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도古地圖
규장각 소장 220여종 6,000매에 달하는 고지도를
유형별, 지역별로 분류하여 한 눈에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고지도

朝鮮八道地圖 조선팔도지도

  • 편저자 : [作者未詳]
  • 청구기호 : 古屛912.51-J773-v.1-2
  • 간행연도 : [18世紀(英正祖 年間:1724-1800)]
  • 책권수 : 2雙 12幅, 彩色屛風
  • 판본사항 : 筆寫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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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원도
  • 강원도·황해도[일부](149.4×127.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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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쌍 6폭의 병풍 중 첫 번째 병풍의 5-6폭으로 강원도와 황해도의 서쪽 일부에 해당된다. 군현은 남색의 큰 원으로, 감영은 붉은색의 큰 사각형에 성곽 표시로 구분해 주었다. 군사기지인 진보는 푸른색의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종6품의 찰방이 파견되어 많은 속역을 관장하던 찰방역은 붉은색의 작은 원으로 표시하였다. 황해도의 所江에 남색의 큰 사각형에 성곽 표시를 한 것은 원래 鎭이었지만 1719년(숙종 45)에 황해도 水營이 설치되어 行營의 역할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강원도의 찰방역으로 淮陽과 金化에 銀溪(驛)이 동일하게 표시되어 있다. 원래 회양의 은계역에 파견되던 찰방이 김화의 生昌驛으로 옮겨왔던 사실과 관련이 있다. 原州의 丹丘驛에도 원래 保安驛에 파견되던 찰방이 옮겨왔기 때문에 붉은색 작은 원으로 표시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혼란은 본 지도의 제작자들이 역사적 사실을 꼼꼼하게 검토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으로 판단된다.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에 비해 산줄기와 물줄기 및 지명 등이 훨씬 상세해지고 많은 교정이 이루어졌다. 교정이 이루어진 곳을 쉽게 알 수 있는 사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동해안 해안선의 굴곡이 원본 계통에 비해 자세해지고 섬의 표시가 많아져 본 지도의 제작자들이 정상기보다 훨씬 많은 자료를 참고하여 제작했음을 알 수 있다. 通川 부근의 경우 바다쪽으로 육지가 튀어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읍치 남쪽 바닷가에 3개의 섬이 표시되어 있다. 현대 지도에는 이 지역의 해안선이 서북-동남의 단조로운 선으로 되어 있으며, 3개의 섬은 아주 작을 뿐만 아니라 통천 읍치 훨씬 남동쪽의 해안선을 따라 늘어서 있다. 원본 계통의 지도에서는 이 부분이 현대 지도에 가깝게 되어 있어 본 지도의 제작자들이 오히려 사실을 더 왜곡하는 방향으로 교정했다고 볼 수 있다. 1759년(영조 35)경에 제작된 『여지도서』의 통천군 산천조에는 세 개의 섬이 모두 郡 남쪽 바다 가운데(海中)에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1531년(중종 26)에 목판으로 제작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통천군 산천조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본 지도의 제작자들이 이런 자료를 바탕으로 3개의 섬을 배치한 것으로 판단된다. 김정호의 《청구도》에도 이 부분이 동일하게 표현되다가 《동여도》와 《대동여지도》에서 사실에 가깝게 교정된다. 김정호의 『大東地志』강원도 통천의 산천조에는 세 개의 섬이 남쪽 바다 가운데에 있다는 표현이 사라지고 육지에서 가깝다(近陸)로 바뀐다. (이기봉)

