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도古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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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도

海東地圖 해동지도

  • 편저자 : [作者未詳]
  • 청구기호 : 古大4709-41-v.1-8
  • 간행연도 : [18世紀(英祖 年間:1724-1776)]
  • 책권수 : 8帖
  • 판본사항 : 筆寫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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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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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초에 간성현이 되었으며 고성, 강릉과 통합되고 분리되는 과정을 겪다가 1914년 이후 고성군에 포함되었다. 현재의 강원도 속초시 북쪽 일부(영랑호 부근)와 고성군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고성군 간성읍의 중심지가 과거의 邑治에 해당한다. 북쪽으로 烈山?과 縣內面이 나타나는데 여기서의 縣은 간성이 아니라 과거 이 곳에 있었던 烈山縣을 가리킨다. 고성군 현내면 산학리의 열산이 烈山 邑治였다.간성의 邑治는 邑城의 형태로 그렸으며 그 안에 客舍, 倉, 衙舍 등의관청과  月樓, 蓮亭 등의 정자를 그렸다. 鄕校는 읍성의 서쪽 지금의 간성읍 교동리에 있었다. 군의 서쪽으로는 백두대간이 막혀 있으며 동쪽으로는 바다에 접해 있다. 백두대간을 지도에서는 간략하게 일직선의 형태로 표시하면서 험준함을 나타나기 위하여 산들을 중첩하여 그리고 있다. 珍富嶺, 屹里嶺, 石破嶺, 彌恃嶺을 넘어 인제로 통하는 길은 험준하며 동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高城, 襄陽으로 통하는 길은 평탄하다. 明波驛, 雲根驛, 竹泡驛, 元岩驛, 淸澗驛이 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자산천, 초계천, 북천, 남천 등의 하천이 서쪽에서 나와 동해로 들어가는데 縣의 남쪽에 南川이 적혀 있다. 해안에는 바다였다가 해수에 의한 퇴적작용으로 潟湖가 된 廣湖, 永郞湖 등이 나타나고 있다. 과거에는 해안이었다는 사실은 松池浦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육지에 형성된 호수에 浦자가 붙어있다. 해안으로는 花津浦 등 포구가 발달하였으며 그 옆으로는 倉庫가 그려져 있다. 해안의 경치가 빼어나 仙遊亭, 淸澗亭 등의 정자가 있었는데 토성면 청간리에 있는 청간정은 關東八景의 하나에 속한다. 禾岩寺(토성면 신평리)는 769년(신라 惠恭王 5)에 세워진 것이며 乾鳳寺(거진읍 냉천리)는 520년(신라 法興王 7)에 세워졌으며 圓角寺, 西鳳寺 등으로 불리다가 1358년(고려 恭愍王 7)에 懶翁和尙이 중수하고 乾鳳寺라 고쳤다.(이현군)

  • 강릉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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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래 穢國의 땅이었으며 639년(신라 선덕여왕 6)에 小京을 삼아 北濱京이라 하였으며 936년(고려 태조 19)에 東原京이라 하였다. 현재의 강원도 강릉시와 정선군의 임계면, 평창군의 봉평면, 용평면, 진부면, 도암면, 대화면, 방림면, 홍천군의 내면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강릉시 용강동, 교동, 임당동, 명주동 일대가 중심지가 된다. 성곽 안에 客舍, 衙舍, 倉이 있으며 성밖에 鄕校가 있다. 성곽은 현재 남문동 등의 지명으로 그 흔적을 알 수 있다. 백두대간이 이 지도의 가운데를 지나며 험준함을 표시하기 위하여 산을 중첩하여 그렸으며 雪岳山에서 이어져 내려왔음을 표시하고 있다. 백두대간은 이 지역의 分水界가 되기도 한다. 府의 앞을 흐르는 하천은 남대천이며 동해로 들어간다. 동해안의 호수(香湖, 鏡湖, 楓湖)는 海水에 의한 퇴적작용으로 형성된 潟湖이다. 鏡湖는 鏡浦湖로 그 앞의 정자인 鏡浦臺와 해수욕장으로 유명하다. 五臺山의 月精寺(평창군 진부면 동산리)는 신라 선덕여왕때 자장율사가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보았으나 깨닫지 못하고 있는데 한 노승이 梵戒를 가르쳐주고 舍利를 주면서 봉안할 곳을 찾으라 하니 이곳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월정사 근처의 史庫는 1606년(선조 39)에 세운 것으로 朝鮮王朝實錄과 주요문서를 보관하던 곳이다. 일제시대에 동경제국대학으로 옮겨지고 건물은 한국전쟁때 불타고 그 터만 남았다. 서원으로는 松潭書院, 五峰書院이 있었다. 도로는 大倉驛, 安仁驛을 통해 남북의 삼척, 양양으로 통하는 길은 편리하였으나, 丘山驛, 橫溪驛, 木界驛, 高端驛, 大和驛, 芳林驛, 雲交驛 등을 거쳐 白頭大幹을 통과하는 길은 험준하였다.(이현군)

  • 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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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경도, 황해도,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와 경계를 이루며 동쪽은 東海와 닿아있다. 백두대간을 기준으로 동쪽은 9개, 서쪽은 17개, 총 26개의 府·郡·縣이 있으며 監營은 原州에 설치되어 있다. 동해안을 따라 표시된 9개의 군현이 嶺東에 해당한다. 각 군현별 지도에서는 26개 군현외에 울릉도를 따로 그려 강원도 안에 포함하였다. 高城, 通川,  谷, 淮陽, 金城, 金化, 鐵原, 平康, 安峽, 伊川은 군사 분계선 북쪽 지역이며 蔚珍, 平海, 鬱陵島는 현재 경상북도에 속해있다. 해동지도에서는 도별로 色을 달리하여 군현을 표시하는데 강원도는 녹색을 사용하였다. 監營이 있는 원주의 경우 홍색을 사용하고 다른 군현보다 크게 표시하였다. 삼척영장과 월송만호의 鎭營은 붉은 사각형안에 별도로 표시하였다. 이 지도는 강줄기, 산줄기를 중심으로 그렸으며 도로망은 따로 표시하지 않았으나 주요 驛의 이름은 기록하였다. 강은 흐름이 이어지게 그렸으며 산은 연결하여 그리지는 않았다. 강을 먼저 그리고 그 사이로 산을 표시한 것으로 생각된다. 백두대간을 기준으로 동쪽의 강은 동해로, 서쪽의 강은 서해로 흘러들어가게 된다. 이 지도에서 가장 서쪽의 강은 임진강이며 그 동쪽은 한탄강이 된다. 가장 水系가 길고 여러 하천과 합류되는 것은 북한강으로 소양강과 홍천강의 물을 받아들인다. 가장 남쪽의 강은 남한강이다. 강의 명칭이 현재와 다르며 같은 강이라도 지역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렸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강원도의 가장 큰 산줄기는 역시 백두대간이며 분수령에서 漢北正脈이 서남쪽으로 갈라진다. 이 지도에서 백두대간은 북쪽에서 내려온 산줄기가 金剛山을 지나 太白山까지 이어진 것이며, 한북정맥은 북한강 서쪽으로 이어진 산줄기로 金城과 金化 사이를 지나는 것이다. 산과 주요 고개(嶺·峙)의 이름을 표시하였다. 금강산을 특히 강조하여 그리고 있으며 山城이 있는 곳은 따로 표시하였다. 동해안에는 海水의 퇴적작용으로 형성된 석호들을 그렸으며 동해에 많은 섬들을 그렸는데 浦를 바다에 그린 점이 이채롭다. 지도의 여백에는 戶口, 田畓, 軍兵, 官職, 收稅 등의 사항이 기록되어 있다.(이현군)

