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사이트의 지도는 八道 가운데 ≪東國輿地圖≫에 수록되어 있는 도별도 가운데 <江原道> 지도이다. 지도의 전체적 형태 및 내용은 다른 도별도와 마찬가지로 奎章閣 소장 지도책인 ≪輿地圖≫와 매우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본 지도의 전체적 모습은 하천을 중심으로 26개의 군현이 그려진 소략한 지도이다. 각 군현의 위치를 표시하고 각 군현의 鎭山이 표시되어 있으며, 하천과 楸池岺·竹坡岺·大關岺 등의 주요 고개명이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동해안에는 해안을 따라 그 모습만으로도 아름다운 관동팔경이 해당지역에 표시되어 있어서, 당시에도 이곳의 명성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본 지도상에 표시된 울릉도와 우산도의 위치 및 크기 역시 ≪輿地圖≫와 거의 같은 판에 그려졌다고 할만큼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울릉도의 크기는 우산도의 2.5~3배 가까이 되며, 울릉도의 경우에는 상하로 긴 타원형으로 표시되어 있고 우산도의 경우에는 좌우로 긴 타원형에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우산도 명칭 표기에 있어서 ≪地圖≫에서는 ‘于山’, ≪朝鮮地圖≫에서는 ‘干山’, 그리고 본 지도와 ≪輿地圖≫에서는 ‘于山島’로 표시하고 있다. (양윤정)
사이트의 지도는 八道 가운데 ≪東國輿地圖≫에 수록되어 있는 <京畿道> 지도이다. 전체적인 양식은 『新增東國輿地勝覽』의 附圖인 ≪東覽圖≫에 준하여 주요 하천과 각 군현의 鎭山을 소략하게 그려져 있다. 이는 奎章閣 소장의 지도책으로 17세기 후반에 제작된 ≪地圖≫와 18세기 중반에 제작된 ≪朝鮮地圖≫에 수록되어 있는 도별도와 유사하며, 이 지도와 거의 같은 시기에 제작된 ≪輿地圖≫와는 거의 동일하게 그려져 있다. 특히 각 郡縣과 統營·兵營·水營을 원으로 표시하고, 각 도내의 주요 驛道 및 해안 변경의 鎭堡를 지도상에 표시함으로써 ≪東覽圖≫보다는 17세기 이후에 제작된 지도책들에 더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정보를 표현하는 방법에 있어서 는 이 지도책만의 특징이 보이고 있다. 즉, 이 지도상에 표시된 ‘京’의 경우 3겹의 원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그 둘레에는 성곽이 표시되어 있다. 서울의 중요도를 그만큼 강조하여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朝鮮地圖≫에서는 開城에도 성곽 표시가 되어 있으나, 본 지도에서 개성은 다른 군현과 똑같이 1개의 원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성곽 표시가 없다. 그리고 監營地와 水營·兵營의 경우에도 ≪朝鮮地圖≫에서는 성곽 표시로 다른 郡縣 표시와 차별을 두고 있는데, 본 지도에서는 성곽 표시 대신에 이중의 원으로 표시함으로써 다른 郡縣 표시와 구분하고 있다. 또한 본 지도에서는 기호를 하나 더 사용하여 鎭堡와 驛道를 구분해서 표시하고 있다. 鎭堡의 경우에는 ≪朝鮮地圖≫와 같이 사각형을 사용하고 있으며, 驛道는 타원형에 가까운 기호를 사용해 표시하고 있다. ≪朝鮮地圖≫와 비교되는 이 부분들이 ≪輿地圖≫에서는 모두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양윤정)
본 사이트의 지도는 八道 가운데 ≪東國輿地圖≫에 수록되어 있는 <慶尙道> 지도이다. 조선 후기에 유행했던 東覽圖形 道別圖로, 河系를 중심으로 하여 각 郡縣의 鎭山을 배치하였고, 산의 모습도 山脈이 아닌 독립적인 산봉우리의 모양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바다의 경우에는 물결 모양의 水波描 대신 검게 표시하고 있으며, 河川 또한 바다와 같이 검게 표시하고 있다. 실제의 모습과 비교해 보았을 때, 경상도 지도는 남북으로는 압축되어 있고, 동서로는 부풀려져 그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오류는 16세기에 제작된 ≪東覽圖≫를 시작으로 조선 후기에 제작된 대부분의 지도책에서 동일하게 나타난다. 또한 對馬島가 우리의 영토로 착각할 정도로 부산과 가까운 해안에 그려져 있다. (양윤정)