  • ▶경기도
  • 경기도·충청도(149.4×127.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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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쌍 6폭의 병풍 중 두 번째 병풍의 5-6폭으로 경기도와 충청도에 해당된다. 충청도의 일반 군현은 노란색의 큰 원으로, 감영이 있는 공주는 붉은색의 큰 사각형으로, 병영과 수영은 파란색의 큰 사각형으로 구분하여 표시하였다. 경기도의 일반 군현은 노란색의 큰 원으로, 留守府이기 때문에 작은 서울로 인식되었던 강화와 개성은 붉은색 큰 사각형으로, 수영이 설치된 교동은 파란색 큰 사각형으로 구분하여 표시하였다. 군사기지인 진보는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종 6품의 찰방이 파견된 찰방역은 작은 원으로 표현하였는데, 색이 바래면서 동일한 색을 유지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충청도의 尼山은 1776년(영조 42)에 尼城으로 바뀐다. 본 지도에는 원래 尼山으로 기록했다가 尼城으로 수정한 흔적이 분명하여 본 지도가 1776년 이전에 제작되었다가 이후 지명의 변화를 반영하여 교정하려 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에 비해 산줄기와 물줄기 및 지명 등이 훨씬 상세해지고 많은 교정이 이루어졌다. 교정된 것 중 사실에 가까워진 것도 있고, 오히려 사실로부터 더 멀어진 것도 있다. 전자의 대표적인 예로 안면도와 水營 북쪽의 白沙津 부근을 들 수 있고, 후자의 대표적인 예로 海美의 읍치 서쪽에 海美·倉이라 적혀 있는 부분을 들 수 있다. 원본 계통에는 안면도가 섬이 아니라 串(현대의 半島)으로 그려져 있었지만 이후의 수정본에서는 모두 섬으로 교정된다. 본 지도는 단지 섬으로 교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수정본에 비해 섬의 모습이 아주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水營 북쪽은 원본 계통에 섬으로 표시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는 사실에 가깝게 육지와 연결된 것으로 교정되어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규16030)과 《팔도군현지도》(고4709-111)의 해미 지도에는 본 지도의 해미 읍치 서쪽 부분에 西面으로 기록되어 있다. 해미의 서면은 원래 북쪽으로 바다에 접한 海美地라 적혀 있는 부분에 있어야 하는데, 면의 명칭 때문에 본 지도의 제작자들이 오류를 범한 곳이다. 이 오류는 김정호의 《청구도》뿐만 아니라 《동여도》와 《대동여지도》에까지 그대로 이어져 자료만으로는 교정하기 어려운 부분이었음을 추론할 수 있다. 충청도와 경기도 지도 모두에 洪州·稷山·振威 등의 군현 명칭이 읍치가 아닌 곳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다른 군현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땅인 월경지를 의미한다. 다만 경기도에 振威라 적혀 있는 곳에는 陽城으로 고쳐야 사실에 가깝다. (이기봉)

  • ▶경상도
  • 경상도·전라도[일부](149.4×127.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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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쌍 6폭의 병풍 중 두 번째 병풍의 1-2폭으로 경상도와 전라도의 동북부 일부에 해당된다. 1767년(영조 43)에 山淸과 安義로 개명되는 山陰과 安陰이 개명 이전의 명칭으로 기록되어 있어 1770년에서 가까운 시기에 제작되었음을 알게 해준다. 일반 군현은 황적색의 큰 원으로 표시하였고, 監營·兵營·水營·統營은 사각형과 성곽 모양에 색을 달리하여 구별해 주었다. 慶州는 당시 일반 군현과 동일하게 표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감영이나 통영과 동일하게 표현하여 특별히 구별해 주고 있는데, 신라의 오랜 수도였던 역사성을 반영한 것이 아닌가 한다. 군사기지인 진보는 푸른색의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종6품의 찰방이 파견되어 많은 속역을 관장하던 찰방역은 붉은색의 작은 원으로 표시하였다. 북부 지역에는 安東·順興·榮川의 군현 명칭이, 永川 부근에는 慶州의 군현 명칭이 읍치 이외의 부분에도 상당수 기록되어 있는데, 모두 월경지를 의미한다.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에 비해 산줄기와 물줄기 및 지명 등이 훨씬 상세해지고 많은 교정이 이루어졌다. 다만 현대 지도에 입각해 볼 때 원본 계통에서 분명한 오류를 범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서 교정되지 않은 곳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 英陽 日月山 북쪽의 하천 유로를 들 수 있다. 이곳은 현재의 영양군 수비면으로 울진을 통해 동해로 빠져나가는 왕피천의 상류임에도 불구하고 낙동강의 상류로 그려져 있다. 이런 오류는 김정호의 《청구도》에도 그대로 이어지며, 《동여도》와 《대동여지도》에서도 교정되지 않는다. (이기봉)

