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도古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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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도

海東地圖 해동지도

  • 편저자 : [作者未詳]
  • 청구기호 : 古4709-61
  • 간행연도 : [18世紀(正祖元年(1776) 以前)]
  • 책권수 : 1帖(8折)
  • 판본사항 : 筆寫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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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동지도(海東地圖)〈古 4709-61〉 1책 앞표지입니다.

  • 강원도 (江原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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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도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海東地圖(古4709-61)》인데 鄭尙驥 《東國地圖》의 原圖 계열을 따르는 사본 지도로 총 8장의 分圖 중 〈강원도〉 부분이다. 현재 북한행정구역상 강원도 일부, 남한행정구역상 강원도, 경기도, 경상북도, 충청북도 일부가 포함된다. 강원도는 태백산맥의 분수계를 경계로 嶺東과 嶺西로 나뉘며, 이 두 지방은 대관령(832m), 한계령(920m), 미시령(767m), 진부령(520m), 진고개(940m) 등의 고개를 통해 이어진다. 지도에서 금강산을 포함한 설악산(1,708m), 오대산(1,536m) 등과 같은 산줄기가 연결된 것이 태백산맥이다. 대관령 일대는 1000m 내외의 고위평탄면이 있어 이 지형은 고랭지 채소재배와 축산에 이용하고 있다. 영서지방은 지도에서 보듯이 남한강과 북한강 유역에 속해 있다. 남한강 본류는 조양강과 평창강이 영월에서 합쳐 이루어진다. 조양강은 대덕산(1,307m)에서 발원하는 골지천, 오대산에서 발원하는 오대천 등이 합쳐 이루어지고, 평창강은 계방산에서 발원하여 영월지방에서 주천강과 만나는데, 조양강과 평창강은 영월 부근에서 東江과 西江이라 불리 운다. 영월지방에서 시작하는 남한강 본류는 충북의 단양지방으로 흘러나가고, 금강산에서 발원하는 북한강은 소양강, 홍천강 등의 지류를 합하면서 경기도의 가평지방으로 흘러나간다. 옛부터 강원도는 수려한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金剛山(1638m), 海金剛, 三一浦, 구룡폭포(구룡연), 외금강온천 등이 그것이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금강산은 산 이름이 다섯 가지가 있는데 금강, 개골, 열반, 풍악, 지달이다. 산봉우리는 대략 12,000개이고 바위가 우뚝하게 뼈처럼 서서 동쪽으로 삼나무와 전나무가 울창하여 바라보면 그림과 같다. 일출봉, 월출봉 두 봉우리가 있어서 해와 달이 뜨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산에는 모두 108개의 절이 있는데 표훈사, 정양사, 장안사, 발연사 등이 가장 이름난 사찰이라고 한다. 월비산 아래에 있는 삼일포는 安軸의 기문에 중첩한 봉우리가 둘러싸이고 洞壑이 맑고 그윽하며 소나무와 돌이 기이하고 옛스럽다고 한다. 물 가운데 섬이 있고 푸른 돌이 평평하니 신선이 3일간이나 놀면서 돌아가지 않았다고 하여 삼일포라 이름 붙여진 것이다. (민경이)

