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도古地圖
규장각 소장 220여종 6,000매에 달하는 고지도를
유형별, 지역별로 분류하여 한 눈에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고지도

1872년지방지도

  • 임란, 호란의 양란을 겪은 조선사회는 18세기 영·정조대에 이르러 부흥기를 맞이하게 된다. 각종의 문물 제도가 정비되고 사회적으로 안정되면서 중심 산업인 농업부문의 생산력이 높아지고 이와 더불어 상품유통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특히 이 시기는 실학을 비롯한 학문뿐만 아니라 문학·예술부분에서도 많은 성과들이 축적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지도제작에서도 이 시기는 최고의 전성기였다.그러나 19세기로 넘어가면서 조선사회는 세도정치로 인한 정치적 혼란과 더불어 三政의 문란 등으로 민생의 안정이 위협받게 되었다. 관료사회의 부패는 정상적인 국가 정책의 집행을 더욱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집권한 흥선대원군은 과감한 개혁을 추진하게 된다. 그는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外戚의 세도정치를 일소하고 당쟁을 타파하며, 군제를 정비하고 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각종 개혁 정책을 추진한다. 특히 두 차례의 洋擾를 겪으면서 서양의 침략에 적극적인 대응책을 모색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국방과 치안을 위한 관제 개정, 軍制의 개편, 군사시설의 확충과 경비의 강화, 軍器의 정비와 실험 등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지방의 실정 파악은 시급한 과제였고 이를 위해 1871년에는 전국적인 邑誌 편찬사업을, 이듬해인 1782년에는 전국적인 차원의 지도제작 사업을 추진하였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는 조선시대 官撰地圖 제작사업의 마지막 성과로 평가되는 1872년 지방지도가 소장되어 있는데 총 459매이다. 이 때 제작된 지도들은 郡縣지도뿐만 아니라 營·鎭堡·牧場·山城 등을 그린 지도까지 포함하고 있어서 한 시기에 제작되어 收合된 지방지도로는 가장 많은 양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 지도는 1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제작되어 收合되었기 때문에 통일적인 제작 원칙 하에 체계적으로 그려지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전 시기의 지도보다 큰 규격으로 작성되었기 때문에 지도에 들어있는 정보량은 현재 남아 있는 다른 郡縣地圖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풍부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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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성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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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성지도 杆城地圖,간성군은 지금의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거진읍, 죽왕면, 토성면, 현내면 일대에 해당한다. 읍치는 간성읍 상리와 하리 일대에 있었다. 지도는 백두대간의 준령이 포진해 있는 서쪽을 상단으로, 동쪽의 바다를 하단으로 배치하였다. 고을의 외곽에 산을 둥그렇게 그려 인접 지역과 분리하였고 읍치는 환포형으로 그려 중심공간임을 강조하였다. 읍치의 동쪽에는 水口가 그려져 있는데 풍수적 사고가 지도에 반영되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읍치에는 돌로 축조된 성곽이 있었으나 이 시기에 많이 훼손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관청 건물을 그리지 않고 단지 글자로 표시하였다. 대부분의 지명을 원이나 직사각형 내부에 기입하였다. 面뿐만 아니라 洞里의 이름도 일부 표시되어 있는데 대부분 고개 밑의 마을들이다. 해안에 연해 있는 津名이 읍치로부터의 거리와 함께 비교적 자세히 수록되어 있다. 또한 군사적 시설물로서 읍치 남쪽의 산성과 해안가의 봉수가 있었지만 이 시기에 이르러 거의 기능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에 읍내와 더불어 동남쪽과 동북쪽 지역에 장시가 개설되어 상업활동이 비교적 활발하게 행해지고 있었다.

  • 강릉부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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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부지도 江陵府地圖,조선시대 강릉부는 지금의 강릉시 사천면, 연곡면, 성산면 구정면, 강동면, 왕산면, 옥계면, 주문진읍, 평창군의 방림면, 대화면, 진부면, 도암면, 봉평면, 용평면, 내면, 정선군 임계면 그리고 동해시 묵호와 망상 일대까지 포괄했던 큰 고을이었다. 읍치는 지금의 명주동 일원에 있었다. 산지와 하천, 바다를 모두 청색으로 채색했는데 하천의 유로는 매우 과장되어 있다. 산지는 기암괴석을 강조하여 독립된 형태로 그렸는데 대부분 명칭이 빠져 있다. 읍성으로 둘러싸인 읍치에는 동헌과 객사 건물이 그려져 있고, 향교도 중요한 건물로 부각되어 있다. 滿月, 麒麟, 長嶺, 象王, 智爐 등 다섯 개의 臺로 이루어진 오대산의 모습이 독특하게 표현되어 있다. 오대산에는 1606년(선조 39)에 설립된 史庫의 모습도 잘 나타나 있다. 홍선으로 도로를 표시하였는데 노변에 위치한 驛과 대관령을 비롯한 고개의 명칭도 기입되어 있다. 동해안의 바닷가 근처에는 관동팔경 가운데 가장 경치가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는 경포대와 경포호의 모습도 보인다. 동남쪽의 安仁津에는 萬戶鎭이 설치되었으나 1490년(성종 21) 襄陽의 大浦로 옮겨졌다. 普賢寺 위쪽에는 산성이 있었으나 이 시기에는 많이 훼손되어 있었다. 옥계면과 대화면에 개설된 장시를 통해 이 지역 상업활동의 일단도 엿볼 수 있다.