  • ▶전라도
  • 전라도·충청도[일부](149.4×127.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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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쌍 6폭의 병풍 중 두 번째 병풍의 3-4폭으로 전라도와 충청도 동부 일부에 해당된다. 일반 군현은 전라도는 붉은색의 큰 원으로, 충청도는 황색의 큰 원으로 표현하였다. 전라도의 감영인 全州는 붉은색 큰 사각형에 성곽 표시로, 수영과 병영은 파란색 큰 사각형에 성곽 표시로 구분해 주었다. 군사기지인 진보는 파란색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종 6품의 찰방이 파견된 찰방역은 작은 원으로 표현하였는데, 색이 바래서 달라진 경우도 있다.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에 비해 산줄기와 물줄기 및 지명 등이 훨씬 상세해지고 많은 교정이 이루어졌다. 교정된 사례 중 쉽게 알 수 있으며 여러 연구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을 들면 다음과 같다. 順天 남쪽 左水營 서쪽의 白也串과 白也(島)를 들 수 있다. 원본 계통에서는 백야곶을 큰 섬으로 표시했음에 반해 본 지도에서는 백야곶은 半島로, 백야(도)는 아주 작은 섬으로 그렸다. 원본 계통에는 제주도 남쪽의 서귀포 근처에 큰 호수나 만이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현대 지도에 입각해 볼 때 두 부분 모두 본 지도가 사실에 훨씬 가깝다. 정상기보다 본 지도의 제작자들이 훨씬 풍부한 자료에 입각하여 오류를 교정했음을 엿볼 수 있다. (이기봉)

  • ▶평안도
  • 평안도·황해도·강원도[일부](149.4×127.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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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쌍 6폭의 병풍 중 첫 번째 병풍의 3-4폭으로 평안도와 함경도의 대부분과 강원도 동쪽의 일부분에 해당된다. 군현은 큰 원으로 표시하면서 도마다 색을 조금씩 다르게 하였다. 감영이 설치된 군현은 붉은색의 큰 사각형에 성곽 표시로, 수영과 병영은 군현과 색은 같으면서 큰 사각형에 성곽 표시로 구분해 주었다. 군사기지인 진보는 푸른색의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종6품의 찰방이 파견되어 많은 속역을 관장하던 찰방역은 붉은색의 작은 원으로 표시하였다. 다만 평안도 지도에서 찰방역인 大同驛이 평양 부근에 있었음에도 표시되지 않았다.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에 비해 산줄기와 물줄기 및 지명 등이 훨씬 상세해지고 많은 교정이 이루어졌다. 교정이 이루어진 곳을 쉽게 알 수 있는 사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평안도의 가장 북쪽에 있는 압록강의 유로는 원본 계통과 완전히 다를 뿐만 아니라 몇 개의 수정본 계통 사이에도 서로 다른 부분이다. 따라서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과 수정본 계통을 비교하여 쉽게 구별할 수 있는 좋은 사례가 된다. 김정호의 《청구도》에 나타난 압록강의 유로는 본 지도와 거의 동일하여 같은 계통임을 알 수 있다. 김정호는 《동여도》와 《대동여지도》에서 본 지도 계통의 상당 부분을 교정하지만 평안도 북쪽의 압록강의 유로는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다. 현대 지도와 비교할 때 이 부분은 실제와 상당히 다르게 그려진 대표적인 곳으로 김정호조차도 오류를 교정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동해쪽으로 툭 튀어나오게 그린 왼쪽 아래의 강원도 울진 부분을 들 수 있다.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에서는 이 부분이 현대 지도와 비슷하게 동해쪽으로 튀어나오지 않게 그려져 있다. 따라서 본 지도의 제작자들이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을 수정하면서 오히려 사실을 더욱 왜곡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볼 수 있다. 본 지도보다 늦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다른 수정본 계통에서도 이 부분만큼은 본 지도와 비슷하게 그려져 있어 서로 연관성이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김정호의 《청구도》에서도 이 부분이 그대로 계승되지만 《동여도》와 《대동여지도》에 이르러 사실에 가깝게 교정된다. (이기봉)

