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도古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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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도

安東都會[左通地圖] 안동도회[좌통지도]

  • 편저자 : [作者未詳]
  • 청구기호 : 古4709-25
  • 간행연도 : [刊年未詳]
  • 책권수 : 1帖(20折)
  • 판본사항 : 筆寫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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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앞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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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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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의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본 사이트의 『해동지도』 5책 군위현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몇몇 부분에서 『해동지도』와 다른 점이 나타나고 있다. 주기에서 사방경계에 관한 거리 정보는 시간적 변화에 의해 달라지지 않으므로 본 지도의 것과 『해동지도』의 것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面에 대한 거리 정보는 『해동지도』에 현내면과 동리면 및 남면에만 초경과 종경이 적혀 있고, 나머지는 초경과 종경의 구분 없이 하나의 수치만 기록되어 있다. 앞의 3개면은 본 지도에도 동일하게 적혀 있고, 나머지 면들은 『해동지도』와 달리 초경과 종경이 모두 기록되어 있다. 호수를 비롯하여 조세와 관련된 통계는 항목과 내용이 상당히 다르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본 지도에는 民戶가 3,693호로 되어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元戶가 3,804호로 나와 서로 다르다. 본 지도는 동남쪽을 위로 향해 그렸는데, 읍치로 뻗은 산줄기가 동남쪽의 馬井山에서 시작되기 때문으로 사료된다. 위쪽(남쪽과 동쪽)에서 흘러와 읍치를 지나 아래쪽(북쪽)의 비안계로 흘러가는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 지류인 위천이다. 지도 오른쪽에는 孝令面이 표시되어 있는데, 고려시대까지 독자적인 행정단위로 존재하다가 조선초에 군위현에 편입된 지역이다. 효령창 옆에 客舍가 표시되어 있는데, 객사는 왕을 상징하는 殿牌를 모셔두고 지방관이 초하루와 보름에 望闕向拜하던 곳이다. 따라서 지방관이 파견된 곳에만 있는 것인데,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은 효령면에 객사가 있다는 것이 좀 의아하다. 본 지도에 표시된 군위현의 읍치는 현재의 군위군 군위읍 서부리 일대에 있었다. (이기봉)

  • 봉화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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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의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본 사이트의 『해동지도』 5책 봉화현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몇몇 부분에서 『해동지도』와 다른 점이 나타나고 있다. 주기에서 面과 사방경계, 서울까지의 거리(距京)에 관한 거리 정보는 시간적 변화에 의해 달라지지 않으므로 본 지도의 것과 『해동지도』의 것이 동일하다. 다만 몇몇 부분에서 약간씩 차이가 나는데, 주기의 기록자가 오류를 범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호수를 비롯하여 조세와 관련된 통계는 항목과 내용이 상당히 다르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본 지도에는 民戶가 1,614호로 되어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元戶가 1,606호로 나와 서로 다르다. 본 지도에 그려진 하천의 유로는 굴곡의 정도만 다를 뿐 『해동지도』의 것과 동일하다. 가장 오른쪽에 그려진 긴 하천이 낙동강 본류의 최상류에 해당된다. 그러나 낙동강 최상류가 봉화현에 모두 걸쳐 있는 것은 아니다. 오른쪽 약간 위에 安東春陽縣이란 문구가 적혀 있는데, 上東面이 안동부 월경지인 춘양현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봉화현의 월경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상동면은 현재의 봉화군 춘양면 북동쪽 지역에 있었다. 이곳에는 5대 史庫 중의 하나인 태백산사고가 있었으며, 지도에도 이런 사실이 잘 표시되어 있다. 읍치 오른쪽 아래에는 榮川界라는 문구가 보이는데, 『해동지도』에는 榮川地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곳은 현재의 봉화군 명호면 고감리 일대에 있었던 영천의 월경지로서 표현의 적합성 측면에서 보면 『해동지도』가 더 올바르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있는 것이지만 『해동지도』에 있는 것 중 본 지도에 기록되지 않은 것이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가 『해동지도』나 그 계통의 지도를 참고하여 제작된 것이 아닌가 한다. 동쪽과 서쪽에 安東界라는 문구가 많이 보이는 것은 이 방향에 안동의 월경지가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도 아래쪽으로는 『해동지도』처럼 禮安界란 문구가 적혀 있어야 사실에 가깝다. (이기봉)

  • 비안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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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의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본 사이트의 『해동지도』 5책 비안현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몇몇 부분에서 『해동지도』와 다른 점이 나타나고 있다. 주기에서 사방경계에 관한 거리 정보는 시간적 변화에 의해 달라지지 않으므로 본 지도의 것과 『해동지도』의 것이 동일하다. 그러나 주기에 기록된 面의 명칭과 거리 정보는 『해동지도』의 것과 다르다. 지도와 주기의 面을 비교해 볼 때 『해동지도』나 본 지도 모두 다르게 되어 있지만 본 지도의 것은 명칭까지 완전히 다르다는 특징이 있다. 이를 통해 본 지도 위의 면 표시는 『해동지도』의 계통이면서 주기의 것은 전혀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기록한 것으로 판단된다. 호수를 비롯하여 조세와 관련된 통계는 항목과 내용이 상당히 다르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본 지도에는 民戶가 3,781호로 되어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元戶가 3,256호로 나와 서로 다르다. 지도 위에 그려진 하천의 유로는 굴곡의 정도가 약간 다를 뿐 『해동지도』의 것과 동일하다. 다만 『해동지도』에는 본류와 지류를 하천의 굵기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렸는데 반해 본 지도는 그런 구별을 하지 않아 오해를 할 수 있다. 왼쪽에서 흘러와 읍치를 감싸고 북쪽으로 흘러가는 하천이 현재의 위천이며, 서남쪽에서 들어와 위천에 합류하는 하천이 현재의 쌍계천이다.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표현 방법에서는 『해동지도』에서는 面과 驛을 그냥 명칭만 적어넣은 반면에 본 지도에서는 각각 노란색의 직사각형과 주황색의 직사각형을 그려넣어 구별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역의 경우 북쪽의 安溪驛에는 주황색 직사각형을 그려넣지 않아 일관성이 부족한 편이다. 본 지도에 표시된 읍치는 의성군 비안면 서부리 일대에 있었다. (이기봉)

