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도古地圖
규장각 소장 220여종 6,000매에 달하는 고지도를
유형별, 지역별로 분류하여 한 눈에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고지도

八道地圖 팔도지도

  • 편저자 : 浮雲墨客(朝鮮) 板寫
  • 청구기호 : 古4709-73
  • 간행연도 : [刊年未詳]
  • 책권수 : 1帖(10張)
  • 판본사항 : 木版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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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앞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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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도지도(八道地圖)〈古 4709-73〉 1책 앞표지입니다.

  • 강원도 (江原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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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지도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온라인 서비스되고 있는 木版本 지도인 《八道地圖(古4709-73)》에 수록되어 있는 〈강원도〉이다. 지도를 보면 한반도의 동해 해안 경계선이 거의 세로로 일직선에 가깝게 왜곡되어 있다. 대부분 목판본 지도는 紙面의 모양에 따라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거리나 방위들이 정확하지 못한 결점이 있다. 압록강·두만강의 북쪽 경계선과 해안선의 윤곽 그리고 각 도서의 위치가 부정확한 것은 그 당시 지도 작성에 필요한 정확한 정보가 부족했다기 보다는 민간인에게 널리 유포하기 위한 木版本의 규격에 좌우된 것으로 생각된다. 지도에서 보듯이 울릉도가 상당히 북쪽에 위치하여 있고 독도(于山島)는 울릉도 바로 아래에 잘못 그려진 점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동해 바다에는 신라의 중 의상이 지은 洛山寺와 淸刊亭, 望洋亭 등을 운치 있게 그려 놓은 점이 이색적이다. 춘천을 지나는 임진강 사이에 있는 金剛山은 주변 산보다 크게 그려져 있어 높고 험준한 산임을 표현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금강산의 산봉우리는 대략 12,000개이고 바위가 우뚝하게 뼈처럼 서서 동쪽으로 삼나무와 전나무가 울창하여 바라보면 그림과 같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본 지도에서는 산지를 단일한 뾰족한 봉우리만을 그려서 표현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산의 표현은 후대의 지도인 〈靑邱圖〉와 청구도 異名인 〈靑邱要覽〉에서도 볼 수 있다. 규장각에서 온라인 서비스 되고 있는 〈청구도〉와 〈청구요람〉은 본 지도처럼 각각 동떨어진 산봉우리만을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산에 따라 봉을 여러 번 겹쳐서 그 높이의 高底를 비교할 수 있게 하였고,  그 나머지 산지는 톱니모양으로 그려서 그 형세를 알아볼 수 있게 하였다. 즉 한층 정교한 산지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지도 하단의 주기를 보면 강원도에는 察訪驛이 銀溪驛, 保安驛, 祥雲驛, 平陵驛 4개소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찰방이 주재하는 역을 찰방역이라 하였고, 찰방은 관내의 속역을 관할하였다. 찰방은 종6품관으로 『大典會通』에 의하면 경기도에 6명, 충청도 5명, 경상도 11명, 전라도 6명, 황해도 3명, 강원도 4명, 함경도 3명, 평안도 2명을 배치하였다. 상운역의 경우 주변 고을과 연계되는 통로이며 連倉驛, 五色驛, 降仙驛, 人口驛 등 15개의 역을 관할하였다. (민경이)

  • 경기도 (京畿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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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지도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온라인 서비스되고 있는 木版本 지도인 《八道地圖(古4709-73)》에 수록되어 있는 〈경기도〉이다. 본 지도는 『東國與地勝覽』에 삽입된 도별도 즉 〈東覽圖〉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동람도〉는 『동국여지승람』의 附圖로 지도에 싣고 있는 내용이 매우 소략한데, 본 지도는〈동람도〉보다는 비교적 많은 인문적 정보가 추가되어 있다. 지도 사방 외곽에는 左右道別 所屬官數, 察訪, 驛站이 기록되어 있고 하단에는 鎭堡, 山城, 營衙 등 地誌的인 주기가 씌어져 있다. 원형 안에 郡縣名과 주변 神山은 물론 水營, 兵營 등 鎭營이 추가 되어 표시되었다. 찰방은 직사각형 안에 지명을 써서 구분하고 있다. 상세한 하계망은 볼 수 없으나 바다와 한강을 검은색으로 표시해 河系의 주요부는 확인할 수 있게 했다. 각 도로의 연계망도 표시되어 있지 않다. 또 산지는 모두 하나하나의 산을 표시할 뿐 산맥은 밝히지 않았다. 규장각에서 온라인 서비스되고 있는 목판본 지도인 《동국지도》, 《여지도(古 4709-58)》, 《조선지도(古4709-32)》, 《지도》 등에 수록되어 있는 〈경기도〉는 모두 본 지도의 형식과 내용이 거의 유사하다. (민경이)