  • 경기도·충청도 (京畿道·忠淸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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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도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海東地圖(古4709-61)》인데 鄭尙驥 《東國地圖》의 原圖 계열을 따르는 사본 지도로 총 8장의 分圖 중 〈경기도·충청도〉 부분이다. 현재 북한 행정구역상 현재 행정구역상 북한과의 군사분계선 근처에 있는 황해북도의 개성시, 장단군, 연천군, 남한의 경기도와 충청도에 해당된다. 지도의 제작 시기를 추정하는데 있어 고려해야 할 것은 지명의 변천 뿐만 아니라 山, 江 등의 자연적 요소의 표현과 도로, 鎭堡, 驛站, 山城, 陵園 등의 인문적 요소 그리고 지도 여백에 씌여진 註記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야 한다. 지도에는 제작시기를 추정 할 수 있는 단서가 보이는데, 즉 경기도 衿川이 始興으로 표기되어 있고 충청도 魯城이 표기된 것으로 보아 1800년 이후에 제작 되었다. 또한 1822년 함경도 厚州府가 처음으로 설치되는데 이의 표시가 없는 것으로 보아 1822년 이전에 그려졌다고 추정된다. 지도 여백에는 道別 所屬官數, 察訪, 鎭堡, 山城, 民戶, 田結이 註記되어 있다.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八道地圖(古4709-23)》보다 풍부한 地誌적 정보가 담겨져 있다. 이것은 후대 模寫本일수록 傳寫子가 내용을 보완·수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각 州郡의 여백에는 所屬面數와 距離 정보를 기재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형식은 김정호의 《靑邱圖》에서도 볼 수 있다. 물론 기재된 정보는 戶口, 田結, 穀總, 軍丁 등으로 더욱 풍부하고 상세하지만, 후대의 지지적 정보를 기재하는 형식의 기초적 단서를 제공하였다고 볼 수 있다. 도로는 발문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百里尺을 도입하여 평탄한 곳에서는 100里를 1尺으로 표시하고, 山峽이나 水曲迂廻處에서는 1尺을 百 2,30里를 표시하게 하였다. 즉 산지에서의 里數는 직선거리로 고쳐서 지도에 표시하였음을 말하는 것이다. 후대 김정호의 《大東輿地圖》에서는 모두 직선화하여 10리마다 점을 찍어 두 지역간의거리를 추정할 수 있도록 하는데 기여했을 가능성도 크다. 한강 강변에 위치한 京都를 상대적으로 크게 표시되어 있다. 경도는 서울의 별칭으로 京師, 京洛, 都城, 都邑, 長安, 皇城, 京兆, 廣陵으로도 불리웠다. 한성은 500여 년간 정치, 경제, 군사, 문화 교통의 중심지였다. 한성 주변에는 풍수적인 명당 형국으로 昌陵, 明陵 등 조선시대의 陵이 들어서 있다. 왕족의 무덤인 陵은 조선의 정통성을 상징하기 때문에 전통시대의 지리지나 지도에 필수적으로 수록되는 정보이다. 조선시대에 한강은 장거리 물자 수송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한성부 아래쪽의 한강을 보통 京江이라고 불렀으며, 이곳을 무대로 상업을 행하던 사람들을 京江商人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경강은 수도인 한성을 배후지로 하여 상업이 가장 발달한 지역이었다. (민경이)

  • 경상도 (慶尙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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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도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海東地圖(古4709-61)》인데 鄭尙驥 《東國地圖》의 原圖 계열을 따르는 사본 지도로 총 8장의 分圖 중 〈경상도〉 부분이다. 현재 행정구역상 경상북도, 대구광역시, 울산광역시, 부산광역시, 경상남도에 해당된다. 경상도는 소백산맥과 섬진강을 경계로 충청도와 전라도를 구분된다. 지도 북쪽의 黃池에서 발원하는 낙동강은 경남으로 들어와 황강, 남강, 밀양강 등 주요 지류를 합한다. 남류하던 낙동강은 진주와 의령에 흐르는 남강을 만난 다음 동쪽으로 유로를 바꾸어 양산천과 밀양강을 만나면서 남쪽으로 흘러 남해로 유입한다. 남강은 유역면적이 넓은 편이라 중상류의 산간지방은 다우지로 홍수를 많이 일으켰다. 현재 진주의 남강댐은 이와 같은 홍수를 막기 위한 다목적댐으로 쌓은 것이다. 동해로는 울산만으로 유입되는 태화강, 부산만으로 유입되는 수영천 등이 유입되며, 태화강은 울산지방의 용수원으로 중요하다. 울산만은 6km 정도 大峴面(현 울산광역시 남구일대)쪽으로 뻗어 들어간 비교적 큰 만으로 수심이 깊다. 울산은 역사적으로 국방상 중요한 지역으로 신라시대에 경주의 동남쪽 관문 구실을 하였고, 고려 말에는 왜구의 침범이 극심해 읍성이 텅 비기도 했다. 또 정유재란 때 왜군의 보루로 이용되기도 했다. 지도에 慶尙左道兵馬節度使營이 보이고 있다. 경주의 後榮, 대구의 中營, 안동의 前營을 관할하였으며 현재의 울산광역시 중구 병영동에 있었다. 동래는 일본 대마도와 가장 가깝게 마주보고 있는 곳으로서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다. 지도에서도 慶尙左水營이 보인다. 정3품의 水軍節制使가 파견되었던 慶尙左水營은 현재 수영구 수영동 일대에 있었다.  낙동강 하구 서쪽지역 즉 하동, 곤양, 사천, 고성, 통영, 거제, 남해 등은 낮은 구릉지와 산지가 있어 해안선의 출입이 심하고 수심이 깊고 조차가 작아서 항만이 입지하는데 이상적이다. 역사적으로도 외적의 침입이 잦았던 터라 많은 해안방어를 위한 鎭堡들이 산재해 있는 모습이다. (민경이)