  • 순흥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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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의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본 사이트의 『해동지도』 5책 순흥부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주기에는 元會各穀과 賑色各穀, 面과 사방경계에 대한 정보만 간단하게 적혀 있다. 면과 사방경계에 대한 정보는 『해동지도』의 것과 동일하다. 본 지도첩의 다른 군현 지도에는 호구수를 비롯하여 조세와 관련된 항목이 많이 적혀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면에 대한 정보에는 단순히 초경과 종경만 적혀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고을을 넘어가는 월경지에 대한 정보도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런 기록 방식도 다른 고을에서는 잘 안 보이는 것으로 臥丹面, 大龍山面, 昌樂面이 다른 군현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월경지이다. 각각 현재의 봉화군 춘양면과 법전면의 경계선 일대, 영주시 안정면 여륵리와 묵리,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와 창락리 일대에 있었다. 지도 위에 표시된 하천의 유로는 가장 오른쪽의 일부를 제외하면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게 되어 있으며, 왼쪽과 오른쪽의 하천은 현재의 내성천 지류인 죽계천과 낙화암천이다. 지도 맨 위쪽에 표시된 馬落里는 남쪽의 낙동강 유역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영월군에 있는 남한강의 지류 옥동천 유역에 해당된다. 본 지도에 하천을 그려넣지 않았지만 낙동강 유역과는 산줄기로 막혀 있어 사실에 부합되게 그려져 있다. 수록된 지명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본 지도에 표시된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나오며, 위치가 약간 달라진 것이 몇 개 있을 뿐이다. 지도 안에는 榮川이란 단어가 적힌 지명이 4개 보이고 있는데, 순흥부의 경계 안에 들어 있는 영천의 월경지를 의미한다. 현재의 영주시 부석면 노곡리와 소천리, 봉화군 물야면 오록리 등에 해당된다. 지도에 표시된 순흥부의 읍치는 현재의 영주시 순흥면 읍내리 일대에 있었다. (이기봉)

  • 신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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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의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본 사이트의 『해동지도』 5책 신령현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몇몇 부분에서 『해동지도』와 다른 점이 나타나고 있다. 주기에서 面의 명칭과 거리 정보는 『해동지도』의 것과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해동지도』의 주기에 있는 南面이 본 지도의 주기에서는 생략되어 있다. 다만 『해동지도』의 주기에 있는 남면의 거리 기록이 다른 면과 형식이 달라 주기 기록자가 지도에 표시된 남면을 보고 주기와는 다른 자료를 통해 보충해 넣은 것으로 판단된다. 남면은 현재의 경산시 와촌면 서쪽 지역에 있던 신령현의 월경지였다. 사방경계의 거리에 대한 수치도 『해동지도』와 약간 달라 본 지도첩에 있는 대부분의 군현에서 사방경계의 수치가 『해동지도』의 것과 대체적으로 같은 경향과 대조적이다. 호수를 비롯하여 조세와 관련된 통계는 항목과 내용이 상당히 다르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본 지도에는 民戶가 4,130호로 되어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元戶가 4,212호로 나와 서로 다르다. 본 지도에 그려진 하천의 유로는 굴곡의 정도만 약간 다를 뿐 『해동지도』의 것과 동일하다. 오른쪽의 하천은 현재 고현천, 왼쪽의 하천은 신령천이라 불리고 있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도 모두 『해동지도』에 나오는 것이지만 면의 이름만 써넣은 『해동지도』와 달리 노란색 직사각형 기호를 사용하여 이해하기 쉽도록 하였다. 오른쪽의 新村面은 현재의 영천시 화북면 북쪽 지역에 있던 것이다. 신촌면과 고현면과의 사이에는 신령현과 영천군의 땅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지만 본 지도에는 그런 사실을 이해할 수 없도록 그렸다. 본 지도에 표시된 신령현의 읍치는 현재의 영천시 신령면 화성리 일대에 있었다. (이기봉)