  • 경상도 (慶尙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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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지도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온라인 서비스되고 있는 木版本 지도인 《八道地圖(古4709-73)》에 수록되어 있는 〈경상도〉이다. 본 지도는 『東國與地勝覽』에 삽입된 도별도 즉 〈東覽圖〉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동람도〉보다는 左右道別 所屬官數, 民戶數, 察訪, 驛站, 鎭堡, 山城, 營衙, 樓臺, 亭子, 寺刹 등 인문적 정보가 많이 추가·보완된 정도이다. 지도를 보면 동해안과 남해안의 해안선과 島嶼지역이 상당히 왜곡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대마도가 거리상 너무 가깝게 그려져 있다. 조선시대 장기현의 땅이었던 冬乙背串 즉 현재의 장기곶이 생략되고 수직에 가까운 동해안의 해안선이 그려져 있다. 또 남해안에 접하여 있는 도서지역 대부분이 생략되었고, 도서지역 간의 크기를 가늠 할 수 없다. 대부분의 목판본 지도는 축척과는 상관없이 紙面의 모양에 따라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해안선의 윤곽 그리고 각 도서의 위치 및 크기가 정확하지 못했다. 본 지도에서 지도의 제작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지도에서 보듯이 山陰과 安陰이 1767년(영조43)에 각각 山淸과 安義로 개명된 것이 반영되어 있다. 즉 이 지도는 1767년 이후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하나의 단서인 〈평안도〉와 〈충청도〉 도별도를 보면 理山과 尼山이 1776년(정조 1)에 각각 楚山과 尼城으로 개명되었으나 반영되어 있은 것으로 보아 1776년 이전에 제작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지도의 제작시기를 추정하는데 있어 지명 변천이라는 하나의 단서로만 추정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명의 변천 뿐만아니라 山, 江 등의 자연적 요소의 표현과 도로, 鎭堡, 驛站, 山城, 陵園 등의 인문적 요소 그리고 지도 여백에 씌여진 註記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제작시기를 추정해야 한다. 지도는 낙동강을 경계로 경상도를 우도와 좌도로 구분하고 있다. (민경이)

  • 전라도 (全羅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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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지도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온라인 서비스되고 있는 木版本 지도인 《八道地圖(古4709-73)》에 수록되어 있는 〈전라도〉이다. 본 지도는 『東國與地勝覽』에 삽입된 도별도 즉 〈東覽圖〉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동람도〉보다는 左右道別 所屬官數, 民戶數, 察訪, 驛站, 鎭堡, 山城, 營衙, 樓臺, 亭子, 寺刹 등 인문적 정보가 많이 추가·보완된 정도이다. 수록되어 있는 〈함경도〉, 〈평안도〉, 〈충청도〉, 〈경상도〉 도별도와 마찬가지로 본 지도에서도 서해에 접하고 있는 해안선과 남쪽의 제주도를 비롯하여 많은 도서지역이 생략되거나 크게 왜곡되어 그려져 있다. 특히 남쪽 바다에는 한라산을 중심으로 한 제주도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고 가깝게 유구국도 보인다. 이것은 그 당시 지도 제작에 필요한 정보가 부족했다기 보다는 목판본 규격에 좌우되어 제작되었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지도 사방 외곽에는 左右道別 所屬官數, 察訪, 驛站이 기록되어 있고 하단에는 鎭堡, 山城, 營衙 등 地誌的인 註記가 씌어져 있다. 원형 안에 郡縣名과 주변 鎭山은 물론 水營, 兵營 등 鎭營이 추가 되어 표시되었다. 찰방은 큰 직사각형 안에, 그 외 역은 작은 직사각형 안에 지명을 써서 구분하고 있다. 규장각에서 온라인 서비스되고 있는 목판본 지도인 《동국지도》, 《여지도(古 4709-58)》, 《조선지도(古4709-32)》, 《지도》 등에 수록되어 있는 〈전라도〉는 모두 본 지도의 형식과 내용이 거의 비슷하게 표현되어 있다. (민경이)