  • ▶함경도
  • 함경도·평안도[일부](149.4×127.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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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쌍 6폭의 병풍 중 첫 번째 병풍의 1-2폭으로 함경도 전체와 평안도의 동쪽 일부에 해당된다. 함흥 북쪽에 표시된 長津柵은 1785년(정조 9)에 鎭으로 승격되고, 1787년(정조 11)에 그 위쪽의 別害堡로 옮겨 도호부로 삼지만 본 지도에는 이것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일반 군현은 남색의 큰 원으로, 감영이 있는 咸興은 붉은색의 큰 사각형으로, 남병영이 설치된 北靑은 성곽 모양의 남색 큰 원으로, 북병영이 설치된 鏡城은 성곽 모양의 남색 큰 사각형으로, 겨울철 북병영이 주둔하던 行營은 성곽 모양의 붉은색 큰 사각형으로 구분하였다. 군사기지인 鎭堡는 청색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표시하였고, 그밖에 홍색 실선의 도로와 봉수의 기호가 있다. 1차적으로 압록강과 두만강을 따라 진보가 빼곡히 배치되어 최전방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다. 두만강 남쪽에는 부령-경성-명천-길주의 선을 따라, 압록강 남쪽에서는 현재의 장진강과 백두대간 남북을 따라 외적이 남하하는 통로에 진보가 설치되었다. 정상기의 《동국지도》발문에 함경도를 남도와 북도로 나누고 평안도의 동북쪽이 넓어 함경도에 붙여 그린다고 했는데, 본 지도에서는 이를 전혀 따르지 않았다. 그 뿐만 아니라 산줄기와 물줄기 및 지명이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에 비해 훨씬 상세해지고 상당한 교정을 가했다. 위치의 교정이 이루어졌음을 쉽게 알 수 있는 곳 중의 하나를 예로 들면 明川 부근이다.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에서는 馬乳山이 명천 읍치의 정동쪽 해안가에 있지만 본 지도에는 동남쪽 해안가로 교정되어 있다. 현대 지도의 입장에서 볼 때 마유산의 위치는 본 지도의 것이 사실에 가깝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도 실제로는 명천 읍치의 동남쪽 해안가에 있던 乫亇山을 정동쪽 해안가에 위치시켜 사실과 다르게 그리고 있다. 명천 동쪽의 해안은 현대 지도의 입장에서 볼 때 남북 직선의 형태를 취하지만 본 지도에는 갈마산의 위치를 잘못 표시함에 따라 동쪽의 해안가로 툭 튀어져 나간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오류는 김정호의 《청구도》에까지 그대로 이어지다가 《동여도》와 《대동여지도》에서 교정된다. (이기봉)

  • 강원도·황해도[일부](149.4×127.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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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쌍 6폭의 병풍 중 첫 번째 병풍의 5-6폭으로 강원도와 황해도의 서쪽 일부에 해당된다. 군현은 남색의 큰 원으로, 감영은 붉은색의 큰 사각형에 성곽 표시로 구분해 주었다. 군사기지인 진보는 푸른색의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종6품의 찰방이 파견되어 많은 속역을 관장하던 찰방역은 붉은색의 작은 원으로 표시하였다. 황해도의 所江에 남색의 큰 사각형에 성곽 표시를 한 것은 원래 鎭이었지만 1719년(숙종 45)에 황해도 水營이 설치되어 行營의 역할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강원도의 찰방역으로 淮陽과 金化에 銀溪(驛)이 동일하게 표시되어 있다. 원래 회양의 은계역에 파견되던 찰방이 김화의 生昌驛으로 옮겨왔던 사실과 관련이 있다. 原州의 丹丘驛에도 원래 保安驛에 파견되던 찰방이 옮겨왔기 때문에 붉은색 작은 원으로 표시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혼란은 본 지도의 제작자들이 역사적 사실을 꼼꼼하게 검토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으로 판단된다.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에 비해 산줄기와 물줄기 및 지명 등이 훨씬 상세해지고 많은 교정이 이루어졌다. 교정이 이루어진 곳을 쉽게 알 수 있는 사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동해안 해안선의 굴곡이 원본 계통에 비해 자세해지고 섬의 표시가 많아져 본 지도의 제작자들이 정상기보다 훨씬 많은 자료를 참고하여 제작했음을 알 수 있다. 通川 부근의 경우 바다쪽으로 육지가 튀어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읍치 남쪽 바닷가에 3개의 섬이 표시되어 있다. 현대 지도에는 이 지역의 해안선이 서북-동남의 단조로운 선으로 되어 있으며, 3개의 섬은 아주 작을 뿐만 아니라 통천 읍치 훨씬 남동쪽의 해안선을 따라 늘어서 있다. 원본 계통의 지도에서는 이 부분이 현대 지도에 가깝게 되어 있어 본 지도의 제작자들이 오히려 사실을 더 왜곡하는 방향으로 교정했다고 볼 수 있다. 1759년(영조 35)경에 제작된 『여지도서』의 통천군 산천조에는 세 개의 섬이 모두 郡 남쪽 바다 가운데(海中)에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1531년(중종 26)에 목판으로 제작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통천군 산천조에도 동일하게 되어 있다. 본 지도의 제작자들이 이런 자료를 바탕으로 3개의 섬을 배치한 것으로 판단된다. 김정호의 《청구도》에도 이 부분이 동일하게 표현되다가 《동여도》와 《대동여지도》에서 사실에 가깝게 교정된다. 김정호의 『大東地志』강원도 통천의 산천조에는 세 개의 섬이 남쪽 바다 가운데에 있다는 표현이 사라지고 육지에서 가깝다(近陸)로 바뀐다. (이기봉)