  • 고성군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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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군지도 高城郡地圖,고성군은 현재 북한의 강원도 고성군 일대에 해당하는데 남쪽의 일부 지역은 비무장지대와 남한 지역에 걸쳐 있다. 금강산을 끼고 있는 고을로 해변의 삼일포, 해금강 등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지도에는 산지와 하천, 바다가 모두 청색으로 다소 거칠게 그려져 있다. 보통의 군현지도와는 달리 산봉우리를 지도의 중심으로 향하도록 그린 점이 독특하다. 읍치에는 사직단, 여제단, 衙舍와 客舍 등이 글자로만 표기되어 있다. 도로를 홍선으로 그렸는데 역의 이름이 읍치로부터의 거리와 함께 표기되어 있다. 수려한 경치를 지닌 삼일포의 四仙亭, 永郞湖, 鑑湖 등은 과장되어 그려져 있다. 금강산에는 계곡과 사찰의 이름도 비교적 상세하다. 읍치의 東里와 西里에는 장시도 형성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 금성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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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성지도 金城地圖,금성현 지역은 현재 대부분이 휴전선 이북으로 북한의 행정구역으로는 강원도 김화군 동쪽지역과 창도군의 서쪽, 북쪽지역에 해당한다. 1914년 김화군에 편입되기도 했는데 해방 전의 행정구역으로는 김화군 遠東面, 遠南面, 任南面, 遠北面, 金城面, 岐梧面, 通口面 일대이다. 금성은 김화에서 회양을 지나고 철령을 넘어 함경도로 이어지는 길목에 위치한 고을이다. 흑색으로 산지를 독립된 형태로 표현하였다. 고을의 중심공간인 읍치를 주변지역보다 크게 확대시켜 그 내부에 동헌을 비롯한 여러 관청 건물을 그려 넣었다. 주변지역에는 면명만 표기하고 마을 이름은 빠져 있어 전반적으로 소략한 느낌을 준다. 각 면에 설치된 창고는 면의 첫 글자를 따서 표기하였는데, 예를 들면 通口面의 경우는 通倉으로 기재되어 있다. 다른 지도에서처럼 도로는 홍선으로 그렸는데 주요 나루터에는 나룻배와 사공의 모습을 독특하게 그려 넣은 점이 이채롭다.

  • 김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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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화지도 金化地圖,김화현은 현재 휴전선 이남과 이북으로 분리되어 휴전선 이북은 북한의 강원도 김화군에 속해 있고 이남은 남한의 강원도 철원군에 속해 있다. 북한의 김화군 서쪽 지역과 남한 철원군 김화읍, 근남면, 서면 일대가 조선시대 김화현에 해당한다. 읍치는 지금의 철원군 김화읍 읍내리 일원이 된다. 김화현은 산지가 많고 평지가 적은 산간 고을이지만 함경도와 영동 지방으로 가는 대로에 위치하여 길손의 왕래가 빈번했던 곳이다. 지도는 남대천이 감돌아 흐르는 김화의 모습을 간결하게 묘사하였다. 고을 내의 산은 연맥보다는 독립된 모습으로 그렸는데 암벽의 모습을 독특하게 표현하였다. 특히 고을의 동쪽에 있는 七臺巖의 우뚝 솟은 모습이 이채롭다. 읍치에는 客舍를 비롯한 관아 건물도 그려져 있는데 정면에서 바라본 모습뿐만 아니라 측면의 모습도 그려져 있는 점이 독특하다. 읍치의 남쪽에는 병자호란 때 이곳에서 전사한 평안감사 洪命?를 배향한 忠烈祠가 그려져 있다. 지도의 하단에는 蒼巖도 독특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매월당 김시습이 이곳에 집을 짓고 소요하던 곳이라 전해진다. 고을의 북쪽에는 산성의 모습도 보이지만 이 시기에는 성으로서의 기능을 거의 상실하고 있었다.

  • 낭천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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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천지도 狼川地圖,낭천현은 서로는 金化, 남으로는 春川, 동으로는 楊口와 접해있는 고을로 지금의 화천군 화천읍, 간동면, 상서면, 사내면, 하남면 일대에 해당한다. 읍치는 화천읍 신읍리 일원에 있었다. 狼川縣은 1902년(광무 6) 華川으로 바뀌면서 지금은 소멸된 지명이 되어버렸다. 지도는 읍지에 실리는 附圖처럼 규격이 작고 소략한 형태로 되어있다. 북한강의 강줄기를 청색으로 강조했으며 산지는 연봉의 형태로 표현하였다. 읍치는 건물 옆에 ‘邑’이란 글자를 표기하여 나타내었다. 주변 지역은 다른 군현의 지도와는 다르게 面名을 표기하지 않고 주요 里名을 표기하였다. 고을의 진산은 牲山인데 지도에는 그다지 강조되어 표현되지는 않았다. 낭천현의 읍치는 북한강변에 위치하여 홍수 때마다 옮기곤 했는데 지도에서 보이는 新邑里가 수재를 당했을 때 새롭게 읍치로 개척되었던 곳이다.