  • 안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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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의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본 사이트의 『해동지도』 5책 안동부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몇몇 부분에서 『해동지도』와 다른 점이 나타나고 있다. 주기에서 面과 창고에 관한 거리 정보, 성곽의 둘레 등은 시간적 변화에 의해 달라지지 않으므로 본 지도의 것과 『해동지도』의 것이 동일하다. 그러나 호수를 비롯하여 조세와 관련된 통계는 항목과 내용이 상당히 다르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본 지도에는 民戶가 16,473호로 되어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元戶가 16,397호로 나와 본 지도가 약간 많게 나온다. 『여지도서』(1759년경)에는 원호가 15,597호로, 『호구총수』(1789년경)에는 11,696호로 나와 본 지도의 것이 가장 많은 편에 속한다. 하천의 유로라는 측면에서 본 지도는 굴곡 정도만 약간 다를 뿐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위쪽의 黃池에서 발원하여 읍치 남쪽을 지나 서남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 본류이다. 왼쪽의 榮川 방향에서 흘러와 낙동강에 합류하는 沙川은 현재의 내성천이다. 그러나 본 지도에 표시된 낙동강 본류와 내성천 전부가 안동부의 영역 안을 모두 지나는 것이 아니다. 안동부는 월경지가 많기로 유명한데, 이런 월경지를 한 장의 지도 안에 다 표현하려다보니까 낙동강과 내성천을 다 그려넣게 된 것이다. 북쪽에 왼쪽으로부터 甘泉倉 지역은 현재의 예천군 감천면, 乃城倉 지역은 현재의 봉화군 봉화읍의 2/3 정도, 春陽倉 지역은 현재의 봉화군 춘양면 절반 정도, 小川倉 지역은 봉화군 소천면, 才山倉 지역은 봉화군 재산면 등에 있었던 월경지이다. 이들 월경지는 고려시대까지 독자적인 행정단위로서 기능했지만 고려말과 조선초에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은 경우 主縣의 땅으로 완전히 편입시키면서 안동의 월경지가 되었다. 이러한 월경지의 존재 때문에 본 지도에는 안동부 본 지역과 월경지 사이에 끼인 순흥, 영천, 봉화, 예안 등의 명칭이 표시된 것이다. 지명이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본 지도에 나오는 것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오는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면서 본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지명도 많다. 또한 『해동지도』에 표시된 도로와 각 지점까지의 거리가 본 지도에는 모두 생략되어 있다. 『해동지도』의 경우 실제로는 지도만 제작되었다가 후에 주기를 첨가한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본 지도는 『해동지도』를 필사하면서 주기와 겹치는 거리 정보는 지도에서 생략한 것이 아닌가 한다. 『해동지도』에는 면과 역이 명칭만 적혀 있지만 본 지도에는 면에는 노란색 직사각형, 역에는 주황색 직사각형의 범례 기호를 사용하여 구별을 쉽게 해주기도 했다. (이기봉)

  • 영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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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의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본 사이트의 『해동지도』 5책 영덕현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몇몇 부분에서 『해동지도』와 다른 점이 나타나고 있다. 주기에서 面과 사방경계에 관한 거리 정보, 성곽의 둘레 등은 시간적 변화에 의해 달라지지 않으므로 본 지도의 것과 『해동지도』의 것이 동일하다. 그러나 호수를 비롯하여 조세와 관련된 통계는 항목과 내용이 상당히 다르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본 지도에는 民戶가 4,403호로 되어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元戶가 4,131호로 나와 서로 다르다. 본 지도는 서북쪽을 위로 향해 그렸는데, 읍치까지 이어진 산줄기가 서북쪽에서 왔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본 지도에 그려진 하천의 유로는 굴곡의 정도를 제외하면 『해동지도』의 것과 동일하다. 읍치 왼쪽을 흘러 동해로 빠져나가는 하천은 현재도 지도에 표시된 것처럼 五十川이라고 부르고 있다. 오십천의 지류인 대서천의 최상류가 현재의 포항시 죽장면인 경주부의 땅에서 발원하고 있는데, 본 지도에도 그런 사실이 잘 표현되어 있다.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司倉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오는 것이다. 司倉은 본 지도첩에 대부분 기록되는 것이기 때문에 『해동지도』와 동일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面과 驛이 『해동지도』에는 명칭만 적혀 있엇던 반면에 본 지도에서는 각각 노란색 직사각형, 주황색 직사각형의 범례 기호를 사용한 점이 다르다. 본 지도에 표시된 읍성은 현재의 영덕군 영덕읍 남석리 오십천변의 작은 둔덕 위에 있었다. (이기봉)

  • 영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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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의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본 사이트의 『해동지도』 5책 예안현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몇몇 부분에서 『해동지도』와 다른 점이 나타나고 있다. 주기에서 面과 사방경계에 관한 거리 정보는 시간적 변화에 의해 달라지지 않으므로 본 지도의 것과 『해동지도』의 것이 동일하다. 그러나 호수를 비롯하여 조세와 관련된 통계는 항목과 내용이 상당히 다르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본 지도에는 民戶가 3,507호로 되어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元戶가 3,690호로 나와 서로 다르다. 본 지도에 표시된 하천의 유로는 굴곡 정도만 다를 뿐 『해동지도』의 것과 동일하며, 읍치가 있는 영양현 지역은 낙동강의 지류인 반변천의 최상류에 해당된다. 북쪽의 首比面이 있는 지역은 현재의 영양군 수비면 지역으로 울진을 통해 동해로 빠져나가는 왕피천의 상류이다. 본 지도에도 이 하천이 흘러나가는 방향에 蔚珍界라는 문구를 적어놓아 그런 사실을 알 수 있게 해놓았다. 그러나 위치의 방향과 거리의 정확성을 추구한 본 사이트의 『조선지도』, 『청구도』, 『청구요람』, 『동여도』, 『대동여지도』 등의 지도에서는 모두 동일하게 수비면의 물이 울진방향이 아니라 낙동강으로 흘러나가는 것처럼 잘못 그려놓았다. 본 지도에 표시된 지명은 읍치의 司倉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읍치에 있는 세 개의 건물에는 아무런 명칭도 적혀 있지 않는 등 미완성적인 모습도 보이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왼쪽부터 客舍, 衙舍, 英毅公廟라는 명칭이 적혀 있다. 또한 北面과 靑杞面 등은 주기에 적혀 있는 면의 명칭과 다르게 되어 있다. 만약 주기에 면의 명칭이 적혀 있지 않으면 잘못 이해할 수 있는데, 『해동지도』에는 제대로 적혀 있다. 청기면 지역에는 원래 청기현이 자리잡고 있다가 조선초에 영해부의 땅이 되었고, 1683년에 영양현이 독립적으로 설치될 때 영양현의 땅이 된 곳이다. 영양현의 읍치는 현재의 영양군 영양읍 서부리 일대에 있었다. (이기봉)