  • 강원도의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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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경도, 황해도,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와 경계를 이루며 동쪽은 東海와 닿아있다. 백두대간을 기준으로 동쪽은 9개, 서쪽은 17개, 총 26개의 府·郡·縣이 있으며 監營은 原州에 설치되어 있다. 동해안을 따라 표시된 9개의 군현이 嶺東에 해당한다. 각 군현별 지도에서는 26개 군현외에 울릉도를 따로 그려 강원도 안에 포함하였다. 高城, 通川,  谷, 淮陽, 金城, 金化, 鐵原, 平康, 安峽, 伊川은 군사 분계선 북쪽 지역이며 蔚珍, 平海, 鬱陵島는 현재 경상북도에 속해있다. 해동지도에서는 도별로 色을 달리하여 군현을 표시하는데 강원도는 녹색을 사용하였다. 監營이 있는 원주의 경우 홍색을 사용하고 다른 군현보다 크게 표시하였다. 삼척영장과 월송만호의 鎭營은 붉은 사각형안에 별도로 표시하였다. 이 지도는 강줄기, 산줄기를 중심으로 그렸으며 도로망은 따로 표시하지 않았으나 주요 驛의 이름은 기록하였다. 강은 흐름이 이어지게 그렸으며 산은 연결하여 그리지는 않았다. 강을 먼저 그리고 그 사이로 산을 표시한 것으로 생각된다. 백두대간을 기준으로 동쪽의 강은 동해로, 서쪽의 강은 서해로 흘러들어가게 된다. 이 지도에서 가장 서쪽의 강은 임진강이며 그 동쪽은 한탄강이 된다. 가장 水系가 길고 여러 하천과 합류되는 것은 북한강으로 소양강과 홍천강의 물을 받아들인다. 가장 남쪽의 강은 남한강이다. 강의 명칭이 현재와 다르며 같은 강이라도 지역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렸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강원도의 가장 큰 산줄기는 역시 백두대간이며 분수령에서 漢北正脈이 서남쪽으로 갈라진다. 이 지도에서 백두대간은 북쪽에서 내려온 산줄기가 金剛山을 지나 太白山까지 이어진 것이며, 한북정맥은 북한강 서쪽으로 이어진 산줄기로 金城과 金化 사이를 지나는 것이다. 산과 주요 고개(嶺·峙)의 이름을 표시하였다. 금강산을 특히 강조하여 그리고 있으며 山城이 있는 곳은 따로 표시하였다. 동해안에는 海水의 퇴적작용으로 형성된 석호들을 그렸으며 동해에 많은 섬들을 그렸는데 浦를 바다에 그린 점이 이채롭다. 지도의 여백에는 戶口, 田畓, 軍兵, 官職, 收稅 등의 사항이 기록되어 있다.(이현군)

  • 고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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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래 穢國의 땅이었으며 신라 경덕왕때 고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군사분계선 이북 지역으로 현재의 북한 강원도 고성군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고성읍 구읍리가 邑治에 해당한다. 읍치는 성곽으로 되어 있으며 客舍, 衙舍와 함께 海山亭이 그려져 있다. 성밖 서쪽에 鄕校가 표시되어 있다. 백두대간의 동쪽 지역으로 杆城, 通川과 남북으로 경계를 이루며 東海와 접하는 지역이다. 서쪽에 金剛山을 그렸으며 봉우리들을 중첩하여 많이 그렸다. 백두대간에서 나온 하천이 읍성을 감싸며 바다로 들어가는데 邑治 북쪽의 강은 新溪川이며 남쪽은 南江이다. 교량으로 百川橋가 표시되어 있다.읍성 북쪽으로 三日浦(외금강면 삼일포리)가 해안이 아닌 내륙에 위치하고 있다. 삼일포는 海水에 의한 퇴적작용으로 형성된 潟湖로서 과거의 해안선을 유추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경치가 빼어나 옛날에 네 신선이 여기서 놀며 3일간이나 돌아가지 않았다고 해서 이렇게 이름붙였다고 한다. 養 驛을 지나 통천으로, 溫井岺, 九龍岺을 넘어 淮陽으로, 高岺驛, 炭嶺을 지나  蹄로, 大康驛을 넘어 杆城으로 통한다. 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연결된 도로는 평탄하며 大幹을 넘는 서쪽으로의 통로는 험준하다. 新溪寺, 鉢淵寺, 圓通寺, 楡站寺(楡岾寺의 誤記) 등의 사찰이 금강산을 끼고 있었다. 楡岾寺는≪동국여지승람≫에 53佛이 月 國에서 무쇠종을 타고왔으며 9龍이 숨어있는 못을 메우고 이 절을 지어 이들을 모셨다하며 조선 세종이 찾은 적이 있다고 한다. 이 밖에  庫, 倉이 표시되어 있고 읍성 남쪽에는 帶湖亭이 나타난다.(이현군)

  • 금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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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초에 금성으로 이름을 고쳤으며 1914년에 김화군에 포함되었다.현재 대부분이 휴전선 이북으로 북한의 행정구역상 강원도 김화군 동쪽지역과 창도군의 서쪽과 북쪽지역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邑治 동북쪽의 通口面(창도군)은 通口縣이었으며 縣里가 중심지였다.  城面(창도군)은  城縣이었으며 현재 기성리라는 지명으로 남아있다. 두 縣 모두 고려 때에 金城에 속하게 된다. 邑治에 성곽은 없고 다른 郡縣과 마찬가지로 客舍, 衙舍, 倉, 鄕校를 표시하였으며 慶陽樓를 그려 넣었다. 邑治의 북쪽에 있는 慶坡山이 鎭山에 해당한다. 서쪽에서 나와 縣의 앞쪽을 흐르는 하천(南大川)은 金城川으로 북쪽에서 나온 北漢江 상류와 합해진다. 합류되는 지점을 이 지도에서는 錢浦合水라고 적고 있다. 水串橋, 西大橋 등의 교량을 하천에 표시하였으며 邑治 앞의 南大川가에 披襟亭이 있다. 나루로서는 大慶津을 표시하였고 河中島로 보이는 白鷺島가 지도에 나타난다. 서쪽의 북한강 상류에 縣倉, 任倉 등 창고가 표시되어 있는데 縣倉의 縣은 이전의 通口縣을, 任倉의 任은 任南面을 지칭하는 것이다. 縣 동쪽에는 古城이 표시되어 있다. 直木驛을 지나 金化로 통하는 길은 서울과 통하는 大路이며 이 길은 한반도 동북쪽으로 함경도 서수라까지 통하는 길이다. 瑞雲驛을통하는 길은 狼川으로 연결되며 斷髮嶺을 지나는 金剛路가 표시되어 있다.(이현군)

