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도古地圖
규장각 소장 220여종 6,000매에 달하는 고지도를
유형별, 지역별로 분류하여 한 눈에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고지도

八道分圖 팔도분도

  • 편저자 : [編者未詳]
  • 청구기호 : 古915.1-P173
  • 간행연도 : [19世紀 中盤(哲宗 年間:1849-1863)]
  • 책권수 : 1冊(9張)
  • 판본사항 : 筆寫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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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앞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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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八道分圖》라는 표제의 본 지도책은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의 채식필사본으로, 총 8장의 도별도로 구성되어 있다. 표지 이면에 ‘嘉慶七年十月初十日行縣監全’이라고 적혀 있는데 嘉慶七年은 1802년(순조 2)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는 지도의 제작 연대라기보다는 후대의 소장자가 註記한 것으로 보인다.(양윤정)

  • 기보 (畿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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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八道 중 〈畿輔〉로, 오늘날 경기도 일대 지도이다. 지도의 전체적 양식은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을 따르고 있으며, 산지와 하천이 푸른색으로 채색된 필사본이다. 그리고 각 郡縣은 작은 원, 군사시설은 이중 사각형으로 구분하여 표시하고 있다. 서울의 경우에는 원 안에 ‘京’을 표시하고 남쪽으로 이중의 테두리가 그려져 다른 군현의 표현과는 차이를 두고 있다. 그리고 수원의 원래 읍치 소재지에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본 사이트상에 표시되어 있는 建陵과 華城은 후대의 소장자가 기입한 것으로 지도 제작 당시에는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1800년 이후 제작된 지도라면 현 구리시의 六陵 표시가 七陵으로 수정되어야 하는데 六陵으로 표시된 것은 최소한 영조가 승하하기 이전의 지도임을 나타내주고 있다. 본 사이트의 지도와 제작시기가 비슷한 규장각 소장 《八道地圖(古4709-23)》와 비교해 보면, 정상기형 지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각 군현을 연결한 교통로가 표시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 차이점은 초기 정상기형 지도의 경우 경기와 충청도는 면적이 좁기 때문에 합쳐서 한 장에 같이 그렸으며, 반면에 함경도는 면적이 넓어 한 장에 그릴 수 없기 때문에 북도와 남도로 나누어 그렸다. 《八道地圖(古4709-23)》는 초기 정상기형 지도의 특징과 같이 경기도와 충청도가 한 장에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의 경우 경기도와 충청도가 각각 한 장의 지도로 그려져 있다.(양윤정)

  • 동관 (東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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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八道 중 〈東關〉으로, 오늘날 강원도 일대 지도이다. 지도의 전반적인 형식과 내용은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본 지도의 경우에는 原圖와는 몇 가지 차이가 보인다. 정상기의 《東國地圖》는 경기도와 충청도를 한 장에 그리고 있지만, 본 지도책은 경기도와 충청도를 각각 한 장에 그리고 있으며, 각 도별도의 圖名에 있어서도 큰 차이가 있다. 특히 강원도의 경우 본 지도의 圖名을 ‘東關’으로, 함경도를 ‘北關’, 평안도를 ‘南關’으로 표시하였다. 그리고 정상기의 《東國地圖》와 초기 사본인 1776년 이전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부분의 지도에서 찾아 볼 수 있는 跋文과 百里尺이 본 지도책에는 없다. 이처럼 초기 사본에 속하는 규장각 소장의 본 지도책은 原圖의 기본적인 경향에서 벗어나고 있는데 이는 사본들이 정상기의 地圖를 그대로 전사한 것이 아니라 修正, 校補하여 필사한 것이기 때문이다. 즉, 본 지도책의 경우 현재의 중강진, 강계 지방의 압록강 유로와 고흥반도, 여수반두 주변의 도서 지방 표현, 경상도 남해의 해안선 등이 이전의 사본들과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八道分圖》의 경우에도 原圖와는 차이가 있는 본 지도책과 유사한 유형을 傳寫한 것으로, 정상기 地圖 寫本에 있어서 하나의 흐름을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양윤정)