  • 영천군(榮川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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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의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본 사이트의 『해동지도』 5책 榮川郡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주기에는 조세 관계의 내용이 元會各穀과 賑色各穀 등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본 지도첩의 다른 군현 지도에는 호구수를 비롯하여 조세와 관련된 항목이 많이 적혀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面과 사방경계에 대한 정보는 자세한 편이다. 본 지도첩의 면과 사방경계에 대한 정보가 『해동지도』의 것과 동일한 경향이 있지만 본 지도의 것은 전혀 다르게 되어 있다. 『해동지도』의 것이 너무 소략하게 되어 있어 다른 군현과 맞추기 위해 새로운 자료를 통해 보완한 것이 아닌가 한다. 본 지도에 그려진 하천의 유로는 『해동지도』의 것과 동일하다. 오른쪽의 하천이 내성천 본류이고, 왼쪽의 하천이 그 지류인 남원천과 죽계천이다. 내성천은 실제로는 영천군 지역에서만 흐르는 것이 아닌데도 본 지도에는 착각할 수 있게 그려져 있다. 이렇게 그린 이유는 내성천의 상류 지역에 영천의 월경지인 北面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지도에는 북면과 영천군 사이에 順興地라는 문구가 적혀 있어 북면이 순흥의 땅을 넘어가 있는 월경지임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북면은 현재의 영주시 부석면 노곡리와 소천리, 봉화군 물야면 오록리 등에 해당된다. 지도 오른쪽에는 高甘村이라는 지명이 적혀 있는데, 현재의 봉화군 명호면 고감리 일대에 있었던 월경지였다.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나오는 것이며, 『해동지도』에는 읍치 지역에 많은 지명과 건물이 표시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서는 많이 생략되어 있다. 지명의 표기에서 달라진 점은 『해동지도』에는 명칭만 적혀 있던 面에 본 지도에서는 노란색 직사각형의 범례 기호를 그려넣어 이해하기 쉽게 해주었다는 점이다. 본 지도에 표시된 영천군의 읍치는 현재의 영주시 영주동 일대에 있었다. (이기봉)

  • 영천군(永川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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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의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본 사이트의 『해동지도』 5책 永川郡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몇몇 부분에서 『해동지도』와 다른 점이 나타나고 있다. 주기에서 面과 사방경계에 관한 거리 정보 등은 시간적 변화에 의해 달라지지 않으므로 본 지도의 것과 『해동지도』의 것이 동일하다. 그러나 『해동지도』의 주기에는 사방경계와 면에 榮川郡과 永川郡의 것이 동시에 적혀 있어 주기 기록자가 두 군의 발음이 비슷해 헷갈린 것이 아닌가 한다. 특히 면의 경우 永川郡에 있는 內東面을 적었다가 다음에 榮川郡의 면을 나열한 후 다시 永川郡의 면을 적어 이해하기 어렵게 기록하였다. 『해동지도』의 경우 지도 제작과 주기의 기록 시기가 다른 것으로 연구되고 있는데, 주기 제작자가 지도를 꼼꼼하게 검토하지 않고 기록한 것으로 판단된다. 호수를 비롯하여 조세와 관련된 통계는 항목과 내용이 상당히 다르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본 지도에는 民戶가 6,932호로 되어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元戶가 6,958호로 나와 서로 다르다. 본 지도에 그려진 하천의 유로는 『해동지도』의 것과 동일하다. 오른쪽 위에서 읍치 아래쪽을 거쳐 서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금호강 본류이다. 왼쪽 위에서 흘러와 금호강에 합류하는 하천 지역은 현재의 영천시 청통면 지역으로 본 지도와 달리 동서로 그려져 있어야 한다. 위쪽의 新寧界에서 흘러오는 하천은 현재의 신령천으로 실제로는 서북쪽에서 흘러와야 하며, 이 지역의 영천군 영역은 본 지도와 달리 신령현의 땅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리고 오른쪽 위의 立岩書院 지역은 현재의 포항시 죽장면 입암리 지역으로 경주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작은 월경지였다. 본 지도에 표시된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읍치에 표시되어 있던 많은 건물과 지명이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읍성은 주기 가장 앞쪽에 毁破라고 기록되어 있듯이 관리를 하지 않아 이미 훼손이 심각한 상태였다. 금호강변에 면한 남쪽은 본 지도에도 잘 그려져 있듯이 실제로도 퇴적암 절벽을 이루고 있다. 읍성은 현재의 영천시 창구동 일대에 있었다. (이기봉)

  • 영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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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의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본 사이트의 『해동지도』 5책 영해부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몇몇 부분에서 『해동지도』와 다른 점이 나타나고 있다. 주기에서 面에 관한 거리 정보, 성곽의 둘레 등은 시간적 변화에 의해 달라지지 않으므로 본 지도의 것과 『해동지도』의 것이 동일하다. 다만 본 지도의 주기에는 石保面과 北面이 생략되어 있어 필사자의 실수를 엿볼 수 있다. 호수를 비롯하여 조세와 관련된 통계는 항목과 내용이 상당히 다르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본 지도에는 民戶가 3,257호로 되어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元戶가 2,542호로 나와 차이가 많다. 『여지도서』(1759년경)에는 원호가 2,355호로, 『호구총수』(1789년경)에는 2,466호로 나와 본 지도의 것이 가장 많은 편에 속한다. 지도에 표시된 하천의 유로는 굴곡에서의 차이만 다를 뿐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게 되어 있다. 영해부의 하천은 대부분 동해로 빠져나가는데, 왼쪽의 석보면 지역만 낙동강 지류인 반변천 상류의 일부에 걸쳐 있다. 일부를 제외한 현재의 영양군 석보면 지역으로서 원래 고려시대까지는 석보부곡으로 독자적인 행정단위였지만 고려말 조선초에 主縣이었던 영해부의 땅으로 편입되었다. 본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모두 나오는 것이지만 읍성 안의 건물 명칭을 비롯하여 『해동지도』에 나오면서 본 지도에 없는 지명도 몇 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왼쪽의 寧陽驛이 『해동지도』에는 寧海驛으로 되어 있는데, 본 지도의 것이 올바르다. 『해동지도』의 주기에는 영양역으로 되어 있어 본 지도는 그것을 통해 교정한 것으로 판단된다. 『해동지도』의 경우 주기가 없는 지도가 먼저 만들어진 후 후에 주기가 첨가된 것으로 연구되고 있으며, 지도가 만들어질 때 영양역을 잘못 기록한 것으로 생각된다. 영해부의 읍성은 현재의 영덕군 영해읍 성내리의 작은 둔덕 위에 있었다. (이기봉)