  • 중국도 (中國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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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지도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온라인 서비스되고 있는 木版本 지도인 《八道地圖(古4709-73)》에 수록되어 있는 〈중국도〉이다. 규장각에서 온라인 서비스되고 있는 목판본 지도인 《동국지도》, 《여지도(古 4709-58)》, 《조선지도(古4709-32)》, 《지도》 등에 수록되어 있는 〈중국도〉의 형식과 내용이 거의 유사하다. 바다와 하천 그리고 산지는 검은색, 육지는 흰색으로 그려져 있다. 北京과 南京은 큰 원형 안에 씌어져 있고, 禹貢의 9州, 역대 왕조 도읍지, 전국시대의 11國, 명나라 때의 행정구역인 13省은 북경·남경보다 작은 원형 안에 지명이 기록되어 있다. 마치 중국의 역사를 한눈에 보는 듯 하다. 13성 주변 여백에는 북경까지의 거리 정보가 註記되어 있고, 巴陵, 武陵 등의 陵과 黃鶴樓, 岳陽樓 등의 樓臺, 洞庭湖 등 역사적 명승지가 기록되어 있다. 지도 중앙에는 황하강, 양자강, 수강 등대하천이 검은색으로 그려져 있다. 왼쪽 장성 부근에 있는 곤륜산을 중심으로  嵩山, 華山, 恒山, 太山, 衡山의 五嶽이 보이고 그 외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산지가 보인다. 오른쪽 상단에는 백두산을 위시로 한 朝鮮國이 그려져 있다. 장성 바깥쪽에는 몽고, 여진, 흉노, 토번, 서역국 지명이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는 규장각에서 소장하고 있는 목판본 《동국지도》, 《여지도(古(4709-58)》에 수록된 〈중국도〉에는 일본과 유구국이 표시되어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민경이)

  • 천하총도 (天下總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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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지도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온라인 서비스되고 있는 木版本 지도인 《八道地圖(古4709-73)》에 수록되어 있는 圓形 〈천하총도〉이다. 대부분 원형의 천하도는 제목이 ‘天下圖’, ‘天下總圖’ 라 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고 극히 일부분이긴 하지만 ‘太極圖’라 표기된 것도 있다. 천하도는 단독의 지도보다는 조선전도, 도별도, 외국지도, 도성도 등 다른 지도를 포함한 지도첩, 지도책 첫 부분에 수록되어 있다. 지도 상단 여백에는 천지간의 사방거리가 註記되어 있다. 지도는 큰 원형 속에 중국을 강조한 내대륙과 그 주변을 둘러싸는 내해, 고리형의 외대륙, 그 바깥을 둘러싸는 외해로 구성되어 있다. 내대륙에는 중국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朝鮮, 서쪽에는 西域諸國과 蕃胡 12國, 북쪽에는 북방의 여러 나라 등 실제의 세계를 간략하게 그려내고 있다. 내해에는 日本, 유구 등과 같은 실재 국가의 지명도 보이고 있으나 대부분 가상의 지명들이다. 외대륙에도 대부분이 가상의 지명들로 이루어져 있다. 내대륙에 수록된 나라들은 대부분 역사적으로 중국에 조공관계를 맺어 왔던 국가들로서 史書에서 대부분 찾아 볼 수 있다. 崑崙山에서 발원하는 羊水, 黑水 그리고 赤水가 그려져 있는데 양수와 흑수는 서역과 인도를 구분하는 경계가 되고 있고, 적수는 인도와 중국 본토를 구분하는 경계가 되고 있는 모습이다. 또 중국 주변에는 嵩山, 華山, 恒山, 太山, 衡山의 五嶽이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에 실려 있는 지명은 대부분 『山海經』에서 보이는 지명들이고 그 외 『漢書』, 『禹貢』등의 史書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지명이다. 중국 고대의 지리서이면서 신화서적 성격을 지닌 『산해경』은 크게 「山經」과 「海經」으로 구분된다. 「산경」은 「五臧山經」인데, 동·서·남·북·중의 5권으로 이루어져 있고, 「해경」은 「海外經」의 동서남북 4권, 「海內經」의 동서남북 4권, 「大荒經」의 동서남북 4권과 獨篇 「海內經」1권으로 편성되어 있다. 즉 원형 천하도의 내대륙이 『산해경』의 「오장산경」과 같이 실제의 세계가 표현되어 있고, 「해경」「대황경」의 가상적인 성격을 천하도의 내해와 외대륙에서 유사하게 볼 수 있다. 외대륙의 동서북쪽에는 일월의 출입처와 神木을 그려내고 있다. 동쪽의 해와 달이 뜨는 곳에는 流波山과 扶桑이 그려져 있고, 서쪽 해와 달이 지는 곳에는 方山과 盤格松이, 북쪽에는 盤木千里와 神木이 그려져 있다. 전통적으로 소나무는 십장생의 하나로 불로장수를 상징하는 점을 고려할 때 지도에 그려진 수목은 신선사상과 깊은 관련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지도에는 전형적인 화이관이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은 원으로 크게 강조하여 표현하고 조선은 아무런 표시 없이 글자로만 표기하였으며 나머지 주변에 배치된 나라들은 직사각형 안에 표기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원형 천하도의 원본과 가까운 것으로 판단되는 목판본에서는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원, 무도형, 직사각형 등의 차이는 중국, 조선, 기타 국가가 위계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중국이 中華, 조선은 小中華, 기타 나라는 夷國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된다. 지도에 표현되고 있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원형 천하도는 중화적인 세계 인식,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세계를 동시에 표현한 天地人의 상관관계, 일월처의 神木 등의 신선사상이 반영되어 그 당시 사람들의 세계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다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 지도라 할 수 있다.  (민경이)

