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도古地圖
규장각 소장 220여종 6,000매에 달하는 고지도를
유형별, 지역별로 분류하여 한 눈에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고지도

三韓一覽圖 삼한일람도

  • 편저자 : [作者未詳]
  • 청구기호 : 古4709-104
  • 간행연도 : [刊年未詳]
  • 책권수 : 1帖(5折), 彩色圖
  • 판본사항 : 筆寫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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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충청·황해·강원도(58.3×78.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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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를 중심으로 충청도와 황해도 및 강원도를 함께 그린 지도로 오른쪽 위에 畿湖黃江 四道를 그렸음을 기록해 놓았다. 경기도의 군현은 중앙을 의미하는 황색으로, 황해도는 서쪽을 의미하는 흰색으로 그리는 등 도별로 군현의 색을 달리하여 쉽게 구별할 수 있도록 했다. 백두대간이 강원도를 동서로 가르고 남하하다가 경상도와 충청도 사이를 지나는 모습이 가장 선명하다. 백두대간으로부터 분리된 산줄기가 그 다음으로 강조되었는데, 북쪽으로부터 해서정맥-임진북예성남정백-한북정맥-한남정맥-금북정맥-금남정맥이다. 백두대간이 경상도 방향으로 뻗어내린 것이 낙동정맥이다. 1651년(효종 2)에 江陰과 牛峯을 합해 황해도의 金川이 만들어지는데, 본 지도에는 강음과 우봉도 함께 표시하여 혼란을 주고 있다. 그러나 황해도의 군현에 표시된 한양으로부터의 거리가 金川에만 적혀 있고 강음과 우봉에는 없는 차이가 있다. 황해도의 서북쪽에는 谷山이 사각형만 있고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아 미완성적인 측면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한편 7개의 대형산성이 표시되어 있는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채택된 외적에 대한 대형산성의 방어체제를 반영한 것이다. 黃州-문화-송도-고양-광주-통진-수원의 순서로 正方山城-九月山城-大興山城-北漢山城-南漢山城-文殊山城-禿山城이다. 이 중 독산성은 대형산성이라고 보기 어려우나 임진왜란 때 권율장군이 적은 군사로 왜군에 포위되자 말에 쌀을 부어 물이 풍부한 곳처럼 보이도록 하여 포위를 풀게 한 洗馬臺로 알려진 곳이다. 문수산성은 1694년(숙종 20)에 축조된 것이기 때문에 본 지도의 제작연대가 그 이후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1719년(숙종 45) 瓮津의 所江鎭에 신설되는 황해도 수영은 표시되어 있지 않다. 강원도 동쪽에는 울릉도가 없으며, 서해에 많은 섬을 그렸지만 이름을 적어넣은 것은 하나도 없어 지도의 제작자가 꼼꼼하게 자료를 검토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이기봉)

  • 경상도(67.7×52.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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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도를 그린 지도이지만 인근의 강원도-충청도-전라도의 일부도 함께 나타나고 있어 원도는 경상도만 있었던 것이 아님을 추정할 수 있게 해준다. 북쪽에서 강원도-충청도-전라도와의 경계선을 타고 가운데 왼쪽까지 뻗어 있는 백두대간의 모습이 특히 강조되어 있다. 백두대간에서 낙동강 동쪽으로 갈라진 것이 낙동정맥이고, 배두대간 끝에서 남강과 낙동강 남쪽으로 뻗은 것이 낙남정맥이다. 경상도에서는 1600년대 칠곡(1630)·자인(1637)·영양(1676)·순흥(1683)이 차례대로 신설된다. 본 지도에는 칠곡과 자인은 다른 군현과 거의 동일하게 표현된 반면 영양과 순흥은 사각형의 크기가 좀 작으면서 색도 다르게 했다. 이를 통해 본 지도가 칠곡과 자인이 설치된 이후 제작되고 순흥과 영양이 신설되면서 첨가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경기도에 1694년(숙종 20)에 축조된 문수산성이 표시되어 있어 수록된 지명의 변화를 통한 제작연도의 추정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 대형산성이 선산 남쪽과 북쪽에 2개 표시되어 있지만 정확히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선산 남쪽에서 중요한 산성은 금오산성이지만 개령에서 낙동강에 합류하는 현재의 감문천 남쪽에 있어 본 지도의 위치와 다르다. 선산 북쪽에서 금오산성만큼 중요한 산성은 없다. 경상도에서 중요한 대형산성 중의 하나가 칠곡이 군현으로 독립하게 된 가산산성이지만 본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아 본 지도의 제작자가 자료를 꼼꼼하게 검토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지도 아래쪽에는 對馬島가 아주 크게 그려져 있는데, 조선전기 계통의 지도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기봉)