  • 경기도·충청도(149.4×127.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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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쌍 6폭의 병풍 중 두 번째 병풍의 5-6폭으로 경기도와 충청도에 해당된다. 충청도의 일반 군현은 노란색의 큰 원으로, 감영이 있는 공주는 붉은색의 큰 사각형으로, 병영과 수영은 파란색의 큰 사각형으로 구분하여 표시하였다. 경기도의 일반 군현은 노란색의 큰 원으로, 留守府이기 때문에 작은 서울로 인식되었던 강화와 개성은 붉은색 큰 사각형으로, 수영이 설치된 교동은 파란색 큰 사각형으로 구분하여 표시하였다. 군사기지인 진보는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종 6품의 찰방이 파견된 찰방역은 작은 원으로 표현하였는데, 색이 바래면서 동일한 색을 유지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충청도의 尼山은 1776년(영조 42)에 尼城으로 바뀐다. 본 지도에는 원래 尼山으로 기록했다가 尼城으로 수정한 흔적이 분명하여 본 지도가 1776년 이전에 제작되었다가 이후 지명의 변화를 반영하여 교정하려 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에 비해 산줄기와 물줄기 및 지명 등이 훨씬 상세해지고 많은 교정이 이루어졌다. 교정된 것 중 사실에 가까워진 것도 있고, 오히려 사실로부터 더 멀어진 것도 있다. 전자의 대표적인 예로 안면도와 水營 북쪽의 白沙津 부근을 들 수 있고, 후자의 대표적인 예로 海美의 읍치 서쪽에 海美·倉이라 적혀 있는 부분을 들 수 있다. 원본 계통에는 안면도가 섬이 아니라 串(현대의 半島)으로 그려져 있었지만 이후의 수정본에서는 모두 섬으로 교정된다. 본 지도는 단지 섬으로 교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수정본에 비해 섬의 모습이 아주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水營 북쪽은 원본 계통에 섬으로 표시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는 사실에 가깝게 육지와 연결된 것으로 교정되어 있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조선지도》(규16030)과 《팔도군현지도》(고4709-111)의 해미 지도에는 본 지도의 해미 읍치 서쪽 부분에 西面으로 기록되어 있다. 해미의 서면은 원래 북쪽으로 바다에 접한 海美地라 적혀 있는 부분에 있어야 하는데, 면의 명칭 때문에 본 지도의 제작자들이 오류를 범한 곳이다. 이 오류는 김정호의 《청구도》뿐만 아니라 《동여도》와 《대동여지도》에까지 그대로 이어져 자료만으로는 교정하기 어려운 부분이었음을 추론할 수 있다. 충청도와 경기도 지도 모두에 洪州·稷山·振威 등의 군현 명칭이 읍치가 아닌 곳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다른 군현의 경계를 넘어가 있는 땅인 월경지를 의미한다. 다만 경기도에 振威라 적혀 있는 곳에는 陽城으로 고쳐야 사실에 가깝다. (이기봉)