본 사이트의 지도는 ≪東國輿地圖≫에 수록되어 있는 朝鮮全圖인 <東國大摠>이다. 지도의 전체적인 윤곽은 ≪東覽圖≫의 <八道總圖>와 유사하다. 그러나 산과 바다의 표현이 상이하다. 산의 경우 두 지도 모두 산맥이 아닌 독립적인 산봉우리로 표현되어 있기는 하지만, 본 지도에서는 산 전체를 검게 표시하고 그 안에 山名을 하얗게 표시하고 있어, 그 모양이 서로 다르다. 그리고 바다의 경우 ≪東覽圖≫의 <八道總圖>는 물결 모양의 水波描가 그려져 있지만, 본 지도에서는 민무늬로 검게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본 지도에서는 남해안의 일부 섬이 누락되어 있으며, 珍島가 과장되어 그려져 있는 등 島의 표현에 있어서도 다소 차이가 보인다. 지도에 수록된 내용은 팔도의 상대적인 위치와 주요 산천이 정부이다. ≪東覽圖≫의 <八道總圖>에는 祀典에 수록된 제사처인 嶽·瀆·海와 名山大川이 표시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서는 금강산·지리산·한라산 등의 삼신산과 백두산·묘향산·구월산 등의 명산을 위주로 그렸다. 이런 산의 표시는 ≪朝鮮地圖≫와도 구별되며, 수록된 내용상의 이와 같은 특징은 ≪輿地圖≫와 동일하다. 白頭山의 경우에는 다른 산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매우 크게 그려 강조했음을 짐작 할 수 있다. 그리고 白頭山의 산봉우리 부분은 검은 색이 아닌 하얗게 표시함으로써 산 정상이 항상 눈으로 덮여 있다는 대부분의 지리지 기록에 충실하여 표현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道名을 표시함에 있어 ≪朝鮮地圖≫를 비롯한 그 이전 지도책에서는 사각형을 사용하고 있지만, 본 지도와 ≪輿地圖≫에서는 원으로 표시하고 있다. 그리고 지도의 좌우 여백에는 우리나라의 坐向과 동서남북의 길이, 서울로부터 正東·正西·正南·正北 지역까지의 거리가 기록되어 있고, 府牧郡縣과 같은 지방행정 단위의 수가 기록되어 있어 국가의 전체적 규모를 한눈에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지방행정과 관련한 마지막 주기 부분의 경우 ≪地圖≫와 ≪朝鮮地圖≫에서는 全圖의 道名 표시 바로 옆 부분에 각 道에 속한 官數가 표시되어 있으므로, 이 또한 본 지도만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양윤정)
본 사이트의 지도는 ≪東國輿地圖≫에 수록되어 있는 <琉球國> 지도이다. 유구국 지도의 경우 그 모양과 내용이 木版本으로 제작된 지도책에 수록되어 있는 대부분의 지도가 동일하다. 이 지도 역시 奎章閣 소장의 지도책인 ≪輿地圖≫와 산의 모양을 제외하고는 똑같은 판이라고 할 정도로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輿地圖≫에서의 산의 모습은 윤곽을 표시하고 아랫부분에 점선을 표시하고 있지만, 본 지도에서는 산 전체 모습을 검게 표시하고 있다. ≪東國輿地圖≫와 ≪輿地圖≫에 수록되어 있는 유구국 지도를 비롯해서 조선시대 지도책에 수록되어 있는 유구국 지도 대부분은 조선 전기의 신숙주가 편찬한 『海東諸國記』에 실려 있는 지도와 유사하다. 이는 당시인들이 유구에 대한 인식의 수준과 방식을 엿볼 수 있는 지도로서, 전기의 『海東諸國記』에서 보여 주는 인식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도면의 방향이 『海東諸國記』에 실려 있는 지도와는 다르지만, 王城과 國頭城의 위치와 성곽, 산맥을 표현한 기법 등이 매우 유사한 것으로 보아 계속해서 전사되어 온 지도라고 볼 수 있다. 지도의 내용은 매우 소략하며, 본 섬과 주변의 여러 섬들이 그려져 있다. 본 섬에는 國都·國頭城·寶庫 등이 그려져 있으며, 모두 성곽 표시가 되어 있다. 특히 국도에는 왕이 거주하는 지역과 王弟·大臣들이 거주하는 지역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다. 그리고 寶庫의 경우에는 『海東諸國記』의 일본지도에서는 바다의 섬으로 표시되어 있으나, 본 지도에서는 육지에 그려져 있다. 그리고 본 지도에서는 國庫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지도상에 그려진 유구국은 오늘날의 오키나와제도이다. (양윤정)