  • 전라도(46.6×47.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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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른쪽 위에서 뻗어온 백두대간과 여기로부터 서쪽으로 향한 호남정맥이 특히 강조되어 있다. 그 이외의 산줄기도 자세하며, 본 지도첩의 다른 지도와 달리 유명한 산과 역사 지명 등이 자세한 편이다. 남해안과 서해안에는 군사기지인 鎭堡의 정보가 상당히 많이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다른 정보와 구별할 수 있는 특별한 기호를 사용하지 않았고 수록하지 않은 진보도 많아 일관성이 떨어진다. 지도의 전체적인 모습이 조선전기 계통을 닮았다. 沃溝 서쪽에 기록된 羣山島는 群山鎭이 현재의 군산시인 옥구 북쪽의 羣山浦로 옮기면서 조선후기에는 古群山島라 불리웠다. 따라서 본 지도의 제작자가 조선전기의 자료나 지도의 내용을 그대로 기록한 것이 아닌가 한다. 지도의 오른쪽에 경상도의 安陰과 山陰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본 지도의 원본 계통이 원래 도별도가 아니라 전도였을 가능성이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외적에 대한 중요 방어처로 인식된 대형산성이 3개 표시되어 있다.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은 담양 동쪽의 大母山城뿐인데, 長城 동쪽의 것은 笠巖山城이고, 高山 남쪽의 것은 威鳳山城이다. 전라도의 대형산성 중 임진왜란 이후 史庫가 설치된 무주의 赤裳山城이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지만 본 지도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남해안과 서해안에는 많은 섬이 그려져 있지만 이름이 기록된 것은 (고)군산도, 완도뿐이다. 靈光 서쪽 바다에는 七山島가 일곱 개의 산 모양으로 그려져 있고, 그밖에 島자가 붙은 지명은 대부분 진보다. 남쪽의 제주도에는 남북으로 3息이고 동서로 7息이며, 幅圓이 4백여리라는 주기가 적혀 있다. 여기서 息은 30리를, 폭원은 섬의 둘레를 의미한다. 북쪽에는 제주도와 본토를 오고갈 때 배가 정박하던 朝天舘이 있고, 濟州가 사실과 다르게 한라산 남쪽에 표시되어 있다. 한라산에는 白鹿潭이 大池로 기록되어 있다. (이기봉)

  • 평안도(59.0×56.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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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주와 평안도를 함께 그린 지도로서 압록강이 동서로 직선에 가까운 형태를 취하고 있어 조선전기 계통의 지도를 원본으로 삼았다고 판단된다. 압록강 너머 굵게 표현된 산줄기는 요동벌판을 건너 백두산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그밖에 조선후기에 주로 강조되는 청천강을 중심으로 명명된 청북정맥과 청남정맥, 그리고 황해도로 이어진 해서정맥의 일부가 강조되어 있다. 하천은 북쪽으로부터 압록강-청천강-대동강이 크게 표시되어 있는데, 가운데 오른쪽의 寧遠이 실제로는 대동강 상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청천강 유역인 것처럼 잘못 그려져 있기도 하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외적에 대한 방어체제가 달라지면서 수축되거나 신축된 대형산성이 일부 표시되어 있다. 慈山 북쪽의 것은 慈母山城, 龍岡 북쪽의 것이 黃龍山城이다. 中和 서쪽에도 대형산성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어느 것을 의미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중화와 경계를 맞대고 있던 황해도의 黃州 남쪽에 대형의 正方山城을 그린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소속된 道가 다르기 때문에 분명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이기봉)

  • 표지
    이미지

    三韓一覽圖 표지입니다

  • 함경도(65.0×52.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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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주와 함경도를 그린 지도로서 압록강과 두만강이 동서로 직선에 가까운 형태를 취하고 있어 조선전기 계통의 지도를 원본으로 삼았다고 판단된다. 백두산과 天池(조선시대의 기록에는 거의 100% 大池로 나옴)가 강조되어 있고, 만주의 요동벌판을 건너 백두산으로 이어지고 다시 백두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백두대간이 특히 강조되어 표현되었다. 이와 같은 산줄기의 인식은 조선전기에는 별로 부각되지 않다가 조선후기에 강조되기 시작한 것이다. 백두대간 위의 중요 봉우리가 큰 글씨로 강조되어 그려졌지만 남쪽으로 올 수록 산이 전혀 표시되어 있지 않아 일률성이 떨어진다. 1684년(숙종 10) 會寧 서쪽에 茂山이 신설되지만 본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아 본 지도 또는 그 원본은 그 이전 시기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1712년(숙종 38)에 청나라와의 국경 확정 과정에서 세워진 백두산정계비도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 동쪽의 경계로 기록된 토문강이 두만강 위에 土門이란 명칭으로 나타나 있다. 군현 오른쪽에는 수도인 한양으로부터의 거리가 적혀 있는데, 본 지도첩에서 함경도 이외에 황해도와 강원도에만 거리 정보가 기록되어 있어 일관성이 떨어진다. 두만강변의 行營은 경성에 설치된 함경도의 북병영이 두만강이 얼었을 때 남진하는 적을 막기 위해 겨울철 6개월간 주둔하며 방어하던 곳이다. 두만강변에는 撫夷(鎭)을 비롯하여 군사기지인 진보가 기록되어 있지만 남쪽 지역의 것은 표시되어 있지 않다. (이기봉)

  • 뒷표지
    이미지

    三韓一覽圖 뒷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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