  • 북관 (北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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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八道 중 〈北關〉으로, 오늘날 함경도 일대 지도이다. 지도의 전반적인 형식과 내용은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을 따르고 있으나, 큰 차이점은 原圖는 도별도의 크기를 고려하여 함경도를 北道와 南道 두 장으로 나눠 그린 반면에, 본 지도는 한 장에 함경도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초기 수정본으로 생각되는 본 지도에는 原圖 系列의 寫本에 비해 풍부한 지리적 사상이 포함되어 있다. 山川, 峴, 峙, 嶺 등과 같은 자연적 사상은 물론이고 山城, 寺, 郡縣內의 坊里, 일부 面名, 津, 亭子 등과 같은 정상기의 原圖 系列의 寫本에서는 거의 표현되지 않고 있는 방대한 인문적 요소까지 지도상에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본 지도와 같이 原圖의 초기 수정본 계열 지도들을 살펴보면, 轉寫되는 과정에 정보의 수정과 추가가 계속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본 지도에 비해 후대(1789년~1795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규장각 소장 《輿地圖(古4709-78)》의 경우에는 그 윤곽이 본 지도과 거의 동일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본 지도와 비교해 보았을 때 《輿地圖(古4709-78)》는 섬들을 포함하고 있는 해안 지역의 윤곽이 매우 자세해졌고 본지도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은 섬들이 그려져 있다. 이는 이 시기에 이미 한반도의 윤곽이 거의 확정되었으며 도서지방에 대한 인식도 매우 정교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양윤정)

  • 서관 (西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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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八道 중 〈西關〉으로, 오늘날 평안도 일대 지도이다. 지도의 전반적인 형식과 내용은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본 지도의 경우 정상기의 原圖 계열 지도들과는 국토의 윤곽이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먼저 중강진에서 만포로 이어지는 압록강의 유로 부분에서 나타난다. 정상기의 원도 윤곽을 따르고 있는 규장각 소장 《八道地圖(古4709-14)》에서 이 부분을 보면 제작시기가 본 지도책 보다 후대임에도 불구하고 압록강의 유로가 다소 완만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에 반해, 본 지도와 같은 수정본에 있어서는 우리나라 쪽으로 깊게 만입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압록강 부분의 이러한 윤곽은 19세기에 제작되는 여러 지도에서 보이는데 이들 지도의 系譜를 밝히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후의 지도들에서 정상기 原圖의 윤곽 대신에 본 지도의 윤곽을 많이 따른다는 점에서 이후 지도제작에 미친 영향은 원도 계열의 사본들보다는 훨씬 크다고 볼 수 있다. 본 지도와 같이 수정본 계열의 지도인 규장각 소장 《輿地圖(古4709-78)》의 경우 대부분의 윤곽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압록강 이북 지역의 지명 가운데 극히 일부분만이 표시되어 있는 반면에, 《輿地圖(古4709-78)》에는 본 지도와 비교 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지리적 정보가 표시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轉寫되는 과정에 정보의 수정과 추가가 계속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양윤정)

  • 영남 (嶺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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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八道 중 〈嶺南〉으로, 오늘날 경상도 일대 지도이다. 지도의 전체적 양식은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을 따르고 있으며, 산지와 하천이 푸른색으로 채색된 필사본이다.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인 도별도 대부분은 정상기의 원래 지도를 그대로 모사한 사본들로 한반도의 윤곽을 비롯한 전체적인 표현 형태가 비슷하다.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에 속하는 규장각 소장 《八道地圖(古4709-23)》, 《八道地圖(古4709-14)》, 《輿地圖(古4709-78)》, 《海東地圖(古4709-61)》의 경우 제작 시기는 차이가 있으나 윤곽 및 해안선 대부분이 거의 비슷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본 지도의 경우 경상도 남해 부분 해안선 부분에 큰 차이가 보인다. 우선 거제도의 모습이 다른 사본들과 비교하여 加背粱鎭 아래쪽으로 길게 그려져 있고, 固城 부근 역시 해안선에 차이가 보인다.『新增東國輿地勝覽』에 固城의 진산인 無量山은 서쪽 10리에 위치하며, 佐耳山은 서남쪽 30리에 위치한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본 지도에서는 무량산과 좌이산이 거의 평행선에 표시되어 있다. 그 결과 이 부분의 해아선이 다른 지도와는 다른 것으로 생각된다. 南海 모양도 위에 제시한 다른 사본의 경우 彌助項이 昌善島 아래 부분까지 길게 연결되어 있으나 본 지도는 昌善島 좌측 아랫부분에 彌助項이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1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 《八道分圖》의 경우에는 본 지도와 해안선 모습이 거의 일치한다. 그리고 두 지도에는 對馬島가 표시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규장각 소장의  《八道地圖(古4709-23)》, 《八道地圖(古4709-14)》, 《輿地圖(古4709-78)》, 《海東地圖(古4709-61)》와는 차이가 있는 저본을 바탕으로 본 지도와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八道分圖》가 계속해서 필사된 것으로 추측된다.(양윤정)