  • 예안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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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의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본 사이트의 『해동지도』 5책 예안현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몇몇 부분에서 『해동지도』와 다른 점이 나타나고 있다. 주기에서 面과 사방경계에 관한 거리 정보는 시간적 변화에 의해 달라지지 않으므로 본 지도의 것과 『해동지도』의 것이 동일하다. 그러나 호수를 비롯하여 조세와 관련된 통계는 항목과 내용이 상당히 다르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본 지도에는 民戶가 3,042호로 되어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元戶가 2,833호로 나와 서로 다르다. 본 지도에 그려진 하천의 유로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다른 곳은 宜西面과 읍치 지역으로 『해동지도』에 있던 유로가 본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북쪽에서 흘러 읍치를 지나 남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 본류이다. 예안현의 읍치는 현재의 도산면 서부리 일대에 있었으나 현재는 안동호가 만들어져 모두 잠겨버린 상태이다. 왼쪽 위의 北面 지역은 현재의 내성천 지류인 용각천의 상류인 안동시 녹전면 북쪽 일부 지역이다. 아주 작은 지역이기 때문에 인식하기가 어려움에도 지도에 잘 표현되어 있어 본 지도 또는 원본 지도가 해당 지역에서 올린 지도 자료에 입각하여 제작되지 않았을까 한다. 지명이란 측면에서 본 지도에 있으면서 『해동지도』에 없는 것은 읍치에 있는 縣倉 1개에 불과하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있으면서 본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지명은 도산서원 앞쪽의 낙동강과 읍치 등에 상당히 많다. 이와 같은 측면을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해동지도』나 그에 준하는 지도를 바탕으로 제작되면서 복잡한 지명은 생략한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오른쪽 위의 淸凉山의 경우 『해동지도』보다 더 화려하게 그려져 있다. (이기봉)

  • 예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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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의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본 사이트의 『해동지도』 5책 예천현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몇몇 부분에서 『해동지도』와 다른 점이 나타나고 있다. 주기에서 面과 사방경계에 관한 거리 정보 등은 시간적 변화에 의해 달라지지 않으므로 본 지도의 것과 『해동지도』의 것이 동일하다. 그러나 호수를 비롯하여 조세와 관련된 통계는 항목과 내용이 상당히 다르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본 지도에는 民戶가 10,808호로 되어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元戶가 10,054호로 나와 서로 다르다. 본 지도에 그려진 하천의 유로는 일부를 제외하면 『해동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다른 곳은 동쪽의 安東界로부터 들어와 아래쪽의 神堂洞面을 거쳐 沙川으로 흘러드는 하천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 하천은 현재의 내성천으로 안동의 땅이었던 현재의 예천군 감천면 방향에서 흘러온다. 읍치 바로 동쪽에 표시된 하천도 지도 위의 豊基界에 있던 현재의 예천군 상리면과 하리면에서 흘러 들어오는데, 본 지도에는 마치 풍기와의 경계선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게 그려져 있다. 가장 아래쪽의 하천은 지도에도 적혀 있듯이 낙동강 본류이다. 그러나 끝이 얇게 되어 있어 실제로는 安東界에서 흘러들어온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그려져 있다. 왼쪽 위의 하천은 현재의 내성천 지류인 금천의 상류에 해당되며, 문경시 동로면과 산북면의 동쪽 지역에 해당된다. 낙동강 아래쪽의 縣內面 부근은 현재의 의성군 다인면과 예천군 풍양면의 일부 지역에 있던 예천현의 월경지였다. 지도에도 이 지역과 예천현 지역과의 사이에 龍宮地라는 문구가 적혀 있어 월경지임을 인식할 수 있게 해주었다. 지도 위에 표시된 지명은 모두 『해동지도』에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해동지도』에 읍치 지역에 빼곡히 들어서 있는 많은 관아 건물이 생략되어 있기도 하다. 지도 위쪽에는 黃腸과 鵲城이 기록되어 있는데, 『해동지도』에는 黃腸城으로 표기되어 있다. 황장은 왕실의 관곽을 제조하기 위한 소나무 계통의 황장목이 자라던 곳으로 현재의 동로면 황장산에 있었다. 본 지도에 표시된 예천현의 읍치는 현재의 예천군 예천읍 노상리와 서본리 일대에 있었다. (이기봉)