본 사이트의 지도는 ≪東國輿地圖≫에 수록되어 있는 <日本國> 지도이다. 이 지도 역시 여타의 木版本 지도책에 수록되어 있는 일본지도의 모습과 유사하게 그려져 있으며, 특히 奎章閣 소장의 지도책인 ≪輿地圖≫와는 산과 하천의 표현 방식을 제외하고는 모양과 내용에 있어서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 즉, 대부분의 일본도는 그 모양이 부정확하고 실려 있는 내용도 매우 소략한 편으로, 이 지도책에 포함된 지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남쪽을 지도의 상단에 배치하여 對馬島가 지도 우측 아래쪽에 그려져 있는 있으며, 여타의 지도와 달리 ≪輿地圖≫와 본 지도상에 나타나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즉, 18세기 중반에 제작된 규장각 소장의 지도책 ≪朝鮮地圖≫와 비교하면 다음과 같은 차이점이 보인다. ≪朝鮮地圖≫에서 ‘國都’는 다른 州와 같이 1개의 원으로 표시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서는 ‘國都’가 아닌 ‘都’로 표시되어 있으며 이중의 원으로 표시되어 있다. ‘江戶’의 경우에도 ≪地圖≫에서는 1개의 원으로 표시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서는 이중의 원으로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산의 표현 방법에 있어서는 ≪朝鮮地圖≫와 ≪輿地圖≫, 그리고 본 지도가 모두 다르게 그려져 있다. ≪朝鮮地圖≫에서는 삼각형이 여러 개 겹쳐진 모습이며, ≪輿地圖≫에서는 ≪朝鮮地圖≫의 산 모양 아랫부분에 점선이 추가되어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두 지도와 전혀 달리 산 전체 모습이 검게 표시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地圖≫의 경우에는 내제 좌측에 당나라 태종 때 학자인 顔師古의 화이도에는 일본이 수록되어 있지 않았음이 기록되어 있으나, ≪輿地圖≫와 본 지도에서는 동일하게 지도의 우측 하단 부분에 이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양윤정)
본 사이트의 지도는 八道 가운데 ≪東國輿地圖≫에 수록되어 있는 <全羅道> 지도이다. 다른 지도와 마찬가지로 도내 郡縣의 상대적인 위치와 진산·하천 등이 그려져 있고, 군산도·흑산도·완도·진도와 같은 대표적인 섬이 표시되어 있다. 전라도 육군의 중심지인 강진의 兵營과 수군의 중심지인 해남의 右水營과 순천의 左水營 등이 표시되어 있으며, 해안 변경에는 많은 鎭堡가 표시되어 있다. 그만큼 이 남해안 일대가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군사적 정보의 표시에 있어 본 지도는 ≪輿地圖≫와 동일하게 표현되고 있으며, ≪朝鮮地圖≫와는 차이가 보이고 있다. 鎭堡의 경우 ≪朝鮮地圖≫와 같이 두 지도가 직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으나, 진보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는 ‘戶·僉 ’ 등의 표시는 모두 생략되어 있다. 그리고 兵營과 水營의 표현방법에 있어서도 ≪朝鮮地圖≫에서는 성곽을 표시하고 있지만, 두 지도에서는 성곽이 표시되어 있지 않고 다만 일반 郡縣과 구별하기 위해 두 겹의 원으로 표시하고 있다. 두 지도의 경우 좌우 판심에 모두 ‘輿地圖’라고 표시되어 있지만, 한자의 필체 및 모양에 있어 차이가 보인다. 지도상의 산과 하천의 모습으로도 두 지도가 서로 다른 판임을 알 수 있지만, 좌우 여백의 판심을 통해서도 서로 같은 내용의 두 지도가 그 板本은 서로 다름을 알 수 있다. (양윤정)