  • 해서 (海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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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八道 중 〈海西〉로, 오늘날 황해도 일대 지도이다. 지도의 전반적인 형식과 내용은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을 따르고 있으며, 산지와 하천이 푸른색으로 채색된 필사본이다. 그리고 각 인문적 요소들은 기호를 사용해 구별하고 있다. 郡縣은 작은 원, 水營․兵營과 같은 군사시설은 이중 사각형으로 구분하여 표시하고 있다. 黃州牧의 경우에는 이중 원으로 표시하고 원 좌측에 ‘兵’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산지의 표현, 전반적인 해안선 등은 정상기의 原圖와 유사하나, 본 지도는 原圖와는 부분적으로 차이가 있는 초기 수정본에 해당한다. 原圖 계열과 수정본 계열의 차이점은 본 지도의 해안선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長淵의 助泥鎭과 長山串의 위치에 따른 해안선의 모습이다. 본 지도에서는 助泥鎭의 서남쪽에 長山串을 그림면서 長山串 부분이 길게 돌출되어 해안선이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原圖 계열을 따르고 있는 규장각 소장의 《八道地圖(古4709-23)》에는 助泥鎭 바로 서쪽에 長山串을 그려 많이 돌출되어 있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해안선이 변함에 따라 白翎島의 위치도 수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해안 지역의 윤곽이 수정됨에 따라서 도서지방의 위치 및 정보도 보다 더 정확하게 수정되었다.(양윤정)

  • 호남 (湖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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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八道 중 〈湖南〉으로, 오늘날 전라도 일대 지도이다. 지도의 전체적 양식은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을 따르고 있다.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을 따르고 있는 도별도 대부분은 정상기의 원래 지도를 그대로 모사한 사본들로 한반도의 윤곽을 비롯한 전체적인 표현 형태가 그대로 이어지고 지명과 같이 후대에 변화된 내용이 수정된 사본들이다. 제주도를 포함한 전라도 해안 부분 역시 본 지도와 19세기 초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되는 규장각 소장 《海東地圖(古4709-61)》의 해안선이 거의 동일함을 알 수 있다. 특히 지금의 고흥반도와 여수반도 사이에 白也串이 섬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이는 두 지도 모두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으로, 정상기의 《東國地圖》 原圖에서 범한 실수를 시정하지 않고 그대로 옮긴 것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정상기의 原圖 계열을 따르는 사본의 제주도 지역을 보면 18세기에 제작된 초기 사본지도들 대부분은 旌義縣 서쪽 지역이 彎으로 표시되어 있으나 후대 사본인 경우에는 彎이 아닌 호수로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原圖와는 차이가 좀 보여 초기 수정본으로 추정되는 본 지도에서는 旌義縣 서쪽이 호수로 표현되었던 원도 계열 사본의 오류를 바로 잡고 있다. 그러나 같은 유형의 초기 수정본을 추정되는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 《八道分圖》의 경우  본 지도와 달리 原圖의 초기 사본들과 유사하게 旌義縣 서쪽 지역에 彎으로 표시되어 있다.(양윤정)

  • 호서 (湖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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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이트의 지도는 八道 중 〈湖西〉로, 오늘날 충청도 일대 지도이다. 지도의 전체적 양식은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을 따르고 있으며,『新增東國輿地勝覽』의 附圖적 성격이 강해 간략한 정보만이 표시된 '東覽圖'형의 지도와는 달리 독립된 도별도이다. 그리고 정보의 효율적 전달을 위해 기호 사용에도 위계가 나타나 있다. 각 郡縣은 작은 원으로 표시하고, 각 도의 중심지의 경우 일반 군현과 달리 표현하고 있다. ‘公州’는 사각형 안에 원으로, ‘淸州’는 이중 원으로 형태를 구분하고 있다. 충청도 지역의 경우 같은 정상기의 《東國地圖》 유형의 지도 사이에도 상당한 차이가 보이는 곳이 있다. 본 사이트의 지도와 제작시기가 비슷한 규장각 소장 《八道地圖(古4709-23)》, 그리고 이보다 늦은 시기인 19세기 초반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규장각 소장 《海東地圖(古4709-61)》의 태안반도 부근을 살펴보면, 각각 모두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본 사이트의 지도에 나타난 태안반도 모습은 거의 알파벳 H 모양과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八道地圖(古4709-23)》의 경우에는 瑞山 아랫부분이 길게 돌출되어 해안선 부분에 차이가 있으며, 《八道地圖(古4709-23)》의 해안선  형태는 《海東地圖(古4709-61)》와 더 유사하다. 본 지도에 나오는 해안선과 섬의 위치 및 지명은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八道分圖》와 대체적으로 동일하다. 그러나 1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 《八道分圖》의 경우 지도 여백에 註記가 있으며, 郡縣 표현 방식에 차이가 나타난다.(양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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