  • 김화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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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8년(고려 현종 9)에 김화로 이름을 고쳤으며 지금의 김화군은 1914년에 김화군과 금성군을 합한 것이다. 김화현의 범위 중에서 휴전선 이남은 1952년에 철원군에 편입되었으며 휴전선 이북은 김화군에 편입되어 있는 상태이다. 현재 남한의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근남면, 서면과 북한의 강원도 김화군의 서쪽지역인 근동면, 근북면, 원북면일대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철원군 김화읍 읍내리가 중심지가 된다. 읍치에는 客舍, 衙舍, 倉庫, 鄕校가 표시되어 있다. 縣 앞의 하천은 南大川이며 서북쪽으로 가서 한탄강에 합류된다. 백두대간에서 뻗어나온 산줄기가 縣을 감싸고 있어 땅이 넓지 못하다. ≪동국여지승람≫에 강희백, 성석인, 이곡 등의 시에서 ''산이 고을을 포위하고 있다,'' ''山川이 답답하게 막혀서 평탄한 땅이 없구나'' 등으로 이 지역을 묘사하고 있다. 남서쪽의 永平에서 登古介를 넘고 生昌驛(김화읍 생창리)을 지나 縣에 연결되는 길은 서울로 통하며 이 길은 동북쪽의 中峴을 넘어 金城으로 이어지는데 함경도 西水羅까지 통하는 한반도 동북방향의 大路이다. 도로가 통과하는 고개를 명칭과 함께 표시하였다. 이 지도에서 특이한 점은 登古介, 可古介, 成造古介, 小古介 등 우리말의 ''고개''를 ''古介''로 쓰고 있는데 이것은 다른 강원도 군현지도에서 볼 수 없는 점이다. 지도의 여백에 이 지역의 길들이 험준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縣의 북쪽에 성곽은 그리지 않고 古山城을 표시하였으며 縣 남쪽에는 柳琳大捷碑가 보인다.忠烈祠, 水泰菴 등의 사당과 사찰이 표시되어 있으며 남쪽에 七臺岩을 그려놓았다.(이현군)

  • 낭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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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의  川縣이었다가 757년(신라 景德王 16)에 狼川郡이 되었으며 1895년(고종 32)에 화천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현재의 강원도 화천군에서 사내면(춘천부 땅)을 제외한 상서면, 화천읍, 하남면, 간동면 일대에 해당하며 중심지는 현재의 화천읍내가 된다. 읍치는 성곽은 없고 다른 강원도 군현지도에서처럼 客舍, 衙舍, 倉庫만 표시하고 있다. 鄕校는 邑治의 서쪽 화천읍 하리에 있었다. 읍치의서쪽에 있는 牲山이 鎭山에 해당하며 과거에 山城이 있었다고 한다. 읍치의 약간 북쪽에 있는 新邑里(화천읍 신읍리)는 낭천읍의 읍터가 되었던 적이 있으므로 이렇게 이름붙였다. 현 북쪽에서 흘러온 馬峴川이 縣 서쪽에서 북한강과 합류되는데 북한강 중 狼川縣의 앞쪽은 과거에는 南江으로 불리었다.하남면 위나리에 남강나루가 있었다. 鋤吾之川은 하남면 서오지리라는 지명을 통해 알 수 있으며 母津江은 북한강의 일부분을 지칭하는 것이다. 육로와 수운을 통해 가평을 지나 서울로 연결되며북한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楊口, 金城과 통한다. 도로는 적색으로 표시하였으며 경로상의 고개(峙·峴)와 경계가 되는 山의 위치, 명칭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山陽驛(상서면 산양리), 芳川驛(간동면 방천리), 原川驛(하남면 원천리)이 이곳에 있었다. 邑治 북서쪽의 烽燧山(상서면 봉오리)은 과거에 烽火를 들었던 이유로 산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龍淵, 龍首, 龍岩寺, 龍華山 등 ''龍''字가 들어간 지명이 많은데 崔府(1369-1452)의 詩에 ''산은 龍이 서린 것 같으며 地軸이 깊도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雲峰寺(화천읍 동촌리 운봉동), 龍岩寺(간동면 방천리 절골) 등의 사찰이 과거에 있었는데 이 지도에 표시되어 있다.(이현군)

  • 삼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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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강원도 동해시, 삼척시, 태백시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삼척시 중심부가 삼척부가 자리한 지역이다.본래 悉直國이었는데 신라 婆娑王때 항복하였으며 760년(景德王 19)에 三陟郡이 되었다. 현재 북평읍과 묵호읍이 합해져 동해시가 되었고, 황지읍과 장성읍이 합해져 태백시가 되었으며 삼척읍이 삼척시가 되었다. 백두대간(頭陀山, 太白山)의 동쪽에 있는 지역으로 바다와 접하고 있으며 五十川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른다. 太白山의 黃池는 낙동강의 발원처로 알려진 곳이다. 삼척영장이 주재하는 鎭營과 府의 중심지에 성곽이 형성되어 있었다. 平陵驛, 新興驛을 지나 江陵으로, 百復嶺, 竹嶺, 楡嶺을 넘어 정선, 영월로 연결되었으며 史直驛, 交柯驛, 龍化驛, 沃原驛 등을 거쳐 울진과 안동으로통하는 지역이다. 명승지로 이름난 곳이 많은데 대표적인 것이 武陵溪(동해시 이도동)이다. 바닷가에는 東樓와 召公臺가 있다. 지도 오른쪽 아래에 縣倉(원덕읍 옥원리)이 있는데 과거에 竹嶺縣이 이곳에 있었다.(이현군)

  • 안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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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경덕왕이 안협으로 고쳤으며 1414년(태종 14)에 경기도 삭녕군과 합하여 안삭군이 되었다. 1416년(태종 16)에 안협현이 되었다가 1914년에 伊川에 병합되었다. 현재 북한의 행정구역상으로는 강원도 철원군의 북쪽 안협면과 이천군의 남쪽 부분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도로, 산줄기, 강줄기를 중심으로 간략하게 그린 지도이다. 철원군 안협면의 읍내리가 邑治가 되며 북쪽의 晩景山이 鎭山에 해당한다. 邑治에 성곽은 없고 客舍, 衙舍, 倉, 鄕校만 표시하였다. 읍치를 중심으로 두 개의 古城과 擧城이 표시되어 있다. 邑治의 서쪽에서 남북으로 흐르는 하천은 臨津江으로 강을 따라 북쪽의 平康, 伊川과 이어지는 길에는 별로 험준한 嶺隘가 없다. 서쪽으로는 황해도 兎山, 남으로는 경기도 朔寧과 鐵原, 북으로는 伊川이 경계를 이룬다. 적색의 도로상에 고개(峴)를 표시하였으며 지도 아래쪽에 去京路, 鐵原去路 등 서울, 철원과 이어지는 길을 따로 기록하였다. 그 밖에 북쪽에 烽燧臺를 표시하였다.(이현군)

