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도古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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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도

朝鮮地圖 조선지도

  • 편저자 : [作者未詳]
  • 청구기호 : 古4709-77
  • 간행연도 : [刊年未詳]
  • 책권수 : 1帖(5折), 彩色圖
  • 판본사항 : 筆寫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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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상도(93.5×66.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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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1.1cm 크기의 방안이 동서와 남북 각각 56개와 72개씩 그려져 있는데, 1개 방안의 거리는 10리로 추정된다. 1767년(영조 43)에 山淸과 安義로 바뀌는 山陰과 安陰이 개명 이전의 명칭으로 기록되어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대규모 외적의 침입에 대한 방어체제에서 중요하게 인식된 대형산성의 정보가 자세히 수록되었음에도 1703년(숙종 29)에 신축되는 동래의 金井山城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반면에 1600년대에 신설되는 칠곡(1630)·자인(1637)·영양(1676)·순흥(1683)은 모두 수록되어 있다. 지도에 반영된 지명만을 놓고 볼 때 본 지도는 1700년 안팎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본 지도첩의 황해도 지도가 현대지도에 가까울 정도로 정확한 반면 경상도 지도는 대략적인 경향성만 보여주고 있다. 일반군현은 세로의 큰 사각형으로, 감영인 대구와 수영·통영·병영은 큰 원으로 표시하여 구분해 주었다. 대형의 加山山城을 만들어 신설된 漆谷은 내성과 외성이 합해져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으며, 좌도와 우도에 소속된 고을을 각각 남색과 주황색으로 달리 표현하여 구별할 수 있도록 했다. 군사기지인 진보와 종6품의 찰방이 파견되어 많은 속역을 관장하던 찰방역은 모두 세로로 긴 사각형의 기호를 사용했지만 각각 남색과 주황색으로 달리 표현하여 구별할 수 있도록 했다. 기타 도로는 주황색 실선으로 표시했으며, 산은 봉우리들이 연결된 것처럼 표현하였다. (이기봉)

  • 중국도(77.3×69.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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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중기부터 일반적으로 유행한 세계지도 계통으로 약 2.3cm 크기의 방안이 동서와 남북으로 각각 30개와 32개 그려져 있다. 1402년(태종 2)에 제작된 〈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 는 현재의 유럽과 아프리카까지 포괄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중기를 거치면서 유럽과 아프리카가 생략된 본 지도와 같은 계통의 세계지도가 일반화 된다. 중국을 중심으로 그렸기 때문에 주변 지역은 상당히 간략하게 처리되었다. 동쪽에는 조선이 중국 이외 지역에서 그래도 가장 상세하게 그려져 있으며, 일본은 그 아래쪽에 삼각형 모양으로 간단하게 표현되었다. 일본 아래쪽에 표시된 3개의 큰 섬에도 肥後와 長門 등 일본의 지명이 적혀 있어 둘 중의 하나가 후대에 첨가된 것이 아닌가 한다. 동남아시아는 가운데 아래쪽에 安南 등의 지명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印度는 왼쪽 아래에 표시되어 있다. 현재의 서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에 해당되는 西域은 왼쪽 위에 표시되어 있으며, 지도의 위쪽에 동서로 굵고 긴 하천처럼 표시된 곳에는 ‘沙漠卽翰海’란 문구가 적혀 있다. 만리장성이 북쪽의 높은 산지들을 연결하며 이어져 있고, 황색으로 표현된 黃河가 산동반도 남쪽을 지나 바다로 빠져나가고 있다. 황하의 하류는 매우 평탄하여 상류에서 유입되어 쌓인 토사에 의해 유로가 자주 바뀌었는데, 현재의 황하 유로는 산동반도 북쪽에서 바다로 흘러간다. 황하와 남쪽의 長江(양자강)을 비롯하여 많은 하천이 유역권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연결된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런 모습은 1402년에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에서도 나타나고 있으며, 유럽과 아프리카가 생략된 조선중기의 세계지도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조선후기의 지도에 이르러야 하천의 유역권이 분명한 세계지도가 일반화된다. (이기봉)

  • 평안도(71.2×63.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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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2.1cm 크기의 방안이 동서와 남북으로 각각 30개와 31개씩 그려져 있으며, 1개 방안의 거리는 동서와 남북이 각각 20리와 30리로 추정된다. 1776년(영조 52)에 楚山으로 개명되는 理山이 개명 이전의 명칭으로 기록되어 있다. 곽산의 읍치가 1746년(영조 22) 이전의 위치에, 철산의 읍치가 1751년(영조 27) 이전의 위치에 표시되어 있다. 또한 陽德의 읍치 위치가 1759년경에 제작된 『여지도서』의 양덕지도에는 본 지도의 古邑에 표시되어 있다. 1730년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 《해동지도》(고대 4709-41) 평안도 양덕현 지도에는 읍치의 위치가 본 지도처럼 표시되어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1700년대 전반기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본 지도첩의 경상도와 황해도 지도와 비교해 볼 때 수록된 지명의 종류와 양은 황해도 지도와 비슷하다. 그러나 지도의 정확성이라는 측면에서 황해도 지도가 현대지도와 상당히 유사한 반면에 평안도 지도는 상당히 부정확한 편이다. 군현은 붉은색 큰 원으로, 군사기지인 진보는 세로로 긴 육각형으로 표현하여 본 지도첩의 황해도 지도와 정반대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도별로 기호를 달리 사용하여 구분하려 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군현의 기호 사용에서 일부 오류도 나타나고 있는데, 예를 들어 順川은 군현임에도 불구하고 진보처럼 표시되어 있다. 또한 진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진보와 동일한 기호를 사용한 것이 많다. 예를 들어 영변 동쪽의 魚川은 종6품의 찰방이 파견되어 많은 속역을 관장하던 찰방역임에도 역시 진보처럼 표시되어 있다. 기타 의주에서 북쪽으로 후금의 수도였던 審陽까지 붉은색 실선의 도로가 표시되어 있는 점이 특이하다. (이기봉)