  • 충청도 (忠淸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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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지도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온라인 서비스되고 있는 木版本 지도인 《八道地圖(古4709-73)》에 수록되어 있는 〈충청도〉이다. 본 지도는 『東國與地勝覽』에 삽입된 도별도 즉 〈東覽圖〉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동람도〉 보다는 左右道別 所屬官數, 民戶數, 察訪, 驛站, 鎭堡, 山城, 營衙, 樓臺, 亭子, 寺刹 등 인문적 정보가 많이 추가· 보완된 정도이다. 후대 정상기의 《東國地圖》나 김정호의 《靑邱圖》, 《大東輿地圖》와 비교해 볼 때 해안선의 윤곽과 島嶼의 위치 및 크기가 상당히 왜곡된 모습이다. 대부분의 목판본 지도가 축척과는 상관없이 紙面의 모양에 따라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하계망은 상세하지는 않지만 금강 및 삽교천 등 하천을 검은색으로 표시해 河系의 주요부는 확인할 수 있다. 《八道地圖(古4709-73)》는 〈天下總圖〉와 〈中國圖〉그리고 8장의 도별도로 구성되어 있다. 지도첩 첫 부분에 수록되어 있는 〈天下總圖〉와 〈中國圖〉 자체만으로는 지도 제작시기를 추정하기는 불가능하다. 〈天下總圖〉와 〈中國圖〉는 과거의 역사적 지명이 반영되어 대개 함께 수록된 도별도의 郡縣名으로 제작 시기를 추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본 지도에서 지도의 제작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단서를 찾을 수 있다. 평안도 理山과 더불어 충청도 尼山이 1776년(정조 1)에 각각 楚山과 尼城으로 개명되었으나 반영되어 있지 않다. 여기에 〈경상도〉지도의 山陰과 安陰이 1767년(영조43)에 각각 山淸과 安義로 개명된 것이 반영되어 있다. 즉 《팔도지도(고4709-73)》의 제작 시기를 추정해 보면 1767년(영조 43)~1776년(정조 1)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판단된다. (민경이)

  • 평안도 (平安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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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지도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온라인 서비스되고 있는 木版本 지도인 《八道地圖(古4709-73)》에 수록되어 있는 〈평안도〉이다. 본 지도는 『東國與地勝覽』에 삽입된 도별도 즉 〈東覽圖〉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東覽圖〉 보다는 左右道別 所屬官數, 民戶數, 察訪, 驛站, 鎭堡, 山城, 營衙, 樓臺, 亭子, 寺刹 등 인문적 정보가 많이 추가· 보완된 정도이다. 《팔도지도(고4709-73)》의 제작 시기를 추정해 보면 1767년(영조 43)~1776년(정조 1)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판단된다. 본 지도에서 그 단서가 되는 지명이 보인다.  즉 경상도의 山陰과 安陰이 1767년(영조43)에 각각 山淸과 安義로 개명된 것이 반영되어 있고, 1776년(정조 1)에 평안도 理山을 楚山으로, 충청도 尼山이 尼城으로 개명되었으나 그대로 각각 理山과 尼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본 지도와 〈함경도〉 지도를 연결하여 보면 한반도의 東西길이 뿐만 아니라 南北의 길이도 크게 과장되거나 축소된 부분이 발견된다. 특히 압록강과 두만강 경계부가 많이 왜곡되어 있고, 내용도 간략하게 되어 있다. 윤곽이 부정확한 것은 그 당시 지도 작성에 필요한 정확한 정보가 부족했다기 보다는 민간인에게 널리 유포하기 위한 木版本의 규격에 좌우된 것으로 생각된다. 사방 외곽에는 左右道別 所屬官數, 8방위에 위치하고 있는 인접 고을, 察訪, 驛站이 기록되어 있다. 지도 하단에는 鎭堡, 山城, 營衙 등 地誌的인 정보가 나열되어 있다. 하천과 바다는 검은색, 육지는 흰색으로 표시하고, 산지는 검은색으로 화산모양을 하여 그 아래 지명을 썼다. 각 고을은 큰 원형 안에 지명을 쓰고 좌측에 府·牧·守·令·監을 써서 고을의 크기를, 우측에는 시간 개념의 道里 정보를 기록하였다. (민경이)