  • 삼방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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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방진지도 三防鎭地圖,삼방진은 평강현에 위치한 중요한 關防으로서 안변에서 분수령을 지나 철원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있었다. 깊은 수심을 지닌 남대천과 그 옆의 험준한 절벽으로 이루어져 사람들이 간신히 통과할 수 있는 지형적 조건을 지닌 곳이다. 따라서 이곳에 關門을 설치하면 만명의 장부라도 열 수 없는 곳으로 평가되어 일찍부터 축성하기도 했다. 三防이란 세 곳의 관문을 이르는데 첫째는 안변부와의 경계지점에 위치한 것이고, 둘째는 이로부터 북쪽 10리에 있는 木防이고, 셋째는 그 아래쪽 10리에 있는 것이다. 지도에는 이러한 三防의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는데 험준한 절벽의 모습이 독특하다. 지도에 보이는 삼방진은 1867년(고종 4)에 다시 설치된 것으로 別將이 이를 관할케 하였다. 삼방에서 추가령, 분수령을 따라 평강 읍내로 이어지는 도로가 홍선으로 표시되어 있다. 鎭地에는 鎭衙와 軍器 등이 건물이 표시되어 있고 성의 모습과 砲樓도 보이고 있다.

  • 삼척부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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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척부지도 三陟府地圖,삼척부는 지금의 행정구역으로 동해시와 더불어 삼척시 미로면, 하장면, 신기면, 노곡면, 근덕면, 원덕면, 가곡면, 도계읍 그리고 태백시 일대에 해당한다. 읍치는 삼척시 성내동 일원에 있었다. 본래 悉直國으로 신라 婆娑王 때 병합되었다. 지도는 삼척의 모습을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하였는데 특히 산지의 표현은 산줄기 중심의 전통적인 지형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동해로 흘러드는 五十川은 물길의 근원까지 가려면 거의 50여번을 건너야 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지도에서도 오십천의 물줄기와 도로가 교차되면서 독특하게 표현되어 있다. 고을의 지세가 남북으로 길게 뻗쳐 있고 서쪽이 높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어서 서쪽을 지도의 상단으로 배치하였다. 면의 이름과 해안의 津名이 비교적 상세하나 洞里의 이름은 표시되지 않았다. 石城으로 둘러싸인 읍치에는 관동팔경의 하나인 竹西樓를 비롯한 門樓의 모습도 그려져 있다. 읍치의 동쪽 해안에는 鎭營이 성곽과 함께 그려져 있는데 三陟浦鎭에 해당한다. 1520년(중종 15)에 축성되었으며 水軍僉節制使가 방어를 담당하고 있었다. 해안가에 세워졌던 봉수대는 이 시기 대부분 허물어져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서쪽 태백산 아래에는 낙동강의 발원지인 黃池가 그려져 있고 동쪽 해안에는 울릉도의 모습도 보이고 있다.

  • 삼척진영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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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척진영지도 三陟鎭營地圖,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은 삼척부지도와 거의 유사하다. 단지 산줄기의 세부적인 표현과 鎭營의 모습, 주요 지명의 옆에 鎭營으로부터의 거리를 병기한 점 등이 다르다. 三陟鎭城은 1520년(중종 15)에 둘레 900척으로 축성되었고 右營將을 겸하던 水軍僉節制使가 진영을 관할하고 있었다. 진영 내부에는 火藥庫, 軍器庫 등의 건물과 더불어 東海碑閣의 모습도 그려져 있다. 동해비는 1661년(현종 2)에 삼척부사 許穆(1595-1682)이 세운 것이다. 당시 삼척은 海波가 심하여 조수가 읍내까지 올라오고 홍수 때는 오십천이 범람하여 주민의 피해가 극심하였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허목이 정라진 앞의 만리도에 척주동해비를 세우니 바다가 조용해졌다고 한다. 그후 비가 파손되어 조수가 다시 일자 1710년(숙종 36) 이를 模寫하여 현재의 정상동 육향산에 세워 조수를 막았다. 지금의 북평과 삼척 읍내에는 시장도 개설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 안협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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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협현지도 安峽縣地圖, 안협현은 남으로는 경기도 삭령군과 접하고 북으로는 이천도호부에 이르는 조그만 고을이다. 해방 전 행정구역으로는 1914년에 병합된 伊川郡의 안협면, 동면, 서면 일대에 해당한다. 현재 북한의 행정구역상으로는 강원도 철원군의 북쪽 지역 舊安峽面과 이천군의 남쪽 부분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읍치는 구 안협면 읍내리 일원에 있었다. 지도는 영조대의 지리지인 ?輿地圖書?에 실려 있는 지도와 유사한 것으로 보아 이를 기초로 다시 그렸음을 알 수 있다. 고을의 진산인 萬景山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가 읍치를 감싸고 있고, 客舍, 衙舍, 倉庫 등이 독특한 지붕 모양으로 표현되어 있다. 주변의 각 面에는 마을 이름도 일부 표기되어 있다. 만경산의 古城과 고을 남쪽의 擧城이 그려져 있는데 이 시기 많이 파손되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지도와 달리 도로가 그려지지 않아 지도로서는 미흡한 느낌을 준다.