  • 전라도 (全羅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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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도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海東地圖(古4709-61)》인데 鄭尙驥 《東國地圖》의 原圖 계열을 따르는 사본 지도로 총 8장의 分圖 중 〈전라도〉 부분이다. 현재 북한 행정구역상 전라북도, 전라남도, 제주도에 해당된다. 지도 여백에는 道別 所屬官數, 察訪, 鎭堡, 山城, 民戶, 田結이 註記되어 있다.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八道地圖(古4709-23)》보다 풍부한 地誌적 정보가 담겨져 있다. 이것은 후대 模寫本일수록 傳寫子가 내용을 보완·수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시대에 驛丞을 찰방이라 개칭하였는데 전국 538역을 40구역으로 나누어 찰방을 두었다. 찰방이 주재하는 역을 찰방역이라 하였고 찰방은 관내의 속역을 관할하였다. 찰방은 종6품관으로 『大典會通』에 의하면 경기도에 6명, 충청도 5명, 경상도 11명, 전라도 6명, 황해도 3명, 강원도 4명, 함경도 3명, 평안도 2명을 배치하였다. 도로는 각 州縣마다 잘 연결되어 있다. 발문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百里尺을 도입하여 평탄한 곳에서는 100里를 1尺으로 표시하고, 山峽이나 水曲迂廻處에서는 1尺을 百 2,30里를 표시하게 하였다. 즉 산지에서의 里數는 직선거리로 고쳐서 지도에 표시하였음을 말하는 것이다. 지도 오른쪽에 있는 智異山 산줄기가 현재 소백산맥으로 불리는 백두대간이다. 이 산줄기의 오른쪽은 낙동강 유역에 속하며, 왼쪽은 섬진강 유역에 속한다. 지도 왼쪽 위의 龍泉山에서 나와 昌平 아래쪽으로 뻗은 산줄기는 湖南正脈이라고 한다. 이 산줄기의 서남쪽은 영산강 유역, 나머지는 섬진강 유역에 해당된다. 섬진강이란 명칭은 하류의 蟾津鎭에서 유래된 것이며, 일제시대에 와서 하천의 본류 전체를 지칭하는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지도 제작 당시에는 섬진강 변에 적힌 川, 灘, 津 등의 명칭이 모두 하천의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섬진강은 수심이 얕아 수운의 역할을 별로 하지 못했다. 규장각 소장의 《左海地圖(古1222)》와 해안선 윤곽을 비교하면 거의 차이가 없다. 특히 지금의 고흥반도와 여수반도 사이에 白也串이 섬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두 사본 모두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는 정상기의 《동국지도》 原圖에서 범한 실수를 후대의 전사자가 시정하지 않고 그대로 베낀 데서 연유하는 것이다. 또 제주도 지역을 보면 《좌해지도(古12229)》에서는 旌義縣 서쪽 지역(현재 서귀포시 부근)이 灣으로 표시되어 있으나 후대 사본인 《해동지도(고4709-61)》에서는 만이 아니라 호수로 표시되어 있다. 이것 또한 전사 하는 과정에서 발생된 오류라 볼 수 있다. (민경이)