  • 양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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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래 고구려의 楊口郡이었으며 현재의 강원도 양구군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縣의 중심지는 양구읍내의 상리, 중리, 하리 일대가 된다. 邑治에 城郭은 없고 客舍, 衙舍, 倉만 그려져 있다. 鄕校는 양구읍 중리에 있었다. 북쪽의 方山面縣은 원래 方山縣으로 1424년(세종 6)에 회양으로부터 양구에 속하게 되었다. 중심지는 고려때 방산면 고방산리에서 현리로 옮겨졌다. 亥安面縣은 亥安所가 있었던곳으로 역시 1424년(세종 6)에 春川으로부터 양구에 속하게 되었는데 해안면 현리가 과거의 읍치였다. 방산면과 해안면에는 각각 倉庫가 있다. 백두대간에서 갈라진 산줄기가 縣을 감싸며 縣의 앞을 흐르는 하천은 서천으로 北漢江에 들어간다. 지금은 댐 건설로 인해 파로호가 되어있다. 縣의 鎭山은 飛鳳山으로 과거에는 삼한 때 쌓았다는 山城이 있었다. 南面의 烽臺山에는 烽燧가 있었으나 폐하였다고 되어 있으며 지도 위쪽으로는 禁山이 표시되어 있다. 道里峙, 廣峙, 鷄山岺을 지나는 세 갈래 길을 통해  蹄와 통하며 含春驛(양구읍 하리)을 지나 淮陽, 狼川과 통하게 되는데 험준한 길이다. 지도 왼쪽 아래의 水仁驛(양구읍 수인리)을 지나는 길은 춘천과 가평을 경유하여 서울로연결되는 길이다. 이 밖에 정자(松岩亭)와 암자(深谷庵)가 지도에 표시되어 있다.(이현군)

  • 양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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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97년(태조 6)에 府로 승격되었으며 1416년(태종 16)에 양양으로 개칭되었다. 현재의 강원도 양양군 일대와 속초시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양양읍 군향리가 그 중심지가 된다. 지도 위쪽의 所川面과 道門面이 현재의 속초시에 해당하며 지도 아래쪽의 洞山縣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양양에 포함된 땅으로 양양군 현북면 지역이다. 府의 중심지에는 城郭이 있었으며 오늘날 남문리, 서문리 등의 지명으로 그 흔적을 알 수 있다. 성곽의 서쪽에 위치한 향교는 양양읍 내곡리 향교동에 있었다. 백두대간 동쪽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쌍천과 남대천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 바다에 들어간다. 靑草湖, 雙湖 등의 潟湖가 발달한 지역으로 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지도 왼쪽위는 설악산 일대이며 五色岺, 朴達岺, 阻枕岺, 九龍岺 등의 고개는 양구, 인제, 춘천과 통하는 통로가 된다. 降仙驛(강현면 강선리), 祥雲驛(손양면 상운리), 連倉驛(양양읍 연창리),  丘驛(현남면 인구리) 등의 역이 있었다. 東海廟(東海神祠, 양양읍 조산리)는 나라에서 봄가을에 香과 祝을 내리어 東海神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洛山寺(강현면 전진리)를 비롯하여 神興寺, 靈穴寺, 開雲寺, 明珠庵 등의 사찰이 있었다.(이현군)

  • 영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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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때에 영월로 이름을 고쳤으며 1401년(태종 원년)에 충청도에서 강원도로 편입되었다. 현재의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북면, 서면, 남면, 중동면, 하동면, 상동읍 일부지역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현재의 영월군에서 수주면과 주천면은 당시에는 원주에 소속된 지역이므로 제외된다. 현재의 영월읍내가 당시의 중심지였으며 지도에 客舍, 衙舍, 倉, 鄕校를 표시하였다. 백두대간에서 서남쪽으로 갈라진 산줄기가 府를 감싸고 있다. 산을 중첩하여 산줄기를 표현하였으며 來脈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밝히기 위해 ''斗滿山來'', ''太白山來''를 지도 위에 적어놓았다. 東江과 西江이 邑治 앞에서 만나 남한강이 된다. 경치가 뛰어난 곳이 많았는데 동강가의 錦江亭(영월읍 영흥리)은 1428년(세종 10)에 영월군수 김복항이 절벽 위에 세운 것이다. 서강 앞의 淸 浦(남면 광천리)는 端宗이 유배를 당했던 곳으로 1753년(영조 29)에 碑를 세워 端廟在本府時遺址라고 기록하였다. 莊陵(영월읍 영흥리)은 조선 6대 임금인 端宗의 陵으로 世祖에게 죽임을 당한 후 암장하여 魯山君墓라 칭하다가 1698년(숙종 24)에 단종으로 복위됨에 따라 장릉으로 追封되었다. 그 아래 丁字閣은 忠臣閣으로 安平大君, 趙遂良, 宦官, 侍女들의 위패를 배향하였으며 彰節祠(영월읍 영흥리)는 死六臣을 배향하던 곳이다. 石臺庵, 報德寺 등의 사찰이 표시되어 있는데 보덕사(영월읍 영흥리)는 658년(신라 문무왕 8)에 의상조사가 창건하였으며 1726년(영조 2)에 보덕사로 이름을 고쳤으며 莊陵의 陵寺가 되었다. 龍井院, 楊淵驛, 延平驛 등의 역원이 표시되어 있으며 강가에 倉庫가 있다. 다른 강원도 지도에는 잘 나타나지 않는 社倉이 지도 아래쪽에 표시되어 있다.(이현군)

  • 울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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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래 于山國으로 511년(신라 지증왕 12)에 異斯夫가 정복하였다. 조선태종 이후 섬을 비우고 강원도 울진현에 붙였다. 1694년(숙종 20)에 三陟僉使로 하여금 울릉도의 경비를 엄하게 하도록 하였다. 1882년(고종 19)에 강원도 平海郡 越松萬戶가 鬱陵島長을 겸하게 하였으며 1884년(고종 21)에 울릉도 개척령을 내렸다. 1906년에 경상남도에 속하였다가 1913년부터 경상북도에 속하게 된다. 현재의 경상북도 울릉군의 울릉도와 독도, 주변의 섬들을 그렸다. 독도는 이 지도에서 于山島로 적혀 있다. 울릉도 가운데에 中峰(성인봉)을 그리고 주변의 봉우리가 모두 중심을 향하게 그린 독특한 형식의 지도이다. 東西南北과 함께 文王八卦方位(巽, 艮, 乾, 艮)에 의해 방향을 표시하였다. 산줄기 사이로 하천을 그리고 大川流出이라고 적고 있다. 해안에는 中峰까지의 거리를 표시하고 있다. 비교적 넓은 땅에는 寬豁이라고 표시해 두었으며 살만한 지역은 可居라고 표시하였다. 해안의 바위에는 立岩刻標라고 적었으며 북쪽의 구멍바위(孔岩)까지 표시하였다. 倭船倉, 待風, 船泊, 家居 등 일본과의 관계, 바람, 선박운행, 거주 가능한 지역 등도 표시되어 있으며 石城門의 터, 石葬(지금도 남아 있는 울릉도의 古墳), 塔, 寺刹 터 등 유적을 표시하고 있다. 해안에는 竹田이 여러 곳에 표시되어 있다. 지도의 여백은 간단하게 기록하였는데 나무, 해산물, 동물 등이 주된 내용이다.(이현군)