  • 의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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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의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본 사이트의 『해동지도』 5책 의성현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몇몇 부분에서 『해동지도』와 다른 점이 나타나고 있다. 주기에서 面과 사방경계에 관한 거리 정보는 시간적 변화에 의해 달라지지 않으므로 본 지도의 것과 『해동지도』의 것이 동일하다. 다만 본 지도첩의 다른 군현에서 사방경계와 면의 정보를 주기 앞쪽에 배치한 경우가 거의 없어 특이하다. 봉수와 역에 관한 정보는 『해동지도』의 주기에는 없는 것으로 본 지도의 제작자가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그린 것으로 판단된다. 호수를 비롯하여 조세와 관련된 통계는 항목과 내용이 상당히 다르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본 지도에는 民戶가 9,751호로 되어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元戶가 9,480호로 나와 서로 다르다. 본 지도에 그려진 하천의 유로는 굴곡이나 길이에서 약간의 차이가 날 뿐 『해동지도』의 것과 거의 동일하다. 읍치와 그 남쪽 지역에서 서쪽으로 흘러가는 하천은 현재의 위천 지류인 쌍계천이며, 동쪽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가는 하천은 낙동강으로 바로 흘러가는 안망천이다. 후자의 지역에는 원래 고려시대까지 高丘縣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다가 의성현에 합쳐졌으며, 현재의 의성군 단촌면, 점곡면, 옥산면에 해당된다. 왼쪽 위에 표시된 羽谷面은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듯이 比安의 땅을 넘어가 있는 월경지로서 현재의 의성군 신평면 동북쪽 4개리이다. 그밖에 왼쪽 위의 하천이 비안현 방향에서 오는 것처럼 되어 있는 것도 사실에 가깝게 되어 있다. 아래쪽 왼쪽의 億谷面은 현재의 의성군 금성면 서남 지역, 오른쪽의 巢野面은 현재의 군위군 고로면 북쪽 지역으로 위천의 상류 일부에 걸쳐 있다. 본 지도에 표시된 지명 역시 『해동지도』에 모두 나오는 것이지만 읍치의 여러 건물을 비롯하여 『해동지도』에 나오는 것 중 본 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이 여러 개 있다. 아래쪽의 古召文都國은 古召文國都의 오기이며, 『해동지도』에는 후자처럼 기록되어 있다. 주기에 있는 召文(面)이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은데, 이 점은 『해동지도』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본 지도에 표시된 의성현의 읍치는 현재의 의성군 의성읍 도동리와 도서리 일대에 있었다. (이기봉)

  • 의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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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의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본 사이트의 『해동지도』 5책 의흥현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몇몇 부분에서 『해동지도』와 다른 점이 나타나고 있다. 주기에서 面과 사방경계에 관한 거리 정보 등은 시간적 변화에 의해 달라지지 않으므로 본 지도의 것과 『해동지도』의 것이 동일하다. 그러나 『해동지도』의 주기에는 면 중에 군위현의 것까지 적혀 있어 주기의 기록자가 실수를 범한 것으로 판단된다. 본 지도의 주기에는 군위현의 면이 표기되어 있지 않다. 『해동지도』의 경우 지도 제작과 주기의 기록 시기가 다른 것으로 연구되고 있는데, 주기 제작자가 지도를 꼼꼼하게 검토하지 않고 기록한 것으로 판단된다. 호수를 비롯하여 조세와 관련된 통계는 항목과 내용이 상당히 다르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본 지도에는 民戶가 3,484호로 되어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元戶가 3,701호로 나와 서로 다르다. 본 지도는 동남쪽을 위로 하여 그렸는데, 읍치까지 뻗은 산줄기가 동남쪽에서 왔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본 지도에 그려진 하천의 유로는 굴곡의 정도를 제외하면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모두 낙동강의 지류인 현재의 위천 상류지역에 해당된다. 오른쪽에 縣內面이라 적혀 있는 지역은 고려시대까지 缶溪縣이 독자적인 행정단위로 있던 곳으로 고려말 조선초를 거치면서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으면서 의흥현에 편입되었다. 지도 위쪽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대규모의 외적이 쳐들어왔을 때 몇 개의 고을이 함께 들어가 방어할 수 있도록 쌓은 대형산성 중의 하나인 華山城이 그려져 있지만 1709년(숙종 35)에 쌓다가 완성을 보지는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도 위에 그려진 의흥현의 읍치는 현재의 군위군 의흥면 읍내리 일대에 있었다. (이기봉)

  • 인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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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의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본 사이트의 『해동지도』 5책 인동부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몇몇 부분에서 『해동지도』와 다른 점이 나타나고 있다. 주기에서 面과 사방경계에 관한 거리 정보 등은 시간적 변화에 의해 달라지지 않으므로 본 지도의 것과 『해동지도』의 것이 동일하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해동지도』의 주기에 없던 읍내면이 기록되었고, 北面이 上面으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 또한 각 면의 초경과 종경에 『해동지도』에 있던 마을의 명칭이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호수를 비롯하여 조세와 관련된 통계는 항목과 내용이 상당히 다르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본 지도에는 民戶가 4,953호로 되어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元戶가 4,586호로 나와 서로 다르다. 지도에 그려진 하천의 유로는 굴곡의 차이가 약간 있을 뿐 『해동지도』의 것과 동일하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낙동강 본류가 흐르고, 동서에서 작은 하천들이 합류하는 모습이다. 고려시대까지만 하더라도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동쪽에는 인동현, 서쪽에는 약목현이 있었다가 고려 공양왕 2년(1390)에 합해졌다. 지도에도 낙동강 서쪽에 若木面이라는 명칭이 적혀 있다. 본 지도에 나오면서 『해동지도』에 없는 지명은 동쪽에 표시된 長川이며, 『해동지도』에 있으면서 본 지도에 없는 것은 동쪽의 天生山城 안에 있던 지명 정도이다. 인동부는 현재의 구미시 시내의 낙동강 동쪽 지역과 칠곡군의 북삼면, 약목면, 기산면, 석적면, 가산면의 절반 정도에 해당된다. 읍치는 현재의 구미시 인의동 지역에 있었다. (이기봉)