  • 평안도·황해도·강원도[일부](149.4×127.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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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쌍 6폭의 병풍 중 첫 번째 병풍의 3-4폭으로 평안도와 함경도의 대부분과 강원도 동쪽의 일부분에 해당된다. 군현은 큰 원으로 표시하면서 도마다 색을 조금씩 다르게 하였다. 감영이 설치된 군현은 붉은색의 큰 사각형에 성곽 표시로, 수영과 병영은 군현과 색은 같으면서 큰 사각형에 성곽 표시로 구분해 주었다. 군사기지인 진보는 푸른색의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종6품의 찰방이 파견되어 많은 속역을 관장하던 찰방역은 붉은색의 작은 원으로 표시하였다. 다만 평안도 지도에서 찰방역인 大同驛이 평양 부근에 있었음에도 표시되지 않았다.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에 비해 산줄기와 물줄기 및 지명 등이 훨씬 상세해지고 많은 교정이 이루어졌다. 교정이 이루어진 곳을 쉽게 알 수 있는 사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평안도의 가장 북쪽에 있는 압록강의 유로는 원본 계통과 완전히 다를 뿐만 아니라 몇 개의 수정본 계통 사이에도 서로 다른 부분이다. 따라서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과 수정본 계통을 비교하여 쉽게 구별할 수 있는 좋은 사례가 된다. 김정호의 《청구도》에 나타난 압록강의 유로는 본 지도와 거의 동일하여 같은 계통임을 알 수 있다. 김정호는 《동여도》와 《대동여지도》에서 본 지도 계통의 상당 부분을 교정하지만 평안도 북쪽의 압록강의 유로는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다. 현대 지도와 비교할 때 이 부분은 실제와 상당히 다르게 그려진 대표적인 곳으로 김정호조차도 오류를 교정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동해쪽으로 툭 튀어나오게 그린 왼쪽 아래의 강원도 울진 부분을 들 수 있다.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에서는 이 부분이 현대 지도와 비슷하게 동해쪽으로 튀어나오지 않게 그려져 있다. 따라서 본 지도의 제작자들이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을 수정하면서 오히려 사실을 더욱 왜곡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볼 수 있다. 본 지도보다 늦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다른 수정본 계통에서도 이 부분만큼은 본 지도와 비슷하게 그려져 있어 서로 연관성이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김정호의 《청구도》에서도 이 부분이 그대로 계승되지만 《동여도》와 《대동여지도》에 이르러 사실에 가깝게 교정된다. (이기봉)

  • 경상도·전라도[일부](149.4×127.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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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쌍 6폭의 병풍 중 두 번째 병풍의 1-2폭으로 경상도와 전라도의 동북부 일부에 해당된다. 1767년(영조 43)에 山淸과 安義로 개명되는 山陰과 安陰이 개명 이전의 명칭으로 기록되어 있어 1770년에서 가까운 시기에 제작되었음을 알게 해준다. 일반 군현은 황적색의 큰 원으로 표시하였고, 監營·兵營·水營·統營은 사각형과 성곽 모양에 색을 달리하여 구별해 주었다. 慶州는 당시 일반 군현과 동일하게 표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감영이나 통영과 동일하게 표현하여 특별히 구별해 주고 있는데, 신라의 오랜 수도였던 역사성을 반영한 것이 아닌가 한다. 군사기지인 진보는 푸른색의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종6품의 찰방이 파견되어 많은 속역을 관장하던 찰방역은 붉은색의 작은 원으로 표시하였다. 북부 지역에는 安東·順興·榮川의 군현 명칭이, 永川 부근에는 慶州의 군현 명칭이 읍치 이외의 부분에도 상당수 기록되어 있는데, 모두 월경지를 의미한다.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에 비해 산줄기와 물줄기 및 지명 등이 훨씬 상세해지고 많은 교정이 이루어졌다. 다만 현대 지도에 입각해 볼 때 원본 계통에서 분명한 오류를 범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본 지도에서 교정되지 않은 곳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 英陽 日月山 북쪽의 하천 유로를 들 수 있다. 이곳은 현재의 영양군 수비면으로 울진을 통해 동해로 빠져나가는 왕피천의 상류임에도 불구하고 낙동강의 상류로 그려져 있다. 이런 오류는 김정호의 《청구도》에도 그대로 이어지며, 《동여도》와 《대동여지도》에서도 교정되지 않는다. (이기봉)