  • 울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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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경상북도 울진군의 북쪽에 해당하는 원남면, 서면, 근남면, 울진읍, 죽변면, 북면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현재의 울진군은 울진과 평해를 1914년에 합한 것이며1963년에 강원도에서 경상북도로 옮겨왔다. 중심지는 이 지도에서 邑基로 표시되고 있는데 울진읍 읍내리에 해당하며 객사, 내아, 동헌 등의 건물이 있었다. 백두대간에서 갈라진 낙동정맥이 縣의 서쪽을 막고 있으며 부구천, 두천천, 남대천, 왕피천이 서쪽 고지대에서 東海로 흘러 들어간다. 縣의 앞쪽을 흐르는 것이 남대천이다. 興富驛을 지나 葛峴을 넘어 三陟으로 향하는 길은 평탄하였으며 鼎峙, 召造院을 지나산맥을 넘어 安東, 英陽으로 통하는 길은 험준하였다. 守山驛, 德新驛은 평해와 통하는 경로상에 위치하고 있었다. 古山城(울진읍 고성리)은 1396년 (태조 5)에 왜구의 침입으로 古邑城이 폐허가 되자 이곳으로 옮겨 성을 쌓고 古山城, 古寺山城, 縣上城으로 이름붙였는데 현재 성은 헐리고 터만 남았다. 鄕校는 1484년(성종 15)에 세워졌는데 1697년(숙종 23)에 이 지도에 나타나는 위치(울진읍 고성리)로 옮겨졌다가 1872년(고종 9)에 울진읍 읍내리로 옮겨지게 된다. 동해안의 竹田(죽변면 죽변리)은 바닷가에 많은 대나무가 있어 竹濱, 竹邊 등으로 불려지던 곳이다. 울진읍 대흥리에 大興寺, 佛影寺가 있었으며 孤山祠宇가 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聖留窟(근남면 구산리)은 석회암 지대에 형성된 천연동굴로 선유굴, 석류굴, 탱천굴, 성류굴 등으로 불리었으며 천연기념물 155호로 지정되어 있다. 임진왜란때 주민들이 이 굴에 피난했는데, 왜군이 입구를 막아 굶어죽었다고 전해진다.(이현군)

  • 원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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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문무왕 때 北原小京을 두었다가 940년(고려 태조 23)에 原州牧으로 고쳤다. 1395년(태조 4)에 강원도 監營을 이곳에 두었다. 현재의 강원도 원주시, 영월군의 수주면, 주천면, 횡성군의 서원면, 강림면, 경기도 여주군의 강천면을 포함하는 지역이다. 영월군 주천면은 고구려의 酒淵縣이었으며 신라 때는 酒泉縣이었다. 客舍, 倉, 衙舍, 鄕校 등이 표시된 중심지는 현재의 원주시 일산동, 명륜동에 해당한다. 客舍옆에 표시된 營은 강원도 監營을 뜻하며 일산동에 있었다. 동쪽에는 치악산이 있으며 서쪽으로 섬강이 흐른다. 치악산 동쪽의 강은 주천강이 된다. 치악산이 원주의 鎭山이 되며 서쪽으로 禁山이 기록되어 있다. 서쪽의 섬강은 남한강과 합류되는데 이 곳에 興原倉(부론면 흥호리)이 표시되어 있다. 과거 원주, 영월, 평창, 정선, 횡성 등의 세곡을 모았던 곳이다. 주천강가에는 酒泉倉(영월군 주천면)이 보인다. 섬강, 남한강을 끼고 梨湖津, 仰岩津, 江津 등의 나루가 발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강변에 太宗臺, 蟾岩, 淸虛樓 등의 명승지가 보인다. 사찰로는  原寺, 法興寺, 上院寺, 兩松寺, 九龍寺가 있다. 치악산 기슭의 원주시 관설동, 판부면 금대리 등에는 많은 산성이 있었는데 이 지도에서도 金臺 옆과  原寺 옆에 城(金臺城,  原山城)이 그려져 있다. 由原驛, 安昌驛을 통해 지평, 횡성과 통하며 新興驛은 평창과 神林驛, 丹丘驛은 제천, 충주와 통하는 경로상에 위치한다. 단구역에는 館이 표시되어 있다.(이현군)

  • 이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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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경덕왕이 이천으로 고쳤으며 1413년(태종 13)에 경기도에서 강원도로 이속되었다. 현재 북한의 강원도 伊川郡은 과거의 이천과 안협을 합한 것이다. 이 지도에서의 伊川은 이천군의 북쪽부분과 판교군 일대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지도의 여백에 관할 면으로 板橋面이 나타난다. 동쪽은 강원도 平康, 남쪽은 安峽, 서쪽은 황해도 新溪, 북쪽은 함경도 安邊과 경계를 이루며 府의 서쪽에서 남북으로 흐르는 강은 임진강이 된다. 강 안에 高城津, 蛇島가 표시되어 있다. 邑治에는 성곽없이 衙舍, 客舍, 倉을 그렸으며 북쪽의 城山이 鎭山이 되고 鄕校는 약간 떨어져있다. 悅雲亭, 天遊堂, 定齋祠 등의 정자, 사당이 나타난다. 북쪽 陽陰山 근처에 禁山이 표시되어 있으며 그 북쪽으로 溫井이 나타난다. 이 지역의 온천에 조선 世宗이 行宮을 지으라고 명령하고 거둥하기도 하였다고 전한다. 高城山 동쪽으로는 鎭基가 표시되어 있다. 驛院으로는 邑治 남쪽의 乾川驛, 서북쪽의 玉谷院이 나타난다.(이현군)

  • 인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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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때 인제로 불리기 시작하였으며 1413년(태종 13)에 현감을 두었다. 현재의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서화면, 북면, 남면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현재의 인제군에서 상남면, 기린면(춘천부 소속)은 제외된다. 인제읍이 과거의 중심지가 된다. 이 곳 읍치는 邑城없이 客舍, 衙舍, 倉庫만 그려져 있으며 鄕校는 인제읍 상동리에 있었다. 縣의 바로 뒤 伏龍山이 鎭山에 해당한다. 서화면은 과거 瑞和縣이 있었던 곳으로 조선 세종 때부터 인제현에 속하게 되었으며 서화리가 과거의 읍치에 해당하였다. 이 지도에서도 瑞和縣이 표시되어 있다. 縣의 동쪽은 백두대간이 되고 백두대간에서 나온 산줄기들이 縣을 둘러싸고 있어 험준하며 산줄기 사이로 하천이 흘러나와 縣의 앞쪽에서 합하여져 合江이 된다. 북쪽의 소양강과 남쪽의 내린천이 합하여진 것인데 合江가에 合江亭이 표시되어 있다. 이 강은 서쪽으로 흘러 북한강과 합류된다. 지금은 댐으로 인하여 소양호가 되어 있다. 하천을 따라 津과 倉庫들을 표시해주고 있다. 지도에서 산들을 중첩하여 표현함으로 험준함을 표현하였으며 교통의 통로가 되는 고개(嶺·峴·峙)들은 명칭과 함께 표시해 두었다. 嵐校驛, 富林驛이 高城, 杆城으로 가는 도로 위에 있었다. 행정구역상의 面과 마을(村)의 위치와 명칭을 기록하였으며 深源寺, 大勝庵 등의 사찰을 그림과 함께 표시해 주고 있다. 길이 험준하여 다른 지역과의 교류가 쉽지 않았으며 많은 눈과 적은 인구로 유명하였던 지역이다.(이현군)