  • 함경도 (咸鏡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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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지도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온라인 서비스되고 있는 木版本 지도인 《八道地圖(古4709-73)》에 수록되어 있는 〈함경도〉이다. 본 지도는 『東國與地勝覽』에 삽입된 도별도 즉 〈東覽圖〉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동람도〉 보다는 左右道別 所屬官數, 民戶數, 察訪, 驛站, 鎭堡, 山城, 營衙, 樓臺, 亭子, 寺刹 등 인문적 정보가 많이 추가· 보완된 정도이다. 본 지도와 〈평안도〉 지도를 연결하여 보면 한반도의 東西와 南北길이가 크게 과장되거나 축소된 부분이 발견된다. 특히 압록강과 두만강 경계부가 거의 가로로 일직선으로 되어 있고, 강변 넘어 북쪽지방에 대한 정보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대부분의 목판본 지도가 축척과는 상관없이 紙面의 모양에 따라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북쪽지방 경계선과 해안선의 윤곽 그리고 각 도서의 위치가 부정확하다. 이것은 그 당시 지도 제작에 필요한 정보가 부족했다기 보다는 목판본 규격에 좌우되어 제작되었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지도 사방 외곽에는 左右道別 所屬官數, 察訪, 驛站이 기록되어 있고 하단에는 鎭堡, 山城, 營衙, 民戶數  등 地誌的인 주기가 씌어져 있다. 원형 안에 郡縣名과 주변 鎭山은 물론 水營, 兵營 등 鎭營이 추가 되어 표시되었다. 찰방은 큰 직사각형 안에, 그 외 역은 작은 직사각형 안에 지명을 써서 구분하고 있다. 상세한 하계망은 볼 수 없으나 바다와 두만강은 검은색으로 표시해 河系의 주요부는 확인할 수 있게 했다. 각 도로의 연계망도 표시되어 있지 않다. 또 산지는 모두 하나하나의 산을 표시할 뿐 산맥은 밝히지 않았다. 규장각에서 온라인 서비스되고 있는 목판본 지도인 《동국지도》, 《여지도(古 4709-58)》, 《조선지도(古4709-32)》, 《지도》 등에 수록되어 있는 〈함경도〉는 모두 본 지도의 형식과 내용이 거의 유사하다. (민경이)

  • 황해도 (黃海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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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지도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온라인 서비스되고 있는 木版本 지도인 《八道地圖(古4709-73)》에 수록되어 있는 〈황해도〉이다. 본 지도는 『東國與地勝覽』에 삽입된 도별도 즉 〈東覽圖〉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동람도〉는 『동국여지승람』의 附圖로 지도에 싣고 있는 내용이 매우 소략한데, 본 지도는〈동람도〉보다는 비교적 많은 인문적 정보가 추가되어 있다. 각 군현 주변에는 鎭山과 더불어 주요 산을 표시해 놓고 있다. 본 지도에서는 산지를 일률적으로 뾰족한 산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후대 지도에 표현하는 산지의 양식은 점차 세련되고 다양해짐을 알 수 있다. 규장각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도》, 《동여도》, 《대동여지도》에서는 산을 하나로 이어진 脈으로 표현하여 유기체적인 산맥체계를 볼 수 있다. 《청구요람》의 경우는 본 지도처럼 각각 동떨어진 산봉우리만을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산에 따라 봉을 여러 번 겹쳐서 그 높이의 高底를 비교할 수 있게 하였고, 그 나머지 산지는 톱니모양으로 그려서 그 형세를 알아볼 수 있게 하였다.  즉 한층 정교한 산지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민경이)

  • 뒷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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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도지도(八道地圖)〈古 4709-73〉 1책 뒷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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