정)

  • 황해도 주기 (黃海道 註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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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地誌는 황해도에 관한 것으로, 다른 도별도에 첨부된 地誌와 마찬가지로 첫 부분에 감영소재지(海州)가 기록되어 있으며 서울까지의 거리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황해도의 지리적 위치는 동쪽이 강원도, 서쪽이 바다, 남쪽이 경기도, 그리고 북쪽이 평안도에 접하고 있다. 황해도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는 동서, 남북의 거리는 현재 항목만 적혀 있다. 관원에 관한 부분도 현재 관원의 位階 항목만 열거되어 있을 뿐, 그에 해당하는 郡縣에 대한 설명이 없다. 즉, 대부분의 지리지 또는 지도에 첨부된 지지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郡縣에 관한 부분이 본 사이트에서는 생략되어 있다. 아랫부분에는 황해도의 인구와 토지면적에 관한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地誌 내용의 대부분은 군사 정보에 관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병력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山城과 烽臺, ·嶺隘의 지리적 위치, 특징 등은 생략되어 있다. (양윤정)

  • 뒷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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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동지도(關東地圖)〈古 4709-35〉 1책 뒷표지입니다.

  • 뒷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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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동지도(關東地圖)〈古 4709-35〉 2책 뒷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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