  • 평안도 (平安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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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도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海東地圖(古4709-61)》인데 鄭尙驥 《東國地圖》의 原圖 계열을 따르는 사본 지도로 총 8장의 分圖 중 〈평안도〉 부분이다. 현재 행정구역상 자강도, 평안북도, 평안남도 일부지역과 평양직할시에 해당된다. 황해도 紙面에 게재되어 있는 발문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東國與地勝覽』에 삽입된 八道總圖와 道別圖 즉 〈東覽圖〉처럼 지도들이 많은 결함이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정상기는 이러한 기존의 지도들에서 보이는 결함들을 극복하여 한반도의 압록강과 두만강 등 북쪽 경계선을 명확히 확립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온라인 서비스 되고 있는 정상기 사본지도와 비교해 보면 지도의 형태나 내용은 거의 유사하지만 압록강을 넘어 중국의 영역 일부까지 그려진 점이 다르다. 현재의 자강도 중강군과 화평군에 해당되는 부분은 낭림산맥의 험준한 산지들 많아 상대적으로 인문적인 정보가 적다. 또한 북방의 여진족 방어를 위해 설치되었던 폐사군 지역이라 인구도 적고 산천 지명 외에 정보가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후대의 《靑邱要覽》이나 《東輿圖》 및 《大東輿地圖》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의주에서 압록강을 건너 九連山에 이르는 도로는 조선과 청의 사신이 오가던 사신로이다. 《동여도》에는 구련성 너머 柵門까지의 도로와 지명이 자세히 적혀 있으며, 구련성이 고구려 때 도읍한 國內城이라 적혀 있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현재 국내성으로 밝혀진 集安이 아니라 구련성이나 의주 근처를 國內城으로 인식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압록강 강변을 따라 해안 방어를 위한 鎭堡와 烽燧가 즐비하여 있다. 봉수는 횃불과 연기로 위급 시 서로 연계되어 급보를 전하던 통신방법으로 국토의 해안지방에 설치되어 적의 침입을 대비하였다. (민경이)

  • 함경남도 (咸鏡南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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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도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海東地圖(古4709-61)》인데 鄭尙驥 《東國地圖》의 原圖 계열을 따르는 사본 지도로 총 8장의 分圖 중 〈함경남도〉 부분이다. 현재 북한 행정구역상 함경남도 전체와 량강도 일부, 강원도 일부에 해당된다. 지도에는 지도 제작 년도를 추정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즉 경기도 衿川이 始興으로 표기되어 있고 충청도 魯城이 표기된 것으로 보아 1800년 이후에 제작되었다. 또한 1822년 함경도 厚州府가 처음으로 설치되는데 이의 표시가 없는 것으로 보아 1822년 이전에 그려졌다고 추정된다. 다른 分圖 여백에 관할 州郡의 명칭이 실려 있는데 대략적으로 지도상의 표기와 일치하고 있다. 정상기 〈동국지도〉의 발문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경기도와 충청도를 한 紙面에 그리고 함경도를 북도와 남도로 나누어 그렸다는 점을 볼 때 이 지도는 하동정씨 가문에서 이어져 내려온 원본 계열의 사본지도임을 알 수 있다. 지도 여백의 所屬官數와 民戶, 田結, 察訪, 鎭堡, 山城의 註記는 다음 장에 있는 함경북도 지면에 한꺼번에 기록되어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온라인 서비스되고 있는 《八道地圖(古4709-23)》 등의 정상기 사본지도와 비교해 볼 때 압록강, 두만강 일대의 북쪽 경계 부분에 있는 기록들이 상당수 생략되어 있다. 조선전기까지만 해도 왜곡되었던 북쪽 경계선이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보다 原形에 가까운 경계를 갖추게 되었다. 이는 정상기 〈동국지도〉가 이전에 우리나라 북쪽 윤곽선이 정교하게 표현된 이이명의 《遼薊關防地圖》, 尹鍈의 《東國地圖》, 黃曄의 《輿地圖》를 底本으로 하여 제작하였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단된다. 지도에 보이는 큰 물줄기는 두만강으로 후주강, 장진강, 허천강의 지류도 보인다. 부전강과 허천강 사이는 우리나라 최고 最廣의 고원지대인 개마고원이다. 일찍이 화전민에 의한 조, 구리, 콩, 감자 등의 粗放농업이 성한 곳이다. 永興 고을 주변의 하천은 龍興江으로 동해로 유입되며 馬熊島 지금의 호도반도와 만난다. 호도반도는 동해안에서 보기 드물게 해안선이 복잡하고 섬이 많은 곳이다. 낭림산맥을 경계로 평안도와 구분되며 백두산(2,744m)을 정점으로 하는 마천령산맥과 낭림산맥이 영흥과 정평 고을을 지난다. (민경이)