  • 정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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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경덕왕이 정선현으로 고쳤으며 현재의 강원도 정선군에서 임계면(강릉 땅), 신동읍(평창 땅)을 제외한 북면, 정선읍, 동면, 남면, 사북읍, 고한읍 일대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정선읍 봉양리가 邑治이다. 백두대간의 서쪽에 위치하는 지역으로 동쪽으로는 강릉, 삼척과 마주하고 서쪽으로는 평창, 영월과 맞닿아있다. 백두대간에서 뻗어나온 산줄기 사이로 조양강이 심하게 곡류하여 縣의 앞쪽을지나며 南流하여 영월의 동강과 만난다. 縣 북쪽의 飛龍山(飛鳳山)이 鎭山이 된다. 邑治에는 客舍, 衙舍, 倉, 鄕校 등이 그려져 있으며 조양강변에 好善驛과 倚風亭이 있으며 縣의 동쪽으로 河中島가 표시되어 있다. 조양강에는 北津(북평면 북평리) 등의 여러 나루가 있었다.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 지도 북쪽의 餘粮驛근처 북면 여량리에는 아우라지 나루가 있어 정선아리랑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조양강과 동남쪽에서 흘러오는 동대천 사이에 瓦坪(정선읍 신월리)이 있는데 과거 이곳에서 기와를 구워냈다고 전한다. 와평 동남쪽에는 沒雲倉(동면 몰운리)이 표시되어 있다. 또한, 龍湫, 龍岩淵 등이 江과 연결되어 표시되어 있다. 적색의 도로 중에서 碧呑驛(정선읍 용탄리), 伽俚王山, 碧波嶺(정선읍 회동리)을 지나는 길과 餘粮驛(북면 여량리)을 지나는 길은 강릉으로 연결되며 行邁院(정선읍 용탄리)과 星摩嶺(정선읍 용탄리)을 지나는 길은 평창군과 연결된다.(이현군)

  • 철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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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래 고구려의 鐵圓郡으로 弓裔가 이 곳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泰封이라 칭하였다. 1434년(세종 16)에 경기도에서 강원도로 이관되었다. 현재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동송읍, 갈말읍, 어운면, 묘장면, 북면과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경기도 포천군 관인면 일대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일부지역은 비무장지대와 북한지역에 포함되어 있다. 동쪽의 대교천은 합하여 한탄강이 되고 서쪽의 하천은 역곡천으로 들어간다. 邑治 북쪽의 땅은 평야가 넓어 楓川原으로 불리었는데 이 지도에서는 平原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이곳에 궁예가 泰封을 세우면서 도읍을 정하였는데 지도에 弓王古都라 적혀 있다. 弓王은 궁예를 지칭하는 것이다. 弓裔城은 현재 비무장지대 북쪽지역에 있으며 外城과 內城으로 되어 있었다. 지도에서는 근처에 船倉이 표시되어 있다. 邑治에는 성곽없이 客舍, 衙舍, 倉, 鄕校가 표시되어 있다. 去北路, 京路, 去安峽路 등이 표시되어 있는데 한반도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서울과 한반도 북부지역을 잇는 교통상의 요지가 된다. 漣川을 통해 서울로 가는 방법과 永平을 거쳐 서울로 가는 방법이 있었는데 永平으로 가는 길목에 豊田驛(갈말읍 군탄리)이 있었다. 積石寺, 源深寺 등의 사찰과 祠宇가 그림과 함께 표시되었으며 割眉山과 所伊山에는 적색으로 烽燧를 표시하였다. 동쪽의 대교천, 한탄강 부근에는 명승지가 많았는데 지도에서는 北寬亭, 孤石亭, 三釜淵이 표시되어 있다. 孤石亭(동송읍 장흥리)은 신라 진평왕, 고려 충숙왕이 이곳에서 놀았다고 전해지며 임꺽정이 이곳에 숨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三釜淵(갈말읍 신철원리)은 沼가 세 개가 있는데 모두 솥처럼 생겼다하여 이렇게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한탄강에는 險屹津, 道德津 등의 나루와 倉이 표시되어 있다.(이현군)

  • 춘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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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래 貊國이 있었던 곳으로 府의 북쪽에 古貊都라고 표시되어 있다.942년(고려 태조 23)에 春州로 고쳤으며 1413년(태종 13)에 춘천군으로 고쳤다가 1415년(태종 15)에 도호부가 되었다. 1888년(고종 23)부터 1895년(고종 32)까지 경기도에 속했던 적이 있다. 현재의 강원도 춘천시, 인제군의 상남면, 기린면과 화천군 사내면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춘천시내가 당시의 중심지가 된다. 鳳儀山이 鎭山이며 중심지에는 客舍, 衙舍, 鄕校, 倉, 聞韶閣이 있다. 聞韶閣(춘천시 요선동)은 1646년(인조 24)에 세운 정각으로 현재 門樓인 朝陽樓만 남아 우두동에 옮겨져 있다. 큰 두 개의 강이 府의 서쪽에서 만난다. 동쪽은 소양강, 서쪽은 북한강이 되는데 지금은 소양댐, 춘천댐, 의암댐 등의 댐 건설로 호수가 되어 있다. 이 지도에서 소양강을 끼고 原河津, 大同津 등의 나루가 표시되어 있으며 북한강은 범위에 따라 母津江, 吾梅江, 新淵江 등으로 불리었음을 알 수 있다. 강을 끼고 北社倉, 南社倉,   倉, 史呑外倉이 표시되어 있다. 춘천부의 기린면(인제군 상남면, 기림면)은 고려때에는 기린현이었으며 사탄면(화천군 사내면)은 원래 史呑鄕이었던 곳이다. 府 남쪽에 명승지로 武陵溪가 보인다. 原昌驛은 홍천과, 保安驛은 양구와, 仁嵐驛은 낭천과 연결되는 도로상에 표시되어 있다. 도로상의 고개 명칭에 있어 岺, 峴, 峙와 함께 다른 강원도 군현지도에서 자주 나타나지 않는 ''遷''이 사용되고 있다. 三岳寺(서면 덕두원리)가 자리한 三岳山에는 과거 맥국시대에 쌓은 山城이 있었다고 전한다. 淸平寺(북산면 청평리)는 973년(고려 光宗 24)에 禪師 玄承이 창건하였으며 1550년(명종 5)에 수리하고 청평사로 이름을 고쳤다. 極樂殿과 남쪽 정문(回轉門)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壯節公墓(서면 방동리)는 처음 이름은 能山으로 견훤과 싸울 때 위급한 고려 태조 왕건을 구하고 죽은 申崇謙(? - 927)의 묘이다. 그의 시호가 壯節이다.(이현군)