  • 양구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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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구지도 楊口地圖,양구현은 지금의 양구군 일대에 해당하는데 북쪽의 수입면은 북한 지역에 편입되어 있다. 읍치는 양구읍 중리 일원에 있었다. 고을의 진산은 飛鳳山으로 읍치의 북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그 옆을 북한강의 지류인 서천이 휘돌아 나가고 있다. 지도는 다른 군현의 지도보다 규격이 작으며 ?여지도서?에 수록된 지도와도 유사하여 邑誌의 附圖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산지와 하천을 청색으로 채색하였는데 산지에는 수목도 그려 넣었다. 읍치는 주변 지역과 동일한 비율로 그려 특별히 강조하지는 않았다. 주변 지역에는 고을 소속의 각 面과 일부의 洞名도 표기되어 있다. 읍치 북쪽의 方山面은 원래 方山縣으로 이 고을의 속현이었고, 위쪽 亥安倉이 위치한 곳은 亥安面으로 원래는 亥安所였다. 이곳에는 궁중에서 필요한 黃腸木을 생산하는 封山도 있었는데 좌측의 天尾禁山, 沙汰洞의 禁山 등이 그것이다.

  • 양양읍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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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양읍지도 襄陽邑地圖,襄陽府는 현재의 속초시와 양양군 양양읍, 강현면, 서면, 손양면, 현북면, 현남면 일대에 해당한다. 당시의 읍치는 양양읍 성내리 일원에 있었다. 양양은 설악산을 끼고 동해에 연한 고을로 산과 해안의 경치가 수려하다. 고을의 진산인 설악산을 위쪽에 배치하여 그렸는데, 여기에서 뻗어 내린 산지의 모습이 독특하게 표현되어 있다. 읍치에는 客舍, 太平樓를 비롯한 관아 건물과 문루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원래 돌로 쌓여진 읍성이 있었는데 이 시기에 이르러서는 거의 무너지고 동?서?남의 세 문만 남아 있었다. 주변 지역에는 고을 소속의 각 面과 洞里들이 비교적 상세하게 표기되어 있다. 고을의 아래쪽에는 東海廟, 洛山寺, 祥雲館 등이 부각되어 그려져 있다. 동해묘는 동해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사묘인데, 동해신에 대한 제사는 고려 이후 祀典에 中祀로 등재되어 중요하게 취급되었다. 이곳은 서해의 풍천, 남해의 나주(지금의 영암)와 함께 우리나라 삼해의 해신에게 국태민안과 풍농풍어를 기원하기 위해 매년 음력 2월과 8월에 왕이 친히 향축을 내려 보내어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洛山寺와 義相臺, 觀音屈이 강조되어 표현되었다. 조선의 개국공신인 조준과 하륜이 잠시 은거했다 해서 이름 붙여진 河趙臺의 특색있는 모습도 보인다. 아름다운 경치를 지닌 靑草湖와 현재는 매립되어 농경지로 변해버린 雙湖 등의 호수도 그려져 있으며 설악산 五色嶺 아래에는 지금도 유명한 五色藥水가 표시되어 있다.

  • 영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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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월지도 寧越地圖,영월부는 지금의 강원도 영월군 일대에 해당한다. 읍치는 영월읍 영흥리 일원에 있었다. 영월은 동서로 길게 늘어진 고을로 곳곳에 석회암 지형이 산재해 있는데 다른 지역에 비해 협곡이 많다. 지도는 邑誌에 실려 있는 附圖처럼 작은 규모로 그려져 있다. 風水의 山圖的인 양식을 가미하여 독특하게 표현하였는데 산지가 검은 색으로 맥을 강조하여 표현되어 있다. 동강과 서강이 고을을 돌아 永春 방면으로 흘러나가고 있다. 읍치에는 각종 관청 건물이 비교적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영월은 단종이 유배되어 생을 마감했던 곳으로 지도에도 이와 관련된 유적이 보이고 있다. 단종이 승하하자 이곳의 戶長 嚴興道가 鉢山의 기슭에 장사지냈는데 1698년(숙종 24)에 이르러 왕릉으로 追封되었다. 엄흥도의 충절을 기리는 비가 읍치에 표시되어 있다. 단종의 유배지였던 淸?浦를 비롯하여 동강변에는 단종 승하시 순절한 시녀들을 제사지내던 愍忠祠도 보인다. 특히 동강 상류에는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於羅淵이 회화적으로 표현된 모습이 이채롭다. 그 밖의 인문적 요소로는 주변 지역에 설치된 창고가 그려져 있으며 읍치 위쪽에는 黃腸木을 가꾸던 黃腸山도 보이고 있다.

  • 울진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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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진현지도 蔚珍縣地圖,울진현은 지금의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북면, 서면, 근남면, 원남면 일대에 해당한다. 원래 강원도에 속해 있었던 고을인데 1963년 1월 1일 경상북도에 편입되었다. 고을의 읍치는 울진읍 읍내리에 있었다. 백두대간의 큰 줄기가 태백산에서 남쪽으로 분기하여 낙동정맥이 되는데 울진은 낙동정맥을 서쪽에 끼고 동해안에 연한 고을이다. 해안의 평지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지도에도 이러한 지역의 특성이 반영되어 있는데 고을의 전 지역이 청색으로 채색된 산들로 덮여있다. 읍치에는 官舍를 비롯하여 여제단, 성황단, 사직단 등의 三壇과 문묘가 있는 향교가 그려져 있다. 주변 지역에는 面이나 洞里의 명칭이 없고 일부 사찰명이 있는 정도로 매우 소략하다. 동쪽 해안가에는 울릉도를 그려 넣었는데 뱃길로 천여리라는 주기로서 거리를 표시하였다. 읍치와 북쪽의 興富, 서남쪽의 梅野에는 장시도 보이고 있다.