  • 진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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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의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본 사이트의 『해동지도』 5책 진보현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몇몇 부분에서 『해동지도』와 다른 점이 나타나고 있다. 주기에서 面과 사방경계에 관한 거리 정보는 시간적 변화에 의해 달라지지 않으므로 본 지도의 것과 『해동지도』의 것이 동일하다. 그러나 호수를 비롯하여 조세와 관련된 통계는 항목과 내용이 상당히 다르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본 지도에는 民戶가 2,010호로 되어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元戶가 1,776호로 나와 서로 다르다. 본 지도에 그려진 하천의 유로는 굴곡의 정도가 다를 뿐 『해동지도』와 동일하게 되어 있다. 동북쪽에서 흘러와 읍치를 지나 서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낙동강의 지류인 반변천이다. 아래쪽의 靑松界에서 흘러와 반변천에 합류되는 하천이 현재의 용전천이다. 비록 회화식으로 그렸지만 하천의 흐름은 실제에 거의 부합되도록 그려져 있다. 오른쪽 아래의 東面은 현재의 영양군 석보면 택전리와 화매리 일대, 영덕군 지품면 낙평리 일대로서 진보현의 입장에서 보면 월경지이다. 석보면 지역에 있던 것은 반변천의 상류에 해당되지만 영덕군 지품면 낙평리 일대는 동해로 빠져나가는 오십천 유역에 자리잡고 있다. 위치의 방향과 거리를 정확하게 그리려고 노력한 본 사이트의 『조선지도』, 『청구도』, 『청구요람』, 『동여도』, 『대동여지도』 등의 지도에서는 동면의 위치가 잘못 기재되어 있다. 그만큼 현지인이 아니라면 동면의 위치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본 지도에 표기된 지명 중 읍치의 府倉을 제외하면 모두 『해동지도』에 나오는 것인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면서 본 지도에 없는 지명이 여러 개 있다. 읍치에 있는 下東面은 下里面의 오기이며, 『해동지도』에는 올바르게 표기되어 있다. 읍치는 현재의 청송군 진보면 진안리 일대에 있었으며, 북쪽 반변천변에 있는 절벽이 사실감 있게 그려져 있다. 지도 아래쪽에는 퇴계 이황의 선조 묘소가 풍수적 명당 형태로 그려져 있어 조선에서의 이황에 대한 평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기봉)

  • 청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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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의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본 사이트의 『해동지도』 5책 청송부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몇몇 부분에서 『해동지도』와 다른 점이 나타나고 있다. 주기에서 面과 사방경계에 관한 거리 정보 등은 시간적 변화에 의해 달라지지 않으므로 본 지도의 것과 『해동지도』의 것이 동일하다. 다만 東距盈德界二十里가 『해동지도』에는 80리로 되어 있는 차이가 있는데, 본 지도의 것이 맞는 것으로 판단된다. 호수를 비롯하여 조세와 관련된 통계는 항목과 내용이 상당히 다르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본 지도에는 民戶가 2,206호로 되어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元戶가 3,274호로 나와 차이가 많다. 『여지도서』(1759년경)에는 원호가 2,996호로, 『호구총수』(1789년경)에는 3,259호로 나와 본 지도의 것이 가장 적은 편에 속한다. 본 지도에 있는 지명 중 『해동지도』에 없는 것은 읍치의 府倉과 읍치 왼쪽의 普光山이고, 『해동지도』에 있으면서 본 지도에 없는 것으로 동쪽의 月明山과 읍치 내의 건물을 들 수 있다. 따라서 이것만으로는 어느 것이 원본이고, 어느 것이 필사본인지 분명하지 않다. 본 지도에는 『해동지도』에 있던 도로와 각 지점까지의 거리 정보가 생략되어 있다. 그런데 아래쪽에 南倉官이라는 지명이 보이고 있으며, 『해동지도』에는 南倉官距二十里(남창, 官門으로부터 20리)로 되어 있다. 이것은 본 지도의 제작자가 『해동지도』나 그 계통의 것을 필사하면서 잘못 쓴 것으로 볼 수 있다. 청송부는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2개의 유역권에 걸쳐 있다. 읍치 지역이 반변천의 지류인 용전천이고, 왼쪽 아래가 역시 반변천의 지류인 길안천 최상류에 해당된다. 후자의 지역에는 지도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원래 安德縣이 있었고, 면의 명칭에 縣자가 들어가 있는 것은 모두 안덕현의 영역이었던 곳이다. 청송부의 읍치는 현재의 청송군 청송읍 월막리 일대에 있었고, 안덕현의 중심지는 청송군 안덕면 지역에 있었다. (이기봉)

  • 칠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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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의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본 사이트의 『해동지도』 5책 칠곡부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몇몇 부분에서 『해동지도』와 다른 점이 나타나고 있다. 주기에서 面과 사방경계에 관한 거리 정보 등은 시간적 변화에 의해 달라지지 않으므로 본 지도의 것과 『해동지도』의 것이 동일하다. 그러나 호수를 비롯하여 조세와 관련된 통계는 항목과 내용이 상당히 다르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본 지도에는 民戶가 4,015호로 되어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元戶가 3,216호로 나와 서로 다르다. 『여지도서』(1759년경)에는 원호가 3,070호로, 『호구총수』(1789년경)에는 3,363호로 나와 본 지도의 것이 가장 많은 편에 속한다. 본 지도에 그려진 하천의 유로는 굴곡에서의 약간의 차이와 가장 아래쪽의 작은 하천을 제외하면 『해동지도』의 것과 동일하다. 왼쪽에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하천이 현재의 낙동강 본류이다. 낙동강 본류의 아래쪽에 琴湖津이라 적혀 있는 곳은 금호강과 낙동강이 합류하는 지점이다. 원래는 가산산성에서 내려오는 현재의 이언천이 금호강과 합류된 후 낙동강으로 흘러가도록 그려져 있어야 사실에 부합된다. 또한 금호강과 낙동강이 합류하는 지점에는 금호강 북쪽에 현재의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하빈면과 다사면 지역에 해당되는 대구의 땅이 끼어 있었다. 지명이라는 측면에서는 가산산성 안의 일부가 다르고, 지도 아래쪽에 『해동지도』에 있던 八莒面과 退川面이 생략되어 있다. 본 지도의 주기에는 생략된 2개의 면 명칭이 모두 적혀 있어 본 지도의 제작자가 『해동지도』 계통을 필사하면서 빠뜨린 것으로 판단된다. 칠곡부의 읍치는 현재의 칠곡군 동면면 가산산성 안에 있었다. 칠곡부는 조선 초까지도 성주의 속현으로 존재하고 있었는데, 임진왜란 이후 1640년(인조 18)에 架山山城을 쌓고 그곳에다 都護府를 설치함으로써 독립하게 되었다.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진보와 읍성을 중심으로 외적을 방어하는 것이었지만 소규모의 평지성 또는 평산성이기 때문에 대규모의 외적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조선에서는 몇 개의 고을이 함께 들어가 방어할 수 있는 대형산성을 대대적으로 축조하게 되었고, 가산산성은 그러한 대형산성의 대표적인 예에 해당된다. (이기봉)