  • 함경도·평안도[일부](149.4×127.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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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쌍 6폭의 병풍 중 첫 번째 병풍의 1-2폭으로 함경도 전체와 평안도의 동쪽 일부에 해당된다. 함흥 북쪽에 표시된 長津柵은 1785년(정조 9)에 鎭으로 승격되고, 1787년(정조 11)에 그 위쪽의 別害堡로 옮겨 도호부로 삼지만 본 지도에는 이것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일반 군현은 남색의 큰 원으로, 감영이 있는 咸興은 붉은색의 큰 사각형으로, 남병영이 설치된 北靑은 성곽 모양의 남색 큰 원으로, 북병영이 설치된 鏡城은 성곽 모양의 남색 큰 사각형으로, 겨울철 북병영이 주둔하던 行營은 성곽 모양의 붉은색 큰 사각형으로 구분하였다. 군사기지인 鎭堡는 청색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표시하였고, 그밖에 홍색 실선의 도로와 봉수의 기호가 있다. 1차적으로 압록강과 두만강을 따라 진보가 빼곡히 배치되어 최전방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다. 두만강 남쪽에는 부령-경성-명천-길주의 선을 따라, 압록강 남쪽에서는 현재의 장진강과 백두대간 남북을 따라 외적이 남하하는 통로에 진보가 설치되었다. 정상기의 《동국지도》발문에 함경도를 남도와 북도로 나누고 평안도의 동북쪽이 넓어 함경도에 붙여 그린다고 했는데, 본 지도에서는 이를 전혀 따르지 않았다. 그 뿐만 아니라 산줄기와 물줄기 및 지명이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에 비해 훨씬 상세해지고 상당한 교정을 가했다. 위치의 교정이 이루어졌음을 쉽게 알 수 있는 곳 중의 하나를 예로 들면 明川 부근이다.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에서는 馬乳山이 명천 읍치의 정동쪽 해안가에 있지만 본 지도에는 동남쪽 해안가로 교정되어 있다. 현대 지도의 입장에서 볼 때 마유산의 위치는 본 지도의 것이 사실에 가깝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도 실제로는 명천 읍치의 동남쪽 해안가에 있던 乫亇山을 정동쪽 해안가에 위치시켜 사실과 다르게 그리고 있다. 명천 동쪽의 해안은 현대 지도의 입장에서 볼 때 남북 직선의 형태를 취하지만 본 지도에는 갈마산의 위치를 잘못 표시함에 따라 동쪽의 해안가로 툭 튀어져 나간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오류는 김정호의 《청구도》에까지 그대로 이어지다가 《동여도》와 《대동여지도》에서 교정된다. (이기봉)

  • 전라도·충청도[일부](149.4×127.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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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쌍 6폭의 병풍 중 두 번째 병풍의 3-4폭으로 전라도와 충청도 동부 일부에 해당된다. 일반 군현은 전라도는 붉은색의 큰 원으로, 충청도는 황색의 큰 원으로 표현하였다. 전라도의 감영인 全州는 붉은색 큰 사각형에 성곽 표시로, 수영과 병영은 파란색 큰 사각형에 성곽 표시로 구분해 주었다. 군사기지인 진보는 파란색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종 6품의 찰방이 파견된 찰방역은 작은 원으로 표현하였는데, 색이 바래서 달라진 경우도 있다.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에 비해 산줄기와 물줄기 및 지명 등이 훨씬 상세해지고 많은 교정이 이루어졌다. 교정된 사례 중 쉽게 알 수 있으며 여러 연구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을 들면 다음과 같다. 順天 남쪽 左水營 서쪽의 白也串과 白也(島)를 들 수 있다. 원본 계통에서는 백야곶을 큰 섬으로 표시했음에 반해 본 지도에서는 백야곶은 半島로, 백야(도)는 아주 작은 섬으로 그렸다. 원본 계통에는 제주도 남쪽의 서귀포 근처에 큰 호수나 만이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에는 생략되어 있다. 현대 지도에 입각해 볼 때 두 부분 모두 본 지도가 사실에 훨씬 가깝다. 정상기보다 본 지도의 제작자들이 훨씬 풍부한 자료에 입각하여 오류를 교정했음을 엿볼 수 있다. (이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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