  • 통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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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3년(태종 13)에 통천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군사분계선 이북의 강원도 통천군에서 남쪽부분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백두대간의 동쪽지역이며 남쪽으로는 高城, 북쪽으로  谷과 경계를 이루고 동쪽은 바다이다. 백두대간은 산을 중첩하여 넓게 그림으로써 험준함을 나타냈으며  谷과의 경계가 되는 산줄기를 강조하여 표현함으로써 경계를 명확히 하고자 하였다. 읍치에는 성곽이 과거에 있었으나 표시되지 않았고 客舍, 倉, 衙舍, 鄕校가 그려져 있다. 북쪽바다가에 叢石亭을 그리고 그 옆에 뾰족하게 솟은 바위들을 산수화에서처럼 그리고 있다. 門岩도 같은 형식으로 그렸다. 도로는 적색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읍치 남쪽에 巨豊驛이 있다. 楸池岺,  岺을 넘어 淮陽으로 연결되는 길은 大路에 해당하며 大幹을 넘기에 험준하다. 반면, 登路驛, 朝 驛을 지나 高城으로 가는 해안의 남북통로는 평탄한 편이다. 楸池岺으로 가는 길에는 中臺?이, 고성으로 통하는 朝 驛에도 ?이 표시되어 있다. 지도 남쪽 고성으로 통하는 곳에 瓮遷이 그려져 있는데 ≪동국여지승람≫에 돌산이 바다로 들어가는 형태이며 좁아서 말이 쌍으로 지나지 못한다고 한다. 옛날 倭寇가 여기까지 왔는데 官軍이 쳐서 모두 바다에 빠뜨렸다고 한다. 사찰로는 雙鶴菴, 觀音寺, 龍貢寺, 明道庵이 있으며 縣倉이외에남쪽 해안에 外倉이 있고 읍치 앞의 하천에는 樓橋가 그려져 있다. 남쪽에 萬里城이 적혀 있어 과거에 城이 있었음을 지시해 준다.(이현군)

  • 평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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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8년(고려 현종 9)에 평강으로 고쳤으며 1413년(태종 13)에 현감을 두었다. 현재의 북한 강원도 평강군과 세포군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이 중에서 평강군의 남쪽 일부(철원땅)와 세포군의 북쪽일부(고산 땅)는 제외된다. 邑治는 성곽없이 客舍, 衙舍, 倉, 鄕校를 표시하였다. 서쪽으로 四寬亭이 자리하고 있다. 북쪽으로는 禁山이 표시되어 있고 남쪽으로 풍수 개념에서 나온 案山이 기록되어 있다. 玉洞驛院은 伊川, 林丹驛은 淮陽, 裁松院은 鐵原, 赤 院은 金化와 金城으로 통하는 경로상에 표시되어 있으며 金城去路, 三防路(安邊방향)를 따로 기록하고 있다. 북쪽에 分水嶺과 天岺이 표시되어 있는데 分水嶺은 백두대간이 南向하는 가운데 한북정맥이 서쪽으로 갈라져 나오는 지점에 해당한다. 물이 나누어진다는 의미의 分水嶺에서 실제로 임진강, 한탄강, 북한강 水系와 동해로 들어가는 하천이 크게 나누어진다.  箭川烽臺, 松古介烽, 土氷烽 등의 봉수가 표시되어 있는데, 淮陽의 雙嶺에서 남쪽으로 이 세 봉수를 거쳐 서쪽의 鐵原 所伊山봉수로 연결된다. 이 밖에 縣의 동북방향으로 社倉이 보인다.(이현군)

  • 평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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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때에 평창으로 고쳤으며 현재의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 미탄면과 정선군 신동읍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평창읍내의 상리, 중리, 하리 일대가 과거의 중심지이다. 현재 평창군에서 평창읍과 미탄면을 제외한 지역은 과거에는 강릉에 속해 있었다. 전체적으로 간략하게 그린지도이다. 다른 강원도 군현지도에서와 같이 邑治에는 客舍, 倉, 衙舍, 鄕校가 그려져있다. 지도에 南大川으로 표시되어 邑治를 휘감아 흐르는 강은 평창강이며 동쪽의 강은 동강으로 영월로 들어간다. 邑治 북쪽의 注橋는 현재에도 주진교가 설치되어 있으며 그 옆에 津으로 표시된 것은 注津으로 현재의 동리 명칭(평창읍 주진리)의 근원이 된다. 또한, 평창강 남쪽에는 摩池津(평창읍 마지리)이 표시되어 있다. 동강변에는 東倉(정선군 신동읍 고성리)이 설치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도로는 적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 중 동쪽의 味呑峙, 平安驛(미탄면 평안리), 星摩嶺을 지나는 길은 정선과 통하는 大路이며 평창읍 주진리 북쪽의 利峙는 큰 배나무가 있어 뱃재로 불렸다고 하며 강릉으로 연결되었다. 남쪽의 藥水驛(평창읍 약수리)을 지나는 길은 원주와 연결된다.(이현군)

  • 평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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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초에 평해가 되었으며 1914년에 울진군에 편입되었다. 이 지도에서는 강원도에 속하나 1963년부터 경상북도에 속하게 된다. 현재의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남쪽에 해당하는 평해읍, 후포면, 온정면, 기성면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가 중심지가 된다. 서쪽으로는 낙동정맥에 가로막혀 있고 황보천과 남대천이 흘러 東海로 들어간다. 鳥峴, 珠嶺 등의 고개를 넘어 서쪽의 寧越, 英陽으로 향하는 길은 험준하지만, 남으로 寧海, 북으로 蔚珍으로 통하는 大路는 평탄하다. 조선후기 서울에서 지방으로 통하는 9대로 중에서 서울과 平海를 연결하는 길이 제 3大路에 해당하였다. 新立驛이 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邑治에는 邑城이 쌓여졌고 그 안에 客舍, 衙舍, 倉, 淸香亭 등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읍성의 서쪽으로 鄕校가 그려져 있다. 越松浦(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는 石城이 있었는데, 이 城은 1555년(명종 10)에 쌓았으며 水軍萬戶를 두어 해적을 막았다. 松田은 소나무 숲이 조성된 곳으로 평해읍 월송리에 해당한다. 望洋亭은 현재는 근남면 산포리에 있는데 이곳은 옛 울진현의 땅에 해당한다. 이 지도(평해군 지도)에 망양정이 나타나는 것은 본래 망양정이 평해군의 땅인 기성면 망양리 바닷가에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 숙종이 관동 팔경 중 으뜸이라 하여 ''關東第一樓''라는 御筆 편액을 내렸으며 松江 鄭澈, 梅月堂 金時習이 시를 지어 경치를 찬양하였다. 1883년(고종 19)에 근남면으로 그 위치를 옮겼다. 지도에서 溫井(온정면 온정리)으로 표시된 것은 현재 백암온천으로 개발되어 휴양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이현군)