  • 함경북도 (咸鏡北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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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도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海東地圖(古4709-61)》인데 鄭尙驥 《東國地圖》의 原圖 계열을 따르는 사본 지도로 총 8장의 分圖 중 〈함경북도〉 부분이다. 현재 북한 행정구역상 함경북도 전체와 량강도 일부에 해당된다. 지도 여백에는 所屬官數와 民戶, 田結, 察訪, 鎭堡, 山城의 註記가 함경남도를 포함하여 한꺼번에 기록되어 있다. 지도에는 지도 제작 년도를 추정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백두산 아래 기록되어있는 ‘立碑’는 1712년(숙종 38)에 세워진 白頭山定界碑이다. 즉 지도는 1712년 이후에 제작된 지도임을 알 수 있다. 백두산정계비는 조선과 청국사이의 경계비로 후에 土門江의 경계가 두만강이라고 하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지도에 표시된 長白山은 조선시대의 지리지에 보통 “산세가 매우 험하여 5월이 되어야 눈이 녹으며, 7월이면 다시 눈이 쌓인다”라고 적혀 있다. 지도에도 이러한 사실을 반영하여 장백산을 웅장하게 그렸을 뿐만 아니라 흰색이 많이 드러나도록 그렸다. 조선시대 지리지의 명천이나 길주, 경성 등의 산천 항목에 여러 하천이 시작되는 산으로 장백산이 등장한다. 장백산은 여러 지역의 지리지에 나오듯이 하나의 산을 지칭한다기보다는 현재의 관모봉(2,541m)을 중심으로 한 2,000m 이상의 여러 봉우리가 산줄기로 연결된 것을 의미한다. 함경북도는 두만강을 경계로 중국과 분리된다. 또 강변을 따라 烽燧와 鎭營 그리고 생략되어 있지만 파수가 나열되어 있다. 촛불모양으로 표시된 봉수는 횃불과 연기로 위급 시 서로 연계되어 급보를 전하던 통신방법으로 국토의 변방지역이나 해안지방에 설치되어 적의 침입을 대비하였다. 두만강 강변에 위치한 鍾城, 穩城, 會寧, 慶源, 慶興, 富寧 고을은 四君과 더불어 여진족 방어를 위해 두만강 하류 남안에 설치되었던 6鎭으로 국방상의 요지로 중요한 곳이었다. (민경이)

  • 황해도 (黃海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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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도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海東地圖(古4709-61)》인데 鄭尙驥 《東國地圖》의 原圖 계열을 따르는 사본 지도로 총 8장의 分圖 중 〈황해도〉 부분이다. 현재 행정구역상 황해북도, 황해남도에 해당된다. 다른 정상기 원본 계열 사본지도와 다르게 百里尺과 跋文은 본 황해도 紙面에 소재되어 있다 대부분 정상기의 《東國地圖》 사본에는 백리척과 발문이 함경북도 지면에 게재되어 있다. 이 지도는 후대의 지도 模寫子가 원본의 형식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편의에 따라 경기도 또는 황해도 지면에 전사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황해도 지면에 백리척과 발문을 게재해 놓은 경우는 황해도의 면적이 가장 작아서 지도상에서도 다른 道別圖보다 여백이 많은 데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백리척은 전체 길이가 10寸이 되고 이등분하여 5寸으로 구분해 놓고 있다. 발문은 말미 몇 줄이 누락되어 있다. 이는 초기의 전사자가 실수로 끝부분을 빠뜨리고 전사한 것을 후대의 전사자가 그대로 베낀 데서 연유된 것으로 판단된다. 발문에서는 거리와 방위가 정확하지 못한 결함을 지적하면서 지도의 제작경위와 산천의 험준함과 거리의 遠近을 고려한 백리척의 사용, 지방의 크기에 따라 함경도를 남도와 북도로 구분하고, 경기도와 충청도를 한 지면에 그린 점, 도별도와 山水, 道路, 烽燧, 驛站 등의 彩色에 대한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 황해도는 호비령 산맥을 경계로 강원도와 구분되며 서쪽으로는 황해에 접하여 있고, 재령강과 예성강 유역권이다. 재령강 유역은 이중환의 『택리지』에도 땅이 아주 기름져서 오곡과 면화를 가꾸기에 알맞다고 나올 정도로 곡창지역이었다. 서해에 접하여 있는 경기만은 연평도, 백령도 및 많은 섬들이 있다. 백령도는 현재 남한의 땅으로 장산곶이 가장 잘 보이는 곳으로 해안의 암석경관이 빼어나다. 장산곶은 바닷가에 암초가 많고 물의 흐름이 빨라 배의 운행이 어려운 곳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황주는 황해도의 가장 북쪽에 위치하여 평안도와 접한 고을이다. 한양에서 의주로 가는 대로에 위치한 군사 요충지여서 1593년(선조 26)에 兵馬節度使營을 설치하였다.  (민경이)

  • 뒷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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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동지도(海東地圖)〈古 4709-61〉 1책 뒷표지입니다.