  • 원주목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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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주목지도 原州牧地圖,원주목은 지금의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문막읍, 부론면, 귀래면, 판부면, 신림면, 호저면, 흥업면 일대에 해당한다. 읍치는 원주시 일산동, 중앙동 일원에 있었다. 조선시대 1395년(태조 4)에 강원도 監營을 이곳에 두었는데 1895년(고종 32) 23府로 행정구역이 개편될 때 춘천에 觀察府를 둠으로써 원주에 있던 강원 감영은 폐지되었다. 지도는 조선시대 원주를 풍수의 山圖적인 기법으로 독특하게 표현하였다. 고을의 鎭山인 치악산을 지도의 위쪽에 배치하였기 때문에 동쪽이 지도의 상단이 되었다. 치악산은 산세가 험준하여 예로부터 산성이 축조되었는데 지도에서도 金臺山城, ?原山城 등이 보이고 있다. 또한 太宗臺와 橫指岩 등도 설명문과 같이 표시되어 있는데 태종과 그의 스승 元天錫과 얽힌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다. 읍치에는 관찰사가 집무하던 營門과 목사가 집무하던 本官이 길을 사이에 두고 따로 그려져 있다. 각 지역을 연결하는 도로망도 홍선으로 상세하게 그려져 있는데 察訪驛이었던 丹邱驛에는 찰방관사도 보인다. 주변의 各面에는 사찰, 창고 등이 자세히 표시되어 있다. 육로와 수로가 교차하는 서쪽 섬강가의 文幕浦口, 興原江과 蟾江이 만나는 서창 부근, 左邊面의 東倉 부근에는 장시가 개설되어 고을의 상업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 이천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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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천지도 伊川地圖,이천부는 강원도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고을로 함경도와 평안도에 접해 있다. 해방 전 행정구역으로는 이천군 읍내면, 학봉면, 용포면, 산내면, 판교면, 방장면, 고미탄면, 안협면, 동면, 서면 일대에 해당한다. 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북한의 강원도 이천군 북쪽 지역과 판교군 일대에 해당한다. 산지가 많고 평지가 적은데, 토양이 메말라서 경지의 대부분이 밭으로 이루어진 고을이다. 지도에는 고을을 관통하는 임진강과 주변의 산지가 거친 필체로 표현되어 있다. 읍치인 府內를 특별히 부각시키지 않고 주변 지역과 동일한 축척으로 그렸다. 하천과 도로를 홍선으로 그렸는데 하천은 더 굵게 그렸다. 德津 근처에는 하중도인 蛇島가 강조되어 그려져 있다. 淸浦面의 廣腹洞은 산지로 둘러싸인 분지로 주변에 물이 많고 토지가 비옥하여 이 고을에서 유일하게 관개에 의한 벼농사가 이루어졌던 곳이다. 북쪽의 把守院은 병자호란 때 적군이 이곳을 넘어 침입했기 때문에 이후 여기에 防守軍을 두고 院宇와 把守를 설치했던 곳이다. 그 북쪽에는 황장목을 장양했던 封山이 禁山으로 표시되어 있다. 葛山과 九里에는 온천도 보이고 方丈面의 黑石場, 서쪽의 支石場 등의 장시도 개설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 인제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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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제현지도 麟蹄縣地圖,인제현은 지금의 인제군 인제읍, 북면, 서화면, 북면, 남면, 상남면, 기린면 일대에 해당한다. 읍치는 인제읍 합강리, 상동리 일원에 있었다. 곳곳에 높은 산들이 포진해 있어서 평지가 매우 적다. 고을의 중앙을 내린천이 흘러나가며 소양강과 합류한다. 흑색으로 산지를 표현하였는데 봉우리에 마치 전봇대 모습을 그려 수목을 표현한 점이 이채롭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附圖인 東覽圖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지도의 외곽에 사방 경계를 표시하였다. 읍치를 주변 지역에 비해 확대시켜 강조하였는데 客舍와 官舍를 비롯하여 사직단, 여제단, 성황단, 문묘의 3단 1묘를 그려 넣었다. 고을의 진산은 북쪽의 伏龍山이며 동남쪽의 설악산에는 백담사를 비롯한 여러 사찰도 그려져 있다. 동쪽의 寒溪洞은 설악산으로 들어가는 계곡인데 수려한 경치가 嶺西 지역에서 제일로 꼽히던 곳이다. 읍치 동쪽의 合江亭은 인제읍 합강 2리에 있는 정자로서 소양강 상류인 내린천이 기린 방면에서 흘러내리고 서화강이 한계천과 원통에서 합류된 데서 연유하여 命名된 것이다. 이 정자는 현감 李世億(재임기간: 1675~1677)이 1676년(숙종 2)에 세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정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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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지도 旌善地圖,旌善郡은 지금의 정선군 정선읍, 북평면, 북면, 동면, 신동읍, 남면, 사북읍, 고한읍 일대에 해당한다. 읍치는 정선읍 봉양리 일원에 있었다. 정선은 백두대간이 종관하는 영서산악지대로 전역에 걸쳐 산지가 중첩되어 있고 남한강 상류 계곡에 약간의 평지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경지도 대부분이 旱田이고 水田은 매우 적다. 지도는 다른 군현에 비해 규격이 작게 그려졌지만 수록된 내용은 비교적 풍부하다. 읍치는 주변지역과 동일한 축척으로 그렸는데 단지 ‘郡內’라고 표기하였다. 고을의 진산인 飛鳳山에 이르는 내맥이 비교적 잘 표현되어 있다. 주변지역에는 面의 명칭이 생략되고 대신에 마을 이름이 상세히 표시되어 있다. 읍치 남쪽의 桐江은 본래 大陰江인데 ?陰?자를 꺼려하여 개명한 것이다. 동북쪽 餘糧驛 위쪽에 두 물줄기가 만나는 곳은 아리랑의 발상지로 전해오는 아우라지이다. 도로는 홍선으로 그렸는데 대로와 소로를 굵기로서 구분하였고 군사적 요충이 될만한 곳에 ‘隘口’라 표시하였다.