본 사이트의 지도는 ≪東國輿地圖≫에 수록되어 있는 <中國圖>로, 산과 하천의 의 표현 방법을 제외하고는 ≪輿地圖≫와 매우 유사하다. ≪輿地圖≫의 경우 바다는 검게 표시하고 있지만, 河川은 하얗게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바다와 하천 모두 검게 표시되어 있으며, 산 역시 전체 모습을 검게 표시하고 있다. 내용상으로는 조선 후기에 유행했던 木版本 지도책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各省의 지명뿐만 아니라, 역대 왕조가 웅거했던 곳에 나라 이름을 표시하여 일종의 역사부도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즉, 지도상에는 우공의 九州, 전국시대의 11國, 그리고 명대의 13省이 주요 지명으로 표시되어 있고, 황화·양자강·수 등 대하천과 주요 산들이 간략하게 그려져 있다. 또한 제왕의 동생 田橫이 제나라가 망하자 산동성 북방의 섬에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섬인 田橫島가 다른 부분에 비해 매우 과장되어 크게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燕의 昭王이 碣石宮을 지어 鄒衍에게 師事받았던 碣石山이 표시되어 있다. 따라서 이 지도는 당시 중국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제작되었다기보다는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중요한 지명을 지도상에 표시해 사대부들이 역사 공부를 할 때 이용했던 지도의 성격이 더 강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중국도와 비교해 특이한 점은 그 모습과 위치는 부정확하지만 日本과 琉球國이 지도상에 표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 남쪽에 하나의 섬으로 표시되어 있다. (양윤정)
조선 후기에 제작된 대표적인 木版本 지도책으로서, 현재 동종 또는 이종의 판본이 다수 남아 있다. 전체적인 형식과 양식에 있어서 19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奎章閣 소장의 지도책 ≪輿地圖≫와도 거의 유사하다. 둥근 원 안에 세계를 그렸기 때문에 원형 천하도라고 부르며, 17세기 이후 미간의 사대부 계층을 중심으로 널리 유포되었던 일종의 세계지도이다. 그리고 이 지도 제작은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일찍부터 학문적으로 관심을 불러 일으켰던 지도이다. 원형의 천하도는 내대륙이 중심에 있고, 그 주위를 바다인 내해가 둘러싸고 있으며, 그 밖을 다시 외대륙과 외해가 둘러싼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내대륙에는 당시인들이 인식하고 있던 실재의 세계가 그려져 있으며, 그 중앙에 중국이 있고 동쪽에 조선, 서쪽에 蕃胡 12국과 西域諸國, 북방의 여러 나라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에 반해 내해를 감싸고 있는 외대륙은 가상의 국가들이 그려져 있으며, 이 대부분은 중국 고대의 지리서인 『山海經』에 수록된 지명이다. 이와 같은 원형 천하도는 동아시아 중에서도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발견되는 세계지도로서, 그 기원이 아직 명확히 밝혀져 있지 않다. 다만 17세기 이후 조선에서 당대의 세계지도를 참조하여 내대륙을 그리고 『山海經』과 같은 지리서를 참고하여 내해·외대륙의 여러 국가와 산·호수 등을 그려 넣은 독특한 세계지도로 이해되고 있다. 