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도古地圖
규장각 소장 220여종 6,000매에 달하는 고지도를
유형별, 지역별로 분류하여 한 눈에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고지도

海東地圖 해동지도

  • 편저자 : [作者未詳]
  • 청구기호 : 古4709-61
  • 간행연도 : [18世紀(正祖元年(1776) 以前)]
  • 책권수 : 1帖(8折)
  • 판본사항 : 筆寫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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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尙驥(1678~1752)는 조선초기의 유명한 학자인 鄭麟趾의 후손으로 본인뿐만 아니라 數代에 걸쳐 지도제작에 힘써온 名門이다. 정상기의 《東國地圖》는 크게 鄭恒齡, 鄭元霖, 鄭遂榮 등 4대에 걸쳐서 제작되었던 原圖本 계열의 河東鄭氏 가문과 鄭喆祚, 鄭厚祚로 대표되는 修正本 계열의 海州鄭氏 가문에 의해 제작된 지도로 구분할 수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서비스 되고 있는 《海東地圖(古4709-61)》는 정상기의 原本 河東鄭氏 계열의 사본 지도로 규장각 소장의 지도 중에서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 衿川이 始興으로 표기되어 있고 충청도 魯城이 표기된 것으로 보아 1800년 이후에 제작되었다. 또한 1822년 함경도 厚州府가 처음으로 설치되는데 이의 표시가 없는 것으로 보아 1822년 이전에 그려졌다고 추정된다. 여백에 관할 州郡의 명칭이 실려 있는데 대략적으로 지도상의 표기와 일치하고 있다. 지도는 〈경기도·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황해도〉, 〈평안도〉, 〈강원도〉, 〈함경남도〉, 〈함경북도〉 순으로 총 8장의 分圖로 이루어졌다. 百里尺과 跋文은 황해도 지면에 소재되어 있다. 대부분 정상기의 《東國地圖》 사본에는 백리척과 발문이 함경북도 圖面에 게재되어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 지도는 후대의 지도 模寫子가 원본의 형식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편의에 따라 경기도 또는 황해도 지면에 전사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황해도 지면에 백리척과 발문을 게재해 놓은 경우는 황해도의 면적이 가장 작아서 지도상에서도 다른 道別圖보다 여백이 많은 데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백리척은 전체 길이가 10寸이 되고 5寸으로 구분해 놓고 있다. 규장각 소장의 《八道地圖(古4709-48)》는 전체 길이 10寸을 이등분하여 5寸으로 구분하고 다시 각각의 寸을 이등분하여 보다 세밀하게 백리척을 그려 놓은 경우도 있다. 발문은 말미 몇 줄이 누락되어 소재되어 있다. 이는 초기의 전사자가 실수로 끝부분을 빠뜨리고 전사한 것을 후대의 전사자가 그대로 베낀 데서 연유된 것으로 판단된다. 발문에서는 거리와 방위가 정확하지 못한 결함을 지적하면서 지도의 제작경위와 산천의 험준함과 거리의 遠近을 고려한 백리척의 사용, 지방의 크기에 따라 함경도를 남도와 북도로 구분하고, 경기도와 충청도를 한 지면에 그린 점, 도별도와 山水, 道路, 烽燧, 驛 등의 彩色에 대한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 각 道別 分圖에는 所屬官數와 民戶, 田結, 察訪, 鎭堡, 山城이 기록되어 있고 지도 뒷면에 각 郡縣의 邑號가 註記되어 있다. 다른 정상기 사본지도 보다 보관상태도 양호하고, 담겨진 정보가 보완되어 있다. 각 고을인 경우 원형 ‘○’ 안에 지명을 쓰고 주변에 소속 面數와 道里 정보를 기재해 놓았다. 봉수는 촛불모양으로, 진보는 작은 원형 ‘●’의 범례를 사용하고 있었다. (민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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