  • 철원구방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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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원구방지도 鐵原九坊之圖,해방전 행정구역으로는 철원군 동송면, 서변면, 갈말읍, 어운동면, 북면, 신서면, 무장면 일대에 해당한다. 지금의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동송읍, 갈말읍, 어운면, 묘장면, 북면과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경기도 포천군 관인면 일대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일부 지역은 비무장지대와 북한 지역에 편입되어 있다. 궁예가 도읍으로 삼았던 곳으로 한탄강이 고을을 가로지르며 흘러가고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는 고을이다. 1746년(영조 22) 춘천에 있던 防營을 이곳으로 옮겨 9개의 고을을 관장하였다. 지도는 고을내의 9개의 面과 그에 소속된 동리를 비교적 상세하게 표현하였다. 방위도 표시되어 있는데 ‘南北’ 대신에 ‘子午’라는 간지를 사용하였다. 남쪽은 높은 산지로 덮여 있고 북쪽으로 평야가 발달한 지역의 특성이 지도에도 반영되어 있다. 산지와 하천 모두를 청색으로 묘사하였는데 산지는 맥세를 강조하는 전통적인 방식을 따르고 있다. 주변지역에 비해 읍치를 확대하지는 않았지만 客舍, 衙舍, 吏廳 등의 관청 건물을 그려 넣었다. 북쪽에는 궁예가 도읍했던 弓王古都도 그려져 있는데 내외성의 성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고을의 남쪽 한탄강 중류에는 철원8경의 하나인 고석정도 보인다. 고석정은 진평왕과 고려 충숙왕이 놀던 유서깊은 곳으로, 절벽 아래 굽이쳐 흐르는 강심에서 10여m나 위로 높이 솟은 석벽과 그 위의 세 칸 남짓한 자연 석굴이 절경을 이룬다. 그 밖에 도로변에 위치한 역원과 창고, 그리고 사찰 등도 상세하게 표시되어 있다.

  • 춘천부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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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부지도 春川府地圖,춘천부는 현재 춘천시 북산면, 산북읍, 동면, 동내면, 신동면, 남면, 서면, 사북면 그리고 화천군 사내면 일대에 해당한다. 읍치는 춘천시 요선동 일원에 있었다. 춘천은 강원도 내륙에 위치한 분지로 고을의 내부를 소양강이 관통하고 있다. 과거 맥국의 古都로서 牛首州, 朔州 등으로 불리다 1413년(태종 13)에 春川으로 되었다. 1895년 지방행정 개편 때 관찰부가 이곳에 들어서면서 강원도의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지도는 전체적으로 다소 소략하게 그려졌는데 邑誌에 수록된 지도와 구도, 모습이 유사한 것으로 보아 이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지도의 중심에 동헌을 비롯한 관청 건물을 상세하게 그렸으나 주변은 面名을 표기하는 정도에 그쳤다. 특히 동헌, 객사뿐만 아니라 府使의 관사인 內衙, 아전들의 근무처인 作廳 그리고 捕廳, 詳定(廳) 등 다양한 건물이 그려져 있다. 聞韶閣은 일명 邀仙堂으로도 불리는데 1573년(선조 6)에 府使 成義國이 세운 것이다. 府內에는 노란색의 집 지붕을 그려 장시를 표시했으며 서남쪽의 門岩은 회화적으로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남쪽 산들의 봉우리가 향하는 방향이 다르게 그려진 것도 회화식 지도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특징이다.