  • 평해(71.2×117.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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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경상북도 울진군의 평해읍·후포면·온정면·기성면에 있었던 평해군의 지도다. 평해군의 읍치는 현재의 평해읍 평해리 일대에 있었으며, 조선시대에는 강원도 관할의 최남단 고을이었다. 읍치는 주황색의 큰 원으로, 향교는 작은 원으로 그려 읍치 부분이 눈에 가장 선명하게 뜨이도록 그렸다. 面은 주황색 테두리를 두른 세로의 긴 사각형의 기호를 사용하여 표현하였으며, 쇄사슬 모양으로 면 사이의 경계를 표시해 주었다. 읍치에는 읍성이 있었는데, 지도에도 읍성 모양을 선명하게 그려넣었다. 그밖에 중요한 산이나 고개는 세로의 긴 사각형으로, 越松亭望洋亭·溫井 등 평해군의 경승지는 세로의 타원형으로, 중요 도로는 붉은색의 실선으로 표현하여 구분해 주었다. 온정은 현재 백암온천으로 개발되어 국민관광지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지도 위에는 千字文의 글자가 직선의 형태로 순서대로 쓰인 단위가 여러 개 나타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군현마다 田畓에 천자문의 글자를 순서대로 붙여 토지를 파악했는데, 본 지도 위의 천자문이 바로 그런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다. 천자문의 글자가 직선으로 연결되어 初에서 시작하여 破로 끝나는 것이 여러개 나타나고 있는데, 관에서 보관하던 전답의 장부 단위가 아닌가 한다. 마을 이름도 아주 상세하게 표시되어 있는데, 人家·面員·員이 마을 이름 다음에 추가되어 있다. 이 중 人家라 적혀 있는 마을은 가옥이 밀집된 중심 마을을 의미하는 듯하며, 員이라는 글자만 적혀 있는 것은 중심 마을에 딸린 작은 마을이 아닌가 추정되나 확실하지는 않다. (이기봉)

  • 표지
    이미지

    朝鮮地圖 표지입니다

  • 황해도(72.0×69.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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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2.3cm 크기의 방안이 동서와 남북 각각 30개씩 그려져 있는데, 1개 방안의 거리는 약 10리를 나타낸 것으로 추정된다. 1651년(효종 2)에 江陰과 牛峯을 합해 金川을 만드는데, 본 지도 위의 금천 읍치는 1678년(숙종 4)과 1753년(영조 29) 사이에 있던 곳이다. 지도 왼쪽 아래에 所江鎭이 표시되어 있는데, 1719년(숙종 45)에 水營을 설치하면서 옹진현을 도호부로 승격시켰다. 소강진 오른쪽 아래에 표시된 登山鎭은 1730년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 본 사이트의 《해동지도》(고대 4709-41) 황해도 강령현 지도에 巡威島로 옮겨간 것으로 그려져 있다. 따라서 수록된 지명의 입장에서 볼 때 본 지도는 1700년 안팎의 시기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본 지도첩에 수록된 평안도와 경상도 지도와 달리 황해도의 전체 모습이 현대지도에 가까울 정도로 정확하게 그려진 편이다. 일반적으로 이 정도의 정확성을 보인 지도는 정상기(1678-1752)의 《동국지도》에서 비롯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본 지도가 1700년 안팎에 그려진 것으로 확인된다면 정확성 위주의 대축척 지도 제작에 대한 이해가 달라질 수 있다. 군현은 세로로 긴 붉은색 육각형, 군사기지인 진보는 붉은색 원의 기호를 사용하여 구분해 주었다. 그러나 모든 진보가 수록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일부 진보에는 붉은색의 원 기호가 없는 것도 있다. 주요 간선도로는 두 줄의 실선으로 그리면서 노란색을 칠해주었고, 지선도로는 붉은색 실선으로 표시하였다. 봉수와 船所 및 대형산성을 비롯한 인문 지명, 산과 섬 및 하천 등의 자연 지명이 상세한 편이다. 하지만 군현과 진보를 제외하면 인문 지명의 기호가 거의 사용되지 않아 1700년대 전반기 이후의 지도에 비해 지도학적인 수준은 상당히 떨어진다. (이기봉)

  • 뒷표지
    이미지

    朝鮮地圖 뒷표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