따라서 <天下圖>는 당시인들의 세계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지도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天下圖>는 서로 비슷한 형태로 그려졌으나, 본 지도와 ≪輿地圖≫에 수록된 <天下圖>에는 여타의 다른 <天下圖>와는 크게 차별되는 특징이 있다. 우선 4방위가 외해에 ‘東西南北’으로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지도의 좌우 여백에는 중국에 있는 泰山·嵩山·華山·衡山·恒山의 內五岳과 廣野山·麗農山·廣桑山·長離山·崑崙山의 外五岳 등의 산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해가 뜨는 동쪽의 神木인 扶桑이 있는 流波山이 波山으로만 표기되어 있는 점이 여타의 <天下圖>와는 다른 점이다. 그리고 바다의 경우 하얗게 표시된 ≪朝鮮地圖≫와 달리 두 지도에서는 바다를 검게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산의 모습은 두 지도가 서로 다르게 표현되고 있다. ≪輿地圖≫의 경우 산의 형태만이 검게 표시되어 있으며, 아랫부분에 점선이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산 전체가 검게 표시되 있다. 따라서 두 지도는 같은 내용을 수록하고 있지만, 그 판본 자체는 서로 다름을 알 수 있다. (양윤정)
본 사이트의 지도는 八道 가운데 ≪東國輿地圖≫에 수록되어 있는 <慶尙道> 지도이다. 지도의 전체적 형태 및 내용은 ≪東覽圖≫를 따르고 있다. 주요 하천을 중심으로 지도를 그리고 각 郡縣의 위치를 표시하고 있다. 그리고 산은 각 군현의 鎭山을 중심으로 주요 산을 독립적인 산봉우리 형태로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바다 표현방법에 있어서는 물결 모양의 水波描로 채워졌던 ≪東覽圖≫와 달리 민무늬로 검게 표시되어 있으며 내륙의 河川 역시 검게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郡縣의 표시 및 郡縣과 관련된 정보에 있어서는 ≪東覽圖≫ 보다는 ≪地圖≫에 더 가깝게 그려져 있다. 郡縣은 ≪地圖≫와 같이 원형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원 내부의 地名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 군현의 품계와 서울까지의 일정이 병기되어 있다. 그러나 ≪朝鮮地圖≫에서 보이는 각 郡縣의 古號나 別號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지도 좌우 도곽선 여백에는 실질적 행정 기능을 보여주는 좌우도, 남북도, 그리고 영서·영동으로 구분된 군현 수가 표시되어 있는 점은 ≪地圖≫, ≪朝鮮地圖≫와 동일하다. 그러나 ≪朝鮮地圖≫의 경우에는 지도상 郡縣 표시 옆에도 ‘左·右’를 표시해 그 구분의 이해를 쉽게 도와주고 있으나, 본 지도에서는 ≪地圖≫와 같이 주기에서만 구분하고 있을 뿐, 지도상에 표시된 郡縣에는 따로 표시하고 있지 않으며, 이는 ≪輿地圖≫도 마찬가지이다. (양윤정)
본 사이트의 지도는 八道 가운데 ≪東國輿地圖≫에 수록되어 있는 <平安道> 지도로, 비슷한 시기에 그 원본이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奎章閣 소장의 지도책 ≪輿地圖≫와 거의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평안도 지도의 경우 대부분의 木版本 지도책에서 그 윤곽이 왜곡되어 그려져 있다. 이는 북방 지역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도 생각할 수 있지만, 지도책에 지도를 맞춰서 그림으로써 생긴 오류일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렇게 생긴 오류로 인해 지도에서의 압록강의 유로는 거의 수평으로 그려져 있다. 이 압록강 표시에 있어 매우 유사한 두 지도인 ≪輿地圖≫와 본 지도에서 차이점이 보인다. ≪輿地圖≫에서는 압록강의 표현에 있어서, 압록강에 河川의 흐름이 ‘>’ 기호로 표시하고 있으나, 본 지도에서는 다른 하천과 동일하게 검게 표시하고 있다. 