  • 통천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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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천지도 通川地圖,통천군은 해방 전 행정구역으로는 통천군 순령면, 군내면, 벽양면, 임남면, 답전면, 학일면, 학이면, 학삼면 일대에 해당한다. 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북한의 강원도 고성군 북쪽 지역(舊臨南面)과 통천군 일원이다. 지도는 회화적인 기법을 가미하여 과거 통천의 모습을 고졸하게 표현하고 있다. 관아가 있던 읍내에는 빙 둘러가면서 산을 그려 고을의 중심 공간임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邑倉 이외에는 관청 건물을 거의 그려 넣지 않았다. 동쪽의 해안에는 관동팔경 중의 하나로서, 우뚝 솟은 기암괴석으로 유명한 叢石亭의 모습을 회화적으로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 서쪽에는 금강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峻嶺들을 연이어 그려 산세 또한 웅장함을 엿보게 한다. 남쪽 부분의 百鼎峰, 瓮崖, 門巖 등은 그 이름에 걸맞게 솥, 항아리, 문 모양을 그려 넣은 점이 이채롭다. 특히 백정봉은 산정부에 백여 개의 작은 우물이 있어서 百井峰이라 표기하기도 하는데, 비가 내려도 우물이 차지 않고 가물어도 물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바다에 그려진 卵島는 서쪽을 제외하고 동?남?북쪽이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해마다 3, 4월에 海鳥들이 이곳에 모여들어 알을 낳고 번식하므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도로는 검은 선에 홍선을 덧칠해서 표현하였고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한 읍내와 북쪽과 남쪽의 나루터에는 시장도 형성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 평강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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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강지도 平康地圖,평강현은 철원 북쪽에 위치한 고을로 분수령을 넘어 함경도로 이어지는 길목에 있다. 해방 전 행정구역으로 평강군 군내면, 현내면, 고삽면, 남면, 서면, 목전면, 유진면 일대에 해당한다. 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북한 강원도 평강군과 세포군 일대이다. 지도는 읍치와 주변지역을 동일한 축척으로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하였다. 산지는 독립된 산의 형태로 그렸는데 읍치의 主山인 虎岩山에는 암벽의 모습도 잘 묘사되어 있다. 직사각형 속에 면 이름을 표기하였는데 옆에 소속 마을 수도 병기하였다. 읍치에는 관청 건물을 그리지 않고 단지 衙舍, 客舍 등의 글자만 기입하였다. 김정호의 ?大東地志?에는 이곳에 黃腸封山이 네 군데 있는 것으로 기재되어 있는데 지도상에서도 북쪽 고삽면과 유진면에 禁山이라 표시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봉수의 표시도 상세한데 조응관계도 기재하였다. 서북쪽에는 三防鎭이 표시되어 있는데 1867년(고종 4)에 鎭을 설치하고 別將을 둔 것이다. 이 고을에는 산성이 곳곳에 있었지만 이 시기에 이르러는 거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곳은 궁예와 관련된 지명이 남아 있는데, 궁예가 사냥가서 잠시 쉬었던 憩峴, 궁예가 변란을 듣고 도망할 때 갑옷을 버리고 달아난 곳인 甲棄川 등이 대표적이다.

  • 평창군오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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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창군오면지도 平昌郡五面地圖,평창군은 지금의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 미탄면 일대에 해당하는 비교적 작은 고을이다. 다른 지역에 비해 면적이 작지만 縣이 아닌 郡으로 된 것은 穆祖 孝妃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읍치는 평창읍 중리, 하리 일원에 있었다. 고을은 높은 산지에 위치하고 있고 평창강이 내부를 곡류한다. 지도는 회화적 기법을 가미하여 고을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산에는 수목까지도 그려 넣었고 주변의 각 마을에는 황색의 초가집을 그려 표현하였다. 고을의 진산은 魯山인데 산의 정상에는 城隍祠가 자리잡고 있다. 읍치에 있는 國舅祠宇는 穆祖의 妃 孝恭王后의 부친인 千牛衛長史 李肅과 모친인 突山郡夫人 鄭氏를 제사지내던 사당이다. 읍치 동북쪽에 있는 斗滿山은 黃腸封山으로 지도상에도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잘 표현되어 있다. 읍치 앞과 후평리 강변에는 송림이 잘 가꾸어져 있는데 홍수해를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 지도의 하단 여백에는 馬池津에 있는 동굴에 대한 설명이 수록되어 있다. 이 동굴은 현재 응암굴로 불리는데 상굴과 하굴로 이루어져 있다. 임진왜란 당시 군수 權斗文이 이 동굴로 피난하였는데, 끝내 탄로나 잡혀가게 되자 그의 妾은 절벽 아래로 몸을 던져 자결했고 參奉 智士涵과 出身 禹應民 등은 왜적과 싸우다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 평해군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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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해군지도 平海郡地圖,평해군은 지금의 경북 울진군 평해읍, 기성면, 온정면, 후포면 일대에 해당한다. 원래 강원도에 속해 있었는데 1962년 경상북도에 편입되었다. 읍치는 평해읍 평해리에 있었다. 서쪽은 낙동정맥의 높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고 동쪽 해안에는 충적평야가 다소 넓게 펼쳐져 있다. 남대천이 고을의 중앙을 가로질러 바다로 흘러간다. 지도는 서쪽을 상단으로 배치하였다. 또한 다른 군현지도와는 달리 方格을 사용한 점이 특징적이다. 이 방격은 정방형이 아닌 직사각형의 형태로 되어 있으며 격자에 대한 실제거리의 표시가 없는 점으로 보아 축소 또는 확대 모사 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지도는 비교적 소략하게 그려져 面名, 누정과 사찰 등이 수록된 정도이다. 읍치에는 읍성도 표시되어 있는데 고려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知郡事 金乙權이 쌓은 것이다. 동쪽 해안의 월송정이 있는 곳에도 성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水軍萬戶가 지키던 越松浦鎭城으로 1555년(명종 10)에 쌓은 것이다. 뛰어난 절경으로 이름난 越松亭, 望洋亭 등의 정자가 그려져 있으며 북쪽에는 지금의 백암온천으로 널리 알려진 溫井도 보인다.