  • 홍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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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8년(고려 현종 9)에 홍천으로 이름을 고쳤다. 현재의 강원도 홍천군에서 내면(강릉 땅)을 제외한 홍천읍, 서면, 북방면, 남면, 동면, 화촌면, 두촌면, 내촌면, 서석면 일대의 지역으로 麟蹄, 春川, 橫城, 砥平과 접하고 있다. 홍천읍내가 邑治에 해당하였다. 客舍, 衙舍, 倉, 鄕校가 邑治에 표시되어 있다. 장남천, 내촌천 등의 물을 모아 홍천강이 縣의 중심부를흐르고 있다. 홍천강은 西流하여 북한강과 합하게 된다. 홍천강가(홍천읍 갈마곡리)에 泛波亭, 觀水堂이 그려져 있다. 縣倉 이외에도 강을 끼고 東倉, 西倉이 있었다. 도로는 적색으로 표시되었고 경로상의 고개 이름을 적었다. 邑治를 기준으로 泉甘驛(두촌면 역내리)을 지나는 길은  蹄로 통하며 蓮峰驛(홍천읍 연봉리), 陽德院(남면 양덕원리)을 지나는 길은 砥平을 거쳐 서울로 통한다. 위의 역원을 지나 인제, 홍천, 지평과 통하는 이 길은 大路에 속한다. 사찰로는 龍水庵, 成佛庵, 水墮寺 등이 그려져 있다. 공작산 아래 있는 절인 水墮寺(동면 덕치리)에는 1364년에 만든 鐘과 石塔이 있으며 月印釋譜의 원본 일부가 있다고 한다.(이현군)

  • 회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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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10년(고려 충선왕 2)에 회양으로 이름을 고쳤으며 1413년(태종 13)에 도호부가 되고, 세조 때에 鎭을 두어 북방경비의 요충지로 삼았다. 현재 북한의 강원도 금강군, 회양군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읍치는회양군의 회양읍내리가 된다. 新津江이 邑治 서쪽을 지나는데, 남쪽으로 蓮松浦가 표시되어 있다.동쪽으로는 백두대간이 되는데 이 지역에 대해 ≪동국여지승람≫에서 ''겹친 언덕, 중복된 재가 그윽하게 깊고, 매우 험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지도에서도 여러 고개(岺)가 등장하고 있으며 육로망은 이곳들을 지나게 된다. 동남쪽에 금강산이 나타나는데 산수화 기법으로 봉우리들을 그렸다. 금강산을 끼고 正陽寺, 表訓寺, 摩阿衍, 長安寺 등의 사찰이 자리잡고 있다. 금강산 서쪽의 斷髮岺은 俗人이 이 재(嶺)를 올라 금강산을 본 자는 머리를 깎고 중이 되고자 한다하여 붙인 이름으로 전한다. 表訓寺는 신라의 승려 能仁, 神林, 表訓 등이 이 절을 처음 지었으며 명나라 황제가 돈과 명주를 시주하였다고 한다. 長安寺는 法堂, 佛殿, 佛像을 모두 중국 기술자가 제작하였으며 신라 법흥왕 때 처음으로 세웠다. 회양부에 속하는 和川, 嵐谷, 水入, 文登, 長楊面은 과거에 縣이 있던 곳으로 이 지도에서 각각 창고가 설치되었음을 볼 수 있다. 읍치 북쪽 義?岺이 鎭山이며 금강산 남쪽으로 黃腸禁山이 표시되어 있다. 邑治는 성곽 없이 客舍, 衙舍, 倉, 鄕校를 표시하였다. 서북쪽의 鐵嶺은 한반도 동북 방향의 중요한 통로가 되는 곳으로 大路가 지나는 길목이다. 1222년(고려 고종 9)에 이곳에 능선을 따라 城을 쌓고 관문을 만들었다. 육로상에 銀溪驛, 新安驛이 표시되었고 邑治 서쪽으로 네 개의 烽燧가 연이어 나타난다.(이현군)

  • 횡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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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래 고구려의 橫川縣으로 1414년(태종 14)에 洪川과 발음이 비슷하다하여 횡성으로 고쳤다. 현재의 강원도 횡성군에서 서원면과 강림면(원주 땅)을 제외한 청일면, 갑천면, 둔내면, 안흥면, 우천면, 횡성읍, 공근면 일대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그 중심지는 횡성읍내가 된다. 客舍, 衙舍, 倉庫, 鄕校를 표시하였다. 지도에서 前川, 北川이 縣 앞에서 만나는데 北川은 지금의 蟾江 상류에 해당한다. 서쪽 屯內面의 강은 주천강이다.縣 북쪽의 泰 山은 옛날 辰韓의 泰 王이 신라 시조 박혁거세에 쫓기어 이곳에 머물면서 군사를 훈련하였다고 전하는 곳이다. 이 때 갑옷을 냇물에 씻었는데 이를 따서 이 지역이 횡성의 甲川面이 되었다 한다. 奉福寺(갑천면 신대리)는 1420년(신라 진흥왕 23)에 세운 절이며 이외에 南山寺(우천면 남산리)가 지도에 보인다. 寒江臺(寒岡臺, 횡성읍 반곡리)는 섬강가에 있는 반석으로 寒岡 鄭逑(1543-1620)가 은거하며 낚시를 즐겼다고 한다. 주천강가에 楡谷倉, 현 북쪽 北川(섬강)가에 外倉이 설치되어 있다. 도로는 적색으로 표시하였으며 경로상의 고개(峙·峴)의 명칭을 기록하였다. 葛豊驛(횡성읍 갈풍리)을 통하는 길은 原州, 砥平을 거쳐 서울로 이어지고 蒼峯驛(공근면 창봉리)은 洪川과 연결되는 길에 있으며 烏原驛, 安興驛(안흥면 안흥리)은 강릉과 통하는 길에 있다.(이현군)

  • 흡곡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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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때에 흡곡으로 바뀌었으며 통천에 병합과 분리과정을 겪다가 1914년에 통천에 병합되어 지금에 이른다. 동쪽으로는 東海에 접하고 서쪽으로는 安邊, 淮陽, 남쪽으로는 通川과 경계를 이룬다. 현재 북한 강원도 통천군의 북쪽부분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비교적 작은 縣으로 이 지도 역시 간략하게 그렸다. 邑治에는 성곽이 있었으나 표시하지 않았고 客舍, 衙舍, 倉을 그렸으며 동쪽으로 鄕校가 있는데 邑治와 鄕校를 별개의 形局처럼 보이게 묘사하였다. 향교 뒤에 표시된 博山이 鎭山이다. 읍치 북쪽에 侍中臺가 있는데 ≪동국여지승람≫에는 '긴 멧부리가 뻗어나가다가 동으로 서렸는데 3면이 모두 큰 호수이다. 밖으로 큰 바다가 둘렀으며 작은 섬이 바다 가운데 들어선 것이 일곱이 있다. 경치가 鏡浦臺에 뒤지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이 지도에서는 바다 가운데 栗島를 표시하였으며 서쪽으로는 長在湖를 그렸다. 적색의 도로에 大路, 小路 표시를 해 두었다. 읍치 남쪽에 貞德驛이 있었다. 지도에서 馬峴峙는 안변으로, 文峙峴는 통천으로 통하는 길목이다. 하나의 고개이름에 峴과 峙를 동시에 사용한 점이 특이하다. 남쪽 해안에 봉수터로 舊烽臺가 표시되어 있으며 사찰로는 華藏菴이 있었다.(이현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