그리고 산 모양의 경우 독립적인 산봉우리 모양으로 표현하고 있음은 여타의 木版本 지도책과 동일하지만 그 표현방법에 있어서는 두 지도가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다. 즉, ≪輿地圖≫에서는 산을 표시하는 윤곽 아랫부분에도 점선이 표시되어 있으며, 그 사이인 산의 내부는 하얗게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산 전체가 검게 표시되어 있다. 이처럼 비슷한 시기에 제작되어서, 그 내용도 거의 동일한 지도일지라도 지도 제작자에 의해 그 표현방법은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그만큼 제작자들이 지도상의 표현방법에 신경을 썼음을 짐작 할 수 있다. (양윤정)
본 사이트의 지도는 八道 가운데 ≪東國輿地圖≫에 수록되어 있는 도별도 가운데 <咸鏡道> 지도이다. 지도의 함경도 윤곽을 보면, ≪東覽圖≫부터 시작하여 17, 18세기에 제작된 ≪地圖≫와 ≪朝鮮地圖≫에서와 마찬가지로 팔도 가운데 전체적 윤곽의 왜곡이 가장 심하며, ≪輿地圖≫와는 전체적 모습 및 내용에 있어서 거의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세종대의 개척된 동북쪽 지역인 六鎭 지역이 남쪽으로 치우쳐 있으며, 두만강의 유로도 북쪽이 거의 수평에 가깝게 그려져 마치 남북을 압축한 모습과도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지도에 표시된 내용은 驛道와 鎭堡가 표시되어 있는 ≪東覽圖≫와는 구별되며, 鎭堡 표시에 있어서는 그 크기를 짐작하게 하는 표시가 없으므로 ‘戶·僉’ 字가 鎭堡名과 함께 병기되어 있는 ≪朝鮮地圖≫보다는 ≪地圖≫에 더 가깝게 그려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본 지도에서 특징적인 모습은 바로 白頭山의 표현방법이다. 우선 지도상에 표현된 크기에 있어서 다른 산과 비교했을 때 몇 배 이상으로 과장되게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지도상에 표시된 다른 산의 경우 전체적 모습을 검게 표시하고 그 지명을 아래에 표기하고 있지만, 白頭山의 경우 검게 표시된 내부에 하얗게 ‘白頭山’이라고 표시하고 있다. 지도의 전체적 모습 및 그 내용에 있어서 매우 유사하나 산의 표현 방법에 있어 큰 차이를 보였던 ≪輿地圖≫에서도 ‘白頭山’의 경우에는 본 지도와 동일하게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지도상에 표시된 백두산의 웅장한 크기 및 山名의 표현 방법에 있어 이와 같이 다른 산과는 구별됨은 그만큼 당시 사람들에게 白頭山을 다른 산과 비교했을 때 큰 의미가 부여된 산이며, 위치상으로도 중요한 산이었음을 짐작 할 수 있다. (양윤정)
본 사이트의 지도는 八道 가운데 ≪東國輿地圖≫에 수록되어 있는 <黃海道> 지도이다. 팔도 가운데 가장 작은 면적을 지니고 있지만, 같은 크기의 지도책에 그렸기 때문에 다른 道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진 것이 사실이다. 이는 각 도별도가 같은 축척에 적용되어 그린 것이 아니라, 종이 크기에 맞춰서 그려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동시에 각 도의 도별도를 합하면 조선전도가 되지 못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황해도 지도 역시 河系를 중심으로 郡縣과 그 郡縣의 鎭山을 간략하게 표시한 지도로, 조선 시대 東覽圖形으로 제작된 기타의 지도와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椒島’와 같이 島가 진보일 경우에는 島의 모양과 상관없이 鎭堡 표시인 사각형으로 표시하고 있으며, 瓮珍과 같이 郡縣이 水營일 경우에는 郡縣를 표시한 원 내부에 ‘水營’이라고 표시하고 있다. ≪朝鮮地圖≫의 경우에는 성곽 밖에 ‘水營’이라고 표시하고 있으며, ≪地圖≫의 경우에는 郡縣만을 표시하고 있다. (양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