  • 풍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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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의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본 사이트의 『해동지도』 5책 풍기현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해동지도』에 풍기현이라고 적혀 있는 것은 주기 기록자의 오류이다. 본 지도의 주기에는 조세 관계의 내용이 元會各穀과 賑色各穀 등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본 지도첩의 다른 군현 지도에는 호구수를 비롯하여 조세와 관련된 항목이 많이 적혀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조세 관계 기록은 『해동지도』와 다르지만 面과 사방경계에 대한 정보는 『해동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사방경계에서 ‘南距安東境二十里距醴泉六十里’는 ‘남쪽으로 안동의 경계까지 20리이고, 예천의 읍치까지는 60리’라는 뜻이다. 본 지도에 그려진 하천의 유로는 일부를 제외하면 『해동지도』와 동일하다. 다른 점은 가운데의 魯佐面부터 왼쪽 아래의 安東界까지 『해동지도』에 있었던 하천을 본 지도에서 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하천은 현재 석관천이라 불리고 있으며, 안동의 월경지였던 현재의 예천군 감천면을 지나 내성천으로 흘러간다. 오른쪽의 하천은 내성천의 지류인 서천의 상류에 해당되며, 왼쪽의 하천은 현재 한천이라 불리는 내성천의 지류이다. 한천의 상류 유역은 현재의 예천군 상리면과 하리면에 해당되며, 고려시대까지 은풍현이 자리잡고 있었다. 오른쪽의 하천 유역에 있었던 기천현과 앞서 언급한 은풍현이 합쳐져 조선 문종 때 풍기현이 된 것이다.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은 『해동지도』에 거의 동일하게 나오고 있다. 다만 읍치의 아사와 객사 등의 위치가 『해동지도』와 다르게 나오고 있을 뿐이다. 『해동지도』에는 이름만 적혀 있던 面에 본 지도에서는 노란색 직사각형의 범례 기호를 사용하여 구별을 쉽게 해주고 있다. 또한 면의 명칭 중 4자 이상인 것은 3자로 통일시켜 기록하였는데, 주기와 비교하면 원래의 명칭을 쉽게 알 수 있다. 지도에 표시된 풍기군의 읍치는 현재의 영주시 풍기읍 성내리 일대에 있었다. (이기봉)

  • 하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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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의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본 사이트의 『해동지도』 5책 하양현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몇몇 부분에서 『해동지도』와 다른 점이 나타나고 있다. 주기에서 面과 사방경계에 관한 거리 정보는 시간적 변화에 의해 달라지지 않으므로 본 지도의 것과 『해동지도』의 것이 동일하다. 그러나 호수를 비롯하여 조세와 관련된 통계는 항목과 내용이 상당히 다르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본 지도에는 民戶가 1,456호로 되어 있지만 『해동지도』에는 元戶가 1,771호로 나와 서로 다르다. 주기에서 본 지도에 특이하게 나오는 것은 匙山烽燧에 烽軍과 保人이 각각 25명씩 배치되어 있다는 점으로 본 지도첩의 다른 군현에서는 거의 기록되지 않는 정보이다. 본 지도에 그려진 하천의 유로는 굴곡의 정도만 다를 뿐 『해동지도』의 것과 동일하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흐르는 하천은 지도에도 적혀 있듯이 현재의 금호강 본류이다. 八公山은 화양현의 땅과 접해 있지 않음에도 표시되어 있는데, 화양현까지 이어지는 산줄기의 출발점이라는 인식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지도 오른쪽에는 梨旨縣이 표시되어 있는데, 본 지도첩의 신령현 지도에 南面으로 기록된 곳이다. 원래는 梨旨銀所였다가 고려말에 梨旨縣으로 승격되었고, 조선초에 신령현의 땅으로 편제되면서 월경지가 된 곳이다. 현재의 경산시 와촌면 서쪽 지역으로 이미 신령현 남면으로 편제되어 있던 곳에 옛 지명을 적어놓았음이 특이하다. 본 지도 또는 원본 지도가 지리지를 보고 제작되었던가, 아니면 해당 지역에서 아직도 옛 지명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었던가 둘 중의 하나가 아닌가 한다. 지도 오른쪽에 적혀 있는 永川界는 『해동지도』에는 永春界로 잘못 적혀 있다. 영춘은 현재의 충청북도 단양에 있던 고을이기 때문에 하양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본 지도에 표시된 하양현의 읍치는 현재의 경산시 하양읍 금락동 일대에 있었으며, 구읍내면의 구읍은 경산시 교리의 한사 마을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기봉)

  • ▶뒷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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