  • 홍천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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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천지도 洪川地圖,洪川縣은 지금의 강원도 홍천군 홍천읍, 두촌면, 화촌면, 북방면, 서면, 남면, 동면, 서석면, 내촌면 일대에 해당한다. 읍치는 홍천읍 희망리 일원에 있었다. 홍천은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강원도의 내륙산간 지역으로 산지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고을의 중앙부를 북한강의 지류인 홍천강이 흘러간다. 산지는 봉우리를 연속하여 그려 전통적인 산줄기 중심의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고을의 鎭山인 石花山 아래에는 향교와 縣衙, 倉庫 등이 표시되어 있는데 그림으로 표현되지는 않았다. 주변 지역에는 각 面과 면 소속의 마을 이름이 비교적 소상하게 표시되어 있다. 도로를 홍선으로 표시하였고 도로변에는 역원명도 기재되어 있다. 읍치 남쪽 남산 너머에는 羽嶺이 보이는데, 鶴들이 이 고개를 넘어갈 때 날개가 떨어졌던 데서 연유한 지명이다. 그 옆에는 大彌山城古址도 보이는데 원래 돌로 쌓은 성이지만 이 시기에는 퇴락하여 흔적만 남아 있다. ?大東地志?에 의하면 黃腸封山이 두 군데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동남쪽의 淸凉里에 禁山이 표시되어 있다. 창고는 동서남북의 四倉과 읍내의 司倉, 賑倉 그리고 西倉 옆에는 大同米를 관리하던 大同倉도 표시되어 있다.

  • 회양부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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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양부지도 淮陽府地圖,회양부는 강원도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고을로 철령을 사이에 두고 함경도와 접하고 있으며, 곳곳에 많은 고개들이 포진하고 있다. 해방 전 행정구역으로는 부내면, 상초북면, 하초북면, 난곡면, 안풍면, 사동면, 장양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현재 북한의 강원도 금강군, 회양군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지도는 읍치를 주변 지역보다 크게 그려 강조하였는데 동헌 이외에 작청, 향청, 장청 등의 건물도 표시되어 있다. 고을의 진산은 읍치 북쪽의 義館嶺인데 祀典에 小祀로 등재하여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서쪽의 德津溟도 국가에서 小祀를 지내던 곳이다. 도로는 홍선으로 표시하였는데 철령으로 통하는 북관대로는 굵게 강조하였다. 이곳은 군사적 요충이 되므로 성을 쌓고 방비하였는데 이 시기에는 거의 퇴락하여 흔적만 남아 있음을 옆에 注記하였다. 나루터에 배와 사공의 모습이 그려진 점이 이채롭다. 무엇보다 창고의 표시가 상세하고 읍치에는 장시도 표시되어 있다. 서쪽의 산지에는 봉수대가 집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수려한 경치를 지닌 금강산의 아래쪽에는 黃腸木을 장양하던 黃腸封山도 보이고 있다.

  • 횡성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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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횡성현지도 橫城縣地圖,횡성현은 지금의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청일면, 갑천면, 공근면, 서원면, 우천면, 강림면, 안흥면, 둔내면 일대에 해당한다. 읍치는 읍하리, 읍상리 일원에 있었다. 횡성은 강원도의 남서부에 위치하여 동쪽은 평창, 서쪽은 경기도, 남쪽은 원주, 북쪽은 홍천과 접하고 있다. 고을의 남동부는 치악산을 비롯한 높은 산지로 둘러 싸여 있으며, 중앙부는 섬강이 흐르면서 횡성분지를 형성하고 있다. 산지는 담채로 고졸하게 묘사하였으며 사직단 부근에는 울창한 송림도 그려 넣었다. 읍치를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 부각시켰으며 관청 건물도 상세하게 그렸다. 지도에는 鴻頭山이 主山으로 표시되어 있으나 ?輿地圖書?에는 馬山이 주산으로 되어 있다. 또한 ?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馬山이 鎭山으로 기재되어 서로간에 차이가 나고 있다. 주변 지역은 면 이름이 표기되고 창고가 그려진 정도로 다소 소략하다. 도로변에는 驛을 그려 넣었는데 그 옆에는 숙소에 해당하는 館舍의 모습도 보이고 있다. 북쪽 泰岐山에는 黃腸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황장목을 장양하던 봉산이었다.

  • 흡곡현산천관방요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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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흡곡현산천관방요애지도 ?谷縣山川關防要?之圖,흡곡현은 강원도의 최북단에 위치한 조그만 고을로 동쪽으로는 동해안에 이르고 남쪽은 통천, 서북쪽은 함경도 안변과 맞닿아 있다. 해방 전 행정구역으로는 강원도 통천군 흡곡면, 학면 일대에 해당한다. 현재 북한 강원도 통천군의 북쪽 부분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지도는 풍수의 山圖와 유사한 양식으로 산지의 맥세를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山川關防要?之圖’라는 지도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군사적인 목적으로 제작된 지도로 좌측의 地誌로 지도를 보완해 주고 있다. 鐵嶺에서 秋池嶺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산줄기가 위쪽에 배치되고 동쪽과 북쪽에 있는 동해 바다가 아래쪽에 있다. 바다에는 파도 무늬도 그려져 있다. 지도에는 縣城을 비롯하여 여러 산성이 표시되어 있으며 읍치와 庫底에는 시장도 개설되어 있다. 읍치 부근에는 호수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석호인 侍中湖를 나타낸 것이다. 여기에는 관동십경의 하나로 강릉 경포대에 비견되는 侍中臺가 있다. 그리고 동북쪽의 霜陰遷은 관동지방 첫 관문으로 이 지역 최고의 군사 요충지이지만 이 시기에는 안변에 속해 있었음을 注記에서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